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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 강신항(한국어문회 이사장) 질문자: 장승욱(작가) 때: 2008년 11월 13일 곳: 찻집 ‘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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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이 사람

강 신 항한국어문회 이사장

강신항한국어문회이사장은성균관대교수와국어학회회장을지낸국어학계의원

로로서, 훈민정음과 계림유사연구에서독보적인성과를남긴것으로평가받고있다.

또한부인인정양완전한국학중앙연구원교수와함께학문외길을걸으며, 숲마을에서배밭골까지, 어느 가정의예의범절, 더불어기쁘게 사는 삶 등의책을펴내전통적인 부부상의 모범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양완 선생의 부친은 국학의 태두

였던 위당 정인보 선생이다.

강신항이사장은지난 9월, 40년에걸쳐한국어와한어(漢語)의음운사분야를섭렵

하여 한국의 음운사 연구에 새 지평을 연 업적으로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수상했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동인지 한국어 연구 발간을 주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펼치고 있는 강신항 한국어문회 이사장을 만나 인생과 학문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답변자: 강신항(한국어문회 이사장)

질문자: 장승욱(작가)

때: 2008년 11월 13일

곳: 찻집 ‘엘빈’

장승욱: 먼저 지난 9월에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으신 것을 축하드립니

다. 소감이 어떠셨습니까?

강신항: 창피하죠. 남들은 오십 대 후반이나 육십 대 초반이면 받는 상을

팔십이 다 돼서 받았으니. 그래도 그동안 해 온 일이 헛것은 아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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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장승욱: 상금(3000만 원)은 어디에 쓰실 건가요?

강신항: 남광우 선생님이 지금 학술상 기금을 조성하고 있어요. 거기 전

액을 기부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번 상을 탔지만 한 번도 상금을 개인

적으로 쓴 일은 없어요. 91년에 받은 위암학술상 상금은 성균관대 박사

과정학생들장학금으로줬고, 2000년동숭학술상상금은받자마자그자

리에서 국어학회 회장에게 줘 버렸지요. 2004년 용재상 상금도 연세대학

교 장학금으로 냈고……. 우리 애들은 뭐라고 하는데, 상금 타서 생활비

쓰는사람이어디있냐고그랬지요. 인정을받았다는것만해도영광이니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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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욱: 선생님께서는 1949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셨는데, 국문과를 선

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강신항: 원래는 국문과 가려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때만 해도 건국 초라

그런지 대개 고등학교 2학년쯤에는 진로에 대해 생각을 했거든요. 처음

에는 역사를, 역사 중에서도 초근대사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일본에 무엇도 주고 무엇도 줬다 했는데, 근래에는 왜 이렇게 얻

어맞기만 하는가, 그 원인이 도대체 뭔가를 한번 캐 보자 그런 마음이 있

었어요. 대학 원서 쓸 때가 됐는데, 그때 남광우 선생님이 서울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었어요. 그분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역사는 자네 아

니어도 할 사람 많으니까 사학과 말고 국문과를 가는 것이 어떠냐, 특히

국어학은 아무도 안 하려고 하니 해 봐라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잉크

지우는 걸로 제1지망과 제2지망을 바꿔서 결국 국문과에 갔는데, 1년 동

안은 정말 재미없었어요. 국어학 공부를 하는데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

고……. 그런데 다니다 보니 사명감을 갖게 되더라고요.

장승욱: 그러면 2학년 때부터는 재미를 붙이셨다는 얘기가 되나요?

강신항: 솔직히 49년에는 대학 생활을 7개월밖에 못 했어요. 2학년 때는

더 했고. 2학년 올라가서 첫날 강의한 것이 6월 26일이었거든요. 25일은

일요일이고. 26일오후에양주동선생님강의듣고 27일부터는도망다녔

으니까. 겨우 부산 가서는 전시연합대학이라는 게 생겨서 다녔는데, 한

학기 강의 내용이 노트 열장이나 될까 말까 했어요. 또 그때 내가 국방부

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출석도 거의 못하고 친구들 노트 빌려다가 공

부하고 그랬죠. 그때 방종현 선생님이 학장으로 계셨는데, “저 이런 식으

로 대학 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공부는 본인이 하는 것이고

대학 강의는 형식에불과하다.” 그러시는 거예요. 어쨌든 입학 동기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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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한 명이었는데, 이기문 선생, 이기문 선생 부인하고 또누구 이렇게셋

만 먼저졸업을 했어요. 나는 국방부 따라 다니느라 부산에 있었기 때문

에 이분들보다 몇 년 늦게 졸업했지요.

장승욱: 국방부에는 어떻게 해서 들어가신 건가요?

강신항: 50년 11월이었는데 군인인지 군속인지도 모르고 갔어요. ‘전사편

찬위원회’라는곳인데, 역사앞에서를 쓰신김성칠선생님덕분에 거기

들어갔어요. 그때 정훈국장이이선근 선생이었는데, “역사는그때그때 기

록하지 않으면 나중에 회복할수없다.”고 해서 만든 기관이었어요. 위원

장이 이병도 선생, 부위원장이 동양사 하시던김상기 선생이었고, 김성칠

선생도계셨으니까우리나라사학계의거목들이다모여있었죠. 나는학

생이니까 요즘으로치면군무원이었죠. 계급장도 없는군복을 입고 다녔

는데, 그때는 제발 계급장이라도 붙여 봤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지요.

장승욱: 그러면 그때 군무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입대를 하셨나요?

강신항: 53년 4월에공군에입대를했는데, 한창전쟁때니까내의사와는

상관없이간부후보생으로갔죠. 그때같이훈련받은사람중에는이현재

전국무총리도있었죠. 그래서소위계급장을달고훈련기간까지합쳐서

49개월을 복무했어요. 원래는 7년을 복무해야 하는데, 휴전이 되니까 법

이 바뀌어서 3년 이상 복무한 사람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제대할 수 있

게 됐어요. 그래서 스물여덟 살에 제대를 했죠.

장승욱: 얼마전에 훈민정음을4개국어(영어, 중국어, 몽골어, 베트남어)

로 번역을 해서발간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보도 내용을 보면 선생님

께서 현대어 번역을 맡으셨다고 돼 있던데, 그건 언제 작업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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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항: 지난 86년에 독일에 간 적이 있습니다. 유럽 23개국에서 한국학

을전공하는학자들이모여만든 ‘재유럽한국학회’라는단체가있습니다.

그 모임에 갔더니당시 소련에서 온콘체비치라는 분이 러시아어로된 훈민정음 책을 가지고왔어요. 그게 79년에세계에서처음으로 나온 훈민정음 번역본이에요. 충격을 받았죠. 우리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돌아오는길로 부랴부랴 1년동안작업을 해서 87년에책을 냈습니다. 그

래서 그다음 모임에 가져가서 돌렸지요. 한국에도 이런 게 있다 하면

서…….

장승욱: 한국어 연구라는 동인지 성격의 학술지를 2003년부터 내고 계

시지요?

강신항: 그저께막 5집이 나왔습니다. 52년, 4학년 때 일곱명으로 구성된

클럽이있었어요. 술을못마시는공통점이있어서모여서공부나하자고

만든 모임인데, 나하고 이기문, 김완진, 이승욱, 안병희, 정연찬, 그리고

문학 쪽의김열규 등이 회원이었어요. 그래서 환도뒤에도 한 10년 동안

모임을 계속했지요. 그뒤로 97년에, 대개 정년퇴임을 했을 때인데, 다시

모이자얘기가되었어요. 이번에는문학하는분들을더모시기로해서숙

명여대 계시던 채훈, 인하대 정기호, 만주어 하시는 성백인, 평론가인 신

동욱선생이 회원이 되었습니다. 내친김에 동인지를 내자는 얘기가 나오

니까 전부좋다, 한번 해 보자 한 거죠. 김열규선생이빠져서 열 명이꾸

려 왔는데 재작년에 안병희 선생이 돌아가셔서 지금은 아홉 명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해마다 한 권씩은 나오고 있습니다.

장승욱: 선생님께서는 한국어 연구에 주로 어떤내용의글을 쓰십니까?

강신항: 그동안 해 온 훈민정음 연구나 계림유사 연구의 미흡한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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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하려고 합니다. 1집에는 ‘정음(正音)’에 대해서썼죠. ‘정음’이 무엇인

가에 대해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요. 요즘에는 우리나라

한자음이언제 자리잡았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불경과의 관계

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유교와불교가똑같이 한자음을 가져왔는데, 유교

경전은 지배층의 것이었던반면에불경은 계급을 떠나서 모든 사람의 것

이었죠. 불경을 자꾸외다 보니 자연히 한자음이굳어진 게 아닐까 생각

됩니다. 일본 학자들은 우리나라 한자음이 굳어진 게 8세기경이라고 하

는데, 나는 4~5세기로 봅니다. 불경이 그때 들어와서 한자음이 굳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승욱: 그러면 그때 한자음이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음과 비슷했다는 말

씀이신가요?

강신항: 왜냐하면 조선 초의 한자음을 지금과 비교하면 구개음화빼면변

한게없거든요. 거꾸로생각하면일찍굳어져서우리는우리대로독자적

인 한자음을 쓰게 됐다고볼 수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우리나라한자음이끊임없이변했다고하는데, 그런예가거의없

습니다.

장승욱: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강신항: 참 바빠요. 학술원에 상 탔다고 논문 하나를 내일까지 보내라고

해서 한국 한자음에끼친불경의 영향 이라는 제목으로 어제 겨우끝냈

습니다. 물론완전히새로 쓴 건 아니고, 전에 여기저기 쓴 것을 모아새

로 정리한 것이지만, 그걸 하느라 어제까지 정신없이 지냈지요.

장승욱: 선생님께서 이사장으로 계신 한국어문회에서는 한자 혼용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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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글 전용 문제에 대한 선생님의 생

각은 어떤 것인가요?

강신항: 그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 같은 경우에는

60년대부터대중잡지에글을많이썼는데, 그건대중을위한거니까한글

로만썼고, 또학술잡지의경우에는전문가들을위한것이니까한자를섞

어쓰고했습니다. 이렇게필요에따라서쓰게되면쓰는것인데, 자꾸획

일적으로해나가려고하는것이문제라고생각합니다. 한자쓴다고애국

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물론 우리말 가운데 좋은 것들은 얼마든지 살려 써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60년대에는 ‘전망(展望)한다’고 하던 것이, 기자들이 자꾸 ‘바

라본다’고 쓰니까, 지금은 ‘바라본다’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거든요. 이런

것은 교육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문필에 종사하는 분들이 자꾸 써야

해요. 작품에 많이써서알리는수밖에 없어요.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사

람으로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모순같지만, 자꾸 우리말을 쓰는 범위를

넓혀 가야 한다고 봅니다. 억지로 할 건 없지만…….

일본어의경우지금외래어가 3분의 2거든요. 우리는그렇게심하지않

습니다. 신문을 분석해서 평균을 내 보니까 일본어를 비롯한 외래어가 5

퍼센트밖에 안 돼요. 나머지는 고유어와한자어가 반반이고. 우리가 일반

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북한 신문은 우리 신문보다 한자어가

더 많아요. 나도 처음에는 상당히 기대를 했습니다. 광복후부터 한글전

용을 했으니까 우리보다 상당히 발전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90년대에

북한의 로동신문 을 자료로 볼 수 있게 돼서 학생들하고 분석을 해 봤

는데 참 놀랐어요. 의외로 고유어가 적어요.

그리고잠깐딴얘기를 하자면, 요즘 ‘남북한언어의 이질화’ 얘기를 자

꾸하는데, 그건 그렇게걱정할필요가 없을 것같아요. 언어가 이질화됐

으면 남북 회담은 어떻게 하겠어요? ‘상호 간에’를 ‘호상 간에’ 한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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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를 ‘일없어요’라고 하는 정도의 차이라고 봅니다. 이런 문제는

한 달만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거예요.

장승욱: 제가 소설책 같은 데 나오는 토박이말을 모아서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요즘젊은작가들책을읽어 보면너무 어휘력이빈곤해 실

망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신항: 예를 들어김유정 소설을 보면 어휘가 정말풍부해요. 그런데 모

대학의 교수였던 어느 유명한 소설가의 경우 세어 봤더니 어휘가 400개

정도밖에 안됩니다. 우리가 서양 소설을읽으면집에 들어갈때부터 ‘벽

에는 무엇이 걸려 있고, 바닥에는 무엇 무엇이깔려 있다’는 식으로묘사

가 섬세하잖아요. 우리 소설은 형용사나 부사 어휘구사가 잘안 되니까

대충스토리 위주로 가는경우가 많습니다. 되풀이하지만, 작가들이 우리

말의아름다운형용사, 부사같은것들을많이사용해서보급하는수밖에

없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주석을 달아서라도 말입니다.

장승욱: 요즘대학의 문제에대해서는 어떻게생각하십니까? 불만도많으

시지요?

강신항: 우리 기준으로 재면 안 되죠. 지난번 학술원상탈때혹시몰라서

써가지고간내용이 있습니다. 결국 기회가 없어서발표는 못 하고 말았

지만…….

우선 대학의 기능을 구분해야할 것같아요. 지금 우리나라 대학은 전

부취직률이얼마인가를따지면서 직업보도소처럼돼 버렸습니다. 연구

중심의 대학과 직업 보도 중심의 대학을 구분해서 순수 학문은 순수 학

문대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나는 대학생 신입생 환영회같은 걸 하면 나가서, 대학이라는 것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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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라도 학문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대학의 강의는 그 사람 위주

로하는거다, 그러니여러분은그수준을따라오도록노력하라고말합니

다. 그뒤에 다른사람이 나가서 대학은 시민 양성소라고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화가 나는지……. 학칙에는 분명히 ‘대학은심오한 학문을 연구하

는 곳’이라고 돼 있는데 말입니다.

다른얘기를 해 볼까요. 언젠가 아산시청에서 공무원 500명을 모아놓

고 강연을 하라고 해서 “나는 사교육비라는 게 왜 들어가는지 이해를 못

한다.”라고 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애들키우는 데 과외나

그런데돈을들인적이없어요. 저희끼리공부했지요. 지금은학원안보

내면 전부 낙오할 것처럼 생각하는데,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길러 줘야

해요. 가정교사밑에서 공부하던학생들은늘의지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발전이 없어요. 나는 내신 성적으로 뽑는 걸 찬성합니다.

내막내누이는 시골에서 학교 다니다가 이화여고를 480명 가운데 480

등으로 들어갔어요. 그래서 첫 학기 중간시험을치렀는데, 전체 1등을 했

어요. 그동안은환경이 나빠서 재능을발휘하지 못했던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서울대에서 하는 식으로 지방 학생 할당제를 실시하는 것도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승욱: 선생님께서는 결혼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

을 것 같은데요?

강신항: 순전히 재수가 좋았지요. 동창이니까……. 국문과 동기가 스물한

명인데 여학생이 넷이었어요. 그중에서 제일 못생겼는데 마음에 들어

서……. 결혼할 때 우리집에서 2년 동안 반대했지요. 그쪽에선괜찮다고

하는데. 그때 내 누이동생이 불문과에 다녔는데, 집에 와서 보고를 했대

요. 문과대학에여학생이스물여섯명인데, 오빠가그중제일못생긴여자

랑 연애한다고……. 그래 내가 두고 보라고 했습니다. 내 말이 맞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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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람이 며칠 전(11월 3일)에 위암 장지연상을 탔어요. 늦었지만 학

계에서 인정을 받았으니잘된일이죠. 그 사람은 지금도책상앞에 열 시

간씩앉아 있어요. 그렇다고 음식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바느질을 못하

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참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안사람이

장인어른께서 순 한문으로 쓰신 담원문록을 20년 걸려서 번역을 했는

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배워서 하고 있는 걸 옆에서 보면 정말 대단하

다, 장하다 싶어요. 내가 늘 시집을 온 건지 장가를 간 건지 모르겠다고

농담을 합니다. 자나 깨나 자기 아버지 일만 하고 있으니까……. 어쨌든

결과가 잘 나와서 좋습니다.

장승욱: 위당 선생님은 납북되기 전에 뵌 적이 있으신가요?

강신항: 그전에 우연히 두 번 뵙기는 했지요.

장승욱: 결혼은 언제 하셨습니까?

강신항: 56년이었어요. 그때는 대개 스물다섯 살쯤에 했는데 스물일곱에

했으니까좀늦었지요. 시골사람들은 망하더라도논 200평은 남는데, 서

울 사람은 망하니까완전히 망합디다. 장인어른이납치당하고 나니까살

길이 없어서 서울수복뒤에 장모님하고 우리 안사람이 회현동에서담배

장사를 했어요. 6년 동안 점심을 못 먹을 정도였으니까.

안사람이 결혼할 때도 옷두 벌밖에 안 가지고왔어요. 우리가 아이들

결혼시킬 때 며느릿감한테 시어머니가 결혼할 때 옷 두 벌밖에 안 가지

고 왔으니까 너희도 그 이상 가져올 생각하지 마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걔들이뭘가져왔는지몰라요. 혼수라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그

래서 요즘 혼수 갖고 싸우는 걸 보면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게 뭐 중요

합니까. 사람됨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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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욱: 건강이 참 좋아 보이십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지요?

강신항: 비결이라고 할 만한 건 없고몸을 많이움직이고 일을 많이 하는

게비결이라면비결입니다. 우리아버지는약주를너무많이잡수셔서쉰

살 되시던 60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95년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60년부터 95년까지혼자 시골에 사셨는데,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취미라

는 게 없어요.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틈만 나면 시골에 갑니다. 어머니

가 콩 따고 있으면, “너희도 따라.” 하시고, 그럼 할 수 없이 옷 벗어 놓

고콩따야해요. 학생 때도 7월에 방학을 하면, 이번 방학에는 이런저런

공부를 해야겠다고 상당한 포부를 갖고 시골에갑니다. 그런데 두살 위

인삼촌하고 가방 내려놓고 신발벗어놓고찬장에 보리밥있으면 열무김

치에 비벼 먹고 그길로 밭에 나가 일하기 시작해서 개학 때까지 하루도

책볼시간이 없는 거예요. 나는 학생 시절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여름에

땡볕아래서콩밭을매다 보면허물이 세 번벗어져요. 그렇게 방학이끝

나 학교에 가면 무슨 해수욕을 그렇게 했기에새까맣게 탔냐고 친구들이

놀려 대지요. 우리집이 그렇게 어려웠던건 아닌데, 그러는 사이에 근검

절약이 몸에배었지요. 그리고 그런 습관이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

습니다.

장승욱: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강신항: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하던 연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원

래 어렸을 적 꿈은 문학이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보라고해서어학을하게됐는데, 아직그런꿈은남아있습니다. 그래

서 찬바람만 불면 신춘문예 꿈을꾸게 되고, 천장에다가줄거리를 그리

기도 많이 그렸지요. 65년에 소설가 이청준 선생을 만났는데, 자기는 소

설을 쓸 때, 논문처럼 죽줄거리를 써놓고 거기 살을 붙인다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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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나도그렇게해볼까늘생각만하다말았습니다. 문학하고싶은마음

을 수필쓰는 것으로달래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소설도 써서 남기고 싶

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장승욱: 꼭꿈을 이루시기를빕니다. 오랜시간좋은 말씀들려 주셔서 고

맙습니다.

강신항: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