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leeletter vo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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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3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소식지 2016. 05. 커버스토리 봄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옵니다 자연의 법칙, 자연의 봄은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오고 또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오는 것이지만, 사회적 법칙, 사회의 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봄을 열망하고 봄을 바라는 사람들의 치열한 목적의식과 투쟁을 통해서 온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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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옵니다 자연의 법칙, 자연의 봄은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오고 또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오는 것이지만, 사회적 법칙, 사회의 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봄을 열망하고 봄을 바라는 사람들의 치열한 목적의식과 투쟁을 통해서 온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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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3‘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소식지

2016. 05.

커버스토리

봄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옵니다 자연의 법칙, 자연의 봄은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오고

또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오는 것이지만,

사회적 법칙, 사회의 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봄을 열망하고 봄을 바라는

사람들의 치열한 목적의식과

투쟁을 통해서 온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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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독자편지구명위원회 소식지 지난호에 실린 사진을 보았습니다.

산을 무척 좋아하셨다지요. 그런데 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앞에 서 있는 두 마리 새는 바위종다리라는

겨울 철새인데 서울에서는 북한산과 불암산 꼭대기에서

만 볼 수 있어요. 당연히 사람을 무서워해서 가까운 거리

에서 보기도 힘든데 새들이 이리 가까이 어울렸네요. 역

시 선한 사람을 알아보나 봅니다. 억울하게 갇힌 모든 분

들이 하루빨리 석방 되기를 바랍니다.

서울에서

차례

03 인사말

거꾸로 갔던 우리 사회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길

04 국제

국제 인권보고서,

이석기 의원 등 유죄판결 지적

06 기획

수면 위로 드러난 여론공작

08 단신

외신, ‘박근혜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지도자’

09 주목할만한발언

‘임기중 법안 발의 0건’ 이석기 의원의 내막

14 소식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똘레랑스tolérance[명]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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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03‘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거꾸로 갔던 우리 사회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길

봄이 올 것 같지 않던 긴 겨울의 끝,

꽃이 피고 지고 초록빛으로 세상이 덮이더니

어느덧 한 낮에는 제법 덥게 느껴지는 날씨가 되었습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되었고,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민주주의와 인권을 벼랑으

로 몰아온 여론공작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거꾸로 갔던 우리 사회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길 바라는 이들의 기대가 커지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부정한 덧칠

로 혐오의 희생양이 되었던 이들이 누구인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봄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옵니다. 자연의 봄은 겨울이 지나면 찾아오

지만, 사회의 봄은 봄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치열함을 통해서 온다고 누군가

는 이야기 했습니다.

올해 7월 초순이 되면 이석기 전 의원과 동료들은 우리 현대사에서 내란죄로 최장

기 복역하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과거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故 김대중 전 대통

령도 2년 9개월 만에 형 집행정지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구명위 2년차인 올해, 우리는 억울하게 구속된 이들의 사면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

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국제사회와 종교계, 민주주의와 인권을 바라는 국민들의 힘

으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를 가둔 커다란 감옥문을 열고 자유의 봄

을 찾아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꽃씨 속에 숨은 꽃을 보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많은 분들께서

기꺼이 봄소식이 되어 함께 해주시리라 고대하며, 평안을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말

정 진 우

●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

● 구명위원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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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국제

국제 인권보고서,

이석기 의원 등

유죄판결 지적 ● ● ●

국제앰네스티는 2016년 2월24일 전세계 160개국의 인

권현황을 정리한 ‘2015/16 연례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번 보고서에서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정부가 표현과 결사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 시위의 자유

를 계속 제약했다” 라고 지적했다.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구속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구금과 기소가 이

루어졌다”고 지적하면서 “정부는 국가보안법 적용 대상

및 범위를 넓혀 국회의원 등 정치인”에게 적용했다고 발

표하였다.

● ● ●

구체적으로 “2015년 1월 대법원은 이석기 외 통합진보당

당원 6명에 대한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고등법원의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1월 대법원 판결은 2014년 말 헌법재판

소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쳤다는 이유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직후에 나왔다”고 지적하였다.

한국 인권후퇴의 가장 심각한 부분으로 표현의 자유 침

해를 꼽았으며, 이석기 의원 및 당원들의 구금과 기소가

국가보안법 적용대상과 범위

를 넓혀 악용한 사례임을

지적한 것이다.

구 명 위 원 회

국제팀

국제앰네스티

2015/2016 연례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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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05‘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 ● ●

미 국무부는 2016년 4월13일 각 나라별 인권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한국 인권보고서의 경우 주로 국가보안법의

우려를 다루고 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을 대표

사례로 언급했다.

인권보고서는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

는 의도된 행위를 한 자를 구금·체포·수감할 수 있는 권

한을 정부당국에 부여하고 있다. 국내외 비정부기구들

은 금지 행위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

어 국가보안법의 철폐 혹은 개정을 줄곧 요구하고 있다”

고 지적하고 있다.

● ● ●

특히,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통합진보당 해

산 결정은 “1948년 헌법이 제정된 이래 사법부나 행정부

의 명령에 의해 정당이 해산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고 하면서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통합진보당 당

원들도 기소했다. 1월에 대법원은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

법 위반 혐의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여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한, 유죄

가 확정됨에 따라 이석기 전 의원은 공직선거 출마와 선

거권이 제한되었다”고 명시하였다.

● ● ●

이미 유엔에서는 수없이 국

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였

다. ‘사람의 생각을 통제하

는 국가, 폭력 없는 표현 행

위마저 처벌하는 국가가 정상적인 국가인가. 소수의 사상

이라고 해서 무시하는 국가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

는데도 우리는 국가보안법을 두고 민주주의를 말한다. 시

민사회와 국제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사회주의

가 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 자유민주주의가 시작된다는

것을 입이 닳도록 말해도 한국정부는 움직이지 않는다.’(1)

● ● ●

국정원이 처음 ‘내란음모사건’을 터트린 당시 상황에 대

해, 어느 기자는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에 대해 국가보안

법을 적용했으면 이렇게 크게 보도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란음모라면 뭐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2)

그러나 결국 이 사건의 내용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었다. 관련하여 2015년에 추가 구속된 3인도 현재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 재판 중이다.

● ● ●

가장 많은 양심수를 발생시키는 국가보안법을 두고, 어느

대통령은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도 했다. 이

후로 10년 동안 한국의 인권상황은 더욱 후퇴했고, 이 말

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 국무부

2015년 인권보고서

(1) 국가보안법 64년이면 충분하다 (2012.11.29. 한겨레21 / 박래군)

(2) 국가보안법의 변주곡 ‘종북’ (2013.12.5. 참세상 / 정록, 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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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관제데모

Q&A

기획

그래서어버이연합은얼마를 받았나?

Q.

일단명시적으로드러난것만보면

2012년2월,1800만원입금이시작입니다.

2013년11월5000만원,

이듬해2월7000만원.

이렇게2014년연말까지총20차례에걸쳐,

5억2300만원이지원됐습니다.

그런데재미있는건입금액이

2013년부터급증했다는겁니다.

종북몰이의본격화와연관이있어보입니다.

A.

2016.04.26

관제데모몸통은누구?

Q.

어버이연합동원에전경련은말할것도

없고,청와대허모행정관이개입한점은

분명해보이는군요.

여기에국정원이소위‘박원순제압문건’을

통해어버이연합동원을명시한정황,

공무원간첩단사건에서탈북자가

어버이연합을통해국정원에보고했다는

진술이나온점등을볼때국정원도

‘남남’은아닌듯합니다.

이정권에는왜이리‘개인적일탈’이

만연해있을까요?

A.

2016.04.25

수면 위로 드러난 여론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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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07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관제데모에서제일 많이언급된 이름은 000이다?

Q.

수많은관제데모들에서가장많이언급된

이름은아마도통합진보당이석기의원아닐까

요?대략의추산에따르더라도내란사건재판

당시,70여회동안단한번도거르지않고

100~400명규모집회및재판방청을했다니

연인원만7천여명규모겠네요.

거기에17개월동안계속됐던통합진보당해산

집회까지하면엄청나겠군요.

A.

청와대발(?)관제데모의 실상

내란 사건 재판 당시, 법원 앞 ‘관제 데모’ 연인원 7천여 명 규모

-70여회간한번도거르지않고100~400

명규모집회및재판방청

-법원경내에서호송차가로막고불법집회열

어서재판지각빚기도

-방청권확보를위해영하추위불구하고밤

샘농성나서기까지

진보당 해산 당일까지 이 의원 겨냥 극언 막말 집회 최소 68회

-2013년8월부터2014년12월당해산때까

지17개월간매주열어

-진보당당사,국회,광화문,서울광장,청계

광장등지에서개최

-항소심내란음모무죄판결직후에는재판

부규탄집회열기도

세월호 반대 집회등 각종 맞불집회때마다 이 의원 공격

-어버이연합장부에만나온세월호반대집회

가39회이고여기에1900여명동원

-위집회때마다종북몰이와이석기의원공

격내용의구호와선전물등장

팩트 1

팩트 2

팩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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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09‘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단신

외신, ‘박근혜 대통령은‘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지도자’

한국 총선 여 과반 확보 실패, 朴에 대한 불만 표출

영국의 BBC는 4월 13일 총선이 끝난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부진한 결과

를 보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그간 “정부가 체제 반대자들과 시위자들에 대해 더욱 강압적으로

나오는 것에 불만족”을 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BBC는 ‘한 진보 야당은 해체됐으며 그 당의 지도자들은 북한에 동조했다는 혐의

로 체포됐다.’고 언급했다.

총선 과반 확보 실패로 박근혜 레임덕 예상

뉴욕타임스가 한국의 20대 총선에서 집권 새누리당이 패배한 소식을 신속하게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에 대한 강경책으로 박 대통령이 40%의 높은 지지율을 누리기도 했지만, 동

시에 “표현의 자유와 자신의 정부 내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지도자”라는 인식을 많은 이들로부

터 받아왔다고 전했다.

정부 검열로 한국 문화예술계 위축

프랑스의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4월 18일 한국의 문화예술계가 정부의 검열 및 통제로 위

축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에 상주하는 에바 존 특파원은 ‘한국 : 캄캄한 상황 속에 처한 표현의 자유’라는 제목의 기사

에서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사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일부 예술인

배제 심사, 광주비엔날레 등을 사례로 제시하며 이같이 보도했다.

출처_뉴스프로(thenewspr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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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09‘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주목할만한발언

말 많고 탈 많았던 19대 국회가 사실상 끝나가고 있습니

다. 언론에서는 흔히 19대 국회를 ‘역대 최악의 국회’였다

고 비평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평가는 분분하지만 저는

그런 19대 국회와 그 국회의원 몇분에 대해 좀 색다른 이

야기를 하려 합니다.

19대 국회의원 중 가장 비극적인 분은 누구일까요? 가

장 먼저 떠 올릴 사람은 성완종 전 국회의원이 아닐까 싶

습니다. 2015년 4월 9일, 성완종 전 국회의원이 자살합

니다. 그의 자살 소식도 충격적이었지만 더 놀라운 사실

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가 자살 직전 남긴 50분 분량의

육성 녹음과 또 유력 정치인들의 명단이 담긴 메모지 한

장이었습니다.

[성완종] 2015년 4월 9일 그날

아시는 것처럼 성완종 전 의원은 2012년 4월에 실시된

충남 서산시·태안군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

의 임기를 온전히 마치지 못하고 약 2년 만에 물러나게

됩니다. 2014년 6월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 원이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 전 의원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 직에서 물러난 후 성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하

에서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에 연루되어 검찰 수사를 받

게 됩니다. 그는 생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구명 운

동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구명 노력이 허사가 된

2015년 4월 9일, 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된 당

일 성 전 의원은 모진 각오를 하고 집을 나섰다고 합니다.

이미 새벽에 유서를 쓰고 서울 청담동 자택을 나선 그는

이후 <경향신문> 기자에게 전화하여 자신의 억울한 심경

과 그동안 정치자금을 건넨 인사들의 명단을 폭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전화를 끝으로 실종된 그를 찾고자 수

색에 나섰던 경찰은 북한산 형제봉 부근에서 이미 숨진

성 전 의원의 시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 끝에 거대 기

업의 총수가 되었던 성완종 전 의원. 그리고 더 큰 꿈을

이루고자 국회의원에 도전했고 마침내 두 번째 도전 끝

에 이뤄낸 자리. 하지만 그 성공의 끝자락이 벼랑 끝이었

음을 너무도 늦게 알게된 이 분의 이름은 ‘19대 국회의

원 잔혹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비극 중 하나로 남게 될

같습니다.

[이석기] 1심과 항소심 차이를 아시나요

성완종 전 의원이 개인사적인 비극이라면,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일은 역

고 상 만

오마이뉴스 발췌

‘임기중 법안 발의 0건’ 이석기 의원의 내막19대 국회가 저물어가는 지금, 가장 비극적인 두 국회의원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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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주목할만한발언

시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통합

진보당 해산 사태에서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은 바로 이석기 의원일 것입니다.

이른바 ‘종북’이라는 붉은 덧칠로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

되어버린 이석기 전 의원.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선

끝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2번을 부여받아 당선된 그의

임기는 시작부터 참 불행했습니다.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경선 과정에서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 되었고, 그 중심에

이석기 의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의 불행 역시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

니다.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하고 1년 여가 조금 지나가

던 2013년 8월 28일 국가정보원이 이석기 의원의 의원

회관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입니다. 적용된 혐

의는 무시무시 했습니다. 형법상 내란 예비음모 및 국가

보안법 위반.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이 2013년 5월 통합진보당 소속 일

부 당원들과 함께 경기도 용인에서 회합을 갖고 ‘유사시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파괴’ 등 내란 예비 음모를 모의했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지난 2004년부터 이석

기 의원 등은 이른바 ‘RO’(Revolution Organization)라는

지하 혁명조직을 결성해 활동해 왔다는 것이 주요한 혐

의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은 이러한 국정원의 발표를 전면 부인

합니다. 국정원의 압수 수색이 이뤄진 다음날인 2013년

8월 29일, 그는 통합진보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적용된

모든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고 적극 부인한 것입니다. 그

리고 이어진 체포와 재판. 결국 이석기 의원은 사건 발생

근 1년 만인 2014년 8월 11일 항소심에서 징역 9년에 자

격정지 7년을 선고 받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애초 1심에서 선고된 징역 12

년에 자격정지 10년 보다는 감형된 결과였습니다. 왜 항

소심은 1심보다 형량을 깎아 줬을까요? 거기에는 많은

분들이 외면한 또 다른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석기 의원

의 1심 재판부는 이른바 ‘지하 혁명조직 RO’를 사실로 보

고 이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은 달랐습니다. ‘지하 혁명조직 RO’는 그 실

체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검찰이 기소한 ‘내란 음모’ 혐

의에 대해 무죄로 판결한 것입니다. 즉, 유사시 대한민국

의 체제 전복을 꾀하고자 이석기 전 의원 등이 지하혁명

조직을 만들었다며 국정원과 검찰이 대대적으로 발표했

지만 사실은 모두 ‘허구’라는 것이 진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은 이석기 전 의원이 대한

민국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

고 있습니다. 종편과 보수 언론에서 재판 결과에도 상관

없이 그렇게 말하고 있고, 헌법 재판소 역시 ‘아니라고 하

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기반하여 2014년 12월 통합진보

당의 해산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이석기 전 의

원은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불명예스러운 국회의원으

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밝힐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이석기 전 의

원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또 그 분이 정말 어떤 생

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다만 판결로 확

인된 진실을 ‘여전히 사실이라고 잘 못 알고 있는 분들

구인영장 집행에 응하는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를 받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의 체포동의안이 지난 2013년 9월 4일 오후 가결됐다. 당시 국회 의원회관에 있

던 이 의원이 국정원의 구인영장 집행에 응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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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은 명확히 전하고 싶었

던 것입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종북으로 덧칠된 채 의원활동을 한다는 것

그런데 앞서 이야기보다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9대 국회가 사

실상 끝나가는 지금, 그렇게 비난받으며 19대 국회와 함

께 잊힐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해 제3자의 입장에서 바로

잡아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석기 의원은 임기 시작 전부터 의원직

자진 사퇴를 강요 받았습니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의 부

정선거 의혹으로부터 시작되어 이후 내란 예비음모 혐의

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내내 그러한 자진 사퇴 요구는

더욱 강도를 높여갔습니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은 끝까지

의원직 사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이후 언론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비난의 각도를

달리했습니다. 의원직 사퇴를 거부하는 이 의원이, 그렇

다면 과연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검증하자는 것이

었습니다. 이후 언론은 입법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으로서

임기 1년 동안 이석기 의원이 발의한 ‘법안 건수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 후 관련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놀랍게도 0건. 정말 저도 의

외의 결과에 놀랐습니다. 19대 국회에서 임기 시작 후 대

부분의 의원들이 1년동안 평균 11건을 대표 발의한 상황

에서 이석기 의원은 단 한 건도 법안을 발의한 사실이 없

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석기 의원에 대한 비난은 더

욱 날카로워졌습니다.

언론은 물론이고 네티즌과 국민들 속에서 이석기 의원

에 대한 비난이 거침없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원

직 사퇴는 거부하면서 왜 일도 안 하냐”며 “의정 활동은

저렇게 하면서 버티는 이유가 뭐냐”는 비난이 넘쳐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 언론에서는 이석기 의원과 무소속 김형태 의

원을 비교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19대 국회에서

가장 추악한 논란 중 하나였던 소위 ‘제수씨 성폭행 미수

사건’의 주역 김형태 의원과 비교하며 비난하는 기사였습

니다. “그 사람 조차도 임기 중 대표 발의를 2건이나 했는

데 도대체 이석기 의원은 뭐냐”는 비난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보도를

보며 저 역시도 이석기 의원을 비난했습니다. “도대체 뭐

냐, 의원직 사퇴는 거부하면서 정작 법안 발의도 한 건 안

하며 버티는게 말이 되냐”며 가까운 사람들과 술자리에

서 이석기 의원을 비난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그러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이석기 의

원에게 사과하고자 이 글을 쓰기로 작정했습니다. 제가

몰랐던 그 일의 진짜 숨겨진 내막. 시작은 2013년 6월 어

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2013년 6월 어느날,

이석기 의원실 보좌관에게 연락이 왔다

2013년 6월, 당시 저는 국회 모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었

습니다. 그런데 외부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책상 위에 메모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석기 의원실 2013년 3월, 통합진보당 이석기 국회의원의 법안 대표발의 건수 0건에 대한

JTBC 비판 보도기사.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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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주목할만한발언

모 보좌관이 연락을 부탁한다는 메모였습니다. 순간 ‘누

굴까?’ 싶었습니다. 그간 이석기 의원실과 어떤 업무를 같

이 한 적이 없어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당시 이석기 의원은 당내 부정선거를 이유로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되어 ‘국회의원 자격 심사’를 앞둔 상

태에서 연일 종편과 보수 언론에 의해 공격을 당하고 있

을 때였습니다. 그런 마당에 그 의원실 보좌관이 찾는다

하니 한편으로는 궁금하고 또 한편으로는 과히 좋은 느

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연락이 왔으니 전화는 했습니다. 알고보니

연락해온 분은 과거 재야단체에서 인권 운동을 할 당시

만난 선배 중 한 분이었습니다. 몰랐는데 그 분이 이석기

의원실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가운 마음

에 인사를 하니 “잠시만 의원회관 2층 찻집에서 볼 수 있

겠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만나게 된 2층 찻집. 참으로 오랜만에 뵌 그 선배

님과 이러저러한 안부를 잠시 물은 후 본론으로 들어갔

습니다. 무슨 일로 뵙자는 것인지 말씀해 달라고 한 것입

니다. 그러자 그 보좌관은 가져온 서류 뭉치 중 하나를 저

에게 꺼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진 말은 “우리 방에서 이번에 종편 방송

과 관련한 법안을 발의하려고 하는데 공동 발의에 참여

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당황했습니

다. 얼마 전 봤던 언론 보도가 생각난 것입니다. 이석기

의원이 대표 발의를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는 비판 보

도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 그래서 만나자고 했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종편과 관련한 일은 제 소관 업무가 아니니

쉽게 답변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멈칫하다가 “일단

의원실에 가서 의원님께 보고 후 답변을 드리겠다”는 말

로 즉답을 피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론과 관련한 법안은

좀 민감할 수 있어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는 개인적 의

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제 말을 예상이

라도 했는지 이석기 의원실 보좌관은 다시 또 하나의 서

류 뭉치를 앞으로 꺼냈습니다.

“아. 그럼 이 법안은 어때요? 사실 종편 관련 법안은 부

담스러울 것 같아서 제가 좀 가벼운 사안의 법안도 가져

왔는데요. 이건 드라마 출연자들이 외주 제작업체 부도

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제작 발주를 한 방송사가

먼저 그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이거든요. 이건 큰

부담이 없을 것 같은데 공동 발의해 주실 수 있을까요?”

“법안 대표 발의 0건, 왜 그런 줄 아세요?”

그때 알았습니다. “아, 그게 아니었구나.” 그랬습니다. 법

안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석기. 바로 그 이

름이었습니다. 이석기라는 그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법안

을 공동 발의할 경우 거기에서 파생될 또 다른 붉은 ‘종

북’ 딱지. 이석기 의원 보좌관이 가져온 법안에 제가 쉽

게 답변할 수 없는 진짜 이유였음을 제가 깨닫는 순간이

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 저는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거짓말로

자리를 모면할 게 아니라, 그래서 “제가 검토하고 말씀드

릴게요”라는 말로 속이는 것은 정말 예의가 아닌 것 같

아 제 속내의 진짜 두려움을 말씀드렸습니다. 생각해 보

니 법안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법안 공동 발의에 참여하

는 것은 좀 어려울 것 같다며,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

렸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 비겁한 변명에’ 돌아온 이석기 의원의

보좌관 반응은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탁자 위에 내 놓

았던 법안 서류 뭉치를 조용히 거둬 들이면서, 다만 애잔

한 미소를 띄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슬픈 감정을 담

아 그때 하셨던 말씀이 저는 잊히지 않습니다.

“상만씨. 괜찮아요. 그렇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 다

만 상만씨도 언론 보도 보셨죠? 저희 방이 그간 법안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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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표 발의를 한 건도 하지 않았다는 비난 기사? 그게 왜 그

런 줄 아세요?”

“네? 왜요?”

그래서 듣게된 진실은 놀라웠고 또 한편 슬펐습니다. 이

석기 의원실에서는 그동안 나름대로 많은 법안을 준비했

다고 합니다. 그날 저에게 들고왔던 여러개의 서류 뭉치

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석기

의원실은 단 한 건도 법안을 발의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대표 발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명

이상의 국회의원에게 발의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실은 아무리 좋은 법안을 내놔도 그 10명의

국회의원 서명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늘 8명이 전부

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석기 의원과 같은 당이었던 통합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8명이었습니다.

나머지 두 명의 다른 당 국회의원에게 받을 수 없었던 공

동 발의. 이석기 의원이 언론에게 그토록 비난받았던 ‘임

기 1년간 단 한 건도 법안을 발의하지 못한 진짜 이유’였

습니다. 그 말을 들려주는 이석기 의원실 보좌관 앞에서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조차도 언론 보도만 듣고 비

난했던 그 일이 떠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후, 이석기 의원은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면서 다른 소속 의원과 함께 의

원직을 상실했습니다. 다만 다행이라고 할까요. 그때까지

이석기 의원은 모두 3건의 법안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의

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정말 이 법안 발의를 위해 그 보

좌관은 얼마나 많은 다른 당 의원실을 찾아다니며 머리

를 조아렸을까요?

이석기 전 의원이 정말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비

판받아 마땅한 일이겠지요. 다만 ‘국회의원으로서 일도

하지 않았다’는 억울한 오해만은 이제 19대 국회가 끝나

가는 지금에라도 대신 해명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국민

에게 필요한 법안인가’가 아니라, 그에게 씌워진 붉은 딱

지가 우리에게도 전이될까봐 먼저 두려워 왕따 놓았던 이

석기 전 의원. 그러한 이석기 전 의원에게 저라도 진실을

밝혀 드리고 싶었습니다. ‘일도 안 하면서 의원직 사퇴만

거부하는 뻔뻔한 사람’이라며 매도했던 저의 비난은 잘못

된 것이었으며,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다시 또 건강하

게 뵙겠습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자료.

통합진보당 이석기 국회의원이

10명 이상의 국회의원으로부터

공동발의를 받아 대표 발의한

3건의 법안. ⓒ 고상만

고 상 만 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

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 게재에 동의해주신 고상만 기자님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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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소식감옥으로부터의 편지

늘 도움을 주시는 구명위원회 모든 선생님께 인사드립니다.

일상에 변화가 거의 없는 생활이라 큰 탈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계절적으로 여기 생활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맘때가 좋은 시기이지만

세월호의 아픔으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2년이 지났지만 신문에 나오는 세월호의 소식들 중에

가족들이 전하는 슬픈 소식은 아직도 읽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적셨지만 참사 당시 또래의 자식을 둔 부모로서 자식 잃은 부모님들의

절통한 심정이 더 절절히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무거운 마음 때문이었는지, 여하튼 마음이 계속 가라앉아

선거 전까지 좀 우울하였습니다. 그러나 큰 홍수가 할퀴고 간 논밭이 자갈밭이 되어

다시 논밭의 꼴을 갖추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뒤따르는데,

다시 논밭의 형태를 갖추었다는 기적 같은 사실만으로도 큰 희망을 보게 됩니다.

4월 11일은 가족 만남의 날을 하였습니다.

4월 18일 아들 군 입대를 앞두고 다행히 일주일 전에 교도소 만남의 날 행사가 잡혀

구속 후 처음으로 음식을 나누며 2시간 동안 가족과 함께 하였습니다.

평소 10~15분의 면회 시간을 생각할 때 2시간은 제법 긴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거짓말처럼 20분 정도의 시간으로 느껴질 만큼 금방 흐르더군요.

가족의 정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엔 이산가족의 상봉이 떠올랐고,

명절 날 가족이 찾아왔다 다시 홀로 남는 시골의 늙은 노모의 어느 영상이 스쳤습니다.

기분이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가족들로부터 얼굴 안색 및 주름 등 샅샅이 수색을 당하고, 결론은, 면회 때(인공조명 빨) 볼 때와

가까이서(자연조명) 볼 때와의 차이가 많이 난다며, 늙고 병든 모습으로 비추어진 모양입니다.

나름 좋은 모습 보이려고 평소 및 당일에도 꽤 노력했는데

감옥의 무게와 더께를 가리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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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안에서 우선해야 하는 것이 밖에서 신경 쓰지 않게 자기 생활을 잘 꾸려가야 하는 건데,

걱정을 듣고 나니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자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가족이라는 주관성을 벗고 객관의 시각으로

내가 정말 나이에 비해 걱정을 들을 만큼 많이 늙은 것인지.

며칠 후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동 도우미에게 몇 살로 보이는지 말해 달라고 하니까,

가만히 보더니 40대 초중반으로 보인다고 하여 농담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달라고 하니

역시 같은 대답을 하면서 넉넉히는 40대 후반까지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급격히 기분이 좋아지면서 혹시 몇 살이냐고 물어보니까 31살이라는 놀라운 답변을 들어,

다시 급격히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면회 온 동지들의 말에 의하면, 홍순석 동지와 김홍열 동지는 구속 전보다 더 젊어졌다고,

오빠가 되었다고 하던데, 이제 그 비결을 알아내야겠습니다. ̂ ^

아들 입대를 챙겨주신 가족대책위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구속된 분들과 구명위원회 모든 분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 4월, 이상호 드림 …

✽ 이상호(1962년생)님은 전 수원시사회적기업지원센터 센터장으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으로 징역4년을 선고 받고, 현재 대구교도소에 수감중입니다.

Page 16: Saveleeletter vo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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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일정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추가

구속자 3인(우위영, 박민정, 이영춘)

항소심 공판기일

● 5월 13일 오후 4시

● 서울고등법원 서관 505호법정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후원 _ 국민은행 292501-01-212646 예금주 : 정진우(구명위) 문의 _ 02-6385-8900

고문 _ 권오헌, 김상근, 박순경, 이창복, 정동익, 조영건, 함세웅

공동대표 _ 강병기, 김성근, 김한성, 박래군, 유시경, 정진우, 조순덕, 최재철, 퇴휴, 한충목

홈페이지 _ savelee.kr(국문) en.savelee.kr(영문) 카톡 _ @sav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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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팩트페이지 _ freele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