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개 판결문 CAR로 분석 정보공개 청구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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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 2008.11 신문과방송 기사개요 본보는 2008년 8월 27일자부터 4일간 ‘벌금 90만 원의 비밀’이라는 제목 아래 4회 분량의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매회 기사의 부제는 ①뒤집기 판결 뒤엔 전관 변호사 있었다 ②황당한 ‘봐주기’ 감형, 그때그 때 달라요 ③판·검사 앞에서 맥 못추는 정치자금법 ④정치선진화 가로막는 판결 관행을 깨라 등이다. 취재대상은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가 되거나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들이었다. 특히 1심에서는 벌 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는 벌금 100만원 미만으로 형이 낮아진 사건들을 집중 분석했다. 그 결과 재판장과 변호인이 특수관계이 거나 변호인이 전관인 경우가 상당수 발견됐다. 정 치생명을 걸고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은 ‘힘있는’ 전 관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비싼 수임료를 마다하 송세영 국민일보 사회부 법조팀 기자 지 않았고, 수요가 몰리면서 이들 변호사의 수임료 는 최고 10억원에 육박했다. 항소심 판결문을 분석 한 결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형을 깎아준 사건들 도 다수 발견됐다. 심지어 1심에서는 엄벌 사유였던 부분이 2심에서는 감경 사유로 바뀐 경우도 있었다. 정치인 관련 사건에 대한 검찰의 항소 기준이 투명 하지 못하다는 사실도 포착됐다. 이를 바탕으로 제 도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 로 대안을 제시했다. 취재발단 이재용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지난 3월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는 ‘특별 한 이유 없이’ 형량이 벌금 80만원으로 줄었다. 정치 자금법 위반의 경우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 국민일보 ‘벌금 90만원의 비밀-정치인 재판결과 대해부’ 216회 이달의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수상작 400개 판결문 CAR로 분석 정보공개 청구해 관계 파악 좋은기사 사례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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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6 0 2 0 0 8 . 1 1 신 문 과 방 송

� 기사개요

본보는 2008년 8월 27일자부터 4일간 ‘벌금 90만

원의 비밀’이라는 제목 아래 4회 분량의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매회 기사의 부제는 ①뒤집기 판결 뒤엔

전관 변호사 있었다 ②황당한 ‘봐주기’ 감형, 그때그

때 달라요 ③판·검사 앞에서 맥 못추는 정치자금법

④정치선진화 가로막는 판결 관행을 깨라 등이다.

취재대상은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가 되거나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들이었다. 특히 1심에서는 벌

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는

벌금 100만원 미만으로 형이 낮아진 사건들을 집중

분석했다. 그 결과 재판장과 변호인이 특수관계이

거나 변호인이 전관인 경우가 상당수 발견됐다. 정

치생명을 걸고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은 ‘힘있는’ 전

관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비싼 수임료를 마다하

송세영 국민일보 사회부 법조팀 기자

지 않았고, 수요가 몰리면서 이들 변호사의 수임료

는 최고 10억원에 육박했다. 항소심 판결문을 분석

한 결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형을 깎아준 사건들

도 다수 발견됐다. 심지어 1심에서는 엄벌 사유였던

부분이 2심에서는 감경 사유로 바뀐 경우도 있었다.

정치인 관련 사건에 대한 검찰의 항소 기준이 투명

하지 못하다는 사실도 포착됐다. 이를 바탕으로 제

도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

로 대안을 제시했다.

� 취재발단

이재용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지난 3월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는 ‘특별

한 이유 없이’ 형량이 벌금 80만원으로 줄었다. 정치

자금법 위반의 경우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

국민일보 ‘벌금 90만원의 비밀-정치인 재판결과 대해부’

216회 이달의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수상작

400개 판결문 CAR로 분석정보공개 청구해 관계 파악

좋은기사 사례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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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면 피선거권이 박탈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파격

적인 감형이었다.

이 전 이사장의 80만원 벌금형은 그대로 확정됐

고, 그는 곧 18대 총선에 출마했다. 법조계에서는

항소심 변호사가 전관이라는 점 등을 들어 ‘전관예

우’라거나, ‘면죄부 판결’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무죄를 다투지 않는 한 양형에서는 항소심 판결

이 최종심이다. 양형이 부당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대법원에 상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심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아 정치생

명이 위태로워진 정치인들은 항소심에서 벌금을

100만원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

리지 않는다. 17대 대선과 18대 총선 이후 선거사범

들이 속속 검찰에 기소되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정

치인들에게 얼마나 엄격하고 공정하게 판결하고 있

는지 실체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 취재기간, 투여인력

지난 5월말부터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

의 판결문에 대한 분석을 시작으로 취재에 들어갔

고, 보도의 시의성을 감안해 18대 총선 사범에 대한

공소시효 만료 전에 기사를 게재키로 결정하고 8월

중순쯤 취재를 완료했다. 법조팀원 5명 전원이 판결

문 분석 및 재판부 입장, 변호사업계 관행, 검찰의 항

소 기준, 주요 피고인 인터뷰 등 분야를 나눠 취재했

다.

� 자료확보 방법

취재의 기초가 된 판결문 입수는 다양한 경로로 이

뤄졌지만 취재원 보호를 위해 자세하게 공개하긴 어

렵다. 본보의 기획 취지에 공감한 법조인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만 밝혀둔다. 선거법 위반 판결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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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1심에서는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

에서는 당선유지형으로 바뀌며 기사회생한 사건들

을 1차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전국에서 선거법 위

반혐의로 재판을 받아 1심의 당선무효형이 항소심

에서 당선유지형으로 뒤바뀐 판결문을 200개 가량

입수했고, 그 중 사실 오인이나 법리 오해 없이 ‘양형

부당’을 이유로 벌금 액수가 깎인 65명에 대한 130

개 판결문을 최종 분석 대상으로 확정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판결은 전수에 가까운 조사를

했다. 2005년 8월 정치자금법이 전면 개정된 이후 정

치자금법 위반 판결에 대한 전면 분석이 한 번도 이

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심 판결부터 상고심까지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해왔는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는 문제의식을 갖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만 재

판을 받은 165명에 대한 1〜3심 판결문 270개를 입

수해 분석했다.

400개의 판결문들은 컴퓨터 활용보도 기법

(CAR)을 활용해 분석했다. MS 엑셀 프로그램에 피

고인들의 인적사항과 사건 내용, 심급별 양형 판단

내용, 심급별 변호사, 재판장 등을 일일이 입력했다.

정보공개 청구도 적극 활용했다. 전관 변호사와 재

판장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정보공개 청구를 통

해 문제의 판결 당시 각급 법원의 법관사무분담표

를 입수한 뒤 비교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각 사건 피고인들을 접촉해 생생

한 이야기를 들었고, 변호사업계 관계자들을 통해

변호사 선임 및 선임료 지급 관행에 대해 취재했다.

비판 대상이 된 법원과 검찰의 의견 수렴도 빠뜨리

지 않았다.

� 파급효과, 결과, 보람

이번 보도를 통해 법원이 정치인들에 대해 더욱 엄정

하게 판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한다.

또 형사 재판에서 납득할 수 없는 양형사유, 전관예

우 의혹, 면죄부성 판결, 향판의 폐해 등 사법 불신

을 초래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분석해 사법부에 자성

의 기회를 갖게 했다고 본다. 비판에 그치지 않고 전

이번 보도를 통해 법원이 정치인들에 대해 더욱 엄정하게

판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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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가들 의견을 들어 대안을 제시했고, 법원으로부

터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이끌어낸

것도 성과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본보 보도 이후 선거범죄에

대해서도 양형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

다고 밝혔다. 선거범죄는 내년 4월부터 적용되는 1

차 양형기준 대상 범죄에서 빠졌고, 본보는 이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서울고법은 본보 보도 이후인 9월

1일 비공개 토론회를 열고 선거사범 양형문제에 대

해 토론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토론

과정에서는 본보 보도가 수차례 언급되며 선거사범

양형의 공정성 등에 대한 열띤 논의가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은 18대 총선 사범을 재판할 때

는 토론 결과 등을 반영해 공정하고 엄격하게 판결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본보 보도에 대해 법관들은 대부분 “사법부의 일

원으로서 아픈 지적이지만 자성의 계기가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법원이나 법관, 변호사, 정치인 등으

로부터 이의제기는 한 건도 없었다.

� 취재 어려움

지금까지 사법부를 비판하는 보도는 단발로 그치

는 경우가 많았다. 사법부는 사회갈등의 최종 중재

자, 범법행위에 대한 최종 심판자라는 점에서 어느

기관보다 엄격한 잣대로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하지만 취재의 장벽이 매우 높다. 피고인들의 증언

등 구체적인 사례 취재가 쉽지 않고, 정교한 사법 체

계의 허점을 분석하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

하다. 법조팀 기자들은 매일 쏟아지는 검찰 수사 속

보와 민사 및 행정 소송사건, 법원 판결문들을 취재

하느라 긴 호흡이 필요한 심층 취재를 시도하기 어

렵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가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최후보루이자 사회정의의 최후 관문인 사법부

가 바로 서야 국가와 사회도 바로 설 수 있다는 믿

음을 갖고 취재를 완료했다.

� 후속보도

MBC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는

주요 기사로 소개돼 “전관예우는 있다는 것을 실증

한 보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본보 1, 2회 보도는 네

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 주요 기사로 게재

돼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며 네티즌들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본보 보도 직후 법원이 지원장 출신 변호사에 대

한 구인장을 4차례 재발부하고도 구속영장을 기각

한 사건까지 발생, 전관예우 문제는 국회 법제사법

위원회 회의에서도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국민일보 법조팀은 앞으로 선거법 위반 및 정치

자금법 위반 사범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는

지 지켜볼 것이다. 납득하기 힘든 판결이 되풀이될

경우 후속보도를 통해 또다시 문제를 제기할 계획

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보도 이후 선거범죄에 대해서도 양형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선거범

죄는 내년 4월부터 적용되는 1차 양형기준 대상 범죄에서 빠졌고, 본보는 이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서울고법은

본보 보도 이후인 9월 1일 비공개 토론회를 열고 선거사범 양형문제에 대해 토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