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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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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석사학위논문

    맥신 홍 킹스턴의 작품에 나타난

    중국계 미국인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다문화주의 공동체

    2012년 8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국어교육과 영어전공

    김 여 진

  • Diaspora Identity of Chinese Americans and Multicultural Community in Maxine Hong Kingston's Works

    by

    Yeojin Kim

    A Thesis Submitted to

    the Department of Foreign Language Education

    in Partial Fulfillment of the Requirements

    for the Degree of Master of Arts in Education

    At the

    Graduate School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August 2012

  • 맥신 홍 킹스턴의 작품에 나타난

    중국계 미국인의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다문화주의 공동체

    지도교수 신문수

    이 논문을 교육학 석사 학위논문으로 제출함

    2012년 4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국어교육과 영어전공

    김 여 진

    김여진의 석사학위논문을 인준함

    2012년 6월

    위 원 장 _________________________

    부위원장 _________________________

    위 원 _________________________

  • 맥신 홍 킹스턴의 작품에 나타난

    중국계 미국인의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다문화주의 공동체

    Diaspora Identity of Chinese Americans and Multicultural Community in Maxine Hong Kingston's Works

    APPROVED BY THESIS COMMITTEE: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 i -

    국문 초록

    본 논문은 킹스턴의 초기 작품『여인무사』(The Woman Warrior, 1975)와 『중

    국 남자들』(The China Men, 1980)을 중국계 미국인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그리고 후기

    작품『여행왕 손오공』(Tripmaster Monkey: His Fake Book, 1987)을 다문화주의 문학으로

    나누고, 킹스턴의 작품 세계 변천의 각 국면을 살펴 보고자 한다. 킹스턴의 초기 작품

    들은 중국계 미국인의 디아스포라 역사와 정체성을 주로 다루며, 후기 작품에는 다종

    족으로 구성된 현대 미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과 그의 해결 방안으로서의 다문화주의

    공동체가 노정된다.

    서론에서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정의와 중국계 미국인들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개관하고, 탈식민주의 비평과 최근의 연구동향을 살핀다. 또한 킹스턴의 작품들을 탈식

    민주의 텍스트로 읽을 수 있는 당위성과 근거를 논의한 후, 그녀가 다문화주의 시대의

    ‘공동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제공한다는 본 논문의 입장을

    밝힌다. 킹스턴이 작품들 속에서 중국계 미국인들에 대한 ‘모범적인 소수종족’이라는

    고정관념을 탈정형화하고, 다문화주의 시대의 바람직한 공동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것은 탈식민주의 연구에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2장은 『여인무사』에 묘사된 중국 가부장제의 성 차별적 이데올로기와 미국

    제국주의 문화의 영향 아래 억압 당한 중국의 하위주체 여성들을 조명한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영국 제국주의가 인도의 과부 순장 풍습을 가부장적이며 전근대적인 악습으

    로 규정하고 철폐한 것을 이데올로기적 폭력으로 보고, 영국의 제국주의와 인도의 가

    부장제에 의해 억압받은 인도 여성들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행함으로써 하위주체

    (subaltern) 연구의 초석을 제공하였다. 본 논문은 화자가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중국

    하위주체 여성들의 상황과 심리를 상상력을 이용하여 재구성한 서사의 특징을 스피박

  • - ii -

    의 하위주체 연구 방법론으로 분석한다. 또한 중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현대 서구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합치하기 위한 화자의 시도를 살펴본다.

    3장에서는 『중국 남자들』의 신역사주의 서술이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중

    국 이민자들의 유입과 그들의 위상을 어떻게 재조명하는지를 밝히고, 작품에서 드러나

    는 중국 남자들의 정체성 문제에 대하여 논의한다. 중국계 이민자들의 역사는 유럽계

    이민자들과 대조되는데, 후자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서 그 위상을 인정 받는다면, 중

    국계 이민자들은 ‘모범적인 소수종족’으로 타자화되었다. 19세기 중엽부터 미국 건설을

    위해 동원된 중국계 이민자들은 미국 역사의 주류 서사에서 주변부로 물러났다. 킹스

    턴은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의 역사 서술 기법을 전승하여, 19

    세기 중국계 이민자들의 삶의 여건과 그들이 경험한 차별과 배제를 신화와 해학과 같

    은 문학 장치들을 이용하여 재서술하고 그들의 역할과 입지를 새롭게 조명한다.

    4장에서는『여행왕 손오공』의 주인공을 통해 드러나는 현대 중국계 미국인

    들의 다문화적 정체성, 소수종족에게 작용하는 성의 정치학, 그리고 다문화주의 시대의

    ‘공동체’ 개념을 고찰한다.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을 연상시키는 주인공 위트만 아싱의

    이름이 함의하는 알레고리적 우화성과 1960년대에 만연했던 비트문화는 중국의 고대

    설화 『 삼국지 』 , 『 서유기 』 , 『 수호전 』 등과 함께 융화되어 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y)을 작품에 부여한다. 이는 곧 주인공 위트만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우회적

    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다문화주의 시대 공동체의 가능성과 방향을 암시한다. 위트만이

    상영하는 연극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그가 제시하는 다문화주의 시대의 공동체에 대해

    알아본다.

    킹스턴은 초기 작품들에서 백인의 시선 아래 놓인 중국계 미국인이 종족성으

    로 인해 경험한 오리엔탈리즘적 차별과 배제에 저항하며 형성하는 디아스포라 정체성

    을 텍스트 속에 구현했다. 후기 작품에 이르러 킹스턴은 제국주의와 탈식민주의, 동양

  • - iii -

    과 서양, 그리고 주체와 타자의 정치적 역학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다문화주의 사회

    에서 종족성으로 야기된 문제들의 해결방안을 다양성과 연대성에 기반한 공동체에서

    찾는다. 또한 그녀는 미국 내 소수 종족 문학을 미국 문학의 정전 속에 포함시키기 위

    한 노력의 일환으로 소수 종족의 전통 문학과 서구 정전을 융화한 상호텍스트성을 그

    녀의 주요 텍스트 전략들 중 하나로 사용한다. 그녀는 자신의 문학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이 자신의 종족성에 기인한 것임을 의식하고, 『여행왕 손오공』을 통해 이러한

    비판에 대한 통찰과 반박을 실행했다. ‘소수종족 문학’을 미국 문학의 한 장르로서 ‘정

    전화’하고자 하는 킹스턴의 시도를 고찰하며 본 논문은 끝을 맺는다.

    주요어: 맥신 홍 킹스턴, 『여인무사』, 『중국 남자들』, 『여행왕 손오공』, 탈식민주

    의, 미국 내 소수종족, 하위주체 연구, 가야트리 스피박, 다문화주의 공동체

    학번: 2009-21458

  • - iv -

    목 차

    국문초록………………………………………………………………………..ⅰ

    Ⅰ. 머리말……………………………………………………………………….1

    Ⅱ. 『여인무사』: 하위주체 여성들에게 말걸기…..…………….….……17

    1. 이야기로 전달된 과거 혹은 중국 신비화 ………………………..……..…17

    2. 되살아난 '이름없는 여자'………………....................................……….…....21

    3. 억압된 목소리의 전달자 '여인무사'……………………….…………...……34

    4. 유령과 종족성의 그림자……………………………………………..……..…40

    Ⅲ. 『중국 남자들』: 신화로 복원된 중국계 미국인 디아스포라 ….….50

    1. 중국계 디아스포라와 미국 건국 신화……...….…....................................…50

    2. 백궁과 아궁: '황야로의 심부름'과 '중국인 퇴출'………………………..…59

    3. 바바와 에드: 모방의 양가성……………………………….…………..….....67

    Ⅳ. 『여행왕 손오공』: 단일성의 탈신비화와 다문화주의 공동체….….78

    1. 손오공 위트만의 동양과 서양 경계선 넘기………….……………..…...…78

    2. 위트만과 타냐의 성 역할 뒤집기.............……………………...….....……92

    3. 전쟁과 연극: 다양성과 화합의 공동체……………….…………….......…104

    Ⅴ. 결론………………………………………………….……………………….…….115

    참고문헌………………………………………………………………………120

    ABSTRACT......................................................................................................130

  • 1

    Ⅰ. 머리말

    1881년 2월, 캘리포니아의 상원 의원 존 밀러(John F. Miller)는 향후 20년

    간 중국 이민자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그는 조상에 근거한 특정

    집단에 대한 규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앵글로 색슨 혈통의 미국인들이 오리엔

    탈 문명에 의해 오염되는 것”을 막는 것은 현명한 조치라고 주장하면서 이의 지

    지를 호소했다(Chang 130). 대부분의 의원들은 밀러의 의견에 동의했으나, 매사추

    세츠 주 상원 의원 조지 프리스비 호어(George Frisbie Hoar)는 그의 의견에 강력

    히 반대했다. 호어는 인종에 근거해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바로 독립 선언서가

    천명하는 가치들을 우롱하는 것이며, 인종차별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인간이

    만든 망상”(131)이라고 주장했다. 밀러가 제안한 법안은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으

    나, 체스터 아서(Chester A. Arthur) 대통령은 청 왕조가 미국 정부에 대한 반발심

    으로 무역을 중단할 것을 우려하여 밀러의 법안을 거부했다. 이에 전국적인 대중

    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캘리포니아 하원 의원 호레이스 페이지(Horace Page)가 중

    국인 입국 금지를 향후 20년에서 10년으로 축소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해

    서 1882년 5월 6일 페이지의 법안은 중국인 입국 거부법(the Chinese Exclusion Act)

    으로 제정된다(Chang 132).1

    주로 백인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었던 반중국인 세력은 중국인 입국 거

    부법에 힘입어 대륙횡단철도나 금광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중국계

    1 페글러 골든(Pegler-Gordon)은 이민 역사 연구가들이 중국인 입국 거부법(the Chinese

    Exclusion Act)을 이민 정책 역사상 최초로 특정 집단을 인종과 계급에 근거해 차별한

    사례로 주목한다고 지적했다: “Roger Daniels summed up the centrality of exclusion, describing it as ‘the hinge on which the legal history of immigration turned.’ Erika Lee has explored how the administration of exclusion was pivotal in the development of the United States as a ‘gate keeping nation’” (qtd. in Chang 23).

  • 2

    이민자들을 국외로 추방하는 로비활동을 벌였고, 이는 결국 19세기 말 중국인 퇴

    출(the Driving Out)로 이어졌다. 19세기 중엽 대륙횡단철도 건설과 캘리포니아의

    금광 개발로 인해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미국 사회는 저임금을 받고 성실

    하게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을 수용했으나, 19세기 말 미국의 경제 불황과 중국

    계 미국인들과 가격 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 백인 노동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중국계 미국인들을 추방하고 그들의 출입을 금지한 것이다.2

    인종 혹은 종족성에 기반한 차별 및 배제는 19세기 후반 중국계 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 것이다.3 신문수는 “20세기 후반 많

    은 지역에서 인종은 대내적 긴장과 불안을 야기하는 핵심변수일 뿐만 아니라 국

    제적 분쟁을 일으키는 주 원인”(19)이며, “식민 제국주의를 거쳐 최근의 탈식민주

    2 보나시쯔(Edna Bonacich)는 특정 종족을 적대시 하는 현상을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

    한 연구에서 반종족주의는 두 가지 양태를 띤다고 지적하였다. 첫째, 특정 종족을 한

    사회에서 추방하는 것 그리고 둘째, 특정 종족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다른 종족을

    착취하는 것이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과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저임금 노동력으로

    동원 되었다가, 19세기 말 중국인 입국 거부법(the Chinese Exclusion Act)과 중국인 퇴

    출운동(the Driving Out)으로 추방된 중국계 이주민들은 두 가지 형태의 반종족주의가

    모두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한편, 그녀는 중국계 이주민들에 대한 백인 노동

    자들의 탄압이 인종이나 종족성보다는 분리된 노동시장으로 야기된 가격 경쟁에 의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553).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본 논문 Ⅲ-2장 참조. 3 김광억은 종족주의나 민족주의 모두 구성원들 사이의 동질성을 강조하며 다른 사

    람들을 타자화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나, ‘국가’라는 차원에서 두 가지 개념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민족은 국가(state), 영토(territory), 주권(sovereignty)으로 이

    루어지는 정치적(국가) 경계와 역사, 혈통, 언어, 종교 등 문화적 경계와 일치하는 맥

    락에서 인지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민족주의란 곧 국가적 단위와 종족적 단위가

    일치할 것을 주장하는 이념적 성향을 말한다. 이에 비하여 종족은 반드시 국가에 대

    한 지배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민족주의의 논리에는 종족주의적 개념

    이 들어가 있지만 하나의 민족이라고 해서 그 구성 종족이 반드시 동일하거나 동질

    적이지는 않다”(21). 잉거(J. Milton Yinger)는 종족 집단을 구성하는 세 가지 특징들로

    ① 언어, 종교, 인종 또는 동일한 조상을 공유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다르게 인식되

    는 소집단, ② 그 집단의 구성원들의 그런 방식에 의한 자기 인식, ③ 동일한 역사적

    기원과 문화에서 비롯된 제반 공동체 활동에의 참여를 들었다(신문수 33 재인용). 본

    논문에서는 미국 내 거주하는 중국계 미국인들을 명명하기 ‘소수종족’이라는 용어를

    채택하기로 한다.

  • 3

    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합목적적 진보의 과정으로 포장되어 온 서구 근대사의 이

    면을 이루고 있는 비서구세계에 대한 정복과 식민주의적 착취, 노예무역과 노예

    화, 제국주의적 침탈의 체험”(21)이 모두 인종과 연관된 문제임을 지적하였다. 김

    광억 역시 과거에는 미국의 각종 사회 문제들을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

    따른 계층화와 구조화가 가져 온 필연적 결과에 귀인하곤 했으나, 1980년대 이후

    부터는 미국의 문제가 점차 다종족 혹은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복합국가가 지니

    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시각에서 논의되고 있음에

    주목했다(김광억 16). 주지하듯 근대 식민 제국주의 시대부터 탈식민주의를 거쳐

    현대 다문화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종 및 종족성에 기반한 차별은 다양한 분

    쟁과 갈등을 야기해 왔다.4 이러한 차별은 “신체의 특징적인 차이를 선별적으로

    주목하여 그것에 사회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고, 이렇게 형성된 의미화 체계에 따

    라 사람들을 정형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신문수 35), 잔모하메드(Abdul

    R. JanMohamed )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신체적 차이를 지적∙도덕적 차이와 연

    관시키는 ‘알레고리 구조’를 양산한다(신문수 36 재인용).

    인종 및 종족성에 기반한 차별과 배제는 디아스포라 즉, 이산과 함께 그

    문제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4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노동당 정부와 우퇴위아 섬에서 열린

    노동당 청년 캠프를 테러하여 9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범인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

    비크(Anders Behring Breivik)는 극우주의 사고가 지닌 폭력성과 위험을 잘 보여준다.

    브레이비크는 범행 날 아침 1500페이지에 달하는 성명 “2083: 유럽 독립선언서

    (2083:A Europ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를 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보

    냈다. 그 성명서에는 주로 다문화주의와 회교도 이민자들에 대한 비판 내용이 담겨

    있으며, 자기 자신을 “유럽의 영웅” 내지는 “기독교의 구원자”라고 칭했다. 그는 자

    신의 테러 계획이 “기사로서 수행해야 할 정의”라고 썼고, 노르웨이와 유럽에 만연

    한 다문화주의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심지어 백인 남성의 우월성을 강조하

    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서 근육을 길렀으며, 아리안 족의 특징을 더욱 부각

    시키기 위해서 미국에서 코와 이마에 성형수술을 받기도 했다(Thornburgh and Boston 28- 31).

  • 4

    분산 또는 이산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팔레스타인 바깥으로 퍼져나간 유대인

    및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나, 1990년대 이후 학계에서 디아스포

    라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이 용어는 “유대인 이외의 다른 종족들의 국제 이주, 망

    명, 난민, 이주 노동자, 민족 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

    인 개념”으로 확장되어 쓰이게 되었다(정은경 11). 5 인종 혹은 종족성에 기반한

    차별이 디아스포라와 함께 심화되는 양상은 다음과 같다. 타 종족이 한 나라의

    영토 안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곧 주류 사회의 시선에 노출되고, “동일성을 위협

    하는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된다(나병철 176). 일찍이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민족국가란 이질적인 구성원들을 하나의 동질적인 공동체로 통합시키기 위한 일

    련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조된 ‘상상의 공동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즉, 종족적 이질성과 분절을 은폐하거나 이념적인 구호로써 동질성을 강조하여

    여러 종족들을 하나의 동질적인 문화 공동체로 통합하기 위해 특정의 문화 요소

    로 동화되기를 강요하는 것이다(김광억 21). 신문수는 인종적 순수성 자체가 추

    상적 개념이며 주 종족에 속하지 않는 타 종족을 대타화함으로써 역으로 그 순

    수성을 확보하고자 한다고 지적했다(86).

    디아스포라 및 탈식민주의 이론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는 자

    신이 직접 경험한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통해 얻은 통찰력과 첨예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중동 및 미국에서 벌어지는 사회 현상을 연구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은 서구의 학문 및 문학 텍스트에 재현된 동양이

    5 같은 책에서 정은경은 샤프란(William Safran)의 정의를 인용하여 디아스포라의 개념

    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① 특정한 기원지로부터 외국의 주변적인 장소로의 이동,

    ② 모국에 대한 집합적인 기억, ③ 거주국 사회에서 수용될 수 있다는 희망의 포기와

    그로 인한 거주국 사회에서의 소외와 격리, ④ 조상의 모국을 후손들이 결국 회귀할

    진정하고 이상적인 땅으로 보는 견해, ⑤ 모국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헌신, ⑥ 모국

    에 대한 지속적인 관계 유지(15).

  • 5

    서구 문명의 정치∙경제적 이익에 어떻게 봉사하였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서구에

    의한 동양의 재현이 겉으로는 중립적인 것으로 보이나, 타 문명을 재현하는 과정

    에서 ‘탈문맥화’와 ‘문화의 간소화’가 일어나고, 동양 문명을 낯선 것으로 만들고

    왜곡하여 서양인의 시선 앞에 구경거리로 노출시키는 기제가 있음을 밝혔다

    (Power, Politics, and Culture 40). 그는 타 문명에 대한 왜곡된 재현이 대중 매체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내면화되어 비서구 문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을 바꾸는 것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42).6

    장(Iris Chang)은 백인 주류 사회가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

    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의해 많은 중국계 미국인들이 자신감을 상실하고 정체성

    의 형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현했다. 그녀는 중국계 미국

    인들에게 긍정적인 자존감을 갖도록 도와주는 롤모델이 부재하며, 그들의 다양성

    과 복합성을 보여 줄 수 있는 현실적인 이미지의 제공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중국계 미국인들의 디아스포라 역사가 금광 개발에 동원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로로 유입된 사람들을 포함하는 것임을 밝혔다. 19세기 중엽부

    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국계 미국인들의 디아스포라는 크게 세 국면으로 구분

    될 수 있으며, 각 국면은 중국의 정치적 상황과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물

    려 있다. 첫 번째 국면은 19세기 중엽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금광 개발과 대륙

    횡단철도 건설이 이루어지던 시기, 두 번째 국면은 20세기 중반 서양 열강들의

    6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중동, 즉 아랍권 국가에 대한 서구의 왜곡과 타자화

    전략 및 정치적 역학관계를 주로 다루었다. 마아(Sheng-mei Ma)는 중동에 한정되었던

    오리엔탈리즘을 동아시아 세계에까지 확대시켜 중국계 미국인들의 담화를 분석하였

    다. 그녀는 서구의 동아시아에 대한 타자화 작업에 중국계 미국인들도 서양의 입장

    을 취하여 참여하고 중국의 문화를 타자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좀 더 서구의

    것과 가까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지적했다(25).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본 논문 Ⅱ-1장에서 다룬다.

  • 6

    침략과 중국 내 공산주의 혁명으로 중국을 떠난 망명자들이 입국한 시기, 세 번

    째는 20세기 후반 탈냉전시대에 중국과 미국 사이의 외교 관계가 회복되면서 중

    국인들의 입국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 시기이다(ⅷ-ⅹ).

    맥신 홍 킹스턴(Maxine Hong Kingston)은 중국계 디아스포라의 두 번째

    국면, 즉, 서양 열강들의 침탈과 중국 내 공산주의 혁명으로 미국에 망명한 부모

    에게서 태어난 이민 2세대이다. 그녀의 증조부와 조부는 각각 19세기 중∙후반에

    하와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과 대륙횡단철도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

    중국계 미국인들의 실향과 이산, 그리고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겪어야 했

    던 차별과 배제를 목격하고 경험하며 자란 킹스턴에게 중국계 미국인들의 디아

    스포라 정체성은 그녀의 존재와 직결된 삶의 조건이자 문학세계의 중심 소재이

    다. 중국계 미국인들은 백인들에게는 그들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타자

    이자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범적인 소수종족으로서, 본국의 중국인들에게는 다

    른 문화에 동화된 이질적인 존재로서 비쳐지곤 했다.7 킹스턴은 자신과 가족들의

    경험을 토대로『여인무사』(The Woman Warrior, 1975), 『중국 남자들』(China Men,

    1980), 그리고 『여행왕 손오공』(Tripmaster Monkey: His Fake Book, 1987)을 집필했

    다.

    킹스턴의 초기 작품들인 『여인무사』와『중국 남자들』은 킹스턴이 부

    모로부터 전해 들은 중국계 이민자들의 디아스포라를 서사로 재구성한 것이다.

    7 장(Iris Chang)은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타카키의 책 제목 Strangers from a Different

    Shore을 인용해, ‘Strangers on Both Shores’ 라고 표현했다: “Ronald Takaki, an ethnic studies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y, once called the Chinese and other Asian Americans ‘strangers from a different shore.’ I propose to take this a step further. At various times in history, the Chinese Americans have been treated like strangers on both shores – a people regarded by two nations as too Chinese to be Amercian, and too American to be Chinese”

    (ⅹⅲ ).

  • 7

    두 작품은 종종 문학 텍스트보다 중국계 이민자들에 관한 민족지학적 서술로 여

    겨져 비소설로 분류되기도 했다. 한편, 그녀의 첫 소설로 일컬어지는 후기 작품

    『여행왕 손오공』은 현대 미국을 살아가는 이민 5세대 중국계 미국인 남자 주

    인공이 겪는 정체성 문제와 다문화주의 공동체를 찾기 위한 시도가 노정된 작품

    이다. 앞선 두 작품이 중국계 이민자들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에 주로 초점을 맞추

    었다면, 『여행왕 손오공』은 다종족 사회가 보편화된 현대 미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디아스포라 정체성에서 다문화주의 공동체로의 관심

    변화는 소수 종족 작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산을 직접 경험

    한 이민 1세대나 1.5세대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고국에 대한 강한 그리움과 강렬

    한 민족의식을 나타낸다. 그러나 2세대부터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러한 고국에 대

    한 그리움이나 민족적 정서는 약해지고, 그들이 속한 교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양상을 보인다(정은경 32).8 킹스턴의 초기

    작품들은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디아스포라 문학의 성격의 강하며, 후기 작품에

    는 현대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세대가 당면한 과제인 다문화주의 공동체에 대한

    고찰이 노정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9

    『여인무사』는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 화자와 그녀의 어머니, 중

    국에서 강간 당한 후 사생아를 출산하고 자살한 고모, 그리고 미국으로 떠난 남

    8 가령 한국계 미국문학의 경우 세대마다 주제를 살펴보면, 이민 제 1세대는 ‘자신의

    이야기’, 제 1.5세대는 ‘부모의 이야기’, 제 2세대는 미국 이민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민의 이야기’, 제 3세대는 다시 ‘조부모의 이야기’로 회귀하는 특징을 나타낸다(최

    강민 136). 9 한편 안은주는 킹스턴의 『여행왕 손오공』이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기존의 스

    테레오타입을 해체하려고 시도하지만, 주인공이 갖고 있는 공동체적 비전이 인종이

    라는 경계는 넘어서되 미국인으로서의 국민적 정체성과 국가적 경계는 뛰어 넘지 못

    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다문화주의적 통합과 미국적 민주주의

    신화가 지나치게 미화되어 자칫하면 다양성의 문제를 지극히 단순화시켜 현상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적 기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10).

  • 8

    편에게 버림받은 이모 등 중국계 하위주체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등장인물들

    은 중국 가부장제와 미국의 제국주의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억압 당한 여

    성들로, 화자는 그들의 삶을 서사로 재구성하여 침묵 속에 잊혀져 있던 그들의

    목소리를 복원한다. 『중국 남자들』은 킹스턴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벗어

    나 그녀의 증조부와 조부를 거쳐 아버지 세대로 이어지는 중국계 이민자들의 디

    아스포라 역사를 서술한 작품이다. 미국 역사 서사에서 주변부로 물러났던 중국

    계 미국인들의 이주 역사와 그들이 미국 사회 건설에 기여한 공헌들을 집중적으

    로 조명함으로써, 화자는 중국계 이민자들의 입지를 유럽계 이민자들처럼 미국사

    회 건설의 공로자로 위치 시키고자 한다. 『여행왕 손오공』의 주인공 위트만 아

    신은 1960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을 졸업한 이민 5세대 중국계 미국인으로,

    킹스턴과 동시대를 살았던 중국계 미국인들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위트만은 중국

    계 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거부하며, 다종족으로 이루어진 ‘공동체’

    성립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킹스턴은 『여행왕 손오공』을 통해 다문화주

    의 공동체가 중국 전통 설화와 서구 정전 및 미국 비트 문학 등을 아우르는 다

    종족 문화 유산의 토대 위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행왕 손오공』은 그

    자체가 상호텍스트성의 체화이며, 다문화주의 시대 공동체의 특징을 반영한다.

    본 논문은 이민 1세대와 2세대 중국계 미국인들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에

    서 현대 다문화주의 공동체에 이르는 킹스턴 작품의 주제 변화 양상을 각 국면

    별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 작업을 통해 킹스턴을 비롯한 아시아계 소수 종족 문

    학을 ‘동양의 타자들’에 대한 문학으로 치부하는 일견의 편견을 바로 잡고, 미국

    주류 문학의 한 장르로서 입지를 형성해 가고 있는 아시아계 소수종족 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문학에서 종족적 타자성

    (ethnic otherness)을 다룬 작품들이 주류 문학으로 부상하고 있다. 킹스턴은 미국

  • 9

    비평가 협회상 비소설 부문과 2008년 미국 도서 재단 평생 공로상을 비롯해서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여인무사』는 미국 대학에서 가장 많이 강의되는

    작품들 중 하나이다. 한국계 미국인 이창래 또한 첫 장편 『네이티브 스피커』

    (Native Speaker)로 헤밍웨이 문학상, 펜 문학상 등 미국의 각종 권위있는 문학 상

    들을 수상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벵갈계 미국인 줌파 라이리(Jhumpa Lahiri)는

    2000년 퓰리쳐 상과 헤밍웨이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라히리의 『질병 통역사』

    (Interpreter of Maladies) 의 성공 요인에 대한 기타 라잔(Gita Rajan)의 분석은 최근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계 소수 종족 작가들을 향한 관심의 원인을 잘 설명해 준

    다. 라잔은 아시아에 대해 고조되고 있는 국제적인 관심,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종족성(ethnicity)에 관한 소재, 그리고 종족성에 기반한 도덕적 책임의식(Ethical

    Responsibility)이 라히리의 성공에 기여했다고 보았다(128). 라히리의 서사를 구성

    하고 있는 두 가지 요소, 즉 서양의 일상성과 동양적 특이성의 만남이 갈등 상황

    을 만들어 내고,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의 종족성에 기반하여 특정한 도덕적 선택

    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라잔은 이러한 도덕적 기대감이 라히리

    작품 읽기에 남다른 긴장감을 제공한다고 보았다(128).

    킹스턴의 작품에 대한 관심 또한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그녀의 종족성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녀의 처녀작 『여인무사』는 작가의

    상상력과 문학적 수사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비소설로 분류되었으며, 작가의 어린

    시절에 관한 자서전으로 읽혀졌다. 특히 백인 독자들은 킹스턴의 작품이 전체 중

    국계 미국인을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10 이에 중국계 독자

    10 킹스턴은 자신의 작품이 중국 문화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을 강화한다는 비

    판에 “Cultural Mis-readings by American Reviewers”라는 에세이로 대응했다(Critical Essays on Maxine Hong Kingston 95-103; hereafter abbreviated as CE): “What I did not forsee was the critics measuring the book and me against the stereotype of the exotic, inscrutable,

  • 10

    들과 비평가들은 킹스턴의 작품들이 중국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편견과 고정관

    념을 강화시키고 중국의 전통을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왜곡하였다고 비판했다

    (Chu 88). 킹스턴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중국계 미국인 비평가 프랭크 친(Frank

    Chin)은 중국인들의 경험을 자서전의 소재로 삼는 것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것

    이 “변절, 자기 노출, 그리고 자기 비하”를 초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Ibid). 다

    른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킹스턴이 “제 1세계 여성이라는 특권적인 위치에서 제

    3세계의 주변화된 여성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조사하고 고찰한다”고 비판했

    다(Shu 208).

    이러한 일각의 비판에 대하여 킹스턴은 그러한 비평가들이 그녀의 작품

    이 중국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렇게 가정하고 있다고 반론하였다.11

    그녀에게 호의적인 비평가들은 킹스턴의 문학적 의도와 그녀의 창의적인 예술적

    기교를 강조하며 그녀의 문학을 옹호했다. 킹스턴의 작품들이 중국계 미국인들의

    디아스포라 역사와 그들이 보존하는 중국 전통의 문화 유산을 다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념할 점은 킹스턴 자신과 가족들이 경험한 디아스포라와 미국 사회

    에서의 체험이 중국이라는 국가 전체나 혹은 중국계 미국인 전체를 대표한다고

    mysterious oriental. About the two-thirds of the reviewers did this” (95). 같은 맥락에서 그녀

    는 자신이 미국인이며, 자신의 작품들은 미국 문학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토로한다: “Another bothersome characteristics of the reviewers is the ignorance of the fact that I am an American. I am an American writer, who, like other American writers, wants to write the great American novel. . . . Yet many reviewers do not see the American-ness of it, nor the fact of my

    own American-ness” (97). 즉, 자신의 작품을 중국 문학으로 착각하지 말아달라는 이야

    기다. 11 킹스턴이 말한 원문은 다음과 같다: “Don’t forget that I am writing about one little vilage in the South of China and already in that little village they were not representative of all of the great, big China. And then those few people came to America and went to Stockton. The question of being representative is very interesting but it is also very bothersome” (Conversation with Maxine Hong Kingston 22; hereafter abbreviated as CMK).

  • 11

    착각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12 그녀의 작품들을 면밀히 들여다

    보면, 그녀가 중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정형화하려는 미국 주류 문화의 시각에

    대항하며, 이제까지 타자화의 주요 표지들로 기능해 온 종족성, 계급, 성, 그리고

    언어에 대해 자의식을 갖고 그에 저항하는 글쓰기를 하며 탈정형화와 해방을 추

    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13 킹스턴은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중국의 전통 문

    화를 자신의 이해의 지평에서 해석하고 서사로 재구성했다. 그녀의 작품은 어머

    니의 이야기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해석과 상상력의 소산이

    다.14 중국계 하위 주체 여성들과 이민자들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구현함으로써,

    킹스턴은 종족의 문화 유산을 현대 미국 사회라는 맥락에서 이해하고 이를 바탕

    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15

    『여행왕 손오공』에 이르러 킹스턴은 중국계 미국인의 디아스포라를

    12 킹스턴은『여인무사』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중국적이다”라고 표현한 헤리지

    (Kate Herriges)의 리뷰에 대하여 “No. No. No. Don’t you hear the American slang? Don’t you see the American settings? Don’t you see the way the Chinese myths have been transmuted by America?”라고 응수했다(CE 97). 여기서 킹스턴이 자신이 작품을 “중국의 신화를

    변형한” 것이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3 폴리(Bernice Williams Foley)는 킹스턴이 자신이 물려받은 중국적 전통에 반발하고

    중국의 윤리와 가치관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킹스턴은 그녀가 중국계 미국인

    작가에게 기대한 것은 “순응적이고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중국계 하인 혹은 상인”

    (the obedient-Confucian-Chinese-servant-businessman)이라고 응수했다(CE 97). 킹스턴은

    중국계 미국인들에 대한 정형화에 저항하고 그것을 탈신비화하고자 시도한다. 14 야우스(Hans Robert Jauss)는 수용미학에 대한 그의 에세이 “The Theory of Reception:

    A Retrospective of its Unrecognized Prehistory”에서 작품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독자의 역

    할에 대해 성찰한 바 있다. 그는 독자가 단순히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

    는 수신자가 아니며, 독자 스스로 의미를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전유한다는 점을 강

    조했다. 즉 해석의 주체에 따라 인식의 지평이 달라지는 것이다(59). 킹스턴의 이야

    기가 원전과 상이한 까닭은 그녀가 자신의 이해의 지평에서 수용한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다시 구성했기 때문이다. 15 청(King-kok Cheung)은 워커(Alice Walker)와 킹스턴의 작품에 나타난 침묵과 글쓰기

    에 관한 연구에서, 이러한 유색 인종 여성 작가들의 글쓰기가 그들의 “성적, 인종적,

    그리고 문화적 장벽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임과 동시에, 갖가지 외부적 압

    력들로 인한 ‘침묵’(speechlessness)의 상태에서 종족적이고 여성적인 감성의 ‘달

    변’(eloquence)으로의 이행 과정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162).

  • 12

    넘어 다종족 문화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성립에 관한 문제로 관심을 옮긴다. 킹스

    턴이 모색하는 다문화주의 공동체는 호미 바바(Homi K. Bhabha)가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지적한 ‘이후’ 혹은 ‘너머’의 공간의 특징들을 반영하고 있다. 바바는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탈식민주의(post-

    colonialism), 포스트페미니즘(post-feminism) 등 현대 이념들에 공통적으로 사용되

    는 접두사 ‘post-’ 즉, ‘이후’ 혹은 ‘너머’를 제시한 바 있다(2). 그가 말하는 ‘post-’

    의 세계는 공간과 시간의 고정성이 파괴된 세계로서 방향의 상실과 주체의 끊임

    없는 자리 이동을 특징으로 하며, 단일한 계급이나 성을 상정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사이’ (in-between)의 세계이다(3). 이러한 세계에서는 주체의 근원이나 시

    초를 넘어서 문화적 차이와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이 더 중요시 된다. 바바는 차

    이로서의 주체는 더 이상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타협의 산

    물이며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는 것을 강조한다(Ibid). 16 바바가 제시한 ‘post-’의

    세계는 국경을 넘나드는 현대 문명의 이동성과 상황에 따라 주체성이 재정립되

    는 현대 다문화주의 사회의 특징들을 잘 보여준다.

    ‘고정된 주체’가 아닌 ‘사이’의 세계에서 형성되는 ‘과정의 주체’를 묘사

    하는 킹스턴의 글쓰기는 베니토(Jesus Benito)와 만자나스(Maria Manzanas)가 제안

    한 ‘경계선 글쓰기’(border writing) 로 분류될 수 있다(3). 여기서 ‘경계’(border)란

    그 자체가 정의 내리기 모호한 개념으로서 분할, 만남, 그리고 대화가 이루어지

    16 이러한 ‘post’의 세계에서는 생물학적 혹은 인류학적 기준에 의해 자의적으로 분류

    되었던 인종 개념을 정의 내리는 것도 더욱 모호해지고 복잡해진다. 신문수는 『타

    자의 초상』에서 인종 개념의 태동과 변천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인종이 “본질적 자질

    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체”(30)라는 것을 밝히고, 오늘날 사회에서 인종이 사회적 이

    데올로기에 의해 어떻게 분류되고 공고히 유지되는가를 설명했다. 1980년대 이후 ‘포

    스트모던’ 인종주의에 대한 설명은 같은 책 제 2장 4절 “상징적 인종주의” 편 참조.

  • 13

    는 공간이다(3).17 이 ‘경계’는 기존의 문화, 언어, 그리고 인종의 구획이 허물어지

    고, 대신 이들이 서로 대면하고 어울리며 변용되는 공간이다. 경계의 영역은 거

    대서사를 허용하지 않으며, 전통적으로 우리들의 경험과 세계관을 영토화해 온

    교의들을 거부한다(Ibid). 보다 구체적으로 ‘경계 지대’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안잘

    두아는 “두 개 이상의 문화들이 접촉할 때,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같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을 때, 다른 계급들이 만날 때”라고 설명했다(4). 즉, ‘경계’는 단순히

    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성, 계급, 종족, 주체성, 공동체가 생성되는 역동적인 공

    간인 것이다.

    ‘경계선 글쓰기’는 이처럼 문화, 인종, 계급 간의 만남과 충돌을 텍스트

    화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이러한 글쓰기는 주로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계 미

    국인, 멕시코계 미국인 등 다종족 작가들에 의해 진행되어 왔다(5). 이러한 경계

    선 글쓰기는 제국주의 시대에 형성된 문화 및 정치 지형을 변동시키고자 하는

    탈식민주의 이념과 부합한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가 동양세계를

    지형적, 문화적, 언어적, 민족적으로 분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대상화했다고 지

    적한 바 있다(50).18 그는 서구의 동양 타자화 작업을 “지형적으로 거대한 야망”

    이라고 불렀는데, 이 작업은 시인, 작가, 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작업으로 작

    17 베니토와 만자나스의 ‘경계’ 개념은 안잘두아(Gloria Anzaldua, 1987)와 아르테아가

    (Alfred Arteaga, 1997)의 ‘경계지대’(borderland), 프랫(Mary Louis Pratt, 1992)의 ‘접촉 지

    대’(contact zone), 아귀레 외(Aguirre et al., 2001)의 ‘역 외 공간’ (liminal spaces), 혹은 포

    터(Porter, 1994)의 ‘문화적 힘의 장’(cultural force fields)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Ibid). 18 원문은 다음과 같다: "But Orientalism is a field with considerable geographical ambition. And since Orientalists have traditionally occupied themselves with things oriental (a specialist in Islamic law, no less than an expert in Chinese dialects or in Indian religions, is considered an Orientalist by people who call themselves Orieentalists), we must learn to accept enormous, indiscriminate size plus an almost infinite capacity for subdivision as one of the chief characteristics of Orientalism – one that is evidenced in its confusing amalgam of imperial vagueness and precise detail" (50).

  • 14

    가들이 정치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작업에 관련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다(13). 그는 “새롭게 부상한 탈식민주의, 민속학, 문화 연구 같은 최신 유행들로

    인문학 혹은 문학 연구가 본래적 관심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는 미요시(Masao

    Miyoshi)의 주장을 반박하며, ‘실천적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저항의 인문

    학』 33).19 킹스턴의 『중국 남자들』에 나타난 신역사주의 서사는 기존의 역사

    서사가 만들어 놓은 지형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경계선 글쓰기의 한 예이다.

    제 3세계 하위 주체 연구와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으로 잘 알려진 스피박

    (Gayatri Spivak) 또한 현대 다문화주의 시대와 문학의 역할에 대해 숙고하였다.

    그녀의 저서 『학문의 죽음』(Death of a Discipline)20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그녀는

    기존의 문학연구가 서구 중심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비교 문학 접근법

    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첫 장의 제목 ‘경계선 넘기’ (Crossing Borders)는 토

    비 보크먼(Toby Volkman)의 팜플렛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보크먼은 인구의 이동,

    이산, 노동력의 이동, 전 세계적 자본과 미디어, 그리고 문화의 환류와 혼종의 출

    현 등이 한 지역의 정체성과 구성에 더욱 면밀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DD 3 재인용). 스피박은 미국으로 이민 온 소수 종족들이 자신들을 “인

    종으로 프로파일 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작금의 상황을 예로 들며, 이제 한 집

    단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명하면 좋을 것인지 의문을 던진다(DD 26). 그녀는 공시

    적(synchronic)일 뿐만 아니라 통시적(diachronic)으로도 개방성을 지니고 있는 가

    상의 공동체를 상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19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정치적 관점이 문학 텍스

    트를 읽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전제 조건임을 강조했다. 그는 문학 텍스트에 내재된

    역사의 재현과 정치적 관점의 분석 및 해석 문제 그리고 정치적 공동체에 대하여

    The Political Unconscious에서 논의했다. 이와 관련해서 같은 책 1장 “On Interpretation:

    Literature as a Socially Symbolic Art” 참조. 20 이하 DD.

  • 15

    본 논문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성격이 강한 킹스턴의 초기 작품들과 현

    대 다문화주의 사회의 문제를 고찰하는 후기 작품의 서사적 특징을 밝히고, 중국

    계 미국인 디아스포라에서 다문화주의 공동체에 이르는 킹스턴 작품의 관점 변

    화 양상을 살펴 보도록 하겠다. 하나의 책으로 구상 되었다가 분리되어 출판된

    『여인무사』와 『중국 남자들』은 중국계 미국인의 디아스포라 역사와 백인 사

    회의 중국계 미국인 차별 및 타자화 전략을 묘사한다. 후기 작품『여행왕 손오공』

    에서는 현대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주인공의 다문화적 정체성과 그가 꿈꾸는 다

    문화주의 공동체가 노정된다.

    본론 1장은 스피박이 제안한 하위주체 연구 방법으로 『여인무사』에

    접근하여 작품의 탈식민주의 텍스트로서의 특징을 분석한다. 20세기 중반 중국에

    서 이민 온 부모 아래 태어난 이민 2세대 화자는 어머니를 통해 전해들은 중국

    의 문화적 전통과 자본주의 미국사회에서 그녀가 체득한 서구 문화를 합치시키

    기 어려워 내적 갈등을 겪는다. 그녀는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자신의 상

    상력을 이용하여 재서술함으로써 중국 가부장제와 미국 제국주의 문화의 억압

    아래 타자화된 중국계 하위주체 여성들을 조명한다. 어머니가 전해주는 중국의

    전통과 가치관을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화자의 서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하고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21

    21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중국의 설화 및 문화에 대한 화자의 재서술은 많은 논란

    과 엇갈린 평가를 낳았다. 이러한 논의의 핵심은 화자의 서사가 오리엔탈리즘적 시

    각을 반영하느냐는 것이다. 밀란(Sherly A. Mylan)은 『여인무사』의 화자가 자신의

    어머니 혹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묘사하는 방식이 상당 부분 오리엔탈리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프랭크 친을 포함한 중국계 미국 남성 비평가들이 『여인무사』를

    비판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라고 주장했다. 한편 청(King-kok Cheung)은 화

    자의 어머니 자신도 중국 가부장적 전통에 저항하는 면모를 갖고 있으며, 화자는 어

    머니의 서술 전략인 ‘혼용’(conflation)을 이용하여 그녀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다시 쓰

    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167).

  • 16

    본론 2장에서는 『중국 남자들』에 나타난 중국계 미국인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고찰한다. 화자는 증조부부터 시작된 가족의 미국 이민 역사를 신화와 해

    학 등의 문학 기예를 이용하여 서술한다. 하와이 사탕수수 플랜태이션 농장과 대

    륙 횡단 철도 건설 및 금광 개발에 동원된 중국계 미국인들은 미국 국가 건설에

    큰 공헌을 했지만, 그들의 노고는 미국의 주류 역사 서술에서 주변화되었다.22 화

    자의 서사는 그들의 이산을 상세히 묘사하며, 미국 사회에 동화되면서도 중국의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려는 중국계 이민자들의 양가성을 보여준다. 중국 남자들을

    ‘모범적 소수종족’으로 정형화하려는 백인 주류 사회에 대항하여, 킹스턴은 중국

    남자들이 미국 사회 건설에 기여한 공헌들을 서사로 구성함으로써 그들의 역할

    과 위상을 새롭게 조명한다.

    본론 3장은 『여행왕 손오공』의 주인공을 통해 나타나는 현대 중국계 미

    국인의 다문화적 정체성과 다종족 문화 공동체를 모색하기 위한 시도를 살핀다.

    주인공 위트만 아싱은 징병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타냐 드위즈와 결혼하

    고, 중국의 전통 설화와 서구 정전을 혼용한 연극을 공연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자신의 종족성으로 빚어진 갈등을 해소하게 된다. 『여행왕 손오공』의

    상호텍스트성은 다종족으로 구성된 현대 다문화주의 공동체를 함의한다. 위트만

    의 연극이 시사하는 다문화적 정체성과 다문화주의 공동체의 실현을 논의하며

    본 논문은 다종족으로 구성된 현대 미국 사회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 문학이

    하는 역할에 대해 고찰한다.

    22 타카키(Ronald Takaki)는 미국 역사에 대한 일련의 저서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존재가 무시되거나 잠깐 언급만 되었음을 지적하며, 정전화된 역사에서 미국인이란

    오직 백인이나 유럽계 미국인들에 한정된 것임을 비판했다. 그 예로 타카키는 오스

    카 한랜(Oscar Handlin)의 저서『뿌리 뽑힌 자들』(The Uprooted)의 “미국인을 만든 거

    대한 이주에 대한 서사시”(the Epic Story of the Great Migrations That Made the American

    People)장에서 아시아계 이주민들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음을 지적했다(6-7).

  • 17

    Ⅱ. 『여인무사』: 하위주체 여성들에게 말걸기

    1. 이야기로 전달된 과거 혹은 중국 신비화

    『여인무사』의 화자는 이민 제 2세대 중국계 미국 여성으로, 캘리포니

    아 스탁튼 차이나타운에서 세탁소를 경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23 작중 화자와 킹스턴의 많은 유사점 때문에 이 작품은 종종

    자전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여인무사』를 킹스턴의

    자서전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해는 『여인무사』가 출판사의 판촉 전략

    에 따라 1976년 비소설로 출판되고, 그 해 미국 비평가 협회상 비소설 부문을 수

    상함에 따라 더욱 부추겨졌다. 이에 많은 중국인 독자들과 중국계 미국인 비평가

    들이 킹스턴의 『여인무사』에 묘사된 중국의 전설이나 관습이 사실과 괴리가

    있으며, 그녀의 작품이 중국 문화를 왜곡하고 동양 문화권에 대한 서구의 편견을

    강화하였다고 비판했다(Zhang 13). 일부 중국계 미국인 남성 작가들은 킹스턴의

    작품이 여성 해방주의 흐름에 편승하여 자신의 가족과 종족 문화를 상업적인 목

    적으로 이용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24

    23 2장에서 『여인무사』에 대한 인용은 본문에 쪽수만 표기함. 24 “Chin and Chan allege that Kingston’s primary concern is the market place and that

    Kingston’s The Woman Warrior (1975, 1976) represents her attempts to ‘cash in’ on a ‘feminist

    fed.’ Chinese American psychologist and writer Ben Tong accuses Kingston of ‘selling out . . .

    her own people’ by addressing herself to a predominantly white readership and gift-boxing old

    clichés about China and Chinese Americans, thereby obscuring the fact that Chinese Americans

    are not exotic foreigners but have deep roots in American life. Tong classifies Kingston’s work

  • 18

    이러한 비판의 공통적 전제는 킹스턴이 중국의 전통과 문화를 그녀의

    작품 속에서 있는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강민은 이민 1.5세대 이후

    세대들의 디아스포라 문학에서 형상화되는 모국의 풍경이 최근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년시절의 체험이나 조부모 세대가 살던 당시의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

    라고 지적했다(173). 킹스턴의 서사는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은 중국의 설화와

    민담을 자신의 이해의 지평에서 수용하여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며, 따라서 현재

    의 관점에 의해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보니 멜키오

    르(Bonnie Melchior)는 중국의 구전 문학을 계승한 킹스턴의 자서전 쓰기를 기존

    의 관념들에서 탈피하고 독자적인 방식을 구축한 해체주의적 글쓰기 양식으로

    봐야 한다며 킹스턴을 옹호했다(282). 이 외에도 많은 아시아계 미국 문학 비평

    가들이 『여인무사』 장르 규명에 대한 논쟁에 참여했으며, 킹스턴 자신도 인터

    뷰를 통해 이러한 논란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직접 내비쳤다.25

    킹스턴은 “책의 이야기들에 사용된 허구적인 기교들” 때문에 자신의 작품

    을 소설로 정의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26 자서전처럼 보이지만 『여인무사』

    as ‘white-pleasing autobiography passing for pop cultural anthropology’” (qtd. in Elaine H. Kim

    198).

    25 킹스턴의 『여인무사』장르에 대한 논쟁은 퀸비(Lee Quinby)의 “The Subject of

    Memoirs: The Woman Warrior’s Technology of Ideographic Selfhood”(1992)와 웡(Sau-ling

    Cynthia Wong)의 “Autobiography as Guided Chinatown Tour? Maxine Hong Kingston’s The

    Woman Warrior and the Chinese American Autobiographical Controversy”(1992)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퀸비는 “허구냐, 자서전이냐”라는 논쟁에 대하여, 킹스턴의 회고록은

    그녀가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한다고 보았고, 웡은 킹스턴 작품의 진정성,

    장르, 재현에 대한 논쟁이 소수종족 미국 작가들이 종종 마주치는 문제이며, 작품의

    내재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백인 독자들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츄

    (Patricia Chu)는 킹스턴의 작품을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한 것으로 비판한 비평가들로

    친(Frank Chin)과 챈(Jeffery Paul Chan)을, 그녀의 작품을 옹호한 대표적 비평가들로 김

    (Elaine Kim), 웡(Sau-ling Wong) 그리고 청(King-kok Cheung)을 언급했다(87). 26 원문은 다음과 같다: "I was told by my editors that most first books that are fiction don’t

  • 19

    는 허구적 요소들과 문학적 기교들이 많이 사용된 작품이다. 따라서 화자의 이야

    기를 중국 문화나 미국 캘리포니아 차이나타운의 생활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사

    실적 기술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27 김(Elaine H. Kim)은 이와 관련하여, 화자

    스스로가 작품 전반에 걸쳐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서술한 중국인들의 문화에 대하

    여 양가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199-200).28

    “유령들과 함께한 소녀시절의 회고록”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여인무사』

    에는 유령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것은 액면 그대로 초현실적 현상

    에 대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어린 화자가 그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문화, 사람들,

    혹은 실체가 없는 긴장감과 불안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한다. 29 프라이

    (Joanne S. Frye)는 서구의 남성중심의 문학 및 전통에서 여성들의 목소리와 정체성

    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던 현실을 지적하면서, 허구적 상상력으로 재서술된 구전

    설화나 유령과 같은 초현실적인 요소들로 구성된 『여인무사』의 서사가 이제까지

    usually sell out their first printing and that critics are hesitant to review a young writer’s first published novel. In nonfiction, everyone feels they have a grasp on the story. Critics review it and people can more readily identify with the characters”(CMK 2). 27 유제분은 소수 종족 문학이 소수 집단 문화의 특수한 정체성과 역사를 전달해야

    한다는 소수 종족 집단 내외의 요구와 작가 개인의 창작 열망이 상충할 수 있는 장

    이며, 소수 종족 작가는 소속 집단 문화의 역사를 재현해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딜레마는 중국계 미국 문학만이 아니라 미국 내 소수

    종족 문학이 직면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미국의 시민 신화와 시민 주체” 690-712). 27 김(Elaine H. Kim)은 화자가 자신의 어머니가 들려준 중국에 대한 이야기와 설화에

    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상인지를 끊임없이 의문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화자의

    태도가 작품의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Chinese Americans, when you try to understand what things in you are Chinese, how do you separate what is peculiar to childhood, to poverty, insanities, one family, your mother who marked your growing with stories, from what

    is Chinese? What is Chinese tradition and what is the movies?” (The Woman Warrior 5-6). 28 킹스턴은 『여인무사』의 소제목(Memoirs of a Girlhood among Ghosts)과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유령’의 존재와 의미에 대하여 ‘과거의 그림자’(shadowy figures from the past)

    혹은 화자가 중국인들, 백인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들에 대해 품었던 해결되

    지 못한 의문들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qtd. in Kim 200).

  • 20

    억압 받아온 여성들의 처지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킹스턴의 작

    품이 ‘자서전 형식의 환상’이라는 일각의 의견에 반대하고 『여인무사』는 허구적

    상상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며 그 해결방

    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295).

    유제분은 킹스턴을 비롯한 소수 종족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유령과

    초현실적인 존재에 주목하여 그들의 주된 서술 전략을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했다(“환상과 사실주의” 659).30 소수 종족 작가들은 백인 주류 문화에서 이질

    적이고 환상적으로 비쳐질 수 있는 소수 종족의 역사와 문화를 민족지학적 사실주

    의를 넘어 초현실적인 요소들로 형상화하는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이다(663).31 한

    편 스피박은 이러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장르가 제 3세계 문학의 고유한 특성

    으로 여겨지고 서구 문학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표지로 작동하게 되는 것을 경계해

    야 한다고 지적했다(Outside Teaching Machine 277).32 제 3세계 문학에 대한 또 하나

    의 정형화가 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으나, 마술적 리얼리즘은 초현실적인 서사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소수 종족 작가들의 서사 전략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유용

    30 유제분은 킹스턴과 모리슨(Toni Morrison)의 작품에 등장하는 유령들의 존재를 “한

    의 존재이자 망각의 역사를 환기시키는 기억장치”라고 보았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떠도는 원혼은 개인의 한이기보다는 집단의 한이자 역사의 한과 직결된 의미”를 가

    지며 “역사에서 기록을 놓친 소수 종족 집단의 한의 실체”라고 논평한다. 유령은 그

    자체가 “근대성에 대한 근본적인 반명제”(Zamora 324)로 서구적 근대성과 제국주의

    문학을 전복하는 문학적 장치로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환상과 사실주의”

    660 재인용). 31 유제분은 소수 종족 작가들이 환상적 양식을 통해서 그들의 소수 종족 정체성을

    재현하며, 사실주의 글쓰기로는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았다

    (“환상과 사실주의” 659). 소수 종족 작가들이 이처럼 자신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이

    분법적으로 나누어 묘사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탈민족지학적 글쓰기로

    서의 “마술적 리얼리즘” 양식은 킹스턴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관점을 제시한

    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본 논문 Ⅱ-4장에서 다룬다. 32 “It [Colonial and Postcolonial Discourse Studies] can fix Eurocentric paradigms, taking ‘magical realism’ to be the trademark of third world literary production, for example” (277).

  • 21

    한 틀을 제공한다. 『여인무사』에 나타나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특징들은 Ⅱ-4장

    에서 자세히 다룬다.

    본 논문은 킹스턴의 『여인무사』를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된 중국

    전통 가치관을 자신의 서구적 가치관과 합치시키려는 화자의 노력의 소산이라는

    관점에서 읽고자 한다. 중국의 가부장적 체제와 미국의 제국주의 사회의 이중 억

    압에 의해 주변화된 여인들에 대한 이 작품은 중국계 미국 여성들의 처지에 다차

    원적으로 접근하여 그들의 삶의 층위를 하나씩 드러낸다. 화자의 서술은 사실주의

    적 기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담과 상상력 등의 초현실적인 요소들을 포함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구현한다. 중국계 미국인들을 타자화하는 주요 표지들로 작용

    했던 종족성, 계급, 성, 그리고 언어 문제를『여인무사』를 통해 집중적으로 조명

    함으로써, 킹스턴은 중국계 미국인에 대한 정형화 및 타자화에 저항하는 글쓰기를

    수행한다. 『여인무사』는 중국계 하위 주체 여성들의 처지를 알리고 그들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탈식민주의 문학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2. 되살아난 ‘이름없는 여자’

    이 장에서는 킹스턴의 글쓰기를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의 하위주

    체 연구와 연계하여, 그녀의 서사가 스스로의 힘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중국

    하위주체 여성들의 처지와 입장을 어떻게 언표화하고 쟁점화하는지에 대해 고찰하

    고자 한다. 킹스턴의 서사 전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피박의 하위주체(subaltern)

    연구에 관한 이론적 배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스피박은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아래에 처한 제 3세계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하위주체’를 사용한다(박종석

  • 22

    61). 스피박은 하위주체가 지배 담론으로부터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

    을 개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탈식민주의 연구자들의 역할은 그러한 하위주

    체의 목소리가 일반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Can

    Subaltern Speak?” 283).

    스피박은 제국주의 담론에 의해 하위주체의 목소리가 지워진 예로 1829년

    영국의 인도 과부 순장 관습 철폐를 들며, 이것이 ‘인식론적 폭력’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280). 과부 순장(widow sacrifice)은 ‘사티’(sati)라고 불리며, 힌도 과부가 남

    편이 죽은 후에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 그녀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을 가리킨

    다(297).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용어를 이용하여, 스피박은 이 문제를 “백인 남성

    이 황인종 여성을 황인종 남성으로부터 구해내기”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이러한

    백인 중심적인 생각에 대하여 인도 현지인들이 “여성들이 정말로 죽기를 원했다”

    고 반박한다는 것도 함께 지적했다(296). 두 가지 입장 모두 과부 순장의 대상인

    힌두 여성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 그녀는 과부 순장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힌두 여성들의 처지를 정확히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하위주체 연

    구를 수행한다.33

    33 우리나라에도 인도의 과부 순장 풍습처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위해 생겨난 관

    습이 있었다. 열녀비나 효부비가 바로 그것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 역시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벗기고 현상의 실체를 바로 파악해야 함을 주장한 바

    있다. 다산의 『열부론』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버지가 병들어 죽거나 임금이 죽었

    을 때 아들이나 신하가 따라 죽는다 해서 이를 효자나 충신이라고 말하는 법은 없다.

    그런데 왜 유독 남편이 죽었을 때 아내가 따라 죽으면 열부라 하여 정표를 세워주고

    호역을 면제해주는가? 남편이 죽었다고 따라 죽는 아내는 소견이 좁은 여자일 뿐 열

    부일 수는 없다. . . . 대저 천하의 흉한 일 중에 제 몸을 죽이는 것보다 심한 것은 없

    다. . . . 이것은 자살한 것 뿐이니, ‘자살했다’고 해야 한다. 의리에 합당한 것이 아니

    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자살하는 것이야말로 천하에 흉측한 일이다”(정민 392-393

    재인용). 연암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에서도 세상의 이목과 식구들에게 누가

    되는 것을 염려해 죽은 부녀자들을 열녀로 미화한 세태가 잘 묘파되어 있다(같은책 389).

  • 23

    첫째, 스피박은 영국에 의한 힌두 법 개정에 잠재되어 있는 인식론적 폭

    력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여성들(오늘날 제 3세계 여성들)을 보호하는 것은 좋은 사회를 건

    설하는 것에 대한 표지가 된다. 그것은 개시와 동시에 법률 혹은 법

    정 방침의 형평성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 그

    [법 개정] 과정은 또한 이제까지 관습적인 것으로 허용되거나, 알려지

    거나, 상찬되어 온 것을 죄악으로 재정의되도록 한다.

    The protection of woman (today the “third-world woman”) becomes a signifier for the establishment of a good society which must, at such inaugurative moments, transgress mere legality, or equity of legal policy. In this particular case, the process also allowed the redefinition as a crime of what had been tolerated, known, or adulated as ritual. In other words, this one item in Hindu law jumped the frontier between the private and the public domain. (298)

    제국주의자들에 눈에 그들의 문화와 다른 것은 “이상으로부터 탈선”된 것

    으로 비쳐지는 것이다(285). 스피박은 “좋은 사회의 설립자라는 제국주의 이미지가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신봉하는 것에 의하여 표시된다”고 비판한다(299).

    둘째, 스피박은 영국인들의 단순한 이해와는 달리, 과부 순장 관습이 훨씬

    더 복잡한 현상이라는 것을 주지시킨다. 스피박에 의하면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과

    부 순장 관습에 있어서 ‘자유로운 선택의 역설’을 간과했다. 자살은 힌두 사회의

    성문화된 교리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 사티는 허가

    된 자살이다. 그녀는 ‘사티’라는 단어 자체에도 주목하는데, 그것은 ‘존재하다’라는

    동사의 현재 분사형이다. 그것은 진실, 선, 그리고 정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

    한 과부 순장은 경제적인 이해와도 관련있다. 인도에서 과부는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영국인들이 단순하게 불쌍한 여인들이 살생되는 것으로 보았던

    이 관습은 실제로는 “이데올로기들의 투쟁의 장”이었던 것이다(300).

    마지막으로 스피박은 현대적 맥락에서 일어난 사티의 사례를 들면서 그

  • 24

    현상을 해석하는 것에 내재된 복잡성을 보여준다. 그녀는 1926년 북 캘커타에 있

    는 아버지의 아파트에서 자살한 부바네스와리 바두리(Bhuvaneswari Bhaduri)라는 젊

    은 여성의 죽음을 이야기 한다.

    그 자살은 수수께끼였다. 왜냐하면 부바네스와리는 당시 월경 중이

    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히 사생아 임신 때문이 아니었다. 거의 십

    년 후 그녀가 인도 독립을 위한 무장 항쟁 단체의 요원이었음이 밝혀

    졌다. 그녀에게 정치적 암살 임무가 주어졌는데,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했던 그녀는 자살을 했던 것이다. 부

    바네스와리는 그녀의 자살이 부적절한 욕정에 의한 것으로 해석될 것

    을 우려하여, 월경이 시작될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The suicide was a puzzle since, as Bhuvaneswari was menstruating at the

    time, it was clearly not a case of illicit pregnancy. Nearly a decade later it was discovered that she was a member of one of the many groups involved in the armed struggle for Indian independence. She had finally been entrusted with a political assassination. Unable to confront the task and yet aware of the practical need for trust, she killed herself. Bhuvaneswari knew that her death would be diagnosed as the outcome of illegitimate passion, so she waited for the onset of menstruation. (307)

    스피박은 부바네스와리가 “사티 순장을 내정 개입주의적 방식으로 사회적

    텍스트로 다시 썼다”(308)고 논평한다. 원래의 과부 순장 관습에서는 월경 중인 과

    부는 넷째 날 청결해지기 위한 목욕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Ibid). 부바네스와

    리의 자살은 힌두 여성들에게 유일하게 허가된 자살인 사티의 전복적인 실행이었

    다. 이제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힌두 관습에 내재된 복잡성이나 다차원성은 영국

    인 폐지론자들에 의해 쉽게 간과되고 단순화됐다. 제 3세계 사람들의 관습 중 자

    신들의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불가해하거나 야만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모조리 근

    절시킴으로써 식민화를 가속화하였기 때문이다.34

    34 2004년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대학에서의 강연 “The trajectory of subaltern in my

    work”에서 스피박 본인이 직접 밝혔듯이, 그녀는 사티 자체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

  • 25

    스피박은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들 중 하나이다. 탈식민주의 비

    평이 그 동안 젠더 문제를 도외시했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인종과 민족의 차이뿐

    만 아니라 성차로 인해 소외된 하위 주체들의 주체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담론이

    바로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이다.35 즉, ‘탈식민주의의 페미니즘화’뿐만 아니라 ‘페미

    니즘의 탈식민화’ 또한 추구하는 것이다(유제분,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12).36 스피

    박은 자신의 논문 『국제적 틀에서의 프랑스 페미니즘』 (French Feminism in an

    International Frame)에서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가 1974년 중국 방문 경험을 토대

    로 쓴 『 중국 여인들에 대하여 』 (About Chinese Women)를 예로 들며, ‘열락’

    (jouissance)이나 아방가르드 철학 중심의 관념적인 프랑스 페미니즘을 국제사회, 특

    히 제 3세계의 여성들에게 여과 없이 일반화하여 적용하는 것의 문제점을 고찰했

    다.37 스피박의 이러한 지적에 유념하며, 본 논문은 『여인무사』의 화자가 하위주

    다. 그녀는 영국이 제 3세계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그것을 야만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교화시킨다는 명목하에 식민화를 정당화하고자 한 것에 문제를 제

    기한 것이다. 35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탈식민페미니즘 담론에서 탈식민주의와의 관계를 뺄 수 없

    다.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는 억압적 지배 사회 속에서 주변화되어온 ‘타자들’을 복

    원하는 것을 공통 목표로 삼아왔다. 이들은 주체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포스트 구

    조주의의 전제를 수용하면서, 흑/백, 남/녀의 이분법적 대항에 저항하는 공통점을 보

    인다. . . . 탈식민주의 논의 속에서 제 3세계 토착 여성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토

    착 및 외래의 가부장제 양자 모두에게 잊혀진 희생자가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탈식민주의를 페미니즘화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유제분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11) 36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기존의 페미니즘이 서구 백인 부르주아 백인 여성을 위한

    이론일 뿐, 흑인이나 제 3세계 여성 주체와 무관하다고 본다. 따라서 탈식민주의 페

    미니즘은 서구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부터 탈식민화를 기도한다” (유제분 “탈식민주

    의 페미니즘” 12) 37 “I am suggesting, then, that a deliberate application of the doctrines of French High ‘Feminism’ to a different situation of political specificity might misfire” (141).

    크리스테바는 『중국 여인들에 대하여』 (About Chinese Women) 에서 중국을 방문

    했을 당시 중국 여인들이 자신을 ‘유인원’, ‘화성인’, ‘타자’처럼 봤다고 적고 있으나

    그녀의 서술을 계속 읽다 보면 중국인들이 자신을 “무해하지만 정상이 아닌”(71) 존

    재로 여긴다는 주관적 인상이 사실은 그녀가 중국 여인들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이

    라는 것이 드러난다. 또한 크리스테바는 중국어의 성조가 다른 언어에는 없는 음운

  • 26

    체 여성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방식이 서구 중심적인 사고에 기반한 것인지 혹은

    그들의 삶과 주체성을 진실되게 복원하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마아는 중국계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중국 문화를 재현할 때 오리엔탈리즘적 정형화와 타자화 전략을 사용

    한다고 비판했다(25). 그러나 본 논문은 이러한 비판과 달리 킹스턴의 서사가 침묵

    속에 묻혀져 있던 하위주체 여인들의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시도한다고 본다. 이러

    한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장은 첫 장 “이름 없는 여자”(No Name Woman)이다.

    이 장에서 화자는 사생아를 낳고 우물에 빠져 자살했다는 고모의 선택과 동기에

    대해 숙고한다. 화자는 고모가 그러한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사회∙문화적 요인들을 서사로 구성하여 이제까지 침묵 속에 지워져 있던

    고모라는 존재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 비합리적이고 병리적인 행동으로 비쳐질

    수 있는 영아 살해와 자살은 화자의 서술을 통해 다층위의 의미와 다면성을 갖게

    된다. 이러한 서술 전략은 중국 가부장제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억압된 중국 하

    위주체 여성들에게 그들의 입장과 처지를 전달할 수 있는 목소리를 부여하며, 킹

    스턴이 오리엔탈리즘적 편견과 정형화를 강화시킨다는 기존의 비판이 사실이 아니

    라는 것을 증명한다.

    론적 특징이며 그러한 음조를 익히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75). 그녀는 더 나아가 중국어가 ‘오이디푸스 이전’, ‘통사론 이전’, ‘상징 이전’의 특

    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중국인들의 정신 저변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

    고가 ‘부계 중심의 논리적인’ 서구식 사고와는 달리 ‘무질서하고 이중적이며 동시 다

    발적인 모계 중심’ 사고와 수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77). 스피박은 이러한 크

    리스테바의 주장에 대해서 충분한 자료 조사나 검토 없이 주관적인 추측을 역사적인

    사실인 양 확정짓고 있다고 비판했다(“French Feminism” 137). 또한 그녀는 크리스테바

    가 여성적인 것은 비논리적인 것으로 남성적인 것은 논리적인 것으로 단언하고, 프

    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전’ 단계 가설을 아무런 의문 없이 수용하여, 중국인들이 모

    계 중심 문화적 전통을 기억하고 있어서 서구 기독교인들보다 성적 자유에 대해 신

    경증적 저항이 덜 할 것이라고 주장한 점도 비판했다(138).

  • 27

    화자의 어머니에 따르면, 남편이 미국으로 일하기 위해 떠난 사이 임신을

    한 화자의 고모는 마을 공동체의 단죄의 대상이 된다.38 출산을 앞 둔 어느 날, 이

    웃 사람들은 고모의 간통을 단죄한다는 명목 하에 고모의 친정 집을 습격하고 재

    산을 강탈한다. 수치심과 자책감으로 고모는 그 날 밤 돼지 우리에서 홀로 아기를

    낳고, 우물에 빠져 자신과 아기 모두 숨진다. 가족들은 고모를 가문의 수치로 여겨

    그녀와 아기에 대한 언급을 철저히 금지하고, 그녀는 ‘이름없는 여자’가 된다. 어

    머니는 “이웃들이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는 말과 함께 화자에게 항상 정숙할 것을

    권고한다(5).39

    화자의 어머니는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정숙’이라는 미덕을 포함

    한 갖가지 중국 사회의 전통과 관습을 전달하기 위해서 ‘교훈적’ 이야기들을 자주

    들려 주었다. 화자는 어머니의 ‘교훈적’ 이야기들을 자신의 미국적 정체성과 어떻

    게 합치시켜 나갈지 고민한다. 화자는 고모의 간통에 대한 가장 무거운 처벌이 이

    웃들의 습격이 아니라 그녀의 존재를 지워버리려는 가족들의 시도라는 것을 깨닫

    고, 고모의 이야기를 다시 서술함으로써 그녀를 망각으로부터 되살려내기로 결심

    38 웡(Synthia Wong)은 화자의 이름없는 고모를 자살로 몰고 간 원인들 중에는 중국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중국 남자들이 부인과 함께 입국하는 것을 금지한

    미국 이민 정책의 영향도 있었다고 지적했다(Resource Guide 90). 39 “이웃들이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는 어머니의 말은 미셸 푸코가 말한 지배권력의

    감시 체제 ‘판옵티콘’(panopticon)을 상기시킨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에서 개인의 주체성이 어떻게 거대 권력 담론에 의해 유린되어 왔는지를 계보학적

    방법론으로 상세히 밝힌 바 있다. 그는 단죄를 위한 징벌의 형태가 근대로 접어들면

    서 물리적인 잔혹함은 약화된 반면, 사람의 신체 혹은 영혼을 통치 이데올로기에 합

    치시키려는 시도로 확대 발전되었음을 지적했다. 푸코는 벤담이 1791년에 죄수를 교

    화할 수 있는 시설로 고안한 판옵티콘 감옥의 원리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일반

    화 되었다고 주장했다(303). 판옵티콘이야말로 완벽한 통치를 꿈꾸는 사회의 이상이

    구체화된 것으로, “폐쇄되고, 세분되고, 모든 면에서 감시 받는 이 공간에서 개인들은

    고정된 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아무리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통제되며, 모든 사건들이

    기록되고, 끊임없는 기록 작업이 중심부와 주변부를 연결시켜, 권력은 끊임없는 위계

    질서의 형상으로 완벽하게 행사되고, 개인은 줄곧 기록되고 검사된다”(306).

  • 28

    한다.40

    화자가 자신의 서사로 재구현한 첫 번째 이야기는 그녀의 고모가 강간으

    로 아이를 임신하였을 거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녀는 20세기 초반 서구 열강

    의 침입을 받고 국내 혁명으로 혼란했던 중국에서 “간통은 사치”였을 거라고 추측

    한다(6).41

    굶주리던 시기에 여자로 태어난 것 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낭비였다.

    우리 이모는 섹스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낭만주의자였을 리가 없

    다. 고대 중국에서 여자들은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남자가 그녀

    에게 함께 누우라고 명령하고 그의 은밀한 악행에 동참하도록 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그녀의 가족을 침입할 때 복면을 쓰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To be a woman, to have a daughter in starvation in starvation time was a waste enough. My aunt could not have been the lone romantic who gave up everything for sex. Women in the old China did not choose. Some man had commanded her to lie with him and be his secret evil. I wonder whether he masked himself when he joined the raid on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