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몸살] 2013년 11,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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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다산인권센터의 역사 21년.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삼성 노동자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삼성해고자 김갑수, 강재 민, 휴대폰 위치추적 사건, 안티 삼성 페스티벌, 삼성 직업병 문제부터 시작 해 반올림, 불산누출, 에버랜드노조 금 속노조 가입까지 삼성 노동자들과 함 께 연대했습니다. 이러한 고민들이 모 여 드디어 2013년 12월 10일, 삼성노 동인권지킴이가 출범했습니다. 삼성을 바꾸고, 우리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삼성에 노동권과 인권 의 싹이 트는 그날까지 열심히 싸우겠 습니다! 201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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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몸살] 2013년 11,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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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다산인권센터의 역사 21년.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삼성 노동자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삼성해고자 김갑수, 강재민, 휴대폰 위치추적 사건, 안티 삼성 페스티벌, 삼성 직업병 문제부터 시작해 반올림, 불산누출, 에버랜드노조 금속노조 가입까지 삼성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했습니다. 이러한 고민들이 모여 드디어 2013년 12월 10일,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출범했습니다. 삼성을 바꾸고, 우리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삼성에 노동권과 인권의 싹이 트는 그날까지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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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바꾸자, 삶을 바꾸자,세상을 바꾸자! 삼바!팬더 삼성노동인권지킴이 활동가

2013년 12월 10일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출범했습니다. 명동 카톨릭 회관 대강당에는 많은 삼성노동자들과 인권사회단체 활동가 민주노총, 그리고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실 법률, 정치, 문화예술 인권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 모여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출발을 축하했습니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삼성의 노동인권탄압을 감시하고 삼성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성장한 역사는,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을 억압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삼성은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동자들을 모든 권력을 동원해서 탄압했습니다. 노동조합 건설을 방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도자들이 정상적인 회사 생활을 하지 못하게 괴롭혀 왔습니다.

삼성이 자신의 권력으로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사람들을 탄압할 때, 삼성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힘은 상대적으로 미약했습니다. 삼성 노동자들은 홀로 외롭게 싸우거나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초헌법적인 삼성의 ‘노조파괴 무노조 경영’이 여전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삼성의 전횡에 눈감아 왔기 때문입니다.사람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는 조직이나 사회는 죽은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람이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삼성에서 노동인권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아무 생각 없이 회사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가 바로 삼성입니다.

이런 삼성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삼성노동인권지킴이입니다. 삼성을 바꾸는 것은 노동인권을 지

01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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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기 위해 싸우는 삼성노동자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사회적 연대를 조직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출범이 바로 그 시작입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해서 삼성에서 일하면서 심각한 노동인권 침해를 당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갈 수 있는 곳으로 발전해 나가고자 합니다. 아울러 한국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삼성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을 위해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을 조직하는 것이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이런 ‘믿음’을 보여줄 때 삼성 노동자들도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행동할 것입니다.

이렇게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삼성의 노동인권 문제를 하나의 기업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인권 과제로 보고 있습니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이런 과제를 고민하게 된 이유는 삼성이 그동안 우리사회 전체를 오염시켜 왔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불법 정치자금을 조달해도, 3대 세습을 위해 불법과 다름없는 편법 주식 승계를 해도,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용서되었습니다.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삼성이 있는 한, 한국사회는 병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이 한국 사회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셈입니다. 삼성이 만들고 선도하는 비리와 인권 탄압을 우리사회가 더 이상 두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삼성을 바꾸지 않으면 삼성의 노동자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삼성이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삼성 이데올로기’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삼성을 바꿔,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 삼바!’- 신나게 삼바를 외치며 삼성을 바꾸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응원해주세요!

“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삼성이 있는 한, 한국사회는 병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이 한국 사회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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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반대희망버스 탑승기박효진 운산초등학교 교사

나는 원래 핵발전소와 송전탑이 문제가 있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정부와 공기업의 업무추진방식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어 밀양을 지지했지만 워낙 대한민국 곳곳에 터진 일이 많고, 내가 속한 전교조도 탄압을 받기 시작해 주중, 주말을 가릴 것 없이 바빴기 때문에 밀양에 대해서는 기금을 후원하거나 소식을 나르는 작은 활동 외엔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희망샘 도서관을 통해 밀양 주민 국토종단이 수원구간을 주말에 통과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걷기로 하였다. 처음엔 수원 구간만 걸어야지 했는데 왠지 그분들을 조촐하게 두고 떠나는 게 마음에 걸리고, 이장님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수원을 넘어 안양까지 갔다. 무려 5시간, 20km의 거리였다. 그러고 나니 밀양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처럼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뉴스에서 고리원전이 또, 또 정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핵발전소 때문에 언젠가 큰 일이 날 것 같았다. 만약 문제가 터지면 이렇게 안일하게 있던 나 스스로 후회는 물론이거니와 미래의 자녀와 학생들이 나에게 ‘당신은 그 때 무얼 했냐’고 물으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휴일을 휴일답게 누리려 약속한 대학 동아리 모임에 불참하고 다산인권센터에서 마련한 밀양으로 가는 희망버스를 탔다, 이전에 다른 문제로 수원에서 탔던 희망버스와 달리 인원이 적어 미니버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노란 유치원 버스에 탑승자끼리 아주 가깝게 앉아 반상회 하듯 분위기가 좋았다. 밀양송전탑반대희망버스라는 종이 여러 장을 버스 겉면에 박스테이프로 붙이는 것을 허락해준 기사님도 아주 친절하셨는데 알고 보니 박진 활동가

02 인권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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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지인이었다. (나중엔 야식으로 치킨도 사주셔서 명함을 받아왔다.) 가는 길에는 이번 희망버스 주제가로 “버스를 타고 밀양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가자~ 칠백육십오 킬로볼트 송전탑 막으러~”하는 개사곡 ‘뛰뛰빵빵’을 배우기도 하고, 가서 주의할 점을 들었는데 “인권단체랑 같이 가니까요, 걱정 마세요.”하실 때 진짜 안심이 되었다.

밀양에 도착하자 기선제압인가, 송전탑에 찬성하는 현수막이 널려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희망버스들은 각기 세 군데 공사장에 도착하였다. 우리 버스는 상동면에 집결하였는데 이미 많은 참가자들이 와 계셨고 경찰버스도 눈에 보이는 것만 12대(500여 명?!)가 와 있었다. 전에 이장님과 걸을 때 “그 경찰 중에 밀양 경찰 한 명 밖에 없다.”하신 게 이해됐다. 하지만 우리가 모인 주변엔 경찰도 공사차량도 보이지 않아 좀 의아했다. 다같이 이동하기 시작하여 공사장에 가나보다 하고 따라갔다. 길목에서 경찰들이 막아섰지만 좌로 막으면 우로, 우로 막으면 좌로 움직였다. 들어갈수록 어디선가 경찰들이 점점 더 나타나 막고 또 막고 했지만, 사람은 많고 산은 넓으니 애초에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다보니 우리 일행은 길이 없는 산을 헤메고 있었다. 이동하는 게 방향성도 없었다. 알고 보니 주민들도 공사장에 처음 가보신단다!! 우리는 공사장 위치도 모르면서 다함께 공사장을 찾아 가고 있었다. 경찰이 뛰쳐나와 막는 곳이 공사장 방향일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당연히 여지껏 공사장 앞에서 농성을 하신 줄 알았는데 경찰 때문에 공사장까진 한 번도 가보지 못하셨다고 하셔서 놀라울 뿐이었다. 하긴 오늘은 사람이 많지만 평소라면 아마 산 입구에서 바로 경찰에 막혔을 것이다. 나는 나름 재빠른

걸음에 성실히 걷다 보니 선두가 되어 영광스럽게 여경에 둘러싸인 두 사람(모두 수원팀) 중 한 사람이 되기도 했는데 처음 겪는 상황이라 누가 방법을 알려주겠지, 하는 생각과 우리에게 여러 경찰들이 신경 쓰는 동안 다른 참가자들이 앞으로 가길 바라는 마음에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다들 가던 길을 멈추고 지체하셨다. 순순히 잡혀있던 중 일행이 “왜 거기 있어~나와.” 하며 손을 끌어주셔서 ‘붙잡히면 그냥 나가면 되는구나.’하고 여경들 손 아래로 가볍게 쓱 빠져나왔다.

결국 주민들과 공사장을 보았다. 공사는 진행 중이었다. 자재들은 헬기로 실어 나른다 하였다. 순간 오른쪽 바위 뒤로 돌아가라는 누군가의 외침을 듣고 나를 포함 세 명 정도는 바위 위까지 올라갔더니 오히려 공사장을 내려다볼 정도까지 올라가 버렸다. 우리가 뭘 하는 것도 아니었고 오르는 길은 좀 위험했는데 그걸 알면서도 경찰은 아랫사람에게 계속 올라가서 잡으라고 시켰다. 덕분에 내려올 때는 경찰이니 우리를 보호하라고 큰소리치며 안전하게 내려왔다. 공사장에 도착해서 뭔가 할 줄 알고 내심 두근두근 했는데 그냥 공사장 앞에서 몇 차례 구호를 외친 게 끝이었다. 저녁 집회에 늦지 않도록 지는 해에 떠밀려 하산했다. 난 약간 허무하고 아쉽기도 했지만 내 눈으로 공사장을 한 번 보고 싶다던 주민들은 공사장을 본 것만으로도 기뻐하거나 눈물짓기도 하셨다. 공사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한 번 고지에 올랐으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오를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드린 듯 했다.

밀양 역 앞에서의 촛불 문화제는 해고노동자가 사회를 보셨는데 이 일도 꽤 잘하셔서 앞으로 집회에서 사회자로 자주 뵐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했다. 평

“ 당연히 여지껏 공사장 앞에서 농성을 하신 줄 알았는데 경찰 때문에 공사장까진 한 번도

가보지 못하셨다고 하셔서 놀라울 뿐이었다.

하긴 오늘은 사람이 많지만 평소라면 아마 산 입구에서 바로 경찰에 막혔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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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여러 집회에 가보았지만 이런 독특하고 다채로운 집회는 처음이었다. 청소년들의 힘찬 난타 소리에 힘을 받았고, 밀양 할매 합창단의 노래에 감동과 웃음을 얻었다. 농사하랴 투쟁하랴 언제 노래를 연습하셨는지 율동까지 넣으셨는데 트로트를 개사한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인데~" 하는 노래는 공식 주제가인 ‘뛰뛰빵빵’보다 모두의 뇌리에 박혀 돌아올 때까지도 모이기만 하면 흥얼거리게 했다. 이렇게 트로트를 부르며 웃음짓는 집회에 오니 꼭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참담하고 억울하고 분노에 찬 보통의 집회와 달리 이렇게 즐거운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이 싸움의 주체가 농촌 어르신들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욕심도 없고 그저 살던 대로 살고 싶은 순수한 의도,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느긋함, 싸우면 될 거라는 희망.

밤에 마을로 돌아왔더니 우리 동네에선 못 본 별들이 얼마나 선명하게 빛나던지 한참을 보다가 마을회관에 들어섰다. 우리가 쉬려고 짐을 푸는 동안에도 어르신들은 더 바쁘게 사람 둘이 들어갈 만한 솥에다 정성들여 고아주신 소머리국을 차려주셨다. 어르신들께서 한 번 끓여두고 집회하러 가신 동안 마을에 계시던 다른 어르신께서 또 끓이셔서 망친 듯 말씀하셨지만 내 입맛엔 아주 고기가 연해서 녹는 듯 했다. 각자 싸온 과메기, 갓김치 등을 맛있게 먹으며 어르신들과 이야기 나누다 잠들었는데 보일러를 우리 집보다 뜨끈하게 때주셔서 종일 몸에 밴 추위가 사라졌다. 엄청난 환대에 몸 둘 바 몰랐다.

다음 날 새벽에도 공사는 계속되고, 경찰들은 지키고 소란을 지나 아침엔 길목에 몇 개 마을이 모여 잔치를 벌였다. 주민들과 참가자들이 발언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며 서로를 확인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였다. 그 중 한 마을 85세 배여사의 찰진 트로트메들리에는 다들 일어나 춤을 추었다. 매력이 즙처럼 흐르는 할매는 1월에 무려 16살 연하의 할배랑 결혼하신단다. 누가 먼저 반하고 누가 먼저 프러포즈 하셨을까. 아마 앵콜을 부르는 노래 솜씨가 한 몫 했을 것이다. 나는 밀양에 와서 여러 사람의 발언을 듣고 안내문을 진지하게 읽고서야 이 문제가 2001년에 시작하였고 9년이나 싸우고 있고, 밀양 말고도 밀양의 전기를 받아 보낼 다른 지역에서도 역시 힘겹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냥 꽤 많은 전기를 보내는 커다란 송전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것이 동양 최대 송전탑이고 수도권의 에너지 자급률은 10%도 안되는 것에 미안해졌다. 진짜 그동안 너무 편하고 무식하게 핵발전 전기를 얻어쓰며 살았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핵발전이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배웠는데 이렇게 교과서에 싣고 가르친 사람들은 나쁘다. 교사들이 계속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2012년 1월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이치우 어르신께서 분신하신 보라마을에서 마지막 집회를 가지고 떠나왔다. 그 논밭 위에 바로 송전탑이 세워질 예정이었단다. 거기서도 유명한 분들을 몇 뵈었지만 응원의 한마디 못해 아쉬운 건 국정감사 때 속 시원히 해준(최근에 더 큰 한 방을 날린) 장하나 의원이었다. 또 조선일보에 문정현 신부가 이끄는 희망버스라 적혔다며 자기도 모르는 새 희망버스를 이끌고 계신 문정현 신부님이라고 재미난 말씀을 하신 대책위의 또 다른 신부님께서는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용기 있게 외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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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더 많이 함께 오겠다고 작별하고 오늘의 모임이 어떤 역할이 되리라 보람을 느끼며 수원에 올라왔는데 다녀온 후 상황은 별로 좋지 못했다. 대책위 사무국장인 이계삼 선생님께서 희망버스 몇 일만에 불구속입건 되셨다. 한 어르신께서 음독자살 하셨고 시민 분향소는 경찰에 의해 번번이 훼손되고 추모는 방해받았다. 그 후로 또 한 어르신께서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하셨다. 이어진 죽음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한전에 돌리고 싶지만, 주민들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절망의 상황이라고 느끼는 데에 과연 우리들은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았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생긴다. 밀양에 너무 많은 집단이 모여서 송전로 지하화, 탈핵, 민주절차 존중 등 쟁점이 분산되고 결국 피해자는 주민들이라는 비판도 가슴 아팠다.

한 해, 좋아진 것은 없고 나빠진 것만 잔뜩 받아 참 숨 가쁘게 지냈다. 하지만 이제 조용히 있던 안녕하지 못한 이들이 모이고 있다. 새해, 반전을 기대한다.

“ 참담하고 억울하고 분노에 찬 보통의 집회와 달리 이렇게 즐거운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이 싸움의 주체가 농촌 어르신들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욕심도 없고 그저 살던 대로 살고 싶은 순수한 의도,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느긋함, 싸우면 될 거라는 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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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천국,레이버랜드를 꿈꾸며인터뷰어 훈이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오렌지의따뜻한반올림 사진전인터뷰어 오렌지가 좋아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안녕하세요~ 다산 자원활동가 엄명환입니다~ 오늘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거울 인터뷰(거울속의 자신을 보며 인터뷰^^ 오렌지가 좋아와 엄명환은 같은 사람입니다^^)로 얼마 전 반올림 사진전을 한 다산 자원활동가 ‘오렌지가 좋아’의 사진전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a

엄명환: 음....이 반올림 사진은 언제부터 찍게 되었나요? 무슨 계기라도 있었나요?

오렌지가 좋아: 음....사진을 찍기 시작한건 2009년 7~8월 쯤 부터 일거에요~ 계기는 특별히 없었고, 김산이라는 활동가를 따라서 반올림의 반달공동행동과 삼성반도체 피해노동자인 故황민웅씨 추모제에 가고나서부터 그냥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다가 2010년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故박지연씨가 백혈병으로 죽는 모습을 보고 반올림에서 내가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하다 일단은 반올림의 여러 모습을 사진으로 가능한 기록해보자 해서 찍기 시작했어요.

엄명환: 사진전을 찾아오면서 투쟁사진들이라 보면서 힘들지 않을까 생각 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사진들이 참 재미있고, 밝은 사진들이 많아서 참 좋네요. 사진을 일부러 이렇게 밝은 것만 찍은 건지 아니면 이런 것만 고른 건가요?

오렌지가 좋아: 둘 다 라고도 할 수 있는데 처음 반올림 사진을 찍을 때는 뭐랄까 좀 더 극적인 모습을 위해서 피해자(가족)들과 활동가들의 처절하고

03 떴다! 벗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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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모습들을 많이 찍으려고 했는데...언제 부터인지 피해자(가족)들이 투쟁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비록 예전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이 투쟁에서 삼성과 정부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고 다시금 웃으며 즐겁게 사는 누구나 바라는 그런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분들이 아닌 가 느껴졌어요. 그래서 우리가 주변에서 일상으로 만나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 같은 사람들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분들의 힘겨운 모습보다는 웃음이 있는 모습들을 찍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언론을 보아도 주로 나오는 사진도 주로 이분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고요. 그래서 사진도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주로 피해자(가족)들이 긴 투쟁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웃는 모습들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엄명환: 전시회 제목이 ‘또 하나의 가족’인데 이건 뭐 삼성을 겨냥한 건가요?

오렌지가 좋아: 특별히 삼성을 겨냥한건 아니고요, 제목을 어떤 걸로 할까 고민고민 하다 비록 반올림이 삼성반도체문제만 가지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반도체 전자산업의 문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이 것 말고는 반올림과 사진전을 표현할 제목이 떠오르질 않더라고요~ 그 동안 반올림에서 얘기한 ‘또 하나의 가족’은 삼성이 버린 노동자들을 주로 의미했지만, 저는 삼성은 병에 걸린 노동자들을 그렇게 버렸지만 지난 6년간 그런 노동자와 가족들과 활동가들이 만나 반올림이 되고 반올림이 지치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도록 뒤에서 옆에서 지지해준 수 많은 시민들 또한 모두가 이제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진실로 특별히 삼성을 겨냥한 것은 아니에요~^-^a...

엄명환: 메인사진의 피해자들 호칭이 좀 독특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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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의도한 건가요?

오렌지가 좋아: 의도 했다기보다 그냥 평소 제가 부르는 그대로에요. (황상기)아버님, 애정누나, 혜경누나~

엄명환: 사진전에는 많은 분들이 오셨다 갔나요? 주로 어떤 분들이 많이 오셨나요?

오렌지가 좋아: 네~ 많은 분들이 오셨다 가셨어요~ 피해자와 가족들도 오시고 활동가들도 오시고 무엇보다 활동가 말고 많은 시민들이 오셨다 가셨구요, 전시회장이 이음이라는 책방 한 쪽에 마련된 거라 책방 단골손님들이나 책방에 오시는 분들이 사진도 보시고 가시는 바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분들께 반올림의 이야기를 많이 전달 할 수 있었고요.

엄명환 : 전시회 동안 다른 일정들은 없었나요?

오렌지가 좋아: 전시회 기간에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의 희정작가와 ‘먼지없는 방’의 김성희 만화가 두분을 모셔서 책을 쓴 작가와의 만남의 자리를 가졌고요, 희정작가와의 시간에는 책을 쓰며 작가가 피해자들을 만나며 책을 쓰던 때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는 시간을 가졌고, 김성희 만화가와는 삼성서비스노동자 최종범열사의 딸인 별이와 강정, 쌍차, 밀양, 삼성, 등등 힘겹게 싸우고 있는 분들께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시간을 보냈지요~^-^

매일 보는 데도 이렇게 인터뷰를 하니 정말 어색 하네요~ ㅋ_ㅋa....그럼 앞으로 다산하고 반올림과 수원촛불에서 더 좋은 사진들 찍으시길 바라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마치겠습니다. ^-^a

03 떴다! 벗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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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_ 반올림 후원주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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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안녕들 하셨습니까?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 온다 활동가 일동

랄라올해 벗바리님들 어찌 지내셨나요? 다들 안녕하신가요? 새로운 대통령 당선의 충격으로부터 시작하여, 안녕하십니까? 안부를 묻는 걸로 한해가 마무리 되어가네요. 올 한해 저와 다산에게는 삼성으로 시작하여, 삼성으로 끝나는 한 해 였습니다. 올해 1월, 5월 불산 누출 사건, 7월 삼성서비스 노동조합 출범, 그리고 장장 2년 동안 논의를 해왔던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12월 10일 출범하는 것으로 올 한해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정신없이 한해를 마감하느라, 몸살이 살짝 늦어져서 마음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2014년은 안녕 할 일들만 가득하길 바랄께요^^

만나다“만나다,송년 인사말 남기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썼네요. 빨리 써주세요”버스안에서 랄라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올해를 보내며 어떤 자음을 많이 썼을까...단연컨대, ‘ㅌ’ 이 아닐까? ‘퇴진’, ‘투게더(함께)’,‘타도’,‘투쟁’,그리고‘토닥토닥’등...내년엔 희망의 ‘ㅎ’, 승리의 ’ㅅ‘, 연대의 ‘ㅇ’ 그래서 ‘우리가 해냈다’의 말들이 넘쳤으면 한다

메달이렇게 정신없는 송년도 오랜만이네요...2013년은 저에게 많은 일이 있었네요..활동한지 7년 만에 조금 긴 안식년도 보내고..안하던 공부란 걸 끄적거리고...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공간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네요...늘 변화를 갈구하지만 두려움도 함께 따라오네요...아마 2014년도 그럴테죠?

행복하세요~

허기저요즘처럼 눈 오고 쌀쌀한 날에는 따뜻한 연탄난로에 고구마 구워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눠야 제 맛인데 말이죠.

요즘엔 통 이런 여유가 없어서 탈입니다. 콕 찝어 누구 때문이라고 핑계(?)대기보다 언제는 안 그랬냐며 여유를 좀 찾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항상 다산인권센터를 후원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또 1년을 살아냈습니다.즐거운 일이라곤 찾기 힘든 고난의(?) 시절이지만소복소복 쌓이는 눈처럼 우리가 하는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요.

요즘 동료들과 읽고 있는 <코뮨주의 선언>의 문구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우리는 결국에 웃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웃으면서 시작하자고 말한다....자, 이제 우리도 웃으며 떠날 시간이다!"

난다 "길을 잃기 위해서우린 여행을 떠나네어떤 얘기도 하지 않고어디론가 걸어가네"

'좋아서하는밴드'의 「길을 잃기 위해서」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04 활동보고_ 연말인사

Page 13: 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몸살] 2013년 11,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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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의 삶이그래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이 '정답'이라 말하는 길을 가고,정해진대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길을 잃기 위해,마냥 이 세상을 헤매기 위해,그렇게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새롭게 떠나는, 여행 같은 한 해였습니다.

낯설기도 두렵기도 했지만,이 여행길을 함께 떠나는 친구들이 있어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함께 걸어가요~ -

비올흔들리며 피는꽃-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며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심하게 흔들리며 살았습니다.

2013년 한해 꽃처럼 떨어지는 산 목숨들을 보면서,마지막 날까지 삼성의 최종범열사, 밀양의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를 지키면서,인권 운동하는 내가 부끄러워, 내 마음이 너무 심하게 흔들렸더랬습니다. 그러나 시 하나에 또 위로를 받습니다.흔들리지 않으며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바람과 비에 젖지 않는 꽃이 어디 있더냐.그냥 이대로 흔들려도 비에 젖어도, 꽃은 꽃이다. 나는 꽃이다, 우리 모두는 꽃이다, 라고요.

그걸 알려주는 여러분이,밀양의 어르신들이, 강정의 주민들이,삼성의 노동자들이, 쌍차의 해고자들이 있어서 잘 살고 있습니다. 꽃처럼 말입니다. ^^

Page 14: 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몸살] 2013년 11,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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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창립!이 독립을 누려~인권교육 온다 활동가 일동

인권교육 ‘온다’, 드디어 창립했습니다!

과연 2013년 창립 할 수 있을까? 주춤주춤 고민하는 사이 2013년 10월 25일 드디어 인구너교육 ‘온다’ 가 창립했습니다. 짝짝짝~그래도 아직도 여전히 ‘온다’의 존재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어느날 문득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야, 온다 7월에 창립한 거 아니야? 아직도 창립 안했어?”

창립은 얼마 전에 했는데 그에 비해 ‘온다’의 이름에 대한 피로가 있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창립식을 앞두고 여기저기 소식을 전할 때쯤이었습니다. 7월에 했던 독립기금 만들기 후원주점을 창립식으로 오해한 분들이 ‘아니 무슨 창립식을 또하냐...’ 라는 이야기를 자주 건네셨습니다. 온다 대단하다부터 온다 왜그러냐까지 온다는 그렇게 달려왔습니다. 벌써부터 이름에 대한 피로도가(농담반 진담반) 높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온다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아주 살짝 말씀드리고 갈께요.

인권교육‘온다’가 그냥 맥락없이 등장한건 아니고요. 때는 바야흐로 다산인권센터 20주년이 돌아오는 시기였습니다. 활동가끼리 다산의 앞날을 어떻게 밝힐까 이야기를 하다가 수년 동안 슬쩍슬쩍 나왔던 ‘우리도 지역에서 인권교육센터하나 만들자’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뭐 다들 그렇지만 말로는 뭔들 못 하겠습까? 술자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벌써 인권교육센터를 만들어 안드로메다까지 세워질 판이었습니다. 온다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시작이 힘들지 딱 결정을 하고나니 새로운 것도 보이고 온다를 함께 꾸려가고 싶은 사람도 보였습니다.

이쯤에서 온다 멤버 소개를 안하고 가면 서운하겠죠? 우왕좌왕 온다 멤버를 소개해드릴께요. 그 동안의 활동을 돌아보기 위해 안식년을 떠났던 메달이 인권교육 온다 멤버로 다시 돌아와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청소년이 아닌 시절까지 청소년 인권운동을 함께했던 귀요미 난다가 있습니다. 지역에서 여성단체 활동과 사회복지사로 삶을 살아왔던 만나다가 인권교육 활동가로 새로운 삶을 선택했습니다. 10년 가까이 노동조합 활동가로 살아왔던 순돌애비가 교육을 통한 운동을 고민하면서 온다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4명의 활동가가 온다와 첫 인연을 맺으며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더 알려드리고 가겠습니다. 얼마 전에 창립이후 온다 활동방향에 대해서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무슨이야기를 하다가 어떻게 해서 인권이라는 물에 발을 담그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씩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난 말야... 수원이라는 낫선 곳에 와서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게 내 맘대로 안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고민을 하는 도중에 00활동가가 나에게 인권활동 해보지 않을래? 물어보더라고...그때 후로 여기까지 왔어....”“나도 00활동가를 우연한 자리에서 만났는데 자원활동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다산인권센터를 알게되었고 그리고 온다 활동까지 이어지게 되었어....”“뭐야... 나도 그런데...”

05 활동보고_ 온다창립

Page 15: 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몸살] 2013년 11,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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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간 정적이 흘렀고 그 분의 대단한 능력을 칭송했습니다. 00활동가가 누구인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야기하다보니 살짝 옆으로 흘렀는데요. 다시 ‘온다’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우리는 이렇게 만났고 앞으로 활동을 꿈꾸고 있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바쁘겠지만 그 동안 다산인권센터에서 쌓아왔던 인권교육의 경험과 고민들을 온다활동 속에 잘 풀어내면서 더 단단해지고 더 성장하겠습니다.

아, 하나 더! 모두가 궁금해 하시는 앞으로 다산인권센터와는 어떻게 되는거냐? 이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아직 완전한 공간 독립까지 하기에는 많이 어렵습니다. 당분간 아니 어쩜 좀 오래동안 다산 사무실에 기생하면서 살아보렵니다. 온다와 다산 7명의 활동가가 좁은 사무실에서 복작되니 정감있고 좋습니다. 지금이 여름이 아니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온다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부는 인권교육의 바람이 되어 온 마을 구석구석 인권의 온기를 후~ 후~ 불어넣겠습니다.

요즘 여기저기 대자보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 만큼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고 그 안녕하지 못한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얘기할 곳도 없는 거겠죠.인권교육‘온다’ 2013년 잘 마무리하고 2014년 안녕하게 살아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안녕’하게 자알~ 살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 번 온다의 첫발걸음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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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10월 재정결산

수입 지출

총계 17,019,546 총계 7,274,220

이월 전월이월 8,826,038

운영비

소계 797,700

경상수입

CMS후원 5,112,110

경상운영비

대출이자 80,000

관리비 152,270자동이체후원 170,000이사적립금특별후원 2,776,350

일반운영비

정보통신비 276,010일반후원

활동비 28,200

사업수입

일반사업

교육사업 사무관리비

재정사업 차량유지비 261,220행사사업 130,000 기타

기타수입

결산이자 1,285

인건비

소계 5,318,850기타 3,763 급여 급여 4,176,350

차입금

복리후생비

식대 332,500

상여금 600,000

자원활동가지원비

기타 210,000

사업비

소계 1,157,670

경상사업비

우편발송비 405,000

인쇄비

기타

일반사업비

교육사업비

행사사업비

기획사업비 20,270

현안사업비 180,600

기타

연대사업비

분담금 160,600

후원금 280,000

기타 111,200

차월이월 9,745,326

2013년 9월 결산

06 활동보고_ 재정결산

Page 17: 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몸살] 2013년 11,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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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지출

총계 17,393,581 총계 7,381,000

이월 전월이월 9,745,326

운영비

소계 1,265,770

경상수입

CMS후원 4,571,630경상운영비

대출이자 80,000

관리비 100,890자동이체후원 150,000

이사적립금특별후원 2,776,350

일반운영비

정보통신비 133,830일반후원 150,000

활동비 12,050

사업수입

일반사업사무관리비 590,000

교육사업차량유지비 349,000재정사업

기타행사사업

기타수입

결산이자

인건비

소계 4,429,520

기타 275 급여 급여 4,176,350차입금

복리후생비

식대 253,170

상여금

자원활동가지원비

기타

사업비

소계 1,685,710

경상사업비

우편발송비 191,760

인쇄비

기타

일반사업비

교육사업비

행사사업비 127,600

기획사업비 21,800

현안사업비 421,350

기타

연대사업비

분담금 140,600

후원금 200,000

기타 65,200

차월이월 10,012,581

2013년 10월 결산

Page 18: 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몸살] 2013년 11, 12월호

DASANHUMANRIGHTS다산인권센터주소 : (우)442-844,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91-3 2층

전화 : 031)213-2105 | 팩스 : 031)215-4395

홈페이지 : http://www.rights.or.kr | 다음카페 : http://cafe.daum.net/humandasan

이메일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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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0월 후원해주신 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