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칼럼 7시간의 시차를 넘어, 한국에서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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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전이라 피곤하겠지만 다들 힘냅시 다.’ 교수님께서 화면 너머 말씀하신다. 하지 만 내 방 건너편 시계의 시침은 오후 5시를 가 리키고 있다.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사태로 독일에서 중도 귀국했다. 현재는 한국에서 독 일 마르부르크대 실시간 강의를 듣는 중이다. 한국에서 외국 학교 강의를 듣는 내용의 글은 수많은 이대학보 교환학생 칼럼 중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개강 후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며 귀국을 다 짐했다. 파견교는 개강 이후에나 강의 계획표 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올 여름학기는 온라 인으로 진행하며 기말고사조차도 보고서 제 출로 평가가 대체됐다. 언젠가 교실에서 수업 을 들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확인하자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하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가득 차 나를 지배했다. 왜 ‘하필’ 방문학생을 갔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 을까. 한국에선 자가 격리로 인해 혼자 있다 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어 신세 한탄만 늘어놓 았다. 하지만 현 상황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 다. 불행이 기분을 잠식하게 할 수는 없었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타지에서라도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기. 노력만 한다면 충분 히 실천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국과 독일의 시차는 7시간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지에서 오전에는 수업을 듣고 오 후에는 원 없이 놀자 계획했기에 오전과 점심 강의만 신청했었다. 한국으로 치면 오후 5시 에 시작해, 아무리 늦게 끝나도 10시 전후였 다. 강의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새벽까지 수업에 참여하며 독일 시간으로 살 지 않음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4개의 수업을 듣는다. <미군의 군사 개 입>, <20세기 분쟁 사례 연구>, <20세기 학살 연 구>, <젠더와 정치경제학> 모두 내 최대 관심사 인 안보와 관련된 수업이라 주제가 너무나 흥미 롭다. 세미나 형태로 진행되는 해당 수업들은 수업 전 예습이 필수다. 교수님의 설명보다 학 생들의 발표와 토론이 수업의 주다. 아는 게 없 다면 2시간 동안 노트북 화면만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시험 기간에만 허겁지겁 공부했 던 과거의 나를 떠올린다면 장족의 발전이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켜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어색했다. 미리 해야 할 말을 노트북 다른 화면에 정리해놓고 말할까 말까 고민을 하면 이미 다른 차례로 넘어가 있었다. ‘교수 님의 질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하는 모습 을 보면서 다른 학생들이 너무 대단해 보이기 도 했다. 하지만 강의를 참여할수록 느끼는 건 이들도 다 학생이라는 것이었다. 모르는 게 당연한 학생. 배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 고, 부족한 점은 망설임 없이 질문했다. 이후 내 생각을 발표하자 교수님이 ‘훌륭하게 정리 했어’라고 답했다. 너무 떨리면서 뿌듯했다. 이해되지 않는 게 있다면 굳이 의문을 제기치 않고 외워버린 내게 이곳의 수업 방식은 계속 해서 도전해야 할 과제다. 여전히 마르부르크대의 건물을 들어가지 도 못하고 온 건 너무나 아쉽다. 하지만 안전 하고 편안한 곳에서 수학하기에 내 발전에 집 중하고, 수업 자체를 더 즐길 수 있는 듯하다. 7월 말 종강까지 장거리 학습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15 2020년 6월 1일 월요일 1599호 오피니언 ‘왜 하필’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발행인·편집인 김혜숙 주간교수 이재경 편집국장 이수연 편집부국장 이재윤 취재부장 수업팀 임유나 인물팀 강지수 사진부장 황보현 미디어부장 김혜연 편집 (주)나눔커뮤니케이션 02-333-7136 대표전화 02-3277-3167 팩스 02-313-5194 이메일 [email protected] 홈페이지 inews.ewha.ac.kr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52 이화여자대학교 이대학보사(ECC B217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 Z의 시선 밀레니얼 세대가 말하는 소비스타일, 가치관, 사회문제 등 Z세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살롱드이화 시사이슈에 대한 이화의 의견을 듣습니다. 금주의 책 중앙도서관과 함께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합니다. ‘Z의 시선’에 글이 실린 분에게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이대학보 기사 내 오·탈자 최초 제보자에게는 5천원을 드립니다. 독자 참여와 기사 제보를 바랍니다. [email protected] 유튜브 ‘이대학보’ facebook.com/ewhaweekly instagram.com/ewhaweekly 화연 이유빈 만평기자 [email protected] 7시간의 시차를 넘어, 한국에서 독일 강의듣기 초록이 눈부시게 빛나던 이화 동산의 5월은 어느덧 계절의 마지막을 향해 무심하게 흘러 가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면서 학생들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잘 견뎌내기를 바라는 걱정 도 쌓여가고 있다. 매일 습관적으로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 하는 코로나 확진자 수를 확인하고 서서히 바 뀐 일상에 적응해 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 에서 예측했던 미래의 현실과 그동안 묻혀 왔 던 우리 사회의 무책임한 민낯이 드러나고 다 른 한쪽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절박한 상 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시간을 반성하며 우 선멈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바라본다. “빨 리빨리”를 외치며 숨 가쁘게 토해낸 불필요 한 많은 것들이 지금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정리되면서 마음의 여유 속으로 맑고 선명한 하늘이 들어오고 나무들 사이로 길을 찾으며 바람은 청량한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자연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6월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1972년 6 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114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 연합 환경회의’가 개최 되었고, 지구의 환경을 보전하는 일에 세계 가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에서 세계 환경의 날로 정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996년 6월 5 일부터 ‘환경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했 다. 이밖에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국가환경 정보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환경과 관련된 날이 2월2일은 ‘세계 습지의 날’, 3월22일은 ‘세계 물의 날’, 4월5일은 ‘식목일’, 4월22일 은 ‘지구의 날’, 5월22일은 ‘세계 생물종 다양 성 보존의 날’, 6월17일은 ‘세계 사막화 방지 의 날’, 8월22일은 ‘에너지의 날’, 9월6일은 ‘자원순환의 날’, 10월18일은 ‘산의 날’이라 고 한다. 이것은 환경과 관련된 날을 통해 환 경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기고 행동으 로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 각한다. 환경과 미래를 위한 패션이 무엇일까? 환 경에 대한 관심은 패션계에서도 ‘패스트 패 션’의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친환경적이고 윤 리적인 ‘슬로우 패션’을 대안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영국에 있는 지속가능한 패션(Sustainable Fashion)센터의 케이트 플래쳐 (Kate Fletcher)교수는 패스트 패션은 속도가 문제 가 아니라 짧은 시간 가격이 저렴한 옷을 생 산하기 위한 열악한 환경에서의 노동력과 천 연자원의 착취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패스 트 패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맞서는 ‘Slow’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환경보호와 윤 리적 측면에서 ‘슬로우 패션’이라는 용어를 언급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그린피스 자료 에 따르면 쇼핑의 천국 홍콩에서는 매해 11 만 톤의 의류 폐기물이 폐기되고 있으며 선진 국이라 불리는 독일에서 조차 옷장에 있는 약 52억 벌의 옷들 중 40%는 거의 입지 않거나 한 번도 입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의 조사에서도 사용 되지 못한 원단들의 50%는 소각되고, 20% 매립되며, 30%는 무허가 업체가 수거해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결국 원단을 소각하는 과정에서 메탄, 이산화탄소 등으로 인한 대기 오염과 각종 환경오염물질을 발생시키고 매 립된 섬유는 그대로 자연에 버려져 심각한 토 양오염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업사이클링(up- cycling)을 통해서 의류 폐기물을 최소화하 기 위한 노력과 가치 있는 소비를 목표로 사 회적 역할을 지향하는 브랜드가 국내에서 늘 어나고 있다. 그 사례로 사회적 기업으로 알려진 아름 다운 가게에서 만든 업사이클 브랜드 ‘에코 파티메아리(Ecco Party Mearry)’가 있고, ‘리블랭크(Reblank)’는 폐가죽과 폐현수 막, 폐타폴린 등을 재활용하여 패션소품을 만드는 리사이클 브랜드로 사회적 취약 계 층이 참여하는 자활공동체와 협력하여 일 자리를 지원하고 있다. ‘파이어마커스(Fire Markers)’는 화재 진압 후 버려지는 폐소방 호스를 재활용해서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로 수익금 중 일부는 화상환자와 소방관들을 위해 후원하고 있다. ‘래;코드(RE;CODE)’ 는 이월상품으로 버려지는 옷을 해체해서 새로운 옷과 패션 소품으로 제작하는 업사 이클 브랜드이다. 2년전 이화여대 패션디자 인전공 대학원생들은 재능기부와 래;코드 의 후원으로 지적 장애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체 ‘어울림’의 연주복을 제작해 주기도 하 였다. 이제는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해 꼭 지켜야 할 필수 사항이 되었 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 패션계도 대량 생산 과 빠른 소비를 유도하는 ‘패스트 패션’의 단 독 질주를 멈추고 이에 맞서 윤리적 사고에 의한 슬로우 패션과 지속가능한 패션의 대안 을 내놓으며 책임 있는 자세로 사회적 역할에 무게를 더해가야 할 것이다. 환경과 미래를 위한 패션은 “적게 생산하 고, 느리게 소비”를 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의류 폐기물을 최소화 시키려는 적극적인 노 력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6월 환경 의 날을 맞이하여 환경에 중요성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교수칼럼 환경과 미래를 위한 패션 박선희 섬유패션학부 패션디자인전공 교수 교환학생 칼럼 이수빈 선임기자 독일 마르부르크대 단과대학 건물.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하고 결국 귀국했다. 제공=이수빈 선임기자 코로나19로 느려진 일상, 패션계도 지속가능한 ‘슬로우패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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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교환학생 칼럼 7시간의 시차를 넘어, 한국에서 독일 강의듣기pdfi.ewha.ac.kr/1599/159915.pdf · 다른 한편에서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을 통해서

‘금요일 오전이라 피곤하겠지만 다들 힘냅시

다.’ 교수님께서 화면 너머 말씀하신다. 하지

만 내 방 건너편 시계의 시침은 오후 5시를 가

리키고 있다.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사태로

독일에서 중도 귀국했다. 현재는 한국에서 독

일 마르부르크대 실시간 강의를 듣는 중이다.

한국에서 외국 학교 강의를 듣는 내용의 글은

수많은 이대학보 교환학생 칼럼 중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개강 후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며 귀국을 다

짐했다. 파견교는 개강 이후에나 강의 계획표

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올 여름학기는 온라

인으로 진행하며 기말고사조차도 보고서 제

출로 평가가 대체됐다. 언젠가 교실에서 수업

을 들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확인하자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하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가득 차 나를 지배했다. 왜

‘하필’ 방문학생을 갔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

을까. 한국에선 자가 격리로 인해 혼자 있다

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어 신세 한탄만 늘어놓

았다. 하지만 현 상황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

다. 불행이 기분을 잠식하게 할 수는 없었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타지에서라도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기. 노력만 한다면 충분

히 실천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국과 독일의 시차는 7시간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지에서 오전에는 수업을 듣고 오

후에는 원 없이 놀자 계획했기에 오전과 점심

강의만 신청했었다. 한국으로 치면 오후 5시

에 시작해, 아무리 늦게 끝나도 10시 전후였

다. 강의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새벽까지 수업에 참여하며 독일 시간으로 살

지 않음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4개의 수업을 듣는다. <미군의 군사 개

입>, <20세기 분쟁 사례 연구>, <20세기 학살 연

구>, <젠더와 정치경제학> 모두 내 최대 관심사

인 안보와 관련된 수업이라 주제가 너무나 흥미

롭다. 세미나 형태로 진행되는 해당 수업들은

수업 전 예습이 필수다. 교수님의 설명보다 학

생들의 발표와 토론이 수업의 주다. 아는 게 없

다면 2시간 동안 노트북 화면만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시험 기간에만 허겁지겁 공부했

던 과거의 나를 떠올린다면 장족의 발전이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켜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어색했다. 미리 해야 할 말을 노트북

다른 화면에 정리해놓고 말할까 말까 고민을

하면 이미 다른 차례로 넘어가 있었다. ‘교수

님의 질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하는 모습

을 보면서 다른 학생들이 너무 대단해 보이기

도 했다. 하지만 강의를 참여할수록 느끼는

건 이들도 다 학생이라는 것이었다. 모르는

게 당연한 학생. 배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

고, 부족한 점은 망설임 없이 질문했다. 이후

내 생각을 발표하자 교수님이 ‘훌륭하게 정리

했어’라고 답했다. 너무 떨리면서 뿌듯했다.

이해되지 않는 게 있다면 굳이 의문을 제기치

않고 외워버린 내게 이곳의 수업 방식은 계속

해서 도전해야 할 과제다.

여전히 마르부르크대의 건물을 들어가지

도 못하고 온 건 너무나 아쉽다. 하지만 안전

하고 편안한 곳에서 수학하기에 내 발전에 집

중하고, 수업 자체를 더 즐길 수 있는 듯하다.

7월 말 종강까지 장거리 학습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152020년 6월 1일 월요일 1599호 오피니언

‘왜 하필’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발행인·편집인 김혜숙

주간교수 이재경

편집국장 이수연

편집부국장 이재윤

취재부장 수업팀 임유나 인물팀 강지수 사진부장 황보현 미디어부장 김혜연

편집 (주)나눔커뮤니케이션 02-333-7136

대표전화 02-3277-3167 팩스 02-313-5194 이메일 [email protected] 홈페이지 inews.ewha.ac.kr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52 이화여자대학교 이대학보사(ECC B217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Z의 시선 밀레니얼 세대가 말하는 소비스타일, 가치관, 사회문제 등 Z세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살롱드이화 시사이슈에 대한 이화의 의견을 듣습니다.

금주의 책 중앙도서관과 함께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합니다.

‘Z의 시선’에 글이 실린 분에게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이대학보 기사 내 오·탈자 최초 제보자에게는 5천원을 드립니다.

독자 참여와 기사 제보를 바랍니다.

[email protected] 유튜브 ‘이대학보’

facebook.com/ewhaweekly instagram.com/ewhaweekly

화연 툰 이유빈 만평기자 [email protected]

7시간의 시차를 넘어, 한국에서 독일 강의듣기

초록이 눈부시게 빛나던 이화 동산의 5월은

어느덧 계절의 마지막을 향해 무심하게 흘러

가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면서 학생들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잘 견뎌내기를 바라는 걱정

도 쌓여가고 있다.

매일 습관적으로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

하는 코로나 확진자 수를 확인하고 서서히 바

뀐 일상에 적응해 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

에서 예측했던 미래의 현실과 그동안 묻혀 왔

던 우리 사회의 무책임한 민낯이 드러나고 다

른 한쪽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절박한 상

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시간을 반성하며 우

선멈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바라본다. “빨

리빨리”를 외치며 숨 가쁘게 토해낸 불필요

한 많은 것들이 지금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정리되면서 마음의 여유 속으로 맑고 선명한

하늘이 들어오고 나무들 사이로 길을 찾으며

바람은 청량한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자연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6월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1972년 6

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114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 연합 환경회의’가 개최

되었고, 지구의 환경을 보전하는 일에 세계

가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에서 세계 환경의

날로 정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996년 6월 5

일부터 ‘환경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했

다. 이밖에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국가환경

정보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환경과 관련된

날이 2월2일은 ‘세계 습지의 날’, 3월22일은

‘세계 물의 날’, 4월5일은 ‘식목일’, 4월22일

은 ‘지구의 날’, 5월22일은 ‘세계 생물종 다양

성 보존의 날’, 6월17일은 ‘세계 사막화 방지

의 날’, 8월22일은 ‘에너지의 날’, 9월6일은

‘자원순환의 날’, 10월18일은 ‘산의 날’이라

고 한다. 이것은 환경과 관련된 날을 통해 환

경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기고 행동으

로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

각한다.

환경과 미래를 위한 패션이 무엇일까? 환

경에 대한 관심은 패션계에서도 ‘패스트 패

션’의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친환경적이고 윤

리적인 ‘슬로우 패션’을 대안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영국에 있는 지속가능한 패션(Sustainable

Fashion)센터의 케이트 플래쳐 (Kate

Fletcher)교수는 패스트 패션은 속도가 문제

가 아니라 짧은 시간 가격이 저렴한 옷을 생

산하기 위한 열악한 환경에서의 노동력과 천

연자원의 착취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패스

트 패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맞서는

‘Slow’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환경보호와 윤

리적 측면에서 ‘슬로우 패션’이라는 용어를

언급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그린피스 자료

에 따르면 쇼핑의 천국 홍콩에서는 매해 11

만 톤의 의류 폐기물이 폐기되고 있으며 선진

국이라 불리는 독일에서 조차 옷장에 있는 약

52억 벌의 옷들 중 40%는 거의 입지 않거나

한 번도 입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의 조사에서도 사용

되지 못한 원단들의 50%는 소각되고, 20%

매립되며, 30%는 무허가 업체가 수거해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결국 원단을 소각하는

과정에서 메탄, 이산화탄소 등으로 인한 대기

오염과 각종 환경오염물질을 발생시키고 매

립된 섬유는 그대로 자연에 버려져 심각한 토

양오염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업사이클링(up-

cycling)을 통해서 의류 폐기물을 최소화하

기 위한 노력과 가치 있는 소비를 목표로 사

회적 역할을 지향하는 브랜드가 국내에서 늘

어나고 있다.

그 사례로 사회적 기업으로 알려진 아름

다운 가게에서 만든 업사이클 브랜드 ‘에코

파티메아리(Ecco Party Mearry)’가 있고,

‘리블랭크(Reblank)’는 폐가죽과 폐현수

막, 폐타폴린 등을 재활용하여 패션소품을

만드는 리사이클 브랜드로 사회적 취약 계

층이 참여하는 자활공동체와 협력하여 일

자리를 지원하고 있다. ‘파이어마커스(Fire

Markers)’는 화재 진압 후 버려지는 폐소방

호스를 재활용해서 가방을 만드는 브랜드로

수익금 중 일부는 화상환자와 소방관들을

위해 후원하고 있다. ‘래;코드(RE;CODE)’

는 이월상품으로 버려지는 옷을 해체해서

새로운 옷과 패션 소품으로 제작하는 업사

이클 브랜드이다. 2년전 이화여대 패션디자

인전공 대학원생들은 재능기부와 래;코드

의 후원으로 지적 장애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체 ‘어울림’의 연주복을 제작해 주기도 하

였다.

이제는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해 꼭 지켜야 할 필수 사항이 되었

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 패션계도 대량 생산

과 빠른 소비를 유도하는 ‘패스트 패션’의 단

독 질주를 멈추고 이에 맞서 윤리적 사고에

의한 슬로우 패션과 지속가능한 패션의 대안

을 내놓으며 책임 있는 자세로 사회적 역할에

무게를 더해가야 할 것이다.

환경과 미래를 위한 패션은 “적게 생산하

고, 느리게 소비”를 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의류 폐기물을 최소화 시키려는 적극적인 노

력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6월 환경

의 날을 맞이하여 환경에 중요성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교수칼럼 환경과 미래를 위한 패션

박선희섬유패션학부 패션디자인전공 교수

■ 교환학생 칼럼

이수빈선임기자

독일 마르부르크대 단과대학 건물.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하고 결국 귀국했다. 제공=이수빈 선임기자

코로나19로 느려진 일상,

패션계도 지속가능한

‘슬로우패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