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6장(315~484)11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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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통일의 주춧돌을! 1. 성경적 본체론적 신학의 추구 2. 기독교 신학의 본체론적 접근 3. 신현현(神現顯)의 지상원리(至上原理) 4. 예수 성령론 (Jesus Pneumatology) 5. 본체론에서 나오는 영성정치(괈性政治) 6. 본체론적 정경학(政經學) 7. 성경적 본체론의 실천 8. 성서에 나타난 흙과 토지 9. 토지와 연관된 성경적 세계관 10. 제 3의 정경학 - 삼본(三本)의 사상 11. 남북통일의 열쇠 - 지본(地本)주의와 공동체주의 12. 공동체적 정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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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1. 성경적 본체론적 신학의 추구2. 기독교 신학의 본체론적 접근3. 신현현(神現顯)의 지상원리(至上原理) 4. 예수 성령론 (Jesus Pneumatology)5. 본체론에서 나오는 성정치(괈性政治)6. 본체론적 정경학(政經學)7. 성경적 본체론의 실천8. 성서에 나타난 흙과 토지9. 토지와 연관된 성경적 세계관10. 제 3의 정경학 - 삼본(三本)의 사상11. 남북통일의 열쇠

- 지본(地本)주의와 공동체주의12. 공동체적 정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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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본체론을추구하는가

필자는 사상의 편력을 시작한 지 거의 반세기에 걸쳐서 실체성이 가진 진실성에 대하여 생각하여왔고, 인간의존재가언어로부터의자유를획득하여야함을실감하고있다. 그렇다고필자가언어의뇌과학적중요성을간과하는것은아니고그모든과학이성립되고도여전히언어이전의언어라는명제는더욱중요성을띄고존재할것이라고보는것이다.

본체론은 말하자면 인간의 인격적이고 구심적인 모든 정신활동에 대한 기반이 된다. 자기 존재에대한생각에서자기몸에대한인식보다더강하게일상적으로 향을끼치는것이어디있겠는가. 기독교가 타 종교와 다른 점은 모든 실체적인 것에 대하여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하나님께서 참된 실상(實狀)이시며, 그리스도도, 믿음을 가진 인간도, 모두 실상으로서 모든 참된것에반응하지않을수없는진실덩어리라는데그연유가있다.

인간의 헛된 관념적 논의나 이교(굋敎)적인 신비주의에 바탕을 두고 출발한 사상은 인간의 마음이나 혼에대한논의가지속될수록그논리가오리무중으로빠지게되나, 오직성경적인사상은 그렇지 아니하여 그리스도 예수 중심으로 바로 해석되었을 때 실체적이고 합리적인 모든인간적열매들을다포용할수있게되는것이다. 거기에는과학이나문화나사회적가치나모든경제, 정치적인가치까지포괄하는것이다.

그러나 이 다양·다기한 인간의 결실들을 실수 없이 다루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더진지해지고치열한대결의정신으로무장하고이시대에임해야한다. 그래서우리는거룩하신성자예수의보좌가안치될인본적사상의복잡한좌표들속에기준점을찾아내야하는데이는곧인격적본체론이며성자하나님의지상보좌대(寶座臺)로서인간으로나신전능자하나님을모시기에적절한처소인것이다.

필자가보기에는기독교의역사속에서본체론을추구한신앙의형태나신자들의무리가예외없이가장강력한믿음을보유하고그시대와그상황을이기고하나님의 광을드러내었다. 소위 체험신앙이라고 부르는 신앙형태도 이 부류에 들어가는데 사도, 속사도 및 초대교회 성도들은거의예외없이이러한본체론적인예수님과의직접적인관계를맺고있었던것이다. 우리가이 분단의 상황과 세계를 견인하는 민족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 본체론적 신앙으로 돌아가야하고또그신학작업과관련된학문의사상작업도병행해야한다.

3) 본체론을추구하는방법- 구심과원심

예수는우리의구심점이시다. 그에반대하여일어난모든세력은원심적이겠지만언제나주님은이런구심과원심의대결상황까지도온전히활용하여아버지하나님께 광을돌리신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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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 위에 통일의 주춧돌을!

1. 성경적 본체론적 신학의 추구2. 기독교신학의 본체론적 접근3. 신현현(神現顯)의 지상원리(至上原理) 4. 예수 성령론 (Jesus Pneumatology)5. 본체론에서 나오는 성정치(괈性政治)6. 본체론적 정경학(政經學)7. 성경적 본체론의 실천(實踐)8. 성서에 나타난 흙과 토지9. 토지와 연관된 성경적 세계관10. 제 3의 정경학 - 삼본(三本)의 사상11. 남북통일의 열쇠 - 지본(地本)주의와 공동체주의12. 공동체적 정치론

1. 성경적 본체론적 신학의 추구

1) 성격적본체론(Biblical Ontology)은무엇인가

원래본체론은희랍적인개념으로 ontology라는존재론과혼용되어쓰여온말이다. ‘onta-’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은 히브리적인 몸이라는 substance(실체)라는 개념과 맥은 통하나 같이사용하기는어렵다. 히브리인들은매우실체적인사상을발전시켰고우리구주이신예수그리스도의사상도자기몸이가진실체성에큰의미를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본체론이란 그리스도의 몸에 중심을 둔 사상이며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아버지를나타내시는성자하나님으로서몸으로이땅에오신것이다. 그러므로살을입는성육(成

肉, incarnation)보다 성체(成體)라는 용어가 실상은 더 어울릴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한다. 이본체라는개념은성경적으로인격(person)과분리하여생각할수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적인 본체론을 추구할 때 인격적 본체론이라고 지칭하여야 하며 하나님의신격을사람의인격이반 하는가장온전하신분이곧그리스도예수신것이다.

이런짧은한마디말들이다장황한설명을필요로하는것이겠으나여기서는다음기회로미루고그골조를설명하여다음단계의논의를계속하기로하자.

부제: 통일한국의사상적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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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독교신학의 본체론적 접근

1) 서序

묵시가없으면백성이방자하여진다(잠29:18). 이는지도자가묵시를받지못하는상태를특히지적하시는 말 이다. 인류 역사와 사회공동체는 너무나 거대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변화되리라는 믿음은 버려야 하는가. 역사와 공동체는 반드시 변화할 수 있다. 말 이 바로 주어지면 반드시변화가주어진다. “내 입에서나가는말도헛되이내게로돌아오지아니하고나의뜻을이루며나의명하여보낸일에형통하리라”(사55:11).그러나칸트의다음말에귀를기울일필요가있다. 바로현대의교회를위하여비판하는듯하

다. 많은기적신앙자는단지이론적으로는기적을믿지만실천적으로는믿지않는것이분명하다. 정부(교권자들도포함하여)도 매우신중하게공인된교의론아래서옛날에는기적이일어났으나새기적은일어날수없다는의견을채택하여왔다. 왜냐하면기적에의하여파괴될지도모른다고 하면 공인된 질서와 안전은 도대체 어찌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다수의 신학자는 기적은 예수의 시대처럼 지금은 존재하지 않으나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특이한 경우에 하나님에의하여나타나는작은기적은존재한다고말하여논리적모순을모면하려고노력하고있다.현대의타락의원인은하나님의됨되심(본체)과나타나심(현현)에대한감각과개념을모두상

실했기때문이다. 이것을되찾기위해신학은새옷을입어야한다.

2) 기독교신학의방법론으로서본체론의정의

(1) 본체론 사상의 역사적 고찰

본체론(Ontology)이라는용어는존재론또는실체론이라고도불리는데‘Onta’존재하는것이라는단어와‘Logos’논리라는단어의합성어다. 17세기의스콜라주의자들이만들었으며고클레니우스(Rudolf Goclenius)가 최초로 사용했다고 본다. 이같은 철학적 존재론 또는 본체론은서양철학에서는아리스토텔레스가정의한 (모든존재자의마지막원인으로서의) ‘존재자자체를탐구하는 제1철학 또는 형이상학’이라고 규정하며 따라서 원한 어떤 실체 즉 신을 문제 삼는것이 본체론 철학의 궁극적 과제가 되었다. 특히 그리스로부터 중세를 거쳐 칸트에 이르기까지본체론은철학의중심문제가되어왔다. 특히 기독교호교론(護敎걩)의 입장에서철학적방법을수용하 을때존재론은중세기독교사상의가장주요한맥락을이루게되었다.그러나 인식론의 발전과 더불어 특히 칸트 이후 인간의 인식차원에서 벗어난 존재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는철학이체계적으로정리되자, 18세기의감정적무신론에서한걸음더나아가 합리적 논리에 근거를 두고 존재자 자체에 대한 사유까지도 무의미한 것으로 재평가하게 되었을뿐아니라당연한결과로인간자신의 정체성에대한파악도단지실존적인차원에머무르도록제한하게되었다. 그리고이러한인식론의주관적한계로말미암아실존철학의특성은개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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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이땅에오신그리스도의지혜이며공중의권세잡은자들을잠잠케하시는, 폭풍을잠재우는권능이신것이다. 또한이런권세가또한예수의사람들에게양도되어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존재론적인 통합(統合)적 사상과 인식론적인 분해(分解)적 사상이 이 모든 파노라마를 연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격성을 취하시고 그 유한적인 한계를 가진 인격성 속에서 절대적 신성을 나타내신 무한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아마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중에불 던그리스도의찬가를통해서이런심오한사상을녹여쉽게이해했을것이다. 죽음앞에서주어지시는그리스도의최상의은혜로말미암아얻게된신적진실인것이다.

지금 그리스도의 지상교회는 이 땅의 것을 주님께 점령해 드리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원심과구심의 균형 속에서 예수님께서 이 역사를 운행하시면서 어떤 지혜로 인간과 사탄의 모든 결실까지도남김없이아버지의 광을위해드리고있는가우리는깨달아야한다.

본체론은구심의정점이요하나님의현현하심을굳게붙들게하는든든한사상적손잡이가된다. 필자는깊은기도중에이지혜를얻고이길을선택하 으며많은후학들이이길을따라세상의것을통합하여하나님께드리는이작업을지속하도록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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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을열어놓고있는것이다.성서적인또는복음적인의미에서궁극의존재자는인격(Person)이시다. 따라서유다-크리스

천의역사적계시체계안에서학습되어온인격적신(神)존재에대한이해와반응은희랍의이성적 논리체계 안에서 사유되어진 이데아(idea)적인 존재나 동방이교(굋敎)의 신비주의에 근원을둔 범신론적인 존재에 대한 개념들과는 다르다. 그런데 기독교의 인격적 하나님은 원, 불변,전지, 전능의 절대적 속성을 지니신 무한자(無限者)이시지만 인간들의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이고, 상호적이고, 인격적인교제를통하여만나주신다. 이것이기독교에만있는참신비요,비 이다. 즉 현대든지 고대의 아브라함 때든지 시대를 불문하고 동일한 인격적 만남의 방식을취하시는것이다. 이것이야말로하나님의 이열어주시는신인(神人)간의교제(Koinonia)이며히브리적인신인식(神認識) - 곧 YADA -이이루어지는것이다.이러한하나님께대한참된인식은형제들에대한, 또는이웃에대한참된인식을유도하며이

렇게 희랍적 인식론을 극복한 본체론으로서 히브리적인 관계론적 본체론(상호교제로 말미암아성립되는 공동체론)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며 생동적인 본체론이 된다. 관계론적 본체론이야말로 성서적 본체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하여 주며 자칫 정태적이 되기 쉬운 성이해(괈性굊解)를다이나믹하게만들어주는것이다.이것은 이전의 많은 신학이 그러했듯이 방어적이고 호교론적인 입장에서 시작하여 시대가 흐

름에따라언어적표현에집착하게되어 급기야는복음적생명력을잃게되는신학이아니라오히려적극적으로세상을복음으로점령하기위해능력있는교회공동체들을키워내고새시대가닥칠때마다성서적원칙으로지도해나갈수있는새로운학문과새로운문화의틀을짜내는신학이될것이다. 왜냐하면하나님의권능이세상으로흐를수있는통로를확고히해주는히브리적인논리구조를가지고부단히하나님께인간들의시선을집중시켜줄것이기때문이다.그러면기독교신학의방법론으로서본체론이취하여야할특별한위상이란어떠해야할것인

가. 계시역사에 무관심한 비복음적 기독교 사상들은 보편포괄자이시며 초월자인 하나님은 대체로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심정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참된 성서적 본체론은 바로 신현현상(神顯現象)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성서의 하나님께서는 편재하시는 보편포괄자이며전능하신초월자이실뿐아니라자신을겸손히피조계속에나타내시는현현자이시므로 인간들의 예배의 대상이 되신다. 이것이 기독교 본체론의 근간 개념이다. 즉 보편포괄자,초월자, 현현자의 세 모습이 어울릴 때 성서 속의 하나님을 균형 있게 표현한다고 본다. 여기에서신현(神顯)의개념이야말로기존의비성서적본체론들과는가장충돌하는부분이며기독교의본체론이 참된 성서적 신학으로 성립하게 하는 관건이 된다. 그리고 신현현이야말로 기독교의생명적부분이다. 교회와신자의신본적 성은오직하나님의이니셔티브에의해서만유지되기때문이다.

3) 성서에서본본체론적신학의근거

성서에 나타난 많은 증거는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성도들에게 교육하신 것이며 신·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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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경향을 강하게 내포하게 되었고 이는 다시 인본적 태도와 결합하여 성서적 절대자의 개념을수용할수없는방향으로발전해나갔다고볼수있다.존재론적인사상은이후하이데거나야스퍼스등에의하여특이하게발전하지만그이전에후

설이 매우 중요한 논리적 발전을 이룩하 다고 본다. 그는 존재자의 일정한 역에서의 논리적본질을연구하는 역적존재론을발전시키고이러한현상학적인연구로부터다수(多겤)의주관(主觀)의 상호적 또는 공동적인 문제에까지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간주관(間主觀)(Intersubjectivity)의 이론으로서인간의공동적삶에대하여논리적으로접근할수있는실마리를제시하여준다고본다.앞으로도 존재론적인 사상은 여러 모로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광을 실제

적무신론이팽배한이시대에지키기위하여성서의신본위적인사상들을해석하고조직화하려면성서특유의존재론적사상을발굴하고발전시켜나가야한다고본다. 우선이러한견지에서성서적근거를논의하기전에기독교적 본체론의포괄적가능성을우선살펴보고자한다.

(2) 신본적 성회복을 위한 성서적 본체론의 가능성

‘중요한점은모든인간이모든존재의원인이자근거가되는하나의존재에

의존하고있다고느끼는점이다. - 이러한의존감은확신의면에서가장잘

확립된자연과학적인사실과동등한하나의사실인것이다.

그것은참으로경험적이며, 보편적으로인간적이고, 직접적인어떤것으로서, 자아의식의핵

심이며세계와신모두의존재를포함하고있다.’(p74-75, 계시철학)

이것은헤르만바빙크의본체론적인신앙의고백이다. 이근원적인의존감이야말로인간이하나님을만나는것일뿐아니라원래소속되어있다는것을말하는것이며지극히실재적인관계를묘사하고있는것이다. 성서적인본체론적신학은 바로이러한평범한신앙인의평범한현실감위에서배태된다.기독교의 본체론은 중세신학과 철학에서 대표적으로 발견되며 주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와 신플라톤주의의 향 아래 호교적 목적을 위하여 발전하 다. 또한 13세기의 위대한 종합의단계에서보나벤투라, 토마스아퀴나스, 둔스스코투스에의하여그꽃을피웠다고본다. 그러나본체론적 논리를 기피했다고 평가되는 아우구스티누스뿐 아니라 본체론적 체계를 상당히 견지했다고평가되는보나벤투라에있어서도희랍적인본체론은논리적으로자기완결적이기때문에성적인 측면 - 즉 죄와 은혜와 구속의 측면 - 을 다루기 어렵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을

위한여지만아니라그리스도를위한여지도없다고보았다. 그러나 (구속되지않은) 인간정신도하나님의 본질을 보되 창조의 범형으로 본다는 견해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본체론적인 견해가성서적 계시의 틀 안에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성령론의 체계적이해가가능하여진현대로들어오면서 (구속된) 인간의 혼이성령님안에서하나님의본질을알수있고그리스도의몸을이루기까지한다는확고한인식아래성서적인본체론의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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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살아계시니후일에그가땅위에서실것이라. 나의이가죽이것이썩은후에내가육체밖에서하나님을보리라”한구약신앙고백의절정(絶頂)이모든지역의참으로신실한자들이나기생라합처럼의로돌이키는모든성도들사이에뿌리박을수있게한신실한증거가된것이다.

②신적명칭의교시 : 출 3:14 전반“나는스스로있는자니라(I am that I am)”비교, 요 8:53 “아브라함이나기전부터내가있느니라(I am)”

14절후반인“스스로있는자가나를너희에게보내셨다”라는구절을‘나는있노라(I am)께서’또는‘나는있을것이다(I will be)께서’‘나를너희에게보냈다’고읽어보면좀더신의(神意)에가까운해석이나올수있다고본다. 모세가하나님의명칭곧그의존재의본질에대하여질문할때하나님께서는자신의주권을나타내고인간의신앙적응답을요구하는방식으로대답하신것이다. 그러므로 YHWH의해석을미래적인주권의지를담아서‘I will be that I will be’로볼수도있고만일시공(時空)의 한계를떠난‘I cause to be what I cause to be’(나는 내가있게하는것을있게한다)라고말할수도있다. ‘결국나는내가내자신을드러내는대로의존재이다.너희는나의미래의말과행위속에서내가누구이며, 누구일것이며, 어떻게하나님이기를의도하는가를 알 것이다. 미래를 몰라 두려워하는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나를 경외하도록 미래라는말을쓰기는하지만나는알파와오메가로써말 과뜻함과나를나타내는대로의나다.’그런데 이와 동일한‘나는 있노라’(ego eimi)의 형식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본체적 표현을

하신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도록(골 2:9) 자신을 나타내시고‘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3)고 자신의 성자적聖子的 신성(神性)을 나타내셨을 때 인간들은 돌을 들어 치려 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불신(不信)으로 응답한 것이다. 문제는돌을들어치려한유태인들이예수님의행하신일을보고믿음을가지기시작한사람들(요 8:31)이었다는데있다. 예수님이전능자하나님자신이심을믿는믿음은바로우리의참아버지가누구신지, 우리의뿌리가누구인지, 누가우리를낳은분이누구인지를가름하는판가름이다.

③신현현과율법반포 : 출 19:20 “여호와께서시내산곧그산꼭대기에강림하시고그리로모세를부르시니모세가올라가매”

율법을 반포하시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시내산에 현현하셨을 때 원래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 다. 즉 하나님을 이스라엘 자손이 알현하는 것이며 광야교회의 성원은 빠짐없이자기를사흘간성결케하고자신들의목전에서강림하실하나님을기다렸다. 이는모세가애굽으로 보냄 받았을 때‘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12)고 하시며, 미리 증거를주시며믿으라는것이아니라, 다 이룬후에알게되리라는후치증거(後置證據)를주신것이다. 하나님께서는자신의나타나심외에다른증거를우리믿음의근거로주지아니하신다. 바로에게모세가제시한민족해방의이유도가나안땅으로가겠다는것보다실은‘하나님을예배하기위하여’라는것이었고하나님이이스라엘을해방시킨목적도자신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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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언약의모든내용은곧하나님자신의됨되심이그대로반 된것에지나지않는다. 하나님본체의 나타나심으로 오신 나사렛 예수를 교회는 정경(正經)(Canon)의 정경으로 인정하지만 기록된성서도정경으로써곧인간이이해하도록하나님께서스스로나타내신신실한증거의하나다.하나님의나타나심은진실하시다. 그의나타나심앞에인간도사특함을회개하고신적진실로

돌이킨다. 본체론은 신적 진실 앞에 인간의 진실이 응답하고 깨어지고 구속의 역사를 받아들이게하는것이다. 초대교회의성도들은사도행전에서보듯이하나님과동행하며본체론적으로사고했다. 종교개혁자들의 표어도‘하나님 앞에, 즉 코람데오(Coram Deo)’ 다. 곧 본체론적 사고의 회복을 말함이다. 본체론적 사고방식의 부활은 반드시 신앙의 부흥과 교회의 공동체적성의회복을가져올것이다.

(1) 구약에서 본 본체론적 신학의 근거

여기에서는 구약에서 본체론적 근거가 되는 중심 성구를 선택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피조계 속에 자신을 나타낸 겸손하신 하나님(시 113:5)이시지만 원래는 나타나기를즐겨하지아니하시며(신 29:29, 사 45:15,잠 25:2) 성신으로말미암아(시 139:7) 천지에충만하시지만(렘 23:24) 선택된 소수의인간들과언약하시고(출 6:7) 지극히높이거하시지만(사 33:5) 가장 낮아진 겸손한 통회자와 함께 거하시고(사 57:15) 오직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살피고 나타나서 인도하시는(출 3:7~8) 분이시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이러한 묘사들과 함께하나님의 피조계에 대한 구속의지가 가장 명확하게 표현된 부분이 있다면 아래 열거된 하나님의나타나심에대한대표적성구들이다.

①인격적신성의표현 : 출 33:14 “여호와께서가라사대내가친히가리라. 내가너로편케하리라”

그런데구약에서는하나님의직접적인대인간접촉이나오지않는다고본다. 사도바울도율법이천사의손을통해주어졌다는기술을통해이같은견해를밝히고있는것이다. 매튜헨리에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말한바(사 63:9) ‘자기 앞의 사자(使者)’곧 면전(面前)의 천사(TheAngel of His face)를 통하여자기백성을위하여나타나셨다. 본문의‘내가친히(in person)가리라’도‘My presence shall go with you’라고 역되고 그 뒤를 이어 모세도‘If Yourpresence does not go’라고하여임재의천사(The Angel of Presence)가전권대리자로서가나안 정벌에 동행할 것을 나타내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그(전권대리자)에게 내 이름이 있으므로(for ‘My’name is in ‘Him’) 그가 너희의 허물을 사하지 아니하리라(‘He’will not forgiveyour transgressions)(출 23:21) 하셨다.이러한 구절들은 임재 또는 면전의 천사로 나타나신 성자(聖子)께서 인격적으로 선재(先在)하

여 계셨고 성부의 광을 위하여 주권적으로 활동하셨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충분하다. 이러한하나님의인격적행적(궋蹟)이야말로욥기 19장 24~25절에서“내가알기에는나의구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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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시각을 살릴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는 작업을 하여야 할 것이다. 본체론적 신학은 하나님 자신에 대하여 서술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삶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신학 방법이므로 이러한문제점들에대한해결책이된다고본다.

①휘포스타시스(본체또는본질)와관련된성구들 :

휘포스타시스는 본체 또는 본질을 나타내는 단어로 어원적으로는 건물의 기초를 뜻하기도 하고 파피리에서 부동산 권리증서라는 용례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 용어는 히브리서를 중심으로하여독특한사상성을표명하기위하여쓰이는데곧건물의기초든지재산이든지증서처럼일상의표면적생활을가능하게하는확고한기반이되는실체로이해하면될것이다.히브리서 1장 1~4절은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와의 기독론 논쟁에서 중심성구로 사용한 구

절들이며하나님의교회를그리스도의양성론위에튼튼히세우는데크게기여한역사가있다.히브리서 1장 3절에“이는하나님의 광의광채시요그본체의형상이시라”는말 에서본체란하나님의존재또는본질을의미하는것이며형상은새긴흔적또는복사된사람을뜻한다고볼수있다. 또 광은하나님의본체적 광을뜻하며광채는헬라교부들의견해로는발광체로부터나오는빛을의미하므로요한복음 1장 1~18절의로고스의개념과대비된다.히브리서 3장 14절의“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에서‘확실한

것’은‘휘포스타세오스’로서확신과같은뜻으로쓰 는데이것은히브리서 11장 1절의‘믿음은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표현에서 실상(實狀)은 역시‘휘포스타시스’로 확실한 보증이라는의미로 쓰 다. 그러나 이 단어의 심층적 의미는 확실한 보증으로서 성도들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본체라고볼수있는데성도의확신은실로스스로지어먹은마음이아니라성령님께서성도들(교회) 안에공동체적으로임재하신결과인것이다.

②하나님의모르페(본체)와종의모르페(형체) :

빌립보서 2장 6~7절은“그는근본하나님의본체시나...종의 형체를가져...사람들과같이되었고”에서하나님의윤리적이고인격적개념이객관화된표현에마주친다. 모르페라고기록했을때는 철학적으로‘이데아’나‘스케마’와 동의어이기는 하지만 객관적 실체를 지닌 존재의 형태를의미하며지력에의해서가아니라감각에의하여인지되는것을강조하는것이다.따라서모르페는형상을표현하며본질적인속성까지의미한다. 말하자면하나님의모르페(본

체)라는말속에바울은예수님의신성(神性)을 분명히말하고있다. ‘종의모르페’는분명히인성(人性)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은 변형(메타-모르포오)이라는 동일 어원의 단어를사용하여인간의모르페에서하나님의모르페로변형하신것을기록한것이다.

③세계관, 역사관과관련될수있는본체론적표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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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케하시고자한것이었다. 예배는곧하나님을만나뵙는것이다. 그리고그속에하나님의말의반포가있다. 언제나가장절대적가치는하나님자신의나타나심에두고계신것이다.

④여호와의성호반포 : 출 34:5 “여호와께서구름가운데강림하사그와함께 거기서서여호와의이름을반포하실새”

여호와의 성호(聖號)를 반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함일까. 여호와의 이름을 알리는 목적은 아닌듯한 것이 원래 인간이 여호와의 이름을 처음 부른 것은 아담의 손자인 에노스 때부터(창4:26) 으며모세당시의이방선지자인발람도여호와내하나님으로언급하고(민 22:18) 있기때문이다. 또한 이미 밝혀진(출3:14) 이름의 의미를 다시 밝히자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을 반포(Proclaim)하신 행사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곧 성호의 반포는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반포하신 것이다. 곧 여호와의 모든 선한 형상(출 33:19)과 광(출33:22)과 그의은혜로우심(출 34:6~7)을 성호의반포속에포함시키신것이다. 이름에대한고대 셈족 계통의 관념과도 합치되는 해석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본체를 현현하시는 신적 행위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신현현 후에 얼굴에 보자기를 쓰고 다녔다. 얼굴 꺼풀에서 신의 광채가비추었기때문이다. 이것은인간에게유한적이기는하나신적형상에대한감수성또는수용능력이있다는것이다. 육체안에서하나님을뵈온것은욥이육체밖에서하나님을뵙기를희구했던 것(욥 19:25~26)같은 고대의 성도들이 지녔던 기대보다 하나님께서 더 가까이 오신 증거이며그의이니셔티브인것이다.

구약에서신적본체의현현은출애굽의역사속에압권으로나타난다. 그것은율법과계명에신성한정통성을부여하고하나님예배에대한전인적이고공동체적인교육에대한부차적인목적이있지만주목적은어디까지나하나님께서피조계에나타나시고자하는데있다. 신현현은인간의 믿음을 고양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전개의 방법은 인간의 고양된 믿음만 아니라 인간의어떠한능력에도맡기지않는다는원칙이확고하다. 그래서주의모든종은모세처럼나는무능하다할때까지하나님의훈련을받는것이다. 하나님은타락한피조계의역사속에스스로움직일 수 있는 법칙을 주셨지만 완전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초월의 위치에서현현하시는위치로내려오신다. 이것이율법과선지자의역사다.

(2) 신약에서 본 본체론적 신학의 근거

여기에서는신약에나타난기독교신학의본체론적근거를살펴보고자한다. 신약의본체론적증거들은하나님의본성에대한더욱심화된서술속에풍부하게발견된다. 하나님자신에대한표현을몇가지관점을중심으로하여체계적으로정리하면지금까지와같은평면적인항목별논의를뛰어넘는입체적인유기적논리구조를볼수있게되리라생각한다. 그리고신학(특히신본적 신학)이 단순히 닫혀진 학문으로 여겨지는 현실을 타개하려면 현실의 삶과 하나님의 현재하심을강하게결부시켜야할뿐아니라사회의구조적인문제들까지도접근할수있도록성서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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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요한과바울의일치되는본체론적사고방식 :

성서에서생명이라고하면일반적으로‘살게하는힘’정도로생각하기쉽다.이런개념은근대이후의합리적교육과희랍적인사고방식에서많이유래된것으로성서에도

분석적개념을통하여설명된부분이많으나신앙이성숙해갈수록결국본체론적사고방식으로신자신(神自身)에 대한 직관적이고 인격적인 이해로 나아가지 않으면 성서의 이해도(굊解度)를더해갈수없는한계에도달하게된다.이같은 실례로 사도요한과 사도바울이 서로 성장과 교육배경이 다른데도 생명에 대하여 일치

하게다룬부분을보자. 요한이사용한생명의말 이라는표현속에생명은 생을뜻하는것이다(요일 1:1). ‘죄인들에게주어지는 생은어떤추상적인것도아니며 적인힘이나능력을가리키는것도아니고예수그리스도라는인격체를가리키는말이다’(K.S.위스트). 사도요한은이생명이 성부 하나님과‘함께’(프로스, 즉‘대면하여’또는‘교제하며’를 의미) 있었다고 했는데교제는인격을필요로하며따라서성도들의 생이신그분은예수그리스도라는인격체시다. 바울은‘우리생명이신그리스도’라고부름으로써생명의인격체이심을잘드러낸다(골 3:4). 초대교회성도들의사고방식은매우본체론적이어서 적실체또는신적임재를떠난언어의관념적유희가극히적었다고볼수있다. 이것이그들의능력의비결이었다고볼수있을것이다.

⑤예수님자신의사고방식표현에서오는본체론적증거 :

“나는길이요진리요생명이라”또“나는부활이요생명이라”고하신예수님의사고방식은참으로 본체론적이다. 아버지의 말 이 없이 그는 말 하지 않으셨다. 열두 살 때도 그는 성전을아버지의집으로규정하는내적확신이충만하 음을알수있다. 성부하나님을떠나서성전을생각할수없는상태, 그것이바로현대의교회에도절대적으로필요한 성이다.예수님께서“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은 구약 선지자들의“여호와께

서 말 하시되”라는 표현과 근본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선지자들은 대언자로서 말했지만 예수님은메시아의명백한의식을가지고하나님의말 을하신것이다. 한국적어감을살리면‘분명히, 분명히,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매우 강력하고 권세있는 성자적(聖子的) 권위로 말 하고있는것이다. 또한 앞에서언급했지만“아브라함이나기전부터내가있느니라”는말 은아무도부인할수없는본체론적자기표현이시다.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 중에 둘러싸여 계실 때“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에서‘안에’(엔토스)가 원어상 amongst (-들가운데)라는표현이라고볼수있다면이것은 즉“하나님 나라는 바로 너희들 가운데 있다”(공동번역)로 번역되어야 한다. ‘가운데’즉amongst라는 뜻은 하나님 나라가 거기 있는 여러 개인들 가운데 한 개인이라는 뜻이며 이는(도저히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는) 외식적인 바리새인들 중에 서 계신 한 분 곧 예수님 자신을지시하신말 으로보아야한다. 말하자면예수님그분이곧하나님나라다. 이것은초대교부들중오리겐도예수님을왕국그자체라고부른데서본체론의사상적정통성을확인할수있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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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적 본체론에는 하나님과 피조계의 관계들이 명확하며 이들을 성서적 세계관 및 역사관을구성하는데사용할수있다고본다. 히브리서 8장 5절에는“저희가섬기는것은하늘에있는것의모형과 그림자라”고 하여‘참하늘’(히 9:24)에 있는 온전한성전과 온전한 제사의존재와 땅에둔‘희미한모습’(Moffatt)의 모형과그림자의존재를대비하고있다. 그러나이것이하늘은실체이고땅이그림자라는의미는아니다.이러한 희미한 모형적 일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문에서“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신 대로 피조계 속에 성취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하늘보다높이되시고(히 7:26) 이창조에속하지아니한(히 9:11) 참하늘에들어가사우리를위하여하나님앞에나타나셨다(히 9:24). 이같이그가모든하늘위, 즉 참하늘에오른이유는만물을충만케하려하심이다(엡4:10).만물은 (땅과하늘을다포함하여) 주(성부)에게서나오고주(성자)로말미암고주(성자)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롬 11:36). 이 구절에 대하여 로버트슨(A.T.Robertson) 등은‘엑스 아우투,디 아우투, 에이스 아우톤’을 논하면서 바울이 엑스라는 전치사를 성부께만 사용했고 엔, 디아,에이스의 전치사는 그리스도께 대하여만 사용했다고 밝힌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자께로 돌아가는과정은그가세상끝에(히 9:26) 나타나심으로시작된다. 그러나인간역사에서보면이는시간이걸리는과정이다. 곧 성부께서“만물로저(성자)에게복종케하셨은즉복종치않은것이하나도없으나지금우리가만물이아직저(성자)에게복종한것을보지못하고”있다(히 2:8).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셔서”(계 11:5)“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하실 것이다”(고전 15:25). 그러므로 성부께서만물을 성자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성자도 성부께 복종케 되는데 이는 성부 하나님께서 만유의주로서만유안에계시려하시기때문이다(고전 15:28).성부하나님께서만유위에계시고만유를통일하시고만유가운데계시도다(엡 4:6)라는말

은만유(즉모든피조계) 위에계시므로만유가운데충만히계시는하나님의존재양태를잘드러낸다. 이는성자께서모든하늘위(즉만유위의참하늘)에오른이유가만물을충만케하려하심이라는그리스도적신비와통한다. 만물을충만케하시는일은이미이룬일이므로“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11)고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이미 만물(즉 만유, 판타) 위에계셔서교회의머리로주어졌고교회는만물안에서만물을충만케하시는그리스도의충만이 된 것이다(엡 1:23). 그래서 교회는 성자의 몸으로서 만유 안에서 성자께서 이미 충만케하신대로충만케하는사역을이루어나간다.‘만유안에계신’성부(엡 4:26)와‘만유안에계시려하는’성부(고전 15:28)의일견언어적으로모순되는하나님의존재양태는, I am 과 I will be 와 I cause to be 와 I create 의 어느것으로도해석할수있는존재양태즉언어적으로단순표현이불가한신적본체의전능성과역동성의모순적표현이다. 이는역사속의하나님께서이사야를통하여말 하신바“이일들은내가태초부터 행한(did) 바요 상고(上古)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have brought it topass)...”(사 37:26)하신말 속에나타난사상과연관이있다. 태초라는언어의해석은본체론적인신론의이해를통해서만가능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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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의본질에서나온결과이기때문이다.삼위의하나님은세인격(삼위)의하나이시고서로인격적으로사랑할수있는세형태의신적

본체이시다. 그런데 기존의 삼위에 대한 논의에서 한 가지 더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곧 각자가완전성을지니고있으면서합하여하나를이룬다는다분히대수적(代겤的)인 개념이다. 이개념은세분이하나를이루신그‘일치적관계’곧그관계자체가세분이지니신각자의완전성의본질이라는점을보완하여주어야한다는것이다. ‘만일각기떨어져세몸을이루시면’이라는의문이생긴다면그런질문은성서적본체론과양립할수없다.삼위일체론에서두번째다룰점은삼위간의사랑은각위(各位)가타위(他位)를사랑하기도하지

만이같은개별적사랑의관계에더하여더중요한‘복수(겖겤)의위격位格들이단수(單겤)의위격을사랑하는최소(最少)의다중구조(多重構造)’라는것이다. 이위(二位)가나머지일위(一位)를사랑한다고쓰지않은이유는이원리가인간에게공동체적삶의모본으로삼위일체속에보여주셨기때문에세사람이상의모든공동체에도적용되는원리로서제시하고싶기때문이다. 이신적모본(模本)은인간들이소아小我에서대아(大我)로대아에서그리스도적전아(全我)로나아가게한다.삼위하나님께서도이러한원리를역사속에나타내셨는데성자의출생은성부와성령의합력

으로 이루어졌고 성령의 오순절 강림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Procession)하신 것이며 부활의사건속에성자께서는성결의 (예수개인의 이지만성령을지칭한다고봄, 성령께서이때부터예수의 (행 16:7)으로자처하시고스스로예수개인의이름으로제한받으심을기뻐하심)으로더불어승리하신것이다. 이런증거들은바로이위가합하여나머지일위를사랑하는예증들이다.

② 신의 속성 :

신의 속성은 교제적인(Communicable) 다양한 신성이 절대자적 신격 속에 어떻게 결합되어인간들이신과의교제를통하여그의신성에참여할수있는가하는점이깊이있게다루어져야할것이며이는어느정도성령론의 역이기도하다.사랑-희락…온유-절제등의신적성품은완덕적인격(예수님)에서결합될때만온전하여진

다. 온전한 사랑은 온전한 온유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고 온전한 절제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온전한절제는온전한사랑없이이루어졌다고볼수없다. 완덕이란이런산정(山頂)과 같은위상에있다. 사랑의덕성의정점에서다른덕성들의절정이발견된다. 이러한조화가가능한것은하나님은 원한생명이시기때문에가능하다. 그러므로신의속성은그존재양태와구조속에재발견해야한다. 이것은신론과인간론의접속을위하여도필요한신학작업이다. 사실전인교육(全人敎育)을 하려면 완덕인(完德人)이 있은 후에야 되는 것인데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공동생활하면서 인격의 상호교감(相互交感)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자 하나님은 곧 성도들에게이런역할을해주시는모든신성의충만이시다.

③ 신의 사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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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서 산상수훈의 대표적 명제인“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 도 예수님께서 자신에대한 메시아적이고 성자적인 본체성을 의식하며 말 하셨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심각히 고려해보아야하는것이다. 즉 바꾸어말하면예수님(나라)과 그의됨되심(의)을 찾으라는말 으로보아야한다는것이다.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

함이요”(요 16:10)라는 구절에서 예수님 자신이 곧 의(義) 자체가 되신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고 본다. ‘나는 길이라’는 표현은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이것은 적인 실체성이 있는길을의식하면서말 하신성자하나님의자기표현이시다. 진리의인본적인왜곡은대부분말의우회적해석방법에서연유하며성도들이직접말 에사로잡히고깨어지는하나님의역사를체험하지못하도록막는것이다.

4) 본체론적신학의논리적구조

“만물이주(성부)에게서나오고주(성자)로말미암고주(성자)에게로돌아감이라”(롬 11:36)는말에서보듯이성서적본체론은구조상자기완결적이다. 하나님의현현하심이어떻게진전되느냐

가성서적본체론의관심사가된다. 신현현없이신본체에접할수없기때문이다. 그래서성서적본체론(Biblical Ontology)의논리적체계는신론에서시작하여창조사적인간(류)론을다루고마지막으로 구속사적 인자론(人子걩)을 다루게 된다. 이런 체계를 제시하는 이유는 현대 기독교의개인주의적이고주지주의적인분위기를극복하고이시대의패역함을이기기위해서는성서적공동체의원리와 성적원리들을삶에적용할수있는신학의방법이필요하기때문이다.일반적으로신학의구조는신론-인간론-기독론-구원론-교회론-종말론(루이스뻘)의순서로

다루는데본체론신학의방법론은기독론-구원론-교회론-종말론을한데묶어하나님이자신을현시하시는과정으로보며이때개별주제들의논리적결합은성령론(Pneumatology)과신현현의원리(Principle of Theophany)로가능하다고본다.

(1) 신론 :

우선 신론의 주 맥락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의 나타나신 본질과 속성과 사역에 대하여다루어야하겠지만기존의신학이다루는항목들을유기적이고입체적인관점에서다루어야할것이다.

① 신의 본질 :

신적 본질에서 하나님께서 순결하신 이심과 인격적이심과 무한한 완전자 되심과 완전성의단일함 등을 성실하게 모두 다루어야 하겠지만 이 모든 것이 오히려 삼위일체론의 견지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탐구해 보아야 하리라 본다. 왜냐하면 삼위일체의 구조야말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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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성은성령론이아니면설명하기어렵다. 또한 하나님의경륜(Dispensation)을 신현현의발전적 양상이라고 정의할 때 신적 경륜의 변화는 성령님의 사역 변화로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이때의경륜은물론기존의경륜신학을수용하는것은아니고경륜신학의일반논리를다시정립시키는작업이필요하다고본다.특히 경륜신학은 재림문제만이 아니라 시대적인 사회특성들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해석해 줄

수있는성숙성을갖추어야할것이다. 이것은성령님의사역에대하여잘이해하므로가능하다고본다. 성령님께서는이현대의후기산업사회에서도성도들을예수님의공동체안에하나되게 하시기 위하여 보내심을 입은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창조역사와 구속역사를 꼭 같이 마무리하기위하여책임지시는역사의후견인이시다.성령님께서는 현실 속에 직접 말 하시지 않는다. 단지 바람소리 같이(요 3:8) 형적을 남기시

는데 사람의 을 거듭 나게 하시고 그로 주변 사람과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게 하신다. 이 관계는사랑의교제이며곧코이노니아(Koinonia)다. 창조의역사속에서도편재하시는하나님으로만유속에충만하시지만구속의특별은총속에서도성령님은예수님의교회안에충만하신분이시다. 성령님은성도와교회와역사가체감(體感)하는보혜사(保惠師)이시며삶속에현실적이고구체적이고 역동적으로 간섭하신다. 이같이 성령론은 역동적 본체론이며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재구성해보아야한다.

(2) 인간론 :

인간론은 하나님의 창조역사 속의 인간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단순한 개인적존재로 취급하기보다 공동체적인 존재로 취급하여 인간론을 정립하여야 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인간론은개인차원에서의죄와은혜의문제를다루어겠지만공동체적인차원에서의죄와은혜의문제도역시다루어야한다고본다.그리고 논리전개에 큰 무리가 없으므로 인간론에서는 일반은총적인 측면만 다루고 특별은총

의 구속사적 인간론은 인자론(人子걩)으로 예수님의 몸된 교회에 대한 성령강림 이후의 역사를다루어야한다고본다. 그러므로엄 하게보아은혜의향수(享受)는 인자론에서다루고은혜의필요에 대하여는 인간론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론은 구속받지 못한 창조사적인류공동체에대한성서적관점을체계화해야한다. 인간론의기본적인입장들은다음에논하는몇가지명제들을살려주어야한다.첫째, 개인이나 집단이보통 우리의 눈에띄는 인간실존의 양태인데 개체(個體)도 집체(集體)

도공동체(共同體)의균형이무너진파행적인표현에불과한것이며본래인간창조시인류의창조원형(創造原形)은 남녀의공동체로지음을받았다는것이다. 이것은아담과이브둘만의문제로파악할수도있지만실제로는이두사람을둘러싼에덴동산의자연까지도이공동체의구성원으로보아야한다는것이다(롬 8:18~23 참조).둘째, 히브리적이고성서적인입장에서는하나님안에실제로인정받는존재는오직공동체뿐

이라는사실이다. 완전히여타의존재와격리된개인은없다. 그것은객관적현상에서만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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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사역은계시속에발견된다. 계시자체가신현현이며신현현이곧계시다. 사실은구속도신현현의 결과며 과정이다. 교회는 신현현때문에 유지되어 왔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도움을필요로하지않으시며예수님도인간의속에있는것을아시므로사람에게아무것도의탁하지않으셨다.그러므로성서적교회는자신의신학체계를신현현의원리를중심으로개편하여야하며모든

피조세계의 지상법(至上法)으로서 신현현의 원리를 확립시켜야 한다. 신현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더욱풍성하게만유속에충만케해나가는방법이며자신을내어주시는이방법외에는값싼다른방법은택하지않으신다. 또 이세상이스스로움직일수있는법칙을주신하나님께서세상이 홀로 돌아가도록 허락치 않으시고 자신을 피조계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내고자 하시는것은 합리적 인간에게는 충격이다. 그러나 신현현의 법칙을 모든 법 위에 선 최고의 법칙으로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인격적 다스림으로만 이 세상에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자신만생각하시고 을거두시면세상은즉시멸망한다. 그런데세상은이것을모른다.역사현상은 신의 사역을 중심으로 다시 기록되어야 하지만 신 중심의 역사는 바로 신현현과

그에따른인간의참여기록이다. 그런데성서의본체론을역사와단절시켜해석하면신학의고사(枯死)현상이 생기는데 역사와 단절되면 본체론적 신론은 무의미하다. 본체론은 반드시 역사현상(신현현)과 균형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본체론의 자기완결적 논리와 신현현의 현상파쇄의논리가인간의이성속에서충돌할때사람은하나님의사역이무엇인지참으로이해한다.성도 중에는 종교적 교리만을 중시하여 인간역사와 신역사(神곎史)가 만나는 것은 종교생활

속에서이며실질적인삶의대부분의사건에서는신역사(神役使)의 향권에서벗어날수있다고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든 것을 벌거벗기는 신현현의 원리는 이것을 허용치 않는다. 신현현을항상염두에두지않으면아무도여호와를경외하지않을것이다. 하나님은인격적교제로써성도를항상만나주시며참된성도의생애는신의기적적도움으로가득찬다. 단지현대인은그의사역하시는방법을모르는것이다.이 사회의 역사를 신의 역사로 기록하려 한다면 반드시 주경학적(註經學的)으로도 다루어야

하지만신역사의맥락은오직 성과믿음과말 에의해서만해석이가능한것이다. 성서이후의역사가반드시비성서적역사기록의방법으로만쓰여져야한다고하나님께서말 하신적이결코 없다. 역사의 신 중심적 기록을 포기한 것은 지상교회(地上敎會)가 회개해야 할 가장 심각한죄악이다.예수님 안에 숨겨진 신현현의 비 이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교회 공동체가 세상을 삼키는 역

사의종말에천사들도보고배울것이다. 인간과만물이다보고찬탄할것이다. 열역학제2법칙이지배하는세상에어떻게생명이사망을삼키는가. 모든피조계의관심사다.

④ 성령론과 역동적 본체론 :

성서적본체론은범신론이아니다. 그런데천지에충만하신하나님의전지전능하신사역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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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적기준에미흡하기때문이다. 본체론적사상이란오직예수님에의해살아지고완성된그신학과사상을발굴해내는것이다.예수님은만유를통일시키시는교회공동체의머리가되신다. 현대의성서신학은개인의의인

(義認)에 대한 것만 말고 교회전체(Universal Church)에 대해서도 의인의 교리를 다루어 주어야할가능성에대하여심각히고려해보아야한다. 이부패한지상교회가어떻게거룩하신주님의 몸이 되는지의 여부는 각 개인의 부패성에 대한 고민과 동일하게 성도들의 심령을 압박하고있기때문이다. 이같이교회전체와그공동체성에대한관련신학은전면적으로재고찰해볼필요가많다. 이일을위하여철저히예수중심이되는본체론적인방법론이중요시된다.예수님의 중보, 성령님의 중보 그리고 교회공동체의 중보는 인류의 구원과 만유의 구원을 성

취하는하나님의방법이다. 뿐만아니라구속사적신인류공동체는말 을받아그리스도적욕구곧 신적 욕구를 일으키며 이는 오직 성령님의 강권하심이다. 구속사적 교회공동체에 주시는 이말 은창조사적인류공동체에주시는말 인조명이나빛같이깨달음에의한것이아니라인격이시고신성의모든충만이신예수님자신이시다. 그러므로외양적으로미미한일일찌라도주님안에서한일들은모두우주의역사인주님의기억에위대하게기록된다. 하나님께서친히행하신일이기때문이다.세상은말 을받으면받을수록자극을받아인간의욕심으로분열되어가지만교회는하나님

의말 을받으면받을수록예수님의이름안에서일치되어간다. 지상교회의많은분열은예수님자신이아닌것에가치를두는죄악에연루되었기때문이다. 그러나교회의생명은불완전한교회 가운데 역사하셔서 완전한 결실을 하시는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의 분열은 역시예수님안에서의다양성을추구하기위한상호분리인것이며이러한분리는치욕적인분열이아니라결국일치의가장바람직한모습으로반드시결실하고만다. 바울이사용한만유(파스)의개념은전체와모든부분들을동시에지칭하는개념이다.본질적 삼위일체론에서‘Trinity in Unity, Unity in Trinity’를 말했다면 본체론에서는

‘Versity(versatility) in Unity, Unity in Versity’를말해야할것이다. 이같이 본체론은성령론으로말미암아지체론, 유기체론, 공동체론의기초가된다.

지금살펴본것은본체론적신학의간략한체계다. 성서적본체론에근거한신학은신현현의충격이 실제적 삶 속에 흡수되도록 유도한다. 성서적 본체론은 신현현의 에너지를 담는 그릇이다. 신본체의시대적현현의양식과단계적역사전개는성서신학에서이미충분한연구결과들이축적되어 있으나 신학적 관점이 신적 본체에만 광 돌리겠다는 촛점에 집중된다면 더 분명한신학의 전개방법이 발견될 것으로 본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선지자들에 대한 신현현은 어떻게성숙하여 갔는가. 시대마다 성도들과 신앙공동체의 성의 변화는 어떠한가. 그 성의 변화에하나님께서는어떻게반응하시는가. 이미축적된연구결과에다양한해석적시도를해보아야할것이다.신현현은 교회의 소망이다. 교회는 성자 하나님의 현현의 결과이며 성령 하나님의 강림하신

결과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사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역사하시지만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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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 역에서도마찬가지다. 죄도홀로성립되지못하고욕구도혼자서는의미가없다. 공동체속에서모든것이의미가생기고인간은원래사회적존재즉공동체적존재인것이다.셋째, 그러므로 인류는 공동체로서 창조되었으나 타락 이후로 공동체는 파괴된 상태다. 죄가

들어온후죄로죽은부분이곧인류공동체가파괴된부분이다. 죄된부분은하나님의인정을받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인류의 전적부패라는 교리에 근거한 반론이 나올 수 있으나 자연적인간들이아직도양심을가지고하나님의형상의일부를유지하고있음을기억하여야한다.넷째, 하나님께서는끊임없이말 을인류에게주시며, 말 이 자연과인류를지금도살고유

지하게하는생명이요원동력이다. 이말 은아우구스티누스가말한조명(照明)이요, 요한이말한빛이다. 이 조명과빛은모두를하나되게하시는하나님의사랑이요공동체가공동체적이도록하는능력이다. 이조명과빛은일반은총의 역에서부단히역사한다. 그런데창조사적인류공동체는 말 을 받되 죄로 말미암아 왜곡된 인간적 욕구로 불경건하게 받는다. 이러므로 말의수용과정에서하나님이주신말 의내용이인간의죄성으로말미암아변질되기마련이다(골2:18).다섯째, 따라서 말 을받으면자기욕심을따라반드시왜곡하게되므로창조사적인류공동

체는공동체파괴의방향으로나가고지속적으로분열이역사속에조장된다.

(3) 인자론 :

인자론에서는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성령론이같이다루어져야한다. 구속사적신인류(新人類)공동체, 즉예수님을머리로한그리스도의몸된교회에대한관점에서보면이다섯가지신학논리들은한가지로엮인다. 그리고교회의종말론적조망은모든민족을다품어안는만민공동체와허무한썩어짐의세력에굴복했던자연계까지다회복되는만유공동체에까지이르는것이다. 인간론과 인자론을 대비시키는 신학체계는 죄와 은혜를, 인간역사와 신역사를, 사회와교회를 그리고 창조와 구속을 대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자가 궁극적멸망을전제로하며후자는궁극적 복(永福)을전제로한다는점이다. 복은곧예수시다.인자론은전폭적으로예수님의인자(The Son of Man) 되심을선포한다. 그는곧“그‘사람의

아들’”(김세윤, 1982)이시며 이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Adam, Man)의 후사(Son,Successor)가 되시고스스로만유의후사(히 1:2)가 되신다는것이다. 그런데예수님의인자되심을 통하여 성도들도 만유의 후사의 반열에 동참한다. 예수님의 몸으로서 인자적(人子的)공동체에가입되는것이다.이러한사상은예수님의하나님이심에대한확고한믿음이없이는발전할수없다. 사상은오직믿음의더듬이일뿐이다.우리가 인자론을 취급할 때 주의하여야 할 점은 위험한 인본주의적 발상의 도입이다. 연구자

자신들은 예민하게 느끼지 못하 을지 모르나‘인자 구절들에 대한 집단 해석(CollectiveInterpretation)’(T.W.Manson)같은 것은 비록 공동체적 인격이 히브리적인 개념이라 할지라도예수님의신성을명백히동시에조명해주지못할때인본주의로의샛길이열려있음을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아무리 히브리적이라 할지라도 발전 도상의 히브리 사상은 여전히 인본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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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나체계를세울때그체계를재편성치않아도학문의발전에따른지속적인지식의축적이가능한방법을창출하여야할것이다.원래 철학은 사유자의 기본전제가 모든 사변의 결과를 좌우한다. 본체론의 철학은 기존의 존

재론적 철학의 인본자의성(人本咨意性)을 답습하지 말고 인간과 인류와 자연의 구속을 위하여진리를 탐구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순수자연과학에 편승하여 동방 이교주의가 반신적(反神的)기류를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본체적 광을 보지 못하도록 미혹의 역사를 성도들의 마음에불러 일으킨다. 앞으로 철학은 철학 속에 뿌리박은 우상숭배를 극복하고 자연과학을 통하여 신과우주의연관성을확실히정립시켜나가야하며사회과학적인방법을통하여신과인류공동체에 대한 조망을 회복시켜 나가야 된다는 뜻이다. 아마도 창조과학적인 방법론도 그중의 하나가될것이다.그러나 자연의 파괴와 사회 공동체성의 파괴 속에서 교회는 구속의 논리를 철학의 형태로 공

급해 줄 수는 없을까. 원래 철학은 신학에서 연원하여야 한다. 만일 본체론적 신학이 구속적 공동체의 논리를 유도해 낸다면 거기서는 반드시 공동체적인 철학이 이끌어져 나올 것이다. 이것은교회공동체의시대적과제다.

(2) 공동체적 윤리학

윤리학적고찰1) 예수공동체에서는보편적원리와율례로서의규범윤리가죄를극복하고

공동체속에신성(神性)을구현하고자하는적극적구속윤리로변화2) 따라서성서적윤리, 희년적윤리, 자기포기적윤리, 그리스도이신예수님의윤리, 산상수훈적인윤리는인간의힘으로실천불능임을알고성령님께서친히하셔야된다는결론에도달하며성령의KOINONIA능력을힘입음

3) 인본적 공동체(창조사적 공동체) 안에서 예수공동체는 적어도 창조적 공의와 질서에해당되는부분에대하여는잘못된점을바로잡을수있는성도의권세가주어짐

성서적인 인간론과 관련하여 성서적인 사회론이 성립한다. 성서적 사회론에서 사회과학적인방법이도출될수있다. 사회과학적인방법은그기본원리들은철학적범주에드는것이많겠지만 한편으로는 정치경제학의 범주에까지 정 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윤리학은 사회과학의 모성적(母性的) 존재이다. 그리고 본체론적 윤리학은 이러한 공동체적인 성서적사회론과사회과학의기본원리들, 즉공동체적철학에서연원해야할것이다.예수공동체에서는 보편적 원리와 사회적 율례로서의 규범윤리가 죄를 극복하고 공동체 속에

신성(神性)을 구현하고저 하는 적극적 구속윤리로 변화한다. 따라서 성서적 윤리, 희년적 윤리,자기포기적윤리, 그리스도이신예수님의윤리, 산상수훈적인윤리는인간의힘으로실천불능임을 알고 성령님께서 친히 하셔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성령의 코이노이아 능력을 힘입어야함을인식하게된다. 이같이성서적윤리학은타력주의의색채가짙은것같으나실제로는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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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구속사는성립되지않는다. 예수님없이세상은성부하나님의사랑과온갖공급하심을오용(誤用)한다. 그러하다. 교회는신현현의절정인성육신의결과이지만또한성자하나님의몸으로서또한단계의신현현을현시하 다. 성자하나님께서는자신의이름으로일컫는교회, 불완전하기짝이없는성도들의무리에게자신의신적위엄과 광을모두걸어버리셨다. 자신의육신의부활을위하여십자가위에서하시던승부(히 5:7)를지금은역사중에교회라는자기몸의화榮化를위하여승부하고계신것이다.말세지말(末世之末)을 당하여 교회는 이제 세상과 승부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인본적 모든 방

법들에의탁하거나혼합해보았던어정쩡한시도는지나간과거로이미충분하다. 우리의승부수는간단하다. 모든일을예수님의이름으로하는것이다. 범사를성서적인방법으로하는것이다.그리고 예수님께서 역사하실수 있도록 비켜 드려야 한다. 성서적 본체론 신학의 구조는 공동체내에서모두같이합심하여예수님께서왕노릇하시도록하는방법론을더욱확실히제시하여준다. 지금까지의신학은개인의구원과개인의성화(聖化)에큰역점을둔것이나조금만본체론적으로관점을바꾸어보면예수님의나라를이루기위한공동체적방법론들이명백히보인다.

5) 본체론적신학에근거한성서적경세사상의성립

성서적 본체론의 신학이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이 시대의 경세사상은 모두 성서외적(聖書外的)인 근원에서나왔기때문이다. 물론 성서적근원에서시작된사상들이혼합주의입장에빠져들고급기야는반성서적인입장으로반전하는사례들을우리는많이보아왔다. 성경학교에서시작한대학들이현대에는성서적신앙에가장타격을주는본거지로변한것이바로그러한증거가된다. 하나님의역사는순수해야만권능이나타난다. 순수한하나님의역사는오직하나님께만 광을 돌릴 때만 나타난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 홀로 역사하시도록 자리를 비워드리는겸비한이들을통해서만나타난다. 여기에예수님께만 광을돌리겠다는우직한소원을품은학문의세계가새로이태동해야하는이유가있는것이다.

(1) 철학의 바른 방향

철학적고찰1) 존재자자체의탐구(존재론또는본체론)가곧제1철학이며형이상학2) 의식에서떠난존재를인정하지않는인식론3) 인식론을극복한본체론으로서관계론적본체론(공동체론)은본질적으로

실천적이며생동적인본체론

성서적인 신론과 관련하여 성서적인 우주론이 성립한다. 만유보다 크시고(요 10:29) 존하시는하나님에대하여또는모든하늘보다높이되신예수님자신에대하여말한다는것은일면우주물리학의 역이다. 그러나인간의과학과학문은지속적으로발전해나가는것이므로사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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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을돌려성부하나님께모든 광이돌아가기를원하는모든이시대의성도들에게큰위로와북돋음이될것이다.

6) 결언

칼 바르트는 비스마르크와 히틀러의 선을 잇는 독일 역사의 왜곡된 발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리한 비판을 가했다. “독일인은 위대한 독일 기독교인인 마르틴 루터의 유산으로부터, 즉다시말해서율법과복음, 세속적권력과 적권력의관계에대한루터의과오로부터 향을받았다. 이 루터의 유산에 의해 독일인의 자연론적 이교주의가 충분히 제약되고 규제되지 못하으므로이이교주의가관념론적으로변형되고신념화되었으며강화되게되었다.”말하자면신학이 그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사상에 향 끼치고 다시 현실 역사를 오도하는 결말을 가져왔다고말하고있는것이다.교회와 성도들이 지금 할 것은 바로 Coram Deo다. 종교개혁 때보다 더욱 철저하게 Coram

Deo 하여야 한다. 본 논문이 그러한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여 간절히 기도한다(完 붓을 놓고 큰숨을들이쉰다예수내쉬시던숨을받아먹으련다 1992 08 03 高王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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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 윤리학이다. 인본적 공동체(창조사적 인류공동체) 안에서 예수공동체는적어도일반은총 역의공의와질서에해당되는부분에대하여는잘못된점을바로잡을수있는성도의권세가주어진것을믿어야한다.

(3) 본체론적 경세사상(정치경제학을 중심으로)

정경학적고찰1) 정경학의분석틀은본체(공동체)의 행태를분석할수있어야함2) 신의현현‘본체’인예수공동체는인본적공동체의‘행태’의원인이됨

단지인본적공동체의행태는神意(휘포스타시스) 또는말 의모형과그림자임3) 다시말하자면 성이정경현상에미치는 향이본질적인관심이됨4) 그러나 말 과 공동체와 자연의 관계에서 토지-공동체-창의의 연관을 통한 권력현

상과경제현상의분석이가능함

경세사상이란용어는자칫비전문적으로들릴수도있다. 그러나일반사회현상을사회심리적인측면에서부터시작하여정치경제적인측면과역사미래의흐름까지포괄할수있으려면오히려경세사상이라는 - 우선은모호한듯하나실용된선례가있는 - 용어가적절하리라고생각한다. 그러나 성서적 경세사상은 성서적 본체론의 신학과 구약의 희년사상에 근거한 뚜렷한 분석틀이 있다. 이는‘공동체적 성(괈性)과 사회심리의 정치경제적 향’을 살피고‘공동체 내에있는 창조능력의 매커니즘’과‘공동체와 토지문제의 연관성’을 분석하여 사회권력현상 및 사회경제현상의 와중에서 구체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성서적인 분석틀을 제시할 수 있는길이된다고본다.성서적정경학의분석틀은사회현상의본체(공동체)의 행태를분석할수있어야한다고본다.

인자론에서 살핀 신의 현현‘본체’인 예수공동체는 인본적 공동체의‘행태’의 원인이 된다고 보아야한다. 예수님께서교회를통하여세상을다스린다는것(계 1:5)은 바로이러한의미로경세사상화할 수 있다. 단지 어떤 시대이든지 그 시대의 인본적인 사회공동체의 행태는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는데 그 사회에 주어진(또는 그들이 소화한) 신의(神意)(휘포스타시스) - 또는 말 의- 모형과그림자로볼수있다. 말하자면시대나공동체에따라하나님께받은말 과사회현상은상응하는연관성이있다고보는것이다.다시 말하면 본체론적 경세사상은 권력이 아니라 성이 정경현상에 미치는 향을 본질적인

관심사로 한다. 이것은 정사와 권세를 폐해버린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논리와 직결되는 현상분석방법론이다. 그러므로말 과공동체와자연의관계에서토지-공동체-창의의연관을통한권력현상과 경제현상의 분석이 가능한 것은 성서의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구속하시는하나님이신것에대한증명이된다. 이방법론은몇개의분야별논문으로나누어앞으로다루어나갈것이다.이러한 본체론적 경세사상은 성서적 본체론의 신학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의 이름에 전폭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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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인격적 구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만물의 으뜸(arche)이 되려 하신”다는말 이나“교회의머리시라”는말 과“그리스도는만유시라”는말 은그리스도의직임으로만해석하기에는너무심오한존재론적인양상을보이고있는느낌이다.

최고의현현, 완성된현현으로우리에게구원의길을열어놓으신분, 우리예수그리스도께서는성육신으로세상에아버지를나타내신분이다. 성육신사건자체가사실은현세의법칙을깨고들어오시는하나님의전능성의나타남이시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20절까지의그리스도찬가는다음과같다.

15절 그는보이지아니하는하나님의형상이요모든창조물보다먼저나신자니16절 만물이그에게창조되되하늘과땅에서보이는것들과보이지않는것들과혹은보좌들이

나주관들이나정사들이나권세들이나만물이다그로말미암고그를위하여창조되었고17절 또한그가만물보다먼저계시고만물이그안에함께섰느니라18절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으뜸이되려 하심이요19절 아버지께서는모든충만으로예수안에거하게하시고20절 그의십자가의피로화평을이루사만물곧땅에있는것들이나하늘에있는것들을그로

말미암아자기와 화목게되기를기뻐하심이라

우리가 사랑하는 전능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셔야 할 마땅한 광을 받지 못하시고 이시대의기독교가기운을잃어가는이유는무엇인가. 이는바로우리에게이시대를위하여맡겨진말 (預言)의 흐름이흐려지고혼잡하여지고그출구가좁아졌기때문이다. 묵시가없으므로백성이방자하여진것이다. 그원인은무엇인가. 바로신인식(神認識)이희미하여졌기때문이요신학(神學)중에 신론(神걩)이정리되지않았기때문이다.

누구가감히신론을정리하겠다고말할이가있는것인가. 과연인간이하나님을또는하나님께관한일을충분히알고표현할수있을것인가. 이 문제에대한해답의방향은이러하다. 즉,계시되고스스로나타내신하나님이신나사렛예수께최고의 광을돌리는방향으로신론을재정리하여야한다는것이다.

경애(敬愛)는 분(分)과 외(畏)를 전제로한다. 이것은존재자각(存在自覺)의기본전제이며생명성장(生命成長)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원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각자가 자라갈지라도 그자람은코이노니아로실증되며또공동의몸에서완성된다.

신현현의가장중심되는사상은하나님께서 (이미주셨고자기완결적으로보이며자연신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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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현현(神現顯)의 지상원리(至上原理) (The Most High Princple of Theophany)

필자는 기적신앙을 잃어가는 현대적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지금도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세상에가득한것을보이고싶은욕구를가지게되었다. 그리고하나님의현현하심이어떻게가려지며(遮蔽) 어떻게 나타나는가(發顯) 하는 점들도 살피고 또 전반적인 성경적 원리와 사회현상적이고 자연현상적 사실까지도 연구해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기적이나 하나님의 현현은 믿는 자들에게만나타나는심리적인현상만은아니고모든사람을대상으로나타나지만하나님의숨기시는성품을인하여인생들이그종적을알수없게하시기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실 뿐 아니라 매우 복잡한 층위적 또는 층서적발현으로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現存)의 길을 지키시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사회현상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개입하시는 증거들이 충만하지만 인간의 이론으로는 눈이 가리워져서 알지못하는것이다. 그러므로이모든일들이주님의지혜에서나온다스림의결과인줄알고이러한견해를정리해야하겠다고마음먹었다. 기독교가저버린사생아들가운데얼마나기독교를해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적자가 아니라면 그들을 대적상태에서그냥두어야하는가. 끌어안아야할것인가. 주님께서는우리에게질문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진리는 하나님의 현현하심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일이라는것과, 지금도언제나현현하고계시며이러한실증들은수없이많이발견되고있다. 그러나인간사회의모든일도하나님없이되는일같으나하나님앞에서이루어지는것이며하나님의나타나심의한양상이라는것을인정해야할것이다.

우리는하나님과피조계를구분하는신학체계를가지고있다. 범신론의혼합성을피하기위해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이 만유에 법칙으로 질서로 의로움으로 나타나시는 이런 부분에대헤서는별도의신학논리로대처해야하는어려움을언제나느낀다.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드리는 것은 그분이 우리와 구별되셔서 사랑의 대상이 되실 수 있기때문이다. 또 아브라함카이퍼의뛰어난신학적통찰력은“이교적신비주의는신에게가까이가다가마지막에는신과자기의구분을하지못하여신과자기를동일시하는데문제가있다”고말한다.

바로그리스도교의강점은여기에있는것이다. 기독신자는하나님께가까이갈수록오히려하나님과자기자신이얼마나다른지더명확하게알고경배하게되는것이다. 기독교의성경적본체론을생각하면바로이런인격적인명확한구분에근거하고있는사상인것을알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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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41

4. 예수 성령론(Jesus Pneumatology)-본체론적성령론과그敎義的補完(Ontological Pneumatology and its Dogmatic Strengthening)

1) 서언(序言)

‘예수성령론’이확립되지않으면주의복음은앞으로오는시대를감당하지못한다.

또한성령론이라는연결고리가잘완성되지않으면기독교신학의성경적원리가원만하고전반적인형태로서잘드러날수없다.

예수님이 강생하시고 2000년이 지났지만, 인류는 주님의 끊임없는 중보에 힘 입어 하나님의긍휼을입으며멸망치아니하고지금까지발전하여왔다. 이비 을교만한인류는알지못한다.

이제인류의지식과과학은심히발달하여인간의생체에대하여유전자 DNA의분야와신경및 뇌분야, 인간의 심층심리와 사회심리 분야, 나아가서는 비교종교적 분위기에서 싹튼 인본적성분야와진위를알지는못하겠으나심령적문제까지도과학적방법으로다루려고하는시도

등이점차모양을갖추어나가고있다.

이같은 추세는 우주개발기술의 발전이 본격화되고 세계에 대한 네트워크적인 이해가 심화되면서 그 인본적인 주변이론이나 전문지식의 발달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NASA의 맥나마라, 및뉴에이지등).

하나님의말 과그리스도의지혜는이러한상황에대하여모든해답을갖추고있음에도불구하고 주님의 지상(地上)교회가 상황인식이 부족하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성실하게 받지 못하여주의 광을제때에효과적으로지켜내지못하고있다.

성령론이예수님중심으로다루어진것은초대교회로부터그러했다. 현재도성령님의역사를가장건강하게다루는주의종들은예외없이예수님께만 광돌리는성령님의사역특성에대하여역설하고있다.

이 은이 적암흑의시대가요구하는하나님의참 광을비춰주기위하여예수님과성령님의불가분의관계성에초점을맞추어성경의원리들을깊이묵상하고조직적으로설명하려고힘썼다.

이를 예수성령론이라고 특히 이름하고자 하는 바는 그리스도와 마이트레야를 고의적으로 구

340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인 또는 기계론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인간과 피조계의 원리들을 지속적으로 파쇄하시며피조계에직접개입하시며자신의존재를확인시키신다는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1장 2절의 메라헤페트(운행한다는 뜻으로, 히브리적 지속적 창조목적의 충격,깨어라는 예수님 말 )와 상통하는 개념이다. 이는 지금도 메라헤페트 하시는 성령님의 현실개입즉현현의역사로가장지속적으로나타난다. 이러한신현현의원리는지상지고(至上至高)의원리이다. 이를 인정할 때만이 인본적 신본주의도 성경적 합치를 찾게 되고 신본적 인본주의도현실속에착상하게되는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 에서 다룰 본체론적 성령론의 필요성을 이 시대를 위하여 또 확대하고변화해가는인간 역의정화와신적개입을위하여필요한것이라는대명제를깨닫게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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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43

님은 이시니라.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며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인간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시며그호흡자체가곧말 이며하나님의의며, 하나님의법이며, 만유의법칙이며, 생명이며, 이다. 그는그러므로무소부재하신하나님의 이시다. 하나님의 광은숨기시는데있다.

“하나님은 이시니예배하는자는오직신령과진정으로예배할지니라.”개역성경에서‘신령과진정’은‘ 혼과진리’(in spirit and in truth)를의미한다. 주석가들의말을따라, 하나님은 이시니(성령의 인도를 받아) 혼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 은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교제가 어떤방식으로이루어지느냐, 따라서사람의본질이무엇이냐를암묵적으로지시해주는성구이다.

(Robertson 이나 Driver et. al.은“The ‘pnuma’is the highest in man”또는“ 은사람의 가장 고상한 부분이므로”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Neo-platonism의 잔재인듯이여겨지므로취하지않으며, 혼과육체는, 또는삼분법으로보아 과혼과육은, 통합하여볼때인간으로파악하여지극히존귀한것이다. )

성경에서 인간의 혼과 관련하여 쓰인 히브리어 용어는 ruah(=R)와 neshama(=Ns)와nepesh(=Np)와 lebab(=L)이며 각기 순서대로 기/명/성/심(氣/命/性/心)을 뜻한다고 동서양의인간학사상의연계를시도해보았다.

태초에 운행하시던 하나님의 신(神, 바람)이신 ruah는 분리가능한 것이 아니라 온 창조 속에통(通)하고온창조를통(統)하는것이다. 이 ruah는그리스로와서는pnuma로쓰인다.

pnuma는 또한 히브리어 neshama(숨)를 번역하는 데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neshama(=pnuma)가 하나님께서인간에게불어넣은 ruah이기때문인것으로보이며한개체인생을위하여획정(劃定)지어준것이다.

neshama, 이것이 곧 명(命), 다시 말해 천명(天命)이며 하나님께서 그 의지대로 획정지어 주신인생을예정하고특성화하고특이한생애를살도록하는것이다. 이러한천명으로인해한인생의인성(人性)이결정된다고보아야한다.

이같이성경에나타난히브리사상의특수성은, 동아시아권에서는 감(靈感) 또는지성(知性)과 관련하여이(理)를 규정하는추세인데, 성경은기(氣)처럼보이는 ruah가 오히려이(굊)와 관련되어 logos(말 )를나타내는위치에있다.

(바로여기에성경의사상이이교적신비주의를깨뜨릴수있는하나님의말 의비 한권능이숨겨져있다.

주님을사랑하는젊은세대는깨닫기바란다.)

342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분하지아니하려는반복음적인흐름까지도주님의몸된교회안에침투해온이혼잡한시대에,

오직나사렛의예수님만이당신의이름의권능으로이시대를변화시킬수있음을확신하고, 또바꾸시기를간절히원하기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은 전문적 신학자들이 손을 대어야 하지만 교파와 교리의 다양함 때문에 우직한평신도가우선거론하지않으면논의가시작될수도없지않을까하는소박한생각속에, 어른들이복잡하고어려운언어로잘표현할수없는진리의욧점을어린아이가진솔한한마디로순수하게표현할수있듯이이 도그러한시도로여겨주기바란다.

이 에서는 학문과 머리로 깨닫는 성령론이 아니라 적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가슴으로느껴진성경의부분들을종합하려고노력하 다.

부차적제목을생각한다면‘성경적성령론의더욱온전한논리적구조를위한고찰’이될것이다. 또는좀더가슴에와닿도록‘예수님을사랑하신성령님의행적’이라고제목을정할수도있다.

이 의 전체적 흐름을 통하여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성령님의 인격적인 사랑의 마음이다. 삼위 하나님 사이의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사랑으로부터 우리 피조물들에 대한 온전하신 사랑에이르기까지성령님이품으신바사랑의그실상을알려야하겠기때문이다.

주여, 비옵나니예수성령론을읽는이마다주예수의성령으로충만하여지게하옵소서.

2) 일단인간이무엇인지정리해보자

인간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에 대하여 알 수가 없고, 인간 자체에 대하여서도 하나도 알지못하는것이다.

하나님께대하여이해하려고하면가장걸리는대목이“하나님은 이시니”라는부분이다. 하나님의전지, 전능, 불변, 원, 무한, 절대, 편재, 초월의모든성품을인정하더라도하나님은이시라는부분은인간의지식체계로이해하기에는불편한부분이있다.

하나님이 (pnuma=ruah)이시라는 말 은 성령님께서 이시기 때문에 하시는 말 인가. 육신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을 포함하여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시라는 말 인가. 하나님의, 바람(ruah)이라는성령님은어떤의미에서 (pnuma)이신가.

창조사적인 성령님의 사역은 자기를 지극히 숨기시는 성품으로 말미암아 온전하여진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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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45

의역사를지어내는것이다.한편 사람의 비 은 마음에 있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며, 지킬 만한 것보다 더

욱우리마음을지켜야하는것은생명의근원이마음에서나기때문이다.

동양의 사상의 주류는 인생의 마음을 사유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말하자면 기준점이 된다는것이다. 그러나성경의사상적구조는마음은가변적임을명백하게보여주며믿을수있는기준이되지못함을밝힌다.

인생의 lebab(마음)는 비로소 자기를 알며(悟性), R-Ns-Np의 층에서 선택적으로 자기를 위치 짓고 자기를 규정하며 산다. 인생의 마음은 참된 자기 즉 하나님의 자녀된 위치를 회복하지않으면혼란할뿐이다. 그러기전에는스스로자기를규정하며또구속받은성도도온전한것이오기전에는스스로선택하여야하는불확정성속에서산다.

이말은사람은자기의정체성에대한선택권이있다는것이다. 즉 ruah(R)나, neshama(Ns)나, nepesh (Np)의 세 가지 층에서 자아를 선택함에 따라, 즉 마음의 위치에 따라서 적인 사람, 정신적인사람, 육적인사람으로나타난다. 보통사람들은바로이런선택과취향의혼합속에살아가는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필자는 복잡한 성경의 인간론을 정리하면서 R+Ns+Np+L을 합하여 심령이라고부르고자한다. 오직예수님께서는참으로 ruah와하나되신분, 홀로한분, 즉태초부터계신분이시다. 나아가서예수님은참으로만유의태초이시다.

그는 ruah를 보내신 분이다. 바로 모든 하늘보다 높은 참 하늘에 오르시고 아버지의 보좌의자리에서흘러나오는성령님을 원히보내시는분이다.

3) 예수님과교제하신인격자이신성령님

이 시대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어떻게 하든지 망각시키고 그의 거룩한 의지를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하나님을우주의에너지정도로비하시키려고갖은방법을동원하여인생을세뇌하는중이다.

그러므로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령론의 저자들은 대체로 성령님의인격성을중심으로다루어왔다. 즉 성령님에대한지, 정, 의인 인격의세가지측면을, 관련되는성경본문과함께다루고성령께서인격이심을증명했던것이다.

이는성삼위일체론과연계되어서복음의강화와교리의심화를가져왔다고본다. 그러나성령

344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창세기 1장 1절과 2절, 또는 3절까지한묶음으로보려는견해를받아들인다면이 ruah는창조의명령말 과동일한존재라고생각된다. ruah는통전적(統全的)인것인데세계상에충만한하나님의 이며창조의말 도만유를상대로통전적으로나타나서하나님의뜻을이루신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 은 논리성에 기초한 말 이 아니라, 인격성에 기초한 말 이며(즉 말은인격이시다), 이것이히브리사상의핵심인데세계의거민들이잘이해하지못하는점이다.

이는심리분열, 정신분열의징후가있는비히브리적인문화에서는이해하기어려운성경적인격주의가 나타나는 통합적 경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와 기를 나누는 것은 비성경적으로 보인다.

다시 한 번 설명하는데, nepesh(soul, 生靈, 개체혼)는 생기(그리스어 pshike)로 번역되었는데이는그존재의자리(데, 位相)로인하여나타난성(性)을말한다. 개성(個性)은자체의논리로서자신을규정한다.

즉 성(性)에는품(品)과 격(格)이 있어자기를규정한다. 이 성품또는성격은생명력, 갈망, 욕구로부터나오는것인데생명력은어떤독특한위상에서비롯되는독특한갈망과욕구를지니게된다.

피조계전체가하나님의창조목적을성취하기위하여나아가는것이라면시스템이론에서보면당연히각위상(=데)에따라개성이나타나게되어있는것이다.

그런데 nepesh를 pshike로 번역한 사람들(LXX 역자들)은 별개의 개성 있는 nepesh(혼)를독특한 내적 매카니즘(particular inner mechanism)을 지닌 개체로 파악하기보다 오히려 생기, 즉생명력으로파악한다.

그러나이생기는단순한의지(意志)없는힘(force) 또는에너지형태로서의생명력이아니다. 성경의개념은모든특정인생은하나님의명을받은기운이며생명력으로서하나님의의도와예정대로살수밖에없는존재인것이다. 그러므로nepesh는받은천명대로움직이게된생명력인것이다.

이신적의도와예정, 곧천명이사람에게욕구와갈망을주게되고하나님의 광을성취하게하는것이다. 그러므로모든개체는완전한인격을지닌개인이나준인격적특성을보이는공동체나모두자기에게주어진천명을따라살아가는것이다.

여기에죄와불순종이침투하 을때인생은하나님의 광의자유에이르지못하고자기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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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47

예수님은 지상에서 많이 기쁘거나 즐거워하지 않으셨다. 유한자이시기는 했으나 인생처럼 작은즐거움으로자신을달래지않으셨다. 그래서성경기록에보면기뻐하실때도성령으로기뻐하셨다고 나온다. 자기의 감정을 성령님과 일치시켜서만 기뻐할 수 있는 상태에서도 예수님과성령님의인격적교제가온전히이루어졌다고말할수없다.

예수님과 성령님의 궁극적인 인격적 교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장 깊은사망의 자리에까지 내려 가셨을 때 이루어 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넓이와 높이와 크기보다, 그깊이속에서진정한교제를성취하시는성자와성령.

그 깊이는고통의깊이이다. 성령님은창조의 으로서고통중에창조의사역을완수하셨다.창조의신학을잉태하여낳는고통에비견하여설명하기도하지만우리를위하여친히기도하시며탄식하시는성령하나님은고통하기도하신다. 이 고통의무한한깊이가곧성령님의사랑의깊이다. 창조때도구원의역사에도이사랑의깊이로역사하셨다.

창세기 1장2절에서 깊음 위에 흑암이 있는데 그 깊음의 수면(水面)을 요동(搖動, 운행하시다,메라헤페트)케 하시는창조의성령님, 3절에 가서빛이있으라말 하시는하나님, 만물을창조하시는말 은곧 원하신하나님의창조의지를발생시키고만물의존재와그각각의이름들을불러내시는성령님의요동케하심이다.

이요동은하나님의가장깊은속마음을온전히아시고그속사랑으로인해말할수없는탄식으로친히간구하시는성령님의인격에서나오는것이다. 그리고그심연의가장깊은곳에서예수님을 만난다. 성경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하나님의 가장 내적인 것, 즉 깊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가장 깊은 곳, 곧 무한한 사랑의 고통이 실현되는 그 자리에서, 십자가 위에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그 자리에서, 그리고 가장 깊은 사망과 멸망의 자리, 하나님께 대한 모든 반역의최종적인바닥밑창, 성자께서음부의흑암속으로내려가신곳에서두분의교제는온전하여지고그곳에서생명력보다더나은부활의능력이역사하기시작한다.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시며 빛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시나 또한 깊은 유암(즉, 흑암) 중에 자신을나타내시는분이시다. 빛과흑암이창조주께는일반인것이다. 이흑암이깊음위에있었고이깊음은창조하시는욕구, 구속하시는욕구이며바닥없는심연이며무한하신하나님의창조심(創造心), 구속심(救贖心)을나타낸것이다.

이 깊음의 표면에서 성령께서는 운행하시고 또는 표현을 바꾸면 요동하신다. 가만히 두지 않고 히브리 사상의 중요한 개념인 지속적인 충동을 가하신다. 요동(搖動)의 개념은, 과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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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인격성은단순한조직신학적측면보다삼위일체의상호교제적인생생한관계적실천측면에서발견하여야한다.

원래 무한자이신 두 분 성자와 성령은 원 전부터 서로를 전인격적으로 아시고 교제하시는관계 다. 그러나성자하나님께서아버지의사랑과그 광을이세상에나타내시기위하여인간으로오시게되었을때성자와성령의교제는큰변화를겪을수밖에없게되었다.

특히성육하신일개체(一個體) 유한자(有限者)인예수님과무한자(無限者) 편재자(遍在者)인성령님의 관계는 특이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성령님의 사역을 심층적으로재발견하면교회와성도들에게이세상의역사해석이나경세적인분야까지도생활원리와행동원리를제공할수있는길이열린다.

성령님은 만유에 편재하신 분이므로 곧 무한자의 속성을 가지신 분이신데 어떻게 유한자이며개체인예수님과전인격적교제를하신것인가. 사람들에게은사를주신것은각기자신의사역에 한 부분으로 맡기신 것이니 가능하겠으나 예수님의 유한성과 어떻게 인격적 교제를 가지신것인가.

예수님께서성령으로잉태하셔서정결하시기때문에그런교제가가능해진것은아니다. 성령강림과성령으로충만하셔서그런것도아니다. 이것은가장깊은인격적교제를표현하는사실이아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하나님께서 성령을“한량없이 주심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유한자와무한자가만나는한형식을보여주기는하나인격적인교제라는것은순간에전인격적인만남이이루어져야하는것이다.

상대방이누구인지도모르면서손만잡고백년을살았다고인격적인교제라할수없다. 원히 서로를 알아가야 하는 관계라면 이는 원에 이르기까지 결코 완전히 서로를 알지 못한다는말과 다름없다. 또한 서로 자기의 내적 본질을 주고받기 전에는 참된 전인격적 교제라 할 수 없는것이다.

예수님은이세상에계실때많이슬퍼하시고민망해하셨다. 민망하다는뜻은상황에따라서는내장이찢어지는아픔을느끼실정도 다는것이다. 이것을성부하나님이타락한인간과피조물들에대해가지신사랑의심정을체험한것이라고말하는이들이있다. 그러나그렇다고이체험이성령님과의인격적교제가온전히이루어진것으로보기보다성령님의도우심으로아버지의심정을체험하신것으로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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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49

모세의칠십장로들에게성령이임하여예언케하고

다윗이여호와의신에게크게감동되고

엘리야에게여호와의신이임하고

세례요한이모태에서성령충만하고

예수님께서성령님으로말미암아잉태되시고

예수님께성령님께서강림하시고

예수님께서성령안에기뻐하심(눅 10:21)

오순절에나타나시고교회를세우시고

이런신현현사건들을통해성령님은예수님의명령처럼깨어라고인생들에게요구하신다. 창세기 1장 2절 성령님의 운행하심, 즉 메라헤페트(히브리적 지속적 창조목적의 충격, 요동)는 깨어있으라는예수님말 과상통하는개념이다.

예수님이 인간과 다른 점은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신 분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정량(定量)적인개념이라기보다온전한교제와동행을가리킨다고보아야한다. 성령님은성탄에서십자가위에까지 같이 가신 분이다. 성령님은 진정 자기 전체를 부어서 예수님 위에 기름처럼 자신을 아낌없이주신분이시다.

성결의 으로는죽은가운데서부활하사하나님의아들로인정되셨으니(롬 1:3).예수를 죽은 자(者)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괈)이 너희 안에 거(居)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者)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居)하시는 그의 (괈)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몸도살리시리라(롬 8:11).

원하신성령으로말미암아흠없는자기를하나님께드린그리스도의피가(히 9:14).

이러한 성구들은 바로 성령님이 예수님과 동역한 역사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잠행(潛궋)의결실로예수님의몸인교회가성령강림으로성립되어신현현의절정(絶頂)이성취되는것이다. 이신현현의절정은곧신자들간에성령님으로말미암은통합이성취되어새성령공동체가태어난것이다. 이가곧주님의몸된교회인것이다.

5) 인격의여러차원

성경적 사상이 독특한 것은 사람에 대한 사상이다. 특히 사람의 인격에 대한 사상이다. 만일더깊이들어간다면인격적선택, 즉자유의지에대한사상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을 섬기게 된 존재이며 이것이 인간의 수위적(首位的) 특성이다.

348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도, 한단계높은질서있는체계를나타내기위한전(前) 단계에일어나는현상이다.

예수님과같이이요동의괴로움을품고십자가와죽음과음부의밑바닥까지동행하신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생명력의 본성을 심는 작업을 완수하시고 한 단계 더 높은 부활의 세계를열어놓으신것이다.

부활의능력은하나님의창조능력의본질이다. 사망이드디어사망이아닌것으로변하게한생명창조의 치유력이다. 사망은 드디어 만유 중에서 궁극적 권세를 잃게 된 것이다. 이것이 두분의지극한교제의결실이다.

4) 성령님과신현현적본체론(Theophanic Ontology)

예수성령론은 본체론적 성령론이다. 그 중에서도 신현현(神顯現)에 강조점을 둔 본체론적 성령론이다. 성자와성령의지상(地上)사역은두분이협력하여성부하나님의오묘한사역을나타내시는것이다.

신현현의가장중심되는사상은하나님께서 (이미주셨고자기완결적으로보이며자연신론적인또는 기계론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인간과 피조계의 원리들을 지속적으로 파쇄(破碎)하시며피조계에직접개입하시어서자신의존재를확인, 재확인, 지속적으로확인시키신다는것이다.

이지속적인파쇄야말로죄로인하여믿음이없어지고하나님을향하여나가는걸음과몸짓을멈추려는인간들을계속불러일으키시는하나님의안타까운사랑의나타남이다.

하나님은 이시니라. 인간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셨는데 그 호흡 자체가 곧 말 이며 하나님의의며, 하나님의법이며, 만유의법칙이며, 생명이며, 이다. 바람이며호흡이신성령께서붉은흙덩어리를하나님의형상인사람, 곧아담이되게하신것이다.

그는 그러므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이시며 바람처럼 보이지 아니하며 흔적이 없어 하나님의 광을숨기실수있는것이다. 성령으로난사람도다이와같아서어디서오며어디로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난 사람의 삶과 행적은 이 세상의 평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흔적과자취가없다는것이다.

그러나 한편 성령님은 순진무구하신 나타나심으로 구속사적인 성령님의 사역을 이루기도 하신다. 이는신현현역사속에자신을나타내시는성령님으로이해하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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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로 그의 선택은 자유함에서 나온다고 표현하기보다 창조하는 사랑에서 나온다고 표현하는것이적절하다.

성경의 사상은 여러 형태의 범신론과의 확실한 차이점이 있다. 범신론은 만유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신념의 형태다. 범신론은 원시인간의 정령숭배나 물활론에서 그 심리적 근원을 찾을수있다.

정령숭배의심층심리는, 세계의외양적사건이나사물의인식과인간의내적인가치분별의체계가성숙하지못한초기단계에서자기행위의적실성을논리적으로보장받으려는욕구에서생겨나는것이다.

범신론도인간의마음에하나님께서주신최고지선(最高至善)의 무한절정적(無限絶頂的) 관념을 투사할 마땅한 인식 대상을 찾지 못한 심리상태에서 인생이 취할 수 있는 몇가지 선택 중의하나인것이다.

성경의 성령론은 범신론과 유사하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이는 성령님의 편재성 때문이다. 그러나삼위일체론의오묘한논리적구조속에서하나님의초월성을훼손치않고성령님의편재성과내재성은그설자리를얻는다.

성령님의 내재성과 편재성으로 인해 교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도들의 교통함과 교회의 일치가신앙생활의 적인현실과잘합치되는것을발견하게된다.

성령님의 편재성은 일반 은총의 차원에서 만물 가운데 존재하는 적인 상통성(相通性)을 위한 근거도 제공한다. 이것은 후일에 사망을 멸하시기 전에 민족 간에 드리운 면박(綿薄)을 제거하시겠다고 하신 성구에 암시되어 있고 또 사람의 이 서로 비췬다는 잠언 말 에도 상응하는개념이다.

성령님의 사역에서 가장 멋있는 기능은 우리가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의 광을 보매 그의 형상으로 (변)화하여간다는구절에나타난개념이다. 완전한분을보는것만으로어떻게성도들의질적인변화를유발할수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충만하시고 예수님 개인의 성품으로 충만하셔서 성부와 성자의 모든 온전하신 것으로 충만하신 성령님이 성부와 성자의 서로 사랑이 온전하신 것을 증거하시고이세계의창조본원에임재하여계신것을나타내는것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인생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바로 성경적 인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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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만유의모든종(種) 중에지니는인간의수위성은인간의인격적특성을가름하는본질적조건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된 인간은 자신의 관리자적 정체성을 따라 책임과 권한이명백하며자체 역에대한선택권이있다.

이 선택적 결정권은 자유정신에서 비롯되며 자유정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천명(天命) 안에서개체적특성을갖추게한다.

그런데인간을개체로서개체외적(個體外的)인환경과분리시키면지, 정, 의라는세가지특성만으로규정할수밖에없다. 그것은개체가스스로도인식하는자신의반응이기때문이다. 이는개체적인격의차원이다.

그러나 인간의 행태 중 공동체라는 인간현상을 염두에 두고 인간을 규정하고자 하면, 개체의인식내용을 벗어나 성립하는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다루게 된다. 이는 공동체적 인격의 차원이라고부를수있겠다.

이 공동체적 관계는 상호간에 쌍방향의 관계가 최소 모델이지만 공동체는 무한한 네트워크적인접속을가능하게하는잠재력을지니고있다.

특히 적인무형적, 무공간적, 시간을초월하는차원을생각하면무한한수의관계가성립되며이러한관계속에규정되는개체인간의인격과특성은실은전체속에서의위상에서비롯되는것이다.

무한개의 접속이 가능한 인간 네트워크 속에서 개체의 인격과 특성이 불변한다고 말할 수 없는이유는만유는변화와흐름속에서하나님의창조목적을향하여나아가고있기때문이다.

이 흐름은인격적교제라는형태로나타난다. 이러한교제가서로의필요를채워주고서로만나일치를추구하게되는나눔인경우곧코이노니아라고하는것이다.

만일 인간만을 떠나 모든 만상을 대상으로 생각하여, 만유우주가 하나의 공동체적 관계라고파악하는경우, 그것은인격적인관계는아니겠으나역시하나의흐름이라는의미에서코이노니아형식의만남과나눔이생겨나는것이다.

그리고그수위(首位)에서흐름을만들어내는존재들이인격적존재들이라면, 이역시인격적교제의특성을상당히갖추고있는전우주의인격적차원이라고생각할수있다.

하나님은 인격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자유의 근원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본원적 존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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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이신적사랑을만일우리가감히이름을붙인다면성삼위(聖三位) 일치성애(一致聖愛)라고 일컬을 수 있으리라. 다시 말하거니와 이는 공동체내에서 복수가 단수를 사랑하는 다중관계를최소단위로표현하는것이다.

인간의 가정도 바로 심층심리 구조 속에 이를 공급하는 사회적 요소로서 창조되었다. 부모가자녀들을 사랑하고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부자녀(父子女)가 엄마를 사랑하고, 모자녀(母子女)가아빠를사랑하는이구조는사회를서로사랑하고일치시키는구조인것이다.

신격이 인격의 근원이 되며 인격이 신격의 그림자와 같다는 사상은 이교사상 중에 유출설과혼동하기 쉽지만, 기독교 신학의 발출(發出)매카니즘은 성부와 성자의 거룩하신 공동체적 관계속에까지스며있는성령론의 향을생각하면 지주의(괈智主義, Gnosticism)의 천박함과너무큰대조를보여준다.

발출의 원리는 유출설과는 확연하게 다른 신성과 인간 인격성의 그림자 관계를 보여주며, 실은그속에우주론에대한깊은암시가들어있는것이다. (그림자관계라는사고방식속에는이미우주론적인사유방식이깃들어있다.)

인격의 삼요소인 지정의만이 아니라 그 이상 우리가 이르러야 할 광의 자유에서 나오는 능력, 즉 하나님안에서세계와의불가분의유기적관계확립에서나오는창조성은우리에게있는신성을나타내는것이다.

성경적 사상은 지주의와는 명확히 금을 긋는데, 가장 확실한 차이는 인격적 고통현상을 포괄적으로이해하고통합적으로수용할수있는능력에있다. 조직적으로설명하기를의도적으로피했지만인격의여러차원에대한조명이이루어졌기를소원한다.

6) 성령님과예수님의개체 (個體괈)의 원하신정합(整合) 또한합치(合致)관계의발전

사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성육신에서 성령현상은비인격적또는무인격적수정(受精)에너지일뿐인가. 결코아니다.

주님은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우리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셨지만 우리의 믿음은예수님께최고의 광을돌려드릴수있도록오고오는시대마다그시대적도전에응전하여강해지고새로워져야한다.

성육신의 과정에서 역사하신 성령님께서는 아버지의 성품이 아들에게로 이전(移轉)되는 과정(다른 표현으로는 아들이 아버지를 닮아가고 수용하는 과정)과, 그 성품 속에 내포되어 있는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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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cal Personalism)일것이다.

원래인격(person)이라는의미는신격(Divine Person)에서유래하 고단독으로존재하는불가분의전실체(全實體)를의미하는것으로성경적본원외에는그유래를찾을수없다.

본고에서는이전실체의개념을본체(Ontos, 철학적으로는존재와도혼용)로표현하고있지만온전하신우리하나님을표현하려고사용하고있다. 라틴어 persona는‘일관성’을강조하는용어로서에트루리아어의persu에서그리스어의prosopon으로전역(傳譯)되었다.

prosopon은 얼굴 또는 역할을 표현하는데 이렇게 용어의 의미가 크게 변한 이유는 이교사상(굋敎思想)에는하나님의신격개념이없으므로용어의선별에있어서서기 5세기경법률가 던터툴리안이신학적으로신격을최초로규정하는과정에서용어차용이이루어졌기때문이다.

따라서 본체론적 신격(神格)사상이 없었으면 근대의 균형 잡힌 개인주의도 없고 공동체적 관계론적사고방식도발전하는데많은지장이있었을것이다.

성경은인본적사상과구조가다르다. 특히인격본위에서하나님의실체성을중시하기때문에인간도몸중심의전인격으로파악한다. 인간중심인듯하면서도인간을지나치게정신중심으로 파악하는 유심론적인 인본주의(人本主義, humanism)나 지나치게 육체 중심으로 파악하는유물론적인본주의와다르다.

사회의기초가되는법의유래에대한사고구조도다르다. 인간사회에서는공번된법, 즉공법(公法)이먼저만들어져이를지키는것이공의(公義)이며공의로운자가곧공인(公人)이다.

그러나 성경적 구조는 모든 의의 근원이신 예수님(先在 성자 하나님)이 공인(公人)이시고, 그분의의로우심이공의(公義)이며, 이 공의를균형있게기술한것이곧공법(公法)인 것이다. 이것이사회의본체론적인이해의기반이된다.

이같이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신하나님, 삼위일체하나님께서는인격의근원이되신다.인격의근원이된다는말은곧사람을사람답게한다는뜻이다. 사람답게하는하나님의사역은삼위일체론의기본적구조속에들어있다.이 사역은 삼위일체의 신격구조가 복수가 단수를 사랑하는 다중관계 공동체의 최소기본모델

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성신과 성부의 성자 사랑은 성육신으로 나타났고(manifested), 성신과 성자의 성부 사랑은 복종과 고난과 부활로 나타났으며, 성부와 성자의 성신 사랑은 발출(procession)이며일치며충만케하심으로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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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보다높은하늘들의하늘, 즉참하늘에서역사하시는그리스도와그의성령께서, 인격적위상으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데’에서 모든 교통하심을 가능하게 하시는것이다.

개역성경 요한복음 3장 13절에는 성자께서 두‘데’에서 동시에 존재하시는 의미로 해석한 사본이있음을보여준다. 이것은하등이상한생각이아니다. 시공간은인간의인식에서말미암은것이아니라하나님의깊은인내와사랑에서비롯된것이다. 모든존재가피조계속에서가지는위상(位相)도하나님의지혜와계획에서비롯된것이다.

(If we retain ‘οωνεντωουρανω’we must interpret the phrase of the timeless existence of the Son

in the heavenly places, while yet He is manifested on earth. Driver et al.)

예수님께서스스로자신을인자라고항상부르신것은두가지측면이있다고본다. 하나는만유의후사라는, 또는제2의아담이라는그리스도적인사명을나타내기위한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는 비록 성령님의 온전하신 내주(內住)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시지만, 가장큰유혹인교만을유발시키는상태, 즉‘미완(未完)의상태에서하나님의온전하심을이미가지고있는그상태’가어렵기때문이다.

“우리도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에펜뒤오마이)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죽을 것이생명에게삼킨바되게하려함이라. 곧이것을우리에게이루게하시고보증으로성령을우리에게주신이는하나님이시니라”(고후 5: 2~5).

보증(금)처럼 성령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는데 이는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다. 이 삼킨바 되는 것은 하늘 처소로 덧입는 것의 결말이다. ‘처소’(오이케테리온)라는 표현은 고대어에서는 이거하는몸이라는의미로도쓴다고한다. 어떤경우에나서로본질적으로다른것이성령님으로말미암아중첩되는현상이다.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하늘과 땅의 중첩(重疊)을 이루기 위하여, 그 중첩의 부담인 무한한 우주의격동과요동을한유한한인간으로서의예수님이품고있다. 성령님의전적인도우심과전적인 일치 안에서도 매일 신진대사와 세상살이를 하여야 하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중첩은 수학적 논리로서는 해(解)의 합(合)이 부대조건에 따라 다시 해가 될 수 있는 것인데, 공동체 이론

에서개체해(個體解)인한인간이하나님의계획안에서타개체들과합하여공동체를이루어하나님의의지를실

현하고구현하는현상을유추(괮推)하여묘사할수있다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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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간(三位間)의 관계성까지도 완벽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온전하게 감당하셨다는 것을 인정하여야할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성장과정에서 인격적 성숙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처음부터 온전한 신적 성품이 구비되어 있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의 궁극적 완성 이전에도 성장과정을 통해서더욱신성의온전함에다다른것인가. 예수님은점점더사랑스러워가셨다는기록은성장과정의인간적측면을확실하게밝혀주고있다.

한편성육신의과정에성자하나님은어디에계셨는가. 이질문은쓸모없는신학적사색을위한것이아니라예수님의하나님되심에대해가장중요한요소를밝히기위한것이다.

성자 하나님은 Ya-Yahweh시다. 하나님의 성호에서 독립 탄형인 Ya는 매튜 헨리에 의하면성자하나님을뜻한다. Ya-Yahweh는이사야 12장 2절(야야훼는나의구원)과 26장 4절(야야훼는나의반석), 두곳에나온다. 둘다성자하나님, 구속자하나님에대한묘사다.

그 분은 면전의 천사(The Angel of Face)시며, 임재의 천사(The Angel of Presence)시다.여호와의사자로나타나는분이시다.

그 분은전권대리자다. 그가없이는한시도이세계가부지될수가없다. 그는말 이시며(體)말 으로(用) 세계를든든히붙드시는일을하시는분이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성부 하나님의 면전에서 명령을 집행하고 계신다. 그런데 그는 동시적으로성육신의과정에성모마리아의태속에서도태아(胎兒)로자라고계셨다.

(이것은우주의두위상, 두‘데’를일치하게하시는성령님의사역에관계지어진다. 이는두시공간적처소가

아니라인격적위상이다.)

본체론적인 이해로는 두 위상이라는 표현이 더 본질적인 세계 이해의 방법이다. 사도 바울은이를 시공간을 뛰어 넘어 언급한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으로는 함께 있어서...

판단하 노라. ”

에스겔은“주의 신이 나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에스겔 3장 14절)에서 , 또 빌립은“주의 이... 이끌어간지라.”(사도행전 8장 39절)에서시공간의격차를무시하시는성령님의사역을볼수있다.

이는성령의교통하심과도근본적으로관련지어진다. 시공간이상또는이전의태초, 모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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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예수’와같은외경(外經)의형태로나타났다.

그 내용은 인생의 상식을 무시하는 특수한 권능으로 유년시절을 장식한다. 그러나 이런 주님께대한오해와는달리가장상식적으로사셨다는것은누가복음에서‘그부모께순종하여받드시더라’, ‘하나님과사람들에게더사랑스러워가셨다’라는표현들에서잘드러나있다.

그러나한편가나의혼인잔치에서자신있게아들의기적을기대하며하인들에게복종을요구하는 성모 마리아의 태도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전 삶이 어떤 형태 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여전히남아있다.

성령으로 잉태된 사람은 특별한 면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특별한 면이 상식 안에서어떻게삶으로살아졌을까. 모든사람이알아들을수있는방식으로하나님의말 이되셔야했던 예수님의 사명과 이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방법론은 신본적 인본주의(神本的 人本主義,Divine humanism, or God-centric humanism)를탄생시키셨다.

그 단 하나의 결말이 십자가와 몸의 부활사건이다. 몸과 그 몸놀림, 즉 현실적 사건으로 말하시는하나님의언어이며기호이며문법이며방법론이다.

십자가고난 - 죽음 - 부활사건이일어나기이전, 즉 사명성취이전의예수님께서는어떤상태 을까. 그때에성령님의사역은어떻게나타났는가.

성육신과정에서, 성장과정에서, 세례받으실때하늘이열리며성령이강림하시던순간과, 그이후성령께이끌리시며마귀에게시험받으시던광야현장에서, 변화산현장에서, 생애의지속되는기적과기도의현장에서, 겟세마네동산의기도중에, 예수님과성령님은어떻게합치관계를발전시켜나갔던것인가.

특히비둘기성령의강림은성령으로세례를주신다는약속의보증으로나타난것인데이것은성경 기록으로는 주관적으로 또 객관적으로 확인된 현상이었다. 이로 인해 성령 충만해지신 것은확실하고공생애사역이시작된것도확실하다.

그러면 그 이전의 예수님은 성령님과 어떤 관계이셨는가. 엘리사벳, 사가랴, 여선지 안나, 의인 시므온이모두예수님의성령강림사건이전에성령충만하 다고기록되어있는데성자로서의예수님의성령충만은어떤특별한점이있었단말인가.

변화산사건의의미는무엇인가. 엄 하게역사적의의를생각한다면변화산사건은하나님의계획안에서인간역사의정점이었다. 신구약을연결하는언약역사(言約곎史)의정점이었다.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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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계에 나타난 모든 신적 계획의 구현(manifestation)은 하나님의 해답이며 이들의 중첩이 하나님의 위대

하신계획을완성한다. 모든공동체현상은이해들의중첩이다. 역사의본체적공동체인예수님의교회는그온

전한해답이다.)

다시 성육신의신비로돌아가서존경할만한청교도주석가매튜헨리는단순히이렇게썼다.“한 인격 안에 두 본성이 아주 긴 히 결합되어 서로 본질적인 교통을 하고 있다.”“인자로서는승천할때까지 ... 땅에있으나신성으로서는하늘에있다.”

이는 성령님과 성자 하나님의 원하신 정합(Eternal Conformity)과 합치관계의 발전(Development of Unity)을 보여준다. 원하신정합은 원에서 원까지삼위일체하나님의한 몸 되심이요, 합치관계의 발전은 처음이요 나중이시고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을 통하여피조계에서이루시는삼위하나님의사랑의결실과정(三位神愛結實過程)을말한다.

독생자하나님을하늘에받아둠과성령하나님이보냄받고나타나심은합치, 즉동질성의성취(Achievement of Uniformity)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 성령의 용어를혼용할수있는것은바로이동질성이성취되었기때문이다.

이동질성의성취는성자와성신, 두분이창조때로부터지속적으로공동작업해온것인데십자가상의고난, 사망, 이후의부활에이르기까지그작업을완성시켜가신것이다.

본성의결합, 본질적교통, 이러한단어들이사역을통하여완성되기위해서는오직성령님께서만이이일을하실수있는것이다.

예수님안에나타난인격현상(人格現象)의극치는과학적사고와도어긋나지아니한다. 19세기초기 심리학 분야에서 시작되기는 했지만 과학은 요즈음이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같은새 역들에서구체적이고본격적으로인간현상(人間現象)을다루기시작했기때문이다. 인격간의관계를연구할수있는방법론은아직제대로시작도못하고있는것이다.

아마도 20세기후반에나타난복잡계과학(science of complexity) 정도의학문이이런방법론의 새로운 범주를 개발해 낼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학문구조적 특성으로 보아 과학으로서는인격현상과인격관계의극치는외연(extrapolation)으로짐작해내는수밖에없을것이다.

현대과학이 인격현상의 신비한 깊이에 대하여 파헤치려면 아직 시작 단계에 있음을 인정하여야한다(또한이는성령론의다음항목인우주론과도연결된다). 인간은 자라나시고 생활하시는 예수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초대교회에는 예

수님을신비적합리주의(神秘的合理主義)를통해신화화(神話化)하는과정이있었고‘도마가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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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분열증은 자기 아닌 것을 얻고자 하는 데서 오는 것이나 그리스도는 자기의 광스러움을포기하는데서분열을극복하고성령님과의일치를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공생애중에는확실하게자신의신성을모든복음서에서나타내신다. “아브라함이나기전부터내가있느니라(Ego eimi = I AM).”갈릴리폭풍속에나타나셔서“두려워말라,‘내가있도다’(ego eimi = I AM, 개역성경은‘내니라’).”

이런 신성(神性)에 대한 의식과 자각이 언제부터 예수님께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생래(生걐)의선험적의식이지만인격적자각은역시성장과관련되어이해해야할것이다.

예수님안에역사하신성령님은특이하신형태로 착하여주님의삶속에개입하셨다. 즉 유한자로서무한한하나님사랑을극도로체험하도록 (성령으로잉태되어특별하게성별되어죄와상관없이된성결한성자의몸에) 성령님께서자신을홍수처럼쏟아부으신것이다. 그대표적인예가예수님이가지셨던특별한부분, 곧‘아빠스체험’이라고말할수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보니 유리하는 양떼와 같아서 그 비참한 상황에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스플랑크니쪼오마이) 연민의 정을 느끼신다는 상태는 곧 성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지극한 느낌을공유하시는상태로오직성령께서만이이러한인격적인일치또는지정의의합치를가능하게할수있는것이다.

성령님께서는예수님과십자가상까지동행하시고고통의현장에함께하셨다. 이를자세히살펴보려면몇가지성구를연구할필요가있다.이성구들은성결하신예수님의개체령에대한기록들이다.

“성결의 으로는”(롬 1:4)은‘카타 프뉴마 하기오쉬네스’로‘who as to his spirit, or whothrough the Spirit of holiness’, 즉그안에하나님의신성이있거나인격이거하는 이라는뜻이다. 이는‘육체로’라는말에대비하여‘성결한 으로’라는뜻을말하며, 예수님의개체령을지칭한다.

또“ 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히 9:14)는 현존하는 원한 그리스도 자신의 (개체령)을말한다.

“ 으로 의롭다 함을 입으시고”(딤전 3:16)도 그리스도 찬가의 일부인데 매우 초기 교회에서사용된것으로보는부분이다. 이것은자신의 (개체령)으로말미암아자신의의로우심을입증받으셨다는의미로받아들인다.

358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산현장은보이지아니하는세계를드러내보이신현장이다. 특히역사의대표자세분이상봉하고결의하고하나님의윤허를받는현장을나타내보이신것이다.

단순한 환상으로 처리하는 불신(不信) 주석과 신학들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크신 광이 크게 가려져 왔다. 이 변화산 사건을 가능하게 하셨던 분은 성령님이시다. 변화산 현장을 연출하시고입회하셨던성령님이아니시면하나님의가장깊은것을드러내실수없었을것이다.

공생애 이전의 예수님께서는 어떤 상태 을까. 예수님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이고 적인 성숙은어떻게이루어졌는가.

성신께서성자의신성을성육의순간부터온존하셨다면“그에게는신성의모든충만이육체로거하시고...”(골 2:9)하는말 이무엇을의미하는바인가. 태중의세포또는아기가신성이충만하 다는것이아닌가. 예수님은원래신성이충만한육체를가지셨다는것이다.

이 부분은 성령사역의 가장 깊은 신비가 있는 부분이다. 주님이 친히 나타내시기까지 아무도아직건드리지말라.

그러나 인간(人間) 중에 살면서 예수님의 정신은 교육 받으며 성장하여 가고 성령님은 예수님의정신적성장이말 안에서친화력있고균형잡히도록도우신것이다. 이정신은엄 하게는인생의간역(間域)에속한다.

(간역은 예컨대 아담 이후에 인류가 하나님을 떠난 상황에서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상태에서발전시킨정신권(noosphere)에해당하는것이다)

성령님의주된사역은인생에있는정신적사고와심리적상태의분열증상에서 혼을지켜주는데 있다. 모든 분열상태와 무관하며 그 침해에서 자유하여 인간의 분열증을 극복하시는 예수님은그의식속에하나님의말 이임하시면 혼과정신과육체가즉시반응할수있는조건의인간이되신것이다.

12살 때의 토론에서 보인 지혜와 후일 치유사역을 행하실 때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고 원하시는 대로 말 하실 수 있었던 것, 또한 성신 하나님의 온전한 동역자로 사역할 수 있었던것은이런이유때문이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찬가(讚歌)이며 신앙고백이었던 빌립보서 2장 6절 이하, “그는 근본 하나님의본체(morphe)시나... 하나님과동등됨을취할것으로여기지아니하시고... 자기를비어종의형체(morphe)를가져...”는예수님이자의적으로비우는과정을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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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61

예수님께서 광을 받으신 후에 성령님께서는 저희에게서 (또는 저희 속에서부터‘생수의 샘같이’) 흘러나오신것이다. 이같이인간의내적세계에서역사하시는사건은예수님께서부활과승천과 참 하늘에 들어 가셔서 (창조 이전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 가지셨던) 광을 받으신 이후에성취된것이다.

참 하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드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기 위하여 오신 분이다. 성부하나님계신곳은볼수없는곳이다. 하나님은 이시니하는그말 을가능하게하는우주의 중심이며 태초의 자리이며 성부의 보좌이며 성자께서 중보하시는 보좌 우편이며, 중보 자체가말 이되는곳이며, 성자께서아버지를나타내시는곳이며, 성신께서흘러나오는곳이며, 능력의말 으로만물을붙드시는곳이다

7) 성삼위일체의우주론적이해 (양태론과는다름)

성령론을잘못이해하고적용하면범신론의함정에빠지기쉽다.

우주에대한시공간적인이해와인격주의적이해가잘화합되어야우리의삶을균형있게살아갈수있다.

우주의 시공간과 만유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하시는 과정의 인격적 교제에서 빚어진것이다.

평형상태에서우주가생겨나게한극소의불균형이태초에어떻게일어났는가. 과학은이를불균형으로 이해하지 말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의지로 인정하여야 한다. 이 창조의지는 삼위하나님의일치성애(一致聖愛)에서나오는것이다.

다중(多重) 시공간적(時空間的) 우주(宇宙)의 가능성이 본격 논의되면서 만유의 유일회성(唯一回

性), 역사의유일회성이흔들리는듯보이지만연구가진행되면오히려하나님의자리, 절대자의자리, 선택결정하시는하나님에대하여이시대에게교훈을주실것이다.

하나님께서는오직한줄기한머리(베레쉬트)만뽑아내셨다. 그것이곧태초이신예수님인것이다. 지주의(괈智主義, Gnosticism)는 만물보다먼저나신자(골 1:16~17)인 성자하나님을단지우주의기원(起源)을설명하기위한기능적존재로타락시킨다.

그러나하나님의자녀들은 - 외식(外飾)으로죽은신앙이볼때는딱딱하기그지없는하나님의예정론이 - ‘예수그리스도안에서하나님이예정하신뜻’이라고표현된그단순한성구앞에서날구원하신예수안에숨긴하나님의신비를생각하며능히우주를울리는탄금(彈琴)의미성(美

360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이세구절에는예수님을부활시키신성령님의사역에대해해석할수있는기반이드러나있다.

위의 성구들의 주석을 읽을 때, 예수님의 육신(肉身, 살크스)과 신(괈身, 프뉴마)을 대비하여, 신의희생제사에대하여비중을두고기록되었다고이해하기쉽다. 그러나이는이분법적인사고방식이다.

오히려여기서살필성령님의사역은성결하게나시고죄없이흠없이보존되신예수님의육신이, 다시강조하거니와육신이, 적인희생제사로서드려지도록일하셨다는것이다.

말하자면그의육신을바치는것이 적제사가되었다. 이 적제사가성취되기위해예수님안에서합치관계의발전을이루는데결정적역할을하신분이곧성령님이시다.

다시말하자면예수님안에서육신과 신의분열을해소하시고 육간의일치를이루시고신성이인성과일치를이루시도록역사하신분이곧성령님이셨다는것이다.

성령님께서는예수님의부활사건에서‘죽을것이죽지아니함을입겠고’라는현상을일으키시고, 유한자가 무한자를, 국소자(局所者)가 편재자를 입는 신비를 허여(許與)하고 자신을 포기하셔서이창조와구속역사의대문을여시고그문턱을넘어가신것이다.

이는참으로새창조를통하여구속을완수하신것이다. 이는참으로성자께서자신을비우셨기때문에성취하신것이다. 여기에우리의위대한찬가(讚歌)가발생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합치과정의 절정에서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개체령과 일치를 성취하게 되시는것이다. 이일치는예수님께서부활후제자들을만나숨을내쉬시며“성령을받으라”고말하셨을때이미이루어져있었던것으로보아야한다.

사도행전 16장에 원하신 제 3위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예수의 으로 불리시는데, 인생의역에들어오시고개체령으로되셔서스스로를무한소(無限小)로제한하셨기때문에삼위하나

님의무한한사랑을성취하시게되고지극히낮아지시사음부에까지방문하신성령님이시다.개체령으로전환하신성령님께서인간의모든내적 역(internal realm)에들어오신것은예

수님의 인성 속에 역사하시는 과정을 통하여 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말 처럼“저는너희와함께거하심(dwell with you)이요또너희속에계시겠음이라(will be inyou)”하는예언을성취하신것이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 39절까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예수님께서 아직 광을받지못하신고로성령이아직저희에게계시지아니하시더라)”로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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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63

신존재양태의변화를나타내신다는것을발견할수있다. 이는 삼위신론의양태론과는근본적으로다른것이므로오해없기를바란다.

8) 성령님의활동범위및존재양태의변화(구원역사의phase shift에따른변화)

성령님께서는태초에운행하셨다. 그의성호는‘하나님의신(루아흐, 바람)’이셨다(창 1:2).

신약의사상과의대비를통하여이하나님의신이‘가장완전한그리스도교적의미에서’성령님이심을 강력히 시사하며 성경의 문맥도 이 점을 인정한다(A.F.Kirkpatrick, CambridgeBible, Psalms, II, p293을구약원어신학사전, R.L.Harris 외, 요단출판사, p1047에서재인용).

필경은위에서부터성신을우리에게부어주시리니(사 32:15).또한하나님은 이시다(요 4:24).

이 두성구는하나님의무형성과인격성을나타낸말이다. 성령은곧예수의 (행 16:6~8)이며하나님의 은곧그리스도의 이시며또한그리스도와동일하게여기어졌다(롬 8:9).

성령님의성호를보면대단히다양한형태를지닌다. 하나님의 , 양자의 , 성령, 아들의(롬 8:14~16, 갈 4:6), 성령(구약 2회시편51편, 이사야 63장, 신약 80회이상) 등인데연극에서주역외의모든단역을도맡아하는역할처럼보인다.

성령님의 활동은 외적인 세상 사건에서 가장 내적인 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위에서이루어진다고표현할수밖에없다. 다윗이시편에노래한것처럼성령님의편재에서벗어날수있는방법은없다.

성령님은하나님의가장깊은것까지통달하신분이니말할나위가없다. 그러나그는인간의의자유를통제하지않으신다. 인간의 과, 양심과협조는할지언정억압하지않는다.

간혹성령님의강권하심이있을수있고특수한사명을위하여말 에사로잡히거나성령님께이끌린바될수는있으나이것이원칙을흩트리지않는다.

성령님은구원역사의진전에따라그존재양태가변화되기도한다. 주님이십자가지시기전에성령께서지금은너희와함께계시지만성령으로세례가베풀어지면너희안에계시겠음이라는말 이시사하는바는크다.성경 전체를 살피면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이를 위한 성령님의 역할은 하나의 추세를 그리고

있다.

362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聲)을가슴줄에서퉁겨내는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성자 하나님께서 창조의 머리되심은 십자가 사건 이전에는 그 자세한 실상을인간들이알지못하 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로 성자께서 구속사의 머리되심이 나타난 후에는 교회처럼 만유의 존재상(存在狀)도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지체론(또는 準肢體걩)이 성립될 뿐 아니라 만유가어떻게하나님안에하나이며통일되도록창조되었는지이해할수있게되었다.

창조와 구속의 머리가 되신 그 분이 곧 성자시다. 유한자이시지만 무한과 유한의 공존이시며엔트로피적상황(질료)에서역엔트로피적회귀(인격, 의와질서)를가능하게하시는분이시며이모든과정에성령님은손수요동(搖動)케하시고성부의뜻을이루시며성부와함께창조하셨다.

우주는하나님인가. 이는범신론의함정이다.

그러나 우주를 실체로 보고 하나님을 논하면 범신론이 되지만 하나님께서 실체인 입장에서우주를 하나님이 펼치신 것으로 보면 하나님이 깨신 후에 꿈을 멸시하시는 것처럼 인간의 간주관(間主觀)과같은상태가되는것이다. 즉우주는삼위일체하나님의공동의꿈이며간역(間域)이다.

오해하지말아야될것은윗문장에서꿈이라고표현한부분이다. 시편기자가하나님께서깨신후에꿈을멸시하신다는성구가세상이꿈과같다는유심론적(唯心걩的)인이교적(굋敎的) 표현과는다른것이라는점이다.

시편 기자는 마치 기하학(幾何學)에서 삼차원적 실체를 이차원 평면에 투 하는 방법에 비견할수있는표현법을원용하고있을뿐이다.

양태론적이단은어떤진리의단면을어떻게잘못이해한것인가. 삼위하나님께서세가지양태로나타나인식되시는한분하나님이실뿐이라는견해가양태론적삼위신론의기본형이다.

양태론적삼위신론에는교제와사랑이생길수없다. 얼굴이세개인한인격의사람이있다면그세얼굴이서로사랑할수있을것인가. 양태론적사고는, 이를배태한이론가들의 성을가려내어비판하자면, 이기적환원주의에서비롯된것이다.

그러나성자하나님께서선재성자 으나땅에오셔서성육신하신것처럼그존재양태의변화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성령 하나님께서도 성자의 구속역사에 따라 자신의 거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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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65

는성령님께서같은사역을하신다(슥 3:9).

이같이 엄 하게 말하자면 성령님의 존재양태는 변한다기보다 원래 극에서 극까지의 모든 변화를내포하고계신분이라는점을생각해야할것이다. 그러나구속역사의흐름을따라확실하게보여주시는추세는우리가잘음미하며은혜를받아야할대목이다.

2002.1.2. 고왕인

(예수성령론은 아마 5 ~ 6회 더 연재되어야 할 것이다. 성령론은 원래 일생에 걸쳐 서서히 마무리하려고 한

다. 특히뇌과학과인간론과고분자생물학공부가어느정도끝난후에하고자한다.)

364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성령님은 스스로 축소하신다. 한 인간‘예수’의 으로 불리우시기까지. 또 본질적으로 그의이되시기까지.

그는 아버지의 에서 아들의 으로 하나님의 에서 인간의 으로, 여호와의 신에서 예수의 으로자신을낮추어가시고비천한죄인들, 아직도거룩함에이르지못한성도들의무리속에또그각자중에서그더러운몸을성전삼으시고역사하시는겸손한하강을계속하셨다.

실은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로 가셨고 그의 무덤 속에 그리고 그의 죽음과의 처절한싸움속에같이하셨다. 그는‘성결의 으로는죽은자가운데서부활하여하나님의아들로인정되셨으니’라는말 속에그낮아짐의극한을알게해주신다.

이성결의 이라는구절을개인의 으로도또하나님의 으로도해석하기어려워고민하는주석가들의 입장은 성령님의 온전하신 겸손의 사역을 이해하면 해결된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비우심같이성령님은자기를비우신것이다.

성령님은 교회의 성장을 통하여 예수님의 광이 나타나는 만큼 자신의 역을 확장하신다.축소 후에 오는 확장은 아들과 아버지의 광이 온전히 나타나는 그곳에서 이루어진다. 예수님의몸인교회, 즉천국을확장하시고그속에서자기자신을더욱온전하게나타내신다.

성령님께서는성자의몸인교회에내주하시고교회의성장을관장하신다. 불완전하고, 불경건이다반사인신자의몸을성전으로삼으시는성령하나님의신비는있을수없는일이일어난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논점의 하나로서 성령님의 나타나심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나타내심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령역사 또는 교회의 사역 중 예수님의 이름 없이 이루어졌다면그것은사이비로보아야한다.

물론 이름을 나타낸다(반포頒布)는 것은 광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사용되어야 하지만(출 34장) 어디까지나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나타나야 한다는 조건은 필수적이다. 이것이 예수성령론의실천적핵심이다.

성령님의다양한은사의나타남은성령님의존재양태의변화와본질적인관련이없다. 은사는보이지아니하시는성령하나님의외적사역이다각도로나타난것이다.

성령님은 에스겔이 본 신현현에서 무수한 불꽃과 수 많은 눈(眼)으로 나타나시고(겔 1:18) 그눈들은 밖을 살피기도 하지만 스스로 안을 살피기도 한다. 스가랴에서도 일곱 눈으로 나타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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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67

며하나님의 광과직접적으로관련된일이역사의본질이다. 즉“신본위(神本位)의사상”을가지고사는이들은역사의본체또는본질이고, 피조세계의현상위주로사는것은그림자일뿐이다. 인간의사상은“그림자의사상”일뿐이고이는현상을좇는다.

인간의세상을홍수로멸망시키고후회하신주님께서그이후에도역사의전개를통하여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결론으로“몸의 사상”을 나타내신 것이다. 곧 하나님의 몸의 사상인 것이다.예수님의 강생하신 몸,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나타나신 몸, 그 몸이 교회로 나타나고 이몸이곧신약이가르치는하나님의오직한몸(唯一神體的民)인것이다. 이것이민(民)의사상의본원(本源)이다. 그러므로 개체적 민(個體的 民)의 사상은 헬라에서 나왔지만 공동체적 민(共同體的民)의사상은히브리에서나온것이다. 모든개체나공동체는유일신체의그림자일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체(體)와 용(用)’의 사상전개를 따라‘본체론과 성령론’을 말할 수 있다. 본체론의 핵심은 그리스도론이며 성령론의 핵심은 편재하심(숨기심)과 나타나심과 코이노니아를통해말할수있다. 하나님의시대경륜에따른외양적성령사역의변화를볼수있으며 성정치의방법론은성령론의코이노니아부분의확장으로나타나게되는것이다.

몸을 세워 이어가는 것을 신본대간(神本大幹)으로 볼 수 있는데, 말 의 수납과 공동체의 형성, 말 의단련과공동체의성숙, 시대의변천에따른시대적말 의성숙, 시대적말 을수납할수있는공동체의종자(씨)들이이루어나가는역사의전개를파노라마로감상하는것이다.

그종자들은모세, 사무엘, 엘리야이며, 사울과다윗이며, 시드기야와미가야이며, 무명선지와노선지(350년 후)이며, 여호야다와 요아스(이 사람도 넣어 주자)이며, 세례요한의 공동체이며,이런신본대간을따가다가만나는콘스탄틴대제와사울왕도반드시나쁘게만평가하지말라고부탁하는것이다. 우리는크롬웰의 IRA connection을생각해보아야한다.

그러나이러한인간의흐름만보면우리의믿음은안개처럼사라질수도있다. 미가엘의대군을 바라보고 예수재림과 예수통치를 쳐다보고, 타락과 회복의 역사의 결국을 믿음으로 보아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지옥의 불길이 번져 오를 때‘오른손 편 팔’을 일으키신다. 그는“권세의 우편에 앉으신 분”(시 80:17~18)이시며 예수통치를 가능케 하는 성령공동체를 이 땅에서호출하시는분이시다.

그러므로주님의재림이전의사명자들이준비하고분투할일들은의와평화의다스림을땅위에 나타내기 위하여 언제나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날 에너지를 내장하고 필요한 곳에 신속히 나타나는것이다.

366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5. 본체론에서 나오는 성정치(괈性政治)

성경적 본체론은 우리의 신앙을 가장 강하게 지켜주는 보루와 같은 사상체계이다. 또 실제로주님께서 사신 것을 주목하여 살피면 본체론으로 사셨다. 우리 인간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성자하나님으로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실 권리가 있으신 분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기를 비우시는일이본체론의절정이되는것이다.

예수님의 성은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인해 공급된다.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신다는 일이희랍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지성적 진리의 증거가 아니라 그 지성적 진리를 내포하는 예수님 자신에대하여증거하신다는말 이다. 이정결한, 또정결케하시는예수님의존재가우리와연결되시기때문에우리의 성이이세상에서유지되고항상새롭게되고항상성을지니게되는것이다. 우리는빛만반사하는덕스러워보이지만속은차거운달이아니라속내부터뜨거운새끼태양들인것이다.

1) 하나님은어떻게 으로統治하시는가

땅의 왕들의 머리가 되시고 정사와 권세의 머리가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통치자이시다. 그는 원한통치자로서모든권세의원천이신데 (말하자면왕권신수설이전혀틀린말이아니라는것이다) 시민공동체들의권력도그에게서나오는것임을알아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숨어 있으시려 하시는 것은 아니나“숨기시는 것은 하나님의 광이요”하는 잠언말 을따라어떤의미에서는하나님께서인간중에임하실때인간이하나님을보고죽지않게하기위하여자기의엄위하신 광의본체를숨기시는것이다. 참된의미에서는참하늘에계신하나님께서는통치의 광을숨기시지않는다. 숨기심과나타나심의사상(신 29:29, 전 11:5,잠 25:2)은인간측에서본하나님의사정일뿐이다.

천상통치는 우주론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해야 됨을 말해 준다. 하나님 계신 하늘은 어디 있는가. 이런 소박한 생각은 남극, 북극에서 하늘 향해 기도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인간이 머리 위를하늘로생각하는것은육신의머리위가아니라 혼이보는높은하늘로서모든인간은하나님계신중심하늘을향하고기도하게되어있는것을알게된다.

하나님의통치는말 통치로서“말 이모든하나님의이름중에뛰어난이름”이신것이다. 말을 세상에 보내시고 말 이 일들을 이루게 하시고 믿는 자들을 위험한 사태에서 구해 주시고

자연의모든계절과운행을주관하시는것이다(시 105:19, 107:20, 사 45:23, 55:11).

세상역사와 신역사의 관계를 생각하면 세상에 일어나는 천만가지 모든 사건은 단지 그림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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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69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to him are all things)라는말 에서바울의전치사용법(고전8:6, 골 1:16 참조)을참조하면“엑스아우투(엑스는하나님에대하여사용), 디아우투, 에이스아우톤(디,엔,에이스는그리스도에대하여사용)”라는원문에대한정확한이해에이르게된다.

(1) “만물이 주(성부 하나님)에게서(엑스 아우투, From/Because of Him) 나오고”는 창조역사를 말한다. 그러나 골로새서 1장 16절에“만물이 그에게(엔 아우토이, 그의 안에서) 창조되되...

그로말미암고(디아우투-)...그를위하여(카이에이스아우톤)”을참조하면,

이 세상의창조는말 (성자)과 성령의역사(창 1:1~2, 요 1:1~3)를 통해이루어진것이다. 세상은하늘나라의모형과그림자(Copy and Shadow, Image and Shade)인데, 이는히브리서 8장 5절의사상을통해이해하여야한다. 신적통치와세상나라의관계는다니엘 4장 25절에느부갓네살왕의정신병에대한다니엘의예언을통하여잘나와있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폐해 버리시기 전까지는 피조계의 법과 집행력이 정사와 권세들에게 있었고 (골 2:8~15), 주님의승리이후에도재림이전에는세상의법, 나라, 집행력은신적위임의형태로남아있다고보는것이다(롬 13장). 그러나언제나하나님의백성이주의뜻을받들어공의와평강을위하여일할수있는길은우선적으로열려있다.

(2) “주로(그리스도로) 말미암고”(디아우투-, Through Him)는구속역사를말한다.

원래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하심을 인간들에게 나타내지 않으신다. 순결하신 예수님은 선재성자로서하늘에서아버지의 광을나타내신분이시며창조에참여하신분이시며사탄의타락이후 하늘에서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시는데 광야의장막교회에서도일단의성령공동체들을통하여구속역사의맥을일으키셨다.

구약적상황에서는주의신민들에게있는성령동거의상태를, 신약신자들에게성령내주하시기이전에는“너희와함께거하심이요”(요 14:17)라고표현하고있다. 이러한성령공동체들은모세의70장로와사무엘선지학교와엘리야선지학교등을들수있다.

이러한구속역사는신약에서그완전한의미를알게된다. 하나님의세상속에나타나심인예수성탄(골 2:9)으로시작되어하나님의성령의강림하심, 성령내주하심, 은사를부어주셔서성령의나타나심을주신다고한것이다(고전 12:7).

구속역사는 하나님의 몸인 우주적 교회가 일어남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곧 예수님의“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선언은 자기 자신을 통하여(through Him) 구원이 이루어짐을 말하는것이다. 자신이곧나라인것이다. 신자도“ ...저희로하나님앞에서나라와제사장을삼으셨으

368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하나님은단기적인일과작은일에도관심이있으신가. 이는하나님의인도(引導)에속한일이다. 사람마다주님께서그인도의내용을결정하시지만보통은그부르짖음에달렸다. 부르짖음의상달을원하시는것이다.

하나님께서는속된세상적인일도통치하시는가하는의문을우리는언제나가진다. 하나님의통치는 가장 사악(邪惡)한 곳에도 절대적인 통치력을 행사하신다. 오직 그 죄악이 관 할 때를기다리시거나하는것은역사의매듭을풀어야하는일들이걸렸을때에는이스라엘족속도430년을기다려야했던것이다.

세상의 일반사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성도들이 준비되지 않았고 방법론이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정치 속에 적 다스림이 나타나도록 심령부흥이 동반되어야 한다.심령부흥은 심리적인 속임수로 되는 것도 아니고 깨어져서 자기 아닌 것이 되어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현상이나타나고경세적인방법론이서기시작하면하나님께서는새로운시대를일으키신다.

그러나우리는신정(神政)정치와 성(괈性)정치의차이를알아야한다. 신정은모세처럼하나님의직접적다스리심이임재해있는것이고일반적으로될일은아니다. 그러나 성정치는몸을세우고이어가는몸중심이서면사무엘-다윗-솔로몬의사명공동체처럼그로인해한시대를이어가며주님의 광을지키는형태다.

성정치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성을 다스리고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서 비롯하며 이세상적해결책도제시하여야하는하나님의인도하심을받는정치형태이다. 현실속에인도함을받으며진퇴(進退)와취사(取捨)를예수중심가치관으로하여야한다.

2) 하나님의경륜(經綸)

주님의 다스리시는 인도함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statecraft 보다 dispensation즉 섭리), 즉 전능자의 우주와 역사를 다스리시는 기본원칙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야만경세적경륜에대하여그필요성과그한계를알게되는것이다.

이 땅에서 경세적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끊임 없이 자기들의 죄성과 싸우고 세상의 경세가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세적 경륜이 없으면교회는 국가의 권력을 장악한 교회의 적에 의하여 순식간에 사탄의 물리적 폭력 앞에 노출된다는점을명심하여야한다.

로마서 11장 36절에“이는만물이주에게서나오고주로말미암고주에게로돌아감이라”(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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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71

역사가나타났던것이다. 300명이 20만을궤멸시키는일은사실은불가능한일인것이다. 마치다윗의돌팔매가골리앗을무너뜨린일과비견할만한하나님의나타나심인것이다.

하나님께서는평상시에신인교제(神人交際)를통하여간헐적으로나타나시고, 장기적으로 침묵하신다. 주님의 행사는 예측 불가(왕상 18:12)하므로 인생들은 신정정치에 부담이 있는 것이다. 신명기 4장 7절에“너희민족처럼그신의가까이함을얻은민족이어디있느냐”라는확인용 되물음은 이스라엘이 항상 하나님의 신의 응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데 대한 재결심을촉구하는숨은격려도포함하고있는것이다. 현대를사는우리에게여전히유효한하나님의동행은신현현의가장은미한형태인데믿는자

는누구나주님과의교제의증거를가지고있다. 특히그친 함은아브라함과다위을통하여가장정감있게우리에게까지전달되고있는것이다.

시편 25장 14절에“여호와의친 함이경외하는자에게있다”는표현은진정우정을나타내는말이 아닌가. 하나님은 언제나 어전회의, 비 회의인‘쏘드’에서 의논하시고 결정하시는 것 같다. 이 말의의미가‘친 ’을내포하는것이라는데우리가기도드리는것도그회의석상에상달되는것이아니겠는가.

이렇게사람을통한하나님의통치가기도하는자들을통하여또특별히일으키시는구원자들을통하여이루어지지만한편지속적이고정상적인정치행위가성경적으로정착되는것도주께서원하시는것인줄우리는확신할수있다. 이것을 성정치(괈性政治) 라고부르는것이다.

그가장확고한모델이사무엘이인위성(人爲性)이강한예언적신정정치의체계를갖추고, 선지자무리와함께다스리는것이었는데이는군사적인췌약성이있었음에도불구하고사사(士師)정치의모범으로평가할만했다. 사무엘상 7장 9절에“온전한번제...부르짖으매...응답...”받는하나님의직접기적적개입이나타나고사무엘의생존시까지불레셋이이스라엘을두려워했던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이 보기에도 불레셋의 문(營門)이 이스라엘 내륙으로 깊이 들어와 있고 곡창지대는블레셋의관할하에있으니평화만이바랄만한것은아니었다. 자기아들들의비리가없더라도왕의제도는생각해볼만한것이었다. 힘과힘의대결이필요한곳에선지자의무리로서는해결책으로미흡한것이었다.

여기에서중간에사울의실패가따르지만다윗과유다왕조의대두는필연적이었던것이다. 하나님께서보시기에는장구한인류의역사가흐르면서하나님의성전을짓기위한제국을일으키시는목적이셨지만그과정에회막성전의봉사자들간에이어져오다가사무엘에게로전수된성령의 역사가 선지자 무리들의 법과 교육방법과 제도로 확립되는 꼭 필요한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갖추어졌던것이다.

370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니...”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환난과> 나라와 <참음에동참하는자”(계 1:9)가되는것이다. 즉샌드위치로표현된환난과참음을통하여나라에동참하는자가되는것이다.

(3) ‘주에게로’(에이스 아우톤, To Him)

“주에게로”는그리스도에게로라는표현인데곧예수재림으로이루어지는하나님의나라에서이루어지는일이다.

요한계시록 1장 5절에“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에서 그의 전권시대가 열리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고린도전서 15장 25절에“...모든정사와모든권세와능력을멸하시고, 나라를아버지하나님께바칠때라”는말 속에그개선문을통과하시는종막을표현하고있다.

그런데 이 결말이 매우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되어 있다. 곧“하나님이 만유의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는 것인데 이미 그렇게 편재해 계신 주께서 왜또이중적인일을하려고하시는가. 이는“그리스도는만유시요만유안에계시니라”(골 3:11)는말 과 맞물려 해석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만유를 회복하시고 아버지 앞에 다시 바치는일과연관이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로 모든 것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게(to Him) 우선 모든 광과존귀와권세가돌아가야하는것이다. 아버지께서아들을보내신것은바로이일을이루기위하심이다.

3) 하나님의통치, 성정치(괈性政治)

우리는사명을받은개인과사명공동체의 성이견지되는것이하나님의통치를가져오는첩경임을깨닫는다.

그러나하나님의통치는신정정치(神政政治)가그가장명료한모델이었으며본래적세계질서 (시96:10, 호2:20~22)에대한성경적묘사는언제나하나님께서통치의근본이라는면을밝히드러낸다.

그러나 신현현(神顯現)의 통치는 야훼 하나님의 현현과, 성령강림과 같이 일어나는 사건에 대하여 신적 주도권이 명백하며 주로 비상시(非常時)에 (출 3:7~8) 일어난다. 야훼께서 현현하신목적은 신성칠행(神聖七궋)인 직접“보고/듣고/알고/내려와서/건져내고/인도하여/이르려 하노라”는 말 에 잘 나타난다. 사사기 6장 34절에도“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고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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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순된 인간의 매너리즘 극복

성정치가 적극적으로 추구되어야 하는 이면에는 인간의 맨너리즘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인간은부패해가고마모되어가고해이해진다. 이는인간이몸을지닌존재이므로그러한것이다. 몸과뇌는주의집중과긴장과학습과창의를통하여항상새로워지기를힘써야한다.

우리는지금을사는존재다. 지금의나는조금전의나와다르다. 또조금후의나와도같을수없다. 왜냐. 우리의구성요소들이찰나의시간이지나면서, 엄 하게말하자면생화학적으로, 이미변하기때문이다. 이것은불가(Buddhism)의주요화두중의하나일뿐아니라사물을존재의개체적단초에서부터파악하려는모든합리적사고(일부현대과학도포함하여)의결과인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나는 왜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와 또 미래에 존재할 나에 대하여 한결같이 나라는 불변의 개체적 존재로 생각하는 것인가.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생물학적 개체로 그 개체로서의한정된삶이나마연속시간을산다는개념이있기때문이다.

연속적 시간을 생명체로서 유지한다는 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근거를 가진다. 기억이라는 매카니즘은 하나의 시스템이 자기를 보존하기 위한 원초적 목적으로 자기 생애의 모든 보존 관련의자료와정보를축적해두는것이다.

그러나인간이자기라고인식하는존재는생물학적개체에그치지않고사회적개체라는데까지 확장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개체가 되는 것은 자기 보존을 위한 가장 근본적 전략의 하나이기때문이다. 인간의인지능력이발달하면서자기가우주적존재라는무한대와의만남이이루어지게 된다. 인간은 무한대와 원성이라는 전존재적 자아(the Self) 인식과 결단을 하지 않으면인간으로서존재할수없는인식구조속에서사는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논의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인격성에 대한 사유에서 나온 것이다. 인격에대한생각은세계역사상오직유다-크리스천적(Judeo-Christian)인 사유전통에서만그유래를찾을수있는것이다.인간은인격이다. 인격이라는단어는의미론적언어의 역에서다룰때‘일관성이있다’라는

근거를 가진 말이다. 찰라 전과 찰라 후의 나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일관성 있는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격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나는존재한다고쓴것은바로이런인간의면모를파악하 기때문이다.

지금까지말한이두가지견해들은 원성이라는거대한의문부호앞에서만난다. 지혜자솔로몬의술회는유명하다. *“(한 개역에서) 하나님이사람에게 - 또 원을사모하는마음을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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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강력한군사외교력을갖추게되고, 공교한정치술(시 78:72)도 익히게되었지만또중요한일은하나님의현현하신역사를기록하는(대상 29:29) 역사가로서의선지자무리가나타나고다윗시대에는왕-선지자인다윗을포함한트로이카선지공동체 (다윗+나단+갓, 대하 29:25, 대상 28:19)가결성되고, 레위인육천과유사와재판관들(대상 23:4)이인민을가르쳤더라는 (대하17:7-9) 국민교육의체제까지갖추어지는것이다.

요시야의 개혁정치는 유대왕국의 역사가 씨를 맺는 개화(開花)시대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인간과국토가정결해지는개혁을통해세계적인씨를맺을수있도록다니엘의가문도신앙위에섰겠고다수의신앙가문들이일어났을뿐아니라그아이들도 육간에건강히태어났을것이다.이때는열왕기상 13장 2절에요시아보다 350년전에벧엘의황금소우상과여로보암왕을향

하여 예언된 성정치가 실현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예레미야는 이러한 성정치의 개념을 잘확립시키고 다음 시대를 예비한 선지자로 보아야 한다. 18년간 국토정화를 완료한 사역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예레미야는 유다 멸망시 70년의 바빌론 수유를 예언하고 법궤를 숨긴 후(전승)제1성전의역사를잘마무리한다. 유다왕국을일으킨사무엘선지의계열과, 실패하여아나돗에내쳐졌던엘리계열예레미야의유다왕국마무리! 무엇인가가슴에찡하게오는것이없는가.

4) 성정치의현실적방법론

(1) 나실인의 계명

성정치의 현실적 적용은 원리상 구약의 나실인(Nazirite) 계율에 의한 것이다. 나실인은 현대식으로말하면평신도가특별수련기간을가지고하나님앞에경건생활을상당기간 위하는것을말한다.

성의 계발과 유지를 위해서는 특별훈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나실인은 하나님의 거룩하신임재앞에서는훈련을하는것이다. 아마이것이개혁교회에서는수련회나사경회의형태로가톨릭에서는 피정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이는데 나실인들의 훈련은 후일의 선지자 생도들의훈련같이요즘보다더욱강도가높아서생명 위의밑바닥까지도내려가는부분들이있다고보아야 한다. 또 실제로 그 같이 존재의 바닥을 경험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깊은 이해에이르기힘들다.

아마도 선지자 생도들의 강도 높은 훈련을 일으킨 것은 사무엘로 보이는데 엘리 가문의 안일함과그후속하는사건들에서깨달은바가컸을것이다. 그래서그이후에나온선지자들은은사를체험하고비상한국면에대한대응능력이있는이들이나왔던것이다. 이것은다윗에게도같은 성훈련을통하여그의경세적능력을강화시켰던것으로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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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부터의 충격에 대한 생명의 반응의 결집(the collection of reactions of our life againstexternal impacts)이라는 견지에서 신경계와 긴 하게 연루된 인간의 마음이 무수한 체험단자(體驗端子)들의 망상조직(網狀組織)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seeGerald M. Edelman). 이연계의방식을파악하여야인격과의식의신비가드러나는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서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은 한 전제들에 대하면서 우리는 현대 인공지능학과심리학적인 측면과 연계시킬 수 있는 새로운 학제적 분야를 발견하게 되고 성경적 사상이 개방적사상체계로변하게됨을깨닫게된다.

그러므로 왜 성경이 나실인 제도에 대하여 강조하고 인간은 맨너리즘을 벗어나기 위해 항상노력하여높은수준의 성을지켜나가야하는지에대한확실한근거를깨닫게되는것이다.

(3) 경세적 사명의 이중적 어려움

이같은경세적사명에는이중적인어려움이있다. 신앙을가지고현실속에서산다는긴장상태는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개인생활 차원과 함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차원이있고또나아가서는역사적차원의책임까지도있는것이다.

이전 시대까지는 복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교회와 신자의 사회적 책임을 사회적 관심(socialconcerns)이라고 완화시켜 부르는 경향이 있었으나 20세기가 지나가면서 더 이상 사회적 책임을유기하면사회악이교회로흘러들고또는문화, 과학, 법제등매우은 한차원의 적인공격이교회를약화시키는현실을보면서새로운가오를다져야한다고보는것이다.

우리 시대는 주님 오신 2000년이 지나면서 전천년, 후천년, 무천년의 각종 천년설들에 대한새로운 사상적 정비가 필요하고 인본주의의 한계를 사상적으로 노정시켜 주는 일이 절실해 진것이다. 이제는 사회적 책임을 넘어서서 역사적 책임까지도 각성해야 하는 단계로 진입 중이라고본다. 특히통일을앞둔한국의기독인들에게는역사적책임은지대하다.

경세적작업이제대로이루어지면예컨대캄보디아에서한작은지방대학을설립하려는한충성된선교사의간증을들어볼필요가있다. “본 따께오 대학은예수님이오시기전에서립하더라도예수님이오신이후에도역시변함없이쓰임받는대학이되어야한다고생각합니다.”

이것이 이중적 부담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천년왕국 전에 오시든지 천년왕국 후에 오시든지어떤경우나주님앞에부끄러움이없이작품을내놓을수있는대학, 마을, 도시, 나라, 민족, 역사등우리의노력의결실이심판의불에타지않고남아있게되는그목표를향하여사는방법으로사는것이경세사상작업의핵심인것이다.

374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KJV) also He has set the eternal in his heart,”“(JB) but though he has permitted man to

consider time in its wholeness,”)

인간의인격은일관성만이그조건이아니다. 일관성이 원성안에제대로자리잡을때에야참으로사는인격이다.

인생은 깊은 오뇌(懊惱)의 집성(集成)이다. 집성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오뇌야말로인생의생각이분열하는현상이심화되고구조화된것이어서다시외양적통합을시현하지않으면인간의인격으로서의일관성을획득할수없기때문이다.

인간의신경세포가생성하는기원이인생의고통, 인지작용, 또는스트레스의축적으로말미암은것이고이러한신경세포가상호연결네트워크를이루는과정이란인간유전자의통합적유인(誘因)이작용하기때문이라고생각된다. 이통합적유인이라는것은바로인간의일관성을말한다.

인간의일관성이란인생역정의시간적연결을위한기억현상, 공간적통합을위한공간감각,관계파악을 위한 네트워크 인지작용(이것은 생활차원인 4차원을 능가하며 텐서의 형태로 무한차원까지도 설정할 수 있는 인간두뇌의 포괄능력), 생체시스템의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생리적일관성, 자아현상에수반하는인격적일관성등여러가지양태가있을수있다.

일관성은 무한이라는 통합총괄적인 범위와 범주를 포괄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무한이아니라인지된모든사건과범위와예상및가능성등개체적생명현상이자기보존을위하여당연히상관하여야하는것이다. 이무한의개념은 원성과연결된다.

일관성이 원성안에자리잡지못했을때, 또는인생의존재양태를본원적존재론으로파악하지못하고단초적존재론으로파악하려고끊임없는개체확인과시행착오의길을선택했을때,인생은 오뇌라는 아주 미시적(microscopic)이고 원초적인 심령적 분열현상(spiritualschizophrenia)으로들어가게된다.

성경은 인생의 마음이 계량적(quantitative)이지만 산수적(算겤的)인 양임을 밝혀 주고 있다.이는솔로몬에게넓은마음을주셨다고할때바다의모래같이‘많은’‘넓은마음’이라고표현한데서알수있다. ‘넓다는’면적을말하려면통째로하나인상태로표시하여야하는데오히려성경은 여러 개의 분자적 요소가 모여 넓은 마음을 이루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성경적사상의존재론적인특성이나타났다고보는데왜냐하면존재론은궁극적으로수와양을통합하는절대(絶對), 지고(至高)의위치에서사물을파악하게되기때문이다.

그러나실제적으로넓은마음이많은마음의통합으로이해될때우리는신경세포들의발생과신경계의 구성에 나타나는 연결현상을 생각하게 되고, 신경세포나 신경계가 본질적으로는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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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77

다시 말하면 본체론적 경세사상은 권력이 아니라 성이 정경현상에 미치는 향을 본질적인관심사로 한다. 이것은 정사와 권세를 폐해버린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논리와 직결되는 현상분석방법론이다. 말하자면말 이공동체에수납되어공동체의특질이된것이그공동체의성이며 성이정경현상에미치는 향이본질적인관심이다. 그러므로말 과공동체와자연의관계에서 토지-공동체-창의의 연관을 통한 권력현상과 경제현상의 분석이 가능한 것은 성서의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에 대한 증명이 된다. 이방법론은몇개의분야별논문으로나누어앞으로다루어나갈것이다.

이러한 본체론적 경세사상은 성서적 본체론의 신학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의 이름에 전폭적인광을돌려성부하나님께모든 광이돌아가기를원하는모든이시대의성도들에게큰위로

와북돋움이될것이다.

2) 성서적본체론에서발전할수있는정경학의형태

성서적경세사상의기초가되는신학의발전이요청된다. 우리는이를성서적본체론에서찾고자하는데아직까지경륜신학(Dispensationalism)의미숙성때문에우리에게알려진것은세대주의적 전천년설 밖에 없다고 본다. 세대주의적 섭리해석은 특정부분 성경을 강조한 특화된 설명방식이므로사회적합의를도출하거나학문적지지를얻기에미약하다.

학문 자체가 그 기저에 존재하는 파라다임에서 형성되는 것이므로 반드시 전적으로 합리적이거나 현실에 정확하게 부합하여야 되는 것은 아니나 그 학문적 방법론으로 현실 예측이 가능하여야하고이성적으로합리적구조를가져야한다.

원래 주님의 말 을 건강하게 해석하여 주님 오실 것도 예비하고 현실 속에서 책임도 다하고해야 삶이 건전해 지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일단은 성령론(Pneumatology)의 성숙한 형태가필요한 것이다. 성령론의 성숙이라는 것은,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이 오랜 대립 끝에결국 신학적정합관계로 발전하듯이, 성령론의 신본적인 논리구조와 인본적 논리구조가 상호 정합상태로 만나게되는상황을말한다.

또한 사회참여신학의 인본적 한계가 노정되어 성령론과 참여신학의 만남이 필요하지만 거기에는 코이노니아의 사회론적 도입이 필요한 것이다. 이 때 코이노니아라는 현상은 각양의 교류로서 사회심리적 교류에서 정보통신과 인적 운송과 물류에 이르기까지 자료를 수짐할 수 있고수리(겤理)학문적분석이가능하게하는흐름이라는개념을도입하는것이다.

성서적 경세사상이 제대로 구성되려면 구약과 신약이 기독론적, 교회론적으로 해후해야 되는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기독교와 유대교가 통합되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며 아직 현실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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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본체론적 정경학

1) 본체론적경세사상(정치경제학을중심으로)

정경학적고찰1) 정경학의분석틀은본체(공동체)의 행태를분석할수있어야함2) 신의 현현‘본체’인 예수공동체는 곧 교회는 인본적 공동체의‘행태’의 원인이됨. 단지인본적공동체의행태는神意(휘포스타시스) 또는말 의모형과그림자임

3) 다시 말하자면 언제나 세상의 생명과 빛으로 나타나고 계신 하나님의 말 이 공동체에 수납되어 공동체의 특질이 된 부분이 그 공동체의 신인식이며, 이 신인식이 곧 그공동체의 성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성이 정경현상에 미치는 향이 우리의 본질적인관심이됨

4) 그리고 말 과 공동체와 자연의 관계에서 말 이 욕구로 인하여 창의의 형태를갖추게되었을때창의-공동체-토지자연의연관을통한권력현상과경제현상의분석이가능함

경세사상이란용어는자칫비전문적으로들릴수도있다. 그러나일반사회현상을사회심리적인측면에서부터시작하여정치경제적인측면과역사적미래의흐름까지포괄할수있으려면오히려경세사상이라는 - 우선은모호한듯하나실용된선례가있는 - 용어가적절하리라고생각한다.

그러나 성서적 경세사상은 성서적 본체론의 신학과 구약의 희년사상에 근거한 뚜렷한 분석틀이 있다. 이는‘공동체적 성(괈性)과 사회심리의 정치경제적 향’을 살피고‘공동체 내에 있는창조능력의매카니즘’과‘공동체와토지문제의연관성’을분석하여사회권력현상및사회경제현상의 와중에서 구체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성서적인 분석틀을 제시할 수 있는길이된다고본다.

성서적정경학의분석틀은사회현상의본체(공동체)의 행태를분석할수있어야한다고본다.인자론에서 살핀 신의 현현‘본체’이신 예수공동체는 인본적 공동체의‘행태’의 원인이 된다고보아야한다. 예수님께서교회를통하여세상을다스린다는것(계 1:5)은 바로이러한의미로경세사상화할수있다.

단지 어떤 시대이든지 그 시대의 인본적인 사회공동체의 행태는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는데 그사회에주어진(또는그들이소화한) 신의神意(휘포스타시스) - 또는말 의 - 모형과그림자로볼수 있다. 말하자면 시대나 공동체에 따라 하나님께 받은 말 과 사회현상은 상응하는 연관성이있다고보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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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79

그러므로정치경제를성경적으로해석한다는것은몇가지요소가도입된다는것을뜻한다.

첫째, 동적(Dynamic) 상태로서의 정치경제를 보아야 한다. 정치경제는 모든 사람 사이(人-間)의현상과마찬가지로상호관계와 향력의함수이고따라서동적으로파악하여야한다. 이것을혼란상태를 피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또는 그런 핑계로 정치경제적인 권력강화가 자행되어 왔으나성경은인생의권력욕구와교만함에대하여하나님의경고의마름을기록하고있는것이다.

즉 권력에 대한 지속적인 상황변화, 지위변화를 예고하고(고전 1:27~28) 성경도 하나님께서모든 동적인 변화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시는 원리를 확인하여 준다. 이것은 또하나의신현현의방법으로볼수있다.

둘째, 사회 성적또는사회심리적현상을눈여겨보고포텐샬이론(Potential Theory)로사회성(또는사회심리)과정경현상의연관관계를해석해낼수있어야한다. 사회현상의많은부분

이흐름과포텐샬의관계로설명될수있다고본다. 성서의사회론도동적상태를전제로하므로흐름(코이노니아, 교제로서의마음과교감交感의흐름)과포텐샬(공동체의다양한힘의축적, 성(괈性), 부(富) 등)으로설명할수있다.

이러한기초적인개념은사회의활성과부의축적에대한금융관련논문을본기억도있으며기독교계에서도수십년의간격을가지고 적부흥에경제발전이따라오고있다고보고하고있다.

셋째, 가치론이 지금까지는 인본적 논리에서 노동가치만을 인정하는 추세에서 정치경제학의기본적방향이설정되었으나앞으로는천본이근본이며인본, 지본으로흐르는현상파악이필요하다(호 2:20~22). 정치경제의하부구조와상부구조의선후파악은과학적이고합리적으로이루어져야한다.

모든실증적학문은유물론적인증거를우선하고있으나성경의경우물적증거를중요시하나그이상의통합적체계가궁구되어야함을강조하는것이다를뿐이다. 이는반드시성경적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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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부담을 서로 무겁게 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일들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서구신학계의 주류로 생각되는 인본적 흐름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유대교에서도 같은현상이있는것으로사료된다.

살펴 보면 기독교계의 부흥운동이 지난 2세기간에 신본적 논리를 상당히 발전시켰지만 아직경세론에이를정도는아니며가장비근한예로블룸하르트목사가계의성령운동-공동체운동-

사회정치운동의궤적을보아도그한계를알수있다고본다.

그러나서구신학이한계가있는것은인본적학문체계를벗어날만큼희랍-로마사상의인본주의에서벗어나지못하는것에연유가있다. 그러므로성경의해석과그경세론의탐구에는반드시동아시아의천본, 인본, 지본의조화적세계관구조로나아가야할시대가이르른것이다.

실로 성경은 이미 삼본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창의/공동체/토지자연의 틀로 이루어진 희년사상의 현대적 적용이 요청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 학문에서 하나님의 보좌와 광의 처소를찾아드려야한다.

근대 및 현대 정치경제 사상들의 근원을 찾아보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모두 동일한 천년왕국적 전망에 근거를 두고 발전한 것이며 이 신약의 천년왕국적 전망은구약의희년사회의성경적진술에그근거를두고있는것이다.

3) 정치경제의성경적해석

하나님께서는인간의정치경제에대해어떤견해를가지고계신가. 그것이성경적정치경제학의유일한관심사다. 하나님의우리를위한계획은공의와평강이이루어지는것이다.

천년왕국은 정태적인 말라붙은 공의와 평강이 아니라 동태적이고 활성화된 공의와 평강의 상태로서 인간성과 공동체적 관계가 자유롭게 현양되지만 그러한 다이내미시티(dynamicity)가 그정치경제적안정성을훼손하지않으면서시기적으로지역적으로부의분배가평균되게하는장기적인안정상태를의미한다고볼수있다.

※진한선은천년왕국적인정치경제의변화로점선이경험하는실패를미연에방지하는예측의방법과회피기술을발전시켜야한다.

시간축

<사회 성과 경제발전의 상관관계>

※실선은사회 성의변화와이에따르는경제활성화의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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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81

<토지가격의 구조와 사회심리의 연관 설명>

<Structure of land price and correlation with socio-psycology>

위에 나온 그림은 본 책자에 중복되어 나온다. 그만큼 이를 한 번 생각한 이후 필자의 사상형성에큰 향을미쳤다.

처음에는 토지가격과 사회심리적 현상을 연관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많은 묵상 중에 경제학 부분과의 연관을 가지고 설명하게 되었고 다시 정치 분야와 연관하여 강의에서 설명하게 되었다. 특히통일관계에는매우중요한함의를가지고상이한체제간연계를생각할때활용할수있는 것이다. 즉 희년사상에서 나온 사회주의적 발상과 자본주의적 발상이 대비되는 것이다. 또한정치에있어서왕도와패도의대비가된다.

정치경제의문제는두가지다. 말하자면하나는경제적으로는생산을충분히하든가정치적으로는 자기실현(권력)의 역을 넓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미 생산한 것의 잉여와 부족분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와 권력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다. 이러한 산출과 배분의 문제에서 백성은 즐거워하고 억울해 하는 것이다. 자발성과 코이노니아라는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없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여기서 말하는 잉여는 사적유물론에서 말하는 잉여의 의미와다르다).

투쟁이 그 해결책이라고 믿은 이들 때문에 좋은 의미의 정치경제적 노력들도 다 사회적 긴장과분열을조성한것이다. 이러한긴장이조성되는것은예측에대한신뢰문제도상당한부분이차지하고 있다. 자기 장래에 대한 예측이 믿을 만 하고 약속이 믿을만 하면 합의는 가능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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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뿐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유물론적인 편향된 시각이나 인본적인 시각만으로는 비인간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인간화의 결론이 사회주의계열의폭력혁명론이고자본주의계열의천민자본주의인것이다.

가치론체계가중요한것은경제는물자와부의생산과교환에서비롯되는새로운부의창출과정을 말한다. 이 창출과정이 부를 가져오는 것은 부(富)가 노동이 아니라 창의에서 오기 때문이다. 우리는오랫동안목위의노동과목아래노동으로정신노동을표현해왔는데부가가치는창의가치와관련되어주로얻어진다.

넷째, 사회적활성의내적관계를다룰수있어야한다. 정치에서만인적교류의현상인코이노니아가중요한것은아니다. 주기도문의셋째, 넷째마디가정치적선언이며성경은정치에많은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정치는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이며 권력은 의사결정 권리의 분배 형태라고보아야한다. 이는자기존재의확인이라는실존적인최심층심리와관계된사회심리적인코이노니아프로세스인것이다.

의사결정과정이조화로울때사회심리적강화에의한공동체적활력의기하급수적증강현상이나타나고어떤때는기하급수적인능력증강의예도보고되고있다. 강제성이기존정치권력의상식적인 행사원리이지만 시민사회에서는 공동체적 자발성이 정치 프로세스에서의 최적상태인것이다. 공동체적자발성은공동체의특성가치가정치프로세스에최대한발휘되도록유도한다.

다섯째, 인간의네트워크특성을알고상호불가분의관계를인정하는정경학이필요하다. 이때공동체는네트워크의그물코와같은형태로이해할수있다. 개체들과공동체들의접속과교류가네트워크적인의미에서학문적으로재조명하여야할것이다. 인간현상은교회현상을포함하여네트워크적이다. 이러한네트워크이론과커뮤니케이션이론은정보화사회, 지식사회로갈수록더중요한개념으로정치경제학에자리잡을것이다. 성경이야말로말 의네트워크를강조하며저급한금전욕구로이루어진네트워크보다더심원한인간현상을설명할수있는기반을마련해주고있다.

삼본의가치체계 : 창의가치- 노동가치- 토지가치(성경적가치론)

말 -창의-정보-신용(금융/증권/선물)-현물교역-제조

천본- 시장 - 말 , 창의. 원래시장은코이노니아목적의신적계획, 타락.

인본- 공동체- 노동지본- 자연 - 토지천본- 인본 - 지본말 - 공동체- 자연

시장체계<창의가치>

공동체가치 체계<노동가치>

토지(자연)가치 체계<토지가치>

no reality이상기대심리에서 인정할 수 없는 천민자본주의발생한 투기부분의 자본이득의 부분 타락한 패도정치토지가격 unhealthy capital corrupt capitalismland price interest & rule of mightspeculation healthy

capitalism 건전한 자본주의의 역 건전한 패도 覇道

공동체가치에 infra 공동체협업이 가능한 왕도 王道근거한 S.O.C. 각종 사회간접자본/ 공상적 사회주의토지가격 etc. 하부구조 등으로 인한 ule of rightcommunality 공동체의 가치 & socialism

소출 가격 product 레위기 25:23 무위자연 無爲自然

<지가 地價> <경제> <정치><land price> <economy>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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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83

7. 성경적 본체론의 實踐(Living Practice of Biblical Ontology)

(성경적본체론은귀중한사상이다. 그러나그실천에대한방안이없으면아무의미가없는것이다. 필자는KAIST교회에서있었던한모임에서행한강의를정리하여본논문을작성하 다.)

1) 본체론적사고전환(思考轉換) :

위에나온윌리엄오어의시를본체론적사고로전화하면사상적맥락이명백하여진다. 우리의본체는오직예수시라는것이다. 우리각자와우리모드의본체되신예수님은논리로는넘어갈 수 없는 장애물을 십자가상의 자기희생으로 거뜬히 넘어 가시고 우리들의 본체가 되시고 우리들을지체삼으셨다.

2) 본체론적지식체계(知識體系)-활성화된 신지식(神知識)에서 나온 세계관

지식체계는그지식체계가뿌리박은근거에의해서그형태와결실이좌우된다. 본체론적지식체계는 활성화된 신지식(神知識)에서 비롯한 세계관이다. 원래 한 사람의 성은 그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이해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지행합일(知궋合一)의 철학으로 보면아는것이행함이며행함이곧그됨됨인것이다.

골 3:10 새 사람을입었으니이는자기를창조하신자의형상을좇아지식에까지새롭게하심을받는자니라.

우리가새사람을입었다는것은지식까지새로워져야함을의미한다. 창조자를닮아서그같이된다는것은우리의지식이모든것을창조적견지에서, 없는것도있는것처럼보는지식체계, 곧능력주시는자안에서능치못함이없는그런믿음의지식체계에서생각을하게된다는뜻이다.

빌3:8 또한모든것을해로여김은내주예수그리스도를아는지식이가장고상함을인함이라.

이 지식체계는예수님외에는모든가치를부정함을말한다. 가장 고상한최고의지식때문에다른 차선의 지식들을 부정하라는 것은 이 세상 상식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나 예수님 안에서는

382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다. 이것은 노사관계 조정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를 넘어 가면 사회붕괴의 정치목적을 가진것으로의심해야한다. 그러므로정부차원에서해야하는것은이런사회보장성행정이며신뢰유도적인정책집행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안정의 문제와 잉여가치의 산출과 코이노니아 흐름의 개선을 생각하는 정치경제학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잉여가치는 의와 평강의 신적 축복 또는 신임재의 시기에누리게된다. 평화시준법사회의경제와문화가발달하는이유를우리는생각해보아야한다.

성서는소유가남는자는섬기는자로부른다. 이는은혜의일반성과은사의특수성과연계되는논리적개념이다.

1992.8.25.高王仁

곧사라질인생 곧사라질인생

한번뿐인인생 한번뿐인인생

그리스도를위해한일만이 그리스도께서한일만이

원히남으리 원히남으리

-윌리암오어(William Orr) -본체론적사고의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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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85

어떤이들은투기와분쟁과다툼으로그리스도를전파...

어떤이들은착한뜻으로그리스도를전파...(빌1:15)

사람들은바울이하는일에시기하여순전치못함으로그리스도를전파하지만바울선생의복음전파는 본체론적 복음주의(evangelism)이다. 다음 성구들은 바울의 심경을 나타내는데 전부예수님자신의능력과소원으로하지자신의것으로하지는않는다. 바울은우선예수충만된후에복음을전한것이라서무효화된복음전파가없었던것이다.

빌 1:8 예수그리스도의심장으로너희무리를어떻게사모하는지...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스플랑크나(內臟)로 사모한다는 것은 단순한 수식이나 감정 표현이라기보다진정그렇게느끼는 적상태에서기록한 이다.

빌 2:5이하너희안에이마음을품으라곧그리스도예수의마음이니...

(눅 12:50 이루기까지답답함)

바울은그리스도예수의마음을품으라하면서예수님께서이잔을마시기까지, 곧 사명을이루기까지내답답함이어떠하겠느냐하신말 을생각나게하는것이다. 그 답답함은불이있어서그런것이다. 예수님이겸손한것은수양이잘되어고요한안정된마음상태에서고귀하게겸손한 것이 아니요, 사명을 이루어야 하는 성령의 내몰림으로 인해 쫓기는 듯 불타는 듯 답답한마음상태에서겸손하신것이다.

즉자기 혼을속건제물로드린 불타는제단위에서그렇게자기자신의의지를꺽어버리는우악스러운겸손한마음을품으시는것이다. 예수님의마음은겸손하여근본이하나님의본체이신 광스러우신분이아무것도아닌만물의찌끼같이되기로하고십자가를선택하신사건에서잘나타나는것이다.

빌 1:20 살든지죽든지내몸에서그리스도가존귀히되게하려하나니

사도바울은랍비인자기와목수이신예수님이다른점을깊이생각해보았을것이다. 그분에게 있었던 그 생생한 시냇물같은 생명의 냄새, 백향목 같은 진실무망한 향내, 이런 예수님을 자기의본체가되시기를원하고이론적이고종교적이고교권적인자기의‘몸속에’모시기를원하는예수성령의충만에대한간절한소원은바로우리속에간직된기도와같은것이다.

복음의진보 : 믿음의진보(히11:1), 너(디모데)의진보(딤전4:15), 복음의진보(빌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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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선택과포기를결단해야한다.

빌 1:10 너희로지극히선한것(至善=예수)을분별하며(분별하는 것은 지선을 알게하기 위함이다. 동일한 원리로 경쟁과 분리도 평화 안에서지선함을성취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지만 이 성구에서는 지극히 선한 것에 대하여말하고있다. 예수님이가장선하신분인것을, 또는가장선한존재인것을분별한다는뜻이다.이것과저것이다른것을분별하는능력은가장선한것을알기위하여하나님께서인생에게주신능력이다. 분별(discernment)은 솔로몬의지혜의본질이었다. 모든인생의학문과지식체계가이분별의능력에기초를둔것인데이는예수님이최고의성자하나님이심을알게하기위하여이분별과학문과지식을주셨다는것인데한번예수님을알게되면다른것은포기하라는말이다.

골 2:2 원만(圓滿)한이해(굊解)의모든부요(富饒)...하나님의비 인그리스도...

그런데이유일하게우리에게남아야하는예수지식체계, 즉본체론적인지식체계는원만한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는 하나님의 비 의 길이다. 즉 신비인 그리스도 지식체계인 것이다. 왜예수님 자신이 예수지식체계와 동등하게 설명되는가.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 보는 관점은 모든다른상대적인것들을무효화시키기때문이다.

골 1:15~17 그는보이지아니하시는하나님의형상이요...만물이그안에함께섰느니라.

( 원한신학 : 본체론적우주론)

왜 그러한가.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아버지를 나타내신 분이시다. 그분 안에 만물이 함께 섰는데 이 부분이야 말로 원한 신학이요,

본체론적 우주론인 것이다. 이 본체론적인 우주론은 모든 본체론적 지식체계를 품는 겉옷 같은논리다. 진정“그리스도는만유시라”(골 3:11)는 말 이맞는것이요, 거기서새로운눈이우리에게열리는것이다.

3) 본체론적복음주의(福音主義) -복음은 정사와 권세에 대비(對比)되는 하나님의 권력적 실체이며 교회의 또 다른 선한 형상임

우리는세상권세는무서워하면서복음이하나님의전능의권세인것을잘깨닫지못한다. 복음은정사와권세에대비되는하나님의권력적실체이며교회의또다른선한형상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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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87

시73:25 하늘에서는주외에누가내게있으리오. 땅에서는주밖에나의사모할자없나이다.

시편기자는자기를지으신하나님의신묘막측(神妙莫測)하신사랑이일생을통해자기에대한사랑의 생각으로 자기와 교제하시고 또 자기 자신도 하나님 외에 다른 피조물과는 사모할 자가없다는것을밝힌다. 이것은아가서에나온그런수준의사랑같은것이아니겠는가. 자기전존재가하나님의지극한관심아래있다는자각은신인간교제의핵심이다.

시 65:1 ...찬송이시온에서주를기다리오며...우리의죄과를...사하시리이다.

(찬송중에임재를기다림)

시 43:3~4 주의빛과진리를보내어...인도하사...극락의하나님께이르리이다(조명-본체).

진리로인하여인도하시고기쁨(gladness)의 하나님께이르게하는빛(본체의조명)의나타남을말한다. 찬송중에주의임재하심을기다리는시편기자는하나님과의교제의비결을아는사람이다.

프란시스코의 제자인 루시오가 멸망으로 예정된 숙명이라고 속이는 사탄을 온갖 욕설로 꾸짖어물리친경험은자기의의근원이자기가아닌것을아는신비생활자의참된태도에서나온것이며, 예수십자가의오상을받은프란시스코가자기의상처를숨기지아니한것은교만이아니라 자기는 껍데기이며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본체론적 자기이해가 확고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런본체론적자기이해를통해서만성령님께진정쓰임받을수있는것이다.

5) 본체론적경세사상(經世思想) -고착구조로서의 모든 인간제도는 인간부패의 증거이지만 일단 생성된 악일지라도

치유할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본체론적 경세사상은 사회가 하나님을 향해 가게 하는 최선의 치유책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예수님의다스림이십자가의초절(超絶)한권세에있다는것을밝힌다. 곧, 골로새서2장9절과 15절에“그안에는신성의모든충만이육체로거하시고...그는모든정사와권세의머리시라...정사와권세를벗어버려...십자가로승리하셨느니라”하는말 속에그기본요소가다들어있다.

민수기 23~24장에는 이방 선지 발락이 하나님과의 교통을 위하여 세 번 사술을 쓰고 마지막에는사술을쓰지않고예언을하는장면이나온다. 하나님의관점인본체론적교제와이와비슷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탐욕에서 나온 사술과 복술의 차이점을 선명하게 대비시켜 준다. 히브리서 1장 9절에주님이“의를사랑하고불법을미워”하신고로아버지께서그에게즐거움의기름을부어동료들보다승하게하셨다고한것은의로우신하나님과의합(意合)하는일이얼마나본체론적교제에중요한가하는것을보여준다. 다음성구들도묵상하기를바란다.

386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바울은디모데에게복음의진보를주문하면서믿음의진보와디모데자신의진보를요구한다.

디모데본체에진보가있어야복음의진보가오는것이다.

행 20:32 ...주와및그은혜의말 께(the word of His grace) 부탁하노니...

사도 바울은 (한 개역판)에‘말 ’을 인격적 표현을 사용하여‘께’라고 목적격을 붙이고 있다. 나는 이 구절에서 많은 감동을 받는다. 말 을 인격으로 받아들이는 그 수준의 신앙으로 하루빨리진보하기를원한다.

4) 본체론적신비(神秘)생활-이교적 신비주의는 신인일치(神人一致),

가톨릭적 신비주의는 신인교제를 가능케 하는 극점(極點)의 논리(Neo-platonism)

건전한 본체론적 신비생활은 우리의 상황에 관계없이 주권적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경건생활이다. 말 을 중심한 경건생활이 기초로 있고 언제나 하나님의 찾아 오심을기다리고있어야한다. 인간이자기마음에서찾는도취가아니다.

신인교제(神人交際)의일상화도유익은크다. 그러나스스로속을수있는위험성이언제나상존한다. 가톨릭에서는 관상(觀想=명상冥想)과 탈혼(脫魂)같은 심령적 현상으로 엑스타시(的) 요소가있다. 본체론적신인간(神人間)교제는인간주체가아닌겸손한순종에의하여성령의감동과교통케하심을따라이루어진다. 참된성령의역사를판별하는기준은언제나예수님께만광이돌아가느냐로매우명쾌하게알수있다.

엑스타시적요소는항시적이아니고부가적인요소임을알아서, 스스로추구하는것은건강하지 못하다. 성령께서는 때가 되면 우리 몸까지도 완전변화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맡겨드려야한다.

잠언 8장 30절에“내가그곁에있어서창조자(匠人, 양육받는아이)가되어날마다그기뻐하신바가되었으며항상그앞에서즐거워하 으며사람이거처할땅에서즐거워하며인자들을기뻐하었느니라”는 말 에서는, “지혜”이신 그리스도가 창조자요 주체적인 장인(craftman)으로서 또

역으로보아피동적인양육받는아이로서기쁨의대상도되고스스로도기뻐하는이런정경을그리고있다. 이런기쁨과희열(엑스타시)은주의몸된교회에속한우리에게도마찬가지로능동, 피동적기쁨이동시에임하는것이며이는오직교제의기쁨이며인격적기쁨, 즉주님과의벗됨인것이다.

시 139:17~18 주의생각이내게어찌그리보배로운지요. 내가깰때에도오히려주와함께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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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89

넷째, 구체적인간구의기도는하나님의지시에의하여명확한방향으로간명히기도할수있게된다. 이는하나님께서기쁘게받으실만한상태가되었기때문이다. 또한기도들이언어의형태를띠지않고한덩어리의그림처럼주님앞에드려지기도한다.

수도적인 완덕을 위한 기도는 본체론적인 기도라기보다 예수님께서 드렸던 기도에 붙었던 옷과같은기도다. 오히려완덕의기도는하나님을깊이바라보는데서저절로이루어진다.

(2) 사명생활

첫째, 나와우리의삶이예수님의삶이되어야한다. 예수께서대신사시도록한다는뜻이무엇인가. 이는자세히인도받는생활을뜻한다.

둘째, 내가 처한 이 시대 이 역사적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 과 사명에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의 필요에 따른 사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순전하신 소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즉 역사관을형성할정도로통찰의현실적깊이가더해진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데, 이를 통해 경세사상에 이르게 된다. 또하나님의성품과 광이나타나는것이무엇인지알게되면서문화명령의핵심에이른다.

결국하나님이자신을내어주시는도구가됨으로써, 생명의공급사명을받게되는것이다.

(3) 사상생활

본체론은 인생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상형태들로 이루어진 사상좌표(思想座標)의 기준점이되는사상체계이므로예수님을훼방하는사탄적인요소이외의사상에대하여는포용력이큰사상, 모든사상에대하여예수님의눈으로부모가미성숙한자녀를보듯한다.

성경적 인격주의의 입장이므로 차가운 논쟁에 빠지지 않고 본질적 인격관계에서 시선을 옮기지 않는다. 논쟁이 유발되면 이미 사상적 교만에 빠진 중요한 증거인 것이다. 또 논쟁으로 자기를주장하지도않는다(그러나성령의감동으로이단과싸운아타나시우스의사례는예외).

사상생활이 곧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비생활이 된다(보나벤투라의 사색과 탈혼의 사례). 오랜기도생활후에일상적인거룩함을성취한이들은생각하는것이곧기도가될때가있다.

(4) 인간생활

본체론적인 사람은 수도사나 일반인이나 좀 바보같은 면이 있고 단순하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깊이지혜롭고역사와사리(事理)의흐름을꿰뚫어본다. 이는성령님의보게해주시는직

388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민35:34...나의거하는땅...여호와가...자손중에...(삼본三本의사상)히 8:5, 히 10:1 ...장래좋은일...하늘에있는것...본체..참형상...모형과그림자

(참형상인그리스도의몸인교회공동체와그림자인세상의공동체)시 9:15~16 열방은...빠짐이여...자기를알게하사심판을...

6) 본체론과공동체론

본체론은공동체론의모든원리가나오는근원이다. 본체론과공동체론에대해서는다음성구들을 참조하라. 경세적인 깊은 암시와 지시가 그 속에 담겨져 있다. 모든 성경은 해석하는 관점이중요하고서로엮이는관계를통찰해내는것이중요하다. 오직믿음의통찰과하나님께모든광을돌리겠다는어린아이와같은마음만이성경에나오는가장높은견해에이를수있는것

이다.

엡 4:13 ...그리스도의몸...믿는것...아는일...온전한사람...

시 80:17...우편에있는자...인자...우리가...

시 107:20...그말 을보내어...저희를고치사...

시 37:5~6 너의길을...맡기라...네의를...정오의빛같이...(내게두신 logos, 즉神義의발현)사 64:6 우리의의는다더러운옷같으며...죄악이...몰아가나이다.

7) 본체론적실천

(1) 기도생활

첫째, 본체론적기도생활은예수님의입장에서기도제목을세운다. 참된중보기도의태도가필요하고자기를위한기도도중보기도처럼되어야한다. 예수님의기도가곧교회를위한기도이며교회를위한기도가곧세상나라를위한기도이며민족을위한기도며민족을위한기도가곧자기를위한기도처럼될수있어야한다.

둘째, 말 을 받는 기다림의 기도가 본체론적 기도다. 십자가와 부활과 주의 몸된 교회 및 이같은 하나님 당신께 대한 많은 묵상이 그 가운데 이루어진다. 작은 아이가 아버지 앞에 나가 사랑으로 칭얼대는 기도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곧 말 이시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말 을 받지 아니하면자기의새로운상황에대처할수없다.

셋째, 깊이 오래 주의 슬하(膝下, 무릎 아래)에 앉아서 탄원과 묵상과 부르짖음의 여러가지 방법으로은혜를입은것을확신할때까지계속한다. 그리스도의임재가곧은혜이며확연히다른예수임재를느낄수있다. 보통한시간이상걸리지않고즉시에주시는경우도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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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91

8. 성서에 나타난 흙과 토지

1) 성서의비

성서는하나님의모든비 이담긴책이다. 성서는정의를내리지않는다. 성서는선포할뿐이다. 성서는논쟁하지않는다. 논쟁대신성서는훈육한다. 성서는하나님의성호(聖號)에대한반포(頒布)다(출 34:5). 성서는신현현의역사기록이다. 하나님과인간의책이아니라오직하나님의 책이며, 자연과 초자연의 책이 아니라 오직 초자연의 책일 뿐이다. 적어도 나는 성서를 그렇게읽는다.

그러면하늘만의이야기속에서사람과땅의이야기는어찌읽어내며, 더 나아가흙과토지의숨은 뒷이야기는 어떻게 끌어내어야 할 것인가. 성서는 사람과 땅, 흙과 토지의 배경 위에 펼쳐진다. 그리고뒤집어말하면전부사람의이야기이며전부땅의이야기다. 왜냐하면성령으로난사람은바람같이형적이없으며성령의역사는믿음의눈으로보지아니하면결코볼수없기때문이다(요 3:8). 하나님의사역이보이지않는성서는전부사람과땅에대한말일뿐이다. 그러나그렇게읽은성서가어찌성서이겠는가. 우리는이 에서하나님의 원한계획과기적적인신현현의역사속에보여진흙과토지에대하여묵상하여보려고한다. 예수님께무한 광....

땅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으신다. 단지 인생들이 자기가 하나님 같다는오만한 생각이 들면 타자와 상황을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려고 하게 되고 땅과 여타의 피조계에대한 소유권을 가지려고 하기 마련이다. 인생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모든 대상들은 썩어 버리게되어 있다. 하나님의 생명력이 흘러드는 것이 방해되기 때문이다. ‘아담’을 지은 흙이‘아타마’(붉은 흙)이라면 이 흙은 땅, 또는 세상으로 번역되는‘하아레쯔’에서 자연적 생명을 만들어 내어놓도록하나님께서허락해주신창발력을보유하고있다고볼수있다.

이땅은창세기 1장 1절에“하늘들과땅을창조”하실때단수로쓰여있고복수로쓰인하늘들에 대비된다. 그래서 땅(地)은, 삼층천으로 이루어진 하늘들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미이루어졌으므로, 그“뜻이 땅(세상)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 속에서 신역사(神곎史)의 유일한현장으로남아있는것이며우리가사는지구는엄 하게말하면이‘하아레쯔’의극히일부에지나지않는것이다.

즉, 땅, 곧 하아레쯔는예수그리스도의구속(救贖)의 대상인만유이며세상이다. 그러므로고린도전서 15장의위대한승리, 곧 그리스도가만유를회복하고하나님아버지께돌려드리며자기도온전히복종케되는대파노라마가성립하는것이다. 즉만유는주로부터나오고주로말미암고결국이같이주께로돌아가는것이다. 이러한관점에서우리는‘그리스도는만유시라’하는성구에주의하여야한다.

390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관력으로말미암는다.

인간과는 덤덤한 관계지만, 하나님과는 친 한 관계를 유지한다(시편 133장). 성도 간에는 항상준비된선한친절이있다(시131편).

다윗은 어릴 때 외롭게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즐기던 본체론적인 사람이 역사적 필요에 따라하나님의훈련에의하여기질이복잡하게변한케이스다(시편의절반이다윗의청소년시절에쓴것이라고함).

우리의 모범이 되는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의 사회생활은 가장 평범하고 가장 신의(神意)에 투철하고숨겨진생활이었다. 주님이사실은가장본체론적인분이신것이다.

(5) 조심할 부분

본체론적으로 생각한다고 온전히 이룬 자(빌 3:14)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본체론은 예수님의 생각에 깊이 일치하기 위한 최고의 성수련 방법이며 내면생활의 기본이 된다. 만일본체론으로떨어지지아니하고깨어지지아니할굳건한삶을사는자가있으면그는바로육신의굴레를벗어난하늘의성도이며현세의성인이다.

끝으로 예전의 강의안에 마지막 써 넣었던 부분, “ 하나님의 크심을 우리 작은 그릇에 한꺼번에 집어 넣으면 역설의 논리구조가 생기는 것을 아시나요...”하는 언급에 한마디를 더해서 본체론이세계구조의핵심진리를나타낸다는것을남겨둔다.

“그역설은뫼비우스의고리처럼서로반대되는논리를한평면위에연결시키고무한논리를유한 논리 속에 자리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의 뇌과학이 앞으로 인간 뇌에 대하여발견하게될가장중요한연구결실이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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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93

아-타-마, 붉은 흙을 이르는 히브리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른 봄에 묵은 밭마다 객토(客土)하는 황토(黃土)를 말한다는데 이 붉은 흙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빚으셨다. 흙은 본질적으로땅의 마음이다. 모든 외부의 충격을 받아 들이고 잘 소화하고 재생시키고 생명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한다. 성서에 보면 식물과 짐승을 산출(産出, 창조한 創出이 아님)하도록 땅에는 특별한 기능이하나님으로부터주어져있다(창 1:12,24). 그런데이렇게생물과관련된산출이행하여지는땅의한부분을집어말하여본다면바로흙의부분인것이다. 말하자면표토(表土)의부분이다.

표토는실제로그층의두께가매우얇아서평균 30cm로본다. 그한자(尺)밖에안되는두께에서 생명현상의 대부분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 표토는 산화, 풍화, 마멸,퇴적, 부유화등등의작용들을통하여생물계의생명고리가유지되는기초를마련하여준다. 마치 우리 마음이 인식(認識)현상을 통하여 모든 경험의 누적과 사고(思考)와 연상작용의 기초를마련하는것처럼흙은땅에서일어나는모든현상 - 나는이를대지(大地)현상이라고부르고싶은데- 의원인이된다고본다. 요즈음의가이아이론은바로이런현상을허황되게잘못해석한것으로생각된다.

이러한사람과마음의관계, 그리고땅과흙의관계를비교하는유추는단순한비유적수준에서 끝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다가 결국흙으로 돌아가라고 말 하신다. 우리가 토지를 경작한다는 것은 아마도 마음을 갈아 엎는 작업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토지의 경작만 마음을 순화시키고 다른 노동이나 땀흘림은그렇지 아니한가 하고 묻는다면 설명에 궁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실로 토지의 경작, 흙을 갈아엎는 일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사람 - 고통 - 마음의 문제를 가장 간명하게 관련지어 암시하여주신것이라고하여도무리가없다고본다.

흙을 갈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사람이다. 흙에서 떠나지 말라. 너희는 인간이다. 흙을사랑하여라. 흙은네마음이다. 묵은땅을기경하여라. 너희의마음을정직하게가져라.

정직한 을새롭게하소서. 우리의마음은부패하 나이다. 전적으로부패하 습니다. 고통을통하여죽음을통과하여야만새로울수있습니다. 우리는그리스도의십자가와부활에연합합니다. 그리고여전히흙냄새를맡을수있도록당신의은총을베푸소서.

4) 토지, 흙이덮여있어야하는곳. 대신인간의욕심이덮인곳

땅이나흙이라는표현과토지라는표현의현격한차이는주로토지라는단어가지닌정경학적인 뉘앙스에서 오는 것이리라. 왜 하나님께서는 토지의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하셨는가. 토지를인류보다더가치있게여기셨기때문인가. 아니다. 성서를전체로조감하여보면땅은신인(神人)

간에교제가이루어지는마당이기때문이다.

392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우리는땅이가진의미가그리스도와인간의아들들에게얼마나불가결한것인지흙도질료상중요하지만인생과모든존재들의존재위상으로서의 토지가얼마나절대적의미를가지고삶에향을주는지깨닫게되는것이다.

2) 땅은누구의것인가?

땅은하나님의것이다. “토지를 원히팔지말것은토지는다내것임이라. 너희는나그네요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 바로 그렇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모든것을소유하신분이땅만특별히구별하여다시한번소유권을확인하신사실에대하여어떻게 생각하여야 할까. 땅은 왜 이렇게 특별한가. 하나님께서 천하만국과 그 세상 광은 사탄에 허여(許與)하셨지만(마 4:8) 사탄에게 땅까지 주신 것은 아니다. 땅은 지상의 교회가 종말의어느시기에위급을당했을때용이토하여낸홍수를입을벌려삼킴으로하나님의충실한피조물로써역할을다한다(계 12:16). 땅은명백히끝날까지하나님의편이다.

천하만국이란 민족, 국가와 같이 정사와 권세의 압력구조 속에 변질되어간 강포한 공동체를말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사람들이 이루도록 의도하셨던 아름다운 인류공동체의 일그러진잔상(殘像)인 것이다. 천하만국이란곧부와권력을지향하는마음들의엮임이요그곳이야말로바로사탄이자기의위(位)를자리잡아둔곳이므로예수님께자기것이라고뽐내며말할수있었던것이다. 그러나땅은여전히하나님의것이며인류와고난을함께하도록예정된피조물인것이다. 성령께서우리를위하여탄식하시며기도하실때땅도허무한데굴복한모든피조물과함께탄식하며하나님의아들들의나타날것을기다린다(롬 8장).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소유물과 사탄의 소유물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곧‘죄’의 결과로 강화되는가 약화되는가로 알 수 있는것이다.”세상나라는 죄악의 방법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범위 내에서) 강화되고번창한다. 세상나라는 인류의 타락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의 선한 창조가 아닌 허탄한 것이기때문이다. 허탄하고허무한것들은죄가성(盛)하면오히려번성한다.

반대로본질적으로선한하나님의원래의피조물들은죄가침투하면약화되고멸망한다. 하나님의참된기업들은죄가들어가면약해진다. 이런관점에서볼때땅은그위에사는거민의죄로인하여저주받고쇠퇴한다. 소돔과고모라의땅에서보듯이, 그리고이스라엘민족이이전에자기들의 지은 죄로 쫓겨난 팔레스틴이라는 땅의 역사로 확인되듯이. 따라서 땅은 하나님의 소유임이명백하다. 그리고땅에대하여특히중요히여기시는이유는하나님과사람의교제가이루어지는마당이기때문이다. 원초의에덴동산같이.

3) 흙은사람의마음과끈맺어진창조물, 하나님의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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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395

본다. 왜냐하면 이를 명명한 일본인들의 주안점은 토지의 투기와, 토지가 저당물로 사용되는 현행금융제도아래에서의폐단을들어내기위하여지본주의라는용어를부정적이고나쁜뜻으로치우쳐사용하고있기때문이다.

어찌되었든지지본주의와관련하여경제학과관련된부분을좀더말해볼필요가있다. 우리의 성경은 그 밑바탕에서 흙의 냄새를 떠나지 말라는 기조를 깔고 있다고 본다. 흙과 땀흘림과자연을떠나서는더이상인간일수없다. 그런데인간의경제생활은현행자본주의체제내에서는 돈을 모아서 자본을 형성하여야 일할 터전이 마련되기 때문에 사람과 자연(=땅, 토지)보다는돈을 척도로 움직이는 경향이 뿌리 박고 있다. 당연지사 같지만 바로 이 당연한 일 때문에 사회의구조적모순이심화되어가고있는것이다. 고쳐져야한다.

만일 자연의 이치대로 살고저 한다면, 자본의 형성은 노동의 대가인 임금이 축적되거나, 모든이에게 유익을 가져올 창의적 사고와 행동의 대가인 용역비의 축적에서 나오거나, 또는 자본을투자한사업의결실로서이윤이축적되어이루어져야하는것이다. 만일땅값(또는 地代)을 자본화하는 일이 계속되면 경제규모가 커감에 따라 땅값도 장기적으로 증가하게 되며 모든 물가에악 향을주는인플레이션의경향이정착하게된다.

이러한지대의자본화까지도현실적으로어쩔수없는일이라고하더라도그래도우리가끝까지막아야될일은토지투기인것이다. 땅값을투자하여제조업을하는것은실물(實物)과관련되었으니 그중 나은 편이고 본질적으로 보아‘고통의 분배와 관련된’서비스업에 투자하는 것은고용기회라도 늘리는 것이니 마지막 보아 줄 수 있는 마지노선(線)인 셈이지만 같은 서비스업이라도 향락산업에 투자하는 경우는 정확히 말해 시민으로 대접 받을 수 없는 수준이하의 행위인것이다.

지본주의는 부동산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하여도 할 말이 있지만 경제윤리의 명확한 설정에도기준점이있다. 왜냐하면땅은성경적으로볼때그위에사는지역공동체의 성과사회심리현상과 직결되어 향받기 때문이다. 성경을 가벼이 여기는 이들은 하나님의 말 가운데 숨기운보배를찾아낼수없다. 성경적토지관즉지본주의(Geocracy)는신본주의를현실에적용하는삼본(三本) - 말 과 성우선(괈性于先)의 천본(天本), 개체와 집체를 동시에 살리는 공동체사상을표방하는민본(民本), 그리고지금설명한지본- 의중요한정책수단들을제공한다.

6) 귀를맺으며

성경은 명령이다. 실천하면 축복의 약속이 있다. 학문과 인간 지성의 결론으로 권유하는 어떤가치관이나 세계관보다 성경이 직접 와서 때리는 말 은 저항할 수 없다. 예수성령께서 하시겠다는데누가막겠는가. 만유의주재, 우리의통치자나사렛예수께서한나라와한사회와한시

394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그 교제마당 됨을 귀히 여긴다는 말은 인류가 주관심사이고 토지는 종속된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는뜻이다. 하나님께는창조역사의첫번째목적이인류와의교제( KOINONIA )이며따라서궁극적으로이루시고저하시는목표가여호와의성신(聖神)이 온 세계인류에게충만하여여호와의품으신뜻에순복하게되고여호와의 광과말 이온세계상에가득차게되는이일인것이다. 우리의 원하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네 사람들을 야-다(안다, Heb)하시고저 하시는 것이다. 야-다는 단순한 지식적인 앎을 넘어서서 속속들이 알고, 인격적으로 알고, 본질의교환이 일어나고(부부의 결합과 같이), 원히 선택한(창 18:18 아브라함을... 택하 나니) 그런관계적인앎을말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거룩한 교제마당이 인간의 탐심에 의하여 국경이 나뉘어지고 지적도(地籍圖)가생겨나고 사고 팔고 하나님의 임재적 광에 대한 갈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을 때, 토지의 의미는 흙이 덮여져서 고통스런 노동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겸비한 교제를 회복하는 길로나아가야할존귀한데서부터, 남을착취할수있는강포한도구로전락하고사탄이오히려토지라는현물상품을이용하여사람과사람사이의적대관계를조성하고공동체를깨고하나님과인간관계를이간시키는데까지이르 던것이다.

5) 지본주의(地本主義), 참된것과악한것

요즈음더러지본주의라는말을쓰는이들이눈에띈다. 원래지본주의라는용어는몇십년전이라면전거(典據)를찾아본적이없어말할수없으나80년대이후의일이라면한국헨리조지협회에서가장먼저쓰기시작한단어다.1)

지본(地本)이라면자본(資本)에 대치되는개념이다. 성서는원래신본(神本)으로살것을명령한다. 신본주의가 구체적으로 현실 속에서는 인본(人本)과 지본으로 된다.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지본의 총체적 개념이 들어간 부분이다. 땅..에..서..도..라는 말 이다. 그래서지본적으로살려고하면환경보호도하여야하고자연과인간의선한관계를 회복시키고 땅에서 제대로 사는 방법을 확립시키는 것이 신본적 태도의 결과로서 당연히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곧 땅이야말로 신인동사(神人同事)의 마당이요 교제의 마당인 것이다. 이것이참된지본주의다.

반면에 최근 일부 경제학자 중에 지본주의라는 말을 부동산자본주의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연대도 뒤질 뿐 아니라 그 단어의 효용과 의미의 깊이가 추천할만 하지 않다고

1) 한국헨리조지협회는 1984년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1917-, R.A.Torrey, 동명의 할아버지는 무디성서학원 창시)를 중심으로 한국 복음주의 기독인들이 성서적 토지관과 경제사상을 전파하기 위하여 결성하 으며 그간의 토지공개념 도입에 향을 끼침. 누가 먼저말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흥미가 없는 일이지만 지본주의라는 용어를 원래 사용한 의미는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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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토지와 연관된 성경적 세계관-삼본(三本)의정경사상(政經思想)

1) 서론

성경적세계관은창조의질서를따르는것이므로지극히자연스러울수밖에없다. 만일인간의본성이왜곡되지않았다면자연에서하나님의섭리를쉽게많이배웠을것이다. 그러나시대가 흘러가며 인간중심으로 사는 탐욕의 생활 구조가 세계관과 문명 속에 자리잡아 가면서 하나님의 말 을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환경오염의 무서운 결과가하나님주신자연과땅을단지인간욕구충족의대상으로만생각하는데서비롯된것을깨닫는지금, 토지문제(정경학적으로는자연을의미)를 중심으로성경적세계관을재정립해보는일이시급하다하겠다.

본논문은자연과공동체에대한기존의사고방식을평면적으로결합시킨것이아니라성경적세계관의유기적인이론적구조를새로이모색하여성경적세계관을새로운정치경제학적인틀로 설명하고저 노력하 다. 이를 한국적인 표현을 따라 성경적 경세사상(經世思想)이라고 부를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오염되지 않는 성경의 본래의 사상구조 및 한국과 동양적 심성(心性)을따라하늘 - 사람 - 땅의세가지에근본을둔삼본(三本)의정치경제학이라고부르고저하며이하에서는줄여서 3정경이라고약칭하려한다.

2) 성경적정경학은희년제도에서나온다

성경적 정경학은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여 흐르는 희년제도에 근거하고 그러한 희년정신에서나온다. 구약성경에서레위기25장을중심으로기록된희년제도에관한모든사상은율법서에서는 광야의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제시된 이상(굊想)이었으며 선지서에서는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소망이 되었다. 율법의 613개조에 달하는 방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희년의 정신이 없다면꿰지못한진주구슬처럼흩어져서한갈래로파악할수없게된다. 실제로예수님께서공생애의시작과함께나사렛동네에서선포하신 속(永續)되는희년에대한선언(눅 4:18)은 바로이율법의체계에대하여통일성을주고예수님의구속사역이구약의율법체계와같은흐름인것을보여주시기위한것이었다.

희년제도는 근래의 연구가 지지하는대로 (마치 현대의 우리가 십계명을 인정하고 지키듯이)구약시대에지켜졌으며 선지자들에게는초미의관심사 음을알수있다. 이사야, 예레미야, 미가, 에스겔등은모두희년과관련된기록을남기고있으며율법과선지자에서다룬희년제도는신약구속사역의예표이기도하다. 실로희년사상은구속역사의분석틀이며구속사는피조계전부와 역사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고 볼 때 희년사상은 인간의 사회현상을 포괄적으로 다루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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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성경대로 바로 잡겠다고 천명하신다면 이 시대에 그의 견마(犬馬)로 자임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세계역사의 지평에서 우리처럼 격심한 지각변동을 겪고도 살아남은 백성이 있었는가. 이반도땅의흙더미위에주의축복이임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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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는데이는바로공동체론의근원(根源)이 된다. 이같이공동체론은창조원리에어긋난인본사상인헬레니즘, 힌두이즘과는달리히브리즘의본체론에서나오는것이다. 이방사상에는하나님안에서의일치를뜻하는심령적유기성또는심령적공동체성의논리가추출될가능성이없다.

4) 3정경(三政經)은성경적가치론(價値걩)에서시작하여야한다

서론에서 말한대로 세계관의 기초는 세 가지 본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를 삼본이라 부를때곧천본/인본/지본을뜻하는것이며참된신본주의(神本主義)를현세에구체화시키기위해서창조의질서를좇아말 /공동체(民)/땅(土地)의세갈래로이해하고상호관계를살피게되는것이다. 인본주의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나와서 신본주의를 떠났기 때문에 사람(人)만 남기고 말(天)과땅(地)을망각하여오도(誤導)된가치관을가지게되었다.

지금까지정경학에서가치론으로서논리적으로정비된것은노동가치론밖에없는셈인데, 만일 성경적인 사상체계에서 정치경제학상의 가치론을 제대로 논의하려면 성경에서 인정하는 가치의종류와그범주체계부터정리하여이해하여야한다. 노동가치설에는인간의노력인노동가치만인정하는데성경에는하나님이지으신세가지가치를모두제시한다. 첫째는창의(創意)가치, 둘째는 노동가치, 셋째는 토지가치인데 각 가치마다 해당되는 범주가 있다. 즉 창의가치는시장가치범주, 노동가치는 공동체가치범주, 토지가치는 토지가치범주다(여기서 가치범주는 정치경제학의개념을반 하는이름으로부르기로한다).

이때 각 범주체계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토지가치(=자연가치)의 범주라는 그릇 속에, 공동체가치(=사회가치)의범주라는물이담겨져있고, 다시공동체가치의범주라는물위에시장가치(市場價値=창의가치)의 범주라는 기름이 떠 있는 형국인 것이다(고왕인, 1989, 헨리조지협회내부문건, 제3의정경학).

20세기말까지는생산요소로서의창의를중요시여기지않았지만구소련의붕괴와함께창의의요소가생산을위하여얼마나중요한지가증명되었고노동가치속에정신노동과육체노동을공존시켰던경제학이이제는목위의노동과목아래노동을구분하게되었다. 그리고이제는부(富)의 축적이 (노동의 축적이나 폭력에 의한 자본의 강제적 이동이라든가 하는 단순한 해석을벗어나서) 내용적으로는 창의의 축적인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 창의현상을 학문적으로 본격추적하기위하여는학제적(學際的)인노력을여러겹필요로하는것으로서창의는개인의주관적현상이아니라공동체의간주관적(間主觀的) 현상임이밝혀져야한다고본다.

또한노동가치는창의가빠져나가고단순노동의부분만인정할때경제적가치보다오히려존재론적가치가중요해지며공동체의상호존재인식을위한공동체가치의기초가된다. 실상은자본도 냉동된 노동(FROZEN LABOR)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노동가치에 대하여는 총체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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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정치경제학의성경적근거로삼아져야한다.

우리는 경제학에서 경기변동의 주기를 다룰 때 50년 간격을 가진 콘트라티예프 주기를 다룬다. 이는 약 50년간에 한번씩 강화되는 태양 흑점의 활동증가와 더불어 희년의 49년 주기 설정이창조주하나님의특별하신창조지식에서나온결정이심을짐작해볼수있다. 말하자면희년의정신은구속의정신이요희년의실제적용은자연의창조법칙에근거하고있다는것이다.

그런데 만일 받을만 하다면, 성경의 사상적 구조가 희년사상과 연관하여 해석되면 매우 구체성을띄게된다는것이다. 말하자면신약성도들과구약선지자들의천년왕국에대한소망과, 예수님께서전하신하나님나라의복음의현세적인적용부분과, 구약에서제시된희년사회에대한이상, 이 세가지모두가하나의실루엣으로겹치는사실을발견하게된다. 말하자면정사면체에서 밑면은 땅(또는 토지자연)으로 보고 그 정사면체를 각기 다른 삼방향에서 보았을 때 한 면은하나님 나라의 비젼, 다른 한 면은 희년사회의 이상, 남은 한 면은 천년왕국의 전망으로 나타나서 이 세가지가 모두 그 본체로서 세상에 두신 예수님의 몸, 즉 교회의 투 인 것을 알 수 있고그정점에는예수님께서좌정하고계신것을볼수있는것이다.

3) 성경와희년제도는공동체론을말한다.

성경은다양한해석법이있겠으나철저한신본적해석은본체론적해석이라볼수있다. 본체론이라는 용어는 철학과 기존 신학에서는 이신론(굊神걩)과 혼용하는 관행이 있지만 이 논문에서는본체(本體)라는용어를신약성경에서나오는“휘포스타시스”에서취했으므로이신론과혼동할필요가없다(고왕인, 1992, 기대설여름학회, 기독교신학의본체론적접근).

하나님의 본체에 논의를 집중하는 본체론은 그의 나타나심인 신현현(神顯現)을 다루게 되며,신현현의주맥락은성령강림이후에는예수님의몸이신교회로나타난다. 교회론속에는성경의지체론을통하여인간사회의공동체적관계론(=공동체론)이나오게되고, 공동체론은성령의교통케하심(KOINONIA)을 따라이루어지므로성령론과연결되고, 다시 교회론과기독론은성령론으로말미암아한체계속에서긴 히연결된다. 그리고모든역사는기독론중심의독생하신하나님의창조와구원사역으로집중되어예수님의이름에 광이집중되며그로인하여만성부하나님께 광이돌아가는신학적인정리가이루어진다.

이것은기존신학의평면적인전개로부터유기적이고입체적인전개를가능케하는학문적접근방법을요약설명한것인데, 이러한본체론적신학은 (개체와집체의조화를의미하는) 공동체의 논리를 통하여 제반 사회현상을 설명하며 더 나아가 공동체적인 역사발전까지 설명할 수 있는방법론을제공한다. 원래본체론의핵심인삼위일체론도논리적으로는 복수(겖겤)가단수(單겤)를 사랑하는다중구조(多重構造) 로 되어있으며삼위하나님사이의뗄수없는사랑을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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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정리해준다고보았다. 그의사상은이외에도자유무역을강력히주장하 는데이역시사회의경제흐름을막는것이독점과유사한효과를낳는다는발상에서나온것이다.

이 헨리조지의사상은 어권의나라에서특히많은구체화노력이있었으나가장큰성공을거둔것은손문선생의유지를받든대만에서 다. 20세기에들어와서볼쉐비키혁명이후헨리조지 사상은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을 많이 끌지 못하는 듯 하 으나 그의 사상이야말로 21세기를바라보는지금더욱확대와강화가필요하다고본다. 헨리조지의토지사상은현대적연구를통하여지역사회의경제운용과잘부합되는것이밝혀졌으며사회를안정시키며발전시켜나가는특성을잘살려적용시켜야한다고말해지고있다.

헨리조지의이론이가지는확대가능성은성경을정직하게하나님중심으로수용하고인간의적인 측면을 사회심리적 과정으로 그의 정치경제학 속에 짜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의지론중에토지문제가절대성을가질정도로부각된부분은성서의원리를따라균형을잡아완화할필요가있으며, 적용방법으로서단일세론도현실의점진적개혁가능성을고려하여야할것이다.

6) 3정경은죄문제를 ( 성을) 다룬다

성경의 죄문제를 사회적 현상으로 다루기 위하여 사회 성 또는 공동체 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것은 성서적 개념으로서 하나님께서 민족이나 도시의 공동체적 죄를 지적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공동체의 성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으로부터의 편차(偏差), 즉공동체의죄성으로말미암은공동체의 적특성인것이다. 그러므로공동체들의죄성이공동체들을파괴한만큼공동체들은하나님의말 을받아들이지못하며, 이같이하나님의온전하심을수용하지못하는만큼 성이왜곡되고다른존재와의코이노니아가막히는것이다.

성경의죄악들의유형을잘살피고현대심리학의조력을얻으면사회의공동체성파괴의원인은 세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보는데 첫째는 허위(FALSEHOOD)이며, 둘째는 강포(VIOLENCE), 셋째는퇴폐(DECADENCE)로 볼수있다. 죄악된인성(人性)의 원형은이세죄성(罪性)의 좌표 위에 그려 볼 수 있다고 본다. 허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도주하여 숨은 때로부터시작된 가장 근본되는 죄이며 강포는 가학증적(加虐症的)인 죄성이고 퇴폐는 피학증적(被虐症的)인죄성으로서이세죄성은상호 향을끼친다(고왕인, 1990, 고신학보).

이같이 성과 사회현상의 연관성이 논리적 구조 속에서 파악되면 사회 성의 변화를 계측화하는방법이주어질때사회부패의정도를알수있고사회개혁의시기와방법을구체적으로결정할수있게될것이다. 사회 성의변화를계측하는가능성은앞에서지가지수(地價指겤)의계측을논하면서이미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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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논의가요청된다.

한편 토지가치에 대하여는 생산요소로서의 토지도 중요하지만 투기시장상태가 아닌 정상적시장환경인경우토지의가격이 공동체가치의대표값을지시하는것으로볼수있으므로토지(LAND AS COMMODITY NOT AS NATURE)가격은사회공동체성의성숙성을진단하기위하여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여기에서 인플레이션 등의 소음효과(騷音效果, NOISE EFFECT)가 제거된 순수한 지가지수(地價指겤=LAND VALUE INDEX)의 계측이 공동체의 참된 결속력과발전의정도를표시할수있다는중요한이론적가능성을발견하게된다.

창의가치와토지가치는상품으로서의교환가치를가지면안된다. 하나님께서거저주신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가치는 창의 및 토지와 결합하여 사람들이 시장에서 인정하는 가격을 지불하고살수있는상품과그시장가치(富)를 창조하며, 이렇게생겨난시장가치는상품에내포된창의내용이모든사람들사이에공유화되어감에따라 (즉, 창의가치의사회화를통하여) 시장가치범주에서빠져나와공동체가치범주로흡수된다. 성경의기준위에서서생각해보면원래창의(創意) 즉 하나님의 말 에서 나오는 인간의 창조력에 의하여 선도(先導)되어야 할 시장이 경쟁과투기에의하여주도되는것은죄악인것이다.

성경을궁구하여보면하나님의말 은인간의올바른욕구를일으키고다시욕구가창의를진작시키게되어있다. 공동체전체에대하여살펴보면말 을받은공동체는공동체의특성이변화하게되며, 공동체특성의변화는공동체의욕구적특성을변화시켜그공동체가창조하는생산물의특성이변하게되고, 결과적으로는해당공동체의문화에변화가오게되는것이다.

5) 헨리조지의사상은성경적정경학과본질적관련이있다

이러한성경적정치경제학의논리구조가이미한세기전에헨리조지라는미국인감리교도에의하여『진보와빈곤』이라는유명한저술속에잘다루어졌다는것은매우하나님께감사할일이다. 그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에 걸쳐 존 듀이, 윌슨, 맥아더, 헬렌 켈러, 손문, 버나드쇼 등 당대의 지성적 거인들을 한결같이 감격하게 한 명쾌하고 인간적인 눈물이 있는 정치경제이론을전개하 다. 단지그는이런성경적사상에인본적설명방식을도입하 기때문에더철두철미한포괄적논리에도달할수없었다고본다.

그의학문적관심은금세기처럼엄청난발전을이룩한문명에서사회경제가진보할수록빈곤이더욱따라붙는이유가무엇인가를규명하는것이었다. 그의견해의핵심은진보속에빈곤이존재하는 이유는 토지독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동체가 발전함에 따라 토지가치가 증가하는데 이 토지가치의 증가분은 그 지역에 사는 공동체로 환수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토지가치세를 단일세로 하여 징수하는 방안이 논리도 명확하고 시행도 명쾌하여 정치적 쟁점을 가장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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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만과 한국경제를 비교하는 연구가 자주 발견되는데 대만이 사회경제적으로 한국을 능가하는원인의대부분은토지문제의선명한정비에근원된것이다. 3정경의방법론은이같이세계적으로도증거를쉽게제시할수있는것으로성경의사상이매우실제적이라는것을보여주는것이다.

앞으로 세계는 지식부문에서도 창의부문(VOLATILE SOFTWARE)의 폭발적 발전이 예견되는데 이는 상품의 디자인과 관련된 문화혁신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화혁신은 이익을 추구하는 죄성을 내포할 것인데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정신혁명을일으켜서의로운창의가인류문명의주류를이루도록힘써야할것이다.

미래에정보통신의발달로지역성이해소되고, 집적된정보가공유되므로일부선진국에있어서는사회공동체성회복에도움이되겠으나세계의토지문제가하나님의법을받아들여광정(匡正)되기전에는선진국에유리한요인들은후진국에유해한요소로작용하게되는것이다. 앞으로 세계규모의 인구유동성이 증가하여 창조적 유민과 시대말적인 유민이 많아질 것이다. 또한제3세계 많은 지역이 점차 공업화되면서 전세계적 규모의 토지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따라서선진국대신제3세계의사회공동체성파괴가심화될것이다.

이제 1차산업의부가가치가감소하고 1차산업에서금융서비스산업에이르기까지선물(先物)시장이 발달하겠으며, 정보(창의가치의 일부)의 광범한 사회화(즉, 최신정보를 사람들이 소화하여정보의시장가치가없어지는현상, 그러나한물간정보중에상당부분이생활속에흡수되어공동체가치가 되어 버림)가 진행되면서 이로 인해 인구 집지역의 토지가격에서 공동체가치 부분이격증할것이다. 이 축적된공동체가치를덤으로획득하기위하여경쟁이불붙으면토지가격의 구성요소 중 이상기대가치(Bubble,굋常期待價値)인 투기성 부분이 폭발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불안정한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추세는 막기 어렵겠지만 적절한 대처방법은성경의희년사상을깊이연구하여반드시찾을수있다고생각한다.

9) 결언

본 논문은 1991년 봄에 헨리 조지협회의 제5회 토지학교에서 강의한 원안을 풀어 쓴 것이다.그때 강의하며 예상한 것들이 벌써 맞아 들어가는 것을 보며 성경이야말로 하나님의 온갖 법칙을궁구하여야하는지혜의보고임을다시한번간증한다.

(목회와신학 19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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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3정경은지역공동체중심의정치경제학이다

3정경은토지와직결된개념인지역공동체중심의정치경제학이다. 성경의희년사상도확대가족(EXTENDED FAMILY) 정도가사는단위공동체와, 단위공동체들이모인족속(또는부족) 단위의지역공동체에대하여주로다루고있다. 그러나현대로와서지역사회가거대화(국가화, 도시화) 되면서경제왜곡현상이나타나게된것은토지소유제도가신법(神法) 또는자연법에서벗어나게되었기때문이다.

성경은공동체의죄로인하여토지가저주받는것을보여준다. 이같이성경은지역공동체와토지가 심정적으로 결합되게 하여 환경문제 등이 저절로 다스려질 여지를 마련해 주는데, 공동체의거대화현상은토지소유법을문란시키고토지와인간을격리시키는현상을가져오는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레바이아탄과 같은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는 배격하고 지역공동체주의(MUNICIPAL SOCIALISM)를 지지한다. 현실적으로지방자치제도는지역공동체주의와크게다른것이없다.

그러므로 3정경은 적절하게 지역사회의 규모를 조정하고 더 큰 규모의 행정단위로 나아갈 때는 수직적 권력적 통합보다 이들을 내적 소프트웨어(문화의 양식이나 규범)로 연계하는 방안을더선호하게된다. 앞으로미래사회는지역공동체를중심으로재편되며국가권력은감소되는추세인데사회가풍요하게안정되고인간화될수록이러한추세는증가할것이다. 미래사회를설계할때에는성경적인정치경제학이반드시고려되어야할것이다.

8) 3정경으로본최근세계정세와미래사회

20세기마지막사반세기에들어와서세계는공산권의붕괴와기존문화의혁신적변화등내용적으로엄청난격변을경험하고있다. 소련의붕괴도뒤늦게정보의개방과개혁을추진하지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성경적 진리를 무시한 유물론적인 정치경제학적 방법을 맹신하 기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대결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기업적 췌약성은 바로 공동체성의결여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성이 강한 일본의 기업들이 미국의 기업들을 물리치는 것은잘관찰해보아야할일인것이다.

또 일본이 소위 재(財)테크를 통하여 성경적 진리를 무시하고 땀흘리지 않은 이익을 추구하을때경제의거품화현상이일어났는데이것은더철저한성경적관점에서살피면그들의토지제도에서거품현상의근본원인을찾을수있는것이다. 그러나일본은이미이러한원인을파악하고금년부터는성경적토지법을살리는세제(稅制)개혁을실시하 다. 마치 예전강포한니느웨가 요나의 선언에 겸비해진 것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일본의 경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하리라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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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과경제학과사회학이다. 이세가지학문은별개로각자의 역을구축하여왔으며경제를사회학적관점에서보면경제사회학이되고사회를경제학적견지에서살피면사회경제학이된다.

한 분야는 스스로 사회과학의 여왕이라 하고 또 다른 학문은 자기를 사회과학의 꽃이라 부른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스스로 사회과학의 본원적 역할을 자임(自任)한다. 이러는 와중에 사회현상은표류하고인간의소외는해결의방책이없다.

그리고 이러한 도착상태를 우회하고자하는 실용주의적인 기법은 체외적(體外的)인 물리요법만적용할따름이다. 사회가유기적이고인간이생명현상이라면학문도유기적이고지성도생명적이어야하지않겠는가?

그러나역시학문적인방법에있어서서구의업적은지대하다. 이성적합리성, 과학적실증성,개혁적 주체성,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같이 서구적 학문 체계 속에 온존되어 온 의연한 지성적태도는서구문명의귀중한열매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양의 학문 술어 중에 동양의 경세사상에 해당하는 술어를 발견하지 못한다.아마도 가장 근사하다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정치경제학일 것이다. 정치경제학에 관한 정의는각인각색이므로 슘페터는“저자가 정치경제학이라고 할 때의 의미에 대하여 확실히 해 두어야한다”고요구하고있다.

우리가본논문에서제3의정치경제학이라고부를때에는동양적인경세사상으로서의특질을내포하여극히포괄적이며또한광범위한이질적학문들을내장할수있는틀(frame)로서의정치-경제-사회학을의미하고자한다.

정경학이라는용어는‘경제이론’에대응하는용어로 17세기초부터쓰이기시작하 다. 1776년 미국의 독립과 같은 해에 간행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대표적인 시발점으로 하여 데이빗리카르도, 토마스맬더스, 존스튜어트 등에의하여 19세기전반까지고전파경제학의활동이있었으며, 이후알프렛마샬과같은신고전파경제학으로이어진주류경제학이있다.

이들을 제1의 정경학이라 부른다면, 제2의 정경학은 리카르도 류(類)의 경제학에서 가지를 쳐서나갔으나정치적사회변혁의목적을추구하는마르크시즘과사회주의계열의경제학이될것이다. 물론 혼합경제에 대한 폴 사뮤일슨 류(類)의 경제학도 제1의 정경학 테두리에 넣어야 할 것

이다.

404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10. 제 3의 정경학 - 삼본(三本)의 사상-공동체와토지의경세사상

1987년저술한국헨리조지협회장고 왕 인

(원래논문의기술에는‘우리’라는대명사-정확히는어떤종류의인칭대명사라도-를사용할수없는것이원

칙이다. 왜냐하면사실과진리를다룬다는입장에서볼때주관자(主觀者)가개입할여지가없기때문이다.

그러나본논문은‘우리’라는주체적인대명사로서시작하고인격성이관여하지않은사회과학적인논술은존

재할수없다는입장을명백히하기위하여지속적으로‘우리’를전편에걸쳐서사용하 다.

물론이런논술방법은현행학문적입장에서는거부감이있을수있으나우리는학문을포괄하는존재론적입

장에서새로운학문의방법을사용코자한다.

(인자께 광을, 그리고하나님의자녀들에게평화를-)

1) 경세(經世)사상과정경학

우리에게‘경세사상’이라는 표현은 조금은 고대적(古代的)이다. 플라톤이‘이데아’에서 시작하여국가를논함으로철학적인경세론을펼쳤다면, 공자는‘인’을중심한윤리주의에입각하여또다른경세론을피력하 다. 이는예로부터존재하여온세계적경세사상의뚜렷한두가지줄기를형성하 다.

그러나 학문의 분화와 함께 경세사상이라는 종합적 기능을 가진 학문의 줄기는 쇠하게 되었고, 특히 실증적인학구세계의경향은 -비록지성적학문의방법론으로서는불가피한것이지만- ‘인간’과‘현장’을학문의 역에서도외시하거나, 학문적좌표의중심에서 어내어버린듯한감이없지않다.

C. W. 즈는“서기 2000년은장차다가올모든것에대한요소를다포함하고있다”라고하는데, 비록 논증하기는힘드나‘천년단위’의시대적특수성과현실속에문득문득비쳐나오

는역사진전의심각한의미를되씹어보지않은식자(識者)는아마드믈것이다.

이런시대에우리는현실의상황을조감적으로조명하여줄경세사상이필요하다고느끼는것이며, 실제로 사회현상에 대한 가치관의 혼돈 - 그것이 다양한 가치관의 존재로 말미암은 혼란상태라하더라도- 은극복하여야한다고생각하는것이다.

근대서구적인사고방식에서본다면경세사상은세가지의맥락을가지고발전하여왔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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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07

배 및 그와 관련되는 정치적인 필요물에 대하여 집중하는 것과 같은 안이한 19세기적 행복론을통렬히 노출시키고 있다. 정치이론이 최종적으로 숙고하여야 하는 것은 생(生)의 기회(lifechances)일뿐아니라사(死)의기회(death chances)인것이다.”

이같이 절대절명의 폭력 앞에서 생과 사의 기회를 동시에 고려하여야 하는 것은 이제 정치이론만아니라경제이론에있어서도마찬가지이다. 사흘마다 12만명이상이아사하는현세계경제의불균형적파탄을직시하면서도히로시마의핵폭발에 12만 명이희생되었다는숫자적인비교에대하여무감각해질정도로우리는심정적으로마비된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경학의 이론적 기초로서 공리주의적인 행복론을 초극하여야 할 필요성과긴박성을 느낀다. 우리에게 열려진 문은 있는가. 우리는 치유 받을 여지가 있는가. 이같이 지난한 세기동안 현실 속에서 실험된 기존의 정경학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공동으로 부딪친 실질적문제점들이있다면다음과같을것이다.

첫째, 가장중요하다고생각되나현대에그중요성이어떻게보면가장무시되고있는것은정신성의문제일것이다. 정신성의정치경제적중요성을문명사적으로논술한다면아마도또하나의거대한사상적저술이될것이다.

우리는 도덕과 윤리의 단계에서는 정신적 가치와 정치경제를 연결시키려 시도하지만 인간의동기를좌우하는에너지용으로서의정신성(mentality)에 대하여는아직도철저한사회심리학적인연구가축적되거나체계화되지않았다고본다(정신성의정의에대하여는다른장에서후술할것이다).

그러나정신성을동기유발의원인또는원천만으로규정하는단견적착상도사회의내적통일을가져오는매카니즘을밝히기에는미흡하다고보며더깊은‘인간’또는‘공동체’의문제와연계시키는 이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정신성의 문제는 기존의 정경학이 공동으로 봉착하고 있는문제점이다. 즉정의(正義)문제의핵심인것이다.

둘째, 공동체와개인의연계관계에대하여기존의정경학은해답을제시하지못하고있다. 공동체와 개인의 개념은 상충적이 아니라 상보적이며, 상보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불가분리적인 면이있다. 그런데실은한쪽의정경학은개인주의에집착하고다른쪽은공동체개념에편집증적으로 착한다. 개인이인간인식의기본단위임에는틀림이없으나그기본단위는단계높은종합과정의시발점인것이다.

그러므로우리는사람을‘인간’, 즉‘사람의사이’라고부르는진정한뜻을발견하게되고, 주관적인개인의식이어떻게간주관적 (間主觀的, 또는상호주관적 intersubjective) 공동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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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단순화한감이없지않으나양대계열의원리원칙의특성을살핀다면자본주의계열의제1의정경학에서는공적원칙, 개인주의, 시장기구, 효율성이그기본이될것이고, 사회주의계열에서는 이에 대응하여 필요원칙, 전체주의, 중앙집권적 계획, 공평성이 기본원리로 파악될것이다.

실제로 이 두 가지 계열의 정경학은 이제 경제학적인 원리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의미에서그존재의의의가있다고보여지는데왜냐하면자본주의경제는이미혼합경제로변하여종전의시장기구원리로만설명할수는없으며, 사회주의경제는좋으나싫으나부분적인시장경제를도입하여경제의활력을위한동기부여를하지않을수없게되었기때문이다.

2) 제3의정경학의위상

이같이제1과제2의정경학이서로수정과정을거쳐오면서비록이론체계에있어서는평행적이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대화가 가능한 정도에까지 이른 것은 역사적 실험을 펼쳐서 상당히 자연스러운변환과정을겪으며이루어진것이다.

일견 계획적 측면을 강조하여 국가를 경제내적인 요소로 도입한 케인즈적(的)인 사고도 1930년대세계적불황당시의상황의산물로보아야할것이며레닌의NEP(신경제정책)이나고르바초프의페레스트로이카도역시역사적상황이불가피하게빚어낸산물이라본다.

그러나이러한수정적접근도그한계가명백히드러나고있다. 즉 국가주의적인입장과폭력적 방법론(실천적으로는 양대 진 공통의 특성임)과 같은 요소들이 국제관계에 여전히 지배원리로 군림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폭력이라 할 수 있는 종속관계의 형성이 국제경제질서를 왜곡하고있고, 선진국이나후진국을막론하고계층문화는지속적으로진행되고있다.

어떤 분석에 의하면 미국의 1971년 실업 인구가 공식적으로 약 25% 정도인데 군산복합체 등국방관계의취업인구 15%를고려하면“오늘날의경제는인구고용면에서 1930년대보다나을것이하나도없다”고비판하고있다.

사실중상주의가머리를들기시작한 17세기로부터정치경제의 역에서는오래된고정관념으로서 힘과 부의 상관성을 견지하여 왔다고 생각된다. 특히 국가가 연관된 의미로서 국가학(國家學)으로서의정경학에있어서“힘은부를안전하게하고부는힘을증대시킨다”는원칙은현대에이르기까지 실천적인 정책면에서는 철칙(鐵則)으로 정경학의 범위를 규제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최소한한가지즉핵무기의발명은인간의정치적상상력을물질적상품의생산과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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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09

국‘크롬웰’혁명시과격한‘수평파’의지도자 던‘윈스턴리’의말을인용하여보자.

“너희는너희부모를공경할것이니라. 너희아버지는모든것을만들며모든것속에내재해 있는 공동체의 정신이며, 너희 어머니는 우리 모두를 생산하며 참된 모정으로서 모든 자녀를 사랑하고 있는 대지(大地)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수중에 대지를집어넣어대지인어머니가아이들에게젖먹이는것을방해하지말아라”

생태주의자들도 지난 20년간 강력히 주장하여 온 바이지만 지금 땅 문제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공동체의 문제는 땅 문제와 직결된다. 결코 분리할 수 없다. 토지가정경학에차지하는비중은 - 비록정경학이인간과사회의학문이라하더라도 - 아무리강조해도모자라지않을것이다.

다시 말하면 토지는 그 존재론적 가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겠으나 토지가치의 사회화 과정이역사상어떤방식으로일어났는지, 또한그과정에서인간사회가어떻게진보하고발전단계들은거쳐왔는지에따라서인류역사의방향성도제시될수있으리라고생각한다.

마지막다섯번째로지적할수있는것은가치계측의문제이다. 우리는시장가격만이가치계측의전부인듯이인식하는데시장가격을떠나서는가치계측을할수없는것인가.

가격이론을대체하는체계는결국은고안될수있겠지만, 그기초적인작업으로서가치체계의다중성(多重性)을다루어야되지않을까사료하는데, 결국시장또는계획부문의가치체계는인간이관련된전반적가치체계의빙산의일각으로파악할수있을것이다.

우리는지금까지발전해온고전경제학, 신고전파, 네오마르크시즘, 종속이론등다양한해석방법들로써도 현대의 정치경제현상들을 만족하게 설명하여 주지 못하는 것을 주시하면서, 급격한사회변화를배태하고있는근래의사회현상의어디까지가체제적인결함이고어디까지가논리적설명을할수있는건강한부분인지알고싶은것이다.

결국제3의정경학이기존정경학들의성실한입장을살리면서발전적으로현실을해석하되상기한여러가지요건들을종합적으로만족시킬수있다면바로올바른위상을얻었다고할것이다.

3) 공동체(共同體)와공동태(共同態) - 그 매카니즘과 사회현상 인식방법

공동체에는학문이밝히지못한많은비 이내포되어있다. 예를들면아더몰간은공동체의잠재력에대해논하면서다음과같이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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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同體思考)를거쳐서민주적합의에도달하는가하는과정을밝혀내어야할것이다. 민주적인 합의 과정은 공동체의 중요한 특질이며 개인과 공동체의 개념을 조화시키는 첩경이

다. 이러한 공동체와 개인행위의 연관성을 주기위해 칼 마르크스는 유적 존재(괮的 存在,species-being)의 개념을 사용하여“노동은 인간에게 신체적 생존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수단으로서만나타나며, 생산적생활이란곧유적생활(species-life)이며생명을산출하는생활이어서, 종(種)의전체적성격곧종의유적성격은생명활동의행위이다”라고언급하 다.

인간의 생명활동의 구체적 표현을 위하여 성실한 노력을 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지만, 우리는마르크스의노동에대한정의에서지나치게단순화되어있는부분을발견한다.

그것은 창의의 부분이다. 노동에 숨겨져 있는 창의(creativity) 또는 혁신능력(innovativeability)의 효과가 20세기 후반에 와서 급격히 대두하여 기존경제 이론들을 공중잡이를 시켰을때자본주의의계열에서는‘제3의물결’과같은대응저서가나올수있었지만, 사회주의계열에서는실천적변화외에는이론적대응이별로눈에띄지않는다.

(본논고가 1987년에나오고이후사회주의계열의반격이눈에띄기시작했다.)

그것은인간성의경시로말미암아노동의정의가지나치게단순화한데있다. 이 같은맥락에서창의의문제는공동체의개념과관련되어반드시제기된다.

셋째는이같이창의의가치에대한논의가단순한동기유발(motivation)정도의차원에서만다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창의의 본질이 인간성에서 발출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창의의 정경학적인사회현상을다루어야할것이다.

기술과학적 지식, 정보 테크닉, 전문적 경 관리기법 등 인간의 문명에 관련된‘인간적’인 것들을인간창의의산물이요또는창의가치의축적으로간주한다면우리는좀더심원한정경학적체계에이를수있을것으로사료된다.

그리고창의의유발이나그가동되는매카니즘이공동체의존재와불가분의관계가있다면우리는 부의 재분배를 논의하는 것처럼 창의가치에 대한 분배문제를 역시 논의하여야 될 것이다.비슷한예로특허권과같은것을생각하면될것이다.

넷째는 토지의 문제, 자연의 문제, 자원의 문제이다. 아마도 자연의 문제라면 생태적 문제를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 같은 단순한 자연관리적인 측면을 넘어서는 안목이 요구된다고 본다.사실 우리가 광물이나 농산자원과 같은 이미 토지를 떠난 자원은 엄 히 말하여 상품으로 취급하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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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인간관계가점차적으로개인화되어가는추세중에서도네번째단계로써합일적이익사회(合一的 괿益社會)를 맞게 된다고 본다. 합일적 이익사회는“이익사회적인 사적인 또는 공적인단체의맥락내에서과거사회의공동체적안전성을어느정도회복하려는근대사회의노력-인간관계의테크닉, 사회보장, 직업보장등을통하여- 을나타내고있다.”

이를 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의사공동사회( 共同社會, Pseudo-Gemeinschaft)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지적한 것은 비록 자신이 추구하던 다소 경직된 논리적 맥락 속에 그 광채를 잃기는 하 으나 공동체적인 인류현상이 이익사회 속에서도여전히공동체적인인간성을바탕삼아잠행(潛궋)하고있다는것이다.

집단과군중속에참을수없는소외를느끼는인간성의처절한고발은바로인간들이찰라마다확인하는심장의규칙적인박동속에근거하고있는것이다. 공동체이론의발굴은좀더본질적인인류현상의이론적추구이다.

부다페스트 학파의 헬더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인류의 미래로 생각을 돌릴 때 우리는 도저히전체적인통합그자체가공동체가되리라고는생각할수없다. 오히려역으로사회조직이유기적인여러공동체로해체되어가는형태가되리라는생각이든다”는것이다.

그래서이맑시스트는“자연적으로주어진공동체가해체단계에이르면개인과공동체사이의이러한 모순에 가득 찬 조화는 결정적으로 파괴되고 여기에서 일찍이 이미 기성품으로 주어진공동체가아니라선택된공동체가점점더큰역할을하게된다”고한다.

이들의방법은전혀새로운공동체를조직하는것이다. 그래서그들이말하는인류의유적발전과정에 기여하기 위하여 투입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같이 좀더 명확하게 결정론적으로이론을유도해가기위하여, 선택된공동체라는명목하에이미결정된합목적적행위로만구성원간에상호일치의의미를발견할수있도록허용하는구차스러운공동체이론을발전시켜나온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옛날의 공동체 정신은 죽지 않았다. 어느 곳에선 그 정신은 흙에 착되어 작은 집단 안에 살아남았다”또는“작은 공동체의 강력한 힘과 자신을 해체시키려는 세력에저항하는능력은공동체의최선의특질을이제까지유지시켰으며, 힘보다다른방법으로인간사회의발전을인도할날이올때까지존속할것이다”라고아더몰간은말하고있다.

그러한 자생적인 몰간류(類)의 공동체 즉 인류의 참된 원동력을 공급하는 공동체를 단지 자연발생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한 묶음으로 비판하여 파시즘 공동체라고 규정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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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지역사회는 봉건시대의 거친 골짜기의 지하수와 같이 흘러 다시 민주주의의 정치적이념으로 자유롭게 땅위에 솟아올랐다. 스위스 민주주의는 봉건시대 이전의 산악 공동체가 힘있게 살아남은 것이다. 아이슬란드를 포함하여 봉건주의가 결코 옛날의 공동체 생활을 휩쓸지않았던스칸디나비아여러나라에서는아직도민주주의가살아움직이고있다.”

엥겔스도 씨족적 공동사회의 정신적 우수성이 게르만 문명을 이룬 근원적 능력이라고 파악하고있다.

전술하 듯이공동체현상의바른해석이야말로인류현상을정확히이해할수있게하는관건이될것이며, 역사의방향을명확히보여주는작업이될것이다.

우리가제3의정경학의위상을생각하면서꼽아보았던요소들- 정신성, 공동체, 창의 , 토지,가치 - 은 모두인간의문제에서솟아나는것이며이러한모든문제는실로인간상실, 인간소외의문제로집약된다고할것이다.

환언하면 인류현상을 균형있고 깊이있게 해석하고 그 해석의 결과를 실천할 때에 사회현상이현실적으로해결될수있다면그것이우리가바라는바이다.

인류현상을 종합적으로 또한 필요할 때는 분석적으로 해체하여 논의하고자 한다면 결국 공동체의이론을원용하는것이적절하리라본다. 공동체는개인적인요소와특성을그대로살려가지고대중이나집단과는달리심성적인측면까지도고려할수있기때문이다.

데니스 포플린은 심성공동체와 대중사회의 선택적 특성들에 대하여 논하면서, 대중사회가 소외감, 심성적단절, 비참여, (타인을수단으로생각하는) 분절화라는특성들을지니고있음에반하여심성공동체는일체감, 심성적통일성, 자발성, (공동체성원을전인격으로인식하는) 전체성을그특성으로한다고하 다.

공동체의 개념은 지역적, 문화적, 심리적, 사회적 또는 이보다 더 다양한 방법으로 분류가 가능하겠고학적으로정의될수도있겠으나, “인간이자신의동료들과촘촘하게짜여진의미있는관계의망에자신이짜여들어있다고느끼는상태를공동체”라한다면그관계속에서어떠한기제 (機制, mechanism)가작용하여공동체라고부를수있는현상이발생하느냐하는것이중요한논의의주제가될것이다.

우선 우리는 잘 알려진 퇴니스의‘공동사회와 이익사회’에서 다룬 유럽사회 발전의 4단계를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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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어는오오마쯔로부터차용된용어인데그의개념까지차용한것이아니라단순한술어의차용이며새로운개념을부여한것이다.

그는 공동체를 Gemeinde로, 공동태를 Gemeinschaft로 의미를 한정시켜 사용하 는데, 그의공동태라는용어는사회적생산양식의변천이론을확립하기위하여사용되었을뿐, 우리가이논문에서 파헤치고자 하는 사회심리적인 정신적 현상까지도 포괄한 좀더 근원적인‘인류현상’을다루기위한용어는아닌것이다.

이같이 우리는 공동체를 이념형 용어로 이해하여 인류현상의 구극적 표현으로 인식한다면 공동태는그과정속에나타나는현식적인공동체적행태인것이다.

즉이념적공동체는현실과현재속에나타날수없는종말적(종말론적이아님) 현상이라면, 현실과 현재속의 공동태는 그 공동체의‘모형 및 음 적(陰影的)개념’(Pattern and Shadowconcept)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어둡고 불완전한 현세문화의 긍정적 수용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사상적기초로생각된다.

‘그림자’는 본체의‘모형’이며 본체의 본질적이고 전반적인 특성을 반 한다. 그러나 본체는아니고본체의존재를시사하는데그친다.

만일에 그 본체인 공동체가 현재진행형으로 축조되어가고 있는 중이라면 현실속의 음 적 행태인공동태도역시진행형적인관계론속에서참된의미를가질것이다. 이것이우리가다이내믹하면서도구체성을지닌‘공동체와공동태의기본이론’으로제시하는모델이다.

환언하면우리인류의역사는방향을지닌힘인‘벡터’이며, 그방향은“더불어함께살수있도록해주는”인류의(또는각개인속에내재한) 공동체적정신성과불가분의관계가있다는것이다. 오히려공동체적정신성자체가역사의방향으로현시되었다고규정짓는것이더욱명확할것이다. 사회가이공동체적특질을건전하고활기있게발전시켜갈때그사회에건강한공동태가형

성된다고보며이공동태는가정과같은소규모에서전체인류사회의규모에이르기까지어떠한단계의사회에도형성될수있고, 또 그형성의심도가사회에따라, 같은사회라도상황과시기를따라항상변화할것이다.

우리는이공동태라는개념을통하여공동체적인류현상을다룰연장을마련하는것이다.

인간은공동체적이다. 그리고인류의유적본질은공동체성이라고볼수있다. 공동체성이라는것은단순화시켜말하자면개체와집체의존재양태가가장잘조화된상태를가리켜말할수있을것이다.

412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퇴니스가공동사회, 또는공동체가지니는중심적인세측면을혈연, 토지, 심성으로보았고,마르크스가자본주의적발전의결과로서공동체의상실이왔다고말한반면, 퇴니스는자본주의를공동체가상실된결과로서다루고있다는것은시사하는바가큰것이다.

기독교가지극히심오한공동체적인신학을소유하고그종교적생명이공동체와교제(코이노니아)의실천에있음이분명함에도불구하고, “너무도빈번하게기독교공동체는개인적신앙인들이이룬하나의자원적집단에불구한것으로간주되어왔다.”

19세기초로부터공동체에대한사상이학문적으로형성되기시작한이후, 특히제2 정경학의계열에서는비록공동체의개념을왜곡시키고자연적인간성을도외시한면이강하지만, 공동체적개념의사회적실험들을‘생산수단의집단화사업’을통하여강제로시도한바있다.

그리고우리는그러한 사업들의비효율성에대하여익히알고있다. 이제우리는인류사회의또다른방향으로부터개인적결단을통하여공동체적인생활을이루어보려는진지한활동들을발견한다. 그것은최근20년간기독교일각에서개시된‘가정교회’의활발한운동들이다.

로날드 사이더는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해소하고 실천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으로자원적인공동체운동의우수성을부각시키고있는데, 이것은그가지적한필라델피아의‘복음성전교회’와 같은 예를 통하여 볼 수 있듯이 사회문제에 구체적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는공동체교회에서이미현실화되고있는것을보여주고있다.

그러나공동체적인각양각색의운동들이진정한의미에서사회문제해결의도구로서제시되고사회에 확산되기 위해서는, 그 일반적인 현상들이 학적으로 정리되고 보편적인 원리가 확립될필요성이있다고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이념형(ideal type)의 개념설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공동체라는용어를이념적으로사용할때에는인류가모두같이추구하는미래적이며구극적인인류공동체의본질을균형있게내포하고있는인간의집단을가르킨다고보아야할것이다.

이러한 구극적인 인류공동체의 본질은 적어도 포플린이 언급한 심성적 공동체성을 구비하고있어야 할 것이며, 구조적인 면에서는 인류전체를 대동(大同)으로 파악하는 이념적인 동질성을갖추어야할것이다.

그리고우리는공동체를하나의인류현상으로파악한다고했지만, 좀 더나아가보편적인‘인류의공동체적인행태’를표현하기위하여새로운축약용어를도입하고저하는데이는‘공동태’(共同態)라는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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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적인 작업이 사회철학과 사회과학을 구분짓는 관건이며 현실적 방책의 제시여부가 단순한사회과학과경세사상의차이점을만든다고생각된다.

공동태는 실체성이 없는 하나의 관념적 산물이다.비유하자면 해양의 조류는 바닷물이 방향성을가지고흐르는흐름일뿐, 따로구분할수있는것이아니며, 홍수가벌판을휩쓸고지나가며흔적이남는것은잔토(殘土)일뿐이다.

이같이공동태는그실체성을밝히기는어려우나그존재의반 성(reflectivity)은명백하다. 인류사회의모든현상이실은이공동태의작용으로말미암은것이다. 그러므로공동태의 향이감지되고포착되는현장, 즉인류사회현상의현장이어디인가를규정하고넘어갈필요가있다.

사적 유물론(史的 唯物걩)에서는 존재론적으로는 물질만이 존재하므로 인간의 본성을 물질에투사시키며“노동의 산물은 노동자의 본성에서 분리될 수 없고 단순히 그 객관적 형태”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물질에 투사된 인간성의 말로가 예견되는 것이다. 반면 딜타이와 같이 연관(Zusammenhang)을 기초로하여방대한정신과학을성립시킨다든가, 레빈과같이위상심리학적인기법으로전반적사회현상을설명하는데만족할수는없다.

오히려 우리는 프락시스(Praxis)라는 단어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문제의식이 팽배한 시대를살고있다. 그러나실천(Praxis)이 현실적으로이루어지는현장, 그러면서도공동체적정신성이꽃피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사람 사이의 연결을 맺어주는 현장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 현장을우리는간주관(間主觀)에서찾고자한다.

이는 원래 훗설과 슈츠의 현상학에서 도입된 용어이나, 그들의 용법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인식하는인식내용을지칭하여상호주관(intersubjectivity)이라는의미로사용하 다. 우리는여기에그치지아니하고, 오히려개체인격의주관과주관사이에서공동체적사고를가

능하게 하는 하나의 장(場)으로서 단순한 객관만이 아니고 물질계만이 아닌 사회적 역(정치,경제, 학문, 문화등)을포괄하여지칭하고자한다. 아마도고대로부터사람을인간(人間), 즉 사람의사이로부른동양적지혜는이러한공동체적인측면에눈뜨고있었을지모른다.

사실공동체적사고, 또는공동태사고(共同態思考)는민주주의의기본이되어야하는데이는간주관의장에서각개인의주관적의사가합의되는과정을거치는상황이, 민주화과정과공동태사고의과정에있어서동일하게같은논리로설명되기때문이다.

공동태 사고는 개인의 사고와는 달리 합의의 과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합의를 위하여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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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견지에서인간은개인적이다. 오감(五感)의인식체계와오성(悟性)적활동도모두개인적이고고립된개별인격이실존함을명백히보여준다.

또 인간은 사회적이다. 인간은 개인의 차원에서는 생존과 생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따라서개인은쿨리의‘제1차집단’속에서생존의근거를마련하고‘제2차집단’을통하여활동을함으로써인간사회를성립시킨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공동체라고 부르는 집단들을 제1차 집단에 속한다고 보는데 이렇게 성원간에애정관계가성립되고 직접커뮤니케이션에의하여의사가 소통되며상대개체에대한 전인격적인인식을제공하는집단현상을전술한공동태라한다면이러한공동태는제2차집단속에서발견하기가매우어려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2차 집단들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하여 그 속에는 잘 단합된 핵심세력으로서소규모의활성적공동태들이항상존재하고있음을발견할수있다. 비록그애정관계의동기가비인간적이고물욕적이고나아가서는 이기적인욕구가투사된 바람직하지못한상태일때라도그러하다.

사실 이러한 공동태들을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공동체라는 용어로 불러주기는 심리적인 거부감을느끼게되지만현실사회를움직이는중요한매카니즘으로파악되는것이다. 이같이공동태를 하나의 사회동태적 현상으로 정의하고 살피면, 어떠한 집단에서도 비록 강도의 변화는 있을지라도공동태는반드시존재한다.

우리가 공동태라는 개념을 정치경제적인 사회현상보다 먼저 다루게 된 것은 인간의 본질이‘더불어 함께’사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경제학의 목적이 경세사상으로서 인간에게 봉사하는 학문이 되는데 있고 인간의 소외와 인간성 상실을 방지하고 인간을 회복하는데있기때문이다.

4) 사회의진보- 사회현상의 현장, 간주관(間主觀)의 장(場)

우리가공동태라는개념을설정하면서논리적으로가장큰문제점을야기시키는부분은그개념이너무추상적이라는것이다.

모든 사회과학이 추상적인 작업을 도외시할 수 없는 학문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인정되는사실이지만또한실증적인논증부분이없이는어떠한이론도보편적으로받아드려질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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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고, 초인간적인생동의힘이활동하고있으며묶어두지만않는다면바로이힘은새조직과새세계를건설할수있는힘으로승화된다”는비전을제시한다.

우리는이세계는공동체적현상이부단히일어나고있다고생각하며또궁극적으로인류현상은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현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반하는 듯한 현상으로써근대이후로더욱가속되는사회분화현상은공동체의파괴현상으로생각될수도있다.

어떠한현상이든지거기에는행위의주체인인간이마땅히나가야될방향에대하여긍정적인요소와부정적인요소가있기마련이며, 이로 인하여인간은피투자(披投者)의 입장에서주체적으로행동하여야하는책임이있는것이다.

상기한 사회분화 현상이 바른 시각으로 본다면 일견 공동체 파괴의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는것들이 오히려 거꾸로 공동체적 안정성을 확보하기위한 안정화과정(Stabilization Process)을겪고있다고볼수있다.

여기서 안정화 과정이라는 것은 사회의 비대화와 더불어 무수한 공동체들의 다양한 특질들이사회속으로확산되며평준화되는과정에서어떤특정공동체나특정인이전체사회의운명을전횡하는가능성을최소화시키는것을말한다.

물론사회분화로말미암아노동의기능화,가치계측의가격일변도체계, 사회적신분의상징화등을통하여비인간성이조장되고사회문제들이산적하여가는것처럼보이지만공동체적사관(史觀)에서보면이모든폐해를능히극복할수있는생명력이인류의깊은내부에잠재하여있다고확신되는것이다.

우리는이논문에서공동체의생명력에대하여철학적으로체계화할의도는없다. 오히려우리는학적인논문에서는도무지실어담을수없는절규의외침으로“인류가이제공동체적인방향으로 진로를 잡지 않고서야 어찌하려하오”하고 부르짖는 것이다. 공동체 사관은 마땅히 자료를통하여증명되고구체화되어야하며이는앞으로중요한사상적작업이될것임을밝혀둔다.

그러나 우리의 당면 문제는 생명력과 정신성의 관계를 밝히는데 놓여있다. 이것은 이 논문에서 공동체와 땅의 상관성을 밝히고자하는 시도 만큼이나 중요한 명제이다. 우리는 지역사회에대하여다룬 중에이런대목을발견한다.

여기에하나부언하여야할것은간주관(間主觀)은‘공통으로소유하는주관적요소’정도를뜻하는‘주관의사이(間)’라는뜻을더강하게지니고있으며따라서어떤때는우리가일반적으로지칭하는‘객관적사회’와같은개념으로축소되어이해될수도있다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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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과, 물질적 필요와 정신적 욕구가 조정되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시간과심정적일치가요구되는것이다.

만일누구나참된공동체를이루기원한다면자기포기와기다림은절대적으로요구된다. 물론왜곡된상황하에서는저항권이나투쟁도불가피한하나의방법으로배제될수는없다.

그러나 공동체사고의 과정은 마치 알을 부화시키는 생명적과정과 같아서 사회적인 변혁의 기초에쌓여있는인고(忍苦)의존귀성에대하여지고의가치를준다.

사회변혁의 원리에 대하여는 뒤에 다루겠지만, 사회진보의 대부분은 마치 일상생활이 상대방의지속적수용에있듯이공동체사고와같은포용력있는사회화과정을통하여성취되어온것으로볼수있다. 그리고이것이민주주의가지금까지어렵게존속하여왔지만앞으로도인간의공동체적본성에뿌리박고 속되어나가리라고보는근거가된다.

이같이공동태의존재가인증되는것은간주관의장에서나타나는공동태사고를통해서먼저이루어지게된다. 쉽게말하자면공동태사고의과정은이렇다. 공동태에는언제나공동태사고를 발아시키는 개인이 있다. 그 개인이 어떤 생각의 씨앗을 배태하게 되면 그 주관적 사고를 발표하고공동체가이를수용하거나배척하는과정에서그생각은다듬어지거나변질되어공동태가받아들일수있는형태로개조될것이다.

이러한공동태사고과정은어떤때는물질적형태로나타나공동태가시험해보는중간시험기를거칠때도있을것이며어떤특정한형태의사회현상으로구체화되는과정을겪을때도있을것이다. 그러나이러한모든사고과정을통하여공동태는자체적인특질변화를역시겪어나가게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강조하여 마땅한 것은 공동태 사고는‘공동태의 정신성’에 의하여 크게향을받는다는것이다. 공동태의 정신성은 말하자면 개체인간들이 공동체를 이루려는 경향이 몇 가지 기본적인 정신

적특질로나타나기때문에이름지은것인데, ‘풍요속의빈곤’, ‘제도화된폭력’, ‘공인된퇴폐’와같은현대사회의병폐는대부분이공동태정신성의결핍과관련되어있는것이다.

여기에하나부가하고자하는것은간주관은사회와같은개념을용어만바꾼것이아니고토지나자연과같은요소까지도모두포함한더넓은의미에서사용되었다는것이다.

5) 공동체의생명력과정신성

인간사회는그심층부에생명의능력의원천이있다. 그래서일리히는“인간과세계에는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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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인간본성의한계를무시한것이다. 사람은다른사람들의필요보다자기의필요의압력을더느낄만큼이기적이다. 모든사회는상충하는필요를역사의목적에알맞게조종하는방법을보존해야할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는 사람들 간에이루어지는 자발적 교환을 행동원칙으로 삼는 자유시장체계가 하나의 과정으로서는 보다 도덕적임에틀림이없다.-그러나자칫본체계의궁극적목적자체가잘못설정되었을경우에는역시잘못된결과를초래할위험도없지않다. 예를들면매음행위라든가, 마약판매, 과도한음주, 도박등이며, 이외에도지하경제, 투기, 매수, 부정, 부패등-경제부조리를예로들수있다. 그러나이것은체계그자체의부도덕이라고쉽사리단정하기보다는오히려그체계내부에사람들이설정하는목적이더욱문제이며-목적설정의주체는인간의깊은마음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정신성이 중요성에 대한 또 하나의 예증을 발견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공동체의생명력, 나아가서는사회의생명력과정신성과의관계를명백히밝힐필요성을느낀다.

만일우리에게완벽한공동체의소규모모델이있다고하자. 현실속에그러한이상적모델이성립되기위하여요구되는첫번째조건은상호신뢰의관계이다. 신뢰는공동체형성이절대적인전제조건으로서특히심성적공동체를형성하기위하여그기본이된다.

이신뢰관계가존재하지아니하여도유지되는가정이나제1차집단들이있다고한다면실질적으로 그러한 집단을 공동체라고 부르기는 마땅치 아니하다. 197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만 약100,000명 정도의 인구가 소규모 의도적 공동체(Intentional Commune)에 가입되어 생활을위하고있는데, 이들중성공적인콤뮌에서는대부분성원들사이에“성실성과헌신이특징적

으로나타난다.”

그리고이성실성과헌신은신뢰관계를형성시키고, 또역으로신뢰관계에서성실성과헌신이도출되기도한다. 대부분의콤뮌이 1~2년정도밖에유지되지못하는것은신뢰관계가깨어지고헌신을 유도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헌신은“자발적인 헌신”으로서“각 개인이가진바자원(資源)을자원적(自願的)으로바치는상태”를말한다.

또한성실성이라는것도“건전한자의식(自意識)에서유래하는성실성”을말하는것이다. 우리는여기서신뢰-성실-헌신의‘삼각적’관계를도출해낼수있으며이러한심적상태가공동체의 심적 결합을 위한 기반이 됨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의 특질을 기본적으로 갖춘정신성(mentality or spirituality)이 공동체적행태인공동태에끼쳐져있을때그러한공동태가건강하고생명력이있다고규정할수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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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간주관은 개인주의적 주관을 제외한 모든 역을 지칭하기 위하여, 예컨대 토지나 자연과 같은 요소까지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과 개인끼리의 인식의 교환작용이 일어나는부분까지도종합적으로지칭한다고보아야할것이다.

이와 비견될 수 있는 개념의 단어는 아마도 히브리어에서 땅을 의미하는‘Ha Erez’(TheEarth, 하에레쯔)일것이며, 이를가장광의로사용할때에는‘세상’(인간들이사는세상으로서자연의땅, 또는자연적환경을포괄하여)의의미를가지기때문이다. 실로,‘공동체’는‘땅’(HaErez)과불가분이며공동체의장(場)인‘간주관’은이런의미에서의‘땅’이다.

“문명을 이끄는 세력은 예술이나 산업이나 과학이나 정부가 아니다. 그것들은 문명의 열매들이다. 그리고 문명의 뿌리는 초보적 명에서 다음의 기본적 특성을 갖는다. 즉, 선의, 이웃 간의정의(情誼), 떳떳한경쟁, 용기, 너그러움, 활달한질문, 참을성등이다. 이런특성이풍부한국민은 위대한 예술, 과학, 산업, 정부를 가진 위대한 문명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이 기초적 특성이희미해지면아무리부가축적되고, 아무리학문이뛰어나고, 아무리문화가발달할지라도그문명은힘없이허물어질것이다.”

이런 용기있는 단언(斷言)은, ‘세계사 형태학’이라는 과학적 방법론을 세우고 서양의 몰락을단정한 슈펭 러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상기한 진술은 관념적 기술이 아니라수십년간지역사회개발에투신했던경험에근거하 으므로지극히신뢰할만하다고본다.

위에서말한바“문명을발전시키는뿌리로서의인간의기초적특성”은무엇인가. 대인관계의태도, 사물을대하는자세, 그저그런것에서끝나는것인가. 이러한사회적태도를갖출수있게하는기본적인정신성은무엇인가. 이러한정신성이야말로공동체내에서건전하게유지되는것이라면이를‘공동체적정신성’이라고명명하여야하지않겠는가.

‘니이버’는말한다. “인간관계가 접한곳에서는 (그리고사랑은오직친 하고인격적인관계에서만 충분히 효과적이다) 사랑의 길이 정의에로의 유일한 길이다. 생활이 접하게 읽혀있는곳에서는행복을서로나누지않으면그행복은파괴되고만다.”

이러한상황은아마소규모공동체적인상태를나타낸것으로보이지만그는사회전반에대한논평에서는다음과같이말한다. “순수한공평무사의도덕을집단관계에옮겨보려던모든노력은실패로끝났다.”그는남북전쟁후미국흑인들의굴종적인도덕성과파시스트에대한이태리사회주의자들의평화적정책이어떻게현실적으로모멸되고무시되었는가를설명한다.

또 다른 곳에서 니이버는 부하린의 말을 인용하며 사회주의 세계에서 부딪친 정신적 장애를설명하다. “모든사람이자기의필요에 따라취할수있는이상사회가 올것이라는 희망은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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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강포한사회경제현상을설명하기위한대표적인예로서일리히는‘근본독점’이라는개념을도입한다.

“사람들은병을치료하고, 용기를돋우어주고, 여행을하고, 지식을얻고, 집을짓고, 죽은이들을 장사 지낼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그런데 사람들이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위해서할수있는타고난능력을버릴때근본독점이자리잡는다-.

처음에는 장의사들이 대도시에서도 고객을 얻기가 힘들었다. 60년대에 이 기업들은 새 묘지의감독권을얻어가지고관과의식과시체의방부처리등을포함하는도급계약을제공하기시작하 다. 지금은 법률이 하나 제정되어서 장의사에 의뢰하는 것을 의무적인 것으로 만들었다-.이것이장례식의근본독점이다.”

임실(전라남도)의 치즈공장도 이러한 경우이다. 어떤 노령의 신부가 지역 공동체의 소득 증가를 위하여 필생의 사업으로 치즈공장을 설치하고 상당한 매출이 눈에 보이자, 정부가 했다고도할수없고관련재벌이했다고도할수없는데어쨌든지위생법규와관련하여문을닫게되고어떤 재벌그룹에서 치즈공장을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없는 고가의 위생시설과 함께 설치하여 시장을독점한다. 이것은어떤농부가이미피부로인식하고있는근본독점현상이다.

이러한 강포의 정신성은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폭력적 행사와 경제적 불평들을 야기시켜 지역공동체를파괴시킨다. 또 더나아가국가사회의공동체적성질을소명시키고그내부의공동태를파괴시킨다.

이같이공동체가파괴된상태가사회주의적인시각에서볼때‘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이론으로 설명되는 현상이며,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지배를 단일 매카니즘에 통일시킨 정경유착의 상태까지도이를수있는그첫번째관문은강포의심성에서비롯되는것임을알수있다.

이강포의논리가집어내는공동체파괴현상은개별적국가내에서만문제가될뿐아니라, 국제정치적으로도그공동체파괴의심각성은새로운사상적돌파구와정치적대응방안이마련되는않는한현재로서는치유불능으로보인다.

국제경제도 국가경제와 마찬가지로 공동체적이어서 주변부 국가들의 중심부 국가들에 대한자본과기술측면의‘종속’만이문제되는것이아니고, 빈국들의원료들에대한부국들의점증하는‘의존’이모든국가간의경제적상호의존성의증대를새롭고도극히중요한요소로부각시키고있다. 강포는세계를파괴하는주범이다.

이제공동체의신뢰관계가파괴되고불신관계혹은허위적관계가설정되었을때강포한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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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어떠한 공동체이든지 파괴되거나 소멸되어 가는 과정을 추적하면 상기한 논리가 인정되리라 본다. 가장 먼저 오는 것은 신뢰관계의 파괴이다. 그런데 이 신뢰관계의 파괴는 허위 또는 거짓행위가 반드시 개재된다. 이러한 거짓된 언행은 그 심층심리에는 상대를 전폭적으로 믿지않거나한편으로는자신을전폭적으로드러낼수없을때야기된다.

이런상황을불신관계또는허위적관계라고규정한다면이런인간관계에서배태되는두가지명백한부정적정신성들이있다. 그 하나는“건전한자의식을잃는”상태이며우리가보통“불성실”하다고부르는심적자세인데, 그 심층심리는“나와남의적절하고도명백한인격적인식”을상실한상태이다.

이것이 경제현상, 정치현상과 연결되면 분배적 사회정의나 인권적 사회정의의 문제로 나타나게되는데, 나아가서는궁극적으로‘폭력성’(Violence, 폭력적정신성)과직결되는것이다.

다시 말해서폭력성이란“나와너”의양자관계에서“나”의소욕(所慾)대로상대를좌우하고자하는사회적행태이다. 이런상태에서상대는대상화또는비인간화되고“나또는우리”의욕구를투사하는가학증적대상에지나지않게된다.

공동체적관계란맺어질수가없다. 이같이폭력성또는‘강포’(强暴)는공동체를파괴하는정신적원형이다. 비록소규모의애착적(愛着的)인공동체에서는불성실로나타나는것이일반사회의규모로가면강포라는행태로정착되는것이다.

여기서 정신성(spirituality)이라는 개념은‘인격 (人格, person)간에 맺어지는 관계의 특성’을말하는것이다. 우리는정치의 역에서이러한언급을발견한다.

“권력에 대한 야욕은 실패한 사랑의 쌍둥이일 뿐이다. 권력은 사랑에 대한 대체물이 된다. 어느정도사랑을통하여노력하여성취할수없는그것을사람은권력을통하여성취하고자한다.자기완성을위하여또한고독과소외를극복하고자신을전체(whole)로만들기위하여-.”

여기에서우리는왜곡된사랑이어떻게권력욕의형태로나타나는가를볼수있다. 그런데강포는 거대사회로 갈수록 좀 더 제도화된 권력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양식을 활용하여 그 향력을발휘한다.

그래서사회화된강포한정신성은제도와생활양식을변화시켜개인들이나소규모공동체들이공동체적인 특성을 잃어가게 하고, 나아가 전체사회는 유연성을 잃고 인간을 위하여 제도화된모든이념들이인간을압박하고질곡에빠트리는것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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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 허위성, 또는 허무주의에서 나오는 것이 틀림없다. 즉 유적 (괮的) 존재 또는 공동체적 존재로서의인간이그공동체적인특성을잃게하는것,-그것은허무주의로규정되며, 허무주의적사회상황은 실존적 개인 사이에 서로의 교감(交感)을 불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간주관적 공동체사고를불가능하게한다.

이는 바로허위성에서오는것이다. 그리고이허위(falsehood)는 개인이나집단들의사이를이간하는것으로서, 그자체로서도사회에서부정.부패와같은제도적부정의를유발시킨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공동체를 파멸케 하는 세 가지 부정적 정신성을 허위-강포-퇴폐로 파악하여신뢰-성실-헌신의창조적정신성에대응시킬수있다고본다.

사실 우리는 절대적인 가치관을 제공하는 종교를 떠난 상대적인 사회적 가치관에서 정신성을분석하 을때도이와같은정신성의일반법칙을발견하게된다.

칼바르트는이같이말한다. “시민공동체가알수있는모든것은자연법으로부터도출된신념을더듬거리며찾거나실험할수있는것뿐이다. 그리고자연법을최종적인권위로여기고거기에 의존하고... 어느 정도 세련된 실증주의를 열심히 사용하는 것이 결국에 가서는 하나의 환상이되어버리지않는다고장담할수는없는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언급한 부정적 정신성과 같이 사회적 사활이 달리 지극히 중요한 요인들에 대하여는 실질적으로 대다수의 시민들이 인식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아직도 공동체적 특질이 현대사회에도 맥맥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잠재하여 있는 공동태의 존재가 정치도경제도문화도균형있게살려간다고본다.

아마도 이것은 전체사회의 몰락이 가져올지도 모를 위기에 대한 공동체적 본능의 반사인지도모른다. 실제로 우리는 공동체적 본성이 비공식적 생활권(informal life)에서 상당한 향력을발휘하고있다고본다. 그러나부정적인정신성들이시민들에게인식될수있는것은또다른차원에서의 중요한사

회적매카니즘이있기때문이다.

이 정신성들은 그 내용이 성장해갈수록 사회적인 외적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미 지적하 듯이 허위는 부정과 부패의 유형으로 형태화되며, 강포(폭력성)는 정치적이나 사회적인폭력 또는 매점매석과 같은 경제적인 폭력으로 형태화되며, 퇴폐는 사치와 음란과 같은 문화적이고윤리적인퇴행현상으로형태화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논리전개를 가능하게 하는데, 우리는 이로인해 사회의 부정적 정신성의강도를측정할수있는가능성을포착하는것이며, 따라서사회의정신상태에대하여‘래드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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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함께공동체를해체시키는또하나의부정적인정신성이생겨난다. 누구나이정신성의존재와 심각한 사회적 악 향에 대하여는 잘 인식하면서도 그 전반적인 극복책에 대하여는 경제적, 정치적부정의에대한논의만큼관심을가져본적이없다.

현대인은그것을누구나일상중에경험한다. 바로퇴폐(頹廢, decadence)다. 퇴폐적정신성은윤리와문화의문제라고만일반적으로인식되어있지만, 이것이정치경제적인사회문제에특히 중장기적으로 볼 때에 얼마나 본질적이고 거대한 악 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하여 전 사회적으로심각하게거론되어야할것이다.

우리는 앞에서‘헌신’을 각 개인이 가진바 자원(資源)을 자원적(自願的)으로 바치는 상태라고정의하 다. 이러한 자발적 헌신이 이루어질 때 공동체라는 집단이 성립되는 것이지만 이러한헌신의자발성이상실된때에우리는퇴폐적정신성이깃든다고본다.

퇴폐현상의 근본원인에 대하여 몰간은 이렇게 말한다. “공동체 생활이 잘 발달되지 않은 곳에사람들의순수한사귐을가지려는경향보다더뚜렷한목적을가진노동조합, 교회, 취직, 금주협회, 자연연구클럽, 음악회, 전문적 학회, 또는 농촌기관 등에 참여하는데 열중한다. 그러나그것들은 더부살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생활을 상업상의 경우와 같이‘돈주고 사려는’노력이 있게 된다. 그리하여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이나 화관으로 사람들이 몰리는것이다.”

이것은순수한사귐, 인격적사귐이아닌비인간적관계가어떻게시작되는가를말해준다. 퇴폐는 인격적 자발성이 제거된 인간관계에 그 근원이 있으며, 강포가 공격적이고 가학증적인 부정적정신성이라면퇴폐는수납적이고피학증적인부정적정신성이라고볼수있을것이다.

여기에서퇴폐를공동체의피학증적인정신성이라한것은공동체나개인의내부에자리잡는불의한질서에대하여저항하지아니하고그것을즐기는상태로되기때문이다. 대부분의‘불륜의음란한’행실이퇴폐라고불리는이유가여기에있다고본다.

퇴폐는 어떤 때는 사치와 같은 형태, 의미 없는 자원의 낭비와 같은 생활양식 등으로 맨 처음정착하게되는데이런이유로공동체적연대감은손상된다.

강포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퇴폐는 공동체를 해체시킨다. 즉 강포가 공동체적 관계를파괴하여분열시키는것이라면퇴폐는공동체를결합되어있는그대로부패시켜분해하여버리는기능을가진다.

앞에서살펴보았듯이이두가지부정적정신성의발생연원을분별하여보면이들은모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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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25

사방법이 많이 개발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학문적 발전은 심리적이고 윤리적인 미시적(microscopic) 사회행태와사회전반적인거시적(macroscopic) 동태및구조적논의를학적으로연결시킬수있는길을열어놓았다고본다.

개인간의 관계,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 또 공동체간의 관계에 있어서 파괴적이고 분리적인역할을하는세가지부정적정신성의상호관계는 <그림 I >에서보는바와같다.

현존하는 공동체 파괴현상은 이 세 가지 정신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며, 이미 언급하듯이허위는사회의부정부패의심도, 강포는사회적폭력의빈도와강도, 퇴폐는사회적성적음란현상의강도에의하여계량화될수있는가능성이충분히있다고본다.

Falsehood허위

강포 퇴폐Violence Decadence

만일 인류의 가는 길이 이익사회의 성립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공동체와 또 공동체들의 내적통합에 의한 유적인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위에 논술한 세 가지 부정적 정신성의 증가는공동체적사관에서볼때하나의퇴행현상이라고규정짓지않을수없다.

그리고이세가지부정적정신성은오랜역사에걸쳐인류의가치관속에사회적불의라고명백히 규정되어진 것으로서, 만일 어떤 사회나 공동체가 공의 (Righteousness, 공평과 결속적애정의 합체 개념)를 지향할 때에는 신뢰-성실-헌신의 정신성을 살리고 허위-강포-퇴폐를 단호하게추방하여야될것이다.

기존의정치경제학의주류사상들이그논리전개의기반으로공리주의를채택한결과, ‘자타공통(自他共通)의 행복추구’라는 공리적 기본개념이 실천과정에서 궁극적으로 공동체를 해체하는방향으로사회를움직여왔다고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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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red tape)를설정할수있게되는것이다.

예를들면‘막스베버’는이같이논술한적이있다. “공동사회(Gemeinschaft)에서연장자의상대적지위는매우유동적이다. 식량사정이각박한곳에서는노동력이상실될경우골치아픈존재가된다.

전쟁상태가만성화된곳에서는전쟁능력에비해원로의의미가격하되며원로의위신에대항하는젊은층의민주주의적구호가등장한다. ‘육십이넘으면다리밖으로던져버려라.’

경제적 정치적 유혈 또는 무혈혁명의 새로운 질서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며 종교사상이나전통의성스러움에대한두려움이제대로발달되지않았거나사양기에들어간경우에도노인의권위는격하된다.

반면, 경험의 객관적 유용성이나 전통의 주관적 세력이 강력히 평가되는 곳에서는 노인의 평가는흔들리지않는다.”

이는연장층에대한사회적대우가래드테이프로활용될수있다는가능성을보여준다. 우리는욥과엘리후의대화에서“하나님은사람을심판하시기에오래생각할것이없으시니세력있는자를조사할것이없이꺾으시고다른사람을세워그를대신하게하시느니라... - 그들을악한자로여겨사람의목전에서치심은그들이그를떠나고그의모든길을무관히여김이라”고한다. 그들이이와같이하여가난한자의부르짖음이그에게상달케하며환난받는자, 소외된자들의괴로움이레드테이프로설정될수있다는시사이다.

음란의도가지나쳐가정에까지 려들어올때, 그보다도사회의중추적기능을담당하는인사들이나 계층의 숨은 생활들이 퇴폐하기 짝이 없고 사회적 책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비되었을때마땅히사회적인변혁을시도하여야할경종이울리는때이다.

또한옳지않은사랑의관계, 육욕적인관련에서태어나거나태어날생명을죽이는, 퇴폐와강포의 두 정신성이 결합된‘낙태’라는 현상은 가장 중요한 사회 정신성의 래드 테이프로서 역할을할수있다고본다.

이것을 계측하는 방안을 고안하고 상대적인 계량화를 통하여 정책결정의 바로메타로 활용할수있도록하는것은사회학의역할이기대되는 역이다.

실제로 금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정치나 경제적 과정을 세력집단간의 교섭과정이라고 보는견해가 발달되면서, 특정집단의 의식이나 특질을 상대적으로 수량화 할 수 있는 사회학적인 조

< 그림 I > 강포와 퇴폐는 허위에서 연원하며 강포가 퇴폐의 원인이 될 때도 있고, 퇴폐가 강포의 원인이 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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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교감(相互交感)의작용이활발하여공동체적특성을갖추지못한집단과는현격한집단능력의차이가생긴다고믿을수있는실제적인많은증거들을경험한다.

사실상이러한예가가장명백한역사적현실로나타났던예는기독교의초대교회, 특히오순절이후의초기기독교공동체일것이다.

이에대하여에 브룬너는“기독교적공동체에서는인격적존엄성의동등성이천성과능력상의 비동등성과 잘 균형을 짓고 있는데, 후자인 비동등성은 (사람마다 다른 것으로) 사람의 자연적공동체의전제조건으로서이해된다. 이 비동등성으로인하여사람은상호의존, 상호교제, 상호보완의 요건이 된다”고 하 다. 상호의존, 상호교제, 상호보완은 실상 근래 기독교 신학에서많이강조하게된공동체적교제인코이노니아(Koinonia)를말하는것이다.

이것은 경제적 코이노니아로서‘나눔’을, 정치적 코이노니아로서 섬김을, 윤리적 코이노니아로서‘버림’을 실천하도록 고취한다. 자기것을 나누고 남을 섬기고 자기를 버리는 이런 행위는실상최고의공동체적행태이다.

그런데 이러한 코이노니아가 공동체내에 존재할 때 비상한 창조적 사역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역의결과로서공동체의사업적인효과를말할뿐아니라창의나 감이놀랍도록증대되는것이다.

경제적인 혁신(innovation)도 크게 증진된다. 코이노니아는 마음의 흐름이며 이러한 흐름이곧 공동체의 간주관적 사고를 자극하고 이 외적 자극이 다시 주관적 사고를 자극하여 창의나발전을 위한 욕구를 조성할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감적 과정’(inspiration process)를 유발시키게 되는 데 이러한 과정은 모두 공동체적 정신성과 그에서 나온 코이노니아와 직결되는것이다.

이러한 감적과정에대하여는창의가치(創意價値)를다룰때후술하겠지만이러한 감자체의 근원에 대하여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겠으나, 감을 수용할 수 있는 태세는 공동체또는공동체에속한개인에게첨예한유기능(有機能, organicability)이개발되었을때갖추어진다고볼수있다.

유기능의 정의는 매우 중요하며, 평범하게 유기적 특성 때문에 생기는 능력을 묘사하는 말일수도있으나, 능(能)을추가하여능동적인능력을강조하며, 유기적특성을지속적으로견지하고이를발전시켜나가는능력까지포괄하여지칭하기위한목적으로이신조어를만든것을이해하여주기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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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가치관 - 즉“자타공통의 의로움에 기반을 둔 행복의 추구”- 을 추구하는정치경제사상을확립시켜야만참된공동체적미래가인류에게제시된다고본다.

우리는 인간의 공동체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공의로운 정신성만이 사회의 공동체적인생명력을공급하는통로가된다.

6) 공동태와창조적유기능(有機能)

공동체내부에서일어나는사회적행태는유기적이다.

우리는 사회를 유기체로 보는 유기체적 사회학설들을 통하여 사회는 유기적이라고 생각하여왔으나, 유혈혁명(괥血革命)과 같은 격동기의 사회나 퇴행기에 들어간 침체된 사회상황에서는아무도유기체적인생명적현상이그사회를대표한다고말할수없을것이다.

오직 공동체 성원들이 심성적으로 일치되었을 때 그 공동체내의 사회행태를 유기적이라고 인정할수있을것이다. 이러한유기적인관계가이루어진공동체내에서는그구성원들이가진모든 지식과 기술과 능력과 인격이 잘 융화되어 자연적으로 적재적소의 일이 분담되며 또는 서로순응하며공동의목표를효율적으로달성한다.

(이러한일이물론군도(群盜)의 세계에서도이루어질수있으나그유기적관계는눈앞의목적이달성되면이익분배를위한견제와증오의관계로탈바꿈한다.)

우리는이러한공동체의유기적인능력이역사의모든창조적집단내부에서발생했다고믿는다. 중국의공자와그제자의무리들, 국의위클리프와그의무소유적제자들, 제수이트의선교사들과 레둑시온 공동체들, 간디와 그의 지지자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와 그의 무교회주의동지들이모두이러한창조적공동체들이었다.

토인비는 창조적 개인이나 창조적 소수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창조적 소수자들이 비창조적 대중과어떤관계를가지고지도력을발휘할것인가에대하여의견을피력한다. 그리고대중의모방(Mimesis)의 능력을활동시키지않고는실제사회적규모로문명의성장이이루어질수없다고했다.

토인비의 사적 고찰의 기법에는 경의를 표하나 역사의 전개에서 공동체적인 행태가 개입되므로증폭되고확산되는인류현상의특수성에대하여는좀더보완되었으면하는감회가있다.

우리는역사상창조적소수는공동체적인특성을갖추고나타나며그러한공동체내부에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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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중요한것은창의를가능케하는공동체나공동태의유기능은공동체적행태를가능하게하는의로운정신성과끊을수없는본질적연관을맺고있다는것이다.

일반적으로쉽게무시되는것은정신성과기능의관계이다. 그러면서도자본주의이론에서는동기(motive)와업적과의관계는크게강조하고있다.

우리는개인적정신성과그의기능이서로관련지어질수있다는정도의상식적인차원을뛰어넘어공동체적정신성과유기능의관계는인간의본성에서우러나온것이라고강조하는것이다.

오히려이관계는개인적정신성과그능력의관계보다더긴 하고본질적이라고본다. 개인적인 정신성은 많은 경우에 불균형인 상태에서 더 천재적인 문화능력, 예술능력을 발휘하게 되는경우를본다.

보상심리에서 비롯되는 것도 있고 또는 이상심리상태에서 특이한 정신능력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공동체의경우에있어서는홀로성취하는것이아니라모든일이더불어함께성취되는것이므로공동체적사고를함에있어서도상호간교감이매우중요하며, 실제로이러한구성원간의교감이있을때유기능이발휘된다.

물론 이러한 교감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교육수준, 서로간의 호감, 공동목적, 커뮤니케이션 등이필요하다고보겠지만, 이들은이익사회의공동태에서필요한공통의조건일뿐이다.

같이살아온이들로구성된소규모공동체에서는이모든전제조건의장벽을뛰어넘는다.

이같이 소규모 공동체 내부에서는 원래 유기능이 존재하지만, 이익사회내의 공동태에서는 그구성원들의 공동체적 유기성(또는 유기체질)이 어느 정도 이상의 임계조건을 만족시킬 때 - 주로 그 유기성은 결속도(結束度)로 표시될 수 있겠지만 - 유기능이라는 공동체적 능력이 형성되어발휘되기시작한다고생각한다.

이러한결속의강도는개인들의이념적인자발성으로강화될수도있겠으나, 이런강화현상의기본적인조건은역시과거로부터공동체나공동태의구성원간에인간관계를맺고교제하며발전시켜온양식(mode)과심도(depth)라고생각된다.

공동체와는달리공동태에있어서의유기능은‘성취된다’고표현하는것이타당할것이다.

이러한유기능을보유한공동체나또는유기능을‘성취’한공동태에있어서는, 민주적인특성들이 자리 잡게 되고, 언론과 사고의 자유를 서로 인정하게 되며, 모든 정보와 아이디어의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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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들어 국의헨리7세가 국의장래가해양에있다는 감적착상을하지않았다면엘리자베스 시대의 국이 존재하 을까. 그리고 이에 연이어 보통의 상선(商船)에 대포(大砲)를 설치하는평범하지만의표를찌르는극히현실적인착상도역시헨리7세에게서나왔다.

헨리 7세는 주로 자문회의의 지원을 얻어 통치하 는데 이 새로운 자문회의의 구성원은 대학에서교육을받은도시공민(都市公民)의자제들이었다. 그리고이멤버들은모두후일관료적인대가문으로등장한다.

이렇게도시공민의자제들과새로운생각을나누던헨리7세가해외시장의쟁탈이장래중요국책의하나가되리라고예견한것은무엇을시사하며, 그가선박과해외통상에대하여많은지원을하여 대도시가 그에게 충성을 바치게 된 것은 어떤 사회적 요인들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인가.

우리는그가새로운신예관료들과창조적인유기능을획득할정도로깊은공동체적관계를가지게되었다고보는것이다. 그는원칙에철저했으며그의정신성또는당시관료들의정신성의고상함도역시좋은실례들을찾아볼수있다. 이는이조의세종과집현전학사들간에이루어진공동체적관계와그들의창조적업적을미루어볼때더욱명확하여지는것이다.

유기능은본질적으로창의(Creativity)를가능하게하는능력으로보는데, 우리가개인의창의라고 보는 부분이 실은 개인에게서 솟아나오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 속에서 솟아 나온다는 것을깨닫는것은개인주의적이고분리주의적인특성을가진현대를살아가는우리에게는상당히어려운일이다. 그러나 개인이라는 분리된 실존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라는 그물

의뭉치속에그물코라는형식으로존재한다고보는것이옳다.

따라서개인에게서나온다고생각한창의는실은공동체적사고의결과로서오랜시간엮어지고 다듬어지며 공동체 내부의 역학적(力學的)관계에 의하여 어떤 개인을 통하여 외부로 표출되어현실화된다고본다.

창의는 무수한 간주관적 사고를 토대로 하여 구체화되며 그 효용성이 실증되고 확인된다. 이같이우리가현실생활로인식하고있는많은부분이공동체의간주관적사고과정으로재인식될수있다.

비록우리가이익사회의특성이강한시대에살고있지만공동체의이러한사고과정이현대사회에내포된공동태를통하여서도같은원리로창의를가능케한다고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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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의한자립적의료센터, 자주학교, 공유비디오, 독립라디오방송들이그러한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네트워크나 공동체적 시민사회에 있어서 그 운동의 시발점에서는 정보와 기타교환또는교제가자유롭고활발하지만부정적정신성이점차자리잡게될때어떤효과가있을것인지 한번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도 우리의 논리를 검증하기 위하여 필요할 것이다(이는 각자가생각해보기바란다).

그런데 이 유기능을 성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현장성’이라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이는실질적인작업의현장이라는의미보다오히려시대적고뇌의핵심에부딪치고느끼고극복하는의미를말한다.

그래서 시대적 의미가 없고 소속된 사회의 고통에 참여하지 않는 공동체나 공동태는 격리되며, 폐쇄적이되어가며, 점차부정적인정신성이노출되고퇴적되어, 결국소멸하게된다.

그래서역사적인사명을감당하는공동체들중에가장중추적인역할을담당하는공동체또는소수의공동체들을진원(震源) 공동체라고부를수있으리라보며이들이현실의고통을수용하는과정을‘화육’(化肉, incarnation)한다고말할수있을것이다.

이러한 현장성 또는 화육의 행위가 결여되었을 때는 현실을 피상적으로 보게 되며 현실의 사물이전개되는참된이치를찾기보다학문을위한학문, 생계를위한생활로타락하게되어결국고통을 피하고 남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려는 태도가 형성되며 이런 상태가 심화되면 결국 남을음으로양으로압제하는강포한정신성이당연한것처럼받아들어지게되는것이다.

유명한심리학실험가운데고양이들의잔치(Kitten’s Carousel)이라는교묘한장치를이용한것이있다. 갓난고양이새끼두마리를한마리는걸어가게하고한마리는곤돌라에태워트랙을둥 게돌게했는데둘다시각적으로는꼭같은경험을하게하는것이다.

그런데걸어다닌고양이는보는것과행동을조정할수있을정도로적극적이고물리적인경험이증가한반면현장의느낌이축적되지않은다른한마리는그러한유기적감각이발달하지못한 것이다. 이 실험은 바로 유기능의 이론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본다.

이러한 유기능의 역사적 역할에 대하여는 미국의 엘리트들에 대하여도 그 실례를 찾아 볼 수있다. 스는 19세기 초의 미국에서는 권력 엘리트와 문화 엘리트가 상당히 합치하고 있었다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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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활발하여지고, 그뿐만이아니라유기능의가장중요한특성으로서사회전체또는공동체전반에대한‘활력있는지식체계’를구성원들이소유하게된다.

이러한 활성적 지식체계(活性的 知識體系)를 갖춘 공동체는 특히 적절한 강도의 역사적 도전이지속적으로이어지는환경속에서가장잘기능을발휘하고긴장감이유지된다.

토인비가말한“창조적소수”란우리의생각에는하나의그룹, 또는창조적개인들의평면적인모임이아니고이같은활성적인지식체계를갖추고, 사회의현장에서체감적(體感的)으로정보를수집하는그러한공동체를말한다고본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하나가 아니고 다수의 공동체 또는 공동태들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자리잡고있어서하나의공동태에서일어난혁신이다른공동태로전파, 확산될때이것이전사회로파급하여새시대를이룬다고본다.

이러한예는아마도 11세기경아일랜드의수도원공동체들에게보존되었던그리스·라틴학문과문화가유럽대륙으로역류하 던역사에서좋은실례를찾을수있을것이다. 당시의프랑크의카로링왕조가이러한시대적조류를일으킨직접적인주요원인이되었지만,

그근본적인원인은역시수도원공동체들이예비되어있었다는데서찾을수있다.

근래우리는네이스비트가말한바탈산업사회의새조류중에‘네트워크’의형성을관심을가지고검토할 필요가있다. ‘네트워킹’의첫단계는 주로지역사회에서 소수 당사자들의자조(自助)단계의첫걸음으로이루어지는데이는“사람들이서로이야기를나누고, 아이디어와정보및자원을함께나누어갖는것”이라고간단히정의하고있다.

네트워킹은“회의, 전화, 비행기, 여행, 책, 신문잡지, 팸플릿, 사진복사, 강의, 워크숍, 파티,비 정보망, 상호간의친구들, 수뇌회담, 연합, 테이프, 회람”에의하여이루어진다고한다.

네트워크는자조운동을육성하고, 정보를교환하고, 사회를변천시키고, 생산성과노동조건을개선하고, 자원을함께나누어갖기위해존재하는것이며, 이는우리가알고있는다른어떤과정보다도 더 빨리, 더 하이터치하게, 더 에너지 효율이 좋게 정보를 송달하도록 구조가 되어 있다는것이다.

네트워크 구조의 특성은 수평적 유대로서 관료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좀더 공동체적이다. 현대에 생태주의자들이 시도하는 사회적 실험, 즉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시민사회를 재건하려는목적을가진운동들은이러한공동체적관계가이루어질수있는시민사회를마음에그리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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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33

우리는 토머스 제퍼슨과 존 듀이가 언급한 교육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보편적인 교육을 통하여 인간이‘신념’을 갖게되며‘제도를 창출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되는데교육은바로그수단이라고하 다.

우리는 신념이 제도창출과 직적 관련된다고 보며 제도의 창출로 인한 사회의 진보를 가져올수없다면참다운신념으로인정할수없다고본다.

7) 사회의진보와변혁의모델

사회는진보한다. 적어도진보해왔다고믿어지고있다. 정신적진보에대한의문을제기하는사람들도있지만그들의의견을소수에머무르고있다.

우리도 사회는 진보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떠한 시대이든지 부정적인 정신성이 편만하지않은 때가 별로 없다. 의롭고 선한 가치관이 잃어진 시대는 잃어진 시대대로 악하고, 선한 가치관이주창되는시대에도실제로사회에는위선과편견이주름잡고있기때문이다.

선하게 살려고 하는 개인의 마음에서도 선한 것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면 의로운 정신성과사회의진보의관계를고찰하고자하는노력은도로(徒걓)에그치는것인가.

사회의 진보가 의로운 정신성과 전혀 무관한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우리는 부의 재분배라는사회정의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가. 사회의 진보는 기술의 발달, 경제적 생산의 증대만으로충분한것이아닌가. 만일우리에게사회의진보를규정하라면어떤정의가내려질것인가.

사회의 진보는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 오히려 진보는 사회 내적인정신현상이다. 물론우리는사회의진보를감지할때에외적인현상에의하여인식한다.

그러나 내적인 정신현상은 우리의 인식 차원이전의 문제이지만 사회의 진보는 본질적으로는정신현상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근래 우리는‘일본의 미국추월’을 놀라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비 은어디있는가.

이구동성으로 경 경제학자들은 일본사회의 정신성 특히 공동체적 행태가 그 근본원인이 된다고지적한다. 이것은동아시아의신유교윤리를분석하므로유교적공동체정신성이어떻게경제발전과연결되는가를밝히는투웨이밍의논리에도잘나타나있다.

투웨이밍은신유교윤리의특성으로“가정, 기업체등의조직체나국가사회에대한관계를중시하며의무, 책임과헌신등을강조”한다고본다. 즉 청교도윤리가개인의권리를중시하는데

432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그래서 일반 공중을 대상으로 보아도 지식과 힘을 서로 효과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으며, 지식과힘을가졌던공중이곧많은정책결정을내렸다는것이다.

그런데 그는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레스턴을 인용한다. “1830년대의 의회에서터어키에대한그리이스의독립전쟁에대하여행해졌던토론과 1947년하원에서행해진그리이스-터키문제의토론을비교하여보면사태를잘짐작할수있다.

전자는상당한웅변이중심이었고토론은원칙에서행해졌고설명을통하여어떤결론에이르고 있다. 그러나 후자는 싫증이 날 정도로 논쟁점을 왜곡시키고 있고 아무관계가 없는 문제와그릇된사실로가득차있다”는것이다.

1783년 조지 워싱턴은 볼테르의‘서한집’이라든가, 로크의‘인간오성론’에 흥미를 느꼈다.이에비하여‘아이젠하워’는카우보이이야기나탐정소설을읽는정도이다.

스는지식인에대한조금은심한정도의편애를가진듯생각되는논조로많이쓰고있지만,여하튼우리는미국의엘리트사회가세대에따라어떻게현장에서멀어져왔고사회전체를위한유기능을보존하고견지하는데실패하고있는가하는실례를발견한다.

물론사회분화로인한것이라할수도있다. 그러나리스트가미국으로추방당하여자기가쓰고자 했던 정경학의 핵심적 사상이 미국의 서부개척민들 사이에서 생활 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을보고한탄한논문을읽은적이있다. 바로유기능은사회가내적으로연결되어생동하는힘을가지게하는능력이된다.

이 유기능에대하여는오히려사회의진보와관련하여좀더자세히다룰필요가있다고본다.왜냐하면 유기능과 창의적 과정과 사회의 진보 사이에는 지극히 본질적인 관계가 맺어져 있기때문이다.

토크빌이말한바기억할만한구절이있다. “공통의신념이없이는어떠한사회도번 할수없음이분명할것이다. 왜냐하면공통으로소유하는이념이없이는공동의행동이있을수없고,또공동의행동이없이는인간개개인은존재할수있을지모르지만사회적집단은존재할수없기때문이다.”

아마도근대이후로가장크게공동태에 향을미치는요소는공통의신념이라고볼수있을것이다. 이것이나아가공동체행동과집단의존재로나타나는데이러한집단이창의적활동을벌릴때사회의진보는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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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35

삶의 양식은 사회체질이 발현되어 인식된 것이며 그 체질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삶의 양식이 변화하는 것은‘인식과 욕구’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인식과욕구는초기에는개인적으로변화되며이러한개인적변화가공동태적변화로발전하면그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또는 공동태적으로 합의되고 수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삶의 양식이 정착하게된다고본다.

이러한인식과욕구의변화는공동체적인간주관적사고과정에의하여이루어지는데이러한공동체적사고과정에서사회적학습이동시적으로이루어지며, 이러한학습의결과로사람들은“극히유사하기때문에동일하다고규정지을수밖에없는”사회적삶의양식을지니게되는것이다.

그런데이러한인식과욕구의변화는근본적으로어디에서유래하는가.

축적된재화(財貨), 소유된부(富)에의하여변화되는것이다. 실상인간의인식과욕구가변하기시작하는것은대개는변화의폭이큰특이계층(特굋階層)에서나타난다고본다. 일반 평민과 대중사이에서는 이러한 특이지대에서 - 사치층, 학자층, 극빈층 등 - 나타난 특

이한소재를잘음미하고천착하여공동체화하는능력이더욱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6세기에 자유공업이 발달하게 된 것은“공업제품을 강경하게 요구하는 (구매력이있는) 소비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공업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술을 연마시켜 고도의 기술수준을 가지게 되었고, 이때의 소비층은 시초에는 교회의 주교들과 대 주의 가속들과기사계급들이었던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변화를 선도한 것은 자신들의 지위에 대한 상징이 필요하 기 때문이다.주교좌성당(主敎座聖堂), 기사용무구(武具), 장식품등이그것이다.

이 상징적 물품들은 특수층들이 재화의 축적에 따라 자기인식, 상황인식에 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연쇄적으로인식의변화가욕구의변화로천이하게되면, 초기에는비록공동체적으로사용될 수 없는 특이소재라 할지라도 좀더 넓은 계층에게 소개되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안정적 가치를가질수있는공동체적소재로탈바꿈하게되며, 이것은이를수납한공동체나계층에게삶의양식으로받아드려지게되는것이다.

이는 6세기유럽의특수층이선도한사치한삶의양식이공업을발전시키고다시이를무역과교통의 중심지인 도회지에서 수용하게 되자 장원에 속해 있는 기술자들의 생산 능력보다 더 많은 양의 물품을 요구하는 소비자 계층이 생겨나고 이는 다시 자유공업의 흥기를 가져온 사실에서살펴볼수있는것이다.

434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반하여신유교윤리는조직체에대한개인의의무를강조한다는것이다.

그래서 조화, 협동, (정신심리적인) 수양과 기강, 전통 등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바로 공동체적인정신성이라고볼수있는항목들이다.

사회의진보를다루기전에우리는창의와정신성의관계를창조적유기능이라는개념을원용하여 논술하 지만, 사회의 진보는 공동체적 정신성(신뢰-헌신-성실)에서 비롯된 창조적 유기능을통하여창의를축적시켜나가는데서이루어지는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 또는 공동태 현상을 설명하는데 우리는 학습이론이 매우 유용하게 쓰일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이론 중에 특히 스키너의‘작동적 조건형성’의 모델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그는 파블로프의조건반사를수동적(Respondent) 행동이라부르며“수동적행동이란유기체가환경에대해반응하는것인데대하여작동적(Operant) 행동이란유기체가환경에따라행동하는것”이라고구별한다.

예를들면상자속의쥐가지렛대를누르면먹이가나와서이쥐가지렛대를누르는행동을강화하며, 열심히공부하는학생을칭찬하면더열심히공부하게되는것과같이“작동적행동이란강화자극에의하여통제되는행동”이라는것이다.

스키너는 또한 소거(消去)에 대하여 논하는데, 소거는 강화자극을 철회하여 특정한 반응이 중지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강화자극을 철회한 후에는 원하는 반응이 중지되지 않고 지속되는 현상이학습이완전히이루어진것으로본다.

말하자면 충분한 자극으로 인하여 유기체내에 특정 행태가 정착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말하자면이런행태의정착은윤리나문화창조의원인이된다.

그리고 사회는 공동체적이고저 하는 방향성 때문에 자생적인 공동체 학습과 교수 프로그램으로충일하여있다. 따라서우리는사회에는이러한자생적학습매카니즘을통하여사회내부의공동체들이나공동태들이체질을바꾸어나가는작업을지속적으로수행하고있다고본다.

이렇게사회의체질이바꾸어짐에따라사회의진보가이루어진다고본다면그‘체질(體質)’은어떻게규정되는것일까. 우리는사회의체질은사회의정신성이며그러한정신성과시대적상황의결합으로나타나는삶의양식이라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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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37

사회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화 또는 가치가 축적되어야 하며, 이러한 가치축적을위한행위가현실적인경제생활에서이루어지는데재화또는가치가어느정도이상 (임계가치량이상이라고표현해보자) 축적되어“넘치면”그사회의발전단계에따라인식과욕구특성이변화하고다시연달아정신능력과생활양식이변천하여나간다는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정리해 보기 위하여 사회발전 단계에 따른 특성을 아래 표(I)에 열거하여 보았다.

표(Ⅰ)사회진보단계에 따른 정신 및 생활특성

물론이러한특성화를통한논리전개는지나치게현실을단순화하는결점이있으나설명과이해의편의를위하여시도하여본것이다.

수렵채취시대에는 단순한 자연적 인식능력으로 식욕에 쫓김 받아 식별능력이 발달되고 이에부수된 기억력과 상황판단이 필수적인 사회적 기본능력으로 정착하여 유랑생활을 능히 감당할수있었을것이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도구도 간단한 것이 갖추어지며 소유관념도 발달하면서 의도한대로목축농업을 위하기위해서는인식의방법이체계화되어야하며, 이러한체계적인인식능력은안정욕구와연계되어계획능력을발전시키며정착적이고취락적인생활로인도한다.

다시 이것이 상업적인 사회진보를 겪기 위해서는 농경사회와는 달리 그 인식특성이 유동성이생기는 데 유동적 인식이라 함은 상황파악의 유연성을 가지고 항상 긴장하여 수익적 상황 또는손해적상황을남보다먼저인식하여야한다는것이다.

이러한인식위에축적의욕구를달성하며, 상업적정신능력의본질은지역간, 집단 간의연계능력을갖추고양측의포텐샬(potential)의 차이를파악하여상행위를일으키는것이다. 이러한행위를위해서는결국독립적생활양식과도시적활동근거가필요한것이다.

여기에서 산업적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식이 구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구조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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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극빈층에서 나타난 현상은 좀더 생존의 욕구와 긴 한 관계가 있는 것이지만 중세 유럽에서 11세기농촌인구의폭발적증가로말미암은무토지(無土地)인잉여농촌인구의도시이주와같은사실에서찾아볼수있다.

적어도 죽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들은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방랑과모험과도전을통하여부를차츰축적하여상인층을이루었고이계층은조만간도시귀족계급을탄생시켰으며중세의도시에특이한성격을부여하 던것이다.

그러나이러한상인들이초기의빈민상태에서모험적도전을통하여부를축적하여나가는과정에서자기와사회에대한인식이변화하고욕구가변화하며급기야는공동적인생활의양식과윤리도새로운형태로정착시켜나갔다는것은명백한사실이다.

물론 상업의 경우는 멀리 수십 세기 이전의 페니키아나 동방의 상인들로부터 내려온 삶의 양식이이식될수도있었으나역시시대와지역에따라특수한상황에맞추어상업의기술과윤리규범이정착되는과정을반드시거쳤던것이다.

이는 지중해 연안의 상업도시나 북구의 상업도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삶의 양식을 정착시키는 과정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삶의 양식을 우리는 그 공동체적 계층 또는 사회의‘체질’이라고부르고싶은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사회의 일각에서 또는 개인적으로 인식-욕구-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기틀이되는재화의축적이어떻게사회전반이나계층적으로유사한현상을유도하는가하는데있어서우리는역시공동체적인창조적유기능의역할을강조하지않을수없다.

사회일각에나타났다가사라질수도있고또실제로역사상사라진많은삶의양식들이이를적절히 소화할 수 있는 진원적(震源的) 공동체에서 수용하여 다른 공동체나 공동태들을 통하여확산시키고완벽한학습을통하여체질화되고다시새로운창의들을더할수있을때사회의진보는이룩되는것이다.

이러한유기능이성취되기위하여공동체적결속이필요임계(必要굢界) 이상으로다져져야하며이는한단계나아가공동체적행태를가능하게하는공동체적정신성과불가불의관계가있다는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회진보와 변혁의 모델로서‘넘침’의 모델 (overflowing model)을 제시하려고한다.

특성/단계 인식특성 욕구특성 정신능력 생활양식 지역단위 경제특성

수렵 채취 단순인식 식욕 식별능력 유광적 혈거적 자연경제

목축 농업 체계화 안정 계획능력 정착적 취락적 고대 및 봉건경제

상 업 유동성 축적 연계능력 독립적 도시적 자유경제

산 업 구조적 풍요 종합능력 소비적 국가적 혼합경제

탈산업 조감적 자유 창의능력 개성적 세계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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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39

우리가 지금까지 논술한 인식-욕구-생활양식의 변화는 주로 상부구조를 중심으로 하여 하부구조의자극을받으며이루어진다. 그러나하부구조는토지또는자연에서산출되는재화가치를노동을 통하여 생산하고 사회적 효용성이 있도록 가공하여 축적하여 나가는 역이며, 역시 상부구조에서이루어진가치체계-행동양식의지배를받게된다.

가치체계-행동양식의틀은보통이윤-경제, 권력-정치, 규범가치-윤리와같이표현할수있는사회의각실천분야에서성립되는것으로서인간사회의정신적체제라할수있다.

그러나 이 체제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분야가 확충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하며 따라서 사회의가치체계는결코고정적인것은아니라고볼수있다. 본질적으로공동체적인사회를만들고저 하는 인간의 절대적 필요로 인하여 그 거시적 방향성은 변하지 않으나, 진보의 단계에 따라하부구조적인사회상태가변해가면서미시적으로가치체계의특성은변해간다고본다.

이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두뇌-전신(全身)의 관계와 유사하다고보면이해가쉬울것이다. 한편으로상부구조는인간의지식과지혜의축적인‘창의의 역’으로볼수있는반면하부구조는자연과토지와인간의육신적인노동을포함한‘자연(또는토지)의 역’으로생각할수있다.

우리가육신적인노동또는노동의자연적부분(인간의창의적부분과대비한개념)을 자연(토지)의 역에편입시키는것은지금까지의경제학이노동에육체노동, 정신노동으로분명하지못한양분법(兩分法)을상식화시킴으로요소분석(要素分析)에서실패하고있다고보기때문이다.

육체노동에도 명백히 육체만의 노동으로 구분할 수 없는 지적(知的)요소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정신노동의 경우에도 신체에너지의 소비, 육신의 활용과 같은 명백한 육체노동이 기초가되어노동행위가이루어지는것이다.

이러한지나친것같은노동의엄 한규정으로말미암아우리는노동을평가절하하자는것이아니요, ‘인간이하여야하는노동’에대하여더욱뚜렷한비젼을추출하자는데있다.

우리는과연무인자동화생산시대에살아야할인간의노동이본질적으로어떤것인지대비하고있는가. 로보트의인간대체를두려워만하고있을것인가.

인간의노동이인간소외를초래하는근본원인은무엇인가. 임금을적게주기때문인가. 아니면인간이본질적으로그렇게하도록되어먹은‘창조적노동’의기회를박탈하기때문인가. 물론저임금과인간의단순기계화가모두문제가되지만인간의비인간화는기능적노동을적정선이상으로강요하는산업사회의착취적체질에있는것이다.

438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함은 사회구조의 내부에 속한 사람이 속구조적(屬構造的)으로 자기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사실자본가도구조를창조하는입장이아니라속구조적인입장에서조직력을발휘하여기존의분업적으로분리된사회상태를종합하는능력을기르게되는것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일률적으로 소비적이 되며 결국 국내의 모든 소비자에게까지 자연적으로이러한 향을미쳐나가게되어있다.

이제여기에서20세기후반부터닥쳐오는탈산업사회의특성은어떻게될것인가. 아마도구조적인인식에서조감적인인식으로변천하여자유를위한욕구와창의능력의발현을통하여개성적생활양식으로가는것이아닌가하고기대해볼수있을것이다.

지금까지 넘침의 모델을 설명하기 위하여 역사적 사회진보를 단순화하여 살펴보았지만 어떠한 사회적 상황에서 (재화의) 가치의 축적이 어떤 수준에 이르면, 사회진보의 다음단계를 위한내적이고 정신적인 능력이 발생하여 지속적으로 축적되기 시작하며 결국 사회적인 윤리규범이나전문지식이나활동방식, 또는생활의양식으로정착하여나가게된다.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이 거시적으로 일어날 때에 그 사회의 내부에서 미시적으로는 공동체나공동태의선도적인특질변화가이모든일의근원이되는것이며, 이때문에공동체적인창조적유기능과 공동체적 정신성이 이러한 진보과정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관련을살펴보기위하여다름과같은도식을그려볼수있을것이다.

그림(II)는사회진보의구조적매카니즘을보여준다.

사회는 위에서 보듯이 실질적인 생산과 구체적인 인간관계가 맺어지는 현실적 역(physicaldomain)을 하부구조로 하고, 사회적 가치와 행태를 결정하기도 하고 내포하기도 하는 지성적역(intellectual domain)을상부구조로하여성립된다.

생 →

명 →

력 →

-- 정 -→

------→

-- 신 -→

------→

-- 성 -→

상부구조

------→

-- -- -

하부구조

------→

인간 - 사회적 가치와 형태를

(칭의) 인식-욕구-생활양식 결정하는 지성적 역

(토지) - 실질생활과 관련하여

자연 재화가치의 축적 재화를 산출하는 현실

적 역

⇔ ⇔

그림(II)사회진보의 구조적 매카니즘

Page 64: 고 6장(315~484)113258

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41

논리전개과정에서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 이점이 현대 정경학의‘아킬레스건’인 것이다. 사회의진보는오히려토지가치와공동체적가치를도입하여설명할때더명확하게설명되어질수있다.

8) 삼중가치체계의가치론( 三重價値體系價値걩)- 토지가치, 공동체가치, 시장가치

경제학상의가치론에대하여이런일화가있다. 케인즈에게제자중한사람이“왜스승의일반이론에는가치론이없는가?”하고물었더니“지금쓸모있는가치론으로는노동가치설밖에없는데이것도완전히신빙성을잃었기때문이다”라고했다는것이다.

한편 사회주의적인 정경학의 체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노동의 질과 양을 향상하고 증대시키는 요인이 인간의 본성에 있다는 스미스의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정치경제학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연구보다는 인간의 본성과는 독립적인 경제구조를 연구하며, 개인을 그 경제구조가필요로하는일정한기능의담당자로간주하고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현대의대표적인자본주의 이론가인조지길더는“자본주의는 심리적이고지적인 역에속하는것이며,-부는마음에의하여다스려지며, 부는물질속에깃들어있는것이다”라고하여인간의본성과경제적가치의연관이불가분적임을역설한다.

그리고 그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부와 선진국의 부와의 차이점이 어디 있는가를 논하고“무산가정(無産家庭)들이 미국을 건설했다. 2차대전 이래 약 5천억 달러의 이익(모든 대기업의 합산된이익보다6배가넘는)을거둔법인기업의대부분이무산의가정에서출발했다”고인용한다.

우리는지금경제적가치에대하여논하고있지만실제로현재경제학에서다루는가치개념은시장가치이다. 예를들면책이한권발간된다고치자.

처음에는 시장가치가 있어 판매가 되지만 얼마 있으면 팔리지 못한 책은 고서점에 함부로 쌓여 딩굴게 되고 창고에 쌓 다가 버려진다. 사람들의 마음에 효용이라는 가치로 반 되는 시장의그림자는참으로신속하게이책위에그림자를드리웠다가떠나간다.

그런데 우리는 가치라는 개념을 파악하기 위하여 화폐로 계산될 수 있는 가격이라는 형태가아니면적절한표시방법이없다고생각하기때문에무형적인가치에대하여는어떤방식으로정리하여야할지적절한방법론을아직도찾지못하고있다.

가격이라는 가치계측의 방법은 시장경제에 대한 참여도가 높은 사회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하

440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우리는지금까지공동체적정신성과공동체의창조적유기능과창의적행위를관련시킬수있는논리를전개하여왔다. 이제좀더나아가우리가소유하는대부분의가치는어디에서산출되고축적되는가를보아야한다.

아마도지금전개하고저하는논리는지난시대의중농주의자들의논리가아닌가생각할수도있을것이다. 그러나우리는역사의기록에서왜곡된논리를추출하여경제현상을설명하는데는깊은거부감을느낀다. 예를들면“역사에서최초의자본의축적은정복에의하여착취함으로써이루어졌다”고보는것같은견해들이다.

우리는 이같이 부정적인 정신성이 침투하지 않은 본연의 경제현상을 우선 파악하자. 이러한경제현상을 심층분석하기 위한 가치이론은 다음에 후술하겠지만 우선 역사적으로 어떠한 가치축적이이루어져왔는가를살펴본다면개략적으로다음그림(III)과같을것이다.

이러한재화의누적은사회가진보하고인식-욕구-삶의양식의변화에따라점차가속적으로이루어지는것을볼수있다.

여기에서상업은수천년전에시작된경제현상이기는하나, 전세계적으로 향을미칠수있는 경제중심부에서 상업자본가의 계층화 현상까지 이루는 대규모 사회경제현상으로 시작된A.D. 1000~1500년까지의기간을그시작점으로잡은것은좀더특성적으로표현하기위한의도에서이다.

위의그림에서다룬 것은화폐가치로전환하거나시장가치로표현할수있는것은아니며토지가창출한공동체적가치의총량을생각하여본것이다.

우리는사실토지의산출가치와공동체가창출한모든가치에대하여지나칠정도로무시하고

(그림III) 재화의 누적가치와 사회진보의 단계

재화의누적가치

지수함수적 증가

2000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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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43

은 것이며, 교역의 팽창과 양모제품의 수요증가로 인한 선대제도와 엔클로저 운동의 성립도 그근본적원인은모두도덕적으로정당치못한데서이루어진것이다.

물론 맑시즘적 입장에서 볼 때 자본의 본원적 축적 혹은 시초축적은 근대적 임금노동자가 형성되는과정과, 그들을고용할화폐소유자가형성되는과정을가리킨다. 즉자본주의사회를특징짓는임금노동자와산업자본가가어떠한역사적과정을통하여형성되었는가를설명하는것이자본의본원적축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같이 오직 인간의 역사에만 눈길을 주고 그 과정을 분석하는 방법에 주력할때에, 특히사회적가치- 우리는이를더정확히시장가치라고한정시켜부르고싶지만- 에대하여만 다루게 되는 우(愚)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자연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를 무시하게된다.

(신과학 계통이 거부감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자연과학자인 카프라의 말을 들어보자. “경제학자들은 부의 기본은 자연자원과 에너지라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을 고려에 넣지 않는경우가 허다하다.”실은 현대의 정경학 속에는 최근 발흥하는 생태주의 계통 외에는, 자연을 자연으로다루어주는정당한논리가결여되어있다고보아야할것이다.

아마도 경제학은 인간이라는 존재 마저 하나의 자연현상으로 해석되고 자연자원과 에너지의결합에서 노동이 나온다는 극단적인 견해가 성립될까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인간의노동의본질에대하여우리는더날카로운메스를가하여재정의할필요가있다고생각된다. 우리가이를결행하지못하는것은좀더포괄적으로일반이론은어떻게도출할수있을것인가.

우리는 가치론을 다룰 때 세 겹의 가치체계(三重 價値體系)를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 현재 우리들의가치체계는시장가치만다루고있는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가치 체계(또는 토지가치 체계)가 공동체가치 체계를 품어서 포용하고 있고, 또공동체가치체계(또는사회가치체계)가거대한그릇처럼시장가치체계를담아서떠받들고있는것을인식할필요가있다.

시장가치는 원래 본질적으로는 공동체가치와 동일한 것이다. 공동체가치 체계는 잠재적으로사회공동체내에공동체특성(communal property)이라는형태로내포되어있다. 반면, 시장가치 체계는 가격제도에 의하여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형태로 표면에 나타난다고

할수있다. 그래서시장가치는모든외적인경제활동과연계되어가장선명하게표현될수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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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설정된것이다. 자본주의는비록시장경제를그논리의중심으로다루고있기는하지만길더가자본주의는심리적이고지적인 역에속한다고말했을때그는이미시장경제라는테두리를탈피하여야하는필연성을내심으로감지하고말하고있는것이다.

즉그는새로운가치론의필요성을무언중에역설하고있는것이다. 이러한가치론과같이극히 근원적인 인간문제와 연결된 논리들을 구성하고자 할 때에는 누구나 어디까지 추상(抽象)하여야하는지에대하여확신을가지기힘들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역사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며 역사야말로 한 가지 사실에서 백가지의 다른견해가도출될수있는대상이기때문이다. 예를들면자본은이윤의원천이며나아가서는지속적인 자본축적의 원천이 된다는 자명한 듯한 논리구조를 보면 이러한 순환의 과정에서 최초로자본이 축적된 초기조건을 설정하는데 있어서는 상당히 유동적인 역사해석의 문제가 도사리고있는것이다.

초기자본축적이이루어진상황을분석하면①교역및상업규모의급속한팽창②공업에있어서의선대제도(先貸制度)③엔클로저운동(Enclosure Movement)④엄청난폭의물가상승이지적되고있다.

그리고 그밖에 짚고 넘어가야 할 근원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하나 그것들이 도덕적으로 정당치못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에는 잊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식민지에 대한 약탈, 해적행위,그리고노예무역등이있었다.

여기에서 살피면 경제학의 학문적 방법론을 논할 때, 만일 정량적(定量的)인 면만 강조한다면비도덕적인부문까지전부포함하여양적인계산으로앞뒤를맞출수있어야할것이고, 만일정성적(定性的)인면만강조한다면그럴듯한논리가성립되는경제현상만다루어야한다는말인데경제현상에서합리적이고이성적인사회현상으로구별하여다룰수있는것은실상거의없다고볼수있다.

지하경제만나쁜것이아니라모든경제현상의내적인구조는극히비합리적이고본능에근거한행태로짜여져있다. 위에서말한 16세기경의유럽이경험한엄청난폭의물가상승도그근본원인은원래남미로부터금과은이대량유입되었기때문이고이는바로숨길수없는식민주의적약탈에기인한것이다.

교역및상업의급격한팽창도이러한외래(外걐)의불의한부의축적에따른자극으로말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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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45

이같이 노동을 통하여 이를 생산하면 공동체가치 체계 내로 생산된 가치가 도입되며 많은 경우에이는시장가치를지니게된다.

이제하나의예로우리가 1톤의광물원석생산을위해한사람이하루의육체노동력을필요로한다고 하자. 그러면 보통 우리는 그의 노동에 부수되어 있는 창의의 부분을 무시하고 한 사람하루일거리로 (1 Man×day) 계산한다.

그러나예컨대삽한자루또는불도저한대를사용한다는식으로기재나사용기술의격차로인하여큰작업량차이가나는것은누구나다알지만이것이축적된창의의차이라는간단한사실을도외시한다.

우리가마력(馬力)이라는단위를사용하 듯이모든기계적에너지는사람의고귀한인력이라할지라도일이나힘의양적표현이일률적으로성립될수있는것이다. 그러므로실제로인간의노동을정의하는데는창의(creativity)의부분만이과학적인비교척도로서의의미가있다.

물론채취경제에서식욕을위해일하는원시인의노력도공동체적진보를위해서는지극히귀중한노동의가치를인정받아야하지만경제적가치로서분석하면그것은기계적에너지사용에불과하다.

그러면 농업이 처음 이루어졌을 때 손가락으로 땅에 구멍을 조그맣게 만들고 씨를 심는 노력이란완전한창의의노력이며이러한창의의노력이야말로인류의경제력을기하급수적으로확대시켜온근본원인이된다.

이렇게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면 이미 언급하 듯이 인식-욕구-생활의 방식의 단계적이고 비약적인변화로말미암아새로운창의가가능하여지게되는것이다.

그리고그창의의과정에는공동체의유기능이핵심적인역할을담당하며, 공동체의유기능이발휘되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공동체 되게 하는 특성인 신뢰-성실-헌신이 공동체 또는 공동태내에내포되어있어야한다.

어쨌든지 창의에 대하여는 창의가치를 별도 항목으로 다루겠지만 토지가치가 공동체가치로변환되는 데는 창의가 작용하는 것이며, 창의는 현실에서 교육, 기술, 혁신(innovation)의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사실상 우리가 무의식중에 생활하는 모든 문화나 관습도 창의의 한 부분인것이다.

기술은창의의축적된형태이며혁신은창의가발휘되는형태이며교육은창의행태 (cre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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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관계는그림 IV에잘표시되어있다.

만일 토지가치가 공동체 가치를 담고 있는 용기(容器)와 같다면 공동체가치는 물에 비유할 수있을것이고시장가치는공동체가치위에떠있는기름방울과같다고보는것이다.

원래 인간은 토지가치를 사회화시켜서 이를 이용하게 되는데 이렇게 사회화된 가치는 공동체가치라고 부른다. 토지가치의 사회화 과정은 공동체의 노동을 통하여 되는 것이지만 이 노동은엄 하게말하면물리적노동이라기보다생산을위하여창의적으로고안된노동이다.

이것은 가장 단순한 채취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과실이 가장 잘 떨어지는 곳으로 가서 기다리는것도창의적노동에해당한다. 말하자면공동체가치산출을위한창의다. 토지가치가공동체가치로변환되기위해서는창의가기능하여야한다.

따라서 토지가치와 공동체가치는 서로 섞이지 아니한다. 이는 마치 광물이 지하에 매장되어있어서이를지표로생산하지않았을때전혀공동체경제에 향을주지못하는가치로남아있는것과마찬가지이다.

인간은욕구가생기면욕구가창의를촉발하여이창의가생산적노동을일으키며, 다시생산적노동이자원(토지가치)을생산물(공동체가치)이나상품(시장가치)으로변환시키는것이다.

(사실은 여기에‘오도된 독점욕’에서 발생한 가치체계로서 과도한 기대가치가 존재하는 것은별도로논해야할것이다. 사회심리현상은경제현상을왜곡한다.)

시장가치

공동체 가치

토지가치

물그릇

기름

(그림 IV) 삼중의 가치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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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47

된다. 특히공동체가치- 창의의축적된형태라고앞에서말하 지만- 가왜의롭고참된정신성과연관을가지는지의의미를감지할수있는것이다.

역으로 표현하여 공동체에 의롭고 참된 정신성이 깃들 때 어떻게 공동체에 유익하며, 창조적인 활성상태를 조성하여 낼 뿐 아니라 자연가치에 대하여도 공동체가 올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한다는것이다.

이제 공동체 가치체계에 대하여 논하여 본다면 역시 정태적 가치와 동태적 가치로 나누어 볼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정태적 가치는 크게 보아 존재론적 효용가치와 일반화 효용가치(또는공동체특성가치)로구별된다고본다.

우선 공동체의 존재론적 효용가치에 대하여 논술하면서 하나의 허구적인 실례를 들어 보고자한다. 항해하던 선박이 난파하여 몇 사람이 무인도에 기착하 다고 하자. 이들은 그 와중에서도각자가챙겨가져온물품을물물교환할여유가있다고하자. 그런데 하루는 그 조그마한 공동체의 기둥 같은 지도자로 인정되는 사람이 병들어 죽게 되었

다. 이때 공동체의 붕괴를 염려하는 다른 이들이 모두 자기에게 있는 식량과 약품을 써서 그를살리려한다. 이때이들이노력하는이유는공동체의존속가치를위해서이다.

만일 알약 10개를 가진 이가 7개를 쓰기까지 그 병자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만큼이 그가 인정하는 공동체의 존재론적 가치이다. 어찌했든지 각자는 공동체에 결합되어 있는 만큼 시간과정력과물자를쓸것이다.

이런 존재론적 효용가치와는 달리 공동체의 특성이 되어버린 공동체의 일반화 효용가치가 있다. ‘일반화’란공동체의전반적체질에일반화된특성이생겨났다는것이다. 이러한특성은공동체에따라모두다르다고볼수있는데, 그공동체가어떠한방향으로창의를발전시켜왔고어떤류의창의를계승하여왔느냐하는것과큰관련이있다.

공동체의 일반화 효용가치는 시장가치에서 빠져 나와 공동체 속으로 침투하여버린 가치들을말한다. 이것은 다시 말하거니와 공동체가 발생시킨 창의가 공동체의 특성 또는 체질로 고정화해가는과정을말한다.

쉬운예를들자면젓가락잡는기술같은것이다. 한국인들이젓가락을잘쓰게된이유는모두들오랫동안그렇게연습하는과정을거쳤기때문이다. 이것은한국인들의공동체적특성이다.

또하나의예로써읽는기술을살펴보자. 처음에는국민학교에가서문명을깨치는것만하여도 면서기로 취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라가 발전하여 문맹율이 0%가 되자 이제는 읽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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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avior)를인위적으로주입하여효율적행위를할수있도록인간능력을증폭시키는과정이다.

그러나우리가생각할것은인류역사가있어온이래발휘된창의의대부분이공동체가치체계속에 축적되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 가치란 사실상 인류역사에서 이루어진 창의의축적일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토지가치(자연가치)를 생각할 때, 현대의 문명이 이를 지나치게 무시하고 인간위주의생활양식을발전시켰기때문에자연의역공(逆攻)을당하게된것이며, 공동체가치를생각할때는현대경제가지나치게시장가치에대하여만관심을가지므로공동체파괴현상이나타난것이다.

근래 사람들이 생태계(生態界)에 대하여 관심을 다시가지기 시작하게 되면서 땅과 자연의 재생력(再生力) 또는재순환사이클에대하여논의하게되었다.

이것은자연또는토지가사회에대하여가지는존재론적가치이다. 그것이거기있기때문에사회에이로운이유- 이것을존재론적가치로보는것이다. 그리고이존재론적가치를우리는자연또는토지의정태적(靜態的) 가치라이름하고저한다.

만일 인류사회가 진정코 신의 의지와 섭리에 순응하여 살게 된다면 아마도 토지의 정태적 가치에대하여잘호응하는삶의방식을취하게될것이다. 즉자연의재생력이인간사회의활력과순조롭게연결되는것이다.

따라서미래사회에대한인류의이상은성장모델도아니고제로성장모델도아니며오히려이런시장가치에기준을둔모델에서벗어나서새로운가치관에선모델을제시할수있을것이다.

토지의 가치에는 또 동태적(動態的) 가치가 있는데 이는 자연의 공동체적 효용과 관련한 것이다. 즉 농업시대에는 비옥한 델타지역, 광업을 위하여는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대, 또 미래에는아마도전자통신적인측면에서가장유리한지역등시대나공동체적변화에따라변화하여가는가치와관련이있다.

바로 이것은 건전한 기대가치(期待價値)와 연결되는 개념인데, 기대가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미래의 역에대한부당한침해-주로인간의불의한정신성에의하여야기되어투기나과욕의양상을나타내는것인데-가발생하지않는한도내에서인류의건전한동기를유발하는중요한요인이된다고본다.

이러한자연가치에대하여생각하면거기에담겨져있는공동체가치에대하여더잘이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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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49

다면그들은자기지방에축적된공동체가치를그상품의판매와더불어교환한것이되므로당연히이두지방은가치적으로증폭된매매를하 다고말할수있다.

또는그들은두지방에축적된창의(즉공동체가치)를매매행위를통하여교환할때시장활동은그교환가격에의하여거래량이라는개념으로현시되나, 시간이갈수록같은거래량또는거래가격에의한실질가치교환은공동체가치의증대와더불어더욱증폭되어가리라고보는것이다.

우리는 시장가치체계에서 방기된 효용가치가 공동체가치의 총량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공동체가치중에는시장가치와무관하게공동체가치로편입되는것들이많기때문이다. 그러므로공동체가치는지극히광대한가치체계이다.

인류가있어온이래이루어진거의대부분의창의노력이이공동체가치로전화되는않았는가생각된다. 그러나사회의총효용가치와사회의총시장가치를비교할때이들중특히총효용가치에대하여는좀더연구하여공동체가치와의관계를세 하게정립할필요가있다고생각한다.

지금까지 공동체의 정태적 가치에 대하여 다루었지만 이제는 공동체의 동태적 가치에 대하여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것은 공동체내의 경제적 코이노니아(교제 또는 교류)라고 의미 있는 해석을내려볼수도있는부분이다.

공동체의동태적가치는공동체의움직임이나활동중에시장가치로교환될수도있는효용가치가시장과별도로공동체내에서창출되는경우, 말하자면가정, 교회, 자조단체등에서이루어지는많은생산가치를말한다.

비슷한예를들자면년전에미국의한주부가자기가일생동안가정을위하여일한것을보상하라는 소송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는 공동체 가치와 시장 가치를 전적으로 혼동한 데서 오는기현상이다.

사실요즈음여성해방운동계열에서여성의가정노동에대한보상을열렬히주장하는이도있지만이것은여성의직장봉급의저렴성과는근본적으로다른문제인것이다.

직장여성의 봉급은 시장가치 체계 내에서의 문제이지만, 가정주부의 노동은 공동체가치 체계내의 문제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동체의 정태적 가치에 대하여 논하면서 교역(코이노니아)이 일어나는 곳에 공동체가치의 형태로 잠행(潛궋)하고 있는 효용가치들이 지장교역을증폭시키는효과를일으킨다고했다.

공동체의동태적가치도역시시장교역을증폭시키는효과를나타냄이틀림없다. 그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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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력수급시장에서 전혀 평가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지역공동체에 있어서는이제문맹이없는특성이자리잡은것이다.

또 예를 들자면 자동차의 유선형이 처음 설계에 도입되었을 때는 새로운 창의이며 시장적인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나 이 디자인 노하우가 모든 자동차 유형에 적용된 이후에는 일반적인 유선형의개념에대하여디자인비용을지불하고자하는자동차제조회사는없을것이다.

이같이시장에서방기된효용가치중에많은가치가공동체의특성으로일반화되는과정을통하여공동체가치로전화(轉化)하며버린다.

이것은경제이론상다음과같이표현될수있다. 즉 사회의총효용가치로부터시장가치체계에서방기된효용가치를제하면총시장가치가된다는것이다.

(사회의총효용가치) - (시장가치체계에서방기된효용가치) = (사회의총시장가치)

우리는 일반경제학에서 교역은 모든 참가자의 복지를 증대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교역이이루어질때교역되는가격이상의가치가양측교역자에게모두추가이익을가져다주는진정한원인에대하여는명확한언급이없다.

그러나폴사무엘슨은홉하우스의 말을인용하면서“사회의 과거로부터물려받은기술적인 지식으로부터 유리되어서 도대체 우리는 얼마만한 것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반문을 통하여공동체가치체계의존재를인정하고있는것이다.

우리가사는세계에는공동체가치체계가시장가치체계아래언제나존재하므로사회또는공동체에일반특질로정착되어버린기술, 정보, 물질등의형태가시장에서볼때에는방기된효용에지나지않지만이는또다른형태의사회적잉여가치인것이다.

케인즈가토지와골동품등에대하여논하면서“구매력의하수구”라고불 다고하는데, 바로이것이골동품과같은공동체차지를구입하기위하여투기가일어날때오도된기대가치로말미암아시장가치체계와연계되어야하는구매력이공동체가치체계로빠져나가는현상을말하는것이다.

만일우리가도자기를잘만드는지방에서도자기를수입하 다면그지방의도자기는가격으로표시된시장가치뿐만아니라이에수반된공동체가치를동시에보유하고있으므로우리는지불한가격보다더많은효용을누리게된다.

의복의경우도마찬가지다. 만일 두지방이자기들의특산물인의복과도자기를교환매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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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51

9) 창의가치(創意價値)

원래 창조력, 또는 창의(creativity)를 정의하자면 과학과 경제의 측면에서는 문제들에 대한새로운해결책이나이해하고있는문제들의새로운방식을제공해줄수있는능력을말하고, 생활양식과문화의측면에서는예술과표현들을새로운형태로만들어낼수있는능력을말한다.

그리고 자아심리학자들이 각양각색의 의견 속에서도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요인들을추려보면개인적인창의과정을연구하여볼때,

첫째창의적인인간은동기나에너지수준이높은체질적요인을가지고있다고보며,

둘째 자아심리 내에서 충동의 통제수준이 높아져서 예컨대 과학자들에게는 집중력의 분산을방지해주는현상이나타나며,

셋째 신경증적인 분열증과 유사한“무의식적인 갈등”이 보편적으로 창의의 역할을 뒷받침해준다고본다.

특히 여기서 둘째 부분은“억압에 있어서의 유동성”을 가능하게 해줌으로써 자아가 무의식적인본능적요소들에의하여정복당함이없이인격속에서그것들과접촉할수있게해준다고하는데아마도셋째부분의무의식적인갈등과근본적으로연계되어있는심리현상으로보인다.

그래서이러한창의활동은교육과정에서살펴보면최고의학습과정으로분류되는데, 이에이르기위한교육과정은

첫째, 육체적기능의훈련을목적으로분주한작업을시키는단계둘째, 기술훈련의목적으로수공(手工)과같은숙련을위한학습단계, 셋째, 주제를내걸고이를예증하고소개하고종합하는효과적인학습단계넷째, 창조활동을꼽게된다.

이는 풀어 말하면 육체노동에서 숙련노동으로 다시 정신노동으로 발전하고 드디어는 마지막단계에는창의단계인창조활동으로진입하게된다는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심리적 측면에서의 논의는 창의의 행태를 일반화시키지 못한 것이며 특히인류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창의가 모든 시대에 가장 인간적이고 역사발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거시적인안목을설명할수있는정의를내려주지는못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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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이론화시키는것은잠행하는가치체계이므로매우어려운작업이될것이다.

지금은 오직 이것을 말할 수 있다. 즉 공동체가치의 계측가능성을 생각해 볼 때 토지가격에의하여그현시(顯示)가가능하다고본다는것이다. 토지가치에대하여는따로다루겠지만토지의경제적특성중에위치성이야말로현대사회의경제효율과수익성에직결되는공동체적가치의집결도(集結度)와 접히연관되어있다.

즉 공동체가치의 지역적 도(密度)에 따라서 토지가격이 결정되는 데, 만일 사회심리적인 왜곡현상이건전한토지가격산정에악 향을미치지않는다면이때결정되는토지가격은공동체가치의대표값으로보아도되는것이다.

그러나 그 지역사회에 있어서 총시장가치, 공동체적 문화가치, 교육가치 등등이 토지가치에향을 미칠 뿐 아니라 투기(speculation)를 일으키는 이상(굋常)기대심리 또는 불필요한 경쟁

을 유발시키는 비경제적인 상징성(symbolism)의 추구와 같은 것들도 토지의 가격에 반 되는것이다.

그러므로우리는토지가격의이러한특성이국민의공동체적심성(心性)과건전하게연계되어공동체적 가치를 잘 반 할 수 있도록 그 토지가격체계의 순수성을 극진한 관심을 가지고 보호하여야한다. 이것은국가의기본을튼튼하게하는비결중에하나가된다.

우리는 또한 경제와 정치의 운용에서 보이는 현시경제(顯示經濟)를 인정하는 것 같이 현시경제의 한계지역에서만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경제인 공동체경제에 대하여도 적절히 반응하여야할필요성을깨달아야한다.

예를들어‘보이는’시장경제원리에서는미국의잉여농산물이나한국의경우에는화재로그슬린참치통조림이제3세계의굶는이들에게공급될수있었음에도불구하고모두태평양에버려졌다는사실이당연해보일지모르나이것이바로공동체경제를무시하기때문에생기는죄악인것이다.

돈을받아야식량을팔고, 따라서구호식량도돈을받아야되며, 농민의시장상품은화폐형태의구매력으로보상되지않으면안된다는철칙때문에돈받을수없는잉여생산물은시장의교란을막기위해태평양에수몰시킨다는지독한발상은비판받아야한다.

식량(의식주)은 공동체의 것이고, 모든 생존의 권리는 공동체적 존재근거에서 나오므로 특히잉여곡량은 구호의 목적에 전용되어야 한다는 사회운용의 기본원칙이 일반화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런 생활의 방식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의 죄악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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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53

지평이창의적인능력의개발로인하여열릴것이라는전망을가지고인공두뇌나정보체계에대한학문들을발전시켜오고있는것이다.

이러한 창의가치를 인간활동 중에 몇 가지 특성적 분야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선크게보아창의는두가지로대별할수있다고본다.

첫째는 체제확대적(體制擴大的)이고 증발되기 쉬운(volatile) 분야로서 발명과 정보가 있을 수있다. 증발성(蒸發性, volatility)이라는것을인간사회에서일어난창의활동의결과가그공동체내에소화되어공동체적특질로전이되고수용될수있느냐하는점을표시하는것으로정의하자.

그러면발명이나정보라는창의활동은그사회의활동범위와빈도를증가시키는데더기여하는 것이며 체제의 구조를 유지시키고 특질을 확립시키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작다고 보아야 할것이므로증발성이작다고규정하여야할것이다.

반면에 창의활동의 역에서 교육과 기술축적의 인간활동은 위에서 말한 대로 체제유지적인면이강하고이를고화성(固化性)이강하다고규정하고자한다.

이를설명하기위하여 (그림V)를 참조하기바란다. 보다시피발명은시장가치면에서그발명내용을능가하는제2의발명이왔을때, 잔여유효가치(殘餘有效價値)가급격히떨어지는반면,정보는비슷한상황에서발명보다는잔여가치의감소가급격하지않다고본다.

그리고 (그림VI)에서보듯이창의의축적과전수를위하여수단으로활용되는기술축적과교육의두가지인간활동은시간이가도그지식내용의사회적가치가크게변하지않는것으로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정보내용들을 우리의 현실생활 체계와 연계시켜 시스템화하여 사용할 때 이러한정보체계에속한정보들은기술축적보다는좀더빨리사회적가치를잃게될것이며체계적정보는이같이개체정보보다는효용가치를더오래유지할수있을것으로보인다.

452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창의또는창조력(creativity)의 정의는쉬운일은아니다. 지금까지의정경학적인주제에서는창의라는것이매우중요하고반드시다루어야만하는것인줄을인정하면서도이것을취급하지못하 다.

이는창의가인간다움의가장본질적인부분에자리잡고있기때문이며창의의과정이한인간의 가장 심층적인 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창의는 한 개인의 역에서성립되므로마치개인주의의최후의보루로삼을수있는현상적증거라고인정하기쉽다.

그러나 깊이 살펴보면 오히려 창의는 공동체적 실존을 통하지 않고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며, 가장 실제적인 입장에서 살펴볼 때 개인이나 집단이라는 개념은 허구적인 개념이며 이러한허구적개념에서창의의본질을해석해낼수는없다는것이다.

마치 개인주의적인 발상에서 접근할 때 사회의 총효용에서 총시장가치를 제하면 소비자 잉여라는지극히애매하여명백히정의할수없는개념만이손안에남게되듯이, 창의도자본주의적사상체계에서가장중요한요소이지만개인주의적으로해석하게되면밑도뿌리도없는맹목적인능력정도로평가되고거기서그만인셈이다.

길더는“경제학은 인간의 사회적 행태와 창의성이라는 신비한 문제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고하 다. 이것이바로창의와공동체간의관계야말로자본주의-역사적으로보아지극히자생적인것인데-를바로해석할수있는열쇠가된다는암시를주는것이다.

슈레베르는 말하기를“인간의 활동이나 창조의 기초를 제공하는 세개의 기본적 구성요소-그것은물질, 에너지, 정보이다”라고하 다. 그는물리적인작용을하는요소외에는오직한요소인정보가있다고말하고있는것이다.

일본 PHP연구소의 에구찌는 소련의 현실을 분석하는 서문에서“종래의 기술은, 비유하여 말하자면인간의목에서밑, 즉우리들의손과발의연장으로서의기술인데반하여, 앞으로의기술은목에서위, 즉머리로서의기술이라할수있을것이다.

차원이전혀달라진것이다. 인간의손과발의연장선상에있는이제까지의기술이라면정치,경제, 사회의다소부자유스러운환경속에서도발전할수있었다고생각된다. 그러나고도로치한 창조력을 필요로 하는 최첨단 기술의 발전은 개인의 자유스러운 발상을 허용하는 유연한

풍토와 상호간의 치열한 경쟁 및 자유스러운 경쟁을 전제로 할 때 비로서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말하고있다.

이러한견해는이미약 20년전부터서구의지성인들사이에운위되어오던일이며인류의새그림V 교육과 기술축적의 효용변화

사회적 효용 제2의 발명이나정보제공의 시점

잔여유효가치

정보

발명

시간 시간

제1의 발명이나정보제공의 시점

그림Ⅵ 정보와 발명의 효용변화

사회적 효용

교육기술축적

체계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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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55

교육, 훈련, 연수는 그 실상이 노동의 한 형태이며 이러한 창의축적의 노동은 공동체의 특질유전과 발전을 위하여 공동체가 유보하고 전달하고 간주관적인 공동체적 사고과정(思考過程)을거쳐축적하여나가고있는현상이나타난것일뿐이다.

그러므로창의축적형노동(創意蓄積形勞動)은그결실이공동체를위하여사용되어야하며,단지사회에창의지향성이유지되도록하기위해즉개인이이에정진하도록하기위한유인(誘引)과 직접적동기를마련하기위하여한단계높은사회적인보수를 (창의축적에서나온) 정신노동에지급할필요가있다고본다.

그러나 그것이 공동체내의 육체노무자의 최저의 안연한 생활을 위협할 정도로 공동체의 부를흡수하거나몰수해서는안된다.

또한창의의가치를가격으로계측하는방법은결국현재의경제구조에서교육비용, 정보비용등의형태로나타나는실질가격을기초로계상할수있을것이다.

그런데이러한창의가활발히이루어지기위해서는공동체또는사회내에서창조적유기능이성취되고발동되어야하는데이를위해서는의사소통(communication)이가장중요한요소이며의사소통은사회적교육내용과극히 접한관련을가진다.

즉단체내에서일어나는학습은“단체적표현을위한동일한자극”을통하여심화되고강화된다는사실은사회학습과사회적의사소통간의불가분의관계성을표현하는것이다.

우리는 창의의 한 형태인 교육이나 기술축적이 공동체의 간주관적 사고과정에서 중심적인 맥을형성하여왔음을부인할수없다. 그래서교육이학교교육에서사회교육으로점차이행하여감에따라사회성원들의코이노니아(交流)가증진되는것을확인할수있는것이다.

한편 국가목적에 편향한 사회교육내용이 부자연스럽게 많아짐에 따라 창의의 능력이 점차 소멸되어가는부정적효과도감지할수있다. 이는사회또는국가가자유를억압하는‘강포한’지침을가지고구성원들을몰고갈때에생기는일로파악되는것이다. 이는중지되고지양하여야될일이다.

사회나국가가건전한공동체로서자리잡기위해서는개인의창조적표현만아니라공동체의자유로운창조적표현도쉽게이루어질수있는여건을조성하여가야한다.

공동체의창조적표현은공동체의과거경험에대응하여표현수단을선택하게된다. 공동체는토의, 연구나, 전문적또는기술적인분야에서제공되는지식체계를통하여자신들의경험에대

454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그러나 교육과 기술축적은 오랜 시간 공동체가 이를 음미하는 과정을 거쳐서 선택된 지식을체계화하는것이므로발명이나정보와같이개인적인특성이많이소멸되었고따라서안정적이라고볼수있다.

이같이 전술한 바도 있지만 발명과 정보와 같이 감적 과정(Inspiration process)을 거치는불안정한창의는시간이감에따라후속된발명과정보들과의가치비교에의하여시장가치를잃기는하지만이것이구조적창의체계에흡수되어공동체특질로정착되면사회의총효용에소비자 잉여라는 형태로 반 되며, 따라서 교역에 있어 시장가치이상의 증폭효과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감적 과정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표면적으로는 극히 개인적인 현상이나내면적으로는 지극히 공동체적인 현상으로 규정되어야 하며, 감적 창의과정에 있어서 인간외적(人間外的)인요소의관여여부에대하여는좀더깊은연구가필요하다고본다. 그리고 이 인간외적인 요소가 공동체현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은 가장 큰 관심거리

중의하나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와 같이 자연(토지, 자원, 원료들의 개념을 포함)과 노동(사실상 자연의일부로봄)의결합체를하드웨어로보고인간또창의를소프트웨어로볼때모든사회경제적현상이 더 간명하게 설명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이것이 자본주의가 개인주의라는 오도된비현실적개념과결합하 을때낳은결함들을극복하고, 자본주의와공동체주의를결합시킬때에참된정경학의세계가열릴수있다는가능성도제시하는것이다.

전술한바와같이창의학습단계에이르는교육의네단계에대한개념을잘고찰하여보면이는“창조적인재주를활용하는능력은표현의도구들을사용하는솜씨에의해조성되고또한자유로워진다”는명제와잘부합된다고볼수있다.

즉 인류의 역사발전 과정에서 인식-욕구-생활방식의 변화는 실상‘기능노동-기술노동-정신노동-창조노동’의교육발전과본질적으로유사하다고본다.

따라서 사회전반에 걸친 노동의 창의함유도(創意 含有度)가 높아갈수록 교육내용에 있어서도창의함유도가 높아가고 이러한 교육내용은 창조적 인간들에게 표현의 도구로서 제공되며 점차로더자유롭고고차원적인창의활동이이루어지게되는것이다.

이것이 곧 교육과 창의의 관련성을 밝혀내는 논리이며,따라서 창의는 교육(훈련과 연수 포함)의 과정을 통해 기술과 전문지식으로 정착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창의부문의 능력이 공동체적부(富)의산출을위한공동체의능력이라는것을잊게되는수가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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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본논의에들어오기전에창의가치에대하여다루고있지만, 만일현재우리가노동이라고정의하고있는행위에창의라는요소가부가되어있으며, 이 창의의요소를제거한순수한물리적인 노동의 요소만을 가지고 노동을 재정의 하고자 한다면 과연 노동의 가치는 소홀히 여겨도될정도로평가절하될것인가.

교황 비오 11세의 교칙인 사십 주년(Quadragesimo Anno)에는 노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노동이란 인간의힘을발전시키기위해서사람의정신과신체의힘을이자연의선물에적용하는것이외에그무엇인가?”

여기에서도노동의고전적인정의를모호하게따르고있기는하지만‘인간의힘을발전시키기위해서’라는부분에서노동의근원적가치를매우명확하게나타내어주고있다.

노동이왜존재하는가. 그것이정신부분을육체적부분에서제외시킨물리적인노동만가지고생각하더라도말이다. 노동이물리적으로만정의될때그노동은무의미해지고무가치하여지는것인가.

고적적인 의미에서 볼 때 노동은 생산과는 무관한 또는 재화창출적이 아닌 경우에 있어서는노동이라고정의되지않을것이다. 우리는이점에대하여깊이생각해볼필요가있다.

노동의 가치는 원래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이고 그 가치를 계측하는 방법은 어떤 데서 이끌어내질수있는것인가. 원래노동의가치는세가지로나누어말할수있다고본다.

우리가가치론에서다루었듯이가치체계가자연, 공동체, 시장의세가지로나누어볼수있다면 자연(토지)가치 체계에서는 노동의 존재론적 가치, 공동체가치 체계에서는 노동의 공동체론적가치, 시장체계에서는노동의시장가치를생각하여야할것이다.

첫째, 노동의존재론적가치는두가지단계로나누어보아야한다.

첫 번째단계는인간의실존과연결된물리적노동 - 즉 땀과고통이라는생물적감각과직결된노동이라는인간행위 - 에대하여존재론적가치를살피는것이다. 이는인내라는인간실존의근원적감정과연결되어실은인간의공동체적인태도의형성에불가결한 향을끼친다.

인내는 개인적으로는 성숙이라는 개념이 서 있는 토대가 되며 공동체적으로는 교제라는 관계의 기반이 된다. 따라서 인간은 노동과 이에 따른 고통에 대한 인내를 통하여 성숙과 교제로 들어가게된다.

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57456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한반응수단을자연스럽게선택하고활용하게된다.

이러한사회적또는공동체적반응이나표현과정도창의성과깊은관련이있는데개인의창의과정은소속된공동체의표현과정과깊은관계를가진다.

예를들면언어적상징능력은조어력(造語力)으로표출되며이는신문화창조, 즉공동체창의능력과근본적인관련을가진다. 이같은일을밝히는사상적작업은앞으로지속되어나가야할것이다.

10) 노동가치-자본은 동결(凍結)된 노동(Capital : Frozen Labor)

“마르크스의연구에비추어보면그는자본가가능히잉여가치를더많이얻을수있으려면반드시세가지조건에있어야한다고말한다.

즉첫째는노동임금의감소요, 둘째는노동시간의연장이요, 셋째는생산품가격의인상이다. 이세가지조건은이치에안맞는것이니우리는근래돈을번공업을가지고이를증명할수가있다.

여러분은미국에포오드자동차공장이있음을알고있는데, 그공장은매우크며자동차의생산도많아... 우리가이돈을버는자동차공장이지닌바공업경제원리를가지고마르크스의잉여가치의이론과서로비교해보면적어도세가지조건이꼭상반된다.

즉마르크스가말한바자본가는노동자의노동시간을연장하려한다는것과포오드자동차공장이실행하는노동자의노동시간단축이며,

마르크스가 말한 바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임을 감소하려 한다는 것과 포오드 자동차 공장이실행하는노동자의노임의증액이며,

마르크스가 말한 바 자본가는 생산품의 가격을 인상하려 한다는 것과 포오드 자동차 공장이실행하는생산품가격의인하라는것이다.

마르크스는... 장래의일에이르러서는하나도전혀생각지못하 으니....”

이것은 손문의 민생주의에 대한 첫번 째 강연을 인용한 것이다. 손문은 마르크스가 노동가치설에근거하여발전시킨잉여가치론이현실과크게틀리는것을지적하고생산성의문제가숨어있음을지적하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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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59

우리는비오 11세의교칙에서인용했던것처럼‘인간의힘을발전시키기위하여’노동이필요한것이며, 이는엄 히말하면인류의유적본질(괮的本質)인공동체성을더다양하고더완벽하고더조화롭게이루어나가야한다는방향을설정해주고있는것이다.

실상 협업또는분업이라는형태의발달과, 그 이후인류활동이극적으로가지쳐나가는분화현상은이공동체성의현실화를위한중간과정이라고볼수있다.

즉 내적 조화가 아직 따르지 못한 외적 분화단계인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여 노동은 관계를맺기위한매개(媒介)로서공동체론적인의미가있는것이며내적조화를위한중요한상징성을지니고있다.

이것이 사회에서 불로소득을 누구나 척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확실한 이유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로 소득이 불로기대가치(不걓期待價値)에서 연원하는 것이고, 불로기대가치야말로 노동가치에정반대되는개념인것을알게된다.

불로기대가치는노동하지않아도가치를얻을수있다고생각하고기대하는상태를말하는데,불로기대가치는문자그대로경제사회의암적인존재다. 이는마땅히제거해야하는것이다.

또하나의관점에서노동의공동체론적인가치를다루면, 사회간접자본과같이공동체적인특성을가진자본이존재한다는점을논의하여야할것이다. 이것을자본이라고명명한것은옳다고생각하는데왜냐하면이도역시동결된(공동체적) 노동으로정의할수있기때문이다.

원래 미분화 공동사회(未分化 共同社會)에서는 사회간접자본과 같은 공동시설들은 공동의 노력봉사에의하여만들어지곤하 다. 예컨대교량이나도로나공동사용가옥과같은것이었다.

근대 이후로 시장체제 내의 자본이 공동체적인 사회간접자본을 위하여 투자되기 시작하면서,또한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거나, 더 나아가 정경유착의 특성들이 사회에정착하기시작하면서사회간접자본의공동체성은소멸되어버리고오히려부의축적을위한새로운분야로각광받게되었다.

예를들면철교, 댐, 전력, 통신등등의부문들이다. 그러나또한거대자본들이없었고그들의축적욕구가없었다면현재의사회간접자본들이구체화될수있었을지생각해볼만한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급속한 발전이 꼭 인류공동체에게 최선의 길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말하는 공공부문이라는 개념과 시장부문에서 대기업들이 차지한 부분은 서로

458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두 번째 단계는 단순한 물리적인 작동으로서의 노동을 고찰해 보는 것이다. 즉 쉽게 말하면인간이노동하든지로봇이노동하든지그결과는마찬가지인그런가치관에서노동을살필때에도노동의존재론적인가치는여전히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창의가 소프트웨어일 때 노동은 하드웨어로 작용하게 된다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는것이다. 즉재화가생산되어나타나기위하여반드시노동이라는하드웨어가필요하다.

비록노동의정의가단순히 (힘 X 시간)의형태로단순표현된다고하더라도인류의생존은노동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노동과 자본의 연관성에 대하여 살펴본다면“자본은동결된노동(frozen labor)”이라는정의를살려서다음과같이표현할수있다고본다.

즉 y = x c z

( 단, y : 자본, x : 노동, z : 창의, c : 창의의발전단계와노동효율에따른사회의특성함수)

말하자면, 자본은 물리적 노동에 인간의 창의가 지수적(指겤的)으로 작용하여 창출되는 것으로서동결된노동의형태로본다. 이때창의는그사회의특성함수에의하여그효과가제한되며이특성함수는창의의발전단계와노동생산성과관련된사회특성을반 하는것이다.

즉 c = F (C, P)

(단, C : 창의의발전단계에따른창의능력의도수,P : 노동생산성또는노동효율)

(이관계식은아직자료로증명될성격의것은아니며검토해볼가치있는가설로제시한다.)

둘째, 우리는노동의공동체론적인가치를생각해볼필요가있다.

노동은인간실존과직결되는것이며실존의증거가되는것인데, 한편공동체내에서도노동으로말미암아인간사이에관계가맺어진다는것은자명한사실이다.

즉물리적인노동, 즉행위가아니면인간관계는없다고볼수있다. 공동체적인사고(思考)의장소 - 즉간주관(間主觀) - 에서일어나는인류의유적사고(괮的思考)는곧행위와노동을매개로하여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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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61

대기업들의사회적용도는따로있겠지만이러한몰공동체성(沒共同體性)에대한적절한대처야말로지금이시대에매우필요한일이라고생각한다.

노동의가치에대하여논하면서우리는이런생각을하게된다. 인간은노동하기위하여지어졌고, 노동으로말미암아인간성이계발되고또인간이되어가며, 또노동이있으므로인간의창의가건전하게된다.

인간소외의 문제는 창의에 그 해결책이 있고, 노동의 존재론적 가치가 제대로 인식되고 일천되는곳에창의가살아나므로인간소외의문제는해소된다.

현대서구문명이서있는두개의기둥이헬레니즘과헤브라이즘이라고말하는데, 노동의문제에있어서헤브라이즘은매우적극적이며땀을흘리는소박한문화를견지하고자한다. 사람은땀을흘리며고통을겪으며자기마음을현세에서갈아엎는작업을지속할것을주장하고실천한다.

문제점은 헬레니즘이나 유한(有閑)계급적 사고방식을 발생시키는 문화적 유형들에 내재되어있는것이다. 헬레니즘은노동은안하고아크로폴리스에서모여고상한논리를희롱하는문화적토양에서 자라난 사변적 체계로서 논리의 균형을 추구하기에는 좋으나, 노동과 땀과 인간의 실천적짜임새를제시하는데는성공적이지못하다고본다.

우리는현장과 착한실천적논리구조를생활하고자한다.

11) 토지가치-어쨌든지 가치계측에서 지가(land value)가 가지는 함의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다.

거의 대부분의 경제상황에서 지가 내에 공동체 가치가 내포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공동체사회의건강함을진단하기위한방법론을제공하기때문이다.

지가의구성요소는

첫째, 해당토지에서자연적소출로인해형성되는가격부분과

둘째, 공동체가 협업으로 인해 창출하는 경제적 효율 등의 요소로 인해 형성되는 공동체가치의부분과

셋째, 토지가 시장에서 상품이 된 경우 그 희소성과 사회심리적인 이상기대(굋常期待)로 인하여가격에거품이생긴부분으로이루어진다.

460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명백히 다르면서도 공통되는 특성이 있다. 이것은 현시대적인 경제현상 중에 극히 중요한 본질이며현대사회의비약가능성과쇠퇴가능성을동시에보여주고있다고본다.

어찌되었든지이러한사회간접자본또는공공부문에해당하는자본운 은시장경제체계와는별도로다룰수있는방법론을창출하여적용해야만하지않는가생각된다.

이는바로노동의공동체론적정의에서비롯된하나의의문점인데아마도인간의노동의성과가공동체적경제로흡수되는통로가되는토지임대료를이러한공공부문을위한자본으로사용하여야하리라생각하는것이다. 이를위해서는좀더자세한논의가필요할것이다.

이제셋째로노동의시장체계적가치를논의하고자한다. 이를위해서는자연가치및공동체가치를통틀은전(全) 가치체계내에서시장가치체계가지닌의의를이해하여야한다고생각한다. 우리의 생각에 시장가치 체계는 모든 사회가치를 창출해 내기 위한 생장점(生長点)과 같고 또

는새로운가치를분화시키는용광로(melting pot)와같다고본다.

식물의 생장점에서 맹열한 세포의 증식이 일어나듯이 우리는 경쟁이라는 매카니즘을 통하여시장체계 안에서 자연가치들이 사회가치로 신속히 변화하여 새로운 가치를 양적으로 증가시킬뿐 아니라 사람들의 욕구와 인식변화에 의거한 사회가치규범도 새로이 형성시키고 나아가서는전적으로새로운사회를만들어나가는현상을접하게된다.

시장에서는 기대가치가 활발하다. 이 기대가치는 건전하게 노동을 전제로 한 기대가치와 불건전하게불로소득을노리는기대가치로나뉘어볼수있는데이기대가치야말로시장체계를존재케하는근원적인동력이된다.

불로기대가치는성숙치못한인간성을배태하며강포, 퇴폐, 허위의반공동체적인부정적정신성이발아하게하여사회의정신적활력을잠식하며사회를쇠망케하는원인이된다.

불로기대 가치는 노동가치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며 이는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 “일하지않는자는먹지도말라”이다. 또한시장가치체계내에는거대한것, 관료적인것이자리잡으면시장의활력을상쇄해버리는효과를가져온다.

시장의 활력은 식물의 발아상태와 같이 소규모이고, 에너지가 가득차고, 욕구가 넘치는 그런상태에서나오는데거대하고자기의권력을의식하는대조직들, 즉대기업이나공 기업들은이러한 순수한 상태의 활력을 압살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질식시키는 일을 별 느낌도 없이자행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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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63

시장가격을mean value가되도록계측하려면확률론적으로가장활발한시장의중심부에일정한도이상의접촉과거래가이루어진후에야기능한것이다.

시장의주변부에서는특이가격(anomalous prices)이많이존재하고이런연유로사회적불공정이자리잡게된다.

충분한 사건빈도 즉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활발한 시민사회는 이런 불공정을 크게 완화시키고최근거래접속이많은인터넷에서도이론상더한층크게불공정거래를완화시킨다고볼수있다.

가치계측은시장내, 즉시장가치체계내에서만다루면앞으로오는역사적전환을감당할수없을 것이다. 가치체계는 매우 민감한 현실적 사안으로도 나타나는데 지하경제의 문제가 쉽게생각해볼수있는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에서의 지하경제는 개인주의적인 암시장을 만들어 내고, 자본주의에서의지하경제는 공동체적인 자발적(volunteering) 상거래 또는 노동거래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을보아도알수있다(물론이는전혀규제가없는자유주의적자본주의에대한지하경제를말하는것이다. 그러므로외화의암거래지하시장과같은것은별도의고려를요할것이다).

가치계측은앞에서언급한시장가치체계, 공동체가치체계, 토지(=자연)가치체계의세가지가치체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즉 삼중가치체계 사이에는 가치의 상호교류가 존재하고, 궁극적으로 토지가치나 창의가치나 모든 인간이 선호하는 효용가치는공동체가치체계의큰저류지(貯留池)로모이게되며, 이러한배면의잠재적인가치의양이인간의창의가치현양에큰역할을하게되는것이다.

그러므로 순전히 논리적으로 보면 인류의 역사상 공동체 가치체계 내에 축적해 온 모든 창의가치의증가세와그누계, 그리고인류의현재시장가치체계내에서일어나는창의가치의발현과정에대한공동체가치체계와의관계를관련시켜보면가치계측을위한기본적인그림이그려질수있을것이다. 그러나이것은시대마다창의의발전단계가다르므로복잡한작업이필요하고그기준치의실효성도의문시된다.

결국가장쉽게접근할수있는것은시장가격과창의가치의연관을도출하고휘발성과고착성을 고려하여 공동체 가치체계에 이행하여 축적되는 효용가치를 현재의 시장가격을 기준으로파악하는것이다.

이러한 가치계측의 방법론을 마련하는 것은 특히 창의가치의 중요성이 점증하는 현실에서 매우필요한일이될것이다.

462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이지가의가격구성요소를그려보면 (그림VII)과같다.

12) 가치계측과진보의계측

가치계측이란무엇인가.

가치계측은 개체가 주관적으로 결정하는 가치의 정량적 평가를 공동체 내에서의 객관적 평가와연관시키는과정이다.

가치계측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매카니즘인 가격결정기제는 주관적 잣대가 서로 만나 객관적인평형(equilibrium)을성취하는과정으로시장원리를기반으로한다.

시장의 가격체계는 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방법을 제공한다. 그러나 시장 자체의 가변성과시장 내의 상황과 조건이 다양하므로 시장의 가격은 확률론적으로 결정된다고 본다. 말하자면확률분포를가지며최빈치등확률론적특성으로묘사하여야한다.

(그림 VII) 지가의 구성요소와 경제의 관계

~~~~~~~~~~~~~~~~~~~~

이상기대심리에서발생한 투기부분의

토지가격

공동체가치에근거한 토지가격

소출가격 레위기 25:23 토지가치체계

공동체가치체계

<지가地價> <경제>

시장

가치

체계

인정할 수 없는자본이득의 부분

건전한 자본주의의 역

건전한 의욕에서 나온 기대치

공동체협업이 가능한각종 사회간접자본/하부구조 등으로 인한공동체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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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던 두 이념이 다시 만나기도 하고 또 새로 출발할 수도 있는 사상적인 기선(基線)을 찾도록제시해준다. 이는특히한반도에유익할것으로사료된다.

둘째, 토지와 공동체의 유기성을 살려서 인간의 환경과의 화합에 새로운 정치경제적인 세제및법적접근이가능하도록한다.

셋째, 장래 정치경제적 자료의 축적이 새로운 제3정경에 의한 관점에서도 이루어져서 인류가더다양한방안중선택할수있는자유도를높인다.

넷째, 아랍이나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에는 새로운 친공동체적인 정경학을 도입하여 시행착오를최소한도겪도록한다.

제3정경학은수리적으로시뮬레이션할수있는가능성이있는사상체계이며기본적인자료가축적되면오히려자본주의보다더논리적적응성이우수할것으로생각된다.

공동체적인 사상은 매질과 매체라는 개념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물질수지의 개념을 적용할 수있는각종흐름(用)과흐름들을용납하는몸체(體)로구별할수있는데이때매질의처리와매체에대한방안의두가지로나누어볼수있다.

결국 매질인 공동체는 적절한 속도와 혼성비율을 유지하면서 매체를 흘려주어야 하는데 가장좋은 방법은 매질보다 매체를 처리하여 흐름을 조정하는 것이며 매질에 대한 조처는 사회에 큰압력과변화를초래하는것으로사회나공동체의가소성(可塑性) 때문에어느한계이상 향을가하는것이우려되는것이다.

어찌되었든지 정치경제적 해석대상의 규모나 종류에 관계없이 다양한 공동체에 대한 적용이가능한정치경제학인것이다.

14) 맺으면서

제3의정경학의이름을쓰는저술들은여러방면에서나올수있다. 그러나이논문이밝히려고하는중간적입장의해결사로서의제3정경학은나오기힘들것이다. 왜냐하면이는인간성의근본인공동체성에근거하고땅에매여사는인간들의행태를가치론으로부터전혀새롭게구성할뿐아니라인간된소이로써의창의를어떻게살려서하나님의인간창조목적에맞도록할것인가하는문제를해결하기위한방향을제시했기때문이다.

- 나사렛예수님께 광

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65464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이제정답을찾기는어렵겠지만진보의계측문제를다루고지나가려고한다.

진보는 무엇인가. 진보는 보통 지향성과 관련이 있게 되므로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다. 그러나존재론적인 입장에서는 진보가 부분과 전체의 관계로부터 정의되므로 전체의 완결을 지향하는부분적지향으로보면계측의기준이불변할수있다. 아마도이것은무차원적인지시계수가될것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진보의 계측기준을 건전한 공동체성으로 삼는다면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본다. 공동체성은그결합도와자유도라는두상치되는도수로표시되어야할것이고공동체내의어떤위상에서든지적절한결합과적절한자유를허용하는것이가장진보지시계수가높은상황일것이다.

그 적절한결합과적절한자유는가장활발한창의가치를발생시킬것이다. 이러한결속과자유는물류와심류를적정수준으로유지하며사회의친화적발전을가능케할것이다.

이러한지시계수는테크놀러지의진보와사회적진보가포함될것인데다시개체의진보와사회적진보로각기다른표현도가능할것이다. 이지시계수는또한어느특정사회가지니는가치체계들간의적정균형에대해서도관련된해석에도움을줄것이다.

이는 특히 사회공학적인 의미에서 매우 기초적인 설계 지시계수가 될 것이다. 이러한 지시계수는한사회나공동체의에너지사용량이나정보사용량과의관계에서중요한판단을할수있게도와줄것이다.

13) 시대적치유를위한기본적처방들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제3정경이 시민의 실생활과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과연 어떤 효과적인처방을줄수있을것인가를질문할것이다.

오히려우리는제3정경이시대에대한처방을주는사상이라고말하고싶다. 말하자면한반도와 같이 분열된 사상적 갈등의 장소에서 양극단의 대결이 아닌 통합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주는치유적측면이있는사상이다.

세계도 양대 블록의 균형에 변화가 오는 즈음에 이러한 기본적인 처방들은 다음과 같이 열거해볼수있을것이다.

첫째, 기존의 두 이념에 대해 중간에 있는 제3의 이념을 제시하므로 단지 수정주의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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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67

로보고 (또는신앙인들에게는신적소유물로인정하고) 국가가독점적인귄리를양수받아대리권을행한다는체제이다.

둘째, 따라서죠지즘또는지본주의는성서적인근거에서있어서토지가하나님께서창조하신것이며사람에게그존재의연원이있는것이아닌것을명백히한다. 따라서토지는상품이아니고상품으로취급받아서도안되며땅이없이는어떠한산업도일으킬수없는것임을인정한다.

셋째, 강력한 토지세를 부과하 을때 그 긍정적인 결과들은 다음과 같다. 1)토지세 이외의 세금은 격감되며 2)토지 임대료가 떨어지기 때문에 제조업의 지대부분이 줄어들어 이익이 증가하며3)소매업에도지대부분(한국의경우50%이상)이격감하므로수익성이생긴다. 4)또한고용이올라가고5)인플레는진정되고6)자유무역이고취되고국제긴장이해소된다.

넷째, 다른 성경적 요소들(안식년법등)은 추후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며 토지세가 이를 위한도입문호가될것이다.

다섯째, 중국과 소련이 그들의 토지법을 변경시키고 있는데 소련은 상기한 우리의 방법을 따라생산증가와동기부여를하며생활수준을높일계획을가지고있다.

(4) 현실적인 시도 가능성

마르크시즘과 죠지즘에는 공통부분이 많으며, 자본주의와 죠지즘에도 공통부분이 많다고 본다. 죠지즘은이양자간의가교로서의역할을할수있는가장적절한특성을갖추고있다. 멋진비유가 있는데, 선박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데 대서양 수면과 태평양 수면이 높이가 다르므로몇차례관문을통과하며이갑문시설내에서두바다의수면의높이가조정될수있는단계적시기를거치는것이다.

만일 양체제에 생활수준의 격차가 크다면(남북의 경우와 같이), 이러한 단계적 평준화 과정을거칠 수 있으리라 보는 것이다. 솔직히 휴전선이 지금 열린다면 많은 북한 국민들이 살기 좋은남한으로내려올것이고경제는파탄이날것이다. 또 남한에서는일도안하고말만하기좋아하는무리들이북한으로올라가똑같은파국을북한에야기시킬것이다.

그러나만일양측이지본주의(죠지즘)의경제체제를도입하면남한의실업은감소하고극단적인사치성향과비생산적인토지투기자들은다른나라로이민갈것이다. 동시에경제적으로파탄상태인북안의생산은증대하고노동력이더필요하므로군사규모를줄여야할것이며 (아마양측 다 이런 현상이 있겠지만), 생산과 기업의 자유가 증가하면 (특히 농업부분에서 그러하리라예상하는데) 국민의저하된사기는상당히앙양될것이다. 북한의농지가남한에비해가족당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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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남북통일의 열쇠 - 지본(地本)주의와 공동체주의

대천덕·고왕인

1) 좌우의사상의가교

지금 세상은 혼란스럽다. 맑시즘은 자본주의를 공격하고 자본주의는 마르크시즘을 공박한다.그러나 양측 다 1929-1939년간 발생한 대공황을 방지하지 못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에도속수무책이었다. 세계평화를이루기위하여이들은얼마나기여를하 는가. 뿐만아니라빈곤의 문제도 해결치 못했다. 아직도 세계 도처에는 빈곤과 분쟁이 도사리고 있다. 이 두 사상은과연서로엮어져서더나은세계를위하여힘을합칠수는없는것인가. 이런교량역할을담당할수있는연계능력을가진사상은있을수없는것인가.

(1) 양측의 긍정적 측면들

우리가 이 사상들의 긍정적 측면만 우선 생각하여 본다면 맑시즘은 빈곤층과 눌린 자들에 대한관심이 더 크다는 데 장점이 있는 반면 자본주의는 개인적 자유에 대한 관심이 그 사사의 핵심을 이룬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정부의 간섭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며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더욱보장하는데로나아가며, 맑시즘은노동자의농민들을우선적으로생각하고소수민의자결(自決)을보장하고자하는점이사줄만한것이다.

(2) 양측의 부정적 측면들

이두가지계열의사상이가지는부정적인측면들을살펴서단순화시켜말하면자본주의는다수의희생위에소수가모든것을누리는반면, 마르크시즘은동기부여가전혀결여되어있고생산성이 극히 낮기 때문에 전체가 다 풍족히 누릴 수 없다는데 있다. 마르크시즘은 규제가 너무심하고 자유가 없으며 사회적 불만이 팽배하여 창조적인 자극이 전반적으로 질식당하고 있다.그러나자본주의는남을착취할수있는방종까지도제한할수없고악한의도를충분히제어할수없을뿐만아니라많은이에게자유가단순한환상에지나지않는상황이되기쉽다.

(3) 양측의 장점을 연계할 가능성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양측의 사상이 가진 장점만을 묶어서 현실에 최선의 상황을 엮어낼 수는 없는가. 죠지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첫째, 죠지즘은 빈곤층에 대한 관심이 적극적이며 정부의 간섭을 최소한으로 배제하고자 한다. 그리고 토지에 대하여만 정부의 독점적인 지배를 제도화한다. 말하자면개인의노동을통하여생산할수없는자연자체인토지는만민에속한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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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의적인 토지세제가 양한(겱漢)에서 동시에 지혜롭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제안 이외에 또 하나의제안을덧붙이고자한다. 그것은사회체제의변화와관계있는것으로개인주의와집단주의의 상극의 이념으로 무장되어 있는 양측 사회체제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사상을 불어 넣어야하며또이를실천해나갈수있는방법론도필요하다는것이다.

원래 개인과 집단이란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지 실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들이러한 관념에 붙들려 눈을 뜨지 못한다. 인간은 아무리 타락해도 개인만은 될 수 없고 아무리또다른방향으로타락해도집단만은될수없다. 인간은사회적동물이라는잘알려진어귀에는이런현상을단적으로표현하고자하는의도가숨겨져있는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공동체이다. 그리고 인간은 공동체 자체이다. 이것은 인간의 유적본질(괮的本質)이다. 우리가자본주의를해석하고실천방법으로개인기업과사유권을내세우지만엄 히보면 사유권도 공동체적 소유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개인기업도 작으면 가족공동체의 것이고커지면결국한두가족의것이아닌것은자명한사실이다. 단지개인주의적인법체제가이를오도할뿐이다.

집단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집단주의 계열의 사상이 무산자계급에 대하여 공동체적인 조화로운 미래사회의 비전을 주었지만 그들이 정작 깨닫지 못한 것은, 인간을 유물론적인 존재로보고인간간의관계를단절시키는전술로는결코공동체적사회로진일보접근하기위하여지본주의적 입장에서 자 농의 계층을 새로 창출하여 내어 사회적 활력을 앙양시켜야 할 것이며 이것은 반드시 농업에서만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상업과 소공업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그들은공동체가가지는인류본연의활력의가치를깨달아가야한다.

또한 효율과 이윤추구의 철학이 지배하는 남한에서도 기업들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적 기업을탄생시켜야할것이다. 이것은주로중소기업또는 세기업의분야에서이루어져야할것인데자본의공유라는개념에서공동체적기업이성립될수도있겠으나오히려 세기업이나소기업일 경우에는 생활근거로서의 기업이라는 측면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사회학 서적에서 작업의 인간적 특성을 살리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젊은이들이 만든 공동체 기업에 대한예를읽은적이있다. 이것은공동체기업이라는근대적(19세기) 개념에서벗어나생활과인격과직결되는 터전이나 마당으로서 성립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변종기업들이나타나서기업사회의민주화기반을튼튼히보여주어야하는것이다.

그러면이러한공동체기업들이통일과무슨관련이있는가물을것이다. 이것은남한의체질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마치 북한의 자 농이나 자 상인층이 생겨나서 활력을 불어넣듯이,남한에는 이런 공동체 기업들이 일어나 사회의 비인간화를 극복할 뿐 아니라 공동체성에 대한깊은사회적인식을실체화할필요성이있는것이다. 굳어진머리와심정이되돌아오기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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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의토지가돌아가므로자본주의적체제아래머무르려고할것이다.

동시에점진적이지만상당히신속한기업체제의변화가일어날것인데, 즉국 기업들이개인기업들로 바뀔 것이라는 것이며 생산성이 높아지고 사기도 앙양될 것이다. 이같이 같은 원리를도입한것이기는하지만남북한에동시에적용되는지본주의적인정책은양체제의체면을손상시키지않고자기체제의명분을지키게할것이다.

남한에서는 토지세제나 지대세제라고 불리겠지만 자본주의적 제도의 특성은 그대로 유지될것이며과세수준은토지가국유화되었을때지불해야할지대와동일한수준이될것이다. 반면다른 모든 세금들은 감소하거나 소멸되고 사기는 크게 진작되며 부정부패의 주요 원천이 이 사회에서사라질것이다.

북한에서는 토지가 국유화된 곳이므로 세금이라는 용어 대신 단지 임대비용, 즉 지대(rental)라고불러야할것이다. 그리고임대자는임대비를지불하는한사용권을지속적으로보장할수있을것이므로자기가땅을소유하는것과같은사회적인보장을받는셈이다. 이같이원리와실천에 있어서 양측 다 동일한 것이며, 제도의 명칭이 다르고 관장하는 정부기관이 달라지겠지만내용은마찬가지가될것이다.

홍보목적을 위하여 죠지즘은 남한의 토지독점에서 비롯되는 자본주의의 파멸을 방지하는 방법으로설득할수있을것이며토지독점이란봉건주의의잔재한형태이지자본주의의본질요소가아닌것을해명하여주어야할것이다. 이러한제도가이미많은자본주의국가에서적용되고있다는사실(호주,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덴마크등)을전파하면신뢰할만한정책이라는평가를 얻을 것은 명확하다, 반면에 북한에 대하여는 현재 소련이 이를 도입하고 있고, 예전에는 위대한 러시아인 사상가 톨스토이가 생애의 마지막 25년을 이 제도를 위하여 헌신하 고 만일 그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혁명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점을 설파하여야 할 것이다. 또는 이는 위대한 손문이 주창 하 던 것으로 그의 정책의 수행을 중국 지주 계급과 그 군벌들이불가능하게만들자그의미망인이소련으로망명한적이있다는점을설명해주어야할것이다.

만일 어떤 이유에서든지 헨리 조지의 개인적 이름이 한국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면 여기에는두가지대안이있다. 하나는Geocracy, 즉지본주의이고다른하나는Physiocracy(중농주의)라는 말이다(역자의 생각에는 지본주의라는 말이 적합한 것 같음). 이러한 현실적인 시도의가능성이한국인들, 특히남한의형제들에의하여심각하게고려되고수행되기를바란다.

2) 공동체기업·공동체주의

우리는 남북간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하여 단계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방안에 있어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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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71

는주예수께서친히하신말 이다.

둘째로성서에나오는통일의개념은유기적(有機的) 통일이다. 학자들이이런지체(肢體)관계로 이루어지는 통일을“이질적 부분들이 이질성(굋質性)을 가지면서 서로 협조하는 관계”라고잘정의하여놓았다.

셋째로이같이“마음의일치에서이루어진지체적관계”를통일이라고규정한다면, 그 관계는생명적이어서 반드시 더욱 성숙하여 가고 진·선·미에 있어서 발전적 양상을 보이게 된다. 성서는“우리가다하나님의아들을믿는것과아는일에하나가되어온전한사람을이루어그리스도의장성한분량이충만한데까지이르리니”(엡 4:13)라고 말 하셨다. 이때에“(우리가) 다”라는말은모든개인들을모두포함하는뜻으로서집체(集體)와개체를동시에살리는개념이다.원문상, “그리스도를신뢰하는것에‘하나됨’(統一)이되어…성숙한사람이되어”야하는것이다. 참된통일은성장을가져온다.

넷째로, 평안(샬롬)과 통일의 관련성이 중요하다. 샬롬은 평강도 되고 평화도 된다. “평안(평화)의매는줄로성령의하나되게하신것(텐헤노테-타, 통일)을힘써지키라”(엡 4:3). 이말은 깊은 신비를 감춘 구절이다. 우선“평화의 매는 줄”이 통일을 지키는 도구가 되는데, 이때의줄은 히브리어로‘헤벨’이다. 헤벨은 원래 띠 또는 줄자를 의미하지만 구약성서에서는 사람의무리나 공동체를 표현하기 위하여 쓰 다(삼상 10:5). 아마도 전 성경을 통하여 첫 번째 성령공동체로나타나는사무엘과관련된선지자의무리(헤벨)를위하여사용되었을것이다.

그리고다시에베소서에서“예수의성령께서하나되게하신공동체”를위하여“평화의띠”를사용하신다. 그런데이띠는지속적으로평화의명령을수행하는수단이다. 그것은공동체이다.즉 통일사관(統一史觀)은 성서적으로 볼 때 공동체 사관이다. 집어 말하자면‘예수공동체’사관(史觀)이며‘우주적교회’의사관이다. 통일은평화롭게하는공동체로말미암아이루어진다. 성서는우리가지속적으로평화롭게하기를요구한다.

다섯째, “그리스도안에서통일되게하려하심이라”(엡 1:10)는 말 을음미하자. 본질에는명백히하나로만든다는뜻보다는머리(케팔레)라는뜻에서나온“요약하다”는뜻을가진‘아나케팔라이오오마이’라는단어를사용하 다. 그것이우리말로는통일로번역되었는데그리스도안에서만물을하나로만들고하늘과땅에있는것들을병합한다는의미이다. 즉예수를머리로하여만물의역사가“요약한다는뜻-여러가지를간략히취합하여하나로하는것-만가진것이아니라‘주요부분들로 나눈다’는 뜻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된 통일이란 실은 적절히잘나누는방법을발견할때이루어지리라는암시가숨어있다고본다. 우리는무조건‘하나로만, 하나로만’하는 슬로건에 묶여 있지 아니한가. 만일‘나뉨’이 통일의 지혜가 될 수 있다면성서의진리가가르치는바가무엇인지심사숙고해보아야하리라.

470 불멸의민족Ⅱ: (統一, 하나님의熱情)

통일은오지아니한다. 전체사회가공동체성에대한연습단계로돌입하여야한다. 북한의경직된집단성이공동체성으로변화되거나적어도공동체성의우수함을인식하여야하고남한의경직된개인주의적이고이윤추구적인사고가공동체적발상이자유로이이루어질수있는지경에까지변화되어야한다. 그이전에는통일은의미가없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 기업은 공동체운동을 일으키는 중요한 시초가 될 것이다. 젊은이들이같이 일하고 같이 살고 같이 나누는 공동체 기업을 일으키면 농업공동체보다 자본회전이 빠른것이므로더빨리정착할수있고또실제로참된공동체적조화가이루어진다면소기업과 세기업의 분야에서는 이를 따를 경 기법이 없을 것이다. 공동체 기업이 생겨나면 농업공동체나기타의공동체운동들이뒤따를것이고우리는이것이남북통일의열쇠가되리라는확신이있다.북한의 자 기업들과 남한의 공동체 기업, 이로 인한 사회체질의 변화야말로 우리의 미래에 참희망이된다.

3) 겨레통일의성서적원리와현실

고왕인

겨레의 통일, 반도(半島)의 통일은 우리의 지상(至上)과제이다. 우리 외에 또 이처럼 철저하게분단된역사가있었던가. 사람과땅이갈리는일이라면어디서나찾아볼수있겠지만, 이념·사회체제·관습·문화·역사해석 등 어떤 면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단절(斷切)과, 마주 손잡을 수없는 양극화(겱極化)현상은 우리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하겠다. 한반도(韓半島) 전쟁-교차하는양측의대규모살상, 깊은심연과같은증오-그리고아물수없는마음의분단인것이다.또한우리모두의공통된경험이며미해결의상처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역사는 완벽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역사에는신적목적의완성을향한의미들이있음이명백하다. 그리고우리는그의미를읽기위하여항상성서를펼친다.

이시대의우리에게하나님께서주신통일의사명이있다면그하나는남북통일이요, 그둘은지역감정해소요, 그셋은가진자가없는자의필요를채워주는일일것이다. 그런데이세가지를모두다통일을위한과업으로보기보다는일치를위한과업으로파악하는것이더성서적이다.

그러면 첫째로 일치란 어떠한 개념의 일치인가. 일치하는 것은 하나가 되되 통일처럼 종합체(綜合體)로서 하나 됨이 아니라 내적이고 질적으로 하나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떤 편리함이나유용성을위한합침이아니라, 마음으로부터하나가되는것이다. 성서는완전한일치란오직신적 광과하나님의온전함을이룰때하나가되어가는것임을명시한다(요 17:22-23).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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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반석위에통일의주춧돌을! 473

미국은 성서적 국가를 염원하여 이주한 신앙의 무리가 건설하 다. 당시의 미국은 대륙 전체가힘의진공상태 다고볼수있다. 거기에건구초기의수십년간 국에서가장우수한비국교도들의 무리가 20만명이나 이민을 간 것이다. 그리고 성서적 개념에 입각한 사회체제의 기초를다져놓았다. 그러나 한반도는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힘의 고 도(高密度) 압축상태이다.그러나 우리는 이런 미증유의 대결과 힘의 균형고착 상태에서, 진공상태와 유사한 상황이 생겨날수도있다는희망을가진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살길은 세중립이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반도의 장래에 또 하나의 시대를 열 수 있는 성서적 실험장의 가능성을 본다. 우리는 국제적 역학관계의 맞물림 속에새로운 진공상태-겨레가 활개칠 수 있는 거주공간-를 창출해 내어야 한다. 이제는 4대 강대국만을 바라볼 때가 아니다. 환태평양의 제3세계 국가들과 공동체적 관계를 다져 나가는 새로운스타일의 국제협력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상수적(常겤的) 존재에서 국제역학의 변수적(變겤的) 존재로탈바꿈하여야한다. 지금보다더완벽하게….

앞으로 통일논의가 어떻게 진전될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통일문제가 내포하고 있는 다면성과심각성때문에어떤이든지그의통일론에의거하여사상과인격의깊이, 나아가서는그의인생의 진지성까지도 단적으로 나타나게 해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에서는 통일논의의 진전을위한일반수칙두가지를논하고세번째는구체적방법론의전개를위한기본원리몇가지만말해보고자한다.

첫째, 통일은다양한논의를통한합의에의하여시작되어야하고, 합의된사항들은동질화(同質化) 과정을 거쳐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합의라고 말하는 첫 단계는 투표나 여론조사,세니나나 공청회와 같이 말로만 무성한 의사표시에서 수렴되는 합의과정이 아니다. 성서는“하나님의나라는말에있지않고능력에있다”고하 는데, 참된 의사표시는말과그에준한실천에의한실험과연구를병행하여야하고이러한실천적사례결과들이논의되어야한다고본다.

이러한합의과정은남한내에서만그럴것이아니라남·북간의협상에있어서도상호협동하는 연구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양측체제의 장점만 도입한 경 기법을 합동연구해 본다든가,전국토의물류에대한도상계획을합동조사를해본다든가하는실절적기본에서부터남북의체제에서 중간단계나 교량역할을 할 수 있는 실천적 이념을 판문점에 연구소를 짓고 같이 연구해본다든가하는것도가능하지않겠는가. 합의의과정은이렇게오래걸릴것을각오하여야하며,한두명이훌쩍비행기로오고가며공동성명서나작성한다고되는일이아니다.

그러나한번이러한원칙을합의하고지루한합의과정을성실히따르기로양측이작성하면합의는 10년이 넘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성이 활성화됨에 따른 가속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한번합의되는분야들이생기면그것은납북한국민들의교육을통한동질화과정을거치면서민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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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지금까지 살펴본 성서적 통일 원리들은 현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복음으로통일되게해달라는기도를많이한다. 김일성으로하여금장로되고김정일로하여금목사되게해달라고기도한어떤장로님의일화도들은적이있다. 주께서기뻐하시면이를이루시기를우리도소원한다. 그러나하난의예화이기는하지만나는이스라엘의팔레스틴귀환역사를떠올린다. 오욕(汚辱)의역사에 광을가져온이들은믿음이있는현실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정동유대표도들과는달리행동주의자들이었다. 관념적신앙은무익하다. 그러나말 과현실의격차는어떻게해결할것인가. 행동하기위하여순수한말 을굽힐것인가. 여기에믿음의행동이불신의행동과는다른점이나타나게될것이다.

성서는행동의 역을위하여‘그림자의신학’을이천년전에이미제시하고있다(히 8:5). 행동은 믿음의 그림자이다. 세상의 현실은 우리의 마음에 품은 것이 나타난 것이다. 노아의 때에“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의 계획”(the imagination of the thought of the heart)이 악함을 보시고하나님께서는세상을물로심판하셨다. 이같이우리는믿음을행동하여야하는데, 이때“마음의성실함과손의공교함(정치술, skillfulhand)을”모두사용하여야한다(시 78:72). 손의공교함이 필요한 이유는 이 세상은 그림자처럼 말 의 진정성을 뚜렷이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처럼우리도“이땅에서이때의말 을이루기위하여왔고,”말 을이루기위하여십자가상에서도잊지아니하시고“목마르다”라고말 하셨기때문이다(요 19:28).

오늘 우리는겨레의통일, 반도의통일에대하여집중적으로생각하고자하는데, 이를 위하여는역사현실의흐름을읽어야한다. 북한을선교를위한땅끝이라부르는믿음의사람을본적이있지만남북간의괴리는그이상일지모른다. 다른표현으로는, 세계역사발전의모든하중을남과북에얹어놓고휴전선양쪽에서조이는극한상황이라고말할수도있다.

항상 전쟁 직전의 위기감으로 압도하기 때문에 우리는 평상시 통일에 대한 역사적 필요성 정도는묵살할수있을정도로무신경이되어버렸다. 그러나앞으로한세대-약30년-안에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세가지 측면에서 중대한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는 인류문명의 질적 변화가 다음 한세대에 가장 격심할 것이라는 사실이며, 둘째는 동북아 또는 환태평양의 국제정세와 관련한 지정학적 특이성의 문제이며, 셋째는 민족공동체의 내연(內燃)하고 있는 통일염원과의관련이다.

이세가지의측면의역사적도전에충실히응전(應戰)하려면-우리는지금까지어떠한민족이나국가가스스로의역사적과제해결을위해산출해낸해결책들보다여러단계를뛰어넘는, 인류역사의 본질을 관통하는, 창조적 대응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칫하면 이상주의라고 제쳐놓기 쉬운 순전한 하나님의 말 에 준한 실제적 방법론을 제시하여, 민족-세계-시대의삼대중암(三大重壓)을떨쳐내고일어날수있는새길을열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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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공동체적 정치론

1) 공동체적정치의정의

공동체적정치는현대적인용어로말하면교감적(交感的) 민주주의라고말할수있다. 여기서교감의의미를 어로표현을한다면“mutual sympathetic communication”정도가될것이다.

공동체적인정치는확대가족(extended family) 정도의규모, 즉 요즈음인류학적으로나사회심리학적으로적절한생활단위로여겨지는 150명선에서 200명선까지의기초공동체규모에맞는형태의정치유형이다. 이는새로운마을의인구나의결기관의규모를결정할때도상당히의미있는숫자로받아들여질수있는숫자인것이다.

그러나사이버세계가열리면서예전에는혈연과지역과법제와기타결속적수단들이이합집산을수월하게하는첨단기술로인해이러한기초공동체의기반이굉장히휘발성이높은(highlyvolatile) 상황이전개되고있다.

공동체적인정치는하늘-사람-땅의삼본(三本)에서나는것이며그중사람중심의인본(人本)에 근거를 둔 방법론이다. 삼본이라는 큰 틀에서 본 인본은, 개인주의적 인간을 중심한 것이 아니라공동체적인사람을중심하여보는관점이다. 공동체는땅중심, 즉 지본(地本)을 떠나서존재할수없다.

같이생존하여야하는지구위의한조각땅, 그것은공동체를사회학적으로지역공동체라고묶어서부르지않을수없는이유가된다. 심지어사이버세계나우주공간이나를막론하고사람들을하나로묶어세우는환경적이나상황적인위상(位相)공간은모두땅이라는틀로보아야한다.

그러므로 공동체적인 정치는 착하여 관계를 가지고 살지 않을 수 없는 인간들로 이루어진공동체안에서이루어지는공동적의사결정의정치형태로파악되는것이다.

2) 공동체적정치의본질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적 정치의 방법론은 기존의 집단적 정치의 방법론과는 다르다.기존의집단적정치는고대시대의과두체제나현대의사회주의국가에서보는평의회제도나과도정부에서나타나기쉬운집단지도체제등에서볼수있다.

또한우리가역사적인검증을통하여최선의정치제도로인정하여온민주정치의여러유형이있지만 소수의 의견이 억압받을 가능성이 상존하고 또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이 역시 공동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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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체적일치에로향하게될것인데이과정은합의과정보다시간이더짧을것이분명하다. 중요한것은심정적(心情的) 일치에근거하는공동체적철학이다. 합의는일치의과정으로마무리되어야하는것이다.

둘째, 통일은 통일보다 더 큰 인류적 목표를 두고 양측이 협조할 수 있도록 승화될수 있어야한다. 통일만이목표라면통일은이루어지지않는다. 통일보다더큰인류의본래적목표를겨냥할 때에야 비로소 통일은 이루어진다. 이것이 대아적(大我的) 삶에 큰 은총을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성서적원리이다(단 9:1~10:12). 남과 북은세계의유익을위한세계적프로젝트(물량면을말하는것이아니다)를 고안하고실천하는과정에서일부는남한이, 일부는북한이담당하여추진하되, 경쟁적관계가아닌협조적관계에서수행할수있도록세계적꿈을키울공동분야를찾아내어야한다.

셋째, 통일의구체적방법론을위한기본원칙을말하고자한다. 통일의직접적원인은국제정세의변화와이에지혜롭게대응할정치적판단에있게될것이다. 그러나그러한지혜라든가국민적합의는우리존재의깊은곳에서끌어내어야한다. 여기서우리는공동체와토지의경세사상이통일의밑바탕이되어야한다고믿는다. 공동체와토지는성서의기본사상이며, 인간을인간소외에서회복시키고, 인간에게삶의터전을되찾아주며, 인간의본성중에건전하고의로운부분을북돋아주는창조의기본요소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방자치의 확립을 통한 지역 사회주의의 실험, 토지 및 공동체적 삶에 근거한새로운교육·문화적실험들, 토지세제의정착에근거한도농(都農)의격차해소, 첨단과학산업과지방경제의 융합도모, 자본주의의 모순을 발전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공동체기업의 시도 등, 새롭고 창조적인 겨레생활의 방식을 창출하려고 노력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시도는 자유로운남한에서밖에는불가능하겠지만, 남북간에도어떤한지역을특구로설정하여약측의정경·기술등모든면에최고의성과를모두같이살게해봄으로써조화로운모델이가능하지를실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좌우의 모든 이념을 성으로 극복하게 하는하나님의운동인예수성령의대역사가민족심령을변혁시키는일이일어나야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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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어려운비윤리적인방법까지도자행되고있다는자체반성도들어본적이있다. 그러나학문세계에서는어느정도확립된공동체적방법론이다양한규정으로도입되어있고물리적폭력이배제되어있는것을볼수있다. 이러한합의적성숙성은정치에도필요다고생각된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하나님만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성령 곧 예수 그리스도의으로인하여하나님의말 이교회에의와질서로나타나게하는것이다. 그러므로성경적공

동체정치는 성령운동을 방법론으로 한다. 성령운동이 즉 정치운동인 것이다. 교회를 친히 다스리시고중보기도하여주시는성령님의역사없이는예수의통치가예수의몸에서나타나지않는다. 사람의계교와인간적방법에의한교회정치는오직교권정치에머물뿐이다.

이같이 사회에서의 공동체 정치도 끊임없이 부패하여가는 공동체적 유연성을 사회에 공급(의로운 정치주체 공급)하고, 공동체를 채우는 의와 질서를 공급(의로운 정치욕구 공급)하는 것에그주안점을둔다.

성서적 정치는 예수성령공동체가 정치계에 존속하고 지속적인 자기쇄신을 기하도록 하는 데중점을 둔다. 성서적 정치의 결과는 사회의 죄성을 억제, 정화하고, 사회의 정신성을 순화할 뿐아니라사회의심리적구조를치유하는것으로나타난다.

사회의공동체성회복은가정을회복하고, 생업을회복하고, 두레를회복하게되며, 가장본질적인토지광정(土地匡正)의 결실을맺게한다. 토지소유와토지사용의적정한체제가굳건히서면 지역공동체가 건강해지며 상업 및 사회 교류의 발전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틀위에사회의창의성이진작되기시작하는것이다.

이러한 사회 창의성의 진작이 기업과 개인의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생활을 향상시키고, 문화를창달하는것이다. 또한기술적발명과각종사회적창안이활발하여져서산업과경제가발전하게되는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적인 정치의 방법론은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개인의 소외를 방지하고 공동체내의사회적교류를증진시켜지역공동체와국가전체의발전을기약하는것이다. 그러므로공동체적정치론이실천되기위하여몇가지필요한국면을논의해보려고한다.

4) 기초공동체의정치

공동체적 정치는 가장 기초적인 기초공동체의 정치에서 성공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기초공동체의다스림이윤활하여야만그이상단계에서의정치가쉽게바로서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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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치에더가까이나가야할개선의여지가언제나존재하고있다고본다.

그러나 우리가 멀지 않은 미래에 반드시 찾아오리라고 생각하는 정치제도로서의 공동체적 정치(Communal Politics)는 인류 본연의 삶의 특성에서 나오고 또 비록 오랫동안 잊혀진 것이기는하나인류본래의류적본질(類的本質)인 공동체성을되찾기위해서는반드시회복되어져야하는정치제도인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광과 성품이 점차 더욱 충만히 나타나야 하는 역사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이웃이서로사랑하라는말 은곧인류의공동체성을회복하라는말이고인간의공동체성은그연원이신성(神性)의삼위일체로부터온것이다. 지역공동체와확대가족(Extended Family)제도에 근거한 고대사회를 벗어나면서 공동체적인 사회상은 지역에 따라서는 고대제국들의 출현과함께또는중세이후 유럽의봉건제등공동체적토지소유의파괴와함께뒤틀리기시작하 다.

중세와근대로오면서토지를삶의근거가아니라부의근원으로생각하여특히서구사회를중심으로약5백년전부터는토지가상품으로전락하 는데이는중상주의내지는상업자본주의의대두에 가장 큰 향을 준 사회변동의 요소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공동체적 정치의 기본정책은토지정책으로부터시작하여지역공동체의사회심리적결속을다져주는것이그첫걸음이된다.

이제 20세기후반기에들어와서전자기술의발달로인하여마이크로코즘(Microcosm)의세계로들어오게되었다. 이에따라인간사회는다시공동체적인사회로회기하지않을수없는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이크로코즘의 기술원리가 생산관계를 주도하면서 정보통신기술이혁명적인발전을이룩하게되었기때문이다.

말하자면 앞으로 정보와 통신기술이 사이버세계를 통하여 사회전반적인 미시적(微視的) 삶의역까지 점유하여 감에 따라 대소를 불문하고 모든 계층의 공동체사회에 있어서 그 개인적인

의사결정과공동의의사표현이 거의동시에이루어질수있는시대로변해갈것이기때문이다.

그러나 반면에 전 지구적인 범위에서 일어나는 환경보호와 같은 측면에서는 자연(토지)이 점차그중요도를더해가고있는데이것은또다른더높은차원에서지구상의국가간이나지역공동체들 간에 긴 한 공동체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며 토지의 중요도가 전혀 다른각도에서고려되어야함을보여준다. 그러면공동체적정치의방법론이란어떤것인지몇가지측면에서다루어보려고한다.

3) 공동체적정치의방법론

학문세계에는 지금도 학문적 업적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계에서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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낌을준다. 지금까지는정치가지역공동체차원까지상당히활발하게이루어지는것으로보이는데오히려사회심리적현상을유념하면정치가기초공동체의차원까지더파고들어가야소외의문제가근본적으로해결될수있으리라생각된다는점이다. 즉기초위공동체레벨에서어린이와장애자와 노약자 등 소외된 의견들이 잘 수렴되어 지역공동체의 단계로 상향 전달되도록 하는것이의사결정문제의핵심이라고판단되는것이다.

이렇게 될 때 새로운 정치현상이 전개되리라 기대되는데, 사회심리적(성서적으로는 사회 성적) 제현상의원인이되는사회심리적교류(필자는코이노니아현상이라고부르고싶은데)를중심으로 정치과정을 설계하여 지금까지 서구사회가 정치발전의 벽으로 여겨온 소외현상을 불식시킬수있으리라생각되는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지방자치나 지역공동체경제의 단계까지 생각하는 현재 정치경제의 관념을기초공동체에이르기까지하향침투하게하고정치와경제를인간화(人間化)하는방향으로나가야한다고보는것이다. 아마도이것은좀더동양적인방법이라고규정해도무리가없을것이다.

5) 어머니형권력, 움직이는정치

정치 현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권력을 누가 쥐었느냐와 누가 제일 세냐일 것이다.그런데 우리가 공동체적 정치에 대하여 알기 쉽게 말하자면 아마 어머니의 다스림과 같은 것이아닐까한다. 여기서굳이아버지형권력과어머니형권력으로나누어말하는이유는어머니가가정에서행사하는권력은실은봉사하는데서나오는권력이므로아버지처럼군림하는권력과는차이가있다는것이다.

아버지의 권력은 한번 쥐면 놓을 수가 없다. 또 다른 사람이 대신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한번사회에서누구든지권력을잡으면그권력구조가자꾸굳어져가게마련이다. 그러므로한번정권을 바꾸려면 전 사회가 큰 홍역을 치른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플 때는 가족들이 일을 서로나누어 맡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어머니 형의 권력에 익숙한 사회는 항상 모자란 부분을 서로 도와채워가며정치나경제가시냇물이흐르듯이자유롭고유연하게대처할수있다. 왜냐하면어머니형권력행사는사랑의행위의흐름이기때문이다.

아버지형의 권력이 더 우월한 이유는 물리적 폭력이 궁극적으로 사회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그러나앞으로는사회의모든부분이서로잘맞물리지않으면톱니바퀴처럼돌아갈수없기때문에폭력보다는설득이, 투쟁보다는협력만이사회를움직여나가는힘으로인정 받아가고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사회에서 힘세고 교만한 사람이 사회를 너무 오랫동안 제 맘대로 다스려서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것을 사람들이 잊지 못하도록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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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우리는몇가지공동체에대한정의를다루고자하는데바로기초공동체와단위공동체와핵공동체에 대한 용어 구분이다. 필자는 가정을 핵공동체로 보고 확대가족 단위의 가장 자연스러운공동체를기초공동체로보며기초공동체에서여러가지사회적규약이나필요에따라묶인공동체를단위공동체로보려고한다.

이는 의도적 공동체운동(intentional commune movement)에서 보는 기초공동체의 정의와다른 것이, 자연에서 발전하여 정착한 확대가족이라는 단위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또 미래에도인간의신체적이고정신적인여러가지특성에서비롯되었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

인간은왜무리를짓는가, 왜개인은 2미터정도의신장을가지는가. 왜개인은 60조개의세포로이루어졌는가. 인간두뇌는왜 100억개단위인가. 300명이상의사람들이 집하면왜광포한생각이나타나는가. 이모든것은밝혀져야할연구대상이지만인간의독특성에서나오는고유의특성인것이다.

이제 정치를 다시 세심하게 공동체적으로 정의하자면 일상생활의 의사결정과 그 결정사항의시행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권력추구에 초점을 맞추는 기존의 정치에 대한 정의와는 매우 다른각도에서본것이다. 성경적인교회공동체적정치의방법론은교회의심령적유기성에기초하는데, 실제로 일반사회에서도 인간 두뇌에 있는 거울신경(mirror nerve)이라던가 사회적 모방의과정(mimesis)에 의하여 유기적인 행태가 정착되는 것이고 이는 과거의 사회 유기체론에도 중요한근거를제시해주는것이다.

정치는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정치과정에 관련된 모든 이에게 의미 있고 정당해야 한다. 정치과정이란의사결정과정과그집행과정을통틀어의미하는것으로본다. 이정치과정에서자기가소외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모든 공동체 성원이 가질 수 있을 때 그것이 모든 이에게 의미 있고바른정치가이루어졌다고볼수있을것이다.

그렇다면소외자가없다고확신할수있는정치의양상은어떤것인가. 모든이가투표권을골고루행사할수있었다는것으로이러한조건을만족시켰다고말할수있는것인가. 아마도모든공동체의구성원이소외되지않았다는것을확인하려면각자가모두자기의의사가정치과정에반 된것을확인하고만족하는과정까지포함하여야되리라고생각된다.

그렇다고 서구사회의 일각에서 일고 있듯이 10세 이하의 어린이들에게까지 투표권을 주자는논의가과연타당한것일까. 투표권을행사했다고해서그아이들의생각에자신들이사회속에서소외되지않았다고만족해할것인가.

모든문제는오히려정치과정을설계하는데있어서기술적인문제로귀결되지않는가하는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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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권력배분문제

현대의 권력배분 문제는 모성형 권력행사의 확장과, 가부장적 권력행사의 최소화를 지향하고움직이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 사회가 모든 면에서 새것을 탐험하고 큰 틀을 세워 나가는 시대가아니라틈을메워나가는niche-filling의시대에처해있기때문이다.

또한 동적(Dynamic) 상태로서의 정치와 경제가 선호되고 있는데 현대인은 주식시장이나 여론조사와같은동태적인사회현상속에살고있는것이다. 정치경제는사람사이(人-間)의 현상과 마찬가지로 상호 관계와 향력의 함수이고 따라서 동적으로 파악하여야 한다. 동적인 권력관계는가부장적권력구조의고착보다어머니형권력행사를통한사랑의행위의흐름으로보아야그진상을파악하기가쉬운것이다.

이것은인간세계에대한하나님의선언과도일치하는현상인데, 하나님은인간이각종권력구조를고착시키고자하는욕심을규탄하시면서지속적인상황변화는하나님께서주도하시는데그이유는하나님의절대주권을무시하고인간의절대권력을세워가는인간세계의자의적인구조를깨트리시기위하여지속적으로개입하신다는사실을선포하고계신것이다(고전 1:27-28).

성경도하나님께서모든동적인변화를통하여하나님의주권을나타내시는신현현(神顯現)의원리를확인하여준다.

인간의지혜가잘모르는것은권력배분은고통의배분과근본적으로관련이있다는것이다.권력은 곧 자기죽음의 자리라는 것을 권력자들은 권력을 잡은 후에야 알기 때문에 절대권력을추구하게되어있는것이다. 그정상에서지속적자기소모를감당할수있는자는없으므로어떤시스템을만들어권력을유지해야하고또자신을희생하여버릴수있는신화(神話)시대의인간은극히드물기때문에결국많은권력자들은부패한다.

여기에서여성적, 어머니적인권력의방법론이개발되어야할필요가생겨나는것이며따라서자기를희생하는자발성의발휘가하나의돌파구를마련해주는것이다. 그리고자발성은그개인이가지는 성내지는정신성의노출이다.

8) 공동체적자발성의발휘

기존정치의 강제성 원칙은 배제되고 불식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상적으로 볼 때 정치는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이며 권력은 의사결정 권리의 분배 형태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분배관계에서는정치과정이란자기존재의확인이라는실존적인최심층심리와관계된사회심리적인코이노니아프로세스라고이해해야된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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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는것이다. 말하자면공동체안에서정치적권력구조가굳어져가는것보다, 언제나충격없이 변해갈 수 있는 정치체제가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것이 공동체적 정치의 특성 중 또 하나의중요한것이다. 이를현실정치에서이루어나가려면두가지원칙이서야한다.

필자의경험으로는, 여성만이또는어머니만이꼭어머니형권력을행사할수있다고보는것은무리라는것이다. 예컨대어떤공동체적마을에서어머니들의모임에권력을위임했을때가장격렬하게분쟁이일어나는것을목격했을때뼈저리게이런사실을깨닫게된적이있다.

6) 코이노니아(koinonia)의논리

사회를 움직이는 데는 집중적 권력행사와 유연성 있는 분산적 권력행사가 필요한 것이다.일반적으로자원과인원의동원(mobilization)을 위해서는집중적권력행사를필요로하고동화(assimilation)를 위해서는분산적권력을행사하여비공식적조직들을활용하기도하는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 관리기법들의 한계는 통합적인 흐름을 보기 힘든 데 있다. 그러므로 코이노니아의 논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코이노니아는 원래 성서에서 나오는 개념으로 다양하게번역되는데 그 요체는 흐름의 속성이 모든 공동체내에 있다는 것이고 그 흐름은 생명적인 사랑이나눔과사귐과자기희생을가능하게한다는것이다. 이는또타인의헌신적희생을흔쾌하게받아들일수있는정도까지자기에대한생각이잊혀지는현상을이르는말이다.

즉 코이노니아는 요약적으로 표현하면 통일, 일치, 개체화, 특성화의 지체론적 매카니즘이다.이는통합적상태를표현하는‘파스’, ‘텐-헤노테타’등희랍원어와연계하여생각해보면성경의기자의의식을엿볼수있다고본다.

말하자면 코이노니아는 개체간의 교통을 의미하며 교감적 이어야 한다. 매우 현실적이며 물질적인교류까지도포괄하는인간전 역에서일어나는일이며하나님과인간사이에, 공동체와개체사이에, 개체인간과개체인간사이에매질점마다일어나는현상을표현하는언어인것이다.

이러한 코이노니아는 신의 속성에 속하는 것이며 신역사(神役事)의 본질이다. 그래서 하나님이이땅에두신그의교회에코이노니아가부족한만큼교회가아닌것이며인간사회에코이노니아적교류가없으면짐승의사회로타락하는것이다. 이것은인간이서로협동적으로모인곳에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신역사(神役事)가 있고, 인간이 모 지만 서로 사랑하는 코이노니아가없으면 쟁투가 일어나게 되는 단순한 사실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누가 이런 단순한 사실을모르는것인가. 그러나이 에서한번은남겨야할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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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공동체를강화시킨다.

공동체내에서일어나는창의현상을분해성또는휘발성(volatility) 중심으로분류하자면1) 분해성(分解性)이높은창의(Creativity)로서무용, 음악, 미술, 문학등이있으며2) 분해성이중간정도의창의로서발명, 특허, 새로운분석논리등이있고3) 분해성이낮으므로안정적인창의는기술자료, 전문자료, 교육자료의작성등이다.

공동체내에서나타나는창의의수용과정을살피면1) 공동체는자체의특성에맞는창의의결과를선별적으로우선적으로수용하는것이고2) 공동체는자체욕구에반하는창의는축출하고, 절멸하는경향이있으며3) 공동체는자체욕구와합하는창의를보상, 육성하게된다.

이는 공동체는 점차 자랄수록 시스템적인 측면이 강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원래 공동체는 네트워크적인측면이강하기때문에시스템적인측면이강화되면서실상은창의적인과정이소실되어 간다는 것을 이미 현대경 학이나 관리기법에서는 무의식 중에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는것이다. 이러한면은필자의앞으로의중요한연구과제중의하나이다.

특히정치에있어서의창의의프로세스는기존의공동체적욕구에매우충실한편이며, 또 분해성이높은편임을어렵지않게짐작할수있다. 경제적창의과정은분해성이상대적으로낮고공동체적욕구와의결속력이정치에비해낮은것을알수있으며따라서경제나기업에서새로운방법론이많이나타나는것을기대하게된다.

10) 의와평강의정치

우리는 천년왕국적인 조망을 많은 이들이 품어 온 것을 알고 있다. 지상의 유토피아 건설, 또는천년왕국의정치경제적전망은모든정치세력의무의식에깔린기본적인전제가되고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평화에 대한 사상과 직결되어 정치적 방법론에 향을 주게 되는것이다.

정치의 장기적인 조화와 평화상태가 이룩하는 경제가치의 비약적인 창출이라는 부분은 인류가소망하는이상향의한특성이다. 이러한잉여(剩餘)적인경제가치는인류에게창조적생활을위한 받침목이 되어 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패의 온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공동체의정신적인특성이이러한잉여의활용능력을결정한다.

경제의잉여가치또는잉여부는, 필자의특별한용어인商코이노니아또는교역에있어서명목상의 교환가치에 부가하여 교환되는 공동체특성가치로 말미암는다. 이것은 제3의 정경학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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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의사결정과정이 조화로울 때 사회심리적 강화에 의한 공동체적 활력의 기하급수적증강 현상이 나타나며 이러한 것은 성서에서도, “두 세 사람이 모여 기도할 때”(마 18:20)라는구절에 (반드시심리적인차원만은아니지만) 그강화현상에대한언급이나타나고있는것이다.

이는 코이노니아의 참된 심령적 교류현상이 일어날 때 신적 간섭과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는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공동체적 결속이 있을 때 기하급수적인 능력증강이 약속되어 있는 사실을“하나가 천을 둘이 만을”(신 32:30)이라는 구절과“다섯이 백을 백이만을”(레 26:8)라는곳에서찾아볼수있는것이다.

강제성이 기존 정치권력의 상식적인 행사원리이지만, 인간관계를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공동체적자발성이정치프로세스에서의최적상태인것에누구든지합의할것이다. 이런자발성은개인의 정신성(mentality)만 최대한발휘되도록 할뿐아니라 공동체적인레벨에서도공동체적자발성은공동체의특성가치가정치프로세스에최대한발휘되도록유도한다.

우리가 귀중히 여기는 자발성은 그 주체의 성을 나타내며 창의도 고차원적인 자발성으로서그인간의됨됨이저절로나타나고건전하게개발되는방편이된다.

9) 창의의공동체적수용, 정치행위의창의적본질

여기에서반드시정치과정에서만나타난다기보다모든인간사회과정에나타나는일이지만창의의공동체적수용과정설명을설명하여야한다고본다.

창의는 개인의 주관적인 프로세스로 생각되지만 원래 창의과정의 시작부터 공동체적 인식과욕구와 사고방식에 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순수창의(純粹創意)의 분야는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종합의 과정이므로 공동체적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 항상 걸리는것이다.

그러나중요한것은창의가개인적차원에서성취된경우그창의의결과가과연공동체에수용될 수 있는가 또는 수용된다면 그 과정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점이며 또 어떤 경로로 수용될것인가하는점이관심의대상이되는것이다.

일반적으로 창의현상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과정으로만 생각하는데, 개인의 창의도 간주관적 (intersubjective)인 과정이므로창의는공동체내의정신적과정으로자리잡지않을수없다.그것이예술이며, 발명이며, 창안이며, 교육(의전방효과)이다.창의는분해성이높으면그내용은공동체내에잔류하지못하여쉽게무산되고개인적인업적

으로만 남기 쉽다. 그러나 공동체적인 과정 속에 정착한 창의가치는 공동체의 특성을 변화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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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에서자세히다룬다(단이때의잉여가치는사적유물론에서말하는잉여가치와는다르다).

잉여가치는의와평강의신적축복또는신임재의시기에누리게된다. 우리는평화는하나님의 주신 축복의 시기이며 인간에 질서가 주어지는 것은 (즉 난세가 미연에 방지되는 것은) 신적개입에의한것이라는것을확실히하고자한다. 평화시준법사회의경제와문화가발달하는이유는질서와창의가적절한균형을이루면서안정된지향성을가지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의와 평강의 정치에 대한 소원은 현대의 경제 중심사회에서도역시가장중심되는명제로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