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는 눈과 보는 손 메를로-뽕띠의 시선의 윤리학

28
: - 1) I 1990 . 1) , (hologram) , . (Heidegger) 2003 4 pp. 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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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눈과보는손: 메를로-뽕띠의시선의윤리학*1)

김종갑 (건국대)

I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시각문화의 관점에서 접근

하며 분석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1) 사진술과 영화기술, 입체영상

(hologram)과같이놀라운테크놀로지의발달과더불어세계가이미지로서경험

되고있다는사실을생각하면, 그러한시도는이미일어난시각중심주의적현상

에 대한 관찰과 진단의 기록들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하이데거(Heidegger)는

* 이 논문은 2001년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KRF-2001-045-B20005)1) 영미권에서출간된몇몇논문모음집을소개하자면다음과같다. Chris Jenks, ed.,

Visual Culture (London: Routledge, 1995); Teresa Brennan and Martin Jay, eds.,Vision in Context (New York: Routledge, 1996); Nicholas Mirzoeff, ed., The VisualCulture Reader (London: Routledge, 1998); Hal Foster, ed., Vision and Visuality(New York: New Press, 1998); Jessica Evans and Stuart Hall, eds., Visual Culture:The Reader (London: Sage, 1999).

2003년 제4호 pp. 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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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상의시대 (“The Age of the World Picture”)에서현대를 “세계사진의시

대”로서, 세계가사진의프레임속에이미지로화석화되어버린시대로서비판한

바 있었다. 또 시각문화 비판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스펙터클의 사회(The

Society of the Spectacle)에서기드보르(Guy Debord)는한장의풍경이나전망

의이미지및영상으로바뀌면서상실되는역사의두께와삶의깊이를개탄하였

다. 이론가에따라서현상을바라보는관점과진단의방향이다르기는하지만패

놉티콘에 입각해서 푸코(Michel Foucault)가 제시한 규율사회,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작성한 시뮬라크라(simulacra) 사회, 그리고 레비나스(Immanuel

Levinas)와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가 모색한 “눈멂의 윤리학”2)도 그

러한시각문화비판의계보와연장선에속한다고할수가있다. 이러한시각문화

비판이론가들의이름을더이상거명하지않더라도, 위에서열거한목록만으로

도시각중심문화를비판하고반성하는목소리들이얼마나압도적으로현대담론

의장을주도하고있는지쉽게확인할수있을것이다. 보다미시적이면서구체

적으로는 시각문화의 현장―가령 영화나 광고와 같은―을 진단하는 발언들도

그러한 이론적 흐름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시각은 이른바 시각중심주의

(ocularcentrism) 혹은시각문화의이름으로싸잡아서비판될수없는시각고유

의가치와권리, 의미를간직하고있다. 특히지각심리학적입장을비롯해서눈

의기능을연구하는생체학적관점에서보면, 인간의오감가운데서시각이가장

고등하고 가장 복잡한 감각 기관이다. 일례로, 감각세포를 통해서 입력된 시각

2) Downcast Eyes에서Martin Jay는프랑스의반시각중심주의에대한전체적인조망을시도하였는데, Levinas와 Lyotard를묶어서 “눈멂의윤리학”이라칭하였다 (543-86).

3) 앞서열거한논문모음집을포함해서,서양의예술과문학텍스트를분석한피터부

륵스의 육체와예술(Bodywork), 이봉지․한애경옮김 (문학과지성사, 2000), 영화텍스트를주로분석한 Kaja Silverman, Threshold of the Visible World (New York:Routledge, 1996), 주로 영화텍스트를대상으로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Laura Mulvey, Visual and Other Pleasures (Bloomington: Indiana UP, 1989);Renata Salecl and Slavoj Zizek, Gaze and Voice as Love Object (Durham: DukeUP, 1996) 등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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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해석하기위해서대뇌는청각의경우보다 200배이상으로빠르게정보를

처리하지않으면안된다 (Perkowitz 28). 프로이트(Freud)에따르면, 원래후각

에의존하였던인간의조상은진화를거듭하면서직립보행하게되자비로소시

각중심적이되었다고하는데, 사실이미지가맺히는눈의부위인망막은두뇌의

일부가두뇌로부터분리되어빛에민감한조직으로바뀐것이라고한다 (24-25),

또유아의성장과정에서도다른감각에비해서시각이가장늦게발달하기시작

한다. 처음에 유아는 입을통해서, 다음에는 귀를 통해서 세상을 지각하게되는

데(PR 120-25)4), 시각이발달하기시작하면서아이의다른감각들은점차시각

에 종속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비록 오래 전에 바클리(Berkeley) 주교는 대상을

어루만지는 손의 도움을 빌어야만시각이 대상의 존재와 삼차원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주장을했으며아직도여전히그의견해를따르는일부학자들이없지는

않지만, 다양한지각실험에의하면시각적정보와촉각적정보가충돌하는경우

결국은시각이촉각을지배한다는결론이나왔다(Rock 377-384). 그러나시각의

우위를확인하기위해서굳이그러한실험결과나생체학적연구성과를참조하

지 않아도된다. 처음부터 철학의역사 자체가 시각중심주의적이었기때문이다.

“영혼의 눈”이나 “이성의 빛”(lumen natural)과 같은표현에서 드러나듯이 눈은

어둠과대립되는빛과이성, 진리로자리매김되었으며, 어원적으로플라톤의이

데아는 보다(eidolon)라는 지각동사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Blumenberg 30-36).

데카르트(Descartes)의말처럼오감중에서유독시각이 “가장고귀한감각”(Jay

71)으로평가되었던것이다. 알기, 하기, 보기 (“Savoir, Pouvoir, Voir”)라는어

느 논문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보는 것(voir)이 아는 것(savoir)이면서 힘

(pouvoir)이었던 것이다.5)

진화혹은역사적변화의결과로서아니면생체신경학적소여로서시각중심

4) Merleau-Ponty의 저서는다음과 같이약칭하기로 한다. PP(Phenomenology ofPreception), SNS(Sense and Non-Sense), PR(The Primacy of Perception), S(Signs),VI(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PP의경우에는원어와영어의쪽수를병기하였다.5) Kuntze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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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적성향이인간에게주어져있다면, 그러한시각의우위에대해서비판적인

담론적상황은일면자기모순적으로보이기도한다. 피상적으로이것은신경학,

심리학및광학을비롯한과학진영과문학및철학을아우르는인문학진영사

이의불화와반목, 즉개별적사실의탐사와그러한사실에대한가치평가사이

의반목을반영하는현장이기도한데, 눈멀음에서시선의대안을찾으려는것과

같은급진적움직임들이그러한인상을더욱조장할수있다. 그러나정확히말

하면시각중심주의에대한비판은메타과학적이고메타문화적이면서동시에지

금까지시각중심으로흘렀던철학의역사에대한자기비판적성찰의반영이다.

보는것이앎에서힘으로흐른다면, 과학은그러한힘을자유자재로구사하면서

세계를 실험과 조작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철학도 그러한 과학적 세계관에

일조하였다는점에서비판적담론의유효성과적실성이발견되는것이다. 그럼

에도필자의생각에, 반시각중심주의적저항의담론들은지나치게시각중심주의

적 담론들과 대칭적 구도에 사로잡혀 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면,

마치시각의저편이존재하는듯한태도, 그래서시각의장으로부터벗어난지점

에서바라보며시각을비판할수있다는듯한태도가기저에깔려있다.6) 필자가

메를로-뽕띠(Merleau-Ponty)의현상학을통해서시각의문제에접근하려는이유

가 여기에 있다. 앞서 열거한 이론가들과 달리 그는 지각을 등지고서가 아니라

지각과 더불어서 시각에 대해서 사유하고 반성한다. 또한 그는 과학적․심리학

적발견과성과를검토하고비판적으로수용하면서나름의현상학적이면서존재

6) 이점은가령데리다(Jacques Derrida)와비교하면분명해진다.그의로고스중심주의

나현존의형이상학에대한비판이거대담론적총체성의기획에대한비판임에는의

심의여지가없다.그럼에도그의담론은비판의대상과마찬가지로거대담론적이고총체적인스타일로일관되었다.메를로-뽕띠의글의한제목을빌면,데리다의시선

은 “어느곳에속하지도않으면서모든것”(Everywhere and Nowhere)을바라보려는,

이를테면시야의장에서벗어나전체를조망하려는탈신체적인시선이었다고할수있다.설령전능한신이있더라도“그는특정한관점을통해서만사물을볼수있다”

고훗설이주장한적이있었는데(Steinbock 190에서재인용), 데리다와같은이론가

들이그러한시각적상황에무지한것은아니었다.다만그러한상황이비판적담론의날실과씨실로서텍스트에내부에통합되지않았던것이다.소극적인의미에서여

전히 총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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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적인지각관을정립할수가있었다. 비록마틴제이는그가 “시각의고귀함을

강조하려는 영웅적인 노력”(299)을 기울인 철학자로서 평가를 하지만, 여타의

반시각중심주의적 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시각중심주의적 성향에 대해서

는철저하게비판적이었다.7) 파노라마적인시선에대한가차없는비판을비롯해

서세잔느의그림에서드러나는새로운시각의지평에대한부단한관심도그러

한맥락에서이해될수가있다. 무엇보다도메를로-뽕띠는시각을지각의중심이

아니라다른감각과, 특히촉각과더불어서지각의장에공감각적으로위치시키

려고노력하였다. 바로이지점에서필자가살펴보려는논지의성격이드러나는

데, 그는시각을촉각에연결시킴으로써, 혹은시각을촉각의관점에서접근함으

로써자칫하면파노라마적8)으로탈선할수있는시각을다시지각의장에되돌

려놓으려고 하였다. 이 세계에 속해있지 않은 듯이 대상을 바라볼 수가 없다는

것, 또몸을가진존재로서특정한시간에특정한장소에서대상을 “국지적으로”

바라볼수밖에없다는것, 달리말해서한꺼번에전체를바라볼수있는특권적

입지가애당초배제되어있다는사실이시각의촉각적성격에대한규명을통해

서 분명하게 밝혀지는 것이다. 우리는 영혼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7) 그러나이상하게도대부분의연구서들이나논문들에는메를로-뽕띠의문화비판적태도에대한언급이없었다. Aurora Plomer, Phenomenology, Geometry, and Vision:Merleau-Pont’s Critique of Classical Theories of Vision (Aldershot: Avebury,1991); Galen Johnson, ed., The Merleau-PontyAesthetics Reader: Philosophy andPainting (Evanston: Northwestern UP, 1993); Cathryn Vasseleu, Textures of Light:Vision and Touch in Irigaray, Levinas, and Merleau-Ponty (London: Routledge,1998)와같은책을비롯해서필자가살펴본논문들도마찬가지였다.아마메를로-뽕띠의철학을문화연구나문화비판에적용시키려는시도가아직이루어지지않았기

때문인 듯 싶다.

8) 이파노라마적시선을메를로-뽕띠는전지전능한신의눈(kosmotheoros),혹은데카르트적눈,절대적관찰자의눈,혹은객관적과학의눈으로표현하기도하였다.이러

한시선에대한정의는여러이론가들의저서에서발견할수있는데,일례로서Paul

Ricoeur를인용하기로한다.그것은 “객관적진리의전체가풍경처럼눈앞에펼쳐져있어서,코기토가전능한시선으로일별하는(것으로모든진리를한꺼번에파악할수

있다는)세계의 시각”을 말한다. Ricoeur, Conflict of Interpretations, tr. Don Ihde(Evanston: Northwestern UP, 1974),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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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인 몸과 손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촉각이나 운동감각으로부터 분리된 시각

이란있을수가없기때문에촉각은이미시각적이며시각자체가이미촉각적이

라 할 수 있다. 본론에서 상설하겠지만, 메를로-뽕띠는 이러한 촉각의 중요성은

규명하기위해서훗설(Husserl)의 “맞닿는손,” 혹은 “이중감각”의현상학에크

게의존하였다. 맞닿는순간에왼손은오른손을감촉의대상으로서뿐아니라

자기살의일부로서즉각적으로느끼고또그러한감촉을지각한다. 메를로-뽕띠

에의하면왼손에닿는오른손의감촉의감촉, 즉지각의자기반영성은사유의

근원이면서상호교호적인시각의신비이기도하다. 바라보는내가동시에바라

보인다는 사실, 보이지 않으면 내가 볼 수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오른 손과 왼

손의관계가그러하듯이보는나와보이는대상이하나의세계에속해있다는사

실이시각의신비를구성하는것이다. 이러한시각의촉각적성격을밝힘으로써

메를로-뽕띠는, 보는주체가보이지않는특권적위치에서서대상을일방적으로

규정하는 패놉티콘적 시선이나 지각의장을 떠난 듯이 보이는 파노라마적인 시

선의 허구성을 지적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II

의식의지향성에대한인식으로부터현상학이출발한다는것은새삼설명이

필요치않을것이다. 의식은반드시어떤대상에대한, 그대상을향해서나아가

는 지향적 의식으로서, 의식을 순도 높이 추출하기 위해서 원래 의식에 속하지

않은대상들을하나한솎아내다보면의식자체도없어져버린다. 말하자면순수

의식이란 있을 수가 없다. 적어도 메를로-뽕띠에 있어서 의식이란 그것 자신을

넘어설수밖에없는것, 의식이아닌것들과불순하게뒤섞여있는혼합체, 무엇

보다몸과섞여서삼투되고체화된의식으로, 데카르트적코기토는따지고보면

의식이자기의터전을잊으려는존재의자기망각에불과하다. 경계해야할대상

은의식이투명하다는관념론적환영이다. 그렇다고의식이물질이나그것의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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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물이라는 유물론적․경험론적 입장으로 기우는 것은 아니다. 몸과 떼어놓고

서, 혹은몸을둘러싸고있는세계와떼어놓고서의식을생각할수가없다. 순수

의식이란존재하지않는다는메를로-뽕띠의명제는지각에대해서도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해서 순수하게 물리적으로만 반응하는 순수

감각이나 순수 지각은 존재하지 않는다.9) 몸은 외부를 향한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동일성의껍질속으로침묵하며침잠하는사물이아니라, 의식과마찬가지

로 몸도 세계를 향한 지향성을 지닌다. 시각과 촉각을 비롯해서 감각과 지각도

지향적인것이다. 세계를향한개방적지향성을몫으로간직하고있기때문에시

각은기관으로서눈의생체학이나빛의광학으로설명되지않는세계내적인의

미의층을지니고있다. 지각은이미의미로삼투되어있다고말해야옳다. 싸르

트르(Sartre)의 스타일을패러디한 메를로-뽕띠의 표현을빌면, “세계속에서 존

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의미에 처형 당했다”(nous sommes condamnés au

sens)(PP xiv/xix). 눈에비치는대상의색깔이나모양, 크기, 거리에대해서도마

찬가지이다. 의미로빗어지거나다져지지않은객관적인색깔이나모양, 크기도

없다. 가령 거실에 깔린 양탄자를 우리가 바라본다고 하자. 메를로-뽕띠에 의하

면, 그것이빨간양탄자라는것, 양털로짜여져있으며, 손으로만지면깔끄럽고

보드라운촉감이느껴질것이라는것, 소리를흡수하는방음효과를낼것이라는

것등을동시에느끼지않을도리가없다(PP 373/323). 한장양탄자의지각에는

시각과 촉각, 청각이 언어와 더불어서 공감각적으로 한꺼번에 관여하고 참여하

는것이다. 바로이러한공감각적참여가지각의장속에이미전제되어있기때

문에우리는세계의실재에대해서추호도의심하지않는다. 여기서물론세계의

9) G. B. Madison, “Did Merleau-Ponty Have a Theory of Perception?” Merleau-Ponty,Hermeneutics and Postmodernism, eds. Thomas Busch and Shaun Gallager (StateU of New York P, 1992)참조하기바람.또Michel Haar와같은철학자는메를로-뽕

띠가언어의역할을무시하고지각의순수성을지나치게강조하였으며, 그럼으로써

예술의역사성도무시하는본질론에빠져있다고비판하였는데,그의비판은잘못된전제에 입각하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Painting, Perception, Affectivity,”

Merleau-Ponty: Difference, Materiality, Painting (New York: Humanities, 2000),177-93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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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성이란바라보는주체와보이는객체의이분법적구도에서전개되는인식론

적인확실성과는거리가멀다. 경험의지평으로서, 특히간주관적경험과의사소

통의 지평으로서 세계는 확실하다(PP 361/313).

메를로-뽕띠에게세계의확실성이란 “지각의신앙”(perceptual faith)(VI 158)

을뜻하였다. 가령내가초록색표지의책을바라보고있을때, 다른사람에게도

그러한책이당연히지각되리라는믿음이있다. 이것은설명이나증명이불필요

한자명한사실로서, 하나의신앙처럼받아들여야한다(VI 3,9 142). 관념론이나

경험론적전통에따르면외부의자극에대한반응으로서감각은연상이나오성,

공간 시간 혹은 인과의 범주에 의해서 종합되는 중재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하나의온전한대상이나풍경으로서지각이된다. 그러나메를로-뽕띠는그와같

이종합을운운하려는시도를인위적인분석의결과로간주하였다. 부득이종합

의차원에서논의가되어야한다면그것은지적종합이아니라실용적종합이다

(PR 14). 책이 삼차원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지적인 분석과 종합의 과

정을거칠필요가없다. 손을뻗어서만져보는것으로충분하다. 나의몸이그것

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책의 뒷면도 지각의 장에 보이는

앞면과 더불어서 현존하는 것으로 내 몸의 주위에 주어져있다. 물론 나의 지각

내용이잘못되어있을수도있다. 직사각형으로보였던책이확인해보니정사각

형일수도있다. 수많은철학자들이지적했듯이, 때로지각은혼란스럽기도하고

오류와 착각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잘못된

지각의 사례들이 지각의 유효성 자체를 폐기시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메를

로-뽕띠에 의하면 지각은 참과 거짓이라는 인식론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실재

하는것(réel)의차원에서 접근되어야한다. 책은나의몸과더불어서 하나의통

일된 세계에 엄연히 실재하고 있다. 사실 잘못된 지각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러한실재의충만성으로인해서치루어야하는댓가라할수있다(PR 16). 하

지만 “지각의 신앙”이라는 용어가 암시해 주듯이 그러한 세계의 통일성이나 지

각의확실성은분석적으로설명되거나증명될수가없다. 설명하려는순간에모

든 시도는 혼란과 모순에 빠지고 말기 때문에 나는 삶의 지평에 이미 당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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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되어있는세계확실성의근원이나근거를알수가없다. 이것은내가나자

신의 탄생과 죽음의 비밀에 대해서 무지한 것과 마찬가지이다(PP 249/215).

시각의성격도지각의신앙및실용적종합의차원과궤도를같이한다. 그렇

다고 메를로-뽕띠가 지각에 관한 과학적․심리학적 연구를 도외시하였다는 이

야기는 아니다. 행위의 구조(The Structure of Behavior)와 지각의 현상학(Phenomenology of Perception)을 조금만들춰보더라도그가 그러한연구의성

과를 토대로 삼아서 자신의 사유를 심화시켰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과학자들

과달리다만그는시각이라는현상에대한객관적인설명이아니라시각의신비

―그에게 세계와 사물 및 지각은 신비이다(PP 270, 233)―를 이해하려고 하였

다. 이것은 보는 주체와보이는 객체의 이분법적인 시각의 종언을 의미한다. 지

각이란대상이나빛, 혹은눈과두뇌의생체학적기능으로설명될수없는실존

적 깊이를 지니는 것이다. 메를로-뽕띠에 따르면, 광학에서 다루는 빛은 물리적

빛, 망막을자극하는물리적작인으로서빛의알갱이(SN 7-10)를대상으로삼을

따름이다. 지각하는 의식에 주어지는 빛은 “현상적 빛”(SB 7)으로서 언제나 사

물과더불어서나타난다. 전자가추상적빛이라면후자는구체적인빛이라할수

있는데, 이둘은빛의두가지양태가아니라하나는진정한빛을추상화한결과

에 불과하다. 앞으로 다시설명을 하겠지만, 빛이 매질을 거치면서 사물과상호

작용을하면서 “조명”(éclairage)이되는이치와마찬가지로물리적빛은세계의

상황속에서구체적인빛으로작용한다. 시각의장에서사물을바라보는몸도마

찬가지로, 그것은객관적인몸이아니라상황과교호하는 "현상적인몸"이다. 이

살아서움직이며의욕하고욕망하는몸을가지고서우리는대상을보는것이다.

뭔가추구하는대상이나목표를향해서움직이지않는몸이란생각할수가없다.

있다 해도 그것은 살아있는 몸이 아니라 물체로서의 몸에 불과할 따름이다(PP

372/322). 그리고이지향하는살아있는몸은반드시어떤특정한시공간적문

화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상황에 처한 나는 일면적으로만 대상을 바라볼 수가

있다. “지각된물체는 일정한관점에서, 일정한방향에서 그리고이쪽이나 저쪽

에서주어진다. 물체지각은어디까지나일면적정시이다”(차인석 23). 이일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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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의상황속에서만대상을바라볼수가있다는것은즉나의이해와욕망, 현

재의 입장이 내 시선에 한꺼번에 투사되어 있다는 것으로, 나는 그러한 실존적

상황으로부터물러나서구경꾼처럼세상을바라볼수가없다. 메를로-뽕띠에있

어서가장큰위험은시각의이러한일면적상황을잊어버린파노라마적시선에

있다. 세상이 “내가마치신앞에선듯이내앞에펼쳐져있는것은아니다. 나

는특정한관점에서세상을사는것이다. 나는구경꾼이아니라세상에참여하는

사람이다. 특정한관점에참여한댓가로부분적이나마나는세상을지각할수가

있다”(PP 351/304). 이파노라마적인시선은레이저광선처럼세계를향해파고

들어서 세계의 비밀을 남김없이파헤쳐서 세계를 투명한 지식의 대상으로 삼으

려고하는, 가공하고조작해서이용할수있는대상으로만들려고하는과학자적

인시선이다. 무엇보다이것은자신이처한실존적상황을무시한다는점에서자

기 기만적이다. 몸으로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몸으로부터벗어난듯한, 또전지전능한신이아님에도불구하고자신이

절대적인신인듯한착각에빠져있는것이다. 더말할나위없이이러한절대적

시선은 시각과 앎의 구조적 조건과도 모순이 된다. “만일 (신과 마찬가지로) 내

가모든시간과모든공간에걸쳐있다면, 그것은내가어느시간에도어느공간

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PP 383/332).

그런데시각과관련해서제기되는절대적관찰자적시점의문제는단순하지

가않다. 상황과얽혀있는일면적정시임에도불구하고주체는끊임없이전체를

한꺼번에 총체적으로 조망하려는 성향을 지니는 것이다. 메를로-뽕띠가 기대고

있는훗설의현상학, 특히초기의현상학은환원을통해서현상의본질을한꺼번

에 직관하려는 본질직관(Wesenschau)의 철학이었다. 본질을 보기 위해서 훗설

은 주체의 이해관계 및감정에 휩싸인 감각적인 바라봄으로부터 멀찌감치 벗어

난현상학적바라봄(eidetic seeing)을강조하였다(Husserl 37, 35 절). 본질을직

관하기위해서는특수하며우발적인소여, 본질과무관한것을괄호안에집어넣

어야 하는 비지각적인 바라봄, 관점이 없는 관점이 요구되는 것이다. 비록메를

로-뽕띠는생활세계를밝히려했던훗설의후기철학에초점을맞추어서, 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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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눈과 보는 손: 메를로-뽕띠의 시선의 윤리학 39

훗설이 미처 생각치 못했던 현상학의 층위를 존재론적으로 파헤치면서 초기의

훗설이이미극복되고있음을보여주려하였지만(S 159-181), 메를로-뽕띠자신

도 시각 자체에 내재하는 전지적 성향의 위험을 절감하고 있었던 듯이 보인다.

바라보기 위해서 주체는 대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데, 그러면

서그는대상과그것을둘러싼풍경을한꺼번에관조하는듯한착각에빠져드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곳에 위치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곳에 즉각적으로 존재하

는듯한착각”(PP 365/316)을심어준다. 자신이지각의장으로부터벗어나전지

전능한 관점에 설 수 있다는 입장도 그러한 착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그러한착각이시각의한예외적인경우가아니라시각전체, 아니지

각전체를지배하고독점하려한다는사실에있다. 철학사적으로모든감각중에

서 시각이 가장 우월한 것으로 언제나 간주되어 왔었다. 심지어 피타고라스

(Pythagoras)는눈에서광선이나온다는입장을견지하고있었다. 시각의독주와

시각의 근원 망각도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듯이 보이는 것이다. 메를로-뽕띠는

그러한 망각이 위기의 모든 원인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시각에 상황성을 되돌려

놓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촉각과의 관계가 재검검되어야 했다.

촉각의 관점에서 시각의 장을 점검하기 전에 시각과 촉각의 차이를 간단히

살펴볼필요가있다. 한스요나스(Hans Jonas)가현상학적으로해명한시각의성

격에따르면, 시간의전개에따라서부분적으로만대상의일부를드러내는여타

감각과 달리, 시각은 한꺼번에 대상의 전모를 보여준다(507-08)는 점에서 총체

적이다. 자신이만지는대상이코끼리라는사실을깨닫기위해서장님은코로부

터시작해서꼬리까지손으로코끼리를만져야한다. 부분을만지는연속속에서

일정한시간이지나야만코끼리를궁극적으로식별할수가있는것이다. 반면에

한번 흘낏 순간적으로 쳐다보는 것으로도 금방 코끼리는 인식이 된다. “시각에

있어서, 우리는 다만 눈을뜨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세계가 한꺼번에우리에게

주어지는것이다”(512). 더구나한꺼번에시각적으로주어지는세계는무한성의

관념을인간에게심어주기도한다(519). 뿐만아니라우리는대상과접촉하지않

고서, 냉정한 객관적인 거리를유지하면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가 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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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김 종 갑

래서시각은총체적이면서동시에객관적이며본질적인지식을우리에게가져다

주는미덕을가진다. “‘물질’로부터 ‘형상’을, ‘존재’로부터 ‘본질’을분리할수있

다는 것이 추상화, 즉 자유로운 생각이 전제 조건”(515)이 되는 것이다. 어원적

으로도 이론은 시각(theoria, 보다)에서 기원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록

이러한 인식론적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촉각과비교할때시각은한가지단점을가진다. 대상에얽매이지않는자유로

운 생각을 보장하기 때문에 시각은 그것의 존재 유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다. 무지개와 신기루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시각이 기만당할―혹은 상상할―소

지가있는것이다. 그러나몸에직접닿는사물의저항성으로인해서대상의존

재를지각하는촉각은부재를존재로착각할염려가없다. 대상의실재에의해서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아야만 촉각이 일깨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촉각과 달리

보다능동적인시각―닿거나들려야혹은맡아야만지각하는촉각이나청각, 후

각과 달리 시각은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볼 수가 있다―은 보는 사람의 심리에

따라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또 있는 것으로 없는 것으로 가정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거리를전제로성립되는시각은모든것을한꺼번에객관적으로직

관하는 총체성과 능동성을 특징으로갖는 댓가로 실재와의 접촉성을 상실할 우

려가있지만, 접촉을통해이뤄지는촉각은비록부분적이며수동적이기는하지

만대상의실재에보다가까이닿아있다. 물론이와같이정리되는시각과촉각

의 차이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데아 II(Ideas pertaining to a Pure

Phenomenology and to a Phenomenological Philosophy, Second Book)에서훗

설도시각과촉각의차이를국소화된감각(lokalisierte Empfindungen)의관점에

서논의했던적이있다(151-69). 촉각에서는감각의부위가몸에국소적으로위

치하여있다. 그래서자극의대상과자극되는몸의부위사이에는일대일의상응

관계가 성립할 수가 있지만, 눈에 보이는 대상은 그러한 국소화된 감각 부위를

갖지 않는다. 신경생리학자라면 망막에 맺히는 이미지의 부위에서 그렇게 국소

화된감각의상응점을찾아낼수도있겠지만, 그럼에도보는주체는그것을신체

감각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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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눈과 보는 손: 메를로-뽕띠의 시선의 윤리학 41

도식화시키자면시각과촉각의차이는결국총체와부분, 능동과수동, 혹은

상상과실재의차이로수렴될수가있는데, 한스요나스에게시각은다른감각이

감히넘보지못하는고귀한가치와위엄을지닌다. 그러나관점을달리하면그

러한 위계가 쉽게 뒤짚어질수 있다. 어디까지나 시각의 장점은, 주체와대상을

분리시킴으로써지식의가능성을탐지하는인식론적인패러다임에매달려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서 본질 직관에 이르러 했던

훗설에게 세계의 존재 여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설령 세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세계에 대해서사유하고 있는 코기토의 확실성은 의심의 여지

가없을것이기때문이었다.10) 초점은실재하느냐아니냐의존재론적차원이아

니라참이냐거짓이냐하는인식론적이며지적인차원이었던것이다. 그런데, 앞

서언급했듯이메를로-뽕띠에게서중요한것은참과거짓이아니라실재하며지

각되는세계의문제로, 진위의문제는그러한세계의파생적결과에불과하였다.

주제화시켜서 진위를 따지기 이전에세계는 이미 실재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몸

에선술어적으로주어져있다. 이렇게실재의관점에서본다면촉각이시각보다

우선권을가지며, 시각은촉각에귀속되어야마땅하였다. 전체를전망하기위해

서시각의날개를달고서세계의지평으로부터멀리날아오를것이아니라, 부분

적지각으로머무를수밖에없더라도세계에지평으로부터발을떼지말아야하

는것이다. 전체가아니라부분, 거리가아니라접촉, 비상이아니라포복의낮은

자세가 요청되는 메를로-뽕띠에게는 시각보다는 촉각이 더욱 바람직한 지각의

패러다임이었다. 과학이대상으로부터벗어나서객관적으로그것의본질을파악

하려는시도로서정의가된다면, 철학은질문을하는철학자자신도질문의망으

로얽혀들면서계속해서제기하는일련의질문이라고메를로-뽕띠는생각하였다

(VI 27). “세계를검토하는대신에세계속으로뛰어들어야한다. 있는그대로의

세계를향해 발걸음을내디뎌야한다(VI 39).” 물론철학자가언제나 세계속에

10) 훗설에게자연,대상이있고없음이문제가되지않는다.그것의존재가아니라그것이주어지는의미와방식에관심을갖기때문이다. “자연이없는마음은생각할수가

있지만 마음이 없는 자연은 생각될 수가 없다” (Merleau-Ponty, S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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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김 종 갑

깊숙이파묻혀있지는않다. 언제나정치적사건의와중에서좌충우돌하던싸르

트르와달리메를로-뽕띠는혼자의고독한공간에칩거하며은둔하던편이었다.

그러나중요한것은물러선관조와반성적사유도그러한참여의일종이라는사

실이다. 이것은 촉각과 시각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가 있다.

높은상공으로비상하는파노라마적시선도땅에서몸을떼지않는촉각의일종

인 것이다.

물론 메를로-뽕띠는 시각과 촉각을 이분법적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그가 그

려놓은 지각의 현상학에서는 어떠한감각도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상보적인 공

감각적관계에놓여있다. 눈에뜨인책이삼차원적이라는사실을알기위해서는

시각적이미지를분석하는대신에다만손을뻗어서책을만져보는것으로충분

하다. 하지만시각의파노라마적인환상을경계하기위해서는그것이촉각과마

찬가지로지각의터에속해있다는사실, 그래서주체과객체의위계적이분법이

성립할수없다는사실이설명되어야했다. 메를로-뽕띠에게훗설의 “맞닿은손”

의 논의가 중요성을 갖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이다.11) 훗설은 살아서 움직이

며 스스로를 느끼는 몸(Leib)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서 맞닿은 손을 제시하였다.

죽어있는 사물과 달리 몸은 외부의 변화를 스스로 감득(empfinden)함으로써 자

기 자신도 느끼고 동시에 외계도 감지한다. 특히 맞닿은 손에는 외계의 감득과

자기자신의감득이동시에일어난다. 오른손으로왼손을만지면서우선나는

왼손을하나의사물처럼느낄수있다. 여타의부드럽고매끄러운대상과마찬

가지로왼손도부드럽고매끄럽게느껴지는것이다. 그런데한편으로만져지면

서도왼손은다른한편으로자신을만지는오른손의부드럽고매끄러운감촉을

동시에느낀다. 접촉되던대상이스스로도접촉을느끼는것이다. 그러면서대상

11) 가령 S 166, VI 9, 133, 255를참조할것.싸르트르도 존재와무에서훗설의이중감각을 논의하였지만,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Sartre, Being andNothingness, trans. Hazel Barnes (New York: Washington Squire, 1984), 402-403.또 이중감각에 대한 논의로 Donn Welton, “Soft, Smooth Hands: Husserl’s

Phenomenology of the Lived-Body,” The Body (New York: Blackwell, 1999),38-56을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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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눈과 보는 손: 메를로-뽕띠의 시선의 윤리학 43

은 “살아 있는 몸이 되어서 스스로 감득한다” (es wird Leib, es empfindet).12)

여기에만져지면서만지는동시에만지면서만져지는, 달리말해느끼는순간에

느껴지는이중감각의구조가발견된다. 훗설은바로이러한이중감각이살아있

는몸의특징이라고보았다. 한손과다른손이서로를만지면서만져지는이생

생한체험속에서몸은세계속에서세계와더불어자기를체험한다고생각했던

것이다. 스스로느끼고느껴지는양손의성격에미루어서쉽게짐작할수있겠

지만, 메를로-뽕띠에게 “만지는손”의현상학은능동적주체와수동적객체라는

해묵은 인식론적 대립이 해소되는 지점으로서 각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피상적

으로보면왼손과오른손은수동과능동, 주체와객체의관계인듯이보이기도

하지만, 양자는서로가서로의촉감을느끼며공유하는간주관적인관계로서, 책

이나책상을만질때와달리왼손은자신과무관한대상이나사물로서오른손

을느끼는것이아니라자신의존재의일부로서혹은연장으로서오른손을느낀

다. “지각하는 주체와 지각되는 대상의 일방적인 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며” “내

몸에서주체와객체의차이는희미”해지기때문에지각하는몸은 “주체-객체”(S

166-67)가된다. 여기서메를로-뽕띠가지각의중심을의식이아니라몸에돌리

고 있다는 사실은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만지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몸이

다” (PP 365/316). 이 몸이 지각의 장에 속해 있기 때문에 대상을 통일적으로

지각할수있음은두말할나위가없다. 국소적으로몸이감득되는동일한지각

의장에속해있어서왼손과오른손은서로를만지면서감촉하고지각할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촉각은자신이 지각의 장에서 벗어나 있으며, 어디에도속

하지않으면서모든것을볼수있다는시각적인착각에빠져들염려가없다(PP

365/316). 그러한착각은서로맞닿았던왼손과오른손이떨어져나오면서시

각의대상으로서만지각이될때시작이된다. 말하자면자신이지각의대상으로

부터떨어져있다는의식이시각적환상을비롯해서객관적사유의원인이되는

것이다.

12) 메를로-뽕띠는 훗설의 이 구절을 원문 그대로 인용하였다 (S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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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김 종 갑

그렇다면왼손과오른손이맞닿아있는접촉의연장선에서시각에대한논

의가이루어지는것이당연할것이다. “보이는대상은우리의눈에맞닿아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메를로-뽕띠

는 “궁극적으로 따지고 보면 시선”도 대상에 닿아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PP

363-364/315). 보기 위해서는 대상과의 접촉이 전제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 접촉은 단순한 거리의 원근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 “늘어나고줄어드는길이”의문제라기보다는주체와대상이서로를밀고

끌어당기는 “긴장 une tension”(PP 349/302)의문제이다. 본질적으로몸은초월

적이고 지향적이기 때문에 부단히자기 자신을 넘어서면서 세계를 향해서 가까

이다가서거나물러나는존재의리듬을가진다. 그래서몸과세계가서로접하면

서경계를이루는 “지향적인호 arc intentionnel”(PP 158/136)가그려지는것이

다. 대부분 시각의 장에서는이렇게 접하는 호의 부위가 지각되지 않는다. 그럼

에도때로, 대상에닿는감촉과마찬가지로빛이눈에부딪히듯이느껴지는경우

도있다. “강한빛”에쏘이면눈은대상을보는대신에눈자체의고통스러운감

각을느끼게된다(PP 364/315). 이때눈은능동적이지않다. 눈을열고서세계를

바라보려는 순간에 강한 빛의충격으로 그만 홍체가 급격하게 수축되면서 수동

적으로눈자체의나약함을느끼도록강요되는것이다. 정상적으로대상을바라

보는경우에눈은자신의몸된조건을느끼지못한다. 아니그러한조건을느끼

지않아야만제대로대상을볼수가있다. 빛은자신의존재를드러내지않은채

다만 세계를 밝혀놓고서 배경으로 멀리 사라져버리는데, 그러면서 눈은 자신이

시각의장의주인인듯한착각에빠질수가있다. 하지만빛의움직임이없으면

눈은 세계를 볼 수가 없다. 여기에서도 시각과 촉각의 유사성이 발견이 된다.

“손을 움직여야 대상을 만질 수가 있듯이 빛이 움직여야 대상을 볼 수가 있

다”(PP 365/315). 다만눈이시각적상황과빛의움직임에자동반사적으로적응

을하기때문에그것을느끼지못할따름이다. 가령눈의원리를적용해서만들

어진카메라는모든빛의상황에저절로적응하지못한다. 그래서일출이나일몰

의시각에찍혀진사진에는노란띠가둘러지게마련이며, 태양을등지고서찍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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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눈과 보는 손: 메를로-뽕띠의 시선의 윤리학 45

사진은검게변색되어버리고만다. 메를로-뽕띠에의하면우리는그냥대상을보

는 것이 아니라, 시각의 장 속에 위치해서, 무엇보다도 빛의 조건인 “조명

éclairage”에 따라서 대상을 본다. “빛과 색깔이 나타나는 특별한 양상”(PP

357/309), “빛 자체가 아니라 빛의 기능”(PP 358/310)으로 정의되는 조명이 시

야의길을열어놓는것이다. 이조명은사물은물론이고눈과도접하게되고, 그

렇게 접촉하면서 사물의 색깔이 나타나게 되는데, 조명과 더불어서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대상을 바라보면서도 눈은 자신이 그러한 조명에 닿아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경향이있다. 메를로-뽕띠가눈의자기망각적성향을일깨우기위해서

제기하는 예 중의 하나가 “눈의 광채 le reflect”로, 우리는 자신의 안구에 서린

빛의반사를느끼지못한다. 다른사람의눈을측면으로바라볼때에만가끔눈

빛이보일따름이다.13) 정면에서상대의얼굴을바라보면눈빛은어느새눈으로

바뀌는것이다. 중요한것은빛과눈이접하면서발하는눈빛이없으면눈은 “침

침해지면서 시각을 상실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스스로 보여지지는 않

지만 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PP 357/309). 사실 지각과는 다른 맥락

이기는하지만눈빛은눈의아름다움에대한묘사에서도매우중요한위치를차

지하였다. 노년에장님이되었던밀튼(Milton)은자신의눈이 “침침한구름이끼

지않은, 시력이좋은사람과마찬가지로맑으면서도밝게빛나는눈”을가지고

있다고자랑을하기도했는데(Giante 572에서재인용) 비록볼수가없음에도불

구하고 빛이 여전히 자신의눈을 사물의 세계로 초대한다고 생각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러한조명에대한논의에서메를로-뽕띠는조명의인도에따라서우리

가 비로소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하였다. “조명이 나의 시선을

인도하고내가대상을볼수있도록만들어준다. 그래서조명이이미대상을알

고있으며이미대상을보고있다고말할수가있다”(PP 358/310).14) 여기서보

13) 이 구절에서영어번역은원문의 “du coin de l’oeil”를 제대로살리지를못하였다.

incidentally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14) 하이데거도그러한조명의중요성을강조하였다.우리는환한빛속에서사물을지각하는데, 그러면서 “조명의소리없는빛에대해서는관심을기울이지않는다.”

Heidegger, Early Greek Thinking, eds. F. Capuzzi and D. Krell (New York: Har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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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김 종 갑

는 주체는 인간이라기보다 차라리 빛,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빛과 사물 사이에

놓인조명의길이다. 장님이다른사람의인도에따라서세계와교제하듯이눈이

성한사람도빛의인도에따라서세계와교제하는시각의장에서보는눈과보이

는세계의사이에는거리가아니라조명의손이놓여있다고할수있다. 바로이

러한이유로인해서나는대상을그냥바라보지않는다. 탄력적인긴장의장에서

나는 대상에 끌려가거나 대상으로부터 밀려나기도 하면서 바라보는 것이다. 메

를로-뽕띠가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의 색채 연구 결과를 활용하면서 제시한 설명

에 따르면, “빨강색과 노랑색은 외전abduction의 특징을, 파랑과 초록은 내전

adduction의특징을지닌다. 외전의경우에생명체는세계에의해유혹을당하며

자극원을 향해서 나아간다. 반면에 내전의 경우에 생명체는 자극원으로부터 등

을돌리고자신의내면으로물러난다”(PP 242/209). 보는사람이놓여있는시각

의 장에 인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바라봄이 있기 전에조명이 있으며, 조명의 인도에의해서만 봄이 가능하다

면, 시선은 절대로 시각의장을 장악할 수가 없다. 객관적이며 전지적이고파노

라마적인 시선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것은 이끌려지듯이 바라보임을 당한다.

보는것이즉보이는것이다. 여기서는 “누가보는가?”하는질문에대해시선의

주체를 설정하기가 어려워진다. 맞닿은 손에서 볼 수 있듯이, 능동이 수동이며

수동이능동이기때문이다. 능동과수동의구도를벗어나중간태적술어로말하

면 바라봄은 “선주체적”이며 “익명적”(PP 250/216)으로, 차라리 바라보는나를

통해서세계가 자기자신을보고있다고 말해야옳다. 메를로-뽕띠가 시각의수

수께끼라고부른것도그러한봄과보임의변증법이다. 나는바라보면서동시에

바라보이는 존재이다(PR 162). 시각의 장에 놓인 나무나 돌멩이와 마찬가지로

바라보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볼 수가 없다. 한꺼번에

보는듯이보이지만, 따지고보면시각도촉각과마찬가지로부분과부분을더듬

1975), 100. 하이데거적관점에서윤리적이면서신비로운시각에대한논의로David

Levin, The Opening ofVision: Nihilism and the Postmodern Situation (New York:Routledge, 1988)을 참조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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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눈과 보는 손: 메를로-뽕띠의 시선의 윤리학 47

어가면서, 말하자면왼쪽에서오른쪽으로혹은반대방향으로안구를움직이

고자세를바꾸면서본다. 수술을해서처음으로세계를볼수있게된장님의경

우에, 그러한시선의움직임이두드러지는데, 그는손으로사물을만지듯이눈으

로사물을만지려고한다(PP 257-258/222-23). 촉각이국지적인지각의장에속

해있듯이시각도마찬가지로국지적인장에속해있는것이다. 애초부터전지적

인 시선에 비판적이었던 메를로-뽕띠는 그러한 시선의 국지성을 한계나 구속이

아니라은총과신비로보았다. “지각의신비는내가사물을한자리에서하나씩

만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물은 드러나면서 서로를 숨기기 때문이다”(PR

180). 지각의장에서하나의사물은시각의대상으로드러나면서다른것들을숨

기게 마련인데, 그러한 은폐로 인해서 사물은 내면과 깊이를 갖는다. 남김없이

드러나지 않고 남김없이 보여지지않은 감춤과 비가시성 속에서 비로소 대상은

사물로서의 깊이와 두께를 간직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레이저광선적

시선이있다면, 그것은사물의깊이를남김없이탕진하려는, 그래서존재를내면

이없는껍질로변질시키는세계파괴적시선이될것이다. 그리고그시선의주

체가만일에인간이라면그는자신의발을디디고있는존재의터를허물어버리

는 셈이 될 것이다.

메를로-뽕띠가 세잔느에 철학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것도 시선의 몸 있음이

세잔느의그림에서각별히잘드러난다고생각했기때문이었다. 보는것에급급

한평범한사람들은시선의장이나, 보이지않는것이보이는것을가능케한다

는것을깨닫지못한다(PR 167). 세잔느는자신의몸을세계에내어줌으로서세

계의움직임에따라서그림을그렸다고한다. 말하자면화가는눈으로보는것이

아니라손으로본다. 시선의움직임과몸의움직임이세계와더불어서조화를이

루는것이다. 여기서보는것의주체는사물이며세계가된다. 메를로-뽕띠가인

용한마르샹(André Marchand)에따르면, “숲속에있으면내가숲을보는것이

아니라는것을자주느낀다... 나무가나를바라보고나에게말을건네고있다고

느끼는것이다”(PR 167). 화가는대상으로서세계를바라보는것이아니라세계

가자신을통해서바라보고생각하며표현하기를원한다. 이점에서화가는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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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김 종 갑

적으로현상학적이다. 철학적전통에의해서왜곡되지않은물자체로되돌아가

는것, 혹은 “현상이그자체로부터나타나는방식에따라서현상을그자체로서

보여지도록 하는 것”(Heidegger 7절)을 추구했던 훗설의 권유를 예술가가 선점

해서 실천을 하고 있는것이다. 예술가는 주관과 객관으로 분열되기 이전, 사유

의대상이되기이전의세계와의접촉을보여주려하는데, 특히세잔느는 ”대상

이처음출현해서우리의눈앞에서스스로를구성하는순간,“ "사물의요람이라

할 수 있는 현상의떨리는 출현”(SNS 28, 14, 18)의 순간, “우리 몸에서 사물이

은밀하게떨리면서 생성하는현장”(PR 167)을고스란히 포착하려하였다. 현상

으로서우리눈앞에나타나기이전에사물은화가가함께속해있는세계의피

륙으로부터융기해서조명과더불어시각적대상으로서모습을갖추게된다. 이

미 보여진 대상이란 그러한 사물의 생성 과정의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더구나

미술사의 전통에서 확인되는 바 시대마다 특정한 방식의 시각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그런 특정한 방식의 보여짐은 특정한 인습의 결과라고 할

수있었다. 이러한인습의두터운껍질을깨고서사물과대면하기위해서세잔느

는사물이대상으로서생성하는현장으로되돌아가야했다. 이생성하는현장에

서사물은공감각적으로체험된다. 단순히시각적으로보여질뿐아니라후각과

촉각, 청각, 운동감각까지도 동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잔느는 “대상의

깊이, 부드럽고매끄러우며단단한느낌, 심지어냄새까지도보려고하였다”. 그

의붓이 “공기, 빛, 대상, 구성, 특징, 윤곽, 스타일”을포함해야한다고생각했던

것이다(SNS 15). 물론이러한세잔느의시도는실패할수밖에없었다. 그림은어

디까지나그림이지실제자연이아니기때문이었다. 그래서그런불가능한시도

를안타깝게지켜보던친구들은그것을세잔느의자살행위라고까지명명하기도

하였지만, 메를로-뽕띠에게세잔느의시도는시선의본질에가장가까이접근하

는것이었다. 앞서설명했듯이, 본다는행위는거리저편으로사물을밀어놓고서

그것의후각적․촉각적영향권으로부터벗어나는것이아니다. 르네상스적원근

법은 대상과 화가 사이의거리를 기하학적으로 산정함으로써 대상을 형상과 윤

곽으로환원시킬수가있었다. 그러나세잔느에게거리는길거나짧은공간의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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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눈과 보는 손: 메를로-뽕띠의 시선의 윤리학 49

창과수축이아니라밀고잡아당기는긴장의장이었다. 이자장속에서 “본다는

것은멀리에서 (대상을) 소유하는것이다. 그림은이이상한소유를존재의모든

측면으로펼쳐놓는것이었다”(PR 166). 세계의품에안겨서손으로만지고쓰다

듬듯이 세잔느는 대상을 바라보려고 하였다. 그의 시선이 대상에 닿아있음으로

해서사물의맥박까지도함께느낄수있는것이었다. 이러한세잔느의시선에서

는 보는 주체와 보이는 객체의 이분법이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

III

지금까지우리는공감각적인지각의장과관련해서시각의상황을살펴보았

다. 그러한지각의장에속해있기때문에객관적이거나파노라마적이며총체적

이고신적인시선이근본적으로불가능하다. 세계속에서사물과만나는접점에

서지향적호를그리면서우리는국지적으로대상을볼수가있다. 보는나도보

이는사물의하나로서세계의살에속해있기때문에보는시선에는세계의애매

함이섞여있으며, 나는결코투명하게세상을볼수가없다. 투명하게대상이보

이지않는것은시선의한계가아니라존재의깊이를반영한다. 겉으로남김없이

드러나지 않는 내면과 깊이로인해서 사물은 스스로 은폐되는 비가시성을 간직

하는것이다. 이것은바라보는주체에대해서도마찬가지이다. 한편으로타인의

시선에노출되어있지만, 나는완벽하게보이지않는다. 가시성은비가시성의또

다른측면이라할수있는데, 가시성과비가시성은단순히시각으로한정되지않

는다. 그것은 존재의 드러남과 감춤의 변증법적 긴장의 표현으로, 시각은 그런

존재의움직임과궤를같이하고있다. 따라서보는행위는물러선관조의행위

가아니라존재에로의개방적참여를통해서이루어진다. 세잔느는자연을향해

자신을열어놓고그것의움직임에자신의손을내맡김으로써사물이현상으로서

생성하는순간을시각적으로포착하려하였다. 화가는눈으로만보는것이아니

라손으로, 온몸으로보는것이다. 여기서손은시각의촉각적성격을, 악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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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김 종 갑

손처럼공간을가로질러대상을잡아당기는접촉을가리킨다. 시각의장에서가

까움과멈의 정도는물리적으로측정될수가 없다. 특히메를로-뽕띠의 살의존

재론적 지평에서 보면,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도 똑같이 세계의 살의 일부를

형성하고있다. 멀리떨어진대상을보고있는듯이보이지만, 사실나는내자신

을 나르시즘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맞닿은손의예를통해서시각의촉각적성격을밝히려했던메를로-

뽕띠의시도가지나치게유토피아적이라는비판이있을수도있다. 한편으로보

는주체와보이는대상을크게벌려놓은거리의구도에서총체성을확보하는파

노라마적 시선의 환상을 드러내기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이 공유하는 지각의 장

이, 즉거리가아니라가까움이강조되어야했다. 주체와대상은서로손을뻗으

면닿을수있는지척에있어야하는것이다. 책이입체라는사실을파악하기위

해서지적인종합의과정을거칠필요가없는것도손을뻗어서만져보는것으로

충분하기때문이다. 메를로-뽕띠가주장하였던세계의자명성및지각의선재성

도 “나는 생각한다”는원거리사유가 아니라 “나는할 수있다”(PP 363/314)는

근거리행동공간에서유래한다. 이러한생활세계에서는다른감각들과더불어

서 시각과 촉각이 당연히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이런

공감각적지각의장은자그마한공동체사회, 구성원들이악수하는손처럼서로

를자신의일부로느끼는가족적공동체를전제로한다고할수있다. 그런데우

리가 살고 있는 거대 도시의 세계는 그런 소규모의 공동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더구나 시각중심주의의 문제가 불거지는 현재의 상황도 카메라나 영화와

같은 기술문명의 발달이 다른 감각을 희생하면서 시각을 지나치게 비대화시켜

놓은결과의반영이라할수있다.15) 비록메를로-뽕띠는영화가몸과마음의불

가분성을 보여준다는 이유에서 영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였지만, 반대로

보드리야르와같은이론가들은영화가지각의장에서벗어난시뮬라크라의세계

15) 관찰자의기술 (Technique of the Observer), 임동근외옮김 (문화과학사, 2001)이라는저서에서조나단크레리(Jonathan Crary)는카메라의발달이눈의불완전성을

드러내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카메라가 보는 것을 눈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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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눈과 보는 손: 메를로-뽕띠의 시선의 윤리학 51

로관객을인도한다는사실에주목하였다. 적어도영상문화에서는눈의독재와

눈의질주를막을수가없는듯이보인다. 이러한현재의상황을염두에두면메

를로-뽕띠의시각관은지나치게목가적으로보일수도있다. 가령세계의실재성

에관한다음과같은설명들이그러하다. “100미터앞에있는대상은바로앞에

있는대상에비해서훨씬덜실재적(réel)이고훨씬덜현존적(présent)이다” (PP

348/302). “눈으로보고손으로만져보기전에, 내몸이그것과일치되기전에는

사물이란 하나의 모호한 유혹 (une sollicitation vague)에 불과하다” (PP

248/214). 여기서한발자국더나아가감각의통일성을본질주의적으로암시하

는대목도간혹발견된다. “우리의지각이분열되기이전에세계는참이였다. 세

계는 정말로 존재하였다”(PR 6). 이와 같은 몇몇 대목에서 타락 이전의 낙원을

그리워하는듯한어조가부분적으로배어나옴에도불구하고메를로-뽕띠는결코

본질주의로빠지거나소규모의공동체적유토피아를심각하게고려한적이없었

다. 사르트르와마찬가지로그에게인간은본질이아니라실존이었으며, 상황에

처한 존재로서 인간은 무엇보다도 역사적인 존재였다. 이미 생래적으로 주어진

확고부동의 소여로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세계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가변하고그러면서세계를변화시킨다. 차가운오른손과접촉하는왼손

이 만지면서 스스로도 차가워지는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와 인간은 서로 변하면

서변화시키는생성의과정에있다. 이것은시각에대해서도마찬가지이다. 본질

적으로올바른시각이나올바른시선이란없다. 때와얼룩이낀눈에서때와얼

룩을 걷어내고서 본래적인 시각을 회복해야 한다는 본질로의 회귀를 메를로-뽕

띠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 아이의 관계에 대한 고찰(PR 96-155)을 비

롯해서 수술 후에 시각의 회복한 장님의 예를 살피면서 그가 내놓았던 결론은

반본질론적이었다.16) 인간은 생득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타인과

16) 이점에서메를로-뽕띠의철학을소박한실재론으로규정했던Gurwitsch의비판은

설득력이없다. Aron Gurwitsch, The Field of Consciousness (Pittsburgh: DuquesneUP, 1964), 299를참조하기바람.또다른맥락이기는하지만, 메를로-뽕띠를근본적으로남성중심주의자라고비판했던 Judith Butler의 관점도타당하지않다. “Sexual

Ideology and Phenomenological Description: A Feminist Critique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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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김 종 갑

의관계를통해서보는것을배운다. 망막의황반부에저절로초점이맺히는것

은 아니다. 눈동자를 움직여서 초점이 맺히도록 해야 하는 “시선의 노동”(PR

168)이있어야하는것이다. 그렇지않고눈이풀려버리면정신분열증환자의경

우처럼환상이보일수가있다. 처음으로눈을뜨게된맹인도 “‘보는것이무엇

인지’를배워야한다. 손이아니라시선을시선으로서대상으로향하고조절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PP 258/223). 우리가 메를로-뽕띠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

은, 보는 것은 배우는것이라는 등식을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순간에, 시각에대

한 질문이 봇물이 터지듯이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본질론적이거나 결정론

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시선은 이미 정해진 궤도를 따라서 조만간 이미 정해진

목표에다다르게마련이며, 이론가는시각의지형도를떠서보여주기만하면될

것이었다. 그러나 반본질론자인 메를로-뽕띠로서는 당연하겠지만 그는 그러한

지형도를가지고있지않았기때문에그가할수있는최선의작업은그러한시

각의지도가형성되고작성되는과정을추적하는일, 지각의장에서사물이시각

적으로출현하는현장을포착하는일이었다. 그가조명의역할을강조했던이유

도거기에있었다. 우리는그냥보는것이아니라조명의인도에따라서세계를

바라본다. 이러저러한방식으로세계를바라보도록이미어느정도예정되어있

는것이다. 비록메를로-뽕띠가발전시키지는않았지만, 조명의문제는시각문화

의비판적인이해에있어서하나의중요한이정표가된다. 화랑이나영화를관람

하는극장에서볼수있듯이조명은언제나효과의극대화를노리면서조작되는

데, 그렇게조작된조명의인도에따라서보는행위가이루어지는것이다.17) 시

각의주체보다먼저빛이대상을보고알고있으며그러한빛의손길에따라서만

우리가대상을볼수있다면, 우리의시선은푸코적인의미에서패놉티콘적인조

명조작자의통제와간섭에서결코벗어날수가없다. 더구나빨강과파랑의예

Merleau-Ponty’s Phenomenology of Perception," The Thinking Muse: Feminism andModern French Philosophy. eds. Jeffner Allen and Iris Young (Bloomington:Indiana UP, 1989), 85-100를 참조하기 바람.

17) The Four Fundamental Concepts of Psycho-Analysis, trans. Alan Sheridan (NewYork: Penguin, 1977)에서 라캉이이주제를응시이론으로발전시켰다 (6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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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눈과 보는 손: 메를로-뽕띠의 시선의 윤리학 53

에서 볼 수 있듯이 지각의 장에서 시선이 내향과 외향의 움직임을 동반한다는

사실을염두에두면, 조명의역할은더욱커다란중요성을띄게된다. 나는대상

을 바라볼 뿐 아니라 쥐어흔드는 조명의 손에 의해서 대상에 끌려가기도 하고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 공감각적인 지각의 장에서 우리는 저편으로 물

러서서태연한관찰자가될수가없다. 세잔느가자신의몸을자연에내맡김으로

써 그림을 그릴 수가 있었듯이 우리도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볼 수가 있는 것이

다. 세잔느와메를로-뽕띠에게분명축복이었던이러한시선의신비―보는 “나”

가보여지는 “나”가되는, 그럼으로써가시성과비가시성이얽히는세계의살이

되는―는그러나우리에게는저주가될수도있다. 시각적인대중문화가조명을

조작함으로써 지각의 장에서 우리를 그것의 일부로 포획해버리고, 대중문화가

나를통해서스스로를나르시즘적으로바라보며향유할수가있기때문이다. 메

를로-뽕띠가 그려서 보여주었던 지각의 선재성은 동시에 지각의 위험이며 모험

이기도한것이다. 그러나우리에게그러한지각의장에서발을뺄수있는선택

의 여지는 없다. 세잔느는 삶이 무시무시한 것이라고 하였다. 메를로-뽕띠는 조

명이조작으로바뀌는암울한상황을직접적으로보여주지는않았지만, 그가공

들여서추적했던세잔느의실험이그러한상황에대한그자신의간접적인발언

이었다. 세잔느는 과거의 원근법적이었거나 당시의 인상파적인 기법에 따라서

사물을바라보며그림을그릴수가있었겠지만, 그는그러한조명속에서나타나

는 결과로서의 현상이 아니라그 자체로서 생성하는 현상으로 돌아가려는 불가

능한시도를선택하였다. 그러면서그가만났던것은현상의배후에있는사물의

본질이아니라현상이꿈틀하며생성하는지각의장이었다. 그는시선이세계와

접촉하면서사물이현상으로생성하는모습을화폭에담고자하였던것이다. 메

를로-뽕띠가세잔느에게매료되었던것은우연한일이아니었다. 세잔느의회화

적작업에서그는자신이말하고자했던지각의현상학과존재론이고스란히실

천되는현장을목격하였던것이다. 메를로-뽕띠의철학이문학과문화의연구자

에게값진의미를갖는것은바로그러한메를로-뽕띠―세잔느의계보, 혹은세

잔느―메를로-뽕띠의계보의연장선이다. 문학을비롯한문화텍스트에서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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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평 및 지각의장에서 시각적으로 생성하며 융기하는 현상의 모습들을

드러낼수가있는것이다. 이러한과정에서우리는메를로-뽕띠가물었던일련의

질문들은계속해서새롭게되물어져야한다. 시각의장이어떻게형성이되는가?

조명이란 무엇인가? 과연 누가 보는가? 결국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는 것을

어떻게 배울 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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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ching Eyes and Seeing Hands:Merleau-Ponty’s Ethics of Vision

Abstract Kim, Jonggab

Certain themes connected with visual culture, such as simulacrum, gaze, and mirror stage, have become staples of cultural and literary studies. To those critics of ocularcentrism, to see is to know and then to have power over, thus the seen object is transformed into a standing reserve of domination by the seer. But what is overlooked and remains a blind spot in their studies is the fact that the seer cannot see unless he/she is in the same field of perception with those seen. The seer can never leave that field of perception, where vision, primarily along with touch, is part of synesthesia. In the seeing horizon of distance is presupposed the nearness of touching. This paper is a phenomenological attempt to approach the visual from the tactile perspective, based on Merleau-Ponty’s phenomenology of perception. According to him, the Cartesian vision, the target of antiocularcentristic discourse, is the vision severed away from its tactile ground, floating high as if it saw with God's eyes, being oblivious of its own origin. Through the dialect of “touching hands” Merleau-Ponty wanted to put vision back to the field of perception, the sensing-sensible flesh of the world at which touching is touched, and seeing is seen. However, this touching aspect of seeing, or the reciprocity of seeing and the seen, though deserving serious theoretical attention not only in Merleau-Ponty studies but visual culture studies as well, has been ignored. Such history of ignorance explains and justifies the raison d’etre of this paper.

Key Words

Merleau-Ponty, visual culture, sense, vision, touch, perception, world, lighting, bo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