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45
䀇Ẅ ㇋⊳㤟 㑼ᶓ㑫⯜ 㱋⌋䄷 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2 0 1 0 F A L L S E M E S T E R Section 6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An Evening of thinking Deeply and Collectively about the Death Penalty 2010. 12. 2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지원사업 한동대학교 학문과신앙연구소

Transcript of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Page 1: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2 0 1 0F A L LS E M E S T E R

Section 6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An Evening of thinking Deeply and Collectively about the Death Penalty

2010. 12. 2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지원사업한동대학교 학문과신앙연구소

Page 2: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Page 3: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주최_한동대학교 학문과신앙연구소_Handong Institute of Learning and Faith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지성인으로서 사형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한 쪽에서는 "스스로를 자유롭고 민주적이라고 내세우는 정치공동체가 어떻게 그 구성원 중의 하나를 정당하게 죽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 우리를 괴롭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비참하게 죽어간 피해자의 소리없는 외침이 우리의 몸 깊은 곳으로부터 분노의 정의,

곧 응보의 이념을 솟구치게 만들곤 합니다.

이번 학기 다섯번째 학문과신앙 콜로키엄은 이 두 가지 모순적인 정의의 요청들 앞에서 번민하는 자리에 한동 구성원 여러분들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사형에 대하여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 발제를 맡아 주신 귀한 교수님들과 함께 진지하고 어려운 토론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에 여러분의 동참을 바랍니다.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An Evening of Thinking Deeply and Collectively

about the Death Penalty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2010 Fall Semester 5th Colloquium

사회 : 이국운 교수(한동대, 헌법/법사회학)발제 : 지승원 교수(한동대, 법철학) 홍기원 교수(서울시립대, 법사상사학) 안 진 교수(전남대, 인권법학/법사회학) 장철준 교수(한동대, 헌법학)

[ ]All Nations Hall 30212월 2일 (목) 저녁 7시15분

Page 4: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61

2010 년 가을학기_제 5 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행사 사진-1]

2010 Fall Semester_5th 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Page 5: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62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2010 년 가을학기_제 5 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행사 사진-2]

2010 Fall Semester_5th 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Page 6: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Page 7: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63

2010년 가을학기_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2010 Fall Semester_5st 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주관 :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지원사업 [ACE 사업]

주최 : 한동대학교 학문과 신앙 연구소 [Handong Institute of Learning and Faith]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An Evening of thinking Deeply and Collectively

about the Death Penalty

2010. 12. 2

이국운 오후에 네 편에 공들여 쓰신 논문을 함께 소화하는 시간을 갖느라고 조금 일정이

늦어져서 예정보다 15 분 늦었습니다.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라는 이름으로 학부역량

강화사업의 지원을 받아서 진행되는 학문과 신앙 연구소 이번 학기 다섯 번째 콜로키움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날씨가 궂은데 많은 학생들이 찾아주어서 감사합니다.

늘 해오던 이야기 이지만 처음 듣는 학생들도 있을지 모르니까, 어떻게 진행하는지 잠시

말씀해드리고자 합니다. 저희는 일단, 오늘은 사형에 대한 이야기 인데요, 이 주제에 관해서 네 분의

이야기 손님을 모셨습니다. 네 분으로부터 각각 10 분 정도씩 이 주제에 관해서 평소에 가지고 계신

생각을 듣는 시간을 가지겠고요. 그것이 끝나고 난 다음에 네 분 사이에서 혹시 더 설명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의견이 다르신 부분이 있으면 토론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Page 8: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64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여러분들의 시간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질문을 해도 좋고 그냥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해도 좋고 아니면 논평 같은 형식으로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오늘 오후 3 시 20 분 정도에 시작해서 사형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에 관해서 생각들을 나누어

보고 이제 오늘 제 생각에는 9 시 반에서 열 시까지 우리가 조금 더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보다는

더 깊은, 정리가 될지 안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고민을 해보기 전보다는 깊이 인간에

대해서 또 법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것에 대해서 생각 할 수 있는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앞에 네 편의 논문을 우리가 읽었는데요. 교수님이 먼저 자리를

일어서셔야 하는 저자 분들입니다. 옆에 계신 장세룡 교수님이신데요, 오늘 모임에 끝까지 참여하시진

못하시지만 오늘 혹시 남기고 가실 말씀이 있으시면 먼저 듣는 시간을 가시려 합니다. 장교수님 부탁

드립니다.

장세룡 먼저 일어날 것이라 말씀 드려서 먼저 발언권을 주시는 것 까지는 제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를 주셨으니까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저는 법학 전공이 아니니까 법학과

관련되는 말씀을 드리기는 그렇고, 제가 한동대학교 처음 왔습니다. 경북에서 몇 년 살았는데요.

마지막 답사한 경북의 4 년제 대학 한동 대학교를 올해는 처음 왔는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좋은학교인 것 같습니다. 명성은 익히 잘 들어왔습니다. 더구나 글로벌 한동이라고 폭넓게 국제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사실 그전만 하더라도 저는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포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다 대구로 많이 왔습니다. 포항 출신들이 특징이 약간 거칠고 의리가

있고 그래서 선배 하나 잘 잡으면 후배들 여럿이 데리고 와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조직력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글로벌 한동이기는 하지만 아까 이야기했던 이념 또는 민족의

보조 용서 실제로 경북의 역사가 정말 복합적이고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컬한 것이야

말로 글로벌 한 것이고 글로벌 한동에서 한편으로 로컬하지만 경북을 연구하시는 동안 또 알아보시려

하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흔히 말하는 글로컬 한 것이라 하다고 치고 그런 것들이 여러분들이

성장하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주에서 오신 어느 선생님은 광주의

기품도 있지만 경북은 경북 나름대로 정말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근대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보인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고.

두번째로는, 제가 다룬 부분은 18 세기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일정한

단계에 도달한 상황입니다. 이 고전적 자유주의가 도달한 단계는 적어도 우리가 말하는 르네상스 시대

15 세기에서 시작해서 약 300 년간 유럽인들 나름대로 지성인들이 피나는 노력, 정말 이렇게 까지도

고민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열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본다면 근대화,

압축적인 근대화를 하면서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지난 500 년간

Page 9: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65

유가법사상으로 정치한 면이 많지만 그 사상이 일정한 정체상태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러면서 새로

우리가 서구사상을 받아들이면서 기독교도 있고 자본주의도 있고 사회주의도 있고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깊이 고민할 틈 없이 진행되어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본다면 사상의 극단화가

우리들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극단으로 가지 않고 중심을 잡아갈 수 있는데

근대 서구인들의 자유주의사상이 나름대로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것,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형제도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러나 막바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이 뭐냐 끊임없이 고민해

가는 그런 궤적들 그런 점들을 보면서 우리가 서구를 이해할 때 무조건 서구가 좋다 나쁘다, 요즘은

반감도 많지 않습니까? 그렇게 볼 것이 아니라 이네들의 고민해온 궤적들을 우리가 존중 하면서

우리도 그런 시도를 치밀하게 바라보게 될 때 우리가 가진 현재의 갈등 같은 것들을 좀 더 풀리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북의 이런 대치상황이 터무니 없는 것이 있거든요. 이것이 이렇게

극단화 되는 데는 우리가 사상의 깊은 맛을 잘 모른다는 말이죠. 그래서 아마 저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공부 할 날도 몇 일 남지 않았고, 여러분들 공부 하실 때 정말 깊이 있게 하시도록 로컬

협력 서구에서 들어온 것 함께 융합 하면서 좋은 인생을 획득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사진이야기도 나왔고 했으니까 영화 ‘밀양’이 기억이 나죠. 전도현이 아들을 죽인

범죄자를 용서하러 갔을 때, 이 자는 자기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았다고 하고, 그래서

전도현이 나와서 엄청난 구역질을 하죠. 그런데 밀양도 그렇고 박하사탕도 그렇고, 이창동 감독이

대구에 봉화출신인데, 그 이야기를 하는 건, 밀양, 박하사탕은 당연히 그렇지만, 밀양은 광주를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본다면 가해자, 피해자, 전도현은 피해자 광주고 가해자는

대구라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 광주가 용서해주려고 하는데, 이미 대구는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고 나는 나를 용서 했다고 하나님께로 용서 받았다고 나오게 되고 이런 일을 겪었을 때 그

이야기를 하기 앞서서 실제로 광주가 나타나면서 결심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대구의 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가해자가 된데 대해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창동

감독에 박하사탕처럼 나는 되돌아 갈래, 순수로 되돌아 가고싶어 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

중 내가 왜 가해자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편으로 가해자가 되어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광주에 이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와의 문제가 이 문제는 아닙니다만 가해자가 되었을 때 가해자 대구가 어떻게

생각했을 것인가 지금은 이래저래 다 망각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끔씩 생각해보면 가해자인

우리가, '우리가'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가해자인 대구가 어떻게 해야 됐을까 저는 밀양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좀 복잡하게 이야기를 했지요.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거기에 광주와 대구를 대입 시켜서 설명을

함으로써 저의 생각이 있습니다만, 가해자가 어떻게 했어야 될 것인가 하는게 최근에 저의 고민입니다.

Page 10: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66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그러면 광주에 대해 대구는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 이창동처럼 또는 그 집안 식구들 다 잘아는 그냥

미안하다 하면 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내 스스로

용서해주는 길 밖에 방법이 없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주제를 광주와 대구라는 역사의 문제를 겹쳐서, 저는 역사가니까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혹시 다른 선생님들이 생각하시는 게 있으면 저도 들어보고 싶고요.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이국운 감사합니다. 부산에서 이덕인 교수님도 제 생각에는 홍교수님과 안교수님은 학교에

방을 마련해 드렸어요 그래서 안가셔도 되기 때문에 그냥 계속 가보자 이렇게 해도 될 것 같은데

우리 이교수님은 부산이 집이시라 일어서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모임에 중간에,

끝까지 계시지 못하지만 혹시 남기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이덕인 정말 아쉽습니다. 제가 앞서도 말씀 드렸듯이 엠네스티에 법률가 위원회에 간사를

맞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방에 있으면서 제가 일을 해야 할 상황이 되어서 시간을 내어서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관련되는 제 생각들을 글로써 전하겠고

여러분들도 언제든지 제 글에 허심탄회하게 답해주시면 되는 것 같고요. 하나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처음 법을 공부할 때는 도그마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냐면 법학을 다들 하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 생각을 해보니까, 도그마, 그러니까 법 해석에 대해 골몰을 했던 것이 상당히

부끄럽습니다. 법이 왜 법학이 되지 못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너무 지나치게 도그마에 메어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주제도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법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사형제도를 생각해보았기 때문에, 사실 아까 발표를 했을 때 장교수님이 이야기하신 부분이 맞거든요.

우리가 헌법 평가를 하려고 했으면 그 부분에 국한을 해야 할 것인데 제가 방향을 틀었습니다.

여러분들, 법이라고 하는 것은요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휘두르면 거기 반동으로 휘두름을

당하는 만큼의 반작용이 나한테 오게되는 거에요. 그런 부분들을 좀 염두에 두시고 앞서서도 말씀

드렸듯이 분명히 여러분들은 다음 세대에 법조계를 책임질 분들이에요. 분명히. 그래서 그때 지금과

같은 이런 고민들이 계속해서 연장선상에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물론 지금 현재 기성세대들이

책임을 져야겠죠 학자는 물론이고 법조계에 지금 계시는 분들까지 말입니다.

지난 세월들을 돌아보면 법조계에 계신 분들만 반성해야 할 게 아닙니다. 학자들도 반성할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실명을 거론하기는 힘들지만 제가 공부했을 때 형법의 바이블이라 하는

유명한 분이 있었거든요 그분은 독일 책을 그대로 베꼈어요. 독일 책을 그냥 베꼈으면 괜찮은데 일본

책, 그 독일의 원서를 일본어로 베낀 것을 다시 번역한 거예요. 우리 학계의 관행이 아직까지 그런

부분들이 지금도, 다는 아니겠죠, 그런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국격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Page 11: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67

모든 부분에 있어서 국격이 그만큼 올라가야 할 것이고, 또 그런 부분들에 책임이 한동에 계시는

법학부 여러분들 한태도 일정부분 책임의 무게가 다 나눠져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국운 두 교수님께서 뒤에 계시다가 편하신 시간에 가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저희 모임이

재미있습니다. 안가셔도 됩니다. 계시다가 다시 말씀하셔도 얼마든지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시간이

조금 갔습니다만 이제 우리 모임을 좀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와 주신 네분의 이야기 손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옆에 계신 순서대로, 멀리 전남대학에서 안진교수님이 오셨는데 안

교수님께서는 원래 사회학자이십니다. 그런데 범죄사회학 공부를 하시고 박사학위로 사회학을

받으시고 그 뒤에 여성학 그리고 인권 등을 공부를 쭉 하시다가 지금은 전남대학교에 있는

로스쿨에서 가르치고 계시고 전남대학교가 공인인권법을 상당히 잘 하는 학교인데요. 그 센터도

이끌고 계십니다. 멀리서 와 주셨는데 포항이 이렇게 먼지 알았으면 그러셨어요. 환영하는 박수 한번

하겠습니다. 그 옆에 계신 선생님은 서울 시립대학에서 기초법학 가르치고 계시는 홍기원

교수님이시고요. 홍교수님은 프랑스에서 학위를 하셨는데 프랑스에 가시기 전에 동양법제 동양법

사상사도 아주 깊이 공부를 하셨고 16 세기 17 세기에 초기 프로테스탄트들이 헌법이론정치사상을

아주 깊이 공부하고 계시고 지난학기인가요? 한번 우리 학교에 오셨어요. 제가 하는 기독교와

현대사상시간에 휴고 그로티우스 강의에 들어오셨다가, 저희 학교에 진면목을 모르시고 대게 저희

학교를 좋아하세요. 지금 학생들 인사하고 하는거, 학생들이 얼마나 책을 안읽고 글도 잘 못쓰고, 저는

이 오해가 언제까지 가나 보자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은 굉장히 한동을 좋아하고 계십니다.

결혼하셨습니다. 홍교수님 소개해드립니다. 우리 법학부에 가장 최근에 결혼도 하고 딸도 낳은

장철준교수님입니다. 법학부에 아버님이시자 목사님이자 무술 사범이시자 한, 그리고 오늘 조금 늦게

온 사람들은 못 들었는데요, 아까 토론하실 때는 작은칼 큰칼 쓰는 법과 젓가락 던지는 법을

말씀하셨어요. 다 녹음이 되어있습니다. 우리 지승원 목사님 교수님 소개해드립니다. 그러면 멀리서

오신 안교수님부터 시작해서 순서대로 10 분씩 무슨 말씀을 하실지 제가 잘 모릅니다. 짜지도

않았습니다. 말씀 듣고 우리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안진 네 조금 전에 홍기원 교수님하고 둘이 귓속말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에

학생들이 이런 자리에 자발적으로 끝까지 함께해주기가 쉽지 않은데 이 학교는 특별한 학교인 것

같다. 그러면서 여기 계신 교수님들 누구누구의 힘 때문이지 않을까 했는데. 오늘 점심때 한번

교수님들, 발표 토론시간에 훌륭한 말씀들 저에게도 굉장히 축복받은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끝까지 경청하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은 제목이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오후 제가 아까 나가면서 함께 하면서도 깊이 생각해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요.

제가 사실 사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은 형법 전범자 형사정책 범죄학 이런걸 해서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한 것은 아니고요. 원래 저는 이상하게 제 세대에 경험이 폭력을 원치 않게

Page 12: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68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겪었던 세대예요. 여러분들을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제가 70 년대 후반에 대학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제가 다닐 때는 대학에서 강의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고 대학 밖에 그냥 하고 친구가 성명서를 하나

내면 어느 순간 경찰들이 다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80 년 5 월 그러니까 장교수님 떠나시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만 80 년 5 월

광주에서 대학교 4 학년이었어요 물론 대학원은 서울에서 했지만 그래서 정말, 제가 젊은 날 경험했던

국가폭력이죠. 국가폭력, 그래서 사회학이 전공인데도 박사논문에서는 국가의 억압기구들 폭력기구들

사법부 경찰 군대 이런걸 연구했어요. 그러니까 사회학이 역사학에 손을 대면 역사학자들보다 실력도

부족하면서, 요즘 여러분 표현대로 하자면, 영양가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도대체 국가라고

하는 것이, 루소 식으로 자유주의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일반의지의 구현체로서 우리가 입법을 통해서

어블로지를 만들면 이걸 잘 해서 우리의 자유를 확장해주고 변화시키고 수정해가는 그런 수단이

아니라, 장철준 교수님도 아까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만, 하나의 기만체계, 지배계급의 집단들이

지배하는 수단이고 이런 식으로 사람에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꼈고, 대학시절을 그렇게 보내면서

경찰서에서 가벼운 수준의 고문도 경험하고 그런 세대입니다. 그때는 별거 아니에요. 그냥 동아리

활동 좀 했는데 잡아다가 그냥 밤새 취조하고, 이런 것들이 그냥 그렇게 가벼운 고문이 된거예요.

특별한 뭘 해서 한게 아니거든요. 이를테면 거물급,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었던 분들도 상당한 분들이

그럴겁니다. 저는 운 좋게도 그렇게 크게는 하지 않고 그렇게 왔었는데요.

그래서 늘 국가폭력에 대한 연구, 지금은 이제 인권 분야에서 과거청산, 과거청산도 그냥

된게 아니죠 끊임 없이 과거청산을 위한 민주화 기구의 노력이 있었고 그래서 그런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 정말 너무 우연하게도 그런 국가폭력이 아닌 개인적인 폭력, 이건 사적인 폭력이죠 범죄의

폭력은, 그걸 제가 제 생애에서 경험을 하면서, 항상 공적인 영역 안에서 국가 시스템 안에서

고민했던 것들이 개인이 우연하게 사적으로 폭력을 겪었을 때도 그 폭력에 트라우마는 굉장히 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그런 피해자들이 세상에 굉장히 많이 있고 국가나 법체계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법을 정의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혀 그렇지 못하구나.

그렇지만 항상 법이나 국가는 저는 사회학적으로 필요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근대국가, 근대복지 시스템, 근대 삶에서는 그런 체계 안에서 재편돼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그것을 우리가 모니터 해가면서 잘 가게 만들어야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은 그 폭력, 특히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겪은 폭력과 고통 을 똑같이 공감하고 느끼면서 그런 아픔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러면서 법의 타자들, 법에서 국가에서 소외됐던 수많은 피해자들, 국가폭력을

당해서 사상이나, 저희는 48 년 여순 사건이나 아까 이덕인 교수님이 통계를 쭉 발표했습니다만, 사형

집행 비율이 45 년에서 49 년까지 50 년대에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45 년 49 년 거기 나오는 국가살해

Page 13: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69

통계가 믿을만한 통계라고 하시는데 굉장히 축소된 겁니다. 48 년 여순혁명 때만 해도 즉결처분이나

이런 식으로 한 사람들이 저의 숫자로는 1600명 순이거든요.

통계적으로 보면, 그러한 것들을 쭉, 국가폭력, 개인폭력, 이러한 것들을 우리가 폭력이 없는

사회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갈 것인지 그리고 국가가 주는 폭력도 없애면서 또 개인이 겪었던 폭력을

어떤 식으로 폭력으로부터 보호도 해주고 다양한 폭력이 있죠. 여러분들 삶에서도. 가벼운 수준의

폭력이 됐든 여러가지가 있을 텐데 그것을 좀 줄여가는 것이 법학도들이, 법을 하는 사람들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형에 대해서는, 오늘 주제가 사형이니까요, 사형에 대해서는, 제가 아까 제 발표문에

서두에서 조금 길게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나는 사형제를 찬성한다 혹은 반대한다 이런 식의

생각보다는 방금 말씀 드렸던, 인간이 저지른 죄, 무엇이 죄고 그 죄라는 것은 과연 법학적으로

윤리적으로 어떻게 봐야되고 그 죄에 대해서 우리가 처벌을 한다면 벌을 준다면 국가나 사회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은

균형잡힌 넓은 시각으로 그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하나의 형벌제도로서 사형제도도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보는데 있어서 제가 조금이라도 이런 자리를 빌어서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조력자로서 길잡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법은 항상 약자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걸 운용하고

생각하고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사형제도, 저는 형벌제도 전체로서 사형제가 있다 없다는 그

문제, 존폐문제 이런 식으로 논의하기 보다는, 정말 우리 사회에 있는 가장 극악한 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 흉악범들에 의한 살인, 이런 것들은 어떤 식으로 그것을 우리 사회에서 없앨 수 있고 거기에

대해서 처벌이나 형벌은 어떻게 가해져야 되는지, 이런 차원을 항상 같이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생명권의 문제를 이미 생존해있는 살아있는 범죄자 범법자 살인범의 생각만 생각하지 말고

그들의 범죄에 의해서 권력의 주체로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피해자의 생명권은 어떻게 구제하고

보장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은 그렇습니다. 가해자 개인이 정말 사죄를 하면서 어떤 식으로든지

피해를 구제하려 하고, 우리 형법체계가 그걸 보상도 하면서 관용이 되고, 이런 식으로 되어있는데요.

그런데 가해자 개인의 회개도 찾기 힘들지만 그 살인범의 가족도, 피해자가 그런 이야기도 있는데

의외로 가족의 문제도 굉장히 많더라고요. 제가 본 케이스들에서는 그 가해자의 가족이 정말

피해가족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고 사죄하고 이런 것을 보기가 힘들었어요. 이미 살인범을 만든 그

가족 심리도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피해구제가 사적으로도 없었고요. 근대 국가의

특징 중 하나가 폭력과 형벌권은 국가가 독점을 하잖아요.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수사와 재판과

Page 14: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70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모든 과정에서 일부 참여를 시킨다고 해도 한국은 굉장히 제한되어있어요. 그런 것들을 앞으로 개선해

가고 그런 식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입장은, 제가 아까 조금 논쟁적으로 하기 위해서 그런 예외적인 경우에 한 살인범에

대한 처벌, 형벌로서 사형제는 성경적으로고 필요하다고 논쟁적으로 단순화시켜서 표현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고민을 하고 있어요. 왜냐면 저는 인권법 전공자로서 사형제 폐지

입장이 확고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피해자의 고통이나 이런 것들을 보게 된 계기가 있었고, 사적인

폭력에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입장을 조금 바꾸면서, 예외적인 경우에 사형을 인정을 해야한다는

편입니다.

사실 그 사형보다는 제가 아까 균형잡힌 폭넓은 사고를 해보라고 한게, 그 사람의 죄값을

대신할 수 있는 형벌은 무엇인지, 종신형, 아까 백교수님 마지막 토론도 굉장히 여러분들한테 많은

사고를 하게 해주었을 것 같은데요. 정말 범법자를 진정으로 인간으로 대접해 주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죄값을 치르게 하면서 그 도덕성을 높여주는 것 일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친일파를

처벌할 때 김구선생은 공민권박탈 이런 중요한걸 내놨었어요. 그런 식의 방식이 되었든 아니면

피해유족에 대해서 평생 피해 복구 노력을 할 수 있게끔 하는 방식들, 그러니까 그게 그 사람 평생

형벌의 효용 관점에서 우려먹는 것이 친 인권적이냐, 아까 그런 토론이 나왔었습니다만 꼭 그 사람을

효용으로 활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진정으로 조금이라도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그런데 저의 경험으로 그게 참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소년원에 작은 꼬마들부터 범죄학 인터뷰를 해보고 했는데요. 정말 어려서부터 사람,

고통에 대한 경험이나 윤리의식의 형성이나 이런 기회가 없이 돼버린 사람을, 성인이 됐을 때 그

사람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신앙을 통해서든 무엇을 통해서든 너무나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소년원에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쭉 그렇게 연구를 하다 보면, 아주 영리하면서도 범죄적으로 충동조절도

못하면서 이런 타입도 있고요. 여러분들이 사형제에 대해서 예외적인 경우에 극악한 살인범의 경우에

사형제 폐지론자들이 주장했던 모든 논거를 다 받아들이면서 주장할 수 있죠. 예외적인 경우에는,

여기서 뭐 학교 발표시간은 아니니까 그 긴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요, 그러되 그 고민하는

어떤 준거점이 되는 것은 인간을 균형 잡히게 폭넓게 보면서 과연 죄에 대해서 제대로 묻고 범죄의

피해에 대해서 사람을 살리고 복귀하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범죄 피해 같은 경우는, 저 같은 경우는 한 사람의 피해지만 거의 전 가족 전체가

실제 활동이 야간활동이나 정상활동이 힘들 정도로 그렇게 심한 피해가 오거든요. 제 가족과 다른 그

가족이 당한 경우는 두 명이 살해됐는데요, 그 피해자의 오빠가, 사적인 일입니다만, 검찰청 어디

지청에 근무하시던 검사셨는데 그만두셨어요. 그리고 그 딸은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로 지금도

Page 15: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71

그렇게 있고요. 사실 이게 특별한 경우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런 경우에, 사회에서 수적으로 몇 명

안 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법이 정의의 수단으로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그냥 사형제 무조건 폐지다 범법자 살아있는

사람의 생명권이 중요하다. 국가가 그 사람이 시민인데 자기 생명권 양도한 적 없다. 이런 식의

단순한 논리로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우익적인 그런 입장의 사람들에 논증 조차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 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지적인 훈련. 이런 것을 갖출 수

있는 법학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시계 풀어놓고 이야기하는데도 조금 길어지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홍기원 네 사실 중요한 문제고 늦은 저녁에 진지하게 만드는 주제 입니다만, 제가 평소에 이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만들어질 때마다

고민하게 되는데요. 그때마다 저 나름대로는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또 이런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고 저런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고 합니다. 그런데 물론 쉽게 결론은 도달하지

못하죠. 사실 누군가가 저에게 당신이 만약 당사자가 되면 지금과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냐고 한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여러분과 같이 법을 하는 사람으로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항상 끊임없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되는 입장에서 볼 때에 우리가 무엇을 옳고 그른지

찾는 그 과정에서 노력 중에서 무엇에 기대서 우리가 옳고 그름을 찾고 선택할 것인가 생각해본다면

좋겠습니다. 사실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은 그런 고민 없이 사실 기존에 있는 지식을 섭렵하고

습득하는데 급급하죠.

그런 어려운 선택을 누군가가 사실 대신해 줬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있어요. 입법자들 이라던지 정책결정자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들이 항상 결정을

회피합니다. 헌법 재판소도 얼마 전에 사실은 이런저런 말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장철준교수님이나

이국운교수님이나 잠시 후에 말씀해주실지도 모르겠지만,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릴 때는 그래도

우리나라의 현인들 현인들이 모여서 최고의 헌법해석을 내놓는 기관에서 뭔가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어떤, 짓누르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 우리의 짐을 덜어주는 그런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려 보면, 끝에 가서는 꼭 자기자신들의 판단에 의하지 않고, 사형제도가

꼭 바람직한 제도라고 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현재 국민 법 감정상 아직은 폐지하기 시기상조다 라는

말을 우리나라 사법기관 우리나라 최고 사법기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곳에서 결정을 회피하는 것으로

결정문을 대신합니다.

입법부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 입법부도. 입법부도 항상 우리나라에서 계속, 최근에

박선영 이문원 의원이 출현했지만, 얼마 전에 감옥에 갔다 오셨던 그분도 약 10 년 전에 폐지법안을

Page 16: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72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낸 적도 있고요. 그때마다 그 법안이 항상 중간에서 아직 시기상조다라고 합니다. 안진 교수님

인용하신 자료에 따르면 첫 페이지에 나오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데 우리 국민의 70%가 사형제도를

찬성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시대 인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반 대중들이

사형에 찬성 하지 않았을 때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아까, 일찍 가셨지만 장세룡 교수님이 18 세기

프랑스 이야기를 하셨는데, 장세룡 교수님 맨 앞에 프랑스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된 1981 년에 당시

로베르 바댕때르라는 법무부장관이 사형 폐지 법안을 냈어요. 우리나라 법무부 장관은 청송 교도소에

사형 집행소를 설치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프랑스의 경우에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1981 년에 프랑스에서 법무부 장관이 사형 폐지 법안을 제출하는 국회에서 연설을 했을 때

빅토르 위고를 인용했습니다. 당시 로베르 바댕때르가 국회에서 연설한 것을 보면 이건 사형사

논문이에요. 프랑스 현대, 아까 장세룡교수님 논문과 같이 위대한 사상가의 이름이 데카르트에서부터

루소 몽테스키외 빅토르 위고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 프랑스 국민들의 여론은 어땠는가. 80%가

사형제도는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였죠 그런. 자리에서 유권자의 눈을 항상

의식해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국민들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죠. 그때 바댕때르 장관이

프랑스 국회에서 한 말이 있어요. 입법자는 여론을 추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론을 선도해야 한다고

했어요. 여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법감정이 뭡니까. 여론이라는 것이 뭡니까. 아까 안진교수님께서 존 로크 말씀하시면서 남의

피를 흘린 자는 그만큼 피를 흘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런 구절도 있어요.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밀어라. 그리고 어떤 죄 이것이 죄다 아니다. 죄 일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을 두고 어떤 형벌을 내리느냐 하는 것을 또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서 누가 봐도

그당시 어떤 법감점, 그 당시에 예수님 설교하시던 시절에 그 당시 어떤 감정으로 봐도 돌팔매질 해서

죽여도 마땅한 자를 예수님은 죄 있는 자가 이 이에게 돌을 던지라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은 무엇이 죄냐 아니냐 따지는 것과 거기 어떤 형벌을 내리는가는 별개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따질 때 항상 우리는 감정적인 측면에 서기보다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이것을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면 프랑스에 여론은, 사형이 폐지된 지 20여 년이 흘렀죠. 30년

가까이 됐네요. 이제 당연히 여론은 확정되어있습니다. 프랑스의 대다수 국민은 사형제도는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시 로베르 바댕때르 법무부 장관의 이야기가 맞았던 거죠. 입법자는 여론을

선도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프랑스에서 예를 들어서 우리처럼 프랑스 여중생 살해 사건이나 안산에

꼬마 그런 끔찍한 강간사건 날 때마다 그런 흉악범들에 대해서 프랑스에서도 그런 흉악범이 있죠

지금도 그런데 우리는 그런 흉악범이 나오면 우리는 죽여야 한다고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다고 여론

재판이 이는 반면에 프랑스는 그런 재판은 있을 수 없죠. 그렇지만 프랑스에서 그런 일이 있을 때

Page 17: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73

마다 여론은 들끓고 또 전에 비해서 많은 사람이 사형제도를 우리 사회에서 부활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럴 때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그런 여론이 들끓는 것을

이용하는 세력은 항상 populist 들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 옳고

그른가를 따질 때 그러한 선동적인 측면, 그렇게 격한 측면에 기대서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야하는가.

죄송합니다만 아까 안진교수님께서 이런 측면들을 다 고려해야 하는데, 학문적 지원은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형 폐지를 논하면 더 멋있어 보이고 더 지적으로 보이고 이런 말씀에. 저는 제 자신이

어떤 입장을 취해서가 아니라, 사실 사형 폐지론을 주장하시는 분이 있으면 그분들을 더 힘듭니다.

왜? 여론의 70%가 사형 존치론자들이예요. 그리고 실제로 만약에 이런 상황에서 사형폐지론을

이야기하면 돌팔매 맞기 쉬워요. 여기 지금 가셨지만 이덕인 교수님의 논문에 우리나라 국회의원에

사형폐지 법안을 내는 국회의원도 있지만 툭하면 이구원 법무부 장관처럼 툭하면 사형 집행을

제기해야 한다고 하는 국회의원도 있어요. 박모 국회의원과 이국운교수님 동기동창이예요. 그러면

누가 더 쉽겠습니까 누가 더 유리하겠습니까? 이게 만약 싸움이라 치면 어느 싸움이 더

힘들겠습니까? 물론 사형 폐지론을 펴는, 제 생각은 그래요, 사형 존지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런 역학적인 관계 속에서 조금 더 부담이 덜할지 몰라요. 이런 역학관계 속에서 사형폐지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힘든 어떻게 보면 쌓은 노력일 수 있다는 그런 이런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는 어떤 신념이 그런 분들을 조금 더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고요.

마지막으로 사형제도를 존치함으로써 또는 국가 형사사법이 피해자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절차나 제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말씀도 자주 나오는 지적 중에 하나인데요, 사형을 함으로써

그것이 궁극적으로 피해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피해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은 다른 방법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상처가 생기기 이전에 그런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수 차례 언급된 여러 흉악

사건들이 있었어요. 유영철사건 뭐 많이 있죠 우리나라에 사형제도가 없어서 그런 사건이 생겼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 부산여중생 사건 있고 나서 얼마 있으면 그런 사건이 또 생겨요.

의정부에서 또 생겨요. 안산에서 또 생겨요. 우리는 사형제도가 없기 때문에 그런 흉악범죄가 계속

생기는게 아니라 그런 흉악범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보호장치를 만드는데 소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근에 어린이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여태까지 사실 우리는 어린이들을 각종 위험 속에 내던져 놓은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고 나서 그런

사건이 생기면 그것을 오로지 모든 책임을 다 가해자에게만 뒤집어씌우는 많은 부분은 우리가 함께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Page 18: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74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저는 마지막으로 형사사법이라고 하는 것은 Justice 라고 하는 것은 엄격한 형벌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것. 진실을 밝히고 우리 무엇, 그런 진실을 밝히고 거기 우리의 법 원칙과 법가치 이런

것들을 적용시켜서 거기에서 어떠한 우리의 우리 사회가 나아갈 가치 지향점들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확인해 나가야하는 작업이 바로 형사 사법이지 우리의 우리 스스로의 책임은 집합적인 책임은 우리가

자꾸 눈감아버리고 어느 한 사람에게만 너무 집중적으로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간혹 합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장철준 기본적으로 저는 리버럴입니다. 자유주의자입니다. 자유주의자인데 공화주의를

동경합니다. 공화주의를 하려면 자유주의가 먼저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번도

자유주의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국가에 대해서 간섭받지 않고 제대로 된

권력과 자유를 행사하고 누리고 즐길 수 있을까요? 그게 저에 근본적인 바람이고 지향점이고요. 그런

와중에 그걸 겪은 후에 우리가 개인주의로만 하지 말고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보자 이렇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생각할 때 특히 생명과 관련해서 가장 밀접하게 관계된 문제가 사형에

대한 문제와 낙태에 대한 문제 같습니다. 사람을, 생명이라는 것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그런 문제

중에 가장 국가의 차원에서 문제가 되고 안되고가 낙태와 사형인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리버럴의 입장에서 그리고 크리스천의 입장에서 낙태는 반대합니다. 저는 또 생명을 하나 낳아보니까

얼마나 그 생명이 소중한지 알겠습니다. 낙태를 반대하고 낙태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낙태를 죄로 해서 국가가 처벌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이게 조금 모순되는데요.

왜 그러냐면 낙태를 국가권력으로 처벌하는 것 자체가 그 사회의 자유의 척도를 보여주는것 같아요.

얼마만큼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느냐의 정도를 낙태를 처벌하느냐 처벌하지 않느냐로 판단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왜냐면 그게 잡기 가장 쉬운 범죄거든요. 범죄화 시키기 용이합니다.

국민을 범죄자로 낙인찍기 가장 쉬운 범죄가 낙태죄인것 같아요. 왜냐면 저지르는, 행위를 하는

주체가 여성이라는 측면도 있고, 밝히기도 쉽고, 그래서 낙태를 죄로 처벌하느냐 안하느냐는 그

사회의 자유의 척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낙태를 반대하지만 죄로

처벌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이런 입장이 저는 소위 미국인들 리버럴들, 그사람들이 진짜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입장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 국가로부터의 자유 그런 선상에 있다면 사형도 당연히 폐지가 되야죠.

저는 사형도 폐지가 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폐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현실도 봐야 하거든요. 아까 홍교수님 말씀하셨지만 어느 사회나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형을 찬성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가장 중요한문제가 과연

populist 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얼마나 제대로 된 우리사회의 의견을, 제가 아까 낮에 사형은 정치적인

Page 19: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75

문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정치적인 문제를 얼마나 민주적으로 정치적으로 잘 해결하고 있는가

사형에 관해서는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populist 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정말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토론이 제대로 열려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계속 일방의 주장만을 상대방의 말에 귀를 막고 자기의 주장만을 해나가면 답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화가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 상황에서 우리는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회복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사형에 관한 문제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제가 믿을 수 있느냐

재판을 믿을 수 있느냐 오판이 이렇게 많은데. 진짜 진실은 하나님만이 아시겠죠 죄를 지었는지

아닌지 그리고 그 사람을 죽여야 할 만큼의 큰 죄를 저질렀는지 아닌지는 진짜 진실은 하나님만 알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된 입장에서 밝히는 그 와중에 피해자나 가해자나 재판하는 사람이나

그래 우리 마음껏 이 장에서 이야기하고 제대로 밝혀보고 제대로 방어해봤다 하는 정도의 만족감을

가질 만한 절차를 우리가 가지고 있느냐면, 저는 분명히 아닌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사형 폐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한번 우리 선생님 말씀 중에 피해자 가족들은

재판정에도 못들어간다고 그러셨죠. 그 느낌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재판과 공적인 자리에서 토론이 이루어지려면 피해자들이 너무너무 힘들다. 너 피해자에 대해서

가족들이 느끼는 고통을 생각해봤느냐. 정말 나이브한 생각인지는 모르겠는데요. 공적인 자리에서

이런 토론이 좀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 재판 시스템에서는 이게 안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대신 이야기를 한겁니다.

아까 홍교수님 논문에서는 오심률이 높은 걸로 나와있는데요. 제가 느낀 미국사람들이 가진

사법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나 자기네 법 제도에 대한 신뢰는 우리와는 굉장히 달랐습니다. 자기네

들이 가지고 있는 재판 시스템에 대해서 우리와는 다른 수준의 높은 수준의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그걸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뭔가 해보고 싶은 말들을 자기네 재판정에서 마음껏 해보고, 나의

결벽성도 잘못 그런걸 모두 커뮤니케이션 한 다음에 결과가 나온다면 무슨 결과가 나오든 제대로 좀

봐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에, 그래도 너무너무 힘들고 안되겠으면

그 다음에 가서 생각해보자는, 저는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거든요. 제가 조금 두서가 없이 말씀을

드리는것 같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부터 제대로 향유를 해보는 단계가

먼저 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먼저 보장을 해준 다음에 그 다음에 공적인 자리에서 제대로 된

특히 사법 시스템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이후에 인권과 다른

제반의 문제들을 다시 한번 논의할 수 있는, 그리고 populist 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정도의 냉정한

토론이 제대로 우리사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age 20: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76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아까 흉악범죄 말이 나왔는데요. 우리 사회의 일면이 되어가고 있는데, 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렇게 이 정도로 잔인한 사건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까 5.18 때 선생님 대학생이셨다고

했는데 저는 초등학교 1 학년이었습니다. 차 타고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뭘까 하다가 공터에 이렇게

놀러 나갔다가 부러진 총 버려진걸 이렇게 주워다가 하다가 잡혀갈 뻔 했습니다. 그때는 이 정도의

상황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뭘 말해주는가 하면,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일수록 그 이면에 사람들이 제대로 교류하지 못하고 자기가

사회 속에서 밑바닥에 정체되어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소위 묻지마 범죄, 해악범죄, Hate crime 이라 그러죠, 선진국일수록 더 많아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국민들의 특성상 열 받으면 성질 내거든요. 욕하고 성질 내고 이게 건강한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스트레스를 풀고 화나도. 이런 시스템이었는데 우리가 점점 선진국화 되면서 우리도 Hate

crime 을 걱정해야 할 시기에 접어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Hate crime 을 그냥 다 잡아다가

죽이는 걸로 해결을 해야 하느냐 여기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사회가 대응을 할 자세도

아직 안되어있고, 근데 점점 이런 상황은 더 많이 늘어날 텐데 많이 초보적인 것 같습니다. 공부도

많이 되야 될 것이고 제대로 된 얘기도 많이 해야 할 것이고 그런 어젠다 세팅이 먼저 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10분 딱 지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승원 정말 대답하기 힘든 주제입니다. 저는 설교나 이런걸 준비할 때 상당히 감명받은

부분이, 아벨을 죽인 카인에 대해서 카인이 두려워 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것은, 항상 피는 피로

관련이 되어, 뼈 속 깊이 박혀있다고 되어있는데요. 아주 장기간 동안 하나님은 사람 죽인 자에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 살리는 형벌을 주셨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 생각을

담보했을 때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으로는 거기 동의를 해요.

그리고 예수님이시라면 과연 사형에 동의하실까 라고 생각해보면 결코 그러시지 않으리라 생각이

되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무수히 많은 범죄들 그리고 사법살인이라 할

만한, 일종에 사형이 아니라 처형이라고 하는 그런 또다른 정의의 이름을 쓴 무자비한 살육 그리고

그런 법조차도 없는 정복전쟁에서의 처절한 결과들을 생각하면, 사람이 사람을 죽인 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관해서 회의하게 되고, 그런 집단적 범죄에 대하여 격렬히 분노하게 됩니다. 이미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흐른 뒤고, 수만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오늘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되살아 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아무런 혈연적 시간적 공간적 관련도

없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람의 마음 속에 되살아 날 때 분노가 일어나는 거죠. 하물며

자기가 어떤 관련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 그것은 때때로 도저히 평생토록 치유할 수 없는, 트라우마라

그러죠, 이런 걸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물론 그런 것이 사형이라는 물리적 처형에 의해서

치유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Page 21: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77

그러나 그것마저 없다면 인간은 영원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벗어나려면 우리는 아마 성인이 되야 할거예요.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되기 이전인데 그렇게 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잠정적인, 종말론적인 미래를 기대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법은 지금 현재에 적용되어야 할 규범 아닙니까. 그래서 그게 우리의 고민이죠. 그래서 때때로

저는 어떤 사형이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프랑스는 격변기마다

기본 단위가 만 명 단위의 수 만 명씩의 과거사 척결을 한 나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다 법의

이름 하에서 이루어진 일들이고, 그런데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가

법철학시간에 가끔 고은의 만인보에서 여러 부분을 읽어주는 경우도 있는데, 한쪽 페이지는 저쪽에서

내려와서 이장 딸 죽이고, 그 다음 이쪽에서 이 쪽에서 가서 이장 딸 죽인 보도연맹 딸 죽이고, 그

둘은 나란히 무덤이 있고, 그 이름까지 실명이 거론된 장면이 있죠. 그러니까 고은도 해명이 안 되는

거죠. 둘이서 어떻게 같이 죽기 전에 학교 같이 다니면서 즐겁게 노래 부르던 그날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겠는가 답이 없다는 말입니다. 서로 처형자들을 똑같이 처형할 것인가. 서로 그렇게 처형하는

그런 의미에서 궁극적으로는 어떤 체제이던 간에 사형이 용인되지 않는 것이 합당하죠. 만약에 그게

복수가 복수를 낳고 하다보면, 그렇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답을 정말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나는 사형 존치론자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마음을

가만히 관조를 해보면 내 마음 속에 그런 것이 있습니다. 나는 자신이 없어요. 폐지론자가 되었을

때의 자신이 없다는 거죠. 대신에 신심의 어떤 순간에, 신심이 극에 이르는 순간에는 충분히 되긴

되요. 누구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고 다 됩니다만, 그러나 나는 때때로 보통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보통사람의 상태로 삶의 대부분을 보낸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우리가 만들고 지켜내야 할 부분 그 보통사람의 삶의 시각에 적용이 되는 것들, 성인이

성인의 삶에는 정의도 필요 없고 법도 필요 없어요. 대게 로스가 성인사회인 공산주의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다는 거죠.

사형이란 제도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논쟁 보다는, 어떤 사형이어야 하는가. 기독교에서는

사람을 살고 죽음을 거듭남에 있다고 보죠. 오히려 기독교적인 신학적 관점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면

거듭남을 위해서 만약에 살인이 유용할 수 있다면 나는 살인이 용인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예를

들면 아까도 잠시 교수님들 사이에서 이야기도 했지만, 사형시키지 않고 끊임 없이 회개의 시간을

40 년, 50 년 주면은 회개할 것 같아요? 스님들 면벽구면 해도 만병은 끊임 없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감옥에 앉아서 머리 속으로는 오만 죄를 더 저지를 수도 있죠. 여러분들 연속적을 한 시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몇 일 간은 대게 죄를 짓고 나면 몇 일간은 힘들거에요. 그런데 그거 일년씩

그러면 사람이 폐인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아요. 인간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끊임 없이 회개의 기회를 준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거죠. 인간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Page 22: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78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그렇다면 어떤 결정적인 것으로서 인간이 진정으로 거듭나고 해방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자비일 수

있다. 때때로는 사형이 자비일 수 있다는 거죠. 그 자비 속에서 서로가 어떤 면에서 현실을 이룰 수가

있고 회해도 가능할 수 있고, 그러나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어떤 사형이어야 하는가. 과거의 처형, 사법살인은 결코 용납이 안되죠. 그런데 그걸

행한 자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용서가 되요? 광주

분들이 전두환이나 용서가 되냐는 말이죠. 그러면 죽여야 될까요? 살려놓고 회개 하라 하면 회개

하나요? 안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나요. 그러면 역사의 심판이 있죠 춘추의 필법으로, 역사에

붉은 줄을 긋는게 있죠. 그건 명예살인 아닙니까. 옛날에는 명예살인제가 있었어요. 솥에다 집어넣고

불 때는 시늉을 하면 그건 죽은 거예요.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광화문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불

때는 시늉을 해서 삶아 죽이는 모습을 갖추고서. 실제로 불을 때는게 아니니까 그 사람은 멀쩡해요,

그러면 집에 가족들은 그 사람 데리고 집에 가서 장사 다 치르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죽은, 적어도

그런 식의 여러가지 독특한 방법으로 형식적인 사형제도는 있었던거죠.

어떤 종류의 어떤 형태의 사형은 때때로 가장 합당한 회개의 수단일 수 있다고 본다면, 꼭

그거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그런 것도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아무데나 사형하고, 지금 우리 국법에는 89 가지가 있다고 하죠. 법관들은 어떤 때는 너무 신중해서

회피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폭력에 대한 물린 채로 책임을 회피하면서 사형을 선고하고, 이 두가지 다

문제가 있습니다. 범죄와 형벌에 대한 사례들은 구체적인 사례들을 수없이 많이 접해보지 않으면

관념적으로 결코 단언할 수 없는 사건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여하튼 결론없는 말이지만 더이상 할

말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정도에서 그치겠습니다.

이국운 안교수님, 뒤에 세분 말씀을 들으셨는데,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안진 제가 이렇게 공적인 자리에서 제 최근에 고민과 변화된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럽고, 또 이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을 합니다. 제가 그냥 평범한 피해자라기 보다는

어째뜬 인권운동을 같이 해왔고, 또 강단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고민이 되고, 혼자서 책을

읽고 고민도 하고 윤리학 철학 하신 분들하고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그렇게 했지만, 제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를 해서 공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이 자리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방금 지승원 교수님께서도 말씀 하셨듯이 어떤 사형이어야 하는가, 제 식으로

표현하자면, 정말 무고하게, 정말 순수하게 선하게 산 사람을 그 사람의 생명권. 그 사람의

생명권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권리들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겁니다. 이건 침해하는 순간 비존재가

되는 순간이거든요. 권리의 주체가 지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Page 23: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79

범법자의 생명권만 이야기해요. 사실 법에서, 국가 공동체 안에 시민 개인은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목숨, 자신의 생명을 누구로부터도 침해 당하지 않고 보호해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이거든요. 제가 피해자들을 몇 사람 보면 피해자 그 한 사람이 살아서 30 대 40 대, 그 사람이

50 년을 살면서 사회에서 했을 선한 일들이 정말 그림처럼 환해요. 그런데 그 흉악한 범죄자의 손에

의해서 사라집니다. 그 다음에 그 이후에 그 범죄자가 나와서 살 것은 우리가 다 예상이 되죠. 저는

지교수님 같이 신학적 고민과 그런 것을 더 깊이 있게 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사회학을 한 사람으로서

정치사회학, 국가 법사회학 이런걸 해온 감각으로 보면, 우리 국가에 많은 것을 위임하고 사는데, 그

국가가 내 존재 자체를 앗아가버렸을 때 보호해 주지 못했을 때.

재미있는 것은, 제가 수사관들부터 다 이렇게 경험을 하고 제 경우에는 50 일간 범인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온 가족이 광인이 되다싶이 해서 수사관들이랑 같이 뛰었어요. 그런데 그

수사관과 법조인, 우리가 위임한, 아까 로크가 이야기 했던 세 차원 중에 형벌권을 위임받은 국가

행정부 사법부 경찰들이 하는 것은 살인이라 하면 무조건 원한이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그거밖에

보지 않아요. 그런데 방금 말씀하셨듯이 갈수록 사회에서 배제된 소외된 사람들이 많고 폭력에 둔감한

미디어와 문화체계는 커가고 그런 사람들은 한없이 생기는데, 이 범죄자들은 자기가 몇을 죽여도

자기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한다는 말입니다. 법원에서도 알고 또 제가 제 가족이 피해를 겪었던

그 사람의 경우에는 과거에 소년원에서 근무한 적도 있고 형무소에서 일한 적도 있어요 형법도 잘

꿰고 있어요. 그 사람 둘 말고 서넛은 죽이려 했어요. 첫번째는 교회 앞에서 살해했고 두번째도 죄

없는 여자를 성당 앞에서 살해했어요. 교회 앞에서 살해된 제 여동생의 경우에는 교회에서 이건

순교라고 봤어요.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모두 순교라고 보는 것이 편한거죠. 그 사람은 또 후미진 성당

앞에서 죄없는 여자를, 그것도 그냥 살해한게 아니예요. 그 살해 수법이라는게.

우리가 선진국이 될수록 이런 범죄가 더 많아지는데, 적어도 그 사람들은 굉장히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면서 살인 범죄를 저지릅니다. 제가 살인범들을 보면 그렇거든요. 나도 언젠가 나도 내

목숨을 내 놓는다고 했을 때는, 저는 그래서 분명히 일반 예방효과가 무시 못하게 있다고 보는 거예요,

내 목숨까지 내 놓을 수 있을 때 나도 죽인다. 적어도 이정도 판단은, 내 인생 이정도 되버린거

어차피 될대로 되라 이런 심리상태에서 하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아마 최근에 방어능력이 없는

어린애에 대한 성폭력 이런 것들이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문제, 아까 populism 으로 표현했던 그런

쪽의 주장들이 다르게 갑니다만, 저는 그런 식의 갈수록 늘어만 가는 흉악한 살인범죄에 대해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그 사람들 그냥 살려두는 것

구차하게 더럽게 살려고 하는 그 사람들의 마인드를 계속 지켜 주는 것 그게 그 사람들을 진짜

살리는 것인지 그 사형장에 입회했던, 우리가 사형, 실질적으로 사형집행이 되기 이전에 검사시보로

들어갔던 그 검사님 하시는 말씀이 자기가 그 이후로, 검사 시보는 대게 피해자 입장에서 많이 해요.

제가 보면 피해자들에 대해서 법조계 사람들과 굉장히 감각이 달라요. 교수형 당하기 전에 그

Page 24: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80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사형수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그래서 정말 자기는 사형을 폐지해야겠다고 느꼈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 사람은 사형장에 왔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교도소 등에 가보면, 어떤 경우도 나는

끄떡없이 살고 언제까지 나간다는 사람은 회개할 필요가 없어요. 참회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정말

이성적이라고 하는 것이죠.

홍기원 교수님, 제가 수년 전에 제가 했던 논변, 내 모습 그대로 하시는것 같아요. 내가 꼭

저렇게 말했었지, 저기다 이것만 더 보태면 됐는데 이런 느낌을 받았는데, 정말 피해자에 공감을

하면서 정말 정신병자, 치료해야 할 사람들 말고는 누구든 열어놓고 교정과 교화로만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고 사명이라고 제가 자신있게 이야기 했고하지만, 아까 말씀 하신데 대해서 반대논변들은

바로 다 나올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무고한 피해자들이 그렇게 많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재수 없는 한 사람의 일이 아니고 꽤 있어요. 상당히 많아요. 그리고 피해가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요. 그리고 인간의 공격성이나 폭력성이라고 하는 것은, 제가 아까 폭력이 없는

사회 그런 큰 넓은 선에서 이야기를 드렸던 이야기를 했는데요. 정말 폭력에 수위는 그 폭력을 제어할

수 있는 환경과 다른 파워가 있지 않으면 절대 제어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흉악한 살인범죄에

대한 어떤 예외적인 형벌, 아까 지교수님이 표현하셨던 어떤 사형이어야 하는가 대안적 형벌,

예외적인 형벌에 대한 그런 논의, 그러니까 그런 범법자도 똑같이 도덕성을 가지고 참회하고 회개하는

인간으로 존엄하게 보는거죠. 칸트나 헤겔이 말했던 바에 그런 인간으로 놓고 봤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교정과 교화 기회를 그냥 던져주고 그걸 조롱하고 끝없이 살게 하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해결책인가.

경제학적인 것은 다른 것 같아요. 여러분들 법경제학 적으로 보면 정말 normative 하지만

normative 하게 형벌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재판관은 다 해석해서 충실하게 다 한다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본격적으로 많이 이야기하는 검거율도, 검거율을 높이면 당연히 범죄율이 줄죠.

그렇지만 국가는 검거율을 높일 수 없습니다. 왜요?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니까요. 적정한

수준에서 할 수 밖에 없는거예요. 그런 어떤 기본적인 차원의 논의하고 국가가 형벌체계나 사법체제를

운용해 가는 정치적인 결정, 그 사이에 어떤 균형이라면 균형이고 그것들을 맞춰가는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말 완전하게 도덕적으로 피해자의 회복과 복귀, 거기서 고려되는 첫번째

변수가 피해자의 회복 생명권은 어떻게 구제 혹은 회복은 불가능하죠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그 피해 범위가 가족이나 엄청나게 많아요.

아까 제가 들었던 제 가족의 경우는, 그 두번째 했던 그 사람이 굉장히 운이 나쁘게도

달려가면서 계속 등을 치고 거의 또 세례 요한이 당했던 그런 식으로 목을 쳐죽였어요. 첫번째는

그리고 두번째도 도망가기에 뒤따라가서 그렇게 하려다가 실패를 했는데, 그 때 운 나쁘게도 그 차를

목격한 목격자가 있어서 증거를 없애던 중에 현장에서 잡았습니다. 첫번째 살인의 증거는 다 없앴고요.

Page 25: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81

미국식으로 형사재판이 철저하게 지켜졌다면 그 사람은 첫번째 사건의 범인은 될 수 없어요. 정황적인

증거밖에 없는데 한국식 사법체제니까 연쇄 살인이 된거죠. 그런데 두번째 경우는 그 사람이 그

피해여성을 그렇게 하고 가서 증거를 완전히 인멸 하려고 침착하게 다 하는데 현장에서 잡혔거든요.

그리고 그 다음을 계획하고 있었어요. 첫번째 범행 후에는 다음날 뉴스를 보면서 죽었는가 확인도

하고, 재판장에서 그 사람이 보인 모습은. 제가 다른 사례를 보면서 의외로 많은 범죄자들이 그렇다는

거예요.

인간이 그런 환경에서 가족에서 버림받고 이렇게 가면서 도덕성을 잃어버린 인간을 나름대로

국가 형벌이 누구든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순간 너는 이렇게 되는거라는 정도는 누구에게나 심어주는

그런 대안적인 형벌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폭력을 조장하는 거대한 이

시스템과 싸우는 데는 우리가 한계가 있고, 우리 법의 영역에서 적어도 그 정도의 장치는 마련해 줘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고민을 제가 새롭게 피해자의 관점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피해자 지원도 있어요. 법도 있고요. 그러나 그런 경우는, 정말 한 푼도 없는 피해가족의 경우에는

1000만원에서, 인상되서 3000만원이예요. 목숨값이 3000만원이예요. 경제능력이 있는 피해가족 같은

경우는, 그것도 조정위원회 같은 데서 깎아서 천만원 몇백 이렇게 줘요. 그건 국가가 취할 태도가

아니죠. 그런 것도 좀 더 현실적으로 가야 합니다.

가장 우선되야 할 게 그것이고, 아까 말씀하셨던게 그런건데, 뚝 때놓고 사형제도가 있어야

되냐, 말아야 되냐에 대한 문제라기 보다, 많은 범죄 중에 그런 흉악한 범죄 인간의 폭력적인 성향,

우리가 그런 상황이 됬을 때 어떤 인간도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도 그걸

제어할 수 있는게 형사사법체계의 장치라고 볼 수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아마 제가 태어나서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이렇게 제 개인적인 고뇌와 고민과 필요에 의해서 이렇게 자료를 찾으면서 잠도

안자면서 이렇게 해본 적은 사실 없었어요. 이걸 나름대로 객관화 하고 냉각기도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한데요. 지금 단계에서 생각입니다만, 여러분들이 전문가로서 직업적인 성공을 위해서, 내가

앞으로 살기 위해서, 이런 식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왜 이렇게까지 흉악한 범죄가 있고 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고, 한 10 년이면 그 사람은 나와서 잘 살겁니다. 그것도 다 알고 있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사회에 적어도 그 정도를 어느정도 막아가면서 크게 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살인범죄율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는 이것은 또다른 연구인것 같아요. 과연 미국에서

사형제를 폐지한 주가 살인 범죄가 줄었는가. 이런 것이 여러가지 논문들에서 인용도 많이 되고 한데,

범죄의 피해에 대한 공감, 다양한 범죄들을 하나로 묶어서 보지 않고 예외적인, 생명권의 문제,

생명권을 침해하는 문제 그걸 꼭 같이 언급을 하면서 왜 살인범이 이 사람도 시민인데 왜 내

Page 26: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82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생명권을 침해하냐 한쪽만 주장해서는 아까 우리가 populist 라 하고 보수적이라 하는 도덕주의자들의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크게 봐서는 이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미국의 부시정권이나 이런걸 보면 강한 국가,

강한 형벌을 주장하는 그 국가의 정치체제는 별로 바람직한 것이 아니에요. 아까 우린 진정한

자유주의를 경험했던 시대가 없잖아요. 국가보안법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사상의 자유, 나

막스주의자다, 나 사회주의다 이걸 떳떳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자유주의거든요. 한국은, 여러분 그걸

말하는걸 다 두려워하잖아요. 우리는 이렇게 평범한 자유주의도 못하고 있어요. 아까 교수님

말씀하신거 너무나 공감합니다. 국가로부터 침해받지 않는 개인의 자유.

그 시기를 우리가 겪고 확고하게 되고 그러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인의 생명권 크게

봐서는 약한 국가, 그러되 윤리적인 도덕적인 이런 것들을 회복하는 사법체제는 그런 정도 도덕적인

최소한의 방어를 가지고 있는 사회를 생각해보는 것이죠. 사실 우리가 꿈꾸는 것도 윤리적 도덕적으로

완성된 개인이 되는 것이고 사회도 좀더 노력하는 것이고, 그다음 교육이나 의식으로 다 흘러가버리는

이상한 현상 이렇게 되어버리는데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이국운 저는 사회자이긴 하지만 이 자리를 꾸민 사람으로서 여러분들과 함께 토론하기

위해서 생각나는 몇 가지를 덧붙여보고자 합니다. 네가지 정도 인데요. 첫째는 추격자라는 영화에

주연을 했던 싸이코페스 역할을 했던 하정우 라는 배우가 얼마 전에 무릎팍 도사에 나왔었습니다.

그때 제가 보고 느낀건데, 강호동씨가 어쩌면 그렇게 연기를 잘 했는가 하고 물었더니 하정우씨가

다음과 같이 답을 했습니다. 마음 속으로 아주 극악한 어떤 그런 생각을 하고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해보려 했는데 그러면 연기가 안되더라. 오히려 논다고 생각하고 별것 아닌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제식을 표현하자면 어린이가 블록놀이를 하듯이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연기를 했다. 그랬더니 연기가 되더라, 여러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추격자란 영화가 상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요. 제가 쓴 논문에서 추격자라고 하는 영화에

쏟아지고 있는 찬사가 무엇을 목적하고 있는가를 제 나름대로 찾아보았는데 거의 저는 예외를 찾지

못했습니다. 거의 모두가 연기를 잘했다. 감독의 연출력이 대단히 뛰어났다 시나리오가 멋지다 라고

하고 있었지, 그 내용이 그 내용에 관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소위 윤리의 미학화가 자본주의적인 미디어사업과 결탁해서 멋지게 보이는 것 멋지게 죽이는

것으로 그것까지 나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 이것은 오늘 이 주제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우리가

지금 그런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 그런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까 장세룡 교수님 종교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의 광기를 많이 말씀하셨는데 그 광기가 우리에게

있어서 극복되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연극 속에, 영화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이미지들 속에

Page 27: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83

그렇게 이미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이 많이 하는 리니지 이런 것을 보면 그

속에서는 아직도 우리가 종교전쟁을 성 바돌리모의 대 학살을, 또는 공안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두번째는 우리 나라에서 사형제도에 관한 존폐논쟁의 위선성입니다. 1990 년대 중반에

사형제도에 첫번째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습니다. 사실 그 결정을 내 놓는데 헌법소원을 신청한

분들이 변호사 분들이 아주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형제도 그 자체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서원을 89 개를 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9 개의 범죄 각각에 대해서 헌법재판소가

과잉금지 원칙을 쓰는데 그걸 다 들이대서 문제의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면에서

아직 우리가 문제의 범위를 우리가 풀 수 있는 규모로 좁혀놓고 이 일을 풀어야 하는데, 오늘 우리

안진 교수님께서 한국 사회 지식인 집단 안에서 쉬 하기 어려운 말씀들을 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형 폐지론자가 아주 열렬한 사형 폐지론자가 제한적 사형 존치론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입장의 변경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문제의 범위를 합당한 수준으로 좁힌다. 이렇게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그렇게 보기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앞으로 두가지를 더 말씀드릴 탠데,

각각이 다 연결된 것은 아니고요 제 나름대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데 오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케쥬얼리스틱하게 서로 연결 없이 생각난 것들입니다.

세번째는 안교수님도 말씀하시고 지목사님도 여러차례 말씀하셨듯이 창세기 4 장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 가인의 죽임 과정에서 가인에게 하나님이 주신 표에 의미입니다. 자기가 아벨을 죽인

것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자기를 다 죽이려 할 것이다. 그 경우에 어떻게 하냐 하나님께 여쭈니까,

애원하니까. 우리 지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표를 주셨어요. 그 표를 내놓으면 사적인 형벌에서

면제를 받을 수 있다고, 대게 우리 기독교적 법 이론 정치이론을 생각하는 분들은 그 사건에서부터

이론적인 기초를 가져오곤 하거든요. 그 사건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는 미국사람들 같은 경우에 살인을 1 급 살인, 2 급 살인 이렇게 나누어서

1 급살인의 경우에만, 자꾸 문제의 범위를 좁혀가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비해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살인죄가 너무 광범위하게 규정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형법을 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제가 최근에 고민하는 바는 안교수님 먼저 운명을

달리하신 동생분이 당하신 그런 범죄 특별한 어떤 다른 동기 없이 무고한 불특정인을 공격하는

범죄를 살인이라고 하는 범죄의 유형으로 다스리는게 옳은가. 저는 굳이 이야기 하자면 그것은 테러,

테러라는 유형의 범죄, 대게 태러라는 범죄는 국내법 상에다가 집어넣지 않고 국제법 상에, 국제법

상에도 전쟁법의 아주 특별한 유형으로 설명해서 테러에 대한 대응은 국내법적인 어떤 시스템 속에서

설명되지 않는다 이야기 하거든요. 그런데 이 테러라고 하는 테러의 핵심징표들이 그거죠 무고한

Page 28: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84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사람을 불특정으로 공격해서 살해한다고 하는 것인데 집단살해와 상당히 같은 점도 있지만 상당히

무고하다는 점에서 상당히 다르고요. 테러에 대해서 응징해야 한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는 같은 사건을

넓게 보아서 사형제도라도 다 집어넣어서, 너 찬성이냐 반대냐 이렇게 하기 보다는, 합당하게 문제의

범위를 좁히고, 어쩌면 테러범죄라 하는 전혀 다른 유형의 범죄 그룹으로 문제를 이월 시키는 것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풀어가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저는 오늘

하게됩니다.

사회자가 이렇게 개입하면 안되는데 제가 답답해서 말씀을 드렸고요. 9 시 15 분이

안되었는데 11 시에 들어가야 하는거죠. 교수님들은 한분은 4 호관에 한분은 비전하우스에 방을

잡으셨습니다. 또 저희야 포항에 살고요. 조금 시간에 대해서 큰 부담을 가지지 말고 여러분들이

질문을 하셔도 좋습니다. 자기 생각을 그냥 이야기 하셔도 좋습니다. 그 생각을 여기 와서 떠오른

생각도 좋고 평소에 했던 생각도 좋습니다. 심지어 교수님들이 하신 말씀에 대하여 논평 하셔도

좋습니다. 아니면 답답하다고 소리를 지르셔도 좋습니다. 무슨 반응이던지 여러분들이 보여주시면

교수님들 중에 답하실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답하시고 왔다갔다하시면 되겠습니다. 본격적인

콜로키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말씀을 열어줄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주십시오.

학생 1 안녕하세요 10 학번 이재연 입니다. 제가 예전에 사형에 대해 생각하면서 생각해본게

있었는데요. 예전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가 있었거든요. 그 영화가 사형과 관련된

영화였는데, 원래 책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마지막 장면쯤에 가면 그런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 남자가 사형을 당하게 돼서 사형대에 섰는데 사형집행인들이 있더라고요.

버튼이 네명 정도가 있었는데 버튼이 다 눌러야 사형이 집행되더라고요. 그 마지막 장면에서 한 사형

집행인이 버튼을 누르는 것을 고민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걸 눌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결국

누르긴 했는데, 그래서 몇 달 간 많은 생각을 하다가 생각했던 게 우리들이 흔히 하는 말이 사형에

관한 그런 처벌이 국가가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은 어떤 한 사람이

있는 거잖아요. 사형집행인이라는. 그 사형집행인은 피해자도 아니고 가해자도 아니고 사실 제

3 자인데, 제 3 자한테 다른 사람을 죽이는 책임을 부과해도 되는 걸까, 그게 정말 타당할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교수님들이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싶습니다.

학생 2 안녕하세요. 04 학번 법학부 정규호입니다. 오늘 개인적으로 콜로키움 여러 차례

참석했었는데 교수님들이 확실한 답변을 주신 적이 이제까지는 없었는데 오늘 극명하게 갈라졌는데,

기쁜 반면 분위기는 어두운 것 같습니다. 들으면서 생각났던 것은 스파이더 3 마지막 장면에 제가

충격적이었던 것이 있었는데요, 주인공이 자기 삼촌을 죽인 사람을 향해서 용서한다고 말했던 그게

교수님들 대화를 들으면서 많이 생각이 났었습니다. 반대하시는 두분 교수님들께, 우리가 북한이나

인권 상황들을 보면 어떤 정치범이라는 혹은 그 외 죄를 지어서 사형이 아닌 다른 이런 형벌을 많이

Page 29: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85

부과하고 하는데요. 그건 아니라고 다들 동의를 하는데, 그러면 사형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대안들을

생각하고 계시는건지, 그리고 또 한가지는 아까 대답을 회피하셨는데, 본인이 정말 그 입장에

당사자가 되어서 참여하는 사람에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입장을 표현하실건지 궁금합니다.

이국운 제가 예상한 것과 비슷하게 오늘 콜로키움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 콜로키움이

끝나고 나면 마음이 아주 답답하고 찝찝하고, 술 마신 사람 같으면 이대로 집에 못간다고 하는, 더

없습니까?

학생 3 법학부 박태영이라고 합니다. 저 스스로를 잠제적인 살인자로 세워보고 잠제적인 피

살인자로 세워보고 하니까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하루 저녁에 죽어도 보고 죽여도 보는것 같은데요.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런걸 보면 끝으로 가면 갈수록 사형수를

살려주고 싶어요. 추격자 보면 주인공 그 분이라고 말할 수 없죠, 그 세끼를 죽여야 되는데. 그래서

저희가 그 두가지 입장에서 다 자유롭지 못한것 같습니다. 지금 제 삼자로서 그런걸 바라보는게

오만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고 정말 잠제적인 살인자 피살자로 깊이 개입이 되어야 하지 않나 더

깊이 개입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고요. 또 문득 드는 생각이 안진 교수님 말씀하시는 것

들으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첫 인류가 아담과 하와입니까? 그 하와가 먼저 죽었습니까? 아담이 먼저

죽었습니까?

이국운 아담은 죽은게 나오는데 하와가 언제 죽었는지 잘 안나오네

학생 3 그 하와가 죽었을 때 아담이 과연 울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거든요. 우리가 어떻게

보면 인류가 역사가 있어온 이래로 죽는건 나쁜거야 하는 생각이 묻혀와서 사형은 무조건 나쁜거야

하는 생각이 흘러왔는데, 그 관점에서 사형은 좋을 수도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지식인으로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고, 법률가로서도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그 낙인이 찍히지 않으려고 그런걸 피하고 합니다. 이런걸 보면서, 사형제가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죽는게 나쁘지만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또 고문에 대해서 조갑제씨가 말하는걸 말씀하시면서 똑같이 고문을 당하게 해봐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고문에 개입이 되면 안되니까 로봇을 시켜야 한다. 그런데 로봇은 또 누가 만들며

로봇에 또 누가 붙이며, 그런 둘이 같이 두게 누가 그 제한적인 공간을 만들며, 개입이 안될 수 없을

수 없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A 가 B 에게 생명권을 박탈하는 동시에 A 의 생명권도 자동적으로

박탈된다고 하는데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A 의 생명권이 박탈되는 것이라 본다면 또 C 가 개입되게

되고 그 C 가 생명권을 박탈하는 그것을 또 누군가는 박탈을 해야 또 그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까.

Page 30: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86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그러면 A 다음에 B 다음에 C 다음에 D 다음에 그러면 생명권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게 밝은데

스위치 딱 끄듯이 그렇게 쉽게 켜졌다 켜지는 그런게 아니잖아요. 저희가 삶이 영속한다고 믿고는

있고 믿고 싶기는 하지만, 맞기만 해도 아픈데 죽는건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힘든겁니까. 그게 스위치

끄듯이 그렇게 쉽게 여겨지는 풍조 그런 논의에 대해서 저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학생 4 언론정보문화학부 이윤창입니다. 이번 집단지성 토론회가 오후부터 시작한 건가요?

오후 다음에 저녁, 저는 저녁에 촬영차 나왔는데 평소에 궁금해 하던게 있었습니다. 사형에 대한 것

보다는 어떤 인간에 존엄성 문제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데요. 미디어 속에서 나타나는, 예를 들어서

전쟁에 의해서 사망한 사람들 이야기라던가 아니면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 때 사형에 의해서 죽은

사람들이라던가 그런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체로 나타내는 것 보다는 몇 명, 몇 명 사망 이렇게,

구체화 되지 않고 일반화되어 개인의 어떤 개성이 사라져버린 물화된 존재로 나오거든요. 그러면 저를

그 상황에 대입해 봤을 때 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고 저의 가족이나 친지들 친구들에게

저의 죽음이 매우 중요한 것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미디어에서 보도되는 그런 차원이라던가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저의 죽음은 사실은 개미가 죽은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이 될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에 생각하는 차원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 일반화 된

개인의 지성이 말살된 그런 것 보다는 개개인의 존엄성이 더 존중될 수 있는가 항상

생각해봤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교수님들의 생각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학생 5 10 학번 배지은입니다. 아까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범죄자들 중에는 어릴 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기가 겪었던 나쁜 경험에 의해서 도덕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경우에는 범죄자들도 사회의 피해자가 아닌가 생각을 해봤어요. 그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는 나쁜 것이지만 그 사람들도 지금 사회 체제에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을

해봤고요. 안진교수님께서 반대하는 자신의 의견에서 어느정도 바뀌셨다고 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처음에 범죄자의 인권을 존중하셨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바뀌셨는지

궁금합니다.

학생 6 안녕하세요. 저는 10 학번 GLS 학부 박한기라고 합니다. 저는 전혀 쌩뚱맞은데

공소시효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가끔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는지 꿈에서 큰 죄를 짓는

꿈을 꿔요. 누구를 죽인다는 건 아닌데 국가에서 쫓기는 꿈을 꾸고 있으면 마음 속에서 제발 나는

숨어 있다가 공소시효 끝나면 살아는 나고 계속 도망가는 꿈을 꾸곤 합니다. 어떤 살인자는

숨어있다가 공소시효가 끝나고 나오면 비 살인자가 되는 이런 현실이 될 수 있고 다른 살인자는 진짜

뉘우쳤는데 그냥 사형을 당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 그런데 만약에 다른 살인자가 혼자 숨어있다가

Page 31: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87

진짜 뉘우친 다음에 세상에 나와서 잘 살수도 있는데 그런 범죄자 안에서도 다시 살인 충동이 재발한

확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경우에 공소시효가 정말 필요한 체계인지 궁금합니다.

학생 7 안녕하세요 저는 09 학번 법학부 명이라고 합니다. 안진 교수님 말씀하신 것에서

궁금한게 있어서요, 사형제도 찬성 반대 이런걸 떠나서 교수님께서 사형은 정당하다고 했듯이

응보성이나 범죄행위에 대한 상호성 비례성에 대해서 들으면서 든 생각이,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에

사이코페스처럼 극악무도한 문제들을 보면 사형제로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까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안진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사형제의 예로 드는 근거가 단순히

응보주의나 범죄에 대한 상호성 비례성이라면 단순히 상호성 비례성을 하는게 아니라 정말 죽지 않을

만큼 괴롭히다가 또 살려주고 또 괴롭히고 그렇게 하는게 마땅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아까 프랑스 시대로 발전하면서 그렇게 안하게 된 것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마음은

정말 찢어죽이고 싶고 계속해서 벌을 주고 싶지만 인간으로서 인간 존엄성이라던지 이런게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거든요. 그러면 같은 맥락에서 사형 제도도 정말 복수하고

싶은 마음 이런 면에서는 놔두고 싶지만 오히려 그런 것만 가지고 예외를 두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싶습니다.

이국운 네 교수님들 많이 질문도 받으셨고 했는데 안교수님부터 먼저 말씀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진 아까 질문하신 것 중 한 분이 사형제 폐지론자들에게 당연시 되는 전제가 죽는 것은

나쁘다 그런데 그 죽는 것은 나쁘다는 그 공식을 이중적으로 적용을 하고 있죠. 죽임을 당한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 가족은 모든 생존도 힘든 상황인데, 그건 아예 사법체제 안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최근에서 피해자 지원 이런 걸로 조금 이야기가 되고 있고 하는데요. 우리

법학의 테두리 안에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지만 철학과 윤리학에서는 많은 논의가 된 것 같아요.

정말 그 죄인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사람이 되고자 자기 스스로의 존엄성, 아까 존엄성 문제와 연결이

되는데요, 이렇게 도덕적으로 내 행동에 대해 책임지고 이렇게 생각할 정도 수준까지 될 정도라면

정말 고통스러워 하죠.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자기를 죽여달라고 하죠. 죽고싶고. 살아서 자기가 좀 더

잘해보고 싶은데. 형장에서 눈물을 흘린 눈물들이 그것일 것입니다. 살아서 다른 삶을 산다면 나는

잘해보고 싶은데 그런데 나는 너무 큰 죄를 지은 거죠. 그런 정도가 되면 좋겠지만 그건 얼마

안됩니다. 근대 교정이 실패한 것은 이미 증명이 다 되었거든요. 살인 범죄 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형제도 논의할 때 특히 제가 이야기 했던 것은, 사법 살인 같이 정치범이나 이런데

악용 했던 그런 것 말고, 제가 이야기 했던 것은 범위를 좁혀서 이야기 한겁니다. 다른 사람의

Page 32: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88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생명권을 이유 없이 무고하게 그렇게, 권리 침해 이런 표현은 부적절 한 것 같아요. 그건 권리의

침해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권리를 침해하는 순간 그 사람의 권리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법학의 보편적인 용어로 표현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정말 그게 인권 담론 속에서 이야기 되면서 더 문제제기가 되지 않고 당연시 되는 것처럼 되는데요.

그 사람을 살려두는 것 만이 정말 진정으로 존엄성을 존중해주는 것인지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피해유족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그런 절차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게 흔히 형사사법

절차에서는 피해 회복의 노력이라 이야기 하죠. 그 사람이 혹은 그 사람 가족이 있는 대로 재산이라도

다 털어서 어떻게 하면서 그렇게 하면 되는데 대게는 그 가족들도 두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도 않고

살인자 가족 부모 형제 다 이것 때문에 제가 본 경우는 두 경우 아예 연락도 끊어버리고 자기

아버지가 와서 사람 죽인 놈은 죽어야죠 죽여주세요. 이렇게 말하거든요. 이건 거꾸로 말하면 그

아버지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 증명이 되는거죠. 사실은 그래서 그런 부분은 저는

굉장히 머리가 열려있는 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죽음은 무조건 나쁜 것이고 무조건

죽이면 안되고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 하면서 생명권을 논의하잖아요. 그런데 꼭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 아마 헤겔이 말했던 중요한 표현에 따르면 그 사람을 진정하게 다른 사람처럼

도덕적으로 존엄한 존재로 봤을 때 스스로 사형을 선택할 수 있게 그래도 스스로 사형을 선택하지는

않죠. 어떻게 그 부분을 말씀 드리고 싶고요.

그 다음에, 이 학생 질문은, 그 사람들도 또 하나의 피해자지 않나. 제가 원래 석사 때

범죄학 중에 비판범죄학을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뭔가 사회적으로 성장기 때, 저는 사실 어떤 진정한

교정 교화가 안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기고 교육이나 그런게 잘되면 문제를 예방할 수 있고

이상적으로 봤었는데요. 실제로 이렇게 흉악범들 사이코 페스나 흉악범으로 갈만한 잠재적인 소년원의

존재들을 보면서, 국가 사법체제는 잠재적으로 움직이는 것이거든요. 한 인간이 자기를 버리고 이사람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몇 사람 들러붙지 않으면 정상 인간으로 통합해서 돌아오기 힘들겠다는 그런

판단을 지금은 정말 절실하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젊은 범죄학자, 법사회학자 이렇게 기존의

범죄학은 왜 잘못 됬는가,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했던 때와는 아주 다르게, 그 수많은 흉악범 강력범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진짜 사람을 만들 수 있는가, 그 길은 뭔가 이런걸 고민하게 됩니다. 국가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형사 사법체계라고 하는 것은. 어떤 정책적 경제적 측면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말씀 드렸던 것은, 그래도 국가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가져갈 정도에 대해서는 다른

식의 대안적인 철저한 형벌체계를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폭력은 그래요 여러분들 권력관계에서 약자일 때 누구를 죽여도 성폭력을 하고 해도 그것이

감춰지고 드러나지 않는, 여러분들 성희롱과 성폭력은 어때요? 초범 재범 사실 초범은 의미가 없어요

성폭력범들 초범들은 대개 발견된 것이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잠재적으로 수없이 했어요 권력관계가

Page 33: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89

약한 사람들 그게 극한까지 가면 살인범이나 사회에 대한 공격성과 좌절감이 표현되면 사회에 대한

좌절과 폭력성이 드러나면 끊임없이 그렇게 만들죠. 그런데 제가 피해자들이 굉장히 실존적인 위기에

빠지는 것은. 우리가 선하게 모든 것을 용서해 줄 때 악의 무리들은 선을 먹고 자란다 라는 표현을

윤리학자가 한 적도 있었어요 거기에 대해서 사회가 도덕적인 윤리적인 하한선과 상한선을

유지해가는 메커니즘이 없으면 정말 잘못된 인권이라는 개념으로 그 사람들을 보장해주게 되게됩니다.

문제는 그렇게 이해를 하죠. 인권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최 말단의

가장 약한 사람들의 인권이 올라가면 전체 인권이 그만큼 올라간다고 하잖아요. 이 범죄의 경우

조차도 정말 흉악범들 목숨이 보장이 된게 아닌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까마는 장애인들이나 성

소수자이거나 다른 약자의 인권은 놔두고 흉악범들의 범죄를 다르게 봐야한다거나 윤리적인 도덕적인

걸 봐야한다는 데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다음에 아까 스파이더맨 3 에서 용서한다 제가 스파이더맨 본건 몇 편인가 모르겠어요

그런데 정말 피해 유족들이 모든 것을 손실을 입게 되는 상황들이 많은데요 용서하는 마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그 피해자들이 나와서 저처럼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경우가 몇이나 될까

궁금해요. 아까 그건 너무나 무거운 주제잖아요. 내가 잠재적인 살인자도 되보고 잠재적인 피해자도

되 보고. 이건 얼마나 우리의 많은 그걸 요구하는 겁니까. 그걸 우리는 피해갈 수가 없죠. 여러분들

전공도 그렇고,

정말 평화롭고 자유롭고 용서하는 마음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아까 지목사님 말씀처럼

성인이 됐을 때 가능한 것 같아요. 아니면 그 사람이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면, 피해자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그 조금이라도 참회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요. 그러나 정말 그만큼도 보이지

않거든요. 참회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용서하는 마음, 정말 그 가족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다른 경우에도, 아까 그 형제 공무원 형제가 살해된 한 사람은 살았고, 그 경우에 정말

만나보고 싶어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다음에 여러분들 성폭력도 대게 그렇지만, 폭력이 해야

하나 특별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거기 가지까지 굉장히 공격적인 환경에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 제 표현을 빌리자면, 그 아들을 잃은 엄마 같은 경우는 아무렇지 않게 몇 년 후에

나와서 그렇게 살 것이라 생각하면 이 세상은 너무나 잘못되어있고 너무나 어둡습니다. 자기 아들을

다 순진하게 정말 성실하고 착하게만 살았는데 우리에게 이런 일이 오다니.

아들이 죽은 그 고통의 순간에 겪었던 것을 가서 좀만 반성하면 살 것 같데요. 그런데

면회를 가서 황산이라도 뿌리고 그 고통을 겪고 살아가게 해주고 싶대요. 그걸 보면 자기 마음이 조금

치유가 될 것 같데요. 그런건 피해자들이 공통적인거 같아요. 저도 그 생각을 해봤는데 가서 한번

만나볼까 했는데 법정에서 만난 그 사람의 그걸 보게 되면 그 공격성과 살인 그게 아직도 너무

이글이글 타오르는 거라서 면회를 가서 만나서 보는 것 자체가 그 에너지를 다시 받겠더라고요.

Page 34: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90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그러면 그럴 수도 없죠. 그런데 법적으로는 증인 피해자 신문 피고인 신문에 참여할 수 있고 하게는

되어있어요. 지금 현재 법이 바뀌어서, 개선은 됐지만 굉장히 형식적이어서 거기 나서서 하는 사람은

되게 이상한 사람으로 보죠. 그러니까 이성을 붙들고 피해자들이 있는 것 자체를 사회가 이상하게

보죠.

그 용서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정말 어떻게 가능할까요? 사형제를 반대하는 사이트에

보면, 죽어버린 자기 손자 손녀 대신 그사람한테라도 사랑을 퍼부으니까, 불우한 환경에서 커서

그렇게 했으므로, 나는 살게 되었다고하는 케이스가 있어요. 그게 사형제 폐지 반대하는 사람들이

올려놓고 인용을 하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은 어떻게 용서했을까 가만히 따져보고 들여다 보면

그냥 본인이 괴로워서 용서한 거예요. 살 수 가 없으니까. 긍정적인 착각은 때로는 우리 삶을

구원해주잖아요. 저희 냉정한 과학 하는 사람들은 그게 쉽지가 않죠.

여러분들 아는 유명한 주적파 살인 사건도 아실거예요. 저희가 제가 좀 젊었을 때 같은데요.

그 경우에는 이걸 신고를 못하게 하려고 집단적으로 하면서 피해자를 잡아다가 납치한 피해자가 다른

사람을 죽게 하고, 거기서 영리한 여성 피해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척 하다가 탈출해서 신고하고

살아남은 경우인데요. 그 사람들 경우는 정말 처음에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 이런 걸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자기들을 방어하고 가버린 경우인데요. 그 신고했던 여성은 지금도 삶이 힘들죠. 항상 그

사람들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진다면 편하게 살 거에요. 사형선고 받고도 언젠가 나오면 어쩌나 자기

삶이 불안하겠죠. 그 여성 피해자는 나중에 언론하고 인터뷰도 피해요. 사실 흉악범 피해자들의

인권이라면 인권이고요.

그 사람들이 그 용서라고 하는 것은 국가형벌체계가 강요하는 것 같아요. 심리적으로

강요하는 것 같아요. 정말 자연스럽게 이렇게 그런 경지가 돼서 용서하는 그런 거기 가기까지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치유 프로그램이나 이런 것들이 같이 가줘야 하지 않을까 싶고 다른 것들과

달리 다른건 이렇게 자조모임이 있어요. Self-Help 이런게 있는데, 피해자 이런 경우는, 얼마나 제수

없으면 저런 일을 당했을까 하는, 우리 사회에 이런게 있잖아요. 이중 삼중의 편견이 가깝게 있어요

몇 겹으로 쳐 있더라고요. 그걸 말하고 알리지 않고 다 숨기고 살아요 성폭력 피해자는 더해요. 마치

전쟁 때 좌우 이데올로기 피해자들이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숨기고 살았던 것들이 일종의 이런 것

같아서요, 그래서 용서하는 마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그들도 또하나의 피해자라는건 저는 모르겠어요. 나쁜 환경 속에서도 그 정말 사회에

도덕규범을 지키면서 그 안에 편입된 사람들이 있고 충동조절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한데 저는 크게

봐서는 사회정책적으로 소외되고 그러지 않은 정책을 국가가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거가

전체적으로 보면 그 정책에 가야 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흉악한 범죄까지 행동이 간

Page 35: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91

사람이라면 그런 경우는 사법정책적인 안전망이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제가 너무 답변을 독점하면

안될 것 같고 아까 교수님이 답변하셔야 될 질문을 제가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만.

홍기원 여러분들 이렇게 늦게까지 정말 끝까지 자리 지켜주시고, 제가 한동대를 좋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국운 지금 여기가 예네들 집이예요. (청중 웃음)

홍기원 아 그걸 제가 잘 몰라서, 여러분들 덕분에 저도 오늘 오래간만에 사실 저는 제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지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제 삶을 보면 그런

지적인 고민 없이 행정적인 업무에 막 뒤치닥거리 하면서 쫒겨다니는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지금

오늘 이자리가 굉장히 귀한 자리인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질문도 있었지만 또 그에

대한 안진교수님의 답변도 있었고요. 어느 특정 한 분의 질문에 답하기 보다 이 이야기를 연장선

상에서 계속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 해야만 한다 아니다 이런 것을 말씀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제 말뜻에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그렇다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즉,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지 가해자를 용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있으되 그에게 가할 형벌의 종류를 정말

엄격하게 제한하자는 겁니다. 절대 용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아까

어떤 질문자께서는 답변을 회피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아마 저를 두고 하신 말씀 같은데 제

스스로도 내가 만일 그 피해자다 하면 어떻게 용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피해자가 아닙니다. 국가입니다, 국가고 사회입니다. 그러면 국가와 사회가 가해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만이 피해자가 입은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길일까 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 선생님들에 비해서 인생은 짧습니다만 그 짧은 기간 동안에 한국에서도 살아보고

외국에서도 살아보고 했습니다. 만약에 우리나라 범죄 피해자들이 자기 범죄 피해자, 경찰이 개입하고

형사 소송절차를 거치면서 재판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피해자가 공권력으로부터 받는 그런 처우와

만약에 외국에서 살면서 피해자 중심으로 형사사법체계가 수십년 전부터 발전되어 온 유럽국가 같은

나라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사법체계에 대해서 자기가 받은 피해 그거는 아마 다를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가끔가다 젊은이들한테 두들겨 맞은 적도 있거든요 경찰을 불렀거든요

그런데 경찰이 저를 죄인 취급해요. 경찰은 우리나라 경찰은 물론 우리나라 모든 경찰이 다 그런건

아니죠. 사건을 빨리 끝내고 싶어해요 되도록이면 빨리빨리 마무리짓고 싶어해요. 그래서 심지어

저보고 연행한다. 현행범으로 연행한다고 그래요. 난 정말 때려보지도 못했는데.

Page 36: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92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제가 프랑스에 살면서 소매치기다 강도다 여러번 당했어요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범죄

피해자가 생기면 경찰이 출동함과 동시에 여유가 있으면 심리 상담사가 반드시 같이 출동합니다.

피해자가 입었을 정신적인 충격을 어루만지기 위해서. 경찰관이 진술을 받는 동안 심리상담사가 같이,

인력에 여유가 있을 때, 매번 100% 심리상담사가 따라 붙는건 아니죠. 심리상담사가 범죄피해자를

상담합니다. 트라우마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계속 보살펴줍니다 이런 식으로 수 십년

전부터 피해자 중심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법체계를

갖춘 나라와 우리나라와 같은 이런 여전히 가해자 중심으로 사건 실적 올리는 식으로 경찰이나 형사

실무가 이루어지는 나라에서 피해자가 국가권력에 대해서 받는 느낌이나 이런 것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물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분들 보기에 사형 폐지론자처럼

보일 지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그런 자리에 자주 참여하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되면서 알게 된 몇 분의 소중한 인연이 있습니다. 고 모 목사님이 계신데 강호순 사건으로

따님을 잃으신 목사님 입니다. 그분이 사형 폐지 운동을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이 이상한 말하고 박 모 의원이 이상한 말 할 때 미국에서 급하게 우리나라를 방문한

단체가 있었어요 미국에 범죄 피해자 가족 모임이예요. 그런 흉악한 범죄로 인해서 자기의 소중한

가족을 잃은 자기 딸 아내 아니면 다른 가족구성원을 잃은 범죄 피해자들이 물론 그 가해자는 다

사형선고를 받았죠. 그런데 이 범죄 피해자 단체도 가족 협회도 사형 페지운동을 해요.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국회도 방문하고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자신들의 생각일 이야기 해주기 위해

우리나라를 급하게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흉악범죄 범죄 피해자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로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겠죠. 그리고 사형 폐지론자라 할 지라도 꼭 용서 했다는 뜻은 아니죠. 다만

정말 나는 가서 그 가해자한테 가서 똑같이, 우리 어머니도 쓰시니까, 찢어 죽이고 싶지만, 내가 그걸

하는 것과, 국가가 그걸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거든요.

나의 복수를 국가가 대신 해준다는 것, 이건 분명 사회가 국가가 문명적이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형제도를 존재케 함으로서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그 사형수에게 참회의

기회를 준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렇죠.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사형수를 죽음에 직면하기까지 몰고

감으로서 그 사람에게 자기가 남의 생명을 박탈한 죄가 얼마나 큰지 새삼 깨우치게 하고, 생명, 자기

자신에 생명이 박탈당할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함으로서 참회를 하게 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참회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말한 참회가 아니에요. 참회는 말씀과 설득으로

해야되요. 공포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보복에 대한 공포를 강요함으로써 그 사람이 참회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참회를 유도해야 진정한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Page 37: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93

제가 여러분한테 소개해 주고 싶은 책이 있어요. 88 명의 남자와 2 명의 여자. 미국의 한

사형집행인이 자기가 직장생활, 즉 사형집행을 평생 하면서 사형대에서 보냈던 사람이 90 명인데, 그

중에 88 명이 남자고 두 명이 여자예요. 그 사람 90 명의 사형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 담담한 수필

식으로 쓰여있어요. 여러분들 영어 잘하시니까 꼭 읽어보세요. 여기 정말 사형수 중에는 정말 천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뉘우치지 않을 사람도 있어요. 당연히 있죠. 그러나 여기에 아흔명의 사람들

중에는 정말 스스로 뉘우친 사람들 이야기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 한 이야기를

보면, 버피라는 사형집행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형장으로 가는데, 사형장으로 가기 전에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여태까지 하지 못한 일이 있는데, 나를 위해서 기도해줬던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기도 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그걸 하겠다. 그러고 마지막으로 사형장 가스실로 가면서

사형집행인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나에게 성경이 한 권 있는데 내 동생한테 보내달라고 아마 내

동생한테 이 성경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실천가는 아닙니다. 운동가는

아닙니다. 그냥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하면서 만났던 분들 중에 사형수 교정목사 하시는 신부님 목사님 스님들

수녀님들 계세요 그분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요 물론 그 중에는 당연히 절대로 뉘우치지 않는 사람도

있죠 그런데 그분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수십년동안 그 교정목사나 그런 일을 해오셨던 분의

경험담을 듣건데 그만한 성자가 없다고 합니다. 사형장으로 떠나기 직전에 떠나기 이전에 이미 자기가

지은 죄를 뉘우치고 정말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그런 성자가 없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하루 하루

자기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거 얼마나 고통이에요. 고통을 저는 그런 경험담을

전해 들으면서 그 고통을 종교가 어떻든 천주교던 개신교던 불교던 뭐든 간에 저분들이 그 고통을

함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까 다른 이야기에서 공소시효 이야기가 나왔는데 공소시효 제도 중에 그 근거는 뭡니까.

그만큼 마음고생 했으면 됐다 뭐 이런 것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자기가 지은 죄를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그 사람이 가장 잘 압니다. 그 사람에게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 사람에게 뉘우칠 기회를 시간, 말씀과 설득으로 뉘우칠 기회를 줘야지 똑같은

그 사람이 침해한 것과 똑같이 법의 침해로 몰고 감으로써 참회를 강요하는 것은 국가가 취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사형 대체는 뭐가 있을까 이런 질문도 있었는데 사형을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형은, 아까 빅토르 위고나 바뱅대르 법무부장관의 표현을 빌면, 문명국가가 취해서는 안될

형벌입니다.

이국운 지금 안교수님과 홍교수님을 모신 이유가 두 분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 모신게

아닌데 자꾸 상황이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하지 않고 이번 한번만 더 학생들

이야기를 듣거나 질문 받거나 하고 우리 네 교수님에게 잠깐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그냥

Page 38: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94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마가복음처럼 뚝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이 생각에 이

파편들을 가지고 조금 더 어두워 질 수 있지 않나 생각을 잔인하게 합니다. 무슨 이야기든지 더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 기회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학생 8 안녕하세요 저는 07 학번 법학부 강예슬입니다. 사형제도에 대해서 처음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이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밀양 영화를 봤었는데요, 사형제도에 대해서 생각

할 때마다 마음이 어렵습니다. 방금 홍기원 교수님 말씀을 들으면서 느꼈던 것은 제가 지나치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로 설득을 하면 좋은데 그게 안되는 사람들을

그렇게 끝까지 말로 설득을 한다는게 너무 억울한거예요. 그리고 책에 나온 내용이 안진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데 그중에 극히 예외적으로 진심으로 참회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에 제가 죄를 지어서 마지막에 예수님을 영접을

했고 그랬을 때 진짜 제가 제 삶을 통곡하면서 후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사람을 바라보는

피해자는 이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죽었고 이미 그 사람은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상처를 남긴

사람인데 그 사람이 마치 밀양에서 전도현이 느꼈던 감정이 그냥 계속 마음에서 그 억울함이 과연 그

억울함을 누가 치유해주시나, 예수님이 해주시긴 하겠지만 어떨 때는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저도 진짜 잘 모르겠는데,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진짜 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치는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정말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데

그런데 생각 가운데서 계속 걸리는 생각 한가지는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고 죽어간 그 누군가가 그

사람은 정말 무고한 희생자가 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사형제도가

있으면 모두에게 적용이 될건데 그런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계속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사형제도

존폐에 대해서 제가 제 생각에는 평생 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할 것 같은데, 사람이 간사해서 내가

아는 사람이 가해자면 그쪽으로 가고 내가 아는 사람이 피해자면 저쪽으로 갈 것 같아요.

학생 9 콜로키움 계속 참여하고 있는데, 저는 평소에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한 것을

질문드리겠습니다. 살해자들은 그 피해자들의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인권을 우리가 생각해야 하나 하는, 사형에 대해서 그정도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학기 특별히 이국운 교수님의 기독교와 현대사상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물화라는 개념을 배웠습니다. 물화 라는 개념은 우리가 타자에 대한 인정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라 제가 배웠는데 타인의 인정을 잊는다는 것 타인에게도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지점을 잊고 있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피해자가 그 고통을 자기가

생각할 수 있다면 결코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회가 개개인을 좀더

물화하고 그 물화된 개인이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일들도 저지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age 39: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95

그런 이미 물화된 개인에 대해서 사회가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도 점점 물화되어가는데,

저는 그 지점에서 이번 학기 선배들과 친구들과 같이 단테의 신곡을 같이 읽는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신곡을 풀어주신 일본의 이마미치 도모노부라는 철학자가 지옥에 대해서 설명하시는 부분에서

중세시대 사람들은 지옥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그 사람들의 보편적인 윤리적인 준거

틀로서 있었는데, 지금 우리 시대에는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라는 그런

어떤 말씀 하셨던 것이 기억이 났어요. 지금은 포스트모던 사회라고 하는데 정말 어떤 가치도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지옥이 그렇게 영속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공간이 있다는 인식을 하면, 아까

말했듯이 행동에 대한 윤리적인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이건 스물 한 살의

철없는 생각인데 제도적으로 그런 지옥도를 구현하는 것은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이

자리에서 해봤습니다. 이게 기독교인으로서 용납될 수 있는 생각인가에 대해서는 많이 그게 있지만

아까 사형에 대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영속적으로 고통을 주는 공간에 대해서 우리 구성원

모두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면 과연 형벌을 준다는 것이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이 있음을 인식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두서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학생 10 안녕하세요. 저는 언론정보문화학부 이가원입니다. 제가 전공이 이쪽이니 여기

이어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요새 미디어에서 많은 매체들에서 특히 영화에서 각각 언급하셨던 특히

추격자가 그렇듯이 범죄에 대해서 특히 너무 선정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그 범죄 현장이나 범죄자의 심리를 너무 자세하게 드러내려고 하면서 개인들이 좀 논쟁이 많이

있기는 한데 모방범죄의 가능성이 많아서 범죄율 높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한면으로는

아직 인권이나 어떤 다른 부차적 문제에 대해 생각을 그렇게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끔찍한

사건만 보고서는 정말 이러 사람은 죽여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어떻게 보면

범죄자들을 제출하고 있기도 하고, 사형제에 대한 존치와 재판 집행을 조장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미디어가 그래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시는 교수님께서는 미디어에 있어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학생 11 안녕하세요. 10 학번 윤요한이라 합니다. 오늘 제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사형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 사형이라는 제도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궁금했거든요. 왜냐면 저희가 형법에서

사형이라는 것을 집행을 했을 때 사형 선고를 내렸을 때 그 이유는 이 인간, 인간이라 생각하지도

않는 이 인간이 진짜 우리 사회에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극단적인 결정이 그 사람의 생명을 뺏는 사형이라는 법을 집행하는 게 가장 기본적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게 과연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저희 인간 사회에서의 응징 또는 인간에

내리는 벌이라고 저는 인지하고 있습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 때문에 그 가해자의

생명 역시 뺏어져야 한다 이런 말인지, 그 가해자로 인해서 고통받는 다른 피해자의 가족이나 그

Page 40: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96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유족들, 엄청난 슬픔에 싸여있을 사람들이 과연 그 가해자를 이 세상에 살려놓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그와 같은 고통을 가해자에게 주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생각할 수 있는 저희

기준에서 이세상에 살지 않는 것이 가장 두렵다는 기준에서 선택한 방법이 사형인지 이런 것들을

보면 그 사형이 어떤 목적에서 시행이 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를 보면 최민식이 맡은 악마의 역할이 자기는 사람을 죽이고 거기서

이런, 최민식이 잡고 풀어주고 끊임없는 고통을 주고 다시 잡고 고통을 주고 하는데, 이병헌이 아무리

큰 고통을 줘도 얻은건 아무것도 없는게, 결국에는 연쇄살인범은 이병헌의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았고

주변의 모든 소중한 것을 잃었는데, 결국에 이병헌이 살인자를 죽임으로써 얻은 것은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얻는 것은 그것뿐이잖아요. 뭔가 대등하게 그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되기는 무리가 있는 것

같고요. 즉 이런 사형이라는 제도가 과연 법에서는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되잖아요. 죄를 지었으면

여기에 대한 벌을 똑같이 내려야 되는데 과연 사형이라는 제도가 그 죄에 대해서 정당하게 집행되는

벌이라는게 가능한건지에 대해서 궁금하고, 또 다른 이야기는 사형을 집행하는데 죄를 뉘우친다는

말을 했는데 그건 인간 본성이 착하다는게 전제에 깔려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런데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본성이 착하다고 확신할 수 없잖아요. 원래 착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을거고 원래 나쁘게

태어난 사람도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고, 우리가 너는 이걸

잘못했어 라는 것을 끊임없이 교육시킨 결과라고 밖에 생각이 안되기 때문에 그게 과연 어떻게

그걸로 만족을 할 수 있을지 거기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학생 12 안녕하세요 저는 09 학번 경영경제학부 김예슬인데요. 안진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교수님은 사법체계가 엄격하게 적용이 되면 범죄억제가 된다는 그런 뉘앙스로 들었는데,

그래도 선진국에서는 홍기원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범죄 후에 그런 제도도 잘 되있고 사법

체계도 잘 되 있지만 묻지마 살인이 일어나는 것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그 살인 이전에

병리적 살해의 교화 더 중요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사법 체계에 변화도 중요하지만, 저는 사실 법을

잘 몰라서, 사회적으로 봤을 때 지금 이 사회를 병든 사회를 고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학생 13 네 안녕하세요. 저는 법학부 전은희라고 합니다. 일단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밀양,

저도 밀양이 떠오르는데요 저는 과연 밀양에서 그 살인을 한 살인자가 과연 하나님께 진정으로

용서를 받은 자인지 의심스럽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를 봤고 그런데 왜냐하면 그 사람이 정말로

진정한 참회를 했다면 하나님 앞에서 하는 회개의 모습을 자기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도 해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참회가 진정한 참회 같지 않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리고 또 그렇다면 저는 사형제도에 대해서 찬성을 합니다 왜냐하면 뒤에서도 어떤 분이

언급하셨는데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사형제도를 정말 폐지해야 한다고 하는건 그

Page 41: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97

사람들이 정말 이런 기회를 주면 참회를 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그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인데, 저는 그 사람들은 이미 살면서 그런 기회를 스스로 버린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거든요. 물론 이 말은 흉악범들에게만 적용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는,

착한 사람들에게는 물론 기회를 줬을 때 그 사람들이 고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강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처벌을 줘야만 되는가라고 생각했을 때 저는 북한에서

정치범들이나 사상의 반기를 드는 사람들에게 어떤 처벌을 주는가 생각했을 때 사회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통제가 잘 되고 있거든요 그리고 정말 잘 되고 있어요. 왜 그렇냐면 엄청난 고통을

주기 때문에 씨족을 말린다고 하잖아요. 내 죄로 인해서 삼 사대까지 멸하는 벌이 적용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누군가가 없어지고 사형을 당했을 때 절대 그와 같은 일이 너무나

희박하게도 일어나지 않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흉악범들이 있다면, 물론 전체적인 사회의 분위기가

만약 북한의 어떤 사형제도가 적용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절대 아니고 그냥 어떤 흉악범 들에게는

정말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끔 하는 강한 제도가 정말 이 사회에서는 필요 하지 않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성경에서도 용서 받을 자가 있고, 구원 받는 자가 있고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이세상에서도 사형이 완전히 폐지 돼야 한다 아니면 그 반대로 그게 아니라

사형을 받아야 될 사람이 있고 사형을 받지 말아야 될 일반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정리가 됐습니다.

학생 14 안녕하세요. 국제어문학부 07 학번 지영인이라고 합니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이고

천명을 죽이면 영웅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정말 국가공익에 큰 기여를 하는

살인은 부패정부를 척결하기 위한 혁명 이라던지 그런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살인에 대해서도

공사를 뛰어넘는 의미에서 사형이 유효한지 아니면 이런 경우에 있어서는 사형을 해서는 안되는지

저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학생 15 네 저는 이 사형, 살인에 대해서 가인의 표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하나님이 가인을 어떻게 하냐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 하니까 표를 주시잖아요. 그런데 그 표가 단순히 가인을 지키는 것 만이 아니라 어떤,

가인을 살해하는 사람한테 오히려 가인을 손대는 사람은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라는 표를 주시잖아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가인만이 아니라 그 다음에 어떤 사람 역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데 하나님이 또

이 사람을 건드린 사람한테 더 큰 벌을 주신다는 그런 표를 그 사람한테 주시거든요. 그래서 왜

하나님이 왜 이랬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요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예전에 연세드신 분들이

많이 하는 산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말 있잖아요. 그 말씀 많이 하시잖아요. 대게 고난, 그런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이야기를 하시잖아요. 그래서 어쩌면 하나님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인한테 표를 주신 것은

Page 42: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298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가인을 지키려는 것보다도 그 가인을 건드리고 싶은, 가인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들을 지키시려는 일이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아벨이 원래 히브리어로 헤벨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헤벨은 전도서에서 나오는 헛되고

헛되도다에 그 헤벨이라는 단어예요. 아벨이라는 천수를 못 누리고 죽은 그 인생 자체가 헛되다 하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탄식이 나오는 사건이잖아요. 가인과

아벨의 사건이, 아벨의 이름이 아벨이 될 정도로 하나님께서 진짜 헛되구나 하는 탄식이 나올 일인데,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 아벨 때문에 가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가인에게 묶이는 가인의 죄에

그 사람들도 속박되는 것을 끊고 싶으셨다는 생각을 해봤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지금도 생각하는 게,

우리가 뭐 피해자는 어떡하냐 원한이 있어서 어떡하냐, 그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있는 것을 보면

피해자들은 어떡하냐 어쩌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표 사건을 봤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어쩌면 피해자 가족들이

그 가해자에 대해서 가해자는 나쁜 놈, 물론 그가 하나님께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

한이라는 것이 절대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사람을 어떻게 죽인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닌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이, 피해자의 가족들이 그 어떤 가해자에게 묶이는 것을, 가해자와

가해자의 죄에 묶이는 것을 싫어하시는게 아닌가 그 사람들도 같이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있기를

원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국운 알겠습니다. 그만합시다 이제 교수님들 가운데 혹시 덧붙이실 말씀이 있으면 삼분씩

밖에 드릴 시간이 없는데요. 지교수님, 학생이 히브리어 문자를 썼는데. (청중 웃음)

지승원 저는 9 시 이후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오후에 한번 하고 밥 먹고 또

하는거 절대로 저는 한적이 없습니다. (청중 웃음) 성경 이야기 나오고 다 나왔는데, 그렇겠죠.

그러니까 계시의 점진적 성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진입 시에는 이족을 격멸하고 700 년

뒤에 이사야는 아시리아와 애굽이 같이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다 했고, 그 다음 또 600 년쯤 더 지나서

한 분은 원수를 사랑하라 이렇게 했습니다. 자기 목숨을 다른 사람의 죄의 대속물로 준다는 식으로

스스로의 고난을 이해하셨고, 누구는 그게 바로 기독교 법의 진리라 주장을 합니다만, 아무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거죠.

인간에 고양된 정신은 자기희생 그리고 타인의 죄에 대한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할

것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 도상에 있는 존재로서 인간은 그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하늘의 뜻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사람들은 시간에 따라서 시기에 따라서 좀 달리 이해를 했습니다.

하늘에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응분의 대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인간에 대한 죄는 하늘에 대한 죄로

생각했고, 동양은 늘 그랬죠. 근대에 서구 신학자 중에 맥케이거라는 여성신학자가 있어요. 그는

Page 43: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299

바디오 갓이라고 우주를 하나님의 몸으로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여성들을 생각하면서 우주가

사람을 포함한 몸으로 몸에 대한 해석으로 인간의 죄를 이해하고 구원은 몸의 회복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저는 사형제도의 존치여부를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약간 핀트가 어긋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사형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어서는 안되는가 라고 물으면 맞으실 거예요.

만약에 존재한다면 어떤 의미의 형벌이어야 하는가 해서 형벌의 본질론으로 들어가서 다시 한번

점검해보면 사형 폐지론 존치론 하는게 약간은 일면적인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죠 사형수들 만나보면 나주에 다 성인군자처럼 되어서 죽는데 박상교수님도 그렇고 안제연

신부도 그렇고 늘 그랬었어요. 그런데 어쩌면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가 사형수였기 때문에

사형수로서 살았기 때문에 회개를 했을 가능성도 높죠.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됐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포항교도소에서 상당히 장기수들의 경우는 나이 드신 경험만은 교도관들하고 이런

사람들은 교정 잘 안 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러니까 교도관들 꼭대기에 앉아있어요 쉽게

말하면 한 사람의 범죄자를 진짜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드는 데는, 그보다 훨씬 도사 같은 사람이

굉장히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가능할 지 몰라요. 그리고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걸쳐서, 이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니까. 우리가 종신형 감형은 종신형이라 해도 그건 또 하나의 복수일 뿐이지

사형에 버금갈만한, 사형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화 될 수 있는 인간 존엄을 구현하는 형벌제도라고

하기에는 조금 힘들어요. 그러니까 아직은 해봐야 안다는 거죠.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의문들은

나중에 합시다. 전 이정도 하겠습니다.

장철준 진짜 열한시까지, 흔히 하는 말로 빡십니다. 제가 아까 왜 그렇게 리버럴이라고 하며

국가로부터 자유라고 자꾸 했냐는 것을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요. 국가권력 위에서 제가 안전하게

혜택을 받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것이

국가권력일 수 있고, 그게 본질적으로 너무너무 두렵기 때문입니다. 아까 5.19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나중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면서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데, 5.19 는 알던 동네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 화면을 보면서 꿈에도 잠을 못 자고, 총 들고 쫓아오는 것 같은, 그 느낌을 겪었죠. 그리고 군대,

만약에 제가 지금 상황에서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정말 반대하는, 제 뜻과 너무나도 다른 전쟁을

국가에서 해라고 동원령을 내린다면 가야 되거든요.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저와 너무나도 신념이

다른 명령에 총을 들고 싸워야 하는 상황에 내가 처해있을 때, 그리고 많은 사람을 죽여야 되는

상황에 내가 처해있다고 가정을 하면 너무나도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니까 국가 권력이 본질적으로 참

고마운 측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악하고 너무나도. 무섭고 두렵다는 이야기입니다.

Page 44: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300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그렇기 때문에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싶고, 그렇게 내 영역을, 권리를 찾고 싶은 욕구가,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까 미디어에 관한 질문도 나왔습니다만, 국가 권력이 함부로

개인의 기본권 특히 권한을 함부로 이렇게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저의 주의입니다.

아까 그런 영화가 많이 나오고 폭력적인 영화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국가가 제제를 해야하지 않느냐.

글쎄요. 너무 그렇게 잔인하면 사람들 안보게 되지 않을까요? 사이코페스가 그런 영화를 보고 실행을

할까요? 영화 때문에 그럴까요? 오히려 너무 그러면 사람들이 멀리하는 그런게 있기 때문에 돈이

안돼서 그런 영화 만들지 않지 않을까요? 국가가 나서서 이리저리 간섭하는 것 자체가 지금 상황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그 길가는 사람을 살인하는 싸이코페스보다도

훨씬 더 무섭게 변할 수 있는 것이 국가권력일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렇게도 자유를 찾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정도만 말씀을 드려보고 싶어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국운 저는 클로징을 어떻게 할까 늘 고민합니다. 제가 마이클 왈처라는 미국의

정치철학자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분이 지난번에 9.11 테러가 났을 때 미국이 보복을 해야 한다고 할

때 뉴욕 타임즈에 아주 유명한, 나중에 유명해진 칼럼을 썼습니다. 문명의 이름으로 답하라. 야만의

이름으로 공격이 왔는데 그걸 야만으로 답하면 우리는 문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명의 이름으로

답하라 그 글이 아주 큰 반향을 일으켜서 미국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오늘 우리

여러 말씀들 중에 아까 계시의 점진적 성격을 지교수님도 말씀하셨고 홍교수님도 문명에 관해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고민이 있습니다.

문명의 입장에서 제가 자료집의 멘 뒤에 쓴 짧은 글입니다만, 혹시 보시면 제 입장을 좀

아실 텐데, 저는 기독교인으로서는 기독교 교리가 사형을 지지하는 쪽에 조금 더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국가가 기독교 교리의 입장에서

대단히 정당화 될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치적인 반영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라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요. 그리고 저도 헌법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민주적 헌정국가는 시민의 몸,

시민의 생명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중요시 여긴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우리가 선언했다면 그렇게

합의했다면 사형을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하는 것은 그 원칙 자체에 대한 위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사형 폐지론 쪽에 그렇게 넓게 하지 않고 아주 제한적으로 보더라도

폐지론 쪽에 더 가까운 입장을 가지고 있어요. 그 입장으로 가면서 남몰래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문명이라고 하는 것의 꼬리에 그 문명이란 놈이 사형을 하지 않으면서 사형이 제도로는 있지만

우리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고개를 쳐들고 창조주께, 우리는 사실 모두 사형을 언도받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다만 국가나 사람이 하는 사형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간 속에서 사형을

이미 언도받고 있는 사람인데, 그 문명이란 놈이 고개를 쳐들고 창조주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Page 45: 2010년 가을학기 제 5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사형에 대하여 함께 깊이 생각하는 저녁 301

당신은 사형을 시키지만 우리는 사형하지 않소.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저는 그게 늘 걸려요.

마지막에 가면 소위 우리가 말하는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우리 중심으로 세상이 돈다고 하는

불사의 인본주의라는 비판 앞에서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데드맨 워킹이라는 영화가 있잖아요. 내가 지금까지 본 연기 중에서는 그 영화에 나오는

숀펜의 연기가 정말 연기라고 생각하는데, 언젠가 추격자의 하정욱군이 더 연기가 발전해서 데드맨

워킹같은 연기를 찍고, 그 소스라치는 용서를 구하고 사형장으로 가는 그 연기는 하정욱군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결론은 없고 그냥 여러분들 더 좀 힘들게 만들어 보려는 그런

생각만 있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마음 아프게 몸도

힘들게 고민을 했는데 밥 먹고 또 그만큼 더 했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저희들의 지혜가 부족하고 지식이 부족합니다. 저희들이 저희들 안에서 우리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이

흉악한 범죄들 앞에 무력합니다. 그 범죄들로 인하여 죽어가는 생명들 앞에서 무력합니다. 그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설득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진심 어린 회개도 우리가 얻지 못했습니다. 또 우리가

그들을 사형으로 처분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그저 이런저런 논란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이런 험악한 세상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도록 주여 특단의 조치를 내려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많이 이야기한

사람들보다 많이 이야기 들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날들이 남아있는 것을 압니다. 그들에게 특별히

축복하여 주시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주여 만들어가게 힘주시기를 구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랍니다. 예수님 살아계신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