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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경 은 연세대 주제 발표 2 통일 독일의 언어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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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경 은 ‖ 연세대

주제 발표 2

통일 독일의 언어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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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독일의 언어 통합

최 경 은 (연세대)

1. 동서독 독일어의 분리 과정

1.1. 동서독 언어, 하나의 국어인가 - 두 개의 국어인가?

동서독 언어 통합을 논하기 이전에 과연 ‘동서독 언어가 서로 분리되었던가?’라는 질문에 우선 답해야 한다. 독일이 분단되고 10여 년이 흐른 1960년대 초부터 동서독의 언어학자들은 독일어의 분열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어휘와 어휘 사용에서의 이질화에 대해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였다. 70년대에 이르러 독일어가 완전히 동서독으로 나누어졌다. 서독의 학자들은 독일어가 볼셰비키화되었으며, 기능 전문어와 정당 전문어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동독어를 깎아내렸다. 반면, 동독의 학자들도 서독의 언어가 미국어화되었고 제국주의적 언어조작이 넘치고 있다고 비방하였다. 동독은 1970년 13차 통일사회당 중앙위원회에서 행한 ‘양 국가 이론의 선언’ 후 동독어를 국어 형태의 변이형으로 보려는 정책을 폈다. 반면 서독에서는 동독의 특수어를 사소하게 보며, 언어사용의 차이를 무시하려고 했다. 서독의 학자들은 국가의 통일과 동서독의 공통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동서독의 언어를 하나의 독일어로 보았다. 즉, 독일어의 경계는 국가의 경계와는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국가’라는 개념은 역사적 사건을 파악하기 위한 학문적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이며 강령적인 개념이라는 것이었다(Drosdowski 1991, 23). 반대로 동독에서는 1970년 이후 자국을 서독과 분리된 독립 국가로 만들려는 노력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경계를 지으려고 노력하였다. 1970년 동독의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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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Walter Ulbricht)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언어의 공통성이 해체되고, 인문주의 사상으로 가득 찼던 괴테, 실러, 레싱, 마르크스, 엥겔스의 언어가 제국주의에 의해 물들었다. 서독의 언어는 동독의 언어와 너무나 다르다.”(「신독일 Neues Deutschland」, 1970년 6월 16일, 4쪽) 이런 맥락에서 급기야 1974년 할레의 독어학자 고트하르트 레르히너는 “동독의 독일어는 서독의 독일어와 다르다. 이제 동독어는 서독,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독일어 등과 함께 ‘국어 형태의 변이형’으로 발전되었다.”(Lerchner 1974, 264)라고 단언하기에 이른다. 동독의 언어학자들은 동독의 정치적 노선을 지원하는 입장에서 계속해서 이러한 두 개의 독일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동서독 특수어 자료를 수집하여 이를 증명하려 애썼다. 예를 들면 서독의 특수어로는 Gesinde(하인), Magd(하녀), Rittergut(기사의 영토), 동독의 특수어로는 Neuerer(기술 개혁에 기여한 노동자), Brigadier(작업반), Held der Arbeit(노동 영웅)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동독의 학자들은 사회주의국가에는 없는 현상을 표시하는 단어인 Arbeitslosigkeit(실직), Obdachloser(노숙자), Pfandleihe(전당포) 등을 동독 사전에서 없앨 것을 요구했다. 언어 분리에 대한 이런 동독 학자들의 극단적 시도는 냉전시대가 끝나고 정치적인 해빙기를 맞이한 1980년대에 비로소 진정국면에 돌입하게 된다. 그들은 동서독 독일어의 통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다. 물론 이것은 동서독 언어사용에 차이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차이는 하나의 언어 공동체 내에서 국어 형태의 변이형을 기대할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동서독 언어차이는 일상어, 방언, 전문어, 그룹어 등에서 나타나는 차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견해이다.

1.2 언어조작과 언어조정

동독에서는 시민들에게 정치적 어휘를 통해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소개하고 정치 이념적 수준을 높여서 모든 사회 문제를 정부와 같이 인식할 수 있도록 조작한다. 마찬가지로 서독에서도 여론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시민의 사고를 고정시키려는 의도로 언어를 조정한다. 이러한 현상을 서독의 학자들은 ‘언어조정(Sprachlenkung)’이라 부르는 반면, 동독의 학자들은 ‘언어조작’이라 부른다.(Drosdowski 1991, 28) 즉, 동일한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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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르게 명명되고 있다. 이런 어휘들은 특히 정치적 영역에서 많이 발견된다. 지시관계(Referenz)는 같으나 그것을 표시하는 어휘가 다르다. 예를 들면 서독인은 Ostblockstaaten(동구권 국가), Berliner Mauer(베를린 장벽)라고 부르는 반면, 동독인은 sozialistische Länder(사회주의 국가), antifaschistische Schutzwall(반파시즘 보호벽)이라 부른다. 동독에서는 통일사회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 「신독일」이 이런 언어조작을 주도했다. 1989년 11월 동독의 ADN 방송에서 아나운서나 앵커가 이념적으로 채색된 언어에서 벗어나 독자 중심의 언어를 구사해 나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나타남으로써 이러한 언어조작을 동독의 대중들도 알게 되었다.(Drosdowski 1991, 28) 동독의 사전도 공적인 사용규칙을 규정하며 이런 언어조작을 거들고 있다. 독일어 사전(WDG)의 4권 서문에서는 “동서독 언어차이가 존재하며 두 체계의 차이를 자세히 서술하고, 동독의 사전이 마르크스 레닌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서술”됨을 여러 차례 밝힌다. 이러한 언어조작 현상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서술된 전체주의 국가의 언어통제와 비교되기도 한다. 슈테판 하임(Stefan Heim)은 동독의 언어조작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시를 남겼다.

인정은 항상 세계적이며,

동의는 항상 수백만 명이 하였고,

고백은 항상 감명적이며,

변화는 항상 철저하게 이루어졌으며,

상담은 항상 주도면밀하며,

기본은 항상 확고부동하며,

신뢰관계는 항상 결단코 부수어질 수 없다.

(「슈테른(Stern)」, 1977년 2월 10일)

반복되고 규격화된 어휘 결합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상투적 표현이다. 그러나 동독의 언어조작은 동독 시민들에게 낯선 표현으로 계속 남겨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동독과 마찬가지로 서독의 정치어도 상투화되어 있다. 문제를 해결하며(Probleme-lösen), 미래를 보장하고(Zukunft-sichern),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Lebensqualität-verbess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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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상투화된 표현의 좋은 보기에 속한다. 정적을 비방하거나 언어를 통한 여론의 조작, 자신에게 불리한 견해의 묵살 등은 언어조작의 예이다. 서독의 언어조작은 동독과는 달리 ‘민주주의’ 혹은 ‘아래로부터의 언어정책’의 결과로 나온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서독의 여성주의적인 언어정책이다.

1.3 동서독 언어의 특징

동독의 공식적 언어사용은 정당과 국가에 의해 조정되었다. 서독의 학자들이 동독 정부의 고시어(告示語)가 동독 시민의 언어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분명 맞지 않다. 서독의 학자들도 물론 동독의 고시어와 일반 시민들의 일상어 사이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독에는 두 가지 영역이 아니라 ‘세 가지 내부 언어 모델’이 드러난다. 그것은 첫째, 통일사회당을 중심으로 사용된 고시어 영역이며, 둘째, 주민들이 사용하는 일상어 영역이며, 셋째, 교회와 반체제 작가들이 사용하는 체제 비판적이며 반어적인 언어 영역이다.(Polenz 1993, 129) 세계대전 후 서독의 언어 발전은 크게 대중화, 기계화, 학문화, 이질화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Bär 2000, Polenz 1999, Stedje 1992). 대중화는 표준어가 일상어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1945년 이래 서독의 표준어 영역은 일상어까지 확대되었다. 그 외에도 서독에서는 기술과 학문 용어들이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기에 전문어가 엄청나게 일상어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5년 이후 서독어의 특징으로 무엇보다도 외래어의 증가, 특히 영미어의 증가를 통한 이질화 현상을 들 수 있다.

1.4 동서독 언어의 차이

독일은 세계대전 후 40여 년간을 서로 다른 국가 체제 하에서 발전하였다. 서로 다른 경제, 사회, 정치 체제의 결과 어휘에서의 동서독 독일어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동독에서 발간된 대표적 사전인 WDG(1964-1977)의 90,000어휘 중 2.2%에 해당하는 2,000 단어가 ‘동서독 특수어’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동독의 일상 어휘 10,000개 중 약 560 단어(5.6%)가 ‘동독 특수어’이다.(Hellmann 2000, 251) 서독의 사전에는 유감스럽게도 ‘서독 특수어’를 표시해 주지 않았다. 서독 특수어가 동독 특수어보다 많다는 견해가 압도적이다. 그것은 신조어, 고도성장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어휘가 확장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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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고, 언어사용이 개방적이었기 때문이다. 서독은 동독보다 훨씬 더 다원적인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광범위한 어휘를 요구하게 되었다. 우선 서로 다른 정치 체제로 인해 이데올로기와 세계관, 국가기관, 공공의 시설, 선거권, 경제, 조세와 재정, 법률, 사회, 기업과 노동, 상업, 예방, 소비, 교양, 교육, 유행, 여가, 오락 등의 영역에서 특히 상이한 어휘가 발전하였다. 1990년 이래 위의 분야에서 약 2, 3천개의 어휘가 ‘특수어’로 표기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독일어 어휘를 약 30만 단어로 보면 아주 미약한 수준에 그친다. 그리고 그 어휘의 차이도 대부분 정치적 어휘 영역에 한정되어 나타난다. 정서법, 발음, 문법 등은 정당의 이념과 무관하기 때문에 동서독 언어에서 거의 차이나지 않는다. 동서독 모두 1901년 정서법 회의에서 결정된 규칙에 따랐으며, 발음에 있어서도 거의 비슷하다. 1898년 테오도어 집스(Theodor Siebs)의 무대발음을 모델로 하여 일반적인 사용규범으로 발전되어 소위 표준발음으로 확정되었다. 오히려 슈바벤, 바이에른, 작센 등의 발음 차이가 동서독 언어의 발음 차이보다 훨씬 더 심하다. 문어체 언어에서는 그 차이가 더 미미하다. 문법도 거의 다르지 않다.

2. 동서독 언어 통합을 위한 전제

독일은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처럼 그렇게 엄격한 단절은 없었다. 분단 시대 독일어에 대해 스위스 독일어와 오스트리아 독일어와 더불어 서독과 동독의 독일어까지 국어로서의 ‘네 가지 독일어’(Lerchner 1974, 261)로 구분한 주장은 동서독 언어 단절의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절정기인 몇 년을 제외하고는 동서독 언어의 이질화를 무디게 만드는 요소들이 항상 존재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동서독 언어 통합 과정의 전제로서 통일 후 독일어의 통합에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동서독 언어 통합을 위한 전제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들 수 있다(Hellmann 2000, 268).

1) 동독에서 시청 가능한 서구의 대중매체 2) 동서독 시민들의 상호 방문, 특히 서독 시민들의 자유로운 동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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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70년대 서독의 좌익 운동 4) 반전 평화 운동 5) 동독인들의 서독 이주

동독 정부의 조정된 언어 사용을 저지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주요한 매체는 서독의 라디오와 TV 방송이었다. 동독 시민들은 동독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서독의 방송 매체를 시청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방송 언어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서독의 주제나 관점, 그리고 동독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어휘 등을 비교적 쉽게 이해했다. 반면, 동독의 대중매체에 대해서 서독 시민들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동독 시민들은 서독의 언어 사용을 서독 시민들이 동독의 언어 사용을 아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서독의 통신원이 동독에서 주둔한 1970년대 중반 이래로 서독 대중매체는 동독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보도함으로써 동서독 언어의 통합에 일조했다. 그러나 동독과 동독 시민들의 언어 사용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소수 서독시민으로 제한되었다. 70년대를 시작으로 80년대 들어서 급격히 늘어난 서독 시민들의 동독 방문도 동서독 언어의 이질화를 저지했다. 동독의 체계와 공식적 언어 사용은 대부분의 서독 시민들에게는 이국적이며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동독 시민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특수어를 서독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 주었다. 대부분 ‘일방통행적인’ 설명의 토대는 서독과 서독인들의 생활에 대한 동독인들의 동경이었다. 60, 70년대에 일어난 서독의 좌익 저항운동은 서독에서 마르크스 논쟁의 금기를 깨뜨렸으며, 그들이 사용한 어휘도 아데나워 시대와 비교해보면 동서독 어휘의 차이를 줄여주었다. 동서독 전역에서 국가의 안보노선에 반기를 들고 군비확장과 핵 개발을 반대했던 평화 운동이 일어났다. 동서독 평화 운동가들은 동일한 어휘와 표현으로 외쳤다. ‘Frieden schaffen ohne Waffen / mit immer weniger Waffen’(평화는 무기 없이 / 점점 더 줄어드는 무기로써 이루어진다), ‘Hallo Nachbar - Frieden ist machtbar’(여보게 이웃 - 평화는 이루어질 수 있네).(Hellmann 2000, 269) 동서독 평화 운동에 대해 동독 정부는 보복 조치로 대응했다. 동독에서 국가 권력에 대항하여 일어난 평화와 인권 운동의 기여는 무엇보다도 ‘성숙한 시민’(mündiger Bürger)과 ‘개인의 존엄성’(Würde der einzelnen Menschen), 이념적으로 채색된 ‘증오를 유발시키기 위한 교육’(Erziehung zum Hass) 대신에 ‘사회적인 평화 봉사, 평화 교육’(sozia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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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endienst, Friedenserziehung)에 대한 요구였다. 그 결과 평화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동서독 학자들이 일방적으로 정의했던 개념인 ‘Frieden’(평화), ‘Sicherheit’(안보), ‘Verantwortung’(책임) 등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상호 우호적으로 새롭게 정의가 내려졌으며 정치적 용어에서의 이질화를 통합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동독에서 서독으로 가는 수백만의 이주 행렬은 동독의 실정에 대한 관심을 몇 배로 증가시켰다. 그러나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어 사용에서 동독 특수적인 요소들을 재빠르고 남김없이 없애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서독에서의 언어 사용을 위해 동독 언어 구사력은 급속히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였다. 동독에서 온 이주자들이 서독의 일상생활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언어적으로나 의사소통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었느냐 하는 질문은 개별적이며 주관적인 보도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체계적으로 언어학적인 혹은 의사소통학적인 연구의 대상은 아니었다.

3. 서독어 중심의 일방통행적 언어 통합

동서독 언어의 가장 영향력 있고 포괄적인 통합 과정은 통일 후 첫 몇 년 동안에 걸쳐 일어난다. 1990년 이후 행해진 연구의 대부분은 언어 통합 과정에 집중되어 있다. 서독 중심의 흡수 통합으로 “동독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은 언어를 포함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남다른 적응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상황으로 발전되었다.”(Schlosser 1990, 199) 서독의 어휘뿐만 아니라, 서독의 텍스트 모형이나 의사소통 규범에 이르기까지도 동독에서는 통일 전부터 지속적으로 소개되었고, 부분적으로는 통일 전에 이미 상용화되었다. 서독어 중심의 일방통행적 언어 통합으로 동독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했던 어휘들을 버리거나, 서독에서 쓰이는 새로운 표현들을 습득하거나, 아니면 같은 어휘라도 서독의 의미로 다시 배워야 했다. 동서독의 서로 다른 체제로 인해 우선 동독의 국가 조직, 행정, 문화정책 영역에서의 어휘는 통일이 되자마자 곧 사라지게 된다. 보기: Volkskammer(동독의회), Nationale Volksarmee(동독의 군대), Kaderleiter(인사 과장), Oberliga(오버리그), Armeezeit(병역 의무). 동일한 현상에 대해 서독과 다른 용어를 쓰는 경우도 동독어의 포기로 통합된다. 보기: Staatsbürgerschaft→Staatsangehörigkeit(국적), Feierabendhe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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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iorenheim(양로원), Kosmonaut→Astronaut(우주비행사). 러시아어에서 차용된 어휘들도 급속히 사라진다. 보기: Dasche/-a(주말 별장), Subbotnik(자발적인 무보수 노동), Soljanka(스프의 일종). 동독인들은 2, 3천 개의 서독 특수어와 그들의 특별한 의미를 습득해야만 했다. 서독 어휘에 대한 동독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1993년에는 마틴 루터 대학의 독어독문학과에 언어 상담소가 설립되기도 했다. 부동산 상담소, 사업 상담소 등에 이어 언어 상담소까지 동독에 설치된 것이다. 아마도 언어를 정확히 구사해야 한다고 동독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서독인들보다 정확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 것 같다. 동독에서 배운 직업이 인정받지 못하고, 그것도 모자라 언어적 능력까지도 인정받지 못해야 하는가 라고 그들은 자신을 추스른다.(Kühn/Almstädt 1997) 동독인들은 서독의 상황을 서독인들이 동독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그것은 통일 후 동독인들이 서독 중심의 일방적 언어 통합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우선 동독 시민들은 동독과는 전혀 다른 서독의 정치 경제 체제를 어휘를 통해 습득해야 했다. 보기: Arbeitsamt(노동청), Umweltverträglichkeit(환경과 잘 어울림), Sozialhilfe(사회 보조금). 새로운 언어 형태는 어휘뿐만 아니라 인사말이나 호칭에서도 드러났다.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가는 동서독이 아주 달랐다(Good 1993, 251; Kühn/Almstät 1997, 92). 동독에서는 편지의 서두에 Sehr geehrter Herr X(매우 경애하는 X씨) 혹은 Werter Herr X(존경하는 X씨) 등을 썼다.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예컨대 동독 시민들은 직장을 구하는 편지를 쓸 필요가 없었다. 많은 동독인들에게 서독에서 사용되는 호칭은 낯설었다. 동독인들은 편지에서 Sehr geehrte Damen und Herren(매우 경애하는 숙녀 그리고 신사)이라는 표현 뒤에 느낌표 대신 콤마가 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말인 mit freundlichen Grüßen(우정어린 인사와 더불어)이라는 표현은 그들에게는 한층 더 이상한 표현이었다. mit sozialistischem Gruß(사회주의적인 인사와 더불어)가 낡은 표현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Freundliche Grüße, Mit freundlichen Grüßen, Mit bester Empfehlung, Ihr sehr ergebener를 왜 사용해야 하는가? 동독인들은 이런 종류의 의문에 대해 할레에 있는 언어 상담소에 문의하고 있다Kühn/Almstädt 1997,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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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언어 통합에 대한 동독인의 반응

언어 통합에 대한 동독인의 반응은 순응과 저항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서독의 우위를 인정하고 거기에 순응하는 형태에 대한 좋은 보기로서 통일 직후 동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옥외 광고 문구를 들 수 있다. 자동차로 동독을 여행해 본 사람은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는 광고 텍스트와 안내판에서 얼마나 많은 영어가 사용되는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텍스트를 흔치 않게 볼 것이다.

“Bestellen Sie über unsere Hotline das Frühstückscenter für Kids.” (직통 전화로

어린이를 위한 아침 식사센터에 식사를 주문하십시오.) (Kühn/Almstädt 1997, 91)

반면, 서독 중심의 일방적 통합이 동독인들의 저항 의식을 일깨우기도 했다(Albersmann 2001). 동독인의 불만은 그들의 대화에 사용된 어휘 선택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튀링겐의 한 가족 대화에서 그들은 자신들과 서독 주민들을 비교하며, wir(우리)와 sie(그들), hier(여기)와 drüben(저기), Osten(동)과 Westen(서), damals in der DDR(그 당시 동독에서)와 jetzt in der Bundesrepublik(지금 서독에서)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Grötsch 1994). 통일 후의 생활환경에 실망한 동독 주민들은 동독 시절 있었던 모든 상황을 변호했으며, 서독에서 온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쁘다고 생각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그 정도가 심했다. 익숙한 동독 어휘를 포기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계속 사용하는 것에서 서독에 대한 저항 의식과 구동독에 대한 향수를 동시에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통일이 된 후에도 서독 용어인 Brathähnchen(통닭구이), Plastik(합성수지), Kaufhaus(백화점) 대신에 동독 용어인 Broiler, Plaste, Kaufhalle를 계속 사용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어휘는 동독인임을 드러내 주는 어휘, 즉 ‘Ostidentität’(동독인으로서의 정체성)로 그동안 정착되어 버렸다. 통일된 후 동독에서 유행된 신조어를 살펴보면 동독인들의 이러한 저항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부동산에 관련된 Miethai(집세와 상어의 합성어), Entmietkommando(집세를 빼가는 특수부대)등의 신조어에서 많은 동독인들이 서독인들을 통해 겪은 부정적인 체험이 드러난다. 이런 부정적인 체험으로 ‘Nostagie’(향수)에서 유래된 ‘Ostal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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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을 의미하는 ‘Ost’와 ‘향수’를 의미하는 ‘algie’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한동안 동독 사회에 유행되기도 했다1).

5. 의사소통의 갈등

40여 년간의 분단으로 인한 “동서독의 정치 사회적 삶의 상이한 질서는 아주 상이한 의사소통 공동체를 생성시켰다.”(Schlosser 1991, 7) 통일이 되고 비교적 짧은 시간이 흐른 후 동독인이 서독의 특수어를 받아들이는 언어적 통합이 결코 간단히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서독 시민들은 동독의 언어적 특징이 “통사당의 언어조정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분단의 시기에 성립되었고 동독 시민들의 뇌리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의사소통적 관례에 따른 것”(Schlosser 1991, 8)임을 곧 알게 되었다. 언어학자들은 동서독 의사소통 갈등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였다.

5.1. 대화에 임하는 자세의 차이

동서독 의사소통 갈등의 원인은 우선 대화에 임하는 동서독 시민들의 상이한 자세에서 발견된다. 일뢰넨(Ylönen)(1992)은 동서독 시민들의 대화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보기를 들어 설명했다. 그녀가 행한 대화 분석의 예는 통일 직후, 정확히 말하면 1990년 10월 라이프치히 가을 박람회에서 동서독 시민 간의 대화이다.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서독인은 모든 면에서 대화를 주도했다. 수사학적인 노련함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요소들을 수반하여 서독인은 대화 파트너인 동독인을 시종일관 압도했다. 동독인은 대화가 시작될 때부터 이미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했으며 자기주장을 숨기는 표현, 예를 들면, beispielsweise(예를 들면), wäre(∼일 것입니다), müßte(∼여야만 했었는데...) 등을 반복했다. 그녀는 이 두 사람의 언어 태도를 서독의 규칙이 동독의 모든 영

1) 2003년에 개봉된 볼프강 베커 감독의 굿바이 레닌 은 6백만 명의 관객이 동원될 정도로 성공을 거

두었는데, 성공의 원인으로 영화 전반에 걸쳐 스며들어 있는 ‘Ostalgie’를 향한 동독인의 정서를 꼽

을 수 있겠다. 장벽 개방 25주년을 기념하여 튀링겐 지역신문 의 위탁으로 설문조사기관 ‘‘인사-콘

술레레’'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구동독인 6명 중 1명이 분단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한다.(2014년 11

월 8일 포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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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특히 경제적 영역에까지 침투한 결과로 해석했다. 대화에서 서독인에게는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태도나 과장됨을 느낄 수 있었던 반면, 동독인에게는 불안감과 열등감을 느낄 수 있었다.

5.2. 어휘와 의사소통 관례의 변화

의사소통의 갈등은 통일의 과정에서 나온 어휘의 변화에도 원인이 있다. 그리고 서로 상이한 의사소통 관례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야기된 어려움도 관찰된다. 통일 후 주로 동독인들이 언어적 통일의 부담을 짊어져야만 했다. 물론 동독인들은 서독인들보다 언어적 변화에 적응할 준비 자세가 더 잘되어 있었다. 동독인들은 예전부터 공식 독어와 사적인 용도의 독어라는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꾸준히 들어왔다.(Hellmann 1993, 24) 그리고 그들은 서독인들과의 대화에서 서독에 알려지지 않은 단어를 직접 번역해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언어에 대한 학습 준비자세와 적응 능력을 강조하는 것은 동독인의 능력이며 특별한 갈망으로 여겨졌다. 의사소통 관례의 변화도 동서독 대화를 어렵게 만든다. 헬만이 든 보기를 살펴보자. 통일 후 서베를린에 있는 회사에 지원한 동독의 합성수지 기술자가 입사 시험에서 탈락했는데, 그는 탈락의 원인이 면접에서 서독 표현인 ‘Kunststoff’(플라스틱) 대신에 동독 어휘에 속하는 ‘Plaste’를 계속 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독에서 입사 지원할 경우 관례로 되어 있는 규범인 입사 지원서를 쓰지 않은 것이 그가 입사를 거부당한 원인이었다. 안토스(Antos)(1997)는 “모국어에서의 이질성”이란 주제로 동서독 의사소통의 갈등을 분석하였다. 여기서 그는 의사소통상의 갈등 원인으로 볼 수도 있는 동서독인들의 담론 체계의 여러 형태를 정했다. 연구의 데이터베이스는 동독 시민들이 동서독의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보험, 법률, 교육, 재정 등을 주제로 한 약 350통의 전화 상담이었다. 담화 체계에 있어 발견된 차이점은 상담 스타일이다. 서독 전문가들은 “대화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노력”했으며, 문제를 파악한 뒤에는 일종의 독백식 강연 스타일로 바꾸었다. 독백 부분은 “정보 제공과 결정을 위한 조언”을 전달했다. 그렇지만 어떤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나 평가는 없었다. 반면, 동독의 전문가들은 상담자의 상황에 대해 분명하게 평가해 주었으며, 비록 가끔씩은 너무 빨리 일을 처리하거나 문제의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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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을 빗나갈지라도 “생활 도움”이라는 의미에서 구체적인 정보를 주었다. 안토스에 따르면 서독의 전문가들은 동독의 상담자에 대해 대부분 자신의 상담 모형을 관철시키려고 했다.

5.3. 화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의미적인 차이

동서독인들 사이의 의사소통 알력의 원인은 화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의미적인 차이에서도 나타난다.(Fraas 1994) 프라스는 동서독인이 사용하는 주요 어휘에 대해 ‘스트레오 타입’(상투적 유형)과 ‘프로토 타입’(원형적 유형)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Mutter’(어머니)를 보기로 들어보자. 서독에서는 Mutter가 “Mütter sind Hausfrauen”(어머니는 주부이다)이라는 상투적 유형과 결부되어 있다. 이런 상투적 유형은 “Mütter, die Hausfrauen sind, sind bessere Exemplare von Müttern als Mütter, die keine Hausfrauen sind”(주부인 어머니는 주부가 아닌 어머니보다 어머니의 더 나은 범례이다)라는 원형적 효과를 불러온다. 이런 뉘앙스는 동독 사회의 경우 맞지 않는다. 동서독에서 부분적으로 차이점을 보이는 이런 어휘의 뉘앙스는 40여 년에 걸친 분단을 통해 야기되었으며, 통일로 인해 서서히 일치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여기서 거론된 문제들은 순수 언어학적인 수단을 통해서 더 이상 설명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그 때문에 프라스는 동서독 의사소통의 갈등이 언어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들의 학제간 공동연구를 필요로 한다고 역설했다.

5.4. 상이한 정치 사회 경제 체제

바르츠/픽스는 동서독 의사소통의 갈등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면 종종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수준인지 질문하고 있다. 또한 이런 갈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갈등을 어떻게 하면 피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있다(Barz/Fix 1997, v). 바르츠/픽스는 의사소통에 갈등이 존재하고 있음은 명백하다고 보았다. 그들은 그 원인을 아주 다른 정치 사회 경제의 체계에서 찾았다. 동서독 시민들은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으며 사회 구조의 상이함을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의사소통에서 오해가 올 여지는 충분했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인식될 경우라 해도 종종 판에 박히고 편견에 사로잡힌 관점에서 의사소통의 문제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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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통독 후 동독에서 일어났던 의사소통의 문화적 변화를 인식하기 위해서 바르츠/픽스는 특별한 의사소통 영역인 노동 세계의 일상생활을 조사 연구했다. 이 영역은 공식어와 일상어가 혼합되어 사용되기 때문에 흥미롭다. 그 때문에 이 영역은 통일 전후기의 동서독의 언어적 의사소통 태도의 관찰에 아주 적합하다. 이 논문집에서 “동서독 의사소통의 갈등”이라는 주제를 다룬 “원탁 대화”에 대해 자세히 분석해보자. 대화의 주제는 현존하고 있는 ‘고정관념, 상투어’와 서독 표준어에 대한 동독인의 적응이었다. 물론 이 주제는 언어 영역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고정관념에 대해 참여자 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담에 비추어 상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대화에 나타나는 동서독인들의 상호 고정관념을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보았다. 예컨대, Wessi(서독인)는 Ossi(동독인)보다 더 자신감에 차 있다. 서독에서 동독인들이 서로 만나면 그들은 ‘zuhause’(집에는)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는 대화를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외국에서 만난 자국민처럼 서로를 대한다. 동독인들은 사회적인 배경 지식을 만회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는 데 반해 서독인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참석자들은 의사소통 장애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을 “공동의 배경을 구축하는 데”서 찾고 있다. “동서독인들이 서로 만나는 것을 꺼릴지라도, 꾸준하게 접촉하는 것만이 의사소통의 장애를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Barth 1997, 398)

5.5. 정치 경제 분야의 주요 개념에 대한 상이한 평가

동서독 의사소통에서 동서독이 서로 다른 평가를 내렸던 정치 경제적 분야의 주요 개념들의 사용이 대화를 특히 어렵게 만드는 것이 입증되었다. Konkurrenz(경쟁), Manager(매니저) 등과 같은 시장 경제적인 개념들은 동독에서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었다. 이것을 다시 긍정적인 의미로 바꾸기는 여러 이유에서 어렵다. 구드는 통일사회당 정부에 의해 ‘점령된 개념’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어려움에 대해 자세히 논하고 있다. 그는 동서독 의사소통에서 Solidarität(연대 의식), Funktionär(간부), Fortschritt(진보) 등과 같은 개념을 아주 조심해서 다루어줄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런 개념들은 동독의 이데올로기적 과도 사용으로 인해 아주 부정적으로”(Good 1993, 257)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요 개념들에 대한 오해는 “항상 혹은 단지 개념적 내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문체 혹은 감정 가치로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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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할 수 있는 것과도 관련된다.”(Good 1993, 258) 일상생활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다르게 이해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도 있었다. 헬만(1991, 132f.)은 서독 도시의 복덕방 중개인이 동독에서 온 젊은 부부에게 집을 소개하는 일화를 보기로 들었다. 젊은 부부는 처음에는 너무 소심해서 “거의 구걸하는 사람”처럼 중개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소개한 집들이 대부분 그들에게는 비쌌다. 중개인은 그들에게 Altbauwohnung(건축한 지 오래된 집)을 제안했다. 젊은 부부는 화를 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Keine Altbauwohnung. Nicht mit uns! Das lassen wir nicht mehr mit uns

machen!”(낡은 집은 원치 않습니다. 우리에겐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겐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중개인은 그 부부를 ‘까다롭고’ ‘감사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서독의 중개인이 제일 나쁜 집을 속여서 계약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동독인과 서독인들은 Altbau라는 어휘를 각각 다르게 이해했다. 동독에서 Altbau는 2차 세계대전 이래로 더 이상 리모델링하지 않은 집이다. 반면 서독에서 Altbau는 약 20년 정도 된 집인데, 동독의 Altbau에는 있지 않은 시설, 예컨대, 중앙난방, 따뜻한 물,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다.

6. 맺는 말

통일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동서독의 언어는 어떻게 변했을까? 이제 ‘동독과 서독의 독일어’에서 ‘전환기 독일어’를 거쳐 ‘통일 독일어’로 완전히 탈바꿈했는가? 지난 20여 년 동안 동서독의 언어를 연구했던 언어학자들은 끊임없이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논리를 펴 왔다. 독일은 한국과는 달리 통일 전부터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 동독 시민들은 서독의 대중매체에 접할 수 있었고, 서독 시민들은 동독을 자유롭게 방문했다. 이러한 교류가 통일된 후 동서독이 정치적 통일에만 그치지 않고 내적인 통일로 나아가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분단 시대 서독에서의 좌익 운동, 동서독 지식인들이 함께 한 반전 평화 운동도 냉전시대의 반목을 점차 희석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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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 서독은 언어 외적인 요소, 즉 경제적 우위를 무기로 동독어를 점령해 들어갔다. 통일 후 “독일어의 통합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독일어의 인수”(Intervier mit Hellmann 2015)라는 헬만의 주장대로 통일 후 20여 년에 걸친 독일어의 발전은 동독어의 포기와 서독어의 학습으로 이어지는 일방통행적 언어 통합이었다. 정치적 흡수 통합으로 인해 스스로 ‘2등 시민’임을 느끼고 있었던 동독인들의 자의식은 자신을 외부에 노출시키는 표현만큼은 ‘1등 시민’의 언어로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통일 독일의 환상에서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본 동독 시민들은 점차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서독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했지만 일방적 언어 통합에 대한 불만도 토로하게 된다. 이러한 불만은 구동독 시절을 그리워하는 정서와 어울려 구동독 어휘의 계속적인 사용을 가져오기도 했다. 통일 후 동서독 시민들이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동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의사소통의 갈등이 여러 가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서독 문화의 차이, 어휘의 변화, 화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의미적인 차이, 상이한 정치 사회 경제 체제, 정치 경제 분야의 주요 개념에 대한 상이한 평가 등으로 야기된 동서독 의사소통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헬만은 언어 통합과 그 통합에 따른 결과를 다른 각도에서 관찰해 보는 관점의 변화를 제안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도전적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 자신들이 원래 함께 살 수 있기 위해 얼마나 통일적이어야만 혹은 동일해야만 하는가?”(Hellmann 1997, 29) 독일은 언어적인 통일 국가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고 그는 주장하며 의사소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유일한 표준 독일어로서 서독의 언어 사용을 규범화하지 말고 서독어와는 “다른 존재를 인정”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여기서 동서독 의사소통의 갈등이 여러 연구에서 증명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큰가라고 자문해 보고 싶다. 동서독 의사소통이 일반적으로 실패한 경우에만 다루어지며, 성공한 사례는 이것이 정상이기 때문에 주목받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언어학적인 연구에서 의사소통이 성공한 경우는 별로 눈에 띄는 성과가 없기 때문에 고려되지 않는다. 동서독 사람들 사이의 대화는 외국인과의 대화보다는 의사소통이 원활하리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기대치가 실망으로 나타난 것을 체험한 사람은 동서독 의사소통의 심각성을 실재의 현상보다 훨씬 더 크게 생각한다. 의사소통에 대한 동서독인들 사이의 갈등에는 매체의 역할도 크다. 헬만은 “동서독 시민들 사이의 언어적․의사소통적 이질성은 매체의 창작품”(Hellmann 1998, 52)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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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동서독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슈티켈(Stickel)(2001)의 설문조사도 위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서독의 언어차이에 대해서 83.6%의 응답자가 차이가 미미하거나 거의 없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1.6%가 동서독 언어의 차이는 남부 독일어와 북부 독일어의 차이보다 크지 않다고 보았다. 그리고 동서독의 언어차이가 의사소통을 저해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무려 95.9%가 약간 저해하거나 전혀 저해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동서독 언어차이가 10년 이후에도, 혹은 결코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응답한 시민은 무려 73.3%에 이른다. 8년 뒤에 이루어진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통계는 거의 변화되지 않았다.(Plewnia/Rothe 2009) 동서독 언어차이(17%)가 남북독의 언어차이(31%)보다 거의 두 배나 미미한 것으로 나왔다. 2014년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기념하여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언어를 통한 동서독의 구분이 가능하다는 응답이 12%에 지나지 않았다. 설문조사의 결과는 동서독 의사소통 갈등의 문제를 벗어나 동서독 언어 통합이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오히려 동독 사회 내부의 의사소통 차이가 머지않은 장래에 동서독 의사소통의 차이보다 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동독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부모와는 다르게 말하고, 노동자는 실업자와는 다르게 말하고, 연금수혜자는 새로운 엘리트와는 다르게 말하고 있기”(Antos 1997, 14) 때문이다. 통일 독일의 언어 통합 과정을 단순히 한국의 상황에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독일과 한국의 상황이 분단이라는 단어 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독일은 8세기경 언어권을 경계로 ‘신성로마제국 독일’이라는 연합체로 국가형태를 유지해 왔고, 19세기 말에 이르러 비로소 근대 국가형태로 탄생하였다. 따라서 1천년 이상 단일국가형태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와 그 배경이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남북 분단이란 현실이 생소한 환경이었던 반면, 독일은 분단이 그리 낯설지 않은 형태의 국가 구조였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언어에도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분단 40년, 베를린 장벽 28년 동안 동서독 언어의 발전은 어휘와 단어 사용 분야 외에는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그만큼 통일 후 언어 통합의 길은 순조로웠다고 평가될 수 있다. 분단 시기 동서독의 언어학자들은 그림(Grimm)의 독일어사전의 편찬(1852-1960)과 독일어 정서법 개혁을 위한 준비 작업 등 국가 차원의 언어정책 사업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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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분단과 통일 과정에서 나타난 언어 통합 과정이 남북한 언어 통합 노력에 주는 시사점은 비교적 분명하다. 즉, 남북한의 끊임없는 교류가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력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남한의 유연한 자세가 가장 절실하다. 며칠 전 신문에 한국이 “외국을 돕는 데 5년간 3조 4천억을 썼으며, 그중 북한 주민을 돕는 데 2%도 안 썼다”(2015년 6월 29일자 「조선일보」)는 기사가 났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남북한 언어 통합은 요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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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2: 통일 독일의 언어 통합 - GYEOREMALgyeoremal.or.kr/file/conference03.pdf그러나 이것도 독일어 어휘를 약 30만 단어로 보면 아주 미약한 수준에 그친다.
Page 23: 통일 독일의 언어 통합 - GYEOREMALgyeoremal.or.kr/file/conference03.pdf그러나 이것도 독일어 어휘를 약 30만 단어로 보면 아주 미약한 수준에 그친다.

광복 70주년 기념

겨레말 통합을 위한 국제학술회의

- 우리말 문화유산의 정비와 통합을 위한 과제 -

발 행 인 송 철 의

발 행 일 2015. 8. 14.

발 행 처 국립국어원

서울시 강서구 금낭화로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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