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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1 HOT TREND VOL.12 ‘태양의 후예'와 안방 블록버스터 시대 한국드라마 역대 최다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아스달 연 대기’의 탄생 배경에는 ‘태양의 후예’의 흥행 신화가 있다. 단순히 출연진이 겹쳐서만이 아니라, ‘태양의 후예’가 안 방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성공 기준을 제시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한국드라마 최초로 국내와 중 국에서 동시 공개되면서 드라마의 글로벌화를 주도했다. 이전까지 주로 트렌디 멜로물을 써왔던 김은숙 작가 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서사의 범위를 확대하고 신선 한 볼거리를 발굴하고자 했다. 특전사 대위 유시진(송중 기)과 의료봉사단 팀장 강모연(송혜교)의 로맨스를 중 심으로, 액션과 메디컬, 휴먼 드라마 등 다채로운 서사와 가상의 국가 우루크라는 이국적 공간의 영상미가 폭발 적인 시너지를 일으켰다. 영국 BBC는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태양의 후예’의 인기를 분석하면서, ‘한 류의 정점’으로 평하기도 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 한 ‘콘텐츠 산업 경쟁력 강화 핵심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이 작품의 경제적 효과는 1조 원으로 추산된다. ‘태양의 후예’ 성공 이후 한국드라마 대작 열풍은 한층 가속화됐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의 참여로 시 장이 확대된 것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8년 제 작비 430억 원으로 역대 한국드라마 회당 제작비 최고 액을 기록한 ‘미스터 션샤인’(tvN), 회당 제작비 20억 원 으로 기록을 새로 경신한 넷플릭스의 한국 최초 오리지 널 드라마 ‘킹덤’ 등 화제작들의 제작 규모가 점점 커지면 서, 그야말로 안방 블록버스터 시대가 열렸다. 최근의 대작 드라마들은 ‘태양의 후예’의 사례처럼 글 ‘아스달 연대기’는 왜 ‘태양의 후예’의 후예가 되지 못했나 김선영 대중문화 평론가 [email protected] tvN ‘아스달 연대기’의 두 주연 배우 송중기와 김지원은 3년 전 KBS ‘태양의 후예’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태양의 후예’ 역시 블록버스터급 드라마였다. 영화 제작사 NEW16부작 제작에 총 130억 원을 투입했고, 스타 작가 김은숙이 극본을 맡았다. 방영 이후에는 최고 시청률 38. 8%를 기록하면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방영 직후 수익만 50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유발했다. 군대 제대 후 첫 복귀작으로 ‘태양의 후예’를 선택한 송중기는 초특급 한류스타가 됐고, 김지원도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로벌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보편적 서사와 참신한 상상력을 결합한 스토리텔링을 개발하고, 발달한 CG 기 술을 이용해 영상미에 한층 공을 들인다. 그리하여 영화 못지않은 종합엔터테인먼트로서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 는 최대의 재미와 볼거리를 선사하고자 한다. 안방 블록버스터 정점에 섰지만 초라한 성적표 ‘아스달 연대기’는 이 같은 안방 블록버스터 시대가 추구 하는 야심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캐스팅부터 한국 대 작 영화의 멀티캐스팅 전략을 사용했다. 송중기와 김지 원 외에 또 다른 톱스타 장동건과 김옥빈을 합류시켜 스 트라이커를 네 명이나 앞세우며 공격적으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선덕여왕’과 ‘뿌리 깊은 나무’의 사극 거장 김영현·박 상연 작가 콤비, ‘미생’, ‘나의 아저씨’ 등을 성공시킨 tvN 최고의 스타 감독 김원석 PD까지, 제작진의 위용도 화려 하다. 장대한 스펙터클을 창조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세 트장 건설에 투입된 비용만 120억 원에 달하고, 브루나 이 로케이션 촬영이 추가됐으며, 영화 ‘신과 함께’를 3편 가량 만들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CG) 분량이 사용됐다. 서사의 스케일도 한껏 키웠다. 한국드라마가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상고시대를 배경으로 수백 년의 시간에 걸친 영웅 신화를 창조했다. ‘아스달 연대기’는 정치, 멜 로, 미스터리,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엮어낸 판타지 블 록버스터였다. 그리고 6월 1일, 마침내 그 대서사시의 막이 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 7월 7일, 파트 2까지의 이야기 를 끝낸 ‘아스달 연대기’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방 영 내내 시청률은 반등 없이 평균 6%대에 머물렀다. 얼 핏 준수하게 보이나, 방영 전 기대감과 막대한 예산을 고 려하면 극히 저조한 결과다. ‘아스달 연대기’는 완성도를 위해 2달간의 휴지기를 가진 뒤, 9월 7일부터 파트 3에 해당하는 6부작을 마저 공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벌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모양새다. 당초 예고했던 시즌 2에 대한 기약도 없다. 극 중 도입부 내레이션을 담당한 무백(박해준)의 말을 빌려 묻고 싶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거대한 야심을 따라가지 못한 세계관 ‘아스달 연대기’는 태고의 땅 ‘아스’에서 펼쳐지는 영웅들 의 대서사시다. 거대한 흑벽을 경계로 구분돼 있던 아스 의 중심지 ‘아스달’과 미지의 땅 ‘이아르크’가 아스달 연 맹의 정복 전쟁을 계기로 충돌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출 발한다. 아스달의 권력자 타곤(장동건)과 태알하(김옥빈), 그 리고 이들에게 침략당한 이아르크의 은섬(송중기)과 탄 야(김지원), 네 주인공은 아스달에서 운명적인 대결을 펼 ‘태양의 후예’는 한국드라마 최초로 국내와 중국에서 동시에 공개되면서 드라마의 글로벌화를 주도했다. ⓒtvN '아스달 연대기'는 화려한 출연진과 큰 스케일로 방송 전부터 시청자들에게 큰 기대감을 안겼다.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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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아스달 연대기’는 왜 ‘태양의 후예’의 후예가 되지 못했나40 41)05 53&/% 70- ówóx ...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 7월 7일, 파트 2까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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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TREND VOL.12

‘태양의 후예'와 안방 블록버스터 시대

한국드라마 역대 최다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아스달 연

대기’의 탄생 배경에는 ‘태양의 후예’의 흥행 신화가 있다.

단순히 출연진이 겹쳐서만이 아니라, ‘태양의 후예’가 안

방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성공 기준을 제시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한국드라마 최초로 국내와 중

국에서 동시 공개되면서 드라마의 글로벌화를 주도했다.

이전까지 주로 트렌디 멜로물을 써왔던 김은숙 작가

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서사의 범위를 확대하고 신선

한 볼거리를 발굴하고자 했다. 특전사 대위 유시진(송중

기)과 의료봉사단 팀장 강모연(송혜교)의 로맨스를 중

심으로, 액션과 메디컬, 휴먼 드라마 등 다채로운 서사와

가상의 국가 우루크라는 이국적 공간의 영상미가 폭발

적인 시너지를 일으켰다.

영국 BBC는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태양의 후예’의 인기를 분석하면서, ‘한

류의 정점’으로 평하기도 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

한 ‘콘텐츠 산업 경쟁력 강화 핵심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이 작품의 경제적 효과는 1조 원으로 추산된다.

‘태양의 후예’ 성공 이후 한국드라마 대작 열풍은 한층

가속화됐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의 참여로 시

장이 확대된 것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8년 제

작비 430억 원으로 역대 한국드라마 회당 제작비 최고

액을 기록한 ‘미스터 션샤인’(tvN), 회당 제작비 20억 원

으로 기록을 새로 경신한 넷플릭스의 한국 최초 오리지

널 드라마 ‘킹덤’ 등 화제작들의 제작 규모가 점점 커지면

서, 그야말로 안방 블록버스터 시대가 열렸다.

최근의 대작 드라마들은 ‘태양의 후예’의 사례처럼 글

‘아스달 연대기’는 왜 ‘태양의 후예’의 후예가 되지 못했나

글 김선영 대중문화 평론가 [email protected]

tvN ‘아스달 연대기’의 두 주연 배우 송중기와 김지원은 3년 전 KBS ‘태양의 후예’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태양의 후예’ 역시 블록버스터급 드라마였다. 영화 제작사 NEW가 16부작 제작에 총 130억 원을 투입했고,

스타 작가 김은숙이 극본을 맡았다. 방영 이후에는 최고 시청률 38.8%를 기록하면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방영 직후 수익만 50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유발했다. 군대 제대 후 첫 복귀작으로

‘태양의 후예’를 선택한 송중기는 초특급 한류스타가 됐고, 김지원도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로벌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보편적 서사와 참신한

상상력을 결합한 스토리텔링을 개발하고, 발달한 CG 기

술을 이용해 영상미에 한층 공을 들인다. 그리하여 영화

못지않은 종합엔터테인먼트로서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

는 최대의 재미와 볼거리를 선사하고자 한다.

안방 블록버스터 정점에 섰지만 초라한 성적표

‘아스달 연대기’는 이 같은 안방 블록버스터 시대가 추구

하는 야심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캐스팅부터 한국 대

작 영화의 멀티캐스팅 전략을 사용했다. 송중기와 김지

원 외에 또 다른 톱스타 장동건과 김옥빈을 합류시켜 스

트라이커를 네 명이나 앞세우며 공격적으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선덕여왕’과 ‘뿌리 깊은 나무’의 사극 거장 김영현·박

상연 작가 콤비, ‘미생’, ‘나의 아저씨’ 등을 성공시킨 tvN

최고의 스타 감독 김원석 PD까지, 제작진의 위용도 화려

하다. 장대한 스펙터클을 창조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세

트장 건설에 투입된 비용만 120억 원에 달하고, 브루나

이 로케이션 촬영이 추가됐으며, 영화 ‘신과 함께’를 3편

가량 만들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CG) 분량이 사용됐다.

서사의 스케일도 한껏 키웠다. 한국드라마가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상고시대를 배경으로 수백 년의 시간에

걸친 영웅 신화를 창조했다. ‘아스달 연대기’는 정치, 멜

로, 미스터리,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엮어낸 판타지 블

록버스터였다.

그리고 6월 1일, 마침내 그 대서사시의 막이 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 7월 7일, 파트 2까지의 이야기

를 끝낸 ‘아스달 연대기’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방

영 내내 시청률은 반등 없이 평균 6%대에 머물렀다. 얼

핏 준수하게 보이나, 방영 전 기대감과 막대한 예산을 고

려하면 극히 저조한 결과다. ‘아스달 연대기’는 완성도를

위해 2달간의 휴지기를 가진 뒤, 9월 7일부터 파트 3에

해당하는 6부작을 마저 공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벌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모양새다. 당초 예고했던 시즌

2에 대한 기약도 없다. 극 중 도입부 내레이션을 담당한

무백(박해준)의 말을 빌려 묻고 싶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거대한 야심을 따라가지 못한 세계관

‘아스달 연대기’는 태고의 땅 ‘아스’에서 펼쳐지는 영웅들

의 대서사시다. 거대한 흑벽을 경계로 구분돼 있던 아스

의 중심지 ‘아스달’과 미지의 땅 ‘이아르크’가 아스달 연

맹의 정복 전쟁을 계기로 충돌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출

발한다.

아스달의 권력자 타곤(장동건)과 태알하(김옥빈), 그

리고 이들에게 침략당한 이아르크의 은섬(송중기)과 탄

야(김지원), 네 주인공은 아스달에서 운명적인 대결을 펼‘태양의 후예’는 한국드라마 최초로 국내와 중국에서 동시에 공개되면서

드라마의 글로벌화를 주도했다. ⓒtvN

'아스달 연대기'는 화려한 출연진과 큰 스케일로 방송 전부터

시청자들에게 큰 기대감을 안겼다. ⓒtvN

Page 2: ‘아스달 연대기’는 왜 ‘태양의 후예’의 후예가 되지 못했나40 41)05 53&/% 70- ówóx ...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 7월 7일, 파트 2까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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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TREND VOL.12

친다. 가상의 땅을 배경으로 영웅들의 권력 투쟁을 그린

판타지 대서사시라는 점에서, ‘아스달 연대기’는 방영 전

부터 ‘한국판 왕좌의 게임’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작품을 향한 기대감의 표시였던 이 수사는 방영

이후에는 냉소의 수사가 되고 만다.

논란은 방영 전 공개된 티저, 공식 홈페이지 설정 소

개 등에서부터 시작됐다. 공개되자마자 주요 캐릭터의

콘셉트 포스터와 의상, 배경, 오프닝 영상 등 곳곳에서

‘왕좌의 게임’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미

국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판타지 대서사극의 대명

사 같은 작품이기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런데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되면서 유사 작품의 목

록은 영화 ‘아바타’, ‘아포칼립토’, ‘브레이브 하트’ 등으로

점점 늘어났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어디서 본 듯한 이

미지’의 차원이 아니다. 유사 작품의 예를 보면 고대, 중

세, 미래 등 시간 배경이 다양한데, 이는 투박한 돌도끼

와 세밀하게 세공된 금속 장신구가 공존하는 ‘아스달 연

대기’ 속 시대불명 혼종 세계의 한계를 말해준다.

고증이 어려운 상고시대 판타지라 해도, 그 작품만의

논리적이고 일관된 세계관을 갖추어야 한다. ‘아스달 연

대기’는 시대상을 무분별하게 뒤섞음으로써 비주얼적인

면에서부터 논리적 세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이질

감만 도드라지는 CG 역시 영상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했다.

서사의 지평 확대 도전은 긍정적

더 근본적인 문제는 스토리텔링이다. ‘아스달 연대기’

가 추구하는 장르는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현실 세계와

다른 독자적인 세계관을 토대로 한 하이 판타지(High

Fantasy)다. 가령 ‘반지의 제왕’은 다양한 종족들의 역사

와 문화는 물론 언어까지 치밀하게 창조해 이 장르의 전

설로 칭송받는다.

‘아스달 연대기’ 역시 아스를 지배하는 여덟 신의 신화

에서부터 아스의 지도, 그리고 뇌안탈, 이그트, 사람 등과

같은 여러 종족의 존재까지 고유한 세계관을 설정하고

있다. 심지어 뇌안탈 언어도 만들었다. 이를 통해 한국드

라마 서사의 지평 확대에 도전한 것 자체는 긍정적인 일

이다.

하지만 이 세계관을 극적 기법이 아닌 내레이션과 대

사 위주로 풀어내면서 재미는 반감되고 전달력도 떨어

졌다. 1회는 아스가 어떤 땅인지, 뇌안탈과 사람이 어떤

종족인지 설명하는 데 소비했고, 2회는 세계관이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시 아라문 해슬라 신화, 푸

른 객성의 예언, 칸모르의 전설과 같은 낯선 설화를 설명

하는 데 바쳐졌다. 대하드라마도 아닌 18부작의 2부를

설정 소개에 할애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렇게 강조한 세계관은 독창적이지

도,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출생의 비밀로 상징되는 남다

른 운명을 지니고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부터가

다시 전형적인 영웅 판타지로 회귀한 서사다. 예언 속 영

웅 아라문 해슬라의 후예임이 암시된 은섬이 자신의 정

체도 모른 채 자라다가 와한족과 탄야를 구하기 위해 ‘자

신의 비밀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영웅 서사의 전

형적 여정을 따라간다.

부친 살해와 부족 파멸이라는 저주의 예언과 출생의

비밀 때문에 오랫동안 타지의 전장터를 떠돌다가 아스

달 연맹 최고의 영웅이 돼 귀환하는 타곤의 이야기도 마

찬가지다. 드라마가 기존 영웅 신화의 남성 중심적 질서

를 반복하는 동안, 여성 주인공 탄야와 태알하는 대부분

의 이야기 속에서 수동적인 운명에 갇혀 있다는 점도 진

부한 한계다. 12회가 지나도록 태알하는 아버지 미홀(조

성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탄야는 끝에 가서야

정령의 춤을 통해 자신을 향한 예언의 의미를 깨닫는다.

작가들의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아스달 연대기’에서 유일하게 흥미로운 설정이 있다면

‘꿈’에 관한 부분이다. 드라마 속에서 꿈은 모든 사람이

꿀 수 있는 것이 아닌 특별한 존재들만 만날 수 있는 ‘영

능’으로 인식된다. 뇌안탈 종족과 혼혈인 이그트는 꿈을

꿀 수 있었으나 사람 종족에서는 샤먼에게만 꿈꾸는 능

력이 주어졌다. ‘인류가 언제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을

까?’라는 궁금증을 드라마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설정

이다.

생각해보면 이 작품을 쓴 김영현 작가는 늘 꿈의 서사

를 펼쳐왔다.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최초의 여성 어의

라는 꿈을 향해 가는 여인의 성장기 ‘대장금’, 불길한 운

명을 거슬러 이상적인 군주로 성장한 한민족 최초의 여

왕 이야기 ‘선덕여왕’, 망국의 시간을 끝장내고 새 나라를

꿈꾼 여섯 인물의 건국기 ‘육룡이 나르샤’까지, 모두 꿈을

품은 자들의 이야기다.

‘아스달 연대기’는 이 ‘꿈의 테마’에 대한 시원적 상상

력을 보여주는, 최초로 꿈을 꾸기 시작하는 인류의 이야

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스달에서의 본격적인 권력

투쟁기가 펼쳐지면서 이 흥미로운 주제조차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

‘태양의 후예’ 이후 안방 블록버스터의 성공 계보를 이

어간 ‘미스터 션샤인’과 ‘킹덤’은 규모가 커진 이야기 안

에서도 작가들의 고유한 개성을 놓치지 않았다. 구한말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 션샤인’은 김은숙 작가의

장기인 로맨스를 중심으로, 제국주의적 탐욕에 저항하

는 영웅들의 활약,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희망 등 글로

벌 시청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선보였다.

‘킹덤’ 역시 서구적 소재인 좀비와 죽어서도 신분 질서

가 유지되는 조선 시대가 충돌하는 설정을 통해 김은희

작가 특유의 장르적 재미와 사회의식을 조화롭게 녹여

냈다. 두 작품과 ‘아스달 연대기’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

와 달리 후자에는 작가 특유의 개성이 사라지고 야심만

보인다는 데 있다.

한국드라마는 늘 작가의 예술이었다. 자본과 규모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대에도 작가의 창의성이 살아있

는 스토리텔링이 작품의 성패를 결정했다. ‘아스달 연대

기’의 실패는 블록버스터 시대에 넘쳐날 상업 기획물들

사이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가르는 본질적인 가치를 새

삼 환기시킨다.

‘아스달 연대기’는 의상과 배경 등 곳곳에서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았다. ⓒH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