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소식지 34호(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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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22-9번지 3층 [email protected] 02-3147-1201 비폭력&평화교육팀, 비폭력적인 사회로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학교 교육이 가능할까? 청소년의 군사화에 저항하는 교육 모두의 땅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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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22-9번지 3층 [email protected] 02-3147-1201

비폭력&평화교육팀, 비폭력적인 사회로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다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학교 교육이 가능할까?청소년의 군사화에 저항하는 교육모두의 땅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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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전쟁없는세상 33호 소식지

차례

소식지를 내며 Editorial 평화운동 단체로 거듭나는 전쟁없는세상 1평화주의자 노트 Essay로보카 폴리를 보면서 드는 생각 2병역거부자들은 왜 팀블로그를 만들었을까? 6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내 수감 시절 이야기 10모두의 땅 두물머리 13기획기사 Special비폭력&평화교육팀, 비폭력적인 사회로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다 16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학교 교육이 가능할까? 18청소년의 군사화에 저항하는 교육 24다녀왔습니다. Experience2012 강정마을 생명평화활동가대회에 다녀와서 28리뷰 Movie불편한 두 개의 문 34기획연재 Series가람이의 좌충우돌 세상읽기15화 39나름의 바다 건너 일기-자신감이 없어서 좋다 40난영의 그림일기 43웅이 왔져여 꾸잉꾸잉-호갱님과 정치적 시니피앙 44재정보고 Report후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46

발행처: 전쟁없는세상발행일: 2012년 7월 31일제호: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4호연락처: 02-6401-0514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22-9번지 3층 (121-230)http://www.withoutwar.org [email protected]

인쇄기획 한울타리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2동 137-69(130-062)연락처 02-924-9641,2 팩스 02-927-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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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

소식지를 내며 Editorial

용석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병역거부 운동 10년주년 이야기 한 게 작년부터였을 거다. 이젠 10년 타령이 좀

지겨울 수도 있겠다. (내년은 전쟁없는세상 10주년입니다. 꾸벅.) 그래도 어쩌나.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한 일이 바로 병역거부운동인 것을.

아니다. 전쟁없는세상이 병역거부자들 모임으로 출발한 것은 맞지만, 우리는 병역

거부와 체복무 입법 운동 뿐만 아니라 비폭력에 기반한 평화운동을 하고 싶었고

실제로 했다. 평택 추리에서, 제주 강정마을에서 전쟁없는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말이다.

올 초 병역거부 운동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전쟁없는세상과 병역거부 운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워크샵을 했다. 많이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 하게 치러

진(?) 워크샵 결과 전쟁없는세상에 여러 변화를 주기로 했다.

우선 위상. 전쟁없는세상은 더 이상 병역거부자들과 후원인들 모임이 아니다. 평

화주의자들이 평화운동을 하기 위해 모여 있는 단체다. 병역거부 운동은 전쟁없는

세상이 하는 활동의 일부가 될 거다.

전쟁없는세상 체계도 개편했다. 병역거부팀과 비폭력&평화교육팀으로 나누었다.

이 두 팀이 서로 전문 영역을 가지면서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된 활동을 할 것이다.

그리고 책임활동가 제도를 정비했다. 책임활동가의 권한과 역할, 의무를 명확히했

다. 모두 7명이 2012년 동안 책임활동가를 맡기로 했다.

전쟁없는세상 개편에 맞춰 소식지도 개편하기로 했다. 그동안 소식지가 너무 병

역거부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좀 더 다양한 평화운동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그리고 기획기사는 병역거부팀과 비폭력&평화교육팀이 번갈아 가면서 기획

을 할 거다. 이번 달은 먼저 비폭력&평화교육팀이다. 다음 달 부터는 판형도 바꿀

생각이다. 소식지 내는 시기도 정하기로 했다. 그 동안은 비정기적으로 일 년에 서너

권이 발행됐는데, 앞으로는 1,4,7,10월에 네 번을 낼 거다. 모두 지켜봐 주기를.

평화운동 단체로 거듭나는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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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 노트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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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카 폴리를 보면서 드는 생각

전범준 윤후 아빠+출판 노동자

다섯 살 난 내 아들은 한국교육방송

(EBS)에서 방송 중인 어린이 애니메이

션 ‘로보카 폴리’를 매우 좋아한다. 아

마 또래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편에 15분 남짓한 내용 부분은, 부

주의로 인한 위험천만한 사고들이 속출

하고 이때 어김없이 구조 인 폴리(경

찰차), 로이(소방차), 엠버(구급차), 헬리

(구조헬기)가 출동하여 신속하고 안전하

게 사고 차량을 구조하고 사고 현장을 정리하는 것이다.

구조 중 경찰차인 폴리는 구조 과정을 총 지휘하는 리더이다. 로이, 엠버, 헬리

도 그렇지만 리더인 폴리는 언제나 친절하고, 합리적이고, 정의롭고, 이타적이다. 재

미도 꽤 있고, 안전 사고에 한 교육적 효과도 (조금) 있는 것 같고, 특히 아들이 워

낙 좋아해서 아들과 자주 보는 편이었다. 그런데 보면 볼 수록 언제부턴가 이 애니메

이션이 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학교와 경찰에 한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 80년 중반부터 후반까지 꽉 채

워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내 기억에 교사들은 온갖 구타와 폭력을 일삼았던 꼰

들이었고 학교는 그 꼰 들에게 학 받았던 감옥과도 같았다. 학교 만큼 직접적이

진 않지만 경찰에 한 경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시절 시위 를 향해 성난 짐승

처럼 뛰어들어 닥치는 로 두들겨 패고 잡아갔던 전투경찰, 길을 가다 검문검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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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

라며 개인 소지품들을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 놓고 사라져 버렸던 경찰 같은 소소하

고 불쾌한 경험이 부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매체를 통해 확인한 용산참사, 쌍용자

동차 사태 그리고 제주해군기지 사태 들에서 볼 수 있듯이, 힘없는 노동자와 소시민

들이 권력에 저항했던 수없이 많은 역사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무자비한 폭력을 자

행하던 경찰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국가가 정해 놓은 기준에 부합한 말 잘 듣는 온순한 시민 만

들기 프로젝트로 등장한 ‘ 근 적 학교’와 언제 폭도로 변할지 모르는 부랑자와 노

동자들로부터 부르주아들의 특권과 부(富)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근 적 경

찰’의 태생적 한계를 생각하면 이런 나쁜 기억들이 정상적인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학교라는 곳에 감금되어 폭력에 의해 ‘ 순응’하는 법을 배우고, 경찰이라는 권력의

억압기구에 ‘ 훈육’당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이 원하는 근 적 주체성을 체득

하며 성장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확인하면서 불쾌감과 배신감을 느꼈던 것 역시 인

지상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폴리 얘기로 돌아가 보자. 철저히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경찰의 근본적 속성인 폭

력성과 억압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민의 안전보장 및 범죄예방 등 현 사회에서

경찰이 갖는 순기능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부분부정을 전체부정으로 치환할 수

없기에 과장과 극단적 논리로 경찰의 긍정적 역할까지 전적으로 부정할 순 없는 것

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부분긍정을 전체긍정으로 치환해도 안 되는 것 아닌가. 어린

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라 하더라도 경찰은 정의의 사도요, 우리들의 영원한 친

구로 그려 놓는 전체긍정 역시 부당하다는 말이다.

폴리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우려는 바로 이 지점이다. 거의 모든 상황의 전지전능

한 해결자로 경찰을 그려 놓은 로보카 폴리를 반복해서 시청한 아이들이 커가면서

과연 경찰을 어떻게 이해할까? 경찰이 진압 중인 분쟁 현장을 어떻게 바라볼까? 폴

리의 지시에 다른 구조 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아이들은

그렇게 ‘ 통제’와 ‘ 관리’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지 않겠는가. 언제나 옳고, 합리적

이고, 희생적인 폴리의 존재는 경찰에 ‘ 순응’하고 ‘ 훈육’되는 것을 정상적인 것으

로 받아들이는 기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존권 등 기본적 인권을 지키기 위해 권력

에 저항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을

바라보며 내 아들은 법질서 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

이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고민은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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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람의 인식은 변한다. 어렸을 때 받아들인 인식의 틀이 평생 가는 것은 아

니다. 하지만 변화의 과정에는 그만한 값 지불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미 가랑

비에 옷 젖듯 기성 교육과 문화에 의해 통제, 관리, 순응, 훈육 들에 길들여졌다면 이

를 극복하는 과정은 그만큼 힘들고 버거운 싸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렸을 적 망태할아버지와 이놈아저씨의 허상에서 해방되는 것과는 차

원이 다른 문제이다. 미신을 끊어내 듯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다. 망태할아버지와 이

놈아저씨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경찰을 앞세운 권력의 마성은 훨씬 크고 광범위하

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한번 자리 잡은 권력에 한 보수성과 노예근성의 망령에

서 벗어나는 건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일 될 것이다.

오해 없길 바란다. 로보카 폴리가 불온한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

다. 거기에 아이들이 소화할 수도 없는 다층적이고 다의적인 가치관을 집어 넣자는

주장도 아니다.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오히려 생산자와 소비자 입장에서 지금 로보

카 폴리가 최선의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이 빠져들 만한 재미가 있고, 부모들

이 자기 자식들에게 보여줄 만한 교육적 요소가 있고, 그리고 이게 돈이 되기 때문에

철저히 시장원리에 따라 제작되었을 것이다. 무슨 숨은 불온한 의도가 있다기보다

는 그냥 자본주의적 척도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있다. 이 같은 자본주의적 원리 역시 이미 국가의 첨병 노릇을 하는 경찰력

에 의해 잘 짜여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달하고 완성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렇

다고 한다면 제작과 방송 과정에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경찰에 한 무한 신

뢰를 보내는 스토리는 그것 자체로 경찰의 폭력성과 억압성을 감추는 것을 넘어서

경찰(과 그 뒤에 숨은 권력)을 미화하는 기능으로 이미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

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별 것 아닌 것을 확 해석하고 호들갑 떠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차라리 그런 거라면 좋겠다. 하지만 폴리를 통해 아이들이 단순히 경찰에 한 믿음

과 우호성을 받아들이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세계관 형성 과정과 실제적 삶 가운

데서 체제에 순응하고 권력에 훈육당하는 길로 내몰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불

편하고 꺼림칙한 마음이 든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폴리 뿐 아니라 지금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권력이 선점한 문화와 사회 현상을 돌아보면 앞선 세 와 우리 세 가 그

랬듯 권력이 원하는 근 적 주체성을 차곡차곡 잘 체질화하며 우리 아이들 역시 이

런 비정상의 정상화, 비상식의 상식화를 물림 받지나 않을까하는 염려가 더욱 깊

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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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5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 이 글을 쓰는 이유, 그래서 무엇을 어찌하자는 것도 아

니고, 그러니 모든 걸 거부하고 차단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로보카 폴리를

보면서 느낀 것을 공유하고 싶었고, 만약 내 의견에 동의한다면 알고나 있자는 것이

고, 알고나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래야 유해한 영향들로 오염된 아이들에게 왜곡된

것을 바로잡고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다른 기회라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정 할게

없다면, 로보카 폴리 더 보고 싶다고 때 쓰는 아이에게 “ 텔레비전 너무 많이 보면 경

찰아저씨가 잡아간다!”라는 말이라도 해서 균형을 잡아줘야 할 판이다. 웃자고 한

얘기지만 이게 더 경찰에 한 진실에 가까운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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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 노트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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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들은 왜 팀블로그를 만들었을까?

나동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한국에서 군사훈련을 거부하고 감옥에 가는 사람은 매년 500명이 넘습니다. 이들

부분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사람들은 병역거부하면 부분 여호와의 증인을 떠

올립니다. 그러나 이들 외에도 다양한 신념에 따라 군 신 감옥을 선택한 사람들

이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가장 많은 양심수를 배출했으나, 좀처럼 그 목소리를 듣

기 힘들었던 집단. 세상은 우리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라고도 부르고 파렴치한

병역기피자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뭐라고 규정하기 이전부터, 세

상에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삼켜야했던 평화의 목소리를.

keyword 1 - 국가폭력<국가폭력과 트라우마>라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연락이 왔다. 조별 발표를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이 주제로 오랜만에 수다를 떨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몇 가지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쌍차, 두 개의 문, 자조모임, 멘붕.

우리가 겪은 가장 직접적인 폭력은 감옥이다. 나는 감옥 생활이 끝난 지 6년도 더

되었다. 물론 감옥이 남긴 후유증은 있다. 내상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패턴으

로 드러나는 외상도 남아 있다. 나는 혼자 있을 때면 특정한 상황, 특정한 분위기에

서 기이한 행동을 하곤 한다.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경험을 자꾸 하다보면 스스로

룰을 만들게 된다. 그 룰 안에서, 그래도 별 일 없이 잘 산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물어야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 왜 자조모임인가? 여기에서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고민을 다시 국가폭력에서부터 시작한다.

국가폭력이 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놓고 때리고 잡아갔

다. 용산참사를 보면 여전히 국가폭력은 극단적 물리적 폭력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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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7

후의 긴 과정 동안 진행되는 폭력의 양상은 한마디로 ‘ 말려 죽이기’라고 할 수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22명의 죽음과 우리들이 느끼는 고립감 사이에서 무언가 공통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국가는 이제 사람들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립시켜 스스로 자

살을 선택하거나 스스로를 유폐시키도록 유도하고 있다. 말할 자유 자체가 주어지

지 않던 독재 시 와 다르다. 충분히 말하고(물론 이마저 여전히 부족하지만) 표현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무관심과 무력감에 시들어 간다. 무력감. 무/력/감. 무서운 단

어다. 발화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단어의 의미가 체현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따라서 외로움과 무력감에 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 문제가 결코 사적으로 감

당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로움과 무력감에도 맥락이 있다. 우

리는 그걸 찾아야 한다. 냉소와 무기력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개

인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키기 위한 언어를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는 자신을 알아야 하고,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알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먼

저 설득해야 한다. 혼자 어쩌지 못했던 문제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

야 하고, 자신감을 얻어야 한다.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keyword 2 - 글쓰기와 읽기무력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발화되지 않는 외로움과 무력감은

출구를 찾지 못한다. 마치 성폭력 피해자 말하기 회가, 말하는 행위 자체가 변화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우리는 상처받은 자의 말로 변화를 시작할 수 있으며

서로를 도울 수 있다. 그래서 자조모임이다. 그런데 자조모임 형식은 왜 글쓰기일까?

우선 병역거부자들은 글을 잘쓰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잘쓰는 사람도 있지만 후

천적으로 잘쓰게 된 사람도 있다. 병역거부자들은 고립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부

정적 효과만이 아니라 긍정적 효과 또한 체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이 수많

은 시간 동안 같은 주제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말을 가다듬으면 어떤 언어가 나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신들은 그 가치를 잘 모르는 듯하다. 부정

적 효과에 가려 좋은 것들이 드러나지 않는다. 깊은 생각과 고민들이 찻잔 속의 태풍

처럼 자기 안에서도 소용돌이치다가 사라진다. 나는 그 좋은 말과 글이 아깝다.

둘째로 글쓰기 그 자체가 가진 사유와 소통을 힘을 믿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병역

거부자들은 수감 전후로 왕성하게 글을 쓴다. 왕성한 소통의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

다. 마음 속에는 새로운 문제의식들이 샘솟는다. 그런데 수감 생활이 지나고 나면 글

을 잘 쓰지 않는다. 글을 쓰지 않는 이유는 더 이상 소통이 필요 없기 때문일까? 소

통이 버겁기 때문일까? 아무튼 그들의 생각을 읽어내기가 힘들다.

병역거부자들은 수감과 함께 존재감이 커지고 수감 생활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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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감이 약해진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나 관계가 과거에 머물고 그 이상으로 진척되

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수감된 사람들 글을 읽으면 사려 깊은 글이 많지만 한

편으로는 상황이 주는 엄숙함 때문인지 글이 너무 착하다는 생각이 들고, 과연 이 문

제의식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 하는 의문도 남게 된 건 아무래도 경험 탓이다.

경험적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고자 다시 지속적인 글쓰기와 소통을 시도하려 한다.

셋째로 글쓰기가 가진 간접 소통의 방식 때문이다. 자조모임은 아마도 많은 병역

거부자들을 포괄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다르다. 우리는 작자와 독자로

도 만날 수 있으며, 글을 매개로 소통할 수 있다. 그러다 잘 된다면 오프모임에도 나

올지 모르고 더 많은 걸 도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욕심 같아서는 이 블로그가 잘

되어서 책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블로

그를 홍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조회수도 은근히 지켜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쓰고 읽고 소통하는 과정 자체를 참여하는 사람들이 즐겼으면 좋겠다.

넷째로 병역거부자는 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들은 21세기형 양심

수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양심수들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때로는 찌질해 보

이기도 하고, 멘붕도 너무 자주 온다. 이들은 자주 약하다. 의를 위해 헌신하는 신

념의 강자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약하고 착한 인간들이 왜 양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쪽수를 차지하게 되

었을까? 시 적 특수성이 있다. 그리고 약한 인간들이기에 역설적으로 이들만이 가

능했던 용기가 있다. 다시 그 연약함을 통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

keyword 3 - 돌본다는 것누군가를 돌본다는 것. 정말 힘들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병역거부를 하고 가장 고

통스러웠던 고민은 내가 남자(몸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자기중심적이

고 들을 줄 모르고, 남을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돌볼 줄 모르는. 그리하여

누군가의 감정에 기 지 않고는 혼자 잘 살지 못하는. 남성성에 한 고민은 결국 자

신을 부정하게 만들었고, 한 동안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닌 내가 되는 데에 모든 에너

지를 쏟았다. 저절로 단절의 계기를 만들어 준 감옥이 더 마음 편했고 밖에서 사람들

과 부 끼던 그 시간들, 그래서 내 찌질함의 바닥을 여과 없이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들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병역거부 운동 안에도 지속적으로 성별분업에 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주위의

관심은 온통 남성 병역거부자에게 맞춰지고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은 병역거부자를

돕는 보조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자조모임은 이 모든 자기

성찰 끝에 나온 시도이기도 하다. 남성들끼리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을까?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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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9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친구에게 한국사회 최초로 남성들의 자조모임을 한다고 말했다. 재밌겠다 그러면

서도 씁쓸해했다. 여성인 자기가 병역거부자들을 돌보았다면 돌봄 행위 외에 활동

으로서는 어떤 의미 부여도 되지 않았을 거라면서. 순간 또 한 번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남성이기에 그 자체로 의미 부여를 받으며 살아온 순간들이 너무나 많을 터.

이제 나는 이 이중의 딜레마 속에서도 우리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끊임없

이 다른 존재로 이행하며 살아가려는 노력을 시작하려 한다. 외롭고 힘든 세상, 우리

는 우리 자신을 돌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

병역거부자 팀블로그 Peace+Trouble Maker 로 놀러 오세요.

병역거부자들의 삶과 고민이 묻어나는 다양한 글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withoutwar.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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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 노트 Essay

10

나는 수감생활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고 사람들한테 늘 말했다. 정말이다. 학교

가, 회사가 감옥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감옥 밖 세상보다 감옥이 크게 더 힘들게 뭐

가 있겠나. 맘씨 착한 교도관이나 교도소장 만나면, 나쁜 교장이 있는 학교나 못된

사장이 있는 회사보다 더 나을 때도 있다.

감옥이 힘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던 건, 가장 수치스러웠던 기억은 나도 몰래 지

우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아무 곳에도 말하지 않았던 그 기억을 말하려고

한다.

2006년 8월 17일, 나는 부천지법에서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바로 법정구속 됐

다. 재판받으러 나온 재소자들, 나처럼 법정 구속된 사람들과 함께 인천구치소로 갔

다. 이미 감옥 살다 나온 병역거부자들에게 감옥에 해 여러 번 듣고 몸과 마음의

준비를 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감이 크게 두렵진 않았다. 구체적인 거는 겪어봐야

알겠지만, 감옥 안에서 교도관들과 부딪혔을 때, 혹은 같은 방 재소자들과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도 나름 정리했다.

헌데 이런 준비나 생각들은 그야말로 머릿속 생각이었다. 인천구치소에 들어가자

마자 내 매뉴얼이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 생겼다. 구치소에 입소하기 위해 내가 가지

고 있던 옷과 신발들을 영치시키고, 간단한 서류 같은 걸 적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리고 미결수들이 입는 똥색 관복으로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교도관이 옷을 벗으라

고 했다. 나는 못 알아들었다. 말뜻을 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 그 말이 나한테 한 말

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나는 다시 한 번 물었고 교도관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할 수 없이 옷을 벗었다. 이번에는 속옷을 벗으라고 했다. 나는 당혹

스러웠다. 어느 병역거부자한테도 이런 상황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었

용석 병역거부자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내 수감 시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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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1

다. 나는 저항했다. 속옷을 벗지 않겠다고 했다. 이건 인권침해라고 했다. 교도관은,

조금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럼 인권위에 인권침해 당했다고 진정해. 지금은 속옷

벗고 검신 받고 나서.” 라고 말했다. 인권침해를 강하게 주장하면 교도관이 한 발짝

물러설 줄 알았는데 웬걸 더 당당하게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그만 기가 죽었고, 속

옷까지 벗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끔찍하게 수치스러웠다. 내가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한 게 수치

스러웠고, 알몸 검신을 당했다는 게 너무나 창피하고 분하고 수치스러웠다. 그 교도

관 얼굴이며 말투 하나하나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출소하고 나면 인천교도

소 가서 그 사람 이름 알아내서 고발이라도 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창피해서 누구한

테 그동안 말도 못했다. 내 뒤로 병역거부로 수감되는 친구들한테도 이런 일을 겪을

수도 있으니 이럴 땐 이렇게 처해라, 이런 말도 못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지우고 지냈던 그 기억이 떠오른 건 지금 구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어느 병역거부자 이야기를 듣고서다. 그 병역거부자는 가족접견을

하는데 알몸 검신을 당했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다 상상이 된다.

속옷을 벗으라는 교도관 지시에 병역거부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항의했겠

지. 교도관들은 아무 문제의식도 못 느끼고 얘가 왜 이렇게 별것도 아닌 거에 까칠하

게 구나 하는 표정으로 거듭 옷을 벗으라고 했을 거고. 병역거부자는 면회하러 온 가

족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갈등했을 거다. ‘알몸 검신은 인권침해인데, 근데 여

기서 내가 계속 싸우면 가족들은 면회를 못하고 돌아갈 수도 있고, 그럼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고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실 거야.’ 결국, 알몸 검신에 응하고 가

족 접견을 마친 뒤 병역거부자는 인권위에 진정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이 후회했다. 그날, 2006년 8월 17일, 인천구치소로 들어가

던 첫날, 알몸 검신을 거부하고 끝까지 싸웠다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을 텐

데. 아니, 내가 출소한 뒤에라도 수감을 앞둔 병역거부자들한테 이 이야기를 했다면

좀 더 비를 하고 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이 일이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

니지만, 내가 혹은 내 앞에 누군가가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제 로 싸웠다면 다시 일

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구구치소에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구치소는 놀

랍게도 병역거부자가 인권위에 진정을 낸 날, 소장이 병역거부자를 불러 인권위에

진정한 거에 해 불편한 감정을 표시했다고 한다. 인권위 조사가 있고나서 이틀 뒤

구치소 관용부 계장이 인권위에 진정한 것을 취소하라고 권유하면서 앞으로 알몸검

신은 없을 거라고 했다. 병역거부자는 약속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했지만,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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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 그것은 할 수 없다고 했단다. 3일 뒤 구치소 가족접견이 있었다. 병역거부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날도 유사 알몸 검신이 있었다고 한다. 옷을 다 벗기지는 않고

교도관이 속옷을 들춰 들여다보는 것으로 확인을 했다는 것이다.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에게 수치심을 주려고 나쁜 마음으로 그러지는 않았을 거다.

그냥 늘 하던 로 아무 생각 없이 그랬겠지. 그게 더 나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

무 생각 없이 때로는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나쁜 행동을 하는 건 용납될 수 없다. 나

쁜 마음이든 아니든,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주 오래가는 큰 상처로

남는다. 평소에는 그 상처를 애써 묻어두고 지우고 살겠지만, 그건 완벽하게 지워지

지 않는다, 마치 잊고 지내던 내 기억이 이번 일을 계기로 살아난 것처럼 말이다.

이제 나도 수치스러웠던 기억에서 벗어나야겠다. 그때는 입소 첫날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당했지만, 그때 못한 싸움을 이제라도 해야겠다. 구구치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널리 알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나 같은 수치심을 어느 누구도

느끼게 하지 않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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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3

평화주의자 노트 Essay

모두의 땅 두물머리

김디온 두물머리 외부세력

4 강사업 마지막 저항지 두물머리에서 보낸 요 얼마간의 나의 일상에 해 말하

자면 이렇다. 자전거를 타고 아침에 출근 전, 혹은 저녁에 퇴근 후 두물머리에 간다.

두물머리에 가면 일단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고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두물머리 3

년차, 나는 요즘 ‘생각버리기 연습’ 같은 자기계발서 등을 보면서 마음 훈련을 하

는 중이다. 첫 해와 둘째 해에 죽어라고 농사일을 열심히 했었는데, 한 농부님께서

“너는 농사 짓지 말고, 공부해라.” 해서 그런지 농사가 점점 게을러지고 있다. 한

동안은 어떤 예술적인 마을 디자인 같은 것들을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두물머리 밭

전위원회를 구성하느라 지난 두 달간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사람들을 맞이했더랬다.

이제 비었던 들녘은 주말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고추, 상추, 옥수수, 콩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작년에 두물머리 인근으로 친구들과 함께 이사를 와서 살다가 올초에

는 어머니를 모시고 두물머리에서 더 가까운 지점으로 이사를 온 바람에 이제는 지

역주민이라고 스스로 소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외부세력은 나가라니, 또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외부세력이라는 말이 이제 별로 싫지 않다. 올 봄부터 밭전위원회라는 이름

의, 불복종 경작단을 구성하면서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매주 공무원들과 실랑이를

한 끝에 여름이 된 지금은 떠난 농부들의 비었던 밭이 주말마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

로 북적이고 고추, 상추, 옥수수, 콩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간 주말마다 사람들

은 모여서 원두막도 짓고, 염소도 기르고 음식을 나눠먹던 정이 크다. 그냥 이 로만

두어도 천국이 따로 없을 듯한 풍경, 외부에서 온 사람들. 나는 이것들이 추방되지

않기를 마음으로 빌며 날마다 두물머리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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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투가 시작되었다. 4 강사업 한강살리기 1공구 두물머리 지구에 한

사업권이 경기도에서 국토부로 반납되면서 곧바로 계고장이 날아들었다. 여섯 번

째. 농부들의 지장물들에 한 자진철거를 요청하는 마지막 계고장이었다. 그리고

자진철거 마지막 시일이었던 7월 18일, 농부들은 이곳에 온 수많은 ‘외부세력’들

과 함께 자진철거를 거부했다. 몇일 후 행정 집행 영장을 받았다. 두물머리 동네에

플래카드가 붙기 시작했다. 면사무소에서, 양평군에서, 지역 유지들과 주민들 일부

를 선동하여 4 강사업 찬성 분위기를 만들면서 여기 저기 험악한 플래카드들이 내

걸리기 시작했다. 외부세력은 물러가라고, 외지인농도 물러가라고.

익숙하다. 우리보고 외지인이라고 큰 소리로 꾸짖으며, 우리 땅에서 나가라고 하

는 주민들 말이다. 그래서 한동안 외부세력이라는 이름표에 해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2006년 추리에서 미군기지확장반 싸움을 할 때에는 우리는 스스로

를 ‘지킴이’라고 불렀었다. 동네 한 아저씨는 그런 우리를 ‘개털들’이라고 불

렀는데 당시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들에서 우리를 부르는 말이 ‘외부세력’이었

다. 그때는 외부세력이란 호칭이 한편으로는 원망스럽기도 하고, 내가 주민이 아니

라는 신분적 한계를 인정해야한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면서 상당히 혼란스러웠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떤 공간이 어떻게 소유될 수 있는가? 해도 달도 물도 그렇지

만 땅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인지, 요즘은 생각의 방향이 그리로 간다.

두물머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것도 실은 땅이 소유격조사 ‘~의’를 쓸 수 있는 상인가를 묻는 행위일 수 있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두물머리가 아니라, 두물머리에 유기농업의 가치가 살아있게

하자는 것이고 두물머리에 한 사업권을 공공이 판단해야한다는 선언이다. 현수막

을 내건 사람들, 공무원들은 두물머리 땅이 정부의 것이거나 현지인 혹은 토착민의

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땅은 소유될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어떤 욕망

의 흐름에 의해 점유되는 것일 뿐이다.

하여, 두물머리의 수많은 외부세력들은 오늘도 두물머리 하천부지라는 공유지에

해서 공공으로 점유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활동들을 해왔다. 하천부지 공유지

를 몇몇 기업의 손에 떡고물처럼 얹어주는 행태에 반 해 제발 공공의 이익을 위

한 공간으로 쓰라고. 그러니까 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강제철거니 행정 집행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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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5

말들이 쏟아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올해 들어 어떤 예술적인 마을 디자인 같은 것

들을 혼자 생각하기도 했던 것이다. 게다가 4 강 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 세금낭

비, 인력 손실... 이런 건 그만 이야기해도 될 것이다.

요즘 그 두물머리 길을 수많은 공무원들이, 서울지방국토관리청 하천국장, 관리청

장, 소방 원, 경찰들 할 것 없이 걷고 있다. 이들은 농민들을 방문하여 행정 집행

을 통보(자기들은 협상과 설득을 시도했다고 할 그런 종류의 말들)하고 있다. 두물

머리에 핸 행정 집행이 곧, 아마 이 원고가 세상에 알려질 때쯤엔 결론이 났을지

도 모른다. 8월 6일 새벽6시. 공권력 1000여명과 용역 몇 백명, 포크레인. 그날, 나

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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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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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미 전쟁없는세상 비폭력&평화교육팀

지난 3월 WRI의 안드레아스 스펙과 함께한 무브먼트 빌딩 워크샵은 비폭력트레

이너의 양성과 평화교육에 한 구성원들의 욕구를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병

역거부 운동은 체복무제 도입만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군사주의에 한 저항 등

반전평화운동까지 포괄한다. 병역거부는 평화적 신념이자 전쟁에 저항하는 행위로,

어떠한 권력도 시민들의 협조와 동의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시

민들이 협조를 거부할 때 현 권력시스템은 무너지거나 개선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비폭력&평화교육팀의 문제인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비폭력&평화

교육팀은 오리, 아침, 가람, 지선, 조은, 지우, 덴마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해, 비폭

력트레이닝과 평화교육자의 양성을 통해 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

로 두고 있다.

비폭력트레이너네트워크와 핸드북 발간

비폭력트레이닝의 첫 모임에는 서른 명에 가까운 활동가들이 모였다. 무엇이 이

들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비폭력이란 것은 식상하게도 혹은 낯선 것으로 느

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전쟁 반 운동, 2006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 운동,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 운동, 그리고 오늘도 계속되고 있

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 운동까지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은 비폭력적인 방

식으로 다채롭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진화해 오면서 언제나 우리의 관심사 언저리에

비폭력&평화교육팀비폭력적인 사회로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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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7

위치해 왔다.

활동가를 상으로 진행하는 비폭력트레이닝은 다섯 달에 걸쳐 총 5회의 워크샵

을 열며, 오는 10월 초에는 2박3일의 일정으로 ‘비폭력트레이닝 지도자 교육과

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일방적인 강의 형식이 아닌 모두가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형태로 진행하며 강정마을 활동가, 녹색연합, 동인련 등 30여명의 활동가들이 꾸준

히 참여하고 있다. 특히 비폭력트레이닝이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펀드를

받게 되면서 효과적인 트레이닝을 위한 모든 준비가 가능하게 됐다. 비폭력 직접행

동을 위한 핸드북은 번역을 통해 곧 발간할 예정이다. 핸드북과 트레이닝을 통해 비

폭력은 도덕적, 정치적으로 옳다는 부분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운동에서 효과적이기

때문에 사용(수단적 비폭력)한다는 점을 공유하려 한다.

평화교육자 양성을 위한 세미나

한국 사회에서 군사문화는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그 존재를 의식하지 못

하기도 한다. 학교에서의 체벌 역시 군사문화의 연장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벌

이 학생인권문제로서 다뤄진 지 조차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다. 일상에 녹아 든 군사

문화를 의심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평화교육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한국에

서의 평화교육은 비폭력평화물결,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푸름, 인권교

육을 위한 교사모임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없는세상에서 평화교육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평화교육 세미나를 통해 이에 한 답을 구하고자 한다.

올해는 평화에 한 기본을 다지는 시기로 설정했다.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진행

된 평화교육에 해 정리하고, 갈퉁을 비롯한 평화이론을 학습한다. 또한 외국에서

의 평화교육 사례를 정리해봄으로써 평화교육의 방향을 설정할 때 도움이 될 수 있

을 것으로 기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평화교육이 가능한 사람을 양성하고, 청소년

및 청년을 상으로 한 평화교육을 통해 평화적으로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신장시키며 이를 통해 비폭력적인 사회로의 변화를 모색하려 한다.

사회의 변화는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과 오랜 준비라는

긴 여정이 필요하다.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비폭력트레이너와 평화교육자

의 양성은 평화운동 저변의 확 를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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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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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저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이자 학교 공간에서 생업을 유지하고 있는 교사입니

다. 그래서 학교교육과 군사주의에 한 어떤 이론이나 지식보다는 제 삶을 여러분

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군사주의’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학교 공간의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일상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고민들을 꺼내려

고 합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간과 일상의 풍경 들여다보기

1968년 ‘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된 이후 확고하게 정착된 학교 규율은 2012년이

지나도 정말이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은 변해도 학교만은 달라지지 않는구

나 생각하며 오늘도 박선생은 출근한다. 교문에는 교감들이 나와서 학생들에게 달

리기를 하고 교실로 들어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담임교사들도 운동장에 나와

서 학생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라고 지난번 학년회의에서 전달받은 바 있어 박선생

도 운동장으로 갈 것인지 교실로 갈 것인지 잠시 갈등한다. 하지만, 평소 달리기를

좋아하는 박선생이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을 달리게 된다면, 다른 교사들에게는 교

장의 말을 잘 따른다는 인상을 주게 될 것이며 무보수로 시간 외 업무를 하는 것이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학교 교육이 가능할까?

지선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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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9

된다. 무엇보다 교실에는 지금 학생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교실로 들어가는 쪽을 선택한다.

교실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와서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고 있고, 학생들과 인사

를 나눈 박선생은 컴퓨터를 켠다. 메신저로 그날 하루, 교무실로부터 학교의 행사

나 일정, 학생들에게 전달되어야 할 일들이 담긴 교무통신이 전해진다. 이 학교로

발령받아 수업을 시작하던 첫날, 박선생은 부장교사로부터 교무통신을 제 로 확

인하지 않는다고 충고를 들었다. 교무통신으로 전달사항을 잘 받고 이행해야만 학

교가 잘 돌아가는데 교무통신을 보지 않아 일정을 모르니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컴퓨터를 한참 들여다보면서 간간이 말을 걸어오는 학생들의 질문에 응 를 해

주고 있노라면 어느덧 8시 40분, 학교 일과를 시작할 시간이다. 오늘은 월요일! 교

장의 훈화가 있는 아침조회가 방송으로 시작한다. 박선생이 신규발령을 받았던, 이

전 학교에서는 월요일마다 운동장으로 나가는 일이 많았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서

서 30분동안 애국조회를 진행하였는데, 국기에 한 경례, 애국가제창, 순국선열에

한 묵념, 시상, 훈화로 이어지는 식이다. 해가 갈 수 록 운동장에 나가는 일은 줄

어들고 있지만 방식이 TV방송으로 체되었을 뿐, 그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 중요한’ 방송 중에는 교사도 책상 앞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의 중앙에 서서

학생들을 관리하도록 요구받는 일도 종종 있는 일이다.

국기에 한 경례를 하기 위해 학생들이 일어선다. 박선생도 학생들과 함께 일어

설 지 말 지 고민하다가 앉아 있다. 학생들에게 교사인 자신은 왜 국기에 한 경례

를 하지 않는지, 이 행위에 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함께 토론하고 생

각을 나누고 싶지만, 원치 않는 오해가 생기고 학부모에게 민원이 들어올 것이 겁

이 나 입을 다물어버린다. 주류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다른 생각을 표현

하는 일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특히 학교에서는 더욱이.

학교 특색 사업인 아침 건강달리기를 날마다 하지 않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고,

학생은 쓸모있는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는 것이 오늘 교장 훈화의 주요 요지다. 학

생들은 열심히 듣는 듯하다 이내 지친 눈이 되어 다른 책을 펴 보기도, 그림을 그리

기도 한다.

지루한 방송이 끝나고, 1교시가 시작되었는데 종이 울리지 않는다. 학교 일과의

시작과 끝은 종소리와 함께 하고 그 종소리가 있어야 교사가 학생들을 통제하기가

수월한데……. 큰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 방송기기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은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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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업무 메신저에는 시종을 빨리 고쳐달라는 교사들의 불편 메시지가 쏟아진

다. 2교시는 영어수업이다. 이 수업은 담임인 박선생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교과

교사와 원어민 교사가 담당하는 수업이라 영어교과 교실에서 이루어진다. 학생들

이 수업을 빠지지 않고 잘 가는지, 또 가는 길에 혹여 사고는 발생하지 않을지 염

려가 되는 박선생은 학생들을 영어실까지 배웅을 드리는데, 교실 이동을 위해 학생

들이 줄을 지어 서도록 한다. 줄을 서는 방식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 한 줄이다. 때

로는 번호순이나 선착순으로 줄을 세우기도 한다. 왜 남자와 여자가 따로 줄을 서

야 하는지, 학교에서는 왜 학생들에게 번호를 매기는지 박선생에게 늘 의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줄을 서는 방식 또한 교사가 훈련시킬 것을 선배교사들로부터

배운 박선생은 편리하니까, 라고 생각하며 의문들을 지운다. 실제로 곧 있을 운동

회에서 전교의 다른 모든 반이 생물학적 성을 기준으로 여와 남을 나누어 줄을 서

도록 하여 체조를 할 텐데, 박선생이 담임인 학급만 여남의 구분없이 줄을 서도록

한다면, 혹은 줄을 서지 않고 체조를 하게 된다면, 혹은 체조를 따라하지 않는다면,

그날 모인 수많은 학부모들과 관리자들과 다른 교사들의 눈총을 받거나 구설수에

오를 일이다. 교사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을 지도 모른다. 줄을 반듯하게 서고, 교사

의 명령을 잘 이행하는 학생이 모범적인 학생이라고 칭송받는 공간이 바로 학교니

까. 그나마 새로 발령받은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부채춤이나 매스게임을 훈련

시켜서 운동회 때 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푹 나온다.

영어수업에서 돌아온 학생들은 3,4교시에 있는 포스터 그리기 및 글짓기 회에

참여한다. 학생들은 포스터그리기와 글짓기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행사에 참가할

수 있다. 이번 회의 주제는 ‘ 안보’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 선생님!

안보가 뭐예요?”“ 어떻게 해요?” 지난달 회의 주제는 ‘ 청렴’이어서 얼마나 진

땀을 뺐는지 모르는데. 이번 회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회가 끝나갈 무렵,

방송으로 교무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교실에 있는 선생님들께 알립니다. 지

금 운동장에는 반공애국협회에서 북한 관련 전시회를 하고 있으니 5,6교시에 학생

들을 인솔하여 학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제 로 된 수업을 하기는 틀렸구나 싶다. 수업을 안 하면 수업에 참여시

키기 위해 학생들과 다툴 일이 적어 좋지만, 이런 날은 박선생에게는 우울한 날이

다. 교육청에서 명령 복종의 의무를 선서하면서 임용장을 받을 때 예감은 했지만,

오늘은 새삼스레 자신이 국가의 충실한 종복임을, 그리고 이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무력감에 빠진다. 오후에는 교총과 교ㅈ과부가 MOU를 맺은 ‘ 안보

교육’을 이수하고 온 교장이 교무회의에서 그 내용을 전달 연수하겠다고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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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21

온 것을 떠올리니 더욱 더…….(위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가상적인 하루

입니다.)

그리고 또 고민, 고민, 고민들

‘ 평화와 반군사주의, 인권’이 어느새 제 삶의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학교 공간

에서 이를 실천해봐야겠다 고민했지용~ 여러가지 시도를 한 것들 중에 특히 꾸준

히 하면서 새로운 고민을 선물해준 활동은 ‘ 평화책 함께 읽기’ 활동이었지용~ 학생

들과 함께 ‘ 평화’와 ‘ 반군사주의’에 한 고민이 담긴 책을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누

는 훌륭한 활동입니다용.

아니 그런데 한 학기 동안 책을 읽고 나니 뜻하지 않

는 변화가 생겼지 뭐예요잉. 평화에 해서 열심히 제 이

야기를 들어 준(아마도?) 학생들이 전쟁이 싫다면서 무

기랑 탱크를 열심히 그리지 뭐예용.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 저는 극약처방으로 학생들에게 <무기 팔지 마세

요!> 라는 책을 권해 주었지용. 그 책은 한 장만 읽어도

학생들이 무기 그리는 것을 멈추게 되는 엄청난 마법책

이지용.

일단 급한 불은 껐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진실로 드

는 고민은, ‘ 학교’에서 ‘ 교사’가 하는 반군사주의 교육

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예용. 교사가 평화를 말하든, 안보

를 말하든, 무엇을 말하든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인 입장에 계셔용. 이 분들

은 제가 무엇을 말하든 스스로 선택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거부감이 가

지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용. 그래서 ‘ 교사’에게 저항하는 방식으로 무기를 그린 것

이 아닐까? 그렇다면 ‘ 교사’가 ‘ 평화와 반군사주의’를 말하는 건 너무나도 공간

적 사회적 맥락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지용. 학교라는 그 상명

하달, 수직적 위계적 공간에서 교사라는 국가폭력의 단말기가 평화에 접속을 시도

하도록 학생들에게 신호를 보낸다고 한들 오히려 그건 평화에 한 불신만 키워주

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 말이에용.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저는 앞으로의 2학기가, 앞으로 교사로서의 인생이 참 걱

정이네용. 이번 전없세 소식지를 쓰게 되면서 이 공간에서 내 의미가 무엇인지, 교

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새삼스러 덜컥 돌아보게 만들어서 막

Page 24: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4호(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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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해지네용. 여러분들의 조언을 기다립니당. 도와주세용 ㅠㅠ

나가며

하면 할수록,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 의심이 듭니다. 그리고 이 의심은 자아

비판과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져 늘 제 삶을 위협해 왔습니다. 교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어느 직업인들, 어

떤 활동인들 쉬운 일은 없겠지만요. 학교 공간에서 영혼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 가능’한 일인지 고민입니다.

※참고하세요 :)

1960년부터 1990년대까지의 학교 교육 안의 군사주의가 궁금하신 분들은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20호(2008.2.18.발행)의 ‘기획기사: 군사주의 학교교육의 탄생’을 보시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아실 수 있습니다.

http://www.withoutwar.org/bbs/skin/ggambo7002_boardgallery/print.php?id=www_letter&no=337

Page 25: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4호(2012년 7월)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가지만, 왜 군대에 가는지에 대해서 깊이있는 고민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병역거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본인이 가게될 ‘군대’라는 공간에

대해, ‘군인’이라는 역할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라고, 또 병역거부

에 대한 사전지식과 병역거부를 하게되면 겪게될 절차에 대해 미리 알고 고민하는 과

정에서 <병역거부 가이드북>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병역거부 가이드북>은 2004년에 한번 발간된 적이 있는데요, 그동안 시간이 흐르

면서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 정책적인 변화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병역거부자는 감옥에 가야하 것이 현실이지만, 그동안 변화의 흐름과 병역거부운동이

쌓아온 노하우를 담아서 새롭게 <병역거부 가이드북>을 발간하고자 합니다.

<병역거부 가이드북>은 소책자의 형태로 만들어서 널리 배포할 예정입니다. 소책자

제작비용 50만 원을 소셜펀치로 모금하고 있습니다.

아래 주소로 들어가셔서 <병역거부 가이드북> 제작비용 모금에 동참해 주세요.

http://www.socialfunch.org/cobook

Page 26: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4호(2012년 7월)

기획기사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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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참관한 고등학교 인문학 특강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 화장실 가

는데 손들고 허락 받고 가는 곳은 세상에 학교와 군 딱 두 곳 밖에 없어요.”“ 오~

박!”을 외치는 학생들 가운데 한 명이 묻는다. “ 학교에서도 허락 안 받아요?”

혼자 조용히 기억을 떠올려본다. 당연히 안 받는다. 물어보면 오히려 이상하다. 혹은

수업 흐름에 방해된다는 까칠한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초,중,고등

학교에서는 당연히 물어보고 허락을 받는다. 내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조금 더 곰곰이 생각을 해 본다. 정말 군 와 학교 말고는 없나? 적어도 내가 이제

껏 살아오면서 겪었던 공간들 중에서는 군 와 학교가 유일하다는 사실(물론 군

는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은 곧 아릿한 아픔이 되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라고 생각했던, 일제 순사가 칼을 차고 교실에 들어

왔다는 시절의 학교는, 시절을 역행하며 여전히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직도 다수의 학생들은 허락을 받고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허락된 시간에만 쉬

고, 두발과 복장을 단속당하고, 서열을 맞춰 조회를 하고, 정해진 공부만을 강요당한

다.

청소년의 교육과 군사화는 다른 나라에서도 문제가 많은 모양이다. 2012년 6

월 8일,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4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작은 도시 다름슈타트

Darmstadt에는 청소년의 군사화와 교육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17개국1 사람

1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네덜란드, 독일, 마케도니아, 미국, 베네수엘라, 스웨덴, 스위스, 영국,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칠레, 캐나다, 콜롬비아, 핀란드, 한국

청소년의 군사화에 저항하는 교육

가람 전쟁없는세상 비폭력&평화교육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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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25

들이 모여들었다. ‘‘ 청소년의 군사화에

항하기 Countering the Militarization of

Youth conference’라는 제목으로 3일 간

열린 이 회의는 각 국가에서 진행되는 청

소년의 군사화 교육이 심각하다는 문제의

식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주제로 기획된 첫

회의였기 때문에, 부분의 시간은 참가자

들이 각자가 자기 나라에서 군사화 교육이

진행되는 상황을 공유하는 데 할애되었다.

국가별 상황은 크게 두 줄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청소년을 상으로

신병모집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들의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문화적 접근을 통해 확

산되는 일상 속의 군사주의의 문제이다.

신병모집의 경우에는 직업소개소를 통한 모집도 있

지만 일상적으로는 모병관이 학교에 직접 방문해서 군

를 ‘ 홍보’하 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70여 년 동안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은 일반적으로 신병모집

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

리기도 하지만, 각종 군사학교들의 경우 학교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꼭 그

렇지만은 않다.

그뿐만 아니라 2010년에 성신여 와 숙명여 에 최

초로 ROTC가 창설된 것을 기점으로 전국 110개 학군

단에서 여성 ROTC를 선발하기 시작하며 여성장교를 뽑는 홍보가 확 되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 청소년에게 ‘ 군 를 파는’ 행위는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

다. 또한 이는 모집, 징병 상을 남성에서 여성, LGBTQ(레즈비언, 게이,바이섹슈

얼, 트랜스젠더, 퀴어)로 확 시켜나가며 이를 “ 모두에게 평등하고 개방적인 군

Open army for Everyone2” 의 이미지 만들기에 적극 이용하는 국제적 추세와도 무

관하지 않아 보인다. 더불어 주로 시민권Green card을 미끼로 저소득 이민자계층을

모병하는 미국이나, 장학금 및 자기발전 기회 등의 각종 혜택을 미끼로 지원을 장려

하는 영국, 독일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나, 옆의 포스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학

2 물론 실상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억압적인 군대”로 억압의 대상이 확장되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억압의 평등이라고나 할까.

Page 28: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4호(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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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지원 및 취업 혜택 등을 강조하며 홍보하는 한국이나, 실질적 특혜를 제공하며 군

를 미화하고 지원을 장려하는 전략은 매 한가지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군 들이 신병모집을 위해 택하는 홍보 전략은 회의에서 지적된 두 번째 흐름인

‘ 문화적 접근을 통한 군사주의’와도 연결된다. 공공장소에서 일상적으로 군 의

이미지가 노출되는 것은 특정 국가만의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인식 범위에 미처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잡지, 포스터, TV, 영화, 비디오

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비롯하여 에어쇼, 퍼레이드, 가두행진 등 각종 기념일의 군사

행사를 통한 자연스러운 군사문화 노출은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3 영국의

령 데이비드 알프리David Allfrey는 “ 7세 소년이 에어쇼에서 공수부 의 고공낙

하 시범을 보며 ‘ 와, 멋진데!’라고 생각하게 하면 성공이다.”라고 깔끔하게 정리한

다. 특히 독일의 경우 2011년 징병제가 중단된 이후 이런 방식의 노출 광고가 급증

했다고 독일 활동가들은 입을 모았다.

회의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었던 중요한 사실은, 군 가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군

사주의 문화를 확장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들이 모든 국가에서 비슷하게 드러난

다는 점이었다. 공포의 조장, 안전 안보 논리, 타자화를 통한 적 만들기, 국가에 한

자부심과 애국심 강조, 장학금이나 연금 혹은 시민권 등의 각종 특혜, 직업으로서 유

용성, 남성다움과 일등국민 혹은 남성에 못지않은 여성(LGBTQ)으로써 자신을 증

명하기 위한 수단, 진짜 남자(사람) 되기 등 한국 상황에서도 익숙한 전략들이다.

이 문제에 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모든 ‘ 자연스러움, 익숙함’을 ‘ 이상

함, 불편함’으로 만들어야 한다. 끝없는 무장 강화와 군비경쟁을 통한 ‘ 평화와 안

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군 가 말하는 ‘ 평화와 안보’는 무엇인가? ‘ 적

군 아군’의 이분법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 국제 안보(Global Security)’라는

것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군 에서 제공하는 각종 특혜는 나의 무엇을 희생하

는 가로 주어지는 것인가?

그리고 이것은 청소년들이 내 일상 속의 군사주의에서부터 민감해지고 스스로 의

문을 가지며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가능해 질 것이다. 복장검사 및 두발 규

제가 강요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어른의 말씀은 무조건 잘 들어야만 하는 것인

가? 화장실을 허락받고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잘못했으면 맞아야 하는 것인가?

나에게 지금 무엇이 어떤 이름으로 강요되고 있는가?

3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전두환씨가 육군사관학교에 방문한 일명 ‘전두환 사열’이 언론을 달구었던 일이 문득 생각난다. 그나마 방문한 이가 ‘전두환’이었기에 역사적 맥락이 작용하여 언론의 조명을 받고 논란거리가 되었지만, 만약 일반 정치인이 군대를 방문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이상하다’고 의식할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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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27

교사양성 교과과정에 ‘ 평화’를 삽입하고, 청소년, 학생,교사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교사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평화교육을 위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개

발하고 제공하려는 공동의 노력이 2012년 6월 다름슈타트에서 첫 발을 내딛었다.

군인 없는 학교, 군사주의 없는 학교, 더 나아가 군사주의 없는 사회military-free

society를 위해 ?청소년의 군사화에 항하기? 2차 회의가 열리는 그 날까지 우리

는 한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행에 옮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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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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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2012 강정마을 생명평화활동가 회에다녀와서

5월 마지막주 일정은 모조리 비워두었다. 마지막주에 5박 6일 동안 진행되는 교

육을 받기 위해서다. 나름 강의를 업으로 삼고 있는지라 지속해서 나를 채우는 작업

을 할 필요가 있다. 강사의 역할을 벗어나 교육생의 역할을 하는 것은 휴식을 주기도

한다. 강의는 보통 봄과 가을에 집중되어있다. 하루 2개의 강의를 소화해야하는 날

이 많은 달이 5월이기도 하다. 그래서 5월에 교육을 받기 위해 꽤나 많은 아까운 자

리들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명평화활동가 회를 한단다. 늘 행사 내지 강의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던 평화활동가 회를 강정에서 한다니……. 뒤의 일정이라

도 결합하는 것은 몸을 혹사하는 것은 아닌지 망설이고 있는데 연락이 온다. 주민통

합 세션에 참가해달란다. 안 그래도 국책사업이 있는 마을들이 주민간 갈등으로 오

랫동안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아 내가 배운 것으로 도움을 주고픈 마음이 있었

기 때문에 바로 수락을 했다. 그리고 진행까지 제안을 받고 일하는 곳에서도 지원을

받아 찾아갈 마음을 굳혔지만 막상 5박6일의 일정 중에서 3박4일만에 나온다는 건

꽤나 아쉬운 일이었다. 돌아와서 바로 다음날 제주로 향했다.

늦어진 일정으로 주민들과의 간담회

시간이 폭 줄어들었지만 굉장히 인상

적이었다. 강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들

의 추억의 공간과 시집와서 외롭고 힘든

시간에 찾아가 위로를 받은 공간들 모두

우리가 절절하게 그리워하고 지키고 싶

어하는 구럼비이고 강정천이고 강정마

을 곳곳의 자연들이다. 그리고 강정민속

Page 31: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4호(2012년 7월)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29

보존회 회장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강정마을은 워낙에 마을 단위 자치조직이 활

성화 된 곳이라고 한다. 현재 제주도 내에서 젊은이들의 인구가 가장 많다. 이것은

마을 안에서 일자리가 있고 농사와 어업 활동을 통해 먹고 살만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화순과 위미 지역에 해군기지를 지으려는 시도가 해녀들에 의해 무산이 되

자 상 적으로 연령 가 높은 강정마을 해녀들을 매수했고 해녀들과 전 마을 회

장 등 몇몇이 주축이 되어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다고 한다. 해녀들 등살에 기죽

어 살던 마을의 다른 여성들이 재투표를 요구하고 해녀들이 투표함을 가져가는 등

의 방해에 맞서면서 자신들의 힘을 의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마을은 찬반으

로 나뉘고 반 쪽이 마을회장, 청년회장, 민속보존회장, 부녀회장, 노인회장 등의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이 자치회들의 활동은 해군기지 건설 저지활동을 하느라 마

을일은 제 로 못 돌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한 마을 안에서 찬, 반으로 나뉘어

서로 인사도 안하고 산다며 안타까워하셨다. 민속보존회장님에 의하면 요근래 찬

성했던 해녀들이 후회한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공식적으로 만나서 이야기

를 듣고 싶다고 하셨다. 그들도 그때 속았다고 한다니 만나서 양심에 호소하며 이

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생생한 마을의 이야기 그리고 해군기지반 활동가들에

한 인상들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 이어지는 주민통합과 갈등해

결 세션에서 나눌 이야기들에 한 도움이 되기도 했다.

둘째날 오전 시간도 늦어져 정작 50분간의 이야기 시간이 주어졌다. 아래는 분임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 안전한 공간은 민속보존회,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 등 기존 마을 조직을 활용하자.

- 마을 어르신들은 속내를 잘 이야기하지 않으심. 대화법 등에 대한 훈련 필요.

- Restorative Circle -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대면하게 해주는 힘을 주는 프로그램. 갈등

대면 프로그램은 중재자가 필요하다. 중립적인 중재자 필요.

- 어르신들의 자기표현 방법. 속내를 잘 이야기하지 않으심. 대화법 등에 대한 훈련.

- 인사하기 운동 - 무조건 인사 잘하기. 인사를 받던지 안하던지 인사를 계속적으로 해보자.

- 아이들의 놀이공간 만들기. 공부방, 놀이터, 평화교육 등

- 주민이나 지킴이들의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우울증, 자살 시도 등. 심리치료 병행 필요. 정신과 의

사나 전문가들과의 관계를 만들 수 있나. 이러한 일들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어떻게 결합

하실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있다.

- 해군기지 반대 측의 성찰도 필요하다. 분노 표출, 감정의 문제 등. 찬성한 분들에 대한 분노 표출

하는 경우에 논리의 문제가 아닌 감정의 문제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성찰(하지만 상당히 민감한 부

분)

Page 32: 전쟁없는세상소식지 34호(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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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에 비하면 깊은 고민들을 의미있게 나눌 수가 있었다. 이후의 역할이

중요하겠지만 강정마을 해군기지반 투쟁과 관련된 일정들 속에서 얼마나 지지를

받으며 진행을 할 수 있을지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람

들을 만날 수 있었고 희망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이후 장소를 옮겨 강정마을에서 다음날 진행될 비폭력직접행동을 계획하는 시

간을 가졌다. 열심히 이것저것 토론하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고 연습을 했지만

정작 그날 밤에 새로운 변수들과 새로운 의견들로 다시 혼선이 오고 계획했던 것들

을 안하고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 앞에서 매일 3시에 진행되는 개신교 기도회에 결

합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투쟁이 진행되는 곳이고 결합하는 단위도 많

고 주민들의 기 도 있다보니 무언가 결정하게 되거나 진행하는데 있어 여러 변수

들에 활동가 회의 일정이 변동되는 것이 좀 지치게도 했고 역동을 느낄 수도 있었

다.

셋째날 오전에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이 열리는 표산의 해비치호텔로 이

동했다. 총리가 온다는 소식에 활동가들의 반응 “근데 지금 총리가 누구야?” “김

황식 아니야?” “그렇게 존재감없는 총리가 다있어?” 등을 나누었다는 후일담.

해비치호텔에 도착하니 이미 경찰들이 선을 그어놓았다. 그곳에서 문정현 신부님

의 이야기를 듣다가 다시 이동, 식사를 하고 3시 개신교 기도회에 참가했다. 성공회

에서 전날 사제서품을 받은 4분의 신부님이 오셨고 그 중에는 여성사제도 있었다.

모태 가톨릭 신자인 나로서는 꽤나 부러운 장면이기도 했고, 같은 전례에 따라 진행

되지만 조금은 다른 번역어와 사도신경 신 자연신경을 외우는 것 등이 인상적이

었다. 성체성사를 하면서도 다른 종교에서 세례받은 사람들 그리고 원하는 모두에

게 성체와 성혈(미사 중 떡과 포도주가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

한다.)을 모시게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보통 가톨릭에서는 세례를 받은 사람 중에서

도 죄없는 상태(고백성사를 본 후)인 사람에게만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하고 혹은

개방적인 곳에서는 다른 종교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도 허락하는 경우가 있지만

원하는 사람 모두라는 것은 특별히 인상깊었다. 성공회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건너

편 횡단보도에서는 레미콘 차량이 오면 멈추게 하고 인사를 하고 사탕과 쪽지를 전

해주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성체성사가 끝나고 나서 잠시 멈춘 레미콘 차량 앞에서

누군가 절을 하기 시작했다. 미사에 참가했던 이들 중 몇 명도 나가서 절을 하기 시

작했다. 나에게는 감동적인 미사였기 때문에 미사에 방해가 될까 걱정했는데 다행

히 레미콘 아저씨가 빵빵거리거나 그러질 않았다. 가만보니 이 아저씨가 고개를 움

직이며 안절부절 못하는 듯 보여 다가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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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1

“아저씨도 지키고 싶은게 있으시죠? 저희도 그래요.”

“아, 나도 먹고 살아야할거 아니야. 어쩌라구…….”

“아저씨도 많이 곤란하신거죠? 일을 하시긴해야하니까요…….”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그런데 어떻게 해! 나도 가족들이 있는데…… 안 하면 회

사에서 잘린다고. 그러면 당신들이 책임질꺼야? 응?”

“저희일에 마음 아프다고 이야기해주셔서 고마워요. 저희 마음 알아주셔서 고마

워요. 저희가 정말로 지키고 싶어서 그래요. 정말로 지키고 싶은데 그냥 되돌아가주

시면 안 될까요?”

“아, 나도 먹고 살 걱정만 아니면 같이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저희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많이 곤란하신거죠?”

“나도 난처하다고 짤린다고…….”

“많이 난처하시죠. 죄송해요. 아저씨 난처하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그런데

저희가 힘이 없어요. 이렇게 밖에 못해요. 아저씨 난처한건 죄송해요. 힘이 없어서

죄송해요. 다른 방법이 있으면 그걸 저희도 알고 싶어요.”

“아이고, 나도 정말 같이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에휴…….”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저희는 정말 이 아름다운 곳을 지키고 싶은데 무슨 방

법이 없을까요? 아저씨도 난처하지 않고 저희도 지킬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회사에 얘기해야지. 난 힘없어. 회사에 가서, 에휴… 거기가면,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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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 이런 순서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듯하다. 뭔가 충만한 가운데 이야기를 주고

받은거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얼핏 아저씨가 회사로 가면 무서운 놈들이 있

다는 이야길 한 것도 같다. 뭔가 혼자서 중얼거리시기도 했다. 중요한건 아저씨도

자신의 생계를 위한 일이 남들의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아파하셨다는 것

이다. 내가 난처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했을 때 내 눈에서 눈물이 나왔고 듣고 있던

아저씨도 눈물을 닦으셨다. 물론 되돌아가지도 않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에서 ‘이걸 어쩌나?’하는 고민을 그 순간만이라도 함께 하셨다는 것만으로

도 나는 희망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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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3

병역거부자 수감/재판 상황 정리

:: 전길수 : 서울남부교도소로 이감2012년 2월 15일 인천구치소에 수감된 전길수는 6월 12일 서울남부교도소로 이감갔습니다.

:: 공현(유윤종) : 여주교도소로 이감2012년 4월 30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공현은 6월 12일 여주교도소로 이감갔습니다.

:: 최기원 : 여주교도소로 이감2012년 4월 12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최기원은 7월 9일 여주교도소로 이감갔습니다.

:: 안지환 :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출소서울남부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안지환은 4월 30일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 상우 : 여주교도소에서 출소 여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상우는 5월 25일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 날맹(문명진) :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출소 서울남부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날맹은 6월 29일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 현재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들의 주소 공현(유윤종)_ 경기도 여주우체국 사서함 30호 407번 (469-800)

이태준_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2164번 (153-600)

이준규_ 대구시 수성우체국 사서함 48호 1038번 (706-600)

홍이(홍원석)_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5호 1121번 (153-600)

전길수_ 인천시 남구 남인천우체국 사서함 343호 1298번 (405-600)

최기원_ 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 20호 1346번 (4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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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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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두 개의 문

타랑 병역거부자

영화는 뉴스의 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무관용 원

칙. 정부가 내세운 시위진압방식의 원칙입니다. 처

음부터 영화는 2009년 1월 19일 새벽에 일어난 참

사 자체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사 이후의 상

황에 한 불공정함을 드러내죠. 유가족의 동의도 구

하지 않은 부검, 촛불집회 확산방지를 위한 언론몰이,

수사 자료 제한공개와 비공개 재판까지. 이는 모두 사

실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난 검찰/경찰/언론/법원의 합

작품입니다. 무관용 원칙을 내세운 정부가 스스로에

겐 한없이 관용적인 모습들이죠. 정부의 이런 모습

들은 영화가 계속 될수록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합니

다. 본격적인 망루시위가 시작되기도 전의 진압결정, 테러진압이 목적인 경찰특공

투입, 특공 장에게 걸려온 의문의 전화한통과 25시간만의 진압완료. 역시 사실

관계가 분명하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습니다. 경찰은 어떠한 협상노력도 없이 진압

을 결정해버리고, 망루의 내부구조도 알 수 없고 충분한 계획과 준비도 안 되었지만,

‘위’에서 진압 하라고 하니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결국 누가 그런 결

정을 내렸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1983년 창설된 경찰특공 는 본래의 목적이 테러진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

위진압을 목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고 용산에서와 같이 시위의 발생가능성 자체

를 ‘섬멸’하는 역할의 수행자로서 기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를 하나의 거

한 조직으로 본다면, 반국가적이거나 비국가적인 존재를 처단하는 행동 장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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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맡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적인 가해자로서의 이미지를 갖

고 있지만, 실은 그들도 국가라는 거 조직의 일부이고 약자일 수 있습니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카메라는 본격적으로 이런 경찰특공 의 안타까운 사정에 집중

합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진압도구는 막강하지만, 특공 개개인을 지키기엔 충분

히 모자랍니다. 화염병을 피하기 위해 나무 합판을 머리에 이고 개미처럼 줄지어 달

려가는 모습은 그런 약자로서 특공 원들을 잘 보여줍니다. 허술하고 무모한 진압

과정에서 희생되는 특공 원들의 모습과 화재진압을 위한 고위 관계자들의 미련한

응은 묘한 립을 이룹니다. 물과 섞이지 않는 인화성 물질의 소화를 위해 그들이

준비한 건 휴 용 소화기와 살수차가 전부. 망루 뿐 아니라 그 안의 경찰들이나 농성

자 모두를 쓸어버릴 기세로 물을 쏘아 지만 불길은 잡히기는커녕 더 거세집니다.

반복되는 경고방송 속의 ‘시민’ 안엔 농성자도 경찰도 포함되지 않아 보입니다.

보통 어떤 사건이라 부를 수 있는 일이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게 됩니

다. 그 사건의 원인을 일으켰으면 가해자, 사건의 결과를 떠안게 되면 피해자라는 식

이죠. 원인과 결과를 규정하는 것은 사건을 이해하는 손쉬운 방법이 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는 것은 사법적 문제해결을 위한 기반이 됩니다. ‘용산참사’라는

말로 그 사건을 부르는 것 역시 이러한 사건규정과 문제해결을 용이하게 하는 결정

적 역할수행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당시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서 일어

난 화재사건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들 뿐더러 참사를 화재사건으로 규정하는 문제도 문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제한된

경찰조사 자료를 토 로 본다면 화재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

재로 인해 경찰관 1명과 농성자 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망루 내부를 촬영한 영상

은 있으나 화재가 발생한 결정적 시점의 영상은 없습니다. 원인은 없고 결과만 있는

상황에선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은 성립하기 어렵고 사건 자체도 온전히 규정되기

힘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 원의 죽음에 한 책임소재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어느 경찰관이 망설이며 농성자들을 지목한 것은 충분히 이해될 일입니다.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이 규정하기 어려운 사건의 곤란함에 현실적인 도피처가 된 셈이죠.

시민/비시민, 피해자/가해자, 경찰관/농성자. 이런 이분법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

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에 한 더 깊은 논의를 방해할 뿐이죠. 농성자들

은 분명 시민으로서 바라는게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와 말이 통하지 않았을 것

이고, 결국 거리로 내몰렸을 겁니다. 거리로 내몰린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더 높이 올

라가는 것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야 주목 받을 수조차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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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가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하지도 협상하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도심 한 복판에

흉측한 가건물이 버젓이 들어서는 모습이 보기 싫었을 겁니다. 경찰청장에 임명된

치안의 수장으로서 그런 풍경은 절 용납할 수 없는 눈엣가시였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가시 같은 존재를 없애는 게 본인은 물론 자신을 믿는 사람에 한 충성

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를 믿는 사람 목록에 평범한 시민으

로 불릴 수 있는 이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그가 충성해야 할 사람 목록엔 거리로 내

몰린 시민들이나 그들을 진압할 수밖에 없는 시민들의 이름은 없다는 게 문제의 시

작이지 않았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사건 직후 한 특공 원의 진술서에 쓰인 한 구

절은 가슴을 더 아프게 합니다.

‘……농성자들도 동료 경찰들도 결국 시민입니다.’

공중에 매달린 진압용 컨테이너 안에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영화상에서 ‘두개

의 문’이라고 할 만한 실체가 나오는 장면이 한 번 있는데, 그 문을 바라보는 카메

라의 위치와 각도가 왠지 그 사람의 시선과 일치하는 듯합니다. 동트기 직전의 어둠

속에서 그는 몹시 불안해 보입니다. 뛰어 내릴까 말까, 내려가면 어느 문으로 가야하

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두 개의 문 중 하나만이 망루와 연결되

어 있었다고 하는데, 본인이 망루에 왜 올라야하는지, 왜 농성자들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된 상태라면 더욱 선택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이 어

느 곳으로 통하든 불안은 해결될 수 없을 테니까요. ‘두개’의 문이 불편한 것은 경

찰들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특공 원들의 인간적인 나약함은

가해사실을 없애진 못하지만, 사건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영

화 ‘두개의 문’이 의미 있는 건 경찰에 의해 의도적으로 제시된 피해의 언어인 채

증영상과 증거자료를 가지고, 경찰시민들의 고민과 현실적인 어려움을 피해의 언어

로 이해하려 했다는 점일 겁니다. 이분법에 갇힌 세계관에 한 불편한 진실을 드러

내고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또 다른 문을 제시한다는 점이 ‘두개의 문’이

불편하면서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한 번 더 봤습니다. 한 달이 지났지만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만약 글에 한 목적의식이 없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글쓰

기 직전까지 다시 봐야하나 고민했었습니다. 이유는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영

화 속 상황을 다시 면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몇

해 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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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는 자신을 애써 태연한 척 하는 것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두개의 문’

앞에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특공 원들이 느꼈을 불편함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부끄럽지만 크게 차이가 없었습니다. 경찰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경험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엔 충분했습니다.

‘나는 처음 왜 이 영화를 보았는가?!’

‘두개의 문’을 두 번째 방문한 날 감독과의 화가 있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한 분이 같이 자리하셨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고 계

시겠지만 마지막 장면들 중, 잠깐이지만 옥상에서 경찰특공 에게 진압당하는 노동

자분들이 나옵니다. 바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분들이죠.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

지 잔인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경찰들은 그들을 마구 두들겨 팹니다. 저항하지 않

아도, 넘어져 있어도, 도망을 쳐도, 지구 끝까지 쫓아갈 기세로 달려들어 사람이 죽

기 진전까지 폭력을 휘두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죠. 진압이 목적인

그들이 그렇게까지 흥분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감독과의 화에 참

석한 그 노동자분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봤습니다. 그들도 실은 몹시 불

안하고 무서웠을 거라는 겁니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가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는 거죠. 그들도 경찰이기 이전에 그런 공포와 불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

다. 방패와 봉과 진압복이 없으면 평범한 시민과 다를 바 없는.

해고 노동자이신 그분에게 사회자가 질문을 합니다. 요즘의 근황을 묻는 질문이

었죠. 하지만 질문을 받은 그분은 바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객들에게 되물

었습니다. 해고 노동자의 근황이 정말로 궁금한지, 그렇다면 답해줄 수 있지만, 왠지

그게 아닐 것 같다는 겁니다. 누구라도 해고되는 상황을 상상하는 건 당장의 내 일이

되기 전까진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될 테니까요. 뜨끔하더군요. 용산참사에서 쌍

용자동차노동자문제 그리고 강정마을에서 일어는 일들이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모두의 문제라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를 운이 없는

소수의 사람들 것으로 치부하는 논리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연 는 사정의 비

슷함과 그 가능성을 믿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믿기 때문이니까요. 두

개의 문 앞에서 동질적인 불편함을 느낀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의 침묵은 경찰의 입

장에 한 동조와 검찰의 횡포/언론장악/법원의 불법행위에 한 암묵적 동의와 다

를 바가 없었습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가해자

로서의 제 3의 입장을 지키는 일입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 ‘두 개의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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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용산 참사의 제3의 목격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의 언어로 국가폭력을

채증 한 이 영화이자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는 것은 그 문제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

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저는 사실 비정규직화 되

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아직도 부모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저

는 내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용산의 일

을 조금만 확장한다면 지금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낍

니다.

무관용만큼 무서운 무관심. 생각해보면 그동안 저는 참 무서운 삶을 살았던 것 같

습니다. 그런 제게 당장 어떤 거창한 행동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저 작은 관

심이 두 개의 문을 외면하지 않고 통과하는 나름의 방식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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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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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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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학생

“왜냐고 묻지 마세요. 이건 질문이 아니라 때가 되면 배우는 교훈이니까요. 예상

치 못했던 것이지만, 결국에는 맞을 거예요. 당신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길 빕니다.”

갑자기 일이 이렇게 됐지만, 결국에는 잘 될 거라는 이야기.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고

묻는 신, 왜 하필이면 나냐고 괴로워하는 신, 그냥 뭔가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

하라는. 당신이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힘겹고 어쩔 줄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잘 풀릴 거라는 이야기…… 아주 우연히 알게 된 어느 노래의 가사다(Green Day,

“Time of Your Life”). 이 노래를 들으며 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왜냐고 묻지 마세요

정말 그랬던 것 같다. 그건 왜냐고 물어야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 그냥 시간이 되

서 내가 배워야할 그 무엇이었던 것 같다. 내가 계획했던 로 무난히 진행될 것 같

았던 그 일이,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던 그 일이, 그렇게 갑자기 무너져버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게 결국 제 로

가기 위해서 그랬던 거구나. 얼마 전 우여곡절 끝에 ‘제도권’ 교육과정에서 공식

적으로 다다를 수 있는 마지막 역에 도착했다. 예상치 못했던 일로 지난 몇 개월을

너무 험하게 보내서인지, 뭔가 끝내서 뿌듯하기보다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다는

게 그저 고맙고 신기할 뿐이다.

여섯 번째

자신감이 없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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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42.195킬로미터 마라톤을 뛰고 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그 거리를

뛰고 나면 정말 뭔가 단한 느낌이 있을 줄 알았다. 마라톤 완주.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뭔가 무한한 뿌듯함이 뒤따를 줄 알았다. 결승선을 지나고 나면 눈물이 주르

륵 흐를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뛰고나니 그렇지 않았다. 좀 허무했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그 긴 거리를 뛰는 동안 때로는 평안하고 때로는 후회하던 그 과정이 그리웠

다. 더 나가서는 마라톤을 뛰기 전에 가슴 설레며 준비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오히려

소중하게 느껴졌다. 마라톤을 완주해서 좋은 게 아니라, 완주하기까지의 과정이 있

어서 좋은 것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결국은, ‘과정’이구나. 학위논문도 마찬

가지인 것 같다. 그걸 써내서 좋은 게 아니라, 그 써내기까지의 과정이 있어서, 그 과

정 중에 내가 성장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그 과정이 어렵지 않았다면, 내가 예상

했던 로 그렇게 진행되었다면, 어쩌면 성장의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좋게’ 말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일단은 그 일을 끝냈

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 일이 과거형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내가 그 혼돈의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아니 돌아갈 수 없다는 안도감이 깊숙이 자리하

고 있기에, 나의 그 경험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일들이 현재형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 나는 과정이니 성장이니 하는 말을 감

히 꺼낼 수 없을 것이다. 당장 하루하루 살아내는 생존투쟁에 허덕일 뿐. 물론 과거

와 현재가 그렇게 ‘단절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일이 ‘과거

형’이 되었다는 게 나로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그 시간들은

‘안전한’ 추억의 영역이 된 셈이다.

노란 신호등처럼

다른 한편으로 나는 예전보다 자신감이 없어졌다. 왜냐하면, 공부하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이 세상은 얼마나 복잡한가를 더욱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

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과 나의 지식을 ‘상 화’하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차라리 몰랐을 때가 편하다. 뭔가를 알게 되었을 때 고통

은 시작된다. 정희진 님이 말했던 로, 아는 것은 상처받는 것인 듯하다. 이것도 생

각하고 저것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 하는 말이 이 상황에서는 맞을 수 있지만, 저 상

황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확신’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

능한 그 무엇일 수 있다. 그래서다. 나는 자신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을

딱, 서게 만드는 빨간 신호등보다는, 사람들을 딱, 가게 만드는 파란 신호등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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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저쪽 살펴보며 한 순간에서 저 순간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노란 신호등이 좋다.

나는 나를 좀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나름대로 스웨덴 소식]

# 싱글 여성의 인공수정 (스웨덴 국영라디오 국제: 2012. 3. 13)

스웨덴 사회문제위원회는 싱글 여성들도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현재 스웨덴에서 인공수정은 이성애 커플과 동

성애 여성(레즈비언) 커플에게만 허용되고 있다. 이웃 나라인 덴마크의 경우 국립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기증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정자를 60여 개국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그 제약이 까다로운 편이다. 실제로 내가 알고

지내는 어떤 스웨덴인 친구는 덴마크에 가서 인공수정을 한 뒤에 작년 아이를 낳았

다.

# 증오범죄 증가 (스웨덴 국영라디오 국제: 2012. 6. 28)

스웨덴 범죄방지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증오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신고된 증오범죄는 모두 5493건으로, 이는 2010년에 비해 350건 늘어

난 것이다.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인종차별과 관련돼 있으며, 주로 언

어폭력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많았던 것은 동성애차별로 때로 신체에 직

접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의 형태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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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

기획연재 Series

난영의 그림 일기

난영 개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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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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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웅 병역거부자

호갱님과 정치적 시니피앙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죽지못해 모질게 살아가고 있는 뀨잉뀨잉이에요. 방가방

가? 뀨잉뀨잉은 소식지 개편이라는 피바람같은 평지풍파에서도 저처럼 모질게 살

아남앗네요. 내가 두눈뜨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꺼 같아?? 내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혼자만 죽을거 같애?? 어떻게 손에 넣은 중궁전 자리인데??

이처럼 보시면 알겟지만 나님의 현재 상태 는 멘붕입니다. 바로 너처럼요. 이번 소

식지 주제는 뭘해얄지 초난강하다가 역시 덕으로 출발한 뀨잉뀨잉이니 덕으로 나가

야하는 법. 덕으로서 사람을 다스리며 썰을 풀려구요. 이때의 덕은 아리스토텔레스

의 사물의 최고상태인 아레테(arete)를 뜻하는 ‘덕(virtue)’이나 플라톤의 ‘4주

덕’의 덕이 아니라 오덕들의 덕질이란건 돌잽이도 안된 아가님하들도 다 알고 잇

는 지식이지 않나요? 사실은 이번엔 질문도 없어서;;ㅋ;;; 그래도 키워드는 잡아야겠

기에 ‘호갱님’으로 잡앗어요. 내 코너니깐 내맘이야.

* 호갱님인터넷이나 게임 덕후들이야 뭐 원체 운동하고는 국끓여 먹은 케이스지만 다소

철학 덕후인 제 직관에는 버리기에는 아까운 좋은 개념들이 잇는거 같아요. 철학자

들은 저마다 독창적인 개념(definition)에서 시작해서 개념으로 끝나걸랑요. 바로

‘호갱님’이라는 개념인데, 이는 기업권력에 호구처럼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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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5

ㅇㅇ같은 “호구 + 고객님”의 합성어인 개념인데요, 이 호갱님이라는 개념이 상당

히 뭔가 아주 유용한 정치적 시니피앙이 될 수 있을꺼만 같아요. 미친 여자의 말도

귀담아 들을 부분이 잇는 것처럼 말이죠. 응?? 덕들이 생산해내는 이런저런 신조어

들이 전부 오덕스럽다고 폐기처분한다면 그거슨 논리학에서 말하는 “목욕물을 버

리면서 애까지 버리려는 오류”에 해당되십니다 호갱님 ^^* “기업이나 국가권력에

순응하는 이 호구같은 호갱님아!!” 라는 식으로 예문을 쓰시면 됩니다.

ex. “호구 왓능가” “군 에서 암말도 못하나요 이 호갱님아” “또 하나의 가

족 삼성 호갱님 ” “ 학 등록금 투쟁 안하는 호갱님 살림살이좀 나아지셧나요”

호갱님의 개념을 이딴식으로 재의미화시켜서 정치적 시니피앙으로 활용하면 짜

세 지릴거 같아요. 뭐랄까, 여기에 무슨 그람시나 라이히의 권력개념이 필요하겟나

요. 암튼 많이들 쓰세요 호갱님들아!! 덕들의 세계와 운동의 세계를 어떻게하면 조

응시킬까가 인문학과 과학의 통약불가능성에 한 것보다 더 절실한게 제 문제의식

이에요. 뭐 전없세에서는 저의 이런 원 한 두 영역간의 통섭과 융합의 고민 나눌 분

들이 좀 잇긴하겟지만요 ㅋㅋㅋ

(조은이랄까...나가리랄까....그 외 조은이랄까....기타 나가리랄까...또 조은이랄

까...그 밖에 나가리랄까..)

참고로 요즘 날씨는 정말 더워서 이성애자가 될껏만 같네요. 에어컨 없으면 더워

서 넷우익이 될지경..;;; 수감생활하시는 분들은 더 덥겟죠.... 유감이지만 어쩌겠나

요 님팔자죠. 그럼 아구지 꽉 깨물고 버티세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 잖아요

*^^* 그럼 아닥치고 또 뵈요 빠잉 *^^*

* 보너스 아템친구: A-PINK는 다른 걸그룹들보다는 좀 못생긴거 같아.

나: 그래서 니가 걔네가 사귀자 그러면 안사귈꺼야??

친구: (º ㅂ º)

동생: 형 나 돈벌면 형한테 꼭 해주고싶은 선물이 있어.

나: 뭔데? *^^* (미니 쿠퍼? 갤럭시 탭? 넷북? 큐브? ̂ ^*)

동생: 위 절제수술.

나: (º ㅂ 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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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을 후원해 주신 분들

가람 강돌 강민정 강성준 강소연 강은애 강지유 강진선 고동주 고동환

고태경 고희라 괭이눈 구종우 권순욱 권연재 권인숙 권혁기 김경숙 김명섭

김미선 김미현 김민경 김민영 김박가온 김반지 김범준 김보미 김선미 김선옥

김선영 김성민 김세윤 김송이 김수용 김수정 김숙희 김영수 김영준 김영환

김영효 김용엽 김유리 김은주 김윤종 김일애 김재홍 김정웅 김주현 김준희

김중미 김지호 김태훈 김현정 김환태 김훈태 김희순 나동혁 류동훈 문명진

문상현 문수현 문연정 박남식 박승호 박아름 박용희 박정경수 박조건형 박준성

박지선 박진 박채원 박철 박태하 방강수 배사은 백선희 백지숙 보라 서범석

설순일 송명관 송병채 송준 수하 시와 신기현 신순영 신유아 신은재 신희권 아침

아키오 양제열 여문정 여옥 여은 여지우 염창근 오리 오정록 우경환 우완 우성섭

우지연 위양자 유은정 유현미 유희원 유희정 윤민순 윤정화 윤종 윤지환 은국

은종복 은혜와평화교회 이계삼 이덕현 이비함 이상길 이선아 이선영 이선옥

이선정 이선화 이세현 이승규 이연희 이영롱 이용석 이은주 이준규 이현우

이희진 인정환 임성환 임재성 임태훈 장기정 장대환 장미희 장성희 장정혜

장현진 장희원 전기화 정상민 정은정 정인철 정주열 정혁 정현채 정혜윤 조명래

조서연 조원영 조은 조정의민 주관수 주창언 지은 진진 진현호 진흙 참새 채승우

최민아 최지선 편설란 하동기 하승우 한주훈 햄 현민 홍성훈 홍세은 홍수봉

홍수영 황명규 황예랑 황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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