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숨참으며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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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5일 금요일 9 책과 사람 (13) 김순남 도서출판 각 대표 도서출판 각의 김순남 대표는 제주에 출판사다운 출판사 하나 있어야 한 다며 만들어진 각의 초심을 늘 마음에 새기려 한다고 했다. 진선희기자 제주섬에도 출판사다운 출판사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자존심 으로,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동네는 적어그 지역의 자 생적 문화생산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자족적인 위안 속에 한 권의 책이라더 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도서출판 각 대표로 있는 김순남 시인은 출판사 홍보용 전 단 위에 적힌 이 목에 밑줄을 그어놓았다. 밖에응원을 보내던 그가 출판사 안으로 들어온 건 지난해 9월이다. 창립 자인 박경훈 전 대표가 제주문예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 대표직을 공석으로 둘 수 없어 수락한 자리지만 부담감이 크다고 했다. 제주에지역 출판사 하나를 운영하는 일이 생 보다 더 어렵다는 걸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생겨났다. 제주에로 된 단행본을 내 출판사가 거의 없던 시절이다. 박 전 대표가 아는 이들의 장정을 몇 번 해주다 그 길로 출판사를 열게 된다. 그해 7월 10일자로 각 출판사 이름을 단 첫 책이 나온다. 이어가는 길목 마라였다. 그 책 날개에 새로 세계를 여는 입니다 , 달음입니다 와 같은 각 출판사의 모토가 소개됐다. 마라시작된 각 출판사의 관심사는 제주4 3과 제주 문화로 확장된다. 그동안 펴낸 약 300종의 책 중에두 주제를 다룬 도서가 많다. 기획출판 시리즈 제목만 해4 3길찾기, 4 3의 진실과 문학, 제주무속의 탐구, 제주문화 원류 찾기, 제주대표 시인선으로 붙여졌다. 송성문화의 원류와 그 이해 개정증보, 현용준의 제주무속자료사 , 박찬식의 4 3과 제주역사 , 강정효의 바람이 쌓은 제 주돌담 등은 각 출판사가 특히 아끼는 도서들이다. 출판이 지니는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제주 지역의 출판사라는 오를 다져온 각 출판사는 어느덧 20년 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제주시내 여기저기 전전하다 2012년 지금의 제주시 원심삼2동주민센터 인근에 둥지를 틀었 다. 2014년엔 제34회 한국출판학회상 등을 수상했다. 각 출판사는 섬 문화의 기록자 이자 제주문화의 저장고 방한다. 제주 이주 열풍을 타고 반짝 관심 을 끄는, 잘 포장된 문화상품 같은 책에는 눈길을 두지 않는다. 잘 팔리진 않지만 지역의 지식과 문화의 거처로 오래는 책을 만 들려고 애쓴다. 출판사가 문을 닫지 않는 한 지역에출판은 사업이기 이전에 문화운동이라고 생합니다. 도서출판 각은 태생부터 문화운동을 시작한 셈이지요. 오늘여전히 우리는 문화운 동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아마이런 날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듯 하지만 저희들은 묵묵히 이 길을 가려합니다. 진선희기자 [email protected] 숨참 며파 어온 세월에 바치다 박물관 채 같은 삶에주아, 살았구눈물 짓쓰디쓴 스란히 시인은 몇 해전 몸에 걸친 옷 같은 직장을 내려놓았다. 요즘시인 있 어요? 시인은 뭘로 돈벌어요? 라고 묻는 아이들이 있는 이 사회에밥통 같은 일을 그만뒀다. 시는 내려 놓을 수 없었다. 거추장스러운 데가 많고 가려야 할 데가 많은 시이지만 시는 그를 물밖으로 꺼내 을 쉬게 해주는 아이들의 목소리 같은 거다. 물구덕 지듯 칠성지엉 먼물질 나강/ 귀상어에 쫓기고 샛바닥이 퍼렁 허게 시려/ 꼭 줄어질 것만 같을 때// 아이고 내 새끼덜, 저 큰놈 족은놈/ 갯 것이어멍, 어멍 부르는 소리 들리 면/ 아, 살았구나/ 저것들이 날 살리 는구나/ 내 울타리구나// 그냥 눈물이 나/ 눈물이 ( 울타리 중에서) 신작 시집 물에온 편지 를낸 제주 수열 시인. 한 사람의 지난한 생이 그 자체로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인은 섬 제주에이라는 고를 힘겹게 어온 이들 이 혼자소리인 양 풀어내는 말에 귀 기울인다. 제주방언으로 그들의 구술을 고스란히 적어놓은 듯한 시 는 해학적이면서도 울림이 있다. …몰라……모르커라………모른덴 허난……………정말 모르쿠다게…… ……………모르는 걸 어떵헙니까…… ……………정말 모르쿠다게………… …모른덴허나…………모르커라……… 몰라……// 모르긴 무사 몰라? 다 알 경 고른 거주, 죄 어신 사름덜 살려보젠/ 그로부터 동네 사름덜이 몰라 구장 몰라 구장, 경 불렀주, 별칭 으로/고마운 어른이라났주, 몰라 구장/ 알아 구장이라시믄 우리 동넨 끝장날 뻔 ( 몰라 구장 중에서) 무자년이란 말로 상징되는 제주4 3이 제주 사람들에게 드리운 상처는 시집 곳곳에 얼굴을 내민다. 직접적 으로 4 3말하지 않더라소섬 할머니가 바닷물이 짜지 않고 쓰다 할때, 김남주 시인 생가에만난 농민회장이 말로 어째 쓰까 이, 저 강정! 이라고 할 때녹록지 않은 섬의 운명을 헤쳐가야 하는 제 주 사람들의 오늘이 읽힌다. 지난 수 년간 이 나라제주 사람들을 외면 해왔다. 이런 현실을 위로하듯 시인 은4 3당시 수장당한 희생자의 음성 으로 우리에게 편지를 띄운다. 조반상 받아 몇 술 뜨다 말고/ 그 놈들 손에 끌려 잠깐 갔다 온다는 게 / 아, 이 세월이구나/ 산섯 구비 훌쩍 었구나// 그러나 아 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내 아 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그만 접어라/ 네 가슴 억누르는 천 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 육신의 칠 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 냐/ 나머지 삼 할은 땀이눈물이 라 여기거라/ 나 혼자아닌데 너 무 염려 말거라 ( 물에온 편지 중에서). 삶창. 9000원. 진선희기자 새책 ▶다윈의 핀치(피터 그랜트 로즈메리 그 랜트 지음, 엄상미 옮김)=그랜트 부부는 1 973년부터 40여년간 갈라고스 군핀치새를 관찰해왔다. 그들은 환경의 변화 에 따라 핀치새의 부리가 진화하는 모습 을 포착한다. 이를 통해 진화란 오랜 기간 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그 간을 알아 차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통설을 깨트렸다. 부부의 연 구 기록이 집약된 결과물로 새로운 종의 이주는 기존 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을 풀어냈다. 다른세상. 1만4800원. ▶각색 이론의 모든 것(린다 허천 지 , 손종흠 등 옮김)=색의 과정 없이는 영화 한 장면, 만화 한 컷창조하거나 음미할 수 없는 시가 됐다. 색에 한 이해없이는 SNS조차 제로 즐기기 어렵다. 저자는 색 혹은 모방을 인류의 본능적 행동이자 예술적 쾌락으로 인식 한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모든 문화 콘텐츠는 모방되어 전 달된다고 본다. 누가, 무엇을, 언제, 왜, 어디, 어떻게 혁명을 이끄는지 살폈다. 앨피. 2만5000원.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성원 지음)=하와이미래과학연구소에개발한 미래 예측기법을 이용해 20년 뒤 우리 사 회의 4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4가지 미래 모습은 경제의 지속성장, 붕괴의 새로운 시작, 보존사회, 변형사회로 나뉜다. 인구, 에너지, 경제, 환경, 문화, 기술, 지배구조 등 7가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인을 고려한 추상적인 미래상 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상상한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 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다뤘다. 이새. 13000원. ▶한반도의 안보 위협무엇인가(정 병호 호사카 유지 지음)=이명박-박근혜 로 이어진 9년간의 보수정권에 이어 진보-혁신계인 문재인 정권이 범했다. 외적으로 중국과 사드를 둘러싼 갈등 하고 북핵문제라는 고질적이고 복잡한 문제가 놓여있다. 불안정과 변화 의정가 탈냉전기보다 훨씬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정세부터 국제안전과 미사일까지 새로운 시의 안보위협이 무엇인지 제시했다. 황금알. 2만원. ▶과학이론 20(호소카와 , 김정환 옮김)=지난 100년간 과학은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는속로 발전 했다. 자동차, 스마트폰, 컴퓨터, 세탁기, 청소기 등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제품은 물론이고 우리가 입고 먹고 마시 는 모든 걸 현과학에 빚지고 있다. 이 제 과학을 알지 못하면 경제, 문화, 예술 등 사회 전반을 이 해하기 힘들다. 우주론에생물학까지 100년간 눈부시게 성장해온 과학이론 중 20가지를 골라 소개해 놓았다. 보누 스. 13000원. ▶맛있게 멋있게 나답게(전형주 지음)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등은 인생의 희 로애락을 닮았다. 어떻게 해야 맛있는 인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여러 방송에 비타민 교수 로 알려진 저자는 먼 저 자존감을 높이라고 말한다. 그 다음엔 열정을 불태우몰입하는 희열이 필요 하다. 상와 비교하지 않기, 잠시 멈추는 여유, 비움과 나눔, 인간관계 다이어트 하기 등 자신만의 인생 레시피를 만들어 보자. 팬덤북스. 13500원. 진선희기자 핵무기보다 위한 건 생태환경 무시 정책 울에 진짜 필요한 것은 맨해튼 다움 이 아니라 울다움 이다. 울에 필요한 것은 잠자는 과거 전통 을 재해석해 오늘에 맞는 실행 가능 성을 찾아주는 일이다. 울의 뿌리 를 보여줄 수 있는 시 환경을 조성 해야 한다. 울은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유리와 강철로 지은 사 무실 빌딩과 아트가 옛 골목을 완 전히 뒤덮고 있으, 건물의 외장과 내장을 포함해 전통 건축의 흔적은 어디에찾을 수 없다. 이란 단어 제주 를넣 어보면 어떨까. 그는 말한다. 급격한 시 환경의 변화는 활력을 주는 게 아 니라 혁신 정신의 연속성을 단절시킨 다고. 울을 또 다른 싱가포르로 만들 어버리면, 울의 복원력을 그토록 뛰 어나게 만든 모든 것이 죽어버린다고. 한국에이방인으로 10년 살아온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 이름 이만열로 경희후마니타스칼 리지 교수로 재직중인 그가 한국인 만 몰랐던 더 큰 한민국 을 냈다. 이 책은 한국이 지정학적 운명론을 떨치고 스스로 세상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 한민국의 원칙과 신념을 자 신있게 지구촌에 선언하라고 격려하 고 있다. 한민국의 아픈 속내를 놓 치지 않으면탄핵 이후 우리가 당면 한 과제와 가야 할 노정을 제시한다. 그는 한국사회에벌어진 정경유착 의 뿌리 깊은 부패가 단하게 박근혜 -최실 게이트 처리에끝낼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이는 정경유착 의 해체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봤다. 4 강 사업에 쏟아부은 22조원이나 자 원 외교에 낭비한 수십조원은 비화살을 피해 그어 있지 않은가. 이명박 정부가 정부 조직과 공기업들 을 경유해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보다 더 위요소로 생태환경을 외면한 정책을 꼽 았다. 미세먼지, 중국 륙의 사막화, 해수면 상승 등이 한국의 미래를 위 협하고 있는데 국가정책들은 큰 그림 을 그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의 정신이 병들고 있는 점에 서도 우려를 나타냈 다. 그는 즉시 만족 만 추구하는 문 화적 타락의 확산과 소비 욕구를 자 극하는 상업적 현상이 병으로 깊어 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사회의 미래를 상상 하고 능동적으로 미래 목를 위해 행동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빠져있다 불필요한 사치가 극단 적인 수동성을 유발하는 가운데, 우 리는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전개 되는 사회에 끌려다니는 자신의 모 습을 발견하게 이라고 했다. 레드우드. 1만5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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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5일 금요일 9

책과 사람 (13) 김순남 도서출판 각 대표

도서출판 각의 김순남 대표는 제주에 출판사다운 출판사 하나 있어야 한다며 만들어진 각의 초심을 늘 마음에 새기려 한다고 했다. 진선희기자

제주섬에도 출판사다운 출판사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자존심

으로,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동네는 적어도 그 지역의 자

생적 문화생산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자족적인

위안 속에 한 권의 책이라도 더 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도서출판 각 대표로 있는 김순남 시인은 출판사 홍보용 전

단 위에 적힌 이 대목에 밑줄을 그어놓았다. 밖에서 응원을

보내던 그가 출판사 안으로 들어온 건 지난해 9월이다. 창립

자인 박경훈 전 대표가 제주문예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

후 대표직을 공석으로 둘 수 없어 수락한 자리지만 부담감이

크다고 했다. 제주에서 지역 출판사 하나를 운영하는 일이 생

각보다 더 어렵다는 걸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은 1999년 생겨났다. 제주에서 제대로 된 단행본을 내

는 출판사가 거의 없던 시절이다. 박 전 대표가 아는 이들의

장정을 몇 번 해주다 그 길로 출판사를 열게 된다. 그해 7월

10일자로 각 출판사 이름을 단 첫 책이 나온다. 이어도로

가는 길목 최남단

마라도 였다. 그 책

날개에 각은 새로

운 세계를 여는 눈

입니다 , 각은 깨

달음입니다 와 같은

각 출판사의 모토가

소개됐다.

마라도에서 시작된 각 출판사의 관심사는 제주4 3과 제주

문화로 확장된다. 그동안 각에서 펴낸 약 300종의 책 중에서

두 주제를 다룬 도서가 많다. 기획출판 시리즈 제목만 해도

4 3길찾기, 4 3의 진실과 문학, 제주도 무속의 탐구, 제주문화

원류 찾기, 제주대표 시인선으로 붙여졌다. 송성대의 문화의

원류와 그 이해 개정증보판, 현용준의 제주도무속자료사

전 , 박찬식의 4 3과 제주역사 , 강정효의 바람이 쌓은 제

주돌담 등은 각 출판사가 특히 아끼는 도서들이다.

출판이 지니는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제주

지역의 출판사라는 각오를 다져온 각 출판사는 어느덧 20년

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제주시내 여기저기 전전하다 2012년

지금의 제주시 원도심 삼도2동주민센터 인근에 둥지를 틀었

다. 2014년엔 제34회 한국출판학회상 등을 수상했다.

각 출판사는 섬 문화의 기록자 이자 제주문화의 저장고

를 표방한다. 제주 이주 열풍을 타고 반짝 관심 을 끄는, 잘

포장된 문화상품 같은 책에는 눈길을 두지 않는다. 잘 팔리진

않지만 지역의 지식과 문화의 거처로 오래도록 남는 책을 만

들려고 애쓴다.

출판사가 문을 닫지 않는 한 지역에서의 출판은 사업이기

이전에 문화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출판 각은 태생부터

문화운동을 시작한 셈이지요. 오늘도 여전히 우리는 문화운

동의 연장선에 서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날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듯 하지만 저희들은 묵묵히 이 길을 가려합니다.

진선희기자 [email protected]

숨 참으며 파고 넘어온 세월에 바치다

박물관 한채 같은 삶에 주목

아, 살았구나 라며 눈물 짓는

섬의 쓰디쓴 사연 고스란히

시인은 몇 해전 몸에 걸친 옷 같은

직장을 내려놓았다. 요즘도 시인 있

어요? 시인은 뭘로 돈벌어요? 라고

묻는 아이들이 있는 이 사회에서 철

밥통 같은 일을 그만뒀다. 시는 내려

놓을 수 없었다. 거추장스러운 데가

많고 가려야 할 데가 많은 시이지만

시는 그를 물밖으로 꺼내 숨을 쉬게

해주는 아이들의 목소리 같은 거다.

물구덕 지듯 칠성판 지엉 먼물질

나강/ 귀상어에 쫓기고 샛바닥이 퍼렁

허게 시려/ 꼭 줄어질 것만 같을 때//

아이고 내 새끼덜, 저 큰놈 족은놈/ 갯

것이서 어멍, 어멍 부르는 소리 들리

면/ 아, 살았구나/ 저것들이 날 살리

는구나/ 내 울타리구나// 그냥 눈물이

나/ 눈물이 ( 울타리 중에서)

신작 시집 물에서 온 편지 를 낸

제주 김수열 시인. 한 사람의 지난한

생이 그 자체로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인은 섬 제주에서 삶

이라는 파고를 힘겹게 넘어온 이들

이 혼자소리인 양 풀어내는 말에 귀

를 기울인다. 제주방언으로 그들의

구술을 고스란히 적어놓은 듯한 시

는 해학적이면서도 울림이 있다.

…몰라……모르커라………모른덴

허난……………정말 모르쿠다게……

……………모르는 걸 어떵헙니까……

……………정말 모르쿠다게…………

…모른덴허나…………모르커라………

몰라……// 모르긴 무사 몰라? 다 알

멍도 경 고른 거주, 죄 어신 사름덜

살려보젠/ 그로부터 동네 사름덜이

몰라 구장 몰라 구장, 경 불렀주, 별칭

으로/참 고마운 어른이라났주, 몰라

구장/ 알아 구장이라시믄 우리 동넨

끝장날 뻔 ( 몰라 구장 중에서)

무자년이란 말로 상징되는 제주4

3이 제주 사람들에게 드리운 상처는

시집 곳곳에 얼굴을 내민다. 직접적

으로 4 3을 말하지 않더라도 소섬

할머니가 바닷물이 짜지 않고 쓰다

할 때도, 김남주 시인 생가에서 만난

해남농민회장이 참말로 어째 쓰까

이, 저 강정! 이라고 할 때도 녹록지

않은 섬의 운명을 헤쳐가야 하는 제

주 사람들의 오늘이 읽힌다. 지난 수

년간 이 나라도 제주 사람들을 외면

해왔다. 이런 현실을 위로하듯 시인

은 4 3당시 수장당한 희생자의 음성

으로 우리에게 편지를 띄운다.

조반상 받아 몇 술 뜨다 말고/ 그

놈들 손에 끌려 잠깐 갔다 온다는 게

/ 아, 이 세월이구나/ 산도 강도 여

섯 구비 훌쩍 넘었구나// 그러나 아

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내 아

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그만 접어라/ 네 가슴 억누르는 천

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 육신의 칠 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

냐/ 나머지 삼 할은 땀이며 눈물이

라 여기거라/ 나 혼자도 아닌데 너

무 염려 말거라 ( 물에서 온 편지

중에서). 삶창. 9000원. 진선희기자

새책

▶다윈의 핀치(피터 그랜트 로즈메리 그

랜트 지음, 엄상미 옮김)=그랜트 부부는 1

973년부터 40여년간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핀치새를 관찰해왔다. 그들은 환경의 변화

에 따라 핀치새의 부리가 진화하는 모습

을 포착한다. 이를 통해 진화란 오랜 기간

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그 순간을 알아

차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통설을 깨트렸다. 부부의 연

구 기록이 집약된 결과물로 새로운 종의 이주는 기존 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을 풀어냈다. 다른세상. 1만4800원.

▶각색 이론의 모든 것(린다 허천 지

음, 손종흠 등 옮김)=각색의 과정 없이는

영화 한 장면, 만화 한 컷도 창조하거나

음미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각색에 대

한 이해없이는 SNS조차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 저자는 각색 혹은 모방을 인류의

본능적 행동이자 예술적 쾌락으로 인식

한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모든 문화 콘텐츠는 모방되어 전

달된다고 본다. 누가, 무엇을, 언제, 왜, 어디서, 어떻게 각색

혁명을 이끄는지 살폈다. 앨피. 2만5000원.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박성원

지음)=하와이미래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미래 예측기법을 이용해 20년 뒤 우리 사

회의 4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4가지 미래

모습은 경제의 지속성장, 붕괴의 새로운

시작, 보존사회, 변형사회로 나뉜다. 인구,

에너지, 경제, 환경, 문화, 기술, 지배구조

등 7가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인을 고려한 추상적인 미래상

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상상한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

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도 다뤘다. 이새. 1만3000원.

▶한반도의 안보 위협은 무엇인가(정

병호 호사카 유지 지음)=이명박-박근혜

로 이어진 9년간의 보수파 정권에 이어

진보-혁신계인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다.

대외적으로 중국과 사드를 둘러싼 갈등

이 심각하고 북핵문제라는 고질적이고

복잡한 문제가 놓여있다. 불안정과 변화

의 정도가 탈냉전기보다 훨씬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정세부터 국제안전과 미사일까지 새로운 시대

의 안보위협이 무엇인지 제시했다. 황금알. 2만원.

▶과학이론 20(호소카와 히로아키 지

음, 김정환 옮김)=지난 100년간 과학은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

했다. 자동차, 스마트폰, 컴퓨터, 세탁기,

청소기 등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제품은 물론이고 우리가 입고 먹고 마시

는 모든 걸 현대과학에 빚지고 있다. 이

제 과학을 알지 못하면 경제, 문화, 예술 등 사회 전반을 이

해하기 힘들다. 우주론에서 생물학까지 100년간 눈부시게

성장해온 과학이론 중 20가지를 골라 소개해 놓았다. 보누

스. 1만3000원.

▶맛있게 멋있게 나답게(전형주 지음)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등은 인생의 희

로애락을 닮았다. 어떻게 해야 맛있는 인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여러 방송에 출연

하며 비타민 교수 로 알려진 저자는 먼

저 자존감을 높이라고 말한다. 그 다음엔

열정을 불태우며 몰입하는 희열이 필요

하다. 상대와 비교하지 않기, 잠시 멈추는 여유, 비움과 나눔,

인간관계 다이어트 하기 등 자신만의 인생 레시피를 만들어

보자. 팬덤북스. 1만3500원. 진선희기자

핵무기보다 위험한 건 생태환경 무시 정책

서울에 진짜 필요한 것은 맨해튼

다움 이 아니라 서울다움 이다. 서

울에 필요한 것은 잠자는 과거 전통

을 재해석해 오늘에 맞는 실행 가능

성을 찾아주는 일이다. 서울의 뿌리

를 보여줄 수 있는 도시 환경을 조성

해야 한다. 서울은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유리와 강철로 지은 사

무실 빌딩과 아파트가 옛 골목을 완

전히 뒤덮고 있으며, 건물의 외장과

내장을 포함해 전통 건축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서울 이란 단어 대신 제주 를 넣

어보면 어떨까. 그는 말한다. 급격한 도

시 환경의 변화는 활력을 주는 게 아

니라 혁신 정신의 연속성을 단절시킨

다고. 서울을 또 다른 싱가포르로 만들

어버리면, 서울의 복원력을 그토록 뛰

어나게 만든 모든 것이 죽어버린다고.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10년 넘게

살아온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

이름 이만열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

리지 교수로 재직중인 그가 한국인

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 을 냈다.

이 책은 한국이 지정학적 운명론을

떨치고 스스로 세상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 대한민국의 원칙과 신념을 자

신있게 지구촌에 선언하라고 격려하

고 있다. 대한민국의 아픈 속내를 놓

치지 않으면서 탄핵 이후 우리가 당면

한 과제와 가야 할 노정을 제시한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정경유착

의 뿌리 깊은 부패가 단순하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처리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이는 정경유착

의 해체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봤다. 4

대강 사업에 쏟아부은 22조원이나 자

원 외교에 낭비한 수십조원은 비판의

화살을 피해 그대로 숨어 있지 않은가.

이명박 정부가 정부 조직과 공기업들

을 경유해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보다 더 위험한

요소로 생태환경을 외면한 정책을 꼽

았다. 미세먼지, 중국 대륙의 사막화,

해수면 상승 등이 한국의 미래를 위

협하고 있는데 국가정책들은 큰 그림

을 그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의 시대 정신이 병들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

다. 그는 즉시 만족 만 추구하는 문

화적 타락의 확산과 소비 욕구를 자

극하는 상업적 현상이 병으로 깊어

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사회의 미래를 상상

하고 능동적으로 미래 목표를 위해

행동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위험에

빠져있다 며 불필요한 사치가 극단

적인 수동성을 유발하는 가운데, 우

리는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전개

되는 사회에 끌려다니는 자신의 모

습을 발견하게 될 것 이라고 했다.

레드우드. 1만5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