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생명과학과 법reslaw.wku.ac.kr/.../12/의생명과학과법_제15권.pdf · 2016-12-02 ·...

171
의생명과학과 법

Transcript of 의생명과학과 법reslaw.wku.ac.kr/.../12/의생명과학과법_제15권.pdf · 2016-12-02 ·...

  • ISSN 2092-8599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2016. 06.)

    원광대학교 법학연구소 의생명과학법센터

  • 목 차

    - 3 -

    의생명과학과 법 第15卷

    목 차

    ◈ 연구논문 ◈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김일룡 ············ 5

    생명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

    -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과 일본 센난 석면사건의 판결을

    중심으로 - ·········································································· 이상만 ·········· 35

    치매진단 고지와 설명 후 동의의 원칙

    - 일본에서의 논의와 우리나라에서의 시사점을

    중심으로 - ········································································ 송영민 ·········· 73

    프랑스의 생명윤리법상 장기기증자의 추정동의에

    관한 연구 ············································································ 이형석 ·········· 91

    생명윤리법상 유전자검사의 허용기준에 관한 법적 논의 ····· 황만성 ········ 119

    ◈ 부 록 ◈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4 -

    의생명과학과 법 第15卷

    Contents

    A critical consideration on the legal bases of liability

    limitation in the medical malpractice suit judicial

    precedent ······························································ Kim, Il-Ryong ············ 5

    The National Obligation of Protection on the Safety of Life and Body

    - Focusing on the Decisions of Humidifier Disinfectant Damage Case

    and Japan's Sennan Asbestos Case - ············ Lee, Sang-Man ·········· 35

    Notice of Dementia Diagnosis and Informed Consent

    ············································································ Song, Young-Min ·········· 73

    A Study on an Organ Donor's Presumed Consent in Light of

    the Bioethics Law in France ··················· Lee, Hyeong-Seok ·········· 91

    Legal Issues of Genetic Testing in Korean Bioethics

    and Safety Act ·········································· Hwang, Man-Seong ········ 119

  • - 5 -

    원광대학교 법학연구소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2016. 06)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A critical consideration on the legal bases of liability

    limitation in the medical malpractice suit judicial precedent

    김 일 룡*

    Kim, Il-Ryong

    《 목 차 》

    Ⅰ. 서 론

    Ⅱ.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근거

    Ⅲ.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논의와 그 비판

    Ⅳ. 책임제한의 법적 근거 – 가해자에 대한 비난가능성

    Ⅴ. 결 론

    Ⅰ. 서 론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과실책임주의를

    선언한 규정으로서, 행위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없으면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6 -

    다는 근대법적 관념의 소산이다. 과실책임주의는 과거의 결과책임주의로부터 탈

    피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더라도 고의나 과실이 없는 한 책임을 묻지 않음

    으로써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는 한편, 고의나 과실이 있

    는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우므로 행위를 함에 있어서는 충분히 주의하라는

    경고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에 기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였다면 특

    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법행위자는 그 손해 전부를 배상하는 것이 원칙이다.1)

    다만 손해를 금전적으로 평가하는 경우에 고려하여야 할 사유가 있는데, 손익상

    계와 과실상계가 그것이다. 손익상계란 불법행위가 피해자에게 손해와 함께 이

    익도 준 경우에는 피해자가 받을 손해배상액은 손해에서 이익을 공제하여야 한

    다. 민법은 손익상계에 관한 명문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불법행

    위의 원칙규정인 민법 제750조에서 말하는 손해는 당연히 손익상계 후의 실질

    손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2) 예컨대 생계비,3) 보험금의 수급에 의

    한 보험가입자의 재해보상금 내지 민법상의 배상금(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80조

    제1‧2항4)), 손해보험금의 수급에 의한 민법 등 다른 배상금(상법 제682조 제1항) 등이 손익상계의 대상으로서 전체 손해액에서 공제된다.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액의 조정에 사용되는 또 다른 기술은 과실상계이다.

    민법 제763조는 채무불이행에 있어서의 과실상계 규정인 민법 제396조를 불법

    행위에 있어서의 손해배상액 산정에도 준용하고 있다. 결국 민법 제765조를 풀

    1) 다만, 구체적으로 손해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역사적으로 여

    러 가지 견해가 대립되어 왔는데, 손해의 범위에 대한 논의의 역사는 19세기 중엽의 몸젠

    (Mommsen)이 차액설을 주장한 이래 이에 대한 보완과 비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

    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신동현, 「민법상 손해의 개념-불법행위를 중심으로」, 경인

    문화사, 2014, 23쪽 이하 참조.

    2) 대법원 1978. 3. 14. 선고 76다2168 판결(손해배상은 실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

    만큼 피해자로 하여금 실손해 이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하는 것은 손해배상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므로 손해를 입은 것과 동일한 원인으로 인하여 이익을 얻을 때에는 그 이익은 공제되

    어야 한다).

    3) 대법원ᅠ1991.8.13.ᅠ선고ᅠ91다8890ᅠ판결.4) 수급권자가 이 법에 따라 보험급여를 받았거나 받을 수 있으면 보험가입자는 동일한 사유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에 따른 재해보상 책임이 면제된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80조 제1항).

    수급권자가 동일한 사유에 대하여 이 법에 따른 보험급여를 받으면 보험가입자는 그 금액의

    한도 안에서 민법이나 그 밖의 법령에 따른 손해배상의 책임이 면제된다. 이 경우 장해보상

    연금 또는 유족보상연금을 받고 있는 자는 장해보상일시금 또는 유족보상일시금을 받은 것

    으로 본다(동조 제2항).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7 -

    어 보면, “불법행위에 관하여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는 때에는 법원은 손해배상

    의 책임 및 그 금액을 정함에 이를 참작하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때의 과

    실이란 불법행위책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과실보다는 완화하여 단순한 부주의

    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해석되기는 하지만, 최소한 피해자의 비난가능성을 전제

    로 한다는 것이 통설적 입장이다.5)

    이와 같이 민법은 손익상계와 과실상계라는 법적 도구를 이용하여 배상액을

    조정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도구를 통하여 배상액을 조정

    하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과잉배상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손해의 공평부담이

    라는 불법행위법의 기본원리에 반하기 때문이다.

    인신사고 손해배상소송에서도 위 두 가지 도구를 통하여 배상액을 적정하게

    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실제 법원에서도 1990년대 중반까지는 손익상

    계 및 과실상계의 원칙적인 법리에 맞추어 가해자의 배상액을 감경해 왔으며,6)

    이들 법리와 무관한 사유로 가해자의 책임을 제한하거나 배상액을 감경하지는

    않았다. 의료과오소송 판결에 한하여 예시하면, 경추디스크수술 후 하반신 마비

    사건,7) 척추결핵 수술 후 하반신 마비 사건,8) 장폐색증을 간과하고 뇌막염 등

    에 대한 검사를 하여 사망케 한 사건,9) 펜타조신에 의한 아낙필락시스 쇼크사

    사건,10) 산전검사 미시행으로 거대아를 예측하지 못한 사건,11) 신생아에게 수

    유한 지 10분 만에 정맥주사실시로 기도질식으로 인한 뇌성마비 사건,12) 라이

    증후군의 방치로 사망케 한 사건,13) 거대아 예상을 간과함으로 인한 상완마비

    사건14) 등에서 의사 측의 책임을 제한하지 않았다.15)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법원은 위에서 본 손익상계나 과실상계의 원칙

    5) 곽윤직(편집대표), 「민법주해[XIX]」(박 철 집필부분), 박영사, 2005, 291쪽.

    6) 신현호, “우리나라 의료판례 변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 –판결양식과 손해배상액을 중심으로”,

    「의료법학(제15권 제1호)」, 대한의료법학회, 2014. 6, 109쪽.

    7) 서울지방법원 1992. 10. 31. 선고 87가합4980 판결.

    8) 서울고등법원ᅠ1992. 3. 11.ᅠ선고ᅠ90나29694ᅠ판결.9) 서울민사지방법원 1994. 6. 8. 선고 94가합9882 판결.

    10) 서울고등법원 1996. 11. 22. 선고 95나48874 판결.

    11) 전주지방법원 1995. 11. 22. 선고 94가합7798 판결.

    12) 서울지방법원 1996. 6. 5. 선고 94가합95135 판결.

    13) 서울지방법원 1996. 8. 21. 선고 94가합79188 판결.

    14) 서울지방법원 1996. 10. 16. 선고 94가합104626 판결.

    15) 다만, 위 94가합104626 판결의 항소심 판결인 서울고등법원 1998. 11. 26. 선고 96나43

    975 판결에서는 의사 측의 책임을 70%로 인정하여 배상액을 감액하였다.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8 -

    적 적용에 의하지 아니하고 피해자의 비난가능성과 무관한 사유로 의사 측 배

    상액의 범위를 축소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판례의 경향은 아래

    에서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예컨대 폐전색증은 진단이나 사전예방이 용이하지

    않고 일단 발병하면 치사율이 높다는 점,16) 지연성 뇌실질 내 출혈은 발생빈도

    가 낮고 치명적인 점,17) 스테로이드 녹내장은 체질적인 소인을 가지고 있는 일

    부의 환자에게서만 나타나고 고도근시인 환자의 경우 녹내장의 발병가능성이

    높은 점18) 등 피해자의 비난가능성과 무관하여 일반적인 과실상계의 법리를 적

    용할 수 없음에도 위와 같은 사유로 의사 측의 책임을 제한함으로써 손해배상

    의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판례의 경향을 과실상계 법리의 확장 적용 사례로 이해

    하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19) 민법에 존재하지 않는 별도의 판례법이 형성된

    것으로 보아 ‘판례상의 책임제한의 법리’로 이해하려는 견해도 있다.20) 물론 위

    와 같은 판례의 입장을 일단 수용하고, 유형화를 통하여 책임제한의 범위에 대

    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책임제한 비율에 대한 법관들 사이의 편차를 줄

    이기 위한 학문적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판례가 제시하는 여러 사정들이

    가해자의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경의 사유가 되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본

    질적인 질문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손해배상법의 기본원리에 부합하는 이

    론의 제시 없이는 설득력을 담보할 수 없어 사법기관을 이용하는 국민들로 하

    여금 사법불신을 초래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의문을

    토대로 판례가 책임제한을 통하여 배상액을 감경하면서 제시한 근거를 유형별

    로 살펴보고, 배상액 감경의 이론적 근거로 제시될 수 있는 여러 견해들을 비판

    적으로 검토한 후 필자의 견해를 덧붙이는 방법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Ⅱ.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

    16) 대법원 2000. 1. 21. 선고 98다50586 판결.

    17) 대법원 2001. 2. 27. 선고 2000다67914 판결.

    18) 대법원 2001. 7. 27. 선고 2000다55744 판결.

    19) 김민중, “의료과오책임에서 ‘확장된’ 과실상계의 법리”, 「동북아법연구(제5권 제3호)」, 전

    북대학교 동북아법연구소, 2012. 1, 159쪽 이하.

    20) 이은영, “이른바 판례상 책임제한에서 고려되는 주요요인”, 「비교사법(제22권 제1호)」,

    한국비교사법학회, 2015. 2, 417쪽.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9 -

    1.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적용한 판례

    대법원은, “가해행위와 피해자 측의 요인이 경합하여 손해가 발생하거나 확

    대된 경우에는 그 피해자 측의 요인이 체질적인 소인 또는 질병의 위험도와 같

    이 피해자 측의 귀책사유와 무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당해 질환의 태양·정도

    등에 비추어 가해자에게 손해의 전부를 배상시키는 것이 공평의 이념에 반하는

    경우에는, 법원은 그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서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적용

    하여 그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기여한 피해자 측의 요인을 참작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망인의 사망원인이 된 녹농균에 의한 패혈증의 치사

    율과 신체저항력이 낮았던 망인의 신체적 소인을 참작하여 원심이 피고의 손해

    배상책임을 40%로 제한한 조치는 과실상계에 관한 법리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21)

    또한, 의사 측이 조산으로 저체중인 쌍둥이를 진찰한 후, “미성숙아로서 곧

    죽을 것이니 집으로 데려 가라”고 하여 집으로 데려왔으나 둘 다 상당기간 살아

    있다가 1명은 죽고 1명은 살아 있자, 살아있는 아이를 다시 병원으로 옮겨 치료

    를 한 결과 건강을 되찾은 사건에서, 사망한 아이에 대한 의사 측의 과실을 인

    정하면서도 “사망한 아이가 생존하더라도 정상인으로서의 노동능력을 보유하여

    평균여명까지 살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정할 만한 자료를 찾아 볼 수 없는 이 사

    건에 있어서, 원심이 위 남아가 정상인으로서의 노동능력을 보유하여 평균여명

    까지 살 것을 전제로 일실수입 손해액을 계산한 다음, 사망한 아이의 열악한 신

    체적 소인이 그의 사망에 기여한 정도를 원고 측의 과실상계사유와 함께 참작

    하여 피고 측이 부담하여야 할 손해배상액을 위 손해액의 30% 정도로 정한 것

    은 사망한 아이에게 발현될지도 모를 신체적 장애로 인한 여명 단축과 가동능

    력의 감퇴도 아울러 고려한 것으로서 적절한 조치로 수긍이 가고, 또한 원심은

    위자료 산정에 있어서도 위 남아의 위와 같은 신체적 소인을 참작하고 있으므

    로, 원심판결에 소론과 같이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

    다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22)

    21) 대법원ᅠ1998. 7. 24.ᅠ선고ᅠ98다12270ᅠ판결.22) 대법원ᅠ1995.4.14.ᅠ선고ᅠ94다29218ᅠ판결. 이 판례는 정상인으로서 노동능력을 보유하여

    평균여명까지 살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정할 만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하면서도, 신생

    아에게 발현될지도 모를 신체적 장애로 인한 여명단축과 가동능력의 감퇴를 고려하여 과실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10 -

    나아가, 제왕절개수술을 받은 환자가 16시간이나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아니하였다면 심부정맥혈전증 및 폐전색증의 발병사실을 감지하여야 함에도 환

    자를 방치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 측의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가해행

    위와 피해자 측의 요인이 경합하여 손해가 발생하거나 확대된 경우에는 그 피

    해자 측의 요인이 체질적인 소인 또는 질병의 위험도와 같이 피해자 측의 귀책

    사유와 무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질환의 태양·정도 등에 비추어 가해자에

    게 손해의 전부를 배상하게 하는 것이 공평의 이념에 반하는 경우에는, 법원은

    손해배상액을 정하면서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적용하여 그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기여한 피해자측의 요인을 참작할 수 있”다고 하면서 원심이 의사 측의

    손해배상책임을 40%로 제한한데 대하여 위법이 없다고 판시하였다.23)

    즉각적인 응급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상태를 잘못

    판단하여 즉각적인 응급수술이 불가능한 병원으로 전원 시키고, 또한 전원과정

    에서 환자의 초기상황과 시행된 처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한 결과 환

    자에 대한 즉각적인 응급수술의 실시가 지연됨으로써 환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에서도 앞의 판결과 같은 취지로서, 원심이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켰다 하

    더라도 전원이 상당 시간 지연되었으리라는 점, 12시간 이내에 수술이 이루어진

    복부둔상 환자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쇼크 후 1시간 이내에 응급개복술이 실시

    되어도 사망률이 17.1%에 이르고, 1시간이 경과되어 수술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41.8%에 이르는 점 등을 인정하여 의사 측의 책임비율을 40%로 제한한 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보았다.24)

    또한 치아발치 후 세균감염에 의한 루드비히 안기나(Ludwig’s angina, 구강

    저 봉와직염)의 증상을 보이던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조기에 농

    배양검사를 실시하여 밝혀진 세균에 적합한 항생제를 충분히 투여함으로써 위

    질환이 패혈증 등으로 발전되는 것을 미리 차단하지 못한 의사 측 과실을 인정

    하면서도, 당해 환자가 피고 병원에 내원할 당시 임신초기로서 저항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위 질환에 걸리게 된 점 등을 고려하여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하여

    손해배상의 범위를 감액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였다.25)

    상계를 유추적용하는 방식으로 배상액을 감액한 원심을 수긍한 것은 그 자체로 논리모순으

    로 보인다.

    23) 대법원ᅠ2000. 1. 21.ᅠ선고ᅠ98다50586ᅠ판결.24) 대법원ᅠ2005. 6. 24.ᅠ선고ᅠ2005다16713ᅠ판결.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11 -

    위에서 본 여러 판례들은 공평의 이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과실상계의 법리

    를 유추적용하는 데 반하여,26) 아래에서 볼 판례들은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

    적용한다는 설시 없이 직접 공평의 이념 또는 신의칙을 직접적인 근거로 들어

    배상액을 감경한 것들이다.

    2. 손해의 공평부담 또는 신의칙에 근거한 판례

    대법원은 의사측이 피해자의 눈 안에 잔존하는 이물을 발견‧제거하지 못하여 피해자의 우안 시력을 상실하게 한 과실이 있으나, 이러한 과실은 피해자의 눈

    에 발병된 거대 열공성 망막박리와 증식성 유리체 망막병증 등으로 인한 합병

    증이 주요원인이 된 것으로서, “사고로 인하여 이미 입은 수상부위의 손상 자체

    로 인하여 어느 정도 손해가 발생한 상태에서 이에 대한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

    기관의 과실과 위 손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경합하여 수상부위에 추가적인 병증

    이 발병함으로써 그 손해가 확대된 경우에는, 법원은 의료기관의 불법행위로 인

    한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서 위 손상 자체의 손해에 대한 기여도를 참작하

    여야 함은 물론 위 손상이 추가적인 병증의 발병에 기여한 정도도 참작하여야

    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부담이라는 견지에서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27)

    또한 대법원은 의사측이 고관절 전치환술을 시술받는 과정에서 대퇴골 골수

    강 확장을 지나치게 시행하였거나 고관절 주위의 연부조직 구축을 충분히 풀어

    주지 아니한 상태에서 인공관절을 정복하는 바람에 피해자의 좌측 대퇴골 간부

    골절을 일으키게 한 과실을 인정한 다음, “사고로 인한 피해자의 후유증이 사고

    와 피해자의 기왕증이 경합하여 나타난 것이라면 사고가 후유증이라는 결과 발

    생에 대하여 기여하였다고 인정되는 정도에 따라 상응한 배상액을 부담케 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견지에서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28)

    25) 대법원ᅠ1998. 9. 4.ᅠ선고ᅠ96다11440ᅠ판결.26) 위 판례 이외에도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적용하여 감액한 판례로는, 대법원ᅠ2007.7.26.ᅠ

    선고ᅠ2005다64774ᅠ판결; 대법원ᅠ2010.7.8.ᅠ선고ᅠ2010다20563ᅠ판결; 대법원ᅠ2005. 6. 24.ᅠ선고ᅠ2005다16713ᅠ판결(각 체질적 소인, 질병의 위험도) ; 대법원ᅠ2011.5.13.ᅠ선고ᅠ2009다100920ᅠ판결; 부산고등법원ᅠ2006.5.18.ᅠ선고ᅠ2005나5638ᅠ판결(각 기왕증) 등 다수가 존재한다.

    27) 대법원ᅠ2002. 7. 12.ᅠ선고ᅠ2001다2068ᅠ판결.28) 대법원ᅠ2002. 4. 26.ᅠ선고ᅠ2000다16237ᅠ판결. 이 판결에서는 피고의 책임제한 사유로서

    원고의 신체(체질)적인 소인과 기왕증, 수술의 난이도 및 위험성도 고려하였다.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12 -

    나아가 양수과다증으로 인한 호흡곤란 상태에 있는 피해자에게 유도분만을

    통하여 태아를 분만시켰으나 태반이 만출되지 않자 수술을 마쳤으나 피해자의

    수술 후의 상태로 보아 산후출혈 등 합병증의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태만히 하여 이완성 자궁출혈로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에서, 의

    사 측의 과실을 인정한 다음 피해자의 산후출혈이 급격하게 발생하여 빠르게

    진행하였으므로 담당 의사들이 최선의 처치를 다하였다고 하더라도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피해자의 양수과다증, 전치태

    반 등 다른 임산부에 비하여 산후출혈 등과 같은 합병증을 유발할 위험한 요인

    을 많이 가진 임산부였다는 점 등 사정을 참작하여 이 사건 사고에 있어서 피고

    들이 배상하여야 할 손해배상책임을 전체의 50%로 제한한 것은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29)

    하급심 판례 중에는, 태아분만 후 태변을 흡인하여 기도가 폐색되고 호흡곤

    란을 일으켰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점을 의사 측의 과실로 인정

    하면서도, “원고는 출생 당시 이미 중증도 이상의 태변착색과 태변흡입으로 인

    한 호흡곤란을 보이고 있었고, 뇌손상은 짧은 시간 내에도 발생할 수 있고 일단

    발생하면 그 상태가 그대로 남는 것이어서 비록 피고 김O호가 원고에 대한 적

    절하고 충분한 조치를 취하였다고 하더라도 원고에게 이 사건과 같은 후유장애

    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과 뇌성마비가 출산 중의 잘못

    으로 발생되는 경우는 전체의 10% 정도로 알려져 있는 점 등에 비추어 피고들

    에게 이 사건 의료사고의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은 신의칙과 형평의 원칙에 비

    추어 불합리하므로, 이를 피고들이 배상하여야 할 손해액을 산정함에 있어 참작

    하기로 하되, 그 비율은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 비추어 50%로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들의 책임을 나머지 50%로 제한한다.”고 판시한 것이 있고,30) 질식분만 중

    견갑난산으로 인하여 우측상완신경총 부분마비의 상해를 입은 피해자에 대하여

    거대아의 가능성에 대비하여 당뇨병 등에 대한 사전 검사를 실시하지 아니한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현대의학의 수준으로도 태아의 견갑난산을 정확하게 예측

    하는 것은 불가능한 사실, 일반적으로 견갑난산이 발생하면 분만과정에서 상완

    신경마비가 발생할 가능성이 16.8%에 이르는 사실 등을 들어 의사 측에게 과실

    29) 대법원ᅠ1997. 8. 22.ᅠ선고ᅠ96다43164ᅠ판결.30) 서울지방법원 2003. 5. 15. 선고 2001가합6170 판결.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13 -

    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의 전부를 부담하게 함은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부

    당하다 할 것이므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60%로 제한하였으며,31) 제왕절개

    수술로 태아를 출산하게 하였으나 사망한 사건에서, 의사 측의 분만지연으로 인

    하여 선천성 폐렴에 이환, 악화되어 사망한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의사에게 폭

    넓은 재량이 부여되어 있는 점과 신생아선천성 폐렴은 감별해야 하는 다른 여

    러 질환이 있고 감별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확진이 힘들며 심혈관 질환이나 선

    천성 기형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예후를 예측하기 어려운 점 등을 감안하면, 신

    의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따라 피고의 책임을 제한함이 상당하고 그 비율은 위

    사실관계에 비추어 20%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32)

    3. 법적 근거의 설시가 없는 판례

    31) 서울고등법원ᅠ2001.11.29.ᅠ선고ᅠ2000나36455ᅠ판결.32) 창원지방법원 2005. 4. 22. 선고 2003가합2772 판결. 그 외 손해의 공평부담이나 신의칙

    을 근거로 의사 측의 책임을 제한한 하급심 판례로는, 서울고등법원 2007. 1. 16. 선고 200

    3나43157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의 가능성, 예후불량의 가능성); 의정부지방법원 20

    07. 1. 10. 선고 2005가합7822 판결(의료행위의 특수성, 임상의학의 한계, 예후불량의 가능

    성); 서울고등법원 2008. 1. 17. 선고 2007나22820 판결(의료행위의 특수성, 임상의학의

    한계, 예후불량의 가능성, 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의 가능성); 서울남부지방법원 2004. 10.

    7. 선고 2003가합14875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예후 불량의 가능성); 수원지방법

    원 1994. 1. 18. 선고 92가단15037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요인, 의료행위의 특수성); 수

    원지방법원 2009. 7. 9. 선고 2007가합21378 판결(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의료행위의

    특수성, 사후조치의 적절성); 대전지방법원 2004. 8. 18. 선고 2003가합640 판결(예후불량

    의 가능성,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인천지방법원 1996. 1. 25. 선고 95가합11685 판

    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의 가능성, 의료행위의 특수성); 서울동부지방법원 2007. 9. 21.

    선고 2004가합4704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진료의 현

    실적 한계); 부산지방법원 2007. 7. 11. 선고 2005가합9138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예후불량의 가능성); 서울고등법원 1998. 2. 10. 선고 96나45193 판결

    (의료행위의 특수성, 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창원지방법원 2003. 10. 23. 선고 2000가

    합10994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사후조치의 적절함); 부산고등법원 2004. 9. 23.

    선고 2003나16528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사후조치의 적절함); 서울동부지방법원

    2003. 2. 13. 선고 2000가합1967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서울중앙지방법원 2004.

    8. 17. 선고 2003가합25039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사후조치의 적절함); 서울북부

    지방법원 2002. 10. 31. 선고 2000가합6081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서울고등법원 2001.

    12. 6. 선고 99나12354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서울고등법원 1999. 10. 19. 선고

    98나33989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서울고등법원 2006. 10. 24. 선고 2005나70957 판결

    (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의 가능성, 임상의학의 한계, 예후 불량의 가능성); 청주지방법원

    2013. 11. 27. 선고 2013가합1485 판결(의료행위의 특수성, 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가능

    성) 등이 있다.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14 -

    서울지방법원 2003. 10. 2. 선고 2003가합166 판결은 피해자(원고)의 모의

    분만진행과정에 대한 관찰을 소홀히 함으로써 분만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나타났

    을 것으로 보이는 태아곤란증 등의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여 뇌성

    마비의 결과를 초래한 의사 측에게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뇌성마비가 발생한 신

    생아 중 분만 원인으로 발생할 확률은 10% 미만으로 알려져 있어 원고의 뇌성

    마비 증세의 발현에 산모 또는 피해자 자신의 건강상의 문제가 개입되었을 가

    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의사 측 과실이 없었더라도 원고의 상태가 완전

    히 정상이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힘든 점을 손해액의 산정에 참작하여 의사

    측 책임을 60%로 제한하면서도 손해액 산정에 참작해야 할 민법상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처럼 손해액 산정에 참작할 사유를 열거하면서도 법적인 근

    거를 제시하지 아니한 판결은 하급심 법원의 판결에서 종종 발견된다.33)

    33) 예를 들면, 서울동부지방법원 2004. 4. 23. 선고 2002가합5703 판결(불명의 타원인 개입

    가능성, 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예후 불량의 가능성); 서울고등법원 2009. 2. 3. 선고 20

    04나35139 판결(진료의 현실적 한계, 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의 가능성, 불명의 타원인 개

    입가능성, 예후불량의 가능성); 서울중앙지방법원 2001. 8. 29. 선고 98가합106347 판결

    (진료의 현실적 한계, 임상의학의 한계, 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서울중앙지방법원 2001.

    10. 24. 선고 98가합108831 판결(예후불량의 가능성, 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의 가능성);

    서울남부지방법원 2003. 10. 2. 선고 2003가합166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의 가능

    성); 서울남부지방법원 2004. 4. 8. 선고 2002가합3427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예후불량의

    가능성, 사후조치의 적절함); 서울고등법원 2005. 6. 14. 선고 2004나31205 판결(임상의학

    의 한계, 예후불량의 가능성, 사후조치의 적절함); 청주지방법원 2007. 2. 8. 선고 2005가

    합3707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사후조치의 적절함, 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서울중앙지방

    법원 2004. 7. 6. 선고 2003가합43105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사후조치의 적절함,

    임상의학의 한계, 예후불량의 가능성);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04. 2. 16. 선고 2001가합

    3777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예후불량의 가능성, 진료의 현실적 한계,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

    능성); 서울동부지방법원 1997. 11. 20. 선고 96가합6484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사후조치

    의 적절함); 수원지방법원 2004. 9. 7. 선고 2003가합2720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의 가능성, 예후불량의 가능성); 서울서부지방법원 2012. 7. 4. 선고 2010가단18341 판결

    (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수원지방법원 2009. 1. 22. 선고 20

    07가합5253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예후불량의 가능성); 서울중

    앙지방법원 2001. 12. 19. 선고 99가합98337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예후불량의 가능성);

    서울동부지방법원 2004. 10. 22. 선고 2003가합989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예후불

    량의 가능성, 진료의 현실적 한계); 서울고등법원 2006. 12. 5. 선고 2004나81729 판결(기

    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예후불량의 가능성, 진료의 현실적 한계); 대구지방법원 2006. 12.

    26. 선고 2005가합11323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서울남부지방

    법원 2012. 2. 14. 선고 2009가합25495 판결(기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사후조치의 적절

    함, 의료행위의 특수성);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2013. 1. 24. 선고 2010가합2103 판결(기

    왕증 혹은 체질적 소인, 예후불량의 가능성, 임상의학의 한계); 서울서부지방법원 2009. 11.

    6. 선고 2008가합5301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사후조치의 적절함,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15 -

    4. 배상액 감경의 사유와 법적 근거와의 관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적용한 판례의 책임제한사

    유 또는 배상액 감경사유로는 체질적 소인, 질병의 위험도, 임상의학의 한계, 진

    료의 현실적 한계 등이다. 또한 손해의 공평부담(형평의 원칙) 또는 신의칙을

    근거로 한 판례에서도 그 사유는 기왕증, 수술의 난이도 및 위험성, 체질적 소

    인, 예후불량의 가능성, 질병의 위험도, 의료행위의 특수성, 임상의학의 한계, 불

    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사후조치의 적절성 등을 거론하고 있다. 나아가 법적

    근거를 별도로 설시하지 아니한 채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을 감경할 사유로 언

    급한 판례에서도 위와 동일한 사유를 거론하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판례가 제시한 법적 근거가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경의 유형과는 무

    관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배상액 감경의 법적 근거를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아니하고 있는 판례도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적용하거나 손해의 공

    평부담 또는 신의칙을 암묵적으로 전제한 상태에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민법상 과실상계 제도는 채권자가 ‘신의칙상’

    요구되는 주의를 다하지 아니한 경우 ‘공평의 원칙’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산정

    함에 있어 이를 참작하려는 데에 있다는 대법원 2000.11.24. 선고 2000다3871

    8,38725 판결의 입장34)과 궤를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과실상계의 규정취지

    를 신의칙과 공평의 원칙에서 찾는다면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경의 근거를

    과실상계의 유추적용으로 보든 공평 또는 신의칙으로 보든 실제로는 같은 의미

    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 2000다38718,38725 판결은 의료과오소송을 비롯한 인신사고 손

    해배상 소송에서의 판례와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

    이, 인신사고 손해배상 소송, 특히 의료과오소송에서는 피해자가 문진 시 기왕

    증 등을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불충분하게 고지하였다거나, 진료과정에 비협조적

    이었다는 등 과실상계를 적용시킬 수 있는 사유는 물론이고, 한걸음 더 나아가

    피해자의 부주의로 돌릴 수 없는 사유들도 가해자의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

    성); 서울고등법원 2013. 6. 20. 선고 2010나5108 판결(임상의학의 한계,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등이 있다.

    34) 다만, 이 판례는 숙박업자의 투숙객에 대한 보호의무와 관련된 것일 뿐, 의료과오소송과 관

    련된 판례는 아니다.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16 -

    경의 사유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의료과오소송에서 가해자의 책임제

    한 내지 배상액 감경을 위한 사유와 그 법적 근거에 대한 정당성을 따져 보아야

    할 것임은 당연하다 할 것이므로 이하에서는 판례가 제시하는 법적 근거는 물

    론,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경을 위한 법적 근거로 주장되는 여러 견해들을 비

    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Ⅲ.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논의와 그 비판

    1. 과실상계를 유추적용 내지 확장하는 방법

    원래 ‘과실’의 의미는 부주의로 말미암아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에게 위

    법한 침해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35) 본래 과실이

    란 법률상의 의무에 따르는 관념이다. 즉, 과실은 법률상의 주의의무와 같은 법

    적 의무에 위반한 행위가 있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실상계에서는

    피해자가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입혀서는 아니 된다는 어떤 법적 의무가 있다

    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칙적인 의미에서의 ‘과실’과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여기에서 과실상계에서의 과실의 의미를 일반적인 의미

    에서의 과실과 동일하게 관념할 수 있는가(동질설), 다르게 보아야 하는가(이질

    설)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동질설36)에 의하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과실에 있

    어서 의무위반이라는 것도 위법한 부주의라는 뜻에 지나지 않으며, 그 위법성은

    이를 법률상의 의무위반에 한할 것은 아니고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협동정신

    혹은 신의칙 위반도 포함한다고 본다. 이렇게 새기면 가해자 측의 과실과 피해

    자 측의 과실은 성질상 구별할 필요가 없게 된다.37) 다만 과실상계에서 요구되

    는 주의의무의 정도는 일반적인 과실(가해자 측 과실) 보다 가벼운 것이어도 상

    관없다고 한다.38) 또한 이 견해에서는 만일 과실상계에서의 과실을 보통의 과

    35) 김증한‧김학동, 「채권각론(제7판)」, 박영사, 2006, 795쪽.36) 박동진, “과실상계에서의 과실의 의미”, 「연세법학연구(제7집 제1권)」, 2000. 6, 211쪽.

    37) 곽윤직, 「채권총론(제6판)」, 박영사, 2009, 126쪽; 김증한, 「채권총론(보정판)」, 박영

    사, 1989, 101쪽.

    38) 김용한, 「채권법총론」, 박영사, 1990, 219쪽.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17 -

    실과 다른 단순한 부주의로 이해하여 과실상계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면 민법상

    인정되는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부당하게 축소될 우려가 있다고 본다. 이

    에 비하여 이질설에 의하면 과실상계에 있어서의 채권자의 과실은 그 법적 성

    질에 있어서는 타인에 대한 법적 의무를 전제로 하지 않는 것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책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적 과실과 구별되지만, 이러한 책무위

    반이 인정되는 채권자의 주의의 정도는 거래상 필요로 하는 주의를 다하지 않

    은 때라고 해석되므로 그러한 한도 내에서 일반적 과실과 공통적 성질을 가질

    뿐이라고 한다.39) 이질설에 의하면 과실상계에서의 과실을 보다 강도가 약한

    부주의, 즉 가벼운 부주의 혹은 단순한 부주의도 상계의 대상이 되므로 과실상

    계의 범위가 넓어진다고 할 수 있다.40) 판례는, 민법상의 과실상계제도는 채권

    자가 신의칙상 요구되는 주의를 다하지 아니한 경우 공평의 원칙에 따라 손해

    의 발생에 관한 채권자의 그와 같은 부주의를 참작하게 하려는 것이므로 단순

    한 부주의라도 그로 말미암아 손해가 발생하거나 확대된 원인을 이루었다면 피

    해자에게 과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과실상계를 할 수 있고,41) 불법행위에 있어

    서 가해자의 과실은 의무위반이라는 강력한 과실인데 반하여 피해자의 과실을

    따지는 과실상계에 있어서의 과실이란 가해자의 과실과는 달리 사회통념상, 신

    의성실의 원칙상, 공동생활상 요구되는 약한 부주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42)고 판시함으로써 이질설의 입장에 있다.

    다만, 이질설의 입장에 서더라도 피해자에게 최소한 약한 부주의라도 존재하

    여야 과실상계를 적용할 수 있다. 이 ‘약한 부주의’가 피해자를 비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비난가능성이 없는, 즉 약한 부주의

    조차 존재하지 않는 경우라면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과실

    상계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과실상계의 기본적인 원리인 것이다.43) 원래 법 적용

    에 있어서의 “유추”란, 매우 비슷한 사항에 있어서 한 경우에는 적용할 법규가

    39) 김형배, 「채권총론(제2판)」, 박영사, 1999, 276쪽.

    40) 더 자세한 설명은, 곽윤직(편집대표), 「민법주해[IX]」(오종근 집필부분), 박영사, 1995, 6

    14~615쪽 참조.

    41) 대법원ᅠ1993.5.27.ᅠ선고ᅠ92다20163ᅠ판결.42) 대법원ᅠ1980.2.26.ᅠ선고ᅠ79다2271ᅠ판결.43) 피해자 측 소인을 원칙적으로 고려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손해

    발생, 확대방지의무위반”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 혹은 사회적으로 그것이 기대되는 경

    우에 한정하여 과실상계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河上正二, “日本法における 「過失相殺」 について”, 민사법학 제57호, 한국민사법학회, 2011. 12, 475面].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18 -

    있고 다른 경우에는 직접 적용할 법규가 없을 때 사용하는 기법인데, 이때 “매

    우 비슷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법적 근거 내지 이유”가

    있는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44) 따라서 과실상계가 유추적용 내지 확장적용 되

    려면 피해자에게 최소한 약한 부주의 또는 이와 동가치적인 사유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기왕증, 체질적 소인, 질병의 위험도,

    예후불량의 가능성, 수술의 난이도 및 위험성, 의료행위의 특수성, 임상의학의

    한계,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사후조치의 적절성, 진료의 현실적 한계 등은

    어느 사유든 피해자의 부주의 또는 이와 동가치적인 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는

    항목들이어서 이러한 사유들에 대하여는 과실상계를 유추적용 내지 확장적용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또한 피해자의 체질적 소인을 예로 들자면, 체질적 소인이 손해발생에 기여

    하였더라도 그것은 피해자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해행위에 의

    하여 강제된 것이기 때문에 소인이 기여한 손해 부분이 피해자의 책임영역 내

    에 있다고 할 수 없고, 이러한 경우 피해자에게 그 손해를 부담시키는 것은 오

    히려 정의와 공평의 이념에 반한다고 할 수 있다. 즉 과실상계제도는 손해의 발

    생 또는 확대에 피해자의 과실기여에 대한 비난가능성을 전제로 하여 책임을

    제한하는 제도이므로 피해자의 과실과 관련이 없는 부분에까지 과실상계를 유

    추적용하는 것은 부당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45) 요컨대, 체질적 소인 또는 기

    왕증 기타 위에서 언급한 사유들을 책임제한을 위하여 비율적으로 참작하면서

    그 근거를 과실상계법리의 유추적용 또는 확장적용에서 찾는 입장은 수긍할 수

    없다할 것이다.46)

    2. 손해의 공평부담 또는 신의칙을 적용하는 방법

    앞에서도 지적하였다시피, 과실상계 제도가 손해의 공평부담과 신의칙을 구

    체적으로 명문화한 제도임은 판례도 인정하고 있으므로 과실상계를 유추적용하

    44) 배재식, 손주찬, 이재상 감수, 「신법률학대사전」, 법률신문사, 1992, 1293쪽.

    45) 이은영, “판례상의 책임제한의 의미와 정당화”, 「법학논총(제36권 제2호)」, 단국대학교

    법학연구소, 2012, 577쪽.

    46) 양삼승, “의료과오로 인한 민사책임의 발생요건”, 「민법학논총 : 후암 곽윤직 교수 화갑기

    념 논문집」, 1986, 762쪽.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19 -

    여 가해자의 책임을 제한하는 것은 결국 손해의 공평부담 또는 신의칙을 적용

    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손해의 공평부담 또는 신의칙을

    근거로 책임제한을 인정하는 것은 과실상계의 유추적용과 동일한 맥락이므로

    별도로 논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과실상계의 유추적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곧바로 손해의 공평

    부담 또는 신의칙을 책임제한의 근거라고 밝힌 판례들은 과실상계의 유추적용

    에 있어서의 ‘과실’을 아무리 완화하여 해석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아무런 과실이

    없는 사유에 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여 적용할 수는 없다는 문제점을 인식하였

    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아가 원래 공평의 관념이라는 것은 원래 매우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사

    안에 별다른 제약 없이 사용하는 경우에는 법관의 자의를 인정하는 것이 되어

    오히려 불공평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배상액을 감액하겠다는 결

    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 근거를 찾기 어렵자,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사법상의 일

    반원리인 공평의 개념을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떨

    쳐버리기 어렵다. 또한 의료과오소송과 같은 현대형 소송에서는 증거가 가해자

    측에 편재되어 있어 입증책임이 있는 피해자 측에서 소송을 제기하여도 좀처럼

    승소할 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시켜주고 있는

    현 상황에서,47) 구체적인 내용도 없는 ‘공평’이라는 용어를 내세워 배상액을 감

    47) 대법원 1995.2.10. 선고 93다52402 판결(원래 의료행위에 있어서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

    한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책임이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의료행위상의 주의의

    무의 위반과 손해의 발생과의 사이의 인과관계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하나, 의료행위가 고도

    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고, 그 의료의 과정은 대개의 경우 환자 본인이 그 일

    부를 알 수 있는 외에 의사만이 알 수 있을 뿐이며, 치료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의료 기

    법은 의사의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에 손해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

    은 것인지 여부는 전문가인 의사가 아닌 보통인으로서는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특수성이

    있어서 환자측이 의사의 의료행위상의 주의의무 위반과 손해의 발생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우므로, 환자가 치료 도중에 사망한 경우에

    있어서는 피해자측에서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 있어서 저질러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를 입증하고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

    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 이를테면 환자에게 의료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과의 원인이 될 만

    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한 경우에 있어서는, 의료행위를 한 측이 그 결과

    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 의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

    배상제도의 이상에 맞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20 -

    액하는 것은 판례 사이에 있어서 엇박자가 아닐 수 없다. 만약 피해자 측에게는

    과실책임을 묻기 쉽게 하고, 가해자 측에게는 배상액수를 줄여주는 절충적 정

    책48)이 판례의 입장이라면 더욱 문제가 크다. 이는 피해자 측에게는 공평이라

    는 미명 하에 배상액수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며, 가해자 측에게는 과실의 존

    재가 의심스러움에도 배상책임이 인정되는 불합리를 의미하므로 당사자 중 어

    느 쪽도 법원의 판단을 신뢰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의칙을 배상액 감경의 근거로 드는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 원래 신의칙의

    적용한계는 신의칙의 기능, 특히 보충적 기능과 관련하여 설정될 수 있다. 즉,

    신의칙에 의한 법 내지 법률흠결의 보충은 최후적인 방법으로 행해져야 하며,

    이를 적용하지 않으면 지극히 부당한 결과가 야기되는 경우에 한해 적용되어야

    한다.49) 구체적 타당성을 위하여 적용 가능한 다른 법률규정이 있다면 그 규정

    을 적용하여 해결해야 하며, 신의칙과 같은 일반규정으로의 도피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50) 배상액 감경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손해배상법을 규율하는 고의‧과실, 인과관계 등의 개념으로 해결할 일이라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3. 민법 제765조를 적용하는 방법

    민법 제765조 제1항은 “본장(불법행위)의 규정에 의한 배상의무자는 그 손

    해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 배상으로 인하여 배상자의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경우에는 법원에 그 배상액의 경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대륙법계인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의 민

    법에는 존재하지 않고 1911년의 스위스 채무법 제44조 제2항51)에만 존재하므

    로 우리법의 연원은 스위스 채무법이라고 할 수 있다.

    48) 물론 전통적인 불법행위의 유형이 아니라 새롭게 대두되는 불법행위의 경우에는 이러한 정

    책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이은영, 앞의 “판례상의 책임제한의 의미와 정당화”,

    573쪽).

    49) 이은영, 위의 논문, 596쪽.

    50) 이영준, 「한국민법론(총칙편)」, 박영사, 2003, 55쪽.

    51) 스위스 채무법 제44조 제2항을 번역하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손해를 야기한 배

    상의무자가 배상을 이행한다면 궁박에 빠질 경우에는 법관은 이를 이유로 하여서도 배상의

    무를 경감할 수 있다.”가 된다.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21 -

    학계에서는 이 규정을 이용하여 가해자의 손해액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주

    장하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호의동승의 경우, 가해행위와 자연력이

    경합하여 피해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피해자의 기왕증 혹은 지병 등의 소

    인이 기여한 경우에 손해가 예상 밖으로 크게 발생하였다면, 피해자가 책임보험

    등에 가입되어 있지 않는 한 피해자의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따라서 가해자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한 민법 제765조의 적용요건을 충

    족하므로 배상액을 경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52)

    의료과오소송과 관련된 판례는 아니지만, 하급심 판례에서도 “민법 제765조

    가 인정하는 배상액의 경감 청구의 규정은 우리나라에 특유한 규정으로서, 손해

    배상 법리의 기본 구조에 따라 배상할 손해의 확정, 손해의 범위의 확정의 2단

    계를 거쳐 배상액이 확정된 이후에도 다시 제3단계의 검토를 가하여 산출된 배

    상액이 손해의 발생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유, 즉, 쌍방의 경제 상태까지도

    고려하여 이를 경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전 단계에서 불운의 요

    소를 고려하여 배상액을 경감시키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판시한 바 있

    다.53)

    종래 피해자의 귀책사유로 돌릴 수 없는 사항들에 대하여 판례가 과실상계

    의 유추적용 혹은 공평의 이념이나 신의칙을 적용하여 배상액을 감경해 왔는데,

    만약 이 규정을 이용하여 가해자의 배상액을 감경할 수 있다면 최소한 불법행

    위법상의 규정 내에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판례의 입장보다는 진

    일보한 해석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배상의무자에게 “생계에 중대한 영향”이 있을 것이어서 그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 채무자의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제한하는 압류금지의 규정으

    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적인 방법이고, 민사집행법은 이를 위하여 압류가 금지되

    는 ‘물건’에 대해서는 제195조에, 압류가 금지되는 ‘채권’에 대해서는 제246조

    에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으므로 강제집행절차에 이르기 전인 소송절차에서 손

    해액을 경감하는 것은 옥상옥에 해당한다 할 것이어서 적용에 신중을 기하여야

    하며, 본조를 손해의 공평부담이라는 이념지표를 구체화하는 법적 장치로서 적

    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은 공평이라는 것이 원래 무내용적이어서 정의감각

    52) 오종근, “민법 제765조상의 배상액 경감청구”, 「비교사법(제4권 제1호)」, 한국비교사법

    학회, 1997. 6, 280쪽.

    53) 대전고등법원ᅠ1997. 6. 12.ᅠ선고ᅠ96나8268ᅠ판결.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22 -

    또는 형평감정을 법에 끌어들이는 도입구가 될 뿐이어서 그 이념지표 자체에

    경계를 요할 필요가 있고, 본조를 일반적으로 적용하게 된다면 “배상자의 생계

    에 미치게 될 중대한 영향”이라는 현저한 징표를 무시하는 것이어서 이러한 주

    장은 궁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54) 나아가 이 규정은 법원이 직권으로 참작

    할 수 있는 신의칙55)이나 과실상계56)의 유추적용과 달리, 당사자의 신청이 필

    수적이라는 점에서도 적용상의 한계를 지닌다는 문제가 지적될 수 있다.57)

    4. 위자료의 기능을 고려하는 방법

    위자료의 법적 성격 내지 기능과 관련하여 종래 손해배상설과 제재설이 대

    립되어 왔다. 손해배상설에서는 위자료는 무형적인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하여 법관이 자유재량으로 공평의 관념에 따라서, 또한 가해자‧피해자 쌍방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결정‧산정하여야 한다고 본다.58) 이러한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과실인 경우보다도 고의인 경우에 위자료액을 많게 하는 것은 가해자의 비난가능

    성이 크기 때문에 제재가 무거워진 것이라기 보다는 고의인 경우에 그만큼 피

    해자의 분노와 고통이 크기 때문이라고 본다.59) 이에 비하여 제재설은 위자료

    를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이 분화되기 이전의 복수관념의 산물로 보고, 위자료를

    타인에게 불법을 저지른 자에 대한 사적 제재 내지 사적 형벌로 본다. 종래의

    통설이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원칙을 강조한 나머지 불법행위제도가 불법

    행위의 민사책임을 추구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을 망각함으로써 행위에 대한 비

    54) 양창수, “민법 제765조 – 잊혀진 규정?”, 「법학(제39권 제4호)」,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1999, 274쪽.

    55) 대법원 1989.9.29. 선고 88다카17181 판결(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 또는 권리남용

    은 강행규정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당사자의 주장이 없더라도 법원은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

    다).

    56) 대법원 1967. 3. 21. 선고 66다2660 판결(피해자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 가해자가 과실상

    계를 주장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서 이를 참작하지 아니하였음

    은 잘못이다).

    57) 한편, 판례상의 책임제한 법리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전제 하에, 이와 별도로 민법 제765조

    의 배상액 경감청구를 널리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이은영, “손해배상법의 이념

    에 비춰본 민법 제765조 배상액 경감청구”, 「재산법연구(제27권 제3호)」, 한국재산법학

    회, 2011, 251쪽].

    58) 곽윤직, 「채권각론(제6판)」, 박영사, 2009, 466쪽.

    59) 김증한‧김학동, 앞의 책, 901쪽.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23 -

    난성이 점점 없어져 간다고 보고 위자료의 제재적 성질을 강조하는 견해이다.60)

    이에 대한 근거로는 정신적 손해는 양적으로 측정이 불가능하며, 정신적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유아나 정신장애자에게도 위자료가 인정되고, 위자료 액이 가해행

    위의 성질과 정도에 상응하여 결정된다는 점을 든다.

    위자료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는 성질 외에도 제재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

    는 점(절충설)에 주의를 기울이면 위자료의 만족기능61)을 무시할 수 없으며, 전

    보기능과 만족기능은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62) 이 만족기능으로

    인하여 가해자 측의 유책정도를 배상액 산정에 고려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

    는데, 이는 판례상의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경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판례도 위자료 액을 산정함에 있어서는 원고의 연령, 재산 및 교육의 정도, 사

    고의 경위, 쌍방의 과실정도, 치료기간, 후유장해의 부위 및 정도 등을 참작한다

    는 점에서 만족기능을 인정하고 있다.63) 그러나 경우에 따라 위자료에 이러한

    효과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자료의 목적으로 보거나 위자료의 이러한

    기능을 강조할 수는 없다. 그러한 심리적‧감정적 만족은 사적 보복감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64)

    나아가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가 채택하고 있는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경의 방법은 위자료의 만족기능적 요소의 고려에 의한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판례는 위자료를 감액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손해와 소극

    적 손해의 총 배상액을 산출한 후 그 총액을 기준으로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

    경의 비율(%)을 정하여 한꺼번에 감액하고, 여기에 위자료를 별도로 가산해 주

    는 방법을 사용하거나, 적극적 손해‧소극적 손해‧위자료를 모두 합산한 금액에서 감경비율만큼 감액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위자료의 만족기능으로 판례의 입장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60) 이명갑, “제재적 위자료의 입론(Ⅰ), 「사법행정(28권 제3호), 한국사법행정학회, 1987. 3,

    26쪽 이하; 장재옥, “위자료에 관한 몇 가지 고찰”, 「한국민법이론의 발전 : 이영준박사 화

    갑기념논문집」, 1999, 629쪽 이하.

    61) 위자료의 만족기능이란, 위자료의 지급에 의하여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받은 인격적 모욕이

    나 명예훼손, 그 밖의 불법‧부당한 처사에 대하여 피해자를 심리적‧감정적으로 만족시키는 기능을 말한다.

    62) 서광민, “위자료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점”, 「서강법학연구(제2권)」, 서강대학교 법학연구

    소, 2000, 139쪽.

    63) 대법원ᅠ1995.2.28.ᅠ선고ᅠ94다31334ᅠ판결.64) 서광민, 위의 논문, 140쪽.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24 -

    5. 인과관계의 비율적 인정에 의하는 방법

    피해자의 체질적 소인이나 기왕증 등이 손해의 확대에 기여한 경우, 인과관

    계의 측면에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위하여 피해자 측의 사정을 고려하여 그

    기여부분 만큼 가해자의 손해배상책임을 감액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

    제가 대두되는데, 이를 부분적(비율적) 인과관계론이라고 한다.

    부분적 인과관계론은 사실적 인과관계를 사고의 기여도에 따라서 비율적으

    로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65) 종래 전통적인 인과관계론에서는 사

    실적 인과관계를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양자택일적으로 판단하

    였지만, 부분적 인과관계론에서는 결과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비율적으로 판단

    하자는 것이다. 조건적 인과관계설이든, 상당인과관계설이든, 규범적 인과관계설

    이든 인과관계를 all or nothing의 문제로 보는 전통적 견해에 반대하는 부분적

    인과관계론은 소수설에 불과하지만 손해발생에 기여한 기왕증과 자연력 참작의

    문제 및 공동불법행위의 문제에 관하여 새롭고 명확한 설명을 가능케 하는 이

    점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66)

    그러나 판례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가해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는 존재하거나 부존재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고, 이를 비

    율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67) 즉 판례는 인과관계를

    비율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가 존재함을 전제로 그 배상액을 비

    율적으로 인정할 뿐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앞에서 다룬 판례의 책임제한 내

    지 배상액의 감경은 “기여도”에 의한 비율적 인정이론을 명백히 하였다고 주장

    하기도 한다.68) 그러나 수술의 난이도 및 위험성이나 임상의학의 한계 또는 사

    후조치의 적절성 등을 이유로 책임을 제한하는 판례가 상당수 존재하는데, 이러

    한 사유들은 사고에 대한 ‘기여도’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므로 위 주장 또한 수긍

    65) 김훈, “손해배상소송에 있어서의 비율적 인정”, 「재판자료(제26집)」, 법원도서관, 1985,

    349쪽; 임광세, “배상의학적 분야에서의 인과관계의 비율적 인정”, 「인권과 정의(제235

    호)」, 대한변호사협회지, 1996, 66쪽.

    66) 앞의 「민법주해[XIX]」(박 철 집필부분), 320쪽.

    67) 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39 판결.

    68) 임준호, “의료과오소송에서 기여도에 의한 배상액의 비율적 인정 –체질적 소인‧기왕증의 참작-”, 「민사판례연구(XXI)」, 박영사, 1999, 411쪽; 황현호, “손해배상소송에 있어서 증명

    의 정도 및 범위”, 「법조(제52권 제2호)」, 법조협회, 2003. 2, 45쪽.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25 -

    하기 어렵다.69)

    Ⅳ. 책임제한의 법적 근거 – 가해자에 대한 비난가능성

    책임제한은 구체적인 손해배상액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소송당사자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 임에도 불구하고 판례의 ‘과실상계의 유추적용’ 또는 ‘손해의 공

    평부담’ 및 ‘신의칙’에 근거한다는 설시방법은 책임제한을 형식적으로 근거 짓기

    위한 하나의 방편적 기술에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70) 판례들이 제

    시한 근거는 손해배상법의 원리에 맞지 않거나 내용이 공허하여 실질적인 의미

    를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민사소송의 당사자들에게 어떠한 설득력도 가지

    지 못한다는 점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다. 판례의 책임제한을 설명하기 위한 위

    의 여러 이론들도 나름대로 기여하는 바가 있지만 난점이 있다는 점도 이미 확

    인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염두에 두고 판례상의 책임제한은 법관의 법형성에 의하여

    확립된 제도이고, 실정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법적 근거

    를 마련하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71) 새로운 법적 근거를 조문화하기

    전에 우리 민법의 체계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바람직한 방법일 것

    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과실상계는 피해자의 비난가능성을 참작하기 위한 제

    69) 부분적 인과관계는 우리 책임법상의 여러 제도와 잘 맞지 않으므로 취할 바가 못된다고 하

    는 견해도 있고[정태륜, “부분적 인과관계론에 관한 일고찰”, 「민법학논총‧제2 : 후암 곽윤직 선생 고희기념」, 1995, 506쪽], 환자 측의 입증책임 경감을 위하여 어떠한 결과 발생의

    원인이 되는 모든 조건에 관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사실적 인과관계론을 택할 필요가 있

    다는 견해도 있다[박영호, “의료소송과 사실적 인과관계”, 「사법논집(제35집)」, 법원도서

    관, 2002, 287쪽]. 또한 피해자의 신체적 소인은 피해자의 손해 전부에 대한 책임 성립 및

    그 범위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으며, 가해자가 그 영향을 회피할 수 없

    었던 신체적 소인은 차액설적 관점에서 피해자의 피침해 인격 가치의 평가에 반영되어 이를

    고려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김천수, “기왕증을 포함한 피해자의 신체적 소인 및

    진단과오가 불법행위책임에 미치는 영향”, 성균관법학(제16권 제3호), 성균관대학교 비교법

    연구소, 2004. 12, 47쪽].

    70) 박지용, “산부인과 의료과오소송에 있어 판례상 책임제한 법리 –하급심 판례의 분석을 중

    심으로-”, 「법학(제55권 제2호)」,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2014, 503쪽.

    71) 이은영, 앞의 “이른바 판례상 책임제한에서 고려되는 주요요인”, 426쪽.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26 -

    도적 장치로 해석하는 것이 통설의 태도이다. 다만, 과실상계의 본질을 피해자

    의 행위가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대한 인과관계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배상

    액을 감액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피해자의 기여도참작설)와 피해자의 행위

    가 손해의 발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잠재적 요소 내지 비난성

    으로서 상당한 범위에서 관계가 있거나 손해의 전액청구가 그의 행위로 인하여

    권리남용 또는 윤리적 감정에서 보아 타당성을 잃은 사정이 있으면 이를 윤리

    적 요소로 파악하여 배상책임을 정함에 있어 참작하는 것이 공평의 이상과 손

    해배상제도의 취지에 부합시키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견해(피해자의 윤리적 요소

    참작설 또는 원인상계설)도 있고, 손해배상책임 및 그 범위는 가해자의 위법성

    내지 비난가능성의 정도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하면서 과실상계를 가해자에 대

    한 위법성 내지 비난가능성의 문제로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가해자의 비난가능

    성 참작설).72)

    그러나 의료과오소송에서 판례가 언급한 책임제한 사유 내지 배상액 감액의

    사유들 중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비난가능성 및 윤리적 비난가능성이 있는 사

    유 이외에 손해의 발생 및 확대에 기여한 쌍방의 행위의 기여도, 피해자의 체질

    적 소인, 자연력 및 제3자의 행위들을 과실상계제도만을 통하여 참작해야 할 필

    연적인 이유가 없고, 과실상계제도의 내포와 외연을 현행법규정의 문구에 비추

    어 지나치게 확장하려는 견해에는 찬성할 수 없으므로, 결국 통설적 견해인 피

    해자의 비난가능성참작설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73)

    여기에서, 과실상계에서의 ‘과실’이 피해자의 비난가능성을 중심개념으로 하

    고 있다면 가해자의 ‘과실’이란 다름 아닌 ‘가해자의 비난가능성’이 중심개념이

    라는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위법성은 원래 법질서에 대한 위반을 의미

    하므로 단일하며 동일하지만,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 있는 행위가 위법성과

    결합하여 불법의 개념이 되면 양적‧질적인 차이, 즉 침해의 태양에 따른 비난가능성의 정도가 달라지게 된다(고의‧과실행위+위법성=불법의 등식). 위법성은 단일개념으로서 경중이 없지만, 위법한 행위에 대한 비난가능성의 경중은 불법의

    경중으로 나타나게 되므로 고의 또는 과실행위가 가해자의 비난가능성의 경중

    을 가리는 중심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해자의 침해행위의 태양은 가해

    72) 자세한 내용은, 앞의 「민법주해[XIX]」(박 철 집필부분), 288~289쪽 참조.

    73) 위의 「민법주해[XIX]」(박 철 집필부분), 290쪽.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27 -

    자의 비난가능성의 정도를 결정짓는 핵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형법상

    상해죄와 폭행죄는 모두 위법한 행위이지만, 상해죄를 더 무겁게 처벌하는 이유

    는 상해죄의 불법성, 즉 비난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판례의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경사유로 돌아와 살피건대, 기왕증, 체질적

    소인, 질병의 위험도, 예후불량의 가능성, 수술의 난이도 및 위험성, 의료행위의

    특수성, 임상의학의 한계,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사후조치의 적절성, 진료

    의 현실적 한계 등의 사유는 모두 피해자의 비난가능성에 관련된 사유가 아니

    라 가해자의 비난가능성에 관련된 사유로 해석할 수 있다. 요컨대, 판례는 가해

    자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낮아지는 정도를 기준으로 비율적으로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을 감경해 왔다고 보는 것이 가장 솔직한 결론일 것이다.

    가해자의 위법한 과실행위의 비난가능성을 기준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제한

    하고 있다는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굳이 새로운 법적 근거를 민법전에

    규정할 필요 없이 불법행위법상의 논리만으로도 판례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즉 이렇게 해석한다면 과실상계의 법리를 무리하게 유추

    적용한다거나 손해의 공평부담이나 신의칙과 같은 공허한 내용을 근거로 제시

    한다거나 배상액 경감의 요건에 맞지 않는 민법 제765조를 적용하여 해결하여

    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우리 판례의 경향과는 무관한, 위자료의 만족기능으로

    해결하여야 한다거나, all or nothing의 사실적 인과관계를 비율적으로 적용한다

    거나 하는 우회적인 방법을 동원할 필요 없이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경에 대

    한 이론정립이 가능한 것이다.

    통설과 판례가 가해자의 비난가능성의 경중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해결책

    이 있음에도 이를 직접 거론하지 아니한 채 수많은 다른 논거들을 대안으로 제

    시하는 데에는 행위자가 어떤 침해행위를 함에 있어 과실이 단 1%만 존재하여

    도 전체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과실도 사실적 인과관계와 마찬가지로 all or nothing의 이론을 적용하여

    야 한다고 보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현대의 법이

    론이나 법규정과도 조화되지 않는다. 예컨대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에서는 “실화가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닌 경우 그로 인한 손해의 배상의무

    자는 법원에 손해배상액의 경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연소로 인하여 막대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가해자를 구제하려는 것이 일차적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28 -

    인 목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배상액 경감을 받기 위한 요건으로 중과실을 제외

    한 것에 눈을 돌려 보면, 가해자의 비난가능성의 경중을 고려한 입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취지는 앞에서 살펴본 민법 제765조의 요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 민법 제393조(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에 대해서는 민법 제7

    63조에서 준용)상의 특별손해에 대하여는 배상의무자가 그 특별한 사정을 알았

    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배상을 하도록 한 것도 이러한 경우에는 가해자의 비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배상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판례 중에는

    “…배상액의 경감이 이루어지려면, 가해자의 가해행위가 고의에 의하지 아니하

    거나, 사회적으로 크게 비난받을 과실에 의하여서도 아니될 것이며, 그 과실이

    경미하여 불운에 해당한다고 보여질 정도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경미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 있는데,74) 손해배상법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필자의

    주장취지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가해자의 비난가능성의 경중과 무관하게 손해 전체를 배상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공평의 원칙에 어긋나고, 가해자의 비난가능성의 경중에 따라

    손해배상의 범위를 달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아가

    이렇게 해석하지 아니하고서는 의료과오소송에 있어 가해자의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경의 실질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본다.

    근자에 유럽에서는 배상의무자의 책임제한에 관한 일반규정을 마련하고 있

    다고 한다. 유럽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유럽사법의 통일적인 적용을 위하여 200

    9년에 공통참조기준초안(Draft Common Frame of Reference, DCFR)이 성안

    되었는데, 불법행위법에 해당하는 부분은 제6편 7개의 장과 12개의 절 및 57개

    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책임의 제한 부분(제202조)을 보면, “고의를

    원인으로 발생한 손해가 아니면, 법적 책임이 손해를 발생시키는 자의 책임이나

    손해의 범위 또는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수단과 비례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렇

    게 하는 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우에는, 손해배상은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감경될 수 있다”75)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 또한 고의적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74) 대전고등법원ᅠ1997. 6. 12.ᅠ선고ᅠ96나8268ᅠ판결.75) DCFR Book 6 Art. 6:202 Reduction of Liability. Where it is fair and reasonable to

    do so, a person may be relieved of liability to compensate, either wholly or in part,

    if, where the damage is not caused intentionally, liability in full would be disproporti

    onate to the accountability of the person causing the damage or the extent of the d

    amage or the means to prevent it.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29 -

    비난가능성이 극히 중하므로 이를 제외함과 동시에, 가해자의 비난가능성 등을

    감안한 결과 통상적인 손해배상의 액수가 비합리적으로 높다면 이를 감면할 수

    있다는 취지라고 해석되므로 가해자의 비난가능성의 정도를 중심에 둔 입법안

    이라고 할 수 있다.76)

    물론 이러한 이론정립만으로는 법원이 가해자의 비난가능성의 정도를 정함

    에 있어서 법관들 사이의 편차를 극복할 수는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제

    한의 사유들을 유형화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 할 것인데, 단순히 지금까지 판례

    의 평균적 감액비율을 산출하여 제시하는 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를 가해자

    의 비난가능성의 감경사유로 재해석하여 유형화한 결과물을 국민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즉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한도에서 가해자의 비난가능성 감경

    비율을 토대로 가해자의 책임제한사유를 재설정한 후 유형화 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근거로 법관들로 하여금 판결을 하게 함으로써 법관 사이의 편차를 최소

    화 한다면 국민들에게 손해액의 예측가능성을 확보해 줌은 물론, 사법신뢰를 제

    고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Ⅴ. 결 론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손해의 공평부담은 불법행위법상의 최고의 원칙이

    고, 손해의 공평부담을 위한 손해액의 조정과 관련해서는 손익상계와 과실상계

    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판례는 의료과오소송에 있어 기왕증, 체질적 소인, 질

    병의 위험도, 예후불량의 가능성, 수술의 난이도 및 위험성, 의료행위의 특수성,

    임상의학의 한계, 불명의 타원인 개입가능성, 사후조치의 적절성, 진료의 현실적

    한계 등의 사유로 가해자의 책임을 제한하거나 배상액을 감경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과실상계규정의 유추적용 또는 손해의 공평부담 내지 신의칙에서 찾고

    있다. 손해의 공평부담 내지 신의칙은 원래 내용이 공허하여 개별 규정이 존재

    하지 않는 경우에 비로소 보충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므로 이 규정들의 남용으로

    인한 법적 안정성의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그 적용범위를 가급적 축소

    76) 자세한 내용은, 이은영, 앞의 “이른바 판례상 책임제한에서 고려되는 주요 요인”, 406~41

    0쪽 및 신동현, 앞의 책, 57~61쪽 참조.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30 -

    하여야 한다. 나아가 과실상계 규정의 ‘과실’이 내포하는 의미를 넘어선 사안에

    대하여 이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판례의 입장

    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판례가 가해자의 책임제한 내지 배상액 감경의 사유라고 밝힌 내용들을 솔

    직하게 고찰해 보면, 가해자의 과실행위에 대한 비난가능성의 경중에 있음을 쉽

    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민법 제750조의 ‘과실’에 가해자 측 비난가능성의 경

    중을 포함하여 해석함으로써 배상 범위를 조정할 수 있으므로 별도의 근거규정

    을 명문화해야 한다거나 민법 제765조를 적용하여 배상액을 경감하려는 방법

    또는 위자료의 만족기능을 중심으로 설명하려는 입장 및 인과관계를 비율적으

    로 인정하려는 견해 등은 모두 우회적인 방법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사법

    기관을 이용하는 국민들에게 예측가능성과 법적안정성을 확보해 주고 사법신뢰

    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배상액 감경의 사안들을 가해자에 대한 비난가능성의 감

    경 사유로 재해석하여 유형화하고 그에 따른 비율을 정하는 등 합리적인 기준

    을 제시하는 것이 향후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투고일: 2016. 05. 20 심사일: 2016. 05. 27 게재확정일: 2016. 06. 17

  • 김일룡: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상 책임제한 사유의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고찰

    - 31 -

    참 고 문 헌

    곽윤직, 「채권총론(제6판)」, 박영사, 2009.

    곽윤직, 「채권각론(제6판)」, 박영사, 2009.

    곽윤직(편집대표), 「민법주해[XIX]」(박 철 집필부분), 박영사, 2005.

    곽윤직(편집대표), 「민법주해[IX]」(오종근 집필부분), 박영사, 1995.

    김용한, 「채권법총론」, 박영사, 1990.

    김증한·김학동, 「채권각론(제7판)」, 박영사, 2006.

    김증한, 「채권총론(보정판)」, 박영사, 1989.

    김형배, 「채권총론(제2판)」, 박영사, 1999.

    배재식‧손주찬‧이재상 감수, 「신법률학대사전」, 법률신문사, 1992.신동현, 「민법상 손해의 개념-불법행위를 중심으로」, 경인문화사, 2014.

    이영준, 「한국민법론(총칙편)」, 박영사, 2003.

    김민중, “의료과오책임에서 ‘확장된’ 과실상계의 법리”, 「동북아법연구(제5권

    제3호)」, 전북대학교 동북아법연구소, 2012.

    김천수, “기왕증을 포함한 피해자의 신체적 소인 및 진단과오가 불법행위책임에

    미치는 영향”, 성균관법학(제16권 제3호), 성균관대학교 비교법연구소,

    2004.

    김 훈, “손해배상소송에 있어서의 비율적 인정”, 「재판자료(제26집)」, 법원도

    서관, 1985.

    박동진, “과실상계에서의 과실의 의미”, 「연세법학연구(제7집 제1권)」, 2000.

    박영호, “의료소송과 사실적 인과관계”,「사법논집(제35집)」,법원도서관, 2002.

    박지용, “산부인과 의료과오소송에 있어 판례상 책임제한 법리 –하급심 판례의

    분석을 중심으로-”, 「법학(제55권 제2호)」,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2014.

    서광민, “위자료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점”, 「서강법학연구(제2권)」,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 2000.

    신현호, “우리나라 의료판례 변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 –판결양식과 손해배상액

    을 중심으로”, 「의료법학(제15권 제1호)」, 대한의료법학회, 2014.

  • 의생명과학과 법 제15권

    - 32 -

    양삼승, “의료과오로 인한 민사책임의 발생요건”, 「민법학논총 : 후암 곽윤직

    교수 화갑기념 논문집」, 1986.

    양창수, “민법 제765조 – 잊혀진 규정?”, 「법학(제39권 제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