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시대에 대한 구속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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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言敎會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Sermon on Jeremiah in the Bible 예레미야 시대에 대한 구속사적 고찰 *송영과 신앙고백 /*십계명 / *찬송(16) / 기도 / *찬송(17) / 설교와 헌상 / *찬송(18) / *주기도문과 축도 예레미야 11-3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 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지 십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 게 임하였고 3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 십 일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 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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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言敎會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Sermon on Jeremiah in the Bible

예레미야

시대에 대한

구속사적 고찰

*송영과 신앙고백 /*십계명 / *찬송(16편) / 기도 / *찬송(17편) / 설교와 헌상 / *찬송(18편) / *주기도문과 축도

예레미야 1장 1-3절

“1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아몬

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지 십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

게 임하였고 3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 십 일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

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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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시대에 대한 구속사적 고찰 (렘 1:1-3)

유다 왕국에서의 산당 문제

예레미야가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기에 당시 시대가 얼마나 험난했던가에

대해서는 그가 한 다섯 개의 탄식의 고백 기도에서 잘 나타납니다. 예레미야

의 다섯 개의 탄식의 고백들만을 놓고 보면, 제일 첫 번째 탄식만 요시야 왕

의 시대에 해당되고, 나머지 네 개는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 시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는 요시아 왕을 끝으로 사실상 유다는 패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이

기 때문인데, 따라서 상대적으로 예레미야의 탄식도 이 시기에 집중되었던 것

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의 유다는 요시야 왕의 급작스러운 전사로 말미암아

급히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유다 전통에서

할아버지 히스기야와 더불어 가히 다윗에 버금가는 왕으로 추앙을 받는 왕이

었습니다. 남쪽 유다 왕국의 역사 속에서 이런저런 선한 왕들이 나름대로 있

어왔지만, 늘 아쉬운 것이 하나씩 꼭 있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솔로몬이

죽을 때에 이스라엘 왕국은 둘로 갈라져 북쪽은 여로보암이 다스렸고, 남쪽은

르호보암이 다스렸습니다. 르호보암과 그의 아들 아비얌에게는 별로 좋은 평

가가 내려지지 않았지만, 다음 왕인 아사에게는 “아사가 그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고 ...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서 온전하였

다”(왕상 15:9-15)고 하는 좋은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그럴지라도 한 가지 아쉬

운 것이 있었는데, 곧 “오직 산당은 없이 하지 아니하니라 ...”(왕상 15:14)고 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산당은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

지기 전까지 묵시적으로 가나안 땅 전역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었던 ‘여호와

를 경배하는 산당’이었습니다. 이 여호와의 산당은 사사시대 때 실로에 있던

성막이 블레셋의 공격을 당해 급히 해체되어 사방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따라, 향후 도처에서 여호와를 경배하는 임시 수단으로 세워진 산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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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경우도 보면, 그가 성전을 짓기 전까지는 당시로

서 제법 큰 산당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기브온 산당’에서 그 유명한 일천번제

를 드렸던 것입니다(왕상 3:4). 그러나 성전이 완성되고 난 후에는, 그 동안 묵인

되던 예배 처소들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므로 모두 폐지되

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로는 원칙적으로 ‘중앙 성소 중심’의 신앙생활을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신 12:10-11). 하지만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행해 나오던 습관이 하루 아침에 고쳐

진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반드

시, 기필코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건축한 당사자인 솔로몬조차도 개혁을 시행조차 못한 채

죽었습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18년 동안 통치하는 내내 둘로 갈라진 나라

를 안정시키는 데 집중하느라 이 일에는 아예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그의 아들 아비얌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한 왕’이었

기에 역시 ‘여호와의 산당 개혁’ 같은 막중한 위업을 기대한다는 것은 아예 꿈

조차 꾸지 못할 형편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겨우 3년 밖에 통치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보좌에 앉은 사람이 바로 아사 왕입니다. 아사 왕

은 무려 41년 동안이나 통치할 때에 내내 다윗을 닮아 여호와 앞에서 충실한

왕이었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역시 여호와의 산당 개혁에 있어

서 만큼은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하는 말인 것입니다. “오직 산당은 없이 하

지 아니하니라 ...”(왕상 15:14)라고 한 말씀이 따라붙은 것입니다.

아사 왕의 아들은 여호사밧 왕입니다. 이 여호사밧 왕도 25년 동안이나 예

루살렘에서 통치하면서 아버지 아사를 닮아 신앙의 모범을 보이며 선정을 베

풀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그 부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켜 떠

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기를 “...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왕상 22:43)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 역시 아비

아사 왕에 못지 않은 경건한 신앙인이었지만, 아쉽게도 나쁜 것까지도 아비를

닮아(?) 여호와의 산당을 없애지 못한 것입니다.

여호사밧 다음으로는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어 8년 동안 다스렸지만

내내 악한 왕 노릇만 했습니다. 그의 아들 아하시야는 1년 밖에 통치하지 못했

고, 그 다음으로는 여호람의 아내 아달랴가 아하시야가 죽은 것을 보자, 남은

아들들을 다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여 6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이 여자는 북쪽

왕국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었기 때문에 철저한 우상숭배자였으므로, 산당 개

혁을 기대하는 고사하고, 오히려 북쪽의 바알과 아세라 등의 우상의 산당들을

사방에 퍼뜨림으로 상황을 더 악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했던 아달랴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탈취할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아하시야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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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요아스가 있었는데, 신하들이 그를 예루살렘 성전에 숨겨서 잘 키운 후 제 7년째 되던 해에 쿠데타를 성공시켜 비운의 아버지 아하시야를 이어 왕이 되

게 했습니다. 요아스 왕은 40년 동안 보좌에서 나라를 다스리면서 ‘여호와 보

시기에 정직히 행함으로’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오직 산당은 폐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왕하 12:3)라고 한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다음으로 등장한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에

게도 같은 꼬리표가 붙었고(왕하 14:3-4), 아마샤의 아들 웃시야(아사랴) 왕에게도

역시 같은 꼬리표가 붙었으며(왕하 15:1-4), 계속해서 웃시야의 아들 요담에게도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

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왕하 15:34-35)라고 한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요담의 아들

아하스는 아예 16년간의 통치 기간 전체에 걸쳐 우상 산당까지 더 도입하여

제사를 드린 악한 왕이었습니다(왕하 16:1-4).

히스기야 왕의 공로와 과오

그 다음에 등장한 왕이 바로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 왕입니다. 이 히스기

야 왕에 대한 평가가 남다릅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

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왕하 18:3-4)고 했습

니다. 계속해서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

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

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

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왕하 18:5-7)라고 한 것입

니다. 다음으로 히스기야를 이어서 등장한 왕이 바로 55년 동안이나 악명 높았

던 므낫세입니다. 이 므낫세는 등극할 당시의 나이가 12세라고 했으니까(왕하 21:1), 히스기야가 자신의 죽음을 선고 받았을 때 간절히 통곡하면서 기도한

끝에 15년 동안의 생명을 연장 받은 기간 중 낳은 아들, 즉 새로운 15년간의

생명이 시작된 후 3년만에 아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설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에게는 15년간의 생명 연장이 시작될 즈음에 이미 8살이

된 아들 므낫세가 있었습니다. (이는 포로 때가지 남은 총 연수에서 나머지 유다

왕들의 기간을 빼면 11년이 남기 때문인데, 이는 이 기간만큼 히스기야가 므낫세의 섭

정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생명 연장을 위해서 결사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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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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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하게 된 데에는, 자신이 죽으면 겨우 8살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이 왕이

되어야 할 것이었으므로 상당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

의 미래를 염려하여 간절히 기도한 것으로 보이고, 그에 따라 15년간의 생명이

연장되게 되었는데, 이후 4년이 지나 므낫세가 12살이 되었을 때, 서둘러 그를

왕으로 앉히면서 자신은 섭정의 자리에서 11년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생명이 연장된 후로 급속도로 교만에 빠져버리게 됩니

다. 이는 어느 날 바벨론 사절의 예방을 받았을 때, 교만에 빠져 우쭐대면서

자신의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하게 됨에 따라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이 죄에

대한 처벌로 후일 그의 왕국이 멸망 당하게 될 것이라는 선고를 받게 되었습

니다(왕하 20:12-21). 처음에 히스기야는 병이 낫게 되었을 당시 ‘겸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사 38:15).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는 상당히 교만해 있었습니다. 잠언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라고 했습니다. 역대기 사가는 그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

로채는 것이요, 그분께서 베푸신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는 태도였다고 평가

했습니다(대하 32:25). 이로 보건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분명한 은혜가 있을

때, 이를 공적으로 증거하지 않는 태도는 상대적으로 자기 과시의 미혹에로

떨어지기 마련이고, 이것이 바로 교만의 실체가 된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지금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사자들에게 각종 보물들과 무기들을 보여주었던

행동은 사실상 자기 자신을 높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히스기야의 교만은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을 살펴보기 위해서

그를 떠나셨을 때에 일어났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히스기야의 마음이 진정 어

떠한 상태인가를 드러내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

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

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 32:31).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나셨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

어주시던 역사를 멈추셨다는 의미이고, 그러자 그는 한 순간에 인간이라면 한

결 같이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그러한 악습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이러한 히스

기야의 교만은 15년간 연장된 생명의 기간 동안에 왕위에 앉혔던 아들 므낫세

에게로 고스란히 물러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므낫세 왕은 무려 55년간이나 왕

위에 있었지만, 아버지 히스기야가 그 동안 선왕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숙원인

개혁을 단행하여 겨우겨우 헐어버렸던 여호와의 산당들, 바로 그 산당들을 도

로 재건한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각양 이방 신들을 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므낫세는 아버지가 어렵사리 성취해놓은 개혁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어 버리고 말았습니다(왕하 21:1-9).

이러한 므낫세를 이어 그의 아들 아몬이 왕이 되었지만, 예루살렘에서 2년

동안 다스리면서 아버지 므낫세를 그대로 빼어 닮은 통치를 행하다가, 결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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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신복들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신복들의 쿠데타는 실패하

게 되는데, 이는 백성들이 역모 세력을 진압하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

로 세웠기 때문입니다(왕하 21:20-24).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다윗 언약

그런데 아몬을 죽인 신복들의 모반을 다수 백성들이 뒤집어 엎고 제대로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세운 배후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남쪽 유다 왕국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특징으로 ‘다윗 언약’이라는 사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

에게 베푸신 은혜를 가리키는 것인데, 곧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와 그의 후

대의 나라가 어떠한 혼란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항상 다윗의 자손들이 왕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입니다. 당시 다윗은 가나안 땅

에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아 감사하

고 보답하는 마음이 들어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 언약’이라는 것을 베푸셨는데, 다윗이 하나

님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지으실 것이라는 것이

언약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언어 유희가 나타납니다. 다윗은 ‘성전’과도 같은 ‘건물로서의 하나님의 집’을 의미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가계가 쭉 이어지는 것’으로서의 ‘다윗의 집’으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사안이 중요하므로 내용을 직접 보겠습니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가계)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솔로몬)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성전)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

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

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

리라 네 집(혈통)과 네 나라(왕권)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

히 견고하리라 ...”(삼하 7:11-16).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 집을

건축할 것이요’라고 하신 말씀은 이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태어나 실제로

건물로서의 성전을 건축함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이 계속 역사 속에서 성취되어 나가리라는 데 대한 일종

의 증표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네 집과 네

나라’로 표현된 다윗의 가계(家系, family line)란 결국 다윗처럼 하나님께 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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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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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순종하는 국가가 세워지는 데서 성립되는 것이라고 볼 때에, 솔로몬의 성

전 건축 사건은 그와 같은 이상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성취되었다는 데 대한

아주 가시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성전 건

축은 그 자체로서의 중요성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

이 다스리는 나라, 즉 왕부터가 다윗과도 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솔선수범

으로써 백성들 역시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통치하는 나라가 실제로

수립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

므로 다윗 언약에서 중요한 것은, 다윗과 같은 신앙을 소유한 왕이 후손으로

계속 등장하여 왕조를 이루어 나간다 하는 데 있습니다. 즉 그러한 ‘다윗의 가

계’, 다윗의 왕조(王朝, the David Dynasty)가 역사 속에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지

속되는 연속성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2대)이 타락한 데 대한 징계로 그의 나라를

빼앗아 여로보암에게 주겠다고 선포하실 때에도, 아히야 선지자로 하여금,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뺀 성 예루살렘을 위하

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왕상 11:36)라고 하게 하셔서, 전부 다는 아니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즉, 솔로몬이 말년에 그토록 타락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나라를 빼앗기에 될 때에, 그런 중에서도 그의 아들 르호보암(3대)에게로

왕권이 계승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셨던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왕이

부패하고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 계열의 왕권이 계속 이어져 나가는 이

패턴은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4대)이 죽을 때에도 되풀이 되었습니다. 즉

“아비얌이 그 부친(르호보암)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

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

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왕상 15:3-4)라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패턴은 계속됩니다. 유다 왕 아사(5대)를 이어 18년간 통치한 여호사

밧(6대)은 아들 여호람(7대)에게 왕권을 물려주었는데, 이 여호람은 북쪽 왕 아

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아내로 맞이함으로써, 아달랴가 친정에서 가져온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전국에 확산시키게 하는 아주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왕의 권력을 사용하여 우상숭배를 전국적으로 퍼트린 것은 결코 작은 죄

“주님을 따르지 않으려면, 주님을 빙자하지 말고, 내게서 배우지 않으려면, 나를 들먹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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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왕을 폐하지 아니하시고 계속

해서 다윗의 혈통이 유다 왕권을 이어가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

람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삼십이세라 예루살렘에서 팔년을 치리하니라 저

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

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저와 그 자

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왕하 8:17-19)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후에 일어난 결과를 먼저 진술한 것인데, 즉 여호람이 죽고 그의 아

들 아하시야(8대)가 왕이 되었지만, 이 아하시야는 북쪽에서 일어난 쿠데타의

여파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때 여호람의 아내 아달랴(9대)가 일어나 여

호람의 자식들을 다 죽이고 왕권을 탈취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일단의 충

신들이 아하시야의 아주 어린 아들(요아스)을 구사일생으로 피난시켰다가, 6년

뒤에 쿠데타를 일으켜 아달랴를 죽이고, 요아스(10대)를 왕으로 옹립하는 데

성공했던 사실을 열왕기 저자가 미리 앞당겨서 보도하느라고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요아스는 40년을 치리하는 동안, 처음에는 선한 왕이었지만, 후반부로 가

면서 악한 왕이 되고 맙니다. 그가 얼마나 악했던지 결국 신복들의 모반으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쿠데타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11대)가 왕이 될 수 있었는데, 이는 결국 ‘다윗 언약’이라고 하는

구속사를 주도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패턴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는데, [이후로, 웃시야(12대), 요담(13대), 아하스(14대), 히스기야(15대), 므낫세(16대)를 지

나, 아몬(17대)의 때에] 곧 신하들이 아몬을 죽이는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그럼

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우여곡절 끝에 아몬의 아들 요시야(18대)를 왕으로

세우는데 성공한 사건입니다. 즉, 이와 같이 다윗의 계통이 계속 이어질 수 있

었던 것은 ‘다윗 언약’의 틀 속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는 말입니다. 요시야 이후로는 (요시야의 장남) 여호아하스(19대), (요시야의 차남) 여호야김(20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21대), (요시야의 삼남) 시드기야(22대) 등으로 다윗 형

통의 왕권이 이어지다가, 결국 바벨론의 침공을 견디지 못하여 국운이 끊어지

게 됩니다.

교회의 존재와 역사적 행진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이상 살펴본 바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어떠한 조건 하에서도

성취해 나가셨습니다. 물론 다윗 언약은 시드기야 왕 때에 와서는 결국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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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맺었습니다. 그토록 다윗 언약의 패턴에 따라 끈질기게 이어져 나오던 유

다 왕국이었지만 결국에는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윗 언약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다윗 언약’은 장차 예

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성취되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디 다윗 언약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에게 하신 언약을 시작

으로, 계속해서 노아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 및 모세 언약과 한 줄기 긴 축으

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다윗 언약까지 포함하면서 최종적으로 예

레미야를 통해서 새 언약의 도래가 예고된 그러한 언약 체제 전체(구약)는 장

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성취될 새 언약(신약)을 계시하는 모형이었

던 것입니다. 이 계시의 핵심 사상은 ‘임마누엘’입니다. 신약적으로 말하자면

‘은혜와 평강’입니다. 단,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인격과 사역으로써

세우시는 구속 혹은 구원에 근거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신학적 통일성에 따라 여러 각도에서 계시하였던 데서 구약의 언약 체제가

갖는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약의 언약 체제에 따라 성립되어야 했던 특성상 이스라엘 백성

에 대해 ‘하나님 나라’요, 또는 ‘구약 교회’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교회처럼 구약 교회도 마찬가지로, 먼저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왕(장로 직분)과 하나님 나라에 말씀을 공급하는 선지자(목사 직분)와 하나님 나라를 은혜에

계속 붙어 있게 하는 제사장(집사 직분) 등의 세 직분 체제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러한 모습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

키실 때에 의도하셨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나라, 곧 하나님의 소유된 제

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

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

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4-6)라고 하신 바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된 것이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성취될 것이

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근거하여 성신께서 도래

하셔서 성도들의 심령에 내주하시게 될 것인데, 그러면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4)고 한 바가 일어나게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

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새 언약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구원을 베푸시는데, 성도에게 이러한 구원이 임했다는 것을 자각시켜 주는 뚜

렷한 증거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나아가 복종한다는 데서 찾아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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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됩니다. 이 복종하는 능력의 원천이 무엇이냐 하면, 성신께서 성도의 생명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접붙여 주신 사실입니다. 물론 매사에 완벽

하게 순종하지는 못합니다. 옛 사람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부패성이 습성으로

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럴지라도 어제보다는 오늘은 더 낫기 마련이고, 따라서 내일은 더욱 더 낫습니다. 비록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할 수는 있겠지만, 여하튼 멈추어 있지는 않습니다. 기어코 전진하고 또 전진합니다. 진정으로 거

듭난 성도라면 하나님의 학교라고 하는 운동장에서 부지런히 그리고 항상 전

진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

하지만, 은혜란 단순히 종교적인 느낌이나 기분 또는 그러한 분위기 따위나

정도에 불과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은혜란 놀라운 능력이요 권능입니다. 당연

히 이것은 한 마디 말만 하면, 암 같은 불치의 병이 낫는 그런 터무니없고 허

무맹랑하며, 혹은 사탄이 실제로 그러한 능력을 부어주는 것을 통하여 속임에

빠트려 궁극적으로 자신의 도구 노릇을 하게 하는 데서 나타나는 그런 유의

권능과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았다고 할 경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계시 전반을 체계적으로 잘 이해하는 동시에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적극 순종하는 데서 온전한 모습을 나타내는 법입니다. 이는 그의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약동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은혜를 누리는 성

도는 자신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기를 그치고, 의의 병기로 하

나님께 드리는 데로 방향을 전환하기 마련입니다(롬 6:12-14). 이는 참으로 성도

의 속에는 더 이상 옛 사람의 생명력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약동

하기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변화입니다.

이렇게 신약 시대에서의 은혜 아래 있는 성도와 방불한 구약적 표현 방식

에 대해 ‘언약 백성’이라고 합니다. 구약 백성은 언약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

의 구성원이었는데, 따라서 신약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통치를 받들어 섬기는

것을 인생의 최고봉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통치를 받든

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모세의 언약을 통해 세세하게 규정된 제반 방침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 내

내 당신의 언약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 나갈 수 있도록 역사를 베풀어

“설교자가 말씀의 학생이 되려 애쓰지 않는다면,

강단에 올라갈 때에 목이 부러지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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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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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구속사를 이해하고 설명하

는 방식이 바로 신약시대이든 구약시대이든 간에 ‘언약’이라는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규정에 따라 철두철미 구약 교회를 창설 및 보존하셨고, 마침내 신약 교회와 일치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정통 교회 착근 중요성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인 구약 교회를 주권적이로되 아주 섬세하

게 인도하고 계셨다고 할 때(신학적 선포), 이것이 구약 백성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이 요구되었는가(신앙적 반응) 하는 데 대한 문제로 나

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열왕기 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의도적인 구상

하에 건축학적으로 기술해 나가면서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는 반복 사상들 중

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각 왕들을 평가하는 문장에서 ‘산당은 폐하지 아니했

다’고 한 내용들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비교적 선한 왕으로 알려져 있는

여호사밧 왕의 경우를 대표적으로 보겠는데, “여호사밧이 그 부친 아사의 모

든 길로 행하며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

하였더라”(왕상 22:43)라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불평은 앞에서는 아사 왕(왕상 15:14), 뒤로는 요아스 왕(왕하 12:3)의 모습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샤 왕(왕하 14:3-4), 웃시야(아사랴) 왕(왕하 15:1-4), 요담 왕(왕하 15:34-35), 아하스 왕

(왕하 16:1-4)에게서도 계속되었습니다. 비록 직접적인 평가를 받지는 않았지만

나머지 왕들, 즉 르호보암 왕, 아비얌 왕, 여호람 왕, 아하시야 왕, 아달랴 왕, 므낫세 왕 등도 실상은 마찬가지였고, 오히려 더 나쁘기까지 했습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 고질적인 산당 문제는 히스기야 왕 때에 잠깐 폐지되

는 쾌거가 일어났지만, 그의 아들 므낫세에 이르러 다시 수포로 돌아가고 오

히려 우상의 산당들까지 도입되는 점입가경(漸入佳境)에 이르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의 치세 31년 기간 동안에 비로소 산당 폐지

가 성공하게 됩니다. 그는 여호와의 산당을 철저하게 척결했고(왕하 23:8-9), 우상의 산당들은 더더욱 그렇게 했습니다(왕하 23:4-7, 10-14, 15-20). 그래서 요시야

왕에게는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

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라는 평가가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앞서 단 한 번 히스기야에게 주어진 것과 유사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

한 者가 없었도다”(왕하 18:5).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한 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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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전후 사례가 없는 왕이었고, 요시야 왕은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

행한 왕’으로서 전무후무한 왕이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 이후로

유다는 22년 동안 무려 4명의 왕(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이 교체

되면서 급속히 멸망하고 마는데, 이에 대해 므낫세의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왕하 23:26-27). 므낫세는 이스라엘의 멸망 시점에서 가장 앞에 있었던 왕이었

으므로, 그 앞의 모든 왕들의 죄를 그에게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그렇게 표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중요한 문제로 들어가 보겠는데, 이와 같은 ‘여호와의 산당’, 혹은 ‘유사 신앙’ 문제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정확하게 일명 ‘호박에 줄

친 수박’격인 ‘짝퉁 교회’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거짓 교

회’인 것입니다. 그 동안 이 문제와 관련해서, 오늘날의 성도들이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저버리고, 기도원이나 선교단체나 기타 이런저런 사적인 신앙 형

식을 취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데 대해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

해온 바입니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오늘날 교회의 타락 문제는 정말 도가

넘어도 너무 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타락은 어느 한 사람 특

정인의 죄를 넘어 이제는 엄연한 제도로 정착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이 제도

적 타락의 선봉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대형 교회들입니다.

감히 단언컨대, 대형 교회는 이미 그 자체로서 잘못된 짝퉁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일치할 경우, 한국 교회처럼의 대형 교회라는

것은 탄생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형 교회라고 하는 소위 ‘수박에

줄 친 격의 교회’가 탄생되거나 유지될 수 있으려면, 정말 아이러니컬(ironical)하게도 성경과는 철저하게 배치되는 상업주의 경영 방식을 도입해야만 합니

다. 성신의 인도를 받는 원칙과는 전혀 상관없이, 단지 기독교 용어들로 채색

된 것에 불과한 육신의 소욕을 좇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는 그

자체로서 이미 교회의 생명력인 표지들과 기타 중요한 속성들에 위배되는 것

이고, 그러한 몸집이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각양의 죄악들을 양산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죄악을 들라치면, 마치 기업의 회장이나 사장이 자식

에게 회사를 물려 주듯이,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세

습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수백억 원, 수천억 원의 재산을 소유한 대

형 교회가 되기 위한 과정 속에서 저질러지는 온갖 성경에 대한 거짓 가르침

과 왜곡 현상에 대해서는 일일이 말하기가 입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러니 이 패역한 시대와 의연히 결연하고, 나름대로 소수의 남은 자요, 따라서 현실적으로도 가난한 자로서 살아가기를 다짐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진정 우리가 그러한 사람이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우리로서는 이 비극적인 시대

를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왜 우리는 이 광명한 백주대낮에 자행되

는 엄연한 강도 짓들을 뻔히 바라보면서도 불감증 증세가 되어 있는 것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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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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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아니, 예레미야처럼 이미 너무 울어서 눈물이 말랐습니까? 루터나 칼빈처

럼 할 만큼 했기에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입니까? 차라리 그랬던 것처럼 착

각이라도 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식은 것만 아니라면 말입니다. 아니 사랑하는 것은 고사하고, 성도로서 걸어가

야 할 최소한의 의무조차도 저버리고 있지 않다면 말입니다. 지금 무엇을 어

떻게 하자고 선동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교회의 개혁은 과거처럼 선

동에 의해서 영차, 영차 하면서 무슨 운동을 전개하는 그런 방법을 필요로 하

던 시기를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엄격하여 개혁된 교회의 교회원답게 치열하게 사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울 만큼 배웠

고, 우리 각자의 신앙적 삶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를 구현

하는 일과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다고 확인할 만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 각인 각인은 아담 때부터 구성된 중에 최종적으로 예수 그

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될 완성된 교회, 곧 그 원

형의 무형교회와 지금 현재 이 자리와 이 상태에서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시간 세계 전체를 아우르면서 그러한 교회를 이루는 주체가 되어 있

다는 데 대한 철저한 각성과 더불어 구원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개혁

된 교회에 속한 교회원답게 살아나가는 일을 생명처럼 여겨야 하고,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음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라면 모름지

기 자기 속에 심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영광

스러운 권리를 누리고 있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활적인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데서 비로소 자신이 성도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것이 성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현실인 것이고, 성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때에 필수적으로 우리의 뇌리 속에 각인되는 인식인 것입니다. 성신께서 인도하신다 또는 성신을 좇아 행한다 하는 주제를 생각할 때에, 성경

에 있는 특정한 구절 몇몇 개를 앞세우고, 그것을 구호로 부르짖으면서 그대

로 실천하고 따라가는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유치한 사고방식입니

다. 그런 식의 사고방식은 인간 모두에게 잠재되어 종교적 영웅심이나 부추기

게 될 뿐이고, 그에 따라 온갖 인본적 종교 운동을 참된 성신의 역사와 구별

하지 못한 채 끝끝내 대형 교회라고 하는 이상한 종교 집단이나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지금과도 같은 상황에서 가장 시

급하게 구현되어야 할 교회 개혁의 실상은, 결국 역사적 개혁교회가 우리에게

물려준 훌륭한 유산인 제반 신앙고백의 내용과 교회질서 체제에 따라, 그에

걸맞은 교회 하나를 이루어내는 데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어느 한 지역의 공동체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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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하나가 본연의 모습을 갖추고 강건하게 서 나가는 일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구현하는 그 자체이기 때문에, 실로 하나님께 더할 나위

없는 큰 영광이 되는 법입니다. 그러나 이 가장 기본적이고도 기초적인 사실

앞에서조차, 우리로서는 너무도 큰 무능력을 절감하게 되고, 그에 따라 뼈저리

게 느끼는 극도의 좌절감 속에서, 결국 또 다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

라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그 자체로, 실상은 가장 교회다운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는 것이라고 하

는 이 역설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들, 바로 그러한 제2의 엘리야, 제2의 세례

요한, 제2의 사도 바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깨달아야겠습니다.

정리와 결론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 결론을 맺겠습니다. 동서양을 무론하고 교회가 이렇

게 타락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즉각적인 심판을 유보하시며, 소수

의 남은 자들을 부단히 일깨워주고 계시는 이 현실 앞에서, 이제 진정 우리는

좀 더 개혁적인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결코 잊지 마십시다. 교회

의 진정한 개혁과 행진은 ‘나’라고 하는 ‘자기 자신’의 적극적인 ‘믿음의 행보’ 위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누구라도 자기 자신을 ‘예외 심

리’라고 하는 저주스러운 함정에 스스로 빠트리지 않도록, 항상 책임 있는 삶

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 부단히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역사적 개혁파 교회의 3개 1조 4쌍의 신앙고백

시작기: 3개 1조의 신앙고백 정착기: 3개 1조의 신앙고백

제네바 교회 신앙고백 21개조 (Geneva Church Confession, 1536)

제네바 교회 신앙교육서 33개조 (Geneva Church First Catechism, 1537)

제네바 교회 신앙고백문답 373문답 (Geneva Church Catechism, 1542, 1545)

벨기에 신앙고백 37개조 (Belgic Confession, 1561)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129문답 (Heidelberg Catechism, 1563) 도르트 신조 5개 교리 (Canons of Dort, 1618-19)

형성기: 3개 1조의 신앙고백 확정기: 3개 1조의 신앙고백

프랑스 (갈리아) 신앙고백 40개조 (France [Gallican] Confession, 1559)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25개조

(Scots Confession, 1560) 스위스(헬베틱) 신앙고백 30개장

(Swiss [Helvetic] Confession, 1536, 156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3개장 (Westminster Confession, 1643-49) 웨스트민스터 대신앙고백문답 196문답 (Westminster Larger Catechism, 1643-49)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107문답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1643-49)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主言敎會

교회의 ‘설교문’은 목사의 생활을 지지해주는 교회의 위임 아래 수행된 것이므로, 설교자 개인이 아닌 교회에 모든 권리가 있습니다. 주언교회는 “거룩한 공회와 ... 믿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하는 바에 따라, 보편의 참된 교회를 섬기는 일환으로 본 설교문을 경제와 결부된 책으로 판매치 아니하고 공개리에 배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