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행복한 날들에 나타난 메타 ... Samuel Beckett, the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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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영어영문학 제60권 4호 Modern Studies in English Language & Literature (2016년 11월) 201-19 http://dx.doi.org/10.17754/MESK.60.4.201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행복한 날들에 나타난 메타 드라마적 전략 (전북대학교) Yum, Jeongmin. “Surviving on Stage: The Metatheatrical Tactics in Happy Days.” Modern Studies in English Language & Literature 60.4 (2016): 201-19. Samuel Beckett, the best playwright of the twentieth century, tried to break existing theatre. He embodied his authorial self-consciousness in metatheatrical forms and developed and deepened these metatheatrical characteristics through dramatic devices and language from his early plays. This study aims to demonstrate the metatheatrical tactics in Happy Days through tracing how Beckett reflects the interrelationship among actors, audience and author, also analyzing the text carefully in regards to the intertextuality and a play-within-a-play. In Happy Days, Beckett reflects the play itself, intersects with other literary works and mirrors his play through a play-within-a-play. Further, the main character, Winnie, maintains her desperate life using these tactics. Therefore, this study will highlight that Beckett’s metatheatrical tactics are not simply a form of his drama but the indispensable survival factors for the character. (Chonbuk National University) Key Words: Samuel Beckett, metatheatre, intertextuality, play-within-a-play, self-revelation I. 서 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시대부터 이어 온 고대 연극은 텍스트 외부의 실 제 세계를 충실하게 모방하고 재현함으로써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극적 행위가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믿도록 하는 극적 환상을 구축해 왔다. 그러나 “표현할 대상이 없으며, 표현할 수단도 없으며, 표현할 소재도 없으 며, 표현할 능력도 없으며,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다는 것을 표현해야 할 의 무로 표현하는 것”(Disjecta 139)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싸워 온 베케트(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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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영어영문학 제60권 4호 Modern Studies in English Language & Literature(2016년 11월) 201-19 http://dx.doi.org/10.17754/MESK.60.4.201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행복한 날들에 나타난 메타 드라마적 전략

    염 정 민

    (전북대학교)

    Yum, Jeongmin. “Surviving on Stage: The Metatheatrical Tactics in Happy Days.” Modern Studies in English Language & Literature 60.4 (2016): 201-19. Samuel Beckett, the best playwright of the twentieth century, tried to break existing theatre. He embodied his authorial self-consciousness in metatheatrical forms and developed and deepened these metatheatrical characteristics through dramatic devices and language from his early plays. This study aims to demonstrate the metatheatrical tactics in Happy Days through tracing how Beckett reflects the interrelationship among actors, audience and author, also analyzing the text carefully in regards to the intertextuality and a play-within-a-play. In Happy Days, Beckett reflects the play itself, intersects with other literary works and mirrors his play through a play-within-a-play. Further, the main character, Winnie, maintains her desperate life using these tactics. Therefore, this study will highlight that Beckett’s metatheatrical tactics are not simply a form of his drama but the indispensable survival factors for the character. (Chonbuk National University)

    Key Words: Samuel Beckett, metatheatre, intertextuality, play-within-a-play, self-revelation

    I. 서 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시대부터 이어 온 고대 연극은 텍스트 외부의 실

    제 세계를 충실하게 모방하고 재현함으로써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극적

    행위가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믿도록 하는 극적 환상을 구축해

    왔다. 그러나 “표현할 대상이 없으며, 표현할 수단도 없으며, 표현할 소재도 없으

    며, 표현할 능력도 없으며,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다는 것을 표현해야 할 의

    무로 표현하는 것”(Disjecta 139)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싸워 온 베케트(Sam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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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ckett)는 외부 세계에 대한 충실한 재현을 목표로 삼는 사실주의나 모방론을

    거부한다. 그는 객관적인 진실만을 전달하는 사실주의란 불가능하다고 믿었으며,

    “작가는 실제로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자체에

    대한 글을 쓰는 것”(164)이라는 바르트(Roland Barthes)의 주장을 대변하듯이,

    스스로 조이스(James Joyce)에 관한 평론에서 “그의 글은 그 무엇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무엇 자체”(Proust 14)라고 평가한 바 있다. 조이스에 대한 평가와 마

    찬가지로 베케트 역시 그의 글에서 작품이 작품을 반영하는 자체 반영적인 요소

    를 활용하며 표현 행위 그 자체를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 베케트의 글쓰기 자체

    에 대한 탐구는 일찍이 그가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소설들, 특히 그의 소설 삼부

    작에서 메타 픽션의 형태로 드러난다. 또한 베케트는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강하

    게 반영된 극 세계를 창조하여 극 자체에 대한 극이자 극 형식에 대한 탐구라는

    관점에서 메타드라마적인 양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연극이 연극임을 드러내

    놓고 보여주는 메타드라마적 특징은 베케트의 극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극적

    요소이자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베케트의 극은 배우와 관객 그리고 작가를 작

    품에 반영하면서 ‘세상이 곧 무대’(Theatrum Mundi)라는 메타드라마적 극 관례

    를 구체화한다. 혼비(Richard Hornby)는 현대극의 메타드라마적인 특징을 “공

    연으로서의 연극 그 자체에 대한 반영, 다른 연극 작품이나 여타의 문학예술 작

    품과의 상호 교류”(17) 등으로 제시하였는데 베케트 역시 여러 작품에서 극중 극

    이나 새로운 내러티브의 형태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를 비롯한 다

    른 작가들의 작품을 반영하거나 교류함으로써 혼비의 지적이 베케트의 작품 세

    계에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 논문에서는 베케트의 1961년도 작품인 행복한 날들(Happy Days)에 드러난 메타드라마적인 특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행복한 날들에서는 다른 문학 작품과의 교류가 빈번할 뿐 아니라 작가와 배우의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메타드라마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메타드라마적인 특징

    이 단순히 작품의 형식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위니(Winnie)라는 인물의 현

    존 상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으로 이용된다. 베케트의 극은 특히 배우가

    무대 위에서 존재한다는 상황 그 자체로 중요성을 가진다. 따라서 그의 모든 극

    에서 가장 근본적인 극적 상황은 배우 혹은 등장인물이 자신이 ‘존재 한다’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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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을 주기 위해 다른 존재에게 말을 걸고 접근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이다. 베케트

    는 이러한 시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메타드라마적인 형

    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날들에서는 베케트가 밝힌 바 있는 “형식은 내용이며 내용이 형식”(Disjecta 26)이라는 전제에 걸맞게 메타드라마

    라는 형식이 주인공의 존재 상황을 결정하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본 논문에

    서는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메타드라마적 특징인 다른 작품과의 교류, 즉

    여타 문학작품들의 인용, 작가 또는 배우로서의 위니의 자의식, 극중 극 형식 등

    을 살펴보면서 메타드라마적 형식이 어떻게 인물의 상황을 극복하는 전략으로

    사용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II. 본 론

    행복한 날들은 베케트의 극작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다. 이 극은 베케트의 작품 중 최초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극으로 부조리한 우주 속

    에서의 인간의 비참한 곤경을 다루는 베케트의 관념이 잘 투영되어 있다. 로울리

    (Paul Lawley)는 위니의 신체적 상황과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보이는 낙천척인

    자세의 강력한 대조로 인해 이 작품을 베케트의 작품 중 가장 초현실적인 작품으

    로 평가한다(94).

    극의 중심인물인 50살의 위니는 허리까지 흙더미에 매몰되어 있다. 남편인 윌

    리(Willie)는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위니를 상대하는 대상으로만 등장한

    다. 지상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햇볕에 시든 잡초뿐이다. 초원과 하늘이 각

    각 틈 없이 이어져 멀리서 서로 만나는 것처럼 보이도록 그려 놓은 지극히 진부한

    배경 천과 단순함과 대칭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무대는 관객의 시선을 위니에게

    집중하도록 한다. 로울리는 위니가 처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끝없는 사막 초원의 ‘작열하는 빛’ 속에서 처음에는 허리까지, 나중에는 목까지 흙

    더미에 묻힌 채로, 그녀(위니)는 필사적으로, 그러나 지칠 줄 모르게 외모와 언어

    속에서 자신을 귀하게 자란, 고상한 중년 기혼 여성으로 투영하려고 애쓴다. . . 그

    녀는 자신의 신체적 상황을 고통스럽게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의 부조리함은 모르

  • 염 정 민204

    고 있다.

    Buried first up to her waist and then up to her neck in a low mound in the

    ‘Blazing light’ of an ‘unbroken’ desert plain, she strives, desperately but

    unflaggingly, to project herself, in appearance and speech, as a well

    brought-up, decent, middle-aged married woman. . . She is painfully aware

    of her physical situation, but not of its absurdity. (94)

    위니는 자신의 부조리한 상황을 이겨내고 버티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

    녀의 말은 생존 수단이자 존재의 이유이다. 여기서 베케트는 위니에게 단순히 이

    야기를 늘어놓도록 하지 않고 그녀의 입을 통해 여러 가지 메타드라마적인 특징

    을 보여주는 데, 이런 방식으로 베케트는 위니가 처한 현실을 강조하면서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위니의 처절한 노력을 더욱 강화시킨다.

    2.1 문학적 인용

    베케트는 고전이나 주요 작가들을 작품의 여러 부분에서 끌어들이고 있다. 베

    케트의 인물들은 자주 침묵에 빠지지만 가끔 입을 열 땐 매우 문학적인 어조로

    고전 작품을 인용한다. 곤타르스키(S. E. Gontarski)는 “문학적 몽타주가 행복한 날들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부분이며, 위니가 회상하려고 애쓰는 문학적 인용들이 그녀의 이전 양식(old style)의 일부이자,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부”(311)라고 평가한다. 그는 또한 고전 작품의 인용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

    는 데도 그것에 관심을 두는 비평가들은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단순히 인용 작

    품의 출처를 밝히는 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곤타르스키는 작품 속에서

    고전 작품들의 인용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암시는 위니의 각색에 부가적인 도움을 주거나,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하

    는 수단보다 좀 더 넓은 수준에서 기능한다. 그것들은 또한 극의 중심적인 아이러

    니의 결정적인 부속물이다. 인용의 단편들은 암시된 작품의 넓은 맥락이 기억에 떠

    오를 때 가장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행복한 날들에 나타난 메타 드라마적 전략 205

    The allusions, then, function on a broader level than additional aids to

    Winnie’s adaptation or as a means of establishing a somber mood. They are

    also a crucial adjunct of the play’s central irony. The snippets of quotations

    are designed to function most effectively when they call to mind the

    broader context of the work alluded to. (312)

    베케트는 연출가 슈나이더(Alan Scheneider)에게 보낸 편지에서 행복한 날들과 연관된 다른 작가들에 대해 세밀하게 알려주고 있다(Hermon 96-7). 따라서

    곤타르스키의 지적대로 인용의 출처를 논하기보다 인용된 고전들의 맥락과 위니

    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거기서 생기는 아이러니와 대조의 효과들을 논하는 것이

    베케트가 사용한 메타드라마적 전략을 파악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베케트가 이 작품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한 고전의 인용은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이다. 위니의 1막 첫 대사 중의 “아, 슬프도다 - (다른 쪽 안경을 닦으며) - 내가 본 것을 보다니”(woe woe is me - [wipes the other] - to see

    what I see 7)1라는 구절은 햄릿의 3막 1장에서 오필리어(Ophelia)가 햄릿의 광기를 한탄하면서 “아아, 이렇게 슬플 수가, / 옛날의 모습을 보았던 내가 오늘

    의 이 모습을 보고 있다니!”(O, woe is me, / To have seen what I have seen,

    see what I see!)라고 말한 부분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부분은 베케트가 극의

    다섯 번째 수정 본에 덧붙인 것인데, 여기서 베케트는 햄릿의 상황에 위니의 처

    지를 패러디하여 비유하고 있다. 햄릿은 자신의 문제에 파묻혀 사실상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으며, 위니는 실제로 흙더미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

    에 있다. 햄릿의 세계는 일시적으로 질서와 안정이 무너진 상태이지만, 햄릿의

    행동에 따라 변화가 가능한 세계이다. 하지만, 위니와 윌리의 혼돈은 그들이 어

    떤 행동을 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영원한 것이다. 햄릿에 대한 인용은 위니가 고상하며 고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햄릿과 그녀

    와의 대조로 인해 강한 아이러니를 창조한다. 다음으로 인용하는 고전은 밀턴

    (John Milton)의 실락원(Paradise Lost)이다. 위니는 “그 훌륭한 구절이 뭐였더라?”(What is that wonderful line? 8)라는 말과 함께 입술 화장을 하면서 “오

    1. Beckett, Samuel. Happy Days: A Play in Two Acts. London: Faber & Faber, 2010. Print.

    이후 본문 인용은 페이지만 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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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없는 환희 - (입술을 바르다가) - 오 뭔가 영원한 비애”(Oh fleeting joys -

    [lips] - oh something lasting woe 8-9)라고 읊조린다. 이 대사는 실락원에 나오는 “영원한 비애로 귀하게 얻는 낙원의 오 덧없는 환희”(O fleeting joys /

    Of Paradise, dear bought with lasting woe)에서 인용한 것이지만 위니는 의도

    적으로 ‘귀하게 얻는 낙원’을 단순히 ‘뭔가’(something)라는 단어로 바꾸어 말한

    다. “진홍색 깃발”(Ensign crimson 9)과 “창백한 깃발”(Pale flag 9)은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5막 3장에서 로미오(Romeo)가 약에 취해 죽은듯한 줄리엣(Juliet)을 발견하고서 “당신의 두 입술과 볼에는 / 미의 깃발이 아직

    도 선홍빛인데, / 죽음의 창백한 깃발도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구려”(Beauty’s

    ensign yet / Is crimson in thy lips and in thy cheeks / And death’s pale

    flag is not advanced there)라고 말한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베케트는 그의 연

    출노트에서 배우들에게 ‘진홍색 깃발’은 삶이며 ‘창백한 깃발’은 죽음을 의미한다

    고 설명했다(Gontarski 316, 재인용). 살아 있지만 죽은 듯이 무덤에 있던 줄리

    엣과 마찬가지로 위니는 생과 사의 중간 상태에서 산 채로 묻혀 있다. 여기서 줄

    리엣과 위니의 비교는 사랑에 실패한 여인의 비애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

    왜 갇혔는지, 왜 빠져 나오지 못하는지 알 수 없는 흙더미 속에서 의무감으로 결

    혼 생활을 하고 있는 위니의 모습은 줄리엣의 생중사와 큰 대조를 이룬다. 위니

    의 “윌리, 저는 즉시 복종하겠어요. 제가 항상 존경하고 복종해 왔던 것처

    럼”(Willie, I would obey you instantly, as I have always done, honoured

    and obeyed. 21) 라는 대사는 그녀의 결혼 생활을 잘 대변해 준다.2

    다음으로 “가장 극심한 비애 속에서의 거친 웃음”(laughing wild amid severest

    woe 18)이라는 대사는 그레이(Thomas Gray)의 「멀리 이튼 학교를 바라보는 노래」(“Ode on a Distant Prospect of Eton College”)의 시 구절, “가장 극심한 비애 속에서 / 거칠게 웃는 실성함”(And moody Madness laughing wild/Amid

    2 여성주의 관점에서는, 위니가 왜 흙더미에 갇혀 있으며, 윌리는 왜 흙더미를 파내어 그녀를 꺼내주

    지 않는 가의 질문에 대해 그녀를 흙더미에 가둔 것이 바로 윌리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수잔(Susan

    Hennessy)은 “내재성으로 가라앉는 행복한 날들: 사무엘 베케트와 제 2의 성”(Happy Days Sinking Into Immanence: Samuel Beckett and The Second Sex)에서 윌리와 위니는 동등한 입장이

    아니며 ‘남성과 여성’(man and woman)의 관계가 아닌 ‘남성과 부인”(man and wife)의 관계라고 설명(71)

    하면서, 윌리가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위니 위에 군림하는 가부장적인 남성이라고 해석한다.

  •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행복한 날들에 나타난 메타 드라마적 전략 207

    severest woe)에서 인용한 대사이다. 그레이는 이 시에서 젊음의 순수와 무지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지만, 베케트는 시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 전체가

    갖는 분위기를 위니의 처지에 맞게 이용하고 있다. 특히 이 시에서 “슬프도다,

    자신들의 죽음에 상관없이 / 저 작은 희생자들은 노는구나! / 그들에게 닥칠 불

    행을 모른 채, / 오늘 이외에는 어떤 관심도 없이”(Alas regardless of their

    doom, / The little victims play! / No sense have they of ills to come, / Nor

    care beyond today)라는 구절은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이 오로지 현재만을 기

    억하는 위니의 시간관념을 적절하게 묘사하는 부분이다. 이런 대사들을 통해 위

    니는 자신의 상황을 매우 정교한 메타드라마적인 언어로 나타낸다. 배우로서 그

    녀가 의식하고 있는 조명에 대한 언급으로 “태양의 열기를 더 이상 두려워 하지

    마”(Fear no more the heat o’ the sun. 15)라는 대사는 베케트가 셰익스피어

    의 심벌린(Cymbeline)의 귀디리어스(Guiderius)의 노래 중 “이제 두려워 말라. 여름날의 더위나, / 겨울날의 맹렬한 추위를”(Fear no more the heat o’ the

    sun, / Nor the furious winter’s rages.)에서 빌려오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2

    막의 첫 대사인 “반갑도다, 성스러운 빛이여”(Hail, holy light. 29)란 대사는 역

    시 배우로서 새로운 막의 시작을 알려주면서 극이 극 자체를 반영하고 있음을 그

    대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특히 이 대사는 밀턴의 실락원의 제 3권 첫 행인 “반갑도다, 성스런 빛이여! 처음 태어난 하늘의 자식이여”(Hail, holy light!

    Offspring of heaven first-born)에서 인용한 것인데, 위니가 하루 종일 자신을

    내리쬐는 빛을 “지옥 같은 빛의 화염”(blaze of hellish light 7)이라고 묘사하는

    상황에서 빛에 대한 찬가는 위니의 현실과 강한 대조를 이루며 아이러니를 만들

    어 낸다. 위니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신성한 빛에 대한 찬가가 아니라 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학 고전의 인용은 위니의 상황과 적절히

    대비되고 대조되면서 위니가 처해 있는 현실이 더욱 참담한 것임을 여실히 드러

    낸다. 게다가 “이전 양식”(old style 13)을 고수하는 데서 위안을 얻는 위니에게

    고전의 인용은 그녀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위니: 누구든 고전을 잃어버리죠. (휴지.) 오, 전부는 아니죠. (휴지.) 일부분. (휴

    지.) 일부분은 남죠. (휴지.) 그게 내겐 너무 멋진 일이죠, 고전 중의 일부분이 남아

    서 하루를 견뎌 나가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 말이에요.

  • 염 정 민208

    Winnie: One loses one’s classics. [Pause.] Oh not all. [Pause.] A part.

    [Pause.] A part remains [Pause.] That is what I find so wonderful, a part

    remains, of one’s classics, to help one through the day. (34)

    고전을 인용할 때마다 “그 훌륭한 구절이 뭐였지?”(What is that wonderful

    line? 8, 18 / What are those exquisite lines? 34)라는 말을 반복하는 위니는

    희미해져가는 기억력으로 인해 고전의 일부분을 잃어버리고 원문을 완벽하게 기

    억해내지 못하지만, 몇 군데를 제외하고 그녀의 인용은 정확하며, 또한 그녀의

    처지에 대한 적절한 비유로 작용한다. 그리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끊임없이 말하

    는 위니의 입장에서 고전의 인용은 힘겨운 하루를 보내는 데 도움이 된다. 결국

    위니가 인용하는 고전들은 극 형식으로써 메타드라마적인 특징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위니가 삶을 이어가기 위해 사용하는 생존 전략의 역할을 담당한다.

    2.2 배우로서의 위니

    베케트의 작가적 자의식은 대다수의 극에서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

    로 제시된다. 작가가 암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

    주는 실마리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이 자신을 표현

    하려는 욕구에 시달리고 있다는데서 엿볼 수 있다(변형택 60). 이 인물들은 무대

    에서 언어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려고 애를 쓰면서 베케트의 말대로 ‘표

    현행위’를 영위하고 있다. 행복한 날들의 위니 역시 “다른 모든 게 실패할지라도, 이야기는 물론 남죠”(There is my story of course, when all else fails

    32)라던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마, (휴지.) 하지만 나는 더 많이 말해야만 해.

    (휴지.) 여기에 문제가 있지.”(Say no more. [Pause.] But I must say more.

    [Pause.] Problem here. 35)라는 대사를 통해 작가로서의 자의식, 즉 모든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그 불가능성에 대해서라도 ‘표현해야하는 의무감’을 보여주고 있

    다. 무엇보다도 위니는 자신이 무대에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며, 작

    품의 무대 지문은 “최대한의 단순성과 대칭”(Maximum of simplicity and

    symmetry 5)을 요구하면서 자체 반영적인 메타드라마적 요소를 현저히 드러낸

    다. 극이 극을 반영하는 분위기는 바로 첫 지문에서부터 뚜렷하다.

  •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행복한 날들에 나타난 메타 드라마적 전략 209

    최대한의 단순성과 대칭. 작열하는 빛. 초원과 하늘이 멀리서 만나는 것을 보여주

    는 실물 같은 진부한 무대 천. . . 그녀가 잠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 . 벨이 요란

    하게 울린다.

    Maximum of simplicity and symmetry. Blazing light. Very pompier

    trompe-l’oeil backcloth to represent unbroken plain and sky receding to

    meet in far distance. . . She is discovered sleeping. . . A bell rings

    piercingly. (5)

    지극히 단순한 대칭형의 무대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연극적 특성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무대 배경과 여주인공

    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이렇게 객석을 정면으로 보는 주인공의 자세는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굳이 ‘현실감’을 꾸미지 않으려는 시도

    이다. 빛은 극장의 무대 조명이며, 무대 뒤에 드리워진 진부한 그림이 담긴 배경

    은 이것이 무대 장치의 일부란 점을 상기시키면서 다분히 인위적으로 극장 분위

    기를 자아내어 관객이 연극을 보고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벨소리도 쉽게 극

    장의 벨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소리는 배우와 관객에게 극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신호로 작용하면서 위니가 전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속박과도 같다.

    “또 하나의 거룩한 날”(Another heavenly day 5)로 시작되는 위니의 첫 대사

    는 마치 일종의 의식처럼 여배우가 분장실에서 준비를 마치고 무대에 나가려는

    순간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그녀는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For Jesus Christ

    sake Amen 5)이라며 기도를 올리는데 이런 의식 역시 공연을 앞둔 배우의 일과

    이다. 그리고 나서, “시작해, 위니 (휴지.) 너의 하루를 시작해, 위니”(Begin,

    Winnie. [Pause.] Begin your day, Winnie. 5)라는 다분히 배우로서 자신의 역

    할을 의식적으로 밝히는 대사로 비로소 극을 시작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위니

    는 계속적으로 자신을 격려한다. 또한 그녀는 무대의 여러 소도구와 가방 속의

    소품들 그리고 윌리와 번갈아 가면서 교류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데 이것은 무대

    에서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감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그녀는 가방, 칫솔,

    치약 등과 접촉을 하고 난 후에야 “휴우”(Hoo-oo! 6)라고 안도하면서 무대 위의

    윌리를 부른다. 위니는 윌리로 하여금 자신의 말에 계속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반

  • 염 정 민210

    응하도록 요구하는데, 윌리 뿐만 아니라 관객 역시 위니가 계속해서 연극을 진행

    하도록 하는 가장 집요한 자극제이다.

    위니: 아 그래요, 혼자 있는 걸 견딜 수만 있다면, 아무도 듣는 이 없이 그냥 쓸데

    없이 지껄일 수만 있다면. . . 그래서 나는 항상 말하고 있는 거죠. 당신이 대답하

    지 않고 혹시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는 때조차도, 뭔가는 들려지고 있는 거죠. 나

    는 나 자신에게만 말하는 게 아닌 거죠, 그것은 이 황야에서 내가 결코 견딜 수 없

    는 것 – 그 어떤 시간의 와중에라도. (휴지) 그게 날 계속 나아가도록, 그처럼 계속

    이야기를 하도록 해주는 거지.

    Winnie: Ah yes, if only I could bear to be alone, I mean prattle away with

    not a soul to hear. . . so that I may say at all times, even when you do not

    answer and perhaps hear nothing, something of this is being heard, I am not

    merely talking to myself, that is in the wilderness, a thing I could never

    bear to do – for any length of time. [Pause.] That is what enables me to go

    on, go on talking that is. (12)

    이러한 위니의 대사는 배우로서 자신에게 관객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에 대

    해서 밝히고 있는 구절이다. 또한 위니는 말문이 막혔을 때 “꼭 다문 입을 하고

    나를 응시하는 눈길”(Gaze before me, with compressed lips 31)을 보내는 관

    객을 의식하는데 이 역시 배우로서의 위니의 자의식적인 대사이다. 기샤르노

    (Jacques Guicharnaud)는 행복한 날들에서 관객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행복한 날들에서 위니의 모든 독백은 청중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녀가 모래더미의 포로인 것처럼 청중들도 그녀에게 사로잡힌 관객들이다. 그들이 좋아하든

    아니든. 베케트의 인물들은 그들이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만 행동할 수 있

    는 어린아이와 같다. . . 그들은 “놀이”라고 불리는 상대성의 상태에만 존재하고

    존재하기를 원한다.

    In Happy Days Winnie’s entire soliloquy is addressed to the spectators: just

    as she is prisoner of a sandpile, so are they her captive audience, whether

    they like it or not. Beckett’s characters are like children who can act only

  •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행복한 날들에 나타난 메타 드라마적 전략 211

    if they feel they are performing. . . they do exist and want to exist in that

    state of relativity called “play”. (117-8)

    기샤르노의 말대로 이 극에서 관객들은 단순히 극을 감상하는 대상들이 아니라

    인물들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극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두 주인공

    은 서로 무대에서의 상황을 반영하기도 하면서 대조적으로 보이도록 설정되어

    있다. 때때로 위니는 윌리의 상황에 대해서 다분히 의식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얼마나 저주인지!”(What a curse, mobility! 26)라는 대

    사는 이를 가장 잘 드러낸다. 자신의 말에 윌리가 대꾸를 하지 않자, “당신을 탓

    할 수는 없어요. 그럼 내가 나쁜 년이지.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말을 못한다

    고 내 남편을 탓하다니”(I don’t blame you, no, it would ill because of me,

    who cannot move, to blame my Willie because he cannot speak. 21)라며 자

    신을 책망한다. 여기서도 분명한 점은 그녀는 움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사

    실을 얘기하면서 그렇게 연기하고 또 그런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이들, 즉 관객도 이런 점을 알고 있다는 것을 위니가 알고 있고 자신이 그

    렇게 알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고 있음을 그녀 또한 알고 있다. 이런 여러

    차원의 그녀와 관객 사이의 상호인식은 베케트의 극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메타

    드라마적인 특징이다(변형택 67).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배우와 배우, 배우

    와 관객 사이의 상호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위니의 다음 대사이다.

    위니: 오 당신 마음속에 무엇이 스쳐가고 있는지 나는 잘 상상할 수 있어요. 저 여

    자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해, 이제 저 여자의 모습을 봐야겠군. 그건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에요. 이해하고말고요.

    Winnie: Oh I can well imagine what is passing through your mind, it is not

    enough to have to listen to the woman, now I must look at her as well. Well

    it is very understandable. Most understandable. (17)

    베케트는 관객을 의식하는 배우의 모습을 통해 작가인 자신 역시 관객을 의식하

    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베케트의 관객에 대한 접근 방식은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지칭으로, 또는 극적 상황의 일부로서 배우와 관객의 관계를 의도적으

  • 염 정 민212

    로 제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제 흙더미로 돌아가세요, 윌리, 충분히 모습을

    드러냈잖아요”(Go back into your hole now, Willie, you’ve exposed yourself

    enough. 14)라는 위니의 대사는 배우로서 관객을 의식하고 던지는 대사이다.

    윌리는 위니의 남편이지만 무대에 있는 그녀의 관객이기도 하다. 그는 위니가

    지속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관객으로서의 필수적인

    역할”(Lawley 96)을 한다. 따라서 윌리는 무대에서 객석의 관객을 대표하고 있

    는 것이다. 게다가 위니는 그에게 질문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 반드시 정면의 관

    객 쪽을 향한다. 여기서 위니가 윌리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관객이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위니가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윌리가 지켜본다는 인상이 교

    묘하게 연출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위니의 대사이다.

    위니: 거기서 날 볼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여전히 궁금해요. (휴지) 안보이나요?

    (다시 정면) 나도 알고 있죠,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더듬거리며)-이런 식으로

    말이죠-(원래 목소리로)-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고 해서 그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요. 삶이 그걸 가르쳐 주었죠.

    Winnie: Can you see me from there I wonder, I still wonder. [Pause.] No?

    [Back front] Oh I know it does not follow when two are gathered together-

    [faltering]-in this way-[normal]-that because one sees the other the other

    sees the one, life has taught me that . . . too. (16)

    이 극에서 위니가 자신의 상황을 가장 잘 인식하고 있는 부분은 “아, 그래, 할 말

    도 너무 없고, 할 일도 너무 없는데, 어느 날 그런 자신이 혼자 남겨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공포는 너무 큰 거예요”(Ah yes, so little to say, so little to do,

    and the fear so great, certain days, of finding oneself . . . left 20)라고 말하

    는 장면이다. 여기서 위니는 관객이 한 명도 없이 홀로 남겨졌을 때의 두려움을

    표현하면서 배우로서의 입장을 드러낸다. 배우로서 위니에게 관객이란 자신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것이기에 그녀는 관객의 시선을 갈망한다.

    위니: (그녀는 정면을 응시한다. 긴 미소. 미소가 사라진다. 긴 휴지) 누군가 아직

    날 쳐다보고 있군. (휴지) 아직 내게 관심을 보이면서. (휴지) 그게 너무도 마음에

  •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행복한 날들에 나타난 메타 드라마적 전략 213

    들어. (휴지) 내 눈을 보는 눈들 말이야.

    Winnie: [She gazes front. Long smile. Smile off. Long pause.] Someone is

    looking at me still. [Pause.] Caring for me still. [Pause.] That is what I find

    so wonderful. [Pause.] Eyes on my eyes. (29)

    윌리로 대표되는 관객을 무대에 끌어들인 후 위니는 “혼자서도 말할 수 있기를

    배울 거라고 생각하곤 했죠 . . . 하지만 아니에요. . . 고로 당신이 거기에 존재하

    죠” (I used to think . . . that I would learn to talk alone. . . But no . . .

    Ergo you are there. 29)라고 데카르트의 명제까지 흉내 내면서 관객의 존재를

    전제한다.

    위니는 자신이 조명을 의식하고 있음을 드러내면서 더욱 배우로서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작열하는 빛”(blazing light 5)으로 대변되는 조명은 위니를 비치느

    냐, 비치지 않느냐에 따라 그녀의 존재를 결정한다. 위니는 조명을 통해 관객의

    눈에 비쳐져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날카롭게 반응한다.

    위니: 그리고 지금은? (긴 휴지. 낮게) 이상한 기분. (휴지. 다시) 누군가 날 쳐다보

    고 있다는 이상한 기분이 드는 군. 내가 뚜렷했다가 희미해지고, 그리고는 사라져

    버리고, 다시 희미해졌다가 뚜렷해지고, 그리고 계속해서 앞뒤로 누군가의 눈에 들

    어왔다가 나갔다가.

    Winnie: And now? [Long pause. Low.] Strange feeling. [Pause. Do] Strange

    feeling that someone is looking at me. I am clear, then dim, the gone, then

    dim again, then clear again, and so on, back and forth, in and out of

    someone’s eyes. (23)

    자신을 내리쬐는 빛을 “지옥 같다”(hellish 7)고 표현한데서 알 수 있듯이 조명

    은 그녀에게 호의적인 대상이 못된다. 그녀는 “결국 내가 녹아지거나 타버려서,

    아 꼭 불꽃처럼 활활 탄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고, 조금씩 타들어가서 까만 숯

    이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이 눈에 보이는 모든 육신이 말이야” (Shall I myself

    not melt perhaps in the end, or burn, oh I do not mean necessarily burst

  • 염 정 민214

    into flames, no, just little by little be charred to a black cinder, all this

    visible flesh 22)라며 빛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하지만 2막 첫 장면에서

    “반갑기도 해라, 성스런 빛이여”(Hail, holy light 29)라며 빛을 반갑게 맞이하는

    장면은 위니와 조명이 애증이 교차하는 이중적인 관계에 있음을 설명해 준다. 조

    명은 흙더미에 갇혀 있는 위니를 괴롭히는 존재이면서 한 편으로는 배우로서의

    위니의 생존이유인 까닭에 그녀는 조명을 무조건 거부할 수 없다. 두려움 못지않

    게 조명은 그녀에게 기대감을 주면서 배우로서 그녀의 역할을 부여하는 존재가

    된다. 또한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새로운 장면을 시작하면서 조명에게 인사를 할

    만큼 이 극이 메타드라마적인 분위기가 강하다는 사실이다.

    배우로서의 위니가 계속 행복한 척 연기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그녀가

    처한 현실과 무대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Ronan McDonald)는 위니의 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잘 정리하고 있다.

    몰론 낙관론은 연기이다. 위니는 필사적으로 가식적인 쾌활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

    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 거기에 압도당할 것이다. . . 이것

    은 이 극에 효과적인 메타드라마적 차원을 부여한다. 위니를 연기하는 배우는 연기

    행위를 하는 여자를 연기해야할 필요가 있다. 배우는 방어적으로 쾌활한 재잘거림

    아래로, 더 깊이 고통 받는 자아를 암시해주어야 한다.

    The optimism is, of course, a performance. Winnie desperately needs to

    keep up a charade of cheer, or otherwise she will be overwhelmed with the

    realisation of her condition. . . . This give the play an effective

    metatheatrical dimension: the actress playing Winnie needs to perform a

    woman in an act of performance. The actress needs to hint at a deeper,

    tormented self, underneath the defensively chirpy prattle. (69)

    의식적으로 계속 행복한 척 하지 않고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함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니의 연기는 그녀가 현재를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또한 행

    복을 연기하는 위니를 연기하는 배우는 무대라는 공간 안에서 살아남을 때에만

    자신의 존재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자신이 배우임을 인식하는 위니의

    모습은 베케트가 이 극에서 사용한 여러 겹의 메타드라마적 특징이면서 자신의

  •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행복한 날들에 나타난 메타 드라마적 전략 215

    존재를 확인하는 생존의 전략으로 작용한다.

    2.3 극중 극

    위니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밀드레드(Mildred)의 이야기와 쇼어와 쿠커 부부

    (Mr. and Mrs. Cooker or Shower)에 대한 이야기는 극중 극의 형식으로 이 극

    에 메타드라마적 특징을 한층 배가시킨다. 위니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

    선뿐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두 명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무대 위에 극화되는 인물들이 아니라 위니의 기억 속에 있는 허구의 인물들이다.

    따라서 극중 극은 위니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위니가 말로 전달하는 식

    으로 구성된다. 위니의 독백은 위니의 말과 그녀를 관찰하는 두 사람의 말의 서로

    다른 텍스트가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상태로 전달된다. 쇼어 또는 쿠커 부부는 위

    니의 상태에 대해 이런 저런 지적을 하고 위니는 그들의 지적에 대해 반응을 하

    는데 이 독백에서 그 두 가지의 목소리를 분리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 여잔 뭘하는 거지? 라고 그가 말하죠-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라는 말도 하고-피

    가 흐르는 땅에 기저귀까지 박힌 채-저속한 녀석-그게 무슨 의미지? 그가 말하는

    군-의미라니 그건 무슨 의미야?-그리고 등등-쓸데없는 말과 같은 더 많은 것들-

    들려? 그가 말하고 응 그녀가 말해, 신이시여 도우소서-무슨 뜻이야? 너를 도와달

    라고? 그가 말하지. (손톱 다듬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앞을 응시한다)

    What’s she doing? he says-what’s the idea? he says-stuck up to her diddies

    in the bleeding ground-coarse fellow-What does it mean? he says-what’s it

    meant to mean?-and so on-lot more stuff like that-usual drivel-Do you

    hear me? he says-I do, she says, God help me-What do you mean, he says,

    God help you? [Stops filing, raises head, gazes front.] (25)

    이 독백에서는 세 사람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쇼어 부부가 위니의 상태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와 위니가 그들의 말을 듣고 방백처럼 반응하는 목소리가 그것이

    다. 위니는 무대 위에서 손톱을 다듬으면서 마치 소설가처럼 3인칭 관찰자의 시

    점으로 쇼어 부부를 묘사한다. 2막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되풀이 되는 데 이번에

  • 염 정 민216

    는 위니에 대한 이들의 지적이 훨씬 노골적으로 신랄해진다.

    눈 하나가 생각나. . . 쇼어씨인지, 쿠커씨인지.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가방을 들

    고. . . . 더 이상 젊지도 않지만 아직 늙지도 않은. (휴지) 나를 바라보며 거기 서

    있어. (휴지) 한창때는 못 생긴 가슴이라도 있었을까 그가 말하지. (휴지) 형편없는

    어깨도 (휴지) 다리에 감각은 있는 건가? 그가 말해 (휴지) 다리가 살아있긴 한거

    야? 라고 말하고 (휴지) 아랫도리에 뭐라도 입었을까? 그가 말해. (휴지) 그녀에게

    물어봐, 나는 쑥스러우니까. (휴지) 뭘 물어봐? 그녀가 말한다. . . . (휴지. 갑자기

    난폭해지면서) 제발 나에게서 나가 떨어져!

    I call to the eye of the mind . . . Mr Shower-or Cooker. Hand in hand, in

    the other hands bags. . . No longer young, not yet old. [Pause] Standing

    there gaping at me. [Pause] Can’t have been a bad bosom, he says, in its

    day. [Pause] Seen worse shoulders, he says, in my time. [Pause] Does she

    feel her legs? he says. [Pause] Is there any life in her legs? he says.

    [Pause] Has she anything on underneath? he says. [Pause] Ask her, he

    says, I’m shy. [Pause] Ask her what? she says. . . . [Pause. With sudden

    violence] Let go of me for Christ sake and drop! (34)

    이 장면에서는 위니의 내부와 외부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위니의 머릿속

    에서의 외침이 실제 그녀의 외침으로 나타난다. 쇼어 또는 쿠커 부부는 메타드라

    마적인 성격이 강한 극중 극의 형식을 보이면서 실제로는 위니가 스스로를 드러

    내는 자의식적인 고백이 된다.

    또 하나의 극중 극은 위니가 만들어낸 밀드레드의 이야기이다. 위니는 “모든

    것이 실패할 때에도 나의 이야기는 남아 있다”(There is my story of course,

    when all else fails 32)라는 말로 밀드레드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 이 대사는

    이야기의 창조자로서의 위니를 드러내 줄 뿐만 아니라 표현할 수 없어도 표현해

    야 하며 모든 것이 실패해도 그렇게 표현한 이야기는 남는다는 베케트의 작가적

    자의식이 반영된 말이다. 밀드레드는 5살 먹은 여자 아이로 선물로 받은 커다란

    밀랍 인형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위니가 묘사하는 밀랍 인형의 모습은 위니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밀드레드가 한 밤 중에 일어나 생쥐를 발견하는 장면을

    이야기 하다가 위니는 갑자기 관심을 윌리로 돌리더니 다시 쇼어 부부의 이야기

  •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행복한 날들에 나타난 메타 드라마적 전략 217

    가 생각나 한참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리고 다시 생쥐 이야기로 돌

    아온다.

    갑자기 생쥐 한 마리가. . . (휴지) 갑자기 생쥐 한 마리가 그녀의 작은 허벅지로 달

    려올라 왔어. 밀드레드는 놀라서 인형을 떨어뜨리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지. (위니

    가 갑자기 날카롭게 비명을 지른다)-소리 지르고 또 소리 지르고-(위니는 두 번

    비명을 지른다)-모두가 잠옷을 입은 채로 달려올 때까지 소리 지르고 또 지르고

    또 지르고 또 지르고 . . . 너무 늦었어. (휴지) 너무 늦은 거야.

    Suddenly a mouse . . . [Pause] Suddenly a mouse ran up her little thigh and

    Mildred, dropping Dolly in her fright, began to scream-[Winnie gives a

    sudden piercing scream]-and screamed and screamed-[Winnie screams

    twice]-screamed and screamed and screamed and screamed till all came

    running, in their night attire. . . . Too late. [Pause.] Too late. (34-5)

    밀드레드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위니는 마치 흙더미 속 그녀의 허벅지로 생쥐가

    기어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완전히 밀드레드와 동화되어 직접 비명을 지른다. 하

    지만 이 장면이 갖는 가장 강력한 대조는 위니가 전하는 밀드레드의 이야기와 달

    리 위니에게는 아무리 소리쳐도 그녀를 구해주려고 달려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

    이다. 심지어 바로 곁에 있는 윌리조차도. “너무 늦었다”는 마지막 말은 밀드레

    드가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 위니의 자의식적인 고백이다.

    III. 결 론

    베케트는 표현해야만 하는 작가적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연극이 연극을

    반영하는 자체반영적인 메타드라마 전략을 깊이 탐색해 왔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행복한 날들에서는 작품들 간의 상호 연관성, 배우와 관객 사이의 역할 분담, 배우로서 연극을 하고 있다는 예리한 자의식 등의 메타드라마적인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베케트는 셰익스피어와 밀턴과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극중

    에 끌어들여 극적 상황을 비유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통해 극을 반영하는 메타드

  • 염 정 민218

    라마적 전략을 구사한다. 또한 자신이 배우임을 인식하는 위니는 무대의 조명,

    소도구, 관객 등을 이용하여 이 극이 연극이며 자신이 연극을 하고 있다는 자의

    식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극중 극은 위니의 상황과 서로를 반영하면서 실제의 삶

    과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순환적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메타드라마적인 특징은 단순히 형식으로서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

    물이자 배우인 위니가 무대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생존의 전략이다.

    이 극에서 메타드라마적 특징들은 하루가 끝남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릴 때까지 점

    차 차오르는 흙더미에 묻혀 행복한 척 연기하며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

    간을 보내야 하는 위니와, 연극이 끝남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릴 때까지 무대 위

    에서 계속 상대 배우와 관객들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배우의 숙명을 동시에 표현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베케트의 극의 우수성은 그가 항상

    심혈을 기울여 온 바대로 작품의 형식이 곧 내용이라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러

    한 노력이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행복한 날들이다. 이런 식으로 심화되어 온 베케트의 메타드라마는 후기 극에서는 재현으로서의 극을 완전히 거부하고 극의

    자체 반영적인 양식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완결된 메타드라마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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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형택. 「사무엘 베켓(Samuel Beckett)극의 메타드라마적 특성」. 동아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1.]

    염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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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접수일: 2016. 09. 30 / 심사완료일: 2016. 11. 10 /게재확정일: 2016.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