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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제� 1장

=====1:1� 사사들의�치리하던�때에� -� 여호수아서�저자가�그� 책의� 기록� 배경을�밝히기�위해� 책의� 서두

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수� 1:1)라는� 구절을� 기록하여� 역사� 서술을했던� 것처럼,� 그리고� 사

사기� 저자� 역시� 책의� 서두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삿� � 1:1)라고� 기록함으로써� 그� 역사적� 배경을� 밝

혔던� 것처럼,� 본서의� 저자도� 이와� � 같은� � 역사서술의� 전형적인� 형태를� 좇아� 본� 구절을� 삽입시켰다.� 이

처럼� 룻기의� 저자가� 본� 구절을서두에� 기록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역사적� 의미를� 일깨워� 준다.�

(1)� 저자는� 본서가� 확실한� 역사적� 사실성을� 지니고� 있음을� 명백히� 했다.(2)� 저자는� � 본서의� � 역사적기

록� 배경을� 제공했다.� 이로써� 본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순히�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교훈만을� 주기�

위한� 허구의� 소설(fiction)이� 아니라,� 엄연히� 역사적� � 사실(fact)위에� 근거하고� 있는� 구속사적� 기록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사사(私事)들의� 치리하던� 때'곧� '사사� 시대'란� 일반적으로� 여호수아� 사후(死後),� 첫�사사� 옷니엘이� � 등장할� � 때(삿3:9,� B.C.� 1367년)로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왕이� � 등장할� � 때

(삼상� � 10:1,B.C.1025년)까지� 대략� 342년 간의� � 기간을� � 말한다(J.P.� � Free,� � Archaeolgy� � and� �

BibleHistory).그중에서도� 특별히� 룻기의� 배경이� 되던� 때는� 드보라와� 바라그이� 활약상에� 힘입어� 이스라

엘이� 누린� 40년간의� 평화기(삿� 5:31)가� 끝나고,� 미디안� 족속의� 압제를� � 받던� 12세기� 후반� 경의� 사사

기드온의� 시대로� 추정된다(Keil),� 이러한� 연대� 추정은� � B.C.1010년에� 헤브론에서� 통치를� 시작한� 다윗

이� 바로� 룻의� 증손(曾孫)이라는� 사실(4:17)에근거한다(L.�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한편,�본� 구절을� 문자적으로� � 옮기면� '사사들의� 재판하던� 날들에'란� 의미가� 된다.� 당시� '사사'(*� � � � � � � � ,� �

쇼페트)들의직무란� 문자� 그대로� 주로� 백성들의� 소송을� '재판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 왕이'다스

린다'란� 의미를�지닌� '말라크'(*� � � � � � � � )대신� '재판하다'에� 해당하는� � '솨파트'(* � � )란� 용어를� 사용했

던�것이다.� 아울러�사사들은� � 전시에는�군대를 지휘하는지휘관의�역할을�감당하기도�했는데,� 이

런� 점에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이기도� 했다(삿� 2:16,18).� � �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 특히� 고대

의� 농사는�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흉년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격에� 나타나는� � 흉년은대부분� 하나님의� 징벌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언약의� 땅� 가나

안에서�이스라엘이�하나님의�뜻에�순종하여�살기만�한다면�풍성한�소출이�약속된�반면(레� 26:3-5,� 10;

신� 28:1-14).�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하여� 우상을� 섬긴다면� 온갖� 재앙과� � 아울러� 기근과� 흉년

이� � 또한임할� � 것이라고 경고되어� � 있기 때문이다(레� � 26:19,20;신28:23,24).� 이런� 맥락에서� 여

기의� 흉년도� 사사� 시대의� 타락상과� 관련지어� � 생각해� � 볼수� 있는데,� 특히� 이때의� 흉년은� 당시� 이스라

엘의� 소산물을� 약탈해� 갔을� 뿐� 아니라� � 토지를� 황폐화시켰던� 미디안� 족속의� 침략(삿� 6:2-4)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 듯하다(Schmidt,� Patrick).� � �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 모압지방은� 요단�

동편에�위치하며,� 사사� � 시대에는�아르논�강을� 경계로�르우벤�지파와�인접해�있었다.� 유다� 지파의 베

들레헴에서� � 이지방까지는� 그렇게� 멀리� 않았으므로,� 엘리멜렉� 가족들이� 흉년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해

가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것이다.� 특히� '모압� 지방'(*� � � � � � � � � � � � � � � � ,� � 세데� 모압)이란�단

어는� 문자적으로� '모압� 들판'(field� of� Moab)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이� 들판은� 바로� 아르논� 강을� 중

심으로� 펼쳐진� 들판이며� 초지였음에� 틀림없다.� � 따라서이들이� 모압� 땅에� 우거하기는� 했으나� 자기� 동족

들인� 르우벤� 지파가� 살고� 있는� 곳에� 인접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땅을� 떠난� 것은� 분명히잘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 주신� � 기업은� � 반드시� � 지켜져야� � 했기� � 때문

이다(민36:6-9).� 뿐만� 아니라� 이들이� 모압� 평지에� 10년� 동안� 우거했던� 것으로� 보아(4절).� � 흉년으로�

인해� 모압으로� 간� 것은� 단순히� 일시적� 이동이� 아니었다.� 결국� 이러한� 불신앙적행위로� 말미암아� 이들�

가족은�그곳� 모압�땅에서�큰� 고초를�겪게� 된다(3-5,20절).

=====1:2� � 엘리멜렉(* � � � ,� Elimelech)� -� '하나님은� 왕이시라'란� 의미로서,� 곧� � 이이름은�

그의� 부모의� 신앙을� 반영하는� 이름이다.� 한편� 엘리멜렉의� 처(妻)나오미가� 고향베들레헴으로� 귀환했을�때� 온� 성읍의� 화제가� 되었던� 일(19절)이나,� 그의� 친척� � 보아스의� 지위(2:1;4:1)등으로� 미루어� 보아� 당

시� 엘리멜렉은�성내의�유력인사였던 것� � 같다(P.� Cassel).� � � 나오미(* � � � � � ,Naomi)� -� '감미로운�자

',� '은혜스런� 자',� '사랑스러운� 자'등의의미인데,� 이� 이름은� 특히� 자부룻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고,� 말

년에� � 또한 하나님의은혜를� 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 � 말론과� 기룐� -� 각각� '병약한(연

약한)자'와� '사모(열망)하는� 자'란� � 뜻으로� � 순수한히브리식� 이름이다(Keil)� � �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

람들� -� '에브랏'또는�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 옛이름(창48:7)으로,� 족장�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라헬이�

죽은� 곳이기도� 하다(창� 35:16-19:48:7).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은� 후일� 미가� 선지자의� 입을� 통해� 메

시야가�태어날�장소로� � 예언된�곳으로서(미� 5:2),� 구속사적으로�매우�중요한�위치를�차지한다.� 아마� 본

서의� � 저자도� 이러한� 구속사적� 통찰에� 의해� 이곳의� 지명을� 이처럼� 자세하게� 설명했을� � 것이다.즉� 본절

은� 엘리멜렉� 가족의� 고향이� '유다� 베들레헴'이라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스불론지파의� 베들레헴(수� �

19:15;삿� � 12:8)과� � 분명히� � 구별했고,� � 또한 '에브랏� � 사람들'(Ephrathites)이라고� 밝혀줌으

로써,� 그들이�베들레헴�본토인들이란� 사실을� 분명히� � 했다(P.Cassel).� 한편� 허비(A.C.� Hervery)는� 여기�

'에브랏� 사람'과� � '에브라임� � 사람'을동일시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볼� 때�

잘못된� 주장임을� � 알수� 있다.� 즉� (1)� 성경� 어느� 곳에서도� 에브랏과� 에브라임을� 동일시� 하지� � 않았다.� �

(2)에브라임은� 예루살렘� 북쪽� 20km� 지점에� 위치한� 산악� 지대인� 반면,� 베들레헴은� � 예루살렘� 남쪽�

7km�지점의�유다산지에�속해�있다.

=====1:3� �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 엘리멜렉은� 가족을� 이끌고� 모압� � 땅으로� � 들어와그� 곳

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 물론� 이때는� 그의� 두� 아들� 말론과� � 기룐이� 장가들기�전이었

다.� 아마도� 나오미는� 장성한� 두� 아들이� 있었기� � 때문에,� � 남편이사후(死後)에도� 계속� 모압� 땅에� 머문�것� 같다.

=====1: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 페쉬타� 역본(the� Syriac� � Peshitta)과� 탈굼�

역본(the� Targums)은� 본절에� 덧붙여� '그들이� 이방인� 아내를� 취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이다'

라는� 내용을� 삽입시켰다.� 그리고� 몇몇� 학자들은� 이� 번역에� � 동의하여� 그들의� 결혼을� 정죄했다

(Matthew� Henry.� Thomas� Fuller).그러나�혹자는�주장하기를,� 모세�율법은�가나안�여인과의�결혼만을�

금지했지(신� 7:3),� 모압여인과의� 결혼까지� 금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결혼� 자체를� 정죄시할� 수�

없다고� � 주장한다(Keil,Hervey).� 물론� 이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모압� 족속에� 대한� 신명기

의� 규례(신� 23:3-6)를� 자세히� 살펴볼� 때� 그들의� 결혼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 따라서� � 우리는화란의�

신학자� 고스링가(Goslinga)의� 말대로,� 이들의� 결혼이� 율법을� 문자적으로� � 범한것은� 아니지만� 율법의�

정신을� 범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율법에서�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을� 금지시키신� 것은� 그곳의�

우상� 숭배(왕상� 11:1,2)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모압� 여인과의� 결혼도� 결국은� 우상� 숭배의� 위험성이�

내재해� 있으므로,� 그들은� � 율법의정신을� 범한� 것이다.� 사실� 당시� 모압과� 암몬� 족속의� 우상� 그모스와�

몰렉은� 다른� � 여타우상들보다� 더욱� 가증스러웠다.� 따라서� 나오미의� 두� 아들의� 결혼은� 잘못된� 것인데,�

이는� 무엇보다도� 결혼� 후� 가정에� 임한� 환난을� 두고� 나오미가� '여호와의� 손이� 나를� � 치셨다'(13절)라고�

고백한� 것으로� 보아서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Atkinson).� 이처럼� � 언약의� 백성은� 실패했지만,� 그러

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그러한� 실패를� 통해서도� 당신의오묘하신� 구속사를� 이끌어� 나가셨으니,� 곧� 이

때� 결혼한� 모압� 여인� 룻을� � 통해� � 다윗의가계를� 형성하신� 점이다(4:17).� � � 오르바...룻� -� 각각� 나오미

의� 두� 아들� 기룐과� 말론의� 아내가� 된� 이� 두� 여인의� 이름은� 전형적인� 모압식� 이름이다.� 그런데� 이� 두�

여인의� 이름� 뜻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 놓고�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오르바'(Orpah)는� '

돌아가는� 자',� '룻(Ruth)은� '친구'를� 뜻한다고�주장하나,� 이것은� 이후� 전개되는�이야기에서�추론했을�뿐� �

근거는� 없다(Pulpit� Commentary).이에� 비해� 카젤(P.� Cassel)의� 추론은� 흥미롭다.� 즉� � 그에따르면,� 소

녀들의�이름은�흔히� 꽃이나�동물의� 이름� 따위에서�따온다는�전제하에� � 고대셈어로부터� 그� 어근을�유출

하여� '오르바'는� '암사슴'을,� '룻'은� '붉은� 꽃'(장미)를� 각각� 의미한다고� 보았다(J.P.� 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그러나� � 이러한�견해� 역시� 하나의� 흥미있는� 추정일�뿐,� 그� 언

어학적�근거는�희박하다.

=====1:5� �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 혹자는� 엘리멜렉에� 이어� 그의� 두� 아들까지� � 일찍죽은�

것은� (1)� 언약의� 땅� 가나안을� 떠난� 죄와(2)�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죄� 때문이라고보기도� 한다

(G.Gerleman).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지만,� 향후� 전개되는� � 구속사적� 위치상� 나오미가정

이� 점하는� 비중을� 놓고� 볼� 때� 결코� 우연의� 일만은� 아닌� 것이분명하다.� 따라서� 이는� 이방의� 신실한� 여

인� 룻(Ruth)을� '여호와의� 날개� 아래'(2:12)로불러들이기� 위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섭리의� 결과로� 봄이�

타당하다.� � �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 '뒤에� 남았더라'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솨

아르'(*� � � � � � � � )는� '부지하다',� '연명하다'� 등의� 뜻으로,� 남편과� 두아들을� � 잃고� 홀로� 뒤에� 쳐져� 남아

있는� 나오미의� 모질고� 비참한� 모습을� � 풀러(Thomas� � Fuller)는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여자는� 남자보

다� 연약한� 존재이다.� 여자� � 중에서도� � 노년기의여자는� 더욱� 약하다.� 그중에서도� 과부는� 더� 불쌍하며,�

거기에� 가난한� � 과부는� � 더더욱측은하다.� 나아가� 가난한� 노년기의� 과부� 중에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은�

더욱� 처량하며,그것도� 먼� 타국에서� 객이된� 자식� 없는� 가난한� 노년기의� 과부는� 실로� 가련하며� � 불쌍하

다.� 진정� 욥이� 남자� 중� 가장� 많은� 고난을� 겪었다면,� 나오미는� 여자� 중� 가장� 처량한� 지경에� 빠진� 여자

이다"(Pulpit� Commentary).� 한편� 이처럼� 나오미는� 낯선� 이국� 땅에서�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애써� 키

운� 두� 아들마저�잃고�말았지만,� 그러나�그녀는 다행스럽게도� 깊이� 좌절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

지는� 않은� 듯� 하다.� 즉� 나오미는� � 언약의� � 땅을쉽게� 떠나온� 것을� 깊이� 뉘우치고,� 오직� 위로자요� 구원

자되시는� 여호와만을� 더욱� � 의지하고자� 한� 듯하다(6절).� 이러한� 나오미의� 신앙이� 마침내는� 기쁨의� 결

실을�보게� 된� � 원동력이�되었던�것이다(4:14-17).

=====1: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 여기서� '권고(勸顧)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파카드'(*� � � � � � � � )는� '방문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계수하다'라는� 의미를� � 지닌다.� 이는� 곧� 목자가�양떼를�

보살피기� 위해� 찾아가�양들을�계수하며�모든�환경을� � 주의깊게�돌아보는�상태를�일컫는다(출� 4:31;� 렘�

23:2).� 한편,� 본서의� 저자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사사시대의� 형편을� 암시해� 준다.� 즉� 사사� 시

대는� � 일반적으로� � 암흑의시기로� 이야기되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중�

우상� � 숭배가� 극심했으며,� 도덕적으로� 매우� 부패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 없었기때문

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때에는� 반드시� 그� 백

성을� 돌보기� 위해� 찾아가셨다.� 즉� 이방의� 침략하에� 고통하며� 당신을� 향해� 부르짖을� 때마다� 긍휼이� 풍

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돌아보사� 사사들을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절에� 언급된� 나오미� 시대의� 이� 흉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

과였지만(1절의� 주석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을� 기억하사� 그� 백성을�

찾아가심으로써� 그� 기근은� 해결되었다(6절).� 이와� 같은� 역사는�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원리에� 입각해서� 끊임없이� 적용되었다.� � �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기근이�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지난� 날을� 뉘우침과�

동시에� 이방족속의� � 땅,곧� 우상� 그모스의� 땅을� 떠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가진� 것이라

곤� 아무것도� 없으며,�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조차도� 다� 잃어버리고� 비참한� 상태에� 빠진� 나오미가� 이전

에는� 유지� 가문으로� 지냈던(2절� 주석� 참조)고향으로� 다시금� 돌아가려고� 결정한것은� 매우� 용기있는� 결

단이었다.� 동시에�자신의�잘못을�깊이� 회개하며�뉘우친� � 신앙의결단이기도�했다.

=====1:7� � 두� 자부도...길을� 행하다가� -� 두� 자부(子婦)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모(시母)를� 단순히� 배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모와� 함께� 시모의� 고향으로� 갈� 결심으로� 같이� 동행했던� 것같다.� 이로� 보아�

평소� 나오미와� 두� 자부� 사이의� 관계는� 퍽� 애정이� � 깊었던� � 것같다.� 특별히� 나오미의� 신앙� 인격이� 두�

자부에게� 깊이� 영향을� 끼친� 듯하다.� 아마도� 길을� 행하는� 도중� 나오미는� 한두번� 돌아갈� 것을� 권면했겠

지만,� 두� 자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따라온� 것� 같고,� 마침내는� 모압에서부터� 낯익은� 유다의� 고향�

땅으로� 통하는대로(大路)에� 이르자,� 시모� 나오미는� 젊은� 두� 자부의� 장래를� 위해서� 그들� 역시� 그들의고향으로�돌려보낼�결심을�굳힌� 것� 같다.

=====1:8� 너희는�각각� 어미의�집으로�돌아가라� -� 나오미에게�있어�이말은�결코� 쉽게� 나올� 수있는�성

질의�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두� 며느리초자�떠나버리면� � 나오미는 그야말로의지� 할데� 없는� 홀홀�

단신� 과부가� 되기� 때문이다.� 노년에� 의지할� 데가� 전혀� 없는� 과부처럼� 비참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자기들의� � 고향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나

오미� 자신에게는� 더� � 이상� � 소망이없으니,� 고향�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가정을� 가지고� 평안히� 살아가라

는� 의미가� � 강하게내포되어�있다(9-12절).� 뿐만� 아니라� 향후� 닥칠� 모든� 고통을�나오미� 자신이�혼자� 짊

어지겠다는� 자부(子婦)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담겨� 있다.� � �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선대'(善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 '헤세드'(*� � � � � � � � )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향한�언약적인� � 사랑을� � 나타낼때� 주로� 사용되었다(출� 15:13;20:6).� 특별히�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성호(聖號)� 중�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여호와'가� 사용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나오미는� � 며느리들이�비록�자기� 곁을� 떠나�그들의�고향�땅에� 갈지라도�모압의�국가 신인� � '그모스'를섬기지� 않고,� 여호와만�

섬기며�그분의�축복� 가운데�거하기를�바라는�마음이 간절했던것� 같다.� 즉� 나오미는� 이별의� 순간에�

여호와만이� 축복의� 근원이시며� 참되시고� � 유일한신이심을� 주지(主旨)시켜� 주었다.� 이것은� 비록� 나오미가� 언약의� 땅은� 떠났지만� 언약의하나님은� 잊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동시에� 언약의� 하나

님� 여호와는� 비단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의� 모든� 국가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

을보여�준다.

=====1:9� 여호와께서� -� 본장에서� 하나님의� 성호가� '여호와'(Jehovah)로� 가장� 많이� 사용된� 점에� 유의

해야�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호가� 여러가지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각� 문맥에서� 특징지워지는� 하

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적절히� 묘사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점에유의하면서� 여기서� 나오미가� '여호와'라

는� 성호를�사용한�용례를�살펴보면�다음과� � 같다.(1)� 언약의�하나님을�상기시킬�때(6,� 8,� 9절):6절에는�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 곧�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찾아가셨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8절과� � 9절

에서는� � 비록이방� 여인이지만� 언약� 백성� 가운데� 포함된� 자들에게�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께서� 복주시

기를�바라는�내용이� � 담겨� � 있다.� � (2)언약을� � 파기한� � 백성에� � 대하여� � 징계할� � 때(13,17,21절):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인들은� 언약을� 맺는� 과정에서� 짐승을� 잡아� 각을� 뜨고� 피를� 사방에� 뿌린다.� 그것은� 그�

언약을� 범한� 자도� 반드시� 그� 같이� 될� 것이라는� � 표식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경우에� 반드시� '여호

와'라는� 성호가� 사용되었던� 것이다(신� 4:27,31,40;� 호� 1:9;� 암� 3:2).한편,� 또한� 본장에는� '전능자'(*� � �

� � � � � ,솨다이)란말이� 여호와란� 말과� 연관되어� 동의어� 처럼� 사용되었다(20,21절).� 그런데� '솨다이'라는

하나님의� � 성호는� � 족장 시대� � 이후부터 여호와의� � 거의 동의어로� � � 사용되었다(시68:14;91:1;

겔� 1:24;10:5).� 그� 이유는� 언약을� 실행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러

한�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여호와'라는� 성호는� 당신의� �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가

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알� 수� 있다.� � � 남편의� 집에서� -� 전통적으로� 과부는� 고아와�

나그네와� 함께� 가장� 소외된� 계층의� �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보호받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그들을� 보호하라고� 명령하셨다(출� 22:22,23).특별히� 과부들의� 권

리를� � 보호하고�그들의�짐을� 덜어� 줄것을�가르치셨다(신� 14:29;24:19,20;27:19).� 그럼에도� � 불구하고�

과부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학대와�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사� � 1:23;� � 겔22:7;� 말� 3:5).� 나오미

는� 이러한�당시� 사회� 형편을�잘� 알고� � 있었으므로,� � 며느리들이자기와� 함께�가는� 것을� 극구� 막고자�했

던� 것이다.� 대신� 두� 자부가� 아직� 젊기� � 때문에,재혼(再婚)을� 하여� 행복한� 가정을� 가지라고� 권유했다.�왜냐하면� 그� 길만이� 과부가� � 사회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 � 형안함� -� 이� 말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누하'(*� � � � � � � � � � � � � )는� � '안식처',� � '안식','안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종합

적으로� '메누하'는�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 안식처(安息處)를� 찾아� 안정을� 얻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있다.� 따라서� 이� 말속에는� 기거하는� 집은� 있으나,� 보호받을� 남편이� 없어� 진정한� 안식� 없이� 슬픔과� 한

숨으로� 세월을� � 보내는� 과부의� 고통이� 역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재혼

하여�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안식을� 누리라고� 권면했던� 것이다.� � � 소리를� 높여� 울며� -� 즉� '목� 놓아� 엉

엉� 울었다'란� 의미인데,� 어려운� 처지에서� � 10년동안�동고� 동락했던� 시모� 나오미가� 강력히�이별을� 권하

자,� 두� 자부가� � 그동안� � 참았던울음을� 일시에� 터뜨리는� 장면이다.� 진정� 시어머니는� 며느리들의� 장래� �

행복을� � 위하여자신의� 외로움을� 떨치고� 극구� 보내려� 하고,� 며느리들은� 며느리대로� 홀로� 남게� 될� 시모

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극구� 함께� 가겠다고� 하면서,� 서로� 껴앉고� 목놓아� 우는� 이� � 장면은� 물론� 처량하

기도�하거니와�반면�아름다운�고부(姑婦)의� 관계를�보여� 준다.

=====1:10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 본절은� 문맥상� 약간� 이상한� 표현이다.즉� 오르

바와� 룻은� 모압� 출신이며� 모압에서� 자라� 그곳에서�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겠

다'(go)는� 말을� 하지� 않고� � '돌아가겠다'(return)고� � 고집했다.그래서� 이것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단순히� 나오미가� 돌아가는� 길을� 자기들이� 동행한다는� 의미에서� '돌아가겠다'고�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 (2)나오미와� 자신들이� 비록� 출신은� 다르나� 같이� 와서� 함께� 돌아간다는� 공동체적� 입장

에서� 그렇게� �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시모� 나오미의� 간곡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 나오미

와� 헤어지기� 싫어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두번째� 해석이� 더� 타당한� 것� 같다.� � 분명히그들은� 나오미와�

함께�모압� 땅에� 왔던�것처럼�표현하여,� 그와� 함께� 이스라엘로�돌아갈당위성을�강조했던�것이다.

=====1:11� � 나의�태중에�너희�남편될�아들들이�오히려�있느냐� -� 본절은�나오미가�신 25:5,6에나

타난� 바� '계대� 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의� 규례를� 고려하여� 한� � 말이다.즉� 남편이� 죽고� 자식은� 없을� 때� 그� 미망인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여� 남편의� 대(代)를이을� 수� 있다는� 율법의� 계대� 결혼법(繼代結婚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신� 25:5-10부분� 주석� 참조).� 따라서� 본절은� 죽은� 아들들을�대신하여� 대(代)를� 이어줄� 자식이� � 이제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오미의� 이� 말과� 관련하여� 학자들�간에는� � 다음� � 몇가지해석이� 따른다.� (1)� 나오미가� 재혼하더라도� 그녀의� 아들들이� 엘리멜렉의� 자녀가� �

되지못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말론과� 기룐의� 진짜� 형제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 해석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오미가� 계대� 결혼의� 의미를� 완전히� 곡해했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있다(J.B.Carpzov).�

(2)이와� 반대로� 어떤� 학자들은� 나오미가� 엘리엘렉의� � 형제와결혼하게� 되면� 계대결혼이� 성립할� 수� 있다

고� 주장한다(Keil).� (3)본절이� 계대� � 결혼의의미를�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근본� 정신은� 나오미� 자신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David� �

Atkinson).결론적으로� 우리는� 두번째와� 세번째의� 견해에� 의거하여� 본절을� 해석할� 수� 있는데,� 곧� 나오

미는계대� 결혼을� 할� 수는� 있으나� 이미� 그는� 늙었으므로(12절)� 자식을� 가질� 수� 없는� 형편에처해있다.�

그러므로� 나오미가� 계대� 결혼을� 염두에� 둔� 것만은� 사실이다.� 근본적인� 의미는� 자기가� 매우�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과부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데� 그� � 의미를� � 갖고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 의미는� 이하�

언급되는� 12,13절에서�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강조한� 사실에서� 충분히� 입증

된다<1:6-18강해,계대� 결혼의성경적�의미>.

=====1:12,13말한다든지...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기다리겠느냐� -� 나오미는� 자부들이� � 만일� 자

신과� 함께� 가면� 끝내� 과부�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점층적인� 표현으로서설득하고� 있다.� 즉�

(1)� 자신의�나이나�처지를�감안할�때� 전혀� 재혼(계대�결혼)의� 가망이나�의사가�없지만,� 만일� 재혼을�하

여� 남편이�있다손�치더라도� (2)� 자신은 늙었으므로� 도저히� 자식의� 잉태를�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백보� 가정하여�아이를� � 낳았다손� 치더라도� (3)� 그� 아이가� 계대� 결혼법을�이해하고�지킬�정도가�

되려면,� 최소한� 20년이상을� 기다려야� 할� 터인데...,그것이� 어찌�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기냐란� 의미를� 강

력히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당시� 나오미는� 이들이� 모압� 여인이라는� � 점을� � 감안하여,비록� 이들이�

이스라엘로� 간다고� 할지라도� 계대� 결혼� 이외에는� 도저히� 재혼이� 불가능할것이란� 판단을� 한� 것� 같다.� � �

여호와의�손이�나를� 치셨으므로� -� 나오미가�며느리들을�설득시키기�위해 마지막으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실� 그녀가� 며느리들을� � 설득시키는� 마당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치

신� 사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 어색해� � 보인다.� 그러나� 오르바가� 돌아간� 후� 나오미가� 룻을� 설

득할� 때�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15절)라는� 표현을� 썼던� 것으로� 보아,� 분명코�

나오미는� 며느리들의여호와� 신앙을� 확실히� 확인하고자� 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 본토,� �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풍습과� 언어가� 다른� 먼나라로� 간다는� 것은,� 더군다나� 어릴� 적부터섬기던� 신을�

떠나�여호와의�신앙�공동체인�이스라엘로�간다는�것은 단순한 애정이나의지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나오미는� 자신이� 당한� � 고난과슬픔의� 원인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였다.�

만일� 나오미가� 자기의� 가정에� 닥친� �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자연적인� 일로� 생각했다면,� 비록�

유다땅에� 흉년이� � 그쳤다는� 소문을� 들었을지라도(6절)돌아갈�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 9가지� �

재앙을당한�후에도�그� 재앙의�원인을�바로� 깨닫지�못했던�애굽�왕�바로와는�좋은�대조가� � 된다.

=====1:14�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 고대� 근동의� 관습상� 입맞춤의� 포옹은� 기쁜� � 상봉의� 순

간(창� 33:4;45:15;출� 18:7)이나� 아쉬운� 이별의� 순간(창� 31:55;행� 20:37)에� � 주로행하던� 풍습이었다.�

물론� 여기서는� 어쩌면� 영원한� 이별이� 될지도� 모를� 그� 아쉬움� 때문에� 입맞춤한� 것이다.� � � 룻은� � 그를� �

붙좇았더라� � -� � 여기서� � '붙좇다'에� � 해당하는� � 히브리어� � '다바크'(* )는� '굳게� 결합하다'(cleave).�

또는� '붙들고� 늘어지다'(cling)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 주로� 사용된� '다바크'란� 동산의� 용례를�

살펴보면,� 남녀의� 결혼� � 관계에서(창2:24),� 그리고�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에서� 주로� 사용되었다(시�

63:8).� � � 뿐만아니라 이동사는�하나님께서�당신의�주권적인�구속의�은총에�대한 응답으로서,�

그의언약� � 백성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실� 때� 역시� 사용되었다(신� 10:20).� 이를� 통해� � 볼� � 때'다바크'란�

말은�뗄레야�뗄� 수� 없는�친밀한�관계에�사용되었으며,� 은총에�대한� 충성을다짐할 � 때도�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룻이� 그의� 시어머니를� 좇아간� 것은북받치는� 애정과� 충실한� 마음으로� 결코� 이별

하지� 않겠다는� 굳은� � 각오에� � 의해서였다.아울러� 나오미로부터� 주로� 영향받았을� 여호와� 신앙에� 대한�

확실한� � 믿음에 의해서였다(Driver,Briggs).

=====1:15� �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 이것을� 원문대로� 문자적으로� 옮기면� � '그녀의백성

과� 그녀의� 신들에게로� 돌아갔으니'가� 된다.� 다시� 말해� 오르바(Orpah)는� 자기가� 속한� 백성에게로� 갔을�

뿐� 아니라,� 자기� 백성이� 섬기는� 신(神)에게로� 돌아갔다는� � 의미가된다.� 이처럼� 결과적으로� 볼� 때� 오르바는� 단순히� 그의� 시어머니의� 품을� 떠난� 것이� �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그모스(삿� 11:24)또는�

바알브올(민� � 25:3,5)신을� � 섬기는우상의� 땅으로� 돌아간� 것이다.� 따라서� 본절에서� 나오미가� 룻에게� 이�

말을� 한� 것은� � 13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시모(媤母)에� 대한� 애정을� 초월하여,� 여호와를� 향한� 룻의신앙을� 시험해� 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실� 고대� 세계에서는� 자기� � 종족이� � 섬기는신을� 버리는�

것은� 본토나�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는� 것� 이상으로� 극히� 어려웠다.� 특히부족� 국가를� 이루며� 살던� 당

시에는� 부족신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 흔하지� 않았으므로,� 나오미는� 이것으로� 룻의� 신앙을� 시

험해�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 장면을� � 풀러(Thomas� Fuller)박사는� 야곱의� 경우와� 비교하여� 역설적으

로� � 재미있게� � 묘사했다.� � 즉"마치� 하나님이� 얍복� 강가에서� 야곱의� 신앙을� 꺾기� 위해� 애쓰신� 것처럼,�

여기서� � 나오미는� 자부� 룻의� 올바른� 결심을� 좌절시키기� 위해� 노력했다"(Pulpit� Commentary).� � �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 이� 말을� 풀어� 쓰면,� 곧� '너도� 동서가� 결단을� 내린� 것처럼,� 결단을� 내려� 너의�

백성과� 너의� 신(神)에게로� 돌아가라'는� � 의미이다.� � 그러므로앞서� 언급했듯,� 나오미의� 이� 말속에는� 다분히� 여호와를� 향한� 룻의� 신앙을� 시험코자� 한의도가� 엿보인다.� 그렇다고� 우리는� 여기서� 나오미

(Naomi)가� � 오르바(Orpah)의� � 행동을은근히� 비난하고� 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사실� 일반적인� 도덕�

수준에서� 볼� 때,� � 오르바도� 나름대로� 시모� 나오미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룻(Ruth)의�

각오와신앙이� 더욱� 뛰어나고� 위대했을� 뿐이다.� 따라서� 나오미가� 룻에게� "네� � 동서(오르바)는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라고� 말한� 것은� 다만� 그� 결과만을� 언급한� 것� � 뿐이다.� 여하튼,� 오르바는� 떠나

갔고� 룻은� 남았다.� 이것은� 마치� 이스마엘은� 떠나가고� � 이삭은� 남은� 것처럼(창� 25:6),� 그리고� 에서는�

떠나가고�야곱은�남은� 것처럼(창� 36:6)� 하나님의�심오한�구속사적�경륜과�섭리의�결과였다.

=====1:16�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 되시리니� � -이러

한� 룻의� 고백은� 진실로�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되신다는� 올바른� 신앙에� � 근거해� � 있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면� 재혼하여� 남은� 여생� 동안은� 편안한� 안식처를� 얻을� 수� � 있음에도� 불구하고(9절)� 자기의� 부모,�

친척,� 그리고� 신을� 떠나� 아무� 희망이� 없는�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는� 룻의� 결심은� 단순한� 효성이나� 애

정을� 초월하여� 완전한� 자기� 희생을감수한� 위대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17절).� 한편� 여기서� 우리가�

간과할�수� 없는�또하나의�사실은�나오미가�이방�우상의�나라에서도�그� 신앙의�빛을� 잃지�않았을�뿐�아

니라,� 자신의� 여호와� 신앙을� 물려� 주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신앙적으로� � 며느리들을교훈시켰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전하거나� 가르치는� 자가� 없었다면,� 이처럼� 룻이� � 훌륭한� 믿음의� 고백을� 했을� 리� 만

무하기�때문이다(롬� 10:14,15).

=====1:17� 만일...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 룻의� 신앙은� 여기서� 가장� � 확실하게� 입

증된다.� 즉� 룻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는� 이스라엘� 사회에서만� � 발견되는� � 독특한� �

서약의� � 형태로� � '여호와'의� � � 이름을� � � 들어� � � 맹세했다(삼상3:17;25:22;왕상� 2:23).� 본래� 서약에는�

일반적으로� 어떤� 표적이나� 의식이� 동반되지만,여기서는� 말하는� 사람� 자신이� 그� 서약을� 범할� 경우� 스스

로� 벌을� 받겠다는� 엄숙한�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여기서� 룻이� 맹세를� 할� 때� '여호와'(Jehovah)라

는� 신명칭을�사용했다는�점에�주목할� 필요가�있다.� 왜냐하면� '여호와'란� 성호는� 언약� 공동체인� � 이스라

엘� 사회에서만� 사용하는� 고유한� 신명칭이었기� 때문이다(왕상� 19:2).� 그런데� � 이방인이었던� 룻이� 여기

서� 이� 명칭을� 사용했다는� 것은�다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 룻은� 나오미의� 신앙을�따라� 자기� 나

라� 모압의� 신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께� � 대한� � 신앙을확실히� 지니고� 있었다.� (2)� 룻은� 자신이� 이방인임

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성호로� 맹세함으로써� 이미� 언약의� 백성에� 속해� 있음을� 고백했다.� 이러한� 룻의�

신앙에� � 근거해� � 볼때� 진정�그녀는�여기서�언약을�어긴� 자에게�반드시�벌을�내리시는�여호와를 경

외하는마음으로�엄숙히�맹세했다고�볼� 수� 있다.

=====1:18� 나오미가...말하기를� 그치니라� -� 사실� 홀로� 된� 나오미인들� 그동안� 정든� 두� � 며느리를� 떠

나� 보내는� 것을� 진정� 원했겠는가?� 다만� 두� 자부의� 형세적� 행복을� 위하여� � 자신의욕심은� 일단� 접어두

고� 그들을� 돌려보내려�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결과적으로� � 그것은� 시험적� 형태를� 띠게� 되었고,�

결국� 룻만이� 통과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 두� 자부는� 나오미의� 의도를� 따라� 각자� 자신의� 행복의� 길을�

추구했다.� 즉� 오르바는� 모압� 땅� 자신의� 아비� 집에서,� 룻은�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오미는� 그� 모두를�

기쁘게�인정했다.

=====1:19� 온� 성읍이...떠들며� 이르기를� -� 성읍내에서� 유력한� 가문이었던(2절)� 엘리멜렉� 가족이� 먼�

모압� 지방으로� 이주해� 간� 사실도� 분명� 한때의� 큰� 화제거리였을� 것이다.� � 그런데그로부터� 어언� 10년이�

지난�후,� 낯선� 여인과�함께� 초라한�모습으로 나타난 나오미의등장은� 분명� 조그마한� 성읍� 베들레헴을�

온통�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소동케� 하기에� 충분히� 재미난� 화제거리� 였음에� 틀림없다.� � � 이가� 나오미

냐� -� 이� 말은� 단순히�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 놀라움만을표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

편과� 두� 아들을� 잃고� 이방� 여인인� � 며느리만을� � 데리고빈손으로� 처량하게� 돌아온� 나오미의� 모습을� 보

고,� 연민의� 정을� 느껴� � 발한� � 탄성이다.따라서� 이� 말은� 10여년� 전� 고향�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르게(21

절)� 변한� 나오미의�모습과처지를�반영한�말이다.

=====1:20� 나를� 나오미라�칭하지�말고� 마라라�칭하라� -� '나오미'(*� � � � � � � � � � ,� Naomi)란� 이름의�의

미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본장의� 전후문맥과� 어근을� 살펴� 볼� 때� � '감미로운자','은혜로운� 자','사

랑스러운�자'란� � 의미를� � 지닌다.� � 반면에� � '마라'(*� � � � � � � � � ,Mara)란� 단어는� '괴로움',� '쓰라림',� '씀'

을� 의미한다(출� 15:23).� 그러므로� 이처럼� 나오미가� 자신을� '마라'라� 불러달라고� 한� 것은� 그녀가� 모압

에서� 생활하는� 중� 극도의� � 슬픔과� 고통을� 맛보았을� 뿐� 아니라,� 지금도�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고� 괴로운�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 � 이는� 전능자가...괴롭게� 하셨음이니라� -� 여기서� 나오미가� 특별히� 하나

님의� � 신명칭을� '전능자'로� 부르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전능자'(*� � � � � � � � � ,솨다이)란신명

칭은� 택한� 백성이� 순종의� 길로� 걸어갈� 때는� 무한히� 축복해� 주시되,� 어그러진� 길로갈� 때는� 어김없이� 공

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 주는� 명칭이다.� � 나오미도�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

우치면서�사용한�듯하다.

=====1: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 이� 말에� 대한� 해석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1)� � 혹자는�

엘리멜렉의�가정이�지방�귀족� 가문으로서,� 그들이�모압을�향해� 떠나던 당시에는베들레헴에서� 널리� �

알려질� � 정도로� � 부유하였다고� � 주장한다(David� � Atkinson,� � LeonMoris).� (2)� 어떤� 학자는� 나오미가�

풍족하게� 나갔다는� 말은� 재산이나� � 명예의� � 풍부가아니라,� 든든한� 남편과� 두� 아들로� 풍족하게� 나갔음

을� 의미한다고� � 주장한다(Keil,A.C.Hervey).� 그런데� 본장의�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우리는� 위의� 두� 가

지� 내용이� 모두� �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나오미가� 떠날때� '풍족했다'는� 표현을� 쓴� 것에� � 초

점을맞추면� 분명히� 사람� 뿐� 아니라� 재물도� 포함된다.� 그렇지만� 나오미가� 돌아올� 때� 남편과자식들� 없이�

공수(空輸)로� 돌아온� 것에� 초점을� 맞추면� 두� 번째의� 주장도� 타당하다.� 사실� 충족한� 재산을� 가지고� 이방� 땅에� 가서� 흉년이나� 기타� 재난으로� � 망하지� � 않았다면,비록�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을� 지

라도� 재물까지�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생활한� 형편을�

보면(2:2),� 남편과� 자식들을� 잃은� 것� 외에� 재물까지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나오미가� 떠날�

때� � 풍족했다는� 표현을� 쓴� 것은� 위의�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 � 징벌하셨고...괴롭게�

하셨거늘� -� 이� 두� 동사형은� 서로� 관련이� 있다.� 즉� '징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나'(*� � � � � � � � )

는� 눈� 밖에� 난� 자를� 비천하게� 만들어� 결국� 괴롭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 말이며,� � '괴롭게� � 하다'에� �

해당하는� � 히브리어� � '라아'(*)는� 하나님의� 징계로� 괴로움을� 당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한편� 나오미가�

본절에서� � 이두�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 것은� (1)� 자기의� 고통스러움이�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 왔다는�

사실과� (2)� 그� 징벌을�주신� 하나님의�뜻을�겸손히�받아들인다는�회개의�의미로� � 설명될�수� 있다.

=====1:22� � 본절은� 1장의� 요약이자� 2장의� 서론으로서,� 나오미와� 룻의� 귀환을� 역사적� 바탕� 위에서�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 �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 팔레스틴(가나안)지방에서는� 일반적으로� � 보리를� �

가을에파종하여�이듬해�봄에� 추수한다(2:23).� 그리고�보리�추수가�끝날� � 무렵에는밀수확을한다.� 팔레

스틴의� 보리� 추수는� 보통� 4월말� 경에� 시작되었으나(수� 3:15)� 고원� 지대에서는� 5월� 또는� 6월� 초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또한� 보리는� 팔레스틴� 지방에서나는� 주산물� 중� 하나로서� 주로� 말이나� 노

새의�먹이로�경작되었으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양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보리� 수확의� � 첫열매를� 하나님께� 바치고� 봉헌하기� 위해� '초실절'(初實節)을� 절기로� � 지킨다(레� �23:9-14).한편,� 본절은� 나오미가� 자기� 고향� 땅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6절),� 곧바로� 모압� 땅

을� 떠나�고향으로�돌아왔음을�보여�준다.� � � � � 룻기� 제� 2장

=====2:1� 친족� -� 여기서� 이� 말은� 원문상� 흔히� '케티브(모음� 부호를� 붙이기� 이전의� 원문� 그대로의� 자

음)� 독법'(讀法)을� 따라� '메우다'(*� � � � � � � )로� 읽는데,� 그� 뜻은� '잘� 알고� 있는(자)',� '가까운(자)'라는� 의미를�지닌다(시� 55:13;88:8,18).� 여기서는�특별히�기업� 무를� 의무를�가진� '혈족� 관계'(kinship)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확실치는� 않지만� 유대전승에� 의하면,�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조카라� 한다(Keil,�

Cassel).� � � 유력한� 자� -� 이� 말은� 히브리어로� '이쉬� 깁보르� � 하일'(*� � � � � � � � � � � � � � � � � � � � � � )인데,� '깁

보르'는� 주로� '용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수� 1:14;10:2;삼상� 2:4).� 그리고'하일'은� '재산이� 많은� 사

람'을� 의미하기도� 하며(신� 33:11),� '재물'을� 의미하기도� � 한다(사� 8:4).� 뿐만� 아니라� '현숙하거나� 능력

있는� 사람'에게도� 사용되었다(3:11).� � 따라서� 본절에서� 보아스(Boaz)를� 유력한� 자라고� 칭한� 것은� 재물

이� 많을� 뿐� 아니라� �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으며,� 그� 지방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 � 준다.� 이런� 의미에서� 영역본들은� 각각� '유력한� 자산가'(a� mighty� man� of� wealth,� �

KJV),'명망있는�유지'(a� man� of� standing,� NIV)등으로�번역했다.� � � 보아즈(* � ,Boaz)� -� 히브리� 어

근상� 그� 이름의� 뜻이� 분명치� 않다.� 따라서� (1)혹자는� '벤� 아즈'(*� � � � � � � �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 '

힘센(자)'를� 의미한다고� � 주장한다(Cassel).� (2)혹자는� '바아즈'(*� � � � � � )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며,� 그�

뜻은� 곧� � '민첩한(활동가)'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eil).� (3)그리고� 혹자는� 이� 말의� 어근을� � 산스크리

트어(Sanskrit,�梵語)의� '부안티'(bhuvanti)에서� 찾아,� 그� 뜻을� '복된(자)'로� � 보기도�한다(Raabe).

=====2:2�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 동서� 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추수기가� � 되면� � 가난한자들은�추수를� 한� 밭에� 나가� 떨어진� 이삭을� 주워� 생계를� 유지했다.� 특별히� 히브리� � 사회에서� 모세� 율법은� 이

러한�자들을�위해�밭이나�포도원,� 그리고�감람원에서 추수하는자들로� 하여금� 밭의� 가장� 자리에� 있는�

농작물의� 일부를� 남겨놓도록� 규정하고� � 있다(레19:9,10;23:22;신� 24:19).� 룻은� 이러한� 율법의� 혜택과�

관습을� 좇아� 자신과� 시어머니의양식을� 구하기� 위해� 밭으로� 나갔다.� � � 뉘게� 은혜를� 입으면...이삭을� 줍

겠나이다� -� 모세� 율법은� 분명� 가난한� 자의� � 생계를보장키� 위해� 추수� 후에� 그� 떨어진� 이삭을� 줍는자들

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규정하고있다(레� 19:9,10;23:22;신� 24:19).� 그러나� 백성들은�그� 규정을�무

시했다.� 즉� 여호수아사후(死後)�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안정과� 번영을� 누리게� 되자,�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소견대로� 사리� 사욕을� 취하는� 사사� 시대의� 타락상을� � 연출했다.� 따

라서� 당시� 가난한� 자들은� 율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밭주인의� 냉대와� 멸시를� 받기� 일수였고� 심지어�

이삭� 줍는� 일을� 금지당하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모압� 여인룻(Ruth)으로서는� 모압에� 대한� 이스라엘의�

좋지� 못한� 감정을� 고려할� 때,� 결코� 이삭� 줍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룻의� 이� 말은� 이방인으로

서의� 당할지도� � 모를� � 온갖어려움과� 냉대를� 감수하고,� 또한�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하루종일� 허기를� 참

아가며� � 일해야� 할� 육체적인� 고통을� 기꺼히� 감수하고� '내가� 누군가의� 눈에서� 호의를� 발견할� 수만있다

면'(in� whose� eyes� I� shall� find� favor)� 그를� 좇아� 열심히� 이삭을� 줍겠다는� � 결의를� 보인� 것이다.� 그

러므로� 이� 말� 속에는� 시어머니에� 대한� 룻의� 지극한� 효성이� �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로써� 룻은�

신실한� 신앙을� 소유한� 여인일� 뿐� 아니라(1:16,17),홀�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현숙한� 여인으로,� 하

나님의�축복을�받기에�합당한� � 여인으로�부각된다.

=====2:3� � 베는� 자를� 따라...이삭을� 줍는데� -� 후대의� 유대� 랍비들은� '이삭� 줍기'에� 대해� 나름대로의�

규정을� 정했다.� 그중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즉� '만일� 추수하는� � 자가� � 보리나밀등을� 벨� 때� 한� 줄기나�

두� 줄기를� 놓쳐버리면� 그것은� 이삭� 줍는� 자의� 몫이� 될� 수� � 있었다.� 그러나� 세� 줄기� 이상� 베지� 않았다

면� 그것은� 주인에게� 다시금� 돌려져야� 했다'(Pulpit� Commentary).� � � 우연히...이르렀더라� -� 룻이� 이삭

을� 줍기� 위해� 보아스의� 밭으로� 갔을� � 때,� � 그녀는당시� 그� 밭의� 주인에� 대해서나�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나� 분명코� 이것은� 룻의� 입장에서는� 우연한� 일이지만,� 하나

님의�편에서는�그녀를�위해�미리� 준비하신�기회였다(Gillis� Gerleman).� 따라서�본서의 저자가 본

절에서이� 말을� 한� 것은� 앞으로� 발생되는� 일이� 인간의� 계획과�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하나님의�

섭리에�의한� 것임을�가르쳐�주기� 위함이다.

=====2:4� 본절은� 보아스와� 그의� 일꾼들간에� 인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구약� 시대에� 히브리인

들이�나누었던�인사법으로는�크게�두�가지가�있다.� (1)이웃의�안부를 물을� � 때(삼하� 8:10;11:7;왕

하� 4:26)� 혹은� 사람을�만났을� � 때(왕하 5:21)나� � 헤어질� � 때(삼상1:17)� '샬롬'이라는� 인사말을�

나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평강�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의미가� 축약된� 인사로서,� 히브리인들에게는�

가장� 보편적인� 인사법이다.� 그리고� � 이같은� 인사말과� 더불어� 그들은� 서로� 목을� 껴안고� 입을� � 맞추는� �

것이� � 일반적이었다(창27:26;출� 18:7;삼상� 20:41).� (2)존경과� 충성을� 표시하는� 인사로서� 땅에� 엎드려�

절하는방식(창� 50:18;삼하� 9:6;14:4;왕하� 4:37;대하� 20:18)과� 무릎을� 꿇어� � 절하는� � 방식(창42:6)이�

있었다.� 그런데�본절의�인사법은�이러한�관습적인�것과�퍽 다르다는� � 인상을준다.� 즉� 보아스는� 자

기� 일꾼들에게� 매우� 자상하게� 인사했으며,� 일꾼들도� 그에게� 매우친밀한� 말로� 화답하였다.� 그러므로� 이

것은�보아스의�평소�신앙� 인격을�잘� 증명해�준다고�볼� 수� 있다.

=====2:5� 사환�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아르'(*� � � � � )는� '젊은� 사람',� � '심부름꾼','시종'� 등

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아르'는� '노예'나� '종'을� 의미하는� '에베드'(*� � � � )와는� 매우� 다르다.� 즉,� '나아

르'는� 대체로� 독립된� 가정을� 가지며,� '에베드',� 즉� � '종'들을� 관장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도� 사용된다(삼

하� 9:9,10).� 본절에서� 사용된� '나아르'도� 추수하는� 일꾼들을� 관장하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아(6절),�

단순한� 종이나� 사환이아니라� 보아스의� 가사를� 책임맡은� 감독관과� 같은� 사람일� 것이다.� � � 이는� 뉘� 소녀

냐� -� 사실� 룻은� 그동안� 유력한� 엘리멜렉�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 유복하게� 생활해� 왔기� 때문에,� 여느� 이

삭� 줍는� 가난한� 여인네와는� 다른� 고상한� 기품을� �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룻은� 훌륭한� 신앙과�

고매한� 덕성을� 지닌� 현숙한� 여인으로서� 그� 단정한� 몸가짐으로� 다소곳하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금방�

보아스의�눈에� � 띄인것�같다.

=====2:6� � 이는...모압� 소녀인데� -� 주인의� 질문에� 즉각� 응하여� 룻을� 소개하는� 사환의� � 대답을볼� 때,

그리고� 룻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보아스가� 한� 말(11절)을� 볼� 때� 당시� 베들레헴성내에서는� 룻

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것� 같다.� 더욱이�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룻은� 여호와를� 향한�

신앙과�시모(媤母)에� 대한� 지극한�효성으로�주변� � 사람들에게�널리�인정받고�있었던�것� 같다.

=====2:7� 잠시� 집에서�쉰� 외에� -� 커버데일(Coverdale)� 역에서는�본절을� '잠간� 동안� 집에� � 가곤� 했던�

것� 외에'라고� 하여� '집'이란� 말이� 성읍에� 있는� 나오미의� 주택을� 언급하는� �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본문

에� 사용된� '집'에� 해당하는� � 히브리어� � '바아트'(*� � � � � � )는'집'이란� 뜻� 말고도� '임시적인� 오두막',� '장

막',� '움막'� 등을�의미하기도�한다.� � 그리고�룻이�점심� 식사를�밭에서�한�것으로�보아(14절),� 그녀가�쉰�

곳은�성읍에�있는�집이아니라 더위를 피하기 위해� � 임시로� � 지은� � 장막이나� � 오두막이었을� �

것이다(JamesMorison).� 아무튼�본절에서�저자가�이러한�표현을�쓴� 것은�그녀가�어디에서 쉬었느냐하

는�데� 초점을�맞춘� 것이�아니라,� 룻이� 부지런히�일하고�있다는�사실을�강조하기� � 위해서였을�뿐이다.

=====2:8� 내� 딸아� 들으라� -� 이� 한� 마디� 말� 가운데서� 우리는� 보아스의� 따뜻한� 인간미를� � 발견할� 수�

있다.� 즉� 그는� 룻을�단순히�값싼�동정심으로�대한�것이�아니라,� 룻이 수치심이나� 굴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매우� 친밀한� 말로� 이야기를� 건넸던� 것이다.� 한편� � '내� � 딸아'(*� � � � � � ,� 빗티)라고� 부르는� 관습

은� 비단� 자기� 딸� 뿐� 아니라,� 지체� 높은� 어른이� 젊은� 여인에게� 이야기를� 건넬� 때나� 충고를� 할� 때도� 흔

히� 사용된다.� � � 여기서...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 '나의� 소녀들'이란� 추수하는� � 자들의� � 바로뒤를�

따르면서� 그� 베어� 놓은� 줄기를� 단으로� 묶는� 여인네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아마도� 보아스는� 어떤� 특

정한� 위치를� 룻에게� 지정해� 주면서� 그� 권리를� 인정해� 준� 것� � 같은데,� 바로� 단� 묶는� 여인들� 틈에서� 마

음껏�이삭을�줍도록�했던� 것� 같다.

=====2:9소년들의� 길어� 온� 것� -�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물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 그지방에서

는� 우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 발전되었다.� 따라서� 들로� 일을� 하러� 갈때에는� 성읍� 우물에

서� 하루� 종일� 마실� 물을� 길어가야� 했다.� 그런데� 들에� 일을� 하러� 나오는� 룻의� 입장에서� 볼� 때� 하루� 종

일� 마실� 물을� 가져오는� 것은� 용이하지� � 않았을것이다.� 그렇다고� 소년들이� 성읍까지� 가서� 애써� 길어온�

물을� 마신다는� 것은� 이삭� 줍는자의� 처지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 보아스는� 룻에게� 자기� 소년들이� 힘들게� 길어� 온� 물을� 마실� 수� 있는� 특권을� 주었던� � 것이

다.� 한편� 혹자는� 이때� 소년들이� 물을� 길어� 왔던� 우물을�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 중� 마시기를� 원했던� '

베들레헴� � 성문� � 곁� � 우물'(삼하� � 23:14,15)과� � 동일시� � 하기도� � 한다(A.C.Hervey,� Dean� Stanley)

=====2:10�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 전신을� 땅에� 엎드려� 절하는� 행동은� 원래� 하나님� 앞에서(수�

7:6;삿� 13:20),� 혹은� 왕� 앞에서(삼하� 14:4,22)� 취하던�자세였다.� � 그러나� � 단순히아주�깊은�겸손을�표

시하기� 위해� 그러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여기서� 룻은� 외모만을보고� 판단하지� 않는� 보아스의� 사려�

깊은� 인격에�대해� 심심한�존경의�뜻을� 표함과�아울러�이방인이라는� 자신의�신분을�자각하여�깊은�겸손

을� 표했던� 것이다.� � �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 전통적으로� 히브리인들은� 이방인들을� 천하게� 여겼다.� 이

같은� 관습은� 율법의�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시켰던데서� 연유되었다(신� 7:3).� 그러나� � 본질적으로� 율법

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 간의� 결혼을� 금지시킨� 것은� 종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함이� 아니라,�

종교적인� 순수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즉� 이방인과의� 결혼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

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기� � 때문에'(왕상� 11:1,2)� 금지된�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은� 이�

정신을� 오해하여� � 나중에는자기� 동족인�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 당한� 후� 앗수르인과� 혼혈되

자� � 그들(사마리아� 사람들)과도� 상종하지� 않게� 되엇다.� 아무튼� 여기서� 룻도� 아마� 이러한� 점을� � 의식하

고서,� 자신이�히브리인들이�천하게�여기는�이방� 여인이라는�사실을�말했던�것으로여겨진다.

=====2:11� 본절에� 나타난� 바,� 우리는� 존경받는� 유력한� 인물� 보아스의� 대답을� 통해� 룻의� 두� 가지� 뛰

어난� 품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 시모에게� � 행한모든� 것'이란� 말을� 통

해�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시모(媤母)를� 극진히� 받들어� � 섬기는룻의� '효성'(孝誠)을� 발견할� 수� 있다.�둘째,� '네� 부모와�고국을�떠나� 전에� 알지� � 못하던�백성에게로�온일'이란� 말을� 통해� 이방� 여인임에도�불

구하고� 여호와를� 향한� � 순수하고도� 충직한� 룻의� '신앙'(信仰)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결국� 룻이� 복

을� 받아� � 머지않아� 보아스(Boaz)의� 아내가� 되고,� 후일� 성군� 다윗(David)의� 증조모가� 될� � 수� � 있었던

것은�물론� 1차적으로는� 하나님의�은총과� 섭리� 때문이었지만,� 나아가� 룻의� 고결한�품성도�그� 요인이�되

었다는�사실을�간과해서는�안될�것이다.

=====2:12� � 여호와께서...보응하시기를� 원하며� -� 일찍이� 하나님의�부르심을� 좇아� � 일가� � 친척,본토를�

버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 하신� � 말씀,� � 곧� � "나는...너의� 지극히� 큰� 상

급이니라"(창� 15:1)는� 말을� 연상케하는� 보아스의� 축복이다.� 실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온� 이� 이방� 여인에게� � 보아스의� 이� 말은� 큰� 위로의� 말이� 되었을� 것이다(13절).� �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 이� 명칭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에� 언약을� 맺은� 사실과� 깊은� 연

관이�있다.� 즉� 여기서�보아스가�말하고자�하는� �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셔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고,� 율법을� 통해언약� 백성으로� 삼으신�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이

시다(출� 6:2;19:3;20:1-26).� � �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 이� 표현은� 출� 19:4과� 신� 32:11의�

말씀을� � 연상시킨다.� 즉�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 행위가

마치� 어미� 독수리가� 그� 넓고� 강한� 날개로� 새끼를� 안전하게� 인도하고� 보호해� 주는� 것과같은� 행위로� 묘

사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 보아스가� 룻에게� 이� 표현을� � 사용한� � 것은룻이� 언약의�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음으로써,� 그녀가� 자비로우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그� 크신�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로� 인

도되었다는�사실을� � 강조하기 위함이다(시� 91:4).� 보아스의� 이� 말은� 앞에서� 룻이� 자신을� 가리켜�

'이방� 여인'으로� 말한�것(10절)에� 대한�위로의�말이기도�하다.

=====2:13�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 -� 룻은�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 같지� � 못하오나'란�

말과� 같이� 자신에게는� 최대의� 비하와� 겸손으로써,� 그리고� '내� 주여� 내가� 당신께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란� 말같이� 보아스에게는� 최고의� 존경과� 감사로써� 자신이� � 받은큰� 위로와�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즉� 모

압� 땅을� 떠나온� 이래로,� 이처럼� 따뜻한� 인정을느껴본� 적이� 없었던� 룻은� 그� 무엇보다도� 이방� 여인을� 여

호와의� 이름으로� 맞이해� � 주는보아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 어떤� 호의� 보다도� 더욱� 큰� 힘과� 위로�

및� 기쁨이�되었을�것이다.

=====2:14� � 초�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메츠'(*� � � � � � )는� 포도주에서� 난� '초'(민� 6:3)를� 의

미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빵과� 함께� 식사할� 때� 양념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오

늘날까지도� 근동� 지방에서는� 갈증을� 푸는� 음료로� 이것을� 사용하고있다(Goslinga).� � � 볶은� 곡식� -� 이것

은� 아직� 덜� 여문� 밀을� 모닥불등에� 살짝� 볶은� 것으로(레� 2:14),� 아직도� 근동� 지방에서는� 빵에� 곁들여�

사용되거나�빵대신�주식으로�애용되기도�한다.

=====2:15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 여기서� '곡식� 단� 사이'(between� the� � sheaves)란� 말

은� 분명� 곡식� 단들을� 세워� 놓은� 바깥과는� 구별되는� 말로서,� 곧� 곡식� � 줄기를� � 한웅큼씩� 모아들인� 소녀

들이� 크게� 단(sheaf)으로� 묶는� 지점일� 것이다(J.Morison).� � 따라서� 그곳은� 그� 묶는� 과정에서� 자연히�

곡식� 이삭들이� 주변에� 많이� � 널려지는� � 곳이었다.따라서� 만일� 여기서� 룻이� 이삭을� 줍는다면,� 크게� 힘

들이지�않고도�충분한� � 양을� � 쉽게모아들일�수�있었다.

=====2:16� 뽑아� 버려서� -� 이� 말을� 좀더� 정확히� 옮기면� '떼어� 내어서'가� 된다.� 즉� � 단을� � 묶을때� 그�

단에서� 흘린� 것처럼� 떼어� 내어� 룻으로� 하여금� 그� 곡식을� 줍게� 하라는� 의미이다.특히� 보아스의� 이� 말�

속에는� 룻이� 곡식을� 주울� 때,� 동정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세심한� 배려가� 깃들어� 있

다.� 아무튼� 일하는� 소년들에게� 내린� � 보아스의� � 이지시는� 분명� 가난한� 자에� 대한� 동정이나� 긍휼의� 정

도를� 훨씬� 넘어선� � 것이었다.� � 분명보아스는� 이방� 여인� 룻의� 효성과�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

고,� 그로� 인해� 그녀에게�특별한�관심을�가진�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II,p.480).

=====2:17� 그� 주운� 것을� 떠니� -� 아마도� 룻은� 그� 주운� 보리� 이삭을� 편편한� 바닥이나� 또는� 멍석위에�

올려�놓은� 후� 적당한� 막대기나� 돌로서� 두들겨�떨었을� 것이다.� � � 한� 에바� -� '에바'(Ephah)는� 구약� 시대�

부피의� 단위로서� 대략� 23l즉� 약� 12되� 정도의분량이다.� 이처럼� 룻이� 하루� 동안� 23l� 정도의� 이삭을� 주

웠다는� 것은� 보아스가� � 그녀에게� 보여� 준� 호의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즉� 보아스는� 룻

에게� 점심� 식사를� 줄� 때,� 그녀가� 먹고� 남을� 만큼� 풍족히� 제공했을뿐� 아니라(14절),� 곡식� � 단을� � 묶을

때� 조금씩� 흘리도록� 함으로써� 그녀가� 풍성히� 거둘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16절).� � 그러므로� 룻은� 이러

한�보아스의�호의�때문에�넘치는�수확을�거둘� 수� 있었던�것이다.

=====2:18보이고...드리매� -� 이� 한� 구절� 속에� 시모에�대한� 룻의� 효성이� 함축적으로� 잘� � 나타나�있다.�

즉� 룻은� 자신을� 보내놓고� 걱정하시는� 시모를� 위하는� 마음으로� � 자신이� � 하루동안� 한� 일을� 죄다� 보여�

드렸을� 뿐� 아니라,� 또한� 대접받은� 음식을� 자기만� 배불리� 먹은것으로� 끝나지� 않고(14절)� 집에� 홀로� 있

는� 시모를� 생각하여� 정성껏� 남겨� 가지고� � 돌아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룻의� 행동은� 끝까지� 시모를�

공경하며�따르겠다고� � 약속한것(1:16,17)을� 구체적으로�실천에�옮긴�것이라�볼� 수� 있다.

=====2:19� �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 연속되는� 나오미의� 질문� 속에서� � 나오미

의� 궁금증의� 정도를�짐작할� 수� 있다.� 즉� 나오미의� 생각에�여인이� 하루� 동안� � 보리이삭을� 한� 에바� 정도�

줍는다는� 것도� 예사� 일이� 아닐뿐더러,� 준비해� 가지� 않은� � 점심을먹고� 남겨� 가져온다는� 것도� 누구의� 호

의를� 입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그래서� 나오미는� 젊은� 과부인� 룻의� 신변이� 염려되어� 그녀

에게�호의를� 베푼� 사람을�알고� 싶어� 했던� 것이다.� 분명� 오늘� 룻에게� 어떤� 일이� 생겼다는� 것을� 금방� 알

아차리고,� 그� � 일의� 자초� 지종을� 듣고� 또한� 알기� 원했던� 것이다.� 이에� 룻은� 시모의� 궁금증을� 풀어� 드

리기�위해� 그날� 일어났던�일의�자초� 지종을�예의� 그� 자상함으로�이야기�했을� 것이다.

=====2:20� � 그가� 생존한�자와� 사망한�자에게�은혜� 베풀기를� 그치지�아니하도다� -� 여기서� '생존한�자

'란� 나오미와� 룻을� 가리키며,� '사망한� 자'란� 모압� 땅에서� 죽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

과� 기룐을� 말한다.� 그런데� 본절에는� 한� 가지의� 문제가� 내포되어있다.� 즉�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를� 베푼� '그가'� 곧� 누구인가� 하는� � 문제이다.� (1)혹자는� 본절의� 주어� '그'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다(Keil,� Goslinga).� 이러한주장은� 사람이� '사망한� 자'에게까지� 은혜를� 베풀� 수� 없기� 때문이라는� 추론

에�의한� � 것이다.� 이에�따라� 영역� 성경�중� NIV와� Living� Bible에서도�본�구절의�주어를 구체적으로�

'하나님'으로� 밝히고�있다.� (2)그러나�혹자는�본절의�주어를�문장� 그� 자체에서� � 보여주는�대로� '보아스'

로� 주장한다(Matthew� Henry,� A.C.Hervey).� 이� 주장을�따라� � 본절을�해석해�보면,� 나오미는�보아스가�

그녀의� 남편과� 아들들이� 살아있을� 때에도� � 자신의가정에� 호의를� 베풀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지금� 살아�

있는� 자신들에게� 베풀고� 있는� 보아스의� 호의를� 그때의� 상황과� 연결시켜� 말했다는� 의미가� 된다.� � 결론

적으로 무엇보다여기서� 보아스가� 룻에게� 호의(好意)를� 베풀었다는� 소식을� 접한� 나오미가� 보아스의� �호의를� 칭송하면서� 그� 호의를� 강조하고자� 이� 말을� 사용했다고� 볼� 때,� 본절의� 주어는� '보아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 � 기업을� 무를� 자� -� 이�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엘'(*� � � � � )은� '되찾다',� '

무르다',� '구속하다'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고엘� 제도'는� 하나님께로부터� 할당받은�

기업을� 영구히� 보존하고,� 혈족을� 유지하며,� 그리고� 부당한� 피해를� 당했을� 경우� 이를� 보상할� 제도적� 장

치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에서� 생겨났다.� � 따라서� � 고엘(Goel)이� 된� 자는� '고엘의� 의무'를� 감당해야� 했

는데,� 그것은� 곧� (1)가난한� 혈족의� � 땅을� 도로� 사주어야� 했고(레� 25:25,26),� (2)부당한� 피해를� 당한�

친족을� 위해� 복수할� � 책임을� 져야� 했으며(민� 35:12,19,21),� (3)그� 친족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 대(代)를� � 이어주어야� 함은� 물론,� 심지어� 그� 친족의� 죄값을� 대신� 받기까지� 했다(민� 5:8).� 그리고� '고엘의� 자

격'으로서는� (1)혈연적� 관계에� 있을� 것(신� 25:5-7),� (2)자원해야� 할� 것(3:13),(3)그리고� 고엘로서의� 능

력을� 구비할� 것� 등을� 들� 수� 있다(레� 25:25� 주석� 참조).� �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베들레헴성에서� 유력한�

자(2:1)이며,� 친족에게� 호의를� 베풀� 줄� � 아는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고엘로서� 가장� 합당하였다<레�

25:8-55� 강해,� 근족의�의무>

=====2:21그가� 내게�또�이르기를� -� 보아스의�큰�호의에�룻� 또한�감격하여 시모� � 나오미에게보

아스가� 자신에게� 베푼� 호의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말해준다.� � �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 여기

서는�보리� 추수만을�의미하지�않고,� 곧바로 이어지는밀� 추수� 때까지를� 의미한다(23절).� � �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나� -� 여기서� '소년들'(*� � � � � � � � � � ,� 네아림)은� 비록� 남성형으로�표기되었지만� 엄밀히� '소녀

들'과� 구분하고자� 그리� 사용된� 것은� 아니다.� 다만� � 룻으로� 하여금� 벼� 베는� 소년들� 뒤를� 따라가며� 단을�

묶는� 소녀들� 틈에서� 추수기가� 다� � 끝날� 때까지� 부담없이� 이삭을� 주우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8,22,23절).

=====2:22� �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 나오미의� 이� 말� 속에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고엘'이� 될� 자격이� 있다는� 확신이� 내포되어� 있다.� 즉� 앞절에서(21절)� 룻이� 보아스의�

말(8절)을� 나오미에게� 전해� 줄� 때,�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기� � 친족의� 고엘이� 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

로� 해석했고,� 따라서� 룻에게� 다른� 사람의� 밭으로가서� 보아스�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을� 삼가

하라고� 충고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룻이� 다른� 사람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려다� 자칫� 거칠게� 다루어질�

우려가�있었기�때문이다.

=====2:23�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 팔레스틴� 지방에서� 보리는� � 밀보다�

먼저� 익어서� 대개� 태양력으로� 4월� 중순경에� 거둬들인다.� 그리고� 약� � 2주일� � 후에밀� 추수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 내내� 룻의� 겸손하고� 근면한� 품행은� � 더욱두드러지게� 나타났을� 것이고,� 보아스

는� 이러한� 룻의� 행동을� 계속해서� 지켜볼� 수� �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보아스와� 룻의� 관계가� 점

차로� 무르익어� 가서� 마침내� 결혼에이르게� 되는� 과정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Morison,�

Cassel).� � �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 이� 짧은� 한� 마디의� 말은� 곧� 시모(媤母)에� 대한� 룻의� 변함없는�효성을�암시해�준다.� 즉� 18절에서�보여지듯,� 그� 근면하고�순결한�성품으로� � 하루� 일을� 마친� 다음� 그날

의� 좋은� 것들로� 시모를� 봉양하고,� 아울러� 시모에게� 하루의� � 일과를� 자상하게� 이야기하는� 등� 물심� 양면

으로� 시모를� 편하게� 받들어� 모시는� 룻의� � 한결같은� 모습이� 이� 짧은� 한� 구절� 속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

다.� � � � � 룻기�제� 3장

=====3:1� 안식할� 곳�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노아흐'(*� � � � � � � � )는� � '안식',� � '안식처'로� 번

역되는데,� 일반적으로는� '평화스럽고� 안정된� 생활� � 여건'을� � 의미한다(Keil).그런� 의미에서� 영역본� RSV

에서는�이� 말을 '한� � 가정'(a� � home)으로,� � 그리고� � LivingBible에서는� '남편'으로� 각각� 번역하였다.�

이에�따라� 공동� � 번역에서도� � '보금자리'로의역되었던�것이다.� 이와� 같이� 본절에서�사용된� '마노아흐'는�

과부가� � 가정을� � 가지는것� 즉� 남편을� 얻음으로써�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을� 암시한� 말이다

(Rosenmuller).� 사실고대� 사회에서� 가장� 소외당했던� 계층� 중� 하나인� 과부들은� 남편을� � 얻음으로써� �

남편의보호�하에서�평안함과�안식을�누릴� 수� 있었다(1:9).

=====3:2� 오늘� 밤에...보리를� 까불리라� -� 당시� 팔레스틴의� 타작법은� 다음과� 같았다.� 즉� 일단보리단을�

편편한� 평지(타작� 마당)에� 펴� 놓은� 후� 도리깨로� 골고루� � 조심스럽게� � 두들겨보리나� 밀의� 낟알들이� 떨

어지게� 한다.� 그리고는� 낟알에� 섞인� 지푸라기나� 보리� 수염� 등을� 없애기� 위해� 그것을� 바람에� 까불리는�

작업을� 한다.� 즉� 타작� 마당에� 떨어진� 곡식� 낟알들을� 대충� 주워� 모아� 공중에� 던져서� 까불리면� 바람에�

의해�지푸라기나�보리�수염�등은� 날아가고�곡식�낟알들만�마당에�떨어지는�것이다.� 바로� 이� 곡식 낟

알들만을� � 모아자루에� 퍼� 담으면� 일단� 타작� 행위는� 끝난다.� 따라서� 당시� 타작을� 하기� 위해서는� � 반드

시� 바람이� 불어� 주어야만� 했다.� 그런데� 보리� 타작할� 즈음인� 팔레스틴� � 지방의� � 여름은그� 기후상� 낮에

는�바람이�별로� 없고� 주로� 오후� 5시�이후의�밤에� 내륙에서�지중해�쪽으로�바람이�불었다.� 따라서�타작

은�바로�이때� 행해졌다.� 그리고�타작을�하는 일꾼들은저녁� 내내� 일을� 하고� 나서는� 그� 타작� 마당의� 곡

식� 더미� 곁에서� 그대로� 자는� 것이� 보통이었다.�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상� 여름에는� 겉옷만� 덮고도� 충분

히� 잠을� 잘� � 수� � 있었기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의� 나오미의� 말은� 당시의� 이러한� 타작법의� 배경� 하에서�

나온�말이다.

=====3:3� � 타작� 마당� -� 추수한� � 곡식단을� � 떠는�장소로� � 사용되는 '타작� � 마당'�

(threshing-floors)은� 단단하게�다져진�평지를�가리킨다.� 즉� 로빈슨(Robinson)의� 말에� 따르면,� 주로� 노

천에서� 발견되는� 타작� 마당은� 원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대략� 그� 반경이� 15m� � 가량이라고� 한다.� 그

리고� 타작� 마당은� 대체로� 여러� 개가� 서로� 인접해� 있다고� 한다(Keil&Delitzsch,op.cit.p.484).� � �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 -� 보아스가� 타작� 마당에서� 먹고� 마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해석이� 있다.�

(1)타작이� 끝날� 때까지� 주인인� 보아스가� 곡식을� 지키기� 위해� 타작� 마당에서� 밤마다� 잠을� 잤을� 것이다

(Hervey,� Robinson).� (2)보아스는� � 보리� � 까불릴때에만� 나와서� 곡식을� 지키기� 위해� 그� 마당에서� 잠을�

잤을� 것이다(Atkinson).� (3)모든추수가� 필하였을(2:23)� 뿐만� 아니라� 보리를� 전부� 까불려� 놓았으므로,� �

그동안� � 수고한일꾼들과� 함께� 연회를� 베풀었을� 것이다(Matthew� Henry).� 이러한� 주장� � 중에서� � 우리

는어떤� 것이� 더� 정확한지� 구별하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볼� 수� � 있을것이다.� 즉� 보

아스는� 베들레헴� 성읍에서� 유력자이므로(2:1),� 긴� 추수� 기간� 동안� � 밤마다� 밖에서� 자지는� 않았을� 것이

다.� 그리고 보아스에게는� � 시종들이 많이� � 있었으므로(2:8),� 굳이� 그가� 그� 타작� 마당을� 지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보아스가� � 타작마당에� 나와� 먹고� 마신� 것은� 압살롬이� 양털을� 깎은� 후

(삼하� 13:23) 연회를 베풀었듯이,� 추수를� 마감하는� 보리� 까부르기를� 필하는� 밤에� 일꾼들과� 연회

를�베풀었기� � 때문이었을�것이다.

=====3:4� 그� 발치� 이불을�들고� 거기�누우라� -� 룻에�대한� 나오미의�이러한�지시는�일견� � 부도덕해�보

인다.� 그러나� '고엘� 제도'(2:20)라는� 당시의� 히브리�율법에�근거할�때� � 나오미의�이러한�지시는� 지혜롭

고� 당연했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에� 근거된� 바� � 당시� � 고엘의혜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신� 25:7).� 한편,� 이런� 점에서� � 본절에� 언급된� 나오미의� 지시가� 반드시�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

와�동침하도록�권유한�것이라고는�여겨지지�않는다.� 다만� 나오미가�자신과�룻의� 의사를 적극적이고

도� � 구체적으로보아스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으리라� 추측된다.� 한편� 나오

미가�대담하게� 이� 방법을�룻에게�추천한� 것은� (1)평소� 추수� 기간� 동안� 보아스와� � 룻의관계를� 주의깊게�

살펴본� 결과� 어떤� 확신이� 나오미에게� 섰기� 때문일� 것이다,� (2)보아스가� 룻에게� 상당한� 호의와� 찬사를�

보냈을� 뿐� 아니라,� (3)또한� 보아스는� 유력자이며� � 동시에� 덕망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 모든� 계획을� 준비한� 것은� 나오미이다.� � 그러므로� 룻은� 믿는� 마음으로�

시모의� 계획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지만� � 실제로� � 그계획의� 결과는� 보아스의� 손에� 달려� 있었

다.� 이� 사실을�알고� 있는� 나오미는�룻으로� � 하여금�보아스에게� '기업�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해�달라고�

조르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보아스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길� 각오였다.� 즉� 나오미의� 의도는� 누구� 보다

도� '고엘� 제도'에� 관한� 모세� 율법(레� 25:24,25;신� 25:5-10)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 덕망있는�

보아스의� 결정에� 모든� 일을�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오미가� � 룻을� � 믿듯이,보아스� 또한� 믿었다

는�뜻이�된다.� 결국�나오미의�이러한�믿음의�확신이�조만간�합력하여�선을�이루게�된다.

=====3:5� � 다� 행하리이다� -� 당시� 히브리� 사회에서는� 율법으로서� '계대� 결혼'(1:11)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었지만,� 그러한� 규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의� 가난한� 과부가� 베들레헴� 성읍에서� 소문

난�부자인�동시에�덕망있는�보아스에게�밤에�잠자리로 찾아가는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심지어� 풋이�

아무리� 보아스를� 마음속으로� 연모했을지라도� � 여자로서� 남자에게� 먼저� 접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 시모의말에� 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말씀대로� 다� 순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면면(面面)이� 곧� 평소� 시모를�공경하는�룻의�효성의�발로라�볼�수�있다.

=====3:6� �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 이� 말은� 룻이� 시모� 나오미의� 명을� 좇아� 보아스에게� � 행한� 모

든� 일을�설명하기에�앞서,� 먼저� 결론을�내려� 놓고� 이야기를�서술하는�표현이다.

=====3:7� � 여기서� 보아스가� 노적가리(the� heap� of� grain,� RSV)곁에� 누운� 때와� 룻이� 그의� 발치에�

들어가� 누운� 때�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었음에� � 틀림없다.� � 그근거는� 다음과� 같

다.� 즉� 보아스가� 잠자리에� 누워� 깊이� 잠들지� 않았다면� � 아무리� � 룻이가만히� 발치에� 들어와� 누웠을지라

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8절을� 주목해� 볼� 때� 보아스가� 발치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던�

때는� 한밤중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므로� 수리아역(the� Peshitta)은�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마당에서� 상

쾌한� 잠을� 잘� � 때'라는� 말을� 첨가시켰던� 것이다.� � �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 혹자는� 보아스의� 이러한�

행동이� 단지� 너무� 시간이� � 늦어다음날� 아침� 다시� 일하기에� 편하도록� 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Matthew� Henry).그러나� 이� 해석은� 약간� 문제가� 있다.� 즉� 다음날� 아침부터� 타작� 마당이나� 들에서� �

일하는� 사람은� 일꾼들이지� 보아스� 자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일꾼들의� 일이� 한참일� 즈음에�

때때로� 들에� 나왔었던� 것이다(2:4).� 따라서� 보아스가� 곡식� � 단들을� � 쌓아둔� 노적가리� 곁에� 누운� 것은�

노적가리를� 지키고자� 하는� 특별한� 관심에서� 비롯된� �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타작이� 끝나고� 보아스가�

그곳에서� 잠� 잘것을� 나오미가� 미리� 알고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는�주인이�타작� 마당에서잠을�자는�관습이�있었던�것으로�추론할�수� 있다(Robinson,� Thomson).

=====3:8� 밤중에...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 우리는� 본절의� 장면을� 눈에� 선연히� 그릴� 수� � 있다.� 즉�

타작� 후� 베푼� 잔치에서� 배불리� 먹고� 마신� 결과,� 약간의� 취기와� 더불어� � 포만감에� 젖어� 깊이� 잠들었던�

보아스가� 한밤중의� 냉기로� 인해� 약간� 몸을� 뒤척거렸을� 것이고,그때� 그는� 발치에서� 이상한� 감촉을� 느꼈

을� 것이다.� 이에� 보아스는� 놀라는� 기색으로� 당연히� 그� 물체를� 확인해� 보았을� 터이고,� 그� 결과� 발치에�

누워�있는� 한� 여인을�발견했을것이다.

=====3:9� �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표현을� 룻이� 보아스의� 보

호를� 받기� 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Matthew� Henry,� Hervey,� Atkinson).� 왜냐하면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보호하심� 같이(2:12� 주석� 참조),� 룻은� � 보아스의� 날개� 아래서� 보호받기를� 원했

기� 때문이다.� 즉� 구체적으로� 룻이� 보아스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를� 받는� 길은� 결혼을� 통해서였다.� 후일�

이같은�표현은�하나님께서� � 이스라엘�백성과�언약� 관계를�맺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낼�때에도�사용되

었다(겔� 16:8).� 그런데� 결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 관계를� 의미한다.� 이런� 견지에서� 여기� 룻은� �

구혼(求婚)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처럼� 말했던� 것이다.� � �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 이것을�히브리� 원문대로� 직역하면� '당신은�기업� 무를� 자이므로'가� 된다.� 즉� 룻은� 보아스가� 엘리

멜렉� 가정의� � '기업을� � 무를자'(a� kinsman-redeemer,� NIV)이기� 때문에�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했

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 율법에서도(신� 25:5-10),� 이스라엘� 사회의� 관습에서도� 이� 법은� 강제성을� 띠지

는� 않았다.� 특히� '기업을� 무르는� 자'(*� � � � � � ,� 고엘)는� 죽은� 형제의� 아내와� � 결혼하는� '수혼(嫂婚)� 제도'(계대� 결혼� 제도,� 1:11� 주석� 참조)에� 의해� 얽매이지� 않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이� 보아스에게�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단순히� 고엘의� 의무� � 외에� 그녀� 자신이� 보아스와�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의

미도� 포함한다.� 그래서� 보아스는� � 룻에게�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라는�

말로�칭찬했던�것이다(10절).� 한편� '기업� 무를� 자'에� 대한� 자세한�내용은� 2:20� 주석을�참조하라.

=====3:10�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 이� 말은� 룻이� 매우� 젊은� 여인이었던� 만큼,� � 자신의� 육

신의� 안목대로� 젊은� 남자를� 좇을� 수도� 있었으나,� 그리하지� 아니하고� 시모의� 뜻을좇아,� 그리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아� 희생적인�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보아스가� � 칭찬하는� 말이다.� 사실� 보아스는� 룻의� 시

부(媤父)� 엘리멜렉의� 동년배� 나이로서,� 당시� 룻에게는� 보아스가� 아버지�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 � 너의�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 룻이� 처음� 베풀었던� 인애는� 자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

고� 시모를� 모시기� 위해� 베들레헴에� 왔던� 것이며,� 나중에� � 베풀었던� 인애는� 시모를� 잘� 공경할� 뿐� 아니

라�젊은�과부로서�정욕을�좇지� � 않고 하나님의말씀을� 따랐던� 것이다(G.Gerleman).� 비슷한� 의

미로서,� '처음� 인애'는� � 죽은� � 남편에게베풀었을�룻의�사랑이며,� '나중� 인애'는� 근족과� 결혼함으로써�그�

남편의� 이름을� � 이스라엘� 중에� 남기고자� 하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Keil,� Michaelis).� 한편,� 특별히� �

본절에서� 보아스가� '인애'라는� 말로� 그녀의� 현숙함을� 표현했는데,� 이� 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인애'(仁愛)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 � � � � )는� �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의미하며,� 때로는� 인간� 관계에서� 끊을� 수� 없는� � 우정이나� 사랑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보아스는�룻의�행위가�진실된� � 사랑에�근거했음을�칭찬했던�것이다.

=====3:11�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 고엘이� 되어줄� 것을� 겸손히� 청하는� 룻의� � 요구에� 보

아스는� 일체의� 변명이나� 망설임� 없이� 이스라엘� 관례에� 따라� 정당한� 것으로� � 받아들였다.� 그는� 룻의� 인

격에서� 인간적� 조건과� 이해� 타산을� 초월한� 인애(*� � � � � ,� 헤세드)를� 발견하고� 자신도� 이러한� 인애로써�

응답하였던� 것이다.� � � 현숙한� 여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쉐트� 하일'(*� � � � � � � � � � � � � )은� �

본래'힘있는� 여자',� '능력있는� 여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체적으로나� � 도덕적으로� 뿐� 아니

라� 영적으로도� 감화력있고� 덕력(德力)있는� 여자를� 가리킨다.� � 한편� � 후일잠언� 기자는� 현숙한� 여인을�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즉� � (1)산업이� � 핍절치아니하게� 하며(잠� 31:11-19),� (2)가난한� 자

에게� 선을� 행하고(잠� 31:20),� (3)남편을� 존귀케� 만들며(잠� 31:23),� (4)모든� 언사에� 지혜와� 규모가� 있

고(잠� 31:26),� � (5)부지런하며� 게으르지� 아니하고(잠� 31:27),� (6)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주변� �

사람들에게칭친을� 듣는� 자(잠� 31:30,31)라� 했다.� 이처럼� 룻도� 이� 모든� 조건을� 구비하여� 성읍에서현숙

한� 여자로� 소문이� 나있었다(2:11).� � � 나의� 성읍� 백성� -� 이� 말은� 문자적으로� '내� 백성의� 온� 문(門)'(all�the� gate� of� � mypeople)을� 의미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로� 성문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창19:1;23:10;34:20;삼하� 15:2;느� 8:1;시� 69:12).� 특히� 성문에서는�그� 성읍의 장로들이백성들의� 송

사를� 맡아� 재판하던� 장소이기도� 했다(신� 21:19).� 그래서� 어떤� 사람의� 행위든지� 성문에서� 판결되어� 사

방으로�소문이�나게� 되어� 있었던�것이다(잠� 31:31).

=====3:12� 여기서�보아스는� 자신의�소욕대로�행동하지�아니하고,� 자기보다�더� 가까운� � 친족이있다는�

사실을� 룻에게� 일러줌으로써,� 그에게� 먼저� '고엘'의� 의무를� 물어야� 함을� � 일깨워� 주었다.� 따라서� 보아

스의� 이러한� 조치는� 율법의� 정도(正道)를� 따르는� 신중하고� � 분별있는� 행동이었다.� � � 기업� 무를� 자� -�2:20� 주석� 참조.� � �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 기업� 무를� 자의� 우선� 순위는�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부

터시작된다.� 그런데� 왜� 나오미는� 더� 가까운� 친족을� 두고� 보아스로� 하여금� 기업� 무를� � 자의� 의무를� 수

행하라고� 요구했는가� ?� 이에� 대하여� 혹자는� 나오미가� 오래� � 동안� � 타국에가� 있었던� 관계로� � 남편의� �

가계(家系)를 잘� � 몰랐기� � 때문이라고 주장한다(MatthewHenry).� 그러나� 4장에� 나타난� 바� 보

아스와� 룻의� 가까운� 친족과의� 대화를� � 살펴볼� � 때,그� 가까운� 친족은� 기업을� 무를� 만큼� 덕망이나� 재산

을� 갖추지� 못했던� 것� � 같다(4:1-6).이것을� 미리� 알았던� 나오미는� 그� 사람� 보다는� 보아스� 쪽이� 더� 확실

히� '고엘'의�의무를다하리라�확신했고,� 따라서�처음부터�그렇게�행동했던�것� 같다.

=====3: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 때는� 시간상으로� 한밤중이었으므로� 이미� � 성문은� � 굳게닫혀�

있었을� 것이었다.� 따라서� 룻이� 지금� 보아스를� 떠나가면� 그곳은� 들판이기에,� 그녀가� 마땅히� 들어가� 쉴

만한� 곳이� 없었다.� 이러한� 룻의� 형편을� 잘� 알고� 있는� 보아스는� 룻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했던� 것이다.�

이러한�보아스의�사려깊은�언사는�이미� 이삭� � 줍기의�과정에서도�잘� 나타난�바� 있었다(2:15,16).� � � 기

업� 무를� 자의� 책임� -� 2:20� 주석� 참조.� � �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 이것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행해지던� 일반적인� � 맹세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맹세하는� 것은� 맹세한� 자가� 여호와� 하나님� 앞

에서� 자신의� 전� 인격을� 걸고� 그� 맹세한� 내용을� 반드시� 실행할�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또한� 이맹세� 속

에는� 이를� 어긴� 자의� 증인되신� 여호와께� 반드시� 벌을� 받을� 것이라는� 엄숙한� 암시도� 포함되어� 있다

<6-13절� 강해,� 맹세에�대한� 바른� 이해>.

=====3:14� �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 룻은� 보아스의� 말에� 따라� 새벽� 곧� 성문이� � 열리며,사람

들이� 잘� 알아볼� 수� 없는� 시간까지� 보아스의� 발치에� 누워� 있었다.� 이처럼� 룻이� � 보아스의� 발치에서� 잠

을� 잔� 것으로� 보아� 이� 두� 사람은� 순결을� 유지했음을� 알� � 수� � 있다.보아스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다음

과� 같은� 전통을�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 즉� � 모리스(Morris)는� 탈무드의� 주석인� 미쉬나(Mishna)를� 인

용하여� 어떤� 사람이� 이방여인과�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의심을� 받게� 되면� 그는� 그� 여인과� 수혼(계대�

결혼)을� 할� 수� � 없게된다고� 말한�바� 있다.� 따라서� 보아스는�기업� 무르는� 모든� 절차가� 끝날� 때까지� � 매

사에신중을� 기하여,� 자신과� 룻� 사이에� 부도덕한� 일이� 발생했다는� 인상을� 다른� � 사람들에게주지� 않으려

고� 노력했던� 것이다.� � �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 �

모세율법에�기록된�바(신� 25:5,6)� 계대� 결혼의�권리를�이행코자�취한� 룻의� 행위는� 결코� 부도덕한�행위

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룻이� 보아스의� 말을� 좇아� � 타인의눈길을� 피해� 새벽� 미명� 어둑

어둑할� 때에� 보아스� 곁을� 떠난� 것은� 단지� � 그녀의� � 사정을잘� 알지� 못하는� 자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오

해를�불러일으키지�않도록� � 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룻과� 보아스가� 함께� 밤을� 지새웠

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 (1)변명할� 겨를도� 없이� 이방� 여인� 룻은� 물론이요,� 보아스의� 평판에도� 악영향

을� 끼칠� 우려가충분이� 있었기� 때문이며,� (2)무엇보다도� 세도있는� 보아스의� 가까운� 친족되는� 사람들이

쓰러진�가문의�이방� 여인� 룻과�보아스의�결합을�극구�방해하게�될�빌미를�주기�때문이었다(Rowley).

=====3:15겉옷�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테파하트'(*� � � � � � � � � � )는� 성경에서� 사� 3:22에� 한�

번� 더� 나오는데,� 이는� '겉옷'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는� � 3절에서� 언급된� '옷'(*� � � � �

� � � ,� 시믈라)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이것이� 영역본� � KJV에서는� '수건'(veil)으로,� NIV� 와� Living�

Bible에서는� '어깨� � 걸치개'(shawl)로� � 각각번역되었다.� 이에� 따라� 혹자는� 이� '겉옷'을� '커다란�어깨� 걸

치개'로� � 해석한다(Keil).아무튼� 본문에서� 이� 겉옷으로� 보리를� 싼� 것으로� 보아� 단순한� 겉옷이라기� 보다

는� � 외투에� 걸쳐� 덮는� '커다란� 수건'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아마� 이것으로써� � 룻이� 어깨

를� 덮으면서� 동시에� 얼굴을� 가리고�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서� 나왔을� 것으로� � 추정된다.� � � 보리를� 여섯�

번� 되어� -� 몇몇� 주석가들은� 여기� 여섯� 번� 된� 것을� '오멜'로� � 생각한다(Goslinga,� Matthew� Henry).� '

오멜'(Omer)은� 에바의� 1/10로서,� 1� 오멜은�약� 2.3l에� 해당한다.� 따라서� 6오멜은�약� 14l(약� 7되)� 정도

가� 된다.� 또� 이와� 달리� 랍비들이나� � 탈굼역에� 따르면,� 여섯� 번� 된것을� 6� '세아'(Seah)로� 생각한다.� '세

아'는� � '에바'(Ephah)의1/3로서,� 1� 세아는�약� 7.6l에� 해당한다.� 따라서� 6세아는�약� 46l(약� 24되)에 해

당한다고�주장한다.� 그러나�이것은�무리한�추론이다.� 왜냐하면� (1)이것은�룻이� 혼자서� � 들고갈�수� 없을�

만큼� 많은� 분량이며,� (2)또한� 그� 만큼의� 분량은� 그녀의� 겉옷으로� 쌀�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 모든�

추론과� 상관� 없이� 보아스가� 룻에게� 보리를� '여섯� � 번'되어주었다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Cassel).�

즉� 보아스는� 룻에게� 보리를� 줌으로써� � 자신의� 말이� 헛된� 것이� 아니라,� 참말임을� 확증시켜� 주고� 그녀를�

안심� 시키려� 했던� � 것이다.� 아울러� '안식년� 규례'(출� 23:10,11;레� 25:2-7,20-22;신� 15:1-15)에� 따르

면,� 6년은봉사와� 수고의� 기간이며� 7년째는� 안식과� 해방의� 순간이다.� 따라서� 보아스는� 룻에게� � 6번� 보

리를� 되어� 줌으로써,� 수고와� 노역의� 긴� 기간이� 이제� 다� 되었음을� 암시한� 듯하다.비록� 당시� 룻은� 히브

리인들의� 관습과� 규례에� 익숙치� 못했으므로� 그� 의미를� 잘� � 몰랐다고� 해도,� 룻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

받은�나오미는�즉각�그� 상징적�의미를�알았던� � 것같다(18절).

=====3:16� � 어떻게� 되었느냐� -� 본� 구절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너는� 누구인고� ?'(미� 아트,*� � � � � )가�

된다.� 따라서�혹자는�나오미가�자기�집에� 들어온�사람이�누구인지 어두워서식별하기� 어려웠으므

로�이렇게�말했다고도�주장한다(Drusius).� 그러나�룻이들어왔을때� 나오미가� '내� 딸아'라고� 불렀으므로�

이� 구절은� 자기� 집에� 들어온� 사람이� � 누구인지확인하는� 물음이� 아님에� 틀림없다.� 한편� 영역본� KJV는�

이� 말을� 문자적으로� '너는� 누구인고� ?'(Who� art� thou� ?)라고� 직역했으며� � NIV,� Living� Bible,� RSV는�

'어떻게� � 되었느냐� ?'(How� did� it� go� ?)로� 의역하였다.� 그런데� 이� 말� 다음에� 바로� 이어서� 룻이� 시모

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을� 소상히� 이야기한� 것으로� 보아� '어떻게� � 되었는냐'로� � 의역하는편이� 자연스러

운�것� 같다.

=====3:17�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 보아스도� 분명� 룻의� 행동� 배후에는� 그녀의� 시모나오

미의�세심한�배려와�조언이�있었음을�충분히�감지했을�것이다. 따라서 보아스는룻에게�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도� 나오미의� 그러한� 계획에� 순순히응할� 용의가� 있음을� 암시해� 주려한�

것� 같다.

=====3:18� 룻으로부터� 간밤에� 일어난� 일의� 시종을� 들은� 나오미는� 룻에� 대한� 보아스의� � 호의와애정

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보아스의� 신실한� 인격으로� 보아� 조만간� � 약속을� 이행하리라고� 믿

었다.� 그래서� 지금은� 더이상� 다른� 계획을� 세우거나� 안달할� 때가� 아님을� 알았고,� 오직� 보아스의� 조처를�

기다리는� 것이� 최대로� 현명한� � 방법임을� � 알았다.따라서� 나오미는� 확신있는� 목소리로� 룻에게� 가만히�

기다리라고� 일렀던� � 것이다.� � 이는일의� 결국이� 하나님께� 달렸음을� 믿는� 히브리적� 신앙의� 표현이다(잠�

16:1,33).� � 이처럼인간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최선의� 노력으로� 다한� 후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쓸모없는� 염려와� 불안에서� 해방되는� 것이�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라� 할� 수� � 있다(빌� 4:6,7;

벧전� 5:7).� � � � � 룻기�제� 4장

=====4:1성문에� 올라가서� -� 고대의� 성문� 어귀에는� 대체로� 넓은� 장소가�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

람들은� 친구를� 만나거나� 새로운� � 소식을� � 논의했다(창� � 19:1;23:10;34:20;삼하15:2;느� 8:1;시�

69:12).� 특별히� 이곳은�성읍의� 대표들,� 특히� 장로들이� 백성들을� � 만나고�율법상의�판결을� 내리던�곳으

로� 이용되던� 장소였다(신� 21:19;수� 20:4).� 때에� � 따라서는� 왕이� 이곳에서� 직접�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

다스리기도� � 했으며(삼하� � 19:8;왕상22:10;렘� 38:7;대하� 32:6),�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가끔� 이곳에

서�가르치고 훈계하며예언하기도�했다(왕하� 7:1;느� 8:1,3;렘� 17:19,20;36:10).� 그래서� 장로와�함

께� � 성문에앉는�것은�큰� 명예로�여겨졌고(잠� 31:23),� 또한� 성읍의�유력한�자만이�성문� 어귀에�있는� 의

자에� 앉을� 수� 있었다.� 아울러� 성문에서� 압제하는� 일은� 곧� 재판의� 부패를� � 의미하였다(욥� 31:21;잠�

22:22).� 이처럼� 성문은� 성읍� 백성들에게� 있어서� 사회.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더불

어� 성문이� 성읍의� 시장터라는� 사실을� 근거하여� 볼� 때(왕하� 7:1),� 이곳은�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장

소였던� 것같다.� 따라서� 보아스가� � 성문에� 올라갔다는� 사실은�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율법상의� 판결을�

받기� � 위함이� � 틀림없다.� 한편� 여기서� '올라가서'라는� 표현은� 성문이� 있는� 높은� � 장소에� � 올라갔다기� �

보다(Pulpit� Commentary)� 장로들이� 모여� 판결하는� 장소로� 나아감을� 의미한다(Keil).� � 왜냐하면� 히브

리인들은� 어떤� 중요한� 지역을� 중심으로� 나아갈� 때,� 위치와는� 상관� 없이� 올라간다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왕하� 17:3;24:1;스� 7:13;사� 36:1).� � � 아무여� -� 여기서� '아무여'에� 해당하는� 히브리

어는� '펠로니� 알모니'(*� � )인데� 문자적� 번역은� 힘들다.� 영어로는� 'such� a� one'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 말은보아스가� 그렇게� 불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명� 보아스는� 그� 사람을� � 지명하여� 그� 이

름으로� 불렀을� 것인데,� 다만� 본서의� 저자가� 이처럼� � 기록했을� � 뿐이다(Keil).이와� 같이� 본서� 저자가� 첫�

기업� 무를자의� 이름을� 기록치� 않은� 것은� 아마도� (1)룻의� 남편이� 될� 뻔한� 그� 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

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여�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였거나� (2)기록상� 무심코� 그� 자의� 이름을� 밝힐� 필

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처럼했으리라� 추정된다.� � � 이리로� 와서� 앉으라� -�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그� 성

읍의� 모든� 사람들이� 통행하는� 유일한� 출입구였다.� 따라서� 성문� 앞은� 늘� 일을� 보기� 위해� 드나드는� 사람

들로� 붐볐다.� 따라서� 만일� 원하는� 사람을� 찾고자� 한다면� 이곳에서� 거의� 찾을� 수� 있었다.� 보아스도� � 이

곳� 성문� 어귀에� 앉았다가� 원하는� 사람을� 찾았고,� 그에게� '와서� 앉으라'고� 했다.� 이� 말은� 곧� 어떤� 문제

를�놓고�정식� 재판을�받자는�일종의�재판� 청구의�말이었다.

=====4:2� � 장로� -� '장로'(長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로는� '턱수염'이란� 의미를� � 지닌� � '자켄'(*� � � � � )과� '백발'을� 의미하는� '시브'(*� � � � � )가�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장로라� � 하면� '자켄'이� 사용되었으며,�

구약에서는� '시브'가� 한� 번(스� 5:5)� � 언급되었다.� � 그리고신약에서는� '나이� 든'� 또는� '연장자'를� 의미하

는� '프레스뷔테로스'(*� � � � � � � )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어원적인� 의미를� 종합해� 보면� '장로'는� 한� 사회

의� � 덕망있는� 연장자로서� 어떤� 친족,� 지파,� 지역� 사회의� 생활� 가운데서� 막대한� 영향력을� � 행사하던� 자

들을�가리킨다<신� 21:1-9강해,� 성경에�나타난�장로직>.� � 이스라엘 사회에서장로들은� 주로� 백성

들을�치리하는�일을�맡아� 백성들간에�다툼이나�법적인� 분쟁이�생겼을�때� 재판관� 노릇을�함으로써�공의

를� 시행했다.� 이외에도� 지역� 사회의� 기강을� 세우는제반� 업무� 및� 중요한� 정치,� 종교,� 사법적인� 일에� 직

접� 또는� 간접으로� 관여했으며� 때로는� 군사�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수� 8:10;삼상� 4:3).� 뿐만� 아

니라� 국가의� � 왕을선택하는� 일에도� 참여했다(삼상� 8:4,5;삼하� 3:17;5:3).� 이러한� 장로들의� 역할은� � 이

스라엘이� 멸망당한� 후� 포로로� 잡혀갔던� 이방� 땅에서도� 계속되었다(렘� 29:1;겔� 8:1).� � � 십인을� 청하여�

-� 여기서� 장로� 10인은� 재판� 사무를� 완벽히� 처리하기� 위한� 법적� 성원수였던� 것� 같다(Cassel).� 또는� 충

분한�증인의�수이기도�한데,� 여하튼� � 장로 10인으로구성된� 재판은� 전혀� 하자가� 있을� 수� 없음을� 나

타낸다.� 후일� 유대교는� � 이러한� � 전통을따라� 하나의� 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회원수를� 장로�

10인� 이상으로� 정했다.� � �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 본절에� 이� 말이� 언급된� 것은� 보아스가� 베들레헴� 성

읍의� 유력자(2:1)임을� 실제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즉� 보아스가� 장로들을� 소집하여� � 그들에게� 앉

을� 자리를� 정해� 준� 것으로� 보아� 우리는� 그가� 장로들중의� 지도자급임을� � 추정할수� 있다(Matthew�

Henry).� 무엇보다도� 보아스는� 유다� 지파의� 족장이었던� 나손(민� 7:12)의� 손자였으므로,� 그의� 조부가� 소

유한�재산을�상속받았을�뿐�아니라,� � 가문의� � 지위도물려받았을�것이다.

=====4:3� 기업� 무를� 자� -� 2:20� 주석� 참조.� � � 관할하므로�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케라'(*� � �

� � � � )는� � '팔다'(*� � � � � � � ,마카르)의� 칼(Qal)� 완료형이다.� 이에� 따라� 시리아역(the� Peshitta)에서는� � '

팔았다'로번역되었다.� 그런데� 계속되는� 대화의� 내용으로� 볼� 때� 나오미가� 그� 땅을� 팔았다는� 의미가� 없

다.� 그리고� 땅을� 팔았다면� 이미� 모압� 땅으로� 엘리멜렉� 가정이� 이주할� 때� � 엘리멜렉이� 다른� 사람에게�

그� 땅을� 이미� 판것이지� 나오미가� 판�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

완료형의�의미를�살펴볼�필요가�있다.� 즉� � 히브리어�완료형(Perfect)은� 비단� 완료된�과거의�일� 뿐� 아니

라,� 미래적� 의미로서� 미래에� � 완료.성취될� 것이� 확실한� 약속이나� 결심� 등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Driver).� 이러한� � 의미로� '마케라'를� 번역해� 보면� '팔려고� 결심했다'란� 의미가� 된다(Goslinga).� � 이에� �

따라대부분의�영역�성경은� 가까운�미래를�나타내는�진행형�곧� '팔� � 것이다'(is� � seling)로번역하고�있다

(KJV,� NIV,� RSV,� Living� Bible).

=====4:4여기� 앉은� 자들� -� 어떤� 영역� 성경은� 이� 사람들을� 장로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 � 내지는� 장로

들과� 동일시한다(Living� Bible).� 그러나� 이것은� 원문의� 의도를� 지나치게� � 의역한� 결과이다.� 본래� 이� 말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요세빔'(*� � � � � � � � � )은� '거하다',� '앉다',� '남아� 있다'를� 의미하는� 분사의�복수형

으로� '거하는� 자들'� 또는� '앉아� � 있는� � 자들'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어떤� 영역� 성경은� '거민들

'(inhabitants,� KJV)로,� 어떤� 영역� 성경은� '앉아� 있는� 자들'(those� sitting,� RSV,� NIV)로� 각각�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만일� 전자의� 번역을� 따르면� 그곳에� 있는� 자들은� 성읍에� 사는� 자들로서� 구경나온� � 자들

이며,� 후자의� 번역을� 따르면� 입회인(立會人)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후� 판결이� 끝났을� 때(9절)� '장로들과�모든� 백성들'이� 증인으로�언급되어�있는�것으로� � 미루어보아� '앉아� 있는� 자들'보다는� '거

민들'로� 옮기는� 편이� 타당할� 것같다.� � �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 나오미가� 그� 땅을� 아직� 다른� 사람

에게�팔지 않았으므로� '무른다'는� 것은� 나오미가� 팔려고� 하는� 그� 땅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

런데� � 나오미가� 그�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고� 친족� 구속자(고엘)를� 찾은� 히브리� 율례상� 어떤사람

이� 가난하여� 그� 기업의� 땅을� 팔� 경우에� 그는� 반드시� 그� 기업의� 땅을� 친족,� 곧� � 기업� 무를� 자(고엘)에

게� 먼저� 팔아야� 한다는� 전통에� 근거한� 것이다(Aalders,� Goslinga).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 땅은�

계속�가문� 중에� 남아�있게� 될� 것이기�때문이다.

=====4:5� 룻에게서� 사서...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지니라� -� 엘리멜렉에게는� 본래� 두� � 아들이� 있

었다(1:1,2).� 따라서� 엘리멜렉� 사후(死後),� 그� 기업의� 땅은� 당연히� 두� � 아들의몫으로� 상속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두� 아들마저�모두�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 기업의�땅은� 가까운� 친족의�순서를� 따라� 각

각� 나오미의� 두� 자부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두� 자부� 중� 하나(오르바)는� 모압� 땅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제� 기업의� 땅에� 대해� �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는� 룻� 뿐이었다.� 따라서� 보아스는� 그� 기업� 무를� 자

에게� 이� � 사실을� 고지했고,� 아울러� 고엘로서의� 의무를� 완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룻과� 계대� � 결혼하여�

룻의� 전� 남편의� 이름으로� 그� 기업의� 땅을� 잇게� 하여햐� 할� 것까지� � 알려� � 주었다.한편,� 그런데� 이전까

지는� '기업� 무르는�일'에� 대한� 언급만�있었으나,� 이제는�죽은� � 형제의�아내를�취하여�그� 형제의�이름이�

끊어지지� 않게�하는� '계대� 결혼'(신� 25:5)에� 관한� 내용까지�이어진다.� 그런데�계대� 결혼에�관한� 율법은�

본래� 죽은� 자의� 형제에게� � 부여된� 것이므로,� 여기서� 친족에까지� 확대된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 그

래서� � 혹자는본절의�내용을�나오미가�거래의�조건으로�내세운�것이라고 주장하기도� � 한다

(MatthewHenry).� 그러나� 신명기의� 계대� 결혼에� 관한� 조항에서� 언급된� '형제'(신� 25:5)의� � 의미가� 시

대의� 흐름에� 따라� 더욱� 폭넓게� 적용되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따라서� 본절에서� 보아스가� 했던� 말

은� 나오미가� 내세운� 조건도� 아니고,� 보아스가� 첨가시킨� 말도� 아니다.� 즉� 그것은� 율법의� 확대� 적용에�

따른�것이다(4:1-12� 강해� 참조).

=====4:6� �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자는� 단순히� 나오미의� � 기업만�

무르게� 되면� 자기에게� 분명히� 유익이� 돌아오게� 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다

른� 사람에게� 땅을� 팔아도� '희년'이� 되면� 도로� 찾을� � 수� � 있었으나(레� 25:25-28),� 어떤� 사람이� 상속자

가� 없는� 친족의� 땅을� 무르게� 되면� 그것은� 무른� � 자에게� 영원히� 속하게� 되어� 무른� 자는� 그의� 기업을�

확장시키게� 되기� � 때문이다.� � 따라서그� 자는� 처음에는� 선뜻� '무르리라'(4절)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런

데� 5절에서� 보아스의다음� 설명을� 듣고� 난� 그� 사람은� 재빨리� 마음을� 바꾸게� 된다.� 왜냐하면� 그� � 기업� �

무를권리를� 가진� 사람은,� 룻과� 계대� 결혼하게� 되어� 아들을� 낳게� 되면� 무른� 그� � 땅이� � 룻을통해� 난� 아

들에게� 상속되어�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을� 잇게� 되므로� 자신에게� 유익은� � 커녕� 손해만� 돌아오게� 될� 것

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Keil).� 따라서� 이� 근족이� 취한� 자세는� 하나님의� 선한� 율법까지도� 자신의� 이

익을� 위해서만� 이용하는� 지극히� � 이기주의적인�태도라� 볼� 수� 있다.� � �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

기업�무를� 권리를�가진� 자가� 그� 권리를 보아스에게� 넘겨� 준� 이유로� 혹자는� 룻이� 모압� 여인이며,�

엘리멜렉� 가정의� 불행이� 모압으로� � 이주한� 탓이며,� 말론과� 기룐의� 죽음� 역시� 모압� 여인과� 결혼한� � 탓

으로� � 돌린다(Cassel).이외에�시리아역(the� Peshitta)은� 기업�무를� 권리를�가진� 자가� 아내를�갖고 있

었으므로�룻을�자기� 아내로�맡게� 되면� 그들� 사이에�논쟁과�싸움이�일고� 후에는�재산� 상속� 문제가�까다

롭게� 되는것� 때문에� 그가� � 자기의� � 권리를� � 포기한� � 것으로� � 번역되어� � 있다(Matthew� Henry).� 그런

데� 이러한� 해석은� 본문상에� 전혀� 암시되어� 있지� 않은� 사실� 무근한� 추론이다.� 따라서� 우리는� 충실한� 성

경적�진술을�따라�그가� 자신의� � 권리를� � 포기한이유는�재산상의�손해�때문이라고�결론�내릴�수�있다.

=====4:7� 옛적� -� 이� 말이� 의미하는� 시점(時點)은� 본서의� 저자가� 어느� 시대에� 속해� 있는� 사람인가에�따라�달라진다.� 유대인�전승이나�탈무드에�의하면�사무엘이 본서의 저자라고되어� 있으며,� 혹자는�

다윗� 왕이� 직접� 본서를�기록했다고� 주장하지만(Heumann)�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는�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본서가� 다윗� 왕의� 동시대� 인물� 또는� 그직후의� 인물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22절).�

따라서� 본절은� 다윗� 왕이나� 그� � 후대의� 어느� 한� 시점에서� 볼� 때� 옛날에� 해당하는� '사사� 시대'를� 그� �

시점으로� � 언급하고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 말은� 저자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이� � 관습이� � 사라졌

다는것을� 암시하기도� 한다(Keil).� � � 확정하기�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옘'(*� � � � � � )은� '일어서

다'를� � 의미하는'쿰'(*� � � � � )의� 피엘(Piel)형으로서� '(의무를)다하다'(fulfil),� '확정하다'(confirm),'비준하

다'(ratify),� '(책임을)지우다'(impose)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를� 통해� 볼때� 이� 단어는� 법률상의� 어

떤� 문제가� 타협되어서� 그것을� 공고히� 할� 때� 사용되었음을� 알수� 있다.� 따라서� 본절에서� 이� 단어는� '무

르거나� 교환하는� 일',� 즉� 율법상의� 거래� 관계에� 있어서� 그� 거래가� 완전히� 성립되어� 다� 끝났다는� 의미

로� 사용되었다.� � � 사람이�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주더니� -� 본래� '신을� 벗기는� 행위'는� 상대편에게모

욕을� 주기� 위함이었다.� 즉� 계대� 결혼을� 거부� 당한� 과부가� 장로들� 앞에서� 상대편에게나아가� 그의� 발에

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도록� 규정된� 신명기� 율법에� 근거한것이었다(신� 25:9).� 이런� 의미에

서� 1세기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보아스가� 룻으로� 하여금�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자의�

신발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도록� 했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신을�

벗었다기� 보다는� '땅에대한� 소유권을� 포기� 또는� 양도한다는� 뜻을� 상징하는� 행동'으로� 나타나� 있다.� 즉� �

신발은� 땅을� 직접� 밟을� 수� 있는� 매체이다.� 따라서� 이것을� 벗어� 상대방에게� 넘겨� 준다는� 것은� 그� 땅을�

양도� 또는� 포기한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반대로� 땅을� 구입한� 자는� � 자신의소유권을� 주장하고� 확인하는�

절차로� 직접� 산� 땅을� 발로� 밟는� 공증(公證)� 순서를� � 치렀다� 한다(신� 25:9� 주석� 참조).� 또한� 신발은�힘과� 권위의�상징이었으므로(시� 60:8)� 이것을�벗어� 상대편�사람에게�준다는�것은� 자신이�지닌� 권리를�양

도한다는� � 의미이며,� � 이신발을� 다른� 사람에� 의해� 벗기우는� 것은� 힘과� 권위를� 타인에게� � 빼앗김으로써� �

수치를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계대� 결혼� 관습에서� 계대� 결혼을� 거부당한� 과부가� 장로들�

앞에서� 상대편을� 모욕� 주기� 위해� 신을� 벗긴� 것(신� 25:5-10)과� 직접적인� � 관련은� 없으나(Goslinga,�

Patrick),� 상징적�의미로는�서로�연관되어�있다고�볼� 수� 있다.

=====4:8� � 네가� 너를� 위하여�사라� -� 이� 말� 속에는�보아스가�기업을�무르게 되면� � 보아스에게이

익이� 된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자� � 자신은재산상의� 손해를�

우려하여� 그� 권리를� 포기했으면서,� 보아스가� 그� 권리를� 취하게� � 되면이익이� 될� 것� 이라는� 표현을� 썼다

는� 것은� 다소�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는� 기업� 무르는� 문제를� 보아스가� 먼저� 제기했으므로,� 이� 문

제에� 보아스가�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했기에� 자기가� 포기하는� 것이� 보아스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표현했던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이로써� 이제� 보아스와� 룻과의� 결혼은� 율법적으로나,� 사

회.도덕적으로�아무런�문제가�없게� 되었다.� 따라서�이�모든� 일의� 진행은 하나님의� � 선하신섭리의� 결과

라고�볼�수�있다.

=====4:9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 -� 베들레헴� 성읍에� 있는� 기업� 무를� 땅은본래� 엘

리멜렉의� 소유였었다.� 그렇지만� 본절에서� 저자가� 그의� 아들들까지� 언급한� 것은상속에� 관한� 법적인� 절

차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즉� 엘리멜렉이� 죽게� 되자� 그� 땅은� 당연히� 그의� 두� 아들들에게� 상속되었으

며,� 이젠� 그의� 두� 아들들조차� 죽었으므로� � 그들의두� 미망인들에게� 물려질� 것이었다.� 그런데� 그중� 오르

바는� 모압� 땅에� 남았으므로� � 룻만이� 법적으로는� 그� 땅의� 소유자였던� 것� 같은데,� 실제로� 룻� 역시� 본래�

이방� � 여인이었으므로� 그러한� 기업의� 땅� 상속에� 관해�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여전히� 과부로�

남아� 있는� 시모(媤母)� 나오미가� 실제로� 그� 땅을� 관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보아스는� � 법적인� 절차를�설명함에� 있어서� '나오미의� 손',� 즉� 나오미의� 권위� 또는� 허락하에서� 모든일이� 이루어졌음을� 설명했던�

것이다.� 한편� 혹자는� 본절에서� 나오미가� 언급되었다고� 하여� 그녀가� 남편의� 소유인� 토지권을� 양도하고�

그� 값을� 지불받기� 위해� 성문에� 나와� 있었다고� 주장한다(Hervey).� 그러나� 룻에게� 모든� 일이� 끝날� 때까

지�가만히�앉아 있으라고당부한�나오미가(3:18)� 그� 자신이�그곳에�나갔다는�주장은�타당성이�없다.

=====4:10룻을� 사서� -� 이� 말은� 인신(人身)� 매매의� 의미가�아니다.� 당시� 기업을� 무를� 때� 돈을주고� 물렀을� 뿐만� 아니라,� 계대� 결혼까지� 이행하여야� 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보아스가기업을� 무름으로해서� 룻

도� 계대� 결혼을� 통해� 보아스에게로� 오게� 되어� 있었으므로� 이런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다.� � �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 보아스는� 죽은� 자의� 이름,� 즉� 엘리멜렉과� 기룐과� � 말론의이름으로� 자신이� 무른� 땅을� 상속

하겠다고� 선포했다.� 즉� 이것은� 룻과� 자신� 사이에서� 나는� 아들을�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으로� 기업을� 잇

게� 하겠다는�말이다.� 여기서 보아스는첫� 기업� 무를� 권리를� 가졌던� 사람이� 말했던� 것과는� 달리

(8절)� 자신을� 위해� 기업을� � 무른� 것이� 아니라,� 사라지게� 된� 자신의� 친족� 엘리멜렉의� 가문을� 위해서� 기

업� 무름을� � 해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보아스가� 율법의� 정신을� 바로� 이해하여�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충

실히�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 �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 -� 성문(城門)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장소이다(1절� 주석� 참조).� 그러므로� 룻을� 통해서� 날� 아들이�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으로� 그� 땅을�

상속하게� 되면,�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이� 성문에서�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은� 끊어지지� 않고� 모든� 사람

의�입에서�오르내리게�될� 것이었다.

=====4:11� 여호와께서...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 라헬과� 레아는� 족장� 야곱의� � 아내로서,�

이스라엘� 12지파를� 형성한� 12아들들의� 어머니이다.� 따라서� 장로들과� 백성들은룻� 역시� 여호와께� 그러

한�풍성한�복을�받아� 자녀의�번성은�물론� 라헬과� � 레아와� � 같이믿음의�어미가�되도록�해달라고�축복하

며,� 기원하였다.� 한편� 여기서� 야곱의� 아내들� 중라헬과� 레아만이� 언급되고� 그들의� 여종들인� 빌하와� 실

바의� 이름은� 제외되었다.� 이것은여종이� 낳은� 아들은� 그� 여� 주인의� 아들로� 간주되었던� 당시� 이스라엘의�

풍속을� 보여� 준다(창� 30:1-13).� � �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 '에브랏'은� '

베들레헴'의� 옛이름이다(창� 48:7).� 따라서�이� 축복의�말은� 유사한�내용을시적(時的)으로 반복해서표

현하는� 히브리� 문학의� 동의� 대구법(同意對句法)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 형태의� 동의� 대구법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재삼� 강조할� 때� 흔히� 사용되는� 수사법이다.한편� 보아스의� 기업� 무르는� 일에�

증인으로� 참석한� 장로들과� 백성들의� 이� 축복은� � 보아스를� 위하여� 비는� 축복의� 내용으로,� 곧� 보아스가�

근족을� 위해� 자기� 희생적인� 정신으로율법의� 정도(正道)를� 따라� 진실되게� 행함을� 축복하는� 내용이다.�사실� 당시� 사사� � 시대의� 전반적인� 타락상을� 고려할� 때� 이러한� 보아스의� 정신은� 실로� 높이� 살� � 만한� �

것이었다.� 아마도�이번�일로� 인해� 보아스의�덕망은�더� 널리� 알려졌을�것이다.

=====4:12소년� 여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아라'(*� � � � � � � � )는� � '소녀',� � '처녀','혼기에�

달한� 여자',� '여자� 심부름꾼'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 말이� � 지닌공통된� 점은� '어리거나� 젊

은'� 여자에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이� � 룻에게사용된� 것은� 그녀가� 아직도� '젊은� 과부'였

기� 때문이다(Driver,� Briggs).� � �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여기서� '베레스'(pharez)는�

다말이� � 그의시아버지� 유다와� 부정한� 방법으로� 동침하여� 낳았던� 쌍동이� 아들,� 곧� 베레스와� 세라� 중차

자(次子)였다(창� 38:27-30).� 그런데�여기서�베레스의�이름만�언급되고�세라의� � 이름이�빠진� 이유는�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즉� 18절� 이하에� 언급된� � 족보에서� � 처럼보아스가� 베레스의� 후사라는� 점에�

주목할�필요가�있다.� 다시�말해� 베레스는 보아스의직계� 조상이었으므로� 여기서� 베레스만� 언급되고,�

보아스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세라의� 이름은� 생략된�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장로들이� 특별히� 베레

스의�집에�대하여�언급한�것은� 베레스가�계대�결혼법에�의해�태어나서�유력한�보아스의�조상이�된� � 것� �

같이,� 장차� 룻과�보아스�사이에서�태어날�아이도�이와� 같이� 되기를� � 바라는� � 마음에서였다.

=====4:13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 이렇게� 함으로서� 모압� 여인� 룻은� 가나안� 여인라합�

및� 다말과� 더불어� 여인� 중�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게� 되는� 영광을� 얻게� � 되었다(마1:5).� 그런데� 사실� 구

속� 역사� 속에서� 모압의� 인상은� 매우�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 모압족속은� 본래� 근친� 상간(近親相姦)에�의하여�생겨난�부족이며(창� 19:31� � 이하)� � 출애굽중인�이스라엘� 백성들에게�적대적이었고(민� 22:2-6),�

바알브올�사건�때에는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는� 올무가� 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민� 25장).� 그래서�

모압� 사람은� 영원히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율법에� 규정되기도� 했다(신� 23:3).� 이처럼� 혈

통적으로� 볼� 때� 모압의� 딸� 룻은� 마땅히� 저주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지만,� 자기� 민족의신인� 그모스

를� 버리고� 온전히� 여호와를� 신앙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총을� 힘입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조상이�되는�복을� 받았으나, 이것은 하나님의은총이� 거둔� 놀라운� 승리였던� 것이다.� �

�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아들을� � 낳게� � 되는것이� 무엇보다� 귀

중한�하나님의�축복으로�여겨졌다.� 반대로�아들을 낳지못한� � 여자는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졌으므로(시� 127:3)� 슬픔�가운데�살� 수� 밖에�없었다(삼상� 1:11).� 따라서�본절은�룻이� 하나님의�돌

보심과�축복�가운데서�성읍�장로들의�소원대로�아들을�낳게�된�사실을�강조한�것이다.

=====4:14� 찬송할지로다�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크'(*� � � � � � )는� � '무릎을� � 꿇다','축복하

다',� '문안하다'등� 다양한�의미를� 지닌다.� 그런데�이� 말이� 인간대� 인간� 사이에사용될� 때에는�주로� '무릎

을� 꿇다',� '축복을� 빌다',�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이� 말을� 사용할� 때에

는� '찬양하다'란� 의미가� 된다.� � 그� � 이유는인간이� 하나님� 앞에� 이� 말을� 사용할� 때에는� 무릎을� 꿇고� 하

나님께로부터� 받은� � 축복에대한� 감사와� 응답으로� 이� 말을� 하기� 때문이다.� � � 기업� 무를� 자� -� 혹자는� �

여기 이� � 말을� � '보아스'에게� � 적용시키고� � 있으나(CanonCook),� 문맥으로나� 법적으로� 볼� 때� 분명�

룻이�보아스를�통해� � 낳은 아들을 가리킨다(Keil,� Cassel,� Morison).� 왜냐하면� 룻이� 낳은� 아들은� 법

적으로� 엘리멜렉� 가문을� 이어나갈� 자이며(10절),� 따라서� 나오미에게는� 마치� 아들처럼� 되어� 그녀에게�

위로와� 기쁨을줌으로써,� 결국� 나오미의� 참� 기업� 무를� 자(고엘� 2:20� 주석� 참조)가� 되기� 때문이다.� � � 유

명하게� -� 이� 말에� 해당하는�히브리어� '익콰레'(*� � � � � � � )는� � '부르다',� � '선포하다',� '읽다'를� 의미하는� '

콰라'(*� � � � � � )의� 수동형으로� 곧� '불리워지다',� � '선포되다'로� 옮길�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이름

이�사람들�사이에서�좋은�의미로�많이� 불리워지는�것은�곧� 그� 사람이�유명하다는�것을�의미한다.

=====4:15� 네� 생명의� 회복자� -� 이� 말은� 나오미의� 생명이� 새롭게� 된다는� 것,� 즉� 마치� 죽은� � 것과� 방

불했던� 나오미의� 가정� 엘리멜렉� 가문이� 룻이� 낳은� 그� 아이로� 인해� 생기를� 되찾게된� 것에� 대한� 표현이

다.� � � 네� 노년의� 봉양자� -� 이것은� 나오미에게� 손자가� 생겼으므로,� 그로� 인해� 그녀가� 비록늙더라도� 장

성한� 손자의� 봉양을� 받게� 될것을� 일컫는� 말이다.� � �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 -� 이� 말은� 룻이� 단순히�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나오미에게있어서� 일곱� 아들보다� 귀하게� 여겨진�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룻이� 시

모를�잘 공경하고헌신하며� 순종하였던� 사실에� 근거하여,� 결국� 그러한� 지극한� 효성이� 열매를� 맺게� 된�

사실을� 칭찬한� 말이다.� 특히�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충만이나� 완전을� 상징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자녀의� 축복을� 풍성히� 받았음을� 상징할� 때도� 사용되었다(삼상� 2:5).� 따라서� 본절은� 시

모에�대한� 룻의� 공경과�헌신이�많은� 아들의�그것보다�더욱�컸다는�것을� 생생히�표현한�말이다.

=====4:16�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 혹자는� 나오미가� 단순히� 그� 아이의� 보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Hervey),� 사실상� 이것은� 보아스와� 룻을� 통해서� 난� 아이가� 엘리멜렉의가문에� 속하게� 되었다

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나오미가� 그� 손자를� 자신의양자(養子)로� 삼았다는� 의미일� 가능성이�크다(Keil).

=====4:17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 보아스와� 룻이� 낳은� 아들은� '계대� 결혼'에� 의해� � 태어난아이이

므로,� 곧� 나오미의�남편인�엘리멜렉�가문을�잇게�될�아이였다(10절). 그러므로사람들이� 이렇게� 간

주했던�것이다.� 한편� 이� 아이의�이름� '오벱'(*� � � � � � � )은� '섬기다'에� 해당하는� '아바드'(*� � � � � )의� 분사

형으로서� 곧� '섬기는� 자'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탈굼� 역(the� Targums)에서는� '오벱'을� '여호와의� 종'으

로� 번역하였다.� 그러나�이런�의미의�히브리어로� '오바댜'(*� � � � � � � � )가� 있으므로�그렇게�의역될�필요는� �

없다.� � 단지여기서� '오벱'이란� 이름은�늙은� 나오미를�봉양하고�섬기는� 자라는�의미에서(15절)그처럼�불

려진� 것으로� 추정된다(Matthew� Henry,� Hervey).� � �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 본서의�

저자가�다음에 이어지는� � 다윗의족보를� 열거하기� 전,� 본서의�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특별히� 본구

절을�삽입시킨� � 것은저자가�본서를�기록한�목적을�보여� 주기� 위함이다(Keil).

=====4:18� 세계� -� 이에� 해당하는�히브리어� '톨레도트'(*� � � � � � � � � � � � )는� � '낳다'를� � 의미하는동사� � '

얄라드'(*� � � � � � )에서� � 파생된� � 것으로� � � '세대'(generation)� � � 또는� � � '계보'(gonealogy)를� 의미한

다.� 무엇보다� 이� 말은� 사람의� 족보에� 대해서� 뿐� 아니라,� � 사물의계통적� 구분이나� 사건의� 구분에서도�

사용되었다(창� 2:4).� 그러므로�이� 말은 구속사에있어서� 역사� 흐름을� 신학적으로�구분하는�용어로�

사용되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혹자는천지가� 창조되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

까지의�구속사를� � 이'톨레도트'를� 중심으로�구분하여�설명하기도�한다(Vanderwaal).

=====4:19� 헤스론� -� 유다의� 손자이며,� 베레스의� 장자로서(창� 46:12;대상� 2:5),� 다윗의� 조상된자(마�

1:3;눅� 3:33).� � � 람� -� 헤스론의� 차자로서(대상� 2:9),� 다윗과� 그리스도의� 조상된� 자(마� 1:3,4).� � � 암미

나답� -� 유다� 지파의� 헤스론� 자손으로� 람의� 아들이자(대상� 2:10)� � 족장� � 나손의부친(민�

1:7;2:3;7:12;10:14).� 대제사장� 아론의� 장인이기도� 하다(출� 6:23).� 신약의� 그리스도의� 계보에는� '야미

나답'으로�표기되었다(마� 1:4;눅� 3:33).

=====4:20� � 나손� -�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장막� 세우기를� 마쳤을� 때,� � 유다� � 지파의족장

으로서� 성소에서� 제� 1일에� 예물을� 드렸던� 자이다(민� 7:12).� � � 살몬� -�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시�

정탐꾼들을�도와준�기생�라합과�결혼한� � 자이다(마� 1:5).

=====4:21� 보아스� -� 2:1� 주석� 참조.� � � 오벱� -� 17절�주석� 참조

=====4:22� 이새� -� 룻과� 보아스의� 손자이며� 다윗의� 부친(삼상� 16:18,19).� 베들레헴에� 거주했으며� 여

덟명의� 아들과� 두� 딸을� 두었다(삼상� 16:1,10,11).� 그리스도의� 조상된� 자로� � 일찍이� 그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날� 것이� 예언되었다(사� 11:1,10;마� 1:5).� � �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 본서는� 다윗의� 출생을� 밝

힘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있다.� 다윗� 왕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귀하고� 영광스러운� 가문으로�

여겨졌으며,� 예수님께서도� '다윗의� 자손'이라� 불리우신� 바� 있다(눅� 1:27).� 이와� 같이� 빛나는� � 가문도실

상은� 이방� 여인� 룻에� 의해� 그� 혈통이� 이어졌으니� 이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로� 말미암은� 것이다.� 실

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만의�하나님이�아니요� 이방인의� 하나님도�되시며�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를� 원하

시는�만유의�주이시다(롬� 3:29;갈� 3:14). 그러므로인간의� 재능이나� 혈통,� 권세등� 지위� 고하와�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앞에� 겸손히� 순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이� 함께� 하

게� 될� � 것이다.� � 본래� 저주� 받을� 모압의� 딸이었으나,� 그� 믿음과� 효성으로� 인해� 마침내� 다윗� � 왕가를� �

형성한이방�여인�룻은� 바로�그러한�진리를�오늘날�우리들에게�생생히�가르쳐�준다.