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움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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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움ː][명사] 1.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 나오는 싹.

2. 나무를 베어 낸 뿌리에서 나는 싹.

매거진움 2015년 5월호 <만남>발행일 2015년 4월 26일발행 신형섭기획 신형섭 안현나편집 신형섭에디터 TeXell Lee , 오리, 임종길, Romantico, 신종호, 신형섭디자인 정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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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생각움트다 - 새로운 만남, 시작

06 Half Man Half Music - 시작은 점차 뜨거워진다, 뮤지션 Kaytranada

12 취한 말들을 위한 잡소리 - 사소함이 주는 두근거림, 시작 영화 <걸어도 걸어도>

17 싱글샷 아메리칼럼 -동네친구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 예찬

22 Coordinates of Music -첫 획, '만남'의 X축 뮤지션 이매진 <나의우주>

27 신둘의만찬 -즐거움을 찾는 잘생긴 세 남자의 만남 부천 <로맨틱참숯닭갈비>

담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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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 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투명한 창을 통과한 햇살이 제 얼굴을 따뜻하게 감싸주네

요. 창 밖을 보니 얼마 전까지만해도 무채색이었던 거리가 온갖 다양한 색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햇살

을 받아 더 선명한 원색으로 빛나는 거리를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봄이 왔네요.

봄은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되는 계절입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을 만나기도 하고, 새 학기와 새 친

구를 만나게 되기도 하고, 가볍고 밝은 색의 새 봄옷을 만나기도 합니다. 겨우내 외로움과 친하게 지냈

던 사람들은 두근두근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요.

이 만남의 계절, 매거진 움은 시작이라는 새로운 것과 만났습니다.

이제 첫 걸음을 내딛는 매거진 움은 ‘청춘들이 만드는, 청춘들을 위한, 청춘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표현 같기도 하네요. 몇 년 전엔 청춘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어느 책의 제목이 이슈가

되기도 했죠. 비단 그 책뿐만 아니라 아마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모든 세대를 아울러 공유하는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청춘.

그래서일까요, 이제는 사람들이 이 단어에 식상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해야 하나, 고민도 했죠. 그래도 저는 청춘이라는 이 단어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오

전에는 최저시급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에는 맨땅에 헤딩하듯 매거진 움을 준비하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저 또한 청춘이기 때문입니다.

청춘.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

습니다. 너무 짧은 기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청춘들이 유독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시기, 질투

를 받는 걸까요.

하지만 시인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은 그의 시 <청춘(Youth)>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한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이다.

(중략)

슬픔과 탄식의 얼음 속에 갇힐 때

스무 살이라도 인간은 늙을 수밖에 없고,

고개를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여든 살이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새로운 만남,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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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얽매이지 않아도 희망과 열정을 가진다면 누구나 청춘이 될 수 있습니다. 매거진 움은 이 모든

청춘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각자 다양한 가치와 가능성을 가진 청춘들이 우리들의 진

짜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모였습니다. 아직은 새싹인 움에 불과한, 아직 더 발전해야 할 청춘들

이기에 많이 서툴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저 자신을 포함해서, 매거진 움을 만드는

모두가 속된 말로 허접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이 매거진 움을 나타내는 가장 쉬운 표현일 수

있겠군요.

그렇지만 이제 막 움을 틔우는 우리가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매거진 움을 만드는 이

들뿐만이 아니고, 우리 모든 청춘들이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허접해 보인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각자의 가치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거진 움을 위해 모인 청춘들과 함께 일을 진행하면서 제가 느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가치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앞으로 큰 나무로 성장할 이들에게 매거진 움은 너무 작은

텃밭이 아닐까.

그렇지만 매거진 움은 많은 청춘들이 움을 틔우는 작은 텃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 움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며, 함께 희망을 이야기

하고, 더 많은 청춘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여기에 욕심을 조금만 더

내자면, 매거진 움이 청춘들에게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탤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 정도입니다.

봄을 직접 만나기 위해 카페 밖으로 나가봅니다. 양지바른 곳에 활기차게 피어있는 꽃들을 만났습니

다. 겨우내 움츠러있었지만, 다시 싹을 틔우고 결국 자신만의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꽃이 되었습니다.

지난 겨울을 되돌아 봅니다. 저는 많이 움츠러 있었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나 자신에 대한 좌절과 보이

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혹독한 겨울바람처럼 저를 움츠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 또한

저처럼 움츠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겨울을 보내고 나니 저에겐 희망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면 제 곁에는

저를 응원하는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모든 청춘들에겐 희망이

있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겨우내 혹한의 추위에 움츠려있던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싹, 움을 틔울 것입니다.

매거진 움과 청춘들의 새로운 만남,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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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f Man, Half Music- 음악을 빼고는 스스로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한 인간의 음악 탐색記

에디터 TeXell Lee(https://soundcloud.com/texell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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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YTRANADA

시작은 점차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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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나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얼마간 체류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나는 음악을 빼놓고는 존재를 설명할 수 없었다.

캐리어에는 나의 마스터 키보드와 드럼머신이 동참을 했고, 그곳에서의 나를 이어나갔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질 무렵 이곳의 음악은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 궁금해

Soundcloud에 Montreal을 검색했다.

그렇게 나는 Kaytranada를 처음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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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처음 들었던 Janet Jackson – If (Kaytranada Remix)는 나에게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물론, 이 곡은 굉장히 많은 프로듀서들에 의해서 리믹스가 되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Kaytranada의 사운드에

특히 큰 즐거움을 느꼈다.

아마 같은 기후와 같은 도시에서 느끼는 공감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Janet Jackson – IF

https://www.youtube.com/watch?v=wyciLWAv9BA

Janet Jackson – If (Kaytranada Remix)

https://soundcloud.com/kaytranada/janet-jackson-if-kaytranada

Moon Boots – Sugar

https://soundcloud.com/moonbootsmusic/moon-boots-sug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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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한동안 그의 음악을 잊은 채 학업에 열중한 삶을 보냈다.

바쁜 삶이었기에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들을 시간이 없어 기존의 라이브러리만을 뒤적이며 하루하루를 버

텨갔다. 나의 귀가 조금씩 지쳐가던 중, 우연히 들어간 Soundcloud에서 Sober Thoughs (prod. By

Kaytranada)라고 써있는 곡을 보았고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에 다시금 빠져들게 되었다.

언뜻 미니멀하고 심심하게 느껴지지만 쌓여가는 소리들이 하나하나 매력적이었고, 특히 베이스의 사운

드와 리듬은 나를 사로잡기에 차고 넘쳤다.

GoldLink – Sober Thoughs

https://soundcloud.com/goldlink/sober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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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음원을 저장해 듣는 것을 선호하는 나는 이 음원이 너무 갖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겐 방법이 없었고, 하릴없이 사운드 클라

우드 프로필에 적혀있는 그의 홈페이지를 클릭했다.

http://kaytranada.com/

그의 홈페이지는 재밌는 이미지들과 익명인의 질문에 대한 답들, 본인의 음악을 포함한 좋은 음악들이 많았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의 홈페이지를 샅샅이 살펴보던 중 두꺼운 글씨로 써있는 Whatever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앨범이 특이한 점은 Sober Thoughs라는 현재 판매되는 곡을 무료 공개했다는 점도 있지만, 이 앨범 내에서

본인의 스타일을 명확히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의 음악의 밑바탕에는 힙합의 리듬이 느껴지지만 사운드 각각에서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향기도 물씬 풍긴다.

특히, Ciara – Body party (Kaytranada Remix) 같은 경우는 그 감각의 극대화라고 보인다.

원곡의 끈적끈적한 섹시함을 진짜 파티로 바꿔버리는 그의 능력에 큰 감동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내가 Whatever의 링크를 직접 알려줄 수 있지만, 홈페이지도 구경하고 다른 음악들도 들어보면서

나와 같은 과정을 경험하는 쪽이 더 긍정적이라 생각해 링크는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의외로 쉽게 생각지도 못했던 위치에서 찾을 수 있으니까 보물찾기라고 생각하면…

Kaytranada Boiler Room Montreal DJ Sethttps://www.youtube.com/watch?v=-5EQIiabJ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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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말들을 위한 잡소리고민을 과음하여 어지럽게 취한 채로 앞을 향해 비틀비틀 달려가는

이 시대 지친 준마들을 위한 숙취해소 영화 잡소리

에디터 오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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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사소함이 주는 두근거림, 시작.

누구나 살다보면 크게 혹은 작게 혹은 아주 사소하게나마 ‘의욕상실’을 겪게 되는 때가 있지요. 그 이유가 무엇인

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의욕을 잃었다는 것이고, 그 잃었던 의욕을 회복하기 전에는 다

시 앞으로 한 발짝 걸어갈 힘이 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자꾸 잠만 자고 싶어지는 의욕상실.

하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의욕을 다시 찾아오는 자기만의 방법을 하나씩 가지고 있더군요. 물론 저도

그런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마음에 싱싱함을 환기시키고 잠에서 깨는 저만의 방법! 바로 ‘좌우명’을 되새김질

해보는 것입니다.

‘열정 없이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 말은 너바나라는 밴드의 보컬리스트였던 ‘커트 코베인’이라는 사람이 했던 말입니다. 저와 이 말에 얽힌 배경

이 좀 독특한데요. 나이든 어르신이 할 것만 같은 말을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겁니다. 제

가 몇 백 명 중에 한명쯤 있는 허영심이 가득한 어린이가 맞기는 했지만, 일부러 고상한 사람인 척하기 위해서 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아베 히로시, 하라다 요시오, 키키 키린

2008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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랬던 건 절대 아닙니다.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면, 아마 제가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얼마 안됐을

때였을 겁니다. 상당히 개구쟁이였던 저는 여자애들의 치마를 들추면서 즐겁게 노는 것을 즐기곤 했

는데, 꽤 높은 확률로 담임선생님께 걸려서 혼이 크게 나곤 했었지요. 그때마다 벌로 거의 매일 손을

들고 한참을 있다 보니, 어느 날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들고 있던 손이 아프게 저렸기 때문인지 8년 인생에 큰 회의를 느꼈던 게 분명합니다. 어쨌든 그 계

기로 한동안 장난을 끊고, 저는 비의도적인 염세주의에 빠져 지내게 됩니다. 밝게 웃기만하기도 모자

란 어린 시절에 어두운 무표정으로 몇 달간을 방황하는 것은 많은 어른들의 걱정과 상담을 불러오더

군요. 하지만 그래도 그치지 않던 제 방황은, 어느 날 머리를 자르러 간 미용실에서 잡지를 통해 커트

코베인의 명언을 보고 변화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또래에 비해서 꽤나 영민하지 못했던 저는 ‘열정’

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고 나서야 겨우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 의미를 알게

된 순간 저는 손을 들고 벌을 받을 때 스스로에게 던졌던 ‘잘 살고 있는 걸까?’하는 질문에 대해 대답

을 내립니다.

‘내 인생의 열정이 여자애들 치마나 들추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되겠다.’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별 깨달음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8년 인생에 있어 최고로 큰 결심

이었지요.

그렇게 제 인생에서 굴곡마다 큰 의욕을 불러주는 좌우명이 비록 엉뚱한 계기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그 계기가 어찌됐든 제게 늘 새로운 시작의 의욕을 불러일으켜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해주곤 합니다.

결국, 위 일련의 사건들이 제 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 전환점이 된 셈인데요. 이러한 일들을 비추어 보

았을 때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려고 할 때는 언제나 계기라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 계기라는

것이 듣기에는 꽤나 거창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조금 생각해보면 제 좌우명의 계기가 여자애들

의 치마를 들추는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한 것처럼, 거창하게가 아닌 언제나 예측하지 못할 때에

사소히 찾아오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시작과 그 계기는 굉장히 거창하기만 합니다. 마치 <스파이더

맨>(2002)의 피터 파커처럼 슈퍼 거미에 물린다던지, <아이언 맨>(2008)의 토니 스타크처럼 테러

리스트들에게 납치되는 그런 일들 쯤은 돼야,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지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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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생각은 <걸어도 걸어도>(2008,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에게도 통용되

는 것 같습니다. 그의 형, 준페이의 죽음을 기준으로 그의 가족들은 아버지부터 어머니, 누나, 그리고 자기 자신

까지 그 이전의 과거에 갇혀버리게 되는데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가야하는데, 준페이의 죽음을 통해 꽤 오

랜 시간동안 자신들의 삶에 꽤 ‘의욕상실’해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인지 료타는 이미 10년 전에 죽은 형의 기

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가족들의 ‘의욕회복’을 위해, 형의 기억이 담긴 오래된 집을 팔고 싶어 하며 또 억지로

아버지를 타박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가족과 거리두기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새로 시작하는 것

이 어려워지기만 하고, 과거에 더 매몰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영화에선 이러한 모습을 등장인물들이 계

속해서 하강해 가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요. 영화의 제목처럼 계속 걸어도 걸어도 의

욕이 위로 올라가기는 커녕 계속 아래로 떨어지기만 하니, 하나의 의욕상실은 마치 또 다른 차원의 의욕상실을

지속적으로 불러오는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도 어

떤 의욕상실을 겪게 될 때, 그 의욕상실은 차근차근히

연쇄적인 파괴활동을 시작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성

적이 떨어졌을 때에 생기는 의욕상실은 공부를 때려 치

게 만들고, 또 아르바이트를 때려 치게 만드는 식의 다

른 차원의 의욕상실을 가지고 옵니다. 그렇게 보니 영

화의 제목인 <걸어도 걸어도>는 뒤에 ‘끝이 안나’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을 만큼 의욕상실에 관한 이름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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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래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 영화에서 밝히는 주인공 료타와 그의 아버지 쿄헤이(하라다 요시

오)가 새로운 시작의 계기를 마련하는 사건은 집을 판다거나, 가족과 거리두기를 시도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일

보다 훨씬 예측하지 못한 사소함으로 다가옵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새로운 세상과 연결되어있는 육교를 차마 올라가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쿄헤이가 영화

의 후반부에서는 마침내 아들 료타와 함께, 육교 너머의 바닷가로,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짝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대립각을 세우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뭔가 엄청난 사건이 개입한 것

이 아니라, 단순히 ‘같이 축구를 보러 가요.’라는 ‘사소한 약속’때문입니다.

료타와 쿄헤이 부자의 약속처럼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약속들을 하지요. 그중 대부분은 보통 ‘언제 밥

한 끼 먹자’거나, ‘다음에 보자’는 실없는 약속이기도 하고, 장난스런 약속이기도 하지만, 그런 아주 사소한 약속

들로 인해서 가끔은 내일을 기대하기도, 현재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합니다.

시작. 이 단어만큼 사람들을 설레게 만드는 단어도 없지요.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부담

을 느끼고, 힘겹게 생각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작의 본질이 사실 그렇게 거대하고 막중한 임무 같은

게 아니라, 작고 일상적인 부분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무언 갈 시작하는 게 더 쉬워질 게 분명합니다. 봄이 조금

씩 짙어지는 요즘, 우리 일상을 새로운 시작이라는 신선함으로 가득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아마 많이는 아니더

라도, 어느 정도의 두근거림이 활력을 불러오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출처공식블로그 http://blog.naver.com/aruit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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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임종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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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친구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 예찬

외로운 현대인들의 삶의 질은 동네친구가 있으냐 없느냐에 따라 상당히 갈린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지쳐 터덜터덜 집에 가는데 이 스트레스를 그대로 집에 가져가자니 적잖이

아쉽다.

그렇다고 어디 멀리 가기엔 부담스럽다.

퇴근길 정체된 신호 앞에서 요즘 제철인 알이 꽉 찬 쭈꾸미 샤브샤브가 내 머릴 휘감는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나 불러낼 수도 없는 일.

하.. 참 이대로 가기 참 아쉬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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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친구진흥위원회에서 지정한 동네친구의 정의란, '택시로 기본요금까지 거리의 지인'을 뜻한다.

이는 서로 만나고 파하는데 있어 부담이 없다는 게 일단 동네친구의 최고 미덕이란 뜻이다. 몇 주 전 약속을 잡아

놓고 막상 당일이 되자 컨디션이 별로여서 가기 싫은 적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 때 동친의 위력은 발휘된다.

굉장히 자기위주로 조금만 미안해하며 약속을 파해도 되고, 아니면 사실 집이 코앞이기 때문에 적당히 같이 앉아

두런두런 있다 보면 생각보다 있을 만 한 경우도 있다.

이래저래 동네친구의 장점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구도인 것이, 기본적으로 동네친구와는 몇 주 전부터 어디서 만

나자는 합의가 잘 없다. 혹여나 있어도 시간과 장소가 모호하거나 구체적이지 않다.

이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서로가 아쉬울 때 편하게 보자’라는 심산인 것이 어느 정도 내포되어 있다는 뜻이며, 이

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불문율의 합의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에 적당한 친분만 있는 관계에서는, 몇 주 전 잡아둔 약속을 이래저래 적당한 이유를 들이대며 빠지는 건 눈

치 보이고 부담스럽다.

그때 동네에서 슬리퍼 질질 끌고 나오는 그놈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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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친구의 장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집 가까운 곳에서 술을 편하게 마신다는 건, 지하철 형광등 불 빛아래에서 속절없이 드러나는 시뻘건 얼굴과 시

꺼먼 다크서클을 자랑하는 가혹한 통과의례를 생략한다는 뜻이고, 그 통과의례 밑에서 허무하게 술 깰 필요 없다

는 것이다. 그저 그 좋았던 감정 그대로 취기나 감정 모두 킵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 면 된다.

이 얼마나 훌륭한가? 오늘 하루 묵은 감정을 시원하게 한 잔 탁 털어 놓고 입 속에 한 잔 탁 털어넣고 옷 툭툭 털

며 깔끔하게 일어난다면 말이다. 그날 생긴 감정의 부산물은 가장 싱싱할 때 털어내야 가장 건강하다.

물론 가족한테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필터링이 필요 없다는 측면에선 동네친구가 가족보다도 우위를 점한다.

이 얼마나 위대한가? 가장 날 것의 감정 그대로 생생하게 이야기 하려면 동네친구보다 제격인 관계는 없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봤을 때, 친구한테 먼저 이야기 하고 진정한 후, 가족한테는 좀 더 정제된 마음가짐으로 점잖

게 이야기해도 늦지 않았다.

이렇게 가족 모두 불러내어 이야기 해야할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도, 사소하고 소소했던 그날의 감정들은 친구

들과 나누면서 또 한 번 생명력을 얻고 그렇게 위로받고 위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 지방직에 근무하는 한 지인은 이걸로 인해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라 한다. 너무 힘든 결정

앞에 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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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지방에서 근무하고 2배 봉급을 더 받을까 아니면 이직해서 절반의 돈을 받고 서울에서 근무할 것인가?

처음에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돈이 더 중해 보였다.

하지만 근무를 하고 또 회사사람과 먹는 술은 딱 한 달이 재밌었나 보다. 회사사람은 아무리 좋아도 회사사람이

고 이야기 못할게 많으며, 또 이놈이 다른 곳에 실수로 어디서 다 이야기할지 모르는 것이 햐.. 이래저래 피곤하

다. 어쨌든 이렇게 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 형님은 교통비, 술값 다 내줄테니 한 번 내려오라고 사정을 하고

있다.

결국 동네친구와 즐거운 자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돈 주고도 못사는 월급 두 배의 비싼 자리인 것이다.

혹시 오늘도 습관대로 너무 당연하게 동네친구를 불러내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한 번 생

각해보고 지갑 사정이 허락하는 한 한 턱 쏴보자.

분명 그 친구 두 눈이 휘둥그래해지며 “왜 그래?” 할 것이다. 그럼 오히려 되 묻자.

왜 난 너 사주면 안 되냐고(이렇게 좋은 자리인데). 괄호 안의 말은 웬만하면 하지말자. 시공간이 수축되며 의가

상할 수 있다.

그저, “이 새끼 돈 생겼나봐? 맨날 돈 없다고 빌빌대는 새끼가 오늘은 존나 쎈 척하네 또” 라는 욕 맛있게 먹고 댓

가로 술 한 번 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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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스물 한 살. 군입대까지 100일 남짓.

군대갔다오면 철든다던데, 철들기 전의 나를 어딘가 새겨놓고 싶었다. 혼자 뭘 해볼까 하던 찰나, 에디터 제안을

받았다. 내가 선택한 키워드는 음악이었다. 직접 연주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사람의 연주를 빌려 이야기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로 영화를 만들고, 영화는 곧 음악가들에게 뮤직비디오가 되며, 만드는 과정은 잡지

에 기고할 텍스트가 될 것이다.

다음 문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였다. 혼자 카페에 앉아, 수첩에 의미 없는 낙서를 하다가 우연히 선을 그었다.

거기에 교차된 선을 긋고 보니 문득 수학시간의 X축, Y축이 생각났다. X, Y축 등으로 이루어진 좌표계는 직선,

마름모, 원통까지 모든 입체를 그릴 수 있었다. 나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나갈 좌표계를 그리기로 했다.

에디터 Romant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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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계의 가장 기본, X축은 ‘관계’라는 단어에서 시작된다. 점과 점이 이어져 직선 X축을 이룬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나의 관계를 이룬다. 이 유사성에서 출발하여 첫 획이 시작되었다. 관계... 음, 관계. 어쩌면 가장 기본적

인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똑바로 직선 하나 잇지 못하고, 여러 선들이 서로

엉키는 것은 물론, 멀어지는 점에 이어져있던 선은 끊어지기도 한다. 왜일까. 똑바로 줄맞춰 이어버리면 될 텐

데. 그 점들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점 하나 하나는 우주였다. 그 까만 덩어리 안에는 자그마한 별들이 하나 둘

씩 빛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엄청난 두 존재가 하나의 직선으로 이어지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관계라는 것은 그저 선으로 이어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다. ‘너’라는 무한의 미지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하나씩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저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일뿐이었던, 너라는 존재 안의 별들을 발견하며, 넌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게 된다. 너의 이름, 너의 행동, 너의 말, 그 모든 별들이 하나 둘, 너라는 우주를 밝힌다. 하

지만 그렇게 우주가 밝아져갈 때일수록, 우리는 더 조심해야한다. 그런 별들이 너무나 눈부셔 손에 쥐려할 때, 그

별은 즉시 빛을 잃고 만다. 관계란 소유가 아니다. 친구 사이이든, 연인 사이이든, 공적인 관계이든 서로의 우주

를 넘어서는 순간 우주는 뒤틀리고, 어느 쪽이든 밀어내게 될 것이다.

첫 획, ‘만남’의 X축

Background Image By Axel Antas-Bergkvist of Unsplash(https://download.unsplash.com/photo-1422640805998-18a4dd89be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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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곡은 내 생각을 이루는 것들 중 하나이다. 놀랍게도 가사에는 관계에 대한 나의 이미지들이 차곡히 전부 들

어있다. 우주, 별들과 평행선까지 내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듯했다.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기에, 직접 이매진씨

께 연락을 드렸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이매진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주로 홍대에서 활동하는, 작년에

는 달마다 노래 한 곡씩을 발표했으며 수많은 공연들로 바쁘게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기타를 메고 예쁜 목

소리로 노래하는 이매진을 라이브로 보고 싶다면 http://www.facebook.com/singing.i.magine 이곳에 찾

아가보도록 하자.

"나의 우주" 공연영상(www.youtube.com/watch?v=SPK7WjqBMF0)

희미한 바람, 낡은 두 운동화

젖은 구름 뒤에 별을 찾네.

:

이 끝을 알 수 없는 평행선 위에서

당신과 나는 서툰 춤을 추겠죠.

:

내 작은 세상, 넌 내게 우주

나를 깨워줄 단 한 사람

저 하늘을 가리켜

끝없는 꿈을 꾸네.

이대로 너와 나, 노래하네.. 이매진,「나의 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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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음악가 이매진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여러 가지 키워드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중에 한 가지

는 느리다는 것. 조금 늦는 편이에요. 음악을 시작한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행로가 조금 늦는 편인 것 같

고. 또 하나는,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것이 아니라 느리기 때문에 성장도 더딘, 그래

서 앞으로 많이 더 자라야하는 아이 같아요.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살면서 가장 많이 부딪히고 가장 큰 숙제인 것 같아요. 모두가 하나의 행성이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 나 같기를

바라면서 관계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 하며 블랙홀처럼 흡수하려고만 하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토성의 띠처럼 서로가 서로의 행성을 도는 거잖아요. 너무 흡수하려

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며, 인정하고, 사랑하며, 서로의 행성을 도는 것. 그게 관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터뷰 영상 보기 (https://youtu.be/DHk7agaboLg)

‘나의 우주’란 곡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사실, 그 노래를 쓰기 전까지는 직접적인 가사와 생

활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널 좋아해” 이런

솔직한 가사들? 은유적인 말을 하고 싶었어요. 결국

엔 그렇게 은유적인 곡은 아니지만, 가진 것 없이 불

어오는 바람과 저 하늘의 별들을 찾으며, 너 하나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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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란 행성 사이를 도는 것, 이매진씨의 표현이다. 인터뷰 이전에 카페에서 이미 관계에 대한 이야길 나눴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다. 나의 이야기도, 이매진씨의 이야기도,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다. 서로가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의 모양을 지녀야한다는 것이다. 또, 영상의 이야기 틀을 잡

기 위해 ‘나의 우주’라는 곡의 이미지와 탄생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이야길 듣고 다시 곡의 가사를 읽어

보았다. 희미한 바람, 낡은 두 운동화, 젖은 구름과 별. 끝났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창작자의 의도와 이미지,

나의 이야기를 담아 다음 달 호에서는 구체적인 결과물을 보여주려 한다. 끝으로 프로젝트를 도와주신 이매진씨

는 올해 안으로 정규 1집 앨범이 나온다고 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사진제공 이매진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inging.i.mag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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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申): [명사] 우리나라 성(姓)의 하나. 본관은 평산(平山), 고령(高靈) 등이 현존한다.

- 둘[둘ː]: [수사] 하나에 하나를 더한 수.

- 만찬 (晩餐)[만ː찬]: [명사] 1. 저녁 식사로 먹기 위하여 차린 음식.

2. 손님을 초대하여 함께 먹는 저녁 식사.

에디터 신형섭 신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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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익어가는 닭갈비를 앞에 놓고 친구와 소주 한 잔 부딪힌다.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일행 없이 홀로 식

당에 들어온다. 아저씨는 자리에 앉아 닭갈비와 소주를 주문했다. 아저씨에게 잠깐 눈길이 갔지만 곧 고개를 다

시 돌려 친구와 대화를 이어간다. 그런데, 말없이 조용히 있을 것 같았던 아저씨 쪽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

온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아저씨를 바라봤다. 야구팀 빙그레이글스의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젊은 식당 주인과 아

저씨가 웃으며 술잔을 주고받고 있다.

“손님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단순히 음식만 먹고 가는 식당이 아니라,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가게. 손님이 혼자 오시더라도 제가 말을 걸어드리면 그 분도 만족을 하시고, 저도 기분이

좋잖아요.”

로맨틱참숯닭갈비의 세 남자는 그냥 닭갈비가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기분 좋은 맛이 배어있는 닭갈비를 굽고

있었다.

부천 <로맨틱참숯닭갈비>즐거움을 찾는 잘생긴 세 남자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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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참숯닭갈비는 지하철 1호선 부천역에서 전화국 사거리로 가는 길 위, 사거리에는 조금 못 미친 곳에 위치

하고 있다. 젊은 남녀들의 넘치는 활기가 느껴지는 화려한 부천역 앞이나, 부천대학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한 부천대 앞 골목에 비교한다면 조금 한산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가게도 그다지 크지 않고, 주변에 비슷비슷한 크기의 식당들과 서로 오밀조밀 붙어서 모여있는 느낌을 받는다.

찾아가는 길에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다가는 도착했는지도 모르고 금새 지나쳐버릴 수도 있다. 다행히도,

30미터만 더 가면 도착한다고 알려주는 플래카드와, 헤메지 말고 어서 들어오라는 듯 활짝 열려있는 출입문을

보면 놓치지 않고 로맨틱참숯닭갈비를 찾을 수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 야구와 관련된 인테리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야구 유니폼과 모자가 걸려있고 각 테이

블과 벽에는 프로야구 팀 엠블럼들이 붙어있으며, 티비 화면에서는 야구 중계가 나오고 있다. 이 것들을 둘러보

고 있으면 야구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주문을 받고 야구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한다. 야구

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숯불닭갈비에 소주 한 잔 마시면서 야구 중계를 보기 딱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

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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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로맨틱참숯닭갈비는 그런 곳이다. 다같이 즐겁게 야구를 볼 수 있는 공간, 즐겁게 야구보면서 밥먹고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 로맨틱참숯닭갈비는 10년 이상 된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 이명랑, 곽동균, 허경무가 동업

으로 함께 시작했고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 셋은, 모이면 야구 이야기밖에 안 하는, 본인들 표현대로라면 모두

야구에 미쳐있는 사람들이다. 셋이 모이든 아니면 더 많은 사람들과 모이든, 다같이 어울려서 야구를 보고 야구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좋다고 한다. 그래서 로맨틱참숯닭갈비는 야구라는 것을 통해 사람들이 서

로 소통하고 호흡하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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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숯불닭갈비를 하게 된 것일까? 곽동균씨의 입에서는 ‘얻어걸려서’ 라는 대답이 나왔다. 사실 특별

한 이유는 없었다. 예산이 딱 알맞았기 때문이었다. 셋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장사할 만한 자리를 구하기 위

해 부천 지역을 다 찾아봤지만 모아놓은 돈이 얼마 없었고, 가진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곳은 이 자리뿐이었다고 한

다. 그래서 지금 자리에 원래 있었던 숯불닭갈비가게를 인수했고, 숯불닭갈비를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숯불닭갈비가게를 인수하고 돈이 없어서 간판도 그대로 사용한 이들이지만 닭갈비에 대해서는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닭갈비에 집중하기 위해 기존 메뉴에 있던 김치찌개나 순대국 등 잡다한 것들을 빼버렸고, 온갖 시행착

오를 거쳐가며 자신들만의 맛을 개발하여 지금은 손님들이 좋아하는 맛이라고 자부할 정도가 되었다. 메뉴판을

훑어보면 닭갈비는 불, 양념, 간장 세 종류가 있고, 술 안주로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껍데기, 그리고 마무리로 시

원하게 먹을 수 있는 막국수가 있다.

모든 메뉴가 다 맛있지만, 로맨틱참숯닭갈비에서 특히 자부하는 메뉴는 바로 간장닭갈비다. 숯불 석쇠 위에서

자글자글 익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빛깔이 마치 돼지 목살구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맛을 빨리 느껴

보고 싶어 다 익었는지 계속해서 고기를 들었다 놨다 하며 확인하게 된다. 이 짧은 시간이 마치 한 시간이라도 되

는 것마냥 침을 꼴깍 삼켜가며 기다린 끝에 얼른 젓가락을 들어 맛을 본다. 육질은 부드럽고 쫄깃하며, 자극적이

지 않고 담백한 특유의 향이 입 안에서 톡톡 터진 후 머릿속까지 퍼져 들어가 피로가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입 안에 들어간 첫 조각이 목구멍을 채 넘어가기도 전에 젓가락은 석쇠 위로 다가가 벌써 다음 조각을 공략하고

있다. 닭갈비를 다 먹고나면 저녁식사뿐 아니라 그 날 하루가 다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로맨틱참숯닭갈비의 닭갈비를 맛있게 하는 것은 로맨틱참숯닭갈비의 세 남자가 추구하는

즐거움이라는 양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당장 지하철을 타고 부천 로맨틱참숯닭

갈비로 달려가 간장닭갈비를 먹으며 친구들과 즐겁게 소주 한 잔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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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분이 어떻게 동업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곽: 회사를 다녔는데, 직장생활에 지치기도 하고 내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잖아요? 명랑이랑 메신

져로 ‘우리 장사나 해볼까’하는 농담을 1년 동안 했어

요. 그러다가 술 마시면서 ‘진짜 때려칠까?’ 얘기하

고… 그런데 둘이서만 하기에는 약간 불안하더라구

요. 세 명이면 균형 있게 지지가 되잖아요. 그래서 경

무를 술자리에 오게 했죠. “같이 한 번 해볼래?”했어

요. 그 전에도 경무한테 장사를 할거란 얘기는 많이

했었는데 같이 하자고 하지는 않았었죠.

허: 시기가 맞았어요. 회사를 2년 정도 다녔는데, 뭔

가를 만들어서 하는 일은 지금 시기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뭔가 내 것을 만들어서 해볼

수 있는 타이밍이 딱 그 시점이더라구요.

곽: 그냥 놀고 싶은거지 뭐. 놀면서 일하고 싶으니까.

하하하.

야구라는 컨셉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곽: 친구들끼리 모이면 야구 얘기밖에 안해요. 좋아

하는 팀이 서로 다 달라서 그게 너무 재미있어요. 야

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다같이 즐겁게 야

구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티비도 산거에요. 원래 이 가게에 티

비도 없었거든요. 간판은 안바꾸고 티비를… 하하하

허: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야구를 틀어놓은 식당

을 가게 되요. 우리도 그렇게 찾아 다녔거든요. 야구

어디서 보지, 하면서. 저희 가게는 대놓고 야구 보면

서 밥이랑 술도 먹을 수 있는 곳이 되는거죠. 그리고

손님들이랑 대놓고 응원도 하구요. 닭갈비를 파는 야

구포차의 느낌?

이: 돈 벌면 포차도 차릴거에요. 셋이서 하는 데서 끝

나지 않고 2호점, 3호점 늘려나갈 생각인데, 닭갈비

뿐 아니고 2호점은 포차, 김치찌개 이런 식으로 하고

로맨틱참숯닭갈비의 잘생긴 세 남자이명랑, 허경무, 곽동균(이하 각 이, 허, 곽)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인터뷰 영상 보기 (https://youtu.be/NflRsjWTD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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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어요. 그래도 야구보면서 밥먹고 술먹는 테마는 계

속할 생각입니다.

곽: 야구라는 것을 통해서 손님하고 한 공간에서 소

통하고 호흡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거에요. 그

냥 손님한테 닭갈비 던져놓고 구워서 먹어라 하는게

아니고, 저희가 직접 구워드리면서 손님이랑 이런저

런 얘기도 하고.

로맨틱참숯닭갈비만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허: 우선 국내산.

이: 춘천의 양계장에서 직접 가져와요.

곽: 양이 많아요. 값싸고. 그리고 숯불닭갈비를 하는

집이 많이 생겼는데, 보통 양념닭갈비만 많이 하거든

요. 그런데 우리 가게는 간장닭갈비도 있다는게 큰 장

점이죠. 젊은 사람들은 간장을 많이 선호하고, 나이드

신 분들은 양념을 선호하세요.

허: 그래도 빨간거, 양념은 빨간거지 이러시면서. 하

하하.

곽: 보통은 알맞게 간장 하나, 양념 하나 이렇게 같이

주문하죠.

허: 체인점이 아니라서 단일화된 맛이 아니라 우리만

의 레시피로 만든다는 것도 특징이에요. 다른 곳이랑

맛이 차별화 되어있다는 것.

아 그리고 참숯. 좋은 숯 향이 날 수 있게 100퍼센트

참 숯을 써요. 비장탄이나 열탄을 섞어서 쓰는 숯불과

는 먹을 때 향이 달라요.

이제 시작하신지 1년 1개월 되었는데 어려웠던 점이

나 특별히 기억나는 것들이 있나요?

이: 처음엔 음식의 맛 보다는 음식이 늦게 나오거나

행동이 서툰 것이 문제였어요. 뭐 하나 시키면 바로

나와야 하는데 20분 정도 걸려서 나오고 막국수 시키

면 안된다고 하고, 어설펐죠.

곽: 준비기간이 굉장히 짧았어요. 장사를 하겠다고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닭갈비가게 나오자마자 바로 계

약하고 열흘 만에 장사 시작한거에요.

허: 직장에서는 시키는거만 하면 되었는데, 스스로

만들어가는게 어렵더라구요. 작은 비품부터 세금까

지 영업 시간 외에도 그 전후로 보이지 않는 일들이 많

은데 하나하나 하면서 배우죠.

곽: 한번은 여름 장마 때 비가 엄청 오는데 숯실에 비

가 들어와서 숯이 다 꺼진 적도 있어요. 지붕은 있는

데 옆이 뚫려있어서 비가 다 들어온거에요. 갑작스럽

게 장사를 못했어요. 숯불이 다 꺼졌으니까. 손님들

다 식사하고 있는데 정전된 적도 있고. 생각지도 못했

던 일들이 막 일어나는거에요.

시행착오가 거의 대부분이네요 재밌는 얘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허: 아, 그랬던 적이 있어요. 작년에 야구 플레이오프

LG랑 NC가 경기할 때, 모든 테이블이 야구 손님으로

가득했던 적이 있어요. 처음 보는 손님들끼리 하나되

어서 하이파이브하고 응원하고, 한 손님이 응원가 부

르면 상대편 응원하는 손님은 반대편 응원가 부르기

도 하고. 그러다가 술도 같이 먹고 그러더라구요. 그

리고 저희는 야구유니폼 입고 오면 서비스를 준다고

홍보를 해놔서 손님들이 야구유니폼을 입고 오기도

해요. 우리 SNS에 '유니폼 입고 갈게요' 미리 말하시

는 경우도 있고. 그런게 참 재미있어요.

로맨틱참숯닭갈비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심곡2동 400-15

032-613-2328

https://instagram.com/romanticdak

https://www.facebook.com/romanticd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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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곽: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이: 대부분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그래도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으니

까 즐겁게 일하자는 것이 세 사람 공통된 생각이에요.

웃으면서 일하는 것.

곽: 우리 셋뿐만 아니고 손님들도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친구 집에 와서 밥을 먹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손님을 어떻게 재미있게 해줄까, 어

떤 얘기를 해줄까, 그런 것들도 생각하죠. 학생들 오

면 취업 얘기도 하고 공부 얘기도 하고.

그건 재미가 없어지는 얘기 아닌가요?

곽: 그걸 재밌게 하면 되지! 흐하하

허: 손님이랑 소통을 많이 해요. 우선 야구 어디 팬인

지부터 묻게 되고, 뭘 좋아하는지, 취향은 어떻게 되

는지 물어봐요. 단골이 많이 생겨서 단골손님이 오

면, 저 손님은 뭘 시켜서 먹겠구나, 술은 뭘 마시겠구

나 알 수 있어요. 손님과 우리의 관계가 많이 가까운

편이죠. 어떤 손님은 우리 셋 먹으라고 커피 사오기도

하고 지나가다가 그냥 들르기도 하고.

앞으로의 비젼은 무엇인가요?

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사람들이

가진 꿈이잖아요.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것. 그렇게 된다면 무엇을 하든지 좋을 것 같아

요.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곽: 이제 시작하고 일 년이 지났는데, 우리가 궁극적

으로 생각하는 목표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

르잖아요? 누구 한 명이 지칠 수도 있고 나가 떨어질

수도 있는데, 그런 것 없이 우리 목표를 이룰 때까지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힘들 때가 와도 사업

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을 새겨보고 목표를 이뤄

봐야죠. 싸나이가 물건 달고 태어났으니까 끝까지 해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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