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방송사상 처음 대법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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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KBS, 방송사상 처음 대법원에...

KBS, 방송사상 처음 대법원에 '메스'

기사목록

판사 26명, '인사제도 개선' 건의문 파문

"사법부 피라미드식 승진 답습, 관료화 심각하다" 2003/05/22 오후 4:54

참여연대, '대법관·헌법재판관 시민추천위원회' 구성 2003/07/18 오전 11:12

KBS, 방송사상 처음 대법원에 '메스'

내달 2일 <한국사회를 말한다> 첫 전파 2003/07/23 오후 5:33

현직판사 "시민단체 법원 길들이기 안돼" 2003/07/28 오후 6:48

사법부 ‘연공서열이냐 세대교체냐’ 고심

양승태 법원행정처차장·이영애 고법부장 유력 2003/08/05 오전 9:38

문흥수 판사 "사법개혁 반대세력 `마피아'처럼 움직여" 2003/08/12 오후 11:00

민변 “고집부리면 타율로 사법개혁 될 것” 경고 2003/08/13 오후 4:26

<인터넷 연판장 전문 >

"지난 10년 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길" 2003/08/13 오후 5:18

"사법엘리트주의에 빠져있는 대법원"

[정진경 판사 글 전문] 무엇이 문제인가 2003/08/14 오후 8:04

"대법원의 폐쇄· 경직성에 분노한다"

[9신] 판사 159명 '연판장' 서명... 법원내부게시판 '각성촉구' 글 2003/08/12 오후 8:24

[문흥수 판사] "이번 회의는 미봉책...여론 무마하지 마라"

18일 '조건부 사표' 내며 비판 2003/08/18 오후 3:02

[이용구 판사]"내부 관료화가 사법부 독립 해치고 있다"

18일 '전국 판사와의 대화' 토론 자료서 밝혀 2003/08/18 오후 4:22

"법관들 사이에 갈등인 것으로 비춰져 책임감"

최종영 대법원장, 19일 전국 판사들에게 이메일 '편지' 2003/08/19 오후 3:45

대구변호사회 “변협 독단에 당혹”

사법부 파문 변호사업계로 파장 이어지나 2003/08/19 오후 5:28

민변·참여연대 “사법개혁 특별기구 구성하자" 2003/08/22 오후 6:06

"대법관 제청권은 대법원장 권한... 단체행동 부적절"

이강국 법원행정처장, 대법관 인선 파문 관련 대법원 입장 표명

첫 여성 헌재 재판관 지명, 전효숙 판사

[현장-14신] '시민추천 후보'중 한명... 대법관 제청은 오는 22일 2003/08/18 오전 10:56

“최악의 사태 막을 최선의 길은 제청 재고뿐” 2003/08/19 오후 12:41

시민단체, 대법관 제청파문 공동기자회견... 사법개혁 추진 위한 특별기구 구성 제안

김용담 광주고등법원장 새 대법관으로 임명제청

노 대통령 '수용' ... 최 대법원장과 '사법개혁 공동추진' 합의 2003/08/22 오전 10:11

판사 26명, '인사제도 개선' 건의문 파문

"사법부 피라미드식 승진 답습, 관료화 심각하다" 2003/05/22 오후 4:54

서울지방법원 판사 26명이 지난 3월 대법원에서 발족한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이하 위원회)를 비판하면서 법관인사제도 개혁, 대법원에 개혁적 진보적 인사 참여 등을 요구하는 연대서명 건의문을 지난 20일 대법원장과 위원회에 전달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가운데 사법부에서도 개혁을 요구하는 내부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대법원은 현재 자체적으로 사법부 개혁방안을 마련중이며 오는 26일에는 제3차 법관인사제도 개선위원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전국으로 확산될 경우 파장 커질 듯

'법관 인사제도 개혁 건의안'에 참여한 인사는 서울지법 부장판사 10명, 평판사 16명 등 총 26명이며, 이들은 지난 26일부터 건의문 작성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주장은 그 동안 법원 내부에서도 오랫동안 제기돼온 문제이기 때문에 전국 법원으로 확산될 경우 상당수 판사들이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사법부는 군사독재 시대의 사법부 틀을 유지하면서 상급자에 의한 주관적 근무평정을 전제로 한 피라미드식 다단계 승진구조로 인해 법원 내부에 관료주의가 심각하다"며 "법관 상호간의 관료적 상하관계로 인해 거의 하의상달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설립된 판사회의는 형해화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대법원에서 금년 3월에 법관인사위원회 제도를 발족시켰으나 그 위원들 대부분을 대법원에서 임의로 선정해 그 위원회가 시대가 요구하는 법관인사제도를 확립하기에는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건의문을 올리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우선 건의문을 통해 "사법부 내부의 민주화를 위해서 일선 법관들의 다양한 의견이 법원행정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면서 "당초 이러한 취지로 각급 법원에 판사회의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금번 위원회의 구성과 활동 내용에 관해서도 전혀 일선 법관들의 의견수렴 과정이 없었다"고 지적한 뒤 각급 법원의 판사회의와 코트넷의 활성화 방안을 강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대법관 선임과 관련, "대법관의 위상의 특수성에 비추어 전체 법조인 가운데 신망이 높은 인재를 다양하게 추천받고 실질적인 다면평가를 거쳐서 제청되어야 하고, 특히 소수, 약자를 위해서 헌신해 온 개혁적인 인사가 제청대상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종전처럼 대법관의 직위가 법원장급 법관 가운데 승진의 자리로 인식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간 사회문제가 되어온 '전관예우' 관행의 근본적 해결도 제시했다.

"법관을 선발한다는 것은 선발되지 않은 법관을 무능한 법관으로 낙인을 찍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이 가해지게 됩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선발에 탈락한 법관들은 대부분 사직하여 변호사 업무에 나서게 되었으며 이것이 끊임없이 국민들로부터 이른바 전관예우 시비를 불러일으켰고...

한 기수의 법관 가운데 40 내지 60%(앞으로는 70 내지 80%)를 선발에서 탈락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실질적 단일호봉제의 취지를 도저히 달성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실질적 단일호봉제의 취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위원회에서 선발제도를 그야말로 필요한 최소한의 경우에 한하여 운용하게 되는 인사방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판사들의 건의 내용 7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법원민주화를 위한 법관들의 활발한 의견개진의 통로확립

△피라미드식 법관인사제도의 탈피 :각급 법원의 판사회의를 활성화하는 방안과 코트넷(대법원 인터넷 사이트)상에 위원회와 법관토론장에 게시하는 자료가 '최근 게시물'란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달라.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확보, 소수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개혁적, 진보적 인사의 참여 :실질적인 다면평가를 통해 제청해야 하며 약자를 위해 헌신해 온 개혁적 인사가 제청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사법부 독립의 근간인 법관인사의 공정성, 객관성, 합리성, 투명성 확보

△날로 복잡 다양해지고 전문화, 세분화, 국제화되는 우리 사회의 흐름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법관의 끊임없는 재교육, 법학계와의 활발한 교류, 국제화시대에 국제거래와 외국법에 대한 충분한 지식습득

△전관예우 문제의 근본적 해결 : 법관들로 하여금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껏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단일 호봉제를 실시해 법관들이 변호사 업무에 나서면서 발생하는 전관예우 관행을 없애야 한다. 또 법관들이 사직한 자리를 연소법관들로 충원함으로써 생기는 법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하락을 막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법조일원화와 실질적 시행에 의한 사법부 구성의 선진화 : 일정한 법조경력이 있는 인사 가운데 우수한 인사를 법관으로 임용

다음은 건의 법관명단.(가나다 순)

부장판사: 김선종, 김희태, 문흥수, 박시환, 박정헌, 박 찬, 박태동, 손태호, 신성기, 홍경호

다음은 건의문 전문.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 발족과 관련하여 대법원장님과 동 위원회에 대한 건의문

우리 서울지방법원 판사들은 지난 3월 말 발족한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이하 단지 '위원회'라고 약칭함)의 중요성을 직시하고, 국민들이 바라는 사법부 인사제도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법원장님과 동 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내용들을 건의하고자 합니다.

첫째. 사법부 내부의 민주화를 위해서 일선 법관들의 다양한 의견이 법원행정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당초 이러한 취지로 각급 법원에 판사회의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번 위원회의 구성과 활동내용에 관해서도 전혀 일선 법관들의 의견수렴과정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코트넷 상에 위원회 사이트가 개설되었지만, 법관들의 의견게시는 최근게시물에 뜨지 않는 관계로 법관들의 활발한 의견개진과 토론이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법관토론장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최근게시물에 뜨지 않는 게시물은 거의 읽혀지지 않습니다.

각급 법원의 판사회의를 활성화하는 방안과 코트넷 상에 경조사 사이트를 따로 만드는 방법 등으로 법관들이 위원회와 법관토론장에 게시하는 자료가 최근게시물에 뜰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주시기를 건의합니다.

둘째. 법관인사위원회의 실질적 심의기구화를 통해서 모든 법관인사가 투명하고 민주적이며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셋째. 대법관 선임과 관련하여 대법관의 위상의 특수성에 비추어 전체 법조인 가운데 신망이 높은 인재를 다양하게 추천받고 실질적인 다면평가를 거쳐서 제청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소수, 약자를 위해서 헌신해 온 개혁적인 인사가 제청대상에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종전처럼 대법관의 직위가 법원장급 법관 가운데 승진의 자리로 인식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입니다.

넷째. 법관의 연수와 재교육을 더욱 강화하여 모든 법관이 충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나날이 전문화돼가고 복잡해지는 사회현상에 부응하여 집적된 판례 연구나 새로운 학계의 연구성과, 선진외국 법학이나 판례를 습득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아가 다음에서 말씀드리는 실질적 단일호봉제와 관련해서 대부분의 법관들이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평생 한 두 가운데의 전문재판부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인사제도가 강구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섯째. 지난 1999년도의 대법원 설문조사 결과 전체 법관의 80%이상이 지지하고, 금년 3월에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합의한 법관단일호봉제의 취지는 법관들로 하여금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껏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 법관인사제도(이하 '실질적 단일호봉제'라고 약칭함)를 확립하여 법관의 신분보장을 철저히 함으로써 사법권 독립을 실질적으로 이룩하자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우선 다음과 같은 사법부 인사원리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행정부와 사법부의 인사원리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검찰을 비롯한 행정부는 그 성격상 능력우선의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법부는 그 고유의 사명인 재판업무를 감당함에 있어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정의롭고 공평한 판결을 최고 목표로 삼는다고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법관의 신분보장이 필수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에 법관의 신분보장을 특별히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법부의 경우도 심급제도와 관련해서 사실상 능력에 따른 발탁인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과적으로 법관의 신분보장을 형해화한다면 발탁인사의 요구를 희생하는 것이 헌법에 부합한 보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1994년 당시 대법원 주도하의 '사법제도발전위원회'에 의해서 이루어진 법원조직법 개정 때 "10년 이상의 경력자로 고등부장을, 5년 이상의 경력자로 고등판사 및 지방부장을 임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던 동법 제45조 제2항을 삭제함으로써 판사의 직급을 폐지하였던 것입니다.

이로써 이미 법원조직법상 단일호봉제를 이미 도입한 것입니다. 당시 사법발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등부장 승진연수에 해당하는 경력을 가진 법관에 대해서 같은 수준의 처우를 보장하는 내용의 단일호봉제'를 찬성 17 반대 3으로 의결하였으며, 그에 따라 위 법원조직법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1994년 대법원 발간, 사법제도개혁백서 상, 847면 및 907면 참조). 그에 따라서 대법원 인사발령도 그 전에는 고등부장발령을 승진발령으로 하던 것을 전보발령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부장에 대해서 정무직 처우를 하도록 되어 있는 법관의보수등에관한법률의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같은 경력의 법관이라도 고등부장에 발탁된 사람만을 특별대우하는 인사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체제부조화요, 이에 대해서 위헌이라는 헌법소원까지 제기되어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발표한 위원회 의제 가운데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선발 기준과 절차, 법원장의 임기제 및 고등부장과의 순환보직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의 고등법원 구성방법을 그대로 두는 것을 전제로 종전처럼 한 기수의 법관 가운데 40 내지 60%(앞으로 한 기수의 법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점차 20 내지 30%까지 축소될 것임)만 고등부장으로 선발하는 방법을 논의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법관을 선발한다는 것은 선발되지 않은 법관을 무능한 법관으로 낙인을 찍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이 가해지게 됩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선발에 탈락한 법관들은 대부분 사직하여 변호사 업무에 나서게 되었으며 이것이 끊임없이 국민들로부터 이른바 전관예우 시비를 불러일으켰고, 상당한 경력의 법관들이 사직한 자리를 연소법관들로 충원함으로써 법원에 대한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를 낮추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기수의 법관 가운데 40 내지 60%(앞으로는 70 내지 80%)를 선발에서 탈락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실질적 단일호봉제의 취지를 도저히 달성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실질적 단일호봉제의 취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위원회에서 선발제도를 그야말로 필요한 최소한의 경우에 한하여 운용하게 되는 인사방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가지 방법으로서 위원회에서 [별지 1]과 같은 인사방법을 도입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논의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여섯 째, 실질적 단일호봉제가 이루어진다면 법관에 대한 근무평정결과는 아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에만 기능하게 될 것이나, [별지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의 주관적 평정제도의 폐해에 비추어 이를 폐지하고 독일 등 선진국에 있어서와 같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평정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 제도의 폐단을 상세히 설시하는 이유는 현 제도가 선발식 승진제도와 결합한 결과 법관관료화의 폐단이 특히 심하다는 점에서 선발식 승진제도를 철폐하고 실질적 단일호봉제로 가야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실질적인 단일호봉제를 전제로 할 때, 즉 현재의 선발식 승진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게 되면 근무평정결과가 의미가 있는 경우는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될 것입니다. 대법관 등 특히 아주 예외적인 보직에 특히 우수한 법관으로 하여금 맡길 필요가 있는 경우 그 선발을 위해서, 그리고 특히 실력이 없고 나태하기 때문에 같은 보직에 계속 보하는 것이 국민에게 폐해가 됨이 명백한 극히 소수의 법관들을 가려내기 위해서만 근무평정제도가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법관들은 별로 근무평정에 신경을 쓰지 않고 소신껏 당당히 성실히 일하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법관인사제도가 이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사재판 담당 법관들에 대한 객관적 평정방법의 한 예를 참고로 [별지 3]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한편 매해 평정결과를 본인이 희망할 경우 열람하고 그것에 대해서 이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대법관 등이 되고자 하는 사람과 극히 나태한 법관으로 될 우려가 있는 법관들만 열람하게 될 것입니다. 평정점수가 평균보다 월등하게 미달할 경우에만(어느 정도를 그렇게 볼 것인가는 법관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할 것임) 나태한 법관으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평정은 대법관을 제외한 전체법관에 대해서 해야 할 것입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우수한 대법관 선임을 위해 평정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법관이든 어느 보직을 맡아서 2 내지 3년 정도 일한 결과 평균적인 법관보다 상당히 능력이 부족하고 나태한 것으로 평가될 경우 보다 쉬운 보직을 맡도록 해야 국민에게 피해가 줄게 될 것입니다.

보직을 맡기기도 전에 그 보직에 적합한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근거가 박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밖에 법관의 청렴성, 권한남용, 품위손상 등에 관해서는 법관징계법에 규정되어 있는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전혀 문제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왕의 평정결과에 대해서는 위헌시비가 있는 만큼 그 반영을 최소화하고 하나의 참고자료로만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곱 째, 위와 같은 방법으로 실질적 단일호봉제가 완성되면 법관의 사직이 줄게 되고, 신규법관임용자도 줄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정한 법조경력이 있는 인사 가운데 정말로 우수한 인사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로 감으로써 국민들이 바라는 법관임용제도를 시행하게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상에서 제시한 의견도 완벽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특히 한 기수의 법관이 100명 이상 달하는 기수가 최고호봉에 도달하게 될 경우(현재 경력 9년 차인 연수원 25기부터 그렇게 되므로 13 내지 14년 후의 문제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법관인사원칙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선 위와 같은 인사제도를 시행해본 후 폐단이 실제로 발생하면 그것에 대처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 '대법관·헌법재판관 시민추천위원회' 구성 2003/07/18 오전 11:12

정민규

오는 8, 9월 헌법재판관·대법관 임명을 앞두고, 그동안 법원개혁을 주창해 온 여러 시민단체들이 '시민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향후 활동 계획을 밝혔다.

7월 18일 오전 10시,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여성, 환경, 노동계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단체와 법조계, 학계로부터 추천받아 구성한 시민위원회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시민추천위원회 위원으로는 김상곤 전 민교협 공동대표(학계, 노동계), 박연철 전 대한변협 인권이사(법조계), 박영숙 여성재단 이사장(여성계),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환경분야, 시민사회), 최영도 참여연대 공동대표(법조계, 시민사회), 김진욱 민변 사무차장(변호사, 간사위원), 조국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서울대 법학과 교수, 간사위원) 등이 참여했다.

참여연대는 "기존의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임명은 폐쇄적이고 관행적인 구조"였다고 평하고 "아래로부터의 시민적 공론을 모아 기존의 법관임명과정의 폐쇄성을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조국 소장(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은 "기존의 '대법관임명제청자문위원회'는 법조계인사로만 구성된 데다가 외부 공개를 하지 않아 폐쇄적이란 지적을 받아 왔다"고 시민추천위원회의 구성 이유를 말했다.

시민추천위원회는 시민들로부터 법관후보자를 추천 접수받은 것을 바탕으로 이번달 말 이나 다음달 초에 '바람직한 대법관·헌법재판관 후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KBS, 방송사상 처음 대법원에 '메스'

내달 2일 <한국사회를 말한다> 첫 전파 2003/07/23 오후 5:33

지난 4년 반 동안 매주 토요일 밤에 방영됐다가 지난달 막을 내린 KBS 1TV '역사스페셜'의 뒤를 잇는 프로그램이 내달 2일 첫 전파를 탈 예정이다.

최근 KBS가 내놓은 일련의 개혁프로그램들 중 막차를 탄 '한국사회를 말한다(이하 '한국사회')'는 첫 회에서 국내 방송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메스'를 들이대 주목되고 있다.

23일 KBS 기획제작국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8월2일 첫 방송으로 대법원, 좀더 구체적으로는 대법원 인사시스템을 다루게 된다. "사회의 변화발전 속도에 맞춰 대법원도 변화하고 있는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를 짚어보자는 게 제작진의 생각이다.

오는 9월로 예정된 국회의 대법관 인사청문회가 프로그램 제작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에서 결국 대법원장이 누구를 추천하느냐에 따라 후임 대법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을 포함, 14명의 대법관 자리중 검찰과 대한변호사협회에 주어지는 2자리를 제외하고는 법원의 나이 지긋한 판사들이 독식해왔다. '최고사법기관의 마지막 판결'로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면서도 대법관들은 6년 임기동안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지만, 정작 검증과정은 철두철미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민주사회을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에 처음 틀을 잡은 현재의 인사시스템이 대법원의 폐쇄성을 가속화시켰고, 보수성향의 판결들을 무더기로 양산해왔다"고 비판해왔다. 양 단체는 "향후 대법관 임명과정에서는 법관으로서의 전문성과 함께 진보적 개혁에 대한 소신과 이념적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며 '대법관 후보 시민추천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한국사회'는 75년 2차 인혁당 사건 판결과 판결과정에서 정치권력의 입김이 반영된 과정을 당시 판결에 참여한 대법원 판사와 유족들의 증언을 통해 되짚어본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고문조작이 작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일부 사실로 드러난 이 사건은 법조계에서 대표적인 대법원 오심사례로 꼽히고 있다.

당시 판결에 참여했던 대법원 판사중 민복기 당시 대법원장 등 8명이 현재 생존해있는데, 제작진은 "부분적으로는 당시 대법관들이 협조적이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밝혔다. 대법원에서는 기본적으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제작진은 미국과의 비교를 위해 최근 현지 취재를 다녀왔고, 지난 5월22일 현직판사 26명이 연서명한 '사법개혁 건의문'을 주도한 서울지법 문흥수 판사와도 인터뷰를 가졌다.

'한국사회' 대법원 편은 방송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하는 프로그램이다. 가깝게는 연초 MBC 'PD수첩'이 청와대, 검찰, 국가정보원, 국회라는 4대 핵심권력기관을 해부하는 특집기획을 방영했지만, 대법원 문제를 공론화하지는 않았다.

지난 16년간 '추적60분'과 '일요스페셜' 등을 연출해온 황용호 책임프로듀서(CP)는 23일 "87년 민주화 운동이후 법원 내부에서도 사법파동이라는 형태로 개혁흐름이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 시점이 사법개혁의 문제를 제기할 또 다른 타이밍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한국사회'는 2회(9일 방영)에는 정치자금 문제를 다루게 되고, 후속편으로는 '언론개혁'과 '역사청산' 등 서너개의 아이템을 검토하고 있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숨겨진 과거의 진실에만 천착하지 않고 우리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도 적극적으로 제시하겠다고.

'한국사회'는 간부급이 아이디어를 내면 평기자와 PD가 구체적인 기획을 준비하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종래의 구조에서 벗어나 "우리도 제대로 된 개혁프로그램을 만들자"는 KBS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황용호 CP 이하 15명의 기자, PD들이 모두 "개혁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겠다"고 자원한 것도 '예전 KBS'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풍속도였다. 가깝게는 오는 10월 가을 개편에서 중간평가를 받게될 '한국사회'가 초기의 열정을 잃지 않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내놓을 지 주목된다.

현직판사 "시민단체 법원 길들이기 안돼" 2003/07/28 오후 6:48

유창재 기자

"우리 사회의 일부 운동가 단체(activists group)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몇몇 대법원 판결들을 비난하면서 대법관 전원을 보수주의적 사법소극주의자라고 매도하는 것은 비학문적 분석방법에 기초한 것으로서 진실에 반할 뿐만 아니라 '법원길들이기'의 의도마저 엿보인다."

최근 법원 내부 게시판에 '대법원을 보는 시각-보수와 진보, 사법소극주의와 사법적극주의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이 올라 화제가 되고 있다.

박 부장판사의 글은 오는 9월 신임 대법관 선임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글은 일부 시민단체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놓고 비난하며 문제점을 지적한데 대해 현직 판사가 A4용지 12쪽 분량의 글을 통해 '법원 길들이기' 의도라며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글을 쓴 주인공은 서울지법 북부지원의 박철(44) 부장판사. 그는 "얼마전 모 시사주간지에 실린, 시민단체에서 최근 법원 판결이 보수적이라며 문제를 삼은 내용을 읽고 법원 내부사람들을 전제로 한번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쓰게 됐다"고 28일 밝혔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지식과 법률적 지식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례와 분석을 곁들어 주장을 펼쳤다. 글은 크게 '법원길들이기', '진보와 보수', '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 '우리 판결에 대한 정치철학적 분석', '황혼이혼 판결에 관하여', '사내부부 해고사건', '우리은행 정리해고사건', '판결은 사회적 의사소통의 한 과정이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시민단체의 비난 받고 있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반박

특히 박철 판사는 시민단체로부터 '보수적'인 대법원의 판결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세가지 사건에 대해 반박을 펼쳤다.

우선 남편 83세, 아내 75세의 노부부 '황혼이혼'에 대해 대법원은 보수든 진보든, 남성의 이혼청구권과 여성의 이혼청구권을 동일한 요건으로 규율하지 일방에게 더 우월한 지위를 인정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법원은 "늙은 피고를 돌보는 일은 늙은 아내나 역시 젊지 않은 자식 모두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 배우자가 오랜 혼인생활 중 다른 어떤 때보다도 배우자의 도움을 강력하게 필요로 하게 된 상황에서 가족적 가치와 의무를 중시해 가족 해체를 청구할 권리를 부정할 것"을 채택했다는 주장이다.

또 대법원이 여성을 해고대상으로 정한 것을 위법이며, 반면 사내부부를 정리해고 우선대상으로 정하면서 당사자 부부들의 선택에 맡긴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선언한 두 경우의 '사내부부 해고사건'은 다음의 이유에서 판결이 내려졌다고 반박했다.

부부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긴 것을 위법이라고 판단한다면, 장차의 정리해고에서 사내부부는 선택권을 갖지 못하고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에 의해 해고될 수밖에 없게 된다. 부부 중 누구를 정리해고 할 것인지를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하는 견해와 당사자 부부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는 견해 중 어느 쪽이 근로자 개인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고, 어느 쪽이 더 진보적인 견해인가? 이 두 판결은 모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두 근로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판결로서 결코 보수적 판결이 아니다.

'우리은행 정리해고' 사건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 역시 확정적·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경영위기의 정도, 정리해고를 실시한 사업 부문의 내용과 근로자의 구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면서 "정리해고의 기준 역시 여러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실제로 정리해고를 단행한 기업들의 정리기준에는 다양한 편차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도대체 모든 기업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나 동일한 목록의 해고회피노력을 해야 하며, 다양한 정리기준 중 단 하나의 정리기준만이 옳고 다른 정리기준들은 모두 위법이라고 하는 것이 진보적 견해인가"라고 반문하며, "대법원은 법률의 문언대로 노조에 대한 통고 및 노조와의 협의 의무를 긍정하고, 직급별 대표에 대한 통고의무와 직급별 대표와의 협의의무가 법적으로 강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박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채택한 견해가 보수적인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극단적 견해인지를 반문하며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것들을 놓고 "일부 언론과 운동가 단체들이 대법원의 판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대법관을 못 믿겠다', '대법원이 창피하다', '대법원 판결이 최소한의 합리성도 유지하지 못했다' 식으로 욕설 수준의 비난을 행할 정도라면, 과연 그들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같은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동료로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찌르고 타도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박 부장판사는 비판했다.

이어 그는 마무리 부분에서 "법관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법원은 사회적 분쟁을 해결할 힘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는 가장 민주적인 의사소통제도 중 하나를 잃게 될 것"이라며 "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은 허용될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지만, 근거 없는 비난과 '법원길들이기'로 흘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박 부장판사는 "(본인의 글이) 외부로 나가 논란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 본심이지만, (이를 통해) 적극적인 문제 제기와 함께 자유롭게 문제점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고 전하며 글의 전문을 게재하는데 동의했다.

다음은 박철 부장판사가 쓴 글의 전문이다.

대법원을 보는 시각

- 보수와 진보, 사법소극주의와 사법적극주의에 관하여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 박철

법원길들이기

최근 일부 언론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관들의 정치철학적 성향과 대법원 판결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는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데, 그 논의는 몇 달 앞으로 다가온 대법관 한 분의 임기 만료 및 대법관 충원계획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대체적인 논의의 방향은 ① 현재 대법관 전원이 보수적이며 진보적 인사가 대법관으로 임명될 필요가 있다는 것 ② 현재 대법관 전원이 사법소극주의자이며 사법적극주의적 인사가 대법관으로 임명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거에도 대법관충원계획이 있을 때마다 어떠한 자질을 갖춘 법조인을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있어왔고, 대법원과 대법관이 우리 국가체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그러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법관의 법률해석 작업은 법학이라는 학문적 토대 위에서 과학성과 객관성을 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세한 부분에 들어가 보면 법관 자신의 철학과 인생관의 영향을 받는 주관적인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법관의 철학과 인생관을 분석하고자 하는 최근의 논의는 과거의 논의보다 진일보한 논의로 볼 수 있다.

국가체제에서 최고위직 공무원은 보다 많은 재량을 갖고 있고, 그 재량 행사에 영향을 미칠 공무원 개인의 철학과 인생관을 국민들이 엄격하게 검증하여야 한다는 명제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항상 타당한 것이다. 그 최고위직 공무원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대법관이든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논의에 편승하여 우리 사회의 일부 운동가 단체(activists group)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몇몇 대법원 판결들을 비난하면서 대법관 전원을 보수주의적 사법소극주의자라고 매도하는 것은 비학문적 분석방법에 기초한 것으로서 진실에 반할 뿐만 아니라 '법원 길들이기'의 의도마저 엿보인다.

이 글은 '법원 길들이기'식의 매도와 비난을 지양하고 발전적 논의를 촉구하기 위한 목적에서 작성한 것이다. 먼저 진보와 보수의 개념, 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 개념을 살펴보고 이러한 분석도구의 근원인 된 미국의 정치철학과 법원의 발전 과정을 설명한 후 이러한 틀 속에서 과연 우리 법원이 보수적 사법소극주의인가를 간략하게 검토하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원의 판결이 의미하는 바와 바람직한 비판의 태도에 관하여 필자의 견해를 적어 보았다.

진보와 보수

진보적(progressive) 또는 보수적(conservative)이라는 용어는 본래 법학적 개념이 아니고 정치철학적 개념이었다. 봉건사회에서 진보주의는 자유주의(liberalism)를 뜻하였지만, 봉건시대를 극복한 근대 이후 진보주의는 정치적 좌파, 즉 사회주의(socialism)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에서 법적 분석도구로서 사용되는 '진보'의 원어(原語)는 liberalism으로서 자유주의라는 의미인데, 대부분의 국내 법학자들은 이를 '진보'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이 글에서도 이러한 용어 사용례를 따르기로 하였다. 즉 이 글에서 '진보'라고 함은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주의를 의미한다.

자유주의 정치사상은 유럽에서 발전하여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헌법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자유주의 사상은 사상가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지만, 공통점에 기초하여 그 본래의 내용을 살펴보면, 철학적 의미, 정치적 의미, 경제적 의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각각의 의미는 상호 관련성을 갖지만 논리적 필연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철학적 의미에서의 자유주의는, 가치회의론 또는 가치상대주의에 기초한다. 개인이 각자의 삶 속에서 추구할 가치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서 정할 문제이고, 더 우월한 가치가 있다고 상정하지 않는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국가가 특정한 종교 또는 윤리관에 기초하여 개인이 추구하여야 할 가치를 권력적으로 정해주었는데 이러한 국가 또는 사회가 설정하여 개인에게 강요하는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자유주의이다.

우리 헌법 중 반국교주의(20조 2항), 절대적 양심의 자유(19조) 등은 이러한 철학적 자유주의에 기초한 것이다. 정치적 의미에서의 자유주의는 국가의 권력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의 권력은 개인에 대한 간섭을 의미하므로 국가는 개인의 자유가 충돌하는 경우 발생하는 무질서, 즉 홉스의 무질서(자연상태에서 이리와 같은 인간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이는 상태)를 막는 역할만을 수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공화정체제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한 요소로 보기도 한다(칸트).

경제적 의미에서의 자유주의는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 간섭의 최소화를 의미한다. 이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는 전 시대의 중상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중상주의 경제체제는 수출의 장려와 수입의 제한(관세를 통한 무역장벽 설정)을 통하여 국부 증대를 목표로 하는 경제체제로 요약되는 것으로서 자유주의는 중상주의적 무역장벽의 철폐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자유주의 사상이 국가제도에 반영되는 데에는 100여년의 시간을 필요로 하였지만, 유럽에서 자유주의 제도가 도입되자마자 곧바로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간섭과 개입이 필요하다는 반성이 일기 시작하였다. 결국 유럽의 자유주의는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자유시장(free market)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국가의 각종 규제와 복지정책을 추구하기 위한 강력한 정부를 정당화하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로 발전하였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이와 다른 발전경로를 거쳤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이전까지 미국의 자유주의는 John Locke식의 전통적 자유주의를 고수하여 경제제도, 사회제도, 복지제도에서 국가의 권한은 최소화된 채 유지되었고, 자유시장에 많은 것이 맡겨져 있었다.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사상적 변화를 거친 현재에도 미국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국부를 축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럽보다 열악한 복지정책을 갖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일부 학자가 미국의 역사발전을 보편적 역사발전 모델에서 예외적인 것으로 보는 '미국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의 근거가 되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 자유주의는 뉴딜정책 이후 그 의미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자유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간섭·통제가 강화되기 시작하였고, 복지정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정치사상에 부합하지 않은 뉴딜정책은 자유주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는데, 유명한 정치사상가인 John Rawls가 그의 정의론에서 합리적 평등과 차등이 자유주의의 이념이고, 합리적 평등과 차등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의 경제 통제와 복지정책이 자유주의에 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유주의에 부합한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현재 미국의 자유주의는 John Locke의 자유주의를 수정한 John Rawls의 자유주의를 의미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헌법은, 국가의 경제질서에 관하여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인 자유와 창의를 존중한다고 하면서도(119조 1항), 국민경제의 균형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 분배의 유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의 권한을 인정(119조 2항)함으로써 John Rawls식의 수정된 자유주의를 헌법적 정치사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 사상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헌법이 채택한 자유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정치사상적 편차를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개념의 틀 속에서 진보와 보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사회·문화정책의 측면에서, 전통적 가치를 내포한 국가, 종교, 가족제도에 보다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견해를 보수라고 하고, 위와 같은 전통적 가치보다 개인의 자유를 더 존중하는 견해를 진보(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경제정책적 측면에서, 자유시장에 대한 간섭과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다 많은 국가의 간섭과 개입을 지지하는 견해를 진보(자유주의)라고 하고, 이러한 국가의 간섭과 개입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견해를 보수라고 할 수 있다.

타당한 논의를 위하여 지적하고 싶은 점은, 첫째 보수든 진보든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주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그 한계를 넘은 정치사상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 둘째 우리나라의 경우 자유주의의 전통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일반의 이해가 부족하고 오히려 오해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

사법적극주의(judicial activism)는 미국에서 주로 헌법문제에 관한 법원의 태도를 분석하기 위하여 고안된 개념인데, 아직 논란이 많은 개념이다. 다양한 定義가 존재하지만, 이를 종합하여 필자의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이는 권력분립 정치체제 하에서 법원이 법형성에 얼마나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는가, 다른 권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된 개념이다.

입법부에 대한 관계에서는, 법원이 입법부의 입법재량을 얼마나 존중하는가, 즉 위헌법률심사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행사하는가의 문제로 나타나며, 위헌법률심사를 통하여 입법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 사법적극주의이고 입법부의 입법재량을 존중하면 사법소극주의(judicial restraint)에 해당한다.

행정부에 대한 관계에서는, 행정입법과 행정행위에서의 재량을 얼마나 존중하는가의 문제로 나타나며, 행정부의 재량을 존중하면 사법소극주의이고 행정부의 재량에 보다 많은 통제를 가하면 사법적극주의에 해당한다.

최근 행정법원이 집행정지명령을 내린 새만금간척사업사건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기준은 법원 자신에 대한 관계에서 선례 존중의 원칙에 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갖는가의 문제인데, 종전 구성의 대법원이 내린 선판례를 보다 존중하면 사법소극주의이고 선판례를 보다 적극적으로 번복하면 사법적극주의로 분류된다.

미국의 사법적극주의는 원래 진보적 입장에 섰던 Warren 대법원을 지칭하는 말로 나온 것인데, 그 이전에 뉴딜정책에 반대하였던 前期 Hughes 대법원(1930-1936)을 '역전된 사법적극주의(reversed judicial activism)'라고 부르기도 하고, Warren 대법원의 진보적 선판례를 속속 뒤집고 있는 현재 Rehnquist 대법원을 '우익에 선 사법적극주의(judicial activism on the right)'라고 부르기도 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경제공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뉴딜정책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였는데 그 첫 번째 작업이 1933년 농업조정법(AAA)의 입법이었다. 이 법은 농산물의 과잉생산을 막기 위하여 유휴경작지에 대한 정부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는데 휴즈 대법원은 1936년 AAA를 위헌으로 판결하였으며, 이에 앞서 1935년 또 다른 주요 뉴딜입법이었던 국가산업복구법(NIRA)을 위헌으로 판결하였다.

이에 격분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법원을 포함한 연방법원 구성에 관한 자신의 영향력을 극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법원개혁 프로그램으로 'Court-packing Plan'(좋은 표현으로 법원충원계획이라고 할 수 있지만, '법원 쑤셔넣기 계획'이라는 어감을 갖는 용어이다)을 추진하였는데,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법안은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였지만 대법원이 태도를 변경하여 뉴딜입법을 지지함으로써 대통령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그 이후 휴즈대법원은 진보적 사법소극주의로 분류된다(후기 휴즈 대법원). 뉴딜정책의 경제정책적·정치철학적 정당성이 역사적으로 입증된 오늘날 전기 휴즈 대법원의 보수적 사법적극주의는 더 이상 지지 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 정치철학적 의미를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

전기 휴즈 대법원의 견해는, 미국 헌법을 연방정부의 권한을 최소화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로크식 자유주의적 계약문서로 보았던 당대의 정치철학을 반영한 것인데, 뉴딜정책 이후 연방정부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었고, 2차 세계대전과 연이은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미국 대통령의 권한은 극적으로 강화되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할 즈음 대통령은 그를 위하여 대외적·대내적으로 어떠한 불법도 주저하지 않고 감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충신들로 둘러싸인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t)이 되어 있었다.

정부의 도덕성이 법률과 제도에 의하여 통제되지 않고 대통령 개인의 퍼스넬리티에 의존하게 되었던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경험은, 고전적 자유주의가 추구하였던 정치철학적 가치를 되새기는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며,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제도적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던 워터게이트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발전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은, 진보적(liberal) 사법적극주의인 워렌 대법원을 비난하면서 법원개혁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최초의 대통령이었으며, 그가 임명한 Burger 대법원장, Blackmun, Powell, Rehnquist 대법관은 모두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 중 버거, 블랙먼, 파월은 보수적이었지만 선판례를 존중하는 인물이었으므로 워렌 대법원의 진보적 판례가 그대로 유지되었을 뿐 아니라,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 역사상 기념비적 진보판결의 하나인 낙태판결(Roe v. Wade 판결, 블랙먼 대법관 집필)이 선고되었으며, 닉슨 대통령을 사임으로 몰고 간 U.S. v. Nixon 사건(1974년)에서 대통령의 행정특권을 부정하는 대법관 전원일치의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이 사건에서 렝퀴스트 대법관은 회피하였다). 때문에 버거 대법원은 닉슨의 기대와는 달리 진보적 사법소극주의로 분류될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진정한 보수화는 레이건 대통령이 렝퀴스트 대법관을 대법원장에 임명한 이후 이루어졌는데, 렝퀴스트 대법원은 워렌 대법원이 내린 진보적 선판례를 속속 뒤집었기 때문에 보수적 사법적극주의로 분류된다. 특히 렝퀴스트 대법원은 위법수집 증거(영장 없는 압수수색)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워렌 대법원의 판례를 연이어 뒤집고 있는데, 어떤 학자들은 이를 렝퀴스트 혁명(The Rehnquist Revolution in Criminal Procedure)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우리 판결에 대한 정치철학적 분석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사법적극주의=진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으며, 우리 법원의 판결 분석에서도 동일할 것이다.

판결의 정치철학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그러한 분석 방법론이 우리 판결의 분석방법으로서 타당하고 유용한 방법론인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지면 관계상 결론만 말한다면, 필자의 생각으로는, 판결의 정치철학을 분석하는 작업은 진실을 반영하지 못할 위험이 많고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첫째 미국에서는 재판에 계류된 쟁점에 관하여 진보적 견해와 보수적 견해에 입각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법원이 이 중 하나의 견해를 채택하는데 반하여, 우리의 경우에는 판결 전까지 정치사상적 견해를 달리하는 정치집단 사이에서의 논의가 거의 없다가 판결이 선고된 후에야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기 때문에 판결에 반영되는 것은 당사자 사이의 법절차적 논의뿐이고 사회적 논의가 반영되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 둘째 우리의 경우 법관들은 각자의 정치사상을 법적 판단에 반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력하고 법학 고유의 논리와 이론에 따라 객관적인 논증과 판단의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판사들이 자신의 정치철학을 판결에 반영하는 학문적, 문화적 전통이 있었고(이러한 경향을 비판하는 견해도 강력하다), 특히 정치인 출신들은 자신의 정치철학을 판결에 강하게 반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분석방법은 상당한 유용성을 갖고 있다.

가장 강력한 진보적 사법적극주의 법원을 이끌었던 워렌 대법원장은 정치인 출신으로서 강력한 카리즈마와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러한 미국에서도 법관들은 자신의 정치철학보다는 사안의 개별성과 법학적 논증·논리를 더 중시하였기 때문에 정치철학적 분석방법은 곧잘 오류에 빠지곤 하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실제로 보수적 정치철학을 가졌음에 분명한 Burger 대법원장은 곧잘 진보적 판결로 분류되는 판결의 다수의견에 가담하였고, 또 다른 보수주의자인 Blackmun 대법관은 워렌 대법원의 진보적 판례를 뒤집는 렝퀴스트 대법원의 다수의견에 반대의견을 표시하곤 하여 진보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더구나 우리의 경우에는 사법과정에서 학문성과 객관성을 존중하는 독일적 전통을 더 많이 따르고 있기 때문에 정치철학적 분석은 그만큼 더 큰 오류의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사회는 특유의 이분법적 취향으로 인하여 대법원 판결을 진보 또는 보수, 사법적극주의 또는 사법소극주의라는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지만 오류의 위험이 높은 분석방법을 선호하고 있는 것 같다. 굳이 이러한 방법론에 따라 우리 대법원의 판례를 분석하고자 한다면, 우리 대법원의 판결 중에는 진보적 판결과 보수적 판결이 혼재되어 있고, 사법적극주의 판결과 사법소극주의 판결이 역시 혼재되어 있으며, 대법관 개인별로 뚜렷한 경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분석이다.

오류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개략적으로 말한다면, 정치적 사건에서 사법소극주의적 경향을, 행정부 통제의 측면에서 강력한 사법적극주의적 경향을, 선판례에 대한 관계에서 상당히 강한 사법적극주의적 경향을 읽을 수 있고, 법률해석의 관점에서 법률의 문언을 넘은 해석(praeter legem)과 법률의 문언에 반하는 해석(contra legem)을 통하여 시대의 변화를 강력하게 반영하는 경향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더욱 힘든데, 법원이 정부의 경제 개입과 간섭에 우호적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적 분석의 틀로는 분명 진보적이지만, 정부의 경제 통제가 과도한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서 이를 반드시 진보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개인적 차원의 자유와 평등의 측면에서 우리 대법원은 때로는 보수적이고 때로는 진보적 견해를 취해왔는데 전체적으로 보아 진보적 경향이 우세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그리고 환경 사건, 인터넷 등 새로운 법적 분쟁 분야에서 우리 법원은 대단히 진보적이어서 서구의 판례를 앞서가고 있다(법원에 제기된 사건에서 법원이 진보적 견해를 밝혔다는 것이지 우리의 환경정책과 인터넷 정책이 진보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최근 논의는 노동사건에 대한 판결에 집중되고 있는데, 노동판결에서 진보와 보수를 논하기 전에 지적하여야 할 점이 있다. 노동사건에서 근로자측이 이기면 진보이고, 근로자측이 지면 보수라는 분석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는 점이다.

노동정책에 있어서 前時代의 이념적 접근방법이 퇴조하고 계량적·기능적·공학적·실용적 접근방법이 세계적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 법원도 이러한 global standard를 따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만 노동사건에서 여성차별·외국인차별 등 차별적 대우 쟁점, 아동보호 쟁점, 성희롱 쟁점 등에서는 아직도 이념적 접근방법이 유효한데 이상의 모든 쟁점에서 우리 법원은 진보적 견해를 채택하고 있다.

황혼이혼 판결에 관하여

가족정책에 있어서 가족적 가치를 보다 준중하여 가족적 결합을 강하게 인정하면 보수이고, 개인적 가치를 보다 준중하여 가족의 자유로운 해체를 지지하면 진보에 해당한다. 현재 판사들 중에는 유책주의적 전통을 유지하고 보다 제한된 상황에서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려는 보수적 견해를 가진 판사와 파탄주의를 받아들여 폭넓게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려는 진보적 견해를 가진 판사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가족제도는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하므로(36조 1항), 보수적 견해라고 하여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지지하는 견해인 것은 아니다. 즉 보수든 진보든, 남성의 이혼청구권과 여성의 이혼청구권을 동일한 요건으로 규율하지 일방에게 더 우월한 지위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어려서는 다른 이의 부양을 받아야 하고, 성장하면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만, 늙어서 육체적 힘과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혼자 살아가는 것이 큰 고통으로 다가오게 된다. 직장을 잃고, 성장한 자식이 곁을 떠나고, 친구들마저 먼저 떠나고 나면 외로움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서서히 건전한 사고능력을 상실하면서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노인으로 변하기도 하고, 병을 얻어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되기도 한다. 젊은 시절 경제적 활동능력을 갖고 있는 동안 이혼은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이 아니지만, 늙어서 병까지 얻고 나면 마지막으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배우자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늙은 입장에서 늙고 병든 배우자를 돌보기까지 하여야 한다면 사랑이 남아 있지 않은 부부 사이에서는 큰 고통이 될 것이다. 이 경우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배우자는 남성일 수도 있고, 여성일 수도 있다.

말도 많은 황혼이혼 사건에서 남편은 83세, 아내는 75세였고, 50년 이상 혼인생활을 해 온 상태였다. 남편은 아내와 자식들에 대하여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우는 자였고, 늙어서는 합리적 판단능력을 상실하여 망상장애의 정신병까지 얻었으며, 이로 인하여 공연히 자식들과 아내를 괴롭히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판결에 나타난 사실관계로 미루어 짐작컨대, 늙은 피고를 돌보는 일은 늙은 아내나 역시 젊지 않은 자식 모두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늙은 아내가 오랜 혼인생활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통하여, 아내를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지 않는 늙고 병든 남편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반면 1910년대에 출생하여 당대의 사회문화 속에서 성장한 남편이 가부장적 권위와 책임을 중시하면서 평생을 살아왔고 사회문화적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그에게 얼마나 큰 법적 비난을 가할 수 있을까?

법원은 두 가지 극단적으로 상반된 결론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배우자가 오랜 혼인생활 중 다른 어떤 때보다도 배우자의 도움을 강력하게 필요로 하게 된 상황에서 가족적 가치와 의무를 중시하여 가족 해체를 청구할 권리를 부정할 것인가, 아니면 오랜 혼인생활에도 불구하고 한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를 돌보는 것이 큰 고통으로 느껴지는 상황에서 개인적 가치와 권리를 중시하여 가족 해체를 청구할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대법원은 이 중 전자의 견해를 채택하였다.

이 견해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배우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리가 될 것이므로, 대법원의 견해가 가족적 가치와 의무를 존중하는 보수적 견해라고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남녀차별적이라거나 가부장적 가치를 존중하는 보수적 견해라고 할 수는 없다(이러한 의미에서의 보수적 견해라면 위헌적 견해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견해이다).

대법원이 채택한 보수적 견해는 우리 사회에서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극단적 견해인가? 이 견해에 대하여 찬반의 의견이야 있을 수 있지만, 어떻게 이 판결을 들어 "대법관을 못 믿겠다", "대법원이 창피하다"라고까지 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내부부 해고사건

우리 사회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직하는 고통을 경험하였다. 사회도 힘들었지만 실업을 맞는 개인과 가정의 고통은 더욱 컸을 것이다. 경제상황으로 인하여 해고회피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근로자들 중 누군가를 정리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어떤 기준에 의하여 해고자를 선정하여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근로자 개인적 차원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이렇게 중요한 해고자 선정기준에 관하여 법률은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외에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의하여야 한다는 원론적 규정만을 두고 있을 뿐 실질적 기준을 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해석은 법원의 몫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하자면, 우리보다 앞서 정리해고에 관한 엄격한 규제를 두고 있는 독일의 경우 ① 근로자의 연령 ② 근로자의 부양의무 유무 및 ③ 근로자의 근속기간 등의 3가지 자료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선정기준이 된다고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상당수의 기업들은 해고자 선정기준의 하나로 부부사원을 고려하였다. 우리가 독일의 기준을 참고로 한다면 이러한 선정기준은 수긍할만한 것이다. 부부사원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근로자 1인의 부양의무가 상대적으로 가벼우므로 이를 선정기준의 하나로 정하는 것은 법률이 정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가 부부사원 중 여성을 해고대상으로 선정하는 기준을 정하였다면 이는 법률이 정하는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기준에 반하므로 위법한 기준으로 된다.

대법원은, 알리안츠생명보험 사내부부해고사건에서 사용자가 사내부부 근로자 중 여성을 해고대상으로 정한 것을 위법이라고 선언하였고, 농협중앙회 사내부부해고사건에서 사내부부를 정리해고 우선대상으로 정하면서 여성과 남성 중 어느 일방을 해고할지는 정하지 않고 당사자 부부들의 선택에 맡긴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선언하였다. 현재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 경우, 여성계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아내가 희망퇴직에 대한 무언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대법원의 견해는 현재의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장차의 정리기준을 정하는 규범이 된다. 부부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긴 것을 위법이라고 판단한다면 당해 사건에서야 근로자 몇 명이 해고로부터 구제되는 결과가 되겠지만, 장차의 정리해고에서 사내부부는 선택권을 갖지 못하고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예컨대 부부사원 중 근무연한이 짧은 사원 등의 기준)에 의하여 해고될 수밖에 없게 된다.

부부 중 누구를 정리해고 할 것인지를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여야 한다고 하는 견해와 당사자 부부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는 견해 중 어느 쪽이 근로자 개인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고, 어느 쪽이 더 진보적인 견해인가?

이 두 판결은 모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두 근로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판결로서 결코 보수적 판결이 아니다.

우리은행 정리해고사건

우리은행 정리해고 사건에 관한 비난은, 당해 판결에 관한 터무니없는 오해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 법률은 정리해고의 요건으로 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② 해고회피노력 ③ 합리적이고 공정한 정리기준 ④ 60일전 노조에 대한 통보 및 노조와의 성실한 협의를 정하고 있다. 이 중 4번째 요건을 제외한 앞의 세 요건에 관하여 법률은 명확한 기준을 정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정리해고 사건의 사안이 너무나 다양하여 일률적·획일적 기준을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앞의 세 요건에 관하여, 해고회피노력은 확정적·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경영위기의 정도, 사업의 내용과 규모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 역시 확정적·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경영위기의 정도, 정리해고를 실시한 사업 부문의 내용과 근로자의 구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파탄에 직면한 기업과 잠재적인 파탄 위기를 맞은 기업에게 요구되는 해고회피노력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재교육을 통한 직종간 이동의 여지가 큰 대기업과 그런 가능성이 적은 중소기업에게 요구되는 해고회피노력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리해고의 기준 역시 여러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실제로 정리해고를 단행한 기업들의 정리기준에는 다양한 편차가 있었다.

도대체 모든 기업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나 동일한 목록의 해고회피노력을 하여야 하며, 다양한 정리기준 중 단 하나의 정리기준만이 옳고 다른 정리기준들은 모두 위법이라고 하는 것이 진보적 견해인가?

대체로 법률에서 병열적으로 규정한 요건은 상호 독립적으로 판단되지만, 불확정 개념을 3중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리해고 법문의 해석에 있어서는 하나의 구성요건해당성이 다른 요건해당성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해석은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없는 유일한 해석이다. 즉 이념적 편차에 따라 선택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다른 선택은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은행 정리해고 사건의 판결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제 4요건에 관한 것이다. 법률은 60일전 노조에 대한 통보와 노조와의 성실한 협의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확정적 시기를 정한 요건이므로 이 규정을 지키지 않고 행한 정리해고는 위법임이 명백하다. 대법원은 이 절차적인 요건을 갖추지 않은 정리해고가 적법하다고 판시한 바 없으며, 그러한 견해는 법률해석의 견지에서 허용될 수 없다.

더욱이 이 판결의 사안에서, 사용자는 노조에 대한 60일전 통보 의무와 성실한 협의의무를 이행하였을 뿐 아니라 정리인원 및 정리기준에 관하여 노조와 합의에 도달하였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제기한 쟁점 중 하나는 1-3급 직원을 감축대상으로 정하면서 1-3급 직원 대표들과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법률은 노조에 대한 통보와 노조와의 성실한 협의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고 직급별 대표에 대한 통보와 직급별 대표와의 성실한 협의를 규정하고 있지 않은데, 사용자가 어떻게 노조가 아닌 직급별대표에 대한 60일전 통고의무와 직급별 대표와의 성실한 협의의무를 인식하고 이행할 것을 강제할 수 있는가? 대법원은 위 법률의 문언대로 노조에 대한 통고 및 노조와의 협의 의무를 긍정하고, 직급별 대표에 대한 통고의무와 직급별 대표와의 협의의무가 법적으로 강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판단을 하였다.

만일 위와 같은 사안처럼 1-3급 직원을 감축대상으로 할 경우 사용자는 노조와 협의할 필요 없이 직급별 대표와 협의하여야 한다는 견해를 채택한다면, 법률의 문언에 반할 뿐만 아니라 노조의 협상지위를 현저히 저하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노조의 협상지위를 보장하는 해석과 그 협상지위를 저하시키는 해석 중 어떤 견해가 법률의 규정에 맞는 견해인가를 따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어떤 견해가 더 진보적인 견해인가?

판결은 사회적 의사소통의 한 과정이다

지면 관계상 최근 운동가 단체에 의하여 보수적 사법소극주의에 해당한다는 비난이 제기된 대법원 판결 전부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다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판결에 대한 바람직한 비판의 시각과 방법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간단하게 적어 보았다.

민주주의 정치과정은, 다양한 견해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행되는 의사소통과정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사회 문제에 관하여 결단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다수결에 의하여 어느 하나의 견해를 타당한 것으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억누르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 사이에 자유롭고 폭넓게 허용되는 의사소통 과정을 통하여 보다 설득력 있는 견해를 사회의 견해로 선택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견해를 사회의 견해로 하는 권력적 선택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의사소통과정은 종결되는 것이 아니고 그 선택에 대한 비판이 계속하여 허용된다. 그러한 계속되는 의사소통과정에서 한 시대의 소수 견해가 다음 시대에 보다 우월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면 새로운 다수 견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유권이 되는 것이고, 최근 대법원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진보적 판결을 내리기도 하였다.

법원의 권력적 판단인 재판을 형성하는 재판과정은 민주주의적 의사소통이 보장되는 대표적인 절차이다. 근대 이후 최고의 민주적 의사결정기관이 의회라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소수 그룹은 의회를 통한 의사소통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서 언론을 통한 여론형성과정은 보다 폭넓은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였지만 언론을 통한 접근이 소수자 그룹에 항상 개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터넷은 소수 그룹에게도 동등한 접근기회를 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적 의사결정의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기에는 아직도 그 논의의 질과 수준이 미흡하다.

반면 재판과정은, 사회경제적 강자와 약자에게 동등한 발언의 기회가 제공되는 거의 유일한 의사소통과정에 해당한다. 법원은 사회적 다수가 입법화한 법률에 의하여 재판하여야 하고 반드시 사회경제적 약자의 편에 서서 판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경제적 약자가 자신의 견해를 동등한 지위에서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법원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3권분립제도에서 권력적으로 가장 미미한 지위에 있는 법원이, 20세기 후반 이후,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핵심에 위치하게 된 이유도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의사소통과정의 중요성이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법원의 재판은 당해 사건에서의 대화를 종결하고 당사자들에 의하여 제시된 견해 중 하나를 우리 사회의 견해로 받아들이는 권력적 판단이지만, 이로써 사회적 의사소통과정이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판결에 대한 비판 역시 자유롭게 허용되고 만일 그 비판이 설득력을 갖게 되면 법원에 의하여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과정 속에서 다수와 소수는 같은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동료이고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대화의 상대방이어야지 억누르고 짓밟아야 하는 적이 아니다. 이러한 민주주의 정치과정을 이해한다면, 가장 자유롭고 공정하게 보장된 의사소통과정을 통하여 확정된 재판 결과에 대하여는, 비록 견해를 달리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승복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일부 언론과 운동가 단체들이 대법원의 판결 결과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대법관을 못 믿겠다', '대법원이 창피하다', '대법원 판결이 최소한의 합리성도 유지하지 못하였다'라는 식으로 욕설 수준의 비난을 행할 정도라면 과연 그들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같은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동료로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찌르고 타도하여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무리

대체 모두의 마음에 드는 재판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재판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작동하는 권력작용이고, 사회 구성원들이 견해를 같이 하는 점에 대하여 재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적 정치철학을 가진 인물을 대법관으로 선택하여야 하는가, 아니면 보수적 정치철학을 가진 인물을 대법관으로 뽑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필자는 특별한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법관의 자질판단에 있어서 정치철학적 견해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측의 목소리에 모두 귀를 기울이는 공정한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을 지적하고 싶다.

어떤 견해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그 견해는 의사소통과정에서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지 자신의 편에 선 판사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만일 판사가 어느 한 편에 서서 재판한다면 재판하기도 전에 이미 결론이 나 있을 터인데 재판과정을 통한 의사소통은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 문제는 사안에 따라, 그리고 당해 주장이 갖는 설득력의 정도에 따를 문제이지 하나가 바람직하고 다른 하나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사형제도, 보호감호제도, 국가보안법 등에 관한 사회적 논란에 대하여, 의회를 통한 정치적 해결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를 통한 사법적 해결이 바람직한지의 문제는 그 주장이 기초한 법적 논리의 설득력에 따르게 될 것이다.

위 각 문제에 관하여 진보적 견해를 가진 운동가 단체들이야 정치적 해법이 여의치 않을 경우 법원이 의회에 앞서서 해결해 주기를 희망하겠지만, 현재의 판례에 비추어 볼 때 아직 사법적 해법을 쟁취할 정도의 사회적 설득력을 갖추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법적 해법을 희망한다면 그 주장의 설득력을 증대시키는 노력을 하여야지, 스스로 당해 쟁점에 대한 재판관이 되려고 하거나 지지자를 재판관으로 선택하려고 한다면 반대견해를 가진 사회구성원의 관점에서는 공정한 처사일 수 없다.

법원은 그 권한에 비하여 대단히 약한 인적·물적·조직적 기초 위에 서 있다. 재판을 구하는 사회구성원들은 누구나 재판과정에서 보장되는 자유로운 의견개진의 기회를 넘어 법원 또는 판사 개인에 대한 압력을 통하여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판사가 그 압력에 굴하여 한 쪽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면 다른 쪽은 더욱 강한 압력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이다.

법관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법원은 사회적 분쟁을 해결할 힘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는 가장 민주적인 의사소통제도 중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은 허용될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지만, 근거 없는 비난과 '법원 길들이기'로 흘러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사법부 ‘연공서열이냐 세대교체냐’ 고심

양승태 법원행정처차장·이영애 고법부장 유력 2003/08/05 오전 9:38

신종철 기자

대법관·헌법재판관 임명제청은 사법부의 고유권한이라는 대법원과 후보자 추천은 ‘시민의 권리’라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사법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대법관·헌법재판관 시민추천위원회'가 발표한 추천후보자를 사법부가 연공서열을 중시하던 관행을 깨고 수용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민추천위는 이홍훈 법원도서관 관장(사시14회), 전효숙 서울고법 부장판사(17회), 김영란 대전고법 부장판사(21회),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21회)와 재야인사로 박원순, 최병모 변호사 등 6명을 시민추천후보로 1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사법부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 3월 법무장관을 비롯해 검찰이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했고,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조돼 있어 ‘연공서열이냐 세대교체냐’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추천후보에 대해 ‘이중잣대를 갖고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사법부의 인사개혁은 내부승진을 통해 스스로 용퇴하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이루는 것인데 재야인사를 추천한 것은 이런 기대효과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또 사시17·21회 법관을 추천하면서 검찰의 전례를 들며 사법부에도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상명하복체계로 수사지휘를 받는 검찰과 조직생리상 차이가 있기 때문에 후배법관이 대법관에 임명됐다고 해서 스스로 용퇴하지 않는 이상 정년이 보장된 법관에게 용퇴를 강요할 수 없어 자칫 서열파괴와 인사적체만 가중될 뿐 사법부개혁은 요원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사법부가 추천인사를 배려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 요망이 확인된 만큼 어떤 성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부담은 떠 안을 수밖에 없어 대법원장이 누구를 임명제청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유력할까. 현재 대법관 막내 기수가 사시 10회인 점을 고려하면 사시 동기생인 신정치 서울고법원장, 이근웅 대전고법원장, 박상경 부산고법원장 등은 후배 법관을 위해 용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사시11회. 과거 같으면 가장 유력한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릴 강완구 대구고법원장, 김동건 서울지법원장, 김용담 광주고법원장, 황인행 가정법원장 등도 현재 ‘서열파괴를 통한 사법개혁’이라는 복병이 인사발탁의 최대 기준으로 등장함에 따라 시대적 조류를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사시12·13회와 여성법관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 기수는 조직의 안정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내이고 또한 여성법관을 임명하면 보수적 색채를 벗는 동시에 개혁적인 사법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어 대안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현재 사시12회에는 양승태 법원행정처차장, 김상기 서울행정법원장, 최병학 수원지법원장, 김연태 인천지법원장, 강병섭 부산지법원장, 정호영 대전지법원장, 김명길 대구지법원장, 김인수 광주지법원장, 김재진 청주지법원장, 안성회 울산지법원장 등 10명이 포진해 있다.

아직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섣불리 점치기는 무리지만 이 중 가장 주목받는 인사는 부산지법원장을 지낸 양승태 법원행정처차장이다. 퇴임하는 서성 대법관을 비롯해 현 대법관 중 법원행정처차장 출신이 4명인 점을 차치하더라도 기수를 뛰어넘은 만큼 조직안정도 고려해야 하고, 경남 출신이라는 점도 후한 점수를 얻고 있어 법조계 안팎으로부터 ▲기수파괴 ▲조직안정 ▲지역안배라는 3박자를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사시13회 중 지법원장은 김목민 전주지법원장, 송기홍 춘천지법원장, 이홍복 제주지법원장, 조용무 창원지법원장이 있다. 하지만 13회에서 발탁될 경우 여성법관인 이영애 서울고법 부장판사(13회)의 비교우위가 점쳐진다. 사법사상 첫 여성 대법관·헌법재판관의 탄생은 사법부가 개혁이미지로 탈바꿈하는 데 적임자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시민추천위 6명 발표…수용 가능성 희박

법관 “어불성설…언론 편승 의혹 불만”

한편 시민추천위가 추천후보자를 발표하자 법관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대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관은 경험과 스킬(기술)이 필요한 자리인데 맹장수술만 하던 의사에게 대수술을 맡기면 잘 할 수 있느냐”며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또 “대법원장이 임명제청한 후보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가 있는데 ‘여론몰이’식으로 법원을 압박하는 것은 ‘법원 길들이기’와 같다”며 독설을 내뱉었다.

또 다른 부장판사도 “대법관에 대해 중요한 인식과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구체적으로 인선에 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헌법에 보장된 사법부의 독립적 권한 보장의 제도적 취지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또한 “법원은 기본적으로 공정한 집단이며, 대법관 자격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도 법원”이라며 “시민단체는 군중심리라든가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우려가 있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추천인사를 임명제청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법관들은 언론에 대해서도 “시민단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언론이 주목하지 않으면 되는데 뉴스로 자꾸 부각시키기 때문에 이슈화되는 것 같다”며 “언론이 후보추천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언론에 불만을 갖는데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최근 중앙 언론들은 “대한변협이 최병모 민변 회장과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대법원에 추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변협 관계자는 “후보자를 공식적으로 추천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몰라 당혹스럽다”며 “추천후보자가 선정되면 그 때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말해 오보임을 확인시켜 줬다.

대법원도 “변협으로부터 후보자를 추천받은 적이 없다”며 “변협의 OOO가 친분이 있는 기자에게 흘린 것을 앞서 보도한 게 아니냐”고 말해 사실상 언론이 편승하고 있다는 의혹은 간접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아무튼 사법부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대법관·헌법재판관 인선 작업이 국회청문회 준비기간(12일)을 고려할 때 오는 15일 전후에 발표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누가 임명제청될지 주목된다.

이 기사는 <법률일보>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문흥수 판사 "사법개혁 반대세력 `마피아'처럼 움직여" 2003/08/12 오후 11:00

12일 오후 대법관 선임을 둘러싸고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박재승 대한변협회장이 대법관 제청 자문위원을 사퇴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문흥수 서울지법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을 '마피아'에 비유하면서 강력하게 비판했다. 다음은 문 판사의 글 전문이다...<편집자주>

근본적으로 우리 나라 법관인사시스템은 비민주적이고, 위헌적이며, 국민의 신뢰를 얻기에 한계가 있다.

모든 법관이 조만간 모두 변호사가 되는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다. 그 결과 전관예우의 시비가 일게 되고, 법관들은 법관직에 전념하기 보다 퇴직 후의 변호사 일을 염두에 두고 일할 가능성 내지 위험성이 커지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후진적인 제도이다.

주관적 근무평정제도 하에서는 법관들이 일보다 인간관계에 신경을 쓸 가능성 내지 위험성이 커지게 된다. 발탁승진제도는 실질적으로 법관의 신분보장을 형해화하고 있다.

주관적 근무평정제도와 발탁승진제도가 결합한 결과 법관의 관료화가 그 어느 때, 그 어느 나라보다 심한 상황이다. 이것은 사법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다. 법원조직법상 같은 경력의 법관은 같은 처우를 해주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부장을 발탁해서 전보인사를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승진인사를 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승진제도를 폐지 내지 합리화해야 한다. 근무평정제도를 객관화해야 한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의 지위가 고위직 법관들의 승진의 자리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은 다양한 성향의 법조인사로 충원되어야 한다.

이상은 지난 5년 동안 본인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사법개혁의 내용들이다. 모든 국민들과 대다수의 법조인들이 본인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당한 주장을 곡해하고 소수의 주장으로 폄하하려 들면서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자들이 마피아처럼 움직이고 있다. 여론조사를 해서 어느 쪽이 다수의견인지 진실을 확인할 것을 제안한다.

민변 “고집부리면 타율로 사법개혁 될 것” 경고 2003/08/13 오후 4:26

신종철 기자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 파문이 현직 부장판사의 사직으로까지 표출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