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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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평화로운 세상올바른 믿음의 교회 고난함께는 분단의 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권을 회복하려는 신앙인의 바람을 담았습니다. 2014년 7 / 8월 소식지 청소년평화캠프 ⓒ한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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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호

평화로운 세상•올바른 믿음의 교회

고난함께는 분단의 벽을 허물고하나님의 형상인 인권을 회복하려는

신앙인의 바람을 담았습니다.

2014년 7 / 8월 소식지

청소년평화캠프 ⓒ한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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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공기에는 정치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

지난 6월과 7월, 5권의 책과 씨름했습니다. 3권은 다 읽었고 2권은 독서중입니다. 아직 읽고

있는 책은 치워두고, 완독한 3권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뜬금없이 독후감?’ 하시겠지만, 심사가

복잡할 때는 책읽기가 최고입니다.

먼저 우리에게는 『배제와 포용』으로 유명한 크로아티아 출신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의 『광장

에 선 기독교』 (원제 “A Public Faith”)입니다. 우리 시대 광장이 민심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공론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던 차에 시의적절한 제목입니다. 미로슬라브는 오늘처럼 다원화한 세

계에서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모색합니다. 이를 위해 그동안 표층

적 수준에 머물렀던 ‘신앙의 기능장애’를 극복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공적 영역에서 그리스도인

으로서 발언하고 행동할 것을 제안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신앙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신념 혹은 타종교인과 어떤 식으로 협력할 수 있을까?’가 『광장에 선 기독교』의 문제의식입

니다.

두 번째도 역시 신학 책입니다. 브라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공부하고, 현재 브라질 감리교신

학대학 대학원에서 교수하고 있는 해방신학자 성정모의 『욕구와 시장, 그리고 신학』입니다. 이

책은 현재 절판이라 도서관에서 어렵게 구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거의 유일무이한 ‘규범적’ 경

제질서로 자리 잡은 지난 40여 년, 세상은 1%의 소수를 위하여 99%의 희생을 강요하는 야만적

질서로 재편되었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저항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는 흔

들릴지언정 아직은 요지부동입니다. 성 교수는 본서에서 그리스도교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결탁

을 폭로하는 한편 신자유주의 논리 안에 내재한 신학적 문법을 독해합니다. 박상언의 용어에 따

르면, ‘영성의 자본화’(그리스도교의 자본주의화)를 넘어 ‘자본의 영성화’(자본주의의 우상화)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장은 전지전능한 ‘神’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마지막 책은 영국의 유명한 지리학자이자 좌파학자인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로, 하비

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문학자 20인 가운데 1인입니다. “도시는 본래 잉여생산물이

사회적, 지리적으로 집적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도시화는 언제나 일종의 계급현상

이었다. 잉여가 어디서, 누구에게서 추출되건 그것을 사용할 권한은 소수의 손아귀 안에 있었기

정명성 목사 | 팔미교회

사무실에서

진광수 목사 |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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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014년 7•8월호

때문”입니다(28쪽). 그러나 하비는 도시를 더 이상 자본가의 잉여가치 생산과 공급 및 소비의

공간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도시를 탐욕스런 자본주의에 맞선 정치활동과 저

항의 장소로 만들 권리로써 ‘도시권’을 요청합니다. 따라서 그에게 2011년 월스트리트 점령운동

은 대표적 도시권 행사 투쟁입니다. 특별히 도시의 권리를 요구하는 싸움에서 기존의 공장노동

자(프롤레타리아트) 대신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자 같은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를 가리키는 프

리캐리아트(Precariat)의 존재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는 대목은 흥미롭습니다.

‘도시의 공기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치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203쪽)

고난신학 월례포럼8월, 9월

효도나들이<모시고>9월 22-23일강화도 여행

25주년기념홈커밍데이 및평화산책 창단연주회12월 15일(월)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 새벽송12월 24-25일

고난신학 심포지엄&

평화교회연구소창립기념식10월

통일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시고강화도의 가을향기를만나러 갑니다.

예배공동체 고함

10월6일-12월15일

(격주)

10월6일 고함예배는제주강정마을에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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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고난함께' F/W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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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평화캠프에 다녀와서 느낀 점이 참 많습니다. 지인을 통해 이 캠프를 알게 되었고 올해 처

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걱정이 많았습니다. 집이 청주이다 보니 서울로 올라가는 것도 그렇고,

또 감리교 연수원이라는 낯선 곳에 가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 아는 사람

이라곤 저에게 이 캠프를 추천해 준 전도사님뿐이고 같이 가는 친구들도 없어서 더 걱정스러웠습니

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 전도사님이 계시는 교회에 합류했습니다. 다행히도 연수원

에 가는 동안 그 교회 친구, 동생들과 많이 친해졌습니다.

헌데 도착한 뒤 바로 시작된 프로그램에서 또다시 교회별로 모여 갈라지고 저 혼자 남게 된 것

입니다. 그러고는 또 걱정을 했죠. ‘내가 과연 여기서 잘 할 수 있을까?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공동체 게임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단순한 게임이

었는데도 참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게임을 하면서 선생님, 친구들과 많이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바로 우리 캠프의 하이라이트인 ‘셀프메이드’ 작업을 하기 위한 조를 나누었습니다. 음

악, 공방, 미술, 풍물, 글방 등등 여러 셀프메이드 집(이 캠프에서는 ‘조’를 ‘집’으로 부르더라고요.) 중

에서 내가 원하는 곳에 들어가기 위한 입주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꼭 그 곳에 들

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저는 원하던 대로 ‘유어마이아워 송’이라는 음악창작 집에 들어가 활동하

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 친구들과 섞여서 구성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참 어색했습니다. 저도 낯설

어서 계속 조용히 지내다가 몇몇 형들이 말을 꺼내면서 우리의 분위기는 점점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첫날부터 많이 친해질 수 있었어요.

서로 조금 더 친해지고 나서 저녁도 함께 먹고, 밤에는 말씀집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

지와는 다른 편안한 집회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설교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편안한 마음으로 집회를 하고, 그렇게 첫날밤은 지나갔습니다.

둘째날이 되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기도회로 하루를 시작하고 셀프메이드 집 식구들과 함께 아

침을 먹고 바로 셀프메이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역시 우리 집은 친목이 제일 중요하다며 친목을 다

집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놀았던 것은 아니지만 내심 저는 불안했습니다. 우리는 음악을 만들어야 하

는데, 이렇게 지내다가 제대로 작곡, 작사를 할 수는 있는지 불안하더라고요. 놀면서 가사를 만들고

또 놀면서 피아노로 음을 만들고... 그러다가 저는 피곤해서 잠깐 잠들었다 깨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그새 그럴듯한 곡과 1절 가사를 만들었더군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죠. 1시간 정도 사이에 기본적인

음악이 완성되어서 저는 선생님께 기타 코드를 배워 베이스 기타를 치기로 했습니다.

신중현 | 청주좋은교회

2014년 청소년 평화캠프 후기

"평화캠프를 추천합니다!"

고난함께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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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8월호 5

셀프메이드 작업 중간에 마을장터가 열렸습니다. 마을장터는 각 집에서 만들어 낸 창작물을 맛

보기로 보여주며 서로에게 선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음악 팀은 두 팀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어쿠스틱 음악과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EDM)), 먼저 EDM팀이 자신들이 만든 랩과 음악을 선보였습

니다. 마치 국어책을 읽는 듯한 신개념 랩으로 모두에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공방팀은 자신들이 만든

팔찌를 보여주고 게임을 통해 다른 집 친구들에게 선물을 해주었습니다. 영화팀과 다큐팀은 본인들이

만들 영화와 다큐 제작발표회를 했고요.

한참 웃으며 서로의 창작물을 나눈 다음에 이어진 야외 프로그램!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물놀이

가 시작되었습니다. 야외 프로그램은 셀프메이드 집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시 조를 짜서 이루

어졌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잘 모르고 친하지 않았던 다른 팀 사람들과도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습니

다. 우리 조는 워낙 단합이 잘 되어 결국 1등을 했지요~ 1등 상품인 막대사탕을 나누어 먹으며 쉬고,

또 셀프메이드 작업을 하다가, <천천한 티타임>이라는 성서 묵상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집회는 첫날 저녁과는 달리 콘서트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강사 목사님께서 유럽을 다

니면서 느낀 점을 나누면서 직접 만든 음악을 기타로 치며 불러주셨습니다. 생각보다 지루하거나 따

분하지 않았고 멋진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꿈을 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마을 축제’가 펼쳐졌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준비하고 만든 것을 모두 보여주

고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셀프메이드 집에서 준비한 연극, 영화, 다큐를 보고, 신나는 풍물 소

리에 감탄하기도 하고, 글방에서 만든 캘리그라피 작품도 감상하고, 사진 팀이 찍은 사진도 보고, 미

술팀이 제작한 ‘평화마을 지도’도 보았습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우리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을 멋지

게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일정만 보면 직접적으로 평화와 관련이 없는 듯 보이지만, 친구들과의 관계

에서 싸움과 다툼이 없이 평화롭게 지내도록 선생님들께서 노력해주시고, <마을 공동회의>라는 것을

통해 우리가 직접 우리의 캠프를 돌아보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등, 평화로운 분위

기의 캠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평화는 ‘전쟁이 없어지는 것’뿐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작게라도 나타나는 것임을 느꼈습니다. 사회에서 작게나마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 하나님을 사

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면, 그 이웃과의 관계에서 평화가 온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캠프에서 선생

님들이 하셨던 것처럼 저도 교회 안이나 학교에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나로부터 평화가 시작되게 하

려고 합니다.

이곳에 모인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2박 3일을 함께 지내는 동안 정말 많이 친해지고

편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SNS로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있고, 내년에

도 만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평화캠프는 제가 지금까지 만났던 캠프 중에서 제일 자유롭

고 좋았던 캠프였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편하게 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

들을 배울 수 있고 저와 같은 청소년들을 회복시키고 일으키기에 가장 적합한 캠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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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학생들을 평화캠프에 등록하고 나서 캠프 주최측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

다. 최근 연일 뉴스로 보도되고 있는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교전(이라고 쓰고 학살이라고

읽는다)에 관한 부스를 마련했으면 좋겠는데 그것을 맡아 준비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평

화캠프에는 처음 참석하는 것이고, 솔직히 저에게도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망설였

지만, 친구의 부탁에 돕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뉴스에서 많이 들어서 익숙한 이슈라고 생각했

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내가 그동안 무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준비하는 과정이 저

에게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캠프가 시작되고 2박 3일 동안 때로는 인솔교사의 입장에서, 때로는 준스탭(?)의 입장에

서 다각도로 온몸으로 느껴보려 했습니다. 우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

나 집을 이루고, 그 집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룬다는 컨셉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조

장들 중에 학생대표로 이장을 뽑고, 이장은 매일 저녁 마을회의를 진행한다는 것도 매우 재

미있었구요. 그러다 전체 학생들이 참여한 마을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 캠프에 정말로 반

영되는 것을 보면서 ‘이곳, 정말 평화로운 캠프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리다고, 비효율

적이라고, 계획과 다르다고 무시되지 않고 결정의 주체로 인정받은 아이들도 무언가 느끼지

않았을까요?

사실 ‘평화’라는 단어가 저에겐 매우 낯선 단어입니다. 몇 마디 말로 정의내리기 힘든, 너

무나 막연한 단어 같았습니다. 캠프가 진행되는 동안 ‘평화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내

리기 위해 생각을 틈틈이 해 보았습니다. 둘째 날 저녁 즈음 다큐동 친구들로부터 인터뷰 제

의를 받고나선 좀 더 그 숙제에 탄력을 받았던 것 같구요.

심진보 목사 | 고향교회

고난함께 들여다보기

2014년 청소년 평화캠프 후기

평화캠프의 여운을 우리의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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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8월호 7

저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예수님도 우리

를 너무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가 저의

요즘 주된 관심입니다. 그런데 캠프를 지내는 동안 평화와 사랑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평화이시고, 평화를 주기를 원하시고, 이미 평화가 있음에도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누리지 못할 뿐이라는 점과 그렇지만 평화는 희생 없이는 주어지지 않기 때

문에 평화를 위해 누군가는 행동해야 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 사랑과 많이 닮았다고 생

각했습니다. 평화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희생의 열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만큼 평화로운 것은 과거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 덕분이

잖아요. 그리고 나의 평화와 우리 후손들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그들처럼 희생하고 행동해

야 하구요. 10대 청소년이 탱크를 향해 돌을 던지는 무모한 행동이 팔레스타인의 민중항쟁인

인티파다의 대표되는 이미지입니다. 팔레스타인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이들은 자신

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누군가 행동하지 않으면, 누군가 희생하지 않으면 평

화는 없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요. 평화캠프가 저에겐 평화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예배란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의 삶으로 평가되어져야 한다고 하죠? 평화캠프에서

우리가 어떤 예배를 드렸는지는 스탭과 학생 모두의 삶으로 평가되겠지요? 저에게도 평화캠

프의 여운이 지속적으로 남아 삶으로 그 진가가 드러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평화가 필요한

곳에 제가 가고, 평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지어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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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평/화/캠/프 One-Piec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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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8월호 9

고난함께 들여다보기

처음이었다. 면회라고는 군대에 있을 때 면회 해본 것과 얼마 전 입대한 형에게 면회 간 게 전부다.

양심수 선생님의 일은 간사님께 전해들은 게 전부라 단순히 억울하게 자유를 억압당한 사람의 고통을

나누고 직접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있던 차에 오전 8시에 ‘고난함께’ 사무실 앞에서 모인 후 스타렉스

차량을 타고 곧 바로 안동으로 내려갔다. 밖의 날씨는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좋은 일로 가는 거

지만 한편으로 ‘밖’의 햇살은 떠나는 우리가 감당하기 미안할 정도였다. 그래도 이왕 가는 길이니 여행

가는 기분으로 안동으로 내려갔다.

3시간 정도를 달려 안동에 도착했다. 교도소에는 은행접수대처럼 생긴 민원실이 있었고 그곳에서

신분증과 휴대폰을 맡기고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면회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선생님은 이경원 선

생님이었다. 처음 면회한다는 생각과 듣기로만 했던 분을 낯선 장소에서 만난다는 생각에 살짝 긴장

이 되기 시작했다.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그러다 내가 너무 가식적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많이 힘드시죠?”라는 말을 꺼내도 되는지 그게 과연 위로가 될지 등등... 복

잡한 생각이 들었다. 막상 접견실에 들어가 보니 선풍기가 고장 나서 후덥지근하고 비좁았다. 이경원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고 투명한 유리로 가로막혀져 있는 공간에서 오로지 작은 스피커로만 음성을

전달하고 들을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스피커에는 면회를 할 수 있는 시간인 18분이 카운트 다운되

고 있었다. 3시간 넘게 달려 왔는데 고작 18분이라니. 덥고 비좁은 공간에 적은 면회시간에 먼저 짜증

이 나고 말았다. 평소 편지를 주고받으시던 박준수 간사님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걸었다. 대화 도중 알

게 된 새로운 사실은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교도소에 들어온 이른바 ‘사상범’은 독방을 쓰고 샤워도 혼자

하는 등 모든 게 철저하게 분리된 생활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그것을 소

통할 상대가 없다보니 스스로 삶을 규칙적으로 정립하신 부분이 있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몇 시엔 무

엇을 하고 이런 것들을 혼자서 하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대화도중 선생님이 말을 너무 오랜만에 한다

면서 목이 조금 아프다고 하셨다. 그래 봤자 18분이었다. 얼마나 목을 사용안하셨으면 18분 동안 대화

하는 것이 힘들었을까... 사상범이라고 해서 그렇게 특별히 관리하고 고통을 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렇게 짧은 면회시간이 지났다. 18분은 너무나 짧았다. 마지막에 선생님께서 다시 들어가실 때 아쉬

움이 얼굴표정에서 드러났고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의 얼굴에도 아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

다음은 대구교도소로 향했다. 이경원 선생님께서 대구교도소 사정이 안 좋다고 언뜻 일러주어서 무

슨 차이가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었다. 대구교도소는 안동교도소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면회를

‘매듭 풀기’박현준 |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양심수 선생님 면회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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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훨씬 많았다. 이번에 만나볼 분은 정경학 선생님이다. 정경학 선생님은 북한

에서 직파된 간첩이었고 원전과 레이더기지, 군부대를 촬영한 혐의로 20년 형이 구형됐다. 안동교도소

와 마찬가지의 절차를 거치고 몇 십 분을 기다린 후에 정경학 선생님을 뵐 수 있었다. 그런데 대구교도

소는 면회시간이 8분이었다. 채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 역시 야속하게 느껴졌다. 역시 비좁은 접견

실로 들어가자 정경학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이번에 뒤에 교정관도 함께 동석한 채로 있었다.

이경원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정경학 선생의 첫 모습은 좋은 인상과 차분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사회에

서 철저히 분리되어 ‘안’에서 절제되고 통제된 생활을 하셔서 그런지 오히려 평안한 느낌이었다. 무언

가를 초월한 역설적인 평안함이었다. 역설적인 평안함, 내가 느낀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나는 군대에서 흔히 하는 정신교육을 많이 받았다. 최전방 부대라서 그런지 매주 한번은 정신교육

을 했고 또 그것을 측정하여 포상휴가를 주는 제도도 있었다. 특히 대선 전에 갑자기 특별정신교육을

받았는데 거기서 기억이 나는 것은 종북세력에 관한 것이었다. 아직도 한국(남한)에는 북한을 추종하

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 있고 그것에 항상 대비해야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렀다. 보이지 않는 어떤 단체

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하고 간첩 하면 키 작은 사람들이 나와서 칼을 던지는 영상을 틀어주었다. 무섭

고 불편한 진실이었다. 실체가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그 당시 나에게 공포감과 거부감은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왠지 모르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그냥 싫어하

기만 하면 되니까, 복잡하지 않게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건 역설적 평안함이었다.

사실 후기를 쓸 때 생각이 너무나 복잡했다. 그동안 쌓아온 나의 평안이 무너졌었다. 그래서 후기를

쓰기까지 3주가 넘게 걸렸고 그동안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나는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북한의 현

실이 싫다. 그런데 반공을 내세우며 체제를 안정시키고 반공이 하나의 위협의 도구가 되는 현실은 더

욱더 싫다. 독재시절, 정권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는 죄로 몰아 아무도 모르게

끌고 가고 그들을 거꾸로 매단 채 폭력을 사용하던 방법이 현재는 종북세력으로 바뀌었다. 서로를 불

신하고 화합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런

마음 때문에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이 두 생각을 그냥 매듭지었던 것이다.

매듭을 힘겹게 풀면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싫다고 해서 소위 국보법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

하는 게 과연 맞을까? 그것도 정권에 따라 형량이 변화하는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면서 이건 양심의 자

유든 사상의 자유든 간에 복잡한 법적인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그

런데 내가 지금까지 받아온 이른바 ‘정신교육’은 다양성을 미리 차단하고 그들이 유도하는 방법으로 생

각의 매듭을 맺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매듭을 혼자 풀고 다시 이어 나가는 게 힘들었다. 너무나 복잡

하고 단단하게 얽혀있는 이 매듭을 푸는데 3주나 걸렸다. 이번 교도소 면회를 통해 이런 매듭이 아직

까지 내안에 많이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의 매듭을 스스로 풀게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교도소 면회와 같이 매듭을 하나씩 발견하고 풀 수 있는 시간을 더 많

이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Page 11: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2014년 7•8월호 11

고난함께 들여다보기

평 화 의 산 책 과 동 행

이인옥 | 평화산책

첫 공연은 ‘고함예배’였다.

퇴근 후 정신없이 도착한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생각할 틈도 없이 연습을 했다. 더군다나 첫 번

째 공연이라고 생각하니 머릿 속에는 실수 없이 잘 해야지 하는 생각만 가득 담고 있었다. 예배를 시작

하면서 이곳에 내가 있는 이유가 노래를 부르기 위함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기 위함임을 깨닫고 예배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고난’이라는 단어에 집중을 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고난, 우리에게 주신 이 고난. 신이 계신다면 이런 일이 나에게 또 우리에게 일

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일들이 있었다. 설교의 주제였던 ‘공평하지 않으신 하나님, 편파적인 하나

님’ 이런 생각을 나 또한 했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한 자, 아픈 자,

고난 받는 자들이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답을 해 주셨나?

말씀을 듣다가 깨달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사랑하셔서 모든 상황에서 공

평하게 움직이신다는 것이다. 모세가 애굽 땅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애굽의 왕 바로도

사랑하셔서 바로를 치시고 안타까워하시지 않으셨을까? 우리 모두를 사랑하니까.

함께 호흡하며 은혜롭게 찬양을 마치고 예배를 마치면서 굳었던 무엇인가가 풀린 듯한 느낌이 들

었다. 발걸음의 무게도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이 자리를 빌려 그 공간 안의 모든 분들께 반가웠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 살다가 ‘시민합창단 평화산

책’에 들어오는 작은 일탈을 결심하기까지 여러 날의 고민을

했다. ‘평화산책’을 처음 가기로 한날이 4월 17일, 세월호참사

가 일어난 다음 날이었다. 지금 내가 이러는 게 맞는 것인지

숨 쉬고 밥을 먹고 편안히 누워 자는 것도 미안하고 마치 내

아이가 그곳에 있는 것 같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약

속한 날을 한 주 더 미뤄서 ‘평화산책’과 함께 하게 되었다.

설렘과 두려움을 같이 안고 시작하게 된 ‘평화산책’. 길지 않은 시간동안 두 번의 외출이 있었다. 사

실 자신이 없어서 다음부터 공연에 참석하면 안 되겠냐고 하고 싶었으나 우리의 분위기가 나의 그런

생각을 그냥 혼자만 생각하는 걸로 마무리 짓게 만들었고 함께 하는 합창이기에 두려움을 걷어내고 참

석 하게 되었다.

Page 12: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151호12

두 번째 공연은 ‘중랑구 노인 요양원’에서 있었다. 두 번째임에도 더욱 떨리는 공연이었다. 단원들

을 만나고 식사를 하고 연습할 때까지는 작은 떨림이었는데 우리가 온전히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사

실을 알고 떨림이 더 커졌다. 그 떨림은 어르신들을 보는 순간에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절대 웃지 않을 거야!" 라고 각오를 하고 오신 듯 힘드신 얼굴들... 안타깝고 가슴 아

프고, 이 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온 순간 한 할머님께서 먼저 말을 걸어 주셨

다. 아들이 온다고 하시면서 웃는 얼굴로 말씀 하시는데 순간 울컥했다. 기다리셨구나, 그러다 안 오면

지치시고 힘이 드셨구나...

공연 순서가 하나씩 진행 되면서 얼굴이 환해지시는 어르신들을 뵈면서 고맙고 죄송스러운 마음

이 들었다. 공연 순서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는 우리 단원들도 너무 멋져 보였다. 마지막 합창을 하면서

마주한 어르신들의 온화해진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따뜻함을 얻고 나온 자리였다. 어

르신들이 모두 건강하시길 소망한다.

그리고 지휘자님을 비롯한 모든 평화산책 단원 분들, 정말 멋집니다.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Page 13: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2014년 7•8월호 13

저는 2014학년도 봄 학기에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사회선교 과목을 수강한 학생입니다. 사

회선교는 ‘고난함께’ 진광수 목사님과 학부생, 청강생들이 함께 한 수업으로 이 시대에 기독

교 사회 선교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본 수업을 통해 배

운 바와 15주간의 수업이 끝난 뒤 그것이 저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처음 시작하던 날부터 종강하는 날까지 사회선교 수업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하나 있었습

니다. 바로 ‘구조’입니다. 이 사회 구조의 문제를 논하지 않고서는 기독교 사회선교가 진정으

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명령에 따

르기 위해서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정체를 아는 것이 시작임을 수업 내내 배웠습니다. 신자

유주의, 세계화, 민영화 등 사회 구조라던가 시스템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은

있었지만 그것이 내 이웃을 섬기기 위한 필연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

면 제가 이전에 알고 있던 기독교 사회선교의 이미지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었

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있으면 도시락을 배달해 주고, 그 아이들이

학비가 없으면 장학금을 지원해 줍니다. 단순화한 것이지만 많은 교회들이나 기독교 단체들

의 사회 선교 방식은 대개 이러합니다. 즉 결핍이 있으면 그 없는 것을 보충해주는 식입니다.

여기서는 ‘무엇이 없는지’에 집중하기 때문에 ‘왜 없는가’를 묻는 구조의 문제는 논의될 틈이

없는 것입니다.

[감리교사회선교]강의 후기 김혜민 | 감리교신학대학교

고난함께 들여다보기

Page 14: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151호14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네 이웃이 왜 굶주리

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않고서 그 이웃을 사랑한

다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기만일 수 있다고 생

각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선교 수업에는 고난당

하는 이웃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투쟁

하는 활동가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는데요. 이 분들이 전해주시는 생

생한 이야기들이 저

로 하여금 이 사회

구조의 현실을 직시

할 수 있게 해주었

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영등포산

업선교회 홍윤경 사

무국장이었습니다.

그분께 비정규직 노

동자들이 어떤 방식

으로 양산되며 그들

의 삶이 질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한 이

야기를 들을 수 있

었고 이를 통해 소수의 자본가들이 그들의 이익

을 위해 자유롭게 빈자들을 만드는 사회의 시스

템의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라면

누가 언제 거리로 나 앉아도 이상하지 않은 세

상인 것입니다. IMF 이후 급증한 비정규직 노

동자들의 수는 세월이 지나도 줄지 않고 그들이

처한 상황은 악화되는 것이 현실인데, 이들에게

‘부족한 것’을 주겠다는 방식의 사회선교는 그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그리고 ‘왜 부족한 가’ 즉, 왜 당신은 비정규

직이고, 비정규직인 당신의 삶은 왜 이렇게 열

악한지 묻고 그 원인을 해결하려는 시도만이 진

정성 있는 사랑이라고 느꼈습니다.

한 학기동안 사회선교를 함에 있어서 구조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음과 함께

그렇다면 이 구조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하는 질

문이 저에게 남겨지

게 되었습니다. 지

금도 그 답을 찾고

있는 중이지만 사

회선교 수업을 통

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고

난의 현장에서 투쟁

하시는 분들의 이야

기들, 진광수 목사님께서 전해주시던 고난 함께

의 예배공동체 , 그리고 함께 수업을 들으며 한

학기 내내 촛불과 피켓을 들고 구조에 저항했던

학우들. 그 모습들은 제가 가지게 된 질문과 함

께 늘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내

이웃을 섬기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씨름

해보려 합니다.

Page 15: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2014년 7•8월호 15152014년 7•8월호

정명성 詩場

바닥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샐 틈 없이

견고한 둘레를 쌓아야

‘안’이 생긴다

안팎을 분명히 가르고

울타리를 두르고

경계를 온전히 그어야

‘속’이 깊어진다

안이 있어야

물이 담기고

속이 있어야

당신을 품을 것 아닌가

소통을 한다는 것은 장벽을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장벽

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벽이 없다면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것

이며, 이는 소통할 주체들이 아예 사라져 버린 상황입니다.

테두리를 둘러치고 주변과의 경계를 확실히 지음으로써 컵

은 컵이 되듯이, 사람도 자신의 한계를 긋고 정체성의 담을

세워야 자신 안에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담

아낼 내면이 없다면 충만해질 수 없고, 충만해질 수 없다면

넘어설 수도 없습니다.

담을 공간이 없고

품을 자리가 없고서야

어디에 사랑이 머물겠는가

벽으로 사방을 둘러치더라도, 그러나

하늘을 향하여는 열어두어라

담아야할 사랑은

위로부터 오는 것이니

컵정명성 | 팔미교회

Page 16: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151호16

시대의 고난

밀양투쟁season2. 이종건 | 감리교신학대학교

밀양,

네 번째 방문이었다. 처음 밀양에 방문했을 때가 기억난다. 영상학과 학생과 함

께 내려가 계단에서 노숙하며 위양리에서 마중 나오실 선생님을 기다렸다. 배수철

선생과의 첫 만남이었다. 백발에 머리를 묶어 올린 그 분은 129호 송전탑이 세워질

동네의 ‘막내급’ 되는 분이다. 마을 주민들의 나이는 그만큼 많다. 백발의 노인이 젊

어 뵐 정도니.

영상촬영 차 내려갔던 밀양은 그야말로 봄 햇볕이 빽빽했다. 본디 이름이 빽빽

한 밀자와 볕 양자를 써서 ‘밀양’ 이다. 영화 탓에 은밀한 ‘밀양’이 되어버렸지만 내

리쬐는 햇볕만큼이나 명확하게 그곳은 빽빽한 ‘밀양’ 이다.

이후 방문도 모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방문했음이다. ‘고난함께’ 식구들과 함께

내려가기도 했고 버스 대절하여 신학생들과 방문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밀양행

은 더 특별했다.

어느 날 배 선생님이 문자를 한통 보내셨다. ‘푹 쉬었다 가, 꼭 내려와야혀’

가방에 책 몇 권과 필기할 노트 하나 가지고 혼자 내려갔다. 선생님의 댁에서 며

칠 머물며 푹 쉬다 올 요량이었다.

밀양소식에 깜깜했던 것은 아니다. 지방선거 후 박근혜 정권은 기만적인 ‘행정대

집행’을 진행했다. 반라의 할머니들이 끌려 내려갔고 사람이 머물고 있는 천막을 큰

칼로 북북 찢어서 철거했다. 온갖 곳에서 불법이 자행되었다.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

케 하는 사진들이 SNS를 타고 서울에 있는 내게 전달되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

이 보였지만 내려 갈 수도 없는 노릇에 답답할 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을지

로 한전에 가서 규탄기도회에 참석하는 것 뿐, 무력한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

었다.

Page 17: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2014년 7•8월호 17

대집행 이후 시간이 얼마간 지나서 도착한

밀양은 초입부터 경찰들이 들끓었다. 입구마다

소대가 배치되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

고, 식사 때가 되면 대대가 한꺼번에 이동하니

그야 말로 장관이다. 빌딩 속 광화문을 포위한

경찰도 낯설다고 하다만, 숲이 우거진 좁은 골

목길과 대충 포장된 거친 아스팔트 위에 죽치고

있는 경찰들을 보는 것은 더 낯선 일이다. 가만

히 보고 있자면 기가 차다. 마을을 방문하는 등

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마을 주민들의 사비로 마

련된 주차장에는 경찰이 무단으로 컨테이너를

설치해 놨다. 행정대집행 직후에는 일주일 넘게

마을에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다고 했다. 할머니

들과 식사를 하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우리는 전쟁포로야, 식민지를 경험하고 있

는 것 같아. 어디 이게 같은 국민을 대하는 태도

야? 서러워...”

결국 밀양 송전탑의 본질은 낙후된 고리원전

의 전력을 끌어다가 서울에 쓰겠다는 욕망이다.

낙후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의 수명을 본래

보다 늘려 터질 때까지 써보겠다는 그 추한 욕

망이 보수적인 산골마을의 주민들을 투사로 만

든 것이다. 기업에게 제공하는 싼값의 전기부터

시작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원자력’의 수명

을 늘려가는 것 까지 무엇 하나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는 것이 없다. 우리는 이미 재앙에 준하

는 사고를 경험하지 않았나? 바로 ‘세월호’ 침몰

을 통해.

증축에 증축을 더하고 과적하기를 서슴지 않

았다. 이명박 정권 당시 선박의 수명 늘리기 또

한 결정적인 한몫을 했다. 책임감이 요구되는

Page 18: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18 •151호

선원의 자리에까지 비정규직 논리가 암처럼 작용하고 있으니 사실 ‘세월호’는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

지다. 삼백여 명의 죽음 이후에서야 우리는 “이윤보다 생명을” 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사실 늦어도

너무 늦은 일이다. 정부의 책임은 사고 수습 과정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야기한 것에도 있다. 아주

직접적으로.

고리 원전이 터진다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당장 부산주민을 비롯한 원전의 수혜를 받지 못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상상치도 못할 위기에 빠진다. 이 모든 것이 수도권 기업들과 가진 자들의 욕

망에서 비롯된 위기라니, 그저 억울할 따름이다.

이튿날 점심으로 할매들과 라면을 먹었다. 산중턱 마을 사유지에 새로 마련한 컨테이너에서.

경찰들도 점심 먹으러 이 길을 지나다닌다. 산안개 너머로 끊이지 않는 행렬이 꾸역꾸역 나온다.

할매 4명에 내가 본 것만 경찰 두 개 중대다.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다.

할매들은 손자만한 경찰들이 미운 게 싫다. 그렇다고 사랑하자니 그것도 싫다. 녀석들 목구녕에

밥이 넘어 가는 것이 당연하지 싶지만 그것도 영 밉다. 저렇게 두 개 중대가 먹은 밀양쌀은 똥이 된

다. 마땅한 화장실도 없으니 산중턱 곳곳에다 싸지른다. 남의 땅에다 참 못할 짓이다.

안개가 뿌연 것이 아직도 새벽만 같았다. 참 길고도 긴 새벽이다. 이 새벽을 깨워 산꼭대기에 해

를 걸어놓고만 싶었다.

웬 젊은 경찰 두어 명이 길을 잃었는지 내게 와서 물었다. “화악산이 어디에요?”

난, 모른다고 했다.

Page 19: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2014년 7•8월호 19

이동환의 같이 걸을까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을 만나다.

‘전교조’라고 하면 대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빨

갱이 아니냐?” 혹은 “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쳐야지 무슨 노

동조합?” 대략 이렇다. 얼마 전 법외노조 판결로 언론이 한

창 떠들썩 했고 최근에는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

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전교조를 이끌고 있는 김정

훈 위원장을 만났다.

이동환(이하 이) : 99년 전교조의 합법화 이후 크고 작은 일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번 법외 노조

판결은 정부가 작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요?

김정훈(이하 김) : 형식상으로는 전교조에 해직교사 9명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서 불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교조는 노동조합법이 아닌 교원노조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해 합법화가 된 것입니

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교원의 지위에 대하여 현직 교원으로만 한정해석을 한 것입니다. 교원

이 예비교사에서부터 교원자격증을 가진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요. 어느 나라에도

이런 법은 없습니다.

해직교사가 9명이 있으니 교원노조법에 어긋나는 것이고,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말라

는 주문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교조에서 해직교사를 쫒아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노

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표면적인 이유이고 그간 전교조가 해왔던 교육민주화 역할과 경쟁교육 반대 시장논리 거

부 등의 저항 등이 이명박근혜 정부에게는 눈에 가시였던 것입니다. 본인들도 우리들과 같이 경쟁

교육 반대를 말하지만 유독 전교조가 경쟁교육에 대해 말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데 이것은 실제

정책이 정글 수준의 경쟁 교육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전교조가 걸림돌이 되

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게 실질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 이전 정권에서는 해직 교사에 대한 언급이나 탄압이 없었나요?

김 : 전교조는 1999년 김대중 정권때 합법화가 되었고 노무현 정권까지 별탈없이 왔습니다. 물론

이동환 | 평화세우기연구모임

Page 20: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151호20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도 전교조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대와 저

항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전교조 자체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우

리의 생각에 다 동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인권에 대한 인정의 차원이었지요.

적절한 견제와 협력의 관계였습니다.

이 :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정권을 잡

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이 가장 중요하기에 이 정권들이 사활을 걸고 교

육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 :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장악하지 못한 곳이 없습니다. 행

정부, 입법부, 사법부, 언론까지.. 그런데 교육만큼은 장악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저들은 특권계급을 대물림 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이루는데 중요한 부분이 교육이거든요. 아무래도 전교조가 걸림돌이 된다

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이 : 법외노조가 되면 노조로서의 권리를 어떻게 상실하게 되는 건가요?

김 : 일단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사용하면 벌금이

부가되지요. 또한 체결한 단체협약은 모두 법적으로 해지가 됩니다. 단체

협약이 학생자치의 문제, 교육환경의 문제가 주요 골자인데.. 참 안타깝죠.

물론 단협이 해지되었다고 해서 그간의 환경이 다 일제히 후퇴하지는 않

겠지만 우려가 되지요. 그리고 새로운 단협을 체결하지 못합니다. 저희는

이것을 통해 필요한 교육정책을 내는데 교육운동을 하는 단체가 이 부분

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니 말이지요.

벌써 사무실 퇴거 명령도 오고, 학교에서 조합비 일괄공지하던거 중단당

하고 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노조활동을 위해 현직교사가 전임자를

하는데 그것을 못하게 됩니다. 이번에 눈물을 머금고 39명이 복귀를 했습

니다.

이 : 분위기가 걱정되는데요. 법외노조 판결 이후 분위기는 어떤가요?

흔들리거나 회의적인 분위기가 돌지는 않습니까?

김 : 9명이 형식적으로 나마 조합에서 탈퇴해야 하는건지 조직에서는 고

민까지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합원도 대거 탈퇴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

았다. 그런데 조합원의 69%가 해직교사를 버릴 수 없다라고 의견을 내었

Page 21: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2014년 7•8월호 21

고 그 결정에 의거하여 힘있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점점 탄탄해진 것 같습니다.

이 : 이번에 13곳에서 진보교육감이 탄생했습니다. 전임자에 관한 처분은 교육감에 맡기라는 의견

도 냈는데요. 이런 것들이 전교조의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김 : 기본적으로 인사명령권, 단체협약 체결 해석권 등의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습니다. 교육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실은 교육감에 대한 권리 침해이지요. 이번 교육감들의 발언은 복귀에 응하

지 않은 전임자에 대한 직권면직에 대한 권한은 교육감에 있다는 것을 천명한 것입니다. 생명 노동

인권 평화의 가치는 교육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감들의 이러한 활동들로 인해 보수

언론에 의해 공격받을 것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

권이나 교육의 독립성에 관한 문제는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 앞으로의 전망과 투쟁계획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김 : 한해 4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켜켜이 쌓여 나온 것이 세월호 참사

라고 생각하구요. 그 일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안한게 아

니라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세월호 앞에서는 이 이야기도 변명처럼 들립니다. “바꿔야 한다

면 바꾸는 것이다. 해야 한다면 하는 것이다.” 라는 문제의식으로 전환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노동기본권 변화에 대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근본적 문제인 학교 시장화와 수단화에 맞

서 싸우는 문제에 앞장설 것이구요. 또한 대안의 제출에 있어서 좀더 과감하고 당당하게 할 생각입

니다. 생명 인권 노동 평화의 가치가 공유되고 실천되는 교육을 학교 안팎에서 실천해 나가도록 하

겠습니다.

Page 22: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151호22

‘고난함께’ 신임이사이현식 목사를 만나다이현식 목사 | 진관교회

만나고싶었습니다

1.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81년도에 감신을 입학하였고, 27년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은평구에 있는 진

관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제 주된 관심은 ‘건강한 교회’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성도들이 행복하며, 지역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교회를 일구어 갈 수 있을까?’

어쩌면 저의 목회와 또 제가 관심을 가지고 하는 일들은 모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

한 여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담임목회 사역 외에도 ‘건강한교회목회연구소’, ‘한국교회 선교연

구소’등에 참여하고 있는데, ‘건강한 교회’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깊이 있게 풀어내고, 실천하기

위한 활동입니다.

2. ‘고난함께’와의 인연과 ‘고난함께’ 이사로 함께 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고난함께’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신학교 동기들이었기 때문에 그 출발부터 늘 관심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한국사회에 꼭 필요하고 좋은 일이

라고 생각해서 그 동안 심정적으로 지지하면서 기도와 후원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이사로 참여

하게 된 것은 더욱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고난함께’의 사역은 무엇보다

이 시대의 고난받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이고, 더욱이 다른 단체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는 일

을 25년 동안이나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소중한 단체에 함께 하게 되어 저로서도

정말 기쁩니다.

Page 23: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2014년 7•8월호 23

3. 요즘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일 또는 고민이 있으신가요?

요즘은 ‘한국교회의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교회의 이미지가 이토록 추락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참담한 시기를 보내고 있지요. 그 동안 한국교회는 세상과 너무 두터운 벽을

쌓고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몇몇 대형교회와 목회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이와 같은 현상에 불

을 지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지나친 폐쇄성과 사

회에 대한 무관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와 반대로 천주교는 지난 10년 사이에 교세가 두 배 이상

성장한 것을 볼 수 있지요. 그 성장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천주교는 괜찮다’라는 막연한 호감도

입니다. 이 호감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사회와 소통한 결과입니다. 우

리 한국교회도 이제 더욱 더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섬기고 봉사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목회를 돌아보면 성장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사실입니다만, 요즘은 사회

봉사와 지역 섬김 그리고 사회적 성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현재 제가 사역하는 진관교회에

서는 이러한 고민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내에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 8월 초에는 교인

20여명과 함께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는 안산에 방문하여 합동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안산명성교회(김홍선목사) 안에 설치된 “힐링센터 0416 쉼과힘”을 방문하여 모금한 성금을 전달하

며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는데, 이런 부분들에도 더욱 노력하려 합니다. 아무쪼

록 교회가 더욱 새로워지고 건강해지기를 소망해봅니다.

4. 마지막으로 ‘고난함께’를 향한 격려의 말씀 한 마디!

‘고난함께’가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이한다니 정말 축하를 드립니다. ‘고난함께’를 생각하면 저

는 두 가지가 떠오르는데, 그 중 하나는 참 귀한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고난받는 이들과 함

께하는 이 사역은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하나는 저의 일종의 바

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난함께의’ 칼라가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더욱 다양

한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아무쪼록 ‘고난

함께’가 그 이름에 걸맞게 이 시대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갈텐데, 저는 그 걸음을 위해 더욱 열

심히 기도하고 후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Page 24: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151호24

그래서 별 일 없이 살고 있다

처음에 글을 부탁 받고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물어보니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 무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생업이 끝나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그러나 쉽게 정리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일단 나는 기독교 음반을 기획 제작하는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예수 믿고 교회에 다녀봤다

는 사람의 경우라면 익히 알겠지만 기독교 음반이라고 하는 것은 예배 때 종종 불러봤거나 교회에

서 찬양이라고 알고 있는 그 CCM을 일컫는다. 교회 밖에선 쉽사리 접하지 못하는 그런 음악을 양

산하는 회사에 다닌다고 보면 딱 맞다. 그 덕분에 회사에서 생활인으로써 경험하는 시험(?)을 남들

보다 덜 마주치게 된다. 적어도 음주 강요나 회식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대한 고민은 없고 회식이 끝

나고 업소를 데려가는 일도 없으니 말이다. 우유부단하고 강단 없는 성격을 타고난 내 입장에선 상

당히 다행한 일이었다.

그에 반해 아주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를 통해 신앙인에 대한 기대치도 낮출 수 있었고, 소위 '사

역자'에 대한 기대치도 낮출 수 있었다.

90년대에 피 끓는 청소년, 청년의 때를 보내 본 기독인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봤을 문화 사역,

그리고 더 쉽게 누구나 꿈꿔본 CCM이라는 음악 사역으로 삶을 꾸려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사명감

이 끓고 가슴 벅찬 일인가! 그렇지만 그 안에서 시장성을 논하고 금전적인 이윤을 사역자에게도 줘

야 하고 우리도 챙겨야 생계가 유지되는 입장이 되고 나니 내가 알고 있었던 은혜롭고 강한 찬양과

예배라는 것의 공허함도 마주치고, 그 은혜로운 찬양과 매일 매일을 맞대고 사는 입장이 생계가 되

면 낭만도 사라지고 열정도 사라지고 은혜도 사라지고 용서도 사라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며 살아가

게 된다.

참 아이러니하지만, 찬양이 삶이 되면 삶이 황폐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세상사는 이야기

이창원 | CCM 기획사 사원

Page 25: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2014년 7•8월호 25

원래도 기독교 음반 기획을 하는 회사에 다니기 전엔 녹음실에서 일했던 터라 연주력이나 가창

력은 안 되도 짧게 녹음해서 섞고 짜깁기는 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찬양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집에서 혼자 모든 것을 다 하는 저퀄리티 가내수공업 음악을 탄생시켜서 "방구석"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방구석의 음악에 생활 밀착, 재미 중심, 단순한 음악, 저

퀄리티, 라이브 불가 등의 컨셉을 입혀 기획 일을 할 때 했던 방식으로 스토리를 만들고 제약 사항

을 극복하는 이야기들을 블로그에 올리는 등으로 취미를 이어가는 중이다.

물론 가정이 있고 애가 둘이 되면서 요즘엔 곡이 통 안나오고 "일어나서 출근 퇴근 애보고 자고

일어나서 출근 퇴근 애보고 자고" 의 일상이 반복되는 중이라서 곡이 나와도 녹음하고 완성시킬 겨

를이 없지만 적어도 취미를 통해 황폐했던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래서 별 일 없이 살고 있다.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여느 애 둘 딸린 가장처럼 특별할 것도 없고

시련도 난관도 부귀영화도 별로 없는 "일어나서 출근 퇴근 애보고 자고 일어나서 출근 퇴근 애보고

자고..." 의 일상 말이다.

※ 방구석 음악 링크: https://soundcloud.com/roomside-1/pfh4qil4rhhm

* 이창원 님은 ‘특별할 것도 없고 별 일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별 일 많은 일상을 살

고 있다. 한동안 지인들과 소규모 공연을 이어나가더니 요즈음에는 여러 투쟁사업장의 문화제&기도회에 모

습을 드러내고 있다. (편집자 주)

Page 26: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151호26

안녕하십니까?

‘고난함께’의 20주년을 보낸 게 엊그제 같은데 다시 25주년을 맞았습니다. ‘고난함께’의

진정 어린 격려와 후원을 수년간 받아오면서도 제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빛발 속에 자리했

는지 다는 몰랐습니다. 요란한 내보이기식 활동이 아니고 진심이 느껴지곤 하는 소박하고

정갈한 모습들이 실제적인 실천 결과들에 담겨 있어서 그저 공감하고 감탄하며 고마워하

는 정도뿐 이였습니다.

그런데 25년 전, 군사독재의 짐승 같은 진보사냥이 계속 이어지고 있던 광란의 시대에

그 거친 파도를 거슬려 그야말로 “시기상조”의 위대한 항해를 시작한 ‘고난함께’의 출발점.

그리고 그로 인해 분명해진 인권과 통일, 평화의 깊은 뿌리를 150특집호를 통하여 새삼스

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반동과 진보의 정치권력이 엇갈리고 평화의 통일운동이 정견과 이

념의 판매대 위에서 바람처럼 흩날려 다닐 때에도 변함없이 정치적 고난자들의 곁을 지켜

온 수많은 후원분들과 일꾼들의 감동적인 노고의 발자취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민중의 역사, 정치적 약자들의 삶의 추억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고귀한 자욱을 새겨

오신 ‘고난함께’의 25년은 신앙인들뿐 아니라 모든 진보사회단체들에게도 고난의 삶에 동

행하는 참다운 귀감의 모습을 보여준 솔선수범의 25년이었습니다.

온누리, 먼 미래의 세대들까지도 고마워할 ‘고난함께’의 일꾼들과 후원분들게 다시 한

번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난우체통

대구에서 경학 올립니다.

2014. 7. 10.

Page 27: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2014년 7•8월호 27

고난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출소 장기수선생님 생활지원통일광장 권낙기, 김영승, 임방규

낙성대 만남의 집 김영식, 박희성 (02)888-4350

김선분 1925. 02. 14, 77년 출소, 12년 복역, 강북구 번3동 주공A 306동 1502호

박수분 1931. 04. 01, 65년 출소, 11년 복역, 051)752-1904

박정덕 1930. 01. 25, 151-050 서울특별시 관악구 보라매동 713-109호 2층

박정숙 1917. 08. 16, 62년 출소, 12년 복역, 강북구 번3동 주공A 306동 1502호

박종린 1933. 03. 14, 403-845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2동 389-14 그랜드빌라 1차 2동 102호

변숙현 1924. 12. 16,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310, 031)748-4822

유영쇠 1928. 10. 30, 전북 익산시 익산대로 33길 71 원광실버의 집 우)570-180

안학섭 1930. 04. 14, 95년 8월 출소, 43년복역, 611-827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2동 791-7

▶▷버마 민주화 운동(NLD) 한국지부/조모아 후원▶▷심리치유센터 와락 후원▶▷양심수 후원이병진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8년, 전주교도소 2513

정경학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 대구교도소 40

이경원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 4년, 안동교도소 3020

김덕용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왕재산), 대구교도소 27

임순택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왕재산), 안동교도소 3010

이재성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왕재산), 대전교도소 4000

이상관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왕재산), 전주교도소 2505

남경남 재야 09년 용산4구역 상가 철거반대투쟁, 5년, 대전교도소 3100

* 양심수 선생님들과 고난 일꾼들이 편지 결연으로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Page 28: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151호28

알림터

2014년 청소년평화캠프 <원피스>

13번째 청소년평화캠프가 8월 4-6일 감리

교 제2연수원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진

행되었습니다. 140여 명의 청소년과 50여 명

의 스탭들이 참여하였으며, ‘평화’를 주제로

직접 창작활동을 하는 ‘셀프메이드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캠프.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롭

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캠프를 위

해 지난 수 개월간 열심히 땀 흘린 일꾼들과

또 물질과 기도로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예배공동체 고함>제주강정마을에서의 첫 번째 예배

새로운 예배공동체를 꿈꾸며, 이 땅의 고난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였던 <예배공동체

고함>은 10월부터 다시 시작합니다.(격주로

진행) 특히 10월 6일 진행되는 첫 번째 고함

예배는 해군기지건설 문제 때문에 9년 가까

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드립니다. 함께 참여하실 분은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문의: 010-5220-4576

<고난신학 월례포럼>

25주년 기념사업으로 지난 3월부터 매월 셋

째 주에 진행되는 <고난신학 월례포럼>이 분

주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연구자와 목회자 그리고 활

동가들이 함께 모여 ‘고난’받는 이들을 위한

신학을 나누는 이 모임에서는 10월 말 <25주

년 기념 심포지움>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많

은 참여를 바랍니다.

<평화교회연구소> 준비를 위한

평택 ‘기쁜교회’ 방문

10월말 창립예정인 <평화교회연구소>를 준비

하기 위하여 ‘평화교회세우기 연구모임’에서

평택 기쁜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기쁜교회

(손웅석 목사)는 평택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가 일어났을 때 여러 활동을 하였고, 초

록교회 운동, 지역운동들을 펼치고 있는 교

회로서 ‘평화교회’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었습니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

신선한 향기를 선물할 <평화교회연구소>를

기대해주세요.

Page 29: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292014년 7•8월호

<민주쟁취 기독교행동> 결성대회 및 세월호참사 100일 추모예배

지난 7월 24일은 세월호 참사 100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100일이 지나도록 진상이 규

명되고 있지 않은 분노와 희생자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추모예배를 드렸습니

다. 특히 이 예배는 기독교 사회운동단체들

이 긴급한 시국 국면에서 더욱 힘을 모으기

위해 출범시킨 <민주쟁취 기독교행동>을 결

성하면서 드린 예배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

습니다. 우리단체 사무총장인 진광수 목사는

이 조직의 공동대표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 촛불기도회 주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을 시작

한 7월 14일. 국회 앞에서 진행된 촛불기도를

‘고난함께’에서 주관하였습니다. 많은 유가족

분들이 함께 참여한 이 기도회는 그 어떤 현

장 기도회보다 많은 한숨과 눈물이 흘렀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아픔과 억울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직도 계속되는 이 문제를 위

해 잊지 않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입

니다.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6월 중순 불법적인 행정대집행으로 고통을

당했던 밀양주민들을 위로하는 <희망버스>에

‘고난함께’에서도 동참하였습니다. 현재는 밀

양에 이어 청도까지 송전탑건설로 인한 주민

들과의 갈등이 더욱 심각해진 상황입니다.

<동정>

* 부임 / 김광년 이사(서울연회 신내교회)

* 결혼 / 이동환 김은선 (8월 30일, 감신대)

Page 30: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30 •151호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일에 정성껏 쓰겠습니다”

평화운동은

갈등과 다툼의 현장에그리스도의 화해와

평화를 심는 일입니다.

평화기행, 평화캠프평화교회 세우기

반전평화활동

통일운동은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하나님의 일꾼이되는 일입니다.

출소장기수 생활지원 및 효도나들이북한 고아원 및 재일민족학교 돕기

통일운동연대 및 지원

인권운동은

고난받는 이들의 얼굴에서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고난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회영치금 및 양심수 자녀 장학금 보내기

교도소 방문 및 석방지원에큐메니칼 활동가 지원

개인후원 1구좌 10,000원

단체후원 1구좌 10,000원

소식지광고협찬 100,000원

보내실 곳/고난함께

우체국 013920-01-004461

▷▶ 6월 영수기

개인후원권영진 김선아 박지연 서신천 송윤혁 심자득 윤건

호 이신선 이영호 이원증 이원호 이효성 정사무엘

정완영 (5,000)

강득환 강민정 강희석 김동관 김동욱 김동하 김민

영 김민호 김성복 김세나 김애진 김영곤 김영미

김영현 김용대 김용진 김재천 김준호 김진해 김

치국 김혜경 노덕호 도태화 민진영 박단 박민 박

병록 박세훈 박승일 박진수 방현섭 배윤숙 배진교

부영희 서정훈 성모 손인선 양금성 오현일 유명선

윤여군 윤종구 이경화 이규성 이민효 이선진 이원

국 이종명 이진영 이해남 이헌 이혁 이희준 임성

호 임수현 임원 장연승 정명성 정성회 정애성 정

영 정은희 정해선 정현식 조선혜 조영준 조화순

지동흠 진맑음 채가람 최덕희/장동수 하희정 한

광수 한성훈 한진희 홍은숙 홍지향 황기수 황선주

무명 (10,000)

김기정 김순둘 김신아 김용강 박난수 박은경 박현

진 변영권 손호문 신성호 신현종 안경선 여정훈

윤경희 윤문자 이상민 이상숙 이윤정 장남수 장성

배 장세현 전남병 전성득 정은영 조병훈 조원철

하애정 한석 한인철 한진호 홍미자 홍성헌 무명2

(20,000)

김정숙 이정재 이진영 (30,000)

이동환 (40,000)

권종호 김영훈 이경환 이찬규 (50,000)

정유은 (70,000)

이관택 이해석 (100,000)

진광수 (200,000)

단체후원시내교회(신민종) (20,000)

예은전원교회(강입분) (30,000)

홍천소망교회(전재범) (50,000)

광서교회(김병훈) 기쁜교회(손웅석) 문수산성교회

(황인근) 반월중앙교회(박종배) 색동교회(송병구)

아차도교회(김부린) 청파교회(김기석) (100,000)

이사회비송병구(색동교회) (50,000)

김광후(마전교회) 박신진(삼척제일교회) 박정훈(고

촌교회) 신경하 원종휘(만석교회) 이광호(도봉교

회) 이현식(진관교회) 정연수(효성중앙교회) 최범

선(용두동교회) 한석문(해운대교회) (100,000)

<특별후원>신동희 (100,000)

홍은숙 (50,000)

<평화산책 후원>강현 (200,000)

▷▶ 7월 영수기

개인후원권영진 김민호 김선아 박두완 박지연 서신천 심자

득 윤건호 이신선 이영호 이원증 이원호 이진용

이효성 정사무엘 정완영 (5,000)

강득환 강민정 강희석 김동관 김동욱 김동하 김민

영 김성복 김세나 김애진 김영미 김용대 김용진

김재천 김지웅 김진해 김치국 김혜경 노덕호 도

태화 민진영 박난수 박단 박민 박병록 박세훈 박

진선 박현진 방현섭 배진교 변영권 부영희 서정훈

성모 손인선 송윤혁 신성호 안복규 양금성 여정훈

오현일 유명선 윤여군 윤종구 이경화 이규성 이선

진 이원국 이종명 이진아 이진영 이해남 이헌 이

혁 임성호 임수현 임원 장연승 정명성 정성회 정

애성 정영 정은희 정해선 정현식 조선혜 조영준

조화순 지동흠 진맑음 채가람 최덕희/장동수 최

승화 하희정 한성훈 한진호 한진희 홍은숙 황기수

황선주 무명 (10,000)

강철민 강현 김기정 김순둘 김영광 김용강 김준호

박성중 박은경 백승철 손호문 신현종 안경선 윤경

희 윤문자 이상민 이상숙 이윤정 장성배 장세현

전남병 정은영 정재영 조병훈 조원철 채미혜 하애

정 한석 한인철 홍미자 홍지향 무명2 (20,000)

김정숙 이정재 이진영 (30,000)

이동환 (40,000)

권종호 김영훈 이경환 이찬규 (50,000)

정유은 (70,000)

이관택 (100,000)

진광수 (200,000)

단체후원마달교회(박진수) (10,000)

시내교회(신민종) (20,000)

겨자씨교회(이승주) (60,000)

광서교회(김병훈) 반월중앙교회(박종배) 홍천소망

교회(전재범) (50,000)

기쁜교회(손웅석) 색동교회(송병구) 아차도교회

(김부린) 양도제일교회(곽노윤) 청파교회(김기석)

(100,000)

이사회비송병구(색동교회) (50,000)

이헌(생명나무교회) (60,000)

김광후(마전교회) 박신진(삼척제일교회) 박정훈(고

촌교회) 신경하 원종휘(만석교회) 이광섭(전농교

회) 이광호(도봉교회) 이현식(진관교회) 정연수(효

성중앙교회) 정학진(일동교회) 최범선(용두동교회)

한석문(해운대교회) (100,000)

신화철(성정교회) (200,000)

<청소년평화캠프 후원>감리회 본부 (2,000,000)

이한 (140,000)

대광교회 (100,000)

Page 31: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2014년 7•8월호

<151호 소식지 후원>

‘평화로운 세상’과 ‘올바른 믿음의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후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리교회(이광성 목사)

무지개언약교회(최효석 목사)

문산교회(하관철 목사)

성광교회(강충구 목사)

영천교회(신태하 목사)

조광교회(지춘식 목사)

창후교회(민중인 목사)

화곡동교회(권종철 목사)

화남교회(윤성섭 목사)

화도시온교회(김정호 목사)

31

Page 32: 고난함께 소식지 151호

편집_이관택, 정유은, 이동환, 장세현, 이종건 / 발행일_ 2014년 8월 20일 / 발행처_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주소_ (120-650) 충정로우체국 사서함 52호 / 전화_ (02) 393-4662 / 364-6076(fax) / E-mail_ [email protected]/ 홈페이지_ http://gonan.or.kr

이사장 신경하 감독(전감독회장)

고 문 박이섭 목사(원로), 김진춘 목사(원로), 윤문자 목사(원로)

이 사 권혁률 장로(CBS) 김광년 목사(신내교회) 김광식 집사(기독교서회 미디어사업부) 김광후 목사(마전교회) 문선경 권사(창천교회) 박신진 목사(삼척제일교회)

박정훈 목사(고촌교회) 백용현 목사(대동교회) 송병구 목사(색동교회) 신화철 목사(성정교회) 우경아 목사(커클랜드 제일교회) 유요열 목사(새홍성교회) 유은

진 권사(독일 복흠교회) 원종휘 목사(만석교회) 이광섭 목사(전농교회) 이광호 목사(도봉교회) 이상경 목사(재일대한기독교회 소속) 이헌 목사(생명나무교회)

이현식 목사(진관교회) 이환재 목사(전곡교회) 임정덕 목사(동산교회) 조이제 목사(여주소망교회) 전병식 목사(배화여대) 정연수 목사(효성중앙교회)

정진권 목사(삼양교회) 정학진 목사(일동교회) 최범선 목사(용두동교회) 최병천 장로(밀알기획) 한석문 목사(해운대교회) 허태수 목사(성암교회)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