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12
쥐잡이 김희진 “ 삶이 온통 고통뿐인데도 계속 살아야 의무가 있을까…… 적어도 우리 인류에겐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죽음…… 이렇게 화사한 봄날에 소리는 아닌 듯한데.창민이 팔을 위로 뻗어 농구를 하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말을 건성으로 듣는 태도였다. 그런 창민이 얄미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4월의 캠퍼스는 신생의 기운이 폭죽처럼 터지고 있었다. 일말의 우울기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 벚꽃이 흐드러진 교정 곳곳이 등불을 밝혀놓은 것처럼 환하고, 한껏 옷을 입고 뽐내는 새내기들의 얼굴이 꽃처럼 화려하다. 인문 관과 도서관을 가로지르는 교각 얼음들이 녹아 졸졸 싱그러운 물소리를 냈다. 어둑신하던 박물관 건물도 새파랗게 물이 오른 담쟁이 잎들로 둘러싸여 한층 생기발랄해 보였다. 바야흐로 교정은 봄의 절정에서 한껏 비명을 지르고 있는 풍경이었다. 그런 교정이 두툼한 야상점퍼를 껴입은 모습을 몹시도 추레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따위 봄날은 가게 마련이야. 아지랑이처럼 덧없이 스러지고 마는 거라구.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처럼 나는 볼멘소리를 했다. “ 덧없이 스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봄날이 소중한 아닐까?창민이 따위는 없다는 옳은 소리를 한다. 나는 뭔가 울컥해져서 그만 입을 다물었다. 바보 같으니! 겉보기와 다른 사물의 이면을 번도 간파해 보려고 하지 않아. 그런 네게 사랑은 뭐니…… 마음속으로 바깥의 풍경과 극명하게 대립되는 스산한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이해받지 못한 외로움이 혼자 감내하는 외로움보다 더욱 마음을 시리게 했다. 서늘한 감촉은 지난 크리스마스 시내에서 느꼈던 기분을 떠오르게 한다. 그날 거리는 온통 화려한 전등으로 명멸하고 있었다. 도로를 점령한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을 구경하러 나온 인파로 인해 차들은 거북이 운행을 했고, 사람들은 어깨를 부딪치며 걸음을 떼야 했다. 불편마저 축제의 융숭함에 녹아든 풍경이었다. 연인 또는 가족들과 함께 오색으로 빛나는 마차나 인형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은 연신 웃었다. 무표정하기로 유명한 한국인들의 얼굴이 그날은 짜기라도 것처럼 모두 함박웃음을 흘렸다.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행복한 표정들이 내겐 너무 잔인해 보였다. 마치 불행에 많은 사람들이 사정없이 비수를 꽂는 느낌으로 나는 휘청댔다. 혼자 감내하는 슬픔보다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이 그렇게 컸던 것이다. 날은 정원 넓은 집에서 쫓겨나 아파트로 이사한 날이었다. 말이 아파트지 지은 삼십 년이 가는 후진 아파트였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아파트라 그나마 전세 값이 헐어 얻은 집이었다. 20평도 되는 좁은 아파트는 벽마다 미세한 금이 있고, 사방무늬 벽지에는 시커먼 얼룩이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풍기는 퀴퀴한 냄새는 늙은이의 시큼한 냄새처럼 고약했다. 노후한 건물은 이제 그만 집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편안하게 소멸하고자 하는 열망에 있었다. 할머니는 아파트로 이사한 그날부터 꼼짝없이 드러누워 버렸다. 어렸을 소아마비를 앓아 발육한 오른쪽 다리가 그만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어린아이 것처럼 유난히 희고 짧은 다리. 넓은 치마폭에 꼭꼭 감추었던 다리가 흐물흐물 녹아 반쯤 바람 빠진 고무풍선 같이 버렸다. 병은 내가 안다. 병원 필요 없어……. 할머니는 아버지가 사업에 망해 빚쟁이에게 쫓기게 것이 당신의 잘못이기라도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지만, 사실 가고 싶대도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정말 우리는 알거지가 것이다. 전셋돈도 엄마가 간신히 친정오빠에게 손을 벌려 마련한 것이었다. 엄마는 시내 식당에 일하러 나가기 시작했고, 오빠는 도망치듯 미루어왔던 입대를 서둘렀다. 그날도 창민은 내면풍경은 아랑곳없이 한껏 들떠 했다. 정말 창민은 내가 속으로 흘리는 비린 피의 냄새를 맡지 못하는가. 창민뿐 아니라 나는 그날 속과는 별개의 세상인 바깥의 화려함에 심한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이해할 없을 만큼 세상이 잔인해

Transcript of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Page 1: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쥐잡이

김희진

“ 삶이 온통 고통뿐인데도 계속 살아야 할 의무가 있을까…… 적어도 우리 인류에겐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죽음…… 이렇게 화사한 봄날에 할 소리는 아닌 듯한데.” 창민이 팔을 위로 뻗어 농구를 하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내 말을 건성으로 듣는

태도였다. 그런 창민이 얄미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4월의 캠퍼스는 신생의 기운이

폭죽처럼 터지고 있었다. 일말의 우울기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흰 벚꽃이 흐드러진 교정

곳곳이 등불을 밝혀놓은 것처럼 환하고, 한껏 새 옷을 입고 뽐내는 새내기들의 얼굴이

꽃처럼 화려하다. 인문 관과 도서관을 가로지르는 교각 밑 얼음들이 녹아 졸졸 싱그러운

물소리를 냈다. 늘 어둑신하던 박물관 건물도 새파랗게 물이 오른 담쟁이 잎들로 둘러싸여

한층 생기발랄해 보였다. 바야흐로 교정은 봄의 절정에서 한껏 비명을 지르고 있는

풍경이었다. 그런 교정이 두툼한 야상점퍼를 껴입은 내 모습을 몹시도 추레하게 만들고

있었다. “ 이 따위 봄날은 가게 마련이야. 아지랑이처럼 덧없이 스러지고 마는 거라구.”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처럼 나는 볼멘소리를 했다. “ 덧없이 스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 봄날이 소중한 게 아닐까?” 창민이 내 속 따위는 알 바 없다는 듯 또 옳은 소리를 한다. 나는 뭔가 울컥해져서 그만

입을 다물었다. 바보 같으니! 넌 겉보기와 다른 사물의 이면을 한 번도 간파해 보려고 하지

않아. 그런 네게 사랑은 뭐니…… 마음속으로 바깥의 풍경과 극명하게 대립되는 스산한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이해받지 못한 외로움이 혼자 감내하는 외로움보다 더욱 마음을

시리게 했다. 그 서늘한 감촉은 지난 크리스마스 시내에서 느꼈던 기분을 떠오르게 한다.

그날 거리는 온통 화려한 색 전등으로 명멸하고 있었다. 도로를 점령한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을 구경하러 나온 인파로 인해 차들은 거북이 운행을 했고, 사람들은 어깨를

부딪치며 걸음을 떼야 했다. 불편마저 축제의 융숭함에 녹아든 풍경이었다. 연인 또는

가족들과 함께 오색으로 빛나는 마차나 인형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은 연신

웃었다. 무표정하기로 유명한 한국인들의 얼굴이 그날은 짜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

함박웃음을 흘렸다.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그 행복한 표정들이 내겐 너무 잔인해 보였다.

마치 내 불행에 그 많은 사람들이 사정없이 비수를 꽂는 느낌으로 나는 휘청댔다. 혼자

감내하는 슬픔보다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이 그렇게 컸던 것이다. 그 날은 정원 넓은 집에서 쫓겨나 아파트로 이사한 날이었다. 말이 아파트지 지은 지

삼십 년이 다 돼 가는 후진 아파트였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아파트라 그나마 전세 값이

헐어 얻은 집이었다. 20평도 안 되는 좁은 아파트는 벽마다 미세한 금이 가 있고, 사방무늬

벽지에는 시커먼 얼룩이 져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풍기는 퀴퀴한 냄새는 늙은이의 시큼한

입 냄새처럼 고약했다. 노후한 건물은 이제 그만 집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편안하게

소멸하고자 하는 열망에 차 있었다. 할머니는 아파트로 이사한 그날부터 꼼짝없이 드러누워 버렸다.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앓아 덜 발육한 오른쪽 다리가 그만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어린아이 것처럼 유난히 희고

짧은 다리. 넓은 치마폭에 꼭꼭 감추었던 그 다리가 흐물흐물 녹아 반쯤 바람 빠진

고무풍선 같이 돼 버렸다. 내 병은 내가 잘 안다. 병원 갈 필요 없어……. 할머니는

아버지가 사업에 망해 빚쟁이에게 쫓기게 된 것이 당신의 잘못이기라도 한 듯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지만, 사실 가고 싶대도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정말 우리는

알거지가 된 것이다. 전셋돈도 엄마가 간신히 친정오빠에게 손을 벌려 마련한 것이었다.

엄마는 시내 식당에 일하러 나가기 시작했고, 오빠는 도망치듯 미루어왔던 입대를 서둘렀다. 그날도 창민은 내 내면풍경은 아랑곳없이 한껏 들떠 했다. 정말 창민은 내가 속으로

흘리는 비린 피의 냄새를 맡지 못하는가. 창민뿐 아니라 나는 그날 내 속과는 별개의

세상인 바깥의 화려함에 심한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이 잔인해

Page 2: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보였다.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조차도. 예수는 병들고 가난하고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땅에 온 것인데, 그날의 예수는 행복한 사람들에게 좀 더

강렬한 행복감을 맛보게 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고 있었다. 오늘의 봄빛 가득한 캠퍼스도 그런 느낌이었다. 언제쯤 다시 나는 이 교정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는 무심한 연인을 바라보듯 나는 교정을 돌아보았다. “ 너, 왜 날 좋아하는 거니?” 교정에서 내려와 슈베르트 창가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불쑥 창민에게 물었다. 눈부신

연두가 창 너머로 빛나고 있었지만, 실내는 바깥의 눈부심을 뭉개려는 듯 장중한 바이올린

곡이 흐르고 있었다. 현을 끊어 버릴 듯 강렬한 사운드가 가슴을 쳤다.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다. 비로소 내면과 주파수가 맞아떨어지는 장소를 발견한 기쁨으로 내

몸은 가늘게 떨렸다. 나는 아직 어려요. 그냥 지나가 주세요. 나는 친구란다. 괴롭히러 온

것이 아니야. 내 팔 안에서 꿈결같이 편히 잠들 수 있단다. 문득 주인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화사한 날 이처럼 음울한 곡을 틀까……. 창민이 아니라, 젊은

나이에 차가운 하숙방에서 죽어간 불운한 음악가를 흠모하는 주인과 마주앉아 있고 싶었다.

아니면, 늘 캄캄한 표정인 기타 강사라도. 슈베르트에만 오면 늘 길을 잘못 찾아든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 되는 창민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 물론 네가 예뻐서지.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잖아. ……근데, 덥지 않아? 너답지 않게

이런 날 무슨 한겨울점퍼?” 창민이 진즉에 말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놓는다. 망망한 우주 속 별들 만큼 멀어지는

창민과의 거리감을 어떻게든 메워볼 양으로 던진 물음이 둘 사이의 거리를 한층 벌여놓는다.

물론 나도 시폰 원피스에 가벼운 울 소재 니트를 세련되게 겹쳐 입고 나오려고 했었다. 그

정도의 감각과 센스가 내게 없을 리 없었다. 근데 그럴 수가 없었다. 봄빛 닮아 하늘거리는

그 옷들은 내 입술을 시퍼렇게 만들고 이를 딱딱 부딪게 할 만큼 추웠다. 지난겨울 몰아친

그 혹독한 추위는 내 안에 무시로 찬바람이 들이닥치는 심연을 파놓아, 나는 할 수 없이

두꺼운 겨울점퍼를 껴입고서야 외출할 수 있었다. 그런 사정을 창민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 감기기운이 있어서 그래. ……네겐 중요한 건 영혼보단 육체지?” 창민이 내 질문이 따분하다는 듯 마시던 카푸치노를 내려놓고 의자 뒤로 기지개를 켰다. “ 루키즘이 팽배한 요즘 같은 시대에 중요한 건 확실히 육체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가 창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내 말 들어봐. 소크라테스가 <파이돈>에서 한 말인데,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있을 때,

자연은 영혼더러 주인이 되어 지배하게 하고, 육체는 노예가 되어 섬기도록 해 놓았대.

영혼은 불멸하고 예지적이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불변한 데 비해, 육체는 인간적이고

사멸하고 비예지적이고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 그건 육체를 억압할 명분을 제공한 말이잖아.” “ 그렇지 않아. 불멸이 사멸보다 중요하진 않잖아. 찰라를 어떻게 영원과 견줄 수 있어?” 내가 좀 열을 올렸나 보다. 창민이 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창에서 들이친

강렬한 햇살을 받아 창민의 얼굴은 작은 점 하나까지 투명하게 비친다. 짙은 눈썹과 약간

꼬리가 처진 눈, 가파른 콧등. 잘 생긴 얼굴이었으나 전체적인 균형에서는 뭔가 약간 멍청해

보인다는 게 흠이다. 물론 객관적인 입장이 아니라 내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다. 의대

본과 2학년인 창민은 유복한 집안에 한 번도 실패를 맛보지 않은, 풍성한 빛을 온전히 받아

한껏 가지를 벌리고 높은 우듬지를 가진, 양지식물 같은 존재다. 자신의 인생이 축복이라는

데 한 치의 의심도 해 본 적이 없는 인간. 나는 역광을 받고 앉아서 자족적인 인간의

얼굴에 팬 멍청함이 영적 공허와 빈곤 때문임을 발견했다. 카인의 징표와는 대조되는 선한

아벨의 표식. “ 그렇지만 영혼이 불멸한다는 걸 어떻게 알아? 그건 다 고리타분한 철학자들 말이잖아.

영혼이냐 육체냐, 가릴 필요가 뭐가 있어? 둘 다 소중한 자신의 일부인 걸.” “ 그렇겠지. 근데 말야, 누군가 육체와 영혼이 심각한 부조화 상태에 놓여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를 밀어내고 배반하고 있다면 말야. 영혼은 이성적이고 고귀한 것을

꿈꾸는데, 육체는 더러운 진창에 빠져 있다면. 영혼이 육체의 소멸을 강렬하게 원한다면……

Page 3: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이때는 어떤 게 더 중요한지 가려야겠지?” “ 네 말은 그러니까, 자살을 해도 되느냐는 거잖아.” 하마터면 커피 잔을 쏟을 뻔했다. 에두른 말을 싫어하는 창민이의 직격탄 같은 화법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말이 내 안에 던진 커다란 충격파 때문이기도 했다. “ 어떤 경우든 자살은 합리화될 수 없어. 타인을 죽이는 것과 자살이 뭐가 달라? 네가

좋아하는 철학자 중에서 난 니체의 사상에 동의하는 사람이야. 생을 긍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에너지란 말이지.” 그렇게 맹목적으로 생을 긍정하던 니체도 결국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어. ‘ 죽어야 할 때

죽어라’ 고 했다구.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둬 버렸다. 갑자기 이런 대화가 부질없어 보였다.

현실은 땅에서 몇 미터쯤 붕 뜬 그런 공허한 말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실제적이고

즉물적이다. 나는 이만 창민과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하며 시계를 보았다. 할머니는 빈집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 비소는 구했어?” “ 비소? 참, 구했어. 약품 실에서 훔쳐온다고 고생 좀 했지. 조심해서 다뤄. 쥐

100마리쯤은 거뜬히 죽일 수 있는 양이니까.” 창민이 두툼한 약 봉지를 가방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손에 쥐었다.

모래와 밀가루 중간쯤 되는 가루의 질감이 얄팍한 종이를 뚫고 전해졌다. 가방대신 점퍼

주머니에다 넣었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자 옛날 여인네들의 가슴팍에 든 단도의 촉감처럼

그것이 내 손을 차갑게 식히는 것 같았다. “ 고작 쥐 한 마리 잡자고 비소를 구해달라고 한

거야? 끈끈이 같은 걸로 잡으면 될 텐데” “ 놈은 생각보다 영리한 놈이야. 끈끈이도 소용이 없더라구. 그리고 설령 그렇게 잡힌대도

발이 붙어서 서서히 죽어가는 꼴을 볼 자신이 없어. 너무 잔혹하잖아.” “ 그럼, 쥐약을 사서 놓으면 되잖아. 나한테 비소를 구해달라고 할 필요도 없이.” “ 난 그 놈을 중독 시키려는 거야. 소량을 음식에다 타서 자신이 죽어 가는지도 모르게

서서히 죽어가게 만들고 싶거든. 비소는 소량을 섭취하면 배설이 안 되고 조금씩 쌓이다가

언젠가는 중독을 일으켜 죽음에 이른대. 게다가 비소는 유사 이래로 우리 인간들이 자살의

방법으로 많이 사용해 온 독극물이고. 나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놈을 죽이고 싶어.” 그렇게 말하며 나는 창민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이 뭔가 기묘하게

느껴졌다.

바스락 바스락…… 뭔가 기분 나쁜 소리가 부드러운 고치 실로 몇 겹 씌어놓은 잠의 한

귀퉁이를 찢는다. 뭐지? 물을 새도 없이 거친 손길이 고치 안으로 불쑥 헤집고 들어온다.

채 변태 과정을 끝내지 못한 의식이 마구 뭉개지고 이지러진다. 아아, 아직은 아닌데,

아직은 하늘로 훨훨 날아오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눈을 뜨니, 창으로 푸르스름한 어둠이 진득하게 배어나온다. 몇 시쯤 되었을까. 모래가 든

듯 버석대는 의식으로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어둠의 밀도가 엷은 걸로

보아서는 새벽이 다 된 듯한데. 그러나 한밤중일지도 모른다. 머리맡을 더듬어 폰으로

시각을 확인하려는 찰라, 또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스락 바스락……. 온몸이 잠시

극도로 긴장한다. 내가 누워있는 바로 위쪽 천장이다. 쳇, 그 새끼야. 죽지 않고 살아 있었어.

입에서 맥 빠지는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며칠간 잠잠했기에 나는 놈이 어딘가에서

죽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쉬운 놈이군. 독 섞인 음식이 깨끗이 비워진 그릇을 보고

나는 실소를 흘렸었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안일한 착각이었다. 놈은 죽지 않았다. 살아있다. 아니, 살아남은

것이다. 어쩜 놈은 그 며칠 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였는지 모른다. 불굴의

정신력으로 그 피비린내 나는 시간을 견뎌내고 이제 더욱더 강해져서 돌아온 것이다. 그건

놈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봐도 안다. 며칠 전까지의 놈은 저처럼 뻔뻔하고 대담한 소리를

내는 놈이 아니었다. 극도로 조심하고, 극도로 조바심을 치며 겨우겨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운신을 하는, 겁 많고 예민한 놈이었다. 그 언젠가 깊은 밤, 오줌이 마려워 부스스 잠결에

화장실을 찾아 변기에 알 엉덩이를 까고 앉았다가 그 놈의 회갈색 모피가 벽의 갈라진 틈

사이로 유연하게 사라지는 걸 목격하지만 않았어도, 나는 놈이 나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Page 4: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공기를 호흡하고, 같은 출처의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그만큼 놈은 용의주도한 면이 있는 놈이었다. 그 밤 이후 내 머리 위쪽에 돋아난, 놈의

동태를 살피는 촉각의 안테나만 아니었던들, 그 한밤중의 조용한 움직임을 나는 꿈에라도

알아챌 수 없었으리라. 그런데 오늘 놈의 발자국 소리에는 조심성이 결여되어 있다. 보태져 있는 건 뭔가 모를

자신감, 도발, 분노……. 혹시 놈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나의 음모를 낱낱이 알고 고통

속에서 복수의 칼을 간 것이 아닐까……. 순간 영화처럼 놈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는 장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한 장면.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뱀파이어가 돼 버린 신부처럼. “ 저 놈의 쥐가 오늘밤은 왜 저렇게 시끄러운지. 며칠 잠잠하더니……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면…….” 잠에서 깬 할머니가 내 쪽을 향해 말하다 멈칫한다. 아마 고양이가 해피를 떠올리게 한

모양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의 앙칼지게 곤두선 몸체를 떠올리는 순간,

유순한 해피의 영상이 딸려 올라왔다. 간혹 낑낑거리는 것 말고는 짖을 줄을 모르던 개였다.

늘 웃고 있는 것 같았던 눈. 개는 꼬리만이 아니라 혓바닥으로도 반가움을 표시한다는 걸

알게 해 준 개였다. 나이든 할머니를 제 새끼마냥 손가락, 발가락 새까지 하나하나 핥아주던

개. 그런 해피를 할머니는 잊었단 말인가. 해피는 어찌 됐어……. 그렇게 물을 법도 했다.

나는 언제라도 할머니의 물음에 대답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잔인하게, 단도직입으로

에돌리지 않을 참이었다. 해피는 죽었어. 저 세상으로 갔다구. 동물보호소에 데리고 갔더니

안락사 주사를 놓을 거라더군. 그렇게 하라고 했어. 해피는 늙고 병들어서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설령 누군가 해피를 원한다고 해도 해피 쪽에서 새 주인을 원하지

않았을 거야. 그렇게 진한 사랑을 짐승이라도 또 할 수 있겠어……. 그러나 할머니는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십 년 이상 애지중지 온갖 사랑을 주며 길러온 짐승에 대한 무관심은

아니었다. 아니, 할머니의 가슴 안에는 해피의 행방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이 마구

소용돌이를 치고 있을 것이었다. 그 돌풍이 더 억세져 토네이도와 같은 무서운 폭풍이 되기

전에……. 나는 일어나 앉았다. “ 할머니, 해피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아?” 할머니의 퀭한 두 눈에서 안광이 빛나기 시작했다. 엷게 쏟아놓은 먹물 같은 어둠 속에서

그 눈빛은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짐승의 눈빛 같다. 섬뜩한 느낌이다. 하긴 어디 그

눈빛만인가. 요사이 할머니의 몸 전체가 섬뜩함을 내뿜고 있는 것을. 할머니의 백발성성한

짧은 머리카락은 철사처럼 제멋대로 뻗쳐있고, 얼굴은 가죽과 뼈만 남은 해골 형상이며,

몸은 졸아질 대로 졸아져 더 이상 졸일 수 없는 북어조림처럼 바짝 말라붙었다. 늘 샤워를

시키는데도 할머니의 몸에서는 오래된 생선이 부패하는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향긋한

비누냄새를 지우고 요와 이불에 옮겨 붙어 그 두툼한 솜을 뚫고 옆자리의 이부자리에까지

범람한다. 그리고 나의 몸까지 함부로 침범하는 것이다. 나는 내 몸에서 그 냄새를 지우기

위해 하루 두 번씩 샤워를 하고 이부자리를 빨아 널고 독한 방향제를 뿌려댔지만, 그

냄새는 인간 본연의 고독처럼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 안다. 다 알고 있다…….” “ 해피가 죽은 걸 알고 있었단 말야?” “ ……그래. 꿈에 자기 먼저 간다고 인사 왔었다. 웃고 있었어. 고맙다고.” “ 웃고 있었다고? 고맙다고 했다고? 그럴 리가 없어. 해피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 아니다. 해피가 원한 거야. 더 살 의미가 없는데 살았으면 행복했겠어. 해피는 행복하게

저 세상으로 간 거다. 그러니, 지희 니도 다 잊어버려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은 다 거짓부렁이다. 늙고 병들면 사는 거 지옥이야.” 창으로 허연 달빛이 새어들어 방을 비춘다. 먹물같이 캄캄하던 방안이 어슴푸레하다.

서녘으로 이울어가던 달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허름한 재개발 아파트를 들여다보고 있다.

할머니는 환한 창 쪽으로 돌아누웠다. 참 달빛도 곱다. 어렸을 적 살던 고향 마실도 참

달빛이 고왔었다……. 할머니는 달과 대화하듯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 참 목숨도 질기다. 이렇게 용을 써도 안 되니…… 이번에 목숨 못 버리면 이십 년을

기다려야 된다 하더라. 내 사주가 그렇다대. 이번을 넘기면 벽에 똥칠해가면서 길고 질기게

Page 5: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명줄이 이어진다고…… 이 몸뚱이가 옷이라면 그만 벗어버리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싶다. 이래 늙고 병든 몸에 갇혀 사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너는 모를 거다. 넌 젊고

건강하니…… 새 몸 받으면 너처럼 건강한 두 다리를 갖고 세상에 오고 싶다.

다리병신으로는 다시는 안 올거구만. 전생에 지은 죄 값이 아직 남았을는지 몰라도…….” “ 자꾸 그런 소리 하지 마. 듣기 싫단 말야. ……건강한 다리로 태어나면 뭘 하고

싶은데?” “ 음악에 맞춰서 춤추는 여자가 되고 싶다. 원래 나는 흥이 많은 여자다. 니가 흥이 많은

것도 나를 닮아서 그렇지. 다리병신만 아니었어도 내가 덩실덩실 춤추면 안 홀릴 남자가

없었을 거구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자태가 고운 여자였다. 정원 넓은 집에 살았을 때의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 예쁜 할머니’ 로 통했다. 사람들은 날 보면 예쁜 할머니

손녀네, 그랬다. 노인의 얼굴이 어쩜 그렇게 보얗고 말개? 어쩜 그렇게 노인답지 않게

깨끗할 수 있냐구! 사람들은 그렇게 묻거나 감탄하고는 했다. 저녁마다 쌀뜨물과 녹차 다린

물로 세수를 해요. 머리는 한 달에 한 번 물을 들이고요. 옷은 손수 박음질을 해서 지은 게

옷장 한 가득이에요. 할머니의 하루는 몸단장으로 시작해서 몸단장으로 끝난답니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가 예쁜 것은 사실 그렇게

애면글면 가꾼 육체 때문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영혼이 예쁜 여자였다. 아니 영혼이

화려하고 요염한 여자였다. 내가 치는 기타 리듬에 맞춰 어깨를 덩실대는 할머니를 한

번이라도 옆에서 본 적이 있다면 모두들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리드미컬한 몸짓은 이사도로 던컨의 영적 춤을 연상시켰다. 그런 춤을 아무나 출 수 있는

건 아니다. 영혼이 섹시한 여자, 제 삶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그런 영혼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춤이다. 할머니는 병신 다리만 아니었으면, 백조가 비상하듯 온몸으로 춤을

추면서 맘껏 세상의 지붕으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 너희 할배는 내가 병신이라고 아무 데도 안 데리고 다닐라했다. 참 우습더라. 내가

병신만 아니면 너희 할배 같은 인물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건데…….” “ 할아버지가 얼굴이 좀 그렇긴 했어.” “ 얼굴도 그렇지만 마음이 못난 남자였지. 조금만 일이 안 되면 내 병신다리 탓을 그렇게

해대고…… 맞기도 참 많이 맞았다. 징글징글한 세월이었구만. 덧정도 없다. 근데 영감 죽고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으니…… 아이고 웬수같은 놈. 무슨 사업을 늙은 에미 저승노잣돈까지

다 날리면서 한단 말이고. 이제 나는 어쩌면 좋으냐. 다리도 폭삭 주저앉았고, 정신까지

맑질 못하고 오락가락하니…….” 할머니를 진료 온 의사는 다리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접어보고 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워낙 약한 다리고 관절염이 있긴 하지만 마비까지 올 이유는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군요. 근래에 정신적으로 심한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하셨죠.

일상에서 벗어난 심한 정신적 충격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적 병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의사는 정신과 상담을 권했다. 선생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치매를

일으킬 수도 있나요? 진료 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서는 의사를 붙잡고 나는 물었었다.

안경 너머 의사의 눈이 흐리멍덩했다. 글쎄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의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2배 높다는 임상 보고가 있긴 합니다. 또 할머니의 경우는

연세도 있으시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해야겠지요. 우울과 불안이 심하면 노쇠한 정신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 건 자명한 이치니까요. 의사는 그렇게 두루뭉술한 말을 하고는

돌아섰다. 층계를 내려가는 의사의 두 어깨에 짙은 피로가 묻어 있었다. 층계를 울리는

의사의 발걸음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복도에 서 있었다. 복도 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인색하게 비쳐 들었다. 환하고 풍성한 온기와 빛은 다른 곳에 다 나눠주고 남은 찌꺼기를

동냥그릇에 던져주듯 하는 햇살이었다. “ 지희야……” 할머니가 나를 향해 돌아누우며 나직하게 불렀다. 구름에 가렸는지 방을 밝히던 교교한

달빛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이미 어둠에 익은 눈은 할머니의 앙상한 얼굴 윤곽을

정확히 그려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눈을 감았다.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천장의

놈도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Page 6: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 응?” “ 자기 전에 내 말 잘 들어라, 지희야. ……이 할미가 밥 달라고 발광할 때는 절대 주면

안 된다. 그건 이 할미가 아니야. 배고픈 짐승이 나를 잡아먹고 미쳐 날뛰는 거지. 내가

정신 잃고 벽에 똥칠해가면서 사는 걸 너도 바라지 않지? ……그러니 니가 좀 도와줘. 니가

도와줘야 된다. 넌 언제나 이 할미 자랑이었지. 너하고 난 사주에 궁합이 잘 맞는다더라.

전생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단다.” 할머니의 말이 잠의 입구까지 따라왔다. 삐걱 문을 열자 새카만 어둠이 까마득한 층계를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그 검은 층계를 하나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 쥐, 잡았어?” 강사가 소파에 거의 몸을 묻다시피 하고 묻는다. 어젯밤의 약 기운을 채 떨치지 못한

눈빛이다. 안 그래도 고양이 눈깔처럼 엷은 눈이 해시시 풀어져 있으니 언뜻 보기만 해도

몽롱하고 나른해진다. 휴식용 홀 탁자 위에는 빈 맥주 캔과 과자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 아뇨, 아직 못 잡았어요.” “ 아직? 쥐덫도 놓고 약도 놓고 별 짓을 다 했다면서, 아직? ……그 놈, 생에 대한 집착이

대단히 질긴 놈이구만, 이 잔인한 삶에 무슨 그리 많은 미련이 있다고.” “ 쌤, 어제 또 약 했어요?” 클립소 주법을 연습하다 말고 유선이 기타를 놓고 소파로 와 앉는다. 먹성 좋은 사춘기

소녀답게 탁자 위 눅눅한 과자를 무의식적으로 집어먹는다. 그러나 동그란 눈에는 강사를

향한 진심어린 근심과 나이답지 않은 질책이 함께 어려 있다. “ 이 개 같은 세상에서 약이라도 해야 살지. 나같이 개뿔도 없는 인간한테 코카인이나

마리화나는 그야말로 약이야. 그것들은 이 무덤 같은 인생에 아주 가느다랗게 비치는 빛

같은 거라구. 그러니깐 너무 나쁘게 생각하진 마. ……유선,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그런

눈빛으로 보지는 말아줘. 그러니까 내가 아주 형편없는 놈이 된 기분이거든. 어제 클럽

죽순이한테 몇 모금 얻어 피운 것뿐이야. 난 그것들에 중독돼서 짧고 굵게 살다 가긴 싫어.

알콜과 니코틴만으로 길고 가늘게 살다 갈 거야.” “ 와, 그 약이란 게 어떤 맛인지 정말 궁금하다. 쌤, 정말 눈앞에서 벌거벗은 여자가 춤을

춰요?” 유선을 따라 연습실에서 나온 민우가 표정을 익살맞게 지으며 묻는다. 안 그래도

여드름자국이 그득한 얼굴인데, 또 서, 너 개의 여드름이 막 활동을 시작하려는 활화산처럼

고름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누른 고름은 손톱으로 날 좀 터뜨려달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 그런 소리 할래? 암튼, 넌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머리에 똥밖에 안 들었으니까 노래를

아무리 잘 불러도 예선 탈락이지. 쌤 저러는 거 다 네 탓이야.” 저번에 민우가 K팝스타 오디션에 나갔다가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신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수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기타강사가 타고난 리듬감에 온몸으로 발성을 하는

법을 천부적으로 터득하고 있다며 특별 보컬 트레이닝까지 해서 내보냈던 민우가 예선

탈락한 사실은, 본인보다 강사에게 더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강사는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화려한 꿈을 제자가 대신 이루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던 것일까. 그

어이없는 해프닝 이후 강사는 부쩍 우울해했다. 하루 한 갑이던 담배가 배로 늘었고, 늘

몸에서는 술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 어쩜 임신 중인지도 몰라.” “ 네? 임신이라뇨……?” 강사가 내 배를 가리키는 듯해서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 거, 쥐 말야. 새끼를 배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단 말이지. 놈이 삶의 의지가 남다른 건,

생존 본능 때문만은 아니라고 봐. 새끼를 낳고 지켜야 한다는 번식과 모성 본능 때문이라는

거지. 그래서 놈은 더 영악하고 악착같게 된 거라구. 어때, 일리 있지?” “ 으으…… 새끼 밴 쥐라니, 징그러워!” “ 그럼 누나, 한시가 급하잖아요. 빨리 잡아 죽여야 돼요. 쥐의 임신기간은 3주라고

Page 7: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했어요.” 유선과 민우가 눈앞에 실제로 쥐새끼가 우글거리는 장면을 목도한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 니네들, 정말 인정사정없는 놈들이구만. 아무리 미물이지만 새끼 밴 짐승을 함부로

죽여선 안 되는 거야.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쥐는 당연히 죽여야 할 유해한 짐승이지만, 좀

더 범위를 넓혀 생명의 차원에서 보면 쥐나 인간이나 생명의 무게는 똑같은 법이야. 살려고

버둥대는 짐승을, 그것도 새끼를 낳아 길러야 하는 엄중하고 신성한 임무를 띤 짐승을

함부로 죽이는 건, 나같이 삶에 아무런 의욕도 없는 인간을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이라고 생각해.” “ 쌤, 그런 궤변이 어딨어요?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한 게 어디 있다고

그런 막말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불쾌한 듯 말을 내뱉었지만, 머릿속으론 강사의 말에 자극된 어떤 장면이 불쑥

떠오르고 있었다. 쌤, 혹시 <블루>라는 영화를 본 적 있나요?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오래된

프랑스 영화를, 그것도 흥행, 재미와는 상관없는 예술성만 기치로 내세운 영화를 강사 같은

서른 초반의 남자가 보았을 것 같지 않았다. 수면 위로 치솟는 고래처럼 느닷없이 떠오른

기억 속 한 장면은, 여주인공이 새끼 품은 쥐를 발견하고 차마 죽이지 못해 조용히 발길을

돌리는 장면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고물고물 어미 품을 파고드는 분홍빛 새끼들이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아이를 연상시킨 것일까. 새끼 잃은 어미의 고통이 같은 고통에

은밀히 접속하여 종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오직 순수한 고통에만 공명하는 순간을 그 장면은

어떤 설명보다 핍진하게 보여주었다. 그 생각에 마음이 닿자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나의 목소리가 좀 생경했나 보다. 순간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의 틈을 비집고

빗소리가 쏴아 파고들었다. 온몸을 던져오는 빗줄기에 창이 덜컹거리며 몸을 뒤틀었다. 정오

무렵부터 내리던 비는 셈여림의 강도 없이 크레셴도로 계속 치닫는 중이다. 채 5시도 되지

않았는데 바깥은 어두컴컴했다. 누군가 허공에다 거대한 이불을 내리덮은 듯 희끄무레한

대기 속에는 밝음과 어둠이 딱 반씩 섞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꽤 수강생이 몰리는

시간대인데 학원은 썰렁하다. 하긴 기타 나부랭이를 배우러 오기에는 때 아닌 집중 호우의

기세가 너무 드셌다. 알 굵은 비는 세찬 바람까지 동반하고 있어 그 기세가 전에 없이

난폭했다. 뉴스에서는 기상 측이 이번 폭풍우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에 대해 빠른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라고 떠들고 있었다. 도로에서는 배수구 물이 흘러넘치고, 세찬 바람의

손길이 뜯어낸 상가 간판이 깨진 채 이리저리 쓸리고 있었다. 그 비를 뚫고서까지 학원에

온 우리 세 사람은 어떤 절실함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일까. “ 이렇게 을씨년스런 날이 난 좋아. 내 마음과 주파수가 딱 맞아떨어지는 날이거든. 이런

날은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우울해도 괜찮다고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는 것 같단

말야.” 강사의 나른한 말이 끝나자마자, 유선이 느닷없이 옐로 서브머린, 옐로 서브머린,

흥얼거렸다. 아, 비틀즈…… 강사는 머리 위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쳐다보았다. 네 명의 락

전사들이 일렬로 서서 도로를 횡단하고 있었다. 꼭 여기가 잠수함 내부 같아요. 유선이

그렇게 말하며 키득거렸다. 정말이야. 창에 붙어 서서 바깥을 보면 물고기 떼가 지느러미를

유연하게 흔들며 지나가고, 여자 머리카락 같은 수초가 하늘하늘 춤을 추며 잠수함의

몸체를 건드릴 것 같았다. “ 근데 언니는 왜 기타를 배워요? 난 언니처럼 대학생이 되면 기타 같은 거 안 쳐도

재밌는 일이 널렸다고 생각했는데. 전요, 지금 공부 때문에 미칠 것 같아서 기타학원 다니는

거걸랑요. 우리 엄마는 내가 아까운 시간 버린다고 난리지만, 이 시간은 내게 숨구멍 같은

거예요. 이 기타마저 없다면 난 진즉에 죽어버렸을지 몰라요. 질식해서요. ……우리

식구들한테 선언했죠. 기타 치는 거 말리면, 작년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은

친구처럼 확 죽어 버리겠다고. 그랬더니, 잔소리가 쏙 들어갔어요. 아빠는 비싼 기타까지 떡

하니 사 바치더라구요. 호호, 기타 배우고 나서 성적도 더 올랐는걸요.” 야무진 유선의 말에 절로 흐뭇한 웃음이 물린다. 어쩜, 저렇게 당돌하도록 영리하고

되바라지도록 용기가 있을까. 언니는 왜 기타를 배워요? 나는 유선처럼 이 시간에 저토록

명징하고 확고한 정의를 내린 적이 있는가. 없다. 그래, 유선이 말대로 내게 이

Page 8: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잠수함에서의 시간은 돌고래가 수면으로 튀어 올라 참은 숨을 뱉듯 하는 시간이었을까.

그냥 나는 대체로 무서웠다. 내게는 마취제나 환각제처럼 이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잠시

잊거나 비틀어주는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그것이 기타였다. 어쩜 기타와 노래는 내게 강사의

코카인이나 마리화나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또는 절름발이에 목발 같은 것. 그러면 목발이 부서져버린 절름발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마취제 없이 수술에

임해야 하는 중환자실의 환자처럼 삶은 그대로 공포가 되지 않을까. 생경한 고통 외에

아무것도 아닌 인생에게 죽음은 때로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 나쁜 년.” 세수를 하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흰자위를 잔뜩 드러내고 날 노려보고 있다. 머리를

말리느라 싸맨 수건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며 나는 놀라 휘청거렸다. 작은방에 누워있어야 할

할머니가 한 살배기처럼 배밀이를 하고 방의 문지방을 넘고 있었다. “ 니년이 날 굶어 죽이려고 작정을 했지. 나쁜 년……. 얼른 밥 갖고 오란 말이야, 이

독사 같아 년아, 어서……” 뱀처럼 온 몸을 뒤틀며 날 향해 기어오는 할머니의 말소리에는 독이 뚝뚝 묻어난다. “ ……아까 안 먹는다고 다 엎어버렸잖아. 밥 없어. 왜 또 이래?” 날 쳐다보는 할머니의 눈빛에 순간 섬광이 번득인다. 뭐라, 밥이 없다고? 할머니는 이를

앙다물며 내게 기어와 맹수의 발톱같이 내 발을 할퀸다. 낯선 쓰라림이 발등을 훑었다. 나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발을 빼내다 어이없이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할머니가 내 발목을

낚아챈 것과 동시에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바닥의 물을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내 머리채를 거머쥐고 잡아당겼다. 머리가죽이 벗겨나갈 만큼 핫핫한 통증이

마른 산에 산불 번지듯 일었다. “ 왜 이래? 왜 또 이러냔 말야…….” 나는 불에 덴 것 같은 통증에서 빠져나오려 몸을 비틀며 버둥거렸다. 그러자 그 앙상한

몸에서 어쩜 그렇듯 억세고 그악스런 힘이 나오는지, 버둥대면 버둥댈수록 손아귀 힘은 더

가열차고 집요해졌다. 할머니는 내가 옴짝달싹 못하게 단단히 머리카락을 틀어쥐었다.

눈물이 쑥 빠질 듯 날카로운 통증이 이리저리 튀는 공처럼 머리뼈 아래 뇌세포까지 건들며

지나갔다. 그 손아귀 힘은 버둥거리는 포획물의 숨통을 그러쥔 맹수의 그것처럼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한 십 여 분이 지났을까, 아니 내게는 영원처럼 긴 시간이 흐른 듯했다. 할머니의

뜨겁게 헐떡이는 숨소리가 감자나 양파 따위를 사라고 외쳐대는 확성기 소리를 넘어

귓구멍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거 놔, 놔란 말야. 위로 손을 뻗어 앙상한 손목을 잡고

흔들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 단단한 아귀힘이 머리카락을 휘감았다. 갑자기 내 입에서

알 수 없는 욕지기가 치받았다. 에잇, 엿 같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고! 토해진 욕설은

토사물처럼 불결하고 처참했다. 울컥 뜨거운 눈물이 치솟았다.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 눈물

속에는 스트레스 물질인 카테콜아민 뿐 아니라 철, 구리, 만간 같은 중금속도 같이 흘러나와.

울고 나면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건 그래서야. 창민이 알량한 의학 지식을 늘어놓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울지 못했다. 과사무실에 휴학서를 제출할 때도 정말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천성적으로 나는 누구 앞에서도 자신을 방기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꿋꿋하고 냉정해야 한다는 자의식이 눈물을 허락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린다는 건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유약함과 비겁, 두려움을 여실히 인정하는

짓이었기에. 나는 아직 풀어져선 안 됐다. 한껏 줄이 풀어져 버려지는 녹슨 기타 꼴이

되어선 안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팽팽하던 줄이 끊어져 버린 것일까.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의 해일이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계속 내 머리카락을 거머쥐고 씩씩거렸다. 어느 순간 머리카락을 옥죄던 손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쉬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눈물로 부연 눈앞으로 늦봄의 햇살 환한 마당이 스쳐갔다. 마당은

온갖 화초들로 어지러웠다. 목련의 커다란 꽃송이가 허벅지게 떨어진 뒤지만 장미와 채송화,

백일홍, 맨드라미가 그 뒤를 이어 요염한 향기를 퍼뜨리며 피어있었다. 기온은 이미

초여름으로 접어들었지만, 우리 마당은 봄이 여름에게 바통을 넘겨주기를 머뭇거리고 있는

Page 9: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듯 했다. 그만큼 봄의 화사함이 우리 마당에만 오래 머물렀다. 할머니는 늘 꽃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자식처럼 쓰다듬었다. 잘 자라줘서 고마워. 해피가 할머니의 손이 가 닿은 꽃을

향해 멍 짖다가 덥석 물어뜯곤 했다.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해피 녀석의 머리를

콩콩 때리곤 했던 내가 누구보다 해피의 마음을 잘 알았었다. 할머니, 꼭 타샤 튜더 같아.

언젠가는 할머니를 꼭 타샤 튜더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데뷔시킬 거야. 할머니는 그럴

때만다 수줍게 날 보며 웃곤 했다. 할머니가 웃으면 해피는 꼬리로 마당의 흙을 쓸고는

했다. 귓구멍이 연못처럼 뻑뻑해졌다. 그 연못 속에 색깔이 알록달록한 열대어를 놓아 기를

만큼 나는 많은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할머니는 똥 무더기를 싸질러놓은 후에야 부스스 정신을 차렸다. 할머니는 자신의

손갈퀴에 껴있는 시커먼 머리카락을 멀건 눈으로 쳐다본다. 하얗게 바래진 눈빛은 텅

비었다. 수치도, 분노도, 자책도, 슬픔도 없는 공허한 눈빛이다. 할머니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나는 욕실로 옮겼다. 수분이 거의 빠져나간 몸이지만 존재의 무게는 쉬 가벼워지지

않는다. 할머니의 옷을 벗기고 푸르스름한 똥이 들러붙은 엉덩이와 항문, 샅에 샤워기를

들이댔다. 물 온도가 맞지 않았는지 할머니가 한 차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가, 괜찮냐?

차가운 물 때문일까, 할머니의 영혼에서 바퀴벌레가 재빠르게 숨듯 어두운 그림자가 걷힌

눈이 묻는다. 그 눈에 엷은 빛이 일렁인다. 나는 갑자기 미칠 듯이 서러워졌다. 어디

갔었어? 어디 갔었냔 말야. 얼마나 무서웠는데…… 찔찔한 물기가 다시 두 눈을 흥건하게

적셨다.

이제 쥐는 자주 출몰한다. 화장실과 보일러실, 베란다, 부엌 벽의 갈라진 틈새에서 몇

번이나 놈의 반질반질 윤이 나는 눈과 마주쳤다. 쥐 오줌 냄새가 엷게 배어나오는 그곳에다

나는 먹음직스런 음식을 수시로 놓아두었다. 과일과 채소를 비롯해 참치나 닭고기, 또는

해바라기씨까지. 놈은 갑자기 화려하고 풍요로워진 음식 앞에 정신을 잃은 듯했다. 환한

낮에도 대담하게 돌아다녔다.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몸이 배포를 한껏 부풀렸는지 모른다.

그 풍요 저변에 어떤 음모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까맣게 모르는 그 어리석음이 갑자기

측은해질 지경이었다. 외출했다 돌아와 보면 그릇들은 깨끗이 비어있었다. 처음엔 비소를

극소량만 섞었으나 이젠 거의 치사량에 가까운 양을 섞었다. 멀지 않았다. 조만간 놈은 온

사지를 떨며 입에 거품을 물고 죽어갈 것이다. 할머니는 요즘 따라 자주 구토를 한다. 오늘 아침에도 잠에서 깨자마자 왈칵 토하는

바람에 옷과 이불을 다 버려 놓았다. 어깨와 팔, 다리가 바위를 달아놓은 듯 저릿하다고도

했다. 몸이 땅으로 꺼질 듯 천근만근이다…… 할머니는 어제 문병 온 친척에게 말했다.

할머니의 사촌뻘 된다는 그 친척은 할머니의 덜 자란 다리를 주무르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 형님, 잡수시고 싶은 것 없소?” “ 저승 문턱 넘으려면 몸이 깃털만큼 가벼워야 된대…… 이승 맛은 볼 만큼 봤으니, 동생

너무 맘 쓰지 마소.” 돌아가는 길에 친척은 내 손을 덥석 잡고 속삭였다. 할머니, 돌아가실 날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애, 친척의 눈빛은 뭔가 묘한 설렘과 들뜸이 묻어 있었다. 축제를 앞둔 자의 기대와

흥분 같은.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일까. 할머니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고 있었다.

정신을 잃고 발광할 시간조차 짧아졌다. 마치 갓난아기가 자고 자고 또 자는 것처럼

할머니도 아슴아슴 깨었다가도 이내 다시 잠속으로 빠져 들곤 했다. 할머니는 자궁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과정을 거꾸로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몸을 줄이고 줄여 한껏 오므리다가,

나중에는 태아만큼 작아져서 다시 산도를 거쳐 자궁 속으로 회귀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머니가 자궁 속으로 안전하게 회귀하도록 도와주는 일밖에 없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닌 할머니에게는 절대 밥을 주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갈 생각도 애당초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면 할머니가 병원 치료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을 두고 나와 엄마를 원망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할머니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이 자궁 속 안착의 꿈을 짓밟는 일임을 확신했다.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열기가 방안에 가득했다. 거칠거칠하고

올이 성긴 마 재질의 이부자리는 할머니의 몸을 감싼 수의 같았다. 햇볕이 쨍한 날과

Page 10: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기습적 호우가 내리는 날이 번갈아 이어졌다. 하늘이 조울증 환자처럼 자지러지게 웃다가

이내 포효하듯 통곡을 쏟아냈다. 대기가 온통 후끈한 단내로 들뜨는 날이면, 할머니도 잠시

제 갈 길을 잊고 풀숲에 앉은 사람처럼 멀쩡하게 일어나 앉는 날이 생겼다. 모를 일이었다.

작고 작아져서 한 톨 씨앗으로 뭉쳐지려는 시도는 할머니 머릿속에서 짓다 만 건물처럼

잊혀진 것일까. 나는 여름에 태어났어. 사자좌는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뜨거운 성정을 갖고

태어난대. 자신이 태어난 날이 든 계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운을 차리겠다고 작심한

사람처럼 할머니는 그 여름 내내 말짱해 있었다. 나는 오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원에 가서 기타치고 노래를 불렀다. 이참에 K팝스타

시즌 투에 도전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강사가 묻길래, 잠시 생각해 보았다. 우승하면 3억을

받을 수 있어. 3억이면 정원 달린 옛집을 되찾을 수 있고, 복학할 수도 있으며, 가족이 한데

모일 수 있게 할 수 있는 금액이다. 무엇보다 할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스물둘이면 마지막 기회야. 강사는 납빛 같은 얼굴로 날 살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태양의 흑점처럼 검은 내 안의 어떤 힘이 그런 열정, 의욕, 야망 같은 것을

지워버렸다. 어쩜 나도 할머니와 함께 자궁으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는지도 몰랐다. 살겠다고

파닥파닥 움직이는 그런 몸짓들이 내겐 다 부질없어 보였다. 창민을 만나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창민은 처음에는 집요하게 전화를 해댔지만 내가

번번이 받지 않자 차츰 뜸해지다가 결국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았다. 창민을 만나면 내가

소중하게 가꾸고 있는 어둠의 흔적들이 그 풍성한 빛 앞에서 초라하게 깨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전화를 하지 않으니 외롭고 슬펐다. 2월까지야. 겨울이 끝나면 널 만나러 갈 거야.

나는 창민에게 적은 편지를 찢어 공중에 날려 버렸다. 종이 파편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다가

땅으로 가라앉았다.

할머니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다. 입술도 옷 색깔과 같은 붉은 색이다.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 빨강, 시그널 레드다. 검은 머리채를 뒤로 넘긴 한 쪽 귀에는 큼직한

장미가 꽂혀있다. 목에 두른 실크 스카프가 바람에 펄럭인다. 칠흑같이 검은 밤이다. 장작불이 타닥타닥 불꽃을 일으키며 타고 있고, 불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불꽃을 따라 정령처럼 일렁인다. 딩딩딩, 사람들이 연주하는

기타소리가 음울한 대기를 뚫고 울린다. 그 소리에 화답하듯 멀리서 늑대 짖는 소리가

우우우 들려온다. 할머니가 갑자기 한 쪽 발로 땅을 차더니 손뼉을 친다. 그것이 신호탄이듯 곧 춤을 추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격렬한 춤사위다. 하늘거리는 드레스 자락이 유연하게 내뻗는 다리에

휘감기고, 허공을 향해 흔들리는 팔위로 막 구름에서 나온 달빛이 산란한다. 숨 막힐 듯

뒤로 젖혀진 고개. 스카프 자락이 둥실 떠올라 연기처럼 아스라하다. 물, 바람, 파도……

세상에 모든 흐르는 것은 춤이야. 이사도라 던컨은 맨발로 춤을 추었어. 긴 스카프 자락에

목이 졸려 기이한 죽음을 맞았지. 젊은 할머니의 춤사위를 바라보며 나는 묘한 절정감을 느낀다. 할머니는 춤으로 말했다.

이제 다 나았다. 다리가 멀쩡해졌어. 부끄러워 긴 치마폭 밑에 꼭꼭 숨겨두었던 불구 다리가

이제 벌거벗은 채 대기의 공기와 교합을 한다. 다리는 쾌락의 끝에서 부르르 몸을 떤다.

은비늘이 툭툭 떨어진다.

새벽에 나는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 일어나 봐. 어깨를 흔드는 손아귀 힘에 무슨

예감을 느꼈던가. 연일 이어지는 야근으로 젖은 솜같이 잠에 취해있던 엄마가 단번에

푸르르 의식의 날을 세웠다. 왜, 무슨 일인데? 엄마가 뭔가를 예견한 사람의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누군가 목을 조르는 듯한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기어 나왔다. 나는 여차하면 엄마의 품으로 쓰러질 태세로 엄마의 안색을 살폈다. 목구멍에

탁 얹혀버린 고통스런 감정들을 대신 쏟아내 줄 말들이 엄마의 입에서 쏟아지기를 나는

기다렸다. 엄마의 품에 쓰러져 그 보드랍고 따스한 체온을 수혈 받아야 할 정도로 내 손과

발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새벽 무렵 몸부림을 치다가 이미 시신이 된 할머니의 몸에

닿은 손과 발이었다. 섬뜩한 그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듯 손과 발은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난 안중에도 없다는 듯 부리나케 잠자리를 걷더니 건넌방으로 가

Page 11: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버렸다. 건넌방에서 돌아온 엄마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대기 시작했다. 전화기 버튼을 꾹꾹

누르는 엄마의 손짓에는 느닷없이 손님이 들이닥친 것 같은 분주함이 묻어있다. 거기

00병원 장례식장이죠? 엄마의 목소리에는 명랑한 활기마저 감돈다. 뭔가 속이 쓰리다.

식도를 타고 역류한 위산이 섞인 침을 나는 꿀꺽 삼켰다. 갑자기 엄마를 향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고작 그뿐이야?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적어도 서로 껴안고 한 방울

눈물이라도 흘려야 되는 것 아니야? 그게 살붙이지, 그게…… 삶이 그렇게 팍팍했어?

죽음마저 허드레 일상과 똑같은 취급을 할 정도로. 그러나 그 소리도 목구멍에 딱 걸리고

만다. 내 목은 어떤 소리도, 감정도 게워 올리지 못한다. 엄마가 친지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는 동안, 나는 건넌방에서 할머니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반듯하게 누운 할머니의 코와 귀에는 흰 솜이 틀어 박혀 있었다. 마치 엄마가

더 이상 할머니에게 숨을 쉬지 말 것을 엄명한 듯했다. 굳이 저렇게 하지 않아도 할머니의

몸에서는 더 이상 흘러나올 수분이라곤 남아있지 않았다. 할머니는 고사된 나무처럼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팔을 잡으면 툭툭 부러질 듯했다. 생기가 빠져나간 몸은

그저 낙엽의 질감과 색깔이란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할머니, 이제 만족해? 만족하냐구?

창 밖에 낙엽이 지고 있었다. 거친 바람의 손길이 마구 나무의 몸통을 흔들어대며 얼마

남지 않은 잎사귀들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높다란 건물에 가려 빛을 제대로 받지 못한

벚나무 한 그루는 벌써 앙상하다. 맞은편의 햇빛 잘 받는 벚나무와는 무척 대조적인

모양새다. 지난봄 가지가 부러질 듯 뻑적지근하게 꽃을 피어올린 맞은편 나무 앞에서

주눅이 든 것처럼 수줍게 볼품없는 꽃을 달고 있던 나무였다. 그 나무가 오늘은 왠지

당당해 보인다. 늙지 않겠다고 발악을 떠는 노인 앞에서, 주름살과 흰 머리카락과 축 처진

살들을 훈장처럼 드러내며 아주 자연스럽게 늙어버린 노인의 모습처럼 오만하다. 가지에

악착같이 붙어있는 ‘ 마지막 잎새’ 는 불굴의 정신력을 나타내는 게 아니야. 오히려 가야

할 때를 모르는 어리석은 정신에 불과한 거지. 잎이 다 떨어져야 나무는 휴면에 들어갈 수

있어. 그래야 이듬해 봄에 다시 잎을 피워 올리지. 가야 할 때를 모르는 자만큼 추한 건

없어. 실내로 흐르는 장중한 바이올린 선율에 실려 나는 나직이 읊조렸다. 비로소 풍경과

음악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 할머니 정말 안 되셨어. 평균 수명이 80이 넘는 시대에, 팔십도 안 되셔서

돌아가시다니. 작년까지만 해도 너무 정정하셨는데 말야. 근데, 어떻게 돌아가신 거야?

암이셨어?” “ 아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중요한 건, 할머니의 원대로 되었다는 거야.” 나는 창민의 입을 손바닥으로 봉하듯 차갑고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더 이상 창민이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창민이 할머니에게 뭉근한 정을

느껴왔다는 걸 알면서, 티 나게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장례식에 참석 못 한 것을

두고도 창민은 날 원망하고 있었다. 창민은 굵게 쌍꺼풀진 눈을 끔뻑거리며 의혹이 깃든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피해 나는 창으로 고개를 돌리고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켰다. 시럽 넣지 않은 차가운 아메리카노는 썼다. 어느 프로 요리가가, 단맛만 맛이

아니라 짠맛, 신맛, 쓴맛도 다 맛인데, 현대인은 너무 달고 고소한 맛만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쓴 커피를 음미하듯 입속에서 굴려보았다. 날것의 인생에서

느껴지는 맛이었다.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알지? 그거였어. 아파트로 이사하고서 부쩍 우울해 하셨어.

그러다 결국, 삶의 의욕을 몽땅 잃어버리셨고. 밥도 드시지 않고 잠도 주무시지 않았어.

결국 그렇게 돌아가신 거야. 그걸 내가 옆에서 지켜보았고.” “ ……” 창민이 아무 말이 없었으므로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알바 뛰러 가기 전에 기타 튜닝

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며칠 전부터 기타 강사 친구가 경영하는 생맥주집에서 통기타

라이브 알바를 뛰고 있었다. 작정하고 덤벼든 일은 아니었다. 우연히 무대 위에서 노래를

했던 게 계기였다. 그 날은 토요일이어서 유난히 손님이 많았는데, 내 노래에 손님들은

Page 12: “인간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pdf/runner26.pdf ·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앵콜을 외치며 즐거워했다. 나중에 기타 강사에게 들은 얘기지만, 사장이 개업한 이래

그처럼 분위기가 좋았던 날은 없었단다. 그날 사장은 나를 불러 정식으로 돈을 줄 테니

제대로 계약하자고 해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을 벌게 되었다. 그것도 그저 좋아서

불렀던 노래로. 아무튼, 몇 달만 그렇게 알바를 뛰면 내년에 복학할 등록금은 마련하고도

남을 듯 했다. 태양의 흑점처럼 검었던 내 마음에도 어느새 조금씩 어슴푸레한 빛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거리로 나왔을 때, 낙엽을 쓸던 바람이 나와 창민의 머리카락을 마구 흩트렸다. 외투를

단단히 여민 학생들이 횡단보도 붉은 신호등에 걸려 있었다. 그들 얼굴에는 낮은 취업률의

바늘구멍을 뚫을 번민들로 그득했다. 그들과 함께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며 서 있는데,

창민이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 쥐는 잡았어?” 나를 보면 누군가 늘 묻곤 하는 질문이었다. “ 쥐……?” “ 쥐를 잡는다고 비소를 구해 달랬잖아.” “ 아아, 그랬었지. ……쥐는 처음부터 없었어.” “ 뭐? ……그럼, 내가 준 비소는 어떻게 했는데?” 창민이 걸음을 문득 멈추고 물어 보았다. 나도 걸음을 멈추고 창민을 쳐다보았다. “ 걱정 마. 비소는 잘 숨겨 두었어. 아무도 찾지 못하게. 나조차도 모르게 잘 숨겨

두었다구.”

무대에 오르기 십 분 전이었다. 무대 뒤에 마련된 골방에서 나는 초조하게 기타 줄을

맞추는 중이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여섯 개의 줄이 제 마음대로 소리를 냈다. 튜너기를

놓고 튜닝을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위 다섯줄은 어떻게 맞추었으나 1번 줄이 문제였다.

아무리 줄을 감아도 튜너기 막대가 중심에 오지 않았다. 결국 줄은 맥없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오늘 같은 날은 무대에 오르고 싶지 않았지만, 정식으로 계약한 처지라 그럴 수도

없었다. 줄을 다시 끼우는데 아까 창민이 한 말이 불쑥 떠올랐다. 할머니가 바란 건 죽음이

아니었을 거야. 사람은 누구나 그런 걸 바라지 않아. 사람들은 누구나 삶을 원해. 위로나

보살핌, 사랑 같은 걸 말야……. 늘 멍청해 보이던 창민이 아니었다. 새로운 창민이었다.

이름처럼 창과 같은 명민함을 지닌. 그렇다면 창민의 본질은 내가 아는 그 창민이 아니란

말인가. 갑자기 튜닝 되지 않은 기타 소리처럼 내 안에서 엄청난 불협화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알음알이들이 온통 뒤바뀌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뭉크의 <절규>에서처럼 나는 갑자기 내 대기를 흔드는 붉은 비명을 듣지

않기 위해 귀를 틀어막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