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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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1 의사학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2011년 6월 Korean J Med Hist 20 ː1-28 June. 2011 ⓒ대한의사학회 pISSN 1225-505X, eISSN 2093-5609 승정원일기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시대를 중심으로* 정재영**ㆍ이준환**ㆍ정석희**# 1. 머리말: 조선 중기의 의사학적 특징 및 연구의 목적 2. 연구 대상 및 연구 방법 3.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요통 임상 기록 4. 승정원일기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 중기 요 통(腰痛) 치료의 특징 5. 결론 및 제언 1. 머리말: 조선 중기의 의사학적 특징 및 연구의 목적 최근 동의보감은 의서(醫書)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며, 조선시대 기록유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의보감외에도 이미 많 은 조선시대 기록유물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조선시 대에는 많은 기록물이 제작되고 현재까지 남아 당시의 각종 정보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김성수, 2005: 27-48). 특히 조선시대 국가에서 편집한 대표 적인 연대기 자료로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등이 있으며, 각기 나름대로의 특성으로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 1 * 본 연구는 2010년도 경희대학교 기본연구 지원에 의한 결과임(KHU-20100678).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한방재활의학과 # 교신저자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 1번지 경희대학교부속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교실 전화 : 02-958-9299 / 팩스 : 02-963-4983 이메일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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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1

    의사학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2011년 6월 Korean J Med Hist 20 ː1-28 June. 2011ⓒ대한의사학회 pISSN 1225-505X, eISSN 2093-5609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시대를 중심으로*

    정재영**ㆍ이준환**ㆍ정석희**#

    1. 머리말: 조선 중기의 의사학적 특징 및 연구의

    목적

    2. 연구 대상 및 연구 방법

    3.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요통 임상 기록

    4.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 중기 요

    통(腰痛) 치료의 특징

    5. 결론 및 제언

    1. 머리말: 조선 중기의 의사학적 특징 및 연구의 목적

    최근 『동의보감』은 의서(醫書)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며,

    조선시대 기록유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의보감』외에도 이미 많

    은 조선시대 기록유물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조선시

    대에는 많은 기록물이 제작되고 현재까지 남아 당시의 각종 정보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김성수, 2005: 27-48). 특히 조선시대 국가에서 편집한 대표

    적인 연대기 자료로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이 있으며,

    각기 나름대로의 특성으로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

    1

    1)

    * 본 연구는 2010년도 경희대학교 기본연구 지원에 의한 결과임(KHU-20100678).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한방재활의학과 # 교신저자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 1번지 경희대학교부속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교실

    전화 : 02-958-9299 / 팩스 : 02-963-4983

    이메일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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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있다(박경환, 2008: 5-569). 이 기록물들 중 분량 상으로 가장 방대한 자료

    가 바로 『승정원일기』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총 글자 수가 약 4700만 자(字)

    인데 비해 『승정원일기』는 인조 1년 이후의 기록만 전해짐에도 약 2억 4100

    만 자로 헤아려 진다는 점만 보아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정만조, 2001:

    15-116). 또한 『승정원일기』는 실록(實錄)의 편찬에도 가장 기본적인 자료의

    하나로 활용되었으며, 왕의 최측근에서 왕과 왕실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하

    였다는 점에서 기록물로서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신병주, 2008: 39-84).

    『조선왕조실록』이 가장 일목요연하게 조선시대 전체상의 모습을 담은 자료라

    면, 『승정원일기』는 당시의 날씨, 왕과 왕실의 자세한 동정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신병주, 2001: 1-220).

    이처럼 조선시대 왕실의 세부적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인 『승

    정원일기』는 당시의 왕실 진료기록으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홍세영^차

    웅석^김남일, 2008: 1-11).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한 의사학적 연구는

    조선시대의 전반적 의료사적 흐름을 파악하는 것에는 효과적이지만 당시의

    세부적 정보를 전해주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는 반면에, 『승정원일기』는 당

    시 약방(藥房)에서 담당한 왕과 왕실 구성원에 대한 구체적 진료 기록이 전해

    지고 있다는 점에서 임상 기록으로서의 연구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김종

    덕, 2007: 1-338).

    현대인의 일상적 질환인 요통(腰痛)에 관한 기록 역시 『승정원일기』에서

    도 약 250번 가량 기록되어 있는 대표적 질환 중의 하나이다. 요통은 요부 및

    하지에 나타나는 증상을 나타내는 증후적 용어로서 단순히 통증이라는 증상

    을 나타내는 용어일 뿐 질병을 지칭하는 용어는 아니다(전국한의과대학 침구

    학교실, 1993: 1132-6). 해부학적인 요부구조물 및 그 주변 지지조직의 병적

    상태에 따라 다양한 질병에 의하여 요통이 나타날 수 있다(한태륜^방문석,

    2008: 761-96). 한의학에서도 그 증상에 관해 많은 언급이 존재하는데, 조선

    중기의 의서인 『동의보감』에는 ‘요문(腰門)’이란 독립된 편재가 존재하며, ‘십

    종요통(十種腰痛)’으로 그 원인을 세분화하는 등 중요한 질환 중의 하나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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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하고 있다(許浚, 2000: 710).

    기본적으로 조선시대는 다양한 임상 의학적 발전을 이루었으며, 본격적으

    로 한국적 한의학론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 시대라 할 수 있다. 『동의보감』

    의 출간을 통하여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집대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신

    동원, 2004: 134-45) 조선시대 의사학 연구에 따르면 『동의보감』의 출간을 기

    준으로 왕실의 의학적 성향 및 처방운용 등에 있어서 차이가 나타난다(정창

    현, 2002: 223-42).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동의보감』이 출간된 이후의 시기인 조선 중기 인

    조, 효종, 현종, 숙종 시대를 중심으로 『승정원일기』에 나타난 요통의 치료에

    관한 임상기록을 연구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당시 요통을 어떻게 바라

    보았으며, 어떠한 과정으로 치료하였고, 『동의보감』의 의학적 관점과는 어떠

    한 상관성이 있으며, 아울러 현재의 관점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에 대하

    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연구 대상 및 연구 방법

    본 연구를 위한 『승정원일기』 자료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홈

    페이지의 전산화된 원문자료를 이용하였다. 요통관련 문헌을 찾기 위하여 인

    조 1년부터 숙종 말년까지의 시기 동안 ‘腰(요)’, ‘腰痛(요통)’이 포함된 기록

    을 검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들 중 치료에 관한 언급, 질병의 원인에

    관한 언급, 추후 질병 변화에 관한 언급 등 임상의학적 가치가 있는 기록만을

    추려내었다. 그리고 『동의보감』 등 한의학 서적을 바탕으로 한의학적인 해석

    을 시도하였다.

    3.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요통 임상 기록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연구원 홈페이지의 『승정원일기』 전산화 원문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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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이용하여 앞서 설명한 방법으로 검색한 결과 총 147번의 언급 중 임상적

    의의가 있는 4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으며, 시기와 내용의 연관성에 따라 12

    례의 임상기록으로 나눌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12례의 임상 예 중 진료과

    정에서 의미 있는 내용이 기록된 20건의 『승정원일기』 기록을 통하여 당시의

    요통(腰痛) 임상진료에 대하여 논하도록 하겠다.

    4.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 중기 요통(腰痛) 치료

    의 특징

    조선 왕조 중 인조, 효종, 현종, 숙종의 시기는 역사가들에 따라 ‘조선중기’,

    ‘조선후일기(朝鮮後一期)’ 등으로 구분되며, 용어상의 차이는 있지만, 그 시

    기별 특징은 다음과 같다. 당시는 양란을 겪은 이후로서 전란 이후 청, 일본

    과의 교류가 증대되며 외국의 다양한 의학적 서적과 약재 등이 도입되었으

    며, 동시에 서양의 학문이 차츰 도입되어 직접적으로 서양의 의학적 기술이

    도입되지는 않았으나, 실증적 사고 및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관점이 증대

    되었다(김두종, 1998: 291-338). 또한, 인조 대의 침의인 허임이 『침구경험방』

    을 저술하고, 궁중에서 이형익의 번침술(燔針術)이 유행하는 등 침구술 영역

    에서 조선 전기에 비해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김인숙, 2004: 198-218). 하지

    만 무엇보다도 중국의 의서에 의존하던 종래의 사고를 탈피하여 『동의보감』

    으로 대표되는 독자적인 의서들이 간행되었다는 점이 의사학적 관점에서 조

    선중기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시대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김홍균^박찬국,

    1991: 252-301).

    이러한 조선 중기 가운데에 『승정원일기』 기록이 존재하는 인조 이후부터

    숙종까지의 요통 진료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요통 치료의 방법론에서 발병 원인에 따른 치료에 임하는 관점을 볼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동의보감』에서는 “요통에는 열 가지 구분이

    있다.”라 하여 요통의 원인을 대표적으로 10가지로 규정하고 그에 따른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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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 치료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본 연구의 12예 중 방제를 이용한 치료는 9

    예이며, 각각 증상의 특징 그리고 『동의보감』의 변증시치에 근거한 발병원인

    에 대한 치료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조 6년 9월 10일’과 ‘인조 26년 4월 12일’에는 독

    활기생탕(獨活寄生湯)을 처방하였다. 독활기생탕(獨活寄生湯)은 간신(肝腎)

    이 허약하여 힘줄이 오그라들고 뼈가 아프며, 한쪽 다리와 무릎을 쓰지 못하

    고 늘어지며, 약하고 시리면서 저린 것을 치료하는 처방이다(許浚, 2000: 778-

    88). ‘인조 6년 9월 10일’의 기록을 살펴볼 때 당시 인조의 요통이 재발하였다

    는 점에서 본래 간신이 허약한 상태에서 발생한 요통으로 판단하여 독활기생

    탕(獨活寄生湯)을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그리고 ‘인조 26년

    4월 12일’ 기록의 경우에는 이러한 간신허(肝腎虛)라는 소인(素因)과 더불어

    습열(濕熱)이라는 증후가 더하여졌기 때문에 그에 따라 습(濕)을 없애는 백출

    (白朮)과 오장(五臟)의 열(熱)을 식히는 황백(黃栢)을 더하고 성질이 비교적

    따뜻한 숙지황(熟地黃)을 빼고 평이한 건지황(乾地黃)을 대신한 처방을 이용

    하였다고 판단된다(許浚, 2000: 1915-16).

    - ‘인조 6년 9월 10일’의 요통 진료 기록

    약방(藥房)에서 계를 올려 말하기를, 의관에 따르면 요통의 증

    상이 다시 발생하셨다 하시니, 마땅히 독활기생탕(獨活寄生湯)을

    드시고, 십삼일 간 거둥을 하시는 것은 좋지 않으실 듯합니다. 거

    둥을 미루시기를 청합니다. 답하시기를 알겠다. 그러나 아픈 것이

    대단할 정도는 아니니 거둥을 미루지는 않겠다.1)

    - ‘인조 26년 4월 12일’부터 ‘인조 26년 4월 14일’까지의 요통 진

    료 기록

    다시 계를 올려 말하기를 신들은 의관의 교지를 듣고 근심과 걱

    정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곧 어의 등과 함께 다시 상의하여

    1) “藥房啓曰, 卽因醫官, 伏聞腰痛之證復作, 宜進加入獨活寄生湯, 十三日擧動, 決不可行, 請速

    退行. 答曰, 依啓. 所患不至大段, 擧動, 勿爲退行” 『승정원일기』 원본22책/탈초본2책, 인조

    6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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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지금 전하의 요통(腰痛)의 증상은 결코 어혈(瘀血)로 인한 것이

    아니며 창(脹)의 증상과 요통의 증상이 모두 습열(濕熱)에서 나타

    난 것이라 판단하였으며, 독활기생탕(獨活寄生湯)이 요통(腰痛)을

    치료하는데 가장 알맞아, 우선 이 약과 백출(白朮) 일곱 푼, 염주

    초(鹽酒炒)한 황백(黃栢) 다섯 푼을 더하고 숙지황(熟地黃)을 빼고

    주세(酒洗)한 건지황(乾地黃)을 대신하여 열 첩을 드시는 것이 마

    땅하신 줄 아룁니다.2)

    ‘효종 4년 4월 22일’의 기록에 따르면 효종이 “허리 사이에 은은한 통증”을

    호소하자 사물탕(四物湯)을 제시하였다. 이 기록을 전후로 하여 다른 증상은

    설명되어 있지 않으므로, 구체적인 처방 선택의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

    우나 효종이 약을 복용한 후에 열 증상의 변화가 있는지를 묻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당시 요통과 함께 열과 관련한 증상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사물탕(四物湯)은 『동의보감』에서는 혈병(血病)을 두루 치료하는 처방

    으로, 주로 혈(血)이 허(虛)하여 발생하는 제반 증상에 응용하는 처방이며, 증

    상에 따라 다양한 가감을 통하여 각종 질환에 적용한다(許浚, 2000: 230). 특

    히 한의학에서는 조열(燥熱)이 발생하는 것은 혈(血)이 허(虛)한 것이 그 원

    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許浚, 2000: 1096), 이러한 조열(燥熱)의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물탕(四物湯)을 기본으로 하여 조열(燥熱)을 치료하는 본초

    를 가미한 다양한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許浚, 2000: 224, 691, 785, 787). 효

    종의 요통을 치료하기 위해 사물탕(四物湯)에 더해진 본초를 살펴보면, 황련(

    黃連), 황백(黃栢), 치자(梔子), 목단피(牡丹皮) 등은 한의학에서 청열약(淸熱

    藥)의 범주에 속하는 처방으로(전국한의과대학본초학교실, 2000: 160-239),

    이상을 종합해 볼 때, ‘효종 4년 4월 22일’의 요통 발생의 원인을 혈(血)이 허

    (虛)한 것으로 인한 조열(燥熱)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하

    2) “再啓曰, 臣等伏聞下醫官之敎, 不勝憂悶之至. 卽與諸御醫等, 重覆商議, 則皆以爲今此玉候腰

    痛之症, 決非瘀血所致, 脹候·腰痛, 皆出於濕熱, 而獨活寄生湯, 最合於腰痛, 先以此藥, 加白

    朮七分·黃栢鹽酒炒·褐色五分, 去熟苄代乾苄酒洗, 十貼進御宜當云, 依此劑入之意, 敢啓. 答曰, 旣非血病, 則先治脹候, 宜矣” 『승정원일기』 원본101책/탈초본5책, 인조 26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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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7

    여 위와 같은 처방을 이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 ‘효종 4년 4월 22일’부터 ‘효종 4년 4월 25일’까지의 요통 진

    료 기록

    약방(藥房)에서 계를 올려 말하기를 방금 의관에게 약 3일 전부

    터 허리 사이에 은은한 통증의 증상이 있으셨다는 교지를 받았습

    니다. … 의관들과 상세히 의논하여 사물탕(四物湯)에 염주초(鹽

    酒炒)한 지모(知母)와 황련(黃連), 치자(梔子). 연피초(連皮炒), 목

    단피(牡丹皮), 시호(柴胡), 염주초(鹽酒炒)한 황백(黃栢)을 각 다

    섯 푼 더한 것이 이 증상에 맞는 약제라 아룁니다. … 답하기를 알

    겠다.3)

    약방(藥房)의 도재조(都提調) 김육, 제조(提調) 박서, 부제조(副

    提調) 윤순이 계를 올려 말하기를 어제와 오늘 비가 올 것이 흐리

    고, 날씨가 찌는 듯이 답답한데 이러한 때에 전하의 건강은 어떠하

    신지요? … 답하기를 요통(腰痛)은 이미 다 나았고, 열(熱) 증세는

    자못 줄어들어 잠을 자는 것 또한 평안했다. … 4)

    ‘효종 9년 2월 22일’에는 당시 빈궁이었던 명성왕후의 임신 중에 발생한 요

    통의 치료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제시된 처방은 안태음(安胎飮)에 강즙초(薑

    汁炒)한 두충(杜冲), 속단(續斷), 금은화(金銀花)를 더한 처방으로, 안태음(安胎飮)은 대표적인 안태약(安胎藥)으로 임산부의 태기(胎氣)가 불안하여 발생

    한 다양한 증상에 응용하는 처방으로(許浚, 2000: 1600), 한의학에서는 임산

    부의 각종 증상에 기본 처방으로 이용한다. 두충(杜冲)과 속단(續斷)은 간신(肝腎)이 허(虛)하여 발생한 요통을 치료하는 주요한 본초이다. 그리고 한의

    학에서 태동(胎動)이 악화되는 주요한 원인을 열(熱)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고

    3) “藥房啓曰, 卽者伏聞下醫官之敎, 自數三日前, 腰間有微痛之候 … 與醫官商議, 則四物湯, 加

    知母鹽酒炒·黃蓮·梔子·連皮炒·牡丹皮·柴胡·黃栢鹽酒炒各五分, 爲對症之劑云. …

    答曰, 依啓. 朝報” 『승정원일기』 원본127책/탈초본7책, 효종 4년 4월 22일.

    4) “藥房都提調金堉, 提調朴遾, 副提調尹順之啓曰, 昨今天有雨徵, 日氣蒸鬱, 此時調攝之中, 聖候, 何如? … 答曰, 腰痛旣已差愈, 熱勢頗爲減去, 寢睡亦穩矣. …” 『승정원일기』 원본127책/

    탈초본7책, 효종 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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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醫史學8

    있으며, 금은화(金銀花)는 성질은 약간 차고 단맛이 있는 대표적인 청열약(淸

    熱藥)에 속하는 본초로서 이러한 기전에 따라 열을 식히는 금은화(金銀花)를

    사용한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許浚, 2000: 1598, 1974).

    현대에도 임신 중 발생하는 요통은 임산부가 높은 빈도로 겪게 되는 증상

    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다양한 방법의 치료 및 연구가 진행되고 있

    다. 일반적으로 임산부 3명 중 1명은 골반통을, 9명 중 1명은 요통을 겪는 것

    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신으로 인한 척추전만의 증가 및 호르몬의 변화에 수

    반하여 발생하는 증상으로 판단하고 있다(심미정, 2004: 8-14). 그리고 임신

    중이라는 환자의 특성과 함께 통증장애를 완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임신 중 요

    통관리 프로그램 및 일상생활 작업 교정 등의 보존적 치료 방법이 추천되고

    있으나, 때에 따라서는 국소마취 및 수술적 방법이 이용되기도 한다(문우남

    ^김문영^오한진^서승우^김인철^최영효, 안재용, 2000: 259-263). 한의학에

    서는 앞서 『승정원일기』의 치험례의 경우와 같이 신기(腎氣)의 허약 및 포맥(

    胞脈)의 손상으로 인하여 사기(邪氣)가 기혈(氣血)을 정체시켜 요통 등의 증

    상이 발생한다고 인식하였으며, 치료는 안태(安胎) 즉, 임신상태를 안정화하

    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병정(病情)에 따라 치료가 이루어지게 된다(한방부인

    과학 편찬위원회, 2001: 263). 결국 치료의 형태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임

    신 중이라는 특성으로 인하여 안태(安胎) 즉 임신기능의 유지를 우선으로 하

    며 통증을 완화시킨다는 치료의 원칙에서는 현대의학과 한의학 사이의 공통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효종 9년 2월 22일’부터 ‘효종 9년 2월 23일’까지의 요통 진

    료 기록

    약방(藥房)의 도재조(都提調) 원두표, 제조(提調) 허적, 우승지

    (右承旨) 한진기가 계를 올려 말하기를 신들은 지금 의관에게 빈궁

    께서 요통(腰痛)의 증상을 갖고 계시다는 교지를 받았습니다. 그

    걱정됨이 이루 다 할 수 없습니다. 이에 조징규, 박군 그리고 여러

    어의들과 상세히 의논하여 안태음(安胎飮)에 강즙초(薑汁炒)한 두

    충(杜冲), 속단(續斷), 금은화(金銀花)를 각 한 돈을 더하여 우선 한

  • 정재영^이준환^정석희 :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9

    두 첩을 복용하시는 것이 마땅한 줄 아룁니다. … 5)

    약방(藥房)의 도재조(都提調) 원두표, 제조(提調) 허적, 좌승지

    (左承旨) 서필원이 계를 올려 말하기를 며칠 동안 바람이 불고 음

    한(陰寒)하였는데, 전하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빈궁의 요통(腰

    痛) 증상은 안태음(安胎飮)을 드시고 난 후에 차도가 있으셨는지

    요? … 답하기를 알겠다. 세자빈의 증상은 오늘은 거의 다 나았다.6)

    ‘숙종 41년 9월 1일’과 ‘숙종 43년 5월 22일’의 당시 중전이었던 인현왕후의

    요통을 치료한 기록에 따르면 한의학의 기본 병리 개념인 내상(內傷)과 외감

    (外感)에 대한 이해가 잘 나타난다. 평소 근심으로 인하여 근심거리가 있었

    고, 즉 내상(內傷)이 동반된 상태에서 감기에 걸리는 외감(外感)의 상태가 겸

    하여 발생한 증상임을 설명하고 있으며, 따라서 내상(內傷)으로 인하여 기혈

    이 손상된 상태에서 풍한(風寒)에 노출되어 발생하는 두통, 발열, 오한 등을

    치료하는 처방인 도씨보중익기탕(陶氏補中益氣湯)을 제시하고 있다(許浚,

    2000: 1066). 또한, 한의학에는 노복(勞復)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일종의

    재발의 개념으로서, 외감(外感)으로 인한 질환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과로, 근

    심 등의 내상(內傷)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인하여 증상이 다시 악화되는 상황

    을 말한다(許浚, 2000: 1049). 익기양신탕(益氣養神湯)은 『동의보감』에서 제

    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노복증(勞復證) 치료 처방이며(許浚, 2000: 1050), 이와

    같은 임상례를 통해 드러나는 증상뿐만 아니라 환자의 심리상태, 평소 생활습

    관까지도 치료에 적극 활용하는 한의학적 의학관을 살펴볼 수 있다.

    5) “藥房都提調臣元斗杓, 提調臣許積, 右承旨臣韓震琦啓曰, 臣等卽伏承下醫官之敎, 嬪宮有腰

    痛之候, 不勝憂慮之至, 仍與趙徵奎·朴頵及諸御醫等商議, 則皆以爲安胎散, 加杜冲·姜汁炒·續斷·金銀花各一錢, 先用一二貼宜當云. …” 『승정원일기』 원본148책/탈초본8책, 효종

    9년 2월 22일.

    6) “藥房都提調臣元斗杓, 提調臣許積, 左承旨臣徐必遠啓曰, 數日來, 風日陰寒, 伏未審聖候調

    攝, 何如? … 答曰, 知道. 世子嬪所患, 今日則幾盡差愈矣” 『승정원일기』 원본148책/탈초본8

    책, 효종 9년 2월 23일.

  • JUNG Jae Young et al. : The Influence of Donguibogam during the Middle Joseon Era

    │ 醫史學10

    - ‘숙종 41년 9월 1일’부터 ‘숙종 41년 9월 4일’까지의 요통 진

    료 기록

    약방(藥房)에서 다시 계를 올려 말하기를 중궁전에 진찰을 들

    어간 의녀에게서 밤 동안에 중전께서 요통(腰痛)이 그치지 않으시

    고 오한(惡寒)이 있으시고, 흉격(胸膈)이 답답하시고 오후에 손바

    닥에 열이 나시고, 배는 고픈 것 같으시나 식사를 물리치시고, 항

    상 땀이 흐르는 듯 하시며, 피부가 따뜻하지 않고, 맥(脈)은 침삭

    (沈數)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신들은 류상, 정시제 등의 어의들

    과 상의하여, 중전께서 근심거리가 남으셨는데, 감기를 조금 얻으

    신 것으로, 내상(內傷)이 깊고 외감(外感)은 가벼우시니, 도씨보중

    익기탕(陶氏補中益氣湯)에 백지(白芷), 계지(桂枝)를 각 일곱 푼

    더하여 연이어 세 첩을 드시는 것이 마땅한 줄 아뢰며, 이 약을 올

    리도록 하겠습니다. 답하기를 알겠다.7)

    약방(藥房)에서 다시 계를 올려 말하기를 중궁전에 진찰을 들어

    간 의녀가 나온 후에 신들은 여러 어의들과 상의하여, 어제와 오늘

    증상이 비록 조금 좋아지는 형세이나 두통(頭痛)과 요통(腰痛)이

    때때로 나타나시니, 도씨보중익기탕(陶氏補中益氣湯)에 전에 가

    미한 것에 따라서 세 첩을 연이어 더 드시면 마땅한 줄 아뢰며 이

    약을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답하기를 알겠다.8)

    - ‘숙종 43년 5월 22’의 요통 진료 기록

    약방(藥房)에서 다시 계를 올려 말하기를 의녀가 진찰을 한 후에

    돌아와 중궁전의 증상이 두통(頭痛), 요통(腰痛)의 증후가 처음에

    비해 조금 그치지만 땀이 나는 것은 그치지 않으시고 수라는 여전

    히 물리시고, 피로가 자못 심하시며, 맥(脈) 또한 허연(虛軟)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신들은 여러 어의들과 반복하여 상의하여 서사

    (暑邪)에 의해 원기(原氣)가 손상된 까닭이라고 판단하여 익기양

    7) “藥房再啓曰, 卽伏聞中宮殿入診醫女所傳之言, 夜間症候, 頭痛腰痛, 尙未已, 惡風惡寒, 胸

    膈煩悶, 午後掌心有熱, 食治似飢, 當食厭進, 常有汗氣, 肌膚不溫, 脈度則沈數云. 臣等, 與柳

    瑺·丁時梯等諸御醫商議, 則皆以爲, 憂勞之餘, 微有感氣, 內傷重而外感輕, 陶氏補中益氣湯, 加白芷桂枝各七分, 連進三貼, 宜當云, 此藥煎入之意, 敢啓. 答曰, 知道” 『승정원일기』 원본

    490책/탈초본26책, 숙종 41년 9월 1일.

    8) “藥房再啓曰, 中宮殿入診醫女退出後, 臣等, 與諸御醫等, 反覆商議, 則皆以爲, 昨今症候, 雖有

    差減之勢, 而頭痛腰痛, 時時往來, 陶氏補中益氣湯, 依前加入, 加進三貼, 宜當云, 此藥煎入之

    意, 敢啓. 答曰, 知道” 『승정원일기』 원본490책/탈초본26책, 숙종 41년 9월 4일.

  • 정재영^이준환^정석희 :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11

    신탕(益氣養神湯)에 죽엽(竹葉) 세 푼을 더하여 연이어 세 첩을 드

    셔서, 가볍게 보(補)하는 것이 되어 마땅할 것이라 아룁니다. 이 약

    을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전하여 말씀하시기를 알겠다.9)

    ‘현종 14년 9월’, ‘현종 15년 8월’, ‘숙종 42년 2월’에는 외감(外感)으로 인한

    풍요통(風腰痛)으로 대별되는 임상례가 기록되어 있다. 풍요통(風腰痛)은 앞

    서 설명한 열 가지 요통 가운데에 하나로서, 풍(風)으로 인하여 신(腎)이 상하

    여 허리의 통증이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일정하지 않게 아픈 증상을 말하며

    『동의보감』에서는 대표적인 치료 처방으로 외감(外感)의 질환을 치료하는 패

    독산(敗毒散) 종류의 처방을 제시하고 있으며(許浚, 2000: 714), 『승정원일기』

    의 3례에서도 대표적인 패독산 종류의 처방인 인삼패독산(人蔘敗毒散), 형방

    패독산(荊防敗毒散) 등 『동의보감』에서 제시한 패독산 계통의 처방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처방으로 소시호탕(小柴胡湯)이 사용되었는데,

    소시호탕(小柴胡湯)은 외감(外感)의 증상이 진행과정에서 반표반리(半表半

    裏)라고 표현하는 소양병(少陽病)의 단계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처방이다

    (許浚, 2000: 1008). 강활조습탕(羌活燥濕湯)의 경우 정확한 처방구성을 확인

    하기는 어려우나 강활(羌活)은 풍한습(風寒濕)에 의한 외감(外感) 질환으로

    인한 두통 등의 각종 통증의 증상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본초이며 비슷한 처방

    인 강활승습탕(羌活勝濕湯) 등의 다른 처방들로 유추해 볼 때 외감(外感)으로

    인한 각종 통증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앞서 설명한 방제들과 비슷한 의미가 있

    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許浚, 2000: 654).

    외감병(外感病)은 현대의학에서의 급성 상기도감염 등으로 볼 수 있다. 급

    성 상기도감염은 대부분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일상생활에서 흔히 겪게 되는

    대표적 질환 중의 하나로써, 다양한 임상증상을 나타내며, 발열, 오한, 기침,

    9) “藥房再啓曰, 醫女入診後, 來傳中宮殿症候, 頭疼·腰痛之候, 比初少歇, 汗氣不止, 水刺一向

    厭進, 虛憊頗甚, 脈度亦爲虛軟云. 臣等, 與諸御醫, 反覆商議, 則皆以爲此由於暑傷元氣之致,

    益氣養神湯, 加竹葉三分, 連進三貼, 以爲淸補之地, 宜當云. 此藥卽爲製入之意, 敢啓. 傳曰,

    知道” 『승정원일기』 원본502책/탈초본27책, 숙종 43년 5월 22일.

  • JUNG Jae Young et al. : The Influence of Donguibogam during the Middle Joseon Era

    │ 醫史學12

    콧물 등의 증상과 더불어 근육통, 두통 등의 통증을 동반하며, 이때 겪게 되

    는 근육통 등이 발생 부위에 따라 한의학에서 설명하는 외감(外感)으로 인한

    요통의 범주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학에서는 이러한 동반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대증적 치료의 개념으로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를 투

    여하지만, 이 약물의 투여는 직접적으로 상기도 감염의 회복에 도움을 주지

    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는 다르게, 한의학에서는 증후의 원인인

    외감(外感)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요통을 치료하는 관점으로 접근하며, 앞의

    『승정원일기』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외감(外感) 치료 처방인 패독

    산(敗毒散) 종류의 처방을 이용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원칙에 입각한 치료법

    이라 할 수 있다.

    - ‘현종 14년 9월 29일’부터 ‘현종 14년 10월 4일’까지의 요통 진

    료 기록

    약방(藥房)에서 다시 계를 올려 말하기를 방금 의관에게서 전하

    께서 감모(感冒)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로 다시 요통(腰痛)의 증

    상이 있으시다는 말씀들 들었습니다. 신들은 걱정스러움이 이루

    다 할 수 없어, 곧 여러 어의들과 상의하였으며, 소시호탕(小柴胡

    湯)과 강활조습탕(羌活燥濕湯)을 합방(合方)하고 상기생(桑寄生),

    강즙초(薑汁炒)한 두충(杜冲), 산치자(山梔子) 초(炒)한 것을 각 한 돈 더한 처방을 연이어 세 첩 드시는 것이 마땅한 줄 아룁니다. …10)

    약방(藥房)에서 다시 계를 올려 말하기를 방금 의관에게서 요통

    (腰痛)의 증상이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오늘 다시 감모(感冒)의 증

    상이 있으시다는 교지를 들었습니다. 이는 며칠 찬 곳에서 머무시

    어 그 손상이 더하여서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신들은

    그 걱정됨이 이루 다 할 수 없어 곧 여러 의관들과 상의하여, 인삼

    패독산(人蔘敗毒散)에 건갈(乾葛), 형개(荊芥), 소엽(蘇葉), 주초

    (酒炒)한 황금(黃芩)을 각 한 돈 더하여 세 첩을 이어서 드시기를

    10) “藥房再啓曰, 卽伏聞下醫官之敎, 自上感冒未盡和解之中, 又有腰痛之候, 臣等不勝伏慮之

    至, 卽與諸醫相議, 則皆以爲, 小柴胡湯, 合羌活燥濕湯, 加桑寄生·杜沖·薑汴炒·山梔炒各一錢, 連進三貼宜當云, 依此劑入之意, 敢啓. …” 『승정원일기』 원본236책/탈초본12책, 현

    종 14년 9월 29일.

  • 정재영^이준환^정석희 :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13

    아룁니다. …11)

    - ‘현종 15년 8월 7일’의 요통 진료 기록

    약방(藥房)에서 다시 계를 올려 말하기를 방금 진찰을 들어갔을

    때 이동형 등에 의하면 전하의 맥이 홍삭(洪數)하고 피부가 홍열

    (烘熱)하며 또한 요통(腰痛)의 증후가 있으시니 이는 외감(外感)이

    분명합니다. 인삼패독산(人蔘敗毒散)에 건갈(乾葛), 주세(酒洗)한

    황금(黃芩), 소엽(蘇葉)을 각 한 돈 더하여 연이어 두 첩을 드시면

    빠르게 증상이 호전되실 것입니다. 이 약을 한 첩을 우선 달여 올

    리도록 하겠습니다. 답하기를 알겠다.12)

    - ‘숙종 42년 2월 6일’의 요통 진료 기록

    … 그리고 중궁전에 진찰을 들어갔던 의녀의 말에 따르면 연일

    땀이 나는 증상이 그치지 않으시고 두통(頭痛)과 요통(腰痛)이 줄

    어들지 않으시고 눈의 질환 또한 변화가 없으시고, 입맛 또한 쓰시

    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의관들은 외감(外感)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형방패독산(荊防敗毒散)을 연이어 세 첩 드시는

    것이 마땅하며 이 약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답하기를 알겠다.13)

    다음으로 『승정원일기』의 요통 진료 기록을 통해 요통의 침구 치료에 대한

    당시의 의학적 관점을 살펴볼 수 있다. 본 연구의 12례의 임상 기록 중 ‘인조

    26년 2월’과 ‘현종 14년’ 두 임상 예에서 침구 치료를 통한 요통의 치료를 꾀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조 26년 2월 25일’의 기록에 따르면 인조

    가 요통과 귓병의 증후가 있자 의관들은 단지구(丹地灸)와 경락침(經絡鍼)을

    11) “藥房再啓曰, 卽伏聞下醫官之敎, 腰痛之候, 一向無減, 而今者又有感冒之候, 此是連日冷處,

    出於添傷之致, 臣等, 不勝驚慮之至, 卽與諸醫詳議, 則皆以爲, 人蔘敗毒散, 加乾葛·荊芥·

    蘇葉·黃芩酒炒各一錢, 三貼連進宜當云, 以此劑入之意, 敢啓. …” 『승정원일기』 원본236

    책/탈초본12책, 현종 14년 10월 4일.

    12) “藥房再啓曰, 卽者入診時, 李東馨等, 皆以爲, 自上脈度洪數, 肌膚烘熱, 且有腰痛之候, 明是

    外感. 人蔘敗毒散, 加乾葛·黃芩酒洗, 蘇葉各一錢, 連進二貼, 趁速解□爲當云. 此藥一貼, 爲先煎入之意, 敢啓. 答曰, 知道” 『승정원일기』 원본241책/탈초본12책, 현종 15년 8월 7일.

    13) “… 而伏聞中宮殿入診醫女所傳之言, 連日汗候不止, 而頭痛·腰痛不減, 眼患亦一樣, 口味

    亦苦云. 諸醫等以爲, 外感未盡和解, 荊防敗毒散, 連進三貼, 宜當, 而此藥劑入之意, 敢啓. 答

    曰, 知道” 『승정원일기』 원본492책/탈초본26책, 숙종 42년 2월 6일.

  • JUNG Jae Young et al. : The Influence of Donguibogam during the Middle Joseon Era

    │ 醫史學14

    통한 치료가 필요함을 설명하고, ‘인조 26년 2월 28일’에 창(脹)의 증후와 귓

    병을 치료하기 위해 환약을 투여하였고, 침구를 시행하는 것은 오로지 요통

    을 치료하기 위함이라 설명하고 있다. 단지구(丹地灸)는 기록에 따라 단지(丹

    池), 단지(丹知) 등으로 불리며 단사(丹砂), 즉 주사(朱砂)를 이용한 구법으로

    주사를 비단 안에 넣어 환부 위에 놓고 화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시행하는 방

    법이다(신좌섭^기창덕^황상익, 1998: 75-96). 경락침(經絡鍼)이란 경락의 유

    주에 따라 침을 놓는 방법을 이르는 것으로 일종의 원위취혈(原位取穴) 방식

    의 침치료 방법이라 할 수 있다(許浚, 2000: 1023). 그리고 ‘현종 14년 8월 14

    일’에는 현종이 요통의 증후를 보이자 요안혈(腰眼穴)에 일곱 장의 뜸을 시행

    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요안혈(腰眼穴)은 허리의 양쪽에 오목하게 들어

    간 부분으로 해부학적으로는 제4번 요추의 높이에 있으며, 경락(經絡)에 속

    하지 않는 경외기혈(經外奇穴)의 하나로서, 『동의보감』에 따르면 각종 허로

    (虛勞)로 인한 요통에 상용하는 경혈 중의 하나로 설명하고 있다(許浚, 2000:

    398, 714, 2083). 조선중기 인조는 침구의인 이형익을 크게 총애하여, 당시 지

    방의 의원이었던 그를 직접 궁으로 불러 의관으로 임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요통의 치료에서도 이와 같은 침구술을 중시하였던 당시의 학문적 경향이 드

    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처럼 침구술을 중시하는 풍조는 조선중기 이후의 학문적 풍토 중 하

    나였던 실학사상과도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조선 초기에는 기도와 주술에 의지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

    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태조는 이러한 기도를 통해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로 인한 영향으로 세종조차 질병에 걸리면 기도를 중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14) 하지만 인조 이후의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질

    14) “각 고을의 성황신(城隍神)에게 기도(祈禱)하게 하였으니, 태상왕의 병이 위독하기 때문이

    었다.” 『태종실록』권15, 태종 8년 4월 28일 병오. “낙천정에 나아가 대비께 뵈옵고, 드디어

    머물러 병석에 모시고 환관 김용기(金龍奇)를 개경사(開慶寺)에 보내어 관음(觀音)께 기도

    하고, 인하여 중들에게 시식(施食)하였다. 약사여래(藥師如來)에 기도하고, … 북두칠성에

    초제(醮祭)하고, … 성황(城隍)의 신에 기도하고, 저녁에 소경 중 7인을 불러 모아 삼십품도

  • 정재영^이준환^정석희 :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15

    병의 원인을 당대에 유행하던 의학이론을 통해서 살펴본 후 치료 방법을 통해

    질병을 다스리는 것을 우선시하였다. 세종 때 보이는 것처럼 직접적인 주술과

    기도를 행한 것은15)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역병 등 중병일 때는16) 종묘사직이

    나 명산대천에서 쾌유를 비는 기도를 함께 올리는 예는 찾아볼 수 있다. 이것

    은 조선 초기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로 신중을 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17) 그

    리고 『승정원일기』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기본적인 송원명대(宋元明代) 여러

    의가들의 이론을 아우르는 동시에 ‘여염(閭閻)의 의학’이라 할 수 있는 민간에

    서 효과를 본 치료방법 등을 함께 수용하려 하였다. 그러나 민간에서 효과를

    보아서 왕에게 시술된 치료법이라 하더라도 기존의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다

    면 수용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다양한 침법을 수용하고 적용하

    려 노력하였으나, 당시의 왕실 의관들의 의학관의 근간이 되는 『동의보감』 등

    량(三十品道場)을 낙천정 안뜰에 배설하고, 임금이 수라도 진어하지 아니하고 침소에도 들

    지 아니하며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였다.” 『세종실록』 권8, 세종 2년 6월 1일 무술.“공비(恭

    妃)의 병환이 위독하게 되므로, 사찰이나 신사(神祠)에 기도드렸다.” 『세종실록』 권17, 세

    종 4년 8월 7일 신묘.

    15) “중궁(中宮)의 병이 더함으로써 다시 중[僧] 80명을 시어소(時御所)에 모아서 〈기도(祈禱)

    를〉 정근(精勤)하여 밤을 새우게 하고, 세자(世子)가 팔[臂]을 불에 태우고, 여러 대군(大

    君)과 내수(內竪)들도 다투어 서로 팔을 불에 태웠다. 중 일운(一雲)에게 홍단(紅段) 1필, 황

    견(黃絹) 3필, 세주(細紬) 1필, 백면포(白緜布) 3필을 내려주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각기 차등 있게 내려 주었다.” 『세종실록』 권111, 세종 28년 3월 15일 임오.“내가(세종) 수종다리

    의 병이 발생하자, 한 주술하는 소경을 불러 다스리게 하였더니 조금 나았다. 비록 이로 인

    해 쾌히 낫지는 못하였으나 주술에 힘입어 삶을 얻은 것이니, 그 소경에게 옷 한 벌과 쌀 2

    석을 하사하라 하였다.” 『세종실록』권108, 세종 27년 4월 29일 임신.

    16) “삼남(三南)에 전염병이 치성하므로, 도신에게 명하여 해도(該道)의 중앙(中央)에다 단(壇)

    을 설치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祈禱)하게 하였다. 또 전의감(典醫監)과 혜민서(惠民署)

    로 하여금 약물(藥物)을 넉넉히 보내도록 하였는데, 예조 판서 송인명(宋寅明)의 청을 따른

    것이었다.” 『영조실록』 권31, 영조 8년 4월 12일 기해.

    17) “동궁의 환후가 이러하므로 종묘(宗廟)·사직(社稷)에 기도하는 일을 조금도 늦출 수 없을

    듯한데, 전례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이태좌가 말하기를, 이것은 전례를 상고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하면 오르내리시는 조종(祖宗)의 신명이 어찌 국본(國本)을 잠잠히

    돕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본디 벼슬이 높고 낮은 데에 달려 있

    지 않고, 또 일이 있으면 고하는 것은 왕공(王公)과 필서(匹庶)가 다를 것이 없다. 날짜를 잡

    지 말고 기도제(祈禱祭)를 설행(設行)하되, 이참(吏參)·공참(工參)의 나라를 위하는 깊은

    정성을 내가 매우 아름답게 여기니, 특별히 차출하여 보내도록 하라.” 『영조실록』 권20, 영

    조 4년 11월 10일 병진.

  • JUNG Jae Young et al. : The Influence of Donguibogam during the Middle Joseon Era

    │ 醫史學16

    의 체계에 의해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장될 수밖에 없었다고 판

    단된다. 그러나 최근 한의학계에서 ‘전열침(傳熱鍼)’, ‘가열식 화침(火鍼)’ 등

    번침법과 맥락을 같이 하는 치료법들이 새로운 치료법으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중기의 번침법 등의 다양한 시도들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으로서 앞으로 연구를 지속할 가치가 있는 분야라

    고 할 수 있다(안순선^허동석, 2010: 119-129).

    - ‘인조 26년 2월 23일’부터 ‘인조 26년 2월 29일’까지의 요통 진

    료 기록

    약방(藥房)에서 계를 올려 말하기를 봄의 추위가 아직 풀리지 않

    아 날씨가 예년 같지 않은데 전하의 건강상태가 전과 비교하여 어

    떠하신지요? … 답하기를 요즘 전에 앓았던 요통(腰痛)이 다시 나

    타나고 귓병 또한 다시 나타난 것 같다.18)

    약방(藥房)에서 계를 올려 말하기를 밤 동안에는 살피지 못하였

    습니다. 전하의 건강상태는 어떠하신지요? 신들은 어제 전하께서

    요통(腰痛)이 있으시다는 말씀을 들었고 오늘까지 낫지 않으시다

    하시니, 단지구(丹地灸)나 경락침(經絡鍼)을 시행하시는 것이 좋

    을 것 같습니다 … 답하시기를 알겠다. …19)

    침술을 시행한 후에 생맥산(生脈散) 한 첩을 올렸다.20)

    다시 계를 올려 말하기를 신들은 전하의 요통(腰痛)이 거의 나

    으셨다는 교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이보다 더 기쁘고 다행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금일 뜸을 시행할지 여부를 다시 어의들이 모여 상

    세히 상의하였습니다. 창(脹)의 증상과 귓병은 환약(丸藥)을 드시

    는 방법으로 치료하고 침구(鍼灸)를 시행하는 것은 오로지 요통

    18) “藥房啓曰, 春寒未解, 氣候不適, 伏未審此時, 玉候調攝, 比前何如? … 答曰, 近日前患腰痛復

    發, 耳病亦似還蔽矣” 『승정원일기』 원본100책/탈초본5책, 인조 26년 2월 23일.

    19) “藥房啓曰, 伏未審夜間, 玉候調攝, 何如? 臣等, 昨日伏聞玉體腰痛, 至今未已, 欲爲丹地灸,

    或經絡鍼, 今日退去, 明日待候, 下敎於醫官. … 答曰, 知道” 『승정원일기』 원본100책/탈초

    본5책, 인조 26년 2월 25일.

    20) “受鍼後, 生脈散一貼, 煎進” 『승정원일기』 원본100책/탈초본5책, 인조 26년 2월 25일.

  • 정재영^이준환^정석희 :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17

    (腰痛)을 치료하기 위함입니다. 요통(腰痛)은 거의 다 나으셨고,

    오늘의 날씨 또한 음습(陰濕)하니 여기서 뜸을 시행하는 것을 그

    만하시고, 내일 다시 증상이 어떠한지 살펴 그에 따라 시행하시는

    것이 어떠실지 우러러 여쭤봅니다. 답하시기를 그렇게 하겠다.21)

    - ‘현종 14년 8월 14일’의 요통 진료 기록

    약방(藥房)에서 다시 계를 올려 말하기를 방금 어의에게서 전하

    의 대변 횟수가 어제에 비해 조금 줄어들었으나, 다시 요통(腰痛)

    의 증후가 있어 뜸을 뜨고자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답하

    기를 알겠다.22)

    사시(巳時)에 사현합에서 요안혈(腰眼穴)에 일곱 장의 뜸을 시

    행하였다. 약방(藥房) 도재조(都提調) 김수흥, 제조(提調) 장선징,

    좌부승지(左副承旨) 이혜 등이 입시하였다. … 신들은 염려됨이 그

    치지 않습니다. 밤중에 전하의 옥체는 어떠하셨는지요.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특별한 것은 없었다. 요통(腰痛)은 가끔씩 있었고

    머리에 있는 작은 부스럼이 이따금 찌르는 듯이 아팠을 뿐이다.23)

    숙종 45년 이후 『승정원일기』의 기록에는 숙종의 요통 관련 기록이 많이 증

    가한다. 그리고 ‘숙종 45년 1월 20일’의 요통의 양상에 몇 가지 변화가 추가된

    다. 다리의 당기면서 저린 증세, 요안혈 일대의 당기면서 아픈 통증, 허리 아

    래의 부종과 가려움증을24) 주소증으로 나타내는 요통의 양상이다. 본 증세는

    21) “再啓曰, 臣等, 伏承腰痛幾盡差愈之敎, 不勝欣幸之至, 今日受灸與否, 更與諸御醫等, 詳細商

    議, 則皆以爲, 脹候·耳患, 方進丸藥, 而至於鍼灸, 則專爲腰痛矣. 腰痛幾盡差愈, 日候亦且

    陰濕, 姑停今日缸灸, 更觀明日證候之如何, 而爲之宜當云, 敢此仰稟. 答曰, 依啓” 『승정원일

    기』 원본100책/탈초본5책, 인조 26년 2월 28일.

    22) “藥房再啓曰, 卽伏聞入侍醫官之言, 自上大便度數, 則比昨稍減, 而又有腰痛之候, 欲爲受灸

    云 … 答曰, 知道” 『승정원일기』 원본235책/탈초본12책, 현종 14년 8월 14일.

    23) “巳時, 上御思賢閤, 受灸, 腰眼穴七壯. 藥房都提調金壽興, 提調張善瀓, 左副承旨李嵇, 假注書李喜龍, 記注官李英甲, 記事官睦昌明, 醫官李東馨·白光玹·金尙誠·權愉·李後聃·

    李應斗入侍. … 臣等, 憂慮未弛, 伏未審夜間, 聖體, 若何? 上曰, 別無大段矣. 腰痛處, 則稍

    歇, 而頭部小癤, 暫似刺痛耳. …” 『승정원일기』 원본235책/탈초본12책, 현종 14년 8월 14일.

    24) “藥房口傳啓曰, 晩後口淡, 困惱, 腹部飽滿特甚有加, 脚痺, 熏熱亦甚及膈間不淸利, 未已, 眩氣

    往來, 溺道不平, 腰眼穴一帶牽疼有加之候, 復何如? 腰下微浮之氣及搔癢之候, 比夜尤減乎? 臣等不勝憂煎, 惶恐敢啓. 傳曰, 諸症候及腰眼穴一帶牽疼之候, 一樣, 而腰下微浮之氣, 差勝

  • JUNG Jae Young et al. : The Influence of Donguibogam during the Middle Joseon Era

    │ 醫史學18

    신증후군에 의한 요독증이25) 동반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이미 숙종 42년

    부터 소변을 보는 것이 불편해지면서26) 이후 혈뇨와 동반되어 요통 각통 외과

    통이 발생하면서27)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숙종 42년에 복부와 다리의 부종

    이 증세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후 숙종 44년에 복부가 심하게 붇고 다리의

    부종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당시 의관들이 숙종을 진찰한 기록이 있

    는데, 이를 살펴보면 당시 의관들이 숙종의 각종 증상의 원인 파악에 어려움

    을 겪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28) 일반적인 간계 질환에서도 복수와 부종이 동

    後一樣, 搔癢之候, 晝則差減矣.” 『승정원일기』 원본512책/탈초본27책, 숙종 45년 1월 21일.25) 단백질대사의 최종산물은 혈중에 축적되지만 정상적으로는 혈액이 신장을 통과하면서 걸

    러진다. 요독증은 신장기능의 이상이나 소변의 체외배출이 방해받는 모든 질환으로 인해

    생긴다. 요독증의 증상은 다양하나 피로, 권태, 정신집중 감퇴가 첫 번째 신호이다. 환자는

    가려움증을 지속적으로 느끼기도 하고 근육경련이나 불수의적인 운동이 따른다. 피부는 건

    조해지고 벗겨지기 쉬우며 황색에서 황갈색으로 변한다. 입에서 건조한 금속성 맛을 느끼

    게 되며 숨 쉴 때 독특한 암모니아 냄새가 난다. 식욕감퇴는 오심·구토로 이어지며, 설사

    와 변비가 번갈아가며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요독증이 더 심해지면 조직과 혈류에 대사

    산물이 쌓여 신경계·심혈관계·호흡계의 광범위한 장애가 일어나고 고혈압·발작·심부

    전 등을 통해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출처: 브리태니커백과사전 (http://enc.daum.net/

    dic100/contents.do?query1=b16a2620a)

    26) “四更, 又放血溺連次, 而溺道澁痛爲敎云. 臣等伏不勝驚慮之至, 卽今下部作疼之候, 何如?

    惶恐敢啓. 傳曰, 血溺及溺道微疼之候一樣矣” 『승정원일기』 원본495책/탈초본26책, 숙종 42

    년 4월 23일.

    27) “藥房啓曰, 伏聞夜間聖候, 熏熱往來, 困惱呻吟飽滿, 膈間亦不淸利, 寢睡不得安穩云. 伏未審

    朝來, 熏熱·困惱及腹部飽滿, 膈間不淸利之氣, 其已減歇, 而口淡特甚之候, 虛暈嘈雜之症, 抑有漸減之勢乎? 腹部以下浮氣, 益復消減, 脚痺餘氣, 尙有往來, 而溺道不平之候, 今已止歇

    乎? 今日臣等, 與諸醫入診, 詳察症候宜當, 不勝終宵憂煎, 敢此問安, 竝爲仰稟. 答曰, 知道.

    朝來熏熱減歇, 困惱未已, 而腹部飽滿, 膈間不淸利之氣, 比夜有減, 口淡特甚及虛暈之候, 姑

    無益減之勢, 嘈雜之症, 猶未快減, 而腹部以下浮氣, 一向消減, 脚痺餘氣往來, 溺道不平之候, 比昨頗減矣. 勿爲入診.” 『승정원일기』 원본495책/탈초본26책, 숙종 42년 4월 25일.“藥房啓

    曰, 伏未審夜來, 聖候寢睡之節若何? 昨夜困惱熏熱, 腹部飽滿, 膈間不淸利之候有加, 而且有

    呼吸不平之氣, 口淡特甚之候, 不如昨日, 脚痺之候頗緊, 血溺之症又發云. 伏問朝來, 諸症候

    抑有差減之勢乎, 虛暈之氣, 益有所減乎? 腹部以下浮氣, 一向消減乎, 足部外踝紅暈微疼之候, 益復差勝, 而血色小便, 今已止息乎? 諸症候添加如此, 臣等達宵憂灼, 何可勝達? 今日與

    諸醫, 趁早入診, 議定當進之劑宜當, 敢此問安, 竝爲仰稟. 答曰, 知道. 寢睡不寧, 朝來熏熱及腹部飽滿, 膈間不淸利之候未已, 而困惱特甚, 呼吸不平之候減歇, 口淡特甚, 與昨無異, 而

    脚痺之氣往來, 虛暈之氣, 別無加勝, 腹部以下浮氣, 一向消減, 而足部外踝紅暈微疼之氣, 漸益差減, 血溺之症, 姑不更發矣. 湯劑似難進御, 勿爲入診.” 『승정원일기』 본495책/탈초본26

    책, 숙종 42년 5월 13일.

    28) “尙未執症, 臣罪大矣. 惶恐不知所達矣. … 時梯曰, 腹部詳細診察, 而小臣所見, 終未知其爲

    然矣. 聖徵曰, 聖患旣久矣.” 『승정원일기』 원본511책/탈초본27책, 숙종 44년 10월 22일. “上

  • 정재영^이준환^정석희 :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19

    반되곤 하는데 이는 악화 시 황달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복진을 해보

    면 부종과 복수는 명백한 차이를 보이는데 여기서는 복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만성신증후군에 의한 요독증의 가능성을 많이 시사하고 있다. 숙

    종 45년에는 증세가 심해지면서 허리까지 이어진 것이다. 등과 허리 근육은

    일반적으로 쉽게 붇지는 않는데 누르면 자국이 남을 만큼 붇기 시작하는 것이

    다. 이후 혈뇨를 자주 배출하게 된다. 이것은 숙종의 사망 시까지 지속되며 사

    망원인과도 연관되어 있다. 만성신증후군이나 요독증의 증세는 전신에 걸쳐

    서 나타난다. 특히 근육의 이상과 부종에 의한 하지의 무력과 요부의 통증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29) 지금은 이화학적 검사가 잘 발달되어 단백뇨의 측정으

    로 가려내어 투석을 통해서 치료하기 때문에 하지 및 요부의 부종이 심해져서

    통증을 일으키고 보행의 장애를 일으키는 것은 만성적인 신장의 질병의 이행

    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다. 이때 어의들은 초기에는 동의보감적인 사고에 입

    曰, 不時有眩症者頻頻矣. 上仰臥牀上, 諸醫又入, 診察腹部·腰脅部後. 明祐曰, 初診腹部, 則

    腹部脅下, 有堅實之物矣. 更爲詳察, 則左右脅下二行缺上曰, 依爲之. 時梯曰, 人之所見各異,

    或有出人意數字缺則臣不敢知, 而小臣意見, 則上候腹部, 曾無顯然凝結之物矣. 一字缺年待

    罪醫官, 尙未執症, 臣罪大矣. 惶恐不知所達矣. 頤命曰, 不必以支辭蔓語上達矣. 只以醫理論之, 可也. 明祐曰, 小兒門積聚卷, 有之矣. 今診上候, 欲執其症, 則當爲瘀血矣. 火熱積久, 則

    必爲瘀血矣. 連進補劑, 而終無其效, 則必是內有積聚之氣而然也. 必用瀉劑, 然後可以責效

    也. 然, 首醫所見如此, 臣之所見, 安敢到哉? 時梯曰, 腹部詳細診察, 而小臣所見, 終未知其爲

    然矣. 聖徵曰, 聖患旣久矣. 小臣亦無的見, 而大抵腹部, 自外診察則似浮高, 而按摩之際, 若

    有有形之物, 則敢不仰達乎? 上候不無滯氣, 則欲用補陰之劑, 未爲不可二行缺自前腹部左邊

    浮高, 而所謂瘀血一字缺塊, 則終未可曉也. 諸醫皆謂此由於食滯, 而藥未見效, 殊可二字缺

    云, 而眼疾多由於肝腎經之不足, 由於積聚云者, 亦未可知矣. 明祐曰, 旣有積聚, 則肝腎經自

    然漸至沈痼, 眼疾安得不生乎? 小臣則諸醫之議, 終未知其可也.” 『승정원일기』 원본511책/

    탈초본27책, 숙종 44년 10월 22일.

    29) “The “restless leg syndrome” is characterized by ill-defined sensations of sometimes

    debilitating discomfort in the legs and feet relieved by frequent leg movement. If dialysis

    is not instituted soon after onset of sensory abnormalities, motor involvement follows,

    including muscle weakness. Evidence of peripheral neuropathy without another cause

    (e.g., diabetes mellitus) is a firm indication for starting renal replacement therapy.

    Many of the complications described above will resolve with dialysis, although subtle

    nonspecific abnormalities may persist. Successful renal transplantation may reverse

    residual neurologic changes. Featuring the complete contents of 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 17e. Part Twelve: Disorders of the Kidney and Urinary Tract.

    (http://www.accessmedicine.com/)

  • JUNG Jae Young et al. : The Influence of Donguibogam during the Middle Joseon Era

    │ 醫史學20

    각해서 어혈요통(瘀血腰痛), 신허요통(腎虛腰痛), 식적요통(食積腰痛)의 치

    료를 시행했다.30) 하지만 내분비계 기원성의 질환이었던 까닭으로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살펴볼 수 있다. 당시의 의학으로서는

    신부전 등의 질환을 감별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던 점은 분명하지만, 『동의보감』의 의학관에 의거하여 최적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힘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 ‘숙종 45년 1월 20일’의 요통 진료 기록

    저녁에는 입맛이 담(淡)하고, 피곤하고 괴롭고, 복부의 포만감

    이 더욱 심해진다. 다리가 심하게 저린다. 열이 올라와서 가슴이

    시원하지 못한 것은 이전과 같다. 인후가 건조하고 갈증이 심하고

    어지럼증이 생겼다 말았다 하고 가렵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고,

    요안혈이 당기면서 아픈 것은 역시 한가지다. 잠들었을 때 편하지

    못하고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깜깜해 지는 증세도 한가지다. 허

    리 아래가 더 붇지 않는다.31)

    30) “今診上候, 欲執其症, 則當爲瘀血矣. 火熱積久, 則必爲瘀血矣. 連進補劑, 而終無其效, 則

    必是內有積聚之氣而然也. 必用瀉劑, 然後可以責效也. 然, 首醫所見如此, 臣之所見, 安敢到

    哉? 時梯曰, 腹部詳細診察, 而小臣所見, 終未知其爲然矣. 聖徵曰, 聖患旣久矣. 小臣亦無的

    見, 而大抵腹部, 自外診察則似浮高, 而按摩之際, 若有有形之物, 則敢不仰達乎? 上候不無滯

    氣, 則欲用補陰之劑, 未爲不可二行缺自前腹部左邊浮高, 而所謂瘀血一字缺塊, 則終未可曉

    也. 諸醫皆謂此由於食滯, 而藥未見效, 殊可二字缺云, 而眼疾多由於肝腎經之不足, 由於積

    聚云者, 亦未可知矣. 明祐曰, 旣有積聚, 則肝腎經自然漸至沈痼, 眼疾安得不生乎? 小臣則諸

    醫之議, 終未知其可也.” 『승정원일기』 원본511책/탈초본27책, 숙종 44년 10월 22일.“頤命曰, 頃者以議藥事, 下敎嚴截, 臣惶恐欲死矣. 臣全昧醫者之術, 使聖候至於十年彌留, 臣等之

    罪也. 當初議藥時, 非不知大黃之有妨於胃氣, 而旣非常久進御之藥, 不過一時救急之用, 故勉

    循醫官之議, 致勤聖敎之至嚴, 臣等惶隕之忱, 至今未已矣. 上曰, 自前大黃所入之藥, 如滾痰丸之類, 皆不得進御矣. 甲午年浮症猝重, 故大黃所入之藥, 進御取效, 乙未年厚朴湯, 亦入大

    黃, 而幸又得效, 其後則未嘗進御, 蓋以大黃之有害於脾胃也. 卽今口淡特甚, 脾胃積敗之中,

    大黃進御, 極爲憫切, 故勿爲劑入之意分付而已, 少無不安之端矣.” 『승정원일기』 원본513책/

    탈초본27책, 숙종 45년 2월 10일.

    31) “藥房啓曰, 伏未審夜來, 聖候寢睡, 若何? 口淡, 困惱, 腹部飽滿特甚有加, 脚痺特甚, 熏熱, 膈

    間不淸利亦甚及喉乾, 眩氣往來, 搔癢, 溺道不平之候, 其有所減, 而眼視昏暗特甚之候, 亦何如? 腰下微浮之氣, 腰眼穴一帶牽痛之候, 已有減歇之勢乎? 今日臣等與諸醫入診, 詳察症候,

    宜當. 中宮殿咳嗽, 膈滿, 耳疼及食已旋飢之候, 漸益差愈, 自汗之候, 比昨尤減, 而夜來寢睡益

    勝乎? 今日亦令醫女入診, 宜矣. 臣等, 不勝終宵憂煎, 敢此問安, 竝爲仰稟. 答曰, 知道. 口淡,

    困惱, 腹部飽滿特甚有加, 脚痺特甚, 熏熱, 膈間不淸利亦甚之候, 一樣, 而喉乾朝來止歇, 眩

    氣往來, 搔癢, 溺道不平之候, 腰眼穴一帶牽痛之候, 亦無所減, 而寢睡不寧, 眼視昏暗特甚之

  • 정재영^이준환^정석희 :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21

    - ‘숙종 45년 2월 10일’의 요통 진료 기록

    도재조(都提調) 이이명이 말씀 올리기를 요즘 전하의 여러 증상

    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으시고 또한 요안혈(腰眼穴)에 당기는 통증

    이 더욱 심해지시고 몸을 움직이시는 것 역시 어려우시다 들었습

    니다. 신들은 걱정스러워 애가 타는 것이 이루 다 할 수 없습니다.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매우 어렵고 일어나는

    것 역시 힘들다. 진실로 참고 견딜 수 없으며 좌측이 더욱 심한 것

    같다. … 이이명이 말하기를 요즘 들어 잠자리에 드실 때 계속 편안

    하지 않으시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는데 요통(腰痛)으로 인하여 그

    러하신 것이 아닌지요?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잠자리에 들어 불

    편한 것이 오래되었는데 요즘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요안(腰眼)이

    당기고 아프며, 다리는 저리고 아픈 통증이 있는 것이 좌우로 옮겨

    가고 모두 편하지 않은 것이 계속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 임

    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래 전에 넘어져 다친 것이 있는데 혹 그 것

    이 다시 재발한 것은 아니겠는가? 성징이 말하기를 비록 오래전의

    것이나 이미 다친 자리는 처음 다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만약 날씨

    가 음습(陰濕)하면 간간히 다시 재발할 수 있습니다. 중설이 말하

    기를 낙상(落傷)은 때로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처음과 조

    금도 다름이 없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32)

    본 연구에서 대상으로 한 조선중기는 『동의보감』이 제작된 직후의 시기로

    서, 시기적으로 『동의보감』이라는 대표적 종합의서의 깊은 영향력 아래에 있

    었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본 연구의 임상례에 등장하는 9종의 방제 중 강활조

    습탕(羌活燥濕湯)의 1종을 제외한 8종의 처방은 『동의보감』에 기재된 처방이

    며, 처방 운용의 원칙 역시 『동의보감』의 내용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앞

    候, 無減, 腰下微浮之氣, 無加矣.” 『승정원일기』 원본512책/탈초본27책, 숙종 45년 1월 20일.

    32) “都提調李頤命進伏曰, 近來聖候諸症, 一無所減, 而又伏聞腰眼穴牽疼添劇, 轉動亦難云, 臣等不勝焦煎矣. 上曰, 轉動甚難, 起居亦艱, 誠不能堪忍, 而左邊尤甚矣. … 頤命曰, 近來寢睡, 連以不寧爲敎, 未知以腰痛而然乎? 上曰, 寢睡之不寧已久, 而未有甚於近來者也. 腰眼

    牽疼, 脚部麻痺, 左右轉側, 俱不能便, 展轉數覺, 寢不能成睡矣. … 上曰, 年久落傷, 或有復

    發之事耶? 聖徵曰, 雖年久之後, 旣有受傷處, 則若値當初落傷之時, 或日氣陰濕, 則間間復發

    矣. 重卨曰, 落傷或於年久之後, 復發無異矣. …” 『승정원일기』 원본513책/탈초본27책, 숙

    종 45년 2월 10일.

  • JUNG Jae Young et al. : The Influence of Donguibogam during the Middle Joseon Era

    │ 醫史學22

    서 소개한 숙종 45년 당시 여러 의관이 숙종의 요통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진료한 기록을 통해서도 이러한 관점의 유사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당시 기

    록에 따르면 숙종은 요안 부위의 통증과 함께 다리가 저리고 아픈 증상이 있

    으며, 외상의 과거력 외에는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고, 『승정원일기』

    의 기록에 따르면 숙종의 요통 등의 증상을 치료하기 위하여 녹혈(鹿血) 등

    을 가미한 처방을 사용하였으며, 수차례의 뜸치료가 시행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33) 이는 『동의보감』의 십종요통 분류 가운데에 신허요통(腎虛腰痛)의 경

    우에 주로 사용하는 치료법으로 당시 숙종의 요통을 치료하기 위하여 『동의

    보감』의 체계에 의한 의학관을 바탕으로 한 진료가 이루어졌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앞서 설명한 외감요통(外感腰痛)의 치료예 등 역

    시 『동의보감』에서 제시하고 있는 접근 방식과 일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승

    정원일기』의 기록을 통하여 당시 의관들의 임상적 접근 방식이 『동의보감』에

    서 제시되어 있는 임상적 관점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승정원일기』의 기록 이외에도, 『동의보감』과 당시 의학관 사이의 연

    관성은 당시 관의(官醫)의 의학관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의과시험과목을

    살펴보면 가능하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시험과목에 반영된 도서들은 『찬도

    맥』, 『동인경』, 『직지방』, 『득효방』, 『부인대전』, 『창진집』, 『태산집요』, 『구급

    방』, 『화제방』, 『본초』 등이다. 이러한 의학서적들은 조선 중기에 저술된 의서

    인 『동의보감』과 깊은 연관성을 보인다. 우선 『본초』는 『동의보감』의 전반에

    걸쳐 진단과 단방약물사용에 인용되고 있으며, 『직지방』, 『득효방』의 요통 치

    료 처방은 『동의보감』에 역시 인용되어 있으며(許浚, 2000: 738-803), 특히 『

    동의보감』 ‘요통문’에서 『득효방』과 『본초』 또한 『동의보감』의 주 인용서적이

    었다(許浚, 2000: 713-715). 『부인대전』과 『화제방』에 있어서는 『동의보감』의

    요통의 치료와 관련되어 인용된 부분은 없으나, 이외의 다양한 부분에서 인

    용되고 있다.

    33) “…年前得奇疾, 且有飽滿·膈間不淸利諸症, 委頓沈淹, 元氣漸?, 雜試醫藥, 一無其效矣, 有

    一醫言, 鹿血有效…” 『승정원일기』 원본513책/탈초본27책, 숙종 45년 2월 10일.

  • 정재영^이준환^정석희 :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23

    또한, 영조 대에 발간된 『속대전』에 따르면 『동원십서』, 『의학입문』, 『소문』

    등이 의과시험에 추가되었다. 『동원십서』는 금원사대가로 대표되는 이동원의

    저서 3권과 당시의 다른 의가(醫家)들의 7종의 저서로 구성되어 있고 이후 2

    종이 덧붙여진 것으로, 이 중 이동원의 저서는 알려진 바와 같이 비장(脾臟)

    과 위장(胃腸)의 기능을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 삼고 있다. 요통 또한 마찬가

    지로서, 이동원의 개념은 『동의보감』의 ‘십종요통’에서도 중요한 부분으로 인

    용되고 있다. 다음으로 『의학입문』은 소문과 더불어 『동의보감』의 근간이 되

    는 서적이며, 『동의보감』의 십종요통 중에서는 좌섬요통(挫閃腰痛)과 습요통

    (濕腰痛)을 제외하고 8가지 요통 모두에서 입문에 나온 이론 또는 처방을 인

    용하고 있다(許浚, 2000: 705-16).

    이처럼 『경국대전』, 『속대전』에 속하는 의관 시험 관련 도서들은 대부분

    『동의보감』에서 많이 언급되는 도서들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중

    기 이후의 의관들은 당시의 의학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기존의 송원명대(宋

    元明代) 여러 의가의 이론을 바탕으로 이 중에서 관에 맞는 이론을 선택하여

    전체적인 내용을 꿰어가는 동의보감적인 사고로 요통치료에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의 기록과 『경국대전』, 『속대전』에서 명시하고 있는 의과

    관련 도서들을 살펴볼 때 『동의보감』은 조선중기 한국 의학을 집대성한 의서

    였으며, 동시에 당대 의가들 특히 관의(官醫)의 의학적 관점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당시에 요통을 바라보는 의학적 관점은 단순히 송대(宋代)까

    지의 중국의 의학서적 중에서 증상에 따라서 선택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내

    경』의 도가(道家)적인 입장과 후대 의가들의 이론을 취합한 『동의보감』의 관

    점에 따른 치료가 이루어 졌으며, 동시에 번침술과 같이 효과가 있다고 알려

    진 민간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는 등 실학적 관점의 접근이 이루어졌다는 것

    을 확인할 수 있다.

  • JUNG Jae Young et al. : The Influence of Donguibogam during the Middle Joseon Era

    │ 醫史學24

    5. 결론 및 제언

    이상과 같이,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통하여 당시 궁중에서 요통을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하였는지에 관하여 살펴볼 수 있었다.

    정리해 보면, 당시의 의관들은 요통의 치료에 있어서 각 증후의 원인을 파

    악하고 그에 따른 치료를 시행하였으며, 앞서 설명한 십종요통 등의 구분, 내

    상(內傷), 외감(外感)의 구분 등에 따른 치료 기록을 통하여 이러한 점을 확인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당시 인조 이후로 침구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요통

    의 치료에 있어서도 침과 뜸을 이용한 치료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구

    체적인 경혈위치는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요안혈(腰眼穴) 등의 통

    증 주변 부위의 혈자리를 이용하는 근위취혈 방식과 통처에서 먼 위치에 있

    는 경락을 이용한 원위취혈 방식을 통하여 요통을 치료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조에서 숙종 시대는 『동의보감』이 완성된 직후의 시기로서 의

    학적 관점에 있어서도 『동의보감』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치료 접근을 보인다

    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조선중기 인조에서 숙종 시대에 요통이라는 한 가지 질환에 대한

    당시의 의학적 접근 방식을 이해하기 위하여 진행되었다. 기존의 연구들이 대

    부분 실록을 위주로 특정 왕이나 왕실 구성원의 질병 혹은 사인 등에 관한 연

    구가 주를 이루어서 구체적으로 당대의 진료 과정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 따

    라서 이런 점에서, 본 연구를 통하여 당시에 요통이라는 구체적인 질환을 어

    떠한 관점으로 접근하고 치료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선 인조 대 이후의 시대에 한정되었다는 한계점은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인조 대 이후로 살펴본 것은 승정원일기가 남아 있는 부

    분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기 때문이며, 추후 이러한 한계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본

    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질환 그리고 다양한 역사적 기록에 대한 많은 연구를

    통하여 현대 의학의 치료 관점을 발전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정재영^이준환^정석희 :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25

    색인어 : 요통, 승정원일기, 동의보감, 조선중기

    투고일 2011. 5. 10. 심사일 2011. 5. 12. 게재확정일 2011. 6. 10.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요통 진료 기록(연대순)

    기록시기 대상 증상 개요추정되

    는 병인의의

    인조 6년 9월 10일 인조인조에게 요통 증상이 발생하

    여 독활기생탕으로 치료신허요통 십종요통의 기준에 따라 치료

    인조 26년 2월 23일 -

    인조 26년 2월 29일인조

    인조에게 요통 증상이 발생

    하여 단지구, 경락침 이용하

    여 치료

    불명단지구, 경락침 및 기타 침구술

    을 이용하여 요통을 치료한 기록

    인조 26년 4월 12일 인조인조의 요통 치료를 위하여 독

    활기생탕을 처방신허요통 십종요통의 기준에 따라 치료

    효종 4년 4월 22일 -

    효종 4년 4월 25일효종

    효통의 요통 치료를 위하여 사

    물탕을 처방혈허요통

    동의보감 혈병 치료의 주요처방

    를 이용하여 혈허요통을 치료

    효종 9년 2월 22일 -

    효종 9년 2월 23일

    명성

    왕후

    명성왕후의 임신중 요통에 안

    태음을 처방

    임신 중

    요통

    조선 중기 당시 임신 중 발생하는

    요통에 대한 관점을 간접적으로

    확인 할 수 있음

    현종 14년 8월 14일 현종현종의 요통 치료를 위하여 요

    안혈에 뜸을 시행불명

    단지구, 경락침 및 기타 침구술

    을 이용하여 요통을 치료한 기록

    현종 14년 9월 29일 -

    현종 14년 10월 4일현종

    현종의 요통을 외감요통으

    로 보고 관련 처방을 이용하

    여 치료

    외감요통

    십종요통 중 풍한습요통에 속하

    는 외감요통으로 분류하여 치료

    한 예

    현종 15년 8월 7일 현종

    현종의 요통 치료를 위해 외감

    질환 치료 처방인 인삼패독산

    을 처방

    외감요통

    십종요통 중 풍한습요통에 속하

    는 외감요통으로 분류하여 치료

    한 예

    숙종 41년 9월 1일 -

    숙종 41년 9월 4일

    인현

    왕후

    인현왕후의 요통을 노복의 관

    점에서 치료노복증

    동의보감의 노복증 치료 관련 처

    방에 의거하여 요통을 치료

    숙종 42년 2월 6일인현

    왕후

    인현왕후의 요통을 외감요통

    으로 보고 관련 처방을 이용

    하여 치료

    외감요통

    십종요통 중 풍한습요통에 속하

    는 외감요통으로 분류하여 치료

    한 예

    숙종 43년 5월 22일인현

    왕후

    인현왕후의 요통을 노복의 관

    점에서 치료노복증

    동의보감의 노복증 치료 관련 처

    방에 의거하여 요통을 치료

    숙종 45년 1월 20일 숙종숙종의 요통을 신허요통의 관

    점에서 논함신허요통

    십종요통 중 신허요통의 분류에

    따라 요통을 바라봄(추후 치료법

    을 참고)

  • JUNG Jae Young et al. : The Influence of Donguibogam during the Middle Joseon Era

    │ 醫史學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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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영^이준환^정석희 : 「승정원일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중기 요통 치료의 「동의보감」과의 연관성

    제20권 제1호(통권 제38호) 1-28, 2011년 6월 │27

    -Abstract-

    The Influence of Donguibogam (東醫寶鑑)during the Middle Joseon Era Based on Clinical Records on Low Back Pain in

    Seungjeongwon ilgi (承政院日記)

    JUNG Jae Young*34)^LEE Jun-Hwan*^CHUNG Seok Hee*#

    The recently increasing interest in historical records has led to more

    research on historical records in various fields of study. This trend has also

    affected medical research, with the medical climate and popular treatment

    modalities of the past now being revealed based on historical records.

    However, most research on medical history during the Joseon era has been

    based on the most well-known record, Joseon wangjo sillok (朝鮮王朝實錄)

    or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Joseon wangjo sillok is a comprehensive

    and organized record of society during the Joseon era and contains key

    knowledge about medical history during the period, but it lacks details

    on the treatment of common disorders at the time. Seungjeongwon ilgi or

    Diary of the Royal Secretariat has detailed records of daily events and is a

    valuable resource for the daily activities of the era. And in the middle Josoen

    era, a variety of medical books - especially Donguibogam - was published.

    * Department of Oriental Rehabilitation Medicine, College of Oriental Medicine KyungHee

    University

    # Corresponding Author

    Department of Oriental Rehabilitation Medicine, College of Oriental Medicine KyungHee

    University

    1 Hoegi-dong, Dongdaemun-gu, Seoul, Korea, 130-701

    Tel: 82-2-958-9299 / Fax: 82-2-963-4983

    E-mail: [email protected]

  • JUNG Jae Young et al. : The Influence of Donguibogam during the Middle Joseon Era

    │ 醫史學28

    Therefore, the authors focused on the under-researched Seungjeongwon

    ilgi, Donguibogam and attempted to assess and evaluate low back pain

    treatment performed on Joseon royalty.

    The most notable characteristic of low back treatment records within the

    Seungjeongwon ilgi is that diagnosis and treatment was made based on an

    independent Korean medicine, rather than conventional Chinese medicine.

    This paradigm shift is represented in Dongeuibogam, and can be seen in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Dongeuibogam and national medical exams

    of the day. Along with the pragmatism of the middle Joseon era, medical

    treatment also put more focus on pragmatic treatment methods, and

    records show emphasis on acupuncture and moxibustion and other points

    in accord with this. The authors also observed meaning and limitations of

    low back pain treatment during that era through comparison with current

    diagnosis and treatment.

    Key Words : low back pain, Seungjeongwon ilgi, middle joseon era, Donguibog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