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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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

1

남달랐던 삼손의 출생

삼손과 예수님

삼손 일대기의 총 연출자는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하나님의 기묘

고난은 마귀를 물리칠 조건

사랑하는 자로 번뇌하다

나실인

삼손, 블레셋 여자에 빠졌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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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Ⅰ 편

본 문 : 사사기 제 13 장 제 1 ~ 5 절

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

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

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 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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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찌며 무릇 부정

한 것을 먹지 말찌니라

5.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

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

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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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달랐던 삼손의 출생

삼손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선입견은 과연 성경적일까? 삼손을 영적인

눈으로 재해석해본다면, 우리의 영혼에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성경의 목적을 따라서 삼손과 들릴라 커플 이야기를, 영적인 안목

으로 헤아려보겠습니다.

성경을 영적으로 보지 아니하면, 바꾸어 말씀드려 문화적, 세상적으

로 보게 되면, 영혼에 힘과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삼손 드릴라 커플에 대한 해석이, 저와 귀하의 영혼에 큰 유익이 되

기를 바랍니다.

삼손 그는 태어남에서부터 죽음까지가 남달랐던 인물이었습니다.

삼손이라고 하면 대체로 ‘긴 머리에 힘이 센 나실인’, ‘자기의 본분을

저버리고 이방 여인과 사랑에 빠진 유대인’, ‘비밀을 간수하지 못하

므로 머리를 깎여 힘도 눈알도 빠지게 되어 조롱거리가 된 사람’,

‘하나님의 은총으로 막판에 다시 한 번 힘을 크게 씀으로, 수많은 적

들을 죽인 용사’, 이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약해 말하면 ‘잘못된 애정 행각으로 실패한 사사’로,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각인 되어있는 삼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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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려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영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삼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가 살던 시대 배경과 그

의 출생, 그의 신분에 대하여 살펴드리겠습니다.

본문인 사사기 13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

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인접해 있던 강력한 나라, 블레셋 손에 붙이셨

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블레셋 치하에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관할 하에 있은 지 40년이 될 즈음, 삼손이 태어

납니다.

그의 출생에는 비밀이 있었습니다.

남다른 그 내용이 바로 본문입니다.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5절b)

. . .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

이 됨이라”(7절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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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

라』똑같은 말씀이, 5절과 7절에 연거푸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이란 뜻입니다.

‘나실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나실인이라 하더라도 삼손의 경우처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을 나실인으로 살아야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자면, 대한민국 남자의 경우 스무 살이 넘게

되면, 의무적으로 군대에 들어가서 3년이면 3년 군 복무를 하게 되

어있습니다. (2006년 여름 현재)

혹시 장기근무를 하더라도, 법에 정해져 있는 일정기간을 마치면 전

역하게 됩니다.

이처럼 인생 어느 중간에 본인이(혹은 부모가) 자신을(혹은 아들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겠나이다.” 서원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자

를 ‘나실인’이라고 합니다.

몇 살부터 몇 살까지라는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그 기간 동안은 하

나님 마음대로 쓰시도록 서원하는, 그런 자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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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성립되는 이 계약은, 약속 기간이 끝나면 현

역에서 해제됩니다.

도무지 잉태하지 못하는 마노아란 부부가 이스라엘에 살고 있었습

니다.

부부이긴 했습니다만 자식이 없는 한,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들이 없

기 때문에, 부부 아닌 부부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생산할 수 있는 기간이 이미 지났으므로, 자식에 대한 기대는 오래

전에 포기한 채, 그날그날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노아 부인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별도로 아들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들에게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는 그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

실인’이 될 것이니, ‘나실인’으로 낳아서 ‘나실인’으로 키우도록 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삼손을 주신 목적을 확실하게 말씀해주셨던 것입니다.

“그가 네 몸에서 낳아 성인이 되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

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13: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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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무자한 늙은 부부에게, 하나님은

특별히 아들을 주셨습니다.

마치 백세 된 아브라함 부부에게 이삭을 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마노아 부부에게 다짐하십니다.

『이 아이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내 것이라』

아이의 소유권과 사용권은, 전적으로 하나님 당신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나실인’, 곧 당신의 ‘도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블레셋 치하에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그

아들을 마음에 두셨던 것입니다.

주제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사기의 삼손 이야기를, 그의 일대기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삼손이 주인공이고, 그 주인공을 하나님이 ‘도우셨다’, ‘아니 도우셨

다’라는 눈으로 읽으면,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삼손은 나면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의 일대기니, 삼손의 잘잘못이 어떻다느니, 그런 데에

관점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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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은 『일평생 자기 뜻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을, 관

심 있게 보아야 합니다.

그의 사용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었다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삼손 개인의 일로 보게 되면 잘했느니, 못했느니 말할 수 있겠습니

다만, 그에게서 이루어진 모든 결과를 하나님이 발휘하신 것으로 본

다면, 다르게 이해될 것입니다.

삼손은 태어나면서부터 아예 ‘나실인으로 받은 아들’이라는 것과,

그러므로 하나님 마음대로 ‘사용하실 수 있는 도구’라는 전제 하에

성경을 본다면, 아주 새롭고 놀라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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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과 예수님

잉태의 능력이 없던 마노아 부부, 잉태해서는 안 되는 마리아 요셉, 하나님

은 이들을 택하사 비슷한 환경에서 각각 아들을 주셨다. 왜 그리하셨을까?

예수님과 삼손의 출생상태를 비교해보겠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직 자식을 잉태해서는 안 되는, 정혼관계였을 때

의 일입니다.

부부 아닌 부부였던 이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를 잉태하

게 하셨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마노아 부부에게는 삼손을 낳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삼손, 이 두 분은 출생부터가 비슷했던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님 사자의 말씀을 듣고 혼란해 하고 갈등했

던 것과 똑같이, 마노아 부부도 그랬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 부인에게 나타나 아이 낳을 것을 말씀하시

자, 그녀는 남편에게 달려가 ‘여차여차한 사람이 나타나 이러이러한

말을 해주었다’고, 그대로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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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낳을 아이는 태어남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나실인으로 하나님

께 바쳐진 아이라. 그것을 수용한다면 그 아들을 받으라.”

아내의 이 말을 전해들은 마노아는, ‘과연 그럴까’ 의심합니다.

요셉처럼 말입니다.

마노아는 아내의 말을 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아내가 보았던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13:6~11)

이 또한 요셉의 행동과 같았습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가 자기 아내에게 했다는 말이 참인지 아닌

지, 과연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인지 아닌지 확인했던 것입니

다.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지 못함을 인함이었더라” (16절b)

무슨 말씀입니까?

여호와의 사자인지 아닌지, 직접 만나보기를 원했다는 뜻입니다.

그 사자가 자기에게도 다시 나타나서, 부인에게 했던 똑같은 말씀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를 집으로 모셔 대접하려고 합니다.

이 또한 요셉이 했던 행동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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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마노아는,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

하나이다.”(12절a)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말을 다시 풀어보면,

“무자한 우리 부부에게 주신다는 그 아들이,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는 날까지 ‘나실인’, 곧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뜻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노아의 마음 한편에는, 자기 부부에게 일어나

고 있는 이러한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를 않았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이미 포기했던 저들이 아니었

습니까?

긴가민가하던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자, 그에게서 무엇인

가 확실한 흔적을 찾아낼 때까지 헤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집으로 모시어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사자는 마노아가 자기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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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게서 하나님의 사자인 흔적을 발견하려고 한다마는, 나는

네게 명하노니, 내게 대접할 그것을 가지고 여호와의 단에 번제로

드리라. 나는 너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16절)

이에 마노아 부부는 하나님의 제단에 번제물을 올려놓고, 그것을 태

워 제사를 드립니다. (19절)

그때 제단 곁에는 여호와의 사자가 서계셨습니다.

제사를 드리던 마노아 부부는 놀라운 일을 목격합니다.

“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간지라” (20절a)

단에서 불꽃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방금 전에 자기들과 말씀하던 여호와의 사자도, 연기와 함께 하늘로

올리어 가는 것을, 그들은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던 것입니다.

“마노아와 그 아내가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20절b)

하나님께서 보낸 사자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땅에 엎드

릴 수밖에 없었겠죠.

이 일로 마노아 부부는 사자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이신 것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 말씀이 자기 가정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도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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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는 확신을 가지고 아이를 기다립니다.

이러한 삼손의 잉태 환경을 보건대, 예수님의 환경과 매우 흡사하다

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기까지의 마리아 요셉 부부의 경우와, 삼손을 잉태

하게 된 마노아 부부의 상황이, ‘비슷하다’, ‘일치한다.’고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삼손의 사적이 훗날의 예수 그리스도와 같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삼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하여 먼저 나

타난 선지자 격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예수님과 삼손 두 분의 태어난 환경이 비슷했다는 것을, 미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1장34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

수 잉태의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마리아는,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의심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 사자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물론 요셉도, 매우 혼란스러워했

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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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라고 합니다.

“나는 주의 계집종일 뿐이오니,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내 태를 통하

여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나타나게 하여지이다.”

마리아의 이 고백이, 마노아 부부와 같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마리아에게 나타났던 사자는 요셉에게도 현몽했습니다. (마1:20a)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밝힙니다.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바 사자라.”

그러면서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마1:20b)고

하십니다.

요셉은 그날로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요셉은, 그날부터 예

수님을 자기 자식처럼 낳고 키웠습니다.

예수님이 성장하실 때까지 지켜주었습니다.

이 또한 마노아 부부가 삼손을 잉태하면서부터 사역 현장으로 나갈

때까지 길러준 것과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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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 부부에게 했던, “삼손이 나실인으로 적당

한 나이가 된 다음에는, 그가 저희 백성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리

라.”는 예언을, 그대로 믿고 키웠습니다. (13:5)

이 말씀은, 마리아와 요셉에게 하셨던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b)는 내용과 정확하게 똑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삼손의 태어남은, 예수님의 탄생과 그 배경이

같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정상적으로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아니었

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낳게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셉은, 예수가 자기의 아들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아들처럼 키워주기는 했지만, 예수님의 소유권은 전적으로 하

나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하나님이 예수를 사용하시는데 있어서는, 아

무런 부담이 없으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삼손의 경우도 예수님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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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을 수 없던 마노아 부부에게 아이를 주시면서 ‘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그 소유권과 사용권이 내게 있는

나실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에 마노아가 무어라 했습니까?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12절)

예수님이 잉태된 일과 삼손의 경우가 일반이라 했음이, 헛말이 아니

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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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 일대기의 총 연출자

삼손 사사기는 하나님이 기획, 하나님이 각본, 하나님이 총 연출하신 드라

마 같은 이야기이다. 고로 삼손의 일대기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책이다.

삼손이 나실인으로 성장하여 죽는 날까지 행한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삼손으로 하신 하나님의 일’이라고 보는 영적인 눈이 있

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보는 자들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영적인 부분을 놓쳐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은 삼손에 대하여, ‘사사로 세움은 받았지만, 이방 여인들과 술

이나 마시고 사랑에 빠져 실패한 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 결과 머리를 밀리어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눈알마저 빠지게 됨

으로 사람들의 조롱거리 신세가 되었지만, 막판에 하나님께서 한 번

더 힘을 주시니, 많은 적을 죽였다’는, 무용담의 주인공 정도로 판단

하고 있습니다.

소설적으로 매우 드라마틱한 소재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게 되면, 삼손의 일생은 그 자신의 것이 아

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연출하신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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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은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였을 뿐입니다.

이를 전제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삼손 사사기는 우리에게 엄청난 영적 유익을 주는 책입니다.

이것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그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삼손을 영적인 눈으로 살펴보면,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본

분을 망각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린다면, ‘하나님의 신이 임하시어 하나님의 뜻대

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그에게는 자기 본분을 망각할 자격조차 없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사실을 전제

로, 삼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삼손은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지도 않았으며, 불의한 외도로 사사의

권능이 없어져버리지도 않은, 단지 하나님의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삼손 그는 본분을 망각하지도 않았으며, 불의한 외도로 사사의 권

능을 상실한 적도 없었다.』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삼손 일대기의 총 연출자는 누구라고 하

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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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기묘니라” (18절b)

잉태의 능력이 없던 마노아 부인의 태를 이용하여 삼손을 낳게 하신

분은, 기묘자 하나님이셨습니다.

삼손은 일반 ‘나실인’과는 달리,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날까지 평생

을 여호와께 바쳐진 사람, 『여호와께 바쳐진 사람』으로 살았습니

다.

그의 일생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나실인’으로서 생긴 사건이었다

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이 없던 마노아 부부에게 나타나시어, “너희에게

아들을 줄 터인즉, 그 아이는 내 뜻대로 쓸 내 도구라. 그래도 받겠

느냐?” 미리 다짐하셨습니다.

이에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해서, 낳은 아들이 삼손입니다.

그러므로 삼손 사사기는, 삼손의 일생이 아닙니다.

하나님 기획, 하나님 각본, 하나님이 총 연출하신, 하나님에 의한 드

라마요, 연극이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손 일대기의 총 연출자는 “기묘”, 『기묘자』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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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란 단어는 하나님을 표현한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묘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그 이름은 기묘자라”(9:6)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묘자’이신 하나님께서, 삼손의 일생을 사용하셨습니다.

따라서 삼손 사사기를 하나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신 방법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삼손을 통하여 승리하신, 하나님의 절차를 발견할 수 있습

니다.

이것이 성경을 영적으로 보아야 하는 진정한 목적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실인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하나님의 움직임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생전에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으나, 죽인 자들의 수준은

일반 백성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죽인 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방백들이었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모여 있던 건물을 무너뜨림으로, 한꺼번에 3천명

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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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리하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백성들보다는

방백들을 멸하는 것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빠른 방법이었습니다.

삼손이 살아있을 때에 이룬 업적과 죽으면서 거둔 결과를, 성경은

이렇게 비교하고 있습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

더라” (16:30)

살았을 때에 죽인 블레셋 사람들보다, 죽으면서 함께 죽인 블레셋

방백의 수가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삼손 사사기 드라마의 총 연출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도 예외 없

이 전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하실 일을 미리 보여주기 위하여, 삼손을

사용하셨다는 것을, 사사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하실 일을 나타내는데, 삼손의 처음부터 끝

까지를 사용하셨다.』

삼손에 대한 첫 시간은 이 정도에서 마감하겠습니다.

제Ⅱ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삼손을 통하여, 블레셋을 어떻게 무너뜨

리셨는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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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 관할 하에 들어있던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해냈

는지를 알게 되면, 참으로 엄청난 하나님의 방법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방법을 사용하면,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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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5: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삼손을 보편적 시각에서 보면, ‘부적절한 애정 행각으로 실패

한, 부끄러운 사사’ 쯤으로 볼 수 있으며, 저 또한 그렇게 생각

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 목사님의 강해를 통하여, 삼손의 일생 모두가 하나

님께 온전히 바쳐진 것이라는, 매우 중요한 진실을 발견하게 되

었습니다.

결과 그를 재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생애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부터 죽음까지를 그대로 비

유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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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6: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장 2

25

제 Ⅱ 편

본 문 : 사사기 제 15장 제 6절 ~ 8절

6.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누가 이일을 행하였느냐 혹이 대답하되 딤

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취하여 그 동무되

었던 자에게 준 연고니라 블레셋 사람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비를 불사르니라

7.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

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하고

8. 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틈에 거하니

Page 27: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마귀라 하여 무턱대고 징벌해도 되는 것일까? 하나님은 마귀에 대해서도

결코 불법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쓰신 합법적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이스라엘의 사사인 삼손이 블레셋 방백들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자

기 백성을 구원했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구원이 삼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말은 아

닙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승리였습니다.

삼손은 다만 사용된 도구였을 뿐입니다.

삼손을 통하여 블레셋 방백들을 몰살했던 이 역사는, 장차 마귀의

일을 멸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블레셋과 그 방백들을 무너뜨리고

자기 백성을 구원한 것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었으며, 장차 마귀의

일을 멸하실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예표였다.』

하나님은 창세기 때부터 마귀를 징벌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참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던 아담과 하와에게, 들짐승

뱀이 나타나 유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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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8: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뱀의 유혹에 넘어갑니

다.

이에 하나님은 아담 부부와 뱀을 저주하십니다. (창3:14)

뱀도 본래는 다른 들짐승 수준으로 뛰어다니기도 하면서, 채소와 과

일을 식물로 허락받았었습니다.

그러나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한 짓을 보시고는, “네가 이렇게 하였으

니” 이제부터는 배로 기어 다니면서, 종신토록 흙이나 먹으라고 하

십니다.

이로써 마귀의 힘이 점점 쇠약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로써 강한 자 마귀를 징벌하셨

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기록된 대로 ‘자기 백성

을 구원하려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

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또한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하심이니라”

(요일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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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9: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먼저 마귀의 일부터 멸해야 원하시는 인간구

원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예수님의 ‘구원’ 사역만 강조하고, ‘마귀를 멸하는

일’에는 소극적인 인사들이 있습니다.

반면 귀신을 쫓는 등 ‘마귀의 일을 멸함’에는 매우 열심이면서, 정작

하나님께서 목표로 하시는 ‘구원’에 대해서는, 소홀한 이들이 있음

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

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

라” (마12:29)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과, 마귀 아래 억압되어 있는 백성을 구원하

는 일, 이 두 가지는 떼려야 뗄 수 없도록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과 마귀를 멸하는 두 가지

일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두 가지 사역 모두가, 똑같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귀를 멸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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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0: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하나님은 마귀에게 어떤 빌미가 있을 때마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

니”를 내세우며, 저주에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는 가면 갈수록 더 커지면서, 마귀의 세력을 무너뜨리

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법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무턱대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법하지도, 무턱대지도 않으시는 분이다.』

반드시 멸하고자 하는 상대의 빌미를 발견한 다음, 다시 말하여 어

떤 허물을 확인한 다음에,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이것이 마귀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방식, 『마귀를 무너뜨리는 하

나님의 방식』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

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3:5)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네가 그를 상케 하였으니, 네가 그를 찔렀으니, 네가 그를 채찍질하

였으니, 내가 내 백성에게 구원을 베풀리라, 나음을 주리라, 사함을

주리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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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1: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있던 블레셋(마귀)으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구

원해내기 위하여, 하나님은 먼저 강한 자 블레셋을 결박하셨습니다.

그 수단으로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라는 조건이, 어김없이 제시되었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던지 시험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고난을 참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죄를 짓고도 고난은 싫어합니다.

조그마한 문제만 생겨도 합심하여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이 고통을 면케 해주소서! 이 고난을 물러가게 해주소서!”

그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는 합니다만, 그렇다

고 좋아만 할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싫어만해서는 마귀에게,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라는 조건을

제시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마귀를 결박하시려면, 반드시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라

는 빌미가 필요한데 말입니다.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에게 따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는데도 왜 이같이 못살아야 합니

까? 왜 이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왜 두려워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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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2: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어려움은 아예 싫으니, 없이해달라는 하소연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삼손은 우리처럼 하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바치운 자’로서, 닥친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고난에서 벗어나려 하

지를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이 고통을 당할 때마다 마귀를 향하여, “네가 이같

이 하였으니”라며 징벌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네가 이

같이 하였으니”를 앞세워 마귀 세력을 멸하셨습니다.

이를 빌미로 마귀 아래 있던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이 방식을, 우리는 삼손 사사기에서 발견할 수 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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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3: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하나님의 기묘

하나님의 신이 삼손에게 임하시자, 그가 처음으로 했던 일은 블레셋 여자

에게 빠진 것이었다. 성경은 그 일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우리의 왕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영원하신 하나님, 기묘자이신 하나님(사9:6)의 연출 방법을, 삼손을

통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을 때에, 여호와의 신

이 비로소 삼손에게 임하여, 크게 감동하십니다.

“소라와 에스디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13:25b)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삼손은, 무엇부터 했습니까?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성령이 충만하여 거룩한 일을 시작했던 것

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딤나에서 만난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부모에게 말씀드

립니다.

삼손의 부모는 아들이 좋아한다는 블레셋 여자를, 며느리로 들이기

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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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4: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오히려 삼손을 크게 책망했습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 중에, 『내 백성 이스라엘 중에』 어디 여자가 없

어서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여자를 아내로 삼으려 하느냐.”

이 장면에서 우리는 삼손 부모의 말에 동의하기가 쉽습니다.

다시 말하여 삼손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사라는 자가 어떻게 이방 여인과 결혼하겠다는 말인가? 참 사사

답지 못하다. 교만하여 자기 본분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긴 자기 부모도 그렇게 보았으니, 틀린 생각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더 관심 있게 본다면, 삼손을 다시 인식하게 될 것입

니다.

일할 나이가 되자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임하시므로, 그는

성령에 이끌려 딤나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블레셋 여인을 만난 것입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관할한 고로” (14:4a)

“이때”란,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어, 딤나 여인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했던 때를 말합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관할한지 40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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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5: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성령에 감동된 삼손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블레셋을 칠 기

회만 노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삼손의 부모는 이런 일들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

하였습니다. (14:4b)

성경은 이 일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손이 딤나 여인을 아내로 삼으려 했던 것이, 누구의 뜻

이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죠.

성령에 감동된 결과라는 것이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성령에 이끌려서 나온 작품이, 딤나 여인을

아내로 삼으려 한, 바로 그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자를 고집했던 까닭을 성경은, “블레셋 사람이 이스

라엘을 관할하고 있었던 고로”(14:4)라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삼손이 블레셋 여자를 만났던 것은, ‘블레셋이 이스

라엘을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40년 전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은 저들

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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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6: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누가 붙였다고요?

하나님이 붙이셨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블레셋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관할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억압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입니

다.

당연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줄 때도 합법적으로 주시지만, 내리칠 때에도 그냥 마구잡

이로 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라는 조건이 성립될 때에만, 상주거나 벌하는

분이심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를 만들기 위하여, 삼손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신에 감동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은 그에게 딤나 여인을, 아내로 삼으라고 하셨던 것입니

다.

삼손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구원의 시작이었습니다.

따라서 삼손이 이방 블레셋 여인을 취했던 것은, 회개해야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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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스라엘이 이방 블레셋의 관할 하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삼손은 자기 백성을 블레셋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하

여, 딤나 여인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합법적으로 하지 않으면, 도리어 나중에 당하게 될 터이니 말입니

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이끌어가고 계셨습니다.

삼손이 딤나로 내려갈 때에, 하나님은 어떤 일을 미리 만들어놓고

계셨습니까?

한 어린 사자를 만나도록 준비하셨습니다. (14:5)

당시 삼손은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었기 때문에, 큰 힘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힘이 펄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사자를 맨손으로 간단하게 찢어 죽여 버립니다.

어린 사자라 하여 새끼라는 말이 아닙니다.

늙어서 힘이 다 빠진 사자도 아닙니다.

삼손이 만난 사자는 아주 힘이 센 놈이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신에 의하여 날뛰는 사자를 맨손으로 “염소새끼를

찢음 같이”, 간단하게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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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은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가던 부모에게도 고하지 않았습니다. (14:6)

이 역시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 삼손이 다시 그곳을 지나다보니까, 자기가 죽인 그 사자의

몸에 뜻밖에도 벌떼들이 잔뜩 덮여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죽은 사자에게는 독수리나 까마귀가 와서 고기를 뜯어먹게 마

련인데, 왠일인지 벌떼들이 몰려와 윙윙대고 있었습니다.

이상해서 가까이 가보니 죽은 사자의 몸이 온통 벌집이 되어, 그 몸

에서 꿀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삼손은 길에서 보았던 그 사자 이야기(몸에서 꿀이 나

온)를 자기 아내에게만 은밀히 알려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비밀이라면서, 일부러 말해준 것입니다.

삼손은 처갓집 풍습에 따라 동네 친구들을 만들기 위하여, 남자

30명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풉니다.

잔치자리에서 삼손은 수수께끼 하나를 냅니다.

“내 수수께끼를 너희가 맞히느냐 못 맞히느냐에 내기 품을 걸겠는

데, 그것은 옷 30벌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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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9: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삼손이 내기에 지면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30명 친구들에게 각

각 한 벌씩 주기로 한 내기였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이기게 되면, 저들이 삼손에게 그만큼의 옷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4:12~13)

삼손이 낸 수수께끼 문제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

라.” (14:14a)

이 수수께끼를 어느 누가 맞힐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는 삼손 자신과 아내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청년들은 수수께끼를 풀고자 머리를 맞대고 의논합니다.

하루, 이틀, 삼일 연구에 연구를 해도,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

라”(14절b)고 했습니다.

도저히 답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동네 사람들은, 삼손의 아내를 불러 협박하기 시작

합니다.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너와 네

아비를 죽일 것이다. 또한 너희 집과 밭을 다 불사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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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협박에 여린 이 여자는 고민에 빠집니다.

자기도 아버지도 살려야 했습니다.

집도 밭도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결정합니다.

‘차라리 남편 한 사람을 배반하는 것이 낫겠다.’

그리고는 수수께끼의 비밀을 친구들에게 일러주고 맙니다.

“내 남편 삼손이 쳐 죽인 사자의 몸속에 벌이 가득 차 있었는데, 단

것이란 거기서 흘러내린 꿀을 가리키는 말이오.”

그녀는 삼손에게 들은 그대로를 전해주었습니다.

수수께끼의 답을 알게 된 블레셋 청년 30명은, 삼손 앞에 정색을 하

며 점잖게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삼손의 아내에게서 들은대로 답을 말해줍니다. (14:18a)

정답을 바로 맞힌 거지요.

이에 삼손은 충격을 받은 듯,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

더면(내 아내를 시켜서 밭 갈지 아니하였다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

히 풀지 못하였으리라”(18절b)고 말합니다.

저들이 아내를 구슬려 답을 얻어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삼손은 일부러 화를 잔뜩 낸 모습을 하고 처가 동네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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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죽인 일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전보다 더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장인어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또 삼손의 아내 마음은 얼마나 콩닥콩닥 했겠습니까?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갑자기 삼손이 나타나 장인을 들어 던지고, 아내도 찢어죽일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화를 잔뜩 낸 채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처가를 떠나긴 했습니다

만, 이는 그에게 임하신 여호와의 신의 작전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그때 삼손은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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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마귀를 물리칠 조건

“너희가 이렇게 하였으니”라는 조건이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라

면, ‘고난이 떠나가게 해달라’고 무작정 기도할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삼손의 장인은 한동안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본 후, 별 일이 없을 듯

잠잠한 것을 보자 한시름 놓습니다.

삼손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앞으로는 자기 딸과 상관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서, ‘삼손의 친구 되

었던 동무’(14:20)에게 딸을 줍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느닷없이 삼손이 찾아온 것입니다.

“장인어른 잘 계신가요? 저 삼손입니다. 처제도 잘 있었는가? 여보,

여보!”

집으로 들어서는 사위를 보고, 얼마나 혼비백산했겠습니까?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아서, 딸을 이미 다른 남자에게 주어버렸으

니 이거 큰일이 났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삼손은, 능청맞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계속 자기

아내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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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3: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사위를 가로막으며 구슬립니다.

장인은 얼마나 급했던지, 처제였던 동생을 삼손에게 주겠다고 제안

합니다. (15:2)

“여보게 삼손, 자네가 내 딸을 싫어하는 줄 알고 다른 친구에게 주어

버렸구먼. 용서하게나. 대신 이 여동생을 아내로 가지게나. 동생은

제 언니보다 더 예쁘고 아직 사내도 알지 못하는 처녀이니, 자네 처

로 삼아 행복하게 살게나.”

지금 삼손에게 있어, 전처보다 더 젊고 아름다운 동생을 새 아내로

맞이할 상황입니까?

이런 일은 여호와의 신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습니다.

장인의 하는 짓을 본 삼손의 말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는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 어떠한 해를

끼친다 할지라도, 그들이 내게 대하여 원망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

은 내게 큰 잘못을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허물이 없지 않은

가?” (15:3)

이때도 삼손은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를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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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삼손은, 여우 300마

리를 잡아서 두 마리씩 꼬리와 꼬리를 붙여 맵니다.

그리고 두 꼬리 사이에다 불붙은 홰를 달아줍니다.

꼬리에 불이 붙자 여우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뜨거우니까지 하니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삼손은 300마리를 몰아서 블레셋 사람의 밭으로 들여보냅니다.

여우들은 꼬리를 풀어보려고 온 밭을 미친 듯이 돌아다닙니다.

마침 곡식을 한창 거둘 추수 때인지라, 밭에는 익은 곡식 단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 밭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죠.

“곡식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사른지라” (5절b)

밭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뛰어옵니다.

자기들 곡식밭이 불타 망가진 것을 보고서는 아연실색합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

이에 어떤 사람이 나서서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불을 지른 것은 삼손이지만 그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장인이 그의 딸을 친구에게 준 연고라. 그래서 삼손이 화가 나

밭에다 여우들을 풀어 불을 붙인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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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은, “그 여인과 그의 아비를 불사르니

라”(15:6)

삼손은 자기 분에 못 이겨, 장인을 죽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신한 아내도 자기 성질에 죽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가 식구들 앞에서는 성난 듯이 떠났지만, 살인할 의사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장인과 아내가 불타 죽은 것은, 그가 떠나있던 그 사이에 벌어진 일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장인과 아내는 누가 죽인 것입니까?

동네 사람들, 곧 블레셋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들 재산에 손해를 입힌 원수를 갚겠다고, 블레셋 사람이 블레셋

사람인 장인과 아내를 죽였던 것입니다.

삼손이 말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

리라.” (7절b)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이제는 삼손이 자기 가족을 죽인 원수를 갚겠다고 나옵니다.

한 건 잡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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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잡았다는 말입니까?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건수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불에 태워 죽인 자는, 삼손의 장인이었습니다.

그의 아내였습니다.

마땅히 죽일 자를 죽인 것이지만, 삼손의 입장에서는 블레셋 사람들

에 대한 큰 빌미 하나를 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삼손은 오히려 큰 소리를 치게 되었습니다.

“아니 누가 내 장인을 불살라 죽였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내 아내

를 불살라 죽였단 말인가? 내 블레셋 동무들이 그랬다니 도대체 말

이나 되는가? 너희가 나에게 ‘이렇게 하였으니’, 내가 너희를 죽여

원수를 갚는다 할지라도, 너희는 내게 어떤 원망도 할 수 없으리라”

삼손은 그길로 내려가, 이 일에 가담했던 블레셋 남자들을 모두 도

륙해 버렸습니다.

그들의 밭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삼손은 단 한 번의 불법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전부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네가 이같이 하였으니』즉 분명

한 이유와 조건, 명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장인과 아내를 불사른 블레셋 장정들에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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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죽인들 누구에게도 걸릴

것이 없느니라.”

왜 이렇게 나와야 했을까요?

당시 강력한 나라 블레셋의 관할 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블레셋의 법을 어기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법을 지켜가면서 블레셋을 무너뜨린 이 방법은, 하나님이 사용하시

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이제 좀 이해가 되시나요?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나 하나님의 백성을 네가 다치게 하였으니, 너는 저주를 받아 마땅

하느니라. 내가 너에게 원수를 갚을지라도, 너는 어떠한 원망도, 핑

계도 댈 수 없을 것이라. 너희가 해한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내 아들이요 딸이니라. 감히 내 자녀를 시험

하고, 병들게 하고, 가난케 하고 어려움을 주었으니,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편케 살아남을 줄 알았더냐? 이 마귀야 들을지어다. 네

가 내 아들에게 이렇게 하였으니, 내 딸에게 이렇게 하였으니, 이제

내가 그 원수를 갚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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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8: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이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 방법, 이 조건, 이 원인은 삼손 개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

다.

여호와의 신이 충만하므로 이루어진 역사였던 것입니다.

삼손은 자기 뜻대로 딤나에 내려갔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여인을 취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인의 용모에 반해 사랑에 빠졌던 것은 더구나 아니었습니다.

되어 진 모든 일들은, 그에게 임하신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삼손을 어떻게 사용하셔도, 당신께는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낳음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당신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

곧 나실인으로 이미 정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삼손을 통하여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충

분히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런 기도를 올려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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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9: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다쳤나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상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이렇게 상

처를 입었나이다.

마귀가 이 상처, 이 고난을 주었나이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라는 조건을, 나에

게 만들어주었나이다.

이 빌미를 가지고 나를 공격한 마귀에게 다가가셔서, 나의 원수를

갚아주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씻음을 받고 구원 얻은 자들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바쳐진 삼손과 같은 입장이라고 본다면, 우리에

게 고난이 올 때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그의 몸

된 교회의 영광을 위하여) 남겨진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워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이, 교회의 영광을 위하여 내 육체에 채워주신

것이라 생각한다면, 고난으로부터 당장 벗어나겠다고 몸부림칠 것

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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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0: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 못할 때까지 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난에서 벗어나려고만 한다면, 삼손에게 적용하셨던 “네

가 이렇게 하였으니”라는 조건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환난을 참고 또 참으면 우리에게서도 삼손이나 예수님처럼, “네가 이

렇게 하였으니”라는 조건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구실 삼아서, 마귀를 지옥으로 보내버릴 수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

삼손처럼,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종이 되어보지 않겠습니까?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이 찬송을 진정으로 부를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고난을 물리치려고만 애쓸 것이 아닙니다.

평안하고 건강하고 부요한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만이 행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되는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이, 삼손처럼 그리스도

예수처럼 하나님께 유익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유익은 훗날 우리를 진정 자유케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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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1: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천국에서의 엄청난 영광과 상급이 될 삼손처럼,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유익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날을 소망하십시다.

우리 모두 마귀를 이기는 일에 도구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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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2: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삼손이 사사로 출발하던 초반, 블레셋 여자부터 찾았던 점을 이

해할 수 없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는 해석에 놀랐습

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어 하신 두 가지 사역, 즉 하나님의 백성

을 ‘구원하는 일’과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일’은, 그 어느 쪽도 놓

칠 수 없는 중요한 일임에도, 대개는 어느 한 부분만 치중했음

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먼저 마귀부터 진멸해야 구원의 역사가 가능하다는 말씀에 공

감합니다.

백성들의 고난을 보실 때마다 마귀를 향하여 “네가 이렇게 하

였으니”를 내세워, 핑계치 못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임

을 알진대, 고난은 피하는 것만이 상책이 아니라는 새로운 지혜

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 방법을 저도 사용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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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3: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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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Ⅲ 편

본 문 : 사사기 제 16장 제 28 ~ 30 절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

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

으로 껴 의지하고

30.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

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

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

다 더욱 많았더라

Page 54: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사랑하는 자로 번뇌하다

삼손에게는 피할 수 있는 힘이 있었음에도, 백성들을 위하여 스스로 잡

혀준다. “나를 부인하고 너희는 살라”는 예수님의 예표가 아니겠는가?

삼손은 장인이 자기 아내를 다른 친구에게 주었다는 것을 “네가 이

렇게 하였으니”의 빌미로 삼습니다.

그래서 한창 추수 때를 맞아 곡식 단을 쌓아둔 블레셋 사람의 밭에

다가, 여우 삼백 마리를 풀어놓습니다.

두 마리씩 꼬리를 묶어 그 사이에 횃불을 매달아 밭으로 내몰았으

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꼬리에 불이 붙은 여우들은 뜨거워서 온 곡식밭을 들뛰며 돌아다님

으로, 밭을 까맣게 불태우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연고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장인과 그의 딸을 불태워

죽입니다.

장인의 집도 밭도 불살라 버립니다.

삼손이 자기 가족들을 죽인 일을 그냥 넘길 리가 없습니다.

이를 또다시 빌미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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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5: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그는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도륙합니다.

“너희가 내 장인도, 내 아내도 불살라 죽였으니,(“너희가 이같이 행하

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는다 한들, 너희가 내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오.” (15:7)

삼손은 뭇 남자들을 다 죽이고 도망가서, 에담 바위틈에 숨었습니

다. (15:8)

삼손이 숨어 은둔하고 있을 때에,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찾고자 유

대인들이 사는 지역에 진을 치고서, 그곳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삼손을 잡겠다고 작정한 것이죠.

“너희 삼손이 우리에게 이같이 하였은즉, 우리가 삼손을 반드시 잡

고야 말리라.”

삼손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유대인들은 알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도 괴롭히니까, 유대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있는 삼손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삼손에게 하소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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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6: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지금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블레셋 통치하에 있는 것을 당신은 알지

못하느냐?” (15:11)

“우리가 당신을 잡아 저들에게 넘기지 아니하면, 저들은 당연한 것

처럼 우리를 계속 괴롭힐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 어서

블레셋에 자수하라”

이제 그만 블레셋에 잡혀달라고 요청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이스라엘 자손이 악을 행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이

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셨다.’고 기록했습니다. (13:1)

그런데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해(害)했으니, 이스라엘을 가

만 놔두었겠습니까?

삼손은 자기를 찾아온 동족에게 말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내게 행한 대로 갚아준 것뿐이라. 내가 저들을 도

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저들이 먼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대가로 갚아준 것뿐이다. 그런데 왜 나를 잡겠다는 것이냐?”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15:11b)

삼손은 자기 입장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가 구원을 베풀어야할 동족들인데, 도

리어 자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현실에 갈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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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7: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오죽이나 못살게 굴었으면, 자기를 찾아와 “어

떻게 하면 우리가 놓임을 받겠느냐?” 물었을까 고민합니다.

유대인들은 삼손에게 어렵게 제안합니다.

“당신을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면, 우리에게 해를 끼치

지 않겠다고 하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에 삼손이 대답합니다.

“새 줄 둘로 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저들에게 바치라. 그러면 너희

는 저들이 시키는 대로 했으니 무사할 것이다.”

삼손은 스스로 줄에 묶여줍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누가 생각납니까?

요한복음 18장 8절의 예수님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는 말씀이, 삼손의 이때의 결단과 똑같았던 것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내가 그라고 하였으니 나만 체포하고, 내 제자들이 가는 것과 나를

따르는 백성들이 자유롭게 사는 것은 허락하라. 너희는 내 제자와

내 백성들을 더 이상 해하지 말라. 제자 중 하나가 나를 너희에게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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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8: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아 넘겼으면 너희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더냐? 너희가 잡으려

는 자가 바로 나이니, 내 제자들과 내 백성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당신의 백성들을 살리시려는 주님의 그때 그 모습과, 삼손의 이때

상황이 똑같지 않습니까?

삼손이 예수님의 예표라는 사실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만찬 상에서 제자 유다에게, “어서 나가서 네 할

일을 속히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하라는 것이었습니까?

“나를 팔았으니 어서 저들에게 넘겨주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유다 아닌 다른 제자들에게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

라.”고 하셨습니다. (마26:34)

제자들은 물론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감옥에도 주님과 함께 가겠으며, 죽는 데도 함께 가겠습니다. 주께

서 가시는 어디든지 따르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눅22:33)

간곡하게 부탁까지 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제자들의 진정한 마음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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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9: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잘 알면서도, 당신을 부인하라고 하셨습

니다.

당신을 부인하고 흩어져야만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들이 장차 부인할 것을 알고, 괘씸하게 여겨서 하신 말씀이 아니

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흩어지라는 것이, 성경의 뜻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삼손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묶어서 블레셋에 넘기라. 이는 너희를 살리기 위함이니, 나를

저들에게 갖다 바치고 너희는 살아남으라.”

삼손을 통하여 예수님이 장차 행하신 일들을, 더욱 확실하게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자 들릴라를 사랑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삼손이 들릴라라 이름 하는 여자를 사랑하매”(16:4b)

삼손의 사랑에 비하여, 들릴라는 그다지 삼손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당시 여자에게는 상당히 복잡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아내라고,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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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0: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협박에 못이긴 들리라는 여러 번 삼손에게 물어보지만, 그때마다 삼

손은 가르쳐주지를 않고, 일부러 빗대어 대답합니다.

여인은 들은 그대로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일러주곤 했으나, 그것은

삼손이 거짓말로 가르쳐준 대답이었기 때문에, 그를 결박하려던 자

들은 실패하고 또 실패하기를 세 번까지 합니다.

삼손은 자기의 비밀을 아내에게 말해주면서도, 아내가 비밀에 붙이

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 내 남편은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자기를 믿음으로 따라줄 것 같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삼손의 힘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면, 곧바로 자기 민족 블레셋 사람

들에게 알려줄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들릴라와 그 가족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삼손은 세 번씩이나 다른 말로 대답해줄 수밖에 없

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들릴라가 자꾸 재촉하여 조르므로, ‘삼손이 번뇌했다’고 기

록했습니다.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됐다고 했습니다.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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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1: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왜 죽을 지경이 되도록 고민했을까요?

어떻게 하든지 비밀에 부쳐야 될 일인데, 사랑하는 여자가 자꾸만

조르니까 알려주고 싶어서 번뇌했다는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미 그 전에도 세 번씩이나 자기를 배신했던 들릴라라는 것을, 삼

손이 어찌 잊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알려줘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를, 죽을 지경까지 번뇌

했던 까닭이 있습니다.

비밀이 알려져 자기의 강한 힘이 다 빠지고 결박당하게 되면, 아내

는 행복해질 것을 알았습니다.

부유해질 것도 알았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의 제안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들릴라 네가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 비밀을 우리에게 알

려만 준다면, 각각 은을 일천일백 개씩 네게 주리라.” (16:6)

만일 들릴라가 자기의 비밀을 알려준 대가로 그 엄청난 액수를 받게

되면, 그녀와 그의 가족들은 아주 행복하고 잘 살 것을 삼손은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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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2: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반면 자기 비밀을 유지함으로 계속 힘을 발휘할 경우에는, 들릴라

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도 삼손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결박당하지 않는 한, 아내는 불행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한 번, 두 번은 들릴라와 블레셋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세 번째로 또다시 속여 블레셋 사람들이 헛걸음질하게 되면,

저들은 여자와 그의 가족을 그냥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번뇌했던 것입니다.

비밀을 말해주고 내가 망할 것인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내가 살 것

인가?

삼손은 자기의 목숨보다 사랑하는 여인의 입장을 더 생각했습니다.

‘내가 조롱당하면 들릴라가 행복해지고, 내가 살아남으면 이 여자는

죽게 될 것이니, 이 일을 어찌 할꼬?’

그래서 죽을 지경까지 번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해서는 비밀로 해야 되고, 여자를 생각해서는 발설을

아니 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과 여자사이에서 고민했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는 결과를 훤히 알고 있었기에 번뇌했던 것입니다.

삼손의 번뇌는 누구의 번뇌와 같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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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38절,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손의 번뇌는 예수 그리스도의 번뇌와 같았다.』

예수님의 고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딴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위하여 살 것인가? 제자와 백성을 위하여 죽을 것인가?’

삼손의 번민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여 이 지경을 피한다면 나는 안전할 수 있

겠지만, 나를 따르는 내 백성들은 어찌 될 것인가? 강력한 집권자 마

귀의 치하에 살고 있는 저들은, 고통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어떻게 하여야 옳단 말인가? 내가 죽으면 저들은 살 것이

요, 내가 살면 저들은 죽을 것이다. 백성을 위하여 내가 죽어야 할

것인가? 나 살겠다고 백성들을 몰라라 할 것인가?”

이러한 갈등으로 심히 고민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봅니다.

그 결과 자신은 백성을 위하여 죽음에 내놓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

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은 예수님은, “이제 죽으러 가자.”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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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주님의 결심이셨습니다.

이 사실만 보아도, 사사기에 기록된 삼손의 일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100% 예표해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손의 모든 일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일들을 예표였

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적으로 헤아려 읽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의 문화, 우리의 입장에만 맞추다보면, 삼손을 죄

인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마땅히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받아야 될 자로, 판단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삼손을 우리 수준에서만 보면 말입니다.

태어남에서부터 죽음까지 삼손의 일생 전부는, 하나님이 사용하시

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평생 나실인’이라는 전제 조건 하에, 무자하던 마노아로 낳게 하신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기묘자’이신 하나님은 삼손을 일으켜 직접, 연

출하기 시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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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5: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따라서 삼손의 모든 사건마다에는, 참으로 큰 의미가 담겨있을 수밖

에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으로 하여금, 장차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의 하

실 일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블레셋 관할 하에 있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누구의

관할 하에 살고 있습니까?

세상 임금 마귀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마귀가 병들라 하면 병들고, 굶주리라 하면 주려야 하며, 두려워하

라 하면 두려워하면서 종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삼손이 살았을 동안 이룬 성공보다 죽으면서 더 큰 승리를 가져왔

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결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마귀로부터 완전히 승

리케 되었습니다.

실제적인 사실과 연결하여 확인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에 도움이 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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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6: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나실인

삼손은 다른 일반 나실인과 무엇이 달랐나? 그는 나실인으로 태어나, 나실

인으로 살다가 나실인으로 죽은, 진정한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었다.

하나 더 밝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시 블레셋 사람들이 알고 있던 나실인과, 삼손의 경우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이면서도 일반 나실인과는 다른, 특이 사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머리를 밀면 능력이 끝장’이라는 비밀은, 일반적인 나

실인의 경우에나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특별한 나실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실인’에 대하여 정확하게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실인 서약 조건’이 민수기 6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

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민6:2b~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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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7: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것이라” (민6:5a)

남자나 여자가 나실인, 즉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한 다음에는, 그

날부터 독주를 마셔서도 안 되고, 포도주도 마시지 말아야 할 것을

언급했습니다.

또한 삭도를 머리에 대지 말라는 조건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실인으로서 바쳐진 그날부터 서원이 끝나는 날까지는,

‘도무지 머리를 깍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실인으로서 구별된 동안에는,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민

6:6b)이라는 금기 조항도 있습니다.

모든 죽음을 멀리하라는 명령입니다.

심지어 “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민6:7a)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

든 그 몸을 정결케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제 칠 일에 밀 것이

며”(민6:9)라고도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나실인으로 서약기간에 들어있는 동안에는, 부모형제가 죽어도 그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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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8: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시체를 보게 되면 그 자리에서 머리를 밀어, 나실인으로서의 신분을

일단은 취소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시체를 봄으로 몸을 더럽혔으니, 나실인으로 살았던 지난날의 모든

것은 무효가 된다는 뜻입니다.

주의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시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구들과 길을 가다가 한 친구가 갑자기 죽었다면, 죽음을 안 볼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머리를 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실인으로서의 몸을 더럽힌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수든지 의도적이었든지 서원한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하나님의 명

령을 어겼다면, 지금까지 나실인으로 지켜온 일 년이든, 십년이든

모두 취소가 된다고 했습니다.

지나간 날은 무효가 됨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

다. (민6:12)

이것이 나실인의 법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서원한 날 수가 다 차게 되면(두 번째 경

우), 지켜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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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회막문으로 데려가 머리털부터 밀라고 했습니다.(6:19~20a)

나실인으로서의 기한이 다 찼다는 의미입니다.

제사장이 집행하는 종료 예식을 마치면, 그때부터는 포도주를 마셔

도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자연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실인이 삭발하는 것은,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됩니다.

첫째,

서원한 기간 중 실수했을 경우입니다.

그럴 때는 지난동안에 지켜온 것들이, 모두 무효가 됩니다.

10년이면 10년, 5년이면 5년, 서원했던 연수를 처음부터 새로 시작

해야 합니다.(민6:9~12)

둘째,

나실인으로서의 기간이 완전히 만료되었을 경우입니다.

서원한 날 수가 다 차게 될 때, 제사장에게 가서 삭발부터 합니다.

이제는 나실인이 아닌, 자연인이라는 것을 공표하는 것입니다.

어떤 술도 마음대로 마실 수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민수기 6장 13절로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 나실인의 서약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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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손의 경우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낳을 수 없었던 마노아 부부를 찾아가, 조건

을 제시하며 물어보십니다.

“너희에게 아들 하나를 생산케 해줄 것인데, 내가 필요하여 불러낼

때까지 잘 키워주겠느냐?”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다시 말하면 정해진 기

간 없이 평생을,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

니다. (13:7)

‘그런데도 아이를 낳아주겠느냐?’는 제안에, 마노아 부부는 ‘주의 말

씀대로 되어지이다” 답했던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한 사이일 뿐 아직 동침도 하기 전에, 하나님

께서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너희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는 장차 만백

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마음대로 사용하실 수

가 있었습니다.

반면 마리아와 요셉은 호적상 부모라 할지라도, 예수의 하는 어떠한

일에도 반대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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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부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기 때문에, 마노아 부부 역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자에게 자기 힘의 비밀을 말해줌으로, 머리가 밀

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힘이 다 빠져나갔습니다.

마치 나실인이 취소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께 바쳐진 기한이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죽는 날까지’라는 서원 때문입니다.

나실인으로서 만료가 되어, 머리를 민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타의에 의해 깎이므로 잠깐 힘이 빠지긴 했지만, 삼손의 경우에는

‘머리 밀린 그날은 다시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시는지요.

일반적인 나실인의 경우, 임기를 마치는 날이 되어야 머리를 밉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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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72: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그것을 본 사람들은, ‘저 사람 지금부터는 비 나실인이 되는구나. 이

제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이네.’ 생각하게 됩니

다.

그러나 삼손의 경우는, 중간에 박박 깎였다고 해서 나실인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손의 경우 나실인으로서의 마감 날은, 그가 죽는 날입니다.

삼손이 살아있는 한은, 머리 민 날이 오히려 새로 시작하는 날일 수

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들릴라는 알지 못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 누구도 알리가 없었습니다.

삼손은 이 큰 비밀 하나만은,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머리가 밀리어 강한 힘이 모두 빠져나가 눈까지 멀게 되었지

만, 그의 중심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온갖 조롱을 다 받으며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닐지라도, 마

음속으로는 ‘나는 다시 시작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나실

인이다.’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던 삼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을 보는 블레셋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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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끝나버린 사람인 줄 알고 비웃었습니다.

저희들 손으로 삼손의 머리를 밀었고 눈까지 빼버렸기 때문에, 완전

히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과 하나님 사이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는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은 굳이 그 내용을 기록해놓았습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16:22)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삼손의 머리는 점점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큰 힘을 쓸 날이 다시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비밀을 하나님과 삼손 외에 누가 알 수 있었겠습니까?

삼손은 일부러 힘없는 척, 이리저리 끌려 다닙니다.

그러던 어느 날 블레셋 모든 방백들과 큰 백성 삼천 명이 모여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삼손은 이런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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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눈알이 빠져 볼 수 없었기에, 자기를 인도하는 소년에게 건물

안의 정황들을 물어봅니다.

그래서 블레셋 방백들 삼천 명이 모여 있다는 것과, 건물이 엄청나

게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소년에게 부탁합니다.

“이 건물을 버티고 있는 두 기둥 사이에 나를 데려다 달라.”

삼손은 두 기둥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합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한번만, 『이번 한번만』 저를 생각하사 모든

힘을 단번에 몰아주시옵소서.

내 두 눈을 뺀 원수를 갚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저들과 함께 죽음으로 블레셋 방백들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살리려 하오니, 전보다 더 강한 힘을 바로 지금 내려주

시옵소서.”

큰 건물을 버티고 있는 두 기둥 중 하나는 왼손에, 하나는 오른손에

의지하여 무너뜨렸습니다. (16:29~30)

삼손이 “잘못했습니다.” 회개함으로 받은 힘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회개했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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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갚겠습니다. 내가 죽음으로 저 원수들을 단번에 죽이겠으니

마지막으로 제게 힘을 주시옵소서.”

삼손은 자신이 나실인, 곧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죽음까지도『죽음까지도』 나실인으로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로 성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성경을 보면, 참으로 큰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삼손이란 인물에 대하여, 그동안 인간적인 눈으로

평가해왔습니다.

‘여자의 유혹에 빠져 큰 잘못을 저지른 벌로 고통당하다가, 막판에

회개하여 큰 건 하나 하고 죽었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삼손을 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힘센 용사와 아름다운 여인과의 러브스토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삼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생애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에 머리 깎인 그 일까지도, 하나님

에게 바쳐진 자로서 성공한 자『성공한 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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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본분이란 것이 따로 없는, 그야말로 온전히 하나님에게만 드

려진 삶을 살았던 삼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삶을 통해서도, 그의 죽음을 통해서도 당신 백성을

구원하는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제 성경의 진실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저와 여러분의 영혼이 이

깨달음으로 큰 승리 얻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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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영적인 눈으로 삼손을 다시 보니, 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

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유력자 삼천 명과 함께 삼손도 죽었던 그 사건은, 예

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귀를 완전히 심판하신 것과

방불했습니다.

또한 들릴라의 강청에 못 이겨 죽을 지경까지 번민하는 장면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과 너무 비슷했습니다.

삼손이 자기 본분을 망각하거나 사사권을 상실한 적이 없었던

것을 보면서, 진정한 나실인,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라면, 인생

전부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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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78: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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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Ⅳ 편

본 문 : 사사기 제 13 장 24 절 ~ 제 14 장 2 절

13:24.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아이가 자라

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13: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 에게 감동하시니라

14: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14:2.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

내를 삼게 하소서

Page 79: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삼손, 블레셋 여자에 빠졌던 건

‘이방 블레셋 여자와 사랑에 빠져 실패한 사사’쯤으로 삼손을 판단했던

것은, 성경의 장과 절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습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본문 14장은, [삼손 제1편]에서 다룬바 있는 내용입니다.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

서” (14:1~2)

삼손은 딤나라는 동네에 갔다가 블레셋 여자를 보고는, 그녀를 자기

아내로 삼겠다고 부모에게 말합니다.

이에 부모는 “내 백성 이스라엘 중에 여자가 없어서 할례 받지 아니

한 블레셋 사람을 아내로 취하려 하느냐.”며 강력하게 말립니다.

(14:3)

부모로서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입니까?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 적대 감정이

컸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블레셋이 할례 받지 않은 이방

민족이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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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삼손 부모의 뜻에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삼손에게는 부모조차 알지 못하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삼손의 아비는 이스라엘 열두지파 중 단 지파에 속한 마노아라는

사람입니다.

그들 부부는 나이가 먹도록 자식을 잉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노아의 아내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십니다.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 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그 머리에 삭도

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네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

인이 됨이라” (13:3~5a)

삼손이 본래부터 나실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별되어 바쳐진 자로서, 이방여인을 아내로 삼는다는 것

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부모라도 당연히 말렸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말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삼손은 그 아비에게 “내가 딤나 여자를 좋아하오니, 내 아내를 삼게 하

소서. 나를 위하여 그녀를 데려오소서.”(14:2) 간청합니다.

“여자를 좋아하오니”, 『좋아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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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사사로 출발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여자에게 빠져 장가

를 가겠다는 것입니까?

그것도 이스라엘인이 아닌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겠다니, 하나님께

선택된 자로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당시 삼손은 한창 젊었으며, 최고로 힘이 좋았을 때였습니다.

힘센 아들이 막무가내로 조르니, 아비라고 해서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니, 아들을 만류했던 그 아비나, 그 아

비에게 공감한 우리나, 모두가 오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인 13장의 마지막과 14장의 시작은, 같은 한 장에 들어가야 할

내용입니다.

즉 13장이든지 14장이든지, 같은 한 장 안에 들어가 있어야, 이해하

기가 더 쉬었을 것입니다.

나란히 이어져 있어야 할 내용이, 어이없게도 13장과 14장으로 나

뉘어졌기 때문에, 삼손이 블레셋 여자에게 빠진 것이 마치 잘못된

일처럼, 부끄러운 일처럼 오해하게 된 것입니다.

삼손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아 그와 블레셋 여인들과의 관계를, 크게

드러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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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설명 드립니다.

13장 24절 하반절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그리고 25절의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는 두 구절

후에, 다른 설명 없이 그대로 13장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감동하시니라』고 했으면, 감동받은

삼손이 어떻게 했다는 것이, 바로 연결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감동하시니라”로 마감되어 있는 것입니다.

13장의 감동으로 된 그 결과는, 엉뚱하게도 새로운 다음 장 14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새로운 장이 시작되면, 앞 장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새

롭게 펼쳐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습성 때문에 13장 마지막 절에 연결되어질 내용이, 다음 장

에 나온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4장에 삼손이 블레셋으로 내려가 그곳 여자를 보았던 일은,

13장의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므로 이루어진 삼손의 첫 사적이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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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과 14장의 문맥을 연결해 본다면,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삼손

이 그 신에 의하여 이룬 첫 작품이, 딤나 여인을 만난 일이었다는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 14장 5절부터 마지막 절까지의 내용을 세세히 살펴보니, 삼

손이 첫 번째 블레셋 여자에게 빠졌던 것은, 남녀 간의 첫 사랑 이야

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일에는 곡절도 많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이래저래 다툼도 있었습니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삼손은 블레셋 백성 다수를 아주 합법적으로, 『합법적

으로』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강하던 블레셋을 일차적으로 약화 시켰던 것입니다.

보건대 삼손이 블레셋 여자를 좋아했던 것은, 사사로서의 시작이었

다는 것을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사사기 16장에는 삼손의 둘째 여자, 들릴라가 등장합니다.

여전히 블레셋 여자였습니다.

들릴라를 본 삼손은 또다시 사랑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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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로 인하여 이번에는 블레셋 온 방백과, 전사급인 유력남녀

삼천 명을 단번에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블레셋 방백’이라고 하면 지도자, 장군, 장수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 자들만 무려 삼천 명을 한꺼번에 죽였던 것입니다.

당시 최고로 강력했던 블레셋을 크게 약화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사사로서의 삼손 20년 사적은, 두 블레셋 여자(딤나여인, 들릴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삼손이 적국 여자들에게 빠졌던 것은, 블레셋을 무너뜨리고 이스라

엘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블레셋 두 여자를 좋아하게 만든 것은, 누가 하신 일이며

누구를 위한 일이었습니까?

삼손에게 있었던 모든 일은, 결코 그의 뜻대로 된 것이 아무 것도 없

었습니다.

전부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삼손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에 충만케 하사, 그리 그리하셨던 것입

니다.

자,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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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85: 2 삼손의 엇나간 애정, 알고보니 하나님 의도

당시 블레셋은 강력한 파워로 이스라엘을 완전 장악, 관할하고 있었

습니다. (14:4a)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나실인 삼손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를 블레셋 두 여자에게 빠지게 하심으로, 그녀들로 인한 분쟁을

틈타서, 『그 틈을 타서』 블레셋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녀들로 하여금 블레셋을 공격할 조건과 이유를 만들게 하여, 합법

적으로 무너뜨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작전이며, 뜻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삼손의 부모가 알았었다면, 또한 우리라도 제대로 헤

아렸다면, 삼손이 블레셋 여자에게 빠졌던 것을 어찌 부끄러운 일로

여겼겠습니까?

어찌 이 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기를 망설였겠습니까?

삼손의 부모는 아들과 블레셋 여인과의 사랑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적극 밀어주었어야 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삼손의 아비처럼 우리도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장과 절이 어이없게 나뉜 관계로, 더욱 그렇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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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도에 따라서 억지로 나뉜 것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대할

때나 증거 할 때, 또 설교를 들을 때에는, 반드시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에 오해만 더해질 뿐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나실인’, 곧 ‘하나님께 바치운 구별된 자’란, 대체 어떤 자를 말하는

것인지, 다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구별된 자’라고 하여, 반드시 자기 백성 중에서 아내를 삼아야 하며,

삭도를 머리에 대지 말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나실인으로 삼으신 것은, 의인 만들려고 구별하셨던 것

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나실인이라면,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당신 백성의 유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기를 버릴 수 있

어야 합니다.

설사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할지라도, 아무런 불평이 없어야 합니

다.

그런 자가 ‘하나님께 바치운 자’, ‘나실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일꾼은, 머리를 기른 나실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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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머리를 잘라버린 나실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억압하고 있는 큰 힘으로부터, 백성을 구원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그 일에 도구되어 쓰임 받는 ‘나

실인’ 같은 자가 필요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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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성경은 무식자에게는 어려운 책이요, 유식자에게는 봉한 책이

라고 하셨습니다. (사29:10~12)

그 까닭은 받을 자만 받을 수 있도록, 비유로 혹은 무리한 장절

의 나뉨으로, 또는 신구약의 짝으로 감추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조명을 받지 않고서는, 바르게 해석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갈렙 목사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 성경의 진의를 알 수 있도록

삼손을 재해석 해주셨습니다.

이번 강해로 삼손의 굴욕적인 누명을 벗게 해주신 갈렙 목사님

을, 삼손도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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