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42
차례 2 편지글 | 평화를 사랑하는 후원인들에게오태양 이 곳은 성동구치소입니다오늘로 꼬박 보름이 지났습니다많은 분들께서 함께 해 주시는 마음이 있어 별 탈 없이 . . 잘 지내고 있습니다 중략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평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공간에서 시간 살 부비 . ( ) . 3.45 24 며 함께 먹고 자고 노는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략 10 . ( ) 30 해외자료번역글 | 자본주의 비폭력주의 vs 번역팀 비폭력 행동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더욱 인간적인 사회와 경제 시스템을 만들기에 무척이나 좋은 방법이다 국가의 . 권력을 이용하려는 접근 방식들 국가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은 시도되어 왔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 - . 적인 변화가 매우 절실한 이유는 중략 ( ) 1 에디토리얼 이것이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 재성 2 편지글1 평화를 사랑하는 후원인들에게 | 오태양 4 편지글2 평화가 무엇인지 좀 더 천천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 나동혁 6 인터뷰 강의석 인터뷰 중요한 것은 실천이죠 _ ! | 재성쓰리 / 12 기획기사1 병역거부운동의 새로운 순환 평화를 위한 긴 호흡 , | 재성 14 기획기사2 한홍구 인터뷰 병역거부 운동의 첫걸음 그 성과와 반성 _ , | 뎅 미애 / 18 기획기사3 대체복무제도 논의의 쟁점들 | 최정민 20 평화에세이 평화수감자에게 보내는 편지 | 약골 24 병역거부자활동수기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만나다. | 용석 28 활동소개 국제세미나 2005 WRI 소개 | 영은 30 해외자료 번역글 자본주의 비폭력주의 vs | 번역팀 36 평화문화 평화캠프 후기 온 몸에 스며든 평화로움 | 옹줴 39 다음기획기사맛보기 양심적 거부와 시민불복종으로서의 병역거부 | 재성 40 활동 재정보고 / 쟁없는세 게 살았어요 | 재성 용석 / 41 평화행사정리 의 공간으로 여러 분을 니다.| 미애 쟁없는세 : 행일 : 2004 9 1 7 쟁없는세 소식지 호 : 6 연락처 신림 : 02)854-6965 | 4 468-9 2 151-8 7 0 http: //withoutwar .org | peace@withoutwar. org 오탈자 토 사진 미애 + : 지디자인 : 쟁없는세 과 함께 디자인팀 마인 드콘드롤 에서도 활동 | 본문디자인 재성 : 역시 디자인팀 마인 드콘드롤 에서 활동 |
  • date post

    26-Jul-2016
  • Category

    Documents

  • view

    231
  • download

    5

description

 

Transcript of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Page 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차례2

편지글 | 평화를 사랑하는 후원인들에게오태양 이 곳은 성동구치소입니다 오늘로 꼬박 보름이 지났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함께 해 주시는 마음이 있어 별 탈 없이 . .

잘 지내고 있습니다 중략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평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공간에서 시간 살 부비. ( ) . 3.45 24며 함께 먹고 자고 노는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략10 . ( )

30해외자료번역글 | 자본주의 비폭력주의vs 번역팀 비폭력 행동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더욱 인간적인 사회와 경제 시스템을 만들기에 무척이나 좋은 방법이다 국가의 . 권력을 이용하려는 접근 방식들 국가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은 시도되어 왔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극- - . 적인 변화가 매우 절실한 이유는 중략( )

1 에디토리얼 이것이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 재성

2 편지글1 평화를 사랑하는 후원인들에게 | 오태양

4 편지글2 평화가 무엇인지 좀 더 천천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 나동혁

6 인터뷰 강의석 인터뷰 중요한 것은 실천이죠_ ! | 재성쓰리/

12 기획기사1 병역거부운동의 새로운 순환 평화를 위한 긴 호흡 , | 재성

14 기획기사2 한홍구 인터뷰 병역거부 운동의 첫걸음 그 성과와 반성_ , | 뎅미애/

18 기획기사3 대체복무제도 논의의 쟁점들 | 최정민

20 평화에세이 평화수감자에게 보내는 편지 | 약골

24 병역거부자활동수기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만나다. | 용석

28 활동소개 국제세미나2005 WRI 소개 | 영은

30 해외자료 번역글 자본주의 비폭력주의 vs | 번역팀

36 평화문화 평화캠프 후기 온 몸에 스며든 평화로움 | 옹줴

39 다음기획기사맛보기 양심적 거부와 시민불복종으로서의 병역거부 | 재성

40 활동재정보고/ 전쟁없는세상 이렇게 살았어요 | 재성용석 /

41 평화행사정리 나눔의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미애

발행처 전쟁없는세상:

발행일 년 월 일: 2004 9 17제 호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호: 6연락처 서울시 신림동 층 : 02)854-6965 | 4 468-9 2 151-870 http://withoutwar.org | [email protected]

오탈자검토 사진 미애+ : 표지디자인 뎅 : 전쟁없는세상과 함께 디자인팀 마인드콘드롤에서도 활동|

본문디자인 재성 : 역시 디자인팀 마인드콘드롤에서 활동|

Page 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없 는 세상소 식지 호6 1

1 두 달의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다 제대로 . 된 소식지를 내기 위해서 발행주기를 두 달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과 함께 처음으로 전쟁없는세상의 . 소식지가 소식지팀을 꾸려서 제작되기 시작했다 편“ ” . 집회의를 진행하고 그 속에서 아이템논의도 하고 기, 획기사를 결정해서 인터뷰와 취재도 하였다.

그러나 월 중순의 기획기사회의에서 결정된 목차가 7무색할 정도로 두 달의 시간동안 전쟁없는세상과 병, 역거부운동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대법원과 헌재의 . , 판결 국회의 병역법 개정안 상정준비 병역거부자들. , 의 구속 또 한명의 병역거부 선언 병역거부운동 제, , 2라운드라는 명명 그것을 두 달을 주기로 하는 소식. 지에 모두 담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벅찬 일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준비의 섬세하지 못함으로 두 달의 . 시간동안 있었던 내용 중에서 많은 부분은 누락되기

도 했다.

편집과정 마지막에 오태양씨와 나동혁씨의 편지글을

받고 그나마 지금 전쟁없는세상의 소식지로서의 구색

을 가춘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많이 아쉬운 것은 지울 수 없는 느낌이다 얼마 전부. 터 내가 에디토리얼을 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어, 떻게 쓸까를 고민했지만 결국 변명의 글을 쓰는 것

같아서 싫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준비한 . 소식지라는 자부심 그리고 함께 준비했던 사람들에. 게 남아있는 노력 기억 희망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 .

2한국 병역거부 운동의 라운드가 끝났다 이제 새로운 “ 1 . 라운드가 시작된다 그러나 단절하고 새로 시작한2 .” 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 시기를 평가하고 달라진 조건

에서 더 나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로 다음 시기“ ”를 이야기하는 방법일 것이다.

지금과 같은 때에 우리는 병역거부운동을 함께 만들었

던 주체들의 지금까지의 병역거부운동에 대한 평가와

이후 방향성에 대한 논의들을 기획기사로 다루기로

했다 처음에 편집팀에서는 병역거부운동의 분화라. “ ”는 성급한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오히려 기획기사를

준비하고 토론하면서 그러한 성급한 생각을 버리고 ,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한국사회의 병역거부운동이

방향성을 조망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병역거부운. 동이 대체복무제입법운동과 동치 될 수밖에 없었던

그간의 조건들을 확인하고 그것을 넘어서 새로운 상, 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현실에 발을 딛고 있. , 는 상황에서의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3 병역거부운동을 하다보면 감옥이라는 것에 대해서 종

종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요즘. 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감되어있는 사람들 생각이

난다.

이 소식지가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에디토리얼 호_6이것이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임재성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email protected]

Page 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이 곳은 성동구치소입니다 오늘로 꼬박 보름이 지났습니다 많은 분들께 . . 서 함께 해 주시는 마음이 있어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 시에 . 6일어나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침식사 전 분가량 평소대로 기도와 명상을 . 40

합니다 하루 세 끼 밥을 두둑히 챙겨 먹고 세 번 점검을 받습니다 분 주. . 30어지는 운동시간엔 바지런히 운동장을 서른 바퀴를 달리고 있습니다 인간 . ‘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을 정독하며 제 삶과 운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 ’ , 사색합니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평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공간에서 , . 3.45시간 살 부비며 함께 먹고 자고 노는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 초24 10 . 20

반에서 환갑에 이르신 분까지 저마다의 사연은 다르지만 정드니 어느새 친구입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 은 하루가 가을처럼 익어갑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창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익어가는 가을 하늘과 나 . 무들 건너편 기결수 사동에서 스며드는 목탁소리에도 소리 없이 창문 비집고 방 한 켠 자리 잡은 아, ,

침햇살에도 먼 길 찾아 반가운 소식 전해주는 정겨운 벗들 그리고 차마 눈빛 마주치지 못하는 어머니, , 의 눈물에도 창살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그 경계를 마주하며 오히려 일상과 사소한 것들. 에 대한 소중함을 느낍니다 창살 그 것은 당분간 제 삶의 일부일 것입니다 썩 자연스러운 곳은 아니. , .

지만 콘크리트 벽과 창살 사이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꽃들은 반갑고 아름답습니다.

바깥 소식을 들었습니다 동혁치윤성환의 선고공판 있었다구요 이 곳에도 이미 여명의 병역거 . · · . 60부자들이 수감되어 있고 매주 거르지 않고 들어오고 있다고도 합니다 저도 벌써 여러 명의 병역거부자. 들을 만났고 한 방에서 같이 지내기도 합니다 대부분이 대 초반인데 오래도록 마음의 준비가 있었. 20 ,

던 때문인지 매우 자연스럽고 적극적이며 활기차게 생활을 합니다 얼굴빛만으로도 알아 볼 수 있을 정

도로 말이죠.

평화를 사랑하는 후원인 분들께오태양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현재 성동 구치소 수감 중,

2

병역거부자편지글 1

Page 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국회에서 대체복무 입법안이 통과되기 까지는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은 줄을 이을 것입니다 오래도 . 록 익숙한 행렬이며 예견했었기도 하지만 바깥에서 보내는 것과 감옥에서 맞이하는 것은 사뭇 다른 느

낌입니다 년 전 처음 병역거부 문제를 접했을 때 감옥에 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첫 마음 . 4 ‘ ’

이었습니다 오고가며 젊은 눈빛들과 선하게 마주칠 때면 어김없이 그 첫 마음이 심장을 두드리곤 합니. 다 하지만 이 곳은 감옥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 몫이라면 이 곳. . .

에서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함께하는 여러분들과 조금씩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중인 . . 대체복무입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셨으면 합니다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후원활동을 부탁.

드립니다 벗들의 방문과 편지는 자칫 나태해지고 관성에 빠지기 쉬운 감옥생활에 활력과 자극을 주는 . 주는 반가운 가을바람이 될 것입니다 대법원을 거쳐 인권위에 제소까지 갈 길이 만만치는 않지만 . UN

우리의 희망 길은 계속 될 것입니다.

루쉰 선생께서 이르셨죠 .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 . .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콘크리트 사방과 창살 아래서 꽃 피우고 지고 썩어 다시 열매 맺고 꽃 피우기를 반세기 .선배들이 걸어갔던 도전과 희망의 길 따라 저도 결코 시들지 않는 꽃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성동구치소에서

오태양 두손모음

전쟁없 는 세상소 식지 호6 3

오태양씨 수감상황입니다.

현재 성동구치소에서 수감번호 로 수감 중입니다1725 .면회일정조정을 위해서는 오태양 후원회에서 일하시는 김애리 으로 연락바랍니다(011-9310-6270) .

주소 서울시 송파구 송파우체국 사서함 호 성동구치소 번 오태양 : 177 <138-600> 1725

Page 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후원인 전쟁없는 세상 여러분께( )

구치소에 들어온 지 십여 일이 지났습니다 세 번째 들어오는 구치소 .

라 지난번보다 일찍 이곳 생활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저 . 잠시 몸과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자는 생각으로 큰 계획 잡지 안하고 편

안히 쉬고 있습니다 감옥 안에서 무슨 계획이 가능하냐구요. ?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죠 처음이 언제냐면 년 월 집시 . 2000 5

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을 때입니다 길어야 두 달이면 나간다는 생각 때. 문에 하루하루가 어찌나 지겹던지 수다떨고 이것저것 집어 먹으면서 시

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반면 년 월 병역거부로 두 번째 구속되었을 때는 하루하루를 목적의식적으로 지내야 한다는 2002 11

의무감에 매우 꼿꼿한 상태였습니다 매일같이 후원인들에게 보내는 일기와 편지를 쓰기 위해 많은 시. 간을 보냈는데 병역거부자로서 알맞은 내용과 의식을 담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 때문에 책을 집필할 때

와 맘먹는 시간과 노력이 들었었죠 세 번 네 번씩 고쳐쓰고 내용을 정확히 하기 위해 관련서적을 사 . , 읽기도 했죠 신문에 기고 글을 쓴다고 교무과에 불려가기도 하고 서신 내용이 적절치 못하다고 발송거. 부 당하기도 했습니다 수감된 병역거부자 편지를 책으로 낼 수도 있다는 제안까지 있었죠 그래서 어. .

쨌든 더 신경쓰기도 했고 좋은 글을 많이 써내보고 싶어했던 노력이 과장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 았습니다 그속된 상황에서도 글을 쓸 때면 즐거웠고 세상 사람들과 나눌 것이 있다는 생각에 흐뭇했습.

니다.

지금은 조금 호흡을 길게 가져가려 합니다 우선 법적인 대응이 필요하겠죠 헌재마저 합헌결정을 ? . .

내린 이후 병역거부자들은 이 문제를 유엔인권이사회에 가져가기로 의견을 나눴습니다 물론 병역거부 , . 운동에 함께 하고 있는 연대회의 관계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

내에서 사법적으로 구제가능한 모든 절차 즉 심 대법원 재판까지 다 끝마쳐야 합니다, 3 ( ) .

평화가 무엇인지 좀 더 천천히고민하고 있습니다.

나동혁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현재 서울 구치소 수감 중,

4

병역거부자편지글 2

Page 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현재 저는 항소 심 가 기각되고 법정구속 된 상태에서 심재판을 신청하고 상고 그 결과를 기다 (2 ) 3 ( ) 리는 중입니다 병역거부자들의 법정투쟁은 국제사회에 한국정부의 후진성을 알리고 압박하는 의미가 . 있습니다 또 하나 재판 과정에서 내는 다양한 목소리가 전쟁없는 세상을 비롯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 ‘ ’

지속적으로 사회아 소통하는 구실도 하게 됩니다 병역거부자들이 재판이나 수감생활에서 느낀 생각의 . 변화가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한 편 개인적으로도 수감생활은 제게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합니다 정리해야할 것과 새로 시 . 작해야할 것들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겠죠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

후원인 여러분 환절기 건강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병역거부운동에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헌재판, . . 결 이후 병역거부 라운드가 시작된다고 하던데요 라운드는 좀 더 길고 끈질긴 싸움이 되지 않을까2 ... 2

요 또 좀 더 냉정한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할 듯 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평화가 ? . ? . . 무엇인지 좀 더 천천히 끈질기게 고민 좀 해야겠습니다 오늘도 뉴스엔 온통 전쟁과 테러 이야기군요. .

동혁올림2004. 9.10

전쟁없 는 세상소 식지 호6 5

나동혁씨 수감상황입니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있습니다 수감번호는 입니다. 2360 .나동혁씨 면회를 가실 분들은 전쟁없는세상으로 전화를 하셔서 면회일정 조절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소 경기도 군포시 군포우체국 사서함 호 수감번호 성명 나동혁 우: 20 2360 )435-600

Page 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6

미션스쿨에서 종교의식거부를 선언한고등학생 강의석씨를 만나봤습니다.

임재성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인터뷰진행 정리( + )쓰 리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인터뷰섭외 사진( + )

양심적 거부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학교에서의 종교의식에 대한 강요를 거부하고 미션스쿨에서도 학내의 종교의 자

유는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강의석씨 이미 많은 언론에서 다양한 각도로 이야기되었던 강의석씨. 의 인터뷰를 늦게나마 준비했던 이유는 강의석씨의 행동 역시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거부 의 하나로 “ ”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병역거부 로서 먼저 알려진 양심적 거부 는 시민불복종이라는 개념과 . “ ” “ ”많은 부분 일치하면서도 또한 그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전쟁없는세상은 양심적 “거부 일반에 대한 개념과 그 사례를 모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시민불복종이란 개념조차 생” .

소한 한국사회에서 양심적거부에 대한 개념과 내용을 모으고 정리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현재의 한국에서 양심적 거부라고 부를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이를 만나보면서 “ ”

시작을 하고자 했다.

Page 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없 는 세상소 식지 호6 7

강의석씨를 만났던 것은 밤 시 분 청량리 역 근처였다11 15 .

강의석씨는 수능준비와 여러 캠페인참여로 인해서 좀처럼

인터뷰 시간이 나지 않았기에 먼저 메일로 주된 내용의 질

문을 보내서 그 답변을 받았던 상태였고 그 답변을 바탕으,

로 추가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서 늦은 시간이지만 인터뷰

를 진행하기로 했다.

자 대질심문을 통해서3진실이 밝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전쟁없는세상 이하 전 학교에 퇴학무효소송을 하신 것으( ) : 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상황에 대해서 말씀을 부탁드립니.

다.

강의석 이하 강 지난 월 일에 부모님께서 제적무효소( ) : 7 29송과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함께 접수하셨습니다 가처분신. 청의 경우 보통 일 내로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데 이번의 15 ,

경우 늦어졌습니다 대광고등학교에서만 받아들이면 월 . 8 20일에 심리 공문이 열리고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개

학에 맞춰 학교에 나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

다 심리 공문은 월 일에 열릴 예정이고 결과는 그 다. 8 27 , 음 주쯤에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월 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낸 진정도 계속해서 진행 7 13

중인데 다음 주쯤에 대광고등학교 교장선생님 서울시 교, , 육청 담당 장학관님 저 이렇게 자 대질 심문이 열릴 예정, 3이라고 합니다.

전 자 대질 심문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될 예정인가요: 3 ?

강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한 바로는 제가 이야기하는 것: 과 학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 . 3

대질심문을 통해서 사실을 가려내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는 제가 방송실을 무단 점거해서 방송을 진행했다는 것과,

학교 선도위원회의 결정인 전학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무조

건 퇴학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결코 무단 점거를 하지도 않. 았고 선도위원회의 결정은 수차례의 사전통보가 있어야 하,

고 논의결정과정에서 학부모님의 참여가 있어야 하는데 지

켜지지 않았습니다.

역발상을 통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

전 외부의 지원보다는 학교 내에서의 해결을 중요하게 생:

각하신다고 다른 매체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이제 방학이 . 끝나고 개학인데 함께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강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던 적은 없습니다: . 다만 제자인 입장에서 선생님을 계속해서 믿어보고 싶었습,

니다 하지만 제게 돌아온 것은 흑색선전과 사실을 왜곡한 . , , 언론 보도 자료 등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불법 단체의 사주.

를 받고 있다는 내용을 계속해서 되풀이하고 계십니다. 를 믿는 라일리언과 희망연대라는 단체의 사주를 받았UFO

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라일리언 분들이 저희의 게시판에

지지의 글을 써주신 것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저는 . 라일리언이란 단체와 관련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 .

공동체 희망연대 역시 행사에 몇 번 참여한 적은 있지만

뒤에서 사주하고 있다는 말씀은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습니

다.

전 강의석씨의 행동이 워낙 용기 있는 행동이기에 선생님:

들도 고등학생 머리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기에는 놀라셨던

것이 아닐까요 사실 우리사회에서 미션스쿨에서 비자발적? 인 종교의식 강요는 어제오늘일이 아닌데 의석씨의 용기

있는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느낀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 이라는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의식을 거부하3

신 것이 더욱 그렇고요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의 상황은 어. 때요?

강 제 친구들이 고 이고 대광고등학교 후배들은 징계의 위: 3 , 험이 있고 다른 청소년들은 지방에 살고 있는 등 함께하, ,

는 사람들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

에 길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역발.

상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I N T E R V I E W⋅ ⋅ ⋅ ⋅ ⋅ ⋅ ⋅ ⋅

Page 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8

전 그 역발상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

강 사실 모이기가 힘든 이유는 학생이고 학교라는 곳에 있: 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어서 바로 학교 안에. 서 무언가를 만들고 해 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지요 또. .

한 학교라는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에는 인터

넷도 있을 것입니다 특정한 날을 정해서 강의석을 집단. “ ”

적으로 검색해서 검색순위에 높게 올릴 수도 있을 것이고, 요즘 이야기되는 플래쉬몹 같은 경우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평화운동이나 환경운동에서 플래쉬몹을 자.

주 한다고 하는데 제가 그런 내용들이나 사진들을 본 적이

없어서 고민 중입니다.

활동 속에서 힘든 고민들

전 병역거부자들이 병역거부를 결심할 때에는 사회적인 비: 난여론도 만만치 않지만 개개인들에게는 부모님과의 관계

가 사실 제일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의석씨는 이 활동을 . 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이었나요?

강 저 역시 부모님과의 관계였습니다 특히 고 이었기 때문: . 3에 부모님은 일단 대학에 가면 보다 많은 기회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다고 하셨지만 저는 이렇게 불합리 속에서 침

묵하는 제가 너무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전 요즘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퇴학처분까지 받은 : . 상황인데

강 지금은 오히려 많은 부분 저의 활동을 인정해 주시고 : 지지해 주시고 계십니다 지난번에 수익사업을 하려고 팥빙.

수를 팔았는데 전날 팔빙수 만드는 기계를 사서 집에 갖다

놓으니 부모님이 직접 만들어보시면서 즐거워하셨던 기억

이 나네요 웃음. ( )

전 로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

습니다 짧은 단체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강 로이는 의 약자입니다 청소년들의 인권: Rights of Youth . 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일단 시작은 학교 내의 . 종교의 자유에 대한 부분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

각 학교의 교칙과 학칙에 대한 공부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이 부

분은 다른 단체에서 많이 고민되고 있는 내용이고 아직 로

이가 여기까지 활동을 확장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I N T E R V I E W⋅ ⋅ ⋅ ⋅ ⋅ ⋅ ⋅ ⋅

Page 1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없 는 세상소 식지 호6 9

병역거부에 대한 나의 입장 아직은 고민 중.

전 저희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모임이라고 말씀드렸

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 부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이

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자유로운 답변 부탁

드립니다.

강 사안의 본질에 대한 고민:

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 병. 역을 거부하는가 왜 병역을 . .

거부하는 것이 평화를 위해서

라면 저는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평화로 직접적으로 연결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

고 싶습니다 아직은 생기지 .

않았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 , 거부를 하고 대체복무를 한다

면 오히려 그것이 국방력 강화에 더 큰 도움을 줄 수도 있,

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논리로서 생각을 전개한다면 오히려 . , 대체복무 대신에 감옥에 가서 쌀 한 톨을 더 먹어서 국가의

자산을 없애는 것이 평화를 위한 노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

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논리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보다는 평화를

위한 병역 거부에 대한 것입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

말하려면 개인의 양심과 국민으로서의 의무의 상관관계 또, 는 중요성을 논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것이 우선인가 병. . 역의 의무는 국민의 대 의무인데 개인의 양심이 그 의무4 ,

보다 중요할 수 있을까 국민을 위한 국가인가 국가를 위. , 한 국민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고 말입니다 또한 .

외국의 현실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병역을 의무로 정해 . 놓은 나라는 도대체 몇 나라나 되는가 어찌 보면 남북한의 . 관계처럼 긴장관계가 팽배한 대만에서 대체복무제를 실시

한 것 등을 말입니다 제 논리는 여기까지이며 아직 결론을 . 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고민해 볼 것입니다. , .

전 저희는 강의석씨의 행동이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양심적 : “거부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심적 거부란 행동” . “ ”

은 아직 한국사회에서 생소한 개념입니다 구체적으로는 . 양심적 병역거부란 것이 이야기되면서 양심적 거부의 한 “ ” “ ”형태를 이제 사람들이 막 알게 된 것이지요 양심적 병역거.

부는 양심에 따라서 도저히 군사훈련을 받을 수 없는 사람

들이 군대를 거부하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

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칠게 비유를 하자면 의석씨가 스. 스로의 신념에 따라 학교에서 강요하는 종교의식을 거부하

고 스스로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면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

는 기회를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 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 양심적 거부라고 말을 할 수도 있으며 헌법에 보장된 : , 기본권을 수호하기 위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잘못된 현실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려는 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는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학내에서 종교의 자유 폭넓게 연대하겠다, .

전 학교와 종교에 대한 문제는 사실 한국사회에서 많은 문: 제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평준화 속에서의 학생이 선택권 .

없이 미션스쿨에 배정받는 상황 또한 얼마 전 이화여대에. 서도 필수 수업인 채플에 대해서 나는 채플수업을 거부 한“

다 라는 선언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현재 맞서 싸우는 주” . 체로서 구체적인 해결방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

다.

강 우선적으로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학생들은 신앙을 표현할 자유와 불표현할 자유 두 가지를 , 다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현 시점에서 저희들에게 최소한. 의 자유 즉 불표현할 자유라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예배에 대한 선택권과 침묵의 자유를 주고 나서. , 대안을 모색하는 장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

로 사학이 존재하지 않으면 공교육의 기반이 흔들린다고

생각한다면 선교를 하는 학교의 입장을 존중하되 학생들의 ,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는 결론으로 가야합니다 예배의 선택.

권은 주어져야 합니다.

I N T E R V I E W⋅ ⋅ ⋅ ⋅ ⋅ ⋅ ⋅ ⋅

Page 1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10

전 사실상 싸움은 한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폭넓게 : ,

보면 학내 종교의 자유문제는 한 학원재단의 결정으로 해

결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대. 학 속에서의 종교의 자유를 위한 활동이 있는 것으로 아는

데 연대해서 활동하실 의향은 있는지요, ?

강 당연히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제가 그분들과의 연결: . 통로가 없기에 함께 고민을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회. 가 되면 함께 연대해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전 이후의 계획에 대한 짧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

강 서명 운동을 계속해서 전개할 것입니다 월 일까지 : . 9 30대한민국 인 만 명이 목표입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1% 50 .

하실 수도 있지만 시민들의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온라인을 ,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

사이트는 www로이 입니다 공개토론회 문화행사 등도 . .net . , 개최할 것이고 이런 활동을 하기 위한 후원금을 마련하는 , 활동도 할 것입니다 물론 목적을 공유하는 모든 분들과 . ,

함께 하고 싶습니다 헌법소원도 생각하고 있으며 변호사. , 님들께서 알아봐주고 계십니다.

전 바쁜데 어려운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I N T E R V I E W⋅ ⋅ ⋅ ⋅ ⋅ ⋅ ⋅ ⋅

인터뷰를 정리하고 소식지를 편집하고 있을 때 강의석군의 단식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연합뉴스와 오마이. 뉴스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강의석군 단식 일째35█

지난달 일부터 학생들의 예배 선택권을 위해 강의 11 ' '석 군은 일째 단식을 이어오고 있다 월 일 기자 35 . 9 14간담회를 통해 단식은 종교 자유를 요구하는 신념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고 사안의 본, 질을 왜곡하고 있는 학교 측이 현 궤도를 수정 올바른 ,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한 것 이라며 학교 측이 학생들" "에게 예배선택권을 주고 학생ㆍ학부모ㆍ교사가 함께하는 대화의 장이 약속될 때까지 단식을 계속 하겠다 고 말해 "굳은 의지를 재확인시켰다 이에 학계와 시민단체 관계. 자들은 학내 종교의 자유를 위한 시민연합가칭 을 결' ( )'성하여 일부터 활동에 들어갈 것을 선언했다 민주노15 . 동당 최순영 의원 등 국회의원 명도 지지의 서명을 23보내왔으며 교육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종교 교육을 , 실시하는 일반 학교들에 대해 지도 점검을 실시하고 있, 다고 밝혔다.

강의석 군의 소신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무. 엇보다 우리 사회의 용기 있는 청소년이 무기한 단식의 연장으로 건강을 해치지 않을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격려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지의 글은 www로이 에 남겨주세요. .net ~

Page 1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 는세상소 식 지 호6 11

임성환 징역 년 개월 실형 선고 법정구속:: : 2004.09.08 1 6 ( )

현재 임성환씨는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수감번호는 번입니다. 2579 . 면회조절은 쓰리씨 가 담당하고 있습니다(02-384-2803) .편지주소 서울 금천우체국 사서함 호 우편번호 영등포 구치소 수감번호 임성환: 164 ( 153-600) 2579

임치윤 년 월 일 년 개월 실형선고:: : 2004 9 7 1 6

현재 임치윤씨는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수감번호는 번 입니다. 1588 . 편지주소 부산시 사상우체국 사서함 부산구치소 임치윤: 58 1588

임태훈 년 월 일 심에서 년 개월 실형선고:: : 2004 9 9 2 1 6

현재 임태훈씨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있습니다 수감번호는 번 입니다. 3318 .편지주소 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 서울구치소 번 임태훈 면회 문의는 김철효씨 : 20 318 435-050| (019-467-5078)

강철민 고등군사법원 심에서 실형 년 개월 선고:: : 2004.03.23 : , 2 1 6 .

판결문 실정법상 어쩔 수 없이 처벌하지만 강철민 군의 행동은 분명 역사가 심판할 것 " , ."中 마산교도소로 이감 편지주소 마산시 마산 우체국 사서함 호 번 강철민 2004.05.06 : | : 7 630 - 705 551

염창근 재판 월 일 수요일 오전 시 북부지원:: : _ 9 22 11

유호근 재판 월 일 목요일 오후 시 서울지방법원 호:: : _ 9 23 2 526

이원표 월 일 국회앞 병역거부 기자회견 :: : 8 23 소견서와 기타내용은 홈페이지 병역거부자 만나기( “ ”)

오태양씨와 나동혁씨는 앞의 편지글 마지막에 실었습니다.❈

+병역거부자 정보

병역거부자 수감 재판상황 /정리

Page 1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12

기획기사의 머리말 격인 글1.

정확하게 언제부터 병역거부 제 라운드라는 용어가 사용되“ 2 ”었는지 확실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법원의 병역거부 , 유죄판결이 난 이후부터 병역거부운동 제 라운드라는 용“ 2 ”어가 사용되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한겨레 의 표지에서 병. 21 , 역거부 운동을 함께한 평화인권연대의 소식지에서 병역거“부운동 제 라운드 서막이 오르다라는 표제를 붙이고 평화2 ” , 네트워크의 입장 글이나 한홍구 교수님의 인터뷰에서도 , 병역거부 제 라운드라는 것이 언급되는 것을 볼 때 이제 “ 2 ”제 라운드라는 용어는 시민권을 획득한 용어라고 볼 수 “ 2 ”있겠다.

그러나 용어의 물신화는 경계해야 될 부분이다 라운드라고 . 2해서 우리가 했던 운동은 어느 경계선을 가지고 라운드와 1라운드로 구분되는 것도 아닐 것이고 특별한 변화를 느끼2 , 지도 못하는데 이제는 라운드라는 생각 속에 무언가 달“ 2 ”라져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느낀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

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현재 병역거부 운동을 둘러싸고 있. 는 사회적 조건들의 변화를 확인하고 그러한 변화가 병역거

부운동을 만들어나감에 있어서 어떤 방향성의 전환을 요구

하는 지를 확인해야 될 것이다 또한 라운드라고 명칭 되. 1는 시기의 병역거부운동에 대한 정리와 평가 비판들이 존, 재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순환을 위해서는 그 순환이 발 . 딛고 있는 과거와 현재를 꼼꼼하게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쉬운 말로 병역거부 연대회의에 사람

들 모아놓고 자 평가합시다 로 될 수는 없을 것이다“ ~” . 물론 연대회의 자체의 평가는 필요할 수도 있겠다 수많은 ( .)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했던 병역거부운동은 그 평

가와 반성 역시 각각의 주체들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토론함

으로서 진정한 평가를 바탕으로 한 병역거부운동의 새로운

순환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번 소식지의 기획기사로 병역거부 운동의

라운드에 대해서 병역거부운동을 중심에서 만들어온 사람2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했다 사실 처음의 의도. 는 이와는 조금 달랐다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는 대체복무. 제입법운동과 등치될 만큼 대체복무제입법 운동으로 병역거

부운동이 집중되어있었다 그러나 현재 병역법 개정안이 국. 회에 상정를 준비하는 지금 과연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사

람들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병역거부

운동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될 것이라는 고민과 함께

그에 대한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그러나 편집. 회의를 진행하고 사람들의 글을 받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 , 과정에서 우리 역시 새로운 라운드라는 것에 생각이 종속“ ”되어서 무언가 빠른 결론을 얻고자 너무 현실과 괴리된 관

점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도 중요한 일이지만 긴 호흡을 가지“ ” , 고 과정을 평가하고 이후 운동의 방향성을 세우는 일 역시

도 중요한 때이다 그래서 그런 평가의 시작이 될 수 있는 . 글들을 모아보았다 좋은 분들의 글이기에 읽는 분들의 고. 민과 생각을 정리하고 자극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

병역거부운동의 새로운 순환평화를 위한 긴 호흡임재성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이 글은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매체편집팀과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들과 함께 이후 병역거부운동에 대한 모색을 나누면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 진 것임을 밝힙니다 .

기 획 기 사| | | | | ❶

Page 1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 는세상소 식 지 호6 13

고민의 단초2 .병역거부운동은 평화와 만나야 한다 .

얼마 전 어떤 단체에서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

다 편하게 한 이야기셨는데 듣는 우리에게는 많은 충격이. 었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전쟁없는세상은 해체하는 것. 이냐가 그 질문의 주된 내용이었다 순간 많이 당황했으면. 서도 함께 많은 활동을 했던 그 단체 분들이 왜 그런 질문

을 하셨는지 고민해 보았다.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운동은 대체복무제를 개선하는 즉 병, 역법을 개정해서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체복

무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즉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병역. 거부권이 법적으로 사실상 인정되는 것이고 지금까지 무시, 당해왔던 병역거부자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볼 수 “ ”있다 물론 병역법 개정안이 상정준비가 되는 지금 우리는 . 대체복무제의 정당성과 병역거부 자체를 알리기 위해 최선

을 다해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 법안통과를 . 위한 노력을 다하고 개정 이후에는 대체복무제에 대한 감, 시와 개선 그리고 대체복무심의위원회에 지속적인 참여를 , 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사실상 우리가 처음 이 운동을 . 고민하면서 목표했던 바를 달성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 런 라운드의 목표를 달성하는 흐름과 함께 라운드의 새로1 2운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라운드는 한국 병역거부운동의 새로운 목표

를 설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병역거부운동과 평화 병역거부란 행위는 원칙적으로는 지: “ ”극히 개인적인 결심과 행동이다 물론 미국의 베트남전 징. 집거부 같은 경우처럼 집단적인 정치표현의 수단으로 사용

될 수도 있지만 그때 역시 병역거부자체는 개개인의 자발“ ”적인 선택으로서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 다면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운동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 ” ? 병역거부 자체를 알려내고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보장받, 기 위한 실천이었다 현행 병역법이 헌법상의 양심의 자. “유를 위반하는 것이고 양심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며 현행 ” , , 군복무와 형평성이 맞는 대체복무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운

동의 논리가 마무리되었다 때에 따라서는 국방력에 전혀 . 무리가 없고 군대의 첨단화 까지도 이야기하면서 일단 인, 권의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즉 인권과 평화라는 병역거부운동의 큰 두가지 축에서 지금

까지는 과도하게 인권의 측면에서 운동이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사회처럼 군사주의가 만연하. 고 병역이 신성화 되어있으며 병역거부자들에게 대한 가혹, , 한 처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정당한 방향이었을 수도 있

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병역거부운동이 평화와 만. 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은 . 군대를 가는 사람의 양심과 같은 양심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진정한 평화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양, 심이며 이 양심을 설명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최대, 한 전파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 “ ”위해 그들의 양심을 보장해달라가 아니라 그들의 양심이 , 다른 사람들의 양심과 함께 공명하고 동화될 수 있도록 해

야 한다.

또한 거칠게 이야기하면 전쟁없는세상은 이제 수감된 병역거

부자들의 후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평화수감자들이 출소, 이후에 그리고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면 대체복무 이후에 , 병역거부자들이 어떻게 평화활동을 사회 속에서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네트워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투박한 글과 고민이지만 이제 병역거부운동이 어떻게 , 평화와 만날 수 있을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기획이 그 논의의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은 . 어떤 고민의 결과물이기 보다는 고민의 과정에 대한 소고이

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고민은 우리만의 고민을 아닐 것이. 다 이미 병역거부권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수많은 나라에서. 도 이와 같은 과정을 겪었고 격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평, . 화활동가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병역거부운동 자체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서 평화를 위한 다양한 양심적 거부운동이 확

산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들으면서도 물론 (한국 상황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병역거부운동과 평) 화운동이 만나는 접점이라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사법부와 입법부의 논의와는 별개로 여. 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역거부에 대한 엄청난 반감과 생

소함을 가지고 있다 법안상정과 통과와는 별개로 사회적 . 권리를 얻어가는 과정은 무척 더디고 힘든 과정이 될 것이

다.

그렇기에 우리는 긴 호흡을 가지고 병역거부운동의 라운드2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Page 1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14

뎅 얼마 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 판결이 난 이후에 병역거부자들이 하나 둘 법정 구속이 , 되고 있는데요 병역거부 운동의 전망에 관해서 많이 고민. 하면서 소식지팀에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물, 어보고자 기획기사 또는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 중에서도 한홍구 교수님이 병역거부 운동의 중요한 역할

을 담당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인터뷰를 요청 드, 리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한홍구 교수님 개인에 대한 궁금증, 을 먼저 풀어놓고자 합니다 워낙 많은 분들의 궁금증을 . 유발시키시는지라 하하 우선 처음에 어떠한 계기로 병.. .. , 역거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에 대해 묻고 싶습

니다.

한홍구 교수님 이하 한 사실 군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 ) :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죠 한국 남성의 대부분이 군 생활을 . 경험했고 제대 이후에는 그쪽을 보고는 오줌도 누지 않, ‘는다라고 할 만큼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물론 나도 그러한 사람 가운데 하나구요 그 이후로 . . 한동안 잊고 사는 기억이면서도 우리의 군대가 이런 식, ‘으로 유지되어서는 안 될 텐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해봐’, ‘야 할 텐데하는 생각은 있었죠 막상 실행에 옮기지는 못’ . 하고 있으면서 말이에요 그러다가 년 말부터 한국 사회. 99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운동이 알려지게 되면서 그 운동

에 참여하게 되었죠 그 당시에 참전 용사들을 많이 만나. 게 됐어요 그 때 군복무 전쟁 등 이러한 것들이 개인에. , 게 얼마나 깊고 짙은 상처를 주는지 다시 한 번 알게 됐

죠 또 그 무렵에 군가산점 문제도 대두된 상태였어요 예. . 비역들에 대한 가산점이 부여되면서 이 문제는 여성과 장

애인 측에서 명백한 차별의 하나라는 주장이 있었고 보수

한국 병역거부 운동의 첫걸음,그 성과와 반성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

미애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인터뷰섭외 사진 정리( + + )뎅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인터뷰진행( )

한홍구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 성공회대 교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기 획 기 사| | | | | ❷

Page 1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 는세상소 식 지 호6 15

적인 헌법재판소에서조차도 이것을 차별이라 규정했죠 이 . 때문에 공무원 시험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한 온

동네 예비역들이 우리의 젊은 청춘에 대한 유일한 보상군(가산점 마저 폐지한다며 들고 일어났던 일이 있었죠 이렇) . 게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박탈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군대문제를 바라보게 됐어요.

또 하나는 국가적 차원에서 바라봤죠 안보를 위한 입대는 .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며 젊은 남성들을 군대로 데려가지

만 나 같은 사람도 군대에 대해 엄청난 피해의식을 지니, 고 있어요 나는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군대를 노블. 리스 오블리제 뭐 어쩌구 하지만 군대를 빼먹으려는 게 .. 정상이라고 봐요 근데 그런 것들을 억압하면서 군대를 아. 주 야박한 곳으로 남겨두는 것이 이상했고 젊은이들이 나, 오면 다 삽질한 기억밖에 없고 나부터도 삽질 참 많이 했. 죠 웃음 왜 저렇게 훌륭한 인재들에게 삽질만 시키고 있.( ) 을까 하는 것에도 의문이 들었어요 군대에 갔다 와야 사. 람이 된다는 의식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제가 ,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과정에서 일본 군국주의를 거치면

서 한국 사회는 어떻게 군사화 되어가고 있는가 그 전에, 는 유교 국가였단 말예요 이후 식민 지배를 거치고 전쟁. 을 겪고 이승만 박정희 시절을 거치며 군사화 되는 과정, , 을 지나오면서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이러한 것들이 내가 .. 앞서 얘기했던 베트남전 진실 위원회 활동과 맞물리고 그, 런 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군대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그런 과정 속에서 병역 거부를 하시는 분. 들을 만나게 되고 그 분들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 런데 이것이 먼저 개인의 양심 차원에서 보다는 한국에서

의 군대의 의미와 군대에서의 체험이 개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경험을 겪은 사람들이 , 민주화 운동을 추진해오는 과정상에서는 또한 어떤 역할

을 담당해왔는가 그러니까 징병제 문화에 대한 것에서부, 터 시작된 거죠 이와 같은 과정에서 병역 거부 문제의 하. 나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문제가 보도가 됐어요 참 미. 안해지더라구요 어렸을 땐 그 사람들에 대해서 국가주의. , 반공주의적 시각에서 편견을 갖고 바라보고 있었어요 사. 실 병역거부와 관련한 내 글에서도 많이 다뤄져왔던 내용

이지만 어떻게 박정희 전두환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던 , , 사람들이 그 속에서 수십 명 수백 명이 죽어가면서 병영, 집체 훈련도 거부했는데 군대거부는 한 명도 못했단 말이

죠 이게 무슨 의미인가 이런 정도로 한국 사회가 군사화 . ‘ .

되어있구나 우리 안에 이렇게 깊게 들어와 있었던 거구, 나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된 거죠 이러면서 병역거부자들’ . 과 차츰 만나기 시작했어요.

뎅 교수님께서 처음 만난 병역거부자는 오태양씨 였지요: ?

한 그래요 병역 거부를 선언하기 전 우리 학교에 계신 : . , 어떤 분을 만나러 온 오태양씨를 처음 봤어요 년 . 2001 10월 말에서 월초쯤 병역거부를 선언하기 한 달 전 이었11 , 어요 이듬해 월 한겨레 에 처음으로 병역거부에 대한 . 2 21기사가 나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점차로 모이기 시작

했죠 인권활동가 등등 그런데 그 전까지는 인권단체 활. .. 동가 중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년 월 경 대만의 대체복무제 현황을 살피러 가는 팀 2001 7들이 꾸려지면서 차츰 느슨하게 모였어요 주로 여호와의 . 증인들을 지원하는 활동과 더불어 대체복무제를 입안하는

문제들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는 즈음해서 오태양씨가 처

음으로 선언을 하게 된 거에요 오태양씨의 선언. (2001. 12. 이후로 느슨했던 만남이 긴밀하게 조직되기 시작했죠18) .

이를 계기로 년 월 초에 한겨레의 보도가 있었고 2002 2 1년 후에 연대회의의 공식적인 출범이 있었죠 그런 뒤에 . 실무적인 일은 최정민씨가 많이 처리했죠.̂ ;̂;

뎅 오태양씨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음 질문으로 자연스럽: 게 넘어가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 오태양씨의 선언

과 더불어 언론 한겨레 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대회의가 ( ) , 출범하고 그 시기였던 것 같아요 뉴스에서도 보도되고.. . , 대학 사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나 토론이 활발하

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도 이 시기구요 이 때문에 많. 은 사람들이 오태양씨가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최근에 구

속되기까지의 과정을 일컬어 이때가 병역거부의 세대 운1동기였다 운동이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병역, 1Round .. . 거부 운동의 라운드를 살펴보는 과정에서도 가장 대표적1인 것이 대체복무제 입법운동이 아닐까 하는데요 교수님. 께서 생각하시기에 라운드의 성과와 반성할 점 그리고 1 , 앞으로 보충해야 될 점들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한 딴 얘기 좀 해도 되죠 뎅 그럼요: ? | : ^ ;̂;

Page 1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16

한 세대는 좀 그렇고 뭐 라운드라고 해둡시다 저는 : 1 , 1 . 1라운드에서 소득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맨 땅에 . ‘헤딩하기 아니었습니까 심지어는 인권 운동가들을 포함’ . 해서 공안에 끌려 다니다 나왔던 나 자신조차도 잘 몰랐

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웬만한 고등학생들조차 이 . 문제에 대해서 한번쯤 들어봤고 한국 사회에서 실시한 수

많은 이슈 파이팅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활동이었죠 가장 . 단 시간 내에 가장 널리 알려진 우리가 단지 에서 몇 , . 1R명이 감옥으로 가는 등 승을 거두지 못했을 뿐이지 많KO , 은 관심을 유도했다고 봐요 년 운동함으로써 여기서 . 2~3

선언한 사람들이 감옥에 가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것까지는

어려운 상황이죠 그랬다면 지금까지 그 많은 만 명이 . , 1넘는 사람들이 감옥에 가지 않았었겠죠 물론 부족한 점도 . 많지만 이런 부분에서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봐요 그럼에. 도 불구하고 나는 대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점이 참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뭐 나름의 정치적 이해 문제가 있. , 었겠지만 대표적인 예로 한총련 학생들 말이죠 이 사람, , 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가 개인. 적인 느낌으로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공. 6.15 동선언 평화 통일 내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 , , 등등의 기치들을 내걸고 있는 이들 집단에서 어떻게 병역

거부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무심할 수 있는가 하는 거였

죠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문제를 봐도 내가 이스라엘을 . , ‘지키는 일은 하겠지만 팔레스타인 땅에 점령군으로 들어

가서 무차별 살생을 하는 것은 못하겠어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그리고 한총련이 아니라 하더라도 당장 . 년 후에 군대에 가게 될 당사자로서의 대학생들이 이2~3

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또한 우리가 잘 알고 . 있는 진보 언론에서조차 병역 문제에 대해서 노블리스 오

블리제를 비판할 뿐이지 사실 병역 제도 자체를 문제 삼

지는 않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계기로 . 해서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중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되새

길 만한 필요는 있죠.

그리고 대체복무제 입법 운동의 경우 부족한 점이야 아주 , 많겠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우리 스스로 이 사회의 군사화, 에 대해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크게 만

족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전시 상황에서 병역거부를 운운. 하는데 우리는 준전시상황에서조차 병역거부를 말한다는

것 자체를 해악으로 치부하죠. 2차 대전 상황의 미국에서는 명이 병역거부를 선언했12,000어요 이 중 만이 여호와의 증인이었죠 그런데 우리는 . 5% . 보수적인 종교집단들과 권력에 의해 만여 명이 감옥을 1향하면서도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었을 뿐더러 알지도

못했죠 이러한 모습들에 의해 우리 국민들이 자각할 수 .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겠죠.

그리고 미흡한 점과 대안이라는 측면은 뒤에서도 이야기가 되겠지만 앞으로는 대체복무제마저 거부하는 흐름 등 아

주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게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야 . 하구요 그런데 전쟁없는세상 도 그렇고 알다시피 한국. < > , 의 평화운동이라는 것이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 있어요 또. 한 만 명이 넘게 감옥에 가도록 군대 문제는 사실상 은폐

되어 있었고 완전한 성역으로서 존재하고 있었죠 무관심. 하기도 하고 무지하기도 했기 때문이겠죠 준비 없었던 상. 황 대처로 인해 여러 반성할 지점을 만났다면 이제는 동

일한 문제에서 탈피하는 것이 대안이겠죠 구체적으로 말. 해서 우리 병역거부자들을 포함한 후원자들이 이 사안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활동 분야 및 계획을 세분화시켜

우리가 단지 에서 몇 명이 1R

감옥으로 가는 등

승을 거두지 못했을 뿐이지 KO ,

많은 관심을 유도했다고 봐요.

Page 1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 는세상소 식 지 호6 17

좀 더 전문성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병역거. 부자라고 해서 선언하고 감옥에 다녀오고 이런 것으로 마. 무리 될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자로서의 삶과 향후 계획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죠 그들 스스로가 자신이 . 행한 부분에 대한 소신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신념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서신을 공개적으로 주고받는 , 것이 있겠고 각자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서적을 공급받, 아 커리큘럼을 짜고 옥중에서 세미나를 개최해 생각과 느

낌을 글로 적어 보내주면 책으로 엮거나 소식지 인터넷 ,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일반인과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는 등의 것들을 이용할 수 있겠죠 이런 모. 습들이 이어지는 것이 병역거부와 관련한 신념을 사람들

에게 지속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봐요 년 반 . 1감옥에 다녀왔다는 것으로 그들의 고됐던 삶을 증명하기

엔 부족하잖아요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는데도 기여하기 ? 곤란하겠구요.

더 나아가 각자 전공 분야를 정할 필요성이 있어요 무기. , 학살 환경과 생태 대인지뢰 등등 아직 미개척 분야가 , , .. 많으니 기금 마련의 방식들을 통해 공부하려는 그들을 적

극적으로 돕는 거죠 이후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강연이. , 나 세미나 등을 통해 대중 앞에 설 날도 기약하면서 말

이에요 이들이 읽은 책들은 평화박물관에서 평화운동가 . 누구가 읽었던 책이다 라고 하여 전시도 되겠죠 웃음‘ ’ . ? .한홍구 교수님은 현재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상임 (이사로 계십니다 병역거부자들 가족들의 협박과 회유뿐.) .. 만 아니라 사회적인 압력에도 많이 시달렸잖습니까 개인 ? 이메일로 욕설이 가득담긴 메일을 받기도 하고 말이죠 이 . 사람들 이제 한두 달 새에 모두 구속이 될텐데 자신을 가

다듬고 정진시키는 계기로서 앞에서 나열한 방법들을 활

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 저의 제안입니다.

뎅 이후의 일정도 있으시고 하니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병: , 역거부 운동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에 대해서 교수

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한 병역거부 운동이 한국 사회에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 했으면 해요 한국은 양심이 없고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이 . 정권을 잡았던 것이 대부분이었죠 우리 사회에서 사상의 . 자유문제가 촉발된 것은 비전향 장기수 문제에서부터였죠. 이런 문제로 한참 홍역을 치른 후에야 나타난 것이 지금

의 병역거부 운동이었고 그동안 여호와의 증인들이 살아, 왔던 삶에 대한 조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군대 문제에 . 대해서는 한국이 아주 척박한 토양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여기서 민주적 평화적 감수성이 말살되었다고도

볼 수 있죠.

아까도 말씀하셨다시피 현재 는 막을 내렸다고도 볼 수 1R있죠 처음 그 시작이 병역거부가 권리로서 인정받는 것이. 었다 할지라도 현재 사회 전반에 얼굴을 내민 우리 운동

의 성과는 결코 작게 봐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병역거부. 자들이 감옥으로 향하고 있지만 대법원과 헌재 등 사회 , 권력층 보수적인 집합체에서조차 사회적 관용으로서의 병, 역거부 운동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태도변화 자체가 큰

성과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앞으로 개막될 . 에서 어떻게 펼쳐나갈 것이냐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2R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절대적입니다 앞서 말한 태도 1R .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이에 상응해서 군 구조 개혁

과 사회적인 문제로서의 공론화 설득 작업을 끊임없이 펼,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대와 병역제도의 불합리성을 설. 파하는 등의 대중 설득 작업을 구체화함으로써 합리화된

국민 여론을 형성 수렴해 실용적인 측면 현실적인 측면, , 에서 군 문제가 논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현재

의 우리가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 현재 주되게 활동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 모두가 평화주의

적 신념을 정립하고 그것을 올바로 실천하는 방법을 모색

하여 행하는 것 또한 이 사회가 평화주의자들을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될 것입니

다 일상에서의 실천이 다른 어떠한 방법만큼이나 중요하. 다는 것이지요.

또한 이야기가 짧아지겠지만 저는 국가 안보적 측면에서의 , 군의 역할과 존재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옳다는 것만도 아닙니다 나와 같은 사. 람뿐만 아니라 군 자체에 대해서 반기를 드는 사람 지금, 까지 논의된 내용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상이 공존하는 공간이 될 수 있는 장으로서의 전쟁없<는세상 의 역할도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

바쁜 신데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한홍구 선생님께큰 감사를 드립니다 전쟁없는세상. -

Page 1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18

작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세계병역거부자의 날(International 행사에 참가했을 때였다 행Conscientious Objectors' Day) .

사에 참석하기 위해 터키에서 온 병역거부자 쟌은 터키의

병역거부 운동에서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한 번도 주장해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하였다 물론 그 단체의 성향이나 여. 50명의 병역거부자들에 비해 병역기피자들이 명에 달400,000하는 터키의 상황을 고려한다고 하여도 쟌의 얘기는 나에

게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병역거부 운동 역사에서 대체복무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논

의들이 존재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년대 . 1900초반부터 다양한 대체복무가 많은 나라들에서 실시되어왔

지만 또한 이마저도 거부하는 완전거부자 들, (total objector)도 존재해왔다 대체복무제도가 비교적 훌륭하게 자리 잡. 은 곳이라 평가되는 핀란드의 경우 수십 명의 완전거부자, 들이 대체복무마저 거부해 수감되어 있다 올해 월 일 . 12 1평화수감자의 날 에는 핀란드의 (Prisoners for Peace Day)병역거부자들을 위한 전 세계 연대행사가 진행될 예정이기

도 하다 이들 완전거부자들이나 터키의 병역거부운동가들. 이 지적하는 것은 크게 가지 지점이다 첫째는 아무리 대2 . 체복무제도가 민간성격의 것이라 할지라도 전시에는 징집

되는 조항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은 전쟁 . 시기에 병원 민방위 지뢰제거 난민통제와 같은 대체복무, , , 에 병역거부자들을 무기한 소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군대로 소집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러한 대체

복무 역시도 전쟁체계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들 병역거부자들의 주장이다 둘째는 대체복무가 결국은 . 국가에게 자국 시민들을 징집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민간 목적이라 할지라도 국가에 의한 모든 . 징집과 징발을 반대한다 결국 대체복무제도를 받아들이는 . 것은 이를 거부하는 병역거부자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병역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의 병역거부 운동 그룹들은 이러한 대체복무

주장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그룹도 있고 대체복무를 도입

하기 위해 활발히 운동하는 그룹도 존재한다 한국의 경우. , 병역거부 운동은 아직은 규모가 작고 출발선상에 있는 운

동이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 않

지만 머지않아 완전거부를 선언하는 사람도 나오고 이러한

문제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대체복무제도를 주장하느냐 마느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고 생각한다 대체복무제도가 존재하는 징병제가 그렇지 . 않은 징병제에 비해서 더 나은 대안이라는 점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다만 병역거부 운동의 목표를 대체복무제도 도. 입 혹은 개선에 두느냐 마느냐는 좀 다른 문제이다 병역. 거부 운동은 사회의 만연한 군사주의 문화에 문제제기를

던지고 이를 해체하기 위한 운동이다 이런 차원에서 봤을 . 때 대체복무제도의 도입 혹은 개선은 그 과정일순 있어도

병역거부 운동의 최종목표일 수는 없는 것이다 대체복무. 제도 개선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가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대체복무제도 논의의 쟁점들최정민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기 획 기 사| | | | | ❸

Page 2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 는세상소 식 지 호6 19

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서명을 받는 동안에도 시민들. , 에게 선전하는 동안에도 글을 쓰는 동안에도 국회의원들, , 을 만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넘어 군

사주의 해체와 전쟁반대를 위한 보다 궁극적 목표를 생각

하고 의식해야 한다 군사주의 해체와 전쟁반대라는 우리. 의 목표에서 우리의 운동은 현재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병역거부 운동의 목표가 무. 엇인가를 정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우리의 운동은 어떤 방

향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연대회의는 줄곧 대체복무제도의 ? 개선만이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

다고 주장해왔다 법정최고형인 년형의 관행이 깨지고 형. 3량이 줄어들었으며 교정시설 내에서의 종교집회의 자유도

허용되는 등 여러 부분 인권적 진전을 이루어온 것이 사실

이나 병역거부자들이 계속 감옥에 갇히는 현실은 전혀 달, 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거나 . 공존하는 문화가 부재한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권을 인정

하고 대체복무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병역거부 운동의 최종

목표는 아닐지라도 그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길은 멀다 한국 . . 군대의 역사만큼이나 한국 군대의 민주화 수준만큼이나 빈

민개병제로 전락해버린 병역비리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지

루한 길을 거칠 것이라 예상한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곪아. 버린 한국군대의 현실을 지금까지 방기해왔던 정부와 국방

부가 마치 병역거부자들 때문에 이런 상황이 도래한 것처

럼 선전하고 부추기고 있으니 더욱 문제다 또 있다 분단. . 현실에서 국가안보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불안이 그것이

다 이것은 국가안보를 군사력이나 군인수로만 규정해왔던 . 현실과 안보는 국방전문가들의 몫이라는 엘리트주의와 무

관해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군대와 국방에 관해서는 아마 . 저마다 할 말이 있을 것이고 그 내용 또한 다양할 것이다. 국가안보는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인 만큼 이후에도 다양

하고 심도 깊은 논의가 꼭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 논의는 또 그 비뚤어진 역사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장기적으론 현대판 군사적 노예제도라 할 수 . 있는 징병제도에 대한 폐지 더 나아가 군대 없는 세상을 , 상상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기적 목표와는 별개로 대체복무제도는 시

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개념조차 모호한 국가적 이익을 이. 유로 평화에의 신념이 철창에 갇힌다는 것은 말이 안 된

다 개인의 인권에 대한 국가의 존중 법과 인권에 의해 합. , 리적으로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 이러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에는 이들 병역거부자들의 인

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수준 높은 인권의식과 함께 기

존의 전통적 안보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각도로 안보를 해

석할 수 있다는 보다 발전된 안보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것은 현대 국가의 안보가 과연 힘 혹은 무장력의 우위로“서만 판가름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서 출발하는 것”으로서 군사력의 신장을 통한 국가안보는 결국엔 엄청난 , 무기경쟁을 낳을 수밖에 없고 동반자적인 공동체 의식보다

는 국가 간의 적대성을 강화시키는 결과만을 낳을 수밖에

없으므로 기존의 전통적 국가안보관은 진정으로 국가와 국

민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국. 방의 개념은 이미 군인 수에 기반 한 군사력의 협소한 의

미를 넘어서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 문화 외교 심지어 , , , 스포츠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즉 국가안보란 군사 비군사. , 에 걸친 국내외로부터 기인하는 각종각양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추구하는 제 가치를 보전, 향상시키기 위해서 정치 외교 사회 문화 경제 과학기술, , , , , , 에 있어서의 제 정책체계를 종합적으로 운용함으로써 기존

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배제하고 또한 일어날 수 있는 위협

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며 나아가 발생한 불시의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안보관계용어집 국방대학교 ( , 대체복무가 국가를 위해 공을 세운 누군가에게 내2001).

리는 상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안전하기 위해. 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논의해야 한다 안보담론의 획기. 적 전환이 필요하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바로 길이다라는 말이 있‘ . ’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 과정상의 중요성을 . 부각하는 말이라 생각된다 병역거부 운동은 결과의 운동. 이 아니라 과정의 운동이며 삶 그 자체의 운동이다 이렇. 듯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었던 평화라는 담론

을 새롭게 정의하고 기존의 평화운동을 다시 돌아보게 한

다는 의미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살인을 거부할 수 , 있는 권리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병역거부 운동. 은 전쟁과 군사주의에 반대하고 동시에 시민적 대안을 찾

는 것이자 삶의 태도에 대한 확고한 주장인 것이다.

Page 2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20

평화수감자에게 보내는 편지조약골 재야가수 피자매연대와 한국 에서 많은 활동 중( , WRI )

저는 병역거부자들을 처음에는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더랬습니다 그러다 차츰차츰 이들과 가까이서 만나볼 . 기회를 갖게 되었죠 그런 친구들이 이제 차가운 감옥으로 하나둘 들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 각자가 . . 가진 다양한 생각들과 신념들을 일일이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결코 총을 들지 않겠다는 가장 인간적. , 이고 평화로운 신념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을 가야 하는 이 끔찍한 야만의 국가는 나와 평화수

감자들을 천 갈래로 갈라놓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갈려진 우리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혀보고자 이 . 편지를 씁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에 잘 하지 않았던 내 이야기를 좀 해볼께요 조약골이 생각하는 병역거부에 대해 편하. 게 풀어놓고자 합니다 이제는 제게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기회는 없어졌어요 다시는 그 지긋지긋한 무. . 거운 군복과 신고 벗는데 불편한 군용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하네요.

오늘은 지하철에서 군인 명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답니다 저는 옛날에 무더운 여름에도 그 전투화라고 하4 . ' '는 정강이까지 차오르는 두꺼운 신발을 신고 하루 종일 지내다보니 발에 온통 무좀이 걸려버렸어요 내 . 앞에 앉아 있던 그 군인들도 아마 모르긴 몰라도 늠름해 보이는 군복을 한 자락만 벗겨보면 각종 질병과

고통스런 증상들로 힘들어하고 있을 거예요 매일같이 입어야 했던 그 군복을 마음대로 벗을 수 있었던 .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년 전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무좀이 절 괴롭혀왔으니 저는 그 무좀에서 벗10 , 어나는데 꼬박 년이 걸린 셈이네요 그 년은 사실 제가 군대의 독소들을 내 온몸에서 하나씩 끄집어10 . 10내온 기간이기도 해요 내 정신에 육체에 각인되어 있던 그 무서운 독소들이 이제는 거의 빠져나간 것 . , 같아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 년에 몇 번은 여전히 그 갑갑한 군복과 군화를 신고 떨어지지 않은 발. 걸음을 떼었어야 했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군대란 것이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 내 몸 속에 잠복해 있으며 날 병들게 했는지 이제와서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막과도 같았던 것 같아요 완전히 메말라버렸던 평화적인 감수성이 이제 조금씩 나의 밑바닥에. 서 솟아나고 있거든요 그래서 비로소 이제 저도 뒤늦게나마 병역거부라는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된 .

| 평화 수필 |

Page 2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 는 세상소식 지 호6 21

것 같습니다. 내게 병역거부는 자동차 거부와 아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우리들에게는 각각 자신만의 고귀한 양심. 이 있고 병역거부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법이잖아요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 . 부분을 딱 하나 꼽아보라면 저는 제일 먼저 이것을 들어요 난 차량을 운전하는 법을 모르며 앞으로 운. ' , 전하는 법을 배울 생각도 없다.'

운전면허가 없다는 것이 제겐 여간 커다란 자랑거리가 아니랍니다 운전을 배워보지 않았다는 것은 마치 . 총 쏘는 법을 아예 처음부터 배워보지 못한 것과 제게는 똑같게 느껴져요 내게 운전을 할 줄 모른다는 . 것은 총을 쏠 줄 모른다는 것과 같은 가치예요 그래서 예를 들어 갑자기 어느 날 이 국가가 법을 개정. 해서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운전면허를 따게 만들고 강제로 운전 학원에 들여보내고 몇 년 동안 운전 , , 기술을 습득케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보았답니다 그러면 나는 여러분들처럼 운전을 거부. 하고 감옥에 갈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어떤 위대한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어서도 아. , 닙니다 단지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거예요 운전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나는 . . 상상조차 할 수 없듯이 아마 평화수감자 여러분들도 총을 든 모습을 떠올릴 수조차 없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병역거부와 운전 거부를 연관시키는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총. 을 들지 않는 것은 분명 평화의 길이지만 내게는 분명히 자동차를 몰지 않는 것이 평화의 길이거든요.누구나 하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가 전쟁의 체험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 국가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을 ? 군대로 보내고 그곳에서 전쟁의 체험을 반복적으로 주입시킵니다 오늘도 그들은 바로 옆에서 총소리와 . 대포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함성을 지르며 봉우리 정상에 있는 진지를 향해 돌격을 하지요 전쟁을 막는. 다면서 그런 전쟁을 일상화시킨다는 것이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병역거부와 자동차 거부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악몽 같던 전쟁의 체험 년의 , 10세월이 지나면서 아픈 기억들은 바람에 흩어져 없어지고 내 속에서 평화의 감수성이 조금씩 자라날 무렵, 기억하고 싶지 않던 전쟁의 체험이 내 주위를 쌔앵 하고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이에요 될 수 있는 한 기계에 의존하지 말자 기름과 전기로 굴러가는 저 중앙집중적 산업문명. , 의 발명품에 예속되지 말자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하려면 빨리 가려하지 말고 내 두 다리로 천, 천히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걷기를 생활화했어요 그런데 사실 서울이라는 공간이 인간이 걷기에. 는 참으로 부적당한 곳이라는 것을 나는 걸으면 걸을수록 느끼게 된답니다 바로 위에서 전쟁의 체험이 .

PeaceEssay

Page 2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22

되살아났다고 했죠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은평구 녹번동으로 몇 번 걸어온 적이 있었는데요 그렇게 ? , 오려면 중간에 북악터널이라는 곳을 지나치게 된답니다 이 터널은 자동차 전용도로에 있는 터널말고 보. 행자가 도보로 통과할 수 있는 서울 터널들 중에서는 아마 제일 긴 터널 축에 속할 거예요. 평화수감자

여러분들도 혹시 기회가 닿으면 밤에 그 북악터널을 한번쯤 걸어서 통과해보세요 어떤 느낌이 드는지. , 내가 왜 전쟁 체험을 들먹였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거예요 신호가 바뀌자마자 뒤에서부터 무섭게 달려. 오는 자동차들의 행렬이 내뿜는 그 굉음은 탱크와 비견될 만하고요 좁디좁은 터널 안에서 울려 퍼지는 , 그 소리와 더러운 공기와 강한 바람은 마치 바로 옆에서 미사일이 터지는 것과 흡사해요 게다가 그 긴 . 터널 안은 한 번 들어서면 좀체 끝이 보이지 않죠 돌아갈 수도 없고 끝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 , 동차와 탱크와 미사일의 폭격이 귀를 때리고 자욱한 먼지 때문에 숨이 막힌 답니다, .

모르긴 몰라도 미국이 첨단 무기라며 각종 미사일들을 총동원해 이라크 시가지와 민가들을 무차별 폭격할

때 숨죽이고 숨어있어야 하는 이라크 민중들이 어떤 기분일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답니다.

아마 이런 경험들로 인하여 저는 운전면허를 배우라면 감옥행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에요 자동차가 .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나는 느낀 것이 있기에 내가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같은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것은 무슨 외부의 거창한 사상이나 그런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 운 행동이에요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물이 흐르듯 자연히 흘러가는 길이죠 평화수감자들이 총. . 을 들 수 없다는 것도 아마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지율 스님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천성산을 살리기 . 위해 힘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제가 이해하는 한에서는 그래요. .

그런데 이 길은 명예로운 길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길도 아니에요 성공을 좇는 길도 아니고 이것을 통, . 해서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길도 아니죠 병역거부의 길은 그래서 길고 긴 여정인 것 같아요 대박을 . .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혁명을 찾아가는 길고 지루한 여정이죠 가진 권위가 있다면 모두 벗어 던지고 ' ' . 가는 길이에요.

이렇게 훌쩍 떠나가는 것을 우리들은 평화운동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 . . 길에서 우리들이 만나고 어느새 옆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고 있어요 여러분들도 그 친구들이 . 보이시죠 제가 평화수감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이것이에요? .

나는 평화운동이 국가라는 틀을 넘어설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저 국가라는 것은 . 적으로 상정해야 자신의 존재 이유가 생기는 법이죠 냉전이 끝나니 미국이 이제는 테러리즘이라는 적을 .

Page 2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 는 세상소식 지 호6 23

새롭게 구성해내기 위해 요즘도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죠 한국은 이에 맞장구를 치면서 군대의 힘? 을 강화시키기 위해 별 수사를 다 동원하고 있고요 하지만 평화운동은 국가가 만들어내는 적이 얼마나 . 허구인지 가장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이죠 지금 미국은 자신의 적을 인류의 적으로 만들어내는 공정을 . 벌이고 있고요 이렇게 가공해낸 적을 무력화시키고 제거하는데 국가의 존립 근거를 삼고 있는 것 같아, 요 하지만 적은 애초에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된 것이었으니 전쟁이라는 최고이자 최악의 국가 폭. 력의 피해는 애먼 여성과 노약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요 결국 평화운동은 적을 사라지게 하는 운. 동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평화운동은 국가 간의 장벽마저도 무너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답니다.

사실 요즘 세상 살아가기가 참으로 고통스러우니 안녕하세요로 시작되는 편지를 차마 쓰지 못했네요 노' ' . 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며 노예 노동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요 농민들 역시 쌀시장 개, 방 정책을 통해 농업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고 삶의 터전마저 뿌리째 뽑힐 위기에 놓여있는 상황이고요, .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무한 경쟁의 사회가 이대로 유지되는 한 우리들 평화운동가들은 여전히 외로운

길을 걸을 것이며 평화를 가장 갈망하는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계속되겠죠, . 저는 손수 길러낸 쌀과 채소로 따뜻한 밥을 만들어 모두가 조금씩 나누어 배불리 먹을 세상을 향해 천천

히 걸어가려고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과 함께요. .

년 월 중순에 조약골 드림2004 9

PeaceEssay

Page 2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24

아는 만큼 보인다.

답사를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는 만큼 보인, “다 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어떤 지역을 가거나 혹은 .” . . 어떤 역사적인 유물을 볼 때 우리는 정말 알고 있는 만, 큼만을 얻을 수 있다 혹은 배울 수 있다 신라불교에 대. . 한 이해 없이 불국사는 그저 유명한 관광지일 뿐이요, 경주 남산은 단지 서울 남산정도 높이의 경주에 있는 산

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사람들. 은 최소한 그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에 대한 공부․

를 해야만 눈요기의 관광을 넘어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난 안타깝게도 일본말은커녕 일본에 대해서 아는

것도 대학 수업시간에 일본근대사 수업에서 눈 지긋이

감고 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평화캠프의 여독을 . 풀지도 못하고 더운 여름날 가을바람에 쫓겨가듯 그렇게

일본으로 향하였으니 그저 일정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 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외는 . 항상 있는 법 하늘은 스스로 돕지 않는 자를 가끔씩은 !

|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만나다이용석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email protected]

Page 2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 는세상소 식 지 호6 25

도와주며 그 대상은 신기하게도 나였던 경우가 굉장히 , 많았다 이번 또한 아무 준비도 없이 갔지만 나름대로의 . 배움이 있었으니 난 참으로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 아

니던가...

낮은 곳으로만 흘러내린 바다

일본까지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면 비행기 삯의 분의 3 1밖에 들지 않는다 기차비에 이것저것 합쳐도 반도 안 . 된다 게다가 빙둘러선 수평선 해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 , 다에서 죽는다 코끝을 저며오는 짠내음의 생명의 소리. . 이런 바다를 두고 어쩌면 테러를 당할지도 모르는 비행

기를 탄단 말인가...부산에서 히로시마로 가는 바다는 고요의 바다였다 인간. 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

한 세상이었다 세상의 모든 물은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 낮은 곳으로만 낮은 곳으로만 몸을 낮춰 자꾸만 몸을 낮

춰 인간세상의 온갖 오물과 눈물을 자정하는 바다 고요. 함은 끝끝내 인간에 대해 인내하는 고통의 신음소리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바다는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그렇게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병역거부자들이 걸어가는 길에서 바다. 의 삶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바다는 분노의 바다였다 일본을 관통. 한 태풍은 일본에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태풍은 10 . 바다 위에서 더욱 거세었다 거대한 배는 이리저리 흔들. 리고 바다는 포효하고 또 질주하고 있었다 우리를 삼켜. 버릴 듯 거대한 파도는 수없이 부서지며 하얀 풍경을 이

루었다 바다는 살아 요동치는 생명이었다 그 고요함과 . . 분노의 순환은 바다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인간이 침범. 할 수 없는 영역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 인내의 시절이 끝날 때 그 분노는 인간을 향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간 바다에는 또 다시 고요. 가 찾아왔다 바다는 여전히 수많은 생명들을 그 속에 .

품고서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렇게 잔잔하게 빛나고 있었

다.

이번 일본 전국 순회 간담회는 오사카자유학교라는 단“ ”체에서 기획하고 각 도시에 있는 자유학교와 평화단체들

이 준비를 하였다 그리하여 개 도시 개 대회장을 . 7 8 15일의 일정동안 수행하였다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 총. ‘을 들지 않는 사람들을 상영하고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질문 토론 등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글에서 일본에서 느끼고 보고 배운 모든 것을 다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직도 난 일본에 대. 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배워서 일본을 가르치는한국의 국가주의

후쿠오카는 도쿄나 오사카에 비해 오염이 훨씬 덜 된 곳

이었다 때문에 생선음식이 유명하다고 한다 도쿄나 오. . 사카는 비록 항구지만 오염이 심해서 좋은 생선이 잡히

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쿠오카에서는 일명 게르니카 사. ‘건의 주인공 선생님을 만났다 일본 한 학교 졸업식에’ . 서 학생들과 함께 졸업 작품으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

림을 벽화로 그린일이 있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이것. 을 썩 흡족해 하지 않아했었고 결국 졸업식 당일 그림, 이 있어야 할 벽에 그림은 온데간데없고 대형일장기가

펄럭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그는 갑작스러운 .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학교에서 아이들과 . 함께 생활하는 그는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

다 한국과 일본은 사회전반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지만 . 특히나 교육에 있어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의 주입이 심

각하다는 것에서는 안타까우리만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일본 역시 공교육뿐만이 아니라 각종 사회적 통제 시스

템으로 시민들을 이른 바 국민 으로 만들어 가고 ‘ ( )’國民

내가 한국에서는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모두가“ ,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마음속으로 암송을 한다.”고 했더니 그는 깜짝 놀라면서 그런 건 일본에서도 파시즘이 극한일 때나 강요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 ”

Page 2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26

있었다 특히나 일본은 차 대전 패망 후 평화헌법을 만. 2드는 등 파시즘 국가로서의 잘못에 대한 반성의 작업을

국제사회와 스스로의 요구에 따라 진행하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일본이 우경화되어가면서 불행한 역사를 되풀

이하려 하고 있고 그러한 경향이 교육에서 가장 심각하

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각 학교에서 히노마루. 일장기 와 기미가요 국가 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고 있는 ( ) ( )것이 바로 그 예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국기에 . 대한경례와 애국가 절까지 외우기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4당연시 되고 있던 교육들이 아닌가 그래서 내가 한국? “에서는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모두가 국기에 대한 경, 례를 하고 마음속으로 암송을 한다 고 했더니 그는 깜.” 짝 놀라면서 그런 건 일본에서도 파시즘이 극한일 때나

강요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올림픽에서 금. 메달 따고 국기가 올라갈 때 우리나라선수들만 경례를

하는 것 같았다 또한 우리도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된 . 것인지도 왜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냥 그렇게 , , 살아왔던 것이다 근현대사에서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 은 다 마찬가지겠지만 민족해방투쟁시기 저항의 원동력, 이었던 국가에 대한 갈망은 독립 후에는 자국민들에 대

해서 국가의 통제로 나타나곤 한다 일본제국주의에 맞. 서는 수단이었던 국가주의는 이제 제 국민들에게 국가의

당위성과 우월성을 선전하고 강요하는 수단이 되어버렸

고 또 우리는 나라 잃은 설움과 전쟁의 아픔 등으로 이, 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던 것이었다 사실 서구식. 의 근대화가 상당히 늦은 조선에서 현대와 같은 국가의

개념이 형성되었기나 하였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 국의 국가주의 혹은 군사주의적인 요소들의 뿌리는 아마

도 제국주의 일본일 것이다 친일파들이 해방 후 나라의 . 권력을 잡으면서 그 악의 씨를 그대로 키웠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제국주의 일본의 잔재를 다시금 일본의 우

익들은 배워가려하고 있다 자신들이 한국 땅에 심어놓. 은 씨앗을 다시 일본으로 가져가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 . 웃지 못 할 역사 순환의 역설 어찌되었든 일본을 통해... 서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의 심각성을 더욱 고민하지 않

을 수 없었다.

폭력의 성찰 가해자와 피해자로서,

히로시마에 갔을 때 그 곳 활동가들이 나를 처음 데려간 , 곳은 원폭돔이나 평화기념관이 아니었다 일장기가 그려.

진 안장위에서 말을 타고 돌진하는 일본 무사의 동상이

있는 대번영이었다 그곳은 전쟁의 가해자로서 히로시마. 의 역사였다 히로시마가 원폭투하지가 된 것에는 여러 .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정치적인 . 명분이 바로 이 히로시마가 가지는 전쟁가해자로서의 역

사라고 한다 조선을 침략한 여타의 외국을 침략한 일본. , 군대는 모두 이 히로시마로 모여서 일본을 떠났다고 한

다 그때 출병을 하기 위해 모여 있던 곳이 바로 대번영. 이란 곳이다 그들은 히로시마가 피해자로서의 역사를 . 내세우기 전에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반성해야한다고 말

한다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반갑고 서글프다 우리의 . . 역사는 어떠할까 침략의 역사는 미화되어 있고 피해의 ? 역사는 강박되어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서 우리 민족이 . 입은 상처를 이야기하지만 대한민국이 베트남 민중에게

준 상처는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역사는 그 달고 . 쓴 부분을 모두 보아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가. 해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우리의 피해에, 만 관심 있을 뿐 우리가 입힌 피해에는 둔감한 대한민국

은 어쩌면 또 다시 가해의 역사를 이라크에서 되풀이할 ,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폭력에 대한 반성 또한 그러할 . 것이다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나를 방어하고 단절하는데 . 만 급급하지는 않았을까 나의 폭력이 다른 이들과 인간? 이 아닌 생명들에게 어떻게 일상적으로 가해지고 있는지

과연 나는 성찰하고 있는 것일까 폭력에 대한 반대는 ... 그리하여 가해와 피해의 양면을 모두 성찰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은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평화공원에

위치해 있다 공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원폭 투하지. 점이 있고 공원에는 각종 위령비들이 들어서 있다 물론 . 한국인 위령비도 이곳에 있다 당시 히로시마 인구는 약. 만 명이었고 조선인은 전체 인구 중에 정도였다고 24 10%

한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히로시. 마에 와서 살게 되고 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멀리. 서 보기에도 익숙한 형태 거북이모양의 귀부와 비신 그( , 리고 용이 새겨져 있는 이수 의 이 위령비는 처음에는 )히로시마 시에서 평화공원 안에 세울 수 없다고 하여 밖

에 세워졌고 최근에야 공원 안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가. 해의 역사를 반성하려는 시민들과는 정반대로 일본 정부

당국은 아직도 가해의 역사를 부정하는 씁쓸한 현실이었

다 평화기념관은 원자폭탄의 피해와 그 당시 역사에 대.

Page 2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 는세상소 식 지 호6 27

한 자세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히로시마의 . 전쟁 가해역사 또한 기록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끔찍. 한 사진들과 조형물이 그 당시의 지옥과 같은 풍경을 보

여주고 있었다 살과 뼈가 녹아내린 사람들 폐허가 되어. , 버린 도시 철근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근대식 건축물 남, , 자인지도 여자인지도 모를 앉아있던 그림자만 남겨놓고

완전히 소멸해버린 사람 그리고 아직도 공포 속에서 살, 고 있는 히바쿠샤 원폭피해자 들 과연 인간이 인간에게 ( ) ,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 일까 하지만 더욱더 무섭고 ? 끔찍한 것은 아직도 진행 중인 역사라는 것이다 원자폭. 탄의 역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되었다는 이 기막힌 역설에 몸서리를 쳤다 수많은 . 생명을 앗아간 원폭투하이후에도 각 국의 핵실험은 계속

되고 있다 핵실험들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하기 때문에 . 괜찮다고 각 국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람이 없는 그 . 땅에서는 아무 생명도 없는 것인가 원폭실험을 한 바다? 에 사는 생명들 그리고 지구의 생명에 대해서는 왜 생, 각하지 않는 것 일까 그들은 진정으로 전쟁과 폭력의 ? 역사를 반성하기는 한 것인가 평화기념관에 있는 핵시? 계는 이 슬픈 역사의 시계다 가장 최근의 핵실험이 이. 루어진지 아직 일도 안 지났다100 .

아직 못다한 이야기

타고난 이야기꾼이고 싶은 나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너

무도 많다 하지만 이 정도 글쓰기에도 벅찰 만큼 나의 . 배경지식과 사고는 아직 너무도 빈약하다 더 많은 이야. 기가 듣고 싶다면 전쟁없는세상 사무실로 놀러오면 < > 된다 아직 오키나와의 전통주 아와모리가 남아있다 빨. . 리 오는 사람에게만 음미해볼 기회가 주어진다 다음기. 회가 또 주어진다면 북해도에서 만난 아이누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으로부터 감. 사하며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아갔다는 아이누민족에 대해

서....

일본의 활동가들은 한국의 평화운동 특히 병역거부운동이, 나 반군사주의운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

다 일본사회의 우경화 속에서 일본의 평화헌법이 개정. 될 위기 자민당 뿐 아니라 민주당도 개정하려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쯤 개정이 확실하다고 함 속에서 징병제를 ) ,

다시금 부활시키려는 위기상황 속에서 그들이 군대를 반

대하고 폭력을 반대하는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더더군다나 일본과 한. 반도는 정치적으로 밀접한 연관이 있고 일본의 우경화, 는 한국의 보수우익을 자극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우. 익과 일본의 우익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면서도 서로에

게 존재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공생적 관계가 아니던가. 언어의 장벽만큼이나 아직은 부족한 첫걸음이었지만 아, 쉬움이 있기에 미래에 대한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

용석의 일본 순회간담회 일정정리

월 일 일조일한민중연대 월행동 에 참가 8 17 - [ 8 ]

월 일 오사카자유학교에서 간담회 8 18 - 월 일 히로시마 대번영과 평화기념관을 둘러8 19 -

보고 저녁에 간담회를 진행 , 월 일 한국과 일본에서의 군사주의교육에 대8 20 - 해 이야기하고 저녁에 간담회를 진행

월 일 도쿄 자유학교에서 간담회를 진행 8 21 - 월 일 라는 단체와 교류회 8 22 - World Peace Now

월 일 북해도에서 일본 내 이라크 평화활동가8 24 - 들을 만남

월 일 아이누족 박물관에 다녀오고 저녁때에 8 25 -

간담회

월 일 나고야에서 자위대 공군기지 앞에서 시8 28 -

위에 참여 저녁에 간담회 월 일 쿄토의 마지, 8 29 - 막 간담회

Page 2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28

년 대선 기간 동안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대선 후보 2002아들의 병역비리 미국 국적 취득으로 이젠 한국이란 땅에 . 발조차 붙이기 힘들어진 유명 연예인의 이야기 그리고 프로. 야구 선수들과 유명 연예인들의 병역비리 문제가 또 한바탕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뻥뻥 터져주. 는 병역비리 문제다 하필이면 이런저런 일들로 나라 안팎이 . 시끄러워지는 시기만 되면 알아서 터져주는 재미난 씨(?) A , 씨 누구누구 씨의 병역기피 오늘 하루도 열심히 국민들의 B , .

안주거리가 되어주는 그들은 사람들 말처럼 정말 나쁜 사람

들일까 아니면 또 다른 희생양인걸까? .... ? 그 사람들의 도덕성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나에게 더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그들에게 보인 사회의 반응이다 언. 론의 반응 국민들의 반응 등등 이전에는 인식조차 하지 못, . 했었기에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에서는 당당히 군대에 다녀와 재기에 성공한 몇몇 연예TV (?)

인들의 얼굴이 영웅이 되어 계속 나온다 일명 방위 출신들. ‘ ’ 의 남성들은 현역 출신의 남성들 앞에서 어느새 뭔가 조금

모자란 사람이 되어버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계급을

만들어내곤 한다. 병역기피자들에게 전혀 잘못이 없다고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

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군대라는 곳이 어떤 의미인지 얼마. , 만큼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는지 새삼 몸서리쳐 질

만큼 느꼈음을 이야기하려 한 것이다.

잡담이 너무 길었나보다 내년 한국에서 열리게 될 반군사주의 . 포럼을 소개하는 글의 서두에 병역기피 문제에 대해서 열변

을 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국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쓴웃음이 나는 단상 때문이다. 입법적 방향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해결책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권고하는 사법부 일부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과 이제 국회에서 대체복무제도 법안 상정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 사회는 얼마나 이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다 알고 있을까?

병역거부 운동에서 차적으로 가지는 목표는 당연히 병역거부1권의 인정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국가의 군 첨단화. 나 사회적 무임금노동으로서 대체복무제를 활용하려는 정책

과 맞물릴 경우 자칫 병역거부운동은 차적 목표 이상으로 1나아가는데 어려움을 가질 수 있다.

대체복무제 입법 이야기가 나오는 하지만 군대 문제에는 여전, 히 핏대 세우며 격분하는 병역거부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 알려져 있지 않은 지역들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 운

동이 해야 할 일중 적어도 하나는 명확해지는 것 같다 사회 . 속에서의 병역거부 문제이다 사법적 영역에서의 병역거부. , 입법적 영역에서의 병역거부가 아닌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인식하는 병역거부의 문제 말이다.

년 국제세미나 소개 | 2005 WRI |

년 반군사주의 포럼을 준비하며2005

오영은 |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 [email protected]

Page 3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는 세상소 식 지 호6 29

그리고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장소 또한 국회도 대법원도 헌, , 법재판소도 아니다 사람들이 있는 공간속으로 들어가야 한. 다 이 공간속에서 이야기할 것들 이야기하는 방법들을 논의. , 하는 자리 다른 나라의 경험을 배우는 자리 연대를 모색하. . 는 자리가 바로 매년 열리는 반군사주의 포럼이다.

올해 마케도니아에서 열렸던 반군사주의 포럼에서는 세계 각

국들의 운동 현황을 많이 공유할 수 있었다 처음 놀라웠던 . 사실은 발칸반도의 세르비아나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같은 , 한국보다 안보 상황이 그다지 안전하지 않은 국가들에서 병

역거부가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다음으로 놀라웠던 , 것은 병역거부 운동이 가지고 있는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

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병역거부 운동의 목표가 병역거부

권 인정만이 될 때에는 그 이후의 운동의 방향을 잡는데 어

려움을 가지게 된다 이번 포럼에서 또한 병역거부를 넘어선 . 전쟁에 저항하고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여러 가지 전략이 존

재해야 함에 많이 공감하고 이야기되었다. 내년 한국에서 열리는 반군사주의 포럼은 특히 아시아 지역을

넘어서 유럽과 같은 지역에 한국 및 아시아의 운동이 가지는

역사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동북아시, 아 지역 내의 군국화 현상과 이에 따른 병역거부권의 문제나

더 나아가서 남성과 여성의 인권문제 등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또한 이라크전 이후 새롭게 나타나. 는 상황들에 대한 토론과 앞으로의 대응 전략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이번 세미나는 이 곳 동북아시아에서의 군대라는 개' '념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 안보에 대해 비폭력적이고 평화적

인 대안에 대한 유럽 여러 나라들의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앞으로 .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운동의 방향을 기대하고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직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모습을 갖추지 못한 더군다나 개, 8월이 넘는 시간을 남겨둔 행사를 소개하려는 글을 쓰는 것은

참 막막한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성급하게 써내려간 이 글이 내년 포럼을 아주

조금이라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 동북. 아시아의 정세를 이해하는 데에도 한국에서 아직 생소한 비, 폭력 양심적 거부 시민 불복종 등등의 개념을 이해하고 고, , 민하는데 개월이라는 시간이 유용하게 쓰이길 바란다8 .

내년 반군사주의 포럼이 열리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풍성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년 마케도니아에서 열린 반군사주의포럼 사진 토론중2004 WRI -

년 마케도니아에서 열린 반군사주의포럼 사진 2004 WRI 워킹그룹 진행중-

Page 3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30

서론1.

비폭력 행동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더욱 인간적인 사회와 경

제 시스템을 만들기에 무척이나 좋은 방법이다 국가의 권력. 을 이용하려는 접근 방식들 국가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 포함한 은 시도되어 왔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극적인 변화- . 가 매우 절실한 이유는 자본주의가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 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고통을 겪게 하기 때문이다 비록 수. 많은 장애물들이 버티고 있지만 비폭력 행동의 접근 방식에, 는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년 이래 대부분의 국가사회주의 시스템이 겪은 좌절로 인1990해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필연성은 더욱 큰 설득력을 지니게 ,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상적인 시스템과는 매우 거리가 . 멀다 자본주의는 거대한 규모의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며. ,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킨다 자본주의는 전통문화를 파괴하. 고 진정한 공동체를 없애는 획일적인 소비문화를 불러온다, . 자본주의는 생태 다양성을 훼손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며 환경

에 해악을 입힌다 자본주의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들. 에게는 일자리를 주지 않는 동시에 노동자의 삶을 피폐하고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분명히 대량의 상품들을 생산해 낸다 자본. 주의는 다른 모든 시스템과는 달리 인간의 욕심을 이용하여 , 생산을 이루어낸다 시장조건 안에서 자본주의는 유행에 민감. , 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여 수많은 국가들의 물질적 생활

표준을 엄청나게 끌어올려놓았다 자본주의는 분명히 장점을 . 지니고 있다 만약 자본주의에의 대안이 없다면 과연 그 약. ( ) , 점들을 문제 삼을 수 있을까?

| 해외자료 번역글 |

자본주의 비폭력주의vs

저자 브라이언 마틴 _ Brian Matin1) 저자의 동의를 통해서 이 글을 싣습니다 ( .)번역 전쟁없는세상 번역팀 정리 영은_ ( _ )

이 부분의 전체 책의 내용 준에서 장의 내용을 발췌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의 번역담당은 진흙씨 이었습니다1,2 . .장의 전문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1,2 .

1) 이 글을 쓴 브라이언 마틴은 진보적 성향의 과학자로서 년대부터 환경운동과 평화운동에 동참하며 이 분야에서 폭 넓은 저술활동을 펼치고 , 1970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울런공 대학 과학기술학부에 교수로 있다. .

책 전체의 내용 : 전체적인 내용은 자본주의에 대한 대략적인 분석을 제시하면서 시작이 됩니다 자본주의를 분석하며 자본주의를 극복해 나갈 .

수 있는 방법을 약술하고 사례 보여주며 이론을 지지하거나 반박 또는 검증하기 위한 논쟁을 보여주는 비폭력이 다루어지게 됩니다 또한 전통적인 , . 반자본주의자들 특히 레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전략이 간단히 다루어지며 이 이론들이 가지는 약점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조직화된 폭력의 자격을 , . 제외한 사회의 조직을 위한 가능성 있는 몇몇 원리들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폭력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자본주의에 대항할 가능성, , 을 위한 전략을 평가하는 비폭력 분석을 통해 개발된 체크 리스트를 사용하는 방법을 서술해 놓음으로써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그들만의 체크 리스트를 결정하고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운동과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Page 3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는 세상소 식 지 호6 31

사실 자본주의가 설득력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 , 다 이것은 그저 진보와 대안을 고찰하거나 그를 위해 노력하. 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사회가 조직되는 방법은 . 사람들의 행동에 달려 있고 이 행동들은 변화가 가능하다 역, . 사는 사람들의 상호작용 방식이 지닌 가능성의 거대한 범위

를 보여준다 게다가 기술적인 면에서의 발전은 노동과 소통. , 그리고 상호작용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의 수를 더욱

늘어나게 하였다 자본주의가 생겨난 지 겨우 몇 백 년밖에 . 되지 않은데다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현재, 의 시스템이 이상적이라는 데에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본주의가 불가피한 것이라는 억지는 매우 , 빈약해진다.

비폭력 행동은 국가 권력에 의지하지 않는 자본주의에 대한 .... , 강력한 도전 가능성으로 또 다른 길을 만들어낸다 전단지 뿌. 리기 파업 불매운동 행진 집회 불복종 그리고 대안시설을 , , , , , , 세우는 것까지 비폭력 행동의 방법은 수없이 많다 이러한 방, . 법들은 모든 환경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다. ....

비폭력 행동의 가장 강력한 사례들 중 대부분은 계획과 훈련....이 거의 없는 자발적인 것들이다 이것은 년 독일의 카프 . 1920반란 년의 알제리 장성 폭동의 반란과 년의 소비에, 1961 1991트 연방의 쿠데타와 같은 군사 쿠데타에 대한 저항에서 주로

있는 경우이다 각각의 경우에 비폭력 저항은 현장에서 부분. 적 즉흥적으로 일어났는데 그 이유는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 , 라는 경고가 거의 혹은 아예 없었다는 데에 있다 갑자기 나. 타남으로 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층 모두를 놀라게

하고 또한 몇 년에 걸친 그 행보가 섬세하게 계산된 탄도라, 기보다는 오히려 잘 조직화된 개발과도 같았던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와 같이 비교적 긴 시간동안 진행되는 운동의 경우

에도 계획과 훈련의 수준은 낮은 편이다.

무엇이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알아챌 때, 자발적인 비폭력 행동은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다 군사 쿠데타의 경우에 쿠데타는 반드시 패배해야만 하. , 고 상황은 다른 곳으로 혹은 더 좋게 되돌아가야 한다 인티( ) . 파다는 폭넓게 이해되는 목표 즉 이스라엘의 점령을 종식시, 키는 목표를 향한 전략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변화였다 - 그것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가 실패한 방법이었던 테러(PLO)리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거대한 비무장 행동이었다 그러-. 나 참가자들에게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면 자발적인 비폭력 ,

행동 혹은 드문 폭력 은 효과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진- - 다.

비폭력 행동을 계획한 선구자는 간디였다 간디는 준비 계획. , , 질서 훈련에 대한 대단한 관리를 필요로 하는 사회 변화를 , , 위한 긴 전략의 일환으로서의 명백한 행동을 보았다 그의 예. 는 미국 시민운동이나 반핵운동가들과 같은 수많은 사회운동

가들에게 핵심적으로 차용되었다 만약 운동의 대상이 잘못되. 었거나 때가 좋지 않으면 혹은 충분한 준비가 없다면 그 운, 동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운동가, 들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회 분석 공동체 교육과 비폭, 력 훈련에 큰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

비폭력 행동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전략으로 보이지 않았 ....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비폭력 행동은 대개 자본주: 의 내에서의 개혁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파업. , 보이콧 합법투쟁 시위 및 많은 방법들은 노동자의 임금과 작, , 업환경을 개선하고 해로운 상품에 반대하며 파괴적인 개발을 , 저지하는 데에 쓰였다 이것들은 모두 가치가 있지만 시스템. , 으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 결과. , 비폭력 행동은 혁명적인 전략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혁명 다시 말해 사회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는 물론 마르크 “ ”, 스주의의 설득력이다 개혁 은 비록 빠르게 부패하거나 전복. “ ” , 되는 혁명보다 그 효과가 더 오래감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이, 며 무력한 것으로 비친다 레닌주의의 전략은 초기에는 비폭. 력 행동에 의존했으나 진보한 전략은 지배계급을 타도하기 “ ” 위해 폭력을 사용했다 결과는 혁명가로 자신들을 인지하는 . 사람들이 비폭력을 핵심적인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는 것이다.

이를 다루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간. 디 나라얀 담만 등이 옹호해 왔던 비폭력 혁명의 모델을 개, , , 발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폭력과 남성적 상으로 더럽혀. 진 혁명의 이미지를 버리고 그 대신으로 평등 정의 진실과 , , 분배의 방법과 목표를 생각하는 대안을 택하는 것이다 문제. 는 혁명 이라는 어휘를 광고업자들이 접수해버렸다는 것이“ ”다 어떤 대안적인 어휘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

만약 비폭력 행동이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그것을 되돌리거나

혹은 질적으로 다른 그 무엇으로 변형시키는 전략이 되려면,

Page 3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32

그 전략은 개혁의 수준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여기서 열쇠가 . 되는 것은 전략이다 비폭력으로써 자본주의에 효과적으로 대. 항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비폭력 자체에 대한 좀 더 진보, 된 이해가 필요하다.....

비폭력 운동에는 비폭력 이론 특히 비폭력 행동의 방법과 .... , 동력에의 이해에 대한 적절한 수준이 있다 비폭력 이론은 비. 폭력적 실행의 파생물로서 다른 많은 영역들과는 달리 학문, “화 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어쩌면 그 분야에는 출세라는 ” , 것이 매우 적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폭력을 자본주의에 적. 용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있으며 활동가들에게, 도 이용 가능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것은 대기업이다 신 계급경제 마르크 . , 시즘 비 마르크스주의 정치 경제를 포함한 수많은 전통에 의, 거하여 쓰인 엄청난 양의 저술들이 있다 비폭력 행동가들에. 게는 통찰력이 있지만 그것들을 인용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 아니다 대부분의 저술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으. 며 비판적인 저술들의 대부분은 활동가들의 전략에 대해 별, 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론가들에게는 진수성찬이 . 차려져 있지만 활동가들에게는 빵 부스러기가 조금 있을 뿐, 이다.

대안적인 접근 방법으

로는 자본주의의 연, 구 결과를 추려내는

것보다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시작하

고 그 방법을 얻어내

어 그것으로부터 행

동과 관련된 이론을

정립하는 편이 더욱

적당하다 비폭력의 . 경우에 대안과 방법, 은 공동적으로 연결

되어 있다 비폭력 : 사회는 비폭력 행동

으로부터 창조된다.

그것이 바로 여기에 이용된 접근법이다 그 출발점은 방법이자 . 목적이기도 한 비폭력이다 비폭력 은 물리적 폭력의 부재는 . “ ”

물론이고 참여와 대화까지도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로 쓰인다.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은 비폭력 행동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극복되고 변형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자. , 본주의에 대한 통찰력 있는 많은 분석 결과들에서 어느 정도

를 추려내는 것도 쓸모 있는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바. 로 이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전체에의 이해력을 높인 : 다음에 관련 있는 것들을 추려내는 것보다는 비폭력적인 과, 제와 관련 있는 영역의 자본주의 비평이 낫다 이것은 더욱이 . 그 분석 결과들이 행동가들에게 있어서 매우 분명한 것들이

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몇몇 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높은 . 수준의 분석은 그 학자 자신들을 제외한 이들에게는 그다지

가치가 없다....

비폭력2.

많은 목적에서 비폭력은 정의나 이론보다는 사례들을 통해 , 설명하는 것이 더욱 쉽다 그리고 년에 있었던 간디의 유. 1930명한 행진보다 더욱 좋은 예가 어디 있겠는가 그 당시 인도? 는 영국의 지배 아래에서 무자비하게 착취당하고 있었다 영. 국은 소금의 생산을 독점했고 소금을 만드는 모든 인도인에, 게 세금을 부과하거나 그들을 체포해 갔다 간디는 바닷물에. 서 소금을 불법으로 생산하는 것이 시민 불복종의 좋은 형태

가 되리라고 결심했다 이 행동의 영향력을 최대로 증가시키. 기 위해 간디는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작은 해안 마을인 단, 디를 향해 일 동안 행진하는 내내 그의 계획을 알렸고 수백 24명의 지지자들을 끌어내었다 행렬이 단디에 도착했을 때 그. , 것은 이미 강력한 조직 방법이 되었다 소금 생산과 체포는 . 영국의 지배가 지닌 부당함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그와 비슷. 한 소금 생산 시민 불복종이 인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만약 그 목적이 폭력적인 저항이었다면 이러한 종류의 조직화, 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방성은 물론 동원 훈련이나 행. , 동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참여는 제한되었을 것이다 결정적으. . 로 폭력적인 공격은 대개 적대자들을 단결하게 하고 잠재적, 인 지지자들을 소외시키기까지 한다 반면 단디를 향한 행진. , 은 영국을 지지하는 행위를 침식시키는 데에 매우 많은 역할

을 했으며 방관자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

다....

세계 평화 운동은 비폭력 행동을 광범위하게 이용하였다 전... .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을상징적으로 나타낸 그림이라는군요! ^ ;̂

Page 3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는 세상소 식 지 호6 33

쟁저항 즉 전장에 가거나 군대에 복역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 람들의 운동에는 매우 긴 역사가 있다 계속되는 전쟁의 와중. 에도 군대 복무를 거부하고 감옥에 간 사람들이 있었다 몇몇 ; 국가에서는 그들을 박해하거나 심지어는 죽이기도 한다 어떤 . 사람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요구하거나 징병을 피해

이민을 가기도 한다.

전쟁 군수물자의 생산 및 수출 무기 시스템과 착취 정권을 위, , 한 군사 복무에 저항하는 평화 활동가들은 수많은 창조적 행

동을 해 왔다 영국의 그린햄 커먼에서는 여성들이 수많은 방. 법을 동원해 미국 군대에 저항했다 그 저항은 수 년 동안 지. 속되어 왔고 집회가 열렸으며 몇 번이고 막사에 진입하였고 , , 시민 불복종 행동 군인들과 방관자들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 ), 하였다.

다른 유형의 평화 저항들에는 행진 대륙 횡단을 포함한 집회( ), , 철야 거리 공연 군수물자 조달 기차를 몸소 봉쇄하기 군사 , , , 출항 저지하기 핵실험 지역으로 항해하기와 군사 서류에 피, 를 뿌리기 등이 있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환경운동은 비폭력 운동을 매우 잘 활용, 해 왔다 예를 들어 삼림 활동가들은 불도저와 전기톱들 앞을 . , 몸으로 막아서기도 했고 때로는 기계의 작동을 막기 위해 몸, 을 얽어매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카약을 타거나 심지어는 . 헤엄을 치기까지 하여 열대우림의 산물들을 운반하는 배를

막아서기 위해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종류의 드라마틱한 행동들은 사회 운동의 활동성에 있

어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효과적인 행동의 배후에는 대. 개 상황 분석 및 행동 준비 비폭력 행동 훈련 지지 확보와 , , 행동의 조화와 관련된 엄청난 양의 작업이 있다 소위 맨 앞. “줄에 서는 모든 개인들은 위험하거나 도전적인 행동의 가운”데에 있으며 조정을 위한 모임 수송 음식 어린이 돌보기, , , , , 포스터 공공 연설 언론 섭외 법적 지원 자금 확보를 비롯한 , , , , 수많은 일들도 있다 비폭력 행동 중 부각되는 약간의 부분은 . 긴장되고 극적일 수도 있으나 이렇게 눈에 띄는 행동을 뒷받, 침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돌아가는 엄청난 작업이 필요하

다 이것은 군대의 운용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전투비행사의 출. : 격에는 항공기 설계자 제작자 시운전자 정비 노동자 계획, , , , 자 회계사 요리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 .

비폭력 행동은 군사 쿠데타를 방해하는 데에 사용되었고 때때,

로 극적인 성공을 얻어내기도 하였다 년대 독일에서는 . 1920볼프강 카프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 반란자들은 수. 도 베를린에서 잡혔고 선거로 뽑힌 정부는 비폭력 저항을 지, 지하고 있던 지역인 슈투트가르트로 피신하였다 베를린에서. 는 대대적인 파업과 대규모의 시위들이 있었다 대정부 비협. 력 운동은 효과적인 저항 방법이 되었다 타이피스트들은 카. 프의 성명서 작성을 거부했고 은행원들은 적절한 서명이 없, 는 그의 수표들을 현금으로 바꾸어주는 것을 거부했으며 모, 든 권위 있는 서명인들은 서명해주기를 거부했다 쿠데타는 . 4일 만에 붕괴하였다.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년부터 그곳에서는 수많은 . 1954인명 피해를 낳은 무장독립투쟁이 있었다 년 월 프랑스 . 1961 8 , 정부가 독립을 승인할 움직임을 보이자 반독립주의자 프랑스 , 장성들은 알제리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심지어는 프랑스로 . 침공해 갈 가능성마저도 있었다 알제리에는 대개 징집된 병. 사들로 구성된 수많은 프랑스 군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단, 순히 막사에 머무른 채 움직이지 않는 것만으로 쿠데타에 협

력하기를 거부했다 많은 전투 비행사들이 이륙을 했지만 모. 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장군들은 전투기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아울러 프랑스에서도 엄청난 저항이 있. 었다 그 폭동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고 겨우 수 일 . 만에 붕괴되었다.

비폭력 행동에 의해 폭압적인 정부가 전복된 사례는 수없이 많

은데 특히 중남미에서의 경우가 그러하다 년 엘살바도, . 1944 , 르의 군사독재정권은 군사 폭동을 손쉽게 진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비폭력 반란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은 파업을 시작. 했고 그것은 곧 고등학생들에게까지 여파가 미쳤으며 의사들, , 과 사업가들 또한 전 지역이 일을 멈출 때까지 수 주 동안

파업을 계속했다 경찰은 몇몇 소년들에게 총을 쏘았으며 그 . , 중 한 명을 죽였다 이 사건은 엄청난 저항 세력이 거리로 몰. 려나오게 만들었다 독재자인 마르티네스는 군중을 향해 병력. 을 배치하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았다 병력은 군사 반란에 . 있어서는 효과적이지만 대중들의 반대 앞에서는 별로 그렇지

못하다 마르티네스는 비폭력 반란이 일어난 지 겨우 주 만. 6에 국외로 떠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군사 침공에 대한 비폭력적인 저항이 성공을 거둔 , 예들이 더 남아있다 년 바르샤바 조약군은 체코슬로바키. 1968아를 침공하여 소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였던 그곳의 “ ”

Page 3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34

사회주의자 자유화 규칙을 종식시켰다 체코슬로바키아 군대. 가 그것이 쓸모없다는 판단을 내려 군사적인 저항은 없었다, . 대신 체코슬로바키아 정치 지도자들에서부터 시민들까지를 , 아우르는 비폭력 저항 조직이 있었다 가장 효과적인 저항방. 식 중 하나는 바로 친교 맺기였다 침략군들에게 이야기를 걸: 기 그들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말해주기 , - 그들은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의 부흥을 멈추기 위해 파병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저항을 지지하- , 도록 격려하는 것과 같은 침공의 주요 목적은 꼭두각시 정부. 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달 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다 체; 8 : 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지도자들은 침략자들에게 협력하기를

거부했고 그것에 반대하는 지도자들은 찾을 수가 없었다 침, . 략은 결국 소비에트 연합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어 그들의 정

책이 전 세계적인 불신임을 얻은 데다 수많은 국외 공산당들

로 인해 정책의 분열까지도 야기되었다.

비폭력 행동은 말 그대로 비폭력 행동이다 그것은 비행동이 .... : 아닌 행동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비켜간다 비폭력 행동은 강, . 제적일 수도 있고 비물리적인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파업( ) . , 보이콧 및 연좌 농성은 모두 사업에 대해 경제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들이다 정치적인 공직자들에 대한 비협조와 . 의사결정의 대안적인 시스템은 공식적인 정부에게 정치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추방은 한 개인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 를 줄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비폭력 행동은 어쨌든 투쟁을 . 수행하는 방법이다 그것이 효과적으로 진행된다면 그것은 결. , 국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비폭력 행동은 물리적인 폭력에 연루되지 않는다 그것은 구타. , 감금 고문과 살인을 금지한다 비폭력 행동은 투쟁의 수행이, . 므로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나 선거에서 투표를 하는 것 채소, , 를 사는 것 및 신문을 읽는 것과 같은 반복적인 행동들은 포

함하지 않는다 다만 각각의 상황에 따라서는 그것들 역시 - , 투쟁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만약 정부가 당근을 . , 불법으로 했을 때 당근을 재배하며 사고파는 일은 비폭력 행, 동의 형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비폭력 행동이 과연 좋은 목적으로 쓰이는“ ” 가의 여부에 있다 물론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누가 그것을 . ,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금을 차단하는 . , 일은 인종 차별을 지지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에

반대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년에 버지니아 주의 입법부. 1956

는 인종 차별이 없는 모든 학교에 대한 지원금을 삭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반. 대하는 국제적인 운동은 투자의 철회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

다 간디 식의 접근법에 따르면 압제나 반대에 대항하는 행동. 들은 비폭력 행동의 핵심적인 부분이 되는데 샤프가 예시한 , 실용적인 접근법으로 보자면 비폭력 행동은 좋게도 나쁘게도

쓰일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 여기 간디의 개념으로 쓰인 . , 비폭력 불복종주의라는 용어와 실용적인 성격의 비폭력 행“ ” “동이 있다 실제로는 실용적인 개념의 사용 역시 주로 비폭” . , 력 행동이 압제에 대한 도전으로 이용되는 사례와 관련이 있

다.

비폭력 행동이 좋은 목적과 나쁜 목적 모두를 위해 쓰일 수 있

다고 해서 그것이 곧 중립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기 역시도 좋은 목적과 나쁜 목적 모두를 위해서 . 쓰일 수 있지만 그것들은 사회적인 이익보다는 피해를 위해 , 쓰이기가 더 쉽기 때문에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유도미사일. 은 뿌리 깊은 편견의 대상이 되는 도구이다 비록 근본적으로: 는 숭배의 대상이 됨으로써 근본적으로는 조화를 위해 쓰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파괴와 살상에 쓰이기가 훨씬 쉬운 , 법이다 비폭력 행동 역시 견고한 편견의 대상이 된다 그것! : 은 압제를 위하기보다는 압제에 대항하는 데에 쓰일 가능성

이 훨씬 높다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는 비폭력 행동이 지. 닌 몇 가지 장점들의 목록이 도움을 줄 것이다.

폭력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비폭력 행동은

자가당착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만을 : 이용한다 이것은 전쟁을 막기 위해서 폭력의 공포에 의존하. 는 군사적인 방어와의 차이점이다.

비폭력 행동은 사회적인 투쟁에 있어서 가장 큰 참여를 이끌어

낸다 그 누구라도 성별 연령 능력에 관계없이 청원서에 서. , , 명을 하거나 보이콧 혹은 철야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은 신. 체적인 조건에 중점을 두는데다 여성과 어린이들 그리고 연, 장자들을 종종 배제하게 되는 군사나 게릴라 병력과는 다른

양상이다.

비폭력 행동은 종종 폭력보다 더욱 효과적인데 특히 반대자들, 이나 제 정당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에 있어서 그러하다 비3 . 폭력 행동은 정부에 대한 형식적인 요구나 의정활동 또는 선

거와 같은 공식적인 방법들보다는 변화를 유도하는 작업에

Page 3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는 세상소 식 지 호6 35

더욱 적합한데 그것은 비폭력 행동이 행정적인 영향력 법적, , 인 지지나 선거 효과가 없이도 충분히 이용될 수 있다는 데

에서 비롯한다.

비폭력 행동은 좀 더 오랫동안 유효한 변화를 이끌어내곤 하는

데 그것은 비폭력 행동이 폭력이나 공식적인 방법보다 특정, 한 방식으로 대중을 움직이는 데에 더욱 용이하기 때문이다.

폭력 투쟁과 비교해보았을 때 비폭력 행동은 대개 더욱 적은

사상자를 유발한다 비록 폭력이 비폭력적인 저항자들에게 대. 항하여 사용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그다지 격렬하지도 , 않고 무장 반대에 비해 유지되기도 어려운데 그것은 폭력적, 인 반대에 대항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더욱 쉽기 때문

이다 하지만 비폭력 행동이 인명 피해의 축소를 보장해주지. , 는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들이 비폭력 행동의 몇 가지 장점들이라면 약점들은 무엇, 일까 물론 비폭력 행동 역시 잘 들어먹지 않을 수도 있지만? , , 그 어떤 방법도 모든 환경에서 반드시 잘 작동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아마도 비폭력 행동을 두 가지의 대안과 비교해 보

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폭력 무장투쟁 과 공식적인 방법: ( )공직자 의회 그리고 정부를 통한 시도( , , ).

비폭력 규율은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 폭력성을 띠거나 도. 망가는 참여자들 중 적은 수만이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군대는 규율을 지키기 위해 강제력을 사용하는데 예. , 를 들면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탈영하는 병사들에게 처벌을

가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공식적인 통로에는 작성해야 하는 . 문서의 양식이나 수수료와 같은 그들만의 필수 요건들이 있

다 그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대개 성과를 거의 얻어내: 지 못한다 비폭력 규율은 윤리적인 찬성에 의존하는 정도가 . 군사와 공직자들보다 더욱 높은 편이다.

비폭력 행동에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군사 권력은 군인을 고용하거나 징병할 수 있다 정부 기구들. 은 직원들을 고용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폭력 행동가들은 . , 자원 활동가들이다.

비폭력 행동은 이미지상의 문제를 겪고 있다 폭력 투쟁을 . 선호하거나 그에 익숙한 이들의 관점에서 볼 때 비폭력 행동

은 약해 보인다 일반적인 가정에 따르면 폭력을 사용하는 것. 이 투쟁에서 승리하는 데에 훨씬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공식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비폭력 행. , 동은 불법적이어서 별로 적합하지 않다.

개혁을 위한 실용적인 수단으로서의 비폭력 행동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상기했듯이 독. 재정권에 대항하는 몇몇 특정한 비폭력 행동들은 얼마 지나

지 않아 곧 새로운 압제 체제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비슷. 한 기준에 따르면 비폭력 저항은 저항자들이 사라지고 난 이, 후에 정부 시책이 뒤집어져버리게 하기도 한다.

체제적인 대안으로서의 비폭력 행동은 매우 근본적인 함축성을

띠고 있다 폭력적인 시스템이 없이 사회를 운용해나간다는 . 것은 광범위한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부와 기업들이 살아남

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 공공 서비스와 방어를 조직. , 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조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비폭력은 많은 장점들을 지닌 동시에 약점들도 지니고 , 있다 장점들 중 많은 부분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 특히 . , 일관성과 참여 및 지속적인 변화의 도모와 관련해서 매우 중

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활동가들로 하여금 약점들 특히 비폭. , 력 행동을 통해 이루어낸 변화의 상실과 자본주의에 대한 전

면적인 대안의 필요성과 같은 것들을 충분히 인식하고 극복

하도록 하는 데에도 역시 중요하다.

물론 비폭력 행동은 더욱 지속력이 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고 지금껏 생성된 많은 변화들이 여전히 번복되기 쉽다는

식의 반박도 있을 수 있다 해답은 바로 비폭력 행동이 폭력. 이나 공식적인 통로보다 특히 참여의 과정에서 더욱 오래가( ) 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에도 있지만, 이러한 변화의 전복 역시 여전히 커다란 위험이라는 것도 염

두에 두어야 한다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변화를 폭력을 사용. 하지 않고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폭력의 이용은 엄, 청난 고통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

Page 3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36

한국 사회는 너무 폭력적이다 그래서 아팠고 여전히 아프다. , .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 폭력이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폭력이 폭력인지 모르고 아, 파도 아픈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가 강요하는 . 군사주의 민족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폭, 력을 재생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평화롭지 못한 사회에 살고 있다 단지 무기가 . , 상품으로 존재하고 전쟁이 장난감 게임처럼 통쾌하게 비춰지

기 때문만은 아니다 매일 아침마다 벌어지는 지하철의 출근 . 전쟁 더 잘 먹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아침형 인간이 되는 , 비법을 알려주는 베스트셀러 서적 변을 누고 닦는 것까지 , 최고급 황금 비데에서 우아하게 하라고 강요하는 광고는 우

리의 일상 역시 평화로운 상태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말해주

고 있다 작은 일상에서조차 평화를 파괴하고 인위적인 것들. 을 강요함으로서 돈을 버는 시대가 도래 했다.

나는 쉬고 싶었다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더욱 교묘.

온 몸에 스며든 평화로움평화캠프2004.08.11~15

옹줴 | 평화캠프 참가자 전쟁없는세상 후원인+

Page 3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는 세상소 식 지 호6 37

하고 더욱 악랄해져야하는 사회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 . 도피처를 찾아 나서듯 슬금슬금 기어간 곳이 다름 아닌 평화

캠프였다.

평화캠프는 처음부터 다른 여느 곳과는 달랐다 수련원이나 민. 박 대신 어느 시골마을의 분교에서 진행되었으며 희한하게도

참가자들에게 침낭과 텐트를 가져올 것을 권유했다 또한 딱. 히 정해진 일정에 대한 시간표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주된

워크샵 역시 개성 있는 주제 봉숭아물들이기 요가와 명상( , , 채식이야기 등로 이루어졌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참) . 여하는 모두가 주체가 되어 준비하고 결정한다는 사실이었

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이 평등한 의사소통 방식은 캠. 프가 끝날 때까지 아름답게 유지되었다.

우리가 일정을 보낸 마리학교는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살 , 리고 세상을 살리는 교육을 닦는 일종의 대안학교이다, ( ) . 修황폐한 운동장 대신 푸른 잔디의 운동장 손수 목공실 건물, 을 짓는 선생님 우렁이를 이용해 논농사를 꾸리는 등의 모, 습은 듣고만 보고만 있는 것으로도 나를 울컥하게 만들어 , 눈물짓게 했다 전율이 일도록 만든 것이 하나 더 있다 마리. .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버스를 이용한 팀 외에 자전거를 이용

한 팀이 있었는데 그들은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뙤약볕에 무

려 시간 이상을 자전거로 달려온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평5 . 화캠프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에 서서히 평화캠프의 이미지와 얼굴도

익혀갔다 평온했다. .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소통은 연애 외모 성적 이야기쯤이다 더 깊은 소, , . 통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이야기들을 거치지 않으면

좀처럼 깊은 공감을 이어나가기가 힘들다 혹은 그런 깊은 . 소통과 공감을 하기에 섬세한 감수성을 너무 많이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소통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아침평화인. . (권연대 활동가 이 제공한 의사소통법은 이러한 소통의 어려) ‘ ’움을 아주 평화롭고 솔직하게 풀어주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 을 진실로 이야기하고 이것을 충족시키며 즐겁게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무뎌진 감수성들이 온 몸 곳곳에. 서 새롭게 새록새록 피어나오는 느낌이다 반대로 시간이 지. 나 다시 보게 된 온갖 거칠고 날카롭던 감정들은 그대로 슬

그머니 묻혀지기 시작했다.

평화캠프에서 음식 만드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다 캠. 프 내내 아침 점심 저녁 식사준비는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 , 움직임에 의해 완성되었고 이 움직임은 어찌된 일인지 난생 , 처음 만들어 보는 국반찬 인분을 거뜬히 만들어 내게 하/ 30였다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서 을 실천하. vegetarianism고 있었기에 평화캠프에서도 채식위주의 식사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꼭 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채식위주의 vegetarianism식단을 짠 것은 아니다 채식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정. , 치적으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는 삶의 실천이, 다.

함께하는 워크샵 중에 가장 비중 있는 시간을 두고 한 것은

바로 비폭력 트레이닝이다 비폭력 트레이닝은 삶과 사회의 . 문제에 대하여 폭력을 창출하는 제도와 문화에 비폭력으로

대처하고 저항하는 방법을 말한다.

우리는 어떠한 사회적 폭력에 맞서 파업에 동참하고 시위대로

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파업과 시위 .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전경들을 공격해 왔다, ‘ ’ .

평화캠프 비폭력트레이닝 모습

글을 쓰신 옹줴씨가 발표하는 모습

Page 3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38

이러할 경우 단기적인 해결은 가능할지도 모르나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무. 엇보다 군사주의 문화로 가득한 시위방식이나 시위대 안에서

의 평등하지 못한 의사결정 방식과 관계들은 투쟁의 목적을

이루기 더욱 어렵게 만든다.

평화캠프에서 이러한

폭력적인 투쟁 방식

과는 다른 각자가 , 신명나고 그런 가운

데에서도 다같이 의

사결정이 가능한, 최대 목적을 달성하

기 위해 필요한 전

략 등에 관해 알 수

있었다 그 내용에 . 관해 대략 나열해보

자면 시위 방법 맥(도날드 유리창 깨기, 전경에게 돌 던지기

등 이 폭력적인가) , 비폭력적인가 의견 나누어보기 어떤 사안을 관철시키기 // 위해 목표를 설정했을 때 다른 단체로부터 관심을 유도하고

지지의 방법을 이끌어내기 위한 분석 목표를 설정했을 때 //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인 분석 시위 때에 //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을 시 평등한 의사결정을 통해 , 방안을 모색하는 법 시위 시에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법// , 경찰의 폭력을 예측에 대응하는 법 시위대끼리 몸과 몸을 , 연결하여 바리게이트를 치는 법 등이다.

때로는 교실에서 함께 토론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전경

과의 대치상황에 대해서는 잔디로 자리를 옮겨 시위대와 경

찰의 역할을 나누어 온몸을 이용하여 뒹굴며 배웠다 이러한 . 것에 관해 전략과 실제 행동을 트레이닝 해본 것은 처음이었

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것이 정리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 아주 놀랐다 시위를 한다는 것이 시위대라는 집단을 위하는 . 것이기 보다 시위하는 순간의 자신을 살리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었다.

위의 모든 것들은 비폭력 트레이너인 안드레아스를 통해 얻 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훌륭했다 그리고 아주 많이 감사. .

했다. 마지막 날 밤에 있었던 명상과 교감도 내게는 너무 소중했다 . 그동안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참가자들과 손으로 등으로 소, 통을 할 수 있었다 나와 소통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시원시. 원한 별들 푸른 잔디 투명한 바람 모두에게 마구마구 감사, , 했다.

돌아오는 길에 가득 찬 것은 도시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었

다 휴가철을 막 벗어난 서울로 오는 고속도로는 차들로 막. 혀 있었고 호선의 지하철은 나의 귀를 찢는 듯이 달렸다, 5 .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라면 끊임없이 울려대는 휴대폰 벨소리

를 견디기는 더욱 힘들었다 캠프를 다녀오기 전과 다녀온 . 후의 이 숨막히는 도시의 순간순간들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 나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대신 라디오를 켜기 시작했고 육식 대신 채식을 하TV , 기 위해 노력했고 시끄러운 휴대폰 벨소리를 줄여나가기 시, 작했다 서서히 일상이 변하고 삶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 책을 통해 익히는 것은 자꾸 기억하고 다짐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나 활동을 통해 익힌 것은 바로 삶에서 실. 천이 가능하도록 한다 평화캠프는 그렇게 내게 일상에서 평. 화를 찾도록 가르쳐주었다.

이 사회가 아무리 폭력적이어도 나는 평화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평화가 무엇인지 내 삶을 통해 대. , 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은 글을 써 주신 옹줴씨에게 감사드립니다 전쟁없는세상. -

조별 토론을 통해서 발표한 내용활동의 구체적 목표와 달성방법 트레이닝_

Page 4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는 세상소 식 지 호6 39

| 다음 기획기사 맛보기 |

양심적 거부와시민불복종으로서의 병역거부다음 기획기사를 준비하는 매체편집팀의 의견을 모아 재성이 썼습니다.

년전 양심적 병역거부가 공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병역거부운동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그리고 지3 , 금까지도 적지 않게 이야기되는 것은 바로 양심에 대한 어휘적 질문일 것입니다 사상범이 양심수면 다른 수감자들. “ ”은 비양심수냐 라는 이야기나 헌법의 양심의 자유가 국민을 희롱할 수 있기에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 ” “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건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에서 양심이 그렇게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아마도 병역거부라“ ” “ ”는 사안의 민감성도 크겠지만 양심적 거부 일반에 대한 개념이 너무나 생소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 .

양심적 거부 는 자신의 양심을 근거로 해서 특정행위를 했을 경우 그 양심이 심하게 파괴당하여서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경우 그 특정행위를 거부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양심적 거부 일반에 대한 내용은 그 자체로, . 는 큰 논의의 실익은 없을 것입니다 개념이 구체적인 행위로서 드러나게 되면서 우리는 개념에 대한 이해와 논의를 .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심적 전쟁세 납부거부 과학자의 양심적 무기개발 거부 등이 해외의 대표적인 양심적 거. , 부의 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 사안에 대한 그 거부권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이냐 등의 논쟁점으로 될 수 있. ? 을 것입니다.

양심적 거부와 많은 부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고 양심적 거부보다는 훨씬 많이 알려진 시민불복종의 개념도 아직 일, 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병역거부에 대한 여러 분석 중에서 최근 시민불복종으로서의 병역거부. 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활발하다고 합니다 그 연구와 분석을 통해서 병역거부운동의 장기적인 과제와 계획의 초석을 .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최근 준비되고 있는 시민불복종으로서의 병역거부권에 대한 논의들 역시 함. 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저희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가 양심적 거부의 대표적인 예로서 이해되고 양심적 거부 일반과 그 예를 소개하는 것“ ” 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양심적 거부의 가장 큰 흐름이 병역거부이지만 오히려 조금 돌아서 추상적인 . , 것부터 고민하고 정리하고 퍼뜨리는 것이 오히려 길을 빨리 갈 수도 있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또한 양심적 거, , . 부와 시민불복종이 많은 부분 공통점이 있지만 둘의 차이를 명백하게 존재하기에 다음 소식지 기획기사에서 그러한

개념을 함께 보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개념이론적인 근거들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자료들이 풍부하지 않아서 많이 / . 걱정도 되지만 최선을 다해서 기획기사를 준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Page 4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없는세상이렇게 살았어요~

전쟁없는세상 소식정리과 굵직한 활동보고입니다.활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면관계상안타깝게도 생락하도록 하겠습니다.나열식인점 사과드립니다.

40

| 활동 재정보고+ |

전쟁없는세상 월 재정보고 >> 7,8 홈페이지의 운영실 재정보고에 달별로 상세한 내역이 나와 있습니다( - .)

수입 지출

개인후원금 원1244000 선전사무용품 -55300

그것이알고싶다(SBS) 283400 이사비용 -27200

피자매연대 300000행사진행비 집회참여가이드북워크샵( , ,

병역거부자엠티)-54200

계 1827400 각종공과금 및 월세 -609200소식지제작 및 발송 -223950

■총계 교통비 -20600월이월금6 525032 평화캠프분담금 -150000

수입 1827400 해외연대 일본전국순회간담회(wri, ) -766500지출 -1956950 평화박물관후원금 -50000함계 395482 계 -1956950

전쟁없는세상 체계정비 : 사무실과 상근개념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한지 시간이 조 금 지났는데도 안정적인 체계를 잡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체계정비를 진행하

고 있습니다. 책임활동가 개념을 정립하고 책임활동가를 선정하고 책임업무를 분배했습니다 또한 이후 자원활동가를 모집하고 분배된 업무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준. 비할 예정입니다.

전쟁없는세상 팀별활동 팀별활동은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매체편집팀: 은 소식지를 편집회의를 통해서 기획제작하고 있습니다/ .세미나팀: 은 환경학과 평화학이란 책과 함께 차례에 걸쳐서 세미나를 진행했“ ” 3고 다음 커리를 준비 중입니다, .번역팀: 은 자본주의 비폭력주의 이란 책의 번역을 거의 완료했습니다vs .

월 일 병역거부자 임성환 재판 및 수감 영등포구치소9 8 | ( )월 일 병역거부자 임치윤 재판 및 수감 부산구치소9 7 | ( )월 일 병역거부자 나동혁 재판 및 수감 서울구치소8 31 | ( )월 일 병역거부자 오태양 재판 및 수감 성동구치소8 30 | ( )월 일 병역거부자 후원주점 오신 분들 모두 감사해요8 28 | ( )월 일 이원표씨 파병반대 이유로 병역거부선언8 23 | 월 일 대체복무제 국회공청회8 19 | 월 일 일 용석씨 병역거부 일본순회간담회8 15 ~31 | 월 일 일 평화캠프8 11 ~15 | 월 일 전쟁피해자와 함께하는 파병반대 도보순례7 31 | 월 일 병역거부자엠티7 24~25 | 월 일 대법원유죄판결기자회견7 16 |

병역거부자 후원주점 회계보고*보다 정확한 정산은 홈페이지에 게제하겠습니다.

수입 총 만원: 370티켓 판매 만원 당일 판매 만원: 224 / : 153단체 후원 만원 : 13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민가협( , )

지출 총 원: 1103460선전물품 잡비 원 주류 및 안주 만원: 263460 | : 69뒷정리 비용 만원: 15

총수익 원: 2596540

그날 찾아주시고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 사드립니다 수익금은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들을 . 위한 지원금과 전쟁없는세상 활동비로 소중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Page 4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6호 (2004년 9월)

전쟁 없는 세상소 식 지 호6 41

김재복 수사 동화작가 박기범과 함께하는 평화 순례의 길 월 일* , (9 4 ~)

이 두 분은 월 일 현재 파병에 반대하기 위해 서울과 울진에서 수십일 째 단식을 이어가고 계십8 30니다 지금도 몹시 힘든 상황에 계실 이분들께서 이라크 민중들의 아픔을 보다 많은 분들과 함께 나. 누고자 월 일 울진을 시작으로 평화 순례의 길을 떠나신다고 합니다 생명을 아끼고 평화를 소중9 4 . 히 여기는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가 어우러진 평화의 축제로 거듭나길 바랍니

다.문의 및 참여 희망은 http://cafe.daum.net/peaceuljin 울진 평화모임으로 ( ) .

월 나팔꽃 달거리 행사* 9

작게 낮게 느리게 시와 노래로 평화를 말한다는 나팔꽃의 김원중은 달거리 행사로 북한 어린이를 위한 사랑 모으기를 진행 중입니다, , . ‘ ’ . 년 월을 시작으로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 오후 일곱 시 반이면 어김없이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그가 월에도 작고 낮고 느리2003 1 9 ‘ , ,

게 여러분 곁으로 다가온다고 하니 ’ http://www.napal.co.kr 과 www.kimwonjoong.com에서 확인해보시면 좋을 듯 ^^

서울여성문화축제 유쾌한 치맛바람 월 일* 2004 - (10 13~15 )

평등 세상을 추구하는 여성 놀이마당이 또 한 번 크게 벌어진다 돌보아 기르고 자라게 함을 주제로 열릴 이번 행사에 참여할 단체와 ! ‘ ’작품을 공모 중이며 여성이 살면서 접하는 다양한 역할 가운데 돌보고 기르고 자라게 할 주체가 무엇인지 그것의 방식을 어떻게 풀어, 가야 할지를 펼쳐내는 장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공연 문의 및 신청은 . www.seoulwomen.or.kr 을 이용하세요 (02)810-5045 .

년 월 상허 이태준소설가 주년 기념 철원문학기행 * 2004 10 100 -

시대의 혼과 정신을 글로 꿰어내던 소설가 이태준의 탄생 주기를 맞아 강원 민예총 문학위원회 위원장 정토 에서 철원문학기행에 동100 ( )참할 순례단을 모집한다고 합니다 민족의 고통과 분열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곧 화합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의미하는 철. , 원 일대를 함께 걸음으로써 한 소설가의 생애는 물론 한국 땅의 가슴 아픈 현실과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참. 가신청 및 문의는  http://cafe.daum.net/kwmjmh

평화나눔아카데미 제 기 강좌 월 일 월 일* 3 (9 23 ~ 11 18 )

이 땅의 젊은 세대와 함께 평화와 영성의 감수성을 기르고 나누며 모든 전쟁을 반대하는 비폭력 평화행동의 주체를 모으고자 하는 나

눔 문화가 매주 목요일 저녁 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강의와 함께 국내외 답사 및 해외 평화 운동가 초청 강연에도 참여하실 수 있습7 . 니다 이번 기에는 년 걸프전부터 평화활동을 펼친 의 설립자이며 평화활동가인 의 강연이 있. 3 1991 'Voice in the Wilderness' Kathy Kelly을 예정입니다 보다 자세한 문의는 평화아카데미 사무국 로. 02) 734- 1977 .

평화행사 모음 | |

우 리는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평화와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차 분히 . 들여다보지 않으 면 어느새 스치 고 마 는 것 또한 평화입니 다. 전쟁없는 세상 은 앞으로 이곳에 서 여러분과 함께 평 화에 이르는 좁다란 < >길을 발견해보고 자 합니다.여기 나눔의 공간 으로 여러분 을 초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