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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박사 학위논문 칸트 사상에서 행복에 관한 연구 2018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윤리교육과 곽 정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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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박사 학위논문

칸트 사상에서 행복에 관한 연구

2018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윤리교육과

곽 정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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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칸트 사상에서 행복에 관한 연구

곽 정 훈

본 논문은 칸트의 사상을 목적론적 관점에서 하나의 거대한 ‘행복론’의 전개 과

정으로 이해하면서 칸트가 이해한 행복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파악해 보고자 하였

다. 특히 본 논문은 칸트의 ‘행복론’이 근원적으로 칸트의 ‘인간 이해’에 근거하여 전

개되고 있음에 주목하여, 이를 매우 상세하게 논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칸트의 ‘행복 이해’, 즉 ‘행복론’이 제시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은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 즉 감성적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도덕성

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즉 최고선에서의 도덕적 행복을 궁극목적으로 추구하

고자 한다.

이처럼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을 감성적 행복 너머의 도덕적

행복, 즉 최고선에서 찾으려는 것은 인간이 자연 법칙의 지배 아래서 경향성에 따

르는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일체의 경향성에서 벗어나 도덕 법칙

에 따를 수 있는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

은 자신을 ‘초월적 자유’를 지닌 자유로운 존재이자,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는 도

덕적인 존재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처럼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인

간은 자신의 궁극목적을 감성적 행복에 두고자 하지 않고 최고선에서의 행복에서

찾고자 한다. 왜냐하면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도덕 법칙에 따르며 초월적 자유를 의

식할 수 있는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에게 그 도덕성에 비례하여 주어지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결국 칸트의 최고선은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궁극목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

을 의미한다.

한편 칸트의 ‘행복론’은 인간이 행복을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

의 만족’에서도 발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아름다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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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과의 순수한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미감적 행복’이 있음을 알게 해 주고, ‘숭고

한 것에서의 만족’은 무한한 크기와 위력을 가진 숭고한 대상과의 만남에서 초감성

적 이성 이념을 의식하면서 느낄 수 있는 ‘미감적․도덕적 행복’이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러한 ‘미감적 행복’과 ‘미감적․도덕적 행복’은 경향성의 충족에 대한 일체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을 의미하면서도, 도

덕적 감정과 친화적인 마음의 상태로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

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칸트의 ‘행복 이해’를 근거로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는

도덕교육적 함의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도덕교육에서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칸트의 최고선을 이해하는 과정은 자

연스럽게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도덕성과 행복의 필연

적 연관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포함한다. 이런 관점에서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바탕으로 감성적 행

복 너머의 도덕적 행복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교육적

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둘째, 미와 숭고의 체험을 활용한 도덕교육이 필

요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최고선에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도

록 하려면 언제나 먼저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서의 도덕성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경향성의 유혹을 극복하고 자신의 의

지를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온갖 경향성들을 자극하는

환경에 놓여 있는 학생들이 이에 직접적으로 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

라서 학생들이 경향성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도덕적 행복에 대한 성찰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여기서 ‘미감적 행복’으로서의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미감적․도덕적 행복’으로서의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경향성의 충족에 대한 관

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만족이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로 나아가게 해 주는 만족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이

런 점에서 볼 때 학생들이 미와 숭고의 체험을 통해 ‘미감적 행복’과 ‘미감적․도덕

적 행복’에 익숙해지는 것은 도덕적 행복에 대한 성찰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

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칸트의 ‘행복론’은 인간의 행복을 단지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감성적 행복만으

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아름다운 대상과의 만

남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미감적 행복’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숭고한 대상과의 만

남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미감적․도덕적 행복’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도덕적 행

위에서 자유를 의식하면서 느낄 수 있는 ‘도덕적 행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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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칸트가 보기에 인간은 자신의 궁극목적인 최고선의 실현에서 다시 말해 ‘도덕

적 행복’에서 진정한 만족을 느끼는 존재이다. 더군다나 인간은 이 세계에서 ‘행복

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에게 ‘감성적 행복’이 정당하게 부여되기를 바라는 마음

에서 ‘신의 현존’을 요청하면서 종교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처럼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최고선이라는 도덕적 행복에서 찾으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행복해 지기를 바라는’ 도덕적 마음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칸트의 관점에서 이러

한 도덕적 마음씨의 근원은 바로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도

덕 법칙이다. 그리고 또한 도덕 법칙은 ‘초월적 자유’를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

라는 점에서 결국 칸트의 ‘행복론’은 근원적으로 인간의 ‘초월적 자유’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의 ‘행복론’이 ‘인간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깊숙이

맞닿아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칸트의 ‘행복

론’은 인간의 행복이 ‘감성적 행복’ 뿐만 아니라 ‘미감적 행복’과 ‘미감적․도덕적 행

복’, 그리고 ‘도덕적 행복’, 더 나아가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이 현실 세계에

서도 신에 의해 행복하기를 희망하면서 이르게 되는 ‘순수한 이성 신앙으로서의 종

교’와도 관련되는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칸트의 ‘행복론’은 행복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감을 줄 수 있겠지만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은밀한 기쁨을 주면서 행복 성찰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요어 : 감성 세계, 예지 세계, 감성적 행복,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미감적 행복),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미감적․도덕적 행복), 최고선(도덕적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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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서론 ································································································································1

1. 연구목적 ························································································································1

2. 연구 구성 및 범위 ···································································································10

Ⅱ. 예비적 고찰: 칸트의 인간 이해 ····························································13

1. 두 가지의 세계와 인간의 이중성 ·······································································13

2.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 ····················································································26

(1) 경향성을 지닌 존재 ·······························································································26

(2) 심리적 자유 ·············································································································43

3.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 ····················································································50

(1)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는 존재 ·········································································50

(2) 초월적 자유 ·············································································································71

Ⅲ. 칸트 윤리학에서 행복주의 비판 ···························································83

1.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 ·············································································83

2. 행복주의 비판 ··········································································································101

(1)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 ·························································································101

(2) 행복에 대한 이성의 불만족 ···············································································108

(3) 의지의 타율로서의 행복의 원리 ·······································································113

3.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 ···················································································119

Ⅳ. 칸트의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과 행복 ······································127

1.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만족 ································································127

(1) 쾌 불쾌의 감정과 만족의 구분 ·········································································127

(2)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 무관심한 만족 ····························································129

(3) 자유로운 만족으로서의 행복 ·············································································132

2.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만족 ································································137

(1)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비교 ·········································································137

(2)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소극적 만족 ································································147

(3)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과 도덕적 행복의 가능성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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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

Ⅴ. 칸트의 최고선과 행복 ················································································183

1.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 ··············································183

2. 최고선에서 행복의 의미 ·····················································································193

(1) 도덕성과 행복의 종합적 결합: 최고선 ····························································193

(2)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도덕적 행복 ··········································196

3. 최고선에서 종교로의 이행과 행복 ··································································210

Ⅵ. 칸트 행복 이해의 도덕교육적 함의 ················································221

1.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 ····································································221

2. 미와 숭고의 체험을 활용한 도덕교육 ···························································228

Ⅶ. 결론 ···························································································································235

참고문헌 ··························································································································248

Abstract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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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 -

표 목 차

<표-1> 경향성과 관련된 표현들 ··········································································36

<표-2> 도덕 원리에서 실천적 질료적 규정 근거들 ········································98

<표-3> 도덕 원리에서 실천적 형식적 규정 근거 ············································98

<표-4>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의 구분 ··················································99

<표-5> 세 가지 만족의 성격 ··············································································134

<표-6> 취미판단의 4가지 계기들에 따른 만족의 성격 ································141

<표-7> 네 가지 만족의 성격 ··············································································171

<표-8> 네 가지 만족의 성격과 행복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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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에서 사용한 칸트 저술의 인용 표기 방식에 대한 일러두기 -

본 연구에서 칸트 저술의 인용은 백종현의 국역본*을 중심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

기타 국역본을 함께 참고했다. 또한 칸트 저술의 원문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바

이셰델판(Kant Werke in zehn Bänden, Hsrg. von Wilhelm Weischedel,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1983)을 참고했다. 이에 따라 칸트

저술의 인용 표기는 백종현이 제시한 ‘약호명’과 백종현의 국역본에 표기되어 있는

관행적인 표기 방식인 ‘A(칸트 원본 제1판)면수’ 또는 ‘B(칸트 원본 제2판)면수’를

함께 사용하기로 한다. 특히 ‘A’와 ‘B’가 동시에 병기되어 있는 경우에는 편의상 ‘B’

를 선택하여 표기하기로 한다. 본 논문에서 인용한 칸트의 저술에 해당하는 약호명

그리고 필자가 참고한 백종현의 국역본과 기타 국역본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KrV: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바이셰델판 3-4권

『순수이성비판』,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06).

KpV: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바이셰델판 6권

『실천이성비판』,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07).

『실천이성비판』,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09).

『실천이성비판』, 최재희 옮김 (서울: 박영사, 1997).

KU :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바이셰델판 8권

『판단력비판』,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14).

『판단력비판』, 이석윤 옮김 (서울: 박영사, 2005).

GMS:『윤리형이상학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바이셰델판 6권

『윤리형이상학 정초』,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05).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이원봉 옮김 (서울: 책세상, 2006).

RGV:『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 바이셰델판 7권

* 백종현의 칸트 원전 번역은 고어투의 표현과 지나친 일대일 직역으로 인해 내용 이해를 어렵게 한

다는 점에서 단점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종현의 번역은 ‘역주의

원칙’에서 자기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칸트의 글쓰기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학문적 엄밀성

을 염두에 두어 직역을 원칙으로 삼고, 가능한 한 원문의 문체, 어투, 문단 나누기 등도 보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소 어색함이 있다 하더라도 칸트의 동일한 용어에는 되도록 동일한 우리말을

대응시킨다’는 점에서 훌륭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연구자는 이러한 ‘미덕’이 칸트의 다양한 저술에

흩어져 있는 ‘행복에 관한 견해’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본 논문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큰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하고 백종현의 국역본을 일관되게 참고하였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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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15).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신옥희 옮김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3).

Anth:『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 바

이셰델판 10권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14).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이남원 옮김 (울산: 울산대학교출판부, 1998).

RL**:「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Rechtslehre); 바이셰델판 7권

『윤리형이상학』,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12).

TL:「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Tugendlehre); 바이셰델판 7권

『윤리형이상학』,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12).

TP ***:『속설에 대하여: 그것이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대해서는 쓸모

없다는』(Über den Gemeinspruch: Das mag in der Theorie rightig sein,

taugt aber nicht für die Praxis)

『속설에 대하여: 그것이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대해서는 쓸모

없다는』, 오진석 옮김 (서울: 도서출판 b, 2011).

** 백종현은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RL]’와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TL]’를『윤리형

이상학(Die Metaphysik der Sitten)[MS]』의 이름 아래 합본하여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윤리형

이상학’은 칸트가 별도로 출간한 두 권의 책에 공통으로 붙여진 제호일 뿐, 이러한 표제를 가진 책

을 칸트 자신이 출간하지는 않았다. 칸트 사후 사람들은 이 두 책을 묶어 한 권으로 편찬하기도

하지만, 원저로 볼 때는 거의 독립적인 두 권의 책이다. (I. Kant, Die Metaphysik der Sitten, 백

종현 옮김,『윤리형이상학』(서울: 아카넷, 2012), pp 5-6 참조) 따라서 두 권의 책을『윤리형이상

학』에 속한 하나의 저술로 본다면 'MS'라는 약호명으로 표기할 수도 있고, 두 권의 책을 별개의

저술로 본다면 ‘RL’과 ‘TL’의 약호명을 각각 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두 권의 책은 시간의 간격

을 두고 독립적으로 출간된 만큼 원본 면수의 번호가 모두 ‘1’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위에서 연구

가 제시한 표기 방식인 ‘A’ 혹은 ‘B’를 사용할 경우 면수가 중복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해 백종현이 두 권의 책을『윤리형이상학』[MS]의 이름 아래 합본하여 변역하고 있음에도

표기 방식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약호명을 ‘[RL]’과 ‘[TL]’로 나누어 표기하기로 한다.

*** 칸트의 저술『Über den Gemeinspruch: Das mag in der Theorie rightig sein, taugt aber nicht für die Praxis』는 백종현의 국역본이 없기 때문에, 이 책에 한해서만 오진석이 번역한

‘『속설에 대하여: 그것이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대해서는 쓸모없다는』(서울: 도서

출판 b, 2011)’을 참고한다. 다만 표기 방식의 일관성을 위해 약호명에 한해 편의상 백종현의 방

식인 ‘[TP]’를 사용하고 저서명은 오진석의 국역본에 따른다. 한편 오진석의 국역본에는 칸트 원

본의 면수가 전혀 표기되고 있지 않아, 면수 표기는 이 국역본의 저본인 펠릭스 마이너 출판사의

판본(I. Kant, ‘Über den Gemeinspruch: Das mag in der Theorie rightig sein, taugt aber nicht für die Praxis in Philosophische Bibliothek Band 443(Hamburg: Felix Meiner Verlag GmbH,

1992’)에 따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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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1. 연구목적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인간은 없다. 행복을 바라지 않고 다른 것을 바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그 바람은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 통합되고 말

것이다.1) 따라서 우리는 인간은 누구나 가장 좋은 것, 즉 최고선으로서 행복을 삶의

목적으로 추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고대로

부터 수많은 사상가들과 대중 철학자를 자칭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행

복론이 제시되어 왔다. 행복은 모든 인간의 자연적 욕구의 대상이자 최종적 관심의

대상이어서 인간의 삶이 지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사유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행복에 대한 증대되는 관심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행복론

을 전하는 책들이 범람하고 있다. 다양한 행복론이 우리에게 행복의 참된 의미와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성찰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에 대한 관심 속에서 읽게 된 대부분의

행복에 관한 책들 속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만족스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

면 대부분의 행복론이 ‘감성2)적 인간’을 전제하면서 ‘감성적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1) ‘무엇이 행복인가’ 즉 행복의 구체적 내용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그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최고의

목적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 최고의 목적을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

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행복을 쾌락의 증진이라는 관점에서 ‘쾌락주의’라 하든, 영혼의

탁월성[덕]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하든, 신의 은총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정복(淨福)’ 혹은 ‘축복’이라고 하든,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을 ‘행복’이

라는 이름 아래 규정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보

았을 때 칸트 윤리학의 최고 목적을 ‘행복’이라 말한다고 해도 그것이 칸트 윤리학과 모순되는 것

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우리는 칸트가 말하는 ‘행복’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2) 여기서 사용하는 ‘감성’이라는 용어는 칸트의 감성 개념에서 빌려왔음을 밝혀둔다. 칸트는 감성

(Sinnlichkeit)을 “우리가 대상들에 의해 촉발되는 방식으로 표상들을 얻는 능력(곧, 수용성)”(KrV,

B33)이라고 정의하면서, “우리가 대상에 의해 촉발되는 한에서, 대상이 표상능력에 미치는 결과가

감각이다. 감각에 의해 대상과 관계 맺는 그런 직관은 경험적이라 일컫는다.”(KrV, B34)고 설명하

고 있다. 여기에서 연구자는 칸트가 감성 개념을 ‘우리의 마음을 촉발하는 대상과의 관계’, ‘감각’,

‘경험’과 연관시키고 있는 점에서 착안하여 ‘감성적 행복(Sinnliche Glückseligkeit)’이라는 개념을

내적·외적 대상에 반응하는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현상계적 행복 일반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하기

로 한다. 칸트가 감성의 대상을 ‘쾌적한 것(das Angenehme)’이라고 하고(KrV, B576), ‘쾌적한 것’

을 감각에서 감관들에 만족을 주는 것으로 이해하면서(KU, B7)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을 경향성과

관련시키고 있다는 점에서(KU, B15), 경향성의 충족과 관련된 모든 행복을 ‘감성적 행복’이라는

개념 아래 포괄하는 것은 칸트의 관점에서 충분히 가능하고 적절한 일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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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기 때문이다. 감성적 인간이란 간단히 표현한다면 욕구의 충족을 통해 만족과 즐

거움을 추구하려는 인간을 말하며, 감성적 행복이란 욕구의 충족을 통해 얻어지는

만족과 즐거움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그 자연적 본성상 감성적

행복의 추구를 부정할 수는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감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현실

적 삶의 중요한 일부분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행복론이 전해주

는 ‘행복에 이르는 방법론’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감성적

존재’로만 이해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복이 ‘감성적 행복’으로만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인간을 전적으로 ‘감성적 존재’로만 이해한다면, 그

리고 인간의 행복을 전적으로 ‘감성적 행복’으로만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남은 과제

는 오직 감성적 행복을 완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론에 대한 탐구일 뿐

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욕구 충족을 통한 즐거움의

상태로서의 감성적 행복을 완전하게 실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할까?’ 우

리는 최고의 쾌락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쾌락 기계’ 속의 삶을 받아들이기보다 평

범한 현실의 삶을 선택하게 되는 것처럼 이 물음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3) 이것은 적어도 감성적 행복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궁극적 목적이

아님을 드러내 주며,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단지 감성적 존재에 머무는 것이 아

니라 그 이상의 존재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할 수 있다.4)

3) 여기서 연구자가 ‘감성적 행복의 완전한 실현’을 ‘쾌락 기계’에 비유하여 설명한 것은 감성적 행복

과 관련된 ‘행복론’ 자체를 폄하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다만 감성적 행복을 전제로 한 모든 행

복론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분석을 통해 인간

의 행복과 관련된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킴으로서 인간의 행복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일종의 ‘행복 공학’으로의 경향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현대 행

복론의 ‘행복 공학적 경향’이 무의미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에 주목하기보다 인간이 왜 ‘행

복 공학적 경향’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반발하게 되는가에 주목하고자 한다.

4) 이를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행복에 관한 저서로 ‘서은국, 『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

서 오는가』(파주: 21세기북스, 2014)’를 들 수 있다.[이하 인용부문은 괄호 안에 해당페이지만 표

기함] 이 저서에서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류의 다분히 목적론적이고 가치지향적인 ‘도덕적 버전’의

행복론이 아닌 ‘과학적 버전’의 행복론을 전개하고자 한다.(49) 그는 “인간은 행복해 지기 위해 태

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생존 확

률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이고 행복은 이 청사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다”(64-65)고 말하며 과학적 버전의 행복론 대강을 제시한다. 이것을 달리 표현한다면 인간은 생

존을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존재이며(10), 이 때의 행복감은 우리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유전되어 온 ‘생존지침서’라 할 수 있는 뇌에서 합성된 경험(17,36)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과

학적 버전의 행복론의 최대 관심사는 인간의 뇌가 언제 그리고 무엇에 의해 행복감을 느끼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저자가 말한 과학적 버전의 행복론 연구가 결국 ‘뇌의 행복감 연

구’로 환원되는 것임을 충분히 명백하게 예상할 수 있다. 저자는 ‘뇌의 행복감’을 ‘가치’, ‘이상’,

‘도덕’과 확연히 구분하면서 행복을 쾌락적 즐거움이 중심이 된 매우 구체적인 경험임을 강조하면

서(186),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192) 왜냐하면 우리들의 원시적인 뇌가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음식과 사

람이기 때문이다.(192) 인간이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에 대

해서는 일상적 경험을 통해서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이 행복에 관한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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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된

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근원적 자기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욕구 충족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욕구 충

족의 관점에서만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

지만 자신을 욕구 충족 너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단순한

욕구 충족의 관점 안에서 이해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인간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결여된 행복론이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실천적인 영향을 줄 수 없는 ‘공허

한 담론’에 머물고 말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실천적으로 의미 있

게 다가올 수 있는 행복론이란 ‘인간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행복’

대해 성찰할 수 있게 해 주는 행복론이라 할 수 있다. 연구자는 이러한 요구를 충

족시키는 새로운 행복론의 범형을 칸트의 ‘행복에 대한 이해’ 속에서 발견하고자 한

다. 왜냐하면 칸트의 ‘행복에 대한 이해’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성찰로부터 전

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칸트 연구에서 칸트가 행복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

의 주목받지 못했다.5)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칸트의 행복

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6), 거의 대부분의 논의는 칸트 윤리학

결론과 그 전제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결론은 그렇다 하더라도 저자가 과학적 연구를 통한 확신

을 갖고 이 저서의 제2장의 제목을 ‘인간은 100% 동물이다’라고 달아 놓은 부분을 읽을 때, 우리

는 그것에 진정으로 동의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단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뇌의 쾌감

이나 행복감을 위한 수단일 수밖에 없음이 이 저서 전반에 걸쳐 면면히 드러나 보이는 데도 우리

가 이러한 논의를 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겠는가. 연구자는 이 저서에서 논의한 과학적 버전의 행

복론의 의의와 성과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고자 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이 지닌 특성

은 엄연한 사실이며, 뇌 과학 연구의 성과가 생물학적 인간의 이해를 확장시켜 인간의 행복 실현

에 기여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떤 측면에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생물학적 요인들의

탐구는 행복 증진을 위한 사회 제도나 구조의 개선에 기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연구자의

근본적 문제의식은 인간은 결코 철저하게 자연법칙에 지배받는 ‘100% 동물’로서의 ‘감성적 존재

자’로만 이해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 단지 뇌의 쾌감 내지는 행복감으로

환원되는 ‘감성적 행복’에만 머물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의식하는 인간의 특성은 ‘과학

적 버전의 행복론’이 포착할 수는 없다. 물론 ‘과학적 버전의 행복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것조

차도 생존과 번식을 위한 뇌의 유전자적 반응으로 다시 환원시키겠지만, 우리의 문제 의식은 ‘과학

적 버전의 행복론’ 체계 전체의 의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 환원의 노력은 근

본적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결국 연구자가 제시한 이 저서는 철저하게 ‘과학적 버전의 행복론’으

로서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한 채로 접근되고 이용될 때 그 참된 유용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5) Victoria S. Wike, Kant on Happiness in ethics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4), p.xiii.

6) 우리 학계에서도 칸트의 행복의 의미를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다음 3편의 논문이 주목된다. 1) 강

준호,「칸트의 행복 개념에 대한 고찰」, 대동철학회,『대동철학』제58집, 2012, pp.21~41. 2) 김

영례,「칸트 윤리학에서 행복의 의의」, 범한철학회,『범한철학』제75집, 2014, pp.213-240. 3)

김진,「칸트에서 행복의 의미」, 서강대 철학연구소, 『철학논집』제44집, 2016, pp.9~38. 김진은

자신의 논문에서 우리나라 학계에서 행복 이해와 관련된 논란이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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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 안에서 서로 이질적인 원리를 지닌 도덕성과 행복이 최고선 안에서 어떻게 논

리적 모순 없이 설명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7) 대체적으로 최고선을

둘러싼 논리적 모순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논의들은 칸트가 말한 ‘윤리론과 행복

론의 구별’8)을 바탕으로 칸트 윤리학에서의 일관된 형식주의를 강조하며 행복을 소

극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심지어는 칸트 윤리학의 전체 체계에서 모순적으로 것

으로 간주한다.9) 하지만 칸트가 윤리론과 행복론을 구별하려 한 것은 도덕에 있어

경험적 원리들이 토대가 된 행복의 원리가 결코 의지의 규정근거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지, 칸트 윤리학에서 행복이 배제되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고 보는데, 하나는 칸트의 행복 개념이 다른 철학자들의 것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비교

이해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칸트의 최고선 개념으로서 행복 개념의 위상에 대한 이해 문제였다

고 정리한다. 그리고 결국 이 두 가지 논의들은 윤리학에서 ‘형식주의’를 표방한 칸트 체계에서 ‘경

험적인’ 경향성의 충족을 지향하는 행복을 어떻게 포섭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압축할 수 있다고

본다. (김진(2016), 위의 논문, p.10, 12) 이 문제에 대하여 김진은 “‘행복’ 개념은 결코 칸트 윤리

학 체계 안으로 들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김진(2016), 위의 논문, p.33)며 부정적

인 입장을 견해를 보여주고 있고, 강준호는 “칸트 윤리학에서 행복과 도덕의 확실한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다”(강준호(2012), 위의 논문, p.38)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반면 김

영례는 “칸트가 인간의 삶에서 행복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도덕과 행복을 조화시키려 하였음을 탐

색함으로써, 칸트 윤리학에서의 행복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밝히려 한다”(김영례(2014), 위의 논문,

p.215)며 보다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자는 김영례의 입장을 긍정하면서 보다 적극

적으로 칸트의 행복을 조망하고자 한다.

7) 최고선에 대한 주요 논의는 ‘강지영,「칸트 윤리학의 맥락에서 본 최고선에 대한 논의들」, 서울대

학교 철학사상 연구소,『철학사상』제27호, 2008, pp. 201~226’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강지영은 칸트의 실천철학에서 최고선에 대한 연구를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면

서, 하나는 최고선이 칸트의 도덕철학에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며,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

으로 여기에 내재적 의미의 최고선, 세속적 의미의 최고선, 초험적·신학적 의미의 최고선을 긍정하

는 입장이 속한다고 말한다.(강지영(2008), 위의 논문, p.202) 그러면서 강지영은 칸트의 최고선

개념에는 초험적 측면과 내재적 측면이 모두 존재하지만, 전자가 후자를 가능하게 하거나 근거 짓

는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면서 세 번째 입장인 초험적이고 신학적인 의미의 최고선에 동의한다

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은 칸트에 있어 도덕성과 행복이 결합된 최고선의 실현은 영혼의

불멸성과 신의 현존을 필연적인 전제로 요청하는 하나의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당연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칸트가 말하고자 하는 행복이 무

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해소되지 않는다.

8) “행복론과 윤리론을 구별함은, 곧 전자에서는 경험적 원리들이 전체 토대를 이루는 반면에, 후자에

서는 그런 것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음을 구별함은 순수 실천 이성 분석학의 첫째의, 그것에 부과

된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KpV, A165)

9) 문성학은 칸트 윤리학의 핵심을 형식과 실질[질료]의 엄격한 구분을 바탕으로 한 윤리적 형식주의

로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행복이 칸트의 ‘실천형이상학 건설’에 있어 모순적 요소임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천형이상학의 건설을 위해서는 행복을 의지의 규정근거로 인정해야 하고,

실천철학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통해 확립한 형식주의를 일관되게 밀고 가려면, 최고선의 개

념을 버려야 한다.”(문성학,「칸트 윤리학에 있어서 형식과 실질」, 새한철학회,『철학논총』제28

집 제2권, 2002, p.14) 하지만 칸트는 결코 행복을 의지의 규정근거로 인정한 적이 없으며, 최고

선의 실현이 칸트 형식주의의 핵심인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의지의 필연적 객관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주장은 칸트의 관점에서 수용하기 어려울 것임에 분명하다. 이는 칸트가 말한

행복을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행복을 ‘윤리적 형식주의’의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접근한 나

머지 도달하게 된, 칸트의 견해와 모순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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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행복의 원리와 윤리를 구별하는 것이 양자를 대립시키는 일은 아니며, 순

수 실천 이성은 행복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무가 문

제가 될 때는 그런 것을 전혀 고려치 않으려는 것이다.”(KpV, A166)라고 말하는 것

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칸트의 윤리적 형식주의가 근본적으로 ‘도덕 법칙

의 형식성’에 근거한다고 보았을 때, ‘도덕 법칙의 형식성’이 도덕의 최고 원리, 다시

말해서 어떤 준칙이 도덕적인지 아닌지를 가릴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의미한다

면10) ‘도덕 법칙의 형식성’은 준칙의 규정 근거로서의 행복을 배제하는 것이지, 모

든 행복과의 관련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칸트가 “도덕 법칙만이 최고선

과 최고선의 실현 내지 촉진을 객관으로 삼게 하는 근거”(KpV, A196)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도덕 법칙을 통해 최고선 안에서의 행복을 희망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회페(Höffe, O.)가 “칸트의 윤리학은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 윤리학을 지배해 온 행복(eudaimonie)의 원리조차도 전적으로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요청들의 틀 속에서 최고선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마련해 준다.”고 말

한 것은 칸트 윤리학의 전체적인 조망 속에서 행복의 위상을 파악해 낸 탁월한 견

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칸트의 행복은 윤리론과 행복론의 대립 구도나 윤리적 형식주의의 틀

속에서 진행되는 논리적 접근을 통해서는 전체적으로 이해되기가 어렵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을 최고선으로 규정하고 행복에 대한 자신의 논의를 적극적

으로 전개한 것과는 달리 칸트는 행복을 도덕성을 근거 짓는 과정에서, 도덕 법칙

의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의 이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도덕에서 종교로의 이행

과정에서 행복에 대한 견해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칸트의

행복을 그의 비판 철학 전 체계에서 도덕과 최고선 그리고 종교를 설명하기 위한

부수적이고 보완적인 요소로 간주하게 하여 칸트의 행복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

하는 것을 방해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칸트의 행복을 좀 더 적극적으

로 이해하기 위해 관점의 전환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칸트의 사상을 목

적론적 관점11)에서 하나의 거대한 ‘행복론’12)의 전개 과정으로 이해하면서 칸트가

10) 박찬구,『개념과 주제로 본 우리들의 윤리학』, (경기: 서광사, 2006), p.138.

11) 여기서 연구자가 사용한 ‘목적론적 관점’은 칸트의 사상을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목적, 즉

‘이 세계에서 자유에 의해서 가능한 최고선’(KU, B423)을 해명하기 위한 전개 과정으로 이해하고

자 하는 관점을 의미한다. 칸트가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으로서의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

목적이자 도덕 법칙의 궁극목적으로 간주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를 자신의 3비판서를 비롯한 다른

여러 저서들 안에서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목적론적 관점’에서 칸트의 사상

을 이해하는 것은 타당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연구자가 사용한

‘목적론적 관점’에서 ‘목적’이란 ‘도덕 법칙에 선행하는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의 행복’이 아니라 ‘도

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이라는 점이다. 칸트의 관점에서 ‘목적’을 전자와 같이 이해한다면

언제나 의지의 타율이 발생하게 되어 도덕성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목적론적 관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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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 행복의 의미를 고찰해 본다는 것이다.13)

칸트가 이해한 행복의 의미와 성격은 인간의 자연본성인 경향성과의 관계 아

래서, 도덕성과의 관계 아래서, 최고선과의 관계 아래서, 그리고 종교와의 관계 아

래서 변화된다. 여기서 더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행복의 의미와 성격의 변화

가 행복을 추구하는 주체인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칸트의 사상과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다. 하지만 ‘목적’을 후자와 같이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

의 행복, 즉 최고선으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목적론적 관점’은 칸트의 사상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칸트는 도덕이 의지 규정에 선행해야만 할 목적 표상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도덕적 준칙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목적과는 필연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RGV, BVI) 왜냐하면 일

체의 목적관계가 없다면 인간 안에서 전혀 아무런 의지규정도 생길 수 없으며, 인간의 이성은 목

적에 대한 불가피한 관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으로부터 하나의 목적이

생겨 나온다”(RGV, BVII)면서 도덕이 자신의 개념을 넘어 도덕의 결과로서의 목적과 연결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도덕의 결과로서의 목적’은 바로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도

덕성에 비례하는 행복’, ‘도덕성에 근거한 행복’으로 이해되는 최고선을 의미한다. 이제 칸트가 도

덕성의 정초 과정에서 단호히 배제했던 행복은 다시 최고선 안에서 도덕성과 함께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은 언제나 의지 규정을 위한 목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

기 자신의 행복을 주관적인 궁극목적으로 추구한다. 하지만 인간은 주관적인 궁극목적으로서의 행

복에서 만족하지 않고 순수 이성에 의해 부과되는 객관적인 궁극목적, 즉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추

구하고자 한다.(RGV, BX-BXI 참조) 이처럼 칸트의 사상을 ‘목적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이 ‘주관적인 궁극목적’으로서의 행복을 넘어 도덕성에 근거한

‘객관적인 궁극목적’으로서의 행복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칸트가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인간의 궁극목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칸트의 사상을 ‘행복’이

라는 목적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물론 여기서 ‘행복’은 경향성의 충족

으로서의 행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에 근거한 행복, 즉 최고선에서의 행복까지도 포

함한다. 이와 같이 칸트의 사상을 ‘목적론적 관점’에서 ‘칸트 행복론’의 전개로 바라보는 것은 칸트

의 사상을 ‘윤리적 형식주의’의 틀 속에서만 바라보면서 ‘목적’, ‘행복’, ‘최고선’의 의미를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도덕성의 최상 원

리로서의 ‘윤리적 형식주의’는 칸트 사상의 핵심임에는 분명하나 칸트 사상 전체를 ‘궁극목적’의 관

점에서 보았을 때, 도덕성 그 자체를 궁극목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KrV, B841/TP, A210 참조)

물론 행복 자체도 인간의 궁극목적이 될 수 없다. 칸트는 인간의 궁극목적이 도덕성 그 자체도 아

니고 행복 그 자체도 아닌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으로서의 최고선이라고 말한다.(TP, A210 참조)

칸트는 인간의 궁극목적을 도덕성 자체나 행복 자체에서 찾지 않고, 도덕성을 넘어서되 도덕성에

근거한 행복, 즉 최고선에서 찾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연구자는 칸트의 사상을 ‘목적론적 관

점’에서 살펴보는 것은 칸트의 사상을 ‘윤리적 형식주의’라는 틀을 넘어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

게 해 주면서, 인간의 행복에 대한 칸트의 생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본다.

12) 여기서의 행복론은 칸트의 윤리학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의 ‘행복의 원리들

의 체계’가 아니라 ‘행복에 대한 칸트의 총체적 이해의 체계’를 의미한다.

13) 이러한 관점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자가 서두의 각주에서 언급한 것처럼, 칸트 사상 전체가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 규정될 수 있는 최고의 목적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할 수 있음을 의미

한다. 연구자의 이러한 관점은 페이튼(Paton)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 격려 받았음을 밝혀둔다. “내

가 칸트의 연구를 통하여 발견한 변함없는 사실 중의 하나는, 이제는 내가 항상 그 사실에 직면하

고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칸트는 자신의 도덕 원리를 적용함에 있어 가장 완전하게 인간의 욕구와

목적, 잠재력 등을 고려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의 도덕 원리들이 기초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목적론적 관점이라는 사실이다.”(H. J. Paton, The Categorical Imperative: A Study in Kant’s Moral Philosophy 7th ed. (London: Hutchinson & Co., 1970), 김성호 옮김,『칸트의

도덕 철학』(서울: 서광사, 1990),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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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가 칸트의 행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칸트가 어떻게 인간을 이

해했는지를 우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칸트의 행복 이해는 결국 칸트의 인간

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칸트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칸트는 감성 세계(sinnliche

Welt)에 속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비록 한편으로는 자연의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인

과율의 지배를 받지만, 즉 그의 사고와 행위가 자연 법칙의 체계와 선행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예지 세계(intelligibele Welt)에 속한 존재로

서 자유의지를 갖는다14)고 본다. 칸트는 이와 같은 모든 인과적 필연성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초월적 자유(transzendentale Freiheit)라 규정한 바 있는데15), 바로 이러한

초월적 자유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고자 한다.16) 칸트가 초월적 자유를 통해 인간을

이해한다는 사실은 칸트의 행복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왜냐하

면 초월적 자유는 인간 자신이 단지 감성적 존재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동시에

예지적 존재임을 의식하게 하고, 그에 따라 감성적 행복을 넘어 예지적 행복에 관

심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초월적 자유와 더불어 행복의 의미는 변화

하게 되는 것이다. 칸트의 관점에서 만약 인간의 초월적 자유가 부정된다면 인간은

단지 자연 법칙에 지배받는 감성적 존재로 이해될 것이고, 그러한 감성적 존재로서

의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행복은 제 아무리 고상한 행복을 말하더라도 결국 자연적

경향성의 충족으로 환원될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초월적] 자유의 개념을 ‘순수 이성의, 그러니까 사변이성까지를

포함한, 체계 전체 건물의 마룻돌[宗石]’(KpV, A4)이라 부르며 매우 강조한다. 칸트

는 이러한 자유 개념을 바탕으로 도덕과 최고선, 그리고 종교에 대한 논의를 전개

하고 있다. 따라서 칸트의 행복을 도덕, 최고선, 종교와의 관련 속에서 온전히 이해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초월적 자유를 지닌 예지적 존재로 전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칸트의 행복 이해가 감성적 존재이면서도 예지적 존재이기

도 한 인간의 초월적 자유를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보고, 칸트의 행복을 도덕

과 최고선 그리고 종교와의 관련 속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해 보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연구자는 특히 칸트의 행복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새로

운 시도로서 미감적 판단, 즉 취미 판단에서의 만족(Wohlgefallen)17)을 행복과 관련

14) 박찬구,「철학적으로 살펴본 인간 자율의 문제」,신학과 사상학회,『가톨릭 신학과 사상』24집,

1998, p.23.

15) 박찬구(1998), 앞의 논문, p.23.

16) 한자경,『칸트와 초월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서울: 서광사, 1992), pp.202~204 참조.

17) 연구자가 참고한 ‘I.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백종현 옮김,『판단력비판』(서울: 아카넷,

2014)’에서 번역자 백종현은 ‘Wohlgefallen’을 만족으로 번역하고 있는 ‘Zufriedenheit’와 구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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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칸트는 미적인 것(das Schöne)에서의 만족을 쾌적한 것(das

Angenehme)에서의 만족, 좋은 것[선](das Gute)에서의 만족과 구별하는데, 이 세

종류의 만족 중에서 미적인 것에서의 취미의[미감적] 만족만이 유일하게 이해관심

이 없는 자유로운 만족이라고 말한다.(KU , B15) 이러한 무관심한 만족으로서의 미

적 쾌감은 특정한 의도나 관심 또는 욕구 없이, 따라서 욕구의 충족이나 의도의 실

현과 상관없이 그냥 대상 자체로부터 얻게 되는 쾌감이다.18) 따라서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만족은 쾌적한 것에 대한 감각적 만족이나 좋은 것에 대한 도덕적

만족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칸

트는 미감적 판단의 다른 종류인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만족을 언급한다.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처럼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쾌

감이 아니라 간접적이고 소극적인 쾌감이라고 설명한다.(KU , B75-76) 숭고한 것에

서의 만족이 간접적이고 소극적이라 함은 상상력의 자기 활동성이 우리 내면의 초

감성적인 이성 이념의 현시로 인해 한계에 부딪힘에 따라 느껴지는 불쾌감, 즉 저

지된 생명력에 대한 불쾌감을 통과하고 나서 그보다 한층 더 고양된 차원에서 얻어

지는 조화의 느낌이며 쾌감이기 때문이다.19) 숭고한 것에서의 쾌감은 이성의 이념

과 관련되며, 무한정한 것과 초감성적인 것의 의식을 통해 존경의 감정과 연결된다.

칸트는 숭고에 대한 존경심이 도덕 차원에서 도덕 법칙에의 존경심과 결부되어 있

다고 강조한다.20) 따라서 이러한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 느껴지는 만족은 미와

도덕성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연구자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 즉 무관심한 만족이 경향성의 요구와 도덕적 실천 이성의

요구에서 벗어나 일체의 의도와 목적 없이 현재라는 그 순간 안에서 대상 그 자체

에 몰입하는 데서 느끼는 만족이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감성적 행복뿐만 아니라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다시 말해 최고선에서의 도덕적 행복과도 구별될 수 있는 ‘미감적

행복’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같이 ‘미감적 행복’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초감성적 이념과의 관계

속에서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이라는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를 준비하

게 해 준다는 점에서 ‘미감적․도덕적 행복’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연구

자는 이 두 가지 만족을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을 바탕으로 한 미감적 판단이라는

기 위해서 ‘흡족’으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번역서 이외의 대부분의 저서와 논문에서 ‘만족’으

로 번역하고 있고 비록 용어는 다르지만 맥락에 따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는 판단에서

‘만족’으로 옮긴다.

18) 한자경(1992), 앞의 책, p.174.

19) 한자경,『칸트 철학에의 초대』,(파주: 서광사, 2006), pp.185~186.

20) 한자경(2006), 위의 책,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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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에서 연속성의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

에서의 만족’ 모두 ‘미감적 만족’으로서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감성적 행복’과 최고

선에서의 행복으로서의 ‘도덕적 행복’을 잠시 제쳐 두면서도 미와 도덕성의 유비 관

계를 통해 다시금 전자에서 후자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적 행복’21)의 역할

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끝으로 칸트의 행복 이해가 제시할 수 있는 도덕교육적 함의를 다음의 두 가

지 측면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 도덕교육에서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칸트의 최고선은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궁극목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을 의미한다. 따라서 칸트의 최고선을 이해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도덕성과 행복의 깊은 연관성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

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바탕으로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

복에도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교육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미와 숭고의 체험을 활용한 도덕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최고선에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언제나

먼저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서의 도덕성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 ‘행복할 만

한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경향성의 유혹을 극복하고 자신의 의지를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온갖 경향성들을 자극하는 환경에 놓여 있는

학생들이 이에 직접적으로 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경향성의 충족

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이 경향성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도덕적 행복에 대한 성

찰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여기서 ‘미감적 행복’으로서의 ‘미적인 것에

서의 만족’과 ‘미감적․도덕적 행복’으로서의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경향성의 충

족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만족이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도덕적 감정과 유

사한 마음의 상태로 나아가게 해 주는 만족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학생들이 미와 숭고의 체험을 통해 ‘미감적 행복’과 ‘미

감적․도덕적 행복’에 익숙해지는 것은 도덕적 행복에 대한 성찰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

이다.

21) 칸트의 행복 이해에 있어 반성적 판단력에 근거한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을 감성적 행복과 도덕

적 행복을 연결하는 ‘매개적 행복’으로 보는 것은 칸트가『판단력비판』에서 판단력을 자연과 자유

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적 역할’을 담당한다고 보는 것과 유비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판

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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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구 구성 및 범위

본 논문의 목적은 칸트가 이해한 행복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파악해 봄으로써 ‘칸트의

행복론’을 드러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칸트 저서의 원전과 번역서

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그의 사상을 연구한 저서와 논문을 전거(典據)로 사용하는

문헌 연구방법을 취하였다. 칸트의 행복 이해에 대한 내용은 칸트의 3대 비판서 뿐만 아

니라 다수의 저서들 속에서 각각의 맥락과 함께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칸트의 행복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칸트의 여러 저서들 속에 흩어져 있는 행복 이해의 실마

리들을 분석하여 종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칸트의 행복에 대한 논

의가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는『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실천이성

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윤리형

이상학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뿐만 아니라 칸트의 행복을 총체

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윤리형이상학(Die Metaphysik der

Sitten)』,『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속설에 대하여: 그것은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대해서는 쓸

모없다는(Über den Gemeinspruch: Das mag in der Theorie rightig sein, taugt aber

nicht für die Praxis),『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까지 두루 참고하고자 한다. 연구자는 칸트의 여러 저서들을 분석하는 과정

에서 칸트의 행복 논의가 전개되는 맥락적 흐름이 있다고 보고, 이를 중심으로 칸트의

저서들 속에서 발견되는 행복 논의를 종합해 보고자 한다. 특히 연구자는 칸트의 행복

이해는 근본적으로 칸트의 인간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이 연

구를 구성하고자 한다.

우선 Ⅱ장에서는 칸트의 행복을 위한 예비적 고찰로서 칸트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

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칸트는 인간이 자연 법칙에 따르는 감성적 존재이면서도 도

덕 법칙에도 따를 수 있는 예지적 존재로 바라본다. 칸트는 인간이 단지 자연적 존재로

서 경향성에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존재로서 도덕 법칙을 의식하면서 그에

따라 살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칸트는『실천이성비판』여러 곳에서 심리적 자유와

초월적 자유를 엄밀하게 구별하면서22) 인간이 지닌 초월적 자유의 능력을 강조한다. 따

라서 이 장에서는 경향성과 도덕 법칙의 의미와 함께 심리적 자유와 초월적 자유를 비

교하여 살펴보면서 칸트의 인간 이해를 종합적으로 고찰해 본다.

Ⅲ장에서는 칸트가 도덕성의 정초를 위해 도덕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를 구분하면서

22) 강영안,『도덕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칸트의 도덕 철학』,(서울, 소나무, 2002),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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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행복주의’23)를 비판하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감성적 행복의 의미를 파악해

본다.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은 주로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것은 이 저서의 목표가 다름 아닌 도덕성의 최상원리의 탐색과 확립이기 때문이

다.(GMS, BXV) 하지만 칸트는 행복주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행복에 대한 다양한 성

찰을 수행하면서, 왜 인간이 감성적 행복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

내 준다. 이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감성적 존재를 넘어선 예지적 존재이기 때문인데,

감성적 행복에 대한 불만족은 자연스럽게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게 된다.

Ⅳ장에서는 칸트의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을 행복과 관련시켜 이해하고자 한다. 이

과제는 칸트의『판단력비판』가운데 ‘미의 분석학’과 ‘숭고의 분석학’의 내용을 중심으로

수행될 것이다. 여기서 연구자는 칸트가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을 쾌적한 것에서의 만

족과 좋은[선한] 것에서의 만족과 구분되는 특수한 만족으로 간주하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일체의 감각적이고 도덕적인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아름다운 대상에서 느낄 수 있

는 무관심한 만족으로서의 미적 쾌감과 초감성적인 이념과의 관련성을 의식하면서 숭고

한 대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극적 만족으로서의 숭고의 감정이 칸트의 행복 이해와 어

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찰해 본다. 특히 이러한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이 감

성적 행복을 넘어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가게 해 주는 ‘매개적 행복’의 역할을 할 수 있

음에 주목해 본다.

Ⅴ장에서는 칸트의 행복을 최고선과의 관련 속에서 고찰해본다. 칸트는 최고선을 도덕

성과 행복의 필연적 결합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Ⅱ장에서 고찰한 바대로 칸트는 도덕성

과 관련하여 행복의 원리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이질적인 도덕성과 행복이 최고

선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결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요구된다. 이 장에서는 최고

선 안에서의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에 대한 칸트의 견해를 정리해 보고, 최고선의 구성요

소로서의 행복이 갖는 의미와 성격을 살펴본다. 또한 칸트는 최고선의 실현을 위해서는

영혼의 불멸성과 신의 현존이 요청된다고 보았는데, 이를 통해 어떻게 행복이 도덕을 넘

어 종교와 관련되는지를 이해해 본다. 여기서 연구자는 최고선의 구성 요소로서의 행복

이 ‘행복할 만한 품격’을 지닌 사람이 바라는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으로 이해되었을

때, 과연 이러한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고자 한다.

끝으로 Ⅵ장에서는 이제까지 논의한 칸트의 행복 이해가 도덕교육에 어떤 함의를 제

23) 여기서 칸트가 행복주의를 비판한다고 할 때, 행복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행복의 원리, 특히 자기

행복의 원리를 의지의 준칙을 규정하는 유일한 근거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칸트의 행복주

의 비판은 행복 일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의지의 규정 근거’와 관련하여서만 그 명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행복주의 비판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본 논문의 ‘Ⅲ-2’에서 다루기

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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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할 수 있을까에 대해 살펴본다. 우선 첫째로, 도덕교육에서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고선에서의 행복이란 쉽게 말하자면 도덕

법칙을 준수하며 자유를 의식하는 사람이 자신의 도덕성에 비례하여 누리게 될 행

복을 의미하므로, 이 때의 행복은 언제나 도덕성과의 필연적 연관 아래서 성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칸트의 최고선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도덕성과 행복의 깊

은 연관성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교육 안

에서 학생들이 행복을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로, 미

와 숭고의 체험을 활용한 도덕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욕구와 본능을

자극하는 환경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서의 도덕성을 직접적으

로 가르치기보다 ‘행복할 만한 품격’을 함양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을 형성해 주는

교육이 요구된다. 그런데 칸트에 따르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감각적 관심과 도덕적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무관심한 만족’이면서도 미

감적 판단에서의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을 통해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

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감성적 행복과 도덕적 행복과는 구별되는 ‘미감적 행복’의 가능성을 시사한

다. 특히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초감성적 이성 이념과 관련되는 ‘이성 논변적 관

조의 쾌감’으로서 ‘미적인 것에 대한 만족’보다 더욱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로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미감적․도덕적 행복’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학생들이 미와 숭고를 체험할 기회를 자주 갖게 하는 것은 감성적 행복에 대한 집

착에서 벗어나 도덕적 행복을 성찰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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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예비적 고찰: 칸트의 인간 이해

1. 두 가지의 세계와 인간의 이중성

칸트는 인간이 두 가지 세계에 동시에 속해 있다고 본다. 인간이 속해 있는 하나

의 세계는 감성 세계로서, 여기서 인간은 자연 법칙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또한

인간이 속해 있는 다른 하나의 세계는 예지 세계로서, 여기서 인간은 순수 이성에

기초한 자유의 법칙 즉, 도덕 법칙의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된다.

그러니까 그는 두 가지 입장을 가지는바……첫째로는 감성 세계에 속해 있는 한에

서 자연의 법칙들(타율) 아래에 있고, 둘째로는, 예지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자연에

독립적으로, 경험적이지 않고, 순전히 이성에 기초하고 있는 법칙들 아래에 있는 것이

다.(GMS, B108-109)

따라서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감성 세계에 속하는 감성적 존재자이면서도 동시

에 예지 세계에 속하는 예지적 존재자이다. 그런데 칸트가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

를 구분하고자 한 것은 그 구분 자체를 강조하거나 예지 세계의 실재성을 형이상학

적으로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다. 칸트는 이러한 구분을 통해 인간을 두 가지 세계

의 관점에서 살펴보게 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접근하고자

한다.24)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의 구분 자체나 예지 세계의 실재성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나 증명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사람들은 칸트의 이원론적 세계 구

분이 자의적이며 비현실적이라며 회의적인 태도를 지닐 가능성이 크다.25)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칸트의 의도에 대한 전적인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다.

24) 페이튼은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의 구분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는 감성계(또는 현상계)와 예지계(또는 본체계)의 구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

주된 이유는 이 구별이 없다면, 우리는 칸트의 견해에서 자유의 가능성을 부정하게 되며, 따라서

칸트 자신의 윤리적 주장뿐만 아니라 도덕의 가능성까지 거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H. J.

Paton, The Categorical Imperative: A Study in Kant’s Moral Philosophy 7th ed. (London:

Hutchinson & Co., 1970); 김성호 옮김,『칸트의 도덕철학』(서울: 서광사, 1990), p.319)

25) 하지만 이러한 칸트의 이원론(dualism)은 칸트 윤리 이론의 필연적 전제(a necessary

presupposition)이며 그의 사변적(speculative) 형이상학 비판의 주요한 결론이다.(L. W. Beck, A Commentary of Kant's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1960),

p.26) 더 나아가 칸트의 이원론은 단순히 한낱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관점에서 인

간에 대한 건전한 이해를 도와주는 데 기여하고, 연구자는 특히 이러한 이원론이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자하는 근본방식으로서 행복에 대한 인간의 이해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칸트의 이원론은 인간과 세계 그리고 행복을 이해하는 핵심 전제라고 할 수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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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게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의 구분은 감성적 존재자로서 자신의 모든 행위

가 자연의 인과 필연성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만 생각한 인간이 ‘한 상태를 자기

로부터 시작하는 능력’(KrV, B561)인 자유로부터 행위할 수 있음을 의식하는 가운

데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동물과 같이

자연의 필연적 법칙, 즉 본능적 경향성에 따라서만 행위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성에

따라 본능적 경향성에서 벗어나서도 행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우리의 경험적 상식

에 부합하는 매우 자연스러운 사실인 것이다. 칸트 역시 이러한 사실이 평범한 사

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칸트는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의 구분을 현상과 사물 그 자체의 구분과 관련시키고 있는데(GMS,

B105-107 참조), 이러한 구분은 평범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그에게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사물에 대해 이 같은 추론[현

상과 사물 그 자체 그리고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의 구분-연구자 삽입]에 이르지 않

을 수 없다. 짐작하건대 이 같은 추론은 아주 평범한 지성[상식]에서도 만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아주 평범한 지성도 감관의 대상들의 배후에 언제나 어떤 보이지 않는

것, 독자적으로 스스로 활동하는 것을 기대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이 보이

지 않는 것을 평범한 지성은 이내 다시금 감성화함으로써, 다시 말해 직관의 대상으

로 만들려고 함으로써, 그것은 다시금 변질되고 만다. 그리고 그로써 평범한 지성은

조금도 더 현명해지지 않는다.(GMS, B107)

칸트는 아주 평범한 지성을 지닌 사람들이 감관의 대상들, 즉 현상들의 배후에

보이지 않으면서 독자적으로 스스로 활동하는 것, 즉 사물 그 자체를 기대하는 경

향이 매우 강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주 평범한 지성을 지닌 사람들이 감성

세계 너머에 예지 세계를 기대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평범

한 지성을 지닌 사람들이 지닌 두 가지 관점은 인간을 바라보는 이중적 이해 방식

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하나는 감각을 통해 알려지는 현상으로서의 인간[감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의 순수 활동성을 통해 직접적으로 의식되

는 예지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다.26) 이것은 적어도 인간을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즉

26) 현상으로서의 사물과 사물 그 자체로서의 사물, 현상적[감성적] 인간과 예지적 인간, 감성 세계

와 예지 세계의 구분은 결국 동일한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즉 인간을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관점은 사물, 인간, 세계를 현상으로 간주하는 관점과 사물,

인간, 세계를 사물 그 자체로 간주하는 관점이다. “그것은 단지 두 개의 구별되는 분리된 세계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막기 위해서 사용된 것일 뿐이다. 오직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하나, 이 세계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관점에서 고려될 수 있다.”(김성호 옮김(H. J. Paton), 앞의 책,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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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경험(그것이 내적 경험이든 외적 경험이든지 간에)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만

이해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인간이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

는 사실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 법칙에 종속된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

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섬세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의 내적 자아를 인식하고자 하

더라도, 그렇게 해서 인식된 자아는 단지 감성 세계에 속한 현상적 자아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평범한 지성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이 단지 감관의 촉

발에 의해 수동적으로 행위하는 현상적 자아 너머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감성적

조건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하게 자기 활동적인 자아로서 행위하는 예지적 자

아가 존재하리라는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예지적 자아의 순수한 자기 활동적 행위

는 언제나 감성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서만 우리에게 인식된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감성 세계의 현상들 중 하나이기(KrV, B574)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

한 지성을 지닌 사람들은 어떤 현상이 예지적 자아의 순수한 자기 활동적 행위로부

터 발생했음에도 그것을 자연 법칙에 따르는 감성 세계의 현상으로만 인식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지니게 된다. 더군다나 예지적 자아의 순수한 자기 활동성은 감각적

으로 경험되거나 증명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감성 세계에 속하는

현상적 자아에 주목한다. 하지만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칸트는

평범한 지성을 지닌 사람들이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 즉 예지적 자아를 감성화시

켜 직관의 대상, 즉 현상적 자아로 간주함으로써 조금도 더 현명해지지 못한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27) 이를 통해 칸트가 말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것은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세계와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지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

려는 것을 허구라고 간주하면서, 오로지 현상적 관점에서만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

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

해서조차, 그것도 인간이 자기에 대한 내적 감각을 통해 얻은 지식에 의거해서, 인

간 그 자체가 어떠한 것인가를 인식한다고 감히 주장해서는 안 된다.”(GMS, B106)

고 말한다.

27) 칸트가 비록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라는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칸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 자신을 ‘보이

는 것’, 즉 감각적 경험으로 파악될 수 있는 현상적 자아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보이지 않

는 것’ 즉 순수한 자기 활동성으로 의식될 수 있는 예지적 자아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예지 세계에 속한 예지적 자아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가 더 현

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칸트의 의도는 프랑스의 문학가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의 입을

통해 전하고 있는 다음의 표현 속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

다.”(Antoine de Saint-Exupéry, Le Petit Prince, 전성자 옮김,『어린왕자』(서울: 문예출판사,

2007),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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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신을 예지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자신이 순수한 자

기 활동성에서 비롯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는 순수한 자기 활동성으로서의 이러한 능력을 바로 이성(Vernunft)이라고 말

한다.28)(GMS, B108) 물론 이 때의 이성은 단지 본능적 경향성의 충족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경험적 조건에 제약된 도구적 이성이 아니다. 여기서 칸트가 말하고자 하

는 이성은 자연법칙에 필연적으로 종속된 감성적 조건들의 계열로부터 전적으로 벗

어나 ‘자유’로부터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이다.29) 이성은 모든 감성적 제약에서 벗어

나 이념을 구상할 수 있는 순수한 자발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칸트는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를 서로 구별하게 해 주는 것을 이성의 가장 주요한 임무 중 하나로 간주

한다.(GMS, B108) 따라서 이성적 존재자는 자기 자신을, 예지자로서(그러므로 그의

하위 능력들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감성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예지 세계30)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만 한다.(GMS, B108) 감성 세계에 속한 이성

적 존재자인 인간은 자기 자신을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즉, 순

전한 지각 및 감각들의 수용성의 관점에서는 감성 세계에 속하는 것이지만, 순수

활동성인 듯한 것(즉, 감관의 촉발에 의해서가 전혀 아니라, 직접적으로 의식에 이

른 것)과 관련해서는 예지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GMS, B107)

28) 칸트는 ‘순수한 자기 활동성’의 측면에서 이성이 지성(Verstand)보다 우위에 있음을 강조한

다.(GMS, B108 참조) 지성은 감관처럼 우리가 사물에 의해 촉발되는 때에만 생기는 표상들만을

함유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 표상들을 하나의 의식에서 통합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들[범주들]을

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 활동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성은 감성적 표상

들이 없이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감성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감성적 표

상 없이도 이념을 구상할 수 있는 이성이야말로 지성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순수한 자발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성은 ‘순수한 자기 활동성’의 측면에서 지성을 훨씬 뛰어넘는다

고 볼 수 있다.

29) 칸트가 말하는 이성은 일체의 경험적 조건들로부터 독립적인 능력으로서 순수 이성을 의미한다.

순수 이성은 순전히 예지적 능력으로서(KrV, B579), 자연원인들의 연쇄에서 외적인 또는 내적인,

그러나 시간적으로 선행하는 근거들에 의해 역학적으로 규정됨 없이 자유롭게 행위작용한다.(KrV,

B581) 이 이성의 자유를 사람들은 소극적으로 경험적 조건들로부터의 독립성이라고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건들의 계열을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능력이라고 표시할 수도 있

다.(KrV, B581) 따라서 예지 세계, 자유, 도덕 법칙과 함께 하는 이성은 경험적으로 주어진 근거

에 굴복하지 않고, 현상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물들의 질서를 따르지 않으며, 완전한 자발성을 가

지고 이념들에 따라 고유한 질서를 만드는(KrV, B576)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감

성 세계에서 독립적일 수 있는 능력인 이성을 ‘순수한 자기활동성(reine Selbsttätigkeit)’(GMS,

B108)이라 표현함으로써 이성이 지닌 자유의 능력을 강조한다.

30) 원어는 ‘Verstandeswelt’로서 ‘Verstand’를 ‘지성’으로 번역하고 있는 백종현에 일관되게 따르자

면 ‘지성 세계’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나 백종현 스스로도 ‘예지적 능력’을 의미하고자 할 때는 ‘오

성 세계’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고 본다.(I.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백종현

옮김,『윤리형이상학 정초』(서울: 아카넷, 2005), p.189) 여기서도 ‘오성 세계’로 번역하고 있으나

백종현 스스로도 ‘Verstandeswelt’의 교환어는 ‘intelligibele Welt’(예지 세계)라고 하며(백종현 옮

김(2005), 위의 책, p.190) ‘찾아보기’에서도 ‘예지 세계[오성 세계] Verstandeswelt’라고 서술하

고 있기 때문에 ‘지성 세계’나 ‘오성 세계’로 번역된 모든 용어를 ‘예지 세계’로 일관성 있게 표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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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이렇게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를 구분하고 인간을 이러한 두 가지 관점

에서 바라볼 것을 강조하는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이성을 지닌 인간이 감성 세

계와 예지 세계를 구별하고 서로 다른 두 가지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적 상식에도 매우 자연스럽게 부합하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본능적 경향성에 수동적으로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본능적 경향성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인 이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성적 동물’의 의미를 ‘감성 세계’에 국한시켜 생각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본

능적 경향성에 따라서만 행위하지 않고 이성이 설정한 의도나 목적에 따라 그러한

경향성을 제어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성적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

고 인간의 의도나 목적은 이성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설정된 것이라는 점에

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감성 세계에서 모든 사건과

행위는 자연의 필연적 인과 법칙에 따라 발생한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에 의해 설

정된 의도나 목적은 그에 선행하는 다른 원인들에 또 다시 종속될 수밖에 없는 운

명을 지니게 된다. 더군다나 이성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본능적 경향성을 세련된

방식으로 자신의 최종적 의도나 목적으로 설정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시 말

하면 이성에 의해서 모든 경향성들의 위계질서가 설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성은 그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경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있고, 선

택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으며, 자신의 최종적인 목적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이처럼

감성 세계 안에서도 ‘이성’과 ‘자유’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때의 이성은 선행하는 감성 세계의 또 다른 원인들(그것이 경향성

이든, 이성적 의도나 목적이든)에 인과적으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자유’도 감성적으로 제약된 이성의 목적을 위한 ‘선택의 자유’일 수밖에 없다. 감성

세계에 국한된 ‘이성적 동물’은 이성의 감성적 차원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인간의 경향성을 조절하고 극복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인간

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 의미를 감성 세계에 국한

시켜 이해하게 될 경우 인간의 모든 행위는 선행하는 감성적 조건들, 즉 이성이 선

택한 상위의 경향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는 감성적 경향

성이라는 자연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행위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될

경우 인간이 감성적으로만 삶을 사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도덕적인 삶과 관

련해서는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도덕적 행위는 결국 감성적

경향성의 충족을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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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일지라도 도덕적 행위를 이러한 방식으로는 이해하지 않는다. 자신이 행한,

혹은 타인이 행한 행위가 결국 그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 등과 같은 경향성을 위해

이루어진 행위일 경우 우리는 ‘도덕적’이라는 수식어를 그 행위에 덧붙이기를 망설

이게 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 자체

로 옳은 일이기 때문에’ 행위하는 주체로 생각하는 한에서 그 행위에 대해 ‘도덕적’

이라는 이름을 덧붙이고자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옳은

일이기 때문에’ 행위한다는 것은 일체의 감성적 경향성에서 벗어나서 행위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다시 말하면 ‘자연 법칙’에 따르는 감성 세계로부터 벗어나

행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도덕성을 이해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었고, 칸트는 이것을 인간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관점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평범한 인간 이성의 실천적 사용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보

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누구라도, 가장 못된 악한조차도, 만약 그가 단지 이성 사용에 익숙해 있기만

하다면, 사람들이 그에게 의도에 있어 정직함, 선한 준칙들의 준수에 있어 확고함, 동

정 및 보편적 자선의(그리고 그에 더하여 이익들과 안락함의 희생이 결부된) 사례들

을 제시할 때, 그도 그런 마음씨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는 단

지 그의 경향성들과 충동들 때문에 그것을 능히 자기 안에서 실행하지 못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때 그는 동시에 그 자신에게도 짐이 되는 그러한 경향성들로부터 자유롭

게 되기를 소망한다.(GMS, B112)

인간이 ‘경향성들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소망’한다는 것은 자신을 자연의 인과

법칙에 따르는 감성 세계에 속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인과 법칙

에서 전적으로 벗어나 행위할 수 있는 예지 세계에 속하는 존재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의 인과 법칙에서 전적으로 벗어나 행위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감성 세계의 규정된 원인들로부터의 독립성’(GMS, B109)인 자유로부터

행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이 인간 자신을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의 관

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감성 세계의 자연 인과성으로부터

의 독립성인 ‘자유’의 이념 아래서 행위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

트는 이러한 자유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위를 고찰할 경우에만 평범한 사람들이 생

각하는 도덕성의 의미가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연구자가 던진 물음, 즉 “칸트가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를

구분하고 인간을 이러한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강조하는 진정한 의도는 무

엇일까?”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유의 구출’31)이다. 물론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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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자유는 감성 세계 안에서 작동하는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감성 세계의 규정하

는 원인들로부터 독립함의 이념, 즉 자유의 이념(GMS, B113)을 말한다.32) 이러한

자유의 이념 아래서 인간은 자신을 자연 인과성의 질서에서 자유 인과성의 질서,

즉 도덕 법칙에 따르는 질서로 옮겨 놓을 수 있게 되며, 이 질서 안에서 도덕적 행

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지 세계, 자유, 도덕 법칙이라

는 개념은 평범한 사람들이 도덕성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밖에 없는 이성의 이념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예지 세계

에 속한 존재로, 즉 자연 법칙에서 벗어나 도덕 법칙에 스스로 따를 수 있는 자유

로운 존재로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이 이성적 존재자인 한 자연스럽게 지니게 되는

하나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성적인, 그러니까 예지 세계에 속하는 존재자로서 인간은 그 자신의 의지의 원

인성을 자유의 이념 아래서 말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성 세계의 규정

된 원인들로부터의 독립성이 (이러한 것을 이성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부여해야만 하

는데)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유의 이념에는 자율의 개념이 불가분리적으로 결

합되어 있지만, 이 개념과는 윤리성[도덕성]의 보편적 원리가 결합되어 있다. 이 윤리

성[도덕성]의 원리는, 자연 법칙이 모든 현상들의 근저에 놓여 있는 것이나 꼭 마찬가

지로, 이성적 존재자들의 모든 행위들의 근저에 놓여 있다.(GMS, B109)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에 동시에 속한 존재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온 것처럼 존재론적이거나 형이상학적

인 이론이 아니다. 따라서 ‘두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니며, 다만 두 가지 방식으로 이

해되어야 할 하나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33) 예지 세계의 순전한 구성원으로서 나의

31) 이것은 칸트가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의 구분을 시도하고자 하는 곳을 살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칸트는『순수이성비판』에서 ‘자연 필연성과 자유의 양립 가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KrV, B560-586 참조),『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자유에서 자율로, 자율에서 도덕 법칙으로 나

아가는 과정에 존재하는 순환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GMS, B97-127 참조),『실천이성비

판』에서 ‘자연 필연성과 양립할 수 있는 초월적[실천적] 자유의 구출’(KpV, A167-191 참조)을

위하여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를 구분하고 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칸트는 자연 필연성과 모순되

지 않는 ‘[초월적] 자유’를 정당하게 상정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를 구분하고자 하는 칸트의 진정한 의도는 바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다.’라는 사실을 드러

내고자 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32) 칸트의 관점에서 전자의 자유를 ‘심리적 자유(psychologische Freiheit)’(KpV, A173)에, 후자의

자유를 ‘초월적 자유(transzendentale Freiheit)’(KpV, A173)에 대응시킬 수 있겠다. 이와 관련해

서는 다음 절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33) Christine M. Korsgaard, Creating the Kingdom of End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김양현․강현정 옮김,『목적의 왕국-칸트 윤리학의 새로운 도전-』(서울: 철학과 현실사,

2007),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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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행위들은 순수 의지의 자율의 원리에 완전히 적합할 것이지만, 한낱 감성 세

계의 일부로서 나의 행위들은 전적으로 욕구들과 경향성들의 자연 법칙에, 그러니

까 자연의 타율에 알맞게 취해질 수밖에 없다.(GMS, B110-111) 인간은 자신을 예

지적 존재자로 간주할 때, 자신의 행위를 자연의 원인성[감성적 경향성]에서 벗어나

자유의 원인성에서 비롯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감성적 존재자로

간주할 때, 모든 행위는 비록 그 행위가 예지적 원인성, 즉 자유의 원인성에서 비롯

한 행위라고 할지라도 경향성들의 자연 법칙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예지적 존재자로서 예지적 원인성에 의한 행위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감성적 존재자로서 어떤 행위의 가능성을 예지적 원인성을 통해 설명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지적 원인성, 즉 자유의 원인성은 하나의 이념으로서 감

성 세계 안에서 직접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성 세계 안에서의 모든 행위(여기에는 당연히 예지적 원인성에서 비

롯한 결과로서의 행위까지도 포함된다)는 철저하게 경향성들의 자연 법칙에 따르는

현상으로서만 이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감성 세계에서의 ‘자유’는 하나의 모순이

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을 이성적 존재자로서 오로지 예지 세계에만 속하는 존재로

바라보거나, 오로지 감성 세계에만 속하는 존재로 바라본다면 이러한 모순은 생각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 존재자로서 자신을 예지 세계에 속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감성 세계에 속하는 존재로서 바라본다. 이것은 인간이 이성적

존재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니게 되는 ‘인간에 대한 이중적 관점’인데, 칸트는

바로 이 관점을 통해 감성 세계에서 발생하는 동일한 행위에 대한 자유와 자연 사

이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다. 칸트는 인간이 감성 세계에 속하는 존재로만 이해될

때 이러한 모순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만약 자기가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주관이, 그가 자기가 자유롭다고 말할 때에, 그

가 그 자신이 동일한 행위에 관해서 자연 법칙에 종속해 있다고 받아들일 때와 똑같

은 의미로, 또는 바로 똑같은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생각한다면, 이 모순을 벗어나기

는 불가능하다.(GMS, B115)

그렇지만 칸트는 이러한 모순이 다음의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발생한 하나의 착

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간을 자유롭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인간을,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

간을 이 자연의 법칙들에 종속해 있는 것으로 간주할 때와는 다른 의미와 다른 관계

에서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이 양자[자유와 자연-연구자 삽입]는 아주 잘 공존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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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주관 안에서 필연적으로 합일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야

만 한다는 것 말이다.(GMS, B115-116)

이렇듯이 인간이 자신을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에 동시에 속한 이중적 존재자로

서 이해한다면 동일한 행위를 자연의 원인성과 자유의 원인성으로 동시에 생각할

때 발생하는 모순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칸트가 자연과 자유 사이의 모순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지 세계’

의 개념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라고 의식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예지 세계’의 개념은 인간이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로 생각하기 위한 하나의 관점인 것이다.34)(GMS, B119 참조) 이성적 존재자로

서의 인간이 자신을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자로 바라본다면, 자신의 모든 행위는

감성적 경향성이라는 필연적 자연 법칙에 종속된다. 반면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

간이 자신을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자로 바라본다면, 자신의 모든 행위는 일체의

감성적 경향성에서 벗어나 자유의 이념 아래서 순수한 이성에 의해 수립된 필연적

도덕 법칙에 따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자신

을 예지 세계에 속하면서도 동시에 감성 세계에 속하는 존재로 바라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은 현실적으로 ‘감성 세계’를 경험하고 인식하면서 살아가고 있

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칸트가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를 구별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인간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함을 드러

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의 세계를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려

는 것이다. 그래도 인간이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는 세계가 ‘감성 세계’에 국한된다

는 점에서, 인간은 자신을 ‘감성 세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에 더 익숙해 하고

34) 칸트가 말하는 예지 세계의 개념은 결코 존재론적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임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칸트는 이러한 해석을 경계하여 예지 세계의 개념이 소극적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다음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1. “예지 세계에 대해 아는

바는, 거기서는 오로지 이성만이, 그것도 순수한 감성에서 독립적인 이성만이, 법칙을 수립한다는

것뿐이다.”(GMS, B118) 2. “예지 세계의 개념은 단지, 이성이 자기 자신을 실천적인 것으로 생각

하기 위해서, 현상들 밖에서 취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한 입장[Standpunkt, 관점]일 따름이

다.(GMS, B119) 3. “비록 내가 그[예지 세계-연구자 삽입]에 대한 훌륭한 근거를 가진 이념을 가

지고 있다 해도, 나는 그 세계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또한 나의 자연본성적

인 이성능력을 제아무리 발휘해 보아도 그에 대한 지식에 이를 수가 없다. 예지 세계는 내가 순전

히 감성의 분야로부터의 운동인들의 원리를 제한하기 위해, 감성 세계에 속하는 모든 것을 나의

의지의 결정근거들에서 배제하고 나서도 남는 어떤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감성의 분야로부터의

운동인들의 원리를 제한하는 것은, 내가 감성의 분야에 한계를 긋고, 그 분야가 모든 것을 자기 안

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바깥에도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하는 것이

다. 그러나 나는 이 더 많은 것에 대해 더는 알지 못한다.”(GMS, B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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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해 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예지 세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감성적 경

향성들의 충족과는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에 ‘감성 세계’의 관점으로 바라보려는 유

혹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자로서

자신을 ‘감성 세계’의 관점에서 ‘예지 세계’의 관점, 즉 자유로운 존재자의 관점으로

전환하여 바라볼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감성 세계의 관점으로부터 예

지 세계의 관점으로의 전환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감성적

경향성들로부터 전적으로 벗어나 자유의 이념이 인도하는 예지 세계의 법칙, 즉 도

덕 법칙에 따르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는 이러한 전환을 통해 쾌락이나

욕구의 만족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인격의 가치가 고양될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저런 소망[경향성들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연구자 삽

입]으로부터는 욕구의 아무런 쾌락도, 그러니까 그의 실제적인, 아니면 상상적인 욕구

들 중 어느 하나라도 만족시키는 상태도 기대할 수 없고, (무릇, 그렇게 한다면, 그를

그런 소망으로 유인했던 그 이념마저 그 탁월성에 손상을 입을 것이다.) 오직 그의

인격의 증대되는 내적 가치를 기대할 수 있을 따름이니 말이다. 자유의 이념, 다시 말

해 감성 세계의 규정하는 원인들로부터 독립함의 이념이 그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예

지 세계의 구성원의 입장으로 그가 옮겨간다면, 그는 보다 좋은 인격일 것으로 믿는

다.(GMS, B112-113)

인간이 그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라고 의식하는 것은 곧 자신을 예지 세계의 구

성원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때 인간은 자신이 보다 좋은 인격이라고 믿

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예지 세계의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는 것은 곧 인간이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이자 도덕적인 존재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

미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위의 인용문에서 ‘자유의 이념이 그에게 억지로

강요하는’이라는 칸트의 표현에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인간이 단지 자유의 이

념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예지 세계에만 속한 존재가 아니라 감성적 경향성에도 따

르는 감성 세계에도 속한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자로서의 인간은 자유의 이념 아래에 있는 예지 세계의 법칙을 하나의 강

요, 즉 당위적 명령으로 의식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자신을 예지 세계의

구성원으로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감성 세계의 구성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로서 보다 좋은 인격이 되기를 바라면서 예지 세계의 법칙

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도덕적 명령, 즉 정언명령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을 전적으로 예지 세계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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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예지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정언명령, 즉 도덕적 당위는 자신의 필연적 의

욕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을 예지 세계의 구성원이자 동시에 감

성 세계의 구성원으로 보는 한에서만 예지 세계의 법칙을 도덕적 당위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GMS, B113 참조) 다음과 같은 칸트의 설명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자유의 이념이 나를 예지 세계의 성원으로 만듦으로써 정언 명령들은 가능하다.

즉, 자유의 이념이 나를 예지 세계의 성원으로 만듦으로써, 만약 내가 예지세계의 성

원이기만 하다면, 나의 모든 행위들은 의지의 자율35)에 항상 알맞을 터인데, 그러나

나는 동시에 감성세계의 성원으로도 보기 때문에, 나의 모든 행위들은 의지의 자율에

알맞아야만 하는 것이다.(GMS, B111)

예지 세계는 인간이 감성적 존재자로서 한낱 감성적 경향성이라는 자연 법칙에

종속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예지적 존재자로서 감성적 경향성에서 벗어나 자유롭

고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하나의 관점이다. 그래서 예지

세계의 관점은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만 하는 하나의 이념으로

35) 칸트에 따르면 의지의 자율은 도덕성의 최상 원리이다.(GMS, B87) 칸트는 의지의 자율을 “의지

가 그 자신에게 법칙인 그런 의지의 성질”(GMS, B87)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의지

는 모든 행위에 있어 자기 자신에게 법칙이다’라는 명제로 표현될 수 있으며(GMS, B98), 이는 곧

“자기 자신을 또한 보편적 법칙으로서 대상으로 가질 수 있는 준칙 외의 다른 어떤 준칙에 따라서

는 행위하지 않는다는 원리를 표시할 따름이다.”(GMS, B98) 이것은 바로 정언 명령의 형식이자

도덕성[윤리성]의 원리이며, 그러므로 자유 의지와 도덕[윤리] 법칙 아래에 있는 의지는 한 가지

이다.(GMS, B98) 따라서 칸트에게 의지의 자유는 곧 자율, 즉 자기 자신에게 법칙인 의지의 성질

이라 할 수 있다.(GMS, B98) 이러한 생각은 ‘의지’와 ‘자유’에 대한 칸트의 이해와 관련되어 있다.

칸트에 따르면 “의지란 이성적인 존재가 가지는 일종의 인과성[원인성]”이다. 여기서 ‘인과성’이라

는 용어가 등장한 이유는 의지가 모종의 원인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마

치 “자연 필연성이 외적 원인의 영향에 의해 활동하도록 규정되는 모든 이성 없는 존재의 인과성

의 속성”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지의] 자유란 의지가 [자기 밖의] 외적 원인으로부터

독립해서 작용할 수 있는 인과성의 속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칸트는 자유에 대한 이런 식의 설명

은 소극적인 설명이라면서, 자유의 적극적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 ‘인과성’의 개념에 따르는 ‘법

칙’ 개념에 주목한다. 법칙에 따른다는 것은 어떤 원인에 의해서 어떤 결과가 생겨나는 것을 가리

킨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의지의] 자유가 외적 원인으로부터 독립해서 작용할 수 있는 인과성

의 속성이라면, 자유는 비록 자연법칙을 따르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모종의 법칙을 따르는 인과

성일 것은 분명하다. 자연 필연성이 외적 원인의 작용에 의해 결과가 규정된다는 의미에서 ‘타율’

이라면, 자연 필연성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는 타율이 아닌 ‘자율’일 수밖에 없다.(박찬구,『칸트

의 도덕형이상학 정초 읽기』(서울: 세창미디어, 2014), pp.140-141 참조) 따라서 자유는 감성 세계

의 자연 법칙으로부터 독립하여 작용하는 예지 세계의 법칙, 즉 도덕 법칙을 따르는 인과성[원인

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칸트가 예지 세계에 속하는 원인성을 의지라고 부르는 것에서(GMS,

B110), 우리는 의지의 자유, 곧 자유 의지가 도덕 법칙을 스스로 따르는 의지이며, 이는 다시 말

해 의지의 자율로서 정언 명령의 정식이자 도덕성의 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지 세계의 구성

원으로서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게 도덕 법칙을 스스로 따르는 자율적인 의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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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우리에게 ‘도덕적 의무’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우리가 자유롭

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를 예지 세계의 구성원으로 놓고, 의지의 자율을, 그

자율의 결과인 도덕성과 함께 인식하지만”, “우리가 의무지워져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를 감성 세계에 속하면서 또한 동시에 예지 세계에도 속하는 것으로 본

다.”(GMS, B110)고 말한다.

인간을 예지 세계에 속한 구성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의 핵심은 인간이

감성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 법칙, 즉 감성적 경향성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부터

행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는 ‘의지의 자율’ 개념과 함께 ‘도덕

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를 그 자체로 이해하기보다

‘도덕성’에 대한 인간의 평범한 상식 속에서 그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을 칸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한낱 자신의 욕구와 경향성에 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반면에 모든 욕구와 감각적 자극들을 제쳐놓음으로

써만 일어날 수 있는 행위들이 그 자신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아니 심지어는 필연적

인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른다.(GMS, B118)

인간은 자신의 욕구와 경향성으로부터 전적으로 벗어난 의지에서 비롯한 행위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인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도

덕적 행위라고 부르고자 하며, 칸트는 도덕적 행위에서 예지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의 인간, 즉 자유롭게 행위하는 인간을 발견하고자 한다.

칸트는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의 구분을 통해 인간의 이중적 특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소극적으로는 인간이 감성 세계에만 속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

적극적으로는 인간은 예지 세계에 속하는 존재로서 순수 이성36)에 따라 자유롭게

행위할 수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인간이 자신을 예지 세계에 속한 구성원의 관

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을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

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점은 칸트가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간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37) 이것은 예지 세계

36) 사실상 칸트에 있어 ‘이성’, ‘의지’, ‘자유’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자유는 모든 이성적 존재자들의 의지의 속성으로 전제되어야 한다.”(GMS, B99)

면서 “이성은 실천 이성으로서, 또는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로서, 그 자신에 의해 자유롭다고 간주

되어야만 한다.”(GMS, B101)고 말한다. “자유는 단지, 자신에게서 의지를, 다시 말해, 순전한 욕

구능력과는 구별되는 (곧, 자신을 예지자로서, 그러니까 이성의 법칙들에 따라, 자연본능들에서 독

립해서 행위하도록 규정하는) 한 능력을 의식한다고 믿는 존재자에게 이성의 필연적인 전제일 뿐

이다.”(GMS, B120-121)

37) 인간이 감성적 존재자라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감성적 존재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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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관련된 ‘자유’38), ‘도덕성’, ‘정언 명령’, ‘의무’ 등의 개념이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전제함으로써 더욱 명확히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인간을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라는 두

가지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칸트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

을 감성 세계에 속하는 감성적 존재자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거나, 인간을 예지 세

계에 속하는 예지적 존재자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모두 부적절한 인간 이해

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감성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경향성이라는 자연 법

칙에 따라 행위한다는 것과 예지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자유의 이념 아래서

도덕 법칙에 따라 행위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모두 다 정당하게 받아들인다. 가

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을 감성적 존재자의 관점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예지적

존재자의 관점으로도 바라봄으로써, 자신을 감성 세계의 질서에서 예지 세계의 질

서로 옮겨가려는 데서 바로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성 세계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의 모습과 예지 세계의 구성원으로서의 인

간의 모습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칸트의 인간 이해에 보다 통합

적으로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 절에서는 감성 세계에

속하는 인간의 모습을 ‘경향성’과 ‘심리적 자유’와 관련하여, 예지 세계에 속하는 인

간의 모습을 ‘도덕 법칙’과 ‘초월적 자유’와 관련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기 때문에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갖는 중요한 의미가 더욱 명확히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

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가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만을 강조했다고 간

주하는 것은 칸트의 진정한 의도에서 벗어난 편협한 이해라고 볼 수 있겠다. 백종현은 ‘감성적 존

재자로서의 인간’이 갖는 의미를 인간의 도덕성과 존엄성의 측면과 연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설

명한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로서 자연의 질서 아래에 있는 감성적 존재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예

지 세계의 성원으로서 자율에 기반한 윤리 도덕을 가질 수 있고, ‘존엄성’ 또한 얻을 수 있다. 인간

이 오로지 ‘이성적’이기만 한 존재자라면, 그에게는 이성과 어긋나는 경향성이 있을 리 없고, 그렇

다면 그런 경우에는 어떠한 당위도, 따라서 도대체가 도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겠다. 또한 인간

이 오로지 감성적 욕구와 경향성에 따라 사는 동물이기만 하다면, 그에게 어떤 규범의 표상이 있

을 리 없고, 그렇다면 그에게 어떠한 자기 강제, 즉 자율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도덕 법칙이 그

리고 자율의 원인성이 인간의 행위를 결정하고, 그리하여 인간을 신성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이 동물이면서 동시에 이성적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이중성

격이 인간의 존엄성의 원천인 것이다.”(백종현,「칸트에서 선의지와 자유의 문제」,『인문논총』제

71권 제2호, 2014, pp.34-35)

38) 자유는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전제함으로써 더욱 명확

히 이해될 수 있다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연구자가 이 맥락에서 의도하고자 한 것은 칸트

가 자유를 ‘감성 세계의 규정된 원인들로부터의 독립성’(GMS, B109)이라고 규정했듯이, 자유가 감

성 세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더 명확히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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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

(1) 경향성을 지닌 존재

칸트는 경향성(Neigung)을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갖는 핵심적 특징으로

생각한다. 이는 칸트가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설명하는 거의 대부분의 내용

에서 경향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데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가 경향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칸트가 인간을 감성적

존재자로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게 해 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이다.

칸트는 경향성을 “욕구능력의 감각에 대한 의존성”(GMS, B38), “습관39)적인 감

성적 욕망”(Anth, B202), “주관에서 규칙(습관)이 된 감성적 욕망”(Anth, B225), “습

관적 욕망”(RGV, B20), “감성적 충동, 자극”(RL, B5)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종합

해 볼 때 칸트에게 경향성은 인간의 욕구능력이 감각에 의존하게 되면서 습관화된

감성적 욕구[욕망]들 일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경향성

을 ‘욕구능력(Begehrungsvermögen)’과 관련하여 설명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칸트는『판단력비판』에서는 “이성이 오로지 욕구능력과 관련해서만 선험

적인 구성적 원리를 함유한다”(KU , BV)고 말하며, 욕구능력을 이성과도 관련시키

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경향성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우선 칸트가 생

각하는 ‘욕구능력’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칸트는 생(Leben)을 “한 존재자의, 욕구능력의 법칙에 따라 행위하는 능

력”(KpV, A16)이라고 말하면서, 욕구능력을 “어떤 것의 표상들이 이 표상들의 대상

들의 현실성의 원인인 그런 것의 능력”(KpV, A16 ; KU , BXXIII)이라고 정의한

다.40)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생이 욕구능력의 법칙에 따른 행위들로 구성되는 것이

며, 욕구능력이란 자신이 생각하고 의도하는 대상들이나 목적들을 현실적으로 실현

시키고자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간단하게 말한다면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실현시키면서 생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41)

39) 원어는 ‘habituellen Begierde’이다. 백종현은 ‘습성적 욕구’라고 번역하였으나 ‘습성적’ 보다 의

미의 차이가 없으면서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습관적’이라는 용어로 선택한다.

40)『윤리형이상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욕구능력이란 자기의 표상들을 통해 이 표

상들의 대상들의 원인이 되는 능력이다. 그리고 한 존재자가 자기의 표상들에 맞게 행위하는 능력

을 생(Leben)이라 일컫는다.”(RL, B1) 칸트는 욕구능력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를 비판하기 위해 욕

구능력을 경험적 개념들을 배제한 채 순수 지성의 범주들만을 사용하여 정의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KpV, A16-17)

41) 이 문장에서 연구자가 사용한 욕구는 경험적․심리학적 차원의 욕구뿐만 아니라 선험적․도덕적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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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칸트는 인간의 욕구능력을 ‘상위 욕구능력’과 ‘하위 욕구능력’으로 구분하

고자 한다. 욕구능력을 ‘상위’와 ‘하위’로 구분하는 데서 칸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

은 욕구능력의 규정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욕구능력과 관련된 두 가지 특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욕구능력에는 필연

적으로 쾌 또는 불쾌[의 감정]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42)(KU , BXXV) 둘째, 욕

구능력은 욕구능력이 실현하고자 하는 객관[대상, 질료]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욕구능력의 이러한 특성들은 사실상 ‘쾌[의 감정]’에 대한 칸트의 정의로부터 자연

스럽게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쾌는 대상 또는 행위와 생의 주관적 조건들과의 합치 표상, 다시 말해 한 표상이

객관의 현실성과 관련해서 (또는 주관의 힘들을 객관을 산출하는 행위로 규정함과 관

련해서) 그 표상의 원인성의 능력과 합치하는 표상이다.(KpV, A16)

이를 통해 볼 때 쾌는 자신이 표상한 객관(대상 또는 행위)이 자신의 욕구능력과

합치하는 데서 생겨나는 표상으로, ‘욕구능력’, ‘쾌’ ‘욕구능력의 객관’은 모두 함께

필연적 연관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욕구능력이 쾌를 수반하고, 욕구능력

의 객관, 즉 대상이나 행위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은 욕구능력과 관련된 필연적

특성이지, 상위 욕구능력과 하위 욕구능력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

다.43)

원의 욕구도 포함하는 ‘중립적 표현’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칸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욕구를 심

리학의 개념으로만 이해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오해를 피하고자 욕구능력을 범주

개념을 이용하여 정의하려 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연구자도 칸트와 같이 이러한 오해를 피하고

자 한다면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표상들의 대상들을 현실화시키면서 생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라고 표현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는 칸트가 욕구능력을 정의할 때 욕구능력과 관련된 두

가지 차원을 모두 포괄하려 한 것으로 판단하여, ‘욕구’라는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칸트의 의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다.

42) 욕구나 혐오에는 항상 쾌나 불쾌-이것의 감수성을 사람들은 감정이라고 부르는데-가 결합되어

있다.(RL, B1)

43) 그래서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쾌적한 것과 좋은 것[선한

것], 양자는 욕구능력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한에서 만족(Wohlgefallen)을 수반하는바,

전자는 (자극에 의해) 정념적으로-조건지어진 만족을, 후자는 순수한 실천적 만족을 수반한

다.”(KU, B14) 여기서 쾌적한 것과 좋은 것[선한 것]은 욕구능력의 객관이라 할 수 있고, 정념적

만족과 순수한 실천적 만족은 그와 관련된 쾌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칸트는 관심을 대

상의 실존 표상과 결합하는 만족으로서 욕구능력과 관계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KU, B5), 쾌적한

것과 좋은 것[선한 것]은 항상 그것들의 대상에 대한 관심과 결합되어 있다고 본다.(KU, B13) 좋

은 것은 간접적으로 좋은 것, 즉 유용한 것과 단적으로 모든 관점에서 좋은 것, 즉 도덕적으로 좋

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칸트는 도덕적으로 좋은 것이야말로 최고의 관심을 수반하는 것이라

고 본다. 왜냐하면 [도덕적으로] 좋은 것[선]은 의지, 다시 말해 이성에 의해 규정된 욕구능력의

객관이기 때문이다.(KU, B13-14) 이렇게 본다면 욕구능력의 객관은 ‘쾌적한 것’도 될 수 있고,

‘간접적으로 좋은 것[선한 것]’도 될 수 있으며, ‘도덕적으로 좋은 것[선한 것]’도 될 수 있는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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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상위 욕구능력과 하위 욕구능력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칸트는

상위 욕구능력과 하위 욕구능력을 고정적으로 규정하기보다 욕구능력에 영향을 미

치는 규정 근거에 따라 유동적으로 규정하고자 한다.44) 그래서 칸트는 이러한 구분

을 위해 ‘욕구능력의 규정 근거’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비록 칸트는 상위 욕구능

력과 하위 욕구능력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는 않지만『실천이성비판』

과『판단력비판』에 흩어져 언급되고 있는 부분들을 통해 칸트가 의도하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해 볼 수 있다.

먼저 칸트는 하위 욕구능력에서 쾌 또는 불쾌는 욕구능력의 원리에 선행하지만,

상위 욕구능력에서 쾌 또는 불쾌는 단지 도덕 법칙에 의한 욕구능력의 규정에서 나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KU , BXXV) 여기서 칸트는 욕구능력을 규정하는 것이 쾌

또는 불쾌인지 아니면 [순수] 이성에 근거한 도덕 법칙인지에 따라 하위 욕구능력

과 상위 욕구능력을 나누고 있다. 욕구능력이 욕구 대상의 실현에 수반하는 쾌에

의해 규정될 경우, 이 때의 욕구능력을 하위 욕구능력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욕구능

력이 [순수] 이성에 근거한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될 경우, 이 때의 욕구능력을 상

위 욕구능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상위 욕구능력도 욕구능력인 만큼 하위 욕구능

력에서처럼 욕구 대상의 실현과 이에 따른 쾌가 결합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상

위 욕구능력에서의 쾌는 하위 욕구능력에서와는 달리 도덕 법칙을 수립하는 이성이

규정한 욕구 대상의 실현에 수반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상위 욕구능력과 하위 욕구능력의 구분에 대한 이해를 위해 칸트가 욕구

능력을 ‘의지’와 관련해서 설명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욕구능력은, 그것이 단지 개념들에 의해, 다시 말해 어떤 목적의 표상에 맞게 행위

하게끔 규정될 수 있는 한에서 의지라 하겠다.(KU , B33)

칸트는 욕구능력을 개념들에 따라 작용하는 원인인 의지(KU , BXII)에 연결시

킴으로써 욕구능력의 규정 근거에 대한 논의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간다.45) 칸트에

로 그것들 각각에 해당하는 만족, 즉 쾌의 감정이 수반되는 것이다. 다만 욕구능력을 규정하는 것

이 무엇인가, 즉 욕구능력의 규정 근거에 따라 욕구능력의 객관과 그와 함께 수반되는 쾌[의 감

정]의 성격이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44) 물론 칸트는 이성이 진정한 상위 욕구능력이라고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KpV, A45)

하지만 이것은 이성이 곧 상위 욕구능력임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경향성의 작용 없이

순전히 독자적으로 의지[욕구능력]를 규정하는 ‘근거’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상위 욕구능력일 수 있

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45) 칸트는『윤리형이상학』에서 ‘개념들에 따르는 욕구능력’을 “행위를 위한 욕구능력의 규정근거를

그 자신 안에서 마주치고, 객관[객체]에서 마주치지 않는 한에서, 임의대로 행동하는(능동과 수동

의, 행하거나 행하도록 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면서(RL, B4-5), 이를 의사(Willkür), 소망

(Wunsch), 의지(Wille)로 구분하고 있다. 이 욕구능력이 객체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자기의 행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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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면 의지는 “생물이 이성적인 한에서 갖는 일종의 원인성”(GMS, B97)이고 “어

떤 법칙의 표상에 맞게 행위하게끔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능력”(GMS, B63)이며,

“목적들의 능력”(KpV, A103)이다. 따라서 의지의 개념 안에는 이성적 존재자의 이

성 사용이 포함되어 있고,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원인성으로서의 법칙 표상이 관련

되어 있으며, 의지 규정의 객관적 근거(GMS. B63) 다시 말해 원리들에 따르는 욕

구능력의 규정근거(GMS. B63)가 연결되어 있다. 칸트가 의지를 ‘이성에 의해 규정

된 욕구능력’이라고 간주한 것은(KU , B14) 바로 이러한 관련성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욕구능력의 규정 근거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의지의 원인성, 즉 의

지의 규정 근거에 대한 논의로 전환된다.

칸트는 실천적인 것과 관련해서 의지의 원인성에 규칙을 주는 개념이 자연개념

인가 자유개념인가 하는 구별이 본질적임을 강조한다.(KU , BXII-BXIII) 의지의 원

인성을 규정하는 개념이 자연개념이라면 그 원리는 기술적-실천적인 것으로서 (자

연이론으로서) 이론철학에 속하게 되고, 의지의 원인성을 규정하는 개념이 자유개념

이라면 그 원리는 도덕적-실천적인 것으로서 (윤리이론으로서) 실천철학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KU , BXIII) 칸트는 숙련이나 영리의 규칙들과 같은 모든 기술적-실천

적 규칙들의 원리는 자연개념에 근거하며, 이러한 규칙들에 의해 의지가 규정될 수

있는 한에서 욕구능력, 즉 자연능력으로서의 의지도 자연개념에 속한다고 본

다.(KU , BXIII-BXIV)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기술적-실천적 규칙들에 의해 규정된

의지를 자연개념에 속하는 욕구능력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의지

를 규정하는 원리는 경험적으로 실천적인 이성에 근거한 준칙이라 할 수 있다. 하

지만 한편으로 의지는 자유개념에 근거한 도덕적-실천적 법칙에 의해서도 규정될

수 있는데, 이 때 의지를 규정하는 원리는 선험적으로 법칙수립적인 이성에 근거한

도덕 법칙이라 일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유개념에 근거한 도덕적-실천적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는 ‘자유개념에 속하는 욕구능력’으로서 앞에서 언급한 자연개념에

속하는 욕구능력과는 구별되는 욕구능력으로 이해해야 함이 분명하다. 칸트가 ‘자유

개념에 의해서’를 ‘순수 이성에 의해 상위의 욕구능력을 미리 규정함으로써’로 이해

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KU , XLV-XLVI), 우리는 칸트가 도덕적-실천적 원리, 즉

이성에 근거한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를 자유개념에 속한 ‘상위 욕구능력’으

로 이해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볼 때 칸트의 관점에서 숙련

능력에 대한 의식과 결합되어 있는 한에서 의사라고 일컫고, 그러한 의식과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소망이라고 일컬으며, 내적 규정근거가 주체의 이성 안에서 마주쳐지는 욕구능력은 의지라고 일컫

는다. 그러므로 의지는 (의사처럼) 행위와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행위로의 의사를 규정하는

근거와의 관계에서 고찰되는 욕구능력이다.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칸트는 의지의 개념을 통

해 이성과 관련하여 욕구능력의 법칙을 규정하는 근거에 대해 탐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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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규칙들이나 영리의 규칙들과 같은 기술적-실천적 규칙들에 의해 규정된 의지는

자연개념에 속한 ‘하위 욕구능력’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실천이성비판』에

서는 기술적-실천적 규칙과 도덕적-실천적 법칙의 구분이 질료적인 실천적 규칙과

형식적인 실천적 법칙의 구분으로 연결되면서 상위 욕구능력과 하위 욕구능력을 다

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모든 질료적인 실천적 규칙들은 의지의 규정 근거를 하위의 욕구능력에 둔다. 그

리고 의지를 충분하게 규정하는 순전히 형식적인 법칙이 전혀 없다면, 아무런 상위의

욕구능력도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KpV, A41)

앞서『판단력비판』에서 하위 욕구능력을 기술적-실천적 규칙에 의해 규정된 의

지로 이해한 것을 감안한다면, “모든 질료적인 실천적 규칙들은 의지의 규정 근거

를 하위의 욕구능력에 둔다”는 칸트의 표현에서 일관성의 결여를 감지할 수도 있겠

다. 하지만 의지의 원인성에 주목하면서 이 문장을 이해한다면 하위 욕구능력을 통

해 칸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는 변함이 없다.46) 그것은 바로 의지가 질료적인

실천적 규칙에 의해 규정될 때, 그렇게 규정된 의지를 하위 욕구능력이라고 일컫는

다는 것이다. 반면 의지가 형식적인 실천적 법칙에 의해 규정될 수 있다면, 그렇게

규정된 의지는 상위 욕구능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칸트는 하위 욕구능력을 질료적인 실천적 규칙

에 의해 규정된 의지로 바라본다. 모든 질료적인 실천적 규칙들은 욕구능력의 질료

[객관]를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실천 원리에 해당한다. 칸트는 욕구능력의

질료를 ‘그것의 실현이 욕구되는 대상’(KpV, A38)이라고 보기 때문에, 질료적인 실

천 원리는 대상에 대한 욕구가 실천 규칙에 선행하여 그것을 규정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욕구능력의 질료에 대한 표상, 즉 욕구 대상의 표상에는 욕구 대상

을 실현함으로써 기대되는 쾌가 결합하게 되는데, 결국 욕구 대상의 실현과 관계하

는 쾌를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하는 원리가 바로 질료적 실천 원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욕구 대상의 표상과 쾌의 결합에 대해서는 선험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언제나 경험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의지의 규정 근거를 욕구

46) 만약 하위의 욕구능력을 ‘질료적인 실천적 규칙들에 의해 규정된 의지’라고 생각하고 위 인용문

의 첫 문장을 다시 서술해 본다면 “모든 질료적인 실천적 규칙들은 의지의 규정 근거를 ‘질료적인

실천적 규칙들에 의해 규정된 의지’에 둔다.”가 되는데, 결국 동어반복적인 순환 논리에 빠져들게

된다. 연구자는 칸트가 상위 욕구능력과 하위 욕구능력에 대한 설명을 명확하게 서술하지 않았다

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이것을 지나치게 논리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하위 욕구능력을 통해 칸트

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 즉 의지를 최종적으로 규정하는 의지의 원인성 관점에서 이 문장을 이해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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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의 표상과 결합하는 쾌에 두고 있는 질료적 실천 원리도 언제나 경험적일 수밖

에 없다.(KpV, A39 참조) 또한 단지 경험적으로만 인식되며, 모든 이성적 존재자에

게 보편적이고 필연적으로 타당할 수 없는 쾌라는 주관적 조건에만 근거하는 원리

는 주관적 실천 규칙으로서의 준칙으로 쓰일 수는 있지만 결코 실천 법칙을 제공할

수는 없다.(KpV, A38-40) 칸트는 의지의 규정 근거를 욕구 대상의 실현으로부터

느끼는 쾌 또는 불쾌에다 두는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이 자기 사랑 또는 자기 행

복의 원리에 속한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동일한 종류의 것이라고 말한다.(KpV,

A41)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은 그 자체로 모두 동일한 종류의 것이며, 자기 사랑과

자기 행복이라는 보편적 원리에 속한다.(KpV, A40)

따라서 자기 사랑 또는 자기 행복의 원리47)는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하는

쾌를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원리로서 하위 욕구능력에 적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칸트는 상위 욕구능력을 형식적인 실천적 규칙, 즉 형식적인 실천적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의지로 바라본다. 여기서 의지를 규정하는 원리는 욕구 대상과 그것

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라는 경험적 전제 조건 없이 실천 규칙의 순전한 형식을

통해 의지를 규정할 수 있는 순수 이성의 원리이다. 이성은 순수 이성으로서 욕구

대상의 실현과 결합하는 쾌와 상관없이 형식적인 실천 법칙, 즉 도덕 법칙을 통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독자적으로 실천적일 수 있다. 칸트는 이성이 순

수하게 독자적으로 의지를 규정할 수 있는 실천적 능력이라는 점과 의지의 최종적

원인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성을 ‘진정한 상위 욕구능력’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성은, 순전히 독자적으로 (경향성의 작용 없이) 의지를 규정하는 바로 그런 한에

서, 정념적으로 규정되는 욕구능력이 그에 종속하는 진정한 상위 욕구능력이고, 참으

로, 그러니까 종[種]적으로 특수하게 이 정념적 욕구능력과는 구별되는 것이다.(KpV,

A45)

47) 칸트는 ‘이성적 존재자의 자기의 전 현존에 부단히 수반하는 쾌적한 삶에 대한 의식’을 행복이라

고 정의하면서(KpV, A40-41), 이 행복을 자의[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원리를 자기 사랑의 원

리라고 말하고 있다.(KpV, A41) 따라서 자기 사랑의 원리이든 자기 행복의 원리이든 지속적인 쾌

의 총체로서의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닌 서로 다른 표현이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사랑의 원리와 자기 행복의 원리 모두 의

지의 최종적 규정 근거를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에 둔다는 점에서 질료적 실천 원리에

속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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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그 자체를 상위 욕구능력이라 부르든지, 이성에 의해 규정된 의지를 상위

욕구능력이라 부르든지 상위 욕구능력은 의지의 최종적 원인성을 이성에 두고 있음

은 분명하다. 위의 인용문에서 정념적 욕구능력을 하위 욕구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

듯이 상위 욕구능력을 ‘이성적 욕구능력’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

다.

이제 우리는 칸트가 경향성을 ‘욕구능력의 감각에 대한 의존성’이라 정의한 것에

대한 의미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칸트는 감각(Empfindung)을 ‘감

성적 인식의 질료’(KrV, B74), ‘경험의 질료’(KrV, B270), 주관과 관계하는 ‘쾌 또는

불쾌의 감정의 규정’(KU , B8-9) 등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욕구능력이 감각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욕구능력이 감성적 욕구 대상이나 쾌 또는 불쾌의 감정에

의해 규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곧 욕구능력으로서의 의지가 욕구 대

상과 결부된 쾌 또는 불쾌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에 의해 규정되는 의지를 ‘하위 욕구능력’이

라 할 수 있으므로, ‘욕구능력의 감각에 대한 의존성’으로 이해되는 경향성도 역시

‘하위 욕구능력’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하위 욕구능력으로서의 ‘경향성’

은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에 의해 규정되는 의지를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달리 표현하면 욕구 대상의 표상과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쾌48)가 욕구능력을 규정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쾌가 원인으로서

필연적으로 욕구능력에 선행하면서, 욕구능력을 규정하는 것을 좁은 의미에서 욕구

[욕망, Begierde]라 하고, 습관적인 욕망을 경향성이라고 일컫고 있다.(RL, B3) 결국

경향성은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에 의해 습관적으로 규정된 의지로서

하위 욕구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경향성을 하위 욕구능력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경향성도

질료적 실천 원리에 따르는 의지의 규정 근거라고 이해할 수 있다. 질료적 실천 원

리는 자기 사랑의 또는 자기 행복의 원리로서,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원

리를 말하는데, 경향성은 바로 이 원리에 적합한 욕구능력인 것이다. 칸트는 행복을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KrV, A806)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경향성이 행복을 의

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자기 사랑 혹은 자기 행복의 원리에 따른다는 것은 매우 자

연스러운 것이다. 칸트는 “행복[함]은 이성적이면서 유한한 모든 존재자가 필연적으

48) 칸트는 이렇게 욕구(Begierde)와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쾌가 욕구능력을 규정할 때, 이 때의

쾌를 ‘실천적 쾌’라 부를 수 있고 그 대상에 대한 관심은 ‘경향성의 관심’이 된다고 본다. 반면 쾌

가 이성원리에 기초한 욕구능력의 규정에 따라 수반될 경우, 이 때의 쾌는 ‘지성적 쾌’라고 부를

수 있고 그 대상에 대한 관심은 ‘이성관심’이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RL, B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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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구하는 바이며, 그러므로 그런 존재자의 욕구능력을 불가피하게 규정하는 근

거”(KpV, A45)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성적이며 유한한 존재자인 인간은 언제나 자

신의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으면서 추구해

나간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며, 그 필요를

채워 줄 욕구 대상과 그것의 실현에 수반되는 쾌에 대한 경향성의 관심이 필연적으

로 결합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칸트는 “경향성은 항상 필요를 실증하며”(GMS,

B38), “인간은 이 필요와 경향성의 전적인 만족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요약한

다.”(GMS, B23)고 말한다. 그래서 하위 욕구능력으로서 경향성은 질료적 실천 원

리, 즉 자기 사랑의 원리에 따라 모든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행위가 습관화된 감성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칸트에게 경향성은 ‘습관적

인 감성적 욕망’으로 정의되고 있기 때문에, 이 때의 행복은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

으로서 ‘감성적 행복’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경향성을 지닌 존재로서 감

성적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칸트는 경향성을 욕구능력에 속하는 하나의 단계로도 이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벽(Hang)은 본래 단지 향락 욕구(Begehren eines Genusses)의 성향인바, 주관

이 향락을 경험하고 나면 그 향락이 그에 대한 경향성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모든 거

친 인간들은 도취를 야기하는 사물들에 대한 성벽을 갖는다. 왜냐하면 그들 중의 다

수는 도취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그러므로 도취를 일으키는 사물들에 대한 욕

구[욕망, Begierde]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단 한 번이라도 그러한 사물들을

맛보게 하면 그들에게는 그것에 대한 거의 절멸할 수 없는 욕구[욕망]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성벽과 욕구(Begehren)의 객관을 잘 알고 있음을 전제하는 경향성 사이

에49) 또한 본능(Instinkt)이 있다. 본능이란 사람들이 (동물들의 기술 충동이나 성적

충동처럼) 그에 대해 아직 아무런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한 어떤 것을 행하거나 향유

49) 백종현의 원래 번역은 “욕구의 객관을 잘 알고 있음을 전제하는 성벽과 경향성 사이에”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칸트는 성벽을 향락 욕구의 성향으로서, 도취를 일으키는 사물들에 대한 욕구[욕망]

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향락 그 자체를 욕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성벽을

욕구의 객관을 잘 알고 있음을 전제하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판단된다.『실용적 관

점에서의 인간학』에서도 칸트는 성벽을 “어떤 욕망이 그 대상의 표상에 선행하여 발생하는 주관

적 가능성”(Anth, B225)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자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신옥희도 이 부분을 “성향[성벽]과 욕망 대상[욕구의 객관]과의 친숙함을 전제하는”으로 번

역하고 있어(I. Kant, 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 신옥희 옮김,『이

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서울: 이화여대출판부, 2003), p.35)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참고로 원

문은 다음과 같다. “Zwischen dem Hange und der Neigung, welche Bekanntschaft mit dem

Objekt des Begehrens vorausset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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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는 감정적인 필요욕구(ein gefühltes Bedürfnis)이다. 끝으로 경향성 다음에 욕구

능력의 또 하나의 단계가 있으니, 즉 욕정[열정, Leidenschaft]50)이다.(욕정은 정서(정

동, 격정, Affekt)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서는 쾌․불쾌의 감정에 속하는 것이니 말이

다.) 욕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를 배제하는 경향성이다.(RGV, B21)

이처럼 칸트는 욕구능력을 ‘성벽-본능-경향성-욕정’이라는 4가지의 단계로 나누

어 이해하고 있다. 칸트는 욕구능력의 단계에 대해 여기에서와 함께『실용적 관점

에서의 인간학』(Anth, B225)에서 각각의 정의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지

만, 그것들 사이의 명확한 관계 규정이나 특히 상위 욕구능력과 하위 욕구능력의

구분을 포함한 욕구능력 전반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성벽’이나 ‘본능’ 그리고 ‘욕정’이라는 욕구능력

의 단계들이 모두 경향성과의 관련성 속에서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

요가 있다. 칸트는 성벽을 “그 가능성이 인간성 일반에 대해 우연적인, 그런 경향성

을 가능하게 하는 주관적 근거”(RGV, B20)로 이해하고, 본능을 성벽과 경향성 사이

에 위치하면서 경향성을 향해 나아가는 욕구능력으로 바라보며, 욕정51)을 자기 자

50) 열정[욕정]의 원어는 ‘Leidenschaft’이다. 이남원은 이를 ‘욕정’이라고 번역하고 있고(I. Kant,

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 이남원 옮김,『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울산: 울산대학

교출판부, 1998), p.189), 신옥희는 ‘격정’으로 번역하고 있다.(신옥희 옮김(2003), 앞의 책, p.35)

백종현은 주로 ‘열정’으로 번역하고 있으나『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에서는 거의 대부분 [ ]

에 욕정을 병기하고 있다. 칸트는『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에서 ‘Leidenschaft’를 ‘정동[격정]’

으로 번역되는 ‘Affekt’와 상세히 비교하면서 서술하고 있는데(Anth, B202-241), ‘Leidenschaft’

가 “이성에 의해서 제어하는 것이 어렵거나 전혀 할 수 없는 경향성”(Anth, B202)으로서 “음험하

고 은밀하며”(Anth, B204), “자유를 가장 크게 훼손시키는 일종의 병”(Anth, B225-226)이고, “순

수 실천이성에게는 암이며, 대개는 불치”(Anth, B226)라면서 대단히 부정적으로 서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칸트는 ‘Leidenschaft’를 구체적으로 타인들에 대해 영향 일반을 갖는 능력

으로서의 경향성들인 ‘명예욕’, ‘복수욕’, ‘지배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Anth, B226, 229, 234), 이

러한 칸트의 관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Leidenschaft’는 우리말의 ‘열정’이나 ‘격정’ 보다는

‘욕정’으로 이해되는 것이 보다 더 합당하다고 판단되어 연구자는 ‘욕정’이라는 번역어를 일관되게

사용하고자 한다.

51) 앞의 각주 50)에서 밝힌 바와 같이 칸트는 욕구능력으로서의 욕정(Leidenschaft)을 ‘원칙의 지배

를 기피하는’(Anth, B226) 경향성으로 간주하면서 도덕성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

서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칸트는 특히 격정(정서, 정동, Affekt)과 욕정을 상세하게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도덕성에 대한 욕정의 위험성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Anth, B202-241) 『판단력비

판』에서 칸트는 욕정과 격정에 대한 간단명료한 구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격정들은

욕정들과는 종적으로 구별된다. 전자는 한낱 감정과만 관계하나, 후자는 욕구능력에 속하는 것으

로, 의사가 원칙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거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향성들이다. 전자

는 격렬하고 무계획적이나, 후자는 지속적이고 신중하다. 그래서 노여움은 분노로서는 격정이지만,

증오(복수욕)으로서는 욕정이다. 후자는 결코 어떠한 관계에서도 숭고하다고 불릴 수 없다. 왜냐하

면 격정에서는 마음의 자유가 저지당하기는 하나, 열정에서는 폐기되기 때문이다.”(KU, B122) 칸

트는 욕정이 언제나 경향성이 주관에게 지정한 목적에 따라 행위한다는 주관의 준칙을 전제하기

때문에 항상 주관의 이성과 결합된다고 본다.(Anth, B226) 그래서 욕정은 목적과 관계하는 모든

경향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들을 점유하는 데에 상관하는 경향성들로서 이성의 외양을 가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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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한 지배를 배제하는 경향성, 다시 말해 “의사(Willkür)가 원칙들에 의해 규

정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거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향성”(KU , B122)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본다면 ‘성벽’, ‘본능’, ‘욕정’이라는 욕구능력의 단계들은 결국 ‘경향성’과 관

련하여 규정될 수 있는 욕구능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경향성을 나머

지 욕구능력을 대표하면서 포괄할 수 있는 욕구능력을 일컫는 용어로 이해할 수 있

다. ‘성벽’, ‘본능’, ‘욕정’이라는 욕구능력을 포괄적 의미에서 경향성으로 간주하고,

또한 경향성을 언제나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에 의해 의지가 규정되는

하위 욕구능력으로 바라본다면, ‘성벽-본능-경향성-욕정’으로 이어지는 욕구능력의

4가지 단계는 상위 욕구능력과 구분되는 하위 욕구능력에 대한 칸트의 세부적 설명

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경향성은 ‘습관적인 감성적 욕망’으로서, 자기 사랑의 원리와 같은 질료적

실천 원리에 의해 의지가 규정되는 하위 욕구능력에 속하며, 모든 경향성의 충족으

로서의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욕구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경향성은

감성적 행복을 최고의 목적으로 추구하는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의 특징들을 포

괄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칸트는 경향성

을 단독적으로만 표현하지 않고 경향성과 함께 다른 용어를 병렬하여 표현하거나

경향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이 부분을 좀 더 관심 있게 살펴본다면

경향성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경향

성과 관련된 표현이 가장 풍부하게 담겨 있는『윤리 형이상학 정초』와『실천이성

된다.(Anth, B232) 이렇듯 욕정은 단순히 한 때의 일시적이고 갑작스러우며 격렬한 감정이 아니라

“제 아무리 격렬하다고 해도,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숙고하는”(Anth, B204) 이성의 지속적이

고 신중한 합리화 작업과 공존할 수 있는 욕구능력이라 할 수 있다. 칸트는 욕정에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들을 합리화하려는 도구적 이성의 강력한 영향력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도

덕성에 지극히 유해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우려한다. “욕정들은 순수 실천이성에게는 암이며, 대

개는 불치이다.”(Anth, B226)라는 칸트의 말에서 이를 단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욕

정은 도구적 이성의 자기 합리화를 통해 욕구 대상에 결합된 쾌가 의지를 규정하는 것을 뿌리 깊

게 고착화시키는 경향성으로서 도덕적으로 지극히 유해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

지 더 주목해야 하는 칸트의 언급이 있다.『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에서 칸트는 욕정을 “어떤

선택과 관련하여 그 경향성과 모든 경향성들의 총계를 비교하려는 이성을 방해하는 경향성”으로

정의하고 있다.(Anth, B225) 칸트는 이성이 감성적-실천적인 것에서도 원칙에 따르는데, 그 원칙

은 만족을 주는 하나의 경향성 때문에 여타 모든 경향성들을 그늘이나 구석에 두지 말고, 저 경향

성이 모든 경향성들의 총계와 공존할 수 있게끔 유의하라는 것이라고 말한다.(Anth, B226-227)

이를 통해 볼 때 칸트에게 욕정은 이성이 모든 경향성들을 조화롭게 고려하여 모든 경향성의 충족

으로서의 행복으로 이끄는 것조차도 방해하는, 실용적으로도 유해한 경향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앞에서 칸트가 욕정을 ‘원칙의 지배를 기피하는 경향성’으로 이해한다고 했을 때,

이 때의 원칙이란 순수 실천이성에 따르는 ‘도덕적-실천적 원칙’과 경험적 실천이성에 따르는 ‘감

성적[기술적] 원칙’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아주

선량한 욕망도, 설령 그것이 (질료[내용]상으로는) 덕에, 다시 말해 선행에 속한다 할지라도, (형식

상으로는) 그것이 욕정으로 전화하자마자, 한낱 실용적으로 유해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배

척되어야 하는 것이다.”(Anth, B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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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에서 경향성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를 찾아 정리해 보면 아래의 표와 같

다.52)

<표-1> 경향성과 관련된 표현들

52) 인용 부분은 편의상『윤리형이상학 정초』는 ( )에 원전 제2판인 B판의 면수를,『실천이성비

판』은 ( )에 원전 초판인 A판의 면수만 넣기로 한다.

53) 여기서의 사랑은 ‘경향성으로서의 사랑’으로서 ‘의무로서의 사랑’과 구분해야 한다. 칸트는 전자를

‘정념적 사랑’, 후자를 ‘실천적 사랑’으로 구분하면서 오직 후자, 즉 ‘실천적 사랑’만이 명령될 수

있다고 본다.(GMS, B13 참조)

54) 자기 행복이란 웬만한 정도의 체계로 포괄될 수 있는 경향성들의 충족을 의미한다.(KpV, A129)

55) 칸트는 자기 자신을 자의의 주관적 규정 근거들에 의거해 의지 일반의 객관적 규정 근거로 만들

려는 성벽을 ‘자기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사랑’을 법칙 수립자나 무조건적인

실천 원리로 삼는 것을 ‘자만(Eigendünkel)’이라고 일컫는다.(KpV, A131) 객관적인 도덕 법칙이

최상의 실천 원리에 대한 자기 사랑의 영향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있고, 자기 사랑의 주관적 조건

들을 법칙으로 지정하는 자만을 부단히 단절할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자기 사랑에서 만나게 되

『윤리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

경향성과 병렬하여

표현한 용어

필요(Bedürfnis, 23, 24, 65, 77)

소망(Wünschen, 23)

감정(Gefühlen, 33, 76)

성벽(Hang, 60)

욕망들(Begierden, 62, 111, 118)

충동(Antrieb, 76,112,118)

충동(Antrieb, 59)

감성적 충동

(sinnliche Antrieb, 129)

희망(Hoffnung, 131)

공포(Furcht, 131)

욕망들(Begierden, 149, 214)

자연적 필요

(Naturbedürfnis, 194)

경향성을 구체적으

로 표현한 용어

사랑(Liebe 9, 13)53)

이익(Vorteil 9, 53, 58)

생명 보존

(Leben zu erhalten, 9)

동정심

(Teilnehmung, Sympathie, 11)

명예(Ehre, 10)

행복(Glückseligkeit, 12)

탐욕(Habsucht, 49)

성적 쾌락의 경향성

(wollüstigen Neigung, 54)

조야한 경향성

(geratender Neigung, 68)

세련된 경향성

(feinerer Neigung, 68)

자기 행복

(eigene Glückseligkeit, 129)54)

이기심(독아주의)

(Selbstsucht, 129)

자기 사랑(Selbstliebe, 132)55)

사랑(Liebe, 135)

공포(Furcht, 135)

경탄(Bewunderung, 136)

경이(Erstaunen, 136)

정념적 사랑

(Pathologische Liebe,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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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경향성은 다양한 표현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우선 경향성과 병렬하여 표현된 용어들을 살펴보면, ‘(자연적) 필요’, ‘(감성적) 충동’,

‘욕망’, ‘성벽’, ‘소망’56)과 같이 하위 욕구능력으로서의 경향성 개념의 정의와 직간접

적으로 관계하는 용어들과 희망, 공포와 같은 ‘감정’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

다. 다음으로 경향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용어들을 살펴보면, ‘생명 보존’, ‘이익’,

‘탐욕’, ‘성적 쾌락’, ‘이기심’, ‘명예’, ‘(자기) 행복’, ‘자기 사랑’, 그리고 ‘(정념적) 사

랑, 동정심, 공포, 경탄, 경이’와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등장하고 있다. 칸트의 표현

을 빌리자면, 경향성은 탐욕이나 성적 쾌락과 같은 ‘조야한 경향성’들과 동정심, 명

예, 사랑, 행복과 같은 ‘세련된 경향성’들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포괄적 용어인 것

이다. 그렇지만 경향성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든지 간에, 경향성은 행복을 의지의 규

정 근거로 삼는 원리인 자기 사랑의 원리에 따르는 의지의 규정 근거라는 점에 있

어서는 동일하다. 이렇게 볼 때 모든 경향성들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기 사

랑으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칸트는 모든 경향성들이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된다고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경향성들은 함께 - 경향성들도 웬만한 정도의 체계로 포괄될 수 있고, 그 때

이 경향성들의 충족이 자기 행복이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 이기심(독아주의,

Selbstsucht/solipsimus)을 형성한다.(KpV, A129)

경향성들이 웬만한 정도의 체계로 포괄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경향성

들이 하나의 체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질서 있게 결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을 자기 행복이라고 했을 때, 이 때의 자기 행복은 단

순히 한 두 가지의 경향성이 충족된 상태가 아니라 한 개인의 삶과 관련된 경향성

들의 전 체계가 충족된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경향성들이 함

께 이기심을 형성한다는 말은 경향성을 지닌 인간은 자기 행복을 추구한다는 말과

는 모든 것은 경향성에 속하고 모든 경향성은 감정에 기인한다고 본다.(KpV, A132)

56) 칸트는 소망(Wunsch)을 욕구능력과 관련하여 이해한다. 칸트는 소망을 “객관의 산출을 위해 힘

을 씀이 없는 욕구”(Anth, B202), “객관을 만들어내기 위한 자기의 행위 능력에 대한 의식과 결합

되지 않은 욕구능력의 작용”(RL, B5)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소망은 욕구 대상의 실현이 현실

적으로 기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욕구 대상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는 욕구라고 할 수 있

다. 칸트는『판단력비판』에서 소망과 같은 공허한 욕구들에 대한 성벽이 왜 인간의 자연본성에

놓이게 되었는지는 하나의 인간학적-목적론적 물음이라면서(KU, BXXIV), 인간이 가진 소망이라는

욕구능력의 의미를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칸트는 “만약 우리가 우리의 힘이 어떤 객관을 만들어

내는 데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하기 전에는 힘을 소비하는 일이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면,

힘들의 대부분은 이용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KU, BXXIV)이라면서 “공허한 소망들 안에 있

는 이런 착각들은 우리 자연본성 안에 있는 자애로운 질서의 결과”(KU, BXXIV)일 따름이라고 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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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칸트는 이기심을 ‘모든 것을 능가하는 호의의 마음’

인 ‘자기 사랑(Selbstliebe)’과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Wohlgefallen)의 마음’인 ‘자만

(Eigendünkel)’으로 구분한다.(KpV, A129) 그리고 한편 ‘자기 자신을 자의(Willkür)

의 주관적 규정 근거들에 의거해 의지 일반의 객관적 규정 근거로 만들려는 성벽’

을 ‘자기 사랑’이라 부를 수 있고, ‘자기 사랑이 자신을 법칙 수립자로 그리고 무조

건적인 실천 원리로 삼는 것’을 ‘자만’이라 일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칸트는 욕구

대상과 결합하는 쾌와 같은 주관적 조건들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객관적으로 규정

하려는 것을 인간 본성상 자연스러운 성벽으로서 ‘자기 사랑’이라 하고, 반면 ‘자기

사랑’의 주관적 조건들을 의지를 규정하는 객관적 실천 법칙으로 삼으려는 것을 도

덕 법칙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자존심(Selbstschätzung)에의 성벽으로서 ‘자만’이라

하면서, 이 두 가지 이기심에 대한 태도를 달리한다.

순수 실천 이성은 자기 사랑57)을 순전히 단절시킨다. 자연적으로, 도덕 법칙에 앞

서 우리 안에서 활발히 작동하는 그러한 자기 사랑을 오직 도덕 법칙과 일치하는 조

건에 국한시킴으로써 말이다. 그때 이것은 이성적 자기 사랑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순

수 실천 이성은 자만은 숫제 타도한다. 윤리[도덕] 법칙과의 합치 이전에 생긴 모든

자존심의 요구들은 허망한 것이고 아무런 권한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KpV,

A129-130)

이처럼 칸트는 도덕 법칙에 앞서 우리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자기 사랑을

자연스러운 경향성으로 이해한다. 또한 순수 실천 이성은 자기 사랑을 ‘도덕 법칙과

일치하는 조건에 국한시킴으로써’ 순전히 단절시키는 것이지 자기 사랑 그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거나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 법칙에 일치하는 조

건에 국한된 자기 사랑’을 ‘이성적 자기 사랑’이라고 일컬을 수 있게 된다.58) 하지만

자기 사랑의 원리를 객관적인 실천 법칙으로 삼으려는 자만은 마치 자기 사랑의 원

리가 도덕 법칙이라도 된 양 스스로를 높이려는 헛된 ‘자존심’에 근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칸트는 이를 단호하게 타도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한다.

모든 경향성들이 함께 형성하는 이기심을 자기 사랑과 자만으로 구분하여 설명

하려는 칸트의 의도에는 경향성이 자기 사랑이든 자만이든지 간에 비록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을 어렵게 한다는 측면에서 도덕성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할

57) 원어는 ‘Eigenliebe’이고 백종현은 이를 ‘사애[私愛]’로 번역한다. 그런데 앞서 칸트는 자기 사랑

(Selbstliebe)을 특별히 사애라고 일컫는다고 했기 때문에, 사애와 자기 사랑은 교환 가능한 동의

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표현의 일관성을 위해 여기서는 ‘사애’ 대신 ‘자기 사랑’으로 인용한다.

58) 이러한 칸트의 언급에서 자기 사랑의 경향성은 의지가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경우라면 전적

으로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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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지만 경향성 그 자체를 악으로 볼 수는 없다는 칸트의 입장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칸트는 경향성을 ‘도덕[윤리]의 모든 방해물’(KrV, B837)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만 경향성 그 자체를 인간에게서 완전히 제거해야 할 악으로 간주하지

는 않는다.

자연적 경향성들은 그 자체로만 보면 좋은 것으로, 다시 말해 배척할 것이 없다.

이것들을 근절시키고자 하는 것은 헛된 일일 뿐만 아니라, 유해하고 비난받을 일이기

조차 할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단지 그것들을 잘 다스려서, 그것들이 서로 부딪쳐

생채기가 나지 않고, 행복이라고 불리는 전체 안에서 화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할 일이

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는 이성은 영리[함](Klugheit)라고 일컫는다. 오로지 도덕적으

로 반법칙적인 것만이 그 자체로 악하고, 단적으로 배척할 만한 것으로서, 근절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RGV, B69-70)

경향성은 도덕성과 관련된 의지의 규정 근거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악

한 것이 아니다. 칸트는 오히려 이성의 영리함으로 경향성들을 조화롭게 충족시켜

행복에 이르게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악의 근거는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제시하듯이 인간의 감성 및 이로부터 생긴 자연적 경향성들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RGV, B31) 왜냐하면 경향성들은 악과는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도 갖지 않

으며 또한 경향성들은 천부적인 것으로서 인간 자신이 그것들의 창시자가 아니므로

인간은 경향성들의 현존에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또한 경향성에 대해 책임을 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RGV, B31) 경향성은 단지 그에 대립하는 선한 준칙의 수행을

어렵게 할 뿐이다. 본래적인 악은 경향성들이 선한 준칙을 위반할 것을 유혹할 때

사람들이 그에 저항하는 것을 의욕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이다.(RGV, B70) 감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기 사랑의 원리에 따르는 경향성을 동기로서 준칙 안에 채용

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기서 경향성은 도덕 법칙을 동기로서 준칙 안

에 채용하려는 것을 방해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악은 아니다. 그렇지

만 만약 인간이 도덕 법칙에 구애받음이 없이, 이 경향성의 동기를 그 자체만으로

도 충분한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 자신의 준칙 안에 채용한다면, 이것을 도덕적인

악이라 할 수 있다.(RGV, B33 참조) 그러니까 경향성 그 자체가 의지의 규정 근거

로서 준칙 안에 채용되는 것이 악이 아니라, 도덕 법칙이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 준

칙 안에 채용되어야 함을 의식하면서도 경향성에 근거한 준칙을 선택하게끔 내버려

두는 것이 본래적인 악인 것이다. 칸트는 이것을 ‘도덕법칙으로부터의 동기를 경향

성으로부터의 동기 뒤에 놓는 준칙들을 세우려는 의사의 성벽’, 즉 인간 심정의 부

패성(Verderbtheit) 혹은 전도성(Verkehrtheit)이라 부르고(RGV, B23 참조), 이를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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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근원으로 본다. 따라서 칸트의 관점에서 악은 경향성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

라, 자신의 준칙 안에 채용하는 동기들의 ‘도덕적[윤리적] 질서의 전도’에 근거하는

것이다. 여기서 ‘도덕적 질서의 전도’란 “도덕 법칙을 자기 사랑(의 법칙)과 나란히

준칙 안에 채용하는 것”(RGV, B34)인데, 달리 말하면 준칙 안에 채용하는 동기들

간의 관계가 ‘종속 관계’, 즉 도덕 법칙으로서의 동기가 자기 사랑과 경향성으로서

의 동기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칸트는 도덕 법칙이 자기 사

랑과 경향성들을 충족시키는 최상의 조건으로서 준칙 안에 채용되는 유일한 동기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 사랑과 경향성들이 도덕 법칙의 준수 조건으로서 준칙

안에 채용되는 동기가 되는 것을 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이 선

한가 악한가의 차이는 그가 그의 준칙 안에 채용하는 동기들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즉 준칙의 질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 둘 중 어느 것을 다른 것의

조건으로 만드는가 하는 종속관계(즉 준칙의 형식)에 있을 수밖에 없다”(RGV,

B34)고 말한다.

이렇게 경향성을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는 악으로 간주하지 않는 칸트는 경향성

이 도덕성의 실현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긍정한다.59) 칸트는 의무에 맞게 하려는

(예컨대, 선행하려는) 경향성이 도덕적 준칙들의 효력을 매우 용이하게 할 수 있으

며(KpV, A212), 또한 경향성은 도덕적 마음씨를 그 힘에서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RGV, B31참조)고 말하면서 경향성이 도덕적 행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칸트는 경향성이 도덕적 준칙을

산출할 수는 없다고 보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냐하면, 만약 행위가 단지 합법성뿐만 아니라 도덕성도 함유해야 한다면, 도덕적

준칙에서 모든 것은 규정 근거인 법칙 표상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KpV,

A213)

칸트는 경향성이 합법적 행위 즉, 의무에 맞는 행위를 일으킬 수 있고 또한 도덕

적 준칙이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경

향성은 결코 합법적 행위를 넘어 도덕적 행위 즉, 의무로부터의 행위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 도덕적 준칙이 될 수 있으려면 의지의 규정 근거는 언제나 도덕 법칙이

59) 칸트는 도덕적 행위의 실천을 위한 수행 계획 순서를 간략하게 개관하는 자리에서도 도덕적 행위

의 실천을 위한 경향성의 보조적 역할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실천적 고찰에서는 무엇에

서부터 출발해야만 하는가를 안다. 곧, 각자 자기의 경향성에 기초하고 있는 준칙들로부터 출발해

서, 이성적 존재자들이 어떤 경향성들에서 합치하는 한에서 동류의 이성적 존재자들에게 타당한

훈계들에 이르고, 그리고 마침내 그런 일체의 경향성들과는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타당한 법칙에

이르는 것 등등 말이다.”(KpV, A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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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는 “합법성은 경향성들이 순전히 의지의 규정 근

거인 때에도 가능하지만 도덕성 곧 도덕적 가치는 오로지 행위가 의무로부터, 다시

말해 순전히 법칙을 위해 일어나는 데에만 두어져야 한다.”고 말한다.(KpV, A144)

그렇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경향성이 행위의 도덕성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도덕적 행위에서 경향성이 존재할

수 없고 또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칸트

가 합법성과 도덕성의 구별을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다만 도덕적 행위에 있어 의지

의 규정 근거가 문제될 때 모든 것은 도덕 법칙의 표상에 달려 있는 것이지 경향성

은 여기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행위에서 경향성

은 결코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도덕 법칙이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되는 한에서 경향성이 수반되는 것은 가능하다.60) 칸트가 도덕적 행위에서 거부하

는 것은 자신의 준칙이 도덕 법칙이 아닌 경향성에 의해 직접적으로 규정되는 경우

이다. 그러므로 한 행위에 의무의 동기와 동시에 경향성이 존재한다면, 그 행위는

선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칸트의 견해를 왜곡한 것이다.61)

지금까지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지닌 핵심적 특성으로서 경향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경향성은 인간이 감성 세계에 속하는 한에서 언제나 필요를 느끼는 존

재라는 사실과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인간의 필요는 욕구 대상을 만들어내고,

욕구 대상의 실현은 필요의 충족으로서의 쾌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

되면서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에 의해 욕구능력으로서의 의지가 습관적

60) 카울바하도 경향성이 의지의 규정 근거로 작동하지 않는 한 경향성은 도덕적 행위와 양립가능하

다고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사람들이 칸트의 견해는 도덕성에 자리를 내주기 위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경향성은 추방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다. 이와는

달리, 누가 자기의 의무를 기꺼이 즉 경향성에 따라 행하는 것은, 만약 그것이 단지 경향성으로

“인하여” 생긴 것만 아니라면,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칸트의 견해라고 말할 수 있다. 말

하자면 경향성이 나의 의지 결정에 수반할 수는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규정 근거의 역할을 해

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F. Kaulbach, Immanuel Kant (Berlin: Walter de Gruyter & Co., 1969);

백종현 옮김,『칸트: 비판철학의 형성과정과 체계』(서울: 서광사, 1992), p.211)

61) H. J. Paton, The Categorical Imperative: A Study in Kant’s Moral Philosophy 7th ed.

(London: Hutchinson & Co., 1970); 김성호 옮김,『칸트의 도덕 철학』(서울: 서광사, 1990),

p.68. 페이튼은 칸트가 도덕적 삶에서 경향성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칸트는 도덕 생활에서 경향성이 담당하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덕의 유리함과 악덕의

불리함은 소박한 정신에 덕의 길을 가도록 준비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타고난 동정심 같

은 몇몇 경향성들은 선행의 의무를 수행하게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며, 이런 이유 때문에 장려되

어야 한다. 행복과 선한 생활에서 연유하는 유리함조차도 악덕의 유혹을 상쇄하고, 그래서 의무의

동기에 그 영향을 발휘하는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강조된다.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의

무의 동기를 개인적 행복이나 이익의 동기로 대치하는 것이다.”(김성호 옮김(H. J. Paton), 위의

책, p.68) 이런 관점에서 페이튼은 “다양한 경향성과 행복에 대한 욕구가, 비록 우리의 의무가 무

엇인가를 전혀 결정하지는 못할지라도, 도덕적 생활에서 담당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 칸트의 견

해에 첨가될 수 있다.”(김성호 옮김(H. J. Paton), 위의 책, p.78)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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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규정되는데, 이를 경향성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경향성은 욕구 대상에 대한

‘습관적인 감성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경향성은 자기 사랑의 원리와 같

은 질료적 실천 원리에 의해 의지가 규정되는 하위 욕구능력을 포괄하는 욕구능력

이다.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은 행복이라 할 수 있고 자기 사랑의 원리는 바로 행복

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원리이기 때문에, 경향성을 지닌 인간이 이러한 감성

적 행복을 자기 의지의 규정 근거로 두고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향

성은 감성적 행복의 추구와 밀접하게 관련될 뿐 아니라 합법적 행위와 도덕적 행위

의 실현과도 관련된다. 경향성은 분명히 이기심을 형성하는 것으로서 자기 사랑의

원리에 따르기 때문에 도덕성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되지만, 동정심, 명예와 같은

세련된 경향성들은 합법적 행위, 즉 의무에 맞는 행위를 일으키기도 하고 도덕적

행위, 즉 의무로부터의 행위에서 도덕적 준칙의 효과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도 있다. 그렇지만 동정심이나 명예와 같은 경향성에 의한 선행은 의지가 객관적이

고 필연적인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의무로부터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합법

적 행위는 될 수 있을 지라도 결코 도덕적 행위는 될 수 없다. 칸트는 도덕적 행위

에서 경향성은 결코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도덕 법칙이 의지의

규정 근거인 한에서 경향성의 보조적 역할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경향성 그 자

체는 행위의 합법성에 이를 수는 있어도 행위의 도덕성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칸트

의 엄격한 구분은 경향성에 대한 칸트의 관점에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칸트는

“경향성은 선량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간에 맹목적이고 노예적이다.”(KpV,

A213)라고 말하면서 경향성이 주관적이고 임의적이며 수동적인 특성을 지닌 것임

을 강조한다. 아무리 선한 경향성이라도 때로는 다른 경향성에 따라, 때로는 자기

사랑의 원리에 따라 돌변할 수 있다면, 그러한 경향성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행위를 도덕적 행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칸트의 관점에서 경향성은 모든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 추구와 행위의 합법성 실현에 있어 자신의 정당한 역

할을 주장할 수 있으나 행위의 도덕성 실현에 있어서는 보조적 역할만을 주장할 수

있다.

결국 지금까지의 논의는 ‘경향성의 가능성과 그 한계’에 대한 설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경향성은 행복 추구와 행위의 합법성 실현과 관련해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지만, 행위의 도덕성 실현과 관련해서는 제한된 가능성만을 열어 준다는 것

이다. 만약 인간이 감성 세계에만 속한 존재자라면 인간의 최고 목적과 최고 관심

은 감성적 행복일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도덕적 행위는 이러한 감성적 행복에 기

여하는 합법적 행위로 간주될 것이다. 그렇다면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고민

해야 할 유일한 것은 ‘감성적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의 탐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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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심리적 자유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핵심적 과제는 ‘어떻게 자신의 다양

한 경향성들을 충족시킴으로써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그

렇지만 자신의 모든 경향성들을 충족시켜 행복에 이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다. 하나의 경향성이라도 그것을 제대로 충족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뿐만 아

니라 설령 특정한 경향성을 충족했다 하더라도 인간은 그것만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더군다나 경향성들은 웬만한 정도의 체계로 포괄될 수 있기 때문에(KpV,

A129) 인간은 단순히 특정한 경향성들의 충족만으로는 행복에 이르지 못하고 경향

성들의 체계 전체가 유기적으로 조화롭게 충족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경향성은 필요와 욕구충족을 위해 끊임없이 나아갈 수

는 있지만 경향성 스스로 자신을 조절하고 제어할 수 없다. 인간은 동물처럼 본능

적으로 경향성을 자동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 즉 행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향성을

조절하고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의 역할이 요구된다. 여기서 이성은 경향성들을 충족

시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는 행위의 준칙들, 즉 실천 규칙들을

만들어 내는 실천이성이라 할 수 있다.62) 그리고 이 때의 실천이성은 모든 경향성

에서 벗어나 순수한 이성 그 자체로 의지를 규정하는 ‘순수한 실천이성’이 아니라

경향성들의 충족이라는 목적을 고려하는 경험적으로 조건지어진 이성(empirisch

bedingte Vernunft)이 의지를 규정하는 ‘경험적 실천이성’이다.63)

62) “실천적인 것에서 이성은 주관과, 곧 욕구능력과 관계하고, 규칙은 이것의 특수한 성질에 다양하

게 따를 수 있으며”, “실천 규칙은 행위를 의도하는 결과를 위한 수단으로서 지정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항상 이성의 산물이다.”(KpV, A36)

63) 칸트는『실천이성비판』서설에서 이성의 실천적 사용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성이 실천적 사용에

서 의지의 규정 근거로 종사한다고 할 때 “과연 순수한 이성이 그 자신만으로 의지를 규정하기에

충분한가” 아니면 “그것은 단지 경험적으로-조건지어진 이성으로서 의지의 규정 근거일 수 있는

가”라는 물음이 제기된다고 말한다. 칸트는 여기서 자유 개념과 결합된 순수한 이성과 경험적으로

조건지어진[제한된] 이성을 구분한다. 칸트는 자유가 인간 의지에 속하는 성질로서 입증될 수 있

는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면 순수한 이성만이 무조건적으로 실천적일 수 있기 때문에 순수 실천

이성 비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 이성 일반의 비판을 통해 경험적으로 조건지어진 이성이

자기만이 전적으로 의지의 규정 근거를 제공하려고 하는 월권을 방지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

다.(KpV, A29-31참조) 이를 통해 볼 때 의지를 규정하는 근거로서의 실천이성은 순수한 이성이

의지를 규정하는 ‘순수한 실천이성’과 경험적으로 조건지어진 이성이 의지를 규정하는 ‘경험적 실

천이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칸트는 실천 이성 일반의 비판 속에 순수한 실천이성의 정당한 권

리 확보와 경험적 실천이성의 부당한 월권 방지를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경험적 실천이성’이

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칸트가 ‘경험적으로 조건지어진 이성’을 통해 드

러내고자 하는 의미를 ‘경험적 실천이성’이라는 용어가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벡

(Beck)(L. W. Beck, A Commentary of Kant's Critique of Practical Reason(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1960), pp. 75-108 참조)과 맹주만(맹주만,「칸트와 선의지」, 중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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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인간이 경향성에 따라 사는 것은 곧 경험적 실천이성이 행복이라는 목

적을 달성하는 최적의 수단으로서 마련한 실천 규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에 따라 사

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향성의 충족은 언제나 경험적 실천이성과 밀접하게 관

련되지 않을 수 없다.64)

경험적 실천이성은 칸트가 “경향성들을 잘 다스려서 서로 충돌하지 않고 행복이

라고 불리는 전체 안에서 화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영리[함]으로서의 이성

(RGV, B70), “항상 복(Wohl)과 화(Weh)를 고찰하기 위해 필요한” 이성(KpV,

A108), “경향성들의 관심을 돌보게 하는 데 사용하는”(GMS, B26) 이성, “즐거움을

촉진하고 고통을 회피하게 하는”(KpV, A109) 이성이라고 말했을 때의 그 이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경험적 실천이성은 행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수

단을 지시하는 실천규칙을 객관적으로 타당한 명령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통해 의지

를 규정하고자 한다. 이 때의 명령은 행위를 결과의 관점에서만 고려하는 가언적

명령으로서, 임의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 선택에 관련되는 숙련의 명령과 현실적인

목적으로서의 행복을 위한 수단 선택에 관련되는 영리[함]의 명령을 포함한다. 여기

서 숙련은 행복이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수단 선택의 능숙함이라는

점에서 “좁은 의미에서 영리[함]”(GMS, B42)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가

언적 명령이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수단의 선택에 관련되는 명령”(GMS, B43), 즉

영리의 명령으로서의 실천적 훈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감성적 존재자로서 인간은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 즉 행복을 실현시키

기 위해 이성을 통해 다양한 실천규칙들을 세우고, 그것을 자신의 행위 준칙이 따

라야 할 명령으로 간주하게 된다. 여기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일으킨 의지를 규

정하는 근거가 자기 주관 안의 이성이 스스로 수립한 실천규칙의 명령에 있다고 생

각하고, 자신의 행위를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결과로 간주한다. 따라서 감성적 존재

자로서의 인간도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으로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행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외

부로부터의 구속 없이 자신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에

서 ‘자유’를 의식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중앙철학연구소,『철학탐구』제17권, 2005, p.264)도 마찬가지로 각각 ‘empirical practical

reason’과 ‘경험적 실천이성’으로 이해하고 있다.

64) 벡(Beck)은 “경험적 실천이성(empirical practical reason)은 어떤 욕구의 충족(satisfying some

desire)을 위해 행위를 인도하는 데 사용되는 [이성적] 추론능력(reasoning)”으로 정의하면서(L.

W. Beck(1960), 위의 책, p.90), “경험적 실천이성은 언제나 하위 욕구능력의 충족(the satisfaction of

the lower faculty of desire)과 관련된다”(L. W. Beck(1960), 위의 책 p.95)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향성은 하위 욕구능력을 포괄하는 욕구능력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에, 벡의 주장

은 ‘경험적 실천이성은 언제나 하위 욕구능력으로서의 경향성과 관련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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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은 경향성의 충족을 위해 도덕법칙에 알맞은 행위, 즉 의무에 알맞은 행위

[합법적 행위]를 선택하거나, 경향성의 이익을 위해서 도덕법칙에서 예외가 되는 행

위를 선택하는 경우에도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런데 자유를 ‘한 상태를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능력’(KrV, B561)으로 바라볼

때, 인간이 행복의 실현을 위해 자기 주관 안의 이성이 스스로 수립한 실천규칙의

명령에 따라 행위하는 것을 ‘자유로운’ 행위라고 볼 수 있을까? 자기 주관 안의 이

성이 스스로 수립한 실천규칙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

러한 의지에 따른 행위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때의 이성은 경험

적 실천이성으로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실천규칙을

수립한다. 따라서 경험적 실천이성은 실천규칙을 통해 그 자체로 의지를 규정한다

고 볼 수 없고, 언제나 시간적으로 선행하는 자연 근거, 즉 경향성에 의해 제약될

수밖에 없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인간의 의지를 궁극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경

향성이라 할 수 있고, 이성은 이러한 경향성의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부로부터의 구속 없이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

을 선택하는 데서 의식하는 자유는 결국 경향성에 의해 제약된 자유로서, ‘한 상태

를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능력’으로서의 자유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이 지닌 경향성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다시 말해 인간을 감성 세계에 속

한 존재로 전제하는 한에서는, 행복의 실현을 위해 자기 주관 안의 이성이 스스로

수립한 실천규칙의 명령에 따라 행위하는 것은 ‘자유로운’ 행위라고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감성적 존재자로서는 자신의 의지가 결국 시간상 선행하는 경향성에 의

해 규정되고 있음에도, 의지를 규정하는 원인이 행위자의 외부에 있지 않고 행위자

내부의 의지나 욕구에 있다면, 그러한 의지에서 비롯한 행위를 ‘자유롭다’고 주장할

수 있다.65) 칸트는 이러한 자유를 ‘비교적인 자유(komparative Freiheit)’(KpV,

A171, 174) 혹은 ‘심리적 자유(psychologische Freiheit)’(KpV, A173, 174)라고 일컫

고 있는데, 그 의미를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비교적인 자유 개념에 따르면, 규정하는 자연 근거가 활동하는 것의 내부에 있는

그런 것을 종종 자유 활동이라고 일컫는다. 일례로 던져진 물체가 자유 운동할 때 수

65) 인간을 경향성을 지닌 감성적 존재자로 바라본다면 자기 주관 안의 이성, 의지, 욕구에서 비롯한

행위를 자유로운 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의 행

복을 실현하고자 이성이 수립한 실천규칙의 명령에 따라 사는 것을 ‘자유로운 삶’이라 생각하지 않

고 이성의 명령에 따르는 ‘종속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만약 인간이 감

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만 하다면 인간의 자유는 곧 ‘행복이라는 목적 실현을 위한 수단 선택의

자유’를 의미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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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는 것을 들 수 있겠는데, 이런 경우 사람들은 자유라는 말을 쓴다. 그 물체는 날

고 있는 동안은 외부로부터 무엇에 의해서 작동되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또 다른 예로 우리는 시계의 운동을 또한 자유 운동이라고 부른다. 시계는 자기의 바

늘을 스스로 움직이고, 그러므로 시계 바늘은 외부로부터 밀어줄 필요가 없다는 이유

에서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행위들도, 비록 그것들이 시간상 앞서는 그것들

의 규정 근거들에 의해 필연적이라 할지라도, 자유롭다고 부른다. 그것은 내적인, 우

리 자신의 힘들에서 생긴 표상들이고, 이 표상들에 의해 야기하는 상황에 따라서 생

긴 욕구들이고, 그러니까 우리 자신의 임의대로 일으켜진 행위들이라는 이유에서 말

이다.(KpV, A171-172)

칸트는 인간의 행위를 외부적 원인이 아니라 주관 안의 원인에 의해 스스로 발

생한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행위라고 간주하는 것은 물체의 운동과 시계의 운동을

외부적 원인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인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운동으로

간주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관점에서의 자유를 심리적 자유라

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물체나 시계의 자유로운 운동은 이미 시간상 선행하는 자연

법칙에 필연적으로 규정되고 있으며,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도 시간상 선행하는 경

향성이라는 자연법칙에 필연적으로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유는

칸트가 생각하는 ‘한 상태를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능력’으로서의 자유라고 볼 수 없

다.

경향성은 하위 욕구능력으로서 언제나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와 결

합하는데, 바로 이 쾌가 경향성이라는 욕구능력을 궁극적으로 규정하게 된다. 그렇

기 때문에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 즉 행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의지를 규정하는

최종적 근거는 경향성이라는 욕구능력의 대상과 그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경향성의 충족과 관련하여 인간의 주관 안의 이성이 스스로

세운 실천규칙을 통해 의지를 규정한다고 해도, 이 때의 이성은 경향성의 충족이라

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결국 시간상 선행하는 경향성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66) 이것은 “한낱 감성세계의 일부로서 나의 행위들은 전적으로

66) 칸트는 복 또는 화와 관련해서만 선한 것과 악한 것으로 부를 수 있는 경우와 복 또는 화와 무관

하게 그 자체로 선한 것과 악한 것으로 부를 수 있는 경우를 구분하는데(KpV, A109-111), 여기

서 말하고 있는 경향성의 충족과 관련된 행위는 전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이

를 욕구능력의 규정 근거가 의지의 준칙에 선행하는 경우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때

의지는 쾌․불쾌의 객관, 그러니까 즐거움이나 고통을 주는 어떤 것을 전제하고, 전자는 촉진하고

후자는 회피하게 하는 이성의 준칙은 행위들이 우리의 경향성과 관련하여, 그러니까 오직 간접적

으로(따로 있는 목적을 고려하여, 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선한 방식으로 행위들을 규정한다.

이 경우 이 준칙들은 결코 법칙들이라고 일컬을 수는 없고, 이성적인 실천적 훈계들이라고 일컬을

수는 있다.”(KpV, A109) 따라서 의지의 준칙에 선행하는 실천규칙이 이성에 의해 수립되더라도

그러한 이성의 실천규칙은 결국 복과 화에 의해 제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의 이성은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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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Begierde)들과 경향성들의 자연법칙에, 그러니까 자연의 타율에 알맞게 취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GMS, B110-111)라고 말하면서 경향성에 따르는 행위를 곧

자연법칙에 의해 지배받는 타율적 행위로 이해하는 칸트의 관점에서 볼 때 자연스

럽게 수용될 수 있는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경향성이라는 자연법칙에 지배받고

있으면서도 의지를 규정하는 근거가 주관 안에서 비롯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행

위가 자유롭다는 비교적인 자유, 즉 심리적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가련한[궁색한]

미봉책(ein elender Behelf)’(KpV, A172)일 뿐이라고 말한다. 의지를 규정하는 근거

가 주관 안에 있는지 또는 주관 밖에 있는지 그리고 주관 안의 본능적인 것에 있는

지 또는 이성적인 것에 있는지는 자유에 대한 물음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

다.67)(KpV, A172 참고)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의지가 시간상 선행하는 자연적

근거, 즉 경향성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면, 그 행위는 비록 심리적으로 자유로운 행

위일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자연법칙의 필연성에 지배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

리적 자유를 통해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은 자신이 자연의 인과 필연성에 지배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행위는 내 주관 안의 근거에서 비롯한 주

체적인 행위, 즉 자유로운 행위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심리적 자유는 결국에

는 시간상 선행하는 경향성의 대상과 이와 결합한 쾌에 의해 제약될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 심리적 자유의 관점에서 의지의 규정근거는 시간상 선행하는 자연적 근

거들에 연쇄적으로 제약되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다른 원인

으로 전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칸트는 이러한 심리적 자유라는 개

념이 ‘자연 필연성과 자유의 조화로운 통일’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만족스러

운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본다.68)(KpV, A171-172참조) 그래서 칸트는 모든 경

성의 충족이라는 목적을 위해 복과 화를 고려하여 행위를 규정하는 실천규칙을 수립하는 경험적

실천이성이라고 할 수 있다.

67) 칸트의 관점에서 볼 때 경향성을 규정하는 표상들이 그 근원을 본능에 두고 있는가 아니면 이성

에 두고 있는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표상들이 결국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와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되는 표상들은 결국

경향성의 대상과 그와 결합된 쾌에 의해 제약된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찌하여 다른 경우에는 명민한 인사들이, 쾌의 감정과 결합되어 있는 표

상들이 그 근원을 감관들에 갖느냐, 또는 지성에 갖느냐 하는 점에서 하위 욕구능력과 상위 욕구

능력의 구별을 발견한다고 믿을 수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대상의 표상들은 종류가 서

로 다를 수가 있다. 그것들은 감관의 표상들과는 다른 지성의 표상일 수도 있고, 이성의 표상일 수

조차 있다. 그럼에도 그로 인하여 저 표상들이 본래적으로 오직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되는 쾌의 감

정은, 그것이 언제나 단지 경험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한가지 종류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욕구능력에서 표현되는 동일한 생명력을 촉발하고, 이런 점에서 다른 모든 규정 근거와 오

직 정도상으로만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또한 매한가지 종류이다.”(KpV, A41-42)

68) 자유를 심리적으로 고찰하는 것에 대한 칸트의 불만족은 다음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유 개념에 대해서는 놀라운 마음으로 다음의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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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적인 것과 자연 일반으로부터의 독립성, 다시 말해 자연법칙에 따르는 시간상의

모든 인과 필연성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의미하는 자유를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초월적 자유(transzendentale Freiheit)’(KpV, A173)이다. 칸트는 초월적 자유를 ‘본

래적 의미의 자유’, ‘유일하게 선험적으로 실천적인 자유’, ‘도덕 법칙을 가능하게 하

는 자유’, ‘도덕 법칙에 따른 도덕적 책임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라고 말하면서

(KpV, A173) 심리적 자유와 분명하게 구분한다. 이러한 칸트의 관점은 앞에서 언

급한 것처럼 인간을 이중적인 존재, 즉 감성적이면서도 예지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칸트는 초월적 자유를 통해 인간이 단순히 자연법칙의

인과 필연성에만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모든 감성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유의 법칙,

즉 도덕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다. 칸트의 관점에서 심리적 자유는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전제하는 한에서

만 주장할 수 있는 궁색한 변명일 뿐 진정한 자유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우리의 의지 자유가 다름 아니라 후자 같은 것(초월적인, 그러니까 곧 절대

적 자유가 아니라, 가령 심리적인 비교적인 자유)이라면,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고기

굽는 자전[自轉] 기구의 자유보다 나을 게 없을 것이다. 이런 기구도 한번 태엽만 감

아주면 스스로 자기 운동을 한다.(KpV, A174)

심리적 자유에 대한 칸트의 이러한 관점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경향성의 조절과

제어를 통해 누리는 심리적 자유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맞닿아 있

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인간이 한편으로는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

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라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감성적 존재자로서 모든 경향성의 충족인 행복을 추구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음을

느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경향성들로부터 벗어나기를 소망하는 존재이

기도 하다. 칸트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자로서 경향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소망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향성들의 모든 대상은 단지 조건적인 가치만을 갖는다. 왜냐하면 만약 경향성

및 그에 기초한 필요들이 없다면, 그것들의 대상은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 경향성들 자신은 필요의 원천들로서, 그 자체를 소망할 만한 절대적 가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 개념[자유의 개념-연구자 삽입]을 한낱 심리학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이

개념을 충분히 잘 통찰할 수 있고, 그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는 사실 말이다.”(KpV,

A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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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를 갖지 못한 것으로, 오히려 그러한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 그것이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보편적 소망이어야 하는 것이다.(GMS, B65)

경향성들의 모든 대상은 단지 조건적인 가치만을 갖는다는 것은 칸트가 “보편적

인 인간의 경향성 및 필요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시장가격을 갖는다.”(GMS,

B77)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인간이 경향성의 대상을 시장가격을 갖는 조건적

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하고자 하고, 경향성의 충족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

는 그러한 경향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를 소망하는 것에서, 우리는 인간을 감

성 세계에 속한 존재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우리에

게 인간을 또 다른 관점으로, 즉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

다. 이 때 예지 세계에 속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연 법칙으로부터 독립적인 순

수한 실천이성에 기초한 도덕 법칙 아래에 있는 인간이고, 자신의 의지의 원인성을

초월적 자유의 이념 아래서 생각하는 인간이다.(GMS, B109 참조) 따라서 우리는

이제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지닌 핵심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도덕 법칙’과

‘초월적 자유’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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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

(1)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는 존재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감성 세계에 속해 있는 한에서는 자연 법칙에 따르는 존

재이지만 예지 세계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는 자연 법칙으로부터 전적으로 벗어나

순수 이성에 기초한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는 존재이다.69) 자연 법칙이 감성 세계

를 지배하는 운영 원리라면 도덕 법칙은 예지 세계를 지배하는 운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덕 법칙은 예지 세계에 속한 인간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덕 법칙이란 무엇인가? 도덕 법칙은 순수 실천 이성에 의해 수립된

예지 세계에서의 일정한 인과성의 법칙으로서(KpV, A85 참조), 순수 실천 이성의

원칙으로 표현될 수 있다. 칸트는 순수 실천 이성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KpV, A54)

순수 실천 이성의 원칙으로서의 도덕 법칙은 다름 아닌 ‘행위 일반의 보편적 합

법칙성’(GMS, B17) 즉, ‘준칙의 보편적 합법칙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도덕 법칙에

따른다는 것은 곧 준칙의 보편적 합법칙성을 의지를 규정하는 형식적 원리로 삼아

행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도덕 법칙이 준칙의 질료가 아니라 준칙의 형식

과만 관련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준칙의 질료는 의지의 대상과 결합되어

있는 쾌와 관련되기 때문에 만약 이것이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된다면, 이 때의 준칙

은 경험적 조건에 종속하는 행위의 주관적 원리로서의 실천 규칙일 뿐 행위의 객관

69) 도덕 법칙에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따를 수 있는 존재’로 표현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

간이 예지 세계에만 속하는 존재, 즉 완전한 이성적 존재자이기만 하다면 ‘도덕 법칙에 따르는 존

재’라는 표현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감성 세계에도 속하는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

이기 때문에 의지가 항상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예지 세계에 속하는

이성적 존재자로서 도덕 법칙의 표상에 따라 의지를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예지적 존재

자로서 자연 법칙으로부터 벗어나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는 존재’일 수 있고, 이 때 인간은 일체

의 감성적 경향성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이 때의 자유는 법칙 수립적 의지를 전

제한다는 점에서 ‘자율’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한편 도덕 법칙에 따름으로써 생각하게 되는 자유

는 예지 세계 뿐만 아니라 감성 세계에도 속한 존재자인 인간에게는 당위의 명령, 다시 말해 의무

로서 다가온다. 왜냐하면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자로서 인간의 의지는 도덕 법칙에 의해서만 충분

히 규정되지 않고 다양한 감성적인 주관적 근거들에 의해서도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다’라는 언명 속에는 인간은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의무의식으

로부터’ 행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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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원리로서의 도덕 법칙은 될 수 없다. 도덕 법칙은 다만 준칙의 형식이 보편적

법칙 수립에 적합한가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의지를 규정할 것을 명령하는 행위의

객관적 실천 원리라고 할 수 있다.70) 달리 표현하면 어떤 행위의 준칙이 한 개인에

게 뿐만 아니라 이성적인 존재 모두에게 타당한 보편 법칙으로 수용될 수 있는 적

합성을 가지고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도덕 법칙에 도달할 수 있다.71) 칸트

는 “준칙들이 보편적 법칙 수립에 적합하게 되는 그 순전한 형식이 준칙들을 그것

만으로 실천 법칙으로 만든다”(KpV, A49)고 말한다. 그러므로 도덕 법칙에 따르는

행위는 준칙의 법칙 수립적 형식에 의해 규정된 의지에 따르는 행위라고 할 수 있

다. 그래서 도덕 법칙은 행위의 목적, 의도, 결과 등을 고려하는 모든 질료적인 실

천 원리를 전적으로 배제하고 오로지 준칙의 보편적 합법칙성이라는 선험적이고 형

식적인 실천 원리만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다.

이제 도덕 법칙은 ‘보편적 법칙 수립에 적합한 준칙의 형식에 따라서만 행위하

라’는 객관적인 실천 규칙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도덕 법칙은 자기 행위의

주관적 원리인 준칙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이성적 존재자에게 타당한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객관적 원리인 법칙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형식적 원리로서, 준칙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할 때 도덕 법칙을

떠올리면서 도덕 법칙에 부합하는 준칙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다면, 그러한 준

칙에 따른 행위는 도덕적 가치를 지닌 행위라고 일컬을 수 있다. 칸트가 “법칙의

표상72) 자체만이 우리가 도덕적[윤리적]이라고 부르는 탁월한 선을 이룰 수 있

70) 칸트는 평범한 지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이러한 ‘준칙의 보편적 합법칙성’을 도덕 법칙으로

여기고 이에 따라 준칙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준칙에서 어떠한 형식이 보편적 법칙 수립에

적합하고, 어떠한 형식이 적합하지 않은가를 상식을 가진 사람은 배우지 않고서도 구별할 줄 안

다.”(KpV, A49)

71) 강영안,『도덕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칸트의 도덕철학』(서울: 소나무, 2002), p.44.

72) ‘법칙의 표상에 따라’와 ‘법칙에 따라’는 의미상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도덕 법칙이

이성을 통해 ‘스스로 세운’ 것이라는 점에서 법칙 수립적 이성의 ‘자율’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분

명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법칙의 표상에 따라’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표상’은 일

상 언어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는 용어로서 쉽게 그 의미가 다가오지는 않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을 앞에 떠올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박찬구,『칸트의 도덕형이상학 정초 읽기』

(서울: 세창미디어, 2014), pp.57-58)으로 해석한다면 ‘표상’이라는 용어 속에 담겨 있는 칸트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칸트는 자연의 사물은 모두 ‘법칙들에 따라’ 작용

하지만,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만이 ‘법칙의 표상에 따라’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

하고 있기 때문에(GMS, B36 참조) ‘법칙에 따라’와 ‘법칙의 표상에 따라’는 중요한 의미의 차이를

지니고 있음에 분명하다. 따라서 ‘도덕 법칙에 따라서’라는 표현보다 ‘도덕 법칙의 표상에 따라서’

가 칸트의 관점에서 보다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칸트는 ‘도덕 법칙’을 언제나 의지의

자유와 자율이 전제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덕 법칙에 따라서’라는 표현도 동일한 의

미로 사용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이런 관점에서 연구자는 앞으로 글의 흐름에 따라 ‘도덕 법칙에 따

라서’와 ‘도덕 법칙의 표상에 따라서’를 혼용할 수도 있지만 그 의미는 동일하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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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GMS, B16)고 말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덕 법칙의 표상에

따르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이고, 이는 결국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

지로부터 비롯한 행위인 것이다. 칸트는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만이 법칙의 표상에

따라, 다시 말해 원리들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인 의지를 가지고 있다.”(GMS, B36)

고 말한다.73) 그렇다면 도덕 법칙의 표상에 따라 행위하려는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

는 도덕적으로 선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칸트가 “최고의 무조건적인 선은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서만 마주칠 수 있는 것”(GMS, B15)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칸트는 결과에 대한 일체의 고려 없이 도덕 법칙의 표상

이 규정하는 의지만이 절대적이고 무제한적으로 선한 의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

다.

의지를 단적으로 그리고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일컬을 수 있기 위해서는, 법

칙의 표상이, 그로부터 기대되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서도 의지를 규정해야만 한

다.(GMS, B17)

칸트의 이 표현을 좀 더 분석적으로 접근해 보면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단적으로 그리고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미 칸트가『윤리형이상학 정초』의 서두에서 “이 세계에서 또

는 도대체가 이 세계 밖에서까지라도 아무런 제한 없이 선하다고 생각될 수 있을

것”(GMS, B1)이라고 언급한 ‘선의지’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칸트의 표현은

‘의지를 선의지라고 일컬을 수 있기 위해서는 도덕 법칙의 표상이 의지를 규정해야

한다’로 다시 이해할 수 있고, 여기서 우리는 도덕 법칙이 선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

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칸트에게 선의지의 ‘선’을 규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도덕 법칙이며, 이런 관점에서 선의지란 결국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

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74) 이처럼 선의 개념이 도덕 법칙에 앞서 있는 것이 아

니라 도덕 법칙이 선의 개념에 앞선다는 것은 칸트 윤리학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73) 다른 곳에서도 칸트는 의지를 “어떤 법칙의 표상에 맞게 행위하게끔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능력”

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능력은 오직 이성적 존재자들에게서만 만날 수 있다고 본다.(GMS, B63)

74) 도덕 법칙의 표상에 따르는 행위, 즉 도덕 법칙에 따르는 행위는 곧 선의지에 따르는 행위이다.

칸트는 앞서 선의지를 “그것이 생기게 하는 것이나 성취한 것으로 말미암아, 또 어떤 세워진 목적

달성에 쓸모 있음으로 말미암아 선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의욕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선한 것”(GMS, B3)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칸트는 선의지가 ‘그 자체로 선한 것’일

수 있는 것은 선의지를 통해 기대되는 결과나 성취할 수 있는 목적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 의

욕함’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과연 선의지를 ‘그 자체로 선한 것’으로 만드는 ‘오로지 그

의욕함’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도덕 법칙에 따르는 것을 의욕함’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칸트

의 관점에서 도덕 법칙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을 규정하는 근거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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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데, 이는 선의 의미가 도덕 법칙에 의해서, 도덕 법칙을 통해서만 규정된다

는 것을 의미한다.75) 이에 대해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악의 개념은 도덕 법칙에 앞서서가 아니라, (얼핏 보면 심지어 이 개념이 도덕

법칙의 기초에 놓여야 할 법하지만), 오히려 (여기서 보이는 바대로) 도덕 법칙에[의]

따라서[뒤에] 그리고 도덕 법칙에 의해서 규정될 수밖에 없다.(KpV, A110)

도덕 법칙이란 선․악 판단의 기준이 되는 법칙으로, 만일 도덕 법칙이 없다면

선․악의 개념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76) 칸트는 선악의 개념이 선행하는 도덕 법

칙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천 이성 비판에서의 방법의 역설’이라고

일컬으며(KpV, A110), 이를 매우 강조한다. 칸트는 도덕 법칙이 선행하는 선의 개

념으로부터 도출될 경우 다음과 같은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1] 선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의지의 법칙들을 도출하려 한다고 가정한다면

[2] (선한 것으로서의) 한 대상에 대한 선의 개념이 동시에 이 개념을 의지의 유

일한 규정 근거로 제시할 것이다.

[3] 그런데 선의 개념은 어떠한 선험적인 실천 법칙도 기준으로 갖고 있지 않으

므로, 선 또는 악의 시금석[기준]은 다름 아니라 그 대상과 우리의 쾌 또는

불쾌의 감정들과의 합치에 두어질 수 있을 뿐일 것이다.

[4] 그리고 이성의 사용은 단지, 부분적으로는 이 쾌 또는 불쾌를 나의 현존의

모든 감각들의 전체 연관에서 규정하는 점에, 또 부분적으로는 쾌 불쾌의 대

상을 나에게 만들어주는 수단들을 규정하는 점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

[5] 무릇 무엇이 쾌감에 적합한 것인가는 오로지 경험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6] 이 말대로라면 실천 법칙은 쾌감을 조건으로, 쾌감 위에 정초되어야 할 것이

므로 선험적 실천 법칙의 가능성은 곧바로 배제될 것이다.

[7] 왜냐하면 사람들은 먼저, 선한 것으로 그것에 대한 개념이 의지의 보편적인-

경험적이기는 하더라도- 규정 근거를 형성해야만 할, 의지를 위한 어떤 대상

을 발견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니 말이다.

(KpV, A111 정리)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선의 개념으로부터 의지의 법칙을 도출해 내고자 한다면,

선의 개념은 필연적으로 경험적인 쾌의 감정과 결합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러한

75) 박찬구,『개념과 주제로 본 우리들의 윤리학』(경기: 서광사, 2006), p.121.

76) 박찬구,「칸트의 인격론」, 진교훈 외,『인격』(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7),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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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개념에 근거한 실천 법칙은 주관적으로 타당한 경험적 실천 법칙은 될 수 있

을지라도 보편적으로 타당한 선험적 실천 법칙, 즉 도덕 법칙이 될 수는 없다. 그리

고 이렇게 선험적인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의 도덕 법칙이 없다면, 의지는 결국 순

전히 경험적인 규정 근거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

람들은 자연스럽게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 선의 최상 개념을 제공하는 쾌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선의 개념에서 도덕 법칙을 도출해 내는

방법은 욕구능력의 대상과 결합된 경험적인 쾌의 감정만이 의지의 유일한 규정 근

거라는 사실과 선험적인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의 도덕 법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하지만 칸트가 보기에 이것은 도덕의 최상 원리를 탐구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칸트는 이러한 방법으로 도덕의 최상 원리를 탐구한 많은

철학자들이 선의 최상 개념을 제공하는 쾌의 대상의 자리에 행복, 완전성, 도덕 감

정, 신의 의지를 두고 이에 근거하여 도출한 도덕 법칙을 타율적 원칙으로 간주하

면서 강하게 비판한다.(KpV, A112-113 참조) 선의 개념에 근거한 도덕 법칙이 언

제나 타율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근원적으로 선의 개념이 욕구능력의 대상에 결합

되는 경험적인 쾌의 감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적 도덕 법칙은 언제나

그 자체로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되지 못하고, 선의 개념에 부합하여 쾌의 감정을 불

러일으키는 대상을 통해서만 의지의 규정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탐구 방법으로는 선험적으로 의지를 규정할 수 있는 순수한 실천 법칙,

즉 도덕 법칙의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리고 도덕 법칙의 가능

성이 부정된다면 선의 개념은 결국 의지의 대상과 결부된 쾌의 감정에 의존하게 되

어, 일체의 선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수단적인 선으로 귀결될 뿐, 그 자체로 무제한

적인 선은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이성의 사용과 관련해서도 쾌를 기대할 수 있는

욕구 능력의 대상을 실현하기 위해 최적의 수단을 제공하는 경험적 실천 이성의 사

용만을 생각할 수 있을 뿐, 욕구 능력의 대상을 일체 고려하지 않고 도덕 법칙 그

자체를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으려는 순수한 실천 이성의 사용은 생각할 수 없다.

칸트는 선의 개념에서 도덕 법칙을 도출하려는 모든 탐구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

게 된다고 보고 이를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근원적으로 칸트가 이해한 인간의 특성에서 비롯한다. 인간은 한

편으로 선의 개념을 쾌를 산출하는 대상과 관련한 상대적이고 수단적인 선으로 이

해하면서, 이성을 쾌를 산출하는 대상의 실현을 위해 최적의 실천 규칙을 제공하는

경험적 실천 이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선의 개념

을 쾌를 산출하는 대상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선한 것, 다시 말해 절대적이고 무

제한적인 선으로 이해하면서, 이성을 일체의 감성적인 대상으로부터 벗어나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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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칙을 통해 그 자체로 선한 것을 행하도록 하는 순수한 실천 이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이 ‘선’의 개념을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확

인할 수 있다. 하나는 욕구 능력의 대상과 쾌와 관계하는 선이고, 다른 하나는 욕구

능력의 대상과 쾌와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순수 실천 이성이 도덕 법칙을 통해 규정

한 그 자체로 선한 것과 관계하는 선이다. 칸트는 이미 사람들이 선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통해 선의 개념을 모호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선의 개념으

로 통칭하여 사용해 온 ‘보눔bonum’이라는 라틴어 용어를 독일어 ‘선das Gute’과

‘복Wohl’으로, 아울러 악의 개념으로 통칭하여 사용해 온 ‘말룸malum’을 ‘악das

Böse’과 ‘해악Übel(또는 화Weh)’으로 구분한다.77)(KpV, A103-106 참조) 칸트의 이

러한 구분에 따르면 욕구 능력의 대상과 쾌와 관계하는 선은 사실상 ‘복’에 해당하

며, 그 자체로 선한 것과 관계하는 선이야말로 도덕적 선이라 부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우리의 행위에서 행위의 선·악을 고찰하

는 것과 행위의 복·화를 고찰하는 것은 두 가지 전혀 별개의 판정 문제로서(KpV,

A105), 인간이 복과 화를 고찰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선과 악을 고찰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존재라고 바라본다.

인간은 그러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이미 그에게 갖춰져 있는 자연 장치에 따라서,

항상 복과 화를 고찰하기 위해 이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넘어서 보

다 높은 직분을 위해 이성을 갖는다. 곧,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에 관해서는

순수한, 감성적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성만이 판단을 내릴 수 있다.-을 함께

고려에 넣을 뿐만 아니라, 이런 평가를 저런 고찰(복과 화에 관한 고찰)과 완전히 구

별하고 이걸 후자(복과 화에 관한 고찰)의 최상 조건으로 삼기 위해서 말이다.(KpV,

A108-109)

칸트의 관점에서 도덕의 최상 원리에 대한 탐구에서 ‘선의 개념에서 도덕 법칙을

도출하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모든 선은 복과 관련해서만 규정될 수 있게 되어 ‘그

자체로 선한 것’에 대한 개념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자체로 선한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선의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도덕 법칙을

통해 의지를 규정하는 순수 실천 이성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칸트

77) 칸트는 ‘복과 화’ 그리고 ‘선과 악’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복이나 화는 언제나 유쾌함이나 불

쾌함, 곧 즐거움과 괴로움의 상태에 대한 관계만을 의미한다.……그러나 선이나 악은 항상, 의지가

이성 법칙에 의해 어떤 것을 그의 객관으로 삼게끔 규정되는 한에서의 이 의지와의 관계를 의미한

다.”(KpV, A105)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복과 화는 욕구 능력의 대상과 결합된 쾌·불쾌의 감정에

의해 규정된 의지와 관계하고, 선과 악은 순수 실천 이성이 도덕 법칙을 통해 직접적으로 규정하

는 의지와 관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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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도덕성에 대한 이러한 탐구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칸트는 ‘그

자체로 선한 것’, ‘단적으로 선한 것’, ‘도덕적으로 선한 것’으로서의 선 개념의 가능

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덕 법칙으로부터 선의 개념을 도출하는’ 방법론적 전환을 다

음과 같이 강조한다.

사람들은 이미 선악의 개념에 따라 대상을 모든 실천 법칙의 기초에 두었고, 대

상은 선행하는 법칙 없이 단지 경험적 개념들에 따라 생각될 수 있었으므로, 사람들

은 순수 실천 법칙을 생각만이라도 할 가능성을 이미 미리 빼앗겼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은, 만약 그들이 후자[실천 법칙]을 먼저 분석적으로 천착했더라면, 대상으로서

의 선의 개념이 도덕 법칙을 규정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도

덕 법칙이 비로소 선의 개념을, 도덕 법칙이 이런 명칭을 단적으로 가질 만한 한에서,

규정하고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KpV, A112)

칸트는 도덕 법칙으로부터 선의 개념을 도출하는 방법론적 전환을 통해 인간이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선,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선한 것’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

을 수 있는 가능성을 생겨나게 한다.78) 이 때의 의지는 도덕 법칙의 표상에 따라

‘그 자체로 선한 것’을 행하는 능력, 즉 “이성이 경향성에 독립해서 실천적으로 필연

적인 것이라고, 다시 말해 선하다고 인식하는 것만을 선택하는 능력”(GMS,

B36-37)이다. 따라서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선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아 행위하

는 것,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에 따라 행위하는 것, 도덕 법칙의 표상에 따

라 행위하는 것, 선의지에 따라 행위하는 것은 모두 동일하게 도덕적 행위를 가리

키는 서로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칸트는 인간을 선의 개념을 규정하는 도덕 법칙의 표상에 따라 행위하려는 의지,

즉 선의지를 지닌 존재로 바라본다. 그런데 그러한 도덕 법칙이 있다는 것을 우리

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도덕 법칙이 우리의 의지를 규정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칸트가 도덕 법칙을 예지 세계를 지배하는 인과성

의 법칙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도덕 법칙이 있다는 것과 도덕 법칙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경험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을 충분

78) 여기서의 의지는 이성적 존재자가 [도덕] 법칙의 표상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을 의미하고, 법칙들

로부터 행위들을 이끌어내는 데는 이성이 요구되므로, 의지는 실천 이성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

다.(GMS, B36) 따라서 여기서의 의지는 실천 이성이 도덕 법칙을 통해 규정하는 의지라고 할 수

있고, 의지의 대상이란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선, 즉 ‘그 자체로 선한 것’으로서의 선을 의미하

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칸트가 “실천 이성의 유일한 객관들은, 그러므로 선·악의 객관들뿐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욕구 능력의 필연적 대상을 뜻하고, 후자는 혐오 능력의 필연적 대상을 뜻하되,

양자 모두 이성의 원리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KpV, A101)라고 말한 것과 자연스럽게 합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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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 법칙이 있다는 것과 도덕 법칙이 어떻

게 가능한가에 대한 연역, 즉 정당화 근거를 제시하는 작업을 통해 위의 물음에 답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물음의 이면에는 도덕 법칙을 심리적

기제로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가상이나 환상으로 간주하려는 의도가 자리하고 있

기 때문이다. 칸트의 도덕 철학은 도덕 법칙의 현실성에서 출발하여 그와 같은 도

덕 법칙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준다는 점79)을 감안해 볼 때, ‘도덕 법칙이 있다

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정당한 해명을 제시하는 것, 다시 말해

도덕 법칙의 객관적 실재성을 연역해 내는 것은 칸트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오

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덕 법칙에 대한 경험적 증명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도덕

법칙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칸트의 대답은 무엇일

까? 칸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핵심적인 대답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도덕 법칙은 흡사, 우리가 선험적으로 의식하고, 그리고 명증적으로 확실한, 순수

이성의 사실(ein Faktum der reinen Vernunft)처럼 주어져 있다. 설령 우리가 경험에

서 그것이 정확하게 준수되는 실례를 찾아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도덕 법칙의 객관적 실재성은 어떠한 연역에 의해서도, 어떠한 이론적, 사변적 혹은

경험적으로 뒷받침된 이성의 노력에 의해서도 증명될 수가 없고,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것의 명증적 확실성을 포기하고자 한다 할지라도, 어떠한 경험에 의해서도 확인될

수가 없고, 그래서 후험적으로 증명될 수가 없으며, 그럼에도 그 자체로 확고하다.

(KpV, A81-82)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칸트는 도덕 법칙이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주어져 있고,

그것은 선험적으로 의식될 수 있으며 명증적으로 확실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도덕 법칙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도덕 법칙의 객관적 실재성은 어떠한 이론적·경

험적 노력에 의해서도 증명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도덕 법칙의 명증적 확실성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그것을 포기하려 해도, 도덕 법칙의 불확실성은 어떠한

경험적 근거에 의해서도 증명될 수 없다. 그러므로 칸트의 관점에서 도덕 법칙의

객관적 실재성을 경험적 증명을 통해 긍정하거나 부정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80)

칸트에 따르면 도덕 법칙은 ‘경험으로서의 사실’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 이성

79) 강영안(2002), 앞의 책, p.37.

80) 칸트는 도덕 법칙을 경험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강하게 경계한다. “자연

의 고찰에서 경험은 우리에게 규칙을 제공해 주고 진리의 원천이지만, 도덕 법칙과 관련해서 경험

은 (유감스럽게도!) 가상의 어머니이니 말이다. 내가 행해야만 할 것에 대한 법칙들을 행해진 것에

서 끄집어내거나 그걸 가지고 제한하려 하는 것은 가장 배격해야 할 일이다.(KrV, B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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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실’로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 법칙은 비록 경험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함에

도 불구하고 도덕 법칙의 명증적 확실성은 그 자체로 확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이다. 따라서 도덕 법칙의 객관적 실재성과 관련하여 칸트가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

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도덕 법칙은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주어져 있다.

둘째, 도덕 법칙이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주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선험적으로

의식한다.

셋째, 도덕 법칙은 경험적·[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명증적 확실성을 지니고 있다.

도덕 법칙에 대한 이 세 가지 관점은 칸트의 다른 표현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

해 볼 수 있다.

이 근본 법칙[도덕 법칙-연구자 삽입]에 대한 의식을 우리는 이성의 사실(ein

Faktum der Vernunft)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근본 법칙을 이성의

선행하는 자료로부터, 예컨대 자유의 의식- 이것은 우리에게 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

니니까-으로부터 추론적으로 도출해 낼 수 없고, 오히려 그것이 그 자체로서, 순수하

든 경험적이든 어떠한 직관에도 의거하는 바 없는 선험적 종합 명제로 우리에게 닥쳐

오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이 법칙을 주어진 것으로 오해 없이 보기 위해서는 우

리는 그것이 경험적 사실이 아니라, 이 법칙을 통해 자신이 근원적으로 법칙 수립적

임- 내가 의욕하는 바를 나는 명령한다.-을 고지하는 순수 이성의 유일한 사실임을

명심해야 한다.(KpV, A55-56)

위의 인용문을 앞에서 언급한 도덕 법칙과 관련한 세 가지 핵심 내용과 연결시

켜서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덕] 법칙을 주어진 것으로 오해 없이 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것이 경

험적 사실이 아니라, 이 [도덕] 법칙을 통해 자신이 근원적으로 법칙 수립적임을 알

려주는 순수 이성의 유일한 사실임을 명심해야 한다.81)

81) 도덕 법칙을 ‘주어진 것’으로 표현하는 것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도덕 법칙에 대한 인간의 수동성

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칸트는 도덕 법칙

을 ‘주어진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인간의 법칙 수립적 이성에 의해 ‘산출된 것’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도덕 법칙은 결코 타율적인 것이 아니며, 언제나 순수 실천 이성의 자율에 근거하는 것으

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만 도덕 법칙을 감성적 존재자의 관점에서 접근하느냐, 아니면 예지적 존

재자의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도덕 법칙은 상이하게 이해될 수 있다.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에게 도덕 법칙은 무조건적 명령으로서 ‘부과되는 것’,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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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도덕 법칙에 대한 의식을 우리는 [순수] 이성의 사실(ein Faktum der

Vernunft)이라고 부를 수 있다.

셋째, 우리는 도덕 법칙을 이성의 선행하는 자료로부터 추론적으로 도출해 낼 수

없고, 오히려 그것이 그 자체로서, 순수하든 경험적이든 어떠한 직관에도 의거하는

바 없는 선험적 종합 명제82)로 우리에게 닥쳐온다.

도덕 법칙에 대한 의식을 ‘이성의 사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순수 이성의 사실’

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순수 이성의 사실이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선험적인 것이

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결국 ‘도덕 법칙을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선험적으로 의식

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도덕 법칙이 그 어떠한 개

념적 추론이나 경험적 직관에 의존하지 않고 선험적 종합 명제 그 자체로서 우리에

게 닥쳐온다는 것은, 선험적 종합 명제를 명증적 확실성을 지닌 무조건적 정언 명

령이 우리의 의지에 부과되는 것으로 이해할 때, ‘도덕 법칙은 경험적·[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명증적 확실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동

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결국 도덕 법칙에 대한 칸트의 설명은

이 세 가지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위의 두 인용문

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칸트가 도덕 법칙 그 자체와 도덕 법칙의 의식을 모두 ‘순

수 이성의 사실’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과 ‘순수 이성의 사실’을 경험적 사실이 아니

라 선험적이며 명증적으로 확실한 사실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도덕

법칙의 객관적 실재성 연역의 핵심은 ‘순수 이성의 사실’이라는 표현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칸트가 도덕 법칙을 ‘순수 이성의 사실’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말하고자

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에게 도덕 법칙은 순수 실천 이성에 의해 수립된 것으로 생각하며, 도덕

법칙을 ‘능동적으로 따라야 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강지영은 ‘이성의 사실’에는 순수 이성의

능동적 계기와 ‘의식’의 수동성이라는 이중의 측면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인간의 이중적 특성

과 연결시켜 이해하고자 한다. “‘이성의 사실’이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에게 문제된다는 것

이 이 질문에 대답할 단초를 준다. 감성적으로 촉발될 수 있는 존재자라는 점에서 인간에게 순수

이성의 명령은 외부에서 닥쳐온 것으로 경험된다. 그러나 이성적인 존재자로서 인간은 순수이성의

규범적 힘을 인지하며, 그 규범에 비춰 어떤 행위가 좋은 이유를 가지는 것임을 깨달으면 행위자

는 그렇게 행동하도록 동기화된다. 만약 인간이 완벽하게 이성적인 존재자였더라면 도덕법칙의 규

범성은 결코 ‘주어지는’ 것으로 경험되지 않을 것이다.”(강지영,「정언명령의 객관적 실재성 증명-

칸트의 “이성의 사실”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철학연구』제51집, 2015, p.47)

82) “이 정언적 당위는 선험적 종합 명제를 표상하는 것인바, 왜 그런가 하면, 감성적 욕구들에 의

해 촉발되는 나의 의지 위에 동일하지만, 예지세계에 속하는, 순수한, 그것 자체로 실천적인 의지

의 이념이 덧붙여지고, 이 의지는 저 의지가 이성에 따르는 최상의 조건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

다. 이런 사정은, 감성세계에 대한 직관들에, 그것 자체로는 법칙적 형식 일반 외에는 아무것도 의

미하지 않는, 지성의 개념들이 덧붙여지고, 그럼으로써 그것에 자연에 대한 모든 인식이 의거하는

선험적 종합 명제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대체로 같다.”(GMS, B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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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은 무엇일까? 칸트는 분명히 도덕 법칙은 경험적 사실(empirische Faktum)

이 아니고, 이성의 선행하는 자료로부터 개념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순수한 직관이든 경험적 직관이든 어떠한 직관에도 근거하지 않는 ‘순수 이성의 사

실’로서 ‘주어지고’, ‘닥쳐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사실

(Faktum)’의 의미를 경험적 직관에 근거한 ‘사실’ 이상의 의미로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칸트가 생각한 ‘사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

마리를『판단력 비판』의 마지막 항 §91에서 발견할 수 있다.(KU , B456) 칸트는 여

기서 ‘사실(res facti)’로 간주할 수 있는 대상들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1] 그 객관적 실재성이 (순수 이성에 의해서든 경험에 의해서든, 그리고 전자의

경우에는 순수 이성의 이론적 자료에 의해서든 실천적 자료에 의해서든, 그

러나 어떤 경우에든 그것들에 대응하는 직관을 매개로) 증명될 수 있는 개념

들의 대상들은 사실들이다.

[2] 더 나아가, (자기의 경험이든 증언을 매개로 한 타자의 경험이든) 경험에 의

해 밝혀질 수 있는 사물들이나 사물의 속성들 또한 마찬가지로 사실들이다.

[3] 그러나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은, 심지어 (그 자체로는 직관에서 현시될 수 없

는, 그러니까 그 가능성이 이론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어떤 이성이념마저

사실들 중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 이념으로, 이 이념의

실재성은 하나의 특수한 종류의 원인성-이론적으로 고찰하면 이 개념은 초

절적이겠다-으로서, 순수 이성의 실천적 법칙에 의해 그리고 이 법칙들에 준

거해서 현실적인 행위들에서, 그러니까 경험에서 밝혀진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도덕 법칙은 그 객관적 실재성이 직관을 매개로 증명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에 의해 증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1]과 [2]에

해당하는 ‘사실’일 수는 없다. 그런데 칸트는 [3]에서 직관을 통해 이론적으로 증명

될 수 없는 이성이념인 자유의 이념도 ‘사실’에 포함될 수 있다면서 이를 매우 주목

할 만한 일로 강조한다. 그리고 칸트는 자유의 이념이 ‘사실’로서 실재한다는 것은

이것이 특수한 종류의 원인성으로서 순수 이성의 실천적 법칙, 즉 도덕 법칙에 따

르는 현실적인 행위들에서 밝혀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유의 이념이 하나의 ‘사

실’일 수 있는 것은 도덕 법칙에 따르는 현실적인 행위들, 즉 도덕적 경험들 속에서

특수한 종류의 원인성으로 의식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칸트에 따르면

“자유의 이념은 도덕 법칙에 의해 개시(開示)되는 것”(KpV, A5)이기 때문에 자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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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이 ‘사실’에 포함될 수 있다면 도덕 법칙도 ‘사실’에 포함될 수 있으며, 도덕 법

칙도 현실의 도덕적 경험을 통해 의지를 규정하는 원인성으로서 의식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칸트가 도덕 법칙을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주어져

있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간이 현실의 도덕적 행위에서 순수 이성에 의한 도덕

법칙을 자신의 의지를 규정하는 원인성으로 의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양심 안에서 인간이면 마땅

히 따라야 할 도덕 법칙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83) ‘사실’의 의미를 이렇게 이해

할 수 있다면 칸트가 “우리가 의지의 준칙을 개략적으로 그리자마자 우리에게 직접

적으로 의식되는 것은 도덕 법칙이다”(KpV, A53)라고 말한 것은 ‘도덕 법칙은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주어진 것이다’라는 표현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을 자신의 의지를 규정할 준칙을 생각하자마자 동시에 도

덕 법칙을 의식하는 존재로 바라본다는 것에서 우리는 칸트가 도덕 법칙을 인간 존

재 그 자체와 근원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도덕적 소질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인간은 (가장 못된 인간조차도) 어떠한 준칙에서든 간에 도덕 법칙을 이를테면 반

역적으로(즉 불복종을 선언하면서) 포기하지는 않는다. 도덕 법칙은 인간에게 오히려

그의 도덕적 소질의 힘으로 불가항력적으로 육박해온다.(RGV, B33)

칸트는 도덕 법칙을 ‘순수 이성의 사실’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무

리 평범한 인간일지라도 도덕 법칙을 의식하면서 행위하는 존재라는 점을 드러내고

자 한다. 비록 도덕 법칙의 객관적 실재성을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직관에 근

거하여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인간은 도덕 법칙을 명증적으로 확실한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인간은 일상의 평범한 도덕적 경험 속에서도 언제나

도덕 법칙을 의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칸트가 도덕 법칙이 ‘순수 이성의 사실’로

서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 것에는 모든 평범한 인간들의 마음속에 보편적인 도덕적

소질로서 놓여 있는 ‘도덕 법칙’에 대한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84)

83) 한자경,『칸트 철학에의 초대』(경기: 서광사, 2006), p.117.

84) 앞서 우리는 도덕 법칙이 선 개념에 앞서 그것을 규정하며, 그런 의미에서 도덕 법칙은 의지가

선의지일 수 있도록 하는 규정 근거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도덕 법칙에 따르는 의지는 곧 선의지

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선의지의 개념에는 이미 도덕 법칙에 대한 의식이

전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칸트는 선의지의 개념을 “이미 자연적인 건전한 지성에 내재

해 있고, 가르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단지 계발될 필요만 있는 것”(GMS, B8)으로 생각한다. 칸

트는 평범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배우지 않고도 누구나 선의지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평범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배우지 않고도 누구나 도덕 법칙을

의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칸트의 관점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순수 이성의 사실’이라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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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칙에서 어떠한 형식이 보편적 법칙 수립에 적합하고, 어떠한 형식이 적합하지

않은가를 상식을 가진 사람은 배우지 않고서도 구별할 줄 안다.(KpV, A49)

도덕 법칙에 따라서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에 대해 판정하기 위해서는 그다지 어

려움이 없어서, 가장 평범한 아무런 훈련 없는 사람이라도 세상사에 대한 영리함 없

이도 그걸 처리하는 것을 모르지 않을 정도이다.(KpV, A64)

그런데 도덕 법칙과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85) 그것은 도덕 법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의 관점에서 ‘모든 인간이 선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명제는 ‘순수 이성

의 사실’로서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85) 박찬구는 도덕 법칙과 관련하여 3가지의 주목할 점을 제시한다. 첫째, 도덕 법칙이 명령의 형태

로 되어 있다는 점, 둘째, 도덕 법칙이 명령 중에서도 ‘무조건적’ 명령의 형태, 즉 정언 명령으로

되어 있다는 점, 셋째, 도덕 법칙은 분명히 외적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 의해 부과

되는 것이므로 이는 타율이 아닌 자율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박찬구,「칸트의 인격론」, 진교훈

외,『인격』(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7), pp.101-102) 이 세 가지의 주목할 점은 도덕 법칙을 제

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지만 도덕 법칙이 정언명령의 형태로 되어 있다는 점과 도덕

법칙은 법칙 수립적 이성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자율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연구자의 논문 안에

서 도덕 법칙과 관련하여 자연스럽게 언급된다고 판단하여 깊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보다는 도

덕 법칙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존경의 감정에 주목하는 것이 도덕 법칙의 의미와 더 나아가 합법성과

구분되는 도덕성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하여 이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도덕 법칙이 자율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칸트에 있어 도덕성은 단순히 외부

로부터 주어진 도덕 법칙에 따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 이성에 근거하여 스스로 세운 도덕 법

칙에 따르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덕 법칙을 스스로 세우고 부과하는 자는 예지 세계에 속해

있는 예지적 주체로서의 자신이고, 부과된 도덕 법칙에 따라야 하는 자는 감성 세계에 속해 있는 감성

적[현상적] 주체로서의 자신이다. 칸트는 인간이 두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감성적 주체로서의 자신을

극복하고 예지적 주체로서의 자신을 향해 나아가려는 것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숭고함을 발견한다. 그래

서 칸트는 인간이 법칙 수립적 이성을 통해 도덕 법칙을 스스로 세우고 또한 그에 스스로 따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자율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숭고함

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GMS, 85-87 참조) 이러한 점은 정언명령의 정식으로 표현된 도덕 법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페이튼(Paton)은 칸트가 제시한 정언명령의 정식을 ‘[정식Ⅰ] 보편 법칙의 정

식’, ‘[정식Ⅰ-a] 자연 법칙의 정식’, ‘[정식Ⅱ] 목적 자체의 정식’, ‘[정식Ⅲ] 자율의 정식’, ‘[정식Ⅲ-a]

목적의 왕국의 정식’의 5가지로 정리한다.(김성호 옮김(H. J. Paton), 앞의 책, pp.185-186) 그런데 페

이튼도 동의하고 있듯이 [정식Ⅰ]과 [정식Ⅰ-a], 그리고 [정식Ⅲ]과 [정식Ⅲ-a]는 밀접한 연결이 있음

이 명백하며, 사실상 파생적 정식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자는 먼저 페이튼의 5가지 정언명령의 정

식을 3가지의 정식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3가지의 정식은 다음과 같다. [정식1] 보편 법칙의

정식 : 너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

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GMS, B52) [정식2] 목적 자체의 정식 :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

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GMS, B66-67) [정식3] 자율의 정식 : 의지가 자기의 준칙에 의해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보편

적으로 법칙을 수립하는 자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GMS, B76) 그런데

칸트는 [정식2]와 [정식1]이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GMS, B82-83), 결국 이 3가

지 정식이 근본에 있어서는 한 가지가 다른 두 가지를 저절로 자기 안에 통일하는 동일한 원칙의 3가지

정식일 따름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GMS, B79) 이러한 칸트의 주장을 고려해 본다면 정언명령의 핵심

정식은 칸트가 가장 먼저 언급한 [정식1]이라 할 수 있고 [정식2]와 [정식3]은 칸트의 표현대로라면

[정식1]을 일종의 유비에 의해서 직관에 근접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감정에 근접시키기 위해서(G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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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이 도덕적 감정이라 부를 수 있는 존경의 감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칸트가 도덕 법칙을 감정과 관련시켜 고찰해 보고자 하는 이유에 대

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칸트에 따르면 “행위들의 모든 도덕적 가치의 본질적인 면

은 도덕 법칙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 있다.”(KpV, A126) 그런데 인

간이 예지적 존재자이기만 하다면 의지는 언제나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을 것이지

만, 한편으로 인간은 감성적 존재자이기 때문에 의지가 도덕 법칙 이외의 다른 동

기들에 의해서도 규정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의지가 도덕 법칙을 따르더라도 이것이

만약 다른 동기, 즉 쾌의 감정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러한 행위는 합법적

행위일 수는 있어도 도덕적 행위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 의지의 규정

근거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에게 어떻게 도덕 법칙이 직

접적으로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될 수 있는가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것

은 예지 세계를 지배하는 인과성 법칙으로서의 도덕 법칙이 어떻게 감성 세계에 속

한 인간의 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하는 물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칸트는 단

순히 도덕 법칙을 의지의 객관적 규정 근거로 생각하고 그것에 따르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도덕적 행위에 이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도덕 법칙이 주관적으

로도 충분한 규정 근거가 될 수 있을 때, 다시 말해 도덕 법칙이 의지를 규정하는

주관적 동기가 될 수 있을 때 진정한 도덕적 행위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만약 행위가 법칙의 정신을 함유함이 없이 한낱 법칙의 문자만을 채우는 그런 것

이 아니라면, 행위의 객관적 규정 근거는 항상 그리고 오로지 동시에 그것의 주관적

으로 충분한 규정 근거여야 한다.(KpV, A127)

B79-80) 표현된 정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정식2]는 목적이라는 질료적 개념을 사용하여 정

언명령의 정식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정식3]은 겉으로 보기에 [정식1]과

큰 차이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가 [정식3]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를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보편적으로 법칙을 수립하는 자로 볼 수 있도록 하는’이라는 칸트의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준칙이 따라야 할 보편적 법칙이 자기 스스로가 세운 법칙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정언명령에 따르는 것, 다시 말해 도덕 법칙에 따르는 것은 타율이 아니라 ‘자율’이라는 점

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정식1]도 이러한 ‘자율’이 전제되어 있는 정식으로 이해해야 하겠지

만 그것이 명시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다. 페이튼도 칸트가『실천이성비판』에서 최고의 위치를 자

랑하는 것은 [정식1]이 아니라 [정식3]이라고 말하면서 [정식3]을 [정식1]로 소급하여 무시하려는 태

도를 경계하고 있다.(김성호 옮김(H. J. Paton), 앞의 책, p.186) 칸트가 “자율은 인간과 모든 이성적

자연존재자의 존엄성의 근거이다.”(GMS, B79)라고 말하고 있고, 또한 칸트에게 도덕 법칙은 인간의 존

엄성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근거라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페이튼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칸트가『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와는 달리『실천이성비판』에서 순수 실천 이성의 원칙으로 “너의 의

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로 제시한

것은 도덕 법칙의 이해에서 법칙 수립적 이성의 자율성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연구자는 이런 관점에서 도덕 법칙을『실천이성비판』에 제시된 [정식3]에 해당하는 자율의

정식으로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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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칙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법칙을 위해서[법칙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닌 행

위에 대해서 우리는, 그 행위는 문자적으로는 도덕적으로 선하나, 그러나 정신(마음

씨)의 면에서는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KpV, A128)

칸트는 도덕 법칙을 행위의 객관적인 규정 근거일 뿐만 아니라 행위의 주관적

규정 근거, 다시 말해 동기(Triebfeder)이기도 하다고 말한다.(KpV, A133) 칸트는

‘동기’라는 말을 “그의 이성이 본성상 이미 객관적 법칙을 반드시 좇지는 않는 어떤

존재자의 의지를 주관적으로 규정하는 근거”로 이해한다.(KpV, A127) 따라서 동기

라는 말은 본성상 도덕 법칙을 반드시 따를 수 있는 신의 의지에는 사용할 수 없

고, 도덕 법칙을 의식하지만 반드시 그것을 따르지는 않는 인간의 의지에 사용할

수 있다. 칸트는 도덕 법칙을 의지의 주관적 규정 근거, 즉 동기의 관점에서 접근함

으로써, 도덕 법칙이 감성적 존재자이기도 한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살펴보고자 하며,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덕 법칙을 감정과 관련하여 설명하

고자 한다. 이것은 결국 ‘도덕 법칙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이 감성 세

계에 속한 인간의 관점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라고도 할 수 있다. 칸트는 “어떻게 도덕 법칙이 그 자체만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의지의 규정 근거일 수 있는가하는 것은 인간 이성으로서는 풀 수 없는 문

제”(KpV, A128)라고 말한다. 그래서 칸트는 우리의 과제는 “도덕 법칙이 자기 안에

서 동기를 제공하는 그 근거를 선험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

덕 법칙이 동기로서 우리 마음에 무슨 영향을 미치는가(좀 더 정확히 말해, 미쳐야

만 하는가)를 선험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KpV, A128)

칸트는 “도덕 법칙이 주관의 감성에 영향을 미치고, 의지에 대한 법칙의 영향을

촉진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KpV, A133)는 점에서 도덕 법칙이 행위의 주관적

규정 근거, 다시 말해 동기일 수 있다고 말한다. 칸트는 어떻게 도덕 법칙이 주관의

감성에 영향을 미쳐 의지에 대한 법칙의 영향을 촉진하는 감정, 즉 존경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보고 있을까?

칸트에 따르면 도덕 법칙에 의한 모든 의지 규정에서 본질적인 것은 모든 경향

성과 감성적 충동을 단절함으로써 순전히 도덕 법칙에 의해 의지가 규정된다는 점

이다.(KpV, A128) 그런데 모든 경향성과 일체의 감성적 충동은 감정에 기초해 있

기 때문에(KpV, A129), 도덕 법칙에 의한 경향성과 감성적 충동의 단절은 그로 인

한 고통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 법칙이 의지의 규

정 근거로서 우리의 모든 경향성들을 방해함으로써 고통이라 불릴 수 있는 한 감정

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선험적으로 통찰할 수 있다.(KpV, A129) 여기서 모든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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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성과 감성적 충동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그것들에 기초한 자기 사랑의 주관적 원

리를 객관적인 실천 법칙으로 삼으려는 자만(Eigendünkel)을 단절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자만을 단절시키는 과정에서 경향성에 의해 규정되는 자신과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자신을 비교해 보게 되고, 도덕 법칙과의 일치 없이 경

향성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인격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음]

깨달음으로써 겸허해지게 된다고 본다.(KpV, A132, 139-140 참조) 도덕 법칙이 경

향성을 단절함으로써 생겨난 불쾌(고통)의 감정은 결국 우리 마음에 겸허의 감정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 겸허의 감정은 도덕 법칙에 의한 경향성의 단절에서 촉

발된 감정이면서도 도덕 법칙에 대한 의식의 작용결과로서 감성적 존재자인 자신이

도덕 법칙에 의해 강제되고 있음을 느끼는 감정이다. 겸허의 감정은 감성적 존재자

로서의 인간이 순수 실천 이성을 통해 도덕 법칙을 수립하는 예지적 주체와 비교하

면서 느끼는 ‘자기 비하’의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겸허의 감정이 도덕

법칙을 수립하는 예지적 주체와 관련하여 감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느껴지는 감

정이라는 점에서 칸트는 겸허(Demütigung)의 감정을 ‘지성적86) 비하(intellektuelle

Verachtung)’의 감정이라고 일컫는다.(KpV, A133) 그런데 칸트는 겸허의 감정은 도

덕 법칙이 감정에 미친 작용으로 우리가 선험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감정이긴 하지

만, 여기서 순수한 실천 법칙, 즉 도덕 법칙의 힘을 동기로서 인식할 수는 없고 단

지 감성의 동기에 대한 저항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KpV, A140) 그러

니까 겸허의 감정은 경향성에 대한 강력한 저항과 더불어 다가오는 감성적 측면에

서의 자기 비하를 통해 느껴지는 도덕 법칙에 대한 의식의 작용 결과[부정적 작용]

인 것이다. 그런데 감성적 측면에서 자신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낮추려는 겸허의

감정은 예지적 측면에서 도덕 법칙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높이려는 존경의 감정으

로 드러날 수 있는 계기를 갖는다.87)(KpV, A140) 겸허의 감정이 도덕 법칙이 감정

86) 백종현은 칸트가 도덕 법칙을 ‘지성적 원인성(intellektuelle Kausalität)’(KpV, A130)으로 설명한

곳에서 “여기서 ‘지성적(intellektuell)’은 ‘예지적’ 또는 ‘오성적’ 곧 ‘intelligibel’의 의미로 새겨야

한다. 이런 예에서 보듯, 보통 intellektuell과 intelligibel을 구별하여 쓰는 칸트가 때로는 무차별적

으로 사용하기도 한다.”(I. Kant,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백종현 옮김,『실천이성비판』

(서울: 아카넷, 2009), p.154)고 말한다. ‘지성적 비하’를 언급하는 곳에서도 칸트는 이것이 ‘예지

적 원인(intelligibele Ursache)’과 관련하여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KpV, A133),

백종현의 견해를 참고하고 또한 문맥을 고려할 때 ‘지성적 비하’를 ‘예지적 비하’라고 이해하는 것

은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87) 칸트는 도덕 법칙이 인간의 감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설명하

고자 한다. [1] 도덕 법칙이 경향성을 단절함으로써 감정에 미친 부정적 작용, 즉 불쾌의 감정은

감정 일반과 마찬가지로 정념적 감정이다. [2] 그러나 이 감정을 도덕 법칙에 대한 의식의 작용결

과로서, 예지적 원인, 곧 최상의 법칙 수립자인 순수 실천 이성의 주체와 관련하여 말한다면 겸허

의 감정(지성적 비하)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그러나 이 감정을 도덕 법칙이라는 적극적 근거와

관련하여 말한다면 이 감정은 동시에 법칙에 대한 존경이라 일컬어진다. 이것은 도덕 법칙에 대해

어떤 감정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성의 판단에서, 법칙이 저항을 제거함으로써 방해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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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미친 부정적 작용으로서 감성적 측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라면, 존경의 감정은

도덕 법칙이라는 예지적 원인에 따르는 적극적 감정으로서 예지적 측면에서 선험적

으로 인식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 법칙은 자만을 단절시켜 겸허의 감정

으로 이끌고, 겸허의 감정은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을 방해하는 경향성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순수 실천 이성의 도덕 법칙이 경향성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을 강화시킨다. 바로 여기서 도덕 법칙의 부정적 작용으로서의 겸

허의 감정은 다른 한편으로 도덕 법칙이 감정에 미치는 적극적 작용으로서의 존경

의 감정으로 통찰된다. 겸허의 감정이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에게 도덕 법칙에

따라야 한다는 ‘강제’의 명령과 관련된 불쾌의 감정이라면, 존경의 감정은 이러한

‘강제’의 명령이 순전히 자신의 이성이 스스로 수립한 도덕 법칙에 의해 실행되는

것임을 깨닫는 가운데 느끼는 고양(Erhebung)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KpV,

A143 참조) 따라서 존경의 감정은 자신이 도덕 법칙에 따름으로서 인격적으로 고양

되고 있다는 자기 긍정의 감정을 동반하면서 도덕 법칙을 자신의 준칙으로 삼기 위

한 도덕적 동기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칸트는 도덕 법칙

의 직접적 의지 규정이 결국 우리의 마음에 존경의 감정을 일으킨다고 본다. 칸트

는 이러한 존경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말하고 있다.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은, 도덕 법칙이 자만을 겸허케 함으로써 경향성들의 방해

하는 영향을 약화시키는 한에서, 도덕 법칙이 감정에 미치는 적극적인, 그러나 간접적

인 작용으로도 보아져야 하고, 그러니까 활동의 주관적 근거로, 다시 말해 도덕 법칙

준수를 위한 동기로, 그리고 도덕 법칙에 적합한 처신의 준칙을 위한 근거로 보아져

야 한다.(KpV, A140-141)

존경의 감정은 도덕 법칙이 자만을 약화시키고 완전히 타도하는 가운데 도덕 법

칙이 감정에 미치는 적극적인 작용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도덕 법칙이 감정에 대

한 부정적 작용을 통해 일으킨 간접적인 작용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이해하든지 간에 여기서 존경의 감정은 일체의 감성적 대상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도덕 법칙과만 관계하고 있으며, 그런 한에서 도덕 법칙의 준수를 위한 주

관적 동기로 사용될 수 있다. 칸트는 존경의 감정을 도덕 법칙의 직접적 의지 규정

에 대한 의식이 감정에 미친 작용결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KpV, A133; GMS,

제거하는 것은 그 원인성을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것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 감정은

이제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의 감정이라고도 일컬어질 수 있고, 그러나 저 두 근거에서 합쳐서 도

덕 감정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KpV, A133, 연구자가 이해를 돕기 위해 번호를 부여하고 문장

을 윤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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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7 참조), 존경의 감정이 도덕 법칙의 준수를 위한 주관적 동기로서 의지의 규정

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도덕 법칙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감성적 측

면에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 법칙은 존경의 감정을 통

해 의지의 주관적 규정 근거, 즉 동기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칸트가 “의지에

대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객관적으로는 법칙, 주관적으로는 이 실천 법칙

에 대한 순수한 존경 외에 남는 것은 없다”(GMS B15)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존경의 감정이 도덕 법칙의 준수를 위한 주관

적 동기로 보아져야 한다’라는 말을 ‘도덕 법칙의 준수를 위해서는 존경의 감정이

선행하여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이는 칸트의 생각을 전적으로 오해한 것

이다. 존경의 감정은 도덕 법칙이 인간의 감정에 미친 필연적 작용결과로서 도덕

법칙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성적 차원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일 뿐, 결코 도덕 법칙에 선행하는 규정 근거라거나 도덕적 행위를 판단하는 근

거일 수는 없다. 그래서 칸트는 “법칙에 대한 존경은 도덕을 위한 동기가 아니라,

오히려 도덕 자체이며, 주관적으로 동기로 보아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다.(KpV, A134) 존경의 감정은 행위를 평가하기 위해서나 객관적 도덕 법칙 자체

를 정초하기 위해서는 전혀 쓰이지 않으며, 순전히 도덕 법칙을 자기 안에서 준칙

으로 삼기 위한 동기로만 쓰인다.(KpV, A135) 이렇게 도덕 법칙이 인간에게 존경

의 감정으로서 또한 주관적 동기로서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감성 세계에도

속한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일체의 감성에서 자유로운 존재자나 감

성이 실천 이성의 아무런 방해도 될 수 없는 존재자에게는 주관적 동기로서의 법칙

에 대한 존경이 있을 수 없다. 존경의 감정은 도덕 법칙에 반드시 따르는 의지를

지니지 못한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도덕적 동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존경의 감정은 도덕 법칙이 감정에 미친 작용결과로서 도덕 법칙과 불가분의 관

계에 있는 감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존경의

감정이 하나의 감정임에는 분명하지만 ‘선험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감정’으로 이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존경의 감정이 선험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감정이라면 이는

분명히 경험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감정과는 구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칸트가

존경의 감정이 쾌의 감정도 아니고(KpV, A137), 불쾌의 감정도 아니라고(KpV,

A138) 말하고 있는 것도 존경의 감정이 쾌․불쾌의 감정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경험

적 감정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존경의 감정을

어떠한 감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 칸트가 자신이 존경이라는 말을 앞세워 단지

모호한 감정에 도피하고자 한 것이 아니냐는 사람들의 비난을 인지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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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S B17), 또한 “어떠한 정념적인 감정과도 비교될 수 없는 이 특별한 감정에다

대체 어떤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좀 더 잘 어울릴 수 있겠는가?”(KpV, A135)라는 물

음을 스스로 던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짐작

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칸트는 여러 곳에서 ‘감정의 근원’에 주목하면서 존경의

감정을 정념적인 일반 감정과 구분하고자 한다.

우리의 모든 경향성의 기초에 놓여 있는 것인 감성적 감정은 우리가 존경이라고

부르는 그런 감각88)의 조건이기는 하지만, 이런 감정 규정의 원인은 그러나 순수한

실천 이성 안에 놓여 있으며, 그래서 이 감각은 그 근원에 있어서 정념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작동된 것이라 일컬어져야 한다.89)(KpV, A134)

여기서 칸트는 존경의 감정이 감성적 감정을 조건으로 하고는 있지만, 그 감정의

근원을 순수한 실천 이성에 두고 있기 때문에 존경의 감정을 ‘정념적 감정’이 아니

라 ‘실천적 감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 존경의 감정은 “단적으로 이성에 의

해 생긴 것”(KpV, A135)이며, “예지적 원인에 따르는 적극적 감정”(KpV, A140)이

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존경의 감정이 감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외부 영향으로

부터 받아들여진 감정이 아니라, 이성 개념에 의해 스스로 일으켜진 감정이기 때문

에 존경의 감정은 경향성이나 공포에 그 원인이 돌려지는 모든 감정과는 종적[種

的]으로 구별된다.(GMS, B17 참조) 존경의 감정은 쾌․불쾌의 감정에 의해 규정되

는 정념적 감정이 아니라 “순전히 실천적인 것에만 관계하고, 그것도 법칙의 어떤

객관 때문에가 아니라, 단적으로 형식의 면에서 법칙의 표상에 부착해 있는 감정”

88) 이 인용문에서 칸트는 존경을 ‘감정(Gefühl)’로 표현하지 않고 ‘감각(Empfindung)’으로 표현하고

있다. 맥락상 존경을 감성적 감정과 조금이라도 구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정이라는 용어 대신

감각을 사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칸트는 다른 여러 곳에서 존경을 감정, 특

히 도덕 감정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인용문에서 ‘감각’을 ‘감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큰 무리

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연구자는 인용은 그대로 하되 ‘감정’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89) 칸트의 마음 구조와 작동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존경’이라는 도덕 감정은 기본적으로 ‘감

성적 감정’이라는 조건이 요구된다. 그런데 그 감정 규정의 원인은 순수 실천 이성 안에 즉 도덕

법칙에 있기 때문에, ‘존경이라는 감각[감정]’은 그 근원에 있어서는 정념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

다. 이렇게 되면 감성 세계 안에서 이 존경이라는 ‘도덕 감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가 하나의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그 어떠한 감성적 감정에도 의존[근거]하지 않는 그런 ‘감정’을 어떻게 표

현해야 할까? 이것은 사실상 칸트 스스로의 물음이기도 하다.(KpV, A135 참조) 그런데 여기서 연

구자는 ‘감정의 현상’과 ‘감정의 근원’을 구분하고자 하는 칸트의 시도가 현상적으로 모두 감정에

속하는 사단과 칠정을 ‘감정의 근원’을 기준으로 사단을 도덕 감정으로 칠정을 일반적 감정[정념적

감정]으로 구분하고자 하는 퇴계 이황의 시도와 유사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조선

의 퇴계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모두 현실 세계에서 드러난 감정[이미 발한 감정]으로 여기면서도

사단의 감정과 칠정의 감정의 근원을 분명하게 구분하려는 것[이발이냐 기발이냐]과 칸트가 ‘도덕

적 감정’과 ‘정념적 감정’을 모두 감정에 기반한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그 근원에 따라 엄밀하게 구

분하고자 한 것 사이에서 상당한 유비 관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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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KpV, A142) 이처럼 존경의 감정이 쾌․불쾌의 감정에 근거하는 정념적 감정

이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에 근거하는 실천적 감정이라는 점에서, “도덕 법칙에 대

한 존경은 유일하고 의심할 수 없는 도덕적 동기”(KpV, A139)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존경의 감정은 도덕 법칙의 의식이 감정에 미친 작용결과로

서 ‘실천적 감정’의 측면에서만, 다시 말해 순수 실천 이성의 법칙 수립적 행위 속

에서 느껴지는 ‘도덕적 감정’의 측면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특수한 감정이라

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 법칙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으로서의 존경의 감

정을 사변 이성으로써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

이 말한다.

한낱 지성적인 이념[도덕 법칙-연구자 삽입]이 감정에 미치는 이 영향을 사변 이

성으로써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것에 놀랄 필요는 없으며, 또한 모든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에게 있어서는 존경의 감정이 도덕 법칙의 표상과 불가분리적임을 선험

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에 놀랄 필요가 없다.”(KpV,

A142)

칸트는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은 하나의 지성적 근거로 생긴 감정으로, 이 감정

은 우리가 완전히 선험적으로 인식하는, 그리고 그것의 필연성을 우리가 통찰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다.”(KpV, A130)라고 말한다. 칸트의 이 말은 도덕 법칙의 의식

과 필연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존경의 감정이라는 이 특수한 감정을 정

념적 감정이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의 법칙 수립적 활동에 근거한 실천적이고 도덕

적인 감정으로 간주할 때 비로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존경의 감정

은 인간이 신과 같이 도덕 법칙 자체가 동기가 될 수 있는 신성한 존재자가 아니

라, 도덕 법칙을 의식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경향성에 의해 방해 받을 수밖에 없

는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매

우 중요하다. 그래서 존경의 감정은 의지가 반드시 도덕 법칙과 일치하지는 못하는

인간에게만 하나의 주관적 규정 근거, 즉 동기로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살

펴보았지만 존경의 감정은 도덕 법칙이 직접적으로 의지를 규정하고 있다는 의식이

감정에 미친 작용결과이다. 결국 도덕 법칙의 직접적 의지 규정, 즉 도덕성은 인간

이 감성적 존재인 한에서 존경의 감정이 주관적 동기로서 작동하면서 의지를 규정

함으로써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도덕 법칙이 직접적으로 의지

를 규정한다는 것은 유한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의지가 감성이나 경향성에 의해서

가 아니라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의 감정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90) 칸트는 “동기라는 개념으로부터 관심이라는 개념이 생긴다”면서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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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동기로서의 존경의 감정이 도덕 법칙에 따르고자 하는 관심, 즉 도덕적 관심을

일으킨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도덕 법칙에 따르고자 하는 도덕적 관심을 갖는

능력이야말로 본래적인 도덕적 감정(das moralische Gefühl)이라고 말한다.(KpV,

A142) 결국 존경의 감정은 도덕 법칙에 따르고자 하는 도덕적 관심을 갖는 능력이

자 도덕적 감정으로서,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을 독려할 수 있는 도덕적 동기라고

할 수 있다.91)

이제까지의 논의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칸트가 생각하는 도덕 법칙은 ‘보편

적 법칙 수립의 순전한 형식’으로서 준칙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고, 인간이 선

험적으로 의식하고 명증적으로 확신하는 ‘순수 이성의 사실’이며, 선의 개념에 앞서

그것을 규정하는 근거이고, 존경의 감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유일한 객관이다.

이러한 도덕 법칙에 대한 설명을 통해 칸트가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인

간이 자신의 의지를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함으로써 일체의 감성적 제약에서 벗어

나 예지 세계에도 속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보편

적 법칙 수립의 순전한 형식’에 의해 의지를 규정함으로써92), 도덕 법칙에 의해 규

정된 의지인 ‘선의지’에 따름으로써,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의 감정’이 주관적 동기

로서 의지를 규정함으로써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예지 세계에 참여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 법칙은 감성 세계의 일체의

여건과 우리의 이론적인 이성 사용의 전 범위로부터는 절대로 설명될 수 없는 사실

(Faktum)을 제공하며, 이 사실은 순수한 예지 세계를 알려 준다.”(KpV, A74)고 말

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 법칙이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주어져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의지의 준칙을 세우고자 할 때 도덕 법칙을 직접적으로 의식한다는 것, 선의지의

개념이 이미 자연적인 건전한 지성에 내재해 있다는 것, 도덕 법칙이 우리의 마음

에 존경의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달

리 표현하면 모든 평범한 인간들의 마음속에 도덕 법칙에 따르고자 하는 양심이 존

재한다는 것이다. 도덕 법칙에 대한 의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는 설명될 수 없는 것

이지만(KpV, A79), 도덕 법칙은 마치 우리 마음속의 양심처럼 우리에게 전해지고

90) 박찬구,「흄과 칸트에 있어서의 도덕감」, 한국철학회,『철학』제44집, 1995, p.106. 문장 서술의 일관

성을 위해 ‘도덕법칙이 “직접”(unmittelbar) 의지를 규정한다함은’을 ‘도덕 법칙이 직접적으로 의지를 규

정한다는 것은’으로, ‘법칙에 대한 존경’을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의 감정’으로 수정하였음을 밝혀둔다.

91) 박찬구는 도덕의 동기로 이해된 도덕 감정, 즉 존경의 감정을 “의지를 감성적 규정 근거로부터

독립하여 오로지 도덕 법칙에 따라 규정하는 실천이성의 능력의 감정적 측면”이라고 이해한다.(박

찬구(1995), 위의 논문, p.106)

92) 도덕 법칙이 단순히 의지를 규정하는 형식에만 관여한다는 것은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것이 단순

히 공허한 형식성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본질 자체가 경험적인 내용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한자경,『칸트와 초월철학: 인간이란 무

엇인가』(서울: 서광사, 1992),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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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은 분명하다. 이것을 칸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순수한, 일체의 이익에서 벗어나 있는 도덕 법칙에 대한 끝없는 존중에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 그 음성이 대담한 범죄자들조차 떨게 만들어 그로 하여금 도덕 법

칙의 시선 앞에서는 몸을 숨기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실천 이성이 그것[도덕 법칙]을

준수하도록 우리 앞에 제시하는 것 또한 그러하다.(KpV, A142)

도덕 법칙은 모든 이익과, 심지어 사후의 명성이라는 허상조차 없더라도, 마음씨의

올곧음이라는 순전한 의식을 모든 것보다 높이 평가할 것을 가르치고, 그렇게 해서

인간은 이 세상에서의 자기의 처신을 통해 많은 이익들을 포기한 채 그가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보다 좋은 세계의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만들어야 할 소명을 받은

것으로 내적으로 느낀다.(KrV, B425-426)

이와 같이 도덕 법칙은 경향성과 같은 감성 세계의 조건들로부터 전적으로 독립

하여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인간을 예지적 차원으로 고양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는 감성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 법칙으로부터

전적으로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칸트는 이러한 자연 법칙으로부

터의 전적인 독립성을 초월적 의미에서 ‘자유’라고 일컫는다.(KpV, A51-52) 결국

인간은 도덕 법칙을 통해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다시 말해 감성 세계의 자연

법칙에만 종속된 감성적 존재자가 아니라 예지 세계의 자유의 법칙에도 따를 수 있

는 예지적 존재자임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도덕 법칙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초월적 자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2) 초월적 자유

칸트에 따르면 행위들의 모든 도덕적 가치의 본질적인 면은 도덕 법칙이 의지

를 직접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 있다.(KpV, A126) 그리고 도덕 법칙이 의지를 직

접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곧 도덕 법칙이 경향성과 같은 일체의 감성적 조건들로

부터 독립하여 의지를 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체의 감성적 조건들로부

터의 독립성, 즉 감성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의 인과 법칙으로부터의 독립성은 가장

엄밀하게 말한다면 초월적 의미에서의 자유라 일컬을 수 있다.(KpV, A51-52 참조)

따라서 도덕 법칙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모든 도덕적 행위에는 초월적 자

유가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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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순수이성비판』에서 초월적 자유의 개념을 “한 상태를 절대적으로 시

작하는 능력”(KrV, B473), “자연 법칙들에 따라 진행하는 현상 계열을 자기에서부

터 시작하는 원인들의 절대적 자발성”(KrV, B475)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초월적

자유는 한 상태를 자기로부터 절대적으로 시작하는 능력으로서, 자연 법칙에 따라

서 시간상 선행하는 어떠한 원인에도 종속하지 않는 하나의 원인성이다. 그런데 이

러한 의미에서의 자유는 어떠한 경험적인 것과도 관련이 없는 순수한 초월적 이념

으로서(KrV, B561 참조), 자유의 가능성과 현실성은 결코 경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

다. 이 때의 자유는 사변 이성이 인과 결합의 계열에서 무제약자를 생각하고자 할

때 불가피하게 빠지는 이율배반에 대항하여 자신을 구출하기 위하여 인과성의 개념

의 사용에서 필요로 했던 바로 그 절대적 의미에서의 초월적 자유를 말한다.(KpV,

A4) 그런데 사변 이성은 이러한 자유의 개념을 단지 문제 있는 것(problematisch),

즉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으로 제시할 수 있었을 뿐, 초월적 자유 개

념의 객관적 실재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KpV, A4) 그러니까 사변 이성과 관련하

여 초월적 자유는 비록 어떠한 경험적 서술도 불가능한 초월적 이념으로서 그 객관

적 실재성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연의 원인성과 상충하지 않는 예지적

원인성으로 가능하다고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변 이성을 통해 초월적

자유가 적어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드러낸 것은 인간이 자신을 시간적 규정

과 필연적인 자연 법칙에만 전적으로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그러한 종속성으로부

터 독립하여 한 상태를 자기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절대적 자발성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초월적

자유는 인간을 자연 법칙에 종속된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 법칙으로부터 전적으로 독립하는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이처럼 사변 이성이 비록 소극적 의미에서이지만 초

월적 자유의 능력을 적어도 가능한 것으로 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할까? 그것은 인간은 근원적으로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의 관점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초월적 자유라는 이념 아래서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

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93)

그런데 칸트는 사변 이성이 단지 소극적으로 그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

93) 한자경은 초월적 자유를 인간의 초월적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초월적 자유는 인간 자

체가 단순히 시간에 의해 규정되고 제약받는 현상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현상의 시간적

제약성을 넘어서는 지적 존재, 초월적 존재라는 점에서만 인간의 본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초월

적 성격을 통해서만 인간은 형상의 자연 필연성으로부터 독립적이며, 그 때 비로소 인간의 본질을

자유라고 규정할 수 있게 된다.…… 현상을 넘어서서 지적[예지적] 세계로 초월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인간 능력을 뜻하는 자유, 그것이 곧 인간의 초월적 본질로서의 초월적 자유이다.”(한

자경(1992), 앞의 책,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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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던 초월적 자유를 순수 실천 이성의 도덕 법칙을 통해 적극적으로 규정하고자 한

다. 다시 말해 사변 이성을 통해서는 증명될 수 없었던 초월적 자유의 가능성과 현

실성을 순수 실천 이성이 도덕 법칙을 통해 증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자신 아무런 정당화해주는 근거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도덕 법칙은 이 자유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현실성을 이 법칙이 자신들을 구속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존재자들

에서 증명한다.(KpV, A82)

여기서 우리는 자유의 현실성과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 다시 말해 자유에 객관

적 실재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도덕 법칙임을 알 수 있다.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그 자신 아무런 정당화해주는 근거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이라는 표현과 “이 법칙

이 자신을 구속하는 것으로 인식하는”이라는 칸트의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도덕 법칙이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주어져 있으며, 우

리는 그것을 선험적으로 의식하고 명증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

미한다. 이렇게 순수 실천 이성은 도덕 법칙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통해 자유에 객

관적 실재성을 부여한다. 다만 이 때의 자유는 사변 이성이 하나의 이론적 개념으

로서 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던 초월적 자유가 아니라 실천 이성이 실천적 사

용을 위한 하나의 실천적 개념으로서 그 객관적 실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실천적

자유라고 할 수 있다.(KpV, A9 참조) 따라서 사변 이성과 관련하여서는 하나의 가

능성으로만 생각할 수 있었던 초월적 자유는 순수 실천 이성과 관련하여서는 도덕

법칙을 통해 실천적 자유의 개념으로서 그 객관적 실재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변 이성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생각한 예지적 원인성으로서의 초월적 자유

가 순수 실천 이성의 도덕 법칙을 통해 그 객관적 실재성을 확보한 실천적 자유로

우리에게 인식되는 상황을 다음 칸트의 설명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실천 이성은 이제 독자적으로, 다시 말해 사변 이성과 협의함이 없이, 인과성 범주

의 초감성적 대상, 곧 자유에다 실재성을 부여한다. (비록 이 자유가 오로지 실천적

사용을 위한 실천적 개념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저 사변 이성에서는 한낱 생

각될 수 있던 것이 [실천 이성에서는] 하나의 사실에 의해 확인되는 것이다.(KpV,

A9)

도덕 법칙은 사변 철학이 무규정적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것, 곧 그것[자유-

연구자 삽입]의 개념이 사변 철학에서는 단지 소극적이었던 그런 인과성의 법칙[자유

-연구자 삽입]을 규정하고, 그래서 이 법칙[자유-연구자 삽입]에 비로소 객관적 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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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부여한다.(KpV, A82)

도덕 법칙은 사변 이성에게는 그 가능성이 이해될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한낱 소극적으로 생각된 [자유의] 원인성에다 적극적 규

정, 즉 의지를 직접적으로 (의지의 준칙들의 보편적인 법칙적 형식이라는 조건에 의

해) 규정하는 이성 개념을 덧붙이고, 그렇게 해서, 이념들을 가지고서 사변적으로 일

을 처리하고자 했을 때는 언제나 경계를 넘어서게 되었던 이성에게 처음으로 객관적

인-단지 실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실재성을 줄 수 있으며, 이성의 초험적 사용을

내재적 사용으로 (경험의 영역에서 이념들 자신에 의해 작용하는 원인이도록) 전환시

킨다.(KpV, A83)

여기서 실천적 자유는 초월적 자유가 도덕 법칙을 통해 적극적으로 규정된 것

이며, 또한 도덕 법칙을 통한 실천적 자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초월적 자유가 전

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도덕 법칙에 따름으로써 실천적으로 자

유로운 행위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은 일체의 감성적인 것으로부터의 독립성

으로서의 능력인 초월적 자유를 지닌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칸트는 이미『순수이

성비판』에서 “자유의 초월적 이념에 자유의 실천적 개념이 근거해 있고”(KrV,

B561), “초월적 자유의 폐기는 동시에 일체의 실천적 자유를 말살하는 것”(KrV,

B562)이라고 말하면서 실천적 자유가 초월적 자유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

고 있다. 칸트는 실천적 의미에서의 자유를 “감성의 충동에 의한 강요로부터의 의

사의 독립”(KrV, B561-562)이라고 이해한다. 인간은 비록 감성적 충동에 영향을 받

고 있지만 동물처럼 감성적 충동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동물적 존재가 아니라 감성

적 충동에 의한 강요로부터 독립해서 자기로부터 규정하는 능력을 지닌 자유로운

존재이다. 이렇게 행위에 있어서의 실천적 자유는 인간의 근원적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초월적 자유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으며, 도덕 법칙에 따르는 실천적 행위 속

에서 그 객관적 실재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론적 측면에서 초월적 자

유라고 불리고 실천적 측면에서 실천적 자유라고 불리는 이 두 가지 자유의 개념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동일한 하나의 사태를 표현하는 두 가지 방식

이라고 할 수 있다.94)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변 이성이 이론적 측면에서만 그 가능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초월적 자유에 객관적 실재성을 정당하게 부여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순수 실천 이성이 수립한 도덕 법칙이다. 그런데 도덕 법칙은 사실상 자유, 더 엄밀

한 의미에서 초월적 자유가 인간의 본질적 속성으로서 전제될 때 가능하다. 이것은

94) 한자경(1992), 앞의 책,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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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같이 의지가 오로지 감성적 충동이라는 자연의 필연적 인과 법칙에 종속되

어 있는 존재자에게는 그 본성상 일체의 감성적 규정으로부터 독립하여 의지를 규

정하는 근거인 도덕 법칙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이해

될 수 있다. 칸트는 자유를 우리가 선험적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것으로서 도덕 법

칙의 조건으로 이해한다.

자유는 게다가 또 사변 이성의 모든 이념들 가운데서 우리가 그 가능성을, 통찰함

이 없이도, 선험적으로 아는 유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

법칙의 조건이니 말이다.(KpV, A5)

하지만 칸트는 자유로부터 출발하여 도덕 법칙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는 자유의 불가능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단지 소극적

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뿐,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의식하고 통찰하거나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유의 객관적 실재성을 직접적으로 인식한

다는 것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유의 최초의 개념은 소극[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를

직접적으로 의식할 수가 없고, 또한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현상들의 법칙만을, 그러니

까 자유와는 정반대되는 자연의 기계성만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경험으

로부터 자유를 추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KpV, A53)

자유는 순전한 이념으로서, 그것의 객관적 실재성은 어떤 방식으로도 자연 법칙에

따라, 그러니까 또한 어떤 가능한 경험에서도 밝혀질 수가 없으며, 그러므로 이 이념

은 그것에는 결코 어떤 유비에 의해서도 하나의 실례로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개념적으로 이해될 수도 없고, 단지 통찰될 수도 없다.(GMS, B120)

그래서 칸트는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주어져 있는 도덕 법칙을 통해 자유에

객관적 실재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칸트는 도덕 법칙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의식되는 것이며, 우리에게 맨 처음에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KpV, A53)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성은 도덕 법칙이 어떠한 감성적 조건에 의해서도 압도되지 않는, 도대체가 그

런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독립적인 규정 근거임을 보여줌으로써, 바로 자유의 개념

에 이른다.(KpV, A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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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실천 이성은 도덕 법칙을 통해 자유의 이념을 개시[開示]한다.(KpV, A5)

다시 말해 인간은 도덕 법칙을 하나의 주어진 사실로서 직접적으로 의식하고, 도덕

법칙에 따르는 실천적 행위 속에서 실천적 자유의 개념으로서 자유의 객관적 실재

성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도덕적 행위 속에서 의식된 실천적 자

유를 통해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생각

했던 초월적 자유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것은 사변 이성에 의

해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생각할 수 있었던 초월적 자유가 순수 실천 이성의 도덕

법칙과 불가분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실천적 자유의 인식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95) 칸트가『실천이성비판』의 머리말에서 “순수 실천 이성의 능력과

더불어 초월적 자유가 바야흐로 확립된다”(KpV, A4)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러한 관

점에서 온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칸트는 “도덕 법칙과 자유는 불가분리적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실천적 자유를

도덕 법칙 이외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한 독립성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KpV,

A167-168)고 말한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우리가 도덕 법칙에 따라 행위할 때, 즉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에 따라 행위할 때, 우리가 실천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그러한 실천적 자유가 근거하고 있는 초월

적 자유가 하나의 가능성만이 아닌 하나의 현실성으로서 인간의 본질적 특성임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도덕 법칙과 자유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

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편으로 자유는 도덕 법칙이 가

능하기 위한 조건이며, 다른 한편으로 도덕 법칙은 자유의 객관적 실재성을 의식할

수 있기 위한 조건이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자유와 도덕 법칙이 서로에

대해 조건이 되어 순환 논증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칸트도 이러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KpV, A5 각주 참고) 그래서 칸트는 사람

들이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일관성 없는 주장으로 오해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명

확하게 정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는 물론 도덕 법칙의 존재 근거(ratio essendi)이나, 도덕 법칙은 자유의 인식

근거(ratio cognoscendi)이다.(KpV, A5)

자유와 도덕 법칙은 모두 예지 세계의 인과성의 법칙과 관련된 개념으로서96)

95) 이것을 한자경은 “초월적 자유가 내게 있어 나의 본질로 간주되고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나의

실천적 의식 속에서 적극적 형태인 실천적 자유로 나타나게 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한자경

(1992), 앞의 책,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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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도덕 법칙에 대한 의식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험적 설명도 불가능하다. 만약

이러한 상태에서 자유와 도덕 법칙이 서로의 조건이 되는 순환적 설명만 계속된다

면 자유와 도덕 법칙은 단지 예지 세계 안에서만 헤매고 돌아다닐 뿐 우리에게는

의식되지 않는 이념들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돌파하고 해결하기 위해 칸

트가 제시한 것이 바로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의 도덕 법칙이다. 칸트는 비록 증명

은 불가능하지만 도덕 법칙의 객관적 실재성을 ‘순수 이성의 사실’로 설명하면서,

이를 토대로 자유의 이념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97)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도덕

법칙을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누구나 우리 안에 보편적 양심이

있음을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서 의식하는 도덕 법칙

에 따르는 행위를 통해 실천적 자유를 의식하게 되고 이를 통해 이론적으로나마 생

각할 수 있었던, 도덕 법칙의 가능 조건으로서의 초월적 자유를 깨닫게 되는 것이

다. 이런 관점에서 ‘자유가 도덕 법칙의 존재 근거’라는 말은 초월적 자유의 가능성

이 도덕 법칙이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의미로, ‘도덕 법칙이 자유의 인식 근거’

라는 말은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의 도덕 법칙이 실천적 자유의 객관적 실재성을 인

식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때 도덕 법칙을 통해

인식된 실천적 자유는 다름 아닌 이론적 가능성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초월적 자

유인 것이다. 위 인용문에 이어지는 칸트의 다음 설명을 통해 이러한 해석의 타당

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98)

96) “도덕 법칙은 사실상 자유에 의한 인과의 법칙이고, 그러므로 초감성적 자연을 가능하게 하는 법

칙이다.”(KpV, A82)

97) “이것(순수 이성의 사실)은 『실천이성비판』에서 도덕 법칙에 대한 연역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

로 제안된 이론이다. 칸트가 도덕 법칙의 객관적 실재성을 ‘이성의 사실’로 본 것은 도덕 법칙의

연역에 개입되는 논증의 순환을 피하는 길이긴 하지만 도덕 법칙의 완벽한 연역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결국 인정하는 셈이 되고 말았다. 칸트는 도덕 법칙의 연역 문제는 ‘이성의 사실’을 발견한

뒤로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이성적 존재자가 감각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도덕 법칙에 따라 실제

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칸트는 도덕 법칙은 인

간에게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는 말로 스스로 위로한다.”(강영안,『도덕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칸트의 도덕철학』(서울: 소나무, 2002), p.86)

98) 한자경은 ‘자유는 물론 도덕 법칙의 존재 근거이나, 도덕 법칙은 자유의 인식 근거이다.’라는 말

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도덕 법칙과 자유의 관계는 존재론적으로 고찰하면 자유에 입

각해서 비로소 도덕 법칙이 가능하다. 따라서 자유는 도덕 법칙의 존재 근거이다. 그러나 그처럼

자유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도덕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비로소 확연하게 인식

된다. 그래서 도덕 법칙은 자유의 인식근거가 된다고 말한다. 이는 곧『순수이성비판』에서 확립한

초월적 자아의 자유는『실천이성비판』에서 논의되는 도덕 법칙의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실천이성비판』이 누구나 양심에 따라 느끼는 도덕 법칙에서 출발하여 그 가능근거로서

자유를 증명하지만, 칸트의 철학적 사유체계 질서에서 보면『실천이성비판』의 도덕률[도덕 법칙]

은 결국『순수이성비판』에서의 자유에 입각한 것이다.”(한자경,『칸트 철학에의 초대』(경기: 서광

사, 2006),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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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만약 도덕 법칙이 우리의 이성에서 먼저 명료하게 생각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가 자유와 같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이것이 비록 자기 모순적

이지는 않더라도), 받아들일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지 못할 터이니 말이다. 그런

반면에 자유가 없다면, 도덕 법칙은 우리 안에서 결코 발견될 수 없을 터다.(KpV,

A5)

인간은 도덕 법칙을 통해 자유의 개념에 이른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인간은 도

덕 법칙에 따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실천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성이 우리로 하여금 처음으로 자유의 개념을 발견하게 하

며”(KpV, A53), “만약 도덕 법칙이 그리고 도덕 법칙과 함께 실천 이성이 자유에

이르지 못했고, 우리에게 이 개념을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결코 자유를 학문

안에 끌어들이는 모험을 하지 않았을 것”(KpV, A54)이라고 말한다. 칸트는 자유의

객관적 실재성을 도덕 법칙을 통해 확보하고 있지만 사실상 도덕 법칙의 가능 조건

은 자유이다. 사변 이성이 적어도 가능성으로라도 초월적 자유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면 실천 이성이 도덕 법칙을 통해 실천적 자유의 실재성을 확인하는 것은 불

가능했을 것이다. 회페(Höffe, O.)가 “자유는 칸트의 전 철학을 규정하는 지도개념

이다.”99)라고 말하고, 강영안이 “자유 개념은 칸트의 여러 개념 중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그의 철학 전체에 걸쳐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고, 이것이 없이 그의 철학 체

계가 성립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다.”100)라고 말하고 있듯이, 칸트는 자유

를 인간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핵심으로 강조한다.

무릇 자유 개념은, 그것의 실재성이 실천 이성의 명증적인 법칙에 의해 증명되는

한에 있어서, 순수 이성의 그러니까 사변 이성까지를 포함한, 체계 전체 건물의 마룻

돌[종석, Schlußstein]을 이룬다.(KpV, A4)

한편 칸트는 인간이 도덕 법칙을 통해 자유로운 존재일 수 있음을 경험을 통

해서도 입증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이것을 다음 두 가지의 대비적인 사례를 통해 드

러내고자 시도한다.

[사례1] 누군가가 그의 성적 쾌락의 경향성에 대해, 사랑스런 대상과 그를 취

할 기회가 그에게 온다면, 그로서는 그의 경향성에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다고 그

99) Otfried Höffe, Immanuel Kant (München: C. H. Beck, 1983); 이상헌 옮김,『임마누엘 칸트』(서울:

문예출판사, 1997), p.242.

100) 강영안(2002), 앞의 책,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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럴듯하게 둘러댄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그가 이런 기회를 만난 그의 집 앞에, 그

가 그러한 향락을 누린 직후에, 그를 달아매기 위한 교수대가 설치되어 있다면, 그

래도 과연 그가 그의 경향성을 이겨내지 못할까?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는 오래 궁

리할 필요도 없다.(KpV, A54)

[사례2] 그에게, 그의 군주가 그를 지체 없이 사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그 군주가 기꺼이 그럴듯한 거짓 구실을 대 파멸시키고 싶어하는, 한 정직한 사람

에 대하여 위증할 것을 부당하게 요구할 때, 그의 목숨에 대한 사랑이 제아무리 크

다 하더라도, 그때 과연 그가 그런 사랑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지 물어보라. 그가 그런 일을 할지 못할지를 어쩌면 그는 감히 확정하지는 않을 것

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그에게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주저 없이 인정할 것임에 틀

림없다.(KpV, A54)

칸트가 제시한 [사례1]과 [사례2]에서 동일한 주인공은 선택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사례1]에서 주인공은 성적 쾌락을 충족시키고 교수형에 처해질 것인가 아니

면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기 위해 성적 쾌락을 단념해야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

고, [사례2]에서 주인공은 거짓 증언을 하고 사형을 피할 것인가 아니면 거짓 증언

을 거부하고 사형을 당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사례의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까? 칸트는 [사례1]의 경우 주인공은 오래 생각

할 필요도 없이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기 위해 성적 쾌락을 단념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칸트는 [사례2]의 경우 주인공은 감히 확정하지는 못할지라도 거짓 증언을

거부하고 사형을 당하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 가능함을 주저 없이 인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례1]과 [사례2]에서 모두 주인공의

생명이 위협당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이 서로 다르게 드러난다는 점이

다. 칸트가 의도하려는 것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해 보기 위해 [사례1]과 [사례2]에

서 보이는 갈등의 핵심 양상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사례1] 성적 쾌락의 경향성 VS 자기[생명] 보존의 경향성

[사례2] 거짓 증언을 하지 않으려는 도덕성 VS 자기[생명] 보존의 경향성

[사례1]에서 주인공은 ‘성적 쾌락의 경향성’을 충족시킬 것인가 아니면 ‘자기

보존의 경향성’을 충족시킬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칸트의 말대로 여기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평범한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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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보존이 다른 모든 경향성의 충족을 위한 전제 조

건이라는 사실을 자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례1]은 경향성과 경향성

간의 대립 속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며, 이 때 인간의 이성이 해야 할 일은 ‘자

기 사랑’ 혹은 ‘자기 행복’의 원리에 따라 경향성들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것이라

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작동하는 이성이 바로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이라는 목적을

위해 최선의 수단을 선택하는 ‘경험적 실천 이성’이다. 그런데 [사례1]에서 주인공이

성적 쾌락의 경향성을 선택하지 않은 행위를 자기 주관 안의 경험적 실천 이성이

의지를 규정하여 일으킨 행위라는 점에서 ‘자유로운 행위’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칸트의 관점에서 이 때의 자유는 ‘비교적인 자유’, 즉 ‘심리적 자유’에 불과한

것이다. 어떤 행위가 아무리 외부적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주관 안의 경험

적 실천 이성에 의해 규정된 의지에 따라 행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때의 경험

적 실천 이성은 시간상 선행하는 경향성, 다시 말해 ‘자기 사랑의 원리’에 의해 규

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의 관점에서 [사례1]의 주인공의 행위는 자기 사

랑의 원리에 따라 경험적 실천 이성을 잘 발휘하여 최선의 경향성을 선택한 영리한

행위이며, 비교적․심리적으로 자유로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례2]의 상황은 [사례1]과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으로 전개된다. [사

례1]이 경향성들 간의 대립 상황을 담고 있다면, [사례2]는 거짓 증언을 하지 않으

려는 도덕성과 자기 보존의 경향성 간의 대립 상황을 담고 있다. [사례1]에서도 확

인했듯이 자기 보존의 경향성은 모든 경향성의 충족을 위한 전제가 되는 경향성으

로서 경향성과 관련해서 최고의 가치를 가질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례1]에서

주인공의 선택은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는 단순 명확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례2]에

서 주인공은 자신이 자기 보존의 경향성보다 거짓 증언을 하지 않으려는 도덕성을

선택하리라는 것을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주저 없이 인정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례2]의 주인공이 그 엄

청난 자기 보존의 경향성을 뒤로하고 거짓 증언을 하지 않으려는 도덕성을 선택하

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확신은 [사례1]에서처

럼 자기 사랑의 원리에 따라 모든 경향성의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경험적 실천 이

성의 활동을 통해서는 이해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러한 확신이 의미하는 것은 무

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은 누구나 ‘해야 한다’라는 목소리 다시 말해 도덕 법칙을

의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도덕 법칙에 따름으로써 감성 세계의 모든 규정 근거로부

터 독립하여 의지를 규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이 때의 자유는

단지 경험적 실천 이성에 의한 ‘선택의 자유’, ‘비교적인 자유’, ‘심리적 자유’가 아니

라 순수 실천 이성이 도덕 법칙을 통해 의식하게 하는 자유, 즉 자연 법칙에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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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시간상의 모든 인과 필연성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의미하는 ‘초월적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이러한 초월적 자유를 지니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인간이 시간상

규정되는 감성 세계의 자연 법칙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다면, 자기 보존의 경향성

보다 거짓 증언을 하지 않으려는 도덕성을 선택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도덕 법칙을 통해 인간이 지닌 초월적 자유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칸트가 [사례1]과 [사례2]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 것은

인간은 단지 심리적 자유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초월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이다. [사례2]에 대한 칸트의 마지막 설명에서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의식하기 때문에 자기는 무엇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도덕 법칙 아니었더라면 그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었을 자유를 자신

안에서 인식한다.(KpV, A54)

초월적 자유는 도덕 법칙과 함께 인간이 단지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니

라 예지 세계에도 속한 존재임을 드러내 준다. 인간은 감성 세계에 속하는 한 언제

나 선행하는 시간 규정에 따라 자연 법칙에 종속된 존재이지만, 시간상의 흐름 속

에서도 언제나 자연 법칙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계열을 시작할 수 있는 예지 세

계에 속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선행하는 시간상의 규정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에서 ‘무시간적 주체’라고도 말할 수

있다.101) 인간은 도덕 법칙에 따름으로써 자신이 초월적 의미의 자유를 지닌 존재로

서 예지 세계에 속할 수 있으며, 무시간적 주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

다. 하지만 인간을 경험적으로만 이해하려는 사람, 다시 말해 인간을 감성 세계에만

속한 존재로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는 도덕 법칙과 초월적 자유는 부정될 수밖에 없

다. 그러나 인간의 예지적 성격의 핵심인 도덕 법칙과 초월적 자유를 부정하고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칸트는 자유

를 경험적 원리들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고 믿고, 자유를 초월적 의미로 이해하지

않고 심리학적 속성으로 간주하며, 도덕 법칙을 통해 드러나는 예지 세계와 도덕

법칙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음을 우려하면서, 이러한 생각의 기반

인 경험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자 한다.(KpV, A168 참조) 칸트가 말하는 자유, 즉

엄밀한 의미에서 초월적 자유는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만을 전제하는 경험주의

적 사고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01) 강영안(2002), 앞의 책,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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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개념은 모든 경험주의자들에게는 걸림돌이지만, 비판적 도덕론자들에게는 가

장 숭고한 실천 원칙들을 위한 열쇠이기도 하다.(KpV, A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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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칸트 윤리학에서 행복주의 비판

1.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

칸트에 따르면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의

지를 규정하는 근거가 어떤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행위가 단순히

도덕 법칙이나 의무에 부합하거나 또는 그 행위의 결과가 의도한 목적에 부합하는

것에는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그것에서 기대되는 결과에 있지 않으며, 그러므로 또한, 그

원리의 동인을 이 기대되는 결과에서 얻을 필요가 있는, 어떤 행위 원리에도 있지 않

다.(GMS, B15)

왜냐하면 도덕적 가치가 문제일 때, 관건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 보는 행위들이 아

니라,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행위의 저 내적 원리들이기 때문이다.(GMS, B26)

칸트는 어떤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원리를 ‘도덕성의

원리’(Prinzip der Moralität)102)라고 하면서 이를 도덕적 가치를 결코 부여할 수 없

는 원리인 ‘행복의 원리(Prinzip der Glückseligkeit)’와의 선명한 대조 속에서 설명

하고 있다. 칸트는 도덕의 최상 원칙은 행복의 원리가 아니라 오로지 도덕성의 원

리이어야만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칸트는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우선 도덕성의 원리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칸트는『윤리형이상학 정초』의 머리말에서 이 책의 저술 목표를 ‘도덕성의 최

상 원리의 탐색과 확립’이라고 제시하면서(GMS, BXV), 도덕성의 최상 원리를 도출

해 내고자 시도한다. 칸트는『윤리형이상학 정초』1장에서는 일상인들의 도덕 판단

102) 사실상『윤리형이상학 정초』와『실천이성비판』에서 칸트는 ‘도덕성의 원리’라는 표현보다 ‘윤

리성의 원리(Prinzip der Sittlichkeit)’를 훨씬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칸트 자신도 ‘도덕

[성](Moral[Moralität])’과 ‘윤리[성](Sitte[Sittlichkeit])’을 이곳저곳에서 동일한 의미로 혼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번역 원칙에 따라 ‘도덕[성]’과 ‘윤리[성]’을 구분하여 번역하고 있는 백종현

도 “칸트에서 이 양자는 사실상 의미상의 차이는 없다.”(I.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백종현 옮김,『윤리형이상학 정초』(서울: 아카넷, 2005) p.65 각주)고 말하고 있어 어느

하나의 용어로 통일하여 진술하더라도 칸트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왜곡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연구자는 ‘윤리[성]’보다 ‘도덕[성]’이 사람들에게 더 자연스럽다고 판단하면서 최재희

(1997), 이원봉(2006), 박찬구(2014) 등의 학자들이 ‘도덕[성]’으로 번역한 것을 따라 ‘도덕[성]’으

로 통일하여 진술하고자 한다. 아울러 ‘도덕’과 ‘도덕성’도 의미상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맥락적으

로 유연하게 사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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및 선의지와 의무와 같은 일상적인 도덕적 개념들을 분석하고, 2장에서는 이성적

존재자 일반의 개념을 분석하여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를 규제하는 원리, 즉 도덕성

의 최상 원리를 도출해 낸다.103) 그렇다면 칸트가 도출해 낸 도덕성의 최상 원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의지의 자율(Autonomie des Willens)’이다.(GMS, B87)

자율의 원리만이 도덕[성]의 유일한 원리임은 도덕성의 개념들을 순전히 분석만

해 보아도 충분히 밝혀진다.(GMS, B88)

우리는 다만 일단 보편적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도덕성 개념을 발전시켜, 의

지의 자율이 이 도덕성 개념에 불가피하게 부착해 있다는 것, 바꿔 말해, 오히려 그

근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을 뿐이다.(GMS, B95)

의지의 자율이란 의지가 그 자신에게 의욕의 대상들의 모든 성질로부터 독립

적으로 법칙인 그런 의지의 성질로서(GMS, B87), 자기가 택하는 준칙이 동시에 보

편적인 법칙이 되기를 바랄 수 있도록 오직 그렇게만 선택하라는 것(GMS, B87104))

을 의미한다. 결국 도덕성의 원리는 정언 명령이어야 하고, 정언 명령은 바로 이 자

율을 지시 명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GMS, B88)

한편 칸트는『실천이성비판』에서 “의지의 자율은 모든 도덕 법칙들과 그에

따르는 의무들의 유일한 원리”(KpV, A58)라고 말하면서 도덕성의 원리로서의 의지

의 자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법칙의 일체의 질료(곧, 욕구된 객관)로부터 독립성과 동시에 준칙이 그에 부합해

야 하는 순전히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에 의한 자의의 규정에 도덕성의 유일한

원리가 성립한다.(KpV, A58-59)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의지의 자율이란 의지가 의지의 대상, 즉 욕구 능력의 객

관(질료)으로부터 독립하여 오직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 즉 도덕 법칙에 의해

서만 규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의지가 법칙의 질료, 즉 욕구 능력의 객관으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것은 의지가 경향성이라는 자연 법칙으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칸트는 이러한 독립성을 소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지가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은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이

103) 강지영,「“어떻게 정언명령이 가능한가?”-『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정언명령의 연역」, 고려

대학교 철학연구소,『철학연구』제50권, 2014, p.162 참조.

104) 이 부분은 쉬운 이해를 위해 박찬구(『칸트의 도덕형이상학 정초 읽기』(서울: 세창미디어,

2014), p.126)의 번역으로 인용했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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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립한 도덕 법칙에 의해 의지가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칸트는 이것을 적극

적 의미에서의 자유라고 말한다.(KpV, A58-59 참조) 따라서 의지가 순수 실천 이

성의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 즉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은 의지의 ‘자

율’과 ‘자유’를 동시에 드러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 법칙은 언제나 의지의 자

율을 원리로 삼고 있으며, 또한 자유는 도덕 법칙의 조건일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도덕 법칙은 다름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의 자율, 다시 말해 자유를 표현한다.105)

그리고 이 자유는 그 자체가, 그 아래에서만 준칙들이 최상의 실천 법칙에 부합할 수

있는, 모든 준칙들의 형식적 조건이다.(KpV, A59)

이처럼 도덕성의 원리는 곧 의지의 자율이고, 의지의 자율은 자유를 전제하고

있으며, 자유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도덕성의 원리와

자율, 자유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의 이념에는 자율의 개념이 불가분리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만, 이 개념[자율-

연구자 삽입]과는 도덕성의 보편적 원리가 결합되어 있다.(GMS, B109)

한편 칸트가 도덕성의 원리를 의지의 자율에서 찾고자 한 것은 행위의 도덕적

가치, 즉 행위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칸트는 행위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행

위와 의지의 자율과의 관계, 다시 말해 행위가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에 부합

하는 의지의 준칙에서 비롯한 것인지의 여부에 둔다. 그래서 칸트는 의지의 자율과

양립할 수 있는 행위는 허용될 수 있지만, 의지의 자율과 일치할 수 없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GMS, B85-86)고 말한다. 단순히 의지가 도덕 법칙에 따르거나, 어

떤 행위가 도덕 법칙에 적합하다는 것만으로 그러한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만약 도덕 법칙이 쾌의 감정에 기초해 있는 욕구 능력의 객관

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라면 의지는 자신의 법칙 수립적 형식, 즉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욕구 능력의 객관에 대한 관심, 즉 경향성에 의해 규정되는

105) 원래 백종현의 번역은 “도덕 법칙은 다름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의, 다시 말해 자유의 자율을

표현한다.”이다. 하지만 백종현의 설명처럼 이 대목을 ‘순수 실천 이성의 자율, 다시 말해 자유’로

고쳐 읽자고 제안하는 사람도 있듯이, 연구자는 칸트의 의도를 살리면서 문맥상 자연스러운 독해

를 위해 ‘고쳐 읽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판단하여 후자를 선택하여 인용하기로 한다. 최재희(I.

Kant,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최재희 옮김,『실천이성비판』(서울: 박영사, 1997), p.37)도

이와 같이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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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 법칙에 적합한 행위가 진정으로 도덕적 가치를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도덕 법칙에 적합한 행위가 의지의 자율이라는 도덕성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 점을 강조하고자 칸트는 “행위의 모든 도덕적 가치의

본질적인 면은 도덕 법칙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 있다.”(KpV, A126)

고 말한다. 도덕 법칙은 다름 아닌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이 수립한 것이므로 도덕

법칙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결국 의지가 욕구 능력의 객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오로지 순수 실천 이성의 법칙 수립적 형식에 의해서만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의지의 자율인 것이다. 이처럼 칸트는 도덕 법칙에

따르는 행위가 의지의 자율에 근거하지 못하고 단순히 도덕 법칙에 적합한 행위에

그친다면 그러한 행위는 합법적 행위일 수는 있겠지만 도덕적 행위일 수는 없다고

본다.(KpV, A126-127 참조) 칸트는 도덕성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시도한 이제까지

의 모든 노력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도덕성의 원리를 의지의 자율에서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일찍이 도덕성의 원리를 발견하고 기도하였던 이제까지의 모든 노력을 돌

이켜볼 때, 왜 그러한 노력들이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는 하나도 놀랄 일이 아

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자신의 의무로 인해 법칙에 매여 있음은 보았으나, 인간은 단

지 자기 자신의, 그러면서도 보편적인 법칙 수립에 종속되어 있다는 데는 생각이 미

치지 못했고, 또 의지는 오직, 자기 자신의, 그러나 자연의 목적에 따라 보편적으로

법칙 수립하는, 의지에 맞게 행위하게끔 되어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

다.(GMS, B73)

인간이 자신의 의무로 인해 어떤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고 할 때, 그 법칙에 대

한 종속이 자신의 법칙 수립적 의지에서 비롯한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법칙에 대한 종속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의해 강제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지가 법칙에 맞게 규정되도록

하기 위해 자극과 강제로서의 관심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심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조건적이고 경험적일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욕구 능력의 객관과

결합하는 쾌의 감정과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관심에서 비롯한 의무로서의 합

법칙적 행위는 결코 도덕적 행위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칸트는 이런 방식으로 사

람들이 얻은 것은 결코 의무가 아니라, 어떤 이해 관심으로 인한 행위의 필연성일

뿐이라고 말한다.(GMS, B73)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생각하는 의무의 개념이 결코 단순히 법칙에 종속되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반드시 의지의 자율이라는 도덕성의 원리에 근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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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칸트는 의무에 개념이 의지의 자율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의무에 맞는(pflichtmäßig) 행위’와 ‘의무로부터의(aus

Pflicht) 행위’를 명확히 구분한다.(GMS, B8-B14 참조) 칸트는『윤리형이상학 정

초』에서 선의지의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해 의무의 개념을 등장시킨다. 칸트는 의

무의 개념이 선의지의 개념을 포함한다고 보고, 특히 경향성과의 대조를 통해 선의

지의 개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해 준다고 말한다.(GMS, B8) 그래서 칸트는

‘정직’, ‘생명 보존’, ‘선행’, ‘행복 추구’의 의무에 맞는 행위를 분석하면서 진정한 도

덕적 가치는 단순히 경향성으로부터 비롯한 ‘의무에 맞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경향성으로부터 벗어난 ‘의무로부터의 행위’에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칸트

는 ‘의무로부터의 행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무로부터의 행위는 그것의 도덕적 가치를, 그 행위를 통해 달성해야 할 의도에

서 갖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라 그 행위가 결의되는 준칙에서 갖는 것으로, 의무로부

터의 행위는 그러므로 행위 대상의 현실성에 의존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욕구

능력의 모든 대상과는 무관하게 행위를 일어나게 한 의욕의 원리에 의존해 있는 것이

다.(GMS, B13)

의무로부터의 행위가 ‘욕구 능력의 모든 대상과는 무관하게 행위를 일어나게

한 의욕의 원리에 의존해 있다’는 것은 앞서 살펴 본대로 의지가 의지의 대상으로

부터 전적으로 독립하여 의지 자신의 법칙 수립적 형식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므

로, 결국 의무로부터의 행위는 의지의 자율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행위가 의무로부터 비롯하여 일어난다면, 의지에서 모든 질료적 원리는 제거된 것

이므로, 의지는 의욕 일반의 형식적 원리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 수 없다.(GMS, B14)

그러므로 의무로부터의 행위는 경향성의 영향 및 의지의 일체 대상을 전적으

로 격리해야 한다(GMS, B15)는 점에서 소극적 의미의 자유를, 또한 의지가 의지

자신의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에 의해 직접적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적극적

의미의 자유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순수 실천 이성의 자율, 다시 말해 의지의 자율

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의무를 ‘의무에 맞는 행위’가 아니라 ‘의무로부터의 행위’로 이해한다는 것은

의무를 의지의 자율이라는 도덕성의 원리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무를 단순히 법칙에 종속된 행위나 법칙에 적합한 행위와 같이 ‘의무에 맞는 행

위’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의무를 도덕성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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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차원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된다. 칸트는 이 점을 고려하여 의무의 개념을 ‘법칙

에 대한 존경’과 연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무의 개념은 그러므로 행위에서는 객관적으로 법칙과의 합치를 요구하고, 그러

나 행위의 준칙에서는 주관적으로 법칙에 의해 의지를 규정하는 유일한 방식인 법칙

에 대한 존경을 요구한다. 바로 이 점에 의무에 맞게 행위했다는 의식과 의무로부터,

다시 말해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 인해 행위했다는 의식 사이의 구별이 의거한다. 이

가운데 전자(합법성)는 경향성들이 순전히 의지의 규정 근거일 때에도 가능하지만, 그

러나 후자(도덕성), 곧 도덕적 가치는 오로지, 행위가 의무로부터, 다시 말해 순전히

법칙을 위해 일어나는 데에만 두어져야 한다.(KpV, A144)

칸트는 의무의 개념은 법칙과의 합치, 즉 합법성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이

와 함께 법칙에 대한 존경이 의지를 규정함으로써 도덕성까지 포함할 수 있어야 한

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기서 칸트가 법칙에 대한 존경에 의한 행위를 의무로부터의

행위로 연결시키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칙에 대한 존경은 “의지의 법

칙에 대한 자유로운 복종의 의식”(KpV, A142-143)으로서 도덕 법칙에 의해 일으켜

지는 도덕적 감정이다. 칸트에 따르면 이러한 법칙에 대한 존경은 경향성과 관련하

는 정념적 감정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감정으로 순수 이성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도덕 법칙을 자신의 준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주관적 동기라고 할 수 있다.

법칙에 대한 존경을 자신의 의지의 준칙이 도덕 법칙에 의해서 규정될 수 있도록

하는 주관적 동기로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의지가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이

세운 도덕 법칙에 의해 직접적으로 규정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칸트는 법칙에 대한 존경을 통해 도덕 법칙이 객관적으로뿐

만 아니라 주관적으로도 의지를 규정하는 것임을 드러냄으로써 의무가 의지의 자율

에 근거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에게 법칙에 대한 존

경은 의무가 ‘의무로부터의 행위’이고, ‘도덕적인 행위’이며, ‘의지의 자율에 근거한

행위’임을 드러나게 해 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가 “법칙에

대한 존경은 도덕을 위한 동기가 아니라, 오히려 도덕 자체이며, 주관적으로 동기로

보아진 것이다.”(KpV, A134)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 있

다. 법칙에 대한 존경을 의지의 자율이라는 도덕성의 원리를 드러내 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칸트는 결국 의무를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의무는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부터 말미암은 행위의 필연성이다.(GMS, B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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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의무가 의지의 자율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라면, 의무의 개념에 포함

되는 선의지도 역시 의지의 자율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칸트가 선의 개념

을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칸트에게 선의지란

결국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를 의미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해할 수 있다. 선의지가 의지의 자율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은 선의지에 대한 칸

트의 설명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선의지는 그것이 생기에 하는 것이나 성취한 것으로 말미암아, 또 어떤 세워진 목

적 달성에 쓸모 있음으로 말미암아 선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의욕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선한 것이다.(GMS, B3)

이제까지의 논의를 통해 도덕성의 원리는 다름 아닌 의지의 자율이라는 것, 그

리고 의지의 자율이 칸트의 핵심적 개념들인 도덕 법칙, 자유, 선의지, 의무에 동어

반복적으로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의지의 자율’을 전제

하는 한에서 ‘도덕 법칙에 따르는 행위’, ‘자유로운 행위’, ‘선의지에 따른 행위’, ‘의

무에 따른 행위(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의무로부터의 행위)’는 모두 동일한 의미에

서 도덕적 가치를 지닌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도덕성의 원리, 즉 의지의 자율을 기초로 행위할 수 있는 존재

이지만, 경향성에 따르는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에 언제나 의지의

자율에 따라서만 행위할 수는 없다. 인간은 언제나 의지가 필연적으로 도덕 법칙과

일치해 있는 신성한 의지를 지닌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의지의 자율로서의 도덕성

의 원리는 인간에게 명령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것은 도덕성의 원리가 의무의

개념을 통해 인간에게 드러난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의무의 개념

도 경향성과 도덕 법칙이 상충하는 존재에게 부과되는 실천적 강요를 전제하고 있

기 때문이다. 도덕성의 원리가 인간에게 부과하는 명령은 행위의 질료, 의도, 결과

와 관련되는 목적을 위해 수단적으로 선한 행위를 명령하는 가언 명령이 아니라 오

로지 행위의 형식적 원리, 즉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그 자체로 선한 행위를

명령하는 정언 명령이다.

이 명령[정언명령-연구자 삽입]은 행위의 질료, 및 그 행위로부터 결과할 것에 관

여하지 않고, 형식 및 그로부터 행위 자신이 나오는 원리에 관여한다. 행위의 본질적

으로 선함은, 그 행위로부터 나오는 결과가 무엇이든, 마음씨에 있다. 이 명령은 도덕

성의 명령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GMS, B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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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의지의 자율로서의 도덕성의 원리는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에게

도덕성의 명령, 즉 정언 명령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106)

‘의지는 모든 행위에 있어 자기 자신에게 법칙이다.’라는 명제는 단지, 자기 자신을

또한 보편적 법칙으로서 대상으로 가질 수 있는 준칙 외의 다른 어떤 준칙에 따라서

는 행위하지 않는다는 원리를 표시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정언 명령의 정

식이자 도덕성의 원리이다.(GMS, 98)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도덕성의 원리를 표상하는 정언 명령의 세

가지 정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정식1] 너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

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GMS, B52)

[정식2]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GMS, B66-67)

[정식3] 의지가 자기의 준칙에 의해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보편적으로 법칙을 수립

하는 자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GMS, B76)

여기서 도덕성의 원리는 [정식1]을 통해 ‘보편주의’로, [정식2]를 통해 ‘인격주

의’로, [정식3]을 통해 ‘자율’로 드러나고 있다.107) 칸트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이 세

가지 정식은 “한 가지가 다른 두 가지를 저절로 자기 안에 통일하는 동일한 원칙의

세 가지 정식일 따름이다.”(GMS, B79) 칸트는 [정식1]과 [정식2]가 원칙과 근본에

있어서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있고(GMS, B82-83 참조) 또한 [정식3]은 [정식1]의 보

편주의를 포함하면서도 인간 자신이 법칙 수립자임을 강조하는 ‘자율’을 더 강조한

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3가지의 정식을 한 가지로만 표현해야 한다면 자율의

106) 이로써 칸트가 자신의 윤리학에서 강조하는 핵심적 개념들인 도덕 법칙, 자유, 선의지, 의무, 정

언 명령은 모두 도덕성의 원리인 의지의 자율에 기초하고 있으며, 의지의 자율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만 그 개념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각 개념들에 대한 칸트의 유사한 설

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도덕 법칙, 자유, 선의지, 의무, 정언 명법은 의지의 자율을 표현하는

동일한 의미의 서로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의지의 자율을 전제한다면

이 5가지의 개념들은 상호 교환 가능한 ‘가족 유사성’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07) 앞의 각주에서는 페이튼에 따라 [정식1]을 보편 법칙의 정식, [정식2]를 목적 자체의 정식, [정

식3]을 자율의 정식이라고 표현하였으나, 각 정식이 지향하는 핵심을 표현하는 용어로는 이것보다

‘보편주의’, ‘인격주의’, ‘자율’이 간명하다고 판단하여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아울

러 이러한 표현 방식은 박찬구(『칸트의 도덕형이상학 정초 읽기』(서울: 세창미디어, 2014),

p.118)에서 가져왔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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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이라 할 수 있는 [정식3]이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칸트가『실천이성비판』에서 도덕성의 원리를 ‘순수 실천 이성의 원칙’108)이라는 표

현을 통해 자율의 정식으로 제시한 것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겠

다.

그렇다면 칸트가 도덕성의 원리로서의 의지의 자율을 이처럼 중시하고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칸트가 ‘의지의 자율’에서 인간의 숭고함과 존엄성을 발견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단순히 도덕 법칙에 종속해 있다는 것, 도덕

법칙에 적합한 행위를 하는 것에서 숭고함과 존경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즉,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이 도덕 법칙을 수립함과 동시에 그렇게 수립한

도덕 법칙에 스스로 따를 수 있다는 ‘의지의 자율’에서 비로소 숭고함과 존경을 발

견할 수 있으며 바로 여기에 인간의 존엄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인격이 도덕 법칙에 복종해 있는 한에서, 그에게 숭고함이란 없으나, 실로 그가 바

로 그 도덕 법칙에 대하여 동시에 법칙수립적이며, 그리고 오로지 그 때문에 그것에

종속해 있는 한에서는, 숭고함이 있다. …… 우리 자신의 의지는, 그것이 오로지 그것

의 준칙들에 의해 가능한 보편적인 법칙수립의 조건 아래서 행위하는 한에서, 즉 이

념에서 우리에게 가능한 이 의지가 존경의 본래 대상이다. 그리고 인간성의 존엄함은

보편적으로 법칙수립적이며, 그러면서도 동시에 바로 이 법칙수립에 스스로 복종한다

는 조건과 함께 그렇게 하는 이 능력에서 성립한다.(GMS, B86-87)

인간은 도덕성의 원리인 의지의 자율에 근거하여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다는 점에서 숭고하고 존엄한 존재이다. 이는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을 통해 의지

의 자율을 실천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의지의

자율에 근거한 행위는 결국 모든 인격 안의 인간성을 단지 수단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는 행위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자유’

의 정식이 ‘인격주의’의 정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

다.

인간이 도덕성의 원리에 따라 행위한다는 것은 의지의 자율에 따라 행위한다

는 것이다. 그리고 의지의 자율에 따라 행위한다는 것은 ‘도덕 법칙에 따라’, ‘자유로

부터’, ‘선의지에 따라’, ‘의무로부터’, ‘정언 명령에 따라’ 행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이렇게 행위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단지 경향성이라는 자연 법칙에 종속된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에만 머물지 않고, 동시에 일체의 경향성으로부터 독립하여

108)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

하라”(KpV, A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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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법칙, 즉 도덕 법칙에도 따를 수 있는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지의 자율로서의 도덕성의 원리에서 비롯한 행위는 인간을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자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칸트는 “예지 세계의 순전한 구성

원으로서 나의 모든 행위들은 순수 의지의 자율의 원리에 완전히 적합할 것이

다.”(GMS, B110)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덕성의 원리와 대비되는 행복의 원리란 무엇인가? 칸트는

의지의 대상109), 즉 욕구 능력의 객관(질료)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을 행복의 원리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은 그 자체로 모두 동일한 종류의 것이며, 자기 사랑과

자기 행복이라는 보편적 원리에 속한다.(KpV, A40)

욕구 능력의 객관은 그것의 실현이 욕구되는 대상을 의미하는 것(KpV,

A38-39)으로서, 욕구 능력의 객관은 언제나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의지가 욕구 능력의 객관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은 결

국 의지가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욕구 대상과 결합된 쾌는 경험적으로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욕구 능력

의 객관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은 언제나 경험적

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은 경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관적으로만 타당한 실천 규칙만을 제공할 수 있을 뿐, 보편적으로 타당한

필연적인 실천 법칙, 즉 도덕 법칙을 제공할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욕

구 능력의 객관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모든 실천 원리들은 모조리 경험적

인 것이며, 어떠한 실천 법칙도 제공할 수가 없다.”(KpV, A38)고 말하고 있는 것이

다. 칸트는 이렇게 언제나 경험적인 조건에 의존해 있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실천

법칙을 제공할 수 없는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을 ‘자기 사랑의 원리’ 또는 ‘자기

행복의 원리’로 귀속시키고 있다.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자기 사랑의 원리’와 ‘자기

행복의 원리’는 모두 의지의 규정 근거를 욕구 대상의 실현으로부터 기대되는 쾌에

두고 있는 질료적 실천 원리라는 점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 욕구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를 단

순하고 일시적인 차원에서만 고려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와 더불어 자신의 전 생애

에 걸쳐 지속되는 총체적 의미의 쾌를 고려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미의 쾌가 바로

칸트가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KrV, B834), ‘이성적 존재자의 자기의 전 현존에 부

109) “실천 원리의 질료는 의지의 대상이다.”(KpV, A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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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히 수반하는 쾌적한 삶에 대한 의식’(KpV, A40-41)이라고 설명하는 행복이다. 이

때의 행복은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되든지 간에 의지의 대상, 즉 욕구 능력

의 객관을 실현한 결과로서 기대되는 쾌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칸트는 행복을 자의[의지]의 최고 규정 근거로 삼는 원리를 자기 사랑의 원리, 즉

자기 행복의 원리라고 말한다.(KpV, A41) 그런데 우리는 칸트가『윤리형이상학 정

초』와『실천이성비판』에서 ‘자기 행복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를 혼용하여 사용하

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GMS, B89-90; KpV, A60-64 참조) 하지만 칸트가 ‘행

복의 원리’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 것은 다름 아닌 행복의 원리가 욕구 능력의 객관

과 결합하는 쾌, 다시 말해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질료적 실천 원리

라는 점, 그래서 행복의 원리는 경험적인 조건에 의존하는 원리로서 보편성과 필연

성을 지닌 도덕 법칙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로 칸트가 ‘행복의 원

리’를 ‘자기 사랑의 원리’ 그리고 ‘자기 행복의 원리’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

을 알려 준다.110) 이를 다음 칸트의 설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10) 칸트 저술의 엄밀성을 지나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칸트가 ‘자기 사랑의 원리’, ‘자기 행복의 원

리’, ‘행복의 원리’를 구분한 것에 주목하면서 의미의 차이를 규명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칸트의 이 세 가지 표현은 모두 동일한 의미를 지니며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의 ‘행복’에 주목한다

면 포괄적 의미에서 ‘행복의 원리’로 통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특히 ‘행복’과 ‘자기 행복’의

구분도 칸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칸트는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을 행복이라고 말하면

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경향성들은 함께-경향성들도 웬만한 정도의 체계로 포괄될 수 있고, 그 때

이 경향성들의 충족이 자기 행복이라 일컬어지는 것이다.”(KpV, A129)라고 말하면서 ‘모든 경향

성들의 충족’을 자기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차라리 칸트가 왜 ‘행복의

원리’를 ‘자기 행복의 원리’ 또는 ‘자기 사랑의 원리’로 표현하고자 했는지에 대해 주목해 보는 것

이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연구자는 칸트가 단지 ‘행복의 원리’라고만 하지 않고 ‘자기 행복의 원

리’, ‘자기 사랑의 원리’에서처럼 ‘자기(eigen)’를 덧붙여 강조한 것은 ‘행복의 원리’는 그 특성상 설

령 그것이 ‘타인의 행복’과 관련되더라도 결국 ‘자기 행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

각한다. 왜냐하면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의 타인의 행복은 자연스럽게 타인의 행복으로부터 느끼게

될 자신의 만족과 행복과 결합하게 되고, 이는 결국 자신의 만족과 행복이 의지의 최종적 규정 근

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자의 행복이 그 규정 근거가 되는 의지의 준칙은

그것이 무엇이라도 자기 행복의 원리에 기초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결코 객관적인 실천 법칙이

될 수 없다. 이에 대해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자의 행복이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의 객관

일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준칙의 규정 근거라면, 우리는 우리가 타자의 복락에서 자연스러운

즐거움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있는 동정적 마음씨가 일으키는 필요 또한 발견한다는 것을 전제하

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필요를 나는 어느 이성적 존재자에게서도 (더구나 신에게서는 전혀)

전제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준칙의 질료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준칙의 조건이어

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이 준칙이 법칙으로 쓰일 수는 없을 것이니 말이다.”(KpV,

A60-61)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 데, 그것은 칸트가 타인의 행복을 객관적

실천 법칙과 함께 할 수 있는 정당한 질료로서는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칸트는 “질료를 제한하

는 법칙의 순전한 형식은 동시에 이 질료를 의지에 덧붙이되, 그러나 전제하지 않는 근거여야만

한다”(KpV, A61)고 말한다. 이것은 타자의 행복이 의지를 규정하지 않고 법칙의 순전한 형식이

의지를 규정한다면, 법칙의 순전한 형식은 동시에 타자의 행복을 질료로서 의지에 포함시킬 수 있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타자의 행복은 어떻게 법칙의 순전한 형식과 함께 할 수 있는 질료가 될

수 있을까? 칸트는 자기 행복을 질료로 삼는 자기 행복[사랑]의 준칙이 객관적으로 타당한 보편적

실천 법칙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행복’을 질료에 포함시킬 때만 가능하다고 본다.(KpV, A61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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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원리가 준칙들을 제공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제 아무리 사람들이 보

편적인 행복을 객관으로 삼는다 할지라도, 결코 의지의 법칙들로 쓰일 그런 준칙들을

제공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행복에 대한 인식은 순전히 경험 자료에 의거하고,

이에 대한 각자의 판단은 전적으로 각자의 생각에 달려 있는바, 이 각자의 생각이라

는 것도 변화무쌍한 것이므로, 행복의 원리는 일반적 규칙을 줄 수 있으나, 결코 보편

적인 규칙들은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체적으로 아주 흔하게 들어맞는

그런 규칙들은 줄 수 있으나, 항상 그리고 필연적으로 타당해야만 하는 그런 규칙들

은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실천 법칙도 거기에[행복의 원리-백종현

각주 인용 삽입] 기초할 수는 없다.(KpV, A63)

그러므로 행복의 원리는 욕구 능력의 객관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모

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을 포괄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욕구 능력의 객관

은 의지의 대상으로서, 욕구하는 대상의 실현에서 기대되는 쾌와 결합하며, 사람들

은 이러한 쾌를 행복이라는 보편적 언어와 연결시킨다. 따라서 행복의 원리는 다시

말하면 모든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원리를 일컫

는다고 할 수 있다. “행복의 개념에 속하는 모든 요소는 모두 경험적이고, 다시 말

해 경험에서 빌려 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GMS, B46), “경험적 원리는 행복의 원

리로부터 나오는 것”(GMS, B89-90)이므로 행복의 원리는 주관의 경험적 조건에 의

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행복의 원리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필연적으로 타당

한 무조건적인 실천 법칙을 제공할 수 없고, 단지 일반적으로만 타당한 조건적인

실천 규칙만을 제공할 수 있다. 행복의 원리는 언제나 욕구 능력의 객관과 결합하

는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이라는 목적을

조) 그러니까 타자의 행복은 법칙의 보편적 형식, 즉 칸트가 정언 명령으로 제시하는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라는 법칙의 보편성이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되는 과정에서 귀결되는, 법칙의 순전한 형식

과 함께 할 수 있는 질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타인의 행복을 촉진하라는 법칙

은 이것이 모든 사람의 자의의 객관이라는 전제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순전히, 자기 사

랑의 준칙에 법칙의 객관적 타당성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이성이 필요로 하는 보편성의 형식이 의

지의 규정 근거가 되는 데서 생긴다.”(KpV, A61)라고 말하는 것이다. 타인의 행복 그 자체가 곧바

로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된다면 이에 근거한 모든 준칙은 다만 ‘행복의 원리’에 따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칙의 보편적 형식이 의지를 규정하는 가운데 의지에 덧붙여지는 질료로서의

타인의 행복은 ‘행복의 원리’가 아니라 ‘도덕성의 원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 정당하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도 이와 같은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나

는 예컨대, 타인의 행복의 촉진을 추구해야 하는 바, 그것의 실재[타인이 실제로 행복하게 됨/백종

현 각주 내용 인용 삽입] (직접적인 경향성에 의한 것이든, 이성에 의한 간접적인 만족이든지 간

에) 무엇인가 나와 관련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그것을 배제하는 준칙은 동일한 의욕 중에 보

편적인 법칙으로서 포섭될 수 없기 때문이다.”(GMS, B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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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한 최선의 수단을 선택하도록 지시하는 명령, 즉 가언 명령111)의 형태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 본 대로 도덕성의 원리가 곧 의지의 자율을 의미하고, 의지의 자율

이란 의지가 의지의 대상, 즉 욕구 능력의 객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오직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 즉 도덕 법칙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상기

한다면, 행복의 원리는 도덕성의 원리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정반대의 원리임을 확

인할 수 있다.

자기 행복의 원리가 의지의 규정 근거로 된다면, 그것은 도덕성의 원리와 정반대

다.(KpV, A61)

칸트는 행복의 원리와 도덕성의 원리의 경계는 너무나도 명확하고 뚜렷해서

아주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도 양자의 구별을 결코 잘못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

다.(KpV, A63 참조)112) 칸트는 행복의 원리와 도덕성의 원리가 서로 다른 것임을

111) 칸트에 따르면 가언 명령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지시하는 명령이다. 칸트는 가언

명령을 목적의 성격에 따라 다시 숙련의 명령과 영리함의 명령으로 구분한다. 숙련의 명령은 가능

한 목적, 다시 말해 임의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을 지시하는 명령을 말하고, 영리함의 명령은 현실

적인 목적, 즉 행복을 위한 수단을 지시하는 명령을 말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한 수단

선택에서 숙련을 좁은 의미에서 영리함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GMS, B42 참조) 숙련의 명령

은 결국 영리함의 명령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가언 명령은 영리함의 명령

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을 충고해 주는 실천적 훈계라

고도 할 수 있다.

112) 칸트는 가장 평범한 사람들일지라도 얼마나 행복의 원리와 도덕성의 원리를 잘 구별할 수 있는

지를 다음의 두 가지 사례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사례1] 다른 점에서는 네 마음에

드는 너의 친구가 거짓 증언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을 정당화하려 한다고 해 보자. 그가 우

선 자기 행복이란 신성한 의무라고 짐짓 둘러대고, 그 다음에 이를 통해 얻게 된 이득들을 열거하

고, 모든 발각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하여, 그가 다만 언제든 부인할 수 있도록 그 비밀을 너에게 발

설하고는, 심지어 너 자신에게 발각되는 것으로부터 조차 안전하기 위하여 그가 좇은 영리함을 지

적하고, 그리고는 진심으로 그는 참된 인간의 의무를 수행했다고 자부한다고 해 보자. 그러면 너는

그를 직접 면전에서 조소하거나 혐오스러워 그를 피할 것이다. 비록, 누군가가 그의 원칙들을 자기

이익에 맞춰 세울 때, 네가 이 척도에 대해 전혀 반박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사례2] 누군

가가 여러분에게 모든 일들을 무조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집사로 추천하면서, 여러분에게

신뢰감을 불어넣기 위해 그를 칭찬하기를, 그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완벽하게 챙기는 영리한 사람

이고, 자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어떠한 기회도 이용치 않고 흘려버리는 일이 없는 휴식을 모르는

활동가라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또한, 그의 비루한 사리사욕으로 인한 우려가 장애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고상하게 살 줄 아는가를 칭찬하여, 그는 돈 모으기나 야비한 풍요에서

만족을 찾지 않고, 오히려 지식을 넓히고 잘 선택된 배움 있는 교제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자선에서 즐거움을 찾는다고 칭찬하고, 그러나 그 밖에 그는 수단-이것의 가치

유무는 오로지 목적에서 얻는 것인데-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으며, 그래서 그는 그가 하는 일이 발

각되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마자, 목적을 위해서는 남의 돈과 재산을 마치 자기 것

인 양 쓴다고 칭찬했다 가정해 보자. 그러면 여러분은 그 추천인이 여러분을 조롱하고 있거나, 아

니면 그가 지성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믿을 것이다.(KpV, A62-63) 칸트는 이 두 사례를 언급하

면서 평범한 지성을 지닌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행복의 원리와 도덕성의 원리를 구별할 수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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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노름113)의 예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예시1] 노름에서 돈을 잃은 사람은 아마 자기 자신과 자신이 영리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화를 낼 것이다.(KpV, A65)

[예시2] 노름에서 돈을 땄다 하더라도 속임수를 썼음을 스스로 알 경우에는 자

신을 도덕 법칙에 비추어보자마자 자기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

다.(KpV, A65)

[예시1]에서 주인공은 욕구 대상인 돈을 얻게 됨으로써 느끼게 될 쾌를 기대하

며 노름에 참여했지만, 결국 돈을 잃게 되어 자신이 좀 더 영리하지 못했음을 자책

하며 화를 내고 있다. 여기서 주인공이 오로지 관심을 갖는 것은 욕구 대상으로서

의 돈의 획득과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게 하는 최선의 수단이다. 따라서 주인공의

의지는 욕구 능력의 객관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행복의 원리에 의해 지배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활동하는 이성은 경험적 실천 이성으로서, 경험적

실천 이성은 욕구 대상의 실현을 위한 최선의 수단과 관련한 갖가지 명령을 부과한

다. 이것이 바로 가언 명령으로서의 영리함의 명령이다. 주인공은 영리함의 명령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름을 해 보았지만 결과적으로 돈을 잃게 됨으로써 불쾌

감에서 화를 내게 되고 아울러 자신이 선택한 영리함의 명령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

게 되는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예시1]에서 주인공은 행복의 원리에 기초해서

자신의 행위를 판단하며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예시2]에서 주인공은 노름에서 돈을 따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신이 속임

수를 썼다는 것을 도덕 법칙과 비교해 보면서 자기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 [예시1]

에서와 달리 [예시2]의 주인공은 노름을 통한 돈의 획득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여

며, 그리고 도덕성의 원리를 대변하는 ‘이성의 목소리’, 즉 양심의 관점에서 행복의 원리가 결코 도

덕의 최상 원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강조한다. 칸트에게 도덕성

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가 혼동된다거나, 도덕성의 원리가 행복의 원리에 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은

도덕의 완전한 궤멸을 의미한다. 그래서 칸트는 “만약 이성의 목소리가 의지와 관계 맺음에서 그

토록 또렷하고, 그토록 흘려들을 수 없고, 가장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사뭇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

라면, 도덕을 완전히 궤멸시킬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행복은, 고심할 가치 없는 이론을 보존하기

위해, 저 이성의 고귀한 목소리에 귀 막을 만큼 대담한 학파의 혼란한 사변 속에서나 간직돼 있을

뿐이다.”(KpV, A62)라고 말한다.

113) 여기서 칸트가 ‘노름’과 관련한 예시를 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노름은 돈을 따

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모든 수단과 전략을 강구하는 가운데 즐거움을 만끽하는 놀이이다.

따라서 노름에서의 모든 행위는 행복의 원리에 기초하여 ‘돈’이라는 목적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선

택하기 위해 경험적 실천 이성에 의해 부과하는 영리함의 명령에 따르게 된다. 하지만 칸트는 이

렇게 행복의 원리가 지배할 것만 같은 노름의 세계에서도 도덕성의 원리에 기초한 판단이 여전히

가능함을 보여줌으로써, 그 선명한 대조를 통해 도덕성의 원리가 언제 어디서나 이성의 목소리로

서 우리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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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서 주인공이 오로지 관심을 갖는 것은 속임수를 쓴 자신의 행위를 도덕 법칙에

비추어 보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속임수를 쓰는 행위가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

식, 즉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에서 비롯한 행위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

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를 살펴보는 것은 간단하다. 그것은 칸트가 제시한 정

언 명령의 [제1정식]에 따라 ‘너 또한 너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의욕할 수

있는가?’라고 단지 자문해 보면 된다.(GMS, B20) 그런데 칸트가 이미 ‘거짓 약속’의

예를 통해 거짓 약속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는 것을 의욕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듯이(GMS, B18-19; B54-55 참조), ‘노름에서 돈을 따기 위해서는 속임수를 써도

좋다’라는 준칙이 마찬가지로 보편적 법칙이 되는 것을 의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노름에서 돈을 따기 위해서는 속임수를 써도 좋다는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된다면

필연적으로 노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기모순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

라서 주인공은 속임수를 쓰는 행위가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 즉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에서 비롯한 행위가 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도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는 행위임을 깨닫고, 그러한 행위를 한 자신을 경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주인공의 의지는 욕구 능력의 객관으로부터 전적으로 독립하여 오직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 즉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도덕성의 원리에

지배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활동하는 이성은 순수 실천 이성으로서, 순수

실천 이성은 행위와 관련된 일체의 목적, 의도, 결과를 배제하고 오직 법칙 수립적

형식을 통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명령, 즉 정언 명령을 부과한다. 주인공은

노름에서의 돈의 획득과는 전혀 상관없이 단지 순수 실천 이성이 부과한 정언 명령

에 따르지 않고 속임수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도덕적으로 경멸하고 있는 것

이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예시2]의 주인공은 도덕성의 원리에 기초해서 자신의 행

위를 판단하며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행복의 원리와 도덕성의 원리는 서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정반대의 원

리이다. 행복의 원리와 도덕성의 원리는 원리상의 중첩된 영역을 가질 수 없기 때

문에 도덕성의 원리가 아닌 다른 모든 원리는 행복의 원리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

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칸트가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은 그 자체로 모두 동일

한 종류의 것으로서 결국 행복의 원리로 포괄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이러

한 이유 때문인 것이다. 칸트는 의지의 자율로서의 도덕성의 원리를 유일한 형식적

실천 원리라고 생각하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가능한 원리를 행복의 원리에

속하게 될 질료적 실천 원리로 간주한다.(KpV, A68 참조) 칸트는 모든 질료적 실

천 원리들에서 의지를 규정하는 근거들의 성격을 ‘주관적(경험적)-객관적(이성적)’,

‘외면적-내면적’이라는 분류 틀을 기준으로 구분하면서 아래와 같이 하나의 <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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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고 있다.

<표-2114)> 도덕 원리에서 실천적 질료적 규정 근거들

칸트는 위의 <표>를 통해 단 하나의 형식적 원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가

능한 원리들을 총망라해서 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KpV, A68) 여기서 칸트가 말

하는 ‘단 하나의 형식적 원리’란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과 대비되는 ‘형식적 실천

원리’를 말한다. 이 ‘형식적 실천 원리’란 다름 아닌 ‘의지의 자율로서의 순수 실천

이성의 형식적인 최상 원칙’(KpV, A68)이며, 이는 곧 도덕성의 원리라고 할 수 있

다. 그리고 도덕성의 원리에서 의지의 규정 근거, 다시 말해 실천적 형식적 규정 근

거는 오직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이 수립한 ‘도덕 법칙’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만약

칸트가 위의 <표>에 질료적 실천 원리뿐만 아니라 도덕성의 원리를 의미하는 형식

적 실천 원리까지 포함하여 모두 표시하고자 했다면 위의 <표>의 왼쪽에 다음과

같은 <표>가 첨가될 수 있을 것이다.

<표-3> 도덕 원리에서 실천적 형식적 규정 근거

칸트는 실천적 질료적 규정 근거들(교육, 사회 체제, 자연감정, 도덕 감정, 완전

성, 신의 의지)을 모두 살펴보면서, 이에 기초한 모든 원리들은 ‘질료적’이고, 여기서

제시된 원리들은 가능한 모든 질료적 원리들을 포괄하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리

고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최종적인 결론을 제시한다.

114) 칸트가 ‘KpV, A69’에서 정리한 표를 표의 양식만 달리해서 그대로 정리하였다.

도덕 원리에서 실천적 질료적 규정 근거들

주관적(경험적) 객관적(이성적)

외면적 내면적 내면적 외면적

교육 사회체제 자연감정 도덕감정 완전성 신의 의지

몽테뉴 맨드빌 에피쿠로스 허치슨 볼프/스토아

크루시우스

/신학적

도덕론자

도덕 원리에서 실천적 형식적 규정 근거

객관적(이성적)

내면적

도덕 법칙(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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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료적 원리들은 최상의 도덕 법칙으로는 아주 부적합하기 때문에, 그에 준거해서

우리의 준칙들에 의해 가능한 보편적 법칙 수립의 순전한 형식이 의지의 최상의 직접

적인 규정 근거를 이뤄야만 하는 순수 이성의 형식적 실천 원리가 유일하게 가능한

원리이며, 이것은 정언 명령들, 다시 말해 (행위들을 의무로 만드는) 실천 법칙들로

적합하고, 판정할 때나 인간 의지를 규정함에 있어서 그에 적용할 때 도덕성의 원리

로 적합하다.(KpV, A71)

도덕성의 원리는 순수 실천 이성의 형식적 실천 원리이다. 그리고 이 원리는

우리의 준칙들에 의해 가능한 보편적 법칙 수립의 순전한 형식이 우리의 의지를 직

접적으로 규정하는 ‘의지의 자율’에 기초하면서,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실천 법칙인

정언명령을 부과한다. 이와 달리 행복의 원리는 언제나 경험적일 수밖에 없는 질료

적 규정 근거들을 전제하는 질료적 실천 원리이다. 이 원리에서 우리의 의지는 준

칙들의 질료, 다시 말해 준칙들에 의해 가능한 욕구 대상의 실현과 그 실현과 결합

되어 있는 행복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행복의 원리는 욕구 대상의 실현을 통해

느끼게 될 쾌, 즉 행복을 의지의 최고 규정 근거로 삼게 하고, 경험적 실천 이성을

통해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최선의 수단 선택과 관련한 영리함의 명령인 가언명

령을 부과한다. 이러한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의 구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표-4>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의 구분

지금까지 칸트가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칸트는 “행복의 원리와 도덕성의 원리를 이렇게 구별하는 것

이 그렇다고 곧 양자를 대립시키는 일은 아니다.”(KpV, A166)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만약 행복의 원리와 도덕성의 원리가 어떠한 경우라도 대립적이기만 하다면

우리는 두 원리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의 원리만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한편으로 도덕성의 원리에 따라 살 수 있는 예지적 존재이면서도 다

른 한편으로는 행복의 원리에 따라 사는 감성적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행복의

원리와 도덕성의 원리를 대립적으로 간주하여 행복의 원리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구분 도덕성의 원리 행복의 원리

실천 원리 형식적 실천 원리 질료적 실천 원리

의지의 규정 근거

준칙들에 의해 가능한 보편적

법칙 수립의 순전한 형식

(도덕 법칙)

준칙들의 질료

(욕구 능력의 객관)

이성의 활동 순수 실천 이성 경험적 실천 이성

명령 정언 명령 가언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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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불가능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칸트도 말하고 있듯이 행복은 “이성적이면서

유한한 모든 존재자가 필연적으로 구하는 바이며, 그러므로 그런 존재자의 욕구 능

력을 불가피하게 규정하는 근거”(KpV, A45)인 것이다. 감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자기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으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모습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행복의 원리’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칸트는 행복의 원리 자체를 비판하고 있는 것

이 아니라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에서조차도 행복의 원리를 의지를 규정하는 유일한

원리로 간주하는 ‘행복주의115)’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 모든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을 의지의 최고 규정 근거로 삼는 행

복의 원리는 ‘행복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순수 실천 이성은 행복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무가

문제가 될 때는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KpV, A166)

이제 칸트가 행복의 원리를 의지를 규정하는 유일한 원리로 간주하는 행복주

의를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15) 칸트는 ‘행복의 원리(Prinzip der Glückseligkeit)’나 ‘행복론(Glückseligkeitslehre)’(KpV,

A165/A234)이라는 표현은 사용했지만 ‘행복주의’에 대응하는 직접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연구자가 사용한 ‘행복주의’라는 용어는 칸트가 사용한 ‘행복론’이라는 용어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오히려 칸트의 직접적 표현 방식인 ‘행복론’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일 수도 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는 행복의 원리를 도덕의 최상 원리로 간주하고, 모든 경향성의 충족

으로서의 행복을 의지의 최상 근거로 간주하는 모든 이론 및 사고 방식을 강조하며 드러내는 용어

로서 ‘행복론’ 보다 ‘행복주의’가 보다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행복주의’를 사용하고자 한다. 일반

사람들의 언어 사용에 있어서도 ‘행복론’보다는 ‘행복주의’를 행복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 어울린다

고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덧붙이자면 연구자가 ‘행복주의’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본 논문이 칸

트의 전 사상 체계를 하나의 거대한 ‘행복론’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용어의 불가피한 중복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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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행복주의 비판

(1)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

행복의 원리는 행복을 의지의 최고 규정 근거로 삼는 원리이다. 그리고 칸트도

동의하고 있듯이 행복은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이 누구나 필연적으로 추구하

는 대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욕구 능력을 불가피하게 규정하는 근거이

다.(KpV, A45 참조) 이처럼 행복이 인간이 필연적으로 지니게 되는 보편적인 욕구

의 대상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어떤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행

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행복의 원리가 보편적인 도덕 법칙을 제공할 수 있

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행복의 개념이 누구에게나 명증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보편적인 행복을 기초로 하는 도덕 법칙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

만, ‘모든 사람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이 일치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이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욕구는, 그러니까 또한 사람들 각자가 행복을 그의 의지의 규

정 근거로 삼는 준칙은 보편적인 것이므로, 사려 깊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준칙-백종현 각주 인용 삽입]을 보편적인 실천 법칙이라고

내세울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놀라운 일이다.(KpV, A50)

이와 같이 행복의 원리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도덕 법칙을 제공할 수 없으며,

따라서 행복의 원리를 도덕의 최상 원칙으로 삼기에 부적절한 것은 의지의 규정 근

거로서의 행복 개념이 모든 사람에게 확정적으로 규정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칸

트는 행복 개념을 말하는 곳에서 자주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행복의 원리가 결코 도덕의 최상 원칙이

될 수 없다는 ‘행복주의 비판’의 주요 근거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칸트가 ‘행

복 개념의 불확정성’과 관련하여 언급한 부분을 ‘행복주의 비판’의 맥락에서 살펴보

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겠다.

칸트는 행복 개념을 여러 곳에서 다른 표현으로 정의내리고 있는데, 이것을 정

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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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은 우리의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이다.(KrV, B834)

[2] 인간은 필요들과 경향성들의 전적인 만족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요약한

다.(GMS, B23)

[3] 이성적 존재자의 자기의 전 현존에 부단히 수반하는 쾌적한 삶에 대한 의

식이 행복이다.(KpV, A40-41)

[4] 행복이란 이 세상의 이성적 존재자가 그 실존 전체에서 모든 것을 자기 소

망과 의지대로 하는 상태이다.(KpV, A224)

[5] 모든 경향성들의 총계인 자연적 목적, 즉 행복(KU , B395-396)

여기서 살펴 볼 수 있듯이 행복은 어떻게 설명하든지 간에 경향성의 충족시킴

으로써 느껴지는 쾌의 감정으로서의 만족감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단

순히 특정한 경향성을 충족시키거나 특정한 순간에만 쾌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행

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칸트가 위에서 언급한 행복 개념에 대한 설명에서

‘모든’, ‘전적인’, ‘자기의 전 현존에 부단히 수반하는’, ‘그 실존 전체에서 모든 것을’,

‘모든…총계’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이 말하는 행복이란 특

정한 경향성의 충족이 아니라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이며, 일시적인 쾌의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전 현존에 부단히 수반하는 쾌적감의 의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

든 인간은 이미 스스로 행복에 대한 매우 강렬하고 내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

다.(GMS, B12) 그렇지만 인간은 행복을 체계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모든 경향성들

의 총체적이고 전적인 만족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런데 인간은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서의 모든 경향성들의 만족의 합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확정적이고 확실한 개념

도 가질 수 없다.(GMS, B12) 그래서 칸트는 행복 개념을 우리가 구체적이고 확정

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모든 경향성들의 만족의 총합으로서 이해되

는 하나의 이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GMS, B12) 더군다나 인간의 주관적 경향성

에 기초하고 있는 행복 개념은 각자의 경험적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이념 자체도 확실하게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칸트

가 행복을 ‘흔들리는 이념(eine schwankende Idee)’116)(GMS, B12)이라고도 표현한

116) 칸트는『판단력비판』에서도 행복 개념을 ‘흔들리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는데(KU, B389), 이

것도 수시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

라고 볼 수 있다. 칸트는 행복 개념이 얼마나 ‘흔들리는 이념’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확실

한 만족을 예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경향성이 행복의 이념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면서 ‘통풍 환자의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예컨대 통풍 환자인 한 인간은 그에게

맛있는 것을 즐기고 나서는, 받을 수 있는 고통은 고통대로 받는 것을 택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어림 계산에 따라 여기서 적어도, 건강 속에 행복이 깃들게 마련이라는, 어쩌면 근거 없는 기대에

의해 지금 눈앞에 있는 향락을 희생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GMS, B12) 통풍 환자가 행복의

이념에 알맞게 행위하고자 한다면 행복의 매우 중요한 우선적 요소인 건강을 되찾은 이후 음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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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행복이라는 개념은 매우 불확정적인 개념이어서, 비록 사람이

면 누구나 그에 이르기를 소망하지만, 아무도 그가 진정으로 무엇을 소망하고 의욕하

는지를 확정적으로 일관되게 말할 수가 없다. 그 원인인즉, 행복의 개념에 속하는 모

든 요소는 모두 경험적이고, 다시 말해 경험에서 빌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럼에

도 불구하고 행복의 이념을 위해서는 나의 현재와 모든 미래 상태에서의 안녕의 절대

적 전체, 곧 최대량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그런데 아무리 통찰력이 있고 동시에 만능

이라 해도 유한한 존재자가 자신이 여기서 진정으로 의욕하는 것에 대한 확정된 개념

을 갖기는 불가능하다.(GMS. B46)

인간은 행복을 ‘나의 현재와 모든 미래 상태에서의 안녕의 절대적 전체, 곧 최

대량’이라는 이념으로서 추구하고자 하지만,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이 구체적으

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확정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보통 부(富), 많은

지식과 통찰, 건강과 장수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가진 부로 인해 오히려 그토록 많은 근심과 질투를 감당해야만 하고, 많은

지식과 통찰로 인해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올 해악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되거나 지

금까지 자신을 힘들게 한 욕구들의 필요를 한층 더 증대시킬 수도 있다. 또한 사람

들은 장수를 바라지만 그것이 오히려 비참함의 연장이 될 수도 있으며, 건강을 바

라지만 오히려 무제한적인 건강으로 인한 방탕한 삶이 자신을 힘들게 할 수도 있

다.(GMS, B46-47 참조) 칸트는 인간이 행복의 이념 아래서 바랐던 부, 지식과 통

찰, 장수와 건강이 오히려 행복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음

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컨대, 그는 무엇이 진실로 그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를 어떤 원칙에 의거해,

대한 경향성을 충족시키고자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통풍 환자가 보기에 ‘행복의 이념’의 관점

에서 추구해야 할 ‘건강 회복’에 대한 가능성은 지금 바로 충족시킬 수 있는 ‘음식에 대한 경향성’

의 충족 가능성보다 매우 불확실하다. 그래서 통풍 환자는 건강 회복이 ‘행복의 이념’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약속할 수 없는 건강 회복보다 곧바로 확실

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경향성을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칸트는 맛있는 음식

을 먹음으로써 고통을 받게 될 수 있고 결국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더 큰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

르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식욕이라는 눈앞의 향락을 선택하는 통풍 환자의 사례를 통해 행복의

개념이 얼마나 불확정적이고 불확실한 ‘흔들리는 이념’인지를 강조하고 있다. 인간이 행복을 하나

의 이념으로서 추구하고자 하지만 자주 자신이 실현할 수 있는 특정한 경향성의 충족을 선택하고,

그것을 행복이라 여기는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흡연이 자신의 건강을 실제로 심각하게 해치지는 않을 것

이라고 생각하고 건강보다 흡연을 통해 느껴지는 쾌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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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확실하게 결정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함이 필요할 것이

기 때문이다.(GMS, B47)

행복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고,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수

단을 확실하게 안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

면 행복 개념이 인간에게 확정적으로 주어져 있어야 하고, 또한 자신의 행위로 인

해 발생하는 경험적 인과 계열의 전체를 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인

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며, 칸트가 말하고 있듯이 ‘전지전능함’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행복이라는 개념은 분명히 전적으로 경험적인 것에 근거하고 있지만, 인간은

행복을 ‘자기의 전 현존에 걸쳐 지속하는 쾌적한 삶의 절대적 전체’라는 하나의 이

념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의 이념도 결국 주관의 경험적 조건에 근거한

다는 점에서 각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고, 한 개인 안에서도 주관적 조

건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행복 개념은 어느 누구도 그

개념을 보편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대단히 불확정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117)

행복의 원리는 이렇게 불확정적인 행복 개념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준칙의 최고 규정 근거로서 행복을 보편적으로 바란다는 점에서 행

복의 원리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실천 법칙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단지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한 불확정적인 개념일 뿐이어

서 행복의 원리는 결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실천 법칙을 제공할 수 없다. 따라서

행복의 원리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바라는 경향성들의 충족을 위한 일반적인 규칙

은 줄 수 있지만 결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규칙, 즉 실천 법칙을 제공할 수는 없

다.

행복의 원리가 준칙들을 제공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제 아무리 사람들이 보

편적인 행복을 객관으로 삼는다 할지라도, 결코 의지의 법칙들로 쓰일 그런 준칙들을

117) 칸트는『판단력비판』에서도 행복 개념을 경험적인 조건 아래서 합치시키고자 하는 이념으로

바라보면서, 이러한 행복의 이념이 상상력과 감관과 얽혀 있는 지성에 의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산출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행복 개념은 인간이 가령 자기의 본능들로부터 추상해내고, 그래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동물성에서 가져오는 그런 것이 아니고, 인간이 그 상태를 순전히 경험적인

조건들 아래서-불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념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한 상태의 순전한 이념이

다. 인간은 이런 이념을 스스로 입안하며, 그것도 상상력 및 감관들과 얽혀 있는 그의 지성을 가지

고서 아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입안한다.”(KU, B388-389) 여기서도 칸트는 행복 개념을 경험적

조건 아래서 상상력과 지성의 유희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산출되는 ‘한 상태의 순전한 이념’으로

이해하면서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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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행복에 대한 인식은 순전히 경험 자료에 의거하고, 이

에 대한 각자의 판단은 전적으로 각자의 생각에 달려 있는바, 이 각자의 생각이라는

것도 변화무쌍한 것이므로, 행복의 원리는 일반적 규칙들은 줄 수 있으나, 결코 보편

적인 규칙들은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KpV, A63)

행복의 원리가 제공하는 실천 규칙들은, 비록 그 규칙들이 행복이라는 하나

의 공통된 이름 아래 놓여 있다 할지라도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으로 인해 모든 이

성적 존재자들에게 동일한 실천 규칙들을 제공할 수 없다. 그래서 행복의 원리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객관적으로 필연적인 도덕 법칙을 정언 명령의 형

태로 제공할 수가 없다. 행복의 원리는 다만 경험에 근거하여 평균적으로 가장 많

이 경향성들의 충족을 가능하게 하는 일반적인 실천 규칙을 가언 명령, 즉 영리함

의 명령의 형태로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행복의 원리가 아무리 많은 영

리함의 명령들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명령들에 따른 행위가 필연적으로 행

복의 실현을 보장하리라는 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칸트는 영리함의 명

령들은 정확하게 말해서 행위들을 객관적으로 실천적이고 필연적으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명령이라기보다 조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한다.(GMS, B47

참조) 행복의 원리가 제공하는 영리함의 명령은 자신의 행복 실현을 위해 참고할

수 있는 경험적인 조언이나 충고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118) 칸트가 행복을 주는 행

위를 하라고 지시 명령하는 ‘행복에 대한 명령’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GMS, B47)

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행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며, 인간의 의지는

언제나 행복에 의해 규정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

은 매우 불확정적이다. 왜냐하면 행복 개념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전적으로 주관

의 경험적 조건, 다시 말해 주관적 경향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은 행복을 자신의 모든 경향성들이 충족된 상태라는 하나의 이념으로서 상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해 보지만, 이러한 행복의 이념조차도 각 주관의 경험적 조

118) 칸트는 숙련의 명령, 영리함의 명령, 도덕성의 명령 각각이 의지를 강요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이 세 가지 명령들을 ‘숙련의 규칙’, ‘영리함의

충고’, ‘도덕성의 명령(법칙)’으로 구분한다. 여기서 칸트는 “법칙만이 무조건적인, 그것도 객관적

인, 그러니까 보편적으로 타당한 필연성의 개념을 동반하며, 명령이란 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

는, 다시 말해 경향성에 반하여서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법칙이다”라고 말하면서 명령을 보

편적이고 필연적인 법칙으로 이해하고 있다.(GMS, B43-44 참조) 따라서 칸트에 따르면 행복의

원리에 기초한 영리함의 명령은 주관의 경험적 조건 아래서만 필연적이고 객관적으로는 매우 우연

적인 규칙이라는 점에서 ‘영리함의 충고’로 간주해야 하며, 도덕성의 원리에 기초한 도덕성의 명령

만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법칙이라는 점에서 ‘명령’의 합당한 지위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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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과 경향성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더 불가능한 것이며, 설령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의 결과가 실제로 행복을 가져오게 할 수 있는지는 누구도 장

담할 수 없다. 행복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일컫는 이름일 뿐, 모든 사람들에게 철

저하게 불확실한 개념으로 주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행복을 의지의 최고

규정 근거로 삼는 ‘행복의 원리’가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행복의 원리는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닌 도덕 법

칙을 제공할 수 없고, 따라서 결코 도덕의 최상 원칙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칸트가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을 그렇게나 강조한 것은 바로 행복의 원리가 도덕의 최상 원

칙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원리는 단지 주관적으로만 필연적일 수 있을 뿐 객관적으

로는 매우 우연적인 것이므로,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를 보편적이고 필연적으

로 규정하는 법칙을 발견하고자 하는 ‘실천적 과제’의 해결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처럼 칸트가 강조한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은 바로 이러한 ‘행복의 원리’

비판의 맥락과 밀접하게 관련하고 있다. 이 점은 칸트의 다음 설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행복 개념이 객관들의 욕구 능력에 대한 실천적 관계의 기초에 두루 놓

여 있다 해도, 그것은 단지 주관적 규정 근거들의 일반 명칭에 불과하며, 아무것도 종

적으로 특수하게 규정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천적 과제에서는 종적으

로 특수하게 규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고, 그러한 규정 없이는 그런 과제는

전혀 해결될 수가 없다. 요컨대, 각자가 그의 행복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는 각자

의 쾌와 불쾌에 대한 특수한 감정에 달려 있으며, 동일한 주관에 있어서도 이 감정의

변화에 따른 필요의 상이함에 달려 있다. (자연 법칙으로서) 주관적으로 필연적인 한

법칙은 이처럼 객관적으로는 아주 매우 우연적인 실천적 원리다. 이것은 서로 다른

주관들에 있어서 아주 서로 다를 수 있고,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러니까 결코 어떤

법칙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KpV, A46)

이처럼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으로 인해 행복의 원리는 결코 보편적이고 필연

적인 실천적 원리일 수가 없다. 행복의 원리는 평균적인 경험에 근거한 일반적인

규칙으로서의 영리함의 충고나 실천적인 훈계를 제공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각자의 경험적 조건과 경향성에 따라 끊임없는 예외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영리함의 충고나 실천적인 훈계들은 보편적인 법칙이 될 수 있기는커녕 일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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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이 되기에도 위태롭다고 할 수 있다.119)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에서 행복의 원리를 의지를 규정하는 유일한 원리로 삼으려는 ‘행복주의’를 비

판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귀결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119) 여기서 우리는 영리함의 충고나 실천적 훈계가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으로 말미암아 숙련의 규

칙보다도 불안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칸트는 숙련의 명령을 ‘가능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행위를 지시하는 규칙으로, 영리함의 명령을 ‘현실적’ 목적, 즉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행위를 지시하는 충고로 이해한다. 그런데 숙련의 명령은 이미 ‘가능

한’ 목적을 의욕한다는 개념으로부터 이 목적을 위해 필요한 행위들이라는 개념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분석적이다. 예컨대 빵을 먹고 싶다는 목적을 의욕한다면, ‘빵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든지’,

‘빵집에 가서 돈을 내고 사 먹는다든지’하는 수단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능

한 목적이 무엇이든지 그 목적의 개념에 따라 수단을 강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일

이 아니다. 영리함의 명령도 숙련의 명령처럼 목적을 의욕한다는 개념으로부터 이 목적을 위해 필

요한 행위들이라는 개념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분석적이지만, ‘현실적’ 목적으로서 상정하는 ‘행

복’의 개념이 매우 불확정적인 데다 이 목적의 개념에 따라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매

우 높은 수준의 영리함이 요구된다. 예컨대, 행복이라는 목적을 의욕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떠한

수단을 통해 행복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알기가 어렵다. 기껏해야 경험적 판단에 근거해서 ‘재산’,

‘건강’, ‘명예’, ‘겸손’, ‘절약’ 등을 행복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이것들이 행

복 실현을 보장해 준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가능한 목적을 위해서 무엇을 해

야 하는가?’라는 물음보다 ‘현실적 목적인 행복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가 훨씬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영리함의 명령들은, 만약 행복에 대한 일정한 개념을 쉽게

줄 수만 있다면, 숙련의 명령들과 전적으로 합치할 것이고, 그런 만큼 역시 분석적일 것이

다.”(GMS, B45-46)라고 말한 것이나, “그럼에도 만약 행복을 위한 수단들이 확실하게 제시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 영리의 명령은 분석적-실천 명제이겠다.”(GMS, B48)라고 말한 것에서, 우

리는 영리함의 명령들이 행복에 대한 개념을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고,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수

단들이 확실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숙련의 명령처럼 ‘분석적으로’ 쉽게 실천하기 어렵

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행복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또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수단을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준의 통찰력과 영리함

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알려 주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리함의 명령은 사실상 숙

련의 명령보다도 따르기 어려운 명령일 수도 있다. 칸트는 “자기 사랑의 원리들은 (의도들을 위한

수단을 발견해 내는) 숙련의 보편적 규칙들을 포함할 수는 있다”(KpV, A46)고 말하고 있는데, 여

기서 우리는 칸트가 영리함의 충고보다 숙련의 규칙이 어떤 면에서는 더 ‘보편적’일 수 있다는 것

을 인정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영리함의 충고가 도덕성의 명

령에 비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임을 강조하는 칸트의 설명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무엇이 의무인가는 누구에게나 자명하게 드러나지만, 그러나 무엇이 진정 지속적으로 이익을 가

져다줄 것인가는, 이 이익이 전 생애에 걸쳐 있을 경우에는, 언제나 파헤칠 수 없는 모호함에 싸여

있어서, 실제로 이익에 맞춰진 규칙을 적절히 예외를 인정하면서도 알맞은 방식으로 생의 목적에

적중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영리함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 법칙은 누구에게나 명

령하며, 그것도 엄격한 준수를 명령한다. 그러므로 도덕 법칙에 따라서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에

대해 판정하기 위해서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어서, 가장 평범한 아무런 훈련 없는 사람이라도 세상

사에 대한 영리함 없이도 그걸 처리하는 것을 모르지 않을 정도이다.”(KpV, A64) 이제까지의 논

의를 종합해 볼 때, 인간이 가장 쉽게 따를 수 있는 명령은 도덕성의 명령이고 가장 따르기가 어

려운 명령은 영리함의 명령이며, 숙련의 명령은 중간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이렇게

영리함의 명령을 따르는 것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것은 곧 행복 추구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우리는 이를 통해 칸트가 ‘행복의 원리’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리고 영리함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에 놓

여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칸트가 강조한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은 결국 ‘행복의 원리’ 비판을 겨

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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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행복에 대한 이성의 불만족

인간은 누구나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행복

이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최적의 수단들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

다. 행복이라는 목적 실현을 위한 수단은 다양한 ‘영리함의 충고’나 ‘실천적인 훈계’

로 제시되는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것을 인간이 가진 이성의 주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성이 아무리 경험을 일반화하여 행복을 위한 최선의 수단을 마

련한다고 해도, 그 수단이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 아닌 고통이라는 결과를 가

져올 수도 있다. 이렇게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 문제에 있어 인

간의 이성이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

은 물음을 던져 볼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은 행복 실현을 위한 도구로서만 주어져

있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과연 인간에 주어진 이성의 본래적 역할은 무엇인가?’

칸트가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의 본래적 역할에 대해 살펴보려는 것도 바로 이

러한 물음이 가진 문제의식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칸트는 자연이 인간에게 자

연적 소질을 합목적적으로 분배한다는 ‘자연의 합목적성’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복

이라는 자연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있어 자연이 이성을 그 도구적 수단으로 부여한

것은 매우 적절하지 못한 조처라고 생각한다. 칸트는 오히려 행복을 위한 수단을

알려주는 데 있어서는 이성보다 본능이 훨씬 더 적합하고 안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성과 의지를 가진 한 존재자에게 있어 그것의 보존과 번영이, 한 마디로 그것의

행복이 자연의 본래 목적이라고 말한다면, 자연은 이러한 자기의 의도의 실행자로 그

피조물의 이성을 선발하는 매우 나쁜 조처를 취한 셈이다. 왜냐하면 유기체가 이런

의도에서 실행해야만 할 모든 행위와 그것의 처신의 전체 규칙은 그에게, 일찍이 이

성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는 것보다는, 본능에 의해서 훨씬 더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GMS, B4-5)

칸트에 따르면 자연은 이성이 실천적 사용에서 자신의 미약한 통찰 능력을 가

지고 행복과 행복에 이르는 수단을 구상하는 것을 방지해야만 했으며, 오히려 행복

이라는 목적을 선택하고 이를 위한 수단을 선택하는 일 모두 본능에 맡겨 두어야

했을 것이라고 본다.(GMS, B5) 이처럼 칸트가 보기에 행복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데 있어 이성은 본능보다도 유능하지 못하다. 그래서 칸트는 이성을 사용하여 인생

을 즐기고 행복을 향유하려 하면 할수록 인간은 점점 더 참된 만족에서 멀어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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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이성을 많이 사용해 본 사람들은 결국 이성에 대한 혐오를 고백하게 될 것이라

고 말하고 있다.(GMS, B5-6 참조)

이렇게 이성이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도 적절하지 않으며, 심

지어는 그러한 이성이 혐오의 대상이 되기까지 하는 상황이라면, 도대체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의 본래적 역할은 무엇일까? 칸트는 이성의 본래적 역할은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한 도구적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선한 의지, 즉 선의지를 세우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성은 의지의 대상들과 우리의 모든 필요-이성이 부분적으로는 스스로 이 필요

들을 증대시키는바-의 충족과 관련해 의지를 안전하게 이끌기에는 충분히 유능하지

못하고 -이런 목적에는 생래적인 자연본능이 훨씬 더 확실하게 이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이성이 실천 능력으로서, 다시 말해 의지에게 영향을

미쳐야 할 그런 것으로 품수되어 있으므로, 이성의 참다운 사명은, 가령 다른 의도에

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선한 의지를 낳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단적으로 이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연은 어디서나 그 소질들을 합목적적으로 배분

한 것이다.(GMS, B6-7)

칸트에게 선의지란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를 의미하고, 따라서 선의지

를 수립하는 이성이란 결국 도덕 법칙을 수립하여 의지를 규정하는 순수 실천 이성

을 의미한다. 칸트는 이성의 본래적 역할을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 즉 선의

를 낳을 수 있는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순

수 실천 이성은 목적이나 의도와 관련된 일체의 경향성으로부터 독립하여 도덕 법

칙을 세우고 이를 통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순수 실천 이

성은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며, 오

직 자신이 스스로 수립한 도덕 법칙만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다. 그렇기에 순

수 실천 이성은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 것에서 자신의 역할을 발

견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 즉 선의지를 세우고 그것에 따

르는 활동에서 자신의 진정한 역할을 발견한다. 그래서 칸트는 순수 실천 이성으로

서의 이성은 선의지를 세우려는 자신의 의도를 달성하는 데서 비로소 ‘자기 방식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의 최고의 실천적 사명을 선의지를 세우는 것으로 인식하는 이성은 이 의도를

달성하는 데만 자기 방식의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이성은 이런 일이 설

령 경향성의 목적들에 대한 수많은 손실과 결합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성만이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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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목적을 실현함으로써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GMS, B7-8)

선의지를 세우는 것에서 자신의 최고의 실천적 사명을 발견하는 이성, 즉 순

수 실천 이성은 오직 선의지에 따르는 도덕적 행위 속에서만 자신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순수 실천 이성의 관점에서는 아무리 경향성의 충족

으로서의 행복이 실현될 수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것에 대해 불만족스러울 수밖

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이성의 불만족은 이성의 역할을 한낱 행복 실

현을 위한 도구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불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가 생각하기

에 이성은 본래 행복이 아니라 전적으로 선의지를 세우고 이에 따르려는 의도에 맞

춰져 있는 것이다.(GMS, B6)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이성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

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칸트는 행복이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수단을 선택하는 데 관련하는 이성과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으로부터

독립하여 오직 도덕 법칙을 통해 의지를 규정하려는 이성, 즉 선의지를 세우려는

이성을 구분하고 있다. 전자의 이성은 언제나 행복과 관련하여 ‘복과 화를 고찰하는

이성’으로서 ‘경험적 실천 이성’을 의미하고, 후자의 이성은 일체의 감성적인 경향성

에는 관심 없이 오직 ‘그 자체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고찰하는 이성’으로서 ‘순수

실천 이성’을 의미한다. 칸트는 인간의 본성상 필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과제인 행복

추구를 위해 경험적 실천 이성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이성을 넘어

서 보다 높은 사명을 위해 순수한 실천 이성을 갖는다고 본다.

인간은 그러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이미 그에게 갖춰져 있는 자연 장치120)에 따

라서, 항상 복과 화를 고찰하기 위해 이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넘어

서 보다 높은 직분을 위해 이성을 갖는다. 곧,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 - 이에

관해서는 순수한, 감성적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성만이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을 함께 고려에 넣을 뿐만 아니라, 이런 평가를 저런[복과 화에 관한 고찰] 고찰과

완전히 구별하고 이것을 후자[복과 화에 관한 고찰]의 최상 조건으로 삼기 위해서 말

이다.(KpV, A108-109)

이처럼 칸트는 이성의 본래적 역할이 행복 실현을 위해 최선의 수단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선한 의지인 선의지를 세우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이성

이 단지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행복이 이성의 궁극적 목

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칸트가 이성의 역할을 묻는 과정에

120) 최재희는 이것을 ‘생명 있는 자의 애착심’, 즉 생명체의 경향성으로 부연 설명하고 있다.(I.

Kant,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최재희 옮김,『실천이성비판』(서울: 박영사, 1997),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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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겨냥하고 있는 것은 ‘행복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121) 인간은 이성의

역할을 행복 실현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만 한정시키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한다.

인간은 이성의 본래적 역할의 수행 속에서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칸트가 말하는 ‘이성의 불만족’이란 정확

히 표현하자면 ‘경험적 실천 이성의 활동’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순수 실천

이성의 불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122) 순수 실천 이성의 관점에서 인간이 경험적 실

천 이성을 활용하여 행복 추구를 위한 준칙을 마련하는 데만 관심을 갖는 모습은

언제나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성의 불만족’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인간을 바라보는 칸트의

두 가지의 관점과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은 경험적 실천 이성을 통

해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만 한 것

이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이 수립한 도덕 법칙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규정함

으로써 도덕성을 실현하려는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이 이성

의 진정한 사명을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에서 발견하고, 단지 행복의 원리에 따라

서만 사는 것에 대해 만족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이 단순히 감성 세계에 머무는 존재

가 아니라 예지 세계에도 속한 존재이기 때문인 것이다. 칸트는 바로 여기서, 즉 인

간이 경험적 실천 이성을 넘어 순수 실천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명

확하게 구분되는 인간 본연의 특성을 발견한다.

물론 우리의 실천 이성의 평가에 있어서 매우 많은 문제는 우리의 복과 화에 달려

있고, 감성적 존재자인 우리의 자연본성과 관련해 보자면, 모든 것이 우리의 행복에

달려 있다. …… 그럼에도 모든 것 일반이 행복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감

121) 박찬구,『칸트의 도덕형이상학 정초 읽기』(서울: 세창미디어, 2014), p.39.

122) 칸트는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은 단지 조건적인 가치만을 갖는 ‘경향성들의 충족’에서 결코

만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경향성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기를 보편적으로

소망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인간이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에 대해 불만족스러워 하고

경향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소망하는 것은, 인간을 순수 실천 이성을 지닌 예지적 존재자의 관점에

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칸트의 다음 설명에서 이와 같은 인간의 모

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경향성들의 모든 대상은 단지 조건적인 가치만을 갖는다. 왜냐하면 만약

경향성 및 그에 기초한 필요들이 없다면, 그것들의 대상은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향성들 자신은 필요의 원천들로서, 그 자체를 소망할 만한 절대적 가치를 갖지 못한 것

으로, 오히려 그러한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 그것이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보편적 소망이

어야 하는 것이다.”(GMS, B65) “경향성이 제 아무리 아름답게 상상될지라도, 경향성들의 충족에

의거하고 있는 감성적 만족-이렇게 일컬어지는 것은 본디 부적절하지만-은 우리가 만족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에는 결코 부합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경향성들은 전변(轉變)하며, 사람들이 그것들에

보내는 호의와 함께 자라고, 사람들이 채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공허를 언제나 남기

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향성들은 이성적 존재자들에게는 언제나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고, 그가

비록 그것들을 떼어내 버릴 수는 없다 해도, 그것들은 그로 하여금 그것들에게서 벗어나 있으려는

소망을 강요한다.(KpV, A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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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계에 속하는 한에서 필요를 느끼는 존재자다. 그런 한에서 인간의 이성은 물론

감성 쪽으로부터, 감성의 이해관심사를 보살피고, 이승 생활 및 가능하면 또한 저승

생활의 행복을 지향하여 실천 준칙을 만들라는, 거절할 수 없는 주문을 받는다. 그러

나 인간은 역시, 이성이 그 자신을 위해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그래서

이성을 한낱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그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도구로만 사용하는, 그렇

게나 전적으로 동물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성이 인간에게 있어서 단지, 본능이

동물들에 있어서 하는 것과 같은 것만을 위해 종사하는 것이라면, 인간이 이성을 가

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간을 가치 면에서 순전히 동물인 것보다 조금이나마 더 높여주

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KpV, A107-108)

칸트는 인간과 동물의 결정적인 구분 근거를 인간이 이성을 행복 추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찾고 있지 않다. 칸트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행복을 추

구하는 것과 동물이 본능을 통해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비록 정도의 면에서는 차

이가 있을 수 있을지라도 질적인 가치의 면에서는 의미 있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

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 경험적 실천 이성을 지니고 있

기 때문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선’을 추구하는 순수한 실천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물 이상의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칸트가 이성을 자신

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다시 말해 행복을 실현하는 도구로만 사용하는 것을 전적으

로 ‘동물적’이라고까지 강하게 표현한 것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

해할 수 있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칸트가 생각하는 이성의 본래적 역할이란 행

복의 원리를 마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의 원리를 마련하는 데 있다. 따

라서 이러한 본래적 역할을 담당하는 이성, 즉 순수 실천 이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행복의 원리에 따라 자신의 이성을 행복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것에 대해 결코 만족할 수가 없다. 이처럼 칸트가 ‘이성의 본래적 역할’을 탐색하고

‘이성의 불만족’을 논의하는 과정 전체는 결국 행복의 원리를 의지를 규정하는 유일

한 원리로 간주하려는 ‘행복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음을 확

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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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지의 타율로서의 행복의 원리

칸트에 따르면 욕구 능력의 객관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모든 실천

원리들, 즉 질료적 실천 원리들은 그 자체로 모두 동일한 종류의 것으로서 행복의

원리에 속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칸트

가 말하는 ‘행복의 원리’가 단지 ‘행복’을 유일한 욕구 능력의 객관으로 삼고 이것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원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복의 원리’는

정확히 말해 욕구 능력의 객관이 그 무엇이든 간에 도덕 법칙에 선행하여 욕구 능

력의 객관이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되는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를 일컫는다. 여기서

욕구 능력의 객관이 경험적인 것인가, 지성적인 것인가, 심지어는 이성적인 것인가

하는 문제는 ‘행복의 원리’를 규정하는 데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다.(GMS, B88;

KpV, A41-42 참고) 왜냐하면 욕구 능력의 객관이 지닌 특성과 관계없이 욕구 능력

의 객관은 그것의 실현을 통해 기대되는 쾌와 결합할 수밖에 없고, 결국 이 쾌가

의지를 규정하는 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욕구 능력의 객관을 실현함으로써 느끼

는 쾌란 결국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으로 귀결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욕구 능력의 객관이 의지를 규정한다는 것은 곧 행복이 의지를 규정하는 것과 마찬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행복의 원리는 ‘행복을 의지의 최

고 규정 근거로 삼는 원리’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칸트가 행복의 원리를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욕구 능력의

객관이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되고 있다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

함이 없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칸트가 행복의 원리를 의지를 규정하는 유일

한 원리로 삼는 행복주의를 비판하는 또 하나의 근거와 마주치게 된다. 그것은 바

로 행복의 원리가 전적으로 ‘의지의 타율(Heteronomie des Willens)’에 기초하고 있

다는 것이다. 의지의 타율은 도덕성의 원리가 기초하고 있는 ‘의지의 자율’에 정면

으로 대립하는 것으로서, 욕구 능력의 객관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모든

원리들이나 법칙들에서 나타난다.

만약 의지가 그의 준칙들이 그 자신의 보편적 법칙수립에 적합하다는 점 외의 다

른 어디에서, 그러니까 만약 의지가 자기 자신을 넘어 나가서 그의 객관들 중 어느

하나의 성질에서, 자기를 결정하는 법칙을 구한다면, 언제나 타율이 나타난다.(GMS,

B88)

칸트는 의지가 자기 자신, 즉 순수 실천 이성의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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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법칙을 수립하지 않고 욕구 능력의 객관과의 관계를 통해 법칙을 수립하는 경

우 언제나 타율이 발생하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의지의 타율은 욕구 능력의 객관,

즉 의지의 대상이 실천 법칙의 수립 과정에 개입될 경우라면 언제든지 생겨난다.

그렇지만 이렇게 의지의 타율에 기초한 실천 법칙은 언제나 경험적일 수밖에 없는

욕구 능력의 객관과 이와 결합하고 있는 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보편적이

고 필연적인 실천 법칙이 될 수 없고, 단지 욕구 능력의 객관을 실현하는 데 도움

을 주는 일반적인 실천 규칙이나 훈계를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법칙과 결합되면서, 욕구의 바로 그 객관일 수도 있는, 의욕의 질료가

실천 법칙의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실천 법칙 안에 끼어든다면, 이로부터 자의의 타율,

곧 어떤 충동이나 경향성에 따르는, 자연 법칙에 대한 종속성이 나타난다. 그러면 의

지는 스스로 법칙을 주지 못하고, 단지 정념적인 법칙들을 합리적[이해타산적]으로 준

수하기 위한 훈계를 줄 뿐이다.(KpV, A59)

의지의 타율에 기초한 법칙들은 단지 행복 추구를 위한 전략적 수단을 제시하

는 조건적 명령, 즉 가언 명령을 가능하게 할 뿐, 무조건적이고 도덕적인 명령, 즉

정언 명령을 가능하게 할 수는 없다. 도덕적이고 정언적인 명령을 가능하게 하는

법칙으로는 오직 의지의 자율에 기초한 도덕 법칙만이 가능한 것이다.

의지의 타율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위의 인용문에서도 확

인할 수 있듯이 칸트가 의지의 타율을 ‘자연 법칙에 대한 종속성’으로 이해하고 있

다는 사실이다. 칸트는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로서 경향성에 따라 행위하는 것을

자연 법칙에 따라 행위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이를 ‘타율’로 간주하고 있다.(GMS,

B98; B109; B111 참조) 그러므로 인간의 행위가 의지의 타율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

은 인간이 경향성이라는 자연 법칙에 따라 행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앞에

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인간이 경향성에 따라, 다시 말해 자연 법칙에 따라 행위한

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언제나 시간상 선행하는 조건에 의해 규정됨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기서 초월적 의미의 자유의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월

적 의미의 자유란 ‘한 상태를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능력’으로서, ‘자연 법칙의 필연

성으로부터의 독립성’ 또는 ‘일체의 경향성들로부터의 독립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칸트는 이러한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결국 필연적인 자연

법칙의 연쇄과정 중의 하나의 계기로 규정될 수밖에 없어, 그 행위에 대한 진정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초월적 자유를 전제하는 의지

의 자율에 따르는 행위만을 ‘도덕적 행위’로 이해하는 칸트에 있어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으려면, 일체의 경향성으로부터 독립하여 의지를 규정할 수 있는 ‘자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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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의 행위’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는 모든 의지의 타율은 전혀

책임을 정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책임 및 의지의 도덕성 원리에 맞서 있

다고 말한다.(KpV, A58) 오직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을 자기 안에 가질 수 있

는 준칙, 다시 말해 의지의 자율에 따르는 준칙만이 도덕적일 수 있으며 또한 도덕

적 책임을 세울 수 있다. 이처럼 행복의 원리는 의지의 타율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

에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도덕 법칙을 제공할 수 없으며 또한 자유로운 행위, 즉 도

덕적 행위와 함께 도덕적 책임을 가능하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의지의 타율은 칸트

가 도덕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도덕 법칙 및 자유와 함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의지

의 타율에 기초한 행복의 원리는 결코 도덕의 최상 원칙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

다.

행복의 원리에 속하는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은 욕구 능력의 객관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의지의 타율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욕구 능력의 객관을 전제로 도출된 모든 실천 원리는 의지의 타율을 드러내

게 되며, 이런 점에서 의지의 자율에 기초한 도덕성의 원리와 완전히 구별될 수밖

에 없다.

만약 우리가 도덕 법칙에 앞서 어떤 객관을 선의 이름 아래 의지의 규정 근거로

취하고, 이로부터 최상의 실천 원리를 도출한다면, 그 때 이것은 언제나 타율을 불러

들여와, 도덕 원리를 떠밀어낼 것이다.(KpV, A197)

앞서 살펴 본대로 칸트는『실천이성비판』에서 욕구 능력의 객관의 자리에 들

어갈 수 있는 모든 ‘질료적 규정 근거’를 6가지 종류로 정리하면서, 주관적․경험적

규정 근거로 ‘교육’, ‘사회 체제’, ‘자연 감정’, ‘도덕 감정’을, 객관적․이성적 규정 근

거로 ‘완전성’, ‘신의 의지’를 제시하고 있다.(KpV, A69) 이를 통해 칸트가 강조하려

는 바는 욕구 능력의 객관의 자리에 그 어떠한 규정 근거가 놓이든지 간에, 도덕

법칙에 선행하여 욕구 능력의 객관이 의지를 규정하는 모든 원리는 동일하게 의지

의 타율을 드러낼 뿐이며 결국 행복의 원리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특히

의지의 규정 근거가 ‘자연 감정’인가 ‘도덕 감정’인가, 아니면 ‘완전성’인가 ‘신의 의

지’인가에 따라 그로부터 도출된 원리의 질적 가치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

러한 4가지의 규정 근거는 모두 결국 쾌의 감정과 결합하는 ‘질료적 규정 근거’라는

점에서 이로부터 도출된 모든 원리들은 ‘의지의 타율’로서 동일한 가치를 지닐 뿐이

다.123) 욕구 능력의 객관을 전제하는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들은 의지의 타율을 도

123) 칸트는『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모든 타율적 도덕 원리를 ‘경험적 원리’와 ‘이성적 원리’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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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의 제일의 근거로 세우는 것에 지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원리들은 결코 도

덕성의 최상 원리를 세우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GMS, B93 참고) 칸트에 따

르면 도덕성의 최상 원리를 세우려는 목적은 오직 의지의 자율에 기초한 순수 실천

이성의 ‘형식적 실천 원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의지의 규정 근거를 자연

감정, 도덕 감정124), 완전성, 신의 의지와 같은 쾌와 결합된 욕구 능력의 객관, 즉

분하고 이를 다시 각각 ‘행복의 원리’와 ‘완전성의 원리’와 연결시킨다. 그리고 다시 ‘경험적 원리’

가 기초하고 있는 규정 근거를 ‘자연적인 감정’과 ‘도덕적인 감정’으로 ‘이성적 원리’가 기초하고

있는 규정 근거를 ‘완전성’과 ‘신의 의지(자립적인 완전성)’으로 구분한다. 칸트는 ‘자연적인 감정’

에 기초한 경험적 원리를 ‘자기 행복의 원리’라고 일컬으면서 자연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고, 이와

함께 차례대로 도덕 감정과 완전성 그리고 신의 의지를 논의하고 있다. 여기서 칸트는 자연적인

감정과 도덕적인 감정에 기초한 ‘경험적 원리’이든, 완전성과 신의 의지에 기초한 ‘이성적 원리’이

든 모두 의지의 타율을 도덕성의 근거로 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도덕성의 최상 원리로 삼을 수 없

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칸트는 이 4가지 규정 근거들을 비교하면서 도덕성을 정초하는 데

더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규정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우선 자연

적인 감정과 도덕적인 감정 가운데는 도덕적인 감정이 도덕성과 그것의 존엄성에 더 가까이 있다

고 본다. 왜냐하면 도덕적인 감정은 덕에 대한 만족감과 존중을 직접적으로 덕에게 돌려 경의를

표하고, 덕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것은 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단지 이익이라고 드러내 놓고 말하

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완전성과 신의 의지 가운데는 완전성이 더 좋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신의 의지라는 신학적인 개념은 가장 완전한 신의 의지로부터 도덕적 완전성이라는 개념을 이끌어

내는데, 이 ‘완전한’ 신의 의지라는 개념 자체를 우리는 우리의 완전성 개념에서 이끌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또한 만약 완전성의 개념에서 도출하지 않을 경우에는, 권력이나 복수라든지 명예

욕이나 지배욕 같은 도덕성과 정반대되는 성질들이 신의 의지라는 이름으로 도덕체계를 정초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박찬구,『칸트의 도덕형이상학 정초 읽기』(서울: 세창미디어, 2014), p.134) 마지막

으로 도덕적인 감정과 완전성을 비교하면서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완전성을 선택할 것이

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완전성의 개념은 적어도 문제의 해결을 감성에 맡기지 않고 순수 이성의 법정으

로 가져가 비록 여기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선한 의지라는 무규정적인 개념을 보

다 상세한 규정을 위해 오염시키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기 때문이다.(GMS, B89~93을 참고하여 정리함)

하지만 칸트가 ‘자연 감정’, ‘도덕 감정’, ‘완전성’, ‘신의 의지’를 의지의 질료적 규정 근거로서 언급하는

주된 목적은 이러한 질료들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모든 원리는 의지의 타율을 드러내며 결국 행복

의 원리로 귀결됨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이미 ‘자연 감정’은

‘자기 행복의 원리’의 규정 근거로 간주되고 있고(GMS, B90), ‘도덕 감정’의 원리는 행복의 원리로 간주

되고 있기 때문에(GMS, B91) 자연 감정과 도덕 감정은 행복의 원리와 관련된 규정 근거임을 충분히 이

해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칸트는『실천이성비판』에서 이러한 4가지의 규정 근거들이 모두 결국

행복에 의존하고 있음을 더욱 일관성 있게 드러내고자 한다. 칸트는 도덕 법칙의 규정 근거로서 도덕

감정을 받아들이게 되면 덕의 의식을 만족 및 쾌락과 결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여 결국 모든

것이 자기 행복의 욕구에 내맡겨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KpV, A67참고) 또한 칸트는 완전성이나 신

의 의지의 개념 모두 그 개념을 규정하기 위한 선행하는 목적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목적은

실천 규칙에 의한 의지의 규정에 선행하여 실천 규칙의 가능 근거를 내용으로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객

관으로서 결국 그 목적의 실현, 다시 말해 객관의 실현에서 기대하는 행복과 결합하게 된다고 본

다.(KpV, A70~71참고) 따라서 도덕 감정이나 완전성 그리고 신의 의지는 한결같이 의지의 질료적 규

정 근거로서 의지의 타율을 드러내며 결국 행복을 의지의 최고 규정 근거로 삼는 ‘행복의 원리’에 이르

게 된다고 할 수 있다.

124) 이 때의 도덕 감정은 도덕 법칙에 선행하여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 작용하는, 다시 말해 의지의

동기로서 작용하는 ‘정념적인 감정’에 속하는 감정으로서, 칸트가 말하는 존경의 감정으로서의 ‘도

덕 감정’과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연구자가 ‘Ⅱ-2-(1)’에서 상세하게 논했듯이 존경의 감정

으로서의 도덕 감정은 일체의 감성적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오직 도덕 법칙이라는 예지적 원인에

따르는 적극적인 감정이다. 이 감정은 정념적인 감정과는 달리 순수 실천 이성에 근원을 두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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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대상에서 찾는 모든 질료적 실천 원리는 ‘의지의 타율’일 수밖에 없다. 칸트

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도덕성의 최상 원리를 탐구하고자 한 많은 철학자들이 혼란

에 빠지게 된 이유를 발견하고 있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철학자들은-연구자 삽입] 선의 최상 개념을 제공할 터인 쾌의 대상

을 행복125), 완전성, 도덕 감정, 또는 신의 의지에 두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들의 원칙

은 어느 경우나 타율이었고, 그들은 불가피하게 도덕 법칙을 위한 경험적 조건들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의지의 직접적인 규정 근거인 그들의 대

상을 오로지 어느 경우에나 경험적인 감정에 대한 그들의 직접적인 태도에 따라서 선

하다 또는 악하다고 일컬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KpV, A113)

도덕 법칙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지 못하고 의지의 대상, 즉 욕구 능력의

객관이 의지를 규정하게 되면 언제나 의지의 타율이 나타난다. 욕구 능력의 객관은

그것의 실현에서 기대하는 쾌의 감정과 결합하게 되며, 이러한 쾌의 감정은 결국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욕구 능력의

객관이 의지를 규정한다는 것은 곧 행복이 의지를 규정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데 욕구 능력의 객관과 결합하는 행복은 전적으로 경험적인 것으로

서 주관적 경향성에 근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모든 원리들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도덕 법칙을 제공할 수가 없다. 한편 칸트에

따르면 의지의 타율은 자연 법칙의 필연성에 따르는 것, 즉 경향성에 따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의지의 타율에 따르는 모든 행위에서 초월적 자유는 전적으로 배

제될 수밖에 없다. 욕구 능력의 객관이 그 무엇이든 간에, 다시 말해 그것이 자연

감정이든, 도덕 감정이든 아니면 완전성이든 신의 의지이든 간에 의지가 욕구 능력

의 객관에 의해 규정된다면 의지의 타율을 생겨나게 할 뿐이며 그 최종적 귀결은

도덕 법칙과 초월적 자유의 부정일 것이다. 이것은 도덕성의 원리인 의지의 자율의

는 감정이기 때문에 도덕을 위한 동기가 아니라 도덕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허치슨과

같은 도덕감 학파에서 도덕의 기초로 제시하는 도덕 감정은 칸트가 말하고자 하는 존경의 감정으

로서의 도덕 감정과는 완전히 구분된다. 칸트는 이 점을 강조하고자『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도

덕 감정의 원리를 행복의 원리로 간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도덕 감정의 원리를 행복

의 원리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모든 경험적 관심은, 그 어떤 것이 무릇 직접적으로 그리고 이익에

대한 관점 없이 생겼든, 이익을 고려해서 생겼든지 간에, 그 어떤 것을 줄 따름인 쾌적함에 의해

평안에 대한 어떤 기여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 대한 동정의 원리를, 허

치슨과 함께, 그가 받아들인 도덕감(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GMS, B91)

125) 여기서의 행복은 경향성들의 충족을 통해 느끼는 쾌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칸트가 다른 곳에서

표현한 ‘자연 감정’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러한 칸트

의 표현을 통해 볼 때 ‘행복의 원리’는 단순히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원리를 의미한다

기 보다, 행복을 비롯하여 도덕 감정, 완전성, 신의 의지와 같은 욕구 능력의 객관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모든 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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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토대를 무너뜨리는 것으로서 칸트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다. 행복의

원리는 바로 이러한 ‘의지의 타율’에 기초한 원리라는 점에서 칸트의 철저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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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

인간에게 행복은 매우 불확정적인 개념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칸트는 행복을

하나의 이념 그것도 ‘흔들리는 이념’이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행복의 이념을 ‘모든

경향성들이 충족된 상태’, ‘자신의 전 현존에 걸쳐 부단히 수반하는 쾌적함의 의식’

과 같이 표현해보고자 하지만, 어떻게 표현하든지 간에 행복은 주관의 경험적 조건,

즉 경향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

니게 된다. 행복은 분명히 주관적 경향성에 기초하고 있으나,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은 자신의 무한한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 전체를 의미하는 하

나의 이념으로서의 행복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비약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궁극적 목적으로서의 행복은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이 완벽하

게 이루어지는 상태, 즉 행복이라는 목적에 이르는 경험적 인과 계열의 총체를 의

미하는 것으로서, 모든 경험적인 것을 넘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칸트가 행복은 이성

의 이상이 아니라 상상력의 이상이라고 말한 것도(GMS, B47) 사람들이 행복을 경

험적인 것에 근거하고 있으면서도 경험을 넘어선 비약된 이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126) 이처럼 행복의 원리는 주관적 경

향성에 의존하는 불확정적인 행복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원리로부터

126) 칸트가 ‘이념’, ‘이상’, ‘상상력’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으며 특히 ‘상상력의 이상’과 ‘이성의 이

상’을 어떻게 비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행복은 이성의 이상이 아니라 상상력의 이상’이라

는 칸트의 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념들은 어느 가능한 경험적 인식도 이를 수 없

는 어떤 완벽성을 함유하며, 거기에서 이성은 오로지 하나의 체계적 통일성을, 일찍이 온전하게 그

에 도달한 적 없이, 경험적으로 가능한 통일성을 그것에 근접시키려 시도한다는 의미에서, 갖는

다.”(KrV, B596) “그러나 내가 이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념보다도 더욱더 객관적 실재성으로부

터 멀리 떨어져 있다. ‘이상’이라는 말로써 내가 의미하는 것은 한낱 구체적이 아니라, 개별자적인,

다시 말해 하나의 개별적인 이념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거나 또는 아예 규정된 사물이다.”(KrV,

B596) 이처럼 칸트에 따르면 “이념(Idee)은 본래 하나의 이성개념을 뜻하며, 이상(Ideal)은 한 이

념에 부합한 것으로서의 개별적 존재자 표상을 뜻한다.”(KU, B54) 그리고 상상력은 현시의 능력

을 의미한다.(KU, B55) 칸트는 ‘이성의 이상’과 ‘상상력[감성]의 이상’을 다음과 같이 비교하여 설

명한다. “이성의 이상은 항상 일정한 개념들에 의거해 있고, 준수를 위한 것이든 평가를 위한 것이

든 규칙 및 원상[原象]으로 쓰여야만 하는 것이다. 상상력의 산물들에서는 그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설명할 수 없고 이해시킬 수가 없다. 그것들은 이를테면 약도들로

서, 단지 개별적인, 어떤 그럴 듯한 규칙에 따라서 규정된 것이 아닌 윤곽들이며, 일정한 도상을

이룬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경험들 가운데 이를테면 떠도는 표지들이다. 그런 것들을 화가나 관상

가들은 그들의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고 참칭하는데, 그것들은 그들이 만들어내고 평가하는 것들의

전달될 수 없는 그림자 상[실루엣]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은, 비록 단지 비본래적이기는 하지

만, 감성의 이상이라고 일컬어 질 수 있다. 그것들은 가능한 경험적 직관들의 도달할 수 없는 범형

일 것이나, 그럼에도 설명되고 검토될 수 있는 아무런 규칙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KrV, B598)

따라서 행복도 상상력의 이상인 만큼 경험적으로 접근될 수 없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명확하게 설

명될 수도 없으며, 그에 도달하기 위한 확실하고 보편적인 수단이나 규칙을 제공할 수도 없는 것

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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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실천 법칙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수단을 마련해 보고자 자

신의 이성, 정확히 말하자면 경험적 실천 이성을 최대한 활용해 본다. 하지만 인간

은 이내 경험적 실천 이성이 자신을 행복으로 이끌어 줄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의

행복 추구에서 진정한 자기만족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렇

게 인간이 행복을 위한 수단을 선택하는 경험적 실천 이성의 활동에서 진정한 만족

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칸트에 따르면 인간 이성의

진정한 사명은 행복 추구를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 경험적 실천 이성의 활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선한 의지인 선의지를 세우려는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에

있기 때문이다. 순수 실천 이성의 관점에서 행복 추구를 위한 최선의 수단 마련에

매달리는 경험적 실천 이성의 활동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

의 이성은 그 본래적 사명의 관점에서 행복을 의지의 최고 규정 근거로 삼는 행복

의 원리에 따르는 것에 결코 만족할 수 없다. 더군다나 행복의 원리는 욕구 능력의

객관과 결합하는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원리이기에 언제나 의지의

타율을 나타낸다. 따라서 칸트가 보기에 행복의 원리를 의지를 규정하는 유일한 원

리로 삼는 삶 속에서는 ‘경향성으로부터 독립하여 한 상태를 자기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자유’와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이 세운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

는 능력’ 으로서의 ‘자율’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선의지, 즉 도덕 법칙에 의

해 규정된 의지를 세우는 것을 자신의 진정한 사명으로 간주하는 순수 실천 이성의

관점에서 결코 만족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결론이다.

이처럼 칸트는 ‘행복의 원리’를 행복이라는 불확정적인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는 점, 인간 이성의 본래적 사명의 관점에서 불만족스럽다는 점, 의지의 타율에 기

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행복의 원리’가 이 세 가지 비판의 관점을

통해 공통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지점은 ‘행복의 원리’가 주관적 경향성에 바탕을 둔

경험적 원리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고 필연적인 도덕 법칙을 세우는 역

할을 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경험적인 것에 근거한 ‘행복의 원리’가 도덕의

최상 원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칸트의 단호한 경계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왜냐하

면 만약 ‘행복의 원리’가 도덕의 최상 원칙이 된다면, 선․악의 실천적 개념들을 단

지 행복이라는 경험적 결과에 의존하게 만드는 실천 이성의 경험주의

(Empirism)(KpV, A125 참조)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가 얼마나 이러한 경

험주의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지는 다음 설명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경험주의는 마음씨 안에서 -인간성이 행위들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할 수 있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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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야만 하는 높은 가치는 벌써 여기에 성립하는 것이지 한낱 행위들 중에서 성립하

는 것이 아니다 - 도덕성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그것에다 전혀 다른 어떤 것, 곧 경

험적 관심을 의무 대신에 밀어 넣는다. 이와 함께 경향성들 일반이 서로 간에 왕래한

다. 바로 이 때문에 [경험주의는], (그것들이 어떤 모습을 가지든), 그것들이 최상 실

천 원리의 존엄한 위상으로 올려질 때엔, 인간성을 타락시키는 일체의 경향성들과 함

께, 그리고 경향성들은 모든 사람들의 성향에 그토록 우호적이므로, 이런 이유에서 어

떠한 광신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다. [여타의] 모든 광신들은 결코 많은 사람들의 지속

적인 상태가 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KpV, A126)

‘행복의 원리’를 의지를 규정하는 유일한 원리로 삼는 것, 즉 도덕의 최상 원칙

으로 삼는 것은 일체의 도덕성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칸트는 ‘행복의 원리’가 의지의 최고 규정근거로

서 도덕 법칙을 세우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

고 해서 ‘행복의 원리’ 자체가 잘못되고 거짓된 것이라거나 도덕성의 기초를 마련하

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달리 표현하면 칸트는

의무[도덕성]가 문제가 될 때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것, 즉 의지의 동기

로 삼는 것을 단호히 배제하는 것일 뿐, 행복이 의무를 준수하는 데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칸트는 행복의 결여가 의무를

위반하는 유혹이 될 수 있음은 인정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확보하고 촉진하는 일이

적어도 ‘간접적인 의무’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행복을 확보하는 것은 (적어도 간접적으로는) 의무이다. 무릇, 많은

걱정거리와 충족되지 못한 필요들에 휩싸여 있는 자기 상태에 대한 만족의 결여는 대

단히 큰 의무를 위반하는 유혹이 되기가 쉬울 것이다.(GMS, B11-12)

오히려 어떤 점에서 볼 때는 자기의 행복을 배려하는 것은 의무일 수도 있다. 어

떤 면에서 행복 -숙련성․건강․부유함이 이것에 속하는데- 은 의무를 완수하기 위

한 수단을 포함하고, 어떤 면에서 행복의 결여(예컨대, 가난)는 의무를 벗어나게 하는

유혹을 함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자기 행복만을 촉진하는 일은 직접적으로는 결

코 의무일 수가 없고, 더구나 모든 의무의 원리일 수는 없다.(KpV, A166-167)

이처럼 칸트의 비판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행복’ 또는 ‘행복의 원리’ 그 자체

가 아니라, 경험적인 것에 근거한 ‘행복의 원리’를 의지의 유일한 규정 근거로서 도

덕의 최상 원칙으로 간주한다는 것에 있다. 도덕의 최상 원칙으로는 일체의 경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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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근거로부터 독립하여 오직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이 세운 도덕 법칙만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다시 말해 의지의 자율을 기초로 하는 ‘도덕성의 원리’만이 가능

한 것이다. 도덕의 최상 원칙에 그 어떠한 ‘경험적인 것’이 조건으로서 결합된다면

모든 도덕적 가치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127)(KpV, A167 참고) 이런 관점에서 칸트

의 행복주의 비판에는 경험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의 맥락이 강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칸트의 행복주의 비판에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맥락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이성이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 즉 ‘감성적 행복’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은 자신의 최고의 실천

적 사명을 선의지를 세우는 것, 다시 말해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를 세우는

것에 두고 있기 때문에(GMS, B7), 인간은 ‘감성적 행복’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이 지닌 순수 실천 이성의 실천적 사명을 다할 때야 비로소 자기

방식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순수 실천 이성은 자신이 세운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에 따르는 행위, 즉 의지의 자율에 기초한 도덕성의 원리에 따르

는 ‘도덕적 행위’이자 ‘자유로운 행위’에서 자기 방식의 만족을 발견한다. 칸트가 이

렇게 인간이 ‘감성적 행복’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두 세계에 속한 이중적 존재로 바라보는 칸트의 인간관과 연결된다. 인간은 한편으

로는 경향성에 따르는, 다시 말해 자연 법칙에 따르는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면

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에 따르는, 다시 말해 도덕 법칙에 따르는 예지 세계에

도 속한 존재이다. 만약 인간이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만 하다면, ‘감성적 행복’

은 인간 이성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128) 그렇지만 앞서 살펴 보았듯이

127) 칸트는『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도 경험적 원리인 ‘자기 행복의 원리’가 의지의 규정 근거, 즉

의지의 동기가 되어 도덕의 최상 원칙으로 작동하면, 도덕성과 도덕성의 숭고함을 파괴하게 될 것

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칸트는 ‘자기 행복의 원리’가 도덕성과 관련하여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자기 행복의 원리는 가장 배척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원리는

거짓된 것이라거나, 평안은 항상 방정한 행동거지에 따른다는 그럴 듯한 주장이 경험과 모순되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행복한 사람을 만드는 것과 선한 사람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며, 사

람을 영리하게 만들어 자기 이익에 밝게 하는 것과 덕 있게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행

복의 원리는 도덕성을 기초지우는 데 전혀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게 아

니라, 자기 행복의 원리가 도덕성의 기초로 놓는 동기들이 오히려 도덕성을 매장시키고 도덕성의

전체적인 숭고함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런 동기들은 덕으로의 운동인들과 패악[악덕]으로의 운

동인들을 한 부류로 놓고, 단지 타산을 잘 하는 것을 가르칠 뿐 덕과 패악[악덕]의 종[種]적 차이

를 완전히 없애버리니 말이다.(GMS, B90-91)

128) 감성적 행복이 인간 이성의 궁극적 목적이 되더라도 ‘도덕성’의 영역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감성적 행복이 인간 이성의 궁극적 목적이 된다면,

도덕성은 ‘감성적 행복’을 위한 영리한 수단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다시 말해 도덕적 삶은 행복한

삶의 하위 영역에 위치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덕적 삶은 행복한 삶을 위한 ‘영리함’일 뿐

그 어떠한 ‘숭고함’도 지닐 수 없을 것이다. 칸트가 ‘도덕’과 ‘행복’의 조화에 앞서 엄격한 구별을

강조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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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실천 이성의 관점에서 ‘감성적 행복’은 결코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만족

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 실천 이성의 관점이란 곧 일체의 경향

성으로부터 독립하여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는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자의 관점이

다. 결국 인간은 감성 세계에만 속한 존재가 아니라 예지 세계에도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행복의 원리에 기초한 ‘감성적 행복’의 추구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없

고, 도덕성의 원리에 기초한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 즉 도덕 법칙에 따르는 ‘자유

롭고’, ‘도덕적인’ 행위 속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순수 실천 이성의 만족은 경향성들의 충족을 통한 만족, 즉 ‘감성적 행복’과는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을 던져

볼 수 있다.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만족’, 다시

말해 순수 실천 이성이 자신의 최고의 실천적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얻게 되는 ‘자

기 방식의 만족’을 ‘감성적 행복’과 구분되는 의미에서 ‘또 다른 의미의 행복’으로 바

라볼 수는 없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는 인간이 ‘감성적 행복’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의 행복’을 추구할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지 않을까? 칸트는 순수 실

천 이성을 지닌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추구하는 ‘만족’을 ‘감성적 행복’에 대

응하는 행복으로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칸트는 이러한 ‘만족’

의 의미를 ‘감성적 행복’과 확연히 구분되면서도 ‘덕의 의식에 필연적으로 수반해야

하는 행복과 비슷한 것을 지시하는 말’ 속에서 찾으려고 고심하고 있는데(KpV,

A211-212 참고),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을 규정하고자 노

력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칸트는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도덕 법

칙에 따르는 행위를 통해 얻게 되는 ‘만족’을 ‘감성적 행복’과 구분하여 ‘자기 만족

(Selbstzufriedenheit)’(KpV, A212)이라 일컬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이라는 말처럼 향유(Genuß)를 표시하지는 않으면서도, 자기

실존에 만족함(Wollgefallen)이라는, 덕의 의식에 필연적으로 수반해야 하는 행복 비

슷한 것(ein Analogon der Glückseligkeit)을 지시하는 말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렇

다! 자기 만족(Selbstzufriedenheit)이 그런 말이다.(KpV, A211-212)

칸트는 ‘자기 만족’을 ‘향유적인 행복’, 즉 ‘감성적 행복’과 구분하면서, ‘자기 실

존에 만족함’, 즉 ‘덕의 의식에 필연적으로 수반해야 하는 행복’과 유사한 것으로 이

해하고자 한다. 여기서 ‘덕의 의식’이란 도덕 법칙을 준수하는 능력으로서 자유의

의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든 경향성들로부터의 독립성을 전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만족’은 어떠한 특수한 감정에도 의존하지 않으면서, 도덕 법칙의 준수를 통

해 자유를 의식하는 한에서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만족이라는 점에서 칸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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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지성적[예지적] 만족(intellektuelle Zufriedenheit)’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고 말

한다.(KpV, A212)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도덕 법칙을 준수하면서 자유를 의식하는

가운데 느끼게 되는 ‘자기 만족’을 ‘도덕성과 결합하고 있는 행복’, 즉 ‘감성적 행복’

과 구분하는 의미에서 ‘도덕적 행복’으로 간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칸트가 ‘도덕성’을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 표현하는 것(KrV, B838;

B841; B842 참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칸트는 ‘행복’을 동인, 즉 의지의 동기로

삼는 실천 법칙을 실용적인 영리함의 규칙이라고 일컫고, 오직 ‘행복할 만한 품격’

만을 동인으로 삼는 실천 법칙을 도덕 법칙이라고 일컬으면서 이 둘을 확연히 구분

한다.(KrV, B834) 그런 다음 칸트는 도덕 법칙은 “오직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지시명령하며”, “경향성들 및 이것들을 충

족시키는 자연수단들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이성적 존재자 일반의 자유 및 그 아래

에서만 자유가 행복의 분여[分與]와 원리적으로 조화하는 필연적 조건들만을 고찰

한다.”(KrV, B834)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말하는 ‘행복할 만한 품격’이

‘행복’과는 명확하게 구분되면서, 사실상 도덕 법칙을 정초하는 ‘도덕성’ 내지는 ‘도

덕성의 원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행복할 만한 품격’은 도덕 법칙

을 준수하면서 자유를 의식하는 이성적 존재자에게만 주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행

복할 만한 품격’에서의 ‘행복’은 ‘도덕성’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행복이

라고 볼 수 있다.129) 그래서 칸트가 “누구나 자신의 처신에서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그 정도만큼 행복을 희망할 이유를 가진다”(KrV, B837)라고 말했을 때, 여기

서의 ‘행복’이란 단순히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이 아니라, 행복할 만한

품격, 즉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 바라는 행복으로 확장시켜 이해해 볼 수 있는 것이

다.130) 이처럼 칸트가 도덕성을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 표현한 것은 도덕 법칙을 준

129) 칸트는 행복을 도덕성과의 관련성 속에서 생각하는 것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라고 바라본

다. “이성적이고 편파적이지 않은 관객은 순수하고 선한 의지의 특징을 갖추지 못한 자가 부단히

무사 번영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언급할 것도 없이, 선의지는 행복

을 누릴 품격[자격] 있음의 필요불가결한 조건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GMS, B2) 여기서 우리

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선의지를 갖춘 사람, 다시 말해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이 희망하는 행복을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 즉 ‘감성적 행복’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선의지에 따르는 사람에게 ‘감성적 행복’은 이미 원래부터 의지의 대상, 즉 목적이 아니었

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의 결과로 ‘감성적 행복’이 주어지든 말든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이다. 오히려 선의지에 따르는 사람은 도덕적 행위를 행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의 인격

에 대한 존경심으로 말미암은 ‘자기 만족’을 진정한 행복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도덕적인 사람

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만약 이 때의 행복을 ‘감성적 행복’에 한정시켜 규정한다면, 이것은

도덕적인 사람 자신을 모욕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도덕적인 사람 자신이 바라는 행복

은 이미 ‘감성적 행복’의 차원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덕적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

는 것은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이미 ‘도덕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뿐이다.

130) 어떤 사람들은 경향성의 충족을 배제한 ‘행복’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

다. 연구자는 이러한 반문이 만약 인간을 감성적 존재자로만 규정한다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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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며 자유를 의식하는 ‘도덕적 행위’와 연결된 ‘행복’의 가능성, 다시 말해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의 가능성을 시사한다.131) 그리고 이러한 행복은 ‘행복할 만한 품

격’을 갖춘 사람, 즉 도덕적으로 훌륭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자기 만

족’에 놓여 있는 행복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인간은 경향성들의 충족에 의존하는 ‘감성적 행복’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

한다. 오히려 일체의 경향성들로부터 벗어나 도덕 법칙을 준수하며 자유를 의식하

는 행위, 즉 도덕적 행위를 통해 진정한 ‘자기 만족’을 얻는다. 이러한 ‘자기 만족’은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만이 이를 수 있는 만족으로서, ‘덕의 의식에 필연적

으로 수반해야 하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도덕적 행위에서의 ‘자기 만족’

은 한편으로는 일체의 경향성들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점에서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이라 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행복할 만한 품격’, 즉 도덕성과 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행복’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칸트는 도덕적 행위에서 느끼는 ‘자기 만족’과 같이 일체의 경향성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벗어나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만족(Wohlgefallen)132)의 가능성

을 제시하고자 한다. 칸트는 이러한 만족을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

서의 만족’에서 발견하고 있는데, 이를『판단력비판』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

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즉 미감적 만족은 일체의 경향

성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심지어는 도덕적인 관심으로부터도 벗어나 있

는 ‘무관심한 만족’이자 ‘자유로운 만족’이다. 따라서 이러한 만족은 비록 주관이 느

끼는 쾌의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경향성의 충족을 통한 만족, 즉 감성적 행

복의 한계 밖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만족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미적

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통해 적어도 감성적 행복과는 전적으로 구분되는

‘미감적 행복’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

적인 것에서의 만족과는 달리 이성의 초감성적 이념과 관계하면서 도덕 법칙에 대

본다. 하지만 인간은 순수 실천 이성을 지닌 예지적 존재자이자 자유로운 존재자이기도 하기 때문

에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만으로는 인간의 이성은 만족할 수 없다. 따라서 연구자는 여기서

예지적 존재자로서, 자유로운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추구하는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칸트가 ‘행복할 만한 품격’이라는 표현을 통해 말하고자 한 의도도 여기에

있다고 판단한다.

131) 이러한 연구자의 결론은 ‘행복할 만한 품격’이라는 표현에서 ‘행복’의 의미가 경향성의 충족으로

서의 행복, 즉 ‘감성적 행복’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과 비례적으로 결합하는 행복’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은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 다

시 말해 도덕 법칙을 준수하며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의식하는 사람이 희망하는 행복임을 감

안할 때, ‘행복’을 언제나 동일하게 ‘모든 경향성들의 충족’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

고 본다. 그래서 연구자는 칸트가 도덕성을 굳이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도덕

성과 결합한 행복’의 가능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본다.

132) 다음 장에서 상세히 살펴보겠지만 ‘만족(Wohlgefallen)’은 주관의 쾌의 감정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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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존경의 감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

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칸트가『판단력비판』에서 논의하고 있는 미적인 것과 숭

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경향성들의 충족을 통해 느껴지는 만족, 즉 ‘감성적 행복’ 너

머의 행복인 ‘미감적 행복’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감적․도덕적 행복’의 가능성까지도 시

사할 수 있는 것이어서 미감적 행복과 도덕적 행복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매개적

역할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칸트가 경향성들의 충족을 통해 느껴

지는 만족인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그리고 ‘자기 만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도덕적

인 것에서의 만족’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각각의 만족은 ‘미감적 행복’, ‘미

감적․도덕적 행복’, ‘도덕적 행복’에 대응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미감적 행복’과

‘미감적․도덕적 행복’은 순수 실천 이성에 기초하는 ‘도덕적 행복’과는 달리 반성적

판단력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행복’과는 구별되는 행복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다음 장에서는 먼저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어떻게 ‘미감적 행복’과 ‘미감적․도덕적 행복’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를『판단력비

판』의 분석을 통해 알아보고, 그 다음 장에서는 ‘행복할 만한 품격’, 즉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으로 이해되는 ‘도덕적 행복’을 ‘최고선의 개념’을 중심으로 집중 논의

하고 있는『실천이성비판』제2권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133)

133) 결론부분에나 언급할 만한 내용을 연구자가 미리 언급하는 이유는 Ⅳ장과 Ⅴ장에서 연구자가

전개한 내용이 바로 이러한 분석 틀을 바탕으로 진행되었고, 또한 Ⅳ장과 Ⅴ장의 내용은 연구자의

분석 틀이 칸트의 의도에 부합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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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칸트의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과 행복

1.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만족

(1) 쾌 불쾌의 감정과 만족의 구분

미적인 것(das Schöne)에 대한 판단, 즉 취미판단은 상상력에 의해 주관의 쾌

(Lust) 또는 불쾌(Unlust)의 감정과 관계한다.(KU , B3-4) 취미판단은 논리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는 인식판단과는 달리 주어진 표상에 따라 주관이 느끼는 쾌 또는

불쾌의 감정과 관계하는 미감적 판단이다. 주어진 표상에 대해 주관이 느끼는 쾌·불

쾌의 감정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만족의 감각에 기반한 이러한 감정은 취미판

단을 규정하는 기초를 이룬다.

칸트는 취미판단을 규정하는 만족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쾌적한 것(das

Angenehme)에서의 만족과 좋은 것[선, das Gute]에서의 만족을 함께 비교한다. 취

미판단에서의 만족을 일체의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만족, 즉 무관심한 만족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칸트는 우선 관심134)에 대해 설명한다. 칸트에 따르면 관심이란 대

상의 실존 표상과 결합하는 만족으로서 욕구능력과 관계한다.(KU , B5) 따라서 관심

을 표현한다는 것은 대상의 실존에 대한 욕구나 의지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게 된

다. 모든 관심은 필요욕구를 전제하거나 필요욕구를 불러일으킨다.(KU , B16) 그래

서 찬동을 요구하는 근거로서의 관심은 대상에 대한 판단을 더 이상 자유롭게 놓아

두지 않는다.(KU , B16) 이런 이유에서 관심과 결합된 판단에서의 만족은 전적으로

무관심한 취미판단에서의 만족과 근본적으로 구별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먼저

칸트가 관심과 결합된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과 좋은 것에서의 만족을 어떻게 설명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쾌적한 것에 대한 만족은 관심과 결합되어 있다. 칸트는 쾌적한 것을 “감각에서

감관들에 만족을 주는 것”(KU , B7)이라 말하며, 쾌적한 것에 대한 만족이 감각적

관심의 충족과 관련되는 것으로 본다. 또한 어떤 대상의 쾌적함에 대한 판단은 감

134) 크로포드(Crawford)는 미의 경험에서의 쾌의 감정을 다른 모든 경험에서의 쾌의 감정과 구별하

기 위해 칸트가 사용한 기법을 ‘관심의 개념’이라고 보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관심은 그 자체

로 쾌와 연관해서 정의된다. 그것은 특정한 기초 또는 근거를 가지고 있는 쾌, 즉 ‘대상의 현존[실

존]의 표상’에서 취해지는 쾌이다. 여기에서 칸트의 가장 일반적인 주장은 미에서의 쾌가 우리 편

에서의 어떠한 관심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욕구 또는 의지에 연결되지 않는다

는 것이다.”(D. W. Crawford, Kant’s Aesthetic Theory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74); 김문환 옮김,『칸트 미학 이론』(서울: 서광사, 1995),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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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적 관심과 함께 그 대상에 대한 욕구를 자극한다. 그래서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

은 대상의 실존에 대한 욕구와 관련되어, 사람들은 쾌적한 대상에 대해서 단지 ‘만

족을 준다’고 말하지 않고, ‘쾌락을 준다’고 말하게 된다.(KU , B9-10) 결국 쾌적한

것은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여 경향성을 낳게 하는 것이다.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은

대상에 관한 판단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실존과 자신의 상태와의 관계를

전제한다. 여기서 칸트는 사람들이 매우 강렬하게 쾌적한 것에 대해서는 일체의 판

단에서 벗어나 단지 향락만을 추구하려 한다면서(KU , B10),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

이 향락주의적 삶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 좋은 것에서의 만족도 관심과 결합되어 있다. 좋은 것이란 이성을 매개로

순전한 개념에 의해 만족을 주는 것을 말한다.(KU , B10) 칸트에 따르면 ‘좋은 것’은

단지 수단으로서만 만족을 주는 ‘무엇을 위해 좋은 것(유용한 것)’과 그 자체만으로

만족을 주는 ‘그 자체로 좋은 것’으로 구분된다.(KU , B10) 무엇을 위해 좋은, 즉 도

구적으로 좋은 것이든 그 자체로 좋은, 즉 도덕적으로 좋은 것이든 좋은 것에는 언

제나 목적의 개념, 이성과 의욕과의 관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객관 또는 행위

의 현존에 대한 만족, 즉 어떤 관심과 결합된다. 어떤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KU , B10), 좋은 것에

서의 만족은 미적인 것에서의 자유로운 만족과는 달리 선행하는 개념에 의해 규정

될 수밖에 없는 제약된 만족이라 할 수 있다.

칸트는 아울러 쾌적한 것과 좋은 것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면서 각각에서의 만

족이 전혀 다른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것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사람들은 쾌적한

것과 좋은 것을 동일하게 간주하여 지속적인 쾌적감[쾌락]이 그 자체로 좋다고 말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그릇된 말의 혼동일 뿐이다.(KU , B11) 쾌적한 것은 그

자체가 대상을 단지 감관과의 관계에서만 표상하는 것이지만, 의지의 대상으로서

좋은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목적의 개념에 의해 이성의 원리들 아래에 놓여야만 하

는 것이다.(KU , B11) 그래서 좋은 것에서는 언제나 그것이 간접적으로 좋은가 아니

면 직접적으로 좋은가(무엇인가에 유용한가 아니면 그 자체로 좋은가)가 문제이지

만, 쾌적한 것에서는 쾌적이라는 말이 언제나 직접적으로 만족을 주는 것을 의미하

므로, 그러한 것이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쾌적한 것은 직접적으로 감관의

느낌을 좋게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좋은 것은 결과와 목적

을 내다보는 이성의 통찰을 거쳐야만 만족을 줄 수 있다. 칸트는 쾌적한 것과 좋은

것 사이의 이러한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그것들 모두 항상 대상에 대한 관심과 결

합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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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쾌적한 것과 좋은 것 사이의 이런 모든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항상

대상에 대한 이해관심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합치한다. 쾌적한 것과 그리고 어

떤 쾌적함을 위한 수단으로서 만족을 주는 간접적으로 좋은 것(유용한 것)뿐만 아니

라, 단적으로 그리고 모든 관점에서 좋은 것, 곧 도덕적으로 좋은 것 또한 그러하다.

도덕적으로 좋은 것은 최고의 관심을 수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것[선]은 의지

의(다시 말해, 이성에 의해 규정된 욕구능력의) 객관이니 말이다. 그런데 어떤 것을

의욕한다는 것과 그것의 현존재에 만족하다는 것, 다시 말해 그것에 관심을 갖는 것

은 동일한 것이다.(KU , B13-14)

여기서 칸트가 규명하고자 하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쾌적한 것에 대한 감각

적 관심 그리고 좋은 것에 대한 실용적 관심과 도덕적 관심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

로운 특수한 쾌의 감정임을 소극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다.135) 그렇다면 보다 적극

적으로 칸트가 일체의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무관심한 만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2)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 무관심한 만족

주어진 대상의 표상을 만족의 감각을 가지고 의식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관의 쾌

또는 불쾌의 감정, 즉 주관의 생명감정과만 관련된다.(KU , B4)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만족은 이러한 주관의 쾌의 감정과 관계한다. 칸트에 따르면 이 감정은

135) 칸트는 쾌적한 것에 대한 관심과 좋은 것에 대한 관심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쾌적한 것에 대한

관심은 감각에서의 직접적인 쾌감과 연결되기 때문에 ‘감각적 관심’이라 일컬을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칸트는 ‘좋은 것’을 다시 ‘무엇을 위해 좋은 것(유용한 것)’과 ‘그 자체로 좋은

것’으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것’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말도 두 가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크로포드(Crawford)는 ‘좋은 것’을 ‘도구적으로 좋은 것’과 ‘도덕적[본래적]으로 좋은 것’으

로 구분하고 전자를 ‘타산적[도구적] 관심’에, 후자를 ‘도덕적 관심’에 연결시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김문환 옮김(D. W. Crawford), 앞의 책, pp.76-80 참조) 연구자도 이러한 구분에 따라 좋은 것에

대한 관심을 두 가지로 구분하되, 칸트가 ‘무엇을 위해 좋은 것’을 ‘유용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점에 초점

을 맞추어 ‘타산적[도구적]’ 대신 ‘실용적’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런데 칸트가 ‘유용한 것으

로서의 좋은 것’을 쾌적함을 위한 수단으로서 만족을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KU, B13)과, 좋은 것

에서의 만족을 특히 존경과 연결시키고 있는 점(KU, B15)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좋은 것에 대한

관심을 ‘그 자체로 좋은 것’ 즉 ‘도덕적으로 좋은 것’에 대한 관심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한자경도 좋은 것에 대한 세부적 구분 없이 쾌적한 것에 대한 ‘감각적 관심’과 실천이성이 지

향하는 선[좋은 것]에 대한 ‘도덕적 관심’으로 구분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한자경,『칸트 철학에의

초대』(경기: 서광사, 2006), pp.173-176 참조), 이는 이러한 경향을 고려한 것이라 판단된다. 연구자도

이러한 경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무관심한 만족을 설명하는 곳에

서 쾌적한 것에 대한 관심을 ‘감각적 관심’으로 좋은 것에 대한 관심을 ‘도덕적 관심’으로 표현해도 칸트

의 의도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앞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서술할 것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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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수한 구별능력과 판정능력의 기초를 이루면서 인식에는 아무것도 기여하는

바가 없다.(KU , B4) 또한 미적인 것에서의 쾌의 감정은 쾌적한 것에 대한 감각적

관심이나 좋은 것에 대한 도덕적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무관심한 만족이다. 따라

서 미적인 것에서의 쾌의 감정, 즉 만족은 어떤 대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는 부담에서 자유롭고, 감각적 관심이나 도덕적 관심의 충족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그야말로 ‘자유로운 만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적인 것에서의 쾌의 감정은

적어도 쾌적한 것이나 좋은 것에서의 쾌의 감정과는 구별되어야만 하며, 이에 따라

각각의 만족이 표현하는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칸트는 이 세 종류의

만족이 종적(種的)으로 상이하다고 보고, 이들의 비교를 통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

이 지니는 성격을 좀 더 적극적으로 규명해보고자 한다.

칸트는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을 ‘정념적으로 조건지어진 만족’으로, 좋은 것에서

의 만족을 ‘순수한 실천적 만족’으로 설명한다.(KU , B14) 이 두 가지 만족은 욕구능

력과 관계된 것으로서, 전자는 감각적 관심의 충족과 관련되고 후자는 도덕적 관심

의 충족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칸트는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

즉 취미판단은 “한낱 관조적”(KU , B14)이라고 말하면서, 미적인 것에서의 쾌 또는

만족의 성격을 ‘관조적’이라는 용어로 특화시키고 있다. 칸트는 취미판단의 관조적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서 취미판단에서의 만족이 지닌 성격을 드러내려 한

다.

취미판단은 대상의 현존에는 무차별적이고[무관심하고], 오직 대상의 성질만을 쾌·

불쾌의 감정과 결부시키는 판단이다. 그러나 이 관조 자신도 개념들을 지향하고 있지

는 않다. 왜냐하면, 취미판단은 인식판단이 아니고, (이론적 판단도 실천적 판단도 아

니고) 그래서 또한 개념들에 기초하지도 않고, 또 개념들을 목표로 삼지도 않기 때문

이다.(KU , B14)

이처럼 칸트는 ‘관조적’이라는 용어를 통해 취미판단이 대상의 현존에 무관심하

고, 개념에 근거한 이론적 판단이나 실천적 판단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취미판단에서의 만족은 대상에 관한 일체의 감각적이고 도덕적인 관심을 떠

난 무관심한 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만

족은 ‘관조적 만족’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무관심한 만족’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칸트는 더 나아가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좋은 것에서 만족감을 드러내는 표현이

동일하지 않다고 보고 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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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적한 것은 누군가에게 즐거움[쾌락]을 주는 것을 말하고, 아름다운 것은 누군가

에게 한낱 만족을 주는 것을 말하며, 좋은 것은 존중되고 시인되는 것, 다시 말해 누

군가에 의해 객관적 가치를 부여받는 것을 말한다.(KU , B15)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은 경향성의 대상이 쾌락을 주어 감관의 관심이 충족될 때

느껴질 수 있고, 좋은 것에서의 만족은 이성의 법칙에 의해 부과되어 욕구하게 되

는 대상이 존경의 감정을 일으켜 이성의 관심이 충족될 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유일하게 일체의 관심이 없는 ‘자유로운 만족’이

라 말할 수 있다.(KU , B15) 칸트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이 ‘호의(Gunst)’와 관련된

다면서, 호의만이 유일한 자유로운 만족이라고 말한다.(KU , B15) 이렇게 미적인 것

에서의 만족을 자유로운 만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감관의 관심이나 이성의 관

심이 찬동(贊同)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KU , B15)

칸트의 언급을 종합해 볼 때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관조적’이고 ‘자유로운’ 성

격을 지닌 매우 특수한 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관조적’이고 ‘자유로운’ 만족

은 일체의 감각적이고 도덕적인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무관심한’ 만족이다. 여기서

‘관조적 만족’, ‘자유로운 만족’, ‘무관심한 만족’은 모두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을 의

미하는 상호 교환 가능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136) 쾌적한 것에 대한 경향성의 관

심과 도덕적으로 좋은 것에 대한 이성의 관심이 존재하는 한, 모든 만족은 대상에

대한 필요욕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감각적·도덕적

필요욕구의 충족과는 전혀 무관한 ‘자유로운 만족’이다. 칸트는 쾌적한 것에서의 만

족과 좋은 것에서의 만족을 분명하게 규정하면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이 갖는 의

미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칸트에 의하면 세 종류의 만족은 종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다른 두 가지 종류의 만족과 함께 인

간의 행복에서 특수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체의 감각적

이고 도덕적인 관심에서 벗어나 ‘단지 주관에게 만족을 주는’, ‘호의’로 가득한, 미적

인 것에서의 ‘자유로운 만족’이 인간의 행복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36) 하지만 연구자는 ‘자유로운 만족’이라는 표현이 ‘관조적 만족’과 ‘무관심한 만족’이라는 표현보다

는 더 적극적인 의미를 전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만족’이라는 표현을 통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이 감각적 관심과 도덕적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만족이면서도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로 드러나는 반성적 판단력의 ‘자기 자율(Heautonomie)’(KU, BXXXVII)적인 활동

에 기초한 만족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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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유로운 만족으로서의 행복

쾌적한 것은 경향성과 관련한 감각적 관심의 충족을 통해 만족을 주며, 좋은 것

은 존경의 감정과 관련한 도덕적 관심의 충족을 통해 만족을 준다. 칸트는 쾌적함

은 이성이 없는 동물에게도 타당하며, 좋은 것은 모든 이성적 존재자 일반에게 타

당하다고 말한다.(KU , B15) 이는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이 동물적 차원과 관련되고,

좋은 것에서의 만족은 이성적 차원과 관련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칸트는 아름다움은 오직 인간들에게만, 다시 말해 동물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존재자들에게만 타당하다고 말한다.(KU , B15) 이런 측면에서 미적인 것에

서 느끼는 만족은 유일하게 ‘인간적인’ 쾌의 감정으로서, 인간의 삶과 인간의 행복

과 관련하여 특수한 위상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칸트는 행복의 관점에서 쾌적한 것과 좋은 것을 구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미

적인 것에서의 만족이 행복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칸트는 쾌적한 것과 좋은 것을 행복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행복의 관점에서도 모든 사람들은 생(生)의 쾌적함의 (분량과 지속의 면에서) 최

대량이 진정으로 좋은 것, 심지어는 최고로 좋은 것[최고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이성은 반발한다.137) 쾌적함은 향락138)이다.(KU ,

B12)

여기서 칸트의 생각을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쾌적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더라도 좋은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칸트는 “도

덕적으로 좋은 것은 최고의 관심을 수반하는데”(KU , B13) 그 이유는 “좋은 것은

의지, 즉 이성에 의해 규정된 욕구능력의 객관이기 때문”(KU , B14)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쾌적함의 최대량을 ‘그 자체로 좋은 것’ 또는 ‘최고의 좋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이성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 쾌적함은 향락, 즉 쾌락을 즐기는

것인데, 순전히 쾌락을 즐기기 위한 삶 그 자체가 가치를 갖는다는 것에 이성이 동

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행복과 관련하여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과 좋은 것에

서의 만족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은 필요욕구와 경향성에 바

137) 원어는 ‘straüben’이고 백종현은 ‘곧추선다’로 번역하고 있으나 일상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용

어여서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석윤의 번역어인 ‘반발한다’(I.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이석윤 옮김,『판단력비판』(서울: 박영사, 2005), p63)로 대체한다.

138) 원어는 ‘Genuß’이고 백종현은 여기서 ‘향수(享受)’로 번역하고 있다. 그렇지만 백종현 스스로도

문맥에 따라 ‘향수’와 ‘향락’을 혼용하거나 병기하고 있고, ‘향수’보다는 ‘향락’이 쉽게 이해할 수 있

는 용어라고 판단하여 ‘향수’ 대신 ‘향락’을 선택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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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을 둔 감각적 관심의 충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지속적인 쾌적함의 최대량

으로서의 행복, 즉 감성적 행복과 연결된다. 반면 좋은 것, 특히 도덕적으로 좋은

것에서의 만족은 이성에 의한 도덕적 관심을 고려하기 때문에 감성적 행복과는 다

른 차원의 행복을 지향한다. 칸트는 이성이 쾌적함 그 자체가 좋은 것으로서의 가

치를 갖는다는 것에 결코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은, 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완전히 자유롭게 그리고 자연이 그에게 수동적으

로 제공할 수도 있는 것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그가 행하는 것에 의해서만 한 인격의

실존으로서의 그의 현존재에게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행복은, 완전히 충만

된 쾌적함과 함께일지라도,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무조건적인 선]이라기에는 어림도

없다.(KU , B13)

그렇다면 쾌적한 것이나 좋은 것과 구별되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행복과 관

련하여 어떤 의미와 성격을 지니고 있을까? 칸트는 행복의 관점에서 쾌적한 것과

좋은 것 사이의 차이점을 논하는 자리에서 미적인 것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고 있

다. 하지만 행복이 쾌의 감정, 즉 만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며,

또한 칸트가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좋은 것은 쾌·불쾌의 감정에 대한 표상들의 서

로 다른 세 관계를 표시하는 것(KU , B14-15)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미적인 것

에서의 만족을 행복과 관련하여 설명해 보는 것은 칸트의 미학 이론 체계 안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행복이 만족의 감정과 연결되는 것이라면,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좋은 것에서의

만족에 제각기 대응하는 행복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는 타당할 것이다.139) 앞에서

언급했듯이 칸트는 세 가지 종류의 만족을 좀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데,

이를 표로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39) 칸트는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좋은 것’에서의 만족이 종적으로 서로 다르다고 본다는 점에서

(KU, B14), 각각의 만족에 바탕을 둔 서로 다른 차원의 행복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칸트

는 ‘숭고의 분석학’을 논의한 후, 다시 쾌의 감정, 즉 만족과 관계하는 모든 대상을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숭고한 것’, ‘단적으로 좋은[선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보면서(KU, B113), 이

4가지 만족의 고유한 특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도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을 경향성의 충족

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 행복’에 대응시킨다면, 종적으로 서로 다른 만족인 ‘미적인 것에서의 만

족’,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단적으로 좋은[선한] 것에서의 만족’도 각각의 고유한 ‘행복’에 대응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본 논문의 ‘Ⅳ-2-(3)’에서 집중적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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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5> 세 가지 만족의 성격(KU , B14-15 참조)

칸트는 기본적으로 행복을 모든 경향성의 최대한의 충족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

문에, 경향성과 관련되는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이 감성적 행복을 의미하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칸트는 지속적인 쾌적함의 최대량이 결코 좋은

것을 의미할 수 없다고 하면서, 좋은 것에서의 만족은 적어도 쾌적한 것에서의 감

성적 행복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러면서 칸트는 좋은 것에서의 만족은 객관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존중과 시인의 대상으로부터 느껴지는 것으로, 존경의 감정

과 연결된다고 본다. 존경의 감정은 도덕적으로 좋은[선한] 것에 대한 이성의 관심

과 관련되는 도덕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것에서의 만족은 존경이

라는 도덕적 감정과 관련한 행복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40) 그렇다면 미

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행복과 관련하여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위의 표에서 보

는 바와 같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호의(Gunst)와 관련된다. 호의는 경향성에

의해 욕구능력이 규정됨으로써 산출되는 쾌의 감정도 아니고, 이성의 도덕 법칙에

의해 욕구능력이 규정됨으로써 산출되는 쾌의 감정도 아니다. 호의는 욕구능력과

관계하는 일체의 관심 없이 미적인 대상과의 만남 속에서 느끼는 순수한 쾌의 감정

이다. 그래서 칸트는 “호의만이 유일한 자유로운 만족”(KU , B15)이라고 말한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이 호의의 감정과 관련된 행복과 연결될 수 있다면, 여기서

말하는 행복의 핵심적 특성은 ‘자유로운 만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적인 것에서의 자유로운 만족이 행복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

미는 무엇일까?

첫째, 자유로운 만족은 경향성의 충족에 집중된 감성적 행복에만 몰두하게 하지

않고 미적인 대상과의 만남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다른 차원의 행복을 제공할 수 있

다. 자유로운 만족은 경향성에 바탕을 둔 감각적 관심과 무관한 만족이다. 어떤 대

상을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 느껴지는 자유로운 만족은 대상에 대한 일체의 감각적

관심 없이 대상과의 순수한 만남을 통해 느껴지는 쾌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140) 칸트가 좋은 것에서의 만족을 존경과 관련시키는 것에서, 이 때의 좋은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 ‘도덕적으로 좋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의 존경은 다름 아닌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지 않을 수 없는데,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

은 순수 실천 이성에 근거를 둔 특수한 ‘도덕적 감정’을 의미한다.

쾌의 감정의 대상 만족을 표시하는 표현만족과

관련된 감정행복의 의미

쾌적한 것 쾌락[즐거움]을 주는 것 경향성 경향성과 관련된 행복

미적인 것 단지 만족을 주는 것 호의 호의와 관련된 행복

좋은[선한] 것 존중되고 시인되는 것 존경 존경과 관련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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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감정은 우리가 예술 작품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관조할 때 느껴지

는 것으로서, 경향성의 충족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 행복에만 주로 관심을 두고 있

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행복을 드러나게 해 줄 수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

로 쾌적함을 주는 대상에서 자신의 경향성을 충족시킴으로써 만족을 얻으려 하며,

이러한 만족을 극대화 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쾌적함

을 주는 대상을 소유함으로써 만족이 지속적이고 극대화되기를 열망한다. 하지만

감각적으로 느끼는 쾌적함에 익숙해지면서 권태를 느끼게 되고, 또 다시 더욱 지속

적이고 강렬한 쾌적함을 주는 대상으로 관심이 옮아가게 된다. 따라서 지속적인 쾌

적함의 극대화를 행복으로 여기고 이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쾌적함과 권태로움 사이에서 표류하면서 지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름

다운 대상에서 느끼는 자유로운 만족은 감각적 관심과 무관한 쾌의 감정으로서, 감

성적 행복 추구에 몰두함으로써 지친 사람들에게 다른 종류의 행복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이 때의 행복이란 대상을 통해 경향성을 충족하려는

의도나 대상을 소유하려는 목적 없이, 오로지 대상에 대한 순수한 관조를 통해 느

껴지는 쾌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조적 쾌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감

각적 쾌에 바탕을 둔 감성적 행복이 아닌 다른 종류의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된다.

둘째, 자유로운 만족은 대상과의 현재적 만남 속에서 느껴지는 쾌의 감정으로서,

행복을 현재적 관점에서 주목하게 한다. 칸트에 따르면 취미판단은 이론적 인식판

단도 아니고 도덕적 실천판단도 아니다.(KU , B14 참조) 왜냐하면 취미판단은 개념

에 기초하지도 않고, 또한 개념을 목표로 삼지도 않기 때문이다.(KU , B14) 취미판

단은 개념을 통해 대상을 파악하려는 인식적 관심이나 이성에 의한 선[좋음]의 개

념에 비추어 대상을 변화시키려는 실천적 관심과 무관하다. 그런데 인식적 관심에

서 주어진 사태를 자연 법칙에 따라 이해할 때 우리는 그것을 과거의 결과로서 대

상화시키는 것이며, 반대로 실천적 관심에서 사태를 도덕 법칙에 따라 이해할 때

우리는 그것을 미래의 수단으로 대상화시키는 것이다.141) 그러나 어떤 사물, 자연이

나 예술을 놓고 그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 우리의 판단은 인식적 관심이나 실천

적 관심으로부터 독립적인 만큼, 과거나 미래의 지평에서 사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현재적 현시를 현재적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142) 자유로운 만족은 무

관심한 만족으로서 아름다운 대상과의 생생한 현재적 만남을 통해 느껴지는 쾌의

감정이다.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에서는 대상을 주어진 개념에 따라 규정함으로써

대상을 과거 결과의 총체로서 인식하려고 하거나, 대상을 이성의 목적의 관점에서

141) 한자경,「칸트 철학 체계에서 판단력의 위치」, 새한철학회,『철학논총』제8권, 1992, p.16. ‘인식적

관심에서’와 ‘실천적 관심에서’는 자연스러운 문맥 연결을 위해 연구자가 삽입함

142) 한자경(1992), 위의 논문,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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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결과를 바라보며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 미란 과거를 통해 또는 미래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체에 주어지는 것이다.143) 그렇기 때문

에 아름다운 대상에서 느끼는 자유로운 만족은 대상과의 현재적인 만남에서만 가능

한 쾌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쾌의 감정의 지속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

다면, 행복은 아름다운 대상과의 현재적인 만남 속에 머물면서 그 자체를 즐기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상을 자신이 지닌 과거의 의도와 미래의 목적을 실현

시켜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데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자유로

운 만족으로서의 행복은 행복을 대상과의 현재적 만남에서도 찾을 수 있음을 일깨

워 준다. 이러한 행복은 아름다운 대상과의 순수한 만남에서 느껴질 수 있는 것으

로서, 어떠한 의도나 목적도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대상과의 현재적 만남 그 자체

를 즐기면서 느끼는 쾌감이라 할 수 있다. 칸트는 이러한 쾌감이 대상이 표상에 의

해 주어질 때 주관의 인식력들, 즉 상상력과 지성의 유희에서 성립하는 순전히 형

식적 합목적성의 의식에서 비롯한다고 설명한다.(KU , B36-37) 그렇기 때문에 이

쾌감은 어떤 의도도 없이 쾌감을 스스로 지속하게 하는 원인성을 자신 안에 갖게

된다.(KU , B37) 칸트는 “우리가 아름다운 것을 관조할 때에 거기에 오래 머물러 있

게 되는데, 그것은 관조가 관조 그 자체를 강화하고 재생산하기 때문”(KU , B37)144)

이라고 말하면서, 미적인 것에서의 쾌감이 갖는 관조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관조가 관조를 강화하고 재생시키는 방식은 곧 개념적 과거나 미래로부터 독립하여

현재적 현시에 머무르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145) 따라서 우리가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에서 느끼는 자유로운 만족은 대상과의 현재적 만남 속에서 느껴지는 관

조적 쾌감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측면에서 관조적 행복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겠

다.

143) 한자경(1992), 앞의 논문, p.16.

144) 이 인용문에서 ‘관조’에 해당하는 원어는 ‘Betrachtung’인데 이를 백종현은 ‘Kontemplation’의

번역어로 선택한 ‘관조’와 구별하기 위해 ‘음미’라는 용어로 번역하고 있으나, 사실상 원어의 측면

에서나 번역어의 측면에서나 두 용어는 사실상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음미’를 ‘관

조’로 번역하더라도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석윤도 이를 ‘관조’로 번역하

고 있다.(Kant, I., Kritik der Urteilskraft, 이석윤 옮김,『판단력비판』(서울: 박영사, 2005), p81)

연구자는 본 논문에서 문맥상 ‘관조’라는 용어를 일관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 인용문

은 이석윤의 번역을 선택하고자 한다.

145) 한자경(1992), 앞의 논문,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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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만족

(1)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비교

칸트는 미감적 판단을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으로 구

분한다. 따라서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은 미적인 것에 대한 만족과 숭고한 것에

대한 만족으로 구분된다. 칸트는『판단력비판』제1권 미의 분석학에서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만족을 논의한 후, 제2권 숭고의 분석학에서는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만족을 논의한다.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쾌의 감정, 즉 숭고한 것에서

의 만족을 설명하기 위해 우선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

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칸트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6가지로 정리한다. (KU ,

B74-75 참조)

[1] 양자는 그것 자체만으로 만족을 준다.

[2] 양자는 감관판단이나 논리적․규정적 판단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판

단을 전제한다.

[3] 양자에서의 만족은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과 같이 감각에 의존하지도 않고,

좋은 것에 대한 만족과 같이 일정한 개념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4] 양자에서의 만족은 개념과 관련되어 있으나 그 개념은 무규정적이다.

[5] 양자에서의 만족은 순전한 현시나 현시의 능력과 연결되어 있고, 현시의 능

력 즉 상상력은 주어지는 직관의 경우에서 지성의 개념들의 능력과 일치하거

나 이 지성의 개념들을 촉진하는 것으로서의 이성의 개념들의 능력과 일치하

는 것으로 간주된다.

[6]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판단은 모두 단지 쾌의 감정을 주장할 뿐 대상에

대한 아무런 인식을 주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칭 판단으로서 모든 주

관에 대하여 보편타당함을 알려주는 판단이다.

여기서 칸트가 언급한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공통점을 정리하는 것은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지니는 기본 성격뿐만 아니라 향후 서술할 양자 간의 차이점을 더

욱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1]에서 칸트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이 어떠한 목적이나 의도도 전제하지 않는 무관심한 만족임을 드러내고 있다. [3]에

서 재차 확인할 수 있듯이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만족은 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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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에 대한 감각적 관심이나 좋은[선한] 것에 대한 도덕적 관심에서 자유로운 무

관심한 만족이다.

그리고 [2]에서 칸트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이 감관판단이나 논리

적․규정적 판단이 아닌 반성판단을 전제한다고 말하고 있다. 취미판단과 숭고판단,

즉 미감적 판단이 반성판단에 속한다는 사실은 규정적 판단력이 아닌 반성적 판단

력에 의해 지각된 합목적성을 통해 느껴진 만족이 보편적 타당성과 필연성을 지닐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칸트는 『판단력비판 제1서론』Ⅷ. ‘판정능

력의 미감학에 대하여’(KU , XX221-226참조)에서 규정적 판단과 미감적 판단을 구

분하고, 미감적 판단을 다시 미감적 감관판단과 미감적 반성판단으로 구분하여 서

로 비교한다. 모든 규정적 판단은 그 판단의 술어가 객관적 개념이기 때문에 논리

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어진 개별적 대상에 관한 단지 반성적인 판단

은 미감적 판단일 수가 있는데, 미감적 판단에서 그 판단의 술어는 결코 인식 즉

객관에 대한 개념일 수 없는 쾌․불쾌의 감정이다. 다시 말해 미감적 판단은 쾌․

불쾌의 감정에 의해 규정되는 판단이다. 그래서 판단의 규정근거가 객관에 대한 개

념이냐 쾌․불쾌의 감정이냐에 따라서 규정적 판단과 미감적 판단이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감적 판단은 결코 객관

적 개념에 근거한 인식판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칸트는 미감적 판단146)을 미감적 감관판단과 미감적 반성판단으로 구분하

여 설명하면서 쾌․불쾌의 감정을 규정근거로 가지면서도 보편적 타당성과 필연성

을 요구할 수 있는 판단은 미감적 반성판단 뿐임을 강조한다. 칸트에 따르면 미감

적 감관판단에서 쾌․불쾌의 감정은 대상의 경험적 직관에 의해 직접적으로 만들어

지는 감각이지만, 미감적 반성판단에서는 판단력의 두 인식능력들, 즉 상상력과 지

성의 조화로운 유희를 주관 안에 일으키는 감각이다.(KU , XX224) 미감적 감관판단

이 인식능력과는 전혀 관계하지 않는 반면 미감적 반성판단은 판단력의 특유한 원

리 위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확연히 구분될 수 있다. 여기서 판단력의 특유

한 원리는 판단력이 자연의 가능성을 위해 단지 주관적인 관점에서 자기 안에 갖는

선험적 원리로서 자연의 합목적성의 원리를 말한다. 그리고 이 때의 합목적성은 대

146) 여기서는 미감적 판단이 미감적 감관판단과 미감적 반성판단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

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미감적 판단이 미감적 반성판단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칸트가

“우리의 모든 판단들은 상위 인식능력의 순서에 따라 이론적 판단, 미감적 판단, 실천적 판단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이 때 미감적 판단이란 상위 인식능력인 판단력의 원리와 관계 맺고 있는 반성

판단들만을 의미한다”(KU, XX226)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미감적 판단을 미감적 반성판단

과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다. 따라서 다른 곳에서 사용되는 ‘미감적 판단’은 미적인

것에서의 판단과 숭고한 것에서의 판단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미감적 반성판단’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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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표상에 대한 순전한 반성에서 상상력과 지성의 조화로운 일치를 통해 단지 판

단력에 대해서만 주관적으로 지각된다. (KU , XX220-221참조) 따라서 미감적 반성

판단에서 판단의 규정근거는 주관적 합목적성147)으로서의 쾌․불쾌의 감정이지만,

동시에 이 감정은 상위의 인식능력으로서의 판단력과 그 원리라는 보편적 조건과

관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판단의 보편적 타당성과 필연성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있게

된다. [6]에서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판단이 쾌의 감정에 근거한 보편적 타당성

을 지닌다고 말하는 것은 미감적 판단의 이러한 성격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4]와 [5]에서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각각 지성 개

념 능력과 이성 개념 능력과 관련되지만 지성 개념이든 이성 개념이든 그 개념은

무규정적148)임을 말하고 있다. 칸트는 미감적 판단이 객관적인 개념에 의해 규정되

는 인식판단이 아님을 누누이 강조한다.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은 개념에 근거할

수 없고 오로지 쾌․불쾌의 감정과만 관련된다. 그런데 미감적 판단에서의 쾌감은

주관의 인식능력들의 자유로운 유희를 통해 주관적 합목적성을 의식하면서 느껴지

는 만족이다. 다시 말하면 주관의 인식능력들은 개념들의 도움 없이도 상호 촉진적

인 자유로운 유희 활동 속에서 주관적 합목적성을 의식하면서 만족을 느끼게 된다

는 것이다. 이렇게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이 공통적으로 주관의 인식능력들의 자

유로운 유희로부터 성립함을 밝히는 곳에서 칸트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147) 칸트는 미감적 판단력을 “형식적 합목적성- 그 밖에[보통은] 또한 주관적 합목적성이라고도 불

리는 바- 을 쾌 또는 불쾌의 감정에 의해서 판정하는 능력”(KU, BL)으로 보고 있으며 “주관의 인

식력들의 유희에서 순전히 형식적인 합목적성의 의식은, 대상이 주어지는 표상에 있어서, 쾌감 자

신이다”(KU, B36-37)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형식적 합목적성과 주관적 합목적성이 상

호 교환 가능한 개념임을 알 수 있지만 ‘보통은 주관적 합목적성이라고 불린다’는 칸트의 표현에서

주관적 합목적성이 형식적 합목적성보다 좀 더 포괄적인 개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칸트가 숭고의

분석학에서 자연의 미적인 것을 대상의 형식에 관련시키고, 자연의 숭고한 것을 무형식의 대상에

관련시키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형식적 합목적성은 취미판단에 대해서는 적합할 수 있으나 숭고판

단에 대해서는 부적합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취미판단과 숭고판단을 포괄하는 미감적 판단과 관

련해서는 주관적 합목적성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숭고의 분석학에서

숭고판단과 관련해서는 주관적 합목적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148) 김광명은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 공통된 ‘무규정적(unbestimmt)’이라는 말이 ‘열려 있음’과

‘자유’라는 인간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김광명,「칸트에 있어 미와 도덕성의 문제」,

한국칸트학회,『칸트연구』제2집, 1996, p.227) 이 때의 자유란 감각적 관심과 도덕적 관심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은 이러한 ‘자유’ 안에서 만족을 얻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미적인 것에

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공통적으로 인간이 ‘자유’를 의식하면서 느끼는 쾌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미와 숭고의 체험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의 의식을 통해 특수한 만족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 윤영돈이 “미적 체험의 의의는 자연적 필연과 도덕적 필연에 의해 강요되는 인간의 내면에

자유를 환기시켜 줌으로써 인간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다는 데 있다.”(윤영돈,「미적

도덕성의 스펙트럼과 도덕교육」, 한국윤리교육학회,『윤리교육연구』제19집, 2009, p.29)라고 말하는

것에서도 미적 체험이 ‘자유’라는 인간학적 의미와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자는

이러한 두 만족이 ‘자유’의 의식 속에서 느끼는 쾌의 감정, 즉 만족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행복을 이해하

는 데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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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에서의 만족을 구분짓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즉,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을 상상력

이 지성의 개념들의 능력과 일치되는 것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상상력이 지

성의 개념들을 촉진하는 것으로서의 이성의 개념들[이념들]의 능력과 일치되는 것

으로 설명한다. 물론 이 때 지성의 개념들이나 이성의 개념들[이념들]은 전혀 규정

되지 않는다.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이 개념들과 관련되지만 그 개념들은 무규정

적이라는 다소 모순적인 칸트의 표현은 이렇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149)

이로부터 우리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서술된 양자

의 공통점이 사실상 칸트가 ‘미의 분석학’에서 취미판단의 4가지 계기들에 따라 설

명한 취미판단에서의 만족의 성격을 다시 한 번 핵심적으로 요약 정리한 것임을 확

인할 수 있다. 칸트는 숭고한 것의 감정에 대한 연구도 취미판단의 분석에서처럼 4

가지 계기에 따라서, 즉 동일한 원리에 따라서 진행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갖는 공통된 성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

고 있다.

왜냐하면 미감적 반성적 판단력의 판단으로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도 미적인 것

에서의 만족과 마찬가지로 양의 면에서는 보편타당함을, 질의 면에서는 이해관심 없

음을, 관계의 면에서는 주관적 합목적성을, 그리고 양태의 면에서는 이 주관적 합목적

성이 필연적임을 표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KU , B79)

칸트가 ‘미의 분석학’에서 4가지 계기로부터 추론한 미에 대한 설명을 위에서 말

한 만족의 4가지 성격과 연결하여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49) 하지만 칸트에 있어 미감적 판단은 자연 안에 있는 특수한 것으로부터 보편적인 것을 발견해야

하는 반성적 판단력에 기초하고 있고, 이러한 반성적 판단력은 자기 자율의 능력을 발휘하여 객관

에 대한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연의 합목적성이라는 하나의 특수한 선험적 개념에 도달할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표면적인 모순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모순은 자연의

합목적성 개념 자체가 초월적 개념으로서 자연개념도 아니고 자유개념도 아니기 때문에(KU,

BXXXIV)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의 합목적성 개념은 자연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지성 개념에

의해 규정될 수 없고, 자유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이성 이념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무규정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반성적 판단력은 무한히 다양한 경험적 자연법칙들

의 통일성을 통찰하기 위해 자연의 합목적성 개념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칸트가 이렇게 모순

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자연의 합목적성 개념을 말하려는 것은 근원적으로 인간이 지성에 의

해 규정적으로 이해된 자연개념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경험적 자

연법칙들을 경험 전체의 통일성을 위해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인간의 요구가 판단력으로 하여

금 자연의 합목적성의 원리를 전제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판단력은 자연을 반성하기

위해 합목적성이라는 선험적 원리를 자기 자율(Heautomonie)로서 스스로에게 하나의 법칙으로 지

정한다.(KU, BXXXVII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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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6> 취미판단의 4가지 계기들에 따른 만족의 성격

여기서 살펴볼 수 있듯이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무관심성’, ‘주관

적 보편성’, ‘주관적 합목적성’, ‘주관적 합목적성의 필연성’이라는 공통적 성격을 지

니게 된다. 그리고 이 4가지 만족의 성격을 공유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미적인 것

에서의 판단과 숭고한 것에서의 판단이 모두 일체의 관심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반

성적 판단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미감적 반성판단’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공통점을 요약하여 서술한 후 곧바로 양자간

의 현저한 차이점에 대해 설명한다. 첫 번째 차이점은 대상 형식의 표상 가능성 여

부와 관련되는데,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연의 미적인 것은 대상의 형식에 관련이 있고, 대상의 형식은 한정에서 성립한

다. 그에 반해 숭고한 것은, 무한정성이 대상에서 또는 그 대상을 유인동기로 해서 표

상되고 또한 무한정성의 전체가 덧붙여 생각되는 한에서는 무형식의 대상에서도 볼

수 있다.(KU , B75)

미적인 것은 대상의 형식에 관련이 있어 한정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지만, 숭고한

취미판단의 4계기들계기로부터 추론되는

미의 설명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의 성격

취미판단의 제1계기: 질

취미는 대상 또는 표상방식

을 일체의 관심 없이 만족이

나 불만족에 의해 판정하는

능력이다. 그러한 만족의 대

상을 아름답다고 일컫는

다.(KU, B16)

무관심성

취미판단의 제2계기: 양

개념 없이 보편적으로 만족

을 주는 것은 아름답다.(KU,

B32)

주관적 보편(타당)성

취미판단의 제3계기: 관계

미는, 합목적성이 목적의 표

상 없이도 대상에서 지각되

는 한에서, 대상의 합목적성

의 형식이다.(KU, B61)

주관적 합목적성

취미판단의 제4계기: 양태

개념 없이 필연적인 만족의

대상으로서 인식되는 것은

아름답다.(KU, B68)

주관적 합목적성의 필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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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무한정성이 드러날 수 있다면 무형식의 대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칸트는

미적인 것을 한정에서 성립하는 대상의 형식과 연결시키고, 숭고한 것은 무한정성

을 드러내는 무형식의 대상과 연결시킴으로서 양자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숭고한 것은 ‘무형식의 대상에서도’ 볼 수 있다는 칸트의 표현을

숭고한 것은 형식을 지닌 대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면 ‘대상의 형식’의 유무가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숭고한 것의 고유한 영역이

무한정성을 표상할 수 있게 하는 무형식의 대상과 관련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

다.150) 칸트는 이러한 차이점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미적인 것은 무규정적인 지성개념의 현시이지만, 숭고한 것은 무규정적인 이성개

념의 현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만족이 미적인 것에서는 질의 표상과 결

합되어 있지만, 숭고한 것에서는 양의 표상과 결합되어 있다.(KU , B75)

이렇게 칸트는 대상의 형식과 관련된 미적인 것을 상상력과 지성개념의 조화에

연결시키고, 무형식의 대상과 관련된 숭고한 것을 상상력과 이성개념의 조화에 연

결시키면서 양자를 구분하고 있다.151) 칸트는『순수이성비판』에서 “지성개념들이

모든 경험의 지성적 형식을 형성하며, 지성개념들의 적용은 항상 경험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반면, 이성개념은 그 명칭부터가 이미 당장, 경험 내에 자기를 제한하

고 싶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KrV, B367)고 말하며 지성개념과 이성개념을 구분

한다. 이는 지성개념이 경험에 제한될 수밖에 없는 반면, 이성개념은 경험에 제한되

지 않고 경험 너머의 ‘무한정한 것(무조건적인 것)’과 관련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한 이성개념은 이념과 연결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152) 숭고한 것은 무형식의 대상

150) 오병남은 칸트가 숭고한 것은 무형식의 대상에서‘도’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을 근거로 숭고한 것

이 형식을 지닌 대상에서도 경험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 보인다고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

칸트는 숭고의 경험을 몰형식적인 대상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오병남

은 칸트가 숭고를 다루는 모든 곳에서 숭고에 대한 순수한 판단의 대상으로서 예술(schöne

Kunst)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데서 이를 실증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칸트에게 있어서 예술대

상의 형식은 목적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오병남,「칸트의 미학

이론에 있어서 숭고의 개념」,『대한민국학술원 논문집』제47집 제1호, 2008, pp.36-37/ 용어 사

용의 일관성을 위해 일부 용어를 바꾸어 인용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강조점은 ‘형식이냐 무

형식이냐’보다 ‘한정성이냐 무한정성이냐’에 있다고 판단된다. 형식을 지닌 대상이든 무형식의 대상

이든 그 대상을 통해 무한정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칸트가 ‘숭고의

분석학’에서 숭고한 것을 미적인 것과 대비하면서 무형식성과 무한정성과 관련하여 서술하고 있음

은 분명하지만, 형식을 지닌 대상으로부터 무한정성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 않

고 있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51) 칸트는 지성과 이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지성은 규칙들에 의거해 현상들을 통일하는

능력이고, 이성은 원리들 아래에서 지성규칙들을 통일하는 능력이다.”(KrV, B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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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통해 드러나는 초감성적 이념의 현시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칸트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그 방식[종류]

에서 차이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적인 것은 직접적으로 생명을 촉진하는 감정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매력이나

유희하는 상상력과 합일할 수 있지만, 숭고의 감정은 단지 간접적으로만 생기는 쾌

(감)이다. 곧 이 쾌(감)는 생명력들이 일순간 저지되어 있다가 곧장 뒤이어 한층 더

강화되어 범람하는 감정에 의해 산출되는 것으로, 그러니까 감동153)으로서, 상상력의

활동에서 유희가 아니라 엄숙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것은 또한 매력과는 합일할

수 없다.(KU , B75)

칸트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달리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즉 숭고의 감정은

생명력들이 일순간 저지되는 불쾌감을 거친 후 곧바로 한층 더 강화된 감정에 의해

산출되는 쾌감이기 때문에 단지 ‘간접적으로만’ 생기는 쾌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간접적 쾌감’이라 하고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을 ‘직접적

쾌감’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 결정적 구분 기준은 ‘불쾌감에서 쾌감으로의 이행 여

부’라고 할 수 있다.154) 칸트는 이렇게 마음은 대상에 끌려갈 뿐만 아니라 거꾸로

언제나 다시 거부되기도 하기 때문에,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적극적인 쾌가 아니

라 경탄 내지는 존경을 함유하는 소극적인 쾌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155)(KU ,

152) “우리는 지성개념을 범주라고 불렀듯이, 순수 이성의 개념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어, 그것

들을 초월적 이념들이라고 부른다.”(KrV, B368) “나는 ‘이념’이라는 말로 그것에 합치하는 아무런

대상도 감관에 주어질 수 없는 필연적인 이성개념을 뜻한다.”(KrV, B383)

153) 칸트는 여기서 숭고한 것에서의 쾌감을 감동(Rührung)이라는 감정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것

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미의 분석학’ §14에서 설명했던 것이다. 칸트는 숭고한 것과 감동의

감정을 결합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감동이란 생명력이 단지 순간적으로 저지되었다

가 곧 이어 더욱 강하게 흘러넘침으로써 쾌적함이 일어나는 감각인바, 전혀 미에 속하는 것이 아

니다.”(KU, B43)

154) 한자경은 ‘직접적 쾌감’과 ‘간접적 쾌감’의 구분을 ‘단선적 쾌감’과 ‘복선적 쾌감’으로 재해석하면

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취미판단 중 아름다움의 판단은 구상력[상상력]과 오성[지성]의 자유

로운 유동적 합치에서 발생하는 조화의 느낌인 단선적 쾌감으로 성립한다. 그러나 숭고의 판단에

서는 이러한 조화의 느낌에 앞서 일단 부조화의 느낌이 선행하게 된다. 즉 숭고의 느낌은 부조화

에서 조화에로의 이행의 느낌, 형식적 합치가 파괴되는 몰형식을 거친 고양된 느낌이라는 점에서

복선적 쾌감이다.”(한자경,『칸트 철학에의 초대』(경기: 서광사, 2006), p.184/[상상력]과 [지성]은 용

어의 일관성을 위해 연구자가 삽입함)

155) 오병남은 이 인용문을 근거로 칸트가 자신의 숭고론을 애매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오병

남(2008), 앞의 논문, pp.38-39) 오병남은 칸트가 앞에서 분명히 숭고한 것에 대한 경험이 구분되

는 두 단계, 즉 부정적 단계와 긍정적 단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이 인용문에서

는 숭고의 경험이 대상에 대한 인력과 반발이 교대하고 있는 것이듯 보다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 말한다. 오병남이 이 인용문의 내용을 모순적인 애매한 것으로 이해한 까닭은 칸트가 앞에서

숭고한 것에 대한 경험을 불쾌감이라는 부정적 단계를 거쳐 쾌감이라는 긍정적 단계로 이행한다고

설명한 것을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칸트가 숭고의 감정에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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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75-76)

셋째로 칸트는 숭고한 것과 미적인 것의 가장 중요한 내적인 차이를 ‘자연의 형

식적 합목적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연미(자립적인 미)는 그 형식에서 합목적성을 지니고 있고, 그로 인해 대상이 우

리의 판단력에 대해 말하자면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며, 그래서 그 자체로 만족

의 대상을 이루는 데 반하여, 이성논변 없이 한낱 포착에서 우리 안에 숭고한 것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형식의 면에서는 우리 판단력에 대해서 반목적적이고, 우

리의 현시능력에는 부적합하며, 상상력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폭력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숭고한 것으로 판단된다.(KU , B76)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대상의 형식에서 상상력과 지성의

조화로운 일치를 통해 발견된 합목적성에 근거한 쾌의 감정이다. 자연의 미적인 것

은 형식적 합목적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만족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이다. 앞서 칸트가 미적인 것이 생명을 촉진하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숭고한 것은 그 형식에 있

어서는 판단력에 대해서 반목적적이고 상상력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숭고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이것은 곧 숭

고한 것에서 상상력과 지성은 그 조화로운 일치를 통해 형식적 합목적성을 발견해

낼 수 없으며, 상상력은 숭고한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해 낼 수 없음에 불쾌감

을 느끼면서도, 그 대상은 마음에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앞

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간접적 쾌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대상 자체는

직접적으로는 판단력에 대해 형식적으로 반목적적이어서 불쾌감을 주지만, 그 대상

이 우리 마음속에서 만날 수 있는 숭고함을 현시해 줌으로써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원래 숭고한 것은 어떤 감성적 형

식에도 함유되어 있을 수 없고, 오직 이성의 이념들과만 관련이 있기 때문이

다.(KU, B77) 결국 숭고한 것은 자연의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자연의 대상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불러일으켜지는 숭고함, 즉 초감성적인 이성 이념인 것이다.156)

조한 것은 불쾌감을 거쳐 한층 강화되고 고양된 감정으로서의 쾌감이지, 반드시 불쾌감의 단계를

거쳐 쾌감의 단계로 이행해야한다는 고정적이고 기계적인 과정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쾌감과

불쾌감이 혼란스럽게 교차하더라도 최종적으로 불쾌감을 한층 강화되고 고양된 감정으로서의 쾌감

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포함될 수 있다면 그것은 칸트가 말한 숭고의 감정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

다.

156)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우리가 자연의 많은 대상들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옳을

수 있지만, 여느 자연 대상을 숭고하다고 부른다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지 않

다.”(KU, B76)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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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숭고한 것이 이성 이념과 관련된다는 사실로부터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왜 불쾌감으로부터 쾌감으로 이행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성

이념에 적합한 현시는 가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적합성이 감성적으로 현시

되면서 불쾌감을 느끼게 되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부적합성을 통해 이성 이념이 환

기되고 마음속으로 불러들여지면서 쾌감, 즉 숭고의 감정으로 이행되기 때문이

다.(KU , B77 참조)

넷째로 칸트는 자연의 미적인 것[자연미]과 자연의 숭고한 것이 갖는 역할에서의

차이점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연미는 자연의 객관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현실적으로 확장하지는 않지만, 그

럼에도 한낱 기계성이라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기예[예술]로서의 자연개념으

로 확장하고, 이것은 우리를 그러한 [자연]형식의 가능성에 관한 깊은 연구로 초대한

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에서 숭고하다고 부르곤 하는 것 속에는 특수한 객관적 원리

들과 이 원리들에 맞는 자연의 형식에 이르는 것이 전혀 없으므로, 자연은 무질서와

황폐에서, 오로지 크기와 위력만이 출현하다면 숭고한 것의 이념들을 가장 많이 일으

키는 것이다.(KU , B77-78)

칸트는 자연의 미적인 것[자연미]이 우리에게 자연의 기술[기교]을 드러내 보여

줌으로써 현상들을 단지 무목적적인 기계성으로서의 자연에 속하는 것으로만이 아

니라, 합목적성의 원리에 따라 예술과의 유비에 속하는 것으로서 판정하게 해 준다

고 말한다.(KU , B77 참조) 이것은 자연의 미적인 것이 대상의 형식과 관련한 형식

적 합목적성을 지니고 있으며, 미적인 것에서의 쾌감은 바로 이 형식적 합목적성과

의 만남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칸트의 기본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반면 자연의

숭고한 것은 미적인 것과는 달리 자연 대상의 형식에서 마주쳐질 수 없으며 단지

혼돈, 무질서, 황폐와 같은 무형식적인 것들에서의 크기와 위력을 통해 숭고한 것의

이념을 드러내는 데서 고유한 사명을 갖게 된다. 그래서 숭고한 것의 개념은 자연

자신 안의 합목적성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전적으로 독립적인 합목적

성을 우리 안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단지 자연에 대한 직관들의 가능한 사

용에서만 합목적적인 것을 지시한다.(KU , B78) 결국 숭고한 것에 의해서는 자연 안

의 어떠한 특수한 형식도 표상되지 않고, 단지 상상력의 자연의 표상에 대한 합목

적적 사용만이 전개될 뿐인 것이다.157)(KU , B78)

157)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의 합목적적 사용은 미적인 것과 관련된 주관적-형식적 합목적성이 아니

라 숭고한 것과 관련된 주관적 합목적성을 의미한다. 상상력은 그것의 최대한의 노력에도 포착 불

가능한 무형식적 대상과의 만남에서 반목적적 불쾌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이러한 반목적적 불쾌감

은 상상력이 이성 이념과 관계하여 우리의 마음속에서 숭고한 이념을 환기시키는 가운데 판단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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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러한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 칸트가 강조하는 것은 그처럼 숭고한

것, 무한정한 것은 객관적 사물 자체가 아니라 이성의 이념이라는 것이다.158) 미적

인 것에서의 만족이 자연 자체가 지닌 형식적 합목적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숭

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인간 내면의 이성 이념과 관련된 주관적 합목적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애초에 칸트가 미적인 것을 대상의 형식과 관

련된 한정적인 것과 연결시키고, 숭고한 것을 대상의 무형식성과 관련된 무한정한

것과 연결시킨 데서 자연스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칸트는 ‘매우 긴요한 예

비적 주의’라는 표현과 함께 숭고한 것의 이러한 성격을 미적인 것과 비교하며 다

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자연의 미적인 것을 위해서는 우리 밖에서 하나의 근거를 찾아야 하지만,

숭고한 것을 위해서는 한낱 우리 안에서, 그리고 자연의 표상에 숭고성을 집어넣는

사유방식[성정] 안에서 하나의 근거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KU , B78)

그런데 여기서 칸트가 이 ‘매우 긴요한 예비적 주의’가 숭고한 것의 이념들을 자

연의 합목적성의 이념과 전적으로 분리시키고, 숭고한 것에 대한 이론을 자연의 합

목적성에 대한 미감적 판정의 한낱 부록으로 만든다(KU , B78)고 말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칸트는 숭고한 것의 고유한 영역을 형성하는 근거를 인간 내

면의 이성 이념에서 찾는다. 그래서 자연의 대상을 경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숭고

의 감정을 느끼게 되더라도 그러한 감정의 근거는 자연의 대상이 아니라 그에 의해

환기된 이성 이념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적인 것이 자연의 합목적성에

대한 반성을 통해 자연의 다양한 형식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연구로 나아가게 하는

반면, 숭고한 것은 단지 인간 내면의 이성 이념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할 뿐인 것이

다. 칸트가 “자연의 숭고한 것의 개념은 자연의 미적인 것의 개념에 비해 훨씬 중

요하지 않으며, 그 귀결들도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KU , B78)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이 공통적으로 반성적 판단

력에 바탕을 둔 미감적 반성판단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은 자연의 대상을 전적으로 도외시한 채 인간 내면의 이성 이념에 규정되는 규

정적 판단이 아니라, 자연의 대상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이성 이념과 만나게 되는 반

성적 판단인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대상을 반성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볼 때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은 미감적 판단이라는 공통의 영역에 속한다고

주관적 합목적성을 지각하여 결국 쾌감을 느끼게 된다.

158) 한자경,『칸트 철학에의 초대』(경기: 서광사, 2006),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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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숭고한 것은 반성적 판단력을 통해 자연의 합목적성을 발견

해가는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 경험이 축적되면서 만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숭고한 것에 대한 이론이 자연의 합목적성에 대한 미감적 판

정의 한낱 부록”이라는 칸트의 표현은 숭고한 것에 대한 이론이 미적인 것에 대한

이론보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숭고한 것

에 대한 판정 능력이 미적인 것의 판정능력으로부터 이행되는 것임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159) 그렇지만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이 공통

적으로 미감적 반성판단이며,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으로부터 숭고한 것에 대한 판

단으로 이행한다는 사실이 미적인 것과 구분되는 숭고한 것의 고유한 성격이 가진

중요성을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칸트가 설명하는 숭고한 것과 숭고

한 것에서의 만족에 대해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2)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소극적 만족

앞의 논의를 바탕으로 미적인 것과 구분되는 숭고한 것과 관련한 고유한 특성을

크게 3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숭고한 것은 무한정성을 표상하는 무형식의

대상과 관련된다. 둘째,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불쾌감을 거쳐 쾌감으로 이행하는

간접적․소극적 쾌감이다. 셋째, 숭고한 것은 인간 내면의 초감성적인 이성 이념과

관련된다. 칸트는 ‘숭고의 분석학’에서 숭고한 것의 3가지 특성과 관련하여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는데, 이는 결국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즉 쾌의 감정이 ‘무엇을 통

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겨나게 되며, 결국 ‘어떠한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지’를

해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60) 칸트는 숭고한 것의 분석을 위해 숭고를 수학적

159) 박지용은 자연의 합목적성과 관련해서 숭고가 부록의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칸트의 주장

이 숭고가 부록이라는 데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숭고가 자연의 합목적성이 아닌 반목적적이

고 몰형식적인 성격과 관련된다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박지용,「칸트의 숭고에 대하여-

미판단과 숭고판단의 연속성을 중심으로」, 한국철학사상연구회,『시대와 철학』제20권 2호,

2009, p.164) 합당하게 수용할 수 있는 견해이지만 연구자는 이와 더불어 하나의 의미를 추가하고

자 한다. 우리는『판단력비판』제2권 숭고의 분석학 §23의 제목이 바로 “미적인 것의 판정능력으

로부터 숭고한 것의 판정능력으로의 이행”(KU, B74)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3에서 칸

트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미적인 것과의 비교를 통해 숭고한 것의 고유한

특징을 설명해 나간다. 하지만 연구자는 칸트가 이를 통해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이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의 고유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판단

이 미감적 반성판단이라는 공통지반 위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

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160) 이러한 이해는 크로포드(Crawford)가 숭고에 대한 분석에서 칸트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 세 가지 주요 질문의 내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 세 가지 주요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어

떤 자연 대상이나 현상이 숭고라는 경험을 초래하는가? (2)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3) 숭

고의 경험을 구성하는 마음의 상태는 정확히 무엇인가?(김문환 옮김(D. W. Crawford),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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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161) 따라서 여기서는 칸트

의 구분 순서에 따라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를 살펴보면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해 보기로 한다.

칸트는 수학적 숭고를 크기(Größe)와 관련하여 설명한다.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

은 ‘단적으로 큰 것’(KU , B80)이고, ‘일체의 비교를 넘어서 큰 것’(KU , B80)이며,

‘그것과 비교하면 다른 모든 것이 작은 것’(KU , B84)이다. 숭고한 것은 절대적으로

큰 것으로서 그것의 크기를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는 척도를 발견할 수 없는 무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사물들의 크기는 우리가 상정하는 척

도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고, 제아무리 크다고 판정되는 사물일지라도 우리는

그 보다 더 큰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숭고한 것을 자연의 사물에

서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숭고한 것은 단적으로 큰 것으로서 순전히

자기 자신과만 동일한 크기일 수밖에 없고(KU , B84), 그렇기 때문에 숭고한 것에

적합한 척도는 숭고한 것 자체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로부터 칸트는 숭고한 것은

자연의 사물들 속에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의 이념들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결론 내

린다.(KU , B84) 그래서 감관의 대상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숭고하다고 불릴 수

없으며(KU , B84-85), 진정한 숭고함은 오직 판단하는 자의 마음에서 찾아야 한

다.(KU , B95) 이처럼 비록 숭고한 것을 자연의 객관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념들과 관련되는 숭고한 정신 상태가 반성적 판단력을 활동시키는 자연의 객관들

로부터 야기된 것임은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크기의 측면에서 무한정성의

이념을 수반하여 우리의 마음에 숭고의 감정을 촉발하는 자연의 사물들도 수학적으

로 숭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162)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는 자연의 절대적 전체

p.201)

161) 칸트는 숭고한 것을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구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고 다만 구분의 기준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KU, B80) 칸트에 따르

면 숭고한 것의 감정은 대상의 판정과 결합되어 있는 마음의 동요를 그 특성으로 지니는데, 이 마

음의 동요는 상상력에 의해 인식능력 또는 욕구능력과 관계 맺는다. 칸트는 숭고의 감정을 상상력

과 이성의 조화로운 일치에서 주관적 합목적성을 의식하면서 느끼는 만족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

에 여기서의 인식능력은 이론이성으로 욕구능력은 실천이성으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수학적

숭고에서는 상상력이 인식능력, 즉 이론이성과 관계하면서 주관적 합목적성이 판정되고, 역학적 숭

고에서는 상상력이 욕구능력, 즉 실천이성과 관계하면서 주관적 합목적성이 판정된다. 이론이성이

규제적 방식으로 초월적 이념의 존재를 드러내고, 실천이성이 도덕적 실천의 관점에서 초월적 이

념과 관계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수학적 숭고는 초감성적 이념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는 감정과,

역학적 숭고는 초감성적 이념의 도덕적 실천을 유인하는 감정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수학적 숭고보다 역학적 숭고에서 숭고의 감정을 도덕 감정과 유사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칸트가 수학적 숭

고와 역학적 숭고의 구분을 강조하고 있다기 보다『판단력비판』의 핵심과제인 ‘자연과 자유의 통

일’의 관점에서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의 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수학적 숭고이

든 역학적 숭고이든 모두 다 상상력과 초감성적 이성 이념의 조화로운 일치로부터 느껴지는 쾌감

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공통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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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의 무한정성이 드러날 수 있는 크기가 표상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수학적

으로 숭고한 것은 수 개념에 의한 크기 평가가 무한히 진행될 수 있는 수학적 크기

평가에 의해서 판정될 수 없고, 순전한 직관을 통해 자연의 절대적 전체의 크기를

파악할 수 있는 미감적 크기 평가에 의해서만 판정될 수 있다.163)

그런데 칸트는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으로 표상되는 대상은 크기의 평가에 있어

서 판단력에 대해 부적합하고 또한 주관적으로 합목적적이지 않음을 알게 해준다

(KU , B88)고 말한다. 칸트에 따르면 숭고한 것은 인간의 목적이 그 형식과 크기를

결정하는 기술의 산물들이나 그 개념상 이미 일정한 목적을 수반하고 있는 자연 산

물에서 찾을 수 없고, 단지 크기를 가지고 있을 뿐인 천연적인 자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자연의 대상이 숭고한 것으로 판정될 수 있으려면

자연의 대상이 그것의 크기로 인해 그 대상의 개념을 이루고 있는 목적을 파기하는

괴대한 것(KU , B89)의 표상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괴대한 것’

은 어떠한 목적이나 형식과 무관한 단지 크기만을 지닌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의 판

단력에 대해 합목적적으로 판정되기보다 반목적적[비합목적적]으로 판정될 가능성

이 큰 것이다. 그렇지만 숭고한 것이 미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만족을 주는 것이라

면 숭고한 것이라고 판정되는 대상의 표상에서도 주관적 합목적성이 발견되어야만

한다. 다만 숭고한 것은 무형식적인 괴대한 대상과 관련되기 때문에 이 때의 주관

적 합목적성은 미적인 것에서처럼 형식적 합목적성일 수 없다. 그래서 칸트는 수학

적으로 숭고한 것에 대한 크기의 평가에서 보편타당한 만족의 근거를 부여하는 주

162) 하지만 숭고한 것은 오직 이성의 이념들과만 관련이 있다(KU, B77)는 칸트의 견해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무한정성을 표상하게 해 주는 자연의 사물들도 우리의 마음 안에서 이성

의 이념들과 관련된 숭고의 감정을 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숭고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칸트는 ‘본래적으로(eigentlich)’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자연의 숭고한 것은 단지 비본래적으로만 그렇게 불리는 것이며, [숭고한 것이란]

본래적으로는 한갓 인간의 자연본성에서의 사유방식[성향]에만 또는 차라리 이 사유방식[성향]의

토대에만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KU, B132) 박지용은 “비본래적인 숭고한 자연대상과 본래

적인 이념의 숭고성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숭고가 순수한 미학적 판

단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몰형식적 자연 대상이 비본래적이라고 하더라

도 본래적인 숭고한 사유방식을 작동시키기 위한 감각적 조건으로서 필수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박지용(2009), 앞의 논문, p.167) 결국 숭고한 것은 본래적으로는 인간 이성의 이념이고,

비본래적으로는 그러한 이념과의 만남을 촉발하는 자연의 사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163) 칸트는 수학적 크기 평가와 미감적 크기 평가를 다음과 같이 비교하여 설명한다. “수학적 크기

의 평가에서 최대의 것이란 없다. (수의 위력은 무한히 나아가니 말이다.) 그러나 미감적인 크기

평가에는 물론 최대의 것이 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나는, 만약 그것이 그것을 넘어가는 어떤

보다 더 큰 것도 주관적으로 (판정하는 주관에 대해) 가능하지 않은 절대적인 척도로서 판정된다

면, 그것은 숭고한 것의 이념을 수반하고, 수들에 의한 어떤 수학적인 크기 평가도(거기에 저 미감

적 기본척도가 상상력에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지 않은 한) 일으킬 수 없는 감동을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후자(수학적 평가)는 언제나 단지 동종류의 다른 것과의 비교에 의한 상대적 크

기만을 현시하지만, 전자(미감적 평가)는 마음이 그 크기를 직관에서 파악할 수 있는 한 단적으로

현시하기 때문이다.(KU, B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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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적 합목적성은 어떠한 것인지를 스스로 묻고 설명하고자 한다.(KU , B90) 칸트는

상상력과 이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 가는데 이를 통해 수학적으로 숭

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어떤 과정을 거쳐 느껴지게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칸트는『판단력비판』에서 상상력을 직관의 능력(KU , BXLIV; B146; B155)이자

현시의 능력(KU , B55; B74)으로 정의한다. 모든 직관은 감성적이며, 현시란 어떤

개념에 대하여 이에 상응하는 직관 표상을 산출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164) 상상력

은 기본적으로 감성적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165) 현시의 능력인 상상력은 포

착과 총괄 작용을 통해 지성개념들에 상응하는 직관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크기

의 평가에 있어서도 상상력은 지성의 수 개념들에 상응하는 직관을 감성적으로 현

시하기 위해 포착과 총괄을 무한히 진행해 나간다. 그런데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은

비교의 대상이 없는 단적으로 큰 것으로서 무한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상

상력은 여기서 지성의 수 개념들에 상응하는 직관을 제공하기 위한 총괄 능력을 더

이상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상상력은 무한한 것을 점진적으로 포착해 나가면서 그

것의 전체를 하나의 직관으로 총괄해 보려고 노력해보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을 깨닫고 자신의 한계를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현시의 능력으로서의 상상력의 자

기 한계의식은 무한한 것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게 되고 이것이 결국에는 우리 안의

이성 이념과 맞닿아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다시 말해 무한한 것에서 표상되는 이

성의 이념을 감성적으로 현시할 수 없다는 상상력의 자기 한계의식은 우리의 마음

속에 무한한 이념을 드러내는 초감성적인 이성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한다.

상상력은 무한한 이념을 현시하라는 이성의 요구에 부적합하다는 데서는 자기 한계

를 드러내지만 이와 동시에 상상력은 이 부적합성을 감성적으로 현시함으로써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이성 이념을 환기하고 자각하게 한다. 이성의 이념은 그에 적합한

감성적 현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상력이 이념의 현시라는 이성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한계의식을 갖는 것은 이성의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합목적적인 것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상상력은 이성의 이념과 조화로운 일치를 이루어내게 되는 것이

다.

164) 박배형,「“부정적 현시”로서의 숭고-칸트의 숭고론에 대한 고찰」, 한국미학회,『미학』제57집,

2009, p.39.

165) 칸트는 상상력이 지성개념들에 상응하는 직관을 제공할 수 있는 주관적 조건이라는 점에서 감

성에 속한다고 말하면서도 범주들에 따라서 직관을 종합하는 것은 상상력의 초월적 종합으로서 감

성에 대한 지성의 작용임을 아울러 인정하고 있다. 또한 칸트는 상상력을 자발성의 측면에서 생산

적 상상력과 재생적 상상력으로 구별하면서 상상력이 경험적 연합 법칙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KrV B151-152) 이를 두고 백종현은 “상상력이라는 것이 감성과 지성과는 다른

제3의 심성 기능인지, 아니면 저 둘의 매개 기능인지, 아니면 ‘상상력’이라 통칭은 되지만, 실상은

여러 기능들인지”에 대한 논란의 소재가 된다고 본다.(I.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백종현

옮김,『순수이성비판』(서울: 아카넷, 2006), p.360 각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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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볼 때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두 가지 감정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감정의 흐름은 상상력이 자신의 최대의 노력

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이념을 현시하라는 이성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자기 한

계에 대한 자각에서 느끼는 불쾌감이고, 두 번째 감정의 흐름은 상상력이 무한한

이념을 감성적으로 현시하라는 이성의 요구를 따를 수 없다는 한계의식을 통해 우

리 안에 초감성적 이성 능력이 있음을 자각하는 데서 느끼는 쾌감이다. 앞서 칸트

가 수학적으로 숭고한 대상의 표상이 크기의 평가에 있어서 판단력에 대해 부적합

하며 주관적으로 합목적적이지 않음을 알게 해 준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첫 번째

감정의 흐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상상력은 수학적으로 숭고한

대상으로부터 표상되는 무한정의 이념을 현시하라는 이성의 요구에 부적합함을 느

끼면서 자신의 한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주관적 합목적성을 발견하지

못한 채 불쾌감에 빠져있게 된다. 하지만 상상력은 이내 자신의 한계의식 속에서

우리의 마음에 초감성적 이성 능력이 있음을 의식하게 되고, 이념을 감성적으로 현

시할 수 없다는 것은 이성의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합목적적일 수 있음을 자각하면

서 쾌감이 발생하게 된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즉 숭고의 감정이 포함하는 두 가

지 감정의 흐름을 칸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숭고한 것의 감정은 미감적인 크기 평가에서 상상력이 이성에 의한 평가에 부적합

함에서 오는 불쾌의 감정이며, 또한 그때 동시에, 이성이념들을 향한 노력이 우리에

대해서 법칙인 한에서, 최대의 감성적 능력이 부적합하다는 바로 이 판단이 이성이념

들과 합치하는 데서 일깨워지는 쾌감이다.(KU , B97)

상상력은 자신의 최대한의 노력에도 이성의 이념을 감성적으로 현시할 수 없다

는 자신의 한계의식 속에서 불쾌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 이 불쾌감을 통해 이성의

이념이 얼마나 무한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이성의 이념에 적합하기 위한 노력

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으려는 감정이 일으켜진다. 그리고 상상력이 자신의 한계의

식을 통해 이념에 일치하려는 초감성적인 사명의 감정을 우리 안에 환기하는 것은

이성의 관점에서는 합목적적인 것이며 따라서 쾌감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이성의 크기 평가에 모든 감성적 척도는 부적합하다는 내적 지각은 이성

의 법칙들과의 합치이고, 또 우리의 초감성적 사명의 감정을 우리 안에 환기하는 불

쾌감이되, 이 사명에서 보면 감성의 어떠한 척도도 이성의 이념들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발견함은 합목적적이고, 그러니까 쾌감이다.(KU , B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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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도 무한한 이념을 현시하는 것이 불

가능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비합목적적인[반합목적적인] 것으로 의식되

어 불쾌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반면에 이러한 상상력의 한계의식을 통해

비로소 우리 안의 초감성적 이성 이념이 자각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특히 우

리의 이성에게는 주관적으로 합목적적인 것으로 의식되어 쾌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주관적 합목적성은 상상력과 이성의

상충에 의해서(KU , B99), 다시 말하면 미감적인 크기 평가에서 상상력이 무한한 것

을 감성적으로 현시할 수 없다는 자신의 한계를 의식하며 느끼는 불쾌감에 의해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우리는 상상력이 자기 능력의 한계를 강

하게 의식하면 할수록 우리 안의 이성 이념의 크기가 더욱 강하게 환기된다는 사실

을 알 수 있다. 즉 상상력의 좌절을 통해 우리는 이성의 이념의 절대적 크기를 확

인할 수 있으며, 우리 안에 감성의 모든 척도를 넘어서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것

을 자각하게 된다.166) 칸트는 숭고의 감정의 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숭고한 것의 감정의 질은, 그 감정167)이 어떤 대상에 대한 미감적 판정능력에 관

한 불쾌의 감정인데, 거기에서 그 불쾌는 그럼에도 동시에 합목적적인 것으로 표상된

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그 자신의 무능력이 같은 주관의 무제한적인 능력의 의식을

드러내고, 마음은 그 무제한적인 능력을 오직 그 자신의 무능력에 의해서만 미감적으

로 판정할 수 있음으로써 가능하다.(KU , B100)

무한한 크기를 현시할 수 없다는 상상력의 무능력을 의식함에서 느껴지는 불쾌

감은 우리 안에 이념의 능력인 이성의 무제한적인 능력이 있음을 자각하게 하면서

쾌감으로 전환된다. 이런 의미에서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감적 크

기 평가에서의 불쾌감을 매개로 해서만 가능한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상력의

최대한의 능력이 이성의 이념에 적합하지 않다는 데서 느껴지는 불쾌감이 오히려

우리 안에 감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감성적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계기가

되어 쾌감으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상력의 좌절로부터 야기된 불쾌감

이 크면 클수록, 즉 이념을 현시하기에 상상력이 불충분하면 불충분할수록, 그만큼

166) 최소인,「숭고와 부정성」, 새한철학회,『철학논총』제58집, 2009, p.416.

167) 백종현은 ‘질’로 번역하고 각주에서 “‘감정’으로 고쳐 읽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I.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백종현 옮김,『판단력비판』(서울: 아카넷, 2014), p.268)고 덧붙이고 있으

며, 이석윤은 ‘감정’으로 번역하고 각주에서 “‘그 성질이’라고 읽어야 할 것을 Vorländer는 ‘그 감

정이’라고 고쳐 읽는 편이 좋겠다고 한다”(I.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이석윤 옮김,『판단력비

판』(서울: 박영사, 2005), p.126)고 덧붙이고 있다. 백종현과 이석윤의 견해를 바탕으로 문맥을

고려해 보았을 때 ‘질’ 보다는 ‘감정’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되어 여기서는 ‘감정’으로 고쳐 인용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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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념의 크기가 더욱 더 강력하게 환기되며 그러면 그럴수록 더 큰 쾌감을 동

반하게 되어 경탄에 가까운 감동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168) 칸트는 이러한 숭고의

감정을 이념과의 적합성을 실현해야 하는 우리 자신의 사명에 대한 존경의 감정과

관련시킨다. 칸트에 따르면 존경의 감정은 ‘우리에 대해서 법칙인 어떤 이념에 이르

는 데에 우리의 능력이 부적합하다는 감정’이다.(KU , B98) 따라서 상상력의 무능력

으로 인한 불쾌감은 한편으로는 존경의 감정으로서 이념과의 적합성을 실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상상력의 사명감으로 연결되면서 마음을 고양시키고 쾌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존경의 감정은 근본적으로 우리 안의 이성 이념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자연 대상을 수학적으로 숭고하다고 판단

할 수 있는 것은 그 대상의 크기에 의해 우리 안의 초감성적 능력을 발견할 수 있

으며 이성 이념에 대한 존경의 감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우리가 이성

의 이념에 대한 이러한 존경을 일종의 치환169), 즉 우리의 주관 안에 있는 인간성의

이념에 대한 존경을 대상에 대한 존경으로 뒤바꿈에 의해 자연의 대상에도 표명하

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KU , B97)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어떤 자연 대상 자

체가 숭고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자연 대상에 의해 우리 마음에 존경의 감정과 더

불어 환기되고 결부되는 초감성적인 이성 이념이 숭고한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진정한 숭고함은 오직 판단하는 자의 마음에서 찾아야지, 그것에 대한 판정이 마

음의 그러한 정조를 야기하는 자연객관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KU , B95)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상상력의 무능력으로 인한 불쾌

감과, 이 불쾌감이 동시에 초감성적 이성 이념과 합목적적으로 합치되고 있음을 의

식하면서 느껴지는 쾌감이 공존하는 이중의 감정 흐름을 동반한다. 그리고 이 때의

만족은 불쾌감을 거쳐서 도달될 수 있는 쾌감이기에,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같이

상상력의 유희 속에서 느껴지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쾌감이라기보다는 경탄과 존

경의 감정 속에서 느껴지는 간접적이고 소극적인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170)

168) 최소인(2009), 앞의 논문, p.416.

169) 백종현은 ‘절취’로 변역하고 이석윤은 ‘치환’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념에 대한 존경을 자연 대

상에 대한 존경으로 뒤바꾼다는 점을 잘 드러내면서도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용어인 ‘치환’을 사용

하기로 한다. 칸트에게 있어서 숭고하다고 불리는 자연대상은 본래적으로는 대상 자체에 귀속될

수 없는 숭고한 속성이 주관에 의해서 치환된 것이다. 즉 ‘치환(Subreption)’이란 숭고하다고 판단

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가진 특정한 자연 대상에다가, 그 대상이 가질 수 없는 초감성적인 이

념을 주관이 옮겨다 놓는 작용이다.(박지용(2009), 앞의 논문, p.177)

170) 칸트는 상상력의 총괄능력이 감당해 낼 수 없는 단적으로 큰 것, 즉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에 대

한 사례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피라미드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이

다. 피라미드를 통해서는 포착능력의 무한성과 총괄능력의 유한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삼고,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을 통해서는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 느껴지는 만족의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삼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칸트가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의 사례를 통해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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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칸트가 역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

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칸트는 수학적 숭고를 ‘크기(Größe)’와 관련하여 설명하지

만, 역학적 숭고는 ‘위력(Macht)’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칸트는 ‘위력’이란 “커다란

장애들을 압도하는 능력”(KU , B102)이며, 이러한 위력을 소유한 어떤 대상의 저항

을 압도하는 위력을 ‘강제력’이라 일컬으면서(KU , B102) 역학적 숭고를 다음과 같

이 정의 내린다.

미감적 판단에서 우리에 대해서 아무런 강제력도 가지지 않은 위력으로 고찰되는

자연은 역학적으로 숭고하다.(KU , B102)

자연이 역학적으로 숭고한 것으로 판정되기 위해서는 자연이 ‘강제력을 지니지

않은 위력’으로 고찰되어야 한다. 여기서 ‘강제력을 지니지 않은 위력’은 무엇을 의

미할까? 우선 미감적 판단에서 자연이 하나의 위력으로 고찰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

를 지니는지를 살펴보자. 칸트는 미감적 판정에서 장애들에 대해 압도적임, 즉 위력

은 오직 저항의 크기에 따라서만 판정될 수 있다고 본다.(KU , B102) 그래서 우리의

최대한의 저항 능력이 위력이 수반하는 해악을 감당할 수 없음을 발견할 때 그 위

력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미감적 판단력에 대해서 자

연은 오직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고찰되는 한에서만 위력으로, 따라서 역학

적으로 숭고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KU , B102-103) 하지만 위력적인 자연이 가

하는 직접적인 위협에서 지속적인 두려움과 위험에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는 이러

한 자연에서 숭고한 것을 발견하기는커녕 위협적인 자연으로부터 해방되기만을 바

랄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두려워하고 있는 자는 자연의 숭고한 것에 관해 전혀

판단을 내릴 수 없다”(KU , B103)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숭고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러한 판단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위력을

지닌 자연이 가하는 ‘강제력’으로부터 해방된 안전한 곳에 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이 ‘강제력을 지니지 않은 위력’으로 고찰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연이 지

닌 위력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을 우리의 저항 능

력이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는 자연의 위력이 우리의 저항 능력을 그것에 비교할 수 없는 보잘것없이

서의 만족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처음 들어서는 구경꾼을 엄습하는 경악 내지 일종의 당혹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무릇 이 경우

에는 상상력이 전체의 이념들을 현시하기에는 그 이념들에 대해 부적합하다는 감정이 드는바, 이

런 감정 속에서 상상력은 자신의 최대한도에 이르러 그걸 확장하려고 애를 써도 자기 자신 안으로

빠져드는데,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상상력은 하나의 감동적 만족으로 옮겨 놓아진다.”(KU, B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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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으로 여기게 만들지만, 우리가 안전한 곳에 있기만 하다면 그 광경은 두려

우면 두려울수록 더욱 우리의 마음을 끈다고 말하면서(KU , B104) 역학적으로 숭고

한 것에 대한 판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이러한 대상들[위력을 지닌 자연의 대상들-연구자 삽입]을 기꺼이 숭고하

다고 부르는 것은, 그것들이 영혼의 힘을 일상적인 보통 수준 이상으로 높여주고, 우

리로 하여금 자연의 외견상의 절대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전혀 다른 종

류의 저항하는 능력을 우리 안에서 들춰내주기 때문이다.(KU , B104)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 우리는 자연의 무한한 크기를 평가할 수

있는 감성적 척도를 가질 수 없다는 무능력에서 자신의 한계를 발견함과 동시에 우

리 마음 안에 자연의 무한한 크기를 압도하는 초감성적인 이성 능력을 발견하였듯

이, 역학적으로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 우리는 자연의 엄청난 위력에 저항할

수 없다는 신체적 무력함을 발견함과 동시에 우리 마음 안에 자연의 위력으로부터

독립적이면서도 자연의 위력을 압도하는 저항 능력 즉 초감성적인 이성 능력을 발

견한다. 자연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은 자연의 위력이 가하는 강제력에 굴복하지 않

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초감성적 이성 능력을 의식하는 인간은 그러한 자연의

위력이 자신의 인격 안의 인간성을 침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더욱 강력

한 내면의 힘을 자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학적 숭고와 마찬가지로 역학적 숭고에

서도 진정으로 숭고한 것은 두려움을 일으키는 위력적인 자연이 아니라 우리의 인

격 안의 인간성을 자연의 위력에 굴복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게 하는 우리 안의

초감성적 이성 능력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이 우리의 미감적 판단에서 숭고하다고 판정되는 것은, 자연이 두려움을 일으

키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이 우리 안에 (자연이 아닌) 우리의 힘을 불러일으키

기 때문이다.(KU , B105)

칸트는 우리 내면의 힘을 ‘우리가 심려하고 있는 재산, 건강, 생명을 작은 것으로

간주하는 힘’, ‘우리가 자연의 위력에 종속되어 있지만 그것에 의해서는 우리의 인

격성이 굴복될 수 없다고 간주하는 힘’으로 설명한다.(KU , B105) 자연의 어떤 위력

적 대상에도 굴복하지 않는 이러한 힘의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이 자연적이고 감성

적인 것을 뛰어넘어 무한한 것의 이념을 사유하는 존재임을 감지하게 한다.171) 역학

171) 박배형(2009), 앞의 논문,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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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숭고하다고 판단되는 자연의 대상을 통해 우리의 마음은 우리 안의 초감성

적인 이성의 이념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사명의 숭고함을 자각하면서 한층 고양된

만족을 느끼게 된다.

역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과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역학적으로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 상상력은 위

력적인 자연이 행사하는 위협에 저항할 수 없다는 한계의식에서 불쾌감에 빠져들지

만, 동시에 우리 안에 초감성적인 이성 능력을 발견하고 그러한 이성의 이념에 합

치하고자 하는 사명을 자각하게 되면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위협적인 것이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감성을 이성의 고유한 영역 즉 실

천적 영역에 알맞도록 확장하고, 감성으로 하여금 감성에게는 심연인 무한한 것을

전망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성이 감성에게 행사하는 하나의 강제력이기 때문이

다.(KU , B110-111) 여기서 역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이성의

이념은 ‘이성이 감성에 행사하는 하나의 강제력’으로서 실천적 이념과 관련되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의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은 인간의 자연본성에 그 토대를 두며, 그것도 사람

들이 건전한 지성[상식]을 가지고서 누구에게나 강요할 수 있고 요구할 수 있는 것에

서, 곧 실천적 이념들에 대한 감정의 소질에서, 다시 말해 도덕적 감정의 소질에서 갖

는다.(KU , B111-112)

위력적인 자연, 즉 역학적으로 숭고하다고 판단되는 자연은 우리 안의 실천적 이

념들을 환기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정의 상태로 이끌게 된

다. 칸트는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이 누구에게나 요구할 수 있는 보편적 필연성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판단이 실천적 이념에 대한 도덕적 감정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칸트는 이미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을 논하는 곳에서도 숭고

한 것에 대한 판단은 실천적인 이념들이 감정에 영향을 미쳐 일으키게 되는 마음의

정조를 만들어내도록 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KU , B95), 여기서도 수학적 숭고와 역

학적 숭고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채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 일반이 갖는 필연성

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실천적 이념에 대한 도덕적 감정이 반드시 역학적 숭고에

만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의 필연성은 분명히

역학적 숭고를 논의하는 곳에서 다루어지고 있고172), 특히 칸트가 앞에서 수학적 숭

172) 칸트는 ‘숭고의 분석학’을 ‘미의 분석학’에서 취한 4가지 계기에 따라 논의하고 있는데 숭고한

것의 양과 질은 수학적 숭고에서, 숭고한 것의 관계와 양태는 역학적 숭고에서 다루고 있다. 비록

‘미의 분석학’에 비해 ‘숭고의 분석학’에서의 설명이 다소 불명확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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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를 상상력과 인식능력(이론이성)이 관계 맺는 주관적 합목적성과 관련시키고, 역

학적 숭고를 상상력과 욕구능력(실천이성)이 관계 맺는 주관적 합목적성과 관련시

키면서 숭고한 것을 판단하는 이중의 방식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KU , B80 참조),

실천적인 이념에 대한 도덕적 감정이 수학적 숭고보다 역학적 숭고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고 보는 것이 칸트의 의도에 좀 더 적합할 것이다. 결국 역학적으로

숭고하다고 판단되는 자연은 우리 안에 자연의 위력을 압도하는 실천 이성의 이념

을 환기시키면서 그러한 실천 이성의 이념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사명의 감정, 즉

실천적 이념에 대한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 만족을 주게 되

는 것이다. 여기서도 진정으로 숭고한 것은 우리 안에 놓여 있는 초감성적 실천 이

성의 능력이며, 실천 이성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우리의 사명이다. 자연의 위력을 우

리가 비본래적이기는 하지만 숭고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안의 초감성적

능력과 사명의 감정을 환기시켜주기 때문인 것이다.173)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볼 때 역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강제력을 지

니지 않은 자연의 위력’에 의해 촉발된다는 점, 상상력과 욕구능력(실천이성)의 관

계에서 비롯하는 주관적 합목적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실천적 이념에 대한 도덕

적 감정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수학적으로 숭고한 것에서

의 만족과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무한한 크기와 위력

을 지닌 자연의 대상을 우리가 숭고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자연의 대

상이 우리 안에 자연의 크기와 위력을 넘어서는 초감성적 이성 이념의 크기와 위력

이 존재한다는 감정을 환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숭고한 것은 우리가 단지 감성적 조

건에만 제약되어 있는 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감성을 넘어설 수 있는 초감성적 이성

이념을 지닌 이성적 존재자임을 자각하게 한다. 이러한 자각은 초감성적 이성 이념

에 적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명에 대한 존경의 감정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한

껏 고양시켜 만족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숭고한 것은 감성적 제약을 넘어 이성의

이념에 적합하도록 노력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사명의 감정을 우리의 마

음에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숭고한 것에 대한 감정, 특히 역학적으로 숭고한 것

에 대한 감정은 실천적인 이념이 영향을 미쳐 일으켜지는 감정 즉, 도덕적 감정과

것은 사실이나 칸트는 스스로 ‘숭고의 분석학’에서의 분석 방법이 ‘미의 분석학’에서 수행한 분석

방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KU, B79 참조)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에 대

한 칸트의 구분을 있는 그대로 의미 있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173) “그러므로 숭고성은 자연의 사물 속이 아니라, 오직 우리 마음 안에 함유되어 있다. 우리가 우

리 안의 자연을,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한에서) 우리 밖의 자

연에 대해 압도적임을 의식할 수 있는 한에서 말이다. 우리의 힘들을 촉구하는 자연의 위력을 포

함해서 이러한 감정을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은 그런 경우 (비록 비본래적으로이기는 하

지만) 숭고하다고 일컬어진다.”(KU, B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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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마음의 상태와 연결된다.174) 그래서 칸트는 “자연의 숭고한 것에 대한 감정

은 도덕적인 것에 대한 감정의 정조와 비슷한 마음의 정조가 그 감정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능히 생각될 수가 없다.”(KU , B116)고 말하고 있다.

자연의 엄청난 크기와 위력은 우리가 가진 현실적 능력과 힘이 얼마나 미약하고

불충분한지를 여지없이 드러나게 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마치 생명력들이 순간적으

로 저지된 듯한 불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이러한 불쾌감을 통

해 우리 안에 자연의 크기와 위력을 능가하는 초감성적 이성 이념이 존재함을 의식

하게 되면서 한층 더 강화되고 고양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숭고한 것에서

의 만족은 불쾌감이 극복되어 고양된 쾌감으로 전환됨으로써 느껴지는 감정이기 때

문에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처럼 자유로운 유희 속에서 산출되는 감정이 아니라 엄

숙함 속에서 산출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우리

안의 초감성적 이성 이념에 대한 존경의 감정을 포함하는데, 이는 도덕 법칙에 대

한 존경이라 할 수 있는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앞서 우리는 칸트가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좋은 것에서의 만족을 종(種)

적으로 구분하면서, 각각의 만족을 경향성, 호의, 존경과 관련시키고 있음을 살펴보

았다. 그리고 연구자는 행복이 쾌의 감정, 즉 만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면서

각각의 만족을 ‘경향성과 관련된 행복’, ‘호의와 관련된 행복’, ‘존경과 관련된 행복’

으로 대응시켰다. 여기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경향성의 충족과 관련된 감각적

관심이나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과 관련된 도덕적 관심과 무관하게 대상 그 자체에

대한 순전한 반성을 통해 느껴지는 쾌의 감정으로서 쾌적한 것과 좋은 것에서의 만

족과 확연히 구분되는 고유한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행복과 관련해서도 미적인 것

에서의 만족은 ‘경향성과 관련된 행복’이나 ‘존경과 관련된 행복’과 구분되는 ‘호의와

관련된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무관심한 만족이라는 점에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공통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존경이라는 도덕적 감정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좋은 것에서의 만족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숭고한 것에서의 만

족은 행복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쾌의 감정, 즉 만족을 다시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숭고한 것, 단적으로 좋은[선한]

것과 관련하여 설명하는 칸트의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74) 그렇지만 숭고의 감정과 도덕적 감정을 동일한 감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양자가 모두

실천적 이념 즉, 실천 이성의 이념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감정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지만, 숭고의 감정은 ‘무규정적인’ (실천) 이성 이념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감정인데 비해, 도덕

적 감정은 도덕법칙이 부과하는 실천적 이념을 통해 ‘규정되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구분되기 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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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과 도덕적 행복175)의 가능성

‘미의 분석학’ §5에서 칸트는 만족, 즉 쾌의 감정을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좋은

것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하면서 각각의 만족을 경향성, 호의, 존경과 연결시킨 바

있다.(KU , B14-16) 또한 칸트는 행복의 관점에서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이 지속적

인 쾌적함의 최대량으로서의 행복, 즉 감성적 행복과 관련된다고 설명하면서 좋은

것에서의 만족과 분명하게 구분한다.(KU , B11-13 참조) 칸트의 관점에서 세 가지

만족은 종적으로 구분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것에서의 만족과 미적인 것

에서의 만족이 감성적 행복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과 관련되는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미의 분석학’ 이후에 전개되는 ‘숭고의 분석학’에서 칸트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구분되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의 특성을 설명한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미적인 것

과 구분되는 숭고한 것이 쾌의 감정과 관계하는 대상으로서 칸트의 논의에 추가되

게 된다. 그래서 칸트는 ‘숭고의 분석학’을 마무리하면서 바로 이어지는 ‘미감적 반

성적 판단들의 해설에 대한 일반적 주해’의 서두를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쾌의 감정과의 관계에서 대상은 쾌적한 것(das Angenehme)이거나 미적인 것(das

Schöne) 또는 숭고한 것(das Erhabene)이거나 (단적으로) 좋은[선한] 것(das

Schlechthin Gute)176)(즉 유쾌한 것, 미적인 것, 숭고한 것, 고결한 것)에 속하지 않을

수 없다.(KU , B113)

이처럼 칸트는 쾌의 감정과 관계 맺을 수 있는 대상을 숭고한 것을 새롭게 포함

175) 칸트는『윤리형이상학』의「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머리말에서 ‘도덕적 행복’이 의무원

리를 행복으로 환원시키거나 ‘도덕적 행복’을 행위의 근본적인 동기로 파악하는 경우 ‘도덕적 행복’

은 자기 모순적인 표현이라고 말한다.(TL, AVII-AVIII 참조) 왜냐하면 의지의 규정 근거가 ‘도덕

적 행복’이라면 그것은 결코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자가 여기서 사용

한 ‘도덕적 행복’은 의지의 규정근거가 아니라 도덕법칙이 의지를 규정하여 행해진 행위에 수반되

는 결과로서의 행복을 의미하는 표현일 뿐이다. 이처럼 ‘도덕적 행복’을 도덕 법칙의 직접적 의지

규정에 의한 결과로서 수반되는 ‘존경의 감정’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존경의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를 환기하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도덕적 행복’과 관련시켜 이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는 여기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자 한

다.

176) 백종현은 번역의 일관성을 위해 ‘das Gute’를 ‘좋은[선한] 것’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칸트가 좋

은 것에서의 만족을 존경이라는 도덕적 감정과 관련시키고 있고 더군다나 여기서부터는 ‘단적으로’

라는 수식어를 덧붙여 표현해 줌으로써 좋은 것이 곧 ‘도덕적으로 좋은 것’임을 확실히 해주고 있

기 때문에 ‘(단적으로) 좋은[선한] 것’을 ‘단적으로 선한 것’ 혹은 ‘도덕적으로 선한 것’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 칸트의 관점에 더욱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후의 인용은 ‘단적으로 선한 것’

으로 통일시키고, 문맥에 따라 ‘도덕적으로 선한 것(혹은 줄여서 도덕적 선)’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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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켜 총 네 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대상에서의 쾌의 감정을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자 한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다른 만족과 비교하여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으

며,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행복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발견하

기 위해서는 네 가지 대상에 대한 쾌의 감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

다.

칸트에 따르면 쾌적한 것은 “감각에서 감관들에 만족을 주는 것”(KU , B7)이기

때문에, 쾌적한 것에 대한 판단은 감관판단을 전제하며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은 경

향성의 충족을 바탕으로 한 감각적 만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칸트는 쾌적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욕구의 동기로서는 동일한 종류이기 때문에 쾌적한 것에 대한 판

단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쾌적한 감각의 총량일 뿐이라고 말한다.(KU , B113) 따라

서 쾌적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쾌적한 것이 주는 지속

적인 쾌적함의 최대량일 뿐이다.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은 쾌적함의 유래나 종류와

는 상관없이 오직 쾌적한 감각의 총량과 관련해서 느껴지는 쾌의 감정이기 때문에,

칸트는 쾌적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순전한 향락에 속하

는 것이라고 말한다.(KU , B113) 그리고 칸트는 이러한 종류의 쾌감은 감관을 통해

수동적으로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향수(享受)의 쾌감(die Lust des

Genusses)’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KU , B153) 그런데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

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감관의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한 쾌감이

누구에게나 승인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동일한 대상일지라도 개인의 감관에서

의 감각에 따라 쾌적함을 느낄 수도 있고 쾌적하지 않음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

다. 그래서 칸트는 쾌적한 것과 관련해서는 누구나 자신의 판단이 사적 감정에 기

초하고 있고, 이를 통해 어떤 대상이 자신에게 만족을 준다고 말하는 것이므로, 자

신의 판단은 순전히 자기 개인에 국한된 것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

다.(KU , B18-19) 따라서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은 자기 감관의 감각에서만 타당성

을 요구할 수 있는 감정일 뿐, 누구에게나 동의를 요구할 수 있는 보편적으로 전달

가능한 감정이라 할 수 없다.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이 보편적으로 전달 가능하려면

그 쾌감이 모든 주관에 대하여 보편타당성과 필연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이

것은 감관의 감각적 경험에 수동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에 요

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기서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이 보편적 전달이

불가능한 감정이라는 사실은 쾌의 감정에 대한 칸트의 논의과정에서 매우 중요하

다. 왜냐하면 ‘쾌감의 보편적 전달 가능성177) 여부’가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과 미적

177)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은 쾌적함의 최대량에 대한 감각적 관심을 충족시킬 때 느낄 수 있는 감

정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쾌감의 보편적 전달 가능성

이 아니라 쾌감의 강도일 뿐이다. 하지만 칸트는 쾌감의 진정한 가치는 보편적 전달가능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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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것, 숭고한 것,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쾌감을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이 되기 때

문이다. 이를 통해 칸트가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은 감관판단에서 느껴

지는 쾌의 감정으로 감관의 감각적 관심을 충족시키는 지속적인 쾌적함의 최대량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은 감관을 통해 수동적으로 마음

에 전달되는 향수의 쾌감으로서 보편적으로 전달될 수 없는 주관적인 쾌의 감정이

라는 것이다.

칸트는 “미적인 것에서의 쾌감은 향수의 쾌감이 아니라 순전한 반성의 쾌감(die

Lust der bloßen Reflexion)이다.”(KU , B155)라고 말하면서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과

미적인 것에서의 쾌감을 구분한다. 미적인 것에서의 쾌감은 감관판단에서가 아니라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에 의한 미감적 반성판단에서 비롯하는 쾌의 감정이다.178) 감

관판단이나 미감적 반성판단 모두 쾌․불쾌의 감정과 관계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

이다. 하지만 감관판단에서의 쾌․불쾌의 감정이 감관에서의 감각적 경험을 통해

일으켜지는 것인 반면, 미감적 반성판단에서의 쾌․불쾌의 감정은 판단력의 두 인

식능력들, 즉 상상력과 지성 사이의 자유로운 유희를 통해 일으켜지는 것이라는 점

에서 차이가 있다. 여기서 미적인 것에서의 쾌감이 주관의 인식능력들, 즉 상상력과

지성의 조화로운 상호관계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쾌감의 보편적 전달가능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쾌적한 것에서의 쾌감은 감관의 감각에 수동적으

로 주어지는 쾌적함에 근거하기 때문에 본성상 사적 타당성을 지닐 수밖에 없지만,

미적인 것에서의 쾌감은 주관의 인식능력들인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에 근

거한 감정이기 때문에 비록 주관적 감정이지만 그러한 감정의 보편적 타당성을 요

구할 수 있다. 칸트는 미적인 것에서의 쾌감이 인식 일반을 가능하게 하는 판단력

의 주관적 조건들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조건들은 누구에게나 전제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그러한 쾌감이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도 보편적으로 전달 가능

한 것으로 상정한다.179) 한편으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 즉 쾌의 감정이 보편성을

고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누구나 그러한 대상[쾌락, 즉 향수의 만족을 동반하지 않은

아름다운 형식들로부터 정련된 경향성의 주요 작품-연구자 삽입]에서 갖는 쾌감이 단지 보잘 것이

없고, 또 그것만으로는 눈의 띄는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해도, 그 쾌감이 보편적으로 전달가능하

다는 이념은 그 쾌감의 가치를 거의 무한하게 증대시킨다.”(KU, B164)

178)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칸트는 미감적 판단을 상위 인식능력인 판단력의 원리와 관계 맺고 있

는 반성판단으로 이해하고 있고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을 포괄하여 미감

적 판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미감적 반성판단은 미감적 판단과 동일한 의미

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칸트는 미감적 판단을 쾌․불쾌의 감정과 관련되는 판단

으로서 미감적 감관판단과 미감적 반성판단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미감적 판단

이 미감적 반성판단임을 뚜렷이 드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미감적 감관판단도 감관판단으로

서술하기로 한다.

179) 칸트가 모든 사람들에게서 전제하는 판단력의 주관적 조건들은 상상력과 지성의 상호관계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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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닐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일체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무관심한 만족이기 때문이

다. 이에 대해 칸트는 ‘미의 분석론’ 취미판단의 제2계기에 대한 설명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미적인 것의 설명[미는 개념들 없이 보편적인 만족의 객관으로서 표상되는

것이다.]은 미적인 것이란 일체의 관심 없는 만족의 대상이라는 앞서의 설명으로부터

귀결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어떤 것에 대해 그것에서의 만족이 그 자신에게

서 일체의 관심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의식하는 그것을 그는, 그것은 누구에게나 만

족할 근거를 함유하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판정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만족은 주관의 여느 경향성에 (또 어떤 다른 숙려된 관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판단자는 그가 대상에게 바치는 만족에 대하여 온전히 자유롭다고 느끼고 있

으므로, 그는 그의 주관만이 매여 있는 어떤 사적 조건도 그 흡족의 근거로 볼 수가

없으며, 또 그는 그래서 그 만족을 그가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도 전제할 수 있는 것

에 기초되어 있는 것이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는 누구에게서나 비슷한

련된다. 인식 판단과 미감적 판단을 위해서는 모두 상상력과 지성의 관계가 필요하다. 다만 인식

판단에서는 상상력의 직관이 지성의 개념에 의해 법칙적으로 부합됨에 의해 인식이 성립하게 되는

반면, 미감적 판단에서는 개념의 개입 없이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상상력과 지성의 조화로운 일치

에서 쾌감이 일으켜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쾌감은 인식 일반을 위해서도 필요

한 상상력과 지성의 조화로운 일치에 근거한 쾌감이기 때문에, 인식이 보편적으로 전달 가능하듯

이 미감적 판단에서의 쾌감도 보편적으로 전달 가능함을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칸트

의 다음과 같은 설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감적 판단력의 한낱 주관적인 근거들에 의거

하는 판단들에 대한 보편적 동의를 요구주장하는 것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시

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즉 1)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이 능력의 주관적 조건들은, 이 판단에서 활

동게 된 인식력들의 인식 일반과의 관계에 관한 한, 한가지이다. 이것은 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들이 서로 자기들의 표상들을, 심지어 인식을 전달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

다. 2) 이 판단은 순전히 이 관계(그러니까 판단력의 형식적 조건)만을 고려한 것으로 순수한 것이

다. 다시 말해 그 규정근거로서 객관의 개념들과도 감각들과도 혼합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KU,

B151-152)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미감적 판단에서 쾌감의 보편타당성을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

는 근거를 인간의 기본적 의사소통을 위해 전제할 수밖에 없는 판단력의 주관적․형식적 조건들에서

구하고자 함을 이해할 수 있다. 칸트의 이러한 시도는 결국 공통감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게 된다.

공통감은 개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통해서 무엇이 보편타당한 만족을 주는가를 규정하는 하

나의 주관적 원리이다.(KU, B64) 칸트는 이러한 공통감의 전제 아래서만 취미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KU, B65) 취미판단에서의 쾌감은 보편적으로 전달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

다. 그러면서도 칸트는 공통감을 “우리 인식능력들의 자유로운 유희에 의한 작용결과”(KU, B65)

로 이해한다고 봄으로써 공통감도 결국 주관의 인식능력들인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에서

비롯하는 감정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칸트는 공통감을 단순한 감각이나 감정과 구별하기 위해

공통감을 ‘공통[공동체]적 감각의 이념’(KU, B157)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공통감이

“자기의 반성에서 다른 모든 사람의 표상방식을 사유 속에서 (선험적으로) 고려하는, 하나의 판정

능력의 이념”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모든 타자의 위치에서 사고하기’라는 확장적 사유방식의 준

칙(판단력의 준칙)과 연결시킨다.(KU, B157-160) 이를 종합하여 생각해 본다면 칸트가 미감적 판

단에서 전제하는 판단력의 주관적 조건들과 공통감은 미감적 판단에서 느끼는 쾌감의 근거로서 작

동하게 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상의 표상에 대한 순전한 반성에서의 쾌감은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와 자신을 넘어 타자의 위치에서 사고하려는 확장적 사유방식과 관련된 쾌의 감정이

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쾌감의 보편적 전달가능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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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을 기대할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KU , B17)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경향성에 바탕을 둔 감각적 관심이나 지성의 개념에 바

탕을 둔 인식적 관심 그리고 이성의 법칙에 바탕을 둔 도덕적 관심을 비롯한 일체

의 관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그래서 칸트는 이러한 만

족이 개인의 사적인 조건에 근거할 수 없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도 전제할 수 있

는 것에 근거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서나 유사한 만족을 기대할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여기서 칸트가 언급하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도

전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앞에서 논의했던 인식 일반을 위한 판단력의 주관적 조

건들과 관련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일체의 관심이 배제된 채 순전히 판단력의 자유로운 반성 과정, 즉 상상력과 지성

의 자유로운 유희에서만 느껴지는 자유로운 만족이기 때문에 그 만족의 보편타당성

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순전한 반성의 쾌감’으로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

은 미감적 반성판단에서 느껴지는 무관심한 만족이자 자유로운 만족이라 할 수 있

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마찬가지로 일체의 관심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반성적 판단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미감적 반성판단을 전제하

기 때문에,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역시 반성의 쾌감으로서 무관심한 만족이자 자유

로운 만족의 성격을 지니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타당성을 요구할 수 있는 쾌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이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를 통해 느껴지는 직접적인 쾌감이라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상상력이 이

성의 이념에 부적합하다는 데서 느껴지는 불쾌감이 이성의 이념을 향해 노력해야

한다는 상상력의 초감성적 사명을 의식하면서 느껴지는 쾌감으로 이행되는 간접적

인 쾌감이라는 점에서 이 두 가지 만족은 구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숭고한 것에

서의 만족은 그것이 초감성적 이성 이념과 관련된 감정이라는 점에서 미적인 것에

서의 만족과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자연의 숭고한 것에서의 쾌감

을 ‘이성 논변적(이성의 논의가 들어있는) 관조의 쾌감(die Lust der vernünftelnden

Kontemplation)’으로 규정하면서 미적인 것에 대한 쾌감과 구분하고 있다.(KU ,

B154)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칸트가 숭고한 것에서의 쾌감이 갖

는 보편타당성과 필연성을 도덕적 감정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하려 한다는 점이다.

전자는[미적인 것에서의 판단은], 그 경우에는 판단력이 상상력을 한낱 개념들의

능력인 지성과 관계시키므로, 곧장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지만, 그러나 후자는[숭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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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에서의 판단은], 그 경우에는 판단력이 상상력을 이념들의 능력인 이성과 관계시키

므로, 단지 주관적인 전제 아래서만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전제를 모든 사람에게 요

구해도 좋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믿는다- 곧 인간 안의 도덕적 감정을 전제해서

만 요구하며, 또 이렇게 함으로써 또한 이 미감적 판단에 필연성을 부여한다는 점이

다.(KU , B112)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 상상력은 이성의 이념과 관계하면서 한편으로는 자

신이 이성의 이념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쾌의 감정을 느끼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이 감성적 한계를 넘어 이성의 이념에 도달해야 한다는 초감성적 사

명의 감정에서 주관적 합목적성을 의식하면서 쾌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칸트는 숭

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 감성적 자연의 영역을 전적으로 넘어선 마음의 초감성적

사명에 대한 감정을 도덕적 감정으로 이해하면서(KU , B116)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이 도덕적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또한 칸트가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이 존경을 포함하며(KU , B76), 우리 자신의 초감성적 사명에 대한 존경과 관련된다

(KU , B97)고 말한 것을 함께 고려해 본다면 이러한 도덕적 감정은 존경의 감정과

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즉 쾌의 감정은

도덕적 감정으로서의 존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180) 그런데 ‘미

의 분석학’에서 칸트는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이 존경과 관련된다(KU , B15)

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단적으로 선한 것이라는 이념이 주관을 규정하는 데서 불

러일으켜지는 감정을 도덕적 감정과 관련시키고 있기 때문에(KU , B114), 도덕적 감

정으로서의 존경은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에도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과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공통적으로

도덕적 감정으로서의 존경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칸트는 앞서 언급하

였듯이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숭고한 것, 단적으로 선한 것과 관계하는 쾌의 감정

을 분명히 구분하고자 하기 때문에, 숭고한 것에서의 쾌감과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

의 쾌감의 근본적 차이를 드러내고자 한다.

180) 칸트는 존경을 ‘우리에 대해서 법칙인 어떤 이념에 이르는 데에 우리의 능력이 부적합하다는 감

정’으로 이해하며(KU, B96), 도덕 법칙 자체에 대한 존경을 도덕적 감정으로 간주한다.(KpV,

A142) 따라서 존경은 곧 도덕적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 상상력은 자신

의 능력이 이성의 이념에 도달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이성의 이념에 적

합함을 실현해야 한다는 초감성적 사명의 감정을 느낀다. 이것을 칸트의 개념 정의와 연결시켜 보

면 ‘상상력이 이성의 이념에 이르는 데에 자신의 능력이 부적합하다는 감정’은 곧 존경과 연결될

수 있고, 이는 결국 우리 안의 초감성적 이성 이념에 대한 존경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도덕적 감

정과 결합될 수 있다. 이러한 유사성에 따라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으

로서의 도덕적 감정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유사한 감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즉 쾌의 감정은 도덕적 감정으로서의 존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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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쾌감이 지니는 고유한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어떤 행위에서 그 행위의 도덕적 성질 때문에 느끼는 만족은 향수의 쾌감이 아니

라, 자기 활동의 쾌감이며, 이 자기 활동이 그의 규정[사명]의 이념에 적합함의 쾌감

이다. 윤리적[도덕적] 감정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감정은 그러나 개념들을 필요로 하

고, 자유로운 합목적성이 아니라, 법칙적인 합목적성을 현시하며, 그러므로 그것은 또

한 다름 아니라 이성을 매개로 해서만, 그리고 그 쾌감이 누구에게나 동종적인 것이

라 한다면, 아주 명확한 실천적 이성개념들에 의해서만 보편적으로 전달될 수 있

다.(KU , B154)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실천적 이성개념, 즉 실천적 이념에 의해 주관

이 합법칙적으로 규정되면서 느껴지는 쾌감으로서 도덕적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다

시 말해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실천 이성의 법칙, 즉 도덕 법칙에 따른

자율적 활동의 결과로서 느껴지는 쾌감인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단적으로 선한 것

에서의 쾌감을 ‘법칙적 활동의 쾌감(die Lust der gesetzlichen Tätigkeit)’이라고 일

컫는다.(KU , B155) 이러한 도덕적 감정으로서의 쾌감은 명확한 실천적 이성개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칸트는 도덕적 감정

에서의 쾌감이 이성 안에 기초로 놓여 있는 의지를 규정하는 선험적인 원리, 즉 도

덕 법칙181)으로부터의 결과라고 말하면서(KU , B149) 이러한 쾌감의 보편성과 필연

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적인 행위 즉,

도덕 법칙에 부합하는 자율적 활동에서 느끼는 쾌감으로서, 이 쾌감은 실천적 이성

개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법칙적 활동의 쾌감으로서의 도덕적 감정이라 할 수 있으며,

이 도덕적 감정은 이성 개념에 의해 규정되는 쾌감이라 할 수 있다.182)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도덕적 감정이 숭고한 것에서의

도덕적 감정과 구분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한다. 왜냐하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

족은 미감적 반성판단을 전제하는 것으로서 결코 개념에 의해 규정되는 감정이 아

니기 때문이다. 칸트는 단적으로 선한 것이 그 자체로는 미감적 판단력이 아니라

순수한 지성적 판단력에 속하며, 또한 반성적 판단력이 아니라 규정적 판단력에 해

181) 선험적인 원리를 도덕 법칙으로 해석하는 백종현의 각주에 따랐다.(I.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백종현 옮김,『판단력비판』(서울: 아카넷, 2014), p.311)

182) 『실천이성비판』에서도 칸트는 “도덕 감정이라는 이름의 이 감정은 단적으로 이성에 의해 생

긴 것이다.”(KpV, A135)라고 말하면서 도덕적 감정을 이성에 의해 규정된 감정으로 이해하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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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다고 말하면서(KU , B114),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즉 도덕적 감정을 감

성적 주관이 단적으로 강요하는 법칙 표상, 즉 단적으로 선한 것이라는 이념에 의

해 규정되는 감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따라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과 관련된 도

덕적 감정은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에 바탕을 둔 미감적 판단에서 일으켜지는 쾌감

으로서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도덕적 감정과 그 근원상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

다.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반성적 판단력에 바탕을 둔 미감적 판단에 연결

시키고,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을 규정적 판단력에 바탕을 둔 지성적 판단에

연결시키면서 각각의 만족을 구분하는 동시에,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즉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강조한

다. 그래서 칸트는 “자연의 숭고한 것에 대한 감정은 도덕적인 것에 대한 감정의

정조와 비슷한 마음의 정조가 그 감정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능히 생각될 수가 없

다”(KU , B116)고 말하면서 숭고의 감정과 도덕적 감정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

다.

그렇다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어떻게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정에 이를 수

있을까?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실천적 이성개념에 의해 규정된 도덕적 감

정으로서 법칙적 활동의 쾌감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이성은 감성에 직접적으로

강제력을 가한다. 우리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에서도 이성의 이념이 감성의 최대

한의 능력보다 우월함을 발견함으로써 감성에 대한 이성의 강제력을 의식한다. 하

지만 양자의 만족이 공통적으로 감성에 대한 이성의 강제력과 관계하고 있더라도

그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다.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즉 도덕적 감정은 이성

이 직접적으로 감성에 강제력을 가하는 데서 느껴지는 감정이지만, 숭고한 것에서

의 만족은 상상력이 이성 이념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에게 강제력을 가하는 데서

느껴지는 감정인 것이다. 칸트는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의 강제력의 성격을 다

음과 같이 설명한다.

법칙적인 과업은 인간의 도덕성[윤리성]의 진정한 성질로서, 도덕성[윤리성]에서

이성은 감성에 강제력을 가하지 않을 수 없지만, 숭고한 것에 관한 미감적 판단에서

이 강제력은 이성의 도구로서의 상상력 자신에 의해 행사되는 것이다.(KU ,

B116-117)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이 이성에 의해 규정되는 법칙적 활동에 근거한다

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이성의 도구로서의 상상력의 활동에 근거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상상력을 이성의 도구로 이해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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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분명히 이성의 일정한 개념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감정이

다. 하지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상상력이 이성에 적합해야 한다는 초감성적 사

명을 자각하면서 스스로에게 행사하는 강제력을 바탕으로 느껴지는 쾌의 감정이라

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상상력이 이성의 요구를 초감성

적 사명으로서 수용하고 그러한 사명에 대한 존경과 함께 마음이 한껏 고양되면서

느껴지는 쾌의 감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때 상상력이 자기 자신에게 부과하는 강

제력은 결국 이성의 요구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숭고한 것에 대한 만족은 이성의 이념에 의한 규정 없이 상상력의 자기

활동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이면서도, 한편으로 상상력이 이성의 이념과의 관계 속

에서 감성에 대한 이성의 우월성을 겸허히 수용하면서 느껴지는 감정이기도 하다.

칸트가 상상력을 ‘이성과 이성 이념의 도구’(KU , B117)라고 말하고 있음을 고려해

본다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상상력의 자기 활동에 근거한 쾌감이지만 결과적

으로는 이성의 이념에 의해 감성이 규정되면서 느껴지는 쾌감과 유사한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이성의 개념에 의해 규정된 감정이 아니

라는 점에서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즉 도덕적 감정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그렇지만 숭고의 감정과 도덕적 감정은 공통적으로 우리 자신이 감성적 존재를 넘

어 초감성적 능력을 지닌 이성적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숭고의 감정에서나 도덕적 감정에서나 우리는 이성이 감성에게 가하는 강제력을 느

끼는 것이다.183) 이런 관점에서 숭고의 감정을 느끼는 마음의 상태는 도덕적 감정을

느끼는 마음의 상태와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칸트는 이러한 유사성을 토대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도덕적 감정의 소질

(KU , B112)과 관련시키고자 한다. 단적으로 선한 것의 이념, 즉 도덕적 이념이 주

관을 규정하면서 일으켜지는 감정이 바로 도덕적 감정이고, 비록 무규정적이지만

이성의 이념과 주관적으로 관계하면서 일으켜지는 감정이 바로 숭고의 감정이기 때

문에 양자의 감정은 모두 이성의 이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인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

정의 상태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이성의 이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감정이

기 때문이다. 칸트는 “숭고한 감정에 젖어들려면, 사람들은 마음을 이미 여러 가지

이념들로 가득 채워놓았어야 한다”(KU , B77), “숭고한 것의 감정에 대한 마음의 정

조는 이념들에 대한 마음의 감수성을 필요로 한다.”(KU , B110)고 말하면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이성의 이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강조한다. 앞에서 칸트가 숭

183) “숭고한 것은 항상 사유방식과, 다시 말해 지성적인 것과 이성이념들에게 감성에 대한 지배권을

부여하는 준칙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어야만 한다.”(KU, B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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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 것에서의 쾌감을 이성논변적인 관조의 쾌감이라 부른 것은 이러한 이성 이념

과의 밀접한 관련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이

성의 이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이 때 이성의 이념은 전적으로 무규정적인 것

일 뿐만 아니라 주관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자기 활동을 통

해 간접적으로만 드러나는 것이기에,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도덕적 감정과 곧바

로 연결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

의 만족과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도덕적 감정 사이의 유사성과 상호 관련성을 강

조하고자 노력한다.

(1) 어떤 사물을 숭고하다고 판정할 때는 상상력은 이성과 관련하여 그 이념들과

(어떤 이념인가는 규정하지 않은 채로) 주관적으로 합치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 일정

한 (즉 실천적인) 이념들이 감정에 영향을 미쳐 일으키게 되는 그런 마음의 정조에

맞고 그와 화합할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의 정조를 만들어내도록 한다.(KU , B94-95)

(2) 도덕적 감정은, 그것이 그 순수함을 잃지 않고서, 의무로부터의 행위의 합법칙

성을 동시에 미감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 숭고한 것으로서, 또는 미적인 것으로서 표

상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한에서, 미감적인 판단력과 그리고 그것의 형식적 조건

들과 친화적인 것이다.(KU , B114)

(3) 지성적인, 그 자체로 합목적적인(도덕적) 선은 미감적으로 판정하면 아름답다

기 보다는 오히려 숭고하다고 표상되지 않으면 안 되며, 그래서 그것은 사랑과 친밀

한 애호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매력을 경멸하는) 존경의 감정을 일깨우는 것이라는 것

이다.(KU , B120)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숭고의 감정과 도덕적 감정의 유사성을 조금 다르게 설명

하려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에서는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에서 불러일으

켜지는 감정의 상태가 실천적 이념이 주관에 영향을 미쳐 불러일으켜진 도덕적 감

정의 상태와 유사함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2)와 (3)에서는 도덕적 감정이 도덕적

선(즉 의무로부터의 행위의 합법칙성)을 미감적으로 숭고하다고 표상하는 것과 관

련된 것으로서 미감적 판단력과 친화적인 감정임을 말하고 있다. (1)에서는 숭고의

감정에서 시작하여 도덕적 감정과의 유사성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고, (2)와 (3)에서

는 도덕적 감정에서 시작하여 숭고의 감정과의 유사성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이

러한 칸트의 설명에서 두 감정 사이의 명확한 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두 감정 모두 우리 안에 감성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초감성적 능력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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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각과 함께 실천적 관점에서 마음이 고양됨을 의식하면서 느껴지는 감정과 관

련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칸트는 숭고의 감정과 도덕적 감정이 분명하

게 구분되는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숭고의 감정이 도덕적 토대를 갖고 있음을 말하

면서 두 감정 사이의 밀접한 상호 연관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성논변적인 관조의 쾌감으로서 자연의 숭고한 것에 대한 쾌감은 물론 보편적 참

여[공감]에 대한 요구주장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미 하나의 다른 감정, 곧 그의

초감성적 규정[사명]의 감정을 전제로 한다. 이 감정은, 아주 애매하다고 할지라도, 도

덕적 토대를 갖는 것이다.(KU , B154)

여기서 칸트는 숭고한 것에 대한 쾌감과 관련하여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알

려주고 있다. 첫째는 숭고한 것에 대한 쾌감이 보편적 참여[공감]에 대한 요구주장

을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숭고한 것에 대한 쾌감이 이미 초감성적 사명의 감정이

라는 하나의 다른 감정을 전제로 하는데, 이 감정은 아주 애매하지만 도덕적 토대

를 갖는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사실에서 칸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숭고한 것에서

의 쾌감이 보편적 전달 가능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은 ‘숭고의

분석학’의 서두에서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공통점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언급

한 것으로서, 숭고한 것에서의 쾌감이 미감적 반성판단을 전제하고 있고 주관의 인

식능력들, 즉 상상력과 이성 사이의 합목적적 관계에 근거하고 있는 감정이라는 점

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칸트는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숭고한 것에서의 쾌감

이 도덕적 감정과 관련될 수 있음을 말하면서 이러한 쾌감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요

구할 정당한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두 번째 사실에서 칸트가 “이

감정은 아주 애매하다고 할지라도 도덕적 토대를 갖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러한 칸트의 관점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숭고한 것에서의 쾌

감은 이성에 의해 선험적으로 규정된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도덕적 감정과 동일한

수준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닐 수는 없다. 그래서 칸트는 곧바로 다음과 같이 말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이 감정을 고려하여, 자연이 황량한 크기를 바라보면서 만

족을 느낄 것이라는 것을, -진정 이러한 만족은 오히려 위협적인 그러한 광경에 귀속

시킬 수 없다- 나는 단적으로 전제할 권리가 없다.(KU , B154)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적 토대를 갖는 감정으로서 도덕적 감정과 친근한

감정이지만 선험적인 이성 개념에 의해 규정된 감정으로서의 도덕적 감정과 동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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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비록

애매하지만 도덕적 토대를 지닌 감정이라는 점에서 도덕적 감정의 소질과 연결될

수 있다면, 그러한 만족은 누구에게나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지고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당한 기연이 있을 때마다 저러한 도덕적 소질들이 고

려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저러한 만족도 누구에게나 감히 요구할 수 있다.184) 그러

나 나는 오직 그 자신 다시금 이성의 개념들 위에 기초되어 있는 도덕법칙을 매개로

해서 그리할 수 있을 따름이다.(KU , B154)

이러한 주장을 통해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도덕적 토대를 지니고 있으

며 또한 도덕적 소질과 관련된 감정이라는 점에서 도덕적 감정과 공유하는 측면이

강하고, 그런 한에서 도덕적 감정이 근거하고 있는 ‘이성의 개념들 위에 기초되어

있는 도덕법칙’과도 간접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칸트 스스로가

표현한대로 비록 ‘아주 애매하다고 할 수 있지만’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도덕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정으로 간주하면서 이러한 만족

의 보편적 전달 가능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것은 “숭고한 것의 감정에 대한 마음

의 정조는 이념들에 대한 마음의 감수성을 필요로 한다”(KU , B110)고 말하면서 진

정한 숭고함을 우리 마음 안에 놓여 있는 초감성적 이념과의 관련 속에서 찾고자

했던 칸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제법 길게 논의한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숭고한 것, 단적으로 선한 것

과 쾌의 감정, 즉 만족과의 관계를 아래의 <표-7>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

다.

184) 칸트가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이 지니는 보편성과 필연성을 도덕적 감정의 소질과 관련시키고

있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판단(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은 인

간의 자연본성에 그 토대를 두며, 그것도 사람들이 건전한 지성[상식]을 가지고서 동시에 누구에

게나 강요할 수 있고 요구할 수 있는 것에서, 곧 (실천적) 이념들에 대한 감정의 소질, 다시 말해

도덕적 감정의 소질에서 갖는다.(KU, B111-112),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의 경우에는 판단력이

상상력을 이념들의 능력인 이성과 관계시키므로, [우리는 감정을-연구자 삽입] 단지 주관적 전제

아래서만 -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전제를 모든 사람에게 요구해도 좋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믿는다- 곧 인간 안의 도덕적 감정을 전제해서만 요구하며, 또 이렇게 함으로써 또한 이 미감적

판단에 필연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KU, B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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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7> 네 가지 만족의 성격185)

위의 <표-7>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쾌적한 것, 미적인 것, 단적으로 선한 것에

서의 만족은 각각 향수의 쾌감, 순전한 반성의 쾌감, 법칙적 활동의 쾌감에 대응되

185) <표-7>은 칸트가 ‘미의 분석학’에서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좋은[선한] 것과 만족 사이의 관계

를 논한 것을 연구자가 정리한 <표-5>의 형식과 내용을 반영하여 다시 정리한 것이다. <표-7>은

<표-5>에서와 마찬가지로 행복과 관련된 의미를 고찰해보기 위한 것으로, 특히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행복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미

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행복과 연관시켜 해석해보고자 하는 것은 칸트가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좋은 것에서의 만족을 종적으로 구분하면서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을 모든 경향성의 최

대한의 충족으로서의 행복과 관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러한 행복은 이성의 관점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간접적으로 미적인 것과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이 쾌

적한 것에서의 만족과는 다른 차원의 행복과 관련됨을 드러내고자 한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마찬가지로 미감적 반성판단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쾌적한 것에서의 만

족과 확연히 구분될 뿐만 아니라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도 구분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에 대응하는 행복이 존재할 수 있음은 충분히 가능하고 기대할 수 있다고 본

다.

쾌감(만족)의

대상

구분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숭고한 것단적으로

선한[좋은] 것

판단 감관판단 미감적 반성판단 미감적 반성판단 지성적 판단

판단력 (감각적 판단력)미감적․반성적

판단력

미감적․반성적

판단력

지성적․규정적

판단력

쾌감(만족)향수의 쾌감

(감각적 만족)

순전한 반성의

쾌감

(미감적 만족)

이성논변적

관조의 쾌감

(미감적 만족)

법칙적 활동의

쾌감

(지성적 만족)

쾌감(만족)

과 관련된

감정

경향성

(쾌적한 감정)

호의

(자유로운 만족,

무관심한 만족)

미감적 감정

숭고의 감정

(감동, 존경,

경탄, 마음의

고양[교화]을

포함하는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정)

존경

(도덕적 감정)

쾌감(만족)

의 보편적

전달 가능성

없음 있음 있음 있음

행복의 성격경향성의 충족과

관련된 행복

호의(자유로운

만족)와 관련된

행복

숭고의 감정과

관련된 행복

존경(도덕적

감정)과 관련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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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구분되는데, 이러한 구분은 칸트가 ‘미의 분석론’에서 논의했던 바와 동일하다.

그래서 연구자는 이미 Ⅳ-1-(3)에서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을 모든 경향성의 최대한

의 충족과 관련되는 감성적 행복에,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을 호의, 즉 자유로운 만

족과 관련된 행복에, 좋은[선한] 것에서의 만족을 존경이라는 도덕적 감정과 관련된

행복에 각각 대응시켜 논의를 전개시켜 나갔다.

그렇다면 칸트가 쾌의 감정, 즉 만족과 관계하는 또 하나의 대상으로 제시한 숭

고한 것에서 느끼는 만족은 어떠한 행복에 대응될 수 있으며, 그러한 행복의 의미

는 무엇일까? 이것은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갖는 고유한 특성과 연결되는 것으로

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쾌적한 것, 미적인 것,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과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한 앞의 논의에서 자연스럽게 이끌어 낼 수 있다. 우선 숭

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기본적으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이 지니는 특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과 전적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표-7>에서 확

인할 수 있는 것처럼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이 감관판단을 전제로 하는 반면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만족은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에 바탕을 둔 미감적 반성판단을 전

제로 하는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적

인 것에서의 만족과 마찬가지로 경향성의 최대한의 충족과 관련되는 쾌적한 것에서

의 만족, 즉 감성적 행복과는 다른 차원의 행복과 관련된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다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도 구분되는 데, 칸트는 전

자를 ‘이성논변적 관조의 쾌감’으로 후자를 ‘순전한 반성의 쾌감’으로 간주하면서 이

러한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순전한 반성의 쾌감으로서 무

관심한 만족, 즉 자유로운 만족을 그 핵심적 특징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미

적인 것에서의 만족에 대응될 수 있는 행복을 좀 더 명확히 규정해 볼 수 있는 기

회를 갖게 된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이 순전한 반성의 쾌감일 수 있는 것은 그것

이 반성적 판단력에 바탕을 둔 미감적 반성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

극적인 방식으로나마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을 감성적 행복과 구분하면서도 미감적

반성판단에 근거하고 있음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미감적 행복186)’에 대응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이성논변적 관조의 쾌감으로서 초감

성적 이성 이념과의 관계 속에서 일으켜지는 감동, 존경, 경탄, 마음의 고양과 같은

숭고의 감정이라는 점에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구분된다. 특히 숭고한 것에서

의 만족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앞서 논의한 바대로 그러한 만족이 실천적 이념에

186)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칸트는 ‘미감적 판단’을 미감적 반성판단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을 ‘미감적 행복’에 대응시키더라도 그 핵심적 특성을 드러내는 데 곤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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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해 주관이 규정되면서 느껴지는 감정, 다시 말해 도덕 법칙에 의해 주관이 규정

되면서 느껴지는 감정인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정의 상태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다. 칸트는 “도덕적 선을 미감적으로 판정하면 아름답다기보다는 오히려 숭고하다

고 표상되지 않으면 안 된다”(KU , B120)고 말함으로써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과 단

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의 친화적 관계를 강조하고자 한다. 이처럼 칸트는 숭고

한 것에서의 만족이 갖는 도덕적 성격을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인 도덕적 감

정과의 친근 관계 속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에 대응하는 행복

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을 어떤 행복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칸트는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을 ‘법칙적 활동의 쾌

감’으로 규정한다. 이 쾌감은 행위의 도덕적 성질, 즉 자신의 행위가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로부터 이루어졌다는 의식에서 느끼는 도덕적 감정이다. 이 도덕

적 감정은 자신의 도덕적 행위 속에서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의 감정으로서 느끼는

쾌감이다. 또한 이 도덕적 감정은 실천적 이성개념에 기초한 감정이기 때문에 누구

에게나 보편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

족은 도덕적 행위를 통해,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가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됨을 통

해 느껴지는 ‘법칙적 활동의 쾌감’이라는 점에서 ‘도덕적 행복’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다.187)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즉 도덕적 감정은 곧 도덕 법칙에 대한 존

경의 감정이다. 칸트가 도덕 법칙을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지성적 만족의 대상”이라

고 말하는 것에서(KU , B120),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됨을 통해 느껴지는 ‘법칙적

활동의 쾌감’은 결국 지성적 만족이라고 볼 수 있다.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이 규정적 판단력에 바탕을 둔 지성적 판단을 전제한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만족을 지성적 만족과 연결시키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지

성적 판단에 근거한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을 도덕적 행복에 대응시키고, 미

감적 반성판단에 근거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을 미감적 행복에 대응시킨 것은 타

당한 규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다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 보자.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역시 개념에 의한 규정 없이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을 통해 느껴지는 쾌감이

며, 일체의 관심에서 벗어난 무관심한 만족, 즉 자유로운 만족이다. 이것은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공유하는 특성인데, 두 만족 모두 반성적 판단력에 바탕을 둔 미

감적 반성판단을 전제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187) 연구자는 4장에서 논의하게 될 최고선의 구성요소로서의 행복이 이러한 ‘도덕적 행복’의 성격을

가질 것임을 염두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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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자유로운 만족으로서의 ‘순전한 반성의 쾌감’으로만 이해될 수 없는 감정이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상상력이 이성 이념을 실현하라는 이성의 요구를 초감성적

사명으로 받아들이면서 느끼는 감정, 우리 자신이 자연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

힘을 지닌 존재임을 자각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인간 안에 존재하는 초감성적 이성 능력에 대한 존경의 감

정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인간은 감성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함으로써

감성이 이성의 강제력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인간 본성에 맞는 사유방식으로 의

식하게 해 준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은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즉 도덕적 감정에서 기대할

수 있는 특성과 유사하다. 왜냐하면 도덕적 감정은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의 감정

으로서, 이성이 감성적 주관을 규정하면서 다시 말해 이성이 감성에 강제력을 가하

면서 느껴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덕적 감정도 인간이 비록 감성적 존재

이지만 실천 이성의 명령, 즉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는 이성적 존재자이기 때문에

감성에 대한 이성의 강제력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인간 본성에 맞는 사유방식으

로 의식하게 해 줄 수 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유사한 사유방식은 칸트가 왜

그렇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과 유사한 감정의 상

태를 지닌다는 것을 강조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숭고한 것은 항상 사유방식과, 다시 말해 지성적인 것과 이성이념들에게

감성에 대한 지배권을 부여하는 준칙들과 관계를 갖는 것이어야만 한다.”(KU ,

B124)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과 단적으로 선한 것

에서의 만족이 유사한 사유방식에 기초하는 유사한 감정의 상태일 수 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칸트가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이성논변적인 관조의 쾌감으로서 아주

애매하다고 할지라도 도덕적 토대를 갖는 초감성적 사명의 감정을 전제로 하는 감

정이라고 말한 것(KU , B154)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을 바탕으로 한 미

감적 반성판단에서 느껴지는 반성의 쾌감이면서도, 이성 이념과의 관계 속에서 느

껴지는 ‘도덕적 토대를 지닌 초감성적 사명의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마치 도덕적 이념에 의해 규정된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정의 상

태를 우리 마음에 일으키게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덕적 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정의 상태가 미감적

방식으로, 즉 이성 이념에 의해 주관이 규정되는 지성적 방식이 아니라 반성적 판

단력의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 우리 마음에 일으켜지면서 느끼는 만족이라는 점에

서 ‘미감적․도덕적 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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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갖는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본다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

족은 ‘미감적․도덕적 행복’에 대응시킬 수 있다. 단,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미감

적․도덕적 행복’에서 말하는 ‘도덕적 행복’은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과 관련

되는 ‘도덕적 행복’이 아니라 ‘미감적으로 접근되는 도덕적 행복’으로 이해해야 한다

는 점이다. 왜냐하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적 이념에 의해 규정된 도덕적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일체의 도덕적 관심 없이도 단지

자연의 대상에 대한 미감적 반성판단에서 느낄 수 있는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

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비록 도덕적 감정과 동일하지는 않

더라도 이와 유사한 감정의 상태를 마음에 일으킬 수 있다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

족은 적어도 우리의 마음이 도덕적 감정을 친화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준비하는 역

할을 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행복과 관련하

여 가질 수 있는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우리가

자연의 대상에 대한 미감적 반성을 통해서 도덕적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엄청난 크기와

위력을 지닌 자연 앞에서 그들이 그동안 높은 가치를 부여해왔던 부, 명예, 권력 등

과 같은 세속적 대상들을 하찮은 것들로 간주하려는 마음을 느끼면서 좀 더 도덕적

으로 살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188) 이처럼 숭고한 것에

서의 만족을 통해 마음이 고양되고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에 놓이게 되

는 모습을 칸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기발하게 높이 솟아 마치 위협하는 것 같은 암석, 번개와 천둥소리와 함께 몰려오

188) 물론 칸트는 “숭고의 감정에 젖어들려면, 사람들은 마음을 이미 여러 가지 이념들로 가득 채워

놓았어야만 한다”고도 말하고(KU, B77), “도덕적 이념들의 발전이 없으면, 문화에 의해 준비가 된

우리가 숭고하다고 부르는 것이 미개인에게는 한낱 겁먹게 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KU,

B111)라고 말함으로써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가능하려면 이념, 특히 도덕적 이념의 도야가 전제

되어야 함을 나타내고자 한다. 칸트가 만약 여기까지만 언급했다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보편

적 전달 가능성을 요구할 수 있는 쾌감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단지 도덕적 이념을 풍부하

게 도야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사적 감정에 그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

의 만족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보다 도덕적 이념의 발전에 기여하는 문화를 더 많이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자연본성, 즉

도덕적 감정의 소질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보편성과 필연성을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다고 본

다. 이에 대해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연이 숭고한 것에 관한 판단이 (미적인 것에

관한 판단보다도 더) 문화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이 판단이 바로 문화로부터 처음으로 산출되거나

가령 한낱 인습적으로 사회에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판단은 인간의 자연본성에 그 토

대를 두며, 그것도 사람들이 건전한 지성[상식]을 가지로서 동시에 누구에게나 강요할 수 있고 요

구할 수 있는 것에서, 곧 (실천적) 이념들에 대한 감정의 소질에서, 다시 말해 도덕적 감정의 소질

에서 갖는다.”(KU, B111-112)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적 이념을 도야

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왜 칸트의 진정한 의도에 적

합하지 않은지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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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하늘 높이 솟아오른 먹구름, 온통 파괴력을 보이는 화산, 폐허를 남기고 가는 태

풍, 파도가 치솟은 대양, 힘차게 흘러내리는 높은 폭포와 같은 것들은 우리의 저항하

는 능력을 그것들의 위력과 비교할 때 보잘것없이 작은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

가 안전한 곳에 있기만 하다면, 그런 것들의 광경은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더욱더 우

리 마음을 끌 뿐이다. 우리가 이러한 대상들을 기꺼이 숭고하다고 부르는 것은, 그것

들이 영혼의 힘을 일상적인 보통 수준 이상으로 높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자연의 외

견상의 절대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저항하는 능력을

우리 안에서 들춰내주기 때문이다.(KU , B104)

이것이 바로 자연의 숭고한 것에서 우리가 어떻게 만족을 느끼는지에 대한 칸트

의 이해 방식이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적 관심과는 무관한 만족이며, 도덕

적 이념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만족이기 때문에 결코 도덕적 의도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될 수는 없다. 하지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초감성적 사명에 대

한 존경의 감정에 기초하는 쾌감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

의 상태로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숭고한 자연과의 만남에서 느

끼는 만족은 우리 마음을 도덕적 감정에 친화적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도덕적 행복

에도 눈을 뜨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적 개

념에 기초하지 않으면서도 미감적 방식을 통해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

로 접근해 가는 쾌감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만족을 ‘미감적․도덕적 행복’에 대응시

킬 수 있다. 미감적․도덕적 행복으로서의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적 의도와

목적을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미감적 방식으로 도덕적 감정과 친화적

인 상태에 놓이게 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만족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도덕적 차원

의 행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다.

지금까지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숭고한 것,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을 구분

하는 칸트의 논의를 살펴보면서 각각의 만족의 특성에 따라 행복을 대응시켜 보았

다. 이것을 아래의 <표-8>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표-8> 네 가지 만족의 성격과 행복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은 모든 경향성의 최대한의 충족에서 느끼는 쾌의 감정으

만족 만족의 성격 행복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 향수의 쾌감 감성적 행복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 순전한 반성의 쾌감 미감적 행복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이성논변적 관조의 쾌감 미감적․도덕적 행복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법칙적 활동의 쾌감 도덕적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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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감성적 행복에 연결시킬 수 있다. 반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경향성과 같

은 일체의 관심을 배제한 채 대상에 대한 순전한 반성에서 느끼는 쾌의 감정으로서

미감적 행복에 연결시킬 수 있다. 그리고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같이 대상에 대한 순전한 반성 과정을 포함하면서도, 이성 이념과의 관계

속에서 도덕적 토대를 갖는 초감성적 사명을 의식하면서 느끼는 쾌의 감정으로서

미감적․도덕적 행복에 연결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

족은 도덕 법칙에 의해 의지가 규정되면서 행해진 도덕적 행위에서 느끼는 쾌의 감

정으로서 도덕적 행복에 연결시킬 수 있다.

이렇게 각각의 만족에 행복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첫째, 칸트가 쾌적한 것, 미

적인 것, 숭고한 것, 단적으로 선한 것을 종적으로 다른 쾌의 감정, 즉 만족과 관련

지으려 했다는 점과, 둘째, 이런 과정에서 칸트가 쾌적함의 최대량으로 이해되는 행

복은 단적으로 선한 것의 관점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는 점에 근거

하고 있다. 칸트가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숭고한 것,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을 종적으로 구분하려 한 것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것을 쾌적한 것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 그리고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쾌적한 것에

서의 만족을 행복으로 간주하면서 단순히 쾌적함을 즐기기 위해 사는 것 자체에 가

치를 두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칸트의 인간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은 제각기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면서 우리에게 감성적 행복과는 다른 차원의 행복

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아름다운 대상과의 순수한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미감적 행복이 있음을 알게 해 주고,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은 숭고한 대상과의 엄숙한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미감적․도덕적 행복이 있음을

알게 해 주며,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 법칙에 따르는 도덕적 행위에

서 느낄 수 있는 도덕적 행복이 있음을 알게 해 준다. 특히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은 도덕성과 관련한 선험적 이성 개념에 기초하지 않는 미감적 판단을 바탕으로 하

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도덕적 감정과 친화적인 상태로 만들어 줌으로써 도덕적 행

복을 전망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 비록 칸트는 미감적 판단과 지성적 판단에

서의 만족을 확연하게 구분하려 하고 있지만1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고한 것에서

189)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감적 판단을 바탕으로 하고,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지성적

판단(도덕 판단)을 바탕으로 한다. 칸트는 미감적 판단력에 의한 판단과 지성적 판단력에 의한 판

단을 확연하게 구분하면서 그에 따른 만족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한갓된 미감적 판단력이

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바, 이 능력은 개념 없이도 형식들에 관해 판단하고, 그러한 형식들의 순

전한 판정에서 만족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그러한 만족을 우리는 동시에 누구에게나 규칙으로 삼

는데, 이러한 판단은 어떤 관심에 기초하지도 않고, 어떤 관심을 만들어내지도 않는 것이다.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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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만족은 ‘도덕적 감정과의 친근성’을 매개로 우리의 마음을 도덕적 행복으로 접근

하게 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미감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마

음을 도덕적 행복에도 눈뜰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한에서, 우리가 숭고한 것에

서의 만족을 ‘미감적․도덕적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충분히 타당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해 두어야 할 점이 있다. 칸트는 ‘순수 미감적 판단들의 연역’이

시작되는 §30항 이후부터는 숭고한 것에 대한 논의를 독립적으로 전개하지 않고,

취미, 즉 미적인 것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해 나간다.190) 이것은 사실 칸트가

한편 우리는 또한 지성적 판단력이라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바, 이 능력은 (실천적 준칙들이 스스로

보편적 법칙수립의 자격을 가지는 한에서) 실천적 준칙들의 순전한 형식들에 대하여 만족을 선험

적으로 규정하는 능력이다. 그러한 만족을 우리는 누구에게나 법칙으로 삼는데, 이러한 우리의 판

단은 어떠한 관심에도 기초하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떤 관심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전자의

판단에서의 쾌 또는 불쾌는 취미의 쾌․불쾌라고 일컫고, 후자의 것은 도덕 감정의 쾌․불쾌라고 일컫

는다.”(KU, B168-169) 칸트는 여기서 미감적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미감적 판단에서의 만족을

취미판단에서의 쾌, 즉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에 연결시키고, 지성적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지성적

판단에서의 만족을 도덕 감정의 쾌, 즉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에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미감적 판단은 ‘어떤 관심에 기초하지도 않고, 어떤 관심을 만들어내지도 않는다’고 말하면서 미감

적 판단의 무관심성을 강조한다. 반면 지성적 판단은 ‘어떤 관심에 기초하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떤 관심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지성적 판단이 관심과 관련이 있음을 강조한다. 칸트

는 “이성은 도덕 감정에서 이념들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이 생기게 한다”(KU, B169)말하고 있기

때문에 지성적 판단이 만들어내는 관심이란 도덕적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

이 일체의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무관심한 만족이라는 점,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이 도덕

적 이념에 의해 규정된 도덕적 감정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칸트의 이러한 구분은 명확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구도 속에서 우리 논의의 초점인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어디에 위치시킬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감적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미감적

판단을 근거로 한 만족이라는 점에서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동일하다. 그렇지만 숭고한 것에

서의 만족은 ‘관심을 만들어 낸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초감성적 사명의 감정’을 통해 도덕적 감

정에 친화적인 마음의 상태로의 이행을 이끌어 낸다고는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적 관심과 유사한 형태의 관심’과 관련된 것으로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는 구분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즉 도덕적 감정은 지성적 판단

력을 바탕으로 한 지성적 판단을 근거로 한 만족이라는 점에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과 분명히 구

분되지만, 도덕적 감정에 친화적인 유사한 마음의 상태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만족 간의

‘특수한 관련성’을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연구자가 이해한 관점에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

족을 위의 인용문에 정합적으로 위치시키고자 한다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어떠한 관심에도

기초하지 않는 미감적 판단에 근거하면서도 ‘도덕적 관심과 유사한 관심’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

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칸트의 논리 속에서는 모순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칸트는 ‘어

떤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은 지성적 만족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미감적 만족과 합일하기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KU, B120) 하지만 연구자의 긴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러한 구분

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도덕적 감정과 관련되는 감정임을 계속해서 드러내

고자 한다. 칸트의 이러한 노력을 고려해볼 때 연구자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갖는 개념에 대

한 논리적 이해에 초점을 두기보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통해 칸트가 드러내고자 하는 궁극적

의도에 대한 해석에 초점을 두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한다. 이런 관점에서 연구자는 칸트가 숭고

한 것에서의 만족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우리의 마음을 미감적 방식으로 도덕적 행복에

접근시키는 것’에 있다고 보고, 이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 논의를 전개한 것이다.

190) 칸트는 “자연 대상들에 관한 미감적 판단들의 연역은 자연에서 우리가 숭고하다고 부르는 것을

지향할 필요는 없고, 단지 미적인 것을 지향하면 된다.”(KU, B131)고 말하면서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은 연역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미에 관한 판단들의 연역에만 집중할 것임을 밝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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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미 표명한 ‘매우 긴요한 예비적 주의’, 즉 ‘숭고한 것을 위한 근거는 우리 밖

의 대상에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 안의 사유방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KU , B78)을

고려한다면 자연스러운 논의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숭고한 것의 고유한 영

역을 형성하는 근거를 인간 내면의 이성 이념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의 연역을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숭고한 것에 대한 이론을 자연의

합목적성에 대한 미감적 판정의 한낱 부록”(KU , B78)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렇지만

연구자는 앞서(Ⅳ-2-(1)) 언급한대로, 그러한 칸트의 주장이 숭고한 것에 대한 이론

이 미적인 것에 대한 이론보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함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

만 숭고한 것에 대한 판정 능력이 미적인 것의 판정능력으로부터 이행되는 것임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해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이 공통적으로 반성적 판단력에 바탕을 둔 미감적 판단이라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은 자연의 대상을 전적으로 배제한 채 이성 이념

에 의해 규정되는 규정적 판단이 아니라, 자연의 대상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이성 이

념과 관계하는 반성적 판단이다. 결국 자연의 대상을 반성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

서 볼 때,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은 미감적 판단이라는 공통 지반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 주목해 본다면,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은 자연의 대상에 대한 반

성을 통해 자연의 합목적성을 발견해나가는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 경험과의 연속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미감적 판단 일반을 자연의

대상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인간 내면의 초감성적 이성 이념[또는 초감성적 기체]에

접근하는 경험적 과정이라고 본다면, 그리고 미적인 것에서의 판단보다 숭고한 것

에서의 판단에서 초감성적 이성 이념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면, 미적

인 것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을 하나의 미감적 판단 과정에서 연속적으로 이행하

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칸트가 ‘숭고의 분석학’을 시작하는 첫 항(§23)의 제목을

“미적인 것의 판정능력으로부터 숭고한 것의 판정능력으로 이행”이라고 명명한 것

의 의도를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연속성’의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칸트가 §30항

이후 미적인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추면서 미적인 것과 도덕성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

을 논의해 나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숭고한 것에 대한

논의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미감적 판단’이라는 공통 지반 위에서 미적인 것과

있다. 칸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연의 숭고한 것은 단지 비본래적으로만 그렇

게 불리는 것이며, [숭고한 것이란] 본래적으로는 한갓 인간의 자연본성에서의 사유방식[성향]에

만 또는 차라리 이 사유방식[성향]의 토대에만 부여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그래서 자연의 숭

고한 것에 관한 판단들에 대한 우리의 해설은 동시에 그에 대한 연역이었던 것이다.”(KU,

B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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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것에 대한 논의를 통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191) 그래

서 칸트가 “취미는 우리의 판정능력이 감관의 향수로부터 도덕감정[윤리감정]으로

이행함을 드러낼 것이다.”(KU , B164), “자연의 미에 대한 직접적[무매개적]인 관심

을 갖는 것은-한갓 그것을 판정하기 위해 취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항상 선한 영혼

의 표지라는 것과, 만약 이 관심이 습관적인 것이라면, 그것이 자연의 정관[靜觀]과

기꺼이 결합될 때, 그것은 적어도 도덕적 감정에 호의적인 마음의 정조를 가리킨

다.”(KU , B166), “미적인 것은 윤리적으로 선한 것의 상징이며, 그리고 또한 (누구

에게나 자연스럽고, 또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의무로서 요구하는 관계의) 이러한 관

점에서만 미적인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요구함과 함께 만족을 주는 것이

다.”(KU , B258), “취미는 근본에 있어서 도덕적 이념들의 감성화를(양자에 관한 반

성의 모종의 유비에 의해서) 판정하는 능력이다.”(KU , B263)라고 말한 것은 ‘미적

인 것과 숭고한 것의 연속성’의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미의 분석학’과 ‘숭고의 분석

학’의 논의와 모순됨이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면서 이를 도덕성과 관련시키려는 칸트의 생각을 아래의 설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1) 칸트는 미감적 판단, 즉 취미 판단에서 느끼는 감정의 보편적 전달 가능성을 설명하면서 ‘공통

감의 이념’과 ‘미감적 이념’을 언급하는 데, 이를 통해 미적인 것과 도덕성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최소인은 칸트가 미감적 판단(취미 판단)이 기초하고 있는 감정의 보편적 전달

가능성, 즉 미감적 판단의 주관적 보편성의 근거를 공통감과 미감적 이념에서 찾는다고 본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통감은 미감적 판단의 주관적인 판정원리라면, 미감적 이념은 -논리적 의

미에서가 아니라 미감적 의미에서- 객관적 판정원리라고 말할 수 있다. 미감적 이념이 미감적 의

미에서 객관적 근거일 수 있는 것은 미감적 판단이란 자연 대상에 대한 주관적 반성을 통해 우리

안에서 인간의 초감성적 토대(즉 도덕성)을 미감적으로 환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

다.……공통감은 자신의 사유 속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의 표상방식을 선천적으로 고려하는 판정

능력으로, 이 판정능력에 의해 우리는 사적 주관의 한계를 넘어서서 보편적 쾌, 혹은 전달가능한

쾌라는 공통적인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칸트에 의하면 공통의 감정은 오직 감각적인 자극

을 넘어선 도덕적인 토대와 연관될 경우에만 발생가능하다. 따라서 공통의 감정의 능력인 공통감

도 도덕성의 보편적 토대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 점에서 공통감은 미감적인 방식으로 -즉 감정의

보편성에 의해- 보편적인 도덕적 토대를 감지하고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최소인,「미

감적 이념과 공통감-미감적 판단의 주관적 보편성을 중심으로-」, 새한철학회,『철학논총』제68집

제2권, 2012, pp.459~460)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미감적 판단(취미 판단)의 주관적 보편성을 정당

화하기 위한 두 근거인 ‘공통감’과 ‘미감적 이념’은 모두 인간의 초감성적 토대, 즉 보편적인 도덕

적 토대와 관련되고 있다. 이것은 취미판단이 자연에 대한 반성을 통해 자연의 합목적성을 발견해

가는 과정에서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도덕적 토대를 의식하게 해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숭고한 것에서의 판단에서도 마찬가지로 경험할 수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칸트가 ‘미의 분

석학’에서 취미 판단을 도덕성과의 밀접한 관련성 속에서 논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는 상당히 ‘모순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칸트는 §17 ‘미의 이상에 대하여’를 논

의하면서 이러한 가능성을 이미 염두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취미판단을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까지 연속성 속에서 포괄하는 ‘미감적 판단 일반’으로 생각한다면 이러한 모순은 자연스

럽게 해소되고 말 것이다. 연구자는 이렇게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을 자연에 대한 반

성에서 연속적으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 칸트의 의도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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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인 것은 일체의 관심을 떠나 만족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숭고한 것은 감관의

관심에 저항함으로써 직접적으로 만족을 주는 것이다. 이 둘은 미감적인 보편타당한

판정에 대한 설명으로서 주관적 근거들에 관계하고 있다. 곧 한편으로는 관조적 지성

에 호의적인 한에서 감성의 주관적 근거들에 관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성에 거슬

리되 실천 이성의 목적들에 우호적인 주관적 근거들에 관계한다. 그러면서도 양자가

동일한 주관에서 합일하면, 도덕적 감정과의 관계에서 합목적적이다. 미적인 것은 어

떤 것을, 자연까지도 이해관심을 떠나 사랑하도록 우리를 준비시키고, 숭고한 것은 그

것을 우리의 (감성적) 이해관심을 거슬러서까지도 존중하도록 준비시킨다.(KU , B115)

위의 인용문을 행복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다시 표현해 볼 수 있다. 미적인

것은 일체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만족을 줌으로써, 우리에게 경향성의

충족이라는 감성적 행복과는 다른 차원의 행복, 즉 ‘미감적 행복’을 느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숭고한 것은 감관의 감성적 관심에 저항하고 우리 안의 초감성적 능

력을 존경하는 상태에서 만족을 줌으로써, 우리에게 미감적 행복과 더불어 도덕적

행복에도 마음을 열 수 있는 ‘미감적․도덕적 행복’을 느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렇지만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이 동일한 주관에서 합일한다면, 둘 다 도덕적 감

정과의 관계에서 합목적적일 수 있다.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은 별개의 것이라기보

다 동일한 주관에서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을 통해 포괄될 수 있는 것으로서 도덕적

감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이

모두 반성적 판단력에 바탕을 둔 미감적 판단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자연의 대

상은 그 대상에 대한 반성의 깊이와 섬세함에 따라 ‘미적인 것’으로도, ‘숭고한 것’으

로도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이 결합된 것’으로도 표상될 수 있다. 미적인 것보다

숭고한 것에서 도덕적 감정과의 강한 관련성을 발견하고자 한 칸트의 관점을 고려

해 본다면, 자연에 대한 반성은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을 숭고한 것에 대한 판단으

로 이행하게 하면서 우리 안의 초감성적인 도덕적 토대와 만날 수 있도록 해 준다

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감적․도덕적 행복’으로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감적 행복’을 ‘도덕적 행복’으로 접근하게 해 주는 ‘매개적 역할’을 해 준

다고 볼 수 있다.192) 그리고 이 때의 ‘미감적․도덕적 행복’은 ‘미감적 행복’의 습관

화가 바탕이 될 때 좀 더 자연스럽게 접근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감적․도

덕적 행복’은 기본적으로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칸트의『판단력비판』에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

에서의 만족’이 ‘미감적 행복’과 ‘미감적․도덕적 행복’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 두

192) 이러한 연구자의 견해는 기본적으로 “숭고의 감정을 통해 미는 도덕과 연결되며, 이러한 관점에

서 미는 도덕의 상징이다.”(한자경(2006), 앞의 책, p.188 참조)라는 관점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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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만족이 결국 ‘도덕적 행복’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칸트는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 행복을 ‘도덕적 행복’에

서 찾고자 한다. 이 때의 ‘도덕적 행복’이란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을 의

미하는 것으로서, 칸트는 이를 최고선의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최고선의 개념 안에서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으로 이해되는

‘도덕적 행복’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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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칸트의 최고선과 행복

1.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

칸트는『실천이성비판』에서 순수 실천 이성 분석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행

복론과 도덕론의 구별, 즉 행복의 원리와 도덕성의 원리의 명확한 구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KpV, A165) 순수 실천 이성은 의지의 타율에 기초한 행복의 원리를

의지의 규정 근거에서 전적으로 배제하고, 의지의 자율에 기초한 도덕성의 원리만

을 유일한 의지의 규정 근거로서 받아들이면서, 이를 도덕의 최상 원칙으로 인정하

고자 한다. 이처럼 도덕성과 행복은 의무와 경향성의 관계처럼 상호 대립적인 관계

에 놓여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한편으로 칸트는 도덕성과 행복을 명확히

구별하는 것을 도덕성과 행복을 대립시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순수 실천 이성은 행복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무가

문제가 될 때는 행복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KpV, A166)

순수 실천 이성은 의무가 문제가 될 때, 즉 도덕성이 문제가 될 때 행복을 전

적으로 배제하려는 것이지 행복에 대한 요구 자체를 무시하지 않는다. 여기서 칸트

가 강조하려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도덕성을 정초하는 문제에 있어서 의지를 직

접적으로 규정하는 근거는 결코 행복이 될 수 없으며 오직 도덕 법칙만이 가능하다

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가 도덕성을 일체의 경험적인 ‘행복의 원리’로부터 독립하여

오직 도덕 법칙만이 의지의 직접적 규정 근거가 되는 데에서 찾고 있다는 점을 감

안해 볼 때, ‘순수 실천 이성은 의무가 문제가 될 때 행복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는 칸트의 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순수 실천 이성의 진정한 동기

는 순수한 도덕 법칙 자신이며(KpV, A158), 결코 행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순수 실천 이성이 행복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고자 하

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칸트의 이러한 생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은 순수 실천 이성이 도덕성과 함께 행복까지도 자신의 관심의 대상으로 삼으

려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순수 실천 이성은 도덕성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연 본성상 필연적으로 추구하려고 하는 행복에 대해서까지도 도저

히 무관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칸트의 관점에서 행복을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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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실천 이성의 직접적인 대상, 즉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행복이 순수 실천 이성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다는 것은 결국 행복이 도덕 법칙에

앞서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일체의 ‘의지의 타율’을 생

겨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지의 자율에 기초하여 ‘도덕 법칙에 의해 직접적으

로 규정된 의지’, 즉 ‘선의지’를 세우려는 것을 자신의 진정한 사명으로 삼는 ‘순수

실천 이성’의 관점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순수

실천 이성의 본래적 사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행복을 순수 실천 이성의 대상,

즉 목적으로 안전하게 포함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칸트는 이 문제를『실천이성비판』제2권 ‘순수 실천 이성의 변증학’에서 최고선

의 개념을 통해 해결하고자 시도한다. 칸트는 순수 사변 이성이 현상적 조건들의

절대적 총체, 즉 무제약자를 찾고자 하듯이, 순수 실천 이성도 실천적으로 조건지어

진 것에 대해 무제약자를 찾고자 하는데, 이 무제약자를 ‘순수 실천 이성의 대상의

무조건적 총체’로서 최고선(das höchste Gut)의 이름 아래서 찾고자 한다고 말한

다.(KpV, A194) 다시 말하면 순수 실천 이성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대상, 즉 궁극목적을 최고선에서 발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으로서 최고선이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

기 위해 먼저 최고선에서 ‘최고’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칸트

에 따르면 ‘최고(das Höchste)’의 개념은 ‘최상(das Oberste)’을 의미할 수도 있고,

‘완전(das Vollendete)’을 의미할 수도 있다.(KpV, A198) ‘최상’은 다른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무제약적 조건’을 의미하고, ‘완전’은 같은 종류의 더 큰 전체의 어떤

부분이 아닌 ‘완벽[완전]한 전체’를 의미한다. 칸트는 분석학에서 이미 증명된 것이

라면서,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서의 덕, 즉 도덕성을 행복을 얻으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의 최상 조건이라는 점에서 ‘최상선’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칸트는 덕만으로는

아직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가 욕구 능력의 대상으로서 삼을만한 전체적인 완벽한

선, 즉 ‘완전선’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완전선’이 되기 위해서는 행복이 추가

로 요구되기 때문이다.(KpV, A198-199) 그래서 칸트는 최상선으로서의 덕과 행복

이 함께 결합된 상태에서 ‘완전선’을 의미하는 ‘최고선’을 발견한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최고선의 한 구성 요소로서의 행복은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덕과 행복이 함께 한 인격에서 최고선을 소유하고, 이 경우에도 행복이 (인격의 가

치이자 인격의 행복할 만한 품격인) 도덕성에 정비례하는 몫을 가지고서 가능한 세계

의 최고선을 형성하는 한에서, 이 최고선은 전체, 곧 완전선을 의미한다.(KpV, A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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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최고선은 단순히 ‘덕과 행복의 결합’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무제약적

인 조건으로서의 최상선인 덕과 덕에 비례하는 행복의 결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193) 이처럼 순수 실천 이성은 도덕성의 원리를 정초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대상

193) 칸트는 완전선으로서의 최고선을 언급한 이후, 최고선을 형성하는 두 요소인 ‘덕’과 ‘행복’의 의

미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완전선에서의] 덕은 언제나 조건으로서의 최상선

이다. 왜냐하면, 최상선은 자신 위에 더 이상의 조건을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전선에서

의] 행복은 항상 그것을 소유한 이에게는 유쾌한 어떤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 자체만으로

절대적으로 그리고 모든 관점에서 좋은 것이 아니라, 언제나 도덕 법칙에 알맞은 태도를 조건으로

전제하는 것이다.”(KpV, A199) 최고선에서 최상선으로서의 덕은 ‘도덕 법칙에 의해 직접적으로

규정된 의지에 따르는 태도’ 속에서 발견되는 것으로서 언제나 명확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그

런데 최고선에서의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는 많은 혼란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데, 이는 위의 인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칸트가 최고선에서의 행복의 의미를 명확하게 확정적으로 규정

하고 있지 않는데서 비롯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칸트의 언급에서도 드러나듯이 최고선에서의 행

복은 항상 어떤 ‘유쾌한(angenehm)’ 것으로서의 행복이면서도, 또한 언제나 ‘도덕 법칙에 알맞은

태도, 즉 도덕성[덕]을 조건으로 전제하는’ 행복이기도 하다. 전자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

은 최고선에서의 행복도 도덕성과 대립하고 갈등하는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감성적 행복’을 의

미한다고 주장할 것이며, 반면 후자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행복

할 만한 품격’으로서의 도덕성을 지닌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으로서 ‘자기 만족’ 혹은 ‘자기 인격

에 대한 만족’을 의미하는 ‘도덕적 행복’으로 이해하고자 할 것이다. 연구자는 칸트가 언제나 최고

선에서의 행복을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일관성을

목표로’ 여전히 ‘감성적 행복’으로 한정시켜 이해할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행복할 만한 품

격’으로서의 도덕성을 지닌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감성적 관점을 넘어 예지적 관점에서 바라보

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한낱 ‘감성적 행복’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모순적으

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신을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추구하는 행

복은 이미 감성적 행복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변화된 행복’, 다시 말해 ‘예지적 존재자의 관점에서

바라는 행복’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도덕적 행복’으로

도 만족할 수 있는 ‘행복할 만한 품격’을 지닌 사람들에게 ‘감성적 행복’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도덕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감성적 행복’을 부여할 것을 희망하는 것은 순수 이성의 관심

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최고선의 이념에도 전적으로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덕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그들의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을 분배하는 문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은 각자의 도덕성에 비례하여 행복을 분배할 수 있도록 자연의 원인성

을 지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고선의 행복을 ‘감성적 행복’으로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그러한 최고선이 실현 가능할 수 있으려면 도덕성과 이에 비례하는 행복을 필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최고의 도덕적 존재자로서 신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을 칸트는 순

수 실천 이성의 요청으로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는 칸트가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칸트의 이러한 불명확한 규정이 오히려 ‘행

복’의 의미를 더욱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칸트는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도덕성과

정확하게 비례하는 행복으로 규정함으로써 적어도 ‘도덕성과 결합한 행복’이 ‘감성적 행복’과는 다

른 것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것이 바로 ‘자기 만족’, 또는 ‘자기 인격에 대한 만족’으로

불릴 수 있는 ‘도덕적 행복’이다. 그렇지만 칸트가 누누이 강조하듯이 ‘감성적 행복’은 모든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가 필연적으로 추구하는 대상이자 목적이다. 칸트가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도덕적 행

복’으로 연결시키면서 이를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으로 삼기에는 아직 불충분하다. 여전히 인

간은 심지어 도덕성을 지닌 사람까지도 ‘도덕적 행복’ 뿐만 아니라 ‘감성적 행복’도 바랄 수 있으

며, 도덕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감성적 행복’을 현실 속에서 실

현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최고선을 통해 바라는 행복은 ‘도덕적 행복’과 ‘감성적 행

복’을 모두 포함하는, 도덕성을 조건으로 하는 ‘모든 행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칸트의 최

고선에서의 행복이 ‘감성적 행복’이냐, ‘도덕적 행복’이냐를 두고 벌이는 논쟁은 본질적인 것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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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완전히 배제한 행복을 최고선이라는 이름 아래서 다시 자신의 대상으로 삼고

자 한다. 다시 말해 순수 실천 이성은 도덕성과 행복이 결합한 최고선을 자신의 전

(全) 대상(der ganze Gegenstand/KpV, A196), 즉 궁극목적으로 삼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순수 실천 이성은 도덕성뿐만 아니라 행복까지 포함된 최고선을 자신

의 궁극목적으로 추구하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순수 이성을 지닌 이성적 존재자로

서의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칸트는 “행복을 필요로 하고, 또한 행복할 만한

품격이 있으나, 그럼에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이성적 존재자의 완전한 의욕

과는 전혀 양립할 수가 없다”(KpV, A199)라고 말하면서, 인간이 행복할 만한 품격,

즉 도덕성을 지닌 사람이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인간

의 특성은 ‘순수 이성의 실천적 관심’에서 비롯한다.194) 칸트는『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의 모든 관심이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세 가지 물음으로 통합된다고 본다.(KrV,

B832-833) 칸트는 이 세 가지 물음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 물음을 ‘순수 이성의

실천적 관심’과 관련한 물음으로 간주하면서,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변을 “그에 의

해 네가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추게 되는 그것을 행하라”195)(KrV, B836-837)로, 세

번째 물음에 대한 답변을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그 정도만큼 행복을 희망할 이

유를 갖는다”(KrV, B837)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서

의 ‘도덕성’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행복’이 모두 순수 이성의 실천

적 관심 안에 포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순수 실천 이성이 도덕

성과 행복이 함께 결합된 최고선을 자신의 궁극적인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은 바로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의 근원적 관심에서 비롯하고 있다. 그래서 순수 실천 이성은

‘행복과 분리된 도덕성’이나 ‘도덕성과 분리된 행복’에서 완벽한 선, 즉 완전선을 발

니라고 보여진다. 연구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감성적 행복’과 ‘도덕적 행복’을

포괄하는 행복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연구자는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감성적 행복’으로 이해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감성적 행복’으로 이해할 때

순수 실천 이성의 요청, 특히 신의 현존에 대한 요청이 절실하고도 필연적인 것으로 다가올 수 있

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최고선에서의 논의를 종교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준다

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다음 장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194) “모든 관심은 궁극적으로는 실천적인 것이고, 사변 이성의 관심조차도 단지 조건적으로만 그리

고 실천적 사용에서만 완전한 것이다.”(KpV, A219)

195)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연구자는 ‘행복할 만한 품격’이라는 표현에서 칸트가 행복을 도덕성과의

필연적 결합 속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칸트의 전형적인 대답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도덕 법칙이 부과하는 명령을 행하라’ 또는 ‘도

덕성의 명령을 행하라’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칸트는 도덕성을 ‘행복할 만한 품격’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면서까지 도덕성과 행복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칸트가 도덕성을 도덕 법칙에

의한 의지의 직접적 규정이라고 간주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도덕 법칙이 행복을 의지의 직

접적 규정 근거가 아닌 한에서 자신의 궁극목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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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하지 못한 채 궁극적인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 칸트의 설명에서 순수

이성의 근원적 관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이성에게는 행복만으로 완벽한 선이 되기에는 어림도 없다. 행복이 행복할

만한 품격이 있는 것, 다시 말해 도덕적으로 훌륭한 처신과 합일되어 있지 않은 한에

서, (경향성이 제 아무리 행복을 소망한다 해도) 이성은 그러한 것을 수긍하지 않는

다. 그러나 도덕성만으로는, 그리고 이와 함께 한낱 행복할 만한 품격 있음만으로는

또한 완벽한 선이기에는 아직 한참 멀다. 이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행복을 누릴 가

치가 없지 않게 처신했던 이가 행복에 참여하게 될 것을 희망할 수 있어야만 한

다.(KrV, B841)

이제 우리는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으로서의 최고선이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

즉 궁극목적이 될 수 있음을 순수 이성의 실천적 관심을 근거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 즉 순수 의지의 전 대상으로 간주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주의가 요구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

을 최고선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마치 최고선을 순수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으려는

것처럼 받아들여 잘못된 이해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선은 질료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행복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으로서 만약 최고선이 도덕 법칙에 앞선 하

나의 객관으로서 순수 의지의 직접적 규정 근거가 된다면, 이는 반드시 의지의 타

율을 발생시킴으로써 도덕성의 원리에 정면으로 반하게 된다.196) 그러나 이는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 즉 선의지를 세우려는 것을 자신의 진정한 사명으로 삼

고 있는 순수 실천 이성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 법칙이 순수 의지의 유일한 규정 근거임을 다시 강조하면서 최고선에 있어 매

우 중대한 주의 사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덕 법칙은 순수 의지의 유일한 규정 근거이다. 그러나 도덕 법칙은 순전히 형식

적이므로(곧, 준칙의 형식만을 보편적으로 법칙 수립적인 것으로 요구하므로), 그것은

규정 근거로서 모든 질료를, 그러니까 의욕의 모든 객관을 도외시한다. 그러니까 최고

선은 항상 순수 실천 이성의, 다시 말해 순수 의지의 전 대상이겠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순수 의지의 규정 근거로 간주될 수는 없다.(KpV, A196)

이처럼 최고선은 언제나 순수 실천 이성, 즉 순수 의지의 전 대상일 수 있지만,

196) “우리가 분석학에서 알아냈던 바는, 만약 우리가 도덕 법칙에 앞서 어떤 객관을 선의 이름 아래

의지의 규정 근거로 취하고, 이로부터 최상의 실천 원리를 도출한다면, 그때 이것은 언제나 타율을

불러들여와 도덕 원리를 떠밀어내는 것이 될 것이다.”(KpV, A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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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순수 의지의 규정 근거로 간주될 수 없으며, 오직 도덕 법칙만이 순수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의지 규정과 관련한 ‘순서’

에 있어서 세밀한 구분을 시도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순서는 먼

저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으로 삼고, 다음으로 이 대상으로서의 최고

선을 순수 의지의 규정 근거로 간주하는 경우이다. 두 번째 순서는 먼저 도덕 법칙

을 순수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고, 다음으로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으

로 간주하는 경우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만약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으로서의

최고선을 ‘첫 번째 순서’의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언제나 의지의 타율에 이

른다. 이는 순수 실천 이성 자신과의 모순이며 따라서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최

고선을 ‘두 번째 순서’의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다시 말해 도덕 법칙을 순수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한에서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무런 모순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칸트는 바로 ‘두 번째 순서’에서 최고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식을 발견하고자 한다. 도덕 법칙이 순수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러한 순수 의지가 최고선을 자신의 전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때, 최고선은 정당하게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이자 궁극목적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최고선은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 다시 말해 도덕적으로 규

정된 의지의 필연적인 최고 목적으로서 순수 실천 이성의 진정한 대상[객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KpV, A207) 그래서 칸트는 “도덕 법칙만이 저 최고선과 최고선

의 실현 및 촉진을 객관으로 삼게 하는 근거로 간주돼야 하는 것이다.”(KpV, A196)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칸트는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 즉 궁극목적인 최고선에 대한 논의의

핵심 전제가 여전히 ‘도덕 법칙에 의한 의지 규정’, 즉 ‘도덕성’임을 강조한다. 칸트

는 최고선의 논의를 순수 실천 이성의 최상 원칙인 ‘도덕 법칙’을 중심에 두고 전개

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으로 규정

할 때 생겨나는 사람들의 오해를 해소하고, 아울러 최고선의 개념 자체가 ‘도덕 법

칙에 의한 의지 규정’을 전제로 하고 있어 자신의 일관성을 해치지 않음을 보여주

려는 칸트의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최고선의 개념 안에

도덕 법칙이 최상의 조건으로 이미 함께 포함되어 있다면 최고선은 순수 실천 이성

의 객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순수 의지의 규정 근거이기도 하다”(KpV, A197)고

말한다. 이로써 칸트는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결

국 최고선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것이고, 이는 의지의 타율을 낳는 것이므로

모순이다’라는 사람들의 비판을 해소한다. 칸트에 따르면 최고선의 개념을 언제나

도덕 법칙에 의한 의지 규정, 즉 도덕성을 최상의 조건으로 전제하는 것으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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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면,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이자 동시에 의지의 규정 근거로 간주

하는 것은 전혀 모순이 아니다. 왜냐하면 도덕 법칙이 먼저 순수 의지를 규정하고,

그런 다음 이 도덕적으로 규정된 의지가 최고선을 자신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순서’

를 지켰기 때문이다. 칸트는 의지 규정에 대한 개념들의 이 순서가 중요함을 강조

하면서, 만약 이 순서를 놓치지 않는다면, ‘순수 실천 이성과 최고선’ 그리고 ‘도덕

법칙과 최고선’은 모순이 아닌 완벽한 조화 속에서 서로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KpV, A197 참조)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도덕 법칙에 의한 의지 규정을

전제한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이자 궁극목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

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순수 실천 이성의 대상으로서의 최고선은 도덕 법칙과

의 관련 속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칸트는 “도덕 법칙은 세계

에서 최고의 가능한 선을 나의 모든 행위의 최종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명령한

다”(KpV, A233)면서 최고선을 도덕 법칙과 관련하여 규정하고자 한다. 즉, 최고선

을 도덕 법칙의 최종 대상, 즉 궁극목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칸트가 도

덕 법칙을 순전히 의지를 규정하는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으로서 도덕성의 원

리를 정초하는 핵심 근거로 생각한다는 점을 감안하다면, 도덕 법칙을 질료적인 것

이라 할 수 있는 최고선과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이다. 하지만 칸트는 도덕 법칙은 우리에게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을 촉진할 것

을 의무로서 부과한다고 말한다.

도덕 법칙은 우리의 자유를 사용하는 형식적인 이성조건으로서 그 자신만으로, 질

료적 조건으로서의 어느 목적에 의존함이 없이, 우리에게 책무를 지운다. 그럼에도 도

덕 법칙은 우리에게 하나의 궁극목적을, 그것도 선험적으로 규정해주며, 이 궁극목적

을 향해 애쓰는 것을 우리의 책무로 지어준다. 그리고 이 궁극목적이 이 세계에서 자

유에 의해서 가능한 최고선이다.(KU , B423)

도덕 법칙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목적을 최고선으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그

러한 최고선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명령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칸트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최고선을 도덕 법칙의 궁극목적으로 규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주의를 잊지 않는다.

도덕 법칙이 촉진할 것을 과제로 부과하는 궁극목적은 의무의 근거가 아니다. 왜

냐하면 의무의 근거는197) 형식적인 실천적 원리로서, (의욕의 질료인) 욕구능력의 객

관에, 그러니까 어떤 목적에도 개의하지 않고, 정언적으로 이끌고 가는 도덕 법칙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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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KU , B461)

칸트는 도덕 법칙이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을 촉진할 것을 명령하지만, 그렇다

고 이러한 궁극목적이 의무의 근거, 다시 말해 의지의 규정 근거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오직 도덕 법칙만이 의무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도덕 법

칙이 의무 그 자체, 다시 말해 도덕성에서 머물지 않고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을

명령하려는 데까지 이르고자 하는 것은 도덕 법칙도 순수 실천 이성에 기초하고 있

는 만큼, ‘순수 이성의 실천적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198) 다시

말해 도덕 법칙은 우리에 의해 가능한 최고의 선이 실현되기를 의욕하기 때문이

다.(RGV, BIX) 도덕 법칙은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이 수립한 도덕의 최상 원칙이라

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면, 칸트가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이자

도덕 법칙의 궁극목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칸트가 굳이 최고

선을 도덕 법칙이 추구하는 궁극목적으로까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최고선은 도덕

법칙에 의한 의지 규정, 즉 도덕성에 근거할 때 비로소 순수 실천 이성의 진정한

대상, 즉 궁극목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이성은 도덕성과 일치하는 행복의 촉진을 궁극목적으로 삼는

다”(KU , B426)고 하면서, 또한 동시에 “도덕 법칙은 이 궁극목적을 우리의 능력이

미치는 한 촉진할 것을 우리에게 지시명령한다”(KU , B426)고 말하고 있는 것도 바

로 이러한 측면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순수 실천 이성이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으로서의 최고선을 자신의 궁극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은 결국 도덕 법칙

197) 백종현은 ‘궁극목적’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I.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백종현 옮김,『판단

력비판』(서울: 아카넷, 2014), p.560 각주), ‘궁극목적이 도덕 법칙 안에 놓여 있다’는 말은 도덕

법칙을 형식적 실천 원리로 이해하고 있는 칸트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칸트의 문맥을 고려한다면 의무의 근거, 다시 말해 의지의 규정 근거는 궁극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도덕 법칙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이 부분의 인용은 최재희의 번역인 ‘의무의 근거’로 대체하고자 한다.(I.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이석윤 옮김,『판단력비판』(서울: 박영사, 2005), p.388 각주)

198) 연구자는 도덕 법칙이 왜 도덕성을 넘어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을 촉진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칸트는『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

교』머릿말에서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칸트는 여기서 의무와 관련된 문제에서 일체의 목적들을

배제해야만 하는 도덕은 자신의 행위들의 결과로서의 목적에 대한 이성의 불가피한 관심으로 인해

목적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이 목적이 바로 최고선의 이념이라고 본다. 칸트는 이 최고선의 이념

이 우리의 모든 행위에 대해 이성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어떤 하나의 궁극목적을 생각하려는

우리의 자연적 필요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에 실천적으로 공허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궁

극목적에 대한 이성의 불가피한 관심으로 인해 도덕으로부터 목적이 생겨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칸트는 언제나 그렇듯이 여기서도 중요한 주의를 잊지 않는다. 그것은 최고선의 이념은

도덕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지, 결코 도덕의 토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도덕 법칙이 최고선을

우리가 촉진해야 할 궁극목적으로 규정하고 명령하는 이유는 ‘목적’에 대한 순수 이성의 불가피한

관심에 놓여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겠다.(RGV, BIV-BVIII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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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을 촉진할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

미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199)

이제까지 우리는 칸트가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이자, 도덕 법칙의

궁극목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순수 실천 이성과 도덕 법칙이 최고선

을 자신의 궁극목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근원적으로 인간 이성의 본성,

다시 말해 순수 이성의 불가피한 실천적 관심에서 비롯한다. 인간의 이성은 도덕성

만으로는 완전한 선에 이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도덕성에 행복이 결합된 것, 즉

최고선에서만 완전한 선을 발견하고 만족을 얻는다. 인간은 그 자신 안에서 도덕적

으로 작용되는 필요욕구, 즉 그의 의무들에 더하여 그 의무들의 결과로서 하나의

궁극목적을 생각하려 하는 필요욕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RGV, BIX 참고) 그렇

지만 최고선이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이자 도덕 법칙의 궁극목적으로 정당하게

간주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로부터 출발하여 궁

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으로 나아가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순서’가 엄격히

지켜질 수 있다면 최고선이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이자 도덕 법칙의 궁극목적

199) 연구자는 도덕 법칙이 근원적으로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이 수립한 형식적 실천 원칙이라는 점에

서 도덕 법칙의 명령은 곧 순수 실천 이성의 명령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순수 실천 이성이 최고선을 자신의 전 대상, 즉 궁극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은 결국 도덕 법칙이 최

고선을 궁극목적으로서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는 ‘최

고선의 실현을 촉진하라’는 명령을 순수 실천 이성의 명령으로 간주하든 도덕 법칙의 명령으로 간

주하든 큰 의미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맹주만은 칸트가 실천 이성의 명령과 도덕 법칙

의 명령을 아무런 단서나 설명 없이 상호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실천 이

성의 명령과 도덕 법칙의 명령을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맹주만은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의 촉진을 명령하는 근거는 도덕 법칙이지만, 그렇다고 최고선의 다른 한 요소인 행복에의

일치와 조화를 요구하는 주체마저도 도덕 법칙일 수는 없다”면서 후자는 실천 이성에게만 해당한

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도덕성과 행복이라는 두 요소를 갖고 있는 최고선의 실현과 촉진을

명령하는 주체는 도덕 법칙이 아니라 실천 이성(물론 도덕적 이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맹주만,

「칸트의 실천철학에서의 최고선」,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7, p.45-46 참조) 하지

만 도덕 법칙이 도덕성과 행복의 일치와 조화, 즉 최고선을 요구하는 주체일 수 없다는 맹주만의

견해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칸트는 도덕 법칙이 우리에게 궁극목적을 선험적으로 규정해

주며(KU, B423), 궁극목적의 촉진을 명령한다고(KU, B426)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

법칙이 최고선을 요구하는 주체로 이해될 수 없다면, 도덕 법칙이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을 촉

진하라는 명령도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구자는 순수 실천 이성과 도덕 법칙을 최고선

의 촉진을 명령하는 ‘주체’와 관련하여 구분하는 것에서 칸트의 진정한 의도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칸트가 이 둘을 혼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맹주만도 자신의 견해를 완강히 고집하기보다 칸트가 이 두 가지 표현을 혼용한 의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에 따른 맹주만의 결론은 연구자의 결론과 유사한 맥락에서 일치

하고 있기에 이를 언급하면서 끝마치고자 한다. “따라서 칸트가 ‘도덕성과 일치하는 행복의 촉진’

을 말하고, 또 최고선의 실현을 도덕 법칙의 명령으로 간주하는 진정한 이유는 다만 이성이 도덕

법칙에 따라서만 최고선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이성 자신의 요구가 도덕 법칙에만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동시에 최고선의 실현은 이성 자신의 명령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도덕 법

칙의 명령이기도 하다는 점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맹주만(1997), 위의 논문, p.46) 연구자

는 이러한 해석이 칸트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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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간주되는 것, 더 나아가 심지어 최고선이 의지의 규정 근거로 간주되는 것은

칸트의 견해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

을 생각할 때 언제나 최고선의 한 구성 요소인 최상선으로서의 ‘도덕성’으로부터 시

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칸트에 있어 ‘도덕성’의 의미는 매우 분명하

다. 그것은 바로 ‘순수 실천 이성이 의지의 자율에 기초하여 도덕 법칙을 통해 의지

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최고선 안에서 도덕성과

행복은 어떻게 결합하고 있으며, 또한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

을까? 이를 다음 절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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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고선에서 행복의 의미

(1) 도덕성과 행복의 종합적 결합: 최고선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이자 도덕 법칙이 궁극목적으로서 촉진할 것을 명령하

는 최고선은 도덕성[덕]과 행복이 필연적으로 결합된 상태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최

고선에서 도덕성과 행복은 어떻게 결합하고 있을까? 칸트는 최고선에서의 ‘도덕성

과 행복의 결합’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두 가지의

결합 방식을 구분하며 제시한다.200) 하나는 동일률에 따르는 분석적(논리적) 결합이

고, 다른 하나는 인과율에 따르는 종합적(실재적) 결합이다.(KpV, A199-200) 칸트

는 이 분석적 결합과 종합적 결합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설명한다.

덕과 행복의 연결은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 덕 있으려는 노력과 행복을 얻으려

는 이성적 노력은 두 가지 서로 다른 행위가 아니라 완전히 동일한 행위이며, 이때

전자의 기초에는 후자의 기초에 놓여 있는 것 외의 다른 어떤 준칙이 놓여 있을 필요

가 없다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 저 [양자의] 연결은, 원인이 결

과를 낳듯이, 덕은 그 자신에 대한 의식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서 행복을 낳는다는 데

에 의거한다.(KpV, A200)

여기서 살펴볼 수 있듯이 분석적 결합에서 도덕성과 행복은 양자의 ‘동일성’에

근거하여 서로 결합하고 있고, 종합적 결합에서 도덕성과 행복은 양자의 ‘이질성’에

근거하면서 원인이 결과를 낳는 방식으로 결합하고 있다. 그러므로 최고선을 ‘분석

적 결합’으로 이해한다면,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는 동일한 원리로 수렴하게

되어, 결국 덕의 준칙과 행복의 준칙은 ‘분석적으로’ 동일한 준칙에 지나지 않게 된

다. 반면 최고선을 ‘종합적 결합’으로 이해한다면,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는

각자의 고유한 원리를 유지한 채, 도덕성과 행복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서 ‘종합적

으로’ 결합하게 된다. 칸트가 ‘순수 실천 이성의 분석학’의 핵심 과제를 ‘도덕성의 원

리와 행복의 원리의 구별’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만 생각해 보아도, 우리는 칸트가

최고선의 결합 방식을 무엇으로 간주할 것인지를 자명하게 예상해 볼 수 있다.201)

200) 칸트가 최고선에서의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 방식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최고선의 의미

를 명확히 밝혀 최고선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칸

트가『실천이성비판』의 ‘분석학’에서 도덕성과 행복의 명확한 구별을 강조해 오다가, ‘변증학’에서

는 다시 매우 이질적인 두 요소, 즉 도덕성과 행복을 다시 최고선의 이름 아래 결합시키려 하는

것에서 매우 심각한 ‘모순’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 칸트는 당연히 최고선을 ‘종합적 결합’의 방식으로 이해할 것이다. 칸트가 ‘분석적 결합’과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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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최고선을 ‘분석적 결합’의 방식으로 이해한 경우를 고대 그리스 학파들

가운데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에서 발견한다. 이 두 학파는 모두 “최고선

의 개념 규정에서 덕과 행복을 최고선의 서로 다른 요소로 인정하지 않은, 그러니

까 동일성의 규칙을 좇아 원리의 통일을 구한 점”(KpV, A200)에서 동일한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행복으로 인도하는 자기의 준칙을 의식하는 것

이 덕”(KpV, A200)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리고 스토아 학파는 “자기의 덕을 의식하

는 것이 행복”(KpV, A200)이라고 말함으로써, 두 학파 모두 도덕성과 행복을 분석

적 동일성의 관점에서 결합시킨다. 그래서 에피쿠로스 학파에게 영리함(Klugheit)은

도덕성과 동일한 것이었고, 덕에 대해 보다 높은 명칭을 택했던 스토아 학파에게는

도덕성만이 참된 지혜(wahre Weisheit)였던 것이다.202)(KpV, A200)

물론 칸트는 이 두 학파가 도덕성과 행복의 동일성을 이끌어내는 방법에 있어서

의 현저한 차이를 인정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도덕성과 행복 가운데 행복을 근원

적 개념으로 삼고 ‘감성적인 면’에서 도덕성과 행복의 동일성을 이끌어 내고, 스토

아 학파는 도덕성과 행복 가운데 도덕성을 근원적 개념으로 삼고 ‘논리적인 면’에서

도덕성과 행복의 동일성을 이끌어 낸다. 그렇지만 두 학파 모두 도덕성과 행복의

실천 원리가 동일한 것임을 찾고자 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도덕성과 행복의 결

합을 동일성에 근거한 ‘분석적 결합’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최고선에

대한 동일한 이해 방식에 놓여 있다. 따라서 “덕의 개념은 이미 자기 자신의 행복

을 촉진하라는 준칙 안에 있다”(KpV, A202)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주장은 덕과 행

복의 동일성의 기반을 행복의 감정 안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단지 ‘감성적 동일

성’203)을 드러낼 뿐이며, “행복의 감정은 이미 자기의 덕에 대한 의식에 포함되어

있다”(KpV, A202)는 스토아 학파의 주장은 행복이 덕으로부터 도출된 개념이라는

점에서 단지 ‘논리적 동일성’204)을 드러낼 뿐이다. 이처럼 칸트는 에피쿠로스 학파와

적 결합’의 구분을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의 최고선의 논의도 ‘도덕성의 원

리’와 ‘행복의 원리’의 명확한 구분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자경도 최고선에서 도덕성과 행복

의 결합 방식을 고찰하는 칸트의 의도를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고선에 있

어 덕과 복은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어야 하는가? 칸트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로 종합되어야 할 도

덕과 행복을 같은 종류의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덕과 행복을 같은 것으로 간주하

면, 아예 도덕성과 계산성, 도덕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한자경,『칸트

철학에의 초대』(경기: 서광사, 2006), pp.145-146)

202) 칸트의 이 표현을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모두 도덕성과 행복을 동일성에 근거하여 분

석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이해한다면, 비록 스토아 학파에서 용어

사용의 부적절성을 제기할지라도, 정확한 ‘대구’를 맞춰 다음과 같이 다시 표현해 볼 수 있겠다.

‘에피쿠로스 학파에게는 영리함은 도덕성과 같은 것이었고, 스토아 학파에게는 도덕성만이 영리함

이었다.’

203) 한자경,『칸트와 초월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서울: 서광사, 1992), p.226.

204) 한자경(1992), 위의 책,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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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 학파가 최고선을 도덕성과 행복의 분석적 결합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그들이 이해한 최고선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스토아 학파는 덕은 전체 최고선이며, 행복은 단지 주관의 상태에 속하는 것으로

서 덕의 소유의식일 따름이라고 주장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행복이 전체 최고선이

며, 덕은 단지 이를 얻기 위한, 곧 이에 이르기 위한 수단들을 이성적으로 사용할 때

의 준칙의 형식일 따름이라고 주장했다.(KpV, A202)

칸트는 이 두 학파의 철학적 명민함(Scharfsinnigkeit)에 대해 경탄하면서 그들을

인정하면서도, 이 명민함이 “불행하게도 극도로 이질적인 개념들, 즉 행복의 개념과

덕의 개념 사이의 동일성을 캐내는 데에 사용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

다”고 말한다.(KpV, A201) 여기에는 최고선에서의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을 양자의

동일성에 근거한 ‘분석적 결합’으로 이해할 때 생겨나는 부정적 결과에 대한 칸트의

우려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보기에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는 결

코 하나의 동일한 원리에 기반할 수 없는 전혀 이질적인 원리로서 반드시 구별되어

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칸트는 다시 ‘분석학’에서 자신이 강조한 핵심을 다음과

같이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분석학에서 분명해진바, 덕의 준칙들과 자기 행복의 준칙들은 그 최상의 실천 원

리에 있어서 전혀 이질적인 것이고, 일치와는 거리가 아주 멀며, 양자가 비록 최고선

을 가능하게 하고자 최고선에 [함께] 속하기는 하지만, 동일한 주관 안에서 아주 상호

제한적이며 상호 파괴적이다.(KpV, A202-203)

‘어떻게 최고선이 실천적으로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이제까지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는 이유는, 이토록 ‘상호 제한적’이

며, ‘상호 파괴적’이기까지 한 도덕성과 행복을 최고선 안에서 결합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고선을 도덕성과 행복의 ‘분석적 결합’으로 이해

하는 한 이 물음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성과

행복의 이질성을 전제하면서도 최고선 안에서 양자를 결합할 수 있는 방식을 인과

적 결합인 ‘종합적 결합’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행복과 도덕성은 최고선의 종적으로 전혀 다른 두 요소들이고, 그러므로 양자의

결합은 (가령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이런 그의 태도에서 순전히 그의 개념

들을 분석함으로써 덕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거나, 또는 덕을 좇는 사람이 그러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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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에 대한 의식에서 이미 그 사실 자체만으로 자신이 행복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이) 분석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 개념의 종합인 것이

다.(KpV, A203)

따라서 순수 실천 이성의 전 대상이자 도덕 법칙의 궁극목적이기도 한 최고선은

상호 이질적인 두 요소인 도덕성과 행복의 ‘종합적 결합’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칸트가 주장하는 최고선은 감성적 또는 논리적 동일성에 근거한 무차별적 동

일성이 아니라, 도덕성과 행복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둘이

다시 하나로 종합되는 그런 것205)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칸트가 최고

선에서의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을 ‘분석적 결합’이 아니라 ‘종합적 결합’으로 이해하

고자 하는 것에는 도덕성의 원리를 행복의 원리로부터 확고하게 지켜내면서, 최고

선을 도덕성에 근거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놓여 있다.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

의 원리가 동일한 원리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라면, 최고선을 도덕성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지게 되며, 결국 최고선은 한낱 행복의 원리에 근거

한 ‘경험적인 대상’에만 머물게 될 것이다. 칸트가 “최고선을 의지의 자유로부터 산

출하는 것은 선험적으로(도덕적으로) 필연적이다”(KpV, A203)라고 말하는 것에서도

최고선의 실현은 ‘의지의 자유’, 즉 ‘도덕성’에 근거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으로 필연적일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도덕적 행복

도덕적으로 규정된 의지에 의해 우리가 실천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최고선에서

도덕성과 행복은 필연적으로 결합한다. 이 결합은 분석적 결합이거나 종합적 결합

일 텐데, 앞의 논의에서 살펴본 것처럼 분석적 결합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고선에

서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은 ‘원인과 결과의 연결’인 종합적 결합일 수밖에 없

다.(KpV, A204) 여기서 종합적 결합의 방식, 즉 원인과 결과의 연결 방식을 두 가

지로 다시 구분할 수 있는데, 칸트는 이 종합적 결합의 두 가지 방식을 ‘순수 실천

이성의 이율배반’이라는 이름 아래 논의한다.(KpV, A204-205) 칸트가 제시한 종합

적 결합의 두 가지 방식은 다음과 같다.

205) 한자경(2006), 앞의 책, p.147. 용어 사용의 일관성을 위해 ‘심미적’을 동일한 의미의 ‘감성적’으로,

‘도덕’을 ‘도덕성’으로 수정하여 인용함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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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 행복에 대한 욕구가 덕의 준칙들을 위한 동인이다.

둘째 : 덕의 준칙이 행복을 낳는 원인이다.

(KpV, A204)

칸트는 첫째 방식으로서의 종합적 결합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왜

냐하면 (분석학에서 입증됐듯이) 의지의 규정 근거를 자기 행복의 추구에 두는 준

칙들은 결코 도덕적일 수가 없고, 아무런 덕도 정초할 수 없기 때문이다.”(KpV,

A204) 칸트가 최고선의 구성 요소로 생각하고 있는 ‘도덕성’은 의지의 규정 근거를

오직 도덕 법칙에만 두는 준칙에서만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의지의 규정 근거를 결

국 ‘행복’에 두게 되는 첫째 방식의 결합에서는 ‘도덕성’이 세워질 수 없고, 만약 이

‘도덕성’이 세워질 수 없다면 최고선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첫째 방식으로의 종합적 결합은 최고선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최고선을 자신의 전 대상으로서 추구하고자 하는 순수 실천 이성의 관점에서도 결

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첫째 방식의 종합적 결합이 결

국 최고선 자체를 무화(無化)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편 칸트는 둘째 방식으로서의 종합적 결합 또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왜냐하

면 세계 내에서의 원인들과 결과들의 모든 실천적 연결은 의지 규정의 성과로서,

의지의 도덕적 마음씨에 정향[定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 법칙들에

대한 지식 및 이것을 그의 의도대로 사용하는 자연적 능력에 정향되어 있기”(KpV,

A204-205) 때문이다. ‘의지의 도덕적 마음씨’, 즉 도덕성은 예지 세계의 원인성인

자유에 기초하고 있고, 행복은 감성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의 필연적 인과법칙에 기

초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성과 행복을 필연적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로서 불가능하다. 도덕적 마음씨가 행복을 이 세계에서의 도덕적 행위와 필

연적으로 결합시켜줄 수도 없고, 인간이 자연 법칙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조종하여

도덕적 행위와 행복을 필연적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

서 “최고선을 위해 충분한, 덕과 행복의 필연적인 연결은 이 세계에서 도덕 법칙들

을 정확하게 지킴으로써 기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KpV, A205)

이렇듯 칸트는 도덕성과 행복을 결합시키는 두 가지 종합적 결합 방식을 검토한

후 모두 ‘불가능’하다는 비관적 결론을 이끌어 내면서, 이것이 바로 ‘순수 실천 이성

의 이율배반’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최고선을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

목적으로 간주하는 칸트가 최고선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순수 실천 이성의 이율

배반’을 해소하고자 할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칸트는 이러한 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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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의 해소를 진행하기에 앞서 ‘왜 이율배반의 해소를 통해 최고선의 가능성을 확

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이유를 언급한다. 칸트는 이 이유를 최고선과 도덕

법칙의 불가분의 관계에서 찾고 있다.

이 연결[덕과 행복의 연결-연구자 삽입]을 자기 개념 안에 포함하고 있는 최고선

의 촉진은 우리 의지의 선험적으로 필연적인 객관이고, 도덕 법칙과 불가분리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최고선의 불가능성은 반드시 도덕 법칙의 거짓됨을 증명하는 바

다. 그러므로 만약 최고선이 실천 규칙들에 따라서 불가능하다면, 이를 촉진할 것을

명령하는 도덕 법칙 또한 환상적이고, 공허한 상상된 목적들 위에 세워진, 그러니까

그 자체로 거짓된 것일 수밖에 없다.(KpV, A205)

앞서 살펴 본대로 도덕 법칙은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으로서의 최고선을 우리의

궁극목적으로서 촉진할 것을 명령한다. 최고선은 반드시 도덕 법칙에 의한 의지 규

정, 즉 도덕성을 근거로 해서만 순수 실천 이성의 진정한 대상이자 궁극목적일 수

있다. 만일 최고선이 불가능하다면, 그러한 최고선을 촉진하라고 명령하는 도덕 법

칙은 ‘불가능한 것을 명령’한다는 점에서 자체 모순적이고 공허한, 거짓된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도덕 법칙을 공허하고 환상적이며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

은 칸트의 전 사상 체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것으로, 칸트의 입장에서 결코 받

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칸트에게 도덕 법칙은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경험적으

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선험적으로 확실하게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

다. 여기서 우리는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으로서의 최고선은 ‘도덕 법칙으로부

터’ 그러니까 ‘의지의 자유로부터’ 다시 말해 ‘도덕성으로부터’만 가능할 수 있다는

칸트의 일관된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칸트는 순수 실천 이성의 이율배반을 해소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종

합적 결합 방식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명제로 다시 정리한 후 논의를 이어나간다.

첫째 명제 : 행복을 얻으려는 노력이 덕 있는 마음씨의 근거를 낳는다.

둘째 명제 : 덕 있는 마음씨는 필연적으로 행복을 낳는다.

(KpV, A206)

앞서 칸트는 첫째 명제를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종합적 결합으로, 둘째 명제를

‘불가능한’ 종합적 결합으로 판정했다. 그러나 둘째 명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다시 검토해 볼 필요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칸트는 첫째 명

제는 절대적으로 거짓이기 때문에(KpV, A206) 제쳐두고, 둘째 명제에서 순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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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이율배반 해소를 위한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칸트는 둘째 명제, 즉 ‘덕

있는 마음씨는 필연적으로 행복을 낳는다’라는 명제는 절대적으로 거짓인 것이 아

니라, 단지 ‘조건적으로만 거짓’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덕 있는 마음씨는 필연적으로 행복을 낳는다는 명제는 절대적으로 거짓인 것이 아

니라, 단지 그것이 감성 세계에서의 원인성의 형식으로 보아지는 한에서, 그러니까 내

가 감성 세계에서의 현존을 이성적 존재자의 유일한 실존 방식으로 받아들일 때만,

그러므로 오직 조건적으로만 거짓이다.(KpV, A206)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둘째 명제가 거짓인 것은 ‘감성 세계에서의 현존을 이성적

존재자의 유일한 존재 방식으로 간주하는 한’에서 그런 것이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

면 예지 세계에서의 현존을 이성적 존재자의 또 다른 존재 방식으로 간주할 수 있

다면, 둘째 명제는 참일 수 있다는 칸트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칸

트가 이성적 존재자가 속할 수 있는 두 세계, 즉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를 상정함

으로써 순수 사변 이성의 이율배반을 해소했던 방식을 순수 실천 이성의 이율배반

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동일하게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칸

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나는 나의 현존재를 예지 세계 내의 예지체로도 생각할 권한을 가질 뿐만 아

니라, [2] 도덕 법칙에서 (감성 세계 내의) 나의 원인성의 순수 지성적 규정근거를 또

한 가지므로, 원인으로써 마음씨의 도덕성이 감성 세계의 결과로서 행복과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인(자연의 예지적 창시자에 의한), 그러면서도 필연적인 연관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3][그러나] 한낱 감관의 객관인 자연에서의 이러

한 결합은 다름 아니라 우연적으로밖에는 일어날 수가 없고, 최고선에 충분할 수가

없다.(KpV, A206-207)206)

위의 인용문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칸트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감성 세계

에만 속한 존재가 아니라 예지 세계에도 속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덕

과 행복의 필연적 결합이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칸트는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로서 속해 있는 ‘예지 세계’에서는 덕과 행복의 결합이 필연적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최고선의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순수 실천 이성의 이율배반은 덕과 행복의 결합에서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예지

적 존재자가 속해 있는 예지 세계 내에서의 결합으로 파악함으로써 해소된다.207)

206) 인용문의 [ ]안의 숫자는 논문 전개의 편의상 연구자가 삽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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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최고선에서의 덕과

행복의 필연적 결합이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로서 속하게 될 ‘예지 세계’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라면, 이 때 최고선에서의 ‘행복’의 의미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위

인용문의 [3]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감성 세계 안에서의 덕과 행복의 결합은 매우

우연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이 때의 행복이 경향성과 관련한 ‘감성적 행복’으

로서 철저하게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성적 행복

을 자신의 구성 요소로 포함하는 최고선은 언제나 우연적 가능성만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최고선을 예지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덕과 행복의 필연적 결합으로 간주했을

때, 이 때의 행복을 ‘감성적 행복’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예지 세

계의 개념 자체가 ‘감성 세계로부터의 독립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적어도 ‘감성적 행복’이 아닌 ‘또 다른 행복’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예지 세계에 속하는 존재자

로서 지향하고자 하는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실상 이 물음은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의 ‘완전한 단절’을 전제한다면 결코 더

이상 진전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 우리는 단지 최고선에서의

행복이 적어도 감성적 행복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도덕성에 비례하여 주어지는 행

복이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간은 오직 예지 세계에

만 속한 존재자가 아니라 언제나 감성 세계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존재자이기 때문

에 ‘감성적 행복’이 아닌 예지 세계와 결합하는 ‘또 다른 행복’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칸트는 예지 세계와 감성 세계를 ‘완전히 단절된 관

계’로 보지 않고 ‘예지 세계가 감성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계’로 봄으로써

최고선에서의 행복의 의미를 이해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자 한다. 이것

을 우리는 위의 인용문 [2]에서 발견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칸트는 도덕 법칙이 감

성 세계 내의 나의 원인성을 규정하는 순수 지성적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원

인으로서의 마음씨의 도덕성이 감성 세계에서의 결과로서 행복과 필연적인 연관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하고 있다.208) 다시 말해 예지 세계의 원인

207) 맹주만(1997), 앞의 논문, p.160. 용어의 일관성을 위해 ‘예지계’를 ‘예지 세계’로 대체하기로 한다.

208) 사실 위의 인용문에서 칸트는 ‘원인으로써 마음씨의 도덕성’이 ‘감성 세계에서의 결과로서의 행

복’과 필연적인 연관을 갖는 것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의 예지적 창시자에 의한’ 간접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연구자가 이 부분을 생략한 채 서술하고 있는 이유는, 칸트가 여기서 언

급한 ‘자연의 예지적 창시자’는 칸트가 이후에 최고선의 실현 가능 조건으로서 요청하고 있는 ‘신’

의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설령 칸트가 그런 의미

로 서술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부분은 ‘신의 현존’에 대한 요청을 최고선의 실현을 위한 도덕적

요청으로서 정당화하는 맥락이 아니라 ‘덕과 행복의 필연적 결합’이 가능함을 보이는 맥락이기 때

문에 칸트의 서술을 다소 비판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칸트는 덕과 행복의 필연적 결

합이 예지 세계에서의 현존을 인간의 실존 방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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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으로서의 마음씨의 도덕성과 감성 세계의 결과로서의 행복이 필연적인 연관성

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209) 이것은 곧 도덕성이 결과로서의 행복의 원인이자 근

거이며, 동시에 그 행복이라는 것도 그 결과로서 예지적 존재자 안에 주어진 것이

라는 것을 함축한다.210) 또한 이것은 예지 세계의 원인으로서의 도덕성이 감성 세계

의 결과로서의 행복을 규정하는 근거가 됨으로써, ‘도덕적으로 규정된 행복’이라는,

‘감성적 행복’과 구분되는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을 가능하게 한다.211)

덕과 행복의 필연적 결합은 감성 세계에서의 결합이 아니라 예지 세계에서의 결합으로 보아야 한

다는 것이다. 덕과 결합하는 행복을 예지 세계의 관점에서, 다시 말해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인 한

에서 이해한다면, 그것은 결코 ‘감성적 행복’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의 관점에서 본다

면 ‘자연의 예지적 창시자’로서의 신의 역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신의 개념 자체도

예지 세계에 속한 개념으로서 ‘예지 세계’ 안에 동어반복적으로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

지만 칸트의 언급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한다면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로서 가질 수 있

는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서의 ‘감성적 행복’을 마련해 주기 위해 ‘자연의 예지적 창시자’의 도움

이 요청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마치 칸트가 의무를 벗어나게 하는 유혹을 이겨내게

해 준다는 의미에서 자기 행복을 배려하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듯이(KpV, A166-167), ‘도덕성에

필연적으로 결합된 행복’을 절멸시키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감성적 행복을 마련해 주기 위해 ‘자

연의 예지적 창시자’를 요청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보기에 칸트가 이

맥락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로서 속해 있는 예지 세계에서 ‘덕과 필연

적으로 결합하는 행복’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는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칸트는 이것

을 예지 세계의 원인성을 감성 세계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정 근거로 바라봄으로써 접

근해 가고자 한다. 칸트가 바로 이어서 ‘덕의 의식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행복’의 의미에 대해 살

펴보는 것도 이와 관련해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209) 이러한 생각은 사실상 칸트가 순수 사변 이성의 이율배반을 해소하기 위한 전형적인 사고방식,

즉 “동일한 행위자는 현상으로서(그 자신의 내감에 대해서조차도) 항상 자연의 기계성에 따르는

감성 세계의 인과성을 가지며, 그러나 같은 사건과 관련하여, 그 행위하는 인격이 자신을 동시에

예지체로 (곧, 시간상으로 규정될 수 없는 그의 현존에서의 순수 예지자로) 보는 한에서, 자연 법

칙들에 따르는 저 인과성의 규정 근거를-이 규정 근거 자신은 모든 자연 법칙으로부터 자유롭다-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KpV, A206)와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감성적 존재자이기도 하

면서 동시에 예지적 존재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서,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내’가 감성 세계를

규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행위가 감성 세계에서 일어나는 결과라고 하더라

도, 그 행위가 예지 세계의 원인성을 포함하는 행위, 다시 말해 도덕 법칙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은 ‘도덕적 행위’라면, 그 행위는 단지 자연 법칙의 인과성에 따르는 행위가 아니라 ‘자유로운 행

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성 세계에서 일어나는 결과로서의 행복일지라도, 그 행

복이 예지 세계의 원인성에 의해 규정된 행복이라면, 그 행복은 단지 경향성의 충족으로 이해되는

감성적 행복이 아니라 ‘도덕성에 의해 규정되면서 결합한 행복’, 다시 말해 ‘도덕적 행복’으로 이해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210) 맹주만(1997), 앞의 논문, p.160.

211) 한자경은 덕과 행복의 종합적 결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성[예지] 세계와 감성 세계의 종합

적 관계 자체’를 해명해야 한다고 보면서, 예지 세계와 감성 세계의 관계라는 큰 틀에서 최고선에

서의 덕과 행복의 결합을 바라보고자 한다. 한자경은 “분명한 것은 지성[예지] 세계에 속하는 도

덕적 인격으로서의 내가 감성적 현상 세계에 대해 그 규정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라고 말하면서

예지 세계가 감성 세계를 규정하는 근거일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그래서 “덕과 행복의 종합적 결

합은 오직 도덕성이 행복의 근거가 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면서 칸트의 말을 인용하여 “마음의

도덕성이 원인이 되어 감성 세계에서의 결과인 행복과 필연적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가능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자경은 여기서 연구자가 앞의 주석에서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 칸트가 언급

한 ‘자연의 예지적 창시자’를 생략한 채 인용하고 있다. 한자경도 연구자와 같이 최고선에서 행복

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자와 비슷한 고민 속에서 ‘자연의 예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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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과 필연적으로 결합하는 행복, 다시 말해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최

고선 안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은 단순한 감성적 행복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성에 의해 모든 이성적 존재자들에게 그들의 도덕적 소망의 목표로 세워진 최고

선의 가능성은 예지적 세계와의 연결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KpV, A207) 때문

이다. 칸트는 ‘도덕적으로 규정된 의지가 필연적으로 추구하는 최고선에서의 행복’,

다시 말해 ‘도덕성과 비례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행복’의 의미를 규정해 보기 위해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에서 공통적으로 찬양한 ‘덕의 의식에서 생기는 행

복’을 다시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KpV, A208)

칸트는 특히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말하는 ‘덕의 의식에서 생기는 행복’에 초점을

두고 비판적 검토를 진행한다. 칸트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사리사욕적이지 않은 선

의 실행”과 “경향성들의 절제와 제어”와 같은 덕의 실천이 즐거움[만족]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주장하지만, 그러한 유덕한 행위의 동인, 다시 말해 의지의

규정 근거를 ‘즐거움’에 두었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한편 칸트는 스토

아 학파의 경우 에피쿠로스 학파와는 달리 적어도 즐거움을 행위의 동인으로 간주

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정당하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칸트가 스토아 학파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은 ‘적어도 즐거움을 행위의 동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앞서 밝혀졌듯이 스토아 학파는

덕과 행복을 동일성 차원에서 분석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에피쿠로스 학

파와 마찬가지로 최고선에 대해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칸트의 언급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최고선에서의 덕과 행복의 결

합에서 행복은 결코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칸트는 즐거움을 유덕한 행위의 동인으로 삼으려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기획을

두 가지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에피쿠로스 학파가 사람들에게

창시자’를 하나의 불필요한 언급으로 생각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한자경은 ‘어떻게 도덕성이 행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가’를 ‘도덕 세계가 어떻게 감성 세계의 근원이 될 수 있는가?’로 다시 물

으며,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감성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선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

다. 한자경은 “행복이 그 자리를 갖게 되는 감성 세계가 단순한 감관의 대상인 물리적 자연으로서

가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인 지적 세계가 시간․공간적으로 전개되어 가시적으로 나타난 세계로 이

해되어야 한다.”면서 감성 세계를 순수 도덕 법칙(자유)에 따른 나의 도덕적 행위가 감성적으로 전

개된 세계, 즉 도덕적 이념 세계가 감성화되고 현실화된 세계로 바라본다. 이런 관점에서 한자경은

“도덕 세계가 현상 세계의 이념적 근거이고, 현상 세계가 도덕 세계의 현실적 결과가 되는 그와

같은 종합적 결합, 이것이 바로 도덕적 존재가 지향하는 최고선의 이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최

고선의 이념 아래 도덕성과 결합된 행복은 의미 변경을 겪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최고선 안에서

함께 지향된 행복은 더 이상 도덕성과 무관하게 단순히 감성적 경향성의 충족에 의해 생겨나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성의 완수, 즉 도덕 법칙에 따르는 자유로운 의지 규정으로부터 비로소 생

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덕의 의식이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행복이다.”(한자경(1992), 앞의 책,

pp.228-231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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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할 수 있는 실천적 훈계는 ‘행복하기 위해 덕을 실천하라’가 될 수 있을 것이

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은 바로 유덕한 행위를 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

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런 의미에서 에피쿠로스 학파가 강조하는 행복을 ‘덕의 의식

에 수반하는 행복’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

제가 발생한다. 만약 에피쿠로스 학파가 ‘사리사욕적이지 않은 선의 실행’이나 ‘경향

성의 절제와 제어’에서 생겨나는 행복, 즉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을 사람들을

유덕한 행위로 이끄는 동기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과연 이러한 행복이 그러한 덕을

전혀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행위의 동기로서 작동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자

신의 덕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을 행위의 동기로

제공할 수 있는냐는 것이다. 칸트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면서 에피쿠로스 학파

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 덕 있는 에피쿠로스는, 도덕적으로 선량하기는 하면서도 그 원리들에 대해 충

분히 깊게 사려하지 못한 요즈음의 많은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덕에의 동기를

비로소 마련해주고자 했던 그런 인격들 안에서 덕 있는 마음씨를 이미 전제하는 잘못

에 빠졌기 때문이다.(사실 정직한 사람은 먼저 자기의 정직함을 자각하지 못하면, 행

복함을 발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저런 마음씨에서는 그가 위법했을 때에 자기 자

신의 사고 방식에 의해 불가피하게 자기 자신에게 할 터인 비난과 도덕적인 자기 저

주가, 보통의 경우에는 그의 상태가 보유함직한 쾌적함의 향유를 빼앗아버릴 터이니

말이다.)(KpV, A208-209)

여기서 살펴볼 수 있듯이 칸트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

복’을 행위의 동기로 삼고자 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덕 있는 마음씨’를 지

닌 인격을 전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덕 없는 마음씨’를 지닌 사람들에게 ‘덕의 의

식에 수반하는 행복’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

가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이 ‘덕 있는 마음씨’, 즉 ‘도덕성’을 근거로 하는 행복

일 수밖에 없음을 간접적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칸트가 위의 인용

문에서 “정직한 사람은 먼저 자기의 정직함을 자각하지 못하면, 행복함을 발견할

수가 없다”라고 한 것도, ‘정직한 사람이 자신의 정직함을 의식함으로써 발견하는

행복’이 단순한 ‘감성적 행복’과 구분되는 것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

다. 칸트의 입장은 명확하다. 유덕한 행위로 이끌기 위한 동기로서의 행복이 먼저가

아니라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덕 있는 마음씨’, 즉 ‘도덕성’이 먼저라는 것이

다. 그래서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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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만약 그가 덕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의 모든 행위에서 그의 정의로움을

자각함이 없이는, 그의 생이 기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생의 물리적 상태에서 그에게

행운이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KpV, A209)

덕을 지닌 사람이 지향하는 행복은 단순한 감성적 행복이 아니라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 다시 말해 ‘도덕성에 근거하여 이에 비례적으로 결합한 행복’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칸트가 에피쿠로스 학파를 비판하는 가운데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행복을 행위의 동기로 삼아 유덕한 행위를 실천하

게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

것이 가능하려면 이미 덕 있는 마음씨를 갖춘 인격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칸트가 보기에 모든 사람들이 ‘유덕한 행위의 결과로 느껴지는 행복’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덕 있는 마음씨를 갖춘 인격’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

이었던 것이다.212)

다음으로 칸트는 즐거움을 유덕한 행위의 동인으로 간주하는 것에 언제나 ‘사취

의 오류’, 즉 ‘느끼는 것과는 다른 행하는 것에 대한 자기 의식에서의 착시’에 빠질

근거가 놓여 있음을 지적한다.(KpV, A209) 다시 말해, 유덕한 행위는 순수 실천 이

성이 도덕 법칙을 통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한다는 의식에서 비롯하며, 이러한

덕의 의식이 행복의 근거임에도 불구하고 유덕한 행위를 그러한 행위에서 기대되는

행복에 의해 촉발되는 ‘한낱 수동적으로 느끼는 어떤 것’(KpV, A210)으로 간주하는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피쿠로스 학파가 찬양하는 ‘덕의 의식에 수반

하는 행복’은 ‘순전히 이성에 의한 직접적인 의지의 규정에 근거한 쾌감’(KpV,

A210)으로 이해해야지, ‘행복을 위해 욕구된 유덕한 행위에서 비롯한 쾌감’으로 이

해해서는 안 된다. 칸트는 ‘이성에 의한 직접적인 의지 규정’이 결과적으로 ‘욕구된

행위에서 기대되는 쾌적함의 감정’과 마찬가지로 유덕한 행위를 촉진시킬 수 있기

212) 연구자는 칸트가 여기서 에피쿠로스 학파의 주장이 지닌 내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특

히 행복의 의미와 관련한 비일관성이 드러나게 된다. 만약 에피쿠로스 학파가 추구한 행복이 ‘감성

적 행복’이기만 하다면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도 ‘감성적 행복’이어야 행복을 위한 유덕한 행

위의 실천을 실천적 훈계로서 제시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덕의 의식

에 수반하는 행복’이 감성적 행복일 수 있을까? 설령 에피쿠로스 학파가 말하는 덕이 칸트가 말하

는 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낱 감성적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사리사욕

적이지 않은 선의 실행’, ‘경향성의 절제와 제어’, ‘정직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을

감성적 행복으로만 간주할 수 있을까? 연구자가 보기에 칸트도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에피쿠

로스 학파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사리사욕적이지 않

은 선의 실행’, ‘경향성의 절제와 제어’, ‘정직함’이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에 이르게 해 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칸트의 관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첫째 그러한 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훈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둘째 그러한 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행복은 ‘감

성적 행복’ 아닌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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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이러한 착각에 쉽게 빠져든다고 말한다.(KpV, A210) 하지만 이렇게 “의지를

지성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일을 감성적인 일로, 그리고 특수한 감성적

감정의 작용결과로 생각하는 것은 사기이기도 하다”(KpV, A210-211) 에피쿠로스

학파는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이 도덕 법칙에 의한 직접적인 의지의 규정에서

비롯한 결과임을 깨닫지 못하고,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 그 자체를 유덕한 행

위의 동기로 간주함으로써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칸트에 있어 덕의 진

정한 동기, 다시 말해 도덕적 행위의 진정한 동기는 언제나 “직접적으로 법칙에 의

해 의지를 규정한다는 의식”(KpV, A210) 놓여 있어야지, 결코 쾌감이나 행복과 같

은 감성적 감정에 놓여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칸트가 인간을 유덕한 행위로 이끄

는 감성적 감정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칸트는 도덕적 행위의 동

기를 감성적 감정에 두고자 하는 인간의 특성에 주목하여 “이 감정에 대한 이성의

작용을 최선을 다하여 배양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한 일”(KpV, A211)이라고 말하

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칸트는 도덕적 규정 근거의 기초에 이러한 특

수한 감성적 감정들을 근거로 둘 경우, 본래의 진정한 동기인 도덕 법칙 자체를 훼

손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칸트는 아직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다시 말해 도덕

법칙에 의한 직접적인 의지의 규정에서 비롯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

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앞의 칸트의 논의를 살펴보면서 ‘덕의 의식에 수반

하는 행복’이 적어도 감성적 행복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의지의 직접적인 규정 근

거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칸트는 이제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의

의미를 좀 더 적극적으로 규정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칸트는 ‘존경’의 감정이라

는 도덕적 감정을 언급한다. 칸트가 갑작스럽게 ‘존경의 감정’을 꺼내 든 이유는 이

감정이야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존경의 감정에 대한 칸트의 설명을 통해 확

인할 수 있다.

존경은-즐거움이나 행복의 향유가 아니라-그러므로 이성의 기초에 놓인 어떤 앞

서가는 감정-이것은 언제나 감성적이고 정념적일 것이다-도 대신할 수 없는 무엇이

다. 그것은 법칙에 의해 의지를 직접적으로 강제하는 의식으로서 쾌감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이것은 욕구 능력과의 관계에서 [쾌감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지만,

그러나 다른 원천에서 하는 것이니 말이다.(KpV, A211)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존경의 감정은 즐거움이나 행복의 향유와 같은 감성적이고

정념적인 감정이 아니라 도덕 법칙에 의해 의지가 직접적으로 규정되고 있다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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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에서 비롯한 특수한 감정, 즉 도덕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존

경의 감정을 마치 욕구 능력과의 관계에서 쾌감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행

위로 이끌 수 있는 하나의 정념적 동기로 생각하기 쉬우나, 존경의 감정은 순수 실

천 이성에 근거한 ‘도덕적 동기’로서 결코 쾌감과 유사한 정념적 감정일 수 없다.

이처럼 존경의 감정은 도덕 법칙의 직접적 의지 규정에 대한 의식이 감정에 미친

작용결과로서, 순수 실천 이성에 그 원천을 둔 실천적이고 도덕적인 감정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존경의 감정은 예지 세계의 원인성, 즉 도덕 법칙에 자신의 근원

을 두면서도 감성 세계의 작용결과로서 펼쳐져 나가는 ‘특수한 감정’인 것이다. 이

를 종합해 볼 때 존경의 감정은 도덕 법칙의 직접적 의지 규정에 대한 의식에 근거

한 감성 세계의 작용결과로서, 일체의 정념적 감정과 구분되는 도덕적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칸트가 생각하는 존경의 감정이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

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

다. 왜냐하면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이 도덕 법칙의 직접적 의지 규정에 대한

의식에 근거한 감성 세계의 작용결과로서 이해할 수 있다면, 이 때의 행복은 한낱

감성적 행복이 아니라 ‘도덕성에 근거한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가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을 설명하고자 한 자리에서 ‘존경의

감정’을 언급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유사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제 칸트는 최고선에서 도덕성과 결합하는 행복의 의미 변화를 생각하

면서 ‘덕의 의식에 수반하는 행복’을 다시 규정해 보고자 한다. 칸트는 스스로 “행복

이라는 말처럼 향유를 표시하지는 않으면서도, 자기 실존에 만족함이라는, 덕의 의

식에 필연적으로 수반해야 하는 행복 비슷한 것을 지시하는 말을 갖고 있지 않은

가?”(KpV, A211-212)라고 묻고, 이에 긍정하면서 ‘자기 만족(Selbstzufriedenheit)’(KpV,

A212)이라는 표현을 제시하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기 만족이라는 말은 본래의 의미에 있어서 항상, 아무런 것도 필요함을 의식

하지 않는, 자기 실존에 대한 소극적인 만족(Wohlgefallen)만을 시사한다. 자유 및 결

연한 마음씨로 도덕 법칙을 준수하는 능력으로서의 자유 의식은 우리의 욕구를(비록

촉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규정하는 운동인인 경향성들로부터의 독립성이다.

내가 나의 도덕적 준칙들을 준수함에 있어서 그러한 자유를 의식하는 한에서, 그것은

그와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어떤 특수한 감정에도 의존하고 있지 않은, 불변적인

만족의 유일한 원천이고, 이런 만족은 지성적인 것이라 일컬어질 수 있다.(KpV,

A212)

자기 만족은 인간이 도덕 법칙을 준수할 때 자유를 의식하는 한에서 그 자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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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으로 결합하는 만족으로서, 그 어떠한 특수한 감정에도 의존하고 있지 않는

‘지성적 만족(intellektuelle Zufriedenheit)’(KpV, A212)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자유

의 의식’은 일체의 경향성들로부터의 독립성을 의식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유와

필연적으로 결합하는 ‘자기 만족’은 경향성들에 수반하는 불만족으로부터 독립해 있

다는 의식 속에서 느끼는 소극적인 만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칸트는 이러한 만족

을 ‘자기 인격에 대한 만족(Zufriedenheit mit seiner Person)’(KpV, A213)이라고 일

컫는다. ‘자기 인격에 대한 만족’은 이처럼 ‘자유 자신’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향유

(Genuß)를 누리는 데서 느끼는 만족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이 향유는 감정의 적

극적인 개입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감성적 행복’이라고 일컬을 수는 없다.(KpV,

A213-214) 칸트는 또한 ‘자유의 의식’과 결합하는 ‘자기 만족’을 적어도 경향성들 및

욕구의 영향에서 해방되어 자기를 유지할 수 있는 한에서 ‘정복(Seligkeit)과 비슷한

것’(KpV, A214)이라고도 말하고, 더 나아가 적어도 근원상으로는 오로지 최고 존재

자에게나 부여할 수 있는 ‘자족(Selbstgenugsamkeit)과 유사한 것’(KpV, A214)이라

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처럼 칸트는 최고선에서 도덕성과 결합하는 행복을 ‘자기 만족’, ‘자기 인격에

대한 만족’, ‘정복과 유사한 것’, ‘자족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최고선에

서의 행복을 어떤 표현 방식으로 이해하든지 간에, 그러한 행복은 도덕 법칙의 직

접적인 의지 규정에 대한 의식, 즉 자유의 의식에 필연적으로 결합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순수 실천 이성이 자신의 궁극목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도덕 법칙과 자유를 의식하는 한에서 주어지는 도덕성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의 근원에는 인간이 감성 세계에만 속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예지 세계에도 속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칸트

가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자기 만족’이나 ‘자기 인격에 대한 만족’을 넘어 경향성과

욕구로부터 완전한 독립성을 지닌 존재자에게나 해당할 수 있는 ‘정복’이나 신과 같

은 최고 존재자에게나 부여할 수 있는 ‘자족’과 연결시키려 한 것도 예지적 존재자

로서의 인간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선에서 도덕성과 종합적으로 결합하는

행복은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로서 도덕 법칙을 준수할 때 자유를 의식하면서 얻게

되는 행복, 다시 말해 덕의 의식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행복으로서 ‘감성적 행복’

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213) 칸트는 이렇게 최고선

213) 이러한 최고선에서의 행복의 의미 변화와 관련하여 맹주만은 “덕과 행복의 종합적 인과적 결합

으로 이루어진 최고선 안에서 지향된 행복이란 감성적 존재가 자신의 주관적 경향성과 욕구의 만

족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를테면 현실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때 느끼게 되는 그런 행복이 아니다.

그것은 도덕 법칙을 준수할 때 그 결과로서 감성적 존재에게 주어지는 만족감으로서의 행복 같은

것, 일종의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도덕적 만족감 같은 것이다.”(맹주만(1997), 앞의 논문, p.160)라

고 말하고, 한자경은 “최고선 안에서 함께 지향된 행복은 더 이상 도덕성과 무관하게 단순히 감성적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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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의 종합적 결합에서 의미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행복’, 다시 말해 ‘도덕성

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을 ‘존경의 감정’, ‘자기 만족’, ‘자기 인격에 대한 만족’,

‘지복과 유사한 것’ ‘자족과 유사한 것’으로 규정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최고선에

서의 행복은 언제나 ‘도덕 법칙에 의한 직접적인 의지 규정에 근거한 행복’이자 ‘도

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의 행복’이라는 점에서, ‘존경의 감정’을 ‘도덕적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행복’214)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칸트는 이처

럼 최고선에서 도덕성과 결합하는 행복의 의미를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자의 관점

에서 ‘도덕적 행복’으로 이해함으로써 순수 실천 이성의 이율배반을 해결했다고 생

각하고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실천 원칙들에서는 도덕성의 의식과 그 도덕성의 결과로서 그에 비례하는 행복에

대한 기대 사이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합은 적어도 가능하다고 생각된다.(그러나

그렇다고 물론 그것이 인식되거나 통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반대로, 행복

추구의 원칙들이 도덕성을 낳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최고선의 첫째 조건인) 최상선

은 도덕성을 형성하고, 반면에 행복은 최고선의 두 번째 요소를 형성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행복은 단지 도덕적으로 조건지어진, 그러면서도 필연적인 도덕성의 결과이

다. 이 [행복의 도덕성에의] 종속에서만 최고선은 그것을 필연적으로 가능하다고 표상

할 수밖에 없는 순수 실천 이성의 전 객관이다. 왜냐하면 최고선을 낳기 위해서 가능

한 모든 것을 하라는 것이 순수 실천 이성의 명령이기 때문이다.(KpV, A214-215)

순수 실천 이성이 필연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전 대상이자, 순수 실천 이성

이 최선을 다해 촉진할 것을 명령하는 궁극목적은 최상선으로서의 ‘도덕성’과 그러

향성의 충족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성의 완수, 즉 도덕 법칙에 따르는 자유로운 의

지 규정으로부터 비로소 생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덕의 의식이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행복이다.”라고 말

하고 있다.(한자경(1992), 앞의 책, p.231)

214) 앞에서도 계속 강조해 왔지만 여기서 연구자가 말하는 ‘도덕적 행복’이란 유덕한 행위로 이끄는

동기로서의 행복이 아니라 ‘도덕 법칙의 직접적 의지 규정에 대한 의식’, 다시 말해 유덕한 행위를

했다는 의식에 근거한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을 의미한다. 칸트가『윤리형이상학』의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에서 도덕적 행복을 ‘자기 모순적인 아무것도 아닌 것’(TL, AVII)으로 간주한

것은 바로 도덕적 행복을 전자의 경우로 이해했을 때, 즉 도덕적 행복을 유덕한 행위를 위한 본래

적인 동기로 이해했을 때에 해당하는 것이다. 칸트는 도덕적 행복의 의미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쾌락[행복]주의자들의 관점으로서 그들은 “의무의 개념이 직접적으로 의지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

라, 오직 예견된 행복에 의해서만 의무를 행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TL,

AVII-VIII) 칸트는 “생각하는 인간은 악덕으로의 유혹을 이겨내고 자기의, 흔히는 힘겨운, 의무를

행했다고 의식할 때, 자신이 영혼의 안정과 만족의 상태에 있음을 발견하는 바, 이 상태를 사람들

은 충분히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다”(TL, AVIII)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행복이야 말로

진정한 ‘도덕적 행복’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구자가 처음에 언급한 후자의 ‘도

덕적 행복’, 즉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칸트가 도덕적 행복을

자기 모순적인 것이라고 언급한 특정 부분만을 가지고 ‘도덕적 행복’을 칸트의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적절한 이해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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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이 종합적으로 결합한 최고선이다. 하지만 칸

트가 생각한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 가능성은 전적으로 ‘사물들의 초감성적 관계’에

속하는 것이었다.(KpV, A215) 다시 말하면 최고선에서의 도덕성과 행복의 종합적

결합은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로서 속하는 예지 세계에서 가능한 것으로 이해되었

다. 그래서 칸트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감성 세계로부터 독

립적이면서도 예지 세계에 원인성을 둔 ‘감정’ 내지는 ‘만족’으로 규정하고자 노력하

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도덕성과 행복의 종합적 결합을 예지 세계 안에서의 결합

으로 간주하는 최고선은 하나의 이념으로서 현실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

겠지만, 최고선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인간의 모든 행위는 감성 세계에 속할 수밖

에 없고 또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의

결과로서 감성 세계에 주어지는 ‘감성적 행복’에 무관심할 수가 없다. 최고선이 ‘도

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인간

의 도덕적 소망 속에서 지향되는 궁극목적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소망하는 행복

은 ‘지금 이 세계에서의 행복’을 배제하지 않는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도덕적 행복’과 더불어 그의 도덕성에 비례하는 한에서의 ‘감성적 행복’도 누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감성적 행복은 감성 세계의 자연 법칙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서 그것과 관련된 일은 인간 능력 밖의 일이다. 따라서 최고선이 우리의 도

덕적 노력에 따라 감성 세계 안에서 실현되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자신의 도덕적

노력에 비례하는 ‘감성적 행복’이 주어지지 못한다면, 순수 실천 이성은 여전히 불

만족스러운 상태에 머물고 말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로서 행

복을 필연적으로 추구한다. 그래서 칸트는 이제 ‘도덕적 행복’ 뿐만 아니라 ‘감성적

행복’까지 포함한 최고선의 실현 가능성의 조건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순

수 실천 이성에 의해 도덕적으로 요청되는 ‘영혼의 불멸성’과 ‘신의 현존’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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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고선에서 종교로의 이행과 행복

칸트는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덕의 의식에 필연적으로 수반해야 하는 행복’ 비슷

한 것으로서 ‘자기 만족’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만족’으로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은 사실상 아무 것도 필요함을 의식하지 않는 ‘자기 실존에

대한 소극적인 만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만족은 인간이 예지적 존

재자로서 속하는 예지 세계의 초감성적 관계 안에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며, 따라

서 최고선도 예지 세계의 상정 아래서 가능한 이념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의지의 필연적 객관은 이 세계에서의 최

고선의 실현이다.”(KpV, A219) 도덕 법칙은 원래 자유와 함께 예지 세계에 속하는

것이지만 도덕 법칙을 의무로 의식하여 행위를 통해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감성적 존재자이기도 한 우리 자신이며, 또 그것이 실현되어야 할 곳 역시 현실 세

계이다. 만일 도덕 법칙이 감성 세계와 전혀 무관하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에 지

나지 않을 것이며, 현실과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는 최고선 또한 전혀 목적적 가치

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215) 도덕 법칙은 “이 세계에서 자유에 의해 가능한 최고

선”(KU , B423)을 궁극목적으로 삼으며, 최고선의 실현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

을 의무로서 명령한다. 이는 곧 순수 실천 이성이 부과하는 과제이자 명령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결국 순수 실천 이성의 모든 실천적 관심은 현실 세계에서의 최고선

의 실현에 놓여 있게 된다. 따라서 도덕 법칙에 의해 가능한 최고선은 “단순히 지

성적 만족이라는 예지 세계에서 가능한 소극적인 만족에서 그 실현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감성 세계에서 실현되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관심과 요구를 충족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216)

그래서 이제 칸트는 이 현실 세계에서 가능한 최고선의 실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그런데 최고선을 현실 세계에서 실현한다는 것은 예지 세계가 아닌 감성 세

계에서의 최고선의 실현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다시

‘감성적 행복’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최고선은 예지 세계의 원

인성으로서의 도덕 법칙에 근거한 ‘도덕성’과 감성 세계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행복’,

정확하게 말해 ‘감성적 행복’과의 종합적 결합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도덕 법칙은 도덕적 행위를 가능하게 할 수는 있지만 도덕적 행위에 정확히 비례하

는 행복을 현실 세계에서 가능하게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감성 세계에서의 행복

215) 박찬구,「칸트 도덕 신앙의 윤리적․종교적 의미」,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문화연구소,『인문학연구』

제5집, 2000, p.81.

216) 맹주만(1997), 앞의 논문,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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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순전히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으로서, 인간이 아무리 도덕 법칙을 엄

격히 준수할지라도 그러한 도덕성에 필연적으로 결합하는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일

은 인간 능력 밖의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초감성적 세계에서의 도덕성과 행복

의 결합이 감성 세계에서 마저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무능력의 보완’을 위

한 무엇이 필요하다.217) 그래서 칸트는 인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현실

세계에서의 최고선의 실현’을 가능하게 할 조건을 고찰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영혼의 불멸성’과 ‘신의 현존’이라는 ‘순수 실천 이성의 요청218)’이다.

우선 칸트는 최고선의 첫 번째 요소인 도덕성의 완성과 관련하여 ‘영혼의 불멸

성’을 요청한다. 최고선의 실현을 위해서는 먼저 최상선으로의 도덕성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래서 칸트는 ‘의지와 도덕 법칙의 완전한 부합’(KpV, A219)이 최고선의 최

상 조건으로서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칸트는 “의지의 도덕 법칙과의

완전한 부합은 신성성, 즉 감성 세계의 어떠한 이성적 존재자도 그의 현존의 어떤

시점에서도 이를 수 없는 완전함이다.”(KpV, A220)라고 말하며, ‘의지와 도덕 법칙

과의 완전한 부합’이라는 ‘도덕적 완전성’을 ‘신성성’의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칸트에 따르면 ‘신성성’은 도덕 법칙이 강요된 명령이나 의무로 다가오지 않는 존재

자(KpV, A57-58), 다시 말해 도덕 법칙을 완전하게 기꺼이 행할 수 있는 존재자

(KpV, A149)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경지이다. 그래서 칸트는 ‘신성성’은 감성 세계

에도 속하는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 인간

이 무한히 접근해 가도록 노력해야 할 원형으로서의 실천 이념이라고 말한다.(KpV,

A58, 149) 여기서 확인해 볼 수 있듯이 칸트는 ‘신성성’을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이 ‘무한한 전진’의 과정 속에서 도달하고자 노력해야 할 원형이자 실천 이념으

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볼 때 칸트가 말하는 ‘신성성’이란 ‘의지와 도덕 법칙의 완

전한 부합’이라는 도덕적 완전성에 이르기 위한 ‘무한한 전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의지와 도덕 법칙의 완전한 부합은 이를 향한 무한한 전진

중에서만 만나질 수 있다”(KpV, A220)고 말한다. 이제 최고선의 실현이 도덕 법칙

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의지의 필연적 객관이듯이, 최고선의 한 요소인 도덕성의

완성을 위한 ‘무한한 전진’도 의지의 필연적 객관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

러나 감성 세계에 속한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이러한 ‘무한한 전진’의

과제를 자신의 제한된 삶 안에서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17) 맹주만(1997), 앞의 논문, p.163.

218) 칸트는 ‘요청(Postulat)’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요청이라는 말로써 하나의 이론적인 명

제, 그러나 그것이 선험적인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실천 법칙과 뗄 수 없게 결부되어 있는 한에서,

그러한 것으로 증명될 수는 없는 그런 명제를 지칭한다.”(KpV, A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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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전진은 동일한 이성적 존재자의 무한히 지속하는 실존과 인격성-이것을

사람들은 영혼의 불멸성이라고 부른다-을 전제하고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최고선은

실천적으로는 영혼의 불멸성을 전제하고서만 가능하다. 그러니까 이 영혼의 불멸성은

도덕 법칙과 불가분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서 순수 실천 이성의 하나의 요청

이다.(KpV, A221)

이처럼 칸트는 도덕성의 완성을 향한 ‘무한한 전진’을 위해 영혼의 불멸성을 요

청한다. 따라서 칸트의 초점은 ‘영혼의 불멸성’ 그 자체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도덕 법칙의 완전한 부합’을 위해 ‘무한한 전진’을 계속해야 하는 인간의 ‘도

덕적 노력’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219) 그래서 순수 실천 이성은 최고선의 실현

을 위한 실천적인 전제로서 도덕 법칙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한에서 ‘영혼의 불

멸성’을 요청하는 것이다. 인간과 같은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에게는 보다 낮은 단

계로부터 보다 높은 단계의 도덕적 완전성으로 무한히 전진해 가는 일만이 가능할

뿐이다.”(KpV, A221) 따라서 ‘영혼의 불멸성’은 “도덕적으로 보다 좋은 것으로의 진

보”(KpV, A222)가 이승의 삶 너머에서까지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라는 희망 속에

서 도덕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인 최고선의 실현을 위해 “도덕 법칙은 최고선의 첫

219) 칸트가 ‘영혼의 불멸성’을 요청함으로써 결국 강조하고자 한 것은 “오로지 무한한 전진 중에서

만 도덕 법칙과의 완전한 부합에 이를 수 있다”(KpV, A220-221)는 것이다. 칸트는 이 요청이 두

가지 점에서 ‘아주 큰 유용성’을 갖는다고 본다. 한 가지는 사람들이 도덕 법칙을 관대하게 대하거

나 우리의 편안함에 맞춰 기교적으로 다룸으로써 신성성을 잃게 함을 방지한다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사람들이 의지의 신성성의 완전한 획득을 기대하면서 열광적이고 접신[接神]적인 몽상에

빠져들게 됨으로써 신성성을 잃게 함을 방지한다는 점이다.(KpV, A221 참고) 칸트는 이러한 두

가지 행태가 “엄밀하고 엄격한, 그러면서도 관념적이지 않고 참된 이성 명령을 정확하고 일관되게

준수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방해할 뿐이라고 말한다.(KpV, A221) 이를 통해 볼 때 칸트는 ‘의지

와 도덕 법칙의 완전한 부합’이라는 ‘도덕적 완전성’이 감성 세계 안에서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도

덕적 완전성으로서의 ‘신성성’을 해치는 것을 경계하고 예방하기 위해 ‘영혼의 불멸성’을 전제로 한

‘무한한 전진’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가 보기에 감성 세계에서 실현 가능한 최고선

을 다루는 데 있어 도덕 법칙이 감성적 차원에서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발

생될 수 있는데, 칸트는 이를 근원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최고선의 최상 조건인 도덕성의 완성을

‘신성성’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최고선의 첫째 요소인 도덕성이 마치 감성적 차

원에서 완성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면, 최고선과 관련한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의 도덕성에 비

례하여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감성적 행복’에 집중될 것이고, 결국 이러한 관심은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최고 원인’으로서의 신으로 향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감성 세계에서 실현 가능

한 최고선은 ‘자의적으로 판단된 도덕성’과 비례적으로 결합하는 ‘감성적 행복’으로 이해될 수 있

고, 이는 다시 이러한 최고선을 가능하게 하는 ‘신에 대한 기복적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을 최고선으로 간주하는 칸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일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가 생각하기에 칸트가 영혼의 불멸성을 순수 실천 이성의 요청

으로 간주한 것에는 감성 세계에서의 최고선 실현에서 ‘최고선의 감성적 타락’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적 의도’가 놓여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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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의 가장 고귀한 부분인 도덕성의 필연적 완성이라는 실천적 과제에 이르렀고, 이

때 이 과제는 오로지 영원에서만 해결될 수 있으므로, 영혼의 불멸성의 요청에 이

르렀다.”(KpV, A223) 그렇지만 도덕 법칙이 우리에게 궁극목적으로서 촉진할 것을

명령하는 최고선은 최상선으로서의 도덕성과 함께 이에 비례하는 행복이 결합된 완

전선으로서의 최고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도덕 법칙 안에는 도덕성과

이에 비례하는, 세계에 그 일부로서 속하고 따라서 세계에 부속돼 있는 존재자의

행복 사이의 필연적 연관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도 없다.”(KpV, A224) 그래서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자는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다 하더라도 자기의 의지로써 이 자

연의 원인일 수가 없고, 자신의 힘으로 도덕 법칙과 행복을 일관되게 일치시키도록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 실천 이성의 과제, 즉 최고선의 실

현을 위한 필수적 작업에서는 이러한 도덕성과 행복의 연관을 필연적인 것으로서

요청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최고선의 촉진을 추구해야 하므로 최고선 역시 가능해

야만 하는 것이다.(KpV, A225) 그러므로 최고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감성 세계에

속한 유한한 이성적 존재자의 무능력을 보완하여 도덕성과 행복 사이의 정확한 일

치를 보장할 수 있는 근거, 즉 ‘자연과는 구별되는 전체 자연의 원인’으로서의 ‘신’의

현존이 요청된다.(KpV, A225) 최고선을 궁극목적으로서 촉진하는 것은 도덕 법칙

의 명령이자 우리의 의무이다. 최고선의 불가능성은 곧 도덕 법칙의 허망함을 드러

낸다. 하지만 도덕 법칙은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결코 허망한 것일 수 없다. 이 최

고선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은 우리의 정당한 권한일 뿐만 아니라 요구로서의 의

무와 결합된 필연성인 것이다.(KpV, A226) 따라서 도덕 법칙은 최고선의 첫째 요

소인 도덕성의 완성을 위해 ‘영혼의 불멸성’의 요청에 이른 다음, 이제 최고선의 둘

째 요소인 도덕성에 일치하는 행복의 가능성을 위해 ‘신의 현존’을 요청하는 데 이

르게 된다.

도덕 법칙은 또한 최고선의 둘째 요소, 곧 저 도덕성에 부합하는 행복의 가능성에,

앞서와 마찬가지로 사욕 없이 순전히 무당파적인 이성에 의해서, 곧 이 [행복이라는]

결과에 합치하는 원인의 현존이라는 전제에 이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순수 이성

의 도덕 법칙의 수립과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우리 의지의 객관인) 최고선이 가

능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신의 현존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KpV,

A223-224)

이처럼 최고선은 신이 현존한다는 조건 아래서만 생겨나는 것이므로, 그것은 신

이 현존한다는 그 전제를 의무와 불가분리적으로 결합한다.(KpV, A226) 그래서 칸

트는 “신의 현존을 받아들임은 도덕적으로 필연적이다”(KpV, A226)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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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칸트는 여기서 두 가지 주의점을 지적한다. 첫 번째는 신의 현존을 전제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러한 도덕적 필연성이 ‘주관적인 요구’이지, 그 자체로 ‘객관

적인 의무’는 아니라는 점이다.(KpV, A226) 왜냐하면 사물의 현존을 받아들이는 일

은 순전히 이성의 이론적 사용과 관련이 있으므로, 사물의 현존을 받아들이는 의무

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도덕적 필연성이 모든 책임 일반의

근거로서 신의 현존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연적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다.(KpV, A226) 왜냐하면 모든 책임의 근거는 오로지 이성 자신의 자율에 있는 것

이기 때문이다. 의무에 속하는 것은 이 세계에서 최고선을 제시하고 촉진하는 일

뿐이지(KpV, A226) 신의 현존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다만

‘신의 현존’은 도덕 법칙이 의무로서 부과하는 최고선의 실현 가능성을 위한 전제로

서만 요청되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신의 현존’의 요청은 의무 의식과 결합되어 있

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신의 현존을 요청하는 도덕적 필연성을 ‘주관적인 요구’로

설명한 것은 이것이 “신이라는 전체 자연의 최고 원인이 있어, ‘행복할 만한 자격

(품격)’(도덕성)을 갖춘 상태와 실제로 행복한 상태가 일치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소

망을 충족시켜줄 것이라는 믿음”220)과 관련되는 것임을 암시한다. 그래서 칸트는 최

고선의 실현 가능성을 위해 전제할 수밖에 없는 ‘신의 현존’의 요청을 도덕 법칙과

결합된 실천적 관점에서 ‘순수한 이성 신앙(reiner Vernunftglaube)’(KpV, A227)으

로 연결시킨다.

이를[신의 현존을-연구자 삽입] 받아들임은 이론 이성과 관련해서는 설명 근거로

보아 가설(Hypothese)이라 일컬어질 수 있겠으나, 도덕 법칙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되

는 객관(곧, 최고선), 그러니까 실천적 의도에서의 요구에 대한 이해 가능성과 관련해

서는 신앙[믿음], 그것도 순수한 이성 신앙이라 일컬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순전히

순수 이성만이 (이론적 사용의 면에서나 실천적 사용의 면에서나) 신앙이 생기는 원

천이기 때문이다.(KpV, A227)

이러한 신앙은 최고선의 실현 가능성과 관련하여 신의 현존의 요청과 결합하고

있기는 하지만 신앙의 근거를 ‘신’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의 자율’에

서 찾는다는 점에서 ‘순수한 이성 신앙’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순수한 이성

신앙에서 신의 현존은 도덕 법칙을 준수한다는 조건 아래서 최고선에 이르기 위해

요청되는 전제일 뿐, 결코 도덕 법칙을 규정하는 근거이거나 도덕 법칙의 준수를

위한 동기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의 현존이 도덕 법칙에 앞서 도덕 법칙을 규정

220) 박찬구(2000), 앞의 논문,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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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근거가 된다면 ‘의지의 타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의지의 타율’은 최

고선의 첫째 요소인 도덕성을 정초할 수 없기에, 결국 최고선은 불가능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선은 언제나 도덕 법칙의 직접적인 의지 규정을 의식함으로

써, 다시 말해 자유를 의식함으로써만 가능할 수 있다. 순수 실천 이성의 자율과 양

립할 수 있는 ‘신의 현존의 요청’만이 순수한 이성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순수한 이성 신앙의 이러한 성격을 놓치지 않는다면 다음 칸트의 말을

좀 더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도덕 법칙은 순수 실천 이성의 객관이자 궁극목적인 최고선의 개념을

통해 종교에, 다시 말해 모든 의무들을 신의 명령들로 인식하는 데에 이른다.(KpV,

A233)

이처럼 도덕 법칙은 최고선의 실현을 자신의 궁극목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종교에 이르게 되고, 여기서 모든 의무들을 신의 명령들로 인식한다. 물

론 여기서 칸트가 도덕 법칙이 모든 의무들을 신의 명령들로 인식하는데 이른다고

말하는 것은 신의 명령을 의지를 제재하는 타율적 명령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아니

다. 도덕 법칙은 언제나 순수 실천 이성의 자율에 기초하여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

가 스스로 수립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우리가 도덕 법칙

을 신의 명령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도덕적으로 완전

한(성스럽고 선량한), 동시에 전능한 의지에 의해서만 최고선을 희망할 수 있으므로

이 의지에 합치함으로써 최고선에 이르는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KpV,

A233) 도덕 법칙은 우리에게 최고선을 궁극목적으로서 추구할 것을 의무로서 명령

한다. 이러한 최고선의 실현이 가능하려면 도덕성과 이 도덕성에 정확히 비례하는

행복이 필연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는데, 이는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순수 실천 이성은 자신의 궁극목적인 최고선의 실현을 위해 신의 현존을 요

청한다. 따라서 신의 현존은 감성 세계 안에서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 즉 최고선

이 가능하기 위해 전제되는 ‘도덕적으로 필연적인 요청’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의 관점에서 ‘신의 명령’이나 ‘신의 의지’는 필연적으로 ‘도덕 법칙의 엄격한 준

수’, 즉 ‘도덕성’에 기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의무들을 신의 명령으로

인식하는 종교, 즉 순수한 이성 신앙에서도 “모든 것은 사욕 없이 순전한 의무에만

기초한다.”(KpV, A233) 순수한 이성 신앙에서 신의 명령이나 신의 의지를 신의 상

벌(賞罰)과 관련한 공포나 기대에 기초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행위들의 모든

도덕적 가치를 파괴할 뿐인 것이다.(KpV, A233)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신의 현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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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을 통해서만 희망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신에 의해 가능한 행복이 최고선의 촉

진을 명령하는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최고선의 촉진을 명령하는 의지

의 규정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도덕 법칙이다. 이처럼 칸트는 도덕 법칙이

최고선의 개념을 통해 종교에 이른다고 보면서도, 이 종교의 원천은 ‘신’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에 의해 수립된 ‘도덕 법칙’에 있는 것임을 재차 강조한

다. 이를 칸트의 다음 설명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도덕 법칙은 세계에서 최고의 가능한 선을 나의 모든 행위의 최종의 대상으로 삼

을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나의 의지를 성스럽고 선량한 세계 창시자의

의지에 합치시킴으로써밖에는 이 최고선의 실현을 기대할 수 없다. 최대의 행복이

(피조물에 있어서 가능한) 최대한의 도덕적 완전성과 가장 정확한 비례로 결합되어

있다고 표상되는 전체 개념으로서의 최고선의 개념 안에는 내 자신의 행복이 함께 포

함되어 있다 할지라도, 최고선의 촉진을 지시하게 되는 의지의 규정 근거는 행복이

아니라 도덕 법칙이다. (도덕 법칙은 오히려 행복에 대한 나의 무제한적인 요구를 조

건에 맞춰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KpV, A233-234)

이제 우리는 도덕 법칙이 궁극목적으로서 촉진할 것을 명령하는 최고선의 실현

가능성을 순수한 이성 신앙 안에서 희망할 수 있다. 이러한 희망은 물론 우리가 ‘행

복할 만한 품격’, 즉 도덕성을 갖추었을 때만 가능하다. 순수한 이성 신앙 안에서

행복할 만한 품격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노력에 정확하게 비례하는 행복을

얻게 될 것을 정당하게 희망할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종교가 도덕에 더해지는

때에만, 우리가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없지 않도록 마음 쓴 정도만큼 언젠가 행

복을 나눠 갖게 될 것이라는 희망도 나타날 것이다.”(KpV, A234)라고 말한다.

순수한 이성 신앙 안에서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신에 의해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가진 자에게 부여되는 행복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여기서 일컬어지는

모든 행복은 도덕 법칙을 준수하기 위한 동기가 아니라 신에 의해 가능한 ‘도덕성

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순수한 이성 신앙 안에서

추구되는 모든 행복은 결국 ‘행복할 만한 품격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도덕성에 비

례하여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하는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도덕론과 행복

론의 구분이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칸트는 도

덕론은 본래, “어떻게 우리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관한 교설이 아니라, 어

떻게 우리는 행복을 누릴 만한 품격을 갖추어야 하는가에 대한 교설”(KpV, A234)

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코 도덕(론)을 행복론으로, 다시 말해 행복을 나눠 갖는

지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KpV, A234)고 말하면서 도덕론과 행복론의 엄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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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을 강조한다. 하지만 칸트는 “최고선을 촉진하고자 하는 도덕 법칙에 기초한

도덕적 소망이 각성되고 이를 위해 종교로의 발걸음이 내딛어진 연후에는, 이 도덕

론 또한 행복론이라 불릴 수 있다.”(KpV, A235)고 말한다. 왜냐하면 “행복에 대한

희망은 오로지 종교와 더불어서만 개시되기 때문이다.”(KpV, A235) 이 때 말하는

행복이란 당연히 최고선 안에서 도덕성과 결합한 행복, 다시 말해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을 의미한다. 최고선의 실현은 곧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의 실현

이고, 이러한 행복은 ‘신의 현존’을 요청함으로써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도덕 법칙은 감성 세계에서의 최고선의 실현을 궁극목적으로서 추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종교에 이른다. 이것은 “이 세계의 순전한 자연 진행에 따라

서는 정확하게 도덕적 가치에 부합하는 행복은 기대될 수 없기 때문에, 최고선의

가능성은 오로지 도덕적 세계 창시자, 즉 신을 전제하고서만 인정될 수 있다는

것”(KpV, A261)을 의미한다. 우리는 최고선의 실현, 즉 도덕성에 정확히 비례하는

행복의 실현을 신을 전제하는 한에서 희망할 수 있지만, 이러한 희망은 ‘행복할 만

한 품격’, 즉 도덕성을 갖춘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선에서

의 행복을 자신의 도덕적 행위에 비례하여 주어지는 ‘감성적 행복’이라고 간주하더

라도 우리의 초점은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추기 위한 도덕적 노력에 놓여질 수밖

에 없다. 만약 우리가 신에 의해 주어질 것을 기대하는 ‘감성적 행복’ 자체를 위해

도덕적 행위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도덕성’ 자체를 무너뜨리게 하여 최고선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감성적 행복’의 영역은 우리 인간의 능

력으로 접근할 수 없는 ‘신이 관여하는 영역’일 뿐이며, 인간은 다만 신이 자연의

최고 원인으로서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을 자신에게 부여할 것을 희망하면서 ‘행

복할 만한 품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따름인 것이다. 칸트가 순수한 이성 신앙으

로서의 종교 안에서 도덕론과 행복론의 일치가 가능함을 말한 것(KpV, A235)도 이

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고선의 실현은 언제나 도덕 법칙의 직접적인 의지

규정을 의식함으로써, 다시 말해 자유의 의식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따라서 최고선에

서 행복은 반드시 도덕성과의 필연적인 결합 안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도덕적 행복’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을 예지 세계에서의 결

합으로 보든, 감성 세계에서의 결합으로 보든지 간에 행복은 ‘도덕성의 필연적 결

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제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은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이

라고 일컬을 수 있다. 칸트는 이러한 도덕적 행복을 예지 세계에 속하는 예지적 존

재자로서 얻을 수 있는 ‘자기 만족’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감성 세계에 속한 감성적

존재자로서 신에 의해서 가능한 ‘도덕성에 비례하여 주어지는 행복’으로 이해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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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든지 간에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도덕성에 근거한 행복

으로서 ‘도덕적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물

음을 던지게 된다. 도대체 왜 인간은 행복을 ‘감성적 행복’으로 이해하는데 머무르

지 않고 최고선에서의 행복, 다시 말해 도덕성과 비례적으로 결합한 ‘도덕적 행복’

을 추구하려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인간을 바라보는 칸트의 이중적 관점에서 찾

을 수밖에 없다. 즉, 인간은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예지 세계에 속

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세계에서 최고선의 실현은 도덕 법칙의 직접적

의지 규정으로부터, 즉 ‘자유로부터’ 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최고선의 개념은 근본

적으로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인간은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자로서 행복을 필연적으로 추구하고자 하기 때문에 ‘감성적

행복’의 욕망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은 이러한 인

간의 이중적 본성을 고려하면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데, 칸트가 신의 현존을 요청하

면서 도덕성과 ‘감성적 행복’을 결합시키고자 한 것도 이러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 의지의 힘으로 도덕성에 상응하는 행복을 감성 세계 안에서 실현시

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 법칙은 인간에게 최고선의 실

현을 궁극목적으로 추구할 것을 의무로서 부과한다. 이는 인간이 근원적으로 최고

선의 실현, 다시 말해 ‘도덕적 행복’의 실현을 자신의 불가피한 관심의 대상으로 두

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지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

구나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 도덕적인 만큼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세

상의 이성적 존재자가 도덕 법칙에 부합하여 갖는 행복할 만한 품격이 그 품격에

비례한 이 행복의 소유와 결합하는 것이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주장하려 할 수는 없다.”(KpV, A260) 그러나 한편으로 사람들은 또한 현실 세계에

서는 자신의 도덕성에 비례하여 그 만큼의 행복이 반드시 결합하지 않는다는 사실

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 법칙은 이 세계에서 최고선이 실현되기를

의욕한다. 그리하여 도덕 법칙은 우리가 신의 현존을 도덕적 필연성 아래서 요청하

는 것을 인정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이 행복할 수

있기를 도덕적으로 희망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처럼 최고선에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을 염원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순수한 이성 신앙이라는 종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감성적 행복에만 머물지 않고 최고선 안에서 ‘도덕적 행복’

을 지향하면서 자연스럽게 종교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감성

세계에만 속하는 존재가 아니라 예지 세계에도 속하는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도덕 법칙에 자율적으로 따를 수 있는 존재이자,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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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최고선에서의 ‘도덕적 행복’을 자신의 궁극목적으로서 추

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행복에 대한 칸트의 논의는 근원적으로 그의 ‘인

간 이해’ 속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칸트가 최고선의 실현 가능성을 위한 순

수 실천 이성의 요청으로서 ‘신의 현존’을 언급하고, 최고선의 논의가 결국 순수한

이성 신앙이라는 종교로 연결됨을 보여준 후, 그 마지막 부분에서 도덕 법칙의 주

체로서 우리 인격 안의 인간성이 지닌 ‘신성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관점

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목적들의 순서에 있어서 인간은 (그와 함께 모든 이성적 존재자는) 목적 그 자체

라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은 동시에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됨 없이, 결코 누군가의 (심지

어 신의) 한낱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 인격의 인간성은 우리

자신에게 신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이제 당연한 결론이다. 왜냐하면, 인간

은 도덕 법칙의 주체요, 그러니까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의 주체며, 이 주체를 위하여

그리고 이 주체와 일치해서만 도대체가 무엇인가가 신성하다고 말해질 수 있기 때문

이다.(KpV, A237)

칸트의 행복 이해는 인간이 도덕 법칙의 주체로서 자유로운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한낱 감성적 존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예지적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 위에서 칸트가 말하고자 하는 행복의 의미가 온전

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예지적 존재자임을 깨닫는 한에서 자신

의 진정한 행복을 최고선에서의 행복, 즉 ‘행복할 만한 품격’에 비례하는 행복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이 현실 세계 안에서 그러한 행복이 실현되기를 희망하면서 ‘신의

현존’을 요청하는 데 이른다. 이처럼 칸트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행

복, 즉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도덕에서 종교로의 이

행’이 불가피함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아울러 바로 이 종교, 즉 순수한 이성

신앙에서 도덕론과 행복론은 하나로 조화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

는 ‘인간의 행복’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게 ‘도덕’과 ‘종교’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칸트가 자신의 전 사상 체계를 통틀어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이 최고선에서 이해될 수 있는 ‘도덕적 행복’이라면, 칸트의 전 사상 체계는

하나의 거대한 ‘행복론’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 ‘행복론’의

기초에는 언제나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하기를 희망하는’ 모든 평범

한 사람들의 ‘도덕적 마음씨’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도덕 법칙에 기초한 도덕적 마

음씨가 존재하는 한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은 결코 ‘감성적 행복’

에만 머물지 않고, 최고선에서의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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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로 칸트가 ‘인간의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메시지라

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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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칸트 행복 이해의 도덕교육적 함의

1.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성찰하는 것이 도덕교

육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라면221) 칸트가 인간의 궁극목적으로서 제시한 ‘최고

선’의 개념은 도덕교육이 지향하는 목표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내용 요소일 수 있다.

왜냐하면 칸트가 말하는 최고선이란 다름 아닌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고선에서의 행복이란 쉽게 말하자면 도덕

법칙을 준수하며 자유를 의식하는 사람이 자신의 도덕성에 비례하여 누리게 될 행

복을 의미하므로, 이 때의 행복은 언제나 도덕성과의 연관 아래서 성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칸트의 최고선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도덕성과 행복의 깊은 연관

성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교육 안에서 학생들이 행복

을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최고선의 개념이 아무리 학생

들의 행복 성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최고선에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

복’을 학생들에게 교조적으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가 필연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목적으로

서 근원적으로 ‘순수 실천 이성의 자율’에 기초하는 것이지, 결코 타율적 강제에 의

해 추구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최고선에서의 행복이 ‘자유의 의식’ 아래

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추구되지 않고 외적 강요를 통해 타율적으로 추구된다면 이

미 그 행복의 본래적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따라서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방법적

인 측면에서도 학생들의 ‘자유의 의식’ 속에서 자발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222) 이런

221) 2015 중학교 도덕과 교육과정의 내용 체계 가운데 첫 번째 영역인 ‘자신과의 관계 영역’에서

다루는 내용 요소는 ‘도덕적인 삶’과 ‘행복한 삶’에 집중되어 있다. 이 관계 영역에서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성취 목표는 다음과 같다. “도덕적 주체로서 자신의 삶에서 도덕적 삶의 중요성과 도덕

적 행위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삶의 목적과 행복에 대해 성찰하도록 함

으로써 성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태도를 갖도록 한다.”(교육부,『도덕과 교육과정』,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별책 6], 2015, p,17) 여기서는 비록 도덕성과 행복의 연관성에 대한 내용 요소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도덕적인 삶에 대한 성찰과 행복에 대한 성찰을 하나의 영역

안에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놓음으로써 학생들이 도덕과 행복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

록 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상의 내용 구성은 학생들이 행복을 도덕성과의

연관 속에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22) 이런 점에서 볼 때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성찰하게 하는 교육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관련 개념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교수 방식보다는 교사와 학생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가운데 학생 스스로 이성

적 성찰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교수 방식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칸트가 덕이

론의 교육 방법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강술식’ 방법보다 교사가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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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에서 도덕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행복을 감성적 행복뿐만 아니라 최고선에서

도덕성과 결합한 행복, 즉 ‘도덕적 행복’으로도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도덕 교사가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 행복을 최고선에서 찾고자 하는

칸트의 ‘행복 이해’를 근거로 학생들이 행복을 도덕성과의 연관성 아래서 성찰하게

하는 교육을 수행할 경우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첫째로 도덕 교사는 학생 자신이 경향성이라는 감성적 욕망에 따라서만 행위하

지 않고 자율적이고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은 단지 감성적 행복에 머물지 않고 최

고선에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인간이 감성적 행복뿐만

아니라 도덕적 행복을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을 감성 세계에 속하면서 동시에 예지 세계에도 속한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이

다. 인간은 감성 세계에 속하는 존재인 한에서 자연 법칙에 따라 살아가며 경향성

의 충족으로서의 감성적 행복을 추구한다. 이 때 활동하는 인간의 이성은 감성적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을 가언 명령의 형태로 제공하는 ‘경험적 실천

이성’을 의미한다. 한편 인간은 예지 세계에 속하는 존재인 한에서 일체의 경향성으

로부터 독립하여 도덕 법칙에 따라 살면서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 때 활동하는 인간의 이성은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 즉 선의지를

생들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학생들 스스로 알아내게 하는 ‘질의응답식’ 방

법을 선호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TL, A163-166 참조) 칸트는 ‘질의응답식’ 방법을 다시

교사가 학생들의 이성에 물어서 알아내는 ‘대화식’ 방법과, 교사가 학생들의 기억에 물어서 알아내

는 ‘문답식’ 방법으로 구분한다. ‘대화식’ 방법에서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이성

능력이 있음을 일깨우는 ‘산파’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교사와 학생들은 서로 묻고 대답하

는 과정을 통해 교학상장하게 된다. 한편 ‘문답식’ 방법에서 학생은 아직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교사만이 학생들에게 물음을 던지게 되는데, 여기서 학생들

은 교사의 체계적인 물음에 의해 자신의 이성으로부터 이끌어내진 대답을 쉽게 변경될 수 없는 표

현으로 보존하여 기억에 남겨두게 된다. 이러한 칸트의 설명으로 미루어 보건데, 덕을 교육하기 위

한 ‘질의응답식’ 방법은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문답식’에서 ‘대화식’으로 전환되는 것이 적절하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아직 미숙한 학생들을 위해 덕을 가르치기 위한 최초의 필수

적인 교육적 방법을 ‘도덕적 문답법’이라고 말하면서(TL, A165), 이를 상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칸트가 ‘최고선에서의 행복과 관련된 성찰’을 도덕적 문답

법’의 구체적 사례로 직접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칸트가 제시한 ‘도덕적 문답법’의 사례는 마치

『실천이성비판』의 최고선에 대한 논의를 ‘문답식’으로 재정리한 것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

고자 하는 행복이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서의 도덕성과 신의 현존을 요청하는 종교와 필연적으로

관련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칸트가 덕이론을 교육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한 ‘도

덕적 문답법’의 구체적 예를 이렇게 ‘최고선에서의 행복’으로 구성해 놓았다는 것은 간접적으로나

마 ‘도덕적 문답법’이 학생들이 ‘최고선에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을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학생들의 수준이 좀

더 성숙한 단계로 올라선다면 마찬가지로 질의응답식 교수방법에 속하는 ‘대화식’ 방법도 ‘도덕적

행복’에 대한 성찰 교육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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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는 것을 자신의 최고의 실천적 사명으로 삼는 ‘순수 실천 이성’을 의미한다. 이

러한 순수 실천 이성이 자신의 궁극목적으로 추구하려는 것은 감성적 행복이 아니

라 ‘도덕성과 필연적으로 결합하는 행복’, 즉 최고선에서의 행복이다. 이를 달리 표

현하면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된 의지가 필연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대상은 최고

선 안에서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 결합하는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이라는 것이

다. 이처럼 인간이 도덕적 행복으로서의 최고선을 자신의 궁극목적으로 추구하려는

것은 자신을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로도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인간이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순수 실천 이성 자신이 수립한 도덕 법칙

에 따름으로서 ‘한 상태를 자기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인 초월적 자유를 의식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비록 도덕 법칙을 통해서만 그 객관적 실재성을 드

러낼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초월적 자유, 즉 일체의 경향성으로부터 독

립하여 한 상태를 자기로부터 절대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

닫는 것은 행복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준

다.223) 인간을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자로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순수 실

천 이성 능력을 발휘하여 도덕 법칙을 세우고, 이러한 도덕 법칙에 스스로 따르는

도덕적 행위를 통해 자신이 지닌 ‘초월적 자유’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도덕 법칙에 따르면서 ‘초월적 자유’를 의식하는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

이 추구하는 행복은 ‘도덕성에 근거한 행복’이자 ‘자유에 근거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칸트가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으로서 제시한 최고선은 ‘도

덕적이고 자유로운 인간’ 다시 말해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전제할 때만 온

전히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칸트의 최고선은 언제나 자유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칸트의 ‘행복 이해’는 두 가지 세계, 즉 감성 세계와 예지 세계에 속

한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가 경향성의 충족이라는 감성

적 행복에서 진정한 만족에 이르지 못하고, 최고선에서의 행복, 즉 ‘도덕성의 필연

적 결과’로서의 도덕적 행복을 지향하려는 것은 우리 자신이 근원적으로 초월적 자

223) 여기가 바로 칸트의 ‘행복 이해’가 뇌과학이나 심리학에 근거하는 ‘행복 이해’와 근본적으로 구

별되는 지점이다. 칸트의 ‘행복 이해’는 근원적으로 인간이 지닌 ‘초월적 자유’에 근거한다. 바로

이 ‘초월적 자유’에 근거해서만 인간이 왜 감성적 행복으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최고선에서의 도덕

적 행복을 지향하려 하는지가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초월적 자유는 인간이 시간상 선행하는

일체의 자연 원인성으로부터 벗어나 행위할 수 있는 ‘무시간적 주체’로서의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

한 의미의 ‘자유’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철저하게 자연의 인과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뇌과

학이나 심리학에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일 수밖에 없다. 칸트의 관점에서 볼 때 뇌과학이나

심리학에서 주장할 수 있는 자유는 기껏해야 ‘심리적 자유’ 혹은 ‘비교적 자유’에 머물고 말 것이

다. 따라서 초월적 자유에 근거하는 칸트의 ‘행복 이해’는 심리적 자유에 근거하는 뇌과학이나 심

리학의 ‘행복 이해’와는 분명히 구별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행복 성찰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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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를 지닌 ‘자유로운 존재’이자 ‘도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칸트의 ‘행복

이해’는 행복에 대한 성찰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특성에 대한 근원적 이해에 근거하

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둘째로, 도덕 교사는 학생들이 최고선에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감성적 행복의 추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최고선은 도덕성과 행복의 인과적․종합적 결합으로서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

로서의 행복’을 의미한다. 그래서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언제나 최상 조건으로서의

도덕성을 전제하는 한에서만 의미를 갖는 ‘도덕적 행복’이다. 따라서 ‘도덕적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은 바로 도덕성, 즉 ‘행복할 만한 품

격’을 갖추는 일이다. 이처럼 최고선에서의 행복이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

이 누리는 행복으로 이해된다면, 도덕적 행복에 대한 성찰에서 우선적 관심의 초점

은 ‘행복할 만한 품격’, 즉 도덕성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칸트의 관점에서 도

덕성이란 무엇인가? 칸트에 있어 도덕성은 오직 도덕 법칙이 일체의 경향성으로부

터 벗어나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데서만 성립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서의 도덕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감성적 행

복’으로부터 전적으로 벗어나야 할까? 만약 칸트의 ‘도덕성’, 즉 ‘행복할 만한 품격’

을 갖추는 일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학생들은 도덕성과 감성적 행복이 언제나 대립

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과 감성적 행복을 포기하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덕성과 감성적 행복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칸트는 결단코 도덕성과 감성적 행복을 대립적인 관계로

바라보지 않았으며, 또한 감성적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는 극단적 금욕주의를 주장

하지도 않았다. 칸트가 도덕성과 감성적 행복의 엄격한 구별을 강조하려 하고 또한

감성적 행복의 전적인 배제를 강조하는 것은 다만 ‘의지의 직접적인 규정 근거’가

문제가 되는 경우이다. 칸트는 도덕성을 ‘도덕 법칙에 의한 직접적인 의지 규정’에

서 찾고 있다. 만약 도덕 법칙에 선행하여 감성적 행복으로 통칭되는 ‘욕구 능력의

질료’가 의지의 직접적 규정 근거가 된다면 의지의 타율 아래서 일체의 도덕성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칸트는 감성적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행복의 원리’와 도덕 법칙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도덕성의 원리’를 엄밀

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칸트는 감성적 행복 그 자체를 부

정하거나 도덕성의 함양을 위한 감성적 행복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는다. 칸트는

“행복은 이성적이면서 유한한 모든 존재자가 필연적으로 구하는 바”(KpV, A45)라

고 말하면서 인간이 감성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로 받아

들인다. 더 나아가 칸트는 자기 자신을 위한 감성적 행복의 추구가 악덕으로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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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는 유혹, 다시 말해 의무를 위반하게 하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 도

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간접적으로는 의무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GMS,

B11-12; KpV, A166; TL, A17-18) 따라서 도덕성이 언제나 의지의 직접적 규정 근

거를 행복이 아닌 도덕 법칙에 두는 데서만 가능하다는 점만 잊지 않는다면, 칸트

의 관점에서도 자기 자신을 위한 감성적 행복의 추구는 도덕성, 즉 ‘행복할 만한 품

격’을 갖추는 데 유용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학생들이 자기 자신

을 위해 감성적 행복을 촉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반드시 도덕적 행복의

추구와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에서 학생들이 감성적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움

을 주는 다양한 방법을 제공하는 것도 학생들의 ‘행복할 만한 품격’을 함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학생들의 성공적인 삶과 행복한 삶을 위해 사회 정서적 유능성 혹은 사회 정서 역

량을 증진시키고자 등장한 ‘사회 정서 학습(SEL)’224)과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근거

하여 행복이라는 현상을 연구하는 ‘긍정 심리학’225)에서 활용되는 방법론도 ‘도덕적

행복’에 대한 성찰과 실천을 위해 간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226) 이처럼 칸트의

‘행복 이해’는 감성적 행복이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는 한에서

감성적 행복과 도덕적 행복이 ‘모순적인 관계’가 아니라 ‘조화로운 관계’일 수 있다

224) 정창우,『도덕과 교육의 이론과 쟁점』(서울: 울력, 2013), p.283.

225) 정창우(2013), 위의 책, p.330.

226) 칸트가 ‘도덕적 행복’의 추구와 관련하여 사회 정서 학습이나 긍정 심리학과 같은 ‘경험적 인간

학’의 지식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칸트의 사상적 일관성을 전혀 저해하지 않는

다. 칸트는 도덕 법칙의 정초와 관련해서는 그 어떠한 경험적 요소도 섞여 있어서는 안 됨을 분명

히 하고 있지만, 도덕 법칙의 실행과 관련해서는 ‘경험을 통해 날카로워진 판단력’(GMS, BIX)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자신 수많은 경향성들에 의해 촉발되는 것으로서, 실천

적 순수 이성의 이념을 가질 수는 있으나, 그렇게 쉽게 그것을 품행에서 구체적으로 작동시킬 힘

은 없기 때문이다.”(GMS, BIX) 인간은 예지적 존재자로서 도덕 법칙을 순수 실천 이성의 이념으

로서 의식할 수는 있지만, 감성적 존재자로서 언제나 경향성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도덕 법칙

을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칸트는 도덕 법칙을 현실 속

에서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경험적 인간학의 지식을 활용한 실천적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박찬구는 칸트의 이러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물론, 경험적 인간학만으로 도덕

법칙을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경험적 인간학은 다만 어떤 경우에 도덕 법칙을 적용해야 할지

를 파악하고 그것을 현실 속에서 잘 실행할 수 있기 위해 조언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렇다 해도 이러한 경험적 인간학의 역할을 경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도덕 법칙을 적절하게 적

용함으로써 현실을 바르게 이끌어 갈 때 비로소 도덕 법칙은 사람들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도덕철학을 통해 도덕 법칙을 일단 확립한 다음에는, 도덕 법칙을

현실에 적절하게 적용하고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더욱 쉽게 다르도록 하기 위해서 사회 현

실이나 인간 심리의 작동 메커니즘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박찬구,

『칸트의 도덕형이상학 정초 읽기』(서울: 세창미디어, 2014), p.22) 이처럼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서의

도덕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식이 명확하게 확립되어 있기만 하다면, 사회 정서 학습이나 긍정 심리학

과 같은 경험적 인간학의 지식들은 도덕성의 실천과 결합된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을 추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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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학생들이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하여 행복을 성찰해 본다는 것은 자신을 ‘자유롭

고 도덕적인 존재’로 의식하면서 행복을 도덕성, 즉 ‘행복할 만한 품격’과의 연관성

속에서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학생들은 최고선

에서의 행복, 다시 말해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도덕적 행복’을 성찰하면서

‘감성적 행복’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

면 인간은 단지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

자가 아니라 도덕성에 근거하여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자이

기도 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최고선 안에서 성찰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예지 세

계에 속한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로 의식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왜냐하면 최고

선에서의 행복은 언제나 ‘행복할 만한 품격’에 근거한 행복이고, ‘행복할 만한 품격’

을 갖춘다는 것은 도덕적 행위를 통해 자신을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로 의식하는

인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은 ‘자유롭고 도

덕적인’ 인간이 어떠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예지 세계에 속하는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요구이며, 이를 전제로 행복을 성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칸트가 최고선에서의 도덕적 행

복을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이자 도덕 법칙의 궁극목적이라고 생각한 것의 이

면에는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한 ‘도덕적 마음씨’가 놓여 있다

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행복을 누리기

를 바라는’ 도덕적 마음씨인 것이다. 칸트가 말하듯이 “행복을 필요로 하고, 또한 행

복할 품격이 있으나, 그럼에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이성적 존재자의 완전한

의욕과는 전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KpV, A199) 그렇다면 여기서 사람들은 ‘도

덕적으로 사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자기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도덕 법칙

에 맞게 사는 것으로 이해할까 아니면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행복과 관계없이 도덕

법칙에 따라 산다는 것으로 이해할까? 지극히 평범한 이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일지

라도, 설령 자신이 도덕적으로 살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

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이미 ‘도덕적 행

위’가 경향성이나 이익에서 비롯한 행위가 아니라 도덕 법칙에 따르려는 의지, 즉

‘선의지’에서 비롯한 행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도덕적

행위를 경향성이나 이익에서 벗어나 선의지에 따르는 행위로 이해한다는 것은 이미

인간을 경향성에 지배받는 감성적 존재자가 아니라 예지적 존재자로 의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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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로서 최고선에서의 행

복, 즉 도덕적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도덕적 마음씨’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도덕적 마음씨’는 결

코 비현실적인거나 허황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칸트가 도덕 법칙이 ‘순수 이

성의 사실’로서 주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간직되

어 있는 하나의 ‘도덕적 사실’인 것이다.

이와 같이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은 학생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도덕적 마음씨, 다시 말해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도덕적 마

음씨를 일깨워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도덕교육적으로 큰 의의를 지닐 수 있다. 학

생들이 자신을 ‘자유롭고 도덕적인’ 예지적 존재자로 의식하면서 행복을 성찰하는

가운데 자신의 마음속에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도덕적 마음

씨가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야말로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이 지

닌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227)

227) 연구자는 이와 더불어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이 2015 교육과정에서 새롭게 채

택된 ‘통합사회’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인 ‘행복’을 가르치는 데 있어 도덕과의 역할을 충실히 수

행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통합사회는 사회과(역사, 지리, 일반

사회)와 도덕과(도덕, 윤리)의 교육 목표를 바탕으로 한 통합과목이다. 그래서 통합사회는 가르치

고자 하는 각각의 핵심 개념들을 시간적(역사적), 공간적(지리적), 사회적, 윤리적 관점에서 조화롭

고 균형 있게 접근하고자 한다. 통합사회는 그 첫 번째 핵심 개념을 ‘행복’으로 설정하면서 이와

관련한 성취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교육부,『사회과 교육과정』, 교육부 고시 제

2015-74호 [별책 7], 2015, pp.121-122)

성취 기준의 전개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이 단원에서 학생들은 행복이 ‘질 높은 정주 환

경의 조성’, ‘경제적 안정’, ‘민주주의의 발전’, ‘도덕적 실천’과 관련되어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

해 확인하면서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 이러한 조건들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

우게 된다. 여기서 도덕과는 ‘도덕적 실천’과 ‘행복’과의 관련성을 설명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런데 성취 기준 [10통사01-03]에서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4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

로 속해 있는 ‘도덕적 실천’은 다른 조건들과는 구분되는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앞의 3가지 조건인 ‘질 높은 정주 환경의 조성’, ‘경제적 안정’, ‘민주주의의 발전’은 시대적․지역적

사례를 통해 행복한 삶과의 관련성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지만, ‘도덕적 실천’과 행복한 삶과

의 관련성은 경험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례를 통해 본다면 오히려 ‘도덕적 실천’과

행복한 삶과의 ‘무관성(無關性)’을 증명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도덕적 실천’을 공리주의적 관점에

서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면, 다시 말해 도덕성을 행복을 위한 최선의 수단을 선택하는

영리함으로 간주한다면 행복에 기여하는 도덕적 실천의 경험적 사례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도덕적 실천’을 경험적 사실의 차원에서 공리주의적으로 접근한다면, 도덕적 실천과 행복

사이의 상관성을 증명하는 경험적 통계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

서 도덕적 실천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도덕과에서 ‘도덕적 실천’을 ‘공리주의적 도덕성’

차원에서만 바라본다면, 통합 사회 성취 기준에서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제시한

[10통사01-01]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윤리적 관점의 특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 사

회, 환경의 탐구에 통합적 관점이 요청되는 이유를 파악한다.

[10통사01-02] 사례를 통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행복의 기준을 비교하여 평가

하고, 삶의 목적으로서 행복의 의미를 성찰한다.

[10통사01-03]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 질 높은 정주 환경의 조성, 경제적 안정, 민

주주의의 발전 및 도덕적 실천이 필요함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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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와 숭고의 체험을 활용한 도덕교육

도덕교육에서 행복을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하여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다는 것은 행복이 도덕성과 그리고 더 나아가 종교와도 필연적으로 관련된다는 사

실을 깨닫게 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학생들은 이러한 기회를 통해 자

신이 감성적 행복의 추구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예지적 존재자임을 의식하

면서 자신의 궁극목적으로서의 행복을 최고선에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으로 성

찰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학생들을 ‘도덕적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도덕적 행복’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

는 행복이지만 이러한 행복이 가능하려면 언제나 먼저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서의

도덕성을 갖출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칸트에 따르면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추

기 위해서는 경향성의 유혹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가 도덕 법칙에 의해서 직접적

으로 규정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언제나 도덕 법칙에 일치하여 행위

할 수 있는 예지적 존재자가 아니라 경향성에 따르는 감성적 존재자이기도 하기 때

문에 도덕 법칙에 따른다는 것은 인간에게 ‘강제’나 ‘의무’의 형태로 다가오며 여기

에는 당연히 경향성과의 단절로 인한 고통의 감정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4가지 기준은 경험적 사실의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도덕적 실천을 진정한 ‘도덕적 실천’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

려 사람들은 진정한 ‘도덕적 실천’이란 행복을 목적으로 둔 행위에서가 아니라 행복과 무관하게 행

위 그 자체가 옳다는 이유만으로 행한 행위, 다시 말해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행위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도덕적 실천’을 염두에 두는 사람들은 역사적

경험이나 현실적 경험을 통해 ‘도덕적 실천이 행복한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서 행복 실현의 조건으로서의 도덕적 실천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도덕적 실천’과 ‘행복한 삶’과의 관계를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더라도 ‘과연 도덕적 실천

이 행복한 삶의 실현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게 된

다. 따라서 도덕과는 ‘도덕적 실천’과 ‘행복한 삶’의 관계를 공리주의적 관점을 넘어 좀 더 총체적

으로 성찰할 수 있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연구자는 통합 사회에서 ‘행복’을 통합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한 도덕과의 핵심적 역할이 바로 ‘도덕적 실천’과 ‘행복한 삶’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성찰하게 하

는 데 있다고 보고, 이를 수행하는 데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이 매우 중요한 역

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왜냐하면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은 옳은 행

위를 하려는 순수한 의지에서 비롯한 행위로 이해되는 ‘도덕적 실천’을 근거로 ‘도덕적 실천’과 ‘행

복’의 관계를 포괄적이고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덕적 실

천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공리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성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왜 인간은 자신의 궁극적 행복을 도

덕성과의 관련성 속에서 추구하려고 하는가?’라는 물음을 ‘인간에 대한 근원적 이해’와 더불어 생

각해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의

궁극목적을 도덕성과 행복의 종합적 결합인 최고선에서 찾는 것은 인간이 근원적으로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라는 사실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행복을 ‘인간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바탕으로 도덕

성과의 관련성과 함께 깊이 성찰하는 것이 통합 사회에서 도덕과가 담당할 수 있는 특별한 역할이

라면, 연구자가 보기에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은 그것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

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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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의 고통의 감정은 예지적 원인성으로서의 도덕 법칙을 의식하게 되면서 도덕 법

칙에 대한 존경의 감정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지만, 도덕 법칙에 따른다는 것이

감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에게 고통의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경향성을 쉴 새 없이 자극하는 환경에 놓여 있어 고통을 야기하는 경향성의 극복보

다는 경향성의 충족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데 익숙한 요즘 학생들에게 ‘행복할 만

한 품격’을 갖춤으로써 ‘도덕적 행복’을 지향할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교육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이 행복을 감성적 행복의 관점을 넘어 도덕적 행

복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에는 이미 학생들의 삶이 너무나도 경

향성을 자극하는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도덕적 행복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성적 행복에만 익숙해진 학생들의 마음을

도덕적 행복에 대한 성찰을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 수 있는 마음의 상태로 전환시

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도덕교육에서 어떤 방법을 활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칸트가『판단력비판』에서 논의하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칸트는『판단력비판』에서 쾌의

감정, 즉 만족과 관계하는 대상을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숭고한 것’, ‘단적으로(도

덕적으로) 선한 것’으로 구분하고, 각각에 해당하는 만족이 종적으로 구별되는 것임

을 설명한다. 우선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은 감관의 감각적 관심 아래서 경향성의

충족을 통해 느껴지는 ‘향수의 쾌감’을 의미한다. 그래서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은

경향성을 최대한 그리고 지속적으로 충족시키는 데서 느껴지는 감각적 만족을 의미

한다는 점에서 ‘감성적 행복’과 관련된다. 그리고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이성의 도덕적 관심 아래서 도덕 법칙에 의해 의지가 직접적으로 규정되면서 행해

진 도덕적 행위에서 느껴지는 ‘법칙적 활동의 쾌감’을 의미한다. 이 ‘법칙적 활동의

쾌감’은 순수 실천 이성을 통해 주관이 규정되면서 느껴지는 쾌의 감정이라는 점에

서 정념적 감정과는 근원적으로 구분되는 ‘도덕적 감정’, 즉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

의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결국 도덕 법칙

의 직접적인 의지 규정의 결과로서 느껴지는 ‘존경의 감정’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도

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과 관련된다.

한편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쾌적한 것에 대한 감각적 관심이나

단적으로 선한 것에 대한 도덕적 관심에서 전적으로 벗어난 상태에서 느껴지는 쾌

감으로서 ‘무관심한 만족’이자 ‘자유로운 만족’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적인 것과 숭

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과 같이 감각적 관심을 충족시킴으로

써 얻어지는 쾌감도 아니고,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과 같이 도덕적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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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족시킴으로써 얻어지는 쾌감도 아니라는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두 만족과 근본적

으로 구분된다.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일체의 감각적이고 도덕적인

관심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반성적 판단력의 ‘자기 자율적’ 활동을 통해 어떤 대상을

‘아름답다’거나 ‘숭고하다’라고 판단하면서 느껴지는 쾌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만족이

경향성의 충족이나 도덕적 행위의 실천이라는 의도와 목적에 구애받음이 없이 ‘무

관심성’ 아래서 아름답고 숭고한 대상과의 순수한 만남을 통해 느껴지는 쾌감이라

는 점에 주목한다면,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우리에게 ‘감성적 행복’

이나 ‘도덕적 행복’이 아닌 ‘또 다른 의미의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다.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모두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을 바탕으로 한 ‘미감적 판단’

에서 느껴지는 쾌감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만족을 ‘미감적 만족’으로 부를 수 있고,

이를 다시 ‘감성적 행복’과 ‘도덕적 행복’과 구별한다는 의미에서 ‘미감적 행복’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칸트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의 차이점에도

주목한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대상의 형식에서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

희를 통해 형식적 합목적성을 발견함으로써 느끼는 쾌감이다. 이 때의 쾌감은 그

어떠한 관심도 배제한 상태에서 순전히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 즉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칸트는 이를 ‘순전한 반성의 쾌감’이라고

일컫는다. 이에 반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무한한 크기와 위력을 지닌 자연의

무형식적 대상에 대한 반성에서, 상상력이 그 대상의 표상이 수반하는 이성의 이념

을 현시하기에 부적합하다는 데서 느껴지는 불쾌감이 이성의 이념을 실현시켜야 한

다는 초감성적 사명의 감정으로 전환되면서 느껴지는 쾌감이다. 그러니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상상력이 무한한 이성의 이념을 감성적으로 현시하라는 이성의

요구를 따를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하는 불쾌감이 이를 통해 우리 안에 무한한 이념

을 드러내는 초감성적인 이성의 능력이 있음을 자각하는 데서 비롯하는 쾌감으로

이행하면서 느껴지는 만족인 것이다. 이처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미적인 것에

서의 만족’과는 달리 인간 내면의 초감성적인 이성 이념과 관련되는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이성 논변적 관조의 쾌감’이라고

일컬으면서 ‘순전한 반성의 쾌감’으로서의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구분하고자 한

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자연의 숭고한 대상을 통해 상상력이 우리 안에서 감

성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하는 초감성적 이성 이념을 자각하고, 그러한 초감성

적 이성 이념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사명의 감정 속에서 느끼게 되는 쾌감이다. 이

때 상상력이 초감성적 이성 이념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사명의 감정은 상상력이 이

성의 이념과의 관계 속에서 감성에 대한 이성의 우월성을 겸허히 수용하면서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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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순수 실천 이성의 이념이 주관을 규정하면서 일으켜지는

도덕적 감정, 즉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의 감정과 유사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

래서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초감성적 사명의 감정을 전제로 하며, 아주

애매하다고 할지라도 도덕적 토대를 갖는다고 말하면서(KU , B154) 숭고한 것에서

의 만족이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서의 도덕적 감정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정을 의미할

수는 있어도,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과 관련되는 도덕적 감정 그 자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서의 도덕적 감정은 실천적 이

성개념에 의해 주관이 규정되면서, 다시 말해 도덕 법칙에 의해 의지가 직접적으로

규정되면서 느껴지는 ‘법칙적 활동의 쾌감’이기 때문이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반성적 판단력의 ‘자기 자율’적 활동을 바탕으로 한 미감적 판단을 전제하는 것으로

서 결코 개념에 의해 규정되는 감정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고한 것에

서의 만족’은 초감성적 이성 이념에 대한 숭고함을 자각하면서 도덕적 감정과 유사

한 마음의 상태를 불러일으키는데, 이것은 상상력이 초감성적 이성 이념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감성에 대한 이성의 우월성을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렇

기 때문에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상상력이 실천적 이성개념, 즉 실천적 이념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채, 상상력의 ‘자기 자율’적 활동을 통해 이성의 강제력을 스스

로 수용함으로써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즉 도덕적 감정은 실천 이성의 이념이 감성을 강제하면서 느껴지는 감정이지

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상상력이 실천 이성의 이념과의 관계 속에서 그러한

이념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도록 스스로에게 강제를 가함으로써 느껴지는 감정이라

는 점에서 구분된다. 그렇지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과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공통적으로 우리 안에 감성적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초감성적인 이성 능

력이 있음을 자각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유사한 감정의

상태에 놓이게 한다. 칸트가 “자연의 숭고한 것에 대한 감정은 도덕적인 것에 대한

감정의 정조와 비슷한 마음의 정조가 그 감정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능히 생각될 수

가 없다”(KU , B116)고 말한 것에서도 ‘숭고한 것에 대한 만족’이 도덕적 감정과 밀

접하게 관련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단적으

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과 종적으로 구분되는 쾌의 감정으로서 결코 도덕적 감정과

동일한 감정일 수는 없지만,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감정과 ‘친화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초감성적 이성 이념과 관련된 ‘이성 논변적 관조의 쾌감’으로서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에 놓이게 하는 쾌감이라는 점에서 ‘미적인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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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만족’과 구분하여 ‘미감적․도덕적 행복’이라 일컬을 수 있겠다.

칸트의 이러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과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과는 구별되는 고유

한 특성을 지닌 쾌의 감정으로서 ‘감성적 행복’과 ‘도덕적 행복’과는 다른 차원의 행

복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감각적

이고 도덕적인 관심에서 벗어나 미적인 대상과의 순수한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순전한 반성의 쾌감’으로서의 ‘미감적 행복’이 있음을 알게 해 주고, ‘숭고한 것에서

의 만족’은 숭고한 대상과의 엄숙한 만남에서 초감성적 이성 이념에 대한 존경의

감정과 함께 느낄 수 있는 ‘이성 논변적 관조의 쾌감’으로서의 ‘미감적․도덕적 행

복’이 있음을 알게 해 준다. 특히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과는 달리 도덕성과 관련한 실천적 이성개념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미감적 판

단에 기초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도덕적 감정과 친화적인 상태로 만들어 줌으로

써 도덕적 행복에 다가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는 점에서 도덕교육적으로 중요

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칸트가 비록 ‘미적

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구분하고는 있지만 이 두 가지 만족

은 공통적으로 반성적 판단력의 ‘자기 자율’적 활동을 바탕으로 한 ‘미감적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속성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적인 것에

서의 만족’이나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모두 대상에 대한 미감적 판단에서 반성

적 판단력의 활동을 통해 느껴지는 쾌감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토대를 지니고 있다

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 본 사람일수록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진

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연속

성의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이 우리의 마음을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상태로 나아가게 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

족’은 경향성의 충족과 관련한 감각적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만족으로서, 적어도

경향성들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의 상태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반성

적 판단력의 활동을 통해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도덕적 관심으로 나아가게 해 줄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취미, 즉 미적인 것에 대한 판단이 “심지어 감관의 자극 없이도 감관

들의 대상들에서 자유로운 만족을 발견하는 일을 가르쳐 줌으로써, 이를테면 감관

의 자극으로부터 습관적인 도덕적 관심으로의 이행을 너무 억지스러운 비약 없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KU , B260)라고 말한다.

이제까지 논의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의 차이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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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점에 주목한다면 이 두 가지 만족의 도덕교육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

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일체의 감각적이고 도덕적인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아름다운 대상과의 순수한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만족으로서, 우리에게

감성적 행복과는 다른 차원의 ‘미감적 행복’이 가능함을 알려 준다. 둘째, ‘숭고한 것

에서의 만족’은 숭고한 대상과의 엄숙한 만남에서 우리 안의 초감성적 이성 이념의

숭고함을 자각하면서 느낄 수 있는 만족으로서, 우리에게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미감적․도덕적 행복’이 가능함을 알려준다. 셋

째,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공통적으로 반성적 판단력의

‘자기 자율’적 활동을 바탕으로 한 미감적 판단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두 만족은 ‘연

속성의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자

연스럽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도 도덕적 감정에 친화적인 마음의 상태를 마련하는 데 기여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학생들이 미와 숭고를 체험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도덕교육의

새로운 접근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학생들은 아름다운 대상과의 순

수한 만남 속에서 잠시라도 자신의 욕망과 충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만족을 느끼

면서 감성적 행복에만 몰두하는 자신을 반성하며 미감적 행복에 눈을 뜰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은 숭고한 대상과의 엄숙한 만남 속에서 우리 안에 자신의 욕망과 충동

을 하찮게 여기는 초감성적 이성 능력의 힘이 있음을 자각하며 만족을 느낄 수 있

는데, 이를 통해 미감적․도덕적 행복에 눈을 뜰 수 있다. 미와 숭고의 체험은 도덕

성이 무엇인가를 직접적으로 인식하게 하거나 도덕적 행복을 곧바로 지향하도록 만

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미와 숭고의 체험을 통해 느끼는 만족은 일체의 감각적

관심이나 도덕적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무관심한 만족’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일체의 관심을 배제한 채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만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적어도 경향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마음의 상태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도덕성과 도덕적 행복에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우리 안의 초감성적 이성 능력을 자각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상태로 만들어 줌으로써 역시 도덕성과 도덕적 행복

에 다가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미와 숭고의 체험228)은 학생들이 도덕성과

228) 미와 숭고의 체험은 가급적 자연 속에서 수행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

은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를 통해 대상의 형식적 합목적성을 발견하면서 느끼는 쾌의 감

정이라는 점에서 자연 뿐만 아니라 형식적 합목적성을 표상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 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칸트는 “비록 형식의 면에서는 예술미가 자연미를 능가

하는 일이 있지만 자연미가 미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예술미에 대해 자

연미가 갖는 우월성은 자기의 도덕적 감정을 교화한 모든 사람의 순화되고 철저한 사유방식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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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행복에 다가가는 마음의 상태를 마련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교육적으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치한다”(KU, B167-168)고 말하면서 자연미가 예술미보다 우월하며 또한 자연미가 예술미보다 도

덕적 감정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칸트는 예술 작품에 대해 매우

정확하고 섬세하게 판단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예술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연미로

나아가 여기에서 자신의 정신을 위한 희열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의 선택 자체를 존경스럽

게 바라볼 것이고 그에게서 아름다운 영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KU, B168 참조)

또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 역시 무한한 크기와 위력을 지닌 ‘무형식적인’ 자연과의 만남에서 상

상력이 초감성적 이성 이념의 요구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느끼는 숭고한 감정이라는 점에

서 예술 작품보다는 자연을 관조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만족이라 할 수 있다. 칸트의 이러한 관점

을 고려해 볼 때 미와 숭고의 체험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자연의 숭고함과의 만남에서 수행될 필

요가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자주 자연과의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학생들에게 간접적으

로나마 예술 작품에 대한 관심을 습관화시켜 주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미적인 것

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공통적으로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을 바탕으로 한 미감적 판단에 기초

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학생들이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을 통해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을 습관화할

수 있다면 자연의 미와 숭고를 체험하는 것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

론 이 때의 예술 작품은 칸트가 “우리가 미적인 것 그 자체에서 직접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기 위

해서는, 그것은 자연이거나 우리에게 자연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어야만 한다.”(KU, B173)고 말하고

있듯이 최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칸트는 도덕적 감정과 관련하여 자연

미가 예술미를 능가한다고 보며 자연미를 예술미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자연미와 예술미를 구별하는 것일 뿐 양자를 대립시키거나 차별하는 것은 아니다.(김석수,「칸트에

있어서 자연미와 예술미」, 새한철학회,『철학논총』제61집, 2010, p.191/p.193~194) 이런 관점

에서 학생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예술 작품을 관람하거나 마치 자연과

하나인 듯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재, 예를 들어, 궁궐이나 정원, 사찰 등

을 체험하는 것도 미와 숭고의 감정을 통해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연구자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학생들이 미와 숭고를 체험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게 하도록 학교 조경을 최대한 자연친화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학생들의 도덕성 함양과 인성 교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 교육’의

일환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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Ⅶ. 결론

본 논문은 칸트의 사상이 목적론적 관점에서 하나의 거대한 ‘행복론’의 전개로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칸트의 사상을 ‘도덕적 형식주의’의 틀을 바탕

으로 도덕과 행복의 대립 구도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려는 사람들은 연구자의 이러한

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칸트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칸트는 도덕성을 정초하는 일

에서 행복이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지, 결코 도덕과 행복이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칸트는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

에서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의 원리의 구별을 분명히 강조하지만, 인간이 지닌 행복

에 대한 요구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본다. 칸트가 “순수 실천 이성은 행복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무가 문제가 될 때는 행복을 전혀 고

려하지 않으려는 것이다”(KpV, A166)라고 말하는 것에서 이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더군다나 칸트에 따르면 순수 실천 이성은 도덕성의 정초 과정에서 단호히

거부했던 행복을 최고선의 이름 아래서 자신의 궁극목적으로 삼고자 한다. 이처럼

칸트가 최고선의 이름 아래서 도덕성과 함께 행복을 다시 집중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것에서, 우리는 칸트가 언제나 ‘인간의 행복’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229) 따라서 칸트의 사상을 ‘행복의 관점’에서 재조명

해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이 과정은 칸트 사상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

가 될 수 있다. 또한 칸트가 행복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칸트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하나의 ‘행복론’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그렇다면 칸트의 ‘행복론’ 다시 말해 칸트의 ‘행복 이해’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

까? 칸트의 ‘행복론’이 제시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

해 볼 수 있다.

‘인간은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 즉 감성적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도

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즉 최고선에서의 도덕적 행복을 궁극목적으로

서 추구하고자 한다’

229) 칸트가 자신의 3비판서인『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판단력비판』의 마지막 부분, 즉

『순수이성비판』의 ‘순수 이성의 규준’,『실천이성비판』의 ‘순수 실천 이성의 변증학’,『판단력비

판』의 ‘목적론적 판단력 비판’에서 공통적으로 ‘최고선’의 개념을 통해 도덕과 행복을 함께 논의하

고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칸트가 자신의 사상 전개에서 언제나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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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칸트의 ‘행복론’은 근원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칸트

는 인간을 이중적 특성을 지닌 존재로 바라본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자연 법칙의

지배 아래서 경향성에 따르는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한편으

로는 일체의 경향성으로부터 벗어나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는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도 하다. 칸트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감성적 존재자의 관점과 예지적 존재

자의 관점 모두를 포괄하는 통합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

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을 감성적 존재자의 관점을 넘어 예지적 존재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자신을 예지적 존재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 첫째로, 자신의 의지가 자연 법칙에

따르는 일체의 경향성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을 ‘초월적 자유’를 지

닌 존재로 바라본다는 것이고, 둘째로, 자신의 의지가 도덕 법칙에 의해 직접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을 ‘도덕성’을 지닌 존재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따라

서 인간이 자신을 예지적 존재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곧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이자 ‘도덕적인 존재’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예지적인’ 인간은 행복을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에서 발견하고자 한

다. 그것이 바로 도덕성에 근거한 행복, 다시 말해 최고선에서의 도덕적 행복이다.

여기서 도덕성이란 언제나 ‘도덕 법칙의 직접적인 의지 규정’에서 비롯하며, 이것이

가능하려면 초월적 자유가 전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도덕적 행복은 자유롭고

도덕적인 인간의 관점에서만 접근될 수 있는 행복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칸트

의 ‘행복론’은 칸트의 ‘인간 이해’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하면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

에, 본 논문은 ‘칸트의 인간 이해’를 상세하게 다루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 즉 감성적 행복에 대한 칸트의 견해는 도덕의 최상

원칙을 탐색하고 확립하는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다. 칸트는 도덕성의 원리와 행복

의 원리를 선명하게 구분하면서 도덕의 최상 원칙은 행복의 원리가 아니라 도덕성

의 원리여야 함을 강조한다. 칸트는 도덕성을 도덕 법칙과 초월적 자유에 근거하여

설명함으로써 도덕성의 근거를 감성 세계가 아닌 예지 세계에서 찾고자 한다. 따라

서 도덕성은 결코 경향성의 지배 아래서 행복의 원리에 따르는 행위에서 발견할 수

없고, 오직 도덕 법칙의 지배 아래서 도덕성의 원리에 따르는 행위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은 행위를 도덕적인 행위로 간주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에서 충분

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칸트는 한편으로는 도덕의 최상 원칙이 도덕성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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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향성의 충족으로

서의 행복을 의지의 최고 규정 근거로 삼는 행복의 원리가 왜 도덕의 최상 원칙이

될 수 없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 후자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행복의 원리를 의

지의 유일한 근거로 삼으려는 ‘행복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경향성의 충족으로

서의 행복, 즉 ‘감성적 행복’에 대한 칸트의 견해를 살펴볼 수 있다. 칸트가 행복의

원리를 비판하는 첫 번째 근거는 행복 개념의 불확정성이다. 사람들은 행복을 자신

의 모든 경향성들이 완전히 충족된 상태라는 하나의 이념으로 이해하고자 하지만,

이러한 행복의 이념조차도 각자의 경험적 조건과 경향성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흔들리는 이념’일 뿐이다. 그래서 행복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일컫는 이름일 뿐, 모든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불확정적인 개념으로 다가온다. 이처

럼 행복의 원리는 매우 불확정적인 행복 개념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고 있기 때

문에 결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실천 법칙을 제공할 수 없으며, 이런 점에서 도덕

의 최상 원칙으로는 부적합한 것이다. 칸트가 행복의 원리를 비판하는 두 번째 근

거는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에 대해 인간 이성이 불만족스러워 한다는 점에

놓여 있다. 칸트는 이성의 본래적 역할이 행복의 실현을 위해 최선이 수단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선한 의지인 선의지를 세우는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선의

지를 세우는 이성이란 도덕 법칙을 세워 의지를 규정하려는 순수 실천 이성을 의미

한다. 칸트는 이성의 본래적 역할을 선의지를 세우려는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에서

발견하면서, 이러한 활동 속에서 비로소 이성이 자기 방식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고 본다. 그래서 순수 실천 이성의 관점에서는 경험적 실천 이성을 통해 아무리 경

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이 실현될 수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은 이성의 진정한 사명을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에서 찾으려 한

다는 점에서 행복의 원리에 따라서만 사는 것에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이 순수 실천 이성을 지닌 인

간의 궁극목적이 될 수 없다는 칸트의 견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칸트가 행복의

원리를 비판하는 세 번째 근거는 행복의 원리가 의지의 타율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

이다. 칸트에 따르면 의지의 타율은 욕구 능력의 객관이 의지를 규정하는 모든 행

위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욕구 능력의 객관은 필연적으로 그 객관의 실현에서 기대

되는 쾌, 즉 행복과 결합한다. 그래서 행복의 원리는 경향성의 대상, 즉 욕구 능력

의 객관과 결합하는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전제하는 원리라는 점에서 언제나

의지의 타율을 나타낸다. 그런데 인간의 의지가 전적으로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에 의해 규정된다면, 다시 말해 의지의 타율에 놓이게 된다면 여기서 초월적

자유의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의지의 타율에 기초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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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행위에서 의지는 언제나 선행하는 조건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지의 타율에 기초하고 있는 행복의 원리를 의지를 규정하는 유일한 원리

로 삼으려는 삶 속에서는 ‘일체의 경향성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의미하는 초월적 자

유와 ‘도덕 법칙의 직접적인 의지 규정’을 의미하는 도덕성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은 순수 실천 이성을 지닌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의 관점에서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결론이다. 이와 같이 칸트는 행복의 원리가 도덕의 최상 원칙이 될

수 없음을 밝히는 가운데 인간이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감성적 행복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칸트가 이렇게 인간이 감성적 행복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두 세계에 속한 이중적 존재로 바

라보는 칸트의 인간관과 연결된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경험적 실천 이성을 발휘하

여 행복의 원리에 따르는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

실천 이성을 발휘하여 도덕성의 원리, 즉 의지의 자율에 따를 수 있는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은 감성 세계에만 속한 존재가 아니라 예지 세

계에도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행복의 원리에 기초한 감성적 행복의 추구에서 진정

한 만족을 얻을 수 없고, 도덕성의 원리에 기초한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 즉 도덕

법칙에 따르는 자유롭고 도덕적인 행위 속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로서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

는 만족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이러한 만족은 적어도 경향성의 충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성적 행복과 구분되는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칸트는 순수 실천 이성을 지닌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만족을 최고선의 논의를 통해 도덕적 행복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칸트에 따르

면 순수 실천 이성은 최고선을 자신의 궁극목적으로 삼는다. 최고선은 상호 이질적

인 두 요소인 도덕성과 행복이 결합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처럼 순수 실천 이성은

도덕성의 정초 과정에서 자신의 대상에서 배제했던 행복을 다시 최고선 안에서 도

덕성과 함께 자신의 궁극적인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순수 실천 이성이 도덕성

이나 행복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만 만족을 얻지 못하고 도덕성과 행복이 결합된 최

고선에서만 궁극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칸트는 최고선에서 도

덕성과 행복의 결합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연결된 종합적 결합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여기서 종합적 결합의 방식에는 ‘행복이 원인이 되어 도덕성을 결과로 낳는’

방식과 ‘도덕성이 원인이 되어 행복을 결과로 낳는’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 칸트는

이 두 가지 방식을 ‘순수 실천 이성의 이율 배반’이라는 이름 아래서 검토한다. 칸

트는 행복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삼는 경우 도덕성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점에

서 전자의 결합 방식을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고, 후자에서 종합적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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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하지만 칸트는 후자의 결합에 대해서도 불가능하

다는 부정적 답변을 준비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아무리 도덕 법칙에 따라 행위함으

로써 도덕성을 갖출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도덕성의 상응하는 행복을 감성 세계

안에서 보장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감성 세계 안에서 도덕

성과 행복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서 필연적으로 결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

지만 칸트가 보기에 ‘도덕성이 행복을 낳는’ 종합적 결합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칸트는 인간을 단지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로만 바라보지 않고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다면 도덕성과 행복이 원인과 결과로서 필연적으

로 결합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로서 속

해 있는 예지 세계에서는 도덕성과 행복의 결합이 필연적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최고선의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칸트는 도덕성과 행복의 종합적

결합을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로서 속해 있는 예지 세계 안에서의 결합으로 파악함

으로써 ‘순수 실천 이성의 이율배반’을 해소하고자 한다.

이제 도덕성과 행복의 필연적 결합으로서의 최고선은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자

로서의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최고선을 예

지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성과 행복의 필연적 결합으로 간주하고, 또한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목적으로 이해한다면, 최고선에서 도덕

의 결과로서 필연적으로 결합하는 행복을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감성적 행복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지 세계의 개념 자체가 ‘감성 세계로부터의 독립성’

을 전제하고 있으며,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궁극목적을 감성적 행복

에서 찾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추구하고

자 하는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으로서 결코 감성

적 행복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래서 칸트는 최고선에서 도덕성과 결합하는 행복의

의미 변화를 염두에 두면서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을 다른 방식으로 규

정해보고자 한다. 칸트는 이를 위해 ‘덕의 의식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행복’의 의

미를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칸트는 이러한 행복을 ‘존경의 감정’, ‘자기 만족’, ‘자기

인격에 대한 만족’, ‘지성적 만족’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심지어 경향성으로부터 완전

한 독립성을 지닌 존재자에게나 해당할 수 있는 ‘정복’이나 신과 같은 최고 존재자

에게나 부여할 수 있는 ‘자족’과도 연결시키고 있다. 이처럼 칸트는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감성 세계로부터 독립적이면서도 예지 세계의 원인성에 근거한 ‘감정’이나

‘만족’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어떤 표현 방식으로 이해하든지

간에 이 모든 표현들은 공통적으로 행복이 일체의 경향성으로부터 벗어나 도덕 법

칙이 의지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가운데 자유를 의식하면서 수반되는 결과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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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을 함축한다. 결국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도덕 법칙

을 준수할 때 자유를 의식하면서 얻게 되는 행복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언제나 ‘도덕 법칙에 의한 직접적인 의지 규정’과 ‘자유의 의식’에 근거한 행

복이라는 점에서 ‘도덕적 행복’이라 할 수 있다. 이 최고선에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이야말로 인간이 예지적 존재자로서 순수 실천 이성의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

는 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고선에서의 행복을 도덕적 행복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을 예지

적 존재자로 상정하고, 도덕성과 행복의 필연적 결합을 예지 세계 안에서의 결합으

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덕 법칙은 이 세계에서 최고선을 실현할

것을 우리에게 의무로서 명령한다. 이는 순수 실천 이성이 감성 세계 안에서의 최

고선의 실현에도 무관심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칸트는 감성 세계에서의 최

고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는데, 이렇게 되면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

로서의 행복은 ‘감성적 행복’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서 ‘순수 실천 이성의

이율배반’ 문제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감성 세계 안에서 도덕성과 감성적 행복을

필연적으로 결합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감성 세계에서의 행복은 순전히

자연 법칙의 지배 아래서 주어지는 것으로서, 인간이 아무리 도덕 법칙을 엄격히

준수할지라도 그러한 도덕성에 필연적으로 결합하는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

간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 법칙은 이 세계에서 최고

선의 실현을 촉진할 것을 의무로서 명령한다. 만약 감성 세계에서의 최고선의 실현

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이는 도덕 법칙의 명령이 공허한 것임을 증명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이것은 도덕 법칙을 ‘순수 이성의 사실’로 이해하는 칸트의 입장에서 결

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다. 그래서 칸트는 감성 세계 안에서 최고선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고찰하는데, 여기서 칸트는 순수 실천 이성의 두 가지 요청

에 이르게 된다. 우선 첫 번째로 칸트는 영혼의 불멸성을 요청한다. 왜냐하면 최고

선의 첫 번째 요소인 도덕성의 완성을 위해서는 의지가 도덕 법칙에 완전히 부합하

기 위한 무한한 전진이 필요한데, 이 과제는 제한된 삶 안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므

로 도덕적 노력을 위한 무한한 시간, 즉 영혼의 불멸성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두 번

째로 칸트는 신의 현존을 요청한다. 왜냐하면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다

시 말해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일은 인간 능력 밖의 일이므로,

최고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감성 세계에 속한 유한한 인간의 무능력을 보완하여

도덕성과 행복 사이의 정확한 일치를 보장할 수 있는 근거, 즉 ‘자연과는 구별되는

전체 자연의 원인’으로서의 신의 현존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순수 실천 이성은 자신의 궁극목적인 최고선의 실현을 위해 신의 현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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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하는 데 이른다. 신의 현존은 감성 세계 안에서 도덕성에 비례하는 행복, 즉 최

고선이 가능하기 위해 전제되는 도덕적으로 필연적인 요청으로서 자연스럽게 신에

대한 믿음과 연결된다. 칸트는 최고선의 실현 가능성을 위해 전제할 수밖에 없는

신의 현존의 요청을 도덕 법칙과 결합된 실천적 관점에서 ‘순수한 이성 신앙’으로

연결시킨다. ‘순수한 이성 신앙’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이 신앙이 최고

선의 실현 가능성과 관련하여 신의 현존의 요청과 결합하고 있기는 하지만, 신앙의

근거를 ‘신’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순수 실천 이성의 자율’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이성 신앙에서 신의 현존은 도덕 법칙을 준수한다는 조건 아래서 최고선에

이르기 위해 요청되는 전제일 뿐, 결코 도덕 법칙을 규정하는 근거이거나 도덕 법

칙의 준수를 위한 동기일 수는 없다. 최고선은 언제나 도덕 법칙의 직접적인 의지

규정, 즉 도덕성을 근거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신의 현존이 도덕 법칙에 앞서 의

지의 규정 근거가 된다면 의지의 타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의지의 타율은 최고

선의 첫째 요소인 도덕성을 정초할 수 없기에, 결국 최고선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처럼 도덕 법칙은 순수 실천 이성의 궁극목적인 최고선의 개념을 통해 불가피하

게 ‘순수한 이성 신앙’으로서의 종교에 이르게 된다. 이 종교 안에서 사람들은 신에

의해 자신의 도덕성, 즉 ‘행복할 만한 품격’에 정확하게 비례하는 행복을 얻게 될

것을 희망할 수 있다. 여기서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신에 의해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가진 사람에게 부여되는 행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때의 행복은 도덕 법칙을 준

수하기 위한 동기가 아니라 신에 의해 가능한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을

의미한다. 그래서 순수한 이성 신앙으로서의 종교에서 ‘신에 의해 부여되는 행복’이

란 결국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과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에 도

덕과 행복의 구분은 무의미해 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최고선을 촉

진하고자 하는 도덕 법칙에 기초한 도덕적 소망이 각성되고 이를 위해 종교로의 발

걸음이 내딛어진 연후에는, 도덕론 또한 행복론이라 불릴 수 있다.”(KpV, A235) 고

말한다. 사람들은 신에 대한 믿음 속에서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이 자신의

도덕성에 비례하여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종교에 이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에 의해서 가능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언

제나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서의 도덕성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사실이다. 감성

세계에서 실현될 수 있는 최고선에서 신에 의해 가능한 행복은 감성적 행복을 의미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행복은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만이 희망할

수 있는 행복으로 결코 의지의 규정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최고선에서 도덕

성과 행복의 필연적 결합을 예지 세계에서의 결합으로 이해하든 신의 현존의 요청

을 전제로 한 감성 세계의 결합으로 이해하든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언제나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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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최고선에서의

행복은 도덕 법칙에 따르면서 자유를 의식하는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 즉 ‘행복

할 만한 품격’을 지닌 인간이 희망할 수 있고 추구할 수 있는 도덕적 행복을 의미

한다. 순수 실천 이성은 바로 자신의 궁극목적인 최고선에서 다시 말해 도덕적 행

복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칸트는 ‘감성적 행복’이나 ‘도덕적 행복’과는 구분되는 ‘또 다른 의미의

행복’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자는 칸트가『판단력비판』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또 다른 의미의

행복’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본 논문의 제4장에서 이를 상세히 밝히고자 하

였다. 칸트는『판단력비판』에서 쾌의 감정, 즉 만족과 관계하는 대상을 ‘쾌적한

것’, ‘미적인 것’, ‘숭고한 것’, ‘단적으로[도덕적으로] 선한 것’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대상에 해당하는 만족의 특성을 상세하게 논의하면서 이를 종적[種的]으로 구별한

다. 우선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은 감관의 감각적 관심 아래서 경향성의 충족을 통

해 느껴지는 ‘향수의 쾌감’을 의미한다. 그래서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은 경향성을

지속적이고 최대한으로 충족시키는 가운데 느끼는 감각적 만족을 의미한다는 점에

서 ‘감성적 행복’에 해당한다. 한편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이성의 도덕적

관심 아래서 자신의 행위가 도덕 법칙에 의해 직접적으로 규정된 의지로부터 행해

졌다는 의식에서 느끼는 ‘법칙적 활동의 쾌감’을 의미한다. 이 ‘법칙적 활동의 쾌감’

은 실천적 이성 개념에 근거한 쾌감으로서, 순수 실천 이성의 도덕 법칙에 따르는

자율적 활동의 결과로써 느끼는 쾌감이다. 그래서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은

도덕 법칙의 직접적 의지 규정의 결과로서 느끼는 도덕적 감정, 즉 도덕 법칙에 대

한 존경의 감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존경의 감정은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

복, 즉 ‘도덕적 행복’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은 ‘도덕적 행복’에 해당한다.

그런데 칸트는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앞서 언급한 두 만족과 근

본적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과 같이 감각적 관심 아래서 경향성을 충족시킴으로써 얻어지는 쾌감도 아니

고,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과 같이 도덕적 관심 아래서 도덕 법칙에 따르는

행위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쾌감도 아니다.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쾌적한 것에 대한 감각적 관심이나 단적으로 선한 것에 대한 도덕적 관심에서 전적

으로 벗어난 상태에서 느껴지는 쾌감으로서 ‘무관심한 만족’이자 ‘자유로운 만족’을

의미한다.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주관이 경향성에 의해 규정되거나

순수 실천 이성의 개념, 다시 말해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느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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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이 아니다. 이러한 만족은 경향성의 충족이나 도덕적 행위의 실천이라는 어떠

한 의도나 목적과도 관계 없이, 아름답고 숭고한 대상과의 순수한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모두 반

성적 판단력의 자유로운 활동을 바탕으로 한 ‘미감적 판단’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

이라는 점에서 ‘미감적 만족’이라 일컬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미감적 만족’은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에 해당하는 ‘감성적 행복’과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

에 해당하는 ‘도덕적 행복’과 구분되는 ‘미감적 행복’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칸트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의 차이점에도 주

목하고자 한다. 칸트는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이 일체의 관심이 배제된 채 대상의

형식에 대한 판단력의 자유로운 반성 과정, 즉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에서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만족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만족을 ‘순

전한 반성의 쾌감’으로 규정한다. 반면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무한한 크

기와 위력을 지닌 자연의 무형식적 대상에 대한 반성에서, 상상력이 이성의 이념을

현시하기에 부적합하다는 데서 느껴지는 불쾌감이 동시에 이성의 이념을 실현시켜

야 한다는 초감성적 사명의 감정을 일깨우면서 느끼는 쾌감으로 이해한다. 칸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인간 안의 초감성적 이성 이념에 대한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만족을 ‘이성 논변적 관조의 쾌감’이라고 규정한다. ‘숭고

한 것에서의 만족’은 상상력이 이성의 이념을 실현해야 한다는 초감성적 사명의 감

정에서 비롯하는 쾌감이다. 이 때 상상력이 깨닫게 되는 초감성적 사명의 감정은

상상력이 이성의 이념과의 관계 속에서 감성에 대한 이성의 우월성을 겸허히 수용

하면서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이성의 이념에 의해 감성이 규정되

면서 느껴지는 쾌감과 유사한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감정은 이성의 이념이, 더

정확하게 말해 순수 실천 이성의 이념이 주관을 규정하면서 일으켜지는 도덕적 감

정, 즉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의 감정과 유사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칸

트는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이 아무리 애매하다고 할지라도 도덕적 토대를 갖는 감

정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존경의 감정으로서의 도덕적 감정과 밀접하게 관련시키고

자 한다. 그렇지만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을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감정으로 이해

한다 할지라도, 이 만족을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을 의미하는 도덕적 감정

과 동일하게 간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단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과 관련하

는 존경의 감정으로서의 도덕적 감정은 실천적 이성 개념에 의해 주관이 규정됨으

로써, 다시 말해 도덕 법칙에 의해 직접적으로 의지가 규정됨으로써 느낄 수 있는

‘법칙적 활동의 쾌감’이기 때문이다.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반성적 판단력의 자유

로운 활동에 바탕을 둔 미감적 판단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으로서, 결코 어떠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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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개념에 의해서도 규정될 수 없는 만족이다. 따라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단

적으로 선한 것에서의 만족’과 분명히 구분되는 만족으로서 결코 도덕적 감정과 동

일한 감정일 수는 없지만, 우리의 마음을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의 감정, 즉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로 이끌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감정과 친화적인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반성적 판단력의 자유

로운 활동을 바탕으로 한 미감적 판단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이면서도, 동시에 우

리의 마음을 도덕적 감정과 친화적인 상태로 이끌어줌으로써 ‘도덕적 행복’에 다가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미감적․도덕적 행복’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그렇지만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을 ‘미감적 행복’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

족’을 ‘미감적․도덕적 행복’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이 ‘도덕적

행복’과 무관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

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모두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을 바탕으로 한 미감적 판단에서

비롯한 쾌감이라는 공통된 토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적인 것

에서의 만족’도 우리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으로 이끌어 결국 우리를 도덕적 감

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에 놓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칸트가『판단력비판』

에서 ‘숭고의 분석학’을 마무리 한 이후 ‘숭고한 것’에 대한 논의를 독립적으로 전개

하지 않고 ‘미적인 것’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면서 ‘미는 도덕의 상징’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에서, ‘미적인 것’과 ‘숭고한 것’을 연속성의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이

해하고자 하는 칸트의 의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의 연속성과 밀접한 관련성에 주목한다면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도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칸트는 ‘미

적인 것의 만족’과 ‘숭고한 것의 만족’을 통해 우리에게 ‘감성적 행복’과도 ‘도덕적

행복’과도 구분되는 ‘미감적 행복’과 ‘미감적․도덕적 행복’이 가능하며, 이러한 행복

의 경험을 통해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와 같이 본 논문은 칸트의 사상을 ‘행복’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면서 칸트의

‘행복 이해’, 즉 칸트의 ‘행복론’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칸트의 ‘행복론’은 인간이 경

향성의 충족으로서의 행복, 즉 감성적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도덕성의 필연적 결

과로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을 자신의 궁극목적으로 추구하는 존재임을 우리에

게 알려준다. 이처럼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을 감성적 행복 너머

의 도덕적 행복에서 찾으려는 것은 인간이 자연 법칙의 지배 아래서 경향성에 따르

는 감성 세계에 속한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일체의 경향성에서 벗어나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는 예지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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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초월적 자유’를 지닌 자유로운 존재이자, ‘도덕 법칙’에 따를 수 있는 도덕적

인 존재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처럼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궁극목적을 감성적 행복에 두려하지 않고 최고선에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

복에서 찾고자 한다. 왜냐하면 최고선에서의 행복이야말로 도덕 법칙에 따르며 자

유를 의식할 수 있는 도덕적 행위에서 그 도덕성에 비례하여 주어지는 도덕적 행복

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최고선은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궁극목적

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도덕성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행복’, 즉 ‘도덕적 행복’을 의미

한다. 따라서 칸트의 최고선을 이해하는 과정은 곧 ‘예지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도덕성과 행복의 필연적 연관성’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

금 인간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바탕으로 감성적 행복 너머의 도덕적 행복에도 관심

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교육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

다.

한편 칸트의 ‘행복론’은 인간이 행복을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과 ‘숭고한 것에서

의 만족’에서도 발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미적인 것에서의 만족’은 아름다운 대

상과의 순수한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미감적 행복’이 있음을 알게 해 주고, ‘숭고

한 것에서의 만족’은 무한한 크기와 위력을 가진 숭고한 대상과의 만남에서 초감성

적 이성 이념을 의식하면서 느낄 수 있는 ‘미감적․도덕적 행복’이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러한 ‘미감적 행복’과 ‘미감적․도덕적 행복’은 경향성의 충족에 대한 일체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감성적 행복 너머의 행복’을 의미하면서도, 도

덕적 감정과 친화적인 마음의 상태로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

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미감적 행복’과 ‘미감적․도덕적

행복’이 도덕교육에서 담당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학생들이

칸트의 최고선에 근거한 행복 성찰 교육을 통해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은 도덕교육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최고선에서의

도덕적 행복이 가능하려면 언제나 먼저 ‘행복할 만한 품격’으로서의 도덕성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경향성의 유혹을 극

복하여 자신의 의지를 도덕 법칙에 의해 규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경향

성의 유혹을 극복한다는 것은 그 만큼의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온갖 경향성들을 자극하는 환경에 놓여 있어 경향성의 극복보다 경향성의 충족에

길들여져 있는 학생들이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추어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먼저 경향성의 충족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

이 경향성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도덕적 행복에 대한 성찰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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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태를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감적 행복’으로서의 ‘미적인 것

에서의 만족’과 ‘미감적․도덕적 행복’으로서의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경향성의

충족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운 만족이면서도, 반성적 판단력의 활동을 통해

도덕적 감정과 유사한 마음의 상태로 나아가게 해 주는 만족이라는 점에서 감성적

행복에서 도덕적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따라서 학생

들이 미와 숭고를 체험하면서 ‘미감적 행복’과 ‘미감적․도덕적 행복’에 익숙해 질

수 있다면 이것은 도덕적 행복에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준비가 될 수 있다. 이런 점

에서 미와 숭고의 체험을 활용하여 학생들이 도덕적 행복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도덕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칸트의 ‘행복론’은 인간의 행복을 단지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감성적 행복만으

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아름다운 대상과의 만

남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미감적 행복’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숭고한 대상과의 만

남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미감적․도덕적 행복’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도덕적 행

위에서 자유를 의식하면서 느낄 수 있는 ‘도덕적 행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렇

지만 칸트가 보기에 인간은 자신의 궁극목적인 최고선의 실현에서 다시 말해 ‘도덕

적 행복’에서 진정한 만족을 느끼는 존재이다. 더군다나 인간은 이 세계에서 ‘행복

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에게 ‘감성적 행복’이 정당하게 부여되기를 바라는 마음

에서 ‘신의 현존’을 요청하면서 종교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처럼 인간이 자신의 진

정한 행복을 최고선이라는 도덕적 행복에서 찾으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행복해 지기를 바라는’ 도

덕적 마음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칸트가 도덕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행복을 누

리거나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인간의 이성은 결

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칸트의

관점에서 이러한 도덕적 마음씨의 근원은 바로 ‘순수 이성의 사실’로서 우리에게 주

어져 있는 도덕 법칙이다. 그리고 또한 도덕 법칙은 ‘초월적 자유’를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칸트의 ‘행복론’은 근원적으로 인간의 ‘초월적 자유’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의 ‘행복론’이 ‘인간에 대한 근원적 성찰’

과 깊숙이 맞닿아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칸

트의 ‘행복론’은 인간의 행복이 경향성의 충족으로서의 ‘감성적 행복’ 뿐만 아니라

미와 숭고의 체험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미감적 행복’과 ‘미감적․도덕적 행복’, 그

리고 도덕적 행위 속에서 자유를 의식하며 느낄 수 있는 ‘도덕적 행복’, 더 나아가

‘행복할 만한 품격’을 갖춘 사람이 현실 세계에서도 신에 의해 행복하기를 희망하면

서 이르게 되는 ‘순수한 이성 신앙으로서의 종교’와도 관련되는 것임을 일깨워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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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칸트의 ‘행복론’은 행복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는 실망감을 줄 수 있겠지만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

게는 은밀한 기쁨을 주면서 행복 성찰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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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f Happiness in Kant's Thought

Kwak, Jeong-Hoon

Department of Ethics Education

The Graduate School

Seoul National University

This paper intends to grasp the meaning of happiness as understood by Kant

holistically, understanding Kant's thoughts as a process of developing a grand

'theory of happiness' from a teleological point of view. In particular, this paper

began with a very detailed discussion of Kant's 'understanding of human',

taking notice that Kant's 'theory of happiness' is fundamentally based on

Kant's 'understanding of human'.

The key message that Kant's 'understanding of happiness', or 'theory of

happiness', suggest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Human beings are not satisfied with happiness as the satisfaction of

inclination, that is, sensuous happiness, but are willing to pursue happiness as

the necessary result of morality, that is, moral happiness in the highest good as

the final end.

As such, a human being ultimately wants to pursue the moral happiness

beyond sensuous happiness, that is, the highest good. For a human being is not

only a being belonging to the world of sense following inclination under the

dominance of the natural law, but at the same time is also a being belonging to

the intelligible world able to follow the moral law with freedom from all

inclinations. The human being as an intelligible being intends to understand him

or herself as a free being with 'transcendental freedom' and a moral being able

to follow 'the moral law'. Thus, a human being as a 'free and moral being'

does not want to put his or her final end in sensuous happiness but seeks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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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 end in the happiness of the highest good. For happiness in the highest

good is the happiness in proportion to morality given to one who possesses 'the

worthiness to be happy' with following the moral law and being conscious of

transcendental freedom. In the end, Kant's idea of the highest good means

'happiness as the necessary result of morality', that is, 'moral happiness' that a

human being as a 'free and moral being' is willing to pursue as the final end.

On the other hand, Kant's 'theory of happiness' shows that a human being is

able to find happiness in 'satisfaction in the beautiful' and 'satisfaction in the

sublime.' 'Satisfaction in the beautiful' is something that can make us realize

that there is 'aesthetic happiness' that can be felt in a pure encounter with a

beautiful object, and 'satisfaction in the sublime' is something that can make us

realize that there is 'aesthetic․moral happiness' that can be felt in an encounter

with a sublime object of infinite magnitude and might while remaining conscious

of the supersensuous rational idea. These 'aesthetic happiness' and 'aesthetic․

moral happiness' mean 'happiness beyond sensuous happiness' in that they are

free from all interests in satisfying inclination, and can also prepare an

opportunity for moral happiness in that they can lead to a disposition of mind

that is amicable to moral feeling.

This paper presents the following implications for moral education, which

comes naturally on the basis of Kant's 'understanding of happiness'. First, the

reflective education of happiness based on Kant's idea of the highest good is

necessary in moral education. The process of understanding Kant's idea of the

highest good naturally includes a deep understanding of 'the necessary corelation

of morality and happiness', as well as 'the understanding of human beings as

intelligible beings'. In this sense, the reflective education of happiness based on

Kant's idea of the highest good can have an important significance for moral

education in that students can be interested in moral happiness beyond sensuous

happiness based on a fundamental understanding of human beings. Second,

moral education using the experience of the beauty and the sublime is

necessary. In order for students to be able to move toward happiness of the

highest good, that is, moral happiness, it is always required first to possess

morality as 'the worthiness to be happy'. However, in order to be able to

possess 'the worthiness to be happy', it is necessary to overcome the

temptation of inclination and compel one's own will to be determined by the

moral law, but reaching this directly is not easy for students in an enviro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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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 stimulates all kinds of inclinations.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have an

opportunity for students to move away from the temptation of inclination and to

reflect on moral happiness. Here, 'satisfaction in the beautiful' as 'aesthetic

happiness' and 'satisfaction in the sublime' as 'aesthetic․moral happiness' are

able to prepare this opportunity in that they are the satisfaction which brings

our mind to a disposition of mind similar to moral feeling. From this point of

view, students' familiarity with 'aesthetic happiness' and 'aesthetic․moral

happiness' through the experiences of the beauty and the sublime can play an

important role in moral education.

Kant's 'theory of happiness' indicates that human happiness can not be

understood only by sensuous happiness as satisfaction of inclination. A human

being can find one's own happiness in 'aesthetic happiness' that can be felt

through encounters with beautiful objects, in 'aesthetic․moral happiness' that

can be felt through encounters with sublime objects, and in 'moral happiness'

that can be felt while being conscious of freedom in moral conduct. However, in

Kant's view, human beings feel genuine satisfaction in the realization of the

highest good as one's final end, in other words, in 'moral happiness'.

Furthermore, human beings even reach to religion, postulating 'the existence of

God,' hoping that in this world 'sensuous happiness' will be legitimately given

to a person who possesses 'the worthiness to be happy'.

Why do human beings seek genuine happiness in moral happiness as the

highest good? That is because there exists a moral disposition deep inside the

human heart 'hoping that a person who lives morally will be happy'. In Kant's

view, the source of this moral disposition is the moral law given to us as 'the

fact of pure reason'. In addition, Kant's 'theory of happiness' is, in the end,

fundamentally based on 'transcendental freedom' in that the moral law is only

possible on the premise of 'transcendental freedom'. Here we can see that

Kant's 'theory of happiness' is deeply in touch with 'fundamental reflection on

human beings'. Based on this reflection on human beings, Kant's 'theory of

happiness' makes us realize that human happiness is not only related to

'sensuous happiness', but also to 'aesthetic happiness' and 'aesthetic․moral

happiness,' and 'moral happiness', and furthermore to 'religion as pure rational

faith' that comes from hoping a person who possesses 'the worthiness to be

happy' to be happy in the real world through God. Kant's 'theory of happiness'

can be a disappointment for those who expect a concrete methodology to lead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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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iness, but for those who expect to discover the genuine meaning of

happiness, it can be a good opportunity for reflecting on happiness with secret

joy.

Keywords : the world of sense, the intelligible world, sensuous happiness,

satisfaction in the beautiful(aesthetic happiness), satisfaction in

the sublime(aesthetic․moral happiness), the highest good(moral

happi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