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종교개혁기념강좌 책자(수정재판) ·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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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종교개혁 기념강좌 대한예수교 신반포중앙교회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 60-3 Tel.02)536-4511-3, Fax.02)536-4566 Home page http://www.sbp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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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종교개혁 기념강좌

대한예수교

장 로 회 신반포중앙교회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 60-3 Tel.02)536-4511-3, Fax.02)536-4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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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종교개혁 기념강좌

일시: 2003년 10월 21일-24일

오후 8시 - 9시 30분

장소: 신반포중앙교회

대한예수교

장 로 회 신반포중앙교회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 60-3 Tel.02)536-4511-3, Fax.02)536-4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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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1

차 례

집회 순서

강사 소개

1강. 칼빈의 초기 제네바 사역의 의미/ 이승구 교수

2강. 에베소서 1장에 나타난 예정/ 노이저 교수

3강.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조병수 교수

4강. 오늘에 요구되는 개혁/ 김성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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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집회순서

10/21(화) 10/22(수) 10/23(목) 10/24(금)

사회자 김성봉 목사

시작 전 찬양 인도: 강유식 강도사

찬송 21장 25장 27장 29장

기도 임지재 장로 심문규 장로 김석주 장로 염동조 장로

강사소개 사회자사회자

*특별찬송(성가대)사회자 사회자

강연 이승구 교수 노이저 교수 조병수 교수 김성봉 목사

찬송 31장 34장 44장 46장

광고 사회자

주기도문 다함께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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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3

강사소개

이승구 교수

총신대학교 기독교 교육과 졸업.(B.A)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M.Ed.)

합동신학원 졸업.(M.Div.)

영국. The University of St. Andrews 신학부 졸업. 1985.(M.phil.)

영국. The University of St. Andrews 신학부 졸업. 1990.(Ph.D.)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현 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W. H. Neuser 교수

독일 괴팅겐 대학교 신학부.(Dr.Theol.)

미국 예일대학교 신학부 유학.

독일 뮌스터대학교 신학부 교수 역임.

세계 칼빈학회 상임총무 역임.

조병수 교수

총신대학교 졸업(B.A.)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졸업.(M.Div.)

독일 뮌스터대학교 신학부 졸업.(Th.D.)

대한 성서공회 개역성경 개정 감수 위원 역임.

염광교회 담임목사 역임.

현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신약학 교수.

김성봉 목사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Th.M.)

독일뮌스터대학교 신학부.(Th.D.)

독일부퍼탈 한인선교교회 담임목사 역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교수 역임.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교수 및 원장 역임.

나누며섬기는교회 당회장 역임.

현 신반포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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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제 1 강제 1 강제 1 강

제네바에서의 칼빈의 초기 사역과

제네바 교회

-18개월의 초기 사역과 그 성격-

이승구 교수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1. 제네바로 오기 이전의 칼빈

(1) 1533. 11. 1. Nicolas Cop의 빠리 대학 총장 강연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주해에 근거한 루터파적인 내용의

강연 Erasmus의 신약성서 제 3판의 사상과 언어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

며 주해 부분에서 Bucer가 라틴어로 옮긴 루터의 해석을 상당 부분 그대

로 따르고 있음.

(2) 샤를르 데스뻬빌르(Charles d'Espeville)라는 가명 사용하며 피

쌩똥쥬(Saintinge)에 있는 앙굴렘므(Angoulême), 네락(Nerac), 노이용

(Noyon), 빠리(Paris), 다시 쌩똥쥬(Saintinge), 뽀아티에(Poitiers), 오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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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5

앙(Orléans) 등지

이 기간에 P sychopannychia 씀(1534) 아마 오를레앙(Orléans)에서?

(출판은 1542년), 7. 28일에 파렐에게 한부 보냄

(3) 프랭카드 사건(the affairs of Placards), 1534. 10. 17-18

- 천주교의 미사를 비판하는 프랭카드가 프랑스 곳곳에 빠리, 오를레

앙, 뚜르(Tours), 블로와(Blois), 암브로이스(Ambrois) 붙은 사건

- 아마도 (화렐의 친구요 뇌사뗄에서 개신교 목사가 된) 안뜨완느 마

르꾸(Antoine Marcourt)가 쓰고, 삐에르 드 벵글(Pieere de Vingle)이

인쇄

- 이 때문에 칼빈은 귀족 친구인 루이 뒤 띠에(Loius du Tillet)와 함

께 프랑스를 탈출하여

- Basel 도착(Johann Oecolampadius와 Oswald Myconius가 종교 개

혁적 작업하고 있는) 1535. 1월쯤

- Martinus Lucianus라는 익명으로 바젤에 머뭄, Catherine Klein의

집에 (30년후 Peter Ramus도 이집에 머뭄)

“마치 감취어진 것처럼, 몇몇 사람에게만 알려진 채로”(“preface to

Psalms," xli)

(4) 기독교 강요 집필과 출간

- 아마도 바젤에서 집필?(1535. 1월- 1535. 8. 23 어간에?)

<==> (Florimond de Raemond의 말을 받아 들이면서 Packer

는 피신 생활을 하던 암굴렘므에서 부터 집필이 시작되었으리라고 추측)

- 중요한 것은 강요가 프랑스 복음주의자들의 박해 기간 중에 쓰여

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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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 헌정사: 1535. 8. 23. 따라서 이 이전에 완성되었으리라고 생각됨

(1) 종교에 대한 어떤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참된 경

건에로 이끌 수 있도록 어떤 초보적인 것을 전달하려는 것(pedagogical

motive)

(2) 변증적 동기(apologetic motive)

“그런데 당신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서 지금까지 어떤 악한 사람들의

분노가 창궐하여, 이 땅에 바른 교육이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없음을 보게

되나이다”(1)

그래서 바른 복음을 따르는 이들이 정당한 이유없이 이단을 따

르는 이들로나 잘못된 것으로 판단되어서 계속해서 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하는 일을 막아보려고,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목적(2)

왕으로 하여금 공정한 변호에 귀를 기울이도록(3)

- 출간: 1536. 3. Johann Oporin 지원하에 바젤의 출판업자 Thomas

Platter와 Balthasar Lasius에 의해 출판됨

(5) 이탈리아의 Ferrara 여행(1536년 봄)

(6) 빠리의 칼빈(1536. 6. 2)

꾸르시 칙령(The Edict of Coucy): 자신의 신앙 때문에 조국을 떠난

이들이 6개월 이내에 복종 서약을 제출하면 고향에 돌아 오는 것을 보장

한다는 내용

==> 이것이 칼빈으로 프랑스를 떠나도록 결단하게 함

(아우 앙뜨완으로 하여금 재산 처분케 하고, 마리와 함께 안전한 도시

로 가기로 함)

(7) 1536년 7월 하순, 혹 8월 초에 프랑스를 떠나 Strasbourg를 향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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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7

챨스 5세의 황제군과 프랑스 군대의 충돌 때문에 있게 된 군대의 이동

때문에 남쪽 우회로로 제네바에 들르게 됨

2. 칼빈과 화렐의 만남

나는 어디로 가든지 내가 기독교 강요의 저자라는 것만은 숨기려고 늘애써

왔다. 따라서 나는 기욤 화렐이 상담과 훈계로서가 아니라, 마치 하나님께서 하

늘에서 그의 강한 손을 내밀어 나를 움켜 잡는 것처럼 느끼게끔 하는 무서운 저

주로서 나를 마침내 제네바에 머물게 할 때까지는 계속해서 이 비밀을 유지하고

자신을 밝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칩거하려고 했던 스트라스부르그로

가는 직선 코스가 전쟁으로 막히게 됨에 따라 나는 제네바에서 단 하룻밤만 머

물고 떠나려고 했었다. 이보다 얼마 전부터 내가 방금 언급한 그 뛰어나 사람과

삐에르 비레(Pierre Viret)에 의해 천주교는 제네바 시에서 축출되고 있었다.

그러나 사태는 아직 결말이 나지 않고 있었으며 시는 경건한 자들과 위험한 파

당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결국 변절해서 로마 카톨릭으로 되돌아간 한 사람이

나를 알아내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을 냈다. 이 소식을 듣고 복음을 전파하

는데 남다른 열심을 가진 파렐이 즉각적으로 찾아와서 나를 눌러 앉히느라고 사

력을 다했다. 다른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조용히 앉아 연구에 몰두하고 싶

은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협상으로는 아무 결과도 얻어내지 못하리라고 생각

했던지, 사정이 이리도 급박한데 도움을 주기를 거절 한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은거 생활과 조용한 연구 생활을 저주하실 것이라는 악담을 늘어 놓기 시작했

다. 이 저주 섞인 악담에 겁에 질린 나는 여행 계획을 취소하였다. 그러나 내가

천성적으로 수줍음을 잘타고 소심하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직무도 맡지 않기로

했다. (“시편 주석 서문”에 있는 칼빈의 말)

3. 제네바 교회의 성경 봉독자(Reader in Holy Scripture to the

Church in Geneva),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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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1) 성경 봉독자(Reader in Holy Scripture to the Church in Geneva),

성경 강해자로 시작한 칼빈(1536년 8월)

당시의 상황을 보여 주는 후기의 칼빈의 언급:

“내가 이 교회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

이 설교는 하였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이 상을 찾아 내어서 불태우

는 것은 좋은 일이었으나 거기엔 다른 개혁 운동이란 없었다. 모든 것이

혼돈 상태에 놓여 있었다”(Opra, IX, 891-92).

(배경) - 베른의 개혁 운동의 시작(1525. 2. 7) 시의회의 가결

- 바젤(1525)

- 베른의 노력으로 제네바에서의 주교권 상실 1530, 그러나 주

교는 계속 존재

- 베른의 추천으로 온 처음 개혁자들: 올리베땅, 안뜨완 소

니에(Antoine Saunier), 기욤 파넬(G. Farel) 1532. 10월

그러나 반대파의 암살 모의 속에 도망

- 1533. 5. 폭동으로 시의회원 1명 살해당함

주교는 주모자 체포했으나 시행정당국은 주교의 법정 권한에

의문 표시

주교는 떠나고 피의자 처형

- 주교를 지지하는 사보이 공국의 챨스 3세가 포위(1533. 12) 용

병 500인

- 제네바 시의회는 프랑스에 도움 요청,

프랑소와 1세는 먼저 프랑스의 지배를 받겠다는 결의 요구

- 시의회에서 기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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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9

- 1534년 초 Farel 돌아옴

- 그의 설교 듣고 200인 의회가 미사 종결 결정(1534. 11. 29)

- 1535년 2월 선거에서 아미 뻬랭과 개혁파 지도자들이 선출됨

- 도박, 카드 놀이 금지(파렐 지도 하의 의회)

- 주일 설교 시간과 밤 9시 이후에는 술파는 것 금지

- 빵은 합리적 가격에만 팔도록

-1535. 6. 13. 모든 사업장은 주일에 문 닫을 것 결의

- 베른은 영향력을 고려해서 1536. 2. 6,000명 군대 파송하는 결의

로 제네바를 해방시킴

- 1536. 5. 복음을 좇아 살아 가기로 투표를 통해 결정.

(2) “설교자, 파렐과 칼빈”(1537. 7. 3. 자 제네바시 기록)(Packer, 129)

그가 설교자가 된 것은 아마도 아마도 1536. 11. 10일 이전이 아닐까?

(Packer, 129)

왜냐하면 그 날자로 <신앙 고백서> 제안한 것을 보면 그가 이제 목사

회(company of pastors)의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닐까?

<==> 1537. 8. 13자 베른 시의회 의사록의 명칭

(파렐을 제네바의 설교자로 칼빈을 성경 봉독자로)

(3) 다른 지역의 교회들의 개혁을 위한 도움

1536. 10. Lausanne 신학 논쟁에 참여하여

Vaud 지방의 교회 조직을 위한 기반 마련에 도움을 주었다.

Pierre Viret. G. Farel 도움

특히 넷째 날 성만찬에 대한 토론 때에 한 카톨릭 토론자의 교부 인용

이 자의적이자

칼빈은 준비 없이도 터툴리안, 크리소스톰, 어거스틴 등의 교부의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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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자유자재로 인용하면서 화체설을 논박

- “영적인 끈을 통해서, 성령의 묶어 주심으로 인해서 이 영적인 교제

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성찬입니다”

- “당신이 그들의 책을 읽지 않았음을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 당신은 잠잠히 입다물고 앉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때 참여한 멜랑흐톤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고 함)

그리고 이 반론으로 프란시스 교단의 탁발 수도슨이었던 장 땅디

(Jean Tandy)가 돌아서고

수개월 내에 80명의 사제들과 120명의 수도사들이 돌아섰다고 함

(4) 1536. 11. 10. 제네바 신앙 고백(the Confession of Faith)이 의회

에 제출됨

- “제네바의 모든 시민들과 거주민들이 지키겠다고 약속해야만 하는

신앙 고백”

- cf. “교회에서 이같이 목사와 교사로 선포되었으므로 ... 그는 간단한

형식의 신앙고백서를 준비하였다”(Coladon, Opera Calvini (Corpus

Reformatorum), 21, 58f., cited in Packer, 129)

- “복음을 따르는 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보다는 교황의 왕국에

속하는 것을 더 사모하는 자들에게” 신앙을 알리기 위해(Op. 10a, II) 의

회원들이 먼저 서명하고, 다음에 시민들이 서명하도록 함(Theological

Treatises, LCC, 53)

- 교회의 임무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구성원들의 점진적

성화에 기여하는 것,

이를 위해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축출하는 권리를 갖는다.

- 이는 1537년 3월에도 아직 시행되지 않아 목사들은 의회에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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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11

이 일에 통과 되었음을 알렸고

- 4월 17일까지도 시행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으므로

- 7월 29일 목사들은 다시 200인 의회에 이 사실을 상기 시켜 줌

- 그 결과 성 삐에르 교회의 한 구석에서 서명해야 한다고 결정 내림

(1537. 7. 29)

- 그러나 11월까지도 어떤 이들은 거부하거나 보류했고, 새로운 교회

질서에 강력히 반대하는 몇몇 사람들이 거주하는 독일인 거리(rue des

Allemands)에서는 아무도 나와 서명하지 않았음.(11. 12. 소의회에서 강

력히 결의, 11. 15. 200인회의의 가결)

(5) 1537. 1. 16. “제네바의 교회 조직과 그 예배에 관한 규

정”(Articles on the Organization of the Church and its Worship at

Geneva)이 의회에 제출됨

: 새로운 교회 조직의 기초를 위한 규칙 제안

1. 주의 만찬은 교회로 모일 때마다 거행되어야, 적어도 매 주일마다

한번씩은 거행되어야

(Theological Treatises, LCC, 49)

- 그러나 이런 혁명적 변화는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처음에는

한달에 한번씩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함

- 또는 제네바 시의 각 교회가 제네바 전 시민들을 위해 돌아

가면서 성찬을 거행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제안

- 주의 만찬이 예수님께 전혀 속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그러

한 사람들의 참여로 인하여 더럽혀지지 않도록 주의해야(Theological

Treatises, LCC, 50).

- 이는 주께서 (1) 자신의 성찬의 순결성을 보존하고, (2)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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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한 자들을 회개시키며, (3) 다른 이들에게 경고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친

히 제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주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유익하고

이로운 것들 중의 하나”로서 “교회는 이 규례를 지키지 않고서는 교회의

참된 상태를 유지해 갈 수가 없다”(Theological Treatises, LCC, 51).

- 이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국한되어야 하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재재의 수단으로 더 이상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설교를 듣는 것은 허락해야 하고[수찬 금지], 그가 회개하였

다는 분명한 증거를 보여 줄 때는 다시 교제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시행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선한 생활을 하고 있고 모든 신실

한 사람들의 증거가 있으며 쉽게 오염되지 않는 사람들을 선출하여 지정할 것

을 여러 분들께 제안합니다. 그들이 이 도시의 모든 지역마다 배치되어서 생활을

감독하고, 그들의 각 관청을 감독하고, 만일 어떤 사람의 죄악이 현저하게 드러난

다면 그들이 목사와 함께 의견을 교환하여, 형제 사랑으로 그 죄악을 지적하고

훈계하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자신의 실수를 발견하게 된다면

이 권징의 유익이 얼마나 큰 것이 되겠습니까?

(아마도 이는 바젤에서 요한 외콜람파디우스(Johann Oecolampadius)

가 1534년에 세 사람을 지명하여 교구 별로 교회 사역에 참여하게 하던

것, 또 비슷한 베른의 제도, 스트라스부르그의 부셔의 논의를 반영한 것

이 아닐까?)

2. 시편 찬송을 예배 중에 부르도록 함

-열심과 열정을 가미하기 위해(찬송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열

정을 불러 일으킬 힘)

“시편을 찬양하지 않고서는 시편을 통해 발견되는 신앙 성장의 내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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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13

을 맛볼 수 없습니다. 신자들의 기도가 너무 냉냉해져서 도리어 우리를

수치와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시편은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로 높이

끌어 올리며 찬양을 통해 그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열정을 우리에게

줍니다”)

- 그러나 회중의 대부분은 문맹이고, 곡조와 가사를 알릴 수 없

으므로 일단은 알아 듣기 쉽게 노래하는 소년 찬양대를 운영할 수 밖에

없으나, 회중들은 “온갖 신경을 곤두 세워서” 듣고 천천히 가사와 곡조를

익히면 될 것이라고 함.

(이는 아마도 1524년 Martin Bucer와 Wolfgang Capito에 의해 발간된

시편 찬송의 영향?

3. 고대 형식을 따라 교리 문답을 시킬 것

- 신앙은 단절 없이 후대에 전달되어야 하므로

(부모가 올바로 가르치지 못한 이 상황에서는 갑절이나 더 필요하다)

- “기독교 신앙의 간단한 요약”을 작성했으므로 이것을 공부해

서 정기적으로 목사에게 검사를 받도록

Instruction in Faith (1537)

라틴어판 (1538. 3. Basel) 영어역 John Calvin, Catechism 1538, trans.

Ford Lewis Battles (Pittsbourg, 1976)

4. 혼례법 개정의 필요

-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이므로 관례(practice)와 전례

(precedent)를 참조하여야 한다.

- 따라서 (시의원들과 목사들로) 위원회를 조직해서 사건을 판

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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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 분쟁의 큰 원인들을 고려해서 법령을 기초하게 하고, 후에 의

회에 제출해서 법으로 제정하도록 해야

**** 이런 제안의 근본 정신: 신자들은 “자유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만

을 유일한 왕으로 인정하며, “한 자유의 법, 즉 복음의 거룩한 말씀에 의

해서만 지배를 받는 것이다”(Opera selecta (eds. Barth and Niesel), I,

233, cited in Packer, 130)

<== 소의회(Little Council)의 논의 결과(1537. 1. 16)

- 성찬을 3개월에 한 번씩 하도록

같은 날 200인 의회 소집: 소의회 결정을 재가(1537. 1. 16)

- 더 나아가서 주일날 “대종의 마지막 타종 이후에는

푸주간이나 창자 파는 상점이나 다른 상점이나 중고품상은 개점해서

는 안되며,

집에 상이 있는 이들은 즉각 부숴버려야 하고

쓸데 없는 노래를 부른다든지, 운에 맡기는 게임을 해서는 안되고

빵장수도 예배 시간에 빨 사라고 소리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함(Opera Calvini (Corpus Reformatorum), 21, 207, cited in

Packer, 140)

(6) 1537년 삐에르 까롤리(Pierre Caroli)의 문제

프랑스 빠리 대학 출신의 인재로서 르페브르의 학문에 감동되어 브리

쏘네로부터 배움

알렝송(Alencon) 지방에서 목회하면서 천주교식 성례에 회의

1535. 프랑카드 사건으로 제네바로 피신 ==> 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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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15

1536. 봄 ==>뇌샤텔(Neuchâtel) 교회 목사

1536. 11. 로잔의 수석 목사

이 때 제네바의 개혁자들은 Pierre Viret를 지지

Caroli가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주장 하자 더 반발

베른 시에 제기된 이 문제에 대한 논쟁에 칼빈이 참가 하자

1537. 2. 17. Caroli가 칼빈과 화렐을 Arius주의자들이라고 공격

<== 제네바 요리문답 초판의 삼위일체 하난님에 대한 설명

Caroli는 고대 교회의 세 가지 신조(사도신조,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

우스신조)에 서명할 것 요구

1537. 2. 28, 3. 1

1537. 3. 14 로잔에서 다시 소집된 베른 지역 개신교 회의

Caroli의 목회권 박탈

Claude Aliodi라는 목사는 자신의 아리우스주의를 회개한다고 발표

1537. 5. 31. 독일어권 목사들의 모임(Berne) 베른시 200인회의도 참여

베른 지역에서의 Caroli의 목회 사역 금지

제네바의 사역자들의 정통성 확인

Caroli는 프랑스로 돌아가서 천주교로 복귀

1539년 다시 개신교에 참여

1543년 다시 천주교로 돌아감

1537. 3월 칼빈은 화란에서 온 두명의 재세례팡의 공격 대상이 됨(비

정통파“라고)

3. 16, 17 토론의 결과 그들의 추방이 결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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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7) Bernes ceremonies의 문제

(배경 1) 1538년 2월 3일 연례 회의에서 선출된 4인의 행정관들이 반

대파

(배경 2) 프랑스의 제네바 편입 시도

이에 따라 나타난 베른의 우위권 다짐하려는 간섭

- 200인 의회의 금지 조항:

정치적인 문제를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말하지 말고 오직 복음만

설교할 것

(교회의 설교권에 대한 직접적 제재 조치)

- “베른주의 규칙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 하에 살아 갈 것” 결정

- 세례는 세례반(성수반)에서 행해져야 하고

- 주의 만찬의 떡은 무교병이어야 하고

- 성탄절, 부활절, 예수 승천일, 성령 강림절의 4대 절기는 지켜

져야 한다.

이와 연관해서 성 금요일에 의회는 부활절 성찬 때에 무교병 사용할

것을 요청

목사님들의 답변 없자 순종하지 않으면 설교 금지시킬 것이라는 위

협 받음

목사들은 답변 없이 부활절에 설교만 하고 성찬을 행하지 않음

- 다음 날 200인 의회는 교체할 사람을 찾는 즉시 제네바를 떠날 것을

명령

- 그 다음 날은(1538. 4. 23) 그것도 기다릴 것이 없이 3일 이내에 떠

나기를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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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17

칼빈의 대답

“이제 올 것이 왔구나. 만일 우리가 사람을 섬겼다면 우리는 정말 잘

못된 대우를 받은 것이지만, 우리가 위대하신 하나님을 섬겼으므로 그

분이 우리에게 보답해 주실 것이다”

(Registers of Council, xxxii, 36)

추방된 파렐과 칼빈은 베른에도 호소하여 동감을 얻고, 취리히 대회에

호소

- 교회 정치에 대한 14개 조문 제출, 이것이 인정됨

- 그러나 칼빈도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위한 보장 조항과 함께 베른식

예식 받아들임

- 지니친 열정과 그렇게 훈련 받지 못한 사람들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하지 못했으므로 대부분 잘못했음을 인정하나 베른시가 중재에 나서

목사들의 복직을 요청하기로 함

5월에 베른의 사절 파송되었으나 효과가 없었고

6월초 바젤로가기로 결정하고 거칠고 비내리는 긴 여행 후 바젤에 도

착.

5. 제네바를 떠나서

후에 칼빈은 뇌샤텔(Neuchâtel) 교회로 목회하러 간 파렐에게

편지하면서 “겸손했어야 했고, 이 모든 일을 그의 장중에 휘어 잡고 계시

는 하나님을 참고 가다렸어야 했다”고 함(Calvin's Letters, I, 51).

심지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이제 간신히 헤어 나왔는데, 다

시 그런 일에 종사한다고 하는 일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닌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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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의문을 품기도 함(Calvin's Letters, I, 48-49).

“나의 목회 사역이 나에게 비참하게 실패한 것으로 보였던 그

재난”

“이후에는 주께서 분명하고 명확하게 불러 주시지 않는 이상 다시는

교회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Calvin's Letters, I, 211).

그래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는 당분간 바젤에 남아 있기로 함.

6. Bucer와 Capito의 Strasbourg 초청:

프랑스인 교회(400-500명 교인)의 목사와 신학 강의 담당

-- 관대한 Bucer와의 만남으로 인격적 성숙, 목회자적 인품, 학문

작 발전 얻음

거절하다가 1538년 9월 8일에 새로운 직책(성 니꼴라 교회의 모인 프

랑스피난민에게 설교)

“나는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고 조용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

리스도의 탁월한 종 마르틴 부셔가 이전에 파렐이 했던 것과 유사한 권

고와 단언으로 나를 다른 직책으로 다시 불러내었다. 그가 내 앞에 요나

의 예를 제시할 때 나는 다시 가르치는 짐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

다”(1538. 10. 20 Tillet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시민권 신청하여 스트라스부르그의 시민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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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19

제 2 강제 2 강제 2 강

칼빈의 예정론

- 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9장 주석

W. H. 노이저교수

독일 뮌스터 대학교 신학부 교수 역임

세계 칼빈학회 상임총무 역임

번역 및 통역: 김성욱 교수

웨스트민스터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졸업(B.A)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

독일 뮌스터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박사학위 취득(Dr. theol.)

칼빈의 성경주석 중에 선택에 관하여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이 주제

는 언제나 특별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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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1. 대략적 개요

1. 그 동안의 연구에서는 칼빈이 믿음이란 결국 하나님의 선물이란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원한 구원으로 혹은 영

원한 멸망으로 예정하였다(예정론)고 가르친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인간은 믿음을 위하여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그렇기

에 칼빈은 1559년의 기독교강요III에서 먼저 믿음(1-2장)을 취급하고 나

중에야 예정을 다루고 있다.(21-24장). 기독교강요 제III권의 끝부분에 있

다는 위치적인 근거로 볼 때, 이 예정의 문제는 칼빈의 “중심적 교리”가

아니라 변증적인 역할을 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다른 한편 칼빈은 하나

님께서 죄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비판을 가한다. 그는 이것을 단

호하게 반박하고 있다.

2. 칼빈이 두가지 서로 다른 정의로 예정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인식은 그 동안의 연구에서 아직까지도 확고한 기반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1559년의 기독교 강요의 21권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영원한 선

택: 하나님께서는 선택에 의해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멸망

으로 예정하셨다”1) 이에 반하여 1552년에 쓴 더 방대한 글인 "영원한 예

정(De aeterna praedestination)"에서 그 제목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으

로부터, 하나님께서는 그 예정에 의해 어떤 사람은 축복으로 선택하셨고,

다른 이들은 멸망 가운데 내어두셨다”라고 되어있다.2)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기독교강요는 멸망으로의 예정을 가르치는데

반하여, “영원한 예정”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글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reliquit”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들의 멸망에 “내어 두셨다”

1) OS IV, 368, Z.31

2) De aeterna dei praedestinatione, qua in salutem alios ex

hominibus elegit, alios suo exitio reliquit. COR III,vo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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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21

혹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선택에 있어서 “간과하셨다”라고 말하고 있

다. 다시 말하면 타락사건으로 모든 사람은 멸망 가운데 있는 것이다. 하

나님께서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을 선택하시고 다른 이들은 그들의 본래적

인 상태에 그냥 두셨다. 기독교강요에서는 이중예정을 가르치지만 “영원

한 예정”에서는 구원에 이르는 단일 선택을 이야기한다. 결국 칼빈은 두

가지 차이가 나는 예정론을 말하고 있다.

3. 여기서는 칼빈이 1551년에 행한 예정에 관한 설교를 다루려고 하

는데, 이것은 1559년의 기독교 강요와 대립된다. 이 설교는 Pighius에 반

대하는 논쟁적인 글인 “영원한 예정”과도 다르게 설명하며, 역시 성경을

추론하지만 변증적인 성격을 띤 1559년의 기독교강요와도 달리 칼빈이

목회자로서 이야기하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칼빈이 1551년

12월 18일 볼세스에 대하여 판결을 내린 후에 행한 하나의 교리적인 설

교란 사실이다.3) 이런 의미에서는 기독교강요와 가깝다. 그러나 두 경우

에 있어서 청중과 독자가 서로 다르다. 설교는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그

대상으로 하지만 기독교강요는 학생들이나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다면 칼빈은 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 9장을 어떻게 주석하고 있는가?

기독교강요 3권22장에서는 그 성경구절들을 밝히고 있다.

3) 여기서 다루고 있는 칼빈의 1551년 설교는 CO 8,85-140; vgl.

R.Peter(+), J.-Fr. Gilmont, Bibliotheca Calviniana. Les oeuvres

de Jean Calvin publiées au XVIe siècle, vol.2, Genève 1994,

62/6에 있다. 그리고 프랑스어 텍스트 CO 8,89-119 (줄번호와 함

께)에서 인용되었다. 그리고 Chr. Link의 독일어 번역에서 취하

였는데, 그것은 Calvin Studienausgabe Bd.4, Neu2002, S.94-149.

에 나타난다. 그리고 영어로된 칼빈의 설교는 남아프리카에서 사

용하는 공용 화란어에서 변역되었으며 부록에 다른 형태로 되어

있다. Hervormde Theologiese Studies, Jg.54, Nr.1 und 2,

Pretoria 1998, 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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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II. 에베소서 1:4-9

선택에 관한 핵심적인 성경구절에 대한 주석은 기독교강요 III권22장

1-3절과 전반적으로 일치한다. 칼빈은 설교에서 이 주제에 관하여 다음

과 같이 이야기 한다: “한 편으로는 인간의 행위와 다른 편에서는 하나

님의 결단이라는 두가지 상대되는 국면을 바울 사도가 비유로 설정한 것

을 우리는 안다.”4) 그리고 나서 그는 선택교리에 관한 기본적인 입장을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서 단지 “불행과 결핍”만 보신다(95,23)

만약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얼마를 선택하신다 해도(95,33f) 하나님께서

는 결코 불의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칼빈은 하나님의 부분구속이 “불

의하다”라는 이의에 부딪힌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그냥 두셨다라는 부

분에 까지 당연히 나아갔어야 했다. 이렇게 해야 하나님께서 교회에 행

하신 당신의 결정(엡1:4,9)이, “우리에게” 의로운 행위였음을 선포하는 것

이 타당성을 갖게 된다: 바울은 하나님의 결정을 “그가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기를 원한다”(95,20)는 것으로 이해한다. 유기에 관하여서는 언급

이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였다”(엡

1,4)라는 문장은 구원론적으로 그리고 목회적으로 해석된다: 하나님께서

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대하지 않으시고, 대신에 “그의 아들 안에서”(엡

1:6)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다”(95,50). 칼빈은 다시금

선택의 결정을 은혜라고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그의 은

혜로우신 자비하심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96,14ff)

기독교강요 III,22,1-3에서는 하나님의 결정에 대한 이런 목회적인 해

석이 빠져있는 것이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안에서 우리에게 향한 하나

님의 애정으로서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단어에 대한 주석도 분명히

생략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론적 입장을 결여하는 것이다. 그럼에

4) CO 8,95, Z.12ff. 앞으로는 page와 줄번호를 기록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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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23

도 불구하고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그의 기쁘신 뜻대로”(secundum

propositum voluntatis suae) 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있다(엡1:5,9)(OS IV,

381,16.18). 이런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는 하나님의 판단이기 이전에 하나

님의 사랑인 것이다. “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면, 바울은 하나

님께서 미리 예정하시되 ‘그의 기쁘신 뜻대로 하셨다’라는 대답을 제시한

다”(강요III,22,2; OS IV,381,34f.).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란 그의 판단이며

그의 사랑이고 그의 의지인 것이다.5) 칼빈이 설교에서 “하나님의 결단”

에 관하여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사랑하는” 아

들에 관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 있는 그의 지향점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다양하게 우리에게 알려져야 하는지 그리고 하

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다는 사실이 우리들의 마음에 납득되었을

뿐만아니라, 그가 창세 전에 그의 뜻을 따라 우리를 선택하였기에 그 믿

음을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비로소 아는 것이다.”(96,34-36) 칼빈은 인

간적인 믿음이 언제나 하나님의 선택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교인들에

게 납득시키고자 하였다. 기독교강요에 있는 칼빈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창세전에 하나님 홀로 인간의 구속과 불구속을 결정하셨다.”

III. 롬9:6-20

칼빈은 설교에서 “약속의 자녀들”(롬 9:8)로부터 즉시 “온 세상의 왕

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간다.(100,46) 여기에 구속의 부분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우리의 주 되신 예수의 이름 안

에서 구속으로 부름을 받았으나, 그들 전부가 진실로 약속의 자녀라는

것은 온당치 않다. 바울사도는 모든 자가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유효

5) 비교. 기독교 강요 III,21,1.5, 22,7, 23,4. 24,17; OS IV, 369,29; 375,32;

388,13; 398,21; 4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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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행하지는 않고 대신에 하나님

께서 당신의 선한 뜻이 깃든 그들만을 선택했다고 말하도록 한다면, 그

것은 “망각”에 의한 것이 아니다.”(100,54ff.) 그러므로 그들 모두가 부름

받았으나 모두가 선택된 것은 아니다.

로마서 9장에 대한 주석은 기독교강요 III,22,4-6에 있으며 “로마서에

서 바울사도는 이 상태에 관하여 깊게 사고하였으며 그것을 넓고 자세하

게 따라가고 있다”라고 하면서 주석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야곱

을 선택하고 에서를 버린 사실을 강조한다. “어떤 이유와 어떤 근거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였는지는 의문이다.” 하나님의 예지(praescientia)에 의

하여 하나님께서 그 은혜에 합당한 자들을 택하였다는 반대자의 입장을

그는 결정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는 바울을 증인으로 세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그리고 선과 악을 행하기 전에 ...”. 그 근거는 11절이하

에 언급된다. “... 하나님의 결정은 사랑과 자유의 의지에 인한 것이지 업

적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부르신 이의 은혜에 의해서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III,22에서 단지 로마서9장의 앞부분만 취급한다. 로마서

9:14-29에 나타나는 바울의 과격한 말들(“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

문하느뇨” - “토기장이가 토기에 대하여 권리가 있다” - “진노의 그릇”

그리고 등등)이 여기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IV. 에베소서 1장과 로마서9장의 비교

만약에 설교에 나타나는 에베소서1장과 기독교강요에 나타나는 에베

소서1장을 비교한다면, 각각 서로 다른 구절에 주된 초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로마서9:6-13에 나타나는 야곱과 에서의 사건은 두 텍

스트에서 거의 같다. 그러나 강조점이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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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25

1. 두 텍스트는 시작부터 차이가 난다. 왜냐하면 설교는 볼세스의 입

장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선택은 뒤따르는 믿음에 달려있다. 칼빈은

여러 번 자신의 반대되는 입장을 반복한다: 선택은 믿음에 선행한

다.(96.13f.; 97,48; 99,40f., 96,31) 혹은 믿음이란 하나의 높은 그리고 감추

어진 근원에 의거한다.(94,18f.; 95,51f.). 반대적 입장은 첫째부분에서 반

복되어 나타나며, 그 가운데 예정에 관한 성경구절들이 논의되어진다. 이

와 반하여 기독교강요는 하나님의 예지(praescientia Dei)에 관한 반대

적 입장에 대하여 변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를 아시고 그

들을 선택하셨다. 기독교강요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논박이 무엇보다 먼

저 성경구절을 다루는 가운데 나타난다(강요III,22,1-4, 8-9, 23,6-7).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설교에서 볼세스를 반박한 것이나 기독교강요에

서 “선택을 비방하는 자”6)에 대하여 논박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동일하

다. 왜냐하면 선택에 대한 믿음의 우위를 말하는 것(볼세스의 입장도)이

나 하나님의 선택적 결정은 미래적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고려에서 한다

는 것(카톨릭적 반대입장)은 사실 전적으로 동일한 실상에 대한 두가지

입장인 것이다. 한 입장은 인간의 믿음에서 출발하고 다른 하나는 시간

전의 하나님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당연히 칼빈은 설교에서도 하

나님의 예지란 입장에 대하여 씨름한다. (97,1ff.; 102, 17ff.; 110,49ff.).

2. 그러나 설교나 기독교강요의 다양한 문제제기가 에베소서1장과 로

마서9장에 서로 차이가 나는 성경주석을 아직 해명하고 있지는 않다. 설

교에서는 칼빈이 “창세 전에”(엡1:4)란 단어는 그냥 두고 “그리스도 안에

서”의 선택을 강조하였는데, 이 단어는 놀랍게도 기독교강요에서는 무관

심하게 남겨져 있다. 칼빈의 예정론이 기독론적인 관심을 결여한다고 비

6) 기독교강요 III,22,10; OS IV, 390, Z.30. 설교에서는 그들을

"Sorbonnisten"과 "papistische Theologen"라고 말한다; CO

8,110, Z.47; 102, Z.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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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판받는다면, 이 차이점이 그 중요한 근거이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설교는

6절에 나타나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그의 은혜

로운 행위에 주된 초점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강요는 이 중요한 주제를

매우 짧게 취급하고 있다.

3. 로마서 9장과 비교할 때 에베소서1장의 텍스트는 차이가 있는 “우

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는 여기서 독자에게 온전히 개인적으로 말한

다. 설교는 이런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로마서 9장에서도 “우리”라는 형

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강요에서는 이런 우리라는

가르치는 형태가 깨진다. 이런 직접적인 호칭이 내용도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타난다.

4. 설교의 두 번째 부분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11개의 이

의들에 대하여 변증하고 있다는 것이 지적되어야겠다. 그것들은 먼저 온

건한 입장들에 관한 것이고 그 다음은 반대자들에 관한 것이다. 그 중에

여러 가지를 언급하자면 “만약 내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한 뜻에 따라

특정한 사람만 선택하셨다고 한다면, 오 나는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간주

할까 두려워한다.[롬 9:18a]” (104,55ff). 혹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한다면

이런 교리를 온전히 잘 피해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일부만

선택하셨다는 것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믿음과 회개에 대하

여 설교할 수 있다면.” (106,40ff) 기타 등등. 마찬가지로 기독교강요III,23

에서는 이러한 이의들에 대하여 답변하고 있다.

이의들은 결국 주목할 만한 요약으로 끝난다: 결국 이 모든 것, 즉 하

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설명한 모든 것을 요약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장엄하심에 어울릴 만큼 우리

는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경배하지 못한다. 그가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

실 즉 전체 아담의 후손들에게 내려진 전체적인 멸망으로부터 우리를 빼

어내셔서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게 한다는 것을 우리가 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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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27

하게 기억하지 않는한 우리는 아직도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셨

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기자들에 대하여 말하려고 하면, 그들 가운데 우

리 자신이 있음을 배워 알고 고백하기까지 가야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들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하여 당신이 아버지로서의 자비를 유효하게 하

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바로 그와 동일한 상태였을 것이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우리를 그들로부터 분리해낼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우리를 탁월

하게 하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다’(시편 8:6f). 만약 신자들이 바

로 이지점까지 오지 못한다면, 이미 언급한대로 그들은 하나님께 합당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가 없는 것이다.(111,55ff.)

동정심 곧 유기자들에 대한 연대감이 현저하게 드러나지만, 기독교강

요에서 그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지 않으셨다

면 우리는 본질상 유기자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인 저주에서

우리를 “건져내셨다”. 이 말은 칼빈이 단지 은혜로운 선택을 말하려는 것

이지, 결코 이중예정을 말한 것이 아니다; 유기자들이란 선택되지 않은

자들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5. 설교에서는 종말론적인 입장도 성경적인 증거에 해당하며, 이런 안

목을 가지고 칼빈은 교회에게 하나님의 선택이 형용할 수 없음에 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두 번째 이의에 대한 칼빈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우

리는 최후의 심판날에야 비로서 왜 야곱을 선택하고 에서를 버리셨는지

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홉 번째 이의에 대하여 칼빈은 최후의 심판을

통하여 변증하는데, 그 최후의 날에는 하나님께서 유기자들에 대하여서

도 의롭게 행하였다는 것이 보여줄 것이다. 그날에 우리는 “얼굴과 얼굴

을 대하며”(고전13:12)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첫째 이의, 곧 볼세스의

입장으로 믿음이 선택보다 절대적이라는 것에 대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

이 반대한다: 믿음이란 인식가능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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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판 날에야 비로소 이것을 밝히실 것이다. 어떤 사람이 믿고 어떤 사람이

믿지 않는지 우리는 아직도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강요에서는 종말론적 안목이 빠져있다. 거기에서는 구속과 멸

망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이 최후의 심판 날까지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의

지 안에 감추어져 있으나 교회에게 감추어진 것은 아니다.(기독교강요

III,22,4 등등) 기독교강요에 있는 칼빈의 논의는 근거와 영향, 수여자와

수용자 원인과 결과- 그 밖의 것들은 그의 적대자 Pighius와 마찬가지로

-라는 범주로 한정된다. 그는 설교에서 이에 반하여 최후의 심판날에 있

을 모든 의문 해결에 교회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6. 결론: 설교와 기독교강요의 비교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은, 마지막

것(5번의 내용)을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기독론적 확고함의 부재가 바로 그 약점이다. 이러한 약점은 설교

를 통하여 극복되어진다. 2) 기독교강요는 예정교리에 있어서 종말론적

인 관점이 빠져있다. 3) 유기에 관하여서는 설교에서 보여주었듯이 개인

적인 놀람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V. 칼빈의 두가지 예정론

예정에 관한 서로 다른 두가지 정의는 처음에 지적되었다. 첫 번째 것

은 기독교강요에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 중에 어떤 이는 구속

으로 예정하시고 다른 이들은 멸망으로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영원한

예정(De aeterna praedestinatione)”의 제목이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을

선택하시고 다른 이들은 그냥두셨다고 설명하였다. 기독교강요의 가르침

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1551년의 설교에서는 칼빈이 어떻

게 가르치고 있는가?

그 주제는 “선택, 그 선택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셨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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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29

를 구속으로 내정했다“(93,25f)이다. 하나님의 결정에 대해서도(엡1:9)도

“우리를 그의 편으로 이끄셨을 때 나타내셨던 결정의지”로 표현한다. 영

벌과 유기는 설교의 첫째 부분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칼빈은 “불신자

들”(96:7; 96, 44f.)에 관하여 논하지, 유기자들에 관하여 논하지는 않는다.

영벌에 관하여 불가피하게 언급해야 하는 로마서9장을 이야기 할 때마저

도, 이 개념을 우회적으로 말한다: “리브가가 두 아들을 얻었는데, 그 중

에 하나가 다른 이보다 더 사랑을 받았다.” (101,53f.; 102,4-6). 야곱을

“에서 위에 세웠으며”(constitué au dessus d'Esau; 102,6f.), “그는 선택

되었고 유업을 이을 자로 정해졌으나, 에서는 그 유업으로부터 제외되었

다.”(destitué; 102,13f.) 어떤 사람을 “더 사랑한다”는 표현은 영원한 예정

이란 글의 제목 “멸망에 버려둔다”와 상응한다. 칼빈은 분명히 하나님의

선택은 한계가 있다는 두 번째의 예정론을 대변한다. 만약 칼빈이 “유기”

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때는 조심스럽게 다음의 구조로 말한

다: 로마서9장에서 바울은 “에서는 버림받았고 야곱은 선택되었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103,10f).

예정론교리에 관한 이의를 다루고 있는 설교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유기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첫 번째 이의는 하나님께서 단지

몇몇 사람만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에 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칼빈은 이중 선택에 관한 논의에서는 벗어난다. 단7:10에 따르면 마지막

날에 그 책이 펼쳐질 것이다. 그제서야 비로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했고 에서를 버렸는지 알게 될 것이다”(105,49ff). 그는 영원

한 결정(decretum aeternum)을 말하는 대신 최후의 날에 대하여 주위를

환기시킨다.

여섯 번째 이의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유기자들

에게 주위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을 선택하셨

듯이, 하나님을 사랑했던 자들도 유기하셨다.” 그리고 칼빈은 그것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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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하여 “선택된 자가 있으면 당연히 남겨진 자도 있다(의역)”(109,35ff)라고

설명한다. 논리적 귀결에 의하면 결국 하나님의 유기 역시 존재하게 된

다. 따라서 칼빈은 하나님의 유기에 대한 근거를 제시함에 있어서 그의

전능하심을 증명함으로써가 아니라 아담의 타락으로 우리가 멸망받은 것

으로 증명한다. 우리 전부는 다 유기된 자들이다(109,42ff.: 110,8ff.). 언명

의 주체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들은 선택하시고,

그러나 다른 이들은 버림받은 속에 있다”(기타 등등) 라는 문장에서 앞

부분에서만 하나님이 행동의 주체이다.(109,42f.) 그들은 전부 아담의 후

손으로 버림받은 자이다. 따라서 단지 하나님의 선택이 필요한 것이지

유기에 관한 것은 언급할 필요가 없다.

여덟 번째의 이의는 주의를 요한다: “유기자들에 관하여 많은 것들을

확실히 해야한다; 그들이 내정되거나 선택받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

들을 버리신 것이다”(111,35ff.). 우선 보기에는 이 말이 마치 칼빈이 첫

번째 유형인 이중예정을 가르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유기하셨다는 것. 그러나 유기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남겨진 자들(reiecti)이란 분명하게 말하자면 선택되지 않은

자들(non electi)이다. 칼빈이 단지 논리적 귀결 때문에 다시금 유기에 관

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결국 요약하자면 유기된 자들이란 영원 전에 예정함을 받지 않은 자

가 아니라 아담 안에서 상실된 자들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의 자비를 효력있게 만들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유기된 자들이

다.(112,11ff) 그는 자신의 가르침의 두 번째 유형을 분명하게 대변한다.

유기자들에 대한 위와 같은 분석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기자란 우선 선택되지 않은 자들이다. 칼빈은 논리적

귀결이나 증명을 해야할 경우에만, 이중예정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일곱

번째 이의 곧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을 결정하지 않으셨다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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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31

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자

신의 결정에서 그것을 정하였다”(110,23f., 28f.)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은 인간의 타락 사건에 관한 것이지 한 개인에 해

당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 칼빈은 은혜로운 선택과 이중예정이라는, 시작이 다른 두가지

예정론을 가르친다. 그러나 이 두 가르침이 서로 상치되지 않는 것은 이

중예정이 은혜로운 선택으로 포함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는

서로를 위하여 취해졌으나, 전혀 다른 신학적 사고를 가지며 역시 다르

게 성경적으로 주해되는 것이다. 칼빈은 설교에서 오직 은혜로운 선택에

대해서만 가르친다.

기독교 강요도 이 두 가지 교훈을 대변하는지는 연구되어야 했다. 기

독교강요III,21,7에는 두 가지의 교훈이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하

고 변경이 없는 결정에서 어떤 자들은 구속으로 그리고 다른 이들은 멸

망을 댓가로(devovere) 주기로 한번 확고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는 자

신의 이름에 관한 인식과 성령에 의한 성화에서 유기자들을 제외시킴으

로 어떠한 판결이 그들을 기다리는지를 밝히고 있다.”(OS IV,378,32-34:

37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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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Calvins Prädestinationslehre

- seine Auslegung von Epheser 1 und Römer 9

W. H. Neuser

In der Reihe "Calvins Schriftauslegung" möchte ich zuletzt auf das

Thema Erwählung eingehen. Dieses Thema ist immer besonders beachtet

worden.

I. Vorüberlegungen

1. Es besteht in der Forschung Übereinstimmung, daß Calvin die

Vorherbestimmung (Prädestination) der Menschen zum ewigen Heil oder

zur ewigen Verdammung durch Gott lehrt, um sicherzustellen, daß der

Glaube ausschließlich Geschenk Gottes ist. Der Mensch kann nichts zum

Glauben beitragen. Darum behandelt er in der Institutio von 1559 im Buch

III zuerst den Glauben (Kap. 1-2) und später die Prädestination (Kap.

21-24). Schon die Stellung am Ende von Buch III zeigt, daß sie keine

"Zentrallehre" Calvins ist, sondern der Verteidigung dient. Andererseits

setzt sich Calvin dem Vorwurf aus, Gott sei auch Ursache der Sünde. 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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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33

bestreitet dies entschieden.

2. In der Forschung hat sich noch nicht die Erkenntnis durchgesetzt, daß

Calvin zwei verschiedene Definitionen der Prädestination lehrt. In der

Institutio von 1559 trägt das Kapitel 21 die Überschrift: "Von der ewigen

Wahl Gottes, durch die er die einen zum Heil, die anderen zum Verderben

vorherbestimmt hat".1) In der viel umfangreicheren Schrift "De aeterna

praedestinatione"von 1552 lautet der Titel hingegen: "Von der ewigen

Vorherbestimmung Gottes, durch die er die einen Menschen zur Seligkeit

erwählt, die Anderen in ihrem Verderben belassen hat".2) Der

Unterschied springt in die Augen. Die Institutio lehrt die Vorherbestimmung

zur Verdammnis, die Schrift De aeterna praedestinatione nicht. Sie sagt von

den anderen "reliquit", Gott "beläßt sie in ihrem Verderben oder er

"übergeht"sie bei der Wahl zum ewigen Leben. Gemeint ist, daß durch den

Sündenfall alle Menschen verloren sind. Gott erwählt die einen, die anderen

beläßt er in ihrem Zustand. Die Institutio lehrt eine doppelte

Vorherbestimmung, die Schrift De aeterna praedestinatione eine einfache

Erwählung zum Heil. Calvin lehrt zwei unterschiedliche

Prädestinationslehren.

3. Ich möchte hier auf Calvins Predigt über die Prädestination von 1551

eingehen und sie der Instituio von 1559 gegenüberstellen. Eine

Gemeindepredigt läßt besser erkennen, daß Calvin als Seelsorger anders

1) OS IV, 368, Z.31 2) De aeterna dei praedestinatione, qua in salutem alios ex hominibus elegit,

alios suo exitio reliquit. COR III,vo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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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redet als in der polemischen Schrift De aeterna praedestinatione, gerichtet

gegen Pighius, oder auch in der Institutio von 1559, die die Bibel erschließt,

aber auch eine Apologie ist. Sicherlich ist Calvins Predigt, die er nach der

Verurteilung Bolsecs am 18.Dezember 1551 hielt, eine Lehrpredigt.3) Als

solche steht sie der Institutio nahe. Aber die Zuhröer oder Leser sind bei

beiden verschieden. Die Predigt richtet sich auch an einfache Leute, die

Institutio ist für die Studenten und Gebildeten bestimmt. Wie legt er beiden

Gruppen Epheser 1 und Römer 9 aus ? In der Institutio werden die

Bibelstellen in Buch III, Kap. 22 erläutert.

II. Epheser 1, 4-9

Die Auslegung dieser zentralen biblischen Aussage zur Erwählung

stimmt im Ganzen mit der in Inst III,22,1-3 überein. In der Predigt nennt

Calvin als Thema: "Wir beobachten, daß der Apostel Paulus einen Vergleich

vornimmt zwischen zwei entgegengesetzten Dingen, dem Werk des

3) Die hier behandelte Predigt von 1551 steht CO 8,85-140; vgl. R.Peter(+),

J.-Fr. Gilmont, Bibliotheca Calviniana. Les oeuvres de JeanCalvin publiées au

XVIe siècle, vol.2, Genève 1994, 62/6. Zitiert wird der französische Text CO

8,89-119 (mit Zeilenzählung). Wir ziehen die deutsche bersetzung von Chr. Link

heran. Sie findet sich in Calvin Studienausgabe Bd.4, Neu2002, S.94-149. In

englischer Sprache und mit einer Übersetzung der Predigt Calvins in Afrikaans im

Anhang steht der Vortrag in veränderter Form in Hervormde Theologiese Studies,

Jg.54, Nr.1 und 2, Pretoria 1998, 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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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35

Menschen auf der einen Seite und dem VorGottes auf der anderen."4) Er

trägt sodann die Grundaussage der Erwählungslehre vor: Gott findet beim

Menschen nur "Elend und Armut" (95,23). Gott ist also nicht "ungerecht",

wenn er nur einige Menschen erwählt (95,33f.). Calvin begegnet damit dem

Einwand, Gottes Heilspartikularismus sei ungerecht. Er hätte auch

hinzusetzen können: Gott übergeht die anderen. Damit stimmt überein, daß

er der Gemeinde den Ratschluß Gottes (Eph 1,4 und 9) als gnädiges Handeln

"an uns" verkündigt: Gottes Ratschluß versteht Paulus als "er will uns Gutes

tun" (95,20). Von Verwerfung ist keine Rede. Der Satz "er hat uns erwählt

in Jesus Christus" (Eph 1,4) wird soteriologisch-seelsorgerlich ausgelegt:

Gott betrachtet uns nicht, wie wir sind, sondern "in seinem Sohn" (Eph 1,6) -

und deshalb "liebt er uns" (95,50). Erneut bezeichnet Calvin den

Erwählungsratschlu als Gnade: "Gott erleuchtet die, die er erwählt hat durch

seine gnädige Gte vor Grundlegung der Welt" (96,14ff.).

In der Institutio III,22,1-3 fehlt diese seelsorgerliche Ausdeutung des

Vorsatzes Gottes. Auch die Auslegung der Worte "in Christus" als Gottes

Zuwendung zu uns "in seinem Geliebten" (Sohn) fehlt ganz auffällig. Damit

fehlt der christologische Bezug. Statt dessen hebt Calvin in der Institutio die

Worte "gemäß dem Vorsatz seines Willens" (secundum propositum

voluntasuae) hervor (Eph 1,5 und 9) (OS IV, 381,16.18). Dieses göttliche

Wohlwollen ist eher Gottes Gutdünken als Gottes Liebe. "Wenn man eine

höhere Ursache sucht, dann gibt Paulus die Antwort, daß Gott es so

vorherbestimmt hat und zwar 'nach dem Wohlseines Willens'." (Inst

4) CO 8,95, Z.12ff. Im Folgenden wird nur Seite und Zeile angege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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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III,22,2; OS IV,381, 34f.). Gottes Wohlgefallen ist seine Gutdünken, sein

Belieben, sein Wille.5) In der Predigt geht Calvin auf "Gottes Vorsatz"

nicht ausdrücklich ein, dafür aber auf den "geliebten" Sohn. Sein Ziel ist

dort: "Jetzt also sehen wir, in welcher Weise Gottes Gnade in ihrer Flle bei

uns bekannt sein soll: nicht nur, sofern wir von Herzen davon überzeugt

sind, daß er uns den Glauben verliehen hat, sondern daß er ihn uns gerade

deshalb verliehen hat, weil er uns vor Erschaffung der Welt durch seinen

Willen erwählt hat." (94,30-36) Calvin will die Gemeinde überzeugen, daß

menschlicher Glaube immer Gottes Erwählung zur Voraussetzung hat. In

der Institutio ist sein Anliegen: Gottes Alleinwirken vor Grundlegung der

Welt bestimmt des Menschen Heil und Unheil.

III. Römer 9,6-20

In der Predigt geht Calvin sofort von den "Kindern der Verheiung" (Röm

9,8) über zu Christus, "dem König der ganzen Welt". (100,46) Es stellt sich

die Frage nach dem Partikularisdes Heils. "So also ist j e d e r m a n n im

Namen unseres Herrn Jesus zum Heil berufen, aber das heißt doch

wahrhaftig nicht, daß sie a l l e auch in Wahrheit Erben der Verheißung

sind. Paulus könnte wohl geltendmachen, daß nicht alle glauben, und es ist

nicht "Vergeßlichkeit", wenn er das nicht tut, sondern er läßt das deshalb so

5) Vgl. Inst III,21,1.5, 22,7, 23,4. 24,17; OS IV, 369,29; 375,32; 388,13;

398,21; 4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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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37

gesagt sein, weil Gott nur die erwählt, auf denen sein Wohlgefallen ruht."

(100,54ff.). Also: Alle sind berufen, aber nicht alle erwählt.

Die Auslegung von Römer 9 in der Institutio steht III,22,4-6 und beginnt:

"Im Römerbrief überdenkt Paulus diesen Gegenstand noch tiefer und

verfolgt ihn auch weitläufiger." Er hebt dann die Erwählung Jakobs und die

Verwerfung Esaus hervor. "Es fragt sich nun, aus was für einem Ursprung

und was für einem Grund heraus das geschieht."Die Deutung der Gegner,

durch sein Vorherwissen (praescientia) erwähle Gott diejenigen, die der

Gnade würdig seien, lehnt er entschieden ab. Er führt Paulus zum Zeugen

an: "Ehe die Kinder geboren waren und weder Gutes noch Böses getan

hatten ..." Die Ursache wird in der Fortsetzung des Verses 11 genannt. "...

damit der Ratschluß Gottes bestehen bliebe und seine freie Wahl, nicht aus

Verdienst der Werke, sondern durch die Gnade des Berufenden". Calvin

geht in Inst. III,22 nur auf die Anfangsverse von Römer 9 ein. Die schroffen

Aussagen des Paulus in Römer 9,14-29 ("wer bist du denn, daß du mit Gott

rechten willst" - "ein Töpfer hat Macht über den Ton" - "Gefäße des Zorns"

usw. ) behandelt er an dieser Stelle nicht.

IV. Epheser 1 und Römer 9 im Vergleich

Vergleicht man die Auslegung von Epheser 1 in der Predigt mit der in

der Institutio, so fällt auf, daß sie sich auf ganz verschiedene Verse

konzentriert. Die Behandlung der Geschichte Jakobs und Esaus in Römer

9,6-13 ist in beiden Texten fast gleichlautend. Doch werden unterschiedli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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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Akzente gesetzt. Wo liegt die Ursache ?

1. Beide unterscheiden sich bereits im Ansatz. Denn die Predigt wird von

Bolsecs These bestimmt: Die Erwählung hängt vom nachfolgenden Glauben

ab. Calvin wiederholt mehrmals seine Gegenthese: Die Erwählung geht dem

Glauben voraus (96.13f.; 97,48; 99,40f., auch 96,31) oder: der Glaube ist

von einer höheren, verborgenen Quelle abhängig (94,18f.; 95,51f.). Diese

Gegenthese findet sich wiederholt im ersten Teil, in dem die Bibelstellen zur

Prädestination erörtert werden. Hingegen ist die Institutio bestimmt von der

Abwehr der gegnerischen These der praescientia Dei: Gott erwähle die, bei

denen er voraussieht, daß sie glauben werden. In der Institutio findet sich

Calvins Zurückweisung dieser These vor allem bei der Behandlung der

Bibelstellen (III,22,1-4, 8-9, 23,6-7).

Schaut man genauer hin, so sind die Abwehr Bolsecs in der Predigt und

die Zurückweisung der "Schmäher der Erwählung"6) in der Institutio

sachlich identisch. Denn der Vorrang des Glaubens vor der Erwählung (so

Bolsec) und Gottes Berücksichtigung des zukünftigen Glaubens in seinem

Erwählungsratschluß (so die kathoGegner) sind lediglich zwei Aspekte

desselben Sachverhalts. Die eine Aussage geht vom Glauben des Menschen

aus, die andere vom Handeln Gottes vor aller Zeit. Natürlich setzt sich

Calvin auch in der Predigt mit der These vom Vorherwissen Gottes

auseinander (97,1ff.; 102, 17ff.; 110,49ff.).

2. Die verschiedene Fragestellung in Predigt und Institutio erklärt aber

6) Inst III,22,10; OS IV, 390, Z.30. In der Predigt heien Sie "Sorbonnisten" und

"papistische Theologen"; CO 8,110, Z.47; 102, Z.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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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39

noch nicht die unterschiedliche Auslegung von Epheser 1 und Römer 9 in

beiden. In der Predigt läßt Calvin die Worte "vor Grundlegung der Welt"

(Eph 1,4) unbeachtet und betont die Erwählung "in Christus", die in der

Institutio merkwürdig unbeachtet bleiben. Da Calvins Prädestinationslehre

der mangelnde Christusbezug vorgeworfen wird, ist dieser Unterschied

schwerwiegend. Die Predigt legt, wie erwähnt, das Hauptgewicht auf "den

Geliebten" (Vers 6), auf Gottes Güte und gnädiges HanIn der Institutio

kommt dieser wichtige Aspekt zu kurz.

3. Der Bibeltext Epheser 1 redet im Unterschied zu dem Text Römer 9 in

der Wir-Form; er spricht so ganz persönlich zum Leser. Die Predigt nimmt

dies auf und gebraucht auch bei Römer 9 die Wir-Form. Die lehrhafte Form

der Institutio wird durchbrochen. Diese direkte Anrede bestimmt auch den

Inhalt. Das zeigt sich am Schluß der Predigt.

4. Es mu erwähnt werden, daß Calvin im zweiten Teil der Predigt elf

Einwände gegen die Vorherbestimmung Gottes beantwortet. Sie stammen

zuerst von den Gemäßigtdenkenden, dann von den Gegnern. Ich nenne

einige: "O ja, ich fürchte Gott als ungerecht hinzustellen, wenn ich behaupte,

daß er nach seinem Gutdünken bestimmte Menschen erwählt hat. [Röm

9,18a]" (104,55ff.). Oder: "Man könnte um diese Lehre ganz gut

herumkommen; man könnte den Menschen Glaube und Buße predigen,

ohne gleich zu behaupten, daß einige unter ihnen von Gott erwählt seien."

(106, 40ff.) Usw. Auch in Institutio Buch III, 23 beantwortet er solche

Einwände.

Die Einwände enden schließen mit einer beachtenswer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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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Zusammenfassung. Sie lautet: "Um schließlich all das zusammenzufassen,

was wir im Blick auf Gottes Erwählung ausgeführt haben, wollen wir

festhalten, daß wir Gott noch nicht anänhernd so ehren, wie es seiner Größe

zukommt. Wir haben noch keinen Begriff von dem Ausmaß seiner Gnade,

die er unter uns ausgebreitet hat, solange wir uns nicht vergegenwärtigen,

daß er uns erwählt, ja aus der allgemeinen Verdammnis, die über das ganze

Adamsgekommen ist, herausgenommen hat, um uns unserem Herrn Jesus

Christus zu zuführen. Denn er allein hat uns erlöst. Wenn wir unterdessen

auf die Verworfenen blicken, [so deshalb] damit wir in ihnen uns selbst

sehen lernen und zu dem Eingeständnis kommen: 'Genau so wäre es um uns

selbst bestellt, wenn Gott nicht seine väterliche Güte geltend gemacht hätte,

um uns von ihnen zu scheiden. Wir können uns kraft unserer Natur nicht

von ihnen scheiden, sondern es ist Gott, der uns vortrefflicher gemacht hat'

[vgl. Ps 8, 6f.]. Solange die Glaubenden nicht bis zu diesem Punkt

gekommen sind, werden sie Gott niemals, wie ich bereits gesagt habe, in der

ihm angemessenen Weise ehren." (111, 55ff.).

Das Mitgefühl, ja, die Verbundenheit mit den Verworfenen sticht hervor;

sie findet sich in der Institutio nicht. W i r sind eigentlich die Verworfenen,

wenn Gott uns nicht erwählt hätte. Gott hat uns aus der allgemeinen

Verdammnis "herausgenommen". Dies bedeutet, daß Calvin nur eine

Gnadenwahl lehrt, nicht aber eine doppelte Prädestination; die Verworfenen

sind die Nichterwählten. Dem muß noch nachgegangen werden.

5. Zum biblischen Zeugnis gehört in der Predigt auch der

eschatologische Ausblick, mit dem Calvin der Gemeinde den Ausweg 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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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41

der Unbegreiflichkeit der Erwählung Gottes weist. Beim zweiten Einwand

lautet Calvins Entgegnung: Wir werden am Jüngsten Tag erfahren, warum

Jakob erwählt und Esau verworfen wurde. Auch beim neunten Einwand

verweist Calvin auf das Jüngste Gericht, in dem sichtbar werde, daß Gott

mit den Verworfenen geverfahre. Dann werden wir Gott schauen "von

Angesicht zu Angesicht" (1.Kor 13,12). Beim ersten Einwand zu Bolsecs

These, der Glaube entscheide über die Erwählung, wendet Calvin ein, daß

der Glauben nicht sicher erkennbar sei; Gott offenbare dies erst im Jüngsten

Gericht. Es sei jetzt noch nicht mit Bestimmtheit zu sagen, welche

Menschen glauben und welche nicht.

Der eschatologische Aspekt fehlt in der Institutio. Gottes Entscheidung

über Heil und Verdammnis ist dort in Gottes ewigem Ratschluß verborgen

(Inst III,22,4 uö), nicht aber der Gemeinde verborgen, b i s das Jüngste

Gericht kommt. Calvins Argumentation ist in der Institutio bestimmt von

den Kategorien Ursache und Wirkung, Urheber und Empfänger, Ursprung

und Folge - wie übrigens auch bei seinem Gegner Pighius. In der Predigt

verweist er die Gemeinde hingegen auf die Lösung aller Rätsel am Jüngsten

Tag.

6. Ergebnis: Der Vergleich von Predigt und Institutio zeigt, daß die

Letztere nicht überbewertet werden darf. (1.) Ihr Mangel besteht in der

fehlenden christologischen Verankerung der Vorherbestimmung Gottes.

Diese oft genannte Schwäche sucht die Predigt mit Erfolg zu vermeiden. (2.)

Ebenso fehlt in der Institutio der eschatologische Ausblick der

Prädestinationslehre. (3.) Über die Verwerfung kann, wie die Predigt zei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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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auch mit persönlicher Betroffenheit gesprochen werden.

V. Die zwei Prädestinationslehren Calvins

Die beiden verschiedenen Definitionen der Vorherbestimmung

wureingangs genannt. Die erste stammt aus der Institutio und besagt, Gott

habe die einen zum Heil vorherbestimmt, die anderen zur Verdammnis. Die

Überschrift der Schrift De aeterna praedestinatione erklärt, Gott habe die

einen erwählt, die anderen übergangen. Die Lehrweise der Institutio ist

allgemein bekannt. Wie lehrt Calvin in der Predigt von 1551 ?

Ihr Thema ist "die Erwählung, kraft der uns Gott erwählt und zum Heil

ausersehen hat" (93,25f.). Auch ist der Vorsatz Gottes (Eph 1,9) "der

Ratschluß, den Gott faßte, als er uns auf seine Seite zog" (93, 25f.). Von

Verdammung und Verwerfung ist im ersten Teil der Predigt keine Rede.

Calvin spricht von "Ungläubigen" (96,7; 96, 44f.), nicht von Verworfenen.

Selbst als er auf Römer 9 zu sprechen kommt, wo das Thema Verdammung

unvermeidlich ist, umgeht er den Begriff: "Rebekka bekam zwei Söhne, von

denen der eine dem anderen vorgezogen wurde." (prefere, 101,53f.; ebenso

102,4 und 6) Jakob wurde "über Esau gestellt" (constitué au dessus d'Esau;

102,6f.), "er wurde erwählt und in das Erbe einEsau aber wurde daraus

vertrieben." (destitué; 102,13f.) Der Begriff jemanden "vorziehen"

entspricht dem des "Belassens im Verderben" im Titel zu De aeterna

praedestinatione. Deutlich vertritt Calvin den zweiten Typ 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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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43

Prädestinationslehre, der auf die Erwählung Gottes begrenzt ist. Wenn der

Begriff "verwerfen" unvermeidbar ist, formuliert Calvin zurückhaltend:

Paulus komme in Rmer 9 "zu dem Schluß, daß Esau verworfen und Jakob

erwählt ist." (103,10f.)

Im zweiten Teil der Predigt, der die Einwände gegen die

Prädestinationslehre aufführt, kommt die Verwerfung direkt zur Sprache. Im

ersten Einwand wird nach der Gerechtigkeit Gottes gefragt, da er nur einige

Menschen erwählt. Calvin entzieht sich jedoch der Diskussion über die

doppelte Vorherbestimmung. Nach Daniel 7,10 wird am Ende der Tage das

Buch geöffnet. Dann werden wir sehen, "warum Gott Jakob erwählt, warum

er Esau verworfen hat." (105,49ff.) Statt auf das decretum aeternum

verweist er auf den Jüngsten Tag.

Der sechste Einwand beginnt: "Wir müssen uns nun noch den

Verzuwenden. Denn ganz so wie Gott einige erwählt hat, so hat er auch alle

diejenigen verworfen, die ihm beliebten." Und er setzt hinzu: "Das eine zieht

das andere nach sich." (109,35ff.) Also um der Logik willen gibt es auch

eine VerwerGottes. Dementsprechend begründet Calvin die Verwerfung

Gottes nicht etwa durch den Hinweis auf seine Majestät, sondern er verweist

darauf, dawir durch den Fall Adams verdammt sind. W i r sind alle

insgesamt verworfen. (109,42ff.; 110,8ff.) Das Subjekt der Aussage ist zu

beachten; Gott ist der Handelnde nur im ersten Satzteil: "Wenn Gott nun

einige erwählt hat, die andejedoch verworfen sind," (usw.) (109,49f.) Sie

sind als Nachkommen Adams verworfen. Es bedarf also nur der Erwählung,

nicht der Verwerfung Got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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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Zum achten Einwand fällt die Bemerkung: "Soviel haben wir im Blick

auf die Verworfenen festzuhalten; Gott verwirft sie, sofern sie nicht

ausersehen und erwählt sind." (111,35ff.) Auf den ersten Blick scheint er

den ersten Typ, die doppelte Vorherung, zu lehren: Gott verwirft sie. Doch

steht hinter der Verwerfung kein göttlicher Beschluß (von Ewigkeit her),

sondern die reiecti sind ausdrücklich die non electi. Er spricht von

Verwerfung wiederum nur um der logischen Konsequenz willen.

Auch in der anschließenden Zusammenfassung sind die Verworfenen

nicht die von Ewigkeit her Vorherbestimmten, sondern die in Adam

Verlorenen: Wir wären die Verworfenen, "wenn Gott nicht seine väterliche

Güte geltend gemacht hätte." (112,11ff.) Deutvertritt er den zweiten Typ

seiner Lehre.

Die vorstehende Analyse des Begriffs Verworfene ergibt einhellig, daß

die Verworfenen zuerst einmal die Nichterwählten sind. Die doppelte

Vorherbestimmung vertritt er nur, wenn es die Konsequenz und

Beweisführung erfordert. Daher lautet der 7.Einwand: "Wenn Gott ihn (sc.

des Menschen Fall) nicht beschlossen hätte, wäre es nicht so weit

gekommen." Und Calvin bestätigt, "Gott hat es in seinem Ratschluß vor

aller Zeit angeordnet." (110,23f., 28f.) Der Satz betrifft jedoch den

Sündenund nicht einzelne Menschen.

Ergebnis: Calvin lehrt zwei Prädestinationslehren, die im Ansatz

verschieden sind, die Gnadenwahl und die doppelte Prädestination Es

besteht aber kein Gegensatz zwischen beiden Lehrweisen weil die doppelte

Vorherbestimmung zur Gnadenwahl hinzutreten kann. Beide für s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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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45

genommen haben aber einen ganz verschiedenen theologischen Duktus und

werden auch unterschiedlich biblisch belegt. Calvin lehrt in der Predigt nur

die Gnadenwahl

Es müßte untersucht werden, ob auch die Institutio diese beiden

Lehrweisen vertritt. Inst III,21,7 stehen beide Lehrformen: "Gott hat in

seinem ewigen und unwandelbaren Ratschlag einmal festgestellt, welche er

einst zum Heil annehmen und welche er andererseits dem Verderben

preisgeben (devovere) will." Und: "Den Verworfenen gibt er durch ihren

Ausschluß (excludere) von der Erkenntnis seines Namens und von der

Heiligung seines Geistes bekannt, was fr ein Gericht ihrer wartet." (OS

IV,378,32-34; 37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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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제 3 강제 3 강제 3 강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조병수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신학 교수

도입

16세기의 종교개혁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그 가운

데 가장 흔히 사용되는 방법은 종교개혁을 주도하였던 의식화된 인물들

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위로부터의 종교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연구에서는 종교개혁의 기수인 루터 Luther, 쯔빙글리

Zwinlgi, 부써 Bucer, 멜랑히톤 Melanchton, 칼빈 Calvin을 비롯하여 불

링거 Bullinger, 베자 Beza, 낙스 Knox와 같은 사람들이 주목을 받는다.

이들이 남긴 저술과 논쟁은 이미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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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47

것은 종교개혁의 한 측면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상 종교개혁

은 당시의 신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의하여 성사되었다고 말해도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특히 뮌쩌 Münzer의 사상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

던 농민혁명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이것은 소위 아래로부터의 종교개

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종교개혁을 위하여 평신

도의 의식화는 필연적이었다. 이번 강의는 주로 이 측면에 초점을 맞추

려고 한다. 종교개혁 당시의 신자들의 신앙의식이 어떠했는지를 간략하

게 살펴보면서 오늘날 교회의 건전한 개혁의 진로를 위하여 한국교회의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개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신앙의 지성화

중세의 결실 가운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대학의 설립이다. 대학의 교

육으로 말미암아 유럽에는 점차 지성인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결국 르네상스와 인문주의가 발발 (勃發)하게 되었다. 이런 지

성의 개발은 자연히 교황주의와 교계주의 (Hierarchy)로 이루어진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하여 비판의식을 고조시켰다. 이와 더불어 지리상의 발

견으로 사람들의 세계관이 넓어지게 되었고 인쇄술의 발달로 지식이 더

욱더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발전된 인쇄술로 말미암아 이미 중세

의 말기부터 시작된 성경보급 (Waldo 파)과 성경번역 (Wycliffe)은 더욱

활기를 띄게 되었고 마침내는 종교개혁 시대에 들어와서 신자들이 자신

들의 말로 성경 (Luther의 독일어성경번역)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신자들에게는 성경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

보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의 저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렸다. 결국 신자들은 종교개혁자들의 저술들을 통하여 기독교의 신앙

을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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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길과 사뭇 다르다. 종교개혁과 비교

해 볼 때 현대의 교회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 중에 한 가지는

신앙의 반지성화 현상이다. 이것은 많은 경우에 목회자들에 의하여 조장

된다. 예를 들면 마치 중세의 성직자들이 예배시에 라틴어를 사용하여

신자들을 소외시켰듯이 오늘날 목회자들은 설교 중에 성경의 고전어와

현대 외국어들을 (때로는 유식한 전문용어들을) 권위적으로 사용하여 신

자들로 하여금 설교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오류를 저지른다. 물론

이런 시도 뒤에는 대부분 목회자가 자신의 권위를 세우면서 신자들을 억

압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자들은 목회자의 시도에

적극적으로 편승한다. 신자들은 독서하기를 멀리한다. 적지 않은 경우에

는 목회자들이 평신도가 똑똑하면 목회하기 힘들다는 변을 늘어놓으면서

신자들이 독서를 방해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신

자의 신앙적 문맹화가 깊어지고 있다. 독서하는 신자를 만나보기 힘들고

독서를 장려하는 교회를 발견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신자의

중세화가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사실상 이런 신자의 중세화는

교회가 지성을 버리고 감성을 택하는 데서 여실히 나타난다. 교회가 감

성적이 되었다는 사실은 예배의 진행이나 음악의 사용에서 대표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의 의지로 돌아가려면 신앙

서적 권독, 신앙/신학강연 개최와 같은 시도를 통하여 신앙의 지성화에

목숨을 건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2. 신앙의 내면화

종교개혁이 시작된 가장 피부적인 원인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이다. 구교가 면죄부를 판매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

중에 로마의 베드로 성당 건축이 중요한 이유였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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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49

건축 건축을 위하여 자금마련에 부심하던 로마 카톨릭은 결국 면죄부 판

매라는 위험한 카드를 뽑아들었던 것이다. Luther는 1517년에 95개 조항

을 내밀어 베드로 성당 같은 건물의 의미를 상대화시켰다. 이후에 이것

은 종교개혁에 동찬하는 신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종

교개혁에 동의하는 대부분의 신자들은 로마 카톨릭의 외면화 (성자숭배

와 유물숭배)에 대하여 아주 강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대표적으

로 Zwingli같은 개혁자를 따르는 신자들은 예배당에서 성상을 제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심지어는 악기를 사용하는 것까지도 제한하거나 금

지하였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수없이 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위하여 죽임

을 당하는 희생의 값을 치렀다. 그들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신

앙을 택하고 지켜나갔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시대의 교회와 비교하여 다른 길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한국교회는 서로간에 신앙의 외면

화와 관련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당 안에 장식

품들 (십자가 상, 성화, 꽃꽂이 등등)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유리창 장식과 실내장식도 중세시대 교회에 못지 않게 현란한 수준에 이

르고 있다. 목회자들이 가운을 걸치는 것을 권위로 여기는 것에 머물지

않고 찬양대원들과 예배봉사자들까지도 가운을 입음으로써 권위를 보이

려고 한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미 외형중심적 신앙생활에 잘 길들여져

있어서 외장과 내장을 훌륭하게 갖춘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좋아한

다. 심지어는 신자가 이주나 전근과 같은 부득한 상황에서 교회를 선택

해야 할 때도 신앙고백보다는 예배당의 외형과 시설을 우선시하는 경향

이 짙어졌다. 이러다 보니 신자들에게서는 희생이란 것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고 대체적으로 안일하고 태평한 모습만을 보게 된다.

오늘날 신자들이 피를 흘리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신앙의 외면화와 대결

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에 다시 중세의 회춘이 시작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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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다.

3. 신앙의 개별화

로마 카톨릭은 교황을 정점으로 정신과 문화를 지배하는 막강한 체제

를 가지고 기독교를 외면적으로 하나로 묶는 보편화 (catholicism)를 추

구하였다. 중세의 교회는 개인적 구원의 문제를 다루지 않은 채 보편적

교회를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구교는 신자가 교회에 속해 있기 때

문에 구원이 있다고 가르쳤다. 교회론에서 구원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종

교개혁은 이러한 로마 카톨릭의 무차별적인 보편화를 깨뜨렸다. 종교개

혁이 이룩한 중대한 과업은 보편적 교회론 이전에 개인적 구원론이 앞선

다는 것이다. 구원론에서 교회론이 출발한다. 신자가 개별적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보편적인 교회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구원이 신론에 있어

서 삼위의 총체적인 작업으로 종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위의 각

개적인 활동으로 분리될 수 있듯이, 구원은 인간론에 있어서도 인간을

전체적으로 대상으로 삼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개별적인 대상성이 강조

된다 (요 3:16). 그래서 개인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먼저 고찰

하지 않고는 전체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볼 수 없다. 특히

이후에 개혁주의가 확립한 택자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교훈은

(Dortrecht 신조)은 단순히 선택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위

한 선택교리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실제로 종교개혁이 그

렇게도 중요시했던 이신칭의 교리는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신앙으로 특

징을 이루는 것이며, 교회론적인 면보다는 구속론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만인제사장설도 개인구원의 직접성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

(coram Deo) 선 각각의 신자의 개별성을 잘 드러낸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개별신자의 고백적 신앙 (individual confess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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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51

faith)을 확립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Luther, Calvin). 그들

은 신앙고백적 신자가 신앙고백적 교회를 이룬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

이다. 이로 말미암아 종교개혁시대의 신자들은 고백적 신앙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종교개혁의 교회상과 비교해 볼 때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신

자의 개별성보다는 교회의 집단성에 강조를 둔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신자의 개별적인 고백신앙을 확립시키는 것보다는 집단전 운동

(movement)와 이벤트 (event)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신자들도 대형집회를 선호한다. 교회를 한 명의 유명목사를 정점으로 하

여 카톨릭화 (catholicism)하려는 시도는 목회자들에 의하여 조장되어 신

자들에게서도 호응을 얻는다. 예를 들면 한 대형교회가 여러 개의 소위

지성전을 거느리고 있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교회는 대형마트와 같은 구

조를 가진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의 가정교회와 지역교회의 개별성과 고

유성을 버린 것이다. 신자들은 대형교회가 지원하는 교회, 또는 지원하는

대형교회의 이름을 내건 교회들에 안심을 한다. 그래서 신자들은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우리 교회는 서울에 있는 무슨 유명한

교회의 지원을 받는 (또는 같은 교단의) 교회”라는 사실에 두는 기현상

을 빚어낸다. 이런 이유로 심지어 어떤 교단은 산하교회에 로고를 만들

어 배포함으로써 집단화할 뿐 아니라 자신을 특별한 것으로 구별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은 교단이 스스로 작은 카톨릭이 되고 공식적으로 큰 섹

트 (sect)가 되는 것이다. 이런 위험수위 앞에서 한국교회가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는 개별신자에게 신앙고백적 신앙을 확립시켜주는 것이다.

만일 한국교회가 이 일을 게을리 한다면 머지않아 집단적으로 붕괴되는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4. 신앙의 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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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신자의 무지함으로 일색이던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하여 종교개혁이

달성한 가장 큰 성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역시 신앙교육

(catechism)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종교개혁의 주자들은

신자들의 신앙교육에 역점을 두면서 신앙교육을 위한 교재를 만들어 내

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Luther, Calvin 1537 French [1538 Latin]). 특히

개혁교회는 신앙교육을 통하여 신자의 인격을 성숙하게 하는데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이로부터 전통적으로 개혁교회는 오랫동안 구원의 결과

(또는 열매)에 관하여 논의를 하였다 (Syllogismus). 개혁파 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하여 훨씬 구원의 결과 (열매)를 중시한다. 이것은 예정론의 강

세로부터 개인적인 선택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고자 하는 시도로 나아

가는 것이다. 이것은 실천의 영역에서 발견된다 (소위 실천적 결론

Syllogismus practicus). 이것은 두 가지 방면으로 발전하였다. 외적인 행

위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고 (윤리적 결론 Syllogismus ethicus)와 내적

인 체험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고 (신비적 결론 Syllogismus mysticus)

이다. 윤리적 결론에 의하면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상응

하는 일들을 행하게 한다. 이러한 행위는 결코 자랑을 위한 근거가 아니

라 겸손한 감사를 위한 근거가 된다. 말하자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를 구원하신 것에 대한 추가적인 표식이다. Calvin은 이에 관하여 행위란

보충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다스린다는 것에 대

한 증거”라고 정의하였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 86은 이를 잘 반영

한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그 열매들로부터 확신한다”. 윤리적 결론은

상당히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것은 신앙을 외면화 (사회화)시킨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동인이

된다. 이에 반하여 17세기에 일어난 (신구교를 막론하고 유럽교회에서)

신비적 결론은 내적인 체험이 신앙에 확신을 허락할 수 있다고 생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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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53

다. 도르트레히트 신조 I,12는 이에 대하여 잘 말해준다. “선택된 사람들

은 영적인 기쁨과 거룩한 즐거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언급된 바와

같은 틀림없는 열매들, 즉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경외와 죄에 대한 신적인 고통 등을 관찰함으로써 영원하고 불변

하는 선택의 확신을 얻는다”. 신비적 결론에서는 신앙의 감정 (느낌)이

크게 강조된다. 신앙을 내면화 (개인화)시킨다. 신비적 결론은 대단히 내

향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리하여 사회에 대한 참여를 아주 소극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구원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행위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성경을 통하여 자명하게 찾아낼 수 있다. 개체적인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면에서 전체적인 구조에 대하여 활동한다. 그것은 교회와 사회

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신앙의 인격화에 대하여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

인다.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엄청나게 흥왕한 한국교회가 너무나도 부

패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에 대한 단적인 증거가 된다. 실제로 오

늘날의 한국교회의 신자들은 물질주의에 감염되어 도저히 치료될 가망성

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의 재산이 너무 많다). 내적 외적 치유를 추

구하는 기복적인 교회와 신자는 신앙을 빙자하여 재산증식에만 혈안이

되어있지 인격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데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

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하는 것은 진실한 신앙은 단명하고 기독교의 아

류만이 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종교개혁의 일면을 기초로 하여 한국교회의 문제점

을 살펴보았다. 종교개혁에 신자들이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몇 명의 뛰어

난 지도자들의 노력은 간단히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임은 두 말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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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나위가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개혁의 과제를 어떤 출

중한 지도자들의 몫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만일에 신자들이 위에서 언

급한 몇 가지 내용 이상으로 개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는다

면 앞으로 한국교회의 장래는 매우 어두울 것이다. 신자들은 개혁을 위

한 자신의 몫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두 손바닥이 부딪히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듯이 위로부터의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합치해야

한국교회에 진정한 개혁의 길이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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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55

제 4 강제 4 강제 4 강

오늘에요구되는 개혁

김성봉 목사

신반포중앙교회 담임목사

전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장

시작 말

종교개혁자 칼빈은 1544년 2월 제 3회 스파이어(Speyer) 회의1)에 대비하

여 프로테스탄트 측의 입장을 칼 5세와 여러 의원들에게 전하면서 종교개

혁의 당위성을 변증하였는데1), 오늘 우리에게 「종교개혁의 필요성에 관하

1) 독일 종교개혁 운동에 새로운 시기를 계획한 국가회의로서 제 1 회

는 1526년 6월에, 제 2 회는 1529년 2월에 개최되었다. 이 회의는 프

랑스와의 싸움을 앞두고 프로테스탄트측 제후들의 도움을 얻으려는

칼 5세가 신구양파의 화해를 도모하려고 소집하였고, 양측은 나름대

로의 입장과 주장으로 자파에 유리하도록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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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여」란 제목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 주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 논문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그 때의 문제들은 무엇이었으며, 오늘날

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문제로서는 어떤 문제들이 있으며,

이 시대에 새롭게 제기된 문제로서는 어떤 문제들이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I. 칼빈 당시에 제기되었던 문제들

칼빈은 그의 논문에서 기본적으로 두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인

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관계된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구원함을 받는

방법과 관계된 것이다. 이 두 문제와 관련하여 성례전과 교회통치의 문제를

제기하고 다룬다.2)

1. 예배와 관련하여

칼빈은 무엇보다도 먼저 예배에 있어서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문제를 지

적하기 전에 먼저 그가 생각하였던 합당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칼

빈은 합법적인 예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거룩하고도 진실한 경외”3)인데, 이 경

외를 위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예배의 중요한 기초는 “하나님을 사실

있는 그대로의 모든 덕, 의로우심, 거룩, 지혜, 진리, 능력, 은혜, 관용, 생명

및 구원의 유일한 원천으로 인정하는 일”이며, 따라서 이 일은 우리가 무엇

인가를 필요로 할 때 하나님만을 우러러보는 일 이상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기도가 생기며, 찬미와 감사의 행위도 발생한다. 칼빈은 예배와 관련하여

1) 원래 마틴 부처가 이 일을 맡기로 하였으나 그가 칼빈에게 의뢰하였

고, 칼빈은 부처의 요청으로 회의 개최 전에 이 논문을 완성하여 출

판하였다.

2) 칼빈은 교리와 성례전이나 교회 통치의 관계를 영혼과 몸에다 비유

하였다(칼빈, 「종교개혁의 필요성」, 김동현 역, pp. 21-22).

3) 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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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57

자기부정을 언급하는데,4) 이로 말미암아 예배가 단순히 의식에만 머물지

않고, 생활과 직결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데, 그래야만 하나님께 대한 경

건한 두려움이 우리의 심령을 지배하게 될 뿐 아니라, 우리 생명의 일체의

모든 행동을 제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칼빈은 순전한 예배와 더렵혀진 예배를 나누어 말하면서, 그것을 분별하

는 방법은 “명령권을 장악하고 계시는 유일하신 분이 명하시는 것에 눈을

돌리는 것”5)이라고 하였다. 그는 그 이유로 다음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

데, 첫째로, 이 같은 예배 방식은 하나님의 확고하신 권위에 전적으로 속하

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판단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

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며, 둘째로, 우리는 공허한 존재인

까닭에 만약 제멋대로 예배하도록 허락된다면, 우리는 바른 길에서 떠나 방

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6) 이런 문제 제기와 관련하여

가장 민감하게 제기되었던 것은 화상예배였다. 칼빈에 의하면, 저들은 우상

예배는 죄라고 하면서도 화상예배는 옹호하였다고 한다.7) 예배와 관련하여

칼빈은 자의적 예배, 예배의 대상의 혼동, 기도의 부패, 공식 찬미가의 부패

등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1) 자의적 예배의 문제

예배와 관련하여 그가 지적한 문제들이 무엇이었던가? 무엇보다도 먼저

제기한 것은 소위 ‘자의적 예배’의 문제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

여 어떤 열심을 구실로 삼을 수 있다면 어떠한 행함일찌라도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가납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만인들의 골수에 스며들어 있다!”8)고 탄

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잘못된 확신에 근거한 예배가 편만

해 있는 현상을 언급하였다. 그에 의하면, 소위 “제 멋대로의 예배”는 전적

으로 헛된 것임에도 사람들은 그것에 온갖 정성을 쏟고 있다고 한다. 그 이

4) pp. 22-23.

5) p. 23.

6) p. 24.

7) pp. 51-52.

8)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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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유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과 기뻐하신 것에 주목하는 대신

자기들 기분에 맞는 방법으로 몰두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2) 예배의 대상의 혼동

다음으로 제기한 것은 예배의 대상의 혼동 현상이다. 마리아와 함께 수

많은 성인들이 예배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말로는

모든 선한 것들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하면서도, 실제에 있어 하나님

의 여러 덕성들을 소위 성인들에게 돌림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의 거의 대

부분을 헛되이 만들었다”9)고 탄식하였다.

3) 기도의 부패

다음으로 칼빈은 기도의 부패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예배의 대상의 혼

동과 함께 물려 있는 결과로 여겨진다. 칼빈은 말하기를 기도의 대상도 부

패되었고, 기도의 내용도 부패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기도는 하나님께만 하

여야 함에도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뿐 아니라, 천사들과 심지어

죽은 자들에게도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0)

4) 공식 찬미가의 부패

예배 대상의 혼동은 역시 공식 찬미가의 가사에도 영향을 미쳐 부패한

결과를 보이게 된다. 칼빈에 의하면, “공식 찬미가에도 역시 성자들이 하나

님의 친구인양 찬양의 대상이 되고 있다”11)고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하며 칼빈은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 하고 있는 일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변호하였다: “우리는 유일무이하신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원하여 말씀의 규범에 따라 재건하였으며, 또한 재건한 예배를 열심

히 지키고, 우리의 교회를 모든 우상예배와 미신으로부터 청결케 하여 왔습

니다”12)라고 하였다.

9) p. 25.

10) p. 26.

11) p.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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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59

2. 교리와 관련하여

여기서 말하는 교리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함을 얻는 것을 아는 것”13)

을 가리킨다. 칼빈에 의하면, “(인간의 양심이 구원의 확신을 어디에 두어

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교리는 영혼이므로 ... 몸으로 하여금 무력한 시체로

되지 않게 하는 것”14)이다. 그는 구원의 인식을 세 단계로 설명하는데, 첫

째는 자신에 대한 절망감, 둘째는 그리스도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셋째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죽으심과 부활의 열매를 배우며, 견고한 신뢰로 그리스

도만을 의지하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소유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라고 한다.15) 그는 교리 중에서 원죄, 칭의, 구원의 확신과 관련하여 문

제를 제기하였다.

1) 원죄와 관련하여

칼빈이 구원의 인식을 말하면서 그 첫 번째 단계로 “자신에 대한 절망

감”을 말했는데, 그가 보기에 그 당시의 신학자들은 “인간의 치명적인 질병

들을 될 수 있는 한 가볍게 하려고”16) 하였다. 그들은 원죄에 대하여 그것

을 식욕이나 성욕, 혹은 자유방종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였다.

2) 칭의와 관련하여

칼빈은 당시의 칭의론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보다는 오히려 자신

의 업적과 공로에 눈을 향하도록”17) 한다고 공박하면서 자신은 이러한 오

류를 공격한다고 하였다. 칭의와 관련된 논의의 주제는 사람들이 행하는 선

행들이 “그 자신의 가치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께 결부시키는지 아닌지, 과

연 우리가 그러한 가치로 인해 영혼의 생명을 얻는가의 여부, 그러한 선행

12) p. 53.

13) p. 21.

14) pp. 21-22. 그는 또한 “인간의 생명이 영혼으로 말미암는 것처럼

교회의 구원은 교리에 의한다”고 주장하였다(p. 35).

15) pp. 31-32.

16) p. 32.

17) p.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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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들은 죄의 책임을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지불되는 배상금이

될 수 있는가의 여부 그리고 이 같은 선행 가운데 구원의 확신을 둘 수 있

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18)이라고 하였다.

3) 구원의 확신과 관련하여

칼빈은 이 오류를 “가장 무서운 오류”라고 하는데, 즉 “신앙인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며, 불안한 양심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19)고 주장하는 것이다. 칼빈은 이러한 악마적인 공상

에 의해 신앙의 능력은 전적으로 끊겨졌으며, 그리스도의 은혜는 불식되었

고, 인간의 구원은 전복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은 도처

에서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으며, 이것을 의심하는 것은 사악한 일인

것처럼 가르치며, 그것이 신앙의 본질 중 하나라고 생각되고 있다고 하였

다.

이상과 같이 칼빈은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관계된 것과 하나님

으로부터 구원함을 받는 방법과 관계된 것에서 문제들을 제기하였고, 이 두

문제와 관련하여 성례전과 교회통치의 문제를 제기하고 다루었는데, 후자

의 문제들에 대하여는 다른 기회에 논하고자 한다.

II.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

칼빈이 그 시대에 제기하였던 문제들이 모두 다 바람직한 해결을 보았던

가? 예배와 관련하여, 그리고 교리와 관련하여 지금의 천주교와 관련하여

서는 더 이상 문제삼지 않으려고 한다. 문제는 칼빈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개신교 내의 문제만을 문제삼으려고 한다.

18) p. 33.

19) p.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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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61

1. 예배와 관련하여

1) 자의적 예배의 문제

자의적 예배의 문제는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예배드

린다’는 자세보다는 ‘말씀에 언급되지 않은 사항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예배의 모든 요소에 나타나

고 있다.

2) 예배의 대상의 혼동

예배의 대상의 혼동의 문제는 일단락 지어진 것 같다. 개신교 내에서는

더 이상 마리아나 성자들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예배와 관련한 오늘날의 문

제는 예배의 대상의 문제보다는 예배 일자의 문제이다.

3) 기도의 부패

예배의 대상의 문제가 일단락 지어지면서 그와 맥락을 같이하는 기도의

부패 문제도 일단락 지어진 셈이다. 개신교 내에서는 더 이상 마리아나 성

자를 향하여 기도하지는 않는다. 기도의 부패와 관련한 오늘날의 문제는 기

도의 대상에서보다는 기도의 내용 혹은 기도의 방식에 있다.

4) 공식 찬미가의 부패

예배의 대상이 정리되면서 공식 찬미가에 있어서 마리아나 성자가 찬양

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찬양과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2. 교리와 관련하여

1) 원죄와 관련하여

원죄와 관련하여 개혁 교회의 신학적 입장은 '전적 부패'로 그 입장이

잘 정리되어졌다.20) 하지만 모든 개신교가 이런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2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장 2조: “이 범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보래

가졌던 의를 잃었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끊어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망에 이르게 되었고, 그들의 영혼과 육신의 모든 부분과 기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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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것은 아니다. 같은 개신교라 할지라도 입장을 달리하는 교파나 교단이 있

다.

2) 칭의와 관련하여

칭의와 관련하여 개혁 교회의 신학적 입장은 '이신 칭의'로 그 입장이

잘 정리되어졌다.21)

3) 구원의 확신과 관련하여

구원의 확신과 관련하여 개혁 교회의 신학적 입장은 '성도의 견인 교리'

로 그 입장이 잘 정리되어져 있다.22)

III. 오늘에 요구되는 개혁

우리의 논의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여기서 또 다른 주제들을 제기

하기보다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주제들에 집중하고자 한다.

전부 더러워졌다.” 4조: “인류가 선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배격하며

무능해졌고, 악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이것이 원래

의 부패성(원죄)이다. ... ”

2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11장에서는 이신칭의의 내용들이 다음

의 말들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을

값없이 의롭다고 간주하신다. 이 칭의의 근거는 ... 그들의 죄를 용서

하시고 더 나아가 그들의 인격을 의롭다고 간주하시어 기쁘게 받아

주심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은 ... 다만 그리스도 때문이다. ...

믿음이 칭의의 유일한 도구이다.

2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는 제 17장에서 성도의 궁극적 구원에

대하여 말하고, 제 18장에서 은혜와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고 있다: ...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

심으로 행하며 주 예수님을 진실히 믿고 사랑하는 자들은 구원의 자

리에 있는 줄을 금생에서도 확신할 수 있고, 내세에 누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을 즐거워할 수 있다. ... 이것은 실패 없는 신앙적

확신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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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63

1. 예배와 관련하여

예배와 관련하여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자의적 예배, 예배의 때, 기도

의 방법과 내용, 찬양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1) 자의적 예배

자의적 예배의 경우는 칼빈이 그렇게도 비판하였고, 칼빈 이후의 17세기

신학자들이 그토록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23) 현금의 모습을 보면 우

리에게 언제 그런 논의가 있었느냐는 듯이 보인다. 개혁교회의 예배 원리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배하기를 원하는 분위기가 전

반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이 문제는 거의 재론이 불가능하게 보이기도 한

다. 부활절, 성탄절과 같은 절기 예배는 말할 것도 없고, 각양 이름을 붙인

예배들, 구약에서 힌트를 얻어 신학적 여과도 거치지 않은 채로 재현하는

예배 의식이나 복장 등이 현저한 예가 될 것이다.24)

2) 예배의 때

예배의 대상은 성삼위 하나님으로 확정되었지만, 오늘날 새롭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예배의 때의 문제이다. 주 5일 근무제와 더불어 새삼스럽게

제기된 예배의 때의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정도로까지 전개되고 있다. 오늘

날 논의되고 있는 내용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예배의 대상만 분명하면, 예

배의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제

1 계명을 명하신 분께서 제 4 계명도 명하시지 않았던가? 제 1 계명은 문

자대로 지켜야 되지만, 제 4 계명은 각자 나름대로 지켜도 되는 것일까? 이

에 대하여서도 칼빈과 17세기의 개혁신학자들이 주의 깊게 다루었음에도25)

23) 다니엘 코드레이는 그의 책 Diatribe Triplex: Or A ThreefoldExercitation, Concerning Superstition, Will-worship andChristmas Festivall에서 이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하였다.

24) 한제호, “성경적 배경에서 본 개신교 목사의 예배용 복장 원리,”

「교회와 문화」 11호, 서울:도서출판 하나, pp. 8-70. 김성봉, “소위

‘자의적 예배’에 대한 고찰,” 「교회와 문화」 11호, pp. 71-96.

25) W. Gouge, W. Twiss, G. Walker 등의 글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도 특히 구지(W. Gouge)의 The Sabbaths Sanctification(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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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종교개혁 486주년 기념

그들의 논의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듯이 보인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도 “기독교의 안식일인 주일을 제외한다면, 복음에 근거하여 성

경이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는 날은 없다”26)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3) 기도의 방법과 내용

오늘날 별별 이름의 기도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금식, 철야, 일천 번제,

40일 작정, 릴레이 등등. 모두가 성경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과연 성경이

그런 방식으로 기도하라고 명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주여 삼창, 통성 기

도, 방언 기도, 예언 기도 등의 방식도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도의 방식

만이 아니다. 기도의 내용에 들어가 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다양한 기

도 제목들을 보면, 기도자는 마치 모든 것을 다 기도할 수 있을 것처럼 여

기는 듯이 보인다.

물론 우리는 많은 것을 기도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도에도 그냥 하는 기도

도 있겠지만, 바람직한 기도가 있을 것이다. 일단 욕심에 근거한 기도, 자기

중심의 기도는 지양하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하

겠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적인 기도보다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기

를 바라는 내면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다. 기도자가 기도를 들으

시는 분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그것이 곧 이방인의 기도요 그렇게 하는

기도가 중언부언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27)

4) 찬양

오늘날 교회 가운데서 찬양에 대한 비중이 이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커진

셈이다. 오늘날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는 찬양 분위기에 직면하여, 과연

현금의 찬양이 성경적인가 묻게 된다. 성경 곳곳에서 무작위로 뽑은 증거들

을 가지고 신학적인 여과도 하지 않은 채 그 구절들에 근거하여 하는 일들

1641)은 「주일을 거룩하게」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26) 토마스 레쉬만 편,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정장복 역, 서울:에

배와 설교 아카데미, p. 81.

27)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기도에 대하여 길게 논하고 있다

(III.xx.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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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 강좌 65

을 두고 성경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성경 본문은 반드시 신학적 여과를

거쳐서야 비로소 실천적으로 적용되어 질 수 있다. 성경본문을 신학적 여과

없이 문자적으로만 적용하게 되면, 비록 그 취지는 순박하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신앙적으로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신약 교회의 예배는 성전 예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에서 언급된 여러 내용들을 문자적으로 재현하

려고 하게 되면, 구약의 성전 예배를 재현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구약

의 성전을 그림자로 예표로 쓰신 주님께서 신약 교회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예배는 어떤 것일 가를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찬양의 방식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답게 품위도 있고, 격식도 있어야

할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고성능 앰프를 최대한 틀어 놓고, 그것도 모자라

마이크 음량을 최대한으로 높여 소리소리 질러대는 소리는 더 이상 찬양이

라 할 수 없다. 우리의 고막을 괴롭도록 자극하는 소음일 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 감정 발산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새벽에는 새벽에 맞게, 저

녁이면 저녁에 맞게,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면 그 곳에 맞게, 복잡하고 떠들

썩한 곳이면 그 곳에 맞게 찬양할 수 있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질러대

는 고함 소리는 기독교 종교를 거의 천박한 종교로 여기도록 그 수준을 떨

어뜨리고 말았다. 이와 관련하여 물론 가사들도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는 단순히 인간의 감정만 자극하는 그런 것말고, 신

학적으로 정제되고, 신앙적으로 깊이가 있는 그런 가사가 되어야 할 것이

다. 칼빈은 기도에 대하여 말하는 중에 잠시 찬양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적당한 정도가 지켜진다면, 노래하는 것이야말로 의심의 여지도 없이 지극

히 거룩하고 유익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그러나 그저 귀에만 감미롭고 유

쾌하도록 노래를 지어서 부른다면, 교회의 위엄에도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

라, 하나님께 극도로 거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며, “우리의 귀가 그 노

래 가사의 영적 의미보다도 그 곡조에 더 솔깃해지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

야 할 것”28)이라고 주의를 촉구하였다.

2. 교리와 관련하여

28) 칼빈, 「기독교 강요」, III.xx.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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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관련하여서는 원죄, 칭의, 구원의 확신 등을 언급하였는데, 종교

개혁을 거치면서 교리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립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문제는 그 좋은 유산을 법적으로는 물려받아 놓고도, 제대로 그 유산을 살

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고 훌륭한 교리가 평생 한 번도 펼쳐 보지 않는

신앙고백서 속에 고이 잠들고 있다. 이 시대의 유혹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

의 신앙 선배들이 목숨을 내 걸고 세워준 성경의 교리들을 무관심 속에 방

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리들은 무관심 속에 방치해 둔 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든 목회자들로 하여금 온통 교회성장에만 마음 쏟게 만든다. 오늘날

의 분위기를 보자면 교회성장을 위해서라면 교리쯤이야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다는 자세이다. 주께서 닫아 놓으신 부분을 우리가 열어 주면서 그리

로 수많은 사람들을 받아 들여놓고, 과연 우리가 주님의 종들이라 할 수 있

겠으며, 그렇게 해서 받아 놓은 사람들을 과연 주님의 제자들이라 할 수 있

겠는가? 자기 부인을 하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종교, 기독교가 그런 종교

가 되고 말았다. 우리 주님께서는 부모도, 형제도, 자기 자신까지도 부인하

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라 하셨지만, 오늘 우리는 전도라는 미명 아래

자기 부인 없이도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속삭이고 있지는 않는지? 주님께서

는 좁은 길이라 하셨지만, 우리는 넓고 넓은 길로 만들어 손님을 끌고 있지

는 않는지?

3. 기타 사항들과 관련하여

지금껏 우리는 지난날의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그 문제들과 연관된 이야

기들을 나누었다. 하지만 21세기는 21세기의 독특한 문제를 안고 있다. 오

늘 우리 시대의 문제는 대단히 복합적이다. 먼저, 종교개혁 당시만 해도 당

연히 기준으로 여겼던 성경관이 기독교권 내에서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있

다. 성경을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으면서도, 기독교권 내에

서 신학자로 목회자로 통용되는 것이 가능한 현실이다. 다음으로, 기독교의

유일성이 크게 위기를 맞고 있다. 당시만 해도 종교는 곧 기독교였다. 하지

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전제는 통용되지 않는다.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 들

어와 있다는 말이다. 또한 개신교권 내의 분열이 지나칠 정도로 범람해 있

다. 다양한 이단들이 개신교의 그늘 아래 웅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신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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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성을 인정하기가 어려운 그런 부류들도 개신교 울타리 안에서 서성이

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는 또 다른 시간을 내어 그것들의 분별과 개

혁과 개선을 심도 있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맺음 말

종교 개혁 486주년을 맞아 그 때의 문제들과 오늘날의 문제들을 살펴보

았다. 그 때의 문제들 중에서 어떤 문제들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

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500년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인간의 악

성과 죄성이 뿌리깊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같은 문제로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오늘날 특유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21세기를 맞은 우리들에게 앞서 간 개혁자들의 그런 정신과 의지가 있는

가? 주의 말씀을 따라 교회를 새롭게 하며 나 자신을 새롭게 하겠다는. 오

늘 이 자리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주께서 이런 정신을 더해 주시기를 간

구한다. 부족하지만 우리들을 선한 도구로 쓰시어 우리 시대에도 주님의 교

회를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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