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학 연 구 - hyostudies.or.kr · 이 선 경 조선대 철학과 초빙객원교수 ...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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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1738-253X JKHS 27, 2018-06 효 학 연 구 Journal of Korean Hyo Studies 제 27 호 2018. 6. THE KOREAN HYO STUDIES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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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SN 1738-253X

    JKHS 27, 2018-06

    효 학 연 구Journal of Korean Hyo Studies

    제 27 호

    2018. 6.

    한 국 효 학 회THE KOREAN HYO STUDIES ASSOCIATION

  • 〔논 문〕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 인간소외의 치유를 전망하며 -

    / 이선경 ······································································································ 1

    가족관계 통한 도덕 감성 함양

    - 양명 심학의 도덕 공감을 중심으로 -

    / 윤경숙 ···································································································· 25

    한국 효자전(孝子傳) 목록 작성 및 정량 분석

    / 김현우 ···································································································· 51

    대학생의 효 의식에 관한 질적사례연구

    / 박미란 ···································································································· 71

    효(HYO) 실천을 위한 상담적 접근

    / 채경선 ···································································································· 97

    노인 고독사,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사회통합적 효의 관점에서 -

    / 김정희 ·································································································· 133

    교정측면에서 교도소아버지학교에 대한 이해

    / 천정환 ·································································································· 151

    대학생활만족의 보호요인에 관한 연구 :

    효의식과 자기분화가 대학생활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 정정애 ·································································································· 179

    제 27 호 목 차 2018. 06.

  • 『효학연구』제27호

    한국효학회, 2018, pp. 1-23.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 인간소외의 치유를 전망하며 -

    The Reevaluation of Xiaoti as the Solutions

    to the Alienation of Old People

    이 선 경

    조선대 철학과 초빙객원교수

    ◈ 목 차 ◈

    Ⅰ. 이끄는 말: 한국사회 노인소외의 실태

    Ⅱ. 효제의 사상적 기반과 유교의 공동체 의식

    Ⅲ. 효제의 빛과 그늘

    Ⅳ. 노인소외의 극복방향으로서 효제의 가치관

    Ⅴ. 맺음말: 인간소외의 치유방안으로서 효제의 의미

    이 글은 한국사회에서 물질적 심리적 두 측면에서 모두 진행되고 있는 노인소외 심

    각성을 지적하고, 사상적 측면에서의 원인과 대응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2017년 예상보다 빨리 고령사회로 진입하였으나, 노인 빈곤률 50%, 노인 자살률 연속

    세계 1위와 같은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정부분 전통적 가치

  • 2 효학연구 제27호

    관의 붕괴와 새로운 가치관의 미성숙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이는 결코 개인의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보다 근원적으로 한 사회나 국가를 이끌어가는 가치관의 혼란에

    기인한다. 따라서 향후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인도주의적 가치관의 모색이라는 거시적

    전망 속에서 노인소외의 문제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글은 이러한 차원에서 수 천 년

    간 유교사회를 이끌어온 효제(孝弟)의 가치관을 다시 성찰하였다. 가족윤리에서 출발하

    여 사회윤리로 확산되는 효제의 원리는 오늘날 비판적 성찰이 동반되어야 하지만 동시

    에 유교문화권이 보유하고 있는 전통적 자산이기도 하다. 효제의 가치관 속에서 노인은

    생물학적 약자가 아니라 자손들의 생명의 근원이자 가족화합의 구심점으로 존중된다.

    효제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기반하는 덕목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새롭게 조명할 필요

    가 있다. 또한 효제는 가족윤리를 기점으로 하므로, 효제의 가치가 원만하게 구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생적인 가족관계의 모색이 요청된다. 한 사회의 건강성은 법체계

    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도덕적 자각과 실천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라 할 때, 새롭게 정비

    된 효제의 가치와 윤리는 가족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 공동체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사회적 정책과 제도 역시 효제의 가치관을 중심에 두고 이를 실현해 나갈 것을

    목적으로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효제의 확산은 노인소외뿐 아니라 인간소

    외를 치유하여 인도주의적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방안의 하나로 제시될 수 있겠다.

    주제어: 고령사회, 노인소외, 인간소외, 효제, 가족, 공동체, 유교

    Ⅰ. 이끄는 말: 한국사회 노인소외의 실태

    한국은 지난 2000년에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뒤 불과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행정안전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8월 말 기준으로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14%를 넘어섰다.1) 이는 통계청의 예상보다

    1년 빠른 것이다. 고령사회에서 노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사람다운 삶을

    1) UN(국제연합)이 설정한 기준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

    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한국의 노인 인구는 2008

    년 506만9천273명으로 전체 인구의 10.2% 정도였으나 2014년 652만607명(12.7%), 2016년

    699만5천652명(13.5%)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https://blog.naver.com/ph001144/221089557201

  •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3

    영위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매우 시급한 화두이다. 사람다운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물질적 측면과 인격적 측면의 양면을 포괄하며, 이 두 측면에서 최소한의 요구가

    충족되었을 때 인간은 그 존엄성을 지키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사회의 현실은 이 두 측면에서 모두 어두운 실태를 드러

    내고 있다. 최근 국제노인인권단체의 발표는 한국의 노인이 물질적, 사회심리적 측

    면 모두에서 매우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2014년 한국은 노인복지

    적 측면에서 50위를 기록하였으며2) 2015년에는 더욱 떨어져서 60위를 기록했

    다.3) 특히 소득부분에서 최하위인 80위로 노인빈곤률이 50%에 육박했다. 노인자

    살률은 10만 명당 64명으로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다.4) 이는 한국이 급격한 경

    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부의 배분이 불균등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인 빈곤층 노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매우 취약함을 보여준다. 또한 한국노인의 삶이 필리핀, 베트

    남, 스리랑카 등지보다 열악하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노인소외가 물질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사회심리적 유대감과 인간으로서의 존재의미 창출과 같은 정신적 삶의 영

    역에서도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의 노인소외는 물질적 빈

    곤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상실이라는 두 측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다. 세계적 경제대국인 한국에서 노인 2명 가운데 1명은 빈곤층이라는 믿기 어려

    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하며, 노인들이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심리

    적 유대감과 존재의미를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이를 위

    해서는 보건, 복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철학사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

    협력과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이글은 이러한 모색의 일환으로서 사상적 측면에서 노인소외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사상적 관점에서 보자면, 현대사회의 노인소외는 일정부분 가치관의 혼란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전통시대를 장악했던 유교적 가치관이 붕

    2) 국제노인인권단체(Helpage International)가 세계 노인의 날인 10월 1일에 발표한 2014년 세계

    노인복지지표의 내용이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 기준으로 50.4점을 기록했다. 이는 스

    리랑카(43위), 필리핀(44위), 베트남(45위), 카자흐스탄(49위)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결과이다. 1

    위는 노르웨이(93.4점)이고, 스웨덴, 스위스, 캐나다, 독일 등 유럽 주요 선진국들이 상위권을 차

    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 2015년 한국은 44점으로 조사대상 96개국 가운데 60위에 머물렀다.

    4) 이 수치는 국내 전체 자살률에 2배 이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자살률 12명에 비해 5배

    에 달한다.

  • 4 효학연구 제27호

    괴된 상태에서, 새롭게 사회전체나 개인의 삶을 이끌어갈 표준적 가치기준이 정립

    내지 합의되지 못한 상태이다. 개인과 국가사회가 삶을 이끌어갈 가치관을 정립하

    지 못한 정황에서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들의 소외는 심화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보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가치관의 모색이 요청되며, 노인소

    외 문제도 인간다운 사회건설이라는 큰 그림 안에서 그 좌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글은 이와 같은 차원에서 전통유교사회를 이끌어간 중심축인 효제, 더 나아가 효

    ⋅제⋅자(孝弟慈)의 가치관을 재검토해보고자 한다.5) 유교에 있어 효제는 단순히

    윤리덕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치관이자 사회운영의 원리이며 그 배후

    에는 강고한 사상과 이론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조 500년은 효제의 가치관에 의해

    지탱되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전통시대 노인의 위상과 삶은 효제의 가치

    관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 전통유교사회에서 노인의 삶의 질이 -그 물질적 의료적

    환경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과연 현대 한국사회의 노인보다 낮은 것이었다고 단

    언할 수 있을까? 전통시대 노인의 위상과 삶을 뒷받침 하였던 효제의 사상적 근거

    와 효제에 입각한 제도들을 살펴보고, 그 빛과 그늘을 성찰하는 일은 현대 한국사

    회의 인도적 방향 모색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Ⅱ. 효제의 사상적 기반과 유교의 공동체 의식

    1. 가족중심의 확충주의

    �논어�에서는 (孝)와 제(弟)를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한다. 효(孝)는 부모

    조상에 대한 수직적 윤리이고, 제(弟)는 효도라는 개념에서 파생되어 형제자매, 더

    나아가 이웃사회로 확장되는 윤리로서 효(孝)가 제(弟)보다 근본적이라 할 수 있다.

    5) �논어�에서는 “孝와 弟는 仁을 행하는 근본”이라 하여 효제를 언급하였지만, �대학�에서는 ‘효제’

    와 더불어 ‘慈’를 같이 말한다. 효가 仁의 상향적 실현이라면, 弟는 仁의 수평적 실현이라 할 것이

    다. 慈는 仁의 하향적 실현이니, 孝弟慈의 덕목이 함께 갖추어져야 仁은 상하좌우로 실현이 가능

    할 것이다. 조선시대의 유교는 효제자 가운데 효제의 덕목이 慈보다 강조되었다면, 오늘날은 효제

    뿐 아니라 ‘慈’의 덕목이 갖는 의의를 십분 되살림으로써 효제자의 가족윤리와 사회윤리를 모색해

    야 할 것이다.

  •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5

    부모에게서 같은 기운을 나누어 받은[同氣] 존재가 형제자매로서, 서로 우애하는

    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이 된다. 유교에서 효는 윤리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유

    교사회에서 효가 절대적 진리로 각인된 것은 부모와 조상이 가족구성원들의 생명

    의 뿌리라는 존재론적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6) 따라서 유교사회에서 노인의 위상

    은 절대적인 것으로 지극한 공경의 대상이었다. 노인은 생물학적 약자 내지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취급된 것이 아니다. 제사는 이러한 효의식의 정점

    으로서, 유교사회에서 제사란 자기 존재의 근원을 확인하는 종교적 절차이기도 하

    였고, 가정과 사회를 지탱하는 효제의 윤리를 강화하는 기제이기도 하였다.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잘 접대한다[奉祭祀, 接賓客]’는 덕목은 여성들의 본분으로 늘 강조

    되었으며, 이는 효제의 윤리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원동력이었다. 이와 같이 효

    제의 윤리를 담고 있는 유교의 가족주의는 철학적, 종교적 이론체계를 갖춘 강력한

    것이었다.7)

    유교가 이른바 이단을 비판할 때 공통적으로 쓰는 말은 ‘부모도 없고 임금도 없

    다[無父無君]’이다. 이는 ‘가족’과 ‘사회’를 부정한다는 뜻이다. 유교는 사회로 나아

    가는 기점을 ‘가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맹

    자가 개인주의자인 양주와 겸애주의자인 묵적을 크게 비판한 것은 가족 안에서의

    사랑의 경험이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그 인애의 마음을 사회적으로 확산할 수 있

    6) 이를테면, “내 몸과 털과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身體髮膚 受之父母니 不敢毁傷이 孝之始也]”(�효경�「開宗明義章」)라는 교훈은 부모조상을 자

    기 존재의 근원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도출되는 윤리적 명제라 할 수 있다.

    7) 한국 현대사에서 가족주의는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가족주의의 긍정적 기능보다는

    가족이기주의, 국가나 회사를 하나의 가족처럼 생각하는 확대가족주의가 빚어내는 연고주의, 정실

    주의, 집단주의 등이 비판되어왔고,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과도한 의무의 불평등이 치열하게 비판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교문화의 잔재로 비판되었다. 한편에서는 동아시아 경제성장의 비

    결은 ‘경영가족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유교자본주의에 있다고 치켜세우기도 했으나, 이를 둘러싼

    논란은 종식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급속한 이혼율의 증가로 가정이 해체되거나,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가정폭력, 노인문제, 소원하기 짝이 없는 가족관계의 해체 등이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하면서, 일각에서는 다시 유교와 가족주의 내지 가족관계를 재조명하려는 시도도 일

    어나고 있다. 유교를 재조명하려는 시도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갖는다. 유교의 본령

    과 역사적 현실에서 왜곡된 유교는 구별해야하지 않는가? 또 유교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는 현대

    의 여러 가지 형태의 가족주의들이 과연 유교적인가? 무엇을 유교적 가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교와 가족주의관련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보다 심층적 연

    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승환, "한국‘가족주의’의 의미와 기원, 그리고 변화가능성" �유교사상연구�

    제20집, 2004. 참조; 김기현, "유교의 사회복지정신" �사회복지연구� 제44권 제1호, 2013. 60.

    참조.

  • 6 효학연구 제27호

    는 원천적 힘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집 노인을 잘 모심으로써 다른

    집 노인을 잘 모시는데 이르고, 우리 집 어린이를 잘 기름으로써 다른 집 어린이를

    잘 기르는데 이른다”8)는 �맹자�의 말은 가족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타인을 대하는

    표준이 됨을 보여준다. 유교에서 효제의 가족윤리가 사회윤리로 확장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다시 말해 부모 자식 간의 자효(慈孝)윤리를 천륜으로 인지

    하는 유교에 있어서, 가족애의 실천은 사회윤리의 표준이자 기준으로 인식된다. 가

    족애가 올바로 실천될 때에 이 가족애가 이웃사랑과 인류애로 넓어지고 그것이 다

    시 만물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된다는 논리이다. 가족 안에서 친밀함과 예법이 조화

    된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연습함으로써, 오히려 이것이 기점이 되어 사회공동

    체 의식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2. 이일분수의 공동체적 세계관9)

    유교의 사상체계에서는 가족주의와 사회공동체주의가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유

    교사회에서는 정치사상의 본질을 가족윤리의 실현에서 찾고,10)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족의 윤리가 사회윤리로 확장되는 구조를 지닌다. 효제는 가족단위와 사회단위를

    관통하는 핵심적 덕목이다. ‘천하일가’라는 개념이 대변하듯, 유교사회에서는 가족

    의 확대가 곧 국가사회이며, 가족의 경영은 그 국가사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데

    기초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은 효제자의 덕목이 단순히 가족윤리가 아

    니라 국정운영의 기초가 됨을 여러 차례 명시한다.

    8) �맹자� 「양혜왕」상 7, 老吾老, 以及人之老, 幼吾幼, 以及人之幼.

    9) 이글에서는 ‘理一分殊’를 주목할 만한 공동체적 세계관의 이론적 기저로 보았다. ‘이일분수’는 一

    과 多, 전체와 개체의 균형적 관계를 모색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모든 존재자들은 理

    一이라는 존재론적 동일성을 지니지만, 分殊로서 제 각각의 개성과 정체성을 지니는 개체이기도

    하다. 理一分殊의 세계관에서 추구하는 주체는 개체로서 자신의 자율성을 확보하면서도 나 이외

    의 타자들과 존재론적 지반을 함께한다는 동질성과 연대의식을 동시에 갖게 된다. 전체를 도외시

    한 원자적 개체는 고립될 뿐이며, 개체적 자율성을 도외시한 전체는 획일적 집단주의에 떨어진

    위험성을 지닌다.

    10) 이영찬, "유교의 사회제도 사상-가족, 국가, 신분제도를 중심으로" �한국학논집�제34집, 2007,

    287.

  •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7

    “집안사람을 가르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이가 없다. 그러

    므로 군자는 집 밖에 나가지 않고서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룩하는 것이다. 효도[孝]

    는 임금을 섬기는 길이요, 공경[弟]은 어른을 섬기는 길이며, 자애[慈]는 여러 사람

    을 부리는 길이다.”11)

    이러한 기풍 속에 유교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돌봄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

    공동체, 더 나아가 국가공동체에 의해 수행되었다. 여기에는 유교 특유의 자아개념

    과 가족개념이 확장된 공동체주의가 내재한다. 현대의 공동체주의 논의에서는 사회

    가 법적 관계만이 아니라 도덕적 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것으로 본다.12) 공유된 가

    치가 없는 형식적 사회관계는 개인의 정체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개인은 원자화되

    어 행복하지 못하다. 사회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지향하는 가치가 있고, 이러한 가치

    의 자율적 실행을 보장할 때 민주주의는 재생산되며, 개인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개인의 정체성은 공동체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이루어

    지며, 진정한 의미의 개인화는 사회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13) 개인

    의 정체성이 사회적 인간관계 속에서 정립된다는 것은 유교의 가치관과 정확히 맞

    닿는 지점이다. 유교의 기본개념인 ‘仁’은 人+二의 조합으로14) ‘여러 사람들 사이

    의 관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청대의 어떤 학자는 二자의 윗 획이 ‘하늘’을 상징

    하고, 아래 획이 ‘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 ‘仁’은 ‘천지인의 조화로운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송대 이후 ‘仁’은 우주론적으로 확장되어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고 살리는 덕성으로 이해되었다. 이는 모두 개인을 사회적 관계 속의 존

    재이자 우주적 관계망 속의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유교는 인(仁)의 실천면에서

    나에게로부터 남에게로 미루어가는’ ‘충서(忠恕)’와 ‘추기급인(推己及人)’그리고 이

    일분수(理一分殊)의 점진주의를 지향하지만 동시에 만물일체의 우주관과 존재론을

    지니고 있다. 유교의 최고 경전인 �주역�에서는 하늘과 땅인 건곤이 만물을 산출하

    11) �大學�제9장, 其家不可敎而能敎人者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

    事長也, 慈者, 所以使衆也.

    12) 이진우, "자유의 한계, 그리고 공동체주의", 철학연구회 99년도 춘계발표회, 89

    13) 이진우, 위의 논문, 94~96참조.

    14) 임헌규, "유가의 인간관계론-노년학에 대한 동양철학적 접근 서설"�중국학연구�46집, 2008,

    264.

  • 8 효학연구 제27호

    는 근원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로부터 산출된 인간과 만물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

    온 형제자매로 인식된다. 이러한 우주관은 송대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서 “하

    늘을 아버지라 하고 땅을 어머니라 하니, 나는 그 가운데 미미한 존재이다. ···백성

    은 나와 같은 부모에게서 난 형제요, 만물은 내가 함께 할 것들이다”15)라는 의식

    으로 표출된다.16) 이는 효제윤리의 우주론적 근거이자 인식론적 확산이다. 효제윤

    리는 단지 가족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공동체로 확산될 근거를

    지니는 것이다. �주역�의 이야기를 좀 더 살펴보자. �주역�에서는 자연의 변화를

    통해 인간이 본받을 표준적 규범을 찾는다. “하늘과 땅의 큰 덕은 생(生)이다” “낳

    고 살리는 것을 역(易)이라 한다”라 한다. �역경�은 이러한 생명살림의 정신이 바

    로 ‘인(仁)’이며, 인(仁)의 정신을 체득한 군자가 다른 이들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

    가 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17) 이러한 인식은 공동체적 나눔의 정신으로 이어진

    다. 이른바 “백성과 함께 즐긴다[與民同樂]”는 원칙이 그것이다. 이익을 즐기되 함

    께 이익을 즐기기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적 나눔의 의식은 개인의 자

    아에 대한 각성에서 확고한 뿌리를 갖는다. 즉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일컫는 개

    개인의 수신이 공동체의식의 전제가 된다. 위기지학은 이기지학(利己之學)이 아니

    다. 위기지학은 자율적 도덕주체로서 자아를 자각하고 이를 확대해 가는 것이다.

    이는 자기 자신이 나-가족-국가-인류-우주만물로 확장되는 동심원의 가장 중심에

    위치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논어�에서는 “군자는 조화롭지만 똑같지 않고, 소인은 똑같지만 조화롭지는 않

    다”18) “군자는 두루 소통하나 끼리끼리 파당 짓지 않고, 소인은 끼리끼리 파당은

    15) 程頤는 장재의 서명을 仁의 실천면에서 分殊에서 理一로 나아가는 점진주의로 해석하였으나, 주

    희는 여기에 다양한 만물이 동일한 근거를 지녔다는 존재론적 동일성의 의미를 추가하였다. 이

    로써 ‘이일분수’는 만물이 존재론적으로는 일체이지만, 이를 수양론적 측면에서 실현해가는 방법

    은 점진적이라는 양면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게 되었다.

    16) 유교의 이상향인 대동사회에 대한 묘사에서 ‘자기 부모만 부모라 여기지 않았고, 자기 자식만 자

    식이라 여기지 않았다’ ‘재물이 땅에 버려지는 것을 미워했으나 자기를 위해 감춰두지 않았고,

    스스로 힘쓰지 않음을 미워했으나 자신만을 위해 힘쓰지 않았다’는 것은 이러한 만물일체의 우

    주관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역의 음양 對待的 사유방식은 개별존재를 실체적이기보다는 타자와

    의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 인지함으로써 공동체적 삶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17) �易經� 乾卦, "文言傳", 元, 善之長也···君子體仁, 足以長人.

    18) �論語�"子路":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9

    짓지만 두루 소통하지 않는다”19)라는 언설은 유교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자

    아정체성의 자율적 자각을 중시하는 어울림의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Ⅲ. 효제의 빛과 그늘

    1. 가족윤리로서 효제의 빛과 그늘

    전통 유교사회에서 노인소외문제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노인문제보다 오히려 양

    호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전통시대는 물질적 빈곤이 만연하였으나 유교는 물질

    의 축적보다 나눔과 도덕적 가치를 숭상하였고,20) 또 오히려 빈부의 편차가 크지

    않아 이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반면 노인의

    가족적, 사회적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덕과 나이를 존중하는 유교문화에서 노인은

    나이를 먹을수록 존재의미가 뚜렷해졌으며, 가족과 사회를 결속하는 실질적 구심점

    으로 역할하였으므로 그 존재가치도 충분했다. 앞서 언급하였듯 유교사회에서 노인

    의 부양은 거의 전적으로 가족들의 효도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유교의 효는 물질

    적 봉양과 더불어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을 더욱 숭상한다. �맹자�

    는 효도의 방식을 ‘몸을 봉양하는 것[養口體]’과 ‘뜻을 봉양하는 것[養志]’으로 대

    별하고, 부모의 뜻을 봉양하는 ‘양지’가 올바른 효행임을 말하고 있다.21) 또한 �논

    어�에서는 “지금의 효는 물질적 봉양을 말하는데, 개나 말도 다 먹인다. 공경하지

    않으면 개나 말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22)라 하여, 효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

    19) �論語� 「爲政」: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20) �論語�「季氏」1: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21) �맹자�에는 曾子가 아버지 曾晳을 모신 사례와 曾元이 아버지 증자를 모신 사례가 소개되어 있

    다.증자는 식사를 마칠 때 늘 어디에 고기를 주실 것인지를 묻고, 또 아버지가 고기가 남았는가

    를 물으면 항상 있다고 대답하였다. 증원이 증자를 모실 때는 고기를 어디에 주실 것인지를 묻

    지 않았고, 또 고기가 남았는가를 물으면 항상 없다고 답하였는데, 이는 두었다가 아버지를 한

    번 더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맹자는 증원이 증자를 섬긴 것은 ‘몸을 봉양한 것[養口體]’이고 증

    자가 증석을 섬긴 것은 ‘뜻을 봉양한 것[養志]’으로, 부모를 섬길 때에는 증자처럼 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22) �論語�「爲政」,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 10 효학연구 제27호

    으로 잘 대접하는 것 보다 공경함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두 기록을 통해 유

    교에서 바라보는 노인의 행복은 물질적인 것보다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에 강

    조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노인을 봉양하는 실질적 주체는 누구이며 누가 그 책임을 감당하는가?

    유교의 가족주의비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노인의 봉양뿐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복지관련 활동이 가족을 통해 수행된다고 할 때, 실질적 수행자는 주부로서 여성이

    라는 점이 지적된다. 전통유교사회에서는 개인보다는 전체로서의 가족을 중시하고,

    가족 사이에 자유와 권리, 권력관계를 논하는 것을 터부로 여긴다. 그러나 실상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유교사회의 아름다운 가족주의는 철저하게 가부장주의에 입각

    한 것으로 그 수혜자는 부계의 남성과 남성의 부모 및 그 친족이고, 다른 성(姓)인

    여성과 아랫사람들의 끝없는 희생과 헌신이 요구된다. 유교의 가족주의는 구조적으

    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가족성원들을 위해 가혹하게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전통

    적인 여성상은 ‘끝없는 사랑과 희생의 화신’으로서의 애닮은 어머니 상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 유교사회를 지탱해온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접대하는’ 효제윤리의 실

    질적 수행자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유교사회에서 여성의 존재가치와

    의미를 설명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오늘날 가족 간의 갈등을 부추기면서 그와 같은

    방식의 효제가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려운 원인이 된다. 오늘날 개인주의에 입각한

    가족관계에서 가족 성원들 저마다의 자유와 권리가 소중하다고 할 때, 어떻게 권력

    적으로 평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를 이룰 것인가가 오늘날 새로운 가족관계 형성의

    중요한 화두가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부장제에 기반을 둔 유교의 가족주의가 그 시대에 지녔던 순기

    능적 측면 역시 지적될 필요가 있다. 유교의 가족주의는 먼저 가부장의 철저한 수

    신을 요구한다. �맹자�는 “자기가 몸소 도(道)를 행하지 않으면 처자에게 도를 행

    하지 못하고, 사람을 부리는 데 도(道)로써 하지 아니하면 처자에게 행할 수가 없

    다.”23)라 하여, 한 가정의 푯대로서 가부장의 수양과 솔선수범이 무엇보다 중요함

    을 말한다. 유교의 가부장은 그 권한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책

    임과 지도력, 솔선수범이 요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학�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

    이 표현한다.

    23) �孟子�「盡心」下, 孟子曰, “身不行道, 不行於妻子, 使人不以道, 不能行於妻子.

  •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11

    “이른바 천하를 평화롭게 함은 그 나라를 다스림에 달렸다는 것은 윗사람이 노인

    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따라서 효를 일으키고,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따라서 弟를 일으키고, 윗사람이 고아를 구휼하면 백성들이 따라

    서 그들을 저버리지 않는다”24)

    공자의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는 언설 역시 윗사람

    의 수기(修己)와 덕화가 중요함을 강조한 내용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퇴계 이황은

    집안일을 돌보면서 종들을 함부로 꾸짖지 않았다고 하며, 잘못이 있더라도 잘 타이

    를 뿐 말이나 기색이 변하는 일이 없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한 형제 사이에 잘못

    을 충고할 때에도 정성을 다해 상대를 감동하게 해서 정(情)을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정성을 다하지 않고 말로만 꾸짖어 정(情)을 상하게 되는

    일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또한 유교의 가족윤리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적인 것으로 설계되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율곡 이이는 오륜의 첫 번째 조목인 부자유친(父子有

    親)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한다’로 형제유우(兄弟有友)를

    ‘형은 동생을 우애 있게 대하고, 동생은 형에게 공손하게 한다’로 풀이함을 볼 수

    있다. 유교사회에서 노인의 위상은 일방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다운(윗

    사람다운) 덕성과 수양, 자기처신이 바탕이 되어야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교의 가족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가부장의 책임 있는 솔선수범 아래, 가

    족 구성원 각자가 소임을 다할 것이 요구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전통적 가부장제의 순기능은 무너지고, 가장의 권위는 추락했으며, 자신

    의 수양과 솔선수범을 동반하지 않은 채 위세만 남은 경직된 권위의식이 잔존한다

    는 것이다.25) 현대사회에서 가부장적 가족질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더 이상 유효

    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공동체나 가족관계가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4) �대학�제10장,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

    子有絜矩之道也.

    25) 전통유교사회에서의 상하관계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상하관계가 훨씬 경직되어 있음은 도처에

    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상소문을 살펴보면 임금의 실정과 부덕을 매우 구체적으로 지적하

    는 경우가 일일이 사례를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비일비재하다. 임금과 직접 대면하는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는 오늘날의 상하관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며, 전통 유교사회에서의

    인간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례들이다.

  • 12 효학연구 제27호

    가족관계와 공동체적 삶이 여전히 중요한 것은, 행복감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회복을 통해 사랑과 정을 주고받음에 있기 때문이다. 또 사랑과 정을 주고받는 데

    에는 역시 가족을 대신할 수 있는 공동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만민이 형제자매

    임을 선포하는 종교공동체로부터 각종 동호회에 이르기까지 삶의 일부를 나누는

    공동체가 있어서 큰 힘을 발휘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족공동체를 대신하는 대안

    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행복한 삶의 보루로서 가족공동체가 여전히 소중하다고 한

    다면, 보다 수평화된 질서로서 효제의 가치관은 가정과 사회에서 인간소외를 치유

    할 수 있는 자산이 될 것이다.

    2. 사회윤리로서 효제의 확장성

    유교적 공동체 사회에서는 노인의 부양 역시 효제적 가치의 확산이라는 형태로

    구현됨을 볼 수 있다.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의 노인부양은 주로 가족에 의해 이루어

    졌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제도 역시 정비되어 있어 흥미롭다.

    조선정부는 노인을 대우하고 경로사상을 고취하는 교화정책의 하나로 양로연과

    노인직 제수를 실시하였다. 노인직은 70내지 80의 나이가 되면 벼슬을 제수하거나

    품계를 올려주는 제도로서 신분의 구별 없이 천민(賤民)에게도 벼슬을 주었다. 또

    한 가정에서 노인을 봉양할 수 있도록 노인의 연령에 따라 아들들의 병역이나 부

    역을 면제해 주었다. 70세의 노인에게는 자식 1명의 군역을 면해 주고, 80세 이상

    이면 1명을 더 붙여주며, 9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모든 자식의 군역을 면제해 주

    었다. 아들이 없을 경우 친손자, 외손자가 부양을 위해 병역이 면제되었으며, 이는

    노비인 노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위의 지원책들과는 별도로 늙고 자식

    이 없는 홀아비와 과부에게도 매월 일정한 식량을 지급하였다.26)

    이외에도 관리들의 경우 부모의 병간호를 위한 휴직은 통상적인 것으로 인지되

    었다. 이와 같이 유교사회에서 노인부양은 실질적으로 가족에 의해 수행되었지만,

    가정에서 노인을 잘 봉양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음을

    26) 이상 국가적 차원의 부양에 대해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侍丁’ ‘復戶’조목 및 조성린, �조

    선행정이 서양행정보다 앞섰다�, (서울: 동서문화사, 2011), 305~309 참조.

  •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13

    알 수 있다. 또한 신분사회에서 신분의 구별 없이 천민인 노인에게도 벼슬을 제수

    하였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 지원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노인을 존경

    의 대상으로 대접한 것이었다. 유교사회에서 노인을 사회구성원 전체가 받들어야

    할 어른으로 간주하였다는 점은 매우 특색 있는 점이다.

    한편 유교사회는 노인부양을 넘어서서 마을공동체가 서로의 삶을 보듬는 문화적

    전통으로 향약(鄕約)과 촌계(村契) 등의 자치 조직을 지니고 있었다. 향약은 향촌공

    동체에서 시행된 자치의 일환으로 사대부들에 의해 주도된 것이고, 촌계는 민간에

    서 자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향약은 주로 16세기에 성행하다가 점차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사대부들이 향촌에서 그들의 지배력을 안정적으로 행사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음을 비판할 수 있으나, 퇴계나 율곡 같은 거유들이 앞장서 보급한 향

    약은 오륜을 중심으로 향촌사회를 안정시키고자 한 것이었다.27) 특히 율곡의 향약

    은 오륜이 일방적인 상향식 윤리가 아니라 이것이 쌍방향 윤리임을 강조하는 특징

    이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지 않아 그가 몸 둘 곳이 없게 만드는

    자는 상벌(上罰)로 다스린다’28)는 규정을 둔 것이 그것이다. 향약은 민간에서 효제

    자 윤리의 실천을 장려하고 징계하는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촌계는 마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규칙으로서 대체로 성문화되지 않고 관습

    적으로 운영된 향촌조직이다. 향촌공동체가 모든 생활면에서 서로 돕고 규제하여

    마치 대가족과도 같은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노인의 부양도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촌계를 통하여 과부, 병자들은 무상으로 지원을 받았고, 상선벌악(賞善罰惡)

    을 통해 도의를 숭상함으로써 효(孝)의 관념을 고취하였다. 과년(過年)함에도 빈곤

    해서 시집갈 수 없는 처녀는 마을에서 힘을 모아 혼인시켰고, 상례(喪禮) 역시 마

    을 공동체에서 함께 힘을 모았다. 의지할 곳 없는 고아는 마을에서 보살피고 가르

    쳤으며, 혼인을 주선하였다.29) 이는 효제의 가치관이 가족의 범위를 넘어 지역공동

    체로 확산된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30)

    27) 정진영, "16세기 향촌문제와 在地士族의 대응" �민족문화논총�7권,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1986, 106.

    28) �栗谷全書�권16, 雜著3, "海州一鄕約束".

    29)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향약·촌계 조목 참조. 한국학중앙연구원.

    30) YI Suhn Gyohng, Senior Welfare in Korean Confucian Society, Journal of Confucian

    Philosophy and Culture, (2016. 2.), 68.

  • 14 효학연구 제27호

    유교사회는 법보다는 예를 중시하는 예치사회였으며, 예치의 근간을 형성하는

    핵심개념이 효제이다. 조선사회가 얼마나 (효)제의 가치가 생활화, 관습화되었는가

    를 그 시대에 조선을 다녀간 외국인의 시선을 통해 엿볼 수 있다. 17세기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은 그의 �조선국에 관한 기술�에서 “여행자들은 길을 가

    다가 날이 저물면 비록 양반 집이 아니더라도 어느 집이든지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자기가 먹을 만큼의 쌀을 내어놓는다. 그러면 집주인은 즉시 이것으로 밥을 지어

    반찬과 같이 나그네를 대접한다. 여러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나그네들을

    맞는데, 이에 대해 아무런 군소리도 없다.”31)라 하여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의 특이

    한 풍속을 기록하고 있다.32) 또 19세기에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인

    Dallet(1829~1878) 신부는 ‘조선 사람의 커다란 미덕은 인류애의 법칙을 선천적으

    로 존중하고 나날이 실천하는 것’이라 하고 ‘상호부조와 모든 사람에 대한 흔연한

    대접은 이 나라 국민성의 특징’으로서 ‘서로 보호하고 의지하는 동포감정은 혈족관

    계와 조합의 한계를 훨씬 넘어 확대 된다’고 관찰하였다.33) 이는 만물일체를 기저

    로 하는 유교의 인도주의문화가 풀뿌리에까지 스며들어 향촌의 생활정서이자 생활

    문화로 토착화 된 것이라 하겠다. 또한 유교 지식인들의 도덕적 주체의식은 만물

    일체의 존재론을 바탕으로 ‘성기성물(成己成物)’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으로서 ‘베

    풂은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라는 사고와는 근저를 달리하는 공동체의식이라고 할

    것이다.34)

    31) 헨드릭 하멜 지음, 김태진 옮김, �하멜표류기� (파주출판도시: 서해문집, 2003), 124~125.

    32) 이와 유사한 취지의 기술이 그리피스의 �조선�에서도 발견된다. “환대는 가장 신성한 의무 중

    하나로 여겨진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식사시간 중에 방문한 사람에게 음식을 거절

    하는 것은 중대한 수치일 것이다. 여기저기 먼 길을 걸식하며 다니는 가난한 사람은 채비를 잘

    할 필요가 없다. 밤이 되면 그는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호텔에 가지 않고 아무 집에나 들어가는

    데, 어떤 집이든지 행랑채는 방문하는 사람이 묵을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그 집에서 그날

    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 헨드릭 하멜, 김태진 역, �하멜표류기�(파주출판도시: 서해문집,

    2003), 124 재인용.

    33) “조선 사람의 커다란 미덕은 인류애의 법칙을 선천적으로 존중하고 나날이 실천하는 것이다. 우

    리는 이 위에서 어떻게 여러 가지 동업조합이나 특히 친척들이 서로 보호하고 지지하고 의지하

    고 도와주기 위하여 긴밀히 결합된 단체를 이루고 있는지를 보았다. 그러나 이 동포감정은 혈족

    관계와 조합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 확대된다. 상호부조와 모든 사람에 대한 흔연한 대접은 이

    나라 국민성의 특징인데ㅡ 솔직히 말하여 그런 장점은 조선 사람을 우리 현대문명의 이기주의에

    물든 여러 국민들보다 훨씬 우위에 서게 하는 것이다” 김기현, "유교의 사회복지정신" �사회복지

    연구�제44권 제1호, 2013. 226에서 재인용.

  •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15

    Ⅳ. 노인소외의 극복방향으로서 효제의 가치관

    현대 한국사회의 노인소외가 물질적, 정신적 두 측면에서 모두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서두에서 제기한 바와 같다. 비록 효제를 근간으로 하는 유교의 가족주의 및

    공동체 의식이 현대사회에 여러 가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효제의 가

    치관은 오랜 세월 한국인의 삶의 근간을 이루어왔으며, 보편윤리로 발돋움할 수 있

    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35) 이제 새로운 형식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

    겠다. 효제가 유교윤리의 대명사가 된 것은 �논어�에 근거한다. �논어�의 “효제는

    인을 행하는 근본이구나!”가 그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말씀의 발언자는 공자가 아

    니라 제자 유약(有若)이다. 유약의 발언 내용 전체는 다음과 같다.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경스러우면서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물다.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는 자는 없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

    나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겨난다. 효제는 그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구나!” 36)

    효제는 물론 공자의 가르침이지만 유약의 발언과 공자의 발언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공자가 효제에 대해 발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젊은이들은 들어가서는 효도[孝]하고 나아가서는 공손하며[弟], (행동을)신중히

    34) 문헌에 기록된 이상적 유교공동체의 지향과 역사적 유교사회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심각한 괴

    리를 보여주지만, 유교사회의 지식인들이 현실사회의 유교를 문헌에 기록된 유교적 이상에 비

    추어 비판하고 갱신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서

    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내가 이루고 싶으면 남도 이뤄준다[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는

    충서의 윤리, 개인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어울림의 공동체주의, 엄격한 공·사의 구별의식

    등에서 현재 한국사회의 왜곡된 공동체주의를 바로잡을 건강한 공동체의식의 방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35) 최문기는 “21세기 새로운 보편윤리가 문자 그대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보

    편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동서양 문명에 내재하는 인류의 보편 가치의 확장과 심화를 통해 정립

    될 필요가 있다”고 하고 유교의 효사상에는 “인본주의, 이타주의, 조화주의 , 평화공존주의 등의

    정신적 가치가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위기에 처한 현대문명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문기, "21세기 인류 행복을 위한 보편윤리 토대로서의 효제윤

    리" �효학연구�제20호(2014. 12) 9.

    36) �論語�「學而」,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

    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 16 효학연구 제27호

    하여 미덥게 하고, 널리 대중을 사랑하되 어진 이와 친할 것이다. 그렇게 행하고 남

    은 힘이 있거든 글을 배울 일이다.”37)

    유약이 전하는 효제와 인(仁)은 이미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띠고 있음에 비하여,

    공자가 전하는 효제는 유연하며, 자연스럽게 이웃과 사회로 확장되어 나가는 모습

    을 보여준다. 또한 유교의 윤리로 통상 효제를 말하지만 거기에는 자(慈)의 덕목이

    생략되어 있다. 보다 오래된 기록인 �예기� 즉 �대학�에서는 항상 효․제․자(孝弟慈)

    를 함께 언급하고 있다. 효제는 자연스럽게 자(慈)의 덕목을 포괄한다고 하겠지만,

    지난날의 유교는 하향식이기보다는 상향식 윤리가 두드러졌음 또한 사실이다. 오늘

    날 지향해야할 효제의 방향은 공자가 언급했던 효제이며, 더불어 �대학�에서 명시

    한 자(慈)의 덕목을 함께 거론해야 할 것이다. 효․제․자를 함께 표방함으로써 유교의

    인(仁)은 본래 상하좌우를 모두 담아내는 인도주의를 지향함을 드러낼 수 있을 것

    이다.

    오늘날 노인소외 더 나아가 인간소외를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함에 있어서 유교

    의 수기(修己)와 효제의 윤리를 현대화하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와 같은 철학에

    근거해서 일관성 있는 정책과 제도를 시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

    지 방향을 제시해 보겠다.

    첫째, 자기 자신의 성찰을 통한 자아정체성의 모색이 요청된다. 실상 우리사회

    의 소외는 노인소외뿐 아니라 청년소외 문제 역시 매우 심각하다. 그리고 이 소외

    는 일차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물질[恒産]의 부재에 있다는 점에서, 사상적 접근만

    으로는 이러한 소외를 극복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회적 모순에 대해 문제를 제기

    하고 이상적 사회를 향해 개혁해 나가는 주체 또한 자각된 인간이라 할 때, 자기

    주체성을 찾아나가는 인문학적 탐색은 노소를 막론하고 요청된다. 원심적 확산은

    내적 구심을 얼마나 확고하게 구축하는가에 달려있다. 따라서 자아 정체성의 확립

    은 자신의 개별주체와 공동체적 어울림을 균형적으로 운영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둘째, 가족 내에서 젊은 세대와 노인세대 사이 쌍방 간에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

    다. 화목하고 상생적인 가족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 성원 개개인의 노력이 필

    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유교의 ‘수기(修己)’개념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수기

    37) �論語�「學而」, 子曰, 弟子, 入則孝, 出則悌,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17

    (또는 수신)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유교의 인(仁)이 결국 ‘사람다

    움’을 의미하는 것이고 보면, 무엇이 ‘사람다운 삶인가?’라는 물음과 고민은 원만한

    가족관계 형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즉 피차간에 개개인의 수신을 통하여 상

    대방의 ‘인권’을 존중하려는 노력이 오늘날 상생적인 가족관계 형성을 위하여 중요

    한 것이라 생각한다.

    셋째, 가족 사이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다. 국가는 노인부양을

    위해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 방안들을 모색할 필

    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테면 국가에서 특히 저소득층 노인들에 대한 연금지급

    을 현실화하고 의료보장을 확대함으로써 부모 봉양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어, 이

    로 인한 가족 간 갈등요인을 약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에서 아동 돌봄 센

    터나 도우미를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듯, 이러한 제도를 노인을 대상으로

    보다 확대해서 실시할 수도 있다. 더불어 가족적 차원에서 효를 실천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현재 출산과 육아에 대한 휴가

    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확대되어 가고 있으나, 부모의 간병이나 상례에 대한 휴

    가개념은 미미한 상태이다. 부모 병간호를 위한 휴가 인정, 상례를 치르기 위한 충

    분한 휴가, 부모의 병원방문이나 요양원 방문을 명목으로 하는 월차제도의 도입 등

    은 경로효친의식을 고양하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효제의 가치관을 사회공동체로 확산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

    를 들어 노인요양원과 고아원을 함께 운영한다거나, 노인 요양원 안에 유아 보육시

    설이나 어린이 방과 후 학교 등을 운영함으로써, 노소가 공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해외의 사례에서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는 대학생

    들에게 노인요양원에서 숙소를 제공하고, 일정시간을 노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봉사하도록 한 제도는 노인들이 우울증과 고독감에서 벗어나는데 크게 도움이 되

    었으며, 서로 친구와 같은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생겼음을 보고하고 있다.38)

    38) 네덜란드 데벤테르에 위치한 ‘휴머니타스 요양원’의 사례이다. 2018년 현재 6명의 대학생이 거

    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한 달에 최소 30시간 노인들을 위해 ‘좋은 이웃’활동을 한다. 이메일 사

    용하기, 영상통화 방법, SNS사용을 비롯해서 학교생활, 친구관계 등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말벗

    이 되는 것이다. [더, 오래] 김정근의 시니어비즈(7), 중앙일보, 2018. 4. 12.일자 인터넷판.

  • 18 효학연구 제27호

    Ⅴ. 맺음말: 인간소외의 치유방안으로서 효제의 의미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명구가 종종 회자된다.

    이 말을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하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의 양육과 성장에만

    온 마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노인, 장애인과 같은 취약계층의 삶을 잘 기르기

    위해서도 온 마을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적 차원을 넘어서서 이

    웃과 학교, 친구, 그가 속한 여러 단체와 같은 공동체적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더 나아가 이 말은 좋은 삶에 대한 가치관을 함축하고 있다. ‘마을’이

    라는 표현은 사람의 삶은 신체를 양육하기 위한 물질적 요소를 충족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관심과 배려와 같은 인격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는다.

    사람의 삶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상호 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웃과 학교, 친구, 동호회 등 그가 속한 여러 단체와 같은 공동체에서도 가족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따라서 노약자와 같은 취약계층의 삶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의 삶에 있어서도 상호 관심과 교류, 돌봄과 같은 가치를 소중히 여

    기는 마음의 배양과 그러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공동체적 삶의 양식의 모색이 좋은

    삶의 모델로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사회로 불리

    는 대동(大同)사회의 모습은 이와 다르지 않다. ‘자기 부모만 부모라 여기지 않으

    며, 자기 자식만 자식이라 여기지 않은 사회, 노인들은 여생을 편안히 마칠 수 있

    으며, 젊은이들은 쓰일 곳이 있고, 어린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사회,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자 병든 자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모두 부양받을 수 있는 사

    회’, 그것이 대동사회의 모습이다.

    현대 공동체주의 논의에서 한 사회는 법체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도덕적 질서

    에 의해 유지된다는 주장이 있음을 상기할 때, 효제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의 공동

    체사회를 향한 구상은 상당히 참고할 만하다. “우리 집 노인을 대하는 그 마음으로

    다른 집 노인을 대하고, 우리 집 아이를 대하는 그 마음으로 다른 집 아이를 대한

    다”는 맹자의 언급은 가족적 가치를 사회로 확장해 궁극적으로 대동사회를 지향해

    가는 유가의 기본 구상을 잘 드러낸다. 물론 다양한 측면의 논의가 수반되어야 하

    겠지만, 기본적으로 유교공동체사회가 지녀왔던 가치관으로서 효⋅제⋅자에 대한

  •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19

    재인식 및 사회적 실천방안으로서 향약, 두레의 전통, 노인에 대한 국가적 대우 등

    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인소외는 인간소외의 한 형태로 단지 노년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

    에서의 소외는 가장 취약한 곳으로부터 일어나고 심화된다. 근래 노인과 어린이에

    대한 학대와 방치, 그리고 고독사 등의 문제가 급증하는 것은 사회적 소외가 힘이

    없는 약자들에게서 두드러짐을 반증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소외는 결국 사회전체

    구성원에 대한 무관심 및 소외로 번져나간다. 노인소외문제에 대한 성찰은 궁극적

    으로는 우리 사회의 인간소외문제를 해소해 나가고자 하는 관심까지를 포함한 것

    이다.

    생물학적으로 약자인 노인을 존엄한 존재로 인식하고 대우하였던 유가의 인문정

    신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가장 소외된 계층을 돌보는 일은 궁극적으

    로는 인간소외를 치유하는 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 투고일자: 2018.4.29. / 심사일자: 2018.6.5. / 게재확정일자: 2018.6.20.

  • 20 효학연구 제27호

    �易經�

    �대학�

    �맹자�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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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호, 2014. 12.

    YI, Suhn Gyohng, Senior Welfare in Korean Confucian Society, Journal of

  •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21

    Confucian Philosophy and Culture, 2016.2.

    김정근, “더, 오래”, 중앙일보 시니어비즈(7), 2018. 4. 12. 인터넷판.

  • 22 효학연구 제27호

    The Reevaluation of Xiaoti as the Solutions to the Alienation

    of Old People

    Yi, Suhn Gyohng

    This paper reveals that the alienation of old people in Korea, which has

    unfolded from both material and psychological aspects, reaches serious

    proportions. It also attempts to analyze the causes of the alienation and

    looks for its solutions. Sooner than expected, Korea entered an aged

    society in 2017. In that year, the poverty ratio of households with aged

    people reached 50%, and the suicide ratio among senior citizens was the

    world leader along with the previous years.

    I believe that these negative effects of alienation partly stem from the

    destruction of the traditional sense of values and the immaturity of the new

    sense of values. Here what causes the problem has to do with the

    dismantlement of value systems on the level of society or country as

    opposed to that of individuals. Thus, the problems involving the alienation

    of old people have to be approached from a wide perspective such as

    humanitarian value systems that will lead the future Korean society.

    This paper reinvestigates the value of xiaoti (孝悌, filial piety and

    fraternal love), which has dominated Confucian societies. The value of

    xiaoti develops into societal principles from familial ethics. In this respect,

    it works as a good foundation for a humanitarian community. In the

    community based on xiaoti, old people are not neglected as biological

    weaklings; rather, they are highly respected as the origin of the future

    generations and the focal point of familial unity.

  • 노인소외의 대응방안으로서 孝弟의 성찰 23

    The value of xiaoti needs to be reevaluated today in that it is rooted in

    universal human emotions. Also, since xiaoti starts from familial ethics,

    co-prospering relationships must be established among family members to

    realize the value of xiaoti.

    The soundness of a society is due not only to the maintenance of its

    legal system, but also to the moral awareness and practice of its members.

    In this sense, the reevaluated principle of xiaoti should not be confined to

    the familial level but expand to the social level. In this paper, I argue that

    social policies and institutions must be based on the principle of xiaoti,

    while illustrating the effects of such practices with several examples.

    Key words: aged society, alienation of old people, human alienation,

    xiaoti, family, community, Confucianism

  • 『효학연구』제27호

    한국효학회, 2018, pp. 25-50.

    가족관계 통한 도덕 감성 함양

    - 양명 심학의 도덕 공감을 중심으로 -

    Developing moral sensibility through family relations

    - Focused on the Moral empathy of Yangmyeong's Simhak -

    윤 경 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 목 차 ◈

    Ⅰ. 들어가는 말

    Ⅱ. 상호교감과 소통

    Ⅲ. 주체성과 자율성

    Ⅳ. 도덕성

    Ⅴ. 나오는 말

    과거 가족관계는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어서 남녀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

    고 있었다. 이러한 가부장적이고 남녀 차별적 가족관계는 부부관계, 부모자녀관계를 경

    직되게 만들었고, 서로의 입장 차이에서 오는 이해관계가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글은 양명 심학에서 강조하는 상호교감과 소통을 통해 오늘날 바른 가족관계

  • 26 효학연구 제27호

    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가족구성원간에 상호교감과 소통이 단절되면 친밀한 가족관계 형성이 어렵다. 기존

    의 가족관계가 헌신과 책임이 강조된 부모 위주의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측면이 강했다

    면, 현대에는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이해가 존중된 협력하는 가족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 관계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주체적·자율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또 그

    안에서 윤리·도덕적 삶의 의미는 찾아진다. 그런 점에서 가족관계는 권위를 앞세우기 보

    다는 구성원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평등한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

    러한 가족관계 안에서 개인은 물론 주변 인간관계에 공헌할 수 있는 균형 있는 삶을 추

    구해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양명 심학에서 가족관계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는 있을까. 양명

    의 사상에는 현대 가족관계가 주목해 볼 수 있는 인간관계의 다양한 의미를 찾을 수 있

    다. 부모자녀관계를 시작으로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이해와 실천중심의 삶에

    대해 도덕 주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측면은 많다. 또한 남녀

    에 관한 차별적 성의식 이전에 인간이해를 먼저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부부 또는 부

    모자녀관계에 관한 인식의 차이를 되짚어 볼 수 있다. 그래서 동·서의 문화가 융합되면

    서 삶의 다양성이 요구되는 현대이지만, 양명 심학에서 가족관계 의미를 찾는 것은 스

    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주제어: 가족관계, 도덕성, 평등, 상호교감과 소통, 주체성

    Ⅰ. 들어가는 말

    과거 가족관계는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어서 남녀역할을 명확하게 구

    분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부장적이고 남녀 차별적 가족관계는 부부관계, 부모자녀

    관계를 경직되게 만들었고, 서로의 입장 차이에서 오는 이해관계가 일방적일 수밖

    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글은 양명 심학에서 강조하는 상호교감과 소통, 주체성

    과 자율성, 도덕성을 통해 오늘날 바른 가족관계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가족관계는 부부의 결합과 자녀 탄생의 과정을 거쳐 서로에 대한 각별한 관계와

  • 가족관계 통한 도덕 감성 함양 27

    존재를 인지하고 형성된 공동체다. 온전히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부부 또는 부모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선택과 실천에 달렸

    다. 개인의 사욕만을 채우기 위한 가족관계는 있을 수 없다. 가족 공동의 이익을

    위한 서로의 자각적 판단이 필요하며 스스로 주체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

    서로에 대한 보살핌과 위해주는 마음을 실천할 수 있을 때 가족에 대한 신뢰가 온

    전히 지속될 수 있다.1) 그리하여 부부 또는 부모자녀를 중심으로 좋은 관계를 형

    성하며 가족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되고, 삶의 만족감에 영향을 준다. 삶의 만족

    감은 가족관계와 사회 공동체라는 연결 구조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개인의 도덕 주

    체적 삶은 물론 사회 공동체에서도 긍정적 인간관계를 형성해 갈 수 있게 한다. 협

    력하는 가족관계가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다.2) 협력하는 가족관계에서 도덕적인

    어떤 행위를 지각하고 주체자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존재 가치를 서로가 인정해

    주는 것과 같다.3)

    따라서 가족관계는 양명 심학의 핵심인 도덕 주체적 인간에 대한 논의에서 설명

    되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지금까지 가정의 근간을 세우고 지켜온 남성 중심적 가족

    문화에서, 평등한 부부관계․부모자녀관계로 추구해 가야할 동아시아적 가족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부부의 평등한 남녀 관계와 부모 자

    녀와의 관계를 평등적 이해관계로 보는 것이다.4) 상호보완적이면서 평등한 가족관

    계5)를 말한다. 왕양명6)의 사상 속에서 그 방법과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거기에

    1) 김세정, "王陽明의 知行合一說 연구", 『동서철학연구』 제21권, 한국동서철학회, 2001, 111〜

    112 참고.

    2) 알프레드 아들러, 정명진 역, 『삶의 과학』, 부글, 2014, 4.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에서는 하나의

    온전한 단일체로서 개인을 말한다. 아들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안과 의사였다. 개인심

    리학의 창시자이면서, 프로이드와 융과 함께 세계 심리학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이다. 1902년부

    터 정신분석학 회원으로 9년간 활동했으나 프로이드와 견해 차이로 탈퇴했다. 이후 1912년 개인

    심리학회를 결성하여 자신만의 심리학적 세계를 개척하였고, 사회감정과 관련한 열등감, 신경증

    등의 연구 활동을 활발히 했다. 그는 심리학 이론뿐만 아니라 22개소의 아동병원을 운영하면서

    상담 및 강연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초빙교수와 롱아일랜드 대학 의대

    교수를 역임했다. 1937년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강연을 앞두고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하, 아들러로 약칭 기재함.)

    3) 김혜수, "양명학 윤리설의 기본형태 및 구조에 관한 고찰", 『양명학』 제44권, 8월, 한국양명학

    회, 2016, 10〜11 참고.

    4) 제인 넬슨·셰릴 어윈·로즐린 앤 더피, 조고은 역, 『긍정의 훈육』, 에듀니티, 2016, 11. 아들러는

    (아동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할 권리를 평등하게 가졌다고 믿었다.

  • 28 효학연구 제27호

    는 오늘날 평등적 가족관계로 해석할 만한 충분한 근거와 자녀 교육을 위한 선지

    적(先志的) 지혜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Ⅱ. 상호교감과 소통

    동아시아의 전통적 가족관계는 가족 내 위계를 분명하게 한다. 그로인한 장자문

    화, 남아선호사상 등은 남녀불평등 의식, 성차별 논란, 역할 인식의 문제, 가족관계

    갈등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가족 상호간의 교감과 소

    통은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양명 심학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을 통해 가족 구

    성원 각자의 이해는 물론 도덕적 균형을 바로 잡아갈 수 있는 상호 교감과 소통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효의식에서 비롯된 장자 문화는 장자가 부모 다음으로의 역할을 가지며 가

    정 내 질서와 화합을 다지는 주체적 역할을 가진다. 또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가

    족문화 승계와 재산 증여, 제사, 부모 부양 등 부모의 대를 잇는 것으로 가족관계

    를 위한 책임을 다한다.7) 부부관계보다 수직적 부자관계 중심의 문화를 형성해 온

    5) 아들러,『삶의 과학』, 225 참고. 아들러는 부부 관계는 서로 평등할 때 만족할 만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회적 본질을 이해하게 되면, 사랑과 결혼의 문제들은 오직 평등이라는

    바탕 위에서만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처럼 공평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한 파트너가 상대방을 존중하는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랑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사랑에도 온갖 종류가 다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올바른 경

    로를 밟고 또 결혼생활을 성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적절한 평등의 바탕이 있을 때 뿐이다.

    6) 왕수인(王守仁, 1472~1528). 양명(陽明)은 그의 호이다. 그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여요(余姚)에

    서 태어나서, 유년기부터 조부에게 전통학문을 배웠고, 이미 소년시절부터 자신의 시각으로 사물

    을 비판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귀주(貴州)로 귀향을 가서 심학(心學)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사상 중에서 주자와 대비되는 것은 양지(良知), 친민(親民), 격물치지(格物致知, 인식론) 등이다.

    왕양명의 학문은 양명학(陽明學), 심학(心學), 왕학(王學) 등으로 명명되며 본 연구에서는 이중 심

    학으로 쓴다. 본 연구에서 인용한 전습록은 왕양명, 정인재·한정길 역,『傳習錄』, 청계, 2007을

    저본으로 하였다.

    7) 전통사회에서의 가족생활에 대해선 최기숙, "구비설화에 나타난 노인 세대의 자식에 대한 기대 수

    준과 가족관", 『여성문학연구』 제28권, 한국여성문학학회, 2012, 379에 자세하다. 전통사회에서

    가족생활은 농경사회라는 경제적 구조, 효의식이라는 사회적 가치와 직계가족구조, 가부장제도,

    혈연주의 원리에 근거한 가족적 맥락에서 이루어졌으며, 부계혈연중심의 친족관계가 중시되고 부

    부관계보다 수직적 부자관계가 중심을 이루며 가족구성원의 연령, 출생순위, 성별에 의해 지위,

  • 가족관계 통한 도덕 감성 함양 29

    배경이기도 하다. 양명에 의하면 “형을 따르는 양지를 실현한 것은 곧 부모를 섬기

    는 양지를 실현한 것”8)으로 보았다. 형을 따르고 부모를 섬기는 일에서 자신의 참

    된 마음을 실천하고 가족 관계 질서를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즉, 남성 중

    심의 가족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남성 중심의 서열을 강조하는

    것은 당시 남성중심의 수직적 문화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여 진다. 나아가, 가족 내

    장자가 가진 역할의 의미는 사회적 위계질서로 확장해 가는 것으로 당연시 되어

    왔다. 양명에 의하면,

    “이것은 사람의 양지가 발현하여 가장 참되고 절실하며 돈독하고 두터움을 얻어

    서 어둡게 가려짐을 허용하지 않는 데 더 나아가 사람들을 일깨움으로써, 그들로 하

    여금 임금을 섬기고, 친구를 대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사물을 아끼는 것과 무릇 움직

    이고 고요하며 말하고 침묵하는 사이에서 모두 다만 자신의 저일념의 부모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진성측달한 양지를 실현하게 만든 것으로서, 곧 자연히 이 도가 아님이

    없습니다.”9)

    고 말했다. 이 말은 부모를 섬기고 형을 따라야 하는 이유가 양지(良知)의 실현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양지는 양명 심학에서 강조하고 있는 지행합일(知行合一)적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으며, 이는 마음과 행동의 일치를 뜻한다. 자식으로서 부모

    에게 향하는 순수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참된 앎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즉 가족관계 경험은 인간관계로 나아가는 시작점이며 양지의 실천 경험을 통해 그

    참된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10) 가족 간의 위계질서가 단순히 가족관계

    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이웃,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도 확장하게 된다는

    역할, 권리, 의무감이 주어지는 규범적, 의무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8) 왕양명, 정인재·한정길 역,『傳習錄』, 청계, 2007, 答聶文蔚, 594〜595.(※이하 이 책은 『傳習

    錄』으로 표기함.)

    9)『傳習錄』, 答聶文蔚, 597〜598. 양지는 단지 천리의 저절로 그러한 밝은 깨달음[天理自然明覺]

    이 발현하는 곳이며, 단지 진실하게 (다른 사람을) 측은히 여겨 아파하는 마음[眞誠側怛]이 바로

    그 본체이다....그러므로 임금을 섬기는 양지를 실현한 것은 곧 형을 따르는 양지를 실현한 것이

    며, 형을 따르는 양지를 실현한 것은 곧 부모를 섬기는 양지를 실현한 것입니다.(蓋良知只是一箇

    天理自然明覺發見處, 只是一箇眞誠惻怛, 便是他本體....故致得事君的良知, 便是致却從兄的良知, 致

    得從兄的良知, 便是致却事親的良知.)

    10) 김학주 역, 『傳習錄』, 명문당, 2005, 20 참고.

  • 30 효학연구 제27호

    의미다. 부모와 장자에 대한 섬김의 의미가 가족관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인간관계로 넓혀갈 수 있음을 말한다.11)

    그러나 장자들에서 유난히 다른 사람을 보호하거나 도우려는 성향이 돋보이는

    것 또한 윗사람으로서의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12) 이러한 장자 중

    심문화는 현대에 와서 남녀불평등과 가부장적 가족문화의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적 관점으로 가부장적 가족문화가 아닌 가족 구성원 모두 인격적으로 평등한

    가족관계 중심으로 보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양명이 강조하는 양지(良

    知)를 통해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이해와 가족 상호간의 관계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도덕을 실현할 수 있는 마음의 ‘양지’

    를 가지고 있으며, 그 ‘양지’는 항상 실재하는 보편적인 도덕법칙으로서...... ‘인(仁)

    에 따라 그 상황에 맞는 도덕준칙을 창조한 것이다.”13)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가족관계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기 위한 방법을 도덕적으로 창조해 갈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즉, 평등한 가족관계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양지를 실현함으로써 서로의 이해와 화합을 필요로 하는 오늘날의 가족관계를 만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양명은 남녀구별 이전에 인간이해를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양명의 인간

    이해는 “시비지심은 사려하지 않고도 알고, 배우지 않고도 능한 것으로 이른바 양

    지입니다. 양지가 사람 마음에 있는 것은 성인과 어리석은 자의 구분이 없으며, 천

    하 고금이 다 같습니다.....남을 자기와 같이 보고 나라를 한 집안처럼 보아서 천지

    만물을 한 몸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14)라고 하였다. 여기서 양명은 성인과 어리석

    은 자의 구분 없이 천하 고금이 다 같다고 말한다. 이것은 양명이 마음의 양지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누구나 타고난 보편적 본성인 양지가 있다고 봤을

    때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바라봐야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렇다면 양지를 실현함에 있어서 가깝게는 가족, 이웃이 될 수 있으며 성별구분 없

    11) 아들러, 신진철 역, 『가족이란 무엇인가』, 소울메이트, 2015, 209 참고.

    12) 김덕균, 『역주 고문효경』, 문사철, 2008, 120 참고.

    13) 김혜수, "양명학 윤리설의 기본형태 및 구조에 관한 고찰", 『양명학』제44호, 한국양명학회,

    2016, 18.

    14) 『傳習錄』, 答聶文蔚, 567〜568. “是非之心, 不慮而知, 不學而能, 所謂良知也. 良知之在人心, 無

    間於聖愚, 天下古今之所同也....視人猶己, 視國猶家, 而以天地萬物爲一體.”

  • 가족관계 통한 도덕 감성 함양 31

    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게 된다. 그 중심에는 양명 심학이 인간 상호간의

    교감과 소통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개인에 대한 이해는 물론 그 연장선에서 가족

    관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15) 그러므로 양명의 인간이해는 누구나 보편적으

    로 가지고 있는 양지를 도덕적으로 실현할 수 있으며, 부부관계․부모자녀관계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과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행합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남녀의 구별이 아닌 상호교감과 소통을 통한 동료

    애적 상호관계로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다.16)

    양명에 이어 명말청초 이탁오(李卓吾, 1527〜1602)에 이르러 좀 더 나아간 현

    대적 가족형태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양명의 평등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명

    말에 이르러 그는 송대 유자의 획일적인 세계관을 거부하며 여성 문제를 새롭게

    조명했다. 그는 인식론에 있어서 음양이 합치되어야 만물을 잉태할 수 있다고 보았

    다. 자연계의 모든 만물에 생기와 활력을 부여하는 원동력은 사랑이다. 그가 보기

    에 대자연에는 사랑이 충만해 있고 이런 감정은 자연이 계속해서 존속할 수 있는

    근본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생리적인 기능은 다르지만 언어와 문학을 배운 부녀

    자의 덕행으로 드러나게 된다고 보았다.17) 여성 또한 지적인 능력을 갖출 수 있으

    며 인간적 가치에 있어서 남성에 뒤처지지 않음을 잘 피력해 주고 있다. 여성이 가

    진 고유의 역할은 물론 잠재적 가능성까지도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여성에게도 차이를 기반으로 한 평등성이 고려되고, 추상적이기 보다 구체적 정체

    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18) 여성에 대한 평등성은 가부장적 가족 문화에

    서 평등한 가족관계 중심 문화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족 내에서의 경험과 감정은 무시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가

    족 관계나 가족애는 객관적인 사실로서나 혹은 이념에 의거하여 존재하기보다는

    15) 김덕균, "하곡 정제두의 가족윤리에 나타난 효사상", 『한국의 청소년문화』제11집, 한국청소년

    문화학회, 2008, 85~86 참고. 한국 양명 심학의 출발인 정제두 또한 양지와 지행합일을 통해

    가족 간의 상호 교감과 소통을 강조하기도 했다.

    16) 박연수,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한국학술정보(주), 2010, 152 참고.

    17) 김혜경, "이탁오의 인식세계", 『중국어문학지』 제10권, 6월, 중국어문학회, 2001, 142〜145

    참고.

    18) 김세서리아, "양성평등의 진정성을 간파했던 명말의 이탁오", 『선비문화』제17권, 남명학연구원,

    2010, 36〜37 참고.

  • 32 효학연구 제27호

    경험과 감정에 의거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19)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종속적 남녀관계보다 감정교류를 통한 동료애적 남녀관계로 보아야 하는 것

    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탁오의 여성관에 비추어 볼 때 양명 또한 모든 보

    편적 인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남녀평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릇 마음을 다 실현하고, 본성을 알며, 하늘을 아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행하는 성인의 일’이고,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며, 하늘을 섬기는 것

    은 배워서 알고 순응하여 행하는 현인의 일’이며, ‘일찍 죽고 오래 사는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몸을 닦아서 기다리는 것’은 애써서 알고 힘써 행하는 학자의

    일이다.”20)

    여기서 양명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실현하는 것이 오

    직 남성에게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누구나 배우고 실현한다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하고 있다. 나아가 하늘에 순응하고 행하여 마음을 닦아 기다리는 것을

    현인의 일과 학자의 일로 보았다. 굳이 인간이라는 범위를 제한하지 않은 것은 남

    녀 성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양명이 “인간을 자율적인 도덕인격

    을 소유한 존재”21)로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의 여성이 지식을 추구하고 사회적 입지를 다지려는 노력과 비교해 본다면

    타당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