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d vol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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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2 Vol. 02 Autumn 2014 QUARTERLY MAGAZINE S E R V E > E Q U I P > E V A N G E L I Z E > D I S C I P L I N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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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2 Autumn 2014 QUARTERL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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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2

Vol. 02 Autumn 2014 QUARTERLY MAGAZINE

S E R V E > E Q U I P > E V A N G E L I Z E > D I S C I P L I N E | 2014년 가

을 제

02호 | 주

소. 서

울특

별시

서초

구 방

배로

19길 68, 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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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521-0791 | 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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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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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모임시간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오후 2시장소 방주교회 흥진교육관 303호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2길 18

후원외한은행 630-009145-490

(예금주: 사단법인시드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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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Vol. 02 Autumn 2014

PART 1 가치와 전략

04 SBN의 전략 | 김요한 선교사(SEED USA 부대표)

06 중앙아시아 고려인 동원사역 | 방대식 선교사(SEED USA 부대표)

08 크림 따따르 종족과 사역의 전개 및 전략 | 강나타샤 선교사(러시아)

10 남인도 첸나이 | 김옥룡 선교사(남인도)

PART 2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12 페루에서 | 유동윤 선교사(페루)

14 축복의 길 | 박요셉 선교사(J국)

16 메시야를 기다리며 | 장다니엘 선교사(이스라엘)

18 산다는 것 | 송이센 선교사(K국)

20 자녀 5명의 홈스쿨 | 이또오 히또시 선교사(미얀마)

22 Only God | 박은영 선교사후보

24 라오스 정탐기 | 김진화 선교사후보

26 쉼, 회복, 그리고 새로운 비전 | 아일 선교사(동북아시아)

27 어느새 기쁨으로 | 백광현(일본 백운성 선교사 자녀)

28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 | 박아람 청년(방주교회)

PART 3 본부와 협력교회

30 SEED 선교사 현황 및 본부

32 후원안내

34 SEED NEWS

36 SEED 컬럼 | 정성헌 선교사(SEED KOREA 대표)

발행일. 2014년 10월 15일 / 통권. 2014년 가을 제 02호 / 발행처. (사)시드인터내셔널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19길 68, 202호 / 발행인. 김광호 목사(이사장) /

편집인. 정성헌 선교사(대표) / 편집디자인. 안설희, 배수은 / 표지사진. 유동윤

선교사(페루) 아내 김나윤 선교사와 딸 유진 / 목차사진. 알래스카 / SEED Family. SEED

International· SEED USA·SEED Korea·SEED Canada·SEED Brazil

QUARTERLY MAGAZINEwww.seed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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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N의 의미

“SEED Blessing Network(SBN)”는 창22:18 “또 네 씨(SEED)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Blessing)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리라”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

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씨(예수그리스도,

갈 3:16)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 곧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되는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를 두고 그 말씀의 성취를 위한 전략

(Network) 연구 기구가 SBN입니다.

SBN의 전략

SBN의 전략은 Nerwork(연결, 연합)에 있습니다. 선교지 교

회와 후방 교회, 선교사와 선교기관 간의 연합을 전략으로 삼

고 있습니다. 지구촌에는 12,000개의 종족(Ethno-linguistic

People Group)이 있고 그 중에서 약 반 정도는 복음화율이 2%

FPG현장교회선교기관

SBN팀장

SEED선교사

SEEDInt'l

SEED Blessing Network Vision

SBN 팀장 : 후방 파송교회, SEED 선교사 : SBN 파송 선교사

현장 교회, 선교기관 : 선교지 교회와 타 선교기관

SEED Int’l : SEED 선교회, FPG : 최우선 대상 종족

김요한 선교사 | SEED USA 부대표

SBN의 전략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가치와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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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만인 미전도 종족으로 구분됩니다. 이 미전도 종족들 중에

서 저희 선교단체 선교사들과 Network가 가능한 미전도 종족

을 선별하여 “최우선 대상 종족”(First Priority Target People

Group)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선정된 종족을 집중적으로

Network하여 그 종족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게 하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이 최우선 대상 종족 선교는 후방 교회와 선교지 전방 교회가 함

께 Network하고 선교사와 선교단체를 Network 하여 효과적

으로 최우선 대상 종족 가운데 또 하나의 토착 교회가 개척되도

록 하고, 그 교회로 하여금 그 민족의 복음화가 이루어져서 하나

님의 약속이 성취 되도록 돕는 SEED 선교회가 선정한 종족 선

교를 의미합니다. 이 때 파송되는 선교사는 선교 현지에서 양육

된 일꾼을 우선으로 하며 SEED 선교사에 의해서 현장에서 양

육된 제자들을 동원하여 훈련하고 파송하는 것을 우선으로 합

니다. 그 이유는 현대 선교는 과거 서구 권 중심에서 비서구 권

중심으로, 북방 중심에서 남방 중심으로 그 선교의 흐름이 바꾸

어져 가고 있고 또 선교지 교회도 빨리 스스로 선교하는 교회로

자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교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따를 때 선교가 더 역동적이고 효과적으로 전개되어 최

우선 대상 종족들 가운데 교회가 힘 있게 개척되고, 개척된 교회

의 재생산율도 높은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최우선 대상 종족으로 선정된 크림 따따르족

(러시아, 흑해, 크림반도, 30만, 수니 무슬림, 투르크어) 선교를

보면 후방의 한국의 혜천대학교회와 캐나다의 에드몬톤 중앙

교회, 미국 버지니아의 열린문장로교회가 각각 현빅토르, 김빅

토르, 김금문 선교사 3가정을 파송했습니다. 이 3가정은 SEED

선교사에 의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예수 믿고 훈련된 고려인

목회자들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선교지 교회와 한국, 캐

나다, 미국의 후방 교회가 연합하고, 파송된 선교사 3가정과

SEED 선교회가 연합하여 크림 따따르족을 섬겨 이 종족을 복

음화하자는 비전으로 교회 개척을 시작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크림 따따르 민족은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과 같은 강제 이

주의 고통의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1944년 스탈린에 의해

크림반도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크림 따따르족

은 이 때 스탈린에 의하여 무려 40%나 되는 인구가 죽임을 당한

수난의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그리고 고려인들 역시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를 당하면서

우즈베키스탄의 갈대밭에 버려진 뼈아픈 고통을 겪었습니다.

두 민족은 역사적, 심정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민족입니다.

1990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크림 따따르 민족은 자기 고향 크림

반도로 돌아 가게 되었고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그대로 남

게 되었습니다. 고려인들은 한국 선교사에 의해서 복음화되었지

만, 크림 따따르 민족은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교회가 이 크림 따따

르 민족의 복음화의 부담을 가지고 선교사를 보내기 시작한 것

입니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교회는 선교사를 지원하고 한국,

캐나다, 미국 후방 교회는 기도와 재정을 지원하며, 선교단체는

동원, 훈련, 사역관리를 맡아 Network를 하게 된 것입니다.

6천여 개의 미전도 종족이 있지만 저희 SEED가 감당할 역량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크림 따따르족에 이어서 C 국의 쭈앙족

(약 1천8백만), 북인도의 UP(Uttar Pradesh)주의 2억의 미전도

종족과 네팔의 피난민, 터키의 크루드족, 스페인의 모로코족 등

을 선정하고 전략적으로 선교적 역량을 집중하고 걸음마 단계

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SBN의 꿈이 성취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크림 따따르족

쭈앙족

모로칸

모로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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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아시아에 대한 정의는 몇 차례 그 의미가 변경되다가

가장 최근에는 구소련 독립 이후 1992년 중앙아 5개국(카

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

니스탄) 정상 간 회합에서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발의로 ‘스탄(-stan)'이 들어가는 역내 5개국을 중앙아시아로

지칭하기로 합의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함으로 그 의미가 고정되

었다. 즉 현재의 중앙아시아는 구 소련 해체 이후 새롭게 구성된

독립국가연합(CIS) 내에서 ‘스탄’으로 끝나는 5개 나라들을 지

칭한다.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SEED 선교회 소속 선

교사 가정은 8가정이다. 소속 선교사들 대부분이 사역의 초창

기부터 자연스럽게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하

루아침에 연해주 지방에서 중앙아시아에 흩어뿌려진 디아스

포라 한인(고려인)들을 접촉하게 되면서 그 사역이 확대되기 시

작하였다. 워싱턴 중앙 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은 강나타샤 선교

사를 필두로 본격적으로 우즈벡 사역의 문을 열게 된 것은 현

재 SEED의 타민족/미전도 종족 사역 지역장으로 섬기고 있는

김요한 선교사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이

OO(현재 T 국), 정성헌 선교사(현재 SEED KOREA 대표)의 뒤

를 이어 필자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선교사의 대열에 합류하여

사역하였고 현재는 본부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모든 한인 선교사들의 현지 사역의

열매로 꽤 많은 고려인 제자 목사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실례로

중앙아시아의 한 지역에서는 현지 고려인들로 구성된 독노회

(총회 성격)가 세워져 1세대 선교사들의 바톤을 이어받아 현지

교회들을 잘 지도하고 있다.

선교사역의 전반전은 선교사가 현장에 들어가 자생할 수 있는

토착 교회를 세우고 아울러 현지 지도자를 양성하여 현지 교회

방대식 선교사 | SEED USA 부대표

중앙아시아 고려인 동원사역

가치와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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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맡게 하는 것이다. 이제 그 후반전에서는 세워진 현지 교회들

이 스스로 지역 전도는 물론이요, 해외 선교까지 담당할 수 있도

록 파트너십을 가지고 도와주는 일들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막상 위에 언급한 독노회가 선교사역을 감당하려고 선

교부를 구성하기는 하였지만 경험이 일천하여 어떻게 선교사

를 훈련하고 파송하며 또 노회원들에게 선교의 비전을 심어주

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를 위하여 SEED 선교회에서

는 2012년 6월 한국에서 개최된 SEED 선교사 대회에서 2가정

을 크림 따따르 종족 선교사로 파송하였고(사진 참조), 2013년

CIS(독립국가연합) 지역 내의 한 국가에서 ICMS(그리스도를 본

받는 선교사 학교)를 개최하여 고려인 동원 사역의 일환으로 3

주 동안의 선교사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 훈련의 결과 8Units의

현지 고려인 선교사 가정이 선교사로 헌신하였고, 지금 크림 따

따르 종족 사역을 위하여 3가정이 현재 러시아의 크림 반도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 선교훈련을 받은 고려인 사역자

들을 통하여 독노회 내에서도 선교의 불이 번져 나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고려인 선교사 파송이 계속 뒤를 이어갈 전망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소련권에 한인 디아스포라(고려인)를 70여 년

전에 이미 준비시켜 주셨고 그들을 통하여 보다 전략적이고 효

과적인 선교사역의 문을 열어가고 계신다. 특히 SEED 선교회는

‘최우선 대상 종족 선교’라는 전략적 가치를 내걸고 제일 먼저

크림 따따르 종족을 선정하고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크림

따따르 종족 선교는 일반적으로 1세대 외국선교사가 직접 들어

가 교회를 개척하는 형태가 아니라 1세대 선교사들에 의해 양성

된 2세대 현지인 선교사가 투입되어 선교하는 형태로 발전되게

되었다. 이제는 명실공히 미국, 한국, 캐나다 한인교회와 현지

독노회의 지원을 받은 현지인 고려인 사역자들이 해외 선교사

로서 활동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CIS 전략회의에서 한 선교사는 중앙아시아를 향한 교회 개척

전략은, 첫째는 다민족 교회(multiethnic church)를 통해 공

개적으로 회중 중심적 교회(congregation oriented church)

를 개척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다민족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할 경우 교회 내에서 종족 그룹(ethnic

group) 별로 모임이 활성화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둘째는 현지 무슬림을 대상으로 하는 제자 양육 중심의 지하 교

회 개척 형태이다(discipleship oriented church planting). 후

자의 경우 대개 중앙아시아 같은 이슬람권에서는 ‘침투-정착-

접촉-1:1 양육-소그룹 모임-지하교회-지상교회’의 순서로 교

회 개척이 진행된다. 모든 사역은 제자 양육과 교회 개척에 궁

극적인 초점을 맞추어 현지인에 의한 현지인 교회 개척 운동

(church planting movement)이 속히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은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는 중앙아

시아에서 동원된 고려인 선교사들이 해당 지역 무슬림 선교는

물론이요, CIS 권 선교사로서 활발하게 사역할 수 있도록 많은

교회들의 협력과 참여가 절실하다. SEED 선교회는 하나님께서

새로이 흘러가게 하시는 현지 고려인 선교 동원의 물줄기의 한

가운데에 여러 교회들이 효과적인 선교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이정표로서 든든히 서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새로운 선

교 물줄기에 독자 여러분들의 아름다운 동역과 창의적 헌신을

소망해 본다.

3가정 파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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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탈리아 선교사 | 러시아

크림 따따르 종족과사역의 전개 및 전략

》 크림 따따르인들(Crimean Tatars, CT people로

도 불림 )은 공통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종교와 문화

를 공유하는 10개 이상의 하위 민족들로 구성된 소수 민

족 집단이다. 크림 따따르인들의 대부분이 지금은 러시

아로 귀속된 크림 반도에 살고 있다. 이들은 크림 따따르

어를 사용하며 이들의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1944년에

크림반도에서 추방된 후, 크림 따따르인들의 많은 수가

1989년을 시점으로 중앙아시아에서 크림반도로 다시

이주하기 시작했다. 지금 크림반도에 사는 크림 따따르

인들은 약 300,000명 정도 이다.

오늘날에도 크림 따따르인들은 여전히 미전도 종족 그

룹이다. 특별히 크림 따따르인들 30만 명을 대상으로 사

역하는 풀타임 선교사는 12가정밖에 없다. 이들을 통해

크림 따따르인들 중 겨우 50명 정도가 기독교인이 되었

다. 0.02%만이 겨우 그리스도를 알게된 것이다.

강나탈리아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4세로

한동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MK교사 선교사로 키르키즈에서 사역했다.

크림 따따르 종족 입양사역을 위해 2010년 크림반도로 파송되어

그곳에서 김빅토르 목사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둘 사이에 한 살된 딸 베라가 있다.

가치와 전략

08

Page 9: Seed vol02

여기서 그들과 생활하면서 크림 따따르인들의 문화와 정신에

대해 연구를 하고 전도하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함으로써, 우리

가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도록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리

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과 행동을 통해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

랑을 보여주고 오랜 우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

닫게 되었다. 크림 따따르인들이 모슬렘이기 때문에 기독교인

으로 개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기독교로 개종할 경우 그들의

신, 알라에 의해 영원히 저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들의 가

족과 지역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

고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복음의 가치가 그들의 삶에 어떠

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시작점이 되기 위

해서라도 그리스도에 대해 여러 번 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통해 사역해왔다.

1 기도

크림 따따르인들을 위한 엄청난 기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크림 따따르인들의 삶에 이슬람 요새를 파하시도

록 기도하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을 직접 선택하시도록

기도한다. 우리는 우리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

람들을 직접 인도하셔서 그들이 복음을 듣고 받아들일 수 있도

록 기도한다.

2 크림 따따르인들과 교제권을 형성하고

연구가 잘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과의 교제권을 형성한다. 예를

들면, 여러 아이가 있는 가족들을 방문하도록 하나님께서 문을

여신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가족들에게 가서 몇 가지 식품들을

나누어준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새로운 크림 따따르족을 알게

되고, 그들을 다시 방문하거나 그들의 아이들이 우리 영어 클럽

에 와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그들과의 관

계를 유지한다. 우리가 사람들과의 교제권을 이용하고 연구하는

또 다른 방법은 크림의 공립학교에서 건강 예방에 관련된 강의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크림 따따르인들의 학교뿐만 아니라 혼합

된 민족의 학교를 방문한다. 이 방법으로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

을 만나고 새로운 교제권을 형성하는 기회를 갖게 되며 또 다른

크림 따따르인들의 정착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수집한다.

3 크림 따따르인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영어 클럽을 진행하는 것이다. 많

은 어른과 아이들이 영어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크림 따따르인

들은 기쁜 마음으로 자녀들을 영어 클럽에 보낸다. 우리는 무료

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와 친

구가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우

리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 알리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

음으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법이 사용될 때, 하나님은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하신다. 또한, 우리는 그들에

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념일을 이용한다.

올해 우리의 주요 목표인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는 영어 캠프

를 더욱 조직적으로 체계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크림 따따르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

해 사용하는 방법과 전략이다.

09

Page 10: Seed vol02

》 저희는 1978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예수를 믿고 선교사

로 부름을 받아 1998년 인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현재 남인도 지역(타밀어를 사용하는 타밀나두 주)에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인도 동남쪽(스리랑카 옆)에 위치한 타밀나두

주의 인구는 약 7,500만 명이고, 기독교인의 수가 인구의 약 7%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타밀인들의 민족성이 한국과 비슷하여

열정적이고, 순수하며 신앙적으로 인도 복음화를 위해 가장 많

이 헌신하여 인적으로, 물질적으로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처음 1- 2기 사역 기간 동안(8년)에는 마두라이 근교에 있는 ‘코

다이카날’에 거주하면서 ‘마두라이’에 있는 현지 선교단체인

ICGM(인도교회 성장 선교회)과 협력하여 신학교 사역, 전도 집

회, 목회자 세미나 및 훈련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3기 사역

(2008)을 시작하면서 타밀나두 주 수도인 첸나이에 정착하여

제자훈련 사역과 교회 개척자 훈련 사역을 통해 인도 복음화를

섬기고 있습니다.

저희가 인도에 들어가서 약 6개월 정도 있었을 때(1999년 봄)

하나님께서 주셨던 사역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목회자 훈

련, 교회 개척, 문서 사역, 미션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ICGM과의 협력 사역 외에는 문이 열리지 않아 계속 인

내하며 준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기간이 하나님께서 저

희를 훈련하고 다듬어 가시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역보다 먼저 저희 자신을 원하셨다는 것을 오랜 기다림의 훈

련을 통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사역 비전을 받은 지 약 10년 후인

2009년 1월부터 목회자 제자훈련과 평신도 제자훈련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고, 2011년부터 교회 개척자 훈련 사역을 시작하

여 교회가 없는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제자훈련 사역

3기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메샥 목사를 붙여 주셔서 제

자훈련 사역의 비전을 나누게 되었고, 그로 인해 목회자 12명

과 함께 제자훈련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월, 8월, 그리

고 11월에 한 반씩 세 반을 2009년에 시작하여 25명이 수료를

하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지금까지 약 300여 명의 목회자들이

제자훈련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교회의 1,500

여명의 평신도들이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남인도 첸나이(CHENNAI)

제자훈련 사역과 교회 개척 사역

김옥룡 선교사 | 남인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 19 ~ 20

가치와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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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1: Seed vol02

목회자 제자훈련반은 46주 과정으로 마태복음 28:16-20 말씀

과 디모데후서 2:1-6 말씀을 모토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로 살아가는 것과 재생산을 목적으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목

회자들이 이 훈련을 받으면서 삶이 변화되고, 예수님의 비전을

공유하게 되면서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에서 평신도 제자훈련반

을 만들어 훈련을 시키도록 하여 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을 훈련

시키고, 평신도 헌신자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목회자 제자훈

련반은 현재 타밀나두 주 절반 지역(30개 군 중 16개 군)에서 실

시하고 있으며 훈련을 받은 목회자들이 제자 삼는 사역을 자기

교회의 비전으로 삼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교회 개척자 훈련 사역

목회자 제자훈련 사역과 평신도 제자훈련 사역을 통해 헌신하

는 성도들이 증가하자, 2011년에 교회 ‘개척자 훈련반’을 개설

하여 헌신된 평신도들을 훈련하여 교회 개척 사역을 하도록 돕

고 있습니다. 2011년에 시작하여 2012년 5월에 두 교회에서 23

명이 수료를 하였고, 그들을 통해 교회가 7곳에 세워졌으며, 기

도 처소가 6곳에 세워져서 사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 1월 말에 3개 군에 있는 7 교회에서 40여 명이 시작하여

훈련을 받고 있으며 여러 개의 기도 처소가 이미 세워져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회 개척자 훈련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처음

3개월과 후반 3개월로서 첫 3개월 동안은 훈련을 받으면서 사

역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그동안 훈련을 받는 사람들은 기도

하면서 함께 사역할 파트너를 선정하고, 사역할 마을을 선정하

고, 마을의 상황 실태를 조사하며,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루디아

(사역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사람을 지칭함)

찾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준비된 것을 가지고 후반 3개월

동안 실습을 하게 됩니다. 매주 마을에 가서 땅 밟기 기도와, 주

민 사귀는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루디아와 함께 기도

회를 가지기 시작하며 매주 훈련을 받고, 경험을 나누면서 사역

을 준비하게 됩니다. 6개월 훈련이 마쳐지면 그들을 위해 전도

팀을 보내 전도 집회를 하도록 하고, 의료 선교팀을 보내어 개척

사역을 돕게 됩니다.

제자훈련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지고, 또 제

자로 세워진 성도들이 헌신하여 교회 개척자로 세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훈련 사역과 교회 개척자 훈련 사역은 떨어

질 수 없는 함께 가는 사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나서도 아니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

님께서 인도의 복음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가

운데 저희가 그 작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하나

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기쁨과 감격으로

사역에 임하고 있습니다.

모든 훈련 사역은 훈련받은 목회자들이 자원하여 섬김으로 확

장되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비전이 아니라 각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비전으로 삼고 사역에 임하고 있어 이것이 하

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저희는 현재 안식년으로 미국에 들어와 있지만 이미 세워진 현

지 목회자들이 기존의 사역을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 사

역이 모든 인도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비전이 되어 예수 그리

스도의 제자가 가득한 나라, 70만 개가 넘는 인도의 마을 마을

마다 하나님의 교회가 가득한 그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사역자

들과 그 훈련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1

Page 12: Seed vol02

한 번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삶을 드려본 적이 없던 청

년이, 평생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결단, 그리

고 주님께 온전히 헌신한 내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실 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속에 하나님의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한 텀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감사한 일

들 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보입니다. 딸아이의 웃음소리에도 하

나님의 미소가 보이고, 헌신적인 아내의 섬김에도 하나님

사랑이 보입니다. 체계적으로 준비한 선교가 아니었기에

최대한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를 썼고 성경만이 유일한

잣대로 삼아 끊기는 인터넷 방에서 한국의 목사님들의 설

교 말씀을 듣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현지 아이들을 향한 마음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일을 시작

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린이 관련 프로그램이

있으면 가능한 많이 배우고 습득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

겠다 싶다가도 결국 망가지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

서 깨달은 것은 현지 동역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지 아이들을 섬기는 데는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외부

인보다는 현지 선생님이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는 사

람도, 아는 교회도 많지 않아 선생님들 수고비도 충분히

줄 수 없었습니다. 도와주는 현지 크리스천 선생님들은 대

부분 수고비를 원했으나, 저는 고집스레 그런 분들과는

페루에서유동윤 선교사 | 페루 쿠스코

평신도 독신 선교사로 페루 쿠스코에서

사역하다가 KOICA 단원으로 그 곳에 온

김나윤과 가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 딸 유진이가 있다.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12

Page 13: Seed vol02

일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왔다가 떠나갔습니

다. 힘들어 할 때마다 하나님은 제게 이런 마음을 주셨습

니다. ‘너 어딜 쳐다보고 있는 거야? 나를 보라고. 나만 바

라보라고…….’ 결국은 무릎을 꿇게 되었고 기도로 승부를

걸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쿠스코 한류 클럽 청년들

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말씀대

로 살아야 한다고 권하였습니다. 대부분이 가톨릭 청년들

이었고 교회에서 상처를 입고, 예배에 출석하지 않는 청년

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하고 멀리하던 청년들이 조

금씩 다가오면서, 그 중에는 성경을 배우러 스스로 찾아오

는 이도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스스로 죄에서 떠나려고 애

를 쓰고 노력했습니다. 하나님과 삶의 목적을 찾으려고 기

도했고 하나님을 만난 청년들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 중에 포기하고 아직도 방황하는 청년들도 있지만

옛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청년들도 생

겨나기 작했습니다. 동역하는 현지 선생님들은 수고비를

바라지 않고 자신들의 사비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습

니다. 저에게는 놀라운 일입니다. 얼마 안가 없어질 줄 알

았던 기도모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나누고 기도하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의 은혜입니다.

사역이 뜻대로 진행이 되지 않을 때마다 하나님은 또 제게

‘너는 왜 네 힘으로 일하려고 하니, 이 일은 내 일이니 내가

이끌어나갈 것이다. 너는 그저 내 안에서 누리고 나로 인

해 즐거워하면 된다.’는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모든 세상 짐을 다 지고 있는 나 자신에게 자주 모

순을 느꼈습니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내가 뭐하고 있는

거야. 그저 하나님과 동행하면 되는 것을…’ 내가 기를 써

봐야 내 능력만큼만 사역이 진행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해냈습니다. 그 후로는 스트레스

를 받을 때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여겼

습니다.

어느 날 또 다른 고민에 싸였습니다. 선교 소식지에 보면

다른 선교사님들은 저렇게 사지에서 목숨을 걸고 사역하

시는데 나는 이래서 되는 것일까? 몇 달에 걸쳐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성도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세상

에 선교사는 많은데 순교자는 적습니다.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네가 싸워야 할 영적 싸움이 이곳에도 있다.’

악한 영이 부모를 통해 아이들을 붙잡고 있고, 하나님의

영이 선생님들을 통해 아이들을 붙잡고 있는 꿈을 꾸었다

고 현지 선생님이 찾아왔습니다. 제 자신이 해야 할 영적

싸움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네 목숨보다 중요한 자존

심도 내려놓고 내 말에 순종해야 한다. 네가 남들에게 무

심코 분을 내는 것도 내 영광을 가린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것 역시 목숨 걸고 선교하는 순교자와 충분히

비할만하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순간에도 왜 이렇게 죄의

유혹들이 강한지 넘어지고 쓰러지고 또 낙심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여지없이 찾

아옵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 간구합니다. 성령님만이 나를

일으키시고 주님께로 향할 수 있게 도우실 수 있습니다.

더욱 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니 어느덧 캄캄한 밤이 되었습니다. 희한하

게 오늘은 짙은 어둠이 주님의 품처럼 포근하게 느껴집니

다. 멋있는 큰 건물도 허름한 흙집들도 짙은 어둠 속에 자

취를 가리고 초롱초롱한 가로수 불빛만이 온 세상을 덮습

니다. 힘들었던 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하루, 아픔과 좌절

도 기쁨도 슬픔도 심지어 실수로 인해 불안에 떨던 순간들

도 오늘 밤은 우리 주님께서 덮어주시고 쉼을 주시는 하나

님의 용서인 것 같습니다.

유동윤·김나윤 (유진) 선교사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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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4: Seed vol02

‘언어는 문화다. 문화는 삶이다.’

아랍인들의 삶과 문화 속에 들어가 언어를 습득하며 2

년 9개월째 지내고 있습니다.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좌충우돌하

며 무슬림들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리려 지식을 따라 사랑해야

지, 이들을 이해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섬겨야지 노력하지만 여

전히 이들에게 더 사랑을 받는 것 같고 대접받는 것 같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니?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맘과 힘으로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힘겨울

때마다 이 고백으로 결단하고 또 결단하여 일어나게 됩니다. 모

든 것이 새롭고 막막했던 1년차, 알아 갈수록 더 멀어 보였던 2

년차, 아는 만큼 사랑하기가 더 버거워지는 3년차이지만 오직!

믿음으로! 복음의 씨를 뿌립니다.

처음에는 현장에서 물건 하나 사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냉장고

하나, 세탁기 하나 사는 모든 것이 큰 일이었습니다. 말이 잘 통

하지 않아 세탁기를 3일 동안 혼자 세팅하기도 하고, 샤워하다

가 물이 끊기고, 밤에 생쥐가 화장실 문을 갉아먹고, 전력이 부

족해서 화장실에 불이 나가고 그나마 침침한 조명에 가끔씩 찾

아오는 정전까지……. 한국의 70, 80년대가 이랬던가?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고 때로는 재밌고 때로는 짜증 나고 그러다가도

주님을 깊이 만나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곳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형에 위치한 사해

와 세례요한의 회개운동과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천국 운동이

근원지였던 요단강이 있는 곳이며 하나님의 역사가 가득했던

성지로 가득한 성경의 요단 동편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북으로

는 4년째 전쟁이 계속되는 시리아가 위치해 있고, 그 오른 편에

는 이슬람극단주의(ISIS) 단체가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많은 기독인들을 학살하며 세력을 떨치고 있는 이라크가 위치

해 있고, 요르단 서편으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라는 아

브라함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예들이 수천 년 간 갈

박요셉 선교사 | J국

축복의 길

네가 나를 사랑하니?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14

Page 15: Seed vol02

등으로 여전히 서로를 증오하고 대적하고 있습니다. 남

으로는 이슬람 최대 성지, 메카가 있는 사우디아라비

아가 위치해있으며 이렇게 각자의 종교적 메시야

를 갈망하며 성전(聖戰)을 수행해 나아가고 있습니

다. 그 중심부에서 역사와 성경 속에서 늘 피난처와

도피성(길르앗 라못)으로 사용되었던 아랍의 심장,

요르단이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이 땅에서 피난

온 자들과 나그네 된 자들의 친구가 되길 원하시고, 아

둘람 동굴에 빚지고 원통한 다윗의 군대와 같이 하나님

의 나라를 완성할 하나님의 군대로 일으키시길 원하십니다.

아멘.

현재, 저희가 사는 북부 도시에는 60만 가량의 시리아 난민들

이 들어와서 3, 4명에 1명꼴로 시리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데 아직 모든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교제하며 간증하며

복음을 나누는 전도사역은 너무나 쉬운 상황입니다. 시리아 난

민은 내국인이 아니라 구제와 함께 더 적극적인 복음사역이 가

능한 영혼들입니다. ‘이슬람권은 전도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

을 듣고 왔지만 이곳은 어느 곳보다도 쉽게 종교적인 주제가 나

오게 되어 자연스레 저의 신앙을 간증할 수밖에 없고 그들은 기

독교인들을 이슬람의 전도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오히려 대화

식 전도의 문이 쉽게 열리는 경우가 늘 있습니다. 그들은 무신론

자들을 동물 취급하듯 어찌 창조주를 부인할 수 있느냐며 관심

밖에 둡니다. 중동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류 바람이 불어

K-pop, 한국 드라마를 많이 즐겨 듣고 봅니다. 우리보다 한국

연예계 소식을 더 잘 알고 한국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

국 사람들은 이들에게 연예인처럼 호기심과 환영의 대상이 됩

니다. 지금, 중동에서 한국 선교사가 선교하기에 너무 좋은 상

황입니다. 전쟁 당한 시리아인들도 전쟁을 겪었던 한국인들의

얘기에 마음과 귀를 엽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최근에 ‘쿠’라는

무슬림 친구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지요. 형제의 고백을 들어보면 ‘세상의 모든 문제(전쟁, 미움, 부

패..)의 근본 이유가 죄이며 이 세상을 구원할 방법은 오직, 희생

적 사랑만이 답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참된 진리요, 죄인을 대신

하여 죽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라고 고백했습

니다. 마치 아기가 없던 3년차 신혼부부에게 아기가 태어난 듯

조심스럽고 설레기만 합니다. “주님! 이 땅에 음부의 권세가 해

하지 못 할 교회를 세워주십시오! 아랍 민족을 변화시킬 현지 영

적 지도자가 될 제자를 주시옵소서!” 기도했던 기도가 응답이

되는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합니다. 절망의 문턱을 들어서려고 할

때마다 주님은 이렇게 소망의 빛을 주십니다. 무슬림들이 오랜

종교의 전통을 깨고 돌아오는구나! 복음이 능력이구나! 여전히

이 친구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여기 무슬림권에서는 영접자 한

명이 나오면 너무 신기하고 귀한 존재가 됩니다. 중동에서는 서

로의 종교를 존중하되 적극적이고 공개적인 포교는 법적으로

불법화되어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회와 가족들에게

버림받을 것을 각오해야 하는 환경이라 이런 난관을 뚫고 일어

나는 현지 그리스도인을 보면 너무 감격스럽고 말할 수 없이 기

쁩니다. 이곳에서는 어린이와 교육이 민족의 미래인데 시리아

난민 아이들이 4년째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 안에서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증후군으로 고통당하고 있고, 많은 청소년들이 생

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난민들의 전인적인 치유

사역과 말씀을 심어줄 기독교 문화, 교육 사역이 너무나도 절실

한 시점입니다. 운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주님이 주신 달란

트와 은사를 가지고 이들을 전인적으로 돌보며 치유할 하나님

의 교회와 일꾼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150만이라는 시리아

난민이 3년 사이에 요르단에 유입되었습니다. 나그네 되고 고

아와 과부 된 이들을 도울 하나님의 손길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고백처럼 “주님!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

니다... 저의 믿음을 붙잡아주시옵소서!” 보이지 않고 막막하고

막역한 사역 현장 가운데 꿈을 꾸지 않고 믿음을 붙잡지 않으면

하루라도 쉽지 않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길이며 축복

된 부르심의 길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 가운데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주님의 예언과 약속은 역사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예

루살렘에서 시작되었던 복음이 이제 복음을 받지 못한 아랍, 무

슬림들에게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어둠의 역사로 주의 심판의 진노를 쌓아가며 그 죄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정도로 타락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우리 주님의 제자 된 몸 된 교회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

지 따라가며 복음과 함께 고난 받으며 빛의 역사의 종착점을 향

해 모든 민족들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행복한 선교의 길! 주

님을 맞이하는 길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걸어가는 가장 복된

길입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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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6: Seed vol02

예루살렘에 거주한지 아직 만 2년이 안되었지만, 이전에 사

역했던 온두라스와 다른 선교 대상 국가들과는 판이한

나라가 바로 이곳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흔히들

이스라엘을 단지 성지순례지로만 인식하는 그 사고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평생에 한 번 정도 방문하여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사진 찍다가 며칠 지나면 훌쩍 떠나서 마음속에

기념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비록 사람마다 부르심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전에는 이스라엘

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저희로선 이곳에 산다는 것이 실로 꿈만

같습니다. 성경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고,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서 지금도 깊은 숨을 내쉬는 그런 땅처럼 느껴집니다. 옛적에 하

나님께서 내 땅, 내 백성이라고 친히 말씀하신 이곳에 유대인들

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라틴 알파벳 언어와는 결별하고 셈족 어

인 히브리어를 어떻게 배워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막상

예루살렘 거리나 재래시장에서 그리고 버스나 전철 안에서든지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들이 제 각각의

소리를 낼 때마다 이곳에서의 삶이 다양하면서 액티브 할 수 있

겠다 하는 기대가 넘쳤습니다.

온통 검은색으로 중무장한(?) 종교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의 사람들은 이방인인 저희들을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예

루살렘 최고 번화가라고 하는 ‘벤 예후다’거리마저도 우리나라

의 소도시 중심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소박하고, 도

시문화에 뒤떨어진 삶의 모습들을 지닌 채 늘 바쁜 걸음걸이의

유대인들을 이 땅은 묵묵히 받아내고 있습니다.

지난 삶이 일 중심이었기에 ‘난 여기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

을까?’ 하던 염려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페루에서 알리

야(본토 귀환) 한 ‘베냐민 크레 포스트만’ 목사님을 성령님께서

만나게 하셔서 지금의 ‘렘지온 공동체’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중남미 교회를 대상으로 방송 신학과정과 함께 성지 투어를 위

한 작은 여행사를 통하여 재정적인 도움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알리는 사역을 조금씩 감당해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네게브’

에 대한 비전을 주셔서 이스라엘 정부가 조만간 추진의 속도를

낼 네게브 개발 프로젝트에 주목하고, 그곳에 편만할 ‘스파라

드’ 유대인들이(스페인과 포르투갈에 거주했던 유대인들, 혈통

상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들) 속히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을 놓

고 기도하면서, 네게브의 중심도시인 ‘브엘쉐바’에 교회를 개척

할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현지 메시아닉 쥬 교회의

리더들과 교제를 통하여 동역의 기회가 마련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오전, 예루살렘 북쪽에 사는 저희 부부는 예루살렘

올드시티(예루살렘 성) 북쪽에 있는 다마스쿠스(다메섹) gate를

통과하여 남으로 내려가면서 통곡의 벽을 거쳐서 남쪽에 있는

Dung gate를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다윗성 기도의 집’으로 내

려가서 임재 안에서 기도의 시간을 보냄으로써 한 주일을 마감

하고 있습니다. 이 다마스쿠스 게이트 인근은 아랍 사람들이 사

는 지역으로 수시로 이스라엘 경찰과 군인들이 지키고 있습니

다. 그리고 무슬림들도 금요일에는 어김없이 동일한 다마스쿠

스 게이트를 통해 황금돔이 있는 알악사 사원으로 향하고 있습

니다. 저희들이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또 다른 이유는 이 거

리를 걸어가면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

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유대인들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상

황들을 정리해 나가면서 진정 이 땅에서 저희들이 해야 할 일들

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AD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하면서 백만의 유

대인들이 살해당하고, 드디어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전 세계

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

판의 결과로 이스라엘 나라는 없어졌고, 이방 교회가 영적 이스

라엘이고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이라는 소위 ‘대체 주의’가 교

부 ‘오리겐’(185~253)에 의해 주장됨으로써 본격적인 유대인

메시야를 기다리며장다니엘 선교사 | 이스라엘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16

Page 17: Seed vol02

핍박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 십자군 전쟁, 마르틴 루터 그리고 나치의 홀로코스

트 등 유대인들이 받은 비난과 1900여 년간 전 세계를 유리방황

하면서 당한 수많은 죽음과 박해를 이겨내고 1948년 기적적으

로 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 그 자체였던 것입니

다. 그러니 유대인들에게 나라를 지킨다는 개념은 목숨을 거는

것과 동일하며 지고(至高)의 가치요, 최우선 과제입니다.

이스라엘에 살면서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은 유대인들은 차를 탈

때 도무지 줄을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차가 오면 서로 타려고

발버둥을 치는 듯한 모습으로 차에 오릅니다. 심지어 같은 방향

의 차가 바로 뒤이어 오는 것을 보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처

음 차에 오르려고 애씁니다. ‘참 멍청한 사람들이다, 뒤차를 타

면 편안히 자리에

앉아서 가는데…’

라는 생각을 합니

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르다 보니 그

들의 사정을 이해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타고 떠나야

해. 뒤에 무슨 일

이 벌어질지 모르

니까…’ 항상 쫓기

고 당하면서 살아

온 조상들의 삶의

DNA가 고스란히

유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연민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항상 듣는 소리가 경찰차나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

그리고 요즘 가자 지구와의 전쟁으로 인하여 가끔씩 들리는 대

피 사이렌 소리들… 항상 긴장하면서 그리고 높은 물가에 살아

가야 하는 평범한 유대인들의 삶은 여유가 없습니다.

종교도시인 예루살렘에서의 삶은 참 순박하고 검소한 모습들

입니다. 무엇보다도 팔레스타인과의 긴장관계는 크고 작은 주

기적인 국지전으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

력해도 아랍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아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

기까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자기 살던 땅을 빼앗

기고(?) 핍박을 받으면서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려니 하고 생

각합니다만, 성경은 훨씬 더 옛날을 상고하게 합니다. 아브라함

이 낳은 약속의 아들 ‘이삭’과 종의 아들 ‘이스마엘’ 그리고 하나

님에 의해 버림받게 된 이스마엘과 그 후손들…. 성전산에는 황

금돔이 있고 그 안에 있는 바위는 우리가 아는 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던 곳인데, 무슬림들은 아브라함이 이스

마엘을 바치려 했던 곳으로 바꾸고 바로 그 바위에서 무함마드

가 백마를 타고 승천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계 3대 유일

신 종교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곳 예루살렘의 영적 기상

도는 충분히 짐작 가고 남음이 있습니다. 조금도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몰락과 죽음을 의미하니까요.

이번 전쟁으로 많은 물적, 인적 피해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렇다고 뭔가 가시적인 돌파구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 언젠가

같은 국지전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면 휴머니즘을 주창하는

세계 언론들은 또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것입니다. 이

전쟁의 본질은 영

적인 싸움입니다.

전쟁을 겪으면서

유대인이든 팔레

스타인이든 이젠

좀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의

소원은 더 깊어지

겠지요. 하지만 어

느 한 쪽이 큰 양보

를 하지 않은 한 매

우 어려운 과제입

니다. 그래서 이 땅

의 진정한 샬롬은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만이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성경 속의 무대로만 생각하고, 주님의 초림으로 이

스라엘과 유대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가르쳐온 기독

교의 대체신학을 돌파하여 이스라엘과 유대인은 오늘도 성경

의 예언들을 이 땅에서 실현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곳

종교인들의 시대착오적인 듯한 삶의 모습 가운데 진정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들은 늘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예슈아’가 그들이 그토록 오매불망 기다리던 메시아인 것을 성

령께서 눈을 열어 알게 하시는 그날이 오기를 간구합니다. 그것

은 인류 역사의 마감이자 심판과 완전한 구원의 시작이기에 이

곳에 살면서 우리의 삶을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살지 않을 수 없

는 이유입니다.

17

Page 18: Seed vol02

한때 바둑을 즐겼던 적이 있었다. 어느 때는 몇 수 앞

을 보며 흐뭇해 하다가 어느 때는 한치 앞을 모르

며 전개되는 흥망성쇠가, 소탐대실, 기사회생의 승부가

정말 짜릿하다. 또한 등산을 좋아했는데 만일 내가 죄인

임을 몰랐다면 지금도 매주 등산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눈 앞의 산을 오르면 끝인 줄 알고 열심히 가면 또 다른

산이 앞에 있어 오르고 내리고를 여러 번 반복해야 정상

까지 가게 된다. 오르는 길에 흘린 땀이 많을수록 정상을

정복했을 때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전경이 주

는 성취감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내려올 때가 더 조심스

러운 것이 산이다. 이렇게 내가 바둑과 등산을 좋아했던

것은 그 모양이 우리의 인생을 닮았기 때문인 듯하다.

선교사의 삶이 별거 있겠는가? 그저 하나님 앞에서의 인

생이다.

사람에게 있어 어떤 목표나 비전을 갖게 된다는 것은 참

으로 소망과 힘과 용기,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이다. 내게

도 아버지의 은혜를 따라 허락하신 원대한 비전을 주셨

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그 기쁨과 감동을 안고 이곳에 왔

지만 수년이 흐르는 동안 그 버전은 성령께서 나를 통해

서 이루시는 비전이 아닌 내가 하나님을 이용해서 이루어

야 하는 나의 성취 내지는 짐이 되었다. 하나님 없는 인생

이 그럴듯해 보여도 빛 좋은 개살구이듯 하나님 없는 선

교도 매한가지로 불쌍하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정권이

산다는 것송이센 선교사 | K국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이나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기쁨입니다.롬14:17, 쉬운 성경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18

Page 19: Seed vol02

바뀌는 두 번의 혁명(2005년, 2010년)을 겪으며 그 혼란함과 무

법함이 정리되고 안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강도들

이 우리 집을 덮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인 적이 있다. 가

장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걱정이지만 그 내면에는 아버지에 대한

불신이 도를 넘어 두려움의 지배를 받던 시간들이었다.

나에게 있어 가장 부담스러운 순간 중의 하나는 보고를 해야 하

는, 남들 앞에 서서 평가받는 듯한 그런 시간들이다. 그래서 한

국에 나갈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사람들 앞에 ‘선교’라는 주제

로 앞에 나아갈 때 내 양심 앞에 참 많이 힘들다. 나는 스스로 다

른 사역자들과 무수히 나를 비교한다.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 뭐

라도 된 것처럼 높아지고 때로는 한없이 낮아지고 의기소침해진

다. 내가 나를 남과 비교해서 보는 것과 같이 남도 나를 볼 것이

라는 큰 불편함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나를 나의 행위와

업적으로 비교하시며 보실 것이라는 심한 왜곡 가운데 있는 것

이다.

이런 지극히 인간적인 나의 모습 속에서 행복은 찾아볼 수 없다.

평안도 없고 그저 불평과 의문만 있다. ‘아버지는 이곳에 왜 나를

보내셨을까? 이렇듯 무지하고 한심한 나를… 그냥 한국에 두셔

도 됐을 텐데…. 아버지가 능력이 없으셔서 나의 도움이 필요하

신 건가? 그건 아닐 텐데, 도대체 왜? 나를 이곳까지 인도하신 진

정한 그분의 의도는 무엇일까?’ 깊이 고민하며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거울에 비추인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롬 11:6

아버지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나의 행위, 은혜만으로

는 부족해서 나의 열심과 노력과 의, 그 무언가가 더 필요한, 그

래서 은혜를 구하고 그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그 무언가

를 더 짜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허락하신 은혜에 뭔가 나의 행

위로 보답해야 한다는 이상한 거짓에 빠져있는 나의 모습을…

그러한 상태로 삶을 살기에 원하시는 참 생명 구원은 온데간데

없고 때로는 두려움이, 비교의식이, 교만함이, 열등감이, 무수한

거짓들이 나를 지배했던 것이다. 은혜가 은혜 되게 하기 위해서

는 나의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은혜로 100% 충분한

것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님의 첫 외침은

단순히 거짓말하고 도적질하는 그런 보이는 죄를 회개하라는 의

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회개하라’의 의미는 네 인생이,

너라는 존재 자체가 죄의 속성을 벗을 수 없는 태생적인 죄인-원

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의 내면을 본다면 부인할 수 없는-이

라는 사실과 스스로 그 죄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임

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의미임을 새삼 깨닫는다. 죄

인인 우리에게는 정말 구원자가 필요한데 그 구원자는 오직 예

수님뿐 이시다. 그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되는 것이다. 하물며 만

물의 창조자 되신 분의 동역자로 세우신 은혜를 말해 무엇 하겠

는가? 내가 누군가를 살리고 싶다고 해서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닌듯하다.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은혜로 이루신 하나님의 나라

를 온전히 누릴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나님을 믿

는다고 하면서 보이는 세상 일과 사람의 이목에 관심을 집중하

고 산다면 그것을 보는 이웃들이, 친구들이, 현지인들이 거짓임

을 먼저 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더 이상 죄인

이 아닌 전능자 앞에 당당히 설수 있는-과 평강-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통한 창조자와의 평강, 가족 간의 평화, 이웃과의 화

평-과 기쁨-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서 갖는 당연한 기쁨-을 볼 때

자연스럽게 선포 되는 것이 복음이며, 증명되며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참 생명이다. 하나님이 내게 먼저 원하시는 것은 그 이

루신 은혜-하나님의 나라를 그냥 누리는 것이다.

이번 여름에 두 달 간의 한국 방문을 통해서 한국의 여러 뉴스와

상황들을 경험하며 진정한 선교지는 이곳 K국이 아닌 한국이

란 생각이 든다. 한국은 참으로 부요해서 더 이상 하나님의 도우

심이 필요 없는 것처럼, 그래서 구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참으로 풍성하다. 그리고 분주하다. 겉모습으로는. 우리 인생은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로만 살 것인지 아니면

은혜 위에 나의 의-행위, 노력, 열심, 헌금, 율법 등등을 더할 것

인지. 고국에서의 인생이 그러하듯 선교사의 삶이 뭐 특별한 것

이 없다. 다른 인생과 마찬가지로 살면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는

데 때로는 교만하여 넘어지고, 다시 죄인임을 고백하며 주님을

의지하기를 반복한다.

단지 바라는 것은 교만해지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늘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되심을 고백하며 삶으로 그 고백을 증

명해갈 수 있도록 성령님이 인도해 주시기를 빌 뿐이다. 내게는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절실하다. 진심으로.

19

Page 20: Seed vol02

일본에서 목회하고 있었을 때에는

교회 사역이 바빠서 가정을 돌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가정의 중요함을 알

고 있었지만 일이 우선시 되었습니다. 교

회를 위해 가정을 희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미얀마에 선교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언어와 문화도 몰라 생

활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

나 저와 아내 소정과 유우키(그 당시 5개

월 아기), 가족 3명이 24시간 항상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해서, 어려움도 함께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에서의 사역초기는 시간은 많고

사역은 별로 없었기에, 일의 분주함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저녁 시원할 땐 마당 대

나무 의자에 앉아 하늘의 흰 구름을 보면

서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

가 회복되면서 저의 마음이 치유가 되었

고 저와 소정과의 관계도 깊어졌습니다.

밤에 유우키를 재우고 나서 차를 마시며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같이

웃고, 기도하고, 집안일과 육아도, 모든

일을 같이 했습니다. 저와 유우키의 관계

도 기쁨이 되었습니다. 단 둘이 놀고 손잡

고 산책하곤 했습니다. 가족 3명이 매일

가정예배하고 밖에서 사역할 때도 항상

같이 다녔습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저의 인생 우선순위는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제1은 주님과 저

의 관계, 제 2는 저와 아내의 관계, 제 3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 선교나 교회 사역은

제 4, 제 5가 되었습니다. 이 우선순위에

따라서 하루의 시간을 사용할 때, 저의 마

음에 평안이 회복되고 여유도 생겼습니

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가

족)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선교사이기

전에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우리 가정의

총책임자이다.” 이것이 저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제 1사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우키가 커가면서 교육을 고민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사는 도시에는

일본인 학교도 한국인 학교도 없습니다.

국제 학교는 너무 비싸고, 미얀마 학교에

서는 우상숭배를 가르칩니다.

일본에서 가정교사를 부를 생각도 했는

데 잘 안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에

일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친구의

초대로 홈 스쿨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홈 스쿨에 대해서 많은 의심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의를 듣고, 실

제로 홈 스쿨을 하고 있는 가정의 체험담

을 들으면서 의심들이 사라졌습니다. 무

엇보다 홈 스쿨로 자라는 아이들이 부모

의 말을 잘 듣고, 동생들을 돌보고, 다른

이에게 예의 바르며, 예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

다. ‘나의 아들도 이렇게 키우고 싶다’ 고

느꼈습니다. 그길로 저는 소정과 “우리

집도 홈 스쿨로 해보자!”고 결심했습니

다. 홈스쿨을 하면서 제일 좋은 것은 부

모가 책임을 가지고 성경 말씀 그대로 가

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구절 암

송, 찬양과 기도, 예배 중 조용히 듣는 것,

부모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는 것, 집안일

을 돕는 것,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 인사

하는 것,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 이

런 성경적인 가치관과 태도를 24시간 함

께 생활하며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 기

반 위에 성경 읽기, QT, 한자 쓰기, 산수

같은 것도 가르치고, 자습하게 했습니다.

자녀 5명의 홈스쿨이또오 히또시 선교사 | 미얀마(일본 안디옥 선교회)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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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1: Seed vol02

우리는 “천국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집

교육의 최종 목표는 좋은 대학·직장에 들

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

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유우키(장남)는 만 5세 때 자기 죄를 회개

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세례를 받았

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같이 전도하

고 사역하는 동역자입니다. 성탄절에는

미얀마어로 연극을 준비하고 현지 교회

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올해 만 12세가 되

는데 장래 찬양과 예술을 통해서 선교하

고 싶다는 비전을 가지고 준비 중입니다.

아키(장녀)도 만 5세 때 예수님과 인격적

으로 만나는 경험을 하고, 세례를 받았습

니다. 찬양과 춤을 좋아합니다. 말씀묵상

과 전도지 나눠주기, 공부를 스스로 하고

싶어 합니다. 오빠와 같이 잘 놀고 동생

들을 잘 돌봅니다.

저희 부부는 자녀가 2명이면 충분하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고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습

니다. 성경에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이고 자녀가 많은 것은 축복이라고 쓰여

있으며, 산아제한은 인간 중심적인 가치

관이고 낙태와 연결이 된다는 것을 알았

습니다. 저희는 충격을 받았고, 성경 말

씀 앞에서 심각하게 의논했습니다. 소정

도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이야기해 주었

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렸

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려고

아이를 더 주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거절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희는 앞으로 건

강이 허락하는 한 피임을 안 하고, 자녀의

수나 태어날 시기까지 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저희에

게 아주 큰 믿음의 도전과 모험이었습니

다. 그러나 주님은 저희에게 평안을 주시

고, 감당할 힘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이지(차남), 코오지(삼남),

미카(차녀)가 태어난 것입니다. 자녀가

많은 것은 정말로 축복이었습니다. 소정

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유우키와 아키도

동생들이 태어나서 기뻐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이가 축복이고 이

아이들이 앞으로 주님 나라의 일꾼이 된

다면… 아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성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선물)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상속지)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멀리까지 날라갈 수 있는 무기)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많이 있는)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사탄)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127:3-5

저희의 비전은 이렇습니다. ‘나의 아들·

딸들은 언젠가 땅끝까지 날아가서 영적

전쟁에 승리하는 최강무기가 될 것이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자기 시간이 없어지고 화나기도 하고 낙

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

를 위한 가치 있는 투자입니다. 인내를 가

지고 제자 훈련하고 양육하면, 이들이 세

계를 변화시키는 자들이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제가 자녀를 교육하는 게

바로 “선교”입니다. 그런 비전을 품으면

서 오늘도 열심히 애를 보려고 합니다.

21

Page 22: Seed vol02

인도 FO를 다녀와서

Only God박은영 선교사후보

2014년 나와 남편이 받고 있는 온누

리 전문인 선교학교의 선교훈련 과

정 중에 선교지 Field Operation(FO)

이 있다. 지금까지 몇 번의 경험이 있기

는 하지만 이번 FO는 우리 가정에게는

좀 더 의미 있는 현장훈련이었다. 그 동

안은 선교관심자로서 짧은 시간 동안

열방의 영혼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

는 단기선교의 형태였다면, 이번 FO는

SEED International 한국본부에 소속

된 후보 선교사로서 선교 현장의 필요

를 채우고 Business as Mission을 실현

할 수 있는 아이템을 탐색해보며 앞으

로의 사역 방향을 구체화해야 하는 목

적을 가지고 처음부터 부담을 안고 시

작했다. 학교 측에서 제시한 나라와 훈

련생이 직접 선정하고 동원한 나라 총

6개국 중에 우리 가정은 인도로 결정했

고 우리 부부와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

두 11명이 한 팀으로 꾸려졌다. 생계의

유지를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인도의

여성들과 길거리가 집이고, 놀이터이

고, 학교인 거리의 아이들이 사역의 대

상이고, 이들이 더 이상 구걸하지 않도

록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작은 기술을

가르쳐 하나의 BaM 기업의 모형을 만

드는 것이 사역의 목표였다. 우리 팀은

아이템을 찾아 모으기 시작했고 기도

모임을 할 때마다 여러 가지 사업 아이

템이 쏟아졌다. 나 역시도 머릿속에 떠

오르는 아이디어로 정말 이들에게 엄

청난 비즈니스사역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충만했다. 하지만 출

발 날짜가 다가오고 머리로 꿈꾸었던

아이템을 기술화하는데 한계에 부딪히

면서 기대는 근심으로 바뀌기 시작했

다. 나조차 전문가가 아닌데 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있을까 하는 자괴감

이 엄습해 왔다. 날마다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기댈 곳은 하나님 밖에

없었다. 처음 시작부터 하나님께 확정

받기 보다 사람들의 의견을 통해 아이

템을 선정하려고 했던 것에서 생긴 혼

란이고 나의 실수임을 깨달았다. 그렇

게 마음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나에

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마가복음 9

장 23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9:23

드디어 인도 땅을 밟았다. 인도의 환경

에 대해 여러 사람들을 통해 익히 들어

온 터라 각오를 단단히 해서인지 생각

보다 덥지 않았고, 생각보다 깨끗했다.

그리고 길거리의 아이들을 만나는 날,

우리는 아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향

했다. 원래 살던 곳에서도 쫓겨

나다시피 한 이들이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22

Page 23: Seed vol02

더 외곽에 있는 온갖 쓰레기가 뒤섞인

야트막한 숲에 낡은 천 조각 하나를 지

붕 삼아 살고 있는 모습을 그저 먼발치

서 바라보았다. 가까이 다가설 수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것이 이

들에게는 또 다른 아픔일 수도 있고 바

라보는 우리로서도 지금 당장 아무것

도 줄 수 없이 구경꾼처럼 서 있는 것이

미안하여 팀원 모두가 합심으로 기도

하고 그 자리를 뜨기로 했다. 그런데 어

딘가에서 한 아이의 엄마가 다가와 내

게 아이를 덥석 안기는 게 아닌가. 순간

첫 딸을 처음 품에 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한 미국인 선교사

님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아 온 아이들

이 해 같은 미소를 얼굴에 머금고 우리

를 뒤따랐다. 공부방에 아이들을 모아

놓고 목욕도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 입

히고 준비해 간 플레이톤으로 놀아주

는 내내 천국이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울렸다.

한국에서 자매들 4명이 준비해 간 비

즈, 리본, 양초, 에코백 만들기 등을 현

지 여성들에게 가르쳐 주는 이틀간의

사역도 주님의 넘치는 은혜 가운데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인도에서

는 현지 사역자들이 한 가지씩 실제 사

업으로 연결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

식이 선교사님을 통해 들려졌다. 나의

부족함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하나님이 만지시면 안 될 것

이 없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전서 3:7

성매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도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 새

로운 삶의 기회를 열어준 Freeset을 방

문하는 시간도 가졌다. 아침 예배 시작

부터 작업하는 모습을 돌아보는 동안

이들의 얼굴에서 더 이상 과거 상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음이 감사했다.

현재 Freeset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이

대략 200명 정도이고 아직도 이곳 집

창촌에는 3만 명의 여성이 있다고 하니

적어도 이런 기업이 150개는 더 세워져

야 한다. BaM 기업이 절실한 이유이다.

일주일간의 인도 FO를 통해 짧은 나의

믿음의 여정을 돌아보았다. 내가 여기

에 오기까지, 이곳에 서기까지 크고 작

은 풍랑을 견디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가장 호사스러운 배를 타고 너무

나 안전하게 이곳에 와 있음을 알게 되

면서 벅찬 감사가 흘러넘친다. 그리고

주님을 만난 이후 나는 과거의 습관 같

은 욕심을 버리고 자족함을 배우기 위

해 날마다 마음을 비우려고 애썼다면,

이제는 선한 욕심을 내기로 결단한다.

영적으로 메마른 자가 육적인 배고픔

에도 시달리는 참담한 상황을 두고 볼

수 없기에.

23

Page 24: Seed vol02

지난 9월말, 일주일간 정성헌선교사님을 모시고 라

오스 선교정탐을 다녀왔다.

여행기간 동안 우리는 수도인 ‘비엔티엔’과 인근에

있는 ‘방비엥’에 머물면서 현장에서 사역중인 관계

자들을 만나 교제하면서, 현장들을 돌아보았다.

라오스는 태국, 미얀마,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내륙국이므로 공산주의 국가

이며 동시에 불교국가이다. 공용어는 라오어를 사용

하며, 면적은 236,800 km²로 남한의 2배 크기이다.

인구는 680만명으로 150개 종족이 있으며, 국토의

80%가 산악지대로 대부분 산간지방에 거주한다. 마

을의 중심에는 큰 절들이 있고, 가정에는 ‘흐인피’라

는 신당을 두기도 한다. 라오스 정부는 불교를 제외

한 다른 종교의 포교활동을 금하고 있다.

수도 비엔티엔 시내는 우리나라 70년대 지방 소도시

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골목길은 대부분 흙길이

었고 길가에는 숯불로 음식을 굽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도시의 대부분은 3~4층을 넘지 않는

낮은 건물들이었고 이차선 도로 위에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서로 중앙선을 넘나들며 묘기하듯 지나가

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교통사고

사망률이 높은데 비해 병원과 의료시설은 부족하고

매우 열악한 실정이었다.

새벽 5시 30분, 아침 시장을 둘러보러 나왔을 때 우

라오스 정탐기김진화 선교사후보

리는 길거리에서 시주

를 받고 있는 승려들

의 탁발행렬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매일 아침 맨발로 마을을 돌며 걸식수행을 하면

서 음식을 시주하는 이들에게 축복을 기원한다. 또 이른 아침부

터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길 위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는 불교

신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종교적 열심도 함께 엿볼 수 있었

다.

라오스의 교육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현지 대학에서 학업중인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정규 국립대학의 교수진의 대부분이 박

사학위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 초.중.고등학교의 교사들은 적

은 급여로 인해 온전히 교육에 전념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고

한다. 반면, 라오스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취업과 장래를 위해

외국어와 보다 나은 선진국의 기술들을 배우고 싶어하는 추세

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이와 함께 라오스 교육부는 2015

년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경제, 사회, 문화적 교류와

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상황에서 모든 지역의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도록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지의 언어학교나 기술센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 지방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

사진

제공

| 권

오광

작가

왼쪽부터 김진화 선교사후보, 현지관계자, SEED Korea 정성헌 대표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24

Page 25: Seed vol02

기도제목

• 라오스 현지에 SEED의 선교팀이 구성되어질 수 있도록

• 헌신되고 준비된 장.단기 사역자들을 보내주시도록

• 현지에 파송된 선교사에게 능통한 언어습득의 지혜를 주시도록

• 계획중인 교육사역과 어학원, 지역개발사역이 잘 준비되어지도록

• 복음의 능력으로 라오스가 새롭게 변화되도록

LAOS

의 농촌지역에서는 1년 3모작이 가능한 좋은 기후인데

도 낙후된 농업기술로 인해 대부분의 농민들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라오스에서 발견한 또 다른 변화의 움직임은 중국인들

의 ‘이주바람’이었다.

수도 비엔티엔의 한 지역에는 대단위의 차이나타운 공

사가 한창이었는데 시내를 벗어난 외곽지역에서도 중국

어로 쓰여진 공사장 간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곳

도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이 대거 입주할 지역이라고 한

다. 앞으로 라오스에는 더 많은 수의 중국인들이 유입되

게 될 것으로 보이며 이들 또한 라오스에서 만나게 될 또

다른 선교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오스는 현재 의료, 위생, 교육, 기술, 농촌 및 지역개발

등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다른 나라에 도

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현장의 필요들을 채워주는

사역들을 통해 현지인들과 지역을 섬긴다면 이 사역들

은 주님을 전하는 귀중한 복음의 통로로 잘 사용될 수 있

을 것이다.

현재 라오스는 추수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라오스 사역

현장을 둘러보는 내내 차창 밖으로 라오스의 가을 들녘

이 눈에 들어왔다. 밝게 내리쬐이는 태양빛 아래로 너른

연녹색의 가을 들녘이 춤추듯 바람에 일렁였다. 문득 성

경의 구절이 내 마음에 맴돌았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 라오스는 지금 영

적인 추수의 때이며 복음의 낫을 든 일꾼들을 기다리고

있다. 라오스의 영적 추수에 동참할 더 많은 일꾼들을 보

내주시도록 함께 기도해 주길 바란다.

25

Page 26: Seed vol02

저희 가정은 동북아에서 3년 째 사역하고 있습니다. 파송

교회가 정한 수습기간을 마치고 장기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파송교회의 정책에 따라 장기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파송단체의 허입과정을 밟아야 했습니다. 여러

단체를 두고 물색하고 고심했습니다. 그러나 SEED는 염

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SEED가 미국에서만 동원하는 단

체라 생각하여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

나 지인을 통해 SEED Korea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인터뷰 중 훈련을 Canada에서

받아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제 마음에 약간의 망설임이 있

었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단체가 있는데 굳이 비싼 경비를

들여가며 Canada까지 가야 되느냐는 거였지요. 하지만

지금은 참 잘 왔다는 생각입니다. 저에게는 선교사로 나가

기 위한 준비부터 현지생활의 적응, 수시로 변하는 사역환

경의 어려움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점점 지쳐서 영

적으로 고갈되어가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갈급함으

로 하나님을 찾았으나 너무 멀리 있는 듯 했습니다. 불러

도, 찾아도, 내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참 많이 답답

했습니다. 그 답답한 가슴을 안고 하나님 앓이를 하면서

이 아름다운 곳에 왔습니다. 강의실에 걸려있는 “쉼, 회복,

그리고 새로운 비전”… 이 글은 나를 위해 마련된 말 같았

습니다. 나에게 쉼, 회복이 절박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비전이 필요했습니다. 매주 귀한 강사님들로부터 들었던

주옥같은 말씀들은 메마른 내 영에 내리는 단비였고 계속

해서 내 영이 소생하기에 필요한 좋은 밑거름이 될 것입니

다. DISK 강의를 통해 나와 다른 성향의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본보기와 멘토가

없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슬펐지만, Time Line을 해 봄

으로써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 마음이 치유되고 회복되었

음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각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

교사님들과의 교제는 그 자체가 도전이었습니다. 사역의

다양함을 전해 들음으로써 내 생각에 갇혀 있었던 사역의

지경과 사역자의 지경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 강사님의 삶과 강의를 통하여, 또 여러 교회의 섬김

을 통해 선교사로서의 자존감과 자긍심을 회복하는 시간

이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시간

은 매일 아침 말씀으로 하나님과 독대했던 시간과 그 깨달

음을 훈련생들과 나누었던 QT나눔 시간이었습니다. 사

도행전 QT를 통해 말씀과 기도의 중요성과 베드로, 스데

반, 사울의 변화를 보면서 성령 충만함이 얼마나 중요한가

를 다시 한 번 내 마음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버린 돌과 같은 베드로를 모퉁이 돌로 쓰시는 하

나님으로 인해 저도 희망을 품어 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은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선교의 마음을 일깨워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

니다. 이 훈련을 위하여 수고하시고 친근함과 따뜻한 섬

김으로 마음의 쉼을 주신 스태프분들과 저희를 위해 먼 길

와주신 강사님들, 그리고 식사 봉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봉사로 섬겨주신 이민교회와 성도님들, 그 외 저희에게 사

랑을 보여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감

사합니다.

ICMS (Imitating Christ Missionary School) 그리스도를 본받는 선교사 훈련 학교

2014 ICMS를 마치면서

쉼, 회복 그리고 새로운 비전아일 선교사 | 동아시아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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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7: Seed vol02

안녕하세요. 저의 부모님은 일본 선교사로서 동경에서 생활

하며 전도를 하십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그 곳에서

일본어로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개척

하신 동경 방주교회가 생겼을 때 저는 그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초등학생이었고, 처음에는 우리 가족 4명으로

만 예배를 드리던 시기였습니다. 그 가운데서 추운 겨울에

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교회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기도하며

보내셨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

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교인이 늘어나기 힘들었

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으로 유학 온 학생들이 우리 교회

에 많이 왔지만 유학생 삼촌, 이모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다

시 한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젊고 활동

적인 힘이 언제나 넘치는 우리 교회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

리고 그때 유학생이었던 삼촌, 이모들은 지금도 저의 대학

생활에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정말 사랑이 넘치는

교회이고 저에게는 동경 방주교회가 제2의 집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사립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비가 비쌌기에 부모님

은 늘 기도했고, 후원자들이 재정적인 도움을 주시고 헌신

해 주신 것을 저는 잘 압니다. 일본 대학의 입학금과 수업료

에 대한 재정적인 부담과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 대학 입학

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학비만이 문제가 아니

라 한국에 오는 것 자체가 저에게 있어서는 쉬운 문제가 아

니였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한국이 모국이자 외국이 되어버리고, 일본이 고향 같

아 그곳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고 가족과 떨어져서 지낸다는

것과 다른 언어 습득, 한국어 습득과 사용에 대한 불안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저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주신

덕분에 그러한 두려움이 극복되고 어려움은 어느새 기쁨으

로 바뀌었습니다. 올 해 한국어 언어연수를 마치고 9월 저

는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여 무사히 대학생활을 하고 있습니

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한국에 온 저를 따뜻하게 감싸줬던

것은 교회였습니다. 늘 감사의 마음과 믿음으로 한국에서

의 대학생활을 잘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MK(Missionary Kids)로서의 삶

어느새 기쁨으로백광현 | 일본 백운성 선교사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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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8: Seed vol02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청년 시절에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2009년 처음

말레이시아로 해외선교를 나가면서, 결심한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청년부에서 해외선교를 준비하면 언제나 참여했습니

다. 주님의 은혜로 다행히 여건이 맞아서, 가족들 허락으로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간 교회에선 선교에 대한 뜻

을 품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자녀로

서 마태복음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

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

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

니라”란 말씀과 같이 행해야 한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었습니

다. 또한,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아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선교를 나가야 한다는 마음에 GP

선교회에서 훈련도 받고, 찬찬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2013년, 방주교회 청년부에서 오문찬, 송

영의 선교사님이 계시는 몽골로 해외선교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문찬 선교사님은 방주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

님이셨습니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저를 지도하셨

던 전도사님이셨기에 반가운 마음이 컸습니다. 준비하려는 과

정에서 팀장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처음 선교팀의 장이 된

것이라 떨리고 부담스러웠습니다. 더군다나 선교 경험이 없는

팀원들이 대부분이어서, 더욱 염려됐습니다. 역시나 하나님께

서는 저의 염려와 고민을 알고 계셨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에

게 용기와 힘을 얻고, 말씀을 붙잡고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몽골 땅의 너른 초원을 통해 천지를 지으시고, 우

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하신 곳에 살아있음에 감사

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

습니다. 하나님께선 몽골의 선교를 가도록 시간을 허락하시고,

재정과 모든 계획을 준비하셨다는 걸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 번의 집회와 어린이 사역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성경학교 사역을 진행하는 동안엔 눈물로 하나님을 주로 시인

하는 어린이들을 보았고, 기쁘게 찬양하는 모습에 마음이 뜨거

웠습니다. 앞으로 몽골 땅을 얼마나 풍성하게 하실지 기대가 됐

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

직 많다는 게 안타까웠고, 더 많은 기도와 말씀으로 중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결심과 확신을 하

고 돌아왔습니다. 건강히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박아람 청년 | 방주교회 1청년부

몽골 아웃리치를 다녀와서

몽골 다르항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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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9: Seed vol02

하지만 오문찬 선교사님과 작별을 나눌 때, “내년에 뵙겠습니

다.”라는 말을 선뜻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모로 벅찬 준비과정

이 있었고, 고민과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4년 5월. 약간은 강압적이었던 선교학교 참여가 있었습니

다. 방주교회 청년부 학생 리더들은 모두 참석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매주 목요일 설교를 들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오셔

서 해주신 말씀은 하나같이 선교의 뜻과 비전을 품으라는 것이

었습니다. 솔직히 ‘잘 아는 이야기고, 당연한 이야기인데’라는

교만함으로 설교를 들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설교를

들으며 마음의 움직임을 느껴졌습니다. 3개월이나 진행되는 과

정 중에 어느 한 선교사님의 말씀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선교는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바로 아웃리치를 참가해야겠다고 결심했

습니다. 다시 오문찬·송영의 선교사님이 계시는 몽골 예수사랑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2013년보

다 더 뜨거운 마음을 갖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2014년 몽골 선교팀 28명 중에서 팀장을

맡으며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해, 많이 부족했던 것

을 느꼈기에 부담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함께 가는 전도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을 따르기로 했지만, 고충이 컸습니다. 특

히 이번 2014년 몽골 선교는 청년과 장년이 함께하는 선교였습

니다. 부모님과 같은 분들과 해외선교를 준비한다는 게 막막했

습니다. ‘소통은 잘 될까? 불편하지 않을까? 혹여 다치시진 않을

까? 잘 따라오실 수 있으실까?’ 등등 고민이 끝나기 전에 준비가

시작됐습니다. 장년과 청년으로 조를 구성하고, 문화사역 팀을

구성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친분이 생겼고, 공유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부모님과 같은 마음으로 청년들을 챙겨주셨

습니다. 성경학교 사역을 할 때도 장년 분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듬어 주실 때는 사랑이 넘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게 만들어주셨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감사하시길 원하셨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랬더니 더 특별한 축복이 몽골에 있었습니다. 2013년에 함께

사역에 참여했던 리더들을 모두 보았습니다.

몽골은 유목민이란 특성상 사역이 매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여름 사역에 참여하려고 돌아온 현지 리더들을 보니 반

가웠습니다. 그중 한 자매가 앞으로의 비전을 말한 것이 기억났

습니다. 자매는 ‘넘겅호산나교회’에서 사역할 것이라 말했습니

다. 올해 가보니 그 자매는 정말 ‘넘겅호산나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역의 준비가 많이 부족했

었지만, 올해부터 어린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열매가 맺어지고 있는 순간을 함께한 것 같아 너무 감사했습니

다. 그 자매는 계속적으로 ‘넘겅호산나교회’를 위해 사역할 것

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겠습니다.

또한, 2013년에 ‘바탈리온’지역을 땅 밟기하며 기도했었습니

다. 올해는 그곳에서 작게나마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앞으로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밀알이 잘 심어져 교회

가 세워지고, 그 땅에서 승리할 수 있길 기도했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하고, 선교를 돕고, 참여하는 것. 하나님께서 예

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습

니다. 저는 큰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괜한 고민을 갖고 시름

했었습니다. 리더이시고, 머리이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저 따

를 뿐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머뭇거리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 만물을 창

조하시고, 나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란 걸 자랑하며 살겠습

니다. 세상 어디에서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자리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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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0: Seed vol02

방주교회방주교회(반태효 목사)는 5월 선교학교를 개설 후 졸업생으로

국내 5개팀과 해외 3개팀의 아웃리치 팀을 구성하였다. 국내팀은

미자립교회를 중심으로 예산(6/23~6/25), 문경(6/30~7/2),

완도(7/16~7/17), 통영(7/6~7/10), 충주(8/6~8/9)에서 성경학교,

미용, 성전수리 등의 사역을 펼쳤고, 해외팀은 몽골(7/15~7/25),

필리핀(7/16~7/21), 알래스카(8/27~9/4)에서 현장 선교사들의

사역을 지원했다.

무궁교회무궁교회(박도영 목사) 청년선교팀은 필리핀 바왕지역으로

단기선교(8/19~8/27)를 다녀왔다. SEED 김일관선교사의 사역을

지원하여 전도와 지역 봉사를하였다.

SEED NEWS협력교회 소식

경기중앙교회경기중앙교회(김상익 목사)는 말레이시아로 단기선교(7/28~8/2)를,

인도네시아로 청소년 비전트립(8/4~8/9)을, 전북 장수군 천천면으로

농촌봉사 및 전도(8/13~8/16)를 다녀왔다. 교회대표들이 10월

2일~10일 까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지방 5곳에 예배당 건축을

완공하여 봉헌식에 참석하였다.

서부제일교회서부제일교회(김한원 목사)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해외단기선교(7/7~7/14)를, 국내로는 천안의 동부교회와 덕성교회로

청년부를 주측으로 국내전도(7/28~8/2)를 다녀왔다.

본부와 협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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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선교한국대회 | 2014. 7. 28 - 8. 3SEED International은 지난 여름, 평택대학교에서 열린

선교한국대회의 선교단체박람회에 참여하였다. 정성헌 선교사(SEED

Korea 대표)와 박지웅 선교사(SEED Brazil 대표)는 각각 <소명>,

<라틴아메리카의 선교전략> 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2014 그리스도를 본 받는 선교사훈련학교(ICMS)지난 6월부터 8월 7일 까지 캐나다 밴쿠버 ICTC 훈련센터에서

선교사훈련학교가 열렸다. SEED Korea 소속 김00, 이00 후보가

훈련에 참여하여 수료하였다.

SEED Korea 본부 필드 리서치 | 2014. 9. 29 - 10. 7SEED Korea 정성헌대표와 인턴 중인 김진화 후보가 새롭게 열리고

있는 인도차이나 라오스를 정탐하였다. 추수할 일꾼이 필요한

곳임을 확인했고, 수도 비옌티엔에 30만명의 중국인 집단 거주시설이

건설되고 있어 선교사재배치를 위해서도 적합한 사역지임을 확인했다.

2014. 8 - 10

1 선교사 입출국● 이약슬 선교사 가정 5/29 입국● 박요셉 선교사 가정 9/23 입국 - 11월 출국

2 본부 방문왕위대 선교사, 송이센 선교사 가정, 주요한 선교사

가정, 송안나 선교사, 박요셉 선교사 가정, 이근식

선교사 가정, 오제이 선교사, 장순희 선교사

3 본국사역(안식년)주요한 선교사 가정 (2013/6/30)

김일관 선교사 가정 (2014/4/5)

4 사역 복귀오에스더 선교사

5 임원 이사회● 1차 7/30● 2차 9/30

SEED KOREA STAFF 명예대표 권영복 목사 대표 정성헌 선교사

멤버케어 김은숙 선교사 행정 오정민 간사

재정 이명희 간사 사무·홍보 배수은 간사

다음 소식 예고◆ 10월 27일 제10회 SEED가족의 밤◆ 11~12월 7주 선교학교◆ 1~2월 ICMS Korea

본부 소식

더사랑의교회더사랑의교회(이인호 목사)는 중국(7/2~7/9)과

캄보디아(7/11~7/16)로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해외단기선교를 진행했고, 7월 말 해남, 김천, 문경, 태백지역로

국내전도여행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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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2: Seed vol02

국내 이주자 사역에 더 큰 관심을

지난 여름 우즈베키스탄에서 가르쳤던 고려인 제자

결혼식이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어도 능숙했다. 한국으로 이주해 서울의 한 병원

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동료의 소개로 한국신랑을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예식에 참석한 신부 측 하객들의 대부분은 우즈베키

스탄에서 온 이주자들이었다. 놀랍게도 그 중 30여 명

은 내가 사역하던 선교지 교회의 성도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직장을 찾아서, 또 몇은 유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나는 반갑기도 했지만 근심 섞인 목소리로 “이

렇게 다 한국으로 오면 누가 교회를 지키냐?”라고 했

다. 그 말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시 모였으니 서울

에서 교회를 개척하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다.

패트릭 존 스톤은 ‘세계교회의 미래’라는 책에서 20세

기와 21세기 현재 전세계 이민자가 2억을 넘었고, 선

진국의 출산율 저하로 인한 노동력 부족 현상으로 서

구로 가는 이민이 급증하여 2050년까지 이주민은 1

억 7천만명이 더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 대

부분 복음화 되지 않은 지역에서 복음화된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교회가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대

상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2014년 5월 법무부가 집계한 국내 거주 외국인은 수

는 167만 6715명, 특히 등록 외국인 90.09%의 거주

목적은 취업, 이민·영주, 경영·투자이다. 이민자들은

타국으로 이주했을 때 기존에 가졌던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이 약해지면서 다른 문화나 종교에 대해 수용

성을 보이게 된다. 그들은 언어와 문화적 장벽으로 심

리적 불안을 느끼게 되고 친밀한 관계적 요구가 부각

되게 된다. 이 때가 진실한 도움과 섬김으로 복음을 전

해야 할 시점이다. 이 때를 놓치면 그들은 자신들의 정

체성을 찾기 위해 동질성 집단을 찾아 내어 이민 초기

에 흔들렸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세우게 된다. 이렇

게 되면 이전 보다 더 강한 종교적 신념에 이주 이후 겪

었던 감정적인 앙금까지 더해져 다른 종교나 문화에

대해 더욱 배타적이 되어 그들만의 그룹을 형성할 가

능성이 다분하다.

일본에서 온 선교사 자녀가 한국어연수를 마치고 대

학에 입학하게 된 베트남유학생이 기숙사 입소 전까

지 묵을 곳이 없는 딱한 사정을 알고 자신이 마련한 지

하실 단칸 방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는데 그렇게 고마

워했다는 것이다. 그 더운 8월 날씨에 창문도 없는 지

하실에서의 생활이었지만 자신을 배려하는 사람이 있

어 쉼을 얻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학에 다니는 외국유학생들에게 전도

의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교회들이 선교사 자녀

들도 섬길 겸, 외국인 유학생들을 섬길 쉼터나 학사를

마련할 수 있으면 얼마나 유용하겠는가!

패션업계에서 국내거주 외국인을 분석하여 “한국

거주 외국인 167만 6715명 중, 특히 등록 외국인

90.09%의 거주 목적이 취업과 이민·영주, 경영·투자

이고 패션 민감도가 높은 20~30대가 53%를 차지해

이들의 소비파워를 예상할 수 있다.”라는 글이 신문에

실렸다.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 2014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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