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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활동가를 위한 워크숍(기초)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인권교육, 살아있네~” ▣ 일시: 2013년 6월 28일(금)~29일(토) ▣ 장소: 이룸센터 교육실 1 인권교육센터 들 http://dlhr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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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활동가를 위한 워크숍(기초)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인권교육, 살아있네~”

▣ 일시: 2013년 6월 28일(금)~29일(토)▣ 장소: 이룸센터 교육실 1

인권교육센터 들http://dlhr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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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일정표/1

1. 니가 내 맘을 알아? 냉정과 열정 사이

- 인권의 목록과 쟁점

열쇠말로 풀어보는 인권의 구체적 쟁점들

인권을 구성하는 다양한 권리와 인권의 상호불가분성

2. 뭉게뭉게 인권교육이 꾸는 희망

- 인권교육의 원칙

인권교육은 왜 하는 걸까?

인권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 방해되는 것?

인권교육가에게 요청되는 자세는?

3. 풍덩~ 인권교육 속으로!

- 다양한 인권교육 방법 그리고 기획하기

다양한 인권교육의 방법 맛보기

인권교육, 기획부터 시연까지

인권교육을 향해 go~ go~ 씽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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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기초> 일정표 2]

날짜 시간 프로그램

6/28

(금)

13:30~14:00 교육준비

14:00~14:30 ‘인권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제나누기

14:30~17:00니가 내 맘을 알아? 냉정과 열정 사이 (1)

(인권의 목록과 쟁점)

17:00~17:30휴식과 새참

※ 교육진행상황에 따라 휴식 시간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

17:30~19:00니가 내 맘을 알아? 냉정과 열정 사이 (2)

(인권의 목록과 쟁점)

6/29

(토)

10:00~12:00뭉게뭉게 인권교육이 꾸는 희망

(인권교육의 원칙)

12:00~13:00 점심 식사

13:00~14:50풍덩~ 인권교육 속으로 (1)

- 다양한 인권교육 방법 맛보기

14:50~15:00 쉬어 가요~

15:00~17:00풍덩~ 인권교육 속으로 (2)

- 인권교육 기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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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내 맘을 알아? 열정과 냉정 사이인권의 목록과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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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내 맘을 알아? 냉정과 열정 사이 -인권의 목록과 쟁점---------------------------------------------------------------------------------------------- *진행: 빨간거북, 이갈리아

[교육목표]

: 인권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권리들을 상상할 수 있다.

: 쟁점적 권리들을 옹호할 수 있는 논리적이거나 감성적인 언어를 찾아본다.

: 인권의 상호불가분성을 이해한다.

[진행방법]

① 인권의 목록과 의미를 간단히 소개한다.

② 모둠별로 아래 다섯 가지 열쇳말 가운데 관심 있는 열쇳말을 하나씩 선택한다.

마음(목소리)의 자유 몸의 자유 사회경제적

존엄평화적생존

저항과불복종

③ 각 주제에 따라 그것이 필요한 사람과 그이들의 권리를 떠올려 본 후 모둠별로 텃밭, 숲, 권리밥

상, 영화상영표, 노아의 방주 등으로 한가지씩을 선택한 후 전지에 그림을 그리고 그림 속에 필요한

권리를 써 넣는다.

예를들어) 인권텃밭에 가꾸고 싶은 작물과 그것을 배치한 그림

④ 모둠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면, 다른 모둠의 전지를 넘겨받아 살펴본 뒤 보완한다.

√ 빠진 사람은 없나요?

√ 갸웃거려지는 권리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수정하거나 보완하고 싶은 내용은 없나요?

⑤ 다른 모둠의 작업 전지를 모두 살펴보고 보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⑥ 모둠별 작업이 끝나면 각자 가장 이야기해 보고픈 권리에 스티커를 붙여 본다.

⑦ 모둠별 작업 결과를 살펴보면서 ‘논쟁적 권리’로 지목받은 권리들에 대해 추가 토론을 진행한다.

⑧ 진행자가 추가로 던지고픈 쟁점적 권리가 있다면, 추가해서 논의를 진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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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자료]

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1)

[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④] 자유는 목적, 안전은 수단제3조 생명, 자유, 안전

-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세계인권선언 제3조

모든 사람은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다.

3조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선언 기초자 중의 한 사람은 선언 전체의 개념 구조가 18세기 인권철학의 세 가지 주요 사상을 반영한다고 봤다. 1조는

우애의 사상, 2조는 평등의 사상, 3조는 자유의 사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3조는 선언 4~11조로 이어지는 조항들

을 규정하는 기본원칙으로 이들 조항들에서 자유의 사상은 점진적으로 확대된다고 봤다.

이에 대해 3조의 ‘자유’의 의미를 더 확대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즉 18세기 이후로 자유의 사상은 훨씬 넓어졌

기에, 사회권에 대한 보장을 포함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자유의 의미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인격을 완

전히 발전시킬 권리이며, 이 발전에 필수적인 모든 요소들에 대한 권리를 의미한다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3조의

‘생명, 자유, 안전’에 대한 존중은 국가에 의한 자의적 박탈로부터 개인을 보호한다는 전통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그 보장

과 증진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를 요구한다는 지적이었다.

신체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관련 조항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생명권과 안전을 중심으로 생각해본다.

현대 인권체계에서의 ‘생명권’

근대 인권체계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한 자의적인 생명의 박탈만을 생명권의 문제로 봤다. 생명의 향유를 개인의 ‘타고난’

권리로 봤고, 국가권력은 이를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리적 힘에 의해 생명을 위협당할 뿐

아니라 ‘결핍’에 의해서도 생명을 박탈당한다. 근대 인권체계는 ‘개인이 생명을 가진다’는 것과 그에 대한 국가의 불개입

을 얘기했을 뿐 인간다운 생존을 영위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비교해 현대 인권체계는 ‘인간다운 생존’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생존을 확보할 수 없

는 상황에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사회보장을 비롯한 광범위한 사회정책을 취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가 되었다.

‘생명권’의 진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결핍’뿐 아니라 ‘공포’로부터 벗어나 평화 속에 생존할 권리가 중요해졌다. 이

를 위해서는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군비경쟁이나 군사동맹에 참여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지향하는 것 등이 생명권에 부응

하는 국가의 책무가 됐다. 평화적 생존권과 더불어 ‘환경권’도 생명권의 현대적 얼굴이다. 환경은 생존과 관련된 문제로

떠올랐다.

사형제는 여전히 진행형

1) 인권오름 95호(2008.3.18)부터 134호(2008.12.24)까지 연재된 기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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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 기초 과정에서 사형제 폐지를 생명권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은 채택되지 못했다. 많은 대표자들이 사형제 폐지가 생

명권의 확장이라는 점을 대놓고 반대하지 못했지만 국내의 정치적 이유로 대놓고 지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선언에선 사형제 금지를 언급하지 못했다. 1989년에 와서야 ‘사형폐지를 위한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

의정서’가 만들어진다.

현재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지난 10년 또는 그 이상 기간 동안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은 133개국이며,

2007년 12월 유엔총회는 사형제에 대한 모라토리엄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 결의안에 대해 ‘사형은 인권문제가 아

니라 사법정의의 문제고, 국가는 자국의 범죄자를 어떻게 다룰지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공공연한 반대 의견을 밝히는

국가들이 여전히 있다. 또한 사실상의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됐던 한국에서 다시 존치론이 등장하는 걸 볼 때 사형제는 여

전히 진행형 문제이다.

기술발달과 생명권

선언 기초 과정에서 생명권의 시작점과 종결점에 대한 논의 역시 결론을 맺지 못했다. 인공유산의 문제, 안락사 이용 문

제 등 삶과 죽음을 다루는 문제들은 쉽게 대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에 선언은 이에 대해 침묵했다. 그러나 선언이 침

묵했다고 해서 이들 문제를 인권이 회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술발달로 인한 생명권의 위협요소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배아실험, 인공수정, 태아 성감별법, 장기 판매와 매입, 이

종 간 장기이식, 감시 장치, 사생활 침해의 데이터뱅크화, 현대기술로 인한 환경의 파괴, 유전자 조작 농작물 등이 모두

생명권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드는 문제들이다.

과학기술을 그저 낙관하거나 전문가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문제를 공론화하고 연구결과에 함축되어 있는 도덕적 의미를

분석하며 그것을 강제할 국내외적 감시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영위할 권리, 과학기술의

발전방향이나 우선순위, 속도 등을 정하는 기술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 과학정보에 대할 알 권리 등이 새로운 인

권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999년 세계과학회의는 ‘과학과 과학적 지식의 이용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고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 과학 연

구와 과학지식의 이용은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만” 하며 “모든 과학자들은 높은 윤리적 기준을 설정해야 하

며, 국제인권문서들에 명시된 관련규범들에 근거한 윤리 규약이 과학 전문직에 확립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소 막막할지라도 기본 방향성에 대해서는 논점이 모아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유전적·생물학적 존재 이상의 전인

격적 존재로 취급되어야 한다’, ‘이미 자행된 인권침해 사례의 경험에 대한 반응을 넘어서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걸 예방하기 위한 관점에서 논의한다’,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기술을 상업화하려는 민간 기업이나 기술 적용을

원하는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인권에 대한 주요한 도전이 도발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유전자로 인한 차별가능성에 주목

한다’, ‘기술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불평등 심화에 주목한다’는 등이 그것이다.

자유와 안전은 목적과 수단

‘안전(security of the person)'은 국가에 의한 자의적인 자유 박탈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의미이다. 여기서 자유와 안전

은 목적과 수단의 관계이다. 즉 안전(또는 안보)정책은 자유권에 대해 복무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자유냐 안전이냐의 이분법적 접근이나 자유와 안전이 동질의 가치를 갖는 것처럼 슬쩍 바꿔치기 하는 문제

가 나타난다. 전통적인 ‘국가안보 대 자유’의 대립 주장이 그러하고, 9·11 이후 소위 ‘테러와의 전쟁’에서 사용되는 논리

도 그러하다. 이는 자유와 안전을 거래할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위험하다. 목적과 수단을 맞바꾸자는 건 말이 안 된다.

국가는 원래 개인의 생명, 자유로운 의사표현, 결사의 자유에 관한 권리 등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2004년 8월 국제법률

가위원회(ICJ)는 베를린선언을 통해 이런 국가의 의무가 권리를 해치지 않으며 안전을 보호할 책임과 갈등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가가 대테러조치의 명분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으며, 현재의 인권법과 인도주의법이 국

가가 인권에 따른 법적 의무를 다치게 하지 않고도 대테러조치를 취할 충분한 유연성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법의 지배와

인권이 후퇴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메리 로빈슨 전 유엔인권고등판무관도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비난했다. 9·11은 “반인류적 범죄”의 관할 하에 있는데

‘테러와의 전쟁’이란 용어의 사용은 사악한 의도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언어를 택하면서 질서와 안보가 다른

모든 고려사항보다 으뜸이라는 강조점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축소와 관련되기에 위험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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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지적은 다음과 같다.

“9·11은 이미 폭력, 질병, 극빈에서 오는 일상적 위험에 시달리고 있는 수백만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그들의 불안전은 어디서 다음 먹을 것 구하나, 어떻게 죽어가는 아이의 약을 구할까, 총을 가진 범죄자를 어떻게 피할까,

열 살짜리 에이즈 고아로서 어떻게 생계를 꾸려 가나 하는 것이다.

지난 6년간 대략 2만5천여 명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전 세계에서 사망했다. 같은 기간 기아, 말라리아, 그리고 기타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수와 비교해보라. 그 수는 하루 2만5천여 명에 가깝다. 발전을 위한 지원은 연간 6

백억 달러, 군사지출은 9천억 달러다. 밀레니엄발전목표(MDG) 실천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연간 500~600억 달러가 더 필

요하다.

진정으로 안전한 세상을 위하여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채택해야 한다. 즉, 인간안보의 성취이다. 이것은 인권과 인간

발전에 대한 새로운 헌신을 요구한다. 국가안보를 넘어선 안전에 대한 광의의 이해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한 인간안보란 빈곤과 절망으로 극단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없어야 하고, 이로 인해 공포와 강압적 안전을 거래

하는 일이 없는 사회를 설계하는 것이다. 공포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 활동을 줄인다거나 공포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감시

한다거나 공포 때문에 총과 무기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불행히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이렇

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은 인간안보의 핵심을 ‘보호’와 ‘자력화’라 했다. 보호는 빈곤을 경감시키고 포괄적인

발전을 성취할 국가의 책임(때로는 국제사회의 책임)을 말하는 것이고, 자력화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타인을 위해 행동하

는 인민의 능력이다. 자력화된 인민은 자신의 존엄성이 침해받을 때 그에 대한 존중을 요구할 수 있다. 지역적인 많은

문제를 다루고 일할 새로운 기회를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타인의 안전을 위해 결집할 수 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가 안전의 목적이다. 선언 3조의 ‘생명, 자유, 안전’은 상호 연결돼 있는데 따

로 떼어내서 거래하자는 말은 속임수이기에 조심해서 경계하고 또 경계할 일이다.

공감과 연대를 훼손하는 노예제는 살아있다[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⑤] 제4조 노예나 예속상태 금지 (1)

세계인권선언 제4조

어느 누구도 노예나 예속상태에 놓이지 아니한다. 모든 형태의 노예제도 및 노예 매매는 금지

된다.

‘노예근성’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인간을 ‘노예’로 삼은 자를 문제

삼지 않으면서, ‘노예근성’을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탓을 하는데 엉뚱한 쪽에 대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노예나 예속상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일찌감치 국제법의 주제가 됐다. 즉 국제연맹이나 국제연합

(유엔)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국제규범으로 노예제를 금지했다. 하지만 ‘금지’에도 불구하고, 또한 ‘요새 노예가 어디 있

어?’라는 반응이 부끄럽게도 노예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지던 60년 전에도 노예제는 살아있었고

오늘날에도 살아남아 있다.

오늘날 노예제 형태로 분류되는 현상에는 채무노동, 트래피킹, 가사노동과 이주노동에 대한 착취, 강제노동, 노예혼 등이

있다.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인종분리차별정책)와 식민주의의 발현도 노예제와 비슷한 관행으로 분류돼왔다.

제4조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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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무역의 보편적 폐지에 관한 비엔나 회의 선언과 최종 협약(1815년)’, ‘베로나(Verona) 선언(1822년)’ 등이 일찌감치

원칙을 정했다. 즉 노예무역은 정의와 인간성에 모순된다는 것이었다. 이를 근거로 국가들에게 노예무역을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즉각적인 노예제의 금지’를 요구하기는 했지만, 이들 규정의 힘은 약했다. 구체적인 시한과 강행수단이 없기도

했거니와 노예와 식민지를 거느린 국가의 시민들이 가진 자기 이익, 습관, 편견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유럽 및 미국 등지에서 최초로 식민지의 노예제를 폐지한 영국의 노예제폐지법(1833년)을 선두로 프랑스 (1848년), 포르

투갈(1858년), 네덜란드(1863년), 미국 (1865년) 등이 꼬리를 물었지만 아프리카의 노예시장은 여전히 열려있었다.

1926년 국제연맹은 ‘노예제 조약’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노예제에 대한 국제적 정의를 담았다. 조약에 따르면, ‘노예’란 소

유권 행사에 부속되는 권한의 일부 또는 전부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지위 또는 상황이다. ‘노예무역’이란 강제로 노예로

만들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포획·취득·처분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행위로서 일반적으로 노예를 거래하거나 운송하는 모

든 행위를 포함한다.

1930년 ILO 강제노동협약(제 29호)은 ‘강제노동’에 대하여 ‘처벌의 협박 하에 사람에게서 뽑아내는 그리고 그 사람이 스

스로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모든 노동 또는 서비스’라 했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제 4조는 긴 세월에 걸친 노예제 반대의 원칙을 선언에서 재차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의 일치였다.

선언의 기초자들은 ‘강제 노동’을 노예나 예속상태의 새롭게 떠오르는 형태로 여겼다. 따라서 분명한 명시적 언급이 없어

도 ‘강제노동’과 관련된 제도와 관행들은 4조에 의해 금지된다고 볼 수 있다.

노예제의 폐해

노예제의 폐해는 두말할 것 없이 심각한 인권침해에 있다. 대표적인 사례인 아메리카의 흑인 노예제를 생각해보자. 노예

로 이익을 보려던 자들은 노예 포획을 쉽게 하려고 아프리카인끼리 전쟁을 부추겼다. 외국으로 보내진 노예의 3/4이 전

쟁으로 인한 포로였다고 한다. “인간이 아프리카의 동전”이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서로를 팔도록 부추겼다. 노예무

역으로 인한 수입품은 아프리카의 산업을 약화시켰고, 지배계급은 노예 공급을 통해 부와 권력을 얻고, 연안의 지배자들

은 내륙을 약탈했다.

이를 통해 약 1천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이 아메리카의 플랜테이션(식민지의 이주노동에 기초한 대농장)으로

강제 이동됐다. 끔찍한 항해 도중 10명 중 1명 이상이 죽었고, 플랜테이션에서의 사망자 수는 그보다 더했다. 죽도록 일

을 시키다가 죽으면 대체 인력을 새로 사는 것을 수지맞는 일로 여겼다고 한다. 노예 농장주에게는 이상적인 노예 훈련

법 5단계란 것이 있었다. ‘엄격한 체벌, 열등성에 대한 감각, 주인이 가진 우월한 권력에 대한 믿음, 주인의 기준을 받아

들이기, 자신의 무력함과 의존성을 뼛속깊이 느끼기’가 그것이었다.

흑인노예는 니그로법에 의해 다스려졌는데, 법의 눈으로 볼 때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 가축이었다. 모계를 통한 노예 신

분 승계, 인종 간 성관계 금지, 배심원 없는 특별법정의 재판, 끔찍한 처벌(낙인, 교수형, 팔다리 절단, 거세 등) 등이 그

내용이었으며 주인의 형벌에 의한 노예 사망은 살인이 성립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이런 끔찍한 일을 정당화 하는 데는 시기별로 성서, 그리스·로마의 전통, 과학으로 위장한 인종주의 이론 등이 동원됐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혹독한 조건에 놓인 자유노동자보다 주인이 보살펴주는 노예의 형편이 더 낫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

었다. 어떤 정당화 이론(?)이든지 그 속내는 노예를 ‘인간’으로 보지 않음으로써 어떤 짓을 하든지 간에 속편해지자는 것

이었다.

공감과 연대의 훼손

서로를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 어느 한편에게만 일방적으로 피해이고 이익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나 노예

노동은 자유민 노동력의 가난을 의미한다. 옛 노예 주인에게나 현대의 산업자본가에게나 노예제의 골격이 되는 인종차별

은 노동자간의 단결과 연대를 막는 중요한 무기다. 지배하고 착취하는 권력은 서로의 고통과 처지를 공감하고 같이 저항

해야 할 사람들을 갈라놓으려 한다. 그래서 노예 또는 노예처럼 치부되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불신하고 꺼림칙하게 여기

도록 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이것이 인종·성차별 등 ‘무슨무슨 차별주의’라는 이름 붙은 것들의 역할이다.

처음에는 백인계약 노동자들과 아프리카 노예들이 저항 투쟁도 같이 했고, 빈민들도 노예들의 고통을 자신들의 고통과

동일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종장벽이 강화되면서 점차 열등하다고 색칠된 쪽을 ‘내 일자리 빼앗는 놈들’, ‘파업의 파괴

자’, ‘더럽고 무지한 놈들’이라 괴롭히면서 울분을 토해내는 배출구로 삼았다. 노예제의 폐해는 무엇보다도 동료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저항해야 할 상대를 잘못 보는 것, 그로 인한 공감과 연대의 훼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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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 이후

국제사회는 세계인권선언 이후 노예제와 예속상태를 반대하는 원칙을 계속 새겨왔다. 대표적인 것들이 아래의 목록이다.

인신매매 금지 및 타인의 성매매 행위에 의한 착취금지에 관한 협약(1949년)

노예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성매매 착취와 인신매매가 노예제의 형태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견해를 취했다.

이 협약은 “(그 사람의 동의가 있다 할지라도) 성매매를 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획득하거나, 꾀거나, 유인하여 데리고 가

는 자, 타인의 성매매를 착취하는 자”를 처벌하기로 했다.

노예제·노예무역·유사노예 제도와 관행 폐지에 관한 보충 협약(1956년)

1926년 노예제 조약이 포괄하지 못한 유사노예 제도와 관행에 초점을 두었다. 가령 채무 노예, 노예형태의 혼인, 아동과

청소년 착취를 다루고 있다.

ILO 강제노동폐지협약 제105호(1957년)

강제노동은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또는 정치교육, 차별, 노동기강, 파업에 참가한 것에 대한 처벌을 목적으로 결코 사용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 규약 제8조(1966년)

노예상태와 예속상태를 구분했다. 규약 기초자들은 이 둘을 다른 개념으로 보고 두 개의 분리된 항(1항과 2항)으로 다뤘

다. ‘노예제’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개념으로서 피해자의 사법적 인격의 파괴를 의미했고, ‘예속상태’는 보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한 사람의 타인에 대한 모든 가능한 형태의 지배를 포괄한다고 봤다.

경제사회이사회 결의안 1232(XLII) (1967년)

“아파르트헤이트와 식민주의의 인종주의 정책은 유사노예 관행을 구성한다.”

ILO 최저연령협약 제138호(1973년)

아동노동에 대한 국제적 기본기준이 됐다.

ILO 최악 형태의 아동노동협약 제182호(1999년)

노예제, 성매매, 포르노그라피, 불법 행위, 위해한 노동과 관련된 아동에 우선순위를 뒀다.

트래피킹, 특히 여성과 아동에 대한 트래피킹 방지, 억제 및 처벌에 대한 의정서(2000년)

트래피킹에 대한 정의를 확장하여 조직적 범죄 집단에게 착취 받을 때, 특히 강요의 요소와 관련되고 초국적 성격(국경

을 넘는 인간의 이동)이 있을 때를 포함했다. “트래피킹이란 위협 또는 무력의 사용 또는 기타 형태의 강제, 유괴, 사기,

기만, 힘의 남용 또는 취약한 지위의 남용, 또는 타인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자의 동의를 획득하기 위해 지불 또는 혜택

을 주고받거나 함으로써 착취를 목적으로 사람을 징발, 운송, 이전, 은닉 또는 수령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착취에는 성적 착취의 형태, 강제 노동 또는 서비스, 노예제 또는 유사한 관행, 농노 또는 장기의 제거가 포함된다. 여기

서 말한 어떠한 착취적인 수단이든지 이용됐다면 그에 대한 피해자의 동의와는 무관하게 트래피킹으로 보고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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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노예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논의들[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⑤] 제4조 노예나 예속상태 금지 (2)

많은 사람들에게 ‘노예제’의 이미지는 지금까지 말한 18세기와 19세기의 노예무역이고 흑인노예이다. 노예제를 과거의 일

로 여기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인간을 노예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현대의 노예제는 아동노동, 채무노

동, 농노, 노예혼, 트래피킹(특히 여성과 아동에 대한), 가사노동과 이주노동에 대한 착취를 포괄한다. 현대판 노예제의 은

밀한 성격 때문에 정확한 숫자와 자료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유사 노예제 관행이 거대하고 광범위하다는 증거는

늘어가고 있다.

동산 노예제(Chattel Slavery)

동산 노예제는 현대판 노예제 형태에서 가장 드물다. 법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예제가 철폐됐음에도 특정 지역에

서는 동산 노예가 노동, 성, 양육을 위해 이용되며 낙타, 트럭, 총, 돈으로 교환된다. 동산노예의 자녀는 그들 주인의 재

산으로 남아있다. 자유 노예 중에서조차 흔히 이전 주인에게 공물을 지불하며, 이전 주인은 자유 노예의 재산에 대해 상

속권을 유지하는 관행이 남아있다. 내전 지역에서는 무장 세력이 마을을 습격하여 남자들을 죽이고 개인 재산으로서 여

자와 아이들을 노예삼거나 경매와 판매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무노예(Bonded labor or debt bondage)

가장 현저한 것은 남아시아로 알려져 있다. 물론 법률은 노예제를 금지하고 있지만, 채무노동은 카스트 제도나 유사한

형태의 사회계층화 속에서 지역에 뿌리박혀있다. 채무 노동은 또한 선진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다. 채무 노동자는 얼마나 일을 해야 언제쯤 빚이 청산되는지도 모른 채 노예처럼 일한다. 보통 채무 노동자의 자녀는

부모의 채무를 물려받아 일하게 된다.

‘현대판 노예제에 대한 유엔 워킹그룹’은 약 2천만의 사람들이 여전히 채무 노동에 묶여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실제 숫자

에 대해서는 계속 논란이다. 해당 정부의 추정치는 턱없이 적고, 인권단체들의 추정치와 10배 혹은 20배 차이가 나곤 한

다.

아동노동

국제사회는 약 2억이 넘는 5~14세 아동이 노동하고 있다고 본다. 지역적으로 아시아-태평양의 아동 노동자 수가 가장 크

지만 발생률은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다. 5~14세의 노동은 아프리카 모든 아동의 거의 30%에 육박한다.

아동노동에 대한 요구는 엄청나다. 쌀 뿐만 아니라 성인보다 다루기가 더 쉽기 때문이고 겁먹어서 항의하기 어렵기 때문

이다. 아동의 작고 빠른 손가락은 특정 종류의 노동에 더 적합하다는 이유로 동원되고 있다.

가사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국민이 아닌 국가에서 임금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현 세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라

가 아닌 곳에서 살려고 이동하고 있다. 일부는 더 나은 삶의 기회, 교육, 직업을 찾아가는 자발적인 이동이지만, 더 많은

경우에 이주는 강요된다. 사람들은 가난과 내전과 전쟁을 피해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살던 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ILO는 “방법이 무엇이건, 임금기간이 무엇이건 간에 사적 가정에서 임금을 버는 노동, 이 일로부터 금전상의 이익을 전

혀 얻지 않은 한 명 또는 몇 명의 고용주에게 고용될 수 있다”고 가사 노동자를 정의한다. 가사 노동은 대개 가정부, 유

모, 요리사, 운전사, 정원사 및 기타 개인적 하인으로 종사한다. 일부 가사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는 유사노예의 조건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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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 외국인 이주 가사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증가가 ‘선진국’ 또는 ‘1세계’에서 현대판 노예제로 조명 받게 됐

다.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은 가장 침해받고 취약한 이주 노동자다. 노예로 산 것은 아닐지라도, 이주자의 기본적 인권은

쉽게 침해되거나 무시된다. 착취는 임금과 시간에 대한 침해로부터 신체적 및 성적 침해에까지 뻗친다. 문서화된 많은

사례들에서 고용주들은 이주 노동자의 법적 문서를 보관함으로써 이들의 이동을 제한한다. ‘노동자’로 간주되지 않기에

가사 노동자들은 노동보호입법으로 포괄되지 않으며, 착취의 손쉬운 대상이 되며, 언어와 여타 문화적 장벽 때문에 취약

한 조건이다.

노예 혼인

어린 소녀나 여성이 혼인관계에 들어갈 것을 거부할 권리가 전혀 없을 때의 혼인은 ‘노예 혼인’으로 추정될 수 있다. 이

런 결혼의 성사에서 어린 여성은 흔히 돈이나 다른 것으로 지불받으며 교환된다. 때로는 그 남편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상속하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팔린다. 일부 경우에는 어린 소녀와 여성이 부자인 나이든 남성과 결혼할 것을 강요받아 성

적 노예 및 가사 노예가 된다. 노예혼은 유엔 협약에서 “노예제와 유사한 관행”에 포함돼 있고, 노예제 보충협약 1조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노예혼이란 “(i) 거부할 권리가 없는 여성이 돈이나 어떤 종류의 지불에 근거한 혼인을

약속받는 것, (ii) 어떤 여성의 남편, 그의 가족, 또는 친척이 보상을 받고 그녀를 양도할 권리를 갖는 것, (iii) 남편의 사

망시에 다른 사람에게 여성이 상속될 수 있는 것”이다.

트래피킹(Trafficking in Persons)

‘트래피킹’은 다양한 국제기관이 사용하는 용어로서 성매매를 포함한 착취적 목적을 위해 폭력의 위협 하에서 이뤄지는

사람의 이동(자발적인 것에서부터 강제적인 것까지 포괄된)을 말한다. ‘인신매매’라고 번역할 수도 있으나 트래피킹의 본

래 의미를 다 담을 수는 없다고 보고 그냥 트래피킹이라 쓰고 있다.

1980년대부터 여성에 대한 트래피킹이 주목받았다. 유엔의 추정에 따르면 연간 7십만 명에서 2백만 명의 사람이 국경을

넘어 트래피킹되며 이들은 대개 여성이다. 2000년 유엔 트래피킹 의정서에 따르면 트래피킹이란 ‘위협 또는 폭력의 사용

또는 기타 형태의 강제, 유괴, 사기 또는 속임수의 수단으로 “착취를 목적으로” 사람을 모집, 운송, 이전, 은신 또는 수령

하는 것’을 일컫는다. 여기서 착취에는 최소한으로 “타인의 성매매 또는 기타 형태의 성착취, 강제노동 또는 서비스, 노

예제와 유사관행, 노역 또는 장기 제거”가 포함된다.

성적 착취를 위한 트래피킹 문제를 현대판 노예제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는 국제인권 무대에서 열띤 논쟁을

낳았다. 한편에서는 모든 형태의 성매매가 본질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격하시키며 착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성 노동을 여성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정당한 직업으로 방어하며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을 옹호한다. 논쟁

의 핵심은 성인의 성매매가 자발적이고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닐 때 정당한 노동형태로 수용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논쟁은

2000년 유엔이 트래피킹에 대한 의정서를 만들 때 극에 달했다.

트래피킹을 둘러싼 논쟁

반 트래피킹 운동 진영은 성매매를 위한 모든 형태의 징발과 이송을 동의여부와 상관없이 트래피킹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선택’이란 말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선택’이란 사회경제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이

맥락 속에서 여성의 권리와 지위에 대한 구조적 불평등을 봐야 한다는 것. 이런 구조 속에서 여성에게 선택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국가 정책과 실천은 여성의 가치와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더 나은 교육과 고용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그

럼으로써 여성에게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줘야 한다.

반 트래피킹 운동 진영은 성산업을 인정하게 되면 성 불평등이 깊어질 것이며, 여성의 지위를 불명예스럽게 할 것이라

우려한다. 성매매에서 여성이 노동자로 여겨지면 포주는 사업가로 변신하며 구매자는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

면 정부는 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 존엄하고 지속가능한 고용을 만들 책임을 빠져나갈 것이다. 성매매 여성을 범죄자 처

벌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여성과 아동을 사는 남성과 성적 착취를 도모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이

들의 주장이다.

반면 성노동 옹호 진영은 성매매가 노동이며 트래피킹의 정의에서 ‘폭력적 강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성산업의 대다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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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하는 것은 강요받은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아니라 성 노동자라는 것이 조사결과이다. 여성은 상업적 성행위에 종사하

는 것에 대해 고지에 입각한 스스로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성노동 옹호 진영은 여성을 구제 또는 구조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자기결정권, 자기표현의 권리, 노동권을 가진 주체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성매매 철폐주의자들이 여성의 성매매에 동의할 능력을 부인하며, ‘강요된’ 성매매를 비난하는 데 몰두하느라 정

작 자발적인 성노동자의 권리에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결국 성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어떤 기준

도, 위생이나 공중보건, 안전에 관한 조항도 없고, 공식적으로 직업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트래피킹의 전설을 지우고 성 산업에 노동권과 여성권의 요소를 주입할 새로운 틀을 짤 사람은 바로 성 노동자들 자신

이며, 이 새로운 틀은 억압받는 여성과 억압하는 남성이라는 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성노동 옹호 진영의 주장이다.

이처럼 트래피킹에 대한 최상의 전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일부 조치들에 대해서는 합의가 있

다. 트래피킹 피해자 또는 성노동자(입장에 따라 뭐라 칭하건)에 대한 주거·재정 및 법적 원조, 트래피킹된 사람을 수용

한 국가의 사회적 서비스와 주거에 대한 권리 보장, 트래피킹 범죄자를 다루는 형사절차 과정에서의 여성 보호, 성을 파

는 사람과 트래피킹 당한 사람을 범죄처벌대상에서 제외하기, 이들의 조직화 권리를 인정하기 등이다.

강제 노동(Forced Labor)

흔히 강제노동에 대한 오해가 있다. ‘히틀러의 강제수용소’처럼 전체주의 체제의 노동관행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반면에

다소 느슨하게 개념을 사용하여 저임금을 포함한 빈곤하고 건강에 좋지 못한 노동조건을 일컫는 경우도 있다. 일부 국가

입법에서는 임금의 체불, 법정최저임금 아래의 보수를 강제노동상황의 한 요소로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강제노동은 저

임금 또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단순히 동일시될 수 없다.

강제노동상황은 한 사람과 고용주 간의 ‘관계의 성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수행되는 활동유형(아무리 혹독하고 노동

조건이 위험할지라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수행되는 노동이 불법이냐 적법이냐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강제로’ 성매매를 하게 된 여성이 강제노동상황에 있는 것은 그 일의 비자발적 성격과 그녀가 위협 하에서 일한다

는 것이지 성매매가 적법이냐 불법이냐와는 무관하다. 또한 그 활동이 잠재적으로 ‘강제노동’의 범위 내에 올 때는 공식

적으로 ‘경제적 활동’으로 인정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강제 하의 아동이나 성인의 구걸 행위는 강제노동으로 간주될

것이다.

ILO의 강제노동에 대한 정의는 두 가지 기본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동의 없이 비자발적으로 수행되는 활동이며, 둘째,

불응하면 벌을 가하겠다는 협박 하에서 강요된 노동이나 서비스이다. 예를 들어 물리적 납치, 빚을 지도록 유도하는 행

위(통장 위조, 과장된 물가, 노동을 통해 생산된 재화나 서비스의 저가치평가, 과도한 이자 부과 등), 노동의 유형과 기간

에 대한 사기 또는 거짓 약속, 임금의 보류 및 미지불, 신분 서류 또는 기타 가치 있는 개인의 소지품 압류, 성폭력, 노

동자 자신 또는 가족, 가까운 사람에 대한 신체적 가해, 당국(경찰, 이주당국 등)에 대한 고발과 추방, 더 열악한 노동조

건으로의 이전, 식량·주거 및 기타 필수물의 박탈 등의 위협이다.

강제노동은 또한 아동노동의 최악의 형태 중 하나이다. 1999년 ILO의 ‘최악 형태의 아동노동조약(제182호 조약)’은 권리

를 가진 개인으로서의 아동이 제3자에 의해 벌 받을 위협 하에서 노동을 강요받을 때, 또는 가족 전체가 제공해야 하는

강제노동 내에 아동노동이 포함될 때 아동노동을 강제노동에 해당된다고 본다.

ILO는 현대판 강제노동의 현저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꼽고 있다. △국가가 직접 하기보다는 사적 에이전트가 수행한다.

△빚을 지게 되는 것이 강제의 핵심요소이고, 폭력의 위협이나 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제재로 뒷받침 된다. △‘미등록’

또는 ‘불법’이라는 이주자의 불확실한 법적 지위로 인해 강제에 취약하게 만든다. 이들은 아주 착취적인 노동조건을 수락

하느냐 추방의 위험을 무릅쓰느냐의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다. △강제노동의 피해자들이 타국으로 트래피킹 되기 때문에

법의 사각지대에 있고, 감춰지고 은밀한 형태의 강제를 추적하기가 어렵다.

강제노동을 범죄로 처벌해야 하지만 강제노동이 상세히 규정되지 않아서 법집행기관이 위반자를 찾아내고 기소하기 어

렵다. 따라서 강제노동을 단순히 법적으로 금지하고 범죄화하는 것 말고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강제노동의 덫에 빠

질 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노동시장정책 또는 이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강제노동의 뿌리인 차별, 박탈, 빈곤을 파고

들어야 한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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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의 역사와 현재[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⑥] 제5조 고문 금지 (1)

세계인권선언 제5조

어느 누구도 고문이나,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취급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

아직도 ‘고문’을 얘기하는가? 춘향이가 곤장 맞던 적 시절 얘기일까? 고문은 인간성에 반하는 주요범죄라지만 세계 곳곳

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나아가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식물, 자연에 대한 고문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어느 곳에서나 어느 정도의 합법적인(?) 폭력은 봐줄만한 것으로 보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즉 합법적인 ‘조사’와 ‘고문’

사이에 뚜렷한 구분선이 없기 때문에 고문의 문화는 사회에서 얼마든지 쉽게 자라날 수 있다. 특히, 정치적 통제와 가정·

학교에서의 가혹한 기강잡기가 당연시되는 문화를 가진 곳에서는 번창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자신이 제공한 ‘면허’에 의해 공무원이 저지른 고문에 대해 당연히 책임을 져야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인권침해를 방지할 의무, 개인들 사이에서 유사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가혹행위로부터 개인들을 보호할 의무

를 또한 지고 있다.

고문의 역사

고문의 역사를 볼 때,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처벌’과 ‘자백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체계적이고 사법적인 고문이 사

용된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처벌을 고통스럽게 하고 가능한 한 고통을 길게 하자는 주장이 있어왔고 처벌과 처형에 관한 옛날 기록들에는

아주 잔인한 일들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렇다고 잔인함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고문은 자백을 얻어내는 가장 믿을 만한 수단’이라고 주장한 정치가가 있는 반면 ‘고문의 사용

이 거짓된 자백을 이끈다’고 비판한 정치가도 있다. 초기 기독 교회에서 고문이 사용됐다는 증거는 없다. 이단자는 도덕

적 설득으로 변화돼야 했고, 실패할 경우에는 파문하거나 공민권을 박탈하는 것이 충분한 처벌이었다. 한 저명한 수도사

는 말하기를 “믿음은 확신의 결과여야지 힘으로 강요돼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11세기가 되면 이단자는 고문에 처

해져서 신앙을 철회하거나 아니면 아주 잔인한 방법(가령 화형)으로 처형됐다.

중세 유럽 후반기에는 고문이 종교재판에서뿐만 아니라 세속의 재판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유죄의 강력한 증거 또는

자백을 얻기 위해 고문을 사용하는 관행이 광범위하게 퍼졌고 형사 재판에서 더 많이 쓰이게 됐다. 유죄가 인정된 후에

는 공모자의 이름을 얻기 위해 또한 고문이 사용됐다.

종교재판소는 특히 12세기부터 13세기까지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에서 성행했는데 항상 고문에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심문가들은 당대의 기준을 갖고 질문을 통해 이단의 증거를 결정하려고 시도했다. 판결은 참회, 투옥 또는 죽음이

었다. 중세 후반기에 지배적이 된 것은 스페인의 종교재판소였다. 주로 잔존하는 무어인들과 대규모의 유대인 인구를 대

상으로 했다. 심문과 고문이 성문화됐다. ‘고문 전에 간단히 취하는 5단계의 방법’, 이단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범죄 수사

에서 알맞은 고문의 방법’ 등이 저술됐다. 16세기 초반에는 종교재판관이 아메리카식민지와 네덜란드에도 수립됐고, 19세

기 초에야 최종적으로 종교재판이 금지됐다.

유럽의 계몽주의는 휴머니즘의 부상과 과거의 견고한 사회구조의 이완을 겪었다. 볼테르는 정보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

로서의 고문을 비난했다. 벤담은 고문이란 의도된 것과는 반대되는 효과를 낳는다고 했다. 18세기 말까지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고문은 불법화됐고, 고문폐지는 한 국가의 ‘문명화’의 척도가 됐다. 하지만 고문은 비도덕적이라는 생각에서보

다는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에서 폐지된 면이 크다.

많은 유럽의 지배자들은 본국에서는 고문을 폐지한 후에도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의 고문에 대해서

는 오랫동안 눈감았다. 가령 1950년대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와 1954년 알제리 봉기에서 고문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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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의사의 고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인권의사협회가 낸 『고문; 인권, 의료윤리, 그리고 이스라엘』에 이스라엘의 한 의사가 쓴 글

을 발췌·재구성)

내가 만난 팔레스타인의 한 소년은 이런 말을 했다. “왜 거짓된 자백을 했냐 하면요. 고문과 감금 때문에 그런 말을

했어요. 심문당할 때 친구들의 이름을 대라고 했을 때, 난 내 상황을 이해하고 날 용서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의

이름만을 불었어요.”

몸과 마음이 찢긴 그 아이를 보며 난 괴로웠다. 그래서 이 일을 폭로하기로 맘먹었다.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의사로

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의한 고문 폭로에 대한 반응은 절망스러웠다.

“이것은 예외적 경우다. 이스라엘에는 고문이란 없다”, 믿지 않을뿐더러 “사기치고 있다”, “자해한 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고문피해자를 데리고 출현한 TV 토론회에서 이스라엘군 사령관은 피해자의 눈앞에서 “이스라엘 국가에 고문이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이에 청중은 박수를 쳤다.

이스라엘에서 ‘점령’이란 단어는 ‘규범의 예외’란 말과 거의 같은 식으로 쓰인다. 이스라엘 사람은 신화를 믿도록 길

러진다. 내가 그렇게 자라났듯이 말이다. 유대인은 “우리는 완전 절멸당할 위험을 겪었다. 시오니스트들이 되찾은 것

은 텅 빈 사막이요, 우리는 그것을 꽃피는 정원으로 바꿨다. 우리는 우리를 방어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등의 생각

을 하며 도덕적 우월성을 자만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자행하는 고문은 ‘외부자’에 대한 것, 폭력의 일종의 정신적 상부구조이다. 고문의 목적은

적들·외부자에게 말하게 하고 비밀을 털어놓게 하려는 것이라 한다. 그런 누설을 통해 내부자의 죽음을 방지하기 위

해 미리 손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그럴듯한 고문의 구실로 내세우지만 사실 피해자의 자백은 쓸모없다. 고문가해자는 피해자의 말이 가치 없다

는 것을 알고 있다. 극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은 고문관이 듣기 원하는 말(공허한 말이지만)을 하게 된다. 이것은 비밀

을 누설시키겠다는 겉으로 내세운 목적을 완수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실상 고문의 목적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침묵’이

다. 침묵은 공포로 유도된다. 공포는 피억압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전염되고 확산되어 침묵하게 하고 마비시킨다.

폭력을 통한 침묵의 강요가 고문의 진정한 목적이다.

이스라엘처럼 군인들 간의 전우애가 최고로 중요한 곳에서 고문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국가 반역과 마찬가지다. 고문

을 막기 위한 운동에는 종족의 가치를 초월하는 도덕적 가치, 다른 종류의 결집력, 즉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존

중이 필요하다.

미국과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 고문 피해자들

(2008년 국제앰네스티의 보고서에서 발췌)

고문은 오늘날에도 분명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제3의 방법’ 또는 ‘경미한 신체적 압력’ 등 완곡어법으로 위장돼서 계속되

고 있고, 물리적 고문만이 아니라 심리적 고문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국제법으로나 어느 나라의 국내법으로나 고문이

금지되고 있는 현재에도 규범의 예외는 분명히 존재한다. 현 시대에 대표적 문제가 되고 있는 두 개의 사례, 미국과 이

스라엘에 의한 고문은 아래의 인용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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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후로 수만 명이 혐의나 재판, 변호인과 법정에 대한 접근 없이 구금됐다. 2004년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의 고문 상황 폭로의 충격은 아직 생생하다. 주목으로 때리기, 발로 차기, 벌거벗긴 남녀 구

금자에 대한 사진 비디오 촬영, 사진을 찍으려고 다양한 체위의 성적인 자세를 취하게 하기, 남자를 발가벗기고 강제

로 여성 속옷 입히기, 자위하게 만들기, 벌거벗은 구금자들을 포개기, 손가락·발가락·성기 등에 전선감기, “나는 강간

자다”라고 써서 구금자에게 걸고 있게 하기, 개목걸이 채우기, 겁주려고 군견을 동원하기(적어도 한 사례는 물어뜯었

고 심각한 상처를 입힘) 등 고문의 양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미 당국은 최고위층 책임자에 대한 적절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 단지 하급자들만 조사했다. 고문 피해자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고, 어떻게 항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럼스펠트 미 국방장관은 주장하기를 고문과 비인도적인

처우를 본 미군은 “물리적으로 그것을 멈추게 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보고할” 의무만 진다고 했

다. 그는 또 다른 자리에서는 “예외적 상황이지 어떤 패턴이나 관행이 아니다”, “구금 시설에서는 학대의 주장이 언

제 어느 때나 있다”, 그리고 “학대를 주장하는 것이 테러리스트들의 패턴과 관행이다”라고 했다.

2003년 6월 ‘고문피해자 지원을 위한 유엔의 날’에 부시는 연설하기를 “미국은 세계적으로 고문을 근절하기 위해 헌

신하고 있고, 우리는 고문과의 싸움을 본보기 사례로서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악랄한 보기로 든 것이 버

마, 쿠바, 북한, 이란, 짐바브웨이다. 국제사회의 모니터 접근을 거부하면서 세계의 눈을 피해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

다며 이들 국가를 비난했다.

그러나 세계인권단체들의 보고와 비판에 따르면 이라크 말고도 아프가니스탄, 관타나모, 그밖에 세계 도처에 미국의

비밀 구금시설이 있다. 인권단체들은 이를 공개하고 유엔특별보고관의 방문을 포함한 독립적인 기구의 조사(부시가

다른 국가들에 대해 말한 것처럼)를 요구하고 있다.

2007년 부시는 행정명령을 통해 CIA가 비밀구금과 조사를 행사할 권한을 재보증했다. CIA 국장은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100명이 안되며, 이 프로그램은 선택적이다. 오직 가장 위험한 테러리스트에게만 사용된다”고 했다. 과연 그

럴까?

블랙 사이트(black sites)라 알려진 미국 바깥의 비밀 감옥들이 있다. 2005년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2002년부터

적어도 8개국에(특정할 수 없는 동유럽 국가들에) 그런 비밀감옥이 있고 여기에 갇힌 사람들은 ‘유령’구금자들이라 불

린다. 비공개 구금시설 중 대표 격인 관타나모의 구금자를 미국은 전쟁 포로로 인정하지 않고 그 어떤 지위도 법원에

서 결정한 적이 없다. 미국의 공직자는 테러리스트 용의자에게 혹독하고 잔인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평에서

“누군가의 인권을 일정시간 침해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네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고문폐지운동과 국제규범[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⑥] 제5조 고문 금지 (2)

고문폐지운동

1762년 ‘장 칼라스 사건’으로 프랑스는 발칵 뒤집혔다. 1762년은 루소가 “인간의 권리”라는 용어를 도입한 해이다. 칼라

스라는 사람의 집안에서 어느 날 큰 아들이 집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당국은 자살이 아니라 아들의 개종을 막으려 한

살해라며 칼라스 가족을 체포해 갖은 고문을 가했고, 가장인 칼라스는 수레바퀴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에

처했다. 그런데 노구의 칼라스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당국이 원하는 실토를 하지 않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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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상가였던 볼테르는 부당하고 야만적인 재판과 형벌제도를 비난하는 수많은 글을 써댔고 칼라스가 처형된 지

3년이 지나 무죄와 복권 판결을 받아냈다. 칼라스 사건에 자극·고무된 볼테르의 저작들은 종교적 불관용에 대한 지적에

서 출발하여 고문 반대로 발전해갔다.

또한 1764년 이태리의 세자르 베카리아는 『범죄와 형벌』이란 역작을 내놓는다. 베카리아는 비인도적 형벌제도의 폐지

를 사회계약론과 공리주의 관점에서 도출했다. 즉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처분 가능한 계약내용으로 제시할 리 없고, 자

기보호본능에 위배되는 자백강요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잔혹한 형벌은 범죄예방에 오히려 유해한 결과를 초래한다.

범죄와 형벌간의 적정한 균형을 설정하기 곤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잔혹한 형벌과 사면은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군주의 특사는 강압적 형벌을 통해 지탱되는 폭정을 은폐하기 위한 가면이다. 따라서 잔혹한 형벌과 특사 사이를 왕복하

기보다는 보다 관대한 형벌을 예외없이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근대형법의 토대가 되어, 공리성과 인도성의 조화가 달성될

수 있다고 봤다. 고문은 “강한 범죄자에게 무죄를 주고, 무고하지만 약한 사람을 유죄로 하는 확실한 방법”이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유효한 법률을 통하여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1787년 아메리카의 의사 벤쟈민 러쉬는 말한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범죄자라도 우리 친구들과 친척들의 영혼과

육체와 마찬가지의 물질로 구성된 영혼과 신체를 가졌다는 것을. 그들은 뼈 중의 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정부는 모든 형태의 사법적 고문을 금지하고, 1792년에는 길로틴(단두대)을 도입한다. 무수한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기억되지만, 단두대의 도입 목적은 사형을 단일하게 하고 가능한 한 고통 없이 집행 한다는 것이었다.

18세기 말 유럽을 휩쓴 인권운동의 결과로 18세기말 19세기 초에는 많은 점에서 향상이 있었다. 1874년 작가 빅토로 위

고는 자랑스럽게 “고문은 존재를 멈추었다”고 선언했다. 불행히도 그런 성취는 오래가지 않아. 1·2차 대전은 정치적 목적

을 위해 인간이 잔인한 폭력에 호소할 준비가 돼있다는 걸 보였다.

고문에 대한 국제규범

독일의 나치체제에서 고문은 공포를 확산하는 수단이 됐다. 독일의 수용소만이 아니라 점령지의 다른 나라들에서 자행되

는 대규모의 체계적인 고문은 당대의 규범이 됐다. 따라서 2차 대전 후에 고문에 대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인식은 광범위했다.

하지만 ‘고문 금지’라는 말로는 충분치 않았다. 어떤 잔인한 행위들은 적절하게 정의하게 어렵기에 “잔인하고 통상적이지

않은 처벌”에 대한 규제, ‘인간의지에 반하는, 사람에 대한 의학적 또는 과학적 실험의 금지가 포함돼야 한다’는 제안 등

이 있었다.

결국 세계인권선언 5조에서 채택된 것이 “고문이나,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취급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

한다”이다.

선언을 이어받은 ‘시민 정치적 권리규약’ 7조는 “어느 누구도 고문 또는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취급 또는 형

벌을 받지 아니한다. 특히 누구든지 자신의 자유로운 동의 없이 의학적 또는 과학적 실험을 받지 아니한다”이다. 이 조

항이 중요하다는 것은 비상사태시에도 절대로 위반해서는 안되는 몇 안되는 조항 중 하나라는 것이다. 즉, 고문금지는

절대적이고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유사한 조항이 유럽인권협약 3조, 미주인권협약 5조 2항, 아프리카 인간과 인민의 권리헌장 5조 등이다. 전쟁시에도 이

권리는 존중돼야 한다. 제네바 협약에서는 고문을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유럽인권위원회 1969년 결정은 “비인도적 처우”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보였다. ‘비인도적 처우’란 특정 상황에서 정신적

또는 신체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고의적으로 야기하는 것으로서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이다. ‘고문’이란 단어는 ‘비인도적

처우’를 묘사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데, 이는 정보나 자백의 취득 또는 처벌의 고통을 목적으로 하며, 일반적으로 비인

도적 처우의 심화된 형태이다. ‘모욕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타인 앞에서 그 사람에게 엄청난 모욕을 주거나 자신의

의지나 양심에 반해 행동하도록 몰아가는 것이다.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간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심각성의 정도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모욕적인 처우’는 다소 다른 특성

의 개념이다. 처우를 모욕적으로 만드는 것은 피해자가 느끼는 굴욕감인데, 국제법으로 금지하려면 굴욕감이라는 것이

어떤 정도의 심각성을 가져야 한다.

관련된 문제들로는 구금된 자에 대한 처우(너무 혹독하거나 구금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와 추방의 문제(고문이나 사

형에 처해질지도 모를 곳으로 추방하는 문제)가 있다.

유엔 총회는 아래와 같이 고문을 방지하기 위한 일련의 기준과 조치들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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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고문)을 받아들일 때 내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수치심을 느꼈다. 나는 내 존엄성을 지키고 싶었다.” (어느

고문 피해자의 말)

고문방지협약

고문방지협약 1조 1항은 아래와 같다.

이 협약의 목적상 ‘고문’이라 함은 공무원이나 그밖의 공무 수행자가 직접 또는 이러한 자의 교사·동의·묵인 아래,

어떤 개인이나 제3자로부터 정보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이나 제3자가 실행하였거나 실행한 혐의가

있는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이나 제3자를 협박·강요할 목적으로, 또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기초한 이유로, 개인에게 고의로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합법적 제재조치로부터

초래되거나, 이에 내재하거나 이에 부수되는 고통은 고문에 포함되지 아니한다.

고문방지협약의 주요소는 1) 고문방지를 위한 효과적 조치를 취할 의무, 고문을 심각한 형사 범죄로 할 것, 2) 고문

받을 위험이 있는 국가로의 사람의 추방이나 송환의 금지, 3) 고문범죄에 대해 보편적 관할권을 적용할 의무, 고문용

의자가 당사국 영토에 오면 기소하거나 송환할 것, 4) 구금, 수사 등에 관련된 요원들의 훈련에 고문금지에 대한 교

육과 정보를 포함할 의무, 5) 모든 의심되는 고문사건을 조사할 의무, 6) 고문 피해자에게 공정하고 적절한 보상의

권리를 줄 의무, 7)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고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을 방지할 의무 등이다.

여기서 쟁점이 된 것은 ‘보편적 관할권’ 문제와 ‘이행장치’에 관한 문제이다. 보편적 관할권을 적용하자는 것은 고문

의 의심이 있는 사람이 제3국으로 달아남으로써 안전한 하늘을 찾을 수 없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많은 국가

들이 이 원칙을 고문에 적용하는 것을 주저했다. 효과적인 ‘이행장치’에 대해서도 국제적 감시를 거부하고 국내문제

에 대한 부당한 간섭으로 여겼다. 이런 국가들의 반발로, 협약에 가입하는 국가들은 고문 진정과 조사 절차에 대한

조항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 1975년 ‘고문, 기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고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에 처한 모든 사람의 보호에 관한 선언’; 고문방지

를 위해 공무원들을 지도 훈련하며, 조사 방법을 심사하에 두며, 고문행위를 형사범죄화하고, 적절한 사건에서 조사와 기

소를 진행하고 범죄자를 처벌할 것

* 1979년 ‘법집행공무원 행위규범’ 채택

* 1981년 고문피해자를 위한 자발적 기금(Voluntary Fund for Victims of Torture) 설립

* 1982년 ‘구금자를 고문과 기타 자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로부터 보호하는데 있어 의료요원, 특

히 의사들의 역할에 관한 의료윤리원칙’ 채택

* 1984년 고문방지협약 채택

* 1985년 고문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임명

* 2002년 고문방지협약에 관한 선택의정서(2002년 12월 18일 채택, 2006년 6월 22일 발효, 2008년 1월 현재 당사국 34개

국, 한국 미가입); 감옥 및 기타 구금시설에 대한 국제적 감시를 정한 의정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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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비인간, 법의 안과 밖, 경계에 주목해야[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 6조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

세계인권선언 제6조

모든 사람은 어디에서나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6조는 선언의 전체 30개 조항 중에서 그다지 눈길을 끄는 조항이 아니고, 인용되는 일도 드물다. 그 이유는 너무 당연하

다고 여겨서이거나 혹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인권협약에는 6조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

지 않았다고 한다.

6조의 기본 목적은 법의 눈으로 볼 때 인간으로서 다뤄질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 즉 법적 권리와 의무의 잠재

적 담지자로 인정될 모든 사람의 권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을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가령 ‘노예’의 경우처럼

어떤 인간에 대해 법 앞에 인간의 지위를 부인하는 일을 오늘날에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또한 시민권 상실(civil

death)의 형벌을 내리는 일, 일체의 법률상의 보호를 박탈하여 추방하는 일은 먼 과거의 일이고 더 이상 어느 국가도 자

국민을 상대로 사용하는 형벌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세계인권선언이 2차 대전에서의 반인간적 행위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6조는 더욱 당연하게

여겨진다. 나치는 유대인, 장애인, 동성애자 등 특정 인간을 ‘비인간(비인격)’ 또는 ‘하급인간’으로 낙인찍어서 불평등하게

취급했다. 그리고 그런 취급은 ‘법적으로’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

다는 것을 부인하는 인간 격하와 침해를 돌아보며 선언의 기초자들은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를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6조를 별 의미가 없다고 보는 시각에선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것의 의미가 구체적이지 않기에 6조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답해야 하고, ‘인간 존중의 의미가 무엇인가’도 확

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선언의 다른 구체적 조항들과 비교할 때 건너뛰는 조항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입장 모두 문제가 많다. 먼저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것이 과연 ‘당연’하기에 문제될 수 없는가이다.

오늘날 주요한 인권문제는 법 앞에서 권리능력을 가지고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법주체들의 문제가 아니라 ‘법에 따

라 법으로부터 추방된 사람들’ 속에서 벌어진다.

사냥 당하듯이 잡혀서 추방되는 이주노동자들은 ‘법의 바깥’에 놓인 사람들이다. 지금의 촛불정국에서 확인돼 듯 집권자

는 선택권을 갖는데 주권자들은 선택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탈법자 취급을 받고 있다. 선택의 기회는 갖지 못하면서 발

생할 위험부담은 고스란히 떠맡아야 한다. 주권국가 바깥에 놓인 난민 수용소의 사람들, 관타나모 기지에 갇힌 사람들,

분리장벽에 갇힌 팔레스타인 사람들, 세계 곳곳의 ‘불법’ 체류자라 불리는 사람들 등 ‘비인간’으로서 ‘법의 바깥’에 놓인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데 6조가 내세운 원칙이 너무 당연하다고 선언하며 잊어버리는 것은 너무한 일일 것이다.

두 번째 입장의 문제도 이와 연관돼 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 법의 안과 바깥의 경계에 놓인 문제들

에 인권은 주목해야 한다. 경계는 불확정적이기에 거기에 인권투쟁의 가능성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확정된 구체적

권리에만 인권이 집중한다면 인권은 법 앞에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된 사람들만의 명시적으로 쓰인 권리에 머물 것이다.

그런 인권은 사실상 ‘인’권이 아닌 일부 사람들의 권리, 법 안의 사람들의 권리, 좁은 의미의 시민권에 지나지 않을 것이

다. 선언의 여타 확정된 권리들이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의미를 가질 수 있으려면 우리는 잊혀진 6조를 계속 불러

내 생각하고 경계를 확장하려는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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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제 7조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어떠한 차별도 없이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을 위반하는 어떠한 차별에 대하여도, 또한 어떠한 차별의 선동에 대하여

도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빵을 훔친 죄로 부자와 가난뱅이를 평등하게 처벌하라?[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 7조 법 앞에 평등

모호한 기초과정

차별을 금지하는 일반조항은 2조이다.(아래 관련기사 참고) 7조는 ‘법 앞에 평등’, ‘법의 평등한 보호’, ‘차별로부터의 보

호’를 특화해 다루고 있다. 그런데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는 이들 원칙들이 뭘 의미하는가는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이다.

7조를 기초할 당시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선언을 만들던 사람들도 갸우뚱거렸던 문제는 ‘법 앞에 평등’이 선언에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그 말의 의미가 무

엇이냐는 것이었다. 법률 조항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아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법률의 적용이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

게 평등해야 한다는 것일까? 법의 내용과 상관없이 적용만 평등하면 된다는 뜻일까? 법의 내용 자체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일까? 가령 남성이든 여성이든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법 조항이 ‘똑같아야’ 한다는 건가, ‘모성급여’를 남성에게

도 똑같이 주어야 한다고 규정해야 한다는 건가, 법이 인종차별을 조장한다면 그 법대로 해야 한다는 건가, 법의 내용

자체가 인종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건가?

이런 혼란 속에서 선언의 기초자들은 7조의 문장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다가 지금의 문장을 남겨 놓았다. 7조는 ‘개인

들 사이 그리고 집단 사이의 정당한 구분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법적 처우의 평등을 보장할 의도를 갖는다’는 게

대체적 합의였다. 선언 7조와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유엔 시민 정치적 권리규약 26조를 만들면서도 비슷한 논란과

고민이 있었다. 우리는 26조에 대한 유엔자유권위원회의 논평(일반논평 18)을 통해 앞의 질문들에 대한 몇 가지 답을 구

해볼 수 있다.

△ ‘법 앞에 평등’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의 동일한 취급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8세 미만자에 대한 사형선고 금지, 미성년 범죄자의 성인과의 격리 등을 떠올리면 된다. △ 실질적인 차별을 바로 잡기 위해 특정 인구에 대한 구체적 사안에 있어 그 외의 나머지 인구와 비교하여 특정 기간 동안 우대조치를 부여하는 것 등은 정당한 차등조치에 해당한다. 차등조치에 대한 기준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그 목적이 본 조약에 따라 정당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모든 차등조치가 차별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 인종‧성 등 관련한 차별에 대하여 동등하고 효과적인 보호를 보장한다. 재판에 있어서 평등하고, 모든 시민이 공직생활에 평등하게 참여할 권리를 보장한다. △ 법률을 채택할 때, 그 법률의 내용이 차별적이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차별을 선동하는 것이 될 수 있는 민족적‧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를 법률로서 금지할 의무가 있다.

마지막 부분의 ‘차별의 선동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에 대해서는 논란이 큰데 일부 국가들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

한다는 이유로 차별선동금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법 앞에 평등’의 접근법

유엔 등이 금지하는 대표적인 차별유형에는 ‘직접차별’, ‘간접차별’, ‘폭력’이 있다. 직접차별은 말 그대로 ‘직접적이고 가

시적이고 의도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경우다. 그런데 법률이 직접차별을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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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 통념, 관습 등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이를 수정할 수 있는 새로운 차별개념

과 판단기준이 요구되기에 간접차별의 개념이 등장한다.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혹은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하였으

나 특정 소수자 집단에게 불이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간접차별이다. 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정신적 신체적 폭력

(harassment)을 가하는 것도 차별이다. 여기에는 조롱, 비웃음, 경멸, 농담 등을 포함한 언어적 시각적인 행위를 통한 괴

롭힘이 포함된다. 행위자의 의도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러한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공포나 모멸감, 모욕, 불쾌감, 수치심

을 경험하였다면 폭력으로 간주한다.

그럼 이들 차별유형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법 앞에 평등을 추구하는 접근법은 다양하다. 법적 차별의 개념은 불

확정적이고, 해석과 판례에 따라 구체적 의미가 규정된다.

제일 간단해 보이는 접근법은 ‘아주 똑같이 대하는 것’이다. 개인의 장점이나 결점을 보면 되는 것이지, 성 인종 종교 등

의 특성과 개인을 결부시키는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본다. 법률은 그런 특성들을 보지 않고 모든 개인을 똑같이 대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보이지만 단점이 있다. ‘똑같이 대한다’고 했는데 누구랑 똑같이 대한다는 것일

까? 사실상 그것은 사회의 지배적인 집단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가령 임신하지 않는 남성, 정규직 노동자, 비장

애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똑같이 대한다’고 했을 때 문제가 없을까? 이것은 차별을 불러일으킨 지배집단의 기준을

그냥 받아들이라는 것이고, 사회경제적으로 지배적인 집단 속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는 제쳐놓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접근법에 따르면 국가는 외관적인 법률로 명백한 차별을 삼가기만 할 뿐 차별시정

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똑같이’가 너무하다고 여긴다면, 약간의 수정을 가할 수 있다. ‘아주 똑같이’를 대원칙으로 삼은 가운데 몇 가지 차

이에 대해서는 특별한 고려를 가미하는 것이다. 가령 ‘의지로 어쩔 수 없는 불변의 차이’ 몇 가지만 선택해서 예외로 다

루는 것이다. 이런 예외에 속할 수 있는 차이에는 임신 출산, 장애, 교육에서의 소수자 언어 등이 있다.

문제는 특별한 처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차이를 어떻게 고르느냐에 있다. 생물학적 차이만 다룰 것인가, 어떤 차이든지

다룰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또한 선택된 차이에 대한 특별한 처우가 ‘누구랑 같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앞서 지

적한 문제가 반복된다. 즉, 지배적인 집단의 기준에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차이’로 선택된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고정되고 진부한 시각을 유발하고 계속되게 할 우려가 있다.

앞의 두 가지 접근법에 대해 ‘문제는 차이가 아니야’, ‘문제는 차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구조야’라고 찌르는 접근법이 있

다. 개인의 존재나 특성의 차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X라는 존재나 특성은

그 본질에 의해 결정된 것도 불가피한 것도 아니다. X는 사회적 사건, 세력, 역사 때문에 존재하거나 형성된 것이고, 이

모든 것들은 달라질 수 있다. 차별의 근거가 되는 어떤 특질은 ‘자연적’이거나 ‘불변’인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사회적

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배적인 집단의 기준에 근거해 키 맞추기를 하지 말고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구조적으로

왜 불리한지를 따져서 처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골치 아픈 문제들을 남긴다. 이런 주장을 들고 법원에서 ‘법 앞에 평등’을 추구했을 때 과연 얻을 게 있을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거니와 ‘구조적 불리함을 따져서 처우한다’는 것이 참 많이 모호하다.

현실에서는 이런 접근법이 무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섞여있기 마련이다. 어찌됐든 법적 평등의 추구는 ‘강제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접근법이다. 법제도 영역에 들어설 만큼 드러난 차별의 문제(가령 인종차별, 성차별)만 건드릴 수 있

고,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 가령 고통스러운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그걸 묘사하는 언어조차 없어서 차별로 여겨지지 않

는 문제들(가령 ‘성희롱’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의 일들)은 건드리기 어렵다. 따라서 ‘법 앞에 평등’을 열심히 추구하는 동

시에 우리는 사회적으로 불리하고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고치는 노력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법 앞에 평등’의 한계와 의미

‘법 앞에 평등’은 다른 말로 하면 출발에서의 기회균등, 자유경쟁의 원리다. 기회의 균등이 법률의 얼굴을 가지게 된 것

은 근대시민혁명에 연유한다. 혈통과 신분의 특권을 뻐겨대고 버티는 귀족 계급에 대항하여 타고난 혈통과 신분이 아닌

자기 노력과 능력에 따른 평등을 내세운 것은 혁명을 정당화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논리였다.

근대시민혁명은 잘 알다시피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주창했다. 그런데 부르주아계급이 불평등이라 여긴 것은

능력이 있음에도 자신이 속하는 신분 때문에 능력 없는 자보다 열악하게 취급되는 것이고, 부자유란 능력이 있음에도 능

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즉, 능력이 있는 자를 능력 있는 자로, 무능한 자를 무능한 자로 취급하는 것

이 평등이며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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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칙이 방해받지 않고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꿈꾸면서 작성한 권리 구조는 이러했다. 사람들이 평등한 것은 ‘자

연적’ 권리에서이고 국가는 이 자연적 권리에 근거해 모든 국민을 국민주권에 대한 평등한 참가자라고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개인의 재능과 장점, 특질 등에 따른 현실에서의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건 내버려둬야 하는 문제

이다. 자유로운 경쟁이란 게 재능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향연이 되고, 경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가치마저도 경쟁으

로 몰아붙이며, 아무리 사회적 불평등의 골을 깊게 판다해도 평등원칙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이처럼 능력 본위의 평등논리를 법으로 못 박은 것이 근대시민혁명이다. 따라서 근대시민혁명이 내세운 ‘모든 사람의 자

유와 평등’은 물질적 평등의 의미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법률에 대한 평등’, ‘시민의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했다. 자유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적 소유 및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에서의 자유인 반면 평등은 국가에 대한 참여의 평등

한 권리, 곧 법 앞의 평등을 의미했다. 이로 인한 폐해에 대해 어떤 이는 “법은 정의롭다. 그것은 빵을 훔친 죄로 부자와

가난뱅이를 평등하게 처벌한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럼 법 앞의 평등은 부인돼야 하는가? 그냥 조소의 대상인가? 그건 아니라는 걸 인권의 역사는 보여준다. 예를 들어 신

분차별의 폐지는 재산가와 재산 없는 사람들을 더 확연하게 갈랐다 할지라도 분명 평등의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인종

차별의 법적 폐지는 분명 개인들이 가진 인종적 증오와 편견을 해소하지 않았고 그에 기인하는 사실상의 차별을 중단시

킨 것도 아니었지만, 인종적으로 차별받고 있는 피억압자가 그 차별의 철폐를 스스로 주체적으로 쟁취해 나가기 위한 중

요한 전제와 수단을 제공했다. 종교에 따른 차별, 여성에 대한 법적 차별의 폐지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차별받고 자유

를 빼앗기고 무권리 상태로 짓눌려 있는 상황과 부족하나마 법적으로 자유(특히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부여받고 있는

상황은 보다 완전한 자유·평등의 획득을 위한 투쟁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한 철학자의 말을 빌려 달리 표현하자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법 앞에 평등’은 과거 정치적 주체들의 투쟁의 산물이며,

그러한 투쟁을 자기 내부에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에 일어났던 정치적 투쟁의 사건, 민주주의의 사건은 언제나 다

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우리는 인권의 역사에서 평등의 맛을 기억하며 더 깊은 맛을 추구할 것이며

맛보지 못한 사람들을 계속 초대할 것이다.

“이행되지 않는 인권은 실체 없는 그림자”[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 8조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

세계인권선언 제 8조

모든 사람은 헌법 또는 법률이 부여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담당 국가법원에 의

하여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을 다룬 애니메이션을 본 일이 있다. 8조를 묘사한 장면은 이러했다. 한 사람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

린다. 정말 억울한 일을 겪었다는 게 그 눈물에 흠뻑 녹아있다. 법정과 판사에게로 다가가 눈물로 뭔가를 호소한다. 잠시

후 두 손을 흔들며 활짝 웃는다.

두말 할 것 없이 권리 침해를 받았을 때 구제를 받을 권리는 아주 중요하다. 8조는 선언을 완성하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제안된 조항이다. 선언 기초자 중의 한사람은 “효과적으로 이행되지 않는 인권은 실체 없는 그림자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구제를 받을 권리’를 넣는 것에 대해 반대의견이 많았다. 반대자들은 다른 조항들은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을 얘

기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다 권리를 침해당했을 경우를 집어넣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선언의

목적 자체가 이행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선언은 무엇을 목표로 삼을 것인가를 얘기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이행의무를 부

과하면 많은 국가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에서 ‘국제조약’이 아닌 ‘선언’의 형태를 취하기로

일찌감치 방향을 돌렸던 것이다.

어찌됐든 미약한 수준에서나마 선언에 구제 조항이 들어간 것은 다행이다. 선언 이후 다른 국제조약들은 구제 조항의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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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더 넓히고 구체화했다.

8조는 국가법원에 의한 구제, 즉 사법적 구제만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침해와 관련된 구제조치가 사법적 조치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이고 바람직한 구제 형태가 사법적 구제이고 그 가능성을 확대시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사법적 접근이 적절치 못할 때도 있다. ‘신속하고 효과적이고 비용이 덜 드는 구제절

차’가 절실할 때가 있다. 선언 이후 다른 국제조약들은 사법 구제 말고도 ‘행정 또는 입법당국, 기타 권한 있는 당국’에

의한 조치를 말하고 있다. 인권침해를 부르지 않고 예방할 수 있는 또는 잘못된 입법행위를 뜯어고칠 수 있는 입법조치,

그리고 행정구제, 옴부즈만이나 국가인권위 등의 활동이 여기 해당한다.

8조는 “담당 국가법원에 의하여”라고 말한다. 즉 국내의 구제에만 머무르는 것인데, 자국 정부와 법률로부터 인권을 침

해당한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하지 않는다. 선언 이후 국제인권보장체계의 발전 속에서 국내의 구제절차를 통해

구제받지 못한 경우 유엔이나 지역인권기구에 청원할 수 있는 제도 등이 마련됐다.

8조가 보장하는 권리 범위는 “헌법 또는 법률이 부여하는 기본권”으로 되어있다. 대개 다른 국제조약들은 ‘그 조약에서

인정된 권리들’에 대한 구제를 말하고 있다. 이와 비교할 때 선언은 선언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뿐만 아니라 국내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권리들과도 관련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조적인 해석이 있다. 하나는 선언에 열거된 권리들보다 (적어

도 문서상으로는) 국내법에 열거된 권리범위가 훨씬 넓기 때문에 8조가 포괄하는 권리범위는 어떤 조항보다도 넓다고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기본적 인권과 관련해서는 국제인권법의 기준들이 각국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보다 더

넓다고 보는 입장이다.

사법적인 권리구제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요소를 말할 수 있다. 첫째, 누구나 권리침해를 당했을 때는 법원에 다가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둘째, 법원에서는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공정한 재판의 권리가 여기서 도출된

다. 셋째, 구제조치가 결정됐다면, ‘집행’이 보장돼야 한다.

누구에 의한 침해인가도 문제가 된다. 다른 국제인권조약들은 ‘그 침해가 공무집행 중인 자에 의하여 자행된 것이라 할

지라도’ 실효적인 구제조치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국가에 의한 행위는 당연히 구제조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기업에 의한 침해이다. 가령 FTA의 ‘투자자 국가 제소권’ 같은 경우 정작 권리침

해를 받은 사람들이나 그들이 속한 나라의 법과는 관계없는 데서 심판이 이뤄진다. 이는 선언 8조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제가 있으려면 적어도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청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설명 또는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처벌부터 하고 쫓아내고 외면하는 사건이 많이 벌어진다. 학생의 소명권 같은 건 없이 징계부터 한

다든가 자기 인권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단속 추방해버리는 이주노동자 정책 등을 떠올려보자.

함부로 가두지마, 재판은 공정하게, 무죄추정의 원칙[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 9-11조 인신의 자유의 원칙들①

세계인권선언

제9조 어느 누구도 자의적인 체포, 구금 또는 추방을 당하지 아니한다.

제10조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형사상의 혐의를 결정함에 있어

서, 독립적이고 편견 없는 법정에서 공정하고도 공개적인 심문을 전적으로 평등하게 받을 권리

를 가진다.

제11조 1. 형사범죄로 소추당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변호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장치를 갖춘

공개된 재판에서 법률에 따라 유죄로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행위시의 국내법 또는 국제법상으로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작위 또는 부작

위를 이유로 유죄로 되지 아니한다. 또한 범죄가 행하여진 때에 적용될 수 있는 형벌보다 무거

운 형벌이 부과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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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의 9-11조를 짧게 말하면, ‘제멋대로 잡아 가두거나 쫓아낼 수 없다’, ‘재판은 공정하게’, ‘잡혀도 반드시 유죄라고 볼

수 없다’이다. 이들 권리는 인권의 역사 중에서도 그 역사가 깊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구금, 즉 자유로운 인간이 '갇힌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인권침해이다. 인신의 자유는 근대국가의 인권 중에서 가장 기본

적인 인권에 속하는 자유이다. 아무런 또는 적절한 설명 없이 사람을 잡아넣을 수 있게 된다면 다른 모든 자유가 침해되

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인권 사상의 기초를 제공하는 문서들에서 9-11조의 뿌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

다.

마그나카르타에서 프랑스 인권 선언까지

다른 나라에서의 근대 '인권선언'에 해당하는 것이 영국에는 없다. 하지만 1215년의 마그나카르타, 1628년 권리청원, 1679

년 헤이비어스 코퍼스(인신보호법), 1689년의 권리장전 등이 실질적으로 일종의 인권선언에 해당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

다. 이들 문서는 '일반적인 원리'로서의 인권을 선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의 법률과 관습에 의해

승인받고 있는 신민의 권리와 자유를 국왕이 침해했다는 고충의 토로이다. 지배자와 귀족간에 합의하여 명시된 특권을

보호한다는 협정의 형식이었고, 이들 문서에서 말하는 ‘자유민’의 개념은 귀족, 왕국의 봉신들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이러

한 영국의 권리선언에는 ‘절대적인’ 이른바 ‘기본적 인권’은 없지만 ‘각별히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몇 가지 권리가 있

는데 개인의 안전과 자유가 여기 포함된다.

개인의 안전이란 ‘생명, 사지, 신체, 건강 및 명예를 향유하는 것’이다. 법은 생명과 사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함부로 사형을 과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란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않는다면 구금 또는 억제, 강제이동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래 표는 마그나카르타에서 권리장전까지 등장하는 관련 조항을 정리한 것이다.

마그나카르타〜권리장전

· 형벌비례의 보장 및 형벌의 내재적 한계

“경범죄를 범한 때에는 그 죄의 경미함을 고려해 벌금을 과하고, 중범죄를 범할 때에는 그 죄의 막중함을 고려해 벌금을

과한다. 생계유지에 필요한 재산은 벌금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마그나카르타 20조-여기서 ‘00조’는 훗날 편의를 위해 붙

인 것이다.)

· 사법권의 독립

“민사소송은 짐의 궁정에 따라 이동됨이 없이, 일정한 장소에서 열린다”(마그나카르타 17조)

· 증거재판주의

“사건에 관한 신뢰할 만한 증인 없이, 진술만을 근거로 재판을 할 수 없다”(마그나카르타 38조)

· 적법절차의 권리 보장

“자유인은 동료들의 적법한 판결에 의하거나, 법의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금되지 않으며, 재산과 법익

을 박탈당하지 않고, 추방되지 않으며, 또한 기타 방법으로 침해되지 않는다”(마그나카르타 39조, 권리청원 3조)

·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정의와 재판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지 않는다”(마그나카르타 40조)

· 권리구제 및 그 절차의 보장

“적법한 판결없이 토지, 성, 자유, 또는 권리가 짐에 의해 탈취된 경우에는 이를 즉시 그 자에게 반환한다”(마그나카르타

52조, 61조)

· 변론권(소명권)의 보장

“신분이나 지위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도 정당한 절차에 따라 답변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됨 없이, 토지 혹은 소유지에서

추방되거나 체포, 구금되지 않으며, 상속권이 부인되거나 살해되지 않는다”(권리청원 4조)

·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생명권 및 신체의 권리 침해’ 제한

“어느 누구도 대헌장과 국법의 규정에 반하여 생명이나 지체를 재판에 의해 박탈당하지 않는다”(권리청원 7조)

· 죄형법정주의 및 소송권의 보장

“어떤 종류의 범법자에게도 폐하의 왕국법률에 따라 적용되어야 할 소송절차에서 제외되지 않으며, 폐하의 왕국법률에

따라 과해야 할 형벌이외의 것을 받지 않도록 되었다”(권리청원 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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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법률에 따라 재판받고 처형될지언정, 다른 규정에 따라 재판되고 처형되어서는 안된다”(권리청원 8조)

· 보석권의 보장

“형사사건으로 구속된 모든 자들에게 신속한 구제를 주기 위해...다음과 같이 정한다...수감된 자를 위한 인신보호영장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건...관리에게 제시되고 송달되어...영장송달 후 3일 이내에 동 영장에 대하여 답변을 해야 하며, 구속

된 당사자의 신병을 동영장이 명하는 바에 따라...재판관 앞에 송치하여...구금한 진정한 이유를 명시해야 한다.”(인신보호

법 2조)

“지정기간 내 답변할 것을 태만하거나 거부하고, 수감자의 신병연행을 태만하거나 거부한 경우...벌금을 수감자에게 몰수

당하여, 관직에 재임하여 직무를 수행할 자격을 상실하도록 한다”(인신보호법 5조)

“개정 시기의 최초 1주간 혹은 순회재판이나 일반수감자석방순회재판의 개정기 최초일에 공개법정에서 심리받기를 탄원

혹은 청원했음에도...소추되지 않은 경우에는...재판관이 수감자를 보석하는 것이 적법”(인신보호법 7조)

· 일사부재리의 원칙

“동일한 범죄혐의로 반복 수감되어 불공정한 고통이 가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인신보호영장에 의해서 해금되거나

자유롭게 된 자는 그 이후 어떠한 자에 의해서도 동일한 범죄혐의로 재감금되거나 재수감되지 않는다”(인신보호법 제6

조)

· 소급적용의 금지

“본법에 상응되는 규정이 있을지라도 1679년 6월 1일(인신보호법 제정일) 이전에 집행된 감금이나 또는 그러한 감금과

관련하여 조언을 받고 초래된 일에 대해 효력이 미치는 것으로 간주, 해석 또는 양해될 수 없다.”(인신보호법 제15조)

· 공소시효의 부과

“피해자가 수감되어 있지 않은 경우 범죄가 있는 때부터 2년 이내에, 피해자가 수감중이면 수감자의 사망이나 석방 중

빠른 것에서부터 2년 이내, 가해자가 소추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로 인해 소추되거나 고통받거나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인신보호법 17조)

· 무죄추정의 원칙

“유죄의 판결이 있기전에 그 자에게 과해질 벌금 혹은 몰수에 관해서 권리를 주거나 약속을 하는 것은 모두 위법이며

무효이다”(권리장전)

근대인권선언의 선두로 인식되고 있는 미국의 ‘버지니아 권리장전’(1776)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영국의 권리청원, 권리장전

을 모방한 것이지만, 여기서 권리를 다루는 방식은 영국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특정한 제 권리를 ‘모든 인간’이 타고났고,

그 제 권리가 정치조직의 기초를 이룬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인간에게 내재된 타고난 권리란 “재산을 획득하고 소유”하

며 “행복, 안전을 추구”할 권리다. 같은 해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서도 폭정에 대한 자기 방어의 권리를 원초적인 “자연”

계약으로부터 도출했고, 모국인 영국에 맞선 전쟁을 “자연적 정의”의 방패아래 두었다. 이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

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는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권리의 향유를 부인하는 정부를 ‘내쫓을 권리’도 있다.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그 목적에서나 효과에서나 국가의 국경을 넘어섰다. 1789년 선언의 체계를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권을 가지며 그 권리는 사회 상태에서도 계속 유지된다는 선언이다. 둘째,

이 자연권을 보전하려는 목적을 위해 정치적 결사(국가)의 형성이 승인된다. 셋째, 국가에 의한 자연권의 보전을 실현하

는 수단으로서 국민주권·권력분립의 원칙과 주권자 국민의 구성원인 시민의 여러 권리가 선언된다.

이들 근대의 인권선언에서 9-11조의 기초가 되는 내용은 아래 표와 같다.

버지니아 권리장전(1776)

8. 사형 또는 모든 형사 소송의 경우 당사자는 그 고발의 이유와 성격에 관한 (설명을) 요구할 권리, 고발자와 증인을 대

면할 권리,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시할 권리, 공정 무사한 동네 배심원에 의한 신속한 재판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며,

이 배심원들의 만장일치의 결의 없이는 유죄가 되지 않는다. 또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 제시를 강요당하지 아니하며, 어

떤 개인도 국법 또는 동료들의 판단에 의하지 않고는 그의 자유가 박탈되지 아니한다.

9. 과도한 보석 요청은 없어야 하며, 이와 함께 과도한 벌금의 부과 또는 상도에 어긋난 형벌이 있어서도 안 된다.

10. 관리 또는 집달리(執達吏)로 하여금 범행 사실에 대한 증거 없이 의혹이 가는 장소를 수색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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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9조의 상세화

모든 사람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누구든지 자의적으로 체포되거나 또는

억류되지 아니한다. 어느 누구도 법률로 정한 이유 및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그 자유를 박

탈당하지 아니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9조 1항)

모든 개인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사전에 법률로 규정된 이

유와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특히 어느 누구도 자의적

으로 체포되거나 구금당하지 아니한다.(아프리카 헌장 6조)

모든 사람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다음의 경우에 있어서 법

률로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는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a. 권한 있는 법원의 유죄결정 후의 사람의 합법적 구금.

b. 법원의 합법적 명령에 따르지 않기 때문이거나, 또는 법률이 규정한 의무의 이행을 확보하

기 위한 사람의 합법적 체포 또는 구금.

c. 범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 또는 범죄의 수행이나 범죄수행 후

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을 때, 그를 권한 있는 사

법당국에게 회부하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되는 합법적 체포 또는 구금.

이 명시되지도 않고 또 범죄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나 증거의 뒷받침도 없이 어떤 개인이나 다수의 사람을 체포하게 할

우려가 있는 일반 구속 영장은 국민들의 원망을 살 억압적인 것이므로 결코 발급되어서는 안 된다.

11. 재산에 관련된 분쟁이나 개인 대 개인의 송사에 있어서는 고대의 배심 재판 제도가 다른 제도들보다 더 바람직하며,

따라서 신성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의 선언(1789)

제7조. 누구도 법이 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또 법이 규정한 형식에 의하지 않고서는 고소, 체포 또는 구금될 수 없다. 자

의적인 명령들을 간청, 발령, 집행하거나 또는 집행시키는 자들은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에 의해 소환되거나 체포된

시민은 모두 즉시 복종해야 한다. 그것에 저항하는 자는 유죄가 된다.

제8조. 법은 엄격하고 명백하게 필요한 형벌만을 규정해야 하며, 누구도 범법 행위 이전에 제정, 공포되고 또 합법적으로

적용된 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처벌될 수 없다.

제9조. 모든 사람은 유죄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므로, 그를 체포하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그의 신

체를 확보하는데 필요하지 않은 모든 가혹행위는 법에 의해 엄격하게 억제되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과 그 이후

선언의 문구는 짧고 모호하다. 선언의 양식에 관해 토론한 결과가 “간략하고 단순한 일반원칙의 천명이어야 한다”는 것

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요소들은 선언에서 빠졌고 미래의 조약들의 과제로 남겼다. 따라서 선언 이후 등장한

인권문서들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표 참조)

함부로 가두지마, 재판은 공정하게, 무죄추정의 원칙[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 9-11조 인신의 자유의 원칙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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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교육적인 감독의 목적으로 합법적 명령에 의한 미성년자의 구금, 또는 권한 있는 사법당국

으로 회부하기 위한 목적에 따른 합법적인 미성년자의 구금

e. 전염병의 전파를 방지하기 위하여, 또는 정신이상자, 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 및 부랑자의

합법적 구금

f. 불법입국을 방지하기 위하여, 또는 강제퇴거나 범죄인인도를 위한 절차가 행하여지고 있는

사람의 합법적 체포 또는 구금.(유럽인권협약 5조 1항)

당사국의 헌법이나 그에 따라 제정된 법률에 미리 규정된 이유와 조건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

느 누구도 자신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미주인권협약 7조 2항)

* 구금의 적법성

구금이 적법해야 한다는 요건은 구금 및 후속 절차 둘 다의 근거가 된다. 적법절차에 대한 상세한 규정에 대해서는 국내

법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지만 중요한 예외가 있다. 계약상 의무를 수행하지 못했음을 이유로 한 구금의 금지이다.(“어느

누구도 계약상 의무의 이행불능만을 이유로 구금되지 아니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1조)

* “자의적”의 의미

선언 기초과정에서 ‘불법’ 또는 ‘부당한’ 또는 ‘불법적이고 부당한 둘다’와 같은 의미라는 견해가 표현됐다. 1965년 선언 9

조에 관한 유엔 연구는 “법에 정해진 절차가 아닌 절차나 근거에 따르거나, 사람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에 대한 존

중과 양립할 수 없는 목적을 가진 법률 조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일 때 체포나 구금은 자의적”이라 정의했다.

* 체포의 이유를 고지 받을 권리

체포당하는 사람은 누구나 체포 사유와 혐의에 대해 고지 받아야 한다. 또한 고지는 신속하게 또는 체포와 동시에 돼야

한다. 두 경우 본질은 똑같다. 체포의 이유 고지는 실제적 체포와 연계되어 이뤄져야 한다. 체포 이유의 고지에 관해서는

형사 절차에 따른 체포와 다른 여타의 근거에 의한 체포간에 어떤 차이도 없다. 하지만 형사절차에 있어서는 수사를 완

성하고 상세한 혐의사항을 고지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따라서 피구금자는 자신이 직면하게 될 피의 사실을 ‘신속

하게’ 고지 받을 권리를 가진다.

* 체포와 구금의 사법적 통제에 대한 권리

형사절차에서의 체포와 구금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두가지 기본 요건을 가진다. 1) “판사 또는 사법적 권한을 행사할 목

적으로 권한을 가진 기타 공무원 앞에 신속하게 보내질” 권리, 2) “합리적인 시간 내에 재판을 받을 권리 또는 석방될”

권리이다.

주요 국제협약에서의 규정은 이점에서 동일하다.(유럽인권협약 5조 4항, 아프리카인권헌장7조6항,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9

조 4항: 체포 또는 억류에 의하여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은 누구든지, 법원이 그의 억류의 합법성을 지체없이 결정하고,

그의 억류가 합법적이 아닌 경우에는 그의 석방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법원에 절차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

사법적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법적으로 권한을 가진 기타 공무원이라 함은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 등에 따르면 특히 행

정부와 검사로부터 독립성을 가진 것을 말한다.

* 신속하게

사법적 심사에 앞서 구금되는 최대기한에 대해 유엔자유권위원회는 9조에 대한 논평에서 수일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했

다. 법원은 지체 없이 체포 또는 구금의 적법성을 결정하고 구금이 적법하지 않는다면 석방을 명해야 한다.

유엔자유권위원회 일반논평 8, (2) : 형사상의 죄의 혐의로 체포되거나 또는 구금된 사람은 즉각적으로 법관 또는 법률

에 의하여 사법권을 행사할 권한을 부여받은 기타 공무원에게 인치되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보다 정확한 시간적 제한은

대부분의 당사국에서 법률에 의해 정해져 있고, 본 위원회는 지체가 수일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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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권재판소는 “신속한”에 대한 더 명확한 해석을 내놓았는데, 4일을 초과하는 것은 수용될 수 없다.

* 자의적 추방의 금지

선언에서 논의한 ‘추방’이란 대개 자국에서 국민을 추방하는 걸 의미했다. 또한 ‘내부 추방’ 또는 ‘국경 내에서의 배제’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후자는 이동의 자유의 권리와 연관된다.

추방의 금지는 다른 인권 문서에서는 형사피의자·피고인의 권리 가운데 열거돼지 않고 ‘추방’이라는 단어조차 사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자국에 들어갈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이동의 자유의 권리를 다루는 조항이 있다.(시민·정치

적 권리규약 12조 4항: 어느 누구도 자국에 돌아올 권리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유럽 제4의정서 3조, 아프리

카헌장 22조 5항은 국민의 추방을 금지하고 있다.)

국적은 주권 국가의 국민과 국가 간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므로, 국적을 박탈하고 추방하는 일은 용인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자의적 체포, 구금과 추방으로부터 자유로울 모든 사람의 권리에 대한 유엔 연구’는 ‘추방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런 관찰과 결론은 자국민에게 해당하는 추방만을 고려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선언에서 말하는 “추방”은 자국민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기에 현재에 고려해야 할 심각한 인권문제에 미치지 못한다. 바

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 22조

1.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집단적 추방조치는 금지된다. 각 추방사건은 개별적으로 심리되고 결정되어야 한다.

2.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은 권한 있는 당국에 의하여 법률에 따른 결정에 의하여만 당사국의 영역으로부터 추방될 수 있

다.

3. 추방의 결정은 그가 이해하는 언어로 통고되어야 한다. 본인의 요구가 없으면 의무적인 아닌 경우라도 만약 요구를

하면 결정은 문서로 통보되어야 하며, 국가안보에 의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정의 이유가 진술되어야 한다. 이

러한 권리는 결정 이전 또는 늦어도 결정시에는 당사자에게 고지되어야 한다.

4. 사법당국에 의한 최종 판결이 발표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당사자는 자기가 추방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제출할 권리가

있으며,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하여 그 사건이 심사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단, 국가안보상의 긴요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심사 기간 중 당사자는 추방결정의 집행정지를 요청할 권리를 가진다.

5. 이미 집행된 추방결정이 나중에 무효로 되었을 때, 당사자는 법률에 따른 보상을 청구할 권리를 가지며, 이전의 결정

은 그가 당해 국가로 재입국하는 것에 방해사유가 될 수 없다.

6. 추방의 경우 당사자에게는 출국 전 또는 후에 임금청구권, 그에게 귀속될 다른 권리 또는 현행 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7. 추방결정의 집행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 결정의 대상인 이주 노동자 또는 그 가족은 출신국 이외의 국가로의 입

국을 모색할 수 있다.

8. 이주노동자 또는 그 가족이 추방되는 경우 추방 비용을 당사자에게 부담시켜서는 아니된다. 당사자는 자신의 여행경

비의 지불을 요구받을 수 있다.

9. 취업국으로부터의 추방 그 자체로는 임금수령권과 그에게 귀속될 다른 권리를 포함하여 이주노동자 또는 그 가족이

그 국가의 법률에 따라 획득한 어떠한 권리도 손상시키지 아니한다.

또한 ‘내부에서의 추방’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흔히 ‘인권의 사각지대’로 불리는 시설로 강제 수용돼 10년이고 20년이

고 사회로부터 단절돼 살아가는 사람의 얘기가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것이 한국 사회이다. 2007년 말 인신보호법이 국

회를 통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수용시설에 수용·보호 또는 감금되어 있는 사람들에

게 한가닥 길이 열렸다. 위법한 수용에 대하여 또한 적법한 수용이라 할지라도 수용의 사유가 없어졌는데도 계속 수용되

었을 때 구제를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지적되고 있고, 특히 출입국관리법에 의해

보호된 자, 즉 외국인보호소의 경우는 이 법의 보호에서도 배제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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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10조의 상세화

모든 사람은 재판에 있어서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그에 대한 형사상의 죄의 결정 또는 민사

상의 권리 및 의무의 다툼에 관한 결정을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권한 있는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원에 의한 공정한 공개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보도 기관 및 공중에 대하여서는,

민주사회에 있어서 도덕, 공공질서 또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하거나 또는 당사자들의 사생활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또는 공개가 사법상 이익을 해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법원

의 견해로 엄격히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한도에서 재판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형사소송 기타 소송에서 선고되는 판결은 미성년자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또는 당해 절차가 혼인관계의 분쟁이나 아동의 후견문제에 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된다.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 1항)

모든 사람은 민사상의 권리 및 의무, 또는 형사상의 죄의 결정을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설립

된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원에 의하여 합리적인 기한 내에 공정한 공개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

진다. 판결은 공개적으로 선고되며, 다만 민주사회에 있어서의 도덕, 공공질서 또는 국가안보

를 위한 경우, 미성년자의 이익이나 당사자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또는 공개

가 사법상 이익을 해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는 경우 엄격히 필요한 한도 내에

서 보도기관 또는 공중에 대하여 재판의 전부 또는 일부가 공개되지 아니할 수 있다.(유럽인권

협약 6조 1항)

함부로 가두지마, 재판은 공정하게, 무죄추정의 원칙[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 9-11조 인신의 자유의 원칙들③

선언 10조가 다루는 ‘공정한 재판에 대한 권리’는 두 요소로 구분된다. 사법절차(공정하고 공적인 심문)와 사법부의 조직

(독립적이고 공명정대한 법원)이다.

원래 제출됐던 선언의 1차 초고에는 ‘권리와 의무, 독립적이고 공명정대한 법원에 대한 접근보장, 공정한 심문, 자신이

선택한 자격 있는 대리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양식으로 설명을 들을 절차에 대한 권리, 그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포함됐다. 그러나 이후 토론에서는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부터 뒷부분 내용

이 모두 생략됐는데, 그 이유는 내용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조항을 간결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특히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를 빼는 것에 대한 강력한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공정한 재판의 질을 규정하는 자세한 내

용은 이후 국제규약이 정할 일’이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공정한 재판의 개념을 규정하는 기본 요소들은 선언에서 10조

바깥에 위치한다. 예를 들어 국내법원의 권한에 대해서는 8조에, 피고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11조에 규정돼 있다.

* 공정한 재판의 구성요소들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예를 들어 법원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기 이전에 사람은 우선 법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법원’이라는 단어의 단순한 사용자체가 사법 절차에 내재돼야할 특정한 최소한의 보장을 내포하고 있다.

* ‘법원’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다양한 사법체계가 존재하기에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철저한 목록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서비스와 재직의 조건, 임

명과 해임의 방식, 안정성의 정도, 외부의 압력과 폭력으로부터의 물리적, 정치적, 법적 보호 등이 중요한 것들이다. 판사

의 독립성과 연관된 문제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다양해서 세계의 어떤 곳에서는 판사의 봉급을 단체 협상하는 체제

가 있는가 하면 물리적 실종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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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등 국제인권법은 법원이 “법에 의해 설립”될 것을 요구한다. 즉 법원은 행정부의 재량에 의

존해서는 안되며, 법원의 조직구조에 관한 한 법률에 의한 제정에 기초해야 한다. 특별 법원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만 용인될 수 있다.

* 법원의 ‘공정성’에 관하여

법원은 공정한 것으로 보여야만 한다. 공정성은 주관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공정해야 한다. 판사의 공정성

은 재판 당사자의 평등에 부응하는 것이다. 공정한 심사란 최소한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을 당연 포함해야 하지만 그 이

상의 것을 포괄한다.

법정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많은 방식으로 판사의 그것과 연관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특정 상황 하에서 무료 법적 조력

에 대한 접근은 민사절차에서조차 공정한 재판의 요소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공개적’인 심문

심문은 ‘공개적’이어야 한다. 공개성의 문제는 복잡하다. 공개성은 소송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고, 재판을 공적인

감시에 놓이게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법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강화한다. 반면에 공개성은 반대 방

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적대적인 언론의 보도는 어떤 상황에서는 피고인의 무죄추정의 권리를 침해하고,

재판의 공정성에 편견을 가할 수 있다. 공개성의 요건에 예외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 공개성의 종류와 정도는 결국 전반

적인 공정성 평가와 연관된다.

* 신속성

시민·정치적 권리규약은 이에 대해 언급 안하고 있는 것과 달리 유럽과 아프리카 인권협약은 재판이 “합리적인 시간 내

에”이뤄져야 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법의 지체는 정의가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특히 형사 범죄로 기

소당한 사람에게는 운명의 불확실한 상태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형사 책임만이 아닌 권리와 의무의 결정

1948년 미주인권선언은 오직 범죄혐의의 사람과 연관해서만 공정한 재판의 권리를 언급했고,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유럽

인권협약 또한 형사 책임에 관해서 더 상세하다. 대부분의 인권문서가 형사절차와 형법 문제에 몰두하는 것은 아마도 역

사적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인권에 대한 관심은 초기에 형법의 맥락에서 더 현저했다. 반면에 다른 분야의 인권운동은 법적 투쟁에서 나중 무대에

출현했다. 현대의 복지 사회는 복잡한 법적 인프라를 가지고 있고, 공정한 재판에 대한 권리의 범위와 영향이 더 넓어지

고 있다.

미주인권협약 8조 1항은 공정한 재판의 권리를 민법의 권리와 의무의 결정뿐만 아니라 ‘노동, 재정 및 기타 성격’의 것까

지 확대하고 있다.(“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한 형사기소를 확정함에 있어서나 자신의 민사상, 노동, 재정상 또는 기타 성

격의 권리와 의무를 결정하기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사전에 설립된 권한 있고 독립적이며 공정한 법원에 의하여 정당한

보장을 받으며 합리적인 기한 내에 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민사상 사항에만 제한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개

인 대 공공당국이 당사자일 때도 공정한 재판은 요구된다. 사회보험의 급여에 대한 고려로도 확장되고 있다. 개인이 타

인, 기업, 노조, 정부와 다투고 있는 어떠한 법적 청구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확대되고 있는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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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11조의 상세화

11조 1항은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 2항, 유럽인권협약 6조 2항, 미주인권협약 8조 2항, 아

프리카 인권 헌장 7조 1.b

11조 2항은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 유럽인권협약 7조, 미주인권협약 9조, 아프리카 인권

헌장 7조 2항

피고인이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에 관한 것;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 3항, 유럽인권협약 6

조3항, 미주인권협약 8조 2항

이중 시민·정치적 권리규약만 살펴보면,

모든 형사피의자는 법률에 따라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14조

2항)

모든 사람은 그에 대한 형사상의 죄를 결정함에 있어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보장을 완전 평등

하게 받을 권리를 가진다.

(a) 그에 대한 죄의 성질 및 이유에 관하여 그가 이해하는 언어로 신속하게 상세하게 통고받을

(b) 변호의 준비를 위하여 충분한 시간과 편의를 가질 것과 본인이 선임한 변호인과 연락을 취

할 것

(c) 부당하게 지체됨이 없이 재판을 받을 것

(d) 본인의 출석하에 재판을 받으며, 또한 직접 또는 본인이 선임하는 자의 법적 조력을 통하

여 변호할 것. 만약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하는 경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하여 통지

를 받을 것. 사법상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및 충분한 지불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경우 본인이 그 비용을 부담하지 아니하고 법적 조력이 그에게 주어지도록 할 것

(e)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을 신문하거나 또는 신문받도록 할 것과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과 동

일한 조건으로 자기를 위한 증인을 출석시키도록 하고 또한 신문받도록 할 것

(f) 법정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말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무료로 통역의

조력을 받을 것

(g)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 또는 유죄의 자백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것(14조 3항)

함부로 가두지마, 재판은 공정하게, 무죄추정의 원칙[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 9-11조 인신의 자유의 원칙들④

11조를 핵심어로 정리하면,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는 무죄의 추정’, ‘방어의 권리’, ‘공개 심문의 권리’, ‘법률불소급의 원

칙’이다. 이중 공개 심문의 권리는 10조와 관련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9-11조의 내용이 제기됐을 때 맨 앞에 왔던 원칙

이다.

* 무죄추정의 원칙

인두비오프로레오(In Dubio Pro Reo),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라는 법언과 더불어 널리 인정된 규

범이다. 유엔자유권위원회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죄를 입증할 의무는 기소자측에 있으며, 피고인은 유리한 해석에 의한 이익부여를 받는다. 피고인은 그 혐의가 합리적

인 의심이 없이 입증될 때까지 유죄로 추정되어서는 안된다. 더 나아가, 무죄 추정의 원칙은 이 원칙에 따라 대우받을

권리가 포함된다. 따라서 재판의 결과에 대해 예단하지 않는 것은 모든 공공기관의 의무이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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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에 관한 일반논평 13)

* 방어의 권리

형사절차에서의 공정한 재판의 개념은 한마디로 ‘무기의 평등’(equality of arms)이다. 피고인과 검사가 대면할 때 내재된

불리함을 절차적 평등으로 다루겠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자신의 사건을 법원에서 호소할 완전하고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정의는 완수돼야 할뿐만 아니라 정의롭게 이뤄진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목적에서다.

* 불소급의 원칙에 대한 문제제기

불소급의 원칙이란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이는 형벌도 없다(nullum crimen, sine lege nulla poena sine

lege)”이다.

늘여서 말하면 “어느 누구도 행위시의 국내법 또는 국제법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이

유로 유죄로 되지 아니한다. 또한 어느 누구도 범죄가 행하여진 때에 적용될 수 있는 형벌보다도 중한 형벌을 받지 아니

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이다.

그런데 이 원칙이 선언 기초자들을 괴롭혔다. 뉘른베르크와 도쿄재판이라는 전범재판을 치러냈기 때문이다. 이 재판에서

전범들은 자신들의 행위는 당시의 법률에 따라 한 것이며,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며 자신들의 대한 처벌이 불소

급의 원칙을 어기는 불법임을 주장했다. 열강들은 훗날에도 전범재판에서 불소급의 원칙이 불법을 주장하는 근거로 쓰일

것을 우려했다. 이에 미국은 “범죄” 앞에 “형사”라는 말을 넣어서 “형사범죄”에만 이 원칙이 해당된다는 것을 확실히 하

자고 했다. 2차 대전 후의 아주 예외적인 상항에서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등을 처벌하기 위해 통과된 법에는 이 조항

이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그러한 법률에 대한 법적·도덕적 비난을 할 수 없다는 의도의 제안이었다.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 2항에서 “이조의 어떠한 규정도 국제사회에 의하여 인정된 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그 행위시

에 범죄를 구성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이유로 당해인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라고 한 것은 이

원칙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래의 범죄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처벌받은 자들과 유사하게 자행된다면 같은 원칙에

따라 처벌받게 될 것이란 의미다.

정의 구현은 정의로운 방법으로

소위 ‘미드’(미국드라마)는 형사물 또는 재판물이 주를 이룬다. 인권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미드 덕분(?)에 사람들은 소

위 미란다 원칙을 암기한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신의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당신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는 잦은 장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은 인권보장의 이미지라기보다

는 범죄와의 전쟁에서의 승리선언처럼 보인다. 잡힌 자에 대한 조롱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수사팀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

의 경우 형사와 검사의 이미지는 사회 안전의 수호자이고, 그들의 활동에 인권보호규정들은 거추장스러워만 보인다. 변

호사는 대개 돈 많은 의뢰인의 치부를 싸고돌며 현란한 말솜씨로 해선 안되는 석방을 끌어낸다. 판사는 이런 저런 정황

속에서 관대함을 베풀거나 엄격함을 집행한다. 정작 용의자, 피의자, 피고인인 사람들의 인권은 이 무대에서 별 의미가

없다.

드라마를 떠나 현실로 와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범죄자의 인권만 중요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뒷전이냐’, ‘예외

적 침해사례를 부각시키며 공익을 사수하는 검사나 경찰관을 인권을 침해하는 부류로 찍어놓고 손발을 묶으려 하느냐’,

‘툭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탓하면서 법원의 공정성을 깍아 먹으려 들지 말아라’, 심하게는 ‘흉악범에게 무슨 인권이냐?

사람도 아닌 것들을 왜 보호해주나? 인권은 인간에게 적용되는 권리이니 짐승에게 인권을 보호해 줄 필요는 없지 않을

까?’라는 공격이 9-11조의 권리에 가해진다.

범죄자에 대한 보복이 과연 피해자의 인권과 감정을 보호하는 것인가? 피해자의 복수심을 국가가 대신 보복하는 것이 과

연 건강한 국가인가? 정의는 회복·구현돼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은 또한 정의로운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는

가?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분노 속에서 잡아먹히기 쉬운 이런 목소리들이 선언 9-11조의 기초를 이룬다.

재판을 받고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고, 죄를 지었어도 변명과 변호의 기회를 주는 것, 처벌보

다는 잘못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 보는 것 등은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제도들이 아니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무고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제도이고, 경찰과 사법부 등 권력 집단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함부로 다루

지 않도록 하는 보호 장치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이 이런 기본적인 인권 제도의 주인이고 수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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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여론에 편승해 이런 인권제도에 함부로 손을 대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지키겠다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것인지, 극약처방을 외치는 것으로 정작 범죄 예방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빠져나가는 구실을 만

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공포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 활동을 줄인다거나 공포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감시한다거나

극단의 처벌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가두는 게 아닐까?

국가가 개인사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나[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12조 프라이버시권

세계인권선언 12조

어느 누구도 자신의 프라이버시, 가정, 주거 또는 통신에 대하여 자의적인 간섭을 받지 않으며,

자신의 명예와 신용에 대하여 공격을 받지 아니한다. 모든 사람은 그러한 간섭과 공격에 대하

여 법률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12조; 침해방지와 소극적 의무를 표현

선언에서 명시한 다른 권리들과 달리 12조에서는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표현이 사용됐다. 선언이 대개 “모든 사람은 ∼

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표현을 택하고 있는데 12조는 “어느 누구도 ∼를 받지 아니 한다”는 식의 표현을 하고 있다.

프라이버시권이 보호하는 이익을 크게 두 가지로 말하면, 침해에 대한 통제와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를 들 수 있

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타인이 개인을 홀로 내버려두면 되는 소극적 의무와 사람이 자기 생활의 모든 측면에 대해 선

택할 권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적극적 의무 둘 다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언이 표현한

프라이버시권은 침해방지와 소극적 의무에 쏠려있다는 느낌을 준다.

원래 “불가침”이란 단어가 사용됐으나 최종 토론에서 빠지게 됐다. 대표적으로 ‘표현의 자유’ 등과 같은 다른 자유들과

경합하는 경우 프라이버시권만을 절대적인 권리로 취급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명예와 신용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다수 대표자들이 걱정을 했다. 명예와 평판의 과보호가 언론의 자유에 재갈

을 물릴 우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명예’를 빼야한다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명예에 대

한 보호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보호가 보호하는 이익은 다르다는 시각이 있고, 여러 국가법에서도 이 둘에 대해 접근 방

식을 달리하고 있다. 또한 보통 개인과 공인의 명예와 신용을 같은 정도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12조에서 사용된 “프라이버시”는 포괄적인 용어로서 12조에 언급된 다양한 권리들, 즉 가정, 주거, 통신 등에 대한 보호

를 다 담고 있는 말이다. 선언의 시대적 한계상 ‘정보 프라이버시’를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정보 프라이버시에 대해 명

시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12조의 취지를 바탕으로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다는 시각이 대다수이다.

프라이버시권 정의의 어려움

‘프라이버시’라는 단어는 ‘타인들과 사회로부터 물러나 있을 것’,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한다’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유래했

다고 한다. 국제 인권 규범에 담긴 권리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권리중의 하나가 프라이버시권일 것이다.

“모든 인권은 프라이버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많은 권리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를 정의한다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개인사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느냐에 선을 긋는 문제이고, 그 선은 맥락과

환경에 따라 다르다. 노출시키지 말아야 할 것은 문화와 사람에 따라 다르고 동일한 내용이라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노출과 공유의 정도를 달리한다.

이에 대해 『사생활의 역사』의 한 필자는 “사생활은 태초부터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내는 역사적 현실이다. 영원히 확정된 경계를 갖는 ‘사생활’이란 있을 수 없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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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권과 관련한 주요 발언

*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오두막에서는 왕의 모든 지배력을 거부할 수 있다. 그 오두막은 빈약하고, 지붕이

흔들리고, 바람이 치고, 폭풍이 들이칠 수는 있어도 잉글랜드의 왕은 들어갈 수 없다. 왕의 모든 힘은 몰락한 집의

문지방이라도 그것을 감히 넘을 수 없다.”(영국의 캄덴경, 1765년)

* “인간을 위해 정부가 있지 그 반대는 아니다…자연권은 인간, 인간의 개성, 양심 등을 정부의 직접적, 간접적 개입

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시민으로서의 인간은 기억할 수 없는 과거로부터 계속된 억압적인 법을 알아왔고 그것

에 반항하여 존재해왔다…자유는 생활의 방식이어야 했다. 그것은 불가양의 것이고 정부의 침해로부터 자유로운 것

이어야 했다…프라이버시는 자유의 근본이다. 우리가 자랑하고 있는 자유의 대부분은 프라이버시의 권리에서 유래한

다. 나의 집은 내게 있어서 나의 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프라이버시의 권리는 인간의 가옥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신

념, 양심을 통하여 방해받지 않는 권리에까지 미친다.”(미국의 W.더글라스 대법관)

* 개인 정보는

공정하고 적법하게 획득돼야 한다.

원래 특정한 목적에만 사용돼야 한다.

목적에 적합하고 연관되며 목적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정확하고 최신이어야 한다.

정보 주체에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안전을 유지해야 한다.

목적이 완수된 이후에는 폐기돼야 한다.

(OECD 프라이버시 보호와 개인정보의 국제적 유통에 관한 지침)

* 프라이버시권은 국가당국에 의한 것이건 자연인 또는 법인에 의한 것이건 모든 간섭 및 비난으로부터 보장되어야

한다. 컴퓨터, 데이터뱅크 및 기타 장치를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것은 공공기관 또는 개인, 사설단체를

사이의 경계선은 끊임없이 변한다. 사생활은 공적 생활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다…사생활과 공적 생활이 구분이 모든

사회계층에게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았다”고 했다.

프라이버시는 정말로 포괄적인 용어다.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하나로 묶기 어려운 다양한 이해의 느슨한 혼합물이다. 홀

로 있을 권리(방해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 다른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발전시킬 권리, 익명성을 즐길 권리, 자

신에 대하여 얼마만큼을 어느 때에 공표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 정확하게 기록될 권리, 개인의 비밀

을 지킬 권리, 개인의 자율성, 광의의 개인적 자유권 모두를 포함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여행자유의 제한, 국기에 대한 경례나 선서를 강요하는 것,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강의의 자유, 동의 없는

사진 촬영, 도청, 의료 기록, 신체보전을 침해하는 체벌 문제, 성적정체성과 성생활, 결혼․이혼․출산․피임․교육․자녀

양육 등에서의 선택의 자유 등 온갖 문제가 프라이버시의 이름으로 다뤄진다.

프라이버시를 느슨하게나마 영역별로 묶어서 다음과 같이 분류하기도 한다.

* 정보 프라이버시; 신용정보, 의료기록, 정부 기록 등 개인 정보의 수집과 취급을 다스리는 규범의 수립과 관련하여 자

신과 관련된 개인정보의 생산․유통․활용․보존․공표 등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을 가질 권리

* 신체 프라이버시; 사람들의 신체적 자아를 유전자 검사, 약물 검사, 신체 수색 등 침해적인 절차로부터 보호

* 의사소통의 프라이버시; 감시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견해를 형성해 나갈 수 있

는 권리. 다른 자유의 기본전제가 되는 ‘권리를 위한 권리’. 우편, 전화, 이메일, 기타 형태의 통신의 안전과 프라이버시

포괄

* 영역 프라이버시; 가정, 작업장 또는 공공장소 등 기타 환경에 대한 침입을 제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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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하고 반드시 법률로써 규제되어야 한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정보 저장 및 관리에 대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러한 파일이 부정확한 개인 자료를 포함하거나 법률에 위반하여 수집․처리되었을 경우 모든 개인에게 수정

및 삭제를 요청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유엔자유권위원회 일반논평)

사적영역에서 프라이버시의 문제

근대민족국가의 형성은 인권의 형성과 궤를 같이 한다. 국가 권력은 사회가입의 목적이었던 자기보존이라는 근본적이고

신성한 법칙에 의해 구속되어 큰 한계를 갖는 것이며, 그 한계 너머에는 국가권력이 관여할 수 없는 인간의 ‘사적 자유’

가 존재한다는 논리에서 프라이버시가 옹호됐다.

그러나 개인의 자율성의 실현과 평등이라는 자유주의 원리하의 프라이버시권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국민은 국가의 모든

행위를 감시하고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 했지만 실상 근대국가는 국민에 대한 지식과 정보에 기초한 국가였고 다른 말로

하면 감시사회이며 정보사회에 터잡은 국가였다.

또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속에서 프라이버시권의 수혜자는 ‘개인’이 아닌 ‘가정 또는 가족’이었다. 여기서

가정은 사적인 영역이고 공적인 노동의 영역과 대립된 은신처였다. 가정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과 함께 은신처로서

의 그 의미를 강화해나갔고,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철저히 자유로워야 되는 영역으로 여겨졌다. 경쟁이나 계약, 냉엄성을

피할 수 있는 곳, 긴밀한 인간관계와 애정을 토대로 성립하는 것이 사적영역의 대명사인 가정이었다. 그러나 그 은신처

는 남성의 은신처였고, 여성에게는 은신처라기보다는 노동의 장소였다. 은신처로서의 사적 가정은 성 구분을 전제한 개

념이었다.

이에 특정한 이분법(이성과 감성의 구분, 남성과 여성의 구분 등)에 의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간의 통상적 구분을

부정하는 비판이 일었다. “공론화되기에 타당한 주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떠한 사회적 제도나 관습(가령 가정폭력, 성폭

행, 가사노동의 성적 구분 등)도 공적인 토론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개인, 어떠한 행동, 혹은 개인의 어떠

한 생활의 측면도 프라이버시로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었다.

현대의 프라이버시의 문제

오늘날 우리가 미증유의 대중감시체제하에 살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정보는 제한된 물리적 공간에

서 뿐 아니라 무한 확장된다, 설명책임 없이 부적절하게 비밀리에 남용될 기회가 너무 많다, 국가만이 아니라 기업과 개

인에 의해서도 감시와 침해가 광범하게 이뤄진다, 완벽한 복사가 가능하고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등등 정보화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진단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정보화로 인해 프라이버시가 많이 침해되고 있고 침해될 수 있다는 어두운 진단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기에

보다 적극적인 프라이버시권의 규정이 요구되고 있다. ‘정보 프라이버시’와 ‘역감시의 권리’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

다. 정보 프라이버시는 타인으로부터 감시당하지 않을 권리와 함께 감시당하지 않음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나 제3자의

자신에 대한 정보수집활동과 그 이용을 감시할 권리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권리로서 ‘역감시의 권리’는 단체나

집단 또는 개인의 식별 여부를 불문하고 생각과 활동에 대한 통제가 가해지는 모든 행위․계획․제도를 감시행위로 보

고, 감시계획의 수립단계부터 참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보장을 추구한다.

생각해볼 문제들

#1. 프라이버시는 부자 또는 권력자의 문제, 배부른 소리?

1890년대 미국에서 ‘홀로 있을 권리(the right to be alone)’가 제기됐을 때부터 프라이버시권은 문제였다. 한편에선 황색

언론의 횡포에 대항하는 개인권으로서의 프라이버시를 역설했고 한편에선 돈 많은 상류층 인사의 대중매체에 대한 불만

을 권리화하려는 노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프라이버시권이란 이름으로 초상권, 명예훼손 등 부자들의 문제를 들먹거리는데 그게 특권이지 무슨 인권이냐?’는 비판

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프라이버시를 경제적 자산으로 보고 논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프라이버시권

은 자신의 재산에 대한 권리행사의 관점에서 자신의 개인 정보에 대한 배타적인 통제권을 가질 의미가 돼버린다.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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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이름과 초상의 상업적 가치 같은 걸 인권의 이름으로 보호하는 꼴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개인정보를 재산으로 바라보면 그 경제적 가치와 인권적 가치를 놓고 균형을 겨루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진다. 흔히 사적

자본과의 상업 거래에서 소비자는 개인정보를 일종의 거래비용으로 요구받고, 상품과 서비스를 얻기 위해 제공되는 소위

‘자발적’인 것으로 오인 내지 용인될 수 있다. 사실상 자발적 동의란 없는데도 말이다.

정보소유가 권력의 차이를 극심하게 보여주는 사회 속에서 소위 재산적 관점에서 개인정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경계

할 일이다. 프라이버시의 침해는 흔히 상대적으로 크고 강력한 세력에 의해 사회의 가장 작고 약한 요소, 가령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고 소수집단의 구성원인 사람에게 가해지는 위해이다. 사회적 낙인이 은밀하게 찍히고 영구화되는 일, 어

린이 등 취약자를 이용한 정보수집의 문제 등을 생각해보자.

#2. 프라이버시란 혼자 틀어박혀 있으면 되는 것?

프라이버시는 물론 외부와 단절된 개인 영역에서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지만 타인과 관계를 맺고 발전시킬 권리

도 포함한다. 혼자 틀어박힐 권리는 본인의 희망사항과 달리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적인 상황은 공적인 상황 속에서 존재하며 사적인 영역을 관장하는 규범 역시 공적

인 것이다”, “주권자로서의 사적 시민은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보장

이 없다는 주권자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저항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만다. 권력은 곧 감시의 시선

방향과도 일치한다. 시민의 감시의 시선이 국가권력을 향해야지 거꾸로 국가권력의 감시의 시선이 시민을 향해서는 안

된다.”

#3. 기술발전과 법 제정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

프라이버시권 보호를 위해 각국은 포괄적 또는 영역별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업의 자율규제를 유도하고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시도를 해왔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런 조치들이 단지 ‘정보 보호’에 대한 환상만 만들어냈다는

비판이 넘친다.

앞서도 말했지만 솟아날 구멍으로 제기된 것은 프라이버시권이 국가권력에 대한 사회적 역감시(counter-surveillance)를

실행시킬 수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권리로서 재구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정보는 ‘자기와 관련된 정보’로 확장돼

야 하고, 개인정보의 ‘흐름과 유통’에 대한 통제를 넘어 정보 ‘수집과 생산’ 자체에 대한 통제로 나아가는데 팔을 걷어붙

이고 나설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4. 난 숨길 것 없다. 잘못한 것이 없으면 숨길 것도 없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 할지라도 ‘정보의 훼손, 침해, 도용’ 등의 문제가 엄연히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또한

개인정보에는 고정된 정보만이 아니라 가변적인 정보도 있다. 나아가 나의 정보만이 아니라 타인의 정보에 대해서도 고

려해야 하지 않는가?

떠날 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갈 자유까지[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13조 이전과 거주의 자유

1. 모든 사람은 각국의 영역 내에서 이전과 거주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한 어떤 나라로부터도 출국할 권리가 있으며, 또한 자국으로 돌아

올 권리를 가진다.

당연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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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민주화 요구 시위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시위에 반대하는 한 아저씨가 시위대를 향해 소리쳤다. “난 이전과

거주의 자유가 있다구. 그러면 민주주의고 자유지, 이전과 거주의 자유 말고 뭔 놈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더 필요해?”라고

목청을 높이시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그 분의 말처럼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필수적인 권리로 여겨진다. 물

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자유로운 이동의 권리가 없으면 다른 권리들이 위협받는다. 직업이나 교육의 기회가 막힐 수 있고, 정치적·경제적 억압으

로부터 피난처를 구할 수 없으며, 스스로 선택한 종교를 신봉하지 못하거나 여타의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할 수도 있

다.

“이동을 할 수 있어야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이동을 할 수 있어야 직장도 구할 수 있으며, 이동을 할 수 있어야 사람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이동을 할 수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습니까?”라는 장애인 이동권의

외침이 공감을 얻은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에 담긴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성격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모든 사람의 인권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오늘날 심각한 인권문제를

유발하는 주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이전과 거주의 자유’의 제약성이다. 선언 13조는 이어지는 14조(망명의 권리), 15조

(국적을 가질 권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13-15조를 연결하는 요소가 무엇인가하면 소위 ‘비시민’으로 여겨지는 사람들

에게 ‘이전과 거주의 자유’가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13조의 침묵

그런데 13조를 들여다보면 ‘비시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이전과 거주의 자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먼저 1항에서는

“각국의 영역 내”에서의 이동을 말하고 있다. 2항에서는 ‘자국민’이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말할 뿐이다. 즉,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한 국가 영역 내에서의 권리이며, 자국민은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은 안된다

는 것이다. 오늘날 인권문제로 중요시되는 문제, 즉 누구든지 어떤 나라에든지 들어갈 권리(immigration)에 대해서는 말

하고 있지 않다. 들어가는 것이 봉쇄돼 있기 때문에 설령 들어갔다 할지라도 그 국가 영역 내에서의 자유로운 이전과 거

주는 실현되기 어렵다.

선언 기초자들이 생각한 13조에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자국 정부와 개인 시민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현대 세계에

서는 옛날에 땅에 속박됐던 농노처럼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는 일이 있을 수 없고, 이전과 거주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강

제하는 일은 독재정권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이런 정도로 이동의 자유를 바라봤기에 13조의 내용은 선언기초자들에

게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떠날 자유는 약간 논란이 됐다. 당시에 베를린 장벽이 있었기 때문에 반대하는 편의 논거가 됐다. 그러나 대다수 나라에

서 떠날 자유는 당연시 됐기에 통과됐다. 떠날 경우에는 여권을 요구하지도 않는 나라들도 있다. 돌아올 자유는 폐위된

왕족, 이전 정부의 수반이나 그들의 측근, 추방됐거나 정치적 이유로 쫓겨난 사람, 외국에서 태어난 국민이 대규모로 돌

아오는 것 등이 문제시됐다. 어쨌든 결론은 자국민이 떠나고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해당 정부가 이유를 묻지 않고 제

약도 가하지 않겠다는 것이 13조의 원칙이다.

누구에게나 ‘떠날 자유’가 있다면, 그리고 그 자유가 의미가 있으려면 ‘떠나서 어디에나 갈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선 어디에나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각 국가는 국경을 통제할 권리를 갖고 있다. 결국 현실에서 갈 곳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떠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내몰림이고 재난이 될 수 있다. 선언은 앞서 말한대로 자

국민이 아닌 사람의 입국의 권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고, 선언 이후 13조와 관련된 국제기준은 대개 난민과 무국적자

에 대한 것이다. 여전히 입국의 권리를 말하는 국제기준은 전혀 없지만, 가장 밀접한 것은 강제송환금지

(non-refoulement) 원칙이다. 어느 누구도 박해의 위험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14조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끝없는 수난

이전과 거주의 자유 제약으로 인한 인간 수난을 보기 위해 멀리 타국의 난민촌을 봐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바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숱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시내 곳곳에 둘러쳐지는 재개발과 뉴타운의 깃발은 거주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더욱 더 나쁜 거주지로 옮겨갈 자유

가 자유라면 그런 자유는 넘쳐나고 있다. 단속에 쫓기던 이주노동자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사경을 헤매고, 짐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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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를 할 기회도 주지 않을뿐더러 국가인권위의 권고도 무시하고 강제 출국시키는 일이 매일의 뉴스다. 신체적·정

신적 장애를 이유로 수많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하고 반강제적으로 수용생활을 해야 한다. HIV/AIDS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앞뒤 따지지 않고 출입국을 봉쇄한다.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씨가 정치적 탄압 때

문에 20여년을 망명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나, 37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송두율 교수가 ‘해방 이후 최대간첩’으로 매도됐

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것도 최근의 일이다. 외국에 있는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과거 숱한 조작사건의 관련자

라는 이유로, 소위 반정부 활동(지금은 민주화운동이라 부른다)을 이유로 자국에 돌아올 권리를 박탈당했던 사람들이 적

지 않다. 조선적이란 이유로 자유롭게 한국을 방문할 수 없는 재일동포들이 부지기수고, 북한출신 이주자나 중국에서 온

조선족들의 국내에서의 처지는 13조에 담긴 소극적인 수준의 권리조차 아까워하는 냉대에 가깝다.

인권으로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

‘시민권’속에서 이전과 거주의 자유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권’으로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둘의 외관은 비슷하지만,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시민권은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권리를 주는 것이고, 인권은

구성원 자격과 권리를 떼어내는 것이다. 즉 특정 사회(국가)에서 갖는 지위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사람이라는 이유만

으로 사람대접을 하는 것이다.

시민권이나 인권 모두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확장돼온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민권은 특권이다. 특정

국가의 구성원만 써먹을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고정돼 있는 게 아니다. 누가 국민이고 외국인인가를

정하는 조건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국민 중에서도 누구를 권리로 대접하고 누구를 무권리로 팽개치는 지도 달랐다.

그리고 이건 앞으로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과거 생계를 잃고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주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상황이나 오늘날 가난한 나라에서 산업국가로의 이주

는 비슷한 상황이다. 맨몸 맨주먹으로 도시로 상경했던 사람들은 소유한 것이 없었기에 시민 대접을 받지 못했다. 지금

도 재산은 시민권의 주요한 근거이다. 이들이 시민 대접을 받기 위해 어떤 수난과 싸움을 겪었는지를 기억해 보자.

앞서 살펴본 ‘수난’의 예에서처럼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자국민과 외국민을 구분하지만 자국민 내에서도 끊임없이 구분

을 한다. 정치적·영토적·경제적·문화적 배타성에 근거한 시민권으로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도대체 누구에게 득이 되

는 것일까를 생각해보자. ‘구성원이 될 자격을 꼭 지금 같은 구분선속에서 그어야 할까’ ‘상품과 서비스는 자유롭게 왔다

갔다해야한다고 하면서 왜 사람은 안된다고 하는가’는 현재 인권 논의의 주요한 쟁점이다. 자본과 기업만이 아니라 노동

자의 자유로운 이동과 거주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사회보장제도 등에 있어서 차별을 없애는 것, 내외국인 노동자가 같

은 지위를 누리는 그런 모습을 그려볼 수는 없는가, ‘이전과 거주의 자유가 민주사회의 기본’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기본은 아닐까.

인권의 주체로 인정 못받는 난민[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14조 비호 받을 권리

1.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하여 타국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비호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2. 이 권리는 비정치적인 범죄 또는 국제연합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행위만으로 인하여 제기

된 소추의 경우에는 활용될 수 없다.

맨 손으로 서 있는 사람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오래전 발행한 포스터가 있었다. 이 포스터에는 연장을 들고 서있는 사람, 땅을 파는

사람, 트럭을 모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림 밑에는 “누가 난민일까요?”라는 질문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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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의 수많은 사람들을 훑어보면 답이 드러난다. 저마다 뭔가 쓸 만한 도구를 갖고 있는데 맨 손으로 서있는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이 난민이다. 아무것도 없이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난민이라고 포스터는 설

명해준다.

세계인권선언은 “박해를 피하여”란 표현으로 난민을 설명하고 있다. 1951년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

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사람,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공포 때문에 국적국의 보호를 원치 않는 사람,

국적국 또는 상주국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길 원치 않는 사람을 난민이라 한다.

그런데 이 협약은 1951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의 결과로 인한 난민에게만 적용되었고, 유럽에서 발생한 사건에 집중했다.

이미 발생한 난민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예상할 수 없는 미래의 난민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지려 하지 않았기에 이런 제

한을 둔 것이었다. 이런 시간적·지리적 제한은 곧 문제가 됐다. 1950-60년대 특히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난민문제가 발생

했다. 이에 1951년 협약의 시간적·지리적 제한을 제거한 것이 1967년의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이다. 또한 난민 상황

의 변화를 반영하여 1951년 협약에 담긴 정의를 기본으로 하되,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됐다.

1969년 아프리카통일기구협약(OAU협약)은 “출신국 또는 국적국의 일부 또는 전부에서의, 외부침략, 점령, 외국의 지배나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해치는 사건을 이유로 강제로 자신의 나라를 떠나야만 했던 사람”을 1951년 난민협약의 정의에 덧

붙였다.

1984년 미주기구 난민선언(카타헤나선언(Cartagena Declaration))은 “보편화된 폭력, 외부침략, 국내소요, 대량의 인권침해

또는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해치는 기타 상황으로 인하여 자신의 생명, 안전이나 자유가 위협받음으로 인하여” 자국을 탈

출한 사람을 추가했다.

변화하는 상황

난민에 대한 정의의 변화가 보여주듯이 난민의 발생요인과 결과, 난민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와 대응양식은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이런 속에서 세계인권선언 14조는 20세기 난민 정책의 전환점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선언을 전후한 국면의 특징이라 하면, 난민 문제를 ‘일시적’이고 ‘특별한’ 상황으로 봤고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

던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가졌다는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정권을 피해 떠나온 사람들을 비호하지 못한 실패

가 역력했던 경험을 안고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졌다. 더 이상의 협상이나 조약 없이 개별 사례별로 적절한 해결책을 찾

아야 한다는 대응방식을 취했고, 본국 귀환이 이상적 해결책이며 유엔이 더 이상 난민 문제에 관여하지 않기를 원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을 설립하면서도 3년 시한의 임시기구로 생각했을 뿐이다. 또한 냉전의 시작과 더불어 정치적으로

는 공산정부의 박해로부터 피해온 난민들에게 이익을 부여한다는 의도가 있었다. 옛날 영화 속에 흔히 등장하듯이 자유

의 다리를 건너 자유세계로 넘어오는 정치적 망명자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난민은 양차 대전과 그 결과에만 한정된 현상이 아님이 곧 드러났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은 현재까지 임기가

연장되고 있고 난민 문제가 일시적일 뿐이라는 생각은 바람에 그쳤다. 또한 그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정

확한 수를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으나 60년대 2백만 명 수준에서 현재는 2천만 명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난민에 대한 태도는 ‘냉정’으로 변화했다.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결로 난민의 정치적 근거가 상당부분 상실

된 면도 있고, 9·11 이후에는 미국의 난민수용 급감과 유럽 국가들의 입국허가규범 강화로 나타났다. 테러와의 전쟁이라

는 명분의 정부 폭력이 곳곳에서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난민을 내쫓는 나라들

분쟁의 성격이 ‘내전’이 되면서 상황은 더 나쁘게 됐다. 국내실향민수가 난민의 두 배에 달하고 이들의 처지가 난민보다

더 나쁜 경우도 많다. 무력분쟁의 결과로 실향민이 발생할 뿐 아니라 살던 곳에서 대량의 인구를 쫓아내는 것이 교전 당

사자들의 분명한 목적이기도 하다. 내전과 인종청소, 대량의 인권침해, 경제적 불평등과 극빈, 여기에다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재앙까지 가세했다. 가난한 나라들이 수천수만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반면 부자 나라들은 자신의 영토에 난민이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지구적 불평등의 또 하나의 얼굴이다.

이렇게 얽혀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난민과 다른 유형의 이주자(가령 경제적 이유의)를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

냐가 논란이 된다. 하지만 많은 정부들은 난민과 경제적 이주자를 구분하려 들고, ‘문’(door)으로 들어온 난민이 아니라

‘창문’(window)으로 몰래 들어온 경제적 이주자라 비난하면서 난민 신청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내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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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에 대한 국제적 보호에서 핵심 원칙은 강제송환금지(non-refoulement) 원칙이다. 어느 누구도 박해의 위험이 있는 곳

으로 되돌려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민 지위를 구하러 들어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은 핵심원칙

을 써먹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인권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 난민에 대한 대응이다.

인권에는 냉혹한 국경이 있다.

체약국은 난민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종, 종교,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그 생명 또는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하여서는 아니된다.(난민협약 제33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정부는 난민협약에 1992년 가입한 이후 2000년까지 단 한명의 난민도 인정하지 않다가 2001

년에야 처음으로 1명을 난민으로 인정했다. 이후 조금씩 난민인정 자체에 있어서는 개선을 보여 왔다고 하지만, 한국의

난민 신청자가 1천 명을 넘어선 현실에 비해 난민정책은 빈곤하다고 할 수 있다. 전문공무원이 너무 부족하고, 난민정책

을 생산하고 실무를 지도할 정책단위 없이 출입국관리법과 출입국관리국이 관리하며, 이의신청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등

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난민문제를 국가 안보 혹은 치안유지적 시각으로 접근하지 말고 인권문

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요구를 해왔다. 유엔의 인권조약 관련위원회들은 난민정책을 재고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해왔다.

한국에서 최초로 난민 인정을 받았던 데구(Degu)씨는 한 토론회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인종적 박해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던 땅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것은 결코 한 인간이 추구

하는 삶이나 꿈이 아닙니다.”

“저는 한국정부와 민간단체가 보다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논의하고 이들에 대한 국제적 보호에 기여하기를 기원합니다.”

난민=인권의 종말?

세계 곳곳에서 난민이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것이다. 가령 바다에서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

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불문법이다. 해상에서의 인명 구조는 전시의 적에게도 해당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난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항해를 견딜 수 없는 보잘것없는 보트에 몸을 싣고 음식도 물도 없는 상황에서 애타게 도움을 청

해도 버리고 가버리거나 오히려 해안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민간어선들이 구조해서 데려

오면 받아주지 않거나 오히려 구조한 사람들에게 불법밀입국을 도운 혐의로 처벌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탈출을 위

해 브로커들에게 전 재산을 넘겨주고 길을 나선 이들을 영하의 산속이나 벗어날 수 없는 사막 가운데 버려두는 일 등이

난민에 관한 보고서들에는 넘쳐난다.

난민의 국제적 보호를 천명한 원칙들은 다음의 경우를 인권침해라 한다.

· 선박으로 도착하는 난민을 해변으로부터 내쫓아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는 경우

· 어느 곳에서도 비호를 구할 가능성이 없는데도 국경선 지역에서 입국이 거절되는 경우

· 박해를 받을 공포가 있는 국적국 혹은 기타 국가로 강제송환되는 경우

앞서의 사례들을 보면 ‘사문화’된 기준이란 힐책을 받아도 대꾸할 말이 없다. ‘난민의 세기’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을 가진

20세기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로 인해 “인권의 종말”까지 거론되는 결과를 낳았다.

세계인권선언은 무엇보다도 ‘국가’를 중심으로 한 인권개념에 기초해 있다. 즉 자유권은 국가에 의한 권리침해로부터의

자유에 중점을 두었고, 사회권은 국가에 의한 복리의 보장과 증진을 강조했고, 국제인권법의 의무당사자는 국가이다. 난

민에 대한 국제적 보호에 관해서도 비호국이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이 제공하는 보호가 자국 정부로부터 받아야 할 보

호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난민은 이 의무당사자와 관계가 없다. 어느 국가도 내 사람이라 하지 않는 사

람, 내 사람이라 하는 국가로부터는 보호는커녕 공포와 박해밖에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 난민이기 때문이다. 난민의 존

재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의 주체가 된다는 인권의 기본 설정을 비웃는다. 난민은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난민은 인권의 주체로서 권리를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처분 대상이고, 정치조

직이 아니라 인도주의 기관들의 수중에 있다. 기존의 ‘국가-국민-영토’의 구조 속에서 사고되는 인권 틀로는 난민의 존재

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으며, 기존의 인권틀 내에서의 ‘비호 받을 권리’는 잘못된 접근이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

느냐는 현재 인권의 큰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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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무국적자[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15조 국적을 가질 권리

1. 모든 사람은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국적을 박탈당하거나 그의 국적을 바꿀 권리를 부인당하지

아니한다.

무국적이라는 것

“나의 조국은 세계이다”, “세상을 무국적자처럼 떠돌고 싶다”는 등의 말을 하거나 들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말에 고개

가 끄덕여질 때는 자신의 국적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의 사람 누구와나 함께할 자세가 되어 있을 때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를 조국으로 인류를 가족으로 여기는 그런 사람에게도 엄연히 국적과 시민권이 있을 것이다.

좁아진 세계와 타국에서의 취업, 국제결혼 등의 증가로 이중국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무국적’의 문제는 주목받지 못하는 인권문제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훨씬 더 지구화된 요즘 세상에

서 무국적자가 여행하는 것은 1930년대보다 훨씬 더 어렵다. 무국적으로 태어나는 아동은 평생 무국적이기 쉽다. 무국적

상태에서는 학교에 가거나 합법적으로 일하거나 재산을 소유하거나 결혼하거나 여행을 할 수 없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

어도 고소를 할 수 없다. 법적으로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수사를 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

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내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내가 어떤 국가의 시민도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고향을 만들 자격이 없는 겁니까?”

“내가 사는 나라에서도 ‘안된다’고 하고, 내가 태어났던 나라에서도 ‘안된다’고 하고, 내 부모의 출신 국가에서도 ‘안된다’

고 한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무국적이라는 것은 무가치하다는 감정에 언제나 휩

싸여 사는 것이다.”

무국적 문제를 다루는 한 인권단체와의 인터뷰에서 무국적자들은 이렇게 호소한다.

아인슈타인도 무국적자였다

무국적자란 어떤 국가의 국내 법률에 의해서건 국민으로 간주되지 않는 사람(1954년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 1조)

이다. 각국의 법률에서 국적과 시민권은 반드시 동의어는 아니다. 하지만 둘 다가 의미하는 바는 한 국가와 개인을 한데

묶는 끈으로서 양자 간의 정치·경제·사회적 권리 뿐 아니라 책임을 포괄한다.

무국적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서로 중첩되기도 한다. 정치적 급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표적 삼은 차별과 배제, 국가들

간의 국적법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틈, 영토 변경과 관련된 혼란, 결혼과 출생신고와 관련된 법이 간과한 문제, 다른 국

적을 얻기 전에 국적을 포기한 경우, 부계혈통만으로 시민권을 인정하는 경우 등으로 인해 무국적이 발생한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사막화로 인한 물과 자원 분쟁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지역에서 마찰과 추방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다 알만한 유명한 무국적자의 경우를 보자. 한국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이 닮기 원하는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무국

적자였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1896년 국적을 포기했고 그 후 5년간 무국적자였다. 1901년에 스위스 시민이 됐고,

프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된 1914년에 독일 시민권을 다시 얻었으나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된 후 아인

슈타인은 아카데미를 사임하고 두 번째로 독일 국적을 포기했다. 이번에는 난민이 됐다. 스위스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었

기 때문에 무국적자는 아니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40년에 미국시민이 됐다. 평생에 걸쳐 이런 난관을 겪으

면서 그는 말했다. “민족주의는 소아기적 질병이다. 민족주의는 인류의 홍역이다.”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 앞에서 연주한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첼로연주자 로스트로포비치도 무국적자였다. 1978년 그는

프랑스 TV 뉴스를 보다가 자신과 아내가 “소련의 위신에 해로운 행위”로 인해 소련국적을 박탈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

훗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제거됐다.…‘가치 없는 시민’이 된다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지 당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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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모른다. 그들은 우리를 몰아냈다.”고 말했다. 1990년에야 그의 소련 시민권은 회복됐다.

유명 영화감독, 마가렛 본 트로타도 무국적자였다. 그녀는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1942년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독일인이

되고 싶지 않아 무국적이었고, 비혼의 무국적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녀도 자동으로 무국적이었다. 공부를 하러 파리로

갈 때 그녀에게는 비자와 신분증명서가 없었다. 한밤중에 기차에서 끌려 내려진 그녀는 국경 가운데서 오도갈 수 없었다.

훗날 결혼으로 국적을 취득한 그녀는 “나는 국적을 갖고 싶었다. 그게 프랑스던 독일이던 상관없었다. 난 단지 여행의

어려움에서 해방되고 싶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무국적자가 되어 타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작가는 자서전에서 ‘무국적’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 자신

이 내 자아에 정말로 속한다는 느낌이 멈췄다. 내 타고난 정체성의 일부가 내 원래의 본질적인 자아와 더불어 영원히 파

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국적의 고통은 유명인들의 ‘과거’가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재’로 계속되고 있다. 조상 대

대로 살아온 땅에 새로운 국가가 세워지면서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민족들, 상당수가 난민이면서 무국적이기도

한 수백만의 팔레스타인들은 현재 무국적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주여성과 그 자녀의 문제는 특히 취약한 무국적 사례이

다. 가령 다음과 같은 사례는 한국과 관련해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팔레스타인, 그리고 조선적

한 베트남 여성이 고령의 대만인과 국제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예상보다 경제사정이 열악했고 사업의 실패와 더불

어 이 여성이 아들이 아닌 딸을 낳자 아내와 아이를 같이 버렸다. 이 여성은 국적취득과정에 있었다. 새 국적을 얻으려

면 원래의 국적을 포기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했다. 남편과 상의하여 베트남 국적을 포기했으나 아직 새 국적을 얻지 못

한 상태에서 버림받은 그녀는 고향에 돌아와서야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자신이 무국적자이며 따라서 아무런 권

리가 없음을 깨닫게 됐다. 아이는 베트남인에게 허용된 무상교육을 받을 수 없고 의료 혜택도 없으며, 자신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국적회복을 위한 절차를 알아보자니 변호사는 5천 달러의 수임료를 요구했다. 자신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돈이었다.

일본 패망 후 귀환하지 못하고 어떤 국적도 취득하지 않은 채 귀환을 그리며 무국적자로 버틴 동포들, 북한 국적도 남한

국적도 취득하지 않고 사실상 무국적자인 ‘조선적’을 고집한 동포들, 남북한 각각이 국제사회에서 각각의 국가이고 국적

법이 있는 상황에서의 북한 출신 이주자의 문제,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의 국적 문제 등 ‘무

국적’은 한국 사회와도 결코 먼 문제가 아니다.

난민 뿐 아니라 무국적자도 수임사항으로 다루고 있는 국제기구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다. UNHCR은 2006

년 말 현재, 공식적으로 49개국에 걸쳐 5백 8십만 정도의 무국적자가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무국적자에 대해 믿을만

한 통계를 내는 국가는 거의 없기 때문에 UNHCR은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1천 5백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무국적 문제를 다루는 UNHCR의 인력과 재원은 형편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차 대전 간 초기의 국제적 합의들은 난민과 무국적 문제를 한데 다루었고, 무국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목표를 두기 보

다는 당장 닥친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국한됐다. 가령 무국적자들로 하여금 당장에 필요하니까 여행서류로 소위 ‘난센여

권’을 사용하게 하는 식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무국적자의 법적 지위를 규율하고 무국적 사례를 줄일 필요성에서 채택된 기준이 세계인권선언 15조이다.

선언은 개인의 인권으로서 국적을 가질 권리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적을 주거나 말거나 빼앗거나 하는 문제

는 국가의 권리이다. 각 국가는 자국의 법에 따라 국적법을 제정할 수 있고, 이 법이 국제법과 타국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다른 국가들은 대개 이를 승인한다. 선언 15조는 국적에 대한 권리를 말했지만, 어떤 국가가 어떤 상황에서 국

적을 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무국적을 방지할 국가들의 의무, 아동을 출생 시에 등록하고 무국적이 될 상황

이면 국적을 제공할 의무 등이 명시된 것은 훨씬 나중에 만들어진 국제조약에서다.

가령 1954년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은 무국적자에 대해 난민에 대한 처우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고, 1961년 무

국적자의 감소에 관한 협약은 달리 국적이 없으면서 가입국의 영토에서 출생한 자에게 그 국가의 국적을 인정함으로써

주로 출생 시 무국적을 피할 목적을 가진다. 국가들에게 권고되는 바는 최소한 무국적자에 관한 두 개 협약을 존중하라

는 것인데, 양 협약 모두 가입국 수가 아주 적다. 그밖에 1966년의 시민·정치적 권리 규약과 1989년의 아동권리협약 7조

는 아동이 출생 시 즉시 등록될 것과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질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적어도 당사국에서

태어나는 아동이 무국적이 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가입국에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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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미약한 국제사회의 대응

무국적과 관련된 활동 단체들이 유엔과 정부들에게 촉구하는 바는 민망할 정도의 기본적 수준이다. 무국적과 관련하여

수임사항을 명확히 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는 것, 가용할 수 있는 기존 인권 메커니즘을 모두 활용할 뿐 아니라 무국

적 문제에 집중하는 단위를 만드는 것, 식량과 의료 등 긴급한 필요에 지원하는 것, 무국적과 관련된 정보의 공유, 무국

적과 관련된 국제기준의 당사국이 될 것 등이다.

여러 국가들에서 시민권은 새로운 권리를 추구함으로써 이전의 특권을 권리로 변형시키고, 권리의 주체를 확장해왔다.

새로운 권리는 이전 권리의 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고 이전에 법률로나 관습으로 분리됐던 집단들간의 장벽을 제

거해왔다. 그런데 무국적자에게는 그런 시민권이 없기에 권리의 변화와 생성도 없다. 어느 국가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국제적으로는 미약한 협약과 기구가 있을 뿐이다. ‘시민권과 인권이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고, 시민권에서 벗어난 사람들

을 인권이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는 인권의 생명과 뗄 수 없는 문제이다.

빈 구석이 많아 보완되어야 할 조항[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16조 혼인·가정의 권리

1. 성년에 이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혼인하여 가정

을 이룰 권리를 가진다. 이들은 혼인 기간 중 및 그 해소 시 혼인에 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가

진다.

2. 결혼은 양 당사자의 자유롭고도 완전한 합의에 의하여만 성립된다.

3.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며 기초적인 구성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

다.

요즘처럼 살기 힘든 때에는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식의 생각이 도드라지는 한편 ‘가정의 위기’에 대해 걱정하는 소

리도 높다. 둘 다 문제가 되는 생각이다.

‘가족밖에 믿을 수 없다’는 건 ‘사회’가 살만한 곳이 못 된다는 것이고 가족외의 사회적 관계들을 이해타산으로만 여긴다

는 것이다. 또한 사회와 국가가 맡아야 할 사회복지의 부담을 가족에게 떠맡기기 딱 좋은 생각이다.

‘가정의 위기’라고 할 때는 소위 ‘정상가정’의 해체를 운운하면서 다양한 가정의 형태와 그 구성원들을 ‘위기의 소산’으로

낙인찍는 수가 있다. 버젓이 구성원의 정서적 유대로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주류로 여기는 가정형

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당신들의 가정은 가정의 위기 내지 해체의 증거’라고 손가락질 한다면 심각한 차별일 것이다. 또

한 사회가 제공하는 가정생활과 관련된 권리로부터 그들 가정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이다.

나아가 특정 사람들을 아예 가정을 구성할 수 없는 사람들로 낙인찍는 문제가 있다. 장애인의 이성교제와 결혼·출산을

바라보는 눈, 해외토픽감 식으로 다뤄온 동성애 혼인과 부모됨의 권리 문제 등이 적극 제기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혼인과 가정생활과 관련된 권리를 규정한 선언 16조는 빈 구석이 많은 조항이다. 만들 당시에도 그랬

지만 오늘날 많이 변화된 가족관과는 거리가 멀다. 먼저 어떤 생각으로 선언 기초자들이 16조를 만들었는지부터 살펴보

자.

여성의 평등한 접근 등이 제외된 기초과정

선언 16조를 기초할 당시 “결혼과 무관하게 평등한 시민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제안은 누락됐다. 이 내용은 최근에

와서야 후속국제조약에서 강조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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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상 결혼은 선택의 자유, 아내의 존엄성, 일부일처, 결혼 해소에 대한 동등한 권리, 동등한 양육권, 자신의 국적을 유

지할 권리, 계약을 맺을 권리, 재산을 가질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선언을 기초할 당시 유엔여성소위원회의 제안

이었고 ‘유급출산휴가, 교육에 대한 여성의 평등한 접근’ 등의 사회적 권고들도 있었다. 세계인권선언 16조에는 이 중 일

부만이 반영돼 있다.

결혼과 관련하여 주로 논쟁이 된 문제는 타종교를 가진 사람과의 결혼이나 이혼에 관한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이었다.

타종교와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거나 종교적 이유로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많은 나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소될 수 없

는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정부들이 16조에 찬성표를 던진 배경은 이렇다.

종교와 국가는 분리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인권 문제가 논의돼야 하고, 인권문제가 종교적 근거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국가들에서 관련 입법이 대개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점이 지적됐고

그런 여성의 불리함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혼의 성립이나 해소 시에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는 결론이었다.

1항에서 “성년”을 언급한 것은 아동혼을 방지하기 위한 구상이었다. 신체적 성숙이 됐다 할지라도 조혼은 권할만하지 않

은 것이고, 혼인에서는 단지 출산 능력이 아닌 더 중요한 요인들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에서였다.

2항에서 ‘결혼에 대한 동의’를 언급한 것은 강요나 위협 하에서 계약된 결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3항에서 언급한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의 구체적 내용은 끊임없이 논쟁되고 변화해왔다. ‘모성보호’를 예로 들

어보자. 선두주자는 ILO이다. ILO는 1919년 창설하자마자 채택한 규범에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보호규정을 만들었다.

1919년 모성보호조약(Maternity Protection Convention)과 야간노동(여성) 조약(Night Work(Women) Convention)이 그것

이다. 이에 따라 여성 노동자는 모성휴가와 고용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를 갖는다. 이후로 오랫동안 모성보호는 여성노동

자에 대한 보호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여성을 어머니 또는 장차 어머니가 될 사람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가 어머니일 수 있듯이 남성 노동자가 아버지일 수 있다는 관점을 ILO가 공식적으로 취하기까진 60여년이 걸렸다.

1981년 ‘가족부양책임이 있는 노동자에 관한 조약’과 ‘가족부양책임이 있는 노동자에 관한 권고’에 와서야 부모의 의무를

남성과 여성 모두가 행사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하게 됐다.

성차별 방지 노력이 처음에는 모성보호에만 초점을 두었다면, 50년대 이후에는 고용에 대한 평등한 접근, 고용에 있어서

의 평등한 처우가 우선순위로 떠올랐다. 여성은 어머니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양해야할 사람이라는

것, 남성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자기 부양의 권리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부양이 ‘가장’으로 간

주돼온 남성의 의무(동시에 권리)인 것이 이전에는 당연시 돼왔다면 한 가정의 부양을 남녀가 공유해야 하는 문제로 다

루기까지 또 수십 년이 걸린 것이다.

가정생활과 관련된 차별

유엔은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특별보고관’을 두고 있는데, 그 보고서에서 ‘가정생활과 관련된 차별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보고관은 크게 세가지 유형의 차별을 지적했다.

· 결혼에 근거한 차별

기혼 여성은 여성으로서 차별받을 뿐 아니라 기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을 수 있다. 혼인에 근거한 차별은 기혼여성이 남

편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에서 기혼여성은 가정의 부양자로서의 권리를 청구하기

전에 자신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걸 먼저 증명해야 한다. 그 결과 기혼여성은 사회보장제도에서 공개적

으로 차별받을 수 있다. 많은 경우에 기혼여성은 남편이 확보할 수 없었던 권리라는 걸 증명해야만 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고, 취업을 하게 되면 피부양자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이에 대해 유엔시민·정치적권리위원회는 비차별에 관한 일반논평 18에서 “혼인 기간 중 및 혼인 해소 시에 혼인에 대한

배우자간의 권리 및 책임의 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사국의 의무로 확인했다. 또한 동 위원회에 통보

된 사건에 대한 결정에서는 기혼여성이 실업급여를 받을 자격에서 배제되는 법률은 규약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이 사건

을 통보한 여성은 기혼여성이라고 해서 자신이 “생계책임자"였다는 걸 증명해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차별이

라고 주장했다. 이런 조건은 기혼남성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해당 정부는 결혼과 사회속에서의 남녀역할에 대한 일반

적인 사회통념을 따른 법률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통념에 따르면 기혼 남성은 언제나 생계책임자이고 반면에 기혼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 모성에 근거한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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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영역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논평과 권고

국적 국적은 완전한 사회참여를 위해서 결정적인 것으로 국적은 성인여성에 의하여 변경 가능하여야 하고 혼인이나 혼인 해소 혹은 아버지나 남편의 국적 변경을 이유로 하여 임의적으로 변동되어서는 안된다.

법 앞의 평등

·법률로써 또는 개인이나 기구를 통해 여성의 법적 능력을 제한하는 것은 남녀평등의 권리에 대한 부정이자 여성이 자신과 피부양인을 부양할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국적과 유사한 개념으로서 주소는 여성의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성인 여성의 의지에 따라서 변경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타국에서 일시적으로 거주하고 일하는 이주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배우자, 파트너, 자녀를 동반할 수 있는 동일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성보호는 인권기준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ILO에 의해 규정됐다. 문제는 모성보호가 성평등에

반작용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보호의 목표가 아동이지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성보호’로부터 ‘부모보호’

로의 개념 진전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현상이다. ILO의 관련 조약에 따르면 정부는 “남녀노동자에 대하여 기회 및 처우

의 실질적인 균등을 창출하기 위하여, 현재 고용되어 있거나 또는 취업하고자 하는 가족부양책임이 있는 사람이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또한 가능한 한 그들의 고용과 가족부양책임 사이의 갈등 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정책을 수

립”해야 한다.

임신한 여성, 어린 아이를 둔 여성, 나아가 자녀를 양육할 연령의 모든 여성을 노동시장이 차별하는 것에 비하여 그에

대한 사회적 보상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어머니가 되는 것, 부모가 되는 것이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모

성 휴가(양육휴가)에 충분히 보상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권의 관점에서 여성은 어머니가 된다는 이유로 사회적 인정이나 보호를 획득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여성의 동등한 권리에서 모성보호가 의미하는 것은 여성이 자녀를 낳고 남성은 그렇

지 않다는 생물학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모성에 대한 사회적·법적 보호는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보상

과 보호를 부여하는 데 있다. 출산과 양육은 사회적 기능이므로, 단지 여성이라는 사실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

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이 보상을 얻는 것이다.

· 부모됨에 근거한 차별

제도적 혼인은 많이 변했다. 서유럽과 북미에서는 결혼과 가정간의 연계가 없어졌다. 결혼과 가정간의 직접 연계를 상정

했던 국제인권기준도 그런 변화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결혼과 부모됨이 직접 연계되지 않게 되면서 출산의 권리는 부부

나 한 쌍의 권리라기보다는 개인의 권리로 요구되고 있다. 불임치료술, 대리임신 등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문제들도

제기되고, 출산과 관련된 권리에 대한 요구가 생겼다. 여기서도 인권의 원칙은 부모됨이 성별에 근거한 것이 아닌 남성

과 여성 둘 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만 임신을 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임신했거나 임신가능성이 있는 ‘노

동자’를 배제하는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에 대한 차별이 된다. 따라서 국제규약은 임신과 양육을 이유로 한 차별을 성차

별의 형태로서 금지하고 있다. 여성차별철폐조약 11조(2)(a)에 따르면 “임신 또는 출산휴가를 이유로 한 해고 및 혼인 여

부를 근거로 한 해고에 있어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위반시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것”을 결혼 또는 모성을 이유로 한 여

성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임신과 출산휴가를 이유로 한 차별만을 금

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용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이나 직업상실의 위협으로 인해 여성이 고용이냐 모성이냐간에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실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모됨에 관련된 인권기준은 어머니가 될 가능성만이 아니라 부모가 될

가능성을 다뤄야 한다.

또한 가족계획과 출생률에 대한 선택에서 대부분 여성이 남편의 의사에 반하거나 변화시킬 힘이 없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 여성의 낙태권과 가족계획과 관련된 선택권에 관련된 논쟁은 모든 곳에서 여전히 뜨거운 이슈이다.

혼인과 가족관계에서의 평등

1979년 유엔에서 채택된 여성차별철폐협약은 성역할과 가정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와 관습에 초점을 맞춘 유일한 국

제인권조약이다. 이 협약에 기초하여 설치된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논평과 권고를 통해 협약의 내용과 그에 따른 국

가의 의무에 대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가정생활과 관련된 내용에는 1994년 ‘혼인과 가족관계에서의 평등’, 1992년 ‘여성

에 대한 폭력’에 관한 일반논평이 있다. 이에 따라 국가가 취해야 할 의무적 조치의 주요내용은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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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과 가족관계

· 가족의 형태와 개념은 국가마다, 심지어 한 국가내의 지역 간에도 다양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든, 국가의 법적 체계, 지역, 관습 혹은 전통이 무엇이든 간에 가족내에서 여성에 대한 대우는 법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모든 사람에 대한 평등과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일부다처혼은 중지되고 금지되어야 한다. · 관습, 종교적 믿음, 특정 인종집단의 민족적 기원등에 근거한 강제결혼, 강제재혼, 금전의 지급이나 신분상승을 위한 여성 혼인, 재정적 안정을 위하여 외국인과 결혼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에 위배된다.여성의 혼인 시점, 혼인 여부, 혼인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법으로 보호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 사실혼 관계에 놓인 여성은 가정 생활 및 수입과 자산을 공유함에 있어서 법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 피부양자녀와 가족 구성원들을 양육하고 돌보는 일에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 · 자녀를 양육하고 보호, 부양하는데 있어서 부모는 공동의 책임을 진다. 부모가 혼인하지 않은 경우나 어머니가 이혼하거나 별거중인 경우 많은 아버지가 그 자녀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혼인의 지위 및 자녀와의 동거여부에 상관없이, 양쪽 부모 모두가 자녀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지도록 국내법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 여성은 자녀들의 수와 터울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안전하고 믿을만한 피임 수단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를 결정할 수 있도록 피임수단과 그 용법, 성교육에 대한 접근 보장, 가족계획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재산을 소유, 관리,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는 여성이 재정적 독립을 향유하도록 하는 여성 권리의 핵심이다. 여성의 재산권은 여성의 혼인여부와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 부부간 평등, 혼인 최소 연령, 중혼과 일부다처혼의 금지 및 아동의 권리 보호수립을 위한 모든 혼인의 등록을 요구해야 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 공적이든 사적이든간에 모든 형태의 성에 근거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여기에는 공무원에 대한 성인지성 훈련, 폭력의 범위·원인·영향과 폭력을 방지하고 취급하는 조치들의 실효성에 대한 통계와 조사의 편찬, 여성에 대한 존중을 위한 매체들의 효과적 조치, 인신매매와 성적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예방 및 징벌 조치, 효과적인 청원절차와 배상을 포함하는 구제방안 마련, 성희롱 및 기타의 직장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성에 근거한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위한 피난처 제공, 숙련된 보건 인력, 재활 및 상담을 포함하는 서비스의 수립과 지원, 여성할례 등의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 출산과 생식에 관한 강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들, 시골 여성 및 격리된 공동체에 대한 특별 서비스, 가정 내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들.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다. 가정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그중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자기식대로’의 가정만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가족을 평가절하하거나 다른 가족

과 갈등한다면, 누구에겐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이라는데 누구에겐 지옥 같은 곳이 가정이라면, 사회적 유대와 연대와는

담쌓은 가족 사랑이라면 인권으로서의 ‘가정생활에 대한 권리’가 작동할 수 있을까? 누구를 가족이라 할 것이며, 가족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나 만들고 보듬어야 하는 문제이다.

‘떠오르는 인권에 대한 바르셀로나 헌장’이라는 것에서는 선언 16조에 해당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바꿔 쓰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개인적 유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선택한 사람과 정서적으로 결합(결혼한 권리를 포함하여)할 개인의 권

리를 인정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모든 유형의 자유롭게 동의한 개인적 유대는

어떠한 장애도 없이 동등한 보호를 받는다.

모든 가족 공동체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가족의 형태와 무관하게 교육과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공공당국

으로부터 가족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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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조

1. 모든 사람은 단독으로는 물론 타인과 공동으로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조건을 충족할 때만 인정되는 권리인 재산권[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17조 재산권

재산권은 오해가 많을 수밖에 없는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 17조를 대하는 사람들은 처지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

다. “거봐, 재산권은 세계인권선언도 보증하는 당연한 인권이쟎아. 그런데 왜 우리보고 뭐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소위

‘강(남)부자’들이 뛸 듯이 좋아할 수 있다. 반대로 “뭐, 재산을 인권으로 인정한다고? 그럼 재산의 횡포에 시달리는 우린

어쩌란 말이야, 세계인권선언이라구? 뭐 이런 엉터리가 있어?”라고 펄쩍 뛸 수도 있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재산’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고, 저마다 ‘재산권’에 대해 뭔가 단단히 착각하거나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 소득과 불로 소득의 경쟁?

재산권은 ‘재산’과 ‘권’이라는 말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재산이 뭘까? 재산이 뭔지에 대해서 어떤 합의를 하느냐는 사회

에 따라 다르다. 그 합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구성원들이 넉넉한 삶을 이루기도 하고 ‘모 아니면 도, 네가 아니면 내

가 죽는다’ 식의 삶이 펼쳐지기도 한다.

도대체 재산이 뭔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 예금 통장이나 적금 통장이나마 유지하는 사람, 주식·증권·배당금·신탁·

채권·선물·옵션·스왑·펀드·주식 등을 이해하고 굴릴 수 있는 사람이 갖고 있는 ‘재산’이 같을 수 있나? 일한 시간만큼 임

금을 받는 사람이 가진 재산과 누군가의 생사를 갈랐다 붙였다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재산이 같을 수 있나? 토지소유

를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와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에서의 재산이 같을 수 있나?

어쨌든 사람들이 흔히 받아들이기 쉬운 재산은 피땀 흘려 일군 결실일 것이다. 반대로 짜증스러운 재산은 부동산 투기

등으로 만든 불로소득일 것이다. 운동경기도 체급을 맞춰서 하는데, ‘노동 소득’과 ‘불로 소득’이 같이 경쟁한다는 건 정

말 이상한 일이고, 두 재산을 같은 기준으로 생각하는 건 좀 이상하다. 한편 재산권은 물(物)에 대한 권리라기보다는 사

람간의 관계를 말한다. 인간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에 대한 타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타인의 삶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재산권이다. 아무도 지배하거나 수탈하지 않는 재산권과 지배하는 재산권은 엄청나게 다르다. ‘재산권’을 말할 때 이런

성격을 구분하지 않고 한통속으로 취급하여 ‘인권’이라 할 수는 없다. 재산권을 인권이라 할 때는 ‘조건’이 필요하다.

재산권은 인권의 선배 중에서도 최고참에 해당하는 권리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그렇다거나 그래야만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기에 재산권이 인권의 초기 역사에서 주연 노릇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재산권이 인권의 선두주자가 된 배경은 사람의 권리와 의무란 것이 누구의 침상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신분

제 세상이었다. 악역은 제 영토의 모든 것은 제 것이라고 우기는 절대 권력이었다. 신분질서와 절대 권력에다가 유일절

대의 진리로서의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나의 것’,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의 ‘자유’를 주창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

는 일이었다.

인권의 최고참

절대 권력은 걸핏하면 돈을 걷고 거부하면 잡아들여 주리를 틀었다. 생필품 등의 거래를 총애하는 신하에게만 독점시키

고 무역도 그렇게 했다. 새로 등장한 신진세력도 처음엔 권력의 비위를 맞추어 그 독점의 대열에 낄 수만 있으면 잘 나

갈 수 있었고 그렇게 버티려고 했는데 도무지 앞날을 계획할 수가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그만큼 변덕도 심했기 때문

이었다. 예측 가능한 정치와 경제구조가 절실했다. 불가침의 절대적 교리 앞에서 합리적 사고는 탄압 받았다. 이런 것이

다 자유롭게 재산을 추구하는데 방해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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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에 대한 인정 요구는 인권 사상의 모태가 되고 다른 인권의 성장을 자극했다. 모든 인간은 국가 권력 이전에 생명,

자유, 재산을 가졌다고 외쳤다. 이건 사회나 국가가 준 권리가 아니라 자연적 권리고 인간에게 본래 고유한 것이라 했다.

현실속의 질서가 그렇지 않으니 옛날 말씀도 끌어들이고 종교상의 교의도 끌어들이고 그게 싫으면 과학적으로 논리를

세워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자유롭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는 것이다. 소유권이 없이는 이런 자율성을 꿈꿀 수 없다. 내 생명이 담긴 내 몸이 한 노동으로 재산을 일구었다. 그런

재산에 함부로 손대는 것은 곧 내 몸에 손대는 것과 같다. 내 몸과 내 소유, 어느 것도 함부로 손댈 수 없다. 내 몸과 소

유에 대해 공격해오면 저항은 정당하다. 저항은 맨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

다.

종교적 자유를 모태로 한 사상의 자유는 독선적이고 전제적인 정치 체제에 맞서는 힘이 됐을 뿐더러 자신을 유일한 진

리로 여기는 종교적 권위를 깨고 인간성의 해방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도왔다. ‘생명, 자유, 재산’은 삼위일체가 되어 '인

신의 자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소유의 자유'라는 인권으로 피어났다.

이런 이유로 신분제 사회에서 절대왕권과 특권층에 맞장 뜬 인권의 요구가 ‘재산을 존중하라’고 할 때 그 말은 ‘내 인격

을 존중하라’는 말과 같았다. 재산권의 요구는 개인을 국가로부터 해방시켰다. ‘국가는 개인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하고, 자유로운 시장에 간섭하면 안된다’가 핵심 요구였다. 마찬가지로 ‘사상·언론·종교 등의 자유 시장

에도 국가는 일체 끼어들거나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은 점에서 근대의 인권을 ‘국가로부터의 자유’라 하는 것이다.

재산권의 변화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소유는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고 노동의 성과이며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담고 있기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재산권을 정당화한 논리였다. 하지만 근대시민혁명을 통해 불가침의 권리로 자리 잡은 재산권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은 예전의 절대군주의 모습보다 더 무서운 게 자본가라고 느꼈고, 대다수 사람들의 처

지는 자유와 평등으로부터 멀어졌다.

근대시민혁명의 이론가들은 노동의 결실로서 소유권을 옹호했지만, 사실상 진짜 밑천이 될 만한 재산은 엄청난 폭력을

통해서 모였다. 땅에서 농사짓던 농민을 유랑민으로 내몰았고, 가난한 이들을 가두고 부려먹거나, 3세계를 식민지로 수탈

하는 등 부정의의 역사는 넘쳐났다. 가난한 이는 자립할 수 없는 인간이라며 투표권조차 주지 않았다. 식민종주국 백인

들의 재산권은 자연적 권리라면서 3세계와 그 주민들을 공격·수탈하면서는 재산권 침해라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돌봄으로써 재산의 가치가 높아진 것이라 우겼다.

절대왕권에 맞서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을 주창할 때의 재산권이 제도화되자 재산없는 대다수 사람들의 ‘무’권리를 당연

시하는 근거가 되어 버렸다. 재산이 법과 제도로 보호된다는 것은 곧 사회가 보호받을 재산의 범위와 한계를 정한다는

뜻인데, 재산을 여전히 사회와 국가이전의 ‘자연적’ 권리로 떠받드는 것은 이상하다. 타인의 인격과 자유를 해치고 대다

수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요구를 압박하는 재산권이라면 인권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인간존엄성과 자유에 대

한 존중이라는 재산권의 본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고, 현실에서 재산의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폐해가 심각하다면 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마땅하다.

신성불가침성과 국가 이전의 자연권이라는 레테르는 이제 재산권에 어울리지 않는다. 생존권보장, 인권보장을 위해서 보

호받아야 할 재산의 범위를 정하고 재산권자의 내맘대로의 영역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사회가 당연히 취해야 하는 조치

이다.

재산권엔 친구가 필요하다

‘프랑켄슈타인’의 아주 옛날 흑백영화판을 보면 “친구가 필요해”라고 애절하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인간과 생존과 존엄

에 대한 고려 없는 재산권은 인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프랑켄슈타인이고, 친구를 필요로 하고 가질 때에만 인권의

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여기서 친구라 함은 ‘노동기본권, 주거권, 건강권, 교육권’ 등의 인권을 말한다.

선언 17조는 무엇이 재산이고 무엇이 재산에 대한 자의적 박탈인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데, 이걸 알 수 있는 방법

은 다른 인권과의 관계 속에서 읽는 것이다. 선언은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타인의 건강에 위험에 빠뜨리거나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적절한 휴식의 권리 보장,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 등을 보장하고 있다. 재산권은 이런 인권과

의 관계 속에서 내재적 제약을 받는다.

재산권의 실현이 단지 재산을 획득할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그런 기득권을 보호하는 걸 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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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 그것이 실정법으로 아무리 강력하게 보장돼 있다 할지라도 보편적 인권으로 정당화하긴 어렵다. 재산권은 사회적

권리를 포함하여 여타 권리의 효과적인 향유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런 재산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고, 그 권리의 보장 자체만으로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에

어떠한 피해자 부담도 주지 않는다는 모든 인권에 보편적인 속성을 가진 재산권이다.

선언 17조의 구상

선언 17조를 구성하고 있는 생각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 재산의 소유는 인간 생활에 기본적인 것이다. 둘째, 재산은

단독으로뿐만 아니라 타인과 공동으로 가질 수 있다. 셋째,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

선언을 만든 사람들의 재산에 대한 생각은 이러했다. 인권으로서 생각한 재산의 의미는 공익을 침해할 수 있는 ‘사적

(private) 소유’가 아니라 ‘개인적(personal) 소유’였다. 즉 사는 집, 소지품, 가구, 프라이버시를 보장받는 통신 등에 대한

개인적 소유를 생각한 것이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소유자가 될 권리를 인권으로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선언 문구는 그렇지 않지만, 토론 중에 사용된 문구에는 “존엄한 삶과 인간 존엄성에 필수적인 물질적 재화에 대한 권

리”, “모든 사람은 존엄한 삶에 필수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개인과 가정의 존엄성 유지를 돕는 그런 재산을 가질 권리

를 가지며”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까지의 개인 소유가 기본적 권리인지, 개인 재산 말고 기업의 사적소유권을 왜 언급해서는 안되는지 등

의 문제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다른 그 무엇이냐는 체제의 문제 속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언은 어떤

체제도 배제해서는 안되는 표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선언 기초자들이 ‘무제한적’인 재산소유권을 옹호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재산권에 대한 ‘제한 요건’을 충족시킨

다는 조건 하에서 자본주의적 또는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간에 중도를 유지하려 했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들조차 순

수자본주의 체제란 게 설령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권의 관점에서 수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선

언 기초자 중 누구도 시장의 자유로운 흐름이 인간존엄성에 요구되는 재화를 전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

이 선언 29조에 권리의 제한과 규제(“공동체에 대한 의무”, “민주사회에서의 도덕심, 공공질서, 일반의 복지를 위하여”)를

둔 이유이다. 29조에 덧붙여 더 중요한 제한 요건은 노동권 관련 조항이다. 재산을 만들어내는 노동자의 권리에 의해 기

업의 재산권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언 기초자들은 분명히 인식했다. 재산권이 자의적 박탈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는 합의 한편에는 재산권의 사회적 기능 때문에 그 범위가 규제돼야 한다는 합의도 있었던 것이다.

선언 이후 유엔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재산권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실현’이란 주제 속에

서 다뤄왔고, 주된 논의는 재산권을 여타 인권과의 상호연관성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엔인권위가 임명한

재산권에 관한 독립전문가는 그 보고서에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문제를 다룬 바 있다. 그는 재산의 다양한 형태와 그것

이 갖는 사회적 중요성도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의 사적 소유’를 보편적인 인권으로 설정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는 “사적 소유의 이용은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이 집중되는 것을 촉진해왔을 뿐 아니라 소수가 무제한적으로

부를 축적하게끔 했다. 이는 엄청난 부의 소유자와 아무것도 갖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간의 계급 분화의 근본원인이다.

집단적 재산이 이런 결점들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왔으며 재산의 사적 이용은 국가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지금껏 알려진

어떤 경제체제에서도 절대적으로 사적인 생산수단의 소유현상은 결코 없으며, 공공의 이용, 안보, 건강 등의 필요성에서

법으로 제한이 부과돼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선언 기초 당시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재산권에 대해 가장 대조적이라 할 쿠바 정부와 미국 정부의 입

장이 유엔회의에서 어떤 설전을 펼쳤는지를 예로 살펴보자.

쿠바와 미국의 대립

쿠바 정부는 재산권은 여타의 기본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인권과 더불어 고려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결권, 자연적 부

와 자원에 대한 주권, 신 국제경제질서의 수립, 개발도상국들의 피폐화된 경제에 부과되는 과도한 외채 문제 등과의 관

계 속에서 재산권을 검토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권으로서 재산권 문제를 취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욱이 모든

사람의 생명·노동·주거·교육·의료 등에 관계된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에 대한 권리, 경제운영에 참가할 권리에 반하는 의미

를 가진 재산권에 대해서는 그것을 권리로 설정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빈곤퇴치, 실업, 인종적·사회적 차별, 기타 모든

형태의 불평등을 취급하지 않으면서 재산권을 고립적으로 선언하게 되면 대다수 인류와 국가들에게 재산권이란 공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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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제 18조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자신의 종교 또

는 신념을 바꿀 자유와 선교, 행사, 예배, 의식에 있어서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

로,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반면 미국 정부의 입장 또한 단호하다. “재산권은 사회조직의 기본 장치이며, 시민·정치적 권리의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시민의 자유는 재산권을 보장하는 사회에서라야 번성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권논의에서 재산권이 홀대받아 온

것은 불만스런 일이다.”

이런 입장에 대해 당신들이 말하는 자유의 의미는 뭐냐고 물어보게 된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 ‘재산권이 자유를 보장한

다’는 의미를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의 어느 노동단체 사이트에서 본 사례이다. 노동조합결성과 활동을 이유로 해고당한 노동자가 있었다. 해고와 동시

에 임금은 당연 끊겼고 조합주택에서도 쫓겨날 상태이다. 아이들은 굶주리고 있다. 이 사람은 이동식 식탁과 요리도구를

가지고 동네의 대형 수퍼마켓에 갔다. 그리고 고기가 가득차 있는 정육점 코너 옆에 이동 식탁을 차리고 거기서 고기를

꺼내 굽기 시작했다. 관리인이 달려왔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역방송 카메라도 달려왔다.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 노동자는 “아이들이 굶주리는 걸 내버려둘 수 없다. 나는 아이들을 먹여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분명 이 사람이 취한 행동은 재산에 대한 탈취라고 일반적으로 말할 것이고 그렇게 처벌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 경

제·사회 체제 내에서 생존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필수물을 제공받아야 할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상은 강요할 수 없다[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18조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의 의미

로댕의 유명한 조각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광경은 어떤가?

‘생각하는 사람’에 철창을 두르는 것이다. 철창 안에 갇힌 생각하는 사람을 한국 사회는 ‘사상범’이라 불러왔다. 즉, 생각

하는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인권단체에서는 ‘양심수’(prisoner of conscience)란 말을 써왔지만, 생각 때문에 갇혔

다는 것에서는 마찬가지다.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는 생각하는 사람에게 철창을 두르는 일체의 간섭과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이 간섭과

억압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돈․광고․인사 등의 불이익을 갖고 협박하는 기업이나 재단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절대․유일의 진리임을 내세우는 종교로부터 올 수도 있다.

그럼, 외부로부터 억압과 강제만 없으면 자유로운 걸까? 그렇게만 생각하면 자유가 너무 작고 초라해 보이지 않는가? 자

유는 개인과 사회의 진보를 위한 더 적극적인 의미도 가진다. 생각하는 자유,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정신활동, 창조적으

로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이 있어야 인간은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 나아가 그

런 활동을 동료인간과 더불어 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할 수 있다.

‘사상’, ‘양심’,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세계인권선언은 정의내리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정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

상․양심․종교’란 ‘세계를 향해, 사회를 향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가능한 태도’를 아우르는 말이다. 그것은 무슨

주의나 신념, 절대자에 대한 믿음 등 ‘자기 자신과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눈이고 힘’이다.

이것을 인권에서 목록으로 만든 것이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교육의 자유’ 등이고

이들을 아우르는 제일 폭넓은 개념이 ‘사상의 자유’라 할 수 있다.

정신활동의 자유는 신체활동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인간생활에 필수적이다. <혹성탈출>이라는 1960년대 영화가 있다. 우

주인들이 지구로 귀환해보니 원숭이들이 지배하고 있고, 인간은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주인들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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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지구가 아닌 다른 혹성에 불시착한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지구가 맞았고, 인간들이 그런 운

명을 맞은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 제거됐기 때문이었다.

우리 현실에서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제거하려 드는 것은 검열과 통제, 위협과 폭력, 강요와 주입 등이다. ‘당신 생각

이 불순해(삐딱해)!’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큰 파괴력을 지니며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가 얼마나 큰 무력감을

느끼게 하며, ‘그렇게 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가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게 하는가.

공포를 느끼게 하는 한 마디

사상의 자유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때론 영글지 못한 생각, 변변치 못한 생각, 도덕적으로 칭찬할 만한 게 못되는 생

각은 허용해선 안 된다고 여길 때가 있다. 그런데 누가 그런 판단을 내릴 권한을 가질 수 있는가? 누구의 기준에서 변변

치 못하고 부도덕하다는 것인지 잣대의 정당성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유가 꼭 필요한 것이다. 자유로운 표출과 충

돌과 논증 속에서 생각은 변화․발전하는 것 아닌가. 모자라고 틀린 것으로 여겨졌던 생각이 진주로 드러난 사례는 역사

속에 넘쳐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상 무지였고, 옳다고 여긴 것이 오류였음을 깨닫게 하는 자극은 인간 사회

에 유익한 것이었다. 토론과 논증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상․양심의 자유가 아니다.

사상․양심의 자유란 ‘거참 훌륭하네, 멋있네.’ 할 만한 양심만 갖는 자유는 아니다. ‘민주주의의 투사다, 사회주의자다’

하는 식의 무슨 주의자만 갖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둘러싼 오해를 살펴보자. 살상무기를

들 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평화와 종교에 대한 신념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주로 얘기했기에 생긴

오해일 텐데, ‘군대에 가는 것은 비양심이고, 안 가는 건 양심이냐?’는 오해이다. ‘양심의 자유’에 따르면 굳이 군대를 가

지 않아도 되는 재외동포가 애국심에서 일부러 자원입대하는 것도 양심이고, 살상무기를 들고 전쟁연습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군대를 거부하고 감옥을 택하는 것도 양심이다. 또는 ‘나는 군대 같은 조직생활이 너무 무섭다. 나의 몸과 마음으

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는 것도 양심이다.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내가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내 인격의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 따라 그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양심의 자유다. 즉,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따라 그런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란 표현을 쓰는 것이지, 자신과 다

른 의견의 양심은 비양심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다양한 양심 중에서도 병역거부를 택한 양심은 ‘어떤 세계관, 주의, 신조’라 할 수 있는 것에 도달한 양심이라 할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란 용어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널리 채택하고 있고, 1987년에 유

엔은 의무복무제를 택하고 있는 국가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여 사회봉사 등 다양한 형태의 대체복무를 도입할 것

을 권고한 바 있다.

양심의 자유에 대해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오해는 ‘그럼 뭐든지 내 맘대로, 내 식대로 하면 되겠네’이다. 자유가 중요하

고 필수적이라는 말이 무조건의 절대적 권리라는 뜻은 아니다. 모든 사람의 권리를 위협하고 파괴할 자유는 인권에서 옹

호하는 자유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식대로 생각하고 자기식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자유를 갖지만 인권에

서 ‘자유’라 할 때는 그런 각각의 인간의 자유를 일종의 선하고 바람직한 목적을 위해 특별히 사용하는 걸 말한다. 그래

서 모든 자유가 아니라 그중에서도 ‘사상․양심․종교의 자유’가 특별히 인권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선하고

바람직한 목적’을 특정인(세력)이 정해놓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유가 추구해야 할 ‘선하고 바람직한 목적’이 무엇이냐

에 대한 토론과 논증은 항상 열려있어야 하기에 사상․양심의 자유가 요구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찾아내고 실현하는

것을 ‘사상․양심의 자유’는 열어놓고 하지만, 그걸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강요하는 것은 ‘자유의 폐지’인 것이다.

사상의 자유의 조건

제우스신과 한 시골 사람이 함께 걸어가면서 하늘과 땅을 주제로 자유롭고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우스가 이

사람을 납득시키려고 애쓰는 동안 시골 사람은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한 가지 의문을 내비쳤다. 그

러자마자 제우스는 별안간 돌아서서 벼락으로 그 사람을 위협했다. 그러자 시골 사람이 말했다. “아! 제우스신이여, 이제

당신이 틀렸다는 걸 알겠어요. 당신이 벼락에 의지할 때 보면 당신은 언제나 틀립디다.”

사상의 자유는 ‘벼락’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즉 외부의 압력이나 강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어져야 내 생각이

된다. 불안하고 억압이 따르는 분위기에서 ‘예’라고 토해낸 것이 진정한 ‘예’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감옥에 가

두는 식의 박해가 주종을 이뤘다면 요즘은 이윤의 논리를 강요한다. 과거 공안기관에서 전화를 걸어 ‘그런 식으로 글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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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재미없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요즘 자본가가 전화를 걸어 ‘연구비는 기대하지 마쇼’라고 하는 것 사이에는 억압의 방

식이 다르다는 차이밖에 없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로 수사를 받고, 그런 글을 게재한 사이트 운영자가 세무조

사를 받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억압방식의 혼합으로 보인다.

또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힘센 권력기관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소위 ‘상식’으로 여겨지는 다수의 가치관이 소

수자, 이른바 아웃사이더를 억압하기도 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벌떼같이 몰려 들여 초죽음을 만드는 일이 정보통

신의 발달과 함께 더욱 흔해졌다. 사상의 옳고 그름은 다수결로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열정과 두려움

없는 헌신을 통해서 증명되는 것 아닐까? 사상의 자유는 뜻이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보단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을 위한

자유의 원칙”이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빈부의 차이는 사회에 해가 되지만 사상의 차이는 해가 되지 않는다. 사상은 다

양할수록 오히려 자양분이 된다.

사상을 드러내지 않을 자유도

또한 사상을 드러낼 것이 자유라면 드러내지 않을 자유도 마찬가지로 자유다. 가령 적극적인 집필 활동으로 권력을 비판

하는 작가도 있을 수 있고, 권력에 아첨하는 구린 글들이 판칠 때 거기에 끼어 삶을 도모하느니 조용히 펜을 꺾는 작가

도 있을 수 있다.

내 생각을 편견 없이 들어줄 사람들 앞에서는 자유롭게 드러낼 사상이지만, 그 사상을 이유로 나를 괴롭히려는 공안기구

의 수사관 앞에서는 꼭 그럴 이유가 없다. “너, 그런 생각 하는 것 맞지? 다 알고 있는데, 왜 비겁하게 네 사상을 숨기고

그래?”라고 내 속을 훤히 안다는 식으로 나와도, “네 사상이 떳떳하면 밝혀야 하는 거 아니야? 못 밝히는 건 뭐가 구린

거 아냐”라고 아무리 을러대도 거기에다 내 사상을 고해바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양심수들은 이런 협박을

많이 받았다. 그에 대해 한 양심수는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권력 앞에 게워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강제로 사상을 따

져 물을 권리는 없으며 대답할 의무도 없다.

사실,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 내 마음 깊은 곳의 자유 자체가 그리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불 속에서 나

혼자 야광시계를 들여다보는 것과 커다란 들판의 암흑 속에서 야광시계를 꺼내들고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일은

다르다. 진짜 어려움은 사상이 ‘표현’될 때, 사상이 ‘조직’될 때, 그리고 표현된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할 권리를 주

장할 때 생긴다. 여기서 사상의 자유는 다른 인권과 결합된다. 즉,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정치 활동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 등이다. 이들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분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함께 있어야 실현될 수 있다.

종교의 자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가 나란히 말해지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처지에 따라 생각이 다르다. 무신론인 사람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종교의 자유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고, 아주 종교적인 사람들은 사상과 양심이 종교에 부수적인 것으로 본

다.

어쨌든 인권의 탄생과 논쟁의 무대는 서유럽의 근대였고, 여기서 종교의 자유를 둘러싼 대립은 인권의 전개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근대 유럽의 종교․과학․정치혁명은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정당한 사회질서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

각을 격렬하게 바꾸었다. 그런데 이들 사회에서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세례부터 장례까지 인간의 모든 활동을 교회

가 이끌었고, 기독교는 영원절대의 보편적 진리를 내세운 종교였다.

그런데 사회전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교회권력이 순기능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신앙은

이단으로 색출됐고, 지옥불의 심판에 앞서 현실에서 고문과 화형 등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단 심문 법정과 종교 재판

소는 공포 그 자체였고, 이교도란 이유로 유대인과 인디언에 대한 학살이 벌어졌고,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신앙의 방식

을 둘러싸고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수십만 명이 종교 때문에 망명하고, 책이 불태워지는 일 등이 벌어졌다. 가령 1600

년대에 ‘지구가 돈다’고 생각한 갈릴레오는 종교 재판소에서 자신의 신념을 철회해야 했고, 그의 책은 오랫동안 금서목록

에 올라 있다가 1988년에서야 로마교황청이 갈릴레오의 명예회복을 선언했다. 신교도를 억압하기 위한 법률은 심지어 자

녀들에게 부모의 종교에 대해 당국에 고해바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전통교의에 도전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외치지 않으면서 인간이 ‘내면의 자유’를 갖는다는 건

가능하지 않았다. 따라서 근대 서구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의 자유의 선구자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감히 질문하지 못했던 진리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길 원했고, 알기 위해 대담해지려 했다. 근대 서구를 풍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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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던 ‘계몽’이란 말은 ‘빛’의 은유법이다. 관습, 미신,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정신의 어두움을 타파할 수 있는 ‘빛’에 대해

갈구하는 사람은 정치로부터 종교까지 모든 것에 대한 대안을 생각할 수 있었다.

종교적 관용과 자유의 차이

그러나 종교에 대한 투쟁이 처음부터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획득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확립된 것은 ‘종교적 망명’의

권리였다. 이것의 전제는 ‘국가가 국교를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군주가 선택한 종교가 맘에 안 들면 떠나는

것은 봐주겠다. 하지만 떠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감수하고 살 각오를 하라’는 것이 종교적 관용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종교적 관용은 자유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주는 사람 맘이기 때문이다. 관용해주는 권력은 관용하지 않을 수도 있

기 때문에, 관용이나 불관용이나 그게 그거인 것이다. 어떤 의견, 신앙 또는 종교적 행위는 승인해주고, 다른 것은 용인

도 승인도 하지 않는 국가정책이 종교적 관용이었다. 관용은 특정 종파에게만 허락되거나, 설령 신앙 행위가 관용되었다

할지라도 특정 종파의 사람은 공직에 취임하거나 특정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대학에서 학위를 받을 수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박해가 오히려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회의를 크게 만들어갔다.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느냐 아니냐는 국가의 권한이 아니다. 진실한 신앙에 대해서는 신과 나 사이에서만 알 수 있는 것

이다. 국가의 임무는 사람들의 사회적 이익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있는 것이지, 정부의 기능인 형벌의 부과라는 외면

적인 힘으로 사람들의 내면적 확신을 없앨 수도 없고 생기게 할 수도 없다. 박해는 많이 해봤지만 무고한 피만 흘리지

않았는가?’

이런 회의는 조직된 교회를 멀리하는 대안 활동들로 옮겨졌고 사람들은 점점 더 종교를 공적이고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으로 여기게 됐다.

이제 비로소 ‘종교적 관용’은 인권이라 할 수 있는 ‘종교적 자유’로 나아가게 된다. 이제 국가와 교회는 분리되고, 국가가

종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는 국가권력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개인

의 내면적 자유가 된 것이다.

종교 갈등으로 서로 피를 흘릴 때 사상가들은 이렇게 호소했다.

“신의 이름으로 만행을 자행하지 말고 종교적 관용의 정신을 견지하라.”

“인류애와 종교 자유에 입각하여 폭력을 자제하라.”

“모든 인간은 종교와 상관없이 권세, 존엄, 권위, 위엄에 있어 모두 하나이고 동등하다!”

몇백 년 전의 이런 외침들은 종교 갈등이 세계 곳곳에서 화약고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특정 종교 강요는 인권침해

그런데 근대 서구에서 확립된 개인의 종교적 자유란 어디까지나 ‘기독교’란 테두리 내에서, 개별 시민과 국가 권력 간의

관계에서 생각된 것이었지, 이교도나 무신자에 대해서까지 너그러웠던 건 아니었다. 따라서 다문화성을 증진시키려는 오

늘날, 종교의 자유를 생각할 때는 예전보다 더 단계를 높일 필요가 있다.

가령 많은 비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활동과 개종 압력을 인권침해로 여긴다. 종교를 갖지 않을 권

리도 있으며, ‘공공영역에서의 모든 개종 권유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종교의 자유의 의미다.

흔히 자기네 종교에서 개인이 벗어나려 하는 것은 억압하면서 타종교에 대해서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타종교 속

에서 그 종교의 관행을 거스르거나 벗어나려는 개인의 선택을 향해서는 종교의 자유라고 옹호하면서, 타종교의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자신들이 갖는 신앙의 의미를 드러내 보이면 ‘종교 근본주의’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이 국제적인

종교충돌로 비화되곤 한다.

종교의 자유는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면에서는 개인의 권리이지만, 같은 종교로 결연한 사람들이 그 속에서 통합

된 느낌을 가진다는 점에서 집단적 권리이기도 하다. 종교인은 개인으로나 집단으로나 자신들의 명예와 이미지를 언론,

공공당국, 타문화로부터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국제인권기준에서는 ‘특정종교에 대해 종교적 증오를 고취시키

는 것’은 종교나 신앙의 표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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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조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간섭받지 않고 의

견을 가질 자유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고, 전

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사상의 자유의 역사는 불의에 대한 저항 때문에 이어져왔다. 권력자들은 저항의 원천이 되는 자유로운 사상과 자신들의

본질을 파헤치는 논증의 힘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갖은 수단으로 사상의 자유를 못살게 굴었지만, 박해는 회의를 부르

고, 회의는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을 무너뜨려왔다.

그런데 사상의 자유의 적은 박해라는 확실한 얼굴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강제가 아닌 척, 조용하게 은밀히 다

가오기도 한다. ‘사상은 싫어, 이데올로기는 싫어’, ‘너무 이데올로기적이잖아’ 식의 거부도,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자’는 식

의 주장도 그 자체로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사회공동체의 어떤 요구에 대해서도 ‘난 몰라, 난 싫어’를 외치며, 국가권력의 간섭만이 아니라 공적인 것을 위한 집단과

결사 일체를 거부하는 극단이 나타날 수도 있다. 획일성에 반발하는 것과 공적인 것을 위한 결연을 구분할 줄 모른다.

자유는 개성의 구현을 위한 필수품으로 여기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집단과 결사 자체를 부당한 간섭이나 귀찮은 것으

로 여긴다면 형식적으로는 자유이지만, 선택다운 선택을 할 수 없는 자유롭지 않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모든 형사법적 명예훼손은 철폐돼야[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19조 의견과 표현의 자유

‘화씨 451’이란 미래 공상 소설이 있다. 이 소설 속 시대의 사람들 대다수는 자기들 집의 방마다에 있는 커다란 TV 화면

으로 지루하고 시시한 드라마를 보면서 상당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처형당한다. 국가가 고용한

소방관의 임무는 모든 책을 추적해서 불태우는 것이다. 온도를 따질 때 섭씨와 화씨가 있는데, ‘화씨 451’이란 이 책의

제목은 바로 종이가 불타는 온도를 말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체포되어 투옥되고 처형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방관인데 자기가 태워버려야 할 책을 읽으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다. 결국 당국으로부터 도망칠 수밖

에 없고, 시골에 숨어사는 지하 집단 속에서 피난처를 구하게 된다. 이 지하집단은 문학 유산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즉 세계 고전 문학의 일부 또는 전체를 각자 맡아서 외우는 임무를 나눠 갖고 있다. 간단한 줄거리지만, 역사상

실제 벌어졌던 표현의 자유 억압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소설이 쓰인 시기가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판친 1950년대였

기에 더욱 그렇다.

책이 불타는 온도 화씨 451도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자유(freedom)의 상실이 자유(liberty)의 대가”라 했다. 각 시대는 그것만의 지배적인 세계관을 갖

고 있고, 그 세계관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정하곤 했다. 의견과 표현을 승인할 때는 ‘의견’이라 불렀지만, 지배적인 세

계관이 그것을 싫어할 때는 ‘이교, 이단, 반역’ 등으로 불렀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의 역사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목

이 잘릴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쓴 자유 상실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은 항상 소수자로 인식되고 소수자 지위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더 큰 목적을 성취하리라

생각되는 것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는 다른 자유들과 인권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표가 됐다.

흔히 표현의 자유가 부정될 때는 ‘뭔가 더 큰 폭력과 독재의 위험이 닥치리라’는 전조인 것이다.

인권에서 중시하는 자유가 세상의 모든 자유를 다 긁어모은 것은 전혀 아니다. ‘뭐든지 내 맘대로’식의 자유도 아니다.

인권에서 옹호되는 자유는 모든 사람의 권리 존중과 어울릴 수 있는 자유이다. 그래서 많고 많은 자유들 중에서도 아주

특수한 자유들만이 인권의 목록에 올라있다. 각자의 자유를 일종의 선하고 바람직한 목적을 위해 특정하여 구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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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할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인권으로서의 자유이다. 의견과 표현의 자유가 바로 그런 자유이다.

세계인권선언은 표현의 자유가 전체주의의 첫 번째 표적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배경으로 시민들이 정부와 국가들을 비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부정적인 측면만 생각한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단지 억압을 반대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좋은 거버넌스의 기초이며 전 사회의 문화적 풍요를 능동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권리라고 봤다.

그래서 19조는 ‘정보의 자유’로서의 표현의 자유 또한 강조하고 있다.

정보의 자유로서 표현의 자유

정보와 언론의 자유가 유엔헌장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 중요성은 유엔창립을 위한 샌프란시스코 회의의

토론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유엔은 1946년 제1차 총회 결의안에서 정보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으로 선포하고 유엔이 존중

하는 기타 모든 자유의 초석이라 했다. 덧붙여 정보의 자유에 관한 유엔회의를 가질 것을 경제사회이사회에 요청했다.

정보의 자유에 관한 유엔회의는 1948년 3월과 4월 사이에 제네바에서 열렸으나 전후 냉전 속에서 회의의 분위기는 아주

정치적이었다. 한쪽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에 초점을 두고 다른 한쪽은 ‘균형 잡힌’ 정보의 흐름과 정보의 교환을 주장

했다. 이후로도 국제사회는 의견과 표현, 정보의 자유 개념을 다듬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유엔 총

회 의제에 정보의 자유에 관한 국제협약의 초고가 등장했지만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세계인권선언 19조에서 부딪친 문제는 표현의 자유 제한에 관한 것이었다. 소련 측은 “미국 언론과 유럽의 모방적인 언

론이 침략정책을 옹호해왔으며 심리전을 수행해왔다. 이들 언론은 국내에서는 민주세력을 분쇄하고 다른 국가들을 위협

한다”면서 ‘침략의 선전’을 위한 표현의 자유는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소련안은 부결됐다. 통제되는 언론을 만들 것이

라는 이유에서였다. 19조에는 어떠한 권리의 제한요소도 붙지 않았다.

선언 이후 만들어진 시민․정치적 권리규약에는 “전쟁을 위한 어떠한 선전”이나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

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법률에 의하여 금지된다”는 규정이 들어갔다. 여기서 ‘전쟁’이란 단어의 의미

를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침략전쟁’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그밖에도 규약에는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보건, 도덕 등의 제한 요소가 들어갔는데 하나같이 정의하기가 어렵고 권리

침해에 오․남용될 소지가 큰 개념들이다. 이에 국제법률가 위원회는 이들 제한 규정을 해석하기 위한 회의를 갖고 1984

년 ‘시라쿠사 원칙’(Siracusa-principles)을 채택했다. 또한 1995년에는 국제법 전문가들이 ‘국가안보와 표현의 자유 및 정

보접근에 관한 요하네스버그 원칙’을 채택했다. 여기서 기본 원칙은 "누구도 자신의 의견이나 신념으로 인해 어떠한 강

제, 불이익이나 제재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의 평화적인 행사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

으로 간주되어서는 아니 되며, 어떠한 규제나 형벌도 과해져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흔히들 금기시 여기는 '정부를 바

꾸자는 표현, 국가나 국기를 모욕하는 표현, 징병반대, 전쟁반대' 등의 표현도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아니하는 표

현"이다. 이런 걸 다 제하고도 제약할 의사표현이 있다할 경우라도 정부가 지켜야 할 전제조건과 정부가 져야 할 입증책

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반대자에 침묵 강요는 안 돼

국제사회의 최근 논의와 관련하여 ‘의견과 표현의 자유 권리보호와 증진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Ambeyi Ligabo)이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자.

보고관은 ‘명예훼손, 중상, 모욕’ 혐의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현상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명예훼손, 중상과 모욕의

혐의가 공적 인물, 특히 국가 당국으로부터 기인할 때는 어떠한 형태의 사전 검열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명예

훼손은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국가정체성, 종교, 국가 상징, 기관, 국가의 수장’ 등 주관적 가치나 제도를 보호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했다. 명예보호를 명목으로 탐사 저널리즘을 억압하고 비판을 침묵시켜서는 안 된다.

특별보고관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제한에 대해 조건을 언급했다. 첫째 제한은 법으로만 수립되며, 둘째 그 법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 목적을 추구해야 하며, 셋째 목적의 성취에 비례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유형의 제한이건 사전

검열을 정당화해서는 안 되며, 비판을 제한하거나 반대자를 침묵시키기 위해 이용돼선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예방 구금을 하고, 언론인의 소득에 부합되지 않는 과한 벌금을 부과하고, 언론자격의 유예, 미디어 송출의 유예

또는 폐쇄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형사법적 명예훼손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당한 제한

이 아니다. 모든 형사법적 명예훼손은 철폐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별보고관이 특히 촉구한 것은 인터넷에서의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조치의 확대이다. 특히 웹사이트 투고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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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상호교통의 권리이자 의무

(아래 내용은 전규찬 한국예술종합대 영상원 교수의 인권연구소 ‘창’ 강좌 내용 중 일부를 재구성했다. 전교수는 표

현의 자유를 ‘교통(communication/intercourses)의 권리’라 표현했다.)

세계인권선언 18-20조는 떼어낼 수 없는 한 덩어리이다. 앞서 살펴본 18조는 생각의 자유(사상․양심의 자유)를, 19조

는 표현의 자유를, 20조는 생각과 표현을 타인과 더불어 함으로써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집회와 결사의 자유)을 말한

다. ‘생각+표현+행동’의 권리라 할 수 있다.

인간 간의 상호교통 없이 사회가 존속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개인의 자유일 뿐 아니라 타

자와 만나고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의무이기도 하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개인을 억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회의 붕괴와 해체를 획책하는 야만이다.

말하거나 쓰는 표현은 막을 수 있어도 생각하는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표현’을

통해 다른 사람과 상호교통하지 않는 생각이 잘될 리도 없고 정확할 리도 없다. 표현을 통해 자유롭고 공개적인 검

토가 가능해야 진짜 자유로운 생각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롭고 공적인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권력은 생각

할 자유 또한 박탈하는 것이다.

‘생각․표현․행동’의 자유를 합친 것이 언론의 자유다. 언론은 생각을 말로써 논한다는 것이며, 세계인권선언에서

이들 권리를 모든 사람의 권리로 얘기한 건 곧 인간 자체가 언론인이란 뜻이다. 그래서 언론하면 무슨 신문과 방송

부터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언론으로부터 소외됐다는 증거다.

소위 ‘찌라시’라고 불리는 신문들은 언론이 아니다. ‘매체’라고는 할 수 있다. 매체인 건 맞는데 논하는 것, 즉 토론을

방해하기 때문에 선전매체이지 언론이 아니다. 오직 우리가 대화를 할 때에야 선전은 멈춘다.

표현의 자유는 상호대화이고 교통이다. 권력자가 ‘소통의 부재’를 불평하는 것은 그가 말의 의미를 몰라서이다. 교통

은 상호적으로 더불어 하는 것인데, 소통은 ‘네가 오해했다. 오해를 풀어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의사교통을

하는 사람들이 의견교환을 통해 공개적으로 잘못을 검증했고 비판을 했다. 공동행동에도 나섰고 대안도 제시했다. 언

론의 자유를 제대로 구현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소통의 부재’를 탓하고, 의사교통을 방해하기 위

해 언론 때려잡기에 나섰다.

언론의 자유는 진실을 향한 용기, 두려움 없는 발언이다.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권력이 싫어하

는 진실에 기초해 권력을 솔직하게 비판할 의무를 수행한다. ‘PD수첩’이 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권력과 충돌하

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모두가 진실이라 우겨 말할 때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에 화답하는 것은 생각․

표현․행동의 자유를 가진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블로거들에게 다른 유형의 미디어와 같은 수준의 보호가 제공돼야 한다고 했다.

특별보고관의 결론은 간단하다. “지속적인 사상의 대결은 민주사회의 디딤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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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조

1. 모든 사람은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어떤 결사에 소속될 것을 강요받지 아니한다.

제21조. 정부에 참여할 권리

1. 모든 사람은 직접 또는 자유롭게 선출된 대표를 통하여 자국의 통치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다.

2. 모든 사람은 자국의 공무에 취임할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3. 국민의 의사는 정부의 권위의 기초가 된다. 이 의사는 보통 및 평등 선거권에 의거하며, 또

한 비밀투표 또는 이와 동등한 자유로운 투표 절차에 따라 실시되는 정기적이고 진정한 선거

를 통하여 표현된다.

인민의 참정권 보장의 절정인 봉기권[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20조 집회․결사의 자유, 제21조 참정권

“못살겠다, 갈아보자”, “부정선거 다시 하라, 이대통령은 하야하라”(4.19)

“계엄 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 “금남로로 가자”,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5.18)

“호헌철폐, 독재타도, 민주쟁취”(6.10)

“노동 3권 보장하라”, “저임금 박살내자”, “최저임금 보장하라”, “근로기준법 파업권 쟁취하자”(1987년 7, 8월 노동자 대

투쟁)

“미친 소, 미친 교육 싫다”, “2MB 퇴진”, “조중동 폐간”(2008 촛불시위)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어온 중요한 줄기에는 언제나 집회와 결사가 있다. 이건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마찬

가지다. 자유와 생존의 박탈에 대해 항의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 뭉쳐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는 언론매체의 독점 집중

현상 때문에 일반 대중의 의사표현, 그중에서도 노동자․농민․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의사표현은 소외되기 쉽다.

집회․결사는 단체와 네트워크를 만들거나 집회․시위 같은 집단행동을 통해 인민 스스로가 표현의 장을 만들어내는 것

이다. 또한 이렇게 표출되는 의견과 행동은 대개가 지배 체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민주주의의 보

장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예’가 아니라 ‘아니오’가 있어야, 다수자의 지배에 맞선 사회적 소수자의 의견과 요구가

있어야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건강성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집회․결사는 대의제를 취하고 있는 사회에서 참정권의 한계를 적극적으로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몇 년

에 한 번 있는 선거만으로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일거에 판명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지속적인 감시와 평가가 필

요하다. 민주사회에서 특히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국가권력을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이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정치적 권리의 핵심

세계인권선언 제18조, 제19조(사상․양심․표현의 자유)와 제21조(참정권)와 더불어 집회․결사의 자유는 정치적 권리의

핵심이다. 이들 권리는 로빈슨 크루소에게는 의미가 없다. 홀로 고립된 개인이 행사할 수 없는 권리이다. 이들 권리는 개

인들의 참여와 민주적 과정을 통해 합리적이고 집단적인 의사형성을 가능케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집단적인 권리행사가 필요한 것은 개인의 인권을 위해서이다. 상호의존성이 깊은 현대 사회에서 고

립되고 홀로인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개인은 위험스러울 만큼 취약하다. 개인들은 자신의 개인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결사해야만 한다. 민주주의는 정치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종교는 교회와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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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저런 형태의 결사가 우리의 경제적, 과학적, 예술적, 종교적, 교육적 삶에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결사의 자유라고 해서 개인의 인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사의 자유를 명목으로 어떤 결사체 또는

집단이 개인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거나 개인의 자유를 막아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운동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결사의 자

유 없는 노동조합운동이란 있을 수 없다. 단체협약권, 파업권,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가 모두 결사의 자유에 달려있다. 그

런데 이런 단결에는 단결하는 개개 노동자의 사상의 자유가 내포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집회와 결사는 ‘개인 대 국가’만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사회-국가’의 관계를 가능케 한다. 고전적인 인권관에서는 개인과

대립되는 국가권력의 관계만을 설정하고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만을 인권으로 쳤다. 이럴 때 문제는 인권이 과도하게

국가만을 강조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국가가 기본권으로 설정한 문제만을 인권에 국한시키려 들고, 정치적 억압으로부

터의 자유만을 강조할 뿐 자유의 토대가 되는 경제사회적 문제들을 소홀히 하게 된다. 인권은 국가권력만이 아니라 이런

저런 사적권력, 즉 기업이나 사학․복지․종교재단 등에 의해서도 침해된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개인 대 국가만의 관

계에 갇힌 인권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의의가 있다.

금지 또 금지

그러나 막상 집회․결사의 자유를 써먹으려면 가슴이 두근두근 떨린다. 전경차로 에워싼 차벽, 검문검색의 장벽, 미란다

원칙이고 뭐고 없이 독수리가 사냥하듯이 사람을 낚아채가는 연행방식, 이어지는 벌금과 구속 등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

고서는 나설 엄두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집회․결사의 자유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이어지는 것 자체가 정의를 향한

인간의 의지와 용기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집회․결사의 자유가 갖는 초라한 처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넘쳐난다. 한때 이런 얘기가 떠돈 적이 있다.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이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알았다’고 하자 한국인이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길거리에 할 일없

이 서있는 청년들이 너무 많더라는 거였다. 그 외국인이 목격한 청년들은 집회장 주변에 배치된 사복경찰들이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한국이 민주화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비상사태냐?’고 묻더란다. 이번엔 도심에 즐비하게 방패와 헬

멧으로 무장한 전경들을 보고 한 소리다.

집회와 결사가 허락받는 것이어서는 인권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국제인권기준이나 헌법도 ‘허가제’가 아님을 못 박고 있

다. 그런데도 경찰이 마음먹기에 따라 허가해 줄 수도 안 해 줄 수도 있다는 식으로 운영한다. 집회를 하는 사람들을 차

벽을 둘러 방해할뿐더러 의사표현이 전달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고 고립시킨다. 툭하면 소위 ‘확성녀’라 불리는 경찰 스

피커를 통해 불법 운운하며 해산을 강요하고 연행하겠다고 협박한다. 법에 따르면 도무지 집회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없

다. 이곳은 관공서 앞이라 안 되고 저곳은 대사관 앞이라 안 되고 이쪽은 주요도로라서 안되고 저쪽은 공원이라서 안 되

고 식이다.

촛불집회에서 경험했듯이 일몰시간 이후에는 안 된다고 한다. 이에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들으니 밤에 집회할

수밖에 없고, 학교와 직장을 관두지 않는 이상 밤에 모일 수밖에 없다고 시민들은 맞받아쳤다.

경찰의 방패와 곤봉 사용으로 집회와 시위 중에 사망하신 분들이 꽤 된다. 사실상 ‘맞아 죽었다’는 말이 정확하다. 방패

를 갈아서 시위자의 이마와 머리를 내리 찍는 관행이 지적된 지 오래다. 좁은 곳에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경찰이 방

패로 밀칠 때 압사의 공포를 느껴본 사람들도 많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호흡과 같은 집회․시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라는 인권을 행사하는데 경찰이 왜 꼭 나와야 할까? 그런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시위대보다 더

많은 경찰력이 민생치안을 위한 것도 아닌데 꼭 시위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경찰차량의 대량주차로 인해 오히려 교

통을 방해하고, 위협적인 경찰력이 현장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런저런 충돌의 원인이 되고 있다. 오히려 폭력적인 충돌

을 기대하거나 조장하고 있다고 의심될 정도다. 교통흐름을 도울 정도의 몇 명만 있으면 될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 갔을 때의 경험이다. 태국인 친구와 노동단체 방문을 마치고 시내를 걸어보기로 했다. 걷다가 어느 집 문

패 앞에서 우린 깜짝 놀랐다. 분명 백악관, white house라 써 있었다. 경찰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저런 피켓을

들거나 목에 건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었다. 청와대 앞 분수대

에서 피켓을 들었다가 바로 연행돼 파출소로 갔던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백악관 앞 시위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

다.

집회․결사의 자유의 초라함의 극치는 1인 시위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부터 한국 사회에는 ‘나 홀로’ 피켓을 들고 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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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한데 어깨를 걸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정석이란 걸 몰라서가 아

니다. 집회와 시위가 차고 들 수 없는 금단의 땅에 발 한번 붙이기 위해, 걸려들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는 거미줄 법망

을 피해 마련한 궁여지책인 것이다. 혹자는 평화시위의 모범이자 새로운 집회문화라고 치켜 올리기도 했지만 1인 시위는

분명 한데 모일 수 없고 한 목소리로 외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에 불과하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권리가

온전히 숨 쉴 수 있다면 결코 필요치 않은 인공호흡기에 불과한 것이다.

집회결사를 불편하고 시끄러운 것, 교통을 방해하고 장사를 위협한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불편이 따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약간의 불편 때문에 ‘호흡’을 멈출 수는 없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호흡이다. 어떤

경우에도 숨쉬기를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사소한 메모쪽지 하나도 대서특필되는 정치인과 재벌들이 이 권리를 애지중지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의사표현의 효

과적인 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집회․결사의 자유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뿐이다. 집회․결사에 의한

의사표현은 빼앗기고 무시당하고 외면 받은 사람들의 유일한 타종 수단이고, 우리 사회의 병폐와 처방을 얘기할 수 있는

공공의 광장이다. 집회․결사를 가로막는 것은 그런 타종 수단을 박탈하고 공공의 광장을 폐쇄하는 행위다.

인민의 의사는 정부 권위의 기초

세계인권선언 제21조의 핵심은 “인민의 의사는 정부의 권위의 기초”라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권리를 열거하는 게 아니

라 헌법적 규정의 성격을 가지며 인권이 촉발된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위장된 정부의 신탁위반행위에 대한 판단자는 인민이다’, ‘사회계약에 의해 성립된 국가의 권력은 인민의 권력으로서 모

든 시민의 참가에 의하여, 모든 시민의 이익을 위하여 행사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근대 시민 혁명가들의 지론이었

다. ‘모든 권력은 인민의 것이며 인민으로부터 나온다. 집행관은 인민의 수탁자이며 봉사자이고 인민에게 책임을 진다’(버

지니아 권리장전), ‘모든 주권의 연원은 본래 국민에게 있다. 어떤 단체나 어떤 개인도 명시적으로 국민에게서 유래하지

않는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는 원칙은 헌법보다 앞선 것이었다.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 모두가 달달 외우게 됐고, 가슴에 사무치게 된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그런데 이 원칙은 귀에 듣기 좋고 입에 담아 멋있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몇 년에 한번 있는 선거 때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시켜줘야 지켜질 수 있는 원칙이다. 까딱하면 인민의 의사를 수임 받았으니까

모든 권력행사가 정당하다는 구실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쿠데타를 했느냐, 정당한 선거로 뽑혔다, 그러니 나는 정당하게

권력을 집행하는 것’이라며 통치자가 오만해지고 주권자들이 직접 나서서 이것저것 챙기려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봉쇄하

는 장치로 이용될 수도 있다.

이런 한계를 담은 것이 근대부르주아헌법의 참정권의 특징이었다. ‘주권은 국민에 속한다.’고 했을 때 적어도 주권이 군

주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확인됐다. 그런데 이 주권을 가졌다는 것이 말로만 그럴싸했다. 주권의 보유자는 국민이지만

주권의 행사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주권을 가졌다는 국민은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생각된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덩어리로서의 국민이었다. 이 추상

적인 덩어리로서의 국민은 주권을 나눠가질 수도 없고 주권행사에 참가할 권리도 없다. 구체적인 누군가에게 권력을 위

임해야만 비로소 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선거는 필수불가결한 제도였다. 선거를 시민의 권리행사로 본 것도

아니었다. 국민주권의 일부인 의원임명권의 행사, 즉 공무집행에 불과한 것이라 봤다.

그리고 그 선거는 제한선거제였다. 모든 사람이 선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능동시민으로 분류된 이들만이 할 수 있었

다. 여자는 포함 안 됐고 남자 중에서도 재력이 있는 자만 가능했다. 곧 일정 수준 이상의 납세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

중에서도 상당한 재력가를 뽑는 것이 선거였다.

그리고 일단 선출된 대표에 대해서는 유권자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의원이란 자신을 선출한 선거구의

대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대표’니까 선거인과 선거구의 명령에 구속받아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따라서 유권자는 자기가

선출한 대표에게 특정한 무슨 일을 하라고 명령해서도 안 되고, 일을 못한다고 소환해서도 안 된다. 책임지는 것은 다음

선거에서 평가를 받는 형태의 정치적 책임일 뿐이었다. 따라서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말은 선출된 대표가 정당성을

갖는 근거가 국민에게 있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근대의 민중 참정권론은 주권행사를 권리로 여기고, 공무취임에 대한 기회의 불평등과 압제에 대한 봉기권

을 주장했다. 앞에서 말한 국민주권론과 대비하여 인민주권론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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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를레의 엄숙선언

압제에의 저항은 귀중한 봉기의 권리이다. 봉기의 권리는 오로지 필요라는 법 이외에는 인정해서는 안 된다. 국왕,

전제군주, 독재자, 야심가, 지배적인 음모가, 폭군 등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든 그에 의하여 국민의 주권이 찬탈되어

침해당할 경우 압제는 존재한다. 군대나 무력이 국가 안에서 우월할 경우 압제는 존재한다. 사회계약이 정한 한계를

창설된 여러 기관이 일탈할 경우 압제는 존재한다. 국민의 공금이 소비되고 국비의 소비가 사회의 빈곤을 극대화할

경우 압제는 존재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일제봉기야말로 독립을 보장하는 것, 권리 중 가장 정당한 것, 의무 중

가장 신성한 것이 된다.

삭제된 억압과 전제에 저항할 권리

여기서 유권자인 인민은 추상적인 덩어리로서의 국민과는 다르다. 인민은 주권을 소유할 뿐 아니라 직접 행사한다. 유권

자의 의사는 유권자 개개인에 의해 n분의 1만큼 존재한다. 대의제도를 취할 수도 있지만 최선이 아니라 차선으로 선택할

뿐이다. 소환권 등 유권자의 참정권은 기회가 되는대로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선거는 보통선거제도이며 유권자의 권리

행사이다. 면책 특권의 부작용을 방지하고 유권자가 정치에 긴밀하게 참여하기 위해 선출된 대표는 유권자의 의사 테두

리에 묶여 있어야 한다. 따라서 대표는 자기를 선출한 지역구 유권자의 의사 안에서만 대표권을 가지며, 지역 구민의 의

사에 따라야 하고, 유권자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만약에 유권자가 위임한 대로 하지 않으면 위임은 무효가 되며 위임

자의 의사에 따라 파면된다. 이것을 소환(리콜 recall)이라 한다. 또한 모든 공무원에 대하여 유권자는 일상적인 통제권과

파면권을 갖는다. 이런 성격상 인민주권론은 지방자치와 주민자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인민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서 중요한 권리가 정치적 의사표현과 집회의 자유보장이다. 그리고 그 절정은 압제에 대한 봉

기권의 주창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도 처음 21조를 만들 때는 ‘억압과 전제에 저항할 권리’가 문구에 있었으나 결국 전문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으로 약화돼 적당히 처리됐다. 선거의 방식이나 정당운영 등 세세한 방식은 각국의 선택사항으로 남겨놓고

있다. 제21조에 규정된 참정권이 식민지에 적용될 것 때문에 몸을 사린 식민열강 때문에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중

에 선언을 계승한 양대 국제인권규약의 제1조에 ‘자기결정권’이 들어간 것은 선언 제21조의 후손이라 할 수 있다. 자기결

정권이란 모든 인민이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고 경제, 사회, 문화적 발전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참정권의 확장

선언 제21조의 참정권은 오늘날의 위기 속에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위기라 함은 대다수의 생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사기업, 초국적기업, 국제금융기구 등)에 의해 민주적 의사결정과정 없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국가는 책임을 발뺌하고 사회안전망의 해체와 교육, 건강, 식량 등 필수적인 인권과 관계된 영역을 사유화하여 상품으로

만드는데 협조한다.

대중 참여에 대한 유엔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참여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지자체만이

아니라 다양한 반(半)공공, 반(半)사적 기관과 장치들, 나아가 모든 공익의 결정과정을 포함하는 것으로 선언 제21조에서

말한 ‘자국의 통치’의 의미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내의 자결권 테두리를 벗어나 세계적 차원으로 이를 실현할

과제가 있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인구는 국적과 시민권보다는 거주에 기초하여 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선언 제21조를

다시 쓴다면 “법적 연령의 모든 사람은 국적과 무관하게 관습적으로 거주하는 곳에서 행해지는 모든 선거과정과 의사협

의와 결정에서 참정권을 가질 권리가 있다.”일 것이다.

참정권은 비차별 원칙을 지켜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참정권을 똑같이 고려하지만 성(젠더)을 고려한 기준에는 몇 가지

특수한 추가가 있다. 1979년 여성차별철폐협약은 남성과 동등한 조건으로 다음의 권리를 여성에게 확보할 국가의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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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조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적 노력과 국

제적 협력을 통하여 그리고 각국의 조직과 자원에 따라 자신의 존엄성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

을 위하여 불가결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의 실현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 모든 선거 및 국민투표에서의 투표권 및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모든 공공기구에의 피선거권

․ 정부정책의 입안 및 정책의 시행에 참여하며 공직에 봉직하여 정부의 모든 직급에서 공공직능을 수행할 권리

․ 국가의 공적, 정치적 생활과 관련된 비정부기구 및 단체에 참여할 권리

․ 국제적 수준에서 그들 정부를 대표하며 국제기구의 업무에 참여할 기회의 확보

경직된 이분법을 깨뜨리는 일도 중요한 인권투쟁[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22조 사회보장권과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실현에 관한 권리

사람의 삶은 불안의 연속이다. 소득이 끊긴다는 것은 전기와 수도 등 기초적인 필수물의 공급중단, 학업 중단, 주거 불안,

건강 불안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끊어놓는다. 가족관계를 포함하여 많은 사회적 관계들이 거센 파도에 따라 출렁거

리게 된다. 지금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몇 번씩의 큰 고비를 넘어야 했을

것이다. 살던 집이 넘어가고 모든 저축과 보험을 해약해야 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고비 말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외면하는 것이 인권이라 할 수 있을까?

해체해야 할 인권의 범주

인권은 이런 저런 이름과 범주로 나뉜다. 어떤 식으로 나누는지부터 알아보고 그 문제점을 생각해보자. 흔한 구분은 자

유권과 사회권식으로 나누는 이분법이다.

먼저 자유권은 권력에 대항하여 발전한 고전적 인권으로서 주로 국가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다. 자유권은 다시 시민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로 구분된다. 시민적 권리는 국가권력이나 타인의 간섭으로부

터 침해돼서는 안 되는 개인의 삶의 특정 부문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다. 신체적 보전에 대한 권리, 자유와 안전에 대

한 권리, 정당한 절차와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 등이 포함된다. 이런 시민적 권리가 가만히 앉아서 보장될 수는 없다. 권

력이라는 건 잠시만 틈을 줘도 인권보장이라는 제 본분을 망각하고 오만한 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적 권

리가 보장되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쉴 틈 없이 국가권력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해야만 하고, 주권을 행사하는데 참

여해야만 한다. 이런 것에 관계된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정치적 권리라 한다. 시민적 권리는 정치적 권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세계인권선언 21조까지의 권리가 자유권 또는 시민 정치적 권리에 속

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권은 인간의 기본적 생존을 보장하고 분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권리

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지배하는 사회 현실을 외면한 채 시민 정치적 권리만을 인권이라 했을 때 그 폐해는 컸다. 인권

이란 일부 가진 자만이 누리는 권리에 지나지 않았다. 인권의 역사에서 참정권은 재산에 따라 엄격히 제한됐고, 표현의

자유는 시장거리와 선술집에서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의사당 안의 의원들과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인신의 자유는

절차를 따지고 현란한 변호를 펼칠 수 있는 소수에게는 의미 있을지 모르나, 배고파서 빵을 훔친 이에게는 딴 나라 얘기

였다. 사회권은 이런 식의 인권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발전했다. 모든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사회는 그 권리의 실현을 위한 생활여건과 자원을 제공할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사회권을

다시 세분화하면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대개가 일을 해서 살아간다. 즉 누군가에게 일과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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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이 무지막지한 조건에서 강요돼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하고,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노동시간은 합리적으로 제한돼야 하고 휴가도 있어야 한다. 이런 권리들을 고용주

가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행동하고 고용주에게 다짐을 받아둘 권

리가 있다. 이런 권리들을 경제적 권리라 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일을 해서 생계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경

제적 권리만으론 충분치 않다. 우리 모두가 원하지는 않지만 아플 때가 있고 선천적 후천적 장애를 가질 수도 있고 일자

리를 잃거나 나이 들게 된다. 자기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왜

냐하면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인간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에 대해 부양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것을 사회적 권리

라 한다. 건강권, 주거권, 식량권,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교육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지금까지 말한 경제사회적 권리를

우리는 특정 공동체 속에서 누린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그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그

진보의 혜택을 같이 나눌 권리가 있다. 이것을 문화적 권리라 한다.

인권의 불가분성․상호의존성

뉴딜정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와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간결한 말로 인권을

표현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 된 인권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온전한 인권일 수가 없다. 정치적 독재는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불평등한 체제에 대한 불만을 억압하기 위해 자유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 배

고프고 몸 누일 곳 없고 일자리 없는 사람이 자유를 누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인권의 성격을 인권의 ‘불가분성’ 또

는 ‘상호의존성’이라 한다. ‘자유 없이 평등 없고, 평등 없이 자유 없다’는 말, ‘평등할수록 더 자유롭다’는 말, ‘자유 없는

평등은 노예의 평등’이라는 말이 다 이런 인권의 성격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권의 성격은 자주 무시돼왔다. 인권을 나눠서 편을 가르고, 한편은 인권으로 치고 다른 한편은 인권이 아

니라 사람들이 그냥 바라는 것, 욕망하는 것쯤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고질적인 인권의 이분법이다. 어떻게

편 가르기를 하는가 하면 인권의 한편을 ‘자유권’(시민․정치적 권리), 다른 한편을 ‘사회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이

라는 범주로 나누는 것이다.

이분 씨와 총체 씨; 누가 진짜 인권인가

자유권과 사회권, 인권을 이 둘로 나누고 자유권은 진정한 인권인데 사회권은 인권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인권을 괴롭혀왔다. 어떤 이유 때문에 나누기를 고집하거나 또는 총체적인 접근을 주장하는지 생각해보자. 두 입장을 편

의상 이분 씨와 총체 씨로 구분하고 얘기를 들어보자.

이분 씨: 사회권이라 말하는 권리들의 내용은 인간의 열망 또는 기대일 수는 있어도 권리의 자격을 가질 수는 없다. 사

회권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사회정책에 의해 그 수위가 결정되고 점차 달성돼야 할 사회적 목표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

을 권리라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약속된 진짜 인권에 물 타기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권에 위험하다.

총체 씨: 먼저 인권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인권이란 건 존엄한 인간을 가능하게 만드는 권리다. 무직, 배고픔, 질병, 무주

택, 문맹, 빈곤에 시달리는 인간이 존엄성을 존중받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회권은 인간 존엄성에 필수적인 것들에

관한 것이다. 이런 필수적인 것들이 없는 인간은 이분 씨가 ‘진짜’ 권리라고 가정하는 다른 어떤 권리도 충분히 누릴 수

가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고문과 검열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경제적 한계상황에서도 침해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권은

단지 ‘인간의 열망’이나 ‘기대’가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다. 너무나 기본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나머지 인류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당한 요구이다.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 가령 굶거나 아픈 사람에게 ‘치료받고

싶어요? 밥 먹고 싶어요? 그런데 당신이 치료받고 싶고 밥 먹고 싶은 것은 인권으로 인정받을 현실적 전망이 없어요.’라

고 하는 것은 심한 모욕이다.

이분 씨: 불평등한 것이 현실의 삶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실에서 보장 가능한 평등은 법 앞의 권리의 평등이요,

기회의 평등일 뿐이다. 노동이 불가능하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자선이나 기타 구제를 통해 도와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권리라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빈곤은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누가 누구의 자유를 침해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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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는 아니다. 그런데 국가가 사회권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삶에 간섭하는 것, 재분배를 실현하겠다고 시장의 자

율에 간섭하는 것은 자유를 억압할 뿐이다. 사회권을 실현하려면 국가가 재정을 제공해야만 하고 그 결과 국가기구의 비

대화를 가져온다. 이것은 자유에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총체 씨: 사회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재분배다 뭐다 해서 나서는 것이 자유의 침해라고 하는 주장은 자유에 대한 단단한

오해이다. 시장의 자유를 염두에 두고 이런 소릴 하는 것 같은데, ‘통제와 규율 없는 순수한 시장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다. 오히려 적절한 규율이 있기에 시장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경제학자가 아니어도 아는 상식이다. 시장의 자유라는

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지 시장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인간이 살기 위해 무역을 하는 것이

지 무역을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인권의 주인공은 인간의 자유이지 시장의 자유가 아니다. 인간의 자

기존중은 자기 신체와 정신에 대한 자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유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기본재이다. 그런데 이 자유

의 향유자가 생존 불가능하다면 자유는 비현실적이 된다. 자유가 현실화되려면 그것을 위한 사회적 조건이 필요하고, 의

식주와 아플 때 치료 등 그 조건을 규정한 것이 사회권의 내용이다. 자유를 누리는 것을 현실적으로 가능케 하는 생존의

기본재를 사회에서 분배받는 것 자체가 자유의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사회권은 자유보장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자

유의 보장이다.

이분 씨: 사회권에는 자원, 즉 돈이 많이 든다. 자유를 보장하는 일에는 국가가 간섭을 자제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돈 들

일이 없으니까 즉각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권 보장에는 경제적 자원과 국가의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데, 이것은 쓸

수 있는 자원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노력하여 점차 좋아지도록 하겠다고는 할 수 있지만 즉각적으로 보장할 의무

를 지는 권리일 수는 없다. 모자라는 자원 때로는 없는 자원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

이분 씨와 총체 씨; 사법심사가능성의 문제

총체 씨: 이분 씨가 자유권이다 사회권이다 구분하는 권리가 그런 식으로 똑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노동권은 자유

권이면서 사회권이다. 개별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위해 자유의사로 뭉칠 권리가 노동권의 자유권적 속성인데 왜 툭하면

정부가 개입하여 결사를 방해하는가. 교육권은 어떤가. 교육권에는 교육비, 학교시설, 교사고용 등도 중요하지만 교육의

내용을 정부 입맛대로 좌지우지해서는 안 되는 정신적 자유의 의미도 크다.

자유가 국가의 불간섭만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이분 씨가 중요시하는 자유가 보호되려면 국가가 보다 강하고 공격

적인 주체들로부터 이분 씨를 보호해줘야 한다. 가령 생명권을 생각해보자. 국가가 나서서 이분 씨에게 해코지를 해서도

안 되겠지만 제3자의 폭력과 학대로부터 이분 씨를 보호해줘야 한다. 건강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상품의 거래와 판매로부

터도 보호해줘야 한다.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건강보험제도 같은 것으로 기본적인 의료접근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어디까

지가 자유에 대한 간섭이고 어디까지가 자유에 대한 보호인가? 이분 씨는 그렇게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가?

없는 자원, 모자라는 자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말도 모순 된다. 사회권이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는 건

사실일지 모르나 자원이 들지 않는 권리란 없다. 안전권을 위한 경찰력의 유지가 맨손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공정한 재

판권을 위한 사법공무원도 돈 주지 않고 쓰는 것이 아니다. 사회권에만 돈이 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권리에는 돈이 든다.

반대로 큰 자원을 들이지 않고도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사회권의 항목도 있다. 가령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참가할 권리를

보장할 의무는 자원과 상관없이 즉각 효력을 가져야 할 권리이다.

이분 씨: 진짜 인권은 자유권의 내용처럼 재판을 통해 청구하고 구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권이란 인권은

모호하여 재판의 심사대상으로 삼기 어렵다. 사회권에 해당하는 내용은 입법과 행정부의 정책결정 권한에 속하는 문제이

므로 사법부가 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사회권은 어떤 정책의 불가피한 영향이나 개인의 행운과 불운, 개인의 선택에 따

른 결과 등 재판으로 따질 수 없는 성격의 내용을 담고 있다.

총체 씨: 사법심사가능성과 불가능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불가능성이 사회권의 특성인 것도 아니다. 모호함은 사회권

의 특성인 것이 아니라 일부 정교화된 권리와의 정도 차이일 뿐이다. 자유권 중에서도 모든 권리가 정교화된 것이 아니

라 법리는 계속 형성되고 있다. 인권은 어떤 권리를 꿈꾸고, 그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명문화하고, 실현하는 과

정을 밟아왔다. 오늘날 명백한 것으로 보이는 재판구제 사안도 그것이 시작될 때는 청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 구체

적 사건과 도전에서 시작됐다. 사회권의 사법심사가능성도 권리 내용에 따라 편차가 있고 국내외적으로 일정정도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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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내용도 많다. 따라서 자유권은 재판 가능하고 사회권은 그렇지 않다는 이분법은 시대착오적이다. 이에 대해 유엔 사

회권위원회는 “경제․사회적 권리가 법원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엄격하게 분류․채택하는 것은 자의적인 것이고, 두

종류의 인권이 나뉠 수 없고 상호의존한다는 원칙에 위배”될뿐더러 그렇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소외된 집

단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원의 권한을 현저히 축소시킬 것”이라 했다.

또한 현실에서 오히려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사법심사가능성이 아니라 사법제도 자체의 불평등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

리에 대한 판단과 구제를 사법심사에 의한 것으로 제한하여 생각하는 것은 인권에 위험하다. 가령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범죄형량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에 대해서는 박하게 해석하고 기업주의 재산권 위주로 유리한

판결을 해주는 것, 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제약을 솜방망이처럼 다루는 것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이다.

권리에 대한 구제를 재판에 의한 것으로 한정하는 것과 인권회복수단으로서 사법적 구제절차를 강조하는 것은 다른 문

제다. 권리에 대한 구제는 사법절차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각도로 모색돼야 한다. 가령 재산권이란 건 그 내용이 법

률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토지’ 같은 재산의 내용과 한계를 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재판가능성 만이 아니라 어떤 법률을 만드느냐, 어떤 권리를 우위에 두는 사회적 합의를 만드느냐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거권의 보장을 위해서는 법원명령이 없는 강제퇴거의 금지나 이에 따른 구제조치 뿐 아니라 주거현황에 대

한 실태조가, 최저주거기준이나 주거기본법 등의 마련, 주거권에 대한 인식 향상과 교육 등 다각도의 노력이 요구된다.

이분 씨: 권리라 할 때는 법적으로 그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고 실현할 의무 주체가 있어야 한다. 의무 주체가 이를 충

족시키지 못했을 때 인권침해라 한다. 하지만 사회권의 경우에는 의무주체가 모호하다. 뿐만 아니라 사회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 다양한 부문의 자발적인 원조, 동의와 협력이 절실한 데 거기다 대고 인권침해라고 지적하는 것은 찬물을

끼얹는 것이고 적절치 않다.

총체 씨: 가난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것과 가난은 인권침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흔히 사람들은 누군가가 고

문당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면 무의식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굶주리거나 도시빈민이

살던 곳에서 내쫓길 때 세상은 누군가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름 없는 경제개발의 힘 또는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가난의 불가피성을 탓한다. 더 심하게는 그런 암울한 운명을 자초한 것은 피해자들 자신의 탓이라고 한다. 대부

분 자유의 박탈에 대해서는 끔찍하게 여기면서 식량, 의료보호, 살 곳 같은 삶의 기본적인 필요가 (예방할 수 있음에도)

박탈당함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이나 죽음에 대해서는 상당한 관용을 보인다. 사회권을 인권으로 규정하고 그 침해를 인

권침해로 규정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 아니라 마땅히 받을 것을 받지 못한 권리 주체로 바

라보는 것은 크게 다르며,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 방임되고 침해됐다고 봐야 진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물론 인권침해를 규정하는 일이 간단하지는 않다. 침해라는 용어를 신중하게 사용할 필요도 있다. 모든 안 좋고 불쾌한

상황에 죄다 인권침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침해라는 용어의 심각함을 훼손하게 될 것이다. 침해라는 용어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의 관계 속에서 가려서 사용돼야 한다. 많은 국가들과 국제사회는 사회권에 대한 국가 및 주요행위자들

의 의무를 분석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해왔다. 가령 유엔사회권위원회는 국가가 해선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작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부작위)을 사회권에 따른 의무 위반으로 본다. 가령 작위의 의무 위반은 이미 향유하고 있는

권리를 고의적으로 철회하거나 후퇴시키는 행위, 보호적 법률을 개악하고 특정 집단을 향한 차별을 강화하는 행위, 사회

권에 해로운 정책 강요 등이 있다. 부작위의 예로는 사회권과 관련된 지표를 만들지 않고 모니터도 안하는 것, 즉각적

성격을 갖는 의무(법률상의 차별 제거 등)를 불이행 하는 것, 정당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고 규정된 법적 의무를 따르지

않는 것 등이 있다.

경직화된 범주를 깨는 일의 중요성

흔히 사회권에 따른 국가의 의무라 하면 국가가 직접 나서서 자원을 제공하는 것만을 떠올린다. 물론 그런 국가의 직접

지원이 필요하기도 하다. 직접 제공하는 것 말고는 생활의 필수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권리가 실현될 다른 가능성이 존재

하지 않을 때가 있다. 노인이나 장애인처럼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하게 된 사람들, 위기나 재난, 갑작스런 실업 상태 등이

그렇다. 하지만 국가의 의무는 직접 제공자로서의 의무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국가는 일차적으로 개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개인적으로나 타인과 결사하여 생존을 추구할 방법을 보장해야 한다. 가령 토지 이용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사람

들에게 토지의 보호는 직접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무보다 훨씬 중요하다. 토지는 오직 경작하는 농부만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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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무분별한 개발과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의무가 파산한 농부에게 생계보조금을 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노동자의 집단적 결사와 행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부당 해고된 노동자에게 쌀 한말을 주는 것보다

중요하다.

또한 국가는 직접 제공자로서가 아니라 보호자로서의 의무를 진다. 이것은 자유권에 있어서 보호자로서의 국가의 역할과

기능적으로 유사하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보다 강하고 공격적인 주체들로부터 개인의 행동의 자유와 자원의 이용

을 보호하는 것이다. 보다 강력한 경제적 이해로부터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생존재의 보호, 무역과 계약 관계에서 각종

비윤리적인 위협으로부터의 보호, 유해하거나 위험한 상품의 거래와 투매로부터의 보호 등이 요구된다. 이런 경우에는

사법심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회권은 자원이 필요하고 자유권은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직접 제공자로

서 국가가 나서는 단계에만 초점을 두고 다른 의무들을 고려치 않는 과도한 단순화이다.

인권의 상호의존성은 권리개념을 설명하고 분석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개념이다. 인간의 존엄

성은 잘못된 이분법의 구속을 받기보다는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이자 근본가치인 인권존중이라는 견지에서 추구돼야 한

다. 잘못된 이분법은 인권을 형식적인 것으로 몰아갈 수 있다. 어떤 권리가 어떤 범주와 법률에 속하느냐가 아니라 인권

의 기초인 인간애에 일관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직된 범주화를 깨뜨리는 것 자체도 중요한 인권투쟁이다. 효과적인

인권보장이란 불리하고 취약한 집단의 구성원에 특히 유념하여, 권리를 진정으로 모든 사람의 것으로 만들기에 뭐가 필

요한가를 총체적으로 해석해서 나오는 결과여야 한다. 범주는 임시로 만들어진 것이고, 전체의 부분에 불과하며, 관계 속

에서만 이해된다. 가령 자유권에 있는 생명권은 사회권에 있는 건강권과 관계 속에서 보면 아주 달라 보인다. 부당해고

당하여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동자의 일할 권리와 결사의 권리는 노동자가 부양하는 아동의 권리와 연관시켜 볼 수 있

다.

사회보장권의 의미

선언의 다른 조항들과 마찬가지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보장의 직접 배경이 된 것은 나치즘의 경험이었다. 물론 그에

앞서 1919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 그리고 대공황의 여파로 체제에 위협을 느낀 자본주의 국가들 내부에서부터

사회보장의 중요성은 점차 강조되는 과정에 놓여있었다.

1940년 여름 정책적으로 “노인, 정신질환자, 불치병자, ‘쓸데없이 밥만 축내는 이들’은 특별기관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죽

었다”(전쟁범죄에 관한 유엔 보고서 중에서)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싸울 기력이 더 이상 없다면 이 투쟁의 세계에서 생존할 권리는 끝난다”(히틀러의 나의 투쟁 중에

서)

대규모 실업과 빈곤으로부터 인간생활을 지켜내지 않으면 나치즘과 같은 악몽이 언제든지 재발해 사회를 지배할 수 있

다는 두려움이 컸다. 기본적인 생존을 인권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는 생존권을 구체

화하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필요성에는 다들 공감했지만, 누가 얼마만큼 의무를 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 어떤 국가들은 주거권과

의료권을 헌법에 보장하지만 어떤 국가들은 사회보장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국가가 비용을 지불하거나

의무를 져야 하는 것으로 해석되길 꺼려했다. 결국 선언에는 사회보장의 의미가 무엇이며 누가 얼마만큼 책임져야 하는

지에 대한 구체적 얘기는 없다. 사회보장이라는 단어는 그것 자체가 의미를 가지거나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고, 사회보

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나타내는 구체적 목록과 함께 있어야 그 의미가 규정된다. 선언에서 우리는 간접적으로 ‘의식

주, 의료,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통해 그 의미를 짐작할 뿐이다.

선언 내에서도 22조에서 말하는 사회보장과 25조에서 말하는 사회보장의 의미는 다르다. 22조의 사회보장은 막연하지만

넓은 의미의 권리, 즉 ‘인간존엄성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권리를 말한다면, 25조의 사회보장은 ‘최소한의 예시

목록’으로서 실업, 질병, 장애, 노령 등의 특정상황에서 인간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걸 고려할 수 있는지를 얘기하

는 것이다.

“자선이 사회적 제도로서 완전히 무력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는 때에 자선의 방법에 의하지 않고 질병, 불충분한 임금,

실업 등으로 말미암아 대다수 선의의 노동자들을 빠져나올 수 없는 밑바닥에 가두는 것과 같은 부당한 비참을 없애야

하는데도 그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 않다. 우리는 피부조자가 아닌 평등한 자가 되기를 원하며, 시혜를 배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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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조 1. 모든 사람은 근로의 권리,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 공정하고 유리한 근로조건에 관한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등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

진다.

3. 모든 근로자는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적 존엄에 합당한 생활을 보장하여 주며, 필요할 경우

다른 사회적 보호의 수단에 의하여 보완되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제24조 모든 사람은 근로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일을 포함한 휴식과 여가에 관

한 권리를 가진다.

정의를 바라는 것이다…”(프랑스 노동자 60인 선언, 1864)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란 예전 시대의 구빈이나 자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구빈차원의 사회부조에서는 수급자의 권리

를 부인하고, 베풀어준다는 은혜성과 그에 따른 굴욕적 조건을 달았다면 권리로서의 사회보장은 다르다. 개인의 잘잘못

이 아니라 이 체제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세계인권선언에서의 표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생활 곤궁

이나 불능상태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를 인정한 속에서 사회보장의 권리가 인권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 권

리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기 때문에 수급자의 기여에 의존하지 않고 공적 부담으로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권리

이기 때문에 구빈의 차원을 벗어나 법적 권리로 인정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고, 사회는 자기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험으

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권의 구체적 내용은 선언 23-27조에 들

어있다.

결사의 권리는 기본,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의 권리까지[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23조, 24조 노동권, 휴식과 여가에 대한 권리

파업의 이유

몇 해 전 한 건설노조가 파업을 했다. 요구사항은 이런 것이었다. ‘근로조건을 개선해 달라’, 그 내용은 하루 8시간 노동,

유급휴일, 주휴, 월차수당을 보장해 달라는 거였다. ‘산업안전보장’, 그 내용은 가스실 들어갈 때 가스마스크를 달라는 거

였다. ‘뭐, 이런 걸 갖고 파업을 하나, 파업을 안 하면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보장 안 되나’ 생각이 드는 순간 다음 요구

사항에선 기가 막혔다. ‘중식 및 휴게시설 확보’, 그 내용은 화장실이 없어 노상방뇨를 하는 형편이고, 도로 담벼락에 붙

어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일마치고 씻을 세면장이 없고, 밥 먹을 식당이 없어서 먼지 풀풀 날리는 길거리에서 밥을

먹고 있으니 그걸 시정해 달라는 거였다. 마지막 요구사항은 ‘노동조합을 인정해 달라’는 거였다.

이거 뭐야, 8시간 노동제 요구는 1886년인가에 내걸었던 요구고, 폐병 걸려 피를 토한 여공이 ‘손 씻을 곳이 없어요.’라고

울부짖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본 게 10년도 넘었다. 노동조합이 아직도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해야만 가능

한 조직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나는 21세기 한국에 살고 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몇 해 전 이라크 파병철회를 내걸고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고, 전교조 소속 교사들

은 반전․평화수업에 나섰다. 이에 정부는 이라크 파병철회를 내건 파업은 불법이라며 엄단하겠다고 했다. 한 집회에 참

석한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도 필요하지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도 앞장서야 한다”며 파병반대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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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차별철폐를 같이 외쳤다. “노동자들은 모든 전쟁을 반대하며 민주주의와 평화를 원한다. 이라크 파병은 즉각 철

회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노동부 장관은 “파병반대라는 정치적 목적을 관철할 의도로 파업을 벌이는 것은 책임 있는

노동운동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보다 훨씬 이전 이라크 침공이 있기 전에 수백만 명의 유럽 노동자들이

미국 주도하의 이라크 군사공격 가능성에 항의하여 일시 파업을 했다. 자동차 공장이 멈추고 열차 운행이 중단된 곳도

있었다. 노동자가 전쟁반대를 위해서는 파업을 할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은 당시 보도에서 볼 수 없었다.

이 사례에서 엿볼 수 있는 고질적인 생각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노동자만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

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면 ‘밥그릇 투쟁’이니 ‘이기주의’라 욕하

고, 다른 사회적 목적을 위해 투쟁하면 노동운동이 ‘정치화’됐다면서 원래 생존권 투쟁으로 돌아가라고 윽박지른다. 노동

권은 시민으로서의 노동자가 생존에 필수적인 자기 일터에서 이를 지배하는 규범을 자율적으로 형성할 뿐 아니라 더 큰

사회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한다.

노동권의 역사와 의의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있는데 노동인권은 뭐야, 노동자만 특별 취급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맞다. 노동인권

은 노동자를 특별 취급하는 인권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라는 표현이 유일하게 등

장하는 것이 노동권 관련 조항이다. 그런데 이 특별취급의 이유가 노동자를 더 잘 대접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다. 노동자

도 시민이며 시민으로서 기본적 인권을 갖는다. 그런데 노동자의 처지가 하도 취약해서 개별 노동자로서는 시민에게 보

장된 기본권을 제대로 누릴 수가 없다. 즉 노동자로서의 시민은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자본가와 대항하여 싸우기에 힘

이 부치고 그 결과 기본권을 누리기 어려우므로 단결을 통해 거래능력의 취약함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결과로

서 성취하는 것은 뭔가 노동자에게만 허용된 특수한 권리를 덤으로 더 얻는 게 아니라 원래 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대

로 누릴 수 없었던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인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노동권은 임노동관계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자본주의와 더불어 등장한 근대인권체계는 모

든 사람을 신분제의 예속에서 해방시켰다. 그래서 노동자도 자유를 얻었지만 이 자유는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부자유를

내포한 것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신분제도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토지 등 생산수단으로부터도 분리됐다. 이제 자유의사

에 의해 근로계약을 맺고 살아가라 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자유계약이라 했지만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받

아들여야 하는 사실상 부자유한 종속관계가 임노동관계이다. 그리고 경제적 독립성은 시민에게 허용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사상․표현의 자유도, 정치활동의 자유도 부자유한 노동자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노동자는 자립할

재산이 없다하여 참정권도 주지 않았고, 노동자의 불리한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맺은 노동계약은 인간다운 생활을 허용

치 않는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노동을 강요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소득으론 입에 풀칠하기 어려워 어린 자식과 부녀자도

위험한 노동에 내몰려야 했다. 여기서 여성의 노동은 자기실현을 위한 사회참여와는 거리가 멀었다. 참다못해 노동자들

이 단결을 하면 불온한 행위라 하여 처벌을 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대표가 하나도 없는 의회도 그런 의회가 만들어낸 법

도 노동자들의 편은 아니었다. 이에 노동자들은 필사적으로 단결을 했고 사회경제적 권력에 도전을 했다. 그런 도전이

하도 광범위하여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자, 법원도 처벌하기를 단념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노동

자에 대한 처사가 너무 심하다는 현실에 대한 공감도 깔려 있었고,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 개인으로서는 시민에게 보장된

인권을 누릴 가능성이 없다는 인정도 깔려 있었다. 노동자 개인으로서는 시민에게 보장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없기에

노동자는 단결하여 집단적으로 권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 노동인권으로 표현된 것이다.

인권의 역사가 이러하니 노동인권은 노동자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노동자의 열악한 권리상황의 증거인 것이다. 노동인권

에 대한 인정에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이 주효했지만 자본주의 자체 내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노동력을 만

들기 위해 농촌에서 농부들의 땅을 빼앗아 내몰았던 때가 있었고, 쫓겨나 방황하는 사람들을 우악스럽게 붙잡아 강제노

동 비슷하게 일 시킬 때도 있었다. 노사의 자유로운 거래에만 노사관계를 맡겨뒀다가 개별 고용주의 횡포가 전체 체제를

위태롭게 한다는 판단이 들자, 국가가 나서서 최저임금제나 각종 안전장치를 통해 노사관계의 최소규범을 만드는 시도도

있었다. 노동운동이 본격화되고 대내외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거세졌다. 여기에 양차대전을 치르면서 노동자를 다독일

필요성 등이 합쳐져 노동권은 사회보장권과 함께 인권의 새로운 양상으로 떠올랐다.

기나긴 수난과 투쟁, 억압과 용인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노동인권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노동

권은 개인의 자유의 회복을 의미한다. 근대 자유방임의 인권체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계약자유의 원칙 하에서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했다. 형식으로는 시민일지 모르나 현실에서는 노동자인 사람에게 기본적인 생존조차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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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자유의 상실을 또한 의미한다. 노동자가 시민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자유방임을 교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

권이다. 흔히 노동권이라 하면 물질적 재화의 분배시정만을 떠올리는데 노동권의 진짜 의미는 자유의 평등한 분배를 꾀

하는 데 있다. 사람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종류의 삶을 선택하고 영위할 수 있는 자유를 갈구한다. 이 자유를 누

리는 데는 물적 조건이 필수적이다. 이 물적 조건을 수동적인 수신자로서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단결

하여 개개인이 갖는 취약성을 극복하고 사회경제적 권력에 대항하여 구체적인 자유의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노동자

의 결사의 자유다. 노동자의 자유로운 의사가 생존의 기초이며, 노동자의 자유의사를 표출하는 몸뚱이가 결사의 자유다.

노동자의 의사는 영리활동을 위한 자유에 자유를 가둬둘 수 없다는 것이었고, 갇힌 자유에 대한 부정은 기본적 생존요구

를 포함하는 구체적 자유의 실현을 추진했다.

둘째 노동권은 사회진보의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노동자의 결사와 집단적인 의사표시, 특히 파업은 정치적 및 경제적 권

력에 대한 저항수단이다. 노동자의 의사표시가 집약되는 것이 노동자의 집단행동이요 그 절정이 파업이다. 앞서 살펴본

예에서처럼 노동자의 집단적 의사표시는 전쟁반대를 외치기도 하고 사회적 불평등의 시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방송사 노

조 때문에 방송사가 시사고발 프로그램이나마 유지하는 것이고, 병원노조 때문에 병원을 사기업과 똑같이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나마 가능한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 또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에 고쳐야 할 사회의 환부가 드러나는

것이다. 노동권을 세계적으로 기본적인 권리라 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어디에서나 독재정권이 먼저 때려잡는 것은 진보적 지식인이나 학생만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였다. 한 국가에서

노동자의 권리지위는 일반적인 인권의 지위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첫째 신호는 흔히 가장 기본적

인 노동자의 권리인 결사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다. 억압적인 체제는 불가피하게 노동조합을 억압하고 통제하려 한다.

결사의 자유는 기본

세계인권선언에서 노동권에 관한 조항은 앞서 살펴본 20조의 결사의 자유, 그리고 23조와 24조이다. 결사의 자유는 노동

권의 핵심이다. ILO 헌장(1919) 서문에서는 “세계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를 기초로 함으로써만 확립될 수 있으므로,

생산에 참여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결사의 자유 원칙의 승인 등이 급선무이므로”라 했고, ILO헌장의 부속서인 필라델

피아 선언(1944)에서도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를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라 했다.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진

1948년에 국제노동기구(ILO)도 대표적인 협약을 만들었는데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 87호)이다. 노

동자의 단결권이 두 기념비적인 국제문서에 포함된 것은 사회정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결권이 필수불가결한 전제조

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20조에서 뿐만 아니라 23조에서도 다시 한 번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말한다. 이에 대

해 반대 의견도 있었다. 선언에서 이미 결사의 자유를 언급했는데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를 또 명시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었다.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를 옹호한 편에서는 이런 주장을 펼쳤다. “다른 형태의 결사들은 오랫동안 인정받아

왔지만 노동조합은 많은 반대를 겪어 왔고 결사의 자유의 형태로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이다”, “노동조합 인

정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므로 노동조합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돼야 한다”, “현대 경제생활에서 노동조합활동의

특별한 중요성 때문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등이다.이런 논쟁만으로 노동조합 결사권이 선언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노동조합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권리를 세계인권선언에 넣자고 촉구하는 캠페인(“The Campaign for

Trade Union Rights")을 강력히 펼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노동조합연맹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전후 노조의

곤경을 분석·보고한 장문의 비망록을 보냈다. 경제사회이사회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 곤란을 느껴 ILO의 조언을 구했고,

국제노동기구는 세계인권선언에서 노동조합 결사권을 다루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선언의 기초자들은 이런 제안을

받아들였다. “노동조합의 정당한 요구가 음모로 간주되던 시기는 지나갔다. 노동자의 결사를 음모로 보는 것은 20세기가

아닌 19세기의 개념이다. 이 조항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사수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가 선언

기초자들의 합의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ILO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 87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단결을

19세기식의 음모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비준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ILO 회원국이다. ILO는 모든 회원국에게 필수적으로 챙겨야할 종합선물세트를 안겼다. 1998년 6월

ILO총회는 ILO가 제정해온 수많은 협약과 권고 중에서 8개 협약을 모든 회원국이 지켜야 할 기본협약으로 선언했다. 즉

한국이 87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ILO 회원국이라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 이 기본협약에 내포된 원칙들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이 기본협약 가운데 비준하고 있는 것은 절반이다. 아동노동철폐와 관련된 것으로 한국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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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부담 느끼지 않을 소위 만만한 것들만 비준했다. 노동권의 보장과 직접 관련된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협약’(제

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제98호), ‘강제노동협약’(제 29호), ‘강제노동철폐협약’(제105호)은 어느 것도 비준하지 않

았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23조와 24조가 규정한 권리는 일할 권리, 자유로운 직업선택,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 실업에 대한 보호, 차별 없이

동등한 노동에 대한 동등한 임금,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여가시간과 합리적인 노동시

간을 가질 권리, 유급휴가를 가질 권리이다. 이 모든 권리에 깔린 핵심 생각은 인간 노동은 착취되거나 가능한 한 싼값

에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선언을 만들 때 이 조항은 “인간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문구로 시작

됐다. 우여곡절 끝에 이 문구는 삭제됐지만 지금 있는 조항이 갖는 메시지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23조와 24조에 담긴 권리를 총체적으로 부정당하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다. ‘쓰다 버린다, 더 싼 것으

로 바꾼다, 빌려 쓴다, 잡음이 없을수록 좋다’는 게 인간의 노동에 적용되고 있다. 노동권이란 게 노동자라는 존재를 인

정해야 가능한 것인데, 노동자를 노동자라 하지 않고 사용자를 사용자라 하지 않는 관행이 판치고 있다. 사실 ‘비정규직’

이란 말은 법조문에도 없다. 단기 계약직 노동자, 외주화로 인한 파견․용역 등 간접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가 있는 것이

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기존 정규직도 이런 비정규직이나 영세빈곤자영업자로 전락해가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것처럼 큰소리치지만 실상은 감원과 인건비 절약을 통한 돈벌이에 푹 빠져 있지는 않은가.

기업들은 일자리를 늘려 노동자를 고용하지도 못하고, (매일 가족처럼 일하자고 해놓고)있는 식구도 내쫓고, 일시키면서

노동자 취급을 안 하고 어디서 빌려온 연장쯤으로 여기고, 법을 악용해 2년마다 갈아치우는 식으로 돈벌이 한다. 여기에

인간으로서 노동자가 저항하는 것이 노동권의 행사인데 국가는 이를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속, 수배, 형벌, 손해배상,

가압류 등 손톱을 세우고 할퀴어 댄다.

파업은 노동자가 그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주를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세계인권선언은 파업권에 대해 언

급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토론이 없었던 건 아니다. 파업권을 지지한 국가들은 많았지만 이 문제를 추상적인 선언에서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뿐이다. 강력하게 파업권을 지지한 대표적인 국가는 스웨덴이었는데, 그

입장은 이랬다. “파업권은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이익 보호를 위해 가져야 할 도구이다. 모든 사람은 기존의 또는 제공되

는 경제 조건에서는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노동을 그만둘 권리를 갖는다. 기존의 또는 제공되는 경제 조건

에서 더 이상 일해선 안 된다고 느낄 때 개별 노동자가 일하는 것을 그만 둘 자유가 있어야만 결사의 자유는 시민의 자

유로서 의미를 갖는다. 노동조합의 권리가 정당한 보수와 합리적 노동시간의 권리를 이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파업권은

노동조합의 권리를 이행하는 수단이다. 파업권 없이는 노동조합의 권리가 무의미하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서 노동조합은 계속 존재를 허용 받았지만 파업권이 없었다. 파업권 없는 노동조합의 자유는 환각이었다.” 선언에는 없

지만 ILO 협약이나 유엔경제․사회․문화적 권리협약에는 파업권이 명시돼 있다. 또한 한국처럼 파업 자체를 이유로 노

동자를 체포하거나 구금하는 예는 거의 없다. 노동자가 가진 건 노동력뿐이고 자기 의사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데,

파업을 형벌로 처벌하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자유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사회경제적 갈등을 해결할 수 없는 지배 권력의 무능함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무능함을 감추기 위

해 입만 열면 법치주의를 강조한다. 법대로는 파업이 불가능하고 법대로는 그냥 직장에서 내쫓겨야 하고 법대로는 항의

조차 할 수 없는데 그런 법을 지키라는 것은 고장 난 신호등이 파란불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서 차에 치어죽을 줄 알면

서 파란불이니까 무조건 건너야 한다는 것과 같다.

노동자를 상시고용하고 직접 고용하라는 요구, 비정규직 고용의 고용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라는 요구, 파견․용역회사

뒤에 숨지 말고 사용자면 사용자답게 처신하라는 것, 노동자는 노동자이지 정규직․비정규직이 그 본질은 아니라는 것,

따라서 노동권은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돼야 하고 그 기본은 단결권을 인정하는 것은 상식적 요구다. 상식을 무시하는 기

업과 정부, 그리고 사법당국에게 상식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든 시민이 노동인권에 대해 깨인 눈과 연대의 정신을 갖

는 것이다. 노동인권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금전적 이윤이라는 목적아래 종속시킬 때 정부는 절대왕정의 모습을 띠게 되

고 진짜 주권적 힘을 갖는 것은 기업총수와 금융총수가 될 것이다.

휴식의 권리

“우리는 노동하는 사람들로서 우리 자신의 노동, 건강, 시간과 삶을 스스로 통제할 권리를 되돌려 받으려 한다.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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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조 1. 모든 사람은 식량, 의복, 주택, 의료,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

의 건강과 안녕에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지며,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와의 사별,

노령, 그 밖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다른 생계결핍의 경우 사회보장을 누릴 권리

를 가진다.

2. 모자는 특별한 보살핌과 도움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어린이는 부모의 혼인여부에 관

계없이 동등한 사회적 보호를 향유한다.

핵심 요구는 모든 사람이 생활임금을 받는 주 40시간 노동의 권리다. 우리가 요구하는 바는 우리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4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 주당 40시간 노동의 일부로서 보상을 받

으면서 집에서 다음 세대를 양육할 시간을 가질 권리다. … 금융 자본가들과 고용주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다

운사이징, 하청, 아웃소싱, 일시적이고 불안정적인 노동을 이용하여 우리에게서 거대한 부를 쥐어짜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긴 시간을 노동하고 있고 그로 인해 부상과 직업적 질병이 초래된다. 의료적 치료, 보상, 휴식과 회복에 대한 우리의

인권은 점점 더 침해당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착취 체제는 우리가 직업 외에 하는 일, 예를 들어 아이를 기르는 일 같은

고된 노동에 대해 보상하고 있지 않다. 이는 우리의 자유와 삶을 강탈하며, 우리를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기계로 바꿔

놓고 있다.”(노동착취공장에 저항하는 전국행동 The National Mobilization Against Sweatshops 성명 중에서)

외국의 한 웹사이트에서 본 문구이다. 이들의 캠페인이 장기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것 중에는 시간에 대한 통제를 기반

으로 하여 인간의 잠재성의 증진을 최우선으로 삼는 새로운 가치를 가진 문화를 창조하는 것, 어머니의 노동을 포함하여

여성의 노동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 등이 들어있다.

여기서 우리는 휴식과 여가의 권리란 것이 단지 일을 했으니까 ‘쉰다’, 다음 노동을 위해 ‘준비’한다는 의미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노동시간의 제한을 둘러싼 투쟁은 노동자 편에서는 노동착취를 깨려는 투쟁이고 자본가 편에서는 더 많은

이윤을 취하려는 투쟁이다. 노동절의 유래도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한 파업에서 유래됐고 많은 생명과 자유가

희생됐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오늘날 노동권의 처지가 열악하다보니 노동과 연계된 휴식과 여가의 처지도 딱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서는 주 40시간 노동을 도입하고도 전체 노동시간이 줄지 않고 있다 한다. 그 이유는 임금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노동

시간이 줄어든다는 게 진짜 휴식과 여가의 의미를 가지려면 임금이 보전되는 시간단축이어야 한다. ILO 협약 중 주 40

시간 관련 규정에는 생활수준 저하를 동반하지 않은 주 40시간 노동을 말하고 있다. 즉 임금을 줄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측은 시간과 함께 임금을 줄이려 들고 노동을 둘러싼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는 사실상 임금이 삭감된다. 그래

서 노동자들은 줄어든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사실상 더 많이 일할 수밖에 없다. 소위 ‘자발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잔업이다 특근이다 해서 제 몸 망가지는 줄 모르고 일을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기본급 수준이 엄청 낮을

뿐더러 간접임금이라 할 사회보장 수준도 열악하다. 그러니 더 오랜 시간 일을 해서 수당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

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을 만들면서 노동자의 휴식과 여가의 권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행되느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선언에서 이를 모두 포함시킬 수는 없었기에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라는 말만 남게 된다. 하지만 단 하나의

조건, “유급”이라는 것은 반드시 포함돼야 했다. 임금 없는 휴식의 권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의미였다. 선언에 쓰여 있

지는 않지만 그 배경 토론에서는 휴식이 갖춰야 할 도덕적 요구가 있었다. 자본의 ‘강탈’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휴식, 외

국인이나 사회취약계층을 배제하지 않는 휴식, 휴식이 요구될 때 사회의 잘못되고 불충분한 여건으로 인해 왜곡되지 않

는 휴식이다. 세계인권선언에 노동권 조항이 만들어질 당시에 노동자들이 유엔에 제출했다는 비망록에는 노동조합의 기

반을 파괴하려는 시도들에 대한 성토가 가득 담겼다고 한다. ‘노조의 모임 장소를 대여할 수 없게 한다’, ‘단체협약을 맺

는 것이 불가능하다’, ‘노동자에게 강요된 불의를 고칠 수단이 없다’ 등, 정말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세계인권선

언의 노동권 조항은 노동자들 손아귀에 잡힐 때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국가의 '최소한의 핵심의무'와 '존중·보호·실현'의 의무[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25조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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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생활수준’이란 언뜻 보기에 알 듯 말 듯한 기준이다. 사법부나 정책입안자들은 ‘적절한 생활수준’의 개념을 양적

으로나 질적으로나 정의하기 어려우니 권리로 보기 힘들다는 말부터 꺼내려 든다. 하지만 부모의 눈에는 자녀에게 적절

한 먹을 것이 어떤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병치레를 해보거나 병원을 이용해본 사람에게는 적

절한 의료가, 학교를 다녀본 사람에겐 적절한 교육이, 지하주거와 전세난과 셋방살이를 겪어본 사람에겐 적절한 주거가

무엇인지가 구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다. 가능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으려면, 수치심이나 불합리한 장벽 없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으려면, 구걸·성매매·강제노동이나 채무노동 같은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삶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으려면 인간생활에 갖춰야 할 근본적인 ‘무엇’이 있다. 이 ‘무

엇’은 물질적인 재화와 서비스만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정신활동에 관련된 것을 포함한다. 이 ‘무엇’을 국제인권법에서

는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로 표현했다. 세계인권선언 25조는 “식량, 의복, 주택, 의료,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포

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이고, 유엔경제·사회·문화적 권리협약 11조에서는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

함하여 적절한”이다. 아동권리협약에서는 “아동의 신체적·지적·정신적·도덕적 및 사회적 발달에 적합한 생활수준”이라 했

다.

적절성의 의미

‘적절성’을 양적인 지표로 나타낸 예는 많다. ‘하루 몇 칼로리의 영양소가 어린이와 성인에게 요구된다’, ‘1인당 몇 평의

주거공간이 있어야 한다’,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얼마 이상의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양적지

표에는 담기지 못하는 것이 많다. 어떤 사람들이 특히 취약하고 차별받고 있는지, 문화적으로 환경적으로 적절한 의식주

는 무엇인지, 권리 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되고 있는지 등을 다루기는 어렵다. 하루 1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인구

가 세계인구의 20%에 달한다는 식의 통계는 빈곤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말해줄 뿐 왜 그 사람들이 가난하게 되었는지,

그 사람들의 존엄한 삶에 필수적인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는 양적 지표만이

아니라 적절한 생활수준의 질적인 측면을 구체화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 결과 주거, 식량, 물에 대한 권리 등 각각에

대하여 ‘적절성’에 대한 상세한 개념 정의가 많이 진전됐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에서 ‘적절

성’의 의미는 ‘경제적·물리적·정보적 접근성, 지속가능성, 차별금지, 안정성, 가용성, 문화적 수용성, 국가의 책임성’ 등이

다.

적절성의 대표적 요소는 감당할 만한 비용으로 필수적인 생활요소에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주거는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고 비용도 꽤 많이 차지한다. 그러나 사람은 주거만으로는 살 수 없다. 밥도 먹어야 하고 옷도 낡으면 새

로 사 입어야 하며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하고 아이들은 기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집에 너무 많은 돈을 쓰게 되면

다른 곳에 꼭 써야 할 돈을 쓰지 못하게 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주거비용은 개인의 기본적 욕구가 위

협당하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식비, 의료비, 교육비도 마찬가지다. 아랫돌 빼서 윗돌 막고 윗돌 빼서 아랫돌

막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중 어느 하나에 관련된 비용이 다른 기본적 필수품의 획득 및 충족을 위협하거나 제한하

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어야 한다.

비용이 경제적 측면의 접근성을 얘기하는 거라면, 다른 차원의 접근성도 고려해야 한다. 누구나 고용기회, 의료, 교육 등

필수적인 서비스와 편의시설 등에 접근 가능한 곳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차별 없는 접근성도 중요하다. 독립생활을 하

는 장애인들은 하나같이 집구하는 것의 어려움을 얘기한다. 비용도 문제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경우 편의시설

접근성도 문제지만 집주인들이 장애인이라고 하면 임대를 거절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혼자 살다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수 없다거나 편의시설을 집에 갖추기 위해 약간의 개량을 하는 것조차 꺼려하기 때문이란다. 물리적 접근성뿐 아

니라 차별 없는 접근성은 적절성이 갖춰야 할 대표적 요소이다.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적절성에 부합

적절성은 당장의 편리만을 생각해선 안 된다. 여기서 나온 개념이 ‘지속가능성’이다. 가령 식량권에서 지속가능성을 생각

해보자. 현 세대 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도 식량권은 중요하다. 당장의 먹을거리를 증산하기 위하여 화학비료를 남발

하고, 자유무역과 단일품종, 유전자조작식품 등에 의존하는 체제는 식량권의 지속가능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세계의

농민들이 들고 나온 개념이 ‘식량주권’이다. ‘식량주권’이란 먹을 것에 대한 권리와 먹을 것을 생산할 권리 둘 다를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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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다. 먹을 것에 대한 권리, 즉 식량권이 기본적 인권이라면, 그 식량을 어떻게 얼마만큼 생산하느냐는 정책을 스

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식량 생산을 위한 자원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과 환경을 보존하며 초국적 기업농의 유전자 조작 식품과 단일품종, 종자약탈 등의 횡포로부터 벗어나자는 것이다.

적절성의 또 다른 요소는 안정성 또는 안전성이다. 가령 주거권의 경우에 집달리라는 것이 있다. 빚을 못 갚거나 한 사

람을 살던 곳에서 내모는 일을 집행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새벽에 들이닥쳐서 잠에 취한 사람을 엉겁결에 내쫓거나 사람

이 일 나가서 없을 때 집을 때려 부수기도 한다. 어떤 조건에서건 갑자기 쫓겨나거나 철거되거나, 그 집에 살 수 없도록

강한 협박과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갑작스럽게 거주공간을 빼앗기거나 퇴거의 위협을 받는 경우 국

가는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식량권의 경우에는 안전성이라 하면 일단 해로운 물질이 없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식량이 불순물 및 불량한 환경위생이

나 여러 단계의 공급과정 중의 부적절한 취급으로 인하여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식량안보 및 일련의 보호조치

를 취해야 한다. 뻔히 위험한 줄 알면서 무역보복 등을 이유로 특정식품의 소비를 강제하는 일 같은 건 있어선 안 된다.

당장의 해로운 물질 뿐 아니라 장기적인 식품 안정성도 고려해야 한다. 앞서 말한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적

절한 식량권을 보장받기 어렵다.

가용성은 충분한 양으로 확보해 이용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권의 경우에는 보건의료자원뿐 아니라 안전한 식수,

적절한 위생시설, 작업시간 사이에 적절한 휴식시간의 보장, 쾌적하게 쉴 수 있는 주거환경 등 건강결정요인이 가용성에

다 포함된다. 주거권의 경우에는 주거 공간이 생활을 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생활에 필요한 필수 시설이 갖추

어져 있어야 한다. 집에는 안전하게 마실 물과, 요리와 난방, 조명을 위한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또 위생을 유지하기 위

한 욕실과 세탁 시설, 쓰레기와 하수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 소방시설 등 비상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도 있어야 한다.

온 세상 사람들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를 누려야 하지만 똑같은 것을 먹고 입고 똑같은 집에서 잔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루미와 여우 이야기가 있다. 서로를 식사에 초대하는데 여우는 넓적한 접시에 음식을 내놓는다. 두루미의 긴

부리로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반대로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했을 때는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놓

는다. 두루미는 부리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여우는 주둥이를 호리병에 넣을 수가 없어 먹을 수가 없었다. 문화적

수용성은 이런 것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문화의 사람에게 삼겹살을 주면서 먹으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의 문화적 적절성과 다양성의 보존도 적절성의 중요 요소다. 가령 ‘아파트 숲’은 서울 등 대다수 도시의 당

연한 풍경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주거형태에 있어 다양성이 이처럼 무섭게 소멸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그나마 남은 미

개발 구역조차 언제 개발논리에 의해 쓰러질지 모를 일이다. ‘한양주택’ 같은 예쁜 마을이 그린벨트 해제와 뉴타운사업계

획으로 무차별 개발된 것이 대표적 침해사례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책임성과 의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가 의미를 가지려면 국가가 각 권리의 구성요소를 입법적으로 인정하고 정책으로 드러내

는 일련의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이런 국가의 의무를 측정하고 평가하기 위해 ‘최소한의 핵심의무’와 ‘존중·

보호·실현의 의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최소핵심의무는 국가의 가용자원의 양 혹은 다른 어떤 요소와 어려움에 상관없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이다. 여기에

는 필수적인 식량, 기초의료, 기본적인 주거와 초등교육 등이 해당한다. 가령 물에 대한 권리의 경우에는 어떤 경우에도

물 공급을 끊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것, 주거권의 경우에는 강제철거로부터의 보호 등이 최소핵심의무의 예이다.

가령 단전단수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돈을 못낸다고 해서 전기와 수도를 끊어버린다. 그래서 한겨울에 난방도 못

하고 촛불을 켜고 살다가 화재를 당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있고, 세수와 세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끊

어버리는 것 말고 분명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한국의 경제수준에서 과연 불가능한 것이고 자원이 그 정도로

부족한 것일까. 독일에서 몇 년을 난민으로 산 친구가 있다. 난민으로서 받는 최저생계비와 간단한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던 그 친구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다. 어른은 그럭저럭 겨울 추위를 버텨냈지만, 어린 아기는 계속 감기에 시달렸

다. 부부는 아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전기스토브를 켰다. 전기비가 생활수준에 비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나왔다. 당국에

설명을 했다. 우리 소득 수준은 이렇지만 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당국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

황인 걸 이해하고 전기요금을 감면해줬다.

한국과 독일보다 경제사정이 열악한 국가들의 상황에서는 어떨까. 이런 국가들의 최소핵심의무에는 이런 사례가 있다.

모든 아동은 무국적을 방지하고 사회속의 신분을 획득할 수 있도록 출생과 동시에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다. 이

를 위해서는 출생신고가 돼야 한다. 그런데 행정망이 발달하지 않은 가난한 국가들은 이런 등록의 의무를 방치한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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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 당장에 동네마다 동사무소 같은 걸 만들 돈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사회적으로 어떤 신분도 없는 존재인

이들 아동은 인신매매의 표적이 되거나 착취적인 노동에 시달리거나 교육에 접근할 수 없는 등의 인권침해 위험성이 크

다. 이에 대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최소핵심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이렇다. 당장의

자원의 부족 때문에 이름과 국적을 가질 아동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당장 동사무소를 지을 돈은 없을지

라도 지금의 경제형편에서라도 트럭 몇 대는 갖출 수 있지 않은가. 자력으로 안되면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을 수도 있다.

트럭에 이동사무소를 설치하여 방방곡곡을 돌면서 아동의 신분등록을 받으면 인신매매나 아동노동 등 이차적인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최소핵심의무란 건 이런 것이다.

국가에 지워진 인권의 존중·보호·실현의 의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더 구체화한 기준이 존중·보호·실현의 의무다. 존중의 의무란 국가가 직접 인권

을 침해해서는 안되고 인권을 누리는 데 방해요소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가령 비정규직의 확대를 꾀하는 법을

만들고 통과시키는 일은 노동권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며 고의적으로 인권을 후퇴시키는 조치에 해당한다. 보호

의 의무란 국가가 인권을 존중할 뿐 아니라 제3자(가령 기업)에 의해서도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의무이다. 가령

가정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에 대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일, 고리대금업자가 폭력과 위협을 행사하도록 내버려

두는 일, 기업이 산업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하게 내버려 두는 일 등은 보호의 의무위반에 해당

한다. 실현의 의무란 국가가 인권의 충분한 실현과 향상을 위한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합리적으로

계획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법률·행정·예산·사법조치가 모두 포함된다. 그리고 그 성취의 결과에 대

해서도 따져봐야 한다. 의무가 이행되지 않았을 때에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지를 국가가 증명할 책임도 있다.

예를 들어 태풍 때문에 교육기관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경우인 반면, 적절한 대책 없이 가

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의료보호체계를 축소했다면 의무 이행의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거권을 사례로 존

중·보호·실현의 의무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강제퇴거와 철거는 존중의 의무 위반

방글라데시의 한 도시에서는 사전 예고 없이 비공식 거주민들이 쫓겨났고, 그들의 집은 불도저로 철거됐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와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비공식 거주민들은 불운과 자연재해의 피해자이며 고용기회·식량·주거

가 빈곤한 농촌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또한 빈민지역 거주자들이 국가 경제에 상당히 기여했음을

인정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정부는 빈민지역 거주민들의 재정착을 위한 정책 지침을 개발해야 한다.

철거는 대안적 주거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그런 능력이 갖춰진 단계에서 허용되도록 해야 한다.

철거 전에 합리적인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안전상의 이유로 철로변과 도로변의 빈민촌이 정화돼야 한다할지라도, 거주민들은 정책지침에 따라 다른 곳에 재정착할

수 있어야 한다.”

적절한 주거권에 대한 존중의 의무는 국가와 그 기관이 단독으로나 제3자와 결합하여, 주거·서비스·관련된 물질과 자원

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거나 접근을 가로막는 여하한 관행, 정책, 법적 조치를 수행하거나 지원 또는 관용하는 일을 삼가

는 것이다. 평등하고 비차별적인 원칙에 기반하는 주거권에 대한 존중의 의무는 국가가 불리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집단

을 특별히 고려하여 그들에게 정당한 우선순위를 두는 것을 포함한다. 이같은 존중의 의무에서 가장 분명한 침해에 해당

하는 사례는 강제 퇴거와 철거이다.

보호; 인권침해를 방지할 국가의 의무

아프리카 인간과 인민의 권리 위원회(the African Commission on Human and Peoples' Rights)는 오고니족(나이지리아

의 소수민족)의 땅에서 다국적 석유회사와 나이지리아 국영기업이 석유채취와 관련하여 저지른 각종 인권침해에 대한 인

권단체의 제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석유채취 활동을 모니터하지 않았고, 의사결정에 지역사회를 참여시키지 않음으로 인해 착취(외국의 경제 착취를 포함

하여)로부터 거주민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위반했다. 또한 부와 천연 자원의 박탈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위반했고, 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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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에 대해 지역민에게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지 않은 것 또한 침해이다. 주거권과 강제철거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주

거파괴와 주민에 대한 괴롭힘으로 침해됐다. 이에 위원회는 오고니족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 것, 책임자를 조사하고 기소

할 것,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제공할 것, 장차 환경영향평가 및 사회적 영향 평가를 분비할 것, 건강과 환경적 위험에 대

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나이지리아 정부에 명령한다.”

적절한 주거권에 대한 보호의 의무는 국가 자신, 개인들, 사적인 주체, 여타의 비국가 행위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주거

권 침해를 국가와 그 기관이 방지하는 것이다. 주거권 침해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침해자들을 기소하고, 법

적 및 기타의 구제가 피해자들에게 제공돼야 한다.

실현; '제공'과 '촉진'의 의무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주거권 실현의무에 대해 이런 결정을 내린바 있다.

“국가는 입법적 및 기타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입법 조치 그 자체만으로는 헌법의 준수라 할 수 없다. 단순한 입

법만으론 충분치 않다. 국가는 의도된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행동할 의무가 있고, 행정부는 적절하고 잘 짜여진 정책과

프로그램으로 당연히 입법조치를 지원해야 한다. 이런 정책과 프로그램은 개념으로나 이행으로나 합리적이어야 한다. 프

로그램의 형성은 국가의 의무 실현의 첫 단계일 뿐이다. 프로그램은 합리적으로 이행돼야 한다.

일련의 조치들이 합리적인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경제적·역사적 맥락에서 주거문제를 고려하고, 프로그램 이행

에 책임을 지는 기관의 능력을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프로그램은 균형 있고 유연한 것이어야 하며, 주거 위기와 단

기 및 중장기적 기간의 필요에 유념하여 적합한 제공을 해야 한다. 사회의 상당 계층을 배제하는 프로그램은 합리적이라

할 수 없다. 조건은 정적인 채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기에 프로그램은 지속적인 검토를 필요로 한다.”

실현의 의무는 ‘제공’의 의무와 ‘촉진’의 의무로 생각할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인

해 자신들이 가진 수단으로는 적절한 주거권을 향유할 수 없을 때에 정부는 주거권을 직접적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주거정책과 프로그램에서 주거취약계층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는 적절한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자원과 수단에 대한 접근과 이용을 강화하기 위하여 사전 대책을 강구하여 의도적인 활동을 기울여야 한

다.

인권에 기반을 둔 접근이란?

어렸을 즉 읽은 얘기다. 한 백인 중산층 소녀가 빈민가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 자기가 사는 곳과는 너무 다른 환경

에 소녀는 충격을 받았다. 그 집은 거의 동물우리같은 수준이었고 친구의 아픈 엄마는 치료도 못받고 침대에 누워만 있

었다. 소녀는 제 딴에 최선을 다해 생각해낸 것이 “사회보장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제가 부모님께 말씀드려 신청해 볼

게요”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친구의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반대했다. “싫어요. 우리 형편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런 걸

받아야 할 만큼 비참하지는 않아요.”였다.

난 이해가 안됐다. 사회보장 급여를 받는 게 왜 싫다는 거지? 그런데 곧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 온갖 낙인을 감수하면

서 쥐꼬리만한 도움을 받느니 자존감을 지키고 싶다는 심정 말이다. 내가 6학년 때의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서

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걷는다. 보통은 그렇게 걷은 돈을 양로원 등에 보내곤 했는데 그 해에는 우

리 반에서 제일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남녀 한명씩 골라 성금을 처리한다고 했다. 제일 형편이 어려운 친구는 반 아이들

이 추천했다. 모두가 있는 교실에서 ‘쟤요, 쟤요’라고 지목하는 식으로 하는 추천이었다. 여학생 중에 추천된 건 나였다.

그래서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불려나가 공책과 연필, 뭐 그런 것들을 ‘친구들의 마음의 선물’이란 말과 함께 담

임선생님께 받았다. 그런데 하나도 고맙지가 않았다. 그날 이후 하교길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나를 멀리했다. 나도 같

이 가는데 달갑지 않고 혼자인 게 맘 편했다. 난 가난하니까 구제받아야 할 아이로 완전히 찍힌 거였다.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는 물질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공책 몇 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배제를 느끼

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에게 요구되는 것이었다. 자선이 아닌 권리라는 데 핵심이

있다. 권리의 핵심은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존엄성을 발전시킬 기본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발휘되지 못한다

면 도대체가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그런 최소한의 기본적 역량의 발휘는 무조건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에

서 권리이다. 이걸 목록으로 표현한 것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이다.

적절한 생활수준에 들어가는 목록은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옛날에 ‘빵과 자유를 달라’ 했을 때는 정말 빵만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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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주거, 의료, 교육 식으로 적절한 생활의 요소는 강화되어 왔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물에 대한 권리, 공공운송, 문화적

시설 등이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느냐이다. 한국 같은 곳에서는 자력구제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을 할 때 그걸 그냥 ‘임금’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사회적으로 적절한 생활수준

의 권리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부족하기에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적절한 생활수준을 해결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

으로 적절성을 해결 보는 것은 대다수 노동자에게 어림없는 일일뿐더러 사회보장의 의미도 퇴색된다.

사회보장에 대한 시각과 그걸 보장하는 방법은 사회에 따라 아주 다르다. 어떤 사회에서는 자력으로 생존에 실패한 사람

들이 구차하게 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어떤 사회에서는 그 사회에 거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공기 같은 것이다. 적절한 생활수준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인권수준이 드러난다. 되는 사람은 임

금을 통해 해결하고 노동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잔여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냐, 사회적 연대의 정신에서 필수적인 것을

같이 해결하느냐는 그 철학과 접근 방식이 아주 다를 수밖에 없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이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개념이다. 기존의 경제발전구조에 덤으로 사회적 지출을 덧붙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발전계획 자체에 인권을 중심요소로 앉히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발전이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적극적

인 경제·사회·정치정책이 있지 않으면 권리는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발전의 핵심 목적은 가장 소외되고 취약한 사회구

성원의 역량강화이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강조한다. 인권을 발전에 추가요소로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정책의

발판으로 여기는 것이다.

인민이 권력과 역량을 가져야

핵심은 자선에 반대하고 인민이 권력과 역량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식의 형식적 참여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자유롭고 의미있는 참여가 가능해야 한다. 의미있는 참여란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그 결정의 결과에 같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가령 거주지에서 밀려나 이주비 보조를 받는 수준이 아니라 부동산정책과 개발계획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

다. 인권영향평가가 모든 발전계획, 정책, 예산, 프로그램에 적용될 것을 요구해야 하고, 경제지표만이 아니라 불평등지표,

빈곤지표, 성평등관련지표 등이 측정과 평가항목이 돼야 한다.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는 사회적으로 생산된 잉여

의 재화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재화라도 그것을 정의롭게 분배하는 차원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리고 기본권

의 실현은 평등하게 권리를 가진 사람들의 자율성을 활성화하는 것과 병행되는 과정이다.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에 대한 흔한 오해 중의 하나는 복지예산을 늘리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투입의

양을 늘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을 때는 복지반대론자들이 걸핏하면 입에 올

리는 ‘거지근성이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식의 문제만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은 ‘단지 더 많은 재화

와 서비스를 얻으면 된다, 단순히 사회보장, 교육, 의료에 들어가는 지출을 늘리면 된다’는 식의 해결방식을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지출만 늘린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 권리의 당사자가 얼마나 참여하여 진정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발전활동이 자동적으로 인권존중을 증진시키지 않고, 단지 건강, 교

육 등의 지출로 인해 증진되지 않는다. 인권에 기반을 두지 않는 경제발전정책은 힘들게 생산한 부가 편중·낭비되고, 특

정집단이 오히려 차별받는 것으로 잘못 수행될 수 있다. 불평등은 지구적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차별정책)라 불린다.

국내에서도 불평등의 심화는 ‘신인종분리정책’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 빈곤을 다시 생각해보자. 얼마 전까지도 해도 빈곤은 최소한의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기에 불충분

한 소득으로 정의됐다. 오늘날에는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기본적 역량(capabilities)의 결여로 이해된다. 빈곤은 굶주림, 빈

약한 교육, 차별, 취약성, 사회적 배제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등의 시각으로 볼 때 빈곤은 적절한 생활

수준에 대한 권리 뿐 아니라 여타의 인권을 누리는 데 필수적인 자원, 능력, 선택, 안전 및 권력을 지속적이거나 만성적

으로 박탈당한 인간 상황으로 정의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소득만 늘리거나 소비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만 늘

리는 방식의 접근이 아니라 비차별과 평등 원칙의 강화, 빈민 당사자의 참여, 국가책임성의 구체화 같은 것이 고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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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조 1. 모든 사람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교육은 최소한 초등기초단계에서는 무상

이어야 한다. 초등교육은 의무적이어야 한다. 기술교육과 직업교육은 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

어야 하며, 고등교육도 능력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되어야 한다.

2. 교육은 인격의 완전한 발전과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의 강화를 목표로 하여야

한다. 교육은 모든 국가들과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간에 있어서 이해, 관용 및 친선을 증진

시키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유엔의 활동을 촉진시켜야 한다.

3. 부모는 자녀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종류를 선택함에 있어서 우선권을 가진다.

인권 중의 인권인 교육권, 그러나[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26조 교육권

자명한 권리, 지키지 않는 약속

26조의 대전제는 교육 그 자체가 보편적인 권리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어

떤 국가도 반대를 표명할 이유가 없었다. 너무 자명한 것이었기에 별다른 토론이 없었고, 모든 대표자들의 동의를 받았

다.

예를 들어 브라질 대표는 “모든 사람의 교육에 대한 권리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이라며 “인류의 유산을 공유

할 권리는 우리 문명의 기초를 형성했고 그 누구에게도 부인될 수 없었다. 교육 없이는 개인이 자신의 인격을 발전시킬

수 없었고, 이 인격은 인간 생활의 목적이자 가장 견고한 사회의 기초”라 했다. 파나마 대표는 “교육에 대한 권리 같은

기초적인 인권이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지를 보였다. 현실적으로도 당시

40여개 국의 헌법이 무상의무교육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었기에 교육권이 보편적 인권이라는 것에 의심이 없었다.

고용최저연령에 도달하지 않은 아동에 대한 교육은 무상이고 의무여야 한다는 규범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선언보다 훨

씬 이전인 19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에는 14세 미만 아동 노동 철폐를 얘기했다면 오늘날의 기준은 18세

미만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되고 확고한 약속인 교육권은 날로 위태로워지고 있다. 말로만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교육을 외칠 뿐

정부와 국제사회가 실제로는 교육권 보장을 위한 의무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대학에 갈 수 없는 것

도 화가 나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초등교육조차 위태로운 아이들이 늘어가는 일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목격되고 있다. 자

국에서 교육권을 잘 보장하고 있는 국가들이라고 해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교육제도와 서비스를 소위 ‘수출’하고

있는 국가 정부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교육을 인권으로 보장하는 데 반대한다. 인권으로서 공교육이 강화되면 자신들이

팔아먹을 상품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는 은행 구실에 충실한 국제기구들도 마찬가지다. 국제무역의 규범

에 충실한 상품으로서 교육을 다루고 싶어 하지, 보편적 인권으로서 교육을 고려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대외 원조나 부채 구제에 대한 결정에서 잘 드러난다. 한 예로 세계은행이 교육에 대한 컨설팅을 해준답시

고 500일간 쓴 비용이 그 나라에서 5천명의 교사를 고용하는 것과 같은 비용이었다는 보고가 있다. 그런데 그런 컨설팅

을 통해 나온 조언이란 게 공적 서비스로서의 교육을 지지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공교육을 강화하려면 교사의 확충

이 중요한데 세계은행은 공공부문의 임금이 늘어나게 될 테니 그걸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교육을 빈곤을

줄이기 위한 도구라고 강조한다. 교육을 이런 식으로 도구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빈곤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교육의 양과

질을 국제금융기구와 은행에게 결정하게 한다. 그런 교육의 양과 질은 싼 노동력을 빠른 시간에 대량으로 만들어내는데

치중한다. 이런 식으로 교육이 시장의 상품, 경제의 규모와 효율성에 따라 조절되는 것, 싼 노동력을 빨리 만들어내는 것

으로 치부된다면 교육이라는 이름에 걸맞을 수가 없다.

인권의 존중 강화가 교육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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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권이 필수적인 인권이란 데 반대의견이 없다 했지만, 문제는 무엇을 위한 무엇에 대한 교육인지에 대한 합의가 곤란

하다는 것이었다. 각 국은 자신만의 고유 브랜드를 가진 교육을 선호했는데, 그것은 “도덕적 시민의 훈련”, “국가 윤리의

발전”, “조국애, 조국의 민주제도에 대한 사랑, 그것을 위해 투쟁한 이들에 대한 사랑” 등으로 표현됐다. 이중 어떤 것이

보편적인 시민 교육의 상이라고 정할 수도 없거니와 국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무엇이든지 국민에게 주입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국가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교육을 지배하는 핵심원칙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대략이라도 써야

할 필요성이 제안됐다. 그 결과가 2항에 담긴 교육의 정신이다.

26조 2항에 담긴 교육의 목적은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의 강화”이다. 여기에도 반대의 여지는 없었다. 세계인

권선언 자체가 그러하지만 교육권 조항은 전쟁 경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조항이었기 때문이다. 교육권 조항에서 전쟁

경험이라 함은 히틀러 체제하에서 독일 청소년에게 저질러진 세뇌(brainwashing)를 떠올린 것이다. 나치는 교육을 아주

강조하고 놀라울 정도로 잘 조직했지만, 그 체제하의 교육은 히틀러의 표현대로 “인종적 정서와 인종적 감정을 청소년의

본능과 지능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고분고분하게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에 몰두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기능이었고 그

결과 파국을 맞았다. 따라서 ‘인권존중의 정신을 강화’하는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했다.

히틀러 체제에 대한 반감은 2항에서만이 아니라 3항의 부모의 선택권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했다. 3항에서 ‘부모는 자녀

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종류를 선택함에 있어서 우선권을 가진다’고 한 것은 나치체제가 국가 통제로 오염된 학교에 모든

아동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부모의 권리를 강탈했다고 봤기 때문에 삽입한 것이다. 이런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부모의

선택권을 더 비싸고 더 대학가기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자유로 해석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여기서는 국가 권력의

남용을 반대한 것이지, 교육권의 공공성과 공적의무를 방기할 의도는 없었다.

교육은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는 교육을 제공하는 사람, 교육을 받는 사람, 교육을 받는 사람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지

는 사람 등 다양하며 때론 서로 갈등·대립하는 교육 주체들이 포함돼 있다. 교육권의 역사는 이들 다양한 교육주체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공정한 균형을 취하기 위한 시도로 이뤄져 왔다. 세계인권선언에서 교육권에 대한 의사결정은 국가와

부모 사이에 이뤄지는 것으로 돼있는데 이것은 아동이 교육권의 주체라는 개념이 자리 잡은 지금에는 구시대적인 것이

다.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을 생각한다면 이들 관계 속에서 가장 약자의 처지에 있는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할 것이 요구된

다.

인권교육의 이상 담은 교육권

2항에 담긴 또다른 교육의 목적은 “인격의 완전한 발전”이다. 원래는 “인격의 신체적, 지적, 도덕적, 정신적 발전”으로

제안되었으나 몇 개의 수식어로 교육의 모든 목적을 요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완전한 발전”으로 고쳐졌다. “모든 국가

들과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 간에 있어서 이해, 관용 및 친선의 증진”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유엔의 활동을 촉진”

시킨다는 목적은 ‘국제적 친선의 증진’이라는 단순한 표현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특히 유엔의 임무가 언급된 것은 ‘평화

유지’라는 유엔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교육받은 대중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상의 교육의 목적을 정리하면 그것은 곧 인권교육의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유엔은 인권교육에 대하여 “지식을 제공하

는 것 이상이며, 모든 발달 단계에 속하는 사람과 모든 사회 계급의 사람들이 타인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배울 수 있

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존중을 보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포괄적인 전 생애 과정”이라 했다. 교육권을 보장할 의무

가 있는 국가는 이러한 교육의 목적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질과 내용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인권교육을 흔히 ‘역량강화교육’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비되는 것은 ‘은행저축식 교육’이다. 은행저축식 교육개념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

는 것이다. 즉 학생은 무지하고 교사는 안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며 학생들이 또한 교사를 교육

하기도 한다는 측면을 무시한다. 또한 탐구 과정으로서의 교육과 지식을 무효로 한다.

반면 역량강화 교육은 ‘스스로 배우고 더불어 배운다’고 한다. 교육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증대시키는 과정이다. 여기서 지식은 억압적인 사회, 정치, 경제 조직의 유

형을 이해하고 의문시할 수 있는 것이고, 비판적 의식을 획득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비판적 의식을 통해 역량강화된

사람들은 억압적인 관계를 변화시킨다. 억압적이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존엄성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조직과

활동양식을 계획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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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강화 교육이 되어야

인종, 성별, 언어, 종교, 계급, 재산 등에 따른 차별 금지를 26조에서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지는 않다. 이미 세계인권선

언 2조에 그런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 열거는 없더라도 교육에 있어 차별을 금지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모든 사

람”이라는 표현이나 “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하고 “평등하게 개방되어야”한다는 구절에서도 반복되는 점은 교육

상의 차별금지이다.

교육에 대한 접근에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요건이란 없다. 유일한 기준으로 언급된 것은 고등교육에서의 ‘능력

(merit)’이다. 정부의 공식번역본에서 ‘능력’이라 쓰고 있지만, ‘장점’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 듯하다. 여기서의 능력 내지

장점이란 특정 부문의 교육에 열중할 수 있는 관심이나 소질을 말하는 것이지 과도한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나 천재 소

리를 들을 만한 능력을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한국에서는 요원한 무상 교육

의무교육의 전제조건은 ‘무상’이다. 무상교육이 아니라면 의무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무상이라는 전제에서 초등교육이

‘의무’로 규정돼 있는 것이기에, 여기서 의무라 함은 국가가 무상교육을 보장할 의무를 말하는 것이고, 돈 걱정 없이 자

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상태여야만 부모가 자녀에 대한 의무를 방임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무상’에 대한 유엔사회권위원회의 해석은 수업료 등 직접적인 비용을 부과하는 것은 물론이고, 간접적인 부과, 예를 들

어 의무적인 기부금, 상대적으로 비싼 교복 착용 등도 안된다는 것이다.

“최소한” 초등교육이 무상이어야 한다는 선언의 규정은 다른 단계의 교육에도 확장되는 원칙이다. 선언을 만들 때 초등

교육만이 아니라 고등교육을 포함한 모든 교육이 무상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 근거는 무상이 아니라면 재능에

기초하여 교육에 평등한 접근권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각 국의 경제사정을 고려

해야 했기에 최소로 합의한 것이 초등의무무상교육이었다.

세계 10위권이라는 경제력을 갖춘 한국 같은 나라에서 초등무상교육을 하는 것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다. 소득수준은

사교육비 지출과 비례하고 또한 학업성적과 비례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고

치기 위한 교육이 불평등 유전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이다. 교육의 불평등을 염려하는 교육단체나 언

론 은 한국이 대학교육까지 무상교육을 실현하는 일은 결코 불가능이 아니라고 얘기해왔다. 가령 GDP 대비 6%의 교육

재정만 확보해도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교육비를 충당하고도 수조원이 남으며, 이것을 대학에 투자하면 무상교육의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한국이 중학교까지 달성했다는 무상교육도 진짜 의미의 무상 공교육이라 볼 수 없다. 법적으

론 무상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한다. 당사자가 사적으로 지불해야만 하는 교육비가 너무 많기 때문이

다. 한국의 사교육비 지출이 천문학적 수준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대학만이 아니라 무상교육단계에서부터 그렇다.

유엔 교육특별보고관은 이것을 “공교육의 민영화”(privatization of public education)라 비판했다. 거죽은 공교육일지 모

르지만 속은 사교육비로 채워져 있기에 이런 교육을 공교육이라 부를 수는 없다고 했다. 사교육비를 지출하지 않는 학부

모와 학생이 ‘맘 놓고’ 학교에 다닐 수 있는가 물어봤을 때, 그게 아니라면 교육은 권리가 아니라 돈 주고 사는 상품인

것이다.

교육의 자유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자유권과 사회권의 도식적 구분이다. 흔히들 26조에 있는 교육권을 사회권으로 분류한다. 세

계인권선언의 전반부를 자유권으로, 22조부터의 후반부를 사회권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고도의 정신적 가

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정신적 자유권의 하나이다. 교육권은 정신적 자유권을 바탕으로 하면서 사회권적 요소를

지닌다. 사회권으로서의 교육권은 국가가 교육의 모든 단계에서 무상의 비종교적 공교육을 조직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근대 자유주의의 교육권과 현대적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이 구별되는 이유가 이러한 사회권의 요소이다. 교육은 돈이 있는

자가 자기 돈을 내고 자녀를 교육시키는 일이라고 이해되던 시대에는 교육의 ‘자유’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현대의 교육

권은 국가에 대해 의무교육의 실시나 교육시설의 정비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돈

이 없는 사람도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국가가 그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점을

당연히 그 권리 속에 포함한다. 이런 국가 활동 없이는 현대의 공교육이 성립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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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한 불간섭과 적극적인 국가 행동 둘 다를 요구하는 주장의 결합이 세계인권선언의 26조에 나타난다. 정신적 자

유권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권은 자유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측면에서 국가 활동을 요구하는 것이지, 정신활동에 대한 개

입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유권 또는 사회권 어느 한편으로 교육권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국가의무의 4요소; 가용성, 접근성, 수용성, 적응성

유엔 교육특별보고관은 교육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로서 4가지 요소를 지적한 바 있다.

첫째, 가용성(availability)이다. 모든 학령기 아동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모든 아동이 공립학교에만

다니는 것은 아니므로, 공립학교를 포함한 모든 교육기관은 아동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최소한의 일치된 성격을 보장해

야 한다. 뭐가 일치돼야 하느냐면 국내외적으로 금지된 차별이 없어야 하며, 초등무상교육의 원칙이 보장돼야 한다. 정부

는 모든 교육기관이 최소 기준을 충족시키도록 보장해야 하며 차별과 배제 없는 통합교육을 보장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감독하고 재정 지원하는 것은 국제인권법에 부응해야 한다. 모든 교육기관에서 교사들의 지

위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포함하여 국제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누려야 한다.

둘째, 접근성(accessibility)이다. 선언에서는 교육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되어야”한다고 표현했다. 접근성과 밀접

한 문제는 교육비이다. 직·간접적인 교육비용, 통학비용 등의 장벽이 제거돼야 한다. 의무교육 이후의 교육에서도 비차별

적이고 감당할만한 수준의 교육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 교육은 결코 상품으로 취급돼선 안되며 시장이 실패하면 국가가

개입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도 안된다.

비차별은 즉각적으로 완전 보장돼야 하는 원칙이다. 가령 장애아동의 경우 학교 건물이나 교실이 그들의 접근을 불가능

하게 만든다면 실질적으로 배제되는 것이다.

셋째, 수용성(acceptability)이다. 교육은 교육 참여자들이 용납하고 수용할만한 것으로 확인된 최소한의 기준을 보장해야

한다. 최소한의 기준에는 교육의 질, 안전, 건강한 환경이 포함돼야 한다. 학교 규율과 교수방법은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어야 한다. 가령 교육 참여자의 평등권, 프라이버시, 인격의 발전을 침해하는 처벌과 규제는 안된다.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동은 억압에 제대로 맞설 수가 없다. 억압과 비교될 수 있는 대안적인 시스템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억압이 사라

져도 언제든지 억압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교육과정에서 습득하고 실현해보는 가치여야 한다. 배우

는 과정은 또한 물리적 장벽의 제거를 요구한다. 가령 교육을 방해하는 빈곤, 교육에서 채택한 주류언어로 인한 차별, 장

애로 인한 교육 장벽이 제거돼야 한다.

교육권 위협하는 상품으로서 교육

넷째, 적응성(adaptability)이다. 아동 최선의 이익을 위해 교육내용과 과정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

개념에서 특히 주목한 점은 일하는 아동을 위한 교육이 무엇인가이다. 극단적 형태의 아동노동, 아동노동에 대한 착취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그래서 기초교육을 마치는 나이와 고용, 결혼, 징병, 형사책임을 묻는 나이를 일치시킬 필

요가 있다.

또한 일하는 아동에게 교육이 제공돼야 한다는 적극적 측면의 고려도 있어야 한다. 많은 지역과 가정의 현실은 아동이

일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학령기 아동은 무조건 일을 하지 않고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방식의 접근으로는 아동의 교육

도 노동도 보호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 교육이 적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하고 배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주경

야독’의 접근법이 요구된다. 한 예로 고용된 아동의 하루 노동시간을 6시간 정도로 제한하여 적어도 2시간 이상의 교육

과 병행하도록 하고, 그 비용을 고용주에게 지불하도록 한 국가도 있다. 빈곤한 가정이 아동을 학교에 보내는 동안에는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시도도 있다. 교육이 적응성을 갖는다는 것은 학교 밖의 교육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

다. 자유를 상실한 아동, 난민아동, 국내실향민, 일하는 아동 등 교육기관에 접근할 수 없는 범주를 위한 교육이 적극 고

려돼야 한다. 또한 공식 교과과정이라는 것이 아동의 실제 삶과는 상관없이 다음단계의 상급교육과정(사실상 많은 아동

이 갈 수 없는)으로 진학하기 위한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도 문제이다. 직업교육을 진학교육보다 열등한 것으로 보

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교육 내용의 적응성은 교육을 통한 인권보장을 염두에 둔다. 다른 세계와 문화, 역사, 성역할 등에 대한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고 불평등·편견·차별의식과 싸울 수 있는 교육이 요구된다.

교육권은 흔히 인권 중의 인권으로 얘기된다. 유엔교육특별보고관은 “교육은 여타 인권을 풀어내는 열쇠”라고 했다. 세

계인권선언에 교육권을 넣을 때는 ‘자명’한 것으로 합의했지만, 실천에서는 그 열쇠가 제대로 맞지 않을 때가 많다.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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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조 ①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

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②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창작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

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100명당 적어도 150명 정도의 군인이 있는 것이 현세계이다. 거래하고 소비하는 상품으로서의 교육이 교육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인권을 풀어내는 열쇠를 그런 식으로 소진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문화권이 문화자본의 배타적 권리가 아닌 이유[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27조 문화적 권리

인권에서 문화권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다. 인권을 분류하여 ‘시민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권

리라 할 때 흔히 맨 뒤에 오는 문화적 권리는 빼먹기 일쑤다. ‘문화’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의 어려움 때문이며, 거기에다

가 문화권을 정의한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한 정의의 불가능성이 정의가 아예 불가

능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그로 인해 문화권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일 수도 없다.

문화권은 인권의 모습을 골고루 갖고 있다. 문화를 좁게 정의하면 특정 예술 활동과 관련되겠지만 넓게 정의하면 인간의

살림살이, 살아가는 양식 전체가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문화권의 개념은 예술의 생산, 매개, 수용과 관련된 권리

개념에서 인간의 생활양식 전반에 대한 창조적 진보의 개념으로 확대돼 왔다고 볼 수 있다.

문화권은 기존의 권리를 더 세심하고 폭넓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공교육 제도를 통해 모국어와 외국어를 습득할 기회

를 갖는 것이 기존의 교육권이라면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체류국의 교육기관을 통해 체류국 언어 뿐 아니라 모국어를 학

습할 수 있는 것은 다문화사회에서 필수적인 교육권이다. 창작자는 사상․양심․표현의 자유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금기의 부재와 극복 등이 중요하다는 면에서 정신적 자유의 측면을 갖는다. 이런 점은 과거에도 강조됐다면, 오늘날 창

작 활동은 자유 보장만으론 안 된다. 예술 활동으로 기초생계가 가능하도록 하는 창작 지원 정책이나 보조금 정책 같은

사회적 권리의 의미를 가져야 상업주의와 자본의 공세 속에서 창작자의 생존이 가능하다. 자유권과 사회권의 측면, 이

둘이 맞아 떨어져야 예술 활동의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나 청소년 등이 밥과 옷만이 아니라 문화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갖고 창조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사회권의 중요한 측면이다.

소수민족에게 문화는 존재 그 자체

문화적 권리는 개인이 속한 공동체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언어를 생각해보자. 언어는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

체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특정 집단이나 종족이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고 존중받는 것은 중요하다. 개인이든 집단

이든 타자와의 교류를 통해 상호존중을 이루는 것, 특정 문화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억제하는 것, 인종주의적, 차별적인

관행과 제도를 극복하는 것, 자문화 특수성을 내세워 인권침해를 정당화하지 않는 것은 인권의 주요 문제이다. 그간 국

제인권에서 주목돼온 문제는 소수민족의 생존 자체에 관한 것이다. 이들에게 자기들만의 고유한 생존 양식, 곧 문화에

대한 위협은 곧 존재의 위협이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소수민족 바자회에 간 일이 있다. 숲속 한가운데에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모였다. 저지대에서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까지 사는 높이와 환경에 따라 옷도 다르고 음식도 달랐다.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비슷한 아궁이 같은

것과 된장 비슷한 장류도 가지고 나왔다. 우리의 공깃돌 같은 것을 교환양식으로 쓰는 규칙에 따라 몇 개의 공깃돌을 구

입해서 실컷 구경도 하고 이런 저런 음식도 맛보았다. 날 안내한 친구는 소수민족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활동가였는데,

그 친구가 마련한 천막에서는 무국적과 소수민족의 인권문제를 다룬 그림책을 팔고 있었다. 친구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소수민족 대개가 무국적이라 했다. 태국이란 국가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이들은 여기서 살아왔다. 그러나 국가가 생긴

후 그들이 살아온 곳이 국립공원이 돼버렸다. 국립공원 안에서 그들의 경작도 여타의 활동도 불법이다. 시민권이 없는

이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도 토지를 소유할 수도 없다. 생계를 위해 산에서 내려와 미등록 이주노동자처럼 살아가거

나 국가가 지정해준 대로 살면서 관광객들 앞에서 쇼를 할 때만 고유의상을 입고 춤을 출 수 있다고 했다. 어렵게라도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선 고유의 삶을 버리고 태국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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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들은 문화, 민족, 종교 등의 이유로 한 국가 안에서 또는 국가 간에 지배 복속의 문제가 발생하는 곳에서 등장

한다. 또한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 사회하고도 관련되는 문제이다. 여기서 문화권은 개인의 권리일 뿐 아니라 집단정체

성에 대한 인정을 빼먹고는 말할 수 없는 권리이다. 흔히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면서 집단정체성에 대한 인정이 없는 경

우 특정 공동체에서 ‘빠져 나올’ 권리만 선택이 되지, 특정 공동체의 생활양식대로 살아갈 권리는 선택될 수가 없다면 선

택의 자유는 없는 것이 된다. 이에 세계인권선언을 상세화한 여러 국제인권기준에서는 ‘소수민족에게 고유어 사용과 교

육활동에 대한 자주권을 인정할 것’, ‘이주노동자의 문화적 독자성을 인정하고 이주자들의 문화적 유대의 유지를 방해하

지 말 것’, ‘이주노동자 자녀의 모국어 및 출신국 문화에 대한 교육에 필요한 조치’등을 규정하고 있다.

문화다양성의 존중

집단정체성에 대한 존중은 문화다양성 존중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한 국가 또는 세계 안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

받을 권리란 자기 문화를 박탈당하거나 강제 동화되지 않을 권리,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교육받을 권리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 다양성이라는 것은 말로만 ‘너를 인정해, 다양성을 존중하니까 알아서 해봐’라고 했을 때는 생존할 수 없다.

다양성은 둥근 접시에 똑같이 골고루 담긴 샐러드가 아니다. 주류가 있고 강력한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입는 것이 있고,

마법의 램프처럼 엄청난 수익을 눈 깜짝할 새에 가져다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이 모두를 같이 취급한다는 것

은 접시 자체를 깨뜨리는 일이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접시를 마련하지 않고 접시에 골고루 담긴 샐러드를 찬양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돈 되는 예술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기초예술에도 매달릴 수 있는 조건이 마련돼야, 전문가

의 예술이 있으면 평범한 일상속의 예술도 있어야 다양성이 존중된다고 할 수 있다.

문화권에서 다양성을 담을 접시를 마련하는 일은 문화 참여의 권리가 향유되고 촉진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국가의

의무를 말한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국가가 취해야 할 조치로서 다음과 같은 목록을 제시한 바 있다. ‘입법적 및 기타의

조치, 문화발전과 대중 참여를 위해 이용 가능한 기금마련, 제도적 기본시설(예를 들어 문화센터, 박물관, 도서관, 극장,

영화관 등)의 설립 및 유지, 소수민족과 소수자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인식과 향유의 증진, 매스미디어와 통신매체의 다

양성을 위한 조치, 인류문화유산의 보존과 제시, 예술적 창조와 퍼포먼스의 자유, 창조활동의 결과물을 유포할 자유의 보

호, 문화와 예술 분야의 전문교육' 등이다.

문화 창조․참여․수용의 주체로서의 인간

학창시절에 총학생회에서 문화부장이란 걸 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포부는 무슨 초청공연 같은 걸 많이 하는 게 아니

라 누구나 취향에 따라 작곡을 하거나 악기 하나쯤을 다루거나 시를 읊을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는 거였

다. 세월이 흘러 우연히 만났을 때 그 학창시절의 꿈을 내가 얘기하니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는지 까맣게 잊고 실적 늘리

기에 찌든 생활인이 되어 있었다. 주변 사람들 중에 왕년에 문학소녀, 그룹사운드 리더, 천재 화가가 아니었던 사람이 없

다. 악기 하나쯤 맘껏 다뤄봤으면 하는 소원을 여전히 품고 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문화권은 창조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생각하는 개념이다. 문화가 또 다른 산업으로서 경쟁과 시장성의 목록이 아니라 인

간의 권리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문화생활에 참여하여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권리로 인식되고 그런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한 노동자는 이런 말을 했다. 3교대로 근무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환자들을 위한 무

슨 문화공연을 하는데 짬짬이 연습한 무대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조금만 더 여가가 주어지고 문화

생활에 참여할 수 있고, 전문가를 초청하여 교육받을 수 있는 조건 등이 노동조건에서 고려된다면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직접 창조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과 감상자가 되는 것도 참여의 중요한 권리다. 많은 사람에게 특히 소외계층에

게 고급문화에 대한 접근성 및 참여기회의 확보가 필요하다. 고급문화란 비싼 입장료 때문에 고급문화인 게 아니라 그

완성도를 위해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숙성된 경지의 문화를 말한다. 어떤 선생님은 오페라가 뭔지도 모르는 빈민지역

아이들에게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공짜로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했다. 왜 의미가 없을까. 나는 뮤지컬과 발

레를 청소년 시절에 딱 한 번씩 봤다. 당시로선 입장료가 꽤 비싼 공연들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1년에 한번 공짜에

가까운 집단관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노랫가락과 배우들의 몸짓을 기억한다. 언제 생각해

도 아름답게 완성된 것의 절정을 본 벅찬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런 고급예술에 누구나 저렴한 비용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먹을 것과 주거에 대한 권리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나는 보통 기준으로 불효녀이다. 돈도 못 벌고 인권운동이란 것만 하고 다닌다. 그런 내가 부모님께 효도하는 방식은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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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님과 같이 놀기이다. 엄마 아빠도 잘 아는 인기가수 콘서트나 같이 볼만한 영화를 같이 보거나 여행을 함께 가는 것이

다. 그때마다 엄마는 ‘돈으로 달라. 돈이 남아돌아서 그런 걸 보러 다니느냐, TV로 보면 되지’라고 하시지만 나는 밀어붙

인다. 결과는 언제나 기대이상이다. 무대에서의 진짜 열창과 가수의 살아온 얘기를 듣는 것은 돈 때문에 숨죽이고 있던

엄마의 감성을 깨운다. 얼마나 좋아하고 흥분하시는지 느낄 수 있다. 복지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가장 보람 있었을 때는

생전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장애인의 눈물이었다고 한다. 복지관에서 어떤 서비스를 해도 그런 반응을 얻지 못

했었는데,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고 영화 상영을 했더니 TV가 아니라 영화관에서 영화감상을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펑펑 울었다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모국어로 된 잡지와 책에 목말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도서관은 못돼도 작은 문고

라도 설치할 걸 제안하면 사장들이 ‘재들이 무슨 책을 읽어’라는 말을 한다는 칼럼을 본 적이 있다. 장애인 뿐 아니라 이

주노동자, 농어촌 지역 거주민, 다문화 가정 아이들, 빈곤 청소년 등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권은 경제사회적 자원의

평등을 추구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지적재산권과 문화권은 달라

그런데 문화권에 대한 사고가 문화 ‘산업’의 수익을 올릴 권리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오해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국 배우 휴 그랜트가 주연한 ‘어바웃 어 보이’란 영화가 있다. 백수건달로 맨 날 소비하고 몸 가꾸고 여자 만나기에 빠

져 사는 휴 그랜트가 마커스란 왕따 소년과의 우정 속에서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관계를 생각하게 되는 영화이다. 로맨

틱 코미디 단골 주연인 휴 그랜트가 인간극장에 출연한 느낌을 준 영화다. 이 영화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상황에서 이 영

화 얘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다. 휴 그랜트의 자유롭고 소비를 만끽하는 백수 생활이 왜 가능했는지를 묻고 싶어서다.

휴 그랜트의 아버지는 작곡가였는데 크리스마스 때면 누구나 틀어대는 히트곡을 하나 남기고 죽었다. 그게 휴 그랜트의

밑천이다. 수십 년간 지속되는 저작권이 휴 그랜트에게 상속됐기에 그는 백수지만 잘 살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지적재산권을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창작물의 보호와 연결시키면 어쩌나하고 선언의 기초자들은 우려했

다. 이런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27조 2항이 들어갔지만, 세계인권선언에서 보호하려한 창작자의 정신적 및 물질적

이익의 보호범위는 흔히 지적재산권으로 지칭되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학문적․문학적․예술적 저작을 보호받을

권리가 상품화와 시장논리와의 대결에서 보호받는 것, 산업자본과의 대결에서 창작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여겨야지, 인간

의 권리를 기업과 자본의 권리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기존법률이 계약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과 인권으로서의 창작자

의 보호는 취지가 다르다고 봐야 한다. 인권으로서의 창작의 보호는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에서 배제되거나

산업자본의 특허권 때문에 진짜 생산자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걸 막으려는 의미로 봐야 한다.

27조의 내용에서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에 대해서는 3조 생명권에서 다룬 바와 같다. 여기서도 지적재산

권의 문제는 마찬가지다. 농업의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해온 농부들의 권리를 무시하면서 초국

적 기업이 종자에 대한 특허권을 갖고 농부의 권리를 침해하는 걸 볼 때 인권의 논리로서 보호해야 할 권리는 어느 편

이겠는가.

국제인권논의의 진전에서 한 사례를 살펴보자.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권리라는 게 정보사회와 관련하여 제기된 바 있다.

인간은 개인이면서 사회적 존재이다. 커뮤니케이션은 개인 정체성과 집단 정체성의 원천이 되는 독특한 사회문화적 거주

를 창조하고 유지하는데 핵심이 된다. 관계에 들어가고 공동체를 수립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따라서 음식, 옷, 주거처럼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이다.

기존의 인권 목록에 있는 표현의 자유로 충분치 않고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권리가 제기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평등하게

권한을 가진 개인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권력에 대한 접근이 엄청나게 차이나는 세상에 살고 있고, 이 세상

에서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조정되고 걸러진다. 대중매체, 정부, 상업적 기업, 특수한 이해집단 등이 커뮤니케이션의

내용과 유통에 영향을 끼치고 통제한다. 표현의 자유만을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사회의 표현의 수단에 대해서는 아

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신문, TV, 라디오, 영화, 음악, 교육기제 등 표현수단은 그것을 작동하는 자들의 이익 속에서 통제

된다. 이런 맥락에서 직접적인 정부의 개입을 금지하고 자유로운 언론을 사수하기 위한 법이라는 의미에서의 ‘표현의 자

유’는 제일 큰 목소리(예를 들어 사회내의 통신수단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의 지배를 방지하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권리는 정보의 독점, 극단적 상업주의, 정보내용의 조작,

지식과 정보에 대한 통제에 대해 반대하는 의미가 있다. 문화권이 문화자본의 배타적 권리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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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제28조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처럼 문화권은 일련의 정치․경제․사회적 권리를 전제로 하는 동시에 이들 권리가 보다 높은 수준에서 성취되는 과

정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권의 불가분성과 상호의존성에 대한 고려는 돈벌이 문화에서 고전하는 문화권

을 고려할 때 특히 빼먹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개인과 국가 관계에 치중한 기존 인권 구조를 뛰어넘을 가능성

[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28조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

“이 선언에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담은 28조는 세계인권

선언 1조가 열어젖힌 문의 미닫이라고 할 수 있다. 선언 1조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므로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갈등

과 분쟁이 온 세상에 퍼져있고 때로는 아주 잔인하게 인간성을 유린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 인간의 행위를 이끄는

이데올로기나 특질이 선언 1조에서 규정한 인간됨을 해칠 때가 많다.

이에 28조는 그 반대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인류는 2차 대전의 온갖 만행을 겪으면서 인간 개인들에게 폭력과 불의에

저항할 용기를 갖지 못한 것을 저주하기 전에, 폭력과 불의를 저지르게 하는 사회적 조건의 되풀이를 막는 것이 중요하

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구체적 권리의 대상, 밥에 대한 떡에 대한 권리도 없는 28조 같은 조항을 만든 이유가 그것이다.

인권이 말에서 현실로 바뀔 수 있는 조건을 한 사회 내에서나 국제적으로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밥에 대한, 떡에 대한 권리도 없지만

28조가 필요했던 또 다른 이유는 선언이 권리를 말할 뿐 이 권리를 실천할 국가의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는 점

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서방국가들이 국가의 의무를 선언에 명시하는 걸 아주 꺼려했다. 그래서 국가의 의무 없는

권리는 추상적인 목록에 그칠 것임을 우려한 쪽에서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안이다. 특히 선언을 만들 때 기초위원회에서

아주 소수에 불과했던 3세계 국가들에서 내놓은 제안이 28조의 토대가 됐다. 인권의 향유는 사회적 및 국제적 관계의 질

에 달려있다는 일반원칙을 담은 것이 28조이고, 여기서 개인시민과 국가관계에 치중한 기존 인권 구조를 뛰어넘을 가능

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와 관계가 무엇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8조의 배경이 된 당시 사건들

을 우선 참고할 수 있다. 1941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4가지 자유’를 선언했다.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언론과 의사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이다. 특히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의 선언은 제2의 권리장전이라 일컬어졌다.

그 내용은 유익하고 유리한 직업을 가질 권리, 적절한 식량과 의복과 여가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소득에 대한 권리, 건강

권, 좋은 교육에 관한 권리 등이었다.

1945년 설립된 유엔은 이러한 자유가 성취될 수 있는 국제질서를 만들기 위한 기구가 될 것을 약속했다. 유엔헌장에서

밝힌 그 목적은 “경제·사회·문화적 또는 인도적 성격의 국제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인종·성별·언어 또는 종교에 따른 차

별 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촉진하고 장려함에 있어 국제적 협력을 달성한다”(유엔헌장 1

조 3항)이다. 또한 그 조건이 되는 것은 “보다 높은 생활수준, 완전고용 그리고 경제적 및 사회적 진보와 발전의 조건,

경제·사회·보건 및 관련국제문제의 해결 그리고 문화 및 교육상의 국제협력, 인종·성별·언어 또는 종교에 관한 차별이 없

는 모든 사람을 위한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보편적 존중과 준수”(유엔 헌장 55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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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ILO도 필라델피아 선언(1944)을 통해 그 목적을 재확인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며,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를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며,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리고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영구적인 평화는 사회정의를 기초로 하여서만 확립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자유와 존엄성, 경제적 안정 및 기회균등이 보장되는 조건하에서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발전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조건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국가적이며 국제적인 정책의 기본목표이어야 한다. 특히 경제적 및 재정적 성격의 국

가적.국제적인 모든 정책과 조치는 이러한 견지에서 적용되는 것이어야 하고, 이러한 근본목적의 확보를 증진시키기 위

한 것이어야 하며, 이를 저해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필라델피아 선언 I, II)

발전에 대한 권리로

28조가 태어난 배경이 이랬다면 이후에도 국제사회는 28조를 계속 상기한다. 1966년 유엔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은

“세계인권선언에 따라 공포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하는 자유 인간의 이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시민적·정치적

권리뿐만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경우에만 성취될 수 있음을 인정”하

고 있다. 특히 11조 2항은 기아로부터의 해방을 다루는데, 이를 위한 국내적 및 국제적 질서의 사례로서 특히 토지 개혁

을(국내적 사회질서의 개혁), 필요에 따라 세계식량공급의 공평한 분배를 확보할 것(국제질서)을 언급하고 있다.

3세계가 인권무대에 대거 등장하면서는 개인이 무슨 권리를 갖는다고 열거하기 보다는 인권의 실현을 방해하는 주요 장

벽이 무엇인가가 많이 다뤄지게 됐다. 그 목록으로 제시된 것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분리정책), 무력 분쟁, 외국의 점

령, 빈국과 부국의 불평등 격차였다. 이를 두고 국제사회는 양극화됐다. 지배적인 서구 자유주의의 인권 접근은 시민·정

치적 권리에 집중하는 것이었고, 3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경제·사회적 조건을 강조했다. 이런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명목상으로나마 합치된 것이 인권을 위한 구조 변화를 다룬 ‘발전에 대한 권리’이다.

1969년 사회진보와 발전에 관한 선언은 “정당한 사회질서 속에서만 인간은 그 열망을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군비와

갈등을 위한 자원을 평화적 활동과 사회진보를 위한 것으로 바꿀 필요성을 언급했다. 모든 형태의 차별·불평등·인종차별

주의 등의 철폐, 토지소유제도 및 임차제도를 사회정의에 최대한 적합하도록 하는 토지개혁의 이행, 모든 사람의 노동의

권리 보장, 국부 및 국민소득의 공정하고 공평한 분배, 적절한 주거의 보장, 무상 의료서비스의 달성, 환경보호, 전면적이

고 완전한 군축의 달성 등이 이 선언의 주 내용이다

1986년 유엔총회는 발전에 대한 권리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 전문은 세계인권선언 28조를 재차 상기하며, 발전을 정의

하고 있다. “발전은 포괄적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과정으로서, 발전과 그로부터 산출되는 이익의 공정

한 분배에 있어서의 자유롭고 적극적이며 의미 있는 참여의 기초 위에서 전 인구와 모든 개인들의 복지의 부단한 향상

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 내용에는 “인민들이 자유롭게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결정하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

을 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데서 그들의 자결의 권리”, “그들의 천연자원과 부에 관한 완전하고 충분한 주권을 발휘

할 인민들의 권리”를 언급한다.

“식민주의, 신식민주의, 아파르트헤이트, 모든 형태의 인종주의와 인종적 차별, 국가의 주권·국가적 통합·영토보전에 대한

외부의 지배·점유·침략·위협, 그리고 전쟁의 위협 등의 결과들로 인한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인민들과 개인들의 인권

에 대한 대규모의 극악한 범죄들의 제거가 인류 대다수의 발전에 합당한 환경을 형성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것을 고려

하면서, 그 해결방법으로 “군비축소와 발전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군비축소 영역의 진보는 발전의 영역의 진보를

적지 않게 증진하게 되고, 군비축소 수단을 통해 확보되는 자원들은 모든 인민들, 그리고 특히 개발도상국들의 인민들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과 복지에 바쳐져야 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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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제29조

1. 모든 사람은 그 안에서만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고 완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공동체에 대

하여 의무를 부담한다.

2.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서, 타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적절한 인

정과 존중을 보장하고, 민주사회에서의 도덕심, 공공질서, 일반의 복지를 위하여 정당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에서만 법률에 규정된 제한을 받는다.

3. 이러한 권리와 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국제연합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여 행사될 수 없다.

연대, 동료 인간에 대한 의무[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29조 공동체에 대한 의무

29조는 선언에서 의무에 대해 말하는 유일한 조항이다. 인권에 대해 흔히들 하는 비판은 ‘권리만 말하지 의무는 말하지

않는다’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하는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조건을 따지지 않고 그냥 의무라고 할

때는 인권에 상응하는 의무가 아닌 엉뚱한 번지수의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가령 권리를 보장해야 할 국가가 자기 의무를 말하지 말고 시민에게 법부터 지키라고 요구한다. 어린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면서 연장자에게 존대부터 하라고 요구한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처지의 사람에게 어떤 착취가 있는지를 얘기하

지 않으면서 피해 당사자에게 네 처신부터 똑바로 하라고 요구한다. 이럴 때 의무를 말한다면 그건 음모가 있는 의무론

이다. 의무의 번지수를 잘못 찾아서 청구하는 것일 뿐 아니라 진짜 의무자가 도망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

의무,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야

권리는 관계 속에서 무언가를 요구하고 금지하고 규제할 수 있는 힘이다. 가령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국가

편에 무상으로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할 의무를 수립한다.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국

가기구와 관련 공무원이 고문이나 비인도적이고 굴욕적인 처우를 하지 않도록 할 의무를 수립한다. 인권이 권리라고 할

때 권리에서 나오는 의무는 이런 성격의 것이다. 교육권의 주체가 인간존엄에 반하는 학교규율을 지킬 의무, 인신의 자

유의 주체가 부당한 공권력에 복종할 의무 같은 건 의무란 말이 잘못 쓰인 것이다.

또한 권리에 따른 의무는 자유재량이 아니라 그야말로 강제력 있는 의무이다. 모든 사람에게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가 있

다면 요구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특정 사람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정인이나 기구가 의무자로 지정돼야 의무가 성립된다. 사회보장의 권리에 따른 의무는 지자체

나 정부가 져야 인권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상조회를 만들고, 아프거나 가난한 이웃을 방문하고 위로하

고 원조하는 것은 자유재량이다. 이 경우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수행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복지권 주체의 권리에

대응하는 의무는 아니다. 반면 국가가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에 따른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자유재량이 아니라 의무이다.

권리는 소유하거나 주어지거나 상실되는 물건이 아니다. 국가가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권리가 상

실되는 게 아니고, 독재 권력이 고문을 애용한다 하여 고문 받지 않을 내 권리가 상실되는 게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흔히들 비판하듯 인권을 보장하고 보호해야 할 국가가 인권침해를

저지를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권리의 주체가 바뀌는 게 아니고, 아무리 밥 먹듯 인권을 침해한다 해도 그것으로 국

가의 의무가 면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권리 주체가 지는 의무란 것이 착취에 대한 복종이고 악법에

대한 복종이겠는가. 권리주체의 의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이다. 빼앗기거나 왜곡된 자기 권리를 찾는 의무가 진짜

의무이다. 인권은 권리 중에서도 특별한 종류의 권리이다. 법적 권리뿐 아니라 도덕적 권리도 갖는다. 실정법으로 보장될

뿐 아니라 실정법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이 인권이다. 따라서 법적 명령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실

정법과는 다른 도덕적 명령도 내릴 수 있다. 인권의 주체는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인권에 따른 의무주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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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복종을 요구하지만 인권의 주인인 자기 자신에겐 인권침해에 대한 저항을 명한다.

의무에 대한 연구는 더욱 발전돼야

앞서도 말했지만 세계인권선언의 기초자들 중 상당수는 국가의 의무를 선언에 명시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해서

의무가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선언에 쓰인 구체적 권리들은 권리만을 걸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국가의

의무를 겹쳐 입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선언 이후 의무의 구체적 내용들은 국제법전문가들에 의해 발전돼 왔다. 앞서

사회보장권과 관련된 조항에서 살펴본 최소핵심의무, 존중·보호·실현의 의무 같은 것이 그 사례이다.

의무에 대한 연구는 더욱 발전될 필요성이 있다. 가령 국가의 보호 의무를 통해 간접적으로 기업의 의무를 물을 것인지,

기업 등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제도를 만들 것인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인간의 존엄에 필수적인 것을 무슨 권리로 주

장하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반면에 그런 권리에 대해 국가가 또는 다른 사회경제적 강자가 어떤 의무를 가져야 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가령 깨끗한 물에 대한 권리 주장은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이 생존과 건강에 얼

마나 중요한가를 보이면 정당화될 수 있다. 반면에 물에 대한 권리를 민영화하려는 정부에 맞서서 그리고 수익사업으로

여기는 물 회사에 맞서 그들의 의무를 정당화하기는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의무를 구체화하는 것이 인권에 대한 연

구요 실천활동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럼 29조에서 말한 ‘모든 사람의 공동체에 대한 의무’는 뭘 말하는 걸까. 29조는 사회와는 단절된 이기적 개인의 권리라

는 굴레에서 인권을 해방시켜 준 조항이다. 여기서 비판하는 개인주의는 ‘어떤 사람도 수단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 ‘세

상이 모두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개인주의하고는 거리가 멀다. 자기

이익의 계산기를 두드리는 데 유능할 뿐 다른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 같은 건 고려하지 않는 개인주의를 말한다. 세계인

권선언을 만들면서 사람들은 소중한 개인의 가치가 이런 식의 이기주의로 오해되는 걸 우려했다.

공동체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국가에 대한 의무’로 오독해서는 안된다. 선언 기초자들은 개인에 대한 국가의 침해로부터의 보

호를 염두에 뒀다. 한 대표자의 말처럼 “인간은 국가를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가 기본에 깔렸다. 공동체와 국가를 동일시할 위험성 때문에 ‘민주국가’라는 표현도 쓰지 않고 ‘민주사회’라는 표현을 택

했다. 따라서 공공질서, 일방의 복지 등 29조에 따른 권리제한의 조건규정들도 이런 전제조건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 국

가가 공공질서의 이름으로 자행한 범죄가 많았다는 것을 우려하면서 국가가 이런 문구를 이용해서 자의적 조치에 사로

잡힐 것을 선언 기초자들은 우려했다. 이점을 염두에 두고 29조를 봐야 한다.

선언의 목적은 이기적인 개인의 성취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진보를 증대하기 위한 것이다. “그 안

에서만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고 완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하여”라 한 것은 개인은 인격을 사회구조 속에

서만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선언에 규정된 경제사회적 권리가 구체화될 수 있는 조건

을 제공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연대와 상호의존성은 모든 인권의 성격이다. 모든 사람은 상호적이고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서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동시에 자신의 권리를 모든 타인에게 존중받는다. 인권이 갖는 상호성을

인정함으로써 사회는 공동체를 이룬다. 이런 공동체 속에서만 개인은 자기 인격을 발전시키고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공

동체에 대한 의무는 국가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동료인간에 대한 의무이다.

동료인간에 대한 의무를 현대적 화법으로는 ‘연대’라 할 수 있다. 연대의 화법은 어떤 것일까? ‘나는 000가 아니지만 당

신이 탄압받는다면 그에 반대 하겠다’는 식의 화법이 소극적 관용의 수준이라면, 연대의 화법은 ‘내가 000다’라고 생각하

고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정규직이지만 비정규직 운동을 지지한다’가 아니라 ‘내가 바로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인간

의 존엄에 반한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연대와 상호의존성

공동체에 대한 의무로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뺄셈의식’일 것이다. 누군 이래서 안되고 누군 저래서 안되는 식으로 인

권에서의 배제를 용인하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뺄셈의식을 버리고 가져야 할 것은 차별과 착취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공

통감각이고 그 문제를 나의 것으로 느끼는 연대의식일 것이다. 적대의 대상은 나와 다른 인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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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제30조

이 선언의 그 어떠한 조항도 특정 국가, 집단 또는 개인이 이 선언에 규정된 어떠한 권리와

자유를 파괴할 목적의 활동에 종사하거나, 또는 그와 같은 행위를 행할 어떠한 권리도 가지는

것으로 해석되지 아니한다.

롭히는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반인권의식과 조치일 것이다. 적대의 대상을 명확히 하여 가지는 그런 연대의식이야말로 진

짜 우리편 의식이다. 우리편 의식을 설파한 연설문 한 구절을 소개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무슬림이다. 그것이 나의 개인적 신념이다. 나는 여전히 무슬림이지만, 나의 종교를 논하러 여기 온 게 아

니다. 당신의 종교를 바꾸라고 여기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우리의 차이점에 대해 논쟁하기 위해 온 게 아니다. 왜냐하

면 우리의 차이점을 가라앉히고 우리가 같은 문제, 공통의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 당신이 불교도이건, 감리교도이건, 무

슬림이건, 민족주의자이건 간에 당신을 지옥에 빠뜨린 문제를 우선 보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이기 때문

이다. 당신이 교육받았건 일자무식이건, 큰 길가에 살건 뒷골목에 살건, 여러분은 나처럼 지옥에 빠질 것이다. 고통 받고

있는 우리 모두는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와 사회적 강등으로 고통받아왔다. 우리는 착취에 반대하고 강등에 반대하

고 억압에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그 차이는 벽장 속에 내버려두자.”(흑인 해방 운동가 말콤 X의

연설문 중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사냥개에게 쫓기는 약한 동물들처럼 인간사냥 당하는데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게 뭔가. ‘재들은 우리

시민이 아니잖아. 우리가 낸 세금으로 같이 살아갈 수는 없잖아. 피부색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뭔가

다른 게 존재하는 건 불안해.’ 한국은 동질적인 사회이고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에서는 인권이 숨 쉴 수 없다. 이주노동자

들은 이 사회에서는 시민권이 없다. 시민권은 나누고 분리하는 개념이다. 세금을 낸 시민이 정부 주식회사에서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시민권이라면 그리고 뺄셈을 잘하는 것이 시민권이라면, 인권은 포괄하고 더하는 개념이다. 사람

이라면 누구나 어디에서나 사람으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처럼 확실하게 비시민인 사람들, 겉으로는 시

민이지만 사실상 시민대접을 받지 못하는 차별받는 사람들을 중심에 놓고 설계해야 하는 게 인권의 개념이다. 시민권 개

념 안에서 인권을 바라보면 창문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창문(window)의 어원은 ‘바람의 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한다. 이 뜻을 따르면 창문은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온 세상을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는 바람의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게 된다. 시민권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 즉 인권의 눈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인권을 가진 모든 사람의 공동체의 의무가 아닐까 한다.

아무 권리나 인권의 목록에 오르지 않는다[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30조 권리를 해칠 권리는 없다

인권이란 말을 우리 사회가 흔히 사용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인권이 자주 거론될수록 인권을 해치는 권리

의 주장도 커졌다. 오히려 그런 판이 더 커졌다고도 볼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인권의 주장에 힘이 있다

는 걸 알아차렸는지 인권을 차용하여 사익을 주창하거나 정치적 이익을 정당화하는데 써먹는 일이 그것이다. 시장중심적

이고 시장우호적인 국내적 및 국제적 질서의 틀 속에서 기업 등이 권리의 주체임을 자임하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가 기

업가의 권리와 대등하게 다뤄지는 것, 자유와 안전이 거래 가능한 것처럼 다뤄지는 것, 기업의 이익 주창이 권리 언어로

포장되는 것 등은 권리 주체를 혼동한 대표적 사례이다.

아무 권리나 인권의 목록에 오르지 않는다. 어떤 부당한 것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뭉쳐져 온갖 희생을 치른 과정을 통해

서 인권은 만들어져왔다. ‘권’자를 갖다 붙임으로써 그런 과정과 정당성이 생략된 이익의 주장을 인권과 대등한 위치에

놓을 수는 없다. 가령 노동권은 그 자체가 기업가의 재산권이 무한정한 권리가 아니라 사회적 제약을 받아야만 한다는

필요성과 정당성 속에서 인정된 인권이다. 이런 노동권에 대응하여 기업가의 재산권의 일부의 행사에 불과한 경영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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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 인권의 반열에 오를 수는 없다. 노동권의 핵심요소인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에 맞서 기업주의 대항권을 얘기하

는 것은 ‘권’을 막도장 새기듯이 위조하는 행위이다. 장애인의 교육권에 맞서 내세우는 재산권은 사실 ‘집값유지권’이란

건데 교육권이란 인권에 ‘집값유지권’이란 인권이 대응한다는 논리는 어디에서도 주장되거나 인정된 바가 없다. 기업의

제약 없는 기술 실험의 권리를 사상과 언론의 자유 논리로써 설파한다거나 기업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명예와 신망에

대한 프라이버시권’으로 방어한다든가, 제약과 의료산업의 연구권리가 건강권이란 인권을 위한 것이라는 둥 사회적 감시

와 비판을 ‘인권’을 가장하여 벗어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인권과 물적 권리를 혼돈하고 인권의 주체를 사회경

제적 권력자로 혼돈하는 일이야말로 인권에 대한 모욕이자 침해이다. 인권의 주체는 사라지고 인권을 도구삼은 자의 것

이 되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초국적 기업 등이 이런 식의 권리포장을 애용한다면 정치적 패권세력도 마찬가지다. 침략전쟁에 ‘인권을 위한 전쟁’이란

수식을 붙이고, 뭔가 고귀한 목적을 위한 것인 양 자국민과 세계인의 눈을 속이려 한다. ‘인권을 위한 전쟁’은 그 자체가

있을 수 없는 모순이다. ‘인권을 위한 식량지원반대’, ‘인권을 위한 의약품 봉쇄’ 같은 건 또 어떤가. 이런 일들을 우려하

여 선언 30조가 있는 것이다. “권리와 자유를 파괴할 목적의 활동에 종사하거나, 또는 그와 같은 행위를 행할 어떠한 권

리”도 “특정국가, 집단 또는 개인”에게 없다고 했다.

선언에 보장된 모든 인권은 다른 인권과의 관계 속에서 읽어야지, ‘권’이라는 글자만 쏙 빼서 읽어서는 안된다. 선언은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타인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일 시킬 때 적절한 휴식의 권리

보장, 굶주림에서 해방될 권리에 대한 의무를 자국정부만이 아닌 국제사회의 의무로 말하고 있다. 모든 인권, 특히 재산

권은 이런 인권간의 관계 속에서 내재적 제약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인권을 해치는 인권은 인권의 주체들로부터 주체자격을 강탈하는 양식이다. 인권하면 흔히 혹독한 시련에 처

한 피해자를 떠올린다. 피해자 또는 희생자는 구제 또는 구원받아야 한다. 메시아처럼 누군가가 인권을 주창하여 희생자

를 구원하는 논리다. 이런 과정에서 인권의 주체는 주체가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 되고, ‘인도주의적’이란 수식이

붙은 온갖 간섭과 시혜의 대상이 된다. 어떤 철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안 입는 헌옷을 싸서 보내는 것처럼 그렇게 보내

진 인권은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온다.’ 인권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보낸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인권은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발신자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돌아온 인권은 발신자가 입맛대로 주무르는 것이 된다. 인권의 주체들이 스

스로 권리 찾기를 하려는 데는 신경 쓰지 않고, 희생자의 구원자 노릇을 하려는 데 쓰이는 인권은 권리를 침해하는 권리

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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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2] 5가지 열쇳말에 관한 참고자료

■ 마음의 자유

[인권문헌읽기]

자유언론에 대한 열 가지 시험(조지 셀더스, 1938년)

피디수첩을 위하여류은숙

나는 시사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다. 늘 보고 듣는 것이 인권소식이고 그건 대개 우울한 뉴스이기 때문에 굳이 어두운

구석을 파헤치는 시사물까지 챙겨보는 것이 정신건강상 별로여서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피디수첩의 본방을 일부러 사수

했다. 피디수첩은 미국산 쇠고기에 관한 보도로 시민들에게 당연히 알려야 할 것을 알렸다. 언론의 제 역할을 했다는 이

유로 3년여 재판과 온갖 괴롭힘에 시달렸다. 대법원에서 최종무죄판결을 받아서 그간의 고난에 대한 작은 위로나마 될까

했다. 그런데 정작 해당 언론사에서는 수치스런 사과보도를 한 것도 모자라 징계까지 한다고 하니 본방사수로라도 그 언

론인들을 응원하고 싶어서였다.

피디수첩 사건을 보면서 영화 하나가 떠올랐다. 1996년 제1회 인권영화제 때 내가 자막을 넣었던 <진실을 말하고 튀어

라>란 작품이다. 유난히 사연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자막작업을 시작하려는데 자원봉사자가 해준 번역문이 영화 전체의

1/4도 되지 못했다. 중간 중간 듬성듬성 번역한 상태라 자막 작업이 불가능했다. 영화 상영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영어

대본도 없었다. 게다가 110분이 넘는 긴 작품이었다. 정말 큰일이 난 것이다. 재미 동포 두 명을 긴급수배했다. 그 둘이

영화를 보며 영어를 받아 적고, 나는 그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바로 옆에서 자막기사가 자막을 넣는 동시작업을 밤

새 했다. 아침 첫 상영 시간에 맞춰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뛰었다. 거의 정각에 도착했다. 자칫하면 상영을 못했을 것이라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기억이다.

자막을 넣을 때는 왜 이리 길고, 말도 많고, 자료화면도 많은 것인지, 좋아하는 여배우 수잔새런든의 속사포 같은 내레이

션까지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부담을 덜고 작품을 찬찬히 보게 되니 그렇지가 않았다. 그 작품은 104세라는 긴

생애동안 80여년을 언론인으로 산 조지 셀더스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그를 빛나게 한 것은 힌덴부르크 나치최고사령관,

레닌, 무솔리니 등을 인터뷰했다는 경력이나 수많은 언론상을 수상했다는 등의 업적 때문이 아니다. 그의 생은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을 추구한 평생에 걸친 투쟁으로 요약된다. 대상이 정부 또는 군부와 정보기관이 됐든, 대기업 또는 교회

가 됐든 간에 비판에 성역을 두지 않고 펜을 휘둘렀다. 자본의 심각한 언론지배에 저항하고자 그는 독립 언론인의 삶을

추구한다. ‘자유언론을 바라는 수백만을 위하여’란 구호가 새겨진 주간지를 창간하기도 했고 많은 언론 비평서를 썼다.

영화에는 당시 98세인 셀더스가 출연하는데, 고령에도 타자기를 힘차게 두드리며 언론비평을 가하는 모습 그 자체가 비

판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진실을 말하고 튀어라>란 작품에 대한 인권비평도 내가 썼는데 검열에 관한 부분을 옮겨본다.

타자기 앞에서 자기의 입을 틀어막고 글을 쓰는 언론인을 그린 삽화가 있다. 그림의 제목은 “자체 검열의 7가지 원칙”이

며, 그 원칙이란 1) 검열은 국가 안보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2) 나는 우리의 지도자들을 신뢰한다. 3) 나는 고위층과 관

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4) 나는 이 직업이 필요하다. 5) 나는 승진이 필요하다. 6) 나는 감옥에 가지 않아야 한다. 7)

어쨌든 반대편은 나쁘다.

이런 검열원칙이 고전적인 정치권력의 압력에서 나온 거라면 셀더스는 그것과 더불어 자본의 언론지배를 더 중요하게

본다. 자본의 언론지배에 대한 경각심을 그가 했던 인터뷰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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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언론에 대한 열 가지 시험(조지 셀더스, 1938년)

1) 정치 정당들에게 동등한 지면을 할당하라.

2) 소수 정당들에게 일정한 지면을 할당하라. 적어도 그들의 영향력에 비례하는 지면을 주라. (이 두 가지 시험은 독

립적인 척 하는 대다수 언론들을 도마에 올릴 것이다.)

3) 연방통상위원회(FTC) 보고서를 보도하라. (이 보고서들은 충분치는 않지만 식량, 음료, 옷, 담배, 우유 등의 최대

생산업자들 다수가 사기 친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4) 담배와 자동차, 즉 최대의 광고주들에 대해 진실을 말하라.

5) 소비자들과 공정한 거래를 하라. (요즘 자유주의와 좌파의 주간지들만이 발행하고 있는 소비자 상품에 대한 보고

서를 똑같이 보도하라.)

6) 조직화된 압력을 거부하라. (미국재향군인회, 가톨릭교회조직들, 기업과 광고조직들, 그밖에 또 저널리즘에 겁먹은

소들과 코끼리들에게 알려라. 더 이상 뉴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이다. 모든 발행자들이 한 목소리로 이것

-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은 무엇입니까?

셀더스: 여론이죠.

- 여론을 만드는 건 뭡니까?

셀더스: 주요한 힘은 언론이죠.

- 당신은 언론을 신뢰합니까?

셀더스: 야구경기점수는 이따금 있는 오타를 제외하곤 늘 정확하죠. 주식시장시세표도 일정 한계 내에서 정확합니다. 하

지만 뉴스는 말이죠. 당신과 당신의 일상생활, 당신의 직업, 당신과 타인들과의 관계, 사회경제적 문제에 관한 당신의 생

각, 그리고 요즘 더 중요하게는 당신이 전쟁에 나가느냐 위대한 이상을 위해 생명을 무릅쓰느냐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뉴스로 말하자면, 거대 신문과 거대 잡지사의 98%(아니 99.5%)를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 왜 언론을 신뢰할 수 없죠?

셀더스: 왜냐하면 언론이 거대 사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대 도시의 신문과 잡지들은 상업화되었거나 거대 기업이 되

었고 소유주나 주주들의 이익 말고는 다른 어떤 동기로도 운영되지 않습니다. 거대 언론은 광고 없이는 단 하루도 존재

할 수 없습니다. 광고는 대기업으로부터의 돈을 의미합니다.

셀더스는 1914년에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20세기를 온전히 언론의 자유에 바쳤던 이 언론인이 지금의 한국 언론 상황,

피디수첩 사건을 보면 무슨 말을 뱉을지 상상이 간다. 1938년에 그가 쓴 책 <언론의 제국>에는 ‘자유 언론에 대한 열 가

지 시험’이 들어있다. 지금의 언론은 이 시험지에 대해 무슨 답변을 써낼 것인가?

98% 아니 99.5%의 뉴스를 믿을 수 없다는 셀더스의 말처럼 나는 대개의 언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0.5%

내지 2%의 언론에 희망을 건다. 피디수첩은 그런 언론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인권활동을 하는 동안 피디수첩과의 인

연이 적지 않다. 피디수첩은 전과 7범의 출소자에게 마이크를 쥐어주고 감옥실태를 고발하게 했고 법무부장관과 대담하

게 해줬다. 인권을 유린하는 폐쇄적인 사회복지 시설을 인권단체가 치러 갈 때 카메라를 들고 호위하듯이 동행해줬다.

자신들이 받은 언론상 상금을 전액 인권단체에 후원했다. 인권단체인 우리조차 대중의 공격적인 힐난이 두려워 꺼려하는

문제에 대해 용감하게 발언했다. 그런 언론이 거짓된 사과방송으로 모욕 받고 말도 안 되는 징계로 유린되는 것을 가만

두고 보는 것은 우리의 인권을 목 조르는 일이다. 다시 한 번 예전에 <진실을 말하고 튀어라>에 썼던 인권비평의 한 구

절을 옮겨본다.

인권의 증진은 언론이 능동적으로 개입할 때 가능하며, 언론의 효과적인 작용은 인권 존중에 달려있다. 특히, 국경에 상

관없이 어떤 매체를 통해서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고 전달할 수 있는 자유(세계인권선언 19조)의 존중에 언론의

생명이 달려있다. 그래서 이상적으로 우리는 언론이 자유롭고 비판적이며 건설적이기를 기대한다. 외부 압력에 의한 보

도 통제에서 자유롭고 공공 당국만이 아니라 사적권력이 집중된 다국적 기업 등을 비판하고, 보다 나은 실천을 위한 제

안과 아이디어를 위한 지면을 만들어내는 건설적인 언론을 말이다. 그래서 검열의 문제는 당사자인 언론에게뿐 아니라

언론이 직시해야 할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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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합의하면 어떤 손실도 없을 것이다.)

7) 노동 뉴스를 전하라. 노동과 공정거래를 하라. (다른 무엇보다도 노동 분야에서 언론이 땅에 떨어질 만큼 악화됐다

는 것을 모두가 인정한다.)

8) 허스트(역자 주: 당대 신문왕이라 불리던 미디어재벌)를 쫓아버려라. (AP 통신사는 뉴스를 훔쳤다고 허스트를 고발

했고 재판에서 이겼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를 쫓아내지는 못했다. 미국신문발행인협회도 그러지 못했다. 허스트를 배

후에 두고 있는 한 어떤 언론 조직도 윤리적 주장을 할 수가 없다.)

9) 신문팔이소년들에게 몇 푼을 아낄 수 있다는 이유로 아동 노동을 옹호하는 일을 멈춰라.

10) 논쟁의 양측을 다 보도하라. (뉴욕 데일리 뉴스는 루즈벨트 대 랜든 선거전에서 “대통령 선거전”과 노동에 관한

“경제 전쟁” 둘 다를 보도했다. 그 보도는 그 신문에 자유를 줬다. 하지만 자유를 취하는 신문은 거의 없다. 양측 모

두를 보도하길 거부한다면 어떤 신문도 자유를 주장할 수 없다.)

* 조지 셀더스의 글을 읽은 언론인, 편집자, 언론학과 교수들이 다섯 개의 목록을 덧붙여 제시했다고 한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공익 대신에 공공의 복지를 옹호하라.

2. 급진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 등에 대해 빨갱이사냥 없이 사실을 보도하라.

3. 미국 내의 협력적인 운동을 발굴하라.

4. 소비자 조합의 광고를 운영하라.

5. 편집 정책에 동의하는 기고만 싣는 것을 멈춰라.

※출처: 인권오름 제 267 호 [기사입력] 2011년 09월 21일

[인권문헌읽기]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캄덴 원칙

류은숙

국제사회가 정한 인권의 원칙 중에 ‘퇴행적 조치의 금지’란 게 있다. 주로 사회권 분야에서 얘기되는 원칙인데 현재 보장

되는 권리의 수준을 감소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뒷걸음치는 조치를 채택하는 것은 국가의 직접행위 또는 개입에 의한 인

권침해가 된다는 것이다. 먹는 것, 일하는 것, 공부하는 것, 언론 활동을 하는 것 등에서 퇴행적 조치가 범람하여 홍수가

날 지경이다. 즉 국가의 직접행위에 의한 인권침해가 도가 넘어섰다는 말이다.

사방에서 인권이 뒷걸음치는 소리에 통증을 느끼는 때에 더 이상 뒷걸음쳐서는 안 된다는 외침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시

국선언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표현한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본역량이자 인권 중의 인권이다. 소리와 말을 구

분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흔한 잣대이다. 그런데 현 정권은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곧 인간의 역량을 포기

하고 말 못하던 때로 퇴행하라는 말이다. 퇴행이 아니라 전진을 해도 모자랄 판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표현의 자유에서 전진이란 무엇일까? 지식인이나 전문인 또는 그럴만한 경제적․문화적 자본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표현의 수단에 접근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차별이나 증오에 찬 시

선에 주눅 들지 않고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것, 사회 속에서 그 소리가 무시당하고 청취되지 않는 개인 또는 집단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그로 인해 일부 개인이나 집단의 독주가 아니라 다양한 소리가 합창되는 문화를 만드

는 것이 오늘날 표현의 자유의 과제인데, 정권의 억압과 선전선동의 적나라한 노출에 맞서야 하는 것은 서글픈 퇴행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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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캄덴 원칙

I. (앞에 서술했으므로 생략)

II. 청취될 권리와 말할 권리

원칙 5: 다원주의와 평등을 위한 공공정책 틀

5.1. 모든 국가는 뉴미디어를 포함하여 미디어를 위한 적절한 공공정책과 조절 틀을 가져야 한다. 이는 다음

원칙에 따라 다원성과 평등을 증진한다.

ⅰ. 조절 틀은 기본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즉, 미디어에 대한 어떠한 규제이든 그 수행주체는 정부로부터 독

립적이며, 공적으로 책임지며, 투명하게 작동하는 기구만이 될 수 있다.

ⅱ. 조절 틀은 다양한 사회가 국경과 무관하게 다른 사회가 생산한 콘텐츠를 받을 뿐 아니라 자기 사회 콘텐

츠의 생산과 유통을 위한 미디어와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자유롭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증진해야 한다.

5.2. 조절 틀은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조치를 통해 수행돼야 한다.

ⅰ. 전화, 인터넷, 전기를 포함하여 통신수단과 미디어 서비스 수신 수단에 대한 보편적이고 비용을 감당할만

한 접근성을 증진하기

ⅱ.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송출 및 여타의 통신 체제와 관련해 어떠한 차별도 없도록 보장하기

ⅲ. 전체 대중이 다양한 방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통신 플랫폼을 사용하는 방송

국에 충분한 ‘공간’을 할당하기

ⅳ. 사회속의 충분한 범주의 문화와 지역과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방송횟수를 포함하여 상업 및 지역 미

디어에 자원을 평등하게 할당하기

ⅴ. 미디어 조절 기구들이 전체로서의 사회를 광범위하게 반영할 것을 요청하기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캄덴 원칙이다. ‘표현의 자유’와 ‘평등’이 나란히 자리한 것이 이 원

칙의 핵심이다. 이 원칙은 2008년 12월과 2009년 2월 두 차례 런던에서 열린 논의의 결과이다. 국제인권법 전문가와 유

엔 관계자, 시민단체가 함께 자리해 표현의 자유에 관한 국제인권기준의 진보적 해석을 고민한 결과이다. 이들의 고민의

핵심은 그동안 표현의 자유와 평등간의 긴장관계에만 지나치게 주목해왔다는 점이다. 흔히 표현의 자유와 평등은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원칙은 둘 간의 긍정적인 관계를 주장하며 인간존엄성의 보장과 확보에 이 둘이 보충적이

며 필수적인 기여를 한다는 점, 따라서 둘 간의 관계가 인권의 불가분성의 핵심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원칙의 서문에 담긴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현의 자유의 실현은 다양한 견해에 목소리를 주고, 특정한 목소리에 대한 배제로 귀결되는 불평등은 이를 훼손한다.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청취될 권리, 말하고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평등에서 중요하다. 공적인 참여가 부정당하고, 자신

들의 목소리, 문제, 경험, 관심이 안 보이는 것으로 치부될 때 사람들은 편견, 맹신, 소외에 취약하게 된다.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존중은 민주주의와 국제평화와 안보 증진에 기여한다. 반테러리즘과 이주 영역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조치들은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찍기를 낳았다. 이 원칙은 안보를 위해 인

권이 타협될 수 있다는 견해를 거부하며 대신에, 인권존중이 진정한 안보를 성취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 원칙은 국가의 의무를 강조한다.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할 것,

표현의 자유와 평등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 것 등이다. 이와 동시에 우려하는 점은 국가의 역할이 가져올 남용의 잠재성

이다. 강력한 민주주의만이 남용을 방지하고 이 원칙이 추구하는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더불어 언론 독점을 우려한다.

미디어의 다양성이 미디어 소유권의 집중과 여타의 시장의 실패로 위협받고 있다.

다양성의 존중을 강조하지만 이 원칙은 ‘증오 발언’에 대해서는 제한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신중하게 사례별로 접근되

어야 하며, 개인과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이용돼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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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미디어 소유권의 부당한 집중을 막기 위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조치 취하기

ⅶ. 믿을만하고 다원적이며 때에 맞는 정보를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며 다양성 또는 다양한 공동체간의 대화

증진에 중대한 기여를 하는 내용을 생산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이건 기타 형태의 지원이건 독립적이고 투명

한 과정을 통해 그리고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해 공적 지원을 제공하기.

5.3.

ⅲ. 취약하고 배제된 집단에게 훈련 기회를 포함하여 미디어 자원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기.

5.4. 미디어의 공공 서비스 가치가 보호되고 강화돼야만 한다. 이는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다원주의와 표

현의 자유 및 평등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가 통제적인 미디어 시스템의 변형을 통해 그리고 기존 공공 서비

스 미디어에 대한 적절한 재정 보장을 통해서이다.

원칙 6. 매스 미디어의 역할

6.1. 모든 매스 미디어는 도덕적 및 사회적 책임으로서 다음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ⅰ. 매스미디어의 종사자가 다양하며 전체로서의 사회를 표현하는 것을 보장하기

ⅱ. 사회의 모든 집단과 관계된 문제를 최대한 다루기

ⅲ. 독점적인 블록으로서의 집단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 내에서 다양한 원천과 목소리를 찾기

ⅳ. 직업적 및 윤리적 기준으로서 인정된 것을 충족시키는 높은 수준의 정보 제공을 고수하기

원칙 7. 정정과 항변의 권리

7.1. 평등권과 비차별, 그리고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보장하기 위해 정정과 항변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7.2. 정정 또는 항변의 권리를 행사했다하여 다른 구제책이 소멸돼서는 안 된다.

7.3. 정정과 항변의 권리는 자율적인 규제 시스템을 통해 가장 잘 보호된다. 효과적인 자율적 규제 시스템이

있을 때는 어떠한 강제적인 정정 또는 항변권이 부과돼서는 안 된다.

7.4. 정정권이란 매스 미디어가 이전에 부정확한 정보를 출판 또는 방송했을 때 정정을 출판 또는 방송할 것

을 요구할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준다.

7.5. 항변권이란 부정확하거나 오해하게 만드는 사실을 미디어로 발표함으로써 그 사람의 인정된 권리를 침해

했을 때 그리고 정정이 그 잘못을 보상할 것을 합리적으로 기대하지 못할 때 그 사람의 항변을 매스 미디어

발표를 통해 유포할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준다.

III. 문화 간 이해의 증진

원칙 8. 국가의 책임

8.1. 차별을 조장하거나 평등과 문화 간 이해를 해치는 말을 최대한 삼갈 수 있도록 국가는 장관을 포함하여

모든 수준의 공직자에게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공직자에게 이 점은 공식적 행위 규범 또는 고용규칙에 반영

돼야 한다.

8.2. 개인과 집단들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나 차별과 싸우고 문화간 이해와 평가를 증진하기 위하여 국가는

광범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는 교사에게 인권의 가치와 원칙에 관한 훈련을 제공하는 것, 모든

연령의 학생에 대해 학교 교과과정의 일환으로 문화 간 이해를 강화하는 것이 포함된다. (…)

IV. 표현의 자유와 증오발언(harmful speech)

원칙 12. 증오 선동

12.1. 모든 국가는 차별과 적대감 또는 폭력 선동(증오발언)을 구성하는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에

대한 옹호를 금지하는 법률을 채택해야 한다. 법률 체계는 다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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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증오’또는 ‘적대감’이란 용어는 표적 집단을 향한 격렬하고 무분별한 치욕, 적의, 혐오를 말한다.

ⅱ. ‘옹호’란 용어는 표적 집단을 향한 증오를 공공연하게 조장하려는 의도를 요건으로 하는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

ⅲ. ‘선동’이란 용어는 표적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향한 차별, 적대 또는 폭력의 촉박한 위험을 만들어내는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에 대한 표현을 말한다.

(…)

12.3. 국가는 원칙 12.1에서 정의한 증오 발언을 구성하지 않는다면, 특정한 사상, 신념 또는 이데올로기, 또는

종교 또는 종교 제도를 겨냥한 비판 또는 그에 대한 토론을 금지해서는 안된다.

(이 원칙의 원문은 www.article19.org 에서 볼 수 있다.)

※인권오름 제 159 호 [기사입력] 2009년 07월 01일

독재자의 첫 번째 행위는 자유로운 표현의 파괴

[인권문헌읽기] W. 더그러스 ‘민중의 인권’ 중 표현의 자유

류은숙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을 불태운다”고 시인 하이네는 읊었다. 인권의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인권

이 대규모로 침해될 때 그 전령사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것이다.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이 하는 짓은 맘에 안 드는 표

현을 불태워 없애버리거나 혹은 그전에 불태울만할 표현을 할 사람들부터 때려잡는 것이다. 창작물이 나오기도 전에 싹

을 없애버리는 것이니 효율적이기 그지없다. 누구 말마따나 그야말로 ‘실용적’이다.

출처 ; 진보넷 <정보인권에 접속하다> (http://to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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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의 역사에서 ‘치욕’으로 기록돼 있는 것이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이다. 매카시라는 상원의원이 내 손에 공

산주의자 명단이 있다고 떠들어댔고, 근거도 없는 그런 주장에 사회가 발칵 뒤집어져 빨갱이 색출에 나섰다. 영화인 등

수많은 표현의 생산자들이 애국심을 심사받는 청문회에 서서 양심을 까뒤집어 보이거나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W. 더그러스는 1939년부터 1975년까지 무려 36년간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사를 지낸 사람이다. 그가 유명한 것은 그렇게

오래 그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사회의 지배계급에게 눈에 가시 같은 소수의견을 일관되게 냈다는 데 있다. 그의

별칭은 ‘길들여지지 않는 더그라스’, ‘위대한 반대자’, ‘고귀한 소수 의견자’였다. 오늘 읽어볼 ‘민중의 인권’은 다름 아닌

매카시즘이 판치던 때에 쓰인 글이다.

인권의 역사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찍이 프랑스 인권선언은 “사상과 의견의 자

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들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인쇄할 수 있다”고 했

고,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세계인권선언도 시민들이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정부와 국가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자유주의자 밀은 사상의 자유로운 표현을 허용해야 할 근거로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묵살되고 있는 어떤 의

견은 진실일 수 있다. 둘째, 만약 그 의견에 다소 거짓이 있더라도 일말의 진실을 담을 수 있다. 지배적인 의견 하나가

전체의 진실을 담을 수는 없기에 반대의견과의 충돌은 남아있는 진실이 공급될 기회를 보장한다. 셋째, 지배적인 의견이

총체적 진실이라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지배적인 의견이 치열하게 논쟁되지 않는다면, 그 의견은 합리적 근거에 대한

이해나 느낌보다 편견에 의해 받아들여질 것이므로 가치가 떨어진다. 넷째, 독트린 자체로는 의미를 잃거나 사람들의 행

위에 미치는 영향을 빼앗길 것이다.

출처 ; 진보넷 <정보인권에 접속하다> (http://toon.jinbo.net)

나치즘이 책을 불태우고 결국에는 사람까지 불태운 야만을 저지른 후에 한 철학자는 “열린 사회는 사상의 개방과 기타

기본적 자유를 막으려는 세력들에 대해 영구적인 감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며 “자유의 대가는 영원한 경계”라 부르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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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더그러스 ‘민중의 인권’ 중 표현의 자유

(출처: 도서출판 물레, 박홍규 역 『민중의 인권』, 1987)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페리클레스(고대 아테네 정치가)는 행복의 비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용기는 자유이고 자유는 행복이나, 자유는 용감한 마음을 갖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토론과 토의는 때때

로 전투 그 자체보다도 더욱 훌륭한 용감함의 증거이다.”

완전한 언론자유는 체제도전을 포함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존하는 정권이 서있는 기본 전제 그 자체에 도

전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한, 완전한 의미에서의 언론의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헌법 수정 제1조(“연방의회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빼앗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미국 정치체제의 기초 그 자체를 공격하는 논의나 주장조차

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미국 헌법 수정 제1조는 참으로 대담한 실험이었다. 그것

은 모든 일을 민중의 무제한한 토론에 거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 부닥치는 가치 속에서 얘기하고 주장하고 이끄는 자

유를 다른 것에 우월하는 권리로 선택했다. 그것은 그 결과 무엇이 생기는가를 묻지 않고, 결과야 어찌되든 간에 자유

로운 토론과 여론에 편드는 입장에 국민을 둔 것이다.

제퍼슨은 …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신문을 갖지 않은 정부와 정부를 갖지 않은 신문 중의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전혀 주저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독재는 언론·출판을 철저히 탄압한다. 메이(영국의 헌법학자)가 『영국헌법사』에서 쓴 바와 같이 “어떤 나라에서도

권력을 갖는 자는, 토론을 자신의 주권과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 벌컥 화를 내는 태도를 취해왔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민중이 완전히 주권을 장악했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한 정치적 권리이다. 민중

이 주권행사의 엄숙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적절히 정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보장이다.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공

적 쟁점의 몇 가지만이 논의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없다면 민중은 획일주의에 억눌려져 그 결과 세계와

세계의 정세에 대한 관심을 전적으로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의견의 자유에는 더욱 깊은 의의가 있다. 그것은 개혁의 기회를 보증하는 것이다. 만일 살아남고자 한다면 언제나 변

화하여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법칙인 것이다. 버크(영국의 정치가)가 말했듯이 “어떤 변화의 수단도 갖지 않는

국가는 스스로를 보전하기 위한 수단도 갖지 않는 국가이다.”

마지막 한사람에게도 언론자유는 주어져야 한다. 이 권리가 만일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더욱 하

층의 더욱 수가 적은 더욱 비천한 소수파에게까지 주어져야 한다.

이런 표현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공통되는 주장은 자유로운 표현의 파괴는 언제나 독재자와 전체주의 국가의

첫 번째 행위라는 것이다. 글쓰기와 인권의 관계는 불가분적이다. 표현의 자유는 잠재적인 인권침해의 지표일 뿐 아니라

올바른 거버넌스의 기초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 어느 시기에 ‘함량미달’, ‘용량부족’이란 별칭을 단 통치자가 있었다. 이 자는 수시로 사고를 치면서도 무대책

일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비판을 끔찍이 싫어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엄중 대처하라’, ‘단호하게 대처하라’를 반복했다.

그래서 유권자 인민 사이에는 ‘무대책이 엄중대처’요, ‘난 아무것도 할 줄 몰라’가 ‘단호한 대처’라는 말이 떠돌았고, 그걸

참지 못한 통치자의 언론통제로 ‘엄중’하고 ‘단호한’이란 단어를 쓴 사람들이 표현의 세계에서 추방당했다. 가택수색, 출

국금지, 구속 등 표현의 세계에 들이닥친 통치자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모두들 놀랐고, 인권침해의 전조를 느꼈으니 근

본대책을 마련하자며 똘똘 뭉치게 됐다. 이후 이야기의 결론은 잘 모르겠지만 해피엔딩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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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현명한 주권자이기 위해서는 문화적, 학문적, 예술적, 지적인 생활에 대한 제약 내지 제한이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들의 사회에서는 지식의 탐구가 자유롭고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것이어야만 한다. “나치스 독일의 경우와 같

이 대학은 정치권력을 흔드는 사람들을 위한 확성기가 되어버려서는 안된다.” 교사는 사상을 추구하고 어떤 영역에도

나아가도록 허용되어야만 한다. 토의에 관해서는 종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 “교육은 끝없는 대화의 일종이

고 대화하는 것은 그 성질상 견해의 대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나의 필생의 목표이고 모든 미국인의 삶의 대상이기도 하다고 내가 믿는 문명이라는 것은 대화의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여러분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 대신에 여러분과 함께 사물의 이치를 논의한다는 것

이다.

획일주의는 정신적 영양실조를 초래한다. … 획일주의 국가에 있어서의 시민의 시계(視界) 범위는 지극히 한정되기 때

문에 자기 주위의 세계에 대하여 현명한 반응을 보일수가 없다. 그들은 정부가 조작하는 선전기관의 희생자로 될 뿐

이다.

공정한 평론의 특권이라는 것은 공공이익에 관계되는 사실 예컨대 정부의 행동이나 공직 후보자의 적합성과 같은 사

실에 대한 평론에 관한 한, 그것이 진실인가 허위인가에 관계없이 비방에 관한 법의 엄격한 적용을 배제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단지 비방하는 것이 때로는 치안을 침해한다든가 그러한 경향을 갖는다든가 하는 것뿐의 이유로 어떤 특정한 문서에

의한 비방을 유죄로 인정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고 이 특정의 비방이 가솔린의 증발연기가 충만한 장소에서 성냥을

켜는 것과 비슷한 경우에만 유죄로 되어야 한다.

적정절차는 무엇인가? 적정절차는 입법기관이 합리성을 갖지 않고 자의적으로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을 요구하

고 있다. 그런데 이 기준은 수정 제1조와는 무관한 것이다. 수정 제1조는 본래 표현이 어떤 경우에 ‘합리적으로’ 억압

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권한 그 자체를 정부로부터 뺏으려는 의도 하에서 제정자가 입법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상은 범죄로 될 수 없다.… “사상범이라고 하는 범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행동의 범죄뿐이다.”

※출처: 인권오름 제 112 호 [기사입력] 2008년 0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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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의 자유

[집단지성의 놀이와 노동] 신상털기, 소셜 감시, 프라이버시의 위기

자발적 감시 문화의 분석과 재구성이 필요하다

조동원

금융 기업들에서 연속으로 터진 해킹 사건,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추적하고 감시해온 스마트폰, 몇몇 연예인에 대한 영리

적 신상털기 행태. 최근의 주요뉴스를 장식한 일들이다. 서로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어느 때인가부터 종종 발생해온

이런 사건들은 온라인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정보을 공개하고 공유하고 있는 오늘날의 달라진 정보문화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사건을 악의적 해커(혹은 북한)의 소행으로 보거나 고도화된 이용자 위치정보 수집의

불법성을 따지거나 일부 막나가는 네티즌의 일탈을 비난하는 식의 사법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온전히 해결되기 어렵다.

때 되면 터져나오는 반복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여러 각도에서 오늘날 프라이버시가 처한 위기를 부각

시키는 개별 사례라고 할 만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가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사라지고 있는 듯한 오늘의 정보문화 현실을 심도깊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감시 기술의 민주화

방문한 인터넷 웹사이트 접속 기록, 주고 받은 이메일, 여기저기 남긴 댓글, 메신저 대화, 트윗이나 담벼락 게시물 , 언제

어디서 올리거나 내려받은 사진, 음악, 비디오 등 모든 정보를 국가기관이나 기업이 언제든지 손쉽게 수집하고 분석하여

감시·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널리 퍼져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감시 기술은 우리가 맘만 먹으면 개인적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손쉬운 것이 되었다. 시민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기업을 창업할 수 있고, 누구나 수퍼스타가 될 수

있게 된 것처럼 또한 누구나 ‘큰형님’(빅브라더)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시 기술의 민주화 덕분이다. 구글 검색만으로

도 가능한 신상털기가 두드러진 현상으로 주목되고 있지만 여기에는 널리 퍼져있는 소셜 미디어(감시) 문화가 전제되어

있다.

신상털기: 또 하나의 시민 참여 미디어

신상털기는 연예인을 비롯한 공인이나 느닷없이 사회면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된 평범한 개인을 목표대상으로 해서 종종

발생해왔다. 가장 최근의 사례에서 특기할 만 것은 그 “진실을 요구합니다”의 양상이 온라인 상업광고를 붙여 수익을 내

는 형태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마녀사냥 , 사이버 좀비, 인격살인, 사이버 괴롭힘, 무분별한 사생활 들추기로 비난 받는

일임에도 일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화한 신상털기를 인터넷의 네티즌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현상처럼 이야기하지만, 신상털기는 그 말이 있기 전부터 광고 수익에 의존해온 언론 미디어의 주특

기였다. 초국적 미디어 제국을 거느린 루퍼드 머독 소유의 영국 일요 신문인 ‘뉴스 오브 더 월드’나 자매지 ‘더 선’ 등이

영국 왕실의 휴대폰을 해킹해 불법 감청하며 그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기사를 작성해왔다. 불법 해킹까지 일삼은 언론

보도는 다소 극단적인 경우라고 하더라도, 사건사고가 적시에 알아서 그럴듯하게 터져주지 않기 때문에 언론 미디어는

연예인을 비롯해 주목을 끄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캐내어 적절히 폭로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아 구독률이나 시청률을

올리고 곧 광고 수익도 높여왔다.

적극적이고 참여적인 일부 네티즌이 그런 언론 미디어의 관행을 변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민 미디어에 호의적이

던 언론 미디어가 이런 종류의 시민 미디어에 대해서는 냉담한 듯 하다. 두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추자는 사이트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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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광고가 붙어 있어 두 사람의 사생활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부르고 있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비난하고 있는 언론사 웹사이트 자체는 그와 다름없는 온갖 고민해결류의 상업광고를 위아래

양옆에 배치한 채로 무분별한 사생활 들추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거듭 들추면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사실, 신상털기

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때 그에 광고를 붙여 돈벌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놀랄 것도 없이 인터넷에서 오래전부터

그렇게 자리잡아온 언론 미디어의 관행을 그대로 따르는 것일 뿐이다.

페이스북에서의 셀프-신상털기

그런데 시민 미디어를 자처해온 오마이뉴스는 (역설적이게도) 최근의 신상털기 사태에 대해 심지어 “네티즌이 미쳤다”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 제목을 달았는데, 그러면 일부 미친 네티즌을 인터넷에서 걸러내는 것으로 해결하자는 얘기일까.

광고로 돈벌이를 해야하는 언론 미디어의 뉴스상품 생산양식이 이미 그러하다는 것을 잠시 눈감아주더라도 신상털기가

뭔가 이상한 사람들만의 인터넷 비행이나 일탈로 보고 끝낼 사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일부 몇몇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관여하고 있는 문화가 사태의 이면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소셜 미디어의 유행은 곧 소

셜 (미디어에 기반을 둔 사회적) 감시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고 있다. 싸이월드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는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고 그에 상호작용하면서 나를 드러내고 나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넓혀나가는 데 최적화된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이런 정보자본주의 문화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익숙해지고, 사적 정보의 공유 서비스가 편

리할 뿐만 아니라 나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개인정보는 더 드러내야 좋은 일

이 되고 있다.

신상털기가 어느 한 두 명의 사적인 정보를 무차별적인 대중이 집단을 이뤄 폭력적으로 공개하는 사건이라면, 페이스북

은 자기 스스로 신상을 드러내어 연계를 맺는 기제로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신상 공유문화이다. 서로 달라

보이지만, 특정한 사건사고가 터져나오는 때 곧바로 신상털기가 뒤따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신상 공유문화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통한 위치추적과 감시가 (우리의 동의를 구하지 아니한 것을 넘어)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것이라면, 그에 못지 않게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끊임없이 노출(유출)될 수 있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의 이용은 마치 합

법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양자의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감시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와 같이 소

셜 미디어(감시)는 지금까지 감시의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자발적이고 합법적인 그것으로 바꾼다는 데에서 가장

큰 특징을 보여준다. 물론 정보 감시의 폭력적 성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로부터는 정부·기업의 대규모 정

보유출 사건으로 그리고 아래로부터는 신상털기와 같은 형태로 그 폭력성이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의 위기

페이스북의 창업자는 “이제 사람들은 보다 많은 정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데 편안함을 느끼며, 개인적인 프라이버시

문제는 더 이상 사회적인 규범이 아니”라며 “프라이버시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구글의 사장도 “인공지능으로 당신이

올린 글과 위치정보를 분석해 우리는 당신이 다음에 어디에 갈 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전세계 45개 소셜네

트워크사이트 중 60%가 개인 신상정보의 공개를 기본으로 설정해놓았고 그 이용자의 80~99%가 기본 설정을 바꾸지 않

는다”는 말이 맞다면, “프라이버시 시대의 종말”은 그냥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프라이버시 위기는 사적 정보가 흐르는 사적 영역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다. 우리의

사적 정보가 노출되고 유출되어 가는 곳이 다름 아닌 공적 영역이고, 그렇게 사적 정보가 공적 영역을 뒤덮어 사회정치

적 사안들을 유야무야 묻어버리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 철학자가 지적하듯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프라이버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공적 영역과 그것이 수반했던 위엄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의 공적 영역이

그 위엄을 계속 지킬 만한 것이었느냐는 별도의 문제로 한다면, 기존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이 더 이상 유지되

기 힘들게 될만큼 상황이 변했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어느 것이 “사적인 문제”이고 어떤 것이 “공적인 관심을 쏟을

사안”인지를 누구가 구별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프라이버시 침해 사건들이 많아졌다는 차원이 아니라 기왕의 (시민에 대한) 정치적 감시와 (노동자와 소비자

에 대한) 경제적 감시에 더해 시민 참여적 사회적 감시로서 소셜 미디어(감시)까지 확산되고 있는 현 상황은 프라이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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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세계를 감시하는 '빅브라

더의 눈'은 현실로 도래할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은 이러한 위기

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출처; networker.jinbo.net>

가 처한 심화된 위기를 알려주고 있다. 우리 각자의 신상, 상태, 위치, 행태 정보가 무엇보다도 소셜 미디어나 모바일 기

기를 매개로 상품으로 거래되고 교환되면서 프라이버시는 이제 근대국가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인권의 의의

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프라이버시의 위기를 온전히 넘어서는 작업은 정치적 감시나 경제적 감시 뿐만 아니라

자발적 소셜 감시를 통한 정보 상품 교환 문화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이를 우리가 얼마나 달리 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하겠다.

※출처: 인권오름 제 248 호 [입력] 2011년 04월 27일

민주주의 후퇴시킬 감시사회로의 진입

휴대전화 감청, 통화기록 보존 가능케 할 통신비밀보호법 개악

이은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지난 20세기에 이루었다고 하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성과가 무색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국

가는 신자유주의로 치닫는 자본의 무한경쟁과 각축 속에서 자본의 보호자가 되어 소비자, 소수자, 약자에 대한 약탈을

방관하거나 돕고 있다. 그 와중에 인권과 민주주의는 무참하게 억압당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억압이 교묘한 대중 조작

으로 포장되어 호도되고,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과반수의 지지를 얻거나, 절차적 민주주의를 충족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오랜 인권의 역사 속에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인권이 차지해 온 비중은 절대적이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인

간 존엄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누리는 동안에는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하지만, 밝히고 싶지 않은 사생활

이 공개된 후 평생 인간의 존엄이 짓밟힌 채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그 절대적인 가치를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다. 나아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기도 하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온전하게 보

장되어야 그로부터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나 그 밖의 여러 사회적, 정치적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새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되묻게 하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인터넷에 글을 쓸 때는 실명을 밝혀야 한다는 인터넷 실명제가 도

입되었고, 선거 시기에 인터넷에서 정치적 견해를 밝힐 때 실명을

밝혀야 한다는 선거법의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었다. 이처럼 의사

소통의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억압하는 제도가 도입됐음에도 언론

이나 학계에서는 큰 비판이 없었다. 놀라운 일이다.

감청장비와 인터넷 사용기록 보관 의무화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그런 와중에 또 다시 우울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전국민의 휴대

전화 감청이 가능하도록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감청장비를 갖추도록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또 사업자로 하여금 전국민의 휴대전화 사용내역과 인터넷 접속지를 추적할 수 있는 아이피 주소

와 그 밖의 인터넷 사용기록을 보관하도록 의무화한다는 것. 사업자가 이를 어길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한다는 내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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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는 감시사회에서 개인의 사생

활의 자유는 지켜질 수 없다. 우리는 지금도 이미 수많은

감시에 노출되어 있다.<출처; rebeccahahn.com>

들어있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다른 당에서는 찬성을 하고 있

는 모양이다. 곧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고 본회의에 상정돼 의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큰 일이다.

이런 법안을 도입할 때 정부는 항상 범죄수사와 테러 진압,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든다. ‘선량한 국민’을

지키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수백여년의 투쟁을 통해서 그 가치가 확인되고 헌법에 성문화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비밀과 자유’의 가치는 ‘범죄 수사’, ‘테러 진압’, ‘명예 훼손 방지’ 등의 이유로 쉽게 허

물어서는 안되는 너무나도 중요한 가치이다. 이를 제한하려면 그 제한이 부득이하고, 다른 방법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제한은 필요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휴대전화 도청과 통화기록의 의무보관, 인터넷 사용기록의 의무보관은

범죄수사와 국가안보를 위한 ‘필요 최소한의 부득이한 조치’인가?

전국민 대상으로 한 감시와 사찰, 민주주의 후퇴시킬 것

국민의 대다수인 4천여만명이 가입해 있는 휴대전화는 개인 사생활의 집약체다. 휴대전화는 그야말로 개인이 형성하는

생활의 총체이며 개인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이런 휴대전화 이용기록이 저장된다는 것은 4천만 국민의 사적인 기록이 남

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3,800여만명의 국민이 평균적으로 연간 714시간 남짓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은 어떤가? 그

이용기록이 기록으로 저장되어 남는다면 이것 또한 민감한 사생활의 집약이 될 것이다. 1990년 보안사에서는 1,303명의

민간인 사찰카드를 만들어 관리를 해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그런데 통신사가 전국민의 1년간의 휴대전화 이

용기록을 보관하고, 인터넷 서비스업체가 전국민의 1년간 인터넷 이용기록을 보관하게 된다면, 보안사의 사찰카드나

1,303명의 사찰은 우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꼼꼼하고 세세한 전국민에 대한 사찰카드가 작성되고 관리되는 것이다.

아무리 범죄수사나 테러진압을 목적으로 내세운다고 해도

이런 기록이 기업에 남겨지고 국가로 넘어가는 것은 바람

직하지 않다. 4천만명의 사생활을 기록하고 관리하면 인권

이 위축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

다. 몇 명의 범인을 잡겠다고 4천만명의 사찰카드를 만들

어 보관하라고? 더구나 휴대전화에 가입하려면 실명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인터넷도 실명으로 가

입해야 한다. 이 사회에서 사는 한 꼼짝할 수 없다는 것이

다. 그만큼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휴대전화 감청도 심각한 문제를 낳기는 마찬가지다. 국가

가 국민의 휴대전화 통화를 감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통신사업자에게 특수한 장치를 개발하도록 하고, 그 장치

를 이용해서 전국민의 휴대전화 통화를 엿듣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가 엽기적이다. 게다가 통신사업자에게 법으로 이

런 장치를 만들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은 공권력의 남용이

다. 그 이유를 아무리 범죄 수사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

한 것이라고 내세우더라도 이런 계획을 세운다는 것부터

국가가 얼마나 인권을 우습게 알고, 민주주의를 하찮게 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휴대전화 감청을 할 수

없어서 국가안보에 치명적 위험이 생긴다는 논리는 가당키나 한 것인가? 앞으로는 범죄수사와 테러진압을 위해서, 모든

전자우편을 실명으로 개설하도록 하고 사업자로 하여금 1년간 전자우편을 보관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려면 가장 기본이 되는 인간의 존엄,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 그

래서 그 근간이 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비밀과 자유가 소중한 것이다. 최근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인권의 근

본 가치를 훼손하려는 모든 시도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출처: 인권오름 제 48 호 [입력] 2007년 04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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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적 생존

[인권문헌읽기] 인류의 평화에 대한 권리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 of Peoples to Peace, 유엔)

유엔의 평화권 선언, 분쟁의 현장에서 실천으로 증명해야류은숙

잔인한 7월이었다. ‘평화로운 빗소리’라는 식의 표현을 7월의 집중호우 속에서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빗

속에 생존권을 떠내려 보낸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고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지만 여전히 또다른 ‘비’를

내리는 세력들이 있다. FTA와 평택미군기지의 강행, 노동자 때려잡기,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대한 학살 등 빗줄

기는 그치지 않고 있다.

빗소리의 느낌이 맥락에 따라 다르듯이 평화의 개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입으로는 ‘평화와 공존’을 외치지만 그것이 억

압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가짜 평화에 맞서 평화를 규정하려는 노력들은 많다. 좁고 넓

게 혹은 길게 가깝게 평화를 ‘이런 것’이라 규정하는 노력 속에서 바라보는 평화는 참 평화롭다.

“평화는 삶에 대한 존중”, “평화는 인간의 가장 값진 소유물”, “평화는 무장 갈등을 끝내는 그 이상의 것”, “평화는 인간

과 환경의 조화로운 공존”,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빈곤과 기아 등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 “평화는

먼 훗날의 이상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한 방식으로 창조되고 확대되는 행위양식”, “평화는 자유, 정의, 평등 및

인류 간 연대의 원칙에 대한 뿌리 깊은 헌신”…

“평화적 생존은 모든 인권의 출발점”이란 말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은 결코 평화롭지

않다. 기본 중의 기본을 무시당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유엔이 1984년 채택한 ‘인류의 평화에 대한 권리선언’이다. 이 선언은 인류의 평화적 생존권이

모든 인권의 기초임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강조하고 있다. ‘전쟁위협의 종식’, ‘국제관계에서의 무력 사용의 포기’, ‘평화적

수단에 의한 국제분쟁의 해결’이 가장 기본적인 요구조건이란 것도 분명히 하고 있다. 평화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가장

좁은 의미의 평화에 대한 약속의 재확인이다.

이 선언이 채택된 것은 유엔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1985년을 ‘세계 평화의 해’로 선포하기 위한 합의에서 나온 것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 더 큰 피를 불렀다는 역사적 교훈은 넘쳐난다. 평화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전쟁을 선택한 것

의 결과가 어떠하지를 잘 아는 속에서 출발한 유엔은 그 헌장 첫머리에서 “우리 일생 중에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

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기” 위해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들의 힘을 합”

한다는 것을 결의했다.

그 연장선에서 1949년 ‘평화의 본질에 관한 선언’은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삼가고” “어떤 국가에

대해서든지 그 인민의 의지를 파괴하려는 모든 직간접적 위협이나 행위를 삼갈 것”을 가장 엄숙한 평화 협정으로 선언

했다. 그리고 1978년 ‘평화로운 삶을 위한 사회들의 준비에 대한 선언’에서는 “침략전쟁, 침략전쟁의 계획·준비·추동은 평

화에 반하는 범죄로서 국제법에 의해 금지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1984년 선언은 앞서 원칙들을 반복·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달력에 기념할 날짜를 채워가고 평화에 대한 선언문을 쌓아가는 것이 평화의 존재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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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류의 평화에 대한 권리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 of Peoples to Peace, 1984년 11월 12일 유엔총회 결

의 39/11)

유엔총회는

유엔의 주요 목적이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임을 재확인하며,

유엔헌장에 규정된 국제법의 기본적 원칙들을 상기하며,

인류의 삶에서 전쟁을 근절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핵 파멸을 막는 것이 모든 인류의 의지와 열망임을

표현하며,

전쟁 없는 삶이야말로 나라들의 물질적 복지, 발전, 진보를 위하며 유엔이 선언한 권리와 기본적 인간 자유를 완전

히 실현하기 위한 제1의 국제적 필수조건임을 확신하며,

핵시대에 있어서 지구상에 지속적인 평화를 수립하는 것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보존과 인류의 생존을 위한 일차적인

조건을 대표한다는 것을 인식하며,

인류의 평화적 삶을 유지하는 것이 각 국가의 신성한 의무임을 인정하며,

1. 우리 지구상의 인류에게 평화에 대한 신성한 권리가 있음을 엄숙히 선언한다.

2. 인류의 평화에 대한 권리를 보존하고 그 이행을 증진하는 것이 각 국가의 기본적 의무임을 엄숙히 선언한다.

3. 인류의 평화권 행사를 보장하는 것은 전쟁의 위협, 특히 핵전쟁의 위협을 종식시키기 위한 국가들의 정책을 요구

하며, 국제관계에서의 무력 사용의 포기와 유엔헌장에 기초한 평화적 수단에 의한 국제분쟁의 해결을 요구한다는 것

을 강조한다.

4. 모든 국가와 국제 조직은 국가적 및 국제적 수준 모두에서 적절한 조치를 채택함으로써 인류의 평화에 대한 권리

이행을 지원하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을 현실은 아프게 보여준다. 이 모든 국제인권법을 백지화시키고 있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표정은 이런 선언 어디에도 드

러나지 않는다. 이 선언이 채택되기 얼마 전인 1982년에도 이스라엘은 남부 레바논을 침략하여 약 1만8천여 명의 생명을

학살했고, ‘세계평화의 해’에는 튀니지의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본부를 폭격하여 수십 명을 살해했다.

평화에 대한 말을 실천으로 번역해 내기 위해서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반평화와 반인권의 현실이다. 군사적 목적으로 기

본권이 제한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전쟁위험과 실제 군사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봐야 한다.

성차별, 인종차별, 경제적 압력, 실업, 저발전, 기상의 변화, 사막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인간이 유발한 환

경파괴 등을 그 누구의 것이 아닌 자기 것으로 알아야 한다.

평화에 대한 또 다른 선언문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전쟁을 창안한 바로 그 종(인류)이 평화도 고안할 수 있다. 그

책임은 우리 각자에 있다.”

※출처: 인권오름 제 15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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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경제적 존엄

[인권문헌읽기] 세계인권대회,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위원회 성명

류은숙

중학교 시절 국사 시간이었다. 교과서에서 기아, 민란, 삼정문란 등의 얘기가 계속 나왔다. 당시 국사 선생님은 그런 문

제가 왜 계속되었는지 이유를 아냐고 질문하셨다. 부정부패, 신분제도, 불평등 같은 대답에 대해서 선생님은 코웃음을 치

셨다. 결과적으로 선생님이 내놓은 답은 “가난은 나라님도 못 고치는 거야”였다. 난 가난한 사춘기 소녀였고 내 친구들

도 대부분 가난했다. 선생님의 그런 설명은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인권운동을 하면서 “가난은 나라님도 못 고친다”의 다양한 표현을 접하게 됐다. 자원부족, 시기상조, 가치 있는 빈민과

인간 말종의 구분, 복지병 환자, 자유가 주어 졌는데도 지가 못나서 못사는 걸 어떻게 하라구 등등.

1993년 비엔나에서 ‘세계인권대회’라는 게 열렸다. 유엔 차원에서 인권을 화두로 연 대규모 국제행사였다. 20세기를 보내

고 21세기를 준비하면서 ‘인권 보장’을 중심으로 한 세계를 꿈꾸자는 대회였다. 인권을 주제로 성찬이 차려졌다. 한국의

인권운동도 그 세례를 듬뿍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야 한다는 귀동냥,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핵심적인

국제인권기준과의 대면, 불처벌과 과거청산 운동․성소수자 운동 등과의 만남 등 한국 사회가 알지 못했던 인권의 의제

가 봇물처럼 밀려든 기회였다.

특히 오랜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소위 정치범, ‘양심수’가 없는 나라를 인권보장 국가로 알고 꿈꾸었던 우리에게 큰 충격

은 ‘인간답게 먹고 살 권리’가 ‘인권’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라 부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이었나 보다.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는 시민․정치적 권리만을 인권인양 떠받

들고 수많은 사람을 비인간적인 삶으로 몰아넣는 경제사회적 침해에 대해 인권침해로 인정하지 않는 현상을 비판하고

인권의 불가분성과 총체적 접근에 대한 외침이 있었다.

그중 잘 알려진 것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대표적 연구자인 필립 알스턴(Philip Alston, 현재 비사법적 처형에 관

한 유엔 특별보고관) 교수의 연설이었다.

“사회권의 침해에 대한 우리의 관용 수준은 너무 높다. 그 결과, 우리는 사회권의 침해를 체념하고 받아들이거나 유감의

표현으로 침묵했다. … 사회권의 침해가 일정 정도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하다는 듯 사회권의 대규모적 침해를 다루는 일

을 그만둬야 한다.”

유엔 총회에서 2008년 12월 사회권선택의정서를 채택했다.

세계인권대회에 내놓은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의 성명도 마찬가지 내용이다. 이 성명이 지적하는 것처럼

사회권의 침해에 대한 대응은 소위 자유권의 침해에 대한 대응과는 대조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고문당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았다면 자연스럽게 인권침해라 하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도시빈민이나 농촌 주민이 살던 곳에서

내쫓기거나 노동자가 무턱대고 해고되는 일 등을 대할 때는 ‘경제’위기나 ‘개발’의 불가피성 또는 ‘가난’의 불가피성을 탓

한다. 더 나쁜 경우는 책임자들이 아니라 피해자들을 탓한다. 오죽 못났으면, 보상 받았으면서 더 받으려고 딴소리라는

둥.

먹을 것이 없고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킬 수 없고 일할 직장이 없고 살던 곳과 장사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내쫓기는 것

이 인권침해가 아니라면 무엇이 인권침해이고, 경쟁에서 뒤처진 못난이들이 아니라 명백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로 인정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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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대회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 성명

(Statement to the World Conference on Human Rights on behalf of the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UN Doc.E/1993/22, Annex III.)

2.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이 두 범주의 권리가 평등하다는 원칙은] 지켜지기 보다는 위반하

는 쪽으로 훨씬 더 존중되어왔다. …

5. 놀라운 현실은 국가들과 국제사회가 전체적으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침해를 아주 흔히 계속해서 관용한다

는 것이다. 만약에 그런 침해가 시민․정치적 권리와 관련해 발생했다면 공포와 격분의 표현을 불러일으켰을 것이고

즉각적으로 구제 조치를 취하라는 한 목소리의 요구를 낳았을 것이다. 요컨대, 듣기 좋은 수식에도 불구하고 경제․

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대규모의 직접적 침해보다는 시민․정치적 권리 침해가 훨씬 더 중대하고 훨씬 더 확실하

게 참을 수 없는 문제인 것처럼 취급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7.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박탈 또는 위반의 정도를 보여주는 통계적 지표들은 아주 흔히 인용되어서 그 충격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박탈의 규모, 심각성, 불변성은 체념하는 태도, 무력감, 연민의 피로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입 다문 반응들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대규모 침해로서 존재하는 문제들을 보지 않으려 주저하는 것

으로 더 심해졌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다른 방식으로 그 상황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을지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무엇을 증명해야 할까?

유엔의 용어에서 ‘인권피해자’란 용어의 의미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신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 정서적 고통, 경

제적 상실 또는 기본적 권리의 상당한 손상을 포함하는 위해로 고통받아온 사람들”로서 여기에는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

라 “직접적인 피해자의 가까운 가족이나 부양가족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를 지원하거나 피해자가 되는 걸 방지

할 목적의 개입에서 위해를 겪은 사람들이 포함된다.”(UN.Doc.A/Res/40/34/Annex 1985)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사회권 침해에 대해 ‘인권침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주저하거나 반대한다. 이에 대해 국제인권

사회는 사회권 침해의 성격과 의미를 다듬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중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고의적으로 역행하는 조치는 안 된다. 가령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국가의 정책 및 입법적 결정에 의

해 직접적으로 기인하며, 그에 동반되는 보상조치가 없는 가운데 생활 및 주거 조건의 일반적인 후퇴는 유엔 경제․사

회․문화적 권리규약의 의무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최소한의 핵심 의무’라는 게 있다. ‘인간 존엄성의 문턱’을 지키는 절대적인 최소한의 권리보장이 없다는 것은 국가

의 의무위반이라 한다. 이 최소한의 권리보장에 대해서는 자원의 부족 따위는 전혀 변명거리가 못된다. 이에 대해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쓸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활용하려는 모든 노력을 강구했는지를 먼저 국가가 증명해

야 한다”고 했고 “구조조정이나 경제후퇴의 과정에 의해서건 다른 어떤 이유에서건 심각하게 자원이 제약된 시기에도

목적이 분명하며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드는 계획을 채택함으로써 사회의 취약한 구성원들을 보호할 수 있고 사실 보

호되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2009년 한국 사회에 몰아닥친 태풍은 인권피해자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와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을 불순세

력척결로 닦달하고, 인간의 기본적 생존의 요구에 코웃음치고 있다. 피해자들의 고통에는 매정하면서 가해자들의 책임에

는 관용이 넘치고 있다. 인권침해를 침해라 부르고, 인권피해자가 마땅한 구제조치를 찾고,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일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 까지는 우리는 영원히 2009년에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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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계 인구의 1/5이 빈곤, 굶주림, 질병, 문맹, 불안으로 고통 받는다는 사실은 그런 사람들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가 대규모로 부인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기에 충분한 근거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자신들의 관심사에서 완벽히

배제하는 것이 인권 옹호자들(개인, 집단, 정부들)에게 견고한 태도인 것은 계속된다. 인권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은

비인간적이며 국제인권기준을 왜곡하고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자멸적인 것이다.

9. 민주주의와 안정과 평화는 만성적인 빈곤, 강탈, 방임의 조건에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최근 수년간 계속 늘

어나는 숫자의 민족들이 정치적 자유, 자유 시장, 다원주의를 열성적으로 받아 들여왔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그

들이 이것들을 기본적인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성취하기 위한 최상의 전망으로 봤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탐색

이 효과 없는 것으로 증명된다면 많은 사회에서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회귀하라는 압력이 엄청날 것이다. 더욱이 그러

한 실패는 새로운 대규모의 민족들의 이동을 양산할 것이다. 즉 난민, 이주자, 소위 ‘경제적 난민’이 그에 동반된 비극

과 문제들을 안고 범람할 것이다. …

※ 출처 : 인권오름 제 163 호 [입력] 2009년 07월 29일

[배경내의 인권이야기] 물의 사유화에 맞선 가난한 이들의 싸움

배경내

"시장이 물 팔 때 농민은 피 마른다!"

최근 경남 밀양에서는 생수공장 건립 철회를 요구하는 농민들의 저항이 몇 달째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자연의 선물인

지하수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목을 축여온 농민들이 생수공장이 건립될 경우 지하수가 고갈될까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생수공장 임원진에 시장의 가족까지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장이 공유자원인 물을 내다팔아 자기

배를 불린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물을 상품으로 내다팔아 이윤을 챙기려는 생수기업과 공유자원인 물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 사이의 싸움은 밀양에만

있지 않다. 지난해 경남 산청에서도 생수공장 확장 공사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시위가 일어난 적 있다. 생수공장이 들어

선 이래 인근마을에서는 질퍽했던 논이 물기 하나 없는 마른 밭으로 변할 정도로 물이 말라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물을 더 퍼 올리겠다고 하니 농민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두 번씩이나 맞는 셈이 됐다. 흐르는 물을 퍼 올려 병에 옮

겨 담는 수고만으로 기업들이 배를 불리고 있는 사이, 가난한 농민들은 식수를 얻기 위해 계곡까지 물을 뜨러 다니고,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지하 몇 백 미터까지 땅을 파내려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국항공(주)이 제주도에서 뽑아 올린 생수의 시장판매를 허가해줄 것을 제주지사에

요청했다가 도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사례도 있었다. 이미 제주에는 제주지방개발공사가 퍼 올리는 '삼다수'가 있

고, 한국공항(주)도 매월 3천톤의 지하수를 퍼 올려 대한항공 기내용과 현지 공장의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그룹이 국내외 시판까지 나설 경우 취수량 확대를 요구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종국에는 제주

의 생명줄인 지하수가 고갈될 것이다. 다행히 제주지사가 시판 불허 결정을 내려 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안심하기에

는 이르다. 공공의 자원인 물을 상품화하여 사욕을 채우려는 생수기업들의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게 진열대를 가득 채운 생수병들이 일상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지만, 국내에 생수 시판 계획이 처음 발표된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공유자원인 물을 기업의 사유물로 전락시킨다는 국민적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수돗물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정부가 생수(먹는샘물)의 국내 시판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것

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94년 처음으로 생수 시판이 허용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생수시장은 급팽창했고, 그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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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점점 더 지하수는 고갈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물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수고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물의 상품화, 사유화 흐름을 저지하고 물을 공공의 자원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지난 2003년 유엔사회권위원회도 일반논평을 통해 "물에 대한 권리는 인간적인 삶을 이끄는 데 필수적인 요소일 뿐 아니

라 다른 인권들을 구체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선결요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식량을 생산하고 밥을 짓고 가축을 돌보

고 위생을 유지하는 그 모든 일에 물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자연은 물을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 모두가 이용가능한 자원으로 선물했다. 이런 물을 사적인 이익을 위하여 파는 행위는 그 자체로 공유자원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생존권과 건강권을 빼앗는 일이 된다. 직업선택의 자유나 소

유권이라는 개념으로 물을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본권을 빼앗아서는 결코 안된다.

'물은 상품이 아니다'는 명제는 당연한 듯 들린다. 그러나 물을 사먹는 일이 일반화되고 기업들의 탐욕이 물 시장의 팽창

을 낳고 있는 상황에서 이 명제를 현실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물의 상품화, 사유화를 허용하는 전제 위에서 지하수

의 개발과 이용을 일정하게 제한하기만 하는 현행 법률체계로는 결코 물의 고갈 위험이나 불평등한 사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국의 가정에 믿고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을 공급하고 물이 부족한 곳에 적절한 물을 공급하는 그 모든 행위는

정부의 몫이어야 하고 공공의 감시 아래 놓여야 한다. 시민들도 사기업이 파는 생수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생활양식

을 바꾸는 고단한 실천에 나서야 한다.

인권하루소식 제 2755 호 [입력] 2005년02월21일 19: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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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과 불복종

'감시자'를 통제할 권리[움틈] 제왕적 헌법재판소를 인민주권의 틀 안으로

배경내

"최근의 헌재 판결이 의미하는 것은, 대중의 민주적 통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소수의 법전문가와 엘리트들의 판결이

인민 다수의 의사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민 다수 혹은 그 대표에 의해 의회에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져야

할 문제가 9명 재판관들의 다수결에 의한 결정으로 환원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모순이다."

최장집 교수(고려대 정치학)는 최근 발간된 로버트 달의 <미국헌법과 민주주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헌법재판소라는 '제

왕적 사법부'의 등장이 한국 민주주의에 갖는 날카로운 모순을 이렇게 일갈한다.

그의 지적처럼, 지난해 5월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과 10월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결정으로 시민들의 뇌리 속에 뚜렷이

각인된 헌법재판소라는 존재는 지금 우리에게 중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헌법의 수호자',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일컫는 헌법재판소라는 권력의 감시자는 과연 누가 감시하고 통제할 것인가. '사법독재'를 통제하

기 위해 인민의 정치적 권리는 어떻게 확장되어야 하는가.

'헌법수호자의 상'은 오른손으로 진리와 평등을 상징하는 기록과 저울을 안고 있고 왼손으로는 자유를 속박하는 쇠사슬

을 절단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진리와 평등, 자유를 수호하고 있을까. [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오늘 우리에게 헌법재판소는 무엇인가

지난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서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진 이는 그를 선

출했던 인민이 아니라, 그 누구에 의해서도 선출되지 않은 9명의 헌재 판관들이었다.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한순간에 무효화된 것도 이들 헌재 재판관에 의해서였다. 심지어 헌재는 후자의 결정

에서 헌법 '해석'을 넘어,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로 한다'는 새로운 헌법 규정을 '창설'하기까지 했다.

이 두 결정은 헌재의 권력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그리고 바로 그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인민의 정치적 권리에 정면

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특히 후자의 결정을 두고 '사법 쿠데타를 통한 주권 찬탈', '사법독재 시대의

도래'라는 비판과 우려가 터져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헌재는 법률의 위헌여부, 헌법소원, 탄핵, 정당해산, 권한쟁의에 관한 최종 심판권 등 핵심 권력을 갖고 있다. 대통령 임

명 3인, 국회 선임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으로 구성되는 헌재 재판관은 국회 재적의원 1/3의 발의와 과반수의 동의에

의해서만 탄핵될 수 있으며, 탄핵에 대한 최종 심판권은 다시 헌재에 있다. 한마디로 헌재는 선출되지도, 심판받지도 않

는 무소불위의 권력인 셈이다. 이렇듯 인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와 가장 거리가 먼 몇 명의 엘리트에게 '헌법수호자'의 권

한을 부여하는 '귀족주의'적 통치체제가 민주주의의 기반을 잠식하게 될 것은 말할 나위없다.

더 큰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나 인권에 직결된 중대 사안들이 앞다투어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고, 고명하

신 재판관들의 '하문'을 기다리는 방식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데 있다.

왜 헌법재판소로 몰려가나

1988년 9월 설치 이후 헌재에 접수되는 사건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88년 당시 39건에 불과했던 접수 건수는 2003년

1163건으로 상승했다. 초기에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헌법소원이 주로 제기되었던 반면,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이른바 정

치권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들고 헌재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

에서 헌법은 문서 속에서 걸어나와 정치와 시민의 일상을 규율하는 근본규범이자 제도로서 작동하기 시작했고, 헌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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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역시 무한대로 비대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87년 민주화 이후 정치 분파간 세력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정치의 교착상태에 따른 의회의 위기 때문이라

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민감한 사안들을 헌법문제로 쟁점화하면서, '중립성'의 외피를 쓰고 있

는 헌재에 중재자의 역할을 떠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순옥 교수(인하대 법학)는 지난해 10월 <대안헌법이론> 강연에서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적 법치국가에서 다시 권위주

의적 법치국가로 이어지는 법치국가 발전의 최종 단계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라면서, "권위주의적 법치국가에

이르면, 법치국가는 헌법재판국가의 옷으로 갈아입고 민주주의와 대치하게 된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 주장에 비추어볼

때,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공존하는 시대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반을 무너뜨리면서 권위주의적 법치주의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환상 거둬들여야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헌재에 대한 통제 노력이 체계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것은 헌재가 87년 민주화 투쟁의 성과라는

'상징의 과잉', 그리고 헌재로부터 나온 몇몇 전향적인 결정이 헌재의 보수적 결정을 가려온 '선택적 기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헌재는 87년 민주화 항쟁이 낳은 헌법 개정 국면에서 설치가 결정됐다. 그러나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들은 대통령

직선제 쟁취와 반민주악법의 개폐를 주요 요구 사항으로 내걸었을 뿐, 헌재는 여야 대표들의 막후 정치협상 과정에서 나

온 산물이었다. 비록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견제 장치의 하나로서 헌재가 도입되었다 해도, 헌재가 마치 사회적 합의와

투쟁을 통해 쟁취된 산물인 것처럼 과잉 상징화되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최장집 역시 앞의 글에서 이렇게 되짚는다. "실제 민주 헌법으로의 개정은, 민주화운동 세력들의 이렇다 할 개입이나 압

력 없이, 또한 이슈에 대한 광범한 사회적 논의 없이 구체제의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 민주화와 더불어 부상한 통

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등 주요 정파들의 몇 안 되는 대표들 사이의 비공개 정치협상에서 타협을 통해 만들어졌다."

나아가 그동안 헌재가 영화 사전심의제도 위헌 결정, 최근의 호주제 위헌 결정과 같은 몇몇 전향적 결정을 내놓기는 했

지만, '좋았던 결정'에 대한 선명한 각인이 헌재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흐리게 만들고 헌재에 대한 총체적 판단도 가로

막아 왔다. 실제 헌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권침해의 주범으로 꼽혀 왔던 국가보안법, 준법서약서, 사형제도, 병역법

등에 지속적으로 합헌 결정을 내려왔으며, 특히 노동자와 빈민 등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권리는 외면해 왔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까운 보기로 지난해 8월 국가보안법과 병역법 합헌 결정, 그리고 그 해 10월 장애인 가족이 제

기한 최저생계비 제도에 대한 헌법소원 기각 결정이 대표적이다. 반면 헌재는 89년 토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된 토지초과이득세법 헌법불합치 결정, 택지소유상한법 위헌 결정 등 가진자들의 '재산권'은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 왔다. '헌법정신'의 이름으로 헌재는 인권을 억압하는 제도를 정당화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볼 때, 운동사회는 헌법해석의 재량권이 헌재 재판관들에게 위임되어 있는 현실, 나아가 헌재가 헌

법 창설권까지 자처하고 있는 이 현실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그 무엇보다 헌재가 인권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라, 많은 수단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르웨이나 네

덜란드 같은 나라에서 사법부의 법률 심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헌재와 같은 존재나 권한의 부재가 이들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근본 원인으로 꼽히지는 않고 있다.

헌재를 인민주권의 테두리 안으로

우선은 헌재를 어떻게 인민주권의 테두리 안에서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세밀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근 헌재

가 갖는 위험성이 인식되면서 일각에서는 모든 헌재 재판관에 대한 인사청문제 도입을 요구하는 한편, 법관들 이외에 헌

법에 대한 전문성과 사회적 다원성을 고려한 재판관 선출 등 구성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도 물론 의

미있지만, 한 발 더 나아가 헌재를 인민의 직접 통제 하에 두기 위한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대통령 직선을 이미

1871년 파리코뮌에서 파리의 인민들은 모든 사법권력에 대한 직접 선출권과 소환권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민주주의와

사법부, 인민의 정치적 권리와 헌재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여는 하나의 모색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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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누가 재판관이 되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헌법을 만드느냐에 있다. 헌법은 재판관

들이 잘만 해석하면 되는, 자기완결적인 가치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권과 헌법은 역사적 투쟁의 산물이고, 인민은 헌

법에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인권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중임제 등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개헌론이 부상하고 있고, 헌법 연구 움직임도 활발해

지고 있다. 다가올 개헌 국면을 정치권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된다. 이번 개헌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헌법을 새로

쓰는 과정이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헌재 권력에 대한 통제 방안도 중요한 과제로 자리잡아야 한다.

※ 출처: 인권하루소식 제 2771 호 [입력] 2005년03월17일 8:48:23

[벼리] (4)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시민불복종운동과 저항권을 생각한다

박래군

최근 '시민불복종운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인 평택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 일대에 서 인권활동가

들이 법원의 대추분교 행정대집행을 저지했고, 국방부의 토지 강제수용을 위해 동원된 용역과 경찰의 제지를 뚫고 농지

를 파헤치는 포크레인과 레미콘 위에 올라가 작업을 중지시켰다. 분명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과 법원의 결정에 근거한 국

방부의 행위는 법적으로는 정당한 행위였고, 인권활동가들의 행위는 불법행위였다. 그럼에도 인권활동가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며 오히려 국방부의 강제 토지수용을 비판한다. 그 주장의 근저에는 시민불복종, 저항권의 논리가 자리

하고 있다.

의식적인 법 위반 운동

시민불복종운동은 “공적으로 선언되고 윤리적 규범적으로 근거지어진 상징적 항의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식적인

법 위반” 운동으로 정리되고 있다. “개인이든 단체로든, 공적으로, 폭력에 의하지 않고, 정치적 도덕적 근거에서 금지규

범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킨 행위는(즉, 법규의 위반행위는), 그 행위가 중대한 불법에 대항하여 항의하는 행위이며, 그 항

의가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헌법적으로 정당화된다.”고 한다.

이런 시민불복종운동의 근원에는 근대자본주의 사회의 인권이론의 탄생과정에서 발생한 저항권론이 자리 잡고 있다. 로

크는 정부는 “사회구성원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유지하는 것 이외의 다른 목적과 다른 척도를 가질 수 없다.”고 하

면서, 정부가 계약 목적에서 어긋날 때는 국민은 복종의무로부터 벗어나 정당하게 저항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주장했다.

루소도 국가권력의 남용은 사회계약을 무효화하고 국가의 해체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면서 이럴 경우 국민들은 다시 ‘자연

적 자유’를 저항권을 발동하여 획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대 사상가들은 상당 부분 근대국가의 국민의 기본권을 부

정하는 권력행위에 대해서는 저항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저항권과 시민불복종운동

이런 저항권의 주장은 근대 이후의 헌법들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프랑스 인권선언은 제2조에서 “모든 정치적

결합의 목적은 생래적이고 불가양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있다. 그것은 자유권, 소유권, 안전권,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

권이다.”고 선언했다. 독일 베를린 헌법 제23조도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이 현저하게 침해될 때에는 모든 사람은 저항

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으며, 독일 브레멘주 헌법 제19조는 “헌법에서 보장된 인권이 공권력에 의해 헌법에 반하여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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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될 때에는 저항은 모든 사람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다.”고 규정하였다. 세계인권선언도 전문에서 저항권을 긍정하고

있고, 우리나라 헌법도 마찬가지로 전문에서 4.19 혁명의 전통을 언급하여 이를 긍정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유엔은 1998

년 인권옹호자 선언을 채택하여 인권활동가만이 아니라 인권옹호 활동을 펼치는 모든 이들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천

명하기까지 했다.

이런 저항권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권리로서) 인권’이 된다. 인권의 보호를 의무로 갖는 ‘법치국가’가 그 역할

과는 반대로 압제의 역할을 할 때 그 국가는 ‘불법국가’가 되며, 이런 국가는 국민의 저항의 대상이 된다.

저항권은 크게 비판·반대권으로서의 저항권, 헌법수호권으로서의 저항권, 인권보호권으로서의 저항권으로 나누는데, 시민

불복종은 비판·반대권으로서의 저항권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시민불복종은 헌법내적 저항권이라고 하고, ‘작은 저항권’이

라고도 불린다. 시민불복종운동은 그 발전 양상에 따라 혁명적 불복종운동으로 전화될 수 있으며, 이는 저항권의 성격으

로 발전된다고 볼 수 있다.

시민불복종의 요건으로는 ‘공공적 성격’, ‘비폭력적’, ‘법률을 의도적으로 위반할 것’ 등을 들 수 있지만, 비폭력의 문제는

반드시 필요한 요건은 아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시민불복종을 정리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이며 공개적으

로 법률이나 명령을 위반하거나 법률에 대한 공적인 해석 또는 정의에 대한 일방적 해석에 항의하는 행위이다. 폭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하지만 사회적 통념에 의해 인정되는 한계 내에서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부정한 기업과

사회단체에 대해서도 행사될 수 있다.”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불복종운동의 사례들

시민불복종운동이 사례는 무수히 많다. 흑인 노예제도에 저항하여 납세를 거부한 미국의 소로우를 비롯하여 영국의 식민

지정책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불복종운동을 선택한 간디의 사례, 흑인민권운동은 전개한 마틴 루터 킹의

운동, 반전운동,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운동은 대표적인 경우다.

1996년 영국에서 네 명의 여성들은 당시 동티모르에서 인종말살정책을 폈던 인도네시아 정부에 판매될 영국제 호크전투

기가 보관된 군사기지에 몰래 침입하여 전투기를 파손하였지만, 법원은 이들을 무죄석방하였다. 또 1999년에도 ‘행동하는

동료들’ 소속의 앤지 젤터와 동료들은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기지에 잠입하여 4시간 동안 기지 내부에 있던 대부분의 컴

퓨터와 관련 장비와 자료들을 호수에 던져 수장시켜 버린 뒤 “핵 살인을 위한 연구를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렇지만 영국의 법원은 이들이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비록 불법행위였지만, 미래에 있을 더 큰 불행을 막아낸

행위로 인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들은 많다. 1980년대 후반의 KBS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은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불복종운동이 대중들의 폭발적인 투쟁과 결합하여 종종 나타났다. 4월 혁명이나 1980년 광주민중항쟁도 그렇고, 6월 항

쟁은 집단적인 혁명적 시민불복종운동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당시에는 실정법을 위반한 집단행동이고, 심지어는 폭동이

라고까지 규정되었지만 역사는 이들의 투쟁을 민주화를 위한 정당한 투쟁으로 평가하고 있다.

불복종운동을 적극적으로 기획하자

최근 중증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합법과 불법의 투쟁방법을 결합하여 성과를 낸 투쟁

이었다. 장애인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버스에 쇠사슬을 묶어 이동도 할 수 없는 장애인 차별 실태를 폭로했고, 이로써 장

애인들을 비롯한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고, 드디어는 법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인권운동은 이런 시민불복종운동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의 사회운동은 지나치게 합법적인

영역, 합리적인 대안 제시에 치우치다 보니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이라고

모두 긍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잘못된 법은 의식적으로 위반하여 그 법률의 문제를 드러내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투쟁을 통해서 그 잘못을 바로 잡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런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인권운동은 끊임없이 인권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시민불복종운동은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인권운동이 수용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권운동은 반

인권적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민불복종운동을 기획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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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오름 제 1 호 [입력] 2006년 04월 26일

참을 수 없는 악이 ‘시민불복종’을 정당화한다[인권문헌읽기] 시민불복종의 고전들

류은숙

시민불복종은 인권운동의 역사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합법성보다는 정의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을 다

스린다는 것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노암 촘스키의 글이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불복종 운동에 대하여 1967년 당시 뉴욕타임스가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여 십여 명이 넘는 학자와 저술가들에게 ‘무엇이 불복종을 정당화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글은 그중 노암 촘스키의 답변이다. 본문에서 베트남전에 대해 말한 부분을 생략하고 번역했다. 베트남전을 오늘의 우리

상황으로 바꿔놓고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5, 6월 뜨겁게 펼쳐지고 있는 불복종의 잔치에 시민불복종의 원조들을 초대해보려 한다.

연행하겠다는 경찰 앞에서 “그래 날 잡아가라”고 전경버스에 오른 사람들에게, 시민불복종에 헌신하는 사람은 기쁘게 투

옥을 감내해야 한다는 간디가 박수를 보낸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등장하여 자유발언을 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합니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

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까? (박수)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십

시오.” (함성)

“오늘날 이 정부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올바른 자세일까요? 나는 대답합니다. 수치감 없이는 이

정부와 관계를 가질 수 없노라고 말입니다. 나는 노예의 정부이기도 한 이 정치적 조직을 나의 정부로 단 한순간이라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혁명의 권리를 인정합니다.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너무나 커서 참을 수 없을 때는

정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정부에 저항하는 권리 말입니다.” (옳소)(옳소)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십시오. 단지 한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십시오.” (환호)

(더 자세한 내용은 ‘도서출판 이레’의 『시민의 불복종』 참조)

다음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길거리 토론에 나선다. (대답 내용은 비폭력 시위를 벌인 혐의로 킹 목사가 구속됐을 때, 감

옥에서 데모를 비방한 동료 목사들의 성명서를 접하고 이를 반박해 쓴 ‘버밍햄감옥으로부터의 편지’에서 발췌해 구성했

다.)

* 왜 다른 의사 표현 방법도 많은데 꼭 데모를 해야 하는 거지요?

“왜 직접행동이냐고요? 왜 연좌데모를 하는 거냐고요? 협상이 더 나은 방도가 아니냐고요? 이러한 그대들의 의견은 전적

으로 옳은 것이며 협상이야말로 우리의 행동이 원하는 궁극 목표입니다. 비폭력 직접행동은 위기와 긴장감을 조장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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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을 거부하는 사회를 곤경에 빠뜨리고 더 이상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즉 사회

의 쟁점들을 본격적으로 부각시켜 더 이상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직접행동의 추구하는 바이기

때문이오. … 더욱 나은 발전을 위해 건설적이고 비폭력적인 긴장은 필요한 것입니다. … 우리의 직접행동의 목표는 위

기의식을 조장시켜 협상의 문호를 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협상을 주장하는 그대들의 의견과

나의 생각은 조금도 다를 바 없소.”

* 이제 막 시작한 정부 아닙니까? 좀 기다리고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시민권의 그 어느 한 부분도 압력을 가하지 않고서는 쟁취할 수 없었음을 인식해야할 것입니다. 유감스럽지만 특권층이

그들의 특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일은 역사적으로 한번도 없었소. … 우리는 피나는 경험을 통해 자유라는 것은 압박자

가 거저 주는 것이 아니라 피억압자가 강력히 요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 그런데 수 년 동안 ‘기다리라!’

는 말만 들어왔소. 이 ‘기다리라’는 말은 항상 ‘결코 안된다!’라는 뜻으로 쓰여왔습니다. ‘지나치게 오래토록 지연된 정의

는 부정된 정의다’라는 어느 저명한 법관의 말이 생각납니다.”

* 불복종하려는 사람들의 편의대로 법을 골라가며 지키고 안 지키고 하면 법질서가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어떤 법은 지키고 어떤 법은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법에는 공정한

법과 불공정한 악법 등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러한 질문의 답변이 될 것입니다. 나는 솔직히 공정한 법

을 지키는데 제1인자가 되고 싶습니다. 공정한 법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책임감뿐 아니라 도덕적인 책임감 때문에도 꼭

지켜야 합니다. 반대로 악법에 복종해서는 안 되는 도덕적 책임감까지 있어야 합니다. … 양심의 명령에 따라 악법이므

로 복종하지 않겠다는 사람, 그래서 악법이 조장하는 불법에 도전하여 사회양심을 일깨우기 위해 감옥의 형벌조차 기꺼

이 감수하겠다는 사람은 실제로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법을 존중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 시위대의 행동이 폭력사태를 초래한 것 아닌가요? 경찰만 나무랄 일이 아니잖아요.

“우리의 행동이 비록 평화적이었다 할지라도 폭력 사태를 재촉시켰으므로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강도사건이 났을 경우 돈을 지니고 다닌 것이 강도를 유발시킨 원인이 되므로 피해자를 비난해야 한다는 논리도

나올 수 있겠습니다. …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쟁취하려는 노력이 폭력사태를 초래할까봐 억누르는 것은 옳지 못하다

는 연방법원의 판결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회는 마땅히 강도에게 벌을 주고 피해자는 보호해야 합니

다.”

* 시위대 속에는 순수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부 극단론자가 배후조종을 하고 있지 않나요?

“극단론자냐 아니냐보다는 어떤 종류의 극단론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위한 극단론자입니까? 증오를 위

한 극단론자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부정을 유지하기 위한 극단론자입니까? 정의의 연장을 위한 극단론자입니까? … 아마

전 세계는 창조적인 극단론자가 지독히 필요할 것입니다.”

* 한 달이 넘어가는데 지칠 때도 되지 않았나요? 곧 사그라들겠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과감히 일어나 흑백의 자리를 구분한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면서 ‘피로하지 않느냐’

는 주위의 물음에 ‘나의 두 다리는 지쳤지만 나의 영혼은 편안하다’고 말한 몽고메리에 사는 72살의 노파. 그 노파로 상

징되는 늙고 핍박받고 찌든 흑인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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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악이 ‘시민불복종’을 정당화한다 (노암 촘스키, 1967 뉴욕타임스)

나는 미국의 정책에 대한 저항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상 그것은 도덕적 필수물이다- 의견불일치가 포

기돼야 한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 아무리 “자국의 이익”이라 할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힘센 국가가

엄청난 고통과 파괴를 강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시민불복종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악이다.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당국에 언제나 복종해

야만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어디엔가 선이 그어져야만 한다. 그 선 너머에 시민불복종이 있다. 시민불복종은 아주

수동적으로 정부가 주도한 폭력에 참여하는 걸 단지 거부하는 것일 수 있다. … 시민불복종은 전쟁을 만들어내는 기

구에 상징적으로 맞서는 것일 수도 있다. 참여자들이 정부의 무력에 맞서 입장을 고수하고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을

때 그러한 상징적 대결은 시민불복종이 된다. 시민불복종은 상징적 행동을 넘어서서 전진하는 것일 수도 있다.

……

시민불복종의 한도는 대결하고 있는 악의 정도와 전략적 유효성과 도덕 원칙으로 결정돼야 한다. 원칙과 전략에 근거

하여, 나는 시민불복종이 철저히 비폭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면상 이에 대한 근거와 결론에 대한 토론을 할

수는 없다.

제기된 마지막 질문은 중요한 질문이다. 미국의 정책을 방어하는 자들은 막연하게 공산주의의 “공격”을 말한다. 정확

하게 언제 그런 “공격”이 있었던가? … 모두가 아는 것을 기술하려 하지 않겠다. 미국이 행한 바를 말하려고 부적절

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폭력과 우리의 도덕적 겁으로 인한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그렇다, 시민불복종

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장을 끝내려는 노력 속에서 전적으로 정당화된다.

극단의 도덕적 스펙트럼에서 따온 두 개의 인용구(각각은 매우 진실이다)로 마치겠다.

(1) “자연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 …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의 지도자들이고, 그 국가가 민주

주의건, 파시스트 독재이건, 의회이건, 공산주의 독재이건 간에, 언제나 인민을 끌고 가는 것은 간단한 문제다. 목소리

를 내건 침묵하건, 인민은 언제나 지도자들의 분부대로 하게끔 끌려갈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인민들에게 이렇게 하

기만 하면 된다. 침략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애국심이 부족하며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평화

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모든 나라에서 똑같이 작동한다.”

(2) “정의롭지 못한 법률과 관행이 살아남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에 복종하고 따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두려움에서

그렇게 한다. 악이 지속되는 것보다 사람들이 더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첫 번째 인용구는 헤르만 괴링(히틀러의 심복이었던 나치장교)의 것이다. 시민불복종을 권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이 나라에서 “똑같이 작동”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인용은 에이 제이 무스떼(평화

운동가)가 간디에 부연한 것이다. 이들의 말이 오늘날만큼 더 적절한 적은 없었다.

※ 출처 : 인권오름 제 108 호 [입력] 2008년 06월 17일 19: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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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뭉게뭉게 인권교육이 꾸는 희망인권교육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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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뭉게 인권교육이 꿈꾸는 희망은?!------------------------------------------------------

*진행: 개굴(배경내)

[교육목표]

: 인권교육을 하는 내안의 이유 발견한다.

: 인권교육이 추구하는 것들을 찾아보고, 인권교육의 원칙을 함께 나눈다.

: 인권교육가가 갖추어야 할 자세를 점검한다.

[진행방법]

인권교육의 바다~

① 인권교육은 넘본다 / 인권교육은 따뜻하다 / 인권교육은 매섭다 / 인권교육은 우렁차다/ 인권교

육은 당긴다 등의 낱말카드를 준비한다.

② 각 모둠별로 2~3개의 각기 다른 낱말카드를 나눠준다.

③ 모둠에서는 낱말을 가지고 ‘인권교육이 추구하는 것’으로 내용을 채워본다. (모둠에서는 소라, 게,

물고기, 해초 등 바닷속 어패류로 표현한다)

(예) 인권교육은 넘본다→ 무엇을, 어떻게../ 인권교육은 우렁차다 → 왜, 무엇이 등.

④ 모둠별로 발표하면서 ‘인권교육의 바다’를 만든다.

⑤ 인권교육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함께 나눈다.

⑥ 인권교육의 기본 원칙과 교육가가 갖추어야 할 점을 PPT를 통해 정리하며 마무리한다.

[준비물]

바다그림, 다양한 바다생물, 매직, 크레파스, 스카치테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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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자료]

인권교육의 원칙인권교육센터 ‘들’(www.hrecenter-dl.org)

“인권에 대해 배우는 것 자체가 권리이다.

무지를 강요하는 것, 내버려두는 것은 인권침해이다.

교육은 인권과 자유의 주춧돌이다.”

- 유엔, 『인권, 새로운 약속』 중에서

한국사회에서 인권교육이 실험된 지 1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인권단체들만이

척박한 땅을 갈아 씨앗을 뿌리는 고단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인권교육의 풀씨가 이곳저곳

에서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뿌리를 굳건히 내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인권교육이 다양한

곳에 싹트기 시작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게도 오해와 혼란도 커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인권교육을 ‘착한’ 사람, ‘교양있는’ 시민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유행 교육으로 잘못 이해하는

이들도 있고, 재미있는 교육기법 정도로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인권교육의

의미와 원칙을 다시 한 번 꼼꼼히 따져보고 중심을 잡는 일이 중요하겠습니다.

중립적인 교육은 없습니다. 중립성을 내세우는 교육은 대체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편파적

인 교육인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교육의 밑바탕에는 가치가 깔려있기 마련입니다. 인권교육도 마찬가지로 지

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인권교육이 진정 가치 있는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명확한 지향을 가져야

합니다.

불평등과 야만이 낳은 상처로 얼룩진 이 세계에서 인권교육은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할까요? ‘바로 여기 지금’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 억압을 건드리지 않고 문서 속의 권리 목록만을 기계적으로 학습시키는 인권교육은

‘죽은 교육’입니다. 기존의 질서 안에서 인권을 안전하게 다루고자 하는 교육은 무기력과 체념의 문화를 굳건

히 하는 ‘지배의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 까닭에, 인권교육을 착한 사람,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 갈

등을 피하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소양을 갖춘 사람 등을 길러내는 교육과 동일시하는 흐름을

단호히 거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1. 인권교육이 추구하는 것

: 소수자 권한 강화와 인권 교육

인권교육은 불평등하고 야만적인 질서로 인해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들이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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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해방을 위한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권에 기초하여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수 있도록 변화의 힘과 열

망을 풀무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권은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하는 보편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특정 집단의 전유물인 양 여

겨져 온 게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주류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어 왔던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도 했습니다. 인권교육이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주목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권교육의 목적이 당사자의 실질적 ‘권한강화’(Empowerment)-‘역량강화’,

‘자력화’-라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 교육은 인권교육의 본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서 있다고 할 수 있

습니다.

권한강화는 자신의 권리를 아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자기 존엄에

확신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굳이 ‘권리’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자기 언어’와 ‘목소리’를 갖게 됨으로

써 일종의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권한=힘’은 권력을 가지고 누군가를 지배하며 부리는 힘

이 결코 아닙니다. 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또는 부리기 위해 형성하는 권력 관계를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

운 관계를 맺으려는 힘, 그것이 바로 인권교육에서 말하는 ‘권한강화’입니다.

나아가 권한강화란 기존의 지배질서를 유지한 채 강자와 약자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배질서를 재

편하고, 새로운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 차별의 구조와 부당한 관계를 읽어내는 힘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자신

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구조적인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권한강화의 핵심입니다. 또한

인권교육에서 말하는 권한강화는 개인 하나 하나의 삶과 힘에 주목하면서도 그 개인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개인을 넘어 그 사회의 반인권적인 요소들을 없애고 보편적인 인권 실현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과정이 곧 권한강화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 중의 하나입니다.

사회에서 개별적인 존재로 고립되어 있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인권교육을 계기로 자기 자신을 사회적

인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소수자들이 자신의 삶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동안 지배의 논리와 규

범에 갇혀 자신조차 부정했던 삶을 인권의 잣대로 새롭게 조명해 봄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정당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즉, 인권침해 현실이 개인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그리하여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인권교육 과정이 설계되어야 합니다. 이때 인

권교육가는 소수자의 권한강화가 마치 당장의 필요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권리 찾기에만 머무르는 것을 경계

해야 합니다. 인권교육은 현실의 구체적 문제들이 특정 소수자만이 직면한 어려움이 아니라 다른 소수자들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시야를 확장해 가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담장을 넘는 담쟁이들의 연대를

일구어내기 위해서 차이를 구별하는 권력에 함께 문제제기하고 연대의식을 일깨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

합니다.

물론 인권교육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인권교육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권교육 없이

인권이 꿈꾸는 세상도 오지 않습니다. 인권이 열망하는 바로 그 세상을 당겨올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인권교

육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 실천의 뿌리는 인권교육이 가진 힘과 가능성, 아니 인권교육에 참여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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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한 교육(about)

인권교육

(권한강화)

인권을 위한 교육(for) 인권을 통한 교육(through)

<그림 1>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인권교육

들이 가진 힘에 대한 신뢰와 존중입니다.

인권교육은 교육에 참여하는 이들이 빼앗겨왔고 억눌려왔던 힘을 되찾아 길러줍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권한

을 강화하는 인권교육 과정은 변화를 위한 주춧돌일 뿐 아니라 이미 변화의 시작입니다. 억압적인 체제에 의

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이 단지 피해자, 약자에 머무르지 않고 권리주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을 때, 자

신과 다른 이들의 삶을 옥죄는 질서에 저항해야 할 필요성을 자각할 때, 세상은 이미 거대한 전환의 싹을 틔

우기 시작한 것이니까요. 눈에 보이는 당장의 결실을 얻지 못하더라도 긴 호흡으로 인권교육을 꾸준히 실천

할 수 있는 힘은 이와 같은 신념에서 나옵니다.

2. 인권교육의 삼박자

: 인권에 대한, 인권을 위한, 인권을 통한 교육

흔히 인권교육은 인권에 대한 교육이면서, 인권을 위한 교육이자 인권을 통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삼박자가 고루 갖추어지지 않으면 인권교육이 가진 힘과 가능성도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을 되찾고 지키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관련 법률, 국제기구와 국제

법에 대한 정보, 인권보장체계, 인권의 역사, 주요 인물과 단체 등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

교육은 단지 지식과 정보를 학습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인권에 대한 교육’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삶

을 인권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열망을 실천에 옮기는 ‘인권을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권을 위한 실천에 헌신하는 태도를 북돋아야 합니다. 인권침해를 구조적으로 양산하는 기존 질서

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힘,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 그리하여 이미 마련된 인권기준

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 쓸 수 있는 힘, 변화를 꿈꾸고 표현할 수 있는 힘, 새로운 관계와 질서를 그려

내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무엇을 배우는가’는 ‘어떻게 배우는가’의 문제와 결코 떨어질 수 없습니다. 행동은 말보다 크게 말합니다.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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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에 대한’ 싱그러운 이야기

∙ 정보 : 법, 역사, 인권보장기구, 인권단체 등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자. 다양한 정보는 새로

운 인권 세계로의 여행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가이드가 될 수 있다.

∙ 만남 : 다양한 사람, 생활 속의 생생한 인권 사례들, 다채로운 삶의 방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

자. 살아있는 만남은 인권에 대한 의지와 상상력을 북돋우는 거름이 된다.

∙ 질문 :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계기,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만드는 질문을 던지자. 좋은 교육은 좋

은 정답이 아니라 좋은 질문이 있는 교육이다.

∙ 분석 : 사람들 사이의 관계, 인권문제 등을 둘러싼 구조와 맥락을 읽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 얕은

인권감수성을 자극하는 수준을 넘어 구조적 안목을 길러줄 수 있을 때 인권감수성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 ‘인권을 위한’ 실천의 기회를

∙ 실천을 맛볼 기회 : 인권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도 좋고 인권교육이 끝난 이후에도 좋고 변화를 성취

할 수 있는 실천의 기회를 제공하자. 물론 실천의 수준은 다양할 수 있다.

∙ 네트워크 : 인권교육을 통해 만난 주제에 대한 고민을 발전시키거나 지속적인 실천을 꾀할 수 있도록 다

양한 인적, 물적 자원과 만날 수 있게 하자. 네트워크는 실천에 필요한 용기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 온몸으로 느끼는 ‘인권을 통한’ 교육

∙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분위기 : 망설임을 이겨내고 자기 느낌이나 생각,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 비웃음이나 무시, 비난은 현실에 흘러넘친다. 경청, 공감, 소통이 있는 교육

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연대감을 기르는 저수지가 된다.

∙ 활력과 긍정 : 활기차고 자신감 있는 인권교육가의 표정과 행동, 참여자들과의 역동적인 대화, 덩더쿵 머

리를 맞대고 서로에게 힘을 불어넣는 경험을 제공하자. 인권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어둡고 우울하기만 한 시간

이 아니라 활력이 넘치는 시간일 수 있고 그래야 변화에 대한 긍정도 자라날 수 있다.

∙ 조바심을 뺀 여유 : 생뚱맞은 이야기가 터져 나올 때, 인권에 대한 불편함이나 반감을 호소할 때 그 마음

을 들어주고 여유 있게 대처하는 인권교육가의 모습을 보여주자. 인권교육가는 섣불리 정답을 선포하기보다는

참여자들이 충분히 탐색하며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신뢰를 갖고 대해야 한다.

∙ 두루두루 살피는 눈 : 교육과정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고 두루두루 살피면서 참여자들과 호

식적인 교육과정에서 말로만 인권의 가치를 강조해서는 안됩니다. 인권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경험이야말로

인권의 가치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살아있는 교육의 과정입니다. 인권을 무시하는 방법으로는 인권을 가르

칠 수 없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인권을 강조하면서 숨겨진 교육과정을 통해서는 인권을 무시한다면 위선에 대

한 반감과 체념만 키울 뿐입니다. 그래서 인권교육은 폭력, 명령, 강제, 지시, 권위주의, 위계와 명확한 선을

긋지 않으면 안됩니다. 솔직하게 생각과 경험과 열망을 털어놓고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진실되게 답하

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를 ‘존중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직접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전통적인 교사-학습자의 관계, 규율, 의사결정체계, 교수방법 등 교육공간의 구조와 문화를 인권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표 1>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인권교육” 구체적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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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을 맞추자. 참여자들의 작은 반응, 스치듯 던진 이야기, 떠도는 분위기 속에서도 인권에 관한 이야기는 숨어

있다. 인권교육가는 그런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고 교육의 자원으로 불러들일 수 있어야 한다.

∙ 흔들리지 않는 가치 : 인권이 지향하는 가치를 콕콕 짚어주고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자. 인권교육은 매

우 역동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불편함을 드러내는 의견이나 차별적인 언어를 쏟아내는

참여자들을 만날 수 있다. 인권교육가는 이런 반응들을 회피하지 말고 인권의 가치와 기준을 단호하게 짚어줄

수 있어야 한다. 참여자를 신뢰하고 존중한다는 것이 모든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인권교육의 지향을

놓치지 않도록 단호할 줄 아는 마음을 챙겨가야 한다.

∙ 인권적인 교육 환경 : 인권교육은 인권교육가의 ‘옳은 말씀을 듣고 끝나는 자리’가 아니므로 참여자들의

다양하고도 역동적인 참여와 활동, 쉼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자. 계단식 붙박이 의자들이 가득 들어

선 교육장, 억압적인 규율은 인권교육과 어울리지 않는다. 수평적인 자리 배치, 쉼이 필요한 사람이나 다른 용

무가 급한 사람들이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드나들 수 있게끔 열려 있는 문은 필수적이다. 충분한 휴식시간과

맛있는 간식이 마련된 자리라면 더 좋다.

3. 주인공을 맞이하는 인권교육가의 자세

: 참여자의 삶을 엮는 인권교육

인권교육에서 주인공은 참여자이지 교육가가 아닙니다. 감동적인 강연과 인권교육의 차이를 짚어보면 이 말

의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집니다.

청중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 기초하면서 재치 있는 입심과 날카로운 분석, 명확한 전망 제시, 열정이 돋

보이는 강연을 만나는 건 다행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강연도 청중을 수동적인 위치에 일반적으

로 묶어두고 강연자가 교육의 주인공이라는 특성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반면 인권교육에서는 강연자의 멋

들어진 입담이나 열정적인 주장이 아니라 참여자들끼리의 소통과 토론을 강조합니다. 강연자가 청중을 감동

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도움닫기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물론 인권교

육도 강연을 원천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인권교육에서 강연은 심화된 토론을 위한 자극이나 교육 내용의 종

합을 위한 기법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강연이 가진 교육적 가치와 효과가 부인되어서도 안됩니다. 그

렇지만 인권교육은 참여자들이 교육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교육의 지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참여자들

이 스스로 학습하고 탐색하는 과정을 지지할 때 원하는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참여자를 주인공으로 맞이하기 위해 인권교육가가 기억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인권교육가는 가르치는 사

람과 배우는 사람의 중간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전문성을 내세우며 가치의 심판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가

르치려 드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참여자들의 교육적 탐험을 함께 하는 동료이자 안내자로서, 주인공이 아

닌 연출자로서 참여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인권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기존 사회의

편견이 스스로에게도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기꺼이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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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무엇이 좋은 인권교육가를 만드는가?

•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민감하기 : 존중과 신뢰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유지시키는 데는 사람들이 이야

기의 화제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반응, 이 두 가지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불편함, 상처받은 마음, 심지어 분노조차도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조용히 대화에서, 그리고 종종 그 모둠에서 뒤로 빠진다.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감지하는 것과 특

정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이해하는 것은 인권교육가의 일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다.

• 모둠의 감정에 민감하기 : 어떤 모둠이든, 그 총체는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크다. 그리고 모둠의 “화학작

용”은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감정을 반영한다. 열망, 침착하지 못함, 분노, 지루함, 열광, 의심, 또는 심지어

어리석음까지. 모둠의 움직임을 인지하고 대응하는 것은 능숙한 인권교육가 일에서 필수적이다.

• 듣는 능력 : 사람들과 모둠의 감정을 느끼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말의 명시적인 의미와 그 어조, 함축

적 의미까지 모두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사실, 인권교육가는 일반적으로 모둠에서 가장 말을 조금 하는

인권교육가는 또한 참여자들의 욕구와 기대를 읽어내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 교육의 흐름에 따라 애초의

계획을 기꺼이 생략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융통성과 창조성, 진지하지만 활력과 유쾌함을 잃지 않는 교육 분

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기지, 옳고 그름을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도전적인 문제제기를 던질 수 있는 인

내심과 지혜 등을 갖추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인권교육이 요구하는 자질을 갖추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인권교

육에 참여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놓치지 않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이 인

권의 역사를 일구어왔듯, 참여자의 힘과 가능성에 대한 신념이 인권교육의 역사, 인권교육가의 변화를 낳는

거름입니다.

<표 2> 무엇이 좋은 인권교육가를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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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다. 그리고 종종 인권교육가가 하는 말들은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들을 반복하거나 요약하거나 그 말

에 직접적으로 반응해주는 것이다.

• 재치 : 가끔 인권교육가들은 모둠에 기여하기 위해 불편한 행동을 해야 하거나 불편한 말을 해야 한다.

조심스럽고 상냥하게 그런 일을 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더군다나 인권 문제와 관련된 화제는 강한 감정과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환기시킬 수 있다. 도우미에게는 감정적인 상황을 정중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다루는

특별한 재치가 필요하다.

• 협동에 대한 헌신 : 협동 과정은 때때로 두렵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고, 그럴 때면 모든 인권교육

가들은 조력의 역할보다는 전통적인 교사의 익숙한 역할을 취하거나 모둠을 리드할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협동의 진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확신하는 것은 인권교육가가 지배적인 역할에 저

항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권교육가는 모둠의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그 일을 나누는 것

이 필요하다.

• 타이밍 감각 : 인권교육가는 교육시간에 대한 “육감”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야기가 끝나게 할 때, 화제

를 바꿀 때, 너무 길게 말하는 사람의 말을 자를 때, 할당된 시간 안에 이야기를 다 하도록 할 때, 그리고

침묵이 좀 길게 계속될 때.

• 융통성 : 인권교육가는 미리 계획을 짜둬야 하지만, 그들은 상황에 맞춰서 그 계획들을 기꺼이 내던질

수도 있어야 한다. 종종 모둠은 예측하지 못한 방향의 세션으로 들어가거나 특정 화제를 탐구하는 데 더 많

은 시간을 필요로 하곤 한다. 인권교육가는 모둠의 요구를 가늠하고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할 수 있

어야 한다. 비록 모든 세션들이 중요하지만, 가끔 인권교육가는 다른 더 알찬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서 어떤

주제를 생략할 것을 결정해야 한다.

• 유머 감각 : 대개의 인간의 노력이 그렇듯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웃게 하고 다른 사람들

의 웃음을 공유하는 능력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경험의 질을 높인다는 것에서, 인권교육가는 삶의 아이러니

한 진가를 느낀다.

• 기지, 창조적인 것 : 각각의 모둠은 그 모둠을 구성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하다. 좋은 인권교육가는

총체적인 프로그램과 목표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상황과 기회에 맞게 바꿀 줄 알아야 한다. 예컨

대, 모둠이나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재능이나 경험을 요청할 수도 있고, 또는 참가자들이 기지를 요구할 수

도 있다.

● 인권교육가를 위한 개인 체크 리스트 ●• 역할을 아주 명확하게 하라 : 당신의 말보다는 당신의 행동이 당신이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배우

는 사람이라는 점을 전달해줄 것이다.

• 시선에 주의하라 : 참가자들과 계속해서 눈을 마주쳐라.

• 목소리에 주의하라 : 너무 크거나, 너무 부드럽게 말하거나 너무 많이 말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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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짓 언어”에 주의하라 : 당신이 어디에 앉거나 서는지,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적절치 못한 권위를 표현

할 수도 있는 여러 방식들에 대해서 고려하라.

• 당신의 책임을 인식하라 :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대우받고 평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는 것을 확인하라. 의견의 차이들은 권장하되 논쟁은 억제하라. 지배하려는 사람을 억제하라. 망설이는 사람

을 끌어들여라.

• 체계가 필요할 때를 인식하라 : 필요할 때는 설명하고 요약하라. 언제 논의를 확장하고 언제 다음 화제

로 넘어갈지 결정하라. 모둠이 화제를 벗어났을 때는 다시 화제를 떠올리게 하라.

• 당신의 힘을 인식하고 그것을 나눠라 : 가능하다면 언제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요구하라(예 :

필기하는 것, 시간을 지키는 것, 그리고 이상적으로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

- 출처: Nancy Flowers 외,

The Human Rights Education Handbook: Effective Practices for Learning, Action and Change,

The Human Rights Resource Center and the Stanley Foundation, 2000.

4. 인권교육의 생명력

: 인권현장과의 호흡, 권리로서의 인권교육

위의 원칙들을 아우르는 인권교육의 생명력은 인권현장에서부터 나옵니다. 척박한 조건에서도 인권교육이

가치를 인정받고 홀씨를 뿌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인권이 침해되는 현장,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 받는 현장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권현장에 밀착한 교육, 인권의 가치가 박제화되지 않고 살아 뛰는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좁은 의미의 ‘교실’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인권현장의 목소리와 열망을 받

아안는 교육이 될 수 있게끔 귀를 열고 열심히 발품도 팔아야 합니다. 또한 학교나 시설, 병원 등에서 이루어

지는 교육은 그 자체를 인권의 현장으로 인식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인권교육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존엄성과 권리를 알아야 권리를 행사하고 지켜

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인권교육에 대한 권리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권리를

알 권리, 권리의 실현을 뒷받침하는 권리가 바로 인권교육입니다. 무지를 강요하는 것, 무지 속에 내버려두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입니다. 세계인권선언,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국제인권규범이 인권교육을 인권을 위한 주춧

돌로 부르고, 교육의 목표가 인권에 대한 존중을 길러내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원칙과 이상에 맞게 현실의 인권교육을 잘 다듬는 일은 벅찬 일입니다. 하지만 인권교육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난 만큼 그 벅찬 숙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더 힘있고 신명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권교육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지금, 인권교육은 새로운 전환을 준비해야 합니다. 인권이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실질적인 기준과 가치가 될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닦는 일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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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풍덩~ 인권교육 속으로다양한 인권교육 방법 그리고 기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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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인권교육 속으로!- 다양한 인권교육 방법 그리고 기획

----------------------------------------------------------------------------------------------------------- *진행: 은채, 묘랑

[교육목표]

: 인권교육의 다양한 방법을 체험하고 그 특징을 이해한다.

: 인권교육의 원칙과 여러 교육기법을 활용하여 실제 적용하는 단계로 교육의 요청과 기획, 진행에

이르는 전 과정을 연습한다.

[진행방법]

⑴ 인권교육 방법 맛보기

- 몸풀기 마음열기의 세계 : 교육환경을 고려한 몸풀기 마음열기 만나기

- 인권교육의 기법 맛보기 : 몸짓표현이나 간접체험 등 다양한 인권교육의 기법을 맛보고 각각의 방

법에 따른 특성을 이해한다.

⑵ 인권교육 기획하기

- 교육의 주제 및 참여 대상을 비롯하여 각기 다른 조건의 인권교육 요청안을 준비한다.

- 가상의 인권교육 요청안을 전체 공유한다. 참여자들은 제시된 요청안 가운데 평소에 관심이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모둠을 구성한다.

- 인권교육의 대상, 목표, 활용할 기법, 진행방식, 주의할 점 등에 대해 토론한 후 실제 인권교육안을

기획한다. 인권교육의 목표, 진행시간, 진행방식 및 이에 적합한 장소, 해당 목표에 적합한 세부 교육

기법 등을 고려하면서 인권교육안을 설계한다.

- 모둠별 작업이 충분히 진행된 후 전체 기획안을 공유하면서 인권교육의 목표와 방법이 적절한지,

참여대상의 특성이 잘 고려되었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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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하기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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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 준비 2단계 : 실행 3단계 : 교육 후

자체․외부

요청에 따른

교육 기획

프로그램

도입

본 프로그램

진행

마무리와

정리평가 후속활동

[읽기자료]

기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인권교육센터 ‘들’(www.hrecenter-dl.org)

에베레스트 산을 갔다 온 사람이라면 또다시 산행을 계획하면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될까? 대답은 당

연히 NO! 오르는 산이 다르거나 똑같은 산을 또 오른다고 하더라도 매번 챙겨야 할 것들은 있게 마련이다.

인권교육도 마찬가지. 인권교육을 처음 하는 사람도, 경험이 많은 사람도 인권교육을 기획하면서 미리 꼭 점

검하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 인권교육 고개를 넘기 위해 미리 챙겨놓은 가방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가방을 한 번 들여다보자.

이야기 풀기~~

인권교육을 진행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단계마다 기억해두어야 할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각 단계에서 만나는 어려움 중 기획 때 미리 준비하지 못해 교육이 삐걱댔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

준비부터 실행, 교육 후까지 인권교육 전체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주~욱 적어보니, 기획에서 꼼꼼히

챙겨야 할 것들의 목록이 보인다. 인권교육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 참여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 교육을 준비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한 꾸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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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나? 할 수 있나?

돌다리도 두드리는 꼼꼼한 체크!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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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을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나’ 사이에서 고민이 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어찌 보면 인권교

육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인권교육가 자신일 게다. ‘해야 한다’는 당위감에 밀려 인권교육가가 자신의 역량이

나 심신상태, 그리고 교육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나 여건 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여느 교육과 마찬가지로 인권교육도 교육하는 사람의 상태와 감정이 교육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참여

자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며, 교감하기 위해 인권교육가는 매 순간 적극적인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

서 인권교육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상이나 교육 주제는 아닌지, 교육을 진행하는 동안 자신의 심신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상태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불어 교육 준비를 위한 시간과 여건이 확보되어 있는지도 인권교육을 결정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인권교육은 누군가 원할 때 바로바로 뽑아 먹거나 사용할 수 있는 자판기가 아니다. 똑같은 주제라고 하더라

도 각 대상이나 인원, 장소 등에 따라 다르게 바꾸어야 할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나 여건이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인권교육가가 가능한 날을 역으로 제안 해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참여자들의 요구와 맞닿은 인권교육, 참여자들 삶의 경험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실천의지를 틔우고 변화의 희

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권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인권교육 여부를

결정하거나 기획하기 전에 미리 알아두어야 할 정보는 무엇일까? 매 교육 마다 꼭 챙겨야 할 것들을 점검표

로 만들어보자.

• 열매(목표) 정하기

기획에서 마지막 평가까지 재차 확인할 것은 목표이다. 무엇을 지향하는지에 따라 교육 내용이나 방법을 결

정할 수 있으며, 전체적인 구성 또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부 요청에 의한 교육일 경우 요청자가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이 인권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에 적절한지 판단해야 한다. 소녀/년원에

서 생활하는 청소녀/년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는데, 교육 목표가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 이런 목표는 소녀/년원에 있는 청소녀/년들은 사회부적응자로

보는 데서 기인한다. 이때 인권교육가는 요청자가 원하는 목표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권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도록 교육의 목표를 수정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실제 소녀/년원에 있는 청소녀/

년의 경우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 채 가해자로서의 정체성만을 가지고 생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

권교육은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따라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중받고, 존중

하기 위해 자존감을 먼저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누구나 권리의 주체로서 존중받고, 존중해 준다는 것이 무엇

인지 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 참여자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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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들을 교육의 주인공으로 초대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경험과 상황에 대해 인권교육가가 충분히 알고 있

어야 한다. 대상을 고려하지 못한 인권교육의 경우 참여자를 가해자로 낙인찍는 과정이 돼 이들이 마음의 빗

장을 걸게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시설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할 때 그들은 시설생활

인들과의 관계에서 인권침해를 할 우려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시설장이나 정부와의 관계에서는

노동자로서 약자의 입장에 놓인다는 것을 이해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 더욱이 사회적 약자들이 겪었

을 상처와 아픔 등을 고려하지 못할 경우 자칫 인권교육 과정이 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정신

장애인의 경우 정신병원 등에 입원하거나 생활하면서 결박당한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이들 상황에 대해 고

려하지 않고 교육을 기획하면, 인권침해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는 프로그램 속에 끈으로 몸을 감는 방

법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참여자의 교육 경험과 참여 동기

참여자의 인권교육 경험여부에 따라 교육의 내용과 주제의 수위를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참여자들의 교육 경

험이 일률적이지 않을 때도 있다. 이때에는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지 요청자와 함께 상의해서 결

정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참여 동기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억지로 참여해야 하는 경우 교육에 대한 반

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참여자들의 교육에 대한 반감을 줄이고,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미리 고민해 프로그램에 반영해야 한다.

• 참여인원

교육 방법, 모둠 수, 준비물의 수량 등을 정하려면 참여인원이 몇 명인지 아는 것은 기본!

• 성별, 나이 파악

참여자의 성별이나 나이 또한 인권교육 기획에서 미리 파악해야할 중요한 요소이다. 인권교육에 활용되는 사

례나 자료를 뽑는데 있어 필요수적이다. 인권교육가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라 참여자의 성별이나 나이를 고려

해 그들에게 익숙한 자료, 방법 등을 선택해야 한다.

• 참여자의 장애 유무와 정도 확인

참여자 중에 장애인이 있는지, 있다면 인원과 장애유형을 파악하고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준비해

야 한다. 또한 인권교육 중에 장애를 가진 참여자를 소외시키는 건 아닌지 따져가며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

다. 예를 들어 몸풀기 맘열기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참여자가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는 무엇

인지, 토론을 할 때 청각장애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선행

되어야 하는 것이다.

• 문자해독 여부

이주민이나 지역주민 등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할 경우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문자를

읽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림이나 영상처럼 글이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게 좋다.

• 교육장소와 그 외 시설

교육 공간 또한 참여자들의 참여 정도가 좌우될 정도로 중요한 요소이다. 인원에 비해 너무 넓은 공간도 주

의를 산만하게 하지만 비좁은 공간은 교육 방법을 선택할 때에도 제약을 주고, 때로는 참여를 방해하는 결정

적인 요인이 된다. 전체 인원이 교육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공간 확보는 필수! 또한 모둠을 구성

할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를 옮기는 게 용이한 지, 혹시 계단식 강의실처럼 일방적으로 주고받는 느낌을 주

는 공간은 아닌지, 장애인의 접근권이 확보된 곳인지 등을 교육여부 결정전에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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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세심하게~ 활동 자료 꾸러미

기획부터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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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시간

인원과 주제, 방식에 따라 필요한 교육 시간은 달라진다. 또 참가자들의 장애 유무나 정도에 따라서도 교육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고려해 교육 시간을 따져야 한다. 특히 강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교육

을 진행할 때에는 참여자들이 인권교육 안에서 꿈틀꿈틀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느끼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

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 전체 시간 뿐 아니라 각 단계별(몸풀기 맘열기/ 참여자들이 함

께 논의하기/ 그림이나 역할극 등 결과물로 완성하기/ 발표 등 전체 공유/ 마무리와 평가 등)로 시간 안배를

해 놓는 것도 필요하다.

• 교육 전체 흐름에 대한 파악

자칫 인권교육가가 전체 교육에 대한 이해 없이 교육을 준비해갈 경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인권교육을 저녁 시간에 해 달라는 요청이었는데, 가서 보니 이미 종일 교육을 받아 참여자들의 피로 정도가

심각한 상태라면? 혹은 앞서 진행됐던 다른 교육과 내용이 겹친다면, 또 전체 교육 과정을 보니 인권과는 전

혀 거리가 먼 교육 내용이었다면? 등등. 따라서 외부요청에 의한 것이든, 자체적으로 기획한 교육이든 해당

교육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해 인권교육의 주제나 방법 등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바람직한 기획은 교육 요청자나 참여자와 함께 교육을 기획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요청자나 참여

자가 막연하게 교육에 대한 상을 잡고 있을 수도 있다. 이때 인권교육가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

전에 우선 이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느

꼈을 때가 언제였는지, 인권교육을 통해서 참여자들이나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되기를 원하는지, 인권이 침해

된다고 느꼈을 때가 언제였는지 등 교육 목표나 주제를 정하기 위해 요청자와 참여자가 자신의 삶을 다시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것도 좋다.

특히 요청자가 자칫 인권의 가치와 맞지 않는 교육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에도 이런 과정을 통해 설득하고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조율 과정이 없을 경우에는 교육이 끝나고 나서 목표가 일치하지 않아 요청자

가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고, 인권교육에 대한 오해를 가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획부터 함께 교육을

준비할 때 요청자나 참여자는 인권이나 인권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인권교

육가도 참여자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 된다.

인권교육은 대체로 많은 활동 자료를 유연하게 활용한다. 세심하게 챙긴 활동 자료들은 참여자들의 고민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소위 ‘정상’가족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다양한 가족을 구성해 보는 프로그램

을 하면서 다양한 인물이 담긴 그림이나 사진을 준비할 때에도 유명한 연예인이나 캐릭터보다는 우리의 일상

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 자료를 준비한다면 참여자는 보다 진지하게 활동에 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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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세심하게~ 활동 자료 꾸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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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에 쓰이는 활동 자료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게 좋다. 글도 사례를 담은 상황지에서부터 시나 기사, 그

림도 한 컷의 사진뿐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여러 컷의 그림까지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자료를 쓰려고 하면 찾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그때마다 인권교육가가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인권

교육가가 새로 만들어야 하는 자료가 아니라면 기존의 것들을 가공해서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

려면 인권교육가가 좀 더 섬세한 눈을 가지고 교육 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수집해 놓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봤던 공익광고에서, 아침에 봤던 신문에서, 동화책에서 등등.

인권교육가가 접하면서 살아가는 일상이 약간의 가공을 통해 훌륭한 활동 자료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기존의 활동 자료를 활용할 때에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참여자들에 맞게 인권교육가가 보완해서 사용

하면 보다 솔직하고 진지하게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참여자에게 건네는 읽을거리도 인권

교육가의 입맛에만 맞추는 게 아니라 이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자료나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주제들을 선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교육활동 전반에 활용되는 다양한 자료들은 교육을 위한 단순한 보조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참여자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선입견, 불편함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장치이다.

인권교육을 위한 프로그램과 자료 외에도 교육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확인해야할 것들이 있다.

• 사진이나 동영상에 기록을 남길 경우에는 용도와 보관 방법 등을 참여자에게 동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거부 의사를 밝힌 경우 참여자의 얼굴이 드러나게 가까이 찍지 않을 것을, 그리고 만약 사진이나 동영상에

담겼을 경우에는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처리를 해서 사용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 교육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할 때에는 기록 담당자를 미리 정하고, 활동을 통해 나온 결과물들을 꼼꼼

하게 챙기는 것도 필요하다.

• 요청자가 누구냐에 따라 역할을 다양하게 둘 수 있다. 요청자가 교육에 참여하는 것을 참여자들이 불편해

하는 경우라면, 요청자가 교육에 직접 참여하거나 참관하는 것을 피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요청자도 교

육에 함께 참여하거나 인권교육가가 교육을 진행할 때 보조진행을 맡아줄 것을 제안할 수도 있다.

• 교육 전에 참여자간에 함께 지켜야 할 약속들을 정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모둠 활동 이후에 나온 결

과물에 대해 다른 모둠이 의견을 보태거나 다른 의견을 얘기할 수는 있지만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기, 교육

시간에 오간 개인적인 이야기에 대해서 필요하다면 함께 비밀을 지켜주기 등을 정해서 인권교육 중에 튀어나

올지도 모를 방해물들을 사전에 제거한다.

• 교육 장소에 CCTV가 설치되어 있을 경우에는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며 교육 동안 촬영이나 녹화가

되는지 등을 파악해 참여자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산을 오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등산화 끈을 잘 살피고, 볼 일도 보며 본격적으로 산에 오를 준비를 하듯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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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와 정리를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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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교육가도 보다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출발선에서 최종 점검들을 해보는 것이 좋다. 이런 과정 자체가 일면

참여자들에게 인권의 요소를 하나둘 돌아보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기도 한다.

인권교육가는 준비하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평가를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교육 요청자와 교육 기획

을 할 때부터 평가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교육 이후 이를 위한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평가방식에 대

해 여전히 고민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참여자들이 교육에 참여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느낌을 간단하게라도

정리할 수 있는 평가시간까지 고려해 교육 시간을 짜야 한다. 평가의 내용 또한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 내용이나 방식, 인권교육가에 대해서 뿐 아니라 참여자 간에 그리고 교육을 요청한

기관이나 단체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눌 수 있음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