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_미트쉐어컨텐츠_인권어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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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015 제 5회 인권어울터 인권어울터 , 곳에 곳에 사람을 생각하는 인권법률 공동체 두런두런 Do Learn Do Run 2015. 7. 22 (수) ~ 7. 24(금) 한국산업기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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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5제제 55회회인권어울터인권어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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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생각하는 인권∙법률 공동체 두런두런 Do Learn Do Run

2015. 7. 22 (수) ~ 7. 24(금)

한국산업기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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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생각하는 인권∙법률 공동체 두런두런(Do Learn DoRun) 은 사 회 적 약 자 와 소 수 자 의 인 권 보 장 을지향하고, 공익·인권법 운동과 인권의식의 확산에 의지를 가진청년들이 모인 인권∙법률 단체입니다. 2011년 창설된 두런두런은인권과 법 분야를 중심으로 한 학술활동, 진보적 사회변화에동참하는 현장활동, 사회 각계 인권단체와의 연대활동 등을 통해다음의 목표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Ⅰ. 취지 및 목적

두런두런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와차별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실마리로서의 ‘법’과 ‘인권’을 고민하며 인권의식의 확산과제도 변혁의 움직임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두런두런을 소개합니다!

두런두런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와차별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실마리로서의 ‘법’과 ‘인권’을 고민하며 인권의식의 확산과제도 변혁의 움직임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두런두런은 인권·공익법 분야에서 활동하고자 하는청 년 들 이 모 여 각 자 의 비 전 과 목 표 를 공 유 하 는네트워크로서, 차후 이들이 각계 인권 분야로 진출할 수있도록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인권행동의 미래 지평을 넓히고 연대의 가능성을확장하고자 합니다.

두런두런은 권위적이고 시혜적인 기존 법률가 집단의관성에서 벗어나, 상호 연대의 가치에 기반한 공익법활동을 확산시키고자 합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인권이 실현되는 사회로의 변화는, 권위적 자세가 아닌상호 존중과 공감에서 비롯된 실천으로 가능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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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지향

두런두런을 소개합니다!

두 런 두 런 의 모 든 활 동 은 사 회 적약자, 소수자의 인권 보장과, 사회 공익적 가치를실현한다는 일원칙에서 출발합니다. 두런두런은약 자 에 대 한 부 당 한 차 별 과 억 압 에반 대 하 며 , 인 권 일 반 의 원 칙 을 기 반 으 로학술, 실천, 연대활동을 펼칩니다.

사회적약자, 소수자의

인권 보장과공익의 실현

민주적 운영

두런두런은 조직 운영 과정에서 민주적 가치를실현하도록 노력합니다. 공동의 의사 결정과 정 에 서 구 성 원 의 의 견 을 적 극 적 으 로반영하며, 소수의 독단적 운영을 지양합니다.모든 회원이 수평적 관계 하에서 원활한 소통을유지할 수 있는 민주적 운영구조를 확립하도록노력합니다.

두런두런은 조직 운영 과정에서 민주적 가치를실현하도록 노력합니다. 공동의 의사 결정과 정 에 서 구 성 원 의 의 견 을 적 극 적 으 로반영하며, 소수의 독단적 운영을 지양합니다.모든 회원이 수평적 관계 하에서 원활한 소통을유지할 수 있는 민주적 운영구조를 확립하도록노력합니다.

두런두런은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개방적 태도를 견지합니다. ‘다름’을 ‘틀림’으로받아들이지 않으며, 구성원의 다양한 특성과가치관이 서로 조화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이를 위해 인권적, 여성주의적 감수성에 기반한상호 존중·배려의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다양성과개방성

혁신과 변화

두런두런은 활동 및 운영에서 지속적인 혁신과변화를 추구합니다. 현상 유지에 만족하는보수적 태도를 지양하고, 문제의식을 확장하여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동 참 합 니 다 . 또 한 두 런 두 런 은 배 타 성 과경직성에서 벗어나 비판을 수용하고, 끊임없이발전하는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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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실현하는 사회로의 변혁은 개인의의지뿐만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집단의 연대가동반되어야 가능하며, 따라서 두런두런은 사회각계와의 연대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그러나 연대는 특정 집단의 패권적, 수직적지배가 아닌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협력을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단체의독립성과 활동 목적을 훼손하지 않아야 합니다.

수평적 연대

즐거운 운동창의적인 운동

두런두런은 기존의 운동 방식만을 고집하는것이 아니라, 즐겁고 창의적인 운동 방식을적극적으로 모색하여 새로운 인권 운동 흐름을만들어 갈 것입니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구조를통 해 , 각 구 성 원 의 창 의 성 을극대화하고, 유쾌하고 기발한 대중 운동을창출하고자 합니다.

두런두런 페이스북 facebook.com/dolearndorun두런두런 트위터 twitter.com/dolearndorun

웹툰 <정상 컴플렉스> blog.naver.com/js_complex팟캐스트<인(人)디펜던스> 팟빵에 인(人)dependence웹진 <안.꿈.지.> dolearndoru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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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활동

Ⅲ. 2015년 활동소개

두런두런을 소개합니다!

Part. 1

●정규 세미나와 특별 세미나

두런두런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은 각 지부별로 주 1회씩 진행되는 ‘정규 세미나’라할 수 있습니다. 정규 세미나에서는 미리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특정 주제가다루어집니다. 한편 비정기적으로 구성되는 ‘특별 세미나’는 주로 주말이나 정규세미나가 없는 날에 전체 모임의 형식으로 진행이 되고, 특정 주제에 대해 관심을가지고 있는 회원들이 직접 준비하고 진행합니다. 세미나는 기본적으로'발제+토론'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커리큘럼에 따라 연사님을 초청하여전체 강연을 듣는 방식으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2015-1] 정규세미나 커리큘럼

일정 주제 제목 방식 발제모임

1주차 3/17~3/19 지부환영회 성별말고 나이말고 학벌말고 당신 지부세미나 -

2주차 3/24~3/26 인권 인권으로 세상보기 지부세미나 -

3주차 3/31~4/2 인권과 법 인권이 법을 만났을 때 지부세미나 3/22(일) 2시

4주차 4/7~4/9 페미니즘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3/27(금) 5시

중간고사

5주차 4/28~4/30섹슈얼리티∙연애

조금 불편한 사랑공식 지부세미나 4/10(금) 5시

6주차 5/5~5/7 자본주의 그 많던 돈은 누가 다 먹었을까? 지부세미나 4/25(토) 5시

7주차 5/12~5/14표현의자유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 전체강연 -

8주차 5/19~5/21 군 인권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지부세미나 5/10(일) 2시

9주차 5/26~5/28이주∙

민족주의영원한 너의 조국 지부세미나 5/17(일) 2시

기말고사

[2015-1] 정규세미나 커리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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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활동Part. 1

● 학술연구부 주제별 심화세미나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정규 세미나와 특별 세미나 외에도 학술연구부에서진행하는 주제별 심화세미나가 있습니다. 여성, 노동, 인권일반 등의 큰 주제에 대하여전체 세미나에서 이야기하기엔 논의를 미처 하지 못했던 내용이거나, 학문적으로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할 내용이어서 커리큘럼에 넣지 못한 내용들은 모두 심화세미나에서 다루게 됩니다. 심화 세미나는 이름처럼 학습량도 많고 참여자에게 어느정도의 노력이 요구되지만 그만큼 얻어갈 수 있는 것도 많고, 심화 세미나의 퀄리티와회원들의 만족도가 동시에 높아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 법학연구회

● 학술연구부 문집제작

학술연구부에서는 연 1회(하반기) 두런두런 문집을 웹진팀과 연계하여 제작할예정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심화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다루었던 여성, 노동, 인권일반의 주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문집에 실을 예정이며 이에 추가로 학술부원이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주제를 모아 그 중 몇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관련된글을 실을 계획입니다. 지부별 세미나혹은 심화세미나에서 말로 자신의 생각을표현하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듀러니에게는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천활동Part. 2● 참여활동

인권영화제 및 시민문화제, 인권과 법에 관련된 문화예술활동/후기 나눔, 사회 내각종 부조리한 현안들에 대항하는 집회/시위, 타 인권단체와 함께하는 다양한 인권관련 캠페인, 국민참여재판 등 여러 활동들에 참여합니다. 무엇보다 실천팀원을비롯한 모든 회원들이 실제로 체험하고 싶은 활동들에 대한 의견을 모아서차근차근 기획할 예정입니다.

● 법학연구회

두런두런 법학연구회는 두런두런 내에서 체계적으로 법학에 관련된 연구활동을‘장기적으로’ 담당하는 조직체입니다. 법학연구회는 두런두런에서 한 학기 이상활동한 회원들 중에서 장기적인 연구를 하고자 하는 회원들로 구성됩니다.법학연구회의 구성원들이 6개월을 기준으로 각자 관심있는 법적 이슈를 스스로정해서 연구하고, 이를 모임에서 공유하여 각자의 연구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기본적인 연구 방향입니다. 또한 개별 연구와는 별개로 기초법학과 실정법학을스터디 형식으로 진행하여 법적인 시각을 높이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연구가 종료되는 매 6개월마다 포럼, 공개세미나, 공개강좌 등을 통해 그간법학연구회의 연구를 발표하는 공식 행사를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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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인권교육 (청인교)

중고등학교 재학생들의 계발활동/동아리 시간에 실천팀원 및 두런두런 회원들이찾아가 인권 전반에 대한 강연과 구체적인 차별 사례 등을 통한 인권 감수성 향상을도모하는 교육을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원활하게진행하기 위해서 두런두런 회원들 간의 인권에 대한 사전 공부와 회원들 스스로의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속해나갈 예정입니다.

● 인권어울터

인권어울터는 두런두런의 가장 핵심적인 대중사업입니다.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에대한 차별에 맞서 사회 전반에 인권 감수성을 확산하며, 인권을 중심으로 사회의변화를 꿈꾸는 청년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또한 기획과정에서는 관련된 인권 단체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의제나 전략을 공유하는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인권을 주제로 한 캠프 형태로 진행되어왔으며, 두런두런 내에서 기획단을 모집하여 준비했습니다. 캠프는 여름에진행되었고 강연과 토론, 참여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올해는 어떤 컨셉을가지고 어떤 형태로 진행될까요?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모아주세요~!

● 웹툰 <정상 컴플렉스> 연재

웹툰 사업은 인권을 소재로 한 웹툰을 제작한 후 각종 포털 등에 홍보하여 인권의식을유 쾌 하 게 전 달 하 는 것 을 목 표 로 합 니 다 . 웹 툰 의 경 우콘티팀, 실무(그림작업)팀, 시나리오팀, 웹홍보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권이라는주제를 일상으로 가져와, 대중들의 편견을 깨고 인권감수성을 향상시키는 데에기여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있는 활동입니다. 네이버 베스트도전에서 ‘정상 컴플렉스’를검색하세요!

인권어울터는 두런두런의 가장 핵심적인 대중사업입니다.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에대한 차별에 맞서 사회 전반에 인권 감수성을 확산하며, 인권을 중심으로 사회의변화를 꿈꾸는 청년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또한 기획과정에서는 관련된 인권 단체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의제나 전략을 공유하는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인권을 주제로 한 캠프 형태로 진행되어왔으며, 두런두런 내에서 기획단을 모집하여 준비했습니다. 캠프는 여름에진행되었고 강연과 토론, 참여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올해는 어떤 컨셉을가지고 어떤 형태로 진행될까요?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모아주세요~!

● 팟캐스트 人dependence

두런두런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인 팟캐스트 인디펜던스(人dependence)는‘人(인)’과 ‘dependence’를 붙여서 만든 이름으로,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낸다는 의미이고, 두번째로는 "사람들끼리 서로 기대서" 만들어 나가는 방송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번으로시즌 3를 맞이하는 인디펜던스의 유쾌하고 다양한 코너들을 기대해주세요!

● 나눔 프로젝트연말에 기획‧진행하였던 쪽방촌 부탄가스 배달 프로젝트입니다. 이 활동은 <동대문

쪽방상담소>와 연계하여 쪽방주민들을 위한 나눔 활동을 구상하고 진행합니다.

● 고래고래(성교육 책자만들기)

<고래고래>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서는 다 알 수 없었던 진짜 '성'에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관계에서부터 섹스까지, 나로부터 당신까지, 지금까지주류 성 담론에서 배제되어있었던 다양한 주제들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바라봅니다. 성기중심적, 이성애중심적이었던 기존의 성교육에서 벗어난 재미있고실질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입니다. SNS홍보, 책자만들기 등 다양한실천활동과 기존 성교육 비판하기, 여성 억압적 성담론 벗어나기 등의 학술활동도함께 하고 있어요! 여성주의에 관심있으신 분들, 성과 성교육에 대해 궁금한 게많으신 분들, '나' 를 중심으로 새로운 섹스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싶으신 분들 모두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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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활동Part. 3

● 웹진 <안.꿈.지.>

안꿈지는 ‘ 안 밟아도 꿈틀하는 지렁이’의 약자로, 보다 자발적이고 날카롭게 인권문제를 의식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되었으며 인권 이슈를 다룬 기사 뿐만 아니라 두런두런활동 소식에 대한 기사를 발간해온 두런두런의 웹진입니다. 2015년에도 두런이인터뷰, 홍보활동과 연계한 뉴스레터 제작,학술연구부와 함께하는 문집 발행 등 세상과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http://dolearndorun.tistory.com 을방문하시면 안꿈지에 발간한 기사 및 두런두런의 활동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소모임 활동두런두런에는 학술, 실천활동과 함께 소모임 활동이 있습니다. 회원들이 스스로

관심있는 분야의 소모임을 주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현재까지 생태주의 소모임녹 두 , 영 화 소 모 임 ( 섹 , 도 , 시 , 발 ), 맛 집 탐 방 소 모 임 ( 개 배 ? 개 배 !!!!!), 기 타소모임(배짱베짱), 헌법연구 소모임(Club CL), 운동 소모임,사진 출사 소모임, 성소수자모임 등이 활동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이 만들어갈 새롬고 재미있는 소모임을기대합니다! J

● 수익사업두런두런의 지속적 존립을 위해 필요한 경우 재정난 해결을 위한 재정활동을진행합니다. 인권과 법에 관련한 행사를 개최하여 일부는 인권단체에 기부하고일부는 두런두런의 재정마련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2013년에는 숙명여대와 연세대축제에서 두런두런에서 팔찌나 음식 등을 직접 준비하고 판매부스를 열어 수익사업을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3.8여성대회, 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 행사를진행하거나, 뱃지를 만들어 판매하는 등의 활동도 진행했습니다.

두런두런의 지속적 존립을 위해 필요한 경우 재정난 해결을 위한 재정활동을진행합니다. 인권과 법에 관련한 행사를 개최하여 일부는 인권단체에 기부하고일부는 두런두런의 재정마련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2013년에는 숙명여대와 연세대축제에서 두런두런에서 팔찌나 음식 등을 직접 준비하고 판매부스를 열어 수익사업을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3.8여성대회, 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 행사를진행하거나, 뱃지를 만들어 판매하는 등의 활동도 진행했습니다.

● 홍보활동

2015년 홍보활동의 계획은 첫째, 보다 체계적인 아카이빙을 목표로 합니다.둘째, 웹진 <안꿈지>의 활성화입니다. 셋째, 뉴스레터 제작입니다. 넷째, 좀더 확실한두런두런만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구축하기 위한 디자인 TFT를 모집합니다.디자인팀은 주로 두런두런의 웹자보, 웹진 디자인, 뉴스레터 디자인을 제작할예정입니다. 또한 문집 제작, 실천활동에 필요한 피켓과 현수막 또는 브로슈어제작, 뱃지 등에 필요한 디자인을 담당하게 됩니다. 다섯째, "무엇을 어떻게 홍보할것인가" 자체에 대해서 많은 분들과 함께 연구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홍보영상제작이나 이벤트 기획 등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홍보담당에게 연락주세요

두런두런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다양한 친목프로그램또한 기획합니다. 계절별 MT, 날씨 좋은 봄날에는 봄소풍, 하늘 높고 맑은 가을날에는가을 운동회, 두런두런의 생일을 축하하는 창립기념일 행사, 가장 성대하고 야심차게진행되는 연말 송년의 밤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친목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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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생각하는 인권∙법률 공동체 두런두런에서 주최하는 ‘인권어울터’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맞서 사회 전반에 인권 감수성을 확산하고,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청년들이 모여 연대의 경험을 만들어가는 2박 3일 캠프입니다. 인권어울터는 주제별 강연과 세미나, 참여 프로그램과 영화상영회, 그리고 서로 친해질 수있는 다양한 활동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 5회를 맞이하는 인권어울터 <사람, 이곳에 있다>에서는 불안의 시대, 사람과삶이 쉽게 지워지고 점점 더 서로에게 공감하기 어려워지는 지금 여기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같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고자 인권과 차별, 여성혐오, 이주, 세월호 등의 주제를 선정하였습니다.

인권어울터 기획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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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어울터 기획의도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된 삶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불안한 청년세대는 타인에 공감하고사회의 문제를 고민하기보다는, 차별을 받아들이고 각자도생과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 방어와 타인에대한 공격이 동전의 양면이 되어, 그렇게 우리는 사회의 피해자인 동시에가해자로 자리합니다. 첫 번째 강연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서울과 지방대, 다시 그 안에서 학과로, 입시전형으로, 스펙으로 끊임없이 서열과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 여기 이십대의 모습들을 돌아보고, 무엇이차별에 찬성하는 우리를 만드는지, 어떻게 우리는 ‘공감하는 시민’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봅니다.

된장녀, 김치녀 등으로 대표되는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는 ‘일베’와 같은 극단적 사

례뿐 아니라, 최근 각종 TV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연예인의 발언, 인터넷에서 퍼지는 만화, SNS 게시글, 기사마다 달리는 댓글까지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도 뜨겁습니다. 페미니스트가 싫어 IS에 가담했다는김군이나 무뇌아적 페미니스트가 더 무섭다는 칼럼이 등장하는가 하면, 연이어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를 선언하는 사람들과 여성혐오를 풍자하는 소위 ‘메갤’의 등장까지. 두번째 강연 <우리 시대의 여성혐오 : 된장녀부터 무뇌아적 페미니스트까지(손희정)>을통해 지금 한국사회에서 고조되고 있는 여성혐오의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각종 오해와 비난을 받고 있는 ‘페미니즘’은 도대체 무엇인지 들어보고 이야기 나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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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녀, 김치녀 등으로 대표되는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는 ‘일베’와 같은 극단적 사

례뿐 아니라, 최근 각종 TV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연예인의 발언, 인터넷에서 퍼지는 만화, SNS 게시글, 기사마다 달리는 댓글까지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도 뜨겁습니다. 페미니스트가 싫어 IS에 가담했다는김군이나 무뇌아적 페미니스트가 더 무섭다는 칼럼이 등장하는가 하면, 연이어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를 선언하는 사람들과 여성혐오를 풍자하는 소위 ‘메갤’의 등장까지. 두번째 강연 <우리 시대의 여성혐오 : 된장녀부터 무뇌아적 페미니스트까지(손희정)>을통해 지금 한국사회에서 고조되고 있는 여성혐오의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각종 오해와 비난을 받고 있는 ‘페미니즘’은 도대체 무엇인지 들어보고 이야기 나눠봅니다.

작년 방한했던 무투마 루티에레 유엔 인종차별 특별보고관은 한국에 심각한 인종차별

사례가 존재하며 정부가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타국에서 힘들게 일하는 불쌍한 존재로, 한 편으론 내 일자리를 빼앗은 예비 범죄자로 그려지는 이주노동자, 한국 사회에 통합되고 순응하기를 요구 받으면서도 쉽게 타자화되고, 취약한 상황에 내몰리는 이주여성 등은 바로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각종 미디어에서 만들어내는 오해와 편견의 이미지들은 이 사회의 인종주의/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이주민들을 더욱 배제하고 공격합니다. <이주민과 인종주의(정혜실)>에서는 한국 사회의 이주민과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돌아보고, 이주의 문제가 왜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인지 생각을 나누면서 ‘다문화감수성’을 키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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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어울터 기획의도

2014년 4월 16일. 그로부터 1년 3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일 뿐이다’는 말에서 ‘산 사람은살아야 한다’는 말까지. 세월호라는 아프고 불편한 기억, 지겨운 기억을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가득한 사회입니다.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왜 세월호를말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직면하고 되물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아야 합니다. 세월호라는 거대한 참사 앞에 드러난 것은 일상적인 무능과 부조리,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 그 배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오준호)>을통해 세월호 재판의 내용을 중심으로 사고의 사회적 배경과 의미를 되짚어보고, 우리가살아갈 국가/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봅니다.

인권어울터에서는 앞서 소개한 강연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 장애, 성소수자, 학벌, 가족, 빈곤 등 다양한 인권이야기를, 우리가 함께 발 딛고 살아가는이 사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여기 우리를 쉽게 지치고 답답하게 하는 것은여름의 더운 날씨만은 아닐 것입니다. 같이 고민하고 행동하고 웃고 이야기 나누는 인권어울터의 2박 3일이 여러분에게 시원한 ‘사이다’같은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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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어울터에서는 앞서 소개한 강연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 장애, 성소수자, 학벌, 가족, 빈곤 등 다양한 인권이야기를, 우리가 함께 발 딛고 살아가는이 사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여기 우리를 쉽게 지치고 답답하게 하는 것은여름의 더운 날씨만은 아닐 것입니다. 같이 고민하고 행동하고 웃고 이야기 나누는 인권어울터의 2박 3일이 여러분에게 시원한 ‘사이다’같은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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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어울터 일정

7월 22일 (수) 1일차 7월 23일 (목) 2일차 7월 24일 (금) 3일차

8 기상 기상

9 아침식사 아침식사

10 강연(2) 여성혐오“우리시대의 여성혐오

: 된장녀에서무뇌아적 페미니스트까지”

프로그램(4)

< 인권 상상마당 >11

12 점심식사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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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점심식사 점심식사

1 접수 프로그램(2)

< Talk table : 여성혐오, 그리고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 >

숙소 정리

2 여는 행사맺는 행사

3 강연(1) 인권과 차별“우리는 차별에찬성합니다”

강연(3) 이주“이주민과 인종주의”4 강연(4) 세월호

“그 날 그 배에서 무슨 일이있었나”5 저녁 식사 저녁식사

6 숙소배정 프로그램(3)

< 인권골든벨 >

마무리 / 해산

7 프로그램(1)

< 모두 모여, 인권 >8 영화상영

< 탐보그란데 : 망고냐 황금이냐 >9 두근두근, 우리 처음 만났조

10 정리 / 취짐 준비 뒤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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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터를 위해

- 나이와 학벌에 기반한 위계와 차별을 만드는 표현을 하지 않기-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 장애 등 소수를 배제하는 표현을 하지 않기- 다른 사람에게 성역할을 구분하고 강요하는 표현과 행위를 하지 않기

인권어울터를 위한

사람을 생각하는 인권•법률 공동체 두런두런은 나이와 학벌, 장애와 성별, 성정체성과 성적지향 등 개인의 정체성에 기반한 그 어떠한 편견과 차별을 거부합니다. 아래는모두가 더욱 평등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그래서 2박 3일 내내 항상 상쾌한 사이다 같은인권어울터를 위해 함께 지켜나갈 약속입니다. 평소보다 말하고 행동하는데 다소 불편한 점이 생기더라도,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으로 모두가 즐거운 인권어울터를 만들어갑시다.

어울터를 위해

- 다른 사람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하지 않기- 갈등이 생겼을 때 폭력적인 말과 행동 대신 상대를 배려하는 대화로 상황을 해결하기- 타인의 방에 들어갈 땐 허락을 구하고, 자리를 비워줄 것을 요청 받으면 즉시 비워주기

약약속속

더욱 평등한평등한

서로존중하는존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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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터를 위해

- 다른 사람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하지 않기- 갈등이 생겼을 때 폭력적인 말과 행동 대신 상대를 배려하는 대화로 상황을 해결하기- 타인의 방에 들어갈 땐 허락을 구하고, 자리를 비워줄 것을 요청 받으면 즉시 비워주기

어울터를 위해

-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스스로 처리하고, 쓰레기는 분리수거하기- 어울터 동안 일회용품 대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사용하기.- 담배는 지정된 공간에서만 피우고 다 핀 담배는 불씨를 제거하여 버리기

어울터를 위해

- 모두가 함께하는 어울터 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개인적으로 이동해야 할 때 자기 위치를 기획단에게 말해주기- 서로 존중하며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 자유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기- 다른 사람에게 술을 강요하지 않고, 다음날 무사하도록 자기 주량만큼 마시기

서로존중하는존중하는

항상 상쾌한상쾌한

모두즐거운즐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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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두런두런의 약속

두런두런 인권어울터 기획단은

1.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경우 적극적으로 대처하겠습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절대 묵인하거나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사건을 빠르게 수습하기 위해 이를 축소하거나 대충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습니다. 수사기관으로 사건이 이관된 경우에도 끝까지피해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2.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존중하겠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대책위원회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바라보겠습니다. 모든 해결과정에서 피해자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3.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경우 그 즉시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하겠습니다.피해자가 원할 경우 신분과 정황 등을 노출하지 않겠습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신분과 정황의 공개와 사건에 대한 지속적인 언급, 가해자에게 동조하는 발언과 행위, 피해자에 대한 모든 정신적이고물리적인 압력과 협박을 2차 가해로 규정하며, 이를 별도의 사건으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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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경우 그 즉시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하겠습니다.피해자가 원할 경우 신분과 정황 등을 노출하지 않겠습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신분과 정황의 공개와 사건에 대한 지속적인 언급, 가해자에게 동조하는 발언과 행위, 피해자에 대한 모든 정신적이고물리적인 압력과 협박을 2차 가해로 규정하며, 이를 별도의 사건으로 다루겠습니다.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이나 나이, 기획단/참가자 여부와 무관하게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폭력 사건의 발생을 인지하시면 누구라도 언제든연락해주세요.

담당자 소현소현 010-2388-2232 스미스스미스 010-9504-6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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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1강연 1

[ [ 인권과인권과 차별차별 ]]

우리는우리는 차별에차별에 찬성합니다찬성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된 삶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불안한 청년세대는

타인에 공감하고 사회의 문제를 고민하

기보다는, 차별을 받아들이고 각자도생

과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 방어와 타인에 대한 공

격이 동전의 양면이 되어, 그렇게 우리는

사회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자리

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서울과 지

방대, 다시 그 안에서 학과로, 입시전형으

로, 스펙으로 끊임없이 서열과 차별을 만

들어내고 있는 지금 여기 이십대의 모습

들을 돌아보고, 무엇이 차별에 찬성하는

우리를 만드는지, 어떻게 우리는 ‘공감하

는 시민’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봅니다.

오찬호소속 :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저서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

진격의 대학교(2015)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된 삶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불안한 청년세대는

타인에 공감하고 사회의 문제를 고민하

기보다는, 차별을 받아들이고 각자도생

과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 방어와 타인에 대한 공

격이 동전의 양면이 되어, 그렇게 우리는

사회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자리

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서울과 지

방대, 다시 그 안에서 학과로, 입시전형으

로, 스펙으로 끊임없이 서열과 차별을 만

들어내고 있는 지금 여기 이십대의 모습

들을 돌아보고, 무엇이 차별에 찬성하는

우리를 만드는지, 어떻게 우리는 ‘공감하

는 시민’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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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대학생에게 ‘시민’이 되라고 하지 않는다1)

오 찬 호(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저자)

보시니 좋으시면서 왜 답답해하는가?

“도무지 대학생들을 이해를 못하겠다! 현실이 잘못되었으면 사회에 당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이 말은 ‘젊은 세대’가 그 이전의 젊은이들과는 ‘객관적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객관적이라 함은 크게 두 지점이다. 하나는 과거 기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제적 불평등’이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경제활동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일단 힘들다. 취업문은 좁아졌고 이와 비례하여 취업준비 비용은 늘어났으니 이전 세대에 비해 명백히 불평등한 상황이다. 또 취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양질의 일자리’가 확연히 줄었다. 정규직이 될 확률은 낮고 정규직이라도 정년을 보장받지 못한다. 어떤 곳이든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 ‘어떤 곳’의 성질이 확연히 달라졌다. 인턴, 수습, 비정규직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으면서, 과거의 사람들이 일반적인 생애과정에서 접했던 기본적인 것들, 예를 들면 ‘집’, ‘결혼’, ‘출산’, ‘인간관계’ 등을 자연스럽게 누리기는 어렵다. 아울러 노동자의 지위가 세분화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갑질’을 참아야지만 ‘노동에 대한 보상’을 보장받는 것도 불평등이다. 또 다른 사실 하나는 ‘상황이 시궁창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이 별다른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객관적인 것이라 논쟁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런 힘든 상황을 ‘적극 수용’하는 현장들이 곳곳에서 목도된다. 나아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가 좋아지길 희망하는 소수의 주장을 무참히 밟아버리기도 한다. ‘비정규직이 줄고 정규직이 늘면’ 결국 한 사회의 노동시장 자체가 안정적으로 흘러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반대가 되면 ‘기업의 자산’은 증식될지 모르겠지만 개인의 삶은 더 힘들어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국사회’다. 한국은 경제적인 것의 표피적인 크기와 관련된 어떤 지표들은 좋아졌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과 관련된 여러 지표들은 급격히 끔직해졌다. 이처럼, 사회가 잘못되면 그 안의 개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이겨내기란 어렵다. 당연히 사회가 ‘좋게’ 변하면 그 안을 살아가는 이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가능성은 높아진다.하지만 대학생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변화를 부르짖지 않은 걸 넘어 사회를 향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타인을 징벌한다. 이십대들은 주어진 길만을 가는 데 익숙하여 이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파업 노동자 연대를 표방하는 대자보를 찢거나, 낙서를 하는 등의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이유다. 누군가는 그런 대자보를 용납할 수 없는, 어떤 선을 넘은 부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지 모르겠으나, 그 합리성이 모여든 사회, 즉 대학생들의 미래가 더 ‘극한’이 됨은 분명하다. 정리하면, 지금의 대학생들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걸 극도로 꺼려한다. 피상적으로 생각한다면, 언급된 두

1) 이 글은 <문화과학, 2015 여름호(82호), 65-85p>에 “대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다”의 제목으로 기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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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객관적 사실을(경제적 불평등+정치적 무관심) 대학생들이 보유하고 있으니 이들의 ‘양가적 모순’에 대해서 답답해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부당한 것을 정치적인 관심으로 해결하는 것은 ‘시민’의 자격임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그런 질타를 해서는 안 된다. 상황이 어떠하든,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사회가 그들에게 바랐던 모습 아니었던가? 현재의 대학생들을 답답해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그러지 않았던 대학생’들이 보여 주었던 ‘정치적 의지’가 지금과 동일한 상황에서 발현된 것으로 착각한다. 그 ‘의지’라 함은 기성세대의 가치에 저항하는 ‘발칙함’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듯하다. 재미난 사실은 이 발칙함을 사회가 오랫동안 젊은 세대에게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요즘 애들 버릇없어”라는 윗세대의 한탄이 존재했다는 것은 역으로 ‘사회의 젊은이들이’ 그럴 수 있는 나름의 제반조건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386세대를 ‘박정희의 아이들’2)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 맥락이다. 고도성장의 시기, 직업을 통한 ‘강한 상승이동(upward mobility)의 조류’3)가 보장되면서 당시의 ‘대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경제적 고민을 우선적으로 할 필요가 없었고 이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가로막는 현실적 장애물이 별로 없음을 의미했다.4)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어울리게 반응했다. 적극적인 목소리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한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버렸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생들은 과거세대와는 다른 ‘상황’과 마주했다. 과거세대의 행보를 권리삼아 주장하다가는 노동시장 진입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과거에는 그저 ‘쯧쯧 거리며’ 혀를 차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것을 한 사람의 직무역량, 나아가 도덕적 상태를 판단하는 증거자료로 활용한다.

1. “노조에 들어와 직원들을 선동할 건가?” 얼마 전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 ㄱ그룹 계열사에 지원한 회사원 ㄴ씨(28)는 면접관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ㄴ씨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고 결국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내 소신과 다르게 말해야만 취업할 수 있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씁쓸해했다. (…) 면접관은 “시민단체 인턴 경험이 있는데 우리 회사에서 적응할 수 있겠나”, “종북세력이 있다고 보는가?”등 지원자의 사상을 검열 하는듯한 질문을 던졌다. (…) 낙방한 김모씨(28)는 임원면접에서 “‘존경하는 대통령은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답했는데, 이것 때문에 떨어진 것인지 계속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6명가량의 다른 지원자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대답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면접관이 다시 “인권유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경제발전의 공이 더 크다”고 답했다.5)

기업들이 ‘특정한 질문’을 던지고 ‘정해진 답’을 했느냐에 따라 실제로 입사에 불이익을 주었는지는 중요한 지점이 아니다. 취업난이 심해지면 ‘실제 그런 것과 무관하게’ 개인 스스로가 느끼는 압박감이 존재한다. 서류전형, 인‧적성 검사, 합숙면접 등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자들의 스펙들은 다들 유사하기에, 탈락자들은 ‘혹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결정적이지 않았을까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즉, 기업은 자신들의 원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묻지 말아야 할 질문을 던졌고 그로부터 특정한 사회적 공기를 만든 셈이다. 그러니 과거 같았으면 ‘혁명을 꿈

2) 조대엽. 2003. 10. 21(동아일보). “<시론>‘386’ 무엇이 문제이길래…”3) 한국노동연구원. 2011. “베이비붐 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월간 노동리뷰>. 2월호: 5-9. 8p.4) 물론, 그 당시의 학생들이 이런 계산을 하면서 살았다는 것이 아니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정치적 의

지를 ‘시대의 배경’과 무관하게 온전히 자신의 결단력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5) 경향신문. 2014. 4. 13. “‘노조 가입할 건가’, 대기업 ‘사상검열식’ 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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꿨던’ 지하조직에서의 활동경험 정도는 되어야 ‘굳이 외부에 알리지 않는’ 수준이었겠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은 ‘야학교사’, ‘환경단체’ 활동 등도 자기소개서에 기록하지 않는다. 철저한 대비(?)인 셈이다. 문제는 그런 사회적 공기를 비판해야 할 기성세대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그저 “사회가 바뀌지 않으니 너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는 초현실적 말만 되풀이했다. 그 결과, 대학에서는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정규강의가 열리고 ‘취업전문 컨설턴트’는 이런 말을 한다.

2. 감명 깊은 책은 ‘데일 카네기’라든지, ‘피터 드러커’의 저서들이 가장 안전해요. 요즈음은 ‘잭 웰치’의 <위대한 승리>라든가, <끝없는 도전과 용기> 같은 책도 신선해 보이고 좋아요. 그리고 너무 경영서적만 나열하면 ‘교양이 부족하다’고 지적 받을 수 있으니 시중에 나와 있는 ‘무난한’ 인문학 고전을 보험용으로 한 권 정도는 적어두는 것도 고려하세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무난하지만, ‘존 롤스’의 <정의론>은 오해받을 수 있으니 가급적 목록에서 빼세요.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기업을 비판하거나 하는 사회비평서는 절대로 적으면 안 됩니다. 장하준 교수가 워낙 유명해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런 거 적어도 별 문제없겠다 싶겠지만, 면접관하고 괜히 논쟁하기 싫으면 알아서 빼세요. 특히 금융권은 인문학 서적에 대한 감상문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금융권 인사담당관 입장에서 트집 잡기 제일 좋은 사람이 바로 장하준 교수랍니다. 어쨌든 취업이 목표니까 ‘잘’ 적는 것보다, 꼬투리 잡히지 않게 ‘안전하게’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명심하시구요. 시민단체와 관련된 경력 같은 것은 기재하지 않는 것이 상식인건 아시죠? 괜히 이상한 사람 취급 받지 않으려면, 조심하세요.6)

지금의 대학생들이 이런 상황에 노출되었다면, 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탓’해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들은 대학생들의 행보를 ‘안타까워’하고 그런 환경을 ‘자신들이’ 제공한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반성’해야 함이 마땅한 거 아닌가? 대학생들에게 ‘늘’ 젊은 세대가 누렸던 특권을 ‘사용하지 않을수록’ 사회가 원하는 인재가 된다고 강요한 이들은 누구인가? 오히려 그런 특권조차 포기했는데, 이 사회가 얼른 ‘상’이라도 줘야 마땅하지 않은가?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보시니 참 좋으셨을 터인데, 왜 이들을 ‘무기력’하니 뭐니 그러면서 평가하는가? 대학생들이 ‘절망의 환경’에서도 사회 탓을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정상’으로 규정한 사회의 질서를 열심히 따르고 있는 징표 아니겠는가. 자,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가 보자. “대학생들이 도대체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기성세대의 한탄에 힘들어하는 청춘을 나름 위로하려는 진정성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다만, 시대가 어떻게 변했는지, 또 스스로가 그 변화의 분위기에 어떻게 동참했는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니 진정성은 의심받게 되며, 이는 의도치 않게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윗세대의 어설픈 조언은 그들에게 바로 격퇴 당하고 무시된다.”7) 목숨을 걸고 독재에 저항했고, IMF 이후 완벽히 ‘정글’이 되어버린 일터에서 온갖 수모를 참아가며 살아왔던 이들에게 젊은 세대는 “놀면서 취업했으면, 우리보고 열정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조롱한다. 사실관계 확인을 떠나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냉소’에 원인을 제공한 책임으로부터 과연 자유로울까? 그러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이 평범한 명제가 당사자들에게 의심 없

6) 오찬호. 2015. 『진격의 대학교: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대학의 자화상』. 문학동네. 41-42p.7) 김현길. 2015. 1. 31(국민일보). “<창-김현길> 장그래가 된 G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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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받아들여지게 위해서는 먼저 대학생들의 주변상황들을 ‘그렇게 말해도 되는’ 조건으로 만들어놓으면 된다. 이것은 지금의 대학생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확인하고 그 악조건들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정치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을 탓하면 지금과는 다른 행보를 선택할 대학생들이 확률적으로 높아짐이 분명하다. 물론 이것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이 글은 그 이론과의 간격을 소개한다.

‘취업9종 세트’가 필요한 세상, 그 동안 사회는 무엇을 했는가?

90년대 초‧중반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담은 비행기가 한반도 상공에 진입했다. 몇 년간 서서히 착륙시점을 노리더니 IMF 구제금융 시기를 틈타 무사히(?) 착륙에 성공했다. 비행기는 어떤 검문도 없이 가진 것을 그대로 이 땅에 내려놓았다. ‘세계화’, ‘효율성’이란 단어로 포장된 것들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러면서 ‘현재’를 정체된 것으로 규정했고 ‘변화’만이 살 길임을 인정했다. 얼핏 맞는 말이지만 이후의 행보는 굉장히 역설적이었다. 왜냐하면, IMF가 ‘성장 패러다임’만을 고수한 한국사회의 명백한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한계에 대한 변화를 오히려 원래의 기조를 더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선택했다. 바보 같은 시대진단에 사람들이 받는 압박은 커져갔다. 하지만 이와 비례하여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는 주술도 슬금슬금 개인의 주변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앙상블의 결과, ‘학벌, 학점, 공인 영어점수’가 취업3종 세트로 묶이면서 세상에 등장했다. ‘스펙’이란 기계적 용어가 인간에게 적용되기 시작한 지점도 이때 즈음이다(2004년 국립국어원 신조어 등록). 그래서 2009년 정도만 하더라도 그 뜻을 친절히 설명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었다.

3. ‘스펙(spec)’은 ‘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원래 의미는 명세서나 설명서다. 컴퓨터나 디지털 기기의 제품사양을 말할 때도 ‘스펙’이라는 단어를 쓴다. 한국에서는 구직자의 학력, 경력, 외국어, 자격증 등을 아우르는 뜻을 가진 신조어의 성격이 강하다. 예건대 ‘이 정도 스펙이면 지원가능한가요?’라는 질문을 구인-구직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구직자가 입사 전까지 확보한 모든 조건을 합해 부르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8)

지금은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개념이지만, 그때는 달랐다. 예전이 경쟁이 없었던 ‘평온의’ 시대였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정글’같은 사회였는데 ‘더’ 경쟁이 심해진 셈이다. 사람들은 이 단어의 등장에 놀라워했다. ‘스펙’은 물적 개념인데 이것이 인적 개념으로 활용되니9)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많은 이들이 ‘요즘 세상 너무 각박해졌다’면서 땅을 쳤다. 그런데, 정말로 ‘땅만’ 쳤다. 사회가 잘못되었으면 ‘그’ 사회에 쓴 소리를 해야 하는데 애꿎게 땅만 치니 당연히 ‘한탄’의 목소리들은 사회적 의제로 진화되지 못했고 ‘체념’의 정서만이 나돌았다. 그사이, ‘취업3종 세트’가 ‘취업9종 세트’로 진화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9종 세트의 종류가 무엇인지 외우는 것도 힘들다. 기존 3종(학벌‧학점‧영어점수)에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인턴, 봉사활동 그리고 마지막은 ‘성형수술’이다. 이것은 대기업 취업‘준비’의 자격요건이지 합격보장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이럼에도, “언제나 취업은 힘들었다”라든가, “젊을 때는 다 그렇게 고생하는 거지”와 같은 비사회적 발언을 일삼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8) 스포츠조선. 2009. 4. 6. “<온라인 Why?> ‘스펙’이 뭔가요?”9) 서울신문. 2010. 4. 6. “<씨줄날줄> 학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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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취업을 위해 필요한 이 조건들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학벌’은 워낙 오래전부터의 요소였으니 굳이 언급하지 말자. 학벌차별도 문제지만 그것만 차별하던 시대는 지금에 보니 유토피아였으니. 먼저, ‘학점’이다. 학점이 필수요소가 되자 이상한 풍경이 대학에서 나타난다. 철학 강의를 ‘감명 깊게’ 들었다고 해도 점수가 C면 그 인간을 C로 평가해버리는 곳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는 구조적으로 봉쇄된다. 그러니 배울게 많은 강의보다 휴강이 잦고 출석체크가 느슨한 강좌가 (과거보다 더) 추천된다. 학생들은 이를 ‘꿀강의’라 하고 ‘어떻게든’ 수강신청을 한다.

4. 수강신청 경쟁이 이처럼 심각하다 보니 부작용으로 급기야 강의를 ‘거래’하는 일까지 횡행한다. 수강신청 정정기간 전에 학교 커뮤니티나 인터넷 커뮤니티, SNS를 통해 인기 강의를 사고파는 학생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인기과목의 경우 15-20만원까지 호가하면서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10)

나는 수강신청 뒷거래를 “이 강의를 듣기위해 5만원이나 지불했는데, 성적이 낮아 아쉽습니다.”라고 성적 이의제기 메일을 보낸 학생을 통해 이 현실을 몸소 체험했다. 거래방식은 간단하다.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 상호 접선이 이루어지며, 접속자가 적은 새벽시간에 거래가 성사된다. 한명이 강의를 취소하는 동시에 다른 한명이 순간적으로 발생한 ‘여유인원 1명’을 차지하는 식이다.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싶겠지만, ‘학점이 낮으면’ 사람 됨됨이가 잘못된 것으로 보는데 지금 옳고 그름을 따질 떼가 아니다. 이처럼 학점이 학점 그 이상의 가치가 되어 버리면 대학생들이 접하게 되는 정보는 획일화된다.공인 영어점수와 어학연수는 현실이 어떠하든 ‘당연하게 요구’될 성질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역량은 ‘경제적 투자’에 철저히 비례하기 때문이다. 어학실력과 부모소득의 관계는 너무나도 밀접하다. 영어는 경제적 투자대비 점수상승효과가 가장 탁월하다. 가구 월 평균소득이 100만원 증가할수록 그 자녀의 토익점수는 21점씩 상승한다. 그래서 부모의 소득이 월 200만 원 미만이면 그 자녀들의 토익평균은 676점이고 700만 원 이상이면 804점이다. 그런데 토익 점수 10점당 대기업 취업 확률은 3%가 높아진다. 어학연수 경험은 대기업 취업 확률을 무려 49%나 높이고 평균 7% 정도의 임금 상승을 보장한다. 다른 조건이 같을 경우, 어학연수 경험은 구직 활동으로부터의 해방 가능성을 12.8% 높인다. “10대 대기업의 합격자 평균 스펙 중 어학연수 횟수가 평균 1회가 되지 않은 곳은” 없다. 대학생의 어학연수 경험비율이 그 부모의 소득상태와 비례하는 건 당연하다. 부모소득 월200만 원 미만일 때는 자녀의 어학연수 비율이 10%에 그쳤지만, 월700만 원 이상일 때는 32%였다.11)

많은 이들이 ‘경제력’과 ‘영어성적’의 상관관계를 ‘그걸 누가 모르냐’는 식으로 반문하겠지만, 알고도 그것이 ‘공식 스펙’의 하나가 되도록 내버려두었으니 더 문제 아니겠는가. 아마, 기업의 입장은 ‘토익 750점 정도는 필요하다’는 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준’이 되면 ‘750점을 넘긴다고’ 상황이 종료되지 않는다. 자연스레 800점에 목표가 맞추어지고, 그 다음은 850점, 900점은 넘겨야지 취업시장에서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 결과, 이제는 ‘영어를 왜 필요로 하느냐’는 식의 푸념도 ‘유난 떤다’는 비난을 받기에 딱 이다. 명심해야 할

10) 한국대학신문. 2014. 8. 25 ~ 8. 29(956호). “수강신청 전쟁, 이젠 뒷거래까지.”11) 중앙일보. 2013. 6. 4. “취업..어학 스펙 부모 소득 순..학점은 무관.”(김혜미 기자); 박천수. 2009.

“대학생의 해외 어학연수가 노동시장 이행에 미치는 연구.” <직업능력개발연구>. vol 12(1). p. 129; 주간경향. 2014. 3. 11(1066호). “너에겐 설렘, 나에겐 설움. 대학생 해외연수 희비쌍곡.”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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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영어는 절대적인 시간 투자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사색이 가능한 잉여시간을 포기해야지만 ‘점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인문교양서 ‘한 페이지’도 읽지 않는(?) 철저한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이들은 영어를 얻는 대신에 무엇인가 잃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아무도 이를 ‘손실’로 이해하지 않는다. 기성세대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자격증, 공모전 입상경력 등도 ‘영어’와 속성이 유사한 것이니 제쳐두고 ‘인턴’, ‘봉사활동’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이 두 가지는 기존의 스펙들이 ‘한계가 있다면서’ 나타났다는 특징이 있다. 이 자체가 난센스다. 군말 없이 하라는 걸 다 한 사람들에게 ‘요즘 얘들은 스펙만 챙긴다고 정작 사회생활 자체를 몰라’라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대학에서 자치활동도 하고 대외적인 활동을 하면서 토익점수, 어학연수, 공모전, 자격증을 어떻게 마련한다 말인가? 하지만 기업이 내뱉는 이 모순의 말을 비난하는 어른들은 없었다. 오히려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을 ‘영어만 할 줄 아는 속 빈 강정’이라면서 조롱했다. 마치, 이 기회에 자신들이 더 우수하다는 것을 애써 증명이라도 해야 한다는 듯이. 그 결과, 노동을 하면서도 ‘임금은 그에 걸맞게 받지 못하는’ 인턴제도가 자연스러워졌다. 성실하게 인턴생활을 하면 채용 시 일정정도의 고려가 된다는 애매모호한 조항은 이들을 철저히 ‘을’의 위치로 살게 했다. ‘봉사활동’ 역시 ‘스펙에만 몰두하면 인간성이 별로다’라는 여론과 함께 취업준비를 위한 필수요소로 진입했다. 재미있는 것은 ‘스펙도 없이 봉사활동’을 하는 건 단 1%도 메리트가 없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것을 다 완수하고 ‘봉사활동’ 경험을 수치화하여 제시해야지만 평가받을 수 있다. 이것이 ‘기본’이 되니 ‘스토리’가 첨가하여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렇게 동네 앞 양로원 봉사보다 ‘캄보디아에서 집짓기’가 성행한다. 결국 ‘인턴과 봉사활동’마저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시간은 많이 투자하지만 급여는 형편없는 인턴, 그리고 ‘보상자체가 없는’ 봉사활동은 전체 대학생들이 똑 같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점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여기까지는 백 번 양보할 수 있다. 취업준비생들이 해당조건들을 ‘갖추었다면’ 기업은 경쟁력을 얻고 그 덕에 사회가 좀 더 안정적 일수 있다고 속는 셈치고 믿어볼 수 있다. 하지만 ‘아홉 번째’는 선을 넘겼다. 성형수술, 어떻게 그것이 취업을 위해서 준비해야하는 것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걸 보면서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시민’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학을 전공해야지만 의심할 수 있는 ‘은폐되어 있는 기득권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만천하에 드러난 걸 보고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별 저항’이 없었으니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만. ‘성형수술’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외모도 경쟁력이다’에 대한 논쟁을 더 이상 하지 말자는 뜻 아니겠는가. ‘첫인상에 호감을 주는’ 인상을 취업준비생은 어떻게든 알아서 준비해 와야 한다. 대학은 적극적으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한다. 언젠가부터 대학에서 ‘효과적인 면접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 강좌가 성행하고 ‘학교연계 라식수술 대 할인!’이라는 병원광고가 나붙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많은 이들이, 특히 기성세대들이 ‘예전보다 힘들어졌네’라는 정도로 이를 이해한다. 세상에, 이런 무책임한 말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취업준비에 ‘성형수술’이 당당하게 들어왔다는 것은, 그래서 이제 성형외과들이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모든 대학생들을 ‘잠재적 환자’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벌이는 이 풍경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취업3종 세트가 등장했을 때, 5종 세트가 등장했을 때, 어떻게든 이를 ‘줄이기 위한’ 묘수를 전전긍긍했어야 한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주변은 어떻게든 ‘일단 자신부터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랍시고 떠드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대중들 스스로 이 ‘잘못된’ 상황을 개선하지 않자 ‘시장’은 더 악랄하게 변했다. 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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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어떤 조건을 걸더라도 누구하나 비판하지 않은 곳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런 속도라면 곧 ‘취업10종 세트’가 등장할 것이다. 요즘, 국가가 공기업에 NCS 채용을 권장한다고 한다. NCS는 National Competency Standard의 약자로서 ‘국가직무능력표준’을 뜻한다.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기술‧소양 등의 내용을 국가가 산업부분별‧수준별로 체계화한 것으로, 산업혁명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지식, 기술, 태도)을 국가적 차원에서 표준화한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스펙으로 과열된’ 취업시장에서 신선한 바람이 될 것이라고 정부는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시중에는 관련 문제집이 돌고 있다. 별도로 구입해서 죽어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살인적인 경쟁률을 보이는 공기업만 대비한다는 것도 우스운 소리다. 결국,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대학생들은 취업10종 세트에도 적응할 것이다. 그렇다고 채용문이 ‘활짝’ 열릴 리 만무하다. 이것이 이들의 ‘객관적 현실’이다. 자,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대학생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스펙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렇게 따르니, ‘스펙과열’이라면서 ‘스토리’를 보겠다고 하는 세상에 이들은 과연 쥐꼬리만큼의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외모를 중시’여기는 것이 객관적인 팩트라면, ‘그것이 현실이 된’ 풍토를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있어야지만 개인은 ‘기성세대’를 신뢰할 수 있다. 최소한 말이라도 ‘외모로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고 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요즘 외모도 중요한데, 살 좀 빼!”라고 말한다면 과연 대학생들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할까? 이들은 사회가 어떤 외부의 압박을 받든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본인들은 열심히 자기계발 했지만, ‘그럴수록’ 정규직이 되기 위해 인턴으로 버티고, 수습사원으로 버티고, 비정규직으로 버텨야 하는 사회에서 당연한 생각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지위가 개인의 정신을 어떻게 좀먹는지를 탁월하게 묘사한 드라마 <미생>이 히트를 치니, 대통령은 “젊음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남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을 한다면 여러분의 미래는 바둑에서 말하는 ‘완생마’가 될 것입니다.”12)라고 말한다. 아니 장그래가 ‘고민과 노력’이 치열하지 않아서 미생이란 말인가? 폭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증가시키는 사회구조가 ‘젊은이’의 생애사적 기질마저 빼앗아갔음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태평성대에나 가능한 ‘젊다면 가능하다’는 식의 피상적 조언을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사회의 수준을 그대로 증명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변화를 위해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길 희망할 수 있을까? 지금 필요한 건, ‘대학생들’에 관한 질타가 아니다. 그들이 처한 그 객관적 상황을 방조한 ‘어른들의 직무유기’에 대한 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전히 ‘사람 탓’을 하는 것에만 관심 있는 사회

하지만 이 사회는 여전히 ‘사람 탓’을 할 생각인가 보다. ‘달관세대’라는 말이 등장했다는 것이 이를 상징한다. 과연 이 개념으로 지금의 대학생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설명이 어렵다면’ 왜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하는 것일까? 달관(達觀)이란 말은 일본의 '사토리(さとり)'세대에서 착안된 것이다. 사토리는 ‘득도’(得道)를 의미한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더 이상 ‘우직하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회에 희망을 걸어보지 않는 현상을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개념화했다. ‘육식남’이 아니라 ‘초식남’이 등장하는 맥락도, 자기충족적인 의

12) 연합뉴스. 2014. 12. 18. “박 대통령 “미생, 젊음의 가능성으로 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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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를 지니는 ‘안분지족’(安分知足), ‘컨서머토리(consummatory) 족’ 등도 이 현상과 그 맥을 함께한다. 나는 일본의 ‘사토리세대’에 관한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해제를 썼다. 원고청탁을 받고 과연 이 논의가 한국에서 의미 있게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한국에서 오해받기 딱 쉬운 책이다. 제목만 보면 ‘힘들어도 행복을 추구하는 젊은이가 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는가? 이것은 ‘고난을 긍정적으로 이겨 내는 스토리’를 과하게 좋아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과 무척이나 어울린다. 그래서 이 책은 사회에 대한 절망감에 행복해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불평 좀 하지 마라’라면서 권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13)

아니나 다를까, 책이 출간된 후 ‘달관세대’가 등장했고 나는 모 기자로부터 ‘이를 예상했는지’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달관세대? 이 무슨 가당치도 않은 소리란 말인가? 특정집단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통계적으로 다음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절대적인 수치 자체가 높아야 한다. 이는 그 자체가 ‘전형성’을 지니니까 별다른 논의가 필요 없다. 아울러 ‘달관세대’가 이를 충족시킬 리도 없다. (이것은 일본의 ‘사토리세대’도 마찬가지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취업난과 그 이후 생존경쟁에서 ‘득도’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둘째, 수치가 ‘낮더라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살률’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인구 10만 명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자살률의 수치가 ‘30’이라고 하면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1위다. 그런데 이 수치는 100명을 기준으로 하면 0.03명에 불과한 ‘매우 작은’ 수치다. 99.97%라는 절대 다수가 자살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 당연하기에 그 ‘역’선택은 쉽지 않은 결정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낮은 수치’라도 ‘대단한’ 수치가 될 수 있다. ‘달관세대’도 우선적으론 이 조건을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가 절망적이면 개인도 절망적이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오히려 행복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놀라운 ‘역’반응인가? 그러니 그들의 특징을 가지고 ‘청춘세대’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인가 ‘다른 지형이 등장하고 있음’ 정도로는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세 번째다. 만약 통계적 수치가 시간의 변화에 상관없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에 굳이 사회적 해석을 첨가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자살률의 수치가 늘 일정하다면 ‘자살하기 쉬운 심리적 성향을 지닌 채 태어나는 사람’ 정도로 이해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특정한 시기를 거치면서 자살률이 급증한다거나, 아니면 유독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그 수치가 더 높다면 여기에는 어떤 ‘사회적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두 번째 조건을 충족시킨 ‘달관세대’가 세 번째를 완성하려면 ‘과거에는 없었던’ 일부라는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과연 그런가? 조선일보가 제시한 ‘달관세대’는 어떠했을까? "양극화, 취업 전쟁, 주택난 등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절망적 미래에 대한 헛된 욕망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사는 게 낫다"14)고 하면서 다음처럼 살고 있는 몇 명의 사례들이 제시된다.

5. '달관(達觀)세대'는 노는 법이 다르다. 비정규직인 이들은 명품 옷, 좋은 레스토랑, 개봉 영

13) 후루이치 노리토시. 2014.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이언숙 역. 민음사. 8p.14) 조선일보. 2015. 2. 23. “['달관 세대'가 사는 법] 덜 벌어도 덜 일하니까 행복하다는 그들… 불황이

낳은 '達觀(달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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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 같은 '고비용' 소비엔 관심이 없다. 중저가 옷을 입고 햄버거와 떡볶이를 먹으며,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덕에 돈 없어도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말한다.15)

이 이야기가 유의미성을 확보하려면 예전에는 없었던 존재였고 시대의 특징과 함께 ‘등장한 사례’임을 입증해야 한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소개되는 사토리세대는 돈이 없어서, 사는데 ‘지장이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채찍질만을 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한다. 상황이 절망이면 ‘절망’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일 터인데, 이를 ‘사회가 잘못되었는데, 왜 내가 아파해야해?’라고 해석할 수 있으니 ‘득도’의 개념에 참으로 어울려 보인다. 그러니 과거에는 없었던 ‘신선한’ 것이다. 또한 더 이상 개인이 ‘사회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측면이 사회가 ‘더’ 포악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기에 이 반응은 명백히 ‘사회적’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돈에 별 욕심이 없는 측면’을 강조하고자 ‘돈이 없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들만을 소개한다.

6. 연세대를 졸업한 조모(26)씨는 지난해 대형 가구 회사에 입사해 연봉 3200만원을 받았지만 입사 5개월 만에 퇴사했다. (…) 회사를 나온 조씨는 학원 계약직 영어 강사로 취업했다. 연봉은 700만원쯤 줄었지만 업무 시간은 4분의 1로 감소했다. 그는 최근 강사직도 그만뒀다. 조씨는 "그간 모은 900만원으로 올해는 일하지 않고 지낼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불안한 마음이 없진 않지만 생활비로 월 60만원만 쓰기 때문에 1년은 별걱정 없다.” (…) 서울대 4학년인 오모(26)씨는 지난해 봄 한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대기업 입사의 꿈을 접었다. (…) 그는 지난해 말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논술 첨삭을 하며 52만원을 벌었다. 오씨는 "정규직 취업은 힘든 시대지만 아르바이트 자리는 많다. 업무 강도가 낮은 계약직으로 일하면 월 100만~200만원은 벌 수 있다"고 했다. (…) 경희대를 졸업한 박샘(25)씨는 경기도 일산에서 디자인 관련 재택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 80만원을 번다. 박씨는 "일하고 싶을 때 일하면서 꼭 필요한 만큼만 벌어 취미생활 하며 산다.16)

양극화, 취업난, 주택문제가 ‘시대적 징표’라면 이런 고충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로부터 발현된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언급된 케이스는 오히려 이 지점에서 ‘달관’된 상태다. 그 어렵다는 대기업에 합격을 하고 또 ‘마음에 안 든다고’ 그만두고, 또 ‘다른 직장’을 자연스럽게 구한다. 그리고 다들 하나같이 ‘많이 벌지 못해도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경제적 가치관을 고수한다. ‘달관’이라기보다는 자기계발서 등에서 강조하는 ‘불평불만 없는 착한 어린이’상(像)에 아주 잘 동화되어 있는 경우라 함이 적당해 보인다. 조선일보가 사회적 의미에서 ‘달관세대’를 찾고자 했다면 취업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생활비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면서도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역설의’ 사람들을 소개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단순히 ‘버는 돈은 적지만 불만은 없다’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늘 있어왔던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일부’(쉽게 말해, 경제적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즉, ‘달관세대’는 어느 시대나 일정비율 정도를 지니는 소수의 누군가를

15) 조선일보. 2015. 2. 24. ['달관 세대'가 사는 법] "月100만원 벌어도 괜찮아".. 덜 쓰고 잘 논다16) 조선일보. 2015. 2. 23. “['달관 세대'가 사는 법] 덜 벌어도 덜 일하니까 행복하다는 그들… 불황이

낳은 '達觀(달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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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특징’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이처럼, ‘사회적 맥락’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 ‘사회성’을 입혀버리는 것은 정말로 ‘시대의 무게’ 때문에 고통 받으면서 ‘달관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을 조롱하는 셈이다. 기사는 생각을 전환(?)하면, 아무리 ‘비정규직’이라 할지라도 이 풍요로운 시대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욕망을 버리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다. 비분강개할 일이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원하는 그 ‘기초적인 것’을 어찌 ‘욕망’이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말인가? 조선일보의 목적은 명백하다. 달관세대의 사례는 ‘만족하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너는 맨날 사회 탓만 하느냐!’는 논리로 빠질 개연성을 충분히 제공한다. 그럴수록, 초인간적인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수많은 청춘들의 ‘엄청난’ 고충은 사회적인 의제로 진화하지 못한다. 준비하든지, 아니면 달관하든지 두 가지 선택지만이 남게 된다. 그렇게 사회의 부조리는 아무도 건들지 않는다. 과연 조선일보의 프레임이 일반적인 기성세대의 정서와 그렇게 달랐다고 할 수 있을까?

차별에 찬성하라는 사회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한국사회가 구조적으로 ‘달관세대’가 등장할 수가 없다는 사실도 눈여겨 보아야한다. 일본은 ‘프리터족’이 가능했을 정도로 나름의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있다. 취업 어렵다고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사회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려고 해도 최저임금 자체가 워낙 낮고, 또한 그것조차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곳에서의 ‘달관’은 곧 막장 구렁텅이로 떨어짐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 이 사회가 달관을 선택한 이들에게 나름의 사회안전망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대학생들은 ‘달관’할 이유가 없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의 ‘사토리세대’들은 그래도 자신을 철저히 사회적 피해자로 보고 있었기에 ‘득도’가 가능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작금의 상황이 명백히 ‘사회의 잘못’이라는 것 정도는 이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공정한 것이고 어떤 경우라도 ‘사람의 존엄성’은 지켜줘야 함이 마땅하다고 배웠는데, 실제 사회가 너무나 ‘약육강식’이니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어라? 이런 사회에 내가 혼을 바쳐서 일을 해야 해? 누구 좋으라고?’와 같은 사회에 대한 불신이 바로 ‘사토리세대’의 출발점이다. 이것이 일본의 사회철학임을 입증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해서 일본대학생 모두가 토익을 공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영어실력이 나빠서’ 기업이 취업문을 좁힌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대학생들, 그리고 기성세대들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취업난이 과거에 비해 심각해졌지만 ‘그 정도’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이것은 일본 대학생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최소한 한국의 대학생들보다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에서 개인은 ‘사회가 어떠하든’ 스스로가 노력해야 하는 존재로 설명될 뿐이다. IMF이후, 한국에서 ‘경쟁’은 신성한 단어가 되었고 그것이 야기하는 ‘차별’은 합당해졌다. 문제는 예전부터 ‘경쟁과 차별’은 만연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더 ‘엄청나’졌으니 얼마나 끔찍한가. ‘원래 사회는 그런 것이다’라고 교육을 시키는 곳에서 ‘알고 보니 사회가 모순투성이더라’고 한탄할 이유가 없다. 사회를 의심하지 못하는 곳에서 어찌 ‘사회에 대한 반감’이 구조적으로 등장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자신이 들어왔던 ‘익숙한’ 그런 사회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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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젊은이들은 돈을 내면서 ‘압박면접을 이겨내는 법’을 배운다. 취업 컨설던트들은 “압박면접은 구직자가 어떤 불가능도 극복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면서 머릿속에 각인해놓아야 하는 말을 외치게 한다. “나는 지금부터!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다!” 그래도 입 밖으로 쉽게는 말하지 않았던 ‘각자도생’이 이제는 공식 슬로건이 된 세상이다. 취업을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무수히 들어온 양보의 미덕을 포기하길 강요받는다. 양보의 포기는 타인에 대한 공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17)

경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는 그 경쟁에서 ‘개인이’ 이기는 방법을 말하기에 바쁘다. 재미난 건 그럴수록 경쟁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치열함’만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마저 ‘사회를 개선시켜’ 개인을 힘들지 않게 하는 그 간단한 이치에 대한 관심을 접어 버렸다. 인문·사회계열을 경영학 위주로 탈바꿈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서비스를 바탕으로 수치로 대학 내 경영학의 무게를 느껴보자. 2014년 기준으로 전국에 일반 4년제 대학(교육대, 산업대 제외)은 189개다. 이들 학교 안에 경영학계열의 학과가 무려 686개다. 학교당 3-4개의 경영학 관련 전공이 개설되어 있다는 거다. 이름도 다양하다. 글로벌경영학과, 디지털기술경영학과, 지식경영학과, 벤처학과, 기업경영학과, 경영정보학과, 경영과학과, 파이낸스보험경영학과, e-비즈니스학과, 금융공학과, 미디어경영학과, 공공서비스경영 등 화려한 팔색조를 방불케 한다. 그리고 여기에 ‘호텔경영’, ‘스포츠경영’, ‘문화예술경영’등 경영의 향기를 듬뿍 머금은 전공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걸 감안하면, ‘686’은 엄청난 숫자다. 686개라는 수치는 1999년 424개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측면에서 더 눈여겨 볼만 하다(620개/2005년 → 664개/2010년). 참고로 2014년 기준으로 국문과(165개), 철학‧윤리학(71개), 사회학(45개), 정치외교(82개), 심리학(60개) 계열을 다 합치면 423개다. 사회학과와 비교를 해 보면, 1999년에는 경영학계열 학과수가 사회학과(49개)보다 8.7배 많았는데, 2014년에는 15.2배 많다. 인원으로 느껴보자. 1999년에는 일반 4년제 대학생 158만 7667명 중 경영학 전공자의 비율은 7.1%(11만 2310명)다. 2014년에는 전체 213만 46명 중 9.6%(20만 4183명)다. 경영학이 121개 계열 중의 하나란 점을 볼 때, 퍼센티지의 무게감이 상당하다. 인문·사회 계열내로 좁혀보면 그 무게는 21%에 이르게 된다. 그 사이 사회학 전공자는 (전체대비) 0.7%에서 0.4%로 줄었다. 2015년에 실시되는 대학구조개혁의 평가지표 중 하나인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에는 ‘정원 및 계열 조정’을 측정한다. 이에 따라, 학생 수는 줄이고 취업에 관련된 계열은 늘려야 되니, 이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이처럼 경영학이라는 공기의 밀도는 과거보다 더 높아져서 대학을 지배한다. 한 대학의 사회과학학부생들 170명에게 전공을 선택하라고 하니 150명이 경영학과를 쓰더라고 했지 않은가.18) 또 경영학 공기가 경영학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금융‧회계‧세무, 무역‧유통계열도 경영학과가 ‘늘어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최근 그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경제학 계열도 전통적인 ‘학구적’ 느낌은 실종했고 스스로가 ‘경영‧경제’라고 불리길 희망한다. 거의 모든 대학이 시장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론들로 경제학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있고 이는 자연스레 경영학적 관점을 지원해주는 셈이다. 즉, 지금의 대학생들에는 ‘객관적으로’ 엉망인 이 상황을 ‘엉망’이라고 이해시켜줄 ‘주변’이 없다. 이들이 마주한 주변은 “기업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면..”이라는 문장을 남발한다. 그러면서 ‘비용절감 이윤증가’라는 마법의 단어 속에서 세상만사를 다 이해하길 강조한다. 이와 비례하여 현실에 대한 비판적 촉수가 사회적으로 완전히 거세되어 버린

17) 오찬호. 2014. 7. 15(한겨레 21). “‘학내카스트’, 당신 대학은 예외인가?” 18) 동아일보. 2014. 2. 27. “경영학과 인기의 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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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비판이 낯설어진 사회에는 어른말씀 틀린 거 하나도 없지?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이유를 이제 알겠지?”라는 종교적 주술이 더 활개를 친다. 자, 다시 묻는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과연 모순적 존재인가? 아니면 ‘사회 환경에 따른 타당한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이 ‘사회적 저항’을 하지 않는 건 ‘정상적’인 것이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라고 하는 사회에서 살았고 배운 것을 적극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이 공간을 경험하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니 비난은 ‘대학생들’이 아니라, 그 대학생들이 살고 있는 비상식적인 공간을 ‘창출’한 이들에게 향해야 함이 지극히 도덕적이자, 아울러 실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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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2강연 2[ [ 여성혐여성혐오오 ]] 우리우리 시대의시대의 여성혐오여성혐오: : 된장녀부터된장녀부터 무뇌아적무뇌아적 페미니스트까지페미니스트까지

된장녀, 김치녀 등으로 대표되는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는 ‘일베’와 같은 극단적 사례뿐 아니라,

최근 각종 TV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연예인의 발언, 인터넷에서 퍼지는 만화, SNS 게시글, 기사마다

달리는 댓글까지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도

뜨겁습니다. 페미니스트가 싫어 IS에 가담했다는 김군이나 무뇌아적 페미니스트가 더 무섭다는 칼

럼이 등장하는가 하면, 연이어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를 선언하는 사람들과 여성혐오를 풍자하는

소위 ‘메갤’의 등장까지. 지금 한국사회에서 고조되고 있는 여성혐오의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각

종 오해와 비난을 받고 있는 ‘페미니즘’은 도대체 무엇인지 들어보고 이야기 나눠봅니다.

우리우리 시대의시대의 여성혐오여성혐오

: : 된장녀부터된장녀부터 무뇌아적무뇌아적 페미니스트까지페미니스트까지

손희정소속 : 여성문화이론 연구소저서 :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2005),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2010) 역서 : 여성괴물-억압과 위반 사이(2008),

호러영화-매혹과 저항의 역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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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인권어울터 <사람, 이곳에 있다>

여성혐오: 된장녀에서 무뇌아적 페미니스트까지

손희정

얼마전 <녹지>에 송고할 여성혐오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가 못 볼 꼴을 보게 되었다. ‘남남북녀 결혼 주선’을 전문으로 하는 한 결혼정보회사의 프로모션 웹툰을 본 것이다. “북한여성의 장점”이라는 제목의 이 웹툰은 “성형을 안 해도 예쁘다, 나이 차에 신경쓰지 않는다, 가난한 국가(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검소하다, 군대에 나녀왔으므로 개념이 탑재되어 있다, 남한 여성들처럼 결혼 조건을 재지 않는다, 동방예의지국의 효를 배웠기 때문에 시부모에게 잘한다, 여타 국제 결혼과 달리 혼혈이 아닌 순혈 자손을 얻을 수 있다” 등을 북한 여성의 장점으로 꼽고 있다. 물론 ‘그녀’는 순진무구하지만 남편 앞에서만은 색녀로 변신한다는 고리타분한 성적 판타지 역시 (아니나 다를까) 등장한다. 이 웹툰은 그야말로 21세기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를 형성하는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열 장의 jpg 파일에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으며, 일종의 ‘민족지적인 사료’로 취급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오늘의 ‘여성혐오 이야기’는 우연히 마주친, 그러나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이런 웹툰을 중심으로 풀어내도 괜찮을 것 같다.

우선 아주 간단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그토록 여자를 사랑해서 여자와 한 이불을 덮고 살고싶어하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가 어떻게 여성혐오적일 수 있을까? 혹은 그런 광고에 현혹되는 남자들을 어떻게 여성혐오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혐오의 사전적 의미란 ‘미워하고 싫어함’ 아닌가.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이 문제에 대해서 여성혐오는 의외로 ‘여자를 좋아하는 호색한’들에게서 오히려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반응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성의 기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 온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 및 강박적 이상과 판타지일 뿐, 물질성을 띈 개개인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현실에서의 여성이 그 틀에 부합하지 않다면 그 여성은 당연히 미워하고 싫어하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건 비단 ‘호색한’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남성 간에 교환 가능한 소유물로 생각해 온 가부장제 사회에 만연한 태도이기도 하다.

이제 웹툰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이 광고가 제안하는 북한 여성의 장점, 즉 최고의 배우자를 구성하는 요건들은 가부장제가 구성해 온 이상적인 여성성의 조건이며 ‘서양물 든 김치녀’라는 미묘한 조합의 남한 여성들이 더 이상 체현하고 있지 않은 미덕이다. 따라서 남한 여성은 혐오의 대상이 되지만, 북한 여성은 경외의 대상이 된다. 이는 물론 일부 남성들의 ‘여성혐오 판타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처럼 여성혐오는 가부장제의 성별이원제 젠더 질서에 복무해 온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치즈코는 이와 같은 여성혐오는 ‘여성멸시’와도 같은 말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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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성멸시’는 당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여성혐오를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이 웹툰에서 “예비 신부님은 저의 재산이나 직업, 집평수 같은 것은 안 궁금하신가요?”라고 질문하는 풀죽은 남자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당대의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멸시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삶의 조건 자체에 대한 불안 및 공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불안과 공포는 자본주의 체제와 그것이 보장하는 평등한 기회, 평등한 풍요에 대한 믿음을 위협한다. 자본주의와 그 정치적 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남성들 간의 평등한 관계를 약속하면서 세계사에 등장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자본주의는 남성들 간의 평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에 대한 환상을 근간으로 할 뿐이다. 이 동등한 관계에 대한 환상은 재산의 규모와 사회적 지위 및 그런 자산이 부여하는 권능을 증명하는 여성에 의해 깨진다. 과거에는 ‘용감한 자가 미녀를 차지’했다면, 이제는 ‘돈=힘 있는 자가 미녀를 차지’하는 시대인 것이다. (혹은 ‘미녀’가 돈=힘 있는 자를 차지한다.) 무소불위의 이데올로기이자 정치경제체로 군림하는 자본주의의 거짓 약속과 그 제도적 오류를 직시하는 것보다는, 그 오류를 끊임없이 드러내는 여성을 혐오하는 편이, 성별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더 쉬운 일이다. 이때 여성이 ‘액받이’가 되는 이유는 물론 자본주의가 성별중립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부장제와 결합함으로써 ‘근대적 가부장체제’로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이 불안과 공포는 경쟁자로서 등장한 여성에 대한 불안과 공포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는 기존의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이론이 밝혀왔던 것처럼 남성에게는 없는 여성의 재생산력으로부터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점차로 ‘가정주부화housewifisation’ 된 남성들의 생산력 상실과 연결되어 있다. 마리아 미즈와 베로니카 벤홀트-톰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을 가치절하하는 논리가 ‘그들은 주부이기 때문’이라고 말해지는 것에 착안하여, 노동력을 유의미한 생산성에서 탈락시켜 착취하는 과정을 ‘가정주부화’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이런 노동의 가정주부화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성별을 가리지 않고 확대·가속화된다. 가정주부화된 남성 노동력은 비정규직이나 유휴 노동력으로 유연화된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유휴 노동력’은 잠재적인 생산력이 아니라 그저 잉여로 처리된다.) 가정주부화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통치성이 ‘유연성’과 만난다는 점에서 “자본이 지구화된 경제에서 비교 우의를 실현하는 최적의 전략”(미즈·벤홀트-톰젠, 2013, 83쪽)이 된다. 그리고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자신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동등한 시민으로서 시민권을 획득하고 국민의 한 명으로 인정 받았던 남성들은, 자본주의 역사 이래로 처음으로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엄기호, 2011).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이 웹툰이 “북한 여성은 군대에 갔다 와서 개념이 있다”고 말하면서 ‘군대’와 ‘개념’을 연결시키는 것은, 한편으로는 군대 복무에 대한 보상심리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를 통해 국민이자 유일한 정치적 주체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인받고자 하는 심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역차별이라는 환상과 그 안에서 배태되는 상실감과 분노 역시 그 근간에는 여성혐오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주부화’라는 개념에 이미 내포되어 있듯이, 이처럼 불안정한 경제적, 정치적 지위는 여성들이 영원처럼 경험해 왔고, 스스로 그 돌파구를 찾아가고 있는 일상적인 삶의 조건이다.

이런 불안의 판타지 안에서 여성은 꽃뱀 혹은 먹튀녀가 되거나 남성을 짓밟고 올라서서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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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밥그릇을 강탈해갈 수 있는 권능을 지닌 경쟁자로 등극한다. 90년대의 여성혐오 담론이 ‘아줌마’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반면 2000년대에는 ‘된장녀’를 지나 ‘김여사’로 이동하는 것 역시 이런 문제 의식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아줌마’에 대한 혐오는 공적 영역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를 바탕으로 했다. 그러나 9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그래, 나 아줌마다”라는 선언의 형태로 아줌마를 구해내고 동시에 IMF 이후 한국의 경제적 몰락 이후 국가가 ‘아줌마의 생활력’을 재전유하면서 아줌마에 대한 멸시/혐오는 담론의 장에서 사그라든다. (물론 현실의 장에서도 사그라든 것은 아닐터다.) 그러면서 2000년대에 들어서 ‘소비력’으로 대변되는 경제적 능력을 갖춘 여성들이 혐오의 대상으로 등극하는 것이다. ‘된장녀’는 한 손에는 비싼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고급 가방을 든 도시 여성이었고 ‘김여사’는 명백히 ‘오너 드라이버’였던 것이다. 이는 여성혐오의 성격이 멸시에서 위압감 혹은 박탈감으로 전환되었음을 암시한다.

당대 여성혐오의 마지막 원인은 사적 영역에서 남자들이 경험하는 피곤함이다. 그것은, 이 웹툰의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순진무구하며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내면화하고 있는 외국 여성’과의 국제결혼이라는 남성 판타지로부터 읽어낼 수 있다. 한 프랑스 저널리스트는 남성성에 대해 분석하면서 '마초성'과 '죄의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남성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한다(아르케만, 2011). 그가 말하는 '마초성'이란 68혁명 이전의 가부장제를 그리워하면서 현대를 개탄하는 남성우월주의이고, '죄의식'이란 68혁명 이후 '모든 잘못이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성들의 난감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죄의식은 모든 것을 남성의 탓으로 돌리고 남성을 비난하며 여성을 희생양의 자리에 올려놓는 '과격한 페미니스트'가 조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둘 다 벗어난 남성을 '화해한 남성'이라고 말하는데, 재미있게도 그가 예로 들고 있는 '화해한 남성'은 러시아 여성과 국제결혼을 한 프랑스 남성들이다. 서유럽 여성들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들은 파트너와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는 남한 여성들로부터 느끼는 피곤함은, 이 남성 저널리스트가 느끼는 피곤함과 다르지 않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해 보이는 이 이야기에는, 그러나 분명한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백래쉬backlash’다. 즉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반발 혹은 반격에 불과한 주장인 것이다.

한 편의 웹툰을 통해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우리 시대의 여성혐오는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진 가부장제의 젠더질서가 자본주의라는 근대 정치경제체와 접목되면서 전지구적 가부장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등장하게 된 현상이다. 거기에 그 성과를 보기 시작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반발이 중첩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여성혐오는 탈역사적이고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역사적이고 특수한 맥락을 가진다. 물론 이 글에서 편의 상 네 가지로 정리한 요인들은 서로 쉽게 분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긴밀하게 얽혀있고 연관되어 있다. 혹은 오히려 한 가지 원인의 네 가지 차원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혐오란 단순한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여성의 이미지로 매개되는 사회적 권력 관계다. 특히 이 사회적 권력 관계는 여-남의 양성 간의 권력 관계일 뿐 아니라 여성을 교환가치로 환산하는 남-남 간의 권력 관계이기도 하며, 이를 ‘자기혐오’로서 경험하는 여-여 관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이성애적 교환경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문화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권력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여성혐오’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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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영역에 존재하는 판타지일 뿐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간단히 폐기되지 않는다. 그 물적 토대 및 인식론적 토대와 대결하지 않는다면 여성혐오는 어쩌면 영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대결할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 같다.

참고문헌마리아 미즈·베로니카 벤홀트-톰젠, 꿈지모 역,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동연, 2013.엄기호,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남성성의 가능성/불가능성」, 권김현영 외,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 모음, 2011.우에노 치즈코, 나일등 역,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은행나무, 2012.폴 아케르만, 이정순 역, 『Mr. 남성의 재탄생』, 사람의무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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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5회 두런두런 인권어울터 <사람, 이곳에 있다> 프로그램2 :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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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이론 살펴보기: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중심으로

“misogyny. ‘여성혐오’라 번역되기도 하고 ‘여성혐오증’, ‘여성혐오감’이라 번역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여성 혐오적인 남자 가운데는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여자를 싫어하는 게 ‘여성혐오’인데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많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 바로 ‘여성 멸시’다. 여성을 성적 도구로 밖에 보지 않기 때문에 어떤 여자든 상관하지 않고 알몸이나 미니스커트 같은 ‘여성을 나타내는 기호’만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 여성 혐오는 성별이원제 젠더 질서의 깊고 깊은 곳에 존재하는 핵이다. 성별이원제의 젠더 질서 속에서 성장하는 이들 가운데 여성 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 여성혐오는 남녀에게 있어 비대칭적으로 작용한다. 남성에게는 ‘여성멸시’ 여성에게는 ‘자기혐오’이기 때문이다. 더 노골적인 표현으로 바꿔보자. ‘여자로 태어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남자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반대로 ‘여자로 태어나 손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여자는 얼마나 있을까.” (우에노 치즈코, 2010)

1. 여성혐오의 이론적 장치

“남자는 남자들의 집단에 동일화하는 것을 통해 ‘남성이 된다’. 남자를 ‘남성’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남자들이며 남자가 ‘남성’이 되었음을 승인하는 것도 다른 남자들이다. 여자는 기껏해야 ‘남성’이 되기 위한 수단, 혹은 ‘남성됨’의 증명으로 부여되거나 쫓아오는 보수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남성으로 인정받기 위하여는 남자들의 집단에서 자신의 ‘남성됨’을 인정받아야 한다. 남성들은 이를 위해 자신의 용감함과 리더십을 드러내고자 애쓰며, 일부러 자신의 성욕을 과장하거나, 자신의 성적 경험을 과시한다. 특히 성욕과 성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남성들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는 기제로 이용된다. 이 때, 여성들은, 남성들의 사회적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남성이 진정한 남성으로 인정받았을 때, ‘당연히’ 따라오게 될 ‘전리품’ 정도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남성에게 이성애 질서란 무엇인가? 그것은 남성이 성적주체임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성애 장치 아래에서 남자와 여자는 대등한 짝이 될 수 없다. 남성은 성적 욕망의 주체, 여성은 성적 욕망의 객체 위치를 차지하며 이 관계는 남녀 사이에 비대칭적이다.

이성애 질서란, 남성은 동성 남자를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되며 남성이 아닌 자 (즉 여성)만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하라는 ‘명령’을 가리킨다. 뒤집어 말하면 남성에 의해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 자는 ‘남성 아님 = 여성’이 된다. 그것이 남성일 때 그 자는 여성화 즉 ‘여자 같은 남자’가 된다. 여기서 여성이란 그 정의상 남성의 성적 욕망의 객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즉, 이성애주의는 남성이 자신보다 강한 자(남성)의 성적 객체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성애주의는 여성을 (성적)주체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여성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방식으로 남성간의 유대를 공공화한다. 남성들은 이 같은 유대를 통해 자신들의 남성됨 즉, 성적주체임을 증명하고 남성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결국 “호모소셜(homo-social)한 집단이란 이처럼 성적주체임을 서로 승인한 남자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여성이란, 이 집단으로부터 ‘배제된 자들’, ‘오로지 남자들에게 욕망되고 귀속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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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5회 두런두런 인권어울터 <사람, 이곳에 있다> 프로그램2 :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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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종속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자들’에게 부여된 명칭이다. 따라서 호모소셜한 집단의 멤버가 여성을 열등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이란 ‘남성이 아닌 자’에게 찍힌 낙인과 명칭이며 그들은 남성에게 부여된 모든 미덕과 명예로부터 차별화되어 범주화되어야만 한다. ‘여성’이란 남성과 달리 ‘용감하지 않은 자’ ‘다부지지 못한 자’ ‘지도력과 결단력이 없는 자‘ ’주체가 될 자격이 없는 자‘에 대하여 부여된 명칭이며, 이 모든 ’여성스러운‘ 속성은 남성이 그 지배 대상에 어울리도록 만들어낸 속성이라 해도 무방하다.

때문에 이성애 질서의 핵심에 여성 혐오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여성이 아니다’라는 아이덴티티(정체성)만이 남성다움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을 성적 객체로 삼아 내가 성적 주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을 때 비로소 동성 집단으로부터 남성으로 인정받는다.“

2. 여성멸시와 여성숭배에 담긴 여성혐오

여성멸시와 여성숭배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치즈코는 이를 ‘성의 이중 기준’(sexual double standard)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성의 이중 기준이란 남성 대상의 성도덕과 여성 대상의 성도덕이 서로 다름을 뜻한다. 예를 들어 남성은 호색할수록 높게 평가되나 여성은 성적으로 무구하며 무지할수록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근대의 일부일처제는 형식적으로 ‘상호 정절’을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남성의 위반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남성의 반칙 행위에 짝이 되어줄 여성이 별도로 필요하게 된다. 그 결과 성의 이중 기준은 여성을 두 종류 집단으로 분할하게 된다.”

‘성녀’로서의 여성과 ‘창녀’로서의 여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주체로서의 여성이 아닌, 남성 주체의 도구화된 여성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여성에 대한 ‘성녀-창녀 이분법’은 전자는 남성의 생식의 도구로서, 후자는 남성의 쾌락의 도구로서 존재함을 의미한다.

성녀-창녀 이분법: ‘여성의 성적 욕망을 거세하다.’

■ 성녀 – 정조를 지키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여성 “병사의 아내나 미망인에 대한 정조를 확실히 관리하지 않으면 전선에 있는 병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정조 문제’는 국가가 처리해야 할 중대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출정 병사의 아내와 미망인들의 아내 · 어머니로서의 섹슈얼리티는 오로지 생식 영역으로만 제한되어 쾌락으로부터 소외되었다.“

■ 창녀 – 성기(性器)화 된’ 쾌락의 도구로서의 여성 “조선인 위안부는 병졸용의 성적도구였다. 군대 은어로 ‘조선 피야’ 같은 호칭까지 있었다. ‘피ピー’는 여성기를 가리키는 중국어에서 전용된 말이라고 하는데, 이 호칭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들은 ‘인격체’가 아닌 ‘성기’로 환원된 존재에 불과했다.”

“생식으로부터의 소외도, 생식으로의 소외도 – 뒤집어 말하면 쾌락으로의 소외도, 쾌락으로부터의 소외도(모두 담성의 쾌락이지만) - 여성에게 있어서는 억압이다. 위안부만 억압되었던 것이 아니다. 후방의 아내들도 억압되었다. 즉,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생식 전용과 쾌락 전용으로 분단되어 서로를 대립시키며 소외시켰다. ... (여성들 내부에서는) 성녀는 ‘창녀 취급하지 말라’며 창녀에 대한 멸시를 드러내고 창녀는 ‘양가집 부녀자’와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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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5회 두런두런 인권어울터 <사람, 이곳에 있다> 프로그램2 :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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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직업부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을 통해 ‘아마추어 여성’의 의존성과 무력함을 비웃게 되는 것이다.(p.57)

3. ‘어머니’에 대한 가부장제적 문화적 이상과 민낯

“‘가부장제란 자신의 다리 사이로 낳은 아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멸시하도록 기르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성을 멸시하는 것은 가능해도 어머니를 멸시하는 것은 남성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자기의 ‘근본’을 더럽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가부장제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성과 아이의 소속을 정하는 룰을 가리킨다. 남성에게 소속되는, 즉 남성의 지배와 통제에 따르는 여성과 아이에게는 사회 내에 ‘지정석’이 부여되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이 낳은 아이는 사회에 등록되지 않는다. 등록된 결혼을 통해 태어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사이에는 오늘날에도 민법상의 차별이 존재한다. ...... 즉, 아이가 태어나는 것 자체보다 가부장제를 지키는 것이 아직 더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재생산은 단지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혼인으로 맺어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만이 사회적으로 ‘아버지의 자녀’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혼인 밖의 관계에서 탄생한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숨기고 부끄러워해야할 존재로 낙인찍힌다. 이 때, 여성들은 ‘문란’하고, ‘제대로 된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로서 인식되고,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여성’ 즉 ‘창녀’로 낙인찍힌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어머니에 대한 “모욕표현 - ‘창녀의 아들son of bitch’, ‘사생아bastard’ - 이 남성을 격앙시키는 이유는 성녀와 창녀라는 이중 기준을 만들어낸 가부장제의 성차별 의식을 본인이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 창녀, 미혼모는 표상 속에서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행실이 잡스러운’ 여성으로 그려지며 ‘마녀’나 ‘악녀’에 빗대어진다. ‘마녀’ ‘악녀’란 남성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며 성적으로 활발한, 요즘말로 ‘성의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현이 성에 차지 않는다면 ‘성적 신체를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사용하는 여성’이라 바꿔 말해도 좋다. 즉 ‘남자 허락 없이 감히!’ 행동하는 여성이다.” (우에노 치즈코, 2010)

앞서 제시한 것처럼 ‘어머니’가 ‘마녀’,‘악녀’와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존재한다면, 어머니는 ‘남성(아버지)의 통제에 따르며, 성적으로 통제된, 성적 자기결정권이 박탈된 여성’을 가리킨다. 가부장제 사회의 성적 이중 기준이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둘로 구분함으로써 ‘남성의 어머니’를 이른바 성녀의 반열로 올려두었지만, ‘성녀’라는 위치 짓기조차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성녀-창녀’ 이분법에서도 “물론 그 안에는 억압과 착취의 정도 차가 있으나, 그렇다고 ‘성녀’로 떠받들어지는 것을 고마워할 이유는 없다. ‘성녀’와 ‘창녀’는 여성 억압의 두 가지 형태일 뿐이며 양쪽 모두 허울 좋은 ‘타자화1)’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 타자화란, 한 사회에서 권력을 지닌 주류가 스스로를 사회적 인식의 주체로 여기며 비주류를 대상화된 객체 즉, ‘타자’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이를 테면, 한국 사회에서 ‘성인, 남성, 이성애자, 서울사람, 비장애인, 고학력자, 부유층’은 자신의 존재를 힘들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들의 존재와 시각은 이미 사회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주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소년, 여성, 동성애자, 지방사람, 장애인 저학력자, 저소득층’은 권력관계에서 하위에 놓이는 비주류로서 절대적인 존재인 주류(주체)에 기대서만 성립하는 상대적 존재라고 볼 수 있다. (2015-1, 두런두런 2주차 ‘인권일반’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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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여성혐오 사례: “어째서 여성혐오적 콘텐츠가 소비되는가?”

지난 2월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의 'IS-페미니즘' 칼럼에 이어 4월에는 개그맨 장동민의 '옹꾸라 인터넷 라디오 여혐 발언이 논란이 됐다. 발언 수위는 충격 자체였다. "여자들은 멍청해서 과거의 성경험을 이야기 한다" "개 같은 O" "창녀" 등등... '된장녀'나 '김치녀'같은 혐오 표현이 그나마 앙증맞게 느껴질 정도의 수준이었고,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반발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장동민은 MBC <무한도전>의 유력한 식스맨 후보로 꼽히다가 자진 하차했는데, 그 과정에 대한 '아니꼬운' 남성 일각의 시선은 이렇게 나타나기도 했다. (장동민이 군대 후임이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괴롭혔다는 내용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다.) '옹꾸라'가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기 때문에 방송심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든지, 그래서 더 과격한 표현이 등장한다든지 하는 문제는 일단 접는다고 하더라도, 지상파, 케이블, 종편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여성혐오' 콘텐츠는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해있다. 이에 대해서 문화웹진 아이즈2)가 분석하면서 4월 방송된 콘텐츠 중 여러 사례들을 들고 있다. 아래의 인용은 그 중 하나이다. 

� �돈 없고 인기 없고 가진 것 없는 복학생 병재(유병재)는 남성임에도 상대적 약자인 경우가 있다. 그런

병재에게 몰려와 밥 사달라 조르고, 월세 낼 돈도 없는 그로부터 잔뜩 얻어먹은 뒤 “오빠 같은 남자랑 사

귀고 싶다” 따위의 마음에도 없는 멘트를 늘어놓으며 휑하니 가버리는 후배들은 전형적인 ‘무개념’ 캐릭터

로 소비된다. 병재에게 상냥하게 대했던 연주(정연주) 역시 남자친구와 함께 그를 비웃으며 “병신은 컴퓨

터 버그 잡을 때 말고는 쓸모가 없어”라고 말한다. ‘명품 백 사달라고 들볶는 여자 친구 이야기’와 함께

일종의 도시괴담처럼 떠돌곤 하는 ‘남자를 호구로 알고 등쳐먹는 어린 여자 이야기’는 이처럼 대중매체를

통해 손쉽게 재생산되며 여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혐오를 부추긴다. 결국 초능력을 이용해 과거로 돌

2) http://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504191903724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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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5회 두런두런 인권어울터 <사람, 이곳에 있다> 프로그램2 :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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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간 병재는 같은 상황에서 “다 처먹어, 이 씨 X년들아!”, “(컴퓨터) 껐다 켜, 이 썅X아!”라고 분노를 폭

발시키는데, 애초에 그냥 거절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여성혐오 콘텐츠는 끊임없이, 별다른 통제나 자기성찰 없이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것인가? '돈'이 되고, 팔리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콘텐츠는 남자들이 본다. 케이블 XTM에서 주로 방송하는 내용이랄지, 기계와 모험에 피가 끓는 남성 취향의 콘텐츠들이다. 그리고 여성 중심의 콘텐츠는 여자들이 주로 본다. '겟잇 뷰티'같은 TV쇼가 그런 범주의 대표일 것이다. 그런데 '여성 혐오' 콘텐츠는 남성과 여성이, 각기 다른 목적이지만, 결국은 같은 화면을 본다.

남성의 경우, 남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용도로서 '여혐' 콘텐츠를 소비한다. 우에노 치즈코 선생이 <여성혐오를 혐오하다>에서 지적했듯이, 남성들에게 여성을 배제하는 행위는 남성 집단에 소속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남성들은 어떤 특질들- 예로, 유약함, 부드러움, 감정적, 의존성-을 여성의 것으로 정의내린 뒤 그 특질을 가질 경우 남성이라는 집단적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 구성원으로 딱지 붙인다.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 남성들은 그 같은 특질들을 억압하고 부인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에게는 부정적인 속성들이 투사된다. 현재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이 그런 특징을 보인다.

예로 '군대 예능' 속 여성들은 남성의 고유한 범주와 능력의 기준에 미달 또는 간신히 통과하는 여성이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등장한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공통적인 경험이자 정신적 상흔, 소중한 청춘의 시간을 징집으로 빼앗겼다는 박탈감을 주는 군대의 경험을 여성에게 체험하도록 만든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달해 포기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여성의 스펙터클은 남성성을 '그 무엇'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극심한 사회 환경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제가 심해지는 것처럼, 여성 역시 남성 중심 취업시장에서 배제의 대상이 된다. 1997년 IMF 이후 비정규직만 잔뜩 늘어난 노동시장에서 그나마 일자리 하나 잡기도 어려워 청년 실업률은 10%를 이미 넘어섰다. 부모 세대 같은 연애결혼이나, 일부일처제 핵가족은 아마 앞으로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 같은 가족모델은 경제 고도 성장기에나 가능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으면 데이트도 어렵다. (1960년대 영화에서는 '데이트 비용이 없으면 여자 친구에게 몸이라도 팔라고 해'라는 건달의 대사도 간혹 등장한다.) 그러다보니 남성들은 경제와 사랑에 있어서 모두 여성에게 '배제' 또는 '위협'받고 있다는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아닌가.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객관적 지표로 볼 때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의사결정 분야에서의 남녀 성평등 지수는 21.2이며 여성의 '유리천장 지수'도 100점 만점에 25.6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꼴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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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민은 “(한헤진이) 내가 싫어하는 걸 모두 갖췄다. 나도 혜진 씨가 싫어하는 걸 모두 갖췄다”고 말을

이었다.MC들이 “한혜진의 어떤 점이 싫냐”고 묻자 장동민은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아무튼 모

든 걸 갖췄다”고 답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3)

여성의 경우, 여성으로서 어떤 여성이 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확인'하는 용도로서 '여혐' 콘텐츠를 소비한다.

'오크녀'나 '무개념녀'로 등장하는 여성들은 "나는 그런 여성이 아니다"라고 여성이 혐오하기 위한 존재이다. 남성이 혐오하지 않고 '욕망'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서 몸가짐을 어떻게 바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은근한 '계몽'의 맥락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에노 치즈코 선생이 지적했듯이 여성들은 '나는 그런 여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남성에게 확인받음으로써 '명예남성'의 지위를 획득한다. 그런데 그 명예남성이라는 지위는 내가 '얻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고 기준이 바뀜에 따라 언제든 '박탈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여성혐오'의 범주에 들지 않는 여성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정보수집'과 '자기교육'을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그래서 공교롭게도 '여성 혐오' 콘텐츠는 남녀가 모두 소비하는 양태를 띠게 된다. 여성 중심 콘텐츠는 남성이 안 보고, 남성 중심 콘텐츠는 주로 남성이 보는 데에 비해 '소비자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시장의 특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시장이 넓으면 넓을수록 시청률이 높아지고,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콘텐츠 제작자들의 주의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양적 성공에만 집착하기 시작하면 콘텐츠에서는 철학이 제외되고, 온기가 사라지고, 오로지 '팔리기 위한 존재'로서 도구화되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 시청률은 방송사의 절대지표지만, 절대지표여서는 안 된다.

※ 출처 - http://fleur.khan.kr/74

3)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66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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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5회 두런두런 인권어울터 <사람, 이곳에 있다> 프로그램2 :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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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

[INTRO]

1. 최근 접한 성차별 발언을 나누어봅시다. 그 발언이 왜 차별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야기해봅시다.

2. 광고, 드라마, 영화, 웹툰, 노래 등 미디어나 대중문화의 여성혐오 사례에 집중해서 더 이야기해봅시다. 대중은 왜 여성혐오 코드를 무비판적으로 소비하고 있을까요?

[여성혐오 들여다보기]

3. 남성 호모소셜의 인정과 이성애질서가 여성혐오의 원인이라는 발제문의 관점에 동의하나요? 동의한다면 동의하는 지점에 대해 말해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성혐오의 주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야기해봅시다.

4. 여성 숭배와 여성 혐오가 본질적으로 맞닿아있다는 생각에 동의하는지 이야기해봅시다.

5. 남성의 여성혐오, 여성의 여성혐오 (자기혐오)의 양상이나 원인은 큰 차이가 있나요? 있다면 어떤 차이인지 말해봅시다. 또한 여성혐오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른 혐오와 비교해봅시다.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6. 여성혐오를 넘어,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에 관해 고민해봅시다.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혐오 혹은 비판이 있다면 나누어보고 이에 대해 동의하는지 이야기해봅시다.

[해결방안]

7. 최근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이하 메갤)에서는 ‘미러링(mirroring)’이라는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여성혐오를 가시화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미러링은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나요? 이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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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이주민과인종주의인종주의

강연 3강연 3[ [ 이이주주 ]]

이주민과이주민과 인종주의인종주의

작년 방한했던 무투마 루티에레 유엔 인종

차별 특별보고관은 한국에 심각한 인종차별

사례가 존재하며 정부가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타국

에서 힘들게 일하는 불쌍한 존재로, 한 편으

론 내 일자리를 빼앗은 예비 범죄자로 그려지

는 이주노동자, 한국 사회에 통합되고 순응하

기를 요구 받으면서도 쉽게 타자화되고, 취약

한 상황에 내몰리는 이주여성 등은 바로 여기

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

도 각종 미디어에서 만들어내는 오해와 편견

의 이미지들은 이 사회의 인종주의/민족주의

와 결합하여 이주민들을 더욱 배제하고 공격

합니다. 한국 사회의 이주민과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돌아보고, 이주의 문제가 왜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인지 생각을 나누

면서 ‘다문화감수성’을 키워봅니다.

작년 방한했던 무투마 루티에레 유엔 인종

차별 특별보고관은 한국에 심각한 인종차별

사례가 존재하며 정부가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타국

에서 힘들게 일하는 불쌍한 존재로, 한 편으

론 내 일자리를 빼앗은 예비 범죄자로 그려지

는 이주노동자, 한국 사회에 통합되고 순응하

기를 요구 받으면서도 쉽게 타자화되고, 취약

한 상황에 내몰리는 이주여성 등은 바로 여기

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

도 각종 미디어에서 만들어내는 오해와 편견

의 이미지들은 이 사회의 인종주의/민족주의

와 결합하여 이주민들을 더욱 배제하고 공격

합니다. 한국 사회의 이주민과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돌아보고, 이주의 문제가 왜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인지 생각을 나누

면서 ‘다문화감수성’을 키워봅니다.

정혜실소속 : 아시아이주여성네트워크

‘터(TAW)’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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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4%

, 3.6%

, 2.2%

, 5.2%

, 1.5%, 1.6%, 1.9%, 0.3%

, 30.5%

, 1.6%, 2.7%, 4.7%

, 2.6% , 2.9% , 4.1% , 6.2%, 0.9%

232,625(14.9%)

538,587(34.3%)

204,204(13%

217,002(13.8%)

149,164(9.5%)

90,439(5.8%)

80,57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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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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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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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배에서무슨 일이 있었나

강연 4강연 4 [ [ 세월세월호호 ]]

그그 날날 그그 배에서배에서 무슨무슨 일이일이 있었나있었나

2014년 4월 16일. 그로부터 1년 3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일 뿐이다’는 말에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까지. 세월호라는 아프고 불편한 기억, 지겨운 기억을 잊어야 한다는 목

소리가 가득한 사회입니다.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왜 세월호를 말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직면

하고 되물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아야 합니다. 세월호라는 거대한 참사 앞에 드러난 것은 일상적인

무능과 부조리,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재판의 내용을 중

심으로 사고의 사회적 배경과 의미를 되짚어보고, 우리가 살아갈 국가/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

는지,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봅니다.

오준호소속 :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저서 : 반란의 세계사(2011),

진짜 민주주의(2012), 노동자의 변호사들(2013), 세월호를 기록하다(2015)

2014년 4월 16일. 그로부터 1년 3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일 뿐이다’는 말에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까지. 세월호라는 아프고 불편한 기억, 지겨운 기억을 잊어야 한다는 목

소리가 가득한 사회입니다.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왜 세월호를 말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직면

하고 되물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아야 합니다. 세월호라는 거대한 참사 앞에 드러난 것은 일상적인

무능과 부조리,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재판의 내용을 중

심으로 사고의 사회적 배경과 의미를 되짚어보고, 우리가 살아갈 국가/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

는지,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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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록하다

“이 책을 읽으면 세월호 참사의 안타까운 전후 과정이 손에 잡힌다. 이후 진실 규명은 치밀하게 정리

되고 재구성된 이 기념비적인 기록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박래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150여 일간의 세월호 관련 재판을 기록하여 세월호 사고의 진실을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한 책. 세월

호는 왜 침몰했는가? 선원과 해경은 승객들을 구하는 데 왜 실패했는가? 세월호 사고는 거대한 음모

의 산물인가? 아니면 평범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 만든 어처구니없는 사고인가? 세월호 참사 작가기

록단에 소속된 저자는 이번 사고의 진실을 밝히고 기록하기 위해 세월호 재판에 주목했다. 저자는 상

식 밖의 어떤 거대한 일격이 있었을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과는 달리, 보통 사람들의 비겁하고 이기적

이고 무책임한 행동들이 세월호 참사를 낳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세월호에 관한 모든 사실관

계가 생생하게 정리되어 있다.

세월호의 ‘사실’을 최초로 재구성하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세월호 재판의 법정 기록이며, 법정 기록을 바탕으로 세월호 사고를 재구성

한 결과물이다. 또한 이 책은 무엇보다도 객관적인 사실 관계를 밝히는데 초점을 두고 정리한 책이기

도 하다. 저자는 5개월간에 걸쳐 33차례 이루어진 세월호 공판을 방청하면서, 수만 쪽의 증언과 증거

자료, 피고인, 검사, 변호인 사이의 공방에서 드러난 것을 바탕으로 사고의 원인을 밝혔다.

르포르타주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사고 당시 배 안팎에서 있었던 일을 생생한 다큐멘터리로 재구성

해 독자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서술했다. 선수와 선미, 좌현과 우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승객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고, 조타실과 기관실의 선원들은 어쩌다 가장 먼저 탈출했으며,

대공(對空) 마이크가 장착된 123정의 해경 대원들은 왜 그토록 무능했는지가 이 책에서 낱낱이 드러

난다.

왜 세월호 재판인가

피의자의 위법 여부만을 따지는 형사 재판으로는 재난의 전모와 원인을 밝히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

다. 그럼에도 “왜 세월호 재판인가?” 재판에는 거의 모든 자료들이 모이고, 상반된 입장의 사람들이

사태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진실 규명의 최소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비록 한계가 있

다 해도 재판에 제기된 무수한 증거와 공방, 증언과 그에 대한 질문은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낼 소중한

기회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재판은 사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진실’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진실로 향하는 발판을 제공해 주었다.

생존자, 해경, 어민, 해운사 및 하역업체 관계자, 조선공학 분야를 포함한 다양한 전문가들이 재판에서

한 증언은 세월호 사고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게끔 해 주었다. 증인 각자의 이해관계와 불완전한 기억

탓에 증언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지만, 증언의 빈틈을 다른 증언으로 맞추며 종합하는 과정에서 사고

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 ‘대각도 조타’라는 방아쇠

세월호가 침몰한 직접적인 계기는 ‘대(大)각도 조타’라는 운항 과실이었다. 누가, 왜, 어떻게 실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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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렀는지가 재판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 조타실에 있었던 사람은 단 세

명으로, 당직 항해사 박한결, 조타수 조진구, 목격자인 기관장 박기호이다. 세 사람이 각자 자기에게

불리한 지점에서 거짓과 진실을 섞어 증언하는 가운데 재판부는 조준기(조타수)가 조타기를 잘못 조작

했고, 박한결(항해사)이 조타 순간을 감독하지 않고 시정 조치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

다. 4월 16일 8시48분 병풍도 변침 구간에서 조타수가 항해사의 지시에 따라 우현 변침을 시도하다가

원하는 대로 변침이 이루어지지 않자 당황하여 임의로 조타기를 우현 대각도로 돌리는 잘못을 저질렀

고, 이 바람에 선수가 급속도로 오른쪽으로 돌면서 그 원심력으로 배가 좌현으로 넘어진 것이다. 이

부분이 세월호 침몰의 결정적인 방아쇠 역할을 했다.

사고를 일으킨 연쇄 그물망 : 이윤, 관행, 무책임

하지만 이윤, 관행, 내 탓이 아니라는 무책임한 태도도 이전부터 침몰을 예비하고 있었다. 청해진해

운 관계자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세월호를 위험한 배로 증개축했고 증개축 결과 오히려 화물

최대 적재량이 줄자, 기준을 무시한 채로 화물을 과적했다. 세월호는 내부에 별도로 격벽이 없어 한

번 침수가 되면 침몰 위험이 극도로 높은 로로선인데, 출항 당시 선미 램프(화물 출입구)가 완전 밀폐

가 되지 않아 물에 닿으면 배 안으로 물이 새는 상태였다. 별 문제 있겠냐는 생각으로 제대로 밀폐도

되지 않는 배를 운항해 왔던 것이다.

재판에 제출된 시뮬레이션 보고서에 따르면, 화물을 제대로 고박했다면 세월호는 전복되지 않았다. 청

해진해운은 더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화물을 부실하게 고박하거나 아예 고박을 하지 않았다. 선적과

고박 업무를 맡은 우련통운과 청해진해운은 재판 내내 자신들이 해 온 것은 관행이고, 책임은 상대에

게 있으며, 갑을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해진해운과 우련통운은 더 많은

화물을 실을수록 더 많은 이윤을 내는 공통의 이해관계에 있었다.

거대한 참사를 낳은 일상의 뿌리

사고 직후 사람들은 세월호 사고와 같은 거대한 재앙에는 상식 밖의 어떤 요인이 영향을 미쳤으리

라고 추측했다. 이와 관련하여 각종 음모론과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보통

사람들이 저지른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무능한 행동이 합쳐져 참사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가 오랫동안 이런 행동들을 묵인하고 대세로 보아 넘겼다.

청해진해운, 우련통운, 인천항 운항 관리실 직원, 세월호 선원들까지, 모든 관련자들이 ‘이렇게 하면 배

와 승객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상황을 바로잡지 않았다. 원칙

과 규정을 이해관계에 따라 뒤로 미루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원칙과 규정을 지키려고 용기 있게 싸

우는 사람, 원칙과 규정에 따른 불편을 흔쾌히 감수할 사람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월호 사고

를 낳은 이런 행동들이 일상에서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여전히 유

능한 간부, 처세에 현명한 직원, 실용적인 시민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는 학생들에게 자기

일이 아닌 일에 “가만히 있으라”고 가르쳐 오지 않았던가? 세월호 사고를 낳은 것은 우리가 정상으로

여기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일상의 사회 시스템이었다.

세월호 재판의 한계 :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

저자는 세월호 재판의 한계를 크게 세 가지로 보았다.

첫째, 진실 규명을 형사 재판을 통해 해 내려고 하는 데서 생기는 한계이다. 이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참사일수록 그 한계는 명확해진다. 미국의 9.11테러, 호주 빅토리아 주 산불 사고처럼 사회에 큰 물질

적 정신적 피해를 준 사건이나 사고에 대해, 민관 조사 기구가 충분한 시간과 예산을 보장받아 활동한

사례가 선진국에는 있다. 또한 6개월이라는 형사소송법상의 제약된 시간, 검찰 측의 주장을 검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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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할 연구를 의뢰할 여력이 피고인들에게 없다는 조건, 시민들이 사고의 자료와 증거에 접근할 길이

차단되어 있다는 점 등은 폭넓고 심층적으로 진실을 파악하는데 한계 요인이 되었다.

둘째, 피의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은 이 사고를 둘러싼 정치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에 면죄부

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에 따르면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은 별개

의 것으로, 법적 책임은 결과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행위자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권력자는 상대

적으로 먼 거리에서 합법적이고 지속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세월호 사고처럼 무고한 시민이

다수 희생되는 구조적 부정의에 영향을 미치는데도 법적 책임을 묻기 힘들다. 아이리스 영은 이들에게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권력자들은 권력을 가졌기에 부정의를 바로잡을 충분한 기회와 자원

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이익과 특혜를 누렸다는 것이다. 법적

책임의 범위에 체념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긴 구조적 맥락을 추적해 누가 어떻게

이득을 누리고 지위를 강화했는지, 누가 책임을 방기하고 직무를 태만히 했는지 밝혀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세월호 재판에서 이 사고는 정상 국가에서 잠시 일탈한 사례로 규정된다는 점이다. 이는 참사

이후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통찰을 얻기 힘들게 한다. 어쩌면 이 사고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세월호 사고를 낳은 것은 우리가 ‘정상적인 상태’라고 여긴 바로 그 국가, 그 사

회 시스템이란 사실이다. 탐욕스런 이윤 추구, 관행 추종, 무책임한 태도 등 이번 사고의 배경적 원인

이 된 행동들은 사실 우리 사회가 이런 행동들을 묵인했거나 오히려 부추겼으며, 그 위에서 성장과 발

전을 이룩했다는 데 있다. 지붕이 무너진 것은 마지막에 떨어진 눈송이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일탈을 처벌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게 아니라 이 복잡한 진실을 있

는 그대로 직시하고 우리 모두가 공유한 책임을 진심으로 성찰하는 일이다.

무력감을 느낀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평화학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무력감을 느기게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월

호 참사를 접하는 순간부터 우리가 느낀 것은 뼈저린 무력감이었다.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 수백 명을

태운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을 때, 해경과 해군, 수십 수

백 대인지도 모를 최첨단 배와 비행기가 투입되었다는데도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을 때, 국민이 뽑

은 집권자와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관료들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했을 때, 우리는

무력감을 느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세금 내고, 자기 일만 신경 쓰고, 자기와 가족에만 관심을 두는

시민으로 남는다면, 이런 무력감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리란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더 이상 이런 무력

감을 느끼게 만드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참된 민주주의를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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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보그란데탐보그란데: : 망고냐망고냐황금이냐황금이냐

Director에르네스토 카벨로스, 스테파니 보이드

2007, 86m, 다큐메멘터리

<탐보그란데: 망고냐 황금이냐>는 사막을 가꿔 비옥한 토지로 만들고 그곳에서 평화롭게 망고와 라임을 수확해오던 페루의 농민들이, 그 땅에서‘저주 받을’황금이 발견되면서 겪게 되는 고통과 투쟁의 기록이다. 캐나다 다큐멘터리 감독의 페루 망고 농장 관찰기인 이 작품에서 우리는 페루의 대통령 후지모리가 앞장서 데리고 온 금광 회사가 망고 농장을 모두 없애버리려는 시도를 목도하게 된다.그러나 그 시도는 쉽지 않다. 농부들이 망고를 어찌나 소중하게 다루는지 어느장면에서나 망고 향이 묻어나는 것만 같다. 망고 하나하나를 보며‘이 깔끔하고잘생긴 망고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기에 충분해요’, 혹은‘나는 이 망고로 금도살 수 있다니까요’하고 말하는 정직하고 선한 농부의 얼굴을 보라. 망고 농장의농부들은 38도를 오르내리는 사막에서 망고 나무에게 양동이로 물을 퍼다 주며어렵게 농장을 지켜냈다. 돌이나 유리병 같은 무기가 아닌 망고와 오렌지를 들고나선 것 또한 독특하다. 과일과 함께 하는 평화 시위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위 방식을 가르쳐 준다. 페루 시민들이 민주주의 선거를 하기에 미성숙하다며 분명하게 드러난 시민들의 의지를 무시하려는 정부를 보면, 우리는 왜 환경과 정치가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게 된다.

<탐보그란데: 망고냐 황금이냐>는 사막을 가꿔 비옥한 토지로 만들고 그곳에서 평화롭게 망고와 라임을 수확해오던 페루의 농민들이, 그 땅에서‘저주 받을’황금이 발견되면서 겪게 되는 고통과 투쟁의 기록이다. 캐나다 다큐멘터리 감독의 페루 망고 농장 관찰기인 이 작품에서 우리는 페루의 대통령 후지모리가 앞장서 데리고 온 금광 회사가 망고 농장을 모두 없애버리려는 시도를 목도하게 된다.그러나 그 시도는 쉽지 않다. 농부들이 망고를 어찌나 소중하게 다루는지 어느장면에서나 망고 향이 묻어나는 것만 같다. 망고 하나하나를 보며‘이 깔끔하고잘생긴 망고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기에 충분해요’, 혹은‘나는 이 망고로 금도살 수 있다니까요’하고 말하는 정직하고 선한 농부의 얼굴을 보라. 망고 농장의농부들은 38도를 오르내리는 사막에서 망고 나무에게 양동이로 물을 퍼다 주며어렵게 농장을 지켜냈다. 돌이나 유리병 같은 무기가 아닌 망고와 오렌지를 들고나선 것 또한 독특하다. 과일과 함께 하는 평화 시위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위 방식을 가르쳐 준다. 페루 시민들이 민주주의 선거를 하기에 미성숙하다며 분명하게 드러난 시민들의 의지를 무시하려는 정부를 보면, 우리는 왜 환경과 정치가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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