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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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Page 2: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Editorial 에디토리얼

아직, 페달을 밟으며 1

CO note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이준규 병역거부 소견서 2

위계질서와 닫힌 관계 /날맹 6

헬륨가스 /이정식 9

출소인사를 대신해서 - K형에게 /현민 11

Focus 시선집중

2011 세계병역거부자의날 외 13

Experience 참가후기

겨울의 끝에서, 우리의 만남 - 행복한 책읽기 시즌2 16

친구의 병역거부를 응원하며 - 릴레이일인시위 참가기 18

복수다, 군대 - 2011 세계병역거부자의날 참가후기 22

Special 기획기사

기획1 군대, 대한민국 1% - 기후변화에 기여하는 한국

군대24

기획2 내일은 더 큰 비용을 물게될지도 모른다 - 한국

군대의 환경적 비용30

기획3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 영화 <아바타>

에 대한 에코페미니즘적 독해32

기획4 기후변화와 군사주의 38

기회5 대안으로서의 평화 -기획을 마치며 42

Review 영화평․서평

그들은 군인이기 이전에 남성이 아닐까

- <그곳에 없었다면 As If I Am Not There>을 보고47

Series 기획연재

가람이의 좌충우돌 세상읽기 제12화 50

나의 비정규직 이야기 4 - 화장품 재고조사 51

나름의 바다건너 일기 세 번째 - 미움에 대처하는 자세 54

웅이 왓져여 뀨잉뀨잉 58

Essay 평화에세이

너의 삶에 고마워 62

SNS의 희망을 타고 온 85호 크레인의 목소리 65

내가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유 69

가난한 이의 평화 73

싸움은 발명되어야 한다 77

Report 재정보고

후원해주셔서 감사해요~ 80

31호 매체편집팀

성민

기획기사, 섭외, 편집 등

여옥

기획기사, 섭외, 편집 등

효웅(유정민석)

기획기사, 기획연재, 섭외 등

아하

섭외 등

정명

기획기사 등

인쇄기획 | 한울타리130-062 서울동대문구 제기2동 137-69TEL : 924-9641,2 FAX : 927-5104

발행처 : 전쟁없는세상발행일 : 2011년 7월 28일제 호 :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1호 연락처 : 02-6401-0514주소 :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22-9번지 3층 (우) 121-230http://withoutwar.org | [email protected]

World WITHOUTWARNewsletter No.31 CONTENTS

▶▶ Special 군사주의, 기후변화를 말하다 .. 24

Page 3: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1

밤새워 원고를 털고 사무실 쇼파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커피를 너무 마신 탓일까.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긴 장마와 여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자전거를 추스리며 내 몸과 마음도 추슬렀다.

기후변화와 군사주의라는 주제를 끌고 안은지 육개월. 회의를 거듭했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무언가

새로운 단서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의욕은 나지 않았다. 지루한 몇 번의 소득 없는 회의를 반복하는 동

안 환경은 나의 관심사가 됐고 몇 권의 책을 읽으며 내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부작용이랄까. 달리는 차의 엔진소리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석유와 전기를 쓰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혐오스러웠다. TV와 컴퓨터만 봐도 짜증이 났다. 내 삶의 나사는 풀렸고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의 의

욕과 열정은 장맛비에 잦아졌다.

도망치듯 여행을 다녀오며 반전을 기대했지만 더 지쳐서, 더 무력해져 돌아왔다. 강정마을을 파괴하

려는, 크레인 위의 사람을 저대로 냅두는, 서울의 틈바구니를 남겨두지 않고 철거하려는, 포이동의 사람

들을 쫓아내려는 세상이 용납되지 않았고 난 지쳐갔다.

무력함과 나태함을 마주하며 기후변화와 군사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 이번 소식지

에서는 만족스러운 결론은 아니지만 이 낯선 주제에 대해서 여러 사람이 고민한 흔적들과 생각해볼 거

리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에세이를 통해서는 서울부터 제주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전쟁’의 현

장의 소식들이 이야기됐다. 폭력은 무엇인지, 싸움은 무엇인지, 평화는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달이나 소식지 작업이 늦어졌지만 연중기획을 끝내 싣지 못했다. 또 급하게 청탁하느라 필진들

을 괴롭혔다. 무책임과 게으름, 그리고 미숙함을 사과드리며 다음 소식지를 보다 열심히 준비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고친 자전거에 몸을 싣고 한강으로 향했다. 페달을 밟으면서 잘못된 습관 때문에 아팠던 무릎을 의

식했다. 무릎이 아프지 않게 타려다보니 저절로 자세가 고쳐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아프다는

건 무언가를 바로잡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구가 아파해도, 게으름에 실망해도 우린 어떻게든 페달을

밟아 나가리라. 문득 자전거를배우는 한 할머니가 시야에 들어왔다. 중년의딸로 보이는 한 사람이뒤

에서 자전거를 잡아주고 그 할머니는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우리 또한, 아직페

달을 밟아갈것이다.

Editorial

아직, 페달을밟으며

성민 |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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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소견서 이준규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평화롭지도 평화를 지키지도 못하는 군대

제가 어린 꼬마인 시절, 그 때만 해도 TV에선 매주 우정의 무대도 했고 9시뉴스에선 곧잘 무기홍

보와 한국군대의 강성함, 북한의 악독함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많았습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정치

에 관심 많던 저는 선거나 정당, 정치인, 통일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군대가 어떻게 해야한다거나

혹은 군인에 대해 생각한 기억은 전혀없습니다. 군대에는 전혀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던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생물학적인 남성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가겪게 되는 문제가 군대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군대 대해 관심을 갖게 시작된 건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부터입니다. 군대에 대해 사람들

에게 듣는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군대에서 겪게 되는

폭행과 폭언, 지극히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내부 생활, 2년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내야하는 것

에따르는 괴로움등힘들고 어려운 곳이라는 이야기는많은 사람들이 흔히듣는 그런이야기들이었습

니다.

그럼에도 이런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처럼, 가지 않으면좋지만 가지 않을 수 없고, 또 군대가 우

리를 지켜준다고 그당시엔 저도 어렴풋이 생각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여느 학생들처럼 하루에도 수십 대에서 많게는 백대가 넘는,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에 시달려 고통스러웠던 저는 때리는 않는 선생이 되겠다며교대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교대에선 복학생과 ROTC를 중심으로 한 남자단합대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학내에서 남단이라고불렸던 이것은 남자들끼리 모여 선후배간의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명목 하에

선배의 권력을 확인받고자 하는 행사였습니다. 행사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선배들의 일방적인 지시를

수용하기를요구받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 폭언과 때로는 폭행으로 이어지곤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런문화는 남단에만 그치지 않고, 노골화의 수준의 차이는 있었지만학내문화 전반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이것이 학내문화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중

심에 군사주의가 있다는 것을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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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3

이 무렵부터 저에게는 조금씩 다른 생각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시작은 새내기 때 들었던

‘왜 꼭 통일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막연히 통일은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해 온 저

에게 남북 간의 문제의 핵심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평화’

라는 단어와늘함께인 ‘군대’와 ‘전쟁’에 대한 고민은 제 안에서조금씩살을붙여갔습니다.

학교에서의 군사주의 문화를 통해 군대라는공간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있던 저는 이라크전쟁을 통

해 군대에 대한 스스로의 마지막 질문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한국군이 한국의 평

화를 위해 방어를 하는 군대라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존재함으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하

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파병을 통해 한국군이 평화를목적으로방어를 하는 군대가 아님을확인시켜주었고, 미국군

의 압도적인 화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라크는 평화는커녕 폭력적인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통

해 군사력이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전쟁의 끔찍함은 머릿속으로 알고 있

었지만 동시대에 벌어지는 관타나모 수용소 사태 등은 전쟁이라는건선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살육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더욱명확히 해주었습니다.

두 가지 경험

저는 2005년대학에서 수업시간에교수에게 폭행을당했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책에 자신이 원하는

펜으로 이름을 적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교수는 학교에선 아무런

징계도받지 않고검찰에서도교수의 “체벌”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받아들여 기소유예처분을 내렸

습니다.

그 일로 저는엄청난분노와절망에휩싸였습니다. 거의 3개월 동안 잠에 들지 못하고혹시라도 잠

이 들면 늘 그를 죽이거나 그가 나를 죽이는 꿈만을 꿨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그를 죽이고 나도 죽는

것이 나의꿈이었습니다.

휴학 후집안사정으로 학교에 돌아가야만 했던 저는교수들은 비웃음을 날렸고학생들로부터 사정

은 알지도 못한 채 도망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끔직한 학교생활에서 곁에 남아있

어 준 것은당시 제 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별을 통보받은 저는 제곁에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절망감에 그녀의 뺨을

때렸습니다. 곧바로 후회했지만 이미 제 오른팔은 끔찍해져 있었습니다. 오른팔을 떼내어 버리고 싶었

지만 그러지 못하는 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 오른팔로 밥을 먹고 이렇게 글을 쓰는 뻔뻔한 저를

보며 폭력적이고끔직한 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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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그런나를잊지말라는 것인지눈을 감으면교수에게 폭행을당했던왼쪽뺨과 왼쪽허벅

지는딱딱한 돌처럼느껴지고, 폭행을 했던 오른손은 피가잔뜩묻은 것처럼보이게합니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피해자로서, 그리고 가해자로서의 저를 보면서 군인으로서의 나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총을 들고 소위 “적”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총을 겨누고 그총을 사람을죽이는 나

를 상상해보았습니다. 그 때 내 모습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는 살인이었습니다.

앞서 두 경험은 제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두 가지 일은 전쟁에서 겪게

되는 살인에 비하면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교수의 폭행은 잊을 수도 분노하지 않

을 수도 없고, 아직도 끔찍했던 내 손이 만든 붉은 뺨이 생각나는데 전쟁 속에서 내 모습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알게 되었습니다. 내가벌인 살인으로 인해 그를 아끼고 사랑했을 가족과 친구들이 가질분

노, 매일 같이온몸이 피투성이로 보일 제 자신을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에게 용서

를 구할방법이 전혀없다는 것도, 그런분노를 만든 나를 용서할 수도 없음을말입니다.

여린 마음

저는 맞는 것이 어릴 때부터 싫었습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덜 맞을 수 있는 모범생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맞지 않아도 다른친구들이 맞고 있는 것도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중학교 때의

대규모 체벌, 고등학교 때 같은 방을썼던 친구가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폭행당한 후검게 변한 엉덩이,

대학시절남단과교수 폭행까지 언제나 고통과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늘 어떻게 하고 싶었지만 한 것이라곤 중학교 때 떨면서 적었던 학교게시판 글, 남단을 불

참하고 썼던 자보, 교수를 고발하는 소극적인 방법밖엔 없었습니다. 아픔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제대

로맞서지도 못하는겁많고 여린 내 마음이 미웠습니다.

하지만 폭력에 아파하는 친구들을 볼 수 있게 한 것도, 내 폭행 이후에 나의 끔찍함을 발견할 수

있게 한 것도, 그리고 내가 전쟁의끔찍한 살인자가 되어 그것을 바라보게 한 것도, 도망치기좋아하고

잘 아픈 여린 제 마음이란 걸 이제는 압니다. 그 마음이 다른 사람이 아플 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걱

정할 수 있게 하는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이제는알게 되었습니다.

군대는 강하기를요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군대도 갔다가 왔는데...”라고 하는건이런맥락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강함은 약함을폄하합니다. 그 정도쯤이라고말입니다.

제가꿈꾸는 세상은 여리고 약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다치지 않게 서로 아끼면서 사는곳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저처럼 겁많고 여리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군대도 말입니다. 수개월을 연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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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5

고 그들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적이라고 계속 쇠뇌하고도 전쟁터에선 다른 한명을 죽이지 못해 수만

발을 쏘고, 살아서 돌아와선 살인의 기억을 지우지 못해 힘들어하는 여린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

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공격할까 다른 많은, 더 큰 총을 들어야 할 것 같은 겁 많은 사람들, 저와 같은

여리고 겁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도 저와 같이 더 이상 총 드는 일 없이 평화롭기만을

바라는 것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록 작은 목소리라도, 겁이 나겠지만 평화를 얻으려면 총을

놓아야하지 않겠냐고, 그것이 함께바라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하려합니다.

제 여린 마음은 제게 다시 이야기합니다. 도망치라고. 군대에서 도망치라고. 내가 피투성이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다른 사람에게 약해도 된다고 아픈 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입

니다.

이준규2011.05.02 입영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일인시위

2011.06.13 경찰조사2011.07.13 심리공판(대구지법)

현재 재판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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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자취사장에서 일을 시작한지도 어느 새 3주, 곧한 달이 되어갑니다. 하루 세끼식사를 일주일

내내 공급해야 하기에 누군가는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곳입니다. 재소자들의 식사시간에 맞추어 배

식을 하려면 그전에 저희도 식사를 마쳐야 하지요. 저녁을 먹고 나면 시계는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

습니다. 밖에선 생각해보지 못했던 식당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삶을떠올려보게됩니다.

막상 이곳의질서 한가운데로 던져지고 나니 인간들이 집단을 이루고 관계를 맺는방식에 대한 질

문과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점심 배식 나갔다 돌아온 통들을 모두 씻고 나면 잠시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설거지를 마친 “신입”들이 부랴부랴자신들의빨래를 하는 시간입니다. 빨래터에 모여앉

은 남자들의 수다는 노동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수단이 됩니다. 같은 작업장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자유에 대한뒷말들을 서로 나누다보면 어느새 모종의 연대의식마저 생겨나는 기분입니다.

결국은 교도소에 똑같이 수감된 ‘을’들인데 이 ‘을’사이에 또 다시 갑을 관계가 만들어지는 이곳에

서 저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함에 처음 며칠은 많이 허둥댔습니다. 수시로 저를 찾는

‘선임’들이 제게 반말로 건네는 ‘명령’을 들으며 눈물이 찔끔 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왜 이런 경

험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찾기힘들어 어안이벙벙했던 저는 우연한 기회에 들은 한교도관의말덕분

에 나름의 이해와명료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강제노동”에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니 묘하게 제 마음이 진정되는 효과가 발생하더군요. 물론 강제노동이라는 객관적 조건을 수용했음

에도 불구하고 “나도 똑같이 고생했는데, 억울하면 먼저 들어오든가”라는 말을 수긍하는 데에는 여전

히 어려움이 남아있습니다.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학생’이라는 역할이 고정되어 있고 따라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우열이

정당화되는 것이 ‘닫힌 교육’의 특징이라고 했을 때 제가 경험하고 있는 이 곳의 위계질서는 이 닫힌

관계의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곳역시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가 이미 정해

져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노동의 숙련정도에 따라 먼저 배운 자의 경험을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렇다

고 해서 먼저 배운 자와 나중에 배우는 자 사이에 인격적 우열까지 자동으로 결정될 수는 없습니다.

먼저 고생하고 지식을 획득한 자에 대한 존중과 보상이 타인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위계질서와닫힌관계날맹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서울남부교도소에 수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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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7

다면 이는 제가 생각하는 공평함, 인간에 대한 존중과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모여 집단을 구성

하는 방식에 있어 군대의 질서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단순히 군사주의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

만의특징인 것인지 아니면 보편적 인간성에 속하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위계서열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이 지향하는앎의 양이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전

제가 요구됩니다. 세상에 대한 인식의 관점이 하나로 정해져 있고 그 하나의 관점만이 권위를 갖는 곳

에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이명확합니다. 해당지식을 이미 획득한교사-전문가는 이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반면 진리가 아닌관점이외의 지식, 배움을좇는학생-비전문가는 열등생혹은 이단아

로배척을받습니다.

다양한 관점의 소통과 경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배움이 이루어지는 것을 허용하면 기존의 일원적

권위체계가붕괴할 수밖에 없으므로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위의근원인 한줌알량한 지식을 신

성화하는 한편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한정된 지식의

공간은 태생적으로 새로운 배움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진정

한배움과성장은 대화를 통해 서로 변화할 수 있는 관계에서 비롯된다고믿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자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만 익히면 되는 곳에선 각자의 지위에 맞는특정한역할만이 주

어집니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관료제의 특징은 바로 여기서 기인합니다. 이 질서 속에서 튀면 안

된다는 것을 익혀 ‘성공’한 자일수록개인의양심이나 책임을 부정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할 가능성이높

습니다.

정해진 것만 배우면 되는 곳에선 ‘창의성’ 역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군대-관료 사회에서 창의성

이란게 있다면 그것은 “왜”나 “무엇”에 대한질문보다는 “어떻게”라는테크닉혹은 기능주의적성격

을띌것입니다.

“담당자”가 아닌 이상 자신의 직접적 책임을 면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조직의 명령 뒤로 자신을

숨길 수 있는 바로 그 문화가 있었기에 나치의 유대인 절멸 계획도 실행될 수 있었습니다. 평택 대추

리의 주민들을 몰아내고 용산철거민을죽음으로 내몬경찰과 군인들도따지고 보면 단지 자신들의역

할을 충실히 수행한, 국가의 입장에선 칭찬할 만한 존재인 셈이죠. 위계 질서가 확고한 닫힌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최악의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사문화를 거부하고 이곳에 왔다가 다시 군대와 동일한 위계질서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저는

매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습니다. 적개심이나 두려움으로 제 시야를 스스로 가두게 되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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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도록 제 자신과의 연결을 잃지 말자는 다짐입니다. “좀만 참으면 너도 편해질거야”라고 말하는 이들

에 실망하여 그들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철회하기 전에, 인격적 존중을 받고 싶은 제 마음을 떠올린

후 다시 상대의 인간성과도 연결을 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분노와 두려움, 우울함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한치 앞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정신줄을 놓는 경우도 자주 있지만, 바깥에서 보내주는 편지

그리고 면회는 제가 기운을 추스르는데큰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기운이 다시 생길때마다 이곳도 ‘인

간’이 사는곳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곤합니다. 외로움을 달래는 저의방식이기도합니다.

지난 10년간 병역거부를 한 4185명이 살아낸 6473년의 시간 속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징역을 견디

는 저마다의 지혜가 담겨있을 것입니다. 요즘의 제가 이 시간을 견디는 방식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

았던 프리모레비나 무기수로 20년을 산 신영복 선생을 떠올려보는 것입니다. 제 자신을 투사적 진지함

으로 포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저의 징역 역시 언젠가는 끝이 나리라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 위로

아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이 시간 또한 지나가리란 믿음 그리고 이 시간을 경험하는 이유를 잊지

않는 것으로 하루하루 후회없이 보내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밖에서 저를 비롯한 병역거부자들을 걱

정하고 지지해주는분들의 일상에로 평화가깃들기를 기원합니다.

날맹(문명진)2010.12.14 입영일, 국방부 앞에서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

2011.01.07 경찰조사2011.01.13 검찰조사

2011.03.30 선고공판, 징역 1년6월 선고2011.04.11 형 확정, 영등포교도소 수감

현재 서울남부교도소(구 영등포교도소) 수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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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9

헬륨가스

이정식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머리가물먹은 스펀지처럼무거웠던 적이 있었다. 답문을 보내주지 못하고쌓이던편지들과 읽지 못

하고 선반의 기능으로 굳어버린 책들은 머리가 무겁다는 이유로는 충분하지 못한 설명일 것이다. 하지

만 머리가 얼마나 무거웠던지 운동장을 걷고 있으면 머리가 목에서 떨어져서 땅 밑으로 꺼져버릴 것

같았고 나는참다못해머리를밀어버리기에 이르렀다.

무거움은 나를텔레비전과확장하는 위장의 운동 속에 가둬버렸고곧공간에체념하게 만들어버렸다.

교도소밖의 세상으로 몸을 이끌고 나가지 못하도록시설에 친숙해지는 과정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출소 후,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는 지금 나를 누르던 것들은 흩어지고 나는 다시 가벼워진 존재

로 되돌아왔다. 목적도 의지도불분명하고조금은 나태해지고 게으름에 무감각해지면서.

빈집이라는 공동체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친구들의 자전거를 빌려 타는 요즘 자전거 안장의 높이 탓

인지걷기와는 다른속도감이 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세밀하게 거리를 살펴보게 되었다.

바람의 움직임과 그것에 반응하는 것들의 파동에 흔들리는 기분이라고말하고싶다.

‘행위’의 유령. 우리가 말한 것, 행한 것은. 바람이 물에 파문을 일으키듯 이 세계에 흔적을 남기지.

그건 형태를 바꾸면서 퍼져나가 고래의 노래 한 구절로 형태를 바꾸어, 소립자의 진동 속에 실려서

전승되지. 세계어딘가에영원히 기억된, 우리 ‘행위’의 흔적을.

- 해수의 아이

내가 밟고 있는 자전거 페달의 움직임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의 거리 사이에, 멀게는 노르웨이에

서 일어난 폭탄 테러와 총기 난사 사건의 거리 사이에는 모두 어떤 행위들의 반복들은 아닐까. 누군가

의분노는 다시 누군가의분노로 행위를 일으키고 그리고 우리는 그 행위를 기억하고 다시 누군가에게

그 행위를 재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 가벼워지고 싶다. 그래서 시간 속에 기억되는 나의 가벼

움이 다시 누군가의 가벼움으로 재현되어 우리들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덜 무거운 기억으로 남겨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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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겠다.

세계의 모든 아픔들이 사라진 과거의 언어로만 기억될 수 있도록인간의 정신과말과 행동은 가벼워

져야 한다.

나는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면서, 채식에 길들여진 몸

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잠재된 공격성들이 옅어지고 있다. 그것이 완전히 통제가 되기

까지 나는많은 것들을버리고 변화해야 할 것이다.

나를압도하던 삶의 무게를덜어내면서 가벼워지는 생활이 너무 고맙고감사하다.

이정식2009.10.13 입영일, 병무청에 병역거부 의사 밝힘

2009.11.30 경찰조사2010.02.17 1년 6월 선고

2010.02.25 대전교도소 수감2010.05.06 논산지소로 이감2011.05.09 가석방으로 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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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11

출소인사를대신해서 - K형에게

현민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K형, 현민입니다. 6월말 가석방으로 출소할 거라는 이야기를 창살 너머로 전했었죠. 6월 30일에 무

사히 출소해서 형에게 편지로 인사하려고 합니다. 종이 위에 펜으로 눌러쓰던 글을 모니터를 보면서

키보드로 치려니 어색한 감은 있습니다. 모니터 뒤편의 꽃무늬 벽지가 화려하고 자극적이어서, 시선이

자꾸모니터 바깥으로 향합니다. 똑같은집에서 2년을넘게 살았는데미처 그존재를알지 못했습니다.

문득 형이 지내는 방, 그 벽지의색채와 무늬가궁금해졌습니다. 그곳에서는 어떤 사물, 사람, 세계가

형의 주변을 수놓는지도 궁금합니다. I도시를 떠나 N도시에서 보금자리를 틀 거라는 결심을 말하는 얼

굴이, 형에 관한 가장최근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출소한 첫날에 혼자 걷는 연습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잠드신 밤늦은 시각, 집에서 나와 동네

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빈집에서 운영하는 빈가게를 발견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둘째날은 대중교통

을 이용했습니다. 지하철도버스도꼭한 번씩정류장방향을착각해서 돌아가야 했습니다.

셋째날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태원 거리를 걷고싶었습니다. 걸음이 느린 친구

인데, 뒤쳐지는 쪽은 저였습니다. 표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어느 순간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

실을알아챘습니다. 몸이 예전의 보폭과 속도를 잊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교도소에서걸을 때는항상 뒤

에교도관이따라붙습니다. 친구가 사준초콜릿케이크덕분에 그 일을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습니다.

병역거부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부터, 저는 군대가 제 가장 내밀한 부분과 닿아있다는 걸 감지했습니

다. 형을 포함한 누구와도 잘 의논하지 못했습니다. 의논보다 결정이앞섰습니다. 재판을받고징역까지

살아보니, 뜻밖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음 깊숙한 곳을 향해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사회의 돌출된 곳 가운데 하나에 이르렀습니다. 심리가 사회가 되고, 몸이

곧정치인 지점이었습니다.

개인과 사회가 따로 떨어져 존재한다는 통념이 있습니다. 개인이 사회에 ‘적응’한다, 개인과 사회가

‘대립’한다, 등의표현은 개인과 사회를 두 개의독립적인 실체라고 가정합니다. 저의특수한 경험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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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보면, 개인과 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있어서 안팎을 가르거나 경계를 나눌 수 없습니다. 병역거

부선언과 이후의 징역 1년 6월형은 그런 체험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앞서 보폭과 속도를 언급했습니다.

나머지에 대해서도 차차 설명하려고 합니다. 시각보다 촉각으로 접하는 사회, 머리보다 몸에 의존하는

글에 대해 상상합니다. 형보기에허름하지 않은글이 나왔으면좋겠습니다.

처음 형이 접견왔을 때, 형의 손에는 제 소견서가 실린 책이 있었습니다. 원고료를 영치금으로 받았

습니다. 다음번 접견 때는 멸치조림과 참치가 들어왔지요. 영수증 민원인 란에 ‘친구’라고 적혀있는 걸

보고 뭉클했습니다. 마지막 접견은재소자 인문학강의가 있는날이었습니다. 교도관이 접견시간을 5분

추가로넣어줬습니다.

이번에는 제가형에게갈차례입니다. 멋진옷을 차려입고 갈거라는점은확실합니다. 형의 기억속

에 있는 죄수복 차림의 꾀죄죄한 제 모습을 빨리 바꿔놓고 싶습니다. 수다를 피울 내용을 상상해봅니

다. 어색할까봐 미리 걱정합니다. 어떤 대비를 해야할지 고민합니다. 그러다가 그냥 아무 말 않고 가만

히 있어도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현민2009.11.10 입영일에 현민의 병역거부선언 갈라쇼 <영장찢고 하이킥> 개최

2009.12.11 경찰조사2010.01.20 심리공판

2010.03.03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6월 선고2010.03.12 형 확정,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2011.06.30. 가석방 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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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13

2011 세계병역거부자의날 외 여옥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email protected]

<412 세계 군축행동의 날>

4월 12일은 세계 군축행동의 날(Global day of action on military spending)로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서 세계 군비지출에 대한 보

고서를 발간하는 시기에 맞춰 군비지출을 줄일

것을 요구하는 행동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펼쳐

졌다. SIPRI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전세계의

총군사비가 1조 6천억달러(약 1,900조원)에이

르렀고 2000년에 비해 약 150% 가까이 증가했

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막대한 군사비 증액이 인

류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주기보다는 군비경쟁

을 가속화시키고 끊임없는 군사적 긴장을 불러

오고 있다는 것이 전세계 평화운동진영에서 공

동행동을 펼친 이유이다. 한국에서도 준비위원

회를 구성하고 세계 군축행동의 날을 준비해왔

고, 전쟁없는세상도 참여했다. 12일 당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국회의

원들과 시민단체들이 함께 “우리 세금을 무기대

신 복지에”라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2010년전세계군사비 1,900조원을상징하는뻥

튀기 과자를 준비해서 참가자들과 함께 나눠먹

는 퍼포먼스는 인상적이었다. 오후에는 일반 시

민들을 대상으로 홍대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한국의 2011년군방예산 32조원이많다/적다 스티

커 투표, ‘우리 세금을 무기대신 □□에’ 엽서쓰

기, 국회의원들에게 국방비를 다른 곳에 써달라

는 메시지 보내기, 평화군축박람회 판넬전시 등

이 진행되었고많은 시민들이참여했다.

<2011 세계병역거부자의날 행사>

올해 2011년은 군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감옥행

을 택했던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

에서 공론화된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많은 사회적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900여명의병역거부자가 감옥에 수감되어있는 현실 속에서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기념하여 여러 가지 액

션이진행되었다. 먼저, 5월2일(월)부터13일(금)까지 2주 동안 병역거부권 인정을 촉구하는 릴

레이 일인시위가 세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작년 11월 공개변론 이후 병역거부사건에 대한

위헌여부의 결정을 앞두고 있는 헌법재판소 앞, 수차례 권고에도 불구하고 대체복무제 법안에

관심없는 국회 앞, 국민여론을 핑계삼아 문제해

결 의지가 전혀 없어보이는 국방부 앞에서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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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명의 사람들이 2주간 일인시위를 이어갔다.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날 당일에는 자전거

행진단이 국방부 앞에서 출발하여 헌법재판소를

거쳐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까지 자전거행진을

했고,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세계병역거부자의날

기념 평화난장 “너의 평화가 나를 부를 때”가

열렸다. 평화난장에 참여한 여러 평화․인권단체

들은 헌법재판관에게 병역법위헌결정촉구 엽서

보내기, 병역거부 수감자에게 보내는 메시지 쓰

기, 강정마을에 보내는 아바타만들기, 평화군축

관련 판넬전시, 집속탄반대 캠페인, 버마어린이

도서관 후원장터 등의 부스를 차렸고, 시와, 조약골, 멍구스틱, 한낱 팽이 등 평화를 노래하는

인디뮤지션들의 음악공연과 행사에 참여하는 사

람들의 이야기, 소감 나누기, 병역거부자의 한마

디 등을 나누는 자리도 마련되었다. 16일에는

대체복무제 입법부작위 위헌확인소송 제기 기자

회견이 열렸다. 여러 차례 대체복무제도를 도입

하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국회는 여전히 대안마

련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않고 있기 때문

에, 입법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국회를 상대로 ‘대체복무제 입법

부작위 위헌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소송청구인은 2010년 4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로

부터 권리구제를 권고받은 병역거부자 11명(오태양, 나동혁, 유호근, 염창근, 임치윤, 임태훈, 임성환, 최진, 임재성, 정의민, 고동주)이고, 대리

인은 민변의 오재창 변호사이다.

<무기제로 집속탄 투자철회 캠페인>

매달 정기적으로 집속탄반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무기제로팀에서는 CMC(집속탄반대연합)에서 5월 25일을 투자철회 공동행동의 날로 정한

것을 계기로 5월부터 집속탄생산회사에 투자하

는 국민연금을 상대로 투자철회를 요구하는 캠

페인을 벌이고 있다. 5월 25일 점심시간에는 국

민연금 역삼지사 앞에서 ‘당신의 국민연금이 살

인무기에 투자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당신이 낸 국민연금, 죽음의 비 되어 떨어진다’ 등의 피켓을 들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직장인

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주며 집속탄의 문제와

함께 국민연금이 집속탄 생산기업인 한화와 풍

산에 투자하고 있음을 알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보였고, 특히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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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15

연금 측에서는 당황한 듯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도 했다. 이어 6월 24일에는 국민연금 마포지사

앞에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월급에서 빠져나가

는 ‘연금’의 문제라서인지 비가 왔음에도불구하

고 직장인들의 관심이 높았다. 앞으로도 투자철

회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니 함께하실

분들은 http://wzero.org를참고하시길바란다.

<김부겸 의원 병역법개정안 발의>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7월 1일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대체복무제 없이 병역거부자를

무조건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법

안을 발의했다. 이번 병역법 개정안은 병무청에

병역거부판정위원회를 신설해 병역거부자를 심

사하고 인정되면 사회복지요원으로 복무하게 하

며, 공익단체나 시설에서 아동, 노인, 장애인, 여성 등의 보호․요양․자활 등과 관련한 업무를 육

군 현역병 복무 기간의 1.5배 이내에서 하도록

했다. 복무이탈은 이탈일수의 5배 기간을 연장

복무하며, 부정한 방법으로 사회복지요원이 된

경우에는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처벌 규정도 있다. 주당 김성곤, 박은수, 유선호, 원혜영, 정동영, 정장선, 조영택 의원과 민주노

동당 강기갑 의원,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 진보신당조승수 의원등공동발의로참여했다.

<제주 강정마을 방문>제주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인 제주 강

정마을에 6월말 전쟁없는세상 회원들이 다녀왔

다. 제주에 가는 길에 김포공항에서 강정을 나

눠주는 캠페인을 진행했고, 강정마을에서는 마

을분들과 활동가들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긴박해지는 그 곳의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곳곳에 우리

가 준비해간 현수막을 달았다. 짧은 시간이었지

만 아름다운 강정 바다를 느끼기에 충분했고, 왜 이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안되는지 몸으

로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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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끝에서, 우리의만남- 평화주의자들의행복한책읽기시즌2참가후기

샤론 | 전쟁없는세상 친구 + www.cyworld.com/trooom

청춘은 미혹과 방황의 시간.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했다. 너는 청춘표류의 때를 살고 있다고. 시작부터

이 무슨 닭살스런 말인가! 그러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청춘표류’라는 이 단어는 놀라운 설득력을 가지

고 있다. 그래, 삶은 변화의 연속이다. 한권의 책을 계기로, 사람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나는 전혀 다

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생활의 발견, 새로운 사고방식, 이해. 거창히 말하자면 지적 쿠데타, 패러다임

의 전환 같은. 말 그대로 나는 미혹과 방황의 시간을 살고 있다. 물론, 변화가 언제나 산뜻하고 상쾌

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때로 그것은 나를 질척질척한 혼돈 속에 빠뜨린다. 그러나 혼돈마저 즐길

줄아는 것이 진정표류자의 자격이 아니던가.

행복한 책읽기가 끝났다. 어떻게 보면 술 먹는 모임 같기도 했다. 아니면 정말로 술 먹는 모임이었거

나. 행복한 책읽기에서 책만 읽은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일반인(?)과 병역거부자들의 만남도 있었

다.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까다로웠던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 세미나가

즐거웠던「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그리고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가장 좋았던 책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꼽겠다. 그 책 한 권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었

던 수업에는 친구와 놀기 위해 땡땡이를 쳤다. 어쩌면 수업을 땡땡이 쳤기 때문에 좋았던 기억만 남

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지 행복한 책읽기가 나에게 어떤계기가 되었던 것만은확실하다.

모임이 끝난 후 병역거부자들에 관한 뉴스를 보면

자동적으로 클릭을 하게 되면서 나는 팔자에 없던

키보드 워리어가 됐다. 언제나 쪽수에 밀리긴 하지

만 주변 사람들에게 병역거부에 대해 제법 능숙하

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즐겨 읽던 소설 속

에 종교적 이유로 집총을 거부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을 깨닫고 경악한 적도 있었다. 전에

는 키득거리며 넘겼던 소설에 새로운 존재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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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17

나타난 병역거부덕분에 소설에 대한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병역거부자에 관한 논쟁에 제법 진지하게 참여하게 되면서 나와는 다른 논리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고 들었다. 표류의 때가 찾아온 것이다. 머릿속의 수많은 목소리들이 엎치락뒤치락 말들

을 꺼내어 놓기 시작한다. <범죄는 병과 같은 거야. 병 없는 사람 봤어? 인간에겐 전쟁도 병 같은 거

야. 전쟁도 분쟁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그래도 나는,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아. 한번뿐인 삶이 평온

했으면 좋겠어. <아직도 이런 소리 하는 사람이 있네, 대한민국의 현실을 봐! 여기는 분단국가야! 필요악이라고 필요악.>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

쟁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이타적인 면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병역거부자와 이타적

인 군인(어랍쇼?)는 자유주의와 공동선의 대립으로 확장했고, 자유주의의 다의성이 나를 혼란에 빠뜨

렸다. <이기주의자! 이상주의자!> 그럼전쟁이공동선이야? <우리에겐적이있어!> ‘주적’이라는어딘가

낡아빠진 단어에 관한 길고 긴 이야기는 내가 속한 사회의 범위를 세계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내 주

변으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으로 제한하고싶어지는 욕망을불러일으켰다.

무기를 들지 않는 것. 이것이 차라리 종교가 되어버리면 편하겠다. 병역거부를 믿습니다! (웃음) 모든

사람이 동감할 수 있었다면 ‘거부’도 없었으리라. 세상이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만년옳은견해란편협한 생각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 나는 지금보다 더 말랑말랑한 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청춘 표류자! 혼돈을 즐겨라!”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 질 때면 제풀에 지쳐서는 삶이 너

무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혼돈속에서 남은 일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으...) 쫌말끔하고 고

요하고 평온한곳은 없을까?

나에게 행복한 책읽기는 책읽기를 빙자한 사람

과의 만남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내가 유연하게

고민할 줄 사고를 가지길 바란다. 또 바라는 것

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

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논쟁 없는

세상에서는 논쟁되어야 할 많은 것들이 무관심

속에 파묻힌다. 스스로 고민하고 자신만의 결론

을 내린 사람들과 싸워보고 싶다. 사람들을 고

민과 혼돈의 도가니탕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사

람과의 만남이 제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서 행복한 책읽기 3탄을 해야 한다. 그래서 또 언제 하는

건가요? 행복한 책읽기 3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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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병역거부를응원하며- 2011 세계병역거부자의날기념릴레이일인시위참가기

노규호 | 수유너머R에서 사람들을 사귀며 위클리수유너머를 만들고 있음 + [email protected]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이하여 시작된 일인시위에 함께하고자 손을 들었다. 지난 10개월 동안 함께

지냈던날맹이감옥에 들어간이후양심적병역거부운동에 대한 나의즉각적인 반응이었다. ‘나는 나의

나약함을 긍정합니다. 나는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위해 총을 들 수 없습니다.’ 날맹이 대한민국 사회에

던졌던물음에법원은 마치 수능시험문제에답을 내리듯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서로에게총을

쏘는 것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라고 외쳤던 친구의 목소리에 대한 이곳의 대답이 징역살이라는 사실

이, 그러면서도 한쪽에서계속 들려오는 군 시설확장 소식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그리고 3년전, 동해안 GOP 초소에서 한 달에 한 번씩바다에 대고총을쏘면서 여기에왜왔는지, 무슨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에 동참하고 있는지 정보로만알고 있은채, 총장난을 하며 또래의 친

구들과 웃음을 띠고 있었던 나의 모습도 떠올랐다. 당시 새벽에 바닷가에 나와 부대원들이 총을 쏘고

나서 한 친구가 나더러 자기는 이렇게 새벽에 바닷가에 함께 나와 총을 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 기억이 나를 괴롭게 했고, ‘살아있음이란, 방아쇠를 당기며 스트레스를 해

소할 때 쓰는 언어가 아니야’라고 나와 친구들에게말하고싶었다.

2011년 5월 12일앞, ‘군대에 가는 것이 자기를죽이는 것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감당해

야할 것은징역입니까?’라고 쓴문구를 들고, 헌법재판소앞에 섰다. 시위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한

중년의 여성분이말을걸어왔다. “왜이런시위를 하는 거예요?”처음이라 긴장되었지만천천히말을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지난 10개월 동안 우연히 한 친구와 함께살았어요. 그런데이 친구는 누군가에게총을 드는 행

동을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요. 그래서 이 친구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지금은 감옥에 들어가 살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이 친구의 ‘총을 들 수 없다’는 정신적, 신체적반응이 죄가 되어야하는지 묻고 싶어요. 이 친구는 물론 신체기능으로만 봐서는 군에 가지 못할 문제

는 없어요. 하지만 총을 들고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함께 하는 것

에 동참할 수 없다고말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 친구는 정말감옥에갈수밖에 없는걸까요?”그러자 그분은 이어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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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19

“음..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는 거지요.. 그러면, 그렇게젊은 사람들이 하나둘씩이유를 대며 모두 군

대에 안간다고 하면 어떡해요? 나라는 누가 지켜요?”“저는 나라는 누가 지켜야 하나 이전에 우리가 어떻게 나라를 지키고 있고, 어떻게 나라를 지키는 것

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가를 이야기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대만의 경우 화력전을 바탕으로 한 현대전에

서 군 병력을 늘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병력을 축소하고 교육이나 봉사활동 등의 대체

복무를 확대하고 있어요. 현재 69만이라는 군인들의 수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걸까요? 오히려

자꾸만 늘리고 있는 군 시설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저는 군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사는

많은 젊은이들이 많은 불필요한일들을 하며 지내야하는지를 보았어요. 그 많은 삽질을 차라리 여기 이

곳에 복지나교육의 복무로늘리는 것이 우리에게 더좋은 일이지 않을까요?” “그래도 말이죠. 당신이 말한 그 친구 분 같은 사람 말고 단순히 귀찮고 짜증나서 군대에 안 가려는

사람들이 많단 말이죠. 신념이나 체질이랄 것도 없어요. 내가 애들을 만나봐서 아는데 이유가 없어요. 그냥싫은 거예요.” “그냥 싫은 거에도 신념과 체질이 있겠죠. 말로 풀어낼 수 없거나 말하기 곤란하니까 그냥이라고 말하

는 거겠죠. 그리고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싫다고 하거나 싫다고 말하며 이유를 대는 경우 그 말

에귀를 기울이는 일에는 피로가 함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마찬가지로 어떤기준을 정하고 ‘안

돼’라고말하는순간에도 마찬가지로 피로와 짜증이따르지 않나요? 그래요, 말씀하신대로귀를 기울이

는 것이 어쩌면 더 큰 피로가 따를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질문하신 분께서는 ‘안 돼’라고 말하며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은 무시한채상대를 점점아무말도 못하게 하고 자신은점점특정한 기준에매

달리고 결국 사람들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 좋으신가요? 아니면 다른 생각과 느낌들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좀 더 함께잘 지낼 수 있도록 조금씩, 조금씩 자기를 그리고 이곳을 성장시키며

살기를 바라시나요? 물론 누군가는 ‘귀찮은 건 다 싫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가 실천하려는

노력이 함께 잘 지내기 위한 것이라면 조금 더 절실히 말

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조금씩 기준들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우리나 여기 뿐 아니

라 나의건강을 위해서 더좋은 일이 아닐까요?”

말을 길게 늘어놔서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들으시던 분은

웃음을 지으셨다. 그리고 이어서 ‘양심적병역거부에 대한

다른 나라의 반응은 어때요?’ ‘한국의 반응은 어떻고요?’라고물으셨다. “아, 이건 저도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서 본 건데요. 2004년에 유엔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에 관한 결

의안을 채택했어요. 병역거부가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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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정당한 권리 행사임을 확인했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마련을 각 국에 촉구

하기도 했어요. 또양심을 이유로병역을 거부했던 사람들에게 사면․복권 등을 제공하고 그러한 조치가

법률과 관행에 있어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권장했구요. 한반도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인권보장

을따로 이야기하기도 했어요.여기에 한국 국방부의 입장은 이래요. 병역거부자는 남북 분단 상황에 군사기를 떨어뜨리는 요구를 하

고 있는 것이라고요. 이것은 형평성에 안 맞고 기초군사훈련과 복무만료 후 8년간의 예비군 임무까지

모두 면제하는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병사들의 사기와 국민통합을 위해 병역거부

에 대한 처벌을 지속해야한다는 거예요.” “그렇군요. 그럼, 시위하시는분은뭐, 어디까지를 원하는거예요?”“뭐, 어디까지요? 글쎄요.. 어디까진지는 잘 모르겠고, 저는 지금당장은계속되는 군 시설확장을 중단

하고 대체복무법 개정을 통한 대체복무확장을 요구해요. 나아가서는 군대에 가는 청년들이 군에 간다

는 것이 그냥남들 가니까 자격증 따듯이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군에 들어가는 것인지

를 알고, 좋아하는 것,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타인을 대하는 감각까지 변할 수 있음을 알고 군복무에

대해 선택할 수 있었으면좋겠어요.” 중년의 여성분은 고개를 살짝기울이시며알겠다고 하시고 자리를떠나셨다.

이어 한 할머니가 길을 지나가시다가 ‘이거 왜 하는거유?’라고 물으셨고, 내가 ‘대체복무를 위한..’이라

고말하며 서술어를말하기도 전에 ‘우리는 준전시상태야’ 하며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황급히 지나가셨

다. ‘음.. 다음번엔 내가 보고듣고 느꼈던 것들을먼저말해야지.’ 쌩해진 마음을 추스렸다. 곧이어 할머니 두분이말을건네오셨다. 피켓을 보시고는물으신다. “이거뭐야? 이거 또좌파얘기지?” 나는 앞서 중년여성분에게 말했던 것처럼 일인시위를 나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두 분 할

머니께서는 이전의 여성분과 마찬가지로 ‘그럼, 나라는 누가 지키냐?’라고물으셨다. 여기에 대체복무의

이야기까지 논의를 밀고 나가던 중 할머니 한 분이 ‘그래도, 군대를 다녀와야 정신을 차리지. 그 군대

안 간 사람은 먼저 정신개조를 받아야겠다.’ 하신다. 정신개조이야기에 발끈했으나 맘을 가다듬고 조근

조근말을꺼냈다. “예.. 할머니 그런데 만약에 할머니 아드님이 군대에 가기 전에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가족과 함께 이

야기하고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려는 것을 좋아했는데, 군대에 갔다와서는 위계에 따라 시키고, 명령하고, 복종하는 것이 삶의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할머니는 아드님이 그런정신개조를받길원하세요?” 그러자 할머님은 갑자기 말을 돌리시더니, “군대가면 사람을 진짜로 죽이는 건가? 총 쏘는 연습만 하

는 거지. 그걸못해?”라고물으셨고, 나는 여기에 군인이 된다는 것은 전쟁이 나면 실제로 누군가를쏘

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임을 그리고 그런 전쟁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 분은씁쓸한 미소를 지으시며 ‘잘 들었어요.’라고답하셨고, 여전히 다른한분은 정신개조를외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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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21

그렇게 1시간 가량이 지났다. ‘군대에 가는 것이 자기를 죽이는 것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들이 감당해야할 것은 징역입니까?’ 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그렇게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 말을건내고섞였던 사람들, 그리고 나의

기억들과 함께했다. 많은 사람들의 돌려지는 고개를 볼 때마다 ‘피켓을 들고 있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

에게 어떤말을 건낼 수 있을까? 또 얼마나깊은 이야기를 함께해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면서

도 여전히 무언가를 몸으로 내보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1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

만 몸을 마주하며물음을 나누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언어로 만나는 평화디에고 | [email protected]

<독일어>

friede [frídn] m.

기원이 된 인도게르만어의 어근 'pri-'는 사랑하다, 보호하다의 뜻을 갖고 있는데, 이는 속

박과 구속이 아닌, 상호 도움과 후원으로 해석된다. '평화'를 사회적인 개념으로 보고 있

는 것이다. 근대 독일의 계몽사상가들은 적극적인 평화의 개념을 확산시켜 "'폭력'이 없는

상태"로 재정립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신에게 평화의 인사를~" "Friede sei mit dir"

(참고 :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 - 평화)

<스페인어>

paz [빠:쓰] f.

볼리비아의 수도로 유명한 이 단어는 단 세 철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의미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라틴어 Pax에서 유래하였다. 흔히들 말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스페인어

를 사용하는 나라가 많은데, 이들 나라들의 역사를 보면 평화를 절실히 갈구하게 된다. 타

는 목마름으로, 평화를 외치며.

(참고 : 평화를 위한 글쓰기)

* m,f,n은 각기 남성명사, 여성명사, 중성명사를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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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다, 군대- 2011 세계병역거부자의날행사참가후기 오리 | 망할세상을 횡단하는 LGBTAIQ 완전변태에서 활동 중 + [email protected]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시와가 노래 부르다 흘린 눈물과 어떤 병

역거부자가발언을 하다흘린눈물, 그리고 나의눈물이다.

시와의 눈물까지는 울컥울컥 하던 거를 겨우 참았건만, 병역거부자의 발언을 듣다 눈물이 보이자 울음

이 터져 나올 거 같아 자리를 피했다. 우는 게 괜찮다지만 그 자리에서 꺼억꺼억거리며 우는 건 좀 창

피하다.

제대한지 세 달이 다 되어간다. 나오면 싹 다 잊어버려야지 했는데, 정말 군대의 기억들이 환상처럼만

느껴진다. 그 공간, 그 사람들과의 관계, 숨겨야만 했던 내가 너무 어색하다. 군대에서 난 많이 힘들었

다. 있는 내내 힘들었다. 안다. 힘들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힘들

었던건내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란것도 안다. 왜군대는 그래야 하는지, 군대가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비록군대에서는 의문을품지말라고 하지만 그게 가능한건가? 난 기계가 아니다.

평화를 위해 군대가 필요하다고 한다. 평화를 위해 내가 그

것들을견뎌야 했나? 누구의 평화였을까? 아님나는 내 평화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바보인걸까? 의문들은꼬리에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속 시원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제대하고

그 답을 찾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일단 잊고 자유를 즐

기자고 했다. (“자유” 이 단어는 한동안 나에게 각별했다.) 그러다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뭔가힘들었던 내 시간들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

로참가하게 되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 병역거부를 고민하긴 했었다. 나에게는 군

대나 감옥이나 마찬가지였고, 더 짧게 갔다올 수 있다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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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23

과를 달아도 별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병역거부 매뉴얼 이런 것도 찾아봤었는데, 거기

보니까 다른 죄수들과 같이 방을 쓴다더라. 그래서 관두었다. 독방이라면 모를까. 사람들, 특히나

동성애혐오가 있는 사람들과 몇 달을 부대끼며

사는 것은 고문이다.(근데 나중에 들었는데, 동성애자라고 하면 따로 격리시킨다더라.) 그건 군대

도 다를 바 없겠지만, 그래도 자주 휴가를 나올

수 있다기에 그냥군대에 갔다.

저런 이유로 병역거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판사앞에서 저런말로병역거부를 한다고말했으면 어

땠을까? 생각해보면, 아마 저렇게 말하지는 못했

을 거다. 다른 많은 이유들을 댔겠지. 그나마 좀

먹히는 이유들. 있어 보이는, 수준 높아 보이는

이유들. 그만큼 병역을 거부하는 일은 용납되지

못하는 사회인 것 같다. 남자들이 떼로 몰려 샤워

하는 것이 너무 불편하다는 이유로, 여자를 따먹네 마네 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게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하는 관계가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군대를 거부하는 것은 씨알도 안 먹

히겠지.

너무 당연한 전제가 되어버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국방의 의무. 병역을 거부하면 죄를 짓는 것이라

고 헌법이 명하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뭐기에 20대 비장애인 남성만을 강제적으로 총을 들게 하는

걸까? 더 효율적인 파괴 방식을 떠나서, 이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는 것

은 국방이 아닌 걸까? 비가시화되어 있는 돌봄 노동들, 파괴되는 환경을 지키는 일들, 평화를 위해 필

요한 소통들. 왜 꼭 반드시 총을 들도록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당신네들이 말하는 전쟁에서

도총보다최신무기들이 더효과적이라고말하면서도.

그래, 난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말을, 병역거부자의 말을듣지 않는 그들이 더 잘 아는 것 같지는

않다. 병역거부자의 날, 자전거를 타고 달린 도로와 마로니에 공원에서 나는 평화로웠다. 그/녀들의 눈

물, 나의 눈물은 아픔이기도 하겠지만, 희망이기도 했다. 난 그 눈물이 이어져 있다고 느꼈다. 그 평화

의 마음이 내년에는 더욱커져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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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한국군은 얼마나 기후변화에 기여할까. 이를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서는 군에서 얼마나 직

간접적으로 전기를 쓰는지, 또 군에서 사용하

는 물품들이 생산되는데 얼마만큼의 온실가스

가 생겨나는지, 또 군대에서 얼마나 많은 온실

가스를 배출하는지에 대한 자료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료는 없으며, 있다 해

도 공개되지 않는다.1) 하지만 우리는 군대가

얼마나 많이 기후변화에 기여하고 있는지 대

략이라도 감을 잡고 싶었고 군대가 직접 배출

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석유 소비량을 추산해보고자 했다. 그리

고 그 양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느껴보기 위

해서 각종 다른 자료들과 비교해봤다.

한국군 석유 사용량, 북한 전체가 쓰는 석유

사용량보다 많아

2000년에 있었던 군용 항공유 납품비리 기사

를 참고하면2) 군용항공유 사용량은 연간 5억

8천만 리터다. 군에서 사용하는 총 연료량은

연간 13억 2천만 리터, 자동차 114만대의 연간

연료 소모량으로 이는 부산에 있는 모든 자동

차의 연료 사용량과 거의 같다.3) 이 양은 한

국이 하루에 쓰는 석유의 양의 1%에 달하는

데 한국이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세계 10

위 안에 드는 석유 소비량을 자랑하는 것을

감안하면 그 양은 엄청나다. 한국 군대의 석유

사용은 하루 평균 23000배럴로 웬만한 조그만

국가의 석유 사용량보다 많다. 국가 순위상에

서 볼 때 마케도니아, 아이슬란드, 네팔 등보

다 위인 120위권에 들어간다. 134위인 북한보

다도 순위가 높다. 한국 군대는 북한 전체보다

석유를 많이 쓰는 것이다.

군사목적의 석유 사용, 필요한가?

물론, 우리는 제주도를 가거나 외국 여행, 출

1) 글쓴이와의 통화중에 국방부 관계자는 육군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산하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며 다른 군들

도 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대략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에너지 사용, 연료 사용량 등의 자료를 요구하자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2) <국방부-정유회사 '바가지 납품' 자료 단독 입수>, 시사저널 [541호] 2000년 03월 09일 (목)

3) <고유가 및 차량 연비개선으로 차량 1대당 휘발유소비량은 줄어>, 대한석유협회, 2007.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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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25

일반 자동차에 비교하면 비행기는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기름을 소비하고 그만큼 기후변화에 기여한다.

삽화에 있는 보잉 747기가 인천에서 LA까지 날아갈

경우 자동차 2600대 분의 기름이 든다고 한다.

장 등을 가는데 더 많은 석유를 사용하고 있

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를 소비할 때 그것의

비용과 필요를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민간

인 수백 명이 민간 여객기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을 때 그것은 다양한 만남과 긍정적인

영향들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가면서 10000리터의 기름을 하늘에 뿌

리지만 대신 아름다운 강정마을의 구럼비를

지키려는 주민들과 연대할 수 있다. 또한 비행

기를 타고 레바논에 가면서 10만 리터가 넘는

기름을 하늘에 뿌리는 대신에 국제적인 평화

운동에 함께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교관과

훈련생 단 두 명만이 고독하게 훈련기에 올라

기름을 뿌릴 때 우리는 과연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정당화 할 수 있을까. 북한을

자극하기 위한 해상 훈련을 위해 엄청난 기름

을 바다와 하늘에 뿌리는 것을 우리는 정당화

할 수 있을까.

당장 군대를 없애라고 주문하지는 않겠다. 또

훈련을 당장 멈추라는 것도 비현실적이고 불

가능한 요구란 것도 안다. 하지만 기후변화 시

대에 아무런 감각 없이, 오히려 자랑스러워하

면서 하늘에 기름을 뿌리는 이 ‘훈련’이 반드

시 필요한가를 물어야 한다. 직장에 출근하는

10km를 가는데 쓰는, 즉 1L의 기름을 아끼기

위해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 위로 한

시간에 300L 가까이의 기름을 쓰며 비행하는

전투기의 필요를 우리는 물어야 하고, 줄이자

고 요구해야하지 않을까.

녹색 국방에 대한 근거는 없다. 믿어라!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정보조차 한국에는 거

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의 도입부

에 제시되는 비행기의 연료사용량, 이 단순한

지표를 구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

았다. 물론 군사관련 자료가 간단한 검색만으

로 보란 듯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국방부에서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국방녹색성장”을 자랑스럽게 내세

우고 있는 국방부에서 대략의 통계정도는 홍

보용으로 내줄 거란 기대를 조금은 했었다. 온

실가스 감축 목표량이라든가, 에너지 감축 목

표라든가 혹은 사용 실태 정도의 자료. 달성하

고자 하는 정책이 있다면 현재 상황은 어떻고

얼마나 줄이는 것이 목표인지 정도는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

군대의 온실가스 발생량, 혹은 석유 소비량을

알기 위해 국방부에 민원신청을 넣었다. 물론

국방부 자료실에 올려져 있는 국방녹색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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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을 훑어본 후였다. 그 자료집에는 항공

기 엔진을 친환경 세척제로 닦는다거나, 제주

도 강정마을에 붉은발말똥게와 구럼비 바위를

없애고 파력발전소를 활용해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된 녹색 기지를 건설한다거나, 매월 1회

쓰레기 줍기를 해서 연간 10톤의 쓰레기를 주

웠다는 녹색실천만이 나와 있을 뿐, 군대의 가

장 본질적인 부분인 전투부문을 비롯한 전체

적인 에너지 대책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자

료집을 읽어 보고 민원신청을 하면서 나는 자

료집보다 더 구체적인 자료를 원한다고 밝혔

지만 답변에는 자료집을 읽어보라는 형식적인

내용만 있었고 귀하의 건승을 기원한다며 몇

개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알려준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서 대화를 나누면서 건승은커녕

답답함만 늘었다.

군부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이나 온실가스

배출량을 물으면 아직 데이터가 없다고 하고

그럼 군부대의 에너지 사용량이나 연료 사용

량을 대략적으로라도 알려줄 수 있는지, 군의

에너지 사용에 대한 기초자료가 있는지를 물

어보면 그런 걸 왜 물어보시냐고, 누구시냐고

되물으며 군사 기밀이라 알려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대로 포기할 순 없어서 국방과학연구

소에 전화를 해서 2011년 4월에 치러진 “국방

분야 녹색성장 실질적 성과창출 방안 모색”

심포지엄4)의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한참

담당자 문제로 전화를 바꾸고 자리를 비운 담

당자들 때문에 몇 시간을 기다려서 얻은 대답

은 “일반인에게 공개할 수 없다”였다. 그리고

그러한 자료를 알고 싶어하는 ‘순진한’ 나에게

“그런 거 말씀 드릴 수 없는 거 아시잖아요”

하면서 점잖게 타이르기도 했다. 이는 정부의

녹색성장을 조율하며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녹색성장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공개돼 있는 여러 가지 지표들 중

에 국방부문이 어떻게 반영돼 있고, 녹색 국방

이 어떤 목표로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에 대

해서 대략적으로라도 자료를 달라는 내 요청

에 대해서 단박에 거절했다. 공개를 원하는 나

에게는 이런 저런 이유가 많았지만 거절하는

정부직원들의 이유는 간단했다. 안보와 기밀이

었다. 군대와 관련된 어떠한 자료도 줄 수 없

다는 직원들의 태도는 어느 부처 어느 부서든

마찬가지였다.

‘밀리터리 매니아’ 되려다 ‘정보전사’ 된 사연

정부의 협조(?)를 얻지 못한 나는 스스로 자료

를 만들어야 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출하

는 것은 너무도 복잡했고 석유 소비량과 온실

가스 배출량은 밀접한 지표였기 때문에 보다

손쉬운 석유 소비량에 집중하기로 했다. 물론

항공기는 고도가 높은 곳에서 비행하기 때문

에 다른 운송 수단에 비해 온실효과에 기여하

는 바가 더 크고 또 동결방지제 등의 여러 첨

가물 때문에도 온실효과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지만 어쨌든 대략적인 연료소비량을 산출해

야 군대가 얼마나 온실효과에 기여하는지 감

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항공기에서 어느

연료를 얼마나 사용하는지에 대해서 알기 위

해 내가 찾은 곳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모이

는 각종 게시판들이었다.

무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위 ‘뉴비’였

던 나는 항공기와 전차에 대한 기초공부부터

시작해야 했다. 대뜸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

4) <국방분야 녹색성장 실질적 성과창출 방안 모색>, 녹색성장스마일군블로그, http://blog.daum.net/kang1136/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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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27

공군 제3훈련비행단의 '15만 시간 무사고 비행'의 주

인공인 이경동 중위를 동료들이 축하해주고 있다. 사

진 : 제3훈련비행단

글 쓸건데 자료 좀 알려줘”라고 외칠 수는 없

지 않은가? 인도네시아에 수출한다던 t-50과

최초의 국산 훈련기라는 Kt-1이 어떤 비행기

인지 공부해야 했고 우리나라엔 노후된 M48

전차와, 새로 개발된 K-1 전차 그리고 차세대

전차인 흑표를 어떻게 구분하는지도 공부했다.

그런 후에 나는 어느 무기가 좋네, 어느 비행

기가 좋네, 어떤 전투기랑 어떤 전투기랑 싸우

면 누가 이기네 하는 논쟁에 참여해볼 수 있

었고 내가 진짜로 궁금했던 연료에 대해서도

질문 할 수 있었다. 석유 값이 점점 오르고

한국이 산유국이 아니니 때문에 무기에 있어

서도 연료 효율이 좋은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질문에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전투

기에 무슨 연비를 따지냐는 물음으로 답했다.

뒤따른 덧글 들은 전투기에서 중요한건 항속

거리나추력 등이지 연료효율이 중요한 게 아

니라는데 힘을 더했다. 연비에 대한 계속되는

질문과 연료 소비량을 구하는데 필요한 이런

저런 자료들에 대해 궁금한 점을 밀리터리 매

니아 게시판에서 질문하다 보니 나를 ‘정보전

사’로 취급하는 덧글이 있었다. 정보전사가 뭘

까 싶어서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북한에

서 한국 여론 조작하는 인터넷 간첩”. 북한은

못 하는게 없다.

기후변화시대에 군사무기의 악영향 따져봐야

군사무기에 대한 관심은 비슷한 듯 했으나 접

근 방식이나 초점, 그리고 나의 말투 등은 밀

리터리 매니아들의 그것과 분명 달랐나보다.

대한민국에서 무기에 관심이 많은 집단은 아

마도 국방부를 비롯한 군사부문 관계자들과

평화 운동가들, 그리고 밀리터리 매니아들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무기

에 대한 관심은 오로지 전투력으로만 집중된

다. 어느 무기가 센지, 어떤 전투기가 멋있는

지, 어떤 미사일이 확실하게 상대를 살상하는

지. 문제는 이러한 관심이 비단 밀리터리 매니

아들의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군사관계자들

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전 국

민적으로 무기에 대한 관심은 그것에 집중된

듯 하다. 연평도 사태라든가 새로운 무기를 살

때, 혹은 군사 훈련에 대한 언론 보도에는 그

것이 갖고 있는 살상력과 파괴력을 자랑하고

파괴장면의 화려함만이 보여진다. 그것을 위해

우리가 들여야 하는 비용과 그것으로 인해 치

러야 할 환경파괴, 기후변화 등은 일말의 관심

도 갖고 있지 못하다.

미국을 비롯한 군사 대국들은 점점 에너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

은 석유를 소비하는 주체인 미군 또한 2016년

까지 2005년의 절반 수준인 30억 배럴로 사용

량을 줄이겠다고 하고 각종 노력을 하고 있

다.5) 하지만 한국에 그러한 노력이 있는가?

5) <‘골리앗 미군’ 새로운 敵 ‘高유가’>, 국방일보, 2007.01.04

Page 30: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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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정부에서 친환경 군대를 한다고 하면 아

무런 근거도 없이 믿어야 하고, 녹색 국방을

한다고 보도자료를 뿌리면 구체적인 수치도

없이 믿어야 하는 것인가? 민간에서는 벌써

십 수 년 전부터 하던 쓰레기 분리수거와 재

활용, 전기 아끼기 캠페인 등의 낡은 것들을

군대에서는 이제야 새로운 정책이라고 시도하

고 있다. 물론 이러한 뒤늦은 실천을 하지 말

라고 할 이유는 없다. 단지 우리가 물어야 하

고 요구해야 할 부분은 보다 본질적인 부분일

것이다. 정말로 석유를 흥청망청 쓰게 하는 것

이 사병의 컴퓨터 사용인지 아니면 북한을 압

박하는 전투기 훈련인지. 사병이 부대 내에서

자전거를 타서 전차가 땅에 뿌리는 석유가 만

회되는지. 나아가서 기름을 뿌리며 전진하는

전투기와 전차, 그리고 전함들이 과연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

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외국의 어느 평화환

경연구자의 말처럼 생태주의, 환경주의, 반소

비주의, 대안에너지 운동은 반군사주의자가 되

어야 할 것이다.6)

대한민국 1%라는 수치는 어떻게 나왔을까. 위 글에서 사용한 각종 수치들의 추산 방법을

따로 적어둔다. 정부에 의한 공식적인 자료 공개는 돼있지 않아 불가피하게 검색 가능한 자

료들과 계산기를 활용해 추산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 과정이 어땠는지 밝힐 필요가 있기 때

문이다.

1) 한 해 사용되는 군용 항공유의 양은 2000년 군용 항공유 납품비리 기사로부터 알 수 있

었다. 기사 내용을 보면 한해 5억 8천만 L의 JP-8연료가 납품된다고 나와 있다. JP-8은 거

의 군사용 항공기에만 사용되는 연료이기 때문에 이 수치를 군사용 항공기의 연간 연료 소

비량으로 봐도 큰 오차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기사에는 이 5억 8천만 리터의 JP-8연

료 사용이 군의 연료 조달의 44%에 달한다고 나와 있어 한국군의 총 연료 사용량을 연간

13억 2천만 리터로 추산할 수 있다. 이는 하루 평균 23000배럴에 달하는 양이다.(1배럴

=158.9L) 아래 기사를 참고했다.

- <국방부-정유회사 '바가지 납품' 자료 단독 입수> 시사저널[541호] 2000년 3월 9일(목)

2) CIA의 월드 팩트북을 참고하면 한국 전체가 하루에 사용하는 석유의 양은 218만 5000배

럴로 세계 9위이다.(2010년 기준. EU제외) 하루에 23000배럴을 사용하는 한국군은 한국의

총 석유소비량의 1.04%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별 석유 소비량 순위표를

참고하면 한국군대가 국가별 석유 소비량에서 120위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며 이는 1일

16000배럴을 사용해서 134위에 위치해 있는 북한 전체의 석유소비량보다 많은 수치이다.

물론 시사저널의 기사는 2000년의 것이고 지난 10년 동안 군사용 연료 소비량이 큰 변동이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했다.

6) Martinot, Steve. “Militarism and Global Warming.” Synthesis/Regeneration. Winter 2007.

http://www.greens.org/s-r/42/42-06.html

Page 31: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29

- CIA WORLD FACTBOOK :

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rankorder/2174rank.html?cou

ntryCode

3) 1%라는 수치는 단지 군에서 사용하는 석유 사용량만을 계산한 것이다. 군사 무기나 시

설 등을 만드는데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등을 포함하면 군대가 기후변화에 기여하는 정도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또한 항공기는 높은 고도에서 배기가스를 배출하고 동결방지제 등을

연료에 섞기 때문에 같은 연료를 사용해도 온실효과에 기여하는 바가 훨씬 크다. 또한 비행

시 발생하는 비행운은 탄소산화물의 온실효과를 3~4배 증폭시킨다. 즉 석유사용량으로 추

산한 수치보다 기후변화에 기여하는 정도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 <항공산업과 기후변화>, 항공산업연구 제71집, 세종대학교 항공산업연구소. 2009.12.

4) 2007년 대한석유협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 1대당 연평균 휘발유 사용량이

1153리터이다. 한국군의 한해 연료 사용량(13억 2천만 리터)을 이 수치로 나누면 자동차

114만대 분량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이는 부산광역시에 있는 자동차 수(114만대)에 달한다.

국방백서를 참고하면 한국군이 소유한 항공기는 600여대, 헬기를 모두 합하면 1300여대다.

고작 1300여대의 비행기가 50만대의 자동차만큼의 연료를 쓰고 있는 셈이다.

- <고유가 및 차량 연비개선으로 차량 1대당 휘발유소비량은 줄어>, 대한석유협회,

2007.4.23.

- 건설교통부 월간 교통통계

- 국방부 <2010 국방백서> p.271 남북 군사력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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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장면 1 오염자가 오염원을 해결하지 않겠다

고 땡깡부리는 모습...

익숙할 것이다.. 국가안보를 지켜준다는 이유로

기지를 가져다 쓰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환경

적 문제에는 책임지지 않는, 한국에 있는 미국의

군대. 고엽제 파문이 보여준 것은 단순히 SOFA의 불

평등한 조항 탓에 환경주권을 빼앗긴 모습이라

기보다 ‘안보’를 제 일순위에 올려놓고 생태를

비롯한 다른 가치들은 괄시하면서 결국에는 군

대가 우리를 둘러싼 생활 환경에 이렇게 ‘위협’

으로 드러나는 모습들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게

된 것은 아닐까. 한 사회가 군사적 답안을 포함

한 무력의 사용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다른 것

을 부차적으로취급할 때, 심각한 환경의 오염을

넘어서 시민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사태가 벌어

지는 것은 자명하다.〈국가는 어떤 몸인가? - ‘비국민’의 입장에서

본 안보 위협>을 저술한 여성주의 학자 정희진

은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외국

군대보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유무형의 억압들이

더 위협적이다”라고. 환경주의자의 시각에서 보

면, 아니, 오염된 지역에 거주하는 일반 시민들

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에이전트 오렌지’의 치

명적인 독성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된 해당 지역

의 주민들에게 “굳건한 동맹”과 “튼튼한 국가안

보”는 무엇을 의미하겠는가.많은 비판과 지적을 받고 있는 SOFA 제4조항의“원상복구할 의무가 없다”는 규정을 보자. 헌법재판소는 2001년 판례에서 이 조항에 대해 “미

군은 오염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판결로써 일

단락지었다. 그러나 2006년 주한미군사령관이라

는 사람은 이렇게말했다. “(한미간) SOFA는 미

국에 토지가 미군에게 공여된 당시의 상태대로

복원하도록 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미국은

‘밝혀진(known), 급박한(imminent), 실질적으로

인체에 유해한(substantial endangerments to human health)’ 요소를 치유하도록 돼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치유요소에 대해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제공했고요구사항을충실히 이행했다”

라고... 아, 이 얼마나 편리한 생각인가. 자기가

군림하는 땅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관심 안가져도 되고, ‘드러난’ 것에 대해 땜

질식으로(그것도 제대로 안하면서) 처방하면 되

고, 기지사용 다하면 걍 떠나면 되고. 과도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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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31

사력 만능주의즉, “안보를 위해 다른것은괜찮

아! 미쿡형님이 잘 쓰시겄지!”라는 태도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토양에, 대기에, 물에 어

떠한 끔찍한 궤적을 남길까. 미군은 지금까지도

환경오염과 소음피해 배상을 한 푼도 내지 않았

다.

장면 2 “방안에 날아든 포탄”에 이장님들이

분노하다!

한 일간지의 내용이다. 방바닥을 가만히 걸레질

하다가 난데없이 날카로운 물체가 어깨를 찔렀

다. 도둑은 없었다. 다만 반짝거리는 작은 것이

있었다. 지붕을 뚫고떨어진 그것은 미군 사격장

에서 날아온 도비탄(길이 10cm로써 지면에 닿

으면 터진다)이었다. 포탄은 한 번 맞았으나, 그날 입은 정신적 충격은 지우기 힘들다. 그 이후

에도 F15 전투기 연습탄을 비롯한 포탄들은 이

따금씩, 사정없이 민가에 떨어지곤 했다. 환경적

문제는? 포천의 영평사격장 인근 주민들은 “대

포소리가 이젠자장가”라고 한다. 사격장에서쉴

새 없이 터지는 굉음은 원초적인 공포를 한없이

느끼게 한다. 50년이 훌쩍 넘는 세월동안, 먼지와 소음 피해, 주민들에게 발생했던 난청, 이런데도 소음측정기조차 없는 마을, 포천시 이장들

은 단단히 화가 나서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지나다가 혹 옆의 인근부대

에서 헬기가뜨거나, 폭발음이 들리는 것을목격

한 적 없는가? 정말 시끄럽다. 요란하다. 불안하

다. 주위에 사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밤에 잠을

곤히 잘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선율

의 화음도 아닌, 무시무시한 쇳소리가 그토록크

고, 그치지 않을 때 인간은 공포를 느낀다고 한

다. 이런데도 군대는 친환경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장면 3군의 ‘환경전담부대’ 그러나, 구체적 자

료를 공개치 않으면서?

보수와 진보 언론을 막론하고, 전혀책임지지 않

는 오만한 그들의 태도, 주권을 가진 땅에 살면

서 전혀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무력감 등이 보

도되고 꾸준히 소개되는 덕에 국민들은 미군기

지 주변에서 일어난 심각한 환경파괴에 대해서

는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정작

‘우리 군’이 얼마나 오염시켰는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자료가 공개되고 그래서

미군에게만 환경복구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군

대 자체가 야기하는 다양한 오염을 바로 아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국 군의 오염

정보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신문을 뒤져봐

도. 군이 하고 있다는 것은 미군기지 주변 오염

을 정화하고, 환경친화적으로 ‘잘해보겠다’는 다

짐이 담긴 그런 ‘환경전담부대’ 운영. 그러니까

‘우리가 잘할테니 걍 믿어라’인가? 정보 안 알려

주고 꿍 감춰두는 것에 요즘 국방부가 맛들인건

아닐런지..

무엇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고, 무엇이 가장 뒷

전으로 밀려나 등한시되는지는 뻔하다. 사실 군

대는 환경을 책임지기 싫은 것이다. 이것은 아마

세계의 모든 군의 동일한입장일 것이다. 그러기

에 대기, 토양, 수질 등의 공해, 소음의 문제를

성찰한다면 누구나 군축을 고민하는 수밖에.. 하여,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더 ‘시민의 힘’으로

조정할 수 있는 군대를, 국방 정책에 ‘환경’을

생각하라고 개입하여 입장을 피력할 권리를, 본질적으로 국방부 스스로 무기도입, 훈련, 일련의정책을 실행하기 이전에 “이 행동으로 어떤 부

작용과 폐해를 초래할 수 있을까”라고 조금이라

도 더 민감해하고 신중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질

그런 사회의 공기를 갈구하고 그런 방향으로 나

아가야 한다. 지금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더큰비용을물게될수도 있으니까.

Page 34: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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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민석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전쟁/문명이 남성이고 평화/자연은 여성이라면, 여성은 평화로워야하고, 여성은 자연스러운 것이

라는말일까?”

영화 아바타2)를 보면서 느꼈던 무수한 생

각들이 있었다. 생태철학의 트로이카 중에서는

단연 심층생태학(DEEP ECOLOGY)와 생태여성

주의, 셸링의 자연철학, 스피노자의범신론, 장자

의제물론, 피터싱어의 후기-종중심주의와데카

르트의 주체철학과 이에 대항하는 수많은 ‘타자

의 철학’,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들과

지금도 감옥에서 신념을 조용히 지키는 나의 병

역거부자 친구들이 떠올랐다면 그건 미친년일꺼

고, 사실은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나오

는 드레나이 종족3)과 나이트 엘프 종족, 행성아웃랜드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오버랩되서 깜짝

놀라서 지구 밖으로 튀어오를 뻔했다.(심지어 나

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와우의 드레나이 종족

의 세계관과 설정을 슬쩍 베꼈는지도 의혹이 갔

다). 일단 둘다 외계인이고, 생김새가 너무 비슷

했다. DHA와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된 등푸

1) 에코페미니즘은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생태여성론으로, 자연생태계와 인간을 하나로 보고, 생명의 가치, 평등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상이다. 또한 지금까지 남성중심·서구중심·이성중심의 가치와 삶의 방식이 세상을 지배

하면서 황폐화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뒤바꾸려는 실천지침이기도 하다. 이것은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위기가

동일한 억압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에

서 출발한다. 여성 환경문제는 그 뿌리가 남성 중심의 억압적 사회구조에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 성(性)의 조화를

통해 모든 생명체가 공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자연생태계라는 드넓은 온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며 동시에

고른 사람의 삶을 살리는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2) 영화 아바타는 군사주의와 평화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의, 제국주의와 탈식민주의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고 생각한다.

3) 드레나이 종족은 게임 와우에 나오는 성스러운 외계인 종족이다. 드레노어 행성에 살다가 호드의 침공으로 80%이

상의 종족이 학살당했고, 남은 드레나이 중에서는 돌연변이를 일으켜 ‘잃어버린 드레나이’와 ‘뒤틀린 드레나이’라는

세 종족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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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33

른생선을떠올리게 하는푸른빛깔 (- 물론 이

건 제5원소에서 나온 외계인도 비스꾸리 하지

만;;ㅋㅋ)의 피부색과, 모두 어떤 초자연적인

힘4)에 의지한다는 것, (와우에서의 드레나이 종

족은 수수께끼의 빛의 종족인 ‘나루’에게 빛과

이타주의의 정신의 권능을 부여받는 것으로 나

온다), 모두 ‘악의 세력들’에 의해 무참히종족이

학살당한다는 점, 또한 와우에 나오는 행성아웃

랜드의 배경은 아바타에 나오는 행성 판도라와

굉장히 유사했다. 포자들과 곰팡이들, 기이하게

생긴 식물들과 괴상하게 생긴 동물들. 또한 지구

에서 흔히 보이는 녹색식물이 아닌 보색대비의

자주색이나 보라색, 형광색 식물들과 같이 판도

라에 살고 있던 생명체들은 내가 와우를 하면서

보았던 혹성 아웃랜드의 장가르 슾지대와 나그

란드에서 사는 기이한 생명체들인 포자날개, 황천의 가오리, 온순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인

스포어가르5)와 이를 괴롭히던곰팡이 거인을떠

오르게 했다. (스포어가르 친구들은 잘 지내는지

걱정된다.. 와우의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종족

인데...)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한 기시감을 느끼게

했던 것은 그곳의 풍경이 너무나도 초현실적이

고 몽환적이어서 아름답다 못해 성스러운 경외

감마저 들게 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와우를플레

이하면서 아웃랜드에 처음 입성했을 때 느꼈던

그곳의풍경에 대한 경이로움 - 즉지구에서 볼

수 없는 외계의 행성의 자연풍경이라는 생경함

은 ‘쇼크’였다.6)

혹자는 3D의 시뮬라크르의 가상현실을 통해

체험하는 인조된 자연을 보고서는 “저건 가짜

야!”라고 정색할지도 모른다. 3D 안경을 쓰고체

험하는 홀로그램과 이를 통해 간접체험을 하는

가짜 자연, 만들어진 자연... 흡사 아바타 프로그

램에서 주인공 제이크가 가짜 나비족 행세를 했

던 것처럼, 아바타에 나오는 모든게 가짜일지 모

른다. 나비족, 아름다운 풍경... 어딘지 있을법도

한 미지의 나비족들이 거짓된 허상이라니, 실망

스럽다. 꿈에서 깨었는데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른다는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말이다. 아무튼 그런 비판―즉 영화 속에서 아바타가 가

짜인 것처럼, 영화 아바타 자체가 가짜라는 이중

적인 패러독스―에 대해서 나는,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말해주고싶다. 이를테면영화를 하

는 친구들은 3D영화를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

으며 (내 가까운 영화를 하는 친구는 아바타는

게임에 가깝지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환경주의

자들도 아바타에 나오는 자연은 가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7)

4) 이 초자연적인 ‘영적인 존재’는 인격신을 연상시킨다.

5) “스포어가르는 아웃랜드 토착 종족인 평화로운 버섯인간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장가르 습지대의 남부

늪지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곰팡이 거인이라는 위협적인 존재가 나타나 스포어가르 종족을 잡아 먹기 시

작했습니다. 두려움에 떠는 작은 버섯인간 스포어가르 종족은 거인을 처치해달라고 부탁합니다”

6) 칸트나 료타르가 말하는 ‘숭고함’이랄까?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풍경, 인물, 환경을 맞닥드릴때의 충격. 칸트는 이

러한 이성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것을 『판단력 비판』에서는 숭고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건 『순수이성비판』에

서는 ‘물자체’라고 한다. 그런데 고진에 의하면 칸트의 물자체는 ‘타자’이다. 이때의 타자는 심지어 미래세대의 타

자, 즉 환경문제까지 포함하는, 무한한 윤리적 책임을 동반하는 타자이다. 아무튼 이렇게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

은 현상계인 지구 너머 물자체의 세계인 행성 판도라에 존재하는 낯선 타자를 대변하는 종족인 것이다.

7) 어차피 현대예술의 가장 큰 두 특징은 ‘숭고’와 ‘시뮬라크르’라고 한다. 이 두 개가 절묘하게 결합된 아바타는 ‘형식’면

에서는 기술발전의 흐름에 봤을 때 당연한 것이며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것이 던지는 ‘내용’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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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를 이용해 테크놀로지를 비판한

다는 자기모순에 빠진 것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에코페미니즘의 강렬한 주창자인 반다나 시바에

대한 조롱섞인 비판도 그런 것이였다. “왜 환경

주의자인 당신은 과학기술의 혜택을 입고서는

TV나 인터넷을 통해 환경파괴를막자는 그런주

장을 하는거죠? 히죽히죽 *^ *̂”

그런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장가

르 슾지대에서 곰팡이 거인을 무찌르며 스포어

가르 친구들을 도와줘서 초롱버섯을 선물로 받

았던 그때의 감동처럼,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들

을 좋아한다. 인공적이지 않은 걸로 따지면 오만

가지가 다 그렇지 않을까? 환경을 생각한다면

책을 써서 종이를 낭비하는 생태주의자나 환경

주의자의 책도 인공적인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심지어 노자나 장자는 글자까지 쓰지 말자고 했

는데뭐. 어차피 물자체의 타자를 주체가 이해한다는

것은 위선일 수도 있고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아바타에서 주인공 제이크가 가짜였지만, 그래도

나비족은 그를 받아주어서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는 타자를 통해 주체의 변형을 이루는 것도

가능할뿐더러,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소 삼천포로 너무 오타쿠처럼 빠진거 같

지만, 아무튼 이번 소식지 기획주제인 ‘군사주의

와 환경문제’에 관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여성성’에 대한 대안적 고

찰은, 군사주의와 환경문제는 모두 어떤 공통원

인을 간과하고 있는데8), 그것은 군사주의적 ‘남

성성9)’이라는것이내 생각이다. 에코페미니즘에

서는 자연파괴와 식민지, 개발주의와 군사주의의

이면에는 ‘남성성10)’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적으

로 동의한다. 섹스와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권능

없이는 환경파괴도, 군사주의도 있을 수 없다. 이 모두의 ‘공통원인’이자 ‘필요원인’이 바로 ‘남

성성’이라는젠더/섹슈얼리티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군사주의의 문제11)와 환경의 문제

는 곧 젠더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남성성의 대안으로는 당연히 반대급부인 여성성

8) 예를 들어 감기가 걸리면 열이 나고 기침이 난다고 해서 기침이 나는 것의 원인이 열은 아니다. 이를 논리학에서

‘공통원인 무시의 오류’라고 한다.

9) 남성성은 해부학적인 남성 신체에 문화적 사회적 규범을 통해 만들어진 성역할을 부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의 사회적 구성물이다.(scott, 권김현영). 내 생각에는 ‘남자답다’라는 것만으로 칭찬으로

작동된다는 부르디외의 분석처럼 ‘남성성’은 가치부여가 된 개념으로, 이상화되고 도달해야되며 그 자체로 가치담

지적인, 즉 여성성에 비해서 우월한 것으로 간주되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남성성은 지배적/적극적/공격적으

로 표현되며, 따라서 반대급부에 놓인 여성성의 정의 또한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엘리자베트 바뎅테에 의하면 남성

성은 여성성에 대한 부정과 혐오를 통해 쟁취되어야할 ‘무엇’이다. 또한 이러한 남성성은 군사주의/가부장제/과학

기술/제국주의 등과 결탁하여 그 외부에 놓인 여성/평화/식민지를 착취하는 기제로 작동한다고 본다. 유비추론적으

로 생각했을 때, 남성성과 가부장제, 자본주의 모두는 상당히 공통전제를 많이 가지고 있다. 즉 남성성은 허구적

젠더이지만, 현실적으로 자연/여성성/동성애자/평화 등의 타자에 대한 억압으로 작동하고 있다.

10) (생물학적)남성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젠더적) 남성성이 자연과 여성 모두를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에코페미니즘이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폭력적인 군사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구조 등의 남

성적 문명을 비폭력, 다양성, 보살핌의 여성원리로 변형시키자는 것이지 남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즉 남성성

은 이러한 자본주의 가부장제와 유비적으로 속성을 공유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에코페미니스트인 이윤

숙씨와 에코아나키스트인 구승회 교수와의 남성/남성성 논쟁 참조.)

11) “군대는 폭력과 섹스가 결합한 제도이다.”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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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35

이 제시될수 있다. 환경친화적이고 평화적인 여

성성... 어라? 이건 완전 근대철학의 ‘아버지12)’라는 데카르트 림하의 이분법이네. 그럴지도 모

른다. 여성과 환경이 모두 ‘타자’라면, 이 또한

데카르트의 이분법속에갇혀 있다. 사실 나도영

화를 보면서 그 점이 좀 거실리기는 했다. 특히나 행성 ‘판도라13)’에존재하는 ‘에이와’라는 대

지모신의 존재는 손발이 다소 오그라드는 걸 느

끼기 까지 했다.

영화 속에서 보여진 ‘에이와’라는, 전 판도

라의 생명을 관장하지만 관여하지 않는 이신

론14)(理神論)적인대지모신의모습은, 과학자이

자 환경운동가인 제임스 러브록이 이야기했던

‘가이아이론’을 떠오르게 하였다. 제임스 러브록

은 지구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존재로, 이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땅의 여신인 가이아

를 본따서 ‘지구=가이아’로 보았는데, 영화 아바

타에서 보자면 지구 행성에 ‘가이아’가 있다면

판도라에는 ‘에이와’가 있을뿐 기본적인 발상은

똑같았다. 판도라 행성의 오만가지를 관장하는

영적존재의 대지 모신이자 자연 그자체인 ‘에이

와’의 존재는, 페미니즘, 특히 섹스/젠더의 해체

를 주장하며 정체성은 권력의 산물이라고 이야

기하는 주디스 버틀러같은 후기구조주의 페미니

스트의 손발을 가장 오그라들게 하며 극렬하게

불편해 할 것 같았다. 왜 문명/과학/전쟁은 남성

이고, 자연/평화는 여성이란 말인가? 이건 또 다

른 어머니성/창녀성이라는 루이스 이리가레이의

이분법적 여성의 도식에 빠뜨리고, ‘어머니’라는

수행적 젠더정체성을 강요하기 위한 권력의 전

략과 유사하지 않은가? “자연이 ‘어머니’라면, ‘어머니’는 자연스러운 것이냐!” “평화가 ‘여성’

이라면, 여성은 ‘평화’롭게있어야하냐!!15)” “남성은 ‘이성’, 여성은 ‘감성/영성’이라면, 나같은

게이는 ‘실성’이냐이 개객기들아!!”과 같은식의

역질문을 던지고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점에서 약간은 에코페미니즘의

전략이 그런 위험성을 함께 갖고 있다고 생각한

다. 환경파괴와 군사주의라는 범죄에서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남성성이라는 용의자가 저지른

여러 범죄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여성성’이라는

맞불을 놓는 전략이, 어찌보면 정치성은 있지만

정체성은 없는 위험전략일 수도 있을 법도 하

다.16)

12) 왜 아버지냐고!!!

13) 판도라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이다. 판도라로부터 ‘악’이 생겨났다. 왜 악의 근원이 여성일까? 하여간

죄다 좋은 건 지들만 하고, 나쁜 건 여성 탓이다. 남성들 피해의식 쩐다. “피해의식은 남성의 전유물이였다 (…) 여

성의 피해의식이 피해자로서의 사회구조적 의식이라면, 남성의 ‘피해의식’은 가해자의 정신 분열, 프로이드식으로 말

한다면, 죄의 투사이다.” (정희진).

14) 이신론은 초자연적 지성을 믿지만, 그 지성이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설정하는 일에만 관여할 뿐 인간사에 개

입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유신론처럼 인간사에 개입하는 것과 반대된다. 근데 내가볼땐 인격신이

라는 점에서는 도찐 개찐이다.

15)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아버지는 하나님인가? 라는 메리 데일리의 질문을 패러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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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이처럼 기존의 이분법적 도식들을 재생산하

고 그 안에 갇히는 언어들을 사용해서 맞불을

놓는다는 전략들17)은 다시 부메랑처럼 되돌아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젠더 이

분법에 의해 또다시 희생당할 부재자들이 생긴

다. 이를테면 게이는 뭔가? 레즈비언은? 레이디

가가같은 안드로지니는? 여성이 자연이라면, 트랜스젠더는 인조인간인가?18) 여성이 자연이고

환경이며 식민지이며 평화 그 자체라면, 난억울하게도 이성애 남성이 아닌데 제국주의자며 군

사주의 덩어리가 되는거임? 물론 개개인 남성을

말함은 아니지만 그래도좀그렇다.

여튼 군사주의적이고 개발주의적인 남성성

이라는 변화무쌍한 주체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타자들의 연대가 필요할텐데, 이를 ‘어머니’라는

기호 하나로 묶기에는 너무 좀 그렇다. 여튼 그

런 영성이나감수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영성이라고 하기엔 너무 신비주의적이며 관념적이고

남성들이 좋아할법 하고, 감성이라고 하기엔 구

태여 이런 젠더화되고 이분법에 갇힌 언어에 기

대지 않고도 다른 방식의 연대도 가능할 텐데

말이다.19) 아무튼 그렇다손 치더라도 에코 페미

니즘이 주는 시사점과 통찰력은 마땅하다. 군사

주의와 환경파괴, 전쟁과 살육, 폭력과 개발과

물질문명, 식민지배에 대한 모든메타포로 “피곤

한 간 때무늬야!!”가 아닌 “전쟁과 환경파괴는

남성성 때무늬야!!!”라는 설명은 매우 깔쌈하다. 그리고 사실 그렇기도 하다.20) 그냥 ‘여성=자연=식민지=평화=착한 놈’이라는 것은 메타포

쯤으로 간주하되, 그것을 남성들이 생산해낸 언

어를 다시 주워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대지 모신처럼 젠더화된 어머

니성이 아닌, 이를테면 스피노자는 실체가곧 자

연이라는 식으로 모두 유기적인 것을 ‘신’21)으로설명했던 것이나, 모든 종들은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유정성이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동등하

게 대우해야 한다는 피터싱어의 ‘이익 고려 동등

의 원칙’의공리주의적 관점과 같이말이다.

아바타에서도 주인공 제이크는 ‘나비가 되

어’ 타자들과 함께이크란이라는 새를타고 장자

가 나비가 되었을 때 꿈속에서 날아녔던 것처럼

훨훨 날아댕겼지만, 사실 그는 나비족 입장에서

어찌보면 “너님이 바로 외계인”이다. 아무리 정

체성이 권력으로 인해 생성된 유동적이거나 가

변적이거나 수행적인 것이라고 해도, 사실 타자

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오히려 동질화되기쉬운 것일지 모른다. 노자나 장자는 분별지(分別智), 즉 무엇을

나눔으로 인해서 생기는 편견을 비판하고 모든

만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수천 년 전에 이미 이야기하면서 차이와 개성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만물은 하나라는 제물(祭16) 정체성의 해체는 정치성의 해체가 아니다. (주디스 버틀러).

17) 아버지의 연장으로 아버지의 집을 부술 수 없다. (벨 훅스), 당신이 말하는 언어는 당신의 혀에 독을 바른다. 당신

이 말하는 언어는 남자들이 착취해간 것들의 기호이다. (모니크 위티그).

18) 실지로 주디스 버틀러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이런식으로 치밀하게 분석한다.

19) 이를테면 스피노자는 이미 당대에 정신/물질의 이분법을 ‘실체=자연=신’이라는 개념으로 해소한 업적이 있지 않은

가!

20) 오해는커녕 육해까지 할까봐 말하는데, 남성과 남성성은 분명히 다르니깐 남성분들 열폭 자제요 *̂ *̂

21) 스피노자는 따라서 범신론으로 분류되지만, 사실은 유물론자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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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37

物)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고정된 정체성이 없다

는 ‘나를 잃어버린 상태(吾喪我)’도 이야기한다. 또한 호접지몽 후반부에서는 ‘나와 나비 사이에

구분이 있긴 있다’는 식의 이율배반적인말도 한

다. 어라? 이거 모순 아닌가? 내가 나비도 되고

나비도 내가 되지만, 나와 나비 사이에는 구분이

있다? 당연히 자연생물에 종, 속, 강 목 등의 이름

을 부여하고 그들을 분류하는 것이 폭력적이지

만, 특정한 정체성이 주체이고 특정한 정체성은

타자라는 것은 죽었다가 깨나도 바뀌기 힘든 것

이다. 인간은 주체, 자연은 타자이며, 남성은 주

체, 여성은 타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모순

된 칸트의 이율배반적 주장들처럼, 우리는 자유

롭지 못하지만 자유로워져야하고, 윤리적이지 못

하지만 윤리적이어야 하고, 타자를 알지 못하지

만타자-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재밌게도칸

트는 “타자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라”

라는 식의 정언명법들은, 물자체의 실천이성에서

오는 명령이라고 보았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미

지의 물자체의 세계에 사는 외계인들의 입을 빌

어 “죽이지 마라” “자원을 약탈하지 마라” “자연을 파괴하지 마라”와 같은 “타자를 수단이 아

닌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정언명령들을 내리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순된 정언명령, 즉 “환경파괴는막

기 힘들겠지만 막아야”하고, “전쟁과 폭력은 끊

이질 않겠지만 그럼에도 반대해야”하며, “온실

가스와 기후변화는 문제는 점점 심화되겠지만

비판해야”할 것이며, “일상에서 실천하는게 쉽

진 않지만 지향해야”하겠고, “여성주의는 요원

하겠지만 여성주의를 실천해야”하고, “화를 잘

내곤 하지만 마음의 평화가 깃들도록 해야”할

것이며, “육고기라면 환장을 하고 쳐묵쳐묵하겠

지만 다른 생명체들을 생각해야”할 것이며, “테크놀로지를 경계해야겠지만 이를 이용해서 프로

파간다를 할 수”도 있고, “타자는 지옥이겠지만

천국으로 대해야”하고, “여성이라면 사족을 못

쓰겠지만 여성주의자가 되어야”할 것이며 “이성

으론 비관하겠지만 의지로서 낙관”하며 “동성

애자가 역겹겠지만 연대해야”할 것이며 “이분법

적 정체성이 작동하겠지만 해체해야”한다.

모순적이고 자기합리화라고 보이지만, 흄의구분처럼 사실과 가치는 다르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군사주의와 폭력, 환경파괴가 끊이질 않

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

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

화와 환경 등의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그런데어떤 식으로 해체하고 어떤 식으로 지향하냐고? 이미 수많은 평화주의자와 생태주의자들이나 영

화 아바타 같은 작품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있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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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 | 동물보호 무크지 <숨> 편집위원 + [email protected]

기후변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지구적 의제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중심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전쟁없는세

상>의 초대로 무언의 춤 모양으로 잠복되어 있

던 문제를 발언하게 될 기회를 갖게 되어서 영

광으로 생각한다. 우선, ‘기후변화와 군사주의’라

는 문제지를 받아든 학생처럼 한동안 멍하게

“그렇지! 분명 관련이 있을거야?!”라면서 한동안

사색에 잠기게 되었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생태

계는 순환성, 연기성, 창발성으로 관여하면서 창

조적인 진화를 해 왔다. 그러한 연결망 속에서

탄소순환은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에너지

와 물질의 대부분은 탄소복합체에 의해서 만들

어지고 있고, 탄소에 의존하는 문명에서 인류는

한 치도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 그래! 그럼 어쩔건데, 군사주의가 어쨌다

구?”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지구온난화 의제는

환경문제의 근간을 이루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삶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아파트, 자동차,

TV, 인터넷, 육식’ 등이 탄소중독적 소비생활의

스테레오타입화된 삶을 형성한다. 우리가 주목해

야 할 바는 정상적인 삶을 유지시켜 주는 성격

구조와 생활양식에 있다. 지구온난화 의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신의 범죄사실을 전혀 모

른 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문

제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바꾸어

야 하는데, 이 삶을 바꾸는 위대한 사업에 누구

하나 선뜻나서려는 사람들이 없다.

군사주의의 문제는 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

의 삶에 뿌리박힌 강제와 폭력의 잔존물과 긴밀

한 연관을 갖는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라

는 미시파시즘 문제의 기원이 자연환경에 대해

서 도구주의에 있듯이, 정상적 삶을 유지시키는

탄소소비에는 군사주의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고

있다. “이것은 논리적 오류요! 이것과 저것을 매

치시키기에는 전혀 서로 어울리지 않단 말이지

요!” 물론 각설하고 얘기한 것이었지만 해명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탄소소비는 독특한 시간

-공간-에너지좌표를형성한다. 물론 평화롭고 안

정되며 똑딱거리듯 반복되는 삶이라고 그 좌표

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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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39

소비 자체가 이미 자연환경에 대한 전쟁과 같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주목해야

한다.

생명, 생태, 생활의 세 가지 층위 속에서 전쟁기

계의 작동은 지속적으로 자본주의를 유지시켜 주

는 원동력이다. 생명을 도구로 사용하고, 생태를

파괴하고, 생활세계를 점령하기 위해서 국가가

차지해야 할 압도적 지위는 반드시 전쟁무기를

자신이 갖고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이것

은 공화주의적이고 구성권력적인 국가지평과 완

전히 상이한 전쟁기계를 장착한 국가 즉 파시즘

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결국 지극히 정상적인

삶이라고 여겨지는 탄소소비적 삶은 지구환경에

대해서 강권을 가지고 지배하려드는 근대기획의

일부이다. “그래서 어쩌라구? 일단 살기는 살아

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람들의냉소는 사실 달

콤한 자본주의의 삶의 방식을 포기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불안한 일상

은 기후변화의체감에따라서 이루어진다.

“기후변화는 무엇인가?” 최초의 문제로 다시 돌

아가게 된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자연환경에 대

애서 지배하려드는 근대의 기획의 소산물이다.

탄소소비가 촉진될수록 결국 지구환경 특히 대

기환경은 파괴된다. 기후변화는 가장 안정되어

있고, 평화로운 삶이라고 여겨지는 근대인들의

일상적 삶이 사실은 항상 무장되어 있고, 전쟁을

통해서 평화를 획득하려는 것이라는 점을 반증

한다. 기후변화의 원인과 결과의 고리를 끊는다

는 것은 자연과 인간과의 공존과 조화를 달성해

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장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에서부터출발해야 한다.

무장된 신체와 부드러운 움직임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무장

층위에 있다. 그러므로 무장한 인간이 무엇을 겨

냥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현재의 안녕과

평화가 이미 달성되어 있는 평화라고 사고해서

는 안된다. 라이히는 정상인들의 성격구조가 무

장된 층위에서 형성되는 것을 성격갑옷이라고

규정하였다. 이 ‘성격갑옷’이라는 개념은 사랑의

흐름에 의해서 변용될 수 없는 딱딱한 갑옷과

같은 성격구조로서 근대인들의 방어기제로서 작

동한다. 이 성격갑옷은 사랑과 욕망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흐름을 가로막고 고정점을 형성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성격갑옷이라

는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하고 무장되어 있는 층

위에서 사회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이러한 성격

구조가 고정되어 있다보니 자연, 우주, 세계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억압하거나 전쟁을 선포하는

등의억압적인형태를 보인다.

군사주의는 무장된 층위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

다. 정상적이고 스테레오타입화된 삶을 떠받치는

성격갑옷을 유지시켜주는 실체인 것이다. 평화주

의의 문제는 단순히 군사주의에 대한 반대의 의

미라기보다는 세계, 우주, 자연에 사랑과 욕망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형성하느냐의 문제이다. 이

부드러운 움직임은 성격구조를 벗어나 변용(=되

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소수자되기(=전인민적

변용)은 사랑의 용기있는 행동에 나서는 일단의

집단적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정상적이고

불렸던 삶의 좌표는 수정되기 시작하며, 스테레

오타입화된 삶의 양식 속에 균열이 가해진다. 특

히 세상은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네트워크 형태

로 직조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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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특이성이 전체를 변화시키는 심대한 영향력

을 행사할 수 있다.

결국 무장층위는 존재(=이기)를 보장하는 강력한

좌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학

생이기를, 선생이기를, 점원이기를 보장받기 위

해서는 무장층위를 반드시 요구한다. 그러한 지

극히 정상적인 존재에게 무장층위가 존재한다는

점은 결국 탄소 소비적 삶에 대한 보증수표이기

도 한다.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는 여전히 전쟁은

계속된다라는 항구적 전쟁의 이미지나 무의식이

계속되는 한 자연환경과 생명과의 공존과 조화

는 먼 미래의 문제로 멀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전쟁은 항구적인 전쟁이며, 무장된 성격

층위를 통해서 압도적인 우위와 권력을 보증받

기 위한 무의식전쟁이라는 의미조차도갖는다.

탄소무의식 속에서의 군사주의의 문제

우리가 광고이미지나 TV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동안, 멋진 자동차, 맛깔나는 고기, 불이 훤하게

켜져 있는 아파트 등에서 부유함을 느끼고 그것

을 따라하려는 무의식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내

가 펠릭스 가타리의 분열분석의 문제의식을 탄

소무의식분석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 겨울부터였다. 탄소무의식은 탄소중독적 삶을

생산해내는 기계적 무의식이다. 탄소무의식은 이

시대의 강권과 권력이 갖고 있는 무의식의 궤도

를 보여준다. 부와 권력의 이미지는 탄소소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나 상

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의식 궤도 속에서 탄소무

의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탄소소비를

보장할 수 있는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의 문

제가발생한다.

현재 활성화되고 있는 탄소배출권과 탄소시장과

같이 부유한 사람들만이 배출권을 사고 팔수 있

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탄소에서의 권

력과 강권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의 시장의 룰에 따라 움직이

는 것은 평화로운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

질 수도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움직임과 국가

의 통제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체계이다. 자본이

탈주하면 국가는 사로잡는데, 여기서 자본이나

국가나 모두 권력이다. 군사주의의 문제는 자본

이나 국가 모두에게 존재해야 하는 권력을 보증

하는 차원의 문제이며, 아까도 언급했던 정상성

에 대한 무장층위의 필수요건에서도입증된다.

다시 탄소무의식의 문제로 들어가보자. 탄소무의

식 자체에서 군사주의의 제 요소를 찾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탄소무의식 자체가 갖고 있

는 생명․생태․생활에 대해서 수행하는 전쟁적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 문제는 탄소무의식을

갖고 있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지극히 정상적

이라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이들은 학생, 노동자,

교사, 주부 등의 역할을 할당받고 자본주의가 요

구하는 생산과 소비방식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에서 군인

이나 경찰이라는 인물들은 전체의 흐름에 대해

서 통제를 가하여 제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역할

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권력의 지층을 만든다. 여

기서 군사주의는 탄소무의식의 보증수표로서의

의미를갖는다.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주체성 생산을 위하여

말을 하다 보니많이 길어진 것 같다. 결국 문제

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생태적 관계망과 생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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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41

네트워크에서 어떻게 하면 색다른 방향으로 움

직일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거대한 구조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

은 작은 기계부품의 기능연관에 의해서 작동된

다. 기계부품의 움직이는 방향을 바꾸었을 때 자

본주의가 고장나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

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군

사주의라는 안전판을 갖고 있는 정상적인 탄소

소비적 삶이라하더라도 특이한 움직임에 의해서

궤도를 수정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존재한다. 회

식 자리에서 채식인임을 선언하는 사람들, 속도

를 멈추게 하는 자전거, 윤리적 소비를 시작한

주부 등은 특이한 움직임의 일부라고 할 수 있

다.

군사주의는 이러한 다채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

는 특이한 움직임을 사로잡는 효과를 갖는다. 그

렇기 때문에 평화운동은 사랑과 욕망의 변용과

움직임을 통해서 사회 속에서 색다른 부드러움

을 순환시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랬

을 때 기억에 없던 삶의 방식이 출현하여 스테

레오타입화된 정상인의 삶과 그것을 떠받치는

군사주의로부터 벗어나게 만들 가능성이 존재한

다. ‘기후변화와 군사주의’라는 주제를 갖고 이

야기보따리를 풀다보니 시간이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있다. “슬슬 나도 정리해야지”라는 생각

이 드는 시간이다.

‘군사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서만 한 마디 더 하겠다. 고등학생 때부터 데모

를 하면서 지냈고, 투쟁과 전쟁을 구별하지 못했

던 시절도 있었다. “혁명!”이 문제가 사실 모든

문제의식에서 중심이었던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과연 어떤 혁명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덧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혁명은 매우 부드럽게

다가오고 삶을 변형하는 영구혁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수준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혁명전

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면서 평화가 혁명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혁명, 꽃들이 발아하고, 새들이

우지지며, 아이들이 방글방글 웃고, 동물들이 아

름다운 합창을 하고, 나무와 태양이 교감하는 그

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윤리적이고 미

학적인 주체성 생산이 바로 색다른 혁명이며, 그

것은 연결되어 있는 생태계가 우리에게 던져주

는 ‘관계망 창발’이나 ‘생태적 지혜’의 또 다른

말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사랑

과 평화가 함께하기를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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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환경운동의 고전 중 하나인 <가이아>의 저자

인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온난화문제가 가이아

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수십 년

동안 줄기차게 외쳐왔다. 그는 지구온난화문제

가 너무도 심각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원자력

에너지를 써야 하며 산성비나 스모그를 감수

하더라도 대기 중에 에어로졸을 부유시켜서

태양열을 반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최근 반핵·반원전 운동이 활

발히 진행되고 있기에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

해선 원자력에너지가 대안이라는 그의 주장이

설 자리는 희미해 보인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정말 시급한 문제라는 그의 문제의식과 환경

운동이 사람들의 움직임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거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

는 사안으로만 집중된다는 그의 비판은 귀담

아들어야 할 것이다.

확실히 핵문제는 공포스럽다. 먼 나라도 아닌

일본에서 당장 사고가 발생해서 매일 이런 저

런 소식들을 전하고 그 공포는 한국에도 영향

을 끼치고 있다. 당장 한국에도 원전이 숱하게

있고 그 원전이 노화 됐니, 부실하니 하는 기

사를 접하면 언제라도 원전폭발사고가 나에게

도 일어날 것만 같다. 그렇게 무서운 원자력이

사실은 군사적 목적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만

들어졌고 유지된다는 배후는 평화와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하다. 그

에 비하면 기후변화는 서서히 삶아지는 냄비

안의 개구리의 문제랄까?

냄비 안의 개구리, 기후변화

아주 추웠던 지난 겨울, 너무 추워 손이 곱고

수도관이 파열 될 때 우리는 기후변화를 피부

로 느꼈고 기후변화와 군사주의라는 기획을

잡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군사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또 하나의 근거로서 기후변화를 제

시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서 반군사주의를 제안하”겠다고 야심차게 포

Page 45: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43

부를 밝혔다.1) 물론 주제의 거대함에 우리는

막막함을 느꼈고 자료 없음에 눈앞이 깜깜했

었다. 그래도 우리는 기후변화에 기여하는 군

사주의를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드러낼 고민

을 하면서 우리의 고민과 어려움을 털어놓으

며 다음 호에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사라져버린, 침묵하는 봄, 그마저

도 없어진 채 여름이 오고, 장마가 ‘우기’로

바뀌어 열대국가가 되버린 지금에 와서 우리

는 별다른 결론 없이 이 기획을 마치게 됐다.

제법 노력했다. 전화통을 붙잡고 녹색국방의

자료를 달라고 여기저기 전화도 했고, 있지도

않은 자료를 찾으려 다른 시민 단체의 자료실

을 뒤지기도 했다. 국방, 지구 온난화, 군사주

의, 전쟁, 군대 등의 키워드, 그리고 또 그것들

의 영문을 구글에 쳐서 쏟아지는 자료들과 씨

름하며 몇 날 밤을 새워야 했다. 그리고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며 몇 개 안되는 지푸라기들

을 붙잡고 허수아비로 만들어내야 했다. 만나

는 사람들마다에게 기후변화와 군사주의를 어

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야 했다. 우리가 이 과

정을 통해 얻어낸 ‘소득 없음’이 아마도 우리

의 소득이 아닐까 싶다.

감춰져 있는 1%

기후변화의 지표가 되는 온실가스 배출량, 탄

소 배출량, 석유 소비량 등의 수치에 우리는

꽤나 익숙하다. 시민단체들에서, 정부에서, 학

계에서 많은 자료들을 만들어내고 발표하고

분석한다. 하지만 그 지표들에서 군대는 빠져

있다. 아주 미미해서일까? 이런 저런 자료들을

모으고 나름대로 추산해서 우리가 추정한 수

치는 1%이다. 대한민국의 석유 사용 총량의

1%를 군대가 쓰고 있는 것이다. 녹색국방추진

을 위해서 쓰레기 줍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닫

힘 버튼 안누르기도 “작은 실천이 모여서 커

다란 효과를 낸다”며 열심히 닫힘도 안 누르

고 기다렸는데, 대한민국 1%가 소리 소문 없

이 낭비되고 있음을 안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미국 총 에너지 소비의 2%를 차지하는, 국가

별 석유 소비량에서 35위 정도 된다는 미국만

큼은 안되도 웬만한 소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 군대는 황새 쫓아가는 뱁새정도는

되지 않을까?

문제는 이러한 어설픈 자료조차 한국에선 공

유되지 못하고 있다. 구글에서 검색을 하면 지

구온난화와 군대/군사주의의 관계에 대해서

다룬 칼럼과 논문들이 꽤 나온다. 이 주제를

갖고 풀어쓴 단행본도 있다. 우리가 참고한

<Green Zone>이란 책도 태평양을 건너 날아

왔다. 단순히 ‘군대가 석유를 많이 쓴다’, 혹은

‘기후변화에 기여한다’ 정도의 의견 진술만 있

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자료들과 그에 기

반한 추산, 그리고 정부의 발표 등을 참고한

자료들이 꽤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페미니즘

적, 환경주의적, 군사주의적 분석들도 눈에 띄

었다. 아프간, 이라크 전쟁이 얼마만큼의 환경

적 재앙이 됐는지를 분석하기도 했다. 녹색성

장위원회의 한 관계자에게 내가 물었었다.

“미국에는 그래도 대략적인 발표자료가 있던

데 왜 한국엔 그런게 없나요??” 그러자 그분

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제 30호. <기획기사 1 - 기후변화시대의 반군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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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국은 원래 그

런게 잘 돼 있잖아요”

군대에 대한 감시와 물음

당장에 군대를 없앨 순 없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감시하고 물어야 한다. ‘무엇이 어떻

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그것이 꼭 필요한지요.’

우리는 수많은 안보와 기밀과 맞닥뜨릴 것이

다. 하지만 기후변화라는 절박한 문제에 당면

한 시대에 군대만을 베일에 쌓인 공간으로 남

겨 놓을 수 없다. 우리는 밤에 먹는 소주 한

병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탄소를 배출했는

지를 확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주 한병엔

220g, 자동차 10km 주행엔 4kg의 탄소가 배

출된다는 사실만큼이나 전투기가 한 시간 훈

련하는데 1140kg의 탄소를 배출2)한다는 것도

알려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자가용을

꼭 타야 하는가에 대해서 묻는 만큼이나 전투

기를 그렇게 많이 훈련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서도 물어야 한다. 비단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관한 질문만이 아니다. 최근 천안함에 대한 정

보공개 청구에 대한 국방부의 답변 태도에서

도 알 수 있듯이3) 대한민국에서 군대라는 조

직은 너무도 감춰져 있다. 아주 사소한 물음마

저 그들에겐 기밀이고 안보이다. 최근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에서도 군부는 군대 내 폭력적

인 문화에 대해서 덮으려고만 했다. 병역거부

를 통해서 우리가 물었듯이 우리는 군대 문화

에 대해서, 군대의 운영에 대해서 나아가 군대

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군사주의에 대한 근원적 질문

단순히 군대에서 석유를 쓴다는 사실만을 주

목해서는 안 된다. 스티브 마르티놋이라는 학

자는 미국 경제의 엄청난 석유소비가 미국의

군사력으로 뒷받침된다는 것과, 미국의 군대가

기업들의 이익과 유착돼 있다는 측면도 살펴

봐야 한다고 말한다.4) 그에 따르면 군사주의

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악순환의 고리이며

전쟁은 이 고리에서 핵심적인 논리이며 도덕

이며 정치의 역할을 한다. 군수 자본은 이미

미국 경제의 50%정도를 잠식했으며 의회 예

산의 25%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환경·

생태·반소비·대안에너지 운동은 필연적으로

반군사주의적이어야 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

다. 벳시 하트만이라는 여성주의 학자는 젠더

적 관점에서 군사주의와 기후변화에 접근한

다.5) 거침과 강함을 추구하는 남성성과 군사

주의적인 석유소비성향이 닿아있다는 것이다.

SUV와 같은 대형 차의 광고에서 익히 등장하

는 거친 남성이 미녀와 함께 나오는 장면 이

같은 연결지점이 드러난다고 한다. 남성들은

크고 강한 차를 선호하는 반면 여성들은 작고

효율적인 경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2) KT-1 훈련기가 시간당 500파운드(285L)의 연료를 쓰는 것을 기준으로 추산.

3) [천안함] 참여연대,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국방부의 비공개 처분에 대한 이의 신청. 시사서울. 2011.4.15

4) Martinot, Steve. “Militarism and Global Warming.” Synthesis/Regeneration. Winter 2007.

http://www.greens.org/s-r/42/42-06.html

5) Betsy Hartmann, “Gender, Militarism and Climate Change”, 2006. 4. 10.

http://www.zcommunications.org/gender-militarism-and-climate-change-by-betsy-hart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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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45

도 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기후변화

논의에서 젠더적 관점은 감쪽같이 빠져 있다.

기후변화시대에 더 많은 피해를 보는 것도 여

성 등의 약자이고 기후변화의 해결책으로 제

시되는 인구에 대한 담론도 여성의 인권과 의

견을 간과하기 쉽다는 관점을 놓치지 않고 기

본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석유 사용, 특히 군대

의 석유 사용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남성 중

심의 안보 담론이 기후변화 논쟁을 억누르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비판은 미국

을 향한 것이지만 ‘작은 미국’인 한국도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나약함 곧 평화가 여성의 것만은 아니겠으나

곧 여성스러운 것으로, 그래서 남성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질 때 안보는 신성시되고 질문은

금기시된다. 따라서 평화에 대한 논의는, 안보

에 대한 물음은 정상국민의 것이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입장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

며 우리는 조심스럽게 평화를 ‘지키자’고 하는

것이 또 ‘가이아를 지키자’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에코페미니즘적 관점에서 고

찰해보았다. 그렇게 영화 <아바타>를 다른 관

점에서 보려는 시도를 해보았다. 또한 군사주

를 자본주의와 근대를 떠받치고 있는 탄소무

의식의 보증수표이자 결정체로 보는 생태철학

적 접근도 이루어졌다. 또한 기후변화뿐만이

아닌 군대가 일으키는 다양한 환경문제들을

다루면서 군대의 환경문제는 단순한 ‘파동’이

나 ‘사고’가 아닌 끊임없이 치러야 하는 ‘비용’

임을 언급했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다른 환경·평화단체

들과 소통하고 공조하면서 논의를 진행시켜보

고 싶다는 생각은 타 단체들의 이 이슈에 대

한 자료가 없다는 것과 글쓴이의 역량부족으

로 실현되지 못했다. 군사주의가 기후변화에

기여하는 바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가 군사주

의를 강화하고 서로 악순환이 되는 구조를 드

러내고자 하는 욕심도 실현하지 못했다. 앞선

소식지에서도 간략히 언급했듯이 기후 불의는

갈등의 씨앗이 되며 기후변화가 가져올 여러

가지 변화는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지구

가 더워져서 북극의 빙하가 녹고, 고위도의 추

운 나라들은 온대국가가 되며 적도부근의 열

대국가들은 너무 더워져서, 또 사막화가 되어

살 수 없게 되면 새로운 영토분쟁과 자원분쟁

이 일어날 것이다. 이미 북극해의 항로가 열릴

가능성이 보이면서 북극을 둘러싸고 있는 강

대국들의 항로에 대한, 자원에 대한 신경전이

치열하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기후변화로 촉발

된 이러한 결과들을 서로 협력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보다는 자국의 군사력을 강화해 이권

을 챙기는 방식으로 대응할 공산이 크다. 이러

한 구조들을 예상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새롭

게 등장하는 갈등과 분쟁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전쟁을 줄여 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안은 무엇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소득은 ‘소득 없음’

이다. 우리가 어설프게 드러낸 것과 같이 군대

라는 조직이 기후변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음

에도 이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 군대가 얼

마나 에너지를 사용하는지 얼마나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지에 대한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

도록 해야 한다. 이는 군대에 어떤 특별한 조

Page 48: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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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를 요구하는게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과

민간 부문에서 모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군

대라고 이 규제와 감시에서 벗어날 명분은 없

다. 또한 보다 자세하게 군대가 기후변화시대

에 하는 역할에 대해서 연구하고 분석할 필요

가 있을 것이다. 다양한 학문, 다양한 시각으

로 그 상관관계와 필요성에 대해서 따져봐야

할 것이다. 평화와 환경을 이슈로 하는 단체나

학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앞서 보았듯이 기후변화시대에 군사주의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단순히 군대에 대한 질문

만이 아니다. 크고 강한 것을 추구하며 어울리

는 것보다 경쟁하고 싸워서 이기려는 남성성,

자연을 ‘정복’하고 ‘개발’하려는 욕심, 우리도

모르게 길들여진 편하고 부유한 것에 대한 무

의식 등을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소

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것이 생태

적으로 환경적으로 조화로운지에 대한 감수성

도 길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기후변

화와 군사주의, 그리고 군대와 우리 삶을 바라

본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비록 완벽하고 멋진 결론은 아니더라도 우리

는 어떤 결과물을 손에 쥐었다. 군대가 환경에

도 해롭다니 전쟁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평

화주의자라면 반대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을

것이다. 환경주의자라면 환경파괴를 줄이고 기

후변화를 막는 또 하나의 방편으로 반군사주

의라는 제안을 받았을 것이다. 생태·환경적 이

유로 채식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

면 육식문화와 자동차만큼이나 나쁜 영향을

끼치는 전쟁과 군사주의에 관심을 갖게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군대는 무조건 필요하며 군대

가 저지르는 낭비와 파괴에 대해서는 묻지 않

는다는 밀리터리 매니아나 군사관계자가 아니

라면 평화와 환경이 만나는 그래서 우리의 일

상과 미래가 만나는 이 지점에서 하나의 고민

을 얻었길 바란다. 그리고 확실한 결론이 부재

한 이 교차점에서 여러 가지 시각으로 이 고

민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생각들이, 제안들이

자라나길 바란다. 달라진 우리 개인의 감수성

들이, 고민들이 모아지면서 우리의 삶이 변하

고 전쟁과 기후변화를 막는 운동이 싹트길 바

란다.

한 개인이 채식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행위

는 양적으로 보면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러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더 이상

전투기는 하늘을 날지 않고 전차와 전함에 기

름을 채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와 인종

을 넘어 머리를 모아 지구 온난화에 대비할

것이다. 요컨대, 기후변화의 대안은 평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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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47

그들은 군인이기 이전에 남성이 아닐까 - <그곳에 없었다면 As If I Am Not There>을 보고효웅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주아니타 윌슨1) 감독의 2010년작 <그곳에 없었다면 As If I Am Not There>은, 1992년에 시작해

서 1995년까지 지속되었던 보스니아 내전2) 당시의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있는 영화이다. 당시 보스니

아의 분리 독립을 반대하던 세르비아인들은 강간 캠프를 만들어 여성들을 집단적으로 강간했다.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중 하나로 아직도 가끔 기억나는 장면은, 포로로 잡힌 보스니아 주

민 여성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척 하면서 소변을 보게 하는데, 모두 군인들 보는 앞에서 소변을

보게 했던 장면이었다. 여성들이 소변을 보는 동안 총을 들고 쭉 지키고 서있는 이 집단 포르노적인

장면. 여성 포로들만 모두 들판에 일렬로 서게 한 뒤에 소변을 감상하는 변태적인 관음증을 충족하던

남성 군인들의 변태성은 아직도 역증이 치솟는다.

여튼, 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라예보의 가족을 떠나 보스니아의 한 오지 마을에 임시교사

로 부임한 자미라는, 실제 보스니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난을 가지 않고 미적거리며 교사직을

수행하다가 한 군인이 자신의 아파트로 쳐들어와 다짜고짜 짐을 싸라고 한 그날부터 삶이 엉망이 되

어버린다. 이후 자미라는 세르비아계 군인들에게 끌려 한 수용소에 갇히게 되는데, 세르비아가 무슬

림의 ‘인종청소’를 위해 만든 강간 캠프인 이곳에서 그녀는 이어지는 폭행과 공포 속에서 자신이 누구

인지조차 잃어버리고 힘들게 목숨을 부지해간다. 군인들은 마을의 보스니아 남자들은 무조건 먼저 차

출하여 먼저 처형을 시키고, 공포에 떠는 여성들은 아직 ‘쓸모가 있기에’ 남겨둔다. 전쟁에서의 전리

품처럼 말이다. ‘여자 맛을 봐야 하는’ 군인들을 위해서, ‘남자 맛을 보여주기 위해’ 여성들을 쟁여놓

은 것이다. 사실 이는 ≪구약성경≫에서부터 나오는 오래된 전통이다.

1) 주아니타 윌슨 Juanita WILSON - 아일랜드 출생. 보스니아 전쟁을 다룬 단편영화 <문>(2008)으로 제82회 아카데

미 시상식에 수상작으로 올랐고, <그곳에 없었다면>(2010)은 2010 토론토국제영화제, 2010 카이로국제영화제 심

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여성영화제홈페이지 참조.

2) 보스니아 전쟁은 1992년 4월 1일부터 1995년 12월 14일까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보스니아인들과 세르비

아인, 크로아티아인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된 이후 세르비아계는 회교도가 대부분인

보스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에 반군을 조직하여 인종학살을 했다. 2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2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2차대전 이후의 최대의 인종·종교 학살극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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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군대는 순식간에 미디안의 도시들을 모두 불태우고 모든 남자들을 살해했지만, 여자들과 아이

들은 죽이지 않았다. 병사들의 이 자애로운 행위에 분개한 모세는 남자아이들과 처녀가 아닌 여자들

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남자를 알지 못한 여자아이들은 너희를 위해 살려두어라(민수기

31장 18절)”3)

아무튼 여성들은 짐승만도 못한 삶을 유지

하다가 강간, 폭행, 고문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녀의 눈에 띌만큼 지적이고 예쁜 외모는 당

일날 군인 남성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바로

다음날 세 명에게 차례로 강간을 당한다. 그녀

의 ‘우월한 외모’는 차례로 상부에 ‘보고’된다.

한편 보스니아의 마을에서는 세르비아인과 보

스니아인이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6.25 한

국전쟁처럼 한 마을 안에서 적군이기는 하지만

서로 친구사이인 비극적인 경우도 있었다. 이

를테면 마을의 어린 소녀아이는 적군에 자신의 친오빠의 옛 친구가 있음을 알고 반가워한다. 그 오빠

친구인 세르비아 군인은 그 꼬마 여자아이를 귀여워하며 ‘네가 왜 여기있느냐. 오빠가 나가게 해주겠

다’며 데리고 나간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그렇게 특혜를 입고 나갔던 꼬마여자아이가 싸늘한 반주

검이 되어 돌아왔는데, 등에 예수의 십자가형상대로 칼자국이 난자당해 있었다. 결국 그 아이는 죽게

되고, 주인공 자미라는 정신적 충격의 외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 결

단을 하게 된다. 바로 그 결단은 자신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자미라 스스로도 일

종의 광기에 휩싸인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일부러 군인들을 자극하기 위해 섹시한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 ‘환향녀’같은 행동으로 인해 포로로 끌려온 여성들 사이에서 노여움을 사게 된

다. 적군에게 성적 봉사를 하는 창녀같다는 도덕적 비난과 함께. 그런 그녀는 “저들은 군인이 아니에

요 남자일 뿐이지”라는 묘한 말을 하며, 남성들의 생리를 알고 있는 그녀는 이를 이용하여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군인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말에는, 비록 자미라가 이를 역이용하여 특혜를 얻

으려고 하는 저의에서 한 말이었지만, 군사주의와 남성성의 관계의 핵심을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했

다. 우리는 정희진 선생님의 말처럼, 총기난사범인 조승희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에만 주목하고 부끄

러워하지, 그가 ‘남성’이라는 좀더 근본적인 정체성역시 함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망각한다. 정희진

선생님 말마따라, 조지 부시도, 오사마 빈 라덴도 모두 남성이지 않은가!

아무튼 자미라의 튀는 외모는 곧 그 부대의 끝판왕 사령관의 눈에 띄고, 성적으로 정부(情婦)역할

3) 리차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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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49

을 하게 된다. 그 사령관은 유부남이였지만, 그녀를 점유하고 그녀에게 온갖 ‘특혜’를 준다. 쑥밭이

된 전장터에서도 그녀는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모든걸 ‘용서받고’ 와인과 스테이크와 클래식 음악을

듣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이는 영화에서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가부장

제의 외모 중심사회에서, 남성의 계급은 경제력이지만, 여성의 계급은 ‘몸’이다. 얼굴이 곧 자원인 셈

인데, 자미라는 이를 적극 활용한다. 역설적으로 예쁘고 젊은 교사출신이기 때문에 특혜를 누리는 그

녀지만, 오히려 예쁘기 때문에 성적으로 수탈당한다.

그런데 같이 끌려온 여성들은 차라리 의롭게 죽으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안팎의 돌아가는 소

식을 사령관으로부터 알아오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녀는 이런 부탁을 들어주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유리한 삶을 택한다. 그런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것이 영화의 딜레마인 듯 했다. ‘예쁜 외모’를

이용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름대로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파격적인

특혜를 주면서 또한 더욱 그녀의 몸을 수탈하는 남성들. “여성의 몸은 자원이자 억압”이라는 패러독

스를 가지고 있다는 정희진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던 중 포로교환 소식이 있게 되는데, 자미라는 이에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되고, 사령관에게

밖에 나가도 이곳의 일은 절대 발설치 않을테니 자신을 내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독보적인 외모로 인해 사령관은 그녀를 내보내주지 않으려 한다. 사령관은 이미 권력의 생리

를 알고 있었다. “넌 내가 무서워서 그동안 복종한거지. 내가 XX를 하라고 했어도 넌 했겠지, 살아남

기 위해서.” 그렇지만 사령관은 자미라를 진심으로 좋아했나보다. 그녀에게 보내줄 때 가라면서, 행

복하라는 말을 전해준다. 병주고 약주고 정신분열이 가관이었다. 아무튼 영화는 그렇게 자미라가 차

를 타고 나가면서, 그 악몽같은 곳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끝난다. “살아남은 것은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영화 속에서 자미라가 했던 대사이다.

항상 전쟁의 피해는 죄없는 여성이나 아이같은 소수자들이 더 많이 입는다. 아니, 그보다 무엇보

다 여성이 없다면 전쟁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군대는 섹스와 폭력이 결합된 제도”라는 정희진 선

생님의 분석처럼, 젠더/섹슈얼리티를 이용하지 않고는 전쟁과 폭력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인종이나 종교, 교조적 이념는 모두 어떤 상상적인 ‘대타자’인 ‘아버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전쟁

에서의 여성의 피해보다는, 여성이라는 성과 젠더가 어떻게 전쟁을 발발시키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더

욱 근본적인 고찰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 집단 강간 캠프를 차리고 성노예로 삼았던 보스니아

내전의 엽기적인 역사적 교훈은, 인종 학살이나 회교도-기독교간의 종교 갈등이 아니라, 바로 ‘젠더’

문제라는 것일테다. 조승희에게서 인종은 보고 남성을 보지 못하며, 조지 부시와 오사마 빈 라덴에서

서구와 중동, 종교만 바라보되 그들이 모두 ‘남성’이라는 더욱 불편하지만 진짜 진실을 보지 못하는

우리 대다수의 어리석음처럼 말이다. 정작 전쟁의 주범은, 종교나 인종이나 민족보다, ‘남성성’이 아

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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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정규직 이야기 ④ - 화장품 재고조사아하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email protected]

난 C화장품 회사 경인지부에 열흘 간 단기고용 되었지만 회사 사무실은 처음과 끝에 기기 반납을 위

해 단 두 번을 방문 했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경인지역의 화장품 체인점 하루 2군데, 총 20군데를 방

문하여 2개의 바코드 체크기기(이하 바코드 기기, 편의점에서 물건 구입할 때 체크하는 기기가 휴대

용으로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를 가져가 하나는 '점주 혹은 점원'에게 바코드 기기 사용법을 알려준다.

나와 '점주 혹은 점원'은 바코드 기기에 가게의 모든 화장품을 각각의 종류별로 개수를 입력한다. 전

부 체크하고 그 데이터를 본사의 홈페이지의 DB에 업데이트 시킨다. 이 재고조사는 왜 이루어지는지

도 모르는 채 쉽고, 간단하고, 손목은 아프고, 지루하게 이뤄져서 어느 순간 내 손에서 삑-삑-대는

바코드 기기가 바코드 기기인지 내 손인지 헛갈리는 그저 그런 단순노동이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크든 작든 약간 '속았다'고 느껴졌다. 처음 공고모집을 봤을 땐 열흘

단기에 하루 3~4시간, 일당 5만원이니까 시간도 별로 안 잡아먹으면서 시급도 짭짤한 1만2천원. 두

근거리는 마음으로 연락을 드렸다. 경기도의 어느 사무실에서 첫 대면한 아르바이트생 담당 대리님께

서는 다정하게 나에게 차를 대접해주시면서 보통 하루 5시간(시급 만원) 정도 소요된다 말씀하셨다.

원래 시간보다 초과된 시간을 말씀하셔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일당이니까 일이 약간 초과되는 정도

는 감수해야지 마음먹고... 하지만 정작 첫날 일한 총 시간은 8시간(시급 6천2백5십원). 그렇게 나의

시급은 착착 내려갔다. 물론 난 일이 끝나자마자 당장 담당대리한테 전화하여 원래 아르바이트 공고

시간과 다름을 최대한 예의를 담아 항의했지만, 담당대리는 침착하고 논리 정연하며 사무적인 목소리

로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첫날이라서 숙련도와 매장규모 차이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씀하셨고

난 이상하게 설득당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게 되었다. 아~ 왜!왜!왜! 내 손은 왜 이리 느린 것

일까. 초등학교 시절 다니던 피아노 학원 선생의 '넌 손이 왜 이렇게 느리니?'라던 지적질이 아르바이

트 시급과 연관이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되어가던 날. 점주 아주머니는 학생은 어쩜 그렇게 손이

빠르냐고, '바코드 기기와 손이 하나가 된 것 같다'고 칭찬했지만 나의 하루 아르바이트 시간은 (폐업

하면서 물건을 거의 빼버린 매장이 있던 단 하루를 제외하고) 담당대리가 말한 5시간이 된 적은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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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평균 6시간 반. 물론 이 6시간 반에는 순수하게 바코드기기로 매장물건을 등록하고 데이터를 업

데이트하는 시간만 포함되었다. 누가 쉬지 말라고 감시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조금이라도 이 일에

묶여있기 싫어서 (또는 5시간을 향하여) 권하는 음료나 물을 마시거나 먼지범벅이 된 손을 씻는 시간

을 제외에는 쉬지 않았다. 다음 매장으로 이동하는 시간과 점심시간 그리고 하루 일과를 끝내고 다음

날 방문할 매장에 전화하고 교통편 및 약도를 확인하는 시간은 내가 체크하는 아르바이트 시간에서

항상 제외시켰다. 그렇게 시간을 셈해야지만 조금이나마 내가 덜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사람들이 고의로 시간을 속였다고 생각 안(하려고) 한다. 어떤 매장 담당자는 정말 재고

조사 시간이 한 매장 당 단 2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니까. 아마 그분이 재고조사를 하신 적이 없

으셨거나 혹은 16년간 재고조사를 해온 재고조사의 달인이었을 것이다.

경인지역의 총 20여개의 매장을 매일 다니면서 같은 인천에 3년을 살았는데도 처음 가는 길이 많

았는데, 경기도와 서울 근교까지 가면서 난 매일 초행길을 거쳐 다른 사람을 만났다. 물론 좋았다.

화장품 가게에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화장품 매장의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예쁘고 다정하다. 풀 메이크업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유니폼 그리고 항상 미소를 띄고 음료수를 주면

서 불편하지 않도록 대해준다. 하지만 결국 안반가운 손님이다.

난 왜 재고조사가 이뤄지는지 모르는 채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하였다.(단기 알바니까) 일 하면서

점주들로부터 알게 된 점(이라서 완전 신뢰는 안하지만). 재고조사를 실시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자동주문을 전산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본사에서 자동주문으로 체인점 점주들의 재고량을 편리하게

관리한다고 하지만 점주들은 이를 강제주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유는 체인점 형 화장품 매장의 유통

경로는 본래 계약을 맺은 본사에서 물건을 사오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몇몇 체인점에서는 기타경로

를 통해 약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해서 매장에 진열했다.(실제 그리 말하는 점주도 있고 일부품목은

체크 못하기도 했다.) 이런 점도 있지만 사실 재고조사는 그냥 힘들고 부담스럽다. 생각해보면 규모마

다 조금씩 다르지만 소 점포(대략 16~19평형)는 한 매장당 적게는 800에서 1000개의 화장품 재고

가 있으며 20평형이 넘어가는 좀 큰 점포에서는 1000개에서 1400개의 재고를 진열하는데 한 점포의

물건을 모두 기입하고 나면 먼지로 목이 아프고 버튼 누르느라 손목은 시큰거리고 진이 다 빠진다.

물건마다 막말로 난 돈 받고 일하니까 상관없지만 점주나 점원의 입장에서는 이익이 남지도 않는 일

이 추가되니까 귀찮아한다.

기기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똑같이 일을 시작하면 처음에

서로 어색해서 말없이 가게에는 두 바코드기기의 체크 기기

음 '삐-삐-삐-' 소리만 울린다. 하지만 하기 싫은 일하는

사람치고 열심히 하는 사람 못 봤다. 처음 하루 이틀은 난

눈치 없이 성실하게 일만 하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끝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만 협조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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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53

첫날 그리고 둘째 날에는 수량을 약간 다르게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난 C화장품에

서 입금하는 돈을 받고 일하는데 점주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건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내 입장

에선 아주머니의 적당한 비위를 맞춰주지 않으면 내 일이 빨리 끝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어느 점원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시급을 물어보셨다. 처음엔 그저 원래 공고한 시간보다 두어

시간 초과됨에 대해서 속상하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 사이에 아주머니와 나 사이에 묘하게 매장담

당 관리자를 아니꼽게 보는 동질감이 형성되어,,, 서로 오고가는 뒷담화 속에서 묘하게도 아주머니의

일이 빨라지신다. 색깔도 많고 종류도 다양해서 귀찮은 색조화장 품목을 아주머니가 맡아서 내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렇게 나의 퇴근시간이 조금 편하게 더 앞당겨졌다. 사실 탐탁스럽진 않지만 이렇

게 나의 '속았다'는 감정을 이용하게 되어버렸다. 이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조금 더 일을 빨리 마치기 위해서 난 몇 시간 '속았다'는 사실과 약간의 감탄사, 억울한 감정을 약간

덧붙여 말하면, 아주머니의 푸념이 덧보태지면서 누가 이렇게 하자는 제안도 없이 서로 간의 원하는

바가 이뤄졌다. 가는 길에 샘플을 챙겨주거나 화장품 구입하러 오면 대폭할인을 해주겠다고 했다. 사

실 뒷담화는 빨리 친밀감을 만드기는 좋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한시라도 이 먼지를 덜 마셨으

면 좋겠고 조금이라도 원던 시간에 맞춰야지 덜 억울하게 느껴질 것 같고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야지

손목이 덜 시큰 거릴 것 같아서 타협했던 것 같다. 난 일을 불성실하게 한 건 아니었지만 일의 편리

를 위해서 편법을 썼다. 묘하게도 매순간 이 관계는 서로 배려하면서 서로의 목적이 뚜렷하다.

사실 이렇게 내가 약간 야비해졌다고 느껴지는 상황인데 분명 나는 돈은 C본사의 경인지점에서 돈

을 받지만 같이 일하고 협력을 받아야만 하는 지점은 체인점의 점원 혹은 점주들이다. 날 왜 이렇게

배치했었을까? 분명 비용절감을 위해서였겠지만 본사 입장에선 약간이지만 오류가 난 데이터를 얻게

되었고, 내 입장에선 일을 빠르고 편리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구차하게 체인점 사람들에게 감정노동을

하게 되었고, 사실 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일의 고됨보다도 요런 갈등이었다. 과연

내가 조금 편하고자 이렇게 비위맞춰가면서 일하는지 그렇다고 비위맞추지 않고 그냥 일하게 무뚝뚝

하게 일하게 된다면 감정적으로는 편안해도 그 매장 내에서 협조받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결국 일하

는 시간이 늘어나 '속았다'는 느낌이 가중되서 짜증난다. 이는 매장 입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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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갈(죽을) 때까지 열지 말 것.”

늦은 저녁, 엄마가 놓고 간 가방에서 몰래 돈을 꺼내던 그. 조그마한 봉투 하나를 발견한다. 호

기심에 봉투를 연다. 열쇠가 있다. 어떤 창고 주소도 딸려 있다. 곧장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열

쇠를 꺼내 문을 연다. 그러자… 멋진 차 하나가 나타난다. 그 주위는 온갖 선물과 카드로 가득

하다. 어리둥절한 표정. 차에 놓여 있는 카드를 펼친다. “30살 생일을 축하해!” 이제 겨우 10대

인 그는, 이게 뭘까 궁금하다. 발걸음을 옮긴다. “19살 생일을 축하하며, 사랑하는 엄마가.”

“26살 생일을 축하하며, 사랑하는 엄마가.” “2012년,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며.” “2015년, 크리

스마스를 축하하며.” “고등학교 졸업을 축하하며.” “대학 졸업을 축하하며”… 이제야 알 것 같

다. 암치료를 준비하고 있는 엄마가 미리 준비를 해놓은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얼굴을

파묻고 우는 것뿐. <더 빅 씨(The Big C)>라는 미국 드라마 이야기다. 암에 걸린 중년 여성의

삶을 그린 이 드라마는, 암을 대하는 자세, 환자와 의사의 권력관계, 죽음을 준비하는 문제 등

을 색다른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특히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 장면은, (적어도 내게) 굉장한

감동을 준다. 그 이유는 바로, ‘배려’가 아닐까 싶다. 온 힘을 다해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없

다면, 불가능한 그 무엇. 이 배려의 마음은 상상 이상의 깊은 울림을 주고, 이 울림은 삶을 움

직이는 힘이 된다.

문제는, 그런 배려와 감동과는 전혀 다른 위치의 누군가를 만날 때다. 사람이란 혼자서 사는 존

재가 아니기에(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이들과 부대끼게 된다. 그리고 그 중에는, 뭔

가 무례하고 지나치게 이기적이면서, 스트레스를 주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 판단기준은 늘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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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모호하다. 감정과 판단의 영역은 주관-객관의 이분법적 구분이 붕괴되는, 경합이 함께하는 지

점이다. 이 경합의 과정은 혼돈을 불러오고, 그 혼돈을 일상적으로 견뎌내기란 쉽지 않다. 따라

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을 하려 하고, 이에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과 판단은

자기중심적이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했을 때, 나 자신이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어디

까지나 내 입장에서 목격하고 해석하는 것이기에, 분명히 한계가 뒤따른다. 그런 한계에 민감하

려고 노력하면서, 조심스럽게 고백을 하나 하려고 한다. 나는 지금, (내 기준에서) 많이 무례하

고 이기적인 누군가에 대해 쓰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고민하고 느낀, 일종의 ‘미움의

정치학’(?)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미워해도 될까요

이 사람은, 1990년대 끔찍한 대량학살의 기억을 가진 어느 아프리카 국가 출신이다. 스웨덴은

국제개발원조-인도적 지원 국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런 차원에서 맺어진 협정으로 아프리카

에서 건너와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적어도 내가 있는 학과에) 꽤 있다. 내가 처음부터 이 사

람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주고받고 하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말을

머지않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무엇보다 문제는,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엌이었다. 음식을

만들거나 먹고 난 뒤, 뒤처리를 거의 항상 깨끗이 안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사람만 꼭 그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게 문제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

르겠지만, 부엌을 이용할 다음 사람이 ‘굉장히 불쾌하게’ 느끼게 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최근에

는 부엌에 기생충-벌레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게 되어 위생상 공간이 잠시 폐쇄되는 일까지 생겼

다. 이 공동부엌 외에도 평소 연구실 소음 문제 등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계속 있

었다(나만 그렇게 느꼈는지 모른다). 한 마디로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 한 사람만 없다면 내 생활이 얼마나 편해질까 하는.

그리하여 어느 순간부터는 이 사람을 복도에서 보기만 해도, 또는 그 목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불쾌지수가 급격히 상승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 사람과 조금이라도 마주칠 일이 있으

면 최대한 미리 피하게 된다(예를 들면 우연히 같은 전철을 타게 되었는데, 전철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져 다음 역에서 내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 사람에 대해 욕도 하면서

미워하는 마음을 키워가게 되었다. 그런데 나에겐 고민이 하나 있었다. 내가 과연 미워해도 될

까, 라는.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고, 이른바 사회규범에 벗어나 있는 외형

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조건들이 내가 이 사람을 미워하는 데 어떤 역할

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그게 올바른 일인지, 고민이 되었다. 어쩌면 이 고민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집착의 결과인지 모른다.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라야 하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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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미워하면 그 올바름을 배반하는 것일 수 있으니 그러면 안 된다’는. 그래서 차라리 이

사람이 스웨덴 출신의 백인이라면 내가 더 쉽게(?) 미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한편으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은, 내가 특정 사회적 정체성들(예컨대 ‘아프리카 출

신’)에 대해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 사람이 어떤 정체성들을 대표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경로로 ‘학습된’ 관념이 ‘어쩌다가’ 특정 개인을 통해 확인되

는 것이다(나와 연구실을 함께 쓰고 있는 같은 나라 출신의 또 다른 친구는 이 사람과 많이 다

르다). 아울러 대량학살을 겪은 나라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 내가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또 이걸 떠나 미워하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해 ‘인간적으

로’ 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 복잡한 문제다…

미움도 ‘노동’이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잠시 제쳐뒀을 때 가장 시급한 것은, 일단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

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미워하는 것, 결코 좋은 일이 아닌 것 같다. 내 마음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또한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도 ‘노동’인 것 같다. 시간과 에

너지, 그리고 관심이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쏟고 있는 나의 시간을 다른 일에

조금이라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아가, 이런 미움을 어떤 다른 차원의 사유나 행위를

하는 ‘자원’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명박 씨(차마

‘대통령’으로 부르기는)에 대한 ‘미움 덕분에’ 선거라는 게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인지, 내가 바라

는 세상이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새삼스럽게 깨닫고 고민하는 것. 다시 말해, 미움을 긍정적

인 힘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막상 자신의 인간관계 차원에서는 어려운 것 같

다. 이래서 삶이란 애매하고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인 듯하다. 그나저나 여기까지 쓰고나니,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고 있진 않을까 걱정된다. 미움을 받는 것도, 누군가를 미워

하는 것도, 버거운 삶의 한 부분이지 싶다.

[나름대로 스웨덴 소식]

# 스웨덴 극우정당, 여론조사 4위 (스웨덴 영문뉴스 <로컬>: 2011. 6. 17)

인종주의-극우 성향으로 논란을 일으켜 온 ‘스웨덴 민주당’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정당 4위

를 차지했다. 1위는 중도당으로 33.4%, 2위는 사회민주당으로 31.7%, 3위는 녹색당으로 9.3%

를 각각 기록했다. 스웨덴 민주당은 6.5%를 기록했는데, 이는 자유당의 5.4%, 좌파당의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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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높은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스웨덴의 양대 정당이라 할 수 있는 중도당과 사회민주당,

그리고 실질적으로 주요당이라고 할 수 있는 녹색당을 제외했을 때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

다. 이 결과는 스웨덴 사회에서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뜻으로, 스

웨덴 민주당을 둘러싼 논란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 스웨덴 군대, 훈련 그만두는 지원병들 (스웨덴 국영라디오 국제: 2011. 7. 1)

스웨덴 군대에 지원한 이들의 4명 중 1명이 훈련을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는, 15%가 훈련 도중에 포기를 했고 10%는 훈련을 마친 뒤 군입대를 취소한 것으로 되어 있

다. 이는 예상했던 것보다 높은 수치라고 스웨덴 라디오가 보도했다. 군 관계자는 많은 이들이

신체적 문제 때문에 그만두고 있다며 지원병 모집과 관련해 고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원래 군의 계획은 해마다 4천 명을 모집하는 것이었고 이들은 3개월의 기

초훈련을 거치기로 되어 있었다. 스웨덴은 2010년 7월 1일을 기준으로 징병제를 폐지하면서 모

병제를 실시해오고 있다.

<전쟁없는세상을 후원해주세요>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후원들이 모여서 시작되었습니다. 대체복

무제 도입을 위한 활동,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활동,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

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이제 병역거부운동과 함께 보다 다양한 평화운동을 해 나

가고자 합니다. 후원을 해주시면 병역거부에 대한 다양한 뉴스와 정보, 전쟁없는세상의 소식지

등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홈페이지의 “후원하기”를 클릭하셔서 가입양식을 채워주시면 후원회원이 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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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정보의 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계좌이체를 하실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543001-01-305291 (예금주 양여옥)

-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http://www.withoutwar.org 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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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영어의 몸이 되어 지은 죄를 속죄하며 새사람으로 거듭나 갱생의 삶을 살기위해 참

회의 눈물들을 흘리고 계신가요 이 시애미들아? 그러게 누가 죄 지으래?? 인과응보임

*^^* ㅎㅎㅎ;;; 농담이구요 ㅋㅋ 제가 요로코롬 재수없는 독설을 하면 좀 더 오기가 생기

셔서 아구지를 꽉 깨물고 힘든 징역생활을 잘 버티실꺼 같기도 해서;;; 왜 그런 이치랄까

요. 나쁜 남자나 차도녀한테 더 끌리는 ㅋㅋㅋㅋㅋㅋ 암튼..;; 저번호에 분명 상담을 한다

고 했는데, 하던 재랄도 멍석깔으면 안한다더니, 왜 아무도 상담을 신청 안해주는거임???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날꺼아냐!!!!!!! 그래서 컨셉을 좀 바꿨음. 내코너니깐 내맘이야. 이

하의실종자들아*^^*그래서 일단은 ‘예비역 마초 백수와의 조삼모사 시리즈’와 <평화능력검

정시험>를 정책적 대안으로 하기로 햇져여. 상담 영업도 계속 할껍니다. 상도덕이 잇지 말

야. 게이가 칼을 뽑앗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그래 안그래?? 암튼 그럼.. *^^*

제1회 평화교육과정평가원의 출제위원 (훈남)웅이입니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평화능력검정

시험을 말씀드리자면 우리 푸코 옵하의 분석처럼 시험은 규율권력의 효과적 규율수단이기

에, 평화주의를 주입식으로 강제주입하고 평화주의 수감자들을 감시하고 처벌하기 위해서

이 시험을 고안해냇다. 제군들은 질문할 권리가 없으며, 당장 상명하복에 맞춰서 시험을

응시하기를 바란다.

<제 1회 평화능력검정시험>

1. 평화주의자가 좋아할 만한 속담·격언으로 알맞은 것은?

1) 타인의 불행은 꿀맛 (他人の不幸は蜜の味 - 일본 속담)

2)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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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59

3) 며느리가 미우려면 발 뒷꿈치가 달걀같다고 나무란다

4) 눈에는 눈, 이에는 이

5)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2. 매년 5월 15일에는 하면 좋은 일이 있다. 뭐ㅇ미?

1) 쿠팡이나 티켓몬에서 오늘의 반값은 뭔지 확인한다

2) 새로 올라온 야동이 있는지 확인하고, 코인이 없으면 충전해서 다운받는다.

3) 칙힌을 시켜먹는다.

4) 피시방에가서 mmorpg게임을 실행시킨후 인던을 한번 돌고 평판 작업을 한다.

5)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에 참여한다.

3. 현재 전쟁없는세상에는 상근활동가로서 우리 평화주의의 사활이 걸린 운명과 미래를 책

임지시는, 든든하고 멋지고 간지나는 여성 활동가인 ○○총통께서 계신다. 그분의 위대한

존함은 무엇인가?

1) 여우

2) 여진족

3) 여주 교도소

4) 여명의 눈동자

5) 여옥

4. 평화연구자이자 병역거부자인 재성림하 께서는 그동안의 평화에 대한 많은 고민을 담은

책인 『 』을 냈다. 책 제목은?

1) 삼켜야했던 평화의 언어

2) 칼로리를 반으로 줄인 평화의 언어

3) 삼켜야했던 등록금

4) 밥말아 먹으면 맛있는 평화의 언어

5) 누나 몰래 먹는 평화의 언어

5. 위대한 병역거부운동의 레전드인, 대모라고 불리는 위대한 여성 활동가가 계시다. 그분

께서는 병역거부운동 초장기부터 지금의 병역거부 운동이 있기까지의 정국공신이자 모태병

역거부활동가이다. 현재는 영쿡 코번트리 대학에서 평화학 석사과정에 계시기도 하다. 누

구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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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미자

2) 오사리 잡것

3) 오빠

4) 오리

5) 오븐

6.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정보가 부족하다. 다음 중 참조하면 도움

이 될만한 곳은?

1) 엠씨몽

2) 전쟁없는 세상 홈페이지에 게재된 메뉴얼

3) 고엽제 전우회 사무실

4) 대한어버이협회 홈페이지

5)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까페

7. 현재 전없세 사무실에서 여옥 총통을 보필하며 우리 평화주의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

는 자원활동가가 있다. 이름은 성민이다. 이분의 닉네임은?

1) 들개

2) 들깨

3) 늑대개

4) 개늑시

5) 들기름

8. 현재 전쟁없는세상의 ‘무기제로팀’에서는 대표적인 비인도 무기인 ○○○에 반대하는

월례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알맞은 말은?

1) 방구탄

2) 맥수지탄

3) 신세한탄

4) 오랑우탄

5) 집속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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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61

J 예비역 마초 백수와 함께하는 조삼모사!

예비역 마초 백수: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는 곳이다

나: 그렇게 군대가 좋은거라면 또한번 다녀오세요 좋은건 여러번 해야죠 능글능글

예비역 마초 백수: ( ゚ㅂ゚ )

예비역 마초 백수: 그런데 이런 좋은 군대를 빠지려 드는 X들은 Y해야 한다

나: 군대가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혼자 좋은데 다녀온 사람들이 "저렇게 좋은 걸 저사람들

은 못해봤다니 안됐다"라고 동정해야지, 왜 잡아 죽이려고 들죠?

예비역 마초 백수: ( ゚ㅂ゚ )

예비역 마초 백수: 군인들 불쌍하지 않습니까 고생한 그들에게 따라서 군가산점제를 줘야

합니다

나: 그런 논리라면 그동안 고생한 장애인, 여성, 농민, 동성애자에게는 군가산점제가 아니

라 아예 합격을 시켜줘야겠네요 히죽이죽 *^^*

예비역 마초 백수: ( ゚ㅂ゚ )

친구: 중국집 가자~

나: 시려 시려 맨날 중국집이야..

친구: 그래서 니가 가면 곱배기로 안먹을꺼야?!

나: ( ゚ㅂ゚ )

예비역 마초 백수: 군인들 월급이 너무 적다!! 그런데 여성부는 군인의 고통을 아느냐!!

나: 그걸 따지려거든 국방부 한테 가서 따지셔야지, 왜 여성부한테 따지시나요? 상식적으

로 국방부가 군대를 관장하는 기관인데 *^^* 아....국방부는 너무 쎄서 무서우니깐, 만만한

게 여성부인가요? *^^*

예비역 마초 백수:( ゚ㅂ゚ )

나: 야 이렇게 입으니깐 좀 날씬해보이지 않냐?

동생: 아니. 더 뚱뚱해보여.

나: ( ゚ㅂ゚ )

Page 64: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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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E.s.s.a.y

너의 삶에 고마워 지선 | 전쟁없는세상 후원회원, 이준규 후원모임 + http://rim00.blog.me/

그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흐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공기는 후끈거렸다. 우산을 움켜쥐고

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날 내가 눈을 붙인 시간은 고작 한 시간. 급기야 새벽에는 몸이 덜

덜 떨리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거울을 보고 내 눈과 내가 마주치면 울음부터 나왔다. 똑같은 24시간일 텐데, 그날 하루는 전혀다른 시간처럼 느껴졌다. 너무 일찍 나온탓인지 시간

이 꽤 남아서 병원에 들렸다. 병원을 나오니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비를 적당히 피

하며 태어나 처음 가보는 법원의 입구에 들어섰다. 건물이 여러 개라 도무지 ‘별관 5호’를 찾기

어려웠다.

“별관이 어디예요?”“거긴뭐하러갈려구?”

수위아저씨는 고압적인 자세로 대뜸 말을 놓았다. 범죄자를 심문하는 눈빛으로 의심스럽게 날 보

는 데이미맥이 풀려따지고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수위 아저씨의설명으로 알아낸별관으로

들어갔다. 우울하게 생긴법원건물들 중에서특별히 더 우울하게 생긴 듯한 별관의 5층에 별관

5호 법정이 있었다. 그곳이 오늘 내 친구, 이준규의 병역거부에 대한 공판이 있는 곳이다. 올라가니 법정 앞 의자에 준규와 준규의 어머니, 친척 분이 먼저 와 계셨다. 눈이 나쁜 탓에 준규가

손을 흔들어주어 겨우 준규인지알았다. 5호 법정앞에는 준규뿐만 아니라 20대로 추정되는, 혼자 온 남성들이 서너 명쯤 있었다. 이상하다, 오늘 준규 재판을 보러 온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

데. 의문을품고 사건재판순서를 보니 준규의재판을 포함한 오전재판이총 3건. 모두 10시에

시작하여 10시 10분에 끝난다고 되어 있다. 충격! 그래도재판이라 하면최소한 한 시간정도는

할 것이라고 막연히 예상하였고, 한 재판이 끝나면 쉬는 시간을 가진 후 다른 재판으로 이어지

리라 생각했는데. 여러재판을 우르르밀어넣고땅땅땅! 십분만에 끝내버릴것은 전혀생각지

도 못한 일이었다. 한 재판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리고 여러 사람의 인생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렇게 쉽게, 빨리 끝내버린다니. 아무렇지도 않게 ‘별 거 아닌 일로 뭘 그렇게 시간을 끌려고

하니’ 라고 5호 법정은 그렇게 말을 거는 것 같아 속상하고 억울하고 또 속상했다. 옆에 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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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63

P.e.a.c.e.E.s.s.a.y준규는 이미놀란뒤여서인지 음악을 들으며애써담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 들어갑시다.”

시계는 10시를 말했고, 누가 소리 냈는지도 모르게법정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들어갔고 나도 자

리에 앉았다. 어제 미리 재판 방청을 오기로 연락된 친구들이 와서 자리를 더해주었다. 짧게 눈인사를 하는 사이재판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준규의재판전에 한재판이 더 있었는데그재판

의 피고인은 주유소에서 기름을 속여 팔다가 고발된 사람이었다. 판사는 반성하는 태도를 믿어

보겠다며검사가말한벌금보다줄여 선고를 하였다. 재판이 시작된지근 10분만의 일이었다. 재판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데다 선고까지 이 자리에서 하다니. 준규도 오늘 이 재판이 끝나면

영영 못 보는 것이 아닐까.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하여 등골이 오싹하였다. 이제 준규의 차례. 판사는 준규에게 증거들을 인정하느냐고 물었고, 준규는 인정하지만 ‘무죄’라고 대답하였다. 판사는 준규에게 다시 한번 생각하여 군대를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물었고 준규는 그럴수 없다

고 대답하였다. 검사는양심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실정법상 형을줄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고 준

규에게최후 변론의 기회가 주어졌다. 준규는양심의 자유와 인간의 권리,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것 같고....... 더솔직하게말하면 분명어떤말들을 해서감동을받았는데, 점점머리 속에

새하얗게 되면서듣는순간, 그말들은 내 안에서잃어버리고말았다. 내머리 속에는 ‘무죄입니

다’라는 말만 세차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준규의 진심어린 말들은 판사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

는 것 같았다. 판사는좀더 시간을 주겠다며, 다음에 다시 부르겠다고 하였고 그렇게재판은 끝

이 났다. 당장이라도 붙들려 갈 것만 같았는데 오늘 자유를 빼앗기지 않아서 안도감이 가장 먼

저 들었다.

법원을 나와서 준규의 재판을 보러 온 친구들과 차를 마시러 갔다. 명색이 후원회장이었지만,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만 했지 그뒤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이었다. 무엇보다 준규의 병

역 거부를 지지하기 보다는, 아마 호기심으로 왔을 듯한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것들을 공유해야 할지 어려웠다. 병역 거부에 대해서, 군대에 대해서, 평화에 대해서 준규가 열

심히 설명을 했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주로 듣는 쪽이었다. 시간이 어느덧 지나고 배가 고파지

기 시작했는데 어느 지점에서 모임을 마무리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결국 듣는 사람들이

이제 가야겠다고 말을 하고 모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아직까지도 이준규

의 후원 카페 회원 수가 제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그날의 모임이 사람들 마음의 깊은 움직임

까지는 끌어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마음에닿을 수 있는지는 그날이

후로 계속 나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이준규의 병역 거부가 한 개인의 선택으로 끝나는 것이 아

니라 준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평화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던져주는 계기, 더 나아가 함께 고

민하고 움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처음부터 병역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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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E.s.s.a.y부를 결심하고 평화에 대해서 고민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을까. 살다보니 우연히 고민하게 되

고, 선택하게 되고 움직이고, 다시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고....... 그러면서 다시 변화

하고....... 그러면서 나라는 사람이 바뀌고 삶이 달라지고 세상이 변하는 거 아닐까.

준규는 때때로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자신을 만나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왜 미안해하는지, 후회하지 않느냐고 왜 묻는지 알지만 그건 나의 답이 아니다. 난 이준규라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도 병역 거부에 대한 고민을 작게나마 혼자서 하고 있었고, 만약 준규를 평

생 만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른모습으로 평화나병역거부에 대한 행동들에참여하게 되지 않

았을까. 오히려 ‘친구’라는 행복한 관계의 통로를 통해 병역 거부와 평화를 만나게 되었으니 준

규덕분에 더풍요로워지고 있는 것이 지금 나의 일상이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느꼈거나 또는 담

담하게 무심하게 때로는눈감아버렸던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대해서조금더눈을 열고귀를 열

고 마음을 열게 되었으니. 결혼식의 풍경들이 얼마나 가부장적이고 군사주의에 물들어 있는지, TV에는왜그렇게 군대나 전쟁이존재하는 것이당연한 것처럼나오는 지. 인기영화라는 <트랜스포머3>에는 군대와 군인이 너무많이 나오고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쟁을 해대는 것을맨

정신으로는 보아주기가 어렵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학생을 때리는 것이 너무도 당연

한 일처럼 여겨졌던 것에 의심을 품고 행동하게 되었고, 학교 밖에서도 어른들이 소위 ‘아이’라

는 이유를 들어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정말 쉽게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저지르는 일에 진

심으로분노하는 내가 되었다. 세상에는 너무나 아픈일이많고, 분노하게 되는 일이많고, 눈물흘릴일이많아 때로는 괴롭지만, 이제는 이것이 ‘삶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법원에서 여러 사람들앞에서 용기를 내어 자신의 신념을말하는 준규의 모습은참반짝거렸

다. 내 친구지만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싸늘한 법정 분위기에 금방이라도 얼어붙어버릴 것만 같

았는데, 굴하지 않고 인권과 평화를 말하는 친구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참, 이번

에 병역거부에 관한 재판을 보고 또 여러 가지를 많이 느꼈는데. 병역거부는 정말 자신의 언어

를 가질 수 있는 고학력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구나, 누구나 그런기회를 가질수 있는 것이 아

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재판에서는직업과 나이가 정말 중요하고 단정한 옷차림 따위가

중요해진다는 것도. 아무튼, 그래도 ‘병역을 거부’하는 삶을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는 사람보다는 행운이고 어떤의미에서는 또 다른힘을 손에쥔사람들이다. 그 행운

을곁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나눠준 너에게, 고맙다.

*이글에 나온이준규는 2011년 5월 2일양심적병역거부를선언하고헌법재판소앞에서 1인시위

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선고 공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준규의 후원카페

(http://cafe.naver.com/jksupport)에 오셔서응원의 한마디도 남겨주시고힘이 되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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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65

P.e.a.c.e.E.s.s.a.ySNS의 희망을 타고 온

85호 크레인의 목소리 고태경 | 전쟁없는세상 후원회원 + 트위터 @louisekarl

‘희망의 버스’라는 이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마음에 끌리는 게 있었다. 왠지 저 버스를 타면 내

마음이 평온해질것 같은 그런느낌. 그버스는 한진중공업영도조선소의 85호크레인을 향해

갈 것이다. 수천수만 명의 마음을 타고 가면 내게도 희망의 작은 촛불이 밝혀질까 하는 생각. 회사 동료와 함께 6월 11일희망의버스에올랐다. 희망의 버스가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5월 어느 즈음이었다. 원래 ‘희망의 열차’라는

이름으로조직되었던 그버스는 정리해고에맞서 150여 일 동안 35미터 고공크레인에서외롭

게투쟁하고 있는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이하김지도위원)과 그 아래에서 170여일을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싸우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이상투쟁 기간은 1차희망버스 시기를 기준으로 한 것). 트위터로 이 소식을접하고 있던 내

게 5월과 6월 그리고 7월은 ‘희망버스’라는 이 한 단어가 주는감동과 열망, 절망과 환희로요

약될수 있는 시간이었다. 트위터는 희망버스의 기획을 알리기 시작했고, 열차 한 대로 기획되었던 그 작은 운동은 전국에

서 45인승 대형버스 17대(부산지역 제외)를 동반하며 6월 11일 한진 영도조선소에 천여 명의

시민들을모아내기시작했다. 2011년 6월 11일은바로이 1,000여명의사람들을, 2차희망버스가출발한 7월 9일은 190여 대의버스와함께모인 10,000여명의 사람들을기억할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과 함께 ‘희망버스’라는 이름을 우리 몸에 각인시켰다.

6월 11일, 85호 크레인의 역설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하며버스를타고 85호크레인앞에 처음 도착

했던 6월 11일은매우역설적인날이기도 했다. 2003년정리해고에

맞서 김주익 열사가 지금 김 지도위원이 올라가 있는 85호 크레인

에올라간날이 바로 그 6월 11일이기 때문이다. 크레인에 오른그

날은 그에게 129일 동안 지속될 외로음과 절망감이 시작되는 날이

었을지도 모른다. ‘노동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35미터 상공의 쌀

Page 68: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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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E.s.s.a.y쌀한 바람과홀로 마주해야했던 그 129일. 애초 1차희망버스가 6월 11일을출발일로 잡은 것

도 2003년의절망을 되풀이하지말자는 의도에서였다고 한다.

6월 11일의 죽음을 기억하며 덜컹거리는 마음으로 탄 버스 안. 35미터 상공의 외로움과 불안은

어떤것이었을까 생각해본다. 하루하루 평범하고먹고살기 위해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일상의

경계를 조금만 넘어서면 우리에게도 저 크레인의 불안과 위태로움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

는 생각. 아마도 그죽음의 불안과 삶의 경계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 버스가

지난 석 달간 나와 희망버스에 함께했던 만여 명의 가슴을 사로잡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였는지, 희망버스의 기획이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던 어느 순간부터 내게 트위

터는 고통과감동이혼재하는공간이돼버렸다.

울고 웃으며 보낸 공감과 환희의 시간

“8년을냉방에서 살았던 저의죄책감도 이제는좀덜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김지도위원의 1차희망버스 환영연설문 중에서)

내게도 사회운동의 기억이 있다면 아마 그절반은죄책감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거리를 지나며,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내게 전해졌을 고통의 호소를 그냥 지나쳐 왔다는 죄책감이

어느 순간 나를 엄습하곤 한다. 그런데 하물며 쉰둘의 노동운동가에게도, 대공분실과 철창을

오가며 싸워왔던 그 치열한 사람에게도 남아 있는죄책감이 있다.부산 영도조선소를 500여 미터 앞두고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거리 촛불행진을 시작했다. 촛불행진으로 도착한 영도조선소는 바로 그 전날 용역들의 침탈로 노동자 수십 명이 부상당하고, 정문이 봉쇄되어 있는 상태였다. 행진을 이끌던 차에서 조선소 앞 인도로 모이자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인도로 모여든 시민들 사이에서 누군가가갑자기조선소의담을넘어

섰고, 담 너머로 사다리가 넘어오자 그 뒤를

이어 사람들이 모두 담을 넘기 시작했다. 경찰소환의 근거가 됐던 그 ‘월담’. 그 월담을 시작

으로 희망버스 승객 천여 명과 용역들이 고립

시켜놓은 85호크레인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크레인 아래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희망버스승객들과 함께 조선소는 마치 혁명 전야를 연

상케 하듯 환희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방패와소화기와 쇠파이프를 무기로 들고 있던 용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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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67

P.e.a.c.e.E.s.s.a.y을 담 너머로 쫓아 보낸 조선소 안은 이내 평온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곧이어 김 지도위원의

연설이 시작되었다.세명의 생명과 수백수천노동자의 생존이걸려 있는 85호크레인. 91년정리해고에 싸우다죽음

을 맞이한박창수와 2003년다시 그 정리해고에 싸우다목숨을 끊은 김주익, 곽재규의 기억을

안고 그녀가올라간곳이 바로 85호크레인이다. 동료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는죄책감에 8년간을 냉방에서 보내다 다시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기 위해 그녀가 올라간 곳이 바로 그 85호크레인이다. 그래서 35미터 상공의 칼바람을 찢는 김 지도위원의 연설은 그 기억들과 함께 시

작된다.

여러분우리조합원들 한번 봐주십시오. 평생 일한직장에서 아무 잘못 없이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 저지친어깨에 가족들생계를걸머지고 밤엔절망으로쓰러지고 아침이면어디있는지도 모르

는희망을찾아 기를 쓰고버텨온사람들입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가목숨던져 지켜낸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나를버린다 해도 나는 저들을버릴수 없는 이유가백가지도넘는 사람

들입니다.(김지도위원의 1차희망버스 환영연설문 중에서)

천여 명이 모인 크레인 밑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린 이 연설을

시작으로 첫 희망버스의 여정은 울음과 웃음이 교차하는 공감

과 환희의 시간이 되었다. 파업노동자를 노동귀족으로 몰아낸

언론에버림받고, 수백억의 주식 이익을 챙긴 자본에 버림받으

면서도 85호 크레인은 희망버스와 함께 축제의 장으로 변모했

다.새벽 4시를 즈음해 끝난 일정에도 사람들은 여기저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공연을즐기며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오후 3시경 전날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다 연행된 두 명의 희망버스

승객과 오전 서울로 돌아가다 연행된 ‘김여진과날라리외부세

력’이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다시 올 것을 약속하며

버스에올랐다.

2차에서 3차로, 멈추지 않는 ‘희망’의 버스

1차 희망버스가 실행되고 난 후응당정권과 자본의 탄압이뒤따랐다. 영도조선소로 진입했던 수

백명에게 경찰소환장이발부되었고, 자본의압박에 무릎을꿇은노동조합소수집행부들은 반

민주적노사타결로 정리해고 철회 문제를완전히배제해버렸다. 노조집행부들의 일방적타결

Page 70: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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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E.s.s.a.y에 이어법원의 행정대집행이 시행되었다. 생활관건물에서 숙식을 하고 있던노조원들은 강제

로 조선소 밖으로 쫓겨났고, 크레인에는 전기와 음식물 공급이 차단되면서 이제 노조원 네 명

과 크레인 위의김지도위원만이외부와 차단된채외로운투쟁을 이어가게 되었다(음식물은 7월초부터국가인권위의 권고로불규칙하게나마 전달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2차 희망의 버스가 기획되었다. 희망의 버스는 7월 9일에 출발했다. 크레인

고공농성 185일차를맞아총 185대의버스를목표로 기획된희망의버스. 그사이트위터를 통

해 85호크레인의외침은 더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결국 9일낮전국각지에서출발

한희망의버스는 190대를 육박하는엄청난참여 인원을 수반했다.이미 잘알려져 있다시피, 2차희망의버스는축제의분위기를 연출하며 나아갔지만, 85호크레인

을 100여 미터 앞두고 세워진 경찰들의 바리케이드로 조선소 진입을 좌절당해야 했다. 바리케

이드를넘어서기 위해 시민들은 바리케이드앞으로벽돌을날랐고, 그벽돌을타고넘어서려는

순간최루액이 살포되어 수많은 이들의 부상을촉발했다. 2차 희망버스에 함께하지 못한 나는 트위터 팔로워들과 희망버스를 탄 친구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으며 안절부절못해야 했다. 밤늦게라도 함께했어야 했다는 후회와 저백여 미터 너머의 크레

인을 만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뒤섞이며 복잡한 마음을 누그러뜨릴수가 없었다. 그사이 언론은 다시 2차 희망버스 승객들을 노사협상을 왜곡시키는 ‘외부세력’으로 매도했고, 희망버스의 시위를 ‘불법’시위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희망버스의 시위는불법도 아닐뿐더러, 크레

인까지 평화시위를 하고자 했던 이들을 거리에 가둔 것은 한진 자본과 손잡은 경찰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합법적인 것이 아니었다 해도 어떻게 희망버스의 시위를

옹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본과 언론이 강제하는 그 법 테두리에 갇힌 ‘평화’가 법 안정망

외부에 내몰린 이들에게도 평화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영도조선소 35미터 상공의 칼바람은 우리가

하루하루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그 일상의

바로 저편에서 우리 삶이 처한 불안이 어

떤 토대 위에서 움직이는지를 보여 준다. 7월 30일에 3차희망의버스가떠난다. 나는 다시 그 버스에 오를 것이다. 그 버스에 올라 ‘평화’를 불가능케 하는 그 벽들

을 넘어서고 싶다. 언론이 버린 크레인의

외침은 SNS의 흐름을 타고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 크레인

외침에 이제 우리가응답해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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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69

P.e.a.c.e.E.s.s.a.y

내가제주해군기지를반대하는이유

-제주 강정마을에 다녀와서여옥 |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 [email protected]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알게된건 언제쯤이었을까.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예정지가 검토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었고 강정마을이 선정된 것은 2007년이었으니 이 문제는꽤나 오래된 이

야기인 셈이다. 이 문제는 한국평화운동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는 인식이 있기는 했지만, 계속넘쳐나는 이슈들 사이에서 이렇다 할 활동을 만들어내지도, 참여하지도 못한채시간은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모든 군사기지문제가 그러하듯,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절차상

의 문제를 비롯해 생존권문제, 환경문제, 안보문제, 군사주의문제 등 제주 해군기지건설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반대해야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고 명확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도 그랬다. 9월 레바논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는 방법을 찾아서라도 가려고 하면서 정작 같은 나라인 제주도는 시간이 없

어서, 돈이 없어서 못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공사 준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그

앞을 온몸으로 막아서던 활동가들이 잡혀가고 평화운동가 최성희 선생님이 구속되고 개척자들

의 송강호 선생님은 해군에게 폭행을 당해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분들의 소식을 들으니 이젠더 이상핑계거리를찾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해군

기지문제가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단체들이끊이지 않고 강정마을방문을 이어가고 있었고, 우리

단체에서도병역거부자들과 함께방문해보면좋겠다는 생각에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같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제주도까지 움직이는 것은 쉬

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 모으는 것도, 비용, 시간, 일정을 맞추는 것도. 처음 가는 제주도인데다가 어

렵게 시간을 낸 만큼 무언가 더 해야할 것 같아 제

주4․3평화공원에도가보기로해서총 4박 5일의일정

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함께간 재성, 보미, 준규, 경수, 염도 비슷한 일정으로 맞추었다. 6월 24일 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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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E.s.s.a.y일 출발하는 날 서울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는데 한 시간 뒤의 제주는 태풍 북상을 걱정하던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동남아시아의휴양지 같은날씨로맞아주었다. 다음날오전까지만 해도

태풍이 오는게 맞나 싶었는데,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가는 도중에 비바람이 시작되었다. 하루

에 8대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가다가 잘못내리는 바람에 정말 힘들게 찾아간 4․3평화공원은 그

럴만한 가치가 있는곳이었다. 언제 또올까싶어서 우산은 커녕몸을 가누기도힘든 비바람 속

에 야외에 있는 위령탑과 위령비까지 모두 돌아보던 우리를 신기하게 생각하신 직원분들과 대

화를 나누다가, 강정마을에 간다는 것을 아시고 태워다주시겠다는 분을 만났다. 거기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가려면 한밤중에나 겨우 도착할까 말까였는데 정말 운좋게 그 태풍 속에서도

편히 강정마을까지 갈 수 있었다. 밤에는 대구에서 부산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온 준규씨, 비행기가롤러코스터 같았다는 경수와염을 만나 6명이 모두 강정마을에 모이게 되었다.

역시 제주도의 태풍은 달라도 달랐다. 며칠 전만 해도 공사를 막느라 하루하루가 전쟁같던 마을분

들과 활동가들도 거센 파도와 바람 덕분에 천막까지 철수하고 한숨 돌리는 시간이었다. 공사를

하려고 쳐놓은 오탁수 방지막이 파도 때문에 대부분 끊어졌고, 공사장 주변의 펜스와 슬레이트

도 바람에 망가진 부분이 많았다. 마을분들과 함께 의례회관에 모여앉아 강정천에서 잡은 은어

튀김과 막걸리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거대한 파도를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기도 했다. 어렵게 찾아간 만큼 우리를

맞이하는 거대하고 멋진 파도는 그 자체로 감동

이었다. 모두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암

바위 구럼비에 신발을 벗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바위 틈에 숨어있던 게가 나와 지나가고, 죽은척하던 고둥도 다시 움직이고.. 파도가 커서 바

다 가까이에 가 물놀이를 할 수 없었지만, 구럼비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부러

울게 없었다.

마을에는 전국각지에서 보내온 응원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주민들의 투쟁을 응원하는 현수

막이 훨씬많았지만, 그 중에 일부러 훼손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고, 종종찬성주민들의 현

수막도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주민들 간의 갈등의 골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우리가 직접 달았

던 현수막 중 병역거부자들이 보내는 응원현수막은 바로 다음날 훼손되기도 했다. 해군이 주민

들과 활동가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폭행을 하는 사건은 수시로 벌어진다고 했다. 강정 앞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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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71

P.e.a.c.e.E.s.s.a.y제주 올레길 중 아름답기로 유명한 올레 7코스가 지나

는 길인데, 해군에서는 금지팻말을 달아놓고 올레꾼들

이 우회하라고 하고, 마을사람들이 안내표시를 해놓으

면 지우고, 다시 마을사람들은 안내표시를 해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해안가에 만들어놓은 농성천막 앞을

지나가는올레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분들한테 물 한 잔 권하며 지금 이곳이 해군기지 건

설로 없어진다는 것을알려드리면 다들몹시놀라셨다. 그 아름다움의 기억을공유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을거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방문을 한만큼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마을회장님은

그저 와줘서 너무 힘이 된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다른 것

보다 그냥여기 이곳의 아름다움을충분히 느끼고 돌아갔으면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강정앞

바다의 아름다움에 반한 채 돌아오는 길에는 저절로 서울

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있었다. 6월,7월에 김포

공항에서 몇 차례캠페인을 하면서놀랐던 것은 제주로떠

나는 여행객들 중에 제주 해군기지문제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휴가철을 맞아 제주도로 떠나

는 사람들에게 강정을 나눠주며 지금의 상황을 알리는 김

포공항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하는 것이 나름의 의미가 있

는 것 같다. 제주도에 가면 유네스코에서 생물권보전지역

으로 지정할 정도로 아름답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강정

앞바다에 꼭 가보시라고, 올레길 중에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는 올레7코스를 꼭 걸어보시라고, 그 구럼비 바위에

앉아보시라고말이다.

요즘 트위터를 통해 바로바로접할 수 있는 강정마을의 상황은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해군기지 반

대여론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더 늦어지기 전에 공권력으로 밀어붙여 강제집행을

해버리려는 모양이다. 반대운동의 중요한 사람들을 강제로 연행해가더니 구속시키고, 마을 주민

들에게 무더기로 소환장을 발부하고, 강제집행을 위한 행정절차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육지에서 전경들이 내려가서 마을로 진입로마다 전경버스들이줄지어 있고, 외부 사람들의출입

을 통제할거라고 한다.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니 지난번에 가봐서 다 아는곳들이라 기분이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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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E.s.s.a.y하다.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잠못드는 강정마을, 2006년 평택에서의 강제집

행이 기억나 자꾸불안하기만 하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생기면 안되는 이유는많고도 많다. 세계7대자연경관에투표하라고 하면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구럼비 바위를 시멘트로 덮어 군함이 드나다는 부두를 만든다는 생각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한반도 제일 아래에 있는 제주도에서도 가장 남쪽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해군기지를 짓는 것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 필요한 것인지, 나라 전체의 안보를 위한 일이라

고 하면서 왜 제주도 문제니까 제주도민에게

맡기고 참견하지 말라는 것인지, 국가안보를 위

해서라면 주민들 대부분이 반대해도 그냥 무시

하고 진행해도 되는 것인지.. 한번만 진지하게

생각해봐도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

은, 아니백번양보해서 지금이대로공사를 강

행하는 것은 정말안될일이다. 당장공사를 중

단하고재검토를 해야한다.

그리고 내게는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유가 하나더 생겼다. 구럼비에 앉아 그 바다를 다시

보고싶다는 것. 한달이 지나도 다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강정 모기의 흔적, 태풍이 지나간뒤 갑

자기 나타난 태양 때문에 다 타버린 뒷목과 팔다리처럼 몸에 새긴 기억은 오래간다. 그 무엇보

다 구럼비 바위에앉아서 느꼈던 그 기분, 그 느낌, 그감정은 아마 내 몸이 평생 기억할 것 같

다. 그것만으로도 그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안되는 이유는 충분하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그 바다를 다시는 못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한 마음

들이, 다양한 움직임들이 모이고 모여 평화를 지켜낼수 있기를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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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73

P.e.a.c.e.E.s.s.a.y가난한 이의 평화이한별 | 평화캠프 포이동 인연공부방 인연교사

포이동 재건마을은 1981년 강제이주 당해온 자활근로대와 1989년 봄과 여름, 1998년 세 차례에

걸쳐 이주 당해온 사람들이 모여 형성한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은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당시 경찰 지도관들에 의해 마을 출입을 제한 당했고 1988년엔 가지고 있던 주민등

록 등재를 박탈 당했다. 이후 1990년부터는 감당할 수 없는 토지변상금이 부과되기 시작했다. 2000년도가 넘어서까지 관할 복지관과 동사무소에서 마을의 존재를 알지 못해 받아야 할 사회

서비스를 받지 못했으며 마침내 2003년에 마을로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며 정부의 행정폭력이

극에 달했다. 평화캠프 포이동 인연공부방은 2005년 철거 위협에 시달리는 주민들과 연대하고

자 했던 대학생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공부방에서 우리는 지난 6년간 마을 투쟁에 함께했고 빈

곤, 차별, 대상화, 무관심 등 모든 아픈 것들에 맞서며 출발선도 다르고 걸음도 다른 학생들이

함께 걸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왔다. 우리는 진심으로 포이동 재건마을에 평화가 깃들길 바랐

다.

1. 가난하고 약한 이에게도 평화가 가능할까

한달 전인 6월 12일, 우리 마을에 큰 불이 났다. 포이동

재건마을 96가구 중 75가구가 사실상 전소됐고 공부방

학생 14명 중 11명이 집을 잃었다. 초등학교 3학년 ~ 고등학교 2학년 나이도 성별도 서로 다른 학생 11명이교복, 양말, 신발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로 비좁은 회

관 3층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좌절과 충격, 분노가가득한 마을 사이로 아이들은 걸음을 디뎌야만 했다. 어느 때보다도 평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아이들

을 지켜줬던건평화가 아니었다. 공부방학생들간의 더

강한 단결(그에따른위계질서의 강화), 잘나가는 일진으

로서 학교에서 기죽을 필요 없는 기개(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폭력성), 집이 다불타고 상처받기쉬웠던 아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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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E.s.s.a.y지켜준 무기는 그렇게 평화와는 거리가멀었다.

평화는 평등하게깃들지 않았다. 가난하고 약한 이에게 평화는불가능한 것처럼보였다. 상황은절망적이었다. ‘강제이주 인정’ ‘토지변상금철회’ ‘점유권 보장’을 마을과 함께 긍정적으로논의해

오던 강남구청의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이다. 2003년투쟁을 시작하고 6년만인 2009년에 주민등

록등재를쟁취해내면서시작된강남구청과의대화무드는 2년이지난 2011년 6월 12일단한번의

화재로 끝이 나버렸다. 강남구청은 주민과는 아무런 협의 없이 임대주택으로의 이주를 강요했고

따르지 않을 시 강제철거를 단행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공권력 투입” “용역 깡패” 흉흉한말은빠르게퍼져나갔다.

강남구청은 대단한 해결책이라도 되는 양 언론플레이를 해왔지만, ‘강제이주의 역사’ ‘토지변상금’ ‘독거노인의 생활’ ‘일자리 상실’ ‘공동체의 해체’ 이런 문제들을 떠안은 채론 임대주택으로 이

주할 수가 없었다. 그건단지죽을 자리를 바꾸기 위한 이주일뿐이었으므로. 주민들은 행정당국

이 보낼 용역을 막기 위해 남아있는 마을의 샛길들을 파이프와 슬레이트로 막아버리고 화재로

인해 공터가 되어버린 마을 외곽에 펜스를 둘렀다. 단지 강남구청의 성실한 해결의지를 끌어내

기 위해서 일단은버텨야 했다. 고되고외로웠다.

평화는 또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강남구청의 위협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불안은공동생활을 더욱힘

들게 만들었다. 나도 학생들도 학부모님들도 다른 주민들도 신경이 예민해졌다. 화재가 있던 날

까맣게 불타버린 마을 외곽의 나무는 죽은 줄만 알았는데도 어느덧 하얀 가지가 돋우고 새 이파

리를 내밀었다. 지나는 주민들은 기적과도 같아 보이는 그풍경을힘없이 바라보았다. “쟤들은 이

렇게 살아나는데우리는왜자꾸…” 같은감상이 다른입에서 여기저기 마을을맴맴돌았다.

“우리끼리 약속했어요.”뭘?“어디서 뭘 하고 있든 문자로 ‘포이동 비상’ 하고 오면 당장 마을로 뛰어 돌아오기로 안 그러면

완전배신이라고”

왜그런짓을 해. 그냥비상이면 나가있어.“아무튼그렇게 약속했어요.”공부방 고등학교 2학년짜리의 말에 난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2006년부터아이들이상처받지않도록무던히애써왔지만- 온마을을뒤덮은국가의폭

력앞에서 난 무력하기만 했다. 우리에게는 평화라는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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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75

P.e.a.c.e.E.s.s.a.y2. 포이동이 더 이상외롭지 않기를

상처받은 채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남아야 했

을 때 공부방의 학생들은 고슴도치처럼 몸

과 마음을 무장했다. 우리는 그 손에서 무기

를 내리고 손을 잡고 싶었다. 내가 아는 한

폭력에 신음하고 있는 이에게 평화는 서로

의 약한 부분을 맞잡는 연대로써 가능했다. 약한 이가 더 이상 약하지 않도록, 외롭지

않도록 함께 맞잡아 폭력에 굴하지 않을 만

큼강해지는 연대의길. 화재가발생한 12일부터 지난 한달 간 마을에 상주하며 마을과 함께했던 평화캠프의 코디네이터 지혜샘 공부방 교

사대표 태우샘 예전에 활동했었던 인연교사 한별, 주혜샘(현재 활동하는 교사는 활동교사라고

부른다.); 우리역시 지난 한달간아이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그런연대를 실천하고싶었다.

화재가 났던 밤부터 우리는 옷가지, 신발, 안경, 화장품, 용돈, 생활공간 등 아이들이 찌질해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했다.(많은 이들의 후원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밤마다학생

회의를 열어 갈등을 예방하고 중재하려 했고 마을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공대위와 함께하며 주민

들의투쟁이외롭지 않게 세상에알려내고자 했다. 우리뿐아니라많은 이들이 연대해왔다. 옷가지, 물, 화장지, 세면도구, 비상식량 등의 생필품과 주거복구를 위한 성금이 속속 전달되었고 어

떤 이들은 맨몸으로도 마을에 찾아와 화재잔재처리 작업, 방충망 설치 작업, 아이들이 쓰는 3층도배작업을 도왔다. 틈틈이 찾아온 방문자들이 마을의 역사를 듣고 자신의 일처럼 아파했으며

주변에 포이동의 소식을알렸다. 그들과 함께할 때는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을에 드리워진 거대한 폭력에 비한다면 우리의 힘찬 연대도 미약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폭력성을 이용해 스스로를 지켰고 주민들은 불안해했다. 언제나 환하게 맞아주던 주민들의 얼굴

은 검게 탔고 웃음은 간신히 짓는 미소였다. 힘들었다. 얼마나 힘들었냐면 언제나 힘이 되던 공

동체가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다. 지난 한달, 포이동은 아직 외로웠다. 그래도 우리의 투

쟁은 초조해하고감정 상하고 이기적으로 되지 않고도 이겨내는 투쟁이 돼야 했다. 그래서 지금

포이동은 더많은 평화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우리의 투쟁이 당장 눈앞에 폭력을 걷어내기 급급한 투쟁이 아니라 평화의 가치를 지키고

이야기해나갈 수 있는 투쟁이길 바란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얄밉거나 의견차이가 있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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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E.s.s.a.y들과 대화하고 서로 이해하며 이어갈 수 있는 투쟁, 투쟁을 따라

가지 못하는 동지 한명 한 명을 살피고 보조를 맞출수 있는 투

쟁, 가장 약한 이를 가장 우선시 할 수 있는투쟁, 그리하여투쟁

을 함께한 모든 이에게 진정한 해방으로 기억될 수 있는 그런 투

쟁을 바란다. 그리하여 학생들에게도 꼭 가르쳐주고 싶다. 평화란

보다 강한 이가 약한 이에게 내미는 배려가 아니라 약한 이들끼

리 굳게 마주잡는 손이라고. 힘들어도 이해하며 함께하는 평화의

연대가 그 어떤 폭력보다 강하다는 걸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세상에 증명하고싶다. 억압과 폭력의 리더십없이도 우리를 지킬

수 있다는걸보이고싶다.

3. 나가며

제도라는 끝을 알 수 없는 폭력에 억압당하는 이들에게도 평화가 가능합니다. 그건 바로 당신의

연대로 가능합니다. 제도의 폭력을 밀어내고 이 힘든 투쟁의 시기가 해방의 날들로 기억될 수

있도록- 평화의 연대가 세상의 그 어떤 폭력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도록- 당신과 함께

바라고 행동하고싶습니다.

포이동과 함께해주시길부탁 드립니다.

<포이동과 함께하기>

1. 포이동 지지방문 : 언제, 어느 때든

2. 포이동 주거복구 후원모금 (국민은행) 767401-01-276083(조철순포이동주거복구후원모금)3. 다음학기 평화캠프 포이동 인연공부방교사로 활동하기!! club.cyworld.com/poi-teacher 포이동투쟁에 대한보다자세한내용은공대위홈페이지 club.cyworld.com/poi-aza 에서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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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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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이 철거당하기 전 6월 28일 열린 토론회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싸움은 발명되어야 한다 김강기명 | 신학연구자, 명동해방전선 + http://blog.jinbo.net/minjung

#호치민을 생각했다. 민족주의 학생운동에 연루되어 당국에 쫓기다가, 배에 올라 최하층 노동자가

되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노동계급의 현실에 눈을뜨고, 식민모국 프랑스에서 제2인터내셔널

의 유력인사가 되고, 이내 코민테른의 조직활동가가 되어 이름을 계속 바꿔가며 중국남부와 인

도차이나에서 수많은 조직을 건설했던 불세출의 혁명가. 그러니까 아직 ‘호치민'이라는 베트남

국민국가의 상징이 되기 전, 제3세계민족해방운동의 신화화된 지도적 인물이 되기 전의호치민.

그는 나와 너무나도 다른 인간이었다. 강철같은 의지와 체력, 그리고 무엇보다 유교적 -권위주의

가 아니라 백성의 소리를 하늘의 소리로 여기는 혁명의 전통으로서- 도덕과 품성으로 무장한

지하혁명가의 삶과, 언제나 골골대면서 일신의 건강을 챙기기에도 바쁜 내 꼬락서니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래서 더욱 생각했나보다. 두리반이 승리로 마무리될 무렵 시작된 명동의 점거농

성장 ‘마리'에 연대를 결심하면서. 나는 내 마음 속의 영웅, 내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고귀한

삶의 모습을떠올렸다.

##오늘날 청(소)년들을 모든 것을 바닥에서 다

시발명해야 한다. 광주에서 시작되어 87년, 91년에 한 정점을 찍고, 97년 이후 몰락했

던 ‘87년 체제' 혹은 ‘80년대 운동권'의 역사는 이제 다시 복구될수 없을만큼부패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역사는, 그역사를담지하고 있다고믿는 이들은 여

전히 현실의 운동을 지도하고 있었고, 다시

금 바닥에서 시작하는 청년, 청소년들의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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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농성장 앞에 내걸린 '명동해방전선' 현수막. "사랑

과 연대를 두고 가세요."

동은 이들 운동의 보충물이 되어서 ‘젊고발랄한 새로운 세대의 운동'으로 소비되었다.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두리반이 보여준 것은 그러한 ‘꿘의 세계'의 최종적 몰락이었다. 청(소)년들이 오롯이독자적인 기획 속에서 운동의 내용과 스타일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의

모든 지점들이성공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밝혀야겠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것은 열락

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난한 좌충우돌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코 낭만적이지도, 자족적이지도 않은 새로운조직화의 시작이었다.

###두리반이 끝날무렵, 명동성당앞블록의재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두리반도 그랬지만, 도심재개발

과정이란 건 철저한 아웃소싱의 과정이다. 기업은행이 입주를 약속하고 대우건설에 돈을 투자하

고, 대우건설은 사실상 유령회사인 시행사를 만들어서 토지를 매입하고, 시행사는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고 세입자들을 폭력으로 내쫓고건물을 부수도록한다. 그리고 그 반대쪽은 그들과 반

대로 움직였다. 전철협이라는논란의 여지가 많은 운동단체를 믿고 그 아래에서투쟁을 하던 철

거민들은카페 ‘마리'를점거하면서조끼를벗고투쟁의 주체로 나섰고, 그 소식을 들은 청(소)년활동가들이 마리로몰려들기 시작했다.

6월 19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일요일 오후에 용역들이 들이닥치자 이내트위터를 보고 수십명

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항의집회와 몸싸움 끝에 마리를 되찾은 사람들은 그 공간에 눌러앉았다. 빼앗길 어떤 기반조차 갖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인 ‘요새 젊은 것들'은 가지고 있던 삶의 기반을

빼앗긴 철거민들의투쟁에 연대, 혹은 ‘기생'했다. 그들은노래하고, 술마시고, 세미나를 열고, 몸싸움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농성장의 수칙을 정했다. 두리반에서 마지막까지

도 이루지 못했던 것을 그들은 마리에서 곧

장 성취했는데, ‘명동해방전선'이라는 독자적

인 단체를 만들어서 농성장을 함께 꾸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20세기의 게릴라

투쟁을 연상시킬 이 이름은 사실 패러디에

가까운데-이를테면윤성호감독의영화 <은하해방전선> 같은- 단체의정확한회원이정

해지지 않은 유령단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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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3 1 호 79

P.e.a.c.e.E.s.s.a.y러나 저쪽의 유령회사가 돈으로 용역을 사서 부려야만 움직일 수 있는 것과 달리, 이쪽의 유령

단체는 정말로 유령처럼 인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날마다 튀어나와 공간을 지키고, 저들을

괴롭힌다. 이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저들의 시선으로는 인식불가능한 방식으로

‘조직화'되고 있다.

####며칠 전, 농성장의 2층을 확대 점거하는 과정에서 용역들과 다시 몸싸움이 붙었을 때, 시행사 관

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이 "순수하게 어려운 사람들을돕는 것이 아니라 그저놀고싶

은 것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해 주었다. 이 평가는 묘하게도 반대쪽의 운동권들에게

서도 나오는데, 그들은 이들의 투쟁이 ‘자족적'이며, 명동 철거민들의 생존권 투쟁의 정당성을

드러낼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시행사건, 운동권이건 이미 도달한 어떤 자리에서 현상을 바라볼 때 어떤 시차가 생기는 것은 피

할수없는일이다. 그들은자신들이도달한역사 -그것이선진화건, 민주화건- 가준범주를통

해서 현상을본다. 그것은 무언가를삭제한다. 이미 역사를 통과한 그들에게는 오늘날, 그러니까

아직 역사가 되기 전, 이 현장에서 아래에서부터 연대와 투쟁을 구축하는 명동해방전선의 실천

과 삶을 읽어낼 시각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명동에서의 투쟁은 그들의 세계(상)를 파괴하고, 재구축을 강제하는투쟁이기도 하다.

#다시, 호치민을 생각한다. 그는 장차 사회주의 민족국가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젊은 시절그험한

경로를 거쳐간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저 자신이 맞닥뜨린 현장에 사로잡혔고, 운명 앞에 섰던 것이 아닐까. 오늘날 엄청나게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호치민과 ‘요새 젊은 것

들'이지만, 이둘은절망의 시대에 자신들의 싸움을 새롭게발명해야 했다는점에서 시대를넘어

공명하고 있다. 사실상역사란 켜켜이 쌓여온것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공명하는 어떤 이미지들

의 모음인 것은 아닐까. 승리자들의 기록이 아니라 억압받는 자들의 싸움의역사는 오늘날 우리

의 싸움의발명속에서만 사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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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을 후원해주신 분들가람강돌강성준강은애강지유강진선고동주고동환고태경고희라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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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김주현김준희김중미김지호김태훈김현정김환태김훈태김희순

나동혁류동훈문명진문상현문수현문연정박남식박승호박아름박용희

박정경수박조건형박지선박태하백선희백지숙보라서범석설순일송명관

송준수하시와신기현신순영신유아신은재신희권아침아키오양제열

여문정여옥여은염창근오리오정록우완우성섭우지연위양자유은정

유현미유희원유희정윤민순윤종윤지환은국은종복은혜와평화교회이계삼

이비함이상길이선아이선영이선옥이선정이선화이세현이승규이연희

이영롱이용석이은주이준규이희진인정환임성환임재성임태훈장기정

장대환장미희장성희장시원장정혜장현진장희원정은정정주열정혁

정현채정혜윤조명래조서연조원영조은조정의민주관수주창언지은진진

진현호진흙참새채승우책으로여는세상최민아최지선편설란하승우한주훈

햄허미리내현민홍성훈홍세은홍수봉홍수영황명규황예랑

총 수입 총 지출 이월금 총계(수입-지출+이월금)6,356,222 7,258,555 8,128,135 7,225,802

>>전쟁없는세상 재정보고 (2011년 4월 1일~ 2011년 7월 31일)

자세한 수입과 지출 내역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운영실 ‘재정보고’ 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후원인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Page 83: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1호(2011년 7월)

:: 이정식 : 논산지소에서 출소논산지소에 수감 중이던 이정식은 5월 9일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 현민 :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출소서울남부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현민은 6월 30일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 상우 : 여주교도소로 이감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상우는 5월 6일 여주교도소로 이감을 갔습니다.

:: 안지환 : 서울남부교도소로 이감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안지환은 교육생으로 선발되어 6월 20일 서울남부교도소로 이감갔습니다.

:: 이준규 : 재판 진행 중5월 2일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준규는 7월 13일 심리공판 이후 선고공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현재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들의 주소

김영배_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5호 1314번 (153-600) 이조은_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 20호 3956번 (435-050)김영준_경기도 의정부우체국 사서함 99호 841번 (480-700)안지환_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5호 530번 (153-600)이태준_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2164번 (153-600)강상우_경기도 여주우체국 사서함 30호 1011번 (469-885)문명진_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5호 837번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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