豚国志 대륙의 양돈 이야기 · 豚活 대륙의 양돈 이야기 제5화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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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豚)스케치 2017. 6월호 231 1. 축산에 스며 있는 대륙의 자존심 대륙에서 일하면서 왕짜증 났던 일 중의 하나…. 항생제 를 하나 찾는다 치자. 예를 들어 ‘페니실린 주사제’를 구해 서 써야 하는데, 우리 같으면 동물약품점에 “페니실린 주사 제 몇 병 보내주구랴” 하면 된다. 그런데 여긴 중국이니까 영어 알파벳으로 ‘Penicillin’ 이렇게 하면 알아 듣겠거니 했 는데, 이렇게 얘기하면 도무지 못 알아먹는다. 우리가 만국 공통어쯤으로 생각했던 영어가 이곳에선 어림 반 푼어치도 없게 통하지 않는다니…. 물론 유럽에 가면 영국을 제외하 고는 영어를 쓰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충 알파벳 은 공유하니 좀 사정이 나을 것이다. 이 친구들은 외국에서 건너온 모든 것을 원어 그대로의 알파벳을 사용하지 않고 비슷한 발음의 한자를 사용하거나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한 이름을 붙이곤 한다. 물론 우리도 발음을 한글로 옮겨 쓰는 것이지만, 농장 직원 간에 영어 단 어도 잘 통하는 편인데, 이곳에서는 서로들 외국의 원어는 잘 쓰지 않는다. 가령 농장에서 Penicillin을 한 병 쓰자고 얘기했다면 반응이 당장…. “Penicillin? 이게 뭐여? 겁나 갑갑허네, 좀 알아듣게 얘기혀 봐!” 뭐 이런 식의 대답이 튀 어나오기 십상이다. “素(청매소, 칭메이수)”라고 얘기 해야 안다. ‘매’는 곰팡이를 뜻하니, 즉 푸른곰팡이에서 유 志 대륙의 양돈 이야기 제5화 : 가장 대륙적인 것 猪鼻力(저비력)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윤재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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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豚)스케치

    2017. 6월호 231

    1. 축산에 스며 있는 대륙의 자존심

    대륙에서 일하면서 왕짜증 났던 일 중의 하나…. 항생제

    를 하나 찾는다 치자. 예를 들어 ‘페니실린 주사제’를 구해

    서 써야 하는데, 우리 같으면 동물약품점에 “페니실린 주사

    제 몇 병 보내주구랴” 하면 된다. 그런데 여긴 중국이니까

    영어 알파벳으로 ‘Penicillin’ 이렇게 하면 알아 듣겠거니 했

    는데, 이렇게 얘기하면 도무지 못 알아먹는다. 우리가 만국

    공통어쯤으로 생각했던 영어가 이곳에선 어림 반 푼어치도

    없게 통하지 않는다니…. 물론 유럽에 가면 영국을 제외하

    고는 영어를 쓰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충 알파벳

    은 공유하니 좀 사정이 나을 것이다.

    이 친구들은 외국에서 건너온 모든 것을 원어 그대로의

    알파벳을 사용하지 않고 비슷한 발음의 한자를 사용하거나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한 이름을 붙이곤 한다. 물론 우리도

    발음을 한글로 옮겨 쓰는 것이지만, 농장 직원 간에 영어 단

    어도 잘 통하는 편인데, 이곳에서는 서로들 외국의 원어는

    잘 쓰지 않는다. 가령 농장에서 Penicillin을 한 병 쓰자고

    얘기했다면 반응이 당장…. “Penicillin? 이게 뭐여? 겁나

    갑갑허네, 좀 알아듣게 얘기혀 봐!” 뭐 이런 식의 대답이 튀

    어나오기 십상이다. “青霉素(청매소, 칭메이수)”라고 얘기해야 안다. ‘매’는 곰팡이를 뜻하니, 즉 푸른곰팡이에서 유

    豚国志 대륙의 양돈 이야기제5화 : 가장 대륙적인 것

    猪鼻力(저비력)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윤재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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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6월호 2332017. 6월호232

    래한 약이라는 뜻이렷다. 드물게 소리 나

    는대로 盘尼西林(여기 발음대로라면 ‘판니

    시린’)이라고도 하지만 이렇게는 거의 부르

    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거의 모든 약품이

    나 화학물질에 대해 의역(意譯)을 섞은 단

    어를 우선적으로 만들어 쓰니, 이들 이름

    만 익숙해지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릴 수

    밖에 없다.

    처음엔 ‘얘네들 왜 이렇게 불편하게 살

    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좀 시간이 지나

    면서 이들의 ‘자기 것’에 대한 생각이 우리

    와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나라의 국호(國號)마저 세상의 중심인 ‘중

    국’이라고 거리낌 없이 부를 정도의 애들이

    니, 세상천지 모든 물건의 이름도 자기 식

    대로 불러야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들의 이러한 묻지마 자존심은 도대체 어

    디서 멈출 수 있는 걸까?

    2. 중국인들의 놀라운 중약(中藥) 사랑

    물론 우리나라에도 한약이나 한방(韓方)

    은 널리 쓰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개인

    적인 생각으론 예전에 비해서 가면 갈수록

    서양의학이나 양약(洋藥)의 위세에 밀리는

    형국인 것 같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

    지만, 그 밑바닥을 들추어 본다면 아마도

    우리 것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가치’를

    애써 외면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심히 건

    방진(?)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우리나라에

    도 한방제제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대

    륙의 중약(中藥) 사랑에 비해서는 인체약

    이든 동물약품이든 그 양과 다양성에서 거

    의 애교(?)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과장

    일까?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를 말하자면….

    노부(老夫)가 대륙에 와서 깊은 인상을

    받은 것 중의 하나는 어디 약국마다 매대

    (賣臺)에 중약(中藥, 또는 中成药)이 가히

    수십 종이나 채우고 있는 광경이었다. 자

    료를 찾아보니 약국에서 판매되는 비처방

    약(Over The Counter, OTC) 중에서 중약

    은 4,621종이나 된다. 비처방약 전체 규모

    가 5,809종인데, 그중 약 80%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니 얘네들의 중약 사랑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품질은 어떨까? 대륙의 건조한 기후가

    낯선 탓에 코와 목에 문제가 생겨서 약국

    점원이 권하는 중약을 사서 복용해 보았

    다. 노부 또한 중국 제품에 대한 불신이 적▲ (사진 1) 인체용 항생제 노프로삭신.

    이건 그나마 음역으로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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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豚国志 대륙의 양돈 이야기 - 제5화 : 가장 대륙적인 것

    지 않아 망설임도 어지간히 있었지만, 일

    단 먹고나 죽자는 심정으로 이틀간 사용했

    는데, 어라? 양약(비염약)을 사용했을 때

    가끔 경험했던 어지러움증과 같은 부작용

    이 전혀 없이 깔끔하게 증상이 개선되는

    것 아닌가? “야, 이것 봐라?” 중국 것에 대

    한 그간의 선입견이 바뀌지 않을 수 없었

    다. 주변에 물어보니 다들 중약에 대해 긍

    정적인 반응들이다.

    그러면 동물약품 쪽은 어떨까? 예상대

    로 이쪽 분야 또한 많은 종류의 중약이 양

    돈장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물론 가축의

    질병은 인체와는 다르게 감염병이 대부분

    을 차지하는 터라 항생제와 백신 등이 주

    를 이루고 있지만, 그런 감염병의 보조치

    료제 역할을 하는 제제로 다양한 제품이

    양돈 현장에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그중에 이곳 어디 양돈장을 가도 흔

    히 눈에 띄는 것만 말하자면 어성초나 황

    기(黃芪), 쌍황련(双黃连), 시호(柴胡)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국가의

    GMP(Good Manufacturing Product) 인

    증을 받아 생산된다.

    (1) 황기(黃芪, 이곳에서는 黃芪多糖이란 이름으로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잘 알려져 있고,

    많이 쓰이는 약재이다. 근년에 여러 연구

    를 통해서 황기 속에는 다당체와 사포닌,

    플라보노이드, 아미노산 등 다양한 유효성

    분이 있음이 밝혀졌는데, 그중에서도 黃

    芪多糖(Astragalus Polysacharin, APS)

    을 이 약의 주요 성분으로 사용한다. 인체

    에서는 주로 면역촉진 또는 조절, 항바이

    러스, 항종양, 항노화, 항산화 작용을 이용

    하고 있다. 수의약 분야에서는 주로 항바

    이러스 작용과 백신 효과를 증진시키거나

    항병력 증진에 사용된다. 양돈에서는 써코

    바이러스 감염증, PRRS, 구제역, PED 등

    다양한 바이러스성 질환 예방 치료에 보조

    제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주사제,

    사료첨가제, 음수용

    첨가제 등 여러 업체

    에서 여러 가지 형태

    의 제품이 나오고 있

    고, 바이러스성 질환

    이 많은 곳이다 보니

    양돈장마다 자주 눈

    에 띄는 약품이기도

    하다.▲ (사진 2) 황기 추출성분의 동물용 수용산 제제와 주사제

    (참조 : www.ringp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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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6월호 2352017. 6월호234

    (2) 시호(柴胡)

    우리나라의 한방에서도 널리 알려진 약

    물이다. 인체에서 가미시호탕의 주요 원료

    로 사용되며, 예로부터 사람의 여러 전염병

    을 치료하는데 사용된 약으로 알려져 있다.

    양돈에서는 감염병 중에서도 주로 호흡기

    질병을 다스리는데 사용된다. 돼지독감이

    나 유행성폐렴, 흉막폐렴 등에 쓰인다.

    실례를 들면, 최근 사천성 농업청(우리

    로 치면 도농업 담당부서) 홈페이지 한 켠

    에 아예 이 약을 이용한 돼지인플루엔자

    예방 치료약으로 몇 가지 처방을 제시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처방 중의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은데, 실상

    인체에서 쓰는 가미시호탕의 처방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사천성이라 하면 중국

    에서도 오지에 속하는데, 아마도 이곳 양

    돈이 어지간히 소규모인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중약을 직접 끓여 먹이라는 처방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호를 이용한 또 다른 제품을 본 적이

    있다. 액상분무 형태로 만들어서 구제역

    발생 시 피부나 발굽 경계부 상처의 지혈,

    통증완화에 특효가 있고, 그 밖에 삼출성

    표피염, 진균성 피부염 등에 사용할 수 있

    다고 하니 그들은 중약을 참으로 기발하게

    사용한다는 생각

    이 들었다.

    (3) 구충제

    구충제는 이미

    중국에서 예로부

    터 쓰이던 약제

    종류가 다양하게

    있다. 더구나 몇

    년 전부터 우리나

    라로 보조사료 첨

    가체 형태로 들어

    간다고 알고 있는

    데, 약제 잔류문

    제나 내성문제 등

    이 없고 효과 또

    한 나쁘지 않아서

    유기농 또는 친환

    ▲ 사천성 농업청에서 제시한 시호를 이용한 돼지인플루엔자 예방 처방

    ▲ (사진 3) 시호를 주 제제로 만든

    구제역 피부 치료제

    (자료 참조 : www.xsddwyy.com)

    ▲ (사진 4) 시호 주사제

    (자료 참조 : www.114pif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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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豚国志 대륙의 양돈 이야기 - 제5화 : 가장 대륙적인 것

    경 양돈에 많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 수의약품 쪽에서는 대표적으로 빈

    랑(槟榔, Areca catechu), 호박씨(南瓜

    籽), 오매(乌梅), 산초(花椒), 담뱃잎(烟

    叶) 등이 사용된다. 대부분은 내부기생충

    구제제로 사료첨가용 형태로 쓰이고, 담

    뱃잎은 외부기생충 전용으로 사용되나 여

    기서도 유기양돈이나 친환경 양돈이 아

    니면 대부분 서양 약(이버멕틴, 펜벤다졸

    등)이 사용되는 형국이다.

    3. 글을 마치며

    비록 많은 중약 제품들이 축산에도 적용

    되고 있지만, 이곳의 양돈 현장을 둘러보

    면 중약의 인기는 인체약품에 비하면 사실

    초라하게 느껴진다. 노부의 생각엔 이것이

    약효의 문제라기보다는 양돈 현장 질병의

    특성이나 경제성을 따지는 문제 때문인 것

    같다.

    오늘은 중약을 예로 들어 이들의 숨겨진

    생각을 읽어 보았다. 비록 그 약들의 효과

    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대륙인들이 ‘자신의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를

    보면서 우리를 돌아보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것을 어떻게 대하

    는가?

    상기 원고에 대한 궁금한 사항은 글쓴이에게 메일로 문의바랍니다.

    ☎ 글쓴이 메일 : [email protected]

    문의사항

    ▲ (사진 5) 빈랑, 생과육

    (자료 참조 : www.pingguolv.com)

    ▲ (사진 6) 빈랑 건조 제품

    (자료 참조 : www.nuom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