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부 고자 ζ 미 소「 L · 다. 모든 가족들이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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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15부 고잔리 민속

1. 명생의례

1991-2005년까지 약 15년에 걸친 시기에 나타

난 평생의례 관련 특정은 도시 생활을 중심으로

사회구조카 정착되어 가면서 예식장 같은 전문

적 의례 공죠L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었

고 상례를 제하면 대부분의 의례는 주말을 이용

해 행해지고있다는점에서 2차년도와큰차이

가보이지 않는시기이다.혼례에 있어서는사별

후 재취, 이혼 후 재혼인 경우의 예식장 결혼, 30

대중반여성의만혼동다양한결혼양태가나타

났다. 신씨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가까운 집안사

람들의 환갑연이 잦아졌다. 상레에서 장지(觀地)

는 일반적으로 공원묘지가 이용되고 있으며, 면

례 장사가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는특히 평택

및 경기도 내 일원에서 도로, 공단, 골프장 건설

등으로 빈번하게 토지수용이 이루어지면서 더욱

많아진 경향이 있다. 또, 기독교와관련된 종교장

과 도시생활 속에서 2000년대에 들어오면 병원

등의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부조는 호혜적 행위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전 면장부인의 칠순잔치에 가자는

동료에게 “ ... 나외는경조사에거래한일도없고

해 ... 집에 왔다"는내용이 있다(1995. 6. 11). 또,

1993년에 이미 축의금이 올라 일반적 관계의 부

조금이 그동안 만원이었는데 “부조금이 낯간지

러워 가려다가 봉투만 전해”주는 상황까지 되었

다. 그리고 1996년경이 되면 완전히 두 배로 뛰어

버렸다.

저15부|고잔리 민속

1. 백일 및 돌

이 시기는 차남의 혼인으로 두 자녀가 태어났

고, 장남 역시 귀한손지를낳아서 신씨가의 경사

가 이어졌다. 차남의 첫딸은출산후 병원에 방문

한 뒤, 친정에서의 한달간폼조리가끝나고귀

가하는날 상견하기 위해 다시 집으로갔다. 신씨

부부는 손녀 백일을 위해 금을 마련하고, 며느리

가 귀향하여 벽 하고 일요일에 백일잔치를 하였

다. 모든 가족들이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백일상

을차려 사진촬영을하였다. 이때 아기의 외조부

모와 외삼촌 내외 둥이 와서 축하하였는데, 처음

사돈가에옹것이었다.

장남가의 둘째 손녀 백일잔치는장남집에서

토요일을 기해 있었다. 준비는 이웃아주머니들

이 했고, 부부는 돈으로 만원을 냈다. 해당 날에

는 식구끼리만 하고, 다음날 아기 외갓집과 이웃

을대접했다.이아기의돌에는직장동료를집에

초청해서 대접했는데, 조부모인 신씨는 5만원어

치 물건과 현금 10만원을주었다. 그런데, 장남의

셋째, 그리고 기다리던 큰손자의 백일을 위해서

는 백일선물을사러 직접 신포까지 갔다. 백일 선

물은 거북이형 금 세 돈을구입했고, 장남가에서

저녁에 차남 가와 간단히 저녁을 먹고 백일상을

차렸다.돌역시집에서차려서,평생의례와관련

하여 아직 예식이 가정에서 행해지고 있는 분야

였다.

2. 환갑례

과거에 비해 수명이 늘어나면서 환갑례 뿐 아

니라장수를 기념히는고희연, 긴갑연, 백수연퉁

다양한 의례가 실행되고 있다. 대부분이 예식장,

호텔식장, 음식점 동을 이용해서 식을 진행하고

경기문화재단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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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111

있으며, 때로는 가정에서 이동식 뷔페를 불러서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피로연이 있는 장소까

지 혼인식처럼 대절차를 이용해서 가기도 하며,

부조금도 마찬가지로 받고 있다. 가정에 따라서

는 부조를 사절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고희

연이고 야주 드문 경우이다. 예식 절차는 행사장

에서 정해져 있어서 거의 동일하다. 먼저 가족들

의 촬영→지손들의 축 · 헌수→주인공의 약력소

개 (또는 가족 소개}→피로연 순으로, 대부분의

피로연은 뷔페식이다. 신권식씨의 아내는 남동

생 환갑에 미리 치마저고리 예물을받았는데,그

것을 할수 있는 현금으로 10만원을받았다. 이에

신씨는 처남 환갑날 13만원을 부조했다. 외삼촌

회갑연이기에자녀들도참석했다.

1994년은음력으로그해 겨울에 아내의 환갑이

끼어있어서 미국비자를 받고부부가 미국여행을

8박 9일의 일정으로 다녀온다. 대신 아내의 육순

생일에는 며느리가 차려온 상을 받았고, 실제 환

갑날에는 가족끼 리 식사를 했다. 신씨의 동생들

환갑도 있었다. 무러니 여동생 환갑은 식장에서

했는데 7만원을 부조했고, 셋째 동생 환갑에는

집에서 저녁식사초대를했는데, 6만원부조하고

장남과 아내만 보냈다. 특히 셋째 동생은 환갑이

들었던 해에 20대 중반의 둘째 아들을 잃었기 때

문에 크게 행사를 치르지 않았다. 같은동생이라

도,또동생과처남간에도예물이오고갔는지의

여부에 따라부조금액에 차이가나타나고 있다.

3. 혼례

이 시기에는서울에서 하는결혼식이 많아졌는

데,이는친척이나친구동많은사람들이서울이

나 수도권에 삶의 터전을 잡았음을 보여주는 증

거이기도하다. 음력 2월, 양력 3월엔하루 4건의

112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총서 m

청첩이 있을정도로흔례의 시기가봄에 집중되

어 있다. 집안사람들의 혼인에 신씨의 아내가 가

서 일을 도와주는 관레는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1991년, 신권식씨의 둘째 아들 혼례가 있었는데,

상견례에서 예식 당일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

다.

먼저 양가의 상견례(5월 12일)가 있었다. 이전

에 이미 며느리 될사람은신씨의 평택 집에 여러

차례 다녀간 후였다. 상견례 이후 약흔일자와 결

혼일자를 잡은 듯하다.6월 16일엔 약혼식이 있

었는데, 사돈집이 거주하는 서울의 한 중국음식

집에서 했다. 그 사이에 약흔 예물을 장만했고,

예식장과 피로연 장소를 예약했다. 약혼식에는

신씨 집에서는 신씨의 새어머니(할머니), 두 동

생 내외(3촌숙모), 둘째동생의 딸(4촌), 이복 맏

동생(서3촌), 딸 내외(누나), 그리고 신량 친구들

이 신랑측하객으로참석하였고,신부측도인원

수를 통일하게 맞춰 16명 정도 참석하였다. 식순

에 따라 약혼식을 거행하고 피로연을한다음, 부

근에 사는 사돈댁을 구경했다. 약혼 이후에는 이

들 예비부부를 대호 내외라 지칭했다. 따라서 약

흔은 결혼에 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짐을 알 수

있다. 이유고 혼수를 들였다(8월 21일). 한 달 반

만에(10월 2일) 채단을 장만뺨 데 100만원이

들었고, 청첩장 인쇄 5천원, 신흔집 수리 120만

원, 약흔 예물 250만 원 해서 약 500만원이 들었

다. 신부는 가정용품 장만에 천만 원이 들었다.

축의금접수는사위와이복동생중한명이했다.

예식 3일 전부터 잔치음식을준비했다.

예식 절j;}는 예식장에서 주례 하에 혼인식을

한 후 폐백을 드리고 신혼여행(3박4일)을 떠났

다. 집으로 돌아온 신씨는 고향에서 다시 동리잔

치를 했다. 예식장에 못 왔던 사람들은나중에 봉

투[부죄를 챙겨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부부는

먼저 처가에 들렀다가 처가에서 마련해준 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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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해왔다.

여러 곳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결혼식 참석은

아내와 서로 나누어 참석하였고, 때로는 부조만

전하기도 하였는데 친밀도와 중요성에 따라 달

라진다. 결혼식장은동생, 4촌등 헤어져 살던 집

안식구들을만나는반가운자리이기도하다.또,

멀리서 예식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때로는 교통

체증으혹 인해 신부의 부모가 예식시간에 늦어

도 기다리지 않고 친척 중에 대신 신부를 데리고

들어가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예

식장에서 정해 놓은 시간 내에서 예식을 마쳐야

하는조건과관련된것으로,혼례식은더 이상양

가의 주체적 의지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의례

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시설에

서 혼례를 치르는 경우도 있는데, 사찰에서 전통

혼례로예식을치른사례가었다.

4. 상례

이 시기에는신권식씨 주변의 많은친인척들이

상을당했는데,신씨와그위세대의 연령이높아

진 것과무관하지 않다. 상가조문은다양한관계

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둘째동생의 장모, 딸

의 시어머니 등시돈가의 조상(렴喪)도눈에 띄

게 늘어났다. 처형의 상(喪)을 당해 조문을 했는

데,처만가고자신은집에 님아행정적 일을보

았고, 가끼운 관계임에 비추어보아 당시 비슷한

친인척보다다소적은5만원을부조하고 있다.

안골조의 탈상은 49제로 나타나는데, 탈상 날

그 집으로 가서 제사를 올리고 왔다. 또, 92세의

셋째 조모가 7월 장마철에 별세했다. 그 집의 종

교인 성공회 식으로장례를하였다. 먼저 사망다

음 날 오후 염습을 마쳤고, 이틀 후에는 안중 성

공회 교회에서 영결식을하기 위해 영구를 7시에

저15부|고잔리 민속

하였다. 이제 모든 산역(山投)은 포크레인을 사

용해서 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매우 쉬워졌다.

11시에 산에 운구하여 11시 때분에 하관하였는

데,모두교회 식이었다. 남편과함께 쌍분을했

다. 탈상 역시 교회 식으로 했지만 백일제(백일

탈상)를 채택하고 있다.

신권식씨 딸의 시어머니 장례는 천주교 성당에

서 이루어졌다. 아침 7시에 발인하여 천주교 성

당에서 미사를 하였다. 장례 일은 모두 동리아주

머니, 교우, 가앤 일가 등이 봐주었다. 집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발인 이후에 신씨의 아내가 딸

의 집에 남아 뒤치다꺼리를 하고 몽리사람들이

주위를 청소했다. 도시 속의 삶이지만 경조사엔

여전히 이웃간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외, 비정상적으로 인식되는 다양한 죽음이

등장한다. 이때는대개 화장을 택하고 있다. 셋째

동생의 차남이 26세로 암 선고 6개월 만에 요절

했다. 미혼의 청년이므로 3일장을 지키지 않고

바로다음날발인하였다. 이른바비정상적 죽음

에 대한 장례는 자살자도 있다. 셋째 조 가의 딸

중 하나는 30세의 나이로 미혼상태에서 자살했

는데,시신을장레식장으로옮겨 역시다음날발

언,화장으로끝냈다.

또, 하나의 장례가 면례(細禮)이다. 역시 포크레

인을 이용해 파광을 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시

간과 노력이 크게 절약되었다. 면례장사의 순서

는 개광→탈골→염습→이장을 마친 후 곧 제사

를 올렸다. 당숙들의 면례장사가 있었고, 조모,

조부산소도증조부산소 옆으혹옮겼다. 이장이

계속되었는데, 8대조 면례장사를할 때는사초와

면례를 3일 일정으로 3습장으로 모셨다. 석물

1 ,100만원, 행사비 700만원을 썼는데 장명등까지

갖추었다. 이는 위토가 도로용지로 수용되면서

나온 보상금으로 이루어졌다. 동리사람이 힘을

경가문화재단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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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111

모아서 진행했다. 또 염습을 할 때, 나일론 베를

사용한 경우는 썩지 않아가위로 잘라 가면서 유

골을 골라내야 했다. 이장은 평택 신씨 집안에서

는 그 이전 시기에도 여러 차레 있었지만, 이 시

기에는토지수용으로더욱 빈번해졌다.

1997년 신씨 묘원을 조성하여 처음으로 당숙을

모시게 되었고, 4일장을 치렀다. 비가 많이 내려

동리사람들 힘으로는 어려웠을 일을 다니던 교

회에서 운구하여 가능했다. 종교기관을 이용한

장레식이 많아졌는데, 병원 영안실에 조문을하

고교회에서 모든 일을 알아서 하기 때문에 일가

들이 할 일이 없어 조문만하고바로돌아오는상

황이었다.또,음식에서매장까지모든절차를장

의사에게 맡기는 경우도 생겨나서 1997년경에는

장려1식 역시 가정을 떠나와 전문 업체에 맡겨지

는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 새어머니의 장례를

보면, 거주하고 있던 인천에서 한 대학병원 영안

실에 안치하여 조객을 받고 3일째 되는 날 장례

를 치렀다. 영구차로 평택 집까지 온 뒤 꽃상여로

차려 장지까지 가서 허관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

다. 신주를 서울의 한 절에다 봉안하였다가 49제

로 탈상을 하였다. 절에서 행사를 마치고 오후에

산소에다녀왔다.

5. 저|려|

명절제사와 기제사에서 뚜렷한 패턴이 형성되

었다. 우선, 추석과 설 명절에 자녀들은 이틀 전

쯤부터 내려와함께음식준비를하는등협력하

지만, 동생들은모두 명절날아침 차레 지내기 직

전에 내려와서 차례 모시고 음복이 끝나면 모두

떠나버린다. 자녀들 역시 명절 날 오후엔 떠나는

데,승용차를구입하고나서는귀경,귀성정체를

우려해 더욱서두르는측면이 있다. 역시 혼인 등

114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총서 m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는 집에서 제사를 올리지

않고산소에서 차례를 지내는 일도 이어졌다.

기제사에 대한 인식은 점차 직계가족 중심으로

제한되고 있다. 장모제사에는 거의 아내가 혼자

다녀올뿐신씨는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신씨의

부모 제사논 이틀 간격으로 있논데, 어머니 제사

는 거의 신씨 부부만이 참석할뿐이고, 아버지 제

사에는 동생들도 저녁에 왔다가 음복을 하고는

떠나가는 형식을 취한다. 두 번 웅직이기 쉽지 않

기 때문에, 아버지제사에 대표성을 두는 것이다.

이는 서울에서 거리가 가깝고 승용차가 있기 때

문에 가능한 일이다. 제삿날 근신해야 한다는 의

식도 많이 희박해져, 모친 제삿날 동창 야유회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하게 되어 저녁 9시 가까이 되

어서야도착한일도있다.이때제물은미리준비

해두었기 때문에 메만 지어서 올렸다. 차남이 결

혼한 이후로 제사에 맞추어 두 며느리가 미리 내

려와 음식 준비히는 모습은 신씨 부부를 흐뭇하

게 했는데, 때로 며느리들이 부침 같은제물의 일

부를미리 해오는 일도 있었다. 신씨 형제들사이

의 분란으로 부모의 기제사는 하루씩 절충해서

그사이 날짜로한꺼번에 올리게 되었고,설은신

정으로 차례를 옮기고 추석차례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7시에 올리고는가족들끼리 시간을갖

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당연히 두 제사 모두

신씨와 자녀들의 직계가족들로만 진행되었다.

새어머니의 제사는 맏 이복동생이 서울에서 지

내게 되었는데, 신씨는장남을 대신 참가시켰다.

한편, 신씨 종중의 산소 수호인들이 위토 경작

을 고사해서 제사 준비할 사람이 없어지는 일이

빈번해진다. 이는 농사가 별로수익이 되지 않으

면서 도지를 내고 소작하던 이들이 경작지를 내

놓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결국은 경작자가 메,

갱만 준비하고 나머지는 제관들이 제물을 준비

하는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제물을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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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묘소에서 직접 준비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고,

이렇게 되면서 부인들도 함께 시사에 참여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분히 제물을 준비하는 데

손을 벌기 위함이고, 수고한 부인들에 대한 고마

움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관광을 시켜주기도 하

였다. 그런가하면 향교에서 문묘체례에 여러 차

례 참석해 본 신씨는 밤에는 제관이 적고, 행사

내용도 성균관에 맞추어 올리자고 문충공 제사

를 낮에 올리도록 제안하여 결정한다. 이 과정에

서 신씨는 제사절차, 홀기 둥에 대해 전반적으로

수정하고 새로 작성하기도 하는 둥, 종중의 제사

의례에서주도적 역할을담당하고있다.

사진 19. 부조묘정비

저15부 l 고잔리 민속

l R 세시, 놀이와여가

1. 세시풍속과놀이

신권식씨의 일기에 기록된 세시풍속의 내용을

살펴보면한개인이 세대를거쳐 일생통안향유

하는 세시풍속의 내용과 시대적 변화양상을 살

필수있어흥미롭다.개인적인삶의변화와시대

적인 변화에 따른 세시풍속과 놀이의 변화는 민

속 문화의 전승양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권식씨의 일기에서는전통적인세시명절과놀

이, 절기(節氣), 국가 기념일 동을 정리해 볼 수

있다.

3차 년도에 속하는 신권식씨의 일기는 1991년-

2005년까지로 그의 나이 62세부터 76세인 최근

까지의 기록이다. 이 시기에는 신권식씨 본인도

논농사는도지를주고부동산과 임대 수익이 있

어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이며 사회적으로도

지역과종중에서 비중있는위치를점하고있다.

자식들도 모두 출가하여 출산과 안정된 직장, 아

파트퉁주택 장만,자동차구입이 이루어져 가정

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된 노년을 향유하고

있는시기이다.

그의 일기에서는 이 시기에도 매년 1월 1일, 新

年所感으로 새해의 다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

나 신년과세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은사라

졌으며 신정에도딸, 사위, 아들이 고향을 방문하

거나함께 여행을가기도하는둥 여유 있는 명절

휴일을 보내었다. 드래는 변화는 2αn년 음력

설(舊正)에 재산과 관련하여 명절에 모인 형제들

과언쟁이 있은후부터 차례를지내는시기를바

꾸었다는 점이다.2001년도에는 식구끼리 조용

히 차혜를 지냈고, 2002년부터는 양력설(新正)에

경기문화재단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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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111

자식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기 시작하였다.2003

년도에는음력설에 차례를 지냈으나 2004년도부

터는다시 양력과세로자리를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설날 풍속에 대한 기록은 단순해지

고 대신 그 전날부터 고향으로 내려오는 자식들

의 교통체증을 염려하고또하루, 이틀후에 떠나

가는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을 기록하는데 비중

이더해지고있다.

오늘 저녁부터는 民族의 大이동이 일어난다. 기록

에依하면금년정월설 명절은고향을찾는분들의 이동인구가 260萬명이라고한다 ... 아이들이저녁

9時 경에 雄浩, 大浩 식구가 모두 왔다(1994년 2월

8일).

명절날 일직 일어났다. 서둘러 아이들이 차레상

준비를 했다. 仁川서울에서 8時 煩에 모두 왔다. 西

海뿜高速道路 開通으로 인해 1時간 거리이다. 성황

리에 차레를 모시고 성묘하고 나니 寬植이와 같이

술나누고 있다가헤여저 같다. 들물처럼 왔던 식구

는 썰물처럼 도라같다.2개월간이나 같이 있던 賢

秀가 에미 따라 가니 허전하기만 하다(1997년 2년

8일) .

큰집으로 건너가 차례를 지내고 조부 제사, 어

머님 제사, 성묘, 동리 세배로 하루를 보내고, 정

월 4-5일까지 동리 어른들을 찾아가 세배를 드리

거나, 집으로모시고 떡과술을 대접하기도하고,

윷놀이를 하고 놀았다거나 처가 어른들을 찾아

봐러가는일도없어졌다.

:E午年의 첫 붓을 들었다. 今年에도 모든 일이 如

意亨通되기을 기대면서 所員을 빈다. 雄浩식구와

신월동 애가 왔다. 父母님 제시을 정성 드려 올렸

다. 차레[차례], 제사 때 마다 兄弟가 모이면 큰소리

가 나고 하던 것이 조용히 정숙하게 올리니 P}음이

개운하다. 午後에 아이들이 모두 같다(2002년 1년

1년화요일).

116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층서 m

朝飯食事을 하고 9時 20分에 안식구 聖堂에 가는

데 雄浩, 賢秀, 秀賢이도 같이 떠나같다. 賢秀는 한

달여 시골 집에서 잘 놀다 같다. 허전하다. 오후에

는강까로 산책을 했다. 이번 명절도개운하지 않은

명절이다. 동생들의 난동을 피하기 鳥해 차레를 7 時에 올리고 큰아들 집으로 피한 것이"'(2003년 2 월 2일일요일).

正月初하루.

새벽 5시20分에 신월동 內外, 윤아, 秀賢, 秀률 等

이 떠나 없關에 같다. 全國的으로 해맞이을 같으나

7時43分의 해보기에는未治하기만하다. 안개 속에

해마지였다.7時 50分에 父母님의 차레를 가족이

모여 올려 드리고 나니 신월통 아이들이 왔다. 길이 정체되여 못가고 西海大橋에서 도라왔다고. 10時

煩에 富川 애들이 奏家에 간다고 가고, 12時 점심을

먹고, 신월동에 막네가 떠나가는데 우리 內外도 막

네를 쪼차 같다. 저녁을 먹고는 찜질방에 가 목욕,

찜질하고 왔다(2004년 1월 1일 목요일).

2005년 ζ西 新年을 맞이하여 첫 붓을 들었다. 바

라건대 금년에도 온 가정이 편안하고 행복한 하해

로 이루워지길 빈다. 어제 저녁에 부천 큰애들이 왔

고, 식전 6時에 신월동 애들이, 7時에 평촌 애들이

왔으니 나의 식솔들이 다모이였다.내일이 어머니

生日 이다. 우리는 數年 前부터 양약으로 父母님 차

례를 올려와 今年에도온 식구가차례를올리고조

반식사을 같이 했다. 어머니 生신이라고 아이들이

선물을 보내와 나도 10만 원을 주웠다. 부천 애는

일직 떠나가고, 신월동, 평촌 이들은 점심을 먹고

떠나가니 두늙으니 허전하기만하다(2005년 1월 1 일토요일).

大浩 집에서 자고 일어나 名節을 지냈다. 차례는

陽歷에 오리였다 ... 新浦까지 데려다주워 집에 오

니 3時 30分이다. 세배돈으로 아이들 5명에게 萬 원

식 주웠다(2005년 2월 9일 수요일).

음력 정월 열나홀에 대하여는 일기에 매년 기

록하고 있지는 않으나, 부천 아들집으로 부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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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지식들이 다 함께 모여 오곡밥을 먹고 내

려오거나 부부가 고향에서 보내기도 한다. 그러

나 이 역시 점차 기록이 분명하지 않다. 음력 정

월 보름에 대한 기록도 점차간략화 되었으며, 척

사대회는 꾸준히 행하여지고 있기는 하나 그 횟

수가축소되었음을 알수 있다.

마을編女會親陸鐵뼈大會.

每年 실시하는 부녀자 웃노리을 했다. 남지들도

점심까지 대접해주었다. 찬조금은 안 받켓다고 해 점심을 먹고신포에 같다가왔다. 저녁은 일등한 집

에서 먹었다(1992년 2월 19일).

貴北面새마을협의회주최.

爛細大會 20,000 헌금 . ... 점심을 먹고는 새마을에서 장애자돕기 爛뼈大 會에 一金 2萬 원을 헌금했다(1993년 2월 3일 수요

일).

정월 열 나훗날 한 보름 실컷 놀고 오늘은농경사

회의 일을시작하는날로정한날.집집마다죄연장 을손질하고 저녁에 틈틈이 꼬와 놓은 새끼로 쇠곱 뱅이, 맛줄, 보줄 등 죄연장에 쓰일 일을 하는 날이

요, 아이들은마당 아홉 번 쓸고, 나무 아홉 짐 해오

고午前중분주히한보름놀든몸을풀고午後에 는이집저집모여앉아술과오곡밥을나누워 먹

는 화기애애한 이웃간에 정이 넘치는 날이었으나

요즈음은 아주 인정이 메u}른 시골이 되었다. 안식

구가오곡밥을차려주어 우리 내위가 먹고나는 신 포에 가서 놀다가왔다(1993년 2월 5일 금요일).

집에 있었읍. 운전면허시험 공부(1994년 2월 23 일수요일).

음력 2월, 3월, 4월 초파일에 대한 기록은 이미

1970년대 이전부터 기록되고 있지 않았으며 5월

단오에 대하여는 비와 연계하여 몇 해 기록하고

있었으나 1990년대부터의 기록에서는 보이지 않

저15부|고잔리 민속

고 있다. 또한 음력 7월에는 산소에 별초를 가던/

일 역시 줄어들었으며 8월 보름 추석 명절 역시

설 명절과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만 1993년

도부터는 농협 새농민대회나 단체, 개인으로부

터 추석명절 선물이 들어오는 것을 기록하고 있

다. 연중 설, 추석 2대 명절로 단순화된 것은 이

미 지난시기부터이다.1999년 추석에는 아들의

결혼식으로 인해 산소에서 차례를올렸다.

8月 한가위. 낮에는 푸른 하늘 맑고, 밤에는 창공

에 퉁근달이 밝게 오곡이 무성한가을한가위이다. 온 7}족이 한 데 모여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옛

고향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큰 四#이 11時 煩에

왔고 水原 四#도 와 지난날의 이야기며 그리웠든

옛 이야기로 해를 저물리였다. 午後 6時 煩에야 정

든 고향을 등지고 來年의 오늘을 약속하며 헤여졌

다. 안식구는 아이들을 데리고 奏家집에가 위『郵C

母님의 성묘을 하고 雄浩는 떠나같다(1993년 9월

30일목요일)

大浩결혼날자를잡아산소에서 차례를올리기로

해 9時에 차려 같고 산소에 같다. 동생들과족하등 옹 가족이 모여 父母님께 차례를 올리였다. 雄浩,

大浩퉁 모두 떠나 같다. 집안이 허전하다. 큰 시촌

도 왔다 같다. 命植도 왔다 같다(1991년 9월 22일

일요일).

午前에송펀을만들고午後에는아이들데리고할

머니, 大浩와 같이 포승면 국가공단 향구에 갔다. 구경하고 大浩는 투망을 갖고 가 그물질을 했다

(2어0년 9월 11일 월요일).

秋장 明節이라 하지만 우리 집에는 전쟁판이였

다.(…중략 ... )종일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 도모두도라같다. 참으로 기분나쁜 일이라 앞으로

는 제사를 안 차릴 생각이 든다. 제사란 경건한 마 음이 있어야만(2000년 9월 12일 화요일).

형제들의 지나친간섭에 시달리였던지난날의 명

경기문화재단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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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111

절에 今年에는 조용하게 우리 식구들이 치루니 개

운하다. 명절 때만 되면큰소리가 이루었던 것을금

년에는 조용히 명절을 치루고 10시에는 우리 식구

들이향남섬에가놀다가午後 2시에집에왔다.신

월동 애도 왔다. 모두 떠나가니 허전한 감도 든다

(2001년 10월 1일 월요일. 추석. 국군의 날).

그외 9월 9일중구에 대한기록은이미 전시기

부터 나타나지 않았다.10월부터 11월에는 시사

참례, 유도회, 종회, 족보, 종중 일에 대해 더욱

비중 있게 기록되고 있어 그의 문중에서의 역할

이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10월 상달 고

사에 대한기록도그 이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세시민속놀이에 대한 기록도 이 시기(1991년-

2005년)의 일기에서는음력 정월보름무렵에 행

하는 동네 윷놀이나 청북면 화합척사대회 외에

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2어4년도 9월에 청북

면민체육대회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정부

시책에 의해 각 지역마다 새롭게 생겨난 행사라

고할수있다.

새마을 爛뼈大會 完(좁北面) .... 청북면 새마을주 최 척사대회에 구경하고 결승전까지 보다가 왔다

(1993년 2월 4일 목요일).

男女새o}을 협의회에서 面단합 척사대회에서 초

청장을 받고 그냥 있을 수 없어 3萬원을 내고 왔다

(2003년 2월 10일).

正月 대보름 洞里爛뼈大會.10時에 동리에서 웃

노리에 안식구와 참석했다. 웃도 잠시 놀아보았 다 ... (2005년 2월 23일 수요일).

세시절기는 농사일의 마디가 되고 농사와 밀접

한날씨를 예견할수 있는날이다. 신권식씨가농

사일을 직접 하였던 1차 기간의 일기(1959-1973)

에는 절기에 대한 기록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특

118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총서 m

히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과 추위를 알리는

소한, 대한 등에 대한 절기는 거의 기록하고 있

다. 그러나 농지개량이 이루어지고 일꾼들을 두

고 농사를 지으면서 날씨에 대한 기록의 비중이

들어들면서 절기에 대한 기록도 뜸해졌던 것을

알수 있었다. 그대선 그날의 중요한회의 참석

이나 마을 일 등사회활동에 대한 기록이 우선되

고 있었다. 따라서 세시절기나 기념일에 대한 기

록은점차한정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2차년도의 일기(1974-1990)에서도 경칩, 춘분에

대해서는 간단하게나마 기록하고 있으나 한식,

청명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약하였다. 삼복에 대

해서는 간혹 기록하고 있으나 모두 날씨와 연결

되는 내용이었다. 업춘일(立장日) 역시 겨울 준

비를 서둘러야 하는 시기임을 알려준다고 기록

하고 있다.3차녀도의 일기(1991-2005)에서는 이

러한 절기에 대한 기록은 더욱 간단해졌다. 주로

날씨와관련하여간혹기록하고있는데,

소한추위 답지 않게 푸근한 날씨다(1994.1.5.수. 음11 . 24).

초복날이다 ... 복날이니 보신탕이나 먹자는 것 ... (2004.7.20.화) .

등과 같이 먹는 것이나 모임과 연계하여 기록

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농사는다른사람에게 도

지를준터이며,안식구가하는밭농사만있어서

날씨와 농사에 대한 관심보다는 임대업 등에 대

한 일에 더 비중이 있였다는것도한이유가될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김장하는 날’ 에 대한 기

록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식들의 김장을

집에서 담아주는 일이 안식구를 도와주어야 하

는큰일로부각되었다.

동지취이를한다.영하 6度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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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장을 거이 정리했다…(2004년 12월 21일 화

요일).

김장하다. 식전 일직부터 서둘러 김장을 했다. 나도 협조를

했다. 어제 저녁에 목감기가 온 것 같아 목이 아푸

[프따.11時에 雄浩 식구가 와 검장을 해 일직[찍]

했다. 김장이 끝나고서 아산만 가서 새우를사왔다.

2것 검장을또해야 된다. 大浩 신월동 애들이 해가

야한다(2003년 11월 16일) .

김장하다.

안식구는 우리 먹을 용 김장을 했다. 아이들이 와

서 함께하기에는많다고우리 먹을것을나누워 했

다(2004년 11월 16일 화요일).

양력 세시는 국경일과 기념일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신권식씨의 경우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3.1절, 6.25 전쟁기념일, 8.15 광복절에는 당

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지적하면서 울분을 토로

하였으며, 그 외의 기념일에 대해서는 명칭이라

도적어두었다.특히,삼일절에대하여는매년소

감을 적고 있었는데, 일본과의 정치적인 관계가

주를 이루고 있어 당시 한 개인의 애국심을 엿보

게 하였다.4.19 학생 의거도 신권식씨가 자주 기

록하는 기념일이었다.6월 6일 현충일, 7월 17일

제헌절에 대해서는 명칭만, 6.25 기념일에 대해

서는 간혹 내용에 대한 기록이 보였다.8.15 광복

절에 대하여서도 매년 유감을 적고 있다. 그 외

10월 1일 육군의 날, 10월 3일 개천절, 10월 9일

한글날에 대해서도 명칭만 간혹 기록하였다. 그

러나 이러한 국가기념일에 대한 기록은 2차년도

의 일기부터 점차 비중이 약해졌음을 알 수 있었

다. 다만, 6.25와 8.15 광복절에 대한 기록은 계속

되었는데 이 날에 대한기록은 3차년도의 일기에

서도 빠지지 않고 있다. 신권식씨의 경우 6.경 전

쟁은직접겪었던개인적언경험의산물이며, 3.1

저15부|고잔리 민속

절, 8.15 광복절의 경우에는 사회적인 위치에서

기념식과 체육대회 등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

여하고 있어 각각 일기에서 기록의 비중을 이해

할 수 있었다.6.25 전쟁의 경우 1984년 이후부터

는 적극적인 기록이 보이지 않았다.3차 기간의

일기에서는 3.1절, 6월 6일 현충일과 6.25 전쟁,

8.15 광복절에 대한 기록은 계속 되고 있는데 신

권식씨는 지역인사로써 이러한 기념식에 계속

참석을하는위치에 있었다.

81주년 3.1절 행사를 시청 회의실에서 하기로 했

으나집에 있었고전국손잡기 운동을각종교단체

에서 추진, 진위 71두에서 3시에 하기로 한데도 진

위분들에게 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는 강가로 산

책을 했다(2000년 3월 1일 수요일).

6.25 기념행사에 참석.9時에 떠나 평택 시청에

서 6.25기념행시를 향군에서 주최하여 10時 30分

에 참전용사위 유관단체에서 실시했다. 회의가 끝

나고 점심을 하고 왔다… (2001년 6월 25일 월요

일).

공휴일이자 현충일이다. 每年 아산만 충흔탑에서

실시하는 행사에 참석을 했으나 금년에는 안가고 집에 있었다(2'어4년 6월 6일 일요일).

현충일 참배. 제 50회 현충 행사에 8時 305t에 떠

나 安빼에서 아산만 행사차로 가 10時에 행사를 시

작, 11時 끝나고 도시락으로 점심식사을 하고 ... (2005년 6월 6일 월요일).

광복 @주년. 광복 @주년에는 북측대표단이 국

군묘지에 참배했다…(2005년 8월 15일 월요일).

특히, 3차기간의 일기에서 새롭게 드러나는것

은 2004년 12월 24일에 안식구(부인)가 아이들

성탄선물을 구입하러 갔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2001년부터 안식구가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였기

경기문호째단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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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111

때문이다. 그 외 손주들이 한창 커가는 시기인

2005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대해 명시하고 있으

나 별다른 기록은 없으며 그 해 5월 7일 토요일에

어버이날이라고자식들이 내려왔다는기록이 있

다. 또한 1992년 12월 25일에는 크리스마스 날이

라고 구체적으로 기록은 하지 않았지만 동창모

임을 하였다고 적고 있다. 양력세시에 대해서도

농촌과도시의 문화향유내용이 다르지 않은모

습을살필수있다.

2. 여가활동

여가활동은생애주기에따라크게 영향을받으

며 유년기, 청소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따라서

즐겨 취하는 여가활동이 다르며 여가활동의 의

미도 달라진다. 구시대를 살아온 60대 이상 고령

층의 경우, 여가교육의 부재로 여가활동의 내용

이 단순하고 소극적이라는 것이 일반화된 현상

이다. 신권식씨의 경우 장년기가 이에 해당한다

고 할수 있다. 그러나노년기에는 더욱다양하고

적극적인 여가활동을행하고 있어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여가의 범주로는 산책 및 행락, 여

행 및 관광, 교제 및 만남(동창회, 계모임, 종교,

사회봉사활동, 친지 방문 등), 관람, 구경, 감상,

(티비시청, 라디오 청취 등), 독서 및 기능 자격

공부(신문, 잡지 읽기, 교양서적 읽기 등), 취미

및 교양활동(강습, 강좌, 서예 등), 운동, 놀이 및

오락(활, 카드 등), 쇼핑, 휴식(낮잠, 낙서, 목욕,

사우나 등)을 열거할 수 있다. 결국 여가의 본질

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는 즐거움을 수반하고 자

신의 사회적 또는 문화적인 영역을 넓히는 것으

로 볼 수 있다. 휴식, 기분전환, 자기개발의 기능

이있는것이다.

신권식씨의 일기에서 살펴 본 여가는 ‘일로부

120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총서 R

터 해방 된 시간’ , ‘비의무적인 시간’ 과 가까운

개념이며 ‘자의적으로선택한시간’으로서의적

극적인 여가생활은 중년기 후반을 지나서 나타

나고 있다. 그가 행한 여가생활은 ‘마실 가기’

‘놀러’ 라는 일상적인 여가시간과 산책, 행락, 여

행, 관광, 교제, 관람, 구경, 독서, 운전면허, 컴퓨

터 공부, 서예, 낚시, 쇼핑 그리고 낮잠, 목욕과

같은휴식 등의 활동이 있었다.

일기의 초창기인 30-40대에 그가 바실을 가는

것’은순전히 “술뺑”, ‘캠섬내기 뺑(회투Y’을치

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수디를 위해 놀러가는 경

우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가는 경우인지가 분명

하게 드러나지 않는 “놀러”가기가 대부분이었

다, 2차년도 일기의 1970년대 후반부터는 몇 가

지 사례로 그의 여가 시간을 살펴볼 수 있었다.

먼저 새마을협의회, 산주회, 도로추진위원회, 새

마을회, 방범협의회, 청북장학회 임원회, 형제

회, 송죽회, 종회(宗會), 사회정화위원회, 방범위

원회 등 다양한 사회활동으혹 출타를 하는 시간

이 많아지는데 이러한 일을 마치고 술을 한잔하

면서 ‘재미나게 놀았다.’ 고 하는 시간들이다. 결

혼식이나 회갑연 풍 잔치나 상가(喪家)에 갔다가

술을 마시는 것을 합하면 이러한 시간은 50대를

넘어서더욱많아졌음을알수있다.이는농사일

을 보아줄 일꾼을 둘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 데서 오는 생활의 변화도 한 이유가

될수있었다.

보다 적극적인 여가로는 이러한 모임에서 가는

야유회나 견학, 마을에서 가는 부부동반 여행이

있었다. 청북 오토바이 야유회, 서부농협 총대야

유회. 국민학교 동창회 야유회, 형제회 여행, 장

학회 야유회, 송죽회 야유회 등사회적인 활동에

서 오는 여행도 친목도모를 위한 여행으로 주요

한 여가활동이었다. 신권식씨는 1990년에 처음

으로 해외여행을 갔는데, 신씨의 상세한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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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은당시해외여행의양상을알수있는좋은여

행기가 된다. 이러한 야유회나 여행은 주로 3-4 월, 9-10월에 이루어져 세시절기와 무관하지 않

았던 것인데 일기의 3차 기간에는 그 시기도 계

절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주말에 고향으로

내려오는 자식들과의 간단한 나들이부터 %월

여름휴가철에 자식들과 가는 바닷가 피서에 대

한 기록도 보인다. 그 외, 이전부터 지속되고 있

는 송죽회, 유도회, 향교, 대종회, 고령신씨 회장

단회, 국민학교 동창회, 청북산악회, 청신산악회

등에서 가는 야유회와 견학, 등산, 관광, 국내외

여행 등으후 그의 여가활동은 노년으로 갈수록

내용이 다양해지고 영역도 확대되었으며 그 횟

수와 시간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

나,그전시기와비교되는것은동리주민과회원

끼리 가는 야유회나단체 시찰, 관광등으로가족

나들이의 기회가적었는데, 점차자식들과안식

구 등 가족과 함께하는 여가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명절, 생일 때 뿐만 아니라 주말에 가는 짧은 여행과 여름 휴가철에 자식들과 함께 떠나

는피서,해마다가는해외여행은인생의 안정기

를 살고 있는 신권식씨의 경제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야유회(밤나무꼴)

8時 半에 新浦에 나같다. 민자당광역의원 당선사

례로 이계석 의원이 일금 100萬원과 여러 군데서

찬조을 받어 오늘 50여명이 야유회를 같다 왔다

(1991년 7월 18일 목요일).

안식구울릉도,니는白雲山야유회 안식구는 새벽 2時에 일어나 내가 먹을 검밥을 싸

주고 3時 30分에 떠나 울릉도 여정을 高構歸女會에

서 주체한 회에서 가게 된다. 우리 동리에서도 6名

의 歸女들이 가게 된다. 나는 門中에서 11名이 묶어

오늘 첫 모임 야유회의였다…오늘은 피서가 아닌

제5부|고잔리 민속

차량여행이다(1996년 7월 22일).

제부도에 조개 잡으러 갔다 왔다.8時 30分에 안

식구와 같이 제부도에 바지락을 잡으러 갔다.10時

20分에 到훌하니 물01 아직 다 빠지지 않아 기다리

다가 갖고 간 식사를 했다. 시간이 되니 모여 ... (2000년 5월 22얼 월요일).

좁申會野遊會구미金烏山.

6時에 집을 떠나 高構에 가 대절차를 타고 新浦에 서 6時 30分에 37名이 떠나 선산 구미 금오산에 떠

나 11時에 到著했다. 각자 自由에 맡겨 일행은 등산 케이블카 等을 타고 정상하여 등산을 하고 12時에

산속에서 점심을 같이 하며 즐기다가 午後 4時에

떠나 오기로 했으나 2時 30分에 모두 모여 기다리

다가 3時에 떠나 朴正熙 前大統領의 生家를 구경하

고 떠나 집에 오니 9時다. 현지모금을 하여 나도

30,000원을 내니 모인 돈은 46萬원이었다(2000년 6월 7일수요일) .

좁申會무동산산악.

전남 광주의 무등산에 가기 위해 식전 7時에 新浦

에서 43名이 탑승해서 떠나 갔다. 광주에 到著시간 은 12時였다.차에서내려각자씨갖고온도시락을

먹고 등산을 했다. 등산 정상은 4, 5名만이 했다… (2000년 11월 10일 금요일).

東南아여행

식전 일찍 서둘러 新浦에 안식구와 같이 가 出짧

하는 줄 알았더니 변경된 계획으로 9時 찌分에야 여행회원 30名이 떠나 金浦공항에 가 수속을 마치

고 13時 30分에 공항을 이륙하여 7시간 동안 비행

해서 싱가포르에는 저녁이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의해 HOTEL에 가 여장을 풀었다 ... (2000년 11월

29일수요일).

夫編동반兄弟會

11시에 兄弟會를 했다.10명이 모이고 歸A도 통

반했다. 점심을 申光秀가 냈다. 설탕 1봉씩 받았다. 會員은 3萬원씩 받았다 ... (2000년 12월 28일 목요

경기문화재단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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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111

일).

청신회 야유회 참석 ... (2002년 1월 3일 목요일).

웅호 식구가 우리 內外을 데리라 왔다 .... 7時에 떠나강원도쪽으로같다. 강능의 용평 스키장에 들

리여 보고 경포 산장 콘도에 와 짐을 풀고 ... (2002

년 2월 11일 월요일).

6時에 일어나 밖에 나같다가 7時 15分에야 해가 푼다고 해서 해도지때돋이]에 같다가 ... 해받이에 모인 사람은 수만 명이라 우리 일행은 바다까에서

산책을 했다. …대호는 바로 떠나같다(2002년 2월 12일화요일).

좁申會 경주 꽃노리.7時에 高棒에서 떠나 慶州에

는 12時에 도창했다,’ (2002년 4월 2일 화요일).

西部閒짧會에 야유회 가는 날 ... (2002년 4월 24일

수요일).

안만도 꽃박람회에 참석. 청신회에서 45名의 會員이 선포에서 8時에 出發안면도에 11時에 到著... 해미성지를 求景하고 집에 오니 8時이다(2002년 5

월 2일목요일) .

德山溫없. 뿜北 좁老會 주최로 하루 온천 가는데

新浦에서 9時에 30名이 떠나 浦升面 가 10名을 같

이 德山溫없에 같다. 會員은 10,어0원 ... (2003년 2

월 25일).

振威織校野遊會

振威觀校 簡林先進地野遊會의 날이다. 대절차를 6時 20分에 숙성리 安빼에서 6[時]30分 新浦에서 6 時 40分에 시간표를짜놓았다.7[時]에야 신포에 왔

다. 安뼈에다 마친 먹이 안와서 늦었다. 고덕 서탄

입구 진위 은산봉남으로 簡林 30名이 떠나 경북 영

주 봉화 紹修書院에 11時 30分에 到著했다. 관람하

고점섬을산채밥으로하고 12時 30分에 떠나小白

山 공원 시방사에 같다. 폭포 녹음 속에 등산을 했 다.3時 %分에 떠나오다가 저녁 묵 먹고 떠나오니

122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총서 m

9時에 집에 왔다. 책임자로서 하루 일을 마치니 마

음이 개운하다…(2003년 7월 7일).

雄浩식구와나드리 가다.

朝飯食事를 雄浩식구와 같이 하고 10時에 떠나

설악산행을 떠났다. 서울 양평 언제쪽으로같다. 언

제에 가서 점심을 숫불구이로 맛있게 먹고 미시령

으로 해서 한화 콘도에 5時30分에 到著해서 여장을

풀었다. 午後에 대포항에 와 회를뜨라왔다. 안식구 에게 20萬원을 주며 아이들 주라하니 &옳浩에게 주

웠다. 저녁을 회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2004년 2월

28일토요일).

청신회 야유회.새벽부터 가랑비가나리였으나新 浦에서 8時에 43名이 떠나 서울에 있는 용산의 전

쟁기념관을 관람, 12時 점심을 하고 1時에 경복궁

을관람했다…(2어4년 3월 17일수요일).

自治委員會野遊會

청북주민 자치위원회에서 월악산으로 야유회를

했다. 청북면에서 8시30분에 ... (2어4년 7월 29일 목

요일).

새벽 5시에 큰애가 차려준 朝飯食事을 했다.6時

20分에 집을 나서 仁川공항에서 뻐쓰로 仁川공항

에 7時에 到著하니 4, 5名의 향교 전교들이 와 있다.

정각 8時에 우리 一行 23名이 다 와 정검을 마치고

9時에 수속을 마치고 9時35分에 비행기가 이륙해 서 기내에서 점심을 마치고 11時10分에 대만에 到

著했다. 또 중국에 가 점심을 머고 국립 방물관에

가는데 비가 오고 있다. 국립 방물관에서 관람하고

현충사에 가서 구경을 했다. 저녁을 먹고몽펼f용 산사 야시장을 구경하고 시내일급 國官大館이란 一及 호텔에 가 사무국장과 같이 9층에 투숙을 했

다(2004년 10월 18일 월요일).

청신회진주성야유회. 新浦에서 8時에 40名 宗A이 出發해서 京좋로 大

田 가서 진주선으로, 진주에 11時 때分에 진주성에 到著했다 ... 점심을안식구와같이하고 ... (2005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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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3일수요일).

振威織校野遊會.

7時 20分에 文孝會館에서 鄭校 대절차를 出發하

고…(2005년 4월 11일 월요일).

안식구와나드리.

8時에 집을 안식구와 떠나 新浦에다 車를놓고 西

井里에 가 전철로 서울 여의도광장에 벗꽃을 보라 같으나 벚꽂이 만개되지 않았고 또 바람이 십하여 곳바로 東大門連動場에 만물상 구경을 하고 점심 을 짜장면으로 간단히 했다(2005년 4월 14일 목요

일).

좁申山돕會 野遊會. 大宗會奉禮會.

안식구는 청선산악회에 가고나는 大宗會에 아침 7時 30分에 떠나 10時 30分에 大宗會에 참석했

다…(2005년 5월 26일 목요일).

좁北自治委員會, 利川廣川關磁기비 엔나레 가다.

아침 9時 3α分에 委員 27名 中 21名이 떠나 利川에 가 關磁기 전시을 도라보고 나오다가 1時에 점 심을 한식을 하고 廣川에 와 전시하고 ... (2005년 6 월 8일수요일).

청신산악회 무주구천동 야유회…(2005년 7월 21 일목요일).

신월 內外가 6時에 왔다. 저진두에 같이 야유회에 가자고흑산도, 홍도로 하였으나 비용이 많이 들어

논산 앞 고군산열도인 선유도로 가기로 해서 왔 다 ... (2005년 8월 19일금요일).

뽑申山폼會周王山.

7時 %分에 청신산악회원 29名이 新浦에서 떠나

경북 청송주왕산에는 ... (2005년 8월 22일 월요일).

11時 20分에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안식구와

집을 떠나 안식구는 병원에 가고나는 피립핀 여행

저15부!고잔리 민속

저녁에 갈랴 떠나 西井里에 가서 전철로 송내역에

2時에 空船리무진뻐스로 공항에 같다.4時 30分에 到著했다. 몇 사람의 橋林이 와 었다 ... (2005년 10 월 18일화요일).

특히, 신권식씨는 %세가 된 1982년 1월에 새로

운 취미로 붓글씨를 시작하고 있다. 학원에 다닐

상황이 여의치 않아 책을 구입하여 독학을 하였

다고 기록하고 있다. 환갑을 맞이한 1990년에도

독서와 붓글씨는 계속된다. 이후 3차년도(1991-

2005)의 일기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적극

적인 기록을살필 수 있다. 붓글씨 쓰기는 취미를

넘어 휘호를 써주거나 회관에서 붓글씨를 지도

하고, 서예전시에 출품도 하고 있어 전문 서예가

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신권식씨가 붓글씨

를 취미와 여가생활로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에 한문을 수학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것

으로 보인다. 신권식씨는 1929년에 시골마을에

서 태어나 7-8세 무렵 한문강습소에서 명심보감,

동몽선습 등을 수학하고 14세에(1943년) 청북국

민학교를 졸업했다.1982년부터 본격적인 취미

로시작하였던붓글씨는서도협회 10대 입상,서

예고시 2회 입선,한중교류서예전특선,국전미

술대전 입선(서예), 한중교류 서예전 초대 작가

라는 성과를 이루었다. 독서는 간혹 일기에 독후

감을남기고았으며부천지식들집에갈때나서

울에 가게 되면 서점에 들러 책을 구입한다. 특

히, 1991년부터 1993년에는 낚시에 매우 적극적

이었다. 식전낚시를 즐기기도 하고 오후에 다시

낚시를가기도한다. 그러나 이후에는 점차그 횟

수가 줄어들었다.70대에 들어서부터는 독서와

붓글씨 쓰기, 산책, 문효회관 나들이, 그리고 동

산과 여행이 주된 여기활동이었고 연중 생활 속

에서 그 비중도 매우늘어났다. 건강을 위해 식전

산책을 겸하는데 안식구와 함께 즐기기도 하여

보다 적극적인 건강관리를 위한 여가 활동을 하

경기문화재단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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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111

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침산책,1V보고붓글씨

공부, 오토바이타고 신포에 나가동창회 참석, 간

단한 술과 점심을하고 오다가 삽교천에 와 회를

먹고 놀다가 오니 저녁 7時. 회원의 친목과 늙어

가는 아쉬움을 이야기 나누었다는 하루 일과의

기록은 63세가 된 시골농부의 여유로운 삶을 보

여준다.

자고 일어나 박에 나가보니 눈이 소복히 나리였

다. 낚시을 갈 준비를 하였으나 눈이 나린 뒤에는 바로 낚시가 않되여 오늘은 집에서 책을보며 붓을 들었다. 마음은 낚시 장이 더욱 좋다. 시간 보내기

좋은 낚시 장에 비해 집에 있으니 지루한 하루였 다"'(1991년 2월 4일).

식전 낚시. 밤새도록 소화가 안 되여 신음을 하였

다. 식전 5時에 우유을 먹고 낚시을 같다가 9時에

집에 왔다. 한가한 하루 책과 먹을 갈아 붓을 들었

다(1991년 7월 3일 수요일).

마실갈겸每日新浦에나같으나오늘집에있자 하니 지루한하루다. 책을보다붓을들고하루해를

보냈다…(1992년 5월 31일).

5時 때分에 산책을 떠나 장안 앞 강까에 가면 우

시통상 김부장이 산책을 와 있다. 간단한 심호홉을

하고가볍게몸을풀고나면정신이상패하다.每日

같이 실시하는 산책은 기분 좋은 일이다. 조반식사 을 일직 해주워 낚시을 같으나 낚이지 않아 10時 煩

에 집에 와 먹을 갈아 붓을 들고 점심을 먹고 신포

에 가놀다가 왔다(1992년 10월 14일).

날씨가 영하 7도라는 차가운 기온에 5時 %분에

산책 차 밖에 나같다. 뒤깨 강까까지 속보로 나가

간단한 몸풀기 체조을 하고 집에 도라오면 6時 30 分이다. 산책하고 돌아오면 기분이 좋다.1V 뉴스 를 보고는 7時에 사랑에 나가 갈아놓은 먹물에 붓

을당가화선지에글씨 연습을한다.화선지 5장정

도의 붓글씨 공부을 하면 8時이다. 잠시 후에 조반

124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총서 m

식사을 하고 있다가 9時 307t에 오토바이로 신포에 나간다. 사무실에서 떠나 오늘 17회 동창이 모이는

장소에 같더니 서울 친우들이 모두 와 있다. 오늘

회장은 참석치 못하여 내가 주최해서 회를 주재했 다. 모인 친우들 15명 간단한 술과 점심을 하고 ... 오다가 삽교천에 와 회을 먹고 놀다가 오니 저녁 7 時이다 ... 오늘 모인 회원의 친목과늙어가는 야쉬 움을 이야기 나누면서 ... (1992년 12월 25일)

오늘은 안식구와 식전산책을 3일재이다 서둘러 6 時25分에 집을 나가 식전 새벽 공기을 헤치고 좋은 공기를 마음겼 마시는 기분 좋은 산책 이다. 약 l .5K 을 왕복으로 집에 돌아오면 7時10分이다 안식구도

이주 좋와 해 기분 좋다. 신포에는 별일 없어 午後에 나 같다가 午後5時에 집에 왔다"'(1994년 1월 4 일화요일) .

점심을 먹고는每日같이 文孝離홉에 가서 놀다오

는 것이 하루의 일과인데 오늘은 집에서 있으면서

산책하고 …(2005년 1월 18일 화요일)

食前에는 每日같이 붓글씨 공부를 3, 40分가량하

고 청소하고는 朝飯食事를 한다. 朝飯後에는 新聞

을 본다(2005년 3월 21일 월요일).

또한 그는 1994년 1월부터 자동차학원에 등록

을 하고 그 해 9월에 자동차를구입한다. 그의 나

이 65세이다.73세가 되는 2002년에는 컴퓨터를

배우고 있어 자기개발을 위한 여가활동에도 왕

성한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적극적인 여가활동은 순차적

으로선택되고 있다는점이다. 1991년부터 1993 년에는 낚시에 매우 몰두해 있었다. 그러다가

1994년에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낚시에

대한 취미는 줄어들었다. 운전학원에 다니느라

다른 취미도 있었지만 남양만의 오염이 계기가

되기도했음을알수있다.독서와붓글씨쓰기는

꾸준히계속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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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15부|고잔리 민속

조반식사 후에 낚시을 같으나 낚이지 않아 10時

煩에 왔다 남양만이 오염이 되여 농업용수로도 부

정하다는판정을발표했어 걱정이 많다.붕어을낚 아보니 모두 부스럼이 알고 있어 낚시도 이제 끝났

다고 생각 된다(1994년 5월 12일 목요일) .

이처럼 그의 여가는 젊은 시절에는 마실, 햇살

아래 수다, 독서, 신문, 낮잠 등 소극적인 여가가

주를 이루었으나 노후로 갈수록 사회적인 활동

의증가와종친에서의 역할강화,경제적인여유

등생활환경과경제,사회적인 지위 변화등에 따

라 더욱 다양한 취미와 여가생활을 향유하고 있

음을살필수있다.

2007년 「국민여가활동조사」에서 나타난 세대

별 여가 활동의 특정을 신권식씨의 경우와 대비

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에 의하면 30대는 본격적인 사회활동이 시작되

고 경제적으로도 독립적인 시기이기 때문에 적

극적인 여가활동을 즐기며, 친구나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의 여가활동의 비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40대는사회적인 활

동의 범위가절정에 이르는시기로친구나동료

들과의 등산, 음주, 계모임, 동창회, 사교모임 등

을주로즐기고외식의 비율이 높다.50대는사회

적인 활동의 폭이 줄어들고 신체적으로도 쇠퇴

하는시기로소극적인 여가활동을하며,다른 연

령대에 비하여 가족 및 친지방문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ω대 이상은 사회적인 은퇴기에

접어들면서 경제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여가 활동은 줄어들고 있지만 늘어난 여가시간

을 활용하기 위해 휴식형 여가활동이나 사적 모

임의 여가활동비율이높아진다고하였다.또한

세대별 여기활동 동반자 비율을 보면 30대와 40

대는가족과 함께 하는 비율이 가장높았고, 나머

지 연령대는 혼자서 하는 여가활동이 많은 것으

로나타났으며 이러한특성은 연령이 낮을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

권식씨의 경우적극적인 여가활동은 50대 중반

이후부터 두드러지며 60-70대에도 새로운 취미

활동을계속하고있다.물론직업,사회,경제,지

역적인 환경의 차이가 적용되겠지만 자기개발,

내적만족,사회와의 관계, 건강 및 휴식을목적으

로하는여가활동은사회환경의변화와이에적

응하는 개인의 적극적인 성향이 더욱 중요한 요

소가되고있음을살필수있다.

료 샘

m -----------

1. 신권식 가 의료생활의 실질적인 변화

지난 일기자료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1983년도

이후 신권식 가도 의료보험제도의 혜택을 받게

됨에 따라 이전과 크게 달라진 의료생활의 양상

을 보이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아프다는 자각 이

후 병 · 의원의 출입이 당연한 일상사로 자리 잡

게된것은무엇보다이와같은제도적인의료환

경변화가 반영된 결과이다. 몸의 이상이 감지되

면 병 · 의원에서 진찰과 병리적인 검사를 받고

정확한 병명을 확인하여 적절한 투약을 행하는

일련의 내용은현대적인 의료생활이 일상화되었

음을나타내고있다.

의료생활의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요인은 의

료보험제도는 물론이고 인접한 신포에는 보건

소, 또한 인근지역인 안중, 발안, 서정리, 평택 시

내 등지에 다양한 의료기관의 설립과 같은 외적

인 의료 환경의 변화에 있다. 더불어 대중교통,

도로등의 사정이 이전보다나아진 점도 있지만

경기문화재단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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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111

직접 자동차를 구비하게 된 요인도 있다. 따라서

인근지역은 물론 수원, 서울 등지에 이르기까지

질병에 따라 적절한 의료기관을 찾는 점도 달라

진의료생활의 양상이다.특히 이와같은외적인

의료 환경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신권식

가의 경제적 안정도 무시할 수 없는 내적언 요인

이다.

발병 이후의 치료 뿐 아니라 평시의 건강검진,

예방의학도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

다. 종합검진은 의료보험제도의 결과이기도 하

지만 정확한 진단의 필요성을 인식한 때문이기

도 하였다. 독감 예방주사는 가을철의 연례적인

행사가되었고그밖에도간염,유행성출혈열등

의 예방접종도행하였다 .

... 보건소에 가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 잇몸이 아파 몸이 이^J-해 집에 와 누웠다가 진통제를 먹었

다(19%년 11월 6일).

안식구와 같이 독감 예방 주사를 맞다(1999년 10 월 14일) .

독감예방주사를 보건소에서 한다하여 …(중략) ... 안식구와 기다리다가 11시에야 받았다(2000년 10

월 16일).

면에 가 유행성출혈열 예방약을 맞고…(2004년

10월 25일).

치료의 수단은 양방이 우선적으로 이용되었지

만 치료의 효과를 위해 한얻탤 병용하논 행위도

확인된다. 특히 양방 치료의 효과가 쉽게 드러나

지 않거나 양약의 부작용이 생겼을 때에도 한약

으로선회함을 알수 있었다. 특정질환에 대한 예

방의학 외에도 한약은 평시의 건강유지를 위한

보약으로 특히 선호되었다. 보약으로서 한약의

구입은 진단 없이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126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총서 R

와같은한약의 이용과정을비롯하여 약호박,사

골고음,로얄제리 등 일기에서 확인된보신용약

이(藥짧)는의료생활의 민속적 양상의 한부분으

로파악할수있다 .

... 안식구보약을웅호가해주어 흔자미안하니 나 의 보약을 경동시장에서 해 왔다(1993년 3월 25

일).

안식구가 평택에 가 한약방에 가자고 해서 평택

고려당한약방에 갔다. 약을지어 달여 달라고하고 왔다. 안식구와 2인분용 15만 원에 맞추었다(1998

년 3월 20일) .

... 안식구는 평택에 가 보약을 우리 내외용 24만 원 어치를 지어 왔다(2어0년 10월 11일) .

... 명절선물로 로얄제리를 갖고 왔다(2000년 2월

3일) .

... 안식구가 며칠 전부터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얼 굴이 부기가 있어 병원에 갔다가한방에 가 약을 지

었다고 한다(2003년 7월 25일) .

... 안식구는 안중성당에 갔다 오다가 어제 호박을 맡기고 약으로 달여다가 오늘 가져왔다. 약을 넣어 서 호박을소주로내린 것이다(2004년 3월 14일).

2. 으|료에 관한 민속적 관행의 지속

의료생활에서 민속적 양상은 1960-1980년대까

지는 거의 일상적인 자가치료(엽家治標) 행위로

나타났다. 처음발병 이후가내에서 행해지는자

가치료는 이전과 비교해 비중의 차이는 있더라

도 200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일련의 양상은 현대사회에서 질병 발생 이후 전

문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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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대한 인식이나 치료방법의 취사선택이

관행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과거에는 일상적

인 치료행위로서의 민속적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에 비하여 오늘날은 전문 의료기관이

치료 수단의 대개를 이루면서도 해당 기관을 이

용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어떤 질병은 민간요법으

로, 또 어떤 질병은 한방 또는 양방을 할 것인가

의 선택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다. 또한 질병의 진전OJ:상에 따라서도 의료수단

이 좌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측면은 의료생활의

민속적 변용이라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관련 내

용을종합해 보면,다음과같다.

우선 신권식 자신의 숙증인 위장질환에 대해서

염의로 약을 구입하고 처방하는 행위는 계속되

고 있다. 그 까닭은 크고 작은 병원에서 정밀 검

진도 하고 한약 복용도 해보지만, 본인이 느끼는

불편함은 지속되었기 때문이었다. 또 광고와 홍

보에 의한 약의 구입도 여전히 확인된다 .

... 신포에 가서 간염의 혈액검사를 하고…(중 략)…안식구는 어금니를 해 끼울려고 치과에 갔다

와 이가많이‘아프다고신음을해 진통제 약을복용

토록 했다(1993년 12월 7일) .

... 신포에서 병원에 가물리치료하고소화가 안되 어 퀴란이란 약을 15일치를 사왔다(2002년 2월 18

일) .

... 신포에 갔다가사람들이 많이 모여 갔더니 약장 사가 선전을 하여 관절염 골다공증에 관한 선전을 의학박사가 해서 이 약을 먹으면 평생 병에 안걸린

다고 하여 2인분을 샀다. 그 자리에서 약이 떨어졌 다. 값은 2언분 480,000이다. 집에 와 자세히 보니

속은듯하다. 속이 불편해서 보건소에 가서 약을처

방해 약국에 가 약을사왔다(2002년 5월 21일).

또한 평시의 갑작스런 소화불량 증세, 어지럼

저15부|고잔리 민속

증둥은가내에서 사관을트는치료를행하는것

은 이전과다를바가 없었다.1990년대에 들어 대

중적으로높은관심을갖게 된수지침 역시 그효

과나 진의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바 없다고 하였

음에도 기족과 주변인들에게 책을 보며 실연하

였다.그외에도감기,통증등에는가내에서 간

단한 약품을 이용한다든가, 소화불량 증세에 사

이다, 꿀물 등 약이(藥輯)를 이용하는 것도 이전

과크게 달라지지 않은내용이다 .

... 안식구와 강식 군 모에 수지침을 놓아 주었다. 수지침에대해서는아는바없어책을보며놓아주

었으나 그 진의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1992년 6

월 5일) .

... 일어나려하니골이어지러워웬일인가하고진 정을 했다. 다시 일어나니 못일어나겠으며 속이 메 스껍기도한듯하다. 안식구를불러 시관을트고소

화제를 먹고 누워 있다가 7시 %분에 또 일어나보

니 어지러운 기가 약간 가신듯하여 찬바람을 쏘이

러 밖에 나갔다 또소화제를 먹고 아침식사를 했으

나 어지러움은 여전하여 이대로는 안되겠다 생각

해 오후에는 선포에 갔다. 병원에 갈까하다가 안중

에 가니 차도가 있는 듯하여 그냥 낚시 가게에 가 서…(1993년 3월 19일) .

... 술과 치킨을 사주어 먹은 것이 체해 고생을 하 고사관트고약먹고누워 있다가 ... (중략) ... 저녁 도 먹지 않고갔다(1993년 8월 4일) .

... 밤에소화가안되더니호흡이어려움고해소화 제를 먹었으나 차도가 없어 수지침으로 손발 끝의 피를 내고 안식구가 주무르고 해 밤 3시에야 잠이

들었다(2002년 9월 3일).

전술한 “수지침”은 1990년대 이전의 민간의 의

료생활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민간요법이

었다. 또 다음 사레에서 나타나는 비타민 C가 노

경기문화재단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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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111

령에 좋다는 입소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

이 새로운 치료방법이 대중적인 정보의 보급과

교류과정에서 확산되는 것은 이전과 차이가 없

다. 그러나 해당 정보의 교류, 전달의 매개가 과

거에는 주변인들과의 접촉을 통한 직접적인 방

볍이었다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대중매

체에 의한간접적인 방법의 비중이 더 커진 것은

일기의 기록 뿐 아니라 1990년대 이후 두드러진

일반적인 현상 중 하나이다.2000년대 들어서는

무엇이 폼에 좋다거나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다

는 소문과 정보는 곧 대중의 구매력으로 이어져

일부품목의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

한 현상의 중섬에는 항상 인쇄매체, 전파매체 등

대중매체의 정보가 유력한 요인이 되고 있어서

2000년대 이후 대중매체와 민간의료의 영향관계

는주목되는점이다.

특히 대중 산업화 속에서 전기치료 업소와 같

은 유사의료인의 등장, 찜질방 등 민간의료 업종

의 확산도 새로운 의료 관행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와같은산업이 자리 잡을수있었던요인중

하나는 전문 의료기관의 치료가 민간의 실질적

인 기대감에 미치지 못하는까닭도 있다. 일기에

서도 신권식의 부인이 두차레에 걸쳐 관절염 수

술을 받은 이후에 병 · 의원을 통한 물리치료를

지속하였지만통증의 경감이나 불편함이 호전되

지는 않았던 것으로나타난다. 따라서 또다른 치

료 방법으로써 전기치료나 찜질방, 목욕치료 등

의 민간요법으로 선회하였고 이후 기록에는 해

당 민간요법을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다 .

... 安빼에 11時 30分에 회의에 참석했다 .... (중 략) .. 회의를마치고전기 진료하는데 가서 진료를 30分했다(2000년 1월 20일) .

... 안식구는…안마 전기치료하는 데 다녀왔다 (2000년 7월 11일).

128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총서 m

... 정찬조와 조언장이 노령에는 비타민C을 먹으 며는 좋다고 해서 사오라 했더니 240정에 15,어0원

에 사고 모래 울능도에 가는데 배멀미약을 사왔다 ... (2001년 6월 11일).

안식구는 서정리로 물리치료 겸해서 목욕을 갔다

왔다(2001년 9월 28일).

안식구는 동리 부녀회에서 현덕에 있는 찜질방에

가고…(2004년 1월 14일).

3. 현대적인 질환의 일반화

일기에나타난질병의종류는자녀들은외지에

서 거주하다 출가를 하여 신권식씨와 부인 그리

고 주변인들의 내용이 주류이다. 이전과 다름없

이 신권식씨와 부인의 감기 그리고 신권식씨 개

인의 잦은 질환인 신경성 위장염과 치아질환 퉁

이 가장 많은 기록내용이었다. 또한 부인은 육체

피로, 어지러움 증세를 자주 호소하고 농약으로

인한 증세 동 노동으후 인한 질병의 기록이 빈번

하고부인의숙증인부인질환,관절염,골다공증

등의 기록이있다. 또한 드물게 나타나긴 하지만

바다가 가까운 지역적 특정과 해물을 즐겨먹는

식습관은 종종 식중독의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

다. 그 외에도 1980년대 이후 농촌 내 각종 농기

계의 도입과 운송수단의 변화로 인한 편리함의

이면에는 각종 사고도 도사리고 있었다. 1990년

대에 들어서는 신권식씨 자신은 불론 주변 지인

들의 교통사.Jl7} 농가에서도 흔한 상해의 원인

이되었다.

이전의 일기에서 그리 흔하지 않았던 ‘암’ 질환

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빈번한 질환으로 나

타나며 위암, 간암, 자궁암, 장암 등 다양한 암의

종류도 기록되어 있다. 주변 지인은 물론이고 형

제, 친척들의 암 질환으로 인한발병 소식에 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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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15부|고잔리 민속

식씨 자신 역시 소회불량 동의 증세가 암에서 비

롯된 것은아닌지 의심하기도한다. 이처럼 현대

적인 난치 질환의 일반화눈 일상에서 새로운 두

려움과공포로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 서정리에 갔다. 내괴를 찾아 햇빛병원으로 갔 다 .... (중략)…섬전도를 하고 기다리다가 위시경 (위내시경)을 했다: .. (중략)…위암을 걱정했으나 위가 염증이 있을뿐아주깨끗하다고한다. 진료비

25,000원. 약국에 가 약을 7일 치 6,000원 어치를사 왔다(2000년 8월 21일).

... 송탄 대성병원에 가니…(중략)",3만원을 원무

과에 지불하고 CI촬영, X레이 촬영, 혈액검사등을

약 1시간 30분가량했다 .... (중략) ... 위가붓고 염증 이 있다고만해 아주다행이라생각한다. 암이 아닌

가 걱정을했다. 모레 와서 혈액결과를보자고한다

(1999년 2월 18일).

그 밖에 1990년대 이후 일기에 등장하는 각종

질병은서양의학에서 구분하는 질환명으로 정확

히 기록되어 있다. ‘장결석’ , ‘담석증’ , ‘심부전 증’ , ‘가와사키병’ 2) , ‘골다공증’ , ‘유행성출혈 열’ , ‘A형 간염’ 등 단순히 증세로 표현되던 질

일기머I끼록펀 추요 질병과사망으l 내용은 다읍표와같다;

연도 질 병 사망원인

1991 담석증 · 눈다락지 · 피로 · 오한 · 소호}불량 · 치통 · 구|가 멍하고 01상

1992 피부병·심부전증·부인병· 열·하복통·간암·비뇨기질환·식중독

1993 독감 · 현훈 · 메스꺼움 · 체 · 감기 · 장결석 · 소호}불량 뇌진탕

1994 간경화·우|암·암·감기 ·몸살 교통사고

1995 감기·가와사키병·요통·골다공증 암

1996 목감기 · 식중독 · 치매 · 독감 · 치통 · 위암 · 복통 · 설사 뇌졸중

1997 감기 ·기침 · 교통사고 · 소호}불량· 백태 · 골절 · 방광염 · 몸살 자살·방광염수술후사망

1998 눈다래끼 · 요통 · 교통사고 · 에어컨 후유증 치매

1999 소호}불량 · 우1. 가려움증 · 암 · 독감 · 감기 · 유행성 출혈열 간경화·암

2000 소호}불량·기침 ·팔통증·독감·퇴행성관절염 E :x:;걷~

2001 관절염·감기·독감·토사곽란

2002 담·감기 ·기침 ·소호}불량·관절염

2003 치통 · 감기 · 골다공증 · 얼굴부기 · 목가려움 .

독감 · 엉덩이 통증 · 소화불량

2004 무릎통증 .A형 간염 · 감기 · 유행성출혈열 · 소호}불량

2005 감기·두통·낙상·배탈·암

2) 주로 5세 미만의 소아에게 발병하는 급성혈관염.1%7년 일본(일본인 소아과의사, 가와λ셰 도미시쿠)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전 세계적인 분포

를보이고 있으며 최근들어 소아 연령에서 가장흔한후천성 심장질환으로부각되고 었다

경기문화재단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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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111

병이 명확한 질환명으로 나타나는 것은 의료기

관의 이용률이 높아짐에 따라 질병과 사망의 원

인도보다자세하게 드러나게 된까닭이다.

4. 기타 - 농가의 질병 양상과 성별 특징

신권식씨는 1980년도부터 거의 매일산책과조

깅을 통해 평상시의 체력 단련에도 힘을 기울이

게 되었는데 199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졌

다. 또 저녁식사량을크게 줄여 숙증인 신경성 위

장염에 대한 대비도 일상화되었다. 그 까닭언지

이전 일기에 비해 숙증의 증세는 물론 일상적인

노동으후 인한 사고나 질병 퉁 신권식씨 자신의

발병기록은 크게 줄어들었다. 다른 측면에서는

신권식씨 자신이 농업을 직접 경영하지 않게 됨

에 따라 노동의 참여정도가 이전과는 달리 크게

감소하였고 대외적인 사회활동 비중이 커진 까

닭으로도볼수 있었다. 이러한사실을증명하듯

이 신권식씨가 간혹 농업 노동에 참여한 후에는

피로, 통증, 어지러움 동의 증세를 겪게 되는데

이처럼 노동과 질병의 상관관계가 명확함을 알

수있다.

논을 갈고 십으나 챙기가 없어 못 갈아주겠다고

해 내가갈기로하고 경운기로갈기로 했다. 이준만

이 뽑板을 실패하여 상자를 가질라 와 1어개를 주

고같이 가차려 놓고 이준만이 시키는대로했으나

갈 것 같아처음하는 일이라아주서투르고더더욱

힘이 든다. 午前엔 할 것 같더니 午後가 되어서는

다리가 아푸고 피곤하여 4時 경에 집에 도라왔다…

(1991년 4월 29일 월요일).

'"매설을 왔다. 고추밭에 농약을 끼언졌다. 매설 을따고머리가아프고어지러워저녁도안먹고누

웠다(2001년 6월 11일 월요일).

오늘은 안식구 물리치료次 병원에 안 같다. 하루

걸러서 갈랴고한다. 날씨가가물어 田곡은말라죽

고검장도 되여나질 안는다. 쪽파을부치고물을주

웠다. 허리에 담이 들어 오늘도 매우 아푸다(2001

년 9월 7일금요일).

오전 중 밭에 비닐을 씨웠다. 비닐을 다 씨웠다.

기진맥진 하다. 온몸이 아푸고 피곤하여 午後에는

쇼파에 누워있었다(2005년 4월 23일 토요일).

반면 신권식씨 부인의 노동 강도는 이전과 다

름없었다. 더욱이 노년기에 접어든 부인의 지속

적인 노동은 결과적으로 질병의 잦은 발생기록

으로 나타나고 있다. 감기, 몸살의 증세도 거의

부인의 발병기록이 대부분일 정도이며 골다공

증, 퇴행성관절염 퉁 부인의 각종 노인성 질환이

빈번하게 기록되었고두차례에 걸쳐 관절염 수

술도 받았다. 들쥐가 매개로 알려진 유행성 출혈

열에 감염되었던 사실도 역시 농업노동의 지속

에서비롯된결과였다.

이와 같은 결괴는 요즈음 기계화된 농촌에서

나타나는 거의 일반적인 양상이 아닌가 생각된

다. 논농사는 대체로 기계식으로 행하는 반면에

밭농사는 여성노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오늘

날의 현실이 선권식씨의 일기에도 반영되어 있

다고 하겠다. 따라서 농가 여성들에게 흔히 발생

하고있는소위 ‘농부증’ ,즉농업을직업으로하

는 농업인들에게서 주로 많이 나타나는 정신, 신

체적 장애 증상군을 말히는데 농가 여성들이 흔

히 호소하는 어깨 결림, 뒷머리 압박캄, 위 혹은

하복부 팽만감, 요통, 심계 항진, 손가락 감각이

상, 어지러움, 흉부 및 사지 통증 등의 증세가 수

3) 농부증은 1943년 일본인 Kuma쩔1에 의해 보고되었다고 한다(우미향 r농촌여성의 질병과 증상」 , 『最高農業經營者課程 論文集,8, 慶北大學校

農業開發大學院, 2002‘ 646-654쪽.

130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층서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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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되는 질병3)으로서 신권식 부인에게 발생된 증

세 역시 농부증으로볼수 있었다. 대체로농가의

여성노동이 40-50대가 주류를 이루고ω대 이상

은 노동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일반적인 통계

추이와는 달리 신권식씨 부인은 60-70대에 이르

러서도 일손을 놓지 못하였다. 관련 연구4)에서

농가 여성들에게 빈번한 질환으로 디스크, 고혈

압, 골다공증 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부인

의 증세나 발병기록 역시 일반적인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수 있다.

4) 유미정 r여성농업인의 역할중가와건강문제에대한연구:전북지역을중심으로c ,전북대석사학위논문, 2005. 58-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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