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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디자인 상대성 이론가' 페트로스키 교수의 도발적 디자인"내가 피자 고정핀이 '디자인' 같지 않다면…" "대형마트 원형으로 만들어 편리해진다면 그것이 Good Design!"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흔히 아이팟이나 포르셰처럼 외관이 멋진 제품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세계적 공학 칼럼니스트 헨리 페트로스키(Petroski·67·미 듀크대 토목공학·역사학 석좌교수)대답은 전혀 다르다. 눈에 좋다고 반드시 훌륭한 디자인은 아니다. 그가 좋은 디자인으로 꼽은 제품 중에는 피자 고정핀(피자 배달할 흔들리지 않도록 피자 가운데를 고정시켜 주는 플라스틱 삼각대)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도 있다. ‘테크놀로지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공학 칼럼니스트 헨리 페트로스키가 피자 고정용 핀과 계란을 들고‘좋은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명원 기자 [email protected] 페트로스키는 "좋은 디자인은 제품의 기능과 목적은 말할 것도 없고,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달라질 있는 상대적 개념"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디자인의 상대성 이론'펴는 그는 한걸음 나아가 "세상에 완벽한 디자인은 없다"못박는다. 그의 관점은 "보기 좋게 만들어야 팔린다"산업계가 디자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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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디자인 상대성 이론가' 페트로스키 교수의 도발적 디자인論

"내가 든 이 피자 고정핀이 '디자인' 같지 않다면…"

"대형마트 원형으로 만들어 더 편리해진다면 그것이 Good Design!"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흔히 아이팟이나 포르셰처럼 외관이 멋진 제품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세계적 공학 칼럼니스트 헨리

페트로스키(Petroski·67·미 듀크대 토목공학·역사학 석좌교수)의 대답은 전혀 다르다.

눈에 좋다고 반드시 훌륭한 디자인은 아니다. 그가 좋은 디자인으로 꼽은 제품 중에는 피자

고정핀(피자 배달할 때 흔들리지 않도록 피자 가운데를 고정시켜 주는 플라스틱 삼각대)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도 있다.

▲ ‘테크놀로지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공학 칼럼니스트 헨리 페트로스키가

피자 고정용 핀과 계란을 들고‘좋은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명원 기자

[email protected]

페트로스키는 "좋은 디자인은 제품의 기능과 목적은 말할 것도 없고,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디자인의 상대성 이론'을 펴는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세상에 완벽한 디자인은

없다"고 못박는다. 그의 관점은 "보기 좋게 만들어야 잘 팔린다"며 산업계가 디자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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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하고 있는 최근 흐름과도 거리가 있다. 페트로스키는 저서 〈디자인이 만든 세상〉(원제

Small Things Considered)에서 제품의 디자인과 기능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시각에

반대했다. 디자인의 발전은 제품의 개선 과정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페트로스키는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물과 현상의 공학적·역사적 의미를 방대하고 치밀한

분석과 경쾌한 글쓰기로 풀어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연필 한 자루의 역사를

추적해 문명사의 발전과정을 드러낸 〈연필·The Pencil〉,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물건들의

발명사를 담은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The Evolution of Useful Things〉,

인류에게 유익한 발명은 과학자가 아니라 엔지니어가 했다는 점을 강조한 〈이 세상을 다시

만들자 ·Remaking the World〉 등의 저서는 인간에게 내재한 '공학(엔지니어링) 욕구'를

자극하며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엔지니어들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 초기작 〈인간과

공학이야기 ·To Engineer Is Human〉는 영국 BBC 가 다큐멘터리로 제작,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9 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주최한 '2009 테크플러스 포럼' 참석차 한국을

처음 방문한 페트로스키 교수를 Weekly BIZ 가 단독 인터뷰했다.

약속 시간보다 5 분쯤 일찍 나타난 그는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였다. 한국을 처음 찾은

느낌에 대해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덕담을 했다. 질문은

우선 디자인에 대한 그의 독특한 관점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교수님의 저서(디자인이 만든 세상)에서 좋은 디자인으로 꼽은 피자 고정핀을, 오늘

인터뷰를 위해 이렇게 가져왔어요.

"(피자 고정핀을 집어 들며) 오, 한국의 '피자 세이버'군요. 기념으로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좋은 디자인을 말하면서 이 작은 도구를 예로 든 이유가 뭔가요.

"대부분의 발명과 디자인은 '문제'가 있을 때 탄생합니다. 피자와 관련한 문제는 피자를

상자에 넣고 배달할 때 뜨거운 김 때문에 상자 안이 눅눅해진다는 것이었죠. 또 피자가

흔들리면 치즈가 상자에 들러붙게 됩니다. 그래서 이 작은 도구가 발명됐어요. 이것은

피자를 고정하고 피자가 상자에 닿지 않도록 해줍니다. 문제를 해결한 아주 간단한 도구죠."

―좋은 디자인이 제품의 기능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인가요.

"모든 디자인은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을 기능 또는 활용으로 불러도 됩니다. 목적에 잘

부합하는가가 디자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가령, 엔지니어나 디자이너에게 피자가

상자에 들러붙지 않도록 하는 도구를 발명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고심 끝에 아주 정교한

도구를 발명했는데, 가격이 피자 한 판과 맞먹는 비싼 제품이라고 칩시다. 그건 좋은

디자인이 아니지요. 피자가게 입장에선 가볍게 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도구여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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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이것(손에 든 피자 세이버)은 아주 좋은 디자인입니다. 영구적이지도 않고

예쁘게 생기지도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을 충실히 이행합니다. 짧은 다리가 3 개 있는데

피자 사이에 앉아서 공간을 별로 차지하지도 않습니다. 제작비도 저렴하죠. 만족도가 높은

디자인입니다."

―사용자에 따라 디자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죠. 어떤 여성이 이것(피자 세이버)을 뒤집어 놓은 다음 여기에 달걀을 올려놓았습니다.

달걀을 장식하는 디자이너였는데 이것을 받침대로 본 겁니다. 재활용의 좋은 사례죠.

친환경적인 활용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에너지 소비 없이 재활용에

성공했으니까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다 디자이너입니다. 그저 위치만 바꿔서

발명에 성공한 그 여성처럼요. 디자인의 기능을 바꾸었죠."

▲ 페트로스키 교수는‚완벽한 디자인이 없듯이 완벽한 성공도 없다‛면서‚성공과 실패는

계속 순환한다‛고 말했다. / 이명원 기자 [email protected]

페트로스키 교수가 주장하는 '디자인 상대성 이론'은 단순하면서도 논리적이다. 전문

디자이너들이 '예술가'임을 표방하고 뛰어난 디자인이 '천재성'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하는

최근의 '디자인 신비주의' 경향을 감안하면, 디자인이 제품의 목적이나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페트로스키의 주장은 신선하게 들린다. 그의 디자인 개념은 제품뿐만

아니라 대형 쇼핑몰·레스토랑·톨게이트 같은 서비스 영역으로도 확장된다.

―요즘 미국 기업의 제품 중에 공학과 디자인이 잘 결합된 것으로 애플의 아이폰이

꼽힙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최근에 아내와 휴대폰을 구입하러 쇼핑을 간 적이 있어요. 아이폰을 살까 블랙베리를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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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다가 결국 블랙베리로 결정했습니다. 내가 사용하려는 목적에 더욱 적합했기 때문이죠.

물론 아이폰은 매력적인 기기입니다. 스크린도 크고, 생긴 모양 자체가 예술이죠. 그렇지만

게임을 하거나 음악과 동영상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에게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나처럼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람에게는 블랙베리가 더 좋습니다.

아이폰이 환상적인 기기임엔 틀림없지만 사용자들이 불만을 쏟아내는 부분도 있습니다.

배터리 수명에 관한 것이죠. 기기 자체는 너무나 훌륭한데 배터리는 금방 닳아서 없어지죠.

개선이 필요합니다."

―최근 전자·자동차 등은 전 세계적으로 기업별 기술 수준이 거의 비슷해져서 기술보다

디자인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동의하시나요.

"부분적으로는 동의하고 부분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시 피자 세이버로 돌아가

봅시다. 피자 세이버는 예쁘게 생긴 도구는 아닙니다. 애초에 예쁘게 보이려고 디자인된

도구도 아니지요. 예쁘게 보이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기능적인가 하는 게

중요하죠. 나는 그것을 좋은 디자인이라고 부릅니다. 반대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외형적으로 봤을 땐 예쁘지만 기능적인 면에서 뒤떨어질 때 나는 그것을 나쁜 디자인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예쁘기도 하고 기능적이기도 하다면 그건 최상의 디자인이겠지요. 책(디자인이 만든

세상) 부제를 '왜 완벽한 디자인이란 존재하지 않는가(Why There Is No Perfect

Design)'라고 붙인 이유도, 어떤 디자인이든 발명품이든 간에 흠이 발견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능적 한계가 있거나 너무 비싸다거나, 혹은 에너지 소비가

많다든가, 환경문제가 있다든가 등등. 이런 것들이 개선 사항이 되고 더 좋은 디자인을 위한

원동력이 됩니다. 기술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고요. 누군가 '난 이것보다 훨씬 더 잘 만들

수 있어, 더 예쁘게 더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 수도 있고, 더 좋은 기능을 만들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면 특허를 얻을 수 있습니다. 특허 중 상당수가 엄청난 혁명적인 변화가 아니라

단지 개선 사항인 경우가 많습니다."

―쇼핑몰 같은 서비스도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미국의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하다 다른 진열대로 옮겨가고 싶을 때,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장 전체를 가로질러 가야 하는 것이죠. 큰 쇼핑몰의

경우 1~2 ㎞를 걷게 됩니다. 쇼핑몰 디자인이 잘못됐기 때문이죠. 내가 아들과 함께 연구해

특허를 받은 아이디어가 하나 있습니다. 대형 마트의 구조를 원형으로 만드는 것이죠.

허브의 역할을 하는 하나의 중심이 있고 그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진열대를 배열하는 겁니다.

원형 구조의 장점은, 한 상품을 고르다가 다른 상품을 고르고 싶을 때 중심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계산대는 원형 구조의 바깥

선을 따라 위치합니다. 그러면 어느 진열대를 따라 쇼핑을 하든지 끝에서 계산대와 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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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거죠."

■ 인류에 유익한 발명은 엔지니어가 주도

디자인과 함께, 페트로스키 교수의 또 다른 연구주제는 공학의 역사다. 그는 인류에게

유익한 발명품들이 이론적 연구에 매달리는 과학자가 아닌,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엔지니어(공학자)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흔히 '과학이 공학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미국의

정책기관은 대부분 과학을 우선시했고, 공학은 나중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는 예산

배분에 영향을 줘 과학자에 대한 지원금이 엔지니어(공학자)보다 더 컸죠. 나중에 이것이

바람직한지 조사해본 결과 실제로는 신기술·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기초과학이 공학보다

먼저 방법을 제시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후부터 공학에 대한 지원

비율이 높아졌죠."

페트로스키는 노벨상을 주로 과학자들에게 주는 것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이의 제기를 한다.

"노벨의 유언장에는 '그 전 해에 인류 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고

적혀 있어요. 상을 만든 취지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만든 사람에 대한 감사의

뜻이었다면 노벨상을 받을 대상은 순수과학자보다 공학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는 "연구개발(Research and Development) 개념도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신제품이나

신기술의 탄생 과정을 추적해보면, 이론적인 연구(Research)보다는 엔지니어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발(Development)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페트로스키의 이런 주장은 WeeklyBIZ 가 인터뷰한 적이 있는 존 마에다 총장(로드 아일랜드

디자인스쿨)의 '더러운 손(dirty hands)' 이론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번 포럼에도 함께 참가한

마에다 총장은 '학생들의 창의성을 북돋우기 위해 어떻게 하는가'라는 주제 발표에서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스쿨 학생들이 다른 대학 학생들과 다른 점은 늘 손이 더럽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엄청난 고열(高熱)의 유리 용해로에서 직접 실험을 하고, 교내 자연사

박물관에서 8 만 5000 종의 동식물 견본을 직접 만지고 체험하며, 희귀 목재 컬렉션이

내뿜는 얼얼한 냄새를 맡는다고 그는 소개했다. 학생들이 머릿속으로 혹은 구글로 보는데

머물지 않고, 무엇이든 직접 만져보고 느끼고 실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에다 총장은 "만일

만질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If you can't touch it, it isn't real)"라고

말했다.

페트로스키는 저서 〈기술의 한계를 넘어 ·Pushing the Limits〉와 〈종이 한 장의

차이·Success Through Failure〉 등을 통해 역사적으로 엔지니어들이 그 시대의 공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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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극복해 온 과정을 소개했다. 특히 "모든 발명품과 신기술은 언제나 개선의 여지를

남긴다"고 주장했다.

▲ 아이폰 / 블랙베리

■엔지니어는 자기 목소리 낼 줄 알아야

―저서 〈기술의 한계를 넘어〉는 유명한 다리(교량) 건설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

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기술은 그 특성상 계속 진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술 진보는 한계를 극복한다는 의미

입니다. 엔지니어들은 그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노력을 쏟다가 오버하는 경우

도 있고, 때론 한꺼번에 모든 걸 처리하려다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을 현실적인 실

패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다리를 선택한 이유는 다리의 역사가 아주 길고 그에

따라 실패의 역사도 길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한 번 무너지면 엄청난 대형 사고가 됩니다.

수많은 다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무너졌는데 그때마다 뉴스에 나왔죠."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붕괴된 후, 공학자들은 비행기가 충돌해도 견딜 수 있

는 건물을 지으려고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을 봤습니다.

"사실 세계무역센터는 비행기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었던 건물입니다. 실제로 1945년

에 비행기(B-25 폭격기) 한 대가 당시 최고층 건물이었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충돌한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1960년대 후반 세계무역센터를 지을 때 당시 가장 큰 비행기였던 보

잉 707기와 충돌해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문제는 비행기가 충돌한 후 화재가 발

생할 가능성은 등한시했다는 점입니다. 세계무역센터는 충돌 후 화재로 철근이 약해져 녹아

내리면서 붕괴되고 말았죠. '예방의 실패'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엔지니어는 모든

가능성을 다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없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비행기와 충돌할 가능성까지 계산해야 한다면 건물주로서는 비용 부담이

너무 크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하지만 리스크 분석을 해야죠. 예를 들어 뉴욕 지역은 공항이 3개가 있고 수많은

비행기가 수시로 뜨고 내립니다. 비행기 충돌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물론

공항과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의 경우엔 이런 염려가 필요 없다고 판단됩니다만."

―일부에선 공학 발전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주 정당한 비판도 있지만 어떤 비판은 좀 과장되어 있습니다. 가령 20년 전만 해도 환경

주의자들은 만장일치로 원자력에 반대했죠. 방사능 유출 위험이 크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

런데 지금은 오히려 환경단체들이 원자력을 지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경오염이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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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

는 사례죠. 지금은 이산화탄소 배출에 아주 민감합니다."

―엔지니어들이 기업에 속하면서 기업이 요구하는 분야, 다시 말해 돈벌이가 되는 분야만 연

구하고 다른 분야는 연구하지 않아 불균형이 생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를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초고층

빌딩이나 다리 건설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엔지니어

개인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엔지니어들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엔지니어들이 좀 더 용기를 갖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가능성 없

거나 잘못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발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고가 난 우주왕복

선 챌린저호가 발사되기 전, 몇몇 엔지니어들이 위험성을 미리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발사

당일 기온이 너무 내려가서 챌린저호가 발사 후 폭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는데, 책임자는

이런 의견을 무시했고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중요한 순간에 입을 열 줄 알아야

합니다."

■완벽한 성공은 없다

―기술이 예술이나 인문학, 사회과학 등과 융합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융합이

왜 중요한가요.

"요즘에는 수많은 문제가 분야를 넘나들며 서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다리를 하나 건설한

다고 가정해 봅시다. 정치적인 면이 아주 크게 부각될 것입니다. 다리 건설에 찬성하거나 반

대하는 사람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다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인근 주택을

철거해야 한다면 파장이 엄청날 겁니다.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다리를 건설한다는 결정

이 났다고 합시다. 이번에는 단순한 기능 중심의 다리를 놓을 것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다리

로 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깁니다. 아름다운 디자인의 다리는 주민의 삶의 질과 연결됩니다.

다리 건설은 분명 공학적인 일이지만 사실은 매우 여러 분야와 관련돼 있지요."

―저서 〈종이 한 장의 차이〉를 읽다 보니 완벽한 성공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되는 혁신의 끝은 어디인가요.

"완벽한 디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완벽한 성공 역시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부제가 '디자인의 모순(paradox of design)'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순이란

이런 겁니다. 어떤 다리 디자인이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후세 사람들이 그것을 모델 삼아 똑

같은 디자인으로 점점 더 큰 다리를 건설하길 반복하다 보면, 결국 한계상황을 맞아 실패하

게 됩니다. 처음의 성공이 나중에 실패로 변하는 것이죠. 성공은 그것이 성공이라는 것 외에

는 별다른 교훈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세계무역센터의 붕괴처럼 실패가 발생하면 엔지니어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연구하고 새로운 해법을 찾아냅니다. 여기서 모순이 생깁니다. 실패가 오히려 성공이 되고

성공이 오히려 실패가 되는 것이죠."

페트로스키 교수는 이런 철학적 논법을 전개하면서 "성공과 실패는 계속 순환하는 것이며,

따라서 혁신에는 끝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