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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䀇Ẅ ㇋⊳㤟 㑼ᶓ㑫⯜ 㱋⌋䄷 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2 0 1 0 F A L L S E M E S T E R Section 4 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The Memories and Perspectives of the Christian Scholarship Movement in Handong Community 2010. 11. 12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 워크샵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지원사업 한동대학교 학문과신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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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2 0 1 0F A L LS E M E S T E R

Section 4

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The Memories and Perspectives of the Christian Scholarship Movement in Handong Community

2010. 11. 12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 워크샵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지원사업한동대학교 학문과신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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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Fall Semester 4th Colloquium / Workshop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 워크샵

주최_한동대학교 학문과 신앙 연구소_Handong Institute of Learning and Faith

1998년 봄학기 한동대학교 교수공동체에는 작은 모임이 하나 생겨 났습니다.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대학에 근무하는 것을 긍지로 삼으면서도, 기독교적으로 학문하고 기독교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관하여 성찰과 준비가 부족했음을 절감하던 몇몇 교수님들은토요일 아침마다 대학 본관의 작은 세미나실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전공도 달랐고 신앙배경도 달랐지만, 지금 여기에서 함께 하나님의 대학을 섬긴다는 공통점은 이 교수님들의 마음을 감격과 갈급함으로 채웠고, 그로부터 13년 동안 간단없이 이어져서 한동공동체 안팎에 하나의 흐름을 이루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번 콜로키엄은 13년 전 한동교수님들의 작은 공부모임에 시작된 이 흐름을 '학문과신앙운동(또는 기독학문운동)'이라고부르는데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며 또 무엇을 이룰 것인지에 관해 그동안 이 흐름 안팎에 계셨던 여러 교수님들을 모시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나누려고 생각합니다.

지난 13년 동안 '학문과신앙(또는 기독학문)'이 과연 운동(movement)이었는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으실 줄 압니다. 그 평가를 마음에만 담아 두시지 말고, 부디 오셔서 나누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장소 : 오도리 작은행복 펜션일시 : 11월 12일 (금) 저녁 ~ 13일 (토) 아침[ ]

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 Workshop

한동공동체에서 학문과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The Memories and Perspectives of the Christian Scholarship Movement in Handong Community

6:30~7:00 이동

7:00~7:15 정리

7:15~8:00 저녁식사, 연극공연 : Marx in SOHO

8:00~8:15 휴식

8:15~10:15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10:15~10:30 휴식

10:30~12:00 양희송 교수님 특강

12:00~ 휴식

이국운 교수 법학

윤상헌 교수언어학

류대영 교수기독교 사학

양희송 대표청어람 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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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53

2010 년 가을학기_제 4 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워크샵 [행사 사진-1]

2010 Fall Semester_4th 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 Wor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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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가을학기_제 4 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워크샵 [행사 사진-2]

2010 Fall Semester_4th 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 Wor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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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55

2010년 가을학기_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 워크샵

2010 Fall Semester_4th Handong Eureka Collective Intelligence Colloquium / Workshop

주관 :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지원사업 [ACE 사업]

주최 : 한동대학교 학문과 신앙 연구소 [Handong Institute of Learning and Faith]

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The Memories and Perspectives of the Christian Scholarship Movement

in Handong Community

2010. 11. 12

이국운 반갑습니다.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토론회 네번째 시간입니다. 다섯번을 하려니까

너무나 힘듭니다. 다음 번엔 좀 줄여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오도리에 있는 펜션에 와서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로 진행해보려 합니다. 주제도 학술적인 주제보다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같이

나누어봤으면 하는 얘기, 한동 공동체 안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 회고라고 잡았습니다. 앞의 우리가

자그마한 연극을 하나 봤는데, 그 연극을 보면서, 뭔가 그래도 이 공동체에서 특별히 여러 학생들을

통해서 이야기들이 끝나지 않고 그래도 계속 되는구나 라고 생각이 돼서 기분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오늘은 10시 지나서까지 얘기를 하겠고요, 그 동안은 10분 10분 진행이 되었는데 그런 제한을 오늘은

두지 않고 교수님들에게 시간을 많이 드리려고 합니다.

발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1998년 봄학기 한동대학교 교수공동체에는 작은 모임이 하나 생겨

났습니다.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대학에 근무하는 것을 긍지로 삼으면서도,

기독교적으로 학문하고 기독교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관하여 성찰과 준비가 부족했음을 절감하던 몇몇

교수님들은 토요일 아침마다 대학 본관의 작은 세미나실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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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습니다. 전공도 달랐고 신앙배경도 달랐지만, 지금 여기에서 함께 하나님의 대학을 섬긴다는

공통점은 이 교수님들의 마음을 감격과 갈급함으로 채웠고, 그로부터 13년 동안 간단없이 이어져서

한동 공동체 안팎에 하나의 흐름을 이루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번 콜로키엄은 13년 전 한동 교수님들의

작은 공부모임에 시작된 이 흐름을 '학문과 신앙운동(또는 기독학문운동)'이라고 부르는 데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 우리가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며 또 무엇을 이룰 것인지에 관해 그동안 이 흐름 안팎에 계셨던 여러 교수님들을 모시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나누려고 생각합니다. 지난 13년 동안 '학문과 신앙(또는 기독학문)'이 과연

운동(movement)이었는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으실 줄 압니다. 그 평가를 마음에만 담아

두시지 말고, 부디 오셔서 나누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두 주일 전에 학교에 계시는 여러 교수님들 가운데 어떤 형태로든지 모임 또는 기독교

세계관 대회에 참석해주셨던 분들에게 제가 초청의 메일을 드렸습니다. 근데 오늘 이런저런 일로 결국

다 오시지 못했고, 따로 이야기 손님으로 모신 3교수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먼저 윤상헌 교수님

학문과 신앙연구소 초대 소장이셨고, 토요일 모임의 간사셨습니다. 오늘 이야기 구도에서는 안에

계셨던 분이라고 생각해서 모셨고요, 양희송 선생님은 마음은 안에 계시지만 몸은 완전히 밖에 계신

분이 한 분 계셔야겠다 라고 생각해서 모셨고, 사실 최근에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인데, 2004년부터

13학기째 기독교세계관강의를 담당하고 계세요. 매주 내려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데 화요일이

양선생님 쉬시는 날이에요. 휴일을 13학기 모두 반납하고 여기 와서 계십니다. 밖에서 보니까

이렇더라 저렇더라 애정을 가지고 말씀 해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류대영 교수님 모셨습니다. 류교수님은 우리 학교 계신 어떤 교수님보다도 기독학문, 학문과

신앙의 관계지음에 관해서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계시는 선배교수님이라고 생각을 하고 아마 많은

동료 교수님들이나 학생들도 그렇게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공식적인 흐름들

속에는 가끔씩 오시고 모셔야 오시고 독회도 안 나오시고, 그러시다가 선생님 책 좀 읽겠습니다

이끌어 주세요 라고 하면 우리 한 3년 쯤에 교수님 쓰신 역작 중에 하나인 미국종교사, 저자 직강을

받았던 시간이 있었는데, 류대영 교수님, 안팎에서 보니까 이게 어떻다라는 말씀 듣기 위해서

모셨습니다. 원래 10분씩 얘기하는 것인데, 그런 포맷으로부터 자유롭게, 먼저 유교수님 편하게 얘기

시작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윤상헌 앞 부분에 읽으면서 좀 신선하고 번역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가브리엘을 통해서

마리아가 수태고지한 장면을 유진 피터슨 선생이 번역을 영어로 한 것이죠. “잘 있었느냐 너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안과 밖에 다 아름답구나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하신다.” 이게 개역성경으로는

“평안할지어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하시는 도다”, 이게 문안 인사인데요, 제가 이걸 왜 모두에게

얘기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 있었느냐, 반갑다는 표현도 있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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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안과 밖이 아름답구나 이게 참 제 안과 밖의 추함을 보면서

목마르다, 약간 좀 지난 주말에 문화답사를 갔는데 영양 주실마을에 조동탁 선생, 조지훈선생 생가를

들렸어요. 눈물이 좀 나더라고요. 지조있는 선비를 그리워하며 라고 방명록에 글을 썼는데, 아마 제

속에 그런 분들이 많이 그리운가봐요. 그 그리움의 맨 끝에는 몸으로 오신 주님의 모습이 계신 것인데.

그런 얘기를 종종 합니다.

우리가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구원 받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구원 받은자로,

우리가 좀 거지 같이 살 때가 많지만 우리 역시 하나님 닮은 존재로 아름다운 존재기 때문에 일종의

어울림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아름답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에요. 아름답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아름답게 살고 거룩하게 살아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써 아름답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죠.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말을 보면서 격려내지는

그렇지, 이렇게 내가 안과 밖이 그렇게 추한 존재는 아니지, 아름다운 존재지라는 생각을 일깨워줬던

것 같아요. 말씀을 보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제가 이 모임에 부름을 받고 오면서 할 얘기는 많은 것 같아요. 결국은 기독교대학 한다,

학문한다, 신앙한다 저는 학문함과 신앙함이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언어학을

전공했는데, 독특한 룰이 있어요. 문법에 UG, universal grammar 라고 하는 것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을 제가 하는 언어학 중에서는 principle이라고 해요 UG에 주목하는 부분을. 그러니까 보편원리가

있다 그런데 개별적인 것은 룰이라고 취급을 해요. 학문과 신앙의 개별적인 룰을 다를 수 있어요.

어휘가 다르죠. 그런데 의미체계라든지 개념구조로 들어가면 공통점이 많다. 근본적인 principle

차원에서는 흡사하다, 같은 거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확신이 점점 강해져요. 그럼 그 공통적인 것이

뭐냐, 결국 사실, Fact를 확인하는 부분이 많이 닿아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에 대한

성실이랄까, 사실에 대한 충성, 물론 굴절, 선입관이 있어서 순수 객관적인 것을 그대로 확보하긴

어렵지만 여전히 객관적인 사실을 확보하려는 태도, 그게 학문이고 하나님의 진리 앞에 서려고 하는

것, 퇴계 선생의 표현으로는 거경하고 궁리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신앙과 학문이 닿아있다는 것이죠.

아직 설익은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지금 학문과 신앙, ‘과’가 좀 걸려요.

별개의 것을 접속사로 붙여놓은 같은 느낌이 드는데 사실은 ‘과’라는 것은 설명하기 위한 것이죠. 결국

두 마리 토끼는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한동 공동체에서의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인데, 주로 아마 회고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겠죠. 전망은 양 옆에 계신 교수님들께서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한동 공동체

얘기를 함과 더불어서 한동 공동체와 우리 겨레 공동체가 있고, 한국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기독교

복음이 수용된 이후에 1980년 중반에 이르는 선교 1세기는 기독교의 터를 이루고 뿌리를 내리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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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연이 확장되는 시기로 강조점이 주로 대중전도, 예배당 건축,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해외선교에

치중되었죠. 선교 1세기에 접어드는 1980년 초반에 접어들면서 이거는 이제 이박사나 저나 제가

회심하고 제자훈련 받았던 시기하고 맞물려요. 1980년 초반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의 보수진영의

평신도들이 중심이 된 주목할 만한 흐름이 등장하는데. 신앙과 삶이 일치되어서 의식과 가치관이

성경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이 됨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고백한다는 취지

하에 문화와 사회 개혁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개가 됩니다.

신앙과 삶의 일치, 신앙과 학문의 통합. 그래서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 운동, 기독학문운동

이런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죠. 하나는 사회참여 운동 세력으로 초기 경실련,

기윤실, 그것과 맞먹는 비중은 아니지만 성토모. 두번째 형태로는 기독교 세계관하고 기독교

학문운동세력으로 현재 기독교 세계관 학술 동역회라고 이름을 지었죠. 합쳐졌어요 두 개가. 그것의

모태가 된 기학연, 기독학문연구회가 있었고 기대설, 혹은 기독교 학술 동역회라고 불렸던 것 같은

비중은 아니지만 라브리 운동이 그 시절에 있었죠. 이후에 좀 옛날에 있었던 운동과 다른 형태는 그런

거라고 정리를 합니다. 이 운동들이 소위 보수적인 교회 진영에서 일어났어요. 그리고 이것이

목회자나 교회지도자들이 아니라 평신도들에 의해서 진행이 되었어요. 이런 운동의 배경에는 선교

1세기의 기간 동안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 가운데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던 신앙과 삶, 신앙과 학문 사이의 분리된 양태, 그로 인한 왜곡. 그것에 대한 일종의 반성과 비판,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반성과 비판이 시작된 것이죠. 실제로 1970년대, 80년대 초반 폭발적인 성장의

곡선은 80년대 중반 6월 항쟁 이후로 접어들면서 주춤해집니다.

90년대 이후로는 캠퍼스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양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기독교 사회 정치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이죠. 결과적으로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서

대체로 침묵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정부의 의견에 동조해왔어요. 결국에 사회적 공신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있어요. 또한 도시 중산층의 보수적 주류문화에 타협함으로 적응주의의 노선을 취했다. 그래서

우리 한국이 근대화 되면서 근대주의적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있는 성장주의, 친미주의, 반공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 한국사회의 역기능을 비판하는 선지자의 자리에서 이탈해서 오히려 비판을

받게 되는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죠. 현재까지 계속 유효한 분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학연과 기대설로 대표되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세계관 및 기독한문 운동은

1980년대 초 중반 사회 정치적으로 보수적 영향을 강하게 받고 청년들에게 역사와 상황을 복음의 빛

가운데 보도록 하여 사회참여의 신학이념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근본주의적 분리의식이 팽배한

한국교회 상황에서 어느 정도 유효한 가치를 지닌다라는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맥락에서 한동대학교가 1995년에 개교를 했어요. 제가 사실 기대설의 멤버였거든요.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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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59

있던 위스콘신에서 경북대 교수 하시다가 휴직을 하신 양승훈 선생이 과학사 석사를 하러 오셨어요.

그래서 교류를 좀 했죠. 학문과 신앙이라는 소책자가 있는데, 그게 그 분이 쓴 책인데, 제가 거기서

저자를 만난 것이죠. 저에겐 여러 가지로 도전과 격려 내지는 외로운 유학생 시절에 좋은 교제가

됐었어요. 그 와중에 한동대 얘기를 들으면서 제 속에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이죠. 하나는 이게 잘

될까, 기대설이나 기학연 멤버들이 거의 초창기에 안들어 왔거든요. 전부 창조과학 멤버들이 들어왔죠.

인문사회학자들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공학자들 중심으로. 또 하나는 잘됐으면 좋겠다,

기독교대학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하면 심하게 얘기하면 신성모독적인 표현일 수 있거든요.

그만큼 순수한 거에요. 그 마음이. 어린아이의 무구함. 두 가지 마음이 있었죠.

95년 개교 당시 설립주체는 십 수년부터 기독교 대학의 비전을 품고 밑그림을 그리고

준비하고 있던 기대설도 아니고 기학연도 아니에요. 주체는 기독학문운동의 큰 흐름에 속하긴

하였으나 운동성격상 주류라고 할 수 없었던 창조과학회 회원인 김영길 박사 등을 중심으로 해서

모인 학자들이에요. 주로 공학자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미국 등지 해외와 국내에서 학위를 마치고 첫

임지로 한동으로 온 신진학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몇 분들은 안정된 연구 교육 환경을 떠나서 실험적

기독교 대학을 기치로 내세운 한동을 선택한 중견학자들. 그 중에 설립 당시 기학연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고요. 기대설에선 몇 학자가 개인적으로 참가를 했어요.

당시 한동대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인재를 양성하는 하나님의 대학이란 모토를 갖고

있었던 사실이 여실히 보여주듯이 신앙의 순수성은 있으나 신앙의 치밀한 신학적 성찰과 반성이

수반되어 있지는 않았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신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기독

대학의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 단계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한동은, 초창기 재정적 곤란과

대학 운영권을 지키기 위한 사투죠, 법적 투쟁을 겪는 가운데,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대학에 관한

충분한 묵상, 밀도 있는 공부의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대학의 소명이 무엇이고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깊이 나누고 난상 토로도 있고 막장토론도 있고 그런 형태는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게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던 중 뜻을 같이하는 일단의 교수들이 1998년 1월 14일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위한 첫

독회 모임을 같게 됩니다. 첫 모임에 모인 교수가 13명이에요. 첫 강독 교재가 리처드 미들턴하고

브라이언 왈시가 쓴 Transforming Vision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전. 여러분 다 읽었죠. 놀라운 사실은

이런 책을 읽지도 않고 선생들이 한동에 왔다는 거에요. 사실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기독 대학의

이념이라는 책을 여러분의 95학번 선배는 읽고 왔어요. 근데 많은 선생들이 그 책이 있는지도 모르고

강독하면서 그 때 읽었죠. 여러분 선배가 제 앞에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그 책을 읽고 왔는데

내가 기대했던 기독교 대학이 아닙니다 하면서 제 앞에서 울던 장면을 지금도 기억을 해요. 그 친구

때문에 제가 저에게 많은 각오와 변화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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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기독교 세계관의 확립과 기독학문 수행에 관한 기본도서와 자료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매주 토요일 주로 토요일이었는데요, 거의 매 주 모였어요. 그리고 특강 형식으로

초청강연이 비정기적으로 진행되었고 1999년을 전후로 제기된 이 때 “내사랑 한동”. 기독교대학으로써

한동의 정체성 논란이 학생들을 통해서 그런 논란은 독회와 토론 위주의 진행에서 한동의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운동전개의 필요성을 갖게 했습니다. 그 결과물로 2000년부터 매

가을 학기 사흘간 한동 기독교세계관대회를 개최했어요. 이게 2003년까지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여름과 겨울 방학에 비정기적인 교수 집담회를 열었습니다. 기독교세계관적 관점으로 기독 신앙의

실천과 적용을 모색한 바가 있습니다. 99년 이후에는 정규교과 과정 중에 기독교 세계관 2학점,

학문과 신앙 2학점을 설치해서 팀 강의, 모둠 강의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 2010년 11월 현재는 무엇인가. 회고를 하면서 그 때 왜 모였지 생각해보니까 떠오르는

생각이 그런 거에요. 학문과 신앙의 관계지음의 성찰의 결과로 우리 대학이 형성된 것이 아니고

교육기관으로 설립이 되고 나서 그 관계지음에 대한 공부와 성찰이 시작된 것이에요. 일종의 Back

Formation이에요. 어휘가 만들어지는 법 중에 Back Formation이 있거든요. 말이 만들어 지는 과정

중에, 보통 Teach라는 동사가 있으면 ~er이라는 접미사가 붙어서 Teacher가 만들어져요. 그러니까

Teach하고 Teacher가 있으면 두 단어 중에 먼저 있는 것은 Teach에요. 역성법이란 것이 뭐냐면 예를

들어 Editor라는 단어가 있는데 Edit하고 Editor가 있잖아요. 어떤 단어가 먼저 있었을 것 같아요?

Editor라는 단어가 먼저 있었어요. 사람들이 Editor라는 단어를 보면서 뒤의 ~or 또는 ~er을 보면서

Edit이란 단어가 있겠거니 하고 쓰기 시작한다고요. 그러니까 명사가 먼저 있고 동사가 나중에 생겨요.

여러분 잘 아는 부활하다 라는 동사도 명사가 먼저 있었어요. 그것을 역성법이라고, Back

Formation이라고 합니다.

한동의 학문과 신앙의 통합, 요즘 통합이라는 말을 점점 쓰기가 싫어지는데, 상당히 중요한

얘기에요. 통합이라고 하면 두 개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가 있는데 그게 아니라 원래는 하나인데,

그것을 나누어서 생각하니까 통합한다고 하는 나름대로 운동성을 가진 표현인데, 이게 Back

Formation 같은 것이죠. 문제는 Edit이나 Editor는 어휘를 풍성하게 하고 쓰이는데, 지금 우리가

쓰임새 있는 어휘가 되어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직 만들어지는 과정 같아요. 모로 가도 서울을 가면

안되죠. 제대로 가야되는데, 우리의 태생적인 상황이 역성적인 상황이다,

이게 많은 문제를 그 자체로 주어요. 그래서 이제 이 부분에서 나타나는 역성도 형성의 한

꼭지가 된다는 생각을 해보면, 좋게 생각해보면, 지금 애써서 좋게 생각해보려고 하는데, 문제는

뭐냐면, 우리 속에는 연구 교육 봉사 이 세 개의 축이 각각 분리되어있어요. 대립은 아닌 것 같은데,

이 3개의 항이 별개로 존재하고, 주로 교수들 안에서죠. 연구와 교육과 봉사가 상당히 유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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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61

것이고 어떻게 보면,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대학이 하는 봉사는 연구와 교육이에요. 선교단체에서 하는

어떤 것들을 하면서 대학의 고유한 기능을 하지 않고, 마치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한 착각인 것이죠. 근데 그 착각이 개인적인 착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의 소명수행에 있어서 아주 치명적이다. 지금 3항 대립, 분리가 되어

있어요. 연구 좋아하는 교수, 강의, 꼭 교육에 연결되어야 하는 연구여야 된다는 얘기, 선교 혹은 봉사,

그러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노터치, 존중합시다, 이런 시의 분위기, 담론 아닌 담론들이 있어요.

이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대학의 소명과 역할의 이해가, 몰이해, 혹은 오해에서 오는 것일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학문과 신앙연구소나 학문과 신앙 운동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극복해야 할 것이 3항 대립 내지는 분립구조를 거경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각각 나누어져 있어서

서로 터치하지 않고 교제도 없고, 선교하는 교수, 연구하는 교수, 교육하는 교수, 서로 존경하지 않고,

연구 안하는 것들이 교수야 이러고 그 다음에 교육하는 교수들은 이기적인 인간들, 연구를 하나의

개인적 프로젝트로 전락시켜버리는 관점. 연구 안 하시는 분들 보면 강의 잘 하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이게 뭔가, 내가 그리스도인 학자라고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Ph.D

그거 아무것도 아냐 그냥 그건 그러면서 빌립보서의 얘기를 인용하죠. 배설물처럼 여겼다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제법 있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본인의 소영웅주의에다가 경건과

학문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포착하지 않은 공동체에서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 이건 아닌 거죠.

정리를 하면, 결국 학문적 제자도,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 대학이라는 배가 갈 때, 돛과

노가 있는데, 돛이라고 하는 것이 제자도인 것 같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앞에서 주님이 자신을, 전부를

주신 주님 앞에 서겠다는 제자도. 그리고 끊임없이 저어가는 노로써의 학문정신. 그것 두 가지를

합쳐버리면 Scholastic Discipleship. 그러니까 학문적 제자도의 부재, 혹은 나름대로의 이해, 오해겠죠,

그리고 그런 게 뭐 필요해 라는 몰이해 이런 것들이 우리 가운데 목격이 된다.

그래서 저는 맺음말 앞 부분에 몰입, 함몰 그런 단어를 던져보고 싶어요. 우리가 몰입해야 할

것과 함몰되어 있는 것들. 어제 김규항씨도 적나라하게 지적을 잘 하셨습니다만, 우리가 함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자본의 논리에 함몰되어 있는 것 같아요. 비학문적인 용어를 쓰면 역전의식인데, 다른

말로는 오리엔탈리즘이죠. 우리 안에 있는. 지난 학기 레비나스 책을 읽고 이번 학기 르네 지라르

책을 읽고 계속 확인되는 것들이 앞에는 타자라는 말, 여기는 욕망이라는 말로 맞물리고 있는데,

한동의 교수진들도 마찬가지고 한국에 있는 지식분자들도 마찬가지고, 계속 남의 시선으로 나를 봐요.

남의 시선으로, 그러니까 내가 없어요. 소고기도, FTA도 마찬가지고. 근본적으로 내가 없어요. 나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남을 봐야 하는데, 그래야 타자도 인식되는 것인데, 너무 함몰되어있다. 그래서

모방된 욕망으로 귀신들린 시대 속에서 정신과 영혼을 함락시키지 않는 자세, 그게 대학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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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독교 대학은 대학의 아류가 아니라 제대로 된 대학을 해보자는 의미로 기독이라고

하는, 그게 수식어인데, 그게 숫자로 보면 대학이라는 집합의 수보다는 부분집합이에요 분명히 그런데

양이 아니라 관점이나 태도로 보면 기독교대학을 하자는 얘기는 제대로 된 얘기를 해보자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어떤 몰가치성에 나를, 내 몸과 영혼을 그냥 내버려서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

정신과 영혼을 함락시키지 않겠다, 그런 것을 갖고 하는 것이 학문정신 제자도 이런 것인데, 그렇게

함몰되어있는. 결국 사실에 대한 몰각 그것은 결국 역사 공간 문화 공간 속에서의 자신의 책임을

피하게 하는거죠. 결국은 맺음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진정한 종교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욕망을 해체하고, 하나님의 생명원리와 창조질서에

동조하게 하는 것 그게 제자도죠. 그리고 지금 여기로 지칭되는 부르심의 자리에 구체적으로 조응하는

삶, 또는 살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잖아요. 우리가 믿어서 진리가 아니라 그것이

진리여서 우리가 믿는 것인데, 그 제자도의 치열한 실천을 통해서 끊임없는 욕망해체를 경험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조응을 위한 통찰과 분석과 운동을 생각하고 또 이름을 짓고 도모하고 만드는

것이죠. 그런 역동을 통해서 통찰과 분석과 운동을 생산하는 것이 대학이고, 기독교 대학이라는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소망을 버릴 수가 없어요.

양희송 일단은 그래도 여러분들이 맥락을 서로 다른 증언을 통해서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저도 제 나름의 맥락에서 말씀을 드리면, 윤교수님 말씀 들으니까 교수님이 쭉 봐오시면서

한동이 어떻게 흘러왔는가 저도 정리가 되는 것이 상당히 많고요, 저는 앞의 교수님들 중에는 제가

나이가 제일 어리죠, 그래서 전 온누리 교회를 그 때 쭉 다니고 있었고, 오늘 이 주제와 관련해서

본다면 기독지성운동이라는 것을 저는 한동이라는 구체적인 장을 중심으로 본 것은 아니고 제가 그때

그때 마다 관심 있던 곳을 다 들쑤셔 가면서 직접 가보거나 사람을 만나보거나 그랬던 것 같아요.

대학 시절에도 그랬고 대학 이후에도 그렇게 해왔던 것 같습니다.

95년 어간이면 제가 그 때 제가 있던 온누리 교회가 관련이 있던 경배와 찬양 말년에 잡지를

만들었어요. 제가 그것을 3년간인가 편집장을 하면서 창간에서 폐간까지 다 했는데 그 잡지를 하면서

제가 제일 좋았던 것은 취재를 핑계로 여기저기, 국내외로 다닐 수 있었던 것인데, 제가 대학 다닐 때

우리가 읽었던 책이나 꿈꿨던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책들을 읽었었고. 요즘은 여러분들이 거의

안읽거든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세계관 강의를 하는데 요즘 여기저기 서울이든 어디든 강의를 하면

두드러진 현상이 30대 후반 세대가 알고 있는 세계관 책은 안 읽혀요. 전혀 없어요. 한 백 명 정도

놓고 강의를 하면 기독교세계관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 있냐 그러면 10명 남짓 보통 열명아래

손들고 그럼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책을 읽은 적 있냐 하면 2명에서 5명 사이, 교회에서 청년부

대학부 리더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서울이고 지방이고 차이 없이 비율이 그래요. 그 말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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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이라는 테마가 80년대 초반에 나름 활성화되고 그 시기에 대학을 거쳤던 사람은 필수 교양,

예수 믿고 대학 다닌다는 사람이 이거 책 세계관 책 두어 권 안 읽으면 어디서 명함도 못내미는,

이런게 90년대 초반까지 중반까지 겨우 지속이 되다가, 그 다음에 완전히 주저앉았고 그게 지금까지

계속되거든요. 그러니까 한 15년 이상 사실은 이 주제 자체가 시야에서 사라진 거에요. 그 사이에

올라온 세대들 지금 30대 초반 중반 까지의 세대들은 백지에요.

세계관 이야기는 새로 다 해야되고 그런데, 그 위의 세대들은 기독교 세계관 용어 자체가

가슴을 벌렁벌렁 하게 만드는 이상한 시절들을 겪으신 거거든요. 저는 끝물쯤 될 것 같은데. 근데

세계관에 대한 것들을 대학 때 많이 접하고 하면서도 액면 그대로 다 받았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

떄 프란시스 쉐퍼의 책들도 읽고 아까 말씀하신 그리스도인의 비전, 알버스 월터스, 아서 홈즈,

도예베르트, 화란 개혁주의의 신학이나 철학까지 쭉 들어가는게 공부해나가는 코스였는데, 그걸

읽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단 매력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 이게 남한테 들은거거든요.

외국책 번역해서 읽었고 건너 들어 가지고 있는 몽글몽글한 이게 있잖아요.

제가 95년도 전후해서 취재 다니고 할 때 사실은 내 대학시절에 나를 드라이브 했던 꿈들,

이상들, 거기가면 내가 궁금해하는 게 있을 것 같은, 그런 데를 사실 다 다녀봤어요. 유럽에서 갔던

데가 스위스의 라브리, 프랑스의 떼제, 영국 와서는 찬양 사역하던 그레이암 캔드릭이니, 크리스

보튼이 다 있어요. 지금 알고 있는 찬양운동의 원조 격들 되는 사람들 다 만나고 미국에선 여기저기

최근까지도 만남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스위스 라브리에 가서 받은 인상은, 이제 됐다는 것입니다.

너무 아름답거든요 경치가. 쉐퍼가 사역을 했던 집들이 몇 채 있어요. 거기에 내가 책으로

읽었던, 쉐퍼가 강의를 했던 강의 테잎, 온 사람들이 책 읽는 도서관, 오전에 책 읽고 오후에 일하고

하는, 책으로 읽어서 생생하게 다 기억하고 있는 거거든요. 가서 실물을 보니까 도서관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빈약했고, 쉐퍼가 다루었던 주제들, 참고했을 법한 책, 들여다 보니까, 어떤

것들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겠구나 하는 것이 대충 그려지는 것이죠. 그러고 나서 전 쉐퍼를 썩

그렇게 존경하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이 목회자이고 사역자로써 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존경하고

존중할 만하고 그 임팩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커요. 그 분이 지적으로 일궈놓은 작업

자체는, 그렇게 까지, 여기에 길이 있다라고 할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직접 방문하고 나서 오히려 좀

편하게 접을 수가 있었던 것 같고, 그 이후로도 한국 들어와서 이러저러한 갈증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남들이 해서 이게 기독교 학문이다 이런 거 말고 이제는 내가 내 눈으로 책을 읽고 내가

나름대로 지적으로 성장해 나갔을 때 그 평가나 검증 앞에서도 내가 여전히 무릎 꿇을 만하고

배울만하고 그 지점들이 있을 때 이게 같이 갈 수 있는 것인데, 조금, 무슨 책 좀 읽었다고 해서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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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되어버리고 이런 방식에 지적 토대 위에 계속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일부러라도 좀 했었던 것

같고요. 그 무렵에 한동대가 개교가 됐잖아요. 한동대 처음 개교할 때 온누리 교회쪽 분들이 상당히

많이 왔습니다. 총장님, 교수님들 여러분 오셨고요. 여러분들 아실 지 모르겠지만, 대학이

교수들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학생들이 일단 중요하고, 그것 말고 대학을 만들어가는

직원들, 특별히 기독교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써의,

빛은 안나죠, 밑바닥을 버텨줬던 사람들이 있는데, 제 온누리 대학부에서 제 위의 선배,친구,후배 저희

대학부에서 최고의 사람들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한동대학교 개교할 때에 내려와서 기숙사 사감하고

다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교수님들은 학생들 가르쳤지만 이 사람들은 학생들 데리고 살았어요. 그

노고를 알기 때문에, 같이 신앙생활 했던 그룹이거든요, 이 사람들이 한동대로 간다고 했을 때는 제가

도의적으로 느낀 부담감이 있어요 분명히. 그 때 이제 제가 안움직였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 13학기를

이렇게 하는게 그 때 했었으면 지금 안이래도 될 텐데 그런 생각이 좀 들고. 여러 갈래의 그룹들이

한동대란 학교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앞에서 끌어가는 사람, 밑에서 떠받치는 사람들, 야사에나

나오는 사람들 있잖아요. 교목실 거쳐간 친구도 있고, 여자 기숙사 붙잡고 했던 친구도 있고, 쭉

흘러간 역사들이지만 그 퇴적물 위에 이것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요즘 와서, 우리는 그냥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와서 대학을 하면 그게 기독교 대학 아니냐

최소한 기독교 대학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죠. 최소한의 요건으로는 이것이 기독교 대학이 아니면

무엇이 기독교 대학이냐라는 것이 있는데, 근데 문제는 왜 그러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기독교

대학으로써,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을 갖고 있는 학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질문에 대한 물음이 늘

유보된다는 것이죠. 이게 아니라고 할 순 없지 않느냐, 누구도 부인할 순 없거든요. 이것이 기독교

대학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또 그렇게 흔쾌한가, 사실 쉽지가 않거든요. 올 봄에 고려대학교

김예슬 학생이 대자보를 쓰고 학교를 그만뒀잖아요. 전문을 제가 다 기억은 못하는데 대학이라는게 큰

배움, 큰 공부를 하는 곳인데, 더 이상 대학이 아니다라고 당차게 선언을 한 것이죠. 그 학생이 이거는

대학이 아니다라고 했을 때 울림이 컸단 말이에요. 교수도 학생도 있고 대학이 아니라고 객관적으로

부인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우긴거죠. 이건 대학이 아니다라고 우긴건데, 의외로 그것이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더라는 것이죠. 사람들 머리 속에는 뭐가 대학인가에 대한 제도나 이 모든 것으로

부인할 수 없지만 그 물음에 대해서 여러 대학들이 넌지시 부정적인 방식으로 대답해 왔던 것을 한

순간에 돌려세우고, 이건 대학이 아니다라고 했던 것이 훨씬 설득력을 갖고 파장을 일으키는 어떤

사건이 있다는 것이죠.

같은 맥락 기독교 대학이라는 것을 놓고 얘기를 한다면, 김예슬이 문제제기했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을 해본다면, 이것은 기독교 대학인가, 이것을 기독교 대학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죠,

그러나 그 대답이 시원한 답들을 얻지 못했을 때, 오히려 우리는 질문을 거꾸로 물어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무엇이 기독교 대학을 만드는가, 기독교와 대학이잖아요, 제가 기독교 세계관 과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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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65

듣는 사람들은 기억을 할텐데, 리차드 니부어의 그리스도와 문화의 다섯가지 모델, 일부러 제가

매학기 거기에 그것을 넣거든요. 니부어의 5가지 모델에 기독교 대학이라는 테마를 던져놓고 기독교

대학을 다섯가지 모델로 각각 설명을 해봐라. 제가 몇 학기를 하다가 발견을 하게 된 부분이었어요.

기독교 대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한 가지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어느 각도에서 무슨 생각을 갖고

묻느냐에 따라서 다른 답들이 나올 수가 있고 그게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 논의의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여러가지로 해석을 해 갈 수 있는데 저는 어쨌든 윤교수님 말씀하신 그 맥락을

이어간다면, 기독교 대학은 최소한 대학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가르침과 배움, 큰 배움이 일어나는 것,

그러지 않으면 기독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안학교 많이 하잖아요. 저도 대안학교 하는 분들 많이

만나기 때문에, 저도 애가 중1 초2 그래요 .교육 문제에 딱 걸려있는 상황인데 답이 없더라고요.

기독교를 내건 학교가 내 아이에게 좋은가 상당히 많은 학교가 기독교 학교가 뭔지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고요. 각자 자기 답이 있겠죠.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만족스러운 답이나 대안은 없더라는, 여전히 그 답은 유보가 되었는데,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독교 학교라면, 기독교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학교로써의 그것을 갖춰야

할 것이고, 그것이 대학이라면 대학으로써 요구되는 부분들을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 윤교수님

말씀해주신 것처럼 만들어 놓고 생각을 시작하게 되는. 근데 그건 어떤 면에서는 주어진 조건일 수

밖에 없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난 10월달에 목회와 신학이라는 잡지에서 원고청탁을 받아서 마크 놀의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라는 책이 있어요. 90년대 중반에 소개가 됐다가 올 해 새로 번역이 됐습니다. 서평을

요청을 해서 쓴다고 해서 그 책을 다시 읽다가 굉장히 새롭게 읽히더라고요. 그 책이 15년 전이면

미국 복음주의가 최고 피크를 치고 있던 때거든요, 그 때 아직 부시가 대통령 되기 전이었고,

복음주의 이름으로 미국에서 사고치기 전이에요.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악감정을 갖거나 그것이 아닌,

규모도 커지던, 그 시점에 마크 놀은 복음주의 지성은 스캔들을 겪고 있다, 스캔들의 핵심은 뭐냐,

지성이 없다라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몇 가지를 입증을 하기 위해서 논거를 대겠죠.

그 논거의 제일 첫번째가 무엇이었냐면, 미국의 복음주의는 쉽게 말하면, 교육 중심 대학은

있으나 연구 중심 대학이 없고, 연구 중심 기관 하나 갖고 있지 못하다 하는 게 마크 놀이 꼽는

첫번째였어요. 15년 전에 제가 그게 뭔 소린지 잘 이해를 못했어요. 미국에 휘튼도 있고 칼빈도 있고

유명한 좋은 리버럴 아트 칼리지들이 있고, 한국에서 기독교 대학의 고민을 한다 했을 때 휘튼,

칼빈을 얘기하잖아요. 그 모델을 갖다 쓰는데, 마크 놀이 뭐라고 얘기를 했냐면 미국은 학부 중심

교육하는 그것 말고 연구 중심의 아무런 인프라를 못 갖고 있다 이게 첫번째로 꼽는 것이더라고요.

지금에 와서 보니까 그게 무슨 소린지, 대학에 와서 오랫동안 상황을 봐오면서 대학이라는 것이,

범위를 넓혀서, 미국 복음주의 대학 전체가 이렇게 갈 수 없다는 것이죠. 학부 중심의 대학교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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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그로부터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 아이비리그로도 가고 잘 가는데 복음주의권 전체는

지성적으로 커버하는 학문적 아카데미나 인프라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학부 교육 잘 시켜서

세속교육한다고 욕했던 하버드 그런데로 갖다 보낸다는 것이죠. 그 모델이었다. 그러니까 더 깊게

고도의 학술적 역량을 집결해 내거나 수행하는 기관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의 복음주의는 복잡한

상황을 사고하고 자기들 스스로가 핸들링할 수 있는 지적 역량을 축적하는데 실패했다. 굉장히

냉정하게 평가를 해요.

그 사람이 이번에 서문을 새로 썼거든요. 당연히 제가 눈이 그리로 갖죠. 이 사람이

한국어판의 서문을 새로 쓰면서 자기가 옛날에 했던 평가에 대한 어떤 수정, 지금은 상황이

개선됐다든지, 근데 그대로 다시 얘기해요. 내가 그때 지적했던 포인트는 여전히 유효하다라고 하는데.

휘튼 같은 학교, 코스타 때문에 매년 방문을 하면서 보니까, 원래 휘튼이 대학원이 없었는데 최근에

만들고 있더라고요. 만드는데, 이게 그냥 학부 학생들 지나갈 수 있는 대학원이 아니고 원래 휘튼에도

신학과가 없거든요. 전세계의 신학 쪽에, 특별히 성서학 쪽에는 어마어마한 학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더라고요. 보통 해당책의 주석을 쓰거나 대규모 저작으로 유명한 저자들이 있는데, 한 둘이

아니에요. 어느 분야의 탑클래스들을 불러서 휘튼에다 모아놓고 있는데, 신학교를 만드려고 하나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뭘 하냐면 박사과정을 만드는데, 한 학교로써는 과다하게 느낄 정도의

학자들을 불러 모아다가 놓고 있고, 거기에는 박사과정을 거의 장학금 다 주고 학생들을 뽑는 것

같아요. 휘튼이 그동안 해왔던 교육의 전략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고도로 집약된 연구 가능한

것을 만들어 가는데, 저는 그게 마크 놀 같은 사람들이 지적한 기독 지성, 개별 학교 단위가 아니라,

복음주의 지성이란 전체 맥락을 놓고 봤을 때, 그동안 미국 복음주의에 결여되어 있었던 지적인

영역들을 어딘가에서 감당해야한다는 것을 얘기한거죠, 미국의 복음주의는 그 얘기를 따라잡으면서

자기들 시스템 내에서 해결해나가는 방향으로 길을 잡는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아요.

제 관심은 한국에서 한국 복음주의는 다른가, 저는 미국 복음주의보다 한국이 훨씬 더

스캔들이 심하다고 보는데, 제가 지금 관심 두고 있는 일은 다 이런 부분이에요. 어디를 쑤시면

구멍이 뚤리나, 공부했던 사람들 다 어디에 숨어있나, 다 찾아내고 크리스천으로써 학문적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영역에서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가 모이지가 않아요. 그 동네 서클

안에서는 대단하다고 하지만, 거기를 벗어났을 때 학문적인 위상이라든지, 연구업적의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냉정하게 봐야 하는 것이거든요. 끼리끼리 서클이 강하면 그 안에서는 왕 하는데

밖으로 나오면 완전히 졸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러니까 조금 거칠게 판을 흔들어서 각 분야에서 대장 노릇 하고 있는 분들이 진검 승부를

해야지 한국 사회 앞에다가 이야기 했을 때에 그게 말이 먹히고 자기 주장을 디펜스 할 수 있고. 그게

기독 지성이라는 것이 한 사회 내에서 수행하는 제대로 된 역할이 우리끼리 모여서 예의 차려서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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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67

것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죠. 검객은 약속 대련 잘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약간 이종격투기지만 신학 교수 불러다가 사회학이랑 붙이고 법학이랑 다른 것이랑 붙이고 그런 식의

기획들을 좀 해봤는데 힘들어 하는 분들이 좀 있고요, 즐기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즐기는

분들이 계시는 것을 발견하게 제일 큰 소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이분들이

역할을 하셔야 한다는 것이고요.

감사하게도 한동대에 그런 분들이 몇 분 계시다고 생각을 해요. 도움도 많이 받고, 류대영

교수님은 밖에는 잘 안 나오시지만 저는 서점에서 책을 많이 봤거든요. 눈에 띠었고요, 찾아보고 책

내용을 읽으면서, 또 제가 관심 있는 분야였기 때문에 읽고 굉장히 기분이 좋았죠. 아 이정도면

되겠구나, 그러니까 대중 앞에 안 나서도 좋은데, 어딘가에서 가끔씩 책 한번 나오는데 그게 판의

흔들림을 주고 그분이 책 한권 낼 때마다 그 분야의 연구가 진척이 나가는, 그런 정도의 학자가

계시면 안 나오셔도 되죠. 지켜보는 것 만으로 좋은데, 좀 아쉬운 거죠. 그런 작업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일어나고 그런 작업을 감당하고 수행하는 것이 기독학자가 단순히 우리 서클에 대한 기여만

아니라 한국 학계 전체에 기여가 되는 것이고, 다른 분야에서도 그 책을 읽고 도움을 받고 참고를

하고 그런 방식으로 가는 것이 기여다.

문제는 지금 우리의 대학 체제, 한동대로 온다면, 전 한동이 그런 면에서 이런 학자들을

보유하고 있고, 그 분들이 작업을 하는 공간을 갖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격려가 되야 될 일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게 이런 일들이 점점

격려가 되서 거기서 배우는 학생들이나, 인접 분야의 학자들이 자극을 받고 이쪽 분야는 한동대 어느

어느 교수, 어느 학과가 지적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건 만들기 쉽지 않지만, 한번 만들어 지면 쉽게

흔들리지 않거든요. 전국적으로 그런데가 몇 군데 있어요. 아무리 지방에 있어도 이 분야는 저기가

최고다 그런게 있어요. 배우려면 그리 가던지 해야 하거든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소위 대학의

랭킹과 상관없이 학문적 리더십이라든지 구심점의 역할을 하는 학자나 집단이 있다는 것이죠.

한동대가 이곳에 입지를 두고 있으면서 학문적으로 기여를 할 수 있다면 그런 방식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전혀 뜻 밖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분들이 격려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이 굉장히 아쉽고, 그러면 뭘 가지고 기독 학문 운동을 하는 전략을 구사 할 것인가, 하는 면에서

저는 아직 기독교 대학은, 물음에 답이 안나와요. 좋은 전략이 이미 보인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을

전략적으로 채택을 하고 더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장려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될 좋은 방향이다

라고 하는 것이 충분히 얘기가 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류대영 저는 5분 동안만 얘기하겠습니다. 이런 모임 혹은 아까 윤선생 설명하신 그런 것들이

학문과 신앙 통합을 지향하고 있죠. 근데 저는 세 분이 잠깐씩 언급하셨지만, 저는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지 않고 있거든요. 참여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만 설명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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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왜 참여를 안하느냐 하면, 근데 사실 저는 기독교세계관 운동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 됐을

때 그것을 접한 1세대 거든요. Sfc를 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학생 때는 어리니까 좀 더

넓은 세계를 알지 못하니까 그게 다 인가보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계속 공부를 하면서 그런

접근들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죠. 양선생님은 스위스에 가서 쉐퍼의 한계를 물질적으로 확인하는

상황이 됐는데, 사실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처음 시작할 땐 아주 근본주의적인 신학교에서

시작을 했죠. 근데 한 1년 반 하다 보니까 학문적인 한계를 금방 알게 되더라고요. 여기서

이래가지고선 될 일이 아니구나, 그래서 결국 주류 신학교로 옮겨가고, 그 다음에는 점 점 더 소위

말하는 외연이 확장이 됐는데, 그러면서 좀 제대로 된 학문의 세계를 접하고 그것을 공부하다 보니까

학문과 신앙 운동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분명하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 한계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신앙은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학문과 신앙을

결합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학문과 신앙을 이야기하는 사람, 혹은 그것을 책으로건

말로하건 그것을 주도하는 분들을 보면 과연 그 분들이 그 분야의 학문에서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는

분들인가 봤을 때 전혀 그렇지가 않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이 한계가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공부를 했으니까, 학자의 길에 들어섰으니까 공부를 하는 수 밖에 없는데, 근데

이게 사실 본질적인 문제가 되겠습니다만은, 아까 양선생님이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을 말씀하셨는데,

근데 거기 그러니까 결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복음주의권이, 소위 지성계가 내놓을 만한 지적인

업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자기의 세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인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현대학문이 가지고 있는 성격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현대 학문이라는 것이 분야를

막론하고 결국은 계몽주의 이후의 서구에서 진행된 어떤 전개과정에서 나온 학문이기 때문에 이것을

신앙과 연결시키는 작업이 힘들게 돼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요. 예를 들어 역사학, 기독교 역사학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기독교 역사학은 사실은 하나님하고는 전혀 별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학문 자체가

그러니까. 그럼 거기에 하나님을 다시 갖다 붙인다, 그러면 학문의 커뮤니티 속에서 설 수 있는

자리가 없는 것이에요. 아마도 다른 문과 학문들도 그렇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니까 현대 학문의

세계 속에서, 어떤 분과 학문에 속해 있던지, 그 분과학문에서 A급의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에요. 자기의 개인의 신앙하고, 신앙인으로써 존재할 순

있지만, 그것을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차원까지 간다는 것은 제가 볼 때 거의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현대학문이 가진 성격 때문에. 그것이 아마도 놀이 얘기하는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놀과 저하고는 생각이 좀 다른 면이 있는데, 물론 대부분은 동의하는데, 그렇게 된 상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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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69

대해서는 조금 저하고 다르거든요. 저는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 근대학문이 가지고 있는 성격의

문제하고 연결되어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것이 복음주의권이 그 동안에 관심을 안 가졌다든지, 다른데,

행동주의에 관심을 가졌다든지 물론 그것은 이유들은 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아니다라고 생각을

하고. 저 같은 경우도 제가 하고 있는 분야를 그럼 어떻게 신앙과 연결시켜서 기독교적인 뭔가를 할까.

제가 기독교역사, 교회사를 하는데, 그건 당연히 연결되어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기독교 역사 페이퍼를 하나 쓰더라도 거기에 신앙이 보이게 되면은 그건 이미 빨간줄이

그어져야되는 상황이거든요. 당연히 그런 것이죠. 왜냐하면 현대 기독교 역사학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

이외에 다른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죠.

결국은 그런 어려움들이 있고, 그러다 보니까 저는 그런 입장을 취한 것이죠. 결국 학자라는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겠다,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적어도 제

분야에서 이룩한 사람들이 있는가? 소수지만 있긴 있거든요. 있지만 그들이, 예를 들어, 마크 놀, 조지

마스덴 이런 분들이 신앙은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학문에 있어서는 최상급의

학자들인데, 그들의 논문들이 얼마나 학문과 신앙이 통합되어 있는 형태로 쓰여지고 있는 것인가,

전혀 그런 것이 없어요. 다만 그들이 신앙인이기 때문에 주제가 복음주의, 이런 곳에 관심이 있을

뿐이에요. 그런 것을 다룰 뿐이에요. 만약에 그들이 역사학계, 영어로 얘기하면, the canon of historio

graphy라고, 역사학을 하는 표준들이 있는데, 표준들에서 벗어난 방법으로 해야지 그것이 아마도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 될 텐데, 그렇게 하면, 역사학자로써 인정이 안되는거에요. 역사학자로써 그들이

그렇게 해서 써놓으면 학자 공동체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죠. 주제들은

자기들이 관심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거에요. 근본주의를 하건 복음주의를 하건 그것을 해내는 방법에

있어서는 여전히 현대역사학의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제가 얘기하는 것이 무슨 말이냐면,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고.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은 결국은 나는 공부도 못하는

사람들이니까, 통합은커녕 공부도 하기 바쁜데, 통합을 하자니까 그게 짜증도 나고, 시간도 없고, 그

다음에 저는 근본적으로 사람들 많이 모이는 것 싫어하니까, 저 학회도 잘 안가거든요. 유일하게 하나

가는데, 그것도 3년 전부터는 가서 일체 얘기 안해요. 학회라는 것도 가보면 발표하는 사람이나

논찬하는 사람이나 결국 자기가 잘났다는 소리에요. 그래서 전 공부나 하고 있어야 하는 판국인데,

능력이 그거 밖에 안되니까,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에, 그것을

제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냐, 공부밖에 못하는 것이죠.

학문을 추구하는 것 일단 그거부터 열심히 해서 하는데 까지 하고, 그것이 현실적 목표가 된 것이죠.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초등학교 때 우리 때는 TV보다는 잡지를 많이 봤어요. 어린이를 위한

월간지를 봤는데, 거기를 보면 아주 재미있는, 아마 초등학교 4학년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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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충격을 갖고 있는 내용이 있어요. 그 내용이 뭐냐면, 태양이 시간이 몇 십 억년이 지나면 결국은

핵융합이 다 끝나서 이것이 적색외성이 되고 아무튼, 태양이 소멸하면서 태양계가 소멸한다는

것이에요. 그럼 지구도 소멸하고. 그게 걱정인 것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그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이걸 어떻게 살릴 것인가, 몇 십 억년 후에 벌어진다는 일인데. 아무튼 그 때 제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은 여러 가지 변화들이

일어나는데, 그 변화 중에 하나는 사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제가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이렇게 된 것이죠.

그 다음에 한동대학의 상황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한동대학은 간단히 얘기하면 학자를

소중하게 여기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공부를 하려면 어려움이 있어요.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가 힘든, 그런 학교죠. 그것은 학교를 인도해가는 분들도 그렇고 교수 공동체도 그렇고

더더군다나 학생들이 더 그래요. 학생들이 공부하는 선생을 별로 원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선생이 있기가 대단히 힘든 학교에요. 상당히 열악한 상황인 것은

틀림없죠. 그런 어려움들이 있죠.

그래서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한동 대학교 내에서도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과연 그 분들이 자기 개별학문에 있어서 자기의 개별

학문의 세계 속에서 최상급의 학자가 되면서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느냐, 저는 그것을 물어보고 싶은

것이죠. 그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저는 전혀 모르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분야기 때문에, 부담은 있는데 결국 내 일은 아니다 하고 제껴 놓은 상태인 것 같습니다.

이국운 그렇습니다. 세 분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저런 말씀을 들으면서, 특히 류교수님 방금

말씀하신 중에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큰 꿈이 아니냐. 특별히 서양 계몽주의

이후의 학문을 정상학문이라고 규정한 그 상황 속에서는 다시 신앙을 학문과 연결시킨다고 하는 것이

학문을 제대로 한다는 전제하에서는 너무 큰 꿈이 아닌가. 솔직한 말씀으로 들리고요.

이 자리에서 개인적인 고민을 하자면, 저는 처음부터 상대적으로 윤교수님은 통합파에

가깝고 저는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란 말은 하늘 나라 가면 그렇고, 저는 그것은 너무 힘든 것 같고,

학문과 신앙을 논문으로 통합은 못해도, 학자의 실존 속에서는 가끔씩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제가

원래 침례교인이에요 장로교인하고 살고 40이 넘으면서는 루터파가 되고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비록 제가 학문과 신앙운동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보자고 했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관계지으려고 하는 것. 라인홀드 니부어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불가능성의 가능성, 끊임 없이

관계 지으려고 하는 것, 잘 안오시지만 끊임없이 오시라고 하는 것, 그래서 몇 년에 한번씩은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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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71

좋은 가르침을 받고, 나중에 제가 쓴 글도 보여드리는 것, 그렇게 하는 것. 그래도 해야한다. 관계

지으려고 해야한다, 그런 생각을 저 개인은 갖고 있습니다.

저까지 포함해서 네 사람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여러분들에게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을

말들도 아마 우리 선생님들 말씀 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공부 안하는 선생님들 더

좋아한다든지. 오늘은 좀 다른 분위기에서 편하게 질문하고, 좀 털어놓아도 좋을 것 같고. 누군든지

먼저 시작해줄래요?

학생 1 안녕하세요 김민호입니다. 아까 공부 안하는 교수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류대영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제가 면접 때가 기억이 나는데요. 2003년도 수시 1학기 때 시험을

보러 왔는데, 생명과학부 송교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네가 여기 이 학교에 왜 오려고

하는가, 아 여기는 담배 안피고 술 안마시는 선배들 있다고 해서 저 지원했다고. 근데 사실 여기 술

마시고 담배 피는 학생들 많다고 해서, 아 그러면 좀 힘들겠는데요 라고 얘기를 다시 했는데. 문제는

뭐냐면 제시했던 수학문제는 제가 다 맞췄거든요, 내신 성적은 제가 합격은 그냥 되는 선이었는데,

제가 합격이 된 거에요.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합격이 된 것을 보면서 아 한동대학교 되게 웃긴

학교네. 내가 면접을 그렇게 못했는데도 되는구나, 그러니까 거기서 제가 느낀 것은 결국에는 기독교

대학이라면서 하나님의 대학이라면서 가르치긴 하지만, 그냥 점수 되는 애들 뽑는 거구나. 제가

느끼기에는 공부 안하는 학생들 그 이전에 그 학생들을 뽑았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이 생긴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럼 문제를 다시 한번 돌릴 수 있는 것이 그런 학생들을 뽑는 것이 지금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뽑히고 있는데 입학사정관제가 엄청 문제가 크지 않나라고 생각을 하는데 교수님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입학사정관제에서 제가 느낀 것은 딱 하나인데요. 10학번 중에서

기독교인 비율이 80%이 넘는다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경악을 했거든요. 어떻게 기독교인이 80%가

넘을 수 있지 입학사정관제도로 뽑았다고 하면서. 기독교 대학이면 기독교인이 아닌 학생들도 뽑아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인데, 왜 기독교인을 80%이나 뽑아서, 이미 알고 있는 애들을 뽑아서

비기독인 중에도 굉장히 좋은 친구들이 많을 텐데,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국운 기본적으로는 교무처장과 입학처장이 있는데 그 분들이 좀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다들 아시지만 조금 더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답을 하자면, 우리 학교가 대체로 70%

정도의 자기가 기독교 신앙이 있다고 고백하는 학생들로 이루어져 왔어요. 초기부터. 한 3-4년

전까지도. 그런데 최근 들어서 아주 급격하게 기독교인 학생 비율이 높아지고 있고 최근 1-2년

정도는 90%가 넘는 학생들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학생들이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제도 사실은

내부를 들여다보면, 성적 이외에 다른 것이 그렇게 많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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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하게 입학사정관제로 뽑기 어렵죠. 왜냐하면 공정성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틀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아주 흥미롭게도 성적으로만 뽑는데도

과거에는 70%정도의 학생들이 크리스천이었는데, 이제는 90%가 넘는 학생들이 들어오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좋게 이것을 해석할 수도 있겠어요. 한동대학교 15년이 넘는 시간을 통해서 전국에 있는

장로님 아들 딸, 목사님 아들 딸들 교회의 공부 잘하는 고등부 회장 부회장들은 한동은 일단 써놓고

본다, 이렇게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근데 좀 다르게 생각하면, 아까 기독교 대학 중에 대학인데, 대학은 근본적으로 공공적인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특정한 하나의 가치가 대학 공공성의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것이

대학이라고 하는 것이 적어도 우리 헌법이 이야기하는 대학이라는 것이 운영되기는 대단히

어렵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큰 배움터라는 의미의, 또 하나의 세계라는 의미에 대학의 본 뜻에

가깝다고 전 생각하는데 그 면에 있어서는 우리 학교에 엄청나게 큰 도전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90%가 넘는 사람들이 전부 기독교인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열의 하나도 되지 않는

소수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공동체를 대학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교회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교회에서 요구되고 교회에서 서로에게 기대하는 행동방식을 별 생각 없이 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많고, 근데 꼴은 대학이고, 다시 말해서 고등교육법이라는 우리나라 헌법이라는

대학의 공공성을 요구하는 법령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국가로부터 이런저런 지원도 받고, 시민사회

지역사회로부터도 여러 가지 공공적인 기능을 담당해줄 것을 요구 받는 상황에서 아까 말씀 드린

여러가지 상황의 변화가 구성원들로 하여금 대학이 아니고 교회처럼 행동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가게 된다면, 이건 대단히 큰 도전이다, 앞으로 굉장히 대학이라는 세팅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우리에게 벌어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윤상헌 입학사정관제도 자체에 대한 얘기는 지금은 좀 적당한 자리는 아닌 것 같고요. 지금

이박사가 얘기한 같은 맥락인데, 저는 숫자, %의 크기는 전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그것이 몇 %이건 간에 왜 오느냐는 것이죠. 여기를. 그 숫자가 적건 많건 간에 여기오면 술

담배 안하고 아웃리치 가면 학점으로도 인정되고, 예수 믿는 애들이 그래도 전반적으로 정숙하니까

각시 얻고 신랑 얻고 그 다음에 교수들 FGBS한다고 그러더라, 문턱도 없고, 아무때나 들어와서

스테플러도 빌려가고, 그런 접근성. 다 좋은데 그것이 대학의 본령이냐, 별책부록에 관심이 많아서

학교를 지원하고. 어느덧 지원할 수 없는 사실은 무엇이냐면,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 중에서

한동대학교 다닌다고 할 때, 제 자식 한동대학교 다녀요 라고 할 때의 부모의 표정이나 눈빛이나

고개의 각도는 약간 상향이에요. 부모들 신앙도 상향 조정되는 이런 느낌, 이게 위험하다는 것이죠.

대안학교 얘기가 나오지만 대안학교 사실은 대안학교가 이날 특목고란 이름이 맞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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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73

대학을 다른 방식으로 더 잘 갈 수 있는. 그 비슷하게 기독교 대학이라고 해놓고 아이들은 착하고

좋단 말이죠, 그게 목적이 돼서 오는 90%, 아까 본인도 술 담배 그 얘기하면서 꿈꾼 것에 관해서.

기독교 대학은 예수 안 믿는 사람들 뽑아서 전도하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에요. 그건 미션스쿨이라

그래요. 기독교 대학은 예수를 잘 믿는, 예수의 복음 앞에 무릎 꿇고 뒤집어진 사람들을 가지고,

경세하겠다, 세상을, 민족을 경영하겠다. 교회 기독교 기관에서 적절하게 쓰는 그런 사람들만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밖에서도 얼마든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일꾼들을 감당하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100%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들어와도 문제는 아니에요. 문제는 뭐냐면, 100%가 들어왔을 때,

들어와서 생각하는 눈높이 자체가, 알코올 퍼센트, 치팅 하지 않는 것, 금연 캠퍼스, 이런 것이 우리가

얘기하는 담론의 최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그런 학교, 그것은 상당히 어려워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70-80 올라가는 것도 주목해야 할 만한 상황인데, 전에는 호랑이 새끼들이 좀 보였는데, 지금은

호랑이 새끼들이 잘 안보인다는 거에요. 왜 그럴까 이건. 여러가지 생각을 해봐야겠죠.

학생 2 저는 04학번 지인수 입니다. 저는 질문을 하기보다는 4학년 지내면서 바라본

한동대의 학문과 신앙 운동에 대해서 주제 넘게 진단해보았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학교에 와서 자퇴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 대학이 뭔진 모르지만 이건 아니다, 이건 내가 꿈꾸던 한동이

아니었다라는 생각에 자퇴를 결심했었고 실제로 다른 서울에 있는 학교에 붙었었고 그래서 학점도

엉망이고, 그렇게 살다가 큰 변화를 겪고 학교에 남게 돼서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전 학과 공부도

그렇고 한동 신문사에서 일을 하면서 과연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시가 되게, 하나님의 대학처럼,

하나님의 눈으로 본 세상이란 사시를 달고 있어서 정말 어떻게 기사 쓸지는 배우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추상적인 구호 그것만을 가지고 괜히 마음에 부담 있는 체로

아웃풋은 아무것도 없이 3학기를 보낸 적도 있고요. 학교에서 기대위라는 단체가 아주 조용히 3-

4명의 학우들과 교수님들이 있었는데, 기대위에서 일년에 한번씩이라도 콜로키움을 열었었는데,

찾아간 사람이 기대위 학생들 빼곤 저 혼자 찾아갔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런 담론 자체가 4학년 2학기에 와서야 여기서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고요, 너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학문과 신앙에 대해서 우리 학교 교육 개발

센터에서 공모전도 하고 그랬지만 실제로 학우들 사이에서나 교수님들과 학우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고 간 적은 거의 없었고, 토론학회 학회장을 한 번 하기는 했는데, 선한 토론이라는 타이틀은 걸고

있었지만 사실은 상 받기 위한 토론 이상의 것을 전혀 해내지 못했고, 아무튼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을 하면서 살았지만 그로 말미암아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생각만 많은 채로 4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동대학교의 문제제기는 굉장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신국원의 문화 이야기라는 책을 보면서 그리고 양희송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제가

짐작하기에 한동대학교가 5번째 변혁모델을 가지고, 카이퍼의 견해를 따라서 짐작을 해보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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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그래서 세상을 구속하고 문화를 구속하고 교육을 구속하자, 이런 취지로 시작한 것 같고, 그런 취지는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한동의 실패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기독교

대학을 세우기에 앞서서 그런 이야기를 마치기도 전에 실용주의적인 교육으로 갔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담배, 술 이런 것들 말고, 정말 기독교 대학을 세우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제가

보기에 선행되어야 하는데, 영어나 컴퓨터, 취업 같은 것으로 서울 학생들과 소위 말하는 수능 점수

높은 학생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 그래서 영어, 컴퓨터, 취업, 술 담배, 예배 이런 것들이 중요시

되지 않았나. 그리고 그 결과 기독교 대학이라는 것은 굉장히 쓸모 없는 논쟁, 별로 실용적이지도

않고, 공부에도 별로 도움되지 않는, 이런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한동대학교가 지방대학이기 때문에 그런 실용주의적인 정책을 쓰게 된 것에 대해서는 이해는

합니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한동대학교가 기독교 대학으로 카이퍼가 말했던 기독교

대학으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고. 두 번째로는 교수님들께서

가르쳐주신 것 중에 학문과 신앙의 통합의 노력이 있었는가 봤을 때 저는 거의 그것을 못느꼈는데,

제가 국제와 언론을 전공하고 있습니다만, 마민호 교수님의 정치학 개론 수업이라든지 김준형 교수님

국제관계학입문 수업에서. 김준형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라인홀드 니부어를 가지고 민주주의를

설명하신다던지, 마민호 교수님은 첫째 둘째 시간에 성경을 통해 바라본 정치, 이런 것들 말씀해 주신

것 외에는 기독교적인 고민과 학문과 신앙의 통합으로 학문을 바라보는 것은 거의 없었다라고

개인적으로 결론 내리게 됐고요. 그런데 제가 6-7년 정도 학교를 다녔는데, 그동안 개선된 것은 거의

없었고, 기독교적으로 학문하기에 대해서 교수님들과 학생 사이에서 전혀 얘기를 한적도 없었고 했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논의가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사실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Arise & Shine 같은

것들도 과연 기독교 대학을 세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저는 이승훈 교수님이 제시하신 기독교적 학문의 조건에서 동기와

내용이란 학문적 연관성이 조건이라 말씀하셨는데, 제가 한동대학교에 그것을 견주어보자면

한동대학교의 동기는 굉장히 좋았는데,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수업 시간을 예배로 생각하고

기도하고 그런 모습들은 좋았지만 학문을 기독교적으로 생각하고, 학문과 신앙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부재하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랑 학문적 연관성에서는 거의 기독교적 학문하기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이 들고, 그것의 원인으로 윤교수님께서 짚어주신, 일단 학교 세우고 봤다라는

것에 심정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결론을 내려는 것이, 김두식 교수님 책에서는 기독교 +

거시기라는 것을 굉장히 반대하시더라고요. 기독교적 학문, 기독교가 추구하는 하향성과 학문이

추구하는 상향성이 과연 조화될 수 있느냐 이런 문제제기를 하셨는데, 그것은 아마 류대영 교수님의

문제제기와 닿아있는 것 같고, 제가 보기에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제가 개인적으로 갖게 된 생각은 소위 말하는 기독교가, 근본주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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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75

복음주의와 자유주의 그것을 모두 묶어서 복음주의라고 하기도 하고 더 쪼개기도 하는데,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세계관의 천차만별성, 그 5가지 모델 중 우리 학교가 무엇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의 부재, 그것이 논의되지도 않은 채로 한동대학교가 기독교 대학으로 바로 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한동대학교가 실패했지만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는 이유는 한동대학교가 그 첫 삽을 떴고 제가 한동대학교의 구성원인 덕분에 그나마 이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나. 그래서 전 그것에 대해서 한동대학교에 좀

감사함을 가지고 있고 아까 이국운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논문으로 표현할 순 없지만 교수님들께서

수업시간에 말씀해주신 약간의 실존적인 고민들을 듣고 조각들을 모아가면서 나도 기독교적으로

학문하기를 시도해봐야겠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 그것이 한동대학교가 가지고

있는 의의가 아닐까. 졸업을 앞두고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국운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아니에요. 기준이 높아서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것이지.

결과를 없애기 위해서 기준을 일부러 높이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상향성 하향성 문제는 일종의 범주착오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 생각을 나는 개인적으로 하고 있고.

기독교 학문은 기본적으로는 참여적으로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관찰자로써 얘기하기 시작하면

상당히 어려워진다라고 생각합니다.

학생 3 03학번 박진입니다. 저는 공부를 하면서 매트릭스에 나오는 배터리 같은 인간이

되지 않고 시스템에 빨리는 인간이 아니라 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학점에 구애받지 않고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과연 이 학교에서 그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학점에서 자유롭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은 과목이 일단 없었습니다. 철학,

문학, 역사를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다양하게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과연 내가

여기서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다른 학교를 가야겠다라고 생각했을 때, 그 때 선생님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과연 선생님들께서는 여기 계시고 무언가를 하고 계시는데, 어떤 것을 바라보고

계시는지. 제가 올해 들어서 인문 고전 읽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공부라도 좀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2학기 째 진행을 하고 있는데. 다들 학점, 시험이 눈에 보이면 점점 사라져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이 학교에서 학점 말고 진짜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있을까하는 윤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런 고민도 들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그래서 결국, 선생님들께서 이 학교를

통해서 바라보시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 가시지 않고, 떠난 교수님들도 많이 계신데,

저희와 함께 계시는 이유를 졸업하기 전에 좀 듣고 싶습니다.

류대영 한동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희망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바깥에서 오라 그럴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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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별로 큰 관심을 안가졌는데, 이제 늙어서 갈 수 없게 되니까 한동의 실체를 알게되고 학생들하고

똑같은 입장이죠 선생들도. 그래서 대책이 없는 상황.

윤상헌 학부 때는 어딜 가도 학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고. 근데 박진 형제가

얘기하는 그게 어떤 것인지는 느껴져요. 선생들도 요즘 고전을 읽고 있어요. 논어를. 저는

불가능하다고 얘기한 적은 없어요. 근데 그렇게 쉬울거라고 생각도 안하고. 저는 언어학을 했는데,

촘스키를 보면 28년 생이신데, 제가 제작년에 뵜을 때도 여전히 정정하세요. 그 사람의 신학적, 철학적,

사상적 포지션에 100% 동의하지 않더라도 통합을 이루어가는, 그건 그가 일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위압감에 의해서 받아들이는 표현이 아니라 엄밀히 들여다보면 그 걸음에 일관성이 있어요. 동기와

내용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우리가 통합을 얘기할 때 그 부분에 대한 좀 긍정을 꿈꾸지

않으면 못해요. 긍정을 꿈꿔도 안되는건데.

제가 한동을 떠나지 않는 이유, 거기에 이국운도 있고, 류대영도 있고, 김준형, 다 내가

꿈에서도 보면 기쁜 사람들이에요. 제가 한동에 있는 이유는 그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이에요. 간다고

그러고 안가는 사람들 있어요. 아버지가 밭에 가서 일하라고 했는데, 알았다고 해놓고 안가고 카바레

가는 놈이 있고, 근데 안 간다고 그러고 투덜대고 가는 사람이 있다고. 결국은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얼마나 멋있게 하느냐, 그게 중요한 거지. 어려운 것 같다, 어떤 사람은 힘들다, 손봉호 박사님 같은

경우는 안될거다 이런 얘기 하시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실제로 해내고 있다. 그 책과 글을

보면. 실존적으로 고백하는.

한동을 떠나지 않는 두번째는 제가 하나님 앞에 약속의 말씀을 받았어요. 이게 위험한

말이지 이게. 착각 아니냐, 너나 잘하세요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저는 정말 예레미야 1장 말씀 받고,

아이라 하지 말고. 예레미야 1장 말씀이 지금도 그래요. 하나님 절 이곳에 보내셨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이곳에 와서 그 가능성을 보는, 저는 아주 문여리 같은 사람인데, 마치 신랑의 친구가 신랑을

보면서 기뻐하듯이, 저도 그게 자극이 돼서 애를 낳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옥동자를 낳을 것

같은, 내 사랑하는 선배들, 후배들이 있어요. 솔직히 한동에 있으면서 참 좋아하는게, 이 양반들하고

밥 먹고 노닥거리고 바뻐서 안 놀아주고 하는데, 굉장히 내가 좋다고. 그러니까 내가 기댈 수가

있어요. 의논할 수 있고. 나는 왜 안가냐. 밖에는 이런 친구가 없어요. 대학 때부터 같이 있던

친구들이 미국 가서 7년 귀양살이 하고오고. 포항에서 장기곶 바라보면서 귀양살이 하고 있고. 그

친구들 만날 수도 없다고 내가. 이미 같이 일을 안 한지 오래됐기 때문에 마음으로야 불알친구지. 왜

여기 있냐, 즐거워서. 이 분들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워요. 그리고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 지금 이 역사

공간, 문화 공간, 우리 겨레가 처한, 한국 교회가 처한, 우리 공동체가 점유하고 있는 역사 문화

공간에서 어떤 모델이 유용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 머물러 있다 라고 얘기를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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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77

이국운 요새 들어서 갑자기 그런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방에 와서 “왜 안가세요?” 이러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제가 정말 거기다가 대고 하고 싶은 답은 이거에요. “갔으면 좋겠냐” 그냥

해보는 말이고요. 저는 그냥 기도해요. 늘 기도해요. 하나님, 언제까지 있어야 될까요. 근데 아직은

하나님이 있어, 뭐 그거 가지고. 있어. 괜찮아. 그러세요. 그래서 그렇고요. 학자로써는 저는 한동에서

공부가 잘 되요. 여기서 오히려 공부가 잘되고요, 제 원래 계획에 비해 제 집필 스케줄이 5년 정도

늦었어요. 그런데 밖에 있었으면 제 욕심으로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5년 늦어지는 동안

제가 많이 배웠어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많이 배우는데 제일 큰 힘은 여러분들이에요. 내 강의를,

들어주는 사람들, 나한테 강의 듣는 사람들 대게 아는데, 1-2학년 아이들은 대게 내가 하는 강의가

표준적인 줄 알아요. 근데 3-4학년들 사법시험 공부를 하다가 오면 내가 얼마나 이례적인 헌법강의를

하고 있는지 알게 돼요. 대한민국에 어느 학교에 가도 이런 식으로 헌법 강의를 하면 짤려요.

학생들이 들어주질 않아요. 근데 여기는 제 강의를 들어줘요. 그리고 헌법 수업 시작할 때 늘 실험을

하는데, 다른 학교에서 그런 것을 하면 당장 게시판에 올라가고, 법대 이상한 교수 하나 왔다, 그럴

거에요. 제가 어디 딴 데로 간다면 로스쿨로 가겠죠. 제가 헌법강의 그렇게 하면 그 다음날로 소송

들어올 거에요.

저는 여기서 공부가 잘되요. 여러분들 때문이에요. 이 이점을 놓고 싶지 않아요. 학자로써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뭘로 날 심판하실지 뻔해요. 내가 쓴 논문, 내가 쓴 책, 내가 했던 생각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말이 되게 내가 설명할 수 있다, 내 수업에서는 그걸 진리에 대한 고백이라고

하는데, 그것 가지고 심판 받는 거에요. 하나님께 내가 그 계산을 헤아림을 받을 때 여기 지금 있는

것이 나로써는 더 장사가 잘되요. 만약에 그게 아니면 전 여러분들이 잡고 선배님이 잡고 그래도 별로

관심 없어요. 학자로써 제 본질과 관련되는 문제기 때문에. 학교에 있다가 옮겨가신 많은 교수님들

중에 저는 조금 유보가 있어요. 학자가 체무감에 의해서 우리를 길러주는 한국교회에 대한 다음세대에

대한 체무감에 의해서,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체무감에 의해서, 어떤 분은 33년 교수생활 할건데

3년 정도 여기서 봉사하고 간다, 그런 분도 있어요. 저는 그건 하나님이 별로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의무복무 시키는 분이 아니에요. 여기서 공부가 잘되면 여기 있는 것이고, 공부가

안되면 옮기는 것이다. 그 기준으로 옮겨가시는 분들은 제가 존경합니다. 근데 그렇지 않고 다른

기준으로 옮겨가신 분들은, 글쎄요 공부가 잘 안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기독교자 붙은 거 뭐 이런거

붙은 거 다시는 안한다 이런 소리하는 사람들은 공부가 잘 안되고 있다는 표시에요. 내가 만나서 당신

공부 잘 안되는 것 같은데 다시 오라고. 그렇게 합니다.

학생 4 09학번 이주형 입니다. 류대영 교수님께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일단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대학교가 뭐하는데인지도 잘 모르고 그러니까 남들 다 와서 따라 온건데, 어쩌다 보니까

한동대에 왔고. 일학년 이학기 때 류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아 이런게 대학교 공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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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보다 하고 느낌을 받았는데, 처음으로 소설작품, 그러니까 객관식에서 처음으로 벗어나는 경험을 하고,

앞에서 한 명이 말하고 듣는 게 아니라 동그랗게 앉아서 토론하는 수업이었는데, 문학과 역사라고,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안들어서 폐강된 걸로 알고 있고요. 근데 그렇게 하면서 참 좋았고 더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요.

교수님도 말씀하셨듯이, 연구하려고 하시는 분들을 대우하지 않고 학생들도 바라지 않고,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도 느끼고요. 교수님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계신데, 저는

우연히 그 수업을 들어서 대학이 이런 거구나 아주 조금 정말 조금 맛을 본 건데, 아직 그러지 않은

학생들, 대학이 뭔지, 대학에서 어떻게 해야되는지 방향성을 잡지 못한 학생들, 고등학교 갓 졸업한,

한국 고등학교 교육이 잘되어있지 않아서, 그래서 그 학생들에게. 지금 여기 온 사람들도

27명이거든요. 콜로키움 때도 보는 사람들이 오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 문제의식을 갖고 계신

분께서 공적으로 이야기 해주실수는 없는지. 우리 학교가 이런 방향으로 가면 안된다, 그런 걸

신문사에 글을 써주신 다든지, 뭐가 됐든지 간에, 장으로 끌어주실 수는 없는지.. 공론의 장으로

올려주실 순 없는지 그게 좀 궁금합니다.

학생 5 전민규 입니다. 역사와 하나님 앞에 바로 선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류대영 첫번째 질문은, 글쎄요 두 가지일 텐데. 99년도에 왔으니까 올 해가 12년 차인데,

그동안에 찍소리 안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이런 저런 방식으로 얘기를 했을텐데, 지금와서는 그런

식의 공론화라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이게 아마

저의 성품하고 관계된 문제인데, 저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집단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요. 한동대학

학생들이라고 해서 추상적인 한동 대학 학생들에게 큰 관심이 없어요. 제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

만나게 되는 학생들이니까 그런 정도나 관심이 있는 것이지. 한동대학 학생들 3천 몇백명에 대한

책임감 이라던지 내가 내 불편함을 감수해서 뭔가를 하면서까지 뭔가를 하는 의무감 필요성을 잘 못

느끼죠. 질문이 그런 것을 할 의사가 있느냐, 없다. 없는데 이유를 설명한 것이죠 먼저. 그 다음에 두

번째 질문은, 제가 책에다가 써 놓은 것인데, 잘못 썼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쓴 것 같은데, 요새

같으면 안 썼을 말인데, 너무 큰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학생 6 09학번 우홍섭입니다. 1학년 2학기 때 류대영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 알게 됐고요. 그리고 올해 들어서 이국운 교수님, 류대영 교수님, 그리고 이번 학기

윤상헌 교수님 수업을 듣는데 제가 한동에서 얻은 제일 큰 소득이 교수님들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공부하시면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신 그 삶이 되게 예수님을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이고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가 직접적으로 듣진 않았지만 수업에 가서

들으면서 계속 매일 그게 저한테 큰 그것을 주신 것 같아서요.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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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79

드리고 싶었고요. 제가 질문하고 싶었던 것은 제가 군대를 가려고 하는데, 복학해서도 교수님들의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그것이 질문이었는데, 류대영 교수님 답변 듣고 마음에 안심이 생겨서.

학생 7 02학번 안신열입니다. 저는 02년도에 입학을 했다가 장기휴학을 해서 중퇴가

되어있는 상황인데요. 제가 학교 다니고 있는 동안 참 많이 몰랐고요. 기회를 못 잡아서 앞에 계신

선생님들 수업을 들었던 것이 예전에 양희송 교수님 기독교 세계관 수업 한번 들었고요.

한가지는 기독교인 비율이 증가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어요.예전에 한동대가 가지고 있던 기독교 이외의 것들. 영어 수업이라던가 컴퓨터 이런 부분에

있어서 그런 메리트가 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 비기독교인 학생들에게도 이점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것들을 다른 서울에 있는 학교들이 차용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비기독인 임에도

불구하고 포항에 온다는 이점이 없기 때문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었고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것은, 교수님이 좀 더 공론화 시켜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학생들이 좀 더 주체가 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가

학교에 있었을 때는 다큐멘터리 상영을 한다던가 뭐, 강연회를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모으고자 하는 작업들을 크게는 아니지만 몇 번 해봤었는데. 잘 모이지 않잖아요. 도대체 어떤 전략을

내세워야 하는지. 결국 지금 한동에 온다고 하는 학생들은 그냥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정말 신앙과

관련 없이 하나의 종교 안에서 비교적 입학하기 좋은 이런 학교로써 오는 것 아닌가 싶고. 오로지

자본주의 논리 밖에는 없는 학생들을 어떻게 설득을 시키고 어떻게 기회를 보여줄 것인가 하는

고민들이 아직까지도 어떤 답을 내야 할지를 잘 모르겠고. 그런 전략들에 대해서 선생님들께 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저는 이미 학교와 좀 멀어져 있는 상황이어서 이런 이야기는 다른

분들하고도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고.

저는 지금 개인적으로는 학원선생을 하고 있는데, 사실 이게 더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학원선생이 입시학원 선생이고, 학생들의 경쟁을 더 강화시키는 교육일 수 밖에 없어서, 저

개인적으로도 그 상황에서 제 신앙과 타협이 아니라 통합을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계속

부딪치고 있는 상황인데, 그건 혼자서 분투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고 사실은 좀 한편 오늘 교수님들

들어보면서 제가 받아들이고 적용시켜볼만한 것도 많아서 오늘 자리가 좋았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실은 선생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략들을 좀 가르쳐주셨으면 하는 바람들이고 여기

모인 많은 분들에게 함께 그 운동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런 움직임들에 동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제언을 하고 싶고요.

이국운 돌아가시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은 후배들이라 생각하시고 한 말씀씩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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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윤상헌 한동대학교 오면서 가졌던 생각은 전면전이 가능하겠다, 지금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닌데, 다시 산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 아닌가. 게릴라. 여러분들 속에 내 앞에서 울었던 그 형제를

닮은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참 기뻐요. 내가 대학 때보다 말하는 거나 생각하는게 더 품격이 있어.

외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말인데, 그런 형제를 보면서 소망을 담아 보는 것이죠.

오늘은 제가 더 많이 생각하고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개인의 어려움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더 확장해서 한동, 기독학문운동, 학문과 신앙의 관계지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여전히 내

존재의 한 귀퉁이에 놓여져 있구나. 놓아서는 안되겠구나. 놓을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그래서

고민이에요. 전면전을 가능하게 하는 정규군으로 한동이 섰으면 하는 마음.

한 마디로 한동에 여러가지 많은 문제가 있는데 결국은 우리 미성숙한 신앙의 문제다. 결국

내 욕망과 하나님의 뜻을 헷갈리는 것은 결국 우리의 욕망에 붙잡혀서 학문과 신앙이라는 것을

정치적인 어젠다로 쓰고 있는 것이지, 그것의 속살을 본적이 없다. 그저 간판만 보고. 학문과

신앙이라고 하는 간판을 내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속살을 그것을 내려놓을 순 없을 것이다. 계속

다가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 포기하지 말자, 그런 얘기를 하고 싶네요.

류대영 저는 학생들에게 하는 얘기가 늘 비슷하기 때문에 들은 학생들은 지겨울 텐데. 몇 년

전부터는 과거에 의미 부여했던 것만큼 의미를 찾지 못하겠고. 결국은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고. 제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에 대학을 다녔는데, 그 때 sfc를

하면서, 내가 sfc를 한 것이 지금까지 도움이 됐죠. 신학적으로 등등에 대해서 그 세계로부터 많이

멀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sfc를 하면서 얻은 게 무엇 이었을까. 사람을 만난 거구나.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래도 어디 가서 사기 안치고 도둑질 안하고 나름대로 바르게 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사는 게 왜 그럴까. 결국은 그 때 만났던 선생님들 때문이구나. 그 때 손봉호

선생님을 만났고, 이만열 선생님을 만났고. 그런 어른들을 만났기 때문에 이 만큼이라도 부담감을

가지고 사는구나 하는 부담감을 가지고 살죠. 결국은 사람이 중요한 것이고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누구의 근처에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그래서 함부로 사람을 사귀는 것이 아니고.

대학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좋은 선생을 만나고, 좋은 친구 선후배를 만나는 것이니까.

그래서 거목의 곁에 가 있어야 키가 크는 것이니까, 거목들에 곁에 가있어야 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재밌는게, 거목은 대부분 죽었어요. 그러니까 결국 책을 읽을 수 밖에 없고.

거목들을 만나고 곁에서 자기도 모르게 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그런 노력들을 많이 하시기를

바라고. 주위에 있는 좋은 선생들, 좋은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착하게 살게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죠. 저 같은 신통치 않은 사람이니까 근처에 올 필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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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81

좋은 선생들이 많이 계시니까 그런 분들 곁에서 자기도 모르게 키가 크는 것이니까. 유감스러운 것은

학교에 큰 나무들이 많아야 할텐데, 우리 학교의 특성상 거목들이 서있기가 참 힘든 학교다 그것은

학교가 아직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다른 이유들도 있으니까 결국은 책을 많이 읽기를 권합니다.

Session 2

이국운 저는 양희송 형제보다 세살 많지만 깊은 존경심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다니던 교회는 달랐지만 희송이 형제 또래들이 나에겐 조원들이었어요. 대학에 있는게, 있어

보니까 덜 치열하게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닌 건 아니더군요. 특별히 올해를 거치면서 ‘이것이

정상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희송 형제, 대학 졸업한 다음에 한번도 제대로 월급 받는 직장에

몸을 담지 않고 대학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감격하고 꿈꾸고 그런 것들을 아주 치열하고

현실적으로 아까 이야기 했는데, ‘이상으로의 도피’와 같은 프란시스 쉐퍼의 책을 읽으며 처음에 많이

배웠습니다. 그것을 어떤 면에서는 비판하고 진상을 알고 보통 일이 아닌. 그러나 쉐퍼가 붙잡았던

꿈은 더 구체적으로 붙잡는. 여기서 고백해도 될 지 모르겠는데, 내가 희송 형제 참 사랑합니다.

황병구라고 또 있습니다. 그 사람들 다 충분히 체제 속에 들어와서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다하시고 월급 제대로 못 받는 그런 직장에 일부러 가서 쓰러져 가는 복음과 상황 편집장을 5년

가까이 하시고, 사실 청어람아카데미도 지금 잘 되고 있습니다만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양희송이 7년 동안 한동대 오는 이유가 나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청중 웃음) 희송

형제를 부른 이유. 여러분이 이제 조금 있으면 들어가게 될 ‘하나님 나라를 위한 투쟁의 현장’이 지금

어떤 상황인가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부분 좀 비관적인 느낌들이 지배적인 것 같은데, 우리 희송

형제 성격상 비관적인 이야기만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희송 형제가 운영하는 복음주의 클럽.

세달쯤 전에 한국 교회가 있는 것 없는 것에 대해 형제가 글을 써서 감동을 주었는데 최근에는

봉은사 땅밟기에 대하여 ‘잘못했다. 미안하다. 용서해달라’는 글을 써서 우리 교회 다니는

동료들에게는 매를 맞고. 교회가 맞아야 할 매는 대신 맞고 있습니다. 양선생님한테 여러분들이

파송이 됬든 전입이 됬든 편입이 되든 가게 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투쟁의 일선에 어떤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지. 추상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지금부터 할 이유가 아주 구체적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양희송 반갑습니다. 소개를 진지하게 해주셔서. 저도 서울에서 소개할 때는 이렇게 하니까.

소개하시면서 힘주어서 이야기 하신 것이 졸업 이후로 변변하게 돈 받는 직장 한번도 간 적이 없다고

이야기 하셨는데요. 사람 인생이라는 게 굉장히 다양한 길이 있습니다. 제 강의 들은 친구도 있겠지만

제 히스토리는 모를 테니 간단히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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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고향은 경주이며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 외지 상황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처음 나간 교회가 개척한 지 1년이 되지 않았던 온누리 교회입니다. 처음에 나는

우리 교회가 작은 개척 교회인 줄 알았어요. 작은 아파트를 개조해서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습니다. 내가 나간 지 1년이 지나서 본당이 완성 되었습니다. 지금은 크게 두 채가 있지만 원래

있던 한 덩어리가 그것이고요. 원래 기독교 집안은 아니었고 국민학교 친구가 나를 전도하려고 무지

애를 썼고 억지로 교회를 몇 번 나간 적 있습니다. 인생이 허무하더라 해서 중2때 제 발로 걸어

나갔습니다. 찬바람 부는 가을 날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고. ‘일단 나간 교회는 성실하게 나가자’는

생각으로 나간 지 두 달 만에 임원이 되었습니다. 성실하고 열심히 하니까 교회에서 임원을 시켜서

서기를 했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그래서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었고, 중3 때 여름방학 수련회 때

회심하는 체험을 하여 그 다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일 날은 공부를 안하고 낮

예배, 저녁 예배 참석하고 새벽교회도 열심히 하고 노트 필기도 열심히 했습니다. 두꺼운 노트에 설교

들을 때마다 노트를 해서 2, 3년만 지나니까 목사님이 어떤 설교를 할지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갔기 때문에 온누리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해에 경배와 찬양

운동이 시작되었죠. 온누리 교회에 10년을 다녔는데 감사한 점은 한국 교회의 경배와 찬양 운동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두란노도 같이 있어서 큐티니 제자 훈련이니 역시 막 시작 될

때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게 참 좋았습니다. 만들어진 일보다는 만드는 일을 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내가 이러저러한 영역들을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게

했습니다. 교회는 온누리 교회를 다니고 두란노 경배와 찬양의 핵심으로 열심히 했는데 기독 노래

운동, 뜨인돌이라고 ‘맑은 물소리’라고 알려진 찬양집 있죠. 91년부터 92년간 1년 간 재미있게

활동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서울대 들어가서 전자공학을 전공을 하면 당연히 그쪽 분야로 진로를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내가 대학에 가서 맞닥뜨린 신앙

운동의 임팩트는 컸고 그래도 진로를 어디로 갈 것인지는 쉽지가 않았는데요.

학교에서 수업 때 교수님이 그날 일이 있어서 박사 과정 계신 분이 대신 들어왔습니다.

수업은 안하고 파란만장한 자기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굉장히 재미있었는데, 이

양반이 대학을 다닐 때 처음으로 서울대 영화 동아리 ‘얄라셩’에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유명한

감독들이 여럿 나왔다고 합니다. 장선우 감독. 우리나라 영화의 르네상스가 일어나던 초반에 상당히

두각을 많이 나타냈다고 합니다. 자기가 영화 동아리도 만들었고, 또 뭐도 했고 한참 그거 하다가

대학원 가서 공부하다가 또 하고 있는데, 박사과정 10년차인데 교수님이 학위를 주지 않는다고.

이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전혀 맥락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아마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너무 심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캐주얼하게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한가지에 푹 빠져서 하고, 그러다 돈도 벌다가 그게 아니다 싶으면 학교에서 공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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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83

하고 말이지요. 실제로 우리 전자과가, 요즘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전자과가 공대 중에서

제일 높았습니다. 자연대는 물리학과가 제일 높았고요. 이 친구들이 학창 생활을 하는 것을 보니까

의외의 케이스가 굉장히 많이 나왔습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사시 공부하겠다고 한 학생도 있고

영화음악 하겠다고 나간 학생도 있었습니다. 영화 산업이 활성 되었을 때도 아닌데 영화 하겠다고

나갔습니다. 이 중 제일 파격이 사시 공부한 학생이었어요. 이 친구가 사시 공부한 이유는 자기

동생이 외시에 되었기 때문이었어요. 굉장히 제수 없지 않나요? (청중 웃음) 이 친구가 그런데

되었어요. 현재 부산 지검으로 나오더군요.

하여튼 이러한 분위기에 있으면서, 외부적으로는 우리의 인생이 선택한 전공이나 진로를

좁게 보는데, 우리가 다 알고 대학에 오는 게 아니지 않나요? 옛날에는 전자과에서 뭐 하는 데 인지도

모르고 갔습니다. 요즘은 어느 과에서 무엇을 하는지 예상하고 가는데, 그 때는 모르고 갔어요. 무기

재료라 해서 무기를 만드는 줄 알고 갔었어요. (청중 웃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 일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때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던 일이 신앙 운동이었고, 내가 느꼈던 복음주의 운동 중 결핍이 있었습니다. ‘이게 다인가’

내가 경험하는 것이 왠지 현재에 못 미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내가 이것저것 손대게 된

이유가 된 것 같습니다. 돈은 좀 없었지만 굶을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최소한

서바이벌을 해가면서 꾸준히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힘들기 살았습니다. 특별한 느낌은

없습니다. 그런데 남들은 힘들게 살았다고 하니 부끄럽습니다.

재미를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남들이 해놓은 일보다는 백지에다 그리는 일을 추구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매번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예전에는 뭔가 시작해서 3년 정도 하면 내가 손을 때면

다른 이가 맡아서 하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예로 서울대에서 했던 기독인 연합은 시작을 해서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올해가 내년이 20주년입니다. 나는 원년 멤버고 어느새 복음주의 운동을 한

원로였습니다. 복음주의 잡지 같은 경우는 받을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았고. 그렇게 쭉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호흡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3년 하면 에너지를 쏟아서 성과를 보고

마무리를 해서 넘겨주고 그러고 쉬고 그랬는데, 개인으로 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가장

큰 자산은 서울대 기독교 연합 할 때 만났던 친구들인데. 이국운 교수님을 만났던 것도 그 맥락입니다.

이국운 교수님을 학창시절에 직접 만날 틈은 없었습니다. 사랑의 교회 사람들이 유독 나만 보면 네가

보면 좋아할 사람이 있다고 해서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누구이길래 하는 마음이 있었고요.

네스돈 교회와 서울에 꽤 규모가 있고 전통이 있는 교회 리더들이 기연 하면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큰 경험이었습니다. 나도 우리 마을에서는 잘난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만나니까, 다른 공동체의 사람을 만나니까, 겸손해지며 배우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서로 존경하며 그렇게 일했습니다. 그 네트워크를 흔들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던 것. 물론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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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간 사람도 있고 취업한 사람도 있긴 있는데 복음주의 운동 자체에 투신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 외에

황병구 선생도 있었고 두루두루 있었습니다. 나는 말뚝박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있는 한

왔다갔다 하며 도왔습니다. 나는 대학 1학 년 때부터 운동을 시작한 셈입니다.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잡지 할 때에는 구태여 해외 취재 등을 했습니다.

그리고 99년부터 2002년까지 신학 공부를 영국에서 했습니다. 국내 신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너무 목회에 초점을 맞출 것 같아서 내 관심을 복음주의 운동에 그래서 영국에 관심을 가져서 3년

반동안 아주 재미있게 공부를 했고 거기서 학사와 석사까지 마쳤는데 체력이 딸렸고 3년 이상 한국을

비우면 돌아가는 감각을 유치하지 못할 것 같아서 박사 따고 오면 할 일이 교수직 밖에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박사 학위를 받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내가 한 일들이 교수직으로 수렴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직 운동가로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음과 상황 편집장을 하다가

뉴스엔조이 통합시켜 1년간 일했다가 청어람아카데미를 운영중입니다.

다른 일들에 비에 상당히 롱 텀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도 나이를 점점 먹어가고 있고

영향력이라는 것이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울대에서 기독인 연합을 만든

것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잘 하든 못 하든 죽이 되는 밥이 되는 그냥 놔둬야 하는데 가끔

선배로서 개입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그 시행착오를 스스로 하는 것이 그 시대의 축적된

역량인데 자꾸 이전 세대가 와서 개입하면 곤란합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한국의 신앙운동을 할

때 선배나 어른들이 후배들을 빨리빨리 교정해주고 싶다. 그들이 잘 짚어내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들이 후배를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늘 후배를 선배보다 못한 존재로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좀 아쉽더라도 선배들이 좀 자제해야 합니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니들

일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최근 청어람에서 하는 것이 있습니다. 20대 이슈가 요즘 많이 나옵니다. 88만원 세대가

대표적인데, 최근에 나온 책을. 우석훈 박사가 88만원을 써서 분위기를 띄우긴 했지만 20대를 너무

불쌍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20대 토크 앙팡 떼리블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매주 20대 강사가 옵니다. 자기 책 한 권 정도 낸 학생들을 부른다. 한동대 공모전의 여왕 박신영도

한 예입니다. 스펙트럼을 넓게 해서 운동한 친구도 부르고 박신영 같은 친구도 부릅니다. 내가 사회도

보고, 그런데 몇 가지 공통적으로 흥미롭게 드러나는 것이 나옵니다. 대학 공부가 이들에게 별로 큰

영향을 준 것 같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활동이나 이들이 쓴 글이 대학의 커리큘럼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입니다. 특별한 사람만 모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름의 성공한 이들이라

볼 수 있는 20대들에게 대학에서 배운게 뭐냐고 물었을 때 ‘없는 것 같다’라고 답합니다. 조금 아쉬운

일입니다. 이것을 대학의 실패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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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85

자기 또래 중에서 나름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들에게 대학 교육이 실패했다는 진단이 나올 수

있지만. 또 뒤집어 보면 대학이 언제나 그런 공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70, 80년대

대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에서 막 그랬다고 했지만 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자기들끼리 이것저것 그랬단

말이에요. 물론 대학이 깊게 공부하려면 대학이 중요합니다. 어설프게 공부하면 안되는 것이 있어요.

류대영 교수님 같은 분이 자기는 공부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는데. 학자를 하는 데에는 그 요구

조건이 있습니다. 역사학 분야에서 글을 쓴다고 해서 다 학자가 아닙니다. 오리지널 소스에서 자기

해석을 하고 읽어 내는 능력은 그냥 길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네는 제대로 된 제도권 교육

만이 아카데믹한 성과를 내주는 트레이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대학이 좋은 역할을

합니다. 모든 일이 대학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대학 시절을 당사자로 살아내는 것. 누가 와서

해결해주지 않고 내가 필요하면 책 찾아 읽고, 내가 필요하면 찾아가서 만나고 스스로 글 쓰고,

괴발세발 읽어가며 비판하고, 그러면서 문학도 나오는 거고 노래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강의실에서 알려주지 않은 대학생활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 이런 것이 큽니다. 내가 강의실에서

만난 교수님들과의 만남에서 나오는 임팩트보다, 이런 것들이 훨씬 임팩트가 컸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지금의 대학 특별히 한동대의 상황을 볼 경우에는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잘 살펴주는

것이 좋긴 한데, 이것이 과잉 보호가 되기 쉽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학생들이 당사자로 살아가지

않고 대리인들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성경도 다 해석해주고, 모르는 것도 다 풀어주고.

여러분이 자기주도적 학습 습관이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3학기 째 학생들이 글을 써서 내는 것을

보면 여러분 호흡이 짧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선호하는 문체가 있는데, 이것이

어디서 왔나 생각해보면, 그것이 공부하는 방식, 요점정리, 요약에 너무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자기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책을 읽어 낸 다음 지지고 볶고 하는 방식보다, 잘 요약정리 되어서 책을 읽어

보지 않고서 잘 요약 할 수 있는, 이런 소스들을 압도적으로 공급 받는 상황에서. 이러면 책을 못

읽습니다. 여러분이 갈수록 책을 못 읽는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그냥 교양으로 주던 책을 지금은 너무

못 읽습니다. 제대로 된 훈련들을 못 접했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누가 나서서 이걸 해결해주려고 하지 않는데, 한동대는 선배도 그렇고 교수도 그렇고

해결해 주려고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남들이 고통받는 것을 못 참는 것처럼 그 사람이 자기 고민이

영글기 전에 문제를 다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번에 누가 도와주기 전에는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외롭고 쓸쓸하고 그렇긴 합니다. 우린 요즘 당사자운동 하는 것에 사회적으로 눈을

뜬다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되면 여러분이 사회 진출할 때 갈등이나 모순이나

이런 것을 정면으로 맞받아 치기 힘들게 됩니다. 조금 더 냉정하게 상황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일들 그

다음에 어떤 상황에 대한 비판이나 토론에 낯설어 하거나 기에 눌리게 됩니다. 이러한 프로세스

자체에 인게이지 하기 전에 멈춰버리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서 보호 받을 환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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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그렇게 되면 내가 전진이 되기 보다는, 확보한 거점 안에서 생활이 대충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위 서브 컬쳐, 하위 문화입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크리스천이 소수일 경우 그들이

원튼 원치 않든 사회의 주류 문화에 노출이 되서 이것을 받을 거냐 말거냐를 평생 씨름하며 살게

됩니다. 한국의 경우는 술 문제, 제사 문제, 회식 문화 등등, 여러가지 이것들에 부대끼면서 크리스천

라이프라는 것이 형성되기도 하며 표현되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 기독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내가 경주에서 신앙 생활을 할 때는, 일반 문화와 마주치면서 내 신앙을 드러내야 했다면,

서울에 가니까 문화가 너무 잘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거기서 태어나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죽는것 까지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다 가능해 보였습니다. 경주에서는 기독교가 아닌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이 당연한 그래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면, 서울에 와보니까 밖에 나가지 않고

사는 것이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태어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는 것 까지. 굳이 힘들게

외부와 대화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성취를 한 것 같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공간을 확보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인가 속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안에서 나름의 언어를 쓰고

나름의 문화가 있고 그것을 잘 맞추어 가면 되는데. ‘이게 다인가?; 그래서 쉐퍼의 이야기를 한건데,

쉐퍼만 읽어도 충분한 세상이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비판도 하고, 대안도 되는 데, 그 서클 안에서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대학 때 이 안에서 하니님의 진리가 우리 안에서 통하면 저 밖에 나가서도

통해야 되는 거 아닌가 했다가, 들고 나갔다가 들입다 얻어 맞고 깨지고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80년대 서울대에서 어떤 일이 있었냐면 8년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대학이 있었습니다.

정문에 사복경찰들이 죽 들어서 있었다. 어떤 날은 교문에서 시위를 하기도 해서 교문에서 나와

가지고 대학교 친구들과 전철역을 내려가는데 진압복을 입고 있는 애가 날 부르더군요. 잘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이 친구는 완전 군장하고 지나가는 걸 보고 반갑다고 이야기를 한 건데

뭐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몸조심해라, 그러면서 인사를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 때 서울대에서 소위

예수 대행진이라는 것을 했었습니다. 서울대 캠퍼스 굉장히 큽니다. 순환도로가 있고 그걸 하기

위해서 서울대 도서관하고 본관 사이에 아크로라고 하는, 계단이 있는 공간에서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다가 총학에서 집회 해야 한다고 해서 쫓겨났습니다. 쫙 밀려나고, 그날 아마 문익환 목사님이

와서 했던 것 같고, 쫓겨난 학생들은 순환도로에서 쫓겨나서 하는데, 그 때 학생 하나가 분신을 하고

투신 했습니다. 학교는 난리가 나고 학생들이 집회 하는데 현장에서 불 붙이고 뛰어 내렸으니까

학생들은 난리가 났고, 전혀 모르고 행진을 하고 있던 크리스천 학생들한테 그 상황이 전해지면서

패닉 상황이 되는 것이죠. 이게 뭔가. 이것은 저도 입학하기 1년전에 벌어진 상황이라 잘 모르는

것이지만.

이국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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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87

양희송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찬양하고 그걸 하는데, 우리 서클에서는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 안에서 진리면 밖에 내놔도 진리여야 맞는데. 광장에서 밀려나고 외곽을

도는데 이쪽에서는 전혀 다른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 모든 사건에 바깥으로 괄호 쳐져서 맺혀진

존재들. 이 상황의 전개에는 아무런 연결 고리를 가지지 못하니. 그니까 우리끼리 자위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된 것입니다. 정신 승리나 마찬가지인 거죠.

우리가 한 것이 정신승리가 아닌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대가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서울대에 있던 크리스천들에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크리스천들에게

입증 책임이 있다고 느낀 것입니다. 이것이 뻥이 아니고 정신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을 해봐라. 이

말은 우리가 캠퍼스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한다는 것이 실제로 한국 사회에 이런 정황 속에서

세상의 변화를 의미 있게 만들어 내고, 또 그것이 요구하는, 현실이 요구하는 대가를 크리스천들이

대가를 치르고. 아닌 사람들이 봐도 사람들이 진지하게 헌신하는구나. 그런데 니들은 왜 사소한

일에만 분노하고 대형 사건에서는 항상 바깥에 있고, 끝나고 나면 안에서 찬양하고. 87년도에는 나도

그런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서울 시내에서는 항상 시위가 많았습니다. 나는 운동조직에는 없었는데,

나중에 중간 치고 기말을 치는데, 기말 시험 모두 보이콧이래요. 그 때 6월 항쟁이라 해서 심각

했거든요. 광장에 모이면 만 명 만 오천씩 모이던 시절입니다.

나갔다가 목요일마다 경배와 찬양 했는데요, 시위에 나가서 뒤에만 있다가 온 것인데, 그러고

나서 찬양 집회 시간이기 때문에 교회에 왔습니다. 교회에 와서 뒤에 앉아 있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랬습니다. 앞에서는 ‘예수님 찬양, 할렐루야’ 이러고 있는데, 신앙고백으로는 나도 그것을 할

수 있는데 내가 서 있는 이 상황에서. 여기서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할 수 있으면 명동 앞에서도

할 수 있어야지. 전경들 대치하고 있는 그 앞에서도 통성기도 할 수 있어야지. 왜 우리는 언제나

현장에서부터 격리된 이 안에서만 나라와 민족 걱정하고 하나님 영광 드러내달라고 울부짖고 기쁘고

즐겁게 찬양하고 그러냐는 말이지요. 일관성을 확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진리면 저기서도 진리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심각한 일관성의 괴리-이것이 진리로

통용되는 하위문화, 서브컬쳐가 있고, 그 바깥에 나가지 않은 대가로 확보한 이 안전한 공간에서 우린

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막 꿈도 꿨습니다. 네가

신앙의 일관성. 확보된 안정된 공간에서만 발휘되는 영성 말고, 그것이 아닌 곳에서도 니가 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강박적으로 오게 되는데요. 그 때는 민주화 운동이나 사회적인 압력으로 왔지만,

한국 사회가 민주화 되면서 상당히 이런 것이 풀어졌습니다. 그런데 지성의 문제로 넘어오면 여전히

서브컬쳐 공간 내에서도 서로 ‘지적으로 탁월하십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탁월한 거면 밖에서도

이 연구 성과로 충격 받고, 그쪽 동네 패러다임이 바뀌든지 효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런게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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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것입니다.

단순히 그들이 기독교가 낯설고, 안티 기독교라서가 아니라, 솔직히 들여봐도 학문적인

엄정함이라든지 성취의 수준이 높지 않고 그 빈 구석을 레토릭으로 채우는 것을 돌려가면서 감동

받고 있다면 이것은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끼리 정신 승리는 하지만, 세상을 바꿔

가는데 완전 잉여인 것입니다. 있으나 없으나 인 것입니다. 지성의 영역이 그렇고. 교회의 존재 양식도

점점 그렇게 되는 것 같고. 나는 이것이 다르지 않은 문제라고 봅니다. 이것이 시기에 따라 양상을

달리 하지만, 우리가 우리 신앙을 하위 문화의 범주 안으로 후퇴시키고 철수 시켜놓고 우리 끼리 되는

문법을 가동시켜 놓고 우리 끼리 선수들 풀어서 샥샥 하는 것으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 하는데, 그래서

진검 승부니 이런 이야기를 한게 그렇게 대단한 거면 한번 까놓고 여기저기 승부를 걸어 입증을

받아야 할텐데 그런 거 안하더군요. 그래서 상당히 비겁한 일이라고 보았고. 그것을 위해 준비된 우리

안의 사람이나 그런 인프라가 없더군요.

청어람 아카데미를 하며 그 작업을 해야 하는데, 내 관심이 있는 작업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봐선 한국 개신교가 오래 못 버티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종교가 갑자기 없어지고

그러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니는 영향력은 급감 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가 대규모 합동

결혼식을 하지만 신문에 안나옵니다. 아무 영향력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몇만이 모여서 대회를

치르고 선언을 해도, 한국 사회에 의미 있는 뉴스가치를 못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가

그렇게 될 가능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사이즈가 유지 되고 상암에 몇만씩 모여도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통일교와 다를 바 없는. 내부적으로 의미가 있지 우리가 살아가는 넓은 맥락의 사회

속에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답이 궁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성찰의 대상, 남을 자꾸 평가하고 이렇게 하는 우리의

익숙한 잣대인데 남들을 다 죄인이라고 보고,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보고. 그런데 이것이 잘 안

먹힙니다. 그렇다면 시선을 스스로에게 돌려서 ‘뭐가 문제지?’하고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하는 데 1차적으로 필요한 것이 자아성찰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고, 어떤 사람인지. 우린 뭘

했는지 돌아보며 평가하고 정리해보는 것. 여러분도 연말 연초에는 자기를 한번 평가해 보지 않나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 객관화 시켜 볼 수도 있고요. 1차적으로 한국 개신교가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게 되면 앞으로의 전망도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지성 운동의 필요가 아주

절대적입니다. 지성으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고. 정서적으로 돌아보는 대표적 케이스는 내적

치유의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자기 연민으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 치고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처가 있어도 치유하고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상처가 모두 치유되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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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89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을 들여다 보고 자기연민에 빠져들지 말고

지적성찰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철학이 운수보고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우리를 이해하는 것과

남을 이해하는 것을 여러 각도로 보는 것이 아닌가요?

자기성찰이 이루어져야만 그래야 그걸 바탕으로 전진을 할 수 있는데, 우리 안에 그게 너무

없습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그걸 감싸고 있는 하위 문화의 언어나 관행들이 우리로 하여금 자기

성찰을 쉽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솔루션들이 그리고 나와있습니다. 이걸 하면 한방에

해결된다는 등등. 우리 안에는 늘 죄책감이 있지 않나요? 구태여 모든 상처를 해결해야 하나요?

죄책감도 그렇습니다. 구원받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죄책감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데, 얼마 전에 IVF북서부 지구인가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죄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더군요.

서강대 강영안 교수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13시간 이야기를

했습니다. 책으로서 내년쯤 나오면 좋겠는데, 이 13시간 대화 중 강교수가 한번 울었습니다. 울었는데

뭣 때문에 울었냐 하면, 산다는 것 질병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가 산다는 것은

선물이다. Gift다. 하면서 우시더군요. 철학자는 이상한 부분에서 운다더니. (청중 웃음) 우리가 고기와

채소를 먹지 않습니까. 우리가 산다는 것이 다른 생명의 죽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당연히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먹고 살기 위해 닭이나 소 잡아본 적 있는가요? 나도

키운 적이 있습니다. 병아리 이런 거 나중에 크면 잡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치킨을 즐기지만

그짓은 못하지 않습니까. 하기는 하지만 그 경험은 참 다른 종류의 경험입니다. 내가 이 짓을

해가지고 치킨을 먹는구나. 이것을 우리는 의도적으로 잊어버리고 연결을 하지 않습니다. Vegetarian

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체질의 문제보다는 정치적인 입장의 표명인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것을, 나는 못하겠다. 그런데 그런다고 해결되나요? 채소는 생명 아닌가요? 우리의 존재를 위해

수많은 생명의 죽음들이 전제가 되는 상황. 산다는 것 생명은 선물이라고 하면서 철학자가 울더군요.

비디오로 다 찍어 놨는데 (청중 웃음)

모든 것의 죄책감을 털고 사는 것이 능사인가요? 이 경우에는 오히려 적절하게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갈 때에라야 창조 생명에 대한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책임의식을 상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서나 사회 속에서나 상기 시켜야 할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삭삭 지우고

빨리 빨리 잊고 모든 상황에서 깨끗한 존재인 것처럼 하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한테 주고 싶어 하는

구원인가요? 이런 퀘스천이 붙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람들과 더불어 가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죄를 상기 시키고,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일깨우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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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우리가 지금 훈련받고 공부하고 있는 환경들이 저는 그 지점까지 학생들을 끌어내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복음 이해가 저급하면, 우리가 살아 낼 수 있는 삶도 유치합니다. 우리가 삶을

진지하게 제대로 살려 하면 복음이해가 깊어져야 하고, 그리고 우리가 그냥 듣고 그런 줄 알아왔던

것들을 되짚어 보고, 남들이 질문 하지 않는 것을 물어 보고, 전혀 우리가 기대치 못한 다른 답들을

찾아 보고, 물론 대학 교육이 모두 제공해 주지는 않지만. 어쩌면 제도권 교육이 안되는 것이. 나는

강좌를 통해 해결하려 합니다. 해결해 줄 사람을 찾아 내고, 들을 사람을 모아내고. 결과가 나오면

책으로도 내고, 영화로도 내고, 그림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도 받은 것 들은 것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데 대학 시절에는 우리가 더

깊게 그것을 현실 앞에서 준비하고 나아가야 할 것이라면, 좀 더 과감해야 할 필요가 있고. 실험 공간.

실수해도 괜찮고 오류를 저질러도 보호 받을 수 있는 장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사자 운동으로 우리의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서 확보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까 뭐 교수님들이 떠날거냐 남을거냐 그런 말씀을 했는데, 한편으로는 다양한 이야기를

솔직히 해소 좋았지만. 이게 어딘가로 떠난다고 해결된다고 해결 될 문제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느끼는 불만을 다른데 가면 해소할 것 같지만, 거기 가면 거기에도 불만은 있을 것입니다. 어디에도

유토피아가 없다면, 냉정하게 내가 서있는 지금에서 셀프 서포트하고 서바이벌하는, 나 스스로가

찾아내고 살아내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읽어야 될 책과 들어야 할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시험문제

족보 돌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학이면 밑바닥에 흘러다니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고민하는 애들은 어딘가에

음침하게 모여서 돌려가며 읽고, 그러면서 그 안에서 뭔가 이렇게, 우리는 남들이 모르는 뭔가를

고민하고 있고 남들보다는 진일보한 답을 하고 있다는 그런 공간을 확보해 보는 것. 약간 미친 짓을

좀 해야 문학도 되고 예술도 되는데 다들 좀 착한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매 학기에

서평과 에세이를 받는데. 가끔 가다가 깨는 글들을 쓰는 친구들이 있더군요. 물론 요즘에는 빈도수가

떨어져서 재미가 없던데, 어떤 해에는 상당히 깨는 글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냥 점수를 잘

줍니다. 자기생각 하는 것. 주어진 문제를 논술 연습 열심히 해서 탁탁탁 맞춰가지고 점수 받도록

쓰는 그런 스타일 말고, 좀 거칠게 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고 이렇게 자기

생각을 막 풀어가면서 써 내려가는, 물론 정리가 안되면 그냥 거칠게 되는 경우도 있고. 물론 책

읽어가며 꼼꼼하게 한 학생들은 내공이 보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다 죽은 건

아니구나. 이런 것들이 보존되고 이어지며 좋겠습니다. 두서없이 이야기를 했는데, 질문을 좀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이야기는 대충 생각나는 대로 다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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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91

학생 1 지성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것 참 좋았습니다. 나는 포항에 살면서 동네

친구들을 좀 알게 되었는데, 중학교를 중퇴하고 중국집 배달을 나가는 친구나 체육을 전공한 그런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참 놀랐었던 것이. 이들 중 4년제 대학 가는 사람들 비율이 낮은

것입니다. 누구나 대학에 간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이런 이들에게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하는 가 고민을 더 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양희송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청어람에서 20대 강사들에서 쭉 진행하면서 보니까 요즘

20대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고 내부 담론들이 잘 정돈이 되었습니다. 추천할만한 것으로는 엄기호씨가

쓴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가 있습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굉장히 처절합니다. 덕성여대와

연세대 원주 캠퍼스 학생들과 이야기하며 나누었던. 이들만이 지니고 있던 쓰라림. 그런 면에서 보면

김예슬 선언 같은 경우에는 고려대 프리미엄을 최대로 활용한, 그런 것으로, 그쪽 동네에서는 와~

하고 반응 했을지 모르지만, 엄기호씨가 정작 김예슬 선언을 덕성여대와 원주에서 이야기를 했을 때는

다들 피식피식 했다고 합니다. 누가 주목이나 하겠느냐. 처지가 다르다. 다들 풀어가는 지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내가 흥미롭게 봤던 것이, 지금 대학생, 또 한동대는 기숙사가 있어서 상황이 좀 다르지만.

서울 같은 경우에는 학생들이 주거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높습니다. 그러다보니 학생이거나 사회

생활 하는 분들이 서울 안에서 서바이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거에 대한 대안으로 나오는 것이 소위

빈집 운동입니다. 옛날 같으면 하숙집 같은 개념인데. 여기는 공동으로 돈을 내가지고 단기간

들락날락 하기가 자유로운, 어쩌면 노숙자 그것과 같은 것인데. 이것이 뭐냐 하면, 젊은 20대들이

우리나라 부동산 자체가 확보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면 굉장히

불안정해집니다. 만화방에 자는 이, 찜질방에서 자는 이, 이게 20대들이나 30대가 사회적으로 힘을 못

쓰는 대는 이들이 스스로 떠받칠 공간을 잃어버렸다는 것. 그래서 빈집프로젝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남산에서도 그렇고 중대 앞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빈집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흔히

선교 단체 미션 홈이나 공동으로 하숙집 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는데, 그래도 거기는 비용이 꽤

들어가는데 이 공간들은 그보다 훨씬 더 오픈 되어 있는 공간이고. 긴급하게나마 신세를 질 수 있는

공간인데, 또 하나는 20대 운동하는 사람들이 대체로는 가족들의 서포트를 못 받고 있거나 불화

상태가 많았습니다. 가족이 옛날에는 가족이 경제적, 주거 공관가 경제적 서포트를 해결해 주는 것이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경제적으로 어려워 지니까 가족이 주거공간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학자금의 문제도 부모님이 해결 못해주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면 1차적으로 가족이

감당해주었던 역할들이 확보가 안되니까 20대가 스스로 서바이벌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가족보다 친구가 더 중요해집니다. 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과 같이

살아갈 친구를 찾는 것이, 과거에 가족이 모든 것을 서포트 했던 것을 대체해 나가는. 이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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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하게 풀어보자 하는 생각에서 20대 운동하는 사람들이 빈집프로젝트를 하는 이유입니다.

이미 대학이나 이런 공간 자체가 특권화 되어 있다기 보기에는 상당히 취약해져 있는데,

사회에 바로 진출 했거나 바로 노출된 사람들 역시도 주거 공간을 어떻게 서포트 해야 할 것인가.

역시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기독교나 교회 공동체에서

이들이 낯선 문제는 아닙니다. 공동체 문제에 대한 것 말입니다. 그런데 우린 그것을 좀 세게 한

것입니다. 공동체 하려면 새벽기도를 해야 한다거나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다른 쪽의 아이디어를 가져와야 참신한 시도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국운 잠깐 덧붙이자면, 예수대행진 그 당시 나도 있었습니다. 1986년 5월 20일 수요일.

결코 잊지 못할 날입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같이 기도회 하고, ‘크신 주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문익환 목사님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서, 우리 동료 학우들이 꽹가리를 하고 있을 때 앞에서

통성기도를 시켜서 시키니까 했습니다. 그런데 하는 중에 발로 채여서 쫓겨났습니다. 서울대학교 가본

사람들은 아크로폴리스라는 광장을 알텐데, 바로 앞에 대학 본부가 있습니다. 대학 본관 1층이 우리

처럼 구멍이 뻥 뚫려 있습니다. 그때 내가 기도할 때 눈 들면 안되는데, 차길래 눈을 떠서 봤더니

지금 검사하는 내 친구가 난 줄 모르고 발로 찼습니다. 그렇게 쫓겨나서 뒤쪽에서는 운동 가요를

부르고, 한국 사회가 지금 어떤 상황인가 그런 것이 벌어지는 중에서 서울대학교 잔디밭에서 우리가

쭉 앉았습니다. 그 와중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 했던 김한식 선교사가 설교를 했습니다. 귀에 잘 들어

오지는 않았는데, 설교의 내용은 여호수아가 성을 돈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도 성을 돌자. 학생들

대부분이 아크로폴리스에 모여 있고 아무도 없는 캠퍼스를 도는 데 나는 조금 따라가다가 빠졌습니다.

아크로 폴리스에 돌아왔는데, 문익환 목사님이 막 강연을 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그 대열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전투 경찰들이 엄청난 숫자가 와서 불과 5분 안에 아크로 폴리스를

둘러 쌌습니다. 아직도 그때 문익환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전경들도 들어!’라고.

서울대 중앙도서관이 엄청 큽니다. 전경들이 많으니까 거기서 공부하던 친구들이 다 짐싸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전경들이 앞에도 학생 뒤에도 학생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생회관 한

쪽에서 학생 한 명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그 때 사람 타는 냄새를 처음 맡았습니다. 불덩이

하나가 이렇게 이렇게 하다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일.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고 내 개인적인 글에 조금

썼습니다. 잘 찾으면 어디선가 찾을 수 있을거에요.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에 오신 것이

아니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을 구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세상이

어떤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서브컬쳐라고 말하셨는데, 내가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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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93

학문과 신앙 이야기 할 때부터 그랬습니다. 자꾸 원론.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생각 보다는 자기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더 radical 하시고 행동하신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양선생이 하신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끼리는 행복합니다. 아무도 없는 캠퍼스 저 뒤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서 이렇게 돌다가 소리지르면 여리고 성이 무너질거야 라는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 날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진리는 하나인데. 게토 속에서

우리끼리 무슨 소리를 해도 예수님이 품으시려는 세상과는 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적어도 이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관점에서는 이야기를 조금 양선생이 이야기 한

것과 관련 시키면,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부딪히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서 깊이 분석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원론에서 그냥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게

기독교 대학인가 아닌가, 이건 굉장히 낯간지러운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책임져야 할, 여러분 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은 자기 죄만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를

대표하는데, 우리에 의해서 대표되는 누군가가 있는 데 그게 바로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 대해서

세상을 사랑하란 말이 아니고, 그 세상의 상황이 어떤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 측면에 있어서는 한동대가 시골에 있는게 여러분의 삶을 구성하는 아주 근본적이고

실재적인 문제로부터 좀 떼어 놓는 측면이 있습니다. 좋다는 것은 더 근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준다는 거에 있는데, 제대로 못하는게 문제지요. 불리하다는 것은, 여러분 삶이 좀 덜 치열해요.

덜 낭만적이고 덜 치열해요. 매사 세상을 생각할 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생각은, 억압 하는

사람들 쪽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억압 받는 사람들 쪽에서 흔히 4종 세트라고 하지 않나요?

‘고아와 과부’. 가난한자, 억압받는자, 병든자, 이방인’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성경에서 한 말 있지

않습니까.

나는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돌아가신 제정구 선생을 좋아 합니다. 이분은 당시 운동한다는

사람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 때 대게 운동하는 사람들은 막스주의자 아닌가 이들은 둘로

나뉘는 데, 한쪽은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파, 즉 레닌 파, 그런데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면

영국이나 이런데서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지 않나? 그렇다면 진짜 형멱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결국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다, 당시 상황을 보면 결국 농민이 중심이다라고. 그래서 농업을 중시하는

쪽을 마오쩌동 파라고 합니다. 알지는 모르겠는데 서경석 목사님. 1970년대 말에 우리 기독교

학생운동의 리더였습니다. 70년대 말에 고생하시다가 80년대가 되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유학하기 전까지 본인이 기독교 마오주의자였고 합니다. 여기에 제정구 선생님이. ‘다 틀렸다’고

하셨습니다. 제정구 선생은 카돌릭이었고 정치가나 운동가였기 보다는 본인 스스로를 참 도를 찾아서

구도했던 사람으로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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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주의자들과 레닌주의자들이 싸우는 것은 다 틀렸다. 진짜 핵심은 그들 모두가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와 농민을 모두 도시 빈민이라 하여 한국 민주화를 이끄는 주역이라

말했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시위 현장에 가보면 있어요. 그리고

가장 절실한, 그리고 가장 조직화된 이해관계 없이. 그리고 가장 몸의 느낌에 충실하게. 제정구 선생이

일찍 돌아가셨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선지자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이 양반이 살아

계셨다면 대통령이 되셨을텐데. 아무튼 도시 빈민 이야기가 아니고. 4종 세트 ‘과부 고아 가난한자

눌린자’의 초점을 가지고 여러분이 개입해 들어가야 할 세상을 살펴보고, 그것과 관련해서 지금 나는

어디있나. 지금 우리는 어디 있는가. 교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는 것이

우리 선배들이 해 온 것이고, 기독교 전통 안에 살아 내려온 흐름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싶고요.

내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는. 나한테 배우는 여러분들이 과부 고아는 아니지만

눌린자거나 가난한 자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일단 졸업을 해도 취직이 잘 안되고 되도 대게

비정규직이 되고 그래서요. 나야 뭐 공부하는 사람이니 어떻게 풀어야 하니 수삼년 전부터 나에게

영감을 많이 주시는 예일 로스쿨의 브루스 액커만 교수님에게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7, 8년

전에 책을 써서 영감을 준 적이 있습니다. Stake Holder Society. 내용은 간단합니다. 미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졸업할 경우, 사회 준비금 8만불씩 무조건 주자. 우리 나라에서는 이것이 사회적

지분이라는 용어로 번역이 되어서 좀 알만한 사람들에게 상당히 동의를 얻고 있습니다. 논리는

이것입니다. 고등학교까지 했으면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본을 마친 거 아닌가. 그 이후에 대학을

가든 안가든 간에 20대 초부터 30대까지 뭔가를 준비는 해야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나.

자기는 하고 싶어하지만 돈이 없어, 뭔가 자기 능력을 개발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지 못했어.

그렇다면 이 사람이 미국인이라면 적어도 기회는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 사람이

라스베가스에서 다 날렸다. 그리고 불평하면 ‘8만불이나 줬는데 니가 날렸잖아’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지도 않는다면 미국이라는 사회가 과연 공정한가.

우리가 한 달란트 두 달란트 이야기 많이 합니다. 예수님께서 남겨간 비유 중에, 안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본적인 기회의 평등 보장하려면 8만불씩 주자. 같이 책 쓰신 세법 교수님

계산에 따르면, 국가가 보조를 해서 8만불씩 60년을 하면, 이 사람이 죽을 때 자기가 남겨놓은 재산의

40퍼센트를 이 기금의 유산으로 냅니다. 이 계산에 의하면 미국 정부가 60년 동안만 보조를 하면

죽는 사람들이 내는 돈이 돌아오기 때문에 이게 자동으로 돌아옵니다. 말하자면 전체가 계를 하는

것입니다. 계를 타는 사람은 누구죠? 19 20살 되는 학생들입니다. 이 학생들이 자기 인생을 엄마

아빠한테 기대지 않고, 사회 전체가 모아준 돈이니까 이걸 가지고 어떻게 시작은 해보겠다. 상당히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이거 못합니다. 미국은 여러가지 문제가 많이 있는데, 아무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 사람들은 아싸리 하기 때문에, 다음 선거나 다다음에 좋은

후보가 잘만 하면 정치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계층간의 불평등도 상당히 완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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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95

박탈감도 완화하고, 세대 간에 부의 불균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해볼만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한동대학교 이렇게만 사고하면 여러분들은 고만한 인간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좀 더 크게. 여러분들은 남미 어딘가에서 오는 커피를 먹고, 중국에서 오는 신발을 신고,

맨유를 응원하지 않습니까. 그럼 그 스케일로 문제를 보고 문제를 풀어보는건 어떨까요. 교수들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들 같으면 맘 먹기 따라서 할 수 있습니다. 이걸 우석훈 식으로 표현하면 진을

짜라. 여러분들이 스파크만 일어나면 뭔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학생 2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군종병으로 일하다가 교회에서 선언을

했습니다. 제가 수요 예배도 맡고 설교도 하고 그랬는데 내가 예수님이 더 이상 신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하고. 교회 활동은 알아서 해라 하고.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고 나왔는데. 교회가 거기

서 있는 자리에서 뭘 해보자 이러셨는데 그 틀 자체를 벗어나서 하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이

들거든요. 교회 틀에서 항상 말하는 것은 야 OO아 너의 믿음이 부족하다 너 지금 사탄에게 속고

있다. 예수님이 당연히 신이지. 내일부터 새벽 기도에 나와라 그런 해답을 주셨는데 제 틀 안이

잘못된건지 제가 불행해서 그런 틀 안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는지. 제 개인적으로는 내가 개신교인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나온 것이 굉장히 의미 있었는데. 저는 예수님이 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까

말씀 했듯이 예수님 찬양이라는 노래를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경우가 있는데. 저와 같은 친구들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기독교 문화에서 자라 왔는데 개신교 자체를 부정하고 나오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이 벌이는 기독교 문화 운동은 없는지.

양희송 1차적으로 제가 종종 하는 이야기인데, 여러분이 만약에 대형 서점에 가서 인문

사회학 신간 서점을 살펴보면 무신론에 관한 책들이 참 많습니다. 과학 쪽에서는 생물학, 도킨스부터

시작해서 심리학까지 책이 많고. 무신론에 대한 책들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 분야의 A급

학자들이 책을 씁니다. 한 5년 10년 전에 여러분이 나가서 전도를 하게 되면 그 사람이 무신론자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은 신에 대해 별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답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경우에 대화의 주도권을 크리스천이 쥐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누구를 만나는데 무신론자일 경우, 이 사람은 이론적으로 중무장 된

무신론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정도라도 읽어 보면 고전적 신 존재 증명 이런

것을 다 꿰두었습니다. 도킨스 책을 읽어 본 사람은 이것을 다 꿰서 나타나니까 거꾸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들어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소위 말해서 변증이라든지 한국

교회가 별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그 동안 이리저리 전도폭발이니 서양 기독교의 트렌드를 이리저리

도입해서 하면 먹혔습니다. 고속 터미널, 국립 묘지에서 나도 했었습니다. 지금도 되는 경우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대화권이나 이런 것도 그렇고 추가 확 기울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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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2010년 가을학기 제 4회 한동 유레카 집단지성 토론회

도킨스 책을 김영사에서 냈습니다. 강연회를 여는데 도킨스는 못 부르고 그걸 서울대 장대익

교수가 소화해 주었습니다. 최재천 교수의 제자이며 다니엘 대닛에게 배우기도 한 최고의 학자입니다.

장대익 교수가 가서 도킨스 책을 가지고 김영사에 출판 강의를 했습니다. 끝나고 나니까 몇몇이 와서

한국에서 무신론자 클럽을 만들려 한다 당신이 깃발을 들어 달라 이랬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무신론자

버스 광고도 하고 국내에서도 아인슈타인의 발언 이런 거 붙였다가 그만 뒀지만. 무신론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론적으로 정교하고 정합성 있는 방향으로 나오고 있고, 기독교 쪽에서

이에 대응적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무신론에 훨씬 호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할거냐. 현재로써는 변증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런 이탈을 막을 방도는

마땅치 않습니다. 거기다 플러스 알파 한국 개신교가 윤리적 사회적으로 점수를 계속 깎아 먹기

때문에 이탈률이 높아지고 있고, 우리나라 종교 센서스 10년마다 하는데 지난 번 2005년 조사가

아프간 사태 전이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도 되기 전이고, 봉은사 이것도 일어나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그 때 개신교가 이미 마이너스로 꺾입니다. 95년에서 2005년 사이에 불교는 현상유지 개신교가 -1.

얼마로 꺾이고 카톨릭은 74프로가 늘어납니다. 아마 앞으로는 통계적으로 보더라도 개신교와 카톨릭이

뒤바뀔 확률이 큽니다. 개신교 신앙에서는 이탈률이 좀 더 커지고, 변증이라든지 붙잡는 힘들은

약하고, 윤리적으로 좋아 보이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매력들이 점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생하는 문제가 일차적으로는, 예수는 믿지만 교회는 못나가겠다. 이런

케이스들입니다. 교회는 싫지만 예수는 좋다. 우리는 이걸 ‘가나안 성도’라고 하는데. 거꾸로 하면

‘안나가’지요. 우리는 이걸 중요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12월 22일인가 월요일에 홍대 앞에서 교회

2.0이라고 프레젠테이션 파티가 있는데, 그 때 가나안 현상을 발표 하기로 되어 있는데요. 저는 이

현상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나는 예수를 믿기 위해 교회를 버렸다’

이런 선언까지 있었습니다. 이러한 게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걸 풀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교회가 이 상황을 쓰라리게 받기 전에는 해소가 안될 것입니다. 이걸 사탄의 꼬임을

받았느니 이런 식으로 접근할 경우에는 해결이 안될 것입니다. 이래선 가나안 현상은 사라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왕년의 막시스트들이 갑자기 기독교를 옹호하고 나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장 최근의 책은 테리 이글턴이라는 영국의 영문학자가 갑자기 책을 냈습니다. 이 사람이

갑자기 도킨스를 비판합니다. 청어람에서 제작년에 했던, ‘알랭 바디유’라는 프랑스 마오 주의자의

‘사도 바울’이란 책이 있는데 부제가 이렇습니다. ‘다원주의 시대에 보편적 윤리의 가능성이 있는가,

이걸 제일 잘 보여주는 것이 사도 바울이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막시스트고 마오주의자의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인데, 사도 바울을 통해서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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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97

나름대로 사회주의를 재구성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지 아감벨’이라는 이탈리아 학자 역시

막시스트인데, 여기는 로마서 1장 1절을 가지고 책을 썼습니다. ‘남겨진 시간’이라고 발터 벤야민

논의를 끌어들이고 메시아적 시각을 끌여들여 글을 썼었고, ‘슬라보예 지잭’은 몇 권의 책이 있는데,

그 중 기억이 나는 것인데. 이제 막시스트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연계해서 바리케이트에서 자본주의와

싸워야 한다라고 쓴 책을 냈습니다.

굉장히 이상한 현상입니다. 고전적으로는 아까 봤던 막스가 종교비판을 할 때 사실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었고, 그런 방식을 통해서 소위 말한 허위의식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종교 비판을 내세웠고, 실제로 사회 전반에 흘러왔던 전통인데, 최근 들어 막시스트 전통의 대표적

이론가들이 갑자기 기독교 친화적으로 뭐 바울이 이 시대의 대안처럼 로마서 1장 1절가지고 풀어쓰고

막시스트와 크리스천들이 연대에서 자본주의와 싸워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건 도대체 무슨

현상인가. 그런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 그런 건 아닌데 말입니다.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자신들의 막시스트 지향 하에서 기독교를 재평가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것입니다. 뭐가 되었건 저는 내부적인 동력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 현상 자체는

상당히 흥미로운 현상이고, 그리고 그런 책들이 국내에 막 번역이 됩니다. 그런데 번역이 좋지

않습니다. 번역자들이 예수를 모르니까. 그리고 국내 막시스트들이 이를 잘 못 읽습니다. 성경 구절

하나 가지고 왜 이렇게 읽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성경이라는 텍스트 자체가 입에 설고 눈에 잘

안잡히고 그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출판을 하니까 중요한지는 알겠는데, 정작 소화는 못하겠고,

우리는 곁다리로 있긴 있지만 오히려 우리가 읽게 됨으로써 얻게 된 유익이 조금 큰 것 같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기독교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안 믿는 자들이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혁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생물학이나 이런 자연과학 하는 쪽에서의 강력한 무신론적 현상과 막시스트 진영에서

유난스럽게 보이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호감. 그 사이에서의 가나안 성도. 우리는 이 메시지를 비중을

크게 두고 보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나는 전체적으로 제도권 교회가 지닌 문제가 쉽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대세가 틀이 잡히기 전까지는 사고 칠 사람은 사고 치고, 문제가 터질

것은 계속 터질 것입니다. 오히려 개신교의 자장에서 자유롭게 나와 있는 가나안 그룹들이. 물론

이들이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이들이 옹호될 필요도 있으리라 봅니다.

강교수와의 대화에서 내가 첫번째 물었던 것이 ‘기독교는 개인에서 시작하나 공동에서

시작하나’ 물었더니 곰곰이 생각해보시더니 개인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공동체가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 특별히 개신교 전통은 개인에게 너는 이것을 왜 믿냐 하는 이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고 있고, 또 그것을 대답해 나가는 가톨릭은 모르겠지만 개신교 전통에서는 얄짤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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꽂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한국의 개신교가 신자 개개인이 이런 질문을 받을 준비를 못시켰고

이런 질문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나안 성도로 튕겨 나간 것인데. 나는 오히려 이 부분이 개신교인

개개인에게 던져 졌던 물음. ‘너는 무엇을 왜 믿니’라는 질문 앞에 힘들지만 전격적으로 노출이 될 수

있는 장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지점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간다면 나는 왜 믿지?라는 질문, 그리고

과학의 비판이나 난데없는 막시스트 진영에서 새롭게 영향력과 호감을 가지게 한 기독교를 이야기

해주는 것들을 읽어 나가며 새롭게 그리는 그림이 있지 않을까. 나는 굉장히 새로운 언어로 우리

신앙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봅니다.

상당히 많은 경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언어들은 서브컬처, 그 안에 있습니다. 은혜

받았다는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게 그 맥락만 떠나면 도무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를 파악하기 힘든,

그런 어떤 전문 용어들 굉장히 많아요. 피차에 규정할 수 없는, 느낌만 남는, 정의는 없는 그런

용어들이 있는데요. 울타리 바깥에서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울타리 바깥에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내부에서는 어차피 새로운 언어가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어가 없어서 튀어 나간

사람들이 이쪽 저쪽 튀어 나가며 발견하는 것처럼, 이 지점. 이것이 가능하냐가 중요한 것 같고. 이를

위한 문학이나 막시스트 이론 등 모든 소스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나는 한국의 제도권 교회가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역량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거긴 필요를 못 느끼니까. 이 지점의 이 작업을

나는 서포트 하고. 인식하게 하고 언어를 여기저기서 끌고 와서 한번 해보고, 이종 격투기라는 게

사실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일단 배우는 자세로 해 가야 하는 것이고, 흔히 해오던 것처럼

희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나를 복음주의자라고 하는데, 이국운 교수님은 별로 안좋아

하는데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 Evangelism in the making이라고 합니다. 완성 되지는 않았으나

스스로가 끊임없이 변화되어 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언어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 지점에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학생 3 다시 20대 현재 상황에 돌아가서 저희 세대 말고 다른 윗 세대 분들이 저희 세대를

보고 말하는 것을 이렇게 보는데, ‘386’혹은 자신들의 대학 모습과 너무 달라진 전혀 사회도 관심 없고

책도 읽지 않고, 그래서 우석훈 같은 경우에는 돌을 들어라. 진을 짜라. 이런 접근을 한다던지, 책을

읽어, 치열하게 살어, 이런 접근을 한다든지, 그러면 다른 그림. 저는 이 두가지 다 불편하게 느낍니다.

저는 제가 치열하게 못 사나 이렇게 생각이 드는게, 제가 커오던 생각이 드는게, 우리 세대가 IMF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부모님이 고생하는 것을 보아서, 저렇게 힘들지 않으려면 우리

안에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았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왜 이렇게 치열하게 못

살아, 이런 것이, 뒤가 없는 상황에서 그냥 윗 세대가 바라 보는 것이 아니었는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당시 대학만 나오면, 입사 지원서만 있으면 들어가는 상황에서 우리와 비교하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불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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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 공동체에서 학문과 신앙 운동의 회고와 전망 199

두번째 접근은 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함으로써 그것을 스펙으로 쌓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까 앙팡떼리블 하셨는데, 하나의 책 하나의 저자라는게 과연 20대를 대변하는가 의문이 들고. 고로

두 가지 다 20대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됩니다. 너무 젊은 세대 왜 이

세대에 문제가 있는가 하고 바라보지 않는가. 자본주의 틀 이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젊은 세대에 한정하지 말고 이 구조를 바꿔보자 이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국운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세대에게 돈을 주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방안이 아닐까요. 그 전체의 구조

지금보다는 한 차원 나간 지금보다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답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양희송 정확한 지적이고 최근에 나온 책들이 사실 방금 언급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정도의 세대론이 존재합니다. 한국 사회에 한 50대 정도 50대 60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을 볼 때 하는 말이 ‘눈 높이를 낮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경제적 세대론입니다.

눈높이를 낮추든지 아니면 자기 개발을 굉장히 잘해서 스펙을 쌓아서, 네가 네 몸값을 높이면 다

데려가고 싶어하지, 이런 방식의 논리입니다. 50대 60대가 20대를 바라볼 때 이런 세대 담론이고.

소위 386세대 즉 40대들이 20대를 바라보는 것이,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해서 나라가 이 모양이다.

이건 정치적 세대론이죠. 우석훈 박사가 여기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결국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이 이야기가, 20대가 한편으로는 20대를 위한 처방이지만, 처방을 다 해주는 측면에서

당사자주의에서 벗어난다는 점. 그리고 철저하게 분석은 해줬지만 동력을 제시해 주진 못한 점.

그리고 우석훈 박사가 두번째 책을 썼는데 혁명을 일으켜 조용히라는 책. 이걸 읽으며 약간 불편

했던게, 88만원 세대에서는 우석훈 박사가 20대를 묘사할 때 조심스러운데, 두번째 책은 굉장히

거리낌 없이 20대들은 쫄아있고, 협력이 안된다고 상당히 단정적으로 표현을 합니다. 20대는 성장하며

경험이 없기 때문에 협력이 안된다. 그러니 진을 짜라. 이런 말이었습니다. 안되는 것을 되게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또 잊을 수 없는 것이, 20대들이 자기 세대에 대해 호감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유일하게 서로 호감을 가지는 곳이 강남 대형교회 청년들 뿐이라고요.

아까 말한 유명 20대들이 20대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세대 대표성에는

그렇게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20대는 손에 쥐어지지 않는 파편화된 상태로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를

했지만, 공통 교양이라고 여겨지고 말 할 수 있는 책이 너무 적습니다. 기껏 뭔가 소통하기 위해 예를

들거나 뭐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 광고 이런 것들입니다. 그리고

게임. 뭐 순순히 응하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웃는 사람 있고 못 웃는 사람이 있잖지

않습니까?

이국운 난 모르는 데 웃어요. (청중 웃음)

양희송 나도 게임은 안하는데 트위터에 보니 있어서 그렇더군요. 그러니까, 이제 던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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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가 다 반응하는 건 없습니다. 드라마 가지고 하면 그거에 반응해서 알아듣고 하는 그룹이 있고.

에반게리온 대사 말하면 알아 듣고. 수퍼스타 K에서 어쩌고 저쩌고 했을 때 그걸로 대화되는 경우가

있고 그게 전통적으로는 20대의 약점이라고 봤습니다. 집단적으로 모아서 성과를 하는 것 그런 것에

20대가 전혀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이걸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쪽이

봤을 때 저쪽이 하는 짓은 이상합니다. 나는 게임을 안해봐서 그 세계를 잘 모르는데, 스타 덕후들은

막 하지 않습니까. 그게 아직은 어떻게 다루는 것이 잘 하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강의 나오는 친구 중 한윤형이라는 친구가. 조선일보 논술 대회 우승한 후 수상

거부한 친구. 서울대 들어간 친구가 이야기 하는데. 취향이 점점 분산되고 파편화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만 문제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섞을 수 있도록 하는 서사가 필요한 것이다.

서사를 통해 각자가 경험한 것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지점이 다른데, 386 들이 주로 생각하는 서사는

역사를 가지고 풀었는데 지금의 20대에게는 작동이 되지 않죠. 그럼 20대들을 위한 서사는 어디서

끌어 올 것인 것인가 문제가 있습니다.

20대들이 반응하는 서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조국과 민족, 통일 이런 것으로

가기는 어렵습니다. 다 각각 취향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연대를 끌어 내고, 중요한 점을 보게 만들고.

이 지점이 과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어떤 식으로든 많은 사람들이 실험을 할 것 같고, 제가

말했던 공간의 문제와 친구, 일종의 대안 공동체. 가족이 더 이상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점점 더 되어가는 상황에서, 가족이 아닌 공동체를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 친구 만드는게

20대가 가장 취약한 것인데, 그건 20대가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추이가 달라질 것입니다. 이

지점을 돌파구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본다면, 세대 담론들이 다 약점들이 있지만 그 각도에서 보기

때문에 확 부각 되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런 것은 받을 것은 좀 받으면 됩니다. 다만, 자꾸 20대가

남들이 훈수해서 하는 거 말고, 나와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자기들이 재구성 해서 어떻게 써먹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리한가. 그 지점에서 써 먹는 것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