과학•기술로 아름다움 창출… 먹는 화장품 개발...
Transcript of 과학•기술로 아름다움 창출… 먹는 화장품 개발...
세계 거대기업 탐구6 2015년 10월 14일
<30> 화장품의 지존 프랑스의 자존심 로레알 편
로레알은 화장품 기업이다. 전 세계
에서 화장품 매출액이 가장 많다. 전
세계 화장품 시장의 17% 내외를 장악
하고 있다. 판매량뿐만 아니라 제품의
질과 명성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하하
는 세계 1위의 화장품 회사다. 파이낸
셜 타임스와 포춘 등으로부터 가장 존
경받은 기업으로도 여러 차례 선정됐
다. 본사를 프랑스 파리에 둔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
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프랑스의 대
표적인 국민기업이기도 하다.
1909년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발명가
였던 외젠 슈엘러(Eugene Schueller)
가 창립했다. 처음에는 염색회사였다.
오레올(Aureole)이라는 이름의 염색
약으로 기반을 다진 다음 사업영역을
점차 확장하여 지금은 발바닥에서 머
리끝까지 거의 모든 화장품을 취급하
고 있다.
창립 초부터 로레알은 과학과 기술
에 가장 큰 가치를 두어왔다. 과학과
기술로 아름다움을 창출해내겠다는
것이 기업정신이다. 인구인력은 지난
과학•기술로 아름다움 창출… 먹는 화장품 개발 도전M&A의 귀재… 랑콤 인수 계기 세계 1위 기업 도약
시장 포화상태… 모든 인구가 쓸 새 제품에 승부수
로레알은 외젠 슈엘러가 창업했다.
불어 원어로는 Eugène Paul Louis
Schueller이다. 조상들이 독일에서 프
랑스로 넘어온 독일계 프랑스인 후손
이다. 1881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
다. 프랑스의 과학 분야 최고 대학인
파리국립화학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
학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 염색약과
인연을 맺게 된다. 오늘날까지도 명
성이 이어지고 있는 파리텍‘Chimie
ParisTech’이 그의 모교다.
어느 날 한 미장원 주인이 파리텍 연
구소를 찾아왔다. 물감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염색약을 개발해 달라고 요구
한 것. 연구비에 보상금까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슈엘러는 그 제안에 학문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집에다 실험실을
차려놓고 연구에 들어갔다. 1907년 마
침내 물감이 장시간 지속되는 새로운
머리 염색약을 개발해냈다. 그 이름을
오레알(Oréale)이라고 불렀다. ‘빛의
후광’ 또는 ‘빛 무리’라는 뜻이다.
주문한 미용실을 찾았으나 그 주인
이 이미 폐업하고 떠난 뒤였다. 망연
자실한 슈엘러는 스스로 사업을 해보
기로 했다. 거리의 미용실로 나섰다.
직접 물건을 들
고 다니며 세일
을 한 것이다. 반
응이 꽤 좋았다.
오 레 알 의 판
매량이 계속 늘
어 나 자 슈 엘 러
는 1 9 0 9 년 본
격적으로 회사를 창업하기에 이른
다. 그 이름이 ‘Société Française
de Teintures Inoffensives pour
Cheveux’이다. 가장 안전한 염색기업
이란 뜻이다. 바로 이 회사가 오늘날
세계 1위 화장품기업인 로레알의 기원
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여성
들의 사회참여가 본격화되면서 염색
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슈엘
러는 일약 갑부의 반열에 오른다.
슈엘러의 첫 부인이었던 루이스 베
르트(Louise Berthe)는 1927년 돌연
병사했다. 슬하에는 딸 한 명만을 두
었다. 슈엘러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
다. 그가 세계 여성부자 랭킹 2위인 릴
리안 베탕쿠르다. 베탕쿠르는 28살이
던 1950년 결혼했다. 남편은 훗날 프
랑스 내각의 장관에까지 오른 앙드레
베탕쿠르다. 이 둘 사이에도 딸 하나
만 있다. 이름은 프랑수아 메이어다.
지금 로레알의 최대주주는 올해 만
93세인 릴리안 베탕구르다. 그 외동딸
인 프랑수아 메이어가 법상 유일한 상
속녀이다. 두 대에 걸쳐 딸로 모계 승
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딸의
남편은 유대인이다. 그들은 두 자녀를
유대인으로 키우고 있다. 메이어가 상
속한다면 로레알은 유대인 소유의 회
사가 된다. 2008년 로레알에서 대형
스캔들이 터졌다. 어머니 베탕쿠르가
연인 사이로 알려진 사진작가 바니에
에게 한번에 10억 유로의 용돈을 준 사
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10억 유로는 우리 돈으로 1조3000억
원에 육박하는 거액이다. 그뿐 아니라
모든 재산을 딸 대신 메이어에게 넘기
려고 한 유언장까지 드러났다.
흥분한 딸 메이어는 93세 치매의 어
머니에게 꼬리를 쳐 돈을 받아냈다면
서 사진작가 바니에를 사기혐의로 고
소했다. 또 엄마에 대해서는 치매로
정신이 이상해졌다면서 법원에 금치
산자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하고 나섰
다. 메이어는 그 사기행각을 입증하
기 위해 엄마 집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를 비밀리에 녹음했다가 법정에 제출
했다. 이 테이프는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였다. 사진작가 뿐 아니라 거물
정치인들의 뇌물흔적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어머니 불륜을 들추려다 프랑
스 정계를 뒤흔든 것이다. 현직이었
던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연루
됐다. 치매노인의 늦은 사랑 행각이
로레알 가문의 분쟁을 넘어 급기야는
프랑스의 국기를 흔드는 초대형 스캔
들로 비화됐다.
그 와중에 사르코지 대통령은 여론
악화로 재선에 실패해 대통령에서 물
러났다. 사르코지의 비서 격인 노동
장관은 이미 구속됐다. 사기소송과 뇌
물수수 그리고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둘러싼 재벌가와 정가가 엇물린 희대
의 재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프랑스 국민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한때 프랑스의 자존심으로 까지
받들었던 로레알에 대해 잇달아 터져
나오는 스캔들로 배신감은 더 크다.
로레알과 슈엘러 후손 가문으로서는
일대 위기다.
김재희 기자
● 창업주 슈엘러 박사 스토리와 후손들의 스캔들 파문
● 로레알의 대표 브랜드 랑콤의 유래와 창업이념
아름다움이 세상 구원… 프티장 정신 계승
로레알의 대표 브랜드는 단연 랑콤
이다. 그 랑콤을 처음 만든 이는 아르
망 프티장(Armand Petitjean)이다.
1884년생이다. 프랑스의 생 루(Saint-
Loup)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프티장은 프랑스의 외무
부 소속의 외교관이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프랑스의 국익을 증진하
는 데에 투신했다. 퇴직 후에는 남미로
가 그곳에서 사업을 했다. 프랑스로부
터 명품을 들여다 현지에서 팔아 큰돈
을 벌었다. 그 와중에 프랑스와 코티
라는 향수 제조업자를 만났다. 유명한
화장품업체인 코티의 창업주다. 프티
장은 10년 연상인 코티로부터 향수는
물론 화장품에 관한 많은 지식을 전수
했다. 함께 동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만 51세 되던 1935년 독립
하여 새로운 기업을 차렸다. 그때 내
세운 회사의 이름이 바로 랑콤이다.
영어로는 ‘Lancome'이다. 프랑스 중
부 샤토르(Château)의 랑코스메(de
Lancosme)라는 성 이름에서 따왔
다. 그 발음을 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LANCOSME’에서 가운데 S를 빼고
‘LANCOME’으로 정했다. 랑코스메
성은 온갖 꽃으로 덮인 아름다운 곳이
다. 프티장은 틈만 나면 이 성을 거닐
면서 아름다움의 영감을 얻었다.
랑콤의 첫 상품은 향수다. 1935년에
코케트, 키프레, 트로피크, 탕드르뉘
그리고 보카쥬 등 5가지의 향수를 출
시했다. 그해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랑콤의 향수
는 큰 인기를 끌었다.
랑콤이 우뚝 선 것은 이듬해인 1936
년 ‘뉴트릭스’라는 크림을 내놓으면서
부터다. 역사상 최초의 오일 베이스
화장수이다. 피부 보호와 영양 효과가
뛰어났다. 2차 대전 때에는 군인들의
필수품으로 지정될 정도였다. 피부 상
처를 입은 병사들이 앞 다투어 랑콤 뉴
트릭스를 찾았다. 지금도 ‘기적의 크
림’ 또는 ‘전설의 크림’으로 불린다.
프티장은 1942년 랑콤 학교를 만들
었다. 젊은 여성들을 대거 선발해 피
부 관리와 화장에 관한 지식과 관리기
술을 가르친 것. 역사상 최초의 화장 학
교다. 여기서 1년 동안 교육받은 고급
인재들을 곳곳에 미의 전도사로 내보
냈다. 그 전도사를 통해 근대식 화장
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갔다. 스스로
시장 기반을 만들어나간 좋은 사례다.
프티장은 아름다움을 인간의 최고가
치로 믿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
스키의 저서 ‘백치’에서 나오는 ‘아름
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구절
을 가장 좋아했다. 오늘날 랑콤이 내
세우고 있는 “아름다움을 신봉한다”
(Believe in Beauty) 라는 캐치프레이
즈는 진선미 중에서도 미에 최고의 가
치를 부여해 왔던 창업주의 정신을 승
계한 것이다. 그 미를 과학 화장품을
통해 여성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 프티
장이 랑콤을 세운 이유다.
75세 되던 1961년에 프티장은 아들인
마르셀 프티장에게 물러주고 은퇴했
다. 아들은 소설가였다. 그 아들은 황
금장미를 로고로 채택했다. 랑콤의 황
금장미는 소설가의 문학적 상상력에
서 나온 것이다. 인수한 지 3년째 되던
1964년 로레알에서 인수 제안을 해왔
다. 프티장은 계속 소설을 쓰고 싶다
며 랑콤을 팔아 버린다. 그리하여 랑
콤은 로레알의 품으로 넘어갔다.
김윤식 기자
염색약 개발 의뢰자 사라져 창업했다 뜻밖에 대박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경제연구소 소장(경제학 박사)
해 말 기준으로 2만1123명이다. 전체 7
만8600명 종업원 중 26.9%가 화장품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창업 이후 취
득한 특허가 3만개를 훌쩍 넘는다. 요
즘도 매년 500여 건씩의 특허를 따내
고 있다. 발견해 낸 화학분자의 수도
3000개에 이른다.
창업주인 슈엘러 자신이 과학자이기
도 했지만 그 뒤를 이은 경영진 중에도
과학자가 유난히 많았다. 샤를르 즈비
악 회장은 CEO 시절 처음으로 모발의
실체를 규명해 내기도 했다.
로레알하면 “Because we you are
worth it!”이라는 광고를 연상케 된다.
우리말로 굳이 옮긴다면 “우리는 소중
하니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원래
캠페인은 “나는 소중하니까” 이었다.
영어로는 “Because I am worth it!”
이다. 그러다가 “당신은 소중하니까”
(Because you are worth it!)를 거쳐 이
제는 소중한 주체가 우리로 확대됐다.
우리는 소중하다. 그래서? 소중하
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최고급의 로레
알 화장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광고다. 과학과
기술로 만들어온 명품의 고급 이미지
를 강조하는 문구다.
로레알이 염색회사에서 종합화장
품 기업으로 확대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4년 랑콤의 인수다. 랑콤 창업주
아르망 프티장이 죽고 그 소유권이 화
장품 사업에 별 애정이 없는 소설가 아
들에게 넘어가는 시점을 절묘하게 포
착하여 싸게 사들였다. 랑콤에 이어
‘가르니에’ 와 ‘비오템’ 그리고 ‘비쉬’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1980년대에는
‘헬레나 루빈스타인’ ‘라로슈-포제’를,
1990년대에는 ‘레드켄’ ‘메이블린’ ‘소
프트신’ 등을 각각 사들였다. 2000년
대에는 ‘키엘’과 ‘카슨’을 끌어들였다.
최근에도 ‘일본 슈에뮤라’와 ‘중국 미
니널스’ 그리고 ‘바디샵’ 등을 흡수 합
병했다. 미래의 시장을 정학하게 꿰뚫
어 보고 미리 싼값으로 사들여가 나중
에 크게 키우는 로레알의 흡수통합은
가장 이상적인 M&A의 모델로 경영
학 교과서에까지 올라있을 정도다.
특히 다른 회사의 기술을 분석하고
그 미래가치를 측정하는 데에는 탁월
한 능력을 발휘했다. 오늘날 로레알의
화장품 브랜드는 500개가 넘는다. 이
들 각 브랜드는 모두 각자 따로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철저한 분권과 자치로
개성을 마음껏 살리고 있는 것이다. 개
성이 너무 강해 로레알의 제품이라는
사실도 잘 모를 정도다. 그룹 본부에서
는 그림을 그리며 브랜드 간 상충이 일
어나지 않도록 큰 차원에서 원격 조종
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그 외에도 비결은 많다. 출신 배경이
나 스펙에 연연하지 않는 효율중심의
폭넓은 인재등용과 과감한 현지화 전
략, 프랑스 사람들의 무한한 사랑 그
리고 안정된 기업지배구조 등 다 거론
할 수 없을 정도다.
가장 큰 고민은 화장품 보급이 이미
포화상태로 더 이상 파이를 늘리기 어
렵다는 것이다. 화장품 업계의 공통적
인 고민이다. 로레알은 이 위기를 새
로운 시장 개척으로 뚫고 있다.
로레알이 주목하고 있는 새 시장은
크게 네 가지다. 남성, 50세 이상 노
인, 아프리카 그리고 흑인이다. 전 세
계의 모든 인구가 사용할 수 있는 화장
품 개발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젊
은 여성에서 모든 인류로’ 이것이 요즘
로레알의 슬로건이다. 화장과 의약기
술을 접목하여 병을 고치는 화장품과
먹는 화장품을 개발하는 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외젠 슈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