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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일랜드」를 보면서 정보와 신체에 관해 생각한다고? INTERESTING LMO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감독으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는 2005년 영화 「아일랜드」를 촬영 합니다. 장기 이식을 위해 클론을 만들었는데, 이 클론이 탈출했더라 하는 이야기를 감독 특유 의 장대한 시각적 효과와 액션으로 연출했지요. 영화 속 세상은 2019년입니다. 어느덧 2019년 상반기도 지나가고 있는 지금, 2005년에 상상 한 2019년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영화 평론으로 처음 퓰리처상을 받은 평론가 로 저 이버트는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 며 좋은 평점을 주었지요. “앞 절반은 여유가 있 고 으스스한 공상과학 우화로 출발, 첨단 기술 액션으로 전환한다. 앞뒤 절반은 각각 역할을 한다. 둘이 합이 맞는지를 묻는 것은 좋은 질문 이다.” 이런 평이 적 절한지는 잘 모르겠 습니다. 영화는 액션 으로 이어지기 위해 우연을 남발하거든요. 어쨌든 시각적 쾌락(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을 보는 것을 포함하여)을 전달하는 데 능숙한 영화는 외국에 선 그리 성공하지 못했지만, 국내에선 관객 수 300만을 넘기며 흥행했습니다.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영화에 등장한 기 술과 법, 윤리가 교착하고 있는 지점입니다. 영 화에 등장한 기술에서 발생한 문제점, 이를테 면 장기 이식을 위해 인간을 복제했는데 인간 이 어느 정도 생활을 하지 않으면 이식이 실패 한다든가 복제 인간에게 원본 인간의 기억이 있다든가 하는 점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현되지 않은 기술이니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요. 여기에선 크 게 두 가지, 신체 감시 기술과 인간 복제 기술에 관해 살펴보려 해요. 전자는 영화 초반에 잠깐 등장하고, 도망가는 두 주인공의 위치가 발각 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후자는 영화 전체의 중요 소재지요. 감시 기술과 복제 기술 모두 이 미 현실화 가능한 기술입니다. 하지만 복잡한 법적,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기에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거나, 아직 인간을 대상으로 허용 되지는 않고 있지요. 영화에서 해당 기술이 등 장하는 장면을 살피고, 이 기술이 가져오는 문 제는 무엇인지, 어떤 점을 생각해봐야 하는지 생각해 보려 합니다. 신체 감시 「아일랜드」는 링컨 6-에코(이완 맥그리거 분) 가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 합니다. 링컨이 잠을 설치자 벽에 설치된 관리 시스템이 안내 메시지를 내보내지요. “수면 장 애 감지.” 시스템은 링컨에게 ‘안정 센터’(영화 에서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으나, 맥락으로 판 단하건대 심리 상담 센터와 비슷한 역할을 수 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에 가라고 하지요. 자 기는 괜찮다고 재차 되뇌는 링컨에게 시스템은 덜컥 예약을 잡아줍니다. 그는 오전 8시까지 웰 니스(wellness)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화장실에 간 링컨이 소변을 보자 시스템은 소 듐(sodium)이 과잉 검출되었음을 보고합니다. 이어 시스템은 ‘영양 조절’을 권하지요. 아마 링 컨의 식습관이 그렇게 건강하진 않은 모양입니 다. 잠옷을 배출구에 벗어던진 링컨은 자동 배 급되는 생활복이 담긴 일련의 트레이 앞에 서 는데, 한 짝만 있는 신발이 눈에 들어옵니다. 벽 에 설치된 카메라를 보고 그는 신발이 하나 없 다고 불평하는데, 다음 화면은 수백 개로 분할 된 CCTV 화면의 조그마한 화상에 비치는 링컨 의 모습을 확대해 보여주지요. 그는 시설에서 관리되고 있는 수백 명의 수용자 중 한 사람인 김준혁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연구센터 영화 「아일랜드」를 보면서 정보와 신체에 관해 생각한다고? #1. 101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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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일랜드」를보면서정보와신체에관해생각한다고?INTERESTING LMO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감독으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는 2005년 영화 「아일랜드」를 촬영

합니다. 장기 이식을 위해 클론을 만들었는데,

이 클론이 탈출했더라 하는 이야기를 감독 특유

의 장대한 시각적 효과와 액션으로 연출했지요.

영화 속 세상은 2019년입니다. 어느덧 2019년

상반기도 지나가고 있는 지금, 2005년에 상상

한 2019년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영화 평론으로 처음 퓰리처상을 받은 평론가 로

저 이버트는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

며 좋은 평점을 주었지요. “앞 절반은 여유가 있

고 으스스한 공상과학 우화로 출발, 첨단 기술

액션으로 전환한다. 앞뒤 절반은 각각 역할을

한다. 둘이 합이 맞는지를 묻는 것은 좋은 질문

이다.” 이런 평이 적

절한지는 잘 모르겠

습니다. 영화는 액션

으로 이어지기 위해

우연을 남발하거든요. 어쨌든 시각적 쾌락(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을 보는 것을

포함하여)을 전달하는 데 능숙한 영화는 외국에

선 그리 성공하지 못했지만, 국내에선 관객 수

300만을 넘기며 흥행했습니다.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영화에 등장한 기

술과 법, 윤리가 교착하고 있는 지점입니다. 영

화에 등장한 기술에서 발생한 문제점, 이를테

면 장기 이식을 위해 인간을 복제했는데 인간

이 어느 정도 생활을 하지 않으면 이식이 실패

한다든가 복제 인간에게 원본 인간의 기억이

있다든가 하는 점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현되지 않은 기술이니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요. 여기에선 크

게 두 가지, 신체 감시 기술과 인간 복제 기술에

관해 살펴보려 해요. 전자는 영화 초반에 잠깐

등장하고, 도망가는 두 주인공의 위치가 발각

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후자는 영화 전체의

중요 소재지요. 감시 기술과 복제 기술 모두 이

미 현실화 가능한 기술입니다. 하지만 복잡한

법적,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기에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거나, 아직 인간을 대상으로 허용

되지는 않고 있지요. 영화에서 해당 기술이 등

장하는 장면을 살피고, 이 기술이 가져오는 문

제는 무엇인지, 어떤 점을 생각해봐야 하는지

생각해 보려 합니다.

신체감시

「아일랜드」는 링컨 6-에코(이완 맥그리거 분)

가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

합니다. 링컨이 잠을 설치자 벽에 설치된 관리

시스템이 안내 메시지를 내보내지요. “수면 장

애 감지.” 시스템은 링컨에게 ‘안정 센터’(영화

에서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으나, 맥락으로 판

단하건대 심리 상담 센터와 비슷한 역할을 수

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에 가라고 하지요. 자

기는 괜찮다고 재차 되뇌는 링컨에게 시스템은

덜컥 예약을 잡아줍니다. 그는 오전 8시까지 웰

니스(wellness)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화장실에 간 링컨이 소변을 보자 시스템은 소

듐(sodium)이 과잉 검출되었음을 보고합니다.

이어 시스템은 ‘영양 조절’을 권하지요. 아마 링

컨의 식습관이 그렇게 건강하진 않은 모양입니

다. 잠옷을 배출구에 벗어던진 링컨은 자동 배

급되는 생활복이 담긴 일련의 트레이 앞에 서

는데, 한 짝만 있는 신발이 눈에 들어옵니다. 벽

에 설치된 카메라를 보고 그는 신발이 하나 없

다고 불평하는데, 다음 화면은 수백 개로 분할

된 CCTV 화면의 조그마한 화상에 비치는 링컨

의 모습을 확대해 보여주지요. 그는 시설에서

관리되고 있는 수백 명의 수용자 중 한 사람인

김준혁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연구센터

영화「아일랜드」를보면서정보와신체에관해생각한다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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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 100 101vol.20)/NO1... · 2019-09-02 · 100 101. 제를 생각해 보고 있어요. 과연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감시 사회가 실현되고 ... 지원, 정보

제를 생각해 보고 있어요. 과연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감시 사회가 실현되고 있다

면,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누구일까? 오웰은 국

가의 강제적인 통제가 감시를 관철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

나, 우리 사회에서 감

시를 실현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커

뮤니케이션이 과도해지고 시민 스스로가 자신

을 전시하는 욕구에 몸을 내어 맡기면서, 우리

는 굳이 국가나 기업이 강제하지 않아도 감시

사회의 건설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병

철은 노출증과 관음증이 감시의 도구인 인터넷

을 살찌우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사적인 것,

숨겨놓아야 할 것 같은 것은 없고 모든 것을 다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는 ‘좋아요’ 버튼 위에서

내놓아야만 할 것 같은 욕망으로 변하고, 사회

의 감시는 점점 더 심해진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신체 감시 기술은 그저 내 건강을 챙

겨주는 선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내

수면 패턴과 소변 성분을 검사하는 기계가 있

다면 건강 염려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

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말이

죠. 하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 몸을 전시하는 하

나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 와중에, 앞서 말

씀드린 동의와 정치의 문제는 뒤편으로 자신

을 조용히 감추고, 남아 있는 것은 ‘피트니스

모양입니다.

링컨이 장기 이식을 위한 복제 인간이라는 것

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에게(14년 전 영화이니

이 정도 스포일러는 용서해 주시길 부탁드립

니다) 이 광경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복제 인간이니 신체 상태는 최상으로 유지하

는 게 좋겠죠. 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어디를 다

쳤다든지, 생활 습관이 나빠 장기가 약해졌다

든지 하면 이식을 기다리는 대상자에게 엄청난

불평을 들어야 할 테니까요. 시설은 최선을 다

해 수용자의 건강을 유지하려고 할 겁니다. 이

런 상황에서 신체 감시 시스템은 큰 효과를 발

휘하겠지요. 수면 패턴을 확인한다든지, 소변

성분이나 타액 성분을 검사하는 일은 혹시라도

수용자의 신체에 문제가 생기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생활 침해가 아니냐고

요? 에이, 복제 인간인걸요.

이들 ‘법 밖’에 위치한 복제 인간의 지위에 대해

서는 훨씬 복잡한 고려가 필요하겠지만, 이들

이 인간이라고 할 때(클론을 제외한 등장인물

들은 이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고 합니다만) 당

연히 이런 검사와 감시는 사생활 침해입니다.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

상에게 검사 또는 감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해 동의를 받았는

가 하는 문제가 첫째일 것이고, 감시 자체가 지

(fitness)’의 막연한 환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

각이 들어요. 과연, 우리 몸을 1분 1초마다 확

인해야만 우리는 건강할 수 있는 걸까요? 그렇

다 한들, 그 정보를 넘겨주는 대가는 너무 크지

않을까요?

복제인간

영화에 등장하는 시설은 복제 인간을 위한 것

입니다. 이 시설은 부호들의 요청을 받아 그들

을 복제한 뒤, 복제 인간을 원주인이 필요로 하

기 전까지 생활하면서 지내도록 설계되어 있습

니다. 시설에 처음 들어온 복제 인간에겐 지금

시설 밖 지구는 심하게 오염이 되어 있는 상태

로, 그곳에서 겨우 당신을 구해 왔다고 거짓말

을 하지요. 이들은 여기에서 주로 건강을 관리

하고,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면서 지냅니다. 하

루에 한 번 있는 복권 당첨을 모두가 기다리는

데, 여기에서 뽑히는 사람은 ‘아일랜드’, 오염이

아직 닿지 않은 비원의 섬에서 살 기회가 주어

진다고 하지요. 사실 주인에게 이식될 차례가

되어, 수술대로 올라가는 운명이지만 말이죠.

이들이 활용되는 방식은 주로 장기 기증이지

만, 대리모로도 활용이 됩니다. 외부에는 이 복

제 인간은 식물인간 상태로 유지되고 있기 때

문에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법적 문제가 없다

고 공표하고 있는 상태지요. 그 근거가 되는 것

이 2015년에 통과된 우생학 법이라고 말합니

다(우생학이란 종, 특히 인간 종을 개선하기 위

해 우월한 개체끼리 짝을 짓게 하고 열등한 개

체는 불임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말합니다). 하

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이들은 식물인간 상태가

아니라, 깨어나 생활을 하고 있지요. 왜 그럴까

요? 메릭 박사(션 빈 분)는 복제 인간이 어느 정

도 의식을 갖추고 생활을 하지 않으면 장기 이

식이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오랜 시행착오 끝

에 이 사실을 발견했고, 따라서 이 시설을 유지

니는 정치 철학적 문제가 둘째일 겁니다. 이런

기술은 그저 영화에 나오는 것 아니냐,라고 생

각하시는 독자님의 손목에는 혹시 애플 워치

(Apple Watch)나 핏비트(Fitbit)가 매여 있지는

않으신지요.

걸음 수, 운동량, 소모 열량, 수면 상태 등을 확

인해주는 이 피트니스 트래커(Fitness Tracker)

는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용자에게 여러 정보

를 제공해줍니다. 그런데 이 정보는 나만 알

고 있는 걸까요? 위에서 말씀드린 핏비트를

볼게요. 핏비트의 사생활 정책(https://www.

fitbit.com/eu/legal/privacy-policy)을 보면,

기기에서 회사로 전송되는 정보로는 기기 정

보(device information), 장소 정보(location

information), 사용 정보(usage information)가

있습니다. 기기에 기록된 자료와 GPS 등을 통

해 기기가 위치한 장소, 기기를 통해 한 활동(검

색이나 소프트웨어 설치 등)이 전송되는 것입

니다. 이들은 이 정보를 사용자의 명확한 동의

하에서 수집하고 있다고 밝히지만, 혹시 이런

기기를 사용했던 경험이 있으시다면 동의하셨

는지 기억하시나요? 아마 기억나지 않으실 겁

니다. 제 손목에도 비슷한 기기가 매달려 있지

만, 도통 언제 동의했는지 기억나지 않거든요.

이 정보를 가지고 기업은 어떤 일을 할까요? 다

시 문서에 의존해 볼게요. 이들은 서비스 유지,

서비스 개선, 사용자와 소통, 안전과 보안을 위

해 이 자료를 사용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가 준 정보를 통해 서비스가 좋아지고 정확도가

개선된다니 이런 건 괜찮지요. 하지만 정보가

여기에만 활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보는 제휴

사, 서비스 제공자, 협력사에 제공될 수 있으며

이 정보는 여러 용도로 활용 가능합니다. 고객

지원, 정보 기술, 지불, 판매, 마케팅, 자료 분석,

연구, 설문 등에 사용한다고 쓰여 있네요.

21세기 빅 데이터의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

합니다. 개인이 기업에 제공한 정보는 그 자

체로 다른 용도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유럽은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어디에 쓸지 명확히 밝히

도록 했고, 미국도 관련 제도를 정비 중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살핀 것처럼, 정보를 제삼자에

게 제공하는 경우 그 정보는 생각보다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 정보를

그대로 넘길 수는 없게 되어 있지만, 이런 기기

들이 다양하고 복잡해지면서 어디까지가 개인

정보이냐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를테면 특정 요일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그

때 운동 상태는 어떠했다는 정보를 통해 그 대

상을 특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 걸까

요? 게다가, 우리는 스스로 개인 정보를 공개

하길 주저하지 않으며, 이런 정보들이 여러 곳

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쉽게 생각합니다. 페이

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 자

신의 운동 기록을 공유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

요. 그것이 제삼자에 대한 정보 공유를 허용하

는 것이라는 생각은 해볼 새도 없이 말이죠.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투명사회』에서 이런 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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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일랜드」를보면서정보와신체에관해생각한다고?INTERESTING L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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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ESTING LMO 영화「아일랜드」를보면서정보와신체에관해생각한다고?

은 실행 가능할지 모르는 소위 초월 기술(over-

technology)입니다. 일단 분자 수준 또는 그 이

상의 해상도로 인간을 스캔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게다

가, 분자 수준에서 인간을 조립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빅터 프랑켄

슈타인이 너한테는 절대 알려줄 수 없지만 나는

괴물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을

그냥 믿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이렇다 보니, 이 영화에서 복제와 관련한 문제

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그려

지는 ‘복제 인간’이 어느 개념항으로 정의될 수

있는지가 모호하고, 따라서 문제를 파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죠. 이 상황에서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문제는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 존재

를 만들었을 때 발생하는 보편적인 문제, 즉 비

인간의 법적, 윤리적 지위입니다.

지난 3월, 중국에선 인간 뇌 발전에 중요한 부

분을 차지한다고 연구자들이 본 MCPH1 유전

자를 히말라야 원숭이의 뇌에 이식한 결과가 발

표되었습니다. 이 유전자조작 원숭이는 기존 원

숭이보다 단기 기억력이 높았고 인간 뇌의 발달

과 비슷한 발달 양상을 보였다고 해요. 그렇다

면, 이들을 인간에 좀 더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

하는 것은 인간 수명의 증진을 위해 필수적이

라고 말하지요.

그렇다면 이들 복제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요? 대리모 또는 인공 자궁을 경유, 배아를 발

생시켜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걸까요? 그

렇다면 비슷한 목적에서 복제되어 자라온 아이

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 『월광천녀』에서처럼,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복제 인간을 준비시키지

않는 한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복제 인간은 처음부터 성인으로 배양됩니다.

카메라는 몇 번 배양기를 비추는데, ‘자궁’이라

고 불리는 인공 막 안에 인간의 형태로 혈관 망

이 생성된 것에서부터 골격이 생긴 것, 근육까

지, 완전히 인간의 형상을 한 것까지 다양한 배

양 단계가 묘사되지요.

이미 여기에서부터 이야기는 꼬였지 싶어요.

물론 전체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성인의 복제

는 필수적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

인의 복제가 가능할까요? 그것이 가능하다

면, 이는 흔히 말하는 복제(cloning)가 아닌 복

사(copying)일 겁니다. 성인의 신체를 분자 단

위에서 스캔, 이 수준에서 재구성하는 것이죠.

을까요? 그렇다면 이들은 동물인가요, 아닌가

요? 인공지능에 관한 SF 작품에도 관련 예가 등

장하지요. 앞서 말씀드린 「프랑켄슈타인」도 그

렇지만, 영화 「A.I.」, 드라마 「휴먼즈」, 게임 「디트

로이트: 비컴 휴먼」에는 인간과 동일한 수준에

서 사고하며 감정을 지닌 안드로이드(android)

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인간에게 학대를 받지

만, 결국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하게 된

다는 것이 작품들의 주 서사를 이루고 있지요.

이 안드로이드는 기계일까요, 인간일까요?

그렇다면, 인간과 비슷한 이 존재들은 어떤 권

리를 가지고 있을까요? 유전자 조작 히말라야

원숭이나 인간과 같은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어

떤 점에서 구분이 될까요? 물론 영화 「아일랜

드」에 등장하는 복제 인간은 복제일지언정 ‘인

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구분은 불가능합니

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인간’들은 계속 복제

인간을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들을 배제하

려고 하지요. 그렇다면, 결국 이 문제는 동일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부터는 인간이 아닌가,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과 비슷한 존재에겐 어떤 권리가

부여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아직 인간에게도 온전한 권리가 부여되지 못하

는 현실에서 이런 논의는 과도한 것인지도 모르

겠습니다. 여전히 인종 차별도, 난민 문제도 해

결하지 못하는 판국에 인간과 비슷한 존재까지

신경 써 줄 여력은 없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더 좁은 범위의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해선, 더 큰 범위의 문제를 해결하진 못할

지언정 기본적인 입장과 해결책은 정리하고 있

어야 한다고요. 인간의 권리에 대해 논하기 위해

선 비인간의 권리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야 합니

다. 왜냐하면, 인간 차별과 권리의 말살은 그 대

상을 ‘비인간’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기

때문이죠.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수용소는 수

용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비인간은

마음대로 다뤄도 되기에, 일단 대상을 비인간으

로 격하시키는 데에서 출발했던 것이죠. 하지만

비인간에도 마땅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에게 지위가 부여되었다면 수용소의 상황

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아일랜드」에서 결국 중요하게 생각해봐

야 할 문제도 이것일 겁니다. 이들 복제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권리를 지닐 것인가?

영화의 참상(물론 영화 안에선 큰일은 벌어지

지 않지만, 그동안에 있었던 살육에 관해 상상

해볼 순 있으니까요)을 막기 위해서라도, 비인

간의 지위에 관해선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

다. 게다가 현실의 사태도 점차 복잡해지고 있

지요. 생물학에서도, 기계학에서도 점차 인간

과 비슷한 비인간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지위를 부여

하고 권리를 인정해야 할까요? 여전히 ‘비인간’

이기에 마음대로 처분해도 되는 대상일까요?

그렇다면,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거꾸로, 비인간에 지위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여야 할까요?

영화 「아일랜드」에서 영화가 던지는 알 수 없

는 물음표들 대신, 정말 문제로 삼아야 할 부분

들을 짚어 보았습니다. 하나는 신체 감시 기술

이 제기하는 감시와 전시의 문제였고, 다른 하

나는 복제 기술로 탄생한 비인간의 지위에 관

한 문제였지요. 각각 답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

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의 문제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건강을 우선하여 어느 정도의 감시는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부터 이런 감시는 과

도한 사생활 침해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사용

자 외에는 정보에 대한 접근을 불허해야 한다

는 입장까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겠지요. 뒤

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인간과 비슷하다 해도

비인간이므로 어떤 지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입장부터 인간과 같은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넓은 스펙트럼이 그려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글에서 어느 답을 제시하지는 않으려 합니

다. 단, 이런 문제가 지금 우리 현재와 멀리 떨

어져 있는 일이라서 아직 고민할 필요는 없다

고 생각하셨다면 이제 한 번쯤 생각해 보실 때

가 되었다고 말씀드리는 것으로 이 글의 역할

을 대신하려 합니다. 자, 정보와 신체, 현재 뜨

거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격전장으로 여러분

을 초대합니다.

『스타트랙』 시리즈물에 나오는 전송 장치가 만

약 현실화한다면 이런 식으로 작동할 거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즉, 순간이동 전송 장치란 장

치에 들어간 존재를 분자 단위로 분해하고, 이

를 목적지에서 다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사

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셈인데요. 죽는 과

정만 빼면 이 영화에서 다루는 인간 복사의 기

본이 완성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식의 문제가 파생됩니다.

자, 지금 저를 분자 단위에서 복제합니다. 그렇

다면 복제되어 나온 이 친구는 기억이 전혀 없

는 상태일까요, 아니면 복제의 순간까지는 기

억을 가진 상태일까요? 우리가 현재 뇌과학에

서 알고 있는 지식대로라면 기억은 뇌 신경의

연결 상태, 즉 시냅스의 물질적, 구조적 변화

로 저장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분자 수준에

서 저를 재구성한 복제 인간은 최소한 그 시점

에서의 기억은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문제는 당연히도, 복제 인간들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기억

을 가지고 있다면 시설에서 생활하는 걸 받아

들일 수 없겠죠.

다시 메릭 박사의 말로 돌아가 볼까요. 사실, 우

리의 주인공 링컨은 신기하게도 원본의 기억을

일부 가지고 있습니다. 꿈에서 원주인이 만든

보트와 거기 적혀 있는 문구를 보기도 하고, 평

생 타본 적이 없는(그의 3년 남짓한 시설 생활

에 운송수단이란 없기 때문에) 오토바이, 자동

차, 오토바이 형태의 비행체 등을 몰아 잘도 도

망갑니다. 메릭 박사는 원래 복제 인간에게는

기억이 없어야 하는데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놀라지요. 아, 이들 복제 인간

은 기억이 없어야 하는 게 맞나 봅니다.

여기에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영화 「아일랜

드」에 등장하는 복제 인간이란 앞서 말씀드린

복제와 복사의 개념적 복합체라는 것입니다. 말

이 조금 어려웠는데요, 영화의 복제 인간은 일

부 클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일부 인간 복

사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체세포

복제를 통해 만든 복제 인간처럼 그들은 원본과

기억을 공유하지 않으며, 비록 성인의 신체 구

조로 태어나지만, 상당 기간 적응 훈련, 즉 ‘양

육’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한편, 그들은 사

실 원본과 기억을 공유할 수도 있으며(일단 주

인공이라는 사례가 있으니), 성체의 모습을 그

대로 복사하는 기술을 통해 태어납니다.

따라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복제 기술’이라는

것도 상당히 모호합니다. 클론이라면 이미 복제

양 ‘돌리’를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우

리는 알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이 가져올 문제

때문에 하지 않고 있을 뿐. 한편, 복사라면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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