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로 아름다움 창출… 먹는 화장품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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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거대기업 탐구 6 2015년 10월 14일 <30> 화장품의 지존 프랑스의 자존심 로레알 편 로레알은 화장품 기업이다. 전 세계 에서 화장품 매출액이 가장 많다. 전 세계 화장품 시장의 17% 내외를 장악 하고 있다. 판매량뿐만 아니라 제품의 질과 명성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하하 는 세계 1위의 화장품 회사다. 파이낸 셜 타임스와 포춘 등으로부터 가장 존 경받은 기업으로도 여러 차례 선정됐 다. 본사를 프랑스 파리에 둔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 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프랑스의 대 표적인 국민기업이기도 하다. 1909년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발명가 였던 외젠 슈엘러(Eugene Schueller) 가 창립했다. 처음에는 염색회사였다. 오레올(Aureole)이라는 이름의 염색 약으로 기반을 다진 다음 사업영역을 점차 확장하여 지금은 발바닥에서 머 리끝까지 거의 모든 화장품을 취급하 고 있다. 창립 초부터 로레알은 과학과 기술 에 가장 큰 가치를 두어왔다. 과학과 기술로 아름다움을 창출해내겠다는 것이 기업정신이다. 인구인력은 지난 과학•기술로 아름다움 창출… 먹는 화장품 개발 도전 M&A의 귀재… 랑콤 인수 계기 세계 1위 기업 도약 시장 포화상태… 모든 인구가 쓸 새 제품에 승부수 로레알은 외젠 슈엘러가 창업했다. 불어 원어로는 Eugène Paul Louis Schueller이다. 조상들이 독일에서 프 랑스로 넘어온 독일계 프랑스인 후손 이다. 1881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 다. 프랑스의 과학 분야 최고 대학인 파리국립화학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 학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 염색약과 인연을 맺게 된다. 오늘날까지도 명 성이 이어지고 있는 파리텍‘Chimie ParisTech’이 그의 모교다. 어느 날 한 미장원 주인이 파리텍 연 구소를 찾아왔다. 물감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염색약을 개발해 달라고 요구 한 것. 연구비에 보상금까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슈엘러는 그 제안에 학문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집에다 실험실을 차려놓고 연구에 들어갔다. 1907년 마 침내 물감이 장시간 지속되는 새로운 머리 염색약을 개발해냈다. 그 이름을 오레알(Oréale)이라고 불렀다. ‘빛의 후광’ 또는 ‘빛 무리’라는 뜻이다. 주문한 미용실을 찾았으나 그 주인 이 이미 폐업하고 떠난 뒤였다. 망연 자실한 슈엘러는 스스로 사업을 해보 기로 했다. 거리의 미용실로 나섰다. 직접 물건을 들 고 다니며 세일 을 한 것이다. 반 응이 꽤 좋았다. 오레알의 판 매량이 계속 늘 어나자 슈엘러 는 1909년 본 격적으로 회사를 창업하기에 이른 다. 그 이름이 ‘Société Française de Teintures Inoffensives pour Cheveux’이다. 가장 안전한 염색기업 이란 뜻이다. 바로 이 회사가 오늘날 세계 1위 화장품기업인 로레알의 기원 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여성 들의 사회참여가 본격화되면서 염색 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슈엘 러는 일약 갑부의 반열에 오른다. 슈엘러의 첫 부인이었던 루이스 베 르트(Louise Berthe)는 1927년 돌연 병사했다. 슬하에는 딸 한 명만을 두 었다. 슈엘러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 다. 그가 세계 여성부자 랭킹 2위인 릴 리안 베탕쿠르다. 베탕쿠르는 28살이 던 1950년 결혼했다. 남편은 훗날 프 랑스 내각의 장관에까지 오른 앙드레 베탕쿠르다. 이 둘 사이에도 딸 하나 만 있다. 이름은 프랑수아 메이어다. 지금 로레알의 최대주주는 올해 만 93세인 릴리안 베탕구르다. 그 외동딸 인 프랑수아 메이어가 법상 유일한 상 속녀이다. 두 대에 걸쳐 딸로 모계 승 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딸의 남편은 유대인이다. 그들은 두 자녀를 유대인으로 키우고 있다. 메이어가 상 속한다면 로레알은 유대인 소유의 회 사가 된다. 2008년 로레알에서 대형 스캔들이 터졌다. 어머니 베탕쿠르가 연인 사이로 알려진 사진작가 바니에 에게 한번에 10억 유로의 용돈을 준 사 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10억 유로는 우리 돈으로 1조3000억 원에 육박하는 거액이다. 그뿐 아니라 모든 재산을 딸 대신 메이어에게 넘기 려고 한 유언장까지 드러났다. 흥분한 딸 메이어는 93세 치매의 어 머니에게 꼬리를 쳐 돈을 받아냈다면 서 사진작가 바니에를 사기혐의로 고 소했다. 또 엄마에 대해서는 치매로 정신이 이상해졌다면서 법원에 금치 산자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하고 나섰 다. 메이어는 그 사기행각을 입증하 기 위해 엄마 집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를 비밀리에 녹음했다가 법정에 제출 했다. 이 테이프는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였다. 사진작가 뿐 아니라 거물 정치인들의 뇌물흔적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어머니 불륜을 들추려다 프랑 스 정계를 뒤흔든 것이다. 현직이었 던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연루 됐다. 치매노인의 늦은 사랑 행각이 로레알 가문의 분쟁을 넘어 급기야는 프랑스의 국기를 흔드는 초대형 스캔 들로 비화됐다. 그 와중에 사르코지 대통령은 여론 악화로 재선에 실패해 대통령에서 물 러났다. 사르코지의 비서 격인 노동 장관은 이미 구속됐다. 사기소송과 뇌 물수수 그리고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둘러싼 재벌가와 정가가 엇물린 희대 의 재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프랑스 국민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한때 프랑스의 자존심으로 까지 받들었던 로레알에 대해 잇달아 터져 나오는 스캔들로 배신감은 더 크다. 로레알과 슈엘러 후손 가문으로서는 일대 위기다. 김재희 기자 ● 창업주 슈엘러 박사 스토리와 후손들의 스캔들 파문 ● 로레알의 대표 브랜드 랑콤의 유래와 창업이념 아름다움이 세상 구원… 프티장 정신 계승 로레알의 대표 브랜드는 단연 랑콤 이다. 그 랑콤을 처음 만든 이는 아르 망 프티장(Armand Petitjean)이다. 1884년생이다. 프랑스의 생 루(Saint- Loup)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프티장은 프랑스의 외무 부 소속의 외교관이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프랑스의 국익을 증진하 는 데에 투신했다. 퇴직 후에는 남미로 가 그곳에서 사업을 했다. 프랑스로부 터 명품을 들여다 현지에서 팔아 큰돈 을 벌었다. 그 와중에 프랑스와 코티 라는 향수 제조업자를 만났다. 유명한 화장품업체인 코티의 창업주다. 프티 장은 10년 연상인 코티로부터 향수는 물론 화장품에 관한 많은 지식을 전수 했다. 함께 동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만 51세 되던 1935년 독립 하여 새로운 기업을 차렸다. 그때 내 세운 회사의 이름이 바로 랑콤이다. 영어로는 Lancome'이다. 프랑스 중 부 샤토르(Château)의 랑코스메(de Lancosme)라는 성 이름에서 따왔 다. 그 발음을 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LANCOSME’에서 가운데 S를 빼고 ‘LANCOME’으로 정했다. 랑코스메 성은 온갖 꽃으로 덮인 아름다운 곳이 다. 프티장은 틈만 나면 이 성을 거닐 면서 아름다움의 영감을 얻었다. 랑콤의 첫 상품은 향수다. 1935년에 코케트, 키프레, 트로피크, 탕드르뉘 그리고 보카쥬 등 5가지의 향수를 출 시했다. 그해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랑콤의 향수 는 큰 인기를 끌었다. 랑콤이 우뚝 선 것은 이듬해인 1936 년 ‘뉴트릭스’라는 크림을 내놓으면서 부터다. 역사상 최초의 오일 베이스 화장수이다. 피부 보호와 영양 효과가 뛰어났다. 2차 대전 때에는 군인들의 필수품으로 지정될 정도였다. 피부 상 처를 입은 병사들이 앞 다투어 랑콤 뉴 트릭스를 찾았다. 지금도 ‘기적의 크 림’ 또는 ‘전설의 크림’으로 불린다. 프티장은 1942년 랑콤 학교를 만들 었다. 젊은 여성들을 대거 선발해 피 부 관리와 화장에 관한 지식과 관리기 술을 가르친 것. 역사상 최초의 화장 학 교다. 여기서 1년 동안 교육받은 고급 인재들을 곳곳에 미의 전도사로 내보 냈다. 그 전도사를 통해 근대식 화장 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갔다. 스스로 시장 기반을 만들어나간 좋은 사례다. 프티장은 아름다움을 인간의 최고가 치로 믿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 스키의 저서 ‘백치’에서 나오는 ‘아름 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구절 을 가장 좋아했다. 오늘날 랑콤이 내 세우고 있는 “아름다움을 신봉한다” (Believe in Beauty) 라는 캐치프레이 즈는 진선미 중에서도 미에 최고의 가 치를 부여해 왔던 창업주의 정신을 승 계한 것이다. 그 미를 과학 화장품을 통해 여성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 프티 장이 랑콤을 세운 이유다. 75세 되던 1961년에 프티장은 아들인 마르셀 프티장에게 물러주고 은퇴했 다. 아들은 소설가였다. 그 아들은 황 금장미를 로고로 채택했다. 랑콤의 황 금장미는 소설가의 문학적 상상력에 서 나온 것이다. 인수한 지 3년째 되던 1964년 로레알에서 인수 제안을 해왔 다. 프티장은 계속 소설을 쓰고 싶다 며 랑콤을 팔아 버린다. 그리하여 랑 콤은 로레알의 품으로 넘어갔다. 김윤식 기자 염색약 개발 의뢰자 사라져 창업했다 뜻밖에 대박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경제연구소 소장(경제학 박사) 해 말 기준으로 2만1123명이다. 전체 7 만8600명 종업원 중 26.9%가 화장품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창업 이후 취 득한 특허가 3만개를 훌쩍 넘는다. 요 즘도 매년 500여 건씩의 특허를 따내 고 있다. 발견해 낸 화학분자의 수도 3000개에 이른다. 창업주인 슈엘러 자신이 과학자이기 도 했지만 그 뒤를 이은 경영진 중에도 과학자가 유난히 많았다. 샤를르 즈비 악 회장은 CEO 시절 처음으로 모발의 실체를 규명해 내기도 했다. 로레알하면 “Because we you are worth it!”이라는 광고를 연상케 된다. 우리말로 굳이 옮긴다면 “우리는 소중 하니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원래 캠페인은 “나는 소중하니까” 이었다. 영어로는 “Because I am worth it!” 이다. 그러다가 “당신은 소중하니까” (Because you are worth it!)를 거쳐 이 제는 소중한 주체가 우리로 확대됐다. 우리는 소중하다. 그래서? 소중하 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최고급의 로레 알 화장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광고다. 과학과 기술로 만들어온 명품의 고급 이미지 를 강조하는 문구다. 로레알이 염색회사에서 종합화장 품 기업으로 확대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4년 랑콤의 인수다. 랑콤 창업주 아르망 프티장이 죽고 그 소유권이 화 장품 사업에 별 애정이 없는 소설가 아 들에게 넘어가는 시점을 절묘하게 포 착하여 싸게 사들였다. 랑콤에 이어 ‘가르니에’ 와 ‘비오템’ 그리고 ‘비쉬’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1980년대에는 ‘헬레나 루빈스타인’ ‘라로슈-포제’를, 1990년대에는 ‘레드켄’ ‘메이블린’ ‘소 프트신’ 등을 각각 사들였다. 2000년 대에는 ‘키엘’과 ‘카슨’을 끌어들였다. 최근에도 ‘일본 슈에뮤라’와 ‘중국 미 니널스’ 그리고 ‘바디샵’ 등을 흡수 합 병했다. 미래의 시장을 정학하게 꿰뚫 어 보고 미리 싼값으로 사들여가 나중 에 크게 키우는 로레알의 흡수통합은 가장 이상적인 M&A의 모델로 경영 학 교과서에까지 올라있을 정도다. 특히 다른 회사의 기술을 분석하고 그 미래가치를 측정하는 데에는 탁월 한 능력을 발휘했다. 오늘날 로레알의 화장품 브랜드는 500개가 넘는다. 이 들 각 브랜드는 모두 각자 따로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철저한 분권과 자치로 개성을 마음껏 살리고 있는 것이다. 개 성이 너무 강해 로레알의 제품이라는 사실도 잘 모를 정도다. 그룹 본부에서 는 그림을 그리며 브랜드 간 상충이 일 어나지 않도록 큰 차원에서 원격 조종 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그 외에도 비결은 많다. 출신 배경이 나 스펙에 연연하지 않는 효율중심의 폭넓은 인재등용과 과감한 현지화 전 략, 프랑스 사람들의 무한한 사랑 그 리고 안정된 기업지배구조 등 다 거론 할 수 없을 정도다. 가장 큰 고민은 화장품 보급이 이미 포화상태로 더 이상 파이를 늘리기 어 렵다는 것이다. 화장품 업계의 공통적 인 고민이다. 로레알은 이 위기를 새 로운 시장 개척으로 뚫고 있다. 로레알이 주목하고 있는 새 시장은 크게 네 가지다. 남성, 50세 이상 노 인, 아프리카 그리고 흑인이다. 전 세 계의 모든 인구가 사용할 수 있는 화장 품 개발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젊 은 여성에서 모든 인류로이것이 요즘 로레알의 슬로건이다. 화장과 의약기 술을 접목하여 병을 고치는 화장품과 먹는 화장품을 개발하는 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외젠 슈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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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과학•기술로 아름다움 창출… 먹는 화장품 개발 도전nimage.globaleconomic.co.kr/phpwas/pdffile.php?sp=...2015/10/14  · ‘가르니에’ 와 ‘비오템’

세계 거대기업 탐구6 2015년 10월 14일

<30> 화장품의 지존 프랑스의 자존심 로레알 편

로레알은 화장품 기업이다. 전 세계

에서 화장품 매출액이 가장 많다. 전

세계 화장품 시장의 17% 내외를 장악

하고 있다. 판매량뿐만 아니라 제품의

질과 명성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하하

는 세계 1위의 화장품 회사다. 파이낸

셜 타임스와 포춘 등으로부터 가장 존

경받은 기업으로도 여러 차례 선정됐

다. 본사를 프랑스 파리에 둔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

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프랑스의 대

표적인 국민기업이기도 하다.

1909년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발명가

였던 외젠 슈엘러(Eugene Schueller)

가 창립했다. 처음에는 염색회사였다.

오레올(Aureole)이라는 이름의 염색

약으로 기반을 다진 다음 사업영역을

점차 확장하여 지금은 발바닥에서 머

리끝까지 거의 모든 화장품을 취급하

고 있다.

창립 초부터 로레알은 과학과 기술

에 가장 큰 가치를 두어왔다. 과학과

기술로 아름다움을 창출해내겠다는

것이 기업정신이다. 인구인력은 지난

과학•기술로 아름다움 창출… 먹는 화장품 개발 도전M&A의 귀재… 랑콤 인수 계기 세계 1위 기업 도약

시장 포화상태… 모든 인구가 쓸 새 제품에 승부수

로레알은 외젠 슈엘러가 창업했다.

불어 원어로는 Eugène Paul Louis

Schueller이다. 조상들이 독일에서 프

랑스로 넘어온 독일계 프랑스인 후손

이다. 1881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

다. 프랑스의 과학 분야 최고 대학인

파리국립화학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

학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 염색약과

인연을 맺게 된다. 오늘날까지도 명

성이 이어지고 있는 파리텍‘Chimie

ParisTech’이 그의 모교다.

어느 날 한 미장원 주인이 파리텍 연

구소를 찾아왔다. 물감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염색약을 개발해 달라고 요구

한 것. 연구비에 보상금까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슈엘러는 그 제안에 학문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집에다 실험실을

차려놓고 연구에 들어갔다. 1907년 마

침내 물감이 장시간 지속되는 새로운

머리 염색약을 개발해냈다. 그 이름을

오레알(Oréale)이라고 불렀다. ‘빛의

후광’ 또는 ‘빛 무리’라는 뜻이다.

주문한 미용실을 찾았으나 그 주인

이 이미 폐업하고 떠난 뒤였다. 망연

자실한 슈엘러는 스스로 사업을 해보

기로 했다. 거리의 미용실로 나섰다.

직접 물건을 들

고 다니며 세일

을 한 것이다. 반

응이 꽤 좋았다.

오 레 알 의 판

매량이 계속 늘

어 나 자 슈 엘 러

는 1 9 0 9 년 본

격적으로 회사를 창업하기에 이른

다. 그 이름이 ‘Société Française

de Teintures Inoffensives pour

Cheveux’이다. 가장 안전한 염색기업

이란 뜻이다. 바로 이 회사가 오늘날

세계 1위 화장품기업인 로레알의 기원

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여성

들의 사회참여가 본격화되면서 염색

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슈엘

러는 일약 갑부의 반열에 오른다.

슈엘러의 첫 부인이었던 루이스 베

르트(Louise Berthe)는 1927년 돌연

병사했다. 슬하에는 딸 한 명만을 두

었다. 슈엘러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

다. 그가 세계 여성부자 랭킹 2위인 릴

리안 베탕쿠르다. 베탕쿠르는 28살이

던 1950년 결혼했다. 남편은 훗날 프

랑스 내각의 장관에까지 오른 앙드레

베탕쿠르다. 이 둘 사이에도 딸 하나

만 있다. 이름은 프랑수아 메이어다.

지금 로레알의 최대주주는 올해 만

93세인 릴리안 베탕구르다. 그 외동딸

인 프랑수아 메이어가 법상 유일한 상

속녀이다. 두 대에 걸쳐 딸로 모계 승

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딸의

남편은 유대인이다. 그들은 두 자녀를

유대인으로 키우고 있다. 메이어가 상

속한다면 로레알은 유대인 소유의 회

사가 된다. 2008년 로레알에서 대형

스캔들이 터졌다. 어머니 베탕쿠르가

연인 사이로 알려진 사진작가 바니에

에게 한번에 10억 유로의 용돈을 준 사

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10억 유로는 우리 돈으로 1조3000억

원에 육박하는 거액이다. 그뿐 아니라

모든 재산을 딸 대신 메이어에게 넘기

려고 한 유언장까지 드러났다.

흥분한 딸 메이어는 93세 치매의 어

머니에게 꼬리를 쳐 돈을 받아냈다면

서 사진작가 바니에를 사기혐의로 고

소했다. 또 엄마에 대해서는 치매로

정신이 이상해졌다면서 법원에 금치

산자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하고 나섰

다. 메이어는 그 사기행각을 입증하

기 위해 엄마 집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를 비밀리에 녹음했다가 법정에 제출

했다. 이 테이프는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였다. 사진작가 뿐 아니라 거물

정치인들의 뇌물흔적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어머니 불륜을 들추려다 프랑

스 정계를 뒤흔든 것이다. 현직이었

던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연루

됐다. 치매노인의 늦은 사랑 행각이

로레알 가문의 분쟁을 넘어 급기야는

프랑스의 국기를 흔드는 초대형 스캔

들로 비화됐다.

그 와중에 사르코지 대통령은 여론

악화로 재선에 실패해 대통령에서 물

러났다. 사르코지의 비서 격인 노동

장관은 이미 구속됐다. 사기소송과 뇌

물수수 그리고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둘러싼 재벌가와 정가가 엇물린 희대

의 재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프랑스 국민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한때 프랑스의 자존심으로 까지

받들었던 로레알에 대해 잇달아 터져

나오는 스캔들로 배신감은 더 크다.

로레알과 슈엘러 후손 가문으로서는

일대 위기다.

김재희 기자

● 창업주 슈엘러 박사 스토리와 후손들의 스캔들 파문

● 로레알의 대표 브랜드 랑콤의 유래와 창업이념

아름다움이 세상 구원… 프티장 정신 계승

로레알의 대표 브랜드는 단연 랑콤

이다. 그 랑콤을 처음 만든 이는 아르

망 프티장(Armand Petitjean)이다.

1884년생이다. 프랑스의 생 루(Saint-

Loup)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프티장은 프랑스의 외무

부 소속의 외교관이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프랑스의 국익을 증진하

는 데에 투신했다. 퇴직 후에는 남미로

가 그곳에서 사업을 했다. 프랑스로부

터 명품을 들여다 현지에서 팔아 큰돈

을 벌었다. 그 와중에 프랑스와 코티

라는 향수 제조업자를 만났다. 유명한

화장품업체인 코티의 창업주다. 프티

장은 10년 연상인 코티로부터 향수는

물론 화장품에 관한 많은 지식을 전수

했다. 함께 동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만 51세 되던 1935년 독립

하여 새로운 기업을 차렸다. 그때 내

세운 회사의 이름이 바로 랑콤이다.

영어로는 ‘Lancome'이다. 프랑스 중

부 샤토르(Château)의 랑코스메(de

Lancosme)라는 성 이름에서 따왔

다. 그 발음을 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LANCOSME’에서 가운데 S를 빼고

‘LANCOME’으로 정했다. 랑코스메

성은 온갖 꽃으로 덮인 아름다운 곳이

다. 프티장은 틈만 나면 이 성을 거닐

면서 아름다움의 영감을 얻었다.

랑콤의 첫 상품은 향수다. 1935년에

코케트, 키프레, 트로피크, 탕드르뉘

그리고 보카쥬 등 5가지의 향수를 출

시했다. 그해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랑콤의 향수

는 큰 인기를 끌었다.

랑콤이 우뚝 선 것은 이듬해인 1936

년 ‘뉴트릭스’라는 크림을 내놓으면서

부터다. 역사상 최초의 오일 베이스

화장수이다. 피부 보호와 영양 효과가

뛰어났다. 2차 대전 때에는 군인들의

필수품으로 지정될 정도였다. 피부 상

처를 입은 병사들이 앞 다투어 랑콤 뉴

트릭스를 찾았다. 지금도 ‘기적의 크

림’ 또는 ‘전설의 크림’으로 불린다.

프티장은 1942년 랑콤 학교를 만들

었다. 젊은 여성들을 대거 선발해 피

부 관리와 화장에 관한 지식과 관리기

술을 가르친 것. 역사상 최초의 화장 학

교다. 여기서 1년 동안 교육받은 고급

인재들을 곳곳에 미의 전도사로 내보

냈다. 그 전도사를 통해 근대식 화장

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갔다. 스스로

시장 기반을 만들어나간 좋은 사례다.

프티장은 아름다움을 인간의 최고가

치로 믿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

스키의 저서 ‘백치’에서 나오는 ‘아름

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구절

을 가장 좋아했다. 오늘날 랑콤이 내

세우고 있는 “아름다움을 신봉한다”

(Believe in Beauty) 라는 캐치프레이

즈는 진선미 중에서도 미에 최고의 가

치를 부여해 왔던 창업주의 정신을 승

계한 것이다. 그 미를 과학 화장품을

통해 여성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 프티

장이 랑콤을 세운 이유다.

75세 되던 1961년에 프티장은 아들인

마르셀 프티장에게 물러주고 은퇴했

다. 아들은 소설가였다. 그 아들은 황

금장미를 로고로 채택했다. 랑콤의 황

금장미는 소설가의 문학적 상상력에

서 나온 것이다. 인수한 지 3년째 되던

1964년 로레알에서 인수 제안을 해왔

다. 프티장은 계속 소설을 쓰고 싶다

며 랑콤을 팔아 버린다. 그리하여 랑

콤은 로레알의 품으로 넘어갔다.

김윤식 기자

염색약 개발 의뢰자 사라져 창업했다 뜻밖에 대박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경제연구소 소장(경제학 박사)

해 말 기준으로 2만1123명이다. 전체 7

만8600명 종업원 중 26.9%가 화장품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창업 이후 취

득한 특허가 3만개를 훌쩍 넘는다. 요

즘도 매년 500여 건씩의 특허를 따내

고 있다. 발견해 낸 화학분자의 수도

3000개에 이른다.

창업주인 슈엘러 자신이 과학자이기

도 했지만 그 뒤를 이은 경영진 중에도

과학자가 유난히 많았다. 샤를르 즈비

악 회장은 CEO 시절 처음으로 모발의

실체를 규명해 내기도 했다.

로레알하면 “Because we you are

worth it!”이라는 광고를 연상케 된다.

우리말로 굳이 옮긴다면 “우리는 소중

하니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원래

캠페인은 “나는 소중하니까” 이었다.

영어로는 “Because I am worth it!”

이다. 그러다가 “당신은 소중하니까”

(Because you are worth it!)를 거쳐 이

제는 소중한 주체가 우리로 확대됐다.

우리는 소중하다. 그래서? 소중하

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최고급의 로레

알 화장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광고다. 과학과

기술로 만들어온 명품의 고급 이미지

를 강조하는 문구다.

로레알이 염색회사에서 종합화장

품 기업으로 확대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4년 랑콤의 인수다. 랑콤 창업주

아르망 프티장이 죽고 그 소유권이 화

장품 사업에 별 애정이 없는 소설가 아

들에게 넘어가는 시점을 절묘하게 포

착하여 싸게 사들였다. 랑콤에 이어

‘가르니에’ 와 ‘비오템’ 그리고 ‘비쉬’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1980년대에는

‘헬레나 루빈스타인’ ‘라로슈-포제’를,

1990년대에는 ‘레드켄’ ‘메이블린’ ‘소

프트신’ 등을 각각 사들였다. 2000년

대에는 ‘키엘’과 ‘카슨’을 끌어들였다.

최근에도 ‘일본 슈에뮤라’와 ‘중국 미

니널스’ 그리고 ‘바디샵’ 등을 흡수 합

병했다. 미래의 시장을 정학하게 꿰뚫

어 보고 미리 싼값으로 사들여가 나중

에 크게 키우는 로레알의 흡수통합은

가장 이상적인 M&A의 모델로 경영

학 교과서에까지 올라있을 정도다.

특히 다른 회사의 기술을 분석하고

그 미래가치를 측정하는 데에는 탁월

한 능력을 발휘했다. 오늘날 로레알의

화장품 브랜드는 500개가 넘는다. 이

들 각 브랜드는 모두 각자 따로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철저한 분권과 자치로

개성을 마음껏 살리고 있는 것이다. 개

성이 너무 강해 로레알의 제품이라는

사실도 잘 모를 정도다. 그룹 본부에서

는 그림을 그리며 브랜드 간 상충이 일

어나지 않도록 큰 차원에서 원격 조종

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그 외에도 비결은 많다. 출신 배경이

나 스펙에 연연하지 않는 효율중심의

폭넓은 인재등용과 과감한 현지화 전

략, 프랑스 사람들의 무한한 사랑 그

리고 안정된 기업지배구조 등 다 거론

할 수 없을 정도다.

가장 큰 고민은 화장품 보급이 이미

포화상태로 더 이상 파이를 늘리기 어

렵다는 것이다. 화장품 업계의 공통적

인 고민이다. 로레알은 이 위기를 새

로운 시장 개척으로 뚫고 있다.

로레알이 주목하고 있는 새 시장은

크게 네 가지다. 남성, 50세 이상 노

인, 아프리카 그리고 흑인이다. 전 세

계의 모든 인구가 사용할 수 있는 화장

품 개발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젊

은 여성에서 모든 인류로’ 이것이 요즘

로레알의 슬로건이다. 화장과 의약기

술을 접목하여 병을 고치는 화장품과

먹는 화장품을 개발하는 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외젠 슈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