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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남연구 제2집 2010

요약

遼東半島 南端의 청동기시대 초기 문화는 雙 子文化로 대표된다. 이 지역은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조기

와도 깊은 관련을 가지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쌍타자문화에 포함되는 大嘴子유적은 요동반도 남단에 위

치하며 쌍타자문화와 동일한 층위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주거지, 수혈

등의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고, 유구내에서 출토된 유물은 쌍타자유적 보다도 다양하다.

본고에서는 대취자유적의 주거지와 주거지내에서 출토된 기형이 확인이 가능한 토기를 중심으로 대취자

유적이 Ⅰ기에서 Ⅲ기로 변화해 가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Ⅲ기에 비해 Ⅰ기와 Ⅱ기의 고고자료는 빈

약하며, 조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로 Ⅲ기를 위주로 검토한 결과, 주거지는 무시설식 주거지와 석벽

식 주거지로 나눌 수 있으며, Ⅲ기는 또한 1∼4기로 세분이 가능하였다.

출토유물로 살펴 보았을때 대취자유적은 제Ⅰ기에서는 재지계 세력이 유지되면서 山東지역 龍山文化로

부터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았다. 제Ⅱ기가 되면 山東半島 岳石文化의 영향이 강해지며 재지계 문화와 외래

계 문화가 공존한다. 그러나 제Ⅲ기가 되면 岳石文化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재지계 문화의 세력이 더 강

하며, 외래계 영향을 받은 유물들은 재지화되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제어 청동기시대, 요동반도, 쌍타자, 대취자, 주거지

목차

Ⅰ. 머리말

Ⅱ. 연구사

Ⅲ. 대취자유적에대한검토

Ⅳ. 대취자유적변천과정에대한검토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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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3

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주거지와출토토기를중심으로-

*

Ⅰ. 머리말

太子河上流~千山산지~遼東半島에이르는지역의청동기시대초기1)문화는요동반도남단은雙

子文化, 태자하상류지역은馬城子文化로크게나누어볼수있다. 이 지역은한반도청동기시대

의조기와도깊은관련을가지기때문에매우중요한지역이다. 특히요동반도남단은이미신석기

시대부터 압록강 주변 북한지역의 제 유적들과도 상당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

다.

본고에서검토하게될大嘴子유적은요동반도남단에위치하며, 쌍타자문화와동일한층위관계

를가지는것으로알려져있다. 특히대취자유적의제Ⅲ기에서출토된경부에횡대구획이있는호

를비롯하여단시설을설치한주거지등은한반도와도관련이있는것으로보이지만, 주거지와유

물을연계하여세부적으로언급한연구는아직드문실정이다. 본고에서는대취자유적과한반도의

관계에대한연구의사전작업으로우선대취자유적에서확인된주거지와출토토기를중심으로대

취자유적의단계별변화양상을검토해보고자한다.

대취자유적은 1959년에처음발견되었고(許明綱 1960), 1987년 2월대취자유적이위치하고있

는 大連市 지역이 경제개발기술개발구로 건설될 때 유적의 일부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긴급구제발

굴이 진행되었다(大連市文物考古硏究所 2000). 1992년 봄, 요령성 문물연구소와 길림대학교 고고

학과가연합해발굴팀이결성되어, 40여 일간 205㎡를 다시 조사하였다(遼寧省文物硏究所·吉林

大學考古學系·大連市文物管理委員會 1996).

* 경남발전연구원역사문화센터1) 본고에서초기는시기구분의의미가아닌‘이른시기’라는뜻으로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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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남연구 제2집 2010

대취자유적에서는주거지, 수혈,2) 구획 내문화층에대한조사가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우선

주거지와주거지내에서출토된기형확인이가능한토기를중심으로대취자유적이제Ⅰ기에서제

Ⅲ기로 변화해가는 양상을 검토 해 보도록 하겠다. 후술하겠지만 대취자유적은 Ⅲ기에 비해 Ⅰ기

와Ⅱ기의주거지수가상당히적고, 보존으로인하여완전히조사가이루어지지못한부분도있기

때문에대취자유적제Ⅰ기와제Ⅱ기는양상만파악하여간략하게검토할수밖에없다. 반면에 대

취자유적 제Ⅲ기는 제Ⅰ기와 제Ⅱ기에 비해 조사된 주거지의 수량도 많고, 출토 유물도 풍부하기

때문에주거지와출토토기를연계하여세밀하게검토를하도록하겠다.

본고에서는정식으로보고서가발간된 1987년의발굴내용을중심으로하면서, 1992년에발굴

된내용을보충하는형식으로검토해보고자한다.

Ⅱ. 연구사

본고에서다루고자하는요동반도남단의청동기시대초기는쌍타자문화로대표된다. 쌍타자문

화는쌍타자유적을표지유적으로하며, 유적은 1964년 6월과 8월에 2차례에걸쳐발굴이이루어

졌다(朝·中合同考古學發掘隊 1966). 두 차례에걸친발굴조사에서문화층의퇴적은모두 10여개

의층으로나누어졌지만, 유물은크게 4개의층과 3단계로구분되었다. 이 단계는각각쌍타자제1

기문화, 제2기문화, 제3기문화로 나누어지며(도면 1),3) 이는 곧 요동반도 남단 청동기시대 초기의

편년이되었다.

요동반도 남단에서 쌍타자문화에 포함되는 유적으로는 大嘴子遺蹟(遼寧省文物硏究所·吉林大學

考古學系·大連市文物管理委員會 1996; 大連市文物考古硏究所 2000)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于家村下層遺蹟, 高麗城山遺蹟, 單 子遺蹟, 羊頭窪遺蹟, 于家村下層遺蹟, 高麗寨遺蹟 등이 있다.

또한 서북한 지역에서는 쌍타자 1기~3기까지의 문화가 新岩里 1기, 2기와 병행하는 것으로 알려

져있다(宮本一夫 1995). 특히본고의검토대상이될대취자유적또한기존연구성과에의하면쌍

타자유적과동일한층위관계를가진다고알려져있다.

요동반도 남단의 청동기시대에 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요동반도

남단의 청동기시대가 언제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陳國慶과 華玉氷은 쌍타자유적과 동일하게

편년이이루어지고있는대취자유적에서출토된청동창 1점을근거로이지역이산동반도의龍山

文化에해당하는쌍타자 1기문화시기에이미청동기시대에진입하였다고인정하였다(陳國慶·華

2) 보고자는灰坑으로보고하고있으나, 그내용은수혈에가깝기때문에본고에서는수혈이라고부르도록한다.3) 보고에 의하면 1a, 1b, 1c 는 표토층, 2a, 2b는 쌍타자 제3기문화, 3a, 3b는 쌍타자 제2기문화, 4a, 4b, 4c는 쌍타자 제1기문화로보고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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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5

玉氷 1993). 宮本一夫 역시 쌍타자 1기부터 청동기시대가 시작한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千葉其次

또한토기의문양및구성의변화등을통해요동반도남단의초기청동기시대의시작은쌍타자제

1, 2기와 于家村下層, 望海 遺蹟이며, 이 유적에서출토된弦文과乳丁狀附加堆文토기와彩繪陶

등을특징으로한다.

그러나 朱永剛은 큰 문화배경으로 볼 때 황하지역의 二里頭文化는 청동기시대에 진입하였고,

이 직전에 전체 황하유역 산동 용산문화를 포함하여 동기의 출토 지점과 종류가 일정부분 확인되

지만, 아직청동창을주조할수있는공예수준에는이르지못하였다고보았다. 더욱이동북지역의

같은시기유적에서이를고증할수있는실례가없기때문에대취자유적의청동창은아직한단계

더고증을거쳐야하는것으로보았다. 그래서이지역이쌍타자 2기보다먼저청동기단계에진입

하였다는문제는신중히고려해야할것으로보았다(朱永剛 1997). 그 때문에쌍타자 1기는신석기

시대만기로보고, 쌍타자 2기부터가요동반도남단의청동기시대의시작으로보았다.

다음은쌍타자문화의시기구분에대한연구이다. 궁본일부는쌍타자 3기를주거지 7호→주거

지 4호→주거지 2호의토기의변화및토기구성으로또전기, 중기, 후기로세분하였다(宮本一夫

1995). 千葉其次는 쌍타자 제 1, 2기는 弦文과 乳丁狀附加堆文토기와 彩繪陶 등을 특징으로 하며,

1. 2, 4 ( , 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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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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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7

다음시기는쌍타자 3기와, 于家村上層, 羊頭窪遺蹟으로나누어지는데, 이 시기는條帶狀附加堆

文을대표로하는시기이다. 千葉其次의연구는쌍타자 1기를요동반도남단의청동기시대시작으

로 보고 있지만, 다른 연구자와는 달리 쌍타자 1기와 2기가 유물구성 등 여러 방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보고, 이지역의문화를크게 2개의시기로나누어보았다.

朱永剛은 최근 발표한 논고에서 동북지역의 편년을 조기, 전절기(전환기), 번영기, 만기의 4시

기로 나누고 쌍타자 2기를 조기(B.C 2000∼B.C 1400), 쌍타자 3기를 전절기(B.C 1400∼B.C

1000)에 두었으며, 쌍타자 2기문화는夏~早商시기, 쌍타자 3기문화는晩商시기전후로편년하여,

쌍타자 1기는신석기시대만기로보고, 쌍타자 2기부터가요동반도남단의청동기시대의시작으로

보았다(朱永剛 2009a, 2009b). 복기대 역시주영강의의견에동의하며, 요동반도남단지역이완

전한 청동기시대로 들어가는 것을 쌍타자 2기부터로 보았고(복기대 2008), 쌍타자 3기는 후기 청

동기시대로편년하였다(복기대 2004). 비록 이시기문화에대한연대측정결과는없지만, 이 문

화 요소를 주변 지역 문화요소와 비교해보았을 때, 산동지방의 岳石文化와 연대가 비슷한 기원전

1900∼1700년 전후 이다. 이 두 문화간의 교류 현상을 봤을 때 거의 같은 시기였고, 또한 지층관

계를 고려해 볼 때, 쌍타자 1기 문화가 기원전 2000년 전후이다. 그리고 쌍타자 3기문화가 1300

∼1100년전후인것으로볼때, 쌍타자 2기문화의연대는기원전 1600∼1400년경으로보았다(복

기대 2008).

강인욱은 아파나시에보문화-안드로노보문화-카라숙문화-타가르문화-흉노문화-타쉬트익문

화로변화되는남부시베리아를표지로하는초원문화와중국북방에서일찍이중원과는다른청동

기의 제작전통이 있었음을 인지하였다. 그리고 이 두 지역을 교차편년 한 결과 쌍타자 1기는 초원

문화의중기청동기에해당하며, 쌍타자 3기는초원문화의후기청동기로보며쌍타자 1기에서 3기

의 시기는 대체로 B.C 2000년 후반에서 B.C 1000년 사이에 편년되는 것으로 보았다(강인욱,

2009a). 최근의또다른논고에서는이지역의청동기시대를전환기(기원전 20∼15세기)-전기(기

원전 15∼11세기)-중기(기원전 11∼9세기)-후기(기원전 9∼6세기)의 4시기로 나누고 쌍타자 3기

가전기중엽(기원전 13세기)에출현하여중기까지지속되었다고보았다(강인욱 2009b).

대취자유적은 쌍타자유적에 비해 많은 유구가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유물이 출토되었

음에도 불구하고 대취자 유적에 대한 연구는 쌍타자유적이나 요동반도의 편년에 대한 연구에 비해

상당히미흡한편이다. 대부분의연구자들이대취자유적은쌍타자유적과동일한층위관계를가지는

유적으로인식은하고있지만, 유적내의유구와유물에대한세밀한연구는그수가많지않을뿐더

러 그 연구마저도 대취자 제Ⅲ기 문화에 집중되고 있다(遼寧省文物硏究所·吉林大學考古學系·大

連市文物管理委員會 1996; 華玉氷·陳國慶 1996; 大連市文物考古硏究所2000; 張翠敏 2006).

요동반도남단청동기시대초기의편년에대한각연구자들의견해는 <표 1>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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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

4) 각 연구자의 편년안을 기초로 작성하였고, 일부는 배진성(2007), 안재호(2010)의 글에서 인용하였다. 절대연대에 관련하여서는연구자간의편년차가있어서표에서는제시하지않았다. 그러나쌍타자제3기의시작에대해서는대체로 B.C 1500년경전후로어느정도일치가이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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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9

Ⅲ. 대취자유적에대한검토

두차례에걸친발굴중 1987년에 이루어진발굴에서는오로지대취자제Ⅲ기문화에서만주거

지가 확인되었다. 쌍타자 유적에서는 대취자 유적 제Ⅰ기에 해당하는 쌍타자 1기문화와, 대취자

유적 제Ⅲ기에 해당하는 쌍타자 3기 문화에서만 주거지가 확인되어 쌍타자 2기문화의 주거지에

대한면모는확인할수없었다.5) 그러나 1992년 이루어진대취자유적 2차발굴에서제Ⅰ기~제Ⅲ

3. 1 (1987)

5) 쌍타자유적발굴에서도쌍타자 2기문화의주거지는확인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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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이르는 모든 문화층에서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이 발굴조사에서는 발굴범위가 넓지 않아 대

취자 제Ⅱ기 문화의 주거지는 1동 밖에 확인되지 않았지만, 요동반도 남단 청동기시대 초기의 편

년이되는쌍타자문화에서쌍타자 2기 문화의주거지에대한면모를확인할수있었다는것에중

요한의의가있다고할수있다.

대취자 제Ⅰ기 문화의 주거지는 1차 발굴에서는 확인되지 않았고, 2차 발굴에서는 2동이 확인

되었다. 대취자제Ⅱ기문화의주거지는 1차 발굴에서는제Ⅰ기문화와마찬가지로확인이되지않

았고, 2차 발굴에서는 1동이 확인되었다. 대취자 제Ⅲ기문화의주거지는 1차 발굴에서는 39동, 2

차 발굴에서는 9동이 확인되어 모두 조사가 이루어졌다. 후술하겠지만 대취자 제Ⅲ기에서는 무시

설식주거지와 석벽식주거지로 나누어지는데 이 두 유형의 주거지는 서로 중복관계를 가지기 때문

에이중복관계와각주거지내에서출토된유물들을통하여세분하면대취자유적제Ⅲ기는또한

Ⅲ-1~Ⅲ-4기로나눌수있다.

종합하여 보면 대취자 유적 1차 조사에서는 오로지 대취자 제Ⅲ기문화에서만주거지가확인되

었고, 2차 조사에서 대취자 제Ⅰ기~제Ⅲ기 문화의 주거지가소량확인되었다. 전술 하였듯이 2차

발굴에대한정식보고는아직이루어지지않았고, 약보고서 형태로유적의일부와소량의유물만

이간략히소개되었다. 이런 이유로본고에서는 1차 발굴(1987)에서 조사된주거지와주거지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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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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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11

서출토된유물들에대한내용을위주로검토를하도록하겠다. 그리고 대취자문화제Ⅰ기와제Ⅱ

기에서 확인된 주거지는 발굴 보고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그 수가 적고, 발굴 당시 보존을 이유로

조사를 완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밝혀진 내용이 상당히 미약하다(朝·中 合同考古學發掘隊 1966).

그렇기 때문에 대취자유적 제Ⅰ기와 제Ⅱ기의 주거지는 그 면모만 간단히 언급하고, 비교적 소상

하게보고가이루어진대취자유적제Ⅲ기의주거지를중심으로검토하도록하겠다.

1. 주거지

1) 대취자제Ⅰ기문화의주거지

대취자 제Ⅰ기 문화의 주거지는 1차 발굴

(1987)에서는 한 동도 확인되지 않았으나, 2

차 발굴(1992)에서 11호 주거지와 12호 주거

지 2동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발굴보고에 따

르면 완전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평면형태와 주혈 정도만 확인

하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이마저도

주거지 11호에 대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고,

오로지 주거지 12호에 대한 설명만 간단하게

언급되고있다.

발굴보고에따르면, 11호 주거지는평면형

태 방형이고, 12호 주거지는 평면형태가 원

형에가깝다. 주거지 12호 내에서 발견된주혈은모두 25기인데, 모두 바닥면가장자리를따라조

성되어 있다. 소수의 규모가 큰 주혈이 확인되며, 규모가 큰 주혈 주변으로 소형의 주혈들이 불규

칙적으로분포하고있는데, 작은주혈들은큰주혈을보조하는역할을하였을것으로추정된다. 바

닥면내에서유물은확인되지않았다.

발굴보고에서도면을제시하지않았기때문에주거지에대한자세한정보는알수없지만, 쌍

타자유적제1기의주거지와유사할것으로추정된다.

2) 대취자제Ⅱ기문화의주거지

대취자제Ⅱ기문화의주거지는1차발굴(1987)에서는확인되지않았고, 2차발굴(1992)에서오직1

5. 1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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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만이확인되었다. 대취자제Ⅰ기주거지와마찬가지로대취자제Ⅱ기주거지인주거지 10호에대한

도면등도확인할수없기때문에주거지10호에대한설명만간략하게하도록하겠다.

확인된 주거지는 수혈식주거지이며, 평면형태는 부정형이다. 규모는 길이가 210cm이며, 깊이는

50cm이다. 내부에서는벽면바닥을따라8개의주혈이확인되며노지등의다른시설물들은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완1점이출토되었다.

보고된설명대로라면 10호주거지는대취자제Ⅰ기주거지인 11호주거지나 12호주거지의제양상

과유사할것으로추정된다.

3) 대취자제Ⅲ기문화의주거지

대취자 유적 제Ⅲ기 문화층에서 주거지는 1차 발굴(1987)에서 39동이 확인되었고, 2차 발굴

(1992)에서는 9동의 주거지가확인되어모두 48동이 확인되었다. 조사된 주거지들은 여러차례의

중복관계를가지는데정리하면 <표 2>와같다.

확인된 주거지는 축조 방법에 따라 생토면

을 그대로 굴착하여 만든 주거지와 얕은 수

혈을 굴착하거나 혹은 지면에 바로 판석을

쌓아올려석벽을돌린주거지, 2가지유형으

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본 고에서는 전

자를 무시설식주거지로 후자를 석벽식주거

지로부르도록하겠다.

(1) 무시설식주거지

대취자유적제Ⅲ기문화층에서무시설식주거지는그성격이모호한 24호 주거지를제외하고,

모두 28동이 확인되었다.6) 무시설식주거지는

이단굴착을 하지 않은 경우(Ⅰ)와 이단굴착을

한 경우(Ⅱ)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며, 이단

굴착을 한 주거지는 굴착방법에 따라 또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단굴착을 한

주거지는 이단 굴착의 형태에 따라 벽면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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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취자유적 1차발굴(1987) 대취자유적 2차발굴(1992)

6호->5호, 15호->14호,

18호->17호, 19호->18호,

22호->21호, 29호->24호,

27호->26호, 31호->30호,

36호->35호->34호, 39호->38호

5호->3호->2호,

4호->7호,

9호->8호

표 2. 주거지간중복(선후)관계

Ⅰ ⅡA ⅡB

1호, 3호, 4호, 6호, 7호,

10호, 12호, 18호, 19호,

20호, 21호, 22호, 25호,

31호, 33호, 34호, 35호,

36호, 37호, 39호

2호, 8호, 13호,

27호, 30호

15호, 17호,

26호

6) 24호 주거지는 심한 교란으로 인하여 그 형태나 축조방법을 확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석벽식주거지인 29호주거지를 파괴하면서 축조되었고, 대취자 유적 제Ⅲ기 문화에서 나타나는 주거지의 변화상을 살펴보면 무시설식주거지→석벽식주거지라는변화양상을보이기때문에 24호주거지는석벽식주거지일가능성이높다.

표 3. 굴착 형태에따른주거지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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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13

만하게굴착되다가급격하게경사도를높여이단으로굴착되는경우(A)와 처음부터거의직립하게

굴착되다가단시설과같이평평하게만든후다시급격히경사지게굴착하는경우(B)가있다.

(2) 석벽식주거지

대취자 유적 제Ⅲ기 문화층에서 석벽식 주거지는 24호 주거지를 포함하면 모두 10동이 확인되

었다. 석벽식주거지는 내부에서 석벽을 제외한 다른 시설을 비롯하여 유물도 거의 확인되지 않는

다. 화재주거지가 몇 동 확인되기는 하지만, 주거지 내부에서 유물이 거의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불의의화재는아닌것으로파악된다.

석벽식주거지는 축조방법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축조시 먼저 얕은 수혈을 파고

네 벽면을 따라 석벽을 지상위로 쌓아 올린 형태

(Ⅰ)와 굴착을 하지 않고 바로 석벽을 쌓는 형태

(Ⅱ)이다. Ⅱ식 주거지는Ⅰ식주거지에비해석벽

이정연하게쌓여있다. 석벽식주거지의대부분이

잔존상태가 좋지 않고 석벽식 주거지간의 중복관

계도 잘 보이지 않으며, 유물도 거의 남아있지 않

은 상태여서,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유일하게 중복이 되는 경우가 24호 주거지와 29

호 주거지인데, 석벽 Ⅱ식 주거지인 24호 주거지

가 석벽 Ⅰ식 주거지인 29호 주거지를 파괴하고

조성되었다고추정된다.

석벽식 주거지는 단독으로 축조되는 경우가 많

6.

Ⅰ식 ⅡA식 ⅡB식

7.

Ⅰ식 Ⅱ식

Ⅰ식 Ⅱ식

5호, 11호, 28호, 29호,

32호, 38호16호, 23호, 24호

4.

Page 14: 목차 - gnchc.re.krgnchc.re.kr/down/44.pdf · 1995). 千葉其次는쌍타자제1, 2기는弦文과乳丁狀附加堆文토기와彩繪陶등을특징으로하며, 1. 2, 4 ... 그러나1992년이루어진대취자유적2차발굴에서제Ⅰ기~제Ⅲ

으며, 24호 주거지와 29호 주거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중복되는 주거지는 모두 무시설식주거지를

파괴하고축조된것을알수있다.

2. 토기

대취자유적에서는매우다양한기종의토기들이출토되고있다. 가장대표적인기형은호이며,

다음으로 완이다. 이런 재지계 토기들에이후산동반도의악석문화의영향으로鼎이나 과같은

외래계토기도나타난다. 대취자 유적에서출토되는토기들은평저와굽혹은대각의유무로시간

성을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제Ⅰ기와 제Ⅱ기에서 확인되는 재지계토기들은 모두 평저토기이다.

그러나제Ⅲ기에서는굽이나대각이있는토기의비중이증가하는것을알수있다.

후술하겠지만 대취자 유적의 제Ⅰ기에서 제Ⅲ기로의 변화는 쌍타자 유적과 큰 흐름은 대체로

유사하나, 쌍타자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토기들도 일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쌍타자 문화라

는큰문화권안에대취자유적만의독자적인지역권을가지고있었던것으로보인다.

본 장에서는 대취자 유적 제Ⅰ기에서 제Ⅲ기까지의 토기들의 특징을 출토량이 많고, 비교적 기

형을알수있는토기가많이출토된호를중심으로검토하도록하겠다. 대취자제Ⅰ기와제Ⅱ기에

서는주거지가거의조사가이루어지지않았기때문에문화층에서층위별로수습된유물들을중심

으로하고, 제Ⅲ기유물은주거지에서출토된유물들을중심으로살펴보도록하겠다.

14 경남연구 제2집 2010

도면 8. 호의 頸部형태에따른분류

도면 9. 쌍타자제1기의Ⅰ식호 도면 10. 완의 형태에따른분류

Ⅰ Ⅱ

Ⅰ Ⅱ Ⅲ

Page 15: 목차 - gnchc.re.krgnchc.re.kr/down/44.pdf · 1995). 千葉其次는쌍타자제1, 2기는弦文과乳丁狀附加堆文토기와彩繪陶등을특징으로하며, 1. 2, 4 ... 그러나1992년이루어진대취자유적2차발굴에서제Ⅰ기~제Ⅲ

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15

1) 제Ⅰ기

대취자유적 제Ⅰ기의 토기들은 대부분 片으로 수습되었기 때문에, 기형이 확인되는 유물은 소

수에 불과하다. 출토된 유물은 호, 완 등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 기종구성은 쌍타자 유적 제1기에

비해단순하다.

호는기형을알수있는토기는모두평저이며頸部가길게직립하거나약간외경하는형태(Ⅰ),

頸部가肩部에서짧게외경하는형태(Ⅱ), 그리고頸部가거의없거나전혀없이 肩部에서바로내

경하는 형태(Ⅲ)로 나누어진다(도면 8). 이 형태들은 조금씩의 변화는 있지만, 대취자 유적 제Ⅰ기

에서제Ⅲ기까지시종이어지는호의형태라고볼수있다.

제Ⅰ기에서Ⅰ식호는복원되는개체가없기때문에기형을확실히알수없으나남아있는頸部

片로추정해보면쌍타자유적제1기에서출토되는호와거의유사할것으로추정된다(도면 9).

완은 기형을 알 수 있는 유물이 비교적 많이 출토되었다. 완은 기벽이 저부에서 바로 직사선으

로올라가는형태(Ⅰ)와곡선을이루면서올라가는형태(Ⅱ)로나누어진다(도면 10). 출토된유물을

보면, Ⅰ식이Ⅱ식에비해출토량이많다.

이외에도채회도편이출토되는데, 이는쌍타자제1기에서출토되는채회도편과동일하다.

그러나 쌍타자유적 제1기에서 출토되는 제Ⅴ유형 광구호와 제Ⅰ유형, 제Ⅱ유형 杯등은 확인되

지않는다(朝·中合同考古學發掘隊 1966).

11. T9, T8 T100, T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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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Ⅱ기

쌍타자유적에서 천엽기차는 쌍타자 제1기와 제2기가 유물구성 등 여러 방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고보았다(千葉基次 2000). 그러나 쌍타자유적과동일한 층위관계를가진다고알려진대취자유적

에서는차이가존재한다. 물론 재지계유물들즉, 호와 완은제Ⅰ기유물과비교하여큰변화는없

다. 그러나 대취자유적제Ⅱ기는대취자유적제Ⅰ기와는분명히구분되는특징이존재하는데그

것은바로鼎이나 , 그리고蓋의등장이다.

쌍타자유적 역시 제1기 문화층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유물들 중 고배형토기를 제외한

鼎, , 蓋와 같은 외래계 유물들은확인되지 않는다. 쌍타자유적 제2기도 마찬가지지만, 비록 대

취자유적제Ⅱ기의출토유물이적고, 기종의다양성도적은것은제Ⅰ기나제Ⅲ기에비해문화층

이 얇은 것으로 보아,7) 그 존속시기가 짧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제1기와 제2기를 한 期로 묶는

千葉其次의 의견보다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대취자 유적에서 출토되는 재지계 토기는 호와 완이

있다. 호는대취자제Ⅰ기토기와크게변화가없다. 완은제Ⅰ기의Ⅱ식토기가확인되지않는다.

외래계토기로는산동반도의악석문화와관련이있는것으로보이는정과언, 그리고개, 고배형토기

가출토되었으나, 그 출토량이많지는않고, 대부분이片으로출토되었기때문에정확한기형을알기

에는 무리가 있다. 그 중 고배형토기는 쌍타자유적에서는 제1기부터 출토되지만, 대취자 유적에서는

제Ⅱ기가되어서야출토되기시작한다. 완형이출토되지않아서정확한양상을파악하기는힘들다.

제Ⅱ기에서한가지특징적인유물은저부에각목문을한토기인데, 저부만출토되어정확한기

형을알수는없다(도면 15-31). 이 형태의토기는쌍타자유적에서는전혀확인되지않고있다. 이

토기는 대취자 제Ⅱ기에서는 평저토기에 각목문이 된 형태로 나타나다가, 제Ⅲ기가 되면 대각이

있는 부분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즉 저부에 각목을 하는 기법을 제Ⅱ기에서 제Ⅲ기까지 계승하고

있다고볼수있다.

3) 제Ⅲ기

쌍타자제Ⅲ기에서는수동의주거지뿐만아니라이에공반되는유물, 그리고문화층에서도상

당한양의유물들이수습되어, 제1기에서제3기중가장연구가활발한부분이다. 대취자유적역시

쌍타자유적과 마찬가지로 제Ⅲ기 문화층에서 주거지 48동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종의 토기와 석

기들이풍부하게출토되었다.

대취자유적제Ⅲ기에서출토된토기들은호, 완, 고배형토기등의기존의토기들을비롯해, 대형의

盆이나器臺, 그리고 등의유물들이새롭게등장하여유물구성이상당히풍부해진다. 기존의유물

16 경남연구 제2집 2010

7) <도면 11>에서 4, 5층이대취자제Ⅰ기문화, 3B층이대취자제Ⅱ문화, 2, 3A층이대취자제Ⅲ문화로보고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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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17

들 역시 형태상의 변화를 보이며, 제Ⅱ기에서

일정부분출토되었던鼎이나 과같은토기

는그수가현격히줄어들었다.

먼저 호는 기존의 형태에 굽 혹은 대각이

붙는 형태가 추가되었는데 주거지의 중복관

계를살펴보면평저에서굽혹은대각이붙는

형태로변해가는것을알수있다. 즉 기존의

Ⅰ식, Ⅱ식, Ⅲ식에 평저(A), 굽(B), 대각(C)

이 있는 형태가추가된다. 출토량은 ⅠA형이

가장많다. 제Ⅲ기에서는특이한형태의호가

新出하는데, ⅡA식 호에동체부가상당히부

풀어올라있는형태이다(도면 16-31,32). 이

토기는저부에각목을한토기와함께쌍타자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대취자유적만의

특징적인 토기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호

의 경부에 문양이 시문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종류는매우다양하다.(도면 12)

대취자유적 제Ⅲ기에서 출토된 완은 Ⅰ식

의 형태에 평저(A)와 굽이 있는 형태(B)로

나누어진다. 굽의 유무를제외하고는형태상

의큰변화는없다.

고배형토기는제Ⅱ기에서완벽히복원되는기형이없기때문에완전한변화는알수없다. 그러나

제Ⅱ기에비해서배신이더깊어지며, 기벽이얇아진다. 제Ⅲ기의고배형토기는배신이완만하게올

라가다가갑자기꺾여서올라가는형태(Ⅰ), 그리고배신이완만하게올라가는형태(Ⅱ)가있다.

제Ⅲ기에새롭게등장하는기형으로는 , 기대, 舟形器등이있다. 는악석문화와의관계가대취

자제Ⅲ기까지이어지고있었음을보여주는중요한유물이다. 그리고특이한저부형태를가지는토기8)

도등장하는데저부만남아있기때문에기형은알수없다(도면 17-37, 38). 이토기는쌍타자유적에

서도확인되고있는데, 제Ⅱ기에서보이는삼족기가퇴화하여재지화되면서나타난형태로추정된다.

이에반해주형기는쌍타자유적에서는확인되지않는대취자유적의특징있는토기라고할수있다(도

면 17-35, 36). 주형기는대취자유적에이어지는于家村 頭積石墓도확인되는데(張翠敏 2006),

이는대취자유적의문화양상이이후에나타나는문화에까지이어지고있음을시사하고있다.

13.

Ⅰ Ⅱ

8) 보고서에서는‘刀削圈足器底’로부르고있다.

: 1. (F1:14) 2~4.弦 , 弦 加点 (F1:9, F5:31, F5:35) 5. 三角內 平行 (F3:20) 6.內 格 (F4:8) 7. 三角內 平行 (F3:22) 8.多重人字 (F3:27) 9. 交 平行(F3:18) 10.斜 三角 (F3:30) 11. 交 平行 加点 (F3:31) 12.重 三角 平行 (F4:7)13.多重波形 (F3:24) 14. 落菱形內 格 加泥 (F3:44) 15. 人字 加点 (F4:35) 16.形內 格 加泥 (F3:6) 17. 人字 加泥 (F3:2) 18. 三角內 平行 (F3:20) 19.交 三角內 平行 (F4上:13) 20.斜 三角 (F4上:20) 21.多重 点 (F4上:10)

12. ( , ,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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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경남연구 제2집 2010

1. T8(1987) 2. T33(1987) 3. T33(1987) 4. T94(1987) 5. T94(1987) 6. T94(1987)

7. T86(1987) 8. T6(1992) 9. T6(1992) 10. T33(1987) 11. T94(1987) 12. T8(1987)

13. T33(1987) 14. T6(1992) 15. T2(1992) 16. T33(1987) 17. T106(1987) 18. T106(1987)

19. T8(1987) 20. T33(1987) 21. T33(1987) 22. T8(1987) 23. T94(1987) 24. T2(1992)

25. T6(1992) 26~34. T6(1992)

<1:1/20, 8,9,14,22,23~34:1/10, 2~5,6,10~12,17~21:1/6, 6,13,15,16:1/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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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19

15.

1. T33(1987) 2. T33(1987) 3. T86(1987) 4. T8(1987) 5. T122(1987) 6. T8(1987)

7. T33(1987) 8.T51(1987) 9. T94(1987) 10.T122(1987) 11. T2(1992) 12. T2(1992)

13. T2(1992) 14. T2(1992) 15. F10(1992) 16. T8(1987) 17. T8(1987) 20. T51(1987)

21. T33(1987) 22. T8(1987) 23. T51(1987) 24. T80(1987) 25. T2(1992) 26. T6(1992)

27. T33(1987) 28. T33(1987) 29. T33(1987) 30. T51(1987) 31. T2(1992)

<1~10,16,18,22~24,27~30:1/6, 11~15,17,19~21,25,26,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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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경남연구 제2집 2010

도면 16. 대취자유적제Ⅲ기토기(1)

1. F2(1987) 2. F2(1987) 3. F3(1987) 4. F3(1987) 5. F6(1987) 6. F10(1987)

7. F25(1987) 8. F25(1987) 9. F27(1987) 10. F30(1987) 11. F30(1987) 12. F37(1987)

13. F3(1992) 14. F4上(1987) 15. F3(1992) 16. F3(1992) 17. F5(1987) 18. F8(1987)

19. F8(1987) 20. F15(1987) 21. F25(1987) 22. F25(1987) 23. F3(1992) 24. F3(1992)

25. F3(1992) 26. F1(1987) 27. F1(1987) 28. F2(1987) 29~30. F2(1987) 31. F8(1987)

32. F2(1987) 33. F17(1987) 34. F27(1987) 35. F27(1987) 36. F4(1992)

<13:1/26, 1~12,14,17~22,30,33~35:1/20, 22~24,36:1/14, 15,16,26~29,31,3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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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21

1. F21(1987) 2. F30(1987) 3. F4(1987) 4. F1(1987) 5. F2(1987) 6. F2(1987)

7. F2(1987) 8. F22(1987) 9. F26(1987) 10~12. F31(1987) 13. F22(1987) 14~16. F22(1987)

17. F8(1987) 18. F21(1987) 19. F5(1992) 20. F3(1987) 21. F15(1987) 22. F15(1987)

23. F34(1987) 24. F30(1987) 25. F8(1987) 26. F22(1987) 27. F15(1987) 28. F22(1987)

29. F22(1987) 30~32. F3(1992) 33. F36(1987) 34. F3(1992) 35. F38(1987) 36. F38(1987)

39. F105(1987) 40. ⅡT1(1987)

<21,22:1/40, 1~3,13,20~25,28,29:1/20, 5~11,14~19,26,30~35,38:1/10,12,36,37,39,40:1/6>

도면 17. 대취자유적제Ⅲ기토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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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대취자유적변천과정에대한검토

대취자유적 제Ⅰ기에서 제Ⅲ기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유물군을 살펴보면 대취자 제Ⅰ기에서는

재지계세력이유지되면서山東龍山文化로부터어느정도의영향을받은것을알수있다. 그러나

시간상이나위치상으로가까이위치하고있는小珠山上層문화에비해서는토착문화의성격이더

욱 강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취자 제Ⅱ기가 되면 산동반도 岳石文化의 영향이 강해지면서 재

지계 문화에 외래계 문화가 공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제Ⅲ기가 되면 岳石文化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대취자 제Ⅰ기와 마찬가지로 재지계문화의 세력이 더 강하면서, 제Ⅱ기에 받았던 외래계

영향이 재지화 되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쌍타자유적 제1기~제3기와 유사하지만 쌍타자

문화에비해재지적성격이더욱강하였던것으로추정된다.

제Ⅲ기가 되면 제Ⅰ기와 제Ⅱ기에 비해 주거지와 토기의 수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특히 주

거지는 밀집되기 시작하며, 여러 차례의 중복관계를 보이고 있다. 동일 문화층내에서주거지의중

복관계는그문화층의분기를나누는데가장좋은자료라고할수있다. 대취자제Ⅲ기에서주거지

중복관계는 적게는 2번, 많게는 3번까지 나타난다. 제Ⅲ기의 주거지는 무시설식주거지와 석벽식

주거지로나누어지는데주거지간의중복관계를보면크게무시설식주거지에서석벽식주거지로변

화해가는것을알수있다. 그리고무시설식주거지를세분하여주거지중복관계에서보면Ⅰ식→

ⅡA식→ⅢB식의형태로변화해가는것을알수있다. 석벽식주거지는대부분이단독으로조성되

어있으나, 유일하게중복이되는경우가 24호주거지와 29호주거지인데, 석벽Ⅱ식주거지인 24

호 주거지가 석벽 Ⅰ식 주거지인 29호 주거지를 파괴하고 조성되었다. 그러므로 석벽식 주거지는

Ⅰ식→Ⅱ식주거지로 변화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석벽 Ⅰ식 주거지인 주거지 38호에서 舟形器

가 출토되는데, 앞서 밝혔듯이 舟形器는 대취자 유적에 이어지는 于家村 頭 積石墓에서도 출토

되는 것으로 보아 Ⅰ식주거지와 Ⅱ식주거지는 거의 공존했거나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은것으로보인다.

이를근거로하면대취자유적제Ⅲ기는네개의期로세분이가능할것으로보인다. 즉, 무시

설 Ⅰ식 주거지를 대표로 하는 Ⅲ-1기, 무시설 ⅡA식 주거지를 대표로 하는 Ⅲ-2기, 무시설 ⅡB

식 주거지를 대표로 하는 Ⅲ-3기, 석벽식 주거지를 대표로 하는 Ⅲ-4기이다. 대취자유적 제Ⅲ기

각期의특징은다음표와같다.

이상으로 대취자 유적 제Ⅰ기에서 제Ⅲ기까지의 주거지와 토기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 보았다.

대취자 유적 주거지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시종 노지가 확인되지 않으며, 석벽식주거지들이 대부

분자연적으로폐기된채로확인된점등을들수있다. 그리고유물상에서는호형토기들이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취자유적 제Ⅲ기에서 확인되는 횡대구획문이 시문된 호형토기는 남한에서 출토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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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3: 목차 - gnchc.re.krgnchc.re.kr/down/44.pdf · 1995). 千葉其次는쌍타자제1, 2기는弦文과乳丁狀附加堆文토기와彩繪陶등을특징으로하며, 1. 2, 4 ... 그러나1992년이루어진대취자유적2차발굴에서제Ⅰ기~제Ⅲ

大嘴子遺蹟의단계별변화에대한검토 23

횡대구획문이있는호형토기와그기형과문양이상당히유사하다.

상기 내용은 기후의 변화로 인하여 요동지역 사람들이 압록강 유역으로 남하하였고, 다시 한강

유역으로이주하였다는안재호(2000, 2010)의 의견이나다양한종류의횡대구획문과외반구연(대

부)옹이라는신기종이있는호서지역을중심으로한한반도중서부지역을남한전기에요동반도계

토기를수용한주체로본배진성(2007)의 의견과같이요동반도남단과한반도와의직간접적인관

계를언급한의견에좋은단서를제공할만한자료라고할수있겠다.

5.

특 징

- 무시설Ⅰ식주거지

- 호는ⅠA식이주종을이루고, ⅡA식도다수출토되며, Ⅲ식토기는극소량확인되는데, ⅢC 확인됨. 대부분평저호.

- ⅠA호는대부분경부전체에문양이있고, 일부는동체부에도문양이있음.

- ⅡA호는소량의토기가경부와동체부에문양이있음.

- Ⅲ식호는극소량출토되는데, 출토되는호는ⅢC식.

- 완의출토량이많고, ⅠA가주류이고, ⅠB는소량출토됨.

- 고배형토기는Ⅰ식이소량출토.

- , 盆 , 기대新出하고蓋가소멸.

- 무시설ⅡA식주거지

- 호는ⅡA식이주종을이루고, 다음으로ⅠA식이며, ⅠC식과ⅡC식도일정비율을차지하며출토됨.

- 문양이줄어들기시작하며, 경부의일부분에만하는경우가많아짐.

- ⅡA식호에동체가상당히부풀어올라있는토기출토.

- ⅠA호는Ⅲ-1기에서경부가직립하던호는구경이좁아짐.

- Ⅲ식호는Ⅲ-1기와동일.

- 완의출토량이현격히줄어들고ⅠA 형만출토.

- 고배형토기의출토량이늘어나는데주종은Ⅰ식이며, Ⅱ식도소량출토됨. Ⅲ-1기에비해대각이짧아지고, 폭이늘

어남.

- 의출토량이줄어듬.

- 기대의소멸.

- 무시설ⅡB식주거지

- 유물의출토량이줄어들고, 기종이단순화됨.

- 호는ⅡA식이주종을이루나, 출토량은현격히줄어듬. ⅠA식호, Ⅲ식호가소멸하고, ⅠC식호와ⅡC식호만소량

출토.

- 문양은거의없어지고, 소량의토기에일부분에만잔존.

- 완은극소량출토되며ⅠA형만출토.

- 고배형토기, 복부가팽창되는ⅡA 호소멸.

- 궤의출토량은 Ⅲ-2기와비슷함.

- 분의대형화

- 석벽Ⅰ, Ⅱ식주거지

- 유물이거의확인되지않음.

- 단독으로조성되는경우가많음.

- 출토되는토기는ⅠA호(문양소멸), , 舟形器등

Ⅲ-1

Ⅲ-2

Ⅲ-3

Ⅲ-4

Page 24: 목차 - gnchc.re.krgnchc.re.kr/down/44.pdf · 1995). 千葉其次는쌍타자제1, 2기는弦文과乳丁狀附加堆文토기와彩繪陶등을특징으로하며, 1. 2, 4 ... 그러나1992년이루어진대취자유적2차발굴에서제Ⅰ기~제Ⅲ

Ⅴ. 맺음말

지금까지 대취자유적에서 확인된 주거지와 유물 특히 토기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검토해 보았

다. 검토결과대취자유적은제Ⅰ기, 제Ⅱ기, 제Ⅲ기의세단계를가지며쌍타자유적과큰흐름을

같이 한다는 이전의 연구 성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쌍타자 유적과 큰 흐름은 유사하지만

쌍타자 유적에 비해 재지적 성격이 비교적 오래까지 유지되었으며, 특히 舟形器나 저부에 각목을

한 토기등으로 보아 쌍타자 문화라는 큰 문화권 안에 대취자 유적만의 독자적인 지역권을 가지고

있었던것으로보인다.

앞서 Ⅱ장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재 요동반도 남단의 편년은 각 연구자들 간의 연구성과들이 일

치하지않은탓에, 아직까지안정되어있지않다. 필자는이이유가쌍타자유적에서출토된소량의

유구와유물을지나치게의미부여를함으로서나타난결과라고생각한다.

본고에서는 필자의 능력이 아직 요동반도 청동기 문화 전체에 대한 이해까지는 미치지 못함으

로 인하여 대취자유적 전반에 대한 세밀한 분석까지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대로대취자유적제Ⅰ기에서제Ⅱ기를지나서제Ⅲ기로이어지는문화층에따른유구와유물들

이변화하는과정은오히려쌍타자유적의그것보다더욱세밀하고, 안정되어있다고판단된다. 특

히 대취자 유적 2차 발굴에서 확인된 대취자 제Ⅱ기 문화층의 주거지는 보존을 위해 비록 세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쌍타자 제2기 문화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주거지의 양상을 확인할

수있었다는것에대해서는큰수확이라고생각한다.

쌍타자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요동반도 남단의 청동기시대 초기의 편년연구에 있어서 그 부족

한부분을메워주는대취자유적을추가하여쌍타자문화와함께연구한다면청동기시대초기의편

년의기준이지금보다더욱확실해질것으로생각된다. 아울러 앞으로도추가되는조사성과의지

속적인 분석을 통해 보다 종합적이고 안정적인 요동반도 남단의 청동기 시대 초기의 연구와 이것

과결부된한반도의청동기시대토기문화에대한연구는필자의앞으로의과제로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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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Dazuizi Remains in the Southern Extremity

of Liaodong Peninsula

-Emphasizing with the house site and the excavated pottery-

Ha, Yong-in*

The early Bronze Age Cultures of the southern extremity of Liaodong peninsula are

represented as Shuangtuozi cultures. This area is a important region that is closely

related to the early Bronze Age of the Korean Peninsula. It is known that Dazuizi

remains which are included in Shuangtuozi cultures, are located in the southern

extremity of Liaodong Peninsula and have the identical soil layer with Shuangtuozi

cultures. In two investigations, the majority of remains like the habitation, the

depression etc. remains were identified, and the relics which were excavated in

remains are more various than Shuangtuozi remains.

In this manuscript, emphasizing with the pottery which is possible to confirm the

excavated shape of pottery in the habitation and inside the habitation of Dazuizi

remains, I examined the aspects of the change from the initial stage to the tertiary

stage. But, compared with the tertiary stage, the archeological materials of the initial

stage and the secondary stage are scanty. The result, examined with the tertiary

stage due to the less investigations, is that the habitation can be divided into A type

of no equipment and A type of stone wall, that the tertiary stage can be subdivided

into the initial stage to the quaternary stage.

Examining with the excavated relics, in the initial stage, Dazuizi remains were

influenced by the rongshan cultures from shandong region in some way, while

maintaining power of a local cultures. In the secondary stage, as Yueshi cultures from

Shandong Peninsula are getting stronger, the local cultures and the local cultures

coexist. But in the tertiary stage, the power of the local cultures are much stronger in

spite of the influence of the Yueshi cultures, we can find out the relics influenced by

the foreign cultures are getting local cultures.

Key words Bronze Age, Liaodong Peninsula, Shuangtuozi, Dazuizi, house site

* Center of History & Culture, Gyeongnam Development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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