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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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 2018.1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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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카이도문화탐사_본문...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2018 신화강좌 연계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

2018.1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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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신

화강

좌 연

계 홋

카이

도 문

화 탐

사 결

과 보

고서

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2. 매직로드의 잃어버린 고리, 아이누신화

Ⅱ. 홋카이도 주요방문지

1. 노보리베츠시(登別市)

1-1.지리유키에 긴노시즈쿠 기념관 (知里幸惠 銀のしずく 記念館)

2. 하코다테시(函館市)

2-1. 고료카쿠 (五稜郭)

2-2. 하코다테 북방민족자료관 (函館市北方民族資料館)

2-3. 하코다테시립박물관 (市立函館博物館)

3. 오타루시(小樽市)

3-1. 오타루문학관 (市立小樽文学館)

4. 삿포로시(札幌市)

4-1. 홋카이도립문학관 (北海道立文学館)

4-2. 홋카이도립박물관 (北海道立博物館)

4-3. 삿포로 피리카코탄_아이누문화교류센터

4-4. 홋카이도대학박물관 (北海道大学博物館)

Ⅲ. 마무리하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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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

10

18

19

27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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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3

44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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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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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일러두기

이 결과자료집은 경기문화재단의 2018년도 신화강좌와 연계한 <홋카이도 문화탐사 조사연구>를 위한

국외출장 결과보고서입니다.

이번 문화탐사는 <아이누의 신화와 노래>를 찾아가는 컨셉으로 구성되면서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의

환동해지역연구팀과 일본 홋카이도 도청 아이누정책과의 협력으로 진행되었고, 신화강좌 참여 인원으로 탐방단이

구성되었습니다.

문 형 순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팀)

김 석 희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HK연구교수)

배 규 성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HK연구교수)

김 윤 아 (신화강좌 강사, 이야기 공작소 파수 대표)

오 정 아 (신화강좌 참여자, 경기대학교 구비문학연구자)

박 민 량 (신화강좌 참여자, 인형극 기획연출자)

윤 옥 희 (신화강좌 참여자, 용인거주)

이 희 찬 (신화강좌 참여자, 수원거주)

참가자

(札幌市 ピㇼカコタン_アイヌ文化交流センタ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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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2. 매직로드의 잃어버린 고리, 아이누신화

Ⅱ. 홋카이도 주요방문지

1. 노보리베츠시(登別市)

1-1.지리유키에 긴노시즈쿠 기념관 (知里幸惠 銀のしずく 記念館)

2. 하코다테시(函館市)

2-1. 고료카쿠 (五稜郭)

2-2. 하코다테 북방민족자료관 (函館市北方民族資料館)

2-3. 하코다테시립박물관 (市立函館博物館)

3. 오타루시(小樽市)

3-1. 오타루문학관 (市立小樽文学館)

4. 삿포로시(札幌市)

4-1. 홋카이도립문학관 (北海道立文学館)

4-2. 홋카이도립박물관 (北海道立博物館)

4-3. 삿포로 피리카코탄_아이누문화교류센터

4-4. 홋카이도대학박물관 (北海道大学博物館)

Ⅲ.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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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일러두기

이 결과자료집은 경기문화재단의 2018년도 신화강좌와 연계한 <홋카이도 문화탐사 조사연구>를 위한

국외출장 결과보고서입니다.

이번 문화탐사는 <아이누의 신화와 노래>를 찾아가는 컨셉으로 구성되면서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의

환동해지역연구팀과 일본 홋카이도 도청 아이누정책과의 협력으로 진행되었고, 신화강좌 참여 인원으로 탐방단이

구성되었습니다.

문 형 순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팀)

김 석 희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HK연구교수)

배 규 성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HK연구교수)

김 윤 아 (신화강좌 강사, 이야기 공작소 파수 대표)

오 정 아 (신화강좌 참여자, 경기대학교 구비문학연구자)

박 민 량 (신화강좌 참여자, 인형극 기획연출자)

윤 옥 희 (신화강좌 참여자, 용인거주)

이 희 찬 (신화강좌 참여자, 수원거주)

참가자

(札幌市 ピㇼカコタン_アイヌ文化交流センタ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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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김석희(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HK연구교수)

그들을 어떻게 부를지 잠시 망설인다. 그들의 이름은 그들의 언어로 ‘사람, 아이누’이다. 아이누는

‘사람들의 땅, 아이누 모시리’와 함께 살았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함께’다. 땅‘에서’ 산다는

말은 땅 위에 서 있는 존재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땅을 배경으로 만들지만, 땅‘과 함께’ 산다는 말은 땅을

최소한 주연급 조연으로 포커싱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농사를 지었다거나 수렵을 했다거나,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이누는 그 땅과 삶을 나누었다. 그들은 제의를 위하여 동면하는 곰을 잡았을 때 그

곰이 임신 중이면 새끼를 낳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곰이 새끼를 낳고 나면 어미 곰을 바쳐 제의를 행하고,

어미 없는 새끼 곰에게 사람의 젖을 먹여 길렀다. 곰에게 사람의 젖을 먹여 기른다는 것은 큰 상징성이

있다. 그들은 자연으로부터 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먹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땅에서

산 것이 아니라 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18세기의 일본지도에는 아직 홋카이도가 없었다. 정식으로 홋카이도가 일본지도 속에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다. 일본의 내부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아이누는 서로 침해하지 않고, 오래도록

신화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 뿐이었다. 국가를 만들지도 않았고 문자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구전으로

계승되어 온 아이누 신화는 치시마 열도의 모든 섬마다, 그리고 모든 부족마다 조금씩 다르다. 우리가

제일 먼저 방문한 노보리베츠의 ‘지리유키에 긴노시즈쿠기념관’은 그 오랜 금문(禁文)의 전통을 깨고,

아이누의 신화와 노래를 최초로 기록한 아이누 소녀를 기리는 곳이었다. 홋카이도의 신화가 기록으로

남는 순간을 목격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홋카이도 도립문학관에서 만난 ‘도산코(道産子)’ 문학인들의

작품은 신화와 역사의 사이에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홋카이도의 시간은 신화와 역사의 시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홋카이도의 ‘역사’는 신화를

몰아내며 만들어졌다. 기록, 발전, 문명 등의 단어로 넘치는 ‘역사’는 신화의 무한성을 묻어버렸지만,

홋카이도에는 지금도 아이누 민족이 뿌리를 내리고 산다. 홋카이도는 이제 아이누의 ‘신화’와 전통을

보존하고 상품화하여 세계 속으로 나아가는 문화정책을 펴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다행한 일이지만, 그

역시 문명이라는 이름의 폭력성을 은폐하는 일이 될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역사의 이름으로

신화를 보존하고자 할 때, 그 신화가 가진 풍부함은 야만과 미개의 신비함 정도로 폄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는 세계사적 차원에서도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진 지역이다. 홋카이도 도립박물관 제1전시실

바닥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다. 홋카이도를 세계의 중심에 놓은 이 지도에 신선함을 느끼는 것은 19세기의

서방세계가 홋카이도를 향했던 역사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홋카이도 남부의 항구도시

하코다테는 일본 최초의 개항지였다. 하코다테의 개항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환동해지역의 지도를 완성하고자 했던 서구의 오랜 욕망의 결과였다. 홋카이도를 무대로 하여

서구문명사의 커다란 몇 갈래 흐름이 만난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 영국의 아시아 시장 개척, 미국의

서부개척의 연장선이 모두 홋카이도를 향했던 것이다. 18세기를 전후하여 서구열강의 에너지가

환동해지역에 집중되면서, 북방 경계지역에 위기의식을 느낀 에도막부는 마쓰마에 번(홋카이도)을

강화하였다. 일본 북방 경계지역의 중심이 된 하코다테는 아이누를 포섭하고 착취하는 거점이기도 했다.

미일화친조약(1854) 이후의 하코다테는 하코다테 전쟁(1868-1869)과 메이지유신(1868)을 거치면서

보다 철저한 식민지 정책과 동화정책을 학습하게 된다. 선주민이던 아이누는 일본인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정체성 사슬에서 내부식민지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하코다테의 위상과 아이누의 위상이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코다테는 일본이 서구의

제국주의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홋카이도라는 실험실을 관리하는 거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코다테는

전지구적 의미에서의 변경성과 그 변경 내부에서의 중심성을 동시에 지닌 공간이었다.

문명과 야만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자신은 문명 편에 서 있다고 믿는 사람은 신화의 진정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없다. 역사와 신화가 서로 간섭하며 현대사를 만들어나가는 상황을 우리는 때때로 목격한다.

신화의 자취를 따라 짜인 이번 일정이 참가자들에게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공간, 홋카이도를 발견하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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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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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김석희(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HK연구교수)

그들을 어떻게 부를지 잠시 망설인다. 그들의 이름은 그들의 언어로 ‘사람, 아이누’이다. 아이누는

‘사람들의 땅, 아이누 모시리’와 함께 살았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함께’다. 땅‘에서’ 산다는

말은 땅 위에 서 있는 존재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땅을 배경으로 만들지만, 땅‘과 함께’ 산다는 말은 땅을

최소한 주연급 조연으로 포커싱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농사를 지었다거나 수렵을 했다거나,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이누는 그 땅과 삶을 나누었다. 그들은 제의를 위하여 동면하는 곰을 잡았을 때 그

곰이 임신 중이면 새끼를 낳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곰이 새끼를 낳고 나면 어미 곰을 바쳐 제의를 행하고,

어미 없는 새끼 곰에게 사람의 젖을 먹여 길렀다. 곰에게 사람의 젖을 먹여 기른다는 것은 큰 상징성이

있다. 그들은 자연으로부터 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먹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땅에서

산 것이 아니라 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18세기의 일본지도에는 아직 홋카이도가 없었다. 정식으로 홋카이도가 일본지도 속에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다. 일본의 내부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아이누는 서로 침해하지 않고, 오래도록

신화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 뿐이었다. 국가를 만들지도 않았고 문자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구전으로

계승되어 온 아이누 신화는 치시마 열도의 모든 섬마다, 그리고 모든 부족마다 조금씩 다르다. 우리가

제일 먼저 방문한 노보리베츠의 ‘지리유키에 긴노시즈쿠기념관’은 그 오랜 금문(禁文)의 전통을 깨고,

아이누의 신화와 노래를 최초로 기록한 아이누 소녀를 기리는 곳이었다. 홋카이도의 신화가 기록으로

남는 순간을 목격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홋카이도 도립문학관에서 만난 ‘도산코(道産子)’ 문학인들의

작품은 신화와 역사의 사이에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홋카이도의 시간은 신화와 역사의 시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홋카이도의 ‘역사’는 신화를

몰아내며 만들어졌다. 기록, 발전, 문명 등의 단어로 넘치는 ‘역사’는 신화의 무한성을 묻어버렸지만,

홋카이도에는 지금도 아이누 민족이 뿌리를 내리고 산다. 홋카이도는 이제 아이누의 ‘신화’와 전통을

보존하고 상품화하여 세계 속으로 나아가는 문화정책을 펴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다행한 일이지만, 그

역시 문명이라는 이름의 폭력성을 은폐하는 일이 될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역사의 이름으로

신화를 보존하고자 할 때, 그 신화가 가진 풍부함은 야만과 미개의 신비함 정도로 폄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는 세계사적 차원에서도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진 지역이다. 홋카이도 도립박물관 제1전시실

바닥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다. 홋카이도를 세계의 중심에 놓은 이 지도에 신선함을 느끼는 것은 19세기의

서방세계가 홋카이도를 향했던 역사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홋카이도 남부의 항구도시

하코다테는 일본 최초의 개항지였다. 하코다테의 개항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환동해지역의 지도를 완성하고자 했던 서구의 오랜 욕망의 결과였다. 홋카이도를 무대로 하여

서구문명사의 커다란 몇 갈래 흐름이 만난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 영국의 아시아 시장 개척, 미국의

서부개척의 연장선이 모두 홋카이도를 향했던 것이다. 18세기를 전후하여 서구열강의 에너지가

환동해지역에 집중되면서, 북방 경계지역에 위기의식을 느낀 에도막부는 마쓰마에 번(홋카이도)을

강화하였다. 일본 북방 경계지역의 중심이 된 하코다테는 아이누를 포섭하고 착취하는 거점이기도 했다.

미일화친조약(1854) 이후의 하코다테는 하코다테 전쟁(1868-1869)과 메이지유신(1868)을 거치면서

보다 철저한 식민지 정책과 동화정책을 학습하게 된다. 선주민이던 아이누는 일본인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정체성 사슬에서 내부식민지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하코다테의 위상과 아이누의 위상이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코다테는 일본이 서구의

제국주의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홋카이도라는 실험실을 관리하는 거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코다테는

전지구적 의미에서의 변경성과 그 변경 내부에서의 중심성을 동시에 지닌 공간이었다.

문명과 야만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자신은 문명 편에 서 있다고 믿는 사람은 신화의 진정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없다. 역사와 신화가 서로 간섭하며 현대사를 만들어나가는 상황을 우리는 때때로 목격한다.

신화의 자취를 따라 짜인 이번 일정이 참가자들에게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공간, 홋카이도를 발견하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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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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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가며

Page 6: 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카이도문화탐사_본문...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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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로드의 잃어버린 고리, 아이누신화

김윤아(이야기공작소 파수 대표)

아이누를 흔히 일본 홋카이도의 원주민이라고 알고 있지만 아이누는 홋카이도뿐 아니라 쿠릴열도,

사할린섬, 캄차카 반도 일대를 영역에 살던 사람들이다. 아이누는 그들의 언어로 ‘사람’이란 뜻으로

캄차카 아이누, 가라후토(사할린) 아이누, 치시마(쿠릴 열도) 아이누, 도호쿠 아이누, 홋카이도 아이누로

분류하기도 한다. 대개 수렵과 어로가 그들의 삶의 양식이었고 근대에는 짐승가죽이나 연어와 같은

토산품들을 일본 본토와 교역을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13세기부터 등장하여 15세기부터 18세기에 아이누 정체성이 형성되고 융성했으며 에미시, 에비스,

에조 등으로 불리었다. 18세기 에도 막부시절 동화정책으로 많은 아이누들이 일본에 복속되었으나

인종적 차별을 면하지 못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지속적인 차별로 아이누들은 현재도 스스로

아이누임을 숨기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현재 일본 내 아이누는 2만3천~5천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인종적으로는 고아시아인종으로 현대 일본인과는 30퍼센트 정도의 유전자를 공유한다고 알려져

있다. 수렵과 어로가 주 생활양식이었으므로 아이누 신화와 전설 등에는 많은 자연과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이누 구비서시시를 유카르라고 부르는데 자연신에 대한 노래는 카무이 유카르,

아이누의 국조신에 대한 노래들을 오이나라고 부른다. 아이누랏쿠르와 영웅 포이야운페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인간들의 이야기를 아이누 유카르라고 구분한다.

아이누 연구자였던 시라시나 겐죠가 채집 수록한 아이누 신화를 살펴보면 문화신 아이누랏쿠르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아이누랏쿠르는 ‘인간 냄새가 나는 신’이라는 반신반인의 존재이다. 어머니는 불의

나무신(치키사니 카무이)이라고 불리는 당느릅나무이고 아버지는 우레신이다. 치키사니 카무이가 먼저

인간 세계에 내려왔고 그녀를 사랑한 최고의 하늘을 다스리는 형제신 중 동생인 포니우네 카무이가

머물다 갔다. 그 후 불의 나무신이 임신을 하여 낳은 아들이 아이누랏쿠르이다. 아이누랏쿠르는

오키쿠루미, 오키쿠루미 카무이 등으로 불리며 인간의 시조이다. 지역에 따라서 오키쿠루미는

아이누랏쿠르와 다른 인물로 형 사마이쿠르와 함께 등장한다. 형과 동생인데 형보다 동생인 오키쿠루미가

더 강한 존재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겐죠는 사마이쿠르는 아이누어로 사만(신탁)+

이에(말하다)+쿠르(신)로 무술을 행하는 신, 즉 샤만신이라고 해석한다. 형 사마이쿠루와 동생

오키쿠루미는 우리의 대별왕 소별왕 신화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지역에 따라 아이누랏쿠르와

오키쿠루미, 사마이랏쿠르가 삼형제라는 이야기도 전승된다. 이러한 신화로 보더라도 아이누들은 갈래가

다양한 종족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마이쿠르를 코탄쿠르카무이(국조신)과 동일한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서남부 신요의 주인공인 오키쿠르미는 오(옷자락)+키키(반짝반짝하다)+우르(가죽옷)+미(입다), 즉

가죽옷을 반짝반짝 입은 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오키쿠르미는 당느릅나무와 우레신의 자식이라 얼굴이

붉고 사마이쿠르는 느티나무와 우레신의 자식이라 얼굴이 희다고 설명하는 유카르도 있다.

사마이쿠르계가 홋카이도 동방인으로 오키쿠루미계가 서방인일 거라고 추측되는데 그런 신화의 차이는

아이누들이 하나의 집단세력으로 힘을 합하지 못하는 내분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기도 한다.

오키쿠르미는 전사 집단으로, 사마이쿠르는 제사장 집단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양한 유카르들은

아이누가 단일 종족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적 특징과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외에도 아이누 신화는 태양신, 바람신 등의 자연신들의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또 아이누는,

산이 곧 짐승신들 자체라 여겼다. 한 산의 주인이 한 마리의 거대한 짐승신이며 그 신들이 인간을 이롭게

하면 선신, 인간에 해롭게 하면 악신으로 구분했다. 아이누의 곰제의인 ‘이오만테’는 어린 곰을 마을에서

키우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곰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종교적 풍습이었다. 아이누 신앙에서 곰신은

모피외투를 입고 고기라는 선물을 인간계에 가져오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이누의 이오만테는 자신들이

곰신의 외투를 벗기고 신의 선물인 고기를 정중하게 받는 의례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곰신이 신의 나라에

돌아가면 대접을 잘 받았다고 말해줘서 다른 곰신들이 많이 인간세계에 놀러오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누족의 신부들이 새색시가 되어 시댁에 가면 일상적으로 하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마을이 기르는 새끼곰에게 젖을 먹이고 돌보는 일이었다. 신의 편물자루에서 사슴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화도 존재하고 아이누 시조에 관한 늑대신이야기도 전승된다. 일본의 옛 기록에 관녀 유와나이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흰 개의 정을 얻었고 그 사이에서 난 아이가 아이누의 시조라고 했다.

레타루 세타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세타는 개가 아니라 늑대였다고 한다. 근래까지 홋카이도 동부에서는

새끼 늑대를 개처럼 길러 사냥을 갈 때 함께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 마을의 수호신인

올빼미신이 있다. ‘에조 올빼미’는 이 올빼미 신의 부하이다. 아이누 신화를 읽어보면 올빼미는 여신이고

곰보다 상위의 신임을 알 수 있다. 밤에 우는 올빼미(쿤네 레쿠 카무이)를 따라가면 반드시 곰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바다의 신들 중에는 범고래신을 레푼 카무이라고 불렀으며 그 고래가 떠밀려 해안가에

올라오면 그것은 바다신의 하사품이라고 여겼다.

아이누 신화는 유라시아 신화와 아메리카 신화를 잇는 열쇠인 듯하다. 베링해협과 쿠릴열도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인류의 이동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신화가 아이누 신화라고

여겨진다. 이번 홋카이도 답사는 필자에게 매직로드가 유라시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전지구적 이동에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까지 전해지는 루트를 신화로도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뜻깊은 기회였다.

들어

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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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로드의 잃어버린 고리, 아이누신화

김윤아(이야기공작소 파수 대표)

아이누를 흔히 일본 홋카이도의 원주민이라고 알고 있지만 아이누는 홋카이도뿐 아니라 쿠릴열도,

사할린섬, 캄차카 반도 일대를 영역에 살던 사람들이다. 아이누는 그들의 언어로 ‘사람’이란 뜻으로

캄차카 아이누, 가라후토(사할린) 아이누, 치시마(쿠릴 열도) 아이누, 도호쿠 아이누, 홋카이도 아이누로

분류하기도 한다. 대개 수렵과 어로가 그들의 삶의 양식이었고 근대에는 짐승가죽이나 연어와 같은

토산품들을 일본 본토와 교역을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13세기부터 등장하여 15세기부터 18세기에 아이누 정체성이 형성되고 융성했으며 에미시, 에비스,

에조 등으로 불리었다. 18세기 에도 막부시절 동화정책으로 많은 아이누들이 일본에 복속되었으나

인종적 차별을 면하지 못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지속적인 차별로 아이누들은 현재도 스스로

아이누임을 숨기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현재 일본 내 아이누는 2만3천~5천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인종적으로는 고아시아인종으로 현대 일본인과는 30퍼센트 정도의 유전자를 공유한다고 알려져

있다. 수렵과 어로가 주 생활양식이었으므로 아이누 신화와 전설 등에는 많은 자연과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이누 구비서시시를 유카르라고 부르는데 자연신에 대한 노래는 카무이 유카르,

아이누의 국조신에 대한 노래들을 오이나라고 부른다. 아이누랏쿠르와 영웅 포이야운페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인간들의 이야기를 아이누 유카르라고 구분한다.

아이누 연구자였던 시라시나 겐죠가 채집 수록한 아이누 신화를 살펴보면 문화신 아이누랏쿠르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아이누랏쿠르는 ‘인간 냄새가 나는 신’이라는 반신반인의 존재이다. 어머니는 불의

나무신(치키사니 카무이)이라고 불리는 당느릅나무이고 아버지는 우레신이다. 치키사니 카무이가 먼저

인간 세계에 내려왔고 그녀를 사랑한 최고의 하늘을 다스리는 형제신 중 동생인 포니우네 카무이가

머물다 갔다. 그 후 불의 나무신이 임신을 하여 낳은 아들이 아이누랏쿠르이다. 아이누랏쿠르는

오키쿠루미, 오키쿠루미 카무이 등으로 불리며 인간의 시조이다. 지역에 따라서 오키쿠루미는

아이누랏쿠르와 다른 인물로 형 사마이쿠르와 함께 등장한다. 형과 동생인데 형보다 동생인 오키쿠루미가

더 강한 존재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겐죠는 사마이쿠르는 아이누어로 사만(신탁)+

이에(말하다)+쿠르(신)로 무술을 행하는 신, 즉 샤만신이라고 해석한다. 형 사마이쿠루와 동생

오키쿠루미는 우리의 대별왕 소별왕 신화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지역에 따라 아이누랏쿠르와

오키쿠루미, 사마이랏쿠르가 삼형제라는 이야기도 전승된다. 이러한 신화로 보더라도 아이누들은 갈래가

다양한 종족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마이쿠르를 코탄쿠르카무이(국조신)과 동일한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서남부 신요의 주인공인 오키쿠르미는 오(옷자락)+키키(반짝반짝하다)+우르(가죽옷)+미(입다), 즉

가죽옷을 반짝반짝 입은 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오키쿠르미는 당느릅나무와 우레신의 자식이라 얼굴이

붉고 사마이쿠르는 느티나무와 우레신의 자식이라 얼굴이 희다고 설명하는 유카르도 있다.

사마이쿠르계가 홋카이도 동방인으로 오키쿠루미계가 서방인일 거라고 추측되는데 그런 신화의 차이는

아이누들이 하나의 집단세력으로 힘을 합하지 못하는 내분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기도 한다.

오키쿠르미는 전사 집단으로, 사마이쿠르는 제사장 집단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양한 유카르들은

아이누가 단일 종족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적 특징과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외에도 아이누 신화는 태양신, 바람신 등의 자연신들의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또 아이누는,

산이 곧 짐승신들 자체라 여겼다. 한 산의 주인이 한 마리의 거대한 짐승신이며 그 신들이 인간을 이롭게

하면 선신, 인간에 해롭게 하면 악신으로 구분했다. 아이누의 곰제의인 ‘이오만테’는 어린 곰을 마을에서

키우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곰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종교적 풍습이었다. 아이누 신앙에서 곰신은

모피외투를 입고 고기라는 선물을 인간계에 가져오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이누의 이오만테는 자신들이

곰신의 외투를 벗기고 신의 선물인 고기를 정중하게 받는 의례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곰신이 신의 나라에

돌아가면 대접을 잘 받았다고 말해줘서 다른 곰신들이 많이 인간세계에 놀러오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누족의 신부들이 새색시가 되어 시댁에 가면 일상적으로 하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마을이 기르는 새끼곰에게 젖을 먹이고 돌보는 일이었다. 신의 편물자루에서 사슴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화도 존재하고 아이누 시조에 관한 늑대신이야기도 전승된다. 일본의 옛 기록에 관녀 유와나이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흰 개의 정을 얻었고 그 사이에서 난 아이가 아이누의 시조라고 했다.

레타루 세타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세타는 개가 아니라 늑대였다고 한다. 근래까지 홋카이도 동부에서는

새끼 늑대를 개처럼 길러 사냥을 갈 때 함께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 마을의 수호신인

올빼미신이 있다. ‘에조 올빼미’는 이 올빼미 신의 부하이다. 아이누 신화를 읽어보면 올빼미는 여신이고

곰보다 상위의 신임을 알 수 있다. 밤에 우는 올빼미(쿤네 레쿠 카무이)를 따라가면 반드시 곰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바다의 신들 중에는 범고래신을 레푼 카무이라고 불렀으며 그 고래가 떠밀려 해안가에

올라오면 그것은 바다신의 하사품이라고 여겼다.

아이누 신화는 유라시아 신화와 아메리카 신화를 잇는 열쇠인 듯하다. 베링해협과 쿠릴열도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인류의 이동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신화가 아이누 신화라고

여겨진다. 이번 홋카이도 답사는 필자에게 매직로드가 유라시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전지구적 이동에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까지 전해지는 루트를 신화로도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뜻깊은 기회였다.

들어

가며

2018 신

화강

좌 연

계 홋

카이

도 문

화 탐

사 결

과 보

고서

Page 8: 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카이도문화탐사_본문...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8

홋카이도 동남부 닛탄(日胆) 지역에 위치한 해안도시이며 이부리 종합 진흥국(胆振総合振興局)에 속해

있다. 노보리베츠는 아이누어로 ‘색이 짙은 강’을 뜻하는 ‘누푸르 펫’을 음차한 것으로, 바다 쪽은 평지이나

내륙으로 갈수록 지형이 험준해진다.

내륙에 위치한 산 중 하나인 히요리야마(日和山)가 활화산이기 때문에 주변에는 온천이 있으며,

일대가 시코쓰토야 국립공원(支笏洞爺国立公園)으로 지정되어 있다.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중 하나로, 다이이치타키모토칸(第一滝本館), 세키스이테이(石水亭),

카를르스 온천(カルルス温泉)등 다양한 온천점이 있으며 관광지로 유명한 만큼 관광객도 많다. 오유누마

(大湯沼), 지고쿠다니(地獄谷)등 천연 유황온천도 볼 수 있다. 또한 곰목장(クマ牧場)도 추천할 만한

관광지이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홋카이도

노보리베츠시(登別市)

(출처:https://namu.wiki/w/%EB%85%B8%EB%B3%B4%EB%A6%AC%EB%B2%A0%EC%B8%A0%EC%8B%9C)

홋카이도(北海道)

노보

리베

츠시

2018 신

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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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도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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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보

고서

오타루

삿포로

하코다테

노보리베츠

지리유키에 긴노시즈쿠 기념관 (www.ginnoshizuku.com)

방문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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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동남부 닛탄(日胆) 지역에 위치한 해안도시이며 이부리 종합 진흥국(胆振総合振興局)에 속해

있다. 노보리베츠는 아이누어로 ‘색이 짙은 강’을 뜻하는 ‘누푸르 펫’을 음차한 것으로, 바다 쪽은 평지이나

내륙으로 갈수록 지형이 험준해진다.

내륙에 위치한 산 중 하나인 히요리야마(日和山)가 활화산이기 때문에 주변에는 온천이 있으며,

일대가 시코쓰토야 국립공원(支笏洞爺国立公園)으로 지정되어 있다.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중 하나로, 다이이치타키모토칸(第一滝本館), 세키스이테이(石水亭),

카를르스 온천(カルルス温泉)등 다양한 온천점이 있으며 관광지로 유명한 만큼 관광객도 많다. 오유누마

(大湯沼), 지고쿠다니(地獄谷)등 천연 유황온천도 볼 수 있다. 또한 곰목장(クマ牧場)도 추천할 만한

관광지이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홋카이도

노보리베츠시(登別市)

(출처:https://namu.wiki/w/%EB%85%B8%EB%B3%B4%EB%A6%AC%EB%B2%A0%EC%B8%A0%EC%8B%9C)

홋카이도(北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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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

노보리베츠

지리유키에 긴노시즈쿠 기념관 (www.ginnoshizuku.com)

방문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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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세이노 요시노리’ (漬野良憲) 씨세요. 설명해주시려 오늘 일부러 오셨습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저와 메일을 주고받으셨던 ‘마쓰모토’씨라는 분이 계실 거예요.

중국 사람들, 대만에서 손님이 왔을 때 통역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렇게 서문을 중국어와 한국어로 번역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서문 프린트, 지도 리플렛 제공)

이 기념관의 이름이 된 ‘지리유키에’는 1903년에 6월에 태어났습니다. 저기 하얀 집이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이 근방은 지리유키에가 자랐던 곳, 이를테면 그 생가인거죠.

같은 한자를 '가네시로'로 읽을 수 있고 '간나리'라고도 읽고, 여러 가지로 읽을 수 있어요. 원래 일본 성은 없었을 텐데,

우리가 ‘김’을 ‘가네’로 바꾸어 창씨 개명했던 것처럼, 한자로 자기의 이름을 음차해서 일본어로 표기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영국인 선교사, 일본어로 존 바치에라는 분이 오셨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의 소개로 지리유키에의 어머니와 이모가 하코다테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되었답니다. 교육을 받게 된 거죠.

아이누인 전도사를 만들기 위한 미션 학교였던 것 같아요. 하코다테에 있는 그 미션 학교에서는 영어, 아이누어,

일본어를 다 가르쳤답니다. 홋카이도 전도에 있는 많은 아이누인들을 불러서 교육을 시킨 겁니다. 그런데 거기는 일본

정책과는 관계가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이누어를 사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모님이 전도사가 되어서 여기서 대략 70~80km 떨어진 곳에서 활동을 하시다가, ‘아사히가와’라는 곳으로 가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아사히가와’에서 할머니와 이모가 같이 살았던 거예요. 지리유키에를 데려갔는데, 이모가 장애인이었대요.

그래서 지리유키에가 어렸지만 세탁도 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모나시노우코’ (할머니)가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꾼이었어요. 그래서 긴다이치라는 동경대 교수가

소문을 듣고 찾아오게 됩니다. 긴다이치가 그때는 학자가 아니라 학생 신분이었고, 지도교수로부터 들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있었답니다. 일본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근린 국가들, 민족들의 언어를 배워야겠다고 해서 어떤 사람은

만주어, 어떤 사람은 아이누어, 중국어, 한국어, 이렇게 연구하는 사람들이 생겼답니다. 그때 동북지방 출신이었던

긴다이치는 아이누 사람들이 그쪽에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인연이 되어서 나는 아이누어를 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찾아가게 된 겁니다.

긴다이치가 떠날 때 할머니가 지리유키에가 쓴 작문 문장을 보여주면서, “이 아이는 굉장히 우수한 아이이고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보고 긴다이치가 “굉장히 유감스럽군요.”라고 했답니다. 이 아이의 세대는 아이누어를

쓰지 않는 세대이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아이의 능력으로 아이누어가 전수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거지요.

긴다이치가 굉장히 아쉬워하니까, 할머니는 “이 아이는 내가 아이누어밖에 못하기 때문에 나와 살면서 아이누어로

대화했다. 그리고 일본어도 할 줄 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지리유키에 가족도입니다. 네 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었어요. ‘다카오’라는 동생이 있었고, 두 번째 남동생이

‘마시호’라고 있었습니다. 남동생이 태어나던 해, 그러니까 유키에가 4살이던 때, 할머니이신 ‘모나시노우코’라는 분에게

갑니다. 이분은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하던 아이누 인이셨어요. 언어학자 ‘긴다이치’ 교수에 의하면 이 할머니가 굉장히

유명한 ‘가타리테’(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뜻)셨대요. 아이누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역사나 문학(이야기)을 구전으로

전승했는데, 이를 전문적으로 외우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런 사람을 ‘가타리테’, ‘가타리베’라고 부르는데, 할머니가

그런 분이셨대요.

지리유키에 어머니 세대까지는 아이누어 이름과 일본어 이름이 같이 공존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나미’(‘파도’라는 뜻)라는 ‘노카완테’라는 아이누 이름도 있었어요. 그리고 이분은 ‘칸나리 이베카’라는 이름을 가진

이모입니다. ‘마쓰’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어요. 아이누어, 일본어 양쪽 이름이 있는 거지요.

메이지유신이 되면서 일본이 홋카이도를 내부 식민지화하게 됩니다. 지금 ‘와진’이라고 설명하셨는데, 그때는 ‘화인

(和人)’이라고 썼습니다. ‘와진’이라는 일본인들이 내지(일본본토)로부터 이쪽으로 많이 오게 됩니다. ‘동화정책’이라고,

우리 귀에도 많이 익은 말이죠. 일본의 동화정책으로 아이누인들은 아이누어나 아이누 전통을 다 버리고 일본인이

되라는 강요를 받게 됩니다.

지리유키에 시대에는 학교에서 공용어로 일본어를 썼기 때문에 거의 아이누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누어를

생활어로 사용했던 시대는 바로 그 윗세대인 어머니 세대까지였습니다. 이것은 오키나와도, 타이완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지리유키에 긴노시즈쿠 기념관 (知里幸惠 銀のしずく 記念館) 2018년 10월 15일 15시

지리

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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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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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자원활동가 ‘세이노 요시노리’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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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 요시노리’ (漬野良憲) 씨세요. 설명해주시려 오늘 일부러 오셨습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저와 메일을 주고받으셨던 ‘마쓰모토’씨라는 분이 계실 거예요.

중국 사람들, 대만에서 손님이 왔을 때 통역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렇게 서문을 중국어와 한국어로 번역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서문 프린트, 지도 리플렛 제공)

이 기념관의 이름이 된 ‘지리유키에’는 1903년에 6월에 태어났습니다. 저기 하얀 집이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이 근방은 지리유키에가 자랐던 곳, 이를테면 그 생가인거죠.

같은 한자를 '가네시로'로 읽을 수 있고 '간나리'라고도 읽고, 여러 가지로 읽을 수 있어요. 원래 일본 성은 없었을 텐데,

우리가 ‘김’을 ‘가네’로 바꾸어 창씨 개명했던 것처럼, 한자로 자기의 이름을 음차해서 일본어로 표기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영국인 선교사, 일본어로 존 바치에라는 분이 오셨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의 소개로 지리유키에의 어머니와 이모가 하코다테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되었답니다. 교육을 받게 된 거죠.

아이누인 전도사를 만들기 위한 미션 학교였던 것 같아요. 하코다테에 있는 그 미션 학교에서는 영어, 아이누어,

일본어를 다 가르쳤답니다. 홋카이도 전도에 있는 많은 아이누인들을 불러서 교육을 시킨 겁니다. 그런데 거기는 일본

정책과는 관계가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이누어를 사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모님이 전도사가 되어서 여기서 대략 70~80km 떨어진 곳에서 활동을 하시다가, ‘아사히가와’라는 곳으로 가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아사히가와’에서 할머니와 이모가 같이 살았던 거예요. 지리유키에를 데려갔는데, 이모가 장애인이었대요.

그래서 지리유키에가 어렸지만 세탁도 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모나시노우코’ (할머니)가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꾼이었어요. 그래서 긴다이치라는 동경대 교수가

소문을 듣고 찾아오게 됩니다. 긴다이치가 그때는 학자가 아니라 학생 신분이었고, 지도교수로부터 들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있었답니다. 일본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근린 국가들, 민족들의 언어를 배워야겠다고 해서 어떤 사람은

만주어, 어떤 사람은 아이누어, 중국어, 한국어, 이렇게 연구하는 사람들이 생겼답니다. 그때 동북지방 출신이었던

긴다이치는 아이누 사람들이 그쪽에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인연이 되어서 나는 아이누어를 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찾아가게 된 겁니다.

긴다이치가 떠날 때 할머니가 지리유키에가 쓴 작문 문장을 보여주면서, “이 아이는 굉장히 우수한 아이이고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보고 긴다이치가 “굉장히 유감스럽군요.”라고 했답니다. 이 아이의 세대는 아이누어를

쓰지 않는 세대이기 때문에 이렇게 훌륭한 아이의 능력으로 아이누어가 전수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거지요.

긴다이치가 굉장히 아쉬워하니까, 할머니는 “이 아이는 내가 아이누어밖에 못하기 때문에 나와 살면서 아이누어로

대화했다. 그리고 일본어도 할 줄 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지리유키에 가족도입니다. 네 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었어요. ‘다카오’라는 동생이 있었고, 두 번째 남동생이

‘마시호’라고 있었습니다. 남동생이 태어나던 해, 그러니까 유키에가 4살이던 때, 할머니이신 ‘모나시노우코’라는 분에게

갑니다. 이분은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하던 아이누 인이셨어요. 언어학자 ‘긴다이치’ 교수에 의하면 이 할머니가 굉장히

유명한 ‘가타리테’(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뜻)셨대요. 아이누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역사나 문학(이야기)을 구전으로

전승했는데, 이를 전문적으로 외우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런 사람을 ‘가타리테’, ‘가타리베’라고 부르는데, 할머니가

그런 분이셨대요.

지리유키에 어머니 세대까지는 아이누어 이름과 일본어 이름이 같이 공존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나미’(‘파도’라는 뜻)라는 ‘노카완테’라는 아이누 이름도 있었어요. 그리고 이분은 ‘칸나리 이베카’라는 이름을 가진

이모입니다. ‘마쓰’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어요. 아이누어, 일본어 양쪽 이름이 있는 거지요.

메이지유신이 되면서 일본이 홋카이도를 내부 식민지화하게 됩니다. 지금 ‘와진’이라고 설명하셨는데, 그때는 ‘화인

(和人)’이라고 썼습니다. ‘와진’이라는 일본인들이 내지(일본본토)로부터 이쪽으로 많이 오게 됩니다. ‘동화정책’이라고,

우리 귀에도 많이 익은 말이죠. 일본의 동화정책으로 아이누인들은 아이누어나 아이누 전통을 다 버리고 일본인이

되라는 강요를 받게 됩니다.

지리유키에 시대에는 학교에서 공용어로 일본어를 썼기 때문에 거의 아이누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누어를

생활어로 사용했던 시대는 바로 그 윗세대인 어머니 세대까지였습니다. 이것은 오키나와도, 타이완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지리유키에 긴노시즈쿠 기념관 (知里幸惠 銀のしずく 記念館) 2018년 10월 15일 15시

지리

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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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2018 신

화강

좌 연

계 홋

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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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자원활동가 ‘세이노 요시노리’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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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유키에가 15살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인데요, 긴다이치가 그러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아이누어의 노래와 이야기를 다

적어서 보내달라고, 로마자로 표기하고 일본어로 번역해서 보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유키에가 그것을 써서 보냈는데

긴다이치가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너무나 문장이 훌륭해서, 그래서 이것을 책으로 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이것은 긴다이치의 소장품입니다. 이것이 지리유키에의 친필이래요. 글씨가 정말 예쁘네요.

1922년에 지리유키에는 도쿄에 가게 됩니다. 도쿄에 가기 전에 그녀는 약혼을 했습니다. 약혼자는 도쿄에 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결혼해서 생활하자고 말했지만, 그때 유키에는 심장도 좀 좋지 않아서 약간 불안했던 모양이죠? 그래서

도쿄로 가서, 일단 지금이 아니면 책을 다 쓸 수가 없으니까, 책을 다 쓰고 출판 준비가 끝나면 홋카이도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납니다.

지리유키에는 생일이 6월인데, 5월에 가서 9월에 심장병으로 죽게 됩니다. 그러니까 19살하고 3개월을 산거지요.

유키에가 죽었지만, 죽기 전에 모든 원고는 다 끝냈답니다. 그때는 하나하나 글자를 뽑아서 식자하던 시대였으니까

유키에가 죽고 이듬해가 되어서야 출판이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있는 이 책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일본어는 ‘김치’도 ‘기무치’로 발음하듯이 모든 발음에 모음을 꼭 붙입니다. 그때까지 일본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규칙은 항상 모음이 뒤에 붙는 형태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지리유키에가 아이누어를 로마자로

바꿀 때, 아무래도 아이누어는 자음으로 끝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긴다이치는 그러면 네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이것은 지금도 아이누어를 표기하는 샘플,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럼 아이누의 저 문신이 화장으로 한 것이 아니라 문신으로 한 건가요?) 이 문신은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로 하는

거래요. 대개는 결혼을 한 경우에 하는 표식인데, 이모는 결혼을 안 하셨지만 어쨌든 성인식을 치르신 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사진은 유키에가 15살 때의 모습이랍니다. 긴다이치를 만났을 때의 사진이래요. 사진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긴다이치가 찍어줬겠지요?

이것은 책으로 친다면 10페이지 정도 분량의 편지예요.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았기 때문에 부모님께 편지를 많이 쓴

모양입니다. 이렇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여기 처음 부분을 보면 ‘오랜만에 또 이렇게 긴 긴 편지를 씁니다.’ 라고

시작합니다. (하루 만에 다 썼을까요?) 하루에 다 쓴 것은 아니랍니다.

이 사진은 유키에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에요. 아버지는 말을 키우는 사람이었답니다. 여기에는 상당히

지식인 같은 모습으로 사진이 찍히기는 했습니다만,

이것은 유키에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붓글씨입니다. 여기에는 유키에가 학교에서 받은 증서, 상장들을

모아두었습니다.

재미있는 얘기인데요, 이 사진을 보시면 이모님이신데, 이모의 입에 검게 그려져 있는 것이 보이죠. 아이누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이렇게 색을 들였대요. 그런데 지리유키에는 그게 없지요. 일본이 동화 정책을 쓰면서 이런 전통적인 것을

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유키에에게는 없는 거예요. 이 한 장의 사진에 그런 동화정책과 세대의 갈림과 이런 것들이

다 섞여 있지요.

지리

유키

에 긴

노시

즈쿠

기념

2018 신

화강

좌 연

계 홋

카이

도 문

화 탐

사 결

과 보

고서

Page 13: 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카이도문화탐사_본문...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13

유키에가 15살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인데요, 긴다이치가 그러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아이누어의 노래와 이야기를 다

적어서 보내달라고, 로마자로 표기하고 일본어로 번역해서 보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유키에가 그것을 써서 보냈는데

긴다이치가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너무나 문장이 훌륭해서, 그래서 이것을 책으로 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이것은 긴다이치의 소장품입니다. 이것이 지리유키에의 친필이래요. 글씨가 정말 예쁘네요.

1922년에 지리유키에는 도쿄에 가게 됩니다. 도쿄에 가기 전에 그녀는 약혼을 했습니다. 약혼자는 도쿄에 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결혼해서 생활하자고 말했지만, 그때 유키에는 심장도 좀 좋지 않아서 약간 불안했던 모양이죠? 그래서

도쿄로 가서, 일단 지금이 아니면 책을 다 쓸 수가 없으니까, 책을 다 쓰고 출판 준비가 끝나면 홋카이도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납니다.

지리유키에는 생일이 6월인데, 5월에 가서 9월에 심장병으로 죽게 됩니다. 그러니까 19살하고 3개월을 산거지요.

유키에가 죽었지만, 죽기 전에 모든 원고는 다 끝냈답니다. 그때는 하나하나 글자를 뽑아서 식자하던 시대였으니까

유키에가 죽고 이듬해가 되어서야 출판이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있는 이 책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일본어는 ‘김치’도 ‘기무치’로 발음하듯이 모든 발음에 모음을 꼭 붙입니다. 그때까지 일본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규칙은 항상 모음이 뒤에 붙는 형태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지리유키에가 아이누어를 로마자로

바꿀 때, 아무래도 아이누어는 자음으로 끝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긴다이치는 그러면 네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이것은 지금도 아이누어를 표기하는 샘플,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럼 아이누의 저 문신이 화장으로 한 것이 아니라 문신으로 한 건가요?) 이 문신은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로 하는

거래요. 대개는 결혼을 한 경우에 하는 표식인데, 이모는 결혼을 안 하셨지만 어쨌든 성인식을 치르신 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사진은 유키에가 15살 때의 모습이랍니다. 긴다이치를 만났을 때의 사진이래요. 사진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긴다이치가 찍어줬겠지요?

이것은 책으로 친다면 10페이지 정도 분량의 편지예요.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았기 때문에 부모님께 편지를 많이 쓴

모양입니다. 이렇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여기 처음 부분을 보면 ‘오랜만에 또 이렇게 긴 긴 편지를 씁니다.’ 라고

시작합니다. (하루 만에 다 썼을까요?) 하루에 다 쓴 것은 아니랍니다.

이 사진은 유키에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에요. 아버지는 말을 키우는 사람이었답니다. 여기에는 상당히

지식인 같은 모습으로 사진이 찍히기는 했습니다만,

이것은 유키에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붓글씨입니다. 여기에는 유키에가 학교에서 받은 증서, 상장들을

모아두었습니다.

재미있는 얘기인데요, 이 사진을 보시면 이모님이신데, 이모의 입에 검게 그려져 있는 것이 보이죠. 아이누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이렇게 색을 들였대요. 그런데 지리유키에는 그게 없지요. 일본이 동화 정책을 쓰면서 이런 전통적인 것을

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유키에에게는 없는 거예요. 이 한 장의 사진에 그런 동화정책과 세대의 갈림과 이런 것들이

다 섞여 있지요.

지리

유키

에 긴

노시

즈쿠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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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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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엄마, 그리고 이모님, 이 사진에는 문신을 안 한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도 흐려졌을 거라고, 엄마도 문신을

했었다고 합니다. 사진에 따라 좀 진하게 보이기도 하고 흐리게도 보이는 것 같아요.

이 사진은 남동생 둘의 모습입니다. 둘 다 공부를 잘 했나 봐요. 이 남동생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이분은

대학원까지 가서 공부를 했어요.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나중에 누나가 죽은 다음에 언어학으로 전공을 바꿉니다. 왜

그랬을까 하고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누나가 죽었으니까 누가 아이누어를 이어갈까, 아이누어 연구를 이어갈 사람이

없으니 나라도 해야겠다, 이런 취지로 전공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정보에는 아이누어 언어학자 동생이 여동생이라고 나오는데, 여동생이 아니고 남동생이었네요.) 마키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어릴 때 일찍 죽었어요. 또 그 뒤에 마시호와 마키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배다른 동생들이었대요. (그러니까

여동생은 없었던 거네요. 그러면 그 언어학자 동생이 이 사람이란 건가요?) 대학원까지 간 ‘마시호’라는 동생이

동경대학까지 가서 공부를 했으니 굉장히 우수한 형제들이었던 거죠. 나중에 홋카이도 대학의 교수가 된답니다.

이분은 이모님이시지요? 유키에가 1922년에 죽었는데, 그때 유키에의 무덤은 긴다이치 집에 있었답니다. 이모가 몸에

장애가 있었지요. 그래서 목발을 짚고 유키에의 7주기 때 도쿄에 갑니다. 긴다이치가 이모에게 계속해서 알고 있는 것을

써달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나는 쓰지 않겠다, 내 머릿속에 다 있기 때문에 쓰지 않겠다고 했었대요. 그런데 조카의

7주기로 동경에 가서 몸도 불편하고 하니 할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시기에 긴다이치가 부탁한대로 적어서 기록한

자료를 남겼다고 합니다.

긴다이치가 그 노트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답니다. 문장이 너무 훌륭했대요. 집안사람들이 모두 다 문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던 거지요. 돌아가서도 계속 써달라고 말했더니 20년에 걸쳐서 써서 보냈대요. 72권의 노트를 긴다이치에게

보냈답니다. 마쓰 씨가 많은 것을 써주어서 긴다이치 씨가 그것을 모아서 9권의 책을 냈는데, 그 가운데 7권의 책이 이모

‘마쓰’씨가 쓴 것을 기초로 해서 펴낸 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출판되지 않은 노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답니다. 일

년에 3권 정도씩 지금도 계속 출판이 되고 있다 합니다. 지금 예상하기로는 80~90권 정도의 그런 노트를 쓰지

않았을까가, 그렇게 예상한답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거지요.

어머니와 이모가 학교에 다니셨다고 했지요? 이 두 분이신 것 같아요. 얼굴이 닮았네요. 이 사람이 존 바치에... 성공회

교회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분이 마쓰상.. 긴다이치가 수록했던 그 9권의 책이 이거랍니다. <아이누 유카라>..

(이분들은 엄마와 할머니..? 이분들은.. 누구인지 모른답니다.)

여기 이 사진은 만년의 긴다이치.. 이쪽이 마쯔, 이쪽이 엄마 나미. 1956년에 마쯔 씨가 훈장을 받게 됩니다. 어머니

나미 씨도 같은 훈장을 받았어요. 그 훈장들이 여기 있어요. 노보리베츠가 이 시기에는 호로베츠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대요. 나라에서 상을 줬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이듬해 마을에서 또 상을 줬답니다. 그 상이 여기

오른쪽에 있습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몰랐던 사람이 노벨상을 받았다든가 하면 갑자기 훈장을

주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한 거라고 하네요.

이분이 여기 오신지 1년 정도 되는데, 왔을 때 어린 유키에의 성적표라든가 이런 것들이 다 남아 있는 게

신기하셨답니다. 그런데 여기를 보니까, 아버지가 목장을 하셨던 분이었잖아요. 목장의 사진이 있고 말의 혈통 증명서,

거래 내역서 이런 것들이 다 남아있대요. 성격으로 보건대 아마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모아두시는 그런 꼼꼼한

분이셨던 것 같아요.

2층이 있는데 보시겠습니까? 큰 동생의 둘째 딸이시래요. 이분이 전 관장님이셨답니다. 2016년도에 돌아가셨다는

그분입니다. 이전에 우리가 동영상으로 봤을 때, 이분이 나오셨지요. 살아 계시다면 지금 60세 정도 되셨을텐데, 일찍

돌아가셨네요.

지리

유키

에 긴

노시

즈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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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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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엄마, 그리고 이모님, 이 사진에는 문신을 안 한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도 흐려졌을 거라고, 엄마도 문신을

했었다고 합니다. 사진에 따라 좀 진하게 보이기도 하고 흐리게도 보이는 것 같아요.

이 사진은 남동생 둘의 모습입니다. 둘 다 공부를 잘 했나 봐요. 이 남동생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이분은

대학원까지 가서 공부를 했어요.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나중에 누나가 죽은 다음에 언어학으로 전공을 바꿉니다. 왜

그랬을까 하고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누나가 죽었으니까 누가 아이누어를 이어갈까, 아이누어 연구를 이어갈 사람이

없으니 나라도 해야겠다, 이런 취지로 전공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정보에는 아이누어 언어학자 동생이 여동생이라고 나오는데, 여동생이 아니고 남동생이었네요.) 마키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어릴 때 일찍 죽었어요. 또 그 뒤에 마시호와 마키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배다른 동생들이었대요. (그러니까

여동생은 없었던 거네요. 그러면 그 언어학자 동생이 이 사람이란 건가요?) 대학원까지 간 ‘마시호’라는 동생이

동경대학까지 가서 공부를 했으니 굉장히 우수한 형제들이었던 거죠. 나중에 홋카이도 대학의 교수가 된답니다.

이분은 이모님이시지요? 유키에가 1922년에 죽었는데, 그때 유키에의 무덤은 긴다이치 집에 있었답니다. 이모가 몸에

장애가 있었지요. 그래서 목발을 짚고 유키에의 7주기 때 도쿄에 갑니다. 긴다이치가 이모에게 계속해서 알고 있는 것을

써달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나는 쓰지 않겠다, 내 머릿속에 다 있기 때문에 쓰지 않겠다고 했었대요. 그런데 조카의

7주기로 동경에 가서 몸도 불편하고 하니 할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시기에 긴다이치가 부탁한대로 적어서 기록한

자료를 남겼다고 합니다.

긴다이치가 그 노트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답니다. 문장이 너무 훌륭했대요. 집안사람들이 모두 다 문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던 거지요. 돌아가서도 계속 써달라고 말했더니 20년에 걸쳐서 써서 보냈대요. 72권의 노트를 긴다이치에게

보냈답니다. 마쓰 씨가 많은 것을 써주어서 긴다이치 씨가 그것을 모아서 9권의 책을 냈는데, 그 가운데 7권의 책이 이모

‘마쓰’씨가 쓴 것을 기초로 해서 펴낸 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출판되지 않은 노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답니다. 일

년에 3권 정도씩 지금도 계속 출판이 되고 있다 합니다. 지금 예상하기로는 80~90권 정도의 그런 노트를 쓰지

않았을까가, 그렇게 예상한답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거지요.

어머니와 이모가 학교에 다니셨다고 했지요? 이 두 분이신 것 같아요. 얼굴이 닮았네요. 이 사람이 존 바치에... 성공회

교회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분이 마쓰상.. 긴다이치가 수록했던 그 9권의 책이 이거랍니다. <아이누 유카라>..

(이분들은 엄마와 할머니..? 이분들은.. 누구인지 모른답니다.)

여기 이 사진은 만년의 긴다이치.. 이쪽이 마쯔, 이쪽이 엄마 나미. 1956년에 마쯔 씨가 훈장을 받게 됩니다. 어머니

나미 씨도 같은 훈장을 받았어요. 그 훈장들이 여기 있어요. 노보리베츠가 이 시기에는 호로베츠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대요. 나라에서 상을 줬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이듬해 마을에서 또 상을 줬답니다. 그 상이 여기

오른쪽에 있습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몰랐던 사람이 노벨상을 받았다든가 하면 갑자기 훈장을

주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한 거라고 하네요.

이분이 여기 오신지 1년 정도 되는데, 왔을 때 어린 유키에의 성적표라든가 이런 것들이 다 남아 있는 게

신기하셨답니다. 그런데 여기를 보니까, 아버지가 목장을 하셨던 분이었잖아요. 목장의 사진이 있고 말의 혈통 증명서,

거래 내역서 이런 것들이 다 남아있대요. 성격으로 보건대 아마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모아두시는 그런 꼼꼼한

분이셨던 것 같아요.

2층이 있는데 보시겠습니까? 큰 동생의 둘째 딸이시래요. 이분이 전 관장님이셨답니다. 2016년도에 돌아가셨다는

그분입니다. 이전에 우리가 동영상으로 봤을 때, 이분이 나오셨지요. 살아 계시다면 지금 60세 정도 되셨을텐데, 일찍

돌아가셨네요.

지리

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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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시

즈쿠

기념

2018 신

화강

좌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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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쇼 씨가 동경제대를 졸업할 때 신문에 났던 모습입니다. (굉장히 지적이지 않아요? ^^) 아사히 신문사에서 상을

받았어요. 그때의 사진이랍니다. 마쇼가 죽기 직전에 긴다이치와 찍은 사진입니다. 좀 아파보이네요. 머리는

흩어져있고.. 긴다이치가 마쇼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니까, 마쑈가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서 “사실은 내가 마쇼를

나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슬프다” 그런 얘기를 했답니다.

(도슨트 ‘세이노 요시노리’씨 소개)

원래 노보리베츠 도서관에서 근무하셨던 분이세요. 1945년에 노보리베츠 온천에서 태어나셨답니다. 초등학교는

여기서 다니시고 중·고등학교는 미야기 현으로 가서 다니셨대요. 도쿄 대학 말고 도쿄에 있는 대학을 다니셨다고

하네요. 형이 영업을 하셔서 조금 돕다가 도서관에 취직을 하셨고, 35년간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을 하셨답니다.

(그럼 여기에서 근무를 하시는 건가요?) 주 1회 일하신다고... 여기 계신 분들은 관장을 비롯해서 모두 봉사하는

분들이시랍니다. 교통비 정도만 받고 급여도 받지 않고 일하시는 분들이세요. (교통비는 어디서 나오는지요.) 전임으로

일하시는 분은 한 분도 안 계시고, 요일별로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돌아가면서 하는 시스템이랍니다. 전국에

‘도모노카이(友の会)’라는 후원회가 있답니다. 전국의 후원회에서 조금씩 보내준답니다. 거기서 교통비 정도를

지급받으시며 일을 하고 계시답니다.

(선생님의 정확한 성함이..) ‘세이노 요시노리’ 상입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지리유키에가 약혼자와 결혼하지 못했는데.. 사랑의 편지를 쓴 것이 여기 어디에 있는지요?) 그거는

잘 모르겠습니다. 없는 것 같습니다. 유키에가 도쿄에 있을 때 그해 날씨가 굉장히 더웠대요. 지리유키에가 홋카이도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긴다이치 씨가 유키에가 아프니까 의사를 소개시켜 줬답니다. 그런데 의사한테 받은 진단서를 보면

‘결혼 불가’라고 써 있답니다. 그 약혼자와 결혼을 빨리 못한 이유는, 그 약혼자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굉장히

반대하셨대요. 지리유키에가 몸이 약했기 때문에 농가에서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아니라고, 상대방 남자에 대한 반대는

아니었답니다. 그 약혼자는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여쭤봤는데, 별다른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몇 년 뒤에

다른 여성이랑 결혼을 하셔서,

(여기 이런 문양들.. 만화책을 보면 맨 앞에 부엉이가 있고, 아이누 신화에도 부엉이가 등장하는데, 지리유키에 신요집

안에도 부엉이가 등장하는지 궁금합니다.) 네 나와요. 신화에 나옵니다. (이 동네에 특별한 부엉이가 있나요?)

홋카이도에만 있는 부엉이가 있어요. 그 부엉이는 거의 천연기념물 수준인 것 같은데, 숲 속에 깊이 들어가면 볼 수

있어요. 옛날에는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날개가 거의 2m 정도 된답니다. (굉장히 크네요.) 이분도 동물원에서나

봤답니다.

(여기 포스터를 보니까.. 아이누어를 여기서 가르치나요?) 여기서는 가르치지 않는답니다. 대학이나 아이누 센터

등에서 가르치는 것 같아요. 그럼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아래로 내려가시지요. 아이누 전통차를 대접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지리

유키

에 긴

노시

즈쿠

기념

2018 신

화강

좌 연

계 홋

카이

도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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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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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쇼 씨가 동경제대를 졸업할 때 신문에 났던 모습입니다. (굉장히 지적이지 않아요? ^^) 아사히 신문사에서 상을

받았어요. 그때의 사진이랍니다. 마쇼가 죽기 직전에 긴다이치와 찍은 사진입니다. 좀 아파보이네요. 머리는

흩어져있고.. 긴다이치가 마쇼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니까, 마쑈가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서 “사실은 내가 마쇼를

나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슬프다” 그런 얘기를 했답니다.

(도슨트 ‘세이노 요시노리’씨 소개)

원래 노보리베츠 도서관에서 근무하셨던 분이세요. 1945년에 노보리베츠 온천에서 태어나셨답니다. 초등학교는

여기서 다니시고 중·고등학교는 미야기 현으로 가서 다니셨대요. 도쿄 대학 말고 도쿄에 있는 대학을 다니셨다고

하네요. 형이 영업을 하셔서 조금 돕다가 도서관에 취직을 하셨고, 35년간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을 하셨답니다.

(그럼 여기에서 근무를 하시는 건가요?) 주 1회 일하신다고... 여기 계신 분들은 관장을 비롯해서 모두 봉사하는

분들이시랍니다. 교통비 정도만 받고 급여도 받지 않고 일하시는 분들이세요. (교통비는 어디서 나오는지요.) 전임으로

일하시는 분은 한 분도 안 계시고, 요일별로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돌아가면서 하는 시스템이랍니다. 전국에

‘도모노카이(友の会)’라는 후원회가 있답니다. 전국의 후원회에서 조금씩 보내준답니다. 거기서 교통비 정도를

지급받으시며 일을 하고 계시답니다.

(선생님의 정확한 성함이..) ‘세이노 요시노리’ 상입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지리유키에가 약혼자와 결혼하지 못했는데.. 사랑의 편지를 쓴 것이 여기 어디에 있는지요?) 그거는

잘 모르겠습니다. 없는 것 같습니다. 유키에가 도쿄에 있을 때 그해 날씨가 굉장히 더웠대요. 지리유키에가 홋카이도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긴다이치 씨가 유키에가 아프니까 의사를 소개시켜 줬답니다. 그런데 의사한테 받은 진단서를 보면

‘결혼 불가’라고 써 있답니다. 그 약혼자와 결혼을 빨리 못한 이유는, 그 약혼자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굉장히

반대하셨대요. 지리유키에가 몸이 약했기 때문에 농가에서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아니라고, 상대방 남자에 대한 반대는

아니었답니다. 그 약혼자는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여쭤봤는데, 별다른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몇 년 뒤에

다른 여성이랑 결혼을 하셔서,

(여기 이런 문양들.. 만화책을 보면 맨 앞에 부엉이가 있고, 아이누 신화에도 부엉이가 등장하는데, 지리유키에 신요집

안에도 부엉이가 등장하는지 궁금합니다.) 네 나와요. 신화에 나옵니다. (이 동네에 특별한 부엉이가 있나요?)

홋카이도에만 있는 부엉이가 있어요. 그 부엉이는 거의 천연기념물 수준인 것 같은데, 숲 속에 깊이 들어가면 볼 수

있어요. 옛날에는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날개가 거의 2m 정도 된답니다. (굉장히 크네요.) 이분도 동물원에서나

봤답니다.

(여기 포스터를 보니까.. 아이누어를 여기서 가르치나요?) 여기서는 가르치지 않는답니다. 대학이나 아이누 센터

등에서 가르치는 것 같아요. 그럼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아래로 내려가시지요. 아이누 전통차를 대접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지리

유키

에 긴

노시

즈쿠

기념

2018 신

화강

좌 연

계 홋

카이

도 문

화 탐

사 결

과 보

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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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센터장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설명해주시려고 이렇게 나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답니다. (탐방단 한 분씩 소개) 표

받으셨는지요? 아, 저기 오시네요. 신발을 벗고 올라가 주세요.

신발은 여기 비닐 주머니에 넣으시면 됩니다. 한국어 리플렛입니다. 한국에서 많이들 오시기 때문에 한국어로도

리플렛을 만들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건물에서 여러분이 서계신 이곳은 현관입니다. 들어오실 때 이 윗부분을 보시면, 일본의 모든 건물에는

가문(집안)의 문양이 현관 위에 붙어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아시지요? 이것은 도쿠가와 가문의 문양입니다.

도쿠가와는 아시다시피 에도 시대를 통치하던 가문이니까 이 문양은 에도시대의 건물이라는 것을 뜻하는 거죠. 당시는

신분 계급이 강한 사회였지요. 그때는 여기의 장(長)인 관리 ‘부교(奉行)’가 오거나 외국에서 영사(領事)가 오거나, 그럴

때만 사용하던 현관입니다. 여러분들도 영사가 된 기분으로 들어오시면 좋겠습니다.

고료카쿠(五稜郭) 2018년 10월 16일(화) 11시

하코다테는 추운 홋카이도의 남단부에 위치하여, 비교적 온난한 기후 풍토와 윤택한 자연환경으로

홋카이도 남부의 문화·경제의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원래 이곳은 아이누인들이 고기를 잡고 살던 한적한 어촌으로 아이누어로 이름은 우스케시(宇須岸)였다.

그러던 중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인 1454년, 츠가루(津軽)의 호족 고노 마사미치(河野政通)가 다이묘(大名)

책봉 경쟁에서 밀린 뒤 측근들과 함께 에조치(蝦夷地)로 이동하면서 우스케시에 장원을 지었다. 이 장원이

마치 상자처럼 보였기에 하코다테(箱館)란 이름으로 불렸다. 그 후 1869년 에조치가 홋카이도로 개명되면서

하코다테의 이름도 발음은 같지만 다른 한자인 '函館'로 바뀌었다.

미일 화친조약으로 개항된 국제무역항 하코다테는 여러 외국문화와 접해 왔고, 그 영향은 지금도

거리풍경과 서부지역 경관에서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도시경관과 하코다테산 정상에서 보는 야경, 온천,

신선하고 풍부한 해산물은 하코다테에 매년 400만명 이상의 방문객을 불러들이는 관광자원이다.

하코다테시(函館市)

(출처:https://www.city.hakodate.hokkaido.jp/docs/2014013100549/https://namu.wiki/w/%ED%95%98%EC%BD%94%EB%8B%A4%ED%85%8C%EC%8B%9C)

부센터장 ‘사카모토 미나코’ 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고료

카쿠

2018 신

화강

좌 연

계 홋

카이

도 문

화 탐

사 결

과 보

고서

고료카쿠(五稜郭) (https://www.hakodate.travel/kr/top7/goryokaku)

하코다테 북방민족자료관 (http://www.zaidan-hakodate.com/hoppominzoku/)

하코다테 시립박물관 ( http://hakohaku.com)

방문기관

Page 19: 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카이도문화탐사_본문...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19

부센터장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설명해주시려고 이렇게 나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답니다. (탐방단 한 분씩 소개) 표

받으셨는지요? 아, 저기 오시네요. 신발을 벗고 올라가 주세요.

신발은 여기 비닐 주머니에 넣으시면 됩니다. 한국어 리플렛입니다. 한국에서 많이들 오시기 때문에 한국어로도

리플렛을 만들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건물에서 여러분이 서계신 이곳은 현관입니다. 들어오실 때 이 윗부분을 보시면, 일본의 모든 건물에는

가문(집안)의 문양이 현관 위에 붙어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아시지요? 이것은 도쿠가와 가문의 문양입니다.

도쿠가와는 아시다시피 에도 시대를 통치하던 가문이니까 이 문양은 에도시대의 건물이라는 것을 뜻하는 거죠. 당시는

신분 계급이 강한 사회였지요. 그때는 여기의 장(長)인 관리 ‘부교(奉行)’가 오거나 외국에서 영사(領事)가 오거나, 그럴

때만 사용하던 현관입니다. 여러분들도 영사가 된 기분으로 들어오시면 좋겠습니다.

고료카쿠(五稜郭) 2018년 10월 16일(화) 11시

하코다테는 추운 홋카이도의 남단부에 위치하여, 비교적 온난한 기후 풍토와 윤택한 자연환경으로

홋카이도 남부의 문화·경제의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원래 이곳은 아이누인들이 고기를 잡고 살던 한적한 어촌으로 아이누어로 이름은 우스케시(宇須岸)였다.

그러던 중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인 1454년, 츠가루(津軽)의 호족 고노 마사미치(河野政通)가 다이묘(大名)

책봉 경쟁에서 밀린 뒤 측근들과 함께 에조치(蝦夷地)로 이동하면서 우스케시에 장원을 지었다. 이 장원이

마치 상자처럼 보였기에 하코다테(箱館)란 이름으로 불렸다. 그 후 1869년 에조치가 홋카이도로 개명되면서

하코다테의 이름도 발음은 같지만 다른 한자인 '函館'로 바뀌었다.

미일 화친조약으로 개항된 국제무역항 하코다테는 여러 외국문화와 접해 왔고, 그 영향은 지금도

거리풍경과 서부지역 경관에서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도시경관과 하코다테산 정상에서 보는 야경, 온천,

신선하고 풍부한 해산물은 하코다테에 매년 400만명 이상의 방문객을 불러들이는 관광자원이다.

하코다테시(函館市)

(출처:https://www.city.hakodate.hokkaido.jp/docs/2014013100549/https://namu.wiki/w/%ED%95%98%EC%BD%94%EB%8B%A4%ED%85%8C%EC%8B%9C)

부센터장 ‘사카모토 미나코’ 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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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보

고서

고료카쿠(五稜郭) (https://www.hakodate.travel/kr/top7/goryokaku)

하코다테 북방민족자료관 (http://www.zaidan-hakodate.com/hoppominzoku/)

하코다테 시립박물관 ( http://hakohaku.com)

방문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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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 방은 일본의 전통적인 양식으로 만들어진 방입니다. (바닥을 가리키며) 여기를 다다미라고 하지요. 이 다다미는

칠삼은 이십일 스물한 개 (7×3=21)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 여섯 조각으로 된 것이 기본 방이니까 이곳은 굉장히

큰 방이라 할 수 있지요. 이십일 조의 방입니다.

여기에는 네 개의 방이 있습니다. 네 개의 방문을 모두 열면, 다 합하면 72개의 다다미가 깔려 있는 방이 됩니다.

다다미에는 금이 있지요. 이 금을 밟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매너랍니다. 다다미는 이어 붙여서 만든 것으로 이 아래는 빈

공간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잘 못 밟으면 망가지기도 하니까요. 옛날 일본 사람들은 ‘이 다다미 밑에서 사무라이의

칼이 올라올 수도 있다, 밟고 지나가다가 다칠 수도 있다’고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도 했답니다.

가끔 한국 드라마에서 격자문 같은 것을 볼 때 친근감을 느끼신다고 하네요. 옛날에는 전기가 없으니까 문을 닫으면

빛이 안 들어오잖아요? 문을 닫아도 약간의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종이로 만들었습니다. 방 사이에 열고 닫을 수 있게

만든 이 문은 ‘후스마’라고 합니다. 열면 방이 이어지고 닫으면 하나의 독립된 방이 되는 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방에도 계급이 있답니다. 방은 모두 네 칸으로 되어있는데 여기가 이 방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 앉는 칸이에요.

이를테면 상석이라는 얘기죠. 그래서 여기 ‘도코노마’ 라는 것도 둡니다. 여기에 족자도 걸어놓고 꽃꽂이도 해놓고,

방에서 가장 멋진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에도시대의 건물이잖아요. 그러니 도쿄에 에도 성(城)이 있었겠지요. 거기에서 연중행사를 하면 여기에서

똑같은 날 똑같은 행사를 했다고 합니다. 같이 할 수는 없으니까요. 여기에서 에도 성은 너무 머니까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여기가 정부의 지점 같은 곳이었답니다. 여기서 가장 높은 직책이 ‘부교’예요. 그래서 여기를 ‘부교쇼’라고

합니다. 한자로 하면 봉행소(奉行所)입니다. 이 사람이 마지막 부교였던 사람입니다. 두 번째 칸, 여기가 부교가 앉았던

자리랍니다. 부교는 이렇게 하고 앉았대요. (아, 양반 다리하고.. 다 같이 앉아 봅시다.) 이 방에는 세 사람밖에는 앉을 수

없었답니다. 좀 더 지위가 낮은 사람은 다음 칸, 또 그 다음 칸에 앉는답니다.

보통 집은 모두 나무로만 되어 있는데, 여기는 옻칠을 했어요. 14번 칠했답니다. 옻칠을 해서 반짝반짝하게

만들어놓았지요. (여기에는 무엇을 올려놓았을까요?) 어떤 사람은 이것이 침대였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여기는 향을

피우는 향로나 책을 놓거나 하는 장식장 같은 것이었답니다. 이 액자는 두 번째 부교가 쓰신 거랍니다. 이것은 사본이고

진짜는 박물관에 있답니다.

원래 이 부교쇼는 여기 이 하코다테 산 바로 밑에 있었어요. 저기가 하코다테 산입니다 하고 아까 말씀해 주셨지요.

그런데 그곳은 지금 이런 모습으로 되어 있어요. 여기 써 있죠? 하코다테 봉행소. 그러니까 이 사람은 여기에서 일했던

거예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아니라..

제가 아까 페리제독 얘기는 했으니까 생략하구요, 그런 외국인들과 여기의 관리들이 만나서 일할 수 있는 어떤

장소로써 이곳이 만들어졌답니다. 부교가 생각하기에 이곳이 바다에서 너무 가깝고, 외세의 침략을 받게 되면 바로

중심지가 무너지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중앙으로 옮기겠다고 호소를 해서 옮기게 된 거죠. 이것을 만들 때 프랑스를

벤치마킹해서 만들었답니다.

이런 모양의 성은 세계 어디에나 있어요. 이를테면 유럽이라든가, 페리는 미국사람이죠? 그렇지만 이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만든 이곳은 프랑스식이었습니다. 왜냐면, 미일 화친조약을 맺고 나서 뒤이어서 계속 영국, 독일 등과도 조약을

맺게 되었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갑자기 왔답니다. 그때는 러시아와 프랑스가 전쟁을 할 때였는데, 이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나와 있다 보니까 신선한 야채를 못 먹어서 각기병이 걸린 거예요. 그래서 좀 도와달라고 SOS 요청을 해서

오게 된 곳이 바로 여기였답니다. 원래는 아직 조약을 맺지 않았으니까 외국인들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이지만, 부교가

판단하여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라고 해서, “그럼 병이 나을 때까지만 상륙해 있어라.”

하고 허락을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너무나 고마워하면서 이곳을 둘러보더니, 관리들이 묵는 이런 중요한 관청이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생겼냐면서, 유럽에서는 성 모양으로 만들어서 그 안에 관청을 둔다고,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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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은 일본의 전통적인 양식으로 만들어진 방입니다. (바닥을 가리키며) 여기를 다다미라고 하지요. 이 다다미는

칠삼은 이십일 스물한 개 (7×3=21)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 여섯 조각으로 된 것이 기본 방이니까 이곳은 굉장히

큰 방이라 할 수 있지요. 이십일 조의 방입니다.

여기에는 네 개의 방이 있습니다. 네 개의 방문을 모두 열면, 다 합하면 72개의 다다미가 깔려 있는 방이 됩니다.

다다미에는 금이 있지요. 이 금을 밟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매너랍니다. 다다미는 이어 붙여서 만든 것으로 이 아래는 빈

공간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잘 못 밟으면 망가지기도 하니까요. 옛날 일본 사람들은 ‘이 다다미 밑에서 사무라이의

칼이 올라올 수도 있다, 밟고 지나가다가 다칠 수도 있다’고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도 했답니다.

가끔 한국 드라마에서 격자문 같은 것을 볼 때 친근감을 느끼신다고 하네요. 옛날에는 전기가 없으니까 문을 닫으면

빛이 안 들어오잖아요? 문을 닫아도 약간의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종이로 만들었습니다. 방 사이에 열고 닫을 수 있게

만든 이 문은 ‘후스마’라고 합니다. 열면 방이 이어지고 닫으면 하나의 독립된 방이 되는 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방에도 계급이 있답니다. 방은 모두 네 칸으로 되어있는데 여기가 이 방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 앉는 칸이에요.

이를테면 상석이라는 얘기죠. 그래서 여기 ‘도코노마’ 라는 것도 둡니다. 여기에 족자도 걸어놓고 꽃꽂이도 해놓고,

방에서 가장 멋진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에도시대의 건물이잖아요. 그러니 도쿄에 에도 성(城)이 있었겠지요. 거기에서 연중행사를 하면 여기에서

똑같은 날 똑같은 행사를 했다고 합니다. 같이 할 수는 없으니까요. 여기에서 에도 성은 너무 머니까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여기가 정부의 지점 같은 곳이었답니다. 여기서 가장 높은 직책이 ‘부교’예요. 그래서 여기를 ‘부교쇼’라고

합니다. 한자로 하면 봉행소(奉行所)입니다. 이 사람이 마지막 부교였던 사람입니다. 두 번째 칸, 여기가 부교가 앉았던

자리랍니다. 부교는 이렇게 하고 앉았대요. (아, 양반 다리하고.. 다 같이 앉아 봅시다.) 이 방에는 세 사람밖에는 앉을 수

없었답니다. 좀 더 지위가 낮은 사람은 다음 칸, 또 그 다음 칸에 앉는답니다.

보통 집은 모두 나무로만 되어 있는데, 여기는 옻칠을 했어요. 14번 칠했답니다. 옻칠을 해서 반짝반짝하게

만들어놓았지요. (여기에는 무엇을 올려놓았을까요?) 어떤 사람은 이것이 침대였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여기는 향을

피우는 향로나 책을 놓거나 하는 장식장 같은 것이었답니다. 이 액자는 두 번째 부교가 쓰신 거랍니다. 이것은 사본이고

진짜는 박물관에 있답니다.

원래 이 부교쇼는 여기 이 하코다테 산 바로 밑에 있었어요. 저기가 하코다테 산입니다 하고 아까 말씀해 주셨지요.

그런데 그곳은 지금 이런 모습으로 되어 있어요. 여기 써 있죠? 하코다테 봉행소. 그러니까 이 사람은 여기에서 일했던

거예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아니라..

제가 아까 페리제독 얘기는 했으니까 생략하구요, 그런 외국인들과 여기의 관리들이 만나서 일할 수 있는 어떤

장소로써 이곳이 만들어졌답니다. 부교가 생각하기에 이곳이 바다에서 너무 가깝고, 외세의 침략을 받게 되면 바로

중심지가 무너지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중앙으로 옮기겠다고 호소를 해서 옮기게 된 거죠. 이것을 만들 때 프랑스를

벤치마킹해서 만들었답니다.

이런 모양의 성은 세계 어디에나 있어요. 이를테면 유럽이라든가, 페리는 미국사람이죠? 그렇지만 이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만든 이곳은 프랑스식이었습니다. 왜냐면, 미일 화친조약을 맺고 나서 뒤이어서 계속 영국, 독일 등과도 조약을

맺게 되었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갑자기 왔답니다. 그때는 러시아와 프랑스가 전쟁을 할 때였는데, 이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나와 있다 보니까 신선한 야채를 못 먹어서 각기병이 걸린 거예요. 그래서 좀 도와달라고 SOS 요청을 해서

오게 된 곳이 바로 여기였답니다. 원래는 아직 조약을 맺지 않았으니까 외국인들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이지만, 부교가

판단하여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라고 해서, “그럼 병이 나을 때까지만 상륙해 있어라.”

하고 허락을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너무나 고마워하면서 이곳을 둘러보더니, 관리들이 묵는 이런 중요한 관청이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생겼냐면서, 유럽에서는 성 모양으로 만들어서 그 안에 관청을 둔다고,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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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올 때 보셨을 텐데, 이분이 이곳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다케다 아야사부로’, 이 사람이 프랑스를 참고해서 지은

것이 이곳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식으로 지어지게 된 겁니다. 다음 방으로 가시죠.

아까 여기서 설명하시던 분이 말하셨죠. 건드리지 마시래요. 안 열린대요. 이 문들은 적송으로 만들었답니다. 우리

한국에는 적송이 많죠. 홋카이도에는 원래 적송이 없었는데, 막부에서 일부러 심어가지고 만들었답니다.

여기 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사실 2010년에 복원된 곳입니다. 원래는 1864년에 지어진 건물이었습니다.

그때의 건물 사진입니다. 아시다시피 1868년에 메이지유신이 시작되었죠. 그러니까 에도시대가 집권 4년 만에

끝나버린 것입니다. 사무라이 시대가 끝났죠.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면서 막부의 잔재를 다 해체해서 없애버립니다. 4년

만에. 하지만 이 성곽 자체는 그 형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럼 이 고료카쿠는 왜,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을까요. 아까 말씀드렸던 에노모토 다케아키 너무 유명해서 이 사람과

관련된 고료카쿠가 유명하죠. 하코다테 전쟁을 일으켰던 사람이니까, 일본인들 중에서는 이 사람이 고료카쿠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답니다. 사실은 에도막부가 만들었죠.

이것은 에도시대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1864년)을 보고 똑같이 2010년에 복원했습니다. 그런데 사진에 나와

있는 부분만 복원된 거고, 사진에 나와 있지 않은 부분은 복원이 안 되었답니다. 원래 이것이 전체 설계인데, 그중에

여기 파란 부분만 복원이 된 겁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벽은 에도시대에 만든 벽이 아니라 최근에 만든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일부러 나타내기 위해서 알루미늄 소재를 넣어서 이 문양을 만들었어요. 에도시대에는 여기에 저런 ‘후스마’,

열고 닫는 문이 있었겠지요. 그러니까 여기 바로 뒤에 이어지는 부분은 부교가 사생활을 하던 곳, 사택 같은 것이

있었지요. 이것밖에 복원이 안 되었습니다.

저기 사진에 나와 있지 않은 부분은 설계도에 따라서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사진에 나온 부분까지만 성의 각

모양대로 도면을 그려놓은 거예요. 저기 보면 자갈이 깔려 있는 곳이 있어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저 자갈밭 위에

앉아서 재판을 받았답니다.

여기는 세계에 있는 별모양의 성들.. ‘다케다’(?)가 프랑스에서 이것을 보고 만들었다는 그 이야기입니다.

스페인, 펜타곤, 전부 오각형이네요. ‘나가야’에도 별 모양 성이 또 하나 있답니다. 이것은 저도 처음 알았어요.

나가노에 있는 성은 크기가 요렇게 작대요. 가운데 있는 이 성이 하코다테 (왼쪽의 가장 작은 성은 나가노에 있는 것)

오른쪽은 원래의 프랑스의 성이랍니다.

이방이 굉장히 크지요. 마흔다섯 개의 방으로 되어있어요. 에도시대의 기술로는 여기에 기둥 같은 것이 있었을 거예요,

아직 그런 기술이 없었을 거니까요. 천장을 뚫어서 위의 구조를 보여주게 만들었습니다. 큰 서까래가 양쪽으로

있습니다. 그 위의 구조를 보시라고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일본의 집은 나무와 종이로만 지어요. 못을 하나도 박지 않는답니다. 나무를 깎아서 암수를 맞춰서 집을 완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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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올 때 보셨을 텐데, 이분이 이곳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다케다 아야사부로’, 이 사람이 프랑스를 참고해서 지은

것이 이곳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식으로 지어지게 된 겁니다. 다음 방으로 가시죠.

아까 여기서 설명하시던 분이 말하셨죠. 건드리지 마시래요. 안 열린대요. 이 문들은 적송으로 만들었답니다. 우리

한국에는 적송이 많죠. 홋카이도에는 원래 적송이 없었는데, 막부에서 일부러 심어가지고 만들었답니다.

여기 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사실 2010년에 복원된 곳입니다. 원래는 1864년에 지어진 건물이었습니다.

그때의 건물 사진입니다. 아시다시피 1868년에 메이지유신이 시작되었죠. 그러니까 에도시대가 집권 4년 만에

끝나버린 것입니다. 사무라이 시대가 끝났죠.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면서 막부의 잔재를 다 해체해서 없애버립니다. 4년

만에. 하지만 이 성곽 자체는 그 형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럼 이 고료카쿠는 왜,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을까요. 아까 말씀드렸던 에노모토 다케아키 너무 유명해서 이 사람과

관련된 고료카쿠가 유명하죠. 하코다테 전쟁을 일으켰던 사람이니까, 일본인들 중에서는 이 사람이 고료카쿠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답니다. 사실은 에도막부가 만들었죠.

이것은 에도시대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1864년)을 보고 똑같이 2010년에 복원했습니다. 그런데 사진에 나와

있는 부분만 복원된 거고, 사진에 나와 있지 않은 부분은 복원이 안 되었답니다. 원래 이것이 전체 설계인데, 그중에

여기 파란 부분만 복원이 된 겁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벽은 에도시대에 만든 벽이 아니라 최근에 만든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일부러 나타내기 위해서 알루미늄 소재를 넣어서 이 문양을 만들었어요. 에도시대에는 여기에 저런 ‘후스마’,

열고 닫는 문이 있었겠지요. 그러니까 여기 바로 뒤에 이어지는 부분은 부교가 사생활을 하던 곳, 사택 같은 것이

있었지요. 이것밖에 복원이 안 되었습니다.

저기 사진에 나와 있지 않은 부분은 설계도에 따라서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사진에 나온 부분까지만 성의 각

모양대로 도면을 그려놓은 거예요. 저기 보면 자갈이 깔려 있는 곳이 있어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저 자갈밭 위에

앉아서 재판을 받았답니다.

여기는 세계에 있는 별모양의 성들.. ‘다케다’(?)가 프랑스에서 이것을 보고 만들었다는 그 이야기입니다.

스페인, 펜타곤, 전부 오각형이네요. ‘나가야’에도 별 모양 성이 또 하나 있답니다. 이것은 저도 처음 알았어요.

나가노에 있는 성은 크기가 요렇게 작대요. 가운데 있는 이 성이 하코다테 (왼쪽의 가장 작은 성은 나가노에 있는 것)

오른쪽은 원래의 프랑스의 성이랍니다.

이방이 굉장히 크지요. 마흔다섯 개의 방으로 되어있어요. 에도시대의 기술로는 여기에 기둥 같은 것이 있었을 거예요,

아직 그런 기술이 없었을 거니까요. 천장을 뚫어서 위의 구조를 보여주게 만들었습니다. 큰 서까래가 양쪽으로

있습니다. 그 위의 구조를 보시라고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일본의 집은 나무와 종이로만 지어요. 못을 하나도 박지 않는답니다. 나무를 깎아서 암수를 맞춰서 집을 완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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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때 썼던 물건들입니다. 요것들은 큐슈 쪽에서 온 것 같다고 하네요. 여기 네덜란드어로 써 있는데, 옛날에

우리가 술이나 간장을 담았던 것들입니다. 수입한 거죠.

여기는 어떤 식으로 복원했는지를 사진으로 전시해놓은 방입니다. 이 방을 쓰던 사람들이 별로 높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는 방이 작은 거예요. 이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의 기와 문양과 수막새, 방의 각도에 따라서 모양을

다르게 한답니다. 높거나 낮은 신분에 따라서, 여기는 낮은 곳이니까 다른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까 저기는 동그란

모양으로 되어 있었지요. 이것이(도쿠가와 가문의 문양) 제일 높은 사람들이 있는 방, 이것은 제일 낮은 사람들의 방에,

(신분에 따라 다른 문양들.. 세세하게 차별했네요.)

여기는 퀴즈를 맞추는 곳입니다.

이것은 아까 보았던 천장의 구조를 재현해 놓은 것입니다. 여기는 만져보셔도 된답니다. (우리나라도 건축 박물관에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이것이 제일 무거운 나무입니다. 나무마다 조금씩 그 무게가 다르니까요. 밀도가 다르니까... (질문. 나무 무게에 따라서

놓는 위치도 정해져 있습니까?) 상관없답니다. 이 건물의 경우에는 이거구요, 건물마다 조금씩 다 다르답니다. 그렇지는

않답니다.

여기가 하코다테 전쟁 때 썼던 방이예요. 아까 사진으로 본 저 미남자가 짱(長)이었잖아요. 저 히지카타가 높은

사람이었으니까 여기 있었어요. 부하들은 이쪽을 지키고 있었지요. 그런데 메이지 정부에서 군사를 보내서

점령해버리자 부하들이 고립된 거예요. 그래서 히지카타가 구하러 갑니다. 그런데 가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히지카타가

죽었으니까 그 전쟁은 끝난 거지요. 그게 아마 1869년이었을 것입니다.

여기는 어떤 식으로 복원했는지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입니다. 길어서 다 보실 수는 없을 거예요. 잠깐 보시고 다음

방으로 가시지요. 아까 나눠주신 리플렛 안에 영상 내용이 설명되어 있답니다.

2018 신

화강

좌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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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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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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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고료

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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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때 썼던 물건들입니다. 요것들은 큐슈 쪽에서 온 것 같다고 하네요. 여기 네덜란드어로 써 있는데, 옛날에

우리가 술이나 간장을 담았던 것들입니다. 수입한 거죠.

여기는 어떤 식으로 복원했는지를 사진으로 전시해놓은 방입니다. 이 방을 쓰던 사람들이 별로 높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는 방이 작은 거예요. 이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의 기와 문양과 수막새, 방의 각도에 따라서 모양을

다르게 한답니다. 높거나 낮은 신분에 따라서, 여기는 낮은 곳이니까 다른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까 저기는 동그란

모양으로 되어 있었지요. 이것이(도쿠가와 가문의 문양) 제일 높은 사람들이 있는 방, 이것은 제일 낮은 사람들의 방에,

(신분에 따라 다른 문양들.. 세세하게 차별했네요.)

여기는 퀴즈를 맞추는 곳입니다.

이것은 아까 보았던 천장의 구조를 재현해 놓은 것입니다. 여기는 만져보셔도 된답니다. (우리나라도 건축 박물관에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이것이 제일 무거운 나무입니다. 나무마다 조금씩 그 무게가 다르니까요. 밀도가 다르니까... (질문. 나무 무게에 따라서

놓는 위치도 정해져 있습니까?) 상관없답니다. 이 건물의 경우에는 이거구요, 건물마다 조금씩 다 다르답니다. 그렇지는

않답니다.

여기가 하코다테 전쟁 때 썼던 방이예요. 아까 사진으로 본 저 미남자가 짱(長)이었잖아요. 저 히지카타가 높은

사람이었으니까 여기 있었어요. 부하들은 이쪽을 지키고 있었지요. 그런데 메이지 정부에서 군사를 보내서

점령해버리자 부하들이 고립된 거예요. 그래서 히지카타가 구하러 갑니다. 그런데 가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히지카타가

죽었으니까 그 전쟁은 끝난 거지요. 그게 아마 1869년이었을 것입니다.

여기는 어떤 식으로 복원했는지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입니다. 길어서 다 보실 수는 없을 거예요. 잠깐 보시고 다음

방으로 가시지요. 아까 나눠주신 리플렛 안에 영상 내용이 설명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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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발굴된 항아리이예요. 쌀 등을 넣었던 것 같아요.

여기가 출구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일하는 ‘사토’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한국어로 인사)

여기는 ‘북방민족자료관’입니다. 아이누를 중심으로 해서 아이누의 정신문화 또는 물질문화 등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아이누인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림을 보면서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됩니까?) 네, 많이 찍으시랍니다. 플래시만 사용하지 마시랍니다. 여기 있는 그림은 ‘히라사와

뵤자이’(?)라는 사람이 그린 그림입니다. 아이누인이 그린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 그린 거랍니다. (어느 시대의

사람인가요?) 막부 말기 메이지 초기라 합니다. (16세기 중반이란 말이네요. 그런데 이 그림이 원본인가요?) 아, 원본은

하코다테시박물관에 있다 합니다. (확대해서 프린트한 것 같아요.) 이 그림은 모작이랍니다.

여기는 아이누의 일반적인 집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제가 아까 ‘이로리’라고 표현했지요. 북방지역은, 우리는

아궁이가 밖에 있잖아요? 불이 집 안에 있는 것을 ‘이로리’라고 합니다. 집 안에 ‘이로리’ 같이 생긴 여기에 불을

피웠는데, 이것은 밥을 하는 용도로는 쓰지 않고 집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쓰이는 거랍니다. 긴노시즈쿠 기념관에서 본

그 시에서도 부엉이가 왔다 갔다 하며 불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뛰었다는 내용이 나오지요. 여기서도

바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뛰었다는 얘기랍니다. 그래서 이 불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의 불이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마를 채취하는 그림이네요. 저 뒤에 보면 작은 범선이 있잖아요? 일본인의 배예요. 와진. 이것은

아이누인의 배, 바다에서 해초를 채취하고 물고기를 잡아서 교역을 하는 겁니다. 저 뒤에 있는 집이 아마 교역하는

장소로 쓰였을 거예요.

하코다테 북방민족자료관 (函館市北方民族資料館) 2018년 10월 16일 13시

하코

다테

북방

민족

자료

2018 신

화강

좌 연

계 홋

카이

도 문

화 탐

사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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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도슨트 ‘사토’ 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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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발굴된 항아리이예요. 쌀 등을 넣었던 것 같아요.

여기가 출구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일하는 ‘사토’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한국어로 인사)

여기는 ‘북방민족자료관’입니다. 아이누를 중심으로 해서 아이누의 정신문화 또는 물질문화 등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아이누인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림을 보면서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됩니까?) 네, 많이 찍으시랍니다. 플래시만 사용하지 마시랍니다. 여기 있는 그림은 ‘히라사와

뵤자이’(?)라는 사람이 그린 그림입니다. 아이누인이 그린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 그린 거랍니다. (어느 시대의

사람인가요?) 막부 말기 메이지 초기라 합니다. (16세기 중반이란 말이네요. 그런데 이 그림이 원본인가요?) 아, 원본은

하코다테시박물관에 있다 합니다. (확대해서 프린트한 것 같아요.) 이 그림은 모작이랍니다.

여기는 아이누의 일반적인 집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제가 아까 ‘이로리’라고 표현했지요. 북방지역은, 우리는

아궁이가 밖에 있잖아요? 불이 집 안에 있는 것을 ‘이로리’라고 합니다. 집 안에 ‘이로리’ 같이 생긴 여기에 불을

피웠는데, 이것은 밥을 하는 용도로는 쓰지 않고 집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쓰이는 거랍니다. 긴노시즈쿠 기념관에서 본

그 시에서도 부엉이가 왔다 갔다 하며 불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뛰었다는 내용이 나오지요. 여기서도

바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뛰었다는 얘기랍니다. 그래서 이 불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의 불이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마를 채취하는 그림이네요. 저 뒤에 보면 작은 범선이 있잖아요? 일본인의 배예요. 와진. 이것은

아이누인의 배, 바다에서 해초를 채취하고 물고기를 잡아서 교역을 하는 겁니다. 저 뒤에 있는 집이 아마 교역하는

장소로 쓰였을 거예요.

하코다테 북방민족자료관 (函館市北方民族資料館) 2018년 10월 16일 13시

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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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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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도슨트 ‘사토’ 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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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연어를 잡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네요.

사냥, 수렵을 하기 위해서 캠프를 이동하는 모습이랍니다.

이것은 ‘카약’이라는 배입니다. 이 안은 원래는 나무 같은 것으로 만들어서, 겉에는 물개 가죽 같은 것으로 씌웠다고

합니다. 이 배는 아이누가 독자적으로 만든 배라기보다는 러시아나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설명을 약간 빠트린 부분이 있는데, 러시아가 계속해서 교역을 원했던 이유 중 하나는 물개 가죽을 원했기

때문이거든요. 러시아와 교역을 실제로 하기도 했는데, 여기 있는 그림이 그런 것을 나타내고 있답니다.

이 그림은 어떤 의식을 하고 있는 그림이예요. 뒤에 격자무늬로 엮은 나무가 보이는데, 저곳은 신이 머무는 장소를

뜻한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김윤아 선생님이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 텐데, 저 위에 있는 사슴뿔 같은 것이

보이지요. 아까 말씀하신 ‘우주수’, ‘세계축’이라는 그런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 장면입니다.

제가 궁금해서 이분이 ‘샤먼’이냐고 여쭤봤더니 샤먼은 아니래요. 차려 입은 모양이 샤먼 같지는 않지요. 저쪽 사할린

쪽의 아이누들은 샤먼이 하는데, 샤먼이 하는 것은 시베리아 쪽이죠. 홋카이도 쪽의 아이누들은 장로,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그 역할을 한답니다. 여기 2층에 의식을 할 때 실제로 썼던 도구들이 있답니다.

이것은 북방민족의 분포도입니다. 약 30개 정도의 부족이 있는데, 여기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아이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민족들입니다. 이 지역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이누인들이 살고 있는 홋카이도의 아이누, 이곳은

사할린의 아이누, 그리고 이쪽이 치시마 열도잖아요. 그래서 이쪽에 사는 사람들을 치시마 아이누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일본, 한국, 중국, 러시아가 근린 국가들이잖아요. 그래서 이 국제정세에 따라서 취급을 받거나 여러 가지로

달라진 국제정세에 따라서 그 위치가 달라지거나 하는 그런 경험들에 대해서, 좋게 말하면 ‘국제성을 가진

민족이었다.’고 할 수 있답니다.

아까 저쪽에서 국제성이 있다 그랬는데, 이것은 중국 쪽의 영향을 받은 비단으로 만든 옷이예요. 이런 용 그림이 입는

옷에도 계급이 있어요. 이 옷은 아마도 그 두 번째 계급의 옷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여기 용 발톱이 네 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세 개까지 허용이 되고, 귀족에게는 네 개가 허용이 됩니다. 그리고 다섯 개는 황족에게만

허락이 된대요. 여기 네 개인 것을 보건데 귀족이 입었던 옷인 거지요. 아이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옷을 보관한 것인데,

아이누인들이 만들었다기 보다는 중국과의 교역을 나타내는 작품이라 할 것입니다. 여기에도 네 개의 발톱이 보이지요.

귀족들이 가장 많이 입었던 것 같아요.

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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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연어를 잡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네요.

사냥, 수렵을 하기 위해서 캠프를 이동하는 모습이랍니다.

이것은 ‘카약’이라는 배입니다. 이 안은 원래는 나무 같은 것으로 만들어서, 겉에는 물개 가죽 같은 것으로 씌웠다고

합니다. 이 배는 아이누가 독자적으로 만든 배라기보다는 러시아나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설명을 약간 빠트린 부분이 있는데, 러시아가 계속해서 교역을 원했던 이유 중 하나는 물개 가죽을 원했기

때문이거든요. 러시아와 교역을 실제로 하기도 했는데, 여기 있는 그림이 그런 것을 나타내고 있답니다.

이 그림은 어떤 의식을 하고 있는 그림이예요. 뒤에 격자무늬로 엮은 나무가 보이는데, 저곳은 신이 머무는 장소를

뜻한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김윤아 선생님이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 텐데, 저 위에 있는 사슴뿔 같은 것이

보이지요. 아까 말씀하신 ‘우주수’, ‘세계축’이라는 그런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 장면입니다.

제가 궁금해서 이분이 ‘샤먼’이냐고 여쭤봤더니 샤먼은 아니래요. 차려 입은 모양이 샤먼 같지는 않지요. 저쪽 사할린

쪽의 아이누들은 샤먼이 하는데, 샤먼이 하는 것은 시베리아 쪽이죠. 홋카이도 쪽의 아이누들은 장로,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그 역할을 한답니다. 여기 2층에 의식을 할 때 실제로 썼던 도구들이 있답니다.

이것은 북방민족의 분포도입니다. 약 30개 정도의 부족이 있는데, 여기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아이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민족들입니다. 이 지역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이누인들이 살고 있는 홋카이도의 아이누, 이곳은

사할린의 아이누, 그리고 이쪽이 치시마 열도잖아요. 그래서 이쪽에 사는 사람들을 치시마 아이누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일본, 한국, 중국, 러시아가 근린 국가들이잖아요. 그래서 이 국제정세에 따라서 취급을 받거나 여러 가지로

달라진 국제정세에 따라서 그 위치가 달라지거나 하는 그런 경험들에 대해서, 좋게 말하면 ‘국제성을 가진

민족이었다.’고 할 수 있답니다.

아까 저쪽에서 국제성이 있다 그랬는데, 이것은 중국 쪽의 영향을 받은 비단으로 만든 옷이예요. 이런 용 그림이 입는

옷에도 계급이 있어요. 이 옷은 아마도 그 두 번째 계급의 옷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여기 용 발톱이 네 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세 개까지 허용이 되고, 귀족에게는 네 개가 허용이 됩니다. 그리고 다섯 개는 황족에게만

허락이 된대요. 여기 네 개인 것을 보건데 귀족이 입었던 옷인 거지요. 아이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옷을 보관한 것인데,

아이누인들이 만들었다기 보다는 중국과의 교역을 나타내는 작품이라 할 것입니다. 여기에도 네 개의 발톱이 보이지요.

귀족들이 가장 많이 입었던 것 같아요.

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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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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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반인들이 입었던 옷입니다. 이 옷도 중국 사람들한테 영향을 받아 만든 것 같은데, 이것은 말하자면

모자이크처럼 나눠서 만드는 그런 기법에 의해 만든 것입니다. 당시에 일본에는 이런 기술이 없었는데, 아이누에서는

여러 군데에서 받아들여서 만든, 이런 기술들이 있었답니다. 이것은 사할린에 있었던 물건입니다.

이곳의 테마는 입는 것(의복)과 장식으로 되어 있어요. 여기 옷은 일본 문화권이랍니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일본

옷처럼 만들었습니다. 어제 여러분이 보신 ‘유카타’를 보면 소매가 사각으로 이렇게 늘어져 있지요. 그런데 이것은 끝이

좁아요. 춥기 때문입니다. 바람 들어가지 말라고,

여기는 악세사리, 이것도 일본, 중국, 러시아와 교역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여줍니다. 아이누는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으니까요. 이제 2층으로 올라갑니다.

이것은 의식에서 사용한 거랍니다.(홀 같아요.) 여기 제상이 차려져 있지요. 신에게 제를 올릴 때 이렇게 가운데에

공손하게 놓았어요. ‘자, 지금부터 제를 올립니다’ 하고, 신을 부르는 거예요. (지방 같아요.) 여기 서서 ‘지금부터 감사의

예를 올리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서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 곰이, 여기 이렇게 종류가 많을 정도로 수입이 된

거죠. (그때마다 다른 것 같아요.) 네, 그때그때 무늬가 다르겠지요. 향도 여러 가지 향이 있는 것처럼. (여기 문양을

보니까 우리나라도 제의의 종류가 다르잖아요.) 네, 그래서 제가 또 여쭤봤어요. 우리는 제사 지낼 때 탁 탁, 소리를

내는데 그런 것은 안 하느냐고,

이것은 신의 몸체를 나타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새를 나타내기도 한답니다. 새가 되어 올라가서 우리의 감사와

소원을 전달해달라는 그런 의미로 만들어 둔 거랍니다. 뭔가 날개나 봉황의 꼬리 같은 느낌이 드네요. 여기 있는

그릇들은 제기예요. 평소에는 장식만 해두었다가 제를 올릴 때만 씁니다. 이것은 제를 올릴 때 남자들이, 싸움의 의미는

아니고 의복의 완성으로서 꽂는 칼이랍니다.

(뒤에 부엉이가 있어요.) 저 부엉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이 되기도 하고 또 잠깐 본 것처럼 새를 나타내기도 한답니다.

신에게 뜻을 전한다는 그런 의미가 있대요. (그런데 닭 얼굴이 보여요, 봉황?) 아, 있어요. 네, 봉황이네요.

(이 검은 실제 용도는 없는 거겠지요.) 네, 그렇지요. 목검 같아 보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

이것은 진검은 아니라고 하네요.

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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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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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반인들이 입었던 옷입니다. 이 옷도 중국 사람들한테 영향을 받아 만든 것 같은데, 이것은 말하자면

모자이크처럼 나눠서 만드는 그런 기법에 의해 만든 것입니다. 당시에 일본에는 이런 기술이 없었는데, 아이누에서는

여러 군데에서 받아들여서 만든, 이런 기술들이 있었답니다. 이것은 사할린에 있었던 물건입니다.

이곳의 테마는 입는 것(의복)과 장식으로 되어 있어요. 여기 옷은 일본 문화권이랍니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일본

옷처럼 만들었습니다. 어제 여러분이 보신 ‘유카타’를 보면 소매가 사각으로 이렇게 늘어져 있지요. 그런데 이것은 끝이

좁아요. 춥기 때문입니다. 바람 들어가지 말라고,

여기는 악세사리, 이것도 일본, 중국, 러시아와 교역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여줍니다. 아이누는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으니까요. 이제 2층으로 올라갑니다.

이것은 의식에서 사용한 거랍니다.(홀 같아요.) 여기 제상이 차려져 있지요. 신에게 제를 올릴 때 이렇게 가운데에

공손하게 놓았어요. ‘자, 지금부터 제를 올립니다’ 하고, 신을 부르는 거예요. (지방 같아요.) 여기 서서 ‘지금부터 감사의

예를 올리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서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 곰이, 여기 이렇게 종류가 많을 정도로 수입이 된

거죠. (그때마다 다른 것 같아요.) 네, 그때그때 무늬가 다르겠지요. 향도 여러 가지 향이 있는 것처럼. (여기 문양을

보니까 우리나라도 제의의 종류가 다르잖아요.) 네, 그래서 제가 또 여쭤봤어요. 우리는 제사 지낼 때 탁 탁, 소리를

내는데 그런 것은 안 하느냐고,

이것은 신의 몸체를 나타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새를 나타내기도 한답니다. 새가 되어 올라가서 우리의 감사와

소원을 전달해달라는 그런 의미로 만들어 둔 거랍니다. 뭔가 날개나 봉황의 꼬리 같은 느낌이 드네요. 여기 있는

그릇들은 제기예요. 평소에는 장식만 해두었다가 제를 올릴 때만 씁니다. 이것은 제를 올릴 때 남자들이, 싸움의 의미는

아니고 의복의 완성으로서 꽂는 칼이랍니다.

(뒤에 부엉이가 있어요.) 저 부엉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이 되기도 하고 또 잠깐 본 것처럼 새를 나타내기도 한답니다.

신에게 뜻을 전한다는 그런 의미가 있대요. (그런데 닭 얼굴이 보여요, 봉황?) 아, 있어요. 네, 봉황이네요.

(이 검은 실제 용도는 없는 거겠지요.) 네, 그렇지요. 목검 같아 보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

이것은 진검은 아니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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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은 아이누 문화의 근본이 되었던 문화들, 조몬 문화라든지 아니면 오오츠크 문화라든지, 이런 문화들을

보여줍니다. (수렵 기구들)

이것은 그냥 장식품이랍니다. 아까 저는 이를테면 제기라든가 아니면 뭐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했더니, 그런 게 아니라

아이누 민족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아이누인들의 생활이나 풍습을 알 수 있는 부분이 그려진 그림이 있기

때문에 사다 놓은 거라고 합니다. 칼이나 이런 것은 아니래요. 저는 악기인줄 알았는데 악기도 아니랍니다. 저기에는

뭔가 있을 것 같은데, 모르시는 것 같아요.

바바 콜렉션, (인터넷에서 봤어요.)

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네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상당히 크다고 했는데,

이것은 이제 애들한테, 계승의 의미, 선생님이 궁금하신 게 이런 거 아닌가요.

아, 공중에 막대기를 던져서 잡는 게임이예요. 재미있죠. 매듭이 저렇게 꼬여 있잖아요. 동체 시력을 키우기 위해서

만든 게임이래요. 수렵을 해야 되니까. 끈을 이렇게 잡아서 넘는 것, 줄넘기 비슷한 거지요. 동물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이렇게 뛴다든가... 민첩성을 키우기 위한.. (아프겠는데요.)

여기는, 일본 북방을 일본 사람 또는 일본 외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림으로, 지도로 나타낸 것을 전시한 방이예요.

아까 제가 러시아에서 어떤 사람들이 왔다고, 그런 이야기들을 했었지요. 그러니까 여기 북방을 탐험했던 사람들,

일본인도 포함해서 외국인까지 다 연도별로 정리해놓은 도표예요.

이것은 민간인이 그린 홋카이도 지도래요. 보세요. 여기 홋카이도가 똑바로 서있죠. 모양도 좀 다르고.. 이걸 그린

사람은 사할린이 섬인지 몰랐기 때문에 대륙의 일부로 붙어있는 것처럼 그린 것이 특징이랍니다. 이 그림은 애매하게

그려져 있어서 어느 것이 사할린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그림이예요. (홋카이도는 어느 것입니까?) 이거죠. 그림이

아주 애매하게 그려져 있죠. 민간인이 그린 거래요. 마치 동네 지도 그리듯이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을 그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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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도 문

화 탐

사 결

과 보

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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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이 방은 아이누 문화의 근본이 되었던 문화들, 조몬 문화라든지 아니면 오오츠크 문화라든지, 이런 문화들을

보여줍니다. (수렵 기구들)

이것은 그냥 장식품이랍니다. 아까 저는 이를테면 제기라든가 아니면 뭐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했더니, 그런 게 아니라

아이누 민족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아이누인들의 생활이나 풍습을 알 수 있는 부분이 그려진 그림이 있기

때문에 사다 놓은 거라고 합니다. 칼이나 이런 것은 아니래요. 저는 악기인줄 알았는데 악기도 아니랍니다. 저기에는

뭔가 있을 것 같은데, 모르시는 것 같아요.

바바 콜렉션, (인터넷에서 봤어요.)

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네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상당히 크다고 했는데,

이것은 이제 애들한테, 계승의 의미, 선생님이 궁금하신 게 이런 거 아닌가요.

아, 공중에 막대기를 던져서 잡는 게임이예요. 재미있죠. 매듭이 저렇게 꼬여 있잖아요. 동체 시력을 키우기 위해서

만든 게임이래요. 수렵을 해야 되니까. 끈을 이렇게 잡아서 넘는 것, 줄넘기 비슷한 거지요. 동물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이렇게 뛴다든가... 민첩성을 키우기 위한.. (아프겠는데요.)

여기는, 일본 북방을 일본 사람 또는 일본 외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림으로, 지도로 나타낸 것을 전시한 방이예요.

아까 제가 러시아에서 어떤 사람들이 왔다고, 그런 이야기들을 했었지요. 그러니까 여기 북방을 탐험했던 사람들,

일본인도 포함해서 외국인까지 다 연도별로 정리해놓은 도표예요.

이것은 민간인이 그린 홋카이도 지도래요. 보세요. 여기 홋카이도가 똑바로 서있죠. 모양도 좀 다르고.. 이걸 그린

사람은 사할린이 섬인지 몰랐기 때문에 대륙의 일부로 붙어있는 것처럼 그린 것이 특징이랍니다. 이 그림은 애매하게

그려져 있어서 어느 것이 사할린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그림이예요. (홋카이도는 어느 것입니까?) 이거죠. 그림이

아주 애매하게 그려져 있죠. 민간인이 그린 거래요. 마치 동네 지도 그리듯이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을 그린 것 같아요.

하코

다테

북방

민족

자료

2018 신

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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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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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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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작자 미상이래요. 아이누의 풍습 등을 그려놓은 그림입니다. 잘 그렸네요. (누가 아이누인가요? 검은 사람과

흰 사람이 다른 것 같아요.여자와 남자를 그린 것 아닐까요)

외국인이 그린 것이 아니라 내부 사람이 그린 것이기 때문에, 너는 희고 나는 까매 이렇게 얘기하지만 밖에서 보면

똑같아 보이는 것처럼, 자기네 내부에서 봤으니까 좀 강조되어서 피부색이 다르게 보이는 거라고 말씀하시네요. 그래서

여자는 좀 더 하얗게 그려지고 남자는 좀 더 검게 그려지고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나 털 있는 사람이

남자이고 털 없는 사람이 여자네요. ‘산해경’에도 나오죠. 그렇게 헷갈리는 사람들, )

(저 연표가 바탕에 있는 그림은...?) 굉장히 좋은 것을 발견했답니다.

‘고타마’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인데, 홋카이도가 마쓰마에 번이었다고 했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쓰 그림이 있는 것

같아서요.) 아, 그것은 조금 달라요. 마쓰마에 번주, 그러니까 가장 높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인사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 예를 그린 그림이래요. 아까 제스처로 보여주신 것처럼 몸을 낮춰서 인사하는 모습을 그린 거랍니다.

(그럼 아이누들이 도쿠가와 막부에 대해 인사하는 모습? 그런데 여기 자세히 보면 뿔 같은 것이 있어서,

제 눈에는 저런 게 보이거든요.) 아, 정말 뿔이 있네요. 악세사리, (원본을 볼 수 있나요?) 그것은 나중에 공부해서 다시

오시면 알려주시겠답니다. 통역해 주어서 수고했다고, 또 여러분들이 열심히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다음에 또

오시랍니다.

여기는 일본 사람들이 그리거나 쓴 자료들이예요. 낙관이 전시되어 있잖아요? 낙관이 있는 자료들은 믿을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직접 자기가 봤다기보다는 어디선가 보고 베끼거나 모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좀 틀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코

다테

북방

민족

자료

2018 신

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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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작자 미상이래요. 아이누의 풍습 등을 그려놓은 그림입니다. 잘 그렸네요. (누가 아이누인가요? 검은 사람과

흰 사람이 다른 것 같아요.여자와 남자를 그린 것 아닐까요)

외국인이 그린 것이 아니라 내부 사람이 그린 것이기 때문에, 너는 희고 나는 까매 이렇게 얘기하지만 밖에서 보면

똑같아 보이는 것처럼, 자기네 내부에서 봤으니까 좀 강조되어서 피부색이 다르게 보이는 거라고 말씀하시네요. 그래서

여자는 좀 더 하얗게 그려지고 남자는 좀 더 검게 그려지고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나 털 있는 사람이

남자이고 털 없는 사람이 여자네요. ‘산해경’에도 나오죠. 그렇게 헷갈리는 사람들, )

(저 연표가 바탕에 있는 그림은...?) 굉장히 좋은 것을 발견했답니다.

‘고타마’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인데, 홋카이도가 마쓰마에 번이었다고 했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쓰 그림이 있는 것

같아서요.) 아, 그것은 조금 달라요. 마쓰마에 번주, 그러니까 가장 높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인사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 예를 그린 그림이래요. 아까 제스처로 보여주신 것처럼 몸을 낮춰서 인사하는 모습을 그린 거랍니다.

(그럼 아이누들이 도쿠가와 막부에 대해 인사하는 모습? 그런데 여기 자세히 보면 뿔 같은 것이 있어서,

제 눈에는 저런 게 보이거든요.) 아, 정말 뿔이 있네요. 악세사리, (원본을 볼 수 있나요?) 그것은 나중에 공부해서 다시

오시면 알려주시겠답니다. 통역해 주어서 수고했다고, 또 여러분들이 열심히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다음에 또

오시랍니다.

여기는 일본 사람들이 그리거나 쓴 자료들이예요. 낙관이 전시되어 있잖아요? 낙관이 있는 자료들은 믿을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직접 자기가 봤다기보다는 어디선가 보고 베끼거나 모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좀 틀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코

다테

북방

민족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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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

다테

시립

박물

하코다테시립박물관 (市立函館博物館)

- 북방민족자료관의 원본 유물 확인을 위해 현지에서 확인 후 방문

- 전시된 유물은 박물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기획전으로 관련도록 없음.

2018 신

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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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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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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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

박물

하코다테시립박물관 (市立函館博物館)

- 북방민족자료관의 원본 유물 확인을 위해 현지에서 확인 후 방문

- 전시된 유물은 박물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기획전으로 관련도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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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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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신

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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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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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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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오타

루시

오타루 시(小樽市)는 홋카이도 서부 시리베시(後志) 종합진흥국 관내에 있는 시이다.

이시카리 만(石狩湾)에 접해 있으며 예전부터 항만도시로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건조물들이 많고

전국 유수의 관광 도시로도 인기가 높다.

오타루의 지명은 아이누어의 오타오르나이(모래사장 가운데의 하천)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오타루 시 중심부를 가리킨 것이 아니고, 현재의 오타루 시와 삿포로 시의 경계를 흐르는 호시오키 강의 하류,

오타루우치 강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구에 마쓰마에 번에 의해서 오타르나이 장소가 열렸지만, 겨울에

계절풍을 그대로 받는 지세였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아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배의 계류에 적당한 서방의

쿠타르우시로 이전했다. 그러나 오타르나이 장소의 호칭은 계속해 사용되었고 쿠타르우시로 불리고 있던

현재의 오타루 시 중심부가, 오타르나이(오타루)로 지명을 바꾸게 되었다.

시내의 운하가 유명한데 도시 발전 초기에는 활발히 이용됐으나 현재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오르골당이 유명하며, 그 앞에 증기시계가 있다.

오타루시(小樽市)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D%83%80%EB%A3%A8%EC%8B%9C)

오타루문학관 (http://otarubungakusha.com)

방문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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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루시

오타루 시(小樽市)는 홋카이도 서부 시리베시(後志) 종합진흥국 관내에 있는 시이다.

이시카리 만(石狩湾)에 접해 있으며 예전부터 항만도시로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건조물들이 많고

전국 유수의 관광 도시로도 인기가 높다.

오타루의 지명은 아이누어의 오타오르나이(모래사장 가운데의 하천)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오타루 시 중심부를 가리킨 것이 아니고, 현재의 오타루 시와 삿포로 시의 경계를 흐르는 호시오키 강의 하류,

오타루우치 강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구에 마쓰마에 번에 의해서 오타르나이 장소가 열렸지만, 겨울에

계절풍을 그대로 받는 지세였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아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배의 계류에 적당한 서방의

쿠타르우시로 이전했다. 그러나 오타르나이 장소의 호칭은 계속해 사용되었고 쿠타르우시로 불리고 있던

현재의 오타루 시 중심부가, 오타르나이(오타루)로 지명을 바꾸게 되었다.

시내의 운하가 유명한데 도시 발전 초기에는 활발히 이용됐으나 현재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오르골당이 유명하며, 그 앞에 증기시계가 있다.

오타루시(小樽市)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D%83%80%EB%A3%A8%EC%8B%9C)

오타루문학관 (http://otarubungakusha.com)

방문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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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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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관

오타루문학관 (市立小樽文学館)

2018 신

화강

좌 연

계 홋

카이

도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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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보

고서

- 고바야시 다키지, 이토 세이를 시작으로 오타루에 연이 있는 소설가, 시인, 가인, 하이 진의 저서나

자료를 소장, 전시함과 동시에 이들의 귀중한 문화적 재산을 미래에 전하는 시설

- 특별기획전 <그 시절의 오타루 전, 번외편 “오타루 마을 문화 박람회> 개최

오타루의 상가 타운 잡지·백화점·시장·목욕탕 등의 전단지 등의 출판물을 통하여 도시의 변천과

사람들의 생활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를 보이면서 오타루의 지역적 개성을 알리는 전시 진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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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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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관

오타루문학관 (市立小樽文学館)

2018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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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 고바야시 다키지, 이토 세이를 시작으로 오타루에 연이 있는 소설가, 시인, 가인, 하이 진의 저서나

자료를 소장, 전시함과 동시에 이들의 귀중한 문화적 재산을 미래에 전하는 시설

- 특별기획전 <그 시절의 오타루 전, 번외편 “오타루 마을 문화 박람회> 개최

오타루의 상가 타운 잡지·백화점·시장·목욕탕 등의 전단지 등의 출판물을 통하여 도시의 변천과

사람들의 생활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를 보이면서 오타루의 지역적 개성을 알리는 전시 진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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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라는 지명은 아이누어의 ‘삿 포로(サッ·ポロ,Sat poro, 건조하고 넓은 땅)’,

‘사리 포로 벧"(サリ·ポロ·ペッ,Sari poro pet, 큰 습지가 있는 곳) 등에서 유래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홋카이도 개척의 거점으로서 미국식의 계획도시를 건설했다.

일본 홋카이도의 도청 소재지이자 정치, 경제의 중심 도시로 일본의 정령지정도시 중 하마마쓰 시,

시즈오카 시 다음으로 면적이 넓고 일본 도시 중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다. 10개의 행정구가 있다.

삿포로시(札幌市)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C%82%BF%ED%8F%AC%EB%A1%9C%EC%8B%9C )

삿포

로시

홋카이도립문학관 (www.h-bungaku.or.jp)

홋카이도립박물관 (http://www.hm.pref.hokkaido.lg.jp)

삿포로 피리카코탄_아이누문화교류센터 (http://www.city.sapporo.jp/shimin/pirka-kotan/index.html)

홋카이도대학박물관 (www.museum.hokudai.ac.jp)

방문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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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라는 지명은 아이누어의 ‘삿 포로(サッ·ポロ,Sat poro, 건조하고 넓은 땅)’,

‘사리 포로 벧"(サリ·ポロ·ペッ,Sari poro pet, 큰 습지가 있는 곳) 등에서 유래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홋카이도 개척의 거점으로서 미국식의 계획도시를 건설했다.

일본 홋카이도의 도청 소재지이자 정치, 경제의 중심 도시로 일본의 정령지정도시 중 하마마쓰 시,

시즈오카 시 다음으로 면적이 넓고 일본 도시 중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다. 10개의 행정구가 있다.

삿포로시(札幌市)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C%82%BF%ED%8F%AC%EB%A1%9C%EC%8B%9C )

삿포

로시

홋카이도립문학관 (www.h-bungaku.or.jp)

홋카이도립박물관 (http://www.hm.pref.hokkaido.lg.jp)

삿포로 피리카코탄_아이누문화교류센터 (http://www.city.sapporo.jp/shimin/pirka-kotan/index.html)

홋카이도대학박물관 (www.museum.hokudai.ac.jp)

방문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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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희 교수님이 홋카이도 탐방단을 한분씩 소개하는 인사를 먼저 하시고 이후 관장님의 설명을 통역해 주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잘 와 주셨습니다. 관장 ‘사코’입니다. ‘구도 마시히로’씨라는 또 한 분의 관장님이 계시는데 그분은 아마

명예 관장님이신 것 같습니다. 오늘 안 오셨는데 구도 선생님이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셨답니다.

여기 문학관은 홋카이도에서 설립한 것으로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해서 일본 문학을 보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저는 원래 홋카이도의 공무원이었는데, 퇴직하고 나서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문학이라고 한 마디로 말하지만 사실 문학에는 여러 장르가 있고 그 주변에 또 여러 가지 연결되어진, 동화라든지

영화라든지 이런 장르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공익재단 홋카이도 문학관>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연간 예산은 1억 5천만엔 정도입니다. 연간 다섯 번 정도의 특별전을 합니다. 상설관이 있고 또 특별 전시관이 따로

있습니다. 다섯 번 한다고 하셨으니까 그것은 특별 전시관에서 하겠지요.

(학예사인 ‘요시나리’ 씨의 소개로 김석희교수가 통역한 내용입니다.)

여기는 아까 관장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상설전을 하는 곳입니다. <홋카이도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홋카이도와

관련이 깊은 문학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와 관련 있는 문학이란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작가, 그리고

홋카이도를 무대로 한 작품, 또 홋카이도에 이주해오거나 살았던 적이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크게 포함시킨 것입니다.

장르도 소설, 시, 단가, 하이쿠, 아동문학 등 여러 가지 장르들을 다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 50년 동안 모은 자료가

30만 점 정도 있답니다. 그 중에서 천점 정도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여기가 처음 전시된 아이누 민족관입니다. 아이누 분들은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전으로 문학이 전해지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지리유키에는 아이누인으로서 할머니가 굉장히 유명한 전승자였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로마자로 옮긴 것이 이 자료들입니다. 그렇게 옮긴 것을 다시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 여기 보이는

자료입니다. 지리유키에는 아이누인이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일본어 교육을 받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어도 알고

아이누어도 알아서 아이누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어로 아이누 문학을 번역한 사람입니다. 그 번역이 여기 보이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지리유키에는 이 책이 출판되기 직전에 19살의 어린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원래부터 심장이 좀

약했다고 합니다.

‘요시나리’ 씨입니다. 문학 전문 학예사이십니다. 아이누 문학에도 조예가 있으신 분인 것 같습니다. 문학관에 대해서

혹시 질문이 있으십니까? (홋카이도 문학의 아버지인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雄)라고, 그분의 자료들이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지요?) 편지랑 잡필 원고 같은 게 있다고 합니다. 많지는 않지만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아리시마 다케오’는 홋카이도 문학의 아버지라고 저희들은 다루고 있습니다. 올해 2월에 ‘아리시마 다케오’의 특별전을

하셨답니다. 그때 오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또 다른 질문 없으십니까, 그럼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홋카이도립문학관 (北海道立文学館) 2018년 10월 17일 16시

홋카

이도

립문

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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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 ‘사코’(酒向憲司) 씨와 학예사 ‘요시나리’ (義成) 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Page 45: 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카이도문화탐사_본문...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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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희 교수님이 홋카이도 탐방단을 한분씩 소개하는 인사를 먼저 하시고 이후 관장님의 설명을 통역해 주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잘 와 주셨습니다. 관장 ‘사코’입니다. ‘구도 마시히로’씨라는 또 한 분의 관장님이 계시는데 그분은 아마

명예 관장님이신 것 같습니다. 오늘 안 오셨는데 구도 선생님이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셨답니다.

여기 문학관은 홋카이도에서 설립한 것으로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해서 일본 문학을 보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저는 원래 홋카이도의 공무원이었는데, 퇴직하고 나서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문학이라고 한 마디로 말하지만 사실 문학에는 여러 장르가 있고 그 주변에 또 여러 가지 연결되어진, 동화라든지

영화라든지 이런 장르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공익재단 홋카이도 문학관>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연간 예산은 1억 5천만엔 정도입니다. 연간 다섯 번 정도의 특별전을 합니다. 상설관이 있고 또 특별 전시관이 따로

있습니다. 다섯 번 한다고 하셨으니까 그것은 특별 전시관에서 하겠지요.

(학예사인 ‘요시나리’ 씨의 소개로 김석희교수가 통역한 내용입니다.)

여기는 아까 관장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상설전을 하는 곳입니다. <홋카이도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홋카이도와

관련이 깊은 문학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와 관련 있는 문학이란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작가, 그리고

홋카이도를 무대로 한 작품, 또 홋카이도에 이주해오거나 살았던 적이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크게 포함시킨 것입니다.

장르도 소설, 시, 단가, 하이쿠, 아동문학 등 여러 가지 장르들을 다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 50년 동안 모은 자료가

30만 점 정도 있답니다. 그 중에서 천점 정도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여기가 처음 전시된 아이누 민족관입니다. 아이누 분들은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전으로 문학이 전해지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지리유키에는 아이누인으로서 할머니가 굉장히 유명한 전승자였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로마자로 옮긴 것이 이 자료들입니다. 그렇게 옮긴 것을 다시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 여기 보이는

자료입니다. 지리유키에는 아이누인이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일본어 교육을 받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어도 알고

아이누어도 알아서 아이누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어로 아이누 문학을 번역한 사람입니다. 그 번역이 여기 보이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지리유키에는 이 책이 출판되기 직전에 19살의 어린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원래부터 심장이 좀

약했다고 합니다.

‘요시나리’ 씨입니다. 문학 전문 학예사이십니다. 아이누 문학에도 조예가 있으신 분인 것 같습니다. 문학관에 대해서

혹시 질문이 있으십니까? (홋카이도 문학의 아버지인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雄)라고, 그분의 자료들이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지요?) 편지랑 잡필 원고 같은 게 있다고 합니다. 많지는 않지만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아리시마 다케오’는 홋카이도 문학의 아버지라고 저희들은 다루고 있습니다. 올해 2월에 ‘아리시마 다케오’의 특별전을

하셨답니다. 그때 오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또 다른 질문 없으십니까, 그럼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홋카이도립문학관 (北海道立文学館) 2018년 10월 17일 1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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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 ‘사코’(酒向憲司) 씨와 학예사 ‘요시나리’ (義成) 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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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지리유키에의 이모셨던 간나리 마쓰 씨가 옮긴 기록입니다. 필기체로 멋지게 쓰셨네요. 정부에 160권 정도의

노트가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 몇 권만 전시되어 있습니다. 간나리 마쓰씨는 지리유키에보다 윗사람이기는 하지만 자기

조카가 아이누 문학을 전달하려고 애쓰다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것을 굉장히 슬퍼했고, 그대로 그 일이 끝나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본인이 나서서 일을 끝까지 이어갑니다.

이분은 노래 가(歌)자, 사람 인(人)자를 써서 ‘가인(歌人)’이라고 부르는데요, 아이누 사람들이 가진 슬픈 역사라든지

이런 것들을 일본어로 노래해서 전했던 사람입니다. 이름이 ‘바체라 야에코’ 씨입니다. 여기 손에 성경책을 들고 있어요.

‘바체라’라는 분이 선교 활동을 하셨어요. 선교사의 양녀가 되어서 선교 ‘바체라’라는 성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여기 있는

책은 ‘바체라’ 분이 쓰신 시(詩)입니다.

이분은 ‘모리타케 다케이치(森竹竹市)’라는 분으로 역시 아이누인이고, 일본 전통 노래인 단가를 만드셨던 분입니다.

‘이보시 호쿠토(違星北斗)’라는 사람도 단가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분은 저항시라고 할까요, 일본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누의 입장을 문학으로 표현한 사람입니다. 저희 문학관은 어쩔 수 없이 메이지에 시작된 일본어로 표현된

문학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하토자와 사미오(鳩沢佐美夫)’씨가 쓴 작품집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 좀 보시지요. 여기 부엉이 그림도 있습니다.

아이누인이라고 자신을 밝히고 소설을 쓴 최초의 작가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더욱 더 본인이

아이누인임을 밝히지 않고 작품 활동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당당하게 자신이 아이누인임을

밝히고 집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분은 지리유키에 동생이신 마시호씨입니다. 마시호씨는 아주 우수한 언어학자로 누나와 인연이 있었던 긴다이치

교수와 연결이 되어서 나중에 동경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홋카이도 대학에서 가르치게 됩니다. 지리유키에의 동생

마시호씨는 사할린에 가서 사할린의 학생들을 가르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때 사할린 아이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적어서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은 그때 적었던 메모들입니다. 직접 쓰신 친필이에요.

이분은 ‘가야노 시게리’라는 분으로 아이누인입니다. 정치가이기도 했던 분입니다. 이분은 여기 보이는 것처럼 아이누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읽을 수 있게 쉬운 형태로 출판하시는 일을 했습니다.

아이누 설화는 아이누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이 주인공이 되거나, 아이누 사람들의 일상생활 같은 그런 전통이 굉장히

진하게 묻어 있기 때문에 아이누 문학(화)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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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지리유키에의 이모셨던 간나리 마쓰 씨가 옮긴 기록입니다. 필기체로 멋지게 쓰셨네요. 정부에 160권 정도의

노트가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 몇 권만 전시되어 있습니다. 간나리 마쓰씨는 지리유키에보다 윗사람이기는 하지만 자기

조카가 아이누 문학을 전달하려고 애쓰다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것을 굉장히 슬퍼했고, 그대로 그 일이 끝나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본인이 나서서 일을 끝까지 이어갑니다.

이분은 노래 가(歌)자, 사람 인(人)자를 써서 ‘가인(歌人)’이라고 부르는데요, 아이누 사람들이 가진 슬픈 역사라든지

이런 것들을 일본어로 노래해서 전했던 사람입니다. 이름이 ‘바체라 야에코’ 씨입니다. 여기 손에 성경책을 들고 있어요.

‘바체라’라는 분이 선교 활동을 하셨어요. 선교사의 양녀가 되어서 선교 ‘바체라’라는 성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여기 있는

책은 ‘바체라’ 분이 쓰신 시(詩)입니다.

이분은 ‘모리타케 다케이치(森竹竹市)’라는 분으로 역시 아이누인이고, 일본 전통 노래인 단가를 만드셨던 분입니다.

‘이보시 호쿠토(違星北斗)’라는 사람도 단가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분은 저항시라고 할까요, 일본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누의 입장을 문학으로 표현한 사람입니다. 저희 문학관은 어쩔 수 없이 메이지에 시작된 일본어로 표현된

문학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하토자와 사미오(鳩沢佐美夫)’씨가 쓴 작품집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 좀 보시지요. 여기 부엉이 그림도 있습니다.

아이누인이라고 자신을 밝히고 소설을 쓴 최초의 작가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더욱 더 본인이

아이누인임을 밝히지 않고 작품 활동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당당하게 자신이 아이누인임을

밝히고 집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분은 지리유키에 동생이신 마시호씨입니다. 마시호씨는 아주 우수한 언어학자로 누나와 인연이 있었던 긴다이치

교수와 연결이 되어서 나중에 동경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홋카이도 대학에서 가르치게 됩니다. 지리유키에의 동생

마시호씨는 사할린에 가서 사할린의 학생들을 가르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때 사할린 아이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적어서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은 그때 적었던 메모들입니다. 직접 쓰신 친필이에요.

이분은 ‘가야노 시게리’라는 분으로 아이누인입니다. 정치가이기도 했던 분입니다. 이분은 여기 보이는 것처럼 아이누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읽을 수 있게 쉬운 형태로 출판하시는 일을 했습니다.

아이누 설화는 아이누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이 주인공이 되거나, 아이누 사람들의 일상생활 같은 그런 전통이 굉장히

진하게 묻어 있기 때문에 아이누 문학(화)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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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홋카이도라고 부르는 이 지역은 1868년에 홋카이도라는 이름으로 개명이 되었지요.

이 위에 있는 ‘마쓰다 다케시’라는 사람이 홋카이도를 처음 발견한 일본인입니다. 발견했다기보다는 탐험한 사람이지요.

원래는 ‘에조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홋카이도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홋카이도 대학이 설립된 해는 메이지 9년의 일입니다. 클라크 박사라는 분이 홋카이도에 오셔서 홋카이도 대학을

세우게 됩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말을 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홋카이도의 어떤 정신적인 기저가 된 것이 홋카이도 대학과 홋카이도 농학교입니다. 이 농(두)학교는 유럽이라기보다는

미국을 근거로 해서 미국사람들의 개척 방식을 받아들여서 개발된 곳입니다. 홋카이도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들의 도시

활동도 미국 쪽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에 ‘아리시마 다케오’도 있다고 합니다. 메이지 시대에 굉장히 많은 문학가들이 홋카이도를 찾아오게 됩니다. 그중에서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라는

사람이 가장 유명합니다. 여기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묘도 있어요. 지명에 이 분의 이름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하코다테에도 이분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어요.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문학자로서도 굉장히 흥미 깊은 사람이지만

개인적인 일생도 굉장히 파란만장하고 재미있는 일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기 ‘도산자 작가(道産子作家)라고 쓰인 것이 보이지요? ‘도산코 작가’라고 읽는데 홋카이도가 낳은 작가라는

뜻이에요. 여기 계신 분들은 홋카이도 출신 작가들입니다. 메이지 시대가 끝나고 다이쇼 시대가 시작될 무렵부터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작가들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다들 부잣집 자제분들입니다. 홋카이도에서는 작품을 발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작품 활동을 도쿄에 가서 하게 됩니다.

(이 시대의 여성 작가들은 어떤 대접을 받았나요?) 역시 남자가 문단의 주가 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여자들은 대체로

얼굴이 예쁜 작가라든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고, 그 중에 여기 두 번째 계시는 ‘모리타 타마’라는 분은 ‘나쓰메 소세끼’의

제자였던 ‘모리타 쇼헤이’라는 사람의 여자로 불렸던 사람인데 지금으로 말하면 미투 운동이지요.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고 그 충격으로 한때 붓을 꺾기도 했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 분은 굉장히 미인이신데, 어릴 때 다리를 다치셔서

다리를 절단했었답니다. 그때 당시에 여자가 다리가 없다는 것은 주부로서는 실격이기 때문에 결혼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신 분인데, 여기 대표작을 보면 ‘솔잎 지팡이를 든 여자’ 이런 제목이 있네요.

(이 시대에도 여자들이 정규 교육을 받았나요?) 네 있었어요. 저 작가는 몸이 안 좋아서 젊었을 때 요절합니다.

아리시마 다케오도 원래 동경 출신인데 홋카이도 농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유학하러 왔어요. 이분은 돈 많은 집

아들이었어요. 그래서 홋카이도에 자기 농장을 차렸어요. 이 농장이 공동체의 실험? 이런 것을 했던 곳이예요. 하지만

농장 경영을 계속하지는 않았고 문학의 길을 가게 되지요. 아리시마 다케오의 작품 중에 유명한 것이 <카인의 후예>

라는 작품입니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어요.

여기에는 아리시마 다케오가 ‘긴다 긴지로’라는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를 전시해 놓았습니다.

저 여자 분은 ‘틸다’라는 스위스 분이예요. 아리시마 다케오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한 6개월 정도 유럽을 잠깐 다니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사람이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여성입니다. 아리시마 다케오는 결혼을

했지만 틸다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아리시마 다케오가 만들었던 이 농장은 자기가 직접 소작인을 두고 경영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동으로 경영하는, 약간

공산주의처럼 어떤 실험을 했던 곳이랍니다. 부잣집 아드님이기는 했지만 평등과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였던

사람입니다.

아까 ‘니세코’라는 곳에 대해 얘기했었지요. 외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거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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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홋카이도라고 부르는 이 지역은 1868년에 홋카이도라는 이름으로 개명이 되었지요.

이 위에 있는 ‘마쓰다 다케시’라는 사람이 홋카이도를 처음 발견한 일본인입니다. 발견했다기보다는 탐험한 사람이지요.

원래는 ‘에조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홋카이도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홋카이도 대학이 설립된 해는 메이지 9년의 일입니다. 클라크 박사라는 분이 홋카이도에 오셔서 홋카이도 대학을

세우게 됩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말을 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홋카이도의 어떤 정신적인 기저가 된 것이 홋카이도 대학과 홋카이도 농학교입니다. 이 농(두)학교는 유럽이라기보다는

미국을 근거로 해서 미국사람들의 개척 방식을 받아들여서 개발된 곳입니다. 홋카이도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들의 도시

활동도 미국 쪽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에 ‘아리시마 다케오’도 있다고 합니다. 메이지 시대에 굉장히 많은 문학가들이 홋카이도를 찾아오게 됩니다. 그중에서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라는

사람이 가장 유명합니다. 여기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묘도 있어요. 지명에 이 분의 이름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하코다테에도 이분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어요.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문학자로서도 굉장히 흥미 깊은 사람이지만

개인적인 일생도 굉장히 파란만장하고 재미있는 일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기 ‘도산자 작가(道産子作家)라고 쓰인 것이 보이지요? ‘도산코 작가’라고 읽는데 홋카이도가 낳은 작가라는

뜻이에요. 여기 계신 분들은 홋카이도 출신 작가들입니다. 메이지 시대가 끝나고 다이쇼 시대가 시작될 무렵부터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작가들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다들 부잣집 자제분들입니다. 홋카이도에서는 작품을 발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작품 활동을 도쿄에 가서 하게 됩니다.

(이 시대의 여성 작가들은 어떤 대접을 받았나요?) 역시 남자가 문단의 주가 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여자들은 대체로

얼굴이 예쁜 작가라든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고, 그 중에 여기 두 번째 계시는 ‘모리타 타마’라는 분은 ‘나쓰메 소세끼’의

제자였던 ‘모리타 쇼헤이’라는 사람의 여자로 불렸던 사람인데 지금으로 말하면 미투 운동이지요.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고 그 충격으로 한때 붓을 꺾기도 했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 분은 굉장히 미인이신데, 어릴 때 다리를 다치셔서

다리를 절단했었답니다. 그때 당시에 여자가 다리가 없다는 것은 주부로서는 실격이기 때문에 결혼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신 분인데, 여기 대표작을 보면 ‘솔잎 지팡이를 든 여자’ 이런 제목이 있네요.

(이 시대에도 여자들이 정규 교육을 받았나요?) 네 있었어요. 저 작가는 몸이 안 좋아서 젊었을 때 요절합니다.

아리시마 다케오도 원래 동경 출신인데 홋카이도 농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유학하러 왔어요. 이분은 돈 많은 집

아들이었어요. 그래서 홋카이도에 자기 농장을 차렸어요. 이 농장이 공동체의 실험? 이런 것을 했던 곳이예요. 하지만

농장 경영을 계속하지는 않았고 문학의 길을 가게 되지요. 아리시마 다케오의 작품 중에 유명한 것이 <카인의 후예>

라는 작품입니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어요.

여기에는 아리시마 다케오가 ‘긴다 긴지로’라는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를 전시해 놓았습니다.

저 여자 분은 ‘틸다’라는 스위스 분이예요. 아리시마 다케오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한 6개월 정도 유럽을 잠깐 다니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사람이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여성입니다. 아리시마 다케오는 결혼을

했지만 틸다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아리시마 다케오가 만들었던 이 농장은 자기가 직접 소작인을 두고 경영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동으로 경영하는, 약간

공산주의처럼 어떤 실험을 했던 곳이랍니다. 부잣집 아드님이기는 했지만 평등과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였던

사람입니다.

아까 ‘니세코’라는 곳에 대해 얘기했었지요. 외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거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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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고바야시 타키지죠.) 맞아요. 이분이 원래 아키타 현 출신이신데 집안이 커다란 농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농가가 몰락해서 오타루로 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오타루 항구 마을에 정착해서 살았는데, 그때 바다를 메꾸거나,

이런 매몰지 있잖아요. 그런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대우를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그 이후에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런 작품을 많이 쓰게 됩니다. 아버지가 실업가였기 때문에 가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교육을 제대로 받았고 나중에 대학도 나와서 탁식은행의 직원이 되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은행원으로서 먹고

살기에 충분한 사람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굉장히 컸던 사람이었기에

그것을 문학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주로 하게 됩니다. 이것이 유명한 《게 공선》, 그 원본입니다.

이제 돌아서 전후(戦後)로 가겠습니다.

다음으로 아동문학을 잠깐 보겠습니다. 이쪽이 아동문학입니다. 2,30년대에는 지금처럼 큰 전공 레벨의 잡지도 물론

있었지만, 홋카이도면 홋카이도, 하코다테면 하코다테 하는 식으로 각 지방에서 지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잡지들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사할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작가랍니다. 사할린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작품이랍니다.

아, 아까 우리 보았던 땅 비싸진 곳(니세코) 같은 그림입니다. 홋카이도 아이들의 생활을 그린 그림이랍니다.

‘이지마 케이자부로(井島圭三 )’라는 분이 그린 그림이랍니다. 조각한 판화 작품이예요. (혹시 복사한 그림을

아트샵에서 판매하는지요?) 이 작가의 그림이 서점에 출판되어 많이 판매되고 있답니다. 워낙 유명해서 서점에 가서

얘기하면 반드시 있을만한 그런 작가랍니다.

여기 두 번째 계신 분이 ‘이회성’(李恢成) 씨라고, 우리 문학에서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재일교포 문학가 1세대입니다.

아버지는 북쪽 분이시고 어머니는 남쪽 분이시고. 사할린 쪽에서도 좀 계셨었고,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기셨어요. 12회,

1972년에 아쿠다가와 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습니다. 삿포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셨는데, 관장님의 선배님이랍니다.

《다듬이질 하는 여인》이런 소설들이 있어요.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어느 분이 《빙점》 말씀하셨지요? 여기 ‘미우라 아야코’, 기독교인이셨고, 한국에서 굉장히 인기가 좋다고 들었습니다.

‘이케사와 나쓰키(池澤夏樹)’는 전에 여기 관장님이기도 하셨답니다. 어머니가 홋카이도 출신이라서 홋카이도에 관련된

내용들이 작품에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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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고바야시 타키지죠.) 맞아요. 이분이 원래 아키타 현 출신이신데 집안이 커다란 농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농가가 몰락해서 오타루로 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오타루 항구 마을에 정착해서 살았는데, 그때 바다를 메꾸거나,

이런 매몰지 있잖아요. 그런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대우를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그 이후에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런 작품을 많이 쓰게 됩니다. 아버지가 실업가였기 때문에 가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교육을 제대로 받았고 나중에 대학도 나와서 탁식은행의 직원이 되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은행원으로서 먹고

살기에 충분한 사람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굉장히 컸던 사람이었기에

그것을 문학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주로 하게 됩니다. 이것이 유명한 《게 공선》, 그 원본입니다.

이제 돌아서 전후(戦後)로 가겠습니다.

다음으로 아동문학을 잠깐 보겠습니다. 이쪽이 아동문학입니다. 2,30년대에는 지금처럼 큰 전공 레벨의 잡지도 물론

있었지만, 홋카이도면 홋카이도, 하코다테면 하코다테 하는 식으로 각 지방에서 지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잡지들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사할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작가랍니다. 사할린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작품이랍니다.

아, 아까 우리 보았던 땅 비싸진 곳(니세코) 같은 그림입니다. 홋카이도 아이들의 생활을 그린 그림이랍니다.

‘이지마 케이자부로(井島圭三 )’라는 분이 그린 그림이랍니다. 조각한 판화 작품이예요. (혹시 복사한 그림을

아트샵에서 판매하는지요?) 이 작가의 그림이 서점에 출판되어 많이 판매되고 있답니다. 워낙 유명해서 서점에 가서

얘기하면 반드시 있을만한 그런 작가랍니다.

여기 두 번째 계신 분이 ‘이회성’(李恢成) 씨라고, 우리 문학에서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재일교포 문학가 1세대입니다.

아버지는 북쪽 분이시고 어머니는 남쪽 분이시고. 사할린 쪽에서도 좀 계셨었고,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기셨어요. 12회,

1972년에 아쿠다가와 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습니다. 삿포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셨는데, 관장님의 선배님이랍니다.

《다듬이질 하는 여인》이런 소설들이 있어요.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어느 분이 《빙점》 말씀하셨지요? 여기 ‘미우라 아야코’, 기독교인이셨고, 한국에서 굉장히 인기가 좋다고 들었습니다.

‘이케사와 나쓰키(池澤夏樹)’는 전에 여기 관장님이기도 하셨답니다. 어머니가 홋카이도 출신이라서 홋카이도에 관련된

내용들이 작품에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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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조그만 공간을 잡아서 특별전을 하는 곳인데, 이번에는 삿포로와 미스테리.. 이런 이야기들.. 홋카이도에 살인

사건이 많은가 봐요.. 미스테리 소설들..

홋카이도는 일본의 가장 끝에 있고 넓잖아요. 산도 험하고, 그러니까 여행을 하다가 마지막에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

이런 무대로 사용이 된답니다.

(혹시 여기서 운영하는 답사 프로그램 등은 있는지요?) 여기서는 안하고 삿포로 시에서 연 3회 정도 한다고 합니다.

도록은 아마 안 만드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 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나요?) 있습니다. 월 1회. 두근두근 어린이. 그림자연극을 합니다.

성인 수업이 있고 전문적으로 강연을 합니다. 수업을 수료한 후 사인회정도는 하지만 책을 내지는 않습니다.

수강료는 10만엔 정도.

감사합니다.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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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조그만 공간을 잡아서 특별전을 하는 곳인데, 이번에는 삿포로와 미스테리.. 이런 이야기들.. 홋카이도에 살인

사건이 많은가 봐요.. 미스테리 소설들..

홋카이도는 일본의 가장 끝에 있고 넓잖아요. 산도 험하고, 그러니까 여행을 하다가 마지막에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

이런 무대로 사용이 된답니다.

(혹시 여기서 운영하는 답사 프로그램 등은 있는지요?) 여기서는 안하고 삿포로 시에서 연 3회 정도 한다고 합니다.

도록은 아마 안 만드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 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나요?) 있습니다. 월 1회. 두근두근 어린이. 그림자연극을 합니다.

성인 수업이 있고 전문적으로 강연을 합니다. 수업을 수료한 후 사인회정도는 하지만 책을 내지는 않습니다.

수강료는 10만엔 정도.

감사합니다.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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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립박물관 (北海道立博物館) 2018년 10월 18일(목) 9시 30분

여기는 이 박물관에서 프롤로그라고 이름 붙인 방이에요. 여기 보시면 바닥에 홋카이도 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시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지도보다 90도 정도 각도가 비틀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홋카이도가 가장 끝, 꼭대기에 있다고 여기지만 이 지도는 여기 홋카이도에 서서 저쪽을 바라보도록 되어있어요.

변경에서 중앙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홋카이도에서 바라보면 저쪽에 한국, 이쪽(뒤쪽)에

중국, 이쪽(앞쪽)에 혼슈가 있습니다.

‘나우만’이라는 남방에서 온 코끼리랍니다. 이것은 맘모스의 뼈입니다. 진짜는 아니고 복원한 거랍니다. 남쪽에서 온

나우만 코끼리와 북쪽에서 온 맘모스 코끼리가 만나는 곳이 홋카이도가 됩니다. 북쪽에서 온 문화와 남쪽에서 온 문화가

만나는 곳, 그러한 넓은 관점에서 홋카이도를 보아달라는 의미에서 이런 전시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도 위에 작은 흰점으로 동그랗게 표시해 놓은 둘레가 보이시지요? 이 표시는 반경 500km 정도 되는 영역을

나타내는데, 이 원 안에 중심이 되는 지역이 홋카이도입니다. 홋카이도는 독립된 조그만 섬이 아니라 500km 동심원을

그렸을 때, 바로 옆에 사할린과 치시마 열도와 혼슈가 모두 이 원 안에 들어오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홋카이도를

고립되고 좁은 곳이 아니라 연결되어진 곳이라는 관점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적으로 코끼리들도 이곳에서

만나 모이는 것처럼, 문화적으로도 이 혼슈의 문화와 북방의 문화가 만나는 곳이 홋카이도입니다. 초등학생들이 오니까

먼저 들어가시죠.

이곳은 ‘홋카이도 120만년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방이예요. 인간이 살지 않았던 120만 년 전 이야기부터

메이지 이후의 이야기까지 역사가 담겨있는 방입니다.

이것은 진짜 오리지널 맘모스의 상아랍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지만 홋카이도에도 빙하기가 있었고 다시 풀리는

시기가 반복되었어요. 그 반복되던 시기의 지층이 있고, 그 지층에서 나온 화석들입니다. 이것은 알래스카에서 발굴된

맘모스의 화석이예요. 이렇게 손으로 만져 봐도 됩니다. (오, 이빨이, 이것이 뿔이고 이것이 씹는 면이예요.)

학예사 ‘엔도’ (遠藤) 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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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립박물관 (北海道立博物館) 2018년 10월 18일(목) 9시 30분

여기는 이 박물관에서 프롤로그라고 이름 붙인 방이에요. 여기 보시면 바닥에 홋카이도 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시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지도보다 90도 정도 각도가 비틀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홋카이도가 가장 끝, 꼭대기에 있다고 여기지만 이 지도는 여기 홋카이도에 서서 저쪽을 바라보도록 되어있어요.

변경에서 중앙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홋카이도에서 바라보면 저쪽에 한국, 이쪽(뒤쪽)에

중국, 이쪽(앞쪽)에 혼슈가 있습니다.

‘나우만’이라는 남방에서 온 코끼리랍니다. 이것은 맘모스의 뼈입니다. 진짜는 아니고 복원한 거랍니다. 남쪽에서 온

나우만 코끼리와 북쪽에서 온 맘모스 코끼리가 만나는 곳이 홋카이도가 됩니다. 북쪽에서 온 문화와 남쪽에서 온 문화가

만나는 곳, 그러한 넓은 관점에서 홋카이도를 보아달라는 의미에서 이런 전시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도 위에 작은 흰점으로 동그랗게 표시해 놓은 둘레가 보이시지요? 이 표시는 반경 500km 정도 되는 영역을

나타내는데, 이 원 안에 중심이 되는 지역이 홋카이도입니다. 홋카이도는 독립된 조그만 섬이 아니라 500km 동심원을

그렸을 때, 바로 옆에 사할린과 치시마 열도와 혼슈가 모두 이 원 안에 들어오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홋카이도를

고립되고 좁은 곳이 아니라 연결되어진 곳이라는 관점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적으로 코끼리들도 이곳에서

만나 모이는 것처럼, 문화적으로도 이 혼슈의 문화와 북방의 문화가 만나는 곳이 홋카이도입니다. 초등학생들이 오니까

먼저 들어가시죠.

이곳은 ‘홋카이도 120만년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방이예요. 인간이 살지 않았던 120만 년 전 이야기부터

메이지 이후의 이야기까지 역사가 담겨있는 방입니다.

이것은 진짜 오리지널 맘모스의 상아랍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지만 홋카이도에도 빙하기가 있었고 다시 풀리는

시기가 반복되었어요. 그 반복되던 시기의 지층이 있고, 그 지층에서 나온 화석들입니다. 이것은 알래스카에서 발굴된

맘모스의 화석이예요. 이렇게 손으로 만져 봐도 됩니다. (오, 이빨이, 이것이 뿔이고 이것이 씹는 면이예요.)

학예사 ‘엔도’ (遠藤) 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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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것은 처음 알았는데요, 여기 빨간 점이 있는 ‘엔가로’라는 지역에서 굉장히 질이 좋은 흑요석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저렇게 화살표 방향으로 보급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 흑요석이 러시아나 중국 쪽으로도 갔겠지요. 이

흑요석이 좋은 칼 재료였다고 합니다.

여기도 도구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신석기 시대의 패총 같은...) 이것은 하코다테에 있었던 것이예요. 토기 굽는 것,

동굴, 움막집 같은 토굴집, (질문 있어요. 남자, 여자.. 어느 쪽인지요?) 알 수 없답니다. (발견된 상태, 여신의 얼굴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보신 것은 혼슈의 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쯤부터 혼슈에서는 농사를 짓게

됩니다. 홋카이도에서는 아직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달라지게 되지요. 여기서부터는 2000년부터 있었던 속

조몬 문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혼슈 쪽에서는 ‘야요이 문화’,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는데, 홋카이도에서는 그 후에도

천년 동안 계속해서 조몬 문화가 이어집니다. 생산한 것이라든지, 음식을 담아놓던 저장고랍니다.

여기는 뼈를 가지고 만든 것들입니다. (뼈로 만든 것은 한국에서는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팔찌.. 이것은 사슴뿔로 만든

것이래요. (저것들의 활용은 무엇인지요?) 스푼. 아,

‘조몬 문화’의 토기에는 무늬가 있어요. 이 무늬가 밧줄 모양으로 되어있어서 밧줄 무늬라는 뜻으로 ‘조몬 문화’라고

합니다.

여기에 있는 것들은 대륙 쪽에서 온 유물들입니다. 이것도 다 같은 것입니다. (복원된 것인지 진짜를 뜯어온 것인지...)

떼어가지고 온 것이랍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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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것은 처음 알았는데요, 여기 빨간 점이 있는 ‘엔가로’라는 지역에서 굉장히 질이 좋은 흑요석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저렇게 화살표 방향으로 보급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 흑요석이 러시아나 중국 쪽으로도 갔겠지요. 이

흑요석이 좋은 칼 재료였다고 합니다.

여기도 도구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신석기 시대의 패총 같은...) 이것은 하코다테에 있었던 것이예요. 토기 굽는 것,

동굴, 움막집 같은 토굴집, (질문 있어요. 남자, 여자.. 어느 쪽인지요?) 알 수 없답니다. (발견된 상태, 여신의 얼굴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보신 것은 혼슈의 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쯤부터 혼슈에서는 농사를 짓게

됩니다. 홋카이도에서는 아직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달라지게 되지요. 여기서부터는 2000년부터 있었던 속

조몬 문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혼슈 쪽에서는 ‘야요이 문화’,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는데, 홋카이도에서는 그 후에도

천년 동안 계속해서 조몬 문화가 이어집니다. 생산한 것이라든지, 음식을 담아놓던 저장고랍니다.

여기는 뼈를 가지고 만든 것들입니다. (뼈로 만든 것은 한국에서는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팔찌.. 이것은 사슴뿔로 만든

것이래요. (저것들의 활용은 무엇인지요?) 스푼. 아,

‘조몬 문화’의 토기에는 무늬가 있어요. 이 무늬가 밧줄 모양으로 되어있어서 밧줄 무늬라는 뜻으로 ‘조몬 문화’라고

합니다.

여기에 있는 것들은 대륙 쪽에서 온 유물들입니다. 이것도 다 같은 것입니다. (복원된 것인지 진짜를 뜯어온 것인지...)

떼어가지고 온 것이랍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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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오호츠크해에 들어가는 홋카이도 윗부분의 문화입니다. 곰 모양으로 조각한 것인데,

나무로 깎은 거래요. (곰의 형상인데, 검은 색상은... 불에 타서 그래요.) 원래 검은 색은 아니었을 거예요. 이제 7세기가

되면 혼슈에서부터 올라오는 ‘사쓰몬 문화’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지금까지 봤던 것들과 물품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 문화가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니고, 이 시기가 되면 와진, 일본인과

아이누인이 교역했던 물건들이 여기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이누가 수렵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것뿐만 아니라 와진과 교역을 많이 해서 제례에 필요한 물건들을 많이 입수했습니다.

아래 파란 색으로 된 단 위에 있는 것들이 아이누가 일본인들에게 팔았던 물품입니다. 건너편에 있는 하얀 단 위에 있는

것들은 반대로 아이누가 교역하여 입수한 물품들입니다. 수렵을 통해서 잡은 새나 동물의 가죽 등은 일본의 본토사람들,

혼슈 사람들에게 굉장히 귀중한 물품이었습니다. 해달이래요. 실제로는 더 크답니다. 바다사자인 것 같아요.

이것은 술을 만들 때 쓰던 도구들, 이것은 옻칠한 그릇들, 얼마나 중요했을까요. 솥과 농사용품들, 옷, 여기 있는 이런

것들은 홋카이도에서 만들지 못한 것들, 수입한 거지요.

이것은 연어입니다. 이정도 연어를 잡으면 요만큼의 쌀하고 바꿨답니다. 처음에는 연어 한 마리와 쌀 한 말을 바꿨대요.

그런데 사람들이 영리해져 가지고 점점 양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결국 나중에는 연어 이만큼과 쌀 요정도와 바꾸게

되었답니다.

저렇게 불공정한 교역을 하다 보니까 아이누 사람들도 굉장히 불만을 품게 되었어요. 집단 봉기랄까, 전쟁을 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1500년경에 있었던 유품인데요, 그때 각지에서 전쟁이 있었습니다. 중앙 국가까지는 되지

못했지만 강력한 리더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거겠죠. 이분은 유명한 사람이예요. 샤쿠샤이(?)..

라는 아이누인이랍니다. 남쪽에 있었던,

이것은 교역 장면을 재현한 것입니다. 나중에는 약간 의식처럼 되어버렸는데, 저쪽(오른쪽)에 우리가 봤던 조그만

쌀가마 같은 것들이 보이지요. 왼쪽 뒤에는 무관들이 보입니다. 여기 보시면 이쪽(오른쪽)에 있는 사람들과 여기 계신

분들의 옷 색깔이 달라요, 천도 다르고, 이쪽은 면 종류로 된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여기는 일본에서 수입한 굉장히

비싸고 좋은 옷이기 때문에 어떤 의식을 하거나 의례를 할 때에만 이렇게 입었습니다.

저 위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시겠답니다. 문학 전공자이시니까.

이제 13세기로 들어갑니다. 대체로 12세기에서 13세기에 관련되는 전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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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오호츠크해에 들어가는 홋카이도 윗부분의 문화입니다. 곰 모양으로 조각한 것인데,

나무로 깎은 거래요. (곰의 형상인데, 검은 색상은... 불에 타서 그래요.) 원래 검은 색은 아니었을 거예요. 이제 7세기가

되면 혼슈에서부터 올라오는 ‘사쓰몬 문화’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지금까지 봤던 것들과 물품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 문화가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니고, 이 시기가 되면 와진, 일본인과

아이누인이 교역했던 물건들이 여기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이누가 수렵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것뿐만 아니라 와진과 교역을 많이 해서 제례에 필요한 물건들을 많이 입수했습니다.

아래 파란 색으로 된 단 위에 있는 것들이 아이누가 일본인들에게 팔았던 물품입니다. 건너편에 있는 하얀 단 위에 있는

것들은 반대로 아이누가 교역하여 입수한 물품들입니다. 수렵을 통해서 잡은 새나 동물의 가죽 등은 일본의 본토사람들,

혼슈 사람들에게 굉장히 귀중한 물품이었습니다. 해달이래요. 실제로는 더 크답니다. 바다사자인 것 같아요.

이것은 술을 만들 때 쓰던 도구들, 이것은 옻칠한 그릇들, 얼마나 중요했을까요. 솥과 농사용품들, 옷, 여기 있는 이런

것들은 홋카이도에서 만들지 못한 것들, 수입한 거지요.

이것은 연어입니다. 이정도 연어를 잡으면 요만큼의 쌀하고 바꿨답니다. 처음에는 연어 한 마리와 쌀 한 말을 바꿨대요.

그런데 사람들이 영리해져 가지고 점점 양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결국 나중에는 연어 이만큼과 쌀 요정도와 바꾸게

되었답니다.

저렇게 불공정한 교역을 하다 보니까 아이누 사람들도 굉장히 불만을 품게 되었어요. 집단 봉기랄까, 전쟁을 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1500년경에 있었던 유품인데요, 그때 각지에서 전쟁이 있었습니다. 중앙 국가까지는 되지

못했지만 강력한 리더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거겠죠. 이분은 유명한 사람이예요. 샤쿠샤이(?)..

라는 아이누인이랍니다. 남쪽에 있었던,

이것은 교역 장면을 재현한 것입니다. 나중에는 약간 의식처럼 되어버렸는데, 저쪽(오른쪽)에 우리가 봤던 조그만

쌀가마 같은 것들이 보이지요. 왼쪽 뒤에는 무관들이 보입니다. 여기 보시면 이쪽(오른쪽)에 있는 사람들과 여기 계신

분들의 옷 색깔이 달라요, 천도 다르고, 이쪽은 면 종류로 된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여기는 일본에서 수입한 굉장히

비싸고 좋은 옷이기 때문에 어떤 의식을 하거나 의례를 할 때에만 이렇게 입었습니다.

저 위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시겠답니다. 문학 전공자이시니까.

이제 13세기로 들어갑니다. 대체로 12세기에서 13세기에 관련되는 전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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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작은 동물을 잡는 덫과 옷입니다. 16, 17세기까지 왔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와진들이 와서 아이누와 교역 뿐만

아니라 아이누인을 고용하기까지 합니다. 아이누와 와진 사이에 교류가 활발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갑자기 시대가 확 바뀝니다. 메이지가 시작되면서 홋카이도가 되었잖아요.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의 홋카이도를

표현한 코너입니다. 이것은 개척사 본청입니다.

그때 왔던 병사들은 여기 보면 농사를 짓고 있으면서 옆에 칼도 차고 있어요. 일도 하다가 여차하면 칼도 뽑았다가,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답니다. (너무 착취를 많이 했네요,)

두 번째 코너가 아이누 문화에 대한 전시입니다. 보통 박물관이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것만 전시를 하지요. 하지만 이

코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문화, 언어라든가 이런 것까지 포함해서 전시를 하는 곳입니다. 음악 소리도 들리지요?

여기 지도에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것은 아이누어를 써놓은 것입니다.

(지리유키에 이모의 문장)

에도 말기 이후에 지금까지, 세대의 문화가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를 표현한 방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아이누를

연상하면 이런(오른쪽)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아이누인들은 이런(왼쪽) 보통의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보통의 생활, 일본 사람들이 보통 아이누를 생각할 때 아이누는 저런 옷을 입고 생활할거야,

이렇게 생각하는데 보통은 그렇지 않고, 일본 사람들이 기모노를 입지 않아도 일본인인 것처럼 아이누도 양복을 입고

있어도 아이누인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코너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부모가 우리는 아이누인이라고 알려 주나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아이누인임을 알게 되나요?)

그것은 개별적인 문제라서 이야기를 하는 가정도 있고, 어떤 가정에서는 아예 말하지 않기도 한답니다. (한국에 족보가

있듯이 여기에도 족보 같은 것이 있나요?) 입으로 전하지요. 글이 없으니까 족보는 없지요. (현대에도 우리에게는

족보가 있잖아요.) 지금 적혀있는 족보를 말하는 거지요? 집집마다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하고 있던 것, 계속 전해져

온 것, 외우고 있던 것들을 글로 써놓는 가정도 있답니다. 들은 것을 적어본다는 식으로 써놓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의외로 아이누의 근현대사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의식이 안 되고 있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아이누인들이 그냥

옛날의 모습에서 여기 현대의 모습으로 갑자기 확 변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세대별로 점차 변해갔다는 것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19세기 말, 에도시대가 끝나고 메이지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그때의 가족사진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입에 문신한

여성이 보이지요. 뒤에 서있는 여성은 문신을 하지 않았어요. 문신은 성인식의 표시인데, 현대화되면서 안 하게 된

거지요. (몇 살부터 성인식을 했었나요?) 생리가 언제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전해지지는 않지만 성인이 된

여자, 대체로 12~13세 무렵에 했다고 합니다. (이 문신이 미의 기준이었을까요?) 미의 기준일 수도 있고 문신이 있으면

어른 여자다, 멋진 여자다, 하는 느낌도 있었답니다. (만약 문신이 싫어서 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에서 배척되기도

했나요?) 그런 사람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미의 기준이라는 것은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에 아마 대부분은 했을 것

같습니다.

한 번 또 세대가 바뀌어서 개척시대, 개발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아이누의 문화를 전승해서도 안 되고

전통적으로 하던 것들도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시대가 되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외부로부터 그렇게 된 것이고

내부로부터도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철도를 만들 때 재는 측량기 같은 것인데, 이렇게 아이누인

스스로 기술을 익히거나 해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가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됩니다.

아이누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출병하게 되었어요. 그때 출병한 사진입니다. 아이누들은 출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가,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했는가 아니면 거부했는가, 라는 문제를 물어보니까 교육의 효과였겠지만

아이누인들도 일본인들과 거의 똑같은 감성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휘말린다는 측면에서는 아이누도

와진도 똑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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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작은 동물을 잡는 덫과 옷입니다. 16, 17세기까지 왔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와진들이 와서 아이누와 교역 뿐만

아니라 아이누인을 고용하기까지 합니다. 아이누와 와진 사이에 교류가 활발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갑자기 시대가 확 바뀝니다. 메이지가 시작되면서 홋카이도가 되었잖아요.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의 홋카이도를

표현한 코너입니다. 이것은 개척사 본청입니다.

그때 왔던 병사들은 여기 보면 농사를 짓고 있으면서 옆에 칼도 차고 있어요. 일도 하다가 여차하면 칼도 뽑았다가,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답니다. (너무 착취를 많이 했네요,)

두 번째 코너가 아이누 문화에 대한 전시입니다. 보통 박물관이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것만 전시를 하지요. 하지만 이

코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문화, 언어라든가 이런 것까지 포함해서 전시를 하는 곳입니다. 음악 소리도 들리지요?

여기 지도에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것은 아이누어를 써놓은 것입니다.

(지리유키에 이모의 문장)

에도 말기 이후에 지금까지, 세대의 문화가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를 표현한 방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아이누를

연상하면 이런(오른쪽)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아이누인들은 이런(왼쪽) 보통의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보통의 생활, 일본 사람들이 보통 아이누를 생각할 때 아이누는 저런 옷을 입고 생활할거야,

이렇게 생각하는데 보통은 그렇지 않고, 일본 사람들이 기모노를 입지 않아도 일본인인 것처럼 아이누도 양복을 입고

있어도 아이누인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코너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부모가 우리는 아이누인이라고 알려 주나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아이누인임을 알게 되나요?)

그것은 개별적인 문제라서 이야기를 하는 가정도 있고, 어떤 가정에서는 아예 말하지 않기도 한답니다. (한국에 족보가

있듯이 여기에도 족보 같은 것이 있나요?) 입으로 전하지요. 글이 없으니까 족보는 없지요. (현대에도 우리에게는

족보가 있잖아요.) 지금 적혀있는 족보를 말하는 거지요? 집집마다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하고 있던 것, 계속 전해져

온 것, 외우고 있던 것들을 글로 써놓는 가정도 있답니다. 들은 것을 적어본다는 식으로 써놓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의외로 아이누의 근현대사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의식이 안 되고 있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아이누인들이 그냥

옛날의 모습에서 여기 현대의 모습으로 갑자기 확 변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세대별로 점차 변해갔다는 것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19세기 말, 에도시대가 끝나고 메이지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그때의 가족사진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입에 문신한

여성이 보이지요. 뒤에 서있는 여성은 문신을 하지 않았어요. 문신은 성인식의 표시인데, 현대화되면서 안 하게 된

거지요. (몇 살부터 성인식을 했었나요?) 생리가 언제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전해지지는 않지만 성인이 된

여자, 대체로 12~13세 무렵에 했다고 합니다. (이 문신이 미의 기준이었을까요?) 미의 기준일 수도 있고 문신이 있으면

어른 여자다, 멋진 여자다, 하는 느낌도 있었답니다. (만약 문신이 싫어서 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에서 배척되기도

했나요?) 그런 사람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미의 기준이라는 것은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에 아마 대부분은 했을 것

같습니다.

한 번 또 세대가 바뀌어서 개척시대, 개발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아이누의 문화를 전승해서도 안 되고

전통적으로 하던 것들도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시대가 되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외부로부터 그렇게 된 것이고

내부로부터도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철도를 만들 때 재는 측량기 같은 것인데, 이렇게 아이누인

스스로 기술을 익히거나 해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가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됩니다.

아이누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출병하게 되었어요. 그때 출병한 사진입니다. 아이누들은 출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가,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했는가 아니면 거부했는가, 라는 문제를 물어보니까 교육의 효과였겠지만

아이누인들도 일본인들과 거의 똑같은 감성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휘말린다는 측면에서는 아이누도

와진도 똑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홋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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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0, 40년 전의 사진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우리 아버지는 아이누의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이야’ 이런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는 버스 운전사야’ 이런 것을 자랑스럽게 느끼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아이누든 와진이든 상관없이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직업을 찾아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제는 일본인과 아이누가 구분이 안 되는 그런 생활을 하는 거지요.

두 번째 코너는 ‘아이누 전통 문화’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사용되었던 배랍니다. 저렇게 서서.. 물고기를 잡을 때 썼던

배래요. 이것을 조금 더 크게 만들어 바다로 나갔답니다. 이 정도는 강에서 탔던 것 같아요. 이 정도 배로 바다로 나가면

빠지지요. 이것은 수렵도구.. (무슨 나무인가요?) ‘카쓰라’라고, 계수나무일 것 같은데.. (물 위에 잘 뜨는가 봅니다. 제작

기간이 어떻게 되지요?) 모른답니다. 아, 계수나무가 맞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신문을 찍어놓은 것입니다. 그때는 아이누가 이미 일본인들과 똑같아졌기 때문에 ‘아이누는 이제

없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아니다 우리는 존재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던 시기입니다. 1972년 아이누 법령이

제정된 시기예요. 이 20, 30년 동안은 ‘우리는 아이누인이고 우리가 이 땅의 선주민이다.’ 라는 것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표현한 잡지입니다.

아이누가 국가연합 UN회의에 가서 아이누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장면들입니다. 몇 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아이누가 이렇게 외부로 나가서 활동하는 분만 있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렇게 일반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아이누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요. 이것이 지금까지의 간단한 아이누

역사입니다.

100년 전에 있었던 집을 복원한 거예요. 가까이 가서 보시는 것이 좋답니다. 위를 보시면 생선을 말리는 것이 있어요.

겨울에 먹을 것, 보존하는 방식으로.. 저 위에 굴비 매달듯이 매달아놓은 것 같아요.

‘이로리’라는 것을 설명했었지요. ‘이로리’에 불을 붙이면 자연스럽게 김이 올라가서 훈제가 되는 그런 시스템인 거죠.

(제사는 장남이 지내나요?) 기본적으로 아이누는 후계 계승, 이런 개념이 없대요. (그럼 제사도 없는 건가요?) 특별히

장남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집마다 다 달라서 자기네 방식으로 했답니다. 장남이 했다기 보다는 모여서 하기도 하고.

(집에서 딸이 시집을 갈 때 지참금으로 무엇을 주나요?) 자수를 놓아서 예쁜 옷을 가져간답니다. (우리도 그랬어요.

몽골도 그렇고. 그리고 외부 손님이 오시면 특별히 하는 행사가 있나요? 러시아는 문 앞에서 음식을 먹여준다든가

하잖아요.) 일단 손님이 오면 밖에서 우리처럼 ‘에헴’ 하고 기침을 하거나 신발을 벗어서 딱딱 두드려서 소리를 낸답니다.

그러면 안에서 여성이 살짝 밖을 엿보고 나서 남편에게 누가 왔다고 얘기를 하면 나가서 맞이하는 것이 하나의 형식이

되어 있답니다. (여자가 손님하고 같이 합석은 못하나요?) 사람들이 오면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대요. 그래서 주인이 저

안쪽에 앉는다거나, 여기에서 얘기하면 여자들은 바로 저 건너편, 저기 빨간 것이 보이는 저 건너편 정도에 앉을 수

있었고, 앉아서는 안 된다, 이런 법은 없었답니다. (저 몽골이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쪽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양을

잡거든요. 주인이 직접 칼로 머리를 잘라서 가장 맛있는 부분을 제일 먼저 손님에게 대접한대요.) 손님이 오면 맛있는

것을 내놓는다는 것은 똑같은데, 의례적으로 무엇을 내놓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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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0, 40년 전의 사진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우리 아버지는 아이누의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이야’ 이런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는 버스 운전사야’ 이런 것을 자랑스럽게 느끼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아이누든 와진이든 상관없이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직업을 찾아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제는 일본인과 아이누가 구분이 안 되는 그런 생활을 하는 거지요.

두 번째 코너는 ‘아이누 전통 문화’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사용되었던 배랍니다. 저렇게 서서.. 물고기를 잡을 때 썼던

배래요. 이것을 조금 더 크게 만들어 바다로 나갔답니다. 이 정도는 강에서 탔던 것 같아요. 이 정도 배로 바다로 나가면

빠지지요. 이것은 수렵도구.. (무슨 나무인가요?) ‘카쓰라’라고, 계수나무일 것 같은데.. (물 위에 잘 뜨는가 봅니다. 제작

기간이 어떻게 되지요?) 모른답니다. 아, 계수나무가 맞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신문을 찍어놓은 것입니다. 그때는 아이누가 이미 일본인들과 똑같아졌기 때문에 ‘아이누는 이제

없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아니다 우리는 존재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던 시기입니다. 1972년 아이누 법령이

제정된 시기예요. 이 20, 30년 동안은 ‘우리는 아이누인이고 우리가 이 땅의 선주민이다.’ 라는 것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표현한 잡지입니다.

아이누가 국가연합 UN회의에 가서 아이누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장면들입니다. 몇 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아이누가 이렇게 외부로 나가서 활동하는 분만 있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렇게 일반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아이누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요. 이것이 지금까지의 간단한 아이누

역사입니다.

100년 전에 있었던 집을 복원한 거예요. 가까이 가서 보시는 것이 좋답니다. 위를 보시면 생선을 말리는 것이 있어요.

겨울에 먹을 것, 보존하는 방식으로.. 저 위에 굴비 매달듯이 매달아놓은 것 같아요.

‘이로리’라는 것을 설명했었지요. ‘이로리’에 불을 붙이면 자연스럽게 김이 올라가서 훈제가 되는 그런 시스템인 거죠.

(제사는 장남이 지내나요?) 기본적으로 아이누는 후계 계승, 이런 개념이 없대요. (그럼 제사도 없는 건가요?) 특별히

장남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집마다 다 달라서 자기네 방식으로 했답니다. 장남이 했다기 보다는 모여서 하기도 하고.

(집에서 딸이 시집을 갈 때 지참금으로 무엇을 주나요?) 자수를 놓아서 예쁜 옷을 가져간답니다. (우리도 그랬어요.

몽골도 그렇고. 그리고 외부 손님이 오시면 특별히 하는 행사가 있나요? 러시아는 문 앞에서 음식을 먹여준다든가

하잖아요.) 일단 손님이 오면 밖에서 우리처럼 ‘에헴’ 하고 기침을 하거나 신발을 벗어서 딱딱 두드려서 소리를 낸답니다.

그러면 안에서 여성이 살짝 밖을 엿보고 나서 남편에게 누가 왔다고 얘기를 하면 나가서 맞이하는 것이 하나의 형식이

되어 있답니다. (여자가 손님하고 같이 합석은 못하나요?) 사람들이 오면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대요. 그래서 주인이 저

안쪽에 앉는다거나, 여기에서 얘기하면 여자들은 바로 저 건너편, 저기 빨간 것이 보이는 저 건너편 정도에 앉을 수

있었고, 앉아서는 안 된다, 이런 법은 없었답니다. (저 몽골이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쪽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양을

잡거든요. 주인이 직접 칼로 머리를 잘라서 가장 맛있는 부분을 제일 먼저 손님에게 대접한대요.) 손님이 오면 맛있는

것을 내놓는다는 것은 똑같은데, 의례적으로 무엇을 내놓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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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이렇게 자수가 많이 수 놓여 있는 옷은 의식할 때 입었던 옷이랍니다. (그럼 국제행사나, TV에 사진으로 나온

모습들은 다 이런 의식용 옷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네, 그렇지요.

이 천은 나무 껍데기로 만드는 거랍니다. (아, 껍데기를 저렇게 긁어가지고, 보통 몇 년생 나무를 쓰나요?) 정해져

있지는 않고 나무가 크면 쓴다고 합니다. (나무에도 영(靈)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무를 자를 때, 예를 들면 우리는 음식

먹기 전에 ‘고시래’ 같은 것을 하는데. 그런 것을 하나요?) 사람마다 말하는 방식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고시래’ 같은

말을 하기는 한답니다. 말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형식은 정해져 있어서, 일단 먼저 신을 부른 후 ‘제가 이러한 이유로

당신의 옷을 벗겨가겠습니다.’ 라고 얘기를 한답니다. (이요만테, 곰에게 하는 것과 비슷하네요.) 큰 틀에서는 같은

거라고 볼 수가 있겠네요. (여자 옷을 기준으로 하여 이런 옷을 하나 만드는데 보통 며칠 정도 걸리나요?) 상당히

걸린다고는 하는데 정확히는 모르는 것 같아요. (여기 러시아 사람들도 많이 오나 봐요. 러시아 문화권이니까요.)

(고기를 잡아서 주나요? 생선을.) 사람이 오면 보통 남자들은 이쪽에 앉고 여자들은 저쪽에 앉는데,

이 이로리가 있는 위쪽은 신의 자리라서 사람은 앉지 않는 자리랍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손님이 오면

요 상석에, 가운데 자리에 앉힌답니다. 그 이상은 안 되는 거지요.

여기까지.. (무용을 한 번 보여주세요.) 이제 춤을 보겠습니다. (무용은 대부분 여성 중심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관련 있는 건가요?) 춤의 내용에 따라서 남녀가 다르답니다. 남자가 하는 것도 있고, 군무를 추는 경우는 대부분

여성들이 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무용의 종류에 따라서는 활을 사용하거나 칼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런 무용들은 거의

남자들이 합니다.

나는 사람의 마을에 내려왔습니다. 마을 수원에 왔어요. 그 산 위에 훌륭한 집이 만들어져 있어서

거기에 내려가서 살고 있습니다. (후렴) 인간 마을을 지켜주고 살고 있자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강가에 살고 있는데 나만큼 능력이 있는 신은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늪 근처에

빙글빙글, 나는 날아다니며 언제나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딱 붙어서 걸어있고 근처 마을을 황량하게 하는데 나는 화가 났기 때문에 여기 찾아왔다.

누군가가 했기 때문에.. 자 지금부터 나와 함께 여자끼리 승부를 내봅시다. 여자는 구네페쓰의 언니

쪽이 일어서서 말하기를,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가? 너는 품격이 없다. 우리가 두 번 세 번 몇 번이나

가세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다. 포이야운페에게는 가족도 친척도 없다. 그러니까 그의 편이

된다고 해도 사랑 같은 것은 전혀 할 수 없다. 품격이 없는 너의 말이더라도,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실례되는 말을 해서야 되겠느냐?

신요를 보겠습니다. 부엉이가 주인공입니다. ‘나’는 신(神)을 뜻합니다.

이 건너편 코너에서는 다 들어볼 수 있답니다.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히다까 지방의 영웅서사시도 조금 보여드리겠습니다.

(포이야운페가 반신반인의 인간 영웅이예요. 거기에 세 자매가 나오는데, 그것은 좀 해석을 해봐야 알겠어요. 아래의

두 명이 자매에게 충고하는 내용이예요. 유트브에서도 볼 수 있을까요?) 올라와 있기는 한데 아마 똑같지는 않을 거라고

합니다. 아마 유트브에는 일본어 자막밖에는 없을 거예요.

여기는 아이누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노래와 춤도 볼 수 있습니다. 1번이 ‘가요(歌謠)’라고 되어 있어요. 그

다음에 ‘춤’, 악기, 산문설화, 신요, 영웅서사시가 차례대로 있습니다. 아이누의 문학은 크게 산문설화, 신요, 영웅서사,

이렇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산문설화는 멜로디를 넣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신요도 멜로디를 넣어서 구송하는데 신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가 영웅서사인데 대부분 소년 영웅이 등장합니다. 여러 적과 싸우거나 결혼하거나,

그런 이야기입니다.

옛날 옛날에 강가에 남자가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각각의 자기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곰도 잡을 수 있고 사슴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불편한 것은 없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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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이렇게 자수가 많이 수 놓여 있는 옷은 의식할 때 입었던 옷이랍니다. (그럼 국제행사나, TV에 사진으로 나온

모습들은 다 이런 의식용 옷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네, 그렇지요.

이 천은 나무 껍데기로 만드는 거랍니다. (아, 껍데기를 저렇게 긁어가지고, 보통 몇 년생 나무를 쓰나요?) 정해져

있지는 않고 나무가 크면 쓴다고 합니다. (나무에도 영(靈)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무를 자를 때, 예를 들면 우리는 음식

먹기 전에 ‘고시래’ 같은 것을 하는데. 그런 것을 하나요?) 사람마다 말하는 방식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고시래’ 같은

말을 하기는 한답니다. 말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형식은 정해져 있어서, 일단 먼저 신을 부른 후 ‘제가 이러한 이유로

당신의 옷을 벗겨가겠습니다.’ 라고 얘기를 한답니다. (이요만테, 곰에게 하는 것과 비슷하네요.) 큰 틀에서는 같은

거라고 볼 수가 있겠네요. (여자 옷을 기준으로 하여 이런 옷을 하나 만드는데 보통 며칠 정도 걸리나요?) 상당히

걸린다고는 하는데 정확히는 모르는 것 같아요. (여기 러시아 사람들도 많이 오나 봐요. 러시아 문화권이니까요.)

(고기를 잡아서 주나요? 생선을.) 사람이 오면 보통 남자들은 이쪽에 앉고 여자들은 저쪽에 앉는데,

이 이로리가 있는 위쪽은 신의 자리라서 사람은 앉지 않는 자리랍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손님이 오면

요 상석에, 가운데 자리에 앉힌답니다. 그 이상은 안 되는 거지요.

여기까지.. (무용을 한 번 보여주세요.) 이제 춤을 보겠습니다. (무용은 대부분 여성 중심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관련 있는 건가요?) 춤의 내용에 따라서 남녀가 다르답니다. 남자가 하는 것도 있고, 군무를 추는 경우는 대부분

여성들이 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무용의 종류에 따라서는 활을 사용하거나 칼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런 무용들은 거의

남자들이 합니다.

나는 사람의 마을에 내려왔습니다. 마을 수원에 왔어요. 그 산 위에 훌륭한 집이 만들어져 있어서

거기에 내려가서 살고 있습니다. (후렴) 인간 마을을 지켜주고 살고 있자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강가에 살고 있는데 나만큼 능력이 있는 신은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늪 근처에

빙글빙글, 나는 날아다니며 언제나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딱 붙어서 걸어있고 근처 마을을 황량하게 하는데 나는 화가 났기 때문에 여기 찾아왔다.

누군가가 했기 때문에.. 자 지금부터 나와 함께 여자끼리 승부를 내봅시다. 여자는 구네페쓰의 언니

쪽이 일어서서 말하기를,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가? 너는 품격이 없다. 우리가 두 번 세 번 몇 번이나

가세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다. 포이야운페에게는 가족도 친척도 없다. 그러니까 그의 편이

된다고 해도 사랑 같은 것은 전혀 할 수 없다. 품격이 없는 너의 말이더라도,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실례되는 말을 해서야 되겠느냐?

신요를 보겠습니다. 부엉이가 주인공입니다. ‘나’는 신(神)을 뜻합니다.

이 건너편 코너에서는 다 들어볼 수 있답니다.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히다까 지방의 영웅서사시도 조금 보여드리겠습니다.

(포이야운페가 반신반인의 인간 영웅이예요. 거기에 세 자매가 나오는데, 그것은 좀 해석을 해봐야 알겠어요. 아래의

두 명이 자매에게 충고하는 내용이예요. 유트브에서도 볼 수 있을까요?) 올라와 있기는 한데 아마 똑같지는 않을 거라고

합니다. 아마 유트브에는 일본어 자막밖에는 없을 거예요.

여기는 아이누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노래와 춤도 볼 수 있습니다. 1번이 ‘가요(歌謠)’라고 되어 있어요. 그

다음에 ‘춤’, 악기, 산문설화, 신요, 영웅서사시가 차례대로 있습니다. 아이누의 문학은 크게 산문설화, 신요, 영웅서사,

이렇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산문설화는 멜로디를 넣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신요도 멜로디를 넣어서 구송하는데 신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가 영웅서사인데 대부분 소년 영웅이 등장합니다. 여러 적과 싸우거나 결혼하거나,

그런 이야기입니다.

옛날 옛날에 강가에 남자가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각각의 자기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곰도 잡을 수 있고 사슴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불편한 것은 없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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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아이누어로 작문을 할 수 있는 코너예요. 이렇게 되면 ‘강가에서 개가 나를 찾는다.’가 되고, 이렇게 하면 ‘개가

나를 본다.’가 됩니다. 이것은 ‘바닷게에서 개를 내가 문다.’ 이것은 ‘개가 나를 먹는다.’ (교구가 아주 좋네요.)

따로 조사가 없는데 단어가 목적격이 되기도 하고 주격이 되기도 해서 이상하여 물어보니까, 사실은 주어와 동사를

반드시 붙여서 써야 한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붙는 자리는 반드시 이 앞으로 밖에는 올 수가 없답니다. 일본어에는

조사가 있어요. 그런데 아이누어에는 조사가 없어서 똑같은 단어가 계속 자리를 바꾸어 사용되기 때문에 물어봤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하나의 독립된 단어이기는 하지만 혼자 쓰이지는 않는 겁니다. 같이 쓰이는 거예요.

여기는 악기 코너입니다. 5줄 현악기 (이 줄은 무엇으로 만들었나요? 고래힘줄 같은 것일까요? 검지 중지로만

연주하나 봅니다.) 1층 전시관은 이런 느낌입니다.

여기 있는 전시품들은 전부 사진 찍어도 되고 만져 봐도 괜찮습니다. 제일 앞에 있는 신발부터 얘기하겠습니다.

이것은 연어 껍질로 만든 구두입니다. 바닥에 지느러미가 남아있게 하여 겨울에 미끄러지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신발을 만드는데 연어 4마리가 필요합니다. (다 성숙된 연어인가요?) 네. 만들면 겨울이든 봄이든 6개월 정도

신을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 신을 수는 있지만 주로 가을에 올라오는 연어를 잡아서 만들기 때문에 주로 겨울용이

되겠습니다. 이 신발은 잘 챙기지 않으면 개가 물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2층 동물 전시관) 우리가 올 때 도로에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요. 그것은 그곳에서 그 동물이 나오기 쉬운

곳이라는 표시랍니다. (바다 표범, 바다 사자? 아까 그 가죽이, 한자를 보면 표범인지 사자인지 알겠는데... )

이렇게 홋카이도 박물관 전시 해설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촬영)

삿포로 피리카코탄_아이누문화교류센터 (札幌市 ピㇼカコタン_アイヌ文化交流センタ〡) 2018년 10월 18일(목) 14시

삿포

로 아

이누

문화

교류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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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예사 ‘다케우치(竹内)’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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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아이누어로 작문을 할 수 있는 코너예요. 이렇게 되면 ‘강가에서 개가 나를 찾는다.’가 되고, 이렇게 하면 ‘개가

나를 본다.’가 됩니다. 이것은 ‘바닷게에서 개를 내가 문다.’ 이것은 ‘개가 나를 먹는다.’ (교구가 아주 좋네요.)

따로 조사가 없는데 단어가 목적격이 되기도 하고 주격이 되기도 해서 이상하여 물어보니까, 사실은 주어와 동사를

반드시 붙여서 써야 한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붙는 자리는 반드시 이 앞으로 밖에는 올 수가 없답니다. 일본어에는

조사가 있어요. 그런데 아이누어에는 조사가 없어서 똑같은 단어가 계속 자리를 바꾸어 사용되기 때문에 물어봤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하나의 독립된 단어이기는 하지만 혼자 쓰이지는 않는 겁니다. 같이 쓰이는 거예요.

여기는 악기 코너입니다. 5줄 현악기 (이 줄은 무엇으로 만들었나요? 고래힘줄 같은 것일까요? 검지 중지로만

연주하나 봅니다.) 1층 전시관은 이런 느낌입니다.

여기 있는 전시품들은 전부 사진 찍어도 되고 만져 봐도 괜찮습니다. 제일 앞에 있는 신발부터 얘기하겠습니다.

이것은 연어 껍질로 만든 구두입니다. 바닥에 지느러미가 남아있게 하여 겨울에 미끄러지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신발을 만드는데 연어 4마리가 필요합니다. (다 성숙된 연어인가요?) 네. 만들면 겨울이든 봄이든 6개월 정도

신을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 신을 수는 있지만 주로 가을에 올라오는 연어를 잡아서 만들기 때문에 주로 겨울용이

되겠습니다. 이 신발은 잘 챙기지 않으면 개가 물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2층 동물 전시관) 우리가 올 때 도로에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요. 그것은 그곳에서 그 동물이 나오기 쉬운

곳이라는 표시랍니다. (바다 표범, 바다 사자? 아까 그 가죽이, 한자를 보면 표범인지 사자인지 알겠는데... )

이렇게 홋카이도 박물관 전시 해설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촬영)

삿포로 피리카코탄_아이누문화교류센터 (札幌市 ピㇼカコタン_アイヌ文化交流センタ〡) 2018년 10월 18일(목) 1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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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예사 ‘다케우치(竹内)’씨의 설명을 김석희교수님의 한국어 통역으로 채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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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의복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아이누인은 처음에는 동물의 털가죽을 입고 생활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 나무를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본어로 ‘오효’(オヒョ)라고

하는 나무로 만든 옷입니다. 아까 박물관에서 봤지요. 산에서 나무 껍데기를 벗겨서, 그 자리에서 겉껍데기는

딱딱하니까 다 털어내고 안의 속껍질만 긁어내서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나무를 가지고 내려오면 민물에다 넣어요.

온천이 있는 경우는 따뜻한 온천물에 넣고, 없는 경우에는 강이나 호수에 넣어서 일주일 정도 담가둡니다.

이것은 산에 올라갈 때 쓰는 지팡이입니다. 위가 갈라져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따가 다른 것을 보면서

얘기하겠습니다. 산이 험하니까 산에 올라갈 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입니다. 너무 추우니까 가죽으로 덮어서 입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가 사냥을 갈 때는

입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실수로 누가 사냥감인줄 알고 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냥을 나갈 때는 개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나갔답니다.

이것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신발입니다. 신발 바닥에 있는 이 무늬는 끊어지지 않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까 보았던 그 지팡이입니다

그것을 햇빛에 말려서 이런 모양의 실로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을 베틀 같은 것으로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듭니다.

지금도 이렇게 만드는 분들이 계시답니다. 보기에도 그렇듯이 굉장히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한 벌에 100만 엔 정도

합니다. 우리 돈으로 천만 원이죠. ‘기모노’는 ‘입을 것’이라는 뜻이예요. 이 기모노는 ‘아투시’라고 합니다. 남녀 구분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남자들이 좀 더 화려하게 입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남성 우월적 사회였던 거죠. 옛날에는 발목까지 길게 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15년 전부터는 짧게

만들었답니다. 처음에는 저런 게(목 부분 깃) 없었을 거예요. 나중에 일본에 목면이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닿아서 아픈

곳에 따로 붙이게 된 것입니다. 아이누는 세탁을 하는 경우가 절대 없답니다. 물을 받아놓고 잿물을 만들어서

담가뒀다가 햇볕에 말렸답니다. 이 옷은 물에 빠져도 솜처럼 무거워지지 않아서 뱃사람들이 많이 입었답니다. 발굴

당시에 소매가 직각으로 된 옷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 사람들이 입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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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의복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아이누인은 처음에는 동물의 털가죽을 입고 생활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 나무를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본어로 ‘오효’(オヒョ)라고

하는 나무로 만든 옷입니다. 아까 박물관에서 봤지요. 산에서 나무 껍데기를 벗겨서, 그 자리에서 겉껍데기는

딱딱하니까 다 털어내고 안의 속껍질만 긁어내서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나무를 가지고 내려오면 민물에다 넣어요.

온천이 있는 경우는 따뜻한 온천물에 넣고, 없는 경우에는 강이나 호수에 넣어서 일주일 정도 담가둡니다.

이것은 산에 올라갈 때 쓰는 지팡이입니다. 위가 갈라져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따가 다른 것을 보면서

얘기하겠습니다. 산이 험하니까 산에 올라갈 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입니다. 너무 추우니까 가죽으로 덮어서 입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가 사냥을 갈 때는

입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실수로 누가 사냥감인줄 알고 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냥을 나갈 때는 개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나갔답니다.

이것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신발입니다. 신발 바닥에 있는 이 무늬는 끊어지지 않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까 보았던 그 지팡이입니다

그것을 햇빛에 말려서 이런 모양의 실로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을 베틀 같은 것으로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듭니다.

지금도 이렇게 만드는 분들이 계시답니다. 보기에도 그렇듯이 굉장히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한 벌에 100만 엔 정도

합니다. 우리 돈으로 천만 원이죠. ‘기모노’는 ‘입을 것’이라는 뜻이예요. 이 기모노는 ‘아투시’라고 합니다. 남녀 구분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남자들이 좀 더 화려하게 입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남성 우월적 사회였던 거죠. 옛날에는 발목까지 길게 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15년 전부터는 짧게

만들었답니다. 처음에는 저런 게(목 부분 깃) 없었을 거예요. 나중에 일본에 목면이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닿아서 아픈

곳에 따로 붙이게 된 것입니다. 아이누는 세탁을 하는 경우가 절대 없답니다. 물을 받아놓고 잿물을 만들어서

담가뒀다가 햇볕에 말렸답니다. 이 옷은 물에 빠져도 솜처럼 무거워지지 않아서 뱃사람들이 많이 입었답니다. 발굴

당시에 소매가 직각으로 된 옷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 사람들이 입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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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마끼리’, 어부가 쓰는 칼이지요. 이 철로 된 날 부분은 일본과의 교역에서 얻었습니다. 손잡이랑 ‘사야’라는

칼집은 아이누인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남성용도 있고 손잡이가 작은 여성용도 있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프로포즈할 때

이 칼을 줬답니다. 칼을 주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물어봤더니, ‘나는 이렇게 칼로 조각을 잘 할 만큼 솜씨가 좋아서 사냥

기구도 잘 만들어. 너를 먹여 살릴 수 있어.’ 라는 의미랍니다. 그래서 남자가 맘에 들면 이것을 옆에 차는 거예요. 마치

반지를 끼듯이, 만약에 맘에 들지 않으면 주머니에 넣거나 한답니다. 아이누 남자들은 솜씨가 좋아야 하고 말도 잘 해야

하고 용기도 있어야 하고 얼굴도 잘 생겨야 하는, 네 가지 조건이 있답니다.

이것은 담배통,이것을 만드는 나무가 따로 있었답니다.

이것은 요람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만들 수 없고 훌륭한 사람만이 만들 수 있답니다. ‘이 요람에서 자란 아이는 그

사람처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이런 의미가 있었답니다. 천장에 매달아 놓았는데, 그 이유는 애기 귀가 부드러워 쥐가

갉아먹는 경우가 있어 그렇게 못하도록 바닥에서 띄워서 매달아 놓았습니다. 애기 그네처럼 매달았답니다.

저기 주머니 같은 것과 접목시켜서 높은 산에 무거운 것을 옮기거나 할 때에도 사용했는데, 무거우니까 잘못하면 뒤로

떨어질 수가 있기 때문에 이걸 내릴 때는 한 템포 느리게 움직였다 합니다. 아까 보았던 두 개로 갈라진 나무가 이럴 때

또 쓰이는데, 산에 올라가다가 쉬고 싶을 때 이것을 그냥 내리지 않고 이렇게 뒤로 받쳐서 내리는 것이랍니다. (지게

지팡이 같은 그런 역할도 하는가 봐요.) 나무를 받쳐 놓고 서서 쉬었다 합니다. 토끼가 뛰어가거나 하니까. (요람을

흔들며 부르는 자장가가 지금도 조금 남아 있다고 합니다. 후루르... 새 소리 같기도 하고... )

이것은 북입니다. 일찍 사라져서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추정하기로는 샤먼이 점을 치거나 할

때 사용했던 악기가 아닌가 합니다.

여기를 보시지요. 쥐처럼 작은 동물들을 잡을 때 쓰는 덫입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여기에 붙여 놓으면, 와서 이걸

건드리겠지요. (꽝, 위 덮개가 아래로 툭 떨어진다.) 저쪽에서 보고 있다가 잡아당기면, 소쿠리로 잡는 것과 같은 그런

원리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활로 쏘면 가죽에 상처가 나는데, 이렇게 하면 가죽에 상처가 나지

않게 잘 오려낼 수가 있습니다. 쥐 등을 잡는 것은 가죽을 얻기 위해서인 거죠. 이것은 주로 곰을 잡았던 도구입니다.

여기에 독을 발라서 쏘는 형태로 되어 있답니다. 여기에 동그랗게 통이 있어서 비가와도 독이 빗물에 흘러나가지 않도록

장착을 한 것입니다. 곰이 지나가다 이것을 건드리면 이것이 툭 빠지면서 나가도록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어디에 설치하느냐면, 저마다 자기 영역이 있으니까 그 테두리 안에 설치하는데, 아이누인들도 잘못 가거나 하여 사고가

날 수가 있으니까 알아볼 수 있도록 여기에 반드시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표시가 되어 있어도 못 볼 수 있으니까 선이

있는지 없는지 뒤지면서, 일종의 탐사기인 거지요.

150년 전, 메이지유신 때이겠지요. 일본 사람들은 이런 것을 모르니까 밟아서 사고가 많이 났답니다. 그래서 이것을

금지시켰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못쓰게 하는 대신 총을 나눠주었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숨겨놓았다가 쓰곤 했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총을 여기에 붙여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략 1~2 미터 정도 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식물에서 나는 독을 사용했답니다. 독을 만드는 비법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의 상처에 조금 발라보기도 했는데 위험하니까 아이들이 잘 때 그런 실험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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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마끼리’, 어부가 쓰는 칼이지요. 이 철로 된 날 부분은 일본과의 교역에서 얻었습니다. 손잡이랑 ‘사야’라는

칼집은 아이누인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남성용도 있고 손잡이가 작은 여성용도 있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프로포즈할 때

이 칼을 줬답니다. 칼을 주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물어봤더니, ‘나는 이렇게 칼로 조각을 잘 할 만큼 솜씨가 좋아서 사냥

기구도 잘 만들어. 너를 먹여 살릴 수 있어.’ 라는 의미랍니다. 그래서 남자가 맘에 들면 이것을 옆에 차는 거예요. 마치

반지를 끼듯이, 만약에 맘에 들지 않으면 주머니에 넣거나 한답니다. 아이누 남자들은 솜씨가 좋아야 하고 말도 잘 해야

하고 용기도 있어야 하고 얼굴도 잘 생겨야 하는, 네 가지 조건이 있답니다.

이것은 담배통,이것을 만드는 나무가 따로 있었답니다.

이것은 요람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만들 수 없고 훌륭한 사람만이 만들 수 있답니다. ‘이 요람에서 자란 아이는 그

사람처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이런 의미가 있었답니다. 천장에 매달아 놓았는데, 그 이유는 애기 귀가 부드러워 쥐가

갉아먹는 경우가 있어 그렇게 못하도록 바닥에서 띄워서 매달아 놓았습니다. 애기 그네처럼 매달았답니다.

저기 주머니 같은 것과 접목시켜서 높은 산에 무거운 것을 옮기거나 할 때에도 사용했는데, 무거우니까 잘못하면 뒤로

떨어질 수가 있기 때문에 이걸 내릴 때는 한 템포 느리게 움직였다 합니다. 아까 보았던 두 개로 갈라진 나무가 이럴 때

또 쓰이는데, 산에 올라가다가 쉬고 싶을 때 이것을 그냥 내리지 않고 이렇게 뒤로 받쳐서 내리는 것이랍니다. (지게

지팡이 같은 그런 역할도 하는가 봐요.) 나무를 받쳐 놓고 서서 쉬었다 합니다. 토끼가 뛰어가거나 하니까. (요람을

흔들며 부르는 자장가가 지금도 조금 남아 있다고 합니다. 후루르... 새 소리 같기도 하고... )

이것은 북입니다. 일찍 사라져서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추정하기로는 샤먼이 점을 치거나 할

때 사용했던 악기가 아닌가 합니다.

여기를 보시지요. 쥐처럼 작은 동물들을 잡을 때 쓰는 덫입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여기에 붙여 놓으면, 와서 이걸

건드리겠지요. (꽝, 위 덮개가 아래로 툭 떨어진다.) 저쪽에서 보고 있다가 잡아당기면, 소쿠리로 잡는 것과 같은 그런

원리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활로 쏘면 가죽에 상처가 나는데, 이렇게 하면 가죽에 상처가 나지

않게 잘 오려낼 수가 있습니다. 쥐 등을 잡는 것은 가죽을 얻기 위해서인 거죠. 이것은 주로 곰을 잡았던 도구입니다.

여기에 독을 발라서 쏘는 형태로 되어 있답니다. 여기에 동그랗게 통이 있어서 비가와도 독이 빗물에 흘러나가지 않도록

장착을 한 것입니다. 곰이 지나가다 이것을 건드리면 이것이 툭 빠지면서 나가도록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어디에 설치하느냐면, 저마다 자기 영역이 있으니까 그 테두리 안에 설치하는데, 아이누인들도 잘못 가거나 하여 사고가

날 수가 있으니까 알아볼 수 있도록 여기에 반드시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표시가 되어 있어도 못 볼 수 있으니까 선이

있는지 없는지 뒤지면서, 일종의 탐사기인 거지요.

150년 전, 메이지유신 때이겠지요. 일본 사람들은 이런 것을 모르니까 밟아서 사고가 많이 났답니다. 그래서 이것을

금지시켰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못쓰게 하는 대신 총을 나눠주었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숨겨놓았다가 쓰곤 했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총을 여기에 붙여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략 1~2 미터 정도 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식물에서 나는 독을 사용했답니다. 독을 만드는 비법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의 상처에 조금 발라보기도 했는데 위험하니까 아이들이 잘 때 그런 실험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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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아이누들이 주로 썼던 악기 통그리, 기타처럼 눌러서 음계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다섯 개의 줄로 소리를

냅니다. 이 악기가 태어난 전설이 있어요.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일찍 아이를 잃었어요. 부인이 너무 슬퍼하니까 남편이

아이의 형태로 악기를 만들었다는 전설입니다. 여기가 머리이고, 이곳이 배꼽, 이 안(비어있는 부분)에 동그란 구슬 같은

것을 넣는답니다. 심장이라든지 영혼이라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답니다. 이 아이는 여자애였나 봅니다.

이것은 아이들 놀이기구인가 봐요. 이 고리를 걸어서 던져서 저 곳을 통과하도록...

아 우리 이거 그림에서 봤어요. 이걸 던져서 이 안에 저런 막대기 같은 것이 통과하도록 그렇게 던졌대요. 던지면 여기다

그러니까 동치시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아 북방민족자료관에서 봤던 그것입니까?) 이렇게 던져서 이렇게 하는 거 이걸 던져서 다시 이걸로 받는 겁니다.

사냥 연습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버지가 만들어주고 자라서는 아이가 만들면서 어른이 되는 거지요.

(사냥을 할 때 이걸 어떤 방식으로 사용을 하나요?) 이건 연습용입니다. 실제 사냥에서는 쓰지 않습니다. 실제

사냥에서는 활을 사용하고, 이것은 연습용으로 움직이는 것을 따라 가는 것인가 봅니다.

이것은 연어가죽으로 만든 옷으로 연어가 70마리 정도 필요하답니다. 이것도 대개는 사할린에 사는 아이누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물고기니까 물이 잘 통과하지 않아서 물에서 일할 때 많이 입었답니다.

이것은 통나무 배입니다. 옛날의 자동차인 거죠. 물이 깊으면 노를 저어서 사용하고 멈출 때는 닻처럼 눌러서

사용했습니다. 이걸 타고 연어를 잡습니다.

이런 노래가 있어요. 이걸로 찍어도 물에 쓰러지지 않을 만큼 밑에 물고기, 연어가 많다는 노래랍니다. 위에 있는

물고기는 햇볕에 등이 타고, 아래 있는 물고기는 모래에 쓸려서 상처가 나고, 그럴 정도로 물고기가 많다는 노래입니다.

그 정도로 옛날에는 연어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돗자리인데 앉는 것이 아니라 벽에 걸어놓거나 의식을 할 때 중요한 도구를 놓는 데 사용되었답니다. 이것은

사람이 앉는 용도가 아닙니다. 나무 액을 사용해서 색을 만드는데, 어떤 나무인지는 모르겠어요. 애기 젖꼭지 만드는

나무로 이렇게 물을 들인답니다. 전체가 나무로 되어 있는 것은 지금 홋카이도에서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귀중한

자료입니다.

치시포(チシポ)라고 하는 바늘통입니다. 이때는 바늘이 마을에 하나밖에 없을 정도여서 굉장히 소중히 보관을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목에다 걸어요. 돈 많은 집 아가씨는 이것을 몇 개나 목에다 걸 수 있었답니다. 바늘은 철로 만들었고

(바늘을 사슴 뼈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바늘통은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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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아이누들이 주로 썼던 악기 통그리, 기타처럼 눌러서 음계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다섯 개의 줄로 소리를

냅니다. 이 악기가 태어난 전설이 있어요.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일찍 아이를 잃었어요. 부인이 너무 슬퍼하니까 남편이

아이의 형태로 악기를 만들었다는 전설입니다. 여기가 머리이고, 이곳이 배꼽, 이 안(비어있는 부분)에 동그란 구슬 같은

것을 넣는답니다. 심장이라든지 영혼이라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답니다. 이 아이는 여자애였나 봅니다.

이것은 아이들 놀이기구인가 봐요. 이 고리를 걸어서 던져서 저 곳을 통과하도록...

아 우리 이거 그림에서 봤어요. 이걸 던져서 이 안에 저런 막대기 같은 것이 통과하도록 그렇게 던졌대요. 던지면 여기다

그러니까 동치시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아 북방민족자료관에서 봤던 그것입니까?) 이렇게 던져서 이렇게 하는 거 이걸 던져서 다시 이걸로 받는 겁니다.

사냥 연습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버지가 만들어주고 자라서는 아이가 만들면서 어른이 되는 거지요.

(사냥을 할 때 이걸 어떤 방식으로 사용을 하나요?) 이건 연습용입니다. 실제 사냥에서는 쓰지 않습니다. 실제

사냥에서는 활을 사용하고, 이것은 연습용으로 움직이는 것을 따라 가는 것인가 봅니다.

이것은 연어가죽으로 만든 옷으로 연어가 70마리 정도 필요하답니다. 이것도 대개는 사할린에 사는 아이누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물고기니까 물이 잘 통과하지 않아서 물에서 일할 때 많이 입었답니다.

이것은 통나무 배입니다. 옛날의 자동차인 거죠. 물이 깊으면 노를 저어서 사용하고 멈출 때는 닻처럼 눌러서

사용했습니다. 이걸 타고 연어를 잡습니다.

이런 노래가 있어요. 이걸로 찍어도 물에 쓰러지지 않을 만큼 밑에 물고기, 연어가 많다는 노래랍니다. 위에 있는

물고기는 햇볕에 등이 타고, 아래 있는 물고기는 모래에 쓸려서 상처가 나고, 그럴 정도로 물고기가 많다는 노래입니다.

그 정도로 옛날에는 연어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돗자리인데 앉는 것이 아니라 벽에 걸어놓거나 의식을 할 때 중요한 도구를 놓는 데 사용되었답니다. 이것은

사람이 앉는 용도가 아닙니다. 나무 액을 사용해서 색을 만드는데, 어떤 나무인지는 모르겠어요. 애기 젖꼭지 만드는

나무로 이렇게 물을 들인답니다. 전체가 나무로 되어 있는 것은 지금 홋카이도에서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귀중한

자료입니다.

치시포(チシポ)라고 하는 바늘통입니다. 이때는 바늘이 마을에 하나밖에 없을 정도여서 굉장히 소중히 보관을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목에다 걸어요. 돈 많은 집 아가씨는 이것을 몇 개나 목에다 걸 수 있었답니다. 바늘은 철로 만들었고

(바늘을 사슴 뼈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바늘통은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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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케마(한국어로 '우피소'라고 함)라는 식물인데, 옷을 만들던 나무 재료랍니다.

이 식물은 마를 퇴치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귀중한 물건이니까 마가 끼면 안되니까.

이 식물은 일본말로 이께마라고 하는데 찾아보면 나올 것 같은데 이 말은 아이누어에서 일본에 영향을 준 말입니다.

이것은 옷을 만들던 재료입니다. 여기가 실, 베틀. 이것으로 짜서 옷을 만듭니다.

아이누는 농사를 짓지 않았다고들 알고 있는데 사실 이렇게 조나 이런 걸 가지고 농사를 좀 지었습니다. 말씀하신 걸

들어서 직역을 하면 만두마늘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사전에 찾아보겠습니다.

아이누들에게는 이 식물이 중요한 자료였다. 산마늘일까요? 생긴 게 울릉도에서 먹는 그것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명이.

명이를 산마늘이라고도 합니다. 명이 나물하고 똑같이 생겼어요. 어떻게 해서 아이누가 먹게 됐는지에 대한 설화도

있습니다.

옛날에 신이 인간에게 이 명이나물하고 할미꽃을 줬어요. 그런데 좋은 걸 줬는데 아무도 먹지 않아서

이걸 어떻게 하면 먹일까? 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어느 날, 마을의 촌장이 어떤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그릇을 달라고 하는데 그릇을 주면 거기다가 똥을

누어가지고 먹으라고 하면서 준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촌장은 좀 궁금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똥을

먹으라고 하니 뭔 소리 하는 거야 하고 하며 다 내쫓았는데 이 사람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촌장은

불의 신을 존경하는 사람이었는데 불의 신에게 기도를 합니다. 두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면 우리 마을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좋은 사람들이라면 오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여자 두 사람이 찾아와서 그릇을 달라고 합니다. 그릇을 줬더니 똥 소리가 나서 뿌지직 이정도

되겠죠? 그것을 가지고 오더라는 겁니다. 이 촌장도 먹고 싶지는 않지만 냄새를 맡아보니까 그렇게

이상한 냄새가 아니고 갑자기 맛있어 보여 먹어봤습니다. 그래서 다 같이 먹고 다 같이 잤다고 합니다.

아이누 사람들은 꿈에서 신의 계시를 받거나 하는 것이 많은데 그날 촌장이 꿈을 꿉니다. 꿈에 신이

나타나서 내가 너희들한테 맛있는 걸 줄려고 했는데 아무도 안 먹고 다 거부하기 때문에 내가 기분이

나빠서 도로 가져 가려고 했다. 마지막에 네가 그것을 먹어서 놓고 가겠다라고 했답니다.

이 이야기는 홋카이도 전체에 퍼져 있는데 어떤 경우는 이렇게 자신의 다친 상처에 있는 딱지나 눈곱을 떼어가지고

먹으라고 했다는 이런 식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아이누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건 머리에 두르는 띠입니다. 지금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관계없이 다 사용하는데 예전에는 여성들은 검정색 무지,

무늬 없는 것만 사용했습니다. 옛날에는 오히려 남자들이 화려한 걸 입었는데 최근에 오면서 여자들이 입는 이미지로

변했습니다.

여자들이 예쁘게 팔목에 두르는 것인데 예쁘게 만들어 자수를 놓아 좋아하는 남자한테 청혼하는 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누는 남자도 청혼할 수 있고 여자도 청혼 할 수 있습니까?) 네. 남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자가 옷 잘 만든다라는

표시입니다.

(남자도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릴 수 있고 여자도 남자를 여러 명 거느릴 수 있는지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원래 남자

여자 한 명씩은 기본이고 남자가 복수의 여성을 거느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족들은 다 같이 모여서 사나요?)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부인이 두 명이라고 해도 같이 사는 경우도 있고 집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남자가 장가를 갈 때 본인이 직접 집을 지어야 하나요?) 집을 지을 때는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짓습니다.

절구입니다. 이것으로 떡을 만드냐고 물어봤더니 곡식 껍질을 찧는 용도라고 합니다. 물론 떡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만.

아이누는 평소에는 절구로 사용하지만 절구에 여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태풍이 불거나 바람이 세거나

이럴 때 절구를 꺼꾸로 지고 지붕에 올라가서 이 집을 날아가지 않도록 지켜달라고 합니다.

(누가 올라가나요?) 남성일 것 같습니다.

(아이누 신화에 절구에 관한 이야기가 있나요?) 있을지는 모르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누는 곰 사냥을 제례로 하는데 그것 말고 또 다른 제례를 있습니까?) 흰 부엉이 제례가 있습니다. 이야기에

따라서는 사슴을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정아선생님이 저한테 잠깐 해석해 달라고 했던 부분입니다. 아이누 사람들은 땅 속에 커다란 생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생선이 허리가 아프면 몸을 뒤트는데 그때 지진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걸 꺼내어서 땅을

꾹꾹 누르면서 내가 네 허리를 눌러줄게라고 말한답니다. 다지는 거죠.

아기를 낳을 때 임산부는 아기가 빨리 안 나오면 힘드니까 이거를 쥐고 땅을 치면서 그 힘을 빌려서 아기를 낳는다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내가(다케우치) 생각하기에는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임신을 했을 때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이

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일어나보니 찾아왔던 두 여인은 사라졌고 꿈속에서 어디 어디 있다라는 얘기를 들은 자리를 찾아가서

보니까 여기에 명이나물이 많이 있었더라라는 얘기입니다.

그 뒤 촌장은 먹을 것에 대해 곤란함이 없이 잘 살았고 그 신들도 누가 존경해주면 지위가

높아지는데 신들도 사람처럼 누군가에게 존경받고 그래야 점점 지위가 높아지고 자기가 존재감을

높이는 그런 존재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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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케마(한국어로 '우피소'라고 함)라는 식물인데, 옷을 만들던 나무 재료랍니다.

이 식물은 마를 퇴치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귀중한 물건이니까 마가 끼면 안되니까.

이 식물은 일본말로 이께마라고 하는데 찾아보면 나올 것 같은데 이 말은 아이누어에서 일본에 영향을 준 말입니다.

이것은 옷을 만들던 재료입니다. 여기가 실, 베틀. 이것으로 짜서 옷을 만듭니다.

아이누는 농사를 짓지 않았다고들 알고 있는데 사실 이렇게 조나 이런 걸 가지고 농사를 좀 지었습니다. 말씀하신 걸

들어서 직역을 하면 만두마늘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사전에 찾아보겠습니다.

아이누들에게는 이 식물이 중요한 자료였다. 산마늘일까요? 생긴 게 울릉도에서 먹는 그것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명이.

명이를 산마늘이라고도 합니다. 명이 나물하고 똑같이 생겼어요. 어떻게 해서 아이누가 먹게 됐는지에 대한 설화도

있습니다.

옛날에 신이 인간에게 이 명이나물하고 할미꽃을 줬어요. 그런데 좋은 걸 줬는데 아무도 먹지 않아서

이걸 어떻게 하면 먹일까? 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어느 날, 마을의 촌장이 어떤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그릇을 달라고 하는데 그릇을 주면 거기다가 똥을

누어가지고 먹으라고 하면서 준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촌장은 좀 궁금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똥을

먹으라고 하니 뭔 소리 하는 거야 하고 하며 다 내쫓았는데 이 사람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촌장은

불의 신을 존경하는 사람이었는데 불의 신에게 기도를 합니다. 두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면 우리 마을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좋은 사람들이라면 오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여자 두 사람이 찾아와서 그릇을 달라고 합니다. 그릇을 줬더니 똥 소리가 나서 뿌지직 이정도

되겠죠? 그것을 가지고 오더라는 겁니다. 이 촌장도 먹고 싶지는 않지만 냄새를 맡아보니까 그렇게

이상한 냄새가 아니고 갑자기 맛있어 보여 먹어봤습니다. 그래서 다 같이 먹고 다 같이 잤다고 합니다.

아이누 사람들은 꿈에서 신의 계시를 받거나 하는 것이 많은데 그날 촌장이 꿈을 꿉니다. 꿈에 신이

나타나서 내가 너희들한테 맛있는 걸 줄려고 했는데 아무도 안 먹고 다 거부하기 때문에 내가 기분이

나빠서 도로 가져 가려고 했다. 마지막에 네가 그것을 먹어서 놓고 가겠다라고 했답니다.

이 이야기는 홋카이도 전체에 퍼져 있는데 어떤 경우는 이렇게 자신의 다친 상처에 있는 딱지나 눈곱을 떼어가지고

먹으라고 했다는 이런 식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아이누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건 머리에 두르는 띠입니다. 지금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관계없이 다 사용하는데 예전에는 여성들은 검정색 무지,

무늬 없는 것만 사용했습니다. 옛날에는 오히려 남자들이 화려한 걸 입었는데 최근에 오면서 여자들이 입는 이미지로

변했습니다.

여자들이 예쁘게 팔목에 두르는 것인데 예쁘게 만들어 자수를 놓아 좋아하는 남자한테 청혼하는 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누는 남자도 청혼할 수 있고 여자도 청혼 할 수 있습니까?) 네. 남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자가 옷 잘 만든다라는

표시입니다.

(남자도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릴 수 있고 여자도 남자를 여러 명 거느릴 수 있는지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원래 남자

여자 한 명씩은 기본이고 남자가 복수의 여성을 거느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족들은 다 같이 모여서 사나요?)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부인이 두 명이라고 해도 같이 사는 경우도 있고 집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남자가 장가를 갈 때 본인이 직접 집을 지어야 하나요?) 집을 지을 때는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짓습니다.

절구입니다. 이것으로 떡을 만드냐고 물어봤더니 곡식 껍질을 찧는 용도라고 합니다. 물론 떡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만.

아이누는 평소에는 절구로 사용하지만 절구에 여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태풍이 불거나 바람이 세거나

이럴 때 절구를 꺼꾸로 지고 지붕에 올라가서 이 집을 날아가지 않도록 지켜달라고 합니다.

(누가 올라가나요?) 남성일 것 같습니다.

(아이누 신화에 절구에 관한 이야기가 있나요?) 있을지는 모르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누는 곰 사냥을 제례로 하는데 그것 말고 또 다른 제례를 있습니까?) 흰 부엉이 제례가 있습니다. 이야기에

따라서는 사슴을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정아선생님이 저한테 잠깐 해석해 달라고 했던 부분입니다. 아이누 사람들은 땅 속에 커다란 생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생선이 허리가 아프면 몸을 뒤트는데 그때 지진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걸 꺼내어서 땅을

꾹꾹 누르면서 내가 네 허리를 눌러줄게라고 말한답니다. 다지는 거죠.

아기를 낳을 때 임산부는 아기가 빨리 안 나오면 힘드니까 이거를 쥐고 땅을 치면서 그 힘을 빌려서 아기를 낳는다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내가(다케우치) 생각하기에는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임신을 했을 때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이

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일어나보니 찾아왔던 두 여인은 사라졌고 꿈속에서 어디 어디 있다라는 얘기를 들은 자리를 찾아가서

보니까 여기에 명이나물이 많이 있었더라라는 얘기입니다.

그 뒤 촌장은 먹을 것에 대해 곤란함이 없이 잘 살았고 그 신들도 누가 존경해주면 지위가

높아지는데 신들도 사람처럼 누군가에게 존경받고 그래야 점점 지위가 높아지고 자기가 존재감을

높이는 그런 존재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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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부모님과 집은 따로 살지만 기본적으로 음식은 자식들이 만들어서 옮겨줬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만들 때는

자기네들이 이것을 썼다고 합니다. 이것의 작은 버전입니다.

(장례문화에 대해서는 전시물이 없네요? 사람이 죽었을 때 어떤 형태로 하는지 궁금합니다. ) 기본적으로 이오만테랑

장례식이 똑같습니다. 사자를 보내는 건 똑같은데 뭐가 다르냐 하면 이오만테의 경우에는 장례식 때 제사를 지내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가장 재미있을 때 노래를 끊습니다. 그러면 신이 올라가다가 얘기가 궁금해서 다시 그 집에

내려오면 그 때 선물로 고기를 줍니다. 그래서 자기네가 고기를 먹는다. 이런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다릅니다. 사람을 제사 지낼 때 노래를 끝까지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매장을 하나요? 아니면 수장을 하나요? 우리처럼 똑같이.)

땅에 묻을 때 입는 수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너무 빨리 만들어서 완성이 되면 옷 자체도 영이 있다고

생각해서 옷이 빨리 일하고 싶어지면 사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만들지 않고 좀 남겨놨다가 사람이 죽으면

그걸 완성시켰다고 합니다.

아이누의 옛날이야기 중에서 어떤 사람이 무덤을 만들었는데 만들면서 하나를 더 만들었다. 아뿔사, 누가 한사람이

죽겠구나, 무덤이 빨리 일하고 싶어지면 아니라 다를까 금방 한 사람이 죽어나갔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누

문화박물관이라고 하는 곳에 수의가 보관되어 있는데 그 수의도 완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완성이 됐으면 땅 밑으로

들어갔으니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잘 기억나지 않아 이 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이것은 바다 사냥을 나가던 커다란 배입니다. 굉장하네요. 10명 이상 탈 수 있습니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습니다. 구멍이 눈에 띄지 않게 새끼줄을 구멍보다 훨씬 굵게 만든답니다.

이것은 옷을 만들던 나무입니다. (사시나무 종류 같기도 하네요.)

‘삐리카’의 의미가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Page 77: 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카이도문화탐사_본문...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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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집은 따로 살지만 기본적으로 음식은 자식들이 만들어서 옮겨줬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만들 때는

자기네들이 이것을 썼다고 합니다. 이것의 작은 버전입니다.

(장례문화에 대해서는 전시물이 없네요? 사람이 죽었을 때 어떤 형태로 하는지 궁금합니다. ) 기본적으로 이오만테랑

장례식이 똑같습니다. 사자를 보내는 건 똑같은데 뭐가 다르냐 하면 이오만테의 경우에는 장례식 때 제사를 지내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가장 재미있을 때 노래를 끊습니다. 그러면 신이 올라가다가 얘기가 궁금해서 다시 그 집에

내려오면 그 때 선물로 고기를 줍니다. 그래서 자기네가 고기를 먹는다. 이런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다릅니다. 사람을 제사 지낼 때 노래를 끝까지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매장을 하나요? 아니면 수장을 하나요? 우리처럼 똑같이.)

땅에 묻을 때 입는 수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너무 빨리 만들어서 완성이 되면 옷 자체도 영이 있다고

생각해서 옷이 빨리 일하고 싶어지면 사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만들지 않고 좀 남겨놨다가 사람이 죽으면

그걸 완성시켰다고 합니다.

아이누의 옛날이야기 중에서 어떤 사람이 무덤을 만들었는데 만들면서 하나를 더 만들었다. 아뿔사, 누가 한사람이

죽겠구나, 무덤이 빨리 일하고 싶어지면 아니라 다를까 금방 한 사람이 죽어나갔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누

문화박물관이라고 하는 곳에 수의가 보관되어 있는데 그 수의도 완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완성이 됐으면 땅 밑으로

들어갔으니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잘 기억나지 않아 이 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이것은 바다 사냥을 나가던 커다란 배입니다. 굉장하네요. 10명 이상 탈 수 있습니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습니다. 구멍이 눈에 띄지 않게 새끼줄을 구멍보다 훨씬 굵게 만든답니다.

이것은 옷을 만들던 나무입니다. (사시나무 종류 같기도 하네요.)

‘삐리카’의 의미가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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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동면을 하는데, 그때 우연히 잡으면 아기곰을 데려다 여기에 넣거나, 이요만테를 했답니다. 아기 곰이 태어나면

처음에는 집에서 2~3개월 사람하고 같이 산답니다. 좀 크면 여기에 넣어서 이요만테를 하는 거죠. 처음에는 사람 젖을

먹여서 키운답니다.

쥐가 올라오더라도 이 이상 올라오지 못하도록 여기에 이런 것(찍찍이)을 붙여놓는답니다. 평소에는 이것을

세워놓았다가 올라갈 때만 걸쳐놓는답니다. 집 안으로 한번 들어가 보시죠.

이것은 ‘오바유리’(オバユリ)라고 하는 백합 종류로 그 열매, 씨에서 전분을 취해서 위장약을 만들었답니다. 만져보면

꺼끌꺼끌해요. 이걸 칫솔대용으로 쓰기도 했대요. 목재 등을 다듬을 때 사포처럼 쓰기도 합니다.

다음은 물레방아 비슷하게 물을 이용해서 방아를 찧는 것이에요. 물레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 연자방아 형태로 이렇게

물이 고여서 넘치면 방아를 찧도록 되어 있어요.

이것으로 아이누 민족의 문화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다케우치씨에 설명을 들었습니다.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시간상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종료)

아이누의 집은 ‘치세(チセ)’라고 합니다. 지금은 현대식으로 마루처럼 만들어놓았는데, 옛날에는 그냥 흙이었습니다.

여름에는 그냥 맨 바닥에서 생활했고, 겨울이 되면 돗자리를 깔았답니다. 이 불은 365일 피우고 꺼지지 않도록

지켰다고 합니다. 연기가 위로 올라가서 집 천장을 코팅해주었어요. 여기 몇 구 정도밖에 불을 지핀 적이 없는데도 한

번만으로도 집이 훈훈하게 잘 유지가 된답니다.

가족들이 둘러앉는데 가장 높은 사람부터 이쪽에 앉습니다. 가장 높은 사람 자리에서 창을 내다보면 곰 우리가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언제나 곰한테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저 안쪽에 있는 창은 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창입니다. 어느 창이거나 마찬가지이긴 한데 특히 저 창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창입니다. 제를 지낼 때는 신이 다니는 창문과 이로리(방 한가운데

있는 화덕) 사이를 가로질러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벽 기둥에 붙여놓은 저것은 ‘이나우(イナウ)’라 합니다. 신들이 인간들에게 잘 해주는 것은 이 이나우라는 것을 받고

싶어서랍니다. 이나우는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데, 신들이 이 이나우를 신들의 세계로 가지고 가게 되면 금이나 은이

나오게 되는 거랍니다.

큰 집 작은 집, 아까 본 저 집(큰집)은 높은 사람, 마을의 촌장이 사는 집이고, 보통 사람들은 요정도 크기의 집(작은

집)에서 살았답니다.

Page 79: 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카이도문화탐사_본문...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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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동면을 하는데, 그때 우연히 잡으면 아기곰을 데려다 여기에 넣거나, 이요만테를 했답니다. 아기 곰이 태어나면

처음에는 집에서 2~3개월 사람하고 같이 산답니다. 좀 크면 여기에 넣어서 이요만테를 하는 거죠. 처음에는 사람 젖을

먹여서 키운답니다.

쥐가 올라오더라도 이 이상 올라오지 못하도록 여기에 이런 것(찍찍이)을 붙여놓는답니다. 평소에는 이것을

세워놓았다가 올라갈 때만 걸쳐놓는답니다. 집 안으로 한번 들어가 보시죠.

이것은 ‘오바유리’(オバユリ)라고 하는 백합 종류로 그 열매, 씨에서 전분을 취해서 위장약을 만들었답니다. 만져보면

꺼끌꺼끌해요. 이걸 칫솔대용으로 쓰기도 했대요. 목재 등을 다듬을 때 사포처럼 쓰기도 합니다.

다음은 물레방아 비슷하게 물을 이용해서 방아를 찧는 것이에요. 물레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 연자방아 형태로 이렇게

물이 고여서 넘치면 방아를 찧도록 되어 있어요.

이것으로 아이누 민족의 문화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다케우치씨에 설명을 들었습니다.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시간상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종료)

아이누의 집은 ‘치세(チセ)’라고 합니다. 지금은 현대식으로 마루처럼 만들어놓았는데, 옛날에는 그냥 흙이었습니다.

여름에는 그냥 맨 바닥에서 생활했고, 겨울이 되면 돗자리를 깔았답니다. 이 불은 365일 피우고 꺼지지 않도록

지켰다고 합니다. 연기가 위로 올라가서 집 천장을 코팅해주었어요. 여기 몇 구 정도밖에 불을 지핀 적이 없는데도 한

번만으로도 집이 훈훈하게 잘 유지가 된답니다.

가족들이 둘러앉는데 가장 높은 사람부터 이쪽에 앉습니다. 가장 높은 사람 자리에서 창을 내다보면 곰 우리가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언제나 곰한테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저 안쪽에 있는 창은 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창입니다. 어느 창이거나 마찬가지이긴 한데 특히 저 창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창입니다. 제를 지낼 때는 신이 다니는 창문과 이로리(방 한가운데

있는 화덕) 사이를 가로질러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벽 기둥에 붙여놓은 저것은 ‘이나우(イナウ)’라 합니다. 신들이 인간들에게 잘 해주는 것은 이 이나우라는 것을 받고

싶어서랍니다. 이나우는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데, 신들이 이 이나우를 신들의 세계로 가지고 가게 되면 금이나 은이

나오게 되는 거랍니다.

큰 집 작은 집, 아까 본 저 집(큰집)은 높은 사람, 마을의 촌장이 사는 집이고, 보통 사람들은 요정도 크기의 집(작은

집)에서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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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홋카이도대학박물관 (北海道大学博物館)- 홋카이도대학 종합박물관은 삿포로 최초의 본격적인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로 1만 점에 달하는

학술자료를 무료공개하고 있음. 홋카이도대학 구내에서도 유달리 깊은 역사가 느껴지는 중후한 느낌의

박물관 건물은 1929년에 건립되어 1999년까지 이학부의 본관 으로 사용되었던 교사를 재활용하였고

140년 이상 전에 삿포로 농학교로 개교한 이래, 수집·보존·연구되어 온 300만 점 이상에 달하는

표본과 자료가 축적되어 있음.

- 성장한 수컷 홀스타인(젖소로 유명한 소의 품종)의 거대한 골격표본이나 매머드의 실물 크기 모형 등,

볼거리가 가득하며 표본뿐만 아니라 바닥을 발로 가볍게 차기만 해도 진동을 감지해내는 지진계나

표본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체험형 전시실>, 연구현장 을 엿볼 수 있는 <뮤지엄 라보>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전시가 마련되어 있음.

- 또한, 2016년 7월 새롭게 단장하여 홋카이도대학 12개 학부의 교육연구내용을 알 수 있는 전시가

추가되었으며, 가벼운 식사나 술도 제공되는 뮤지엄 카페도 신설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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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대학박물관 (北海道大学博物館)- 홋카이도대학 종합박물관은 삿포로 최초의 본격적인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로 1만 점에 달하는

학술자료를 무료공개하고 있음. 홋카이도대학 구내에서도 유달리 깊은 역사가 느껴지는 중후한 느낌의

박물관 건물은 1929년에 건립되어 1999년까지 이학부의 본관 으로 사용되었던 교사를 재활용하였고

140년 이상 전에 삿포로 농학교로 개교한 이래, 수집·보존·연구되어 온 300만 점 이상에 달하는

표본과 자료가 축적되어 있음.

- 성장한 수컷 홀스타인(젖소로 유명한 소의 품종)의 거대한 골격표본이나 매머드의 실물 크기 모형 등,

볼거리가 가득하며 표본뿐만 아니라 바닥을 발로 가볍게 차기만 해도 진동을 감지해내는 지진계나

표본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체험형 전시실>, 연구현장 을 엿볼 수 있는 <뮤지엄 라보>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전시가 마련되어 있음.

- 또한, 2016년 7월 새롭게 단장하여 홋카이도대학 12개 학부의 교육연구내용을 알 수 있는 전시가

추가되었으며, 가벼운 식사나 술도 제공되는 뮤지엄 카페도 신설되어 있음.

Page 82: 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카이도문화탐사_본문...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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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

리하

2018 신

화강

좌 연

계 홋

카이

도 문

화 탐

사 결

과 보

고서

마무리하며 _ 참가자 감상평 중에서 발췌

김석희

여러분 어떻게 잘 주무셨습니까? 월요일 날 출발했는데 벌써 오늘이 금요일입니다.

제가 출발하기 전에 잠깐 말씀드렸지만, 경기문화재단에서는 신화강좌의 연속, 또 저희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에서는 환동해지역 연구의 사회적 확산사업의 일환으로 함께 왔습니다.

어쨌든 저희가 환동해라는 지역을 말씀드렸습니다만 동해를 둘러싼 지역을 얘기할 때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얘기합니다.

국가와 국가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이 지역을 다시 보자는 취지의 연구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환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었고 그런 차원에서 여러분하고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단순히 구경하는 차원을 넘어서 지역을 이해하기위해 서로 이야기 나누는 과정으로 설계한 프로그램입니다.

여러분이 이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문형순

생각하실 시간이 필요하실 것 같으니까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우선 어제도 잠깐 홋카이도

아이누정책과 미팅을 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신화강좌로 시작을 해서 경희대와 함께 해외 탐방까지를

확장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신대로 국가와 국가 간의 차원이 아니라 어떤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간의 네트워킹을

좀 더 점검하고 확장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하게 됐습니다. 특히 정치나 역사쪽 부분은 민감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저희가 아무래도 신화 강좌이다 보니까 신화를

주제로 함께 연구를 시작하면 조금 전에 말씀하신 어떤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 거기에서 좀 더 확장된

국가 간의 역할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지점에서 이제 저희

경기문화재단과 경희대가 기획했던 프로그램이 확장되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연구 작업을 좀 더 고민해 볼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된 것 같습니다.

김윤아

저는 지금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아이누라고 그러면 홋카이도 원주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고, 책을

읽어도 다 일본책을 읽었으니까 일본 사람들이 자기네 땅으로서 식민지로서 홋카이도만을 생각하고만

있다는 걸로 알았지 이쪽 사할린이나 캄차카 반도까지 그쪽 사람들과 같이 연관이 있었다는 것들을 여기

와서 눈으로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이누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한 수렵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석희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수많은 사람을 만나서 인간관계를 맺는다고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서 평생을 살더라도 그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게 인간을 이해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한 지역을 좀 깊이 있게 아는 게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여기 와서 환대를 받았잖아요. 20세기 철학자 중에 자크 데리다 라는 사람이 절대적인

환대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환대는 불어로 하면 어스피타리떼(hospitalite)입니다. 환대는 일방적으로

잘 해 준다거나, 관용이나 이런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상대방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는 개념입니다. 권력자들, 정치적·지적 권력자들 그런 모든 권력자들은

약자에게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문화를 강요합니다. 이게 가장 큰 폭력이죠. 약자든 강자든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진짜 환대입니다. 아이누의 세계를 중심으로 홋카이도를 방문한

이번 프로그램은 그런 환대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지녀야할 미덕이 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딘가를

찾아가서 볼 때 이 사람 어 신기하다, 이 사람은 약간 미개하지만 멋지다, 이런 식의 무의식 같은 것 없이

정말 인간과 인간이 접속 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말씀들 해 주셨지만 이 기회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새로 연이 닿아서 좀 더 좋은 생산성이 있는 뭔가를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Page 83: 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카이도문화탐사_본문...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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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_ 참가자 감상평 중에서 발췌

김석희

여러분 어떻게 잘 주무셨습니까? 월요일 날 출발했는데 벌써 오늘이 금요일입니다.

제가 출발하기 전에 잠깐 말씀드렸지만, 경기문화재단에서는 신화강좌의 연속, 또 저희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에서는 환동해지역 연구의 사회적 확산사업의 일환으로 함께 왔습니다.

어쨌든 저희가 환동해라는 지역을 말씀드렸습니다만 동해를 둘러싼 지역을 얘기할 때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얘기합니다.

국가와 국가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이 지역을 다시 보자는 취지의 연구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환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었고 그런 차원에서 여러분하고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단순히 구경하는 차원을 넘어서 지역을 이해하기위해 서로 이야기 나누는 과정으로 설계한 프로그램입니다.

여러분이 이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문형순

생각하실 시간이 필요하실 것 같으니까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우선 어제도 잠깐 홋카이도

아이누정책과 미팅을 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신화강좌로 시작을 해서 경희대와 함께 해외 탐방까지를

확장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신대로 국가와 국가 간의 차원이 아니라 어떤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간의 네트워킹을

좀 더 점검하고 확장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하게 됐습니다. 특히 정치나 역사쪽 부분은 민감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저희가 아무래도 신화 강좌이다 보니까 신화를

주제로 함께 연구를 시작하면 조금 전에 말씀하신 어떤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 거기에서 좀 더 확장된

국가 간의 역할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지점에서 이제 저희

경기문화재단과 경희대가 기획했던 프로그램이 확장되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연구 작업을 좀 더 고민해 볼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된 것 같습니다.

김윤아

저는 지금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아이누라고 그러면 홋카이도 원주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고, 책을

읽어도 다 일본책을 읽었으니까 일본 사람들이 자기네 땅으로서 식민지로서 홋카이도만을 생각하고만

있다는 걸로 알았지 이쪽 사할린이나 캄차카 반도까지 그쪽 사람들과 같이 연관이 있었다는 것들을 여기

와서 눈으로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이누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한 수렵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석희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수많은 사람을 만나서 인간관계를 맺는다고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서 평생을 살더라도 그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게 인간을 이해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한 지역을 좀 깊이 있게 아는 게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여기 와서 환대를 받았잖아요. 20세기 철학자 중에 자크 데리다 라는 사람이 절대적인

환대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환대는 불어로 하면 어스피타리떼(hospitalite)입니다. 환대는 일방적으로

잘 해 준다거나, 관용이나 이런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상대방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는 개념입니다. 권력자들, 정치적·지적 권력자들 그런 모든 권력자들은

약자에게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문화를 강요합니다. 이게 가장 큰 폭력이죠. 약자든 강자든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진짜 환대입니다. 아이누의 세계를 중심으로 홋카이도를 방문한

이번 프로그램은 그런 환대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지녀야할 미덕이 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딘가를

찾아가서 볼 때 이 사람 어 신기하다, 이 사람은 약간 미개하지만 멋지다, 이런 식의 무의식 같은 것 없이

정말 인간과 인간이 접속 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말씀들 해 주셨지만 이 기회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새로 연이 닿아서 좀 더 좋은 생산성이 있는 뭔가를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Page 84: 2018 신화강좌 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 보고서™‹카이도문화탐사_본문...목 차 Ⅰ. 들어가며 1. 신화와 역사의 공간, 홋카이도를 가다

2018년 신화강좌연계 <홋카이도 문화 탐사> 결과자료집

주 최 : 경기도

주 관 : 경기문화재단

협 력 :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일본 홋카이도 아이누정책과

기획총괄 : 문예진흥팀 권신 팀장

기획운영 : 문예진흥팀 문형순 차장

사진·편집 : 박민량 , 오정아

채록·편집 : 오정아 , 문형순

발행일 : 2018.12.

발행처 :

주 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78 경기문화재단

전화 031-231-7237 / 팩스 031-236-0283

홈페이지 www.ggcf.kr

* 이 책에 사용된 사진은 답사기간 중 촬영된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 이 책의 내용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경기문화재단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