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퀸 메이커...게임시나리오 부문 최우수상 드래곤 퀸 메이커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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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시나리오 부문 최우수상 드래곤 퀸 메이커 <드래곤을 여왕으로 기르는 방법>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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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시나리오 부문 최우수상

드래곤 퀸 메이커

<드래곤을 여왕으로 기르는 방법>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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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그 동화책의 결말>

#동화책 배경 (왕궁과 산맥이 펼쳐져 있으며 공주, 용사, 드래곤이 그려져 있는 어린이용

동화의 삽화가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내레이션 해가 해가 능선 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을 등지고, 거대한 용이 네 명의 용사들을 굽어보았다.

인류 최강의 백마법사 ‘루시어스’,

금기된 흑마법사 ‘바이올렛’,

정령의 사랑을 받는 엘프 궁수 ‘제피르’,

그리고 성검의 주인인 용사 ‘미켈’.

성검의 이름 앞에 모인 '4인의 영웅'과 왕국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살아온

드래곤이

대치하고 있었다.

용사 미켈 [실루엣] 공주님을 놓아줘라, 이 포악한 드래곤!

내레이션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

메르헨 왕국의 공주 ‘안드레아’를 납치한 드래곤은

그 기백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드래곤 [실루엣] 크하하하! 어디 한 번 나를 무찔러 보아라!

#검은 배경 (화면이 점점 어두워지며 완전히 까맣게 된다.)

내레이션 그리고 천지가 요동쳤다.

불과 물, 빛과 그림자, 하늘과 땅.

세상의 온갖 사악한 것과 선량한 것들이 붉은 산맥에서 부딪혔다.

마침내 용의 푸른 눈이 터진 핏줄로 붉게 물들고 능선 너머로 졌던 해가

다시 떠오를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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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배경 (화면이 점점 밝아지며 하얗게 변한다.)

내레이션 용은 세상의 그 무엇도 재로 만들 수 있을 화염 브레스를 내뿜었다.

??? [울음] 응애애애애!

내레이션 분명 화염 브레스를 뿜었을 터였다.

#왕궁_산실_낮 (침대가 있는 왕궁의 어느 방. 고풍스러운 푸른색 벽지와 장식이 있다. 눈

이 부실 정도로 밝고, 사람이 여럿 서 있어 어수선하다.)

??? [울음] 응애애애액!

시녀 공주님이십니다!

시종 경하 드립니다!

내레이션 지금 위대한 드래곤의 옆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것이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인간들이구나!

??? [울음] 응애! 응애!

내레이션 생후 3분, 아스타로테는 왕궁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울었다.

공주의 탄생이었다.

#왕궁_아기 침실_황혼 (아기 침대가 있는 공주의 방. 분홍색과 노란색 중심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방이다. 노을이 져서 주황색 빛이 들어온다.)

내레이션 드래곤을 무찌르고 공주님을 구한 용사는 공주님과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드래곤과 용사와 공주가 등장하는 많은 동화가 이렇게 끝을 맺었다.

하지만 공주를 납치했던 드래곤이 인간으로 환생하다니?!

이는 위대한 드래곤이었던 나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엘프도, 요정도, 그 외의 다른 고등생명체도 아니고,

인간 같은 미개 생물로 환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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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미소] 우리 공주님은 얌전하기도 하시지.

아스타로테 꺄이!

내레이션 얌전한 게 아니라 성숙한 거다.

위대한 드래곤인 내가 미개한 인간들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위엄을 잃고 울어 댈 수는 없지 않은가.

미개 생명체로 태어난 나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렇게 나를 떠받들어주는 인간들의 존재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신분이 높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어느 나라 공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모 공주님, 저길 보세요.

내레이션 유모가 나를 안아 들고 창 가까이로 걸어갔다.

#광장_추모 행렬_황혼 (많은 사람이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줄지어 움직이고 있다. 노

을 탓에 하늘은 주황색이다.)

내레이션 열린 창문 너머에서 웅장하고 느린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행렬이 왕궁을 나서고 있었다.

행렬의 군데 군데에서 용을 수놓은 깃발이 눈에 띄었다.

유모 [우울] 국왕 전하께서는 공주님이 태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장례식에 참석하시게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아스타로테 …

유모 [우울] 저도 그 말에 동의하지만…

그래도 공주님도 어머니의 마지막을 배웅하셔야죠.

내레이션 나는 이게 무슨 광경인지 알고 있었다.

국상(國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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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나 왕비와 같은 왕실의 높은 이가 죽었을 때 이루어지는 국가적인

장례식이다.

특히 검은 바탕에 붉은 용이 수놓인 깃발 문양은 나에게는 아주 익숙한

왕국의 것이었다.

내가 납치했던 공주 안드레아의 나라, 메르헨 왕국의 문양이었다.

나는 메르헨 왕국의 공주로 환생한 것이다.

#하얀 배경

안드레아 드래곤님은 외로우셨던 거군요.

#광장_추모 행렬_황혼 (많은 사람이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줄지어 움직이고 있다. 노

을 탓에 하늘은 주황색이다.)

내레이션 건방지게도 위대한 드래곤에게 외로움을 운운하던 분홍 머리 공주.

그녀에 관한 소문이 있었다.

바로 그녀가 주위를 행복하게 하는 마법사라는 소문이었다.

나는 위대한 마법 종족 드래곤이었으나 그런 마법은 처음 들었다.

나에게는 그 마법이 필요했고,

인간들에게 그 마법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모두 나에게 거짓말 같은 말만 해댈 뿐,

제대로 된 마법적 해답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마법의 비밀을 직접 파헤치기 위해 안드레아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마법의 비밀을 알기 전에 4명의 영웅이 찾아와서 끝내 마법의 비밀은

알 수 없었지만.

메르헨 왕국의 공주로 환생한 것이라면

이번 생에는 그 비밀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장례 행렬에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기묘한 기대감과 불안감 속에서

나는 장례 행렬이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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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_아기 침실_밤 (아기 침대가 있는 공주의 방. 분홍색과 노란색 중심으로 꾸며진 아

기자기한 방이다. 방안은 조명이 밝혀져 있지만 창밖으로 밤하늘과 별이 보인다.)

??? [실루엣] 모두 밖으로 나가라.

시녀 전하, 과음하셨습니다.

시종 공주님은 내일 만나시지요.

??? [실루엣] 모두 밖으로 나가라는 말이 들리지 않나?

내레이션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스타로테 [분노] (대체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것이냐!

잠자는 드래곤의 비늘을 건드리다니!)

선택1 (드래곤의 포효를 보여주마!)

선택2(새끼 인간의 힘을 보여주마!)

[울음] 응애애애! 응애애애!

내레이션 감정을 가득 담아 분노의 포효를 하는데,

그 순간 마법의 힘이 방안을 휩쓸었다.

(털썩―)

#왕궁_아기 침실_어둠 (아기 침대가 있는 공주의 방. 조명이 꺼져서 내부는 어둡고 창밖

으로 밤하늘과 별이 보인다.)

내레이션 방 안이 어둠에 잠기고 사람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 들어온 침입자를 말리던 다른 인간들이 쓰러진 것이다.

아스타로테 [우울] 히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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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나는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다.

절대! 겁먹어서가 아니다!

조용한 상태에서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서다!

방안을 휩쓴 마법이 무엇인지 지금 상태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살생에 쓰이는 마법의 흐름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감히 드래곤이 곤히 잠든 방에 함부로 들어온 이 침입자는

나를 죽이진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 [실루엣] (터벅, 터벅)

내레이션 생각을 이어나가는 사이,

침입자가 내 요람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침입자의 얼굴이 달빛 아래 드러났다.

루시어스: …

내레이션 놀랍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의 이름은 ‘루시어스 베르텔’.

인류 최강의 백마법사로,

과거에 나를 무찌르러 왔던 '4인의 영웅' 중 하나였다.

루시어스 …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이 녀석 설마…내가 드래곤의 환생이라는 걸 알고

새끼 인간인 지금 미리 없애러 찾아온 건가?)

(이 비열한 자식!)

(너의 비겁함은 4대 1로 덤빌 때부터 알아봤다!)

루시어스 …

루시어스 [불만] 네가…….

내레이션 그는 말로 하기 어려운 사실을 말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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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기 어려운 사실을 인정하듯 망설이며 뒷말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내가 드래곤의 환생이라는 것을 알고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사실처럼 느껴질 때쯤, 루시어스가 결국 뒷말을 마저 내뱉었다.

루시어스 [불만] 네가…

나의 딸인가…?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뭐?)

(누가?)

(누구의 딸?)

(내가?)

(네 딸?)

내레이션 문득 머릿속으로 한 문장이 지나갔다.

‘드래곤을 무찌르고 공주님을 구한 용사님은 공주님과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지금 네가 감히 이 위대한 드래곤을 농락하는 것이냐!

아스타로테 [울음] 응애애애애애액! 응애애애애애애액!

내레이션 나는 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있는 힘껏 포효하기 시작했다.

실로 드래곤 브레스에 버금가는 베이비 브레스였다.

아스타로테 [울음] 응애애애애애액!

내레이션 그러나 나의 포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내 방으로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루시어스가 쓴 아까의 그 마법은 생각보다 넓은 범위까지

닿았던 모양이었다.

루시어스는 우는 나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내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차가운 손이 목을 감싸는 느낌에 나는 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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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어스 [무표정] …

아스타로테 [우울] 히끅.

내레이션 지금 상태로 이 녀석과 싸운다면 승산이 전혀 없었다.

인류 최강의 백마법사 루시어스.

루시어스 …

내레이션 드래곤이었던 과거의 나에게,

그는 만만하다 못해 우스울 정도의 상대였다.

그러나 굴욕적이게도,

지금의 나에게는 고작 인간에 불과한 그가 너무나도 강대한 적이었다.

루시어스 [분노] 너를 낳고… 안드레아가…….

내레이션 그 순간 루시어스의 목소리는 세상 그 누구보다 괴로운 것처럼 들렸다.

동시에 지독한 살의가 담겨 있기도 했다.

다음 순간…

그는 내 목을 조르는 대신 손을 내려 내 머리를 감쌌다.

한순간에 내 몸을 자기 품에 끌어안은 그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일러스트_아빠와 나 (달빛 아래 루시어스가 아기인 아스타로테를 안고 울고 있다.)

내레이션 루시어스는 이를 악문 채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눈물이 내 얼굴 위로 떨어졌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손을 휘저었다.

그러나 내 짧은 팔은 그에게 닿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결국 어정쩡하게 그를 향해 손을 뻗는 꼴이 되었다.

루시어스는 그런 나의 손을 어떻게 생각한 건지

내 손을 제 얼굴에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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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손만큼 차가운 뺨이었으나 손끝에 스치는 눈물만은 따스했다.

이러려고 뻗은 팔이 아니었는데.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하얀 배경

내레이션 드래곤을 무찌르고 공주님을 구한 용사는 공주님과 결혼하여

공주로 환생한 드래곤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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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아빠라고 불러다오>

#검은 배경

내레이션 안드레아의 장례식 날 내 방을 찾아왔던 루시어스는

한참을 울다가 일어섰다.

#왕궁_아기침실_어둠: (아기 침대가 있는 공주의 방. 조명이 꺼져서 내부는 어둡고 창

밖으로 밤하늘과 별이 보인다.)

루시어스 …닮았군.

내레이션 나를 요람에 내려놓은 그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는 사라졌다.

누굴 닮았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후로 루시어스는 나를 제법 자주 찾아와 살피고는 했다.

#왕궁_아기 침실_낮 (아기 침대가 있는 공주의 방. 분홍색과 노란색 중심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방이다. 창밖으로 푸른 하늘이 보이며 햇살이 들어온다.)

루시어스 오늘은 내가 아스타로테를 돌보지.

아기 목욕은 이렇게 하면 되나?

이유식을 먹게 되었다지? 함께 식사하겠다.

내레이션 유모는 국왕의 업무로 바쁠 텐데도 이렇게 꾸준히 찾아오는 것은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지 1년이 되어갈 때쯤,

루시어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안드레아의 기일이 다가옴에 따라 다시 여러모로 심란한 듯했다.

인간과 같은 미물은 이렇듯 계절의 변화에도,

작은 근심과 걱정에도 휘청거리는 것이다.

나는 고등 생물로서 루시어스의 심란함을 관대하게 봐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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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내게 바쳐진 공물을 구경하느라

정신없기도 했고…

[삽입 이미지: 보석]

내레이션 이 찬란함! 영롱함! 아름다움!

대부분의 드래곤은 보석을 좋아하는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진상된 것 중 보석은 얼마 없었지만,

천천히 구경하기엔 나쁘지 않았다.

아스타로테 [미소] (인간들 주제에 보석 다루는 기술은 꽤 괜찮단 말이지...)

[당황/놀람] (잠깐, 저 사파이어 목걸이는… 드워프가 만든 것 같은데?)

내레이션 나는 재빨리 기어가 그것을 손에 쥐었다.

아스타로테 [웃음] 따히아!

(품질이 아주 뛰어나군!)

시녀 [당황/놀람] 공주님! 지지에요, 지지!

이런 거 입에 넣으시면 안 돼요!

아스타로테 [분노] 아냐!

내레이션 입에 집어넣다니, 드래곤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는데,

유모와 시녀들이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시녀 [당황/놀람] 방금 들으셨어요?

유모 [당황/놀람] 세상에!

시녀 [당황/놀람] 공주님, 뭐라고 하셨어요?

내레이션 인간의 청력 수준은 대체 어떤 수준이기에 말도 못 알아듣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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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타로테 [분노] 입! 아냐!

시녀 [당황/놀람] 세상에, 공주님이 말씀을 하셨어요!

유모 [당황/놀람] 가서 전하께 알리고 오너라!

내레이션 시녀가 밖으로 뛰쳐나가고,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눈만 깜박이다가

곧 상황 파악을 했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나의 첫 언어 대화인 것이다.

아기의 몸으로는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말을 할 시도조차 하지 않은지 오래였다.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자랐는데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오랫동안.

루시어스 [당황/놀람] (쿵!)

아스타!

말을 했다지?

내레이션 급히 들어온 루시어스는 나를 안아 들고

무언가 기대하는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표정이었다.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그렇다. 내가 말을 했도다.)

(...라고 하면 되는 건가?)

루시어스 [걱정/불안/고심] 아스타, 아빠…라고 해보아라. 응?

유모&시녀 …

루시어스 …

아스타로테 선택1 ([걱정/불안/고심] 아…)

선택2 ([걱정/불안/고심] …)

선택1

루시어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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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시녀 …!

내레이션 유모와 시녀들이 뒤에서 입모양으로

열심히 ‘빠’라고 뻐끔거리는 것이 보였다.

선택2

내레이션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루시어스와 다른 이들의 표정은

점점 초조하게 변해갔다.

기대감으로 가득한 눈동자 여러 개가 나를 향하자

어쩐지 그에 응해줘야 할 것 같았다.

내레이션 하지만 끝내 내 입에서 ‘아빠’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드래곤은 부모 자식의 개념이 희박해서 전생에도

그런 단어는 말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아니어도 다른 호칭으론 불러줄 수 있지 않을까?

왕국에 복수하려면 성년이 될 때까지는

이들의 장단을 맞춰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 이 모든 것은 다 복수를 위한 일이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빠는 아니지만,

대충 불러줄 수는 있을 것 같은 단어를 내뱉기 위해서.

아스타로테 뎌나.

루시어스 [당황/놀람] 뭐?

아스타로테 뎌.나.

내레이션 네놈은 이 나라의 국왕 전하이지 않느냐!

루시어스 [무표정] …

유모&시녀 [걱정/불안/고심] …

루시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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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걱정/불안/고심] 다들, 전하를 전하라고 불러서… 공주님이 전하를…

전하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루시어스 …

유모&시녀 [걱정/불안/고심] …

루시어스 [무표정] …앞으로 모든 궁인에게…

나를 전하라 부르는 것을 금하고 아빠라고 부르도록-

유모 [당황/놀람] 전하! 체통을 지키십시오!

시녀 [당황/놀람] 전하, 진정하세요!

아스타로테 [한숨] (에휴.)

(인간의 심리란 정말 모르겠다니까.)

#왕궁_아기 침실_황혼 (아기 침대가 있는 공주의 방. 분홍색과 노란색 중심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방이다. 노을이 져서 주황색 빛이 들어온다.)

내레이션 이렇게 하나의 소동이 지나가고, 내 생일이 점점 다가오는데

유모가 몸져누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음은 재상이 앓아누웠다는 소식이었고,

요리사가 아프다고 하더니,

그 뒤엔 또 누군가가….

수도에 유행병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왕궁_아기 침실_밤 (아기 침대가 있는 공주의 방. 분홍색과 노란색 중심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방이다. 방 안은 조명이 밝혀져 있지만 창밖으로 밤하늘과 별이 보인다.)

내레이션 자연스레 내 생일 축하는 조용히 지나가던 어느 날 저녁,

평화롭게 잠을 자던 나는 낯선 고통 속에서 눈을 떴다.

아스타로테 [울음] 후우, 흐아……. 흐엥…….

시녀 [미소] 우리 공주님, 나쁜 꿈이라도 꾸셨어요?

[당황/놀람] !

공주님, 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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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의원을 불러 주세요!

내레이션 시녀는 황급히 물수건을 가지고 와 내 열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 들어온 것은 의원이 아니었다.

루시어스 공주의 상태는 어떻지?

시녀 [당황/놀람] 전하? 여긴 어떻게…

루시어스 공주 방의 기사가 의원을 찾는 걸 보고 마음이 급해져 내가 먼저 왔네.

열이 심한 것 같군. 그 외의 증세는 그리 심하지 않고.

아이는 내가 볼 테니 자네는 다른 일을 하게.

유행병 탓에 궁에 일손이 많이 부족해.

시녀 [걱정/불안/고심] 하오나 전하,

전하께선 다른 더 중요한 일이 많으시지 않습니까?

루시어스 공주가 아픈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네.

시녀 [걱정/불안/고심] 제가 못 미더우시면,

병간호에 능숙한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루시어스 나는 이 나라 최고의 백마법사고,

여기에 나보다 간호에 더 뛰어난 자는 없어. 내 말대로 하도록.

내레이션 인간의 마법은 백마법과 흑마법으로 나뉜다.

마법이란 본디 하나로 각각 차이는 있어도 분리할 수는 없으나

인간은 이를 억지로 구분했다.

치유와 축복, 생명과 편의에 대한 마법은 백마법으로.

전투나 저주, 죽음과 파괴에 대한 마법은 흑마법으로.

그러니 이 나라 최강 백마법사인 루시어스의 간호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가 주문을 몇 개 외자,

나는 몸이 한결 편해지는 것을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통증이 완화되고, 체온이 비교적 안정된 것이다.

시녀 …그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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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근처에 있을 테니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루시어스 내 딸을 내가 돌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집무실 시종한테 공주의 침실에서 업무를 볼 테니

이곳에 책걸상과 일거리를 가지고 오라고 전해주고.

시녀 예, 전하.

내레이션 시녀가 루시어스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나가자,

이번엔 의원이 방으로 들어왔다.

의원 보아하니 최근 수도에 돌고 있는 유행병에 걸리신 듯합니다.

증세가 심각한 것은 아니나,

공주님께서 아직 어리시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이 약을 물에 개서 드시게 하시고,

맛이 역하니 토해내지 않게 하십시오.

내레이션 그 뒤로도 의원은 몇 가지 주의사항과 약효 등을 알려주고는

방을 나섰다.

루시어스는 의원의 말에 따라 환약을 물에 갰다.

진한 회색의 액체는 보기만 해도 맛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보통의 인간 아기가 아닌 위대한 드래곤이었다.

맛이 없다고 약을 거부하는 비이성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루시어스 [미소] 우리 아스타는 어른스러우니까 약 다 먹을 수 있지?

자, 아- 하자.

아스타로테 아-

[당황/놀람] …!

푸붑! 우에퉤!

(맛없어! 끔찍해!)

내레이션 드래곤조차 예상하지 못한 끔찍한 맛에 나는 놀라 몸부림쳤다.

쓴 물이 계속 올라와 입술 사이로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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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런 추태를 보이게 하다니!

이게 정녕 독이 아니라 약이란 말인가?

의원이 내게 악감정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루시어스는 제 옷이며 얼굴에 다 묻은 약을 닦아내고는 나를 타일렀다.

루시어스 [걱정/불안/고심] 아스타, 꿀꺽 삼켜야지.

아스타로테 [분노] 시쪄! 너나 머거!

(감히 위대한 드래곤에게 이런 쓰레기를 먹일 생각을 하다니!)

루시어스 [걱정/불안/고심] 잘 먹어야 착한 아이지?

아스타로테 [분노] 뿌!

내레이션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홱 돌리자

이번에는 돌린 방향으로 스푼이 닿았다.

내 먹기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는 그대로 손을 들어 스푼을 밀어냈다

(땡그랑!)

루시어스의 손에서 떨어진 스푼이 바닥을 뒹굴었다.

루시어스 [한숨] …

[걱정/불안/고심] …

내레이션 잠시 밖으로 나간 루시어스는 무언가 명을 내리고는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안고 어르기 시작했다.

루시어스 [걱정/불안/고심] 아스타.

아빠는 아스타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아스타가 약을 먹어야 해.

아빠를 위해서 아스타가 세 입만 꾹 참고 먹을까?

아스타로테 (어쩐지 '아빠'라는 단어에 힘이 들어간 거 같은데…)

(아직도 호칭을 신경 쓰는 건가.)

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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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어스 응?

아스타로테 시쪄.

루시어스 [걱정/불안/고심] 아스타.

아빠는…

너도 엄마랑 같이 가버릴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워.

아스타로테 …

[한숨] 후우.

아라따.

루시어스 [당황/놀람] !

아스타로테 대신 딱 세 입!

루시어스 [웃음] 그래, 세 입.

내레이션 …어쩐지 불길할 정도로 환한 얼굴인데.

나 혹시 속은 건가?

루시어스는 내가 약속을 하자마자

문밖에서 무언가 하얀 덩어리 같은 것이 놓여 있는 쟁반을 받아왔다.

그리고는 싱긋 웃었다.

루시어스 [미소] 그럼 이제 세 입 먹을까?

아스타로테 (나는 드래곤이다. 나는 드래곤이다. 드래곤은 이 정도엔 지지 않는다!)

루시어스 아-

아스타로테 아-

[당황/놀람] (으윽! 맛없어…!)

[걱정/불안/고심] (참자! 참자! 약속도 못 지키는 건 드래곤이 아니다!)

(꿀꺽)

루시어스 [미소] 잘했어. 자, 다시 아- 하자.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

루시어스 [미소] 얼른 다 먹어야 금방 끝나지.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아-

…! (꿀꺽)

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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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어스 [미소] 마지막 한 입. 아-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아-

[당황/놀람] …!

(스푼이 아니잖아!)

(이 녀석, 그릇을 통째로…!)

[불만] (꿀꺽, 꿀꺽, 꿀꺽)

루시어스 [미소] 다 먹었네.

아스타로테 [분노] 소겨쪄! 날 소겨쪄!

루시어스 [걱정/불안/고심] 세 입에 다 먹었잖아. 약속대로 세 입이야.

내레이션 웃기지 마라! 처음 약속할 땐 스푼으로 세 입인 것처럼 하지 않았더냐!

인간을 믿다니, 내가 어리석었다.

인간의 역사란 배신의 역사임을 천 년 넘게 살면서

충분히 봐 왔는데도!

아스타로테 [울음] 으아앙!

뎌나 시쪄! 미어!

내레이션 나는 앞발, 아니 손이 닿는 대로

녀석의 입술과 코 부근을 있는 힘껏 마구 잡아 뜯고 할퀴었다.

내가 쥐어뜯은 그의 입술에선 피가 비쳤다.

루시어스는 아무렇지 않게 입술에 방울진 피를 닦아내고는

밖에서 가져온 쟁반을 가지고 왔다.

그는 유리그릇에 담긴 하얀 덩어리를 한 스푼 떼어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루시어스 [미소] 이제 쓴맛 없어지게 아이스크림 먹을까?

아스타로테 [분노] 시쪄!

내레이션 저것도 끔찍한 맛이 나는 물건일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내 다시는 너를 믿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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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어스는 살기를 띠고 노려보는 나의 시선을 무시한 채

크림을 퍼낸 스푼을 내 입에 가져다 댔다.

왈칵 짜증을 내려던 나는 스푼의 차가움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루시어스 [미소] 차갑고 맛있을 거야.

아스타로테 [무표정] …

아-

[당황/놀람] (달다!)

루시어스 [미소] 천천히 먹어.

아스타로테 … (냠냠)

내레이션 루시어스가 주는 것을 몇 번 받아먹자 입안의 쓴맛은 사라졌다.

그는 나를 요람에 눕히고는 이마에 입을 맞췄다.

루시어스 이제 한숨 자고 나면 나아질 거다.

[미소] 잘 자.

내레이션 루시어스가 수면 마법의 주문을 말하는 게 귓가에 감도는 사이,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왕궁_아기 침실_어둠 (아기 침대가 있는 공주의 방. 조명이 꺼져서 내부는 어둡고

창밖으로 밤하늘과 별이 보인다.)

내레이션 목이 마른 느낌에 앞발…이 아니라 손을 휘적거리자

누군가가 시원한 물을 입에 대주었다.

가늘게 눈을 뜨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루시어스였다.

그의 입술에는 내가 냈던 생채기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마법으로 치유한 것이겠지.

두통은 가라앉아 있었고, 몸도 전보다 가뿐했다.

내가 다시 잠드는 대신 눈을 깜박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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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어스는 나를 안아들어 열을 쟀다.

루시어스 열이 조금 내린 거 같군.

아스타로테 이뎨 벼로 아나파.

루시어스 그래도 약은 더 먹어야 해.

아스타로테 [우울] 으.

루시어스 이번엔 진짜 세 입만 먹자.

아스타로테 [우울] 아까 나 쇼겨쪄.

루시어스 [미소] 진짜 세 입.

내레이션 전보다 더 큰 스푼을 드는 것이,

아예 세 입 먹으면 딱 끝나도록 크기를 고려한 듯했다.

그래. 위대한 드래곤이 약 따위에 져서는 안 된다.

더욱이 약효를 본 이후가 아닌가.

맛이 워낙 대단한 탓에

드래곤마저 비합리적으로 굴게 한다는 부작용이 있었으나

효과는 분명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아예 빠르게 먹고 끝낼 생각으로

스푼에 담긴 약물을 노려보다가 입을 벌렸다.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냠-

(꿀꺽)

[불만] 하압-

(꿀꺽)

아-

읍... (꿀꺽)

루시어스 [미소] 잘했다. 이제 아주 잘 먹는구나.

내레이션 루시어스는 다시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와 내 입가심을 해주었다.

입안의 단 것을 우물거리며 루시어스의 어깨너머로 시선을 돌리자

엉망이 된 방 안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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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리가 잔뜩 쌓인 테이블,

땀을 닦고 열을 내리느라 사용한 물동이와 물수건, 갈아입힌 내 옷들.

공과 사 양쪽으로 제법 분투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스름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루시어스의 얼굴도

꽤나 피곤해 보였다.

루시어스 …

곧 있으면 해가 뜰 것 같구나.

네가 해 뜨는 걸 본 적이 있던가?

내레이션 천 년이 넘는 용생을 사는 동안

수없이 많이 본 것이 일출과 일몰이었다.

그러나 죽은 뒤로는,

인간으로 새로 태어나서는 일출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스타로테 …

루시어스 …

[미소] 자리를 옮겨서 여명을 볼까?

내레이션 그리고 나를 안은 루시어스는, 우리는 방문 밖으로 나섰다.

#왕궁_복도 (왕궁의 복도, 곳곳에 장식물이 서 있고 액자가 걸려 있다.)

내레이션 인사를 올리는 궁인들을 지나치고,

온갖 그림과 조각, 도자기가 전시된 왕궁의 복도를 걷고,

안드레아와 루시어스의 거대한 초상화가 내걸린 중앙 홀을 지나서…

루시어스는 계속 걸었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서 도착한 곳은-

#수도_도시경관_새벽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중세 유럽식 도시가 펼쳐져 있다. 어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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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태양이 솟구친다.)

내레이션 왕궁의 감시탑 꼭대기였다.

루시어스는 바람을 막고 온도를 유지하는 마법을 몇 개 걸어주고는

내가 바깥을 볼 수 있게 했다.

루시어스 [미소] 해가 뜨는구나.

아스타로테 …

내레이션 황금색 빛이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갈랐다.

산도 나무도 사람도 건물도 모두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빛을 피해 멀리 달아나 길게 늘어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은 빛의 파편을 반사했다.

정원사가 잔뜩 공들인 왕궁 정원은 미로의 구석구석을 뽐내고,

왕궁과 바깥을 구분 짓는 너른 해자의 수면이 울렁거렸으며,

거리에는 점처럼 작게 보이는 인간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루가 또다시, 세상이 또다시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바다에서, 숲에서, 산에서, 하늘 꼭대기에서.

수백 번, 수천 번, 혹은 그 이상. 보고 또 본 광경이었다.

그런데도 왜 이리 특별하게 느껴지는지…

#일러스트_신새벽 (감시탑 꼭대기에 서 있는 루시어스와 품에 안긴 아기 아스타로테.

푸른 새벽을 배경으로 노란 아침햇살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다.)

내레이션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는 내 이마에

루시어스가 입을 맞췄다.

귓가로 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밀려들었다.

루시어스 아스타.

생일 축하한다.

내레이션 아,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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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 삶이 시작한 지도 일 년이 지난 것이다.

나는 햇살 속에 빛나는 왕궁과 수도에서 눈을 돌려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쌓여 있는 일거리는 산더미 같고, 잠은 못 잤고,

아픈 아기를 돌보느라 하루 종일 피곤했을 텐데도…

내가 열이 내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인간을.

나에게 이유 없이 온 힘을 다해 헌신하는 작디작은 미물을.

기분도 좋겠다, 아픈 것도 나았겠다, 새 여명도 맞았겠다.

이 정도로 노력했으면,

그가 원하는 호칭으로 불러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루시어스의,

나와 똑같은 색깔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스타로테 ……아빠.

내레이션 그는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얼굴보다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루시어스 그래, 아스타.

내레이션 아침 햇살만큼이나 반짝이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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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용사의 행방>

#왕궁_정원_낮 (정원수와 꽃으로 꾸며진 화단. 뒤로 왕궁의 모습이 보인다. 푸른 하늘에

밝은 햇살이 비치는 아름다운 정원.)

유모 [당황/놀람] 공주님! 뛰어다니시면 위험해요!

아스타로테 [웃음] 하하하!

용감한 드래곤은 이 정도에 다치지 않는다!

유모 오늘도 드래곤 놀이하시는 거예요?

아스타로테 [불만] 놀이가 아니라 내가 드래곤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유모 [한숨] 전하한테 이상한 말투만 옮으셔서는…

내레이션 내가 태어난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유모와 루시어스, 많은 인간이 나를 극진히 모시며 보호한 결과,

나는 드디어 말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스타로테 [미소] (어리석은 인간들…)

(내가 드래곤의 환생 인지도 모르고…)

(안드레아의 행복 마법의 비밀만 밝혀내면

감히 위대한 드래곤을 해한 이 왕국은 끝이다, 끝!)

(왕이 돼서 이 나라를 끝장내주마!)

[웃음](크하하하하하!)

#왕궁_공주 침실_낮 (고풍스러운 가구로 꾸며진 공주의 방. 창밖으로 푸른 하늘이 보이며

밝은 햇살이 들어온다.)

내레이션 이제는 뛸 수도, 말을 할 수도 있게 된 나는

그동안 알게 된 정보를 정리해 뒀다.

첫 번째, ‘루시어스’와 ‘안드레아’는 결혼하여 공동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두 번째, ‘안드레아’는 나를 낳고 세상을 떠났다.

세 번째, 4인의 영웅들은 공주를 구한 포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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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이었던 ‘바이올렛’은 작위를 받고 마법 학교 이사장이 되었고,

속물 근성의 엘프 ‘제피르’는 돈으로 포상을 받았다고 하고…

네 번째, 나머지 3명의 영웅의 소식은 들리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용사

‘미켈’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다.

다섯 번째, 이 시건방진 왕국 인간들은 내 기일을 '용사절'이라 부르며

기념하고 있었다.

#왕궁_공주 침실_황혼 (고풍스러운 가구로 꾸며진 공주의 방. 주황색 석양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

내레이션 첫 번째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두 번째부터는 문제가 되었다.

안드레아가 세상을 떠나 마법의 비밀을 밝혀 내기가 요원 해진 것이다.

용사 미켈의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나와 마지막까지 겨룬 것은 미켈이며 나를 죽인 것도 그였을 텐데,

어째서 혼자서만 소식이 없단 말인가?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 미개 생명체들이 나의 기일을 기뻐하며 '용사절'만 되면

축제를 벌인다는 점이었다.

이 망할 '용사절'만 가까워지면 다들 축제 준비로 바빠

나를 챙겨주는 인간이라곤 유모뿐이었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용사절 일주일 전부터

루시어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루시어스를 며칠째 보지 못한 채, 용사절 당일이 되었다.

#왕궁_공주 침실_밤 (고풍스러운 가구로 꾸며진 공주의 방. 창밖으로 밤하늘과 별들이

보인다.)

내레이션 유모와 함께 있다가 낮잠이 들었던 내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뒤였다.

루시어스 눈을 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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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언제 온 건지 루시어스가 곁에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허름한 차림새였다.

아스타로테 왔느냐?

루시어스 그래,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나갈 예정이고.

아스타로테 또 어딜 나가느냐?

루시어스 …

오늘은 나와 외출을 좀 하지.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외출? 나와 말이냐?

루시어스 [미소] 네게는 첫 외출이 되겠구나.

내레이션 루시어스는 그대로 창문을 열어젖혔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밀려들었다.

추워서 몸을 움츠리자 루시어스는 내 이마에 손을 대었다.

아스타로테 (따뜻하군…….)

내레이션 내가 추위에 긴장했던 몸에서 힘을 빼자

루시어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어라 중얼거리자

창밖으로 별 무리 같은 반짝임이 공중에 길을 만들어냈다.

#수도_길거리_밤 (중세 유럽 영화에 나올 법한 길거리 모습. 돌길이 깔려 있으며 등불과

가정집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곳곳이 밝혀져 있다.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내레이션 루시어스는 나를 안은 채

창밖으로 난 별빛 공중다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나는 별 무리가 가득한 하늘과 환한 불빛이 별처럼 뿌려진,

축제날 밤의 수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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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쓸모없는 루시어스의 얼굴이 시야를 조금 가리기는 했지만,

그것이 영 싫지만은 않았다.

얼마나 그러고 걸었을까?

루시어스는 마법으로 제법 환히 밝혀진 광장 같은 곳 위에 도착하자

은신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천천히 광장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광장에는 여전히 사람이 북적이고 있었다.

루시어스는 광장 바닥까지 착지하지 않고,

사람들의 머리 위 지점에서 멈췄다.

#광장_기념비_축제 (광장 한가운데 거대한 기념비가 서 있다. 기념비는 은은하게 빛나고

있으며, 주위는 붉은 꽃무릇으로 뒤덮여 있다.)

내레이션 광장에 놓인 거대한 기념비의 앞이었다.

사람들 (웅성웅성)

아이 엄마! 이쪽이야!

젊은 남자 자기야, 이번 축제도 진짜 재밌었다. 그렇지?

내레이션 기념비를 둘러싼 꽃들은 화단이 조성된 게 아니라

전부 누군가가 두고 간 꽃 들이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붉은 꽃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차례를 지켜 기념비의 앞에, 옆에, 뒤에,

기념비 주변을 온통 감싸도록 붉은 꽃을 놓아두고 있었다.

왕국에서 죽은 이를 추모할 때 사용하는 꽃이었다.

하지만 추모를 위한 꽃을 들고 있는 것과 어울리지 않게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축제의 즐거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이미 잔뜩 쌓인 꽃 위로

꽃을 새로 쌓으며 짐짓 엄숙하게 두 손을 모았다.

나는 이 엄청나고도 대단한, 하지만 아무도 진심으로 슬퍼하지는 않는

애도를 받는 대상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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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에는 짧은 문구가 유려한 글씨체로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다.

기념비 고결한 용기와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왕국의 영웅, 구원자, 여신의 계시를 받은 자, 성검의 주인,

드래곤 슬레이어, 용사 미켈 이곳에 잠들다.

아스타로테 (아.)

(이 행복한 추모와 즐거운 애도를 받고 있던 사람이 너였나.)

(이 축제가, 나의 기일일 뿐만 아니라 너의 기일이었나.)

루시어스 내 가장 소중한 친우이자, 다시없을 은인을 위해 세운 곳이지.

미켈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소중한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아스타로테 …

(친우이자 은인이라.)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건방진 인간이었고,)

(기나긴 삶에서 만난 가장 참신한 존재였고,)

(그리고…)

내레이션 그는 드래곤이었던 나의 위대한 이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이제 이 땅에…

내 이름을 아는 인간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루시어스 그저 기념비일 뿐이지만 그래도 네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너와 안드레아의, 그리고 이 나라의 은인이기도 하니까.

저들의 평화롭고 행복한 얼굴은 죄다 미켈 덕분이지.

[미소] 자기가 드래곤을 무찌르고 죽는다면

그날이 모두에게 즐거운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녀석이니…

지금쯤 어딘가에서 이 불행한 이 하나 없는 추도의 물결을 보며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내레이션 기념비 뒷면에는 빼곡한 글자로 용사 미켈의 업적이 적혀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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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은 익숙한 내용으로, 중간중간 나의 전생 이야기도 섞여 있었다.

나를 음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과장된 이야기를 읽던 중

눈에 띄는 문장을 발견했다.

기념비 흑마법사 바이올렛은 안드레아 공주의 일기를 매개로

추적 마법을 펼쳤다.

4인의 영웅은 그것을 <안드레아의 기록>이라고 부르며,

4개로 나눠 가진 채 공주가 납치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안드레아가 직접 적은 일기라고?)

(거기에 안드레아의 마법에 대한 비밀이 적혀 있을지도 몰라.)

[미소] 아빠여,

<안드레아의 기록>이 무엇이더냐?

루시어스 그건…

아스타로테 [미소] 매우 궁금하도다. 가지고 있느냐?

루시어스 …

아스타로테 [미소] …

루시어스 …

궁에 돌아가서 보여주지. 하지만 내용은 읽지 못할 거다.

4개가 함께 있어야 열람할 수 있는 마법이 걸려 있으니.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뭣이?)

(그렇다면 4개의 기록을 모두 다 모아야 한단 말인가?)

[걱정/불안/고심] (루시어스, 바이올렛, 제피르의 것은

직접 얻으면 되지만…)

(죽은 미켈의 것은 어떻게 얻는단 말인가.)

내레이션 그때는 몰랐다.

내가 그렇게 광장에서 고민하는 동안,

??? [실루엣/무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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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내 또래의 남자아이 하나가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행복한 추도의 물결을 보며,

??? [실루엣/미소] …

내레이션 어딘가 씁쓸하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것을.

#하얀 배경

내레이션 드래곤을 무찌르고 공주님을 구한 용사님은

죽어서 전설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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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용사와 드래곤>

#왕궁_공주 침실_낮 (고풍스러운 가구로 꾸며진 공주의 방. 창밖으로 푸른 하늘이 보이고

햇빛이 들어온다.)

내레이션 용사절이 끝나고, 궁인들이 한숨 돌리는 시기가 왔다.

이 한가한 시기에 유모는 벼르고 있던 일을 벌이기로 한 듯했다.

바로 내 편식을 뜯어고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당연하지만 위대한 드래곤은 채소 따위는 먹지 않는다!

식물은 사냥 능력이 없는 종족들이나 뜯어먹는 것이지

드래곤처럼 뛰어난 사냥 종족이 먹을만한 것은 못 되었다.

그런 드래곤에게 식물을 먹일 생각을 하다니!

아주 터무니없고 황당할 뿐만 아니라 모욕적인 시도였으나

유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궁인들이 한가해지는 시기가 오자마자,

공주님의 편식을 고치겠다는 명목 하에

여러 궁인들을 불러 모아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시녀 요리는 …하도록 …방향으로…

시종 되도록… …하고, 골고루 드시는… 합니다.

시녀 …에게 연락을……. 재상의 아드님이시고, 마침 나이도…….

내레이션 들리는 말소리를 조합해보면,

내 또래의 인간을 데리고 와서 함께 식사를 시키겠다는 모양이었다.

음식으로 할 수 있는 시도를 다 해보았으니

이제는 '친구'와 함께 먹는 즐거움을 통해 편식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태어난 지 몇 년 되지 않은 인간을 나와 신체적 또래라는 이유로

'친구'라고 부르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모의 황당한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어,

오찬 당일 아침이 밝았다.

Page 35: 드래곤 퀸 메이커...게임시나리오 부문 최우수상 드래곤 퀸 메이커  최지혜 1화

유모 [미소] …

아스타로테 [불만] …

유모 [미소] 공주님, 오늘은 친구하고 함께 식사하실 거예요.

아스타로테 [불만] 친구 아냐.

(태어난 지 몇 년 안 된 어린 인간이 내 친구는 무슨…….)

유모 [미소] 긴장하셨어요? 좋은 친구가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스타로테 [불만] (고작 새끼 인간 만나는 것에 긴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왕궁_복도_낮 (왕궁의 복도, 곳곳에 장식물이 서 있고 액자가 걸려 있다.)

내레이션 그러나 가볍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오찬이 열릴 정원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한달음에 도착했으면 싶기도,

반대로 뒤돌아서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설마 유모 말대로 이 위대한 드래곤이

새끼 인간 친구(후보)들을 만날 생각에 긴장했단 말인가?

아니, 이것은 그런 단순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떤 거대한 예감에 가까웠다.

두근.

두근.

나는 어쩐지 불길한 기분에 유모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꼬옥)

유모 [미소] 우리 공주님, 친구들 만나실 생각에 설레시나 봐요.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

내레이션 그런 게 아니다.

지금 당장 이 오찬을 멈춰야 한다!

나는 기나긴 용생에서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단 한 번 있었다.

4인의 영웅이 나를 찾아와 나를 죽인 날. 나는 강렬한 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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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안에는 죽음이,

혹은 그만큼이나 강한 운명의 흐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말리기도 전에 시종이 정원으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

#하얀 배경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안 돼!)

#일러스트_용사의 환생 (정원수와 꽃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정원, 햇살이 비치는 사이로

서 있는 은발 녹안의 어린 남자아이.)

내레이션 잘 꾸며진 정원, 분주히 움직이는 궁인들.

그 사이로 어린 남자 인간이 하나 서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그에게서는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강력하며 순수한 생명력.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아주 잘.

#왕궁_정원_낮 (정원수와 꽃으로 꾸며진 화단. 뒤로 왕궁의 모습이 보인다. 푸른 하늘에

밝은 햇살이 비치는 아름다운 정원.)

티레이스 [당황/놀람] …?!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용사!

티레이스 [당황/놀람] 드래곤…!

내레이션 용사 미켈.

죽었다던 그가 지금 내 앞에 서 있었다.

유모 [미소] 어머~

Page 37: 드래곤 퀸 메이커...게임시나리오 부문 최우수상 드래곤 퀸 메이커  최지혜 1화

벌써 사이가 좋으시네.

공주님, 이쪽은 티레이스님이세요.

안녕~ 하셔야죠, 안녕~

티레이스 …

아스타로테 …

내레이션 전설의 용사와 포악한 드래곤은

그렇게 왕궁 유아 놀이터에서 재회한 것이다.

천 년을 넘게 살아온 용과 성검을 뽑은 용사가 마주한 테이블 위로

유례없는 긴장감이 돌았다.

티레이스

&아스타로테 [불만] …

내레이션 세상 모든 바람이 잦아들고,

새들도 감히 노래하기를 주저하고,

풀들도 숨을 죽이…

(휘이이잉~)

(짹짹!)

내레이션 …지는 않았다.

시녀들 어떡해!

너무 귀여우시다~

티레이스 [불만] …

아스타로테 [불만] …

내레이션 우리가 서로를 노려보는 사이,

궁인들은 분주하게 테이블 위에 요리를 나르기 시작했다.

전채요리는 아스파라거스가 들어간 키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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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타로테 [불만] …

유모 [걱정/불안/고심] 공주님, 마음에 안 드세요? 맛이라도 한 번 보세요.

아스타로테 [불만] 흥!

티레이스 …

내레이션 다음으로 나온 요리는 양송이 수프였고,

당연하지만 나는 그것 역시 입에도 대지 않았다.

아스타로테 [분노] (드래곤에게 채소도 모자라 곰팡이를 먹이려고 하다니!)

유모 [한숨] 공주님…….

티레이스 …

내레이션 이어진 생선요리는 구운 연어와 감자였다.

나는 감자에는 손도 대지 않고 연어만 몇 입 먹었다.

티레이스 …

아스타로테 [불만] 왜 그리 쳐다보느냐?

티레이스 아무것도.

아스타로테 [불만] …

내레이션 용사의 반응이 수상쩍었다.

무언가 기분 나쁜 생각을 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다음 요리는 어린 양으로 만든 스테이크였기 때문에

나는 일단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스타로테 (냠)

티레이스 [미소] …

아스타로테 ?

선택1 ([불만] 왜 웃지?)

선택2 ([불만] 할 말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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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1

티레이스 글쎄?

선택2

티레이스 아니야, 아무 것도.

아스타로테 [불만] …

내레이션 이어서 샐러드가 나왔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샐러드를 그냥 보냈다.

유모 [한숨] …

내레이션: 유모는 한숨을 쉬며 내 앞에 한입 크기의 당근 케이크를 내려놓았다.

아스타로테 [불만] 됐어.

내레이션 마찬가지로 손을 대지 않고 보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용사 녀석이 의자에서 내려와 내 쪽으로 달려왔다.

시녀들 [당황/놀람] ?

유모 [당황/놀람] ?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티레이스 !

내레이션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빠르게 내 당근 케이크를 낚아채더니,

제 입으로 케이크를 가져갔다.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분노] (이 어린 인간이 감히 드래곤 눈앞에서 드래곤의 것을 탐내?)

Page 40: 드래곤 퀸 메이커...게임시나리오 부문 최우수상 드래곤 퀸 메이커  최지혜 1화

내레이션 나는 있는 힘껏 놈을 밀치고 그의 손에 들린 것을 입으로 낚아챘다.

아스타로테 [불만] (우물우물)

[분노] 감히 내 것을 탐하다니!

유모 [당황/놀람] 티레이스님, 갑자기 왜 이러세요?

티레이스 [미소] …

이렇게 하면 먹을 것 같았거든요.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유모 [당황/놀람] !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내가 당근 케이크를… 먹었…? …

티레이스 [웃음] …

내레이션 충격받은 나를 보며 녀석은 사악하게 웃었다.

이 건방진 용사 녀석! 감히 이 위대한 드래곤을 능멸하다니…!

내 너를 가만 -둘 줄 아느냐!

나는 드래곤에게 당근 케이크를 먹인 이 극악무도한 용사에게

벌을 내리기로 했다.

아스타로테 [우울] 흐윽

티레이스 …?

아스타로테 [울음] 우아아아아앙! 아빠아!

티레이스 [당황/놀람] !?

아스타로테 [울음] 흐어어어어엉!

유모 [미소] 아이고, 우리 공주님 놀라셨구나~

티레이스 [당황/놀람] 미, 미안…

내레이션 오찬은 그렇게 공주의 울음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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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가출 대소동 1>

#왕궁_공주 침실_낮 (고풍스러운 가구로 꾸며진 공주의 방. 창밖으로 푸른 하늘이 보이고

햇빛이 들어온다.)

내레이션 오찬을 망치고 용사 놈을 혼내기 위해서 울음까지 터뜨렸지만,

그 효과는 미약했다.

내가 당근 케이크를 먹은 것에 루시어스와 유모가

너무 큰 감명을 받은 것이다.

덕분에 나는 오히려 용사 놈의 꼴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는 뻔뻔하게도 내 이름을 불러대며 순진한 어린 인간인 척 굴었다.

가증스러운 녀석…

결과적으로 나와 녀석은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대신

방에 앉아 체스나 두고 있었다.

티레이스 체크메이트.

아스타로테 [불만] …

대체 무슨 속셈이지?

티레이스 흠.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공주님을 납치했던 네가 지금은 공주가 되어 있잖아.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스타로테 …

[걱정/불안/고심] <안드레아의 기록>, 네가 가지고 있던 것…

티레이스 갑자기 그건 왜?

아스타로테 선택1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느냐?)

선택2 (아무것도 아니다.)

선택1

티레이스 너 설마 아직도…

아스타로테 [한숨] 그래. 아직도 마법의 비밀을 풀지 못했느니라.

Page 42: 드래곤 퀸 메이커...게임시나리오 부문 최우수상 드래곤 퀸 메이커  최지혜 1화

하지만 안드레아가 직접 남긴 기록에는

마법의 비밀이 적혀 있을 것 아니더냐!

티레이스 읽어본 적 없어서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바이올렛이 걸어준 추적 마법만 이용했거든.

아스타로테 …

티레이스 뭐, 하지만 네 말도 일리가 있네.

거기에 마법의 비밀이 있을지도 몰라.

어디 있는지 알고 있냐고 물었지?

[미소] 알고 있어. 나 말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지.

선택2

티레이스 아무것도 아닌 걸 입에 올리실 리가 있나.

위대하신 드래곤님께서 말이야.

<안드레아의 기록>이 왜?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

티레이스 잠깐, 너 설마 아직도…

아스타로테 [한숨] 그래. 아직도 마법의 비밀을 풀지 못했느니라.

하지만 안드레아가 직접 남긴 기록에는

마법의 비밀이 적혀 있을 것 아니더냐!

티레이스 읽어본 적 없어서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바이올렛이 걸어준 추척 마법만 이용했거든.

하지만 네가 그걸 원한다면

내가 갖고 있던 게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어.

[미소] 나 말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지.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

티레이스 [미소] 알려줄까?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

티레이스 대신 조건이 있어.

너, 마법의 비밀을 알고 나면 왕국에 복수할 생각이지?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티레이스 그 복수, 포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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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타로테 …

티레이스 그리고 공주로 태어난 김에 제대로 된 왕이 되어주면 더 좋고.

[미소] 어떻게 할래?

아스타로테 …

티레이스 …

아스타로테 나는…

#하얀 배경

내레이션 당연하지만,

내 대답은 거절이었다.

어차피 기록은 4개를 다 모아야 열 수 있었고,

녀석의 것은 바이올렛과 제피르가 가지고 있는 기록을 모은 뒤

강탈해도 늦지 않는다.

나는 우선 다른 두 사람의 것을 먼저 찾기로 했다.

#왕궁_정원_낮 (정원수와 꽃으로 꾸며진 화단. 뒤로 왕궁의 모습이 보인다. 푸른 하늘에

밝은 햇살이 비치는 아름다운 정원.)

내레이션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용사를 데려온 유모 탓에 그와 정원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정원 한쪽에서 시녀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녀1 그거 들었니?

수도에 엘프가 돌아다닌다더라.

다들 그 엘프가 제피르님이 아니냐고 아주 난리야.

시녀2 나도 그 얘기 듣긴 했지만…

그 엘프, 엄청 속물적이라며?

술담배는 물론이고 노름판도 들락거린다더라.

시녀1 그럼 제피르님은 아닌가 보네.

시녀2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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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괴짜 엘프가 공주님을 구한 영웅일 리는 없으니까.

아스타로테 …

티레이스 …

아스타로테 제피르가 확실하군.

티레이스 (끄덕)

내레이션 제피르는 내가 용생을 살면서 본 그 어떤 엘프보다도

'인간적'인 엘프였다.

인간계에서 너무 오래 지낸 나머지 인간 문물에 물들어버린 것이다.

뭐,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속물처럼 보인다는 것을 그도 부정할 수 없을 터였다.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제피르가 수도에…)

[당황/놀람] (잠깐, 그렇다면…

<안드레아의 기록>을 찾을 수도 있는 거잖아?)

내레이션 엘프의 삶은 길었고, 인간의 삶은 그에 비하면 쏜 살과 같았다.

언제 또다시 제피르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티레이스 야.

아스타로테 어?

티레이스 너 또 헛생각하지?

아스타로테 헛생각이라니!

티레이스 궁 밖으로 나가서 제피르를 찾겠다, 뭐 그런 생각 아니야?

아스타로테 [불만] …

티레이스 말려도 나갈 거지?

너 혼자 나갈 수 있겠냐?

아스타로테 [불만] 당연하지! 날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티레이스 자기가 아직도 드래곤이라고 생각하는 인간.

아스타로테 [불만] …

티레이스 [한숨] 수도에서 길을 찾을 수 있어? 날아다닐 생각이었지?

아스타로테 [불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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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레이스 날아다니는 인간 여자애가 눈에 띄면 사람들이 가만있겠냐?

아스타로테 [불만] …흥.

티레이스 [미소] 내가 도와줄게.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뭐?

티레이스 [미소] 왕궁 나가는 것도 도와주고, 길 찾기도 해주겠다고.

내레이션 아주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래서 더 의심스러웠다.

아스타로테 [불만] …

티레이스 대신 조건이 있어.

아스타로테 저번과 같은 얘기라면 대답은 똑같을 텐데.

티레이스 아니, 그거 말고.

아스타로테 그럼 뭔데?

티레이스 앞으로 내 이름 제대로 불러.

아스타로테 …

정말 그거면 되는 건가?

티레이스 응, 그리고 나도 네 이름 부르고.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

선택1 (좋아! 별것도 아니네.)

선택2 (…좋아, 그렇게 하지.)

티레이스, 어서 나를 안내하거라.

내레이션 우리는 그렇게 협상했고,

티레이스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왕궁_비밀통로 (돌벽으로 된 어두운 통로. 띄엄띄엄 불빛이 있다.)

아스타로테 (이런 곳에 이런 통로가…)

(꽤나 오래된 곳 같군. 대충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야.)

(왕족들이 비상시 대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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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런 비밀 통로를 어떻게 아는 것이냐?

왕족들이나 알 것 같은 곳인데.

티레이스 [걱정/불안/고심] …

아스타로테 너…

[불만] <안드레아의 기록>에서 봤구나.

기록을 본 적 없다고 했던 말은 거짓말이었고.

티레이스 [걱정/불안/고심] …미안.

아스타로테 [불만] …

[무표정] 그래서, 그 안에 마법의 비밀이 적혀 있었느냐?

티레이스 [한숨] …나도 네 개의 기록을 전부 다 읽은 건 아니야.

처음에 그걸 나눠 가지기 전에,

유용할 것 같은 부분만 읽어봤을 뿐이지.

내가 읽었던 내용 중에 마법의 비밀 같은 건 없었어.

마법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눈에 안 들어왔던 걸 수도 있지만,

[걱정/불안/고심] 기록에선 그런 건 못 봤다는 얘길 하면

네가 당연히 흥미를 잃을 테니까…

너하고 거래하고 싶어서 거짓말했던 거야.

아스타로테 [불만] …

티레이스 [불만] …대신 지금 이렇게 알려주잖아!

아스타로테 [분노] 아주 적반하장으로 나오는구나!

티레이스 [당황/놀람] 어, 이제 다 왔다!

아스타로테 [분노] 이것이 빠져나가려고 잔꾀를…

티레이스 [당황/놀람] 아냐! 진짜거든?

내레이션 티레이스가 벽돌을 하나 누르자 진짜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얀 배경

내레이션 (쿠궁…)

#수도_길거리_낮 (중세 유럽 영화에 나올 법한 길거리 모습. 돌길이 깔려 있다.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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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햇빛으로 도시는 밝다.)

사람들 빵 하나에 10셀!

사람들 어허, 저리 비켜요. 수레 지나가는 거 안 보여요?

내레이션 늘어서 있는 건물들,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마차와 수레들,

곳곳에서 제 일상을 사는 사람들.

우리는 정말로 왕궁 밖으로 나온 것이다.

티레이스 [미소] …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티레이스 [미소] 자, 이쪽으로 가자.

아스타로테 [미소] …응!

내레이션 도시의 활기는 금세 우리에게 전염되었다.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귀족 소년 …

귀족 여자 [미소] 알렌, 우리 아들. 어딜 보니?

알렌 [당황/놀람] 아, 아뇨. 그냥…

귀족 여자 [미소] 그냥?

알렌 그냥, 방금 저쪽으로 지나간 아이 머리색이 분홍색이길래 특이해서…

귀족 여자 [무표정] 머리색이 분홍색이었다고? 여자아이였니?

알렌 [당황/놀람] 네? 네…

귀족 여자 호위, 들었나?

사병 예, 프리실라님.

프리실라 당장 가서 잡아와.

사병 알겠습니다.

알렌 [걱정/불안/고심] 어머니, 제가 잘못 본 걸 수도 있어요.

프리실라 [미소] 그렇다고 해도 손해 보는 건 없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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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구나. 우리 아들, 착하기도 하지.

알렌 [걱정/불안/고심] …

#왕궁_전경_낮 (왕궁의 전체적인 건물 모습. 돌로 튼튼하게 쌓아 올린 성벽을 해자가

둘러싸고 있으며, 뾰족한 지붕과 높은 감시탑이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밝게

보인다.)

내레이션 한편, 그 시각 왕궁.

#왕궁_집무실_낮 (왕의 집무실. 커다란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책상 위엔 서류가

올려져 있다. 방 가운데엔 접견용 테이블과 소파가 있다.)

루시어스 [분노] 왕궁에서 공주가 사라졌다.

그것도 재상의 아들하고 함께!

그런데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아이들이 작정하고 숨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유모 [우울] …

시녀&시종 …

루시어스 [불만] 도개교를 올려 성문을 폐쇄하고,

병사들을 풀어 수도의 길거리를 샅샅이 뒤져라!

누가 아이들을 데리고 간 범인이든 내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레이션 범인이 제 딸임은 꿈에도 모르는 루시어스는 이를 갈며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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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가출 대소동 2>

#수도_길거리_낮 (중세 유럽 영화에 나올 법한 길거리 모습. 돌길이 깔려 있다. 하늘을

푸르고 햇빛으로 도시는 밝다.)

내레이션 수도의 길거리에는 평소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한쪽에선 평복을 입고 있는 무리가,

한쪽에선 제복을 차려입은 수도 경비대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병 이쪽으로!

사병 찾았어?

사병 아니, 전혀…

사병 저쪽으로 가 보자.

수도경비대 그쪽 상황은?

수도경비대 광장에는 없었습니다.

수도경비대 최소 인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시가지를 찾아봐!

수도경비대 네!

후드 쓴 남자 [실루엣] (한 무리의 사병과 한 무리의 수도경비대.)

(서로 협력하고 있진 않은 것 같은데…)

(무엇을 왜 찾고 있는 거지? 혹시 같은 것을 찾는 중인가?)

(알아봐야겠군.)

취객 어이, 형씨! 한 게임 더 안 해?

후드 쓴 남자 [실루엣/미소] 어. 나는 이제 됐어.

취객 한 판만 더 하고 가지 왜…

어? 어디 갔지?

에잉, 간만에 호구 잡았다 했더니…

#수도_골목길_낮: (집들 사이에 난 작은 골목길. 푸른 하늘이 보이는 낮이지만 그늘이

져서 밝지만은 않다.)

티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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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타로테 하나, 둘, 셋!

아스타로테 오른쪽!

티레이스 왼쪽!

티레이스

&아스타로테 [불만] …

아스타로테 [불만] 오른쪽이래도.

티레이스 [불만] 왼쪽이라니까? 넌 여기 처음 와보잖아.

아스타로테 [불만] 너도 여기 길 모른다며! 그리고 처음 아니거든?

티레이스 괜히 자존심 세우기는… 언제 왔는데?

아스타로테 선택1 (알 거 없잖아?)

선택2 (…용사절에 왔었어.)

선택3 (300년 전에!)

선택1

티레이스 [불만] 너는 말을 해도 꼭 그렇게…

아니, 맞는 말이네. 내가 알 거 없긴 하지.

[한숨] 드래곤을 데리고 내가 뭘 하는 건지.

선택2

티레이스 …그래?

아스타로테 …

내레이션 잠깐의 서먹한 침묵.

남들이 맘 편히 웃고 떠드는 기일을 단둘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기묘한 기분이었다.

선택3

티레이스 [불만] 안 와 본 거나 다름없네!

아스타로테 [분노] 너도 죽기 전에나 왔을 테니

마지막으로 온 것이 10년 전 아니냐!

너랑 나랑 무엇이 다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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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레이스 [분노] 10년이랑 300년이랑 같냐?!

[한숨] 후우.

티레이스 어쨌든,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내가 너보다는 나을 걸.

아스타로테 [불만] 아까부터 계속 같은 곳만 빙글빙글 도는 주제에!

사병 찾았다! 이쪽이다!

사병 (타다닥)

내레이션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더니 남자 몇 명이 우리를 둘러쌌다.

티레이스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아스타로테 [분노] 누구냐!

사병 말투 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

사병 머리색도 그렇고…

사병 흠흠, 아스타로테 공주님… 맞으십니까?

티레이스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사병 맞는 것 같군.

사병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희랑 잠깐 함께 가시지요.

티레이스 [불만] 말도 안 되는 소릴…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마법을 써야 하나? 하지만 아빠에게 들키면?)

내레이션 루시어스는 여전히 드래곤을 싫어했다.

만약 내가 드래곤의 환생이라는 걸 들키면 루시어스는…

(쾅!)

사병 으악!

사병 뭐야! 웬 놈이냐!

후드 쓴 남자 [실루엣/불만] 새끼들.

다 큰 어른들이 꼬맹이들 둘러싸고 위협하면 재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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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사병 커억!

후드 쓴 남자 (콰직!)

사병 으아악!

내레이션 순식간에 불한당들을 제압한 남자는 손을 탁탁 털었다.

후드 쓴 남자 너희, 다친 곳은 없지? 괜찮냐?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으응…

티레이스 [미소]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내레이션 그는 우리 대답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대충 넘기고는

내게 다가와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후드 쓴 남자 …

두 사람 딸이 벌써 이렇게 컸다고? 역시 인간은 빨리 자란다니까.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뭐?)

(인간은 빨리 자란다니, 설마…)

수도경비대 찾았습니다! 여기 계십니다!

후드 쓴 남자 아이쿠, 난 이만 가봐야겠다.

내레이션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담벼락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 순간, 반동으로 그가 쓰고 있던 후드가 벗겨지며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결 좋은 연두색 머리카락에 금색 눈동자, 뾰족하고 긴 귀.

엘프 제피르였다.

제피르 [미소] 자, 그럼 다음에 보자.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잠깐…!

유모 [당황/놀람] 공주님!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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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울음] 공주님!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아세요?

게다가 티레이스님까지…

아스타로테 눈이 퉁퉁 부었구나.

유모 [분노] 다 누구 때문인데요!

티레이스 [우울] 죄송합니다…

루시어스 [분노] 아스타!

아스타로테 [미소] 아빠여!

나 없는 동안 집은 얌전히 지키고 있었느냐? 사고는 안 쳤고?

루시어스 [불만] …

[불만] 아스타로테.

아스타로테 [미소] ?

루시어스 [분노] 사고를 친 건 너다!

아스타로테 [미소] …

루시어스 [불만] …

[한숨] 돌아가서 마저 이야기하자.

내레이션 왕궁으로 돌아간 나와 티레이스는 크게 혼쭐이 났고,

공주의 가출 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엘프 제피르를 찾겠다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안드레아의 기록>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득이 없는 채로.

#프리실라의 방_낮 (어두운 색상의 고풍스러운 가구들로 꾸며진 방. 창밖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긴 하지만 어딘가 어스름하다.)

프리실라 놓쳤다니, 어쩔 수 없지.

사병 죄송합니다.

프리실라 정체를 들키진 않았겠지?

사병 물론입니다.

신분을 알 수 있는 소지품은 전혀 없었고,

병사들 대부분이 무사히 도망쳤습니다.

프리실라 붙잡힌 것들은 알아서 처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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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 예, 프리실라님.

프리실라 그럼 됐다.

갑자기 나타났다던 그 괴한의 정체는 알아냈느냐?

사병 당시 장소에 있던 병사 하나가 말하길…

그자가 엘프였다고 합니다.

프리실라 [당황/놀람] 엘프?

사병 네. 연녹색 머리카락의…

프리실라 [걱정/불안/고심] …

그래, 이만 나가봐.

사병 편히 쉬십시오.

프리실라 [걱정/불안/고심] 연녹색 머리카락의 엘프라…

설마 영웅 제피르?

[무표정] 꼬마 공주님이 벌써부터 용사님들의 비호를 받는다면,

경계해야겠는걸?

알렌 [걱정/불안/고심] …

프리실라 [미소] 왜 그런 표정이니, 알렌?

알렌 아뇨, 아무것도.

프리실라 [미소] 넌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단다.

이 '어머니'가 널 왕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알렌 …네, 어머니.

#마법학교_전경_낮 (마법학교의 전체적인 건물 모습이 보인다. 하얀 벽돌, 주황색 지붕의

제법 높고 넓은 건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학교 건물이 햇살을 받고 있다.)

내레이션 한편, 왕립 마법학교.

#마법학교_이사장실_낮 (창가에는 새가 앉는 횟대가 놓여있다. 햇빛이 창으로 들어오고,

마법 조명 덕에 내부가 밝다. 서류와 연구 자료가 늘어선 책장, 다양한 서적과 특이한

수집품이 진열된 책장이 들어서 있다.)

바이올렛 프리실라가 폐세자 닮은 남자애를 데리고 다닌다고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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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레이븐 네, 주인님! 틀림없어요!

바이올렛 그러고 보니 그 여자,

폐세자의 장례식 때도 임신을 했다느니 하는 소리를 했었죠.

그 뒤에 출산 소식도,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거짓말이겠거니 했는데…

폐세자가 죽은 지 10년도 넘은 지금에 와서

갑자기 폐세자랑 닮은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는 말이죠…

까마귀 레이븐 수상하네요!

바이올렛 아직 별다른 행동은 없나요?

까마귀 레이븐 네, 왕궁에도 가지 않고 얌전히 지내고 있던 걸요?

바이올렛 확실한가요?

까마귀 레이븐 …그 여자만 따라다닌 건 아니라서 정확히는 몰라요.

그래도 왕궁에 가지 않은 건 확실해요!

바이올렛 일단 집중적으로 감시해주세요.

유력 가문하고 접촉하거나,

다른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보고해주시고요.

까마귀 레이븐 네, 주인님!

(푸드덕!)

바이올렛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소] 뭐, 드래곤보다 무섭지는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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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프리실라의 무대>

#수도_도시경관_낮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중세 유럽식 도시가 펼쳐져 있다. 푸른 하늘,

도시는 밝게 빛난다.)

내레이션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여러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다시 봄.

드래곤이던 시절엔 잠시 자고 일어나면 몇 년씩 지나가 있던 시간들이

인간이 되자 아주 느리게,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왕궁_전경_낮 (왕궁의 전체적인 건물 모습. 돌로 튼튼하게 쌓아 올린 성벽을 해자가

둘러싸고 있으며, 뾰족한 지붕과 높은 감시탑이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밝게

보인다.)

내레이션 해가 가면서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기도, 변하기도 했다.

루시어스는 나의 정체를 여전히 모르고 있었고,

티레이스는 아직 가증스러운 친구 역할을 맡고 있었다.

우리가 툭하면 싸우는 것도 여전했지만,

궁인들이 그걸 보고 사이가 좋다고 오해하는 것도 그대로였다.

나는 더는 자기 정수리에 손이 안 닿던, 팔다리 짧은 인간이 아니었고,

식사 시중 없이도 음식을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왕궁_정원_낮 (정원수와 꽃으로 꾸며진 화단. 뒤로 왕궁의 모습이 보인다. 푸른 하늘에

밝은 햇살이 비치는 아름다운 정원.)

내레이션 13살.

그것이 인간들 기준에서 나의 나이였다.

아스타로테 [불만] 유모랑 시녀들은 왜 그리 날 쫓아다니질 못해서 안달인 거야?

겨우 따돌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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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따돌리는데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칭찬해야 하는 건지…

[당황/놀람] !

[걱정/불안/고심] (낯선 인기척… 누구지?)

내레이션 천천히 다가가자 풀숲 사이로 사람 하나가 보였다.

금발의 남자 하나가 몸을 숙여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있었다.

??? [미소] 천천히 먹어, 괜찮아. 애교가 많구나.

내레이션 어린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앳된 티가 남은 얼굴.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익숙한 얼굴 생김새였다.

어디서 봤나 기억을 더듬는데, 남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 [당황/놀람] !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이런…)

[걱정/불안/고심] (인기척은 없앴을 텐데, 어떻게 안 거지? 우연인가?)

??? [당황/놀람] …공주님?

아스타로테 …

??? [걱정/불안/고심] 음…

아스타로테 …

??? [미소] 잠시 이쪽으로 와 보시겠어요?

아스타로테 왜 그러지?

??? [미소] 쉿. 어서요.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내레이션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얼결에 끌려가 남자 옆에 앉은 나는 당황해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웃으면서 속삭였다.

??? [미소] 고양이, 만져보고 싶으신 것 같아서요.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뭐? 나는 그런 게…

??? [미소] 자, 여기 고양이 간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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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니까, 가만히 들고 기다리세요.

아스타로테 [불만] …

내레이션 나는 남자가 내 손에 고양이 간식을 쥐여주는 꼴을 보고는

기가 막혔다.

아스타로테 [불만] (그냥 일어나서 가 버려?)

(먹지도 못할 짐승에게 무슨 간식을 준다고…)

선택1 (일어난다.)

선택2(기다려본다.)

선택1

아스타로테 (그냥 가야겠어.)

내레이션 그때, 남자가 내 팔을 꼭 잡았다.

강한 힘은 아니었으나 그래서 더 뿌리치기 힘든 몸짓이었다.

남자는 거절하기 힘든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 [미소]잠시만,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돼요.

아스타로테 [불만] …

선택2

아스타로테 [한숨] (그래, 내가 특별히 기다려준다.)

??? [웃음] 하하.

아스타로테 [불만] 왜 웃지?

??? [미소] 공주님이 제 말대로 기다려주시는 게 좋아서요.

아스타로테 [불만] …

내레이션 내 눈치를 보던 고양이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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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타로테 [당황/놀람] 앗.

고양이 (낼름)

내레이션 긴장감도 없이 내 손의 간식을 주워 먹는 작은 머리통.

나도 모르게 다른 쪽 손을 뻗어 쓰다듬자

고양이가 내 손바닥에 머리를 비볐다.

아스타로테 [미소] …

??? [미소] 어때요? 귀엽지 않나요?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벌떡!)

내레이션 남자의 목소리에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났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자각한 것이다.

간식을 먹던 고양이가 내 행동에 놀라 저 멀리 도망치는 게 보였다.

나는 고양이 털의 감촉이 아직 남아 있는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먹지도 않을 털짐승을 쓰다듬다니,

내가 이런 인간 같은 짓을…)

??? 죄송해요, 공주님. 제가 놀라게 했나요?

아스타로테 …아니, 그 이유가 아니다.

그냥 조금 당황해서 그래.

??? [미소]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다음에도 같이 고양이를 보시겠어요?

아스타로테 [무표정] (아, 이 남자… 누군지 알았다.)

아니, 괜찮다.

굳이 그런 약속을 잡지 않아도

다음에는 다른 곳에서 보게 될 것 같으니 말이야.

그렇지 않나, 알렌?

알렌 [무표정] …공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스타로테 [무표정] 난 이만 들어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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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정원을 휘젓고 다니는 것은 적당히 하고 들어가도록.

알렌 [미소] 네, 공주님.

내레이션 나는 뒤돌아서 정원을 빠져나왔다.

고양이의 감촉을 잊기 위해 주먹을 꼭 쥔 채로.

알렌 [미소] 하하, 그냥 어린 애라고 생각했는데…

공주님이 똑똑하시네.

[무표정] 아무리 어려도 '진짜' 왕족은 다르다 이건가.

#왕궁_복도_낮 (왕궁의 복도, 곳곳에 장식물이 서 있고 액자가 걸려 있다.)

내레이션 최근 궁에는 불쾌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안드레아의 오빠, 폐세자 바론에게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바론은 약 20년 전,

왕의 자리에 도저히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폐위당했다.

매일같이 술에 취해서 돌아다니고,

힘없는 동물이나 사람을 괴롭히곤 했던 것이다.

폐위를 당하고 나서도 정신 못 차리고 다니다가 어느 날 만취한 채로

말을 탔는데 운 나쁘게도 낙마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바론의 부인 프리실라는 그가 죽기 직전 임신을 하여

올해 18세가 되는 아들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알렌이었다.

#검은 배경

아스타로테 [무표정] 굳이 그런 약속을 잡지 않아도

다음에는 다른 곳에서 보게 될 것 같으니 말이야.

그렇지 않나, 알렌?

알렌 [무표정] …공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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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_복도_낮 (왕궁의 복도, 곳곳에 장식물이 서 있고 액자가 걸려 있다.)

내레이션 알렌은 병약하다는 핑계로

지난 십여 년간 사람들 앞에 나선 적이 없었으나,

그의 얼굴이 바론과 닮은 탓에

많은 이들이 프리실라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들었다.

궁에 걸려 있는 초상화와 꼭 닮은 탓에 처음 보는 내 눈에도

익숙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결국,

나의 왕위 계승권이 전처럼 공고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폐세자의 아들에게도 왕위 계승권이 있는지는 다시 논의해 봐야하나

왕실 후손이 귀한 지금,

그의 왕위 계승권을 전면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 아마 나와 그,

둘 중 누구의 왕위 계승권이 더 우선되는지가 주요 논점이겠지.

그런데 이런 소문의 주인공이 왕궁 정원에서 노닥거리고 있다니.

그가 내 구역에서 맘껏 활보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게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까마귀 레이븐 주인님, 빨리요! 이러다 회의에 늦겠어요!

바이올렛 제가 늦는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진 못할 텐데요.

까마귀 레이븐 분명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다니까요!

바이올렛 [한숨] 알았어요. 가요, 간다니까요.

내레이션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왕궁_공주 침실_낮 (고풍스러운 가구로 꾸며진 공주의 방. 창밖으로 푸른 하늘이 보이고

햇빛이 들어온다.)

내레이션 상념에 빠져 방에 들어서자 뜻밖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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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레이스 이제 오냐?

아스타로테 티레이스. 무슨 일이지?

티레이스 아버지한테 들었는데,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으시다더라.

아스타로테 그게 무슨 상관인데?

티레이스 [걱정/불안/고심] 그…

네 사촌오빠, 알렌의 왕위 계승권에 대한 회의래.

아스타로테 …그래서?

티레이스 아버지는 프리실라가 결탁한 세력을 좋아하시지 않으셔.

전부터 뇌물과 비리로 유명한 사람들이 많거든.

그렇지만 아버지의 호불호와는 별개로 그런 사람들은…

아스타로테 자기들끼리 뭉쳐서 권력이 제법 되지.

티레이스 맞아.

그래서 솔직히 이번 회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 같아.

아스타로테 그 얘길 하려고 온 거야?

티레이스 아니, 너랑 같이 회의에 가려고.

아스타로테 귀족 회의에 우리가 참관할 수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

티레이스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냐?

[미소] 그냥 몰래 들어가면 되는 걸.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이 녀석, 용사 맞아?)

(처음엔 내가 하자고 해도 싫다고 하던 놈이

이젠 갈수록 막 나가는 것 같단 말이지.)

내레이션 하지만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냐는 질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왕궁의 곳곳을 속속들이 활보했고,

왕궁 회의실에 숨어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티레이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우리도 대비를 할 수 있어.

너도 <안드레아의 기록>을 찾지도 못한 채로 왕위 계승에서 밀리고,

유배당하고 싶진 않을 거 아냐.

아스타로테 선택1([불만] …틀린 말은 아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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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2( [불만] 내가 하찮은 인간따위에게 질 리가 없지 않느냐!)

선택1

티레이스 [미소] 그렇지?

선택2

티레이스 …

아스타로테 [불만] …하지만!

적을 알아 두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네 말대로 하도록 하지.

티레이스 [미소] 그럼 회의실로 가자.

#왕궁_회의실_낮 (책상과 의자가 있고, 사람들이 둘러앉은 왕궁 회의실. 내부는 밝다.)

내레이션 우리가 회의실 천장으로 숨어들었을 때,

회의는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루시어스 바론은 폐위된 뒤 힐스디 지방의 공작이었고,

알렌이 올해 18세 생일이 지났으니 곧 공작위를 물려받는 것으로 하지.

내레이션 알렌의 공작위 계승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직후인 모양이었다.

말을 마친 루시어스는 우리가 숨어든 걸 눈치챈 듯 천장을 바라봤으나,

늘 그래왔듯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혼나지 않도록 매번 모른 척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 루시어스 혼자가 아니었다.

바이올렛 …

티레이스 …바이올렛이 있네.

아스타로테 오랜만이군.

티레이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건데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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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예전에도 유난히 동안이었던 그녀는

십 년도 넘는 세월이 지나서 보는 지금도 여전히 어려 보였다.

둥근 눈매에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도 여전했고.

우리는 바이올렛이 우리에 대해서 말을 할까 바짝 긴장했으나

바이올렛은 루시어와의 눈짓 몇 번에 상황 파악을 끝내고는

우리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귀족1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티레이스

&아스타로테 …

내레이션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우리는 숨을 죽였다.

우리가 바이올렛에게 집중한 사이 무언가 이야기가 오간 모양이었다.

젊은 귀족 알렌이 왕족이며, 왕위 계승권이 있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공작 작위도 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알렌이 공주님보다 왕위 계승 서열이 높다는

근본 없는 주장은 대체 뭡니까!

제임스 근본 없는 주장이라니요.

메르헨 왕국은 장자 상속의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연히 세자가 폐위되었을 경우 세자의 형제가 아니라

세자의 자식이 왕위 계승권을 갖는 게 원칙이죠.

나이 든 귀족 세자가 폐위되었을 때에는 알렌 공작이 태어나기도 전이었소!

안드레아 여왕님께서는 적법한 절차로 왕위에 오르셨던 거요!

제임스 그건 맞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아 여왕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돌아가신 지 오래이지 않습니까?

지금 국왕 전하께서는 여왕님의 남편일 뿐, 왕족 출신도 아니고요!

귀족들 !

티레이스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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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어스 [불만] …

내레이션 왕 앞에서 하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한 발언에

회의실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의 틈을 타,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드르륵!)

(덜컹!)

프리실라 제임스 경, 말이 너무 심하시군요!

내레이션 자연스레 모두의 이목이 프리실라에게 쏠렸다.

프리실라 [불만] 루시어스 전하께서 드래곤을 토벌한 공을 인정받아

여왕님과 공동 국왕으로 즉위하신 것을 잊으신 건가요?

혼인과 함께 엄연히 왕실의 일원으로 인정받으셨는데,

[분노] 왕족이 아니라는 말은 대체 무슨 망발인가요!

제임스 …

내레이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 등등하던 남자는

프리실라의 말에 이상할 정도로 얌전히 입을 다물었고,

프리실라는 그대로 회의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루시어스가 내게 몇 번 보여준 '연극'이라는 인간의 놀이가 떠올랐다.

이 회의실이 프리실라가 준비한 하나의 무대 같았다.

프리실라 [불만] 전하, 제임스 경이 이리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을 보니

분명 세간에서 떠도는 헛소문을 듣고 이러는 게 틀림없습니다.

사특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어전에서 함부로 군 것에 대한

벌을 내리시지요.

루시어스 ...세간에 떠도는 소문이라니?

프리실라 [당황/놀람] 어머, 모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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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불안/고심] 제 입으로 말하기도 민망스러울 정도로

악의적인 소문이온데…

루시어스 말하라.

프리실라 [걱정/불안/고심] 그것이…

국왕 전하께서 권력을 탐하여

용사 미켈을 죽여 드래곤을 죽인 공을 가로채고,

여왕님을 시해하여 유일무이한 자리에 오르고자 하셨다는…

그런 망측한 소문이 세간에 돌고 있답니다.

티레이스

&아스타로테 [당황/놀람] ?!

루시어스 [당황/놀람] …뭐?

바이올렛 [불만] 쯧.

(레이븐이 이래서 걱정을...)

그런 헛소문이 돌다니.

저와 제피르를 대놓고 무시하는 소문이네요.

그게 사실이면 저와 제피르는 그런 수작을 눈치도 못 채는 멍청이거나,

한패라는 건가요?

프리실라 그러니 사특한 소문인 것이지요.

[분노] 이런 잔악무도한 이야기가 진짜라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나라가 간악한 이의 손에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걱정/불안/고심] ...하지만 제가 어찌 이런 근거 없는 소문으로

전하를 함부로 의심하겠습니까?

다만 이런 소문에 휘둘리는 이들도 있는 듯하오니,

부디 조심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미소] 이런 소문이 없었더라면,

제임스 경이 어찌 이리 건방지게 굴었겠습니까?

모쪼록 마땅한 벌을 내리시지요.

루시어스 …

귀족들 …

내레이션 프리실라의 말이 끝나고, 회의장은 적막에 감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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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루시어스가 가진 정당성의 근본부터 무너뜨리는 소문.

그 헛소문은 아직 큰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나와 루시어스를 뿌리부터 흔들어 뽑아버리겠다는

프리실라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루시어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의 근원지가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살아 있는 드래곤 슬레이어 셋을 모두 적으로 삼다니 용감하군.

소문을 낸 사람이 그에 대한 각오가 되어 있길 바랄 뿐이네.

프리실라 [미소] 물론,

그만한 소문을 냈을 땐 그런 각오가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루시어스 소문을 잠재울 이야기까지 하려면 오늘 회의는 길어지겠어.

먼저 제임스 경의 실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내레이션 왕실을 모독한 제임스에 대한 처벌이 정해지고,

다른 안건들에 대한 회의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그러나 회의실에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드래곤을 무찌르고 평화를 되찾은 왕국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거대한 폭풍이.

아스타로테 [걱정/불안/고심] …

[당황/놀람] ?

내레이션 무언가 따뜻한 것이 내 손 등을 덮었다.

티레이스의 손이었다.

그제야 내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티레이스 긴장할 것 없어.

아스타로테 [불만] …딱히, 긴장한 거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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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레이스 [미소] 루시어스도, 바이올렛도, 어디서 또 방랑하고 있을 제피르도,

다들 너랑 싸워서 살아남은 녀석들이잖아.

이제 너 말곤 무서운 것도 없을 걸?

어디서 또 그렇게 큰 시련을 상대해보겠냐?

#일러스트_마주 잡은 손: 좁고 어두운 장소에서 손을 자주 잡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티레이스와 아스타.

내레이션 나는 대답 대신 티레이스의 손을 마주 잡았다.

손바닥은 이제 아프지 않았다.

안드레아와 용사들의 이야기처럼

나의 이야기도 한 편의 동화가 된다면,

그 끝은 어떤 엔딩일까?

하지만 이 손을 잡고 있으면,

언젠가 찾아올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명 해피엔딩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검은 배경 #하얀 배경

내레이션 4년 뒤.

#왕궁_복도 (왕궁의 복도, 곳곳에 장식물이 서 있고 액자가 걸려 있다.)

시녀 방금 지나간 사람 봤어?

시녀 티레이스님이시잖아.

시녀 진짜 잘생겼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완전 어려 보이셨는데.

시녀 공주님 뵈러 가시는 거겠지?

곧 무도회니까. 두 분 인연도 참, 오래가신다니까.

시녀 무도회, 별일 없이 진행될까?

시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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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요새 프리실라님 한동안 조용하셨잖아.

슬슬 무슨 일 또 터뜨리실 때가 됐는데.

공주님 생일 무도회라니, 그분이 딱 좋아하실만한 시기 아니니?

시녀 쉿! 조용히 해!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냐. 무슨 꼴 당하려고.

#왕궁_공주 침실_낮 (고풍스러운 가구로 꾸며진 공주의 방. 창밖으로 푸른 하늘이 보이고

햇빛이 들어온다.)

시종 (똑똑)

공주님, 티레이스님 오셨습니다.

아스타로테 들라 하여라.

티레이스 (터벅, 터벅)

아주, 옷이 날개다?

아스타로테 그건 자기 소갠가?

티레이스 [웃음] 히히.

아스타로테 [웃음] 히히.

티레이스 [미소] 그럼 공주님,

에스코트를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아스타로테 [미소] 허락하지.

내레이션 나는 티레이스와 함께 문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일러스트_에스코트 (17살이 된 티레이스와 아스타로테. 인사하듯 고개를 숙인

티레이스의 손 위로 아스타로테의 손이 얹혀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